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1-12/ 12.02 고교학점제 대못 박기는 무책임 극치 - 12월 31일 문재인의 ‘달삼쓰뱉
바른소리 2021-12
12.01 고교학점제 대못 박기는 무책임 극치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前 부산교대 총장
교육부가 ‘고교학점제 2025년 전면 시행’을 골자로 한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최근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수업 운영기준이 ‘단위’에서 ‘학점’으로 바뀌고, 1학점 이수 수업량이 17회(50분 기준)에서 16회로 줄어든다. 특히 주목할 내용은, 선택 과목 비중을 높이기 위해 국어·영어·수학 수업을 고교 3년간 모두 105시간 줄이고, 사회·과학도 감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새 대입 개편안은 2024년에 발표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해서 듣도록 하자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지금처럼 아무런 준비도 현장의 공감도 없이 도입 일정만 못 박고 강행하는 고교학점제는 결코 안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칠 교원의 수급이나, 선택과정을 반영한 대입 개편, 도·농 간 교육 격차 해소 등 고교학점제 도입에 꼭 필요한 준비와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총론 주요사항은 ‘기승전 고교학점제’이면서, 모든 준비와 합의 과정 등 부담을 차기 정권에 떠넘기는 행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 등의 연구 결과, 고교학점제를 취지에 맞게 운영하려면 8만8000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껏 이 정부는 정규 교원이 아니라 교사 자격 없는 일반인을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는 법률 개정만 시도했을 뿐이다. 도·농 간 교육 격차 해소 방안도 ‘원격수업’ 등 실효성 없는 대책만 되풀이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성패가 달린 대입 개편은 2024년에나 나올 예정이다. 입시에 유리하거나 내신 따기 좋은 과목에만 쏠리는 문제를 해소하고, 자신의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도 불리하지 않은 대입제도가 선행돼야 취지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입 개편안조차 차기 정권에 떠넘긴 채 ‘대못 박기’ 발표에만 급급하니 무책임의 끝을 보는 듯하다.
확실한 대학 입시 개편안도 없이 국·영·수 등 주요 과목의 수업을 크게 줄이면 학생들의 학력이 더 떨어지고 학부모들은 학원과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불안해진 학부모들의 입시 관련 문의가 학원에 쇄도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현 정부 들어 지난 4년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고교생의 국·영·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증가하고, 보통학력 이상 비율은 줄어드는 등 학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눈감은 채, 오로지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해 일률적으로 시수를 감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장 교원들은 ‘고교학점제 2025년 전면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교총이 지난 7월 고교 교원 2206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 72.3%가 2025년 도입에 ‘반대’했다. 이유는 단연 ‘제반 여건 미흡’이다.
준비도, 합의도 실종된 고교학점제는 혼란을 넘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농 간은 물론 학생 간 교육 격차만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임기가 5개월 남짓밖에 남지 않은 정권의 ‘교육과정 대못 박기’는 중단해야 한다. 대통령 1호 교육공약 실현에 매몰돼 학교와 학생을 ‘실험쥐’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규 교원 확충과 입시 개편, 교육 격차 해소 방안 등을 차근차근 마련하고 충분히 여건이 갖춰졌을 때 시행하는 것이 옳다.
문화일보
12월 02일 소득 줄고 물가 천정부지…민생 고통 키우는 文정부 失政
연말 경제가 비상이다. 기업들의 악전고투로 수출만 호조를 이어갈 뿐 다른 분야에서는 적신호투성이다. 특히 민생 분야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 투입 효과도 한계에 봉착하면서 국민 고통이 급속히 커진다.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던 산업생산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실질 국민소득은 추락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한국은행이 2일 발표한 3분기 국민소득(잠정치)에 따르면, 국민의 실질 구매력을 보여주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기 대비 -0.7% 추락했다. 5분기 만의 마이너스 전환이다. 국민의 지갑이 그만큼 얇아진 것이다. 성장률은 속보치 0.3% 그대로였지만, 설비·건설 투자는 -2.4%와 -3.5%로 더 감소했다. 국민 88% 재난지원금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 역시 0.2% 줄었다. 수출이 1.8%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경제지표가 경고음을 울린다.
특히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3.2% 상승에 이어 11월엔 3.7%(전년 동월 대비)로 폭등했다. 2011년 12월(4.2%) 이후 거의 10년 만의 최고치다. 계절적 요인이 강한 농축수산물은 물론, 가공식품 등 공업제품, 집세·외식비 등 서비스 요금까지 다 올랐다.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고물가다. 문 정부는 하반기엔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했지만, 물가상승률은 이미 한은 목표치(2.3%)를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문 정부의 인위적인 경제 운영이 결국 한계를 드러내며 민생 경제를 궁지로 몰고 있다.
그나마 수출도 오미크론 변수로 차질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국경 봉쇄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차질 역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집값과 전·월셋값이 치솟는 가운데 문 정부는 뒤늦게 가계부채를 줄인다며 대출 총량규제에 나서 대출 금리까지 올라 신규 대출은 받기 힘들고 기존 대출은 갚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소득 감소와 물가 앙등까지 가세하면 민생은 최악이다. 이미 정부·가계·기업 모두 빚더미에 올라 있다. 문 정권은 임기 내내 재정을 퍼 썼지만 고용은 ‘세금 일자리’ 숫자놀음일 뿐이다. 그런데도 세수가 한 푼이라도 남으면 탕진할 궁리만 한다. 문 정권의 실정(失政)이 혹한기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문화일보 사설
12.03 ‘박원순 시민단체 먹이사슬’ 되살리기 나선 서울시의회
서울시의회는 시민의 이익도, 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의도,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시민의 평가도 안중에 없는 듯하다. 임기 마지막 예산을 다루면서 박 전 시장이 재임 10년 동안 구축한 좌파 진영의 생태계를 수호하는 데 힘을 쏟아붓고 있다.
민주당은 시의회 110석 중 99석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민주당 1당 의회라고 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서울시의회는 특정 시민 단체 먹여 살리기, 방만 운영과 세금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박원순 시대의 각종 사업 예산을 대부분 되살리고,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신규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편파 정치 방송의 대명사인 교통방송 TBS의 출연금은 서울시가 123억원을 삭감했으나 의회가 전부 되살린 것도 모자라 13억원을 늘리기도 했다. 고액 출연료로 김어준 같은 사람을 계속 지원하면서 대선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오 시장이 추진하는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온라인 강의, 청년 대중교통비 지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안심 소득 예산은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예산 농단이 있다면 이런 것일 것이다. 취약 계층에게 갈 시민의 세금을 빼앗아 자기 편에게 퍼주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 재임 10년 동안 민간 보조금 또는 민간 위탁금으로 시민 단체들에 지원한 세금은 1조원에 가깝다고 한다. 서울시 세금은 “시민 단체 전용 ATM(현금 지급기)”이라는 말도 나왔다. 서울시가 1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던 태양광 사업은 운동권 출신들의 먹잇감이었다. 서울시와 시민 단체는 재정 지원과 정치적 지지를 주고받으면서 공생 관계를 이뤄왔다. 이 기간 중 5급 이상 개방형·별정직·산하기관 임원 666명 가운데 25%(168명)가 시민 단체와 여당 출신이었다. 이렇게 하라고 서울 시민이 세금을 낸 것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 사업, 서울혁신파크,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지원 등 박원순 사업 예산을 증액한 서울시의회의 행위는 법규 위반이다. 의회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예산을 다룬 경우는 없다. 오 시장의 존재를 부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성추행 파문으로 막을 내린 박원순 시대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2.06 마지막까지 초팽창 예산, ‘빚 1000조國’ 만들고 가는 정권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올해보다 8.9%(49조7000억원) 늘어난 607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민주당 단독 처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보다 52%(207조원) 늘어난 규모다. 과거 같으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놓고 국회가 깎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도리어 3조3000억원을 증액시켜 놓았다. 내년 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챙기기와 선심성 예산을 끼워 넣느라 여야 가릴 것 없이 예산 늘리기에 앞장섰다. 이럴 거면 국회의 예산 심사가 왜 필요한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과거 정권의 SOC 투자를 ‘토건 적폐’라고 비난하더니 정작 내년도 SOC 예산은 역대 최대인 28조원으로 편성했다. 국회 심사 와중에 여야는 지역구 민원성 사업 4000억원까지 새로 끼워 넣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표 공약인 지역 화폐 지원 예산은 정부안보다 3배 가까이 많은 6053억원으로 늘렸다. 문 대통령이 고집한 경항모 사업비도 당초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삭감해 놓고는 민주당이 단독 처리해 되살렸다. ‘예산 알박기’와 다름없다.
문 정부는 재정 씀씀이에 관한 한 역대 최고로 방만한 정부였다. “곳간에 재정을 쌓아두면 썩는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으며 잘못된 정책의 부작용을 세금으로 메웠다. 문 정부 5년간 국가 채무는 408조원 늘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증가액(351조원)을 넘어섰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늘렸던 지출을 내년부터 감축해 재정 정상화에 돌입하는데, 문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까지 초수퍼 예산을 편성했다.
국가채무는 내년에만 108조원 불어나 1064조원에 달하게 된다. 국가부채 비율은 GDP 대비 50%를 돌파한다. 이런 속도라면 2029년에 나랏빚이 20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IMF는 향후 5년간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선진 35국 중 가장 빠를 것으로 봤다.
빚은 무섭게 불어나는데 미래 세대가 맞을 한국 경제에는 우울한 전망만 기다린다. OECD는 한국의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이 2030년 이후 0.8%로 떨어져 캐나다와 함께 OECD 38국 중 꼴찌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런 미래에 대비하려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잠재 성장률을 키우는 정책을 폈어야 했지만 문 정부는 거꾸로 갔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노동개혁 등엔 손 놓은 채 온갖 반기업 규제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정책만 폈다. 그래 놓고 ‘나랏빚 천조국(千兆國)’의 빗장을 활짝 열어 놓았다.
조선일보 사설
12.06 ‘가짜 좌파’가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산다
대선 앞두고 좌파 균열… 부패·타락에 수치 느끼는 ‘성찰적 좌파’ 나타나
反전체주의 합리적 진보가 좌파의 새 모델 된다면 내년은 숨통 틔는 시기일 것
2021 연말과 2022 연초의 갈등 주제는 물론 좌우 대결이다. 그러나 중요한 항목이 하나 더 있다. 오늘의 시국은 좌파 내부에 유의미한 논쟁의 계기를 촉발했다는 점이다. 좌파를 하려면 어떤 좌파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좌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의 논점이 그것이다.
이 논점은 운동권 출신 변호사 권경애가 운을 떼었다. 그는 물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다하자고 언약하던 귀착점이 결국 이재명이냐?” 좌파를 해도 왜 굳이 이재명식이냐는 물음이다. 이 논쟁은 모든 혁명사에 등장한다. 구체제를 타도할 때까지는 모든 좌파가 일치한다. 그러나 그 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선 좌파들이 갈린다. 이 싸움에선 99% 엽기적인 마왕(魔王)들이 이긴다. ‘스탈린과의 대화’를 쓴 밀로반 질라스가 이 점을 체험적으로 설파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티토의 2인자였다. 그렇던 그는 티토의 독자 노선을 말살하려던 스탈린의 악마성을 발견했다. 그는 썼다. “스탈린은 성취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다 하는 괴물이다.”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란 뜻이다. 밀로반 질라스는 이 고발로 인해 자신이 함께 만든 체제의 정치범이 되었다. 그러곤 스탈린·레닌·마르크스 도식을 차례로 벗어던졌다.
