危機의 韓半島2022-1/ 01.05 해리스 전 美대사 “이미 종전선언 있다, 이름은 정전협정이고 잘 작동” - 01월 26일 ‘대통령 리스크’ 우크라이나 타산지석
危機의 韓半島2022-1/
01.05 해리스 전 美대사 “이미 종전선언 있다, 이름은 정전협정이고 잘 작동”
“제재 완화나 한미 군사 훈련 축소에 강하게 반대”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주한미국대사관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4일(현지 시각) 워싱턴타임스 재단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종전선언에 관해 우리는 그 선언 다음날 무엇이 변할지 자문해 봐야 한다”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해리스 전 대사는 “그것(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 아니다. 정전협정(armistice)은 여전히 훌륭할 것이다. 한국을 방어하려는 우리의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의무도 여전히 훌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핵, 화학, 재래식 능력도 여전히 훌륭할 것”이라며 “나는 항상 우리에게 종전선언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정전협정이라고 불리며 수십년 간 잘 작동해 왔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종전선언이 필요하냐는 취지다.
해리스 전 대사는 한미 훈련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대화 요구가 위협에 대응할 능력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이뤄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하겠다”고 말했다. “통상적 대화와 군사적 대비태세는 함께 이뤄져야 하며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에 뿌리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해리스 전 대사는 “우리가 그저 북한이 협상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대북)제재나 이런 연합 군사 훈련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는다”면서 “그것은 이미 시도돼 본 적 있으며 진정 실패로 가는 길이다”라고 했다. “만약 훈련이나 제재를 줄이려면 협상의 결과물 또한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과 중국은 계속해서 (한미)동맹의 결의를 시험해 보고 우리를 분열시키기 위해 우리의 강한 연대를 약화시키려고 할 것”이라면서 “나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제재 완화와 한미 동맹 분열 등을 원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첫 해가 지나도록 주한미국대사 후보를 지명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해리스 전 대사는 “백악관이 한국을 포함한 40국 대사를 지명하지 않고 있는데 (대사 인준을 지연시키고 있는) 상원만 나무랄 수 없다”고 말했다. 해리스 전 대사는 “한국이 핵심 안보 동맹이고 필수적 경제 파트너인데 아직도 대사 지명자가 없다니 당장 지명해서 빠르게 인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1.08 동맹을 코너로 몰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호주 방문 당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북한이 모두 종전 선언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전제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철회를 내세우고 있고, 이 때문에 남북 간, 미북 간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맹 정치에서 ‘동맹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기’라는 것이 있다. 어느 일방이 공개 발언을 통해 상대방을 비난받고 책임져야 할 처지에 놓이도록 압박하는 상황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몇 주간 종전 선언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 대통령의 호주 캔버라 성명은 사전에 워싱턴과 조율됐는지 여부가 완전히 불분명하다. 미국과 한국은 지난 몇 달 동안(대부분 한국이 요청해) 종전 선언에 관해 공을 들였지만, 이러한 논의는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문 대통령의 발표는 다소 시기상조였다.
워싱턴의 전문가들도 바이든 행정부에서 그런 발표를 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북한의 회담 조건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종식이라고 해도 한국 정부는 이를 미국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미국이 얼마나 자주 북한에 비적대적 입장을 표명했는지 옹호하는 입장에 서야 했다. 예를 들면 1993년 6월 미·북 공동성명에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 위협·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고, 이듬해 10월 미·북 기본 합의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 위협이나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확언했다.
클린턴 2기 때인 2000년 미·북 공동성명에서 양측은 서로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과거의 적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확인했다.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고, 2005년 9월 6자 회담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도가 없다”고 확언했다. 이어 2006년 11월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안보 협정을 맺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북한에는 평화와 경제적 기회로 이어지는 또 다른 길이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2009년 11월 “미국은 북한에 다른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북한은 더 큰 안전과 존중받는 미래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7월 김정은과 벌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의 갈등이 내일의 전쟁일 필요는 없다”며 “역사가 계속해서 증명하듯 적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1989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대통령,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적어도 40차례에 걸쳐 북한에 적대적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북한에 비적대적인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이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북한에 대해 비적대적 의도를 명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종전 선언이 대화 재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켜 상황을 심각하게 악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 또한 미국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대북 담화에서 비핵화라는 말을 드물게 사용하면서 비핵화를 낮은 순위로 격하했다. 그리고 북한을 회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양보(즉 비핵화 없는 제재 완화)로 평화 선언을 보완하는 공을 다시 미국으로 넘긴 것이다. 또 탄도미사일 실험이 없다고 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휴전 발언은 대중을 심각하게 오도하고 있다. 열 적외선을 사용한 CSIS의 최근 위성 사진은 북한 영변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이 완전히 가동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더 많은 핵무기를 생산한다는 의미다.
