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기홍 칼럼(동아일보) 2021/ 01-08 당신들은 룰라가 아니다 - 12-24 벼랑 끝 尹, 주변 다 안 버리면 국민 버림 받는다

상림은내고향 2021. 12. 27. 17:00

이기홍 칼럼 동아일보 대기자  2021

01-08  당신들은 룰라가 아니다

검찰 장악’ 대공세 참패한 집권세력
브라질 영화 빗대 기득권 세력 탓 핑계
친문 자신들이 슈퍼 기득권 카르텔인데
언제까지 정의로운 소수 피해자 행세할건가

 

‘검찰 장악’ 대공세가 참패로 끝난 요즘 집권세력은 핑곗거리 찾기에 골몰한다. 참패 원인을 외부로 전가하지 않으면 내부 붕괴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집권세력 내에서 ‘사법쿠데타’론이 나온 데 이어 너도나도 넷플릭스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를 강추하고 나선 것도 그런 차원의 이념적 선전선동술로 해석된다.


이 영화는 브라질의 재벌 사법부 언론 등 우파 기득권 카르텔이 ‘사법쿠데타’를 통해 민주화 세력의 상징인 룰라 전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를 몰락시키고 극우정권을 세우는 과정을 그린 다큐다.

 

김어준의 팟캐스트에서 이 영화를 인용해 ‘연성(軟性) 쿠데타’ 개념을 제기하더니 추미애 조국에 이어 이재명 지사도 영화를 거론했다. 좌파 사이트에는 조국 수사와 윤석열 징계 무효 판결을 브라질 상황과 매칭시키며, 한국의 데자뷔라는 글이 넘쳐난다.

 

필자는 이들이 거론하기 이전에 영화를 봤는데, 몰락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 후 해외 신문 리뷰를 통해 감독이 객관성에 개의치 않고 한쪽만의 시각으로 팩트를 취사선택했다는 한계를 알고 실망했다.

 

그런데 설령 룰라의 몰락이 극우 카르텔에 의한 것이라는 영화의 설정이 100% 맞다고 가정해도, 민주화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를 중남미처럼 민주세력 대(對) 과거로 회귀하려는 극우독재 기득권 카르텔의 대결구도로 바라보는 화석화된 뇌구조가 집권세력의 핵심층에 남아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영화 속 브라질 우파 카르텔에 비견되는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은 바로 친문 집권세력이다.


룰라는 우파가 장악한 사법부에 무너지지만 한국은 대법원 헌재 중앙선관위까지 코드인사로 도배됐다. 브라질 검찰은 우파만의 보검(寶劍)인지 몰라도 한국의 검찰은 우파를 향해서도 적폐청산의 강공을 몰아쳤던 바로 그 칼이다. 브라질 상하원은 룰라 반대파가 다수지만 한국 의회는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민노총 전교조 등 거대노조는 언터처블의 위세이고, 수많은 좌파 단체와 활동가들이 갖가지 권력의 떡고물로 뭉쳐진 좌파산업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권을 지키고 있다.


언론도 지상파 통신사 뉴스전문채널 등 전방위로 친여 코드인사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중파 방송이 친여 선동가를 위한 스피커 겸 황금밥통으로 전락한 것은 5공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포털사이트에 대해서는 “들어오라고 하세요”라는 표현이 무심코 나올 정도니 정권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친문들은 기득권 카르텔의 핵심으로 보수신문을 꼽지만, 거의 100개 언론사가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자리잡은 포털 환경에서 메이저 신문의 기사라고 특별히 더 대우받는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여론이 이들 신문의 보도 및 논평과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이는 국민들의 생각이 같은 방향이고 더 많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입법 사법 언론 시민사회 등 전방위에 걸쳐 강력한 기득권 체제를 구축한 집권세력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우파 카르텔’ 때문에 개혁이 좌절된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국민에게 거절당한 진짜 이유를 외면하고 싶어서다. 자신들의 탐욕에 개혁의 외피를 씌워 개혁을 변질시킨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조국 살리기 방편으로 검찰개혁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윤석열 찍어내기로 변질시키지 않았다면 어느 국민이 개혁에 반대했을까.


공수처도 마찬가지다. 문 정권은 공수처가 오래전부터 야당을 포함해 많은 국민이 염원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다. 공수처는 1990년대 중반부터 ‘공비처’(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라는 이름으로 화두가 됐다.


하지만 당시 공수처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정권의 눈치만 살피는 검찰 대신 정권에서 독립돼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차원이었다. 공수처 논의의 핵심은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이었는데 문재인 정권은 막상 검찰이 그런 역할을 하려 하자 검찰의 칼을 빼앗는 차원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 최재형 감사원, 일선 법원 판사들이 그랬듯, 헌법정신에 투철한 원칙론자로 알려진 김진욱 공수처도 정권보위라는 정권의 의도와 달리 본질적 미션에 충실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집권세력은 “역시 사법부 카르텔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공수처마저 흔드는 추레한 행태를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실재(實在)하지도 않는 우파 카르텔 탓을 하는 프로파간다를 이어갈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세력에 자기 무장논리를 공급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잘못을 인정하고 협치의 길로 접어드는 게 회복의 길이지만 콘크리트가 굳어버려 발목이 갇힌 신세다.


턱도 없는 룰라 비유로 분칠하려 하지 말고, 브라질의 사례에서 배우려거든 룰라가 2010년 퇴임 시 87%의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급진좌파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집권 8년간 실용 온건 중도 노선으로 협치와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임을 먼저 배워야 한다.

 

01-22  집수리 맡겼더니 기둥 다 부수려 드나

한미동맹·檢개혁·원전·부동산 등 주요 제도
문제 보완하는 척하다 슬금슬금 골간 바꾸려 해
국민은 文정권에 나라 재건축 위임한 적 없다

 사람의 지문처럼 잠수함은 소음과 진동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음문(音紋)이 있다. 음문은 잠수함의 생명 정보며, 안보 핵심 기밀이다. 그래서 잠수함 훈련은 핵심 동맹국들 사이에서만 이뤄진다.

 

13일부터 1주일간 괌 인근 해상에서 전개된 ‘시드래건(Sea Dragon)’도 그런 훈련이다. 로스앤젤레스급 미국 핵잠함 시카고호가 가상 적국 잠함으로 변신해 바닷속을 돌아다니고, 참가국들은 해상초계기 등을 동원해 추적한다. 미국 호주 일본 인도 캐나다가 참가했다. 한국은 불참했는데, 불참 사유는 코로나 상황이었다.


‘공교롭게’ 김정은은 14일 핵미사일 장착 전략핵추진잠수함 개발을 과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회견에서 한미훈련을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물론 미국과의 훈련 불참 한두 건이 우리 안보를 좌우할 일은 아니다. 70년 넘게 함께 쌓아온 한미동맹이 벽돌 몇 개 뺀다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 정권 들어 대한민국을 이루는 기둥 곳곳에서 이런 벽돌 빼기가 반복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일관된 패턴이 관찰된다. 처음에는 부분 수리만 하는 척한다. 과격한 전면 철거·재건축 의도를 드러내면 수리업체 재입찰 때 탈락은 물론이고, 당장의 작업도 거센 반발에 부딪힐 걸 알기에 슬금슬금 밑돌부터 뺀다.

 

검찰개혁은 수사권 조정 수준을 넘어 이젠 수사권 전면 폐지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원전 정책은 의존도를 줄이고 안전성을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돌이키기 힘든 탈원전, 원전산업 고사(枯死) 모드로 접어들었다.