한국 586 운동권의 문제점도 그런 것이다. 혁명을 위해선, 조직을 위해선, 성취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다 해도 괜찮다는 과대망상이 그들을 타락시켰다. 자기들은 어떤 부정부패, 일당 독재를 자행해도 그것은 위대한 혁명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무오류, 잘못된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악마적 미신을 깨는 좌파 지성은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좌파 집단 규율이 워낙 세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조국 사태 후 좌파 권력의 타락에 수치를 느끼는 듯한 소수 좌파 개인들이 나타나긴 했다. 이런 수치심은 좌든 우든 다 갖춰야 할 문명 감각, 염치·절제·품격·양식(良識) 같은 것이다. 이걸 잃으면 좌도 우도 다 괴물이 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은 본래 이 문명 감각에 기초해 왜 3·15 부정선거를 했느냐, 왜 마산 고교생 김주열 얼굴에 최루탄을 꽂았느냐, 왜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 치사하고 여학생을 성고문했느냐는 보편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다 운동은 어느 틈에 보편성을 잃고 편향성과 편집증으로 흘렀다. 원인은 그들 안과 밖에 다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운동은 또 하나의 조악(粗惡)한 독선·독단·독재로 굳었다.
‘문재명 진영’도 그런 증상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낙연 참모였던 이상이 교수가 이재명을 ‘기본소득 포퓰리스트’ ‘대장동 당사자’라고 비판하자, 민주당은 그를 즉각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당원 게시판도 닫아버렸다. 떠들지 말라는 것이다. 스탈린이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 당내 이견(異見)을 숙청한 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재명은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모아 놓고, 논란 있는 법안의 일방 통과를 압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야당이 발목 잡으면 뚫고 가야, 패스트트랙에 한꺼번에 태워라, 여당이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은가?” 방망이로 패는 국회는 ‘좌파 히틀러’이지 자유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재명은 “공소시효 없는 역사 왜곡 단죄법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양심·표현·학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포고령이다. 중남미 수준의 법치 없는 민중민주주의 빅 브러더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밀로반 질라스는 또 말한다. “스탈린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범죄성,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 체사레 보르자가 지녔던 정예(精銳)의 자질, 그리고 제정 러시아 이반 뇌제(雷帝)의 포악성을 합친 존재다.” 한국 NL 운동권도 그 족보에 속한다. 스탈린·마오쩌둥·시진핑·백두 혈통, 그리고 남로당·경기동부연합·통진당·전대협·한총련 라인이다. 자유 민주를 없애려는 계열이다.
그렇다면 “그런 386이 죽어야 후대가 싹을 틔운다”고 울부짖는 ‘성찰적 좌파’가 정말 있다면, 그들은 지금 그 계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좌파를 해도 그런 식으론 하지 말자. 자유 사회의 합리적 진보가 되자”는 대안은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조지 오웰의 ‘반(反)전체주의 좌파’가 그들의 새 모델이 될 순 없을까? 그러면서 바람직한 시대 전환을 위해 그들 나름으로 그들 자리에서 순기능을 한다면, 2022년은 한결 숨통 틔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련만-.
조선일보 류근일 언론인
12.06 “내가 상위 2% 부자입니까”
20억 전세 살면 안 내는데 지방 2채 9억인데도 종부세
“부자들만 낸다더니 내가 왜?” 엉터리 ‘부자 인증’에 반발 확산
며칠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가 국민 2%에 속하는 부자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63세 할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20억~30억원 전세 사는 사람은 놔두고, 경기도 용인의 집 두 채 더해도 9억원이 안 되는 나한테 종부세를 내라니 너무 불공평하다”며 “가난에서 벗어나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절약한 게 죄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집값 상승과 종부세율 인상 등의 영향으로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크게 늘어 95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 세액도 5조7천억원까지 늘어났다. 다주택자와 법인의 부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번 종부세 고지 인원 중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51.2%(48만5천명)로 이들이 부담하는 세액은 전체의 47.4%(2조7천억원)다. 사진은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구와 서초구 일대의 모습. 2021.11.22 /연합뉴스
주택과 토지분을 더해 사상 처음으로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100만명이 넘었다. 정부와 여당이 “전 국민의 98%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듭 해명했지만 “엉터리 통계” “국민 갈라치기” 같은 역풍(逆風)이 거세다. 2005년 종부세가 처음 도입됐을 때도 ‘세금 폭탄’ 반발과 위헌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주택분 종부세를 낸 3만6000명은 현 정부 방식으로 계산하면 상위 0.07%에 드는 ‘자타공인’ 부동산 고액 자산가였다.
올해 종부세 대상자의 조세 저항이 유독 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다수 국민은 종부세를 일종의 ‘부유세’로 받아들이는데, 납세자 중 상당수가 정부의 ‘부자 인증’이 엉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적표를 받은 학생이 채점 기준이 이상하다고 학교에 항의하는 꼴이다. “잘못 채점한 학생이 몇 명뿐이니 괜찮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현행 종부세 산정의 큰 맹점은 부동산 자산 가치만큼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세금 부담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다. 올해부터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 금액이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올랐지만, 다주택자 공제 금액은 그대로 6억원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전용면적 84㎡) 1채를 보유한 A씨는 종부세를 내지 않는다. 최근 실거래 가격이 17억원이 넘지만, 공시가격은 11억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세종시 ‘도램마을 15단지’(전용 84㎡)와 충남 공주시 ‘효성 해링턴 플레이스’(전용 74㎡)를 가진 B씨는 종부세를 110만원 정도 내야 한다. 세종과 공주 아파트 두 채의 시세를 더해야 12억원 정도이고, 공시가격 합은 7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B씨에게 종부세는 상위 2% 부동산 부자가 내는 세금이 아니라 ‘2주택자 벌금’인 셈이다.
“종부세는 무차별 폭격이 아닌 정밀 타격” 운운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에 분노하는 사람도 많다. 납세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국민에게 ‘폭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종부세 대상자는) 우리 쪽에 투표할 사람이 아니니까 때려잡는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게 정상적인 정권인가.
문재인 정부는 집값 잡겠다며 집을 사서(취득세), 거주하고(보유세), 파는(양도세) 모든 세금을 올렸다. 무자비한 세금 채찍에도 2017년 5월 6억7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지난달 기준 12억3700만원이 됐다. 급등한 집값에 절망하는 무주택 서민들은 이제 주거비 증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주택자에게 부과한 거액의 세금은 어떤 식으로든 세입자의 전세·월세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조선 세종은 재위 9년 만인 1427년 3월 과거 시험에서 “백성 사랑은 세금 제도에서 시작한다”며 효과적인 세제 시행 방법을 물었다. 세종이 낸 문제에 맹자(孟子)가 말한 ‘취민유제(取民有制)’가 등장한다. 백성에게 거둬들이는 것(세금)에는 일정한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백성이 억울하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걷는 세금이 좋은 정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관련 세금이 절제와 공정함을 잃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여당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감면 얘기까지 나오니 선거철이 맞는가 보다.
조선일보 진중언 기자
12월 06일 文정권 失政이 부른 ‘高물가 低성장’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연말을 맞은 한국 경제가 고물가와 저성장의 늪에 갇혔다. 4∼9월 동안 월평균 2.5% 정도 올랐던 소비자물가는 10·11월에 각각 3.2%와 3.7% 올랐다. 석유류를 비롯해 농축산물, 가공식품, 전월세 등이 모두 상승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4.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에 따라 3분기 성장률은 0.3%지만 생산으로 획득한 소득의 실질구매력을 반영하는 실질국민총소득은 2분기에 비해 0.7% 떨어졌다.
작금의 고물가와 저성장 원인은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 복지 지출, 코로나19 사태 극복 등을 위해 재정과 통화 발행으로 마련된 돈이 소비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데서 찾을 수 있다(자산시장에 투입된 신용 창조는 논의에서 제외). 이 경우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늘어 그 가격이 올라가므로 소비재를 만드는 것이, 예를 들어 기계 등의 생산재를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원이 소비재 부문에 몰려 생산재 부문이 위축되고, 소비재 생산에 투입되는 기계 등의 생산이 줄어 소비재 공급이 줄어든다. 결국, 돈을 손에 넣은 소비자의 소비재에 대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가 오른다.
한편, 소비재 부문에 자원을 빼앗긴 생산재 부문에서는 자원 쟁탈전이 심해져 생산자물가는 더 올라간다. 실제로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12월 0.2%, 올해 6월 6.6%, 10월 8.9% 올랐다. 또, 생산재 부문의 위축으로 성장은 둔해진다. 이것이 고물가와 저성장의 이유다.
이런 현상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거리두기에 따라 영업 기회를 박탈당한 사업자들에 대한 보상은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생산재 부문의 위축을 가속화시킨 것은 정치적 이득을 앞세우고 경제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에 무지한 정치인들과 정책 당국자들이 재정과 통화를 아주 방만하게 늘렸기 때문이다. 앞뒤가 뒤바뀐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 지출 증가가 초래한 근로 의욕 저하에 따른 고용 감소 등도 생산재 부문의 위축을 가속화시켰다. 더욱 우려되는 바는, 절박한 소비 증가와 과중한 세금 등으로 저축이 줄어들면 자본 축적(蓄積)이 줄어들어 성장이 더 둔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경제의 소비와 생산의 구조에 괴리가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생산재 부문이 위축됨에 따라 공급에 애로가 생겨 경제가 상당 기간 휘청거릴 것이란 점이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경제의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바로 생산재 부문의 위축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을 제외하면 작금의 고물가와 저성장은 대부분 정부의 정책 잘못에 의한 것이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하지 않고 화수분이나 되는 것처럼 5년 동안 400조 원이 넘는 나랏빚을 쌓으면서 재정을 고갈시키고, 그냥 발행해서 쓰면 그것이 돈이라는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무지에 사명감과 부지런함이 더해져 지금의 한국 경제가 표류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그 폐해를 줄이는 방법은, 수많은 사람이 서로 관계하며 살아가는 거대 사회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책 당국자들이 깨닫고 현명하게 게을러지는 것뿐이다.
문화일보
12.07 “무역으로 선진국” 뭐 도운 게 있다고 공치사하나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8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무역인들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소중한 성과(사상 최대 무역규모)마저 부정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수출의 탑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
문재인 대통령이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나라는 연이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역의 힘으로 선진국이 됐다”며 “그러나 이런 소중한 성과마저도 오로지 부정하고 비하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1조2000억달러로 최대 무역액을 기록한 일에 관한 기업인들 노고를 치하하면서 정부도 “기업과 함께 임시 선박을 90여 척 투입하여 수출길을 열었다”는 등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무역 성과는 기업인들이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이지 정부가 보태준 것은 하나도 없다. 도와주긴커녕 각종 반기업 정책을 쏟아내면서 기업을 옥죄어 온 것이 정부다. 주 52시간 일괄 시행, 친노조 편향의 노동 3법 개정 등 수많은 규제로 기업들을 위축시켰다. 산업 재해 때 CEO까지 구속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위시해 기업주·법인을 형사처벌할 수 있게 하는 법규가 2600여 건에 달하는 반기업 환경을 만들었다. 탈원전을 한다며 원전 수출 생태계를 다 망가뜨려 놓은 것도 이 정부다. 그렇게 기업 활동에 족쇄를 채워놓고 기업들이 이룬 성과에는 열심히 숟가락을 얹고 있다.
문 정부는 코로나 사태 초기 마스크 대란과 백신 확보 실패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기업들에 손을 벌렸다. 문 대통령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의 송전선 문제 하나 해결해 주지 않더니 삼성이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현대차 연구소의 ‘미래차 국가 비전 선포식’에도 참석하고 현대차·SK 등 주요 대기업들을 불러 모아 ‘수소 선도 국가 비전 보고 대회’를 갖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일부 세력이 “무역으로 선진국 된 성과를 부정·비하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무역 입국(立國)의 눈부신 성과를 부정한 것이 누군가. 정권 주변의 좌파 운동권과 친문 세력은 수출과 산업화로 경제를 발전시킨 현대사의 성취를 폄훼해왔다. 반기업 폭주를 지켜만보던 대통령이 ‘무역으로 이룬 성과’엔 숟가락부터 얹는다. 국정 쇼와 생색내기 내공으로 보면 역대 정부 중 금메달감이다.