한국과 미국이 종전 선언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북한은 이를 ‘종이 한 장’ 정도로 받아들이고 제재 완화, 합동 군사훈련 중단, 주한 미군 철수, 미국 핵우산 폐기 등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선언이 한반도의 평화가 북한의 끊임없는 핵무장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을 공인하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01-14 美 전격 對北 제재에 뒷짐진 한국, 국제 ‘왕따’ 자초하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2일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도발에 맞서 미사일 부품과 소프트웨어 조달에 관여한 북한인 6명과 러시아인 1명, 러시아 기업 1곳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제재는 지난해 말 인권 제재 이후 두 번째로,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제재는 처음이다. 아울러 미국은 유엔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도 추진할 방침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성공’ 발표 하루 만에 전격적인 제재를 단행한 것은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고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그간 대화와 외교를 앞세운 실용적 접근법을 일관되게 유지했으나 이것이 북한에는 미국의 무관심 또는 나약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선 압박책 병행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특히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은 머지않아 미국에도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인 만큼 더 큰 도발을 막기 위해서도 적극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군사적 분석 결과도 고려했을 것이다.
미국이 당장 외교 우선의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미국은 패권도전자 중국과 질서교란자 러시아를 상대하는 데도 힘이 벅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협박에 우close유부단하다고 비판받는 바이든 행정부로선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북한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내가 무너지면 격한 분노로 나타나는 것은 국제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정세의 평화적 안정적 관리’를 내세우며 북한에 대한 경고 한마디 없이 대화 재개에만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의 제재 조치에도 “대화와 함께 제재 이행도 긴요하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남한 전역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 가공할 타격무기 개발을 두고도 남의 일이라는 듯 딴청만 피우는 모습이다. 이러다간 동맹 간, 나아가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에서 배제될 수 있다. 미국이 사전 통보는 했다지만 본격적 협의 없이 대북 제재를 전격 단행한 것도 한국에 대한 간접 경고일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01.15 “北엔 미소만, 中엔 저자세…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때인가”
[송의달이 만난 사람] 공로명 전 외무장관
공로명(孔魯明) 전 외무장관은 한국 외교의 거목(巨木)이자, 산 증인이다. 그는 1958년부터 38년동안 아시아, 남·북미, 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 6대주에서 총영사(카이로·뉴욕)와 대사(브라질·러시아·일본) 등으로 일했다.

▲공로명 전 외무장관은 2022년 1월5일 인터뷰에서 "젊었을 때 열심히 읽은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론'(원제 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을 보면 '영웅들의 특색은 성실(sincerity)에 있다'고 했다. 성실하게 살다가 잘 되면 좋고, 설사 못되더라도 삶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평생 '성실'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동아시아재단 제공
1964년 한일(韓日) 국교정상화 회담, 1983년 중국 민항기 송환협상 같은 한국 외교의 중요 고비마다 현장에 있었다. 1992년 남북고위급 회담 대표와 남북핵통제위원회 남측 위원장으로 북한도 상대했다. 1996년 말 외무부 장관을 끝으로 퇴임한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 한일포럼 의장 등을 지낸 뒤 현재 비영리 공익재단인 동아시아재단의 상임고문으로 있다.
◇올해 만90세...‘한국 외교의 거목’
작년 11월 공로명 전 장관의 구순(九旬)기념문집을 대표편찬한 유명환 전 외교장관은 그의 덕망(德望)과 실력을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8글자로 표현했다. “복숭아와 자두는 꽃이 곱고 열매가 맛있어,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달 5일 오후 서울 경복궁 인근에 있는 동아시아재단에서 공 전 장관을 만났다. 그가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1995~96년), 필자는 당시 외무부 출입기자로서 외교 현장을 취재했다.