 

부동산 제도도 종국엔 근간을 바꾸려 할 것이다. 이미 추미애 당대표 시절(2017년 9월) “농지개혁에 버금가는 지대개혁”을 거론했고, 총선 직후 민주당에선 토지공개념 개헌론이 제기됐다. 당분간은 보유세·거래세를 극한까지 강화하는 차원에 머물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 ‘부동산 민주화·평등화’를 완성하려 들 공산이 크다.


기둥들을 부수는 과정에서 탈법과 절차 위반, 건설현장 하도급 비리를 닮은 구린내 나는 행태들이 잇따른다. 이걸 검찰과 감사원이 문제 삼으니 “집 지키라 했더니 감히 주인을”이라며 눈을 부라린다. 워치독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기본 상식도 망각했다.


국민이 기둥 철거를 위임한 적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게 대선 공약 논리다. 그러나 388쪽에 달하는 문재인 후보 공약 어디에도 지금 정권의 행태를 정당화시켜 줄 내용은 없다.


예를 들어 공약집의 ‘권력기관 개혁’ 항목 주제는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 만들기’다. 공수처 설치의 취지도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 수사 차단’이라 되어 있다. 검찰총장 무력화나 수사권 전면 폐지는 어디에도 없다.


더더구나 압도적 다수(super majority)의 지지를 받은 것처럼 밀어붙일 처지는 못 된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41%,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31%였다.


논리가 막히면 촛불정신을 들먹이는데, 촛불집회의 주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대한민국의 근간 가치를 지지하는 대다수 시민이었다. 대한민국호(號)의 근본 항로를 바꾸자는 요구는 집회 주최단체들을 제외한 일반 참가자 가운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 연구에 따르면 세계 곳곳 ‘선출된 독재자’의 전형적인 수법은 심판 매수와 운동장 기울이기인데, 이 모든 게 살금살금 이루어진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18일 회견에서도 온건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추미애 장관이 야기한 그 숱한 분란과는 격리된 세계에서 살다 온 듯, 지난해 검찰 학살 인사는 추 장관이 대통령 결재 없이 자행한 것인 듯 행동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남북관계와 상충할 경우엔 동맹의 밑돌을 빼왔다. 정의용 외교장관 기용을 통해 여전히 정책기조를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민 다수를 향해서는 온건한 말로 안심시키고, 동시에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내 입이 아니라 내 행동을 보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다.


집권세력은 새로 짓고 싶은 건물의 조감도를 제시한 적이 없다. 다만 명확히 드러난 공사 지침은 있다. 그것은 철저한 피아 구분이다. 우리 편은 극도의 내재적 관점으로 이해해준다. 김정은 김여정이 어떤 횡포를 부려도, 조국 가족의 어떤 비리가 드러나도 포용되고 이해된다. 반면 4대강 보 해체 결정에서 드러나듯 적의 생산물은 집요하게 초토화시킨다.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정의와 역사의 진보, 통일’을 향해 어깨 걸고 한마음으로 가는 사회일 것이다. 대의를 위한 대장정에 어떻게 반대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검찰 감사원 언론의 견제와 문제 제기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반(反)개혁 음모 이외로는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윤석열·최재형과 전광훈을 같은 냄새로 분류하는 후각 상실증, 21세기판 이념 색맹증도 그런 뇌구조의 결과물이다. 후각도 시각도 단선적이니 멘털과 신념도 쉽게 담금질된다. 그러니 언행 불일치를 밥 먹듯 하고, 집수리 한다고 들어와 기둥을 부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02-05  국가 명운 걸린 외교·안보마저 ‘정신승리’할 건가

친문세력은 이제 ‘내로남불’ ‘이중잣대’의 차원을 넘어 ‘정신승리’의 경지로 접어든 것 같다. 이임식에서 ‘영원한 개혁’ 운운하며 눈물 흘리는 추미애와 “사랑해요”를 연창하는 지지자들의 모습은, 자기합리화·자기세뇌를 수없이 반복한 결과, 자신들이 날조한 허구의 세계 속에서 감격하고 희로애락을 나누게 된 집단최면의 경지를 연상케 한다. 집단심리학 연구의 대상으로 넘겨야 할 소재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아무리 환각 속에서 ‘정의봉(棒)’을 휘둘러도 폐해는 제한적·한시적이라는 점이다. 법원과 지식인들에 의해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발가벗고 대로에서 몽상활극을 벌인 꼴이 됐다. 그 폐해는 선거 등의 심판을 통해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친문 특유의 정신승리적 접근법이 외교·안보에까지 적용될 경우 폐해는 무한대·영구적이 된다.

 

바이든 취임 후 한미 정상 첫 통화는 취임 2주가 지난 어제 이뤄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시진핑과 40여 분간 통화에서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축하했다.

 

중국 지도자와 먼저 통화하는 것이 갖는 상징성, 중국이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을 리는 없다. 앞으로도 미중 간에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해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 측근 인사들 사이에서는 “제3의 길” 얘기가 계속 나온다. 

 

 여권에선 트럼프 퇴장으로 미중 갈등이 한풀 꺾이고 한국의 균형자, 조정자 역할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 국제정세와 괴리가 큰 희망적 사고다.

 

미중 대립은 이 시대 국제질서를 규정짓는 핵심 프레임이 됐다. 냉전시대 미소(美蘇) 대립이나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뀐다고 사라질, 트럼프라는 일개 정권 차원의 갈등이 아닌 것이다. 과거 일본 등에 가했던 무역역조 시정 목적의 보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역패권국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 미국 외교의 기본 DNA가 시진핑 정권의 팽창주의·패권주의, 경제추월 위협과 결합해, 강한 적대감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선 인권문제까지 추가돼 갈등과 대립은 더 까다로워질 것이다.


특히 미 민주당은 과거 미중수교(카터 행정부), WTO 가입 지원(클린턴) 등으로 중국의 성장을 도왔다는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중국이 GATT 체제의 특혜를 누리면서 온갖 반칙을 저지르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체제로 편입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더 폭압적인 권위주의로 퇴행한 데 대한 배신감도 복합됐다.


세계는 미국 주도의 반중 동맹 대(對) 중국몽 추종 블록으로 나뉘고 있다. 서방세계와 일본 호주 인도 등은 확실하게 미국에 힘을 싣고 있다. 균형자, 조정자 운운하며 어정쩡하게 양쪽 다 다리를 걸치면 몸값이 올라가기는커녕 양쪽 모두로부터 무시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과 밀당하려는 태도는 동맹의 신뢰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다.


한국이 대중 압박전선의 구멍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를 비롯해 고도로 분화된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축출된 중국이 한국의 인재와 기술 유입에 열을 올리지만 정권 핵심부가 중국몽을 칭송하는 분위기 속에서 국정원 등 관련기관들은 적극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이 미국과 멀어질수록 북한의 위협은 차치하고라도 일본의 독도침탈, 중국의 서해침범 같은 국익 침탈 위험에 더 취약해진다. 남북관계에만 집착해 북핵을 사실상 묵인한다면 궁극적으로 일본의 핵무장과 군비증강 빌미를 줄 텐데, 미국 외에는 이를 견제할 균형추가 없다.


중국 압박 동참이 한국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라는 공포도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공산당 지배체제의 한계 때문에 이미 상당수 일류 기업들은 중국에서 빠져나와 베트남으로, 베트남에서 다시 인도로 향하고 있다. 대만이나 일본의 대중(對中) 경제교류가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에너지를 이용해야 한다. 미국 주도의 반중 전선은 가치 기반 민주주의 동맹이다.


문 정권의 친중 스탠스는 탈각하지 못한 이념적 잔존물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겪은 정체성 상실 트라우마, 유물론적 역사발전법칙에 대한 미련, ‘분단과 친일세력의 우군인 미국’에 대한 정서적 반감 등에 뿌리가 닿아 있다.