조선일보 사설
12.09 ‘文, 지지층 반대에도 결단’ 한 번만이라도
인기 없는 일
절대로 안 하는 文
그래서 물 건너 갔다는
박·이 전 대통령 사면
부정적 여론 무릅쓰고
해야 할 일 하는 게
국가 지도자의 본령
그런 모습 보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민주당 정치인 한 분이 문 대통령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고집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은 언쟁을 해도 자기가 틀렸으면 생각을 바꾸는데, 문재인은 남의 말을 조용히 다 들은 다음에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잘못된 정책도 끝까지 고집하면서 임기 말까지 왔다. 탈원전은 선언 첫날부터 오류가 드러났는데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심지어는 멀쩡한 원전을 경제성 평가까지 조작해 폐쇄시켰다. 소득 주도 성장은 문 정부 경제 정책을 꼬이게 만든 시발점인데도 지금까지 ‘잘했다’는 식으로 고집한다.
탄소 정책도 각계에서 ‘불가능하다’고 그토록 만류하는데 대못까지 박았다. 민주당 의원들도 안 된다면서 예산을 삭감한 경항모를 기어이 되살려 놓았다. 문 대통령이 항모 작전에 무슨 지식이 있겠나. 그냥 고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만 스물 몇 번을 내놓는 것을 보고서는 질릴 정도였다.
고집은 자기 의견을 안 바꾸고 버티는 것이다. 아집은 자기(편) 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해 다른 사람 의견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내 편’ 중심의 생각에 빠져 ‘다른 편’의 견해를 무시해 왔다. 이것은 고집이 아니라 아집에 가깝다.
문 대통령은 ‘내 편’이나 ‘많은 표’ 앞에서는 아주 쉽게 자기 생각을 바꿔왔다. 정부 초기 가상 화폐를 ‘도박과 같은 것’이라며 거래소를 폐쇄한다고 하다가 청년층이 들고 일어나자 바로 접었다. 가상 화폐에 대한 과세도 정부 방침을 바꿔 꼬리를 내렸다. 주식 차익에 대한 과세도 반발이 일자 연기했다. 수능 절대평가제는 문 대통령 교육 공약의 핵심인데 학부모들 여론이 부정적이자 흐지부지되게 했다. 공기업 직무급 도입도 노조가 반발하자 철회했다. 꼭 필요한 국민연금 개혁은 반발이 일어나자 발을 빼는 정도가 아니라 죄 없는 복지부 간부들 휴대폰까지 압수하면서 반발 여론에 영합했다. 이럴 때 보면 문 대통령은 고집이 센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다.
문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는 사안은 거의 모두 ‘다른 편’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65%가 ‘탈원전 정책 재검토’에 찬성한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층만을 놓고 보면 ‘탈원전 정책 유지’가 52%로 더 높았다. 문 대통령에게는 ‘국민 65%’보다 ‘민주당 지지층 52%’가 더 중요하다. 지지층이 싫어한다고 사망한 전직 대통령 조문도 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문 대통령만큼 정파적인 사람, ‘내 편, 네 편’ 따진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문 대통령에게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은 불가능해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젊은 층의 사면 반대 여론이 훨씬 높다. 민주당 지지층은 말할 것도 없다. 문 대통령은 인기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돌았던 성탄절 사면설이 물 건너 갔다고 한다.
정치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국민 다수나 지지층이 싫어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욕을 먹으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진보 사민당 출신 슈뢰더 총리가 핵심 지지 기반인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 개혁을 완수하고 정권을 잃은 것이 정치 지도자의 본령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지도자다운 모습을 임기 중 한 번이라도 보여준 적이 있나.
사실 박·이 전 대통령 사면은 이미 때를 놓쳤고 의미를 잃었다. 두 사람 입장에서도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새 정부인데 이제 와서 문 대통령의 은전을 입고 싶은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두 전 대통령을 사면했으면 하는 것은 한국 대통령 잔혹사가 또 하나의 악업을 쌓은 것도 모자라 이렇게 그 위에 못질까지 하지는 말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손으로 박,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하고 임기를 마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 지금 둘로 쪼개진 우리 사회의 적대감은 터질 듯 압력을 높여가고 있다. 보복의 악순환을 멈춰세우지는 못할 망정 원한의 씨에 물을 뿌리지는 말아야 한다.
1997년 12월 김대중 후보 당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가 만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에 합의했다. 구속 2년 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전, 노 대통령과는 커다란 구원(舊怨)이 있었다. 김대중 후보는 전두환 사면 찬성을 말했다가 지지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했다.
듣기로는 문 대통령도 사면을 고민했다고 한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올해 초 문 대통령에게 두 전 대통령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했던 것도 문 대통령과 교감 아래 한 말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사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 결단할 때다. 박 전 대통령 수감은 5년이 돼간다. 대통령에겐 지지층이 싫어하고 여론에 인기도 없지만 나라 전체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일을 하는 게 진짜 고집이다. 한 정파가 아닌 국가 지도자로서의 문 대통령 모습을 보고 싶다. 한 번만이라도.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12.10 힘든 숙제는 죄다 패싱한 문 정부 5년
노동·교육·연금 개혁 외면… 다음 정부에 숙제 떠넘겨
佛 마크롱 정부, 5년 내내 개혁… 재선시 ‘연금 개혁 재추진’ 약속
문재인 정부 5년은 손쉽고 폼 나는 일은 과하게 벌이고, 힘든 개혁 과제는 철저히 외면한 시간이었다. 미룬 숙제 대부분은 청년 세대의 미래와 관련된 이슈들이다. 문 정부의 직무유기는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고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음에도 청년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열어줄 노동 개혁은 철저히 외면했다. 집권하자마자 박근혜 정부가 힘겹게 첫 단추를 낀 공공기관 성과급, 저성과자 해고 요건 완화를 폐기했다. 대선 공약인 공공기관 직무급 도입도 포기했다. 능력, 성과와 상관없이 매년 월급봉투가 두꺼워지는 호봉제가 청년 실업을 가중시키는 요인인 줄 알면서도 기득권 노조가 반발하자 주저 없이 숙제를 내팽개쳤다.
‘아빠 찬스’가 난무하는 대입 제도 개선도 손을 놓았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를 도입해 수능 변별력을 망쳐놓고 조국 사태로 아빠 찬스 논란이 일자 어정쩡한 ‘정시 확대’로 후퇴했다. 대입 개혁 숙제를 국가교육회의에 미루고, 교육회의는 다시 공론화위로 책임을 떠넘기다 대입 제도를 이도 저도 아닌 잡탕밥으로 만들어놨다.
청년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국민연금 개혁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연금 개혁 관련 위원회에서 ‘추가 부담안’을 제시하자 대통령이 “납득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 뜸 들이다 정부가 4가지 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180석 거대 여당은 뭉개기만 했다.
조세 정책에선 ‘보유세 인상, 거래세 인하’가 옳은 방향이라더니, 미친 집값 앞에 우왕좌왕하다 둘 다 가파르게 올렸다. 반면 근로자 10명 중 4명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근로소득세 수술은 외면하고, 동학개미 눈치 보느라 주식·코인 과세도 회피했다. 그 결과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문 정부는 온갖 선심 정책과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국가채무를 400조원이나 늘려 ‘나랏빚 1000조원 시대’를 다음 정부에 떠안겼다. 재정 중독 비판을 의식해 국가채무 관리 책임을 규정하는 ‘재정준칙’을 만드는 시늉은 했지만, 국가채무비율 상한선을 60%로 높여 잡고, 그것조차도 적용 시점을 2025년으로 늦추는 꼼수를 부렸다.
이처럼 문 정부는 경제 체질 개선과 재도약에 필요한 개혁 과제는 손도 대지 않는 채 ‘회피’로 일관했다. 대선 공약이라도 지지층이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어김없이 ‘미루기-떠넘기기-남 탓’ 3종 세트를 동원해 꼬리를 내렸다. 그 결과는 ‘잃어버린 5년’이다. 정권 교체든, 정권 재창출이든 차기 정부가 덤터기를 쓰게 됐다. 그렇다면 다음 정부는 이런 시대적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까. 상황은 비관적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묵은 숙제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문 정부가 묵힌 숙제에 대해선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기본 소득, 국토보유세 같은 자신의 핵심 공약조차 하루아침에 뒤엎는 발언을 쏟아낸다. 무슨 국정철학을 갖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정권교체 기수를 자처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어떤가. 추상적이고 두루뭉실한 방향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잃어버린 5년’ 시즌 2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문 정부와 같은 시기에 출범한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노동개혁, 대입 제도 개혁, 공무원 감축 등 5년 내내 개혁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대국민 연설에서 코로나 사태로 중단된 연금개혁을 재선되면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조선일보 사설
12.11 대통령의 빗나간 國政 철학 결과는 무섭다
잘못된 국정철학은 人事 실패와 정책 실패 연쇄 반응
大選 후보의 겉 公約보다 바닥의 국정철학 뚫어봐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그 속에는 ‘꼭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뒤섞여 있다. 정부도 돈과 시간이란 자원(資源)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꼭 해야 할 일’ 가운데 시급성과 중요성을 따져 실행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꼭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대통령의 ‘판단 기준’과 대통령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의 방향’이 국정 운영 철학이다. 대통령이 정한 우선순위를 뒤집을 만큼 무모한 공무원도 없고, 대통령 손가락은 동쪽을 가리키는데 서쪽에서 해결책을 찾아 올리는 눈치 없는 공무원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우리는 일본의 수출 규제부터 코로나로 이어지는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역의 힘으로 선진국이 됐다’면서 ‘이런 소중한 성과마저 오로지 부정하고 비하(卑下)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자부심과 희망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담당 기자들은 ‘대통령 말씀’을 ‘작심(作心) 발언’이라고 표현했다. 벼르고 별렀다는 뜻이다. 연설의 끝을 이 말로 맺었으니 사실일 것이다.
이 기사를 보고 대통령 연설을 다시 읽으면서 떠오른 첫 생각은 왜 ‘무역의 날’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언급조차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올해 수출액은 6300억달러, 무역 규모는 1조2000억달러로 추계(推計)한다. 현재의 성과를 자랑할 때는 으레 과거의 미미(微微)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이 연설의 상례(常例)다. ‘무역의 날’은 1964년 제정 당시 ‘수출의 날’이었다. 수출 실적이 1억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축사에서 ‘평소 우리들의 숙원(宿願)인 억대 수출을 달성했다’면서 감격했다. 그 후 우리 수출은 10억달러(1971년) 100억달러(1977년) 1000억달러(1995년) 5000억달러(2012년)로 몇 계단씩 건너뛰며 성장했다.
역대 대통령은 모두 이런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고 나서 미래의 더 큰 성장을 다짐했다. 문 대통령 연설에만 역사가 빠져 있다. 대한민국 역사로부터 단절과 이탈(離脫), 이것이 문 대통령과 현 정권의 ‘역사의식’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연설은 현 정권을 향한 채찍으로 기록해 둬야 할 듯싶다. “해외에서 우리 기업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고맙고 참 자랑스러웠다. (그분들을 대할 때마다) 기업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넘었던 산(山)으로 거론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그냥 시작된 게 아니었다. 취임하자마자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중 한국 측 실천 사항을 사실상 백지화(白紙化)한 데서 비롯됐다. 뒷수습은 반도체 기업들이 유럽·미국·일본을 뛰어다니며 감당했다. 정부는 반도체 공장을 신설할 때 송전(送電) 급수(給水) 시설 설치에 손 하나 보태지 않았다. 이런 대가(代價)를 치른 대일(對日) 외교는 올 스톱 상태고 한-일 외교 공백은 한-미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치며 한국 외교 입지(立地)를 좁혀 놓았다.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 철학 또는 국정 철학의 부재(不在)가 문제의 근원이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데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는 대통령과 만나는 횟수(回數)와 접촉 시간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자주 많이 만나는 쪽이 실세(實勢)다. 문 정권 경제 사령탑은 정책실장이다. 대통령은 취임 이래 내리 세 번 이 자리에 시민운동과 대학교수를 겸업(兼業)해 온 사람들을 앉혔다. 이들은 28번의 부동산 정책 수립을 지휘했고 그 결과 집값 전셋값·월세는 올라갈 데까지 올랐고, 정부는 집값이 올랐다고 집주인에게 공중폭격하듯 세금을 퍼붓고 있다. 정책에도 만행(蠻行)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걸 가리킬 것이다. 우리 공무원이 과거만큼 유능하진 못할지언정 이렇게 무능하진 않다. 대통령은 국내에서 원전을 폐쇄하면서도 해외에 나가선 한국 원전을 세일즈하는 데 아무런 모순(矛盾)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운영 철학에 스스로 갇히면 이렇게까지 무섭다.