수 년 만에 만난 공 전 장관은 걸음걸이가 조금 느릴 뿐, 기자와의 대면 인터뷰에서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오래 전 인명(人名)과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했다.
◇“새벽 4~6시 기상...매일 책·신문 읽어”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
“매일 오전 4~6시 일어나 거의 매일 재단으로 출근한다. 일본 문예춘추(文藝春秋)를 비롯한 국내외 잡지와 책, 신문, 저널들을 읽는다.”
- 고령인데도 건강하신 비결이라면?
“특별한 건 없다. 마음 편히 먹고 지내는 것 뿐이다.”

▲공로명 전 외무장관이 2014년 쓴 회고록 <나의 외교 노트>. 1932년 2월생인 그는 경기중(1945년 입학), 서울대 법대(1951년 입학)를 졸업했다. 육군 통역장교로 7년째 복무하다가 외교관 채용 시험에 합격해 대위로 예편한 뒤 외무부에 들어왔다./도서출판 기파랑 제공
◇“文 정부 외교는 ‘말’만 요란해”
- 최근 한국 외교를 어떻게 보시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화려한 말은 많이 했지만 뚜렷하게 남는 게 없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대북(對北) 지향적’이라는 것 빼면 눈에 띠는 게 없다. 외교안보의 지향점을 잡지 못하고 북한에 미소(微笑) 정책만 한 것 같다.”
- 그런 북한 접근은 잘 한 것인가?
“우리가 아무리 미소를 던져도 북한은 자기들이 필요하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이 필요하다면 꼭 나온다. 그런 점에서 문 정부는 북한에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했다. 좀더 북한의 본질을 잘 알았더라면 허망한 꿈을 덜 가졌을 것이다.”
◇“굳건한 韓美 동맹이 한국 외교의 핵심”
- 대선 후 출범하는 새 정부에 조언한다면?
“외교의 지향점을 뚜렷하게 잡아야 한다. 핵심은 굳건한 한미(韓美)동맹이다. 대미(對美) 관계를 가장 중요한 근간(根幹)으로 삼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 일본과는 위안부, 강제 징용공 배상 같은 난제가 있지 않나.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해결됐고 강제 징용 문제는 국교정상화 때 대일(對日)청구권 협정에서 정산됐다. 문재인 정부가 이 합의를 송두리째 뒤집었는데, 헌정 질서를 승계해 출범한 정부는 앞 정부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혁명으로 생긴 정부가 아닌 한 말이다.”
◇“가치공유하는 일본과 ‘準동맹’ 맺어야”
- 대일 관계를 왜 회복해야 하나?
“동북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밖에 없다. 미국의 동맹국인 점도 같고, 중국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공통의 가치 국가이다. 지리적 근접성과 역사적 관계를 봐도 그렇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정식 동맹은 아니라도 일본과 준(準)동맹(virtual alliance)을 맺어야 한다.”

▲2002년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아키히토 일왕(왼쪽에서 두번째)과 김대중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 내외가 2002 월드컵 독일 브라질 결승전 관람에 앞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조선일보DB
- 국내에 반일(反日)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때인가. 중국이라는 큰 힘을 가진 나라가 우리를 자기 영향 아래 두려고 강력한 팽창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에 ‘짝사랑’만 하지 말고 일본과 함께 대응해야 한다.”
◇“3불 정책 계속하면 나라 잃는다”
- 바람직한 우리의 대중(對中) 외교는 어떤 것인가?
“중국에 저자세로 계속 한다고 해서 중국이 우리를 존경하지 않는다. 지금은 19세기가 아니다. 대등한 주권 국가로서 중국에 당당하게 해야 한다.”
-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굴욕적인 ‘3불(不) 정책’을 내놓았다.
