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탈주민(탈북민) 이야기16/ 탈북(민) 소식7/ 2021.04.02 류경식당 女 종업원 집단 탈북 주도한 허강일의 격정 토로 - 12.03 탈북민 방치하는 정부
2021.04.02 월간조선 04월 호
■류경식당 女 종업원 집단 탈북 주도한 허강일의 격정 토로
“국정원 ‘기획 탈북’ 발언, 모 방송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언론과 정치인, 변호사들은 우리의 탈북을 이렇게 이용했다!
⊙ “좌파 세력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 신청했다”
⊙ “문재인 정권 들어서자 나를 범죄자로 몰아가”
⊙ “여당 K 의원, 종업원들 만나 ‘북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해”
⊙ “P 전 의원, ‘보상금 받게 해주겠다’며 모 방송사 소개해줘”
⊙ “윤미향, 금강산에 가족들 불러줄 테니 만나러 가자고 제안”
⊙ “모 방송사, 인터뷰 원본 영상 北에 넘기고 평양 촬영 허가받아”
허강일
1980년생. 평양외국어대학교 졸업 / 북한 39호실 은하지도국 부원,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중국 닝보 류경식당 지배인
▲유튜브 채널 ‘북한을 바꾸다’에서 함께 진행하는 허강일 前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왼쪽)과 박연미씨. 사진=허강일 유튜브 캡처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의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1명과 종업원 12명이 집단 탈북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들이 김정은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국가정보원(국정원)의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했다. 북한도 국정원이 이들을 납치·유인했다고 주장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기획 탈북’ 주장에 더 힘이 실렸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앞장서 이 사건을 국정원의 ‘기획 탈북’으로 몰아세웠다.
여기에 2018년 5월 10일 모 종편 방송사는 탈북 당시 류경식당 지배인으로 일한 허강일씨를 인터뷰하며 이 사건이 국정원에 의한 ‘기획 탈북’이라고 보도했다. 허씨가 방송을 통해 “국정원이 여종업원 모두를 데리고 한국에 오면 훈장과 포상을 준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그가 종업원들을 협박해 함께 탈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 나가고 나서 허씨는 모 방송사가 “악의적으로 인터뷰 내용을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어떠한 세력의 음모에 속았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권 피해 돌연 미국으로 망명”
▲2016년 4월 7일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의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1명과 종업원 12명이 집단 탈북했다. 사진=조선DB
허씨는 2016년 4월 탈북 이후 3년간 남한에 거주하다 201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지난 3월 11일 《월간조선》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허강일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당초 허씨와의 인터뷰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류경식당 종업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려고 회유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해 6월 말경에 계획돼 있었다. 그때 허씨는 자서전 발간을 준비 중이었고, 출판사에선 언론 인터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올해 초 허씨가 당시 인터뷰에 응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인터뷰를 제안해왔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지금까지 숨겨왔던 일들을 털어놨다. 지난 3월 11일 미국에 있는 허씨와 화상으로 만났다.
― 갑자기 왜 미국으로 망명한 건가요.
“솔직히 미국에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한국에 잘 정착해서 살려고 했죠.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정권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종북좌파들은 자꾸 우리를 월북시키려고 하고…. 자기들 뜻대로 잘 안 되니 저를 범죄자로 몰아갔습니다. 너무 힘들어 망명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 누가 힘들게 했다는 겁니까.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방송사에 소개해줬습니다.”
― 민주당 의원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P 전 의원과 K 의원입니다.”
지금까지 허강일씨는 윤미향 의원 이외에 다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만났다는 사실을 밝힌 바 없다. 그의 이어지는 말이다.
“이제 뭘 더 숨기겠습니까. 이 시점에 다 공개하려고요. 방송사에 저를 소개해준 사람이 P 전 의원입니다.”
― 언제 만났나요.
“2018년 4월 초였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 국회의원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관을 통해 P 의원을 만나게 된 거죠.”
―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
“P 의원이 제게 ‘보수한테 속은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P 의원은 ‘보수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고, 통일을 위해 투자도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더불어민주당)야말로 통일을 위해 남북 교류를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 또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P 의원이 종업원들을 위해서 손해배상을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조용히 하면 안 된다. 언론에 나가서 이슈를 만들어야 해결된다’고 했어요. P 의원은 ‘꼭 인터뷰를 하라’고 하면서 방송사 기자를 소개해줬어요.”
K 의원, “다시 북으로 돌아가도 처벌 안 해”
▲2016년 4월 10일 오후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 식당인 류경식당 모습이다. 사진=조선DB
― K 의원도 같이 만났나요.
“아니요. K 의원은 제가 직접 만난 것은 아닙니다. K 의원과 P 의원 둘이서 종업원들을 만나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 K 의원도 종업원들에게 월북을 회유했다는 말인가요.
“네. 민변의 J 변호사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서류 작성이 필요하다’며 여종업원들을 민변 사무실로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종업원들이 그 자리에 갔을 때 P, K 두 의원이 있어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J 변호사가 두 사람을 종업원들에게 소개하더랍니다.”
― P, K 의원은 종업원들에게 무슨 말을 했답니까.
“K 의원이 ‘당신들은 왜 범죄자(허씨)를 따라왔느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겁먹지 말고 부모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말했답니다. 또 ‘부모들이 고향에서 기다린다. 당신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사회를 동경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돌아갈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북한 정부와 얘기해보겠다. 가도 처벌을 안 받을 것이다’고 하더랍니다. P 의원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종업원들이 두 의원을 만난 건 어떻게 알았나요.
“종업원들이 두 의원을 만난 뒤 놀라서 저에게 전화를 했더라고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때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허씨 말에 따르면, J 변호사가 종업원들에게 당시 두 의원을 만나겠느냐는 의견도 묻지 않은 채 보상금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는 구실로 민변 사무실로 불러 두 의원과의 만남 자리를 주선했다. 그 자리에서 K 의원은 종업원들에게 월북 회유와 함께, 지배인(허강일)은 범죄자고 그와 함께 다니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K 의원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루가 지나서야 “(그런 사실이) 없슈 누가 그런 주장을?”이라고 답을 보내왔다.
P 의원의 반론
P 전 의원은 문자메시지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원문을 그대로 싣는다.
“식당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언론 보도된 내용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제게 직접 연락 온 것이 아니라 의원실로 연락이 와서 다른 의원, 변호사 등과 만났고, 저는 그 만남 이후 별도 연락이나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소개하거나 한 기억은 없습니다. 명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1회 만난 사실만 정확한 기억입니다. 제 기억엔 그렇습니다.”
P 전 의원의 반론에 대해 허씨는 “정확히 P 의원을 두 번 만났다”고 거듭 강조했다. 허강일씨의 말이다.
“지인을 통해 P 의원 비서관과 만나 약속을 잡고, 여의도의 모 일본식 횟집에서 P 의원과 만났다. 두 번째는 마포의 고급 횟집에서 만나 방송사 기자를 소개받았다.”
“모 방송사, ‘기획 탈북’으로 말하라고 종용”
― 방송에 출연해선 국정원의 ‘기획 탈북’이라고 했어요. 그건 왜 그랬던 겁니까.
“그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한국에 오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 국정원과 국군정보사도 모른 척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방송사 회유에 넘어간 겁니다.”
― 그 방송사가 무슨 회유를 했다는 거예요.
“처음에 저와 종업원들은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 탈북했다’고 진실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사 측에서 ‘그렇게 말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왔다고 하면 북한에 있는 종업원들 가족들이 다 죽는다. 당신이 끝까지 그들을 책임져야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시 우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취업도 안 되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보상금만 받으면 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한 거죠. 국정원에서 우리를 언론에 공개하는 바람에 종업원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그들에게 피해 보상을 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TV에 출연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결국 이것이 함정이 된 거죠.”
― 함정이요?
“제가 이런 발언을 하고 나서 민변이 더욱 신이 나서 우리를 다시 돌려보내려고 애를 썼잖습니까? 결국 국정원이 기획한 ‘작품’이 돼버린 거죠. 물론 저의 잘못된 선택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보상금을 받고 싶었고, 종업원들의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 누가 ‘기획 탈북’이라고 말하라고 시키던가요.
“P 전 의원에게서 소개받은 기자가 보상금 얘기를 하면서 시키더라고요.”
― 그 기자가 뭐라고 하라 했나요.
“(방송에) 나온 그대로입니다. ‘국정원이 종업원들을 회유해서 남한으로 데려가면 훈장과 포상금도 준다고 나를 설득했다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국정원의 ‘기획 탈북’으로 저와 종업원들이 탈북했다는 내용입니다.”
― 방송이 나간 이후 방송사가 거짓말을 했다 고 주장했는데요.
“네. 방송사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인터뷰 전에 우리는 방송사 측에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내용을 구두로 약속까지 해놓고 지키지 않은 거죠.”
― 어떤 조건이었습니까.
“일단 우리 얼굴을 공개 안 하고, 북한으로 돌아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에 대해서 묻지 않기, 그리고 자발적으로 왔는지도 질문을 하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자발적으로 왔다고 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위험해지니까요. 그리고 납치가 됐다고 하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사전에 그런 질문을 차단했죠. 방송사 측에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해당 질문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약속을 안 지킨 건가요.
“네. 정작 출연하니 ‘부모님들이 안 보고 싶냐’고 묻고, ‘고향이 그립지 않으냐’고도 했어요. 솔직히 부모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향 생각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가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만들어놨더라고요. 만약 우리가 집에 가고 싶어 했다면, 얼굴 다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하지 무엇 때문에 숨겼겠습니까? 공개하면 북한은 더 좋아하죠.”
― 그 방송사에 항의를 했습니까.
“엄청나게 항의했죠. 제가 오죽하면 기자랑 싸웠겠습니까?”
― 기자랑 싸운 건가요.
“네. 그 기자랑 싸웠어요. 웃긴 건 그 기자가 자신이 ‘북한 간첩’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그 기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증거 사진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 방송사, 여종업원 인터뷰 영상으로 북한과 거래해”
2018년 5월 허씨의 인터뷰가 방송되고 나서 국내외 여론은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탈북은 국정원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사건으로 변질됐다.
― 본인이 운용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니 그 방송사가 북한에 인터뷰 원본을 넘겼다는 주장을 하던데, 근거가 있습니까.
“저희 사건이 북한 역사상 없던 사례잖아요. 당시 이 사건 때문에 6명이 총살당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3개월간 거의 반(半)미치광이처럼 행동했다고 합니다. 그 방송사가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대남공작 기구 사람들을 만나 파일을 전해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건 어떻게 알았나요.
“저를 접촉했던 그 방송사 기자가 저한테 얘기하더라고요. 북한 측으로부터 우리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베이징에서 만나고 왔다고요. 그 방송사가 최초로 우리를 인터뷰했으니 북한이 그 방송사에 연락을 취한 것 같습니다. 해당 기자는 그 방송사가 방북 취재 때문에 북한에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보 라인을 통해 알아보니 거래를 했더라고요.”
― 여종업원 인터뷰 영상을 주는 조건으로 북측이 방북 취재를 허용했다는 거죠.
“네. 저희 인터뷰 원본 영상을 북쪽에 주고 방북 취재를 따낸 거죠. 이 얼마나 파렴치한 짓입니까. 북한에선 원본 영상을 통해 우리가 맞는지, 정말 북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허강일씨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허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방송사 측은 자신들의 방북 취재를 위해 허씨와 종업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거래를 한 셈이다.
― 방송에 출연한 뒤 출연료는 받았습니까.
“한 사람당 200만원씩 받기로 했죠. 세금 떼고 180만 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北 간첩들, 주위 맴돌며 협박"
허씨는 탈북 이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이들로부터 수차례 협박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허씨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결심에 이런 부분도 한몫했다.
― 한국에 있을 때 협박도 받았다면서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한 번은 밤 11시경 낯선 여자 두 명이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더라고요. 처음엔 답을 안 하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요하게 계속 누르더군요. 그래서 누구냐고 물으니 무슨 빚을 받으러 왔다면서 ‘정모씨네 집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도 안 가고 계속 벨을 눌러 결국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경찰이 와서 뭐라고 하던가요.
“같이 경찰서까지 갔어요. 근데 그 여성 중 한명은 중국인이었고, 다른 한명은 조총련계 일본 사람이었어요. 그렇다고 한들 증거가 없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어요.”
― 그 여성들은 돌아갔나요.
“경찰서에서 저의 뒤를 따라 나오면서 중국어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국정원 간첩 ×× 우리가 너 꼭 죽인다’라고 말했어요.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그 이후로 며칠 집 밖으로 못 나갔어요. 북한 간첩들인 거죠.”
― 경찰에 다시 신고 안 했나요.
“신변 담당 보호관도 모른 척하는데 경찰들이 수사하겠습니까.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 어떤 일이요.
“복면을 쓴 사람이 제 친구를 미행해 제 집까지 따라왔었어요. 폐쇄회로TV(CCTV)에 다 찍혔어요. 이 사람은 제 집 근처를 배회하더니 제 우편물을 훔쳐 달아나더라고요. 또 한번은 집 초인종이 고장 나서 수리 기사를 불렀어요. 그런데 그분이 집안 모니터 화면과 연결되는 선을 일부러 잘랐느냐고 묻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누군가 모니터 연결선을 칼로 자른 자국이 있었어요. 정말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끔찍했어요.”
― 이 사건 모두 북한 소행으로 봅니까.
“북한이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나 그런 짓을 하죠.”
―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었나요.
“네. 미국에 온 다음부턴 없습니다. 여긴 법이 무서워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 J 변호사가 소송에 휘말리자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웃기지도 않습니다. 민변이 종업원 중 한명을 내세워서 저를 고소하게 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 제가 그 친구를 뺨을 한 번 때린 적이 있는데 그걸 폭행죄로 고소했더라고요.”
― 뺨을 왜 때린 거예요.
“멀쩡한 사람을 제가 때렸겠습니까. 자신이 잘못해서 제가 때린 것이지요. 물론 폭행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 그 친구는 맞을 짓을 했습니다.”
―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보통 북한에서 해외 파견 나가는 노동자나 종업원들은 그 나라에서 혼자 못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2~3명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종업원이 하루는 보고도 없이 홀로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정말 그땐 저를 비롯한 식당 종업원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만약 그 친구가 사라지면 우리는 모두 북한으로 소환되어 저는 교도소에 가거나 다른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 종업원은 돌아왔나요.