하루 한 건씩 공약을 발표하는 이재명 후보와 그 뒤를 쫓으며 ‘더블’을 부르는 윤석열 후보에게 공약 말고 ‘당신의 국정 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재명 후보의 답변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어제 발생한 대장동 산사태가 더 큰 산사태의 전조(前兆)나 예고편(豫告篇) 같기 때문이다. 울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12.14 정부·공무원 책임 회피용 위원회 2만8000개, 세금 내고 싶겠나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명목의 위원회가 남발되면서 대통령 산하와 중앙 부처 등에 설치된 정부기관 위원회가 처음으로 600개를 넘어섰다. 지자체 산하 위원회는 무려 2만7000개에 달하고, 이들 위원회에 속한 위원 수만 30만명에 육박한다. 정부와 공무원들이 주요 사안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외부로 결정을 떠넘기는 일이 관행처럼 반복되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위원회 공화국’을 만든 것이다.
위원회 난립은 역대 정부에서도 논란이 됐지만 문 정부 들어 급증세를 보였다. 이전 정부까지 550개 안팎이던 정부기관 위원회가 올해 622개로 늘었다. 지자체 위원회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000개씩 새로 생겼다. 정부기관 위원회의 약 10%인 70곳과 지자체 위원회의 25%인 6750개는 지난 1년간 회의를 거의 열지 않았다. 유아교육보육위원회, 군공항 이전사업 지원 위원회, 국제경기대회 지원 위원회,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처분시설 유치지역 지원 위원회 등이 그런 곳이다. ‘위원회’ 명칭이 붙은 조직이 하도 많아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를 곳이 허다하다.
정부나 지자체들은 정책 개발과 전문가 의견 청취를 위해 위원회를 만든다고 하지만 실은 책임 회피가 주목적인 경우가 많다. 정부가 대입 제도를 개혁한다면서 직접 결정하는 대신 교육부에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떠넘기는 바람에 별다른 변화도 없는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신고리 공론화위’는 정권이 추진하는 ‘탈원전’의 여론몰이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2050 탄소중립위’도 위원 수가 97명에 달해 실질적인 논의보다는 정책을 합리화하려는 용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구성한 ‘코로나 일상회복 지원위’도 정부의 책임 회피용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온다. 위원회 내에서 강력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의료·방역 전문가와 이에 반대하는 소상공인 간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오락가락 늑장 대응을 반복하면서 이 위원회의 의견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전형적인 ‘면피성’ 행정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지자체 위원회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위원회 난립은 책임지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는 무능·무책임 정부가 만든 코미디 같은 현상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싶겠는가.
조선일보 사설
12.16 “그 더러운 회사에서 만든 걸 어떻게 귀에 대십니까”
삼성 욕하며 갤럭시 쓰는 의원 호감도
삼성 66점, 민노총 32점
주식 투자자 천만, 민노총 백만
언제까지 노조만 善이라 할건가
“그렇게 더러운 회사에서 만든 스마트폰을 어떻게 귀에 대십니까.” 한 관변 연구소 임원을 지낸 분이 “그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는데 참았다”고 했다. 속 시원하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연구소가 당할 일이 상상이 가서 “간신히 꿀꺽 삼켰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 세미나에서 당시 야당 의원이 삼성 공격을 쏟아냈다고 한다. 친노동 입장이던 그는 노조 탄압, 정경 유착, 작업장 환경오염 등 온갖 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전화벨이 울렸는데 갤럭시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를 하고 끊더란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연합뉴스
이런 사람이 적지 않을 듯싶다. 입만 열면 삼성, 대기업, 재벌 공격하면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쓴다. 미국을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나라로 지목하면서 아들, 딸 미국 유학 보낸 사람도 많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나라다. 한 관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미국 국무부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라면 정말 궁금할 것 같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갤럭시와 제네시스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이 궁금할 것 같다. 직원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특별 리포트를 만들어 오라’고 시킬 것 같다”고 했다.
우리 기업들에, 삼성에, 현대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도 있고, 더 잘해야 했다는 지적도 맞는 말이다. 이 정부와 여당은 유난히 그런 비판에 날이 서 있다. 삼성은 이 정부 내내 수사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선거철이면 얼굴을 바꾼다.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한다. 경기에 찬바람이 불면 일자리도, 투자도 당부한다.
작년 말에 나온 한 여론조사에서 몇 가지 공개되지 않은 내용을 들었다. 기업과 시민 단체, 노조 등의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다. 매우 호감이 간다를 100점,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다를 0점으로 했을 때 몇 점이나 되는지 조사했다.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10명이 삼성전자에는 66.4점, 민주노총에는 31.6점을 줬다. 삼성전자를 기업 대표로, 민주노총을 노조 대표로 선정했던 모양이다.
민주노총은 이 정부 들어 급격하게 몸집을 불렸다. 조합원 숫자에서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 노조 자리를 넘겨받았다. 작년 말 고용노동부 집계로 조합원이 104만5000명에 달한다. 숱하게 무법 불법 집회와 시위를 하면서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명언도 남겼다. 어떤 비판을 해도 뉘 집 개가 짖느냐고 한다. 코로나가 퍼진 뒤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청와대 위에 민주노총이라고 한다. 기묘할 정도로 민주노총에 저자세인 청와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 정부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집단 또 하나가 ‘동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다. 대한민국 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 주주가 1000만명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개인 주주는 518만명이 넘는다.
내년은 1962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 60년이 되는 해다. 1962년 1인당 국민소득은 87달러였고, 증시에 상장한 기업은 12곳이었다. 그 뒤 경제 개발과 함께 기업이 세워지고, 노조도 생겼다. 노조의 목소리가 절절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서울 광화문을 안방처럼 여기는 민주노총의 구호는 여전히 국민이 보기에 절절한가?
민주노총은 막강한 조직력과 동원력을 자랑한다. 언제라도 서울 광화문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인과 기업은 악이고, 노조는 선이라는 이분법을 언제까지 듣고 있을 리 없다. 언제까지 광장에 노조의 구호만 요란할 리 없다.
조선일보 이진석 경제부장
12월 16일 징벌적 주택稅 오류와 당·정 갈팡질팡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진보 논객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올 연초에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시즌 3’에서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더 높은 비율로 과세하는 게 합당하다”며 강도 높은 조세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에 발표한 8·2 대책인 양도세 강화 법제화 촉구다.
정부는 정확히 4년 뒤인 올해 8월 2일 2주택 이상 다주택자는 조정대상지역 내에서 주택 양도세가 중과되고 장기보유 특별공제 적용이 배제된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유동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많은 전문가의 일침과 대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12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때만 해도, 징벌적 세금으로 큰 정부를 만들어 표(票)를 사려는 진보의 승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같은 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가 당·정·청 협의도 거치지 않고 느닷없이 지방 유세 중이던 12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완화와 관련해 “1년 정도 한시적 유예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5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책 일관성 등을 이유로 다주택자 양도세 일시 완화에 반대하는 견해를 전했고, 이달 중에 처리하겠다는 민주당 방침에도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논리적 기준이 없으니 갈팡질팡한다.
2017년 2학기 첫 강의 때 한 학생이 교수에게 물었다. “시장을 무시한 좌파 정책이 언제까지 먹혀들까요?”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70%의 국민이 위협을 느낄 때죠!” 다른 학생이 묻는다. “얼마나 걸릴까요? 3∼4년?” 그날 수업에서 교수가 내린 결론은 “1주택자 상당수에까지 칼끝이 들어올 때, 좌파의 부동산 정책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겪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야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요!”
문 정부의 갈라치기 사례를 몇 가지만 들어보면, 첫 번째는 다주택자와 1주택자를, 두 번째는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 놨다. 이때만 해도 일부는 환호했지만, 세 번째로 대출 자격 15억 원 이하와 그 이상으로, 네 번째는 종부세 2%와 98%로, 다섯 번째는 양도세 기준 12억 원 이하와 그 이상으로 나누자 대다수가 여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징벌적 세금 제도는 애초부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주거 안정 효과도 증명되지 않았다. 양도세 중과로 다주택자가 집을 내놔 시장에 부족한 주택이 공급될 것이라는 봉이 김선달 같은 발상이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통할 것으로 생각한 좌파 논객들의 비현실적 이념이 여권의 대선 후보를 통해 거짓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양도소득세를 많이 거두는 것이 경제 정의라고 생각하는 불로소득 징벌론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세금 전가와 귀착이론 외에도, 우선 그 집을 팔고 이웃 지역에 갈 형편이 안 되므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도 대신에 증여를 택하므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며, 또한 다주택자가 계속 집을 보유하므로 부동산 거래 시장이 축소되는 등 국가 사회경제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보다 오직 대선 승리만 추구하는 이재명 식 말 바꾸며 국민 우롱하기, 그리고 문 정권의 말기에 드러난 여러 번의 기만적 갈라치기 부동산 정책으로는 정권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드높다. 한시적 유예가 아니라 양도세의 전면적 완화가 정답이다.
문화일보
12.17 양도세로 충돌한 靑과 與 후보, 임기 말까지 부동산 대혼돈
청와대 이호승 정책실장이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택시장 상황이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전환점이라 다주택자 양도세 같은 근간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갑자기 꺼내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重課) 유예 공약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이철희 정무수석도 14일 국회를 찾아 민주당 지도부에게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지난 12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1년 정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아이디어를 제가 내서 당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상당수 친문 의원들이 “대통령의 뜻과 다르다”며 반발했지만 지난해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으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법안 일방 처리를 이끌었던 윤후덕 선대위 정책본부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과거 입장을 180도 바꿔 이 후보 공약이 옳다고 지지했다. 청와대가 이날 명확한 반대 의사를 내놓았는데도 이 후보는 “매물 잠김 현상을 완화하고 공급 확대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라며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아 여권 전체가 혼돈에 빠진 형국이다.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문재인 정부의 20여 차례 부동산 대책은 총체적 실패였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그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작년 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행 시점인 올해 6월까지 과세를 피하기 위한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실제로는 다주택자 전체 주택 매도량이 대책 발표 직전 달과 비교해 다음 달 반 토막으로 줄어드는 등 매물 잠김 현상만 확산됐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의 주택난은 더 심화됐고 집값은 한층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무주택 서민들의 고통만 커져갔다.