“‘3불 정책’은 우리의 주권(主權)을 포기하는 정책이다. 그런 자세로 외교를 하면 나라를 잃는다. ‘3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드 보복 때 일방적으로 내린 ‘한한령’(限韓令·중국내 한국 제품 및 한류 제한 조치)을 아직 풀지 않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우리의 국가이익을 깊이 생각하면서 의연한 외교를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조선일보DB
그러면서 공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한국을 쉬운 콘트롤(control·통제) 대상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저자세이면 더욱 그렇다. 우리 혼자서 중국을 대하면 난쟁이와 어른의 싸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뒤에 미국과 일본이 있다면, 사정은 다르다.”
◇“한국 외교의 최대 위협은 중국”
- 지금 한국 외교에 가장 심각한 위협은 무엇인가?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를 가리키면서) 중국이다.”
- 왜 중국이 위협인가?
“덩사오핑이나 원자바오 때의 중국에 대해 우리와 세계 각국이 모두 중국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지금의 시진핑은 중국몽(中國夢)을 노골화하며 다른 나라의 주권을 깔보고 윽박지르고 있다. 전 세계에 중국의 친구가, 동맹이 없지 않나.”
공 전 장관은 이렇게 밝혔다.
“1983년 민항기 사건 때 접촉한 중국 관료들은 겸손했다. 시진핑의 중국이 자기의 존재를 너무 세게 과시하는 바람에 전 세계의 반감(反感)을 사고 있다. 곡식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겸허함은 중국인의 미덕인데 시진핑은 이걸 잊어 버렸다.”

▲1983년 5월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을 해결하고 선투 중공 대표와 합의문서를 교환하는 공로명 당시 외무부 차관보/공로명 전 장관 제공
◇“쿼드와 오커스에 옵서버로 참여해야”
- 우리는 중국의 공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근간으로 삼고 일본과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강점인 외교를 살려야 한다. 미국도 중국에 홀로 맞서지 않고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이 참여하는 비공식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2021년 9월 15일 발족한 미국, 영국, 호주 3국의 안보협의체) 등을 만들어 뜻을 같이 하는 나라들(like minded countries)과 연합 세력을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 앞으로 미·중 대결을 전망하신다면?
“20년은 몰라도 최소 10년은 더 갈 것이다. 올해 시진핑이 3연임(連任)하고 한 번 더 집권하면 10년이다. 시진핑이 최고지도자로 있는 한, 중국의 외교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대결적인 미·중 관계도 계속될 것이다.”
- 미·중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어떻해야 할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조정자니 뭐니 하면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일이다. 우리와 이해를 같이 하는 동맹국과 손잡고, 의연하면서도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자세로, 중국과도 협력하면 된다. 우리가 반중(反中) 전선에서 첨병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중국을 의식해 쿼드와 오커스 참여를 기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쿼드와 오커스에서 옵서버(observer·회의 참가·발언권은 있으나 의결권은 없는 국가) 지위(status) 정도는 갖는 게 좋다.”

▲2021년 3월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나헨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요시히데 스가 일본 총리와 화상으로 쿼드 4개국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을 잇는 쿼드(Quad)
공 전 장관은 “우리는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과 충분히 보조(步調)를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한 소통을 충분히 하는 게 국익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해양 세력과 손잡는 게 우리의 살 길”
- 외교는 얼마나 중요한가?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외교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20세기초 나라를 잃었다. 지도를 보면 우리 옆에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한반도가 숨 쉴 구멍은 해양으로 나가는 것 밖에 없다. 그게 우리의 지정학(地政學)적 운명(運命)이다.”
그는 “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그 나라의 지리(地理)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7년 그린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일어서서 왕관 들고 있는 인물)가 1804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치른 황제 대관식을 묘사했다./조선일보DB
“미국 워싱턴DC 외곽 버지니아주에 있는 미국 전쟁대학(National War College) 현관 벽에는 ‘Everything changes but geography’(모든 것은 변해도 지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지정학의 진리를 보여주는 말이다. 중국, 일본이라는 대국(大國)에 끼여있는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해양 쪽이다.”
◇“한미 동맹은 하늘이 내려 준 선물”
- 바다 건너 편에 동맹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
“그렇다. 우리에겐 동맹국이 꼭 필요하다. 16세기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왔을 때, 우리를 도와준 동맹국은 중국이었다. 그런데 동맹국은 상대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자존(自尊), 자부심을 세워주는 우호적인 나라여야 한다. 다행히 지금의 미국이 그렇다. 미국이 우리에게 영토를 내놔라하나, 뭘 내놔라고 하나. 한미 동맹은 안보 동맹인 동시에 가치 동맹이다.”