“네. 6시간 후에 왔습니다. 우리는 그 6시간 동안 정말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면서 있었습니다. 식당에 보위지도원이 있는데 이런 일은 이 사람에게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종업원은 북한으로 소환되어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릅니다. 최소한 정치범 수용소로 갈 것입니다. 사라진 6시간 동안 어디 가서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남한 공작원을 만났는지, 탈북 루트를 알아보고 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처벌은 더 강한 겁니다.”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대부분 평양에 거주하는 중산층으로 분류된 이들의 자녀로 구성된다. 북한 주민들이 해외 파견을 나가면 북한에서 버는 돈의 몇 배를 벌 수 있다. 이들은 해외 파견 전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고 나간다. 북한 정권은 이들을 믿지 못해 감시자로 보위부(국정원 같은 북한의 정보기관) 직원을 파견해 이들을 감시한다. 보위부원은 종업원과 지배인 등을 감시하며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바로 당에 보고한다. 그렇게 될 경우 해당 인원은 북으로 소환되고 죄명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북한에서 받는 처벌보다 더 강한 처벌을 받는 게 보통이다.
― 보고했나요.
“아니요. 보고는 안 했습니다. 더 기다려보고 안 들어오면 보고를 하려고 했죠. 그런데 6시간 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얘기가 ‘쇼핑’을 다녀왔답니다. 그때 정말 열이 받아서 종업원들 다 모인 자리에서 뺨을 한 대 때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북한으로 소환될까 봐 마음 졸이면서 있는데, 근무시간에 그것도 홀로 쇼핑을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 그 종업원은 이후 어떻게 됐나요.
“다음 날 보위지도원에게 보고하려고 하니 울고불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다 같이 해외에 나와 고생하는데 그 친구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혼은 내야겠다’ 싶어 북으로 송환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친구를 차에 태워 북중(北中) 국경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그 일을 가지고 지금에 와서 자신을 폭행했다고 나를 고소한 겁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종업원들 사이에서 싸움만 하고, 사고만 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내가 아무 일 없이 그 친구를 때렸다면 나는 이미 북한 당국으로부터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민변 변호사 고소
― 또 다른 고소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중국에서 저와 친했던 조선족이 저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J 변호사가 제 변호를 맡았는데 무죄가 나왔어요. 이 사건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 어떤 점이 의심스럽다는 겁니까.
“저를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선 범죄자로 만들어 다시 북으로 보내려고 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재판이 끝나고 J 변호사가 ‘무죄가 나왔다’며 서류를 보여주더라고요. ‘이제 안심하고 들어와도 된다’면서 회유를 하더군요. 회유가 안 먹히니 협박도 했어요. 참 어리석은 사람이죠.”
― 최근에 ‘한반도 통일과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을 통해 J 변호사를 고소했다고 하던데요.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소했습니다. 회유와 협박이 안 통하니 J 변호사가 모 방송에 출연해 조선족 사기 혐의 사건의 재판 과정을 얘기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변론 내용을 발설한 거라 변호사법에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소했습니다. J 변호사는 해당 방송에서 제가 소송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주장하더군요.”
― J 변호사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인터뷰를 했던 그 방송사 기자가 소개해줬어요. 방송사 측이 보상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그 방편으로 민변을 소개해준 거죠. 처음엔 민변 변호사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희가 국정원 보호하에 있을 당시, 민변이 ‘기획 탈북’이라고 하면서 저희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들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거든요.”
― 근데 왜 만났습니까.
“그때는 보상금 받을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뭔가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서 보상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 했습니다.”
― 배신이요?
“중국을 떠날 때 정보 당국 사람이 한국에 가면 정착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정작 한국에 오니 그 사람들은 저를 피해 다니더군요. 물론 정권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이용하려는 사람들뿐이다 보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윤미향, “이산가족 상봉 때 가족 만나게 해주겠다고 회유”
▲중국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이 2018년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의 남편 김모씨 초청으로 경기 안성시 위안부 할머니 쉼터에 초대받아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사진=허강일 제공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떻게 만난 겁니까.
“J 변호사가 우리 생활이 어려운 것을 알고 ‘매달 30만원씩 후원해주겠다는 단체가 있는데 같이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그 자리에 윤미향 의원(당시는 정의기억연대 대표)이 있었습니다. 총 세 번 만났는데, 우리 여종업원들도 같이 갔습니다. 한 번은 정의기억연대 마포 쉼터에서, 다른 한 번은 인근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나는 날 윤미향 의원이 조총련 사람들을 불렀더군요.”
― 윤미향 의원 측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윤미향 의원이 ‘2018년 8월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때 종업원 가족을 금강산에 오게 하겠다. 당신들 금강산에 가서 가족들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회유했어요. 윤 의원은 ‘우리가 주선을 해주겠다. 어머니들이 기다리는데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 윤미향 의원 말의 뉘앙스는 월북보다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는 금강산에 가자고 한 것 아닌가요.
“근데 생각해보세요. 금강산도 북한 땅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에서 가족을 만난다고 칩시다. 부모들이야 뻔히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고 나올 텐데 그러면 당연히 북한으로 가자고 하겠죠. 종업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부모들을 ‘서울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 그런데 어떤 생각으로 처음 탈북을 결심했나요.
“대한민국 정보원으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북한에 알려져서 어쩔 수 없이 탈북을 선택하게 된 거죠.”
― 종업원들은 어떻게 설득한 거예요.
“종업원들은 남한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일하면서 남한 드라마, 영화를 봤고, 태블릿PC를 통해 남한 영화와 노래를 접했으니까요. 눈감아줬죠. 만약 내가 탈북을 하게 되면 이들은 북한으로 송환돼 생사(生死)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되니, 제가 물어봤습니다. ‘나는 탈북을 할 건데, 내가 떠나면 너희는 소환될 테고 그 이후 너희 목숨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선택해라. 나를 따라오든, 다시 지옥 같은 북한으로 돌아가든지’라고요. 그러자 다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 근데 몇 명은 동의를 안 했다면서요.
“동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변심한 거죠. 변심한 이들이 저희를 신고하면서 ‘거사(擧事) 날짜’가 조금 앞당겨져 저를 비롯한 12명의 여종업원이 탈북한 겁니다.”
장성택 처형 후 한국 정보원 돼
― 우리 정보원으로 일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장성택 처형 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때 제 친구 5명도 죽었죠. 그 이전부터 북한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현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았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김정은에게 약간의 기대를 했지만, 자신의 고모부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접었습니다. 그 이후에 한국 정보원을 소개받았습니다.”
― 소개받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소개받은 거죠.
“우리 식당에 자주 오는 중국 조선족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한국에도 여러 번 오간 얘기를 하면서 대단히 자랑을 하더라고요. 몰래 이 사람에게 부탁을 했지요. 그렇게 정보원을 처음 만났습니다. 나중에 그 조선족이 ‘제가 남한 정보원을 만났고, 정보를 그에게 준다’고 북측에 고자질하더라고요.”
― 처음 만난 사람이 국정원 요원이었나요.
“그런 줄 알고 있었죠. 자신도 국정원 요원이라고 소개했고요. 계속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국에 와서 인권위원회에서 조사받으면서 그가 국군 정보사 요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정보사 요원이 탈북을 도운 겁니까.
“그렇지도 않아요. 탈북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니 우리가 말레이시아까지 오면 책임지고 한국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겠다고 했어요. 우리가 말레이시아까지 가면 공항에 그가 마중 나와 우리의 길 안내를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 마중 나와 있었나요.
“마중은커녕 그 뒤로 얼굴도 한 번 못 봤습니다.”
―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떻게 움직였나요.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라고 해서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릴 돌봐주지 않아 밖에서 무리 지어 서 있어야 했어요. 그러다가 국정원 요원이 우릴 데리러 왔고, 그렇게 국정원의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 말레이시아까지 오라고 해놓고 그게 말이 되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놓고 국정원과 정보사가 마찰이 심했대요. 서로 실적을 챙기려고 했겠죠. 성공만 하면 전대미문의 실적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북한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12명 종업원 현재 남한에 적응해 잘 살고 있어”
▲중국 저장성 닝보의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들이 공연하는 모습이다. 사진=허강일 유튜브 캡처
― 처음엔 15명이 출발한 거로 아는데요.
“네. 저까지 15명이었는데 2명은 끝내 잡히고 우리만 왔죠.”
― 어쩌다 잡힌 건가요.
“우리는 중국 상대와 함께 식당을 운영했어요. 그런데 종업원 일부가 보위부에 신고하러 가고 막 당시 분위기가 어수선했어요. 그때 중국 상대들이 눈치를 채고 감시를 시작한 거죠. 그래서 한 번에 탈출하긴 어렵다고 생각하고 북한의 유명 가수인 최삼숙의 딸에게 12명을 인솔하고 공항까지 가라고 했죠. 그러고 저와 조장과 종업원 1명이 남았어요.”
― 중국 동업자들이 눈치 못 챘나요.
“저와 조장이 있으니 우리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들을 따라가진 않더라고요. 우리는 식당 앞뒤 문으로 탈출했어요. 서로 다른 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죠. 그런데 중국 상대들이 기를 쓰고 쫓아가서 다른 종업원 2명이 탄 택시를 일부러 사고까지 내며 종업원들을 잡았대요. 그렇게 잡힌 거죠. 그 2명 중 한명은 제 아내였습니다.”
― 아내와 다른 한명은 어떻게 됐나요.
“류경식당을 동업하는 중국인에게 잡혔어요. 그런데 하루 만에 놔주더래요. 그 후 상하이(上海)에 있는 제 친구 집으로 보내 숨어 있게 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국정원에 이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내와 1명은 끝내 북송(北送)됐어요. 이게 아직도 의문입니다. 국정원이 신병을 인도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경위로 북송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탈북 이후 가족에 대한 소식은 알고 있나요.
“두 번 확인해봤는데 제 친척까지 모조리 처형했다고 하더군요.”
― 한국에 함께 온 12명의 종업원 소식은 들은 바 있나요.
“다들 대학교부터 갔습니다. 그런데 대학 공부가 어려웠나 봅니다. 8명은 중간에 그만두고 4명은 올해 졸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중 제일 나이 어린 친구가 먼저 시집을 가 지금 아기를 낳고 잘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도 결혼했고, 올해 또 한명이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는 북한 부총리였다”
― 가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저는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할아버지는 허용일이라고 항일운동을 한 공(功)으로 부총리까지 했어요. 아버지는 김일성 호위부대인 974부대에서 장교로 일했죠. 그러다 사고로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제대 후 평양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에서 공부했어요. 이후 아버지는 대성총국(김정일의 지시로 1974년 5월에 설립된 북한의 대표적인 종합무역상사다. 과거 김정일의 비자금 관리를 담당하기도 했다)에서 일을 했어요. 제가 11세 때 온 가족이 러시아로 파견을 나갔어요. 보통 가족 중 한명은 인질로 북한에 남아야지만 우리는 성분이 좋다는 이유로 모두 나갔어요. 러시아에서 생활하다 중국으로 건너갔죠.”
― 그럼 아버지가 나온 대학에서 공부한 거네요.
“네. 저와 여동생도 평양외국어대학교 중국어 학과를 졸업했어요.”
― 자서전은 언제 나오나요.
“코로나19 때문에 조금 더 늦어질 것 같아요.”
― 그럼 자서전을 조금만 소개해주세요.
“책을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서전에 지금까지 얘기 외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책이 나오면 다들 놀랄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
― 최근엔 유튜브도 시작했던데, 얼굴 공개가 두렵진 않았나요.
“처음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근데 제가 숨어서 살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닙니다. 이젠 이 세상에 저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했 으면 탈북을 못 했겠죠. 내 가족을 죽인 북한하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북한을 바꾸고 김정은 정권에 복수하는 의미에서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자유 없으면 죽은 목숨”
― 아내도 잃고 망명까지 했는데 지난 5년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솔직히 탈북해서 1년 정도는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정작 와서 보니 환경도 다르고,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당하면서 저의 신변을 보호해주던 사람들도 없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당시 저를 데려온 정보기관 사람도 가면 잘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나는 범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회가 안 들겠습니까. 그래도 적응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살면서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자유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 자서전 출간 이후 무엇을 할지 계획한 게 있습니까.
“미국에서 조금 더 자리를 잡고 나면 북한 인권과 자유 수호를 위해 앞장서려고 합니다. 제 가족을 무참히 죽인 북한 정권과 맞서 싸우고, 북한 주민들이 해방되는 그날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월간조선 04월 호
■100회 맞는 북한 인권 화요집회 이끌어온 김태훈 한변 회장
“탈북 선원 北送 결정을 文 대통령이 내렸다면 탄핵 사유”
⊙ 탈북 선원들, 대한민국 국민 아니라고 가정해도 국제인권규범 위반
⊙ 열흘 간격으로 제정된 남한의 대북전단금지법과 북한의 반동사상 문화배격법
⊙ “나는 적진을 향해 달리는 旗手, 끝까지 깃발을 지켜낸다”
金泰勳
1947년생. 서울대 법대 졸업 / 사법시험(15회) 합격 / 前 서울지법 부장판사,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국무총리 소속 6·25 납북진상규명위원회 위원,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 / 現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 이사장
▲사진=조준우
글쎄, 이분이 이렇게 오랜 시간 한결같이 대북전선(對北前線)을 지킬 줄은 몰랐다.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회장 얘기다.
돌아보니 2012년쯤 북한인권 관련 회의장에서 김 회장을 처음 만났다. 듣는 이를 전혀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생각을 부드럽고 설득력 있게 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많은 북한인권 관련 인사들이 그랬듯 그도 어느 순간 점점 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김씨 3대 부자’와 싸우다 상처만 입었다며 떠나는 북한인권 활동가들을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바위에 끝없이 달걀을 던지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식이다.
再월북 권유 민변 변호사 고소
2013년 한변이 창립됐을 때, 비슷한 단체들의 그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김 회장은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외치고,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법률가 단체로 한변을 키웠다. 8년 동안 각종 불의에 집회와 법적 대응으로 맞서온 결과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법치가 흔들리는 현장들을 찾아가 법적인 대응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와선, 이 분이 없었으면 우파는 어떻게 이 정부에 맞섰을까 싶을 정도다.