집권세력이 국제정세를 자기 원하는 방향으로 재해석해버리면 국가 항로가 왜곡된다. 이미 마차가 말을 끌 수 있다는 환상(소득주도 성장), 태양과 바람만으로도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환상(탈원전)으로 나라의 기둥 뿌리들이 뽑혀져 나갔다.

 

권력 치부를 감추기 위한 검찰장악을 개혁이라 분칠한 채 사랑해요를 외치든, 문재인보유국을 외치며 사미인곡을 부르든, 다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환각 상태에서 키를 잡고 항로를 입력해선 안 된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오랑캐 함선(제너럴셔먼호)을 격침시켰다는 보고를 받고 쇄국정책의 앞날을 자신했다. 그 배가 비록 함포를 장착했지만 승선원 20여 명의 민간 상선이었고, 대동강 모래톱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다 화공(火攻)을 당했다는 팩트는 간과했다.

 

02-19  총칼 대신 휘두르는 인사권, 입법권

미국 대법원이 뉴딜 정책 관련 법률에 잇따라 위헌 판정을 내리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심판을 바꾸려한다고 풍자한 신문 만평. “당신들 결정이 마음에 안든다”며 주심을 겁박하고 있다. 오른쪽 만평은 루스벨트가 공공근로사업청(PWA) 장관에게 대법원 개혁을 위한 뉴딜 예산을 요청한다는 풍자다. 컬럼버스 디스패치 1937년 2월· FDR도서관

 

초유의 일들이 이어진다. 조국과 추미애의 위선·독선 퍼레이드에 이어 대법원장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례를 추가했다. 건국 이래 대법원장의 권위와 신뢰가 지금처럼 바닥에 떨어진 때는 없었다.


인사권자의 선구안 부족, 검증 부족 차원만으로는 왜 유독 이 정부 들어 이런 일이 잇따르는지 다 설명할 수 없다.


본질적 원인은 집권세력이 인사권을 권력 영속화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데서 찾아야 한다.

 

권력 도구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척도로 발탁하고, 그렇게 발탁된 이들은 충실한 조직책이 되어 견마지로(犬馬之勞) 하는 악순환 고리의 부작용이 종기처럼 곳곳에서 곪아 터지는 현상이다.

 

물론 내 편 발탁은 어느 정권이나 있었다. 대법원장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인사를 통한 재판 개입 징후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한 재판부는 전보시키고, 우호적이라 여겨지는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잔류시킨다.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사건들을 잠재적 우리 편으로 여겨지는 판사에게 맡기려는 의도로 의심받는 최근 법원 인사는, 해당 판사들이 실제로 정권에 우호적 판결을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여부와는 완전히 별개로, 그런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법부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10년 전 한 판사가 펴낸 ‘미국 법원을 말하다-한국판사가 본 워싱턴 법조계 이야기’(강한승 저)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책에서 2명의 미국 소장파 판사를 언급하면서 훗날 대법관 재목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각각 5년, 7년 뒤 두 판사는 오바마와 트럼프에 의해 대법관에 지명됐다.


책의 저자가 예지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인사권을 남용해온 트럼프조차도 대법관은 그 진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아온 사람을 지명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실력과 안정감을 지녔다는 평판을 받는 인물이 장차의 대법관 재목으로 거론되며 성장한다.

한 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을 좌 1, 우 10으로 놓고 볼 때 4~6 사이 인물이 아니면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주요 공직에 1, 2 또는 9, 10의 인물들이 대거 발탁된다.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대법원장감으로 거론조차 안 됐던 지방법원장이 단번에 발탁 되고,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자리가 특정 성향의 이너서클 출신으로 채워진다.


물론 자기편인줄 알고 발탁한 인물이 직업적 소명을 지키며 통치자에 거역하는 사례는 동서고금 어디서든 있다.

예기치 않은 ‘심판의 반란’에 직면했을 때 제3세계 독재자들이 동원하는 수법은 경기 규칙, 종목의 본질 자체를 바꿔버리는 입법이다.


20세기 독재자가 탱크와 총칼을 동원했다면, 21세기엔 인사권과 입법권을 무기로 휘두르는 것이다. 현금 살포로 다수당을 차지한 뒤, 나팔수들을 총동원해 입법을 정당화시키는 허위 논리를 확산시킨다.


하필 더불어민주당이 추미애의 검찰장악이 실패하자마자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없애겠다고 나선 것은 문재인 정권이 제3세계 권력자들의 패턴을 따라 한다는 오해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친문들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검찰은 기소 업무만을 담당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미국에서도 검찰이 대형 비리를 파헤치는 경우가 숱하다. 지난해 트럼프의 책사 스티브 배넌을 기소한 것도 금융 범죄 수사와 정·재계 거물 수사로 명성을 쌓아온 뉴욕남부 연방지방검찰청(SDNY)이었다. 아베 전 총리의 벚꽃스캔들을 파헤치는 주체도 도쿄지검이다.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헌법과 법률로 신분이 보장돼 있는 검사도 산 권력 수사를 덮고 정권에 빌붙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검찰의 권력비리 수사 기능마저 없애버리면 집권세력은 절대왕조 보다 더 마음 놓고 권력을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설령 대선에 져도 꽁꽁 숨긴 정권 치부를 파헤칠 만한 수사력을 가진 조직이 없으니 걱정을 덜 수 있다.


어느 통치자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욕심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 중 한명인 프랭클린 루스벨트(FDR) 마저도 뉴딜 정책 관련 법률들이 잇따라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자 대법원 구조개혁 입법을 시도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대선에서 상대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로 누르고 재선된 직후였다.


하지만 압도적 다수당이던 여당(민주당)마저 미국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고, 루스벨트는 물러섰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통치자가 욕구를 절제하고 제도의 취지를 존중하느냐 여부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한 요소일 뿐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등 독재자들도 다수결이란 형식은 거쳤다. 소수의견 배려와 절차의 존중 없인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없다. 국회 상임위 절차도, 검찰인사의 총장 의견 청취도, 인사청문회도 그저 법조문에 활자화된 내용만 겉치레로 거치고 그 조항에 담긴 근본 취지와 전통은 다 무시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인사권을 휘둘러 선수를 쫓아내고 심판 구성을 유리하게 하고, 권력 수사 기능을 완전히 말살시켜도, 헌법에 관련된 명문 조항이 없으니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헌법은 활자화된 문구 그 이상의 정신이다. 인사농단과 입법폭주는 국민 상식의 법정에서는 모두 위헌이다.

 

03- 05  코로나보다 집요한 정권 포퓰리즘… 퇴치 백신 나올까

포퓰리즘으로 나라 망쳐도 선거 이기는 게
대다수 국가가 겪는 민주주의 아이러니
반면 美는 선거로 포퓰리스트·선동정치 축출
4월 보선과 대선에서 우리는 어느 길로 갈까

집권세력이 장기집권에 생사를 걸고 포퓰리즘 정책을 악착같이 펼 때 1인 1표 투표제가 골간인 현대 민주주의 제도로 막아낼 수 있을까?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 현대사의 경험이 들려주는 대답은 부정적이다.


배 밑창 나무를 뜯어 선실을 데워주는 격인데도, 환호하는 승객이 반대파보다 매번 숫자가 많았다. 나라가 기우는데도 선거에선 포퓰리스트 세력이 이긴다. ‘덜 가진 자’가 ‘가진 자’보다 많기 때문이다. 편가르기와 공짜의 위력은 이성으론 제어하기 어렵다. 경제가 완전히 거덜나기 전까지는 선거로는 포퓰리스트를 쫓아내기 힘든 것이다.