그런데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금 민심의 비난을 모면해보려는 이재명 후보와 당 지도부는 손바닥 뒤집듯 자기들이 통과시켰던 법안을 사실상 철회하자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고, 청와대와 정부는 망가진 부동산 시장에 대해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문제에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국민은 매우 많고 이 문제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 또한 지대하다. 그런데 이 중대한 문제를 놓고 여당 대선 후보가 아무런 사전 조율도 없이 덜컥 공약을 던지고 청와대는 이에 반대한다면 국민은 누구를 쳐다봐야 하는가. 문 정부 내내 부동산 문제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더니 마지막까지 대혼돈을 만들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12-18 ‘우리는 다 잘하고 있다’는 지도자들에게
치적만 내세우는 현 정권에 실망한 국민
분열 속 감정 싸움하는 야권에도 실망
선출된 지도자에 협력하는 지도층 필요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정치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남겼는가? 자연히 그 책임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에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꿈과 희망을 약속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정권의 주체가 되면서부터 대한민국의 정치는 방향을 상실했고 행정은 국내 정치의 질서를 혼란에 빠뜨렸다. 출발부터 잘못된 원인은 운동권 출신과 여당 강경파가 정권을 독점한 데 있다. 국민은 지금까지 함께 일했고 앞으로도 운명을 같이할 동역자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를 믿고 싶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과 행정기관 중추 임무를 담당하는 정부 요인들을 청와대의 심부름꾼으로 전락시켰다. 법무부 장관들은 검찰개혁 명분을 내세워 그들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진실과 공정을 위한 업무와 질서도 스스로 무너뜨렸다. 국민을 위한 법치가 아닌 정권을 위한 예속 수단으로 삼았다. 공수처를 여당 강경파가 탄생시켰다. 지금도 잘했다고 박수 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국 장관 임명과 여당 열성 지지자들의 억지스러운 행위가 어떤 결과가 되었는가. 권력이 정의의 가치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악의 과오를 범했다. 청와대와 여당 강경파 인사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의 정도를 넘어 지금은 문 대통령을 위한 명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인상까지 보여준다. 문 대통령에게는 실정은 없고, 존경받을 업적을 남겼다고 과장하는 태도가 대통령과 국민의 유대를 단절시켰다.
지난 ‘수출의 날’ 행사 때도 그랬다. 경제 업적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국민들은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도 문 정부 기간에 대기업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과거를 더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미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까지 청와대와 여당을 대신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옷만 갈아입는 사과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야권을 대표하는 국민의힘도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린 상태였다. 얼마나 무능했으면 비대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했겠는가. 그 와중에도 친박, 비박의 수준 낮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친문, 비문의 대립이 문 대통령과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전철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 정치계를 제3자가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문 정권에서 쫓겨난 공직자들이 야당에 합류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면 그 모순과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한 정치는 사라지고 지도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결과를 만들었다.
국민들은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비롯한 공직에서 추방된 인사를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마지못해 수용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벌어진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그러나 여야를 물을 것 없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만 있지 지도자와 협력해 더 큰 목적을 이루겠다는 애국심을 갖춘 지도자가 없었다.
도산 안창호의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은 임시정부 한직에 자족하면서, 협력을 포기하고 분열을 일삼는 사람들을 찾아가 설득하며 애태우곤 했다. 좌와 우의 대립은 독립 이후의 과제니까 지금은 분열의 불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면서 긴 세월을 보냈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유능한 지도자를 섬기고 돕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그의 ‘지도자론’이다. 우리에게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를 선출했으면 그가 존경받고 성공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애국적인 지도층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지도층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도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정치의 중산층에서 지도층이 태어나고 그 지도층의 대표가 지도자가 되도록 협조하는 지도층이 아쉬운 세상이다. 대통령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애국심보다 정권을 탐하는 측근임을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성숙된 민주사회에는 네 편, 내 편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해진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야 할 방향을 국민과 함께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 대신에 휴머니즘에 입각한 방향이 중요하다. 우리가 러시아, 중국, 북한과 협조적인 개혁과 복지를 지향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의 바른 길이며 모든 인간이 찾아 누려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존중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12월 20일 낯뜨거운 文정부 자화자찬

박정민 경제부 차장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의 선심성 공약들이 봇물 터지듯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홀로 ‘유산 정리’에 바쁘다. 각 부처는 청와대 지시에 따라 문재인표 정책 성과 수집과 홍보에 여념이 없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 선두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다. 홍 부총리의 정책 성과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19로 인해 망할 뻔했는데, 훌륭한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홍 부총리가 쓴 정책은 다름 아닌 ‘재정’이다. 지난주 기재부는 재정운용전략위원회에서 지난해 기준 일반정부·공공부문 부채와 올해 재정정책 운영 성과를 공개했다. 기재부는 2021년도 재정정책의 성과라며 “확장적 재정 운용을 통해 빠르고 강한 경제회복, 코로나가 남긴 양극화 해소, 포스트 코로나시대 선도국가 도약기반 조성을 뒷받침하고, 사상 최대 재정 조기 집행 등으로 ‘확장재정→ 빠른 경제회복→ 세수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는 성과도 거양”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특히 재정집행 노력 결과 매 분기 경제성장률이 올랐고, 빠른 경기회복으로 경기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성과에 든 비용 역시 ‘크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일반정부 부채(D2)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8.9%(945조1000억 원)로 전년보다 6.8%포인트 늘었고, 공공부문 부채(D3)는 66.2%(1280조 원)로, 전년 대비 7.3%포인트(147조4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증가 폭이 역대 최대인데도 별것 아니라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에 대해 재론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정말 정부 얘기처럼 이런 천문학적 재정 투입으로 경제가 살아났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날 정부가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서 정부는 2020년 기준 모든 소득분위(5분위 기준)의 가계소득이 증가하며 전체 가계소득이 3.4% 증가했고, 분배 측면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차이도 줄어들었다고 자찬했다. 실제로 전년에 비해 소득은 3.4% 늘었는데, 이 중 근로소득은 1.7% 는 반면, 공적이전(정부 현금지원)은 31.7%나 늘었다. 사업소득은 1.4% 줄었다.
쉽게 말해 정부가 국민에게 직접 돈을 쥐여 줘서 소득이 개선됐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적 이전소득 증가를 자랑했다. 이쯤 되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문제점·부작용마저도 성과로 포장하고 자랑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재정 투입이 산업을 부양하고 혁신에 쓰였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실제로 성장동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재부가 발표한 ‘10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全)산업 생산이 전월보다 1.9% 감소하며 1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광공업 생산, 서비스업 생산 등 전산업의 경기 개선 흐름이 악화되고 있다. 기업이 어떤 성장 동력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혈세를 물 쓰듯 하는 게 잘하는 게 아니라 재정을 절약하며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잘하는 것이다. 어디서 이런 뻔뻔함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옆에서 바라보는 국민이 오히려 더 낯 뜨거울 정도다.
문화일보
12월 22일 文정부 부동산 꼼수와 조세저항 확산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역대급’ 종합부동산세 과세가 지난달 22일부터 본격화된 가운데 곳곳에서 위헌소송을 준비하는 등 조세저항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논란이 커지자 기획재정부는 종부세는 국민의 2%에만 해당한다며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해 우리나라의 보유세 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해명을 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국민 편 가르기는 명백히 실패했다.
이달 초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65%가 종합부동산세 개편을 지지한 것으로 나온다. 이처럼 종부세를 비롯한 부동산 세제가 내년 3월 대선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로 떠오를 공산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내년 주택 보유세 산정 때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자체는 조정 없이 추진하기로 하면서 대선을 의식한 조삼모사의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의 해명이 먹혀들지 않는 것은 상식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선 종부세가 국민의 2%에만 해당된다고 하지만 이건 어린애까지 포함해 분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가구 구성원 수 2.3명을 곱하면 국민의 4.6%가 종부세 영향권이고 주택보유자와 비교하면 종부세 납세자는 전체의 6.4%다. 서울 지역의 경우 10%가 넘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보유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정부가 인용하는 통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보유세 부담률이다. 이것은 부동산 보유세 총액을 보유한 부동산 자산의 총액으로 나눈 값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규모 즉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총액의 비율이다.
이 두 지표로도 2018년 이후 종부세의 급격한 인상으로 선진국에 비해 높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한국과 다른 선진국을 이 두 지표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 자산이 부동산, 특히 주택에 집중돼 있고 따라서 소득에 비해 주택 가격이 높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보유세는, 매입 가격에 고정돼 있는 미국과 달리, 주택가격의 상승에 연동돼 있다. 주택가격의 상승이 조세 지불능력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데다 공시가격의 현실화로 과세표준이 급상승하기 때문에 보유세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보유하는 동안 가격 상승분에 대해 이미 세금을 낸 만큼 양도소득세 산정 때 납부세액을 공제하는 게 마땅한데도, 현행 법령엔 그런 장치가 없다. 이중과세 또는 미실현이익 과세 논란이 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종부세위헌청구시민연대에 따르면 현행 종부세는 일곱 가지 위헌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법률적 해석 없이도 국민은 체험과 상식으로 현행 보유세제의 문제를 알고 있다.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조삼모사식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여당과 정부가 할 일은 선거용 연막을 치는 게 아니라 부동산 세제를 전면 개편하라는 다수 ‘국민의 명령’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문화일보
12.23 ‘보이지 않는 헌법’ 투표로 지켜야 한다
글자로 적힌 헌법 밑바탕엔 국민 상식·교양·지성 녹아있어
제멋대로 헌법 악용해 민주주의 무너뜨리고
자유 제한하려는 권력자, 선거라는 ‘무기’로 응징할 수밖에
헌법 밑바탕에 ‘보이지 않는 헌법’이 있다. ‘보이지 않는 헌법’이 없다면, 헌법이란 그저 종이에 적힌 죽은 텍스트일 뿐이다. 저명한 헌법학자 트라이브(Laurence Tribe)가 말하듯 헌법이란 ‘보이지 않는 헌법’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와 같다.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니다. 명문화된 헌법 없이도 법치가 이뤄질 수 있지만, 헌법이 있다 해서 법치가 저절로 실현될 까닭이 없다.

▲이재명(앞줄 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묘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89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있다./뉴시스
‘보이지 않는 헌법’이란 한 사회의 역사적 경험, 정치적 지혜, 축적된 판례, 시민사회의 감시, 매스컴의 비판, 전문가 집단의 자문, 공동체의 윤리 의식, 개개인의 도덕적 판단력 등, 법치가 꽃필 수 있는 한 나라의 문화적, 전통적, 정치적, 이념적 토양이다. 국민 상식, 인문 교양, 집단 지성, 그 뭐라 불러도 좋다.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냉철하게 판단하고, 예리하게 비판하고, 삼엄하게 감시하는 공민(公民·공화국의 시민들)이 없다면 법치는 파괴되고, 민주주의는 사망한다.
법치가 왜 무너지는가? 바로 ‘보이지 않는 헌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치란 다수 공민이 권력을 감시하고 정책을 검토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법치를 실현하는 주체는 한 줌 권력자들이 아니라 다수의 깨어있는 공민이다. 다수 공민이 감시와 비판을 멈추면, 권력자들은 제멋대로 헌법을 악용해서 ‘보이지 않는 헌법’을 허물어뜨린다.
‘보이지 않는 헌법’을 작동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달리 묘책이 있을 순 없다. 지금껏 모든 사회가 노력해왔듯 대중 교육을 실시하고,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언론 자유를 확대하고, 열린 토론을 이어가고, 전문가 집단을 양성해가는 수밖엔 없다. 그럼에도 가장 효율적인 방도가 있다면, 바로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낡고, 썩고, 무능하고, 부패한 구태의 권력 집단을 퇴출하는 정공법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란 ‘보이지 않는 헌법’이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보이지 않는 헌법’을 잠재우기 위해서 권력자들은 갖은 모략과 술수를 쓴다. 선거 직전에 현금을 살포하고, 엉터리 복지 정책을 공약한다. 선거 관리를 제 편에 맡기고, 공영방송을 장악한다.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거짓 소문을 흘린다.
지방선거에 개입하고, 흑색선전에 몰두한다. 근거 없는 폭로전, 도를 넘는 비방전, 유치한 편 가르기, 저열한 낙인찍기, 가십성 외모 품평, 혐오증적 인신 비하. 정책 대신 정략이, 경쟁 대신 암투가, 정당정치 대신 파벌 싸움이 판을 친다.
그 치졸한 정치판의 이전투구는 판에 박힌 선거 전술이다. 자기편 후보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상대편 후보의 허점을 공격하는 수천 년 된 마타도어다. 대통령 선거라면 논리와 경륜을 갖춘 후보자들이 정책과 비전으로 진검승부를 해야 마땅하지만, 파괴적 포퓰리즘, 옐로 저널리즘, 음험한 정치 공작, 선정적 흥행 몰이만 난무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반민주적인 망동(妄動)이다. 바로 이번 대선이 한국 헌정사 최악의 졸작이라 한다면 멀리 사는 방외자의 야박한 평가일까?