지난 3월 4일 서울 명동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기분이 항상 좋지 않아요.”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전날인 3월 3일 한변은 류경식당 매니저였던 허강일씨를 대리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장 모 변호사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발표했다. 그 얘기를 꺼내자 보인 반응이었다. 지난해 허씨는 “장 모 변호사가 2018년부터 류경식당 탈북자들에게 재월북을 권했다”고 증언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난 고소·고발한다면 뜯어말리는 사람인데,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제일 먼저 고발한 게 2017년이에요. 서훈 국정원장. 그때 이미 나라가 절반은 넘어간 거예요. 그 후로 문재인 대통령, 안보실장, 교육부 공무원에 대해 숱하게 고소·고발을 했어요. 할 짓이 아니야, 정상적인 사람이 살 수 없이 이렇게 나라가 망해버렸다니까.”
― 왜 괴로운가요.
“삼국지에 등갑군(藤甲軍)이라는 게 나와요. 등갑군은 기름을 바른 갑옷을 입어요. 아주 가볍고 튼튼해요. 그런데 제갈량이 불화살을 쏴서 등갑군을 다 태워 죽이잖아. 꼭 내가 그 식이에요. 성경에서도 송사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고소·고발을 많이 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요.”
― 허광일씨는 당분간 더 미국에 머물겠지요.
“자꾸 북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겁이 나서 한국에 어떻게 있겠어요.”
허씨에게 ‘다시 월북하라’고 권했다는 지목을 받은 민변 장 모 변호사는 아무런 조사나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김정일에게 정치범수용소 문제 제기하라”
김태훈 변호사는 삶의 많은 기간을 북한은 물론 정치 이슈와 별 상관 없이 걸어왔다. 판사로 임관해 주로 민사 재판을 담당했다. 교통사고, 국제상거래 분쟁 같은 재판이었다. 1997년 서울지법 부장판사에서 퇴직해 로펌에 들어갔다. 그러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에 임명됐다. 이때부터였다. 그가 북한인권운동의 최전선에 서게 된 게 말이다. 그의 말이다.
“2006년에 인권위에 들어갔어요. 인권위원이 11명 있는데 북한인권은 아무도 얘길 안 해요. ‘내정 간섭’이라고도 해요. 제가 보니, 북한인권이 제일 문제인 거 같더라고요. 2006년만 해도,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 했어요. 헌법을 보면 그들은 당연히 우리 국민 아니냔 말이에요. ‘근데 왜 안 다루지? 당연히 논의해야 되는 거 아닌가?’”
― 인권위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주장하기 시작했군요.
“2007년이 됐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다고 해요. 노 대통령이 인권위를 상당히 존중했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기에 인권위를 만들었으니까요. ‘잘됐다. 노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면 북한 정치범수용소, 이산가족, 납북자 문제를 김정일한테 얘기하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더니 한명 빼고 다 반대했어요.”
― 결국 권고안은 통과되지 못했군요.
“지금도 사실 가장 안타까운 게 이때 권고안이 통과되지 않은 거예요. 나만 북한인권을 얘기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보수정당 몫으로 임명된 위원들을 보고 많이 실망했어요. 민주당 출신 위원들은 대오를 딱딱 맞추는데, 보수 진영 위원들은 안 그래요. 합리적 타협이라면서 결정적인 건 저쪽으로 돌아서더군요.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서 보내야지요.”
“조국, 처음엔 좋게 봤어”
▲2012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북한인권침해 사례집》
― 이용훈 대법원장 임명으로 ‘법관 쿼터’로 인권위에 들어가신 건데, 목소리를 강하게 내서 임명한 쪽에서 깜짝 놀랐겠어요.
“전 그때까지 성향이 전혀 안 드러났으니까요. 재판도 민사만 맡고, 목소리를 낼 계제가 없었잖아요. 조국 교수와도 처음엔 잘 지냈어요. 하버드 다녀왔다고 하고 얘기도 그럴듯하게 하지, 처음엔 좋게 봤어. 그런데 한두 번 얘기하는데 점점 삐끗삐끗이야. 뭐라고 하는데 맞지도 않아요. 나중엔 보기도 싫더라고.”
― 가장 보람 있었던 땐 언제였나요.
“2012년에 북한인권 침해사례 기록집을 발간했어요. 2011년에 북한인권 침해 신고센터를 만들어 1년 동안 운영해 사례집을 만든 겁니다. 후속편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그 한 권으로 그만이에요. 그나마 국가기관에서 낸 유일한 침해사례 기록집입니다.”
― 북한인권 침해사례 기록집의 의미가 있나요.
“그래야 우리가 북한 주민들에게 할 도리를 하는 거예요. 인권침해 예방 효과도 있어요. ‘남한에서 기재를 해두고 있네?’ 겁이 나는 거예요. 독일 잘츠기터(Salzgitter) 중앙기록보존소가 그런 거예요.”
― 아직 우리는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래서 북한인권법을 고쳐야 한다는 거예요. 북한인권기록센터가 통일부 산하로 되어 있어요. 저는 인권위 산하로 가야 된다고 봅니다. 인권위는 독립기관이에요. 이런 정권이래도 가끔씩 인권위가 목소리를 냅니다. ‘박원순 성희롱 맞다’고 결론 내렸잖아요. 전광훈 목사에게 수갑을 채운 것도 인권침해라고 했어요.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국제인권규범을 안 따를 수 없거든요.”
― 독일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는 법무부 산하에 있지 않나요.
“그때(1961년)는 국가인권위가 없었던 시대예요. 국가인권위는 그 후에 생겼어요. 국가인권위가 해야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그나마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요.”
― 통일 후에라도 필벌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네요. 인권위가 북한인권을 두고 전향적인 결정을 내린 적은 없나요.
“2010년 12월 북한에 외부 정보를 유입해야 한다고 인권위가 결정했어요. 결정을 이끌어낸 걸 참 보람 있게 생각해요.
지난해 화요집회 재개
▲북한인권법 통과 5주년 및 화요집회 100회 기념 세미나’. 3월 2일 국회에서 열렸다.
그는 인권위 임기를 마친 후 2013년 9월 10일 한변을 설립했다. 이후 이듬해인 2014년 10월부터 ‘화요집회’를 시작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30분에 열었다.
“‘올바른 북한인권법을 위한 시민모임’(올인모)이라는 시민단체를 조직했어요. 66개 단체가 모였어요. 한변은 그중 하나입니다. 이들이 매주 모여 북한인권법 제정하라고 촉구했어요. 2016년에 드디어 법이 통과가 됐어요. 그래서 집회를 중지했어요.”
― 지난해 화요집회를 재개한 이유가 뭔가요.
“북한인권법 집행을 안 하잖아요.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지 않고 있어요. 북한인권재단 이사가 12명이거든요. 그중 2명은 통일부 장관이, 5명은 여당이 임명합니다. 임명을 안 하잖아요. 5년이나 방치하는 것 자체가 범죄예요.”
―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이니 이들을 보호하는 건 한국 정부의 의무겠네요.
“북한의 인권이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잖아요? 대한민국으로서는 헌법 10조에 의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루이틀이어야지 5년이나 손 놓고 있는 건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방조하는 겁니다.”
화요집회는 지난 3월 2일 100회를 맞았다. 한변은 이날 화요집회 100회와 북한인권법 통과 5주년을 기념해 국회에서 화상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참석했다. 김 교수는 “북한인권 문제는 한반도 내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 양심의 문제”라면서 “인권 없는 통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김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큰 위로를 얻었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을 보면 ‘자유·정의·평화’예요. 자유가 먼저 나와요. 자유가 인권이거든요. 그다음이 정의이고, 평화는 그다음입니다. 이 정권은 평화만 얘기해요. 무덤 속의 평화지요. 김형석 교수님이 북한인권 문제는 인류 양심의 문제라고 말씀해주시니 안도감이 들었어요. ‘아… 내가 안 틀렸구나.’”
― 이 정권 들어와 법치가 흔들리는 여러 사건이 있었지요. 가장 문제적인 사건은 뭘로 꼽으시나요.
“많은 사람이 드루킹,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울산 선거 부정 이 세 가지를 꼽지요. 전 가장 심각한 사건으로 탈북 선원 북송을 듭니다. 2019년 11월이었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자유를 찾아온 젊은이를 눈가리고 포승해서 북한에 넘겨주나요? 용서할 수 없어요.”
― 입에 물릴 재갈도 준비했다고 하지요.
“우연히 국회에서 취재기자가 문자메시지를 포착해 알려졌잖아요. 안 그랬으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간 겁니다. 이 청년도 판문점 앞에 가서 북한 군인을 보고 턱 주저앉았다는 것이거든요. ‘아이고 내가 북송되는구나’ 하고. 유사 이래 그렇게 잔인한 행위가 또 있겠습니까?”
―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후보 청문회에서 탈북 선원들을 ‘흉악범’이라 불렀습니다. 범죄 사실은 북한에서 규명할 일이라고도 했고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외교부 장관을 합니까, 헌법 3조도 모릅니까?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예요. 당연히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정의용 장관, “탈북 선원은 흉악범”
사실 이상한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기자는 검역하기 위해 이 선원들이 타고 온 선박을 조사한 현장 검역과장에게 물었다. ‘핏자국을 봤냐’는 질문에, 검역관은 “검역관 여러 명이 들어갔지만 핏자국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정부 주장을 믿는다면 16명이 살해당한 현장인데, 핏자국이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김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정 장관은 탈북 선원 북송 당시 국가안보실장이었어요. 탈북 선원 북송의 실질적인 결정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했을 겁니다. NSC 의장은 대통령이에요. 그럼 북송시키자는 최종 결정을 누가 했을까요. 문 대통령의 묵시적·명시적 허락이 있었던 거 아닐까요. 이게 안 밝혀져 있어요. 짚고 넘어가야 해요.”
―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하는 데 관여되어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건 범죄죠. 탄핵사유고 형사범죄예요.”
― 정의용 장관 식으로 탈북 선원들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봐도, 여전히 국제 규약 위반 아닌가요.
“그렇죠. 고문방지협약에 농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아니라고 가정해도 보내면 안 됩니다. 국제인권규범에도, 우리 헌법에도 반하는 거죠.”
수상한 ‘대북전단금지법’ 제정
▲지난 3월 9일 국회 정문 앞에서 101회 화요집회가 열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태영호 의원 등이 참여했다. 사진=조선DB
― 사실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잡혀 북송되다 일가족이 자살한 사건도 있고요. 북송이 처음은 아닌데요.
“그런데 그건 중국 얘기거든요. 이건 전혀 달라요. 우리나라 정부가 우리나라 국민을 강제 북송한 겁니다.”
그는 ‘대북전단금지법’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2020년 12월 14일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그 열흘 전인 12월 4일 북한에서 새로운 법이 제정됐어요. ‘반동사상 문화배격법’이에요. 대북전단금지법은 남한에서 북한에 정보를 보내면 처벌하는 법이고, 반동사상 문화배격법은 북한 주민이 남한 정보를 보면 처벌하는 법입니다. 북한 주민이 남한 영상물을 보면 사형에 처하거나 교화소에 보냅니다.”
― 두 법이 한 세트네요.
“그렇죠. 수상해요. 2019년부터 비슷한 행태가 이어졌어요. 탈북 선원 북송한 게 2019년 11월 7일이잖아요? 2019년 11월 25일에 부산에서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렸어요.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참석해달라고 여러 번 초청 의사를 보였어요. 그걸 위해 탈북 선원들을 제물로 바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 회부해야
― 북한인권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까요.
“두 가지예요. 일단 국제사회에 알려야 해요. 유엔(UN) 총회에선 16년 연속, 유엔 인권위에선 18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안이 채택되고 있어요. 세계적인 어젠다가 된 겁니다. 더 알려야 해요. 그리고 안보리가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게 호소해야 합니다. 유엔 총회에서 임시 법원을 설치할 수도 있어요. 그런 운동을 계속해야지요.”
― 북한인권운동 중 만난 이 중 누가 가장 인상깊었나요.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이요. 그분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어요. COI 리포트가 최초로 북한의 인권 침해는 반인도 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반인도 범죄로 처벌돼야 된다고 규명했어요.”
― 북한 정권에 큰 압박이 됐겠습니다.
“중요합니다. 커비가 그래요. COI 리포트를 한글로 만화처럼 만들어 북한에 보내야 된다고요. 제가 언젠가 형편이 되면 읽기 쉽게 만들어서 북한에 대북전단처럼 뿌리려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읽어보고 ‘어, 이게 인권침해네, 국제사회가 이걸 기록하고 있단 말이야?’ 그렇게 느낄 수 있게요.”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침해 상황을 알리고 있는 인물로 오토 웜비어의 부모를 빼놓을 수 없다. 돌아오는 6월 20일은 웜비어의 사망 4주기다. 지난 3주기 때 웜비어의 모친 신디 웜비어 씨는 ‘김정은, 김여정 지옥에서 보자(See you in hell)’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신디 씨는 2019년 한국을 찾았을 땐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은 아이를 잘못 골랐다. 나는 죽을 때까지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운다.”
김 대표의 신디 씨에 대한 인상은 이렇다.
“대단합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어요. ‘미국에 의지하지 마라. 책임을 다른 나라에 미루지 마라. 한국 사람들대로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냐.’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었어요. ‘꾸준히 끝까지 하자’고. 지금 그만두면 뭐가 됩니까. 중도 포기는 안 하는 것만 못한 겁니다.”
신의주학생운동 기념해야
▲2019년 7월 17일 제헌절에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위반 시정을 위한 청원서 제출 및 발표회’가 열렸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태훈 한변 회장. 사진=조선DB
그는 문득 76년 전 어느 날 신의주에서 일어난 일로 화제를 돌렸다.
“해방이 된 후였어요. 소련군들이 들어와서 물건을 훔치고 부녀자를 강간한 겁니다. 그러자 신의주의 학생들이 소련에 저항해 들고일어났어요. 여러 명이 죽었어요. ‘신의주학생운동’입니다. 그게 해방 꼭 100일 후인 1945년 11월 23일이었어요. 신의주는 국경에 면해 있어요. 문물이 많이 오가는 이유도 있고 해서 학생들이 깨어 있던 거예요.”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신의주 제일공업학교 박태근 학생의 유해를 그 모친이 품에 안고 서울로 내려왔어요. 남산에 있는 학생 반공의 탑 밑에 그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예전엔 교과서에도 실리고 기념행사도 했다는데, 지금은 없던 일처럼 됐어요. 북한인권법 통과 운동할 때 ‘북한인권의 날’을 좀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무슨 날로 할까 하다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북한인권의 날은 북한 주민 스스로가 봉기해서 피를 본 날로 하자’고.”