 

그나마 우파 독재자는 민중궐기로라도 축출할 수 있지만 좌파 독재자는 그런 걱정도 안한다. 보수진영에는 밤낮으로 거리에서 정권퇴진을 외칠 숙련된 직업 운동가도 거의 없다. 어렵사리 조국 사태 당시 광화문 집회같은 대규모 집회가 성사되면, 정권의 숱한 떡고물을 누려온 좌파네트워크 세력들이 총동원돼 서초동 집회같은 맞불을 놓는다.

 

드물게 선거로 포퓰리스트를 쫓아낸 경우도 있는데 지난해 미국 대선이 한 사례다. 사법부· 전문 관료· 언론 등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들이 파수꾼으로서의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그리스 파판드레우의 3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마두로 정권 승계 같은 좌파 포퓰리즘 장기화 궤도냐, 미국처럼 정상적 공화제로의 복귀냐의 기로다.

 

문재인 정권은 예상대로 보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권의 매표 전략은 코로나보다 더 악착같고 전방위적인 전염력을 지녔다. 어떤 무리수도 개의치 않는다.그들의 사전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없다.


가덕도 해상에서 “가슴이 뛴다”며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짝짜꿍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은, 관객과 시청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개그맨 자신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잃지 않는 유머일번지 풍자 코너를 연상시킨다. 문 대통령이 훗날 노년말기에 선상 사진을 홀로 볼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오거돈의 못된 손 덕분에 부활한 신공항을 치적 1호로 자랑스레 기억할까.


여권은 재난지원금 속도전에 비판이 제기되면 선진국은 더한다고 반박한다. 위기에 돈 푸는 건 원칙적으로 맞지만 돈을 푸는 방법과 철학이 전혀 다름을 간과한 주장이다. 선진국은 재정을 풀어 경제 전체적으로 생산 부문에 힘이 실리도록 하는데 초점을 둔다. 투입 재정의 구체적 용처가 많다. 그냥 살포해서 소비해 버리는 형태가 아니다.


포퓰리즘 앞에서 무력한 게 민주주의인데 설상가상으로 전쟁·전염병 같은 시기에 선거가 치러지면 민의 반영은 더 어려워진다. 평상시라면 농사를 잘 지은 논과 망친 논의 차이가 확연할 텐데 산사태가 다 덮어버리니 정권의 초라한 성적표가 가려진다. 태풍 속의 승객들은 배가 침몰할까 두려워 선장에게 힘을 몰아준다.


지금 여당의 다수당 지위는 그런 어부지리의 결과인데도 칼을 휘두르는 데 조금의 절제도 없다.


6주 전 칼럼에서 여당의 검찰 수사권 박탈 기도를 경고할 때만 해도 일부 독자들이 너무 성급한 걱정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어느새 현실이 됐다. 국가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일을 허접한 낙서 끄적이는 수준으로 속전속결해버린다.


윤석열 총장이 수사권 박탈에 격하게 반발하자 그제 정세균 총리는 “이게 행정가의 태도냐”고 질타했다. 윤 총장이 결국 사퇴하자 “정치검찰의 끝판왕”이라 성토한다. 전두환 정권이 학생들을 향해 “데모가 학생의 본분이냐”고 비난한 게 연상된다. 학원을 침탈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게 해놓고, 학생답지 못하다고 꾸짖는 적반하장이었다.


차베스의 포퓰리즘을 지탱해준 건 석유였다. 문재인 정권의 석유는 삼성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과 제조업·혁신기업들이다.


좌파세력이 아무리 구박해도 기업들은 각자 도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극한 경쟁 속에서 거둬내는 실적 덕분에 정권이 아무리 실정(失政)을 남발해도 경제가 버티고 있다.


저유가 시대가 닥치자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망했다. 우리 기업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이런 악조건이 계속된다면 경쟁력을 잃는 건 한순간이다.


‘포퓰리즘이 매번 승자가 되는 사회’와 ‘선거가 포퓰리즘을 퇴치하는 백신 역할을 하는 사회’… 두 궤도 중 어느 곳으로 진입하느냐는 ‘깨어있는 중산층의 두께+사법부·언론 등 견제시스템의 제 역할+대안세력의 매력도’라는 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대목은 ‘대안세력’이다.


문 정권이 아무리 싫어도 국민의힘은 차마 못 찍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한 현실을 방치한다면, 포퓰리즘이 5년 더 횡행해 헤어 나오기 힘든 수준으로 ‘독이 든 꿀물’에 중독될 것이다.

 

야당 내의 낡은 세력들은 자신들이 좌파 재집권의 결정적 공신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퇴장해야 하다. 수명을 다한 별들이 폭발해 소멸하고 새 별이 생기듯 새로 태어나야 한다.


4월 보선과 내년 3월 대선은 좌파 포퓰리즘을 퇴치할 백신이 있는지를 결정할 중대한 실험장이다. 이 실험에서 실패한다면 백신 없던 시절 인구 대부분이 감염되고 나서야 비로소 바이러스가 사라졌듯, 좌파 포퓰리즘은 나라를 파탄내고 나서야 권력에서 내려올 것이다.

 

03-19  윤석열, ‘좀스러운 남탓 정권’ 끝낼 그릇 될 수 있을까

前정권 탓 결정판 “부동산 적폐청산”… 지지층 결집 위한 프레임 전환 시도
윤석열, 친문 재집권 막을 대안 떠올랐지만
법치·공정이 대선 핵심 시대정신 될지는 미지수
反文戰士 넘어 국가비전과 공감·소통 능력 보여야

문재인 대통령이 LH사태에 대해 ‘부동산 적폐’ 프레임을 들고나온 날 ‘우공지곡’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났지만 칼럼에 인용할지를 놓고 한참 망설였다.

 

제나라 환공이 사냥을 하다가 산골짜기에 들어갔다. 한 노인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우공지곡(愚公之谷)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의 골짜기란 뜻이다. 그 노인이 자신의 암소가 낳은 송아지를 팔아 망아지를 샀는데 청년들이 “소는 망아지를 낳을 수 없으니 훔친 것이 분명하다”며 뺏어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노인이 멍청하다며 우공이라 불렀다.

 

환공이 궁에 돌아와 신하들에게 우스운 이야기라며 그 일을 전하니 재상 관중(管仲)이 무릎을 꿇고 통렬히 사죄했다. “나라에 법률과 제도가 엄격히 살아 있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국정 책임자인 자신의 과오라고 사죄한 것이다.

 

옛 현인(賢人)이나 성군(聖君)의 고사를 살펴보는 것은 현 위정자의 선택이나 결정을 놓고 과연 더 올바른 길은 없었는지, 어떤 것이 더 이치와 상식에 맞는지 가늠자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자기 정권에서 벌어진 공직부패마저 적폐 탓으로 돌리는 행태는 옳고 그름이나 이치를 논할 수준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고사 인용이 망설여졌던 것이다.

 

집권세력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그 어떤 부정부패, 어떤 대형 참사라고 적폐(오랫동안 쌓여온 폐단)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그런 논리면 장관들이 무더기로 뇌물을 받아도 ‘국민학교’ 시대 도덕·윤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옛 정권 탓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추미애, 조국 등은 한술 더 떠 LH사태가 윤석열과 검찰 책임이라고 한다. 전염병이 번지니 병원장과 의사들 탓을 하는 격이다.


LH사태는 국책사업 시행 주체들이 정책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챙긴 공직부패 문제인데 이를 어느 시절에나 만연한 일반 부동산 투기 문제로 전환시켜 버렸다. 행정부 잘못을 사회 전체와 과거 세대까지 포함한 모두의 책임문제로 돌리고, 자신들은 ‘유책자(有責者)’에서 ‘조사관’ ‘척결자’로 슬그머니 역할을 변신한다.