▲2019년 7월 10일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기지에서 공식 제막식을 가진 '한미동맹 상징조형물'. '함께하는 내일,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주제로 한미 장병이 협력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탑을 비롯해 4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조선일보DB
공 전 장관은 “한미 동맹은 19세기 우리에게는 없었지만 20세기 들어와 생긴,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다. 이걸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외교 가장 잘 해”
-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 가운데 외교를 가장 잘 한 분을 꼽는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단연 으뜸이다. 그의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6.25동란을 겪고도 주권을 보존했고 휴전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그가 미국을 상대로 억지춘향식으로 따낸 것이다. 카이로선언에서 한국 독립조항도 이 박사의 개인 외교 덕분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2월 3일 당선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맞아 악수하고 있다./조선일보DB
◇“총 안 든 외교관...국익 수호 첨병”
- 한국 외교가 가장 어려웠던 때는?
“박동선 사건 등으로 한미(韓美)관계가 악화된 1970년대 후반이었다. 국내의 반대 시위와 인권 문제 등으로 많이 어려웠다. 이를 통해 외교는 내정(內政)의 연장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경제와 국내정치가 잘 돼야 외교도 힘을 얻어 잘 될 수 있다.”
- 외교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면?
“국가안보에 관한 의식이다. 외교관은 군복 입지 않고 총만 안 들고 있을 뿐 군인처럼 국가이익을 지키는 첨병(尖兵)이다. 이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sense of duty)이 제1 요건이다. 이게 없으면 외교관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 송의달 선임기자
01.17 “中·北, 코앞에 핵탄두 100기 다녀가도 모를 것”… 美핵잠 ‘부머’의 경고
장거리핵미사일 발사 핵잠(核潛) ‘부머’ 괌기지 기항
미 해군, 16일 극비 사항인데도 이례적으로 발표
미 해군의 가장 강력한 전략핵 무기인 오하이오급(級)의 핵추진 전략잠수함인 ‘네바다함(USS Nevada)’이 15일 태평양의 괌 기지에 기항(寄港)했다고, 미 해군이 16일 발표했다.
네바다함은 잠수함발사 핵탄두 미사일 트라이던드 II 20기와 수십 개의 핵탄두를 탑재해 ‘부머(boomer)’라고 불린다. 미국은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장착한 이런 핵추진 잠수함 ‘부머’를 14척 보유하고 있다.

▲미 해군이 보유한, 핵탄두 장거리미사일 트라이던트II를 탑재한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인 네바다함이 15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태평양의 괌에 기항했다. 모항은 미 서부 워싱턴주의 키챕이다./미 해군
미 해군은 “네바다함의 괌 기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한 미국의 탄력적 대응과 지속적인 개입,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CNN 방송은 “부머의 전 세계 배치와 동향은 대개 극비 사항으로, 부머의 괌 도착은 2016년 이후 처음이며, 미 해군이 괌 기항(寄港) 사실을 밝힌 것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의 잠항 기간은 승조원 150여 명의 식량과 보급품 비축 정도에 달려 있으며, 평균 77일 잠항하고 한 달 가량 수면 위에 떠올라 보급품을 확충하고 정비를 한다. 미 해군의 ‘부머’들은 워싱턴주의 뱅고어와 조지아주의 킹스베이 등 모항을 벗어난 지역에서 사진이 공개되는 것도 드물다. 지상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B-2, B-52 등의 전략핵 폭격기와 더불어 이른바 미국의 3축 핵전력(triad)을 이루며, 이 중에서도 가장 적에게 노출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머스 슈커트 뉴아메리칸시큐리티 센터의 연구원은 “부머의 괌 기항과 발표는 중국과 북한에게 ‘한 순간에 미국이 100개가 넘는 핵탄두를 문 앞에 배치할 수 있지만, 적들이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별로 대응 방법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핵탄두 미사일 발사 잠수함은 수준이 초기 단계이고, 6척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핵탄두 발사 094형(型) 잠수함은 미 해군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으로, 미 안보 싱크탱크들은 분석한다. 작년 8월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는 “쥐랑(巨浪)-2 핵탄두 장거리 미사일 12기를 탑재하는 중국의 094형 잠수함은 미국의 ‘부머’에 비해 소음이 2배로 발생해 탐지가 쉽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 안보전문가들은 “네바다함의 배치와 중국‧북한 잠수함의 추적 능력을 통해 억지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 핵추진 전략잠수함인 펜실베이니아호가 괌에 기항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 이철민 선임기자
01.18 속국으로 사느냐, 동맹으로 가느냐
지금 세계 정세는’홀로서기’ 허용 안해
中 택하면 속국 되고 美 택하면 동맹국으로 산다
3·9 대선이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존재인가? 역사는 우리가 중국을 벗어나지도, 중국을 이기지도 못하고 몇 백년을 조공 바치며 숨죽이고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단어는 ‘속국’이고 ‘사대(事大)’였다. 지난 한 세기 가까이 한반도는 남북의 둘로 갈려 각각 다른 이념적 배경으로 중국을 대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즐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는 근자에 문재인 정권이 한중관계를 ‘속국’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심각히 부각되고 있다.