―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네요.
“세계 최초로 소련 공산권에 항거해서 들고일어난 시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끝나고 나서 소련이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를 점령했잖아요. 그때 다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한반도 신의주에서 유일하게 봉기가 일어난 거예요.”
한변은 이번 정부 들어 북한 문제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도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한변은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를 일찍부터 요구했다. 2018년 12월 12일 변호사 200명의 이름으로 물러나라고 했다. 김 회장은 최근 대법원장 출근 저지 시위에도 참석한다.
― 전직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사석에선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목소리를 안 내더군요.
“속이 많이 상합니다. 김명수 퇴진 시위할 때도 전직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법관… 이런 사람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가만히 있더군요. 법치가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나라의 녹을 먹었으면 목소리를 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돈이니 지위니 갖고 있는 사람들, 그래 봤자 나라가 망하면 뭐합니까. 베트남 보트피플 봤잖아요.”
김명수 퇴진 운동
―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관련해 거짓말한 게 밝혀져 논란이 됐지요. 대법원장과 부장판사가 대화하는데 음성 녹취가 등장한 것도 참 새롭습니다.
“저는 이해가 됩디다. 입을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하니까요. 춘천지방법원장을 하다 대법원장에 임명됐는데, 첫날 시외버스를 타고 출근했지요? 관용차 타고 오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런 사람이 취임 후엔 대법원장 관사에 장성한 아들 부부를 들였어요.”
― 공개적으로 원로 법조인들이 나서야 하지 않나요.
“서명은 해도 공개적으로 한마디 해 달라고 하면 거절해요. 목소리를 내줘야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연판장에 서명을 네 번 받았어요.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 운동 200명, 힘들었어요. ‘대법관 하셨으니까 이름 좀 올려주세요’ 했죠. 조국 사태 때도 법조인 1030명한테 서명을 받았어요. 교수들이 나서는데 법조인들이 가만있으면 창피하잖아요.”
― 추미애 전 장관 해임 촉구 서명엔 변호사 612명이 참여했지요.
“힘들었어요. 이번 김명수 사퇴 요구엔 385명이 참여했어요. 힘들어도 나는 계속하는데 오히려 서명하는 사람들이 먼저 지치더라고. ‘해봐야 뭐합니까. 고만합시다’, 맥빠지게 이러고 말이야. 꾸준히 해야 해요. 혼자 하는 것보다 수십명, 수백명이 하면 좀 다르잖아. 전쟁 중인데 목소리를 내줘야지.”
― 한변이 고소·고발한 것 중에 실효적인 결과가 나온 게 있나요.
“최근에 고무적인 결과가 몇 건 나왔어요. 문재인 정부 들어선 후, 교육부 공무원 과장이 국정교과서 집필 책임자던 박용조 진주대 교수의 허락도 안 받고 인장을 변조해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수정했잖아요.”
― 수정한 걸 보니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표현도 빼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했더군요.
“직권남용 문서 변조로 고발했는데, 그게 3년 만에 유죄 판결이 났잖아요. 이제 뒤늦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윤미향 의원 정보공개 청구 소송도 일부 승소 판결이 났어요. 외교부가 항소한다고 해서 끝까지 가게 됐지만요.”
― 법관들에게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전 용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내내 중요했어요. 인격이 높고 지식이 많은 것? 필요하지요. 그러나 결국 불의에 항거하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휘황찬란한 정의를 억지로 세우는 것보다 불의에 눈감지 않고 불의를 없애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해요. 미국 국가 마지막도 이런 말로 끝나요. ‘용기 있는 사람들의 고향.’”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 구출을 요구하는 집회가 2019년 4월 30일 서울 명동 중국 대사관 인근에서 열렸다. 둘째 줄 왼쪽부터 김태훈 한변 회장,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 림일 탈북 작가.
― 가족들은 활동에 찬성합니까.
“가족들은 불만이 너무 많아요. 저에겐 한반도 평화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평화가 첫째입니다.”
잘 안 알려져 있지만, 6・25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였던 그의 장인도 전쟁시기 북한에 납북됐다.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6・25 당시 납북된 법조인이 187명으로서 전체 법조인 중 판사는 27%, 검사는 14%, 변호사는 40%의 비율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서울지방법원은 판사 4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9명이 납치됐다. 법무부를 비롯한 법조계는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지난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였다. 법조계 차원의 추모 행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 기업이나 독지가들이 한변에 후원을 좀 하는지요.
“후원을 좀 할 수도 있을 텐데… 말만 하는 것 같아요. 앉아서 욕만 하고 있어요. 행동으로 옮겨줘야지요. 주위 사람들이 제가 퇴임하고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고 놀라곤 해요. 역시 말보단 행동이에요. 상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지금 다들 같은 생각 아닌가요? ‘아, 이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겨달라는 겁니다.”
한변은 주로 회비로 활동비를 충당하고 있다. 김 회장도 자신의 돈을 쓰면서 활동한다.
“행동이 뭔가요? 조직 아니면 돈 아닙니까. 내가 뛰어주든가, 아니면 행동하는 단체를 후원하면 되잖아요.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그는 인터뷰 중 몇 번이나 ‘깃발’이라는 표현을 썼다.
“버티는 게 목적입니다. 전장(戰場)에선 가장 중요한 게 깃발 든 사람, 기수예요. 깃발을 보고 전진하잖아요. ‘아, 우리 부대가 아직 살아 있다’ 그거예요. 깃발 들고 달려가야지, 그거마저 죽으면 부대가 없어져요. 버텨야 해요.”
그러면서 그는 화요집회 동참을 부탁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수요집회를 1500여 회 했잖아요. 저도 깃발을 꽂았으니 통일이 될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화요집회를 할 겁니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04.10 美 의회서 열리는 대북전단法 청문회, 文정권 청문회다

▲김정은이 8일 노동당 말단 조직인 당 세포 비서에게 표창장을 주고 있다.
미 의회 초당적 인권 기구인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오는 15일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전단 금지법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이 법이 외부 정보 유입 등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인권위 의장인 스미스 하원 의원은 “전단 금지법이 가장 잔인한 공산 정권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행위를 범죄화한다”며 청문회 개최를 예고했다. 미 의회는 주로 북한 같은 독재 국가들을 대상으로 인권 청문회를 소집해왔다. ‘랜토스 인권위’의 최근 청문 대상국도 중국, 아이티, 나이지리아 등이다. 대한민국이 그런 ‘인권, 표현의 자유 침해국’ 대열에 선 것이다. 군사 정권이 끝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문 정권은 김여정이 ‘전단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4시간 반 만에 “준비 중”이라고 했다. 미·영·유엔 등은 물론 옛 공산권까지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는데도 이런 반(反)민주법을 강행 처리했다. 정권이 내세우는 전단 금지법의 유일한 근거는 ‘접경지 주민 안전’이다. 지금까지 전단으로 다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미 전문가는 “위험 날조”라고 했다. ‘접경지 안전’은 핑계이고 김정은 비위 맞추기라는 것을 전 세계가 안다.
‘한국 청문회’가 열리는 15일은 김일성 생일이다. 렌토스 인권위는 “한반도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청문회”라고도 했다. 북한뿐 아니라 문재인 정권의 인권·자유 문제까지 다루겠다는 의미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국가별 인권 보고서에서 한국의 인권 문제로 ‘표현의 자유 제약’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그 대표 사례로 대북 전단 금지를 들었다. 최근 워싱턴에선 북 인권 문제를 외면만 하는 문 정부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부도덕하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한다. ‘한국 청문회’ 증인 중 한 명인 인권 운동가 수잰 숄티는 최근 “중국에 억류된 탈북 여성 2명이 인신 매매범에게 다시 넘겨진 건 문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정부는 김여정 요구대로 전단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김여정은 문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라고 했다. 전단 금지법으로 얻은 게 뭔가. 전단 금지법은 폐지돼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사설
04.16 美의회 청문회 “文정부, 北과 대화하려 언론 자유 희생”
美의회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北 태양절 맞춰 남북 모두에 경고 “한국 정부, 北인권단체들 괴롭혀”

▲태양절 참배하는 北주민들 - 15일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맞아 평양 만수대를 찾은 주민들이 김일성(왼쪽)과 김정일 부자 동상 앞에서 허리를 굽혀 참배하고 있다. 미 연방의회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이날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및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화상 청문회를 개최했다. /AP 연합뉴스
미 연방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15일 오전 10시(현지 시각·한국 시각 밤 11시)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 및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화상 청문회를 개최했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맞춰 미 의회가 북한 관련 인권 청문회를 연 것이다. 그만큼 북한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며, 남북 모두에 경고를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청문회는 톰 랜토스 인권위 공동의장인 크리스토퍼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과 제임스 맥거번 민주당 하원의원의 주재로 열렸다. 스미스 의원은 “이 청문회는 공산주의 북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불법화한 (한국의) 법안에 대해 내가 비판적 성명을 냈던 작년 12월 처음 결정됐다”며 한국 내정에 간섭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음 청문회를 제안했던) 당시에나 지금에나 나는 이 (대북전단금지)법이 한국 헌법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 규약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나 그 정부에 과도하게 비판적이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 통과에 더해 북한 문제를 다루는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괴롭힘을 봤다”고 했다.
맥거번 의원은 “믿을 만한 인권 단체들은 현 문 대통령하의 한국 정부가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제한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조치들을 했다고 비판해 왔다”며 “특히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그(문 대통령)의 접근법에 비판적인 단체들을 침묵시키려고 시도한다는 불평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인권이 완전히 보호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두 의장이 발언권을 준 한국계 영 김 하원의원은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어떤 상호적 양보도 할 의도가 없는 (북한) 정권과의 대화를 위해 언론의 자유를 대가로 치를 수 있느냐”고 했다.
이날 청문회에 미국 측에서는 고든 창 변호사, 존 시프턴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국장,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제시카 리 퀸시연구소 동아시아 담당 선임 연구원이 증인으로 나섰다. 한국 측에서는 이인호 전 주러대사와 전수미 변호사가 증인으로 등장했다.
북한·중국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우리는 한국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민주적 제도에 대한 공격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한국 민주당은 2018년 한국 헌법의 민주주의 개념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했었다”면서 “실제로 그해 6월 한국 교과서에서 ‘자유’란 단어를 빼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남북 통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 한국 사회를 보다 북한처럼 만들려는 시도”라고 했다.
북한 인권 활동가인 숄티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그들(북한인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북한인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인권 침해) 범죄에 공모(complicit)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숄티 대표는 “권력이 있는 엘리트든 보통 시민이든 북한인들은 자신들 고통의 원천이 김정은이며, 김정은이 결코 북한 사람들의 안녕(well being)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만 결정을 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대북전단금지법이 “비극적일 뿐만 아니라 비헌법적”이라고 했다.
04월 16일 “文정부 민주주의 역행” “권력의 도 넘었다”…美의회 대북전단법 청문회서 난타당한 한국
“검찰권력 정치화 했다” 비판도전수미 ‘전단살포 무용론’ 주장
미국 의회 톰랜토스 인권위원회는 15일 열린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관련 청문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있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의) 개정을 희망한다”는 언급이 나왔고 거대 여당의 독주, 검찰 권력의 정치화 등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 상황 전반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위원회 공동의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 석을 차지한 문재인 정부가 권력의 도를 넘었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은 물론 북한 문제에 관여해온 시민사회 단체를 괴롭히기 위해 검찰 권력을 정치화했다”고 비판했다. 스미스 의원은 “한국은 김정은 정권의 잔혹한 독재정권과는 정반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평가받는다”면서도 “한국의 시민·정치적 권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가 ‘한국의 민주주의적 부패(democratic decay)’라고 이름 붙인 것을 보고 놀랐다”고도 지적했다. 위원회의 또 다른 공동의장인 제임스 맥거번 민주당 의원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과 관련, “국제인권법은 안보를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 무엇을 수용할 수 있고 없는지에 관한 지침을 제공한다”며 “이 법을 다시 논의할 수 있다면 나는 한국 국회가 이 지침을 고려하길 권장한다”고 말했다.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중국·북한 전문가 고든 창 변호사는 “문 대통령은 자유를 제한하고 있고, 실제로 그는 민주적 규칙의 개념을 공격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2018년 역사·한국사 교과서 속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에서 ‘자유’라는 단어 삭제를 시도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중국에서 체포돼 구금된 가족 3명과 자매 2명 등 탈북민 5명에 대해 6개월 이상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증인으로 막판에 합류한 전수미 변호사는 “북한 주민은 이미 외부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면서 대북전단 살포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04.17 미 청문회 오른 대북전단금지법, 폐지해야

▲미국 하원 톰 랜토스 인권 위원회가 15일(현지시각)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한반도의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화상 청문회를 개최했다. 북한 인권 실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이번 청문회는 북한의 최대 명절인 김일성 생일에 맞춰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김일성 생일 맞춰 청문회 열어 ‘전단 금지’ 비판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법…글로벌 표준 따라야
청문회에선 “(한국을 겨냥한) 불필요한 정치화는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참석자 대부분은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대북전단 금지법’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인권위 공동 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북한 유입을 막는 ‘반(反) 성경·BTS 풍선법’”이라고 맹공했다.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의원들의 정책 연구 모임 수준”이라고 깎아내렸지만, 랜토스 위원회는 미 의회에서 명망 높은 초당파 상설 위원회다. 중국·아이티·나이지리아 등을 겨냥해 인권 청문회를 열어왔다. 미국의 동맹인 대한민국이 그런 독재 국가들과 동급으로 낙인 찍혀 미 의회의 도마 위에 오른 건 1987년 민주화 이래 처음이다. ‘민주화·산업화를 동시 달성한 모범국가’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참담한 일이다.
청문회는 유럽연합과 유엔에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시점에 때맞춰 개최됐다. 미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고 있는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소련·동구 몰락의 가장 큰 요인이 ‘외부 정보 유입’이었다. 독재에 신음하는 주민들에게 정보를 공급해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이 소련·동구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데 미국·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이,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수년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에서 빠지더니 급기야 북한에 정보를 공급해온 인권운동가들을 엄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한국 성토에 나서게 된 이유다.