물론 억지임을 스스로 알 것이다. 문 대통령이 적폐 선언 다음 날 뒤늦게 사과문을 읽은 것도 아무래도 논리가 궁색하다는 진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레임 조작은 멈추지 않는다. 외부에 공적(公敵)을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신승리용’ 논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상식과 이치에 벗어나고 민망한 일이어도 이기는 게 정의라는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헌정사에서 경험해본 적 없는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 정책을 총동원할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스텝이 꼬일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LH사태에서 벗어나려면 대대적인 수사 의지를 과시해야 하는데, 사냥개(검찰)는 이미 삶아 먹겠다며 털을 다 뽑아 버렸다. 검수완박의 자승자박이다.


뱉어놓은 말과 현실의 괴리는 갈수록 커진다. 미중 균형자 역할을 외쳐왔지만, 현실은 미국의 대중 압박 전선 참여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문 정권도 안다. 그러다 보니 한미 회담이 끝나면 양측 발표에 차이가 나는 현상이 심해진다.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괴리 현상이 심해질 것이다.


보수 유권자들에게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읽힌다. 최근 만난 지인들은 강경 보수성향들인데 한결같이 앞으로 선거에선 중도성향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작년 이맘때는 그런 정치인 이름만 나와도 고개를 돌렸던 이들이다. 이번 보선에서 만약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돼 이기면 보수의 힘만으로도 된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들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내 생각과 일치하는 후보보다 상대의 재집권을 막는 데 필요한 후보를 앞세우는 전략적 선택의 보편화는, 공동체 위기의식이 반드시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권력의지로 점화되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그동안은 그런 보수층의 염원을 담아낼 그릇이 부재했는데 윤석열이라는 가능성이 나타났다.


하지만 법치, 공정, 권력비리 척결 등의 가치가 내년 대선에서도 시대정신의 핵심이 될지는 미지수다. 추미애 조국 같은 분노유발재(材)들이 계속 설쳐주지 않으면 그저 안티테제로 축소될 수도 있다. 상대는 레닌과 마오쩌둥에 심취했던 ‘평생 직업이 전술과 선거’인 사람들이다.

 

문 정권의 리더십은 좀스러움을 넘어서는 후안무치와 이중잣대, 분열통치 같은 특징을 드러냈다. 반면교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반(反)문재인 만으로는 부족하다.


윤석열의 성패는 반문전사(反文戰士)를 넘어서는 비전과 대안에 달렸다. 국가경쟁력 강화,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할 정책 대안, 약자·청년·소외계층과의 소통과 공감능력에서 분명한 잠재력을 보여야 한다.

 

04-02 약발 다한 文정권 필살기… 친문 재집권 방법은?

TBS 김어준 프로, 권력의 방송 장악 상징인데
폐지 요구에 친문은 “방송독립 침해” 본말전도
부동산 사태도 정권의 정책실패 책임 희석 위해
투기, 前정권, 세계적 요인 탓 선전공세 강화할 것
하지만 부동산 민심이 보여주듯 프레임 조작 더는 안 통해

2000년대 초 출근길 버스에서 항상 이어폰을 꽂고 EBS FM 라디오를 들었다. ‘모닝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이었는데 팝송 영화 등 다양한 소재로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었다. 신도시에서 광화문까지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했다. 알고 보니 주변에 애청자가 수두룩한 인기 프로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초 갑자기 ‘진보 언론인’ 손석춘 씨가 국제뉴스를 해설해주는 시사프로가 신설돼 그 시간대를 차지해버렸다. ‘황금시간대 전파를 왜 영어에 낭비하냐, 국민이 진보적 시각으로 세계를 볼 수 있게 교육시켜 줘야지’…우중(愚衆)을 깨우쳐야 한다는 좌파권력의 강박관념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문재인 정권처럼 대놓고 지상파를 프로파간다 도구로 이용하는 정권은 없었다.

 

진영 내에서도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자칭 논객, 개그맨 등에게 아예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주는 것은 전두환 독재도 엄두를 못 냈던 일이다. 5공 정권은 땡전뉴스 비판이 제기되면 곤혹스러워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친문은 TBS의 김어준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교통정보에 충실하라는 요구에 대해 “방송독립 침해”라고 되레 호통을 친다.

 

김어준류의 인사들이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음을, 방송독립이 제로임을 증명하는 지표다.

 

공영방송은 물론 공기업이 대주주인 언론사마저 정권이 바뀌면 ‘투쟁 경력자’들이 요직을 꿰차고, 친정권 연예인들이 활개 치는 현상은 방송·통신이 정권에서 독립돼 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보수진영이 선거에서 이긴 뒤 민경욱, 전광훈 또는 유튜브의 태극기 논객들에게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맡기고 정부와 공공기관 광고를 몰아줘도 친문들은 지금처럼 감싸줄 것인가.


적색신호를 청색이라 우기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버리는 본말전도는 집권세력의 필살기다. 권력자가 화두를 던지면 ‘좌파 괴벨스들’이 진실을 뒤집는 프레임을 확산시킨다. 방송장악을 방송독립으로, 검찰장악을 검찰개혁으로, 성추행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그런데 그 필살기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적폐 프레임을 내걸었지만 여론이 미동도 않자 당정청이 연일 반성문을 읽는다. ‘검수완박’은 쑥 들어가고, 김상조도 바로 자른다. 선거를 앞둔 ‘연극성 고개 숙이기’지만 프레임 전술만으로는 상황을 조작하기 힘들어진 환경의 산물이기도 하다.


문 정권의 통치전략은 △내정은 갈라치기와 프레임 짜기 △외치(外治)는 남북이벤트와 친중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드라마 ‘조선구마사’ 파동이 보여주듯 우리사회는 문 정권 출범 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반중정서가 팽배해졌다. 시진핑 정권의 동북공정 같은 패권주의 행보가 누적된 결과물이다. 문 정권도 더 이상 친중 행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매불망 남북이벤트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운신할 공간이 거의 없다. 반일 프레임도 미국이 워낙 한미일 협력을 중시해 죽창가를 꺼내기에 제약을 받고 있다.


내치는 4년간 쌓은 신(新)적폐의 산에, 외치는 미국 정권 교체와 미중 갈등 벽에 막혀 옴짝달싹하기 어려워 진 것이다. 민심의 저수지는 고갈돼 학철부어(涸轍鮒魚·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놓인 붕어)의 신세다.


친문 정권의 회생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합리적 진보로의 변신이다. 예를 들어 금태섭을 받아들이고 조국 추미애 윤미향처럼 진보가치를 욕보인 인물들과 손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그 반대방향으로 달려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강경파들이 더 높은 죽의장막을 칠 것이다. 제3자에겐 뻔히 보이는 해결책을 외면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인물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친문 재집권을 가능케 할 두 번째 길은 야권의 자멸이다. 윤석열 효과 등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지만, 야당이 자만해 구태가 조금이라도 재연되면 친문에게 대선을 상납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부동산 분노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너무 단순하게 예측해선 안 된다.


국민들의 분노는 △집값 폭등에 대한 절망감과 △정권 내부의 투기·위선에 대한 분노로 구분된다.


그런데 후자는 시간이 흐르면 수그러들 수 있다. 정권의 위선과 부패에 대한 호된 채찍질의 파도가 지나가면, 결국 남는 문제는 집값 폭등의 책임 소재와 해결방안이다.