▲2019년 12월 방중한 문재인 대통령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뉴시스
중국의 시진핑은 지난 2017년 플로리다에서 미국 트럼프를 만났을 때 “코리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했다. 6·25 전쟁은 ‘중국이 승리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서 조선을 돕는다) 전쟁’이라고도 했다. 문 정권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중국의 ‘속국’론을 수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임기가 다 돼 가면서 마지막으로 중국 시진핑의 방한을 학수고대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무대로 한중 정상회담을 희망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중국과 시진핑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는 문 정권의 말기(末期) 노선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도 북중관계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거나 중국 공산당에 심취한 사대적(事大的) 접근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멸공(滅共)’ 논란은 한국 좌파정권의 사상적 경도와 우리 사회의 이념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대기업의 오너가 했다는 몇마디 말(공산당이 싫어요)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논란을 벌이게끔 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야당 대통령 후보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선제공격’ 운운했다고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대든 좌파들의 반격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런 논란들 자체가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좌향 좌’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배경에 북한 못지않게 중국 공산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 정권의 친중 노선이 대북용(用)이 아니라면 우리의 역사의식을 뒤집는 접근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북한은 어떤 면에서 우리보다 중국에 덜 종속적이다. 북한 지도부에는 중국 예속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서쪽에서는 신장 위구르를 아우르는 서북공정을, 티베트에는 서남공정 작업을, 그리고 동쪽에서는 고구려를 중국역사와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동북공정 작업을 벌여 왔다. 또 홍콩을 공산화하고 남중국해를 장악함으로써 이른바 중국몽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벌어지는 인종탄압 인권유린 등은 인류의 공통된 양식을 배반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이 ‘중국몽’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지난 수백 년(고려·조선) 중국의 지배 하에 살았다. 중국의 ‘속국’처럼 살았다. 그리고 근세에 와서 36년 간 일본에 병탄됐다가 2차대전 종전과 더불어 미국에 이끌려 대륙을 벗어나 태평양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 70여 년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백 년을 한반도에 갇혀 살다가 미국의 안내로 세계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처럼 사는 것은 우리 노력과 지혜의 결산이지만 미국이 기회를 제공했음은 사실이다.
이 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어디에 서고 어떻게 처신해야 나라와 민족을 보존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준다. 오늘의 지리적, 무역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우리를 속국쯤으로 인식하는 중국 쪽에 붙어 있는 한, 우리는 번영은커녕 숨을 쉴 수도 없는 세상을 맞게 된다. 이것은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의 이념적 차원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가 군사대국에 빌붙어 영토를 보존하고 몇 푼의 경제적 이득을 얻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강대국의 영향력에 힘입어 남북한을 통일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류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인권을 향유하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홀로서기가 가능하면 왜 안 하겠는가. 하지만 세계의 정세는 지금 홀로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중국을 선택하면 중국의 속국이 되고 미국을 선택하면 동맹국으로 산다. 3·9의 선택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01.20 北 감싸기, 중국에 得일까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30일 앞둔 지난 5일, 리룡남 주중 북한 대사가 중국 국가체육총국에 편지를 전달했다. “적대 세력들의 책동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 상황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지만, 성대하고 훌륭한 올림픽 축제를 마련하려는 중국 동지들을 전적으로 지지‧응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다. 리 대사가 편지를 전달한 그날, 북한은 동해로 초음속 미사일을 쐈다.