정부·여당은 ‘접경 주민의 안전’ 운운하며 대북전단금지법 처리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핑계일 뿐 본질은 김정은 비위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 의회가 다음 달 하순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권 청문회를 연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련한 외교 전문가다. 상원 의원 시절 ‘인종 청소’로 악명 높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 면전에서 “당신은 망할 전쟁범죄자”라고 일갈할 만큼 인권 문제에 비타협적인 지도자다.
한·미 동맹은 군사 동맹에 앞서 민주주의·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이다. 미국이 작심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고 나섰는데도, 납득하기 힘든 변명으로 넘어가려 하면 동맹에 심각한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
미 의회가 청문회를 일회성 행사로 하고 지나갈 것이란 생각도 오산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인권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청문회 개최에 명분을 던져줬다. 또 우리 정부가 청문회의 파장 축소에 급급하자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대북전단금지법을 재검토할 도구를 갖추고 있다(14일)”며 다시금 청문회에 힘을 실어줬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미 의회뿐 아니라 미 행정부의 핵심 관심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함의를 꼼꼼히 따져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만일 경고음을 무시하고 ‘마이 웨이’를 고집하면, 미 의회에서 ‘한국 인권 규탄 결의안’이 통과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인권 문제만큼은 ‘글로벌 표준’을 맞추는 게 시급하다.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효율적으로 지킬 방안을 강구하되, 헌법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폐지하는 게 맞다.
중앙일보 사설
05.01 대북전단 금지에도… 박상학 “50만장 보내, 기꺼이 징역 살겠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금지됐지만 경찰 몰래 실행”
경찰 “사실 확인땐 엄정 조치”

▲북한인권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대북 전단을 살포하기 전 회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북한인권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25~29일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을 북한으로 살포했다고 30일 밝혔다. 지난 3월말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북한으로 전단을 보냈다고 주장한 첫 사례다.
이 단체 박상학 대표는 이날 “지난 25∼29일 비무장지대(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0권, 미화 1달러 지폐 5000장을 대형풍선 10개에 나눠 실어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한밤중에 야외에서 대형풍선을 날리는 동영상과 북한 비판 팻말을 든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앞서 박 대표는 “북한자유주간 행사 기간(4월 25일~5월 1일)에 대북전단을 살포할 것”이라고 예고했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을 박 대표 자택 주변에 배치하는 등 동향 감시를 강화해왔다. 박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신변 보호 경찰들 모르게 몰래 빠져나가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과 통일부는 “일단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사실로 확인되면 개정된 법의 취지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전단금지법은 대북전단을 살포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 대표는 “돈이 없어서 3000만원은 못 내도 징역 3년은 기꺼이 살겠다”며 “징역 30년이 떨어지더라도 전단을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원우식 기자
05.03 김여정이 대북 전단 버럭하자 바로 “철저 수사” 北에 고한 정부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탈북자 쓰레기들이 또다시 기어 다니며 반공화국 삐라를 살포하는 용납 못할 도발을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남조선 당국은 무분별한 망동을 방치해 두고 저지하지 않았다. 상응한 행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전단 날린 탈북단체를 처벌 안 하면 보복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그러자 통일부는 곧바로 “경찰이 전담팀을 구성해 조사하는 만큼 확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장도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조속히 수사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북에 알린 것이다.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대북 전단 금지법 발효 후 처음으로 지난주 전단 50만장을 북으로 날려보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을 막기 위해 동향 감시까지 해왔다고 한다. 김여정이 담화까지 냈으니 곧바로 처벌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김여정이 작년 6월 전단을 비난하며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정부는 4시간 만에 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하자 여당은 대북 전단 금지법을 강행 처리했다.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 의회는 지난달 청문회에서 “과도한 자유 침해”라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옛 공산권 국가도 이 법을 비판했다. 하지만 여권은 “내정간섭”이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북한이나 중국이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하는 논리였다.
이 정부는 김여정이 장관을 비난하면 교체했고, 한미 훈련을 없애라고 하면 협의하겠다고 했다. 북한 인권결의안에는 3년 연속 불참했고 유엔의 북한인권재단 설립 권고도 무시했다. 귀순하겠다는 북 어민은 살인 혐의가 있다며 수갑 채워 북으로 돌려보냈다. 귀순한 북한 남성이 “국군 초소로 가면 북송될까 봐 민가로 가려 했다”고 할 정도였다. 이 정권 머릿속엔 지금 인권과 비핵화는 뒷전이고 김정은 남매에게 잘보여 정상회담 이벤트를 한번 더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화를 훈장처럼 내세웠던 정권이 이렇게 타락해 버렸다.
조선일보 사설
05.28 ‘北대사관 습격’ 크리스토퍼 안 “미국에서 쫓겨나면 암살 당할 것”
스페인에서 인도 요청... “미 법무부도 내가 암살당할 수 있다고 경고”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미국 검찰이 기소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이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스페인 송환과 관련한 재판을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안은 재판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진실과 논리, 상식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에 가담했다가 미 당국에 체포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이 스페인으로 보내질 경우 북한에 암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크리스토퍼 안은 27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미국을 떠나면 암살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던 미 법무부가 나를 (스페인에) 인도하려 한다”며 “무척 실망스럽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2018년 2월 22일 자유조선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등과 함께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에 침입했다. 그해 4월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FBI에 체포됐다가 2019년 7월 보석(保釋)으로 풀려난 이후 미국 자택에서 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다. 현재 스페인 정부는 크리스토퍼 안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미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스페인에 신병을 넘길 것을 사법부에 요청한 상태다.
크리스토퍼 안은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은 스페인 주재 북한 외교관의 망명을 돕기 위해 위장 납치극을 벌이려다 실패로 끝난 사건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우리가 그곳(북한 대사관)에 들어간 전적인 이유는 (북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것”이라며 “실제 증거를 보고 상식으로 판단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더 믿을만한지는 매우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은 (북한에서) 평생 거짓말을 주입받다가 서구 국가(스페인)에 왔고 자신이 들은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식들을 위해 원하는 바를 결정해야 했다”며 “나는 그들의 생명을 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구조 요청을 한 외교관들은 “더 나은 삶을 선택하기를 원했고 북한 체제하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것을 원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안은 지난 25일 로스앤젤레스(LA)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오토 웜비어 부모가 출석해 자신의 송환 반대를 탄원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의 뜻을 밝혔다. 크리스토퍼 안과 미국 버지니아대 동문이라는 인연이 있는 오토 웜비어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된 뒤 숨졌다.
오토 웜비어 부모와 함께 증인으로 나섰던 이성윤 미 터프츠대 교수는 폭스뉴스에 “북한은 암살에 만료 시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 왔다”며 크리스토퍼 안이 송환될 경우 “북한은 스페인에 있는 그를 찾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폭스뉴스는 “미국 법원의 크리스토퍼 안 스페인 인도 여부 결정에는 몇 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06.01 "탈북자 혐오 부추기지 말라" "북한 동포 인권 철저히 외면"

▲이애란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와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평양 전경을 담은 그림 앞에서 만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인권이 진정한 통일 운동이라고 공감하면서, 중단없이 북한인권운동을 해나가자고 다짐했다. 장세정 기자
북한인권운동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주민과 3만 4000명 탈북자의 인권 상황이 오히려 나빠졌다고 호소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부 때보다 인권운동이 활발하다.최근엔 '남남북녀 지식인'이 북한인권운동 단체의 수장으로 잇따라 취임했다. 김석우(76)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과 이애란(57)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다.
김 이사장은 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 1회로 공직에 진출해 아주국장 등을 역임한 정통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시기에 통일원 차관(1996년 8월∼1998년 3월)으로 발탁되면서 북한이탈주민지원법을 제정하고 탈북자 수용 시설인 하나원을 처음 만들었다.
[북한인권운동 손 잡은 '남남북녀']
나란히 NGO 수장된 김석우·이애란
탈북 청년 2명 북송은 생명권 침해
북한인권 외면하는 대북 정책 반대
정책 실패 책임, 탈북자에 전가해
탈북자 성공 보여줘야 통일 빨라져
북한인권운동이 진정한 통일운동
이애란 상임대표는 평양 출신 탈북자다. 조부모가 월남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10세 무렵 양강도로 강제 추방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의주경공업 대학 식료공학부를 졸업했다. 1997년 아버지·남동생과 함께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들을 업고 압록강을 건넜다. 학구열이 강해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탈북 여성 1호 박사'다. 2010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으로부터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았고 2012년 북한 음식 전문점(능라밥상)을 열어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 이사장이 차관 시절 이 상임대표가 탈북한 인연이 있는 두 사람은 1999년 북한인권시민연합 연말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올 초엔 북한인권운동 NGO 단체를 이끄는 단체 수장을 나란히 맡아 '같은 길을 걷는 동지'가 됐다. '방북 1호 화가' 황창배 화백의 평양 시내 전경 그림 앞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힘들 때 북한인권운동 단체를 맡았다.
▶김석우=우리가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북한인권운동은 통일 운동인 셈이다. 인류사는 인권이 발전해온 역사다. 인권 운동은 우리가 절대 지지 않고, 반드시 이기는 싸움이다.
▶이애란=북한 정권은 300만명을 굶겨 죽였다.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갈 상황에서 쥐약을 들고 탈북했다. 감옥을 먼저 탈출한 사람으로서 의무감이 있다. 우리가 외면하면 북한 주민을 누가 기억이라도 해주겠나.
-지난 4년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보나.
▶김=북한 편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 정권의 안위를 최우선 고려했다. 반면 북한 동포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독재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더 고통스럽게 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심각하게 걱정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였나.
▶김=헌법상 우리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촉구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
▶이=대한민국 공무원이 서해에서 피살됐다. 헌법상 북한 주민도 국민인데 탈북 청년 어부 2명을 비밀리에 강제 북송해놓고도 살인마로 단정했다. 헌법상 국민의 생명권이 침해됐으니 대통령이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한다. 대북전단을 날린다고 탈북자에 대한 혐오 감정을 부추겼다. 대북 정책 실패 책임을 탈북자들에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최근 관훈토론회에서 2019년 11월 북한 어부 2명이 16명을 살해했는데 탈북 의도가 분명하지 않아 송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애란 상임대표는 "탈북자에게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는 북한이 살인죄 언급 없이 탈북자에게 적용하는 '조국 반역죄'를 이유로 어부 2명을 처형했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탈북자를 홀대했다는 말인가.
▶이=친정부 매체들이 탈북자를 비난하는 여론을 퍼뜨렸다. 탈북자를 소외시키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직장에서 밀려나고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려 자살도 많이 했다. 심지어 탈북 여성 한성옥(42)과 김동진(6) 모자는 서울에서 굶어 죽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탈북자도 적지 않다.
▶김=탈북자를 배신자로 불신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탈북자를 도와주면 정권에 밉보여 세무조사 받는다는 말이 파다해 눈치 본다. 정부가 탈북자를 싫어한다는데 어떤 공무원이 나서겠나.
-지난 4년간 잘한 대북 정책도 있을텐데.
▶이=김정은을 하노이로 불러내 북·미 담판을 했지만 실패하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당했다. 북한 지배층에서 김정은의 우상화와 신격화가 타격받았다고 한다.
▶김=망신준 게 아니라 김정은의 국제적 지명도를 오히려 올려줬다고 본다.
-욕설을 참은 대통령에겐 '깊은 뜻'이 있지 않겠나.
▶김=남북 이벤트로 국내 정치에 이용했지만,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신중하고 전략적인 대화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이=힘 있는 사람이 참는 것과 비겁한 사람이 굴복한 것은 다르다. 국민의 자존심을 추락시켰다.
화제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으로 옮겨갔다. 공동성명에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가장 어려운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을 약속한다"고 명시했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 문제가 올랐다.
▶김=정상회담에서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 같다. 한국 정부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구체적인 대책들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세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희망 고문'만 남긴 채 실질적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앞서 미 의회 인권위가 대북전단 금지법 청문회를 열었다.
▶김=우리 인권이 일본·중국·북한보다 앞서갔는데,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없던 인권청문회가 열렸으니 기가 찬다.

▲이애란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와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이 평양 전경을 담은 그림 앞에서 만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인권이 진정한 통일 운동이라고 공감하면서, 중단없이 북한인권운동을 해나가자고 다짐했다. 장세정 기자
탈북자들은 생계난을 겪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 고위직 탈북자들이 대거 쫓겨났다고 한다.
-대사급 탈북자들이 '백수' 신세라던데.
▶이=황장엽 선생과 같이 탈북한 김덕홍 선생의 고문료를 끊었다. 거동도 불편하니 굶어 죽으란 얘기다. 탈북자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는데, 낚시터조차 제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죽을 때까지 낚시하는 법만 배우란 것인가.
▶김=북한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면 국익에 반하는 거다.
-통일부가 도와주지 않나.
▶이=이민사회인 미국에 가서 보니 정착 정책의 주인은 공무원이 아니라 이주민이었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자활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한국에 온 지 24년 됐는데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통일부가 있어서 통일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치적으로 뒤틀리지 않으려면 남북하나재단도 정치인이나 통일부 관료를 재단 이사장에 임명하면 안 된다.
▶김=지금 통일부는 장관부터 이념편향이 보이고 북한 정권 눈치 보기 바쁘다. 그 밑에서 통일부 직원들이 북한 동포의 인권과 탈북자 보호 업무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임기 1년 남은 정부에 당부할게 있다면.
▶이=2016년 3월에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문 대통령은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켜야 한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탈북자들의 양심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은 당장 폐지해야 한다.
▶김=중국과 러시아 등지로 넘어간 탈북자들이 오도 가도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속히 데리고 와야 한다. 탈북자들이 한국 땅에서 성공할 확률을 높여줘야 통일도 빨리 올 것이다.
-앞으로 어떤 활동에 주력할 것인가.
▶김=한국 정부는 지난 3월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3년 연속 빠졌다. 이번 결의안에 국군포로 문제가 처음 삽입되는 과정에 '피 묻은 북한 석탄' 보고서를 만든 우리 단체 간사들이 크게 기여했다. 국제사회와 함께 탈북자와 북한인권 보호를 위해 계속 공조할 것이다.
▶이=탈북 청년 어부 2명 강제 북송 이후 북한주민 사이에서는 '탈북하면 북으로 돌려보낸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힐 것이다. 대북 전단을 살포한 박상학 대표가 핍박받는데 '내가 박상학이다'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남한에서 감옥에 가더라도 북한인권운동을 멈출 수 없다.