문 정권은 집값 폭등 책임을 만성적 투기, 전 정권, 세계적 통화량 증가 등으로 돌리는 논리를 끊임없이 확산시킬 것이다. 정책실패 때문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영영 만회하기 힘들지만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면 뒤집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대선을 앞두고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비싼 집과 덜 비싼 집 사이의 대립을 극대화시킬 방책을 쏟아낼 것이다. 가진 자를 징벌하고, 덜 가진 자에게 주거복지 물량공세를 쏟아붓는 쪽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계산을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집값폭등과 LH사태를 계속 보편적 투기 문제로 희석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야당이 부동산 실정(失政)의 반사이익으로 대선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야당이 지금의 우세가 결코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님을 잠시라도 잊고 분열하거나 기득권 구태 DNA가 재발하는 것, 그것이 친문 재집권을 가능케 할 첩경이다. 

 

04-16 필패 자초하는 與, 천운 걷어차는 野

與, 보선 참패하고도 강경파에 휘둘려 직진
野에 로또 같은 기회 왔지만 벌써 중진 당권 다툼, 정강이 폭행 추태
與가 아무리 자멸의 길 걸어도
野 구태·올드보이들 재등장하면 정권교체 물건너갈 수도

10개월 21일 남은 내년 대선에서 이기려면 어떤 코스를 택해야 할까. 답은 명료하다. 여당은 지난 1년간의 궤도대로 직진하면 망하고, 야당은 1년 전으로 유턴하면 망한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직진 태세다. 초선들의 반성 움직임은 친문강경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통령부터 변할 기미가 없다. 정무수석에 다소 온건파를 앉힌다 해서 바뀌는 게 아님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을 강조하지만 청년들을 좌절시키고 등을 돌리게 만든 원인은 외면한다.

 

조국류의 위선·특권의 집합체인 인사들을 비호한 것이 청년들이 중시하는 공정의 가치를 짓밟았음을, 귀족노조 편들기와 기업 옥죄기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았음을, 집값을 폭등시켜 청년을 ‘벼락거지’ 신세로 만든 장본인이 이념에 매몰돼 규제 일변도 정책을 고집한 자신들임을 외면한다. 왜 낙제했는지에 눈감으니 진단도 처방도 없다.

 

대선으로 가는 길 곳곳에 묻힌 급락의 지뢰밭에 더 취약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조금이라도 과거로 유턴하면 몰락이 명약관화한데도 ‘찍기 창피한 정당’ 시절로의 회귀 조짐이 보인다. 다른 학생이 답안을 밀려 쓴 덕에 석차가 올라간 건데 반장 감투만 눈에 들어온다. 입만 열면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라고 하는데,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그 말 자체가 부정확한 표현이다. “우리가 망쳤는데도 운이 좋아 이겼다”가 정확하다.

 

사무처 직원의 정강이를 걷어찬 송언석 사건이 하루 전에만 터졌다면 수십만 표가 빠졌을 것이다.


지인, 동창들에게 물어봤다. 수십 년 직장 생활 동안 부하 직원의 정강이를 차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수십 년 전 언론사에도 도제식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욕설이나 뺨 때리기 같은 작태가 있었지만, 그 시절에도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했다.


구시대 조직문화 속에서도 가장 저급한 방식으로 입신양명한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이 드러났는데, 더 한심스러운 건 당 지도부의 대응이다.


당연히 사건 발생 직후 제명론이 나왔어야 하는데, 원내대표는 닷새나 지나서야 하나 마나 한 코멘트를 내놓았다. 이런 감과 판단력으로 어떻게 당 이미지 환골탈태라는 고난도의 작업을 지휘하겠는가.


오세훈 진영의 내곡동 문제 대처도 구시대적이었다.


억지스러운 네거티브 공세에 불과했을 이 문제는 오 후보의 ‘투명하지 않은 대응’으로 인해 정치인의 정직성이라는 중요한 문제로 바뀌었다. “존재도 몰랐다” 식의 무조건 부인하기, “기억 앞에 겸손” 식의 모호한 화법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낡은 발상이었다.


과거엔 그런 게 통했을지 몰라도, 요즘 젊은 유권자들은 다 기억하고 다음 선택에서 참작한다.


측량현장 논란은 끝까지 사실관계를 가려 만약 오 시장이 거짓말을 했다면 응분의 책임을 지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생태탕집 주인의 사과회견 수준까지 명확하게 결론 내야 한다. 차기 대선에서 누가 야권 후보로 나서든 집권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네거티브 폭로전을 전개할 것이다. 그중 하나라도 오세훈 식으로 대응하면,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수 있는 ‘민감한’ 시대다.


야권 성향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은 식민치하 독립 열망을 연상케 할 만큼 간절하다.


그런데 이른바 민족 대표들은 그 열망을 담아낼 그릇을 빚기는커녕, 자기 숟가락 들이미는 데만 골몰한다. 나라(黨)를 말아먹던 구태를 못 버린 것이다.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해 보려고 욕심내는 올드보이들은 이해찬의 행보가 민주당의 확장성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에 자신을 대입시켜 봐야 한다.


만약 홍준표가 복당하고 황교안 김무성류의 인물들이 다시 뉴스를 타면, 애써 넓혀온 외연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번 보선에서 정말 놀라운 대목은 문재인 정권의 그 숱한 실정(失政)에도 박영선 후보가 39.1%나 득표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혼내주고 싶지만 국민의힘은 도저히 찍고 싶지 않은 ‘잠재적 진보 지지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했는데도 이 정도를 얻었다.


절벽 끝에서 정신이 버쩍 들면 집권세력은 ‘집 나간 토끼’들을 잡기 위해 도마뱀보다 기민하게 자기 꼬리를 자르고, 자벌레처럼 신중하게 효과를 계산하며 편 가르기를 할 것이다.


집권세력이 친문의 족쇄에 갇힌 지금이 야당에는 천운의 기회다. 오 시장부터 철저히 몸을 낮춰야 한다.

 

야당 내 논쟁과 이견은 당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정책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의 펀더멘털이 완전히 바뀌는 구조 전환의 시기에 대한민국이 어떤 좌표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놓고 중진 초선을 아울러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면 아무도 집안싸움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야당의 거듭남은 줄탁동시(啐啄同時·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면 어미닭이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아 도와주는 것)의 과정이어야 한다. 당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야당으로의 변신을 돕는 게 중진들의 소명이다.

 

04-30 경제전쟁 포연 속에 “뒤로 돌아~가” 외치는 文

각국 정부-기업 한몸돼 미래먹거리 선점 나서고
미중 충돌 속에 미국 중심 밸류체인 구축되는데
한국 대통령은 중국 칭찬하고 백신개발국 비판
지지층 환심, 백신失政 면피를 국익보다 앞세울 건가

 수년 전 영화 겨울왕국을 보고 장차 북유럽 여행을 꿈꿨다. 당시 지도에서 봤던 스웨덴 북부 도시 중 하나가 셸레프테오(Skellefte¤)였는데 요즘 외신에서 자주 보게 된다.

 

아(亞)북극성 기후로 겨울이 길고 혹독한 인구 3만여 명의 이 도시에 연내에 유럽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이 준공된다고 한다.

 

공장을 짓는 노스볼트는 전직 테슬라 간부가 2015년 설립한 신생사다. 2019년 유럽개발은행 3억5000만 유로를 비롯해 총 3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스웨덴을 시작으로 독일과 헝가리에도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

 

노스볼트의 급팽창은 전기차 시대 주도권을 미국과 아시아에 뺏기지 않겠다는 유럽 차원 절박감의 산물이다. 장차 EU에서 높은 기준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요구될 텐데 수력이 풍부한 스웨덴에서 친환경 제조공정으로 배터리를 양산해내 블록화하면 한국의 배터리 산업에 막강한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

 

미국도 GM이 수명을 10배 높인 ‘100만 마일’ 배터리 개발을 코앞에 두고 있고, 영국은 첫 기가팩토리를 구축했다.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같은 미래 산업은 기술·노하우 집약 산업이어서 여럿이 공생하기 힘들다. 각국이 비슷한 출발선에서 스타트하는데 아차 한발 뒤지면 수십 년 먹거리를 뺏기게 된다.