베이징도 사정거리에 드는 미사일 발사는 올림픽을 앞두고 평화적인 대외 여건을 강조해온 중국에도 축포는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11·14·17일에도 이어졌다. 베이징은 북한을 비판하기보단 감쌌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과잉 대응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중국이 강조하는 해법은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 추진)과 대북 제재 철회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의 실제 행동은 방관에 가깝다.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에만 나서지 않는다면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탄도미사일을 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런 중국의 태도를 우리는 천안함·연평도 공격 때도 경험했다.
중국에게 현상유지 전략은 ‘남는 장사’였다. 남북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미국에 대해 지렛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북한은 군사적 위협보다 외교적 의미가 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신 주한미군 기지처럼 제한된 범위를 공격할 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마하 10의 극초음속 미사일, 변칙적으로 비행해 요격이 어려운 순항미사일, 소형화된 전술핵 등이 대표적이다. 요격이 힘든 무기를 북한이 실전 배치할 경우 한·미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전략적 위협”이라고 주장했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방어 수단이 한국에 배치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돼 가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이미 연합작전계획(작계) 개정을 시작했다. 몇 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미국에서는 동북아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에 맞서 작계에 중국 대응 계획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 내에서도 중국이 서해를 내해화(內海化)하려는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원활한 병력 전개를 위해선 중국 개입 시나리오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작계의 최종본은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여기엔 북한 비핵화에 대해 중국이 의지가 있는지, 중국과 전략적 소통이 가능한지에 대한 평가도 포함된다. 중국의 방관 속에 북한이 한국을 위협하고 레드라인을 넘는 일이 계속된다면 중국의 대문 앞은 베이징의 기대와 달리 앞으로 더 뜨겁고 불안하고 위험해질 것이다.
조선일보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01.25 중·러의 볼모로 잡힌 에너지 안보
러시아, 천연가스 자원 무기화
유럽 지역 에너지 가격 급등 비상
‘중·러 전기 수입’ 탄소중립계획
필요 시 전력 조달 가능할지 의문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나라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지난해 기준 390억톤으로 전 세계의 24%를 차지한다. 그런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로 휘두르자 유럽 국가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행보를 둘러싸고 미국·유럽과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관 중 하나를 틀어막자 유럽 지역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초 대비 4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인구 400만명의 동유럽 국가 몰도바는 지난 20일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천연가스 대금 연체를 이유로 몰도바에 가스 공급 중단을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몰도바가 EU와 관계를 강화하자 천연가스를 앞세워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몰도바와 체결한 천연가스 장기 공급 계약이 끝나자 공급 가격을 2배 이상 올리고 공급량을 3분의 1로 줄였다.
이런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는 그저 국제 이슈로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보면 2050년 국내 전력 수급 계획에 ‘동북아 그리드(grid·전력망)’가 포함됐다. 중국·러시아산 전기를 들여오겠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2050년 33.1TWh(테라와트시)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안(案)이 시나리오에 들어 있다. 1.4GW급 신형 원전 3~4기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원전이 줄어드는 대신 2050년 국내 전력 수요의 60~70%를 책임질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쑥날쑥하다.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변동성의 한계를 전기 수입으로 보완한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봤듯이 러시아는 언제든 에너지를 무기화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05년 말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던 가스 가격을 단번에 4배가량 올린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가 거부하자 이듬해 1월 1일 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했다. 2009년 1월에도 2주간 우크라이나에 천연가스 공급을 끊었다. 중국도 정치·외교 리스크가 크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우리 유통·자동차·관광 등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힌 바 있다. 같은 일이 전력 분야에서 재연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의 반중 전선에 동참하는 호주를 길들이기 위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가 발전 연료 부족으로 전력난에 시달렸다. 전기를 다른 나라에 팔기는커녕 사와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기가 많이 필요한 여름철이나 겨울철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역시 전력 수요가 크다. 우리가 원할 때 필요한 만큼의 전기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송전망이 북한을 통과해 차질 없이 운영될 수 있을지는 중국·러시아에서 전기를 구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동북아 역학 관계에서는 예기치 않게 중국·러시아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중국·러시아에 연결된 전력망은 볼모가 될 수밖에 없다. 수출길이 막히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 한순간이라도 전력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해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 경제·사회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안정적 전력 공급원인 원전을 유지할 경우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유럽이 원전에 주목하는 것도 에너지 안보를 고려해서다. 탈원전 이념 속에 에너지 안보가 내팽개쳐진 지난 5년간이었다.