디지털 혁명 이후 전 세계에서 권력 집단의 대중 감시와 정보 조작 기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개개인의 얼굴, 홍채, 정맥, 음성, 서명, 걸음걸이까지 모두 생체 인식의 빅데이터로 집적되어 빅브러더의 수퍼컴퓨터에 입력되는 세상이다. 오웰의 상상을 넘어서는 디지털 전체주의가 해일처럼 민주주의를 삼키기 직전이다. 권력자들은 틈만 나면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어 개개인의 자유를 옥죄고 권리를 제한하려 든다. 진정 현대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인가?
권력 집단의 권능이 더욱 거세지기에 공화국의 시민들이 직접 권력을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헌법’을 되살려야만 한다. 공민은 누구나 머리와 가슴에 ‘보이지 않는 헌법’을 품고 있다. 그 헌법의 명령에 따라 합리적 이성과 전문가적 식견을 발휘할 때다. 거짓 선동과 헛된 공약으로 유권자를 기만하는 교만한 권력 집단에 투표의 철퇴를 내려야 한다.
선거의 칼날로 썩은 권력을 도려내야만, 차기 권력자는 ‘보이지 않는 헌법’의 두려움을 깨닫고, 살얼음 딛듯 벌벌 떨며, 국가의 제1 공복(公僕)으로 거듭날 수 있다. 민주 선거는 무도한 권력을 내치는 공공의 무기이다. 그 비장의 무기로 그들을 방출하지 못하면, 그들이 우리를 노예처럼 부린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대 맥매스터대 교수
12.24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 한국 자본주의는 망가졌다”
[WEEKLY BIZ] [Cover Story] ‘자본주의의 미래’ 저자 폴 콜리어의 한탄
“굉장했던 과거에서 이토록 악화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폴 콜리어는 누구? 옥스퍼드대 블러바트닉 행정대학원에서 경제학과 공공정책학을 가르치는 개발경제학자다. 1949년 영국의 셰필드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고 옥스퍼드대를 졸업했다. 아프리카경제연구센터, 세계은행, IMF, 하버드대 등에서 일했다. 아프리카 저개발국 빈곤 문제를 연구한 공로로 2014년 영국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2016년 영국 학술원장 표창도 수상했다. 포린폴리시 잡지가 선정한 ‘세계 사상가 100인’(2010~2011)이다. 대표 저서로 ‘약탈당하는 지구’ ‘빈곤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미래’가 있다. /Getty Images
한국의 경제 개발 역사를 되짚던 개발 경제 석학 폴 콜리어(Paul collier·72) 옥스퍼드대 교수가 안타까운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개발도상국에서 수십년 만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국가 한국이 현재는 불황에 시달리는 다른 국가처럼 ‘악몽(nightmare)’ 같은 시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현행 자본주의의 실패’ 후폭풍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낮은 출산율, 청년 취업난, 포퓰리즘(대중영합) 정책의 득세, 커지는 빈부격차와 사회 갈등을 대표적인 실패의 증거로 꼽은 그는 이를 ‘자본주의가 궤도를 이탈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대중을 빈곤에서 구해내지 못하는, 이른바 ‘고장 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채택해 경제적 발전을 이뤄온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며 “짧은 기간 압축 성장을 해온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병폐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해서 콜리어 교수는 자본주의를 무찔러야 할 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다시 관리해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IMF와 세계은행, 하버드대, 파리정치대를 거쳤고 옥스퍼드대 블라바트닉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빈곤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미래’ 등 저서를 통해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의 빈곤 문제를 연구하며 ‘따뜻한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런 공로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포린폴리시가 선정하는 ‘세계의 사상가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지난 11월 TV조선이 개최한 글로벌리더스포럼에 참석했던 그를 최근 화상통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공동체 무너지자 자본주의 고장 나”
콜리어 교수는 자본주의의 실패는 곧 공동체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족과 기업, 국가 단위 모두 공동체보단 개인 쪽으로 중심이 쏠리며 자본주의가 고장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좌·우파 정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으며 이념주의자나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가 가세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게 콜리어 교수의 진단이다.

▲주택 보유 격차 확대, 지역별 일자리 격차 확대
-저서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묘사한 실패 사례가 현 한국 상황과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높은 청년 실업률, 현금 지원을 앞세운 포퓰리즘의 유행, 가족 붕괴로 인한 세계 최저 출산율 등입니다.
“맞습니다. 한국은 지난 70년 사이 가난을 벗어나 OECD 회원국으로 성장한 유일의 국가입니다. 역사적으로 사회가 뭉치고 단합해 함께 일하면서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참 역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얘기하신 그대로 한국은 심각한 방식으로 잘못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비극적입니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잘 작동할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이 공유 정체성을 바탕으로 호혜적 의무를 발휘해 함께 생산성을 끌어올린 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과거 한국 사회는 매우 친(親)사회적(pro social)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북한이라는 큰 위협 아래에서도 사람들은 번영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상호 노력해 실용적 전략 아래 뭉쳤습니다. 단합했기 때문에 실수하더라도 실수에서 배워 계속 나아갈 수 있었죠.”
그는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웃 국가들처럼 그저 악몽이 됐다”고 했다. “이전과 달리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단기적으로, 또 이기적으로 생각합니다. 사회는 마법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를 위한 책임감을 갖춘 이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이들 덕에 나아갑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개인주의적 성향 심화에 따른 자본주의의 후퇴는 한국이 단기간 압축 성장을 한 탓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내가 사는 영국,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학력자와 나머지, 수도권 주민과 나머지, 고숙련 노동자와 나머지로 사람들이 갈라지고 있으며 이 ‘나머지’는 버려진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불행히도 한국 역시 어느 정도 성장한 뒤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실패로 발생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과세 방식을 바꾸고 특정 계층에 대한 선별 복지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또 학군 범위를 넓혀 목적에 따라 운영하는 공립 학교를 설립하자는 식의 구체적 대안도 제시한다. 정부는 실용주의와 함께 ‘사회적 모성주의’를 기반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무기로 ‘나를 따르라’는 식의 ‘사회적 가부장주의’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소득은 인간 존재에 대한 왜곡”
한국 사회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른 ‘기본 소득’과 관련해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기본 소득은 전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하는 일종의 ‘무상 월급’이다. 단기 실험을 한 몇몇 국가를 제외하면 정식 도입한 곳이 없어 타당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다.
-기본 소득이 사회적 모성주의에 어울리는 정책인가요.
“전 기본 소득에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전체가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자들에게 재화가 이전돼야 합니다. 사회 어느 지점에서, 인생 어느 단계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린 아이 3명을 키우는 젊은 여성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일정 기간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런 때 이들에게 지원을 해야 합니다. 특정 계층, 혹은 전체 시민이 기본 소득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상당히 모욕적인 발상입니다.”
-어떤 점이 모욕적인가요.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사회의 앞날에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줘야 하죠. 주체성(agency)을 잃게 되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자존감도 사라집니다.”
콜리어 교수는 특히 “기본 소득은 인간을 단순 소비자로만 정의한다는 점에서 끔찍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생산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다. “사교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창의력을 가진 인간을 단순 소비자로만 대하는 건 존재 의미를 단순화시킵니다. 제가 기본 소득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기분을 좋게 해준답시고 ‘소비를 조금 더 해봐’라고 하는 행위는 인간 존재에 대한 희롱(travesty) 같은 것입니다.”
그는 저서에서 인간이 노동(생산)을 하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것 뿐 아니라 내면의 자아를 실현하는 행위라고 했다. 노동의 목적을 발견했을 때 자존감을 고양하고,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고장 난 자본주의’ 사회에선 경제적 형편이 좋은 일부만 목적 의식을 갖고 일한다. 바로 이 ‘목적을 갖고 일하느냐’의 격차가 커진 게 가장 중요한 실패라고 그는 강조했다. “기본 소득 제도는 인간을 공동의 목적에 기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 소비자로 격하시킵니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을 존중하는 길입니다.”
-일각에선 기본 소득 제도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최소한의 삶(소비)을 가능케 해 경제가 원활해진다는 논리인데요.
“사람들이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해주는 것, 또한 살기 원하는 지역에 생산적인 고용을 회복시켜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그는 소득 불평등을 재분배로만 대처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복지 지출 비용이 늘 뿐 아니라 삶의 목적을 상실하는 핵심 결핍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논리다. 다른 이들에게 생산성을 의존하는 인간이 늘어날수록 격차는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대신 그는 선별 복지를 강조했다.
“특히 가족을 지원한다는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육아하는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동등한 조항으로 지원을 강화한다면 결혼이란 제도가 예전보다 훨씬 협력적인 결합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공공 정책은 이런 데 쓰여야 합니다.”

◇“가상 화폐는 무가치…코로나도 도덕 의무가 중요”
그가 강조하는 노동을 통한 목적성 발견, 자존감 고양, 생산성 향상 등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가상 화폐다. 회사원이 가상 화폐 거래 앱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일해서 뭐하냐”는 얘기가 회식 자리의 안주가 된 지 오래다. 콜리어 교수는 “정말 억제돼야 할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가상 화폐가 노동의 가치를 위협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공공 정책이 ‘안 돼’라고 말해줘야 할 때입니다. 가상 화폐는 기술적으로 폰지 사기나 다름 없습니다. 대부분 초기 단계 투자자들이 가치 절상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실제론 근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거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까지 발생시키죠. 터무니없이 지속 불가능하고 무가치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거품이 터질 때까지 빠르게 돈을 벌 겁니다. 그리고 곧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겁니다. 100년 뒤, 누군가 도지 코인이든 뭐든 갖고 있을까요? 물론 아니죠.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붐이 일었던 것처럼 그저 나중에 역사책 한편에 실리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특히 10대에게 해악이 큽니다.”
집값 상승도 한국과 세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콜리어 교수는 대도시의 자산 가치 상승분을 ‘집적 이득’이라 부르며 과세 제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이나 여러 계층의 노동자가 대도시에 모임으로써 집단적으로 창출한 초과 이득을 토지주(건물주)와 고숙련 노동자들이 대부분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과세하는 게 윤리적이며 효율적인 분배라는 것이다.
“내가 교수로 버는 돈에는 45% 정도 세금이 붙지만 내 런던 집의 가치 상승분에 대해선 세금이 없습니다. 나는 가치를 높이는 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집 가진 사람들은 좋아할 얘기가 아닙니다.”

▲국가·지역별 소득 격차
콜리어 교수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발표한 건 2018년이다. 이후 지난해 1월 코로나가 팬데믹으로 발전하면서 전 세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 디바이드’라는 현상이 일어나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양극화의 범위는 국가 단위로 확장됐다.
-‘백신 자국 우선주의’ 같은 국가 이기주의 역시 자본주의 붕괴의 결과인가요.
“그렇습니다. 백신 생산 기술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교육 기관의 경우 모든 정보를 공유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등 기업들은 인센티브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백신이 모든 곳에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해집니다.”
콜리어 교수는 “그래서 공공 정책(국가)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기업에 돈을 지불해서라도 기술 공유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실용성을 실현하기보다 ‘보여주기’에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백신을 실어 어디론가 보냈다? 그건 국제 관계 무대에서 잘 보이려고 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가 더 심화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시해온 대안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팬데믹이 자본주의 실패를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광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회가 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대표적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코로나는 전보다 훨씬 양극화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반대 사례는 덴마크를 들 수 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호혜 의무’를 내세워 국민들에게 ‘우리는 이 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전염성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모두가 서로를 보호해야 할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도덕적 의무를 강조한 거죠. 그 결과 코로나를 비교적 잘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과학 정보’로만 설명한 국가들 역시 백신 접종률 향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덕이나 공동체 정신 외 ‘합리성’만 강조한 나머지 정부를 믿지 않는 많은 이들의 접종 거부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공동체 회복’이다. 자본주의의 치료를 위해서든 전염병 대응을 위해서든 다수가 공유하는 도덕적 의무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해법도 비슷했다. “명백히 고칠 수 있는 문제를 망쳐온 건 아쉽지만, 그저 예전처럼 고치면 되는 일입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제공할 것이 많은, 멋지고 창의적인 나라입니다. 자본주의는 사회 전체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그랬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조선일보 이태동 기자
12.25 대선 임박해 한명숙·이석기에 끼워넣은 박근혜 사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지 4년 9개월 만인 31일 특별 사면·복권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허리와 어깨 통증으로 장기 치료를 받아 왔다.