일본도 배터리 관련 55개 기업이 공동 작업에 나서는 등 제조업 초강국 위상 회복을 노리고 있다. 스가 정부는 아예 ‘대만 인계철선’까지 받아들이는 등 미국이라는 큰 우산을 받겠다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밸류체인에서 한국을 밀어내려는 경쟁 전략도 엿보인다.


이처럼 지구촌은 미중 간에, 그리고 블록 간에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포연이 가득한데 한국의 집권세력은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연신 친중, 반미성 메시지를 발신한다.


문 대통령은 26일 “(코로나 백신 개발국들이) 자국 우선주의와 사재기, 수출 통제 등으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자기 식구끼리만 앉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 등 우방국을 비난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일까.


만약 냉전시대 비동맹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면 제3세계에서 영향력이라도 확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 등 백신 개발국들에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면 뉴욕타임스 회견 같은 자리에서 정색하고 발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행동은 △골방에 모여 힘센 자를 비난하며 자족감을 느끼는 운동권 문화의 잔재며 △열성 지지층을 향한 프로파간다 목적이며 △백신 정책 실패를 선진국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20일 보아오포럼 연설에선 “개발도상국에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 지원 활동을 펴는 중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찬사는 개인의 세계관이든, 북한을 염두에 둔 민원성 아부든 대통령의 선택이다. 하지만 뜬금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실익도 없는 3무(無) 발언이 엄중한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남발되는 건 문제다.


미중 양자택일 상황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이 승자일 수 밖에 없을 이 전쟁에서 미국 중심 가치동맹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밑돌을 까는 노력은 필요하다.


일각에선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지만 우리의 대중 수출은 주종이 반도체다. 핵심 기술이 없는 중국이 우리에게 아쉬워해야 하는 입장이다. 미중 갈등이 우리의 대중 수출에 미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국에 잘 보여야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보아오포럼 연설에서 ‘포용적 다자질서’의 회복을 강조한 것도 국제무역사를 오독한 결과물이다.


지난 수십년간의 다자주의 자유무역질서는 미국이 주로 공급하는 글로벌 공공재를 기반으로 중국 등이 수혜를 받으면서 발전한 구도였다.


그런데 세력을 확장한 중국이 그 기본질서의 혜택은 그대로 누리면서 질서를 어지럽히니까, 미국이 이를 다시 짜겠다고 나선 게 지금의 무역질서 재편 국면이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수출지원금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다자주의 이상(理想)에 배치되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포용적 다자주의 이상론을 편 것은 다시 중국이 서방을 흡혈하는 구조로의 회귀를 원한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1970년대에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발전소로 뒷받침해줬듯이 기업이 무역전쟁에 나설 때 국가는 인프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의 인프라는 동맹 강화 등 방향을 올바로 설정하고 규제 완화와 제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휘부가 자해성 메시지를 남발하고 가리키는 방향은 역주행이다.


위정자라면 아무리 실정 면피가 시급하다 해도 대외 관계에 손상을 가져올 발언을 삼가야 한다. 대외 관계 손상은 국민에게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테니, 지지층 환심 사기가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전시(戰時) 총사령관으로서의 자격 미달이다.

 

05-14 ‘윤석열 현상’ 자초한 ‘문재인식 정치’

조국 끌어안은 문 대통령 선택이지리멸렬 야권에 정권교체 활력 불어넣어위기감 속 與 내부는 친문 견제 변신 몸부림 시작됐는데野 중진들은 민심 수준 무시한 ‘영남홀대론’ 들먹이고막말 올드보이들 마이크 다시 켜려 해국민의힘 환골탈태 못하면 尹 입당 어려워지고野 필패할 3자 분열 구도 초래할 수도

 ‘윤석열 현상’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정권 탈환은 커녕 절멸의 위기감에 시달렸던 야권이 재·보선에서 압승하고, 정권교체 가능성을 시사하는 여론조사들이 나오는 현 상황의 밑바탕에는 윤석열의 등장이 있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이 극에 달해도 야권에 이렇다할 대선후보감이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면 판세는 달랐을 것이다.

 

윤석열 현상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문 대통령이다.

 

2019년 9월 27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처음 입을 연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이 아니라 “조 후보자가 그런 삶을 살아왔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후보 지명을 철회했다면, ‘윤석열 죽이기’와 ‘윤의 거인화’는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의 정치적 성장이 스스로 강단 있게 소신과 원칙을 지킨 결과물이라는 점과 별개로, 밟을수록 커지는 ‘헤라클레스의 사과’(이솝우화)를 1년 넘게 짓밟은 어리석음은 오롯이 문 대통령의 몫이다.

 

조국 사태 내내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왜 조국을 끝까지 끌어안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

 

10일 취임 4주년 회견은 조국 문제 대응 방식을 낳은 문재인식 사고방식의 본질을 조금은 더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 기자가 “대통령이 현 정권에 관련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사건 등에 성역 없이 살아 있는 권력이라도 봐주지 말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김오수 후보자에게 공개적으로 지시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냥 “분명히 해둡니다. 검찰은 눈치 보지 말고 철저히 수사하십시오”라고 답하면 됐을 터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제 검찰은 별로 청와대 권력을 겁내지 않는 것 같다”고 에둘러 갔다. 검찰 제어의 문에 미리 자물쇠를 채우는 것은 피하려는 자기보호 본능의 발호였을까.

 

설령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지라도 민주주의 견제원리·검찰독립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그런 철학·신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 관련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는 인사조치가 왜 끊이지 않았는지 곱씹게 되는 장면이었다.

 

대통령은 회견에서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문제에는 2분만 할애했는데 그중 말미 15초를 대북전단에 대한 강력한 대응 경고로 채웠다.

 

그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이 직접 온 국민 상대 회견에서 경고해야 할 사안이었나. 무언가에 집착이 너무 커서 사안의 경중·대소를 구분하는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친문 댓글 답변을 비롯해 대통령의 발언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지세력 의존 정치를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을 감행한 결과 퇴임 후 극심한 고립에 처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런 문 대통령의 한계를 확인한 야당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멀리 보면 야당에 유리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최근 친문 핵심들 사이에선 자포자기론이 있었다고 한다.

 

‘윤석열과 맞붙으면 누굴 내세워도 안 되는 걸로 나온다, 그러니 국회 권력이라도 확실히 쥐자’는 생각에서 원내대표 선거 때 외연확장 대신 친문 후보에 표를 몰아줬다는 것이다.

 

당 대표 선거에서도 그러려고 했는데 0.59% 차이로 친문 후보가 졌다. 작은 반란이다. 여권의 ‘자가 치유력’의 발현인 것이다.

 

물론 송영길 김부겸 등이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확실히 할 만큼 과단성 있는 그릇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누가 여당 대선 후보가 되든 대통령과 차별화하며 중도층 영합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 야당은 여전히 제자리를 돈다. ‘영남당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고 하니 바로 ‘영남홀대론’이 나온다.

 

영남홀대론이야말로 민심의 수준을 모독하는 주장이다. 호남이든 영남이든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지정당이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기를 바란다. 자기편이 당권이나 주요 당직을 차지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정권을 잡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환골탈태 못한 채 과거 인물들이 무대에 오르내리고 막말 올드보이들이 마이크를 다시 켜면, 윤석열의 합류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권 전략가들이 내심 가장 노리고 있을 ‘천하 3분지계(計)’다.