조선일보 김승범 기자
01월 26일 ‘대통령 리스크’ 우크라이나 타산지석

신보영 국제부장
러시아-미국 ‘핵심 이해’ 충돌
새해 벽두부터 일촉즉발 대치
우크라이나 우왕좌왕 탓 악화
지도자 무능과 안보 포퓰리즘
친북·친중 급전환한 文과 유사
위험한 안보 줄타기 중단해야
2022년 벽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은 우크라이나다.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영토를 가진 인구 4400만 명의 국가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맞붙는 플래시 포인트로 전락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병력 10만 명을 배치한 뒤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 포기를 종용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폴란드·루마니아에 각각 1000∼5000명의 지상군 파견을 검토하고, 포괄적인 러시아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격돌은 우크라이나에 걸린 ‘핵심 이해’ 때문이다. 러시아는 위성국가였던 발트해 3국에 이어 구소련 영토였던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서 완충지대가 사라져 미국과 서방에 직접 노출됐다고 판단한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당시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물러서면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실제 전쟁이 발발할지는 다른 문제다. 26일 프랑스·독일·우크라이나·러시아의 ‘노르망디식 회담’에서 극적 타결 가능성이 남아 있고, 설령 전쟁 상황이 벌어져도 직접 맞붙는 형식은 피할 것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적으로 피하는 등 냉전 시기에도 직접 격돌은 없었다. 핵무기에 의한 상호 확증 파괴(MAD) 우려 때문이다.
한국은 3·9 대선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지만,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주목한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당장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적으로 관여한다면 동맹국에 중요한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의 방어 공약에 대한 불안이 일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정치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직전까지 몰린 데는 정권에 따라 친러와 친미의 극단을 오간 정치인들의 실정 때문이다. 2004년 친러시아 권위주의 정권을 축출한 ‘오렌지 혁명’을 이룩한 우크라이나는 이후 일관성 없는 대외정책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0년 집권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의 협력 협정 체결을 중단했다가 2014년 축출된 뒤 러시아로 망명했고, 혼란을 틈타 러시아는 같은 해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합병했다.
그 뒤 2019년 당선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친서방으로 전환했지만, 급격한 변화는 러시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게다가 코미디언 출신의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엉망진창이었다. 함께 일했던 영화 제작자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앉히는가 하면,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PD와 작가 등을 정부 요직에 채워 넣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사의 반려 사태를 비롯해 ‘회전문 인사’에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탈원전, 코로나19 방역까지 대내정책에서 이어진 ‘무능’, 여기에 북한·중국 편향의 대외정책까지 줄줄이 낙제점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허언을 믿고 추진한 대북정책은 한·미 동맹만 약화시키면서 외교적 입지를 크게 좁혔다. 문 정부 5년간 3차례 남북정상회담과 2차례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화려한 이벤트가 남긴 것은 씁쓸하게도 올해 북한이 4차례 시험발사를 통해 입증한 탄도미사일 능력뿐이다.
안보를 국내 정치에 악용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돼 대외정책을 펼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우크라이나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의 선택은 훨씬 쉽고 명확하다. 오랜 기간 러시아 제국과 소련에 복속됐던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일찌감치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세계 최강국 미국과 혈맹을 유지하며 자유와 번영을 일궈왔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에 기반한 일관성 있는 정책이 당연하다. 이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시장경제 동맹도 중요해졌다. 우크라이나 국민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국 국민에게 훌륭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5년 뒤 북한 김정은 체제가 어떤 상황일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한반도 정세도 불안하다. 대선 주자들부터 우크라이나의 불행에서 냉철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