국민 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은 평가해야 하지만, 사면 배경에 의구심이 드는 측면도 있다. 올해 초 여당 대표가 박 전 대통령 사면을 건의했을 때 대통령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거부했었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사정은 대선이 75일 앞으로 다가왔고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특사에 한명숙 전 총리를 포함시켰다. 한 전 총리는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전달된 수표가 나오는 등 증거도 명백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위증 강요 논란이 제기된 점을 고려해 한 전 총리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복권을 실시했다”고 했다. 문 정권은 그동안 친노·친문 진영의 대모(代母)인 한 전 총리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쏟아 왔다. 사법부 판결도 부인했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한명숙 수사팀이 위증 교사를 했다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수차례 감찰을 했다.
하지만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근거도 없는 위증 강요 논란을 한 전 총리의 복권 근거로 내세웠다. 한 전 총리는 “나는 결백하다”면서 추징금(총 8억8300만원) 7억여원을 내지 않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가석방됐다. 이 전 의원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내란선동 혐의로 징역 9년형을 받았다. 통진당은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강제 해산됐다. 이 전 의원은 최근까지 재심을 청구하는 등 반성의 기미도 없었다. 출소하면서 자신을 ‘피해자’라고 했다. 이런 사람에게 충분히 반성한 모범수에게 주는 가석방 혜택을 준 것이다. 또 불법 노동 집회와 제주 해군기지·성주 사드기지 반대 시위 등을 주도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시민단체 관련자들도 대거 사면·복권해 줬다. 한명숙, 이석기, 시위 사범 등 정권 편 사람들을 무더기로 풀어주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에서 뺐다. 이 전 대통령은 뇌물 등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받고 770일 넘게 복역 중이다. 80세가 넘고 건강도 좋지 않다. 대통령이 “새 시대로 나아가자”며 하는 사면에서 굳이 이 전 대통령을 제외한 처사에 야박하다는 느낌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2.25 ‘비정규직 제로’ 집착이 낳은 인천공항 ‘한 지붕 두 사장’
인천공항공사에서 지난 8일부터 사장 두 명이 함께 재임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지시에 따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총대를 매다 여론이 악화되자 작년 9월 느닷없이 해임됐던 국토부 관료 출신 전 사장이 해임 취소 소송에서 이겨 사장 자리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틀 뒤 인천공항공사를 방문,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문 대통령 ‘1호 지시’였다. 이후 공사 노사는 긴 협상 끝에 자회사를 만들어 비정규직 1만명 대부분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자회사 고용’이 대통령 1호 지시의 성과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한 청와대의 개입으로 보안 검색원 1900명을 본사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취업 준비생과 청년층에서 “이게 공정이냐”며 역차별 논란이 일고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지침대로 실행하려던 사장을 전격 해임했다. 영장도 없이 사장 사택까지 뒤진 끝에 ‘태풍 때 비상 대비 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등의 황당한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사장이 문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정부는 사과는커녕 항소를 선택했고, ‘한 지붕 두 사장’ 사태를 낳았다. 복직된 사장은 본사 출입증도 없고 업무 전산망 접속도 못 하는 상태로 출근을 계속하고 있다.
이 모든 사태는 정규직의 과도한 기득권, 그로 인한 비정규직 수요 급증이란 고용 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대통령의 무리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이 다양한 고용 형태를 선택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문 정부 5년 동안 비정규직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160만 명이나 늘어난 것이 현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자신의 1호 지시가 논란을 일으켜도 외면으로 일관했다. 수많은 일터에서 노·노 갈등이 생기고 청년층의 울분이 쌓여도 내내 나 몰라라 했다. 정부 지침대로 이행하던 공기업 사장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몰아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정부가 ‘인국공 사태’에서 나를 희생양 삼았다”는 당사자 주장에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2.27국민은 칠면조가 아니다
사면권 제대로 사용 안 하면
추수감사절 칠면조 사면 같은
행사용 촌극과 다를 바 없어
사면을 대선에 이용하려 하고
정략적 도구로 쓰는 행태
국민으로서 모욕감 느낀다
매년 11월 추수감사절을 앞둔 백악관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미국 대통령과 칠면조가 주인공이다. 추수감사절 만찬에 쓸 칠면조 중 한두 마리를 골라 대통령이 몸소 ‘사면’하는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사면받은 칠면조는 그해에 잡아먹히지 않고, 운이 좋으면 동물원이나 어린이 농장 같은 곳에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외국 행사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사면권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면이란 왕의 말이 곧 법이던 전제군주정 시절의 산물이다. 이는 서양에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다. 조선이나 그 이전 시대를 떠올려보자. 임금은 자신이 내린 사형선고를 말 한마디로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처벌권, 생살여탈권을 왕이 독점하는 것. 그러므로 누군가를 살려줄 권리 또한 왕이 일신전속권으로 제약 없이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면의 본질이다.
사면권은 근대 국가의 기본적 작동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입법부가 만든 법에 따라 사법부가 내린 재판 결과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뒤집어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 ‘왕의 목을 자른 나라’ 프랑스 등 선진국 대부분은 논란을 감수하면서 사면제를 존속시키고 있다.
어째서 그럴까? 때로는 법을 뛰어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칠면조 사면이라는 희한한 전통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폴리티코에 따르면 “링컨이 처음 칠면조를 사면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적극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남쪽의 11주가 미 연방에서 탈퇴하자 링컨은 전쟁을 선포했다. 혈투를 치르기 위해 미국은 사상 최초로 징집을 했다. 잘못 끌려간 사람이 많았고 탈영도 부지기수로 벌어졌다. 법적 절차를 원칙적으로 따르면 모두 처벌받아 마땅했겠으나, 따지고 보면 국가의 실수로 저질러진 과오였다. 링컨은 그런 경우를 접할 때마다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했다.
의회는 끝없이 평화 협상론을 제기하며 링컨의 발목을 잡았다. 링컨은 전쟁광이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뚝심 있게 싸웠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항복한 남부를 대상으로 대대적 사면을 선포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최대한 빨리 상처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뜻이었다. 막상 전쟁이 한창일 때는 평화를 외치던 정치인들이 전쟁이 끝나자 사면을 반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북부의 여론도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 그 와중에 링컨은 종전 후 5일 만에 암살당했고, 그의 뒤를 이어받은 앤드루 존슨이 186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사면령을 내렸다. 그 사면 대상자 중에는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다. 형식적 법 논리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정의롭지 않을 때, 죽 끓듯 변덕을 부리는 여론이 보지 못하는 역사의 흐름이 있을 때, 온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한발 내딛게 해주는 결단의 힘이 바로 사면권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사면권은 현대 민주국가 시스템에 어긋나지 않는다. 반면 대통령이 마치 전제군주라도 되는 양 사면권을 엉터리로 휘둘러댄다면, 그것은 미국 대통령의 칠면조 사면 행사와 다를 바 없는 촌극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했다. 그 의도야 누가 봐도 뻔하다. 야당 대선 후보의 발목을 잡는 데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사면권이라는 봉건 왕조 시대의 유산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태다. 폭우 쏟아지는 날 폐수 방류하듯 한명숙 전 총리를 복권시키고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가석방한 것도 그렇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이번 사면에서 제외한 것 역시 정략적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사면할 때 여론 무마용으로 쓰기 위해 남겨두었다는 해석을 제기한다. 정상적 민주주의 국가라면 떠올리기 힘든 발상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고령의 몸으로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여권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면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면권을 정략적 농간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우리는 대통령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는 칠면조가 아니다.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12-27 文, 임기 말까지도 속 보이는 ‘정치 사면’
全·盧 두 배 넘는 수형, 心身 망가진 朴
文, ‘네 편’ 아픔엔 공감능력 없는 듯
한명숙 이석기 끼워 넣고 MB는 제외
‘통합’을 말해도 ‘편 가르기’로 들려

23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사실이 동아일보 취재진에 포착된 날이. 공교롭게도 그 날짜 신문들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사진이 실렸다. 대지 800평에 신축 중인 사저가 내년 4월 준공되면 5월 퇴임하는 대통령이 내려가 살게 된다.
바로 그 대지를 두고 ‘9개월 만에 농지→대지’ 형질 변경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대지를 두고 형질 변경 논란을 벌인 것은 문 대통령 표현대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 자신이 분을 못 참고 기어이 그런 논평을 한 것 자체가 더 민망하다. 어쨌거나 공사 가림막 뒤로 보이는 파스텔 톤의 사저 외관은 꽤 아늑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31일 풀려날 박 전 대통령은 돌아갈 사저가 없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들어가 살 집이야 동생 지만 씨가 여유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4년 9개월 수형 생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70세 여성 전직 대통령이 돌아갈 사저조차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문 대통령의 박근혜 사면은 안 한 것보다는 낫다. 다만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 발표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박근혜 수형 기간에 맞먹는 4년 7개월여 임기 내내 과거에 매몰돼 ‘적폐청산’ 친일몰이 역사바꾸기 등을 밀어붙이고, 통합과 화합은커녕 민주화 이후 최악의 편 가르기를 한 정권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청와대는 박근혜 사면을 대통령의 결단처럼 포장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일이라면 왜 진작 못 했나. 박 전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두 배도 넘는 기간을 감방에 놔둔 건 도무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국격(國格)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문 대통령을 두고 내 편에는 한없이 따뜻해도 ‘네 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공감능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사면 배경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 건강이 심각해 자칫 수감 중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대통령이 결심을 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만 사면했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나도 박수를 쳤을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 이석기 가석방 끼워 넣기는 뭔가. 더구나 제주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기지 반대 시위, 불법 노동 집회를 주도한 민노총 지도부와 시민단체 관련자들도 대거 사면·복권해 줬다.
이러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환심을 사고, 진보좌파를 결집시키며, 박근혜 사면 카드로 보수우파를 흔들려는 선거용 정치 사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이번 사면의 정신을 ‘통합과 화합’이라고 말해도 많은 국민에겐 ‘편 가르기와 내 편 봐주기’로 들리는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상에서도 빠졌다. 그의 사면 제외를 보고 문 대통령의 ‘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은 2018년 1월 자신을 향한 사법의 올가미가 조여 오자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을 입에 올렸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답지 않게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개인감정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군사반란죄 내란죄를 범하고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챙긴 전·노 씨보다 오래 형을 살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든, 국격 차원에서든 풀어줘야 마땅하다. 4개월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 국민은 주시할 것이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할지, 이명박 사면을 김경수 사면의 물타기용으로 쓸지, 이명박만 사면할지를.
닷새 뒤면 임인(壬寅)년 새해가 밝는다. 그 67일 뒤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다. 그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가 얼마나 두 동강 나 분열의 굿판을 벌일지 벌써부터 아스라하다. 그러니 이재명 윤석열 후보 진영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모질게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문 정권의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약속을 마지막에라도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12.29 5년간 “정부가 고용주” 고집, 이제 와 “일자리는 기업 몫”이라니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정우 포스코 그룹 회장, 최태원 SK주식회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구현모 KT 대표이사/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현대차 등 6대 그룹 총수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기초 상식이다. 그런데 이 발언은 지난 5년 내내 문 정부가 해온 언행과 정반대여서 사람들을 어이없게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청년 일자리 점검 회의에서 “각 부처에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를 질타했다. 정부가 ‘모범 고용주’가 되어 공공 부문 일자리를 대량 창출하라고 했다. 실제 공무원 17만명 증원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끝까지 고집했다. 취임 이틀 만에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0)’를 1호 지시로 시달하기도 했다.