북한인권운동은 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으로 활동해온 고 윤현(1929~2019) 목사가 1996년 북한인권시민연합을 만들면서 광야에 불씨 하나를 던졌다. 지난해 출간된『윤현-인권의 수레바퀴를 돌리다』에는 윤 목사가 소개한 일화가 실려 있다. 나치에 끌려가던 어느 목사가 "유대인이, 가톨릭 신부들이 잡혀갈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잡아가느냐"며 나치에게 항의했을 때 목사에게 양심의 소리가 울렸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것이 바로 죄야." 북한 동포가 고통받고 '미리 온 통일'이라는 탈북자들이 고통받는데 그들을 외면하거나 침묵한다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
06.15 탈북자 인권운동가 “美 대학 세뇌교육, 북한과 유사”
탈북 운동가 박연미씨, 미국 향해
“억압과 불공정 토로하면서
자유 얻기가 얼마나 힘든진 몰라”
탈북자 출신 인권운동가로 미국 명문 콜롬비아대에 재학 중인 박연미(27)씨가 “미국의 미래가 북한만큼 절망적”이라면서 미국 대학계에 만연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 2018년 6월 탈북 운동가 박연미씨가 미·북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에게 인권 탄압의 책임을 물어달라”고 호소했다.
14일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박씨는 북한과 미국의 공통점으로 반(反)서구적 정서, 집단적 죄의식, 숨막히는 정치적 올바름을 꼽았다.
박씨는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줄 알고 이 모든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는데, 그들은 내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라고 강요했다”면서 “이건 제 정신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은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북한에서 봤던 것과 무척 유사점이 많아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미국 대학에 도착하자마자 붉은 깃발(위험 신호라는 뜻이면서 공산당 깃발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을 봤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내가 고전 문학 중에서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고 인정하니 대학 사람들은 나를 꾸짖었다”고 했다.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유럽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영국 소설가로,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이 대표작이다.
박씨는 “그러면서 그들은 ‘그 작가가 식민주의적 태도를 지닌 것을 알고 있었냐'면서 ‘그는 인종 차별적이고 편견만 가득해서 금방 널 세뇌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점점 박씨는 미국 대학 수업들이 반미(反美) 프로파간다에 잠식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자라온 북한의 삶이 연상됐다고 했다. 북한에서 ‘미제 놈들'이라는 용어를 강요하듯 미국에서 ‘그(He)’나 ‘그녀(She)’ 대신 ‘그들(They)’이라는 성중립적 용어를 강요하는 것을 보며 “문명이 쇠퇴하는 모습으로 느껴졌다”고도 했다.
박씨는 “사람들은 뭔가를 보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완전히 잊어가고 있다”면서 “그게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는 인터넷도 없고, 위대한 사상가를 접할 수도 없으며, 아무 것도 모른다”며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 세뇌되고자 하면서도 그걸 부인한다”고 했다.
박씨는 미국인을 향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일개 북한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식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부숴 나가 공산주의 낙원을 재건하려는 것, 나는 이게 저들이 원하는 바라고 본다”고 했다.

▲탈북 운동가 박연미씨가 지난 2015년 출간한 회고록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그는 “북한은 정말 미쳤다. 그러나 이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며 “이곳의 젊은 사람들은 줄곧 얼마나 억압받고 불공정을 겪어 왔는지 토로하지만, 그들은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나는 13살 때 굶주린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했고 자유를 위해 고비 사막 한복판을 건넜지만, 그게 별 것 아니란 것을 안다”면서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힘들게 싸웠으면서도 자유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교수와 학생들과 수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국 박씨는 “좋은 성적을 받고 졸업하기 위해서 어떻게 입을 닫아야 하는지 배웠다”고 했다.

박씨와 어머니는 박씨가 13살이던 2007년 탈북했다. 빙판으로 변한 압록강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 온 이들은 인신매매상에 잡혔다. 노예로 팔려가는 박씨의 몸값은 33만원(미화 300달러)도 안 됐고, 어머니는 겨우 11만원(미화 100달러)이었다.
모녀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몽골로 탈출했고, 고비 사막을 걸어서 횡단한 끝에 남한에 도착했다. 이러한 탈북 과정은 박씨가 지난 2015년 출간한 회고록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In Order to Live)에 담겼다.
조선일보 장근욱 기자
06.21 “코리안끼리 탈북 안 도울 수 있나, 날 스페인 보내면 북이 암살 노릴 것”
[김진명이 만난 사람] ‘자유조선’의 탈북 지원 돕다가 미 검찰에 기소된 크리스토퍼 안
2019년 마드리드 주스페인 북한대사관에 반북 단체인 ‘자유조선'(구 천리마민방위)의 에이드리언 홍 등 10여명과 침입한 혐의로 체포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0)씨. 스페인 정부가 미국 정부에 그를 인도해 달라고 요구, 미국에서 같은 해 4월 이를 결정하는 재판이 시작됐다. 조만간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안씨 변호인단은 “FBI가 크리스토퍼 안이 스페인에 인도되면 북한에 암살당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최대 24년의 징역형 가능성이 있는 스페인으로 인도되지 않으려 법적 투쟁을 벌여온 안씨를 9일부터 화상과 이메일로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크리스토퍼 안이 본지 인터뷰에서 “마드리드 작전 후 내가 모르는 이유로 이름이 공개됐다”며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말한 건 FBI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7년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왼쪽)과 함께 있는 모습. /자유조선 홈페이지
누구라도 나처럼 했을 것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심지어 당신의 자유까지도… ‘자유조선’에 어떻게 가입했나.
“나를 대단하게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맙다. 그런데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자유조선과 거리를 두려는 것은 아니지만, 꼭 이 조직의 ‘회원’이나 ‘리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누군가 돕기로 할 때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내가 받았던 것 같은 전화를 받았다면, 도울 수밖에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네가 돕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죽을 거야’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은 ‘노(No)’라고 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위험한 작전을 하게 됐나.
“내게 ‘봉사’란 해병대원으로 해외 파병을 다녀와서, 특히 이라크전에서 돌아와서, 행복해지려 내 삶에 꼭 필요하다고 느낀 무언가였다. 전장에서 많은 폭력과 비극을 경험한 뒤 집에 돌아오면 ‘무엇을 위해서였지? 왜 사람들이 그런 희생을 해야 했지?’라고 묻게 된다. 내 답은 ‘내 삶의 일부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바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안씨의 변호인단이 재판을 통해 알린 정황은 미 검찰이 주장하듯 일방적인 침입이 아니다. 안씨 등은 북한에 남은 친지들이 보복당할 것을 우려, ‘납치를 가장한 탈북’을 시켜달라고 요청한 북한 외교관들을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계획을 몰랐던 한 북한 외교관의 아내가 대사관 밖으로 탈출해 스페인 경찰에 신고하면서 일이 틀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이 사건을 계획한 에이드리언 홍과는 어떤 관계인가.
“누가 모든 것을 계획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탈북자 지원 활동과 많은 다른 종류의 비영리 자선 단체 일을 해왔다. 미국의 참전 용사 권익 단체에서도 일했고 노숙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단체에서도 일했다. 에이드리언은 그런 일들을 하면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북한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 구원자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다.”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일가의 망명을 도왔고. 마드리드에서 북한 외교관을 탈북시키려 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전 세계의 많은 보통 사람은 북한을 비극으로 여기지 않는다. 좀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지도자가 있는 북한을 무시해도 좋은 농담처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코리안이다. 코리안 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이지만 코리안이다. 그리고 이 노스 코리안(북한 사람)들도 코리안이다. 우리 코리안들이 만약 같은 민족이 어떤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세계 다른 사람들이 왜 신경을 쓰겠나.”
-김한솔에 대한 느낌은.
“김한솔을 만났을 때 그가 북한 사람이나 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17세에 암으로 선친을 여읜) 나처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가족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내게 그것은 코리안이 다른 고통 받는 코리안을 보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돕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돕겠나.”
-김한솔이 현재 어디 있는지 아는가.
“모른다. (대만 공항에서 헤어질 때) 한솔과 모친, 여동생을 안아주고 행운을 빌어줬다. 그리고 내가 가진 현금을 다 줬다. 그때 마지막으로 그들을 봤다.”
이유 모를 美 정부의 돌변
-자유조선과 미국 정부는 무슨 관계였나. CIA의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고 연방수사국(FBI)과 협력 관계였다는 말도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런 중요한 일을 하려면 CIA나 FBI 같은 곳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에이드리언이 미국 정부와 어떤 정도의 관계였는지, 어떤 관계가 있기는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FBI나 CIA와 어떤 공식적 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CIA가 나를 아는 것은 (김한솔의 제3국 망명을 도왔을 당시) 대만에서 그들과 얘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결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선 크리스토퍼 안 부부 모습. /변호인 제공
-2017년 당신이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서 제3국으로 가려는 김한솔과 그의 어머니, 여동생을 보호하고 있었을 때, 결국은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나타나 그들을 데려갔다고 알려져 있다. 공항에 나타난 사람이 CIA 요원인지 어떻게 알았나.
“김한솔 가족을 타이베이 공항에서 급히 다음 장소로 이동시키려 했다. 하지만 항공사 직원이 탑승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천리마민방위(자유조선의 전신)에 상황을 알렸다. 그랬더니 ‘CIA 요원 두 명이 만나러 올 텐데 그중 한 명의 이름이 웨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서 웨스가 나타나 자신을 소개했을 때 즉각 누구인지 알았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에이드리언 홍이 CIA와 함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전혀 모른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몇 년 전 에이드리언과 CIA 연락선이 있는지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 에이드리언은 매우 솔직하게 CIA는 이런 일들을 정말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핵무기 같은 큰 것들이다. 그들은 정보를 모으는 데 특화돼 있다. (북한)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하고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길을 제공하려는 일들을 CIA는 하지 않는다.”
-FBI와는 어땠나.
“마드리드 가기 전에 나는 FBI와 얘기해 본 적도 없었다. 마드리드에서 돌아온 뒤 에이드리언이 ‘FBI에 네가 개입했다고 말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물론이지, 난 숨길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FBI가 나를 찾아와 얘기했다. 나는 그들을 집으로 초청해 내가 만든 과자와 차, 커피를 대접했다. 내 활동과 그 동기에 대해 좋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당신들이 보기에 (내 활동이) 괜찮냐’고 묻자 그들은 ‘우리가 보기엔 다 괜찮다’고 했다. 그 뒤로 난 다시 평범하게 살았다.”
-왜 FBI가 태도를 바꿨나. 미국 정부는 왜 당신을 스페인으로 보내고 싶어 하나.
“모르겠다. 왜 FBI가 이 일에 대한 접근법을 바꾼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들(미국 정부)은 나를 몇 년 동안 알고 있었다. 나는 아주 평범하게 살았다. 여러 비영리 기관, 자선 단체에서 일했고 자유조선은 내가 자원봉사한 수많은 단체 중 하나일 뿐이다.”
-FBI나 CIA와 관계가 없었다면 ‘몇 년 동안 알고 있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CIA가 (김한솔 망명 같은) 무언가에 개입하려면 누가 관여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내가 내 신분을 밝혔고 CIA에 매우 개방적이고 정직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알았다. FBI가 나를 안다고 말한 것은 에이드리언이 FBI에 내가 개입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FBI나 CIA가 내가 개입한 정도나 내가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알았다는 것이다.”
바이든·文 대통령 믿는다
-지난달 LA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마지막 공판 후 담당 판사가 ‘재산상 이익을 추구한 증거가 없다’며 강도 혐의는 기각했다. 조만간 선고가 이뤄질 수도 있는데 법원의 연락은 있었나?
“들은 바 없다. 아직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옳은 결정을 해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동시에 이것이 매우 까다로운 결정이란 것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판사가 고려해야 할 많은 다른 측면이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아내와 함께 살면서 71세의 모친과 99세의 외조모를 부양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그간 매우 힘들어 하셨다. 처음에 어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나는 살기 위해 서로 아주 긴밀히 지내왔다. 그래서 어머니께 ‘이런 풍파가 우리 가족에게 닥쳐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렸다. 마드리드 사건 전까지 내가 (자유조선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 아내도 몰랐고 내 가족도 몰랐다. 아내는 내가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하고 있는데 때로 어떤 질문들에는 답할 수 없다는 것만 알았다.”
안씨는 체포된 뒤 미국 구치소에 90일 동안 잡혀 있다가 어머니와 남동생, 처가의 집을 담보로 보석금 130만달러(약 14억7000만원)를 내고 풀려났다. 전자 발찌를 하고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와 예전처럼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는 그를 돕는 모금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을 부양하기가 매우 힘들 것 같은데.
“매우 힘들다. 이런 상황이 터지기 전에는 막 시작하려는 새 회사에 여러 투자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 사라졌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지원해 봤지만 면접을 잘 보더라도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어려웠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이커머스를 지원해주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
-마드리드 사건 이후 북한의 암살 위협을 얼마나 느끼고 있나.
“마드리드 작전 전에는 내가 이런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미국 정부, 에이드리언과 나 자신뿐이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보냈고 위협을 느낀 적도 없다. 하지만 (마드리드 사건 이후)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내 이름이 공개됐다.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말한 것은 내가 아니라 FBI다. FBI는 미국 내에도 북한에 의한 위협이 있고, 스페인에 인도될 경우 그 위협이 급격히 비례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FBI가 말한 것을 믿기로 했을 뿐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처럼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고위 관료들에게 직접 얘기할 기회가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그들을 믿는다고 말하겠다. 나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해하려고 한다면 옳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올바른 결정을 하라고 선출해 준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외교를 이해하고 이 사안의 복잡성을 이해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안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직후인 2000년 미 해병대에 입대해 8년간 복무했고 이라크에도 1년간 파병됐다. 전역 후 버지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여러 봉사 활동을 하다가 북한 자유화 운동 단체인 ‘자유조선’(구 천리마민방위)과 연이 닿았고, 2017년 김정남 암살 직후 그 아들 김한솔 일가의 제3국 망명을 도왔다가 체포돼 스페인 인도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을 받고 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7.20 英의회도 탈북민 북송 지적했다…"송환땐 사형 우려"
북한 문제를 다루는 영국 의회 내 '북한에 관한 초당적 의원그룹'(APPGNK)'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최근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의혹과 관련해 도미닉 랍 영국 외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과 중국 외교당국에 해결책 마련을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인권을 중시하는 외교라는 측면에서 미국과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영국이 의회 차원에서 북ㆍ중 인권 문제의 아킬레스건인 탈북민 북송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지난해 9월 방한한 도미닉 랍 영국 외무장관의 모습. 뉴스1.
영국 상원의원인 데이비드 알튼(David Alton) 경이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서한에 따르면 의원그룹은 랍 장관에게 "지난 14일 탈북민 50명이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송환됐다는 사실에 (영국 정부가)주목하도록 하기 위해 서한을 보낸다"며 "탈북민들의 송환을 2년 가까이 미루던 중국 당국이 북ㆍ중 간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이번 주 송환을 감행했다"고 설명했다.
영 의회, 외무 장관에 서한...행정부 대응 촉구
"중국서 탈북민 50명 북송...사형ㆍ학대 우려"
"외무장관이 중ㆍ한 대사 면담해야...
중국에 정면으로 문제 제기해야"
특히 "송환된 탈북민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감옥에 수감되거나 노동 교화소(labor camp)에 가고, 처형 혹은 학대를 당하다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원들은 이어 "선양, 두만강 일대 여타 수용소에 아직 수백만 명의 탈북민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영국 당국이 런던에 있는 주영 중국 대사 및 주영 한국 대사와 면담해 중국 내 탈북민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인 매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사회가 나서서 탈북민들이 한국으로 가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요구인데, 구체적으로 중국과 한국의 대사까지 지목해 이들을 상대로 영국 정부가 상황 개선을 위한 역할을 하라고 촉구한 것이라 이례적이다. 이는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에 한·중 모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가도 하다.

▲영국 의회 내 '북한에 관한 초당적 의원그룹'(APPGNK)'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최근 중국의 탈북민 북송 의혹과 관련해 도미닉 랍 영국 외무장관에게 보낸 서한. 영국 상원의원 데이비드 알튼(David Alton) 홈페이지 캡쳐.
의원들은 "탈북민들은 이미 (탈북 전)북한 내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을 포함해 엄청난 슬픔, 고통,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호소했다. 또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은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민들을 강제로 돌려보냈으며, 영국으로 온 수백만 명의 탈북민을 포함해 극소수만 북송을 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1980년대에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가려던 이들에게 국경을 열어준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원들은 강제북송이 1951년 제네바 난민협약 등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앞서 지난 1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지난 14일 단둥 국경 세관을 통해 선양 수용소에 수감 중이던 탈북자 50여 명을 북한으로 보낸 정황이 포착됐다. 단둥 세관은 그간 코로나19 방역 등을 이유로 닫혀 있다가 이날 하루 열렸다고 한다. 북송된 탈북민 중에는 북한군 병사와 공군 파일럿 출신도 포함됐으며, 돌아가면 극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RFA는 전했다.

▲지난 3월 방한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영국 의회가 행정부의 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 의회는 하원 차원에서 지난 4월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 정도로 북한 인권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같은 날 미 국무부도 "대북 문제 접근에 있어서 인권 문제를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이 전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탈북민 북송 문제에 있어 대체로 당국의 직접 개입을 삼가는 기조를 이어왔다.
다만 지난 2019년 11월 베트남에 억류돼 있던 탈북자 13명이 미국 외교관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장소로 피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해 1월 보도한 바 있다.
당시 WSJ은 사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을 인용해 "일반적으로 관련 문제에 앞장섰던 한국 정부가 사건 초기에 적극적으로 탈북민을 돕는 일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한국 외교부가 이번 사건에 일정 역할을 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보도했다. 이에 외교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강제 북송을 막기 위해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선양 수용소 내 탈북민 북송 의혹과 관련해서 통일부는 지난 19일 "확인해 드릴 사항이 없다"며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민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월간조선 09월 호
■대북전단 TF팀 만들어 탈북민들 감시하는 경찰
“남한 경찰이 아니라 북한 국가보위부처럼 탈북민 감시”
⊙ 경찰 TF는 민간단체 대상 사전 정보 수집도 임무로 규정
⊙ 대북전단 사전 예방 명목의 탈북민 감시… 인권침해 우려
⊙ 탈북민들 과도한 경찰 사찰에 불만 표출⊙ “한국 잘못 왔다는 생각 들어”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2019년 4월 14일 새벽 경기 연천군 백학면 백령리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정부・여당이 지난해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키면서 일부 탈북민과 북한인권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시켰다. 이후 서울경찰청은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안보·정보·경비·교통 기능을 망라한 ‘상시 태스크포스(TF)’를 서울경찰청에 설치했다.
특히 TF는 민간단체를 대상으로 한 사전 정보 수집도 임무로 규정하고 있어, 인권침해는 물론 공권력 남용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비판적인 미국 조야의 움직임으로 볼 때 한·미 간 외교마찰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 가능성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실제 탈북민들 사이에서 경찰의 과도한 감시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대북전단 금지법이 통과되고 나서 신변보호 경찰관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려 들고 있다”며 “이는 신변보호가 아니라 나를 감시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탈북민 가·나·다급으로 신변보호 분류…
탈북민이 국내에 들어오면 그들에 대한 북한의 테러와 각종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제도가 있다. 신변보호관 제도다. 국정원과 경찰이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신변보호 제도에도 등급이 있다. 경찰은 이를 가·나·다급으로 나눴다. ‘가급’에는 고위 탈북민과 한국에서 북한인권단체를 운영하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에는 가급에 포함된 탈북민들을 국가정보원(국정원)이 24시간 보호를 했다. 현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경찰이 이들을 보호한다. 이들은 일반 탈북민보다 북한 테러의 1순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이 외 일반 탈북민들은 거주 지역의 경찰서 보안계에서 이들의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신변보호관보다 탈북민 수가 많아 경찰 1명당 많게는 수십명을 담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면 일부 탈북민들은 경찰의 이런 보호가 감시받는 것 같아 거부하기도 한다. 만약 탈북민이 보호를 거부할 경우 자신이 자필로 서명하면 보호관찰이 해제된다. 그러나 가급 대상자들은 예외인 것 같다. 가급으로 분류된 한 탈북민은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신변보호 해제 신청서를 두 번이나 작성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8년 탈북한 김정봉(가명)씨는 “신변보호관들이 처음에는 전화도 자주 해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며 “한번은 해외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출국했다 돌아오니 전화가 왔다. 그때 깜짝 놀랐다. 그 경찰에게 출국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해외에 다녀온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화를 받고 나니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북한에서처럼 내 행동을 감시당하는 것 같았다”며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도 비슷한 일이 있어 신변보호를 취소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가급 탈북민은 “보호하는 것은 좋은데 내 사생활 영역까지 그들과 함께해야 해서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두 번씩이나 신변보호 취소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감시자로 돌변한 신변보호관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사진=조선DB
최근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신변보호관들이 김 대표를 감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김 대표가 하는 일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현재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집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요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찰관들과 같은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지낸다”며 “그런데 얼마 전부터 경찰관들의 태도가 돌변해 내가 하는 일에 방해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김 대표의 말이다.
“나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것 같아 최선을 다해서 경찰관에게 협조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나서 그동안 들었던 정(情)까지 다 떨어졌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그동안 국내에서 활동해오던 대북전단 관련 단체들과 빈 생수통에 쌀과 성경을 넣어 북한으로 보내던 단체들의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김 대표는 단체가 보내지 못하면 자기 개인이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쌀을 보내고자 하는 마음에 일을 시작하려 했다. 사실 김 대표가 자유북한방송을 시작한 것도 남한의 친북좌파 정권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마음이 닫힐까 두려운 생각에 그 상징성을 이어가려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는 자신의 의견을 신변보호 경찰관들에게 얘기하자 경찰관들은 굳은 표정으로 “만약 그 일을 하시게 되면 우리는 못 하게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당신들 일은 내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김 대표의 말이다.
“그 얘기(경찰관들의 말)를 듣는 순간 화가 났다. 그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지 나를 감시하고, 내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다. 다른 경찰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신변보호관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이곳에 와서 여러 차례 신변보호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작년에도 수차례 말했고, 경찰청장에게 자필 편지까지 썼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현재 경찰관들과 동행하지 않고 있다.”
실제 김 대표는 과거와 달리 모든 일정을 경찰관들과 함께하지는 않고 있다. 현재 경찰들은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있지만, 동행은 하지 않는 상태다. 김 대표의 신변보호는 강서경찰서 보안계에서 담당하고 있다. 김 대표뿐만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다른 탈북민을 보호하는 경찰관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탈북민 A씨는 “지난 6월부터 경찰관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진 느낌을 받았다”며 “과거에는 참석하지 않던 자리에도 함께 들어와 뭔가를 열심히 휴대전화기에 적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A씨의 말이다.
“과거 신변보호를 받으면서 걱정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경찰관들과 함께 다니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국가에서 보호해준다고 하니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동안에도 내 동향(動向)이 보고되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하진 않았다.”
24시간 보호 대상인 탈북민들은 신변보호 경찰관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경찰관은 해당 탈북민이 집에서 나와 저녁에 귀가할 때까지 가까이서 보호한다. 보호 대상이 개인적인 약속이나 지인을 만날 때에는 배석하지 않고, 인근에서 다른 일을 한다. 하지만 지난 5월 서울경찰청에 대북전단 살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TF팀이 만들어진 후로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여러 탈북민의 전언이다.
일부 탈북민 차량번호 등록해놓고 불시 검문까지
서울경찰청 대북전단 TF팀은 김성민·박상학 대표 등 일부 탈북민의 차량번호를 공개·등록해놓고 불시에 이들의 차량을 수색하거나 이동 경로를 해당 지역에 공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기자는 지난 6월 18일 강화도 인근에서 경찰들이 달리던 김 대표의 차를 세워, 신분증 제시와 동선을 확인하는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김 대표가 그곳으로 이동할 것을 미리 알고 급하게 나온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김 대표와 인연이 있는 기자는 그날 김 대표가 거주하는 곳을 방문했다. 기자는 김 대표와 담소를 나누다 바다를 보기 위해 인근의 인천시 강화군에 있는 석모도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차로 한참을 달려 석모대교에 도착하자 경찰 열댓 명이 다리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여기서부터였다. 다른 차들은 그냥 통과했지만 김 대표의 차량은 그렇지 못했다. 경찰관들은 김 대표의 차량을 세우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후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통과시켰다. 김 대표 차량 뒤를 따르던 기자도 신분증을 보이려 했지만, 경찰들은 기자의 차량은 검문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리를 건너자 출구에 또 다른 경찰관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아예 김 대표 차량을 갓길에 정차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표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 갓길에 정차했다. 기자도 뒤에 정차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그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검문하려던 경찰관에게 다가와 그냥 통과시키라 했다.
취재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그때 갑자기 나타난 차량 운전자도 경찰관이었다. 그가 갑자기 나온 것은 상부 지시를 받고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내막은 이랬다.
김 대표 집에 있던 신변보호관들이 김 대표와 기자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TF팀에서 김 대표의 차량을 조회해 석모도 방향임을 확인하고 강화경찰서에 연락을 취한 것이다. 석모대교에 나와 있던 경찰들은 강화경찰서 소속이었다. 그들은 김 대표가 혼자 이동하는 줄 알고 차량을 세웠지만 기자가 동행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김 대표 차량을 검사하지 않았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도 자신의 차량번호가 여러 경찰서에 공유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박 대표는 “지난 4월 대북전단을 날릴 때 내 차량번호가 등록된 것을 알고 지인 차량을 이용해 전단을 보냈다”며 “그날 대북전단을 보낸 후로 나를 감시하는 눈들이 더 많아졌다. 지난해만 해도 신변보호관만 함께 다녔는데 지금은 내 차 뒤에 비공식적으로 차량 3대가 따라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대북전단 TF팀 구성
▲탈북민 단체 ‘큰샘’ 회원들이 2020년 6월 18일 오전 북한에 보낼 쌀을 페트병에 담고 있다. 사진=조선DB
지난해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경찰은 서울경찰청 내부에 대북전단 예방을 위한 TF팀을 만들었다. 경찰이 작성한 ‘대북물자 살포 관련 기능별 합동 TF 운영 계획’에 따르면, TF는 총괄팀장인 서울청 안보수사부장을 정점으로 1반 5팀 1실 규모로 구성됐다.
안보수사·정보·경비·교통·지역 경찰 등을 동원해 편성된 각 팀 수장은 총경급이 맡고, 세부업무 조정을 위해 경정급 실무회의를 별도 운영키로 했다. 경찰이 수사가 아닌 ‘사전예방’을 명목으로 대북전단 살포 차단 TF를 구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요 임무로는 ▲탈북민·비(非)탈북민 단체 등의 살포 준비행위 포착을 위한 사전 예고정보 수집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등 주요 탈북민에 대한 신변보호 활동 강화 및 수사 인력 지원 ▲대북물자 살포 차량 추적 및 제지 협조 ▲대상자 주거지 예방순찰 시행 등이 포함됐다. 서울청은 TF 추진 배경으로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도발로 간주, 상응한 행동을 검토해볼 것”이라며 “앞으로 국민의 안전에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탈북민과 북한인권단체들은 경찰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과도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성민 대표는 “그 어느 정부도 이같이 탈북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부서까지 만들어 실행한 적이 없다”면서 “이는 마치 북한 국가보위부와 같은 짓”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인권단체 사무국장인 한 인사는 “탈북민들을 보호한다는 달콤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북한에서처럼 다시 감시와 억압 속으로 밀어넣는 행위”라며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학 대표는 “북한 동포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이 뭐가 그렇게 잘못된 것이냐. 말로는 우리 국민들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심리 경호를 하는 것”이라며 “이럴 때면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탈북민 관련 일을 하는 한 경찰관도 이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표출했다. 이 경찰관은 “TF팀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탈북민들을 보호하는 일이 주업무지 그들을 감시하는 일은 주업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 내부서도 인권 침해 우려 목소리 나와
실제 경찰 내부에서도 대북전단 금지 TF팀 구성과 업무에 대해 불만이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찰 내부에서 사용하는 ‘폴넷(Police Network)’에는 상부의 과도한 지시에 반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글이 올라오면서 경찰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에 대해 경찰 상부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경찰 내부망 폴넷에 올라온 대북전단 TF팀에 대한 글이다. 글의 전문을 공개한다.
〈최근 서울청 안보수사부 소속 안보수사지원과에서는 ‘대북물자 살포 관련 기능별 합동 TF팀 운영 계획을 수립, 청장 결재를 통과해 해당 기능에 하달 및 시행한 바 있다.