반면 일자리 창출의 주체여야 할 민간 기업들에 대해선 친노조 규제로 족쇄를 채웠다. 최저임금을 급속 인상하고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를 밀어붙였다. 노동·환경·화학물질 등의 규제법에서 대표이사까지 형사 처벌하는 조항이 무려 2000개에 이른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기업 경영진을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선 중소 제조업체의 54%가 “법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할 정도다. ‘불가능하다’면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기업이 고용을 의욕적으로 늘리나.
지난 5년 내내 질 좋은 민간 일자리는 사라지고 질 나쁜 세금 일자리만 대거 늘었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3년 새 무려 200만개 사라지고 제조업과 젊은 층 일자리가 급감했다. 5년간 120조원을 쏟아부어 450만개의 세금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풀 뽑기, 휴지 줍기 같은 노인 알바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비정규직은 150만명이나 늘어났고, 비정규직 비율은 2017년 32.9%에서 올해 38.4%로 높아졌다. 25~34세 청년 고용률은 OECD 37국 중 31위의 하위권을 헤매고 있다. ‘고용주’가 되겠다는 정부에서 참담한 고용 참사가 벌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숫자만 부풀린 통계를 내세우면서 “일자리 시장이 거의 회복”이라느니 “정책 성과가 나타났다”면서 현실을 호도해왔다. 그렇게 5년 내내 ‘관(官) 주도’ 일자리 정책을 밀어붙이더니 임기 말에 느닷없이 “좋은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이라 한다. 잘못은 자신이 해놓고 책임은 남이 지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2월 28일 눌러놨던 전기·가스料 대선 뒤 마구 인상…국민 우롱하나
꼼수 치고는 너무 속 보인다. 최근 한국전력의 내년 1분기 전력 요금 인상(kWh당 3원) 요구를 거부했던 문재인 정부가 내년 3월 대선 직후부터 전기·가스 요금을 대폭 올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값싸고 안정적인 원자력 발전 비중을 한사코 줄인 탈원전에 따른 여파와도 직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내년에 전기 요금을 kWh당 11.8원 올린다고 27일 밝혔다. 대선 다음 달인 4월, 그리고 10월에 각각 4.9원씩 올리고, 재생에너지의무발전제도(RPS)에 따른 기후환경요금도 4월부터 2원 인상한다. 연료비연동제에 따른 전기료 인상 폭은 9.8원이지만, 이마저도 턱없는 수치다. 한전에서 밝힌 총 인상 요인은 kWh당 29.1원이다. 도시가스 요금도 16%가량 인상된다. 이 역시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5월에 시작한다.
대선 이후 국민과 차기 정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배럴당 70달러 선인 국제유가가 내년에는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JP모건의 보고서는 브렌트유가 내년에 배럴당 125달러, 2023년에는 150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의 천연가스(LNG) 값은 이달 초에 비해 2배나 뛰었다. 여기에다 문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을 가속화한다. 그럴수록 전기료 인상 요인은 가중된다. 탈원전으로 값비싼 LNG 및 신재생 발전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국내 뿌리 산업의 중소기업들은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전기료가 15∼30%에 이른다. 공산품 전반에 연쇄 파급이 예상된다. 소비에서 식료품·에너지·집세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도 가계부담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을 넘어 산업 경쟁력 저하로도 연결된다. 이런 모든 부담을 대선 이후로 미룬다.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12.29 대선 끝나면 전기료 4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한다니
정부가 전기 요금을 “내년 1분기 중엔 동결하겠다”고 밝힌 지 일주일 만에 ‘내년 4월 이후 10.6%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3월 대선 이후로 인상 시기를 미룬 것이다. 애초 한전이 요금 인상을 요청했을 때 정부가 ‘불허’의 이유로 내세운 것이 코로나와 생활물가 상승이었다. 선거만 끝나면 갑자기 코로나가 진정되고 다른 물가가 안정되기라도 한다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국민 부담을 덜어주겠다면서 지난 4년여 동안 전기 요금을 계속 동결해왔다. 반면 ‘탈원전’한다면서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의 가동률을 떨어뜨린 데다 최근 들어 유가와 LNG 가격이 오르면서 한전은 올 한 해에만 4조여원의 적자를 냈다. 내년 적자는 6조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요금 인상을 계속 미룰 경우 한전 주주로부터 손해배상 요구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는 ‘1분기 동결, 대선 이후 10%대 인상’이라는 꼼수를 들고나왔다. 전기 요금이 두 자릿수로 인상되는 것은 1981년 이후 41년 만의 일이다. 도시가스 요금도 대선 후 16.2% 오른다. 불리한 것은 다 선거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다.
전기 요금 두 자릿수 인상의 직접적 이유는 연료비 급등이지만 근저에는 ‘탈원전’이 있다. 대통령 단 한 명의 아집으로 2016년 79.7%에 달하던 원전 이용률은 2018년 65.9%까지 하락했다. 초우량 기업이던 한전의 경영은 적자로 전락했다. 원전 대신 석탄 발전이 늘어나면서 미세 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시 원전 가동을 늘려 지난해엔 원전 이용률이 75.3%까지 올라갔지만 악화된 한전의 재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임기 마지막 해에 두 자릿수 요금 인상을 결정하고는 그 부담을 대선 뒤로 미뤘다.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기 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예상대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좋은 것은 임기 중, 나쁜 것은 임기 후로 미루는 것이 문 정부의 국정 패턴이다. 이 정부는 5년 내내 온갖 곳에 세금을 펑펑 퍼부어 나랏빚 1000조원 시대를 만들었다. 그래 놓고 예산 절감은 차기 정부인 2023년부터 하라고 떠넘겼다. 무책임한 국정의 전형이다.
조선일보 사설
12.29 탈원전, 탄소 중립 이어 수소 경제까지, 모두 어긋난 文 에너지 정책
현대자동차의 수소차 프로젝트가 일단 중단됐다고 한다.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하는 연료전지를 업그레이드하는 연구가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부 감사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고, 수소차의 사업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관련 부서 역할도 대폭 축소됐다고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수소차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뒤진다. 전기차와 달리 상당한 폐열이 발생해 이를 냉각하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전체적으로 전기차의 절반 효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대부분 포기 상태다.
그렇다고 수소 에너지의 잠재력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수소는 태양광, 원자력 같은 청정 전기로 생산하기만 하면 매연도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는 궁극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제철, 시멘트, 항공 등 산업 분야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면 수소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태양광, 풍력 같은 간헐성 전력을 저장, 운반하는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부가 수소를 어떻게 생산하거나 확보하겠다는 미래 비전과 전략은 없이 수소차라는 한 가지 활용 분야에만 치우쳐 정책을 펴왔다는 점이다.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서 2050년 필요한 수소 2700만t 가운데 80%를 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전기차와 수소차의 보급 대수가 각각 23만대, 1만9000대인데 내년도 정부 지원은 전기차가 1조9000억원, 수소차 8900억원 규모다. 균형이 맞는다고 보기 힘들다.
수소차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앞장서서 지원해왔다. 수소차 시승(2018년 2월), 프랑스 파리 수소택시 충전 현장 방문(2018년 10월), 수소 로드맵 발표 현장 참관(2019년 1월), 대통령 전용 수소차 채택(2019년 8월) 등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올해도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방문(3월), 수소 선도 국가 비전 보고회(10월)에 직접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내가 수소차 홍보 모델”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특정 사업 분야를 지나치게 지원하는 인상을 주면 정부 전체의 정책 판단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 문제가 충분히 공론화되기 힘든 것이다. 이 정부의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탈원전, 2050 탄소 중립, 수소 경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셋 다 문 대통령이 중심 역할을 했는데 어느 것 하나 긍정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일보 사설
12.30 4류 정권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인들을 초등생 취급하는 나라

▲지난 27일 청와대 유튜브 공식 계정에 올라온 6대 그룹 총수의 영상 메시지. /청와대
청와대가 유튜브 계정에 6대 대기업 총수가 등장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이 나와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1~2분짜리 연설을 했다. 어떤 총수는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했고, 어떤 회장은 “기업이 해야 할 책임은 건강한 일자리 창출임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치 반성문을 읽는 듯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학예회 어린이처럼 등장하는 이 동영상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게 아니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6대 그룹 총수의 간담회를 앞두고 청와대 요청에 따라 기업들이 제작해 제출한 것이다. 애초 간담회 후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총수들이 차례로 ‘일자리 창출 각오’를 연설하는 현장 영상을 찍으려 했다가 기업 측이 난색을 표하자 각자 제작하는 것으로 조율됐다고 한다. 해외 출장 중이던 어떤 총수는 영상 제작 때문에 급히 귀국하기도 했다. 지난 5년간 온갖 ‘청와대 쇼’를 연출해온 탁현민 비서관의 기획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것은 노조 편향 등 정부 정책이 잘못된 때문이지 이 기업인들 탓이 아니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할 정권이 기업인들 팔을 비틀어 ‘기업 잘못’이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기막힌 일이다.삼성을 비롯한 6대 그룹 총수는 일거수일투족이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글로벌 영향력이 큰 기업인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워싱턴 정계 고위 인사들이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 협력을 위해 초청할 정도다. 이런 글로벌 기업인들을 청와대가 툭하면 불러들여 사진 찍기 쇼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반성문 동영상’까지 만든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 어디에 이런 일이 있겠나. 부끄러운 일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한국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던 것이 1995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의 초일류로 성장했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4류가 아니라 그 밑으로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4류가 권력 한번 잡았다고 글로벌 초일류를 초등생 취급하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12월 31일 문재인의 ‘달삼쓰뱉
김만용 산업부 차장
대기업 50대 임원 A 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선뜻 내키지 않는 제안을 받았다. 연말 승진을 시켜주는 조건으로 내년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해 안전 관련 업무와 법적 책임을 떠맡아달라는 것이었다.
“현 대표이사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회사의 설득 논리였다. A 씨는 고민에 빠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 중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경영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자칫 누군가의 실수가 자신의 법정구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가족, 특히 막내딸이 “아빠가 감옥에 가는 일은 절대 안 된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A 씨는 회사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 같은 사례는 상당수 기업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대기업들이 연말 조직개편을 통해 안전보건책임자(CSO·Chief Safety Officer)를 속속 임명하고 있다. 그러나 A 씨처럼 극구 사양해 구인난을 겪는 기업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영세 중소기업들은 대표이사나 오너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 제조기업 322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53.7%가 ‘시행일에 맞춰 의무사항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한 입법 보완 필요 사항으로는 ‘고의·중과실이 없을 경우 처벌 면책 규정 신설’이 74.5%로 압도적이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경제인들에게는 형사적 처벌보다 벌금 등 경제적 접근이 더 합리적”이라며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시행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과 기업인의 공포심은 극에 달하고 있다. 법 규정 곳곳이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걱정이 크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늘 이런 식이었다. 좋은 취지라는 점을 앞세워 귀 막고 입을 틀어막는다. 무리하게 시행한 뒤 기업이나 국민이 아우성을 치면 그땐 남 탓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악순환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박범계 법무부 장관 등 여권은 “양형 기준을 높이겠다”면서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내 대표 기업 총수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할 뿐”이라고 말해 일자리 정책 실패의 책임을 기업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발 더 나아가 이들 대기업 총수를 청와대 유튜브 동영상에 출연시켜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반성의 메시지를 담도록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5년 임기 내내 매년 1월 초 열리는 경제계 신년인사회엔 불참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네 차례 참석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달삼쓰뱉(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이라고 비꼬았다. 문 정부가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대·중소기업의 일치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한 템포 늦추고 공포심부터 달래는 것이 오히려 법률 효과를 극대화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