내용인즉, 대북물자(전단·쌀) 살포 행위 전력이 있는 대상 ○○○(박상학 대표로 추정-기자 주)과 관련하여,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으로 대북물자 살포 금지 규정이 신설됨에 따라 적극적으로 예고정보 수집 강화, 자제 설득 및 경고를 기본 방침으로 하고, 세부 사항을 마련해 기능별 임무를 부여·시행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대상자의 신변위해도 증가에 따른 탈북민 신변보호 관련 인력·장비 등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변보호를 빌미로 사실상 수사인력을 동원해 사찰에 가까운 지시와 공문들이 생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상자는 이미 대북물자 살포 행위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고 있고, 그 의사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범행이 계속된다거나 재범 가능성이 있다는 직접적 증거, 정황이 없는 상황임에도 신변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대규모 수사인력을 동원하여 대상자 주거지와 사무실 주변에 24시간 배치 후 동선을 살폈고, 이를 부당하게 여긴 대상자는 신변보호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경찰의 감시가 지속하자 스스로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으며, 대상자의 위치를 놓고 동원인력은 그때부터 민간인의 행적을 살피기 위해 필요 최소한의 법적 근거도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부 지시 등만을 근거로 대상자의 위치를 밝히기 위한 사실상 행적추적에 돌입하게 됐다.
관련 근거로써 관공서 CCTV 열람 등 기관 협조를 구하는 신변보호 관련 협조공문에 신변보호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대상자에 대한 남북관계발전법 위반 수사 사건번호를 협조 근거 중의 하나로 기재해 수사목적으로 판단한 관공서가 CCTV 열람을 허용토록 했고, 대상자 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수배차량검색시스템(Wass)’을 활용해 대상자가 차로 이동한 동선을 파악한 바 있다. 이에 동원된 직원들만 ○○일간 ○○○명에 이르고, 대상자의 위치 파악에 현재까지도 24시간 근무배치는 계속되고 있다.
위 근무에 동원된 대다수 현장 경찰관들은 이와 같은 행위는 탈북민 신변보호라는 취지에도 맞지 않고, 몇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밀착감시, 행적추적 등은 범죄 예방이라는 개념에도 포섭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이러한 근무가 문제시되었을 경우 누가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도 있다.
전언에 의하면 현재 대상자는 이와 같은 경찰 행위를 불법 사찰로 판단하고, 형사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조직에서 안보수사 기능은 타 기능보다 폐쇄적이고,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과 오명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책임수사 원년의 해로써 국가수사본부가 창설되고, 대공수사권까지 경찰로 이관되는 것이 기정사실로 된 이때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위법성 논란이 있는 지시와 근무가 계속됨이 더는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여 이를 공론화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 안보지원과는 일부 경찰관들의 추가 인력 동원과 근무기간이 장기화되면서 피로가 누적되어 나오는 불만으로 치부해버렸다.
폴넷에 올라온 글에 대한 안보지원과의 답변 중 일부다. 〈이번 신변보호 강화 조치로 인하여 추가 인력이 동원되고, 근무기간이 장기화하면서 높은 근무강도로 인해 근무자들의 피로도가 가증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여 앞으로는 인력 동원 시 더욱 신중을 기하고, 근무기간이나 근무강도 등을 고려해 근무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하겠으며, 현장 근무자가 책임을 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박상학 모친이란 죄로 압수수색당해”
박상학 대표는 지난 4월 말 경기도 인천의 한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이에 경찰은 박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박 대표의 사무실과 인근에 사는 박 대표 노모의 집까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박 대표의 모친이 부재중인 틈을 타 강제로 문을 열고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일부 경찰은 박 대표의 모친이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 해당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의자까지 가져다놓고 지켰다고 당시 상황을 지켜본 주민들이 증언했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정말 문재인 정부의 경찰이 대한민국 경찰인지 북한 김정은의 보위부원인지 알 수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어떻게 아무 죄도 없는 70대 모친 집을 그것도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강제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어머니가 대단히 놀랐다. 그런데 경찰은 무슨 근거로 모친 집에 강제로 쳐들어갔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고 있다”며 “이는 박상학의 모친이라는 죄로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면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경찰들은 무엇을 찾았는지 어머니 속옷까지 모두 뒤졌다. 어머니가 얼마나 수치스러웠겠느냐”고 했다.
이어 박 대표는 “북한 보위부 같은 문재인 정부의 경찰과 북한 인민위원회에서도 하지 않을 짓을 하는 행태를 보면 한국에 온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10.02 법원 “北정권에 우호 단체만 남길 순 없다”
당국 승인 없이 쌀과 휴대용 저장 장치(USB), 성경 등이 담긴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북한으로 보냈다는 이유로 법인 설립이 취소된 탈북민 단체 ‘큰샘’이 통일부를 상대로 취소 조치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1일 승소했다. 이는 대북 전단을 살포해 설립이 취소된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같은 취지로 낸 소송에서 전날 패소한 것과 엇갈린 결과다. 앞서 두 단체는 지난해 통일부로부터 ‘한반도에 긴장 상황을 조성해 공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법인 허가를 취소당하자 각각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큰샘이 통일부장관을 상대로 “설립 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1일 판결했다. 큰샘은 페트병에 1㎏가량의 쌀 등을 담아 북한으로 보내는 활동을 펼쳐온 단체다. 큰샘 대표 박정오씨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인 박상학씨의 동생이다.
재판부는 “북한 측이 대북 전단 살포는 문제 삼았지만, 쌀 보내기 사업을 비난한 적은 없다”며 큰샘이 남북 관계에 긴장을 초래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한반도에 긴장 상황이 조성된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의 도발 위협에 기인한 것”이라며 “만일 북한이 도발 위협의 명분으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공익을 해하는 행위’로 평가한다면, 북한 체제나 정권에 우호적인 활동을 하는 법인만 남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반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정상규)는 전날 통일부의 손을 들어줬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풍선 등으로 대북 전단을 살포해 온 단체다. 재판부는 “대북 전단 살포는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야기하고 남북 군사 긴장을 고조시켜 평화 통일 정책 추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익 침해”라며 법인 취소 처분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낸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정상규)는 전날 통일부의 손을 들어줬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풍선 등으로 대북 전단을 살포해 온 단체다. 재판부는 “대북 전단 살포는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야기하고 남북 군사 긴장을 고조시켜 평화 통일 정책 추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익 침해”라며 법인 취소 처분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작년 7월 대북 전단이나 물품을 살포하는 행위는 탈북민 단체의 설립 목적을 벗어난 데다, 접경 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한반도 긴장을 초래한다며 두 단체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그런데 단체가 보낸 물품과 남북 관계에 대한 재판부의 시각에 따라 완전히 엇갈린 판결이 나온 것이다.
조선일보 권순완 기자
10.15 북한군에 수면제 먹이고 일가족 탈북…김정은 “억만금 들여서라도 잡아라”
중국과 접경지역인 북한 양강도 근처 마을에서 최근 일가족 4명이 강을 건너 탈북했다. 이례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 지시인 ‘1호 방침’이 떨어지면서 국경 지역의 분위기는 더 흉흉해졌다고 한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일가족 4명이 지난 1일 새벽 국경 경비에 빈틈이 생긴 순간을 노려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탈북한 일가족의 집에는 평소 국경경비대원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들은 그중 유독 친하게 지내던 국경경비대 부분대장(하사)이 근무하는 날을 노렸다. 미리 수면제를 섞은 탄산음료와 빵을 준비해둔 일가족은 1일 새벽 해당 부분대장에게 음식을 건넸다. 그와 함께 경계 근무를 서는 하급병사까지 챙기는 척하면서 탄산음료와 빵을 하나씩 더 챙겨주기도 했다. 이 가족은 국경경비대원들이 잠이 든 틈을 타 별 탈 없이 강을 건넜다. 그간 밀수로 생계를 이어온 가족이었기에 중국으로 통하는 길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국경경비대는 이들의 탈북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고, 즉각 중앙 국가보위성까지 보고됐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2일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민족반역자를 무조건 잡아와 본보기로 강하게 처벌하라”는 내용의 1호 방침이 떨어졌다. 또 “인민이 군인에 약을 먹이고 도망쳤다는 것은 심각한 군민관계 훼손 행위로, 국경 군민의 사상을 전면 검토하라”는 지시도 담겼다고 한다.
탈북한 일가족이 건넨 음식을 먹고 잠이 든 부분대장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들이었고, 일가친척 중에 도주자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없는 소위 ‘혁명적인’ 집안의 주민들이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가족들은 최근 국경 지역에 장벽과 고압선이 설치되자 “앞으로 밀수를 못 하게 되면 희망이 없다. 밀수를 못 하면 사람처럼 못 산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보위성은 중국 내 보위성 요원들에게 체포 임무를 내리고 중국 공안 등에도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접경 마을에 내려와 군인들이 어떤 주민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매체는 “이 사건이 양강도 전체에 다 소문으로 퍼졌다”며 “이 일로 국경 지역의 분위기는 더 흉흉해졌다”고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조선일보 이가영 기자
■11.19 대한민국 여권의 힘
내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1999년 탈북해 중국에 머물다 2002년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처음 대한민국 여권을 받았을 때 감격을 잊을 수 없다. 2004년 그 여권으로 여객선을 타고 중국 칭다오(靑島)로 여행을 갔다. 불과 2년 전 중국 동북 지역에서 남쪽으로 가려고 여권도 없이 ‘다롄-웨이하이’행 배를 타고 가슴 졸이던 내가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당당하게 중국으로 여행을 가다니 감개무량하고 가슴이 벅찼다.
▲새로이 선보인 차세대 대한민국 전자여권, 올해 12월 21일부터 발급을 시작한다./외교부
중국에 도착해 한국 입국 전 신세 진 사람들을 찾아가 인사했다. 전에는 나를 ‘북조선 총각’이나 이름을 부르던 사람들이 ‘김 사장’으로 부르며 마치 금의환향(錦衣還鄕)한 것처럼 환대했다. 2019년엔 영국에 갔는데 한국 여권을 가진 나는 무비자로 입국 수속 절차도 없이 공항을 통과했다. 대한민국 여권의 힘을 실감했다.
탈북민 중엔 대한민국 여권을 받았을 때의 감격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새 디자인 여권이 나오면서 더 화제다. 유튜브 채널에는 ‘탈북민이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외국에 간 경험담’을 풀어내는 방송만 10개 넘게 올라와 있다. 대부분 탈북 후 중국에서 무시당하며 살다가 한국에서 여권을 받고 중국에 갔더니 대접이 180도 달라지더라는 ‘신분 상승’ 무용담이다. 탈북민들 사이에선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해외에 나가면 어깨가 쫙 펴진다는 뜻에서 ‘황제 여권’으로 불리기도 한다.
탈북민들에게 여권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 국민은 여권 갖고 해외에 나가는 게 평범한 일상이지만 북한에서 여권은 특권층의 전유물이다. 북한에선 외교관, 무역 일꾼, 유학생, 해외 파견 근로자, 해외 연고자를 제외하고는 여권을 구경할 기회조차 없다. 당연히 여권 들고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다.
한국 여권을 갖고 해외에 나간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탈북 격투기 선수인 장정혁씨는 자신의 유튜브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 가서 종업원들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며 “북한에 있을 땐 러시아에 건설이나 벌목하러 나간 사람들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그들이 노예처럼 생활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대단해 보이던 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고 했다.
코로나로 막혔던 해외여행이 조만간 자유로워질 것이다.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는 191국으로 일본(193국)·싱가포르(192국)에 이어 3위다. 반면 북한 여권으로 갈 수 있는 나라는 39국으로 방글라데시(41국)·리비아(40국)보다도 적다.
탈북민들은 대한민국 여권을 받은 것에 감사와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북한 출신 주민들이 한국 여권을 갖고 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맘껏 누리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대한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2.03 탈북민 방치하는 정부
▲2019년 7월 탈북민 한성옥씨와 아들 김모군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굶주려 숨진 채 발견됐다. 탈북단체의 사망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요구로 미뤄졌던 장례는 4개월 뒤 인 11월 26일에야 3일장으로 치러졌다./이태경 기자
2019년 7월 탈북민 여성 한성옥(당시 42세)씨가 6세 아들과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집에 남아있던 음식은 고춧가루가 전부였다. 아사(餓死)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발견된 시신은 사망한 지 두 달쯤 지나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이 부검을 맡겼지만 사망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고 결국 이들은 ‘사인(死因) 미상’으로 처리됐다.
당시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통일부는 국내 탈북민들의 생활을 전수 조사해 취약 계층의 생계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고, 보건복지부도 시스템을 보완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했다. 빈소를 찾은 구청장은 “강력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국회에선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따져보자는 긴급 간담회도 열렸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한씨 모자처럼 ‘사인 미상’으로 숨진 탈북민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인 미상은 병·고령·사고·자살 등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 죽음을 말한다. 지난해부터 올 7월까지 국내에서 사망한 탈북민 154명 중 사인 미상 처리된 경우가 90명(58%)이다. 2019년 사인 미상 탈북민은 10명이었는데, 이듬해 49명으로 뛰었고 올해 들어서도 7월까지 41명이 나왔다. 한 탈북민 단체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정부는 사건 초기 잠깐 움직이는 것 같더니 이후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한바탕 쇼만 하고 끝난 것이다.
대신 정부·여당은 지난 2년간 이런 일을 했다. 작년 말 민주당은 180석이란 거대 의석수를 이용해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 인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침묵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은 물론 국내 탈북민의 생활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정부가 종전 선언에는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 속 지난해 코로나가 확산했다. 복지 기관의 방문 상담, 탈북민 교회의 대면 예배가 어려워졌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외부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집에만 머무르다 고독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얘기다. 이들은 “북한 눈치 보느라 정부가 탈북민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탈북민은 북한 체제에서 겪은 아픔, 탈북 과정에서의 트라우마, 고된 노동으로 인한 건강 이상을 안고 산다. 남들보다 정신적, 신체적 질환을 앓기 쉽다. 이들은 12주간의 사회 적응 교육을 받고 한국 사회에 홀로 선다. 탈북민 단체 관계자는 “이들의 꿈은 돈이나 명예처럼 거창한 게 아니다. 한국 사회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남은 삶을 편안히 보내는 게 전부”라고 했다. 그렇게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한 이들이 한국에서 원인 모를 죽음을 맞고 있다.◎
조선일보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