 

대통령 지지율이 지리멸렬하면 할수록 국민의힘 내에선 ‘민주당-윤석열-정통 보수’의 3자 구도로도 승산이 있다는 몽상에 빠지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문 정권의 ‘민주주의 원칙·가치에 대한 철학 결핍+사안의 경중·우선순위 판단 미비+지지세력 집착’ 성향은 조국사태 같은 악수(惡手)를 낳았고 그 결과 윤석열 현상이 창출됐다.

 

하지만 좌파의 자기변신 능력은 무한대다. 미제축출을 외치던 민족해방(NL)계열 주사파 지도부는 1987년 초 개량노선이라고 비난했던 직선제 개헌투쟁으로 순식간에 노선을 바꿨다. 목적 달성을 위한 놀라운 유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중진들이 영남홀대론을 들먹이며 기득권에 연연하고, 보수의 몰락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다시 등장한다면 그것은 정권교체를 열망하며 전략적 투표 각오를 다지고 있는 야권 민심을 배반하는 행위다.

 

05-28 등 떠밀려 진입한 옳은 길… 유턴은 안 된다

한미회담, 文 대통령 깜짝 변신은

美가 압박하고, 韓은 남북대화 매달린 산물

결국 대만·쿼드 등 美 요구 많이 반영됐지만

결과적으로 文 정권 외교 제자리 찾고 韓美 모두 윈윈

관건은 실행인데 상대따라 말 바꾸거나

지지층 의식해 공동성명 취지 훼손하면 우방 불신만 심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변신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앞으로의 실천이다.한미 공동성명이 내용대로 실행돼 우리 외교의 기본궤도 역할을 하게 될지, 빈 수레 수사(修辭)에 그칠지를 가늠하려면 문 대통령 변신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퀴즈: 문 대통령이 변신한 진짜 이유는?(복수 선택 가능)

①외교노선을 근본 전환키로 결심해서 ②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깨달아서 ③남북관계 운신 폭 확보 위한 전술적·단기적 변신 ④미국의 압도적 협상력에 등 떠밀려서.

 

외교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더니 대부분 ③과 ④가 복합된 것으로 봤다. ②도 일정 부분 섞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①을 답으로 꼽은, 즉 외교안보관이 환골탈태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었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공동성명은 미국 측 초안(텍스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초안을 놓고 수주간 강도 높은 협상을 통해 첨삭 과정을 거쳤겠지만, 어느 쪽 초안을 바탕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진다.

 

더구나 미국이 초안을 늦게 제시하는 바람에 밀고 당기기를 충분히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미국은 일부 대목에 대해선 ‘받든지, 떠나든지’ 택하라는 식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을 겨냥해 비(非)시장경제주의를 비판하는 내용도 요구했으나 이 대목은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힘에 밀려서든, 한국이 남북관계에 집착해서든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그렇게 한국이 양보한 것들이 한국에도 유익한 결과라는 점이다.

 

우리가 내주는 게 귤이고, 미국이 내주는 게 오렌지라 비유해 보자.

 

쿼드·대만·남중국해 언급,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등의 대목이 한국이 내준 귤인데 이 정도 수준의 언급도 못 했다면 균형자, 중재자는커녕 모두에게서 무시당했을 것이다.

 

싱가폴·판문점 선언과 남북대화 내용이 포함된 것은 한국이 얻은 오렌지다.

 

그런데 싱가폴 대목은 실질적으론 미국으로서도 손해볼 게 없는 양보다. 트럼프의 유물이어서 바이든이 정서적으로 꺼려했을 뿐, 싱가폴 선언의 내용들은 과거부터 미국이 지지해온 아주 원론적인 입장이다. 그 외에 북한에게 줄 선물은 전혀 반영이 안됐다.

 

미사일은 우리에겐 우주개발 역량 강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미국으로서도 2017년 탄두중량을 다 풀어준 마당에 사거리 제한을 붙들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동시다발적 정밀타격 기술 이전이 함께 논의됐다면 더 큰 오렌지가 됐을 것이다.

 

그렇게 주고받은 걸 따져보면 한국이 더 많이 내준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그러니까 손해 본 회담이라고 생각한다면 구시대적 계산법이다.

 

설령 우리가 귤 7개를 내주고 오렌지 3개를 받았다 해도, 양측이 함께 90개의 멜론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우리 기업들의 44조 원 투자를 퍼주기라 표현하지만, 이는 일방적으로 귤을 준 게 아니라 함께 멜론을 얻는 과정이라 보는 게 맞다.백신 위탁생산, 원전 공동수출 등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오렌지를 줬다기 보다는 멜론 창출에 해당한다. 백신, 원전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으로선 한국만큼 가격경쟁력과 품질·시설관리에서 비교우위를 가진 생산 협업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이처럼 한미동맹이 하나 주고 하나 뺏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함께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윈윈의 동업자 단계로 접어든 것은 우리 기업과 기술 과학 역량의 성장 덕분이다. 안보 동맹이 경제 과학 전방위로 확장 심화되는 이런 거대한 진화과정은 좌파진영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보복에 대한 과도한 우려도 세계 판도의 급변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다. 중국은 최근 1, 2년간 미국과의 정면 대결에서 사실상 참패했다. 사드보복처럼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기 전에는 주변국들을 향해 “우리 편에 안 서면 혼쭐날 것”이라고 협박할 수 있었지만, 이젠 “너무 미국 편만 들지는 말아 달라”고 호소해야 할 처지다.

 

4년간 친중 구애 행보를 보여온 문 대통령도 미국과의 협력 없이는 남북관계와 안보는 물론 경제도 풀어가기 힘든 현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처럼 방치하다시피해 온 기존의 스탠스와 달리 배터리 반도체 기술 협력의 구체적 내용까지 다 포함해서 언급한 것도 미국 주도 가치동맹에 탑승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식한 결과일 것이다.

 

내정에서는 낡은 이념적 아집을 버리지 못해왔지만, 외교는 워낙 거구의 파트너와 이인삼각 달리기를 해야 하니 운신의 폭이 적고, 그 결과 아집을 버리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엉겁결에 의도치 않은 길로 접어들었다 해도 그 길이 옳은 길이고 처음으로 좌우 모두에서 박수를 받게 되면, 그 궤도로 계속 가려 하는 선순환 관성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방향이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전략적 계산도 힘을 실어줄 것이다. 야당이 긴장해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4년간 여실히 드러난 문 정권의 DNA를 감안하면 유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평소엔 미국 때리기로 재미보다 정상회담 때만 한미동맹 찬가를 부르는, ‘4년 반미, 반짝 친미’는 좌파 정치권의 오래된 습성이다.만약 중국에 가선 다른 말을 하고, 친문세력 특유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해석과 어휘력’으로 한미 공동성명을 다른 버전으로 탈색시켜 버린다면 우방들로부터 불신을 자초하는 자해행위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문안 합의가 아니라 실행과 언행일치다.

 

06-11 간절한 정권교체 열망이 만들어낸 집단창작품

野 성향 국민 정권교체 열망, 민주화 이후 어느 정권 때보다도 간절

국민의힘 청년돌풍은 그런 열망 담아내지 못하는

낡은 野 뜯어고치겠다며 국민이 직접 나선 것

환골탈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세대교체 선택

文 정권은 안면몰수하고 또다시 檢 장악 인사

이런 정권 행태 누적돼 거대한 민심 태풍

▲4일 오후 대전 서구 KT대전인재개발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한 당원이 후보자들의 선거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다. 2021.6.4/뉴스1 © News1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사에서 야(野) 성향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지금처럼 간절했던 적이 있었을까.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 비율이 다른 정권 때에 비해 많다거나 적다거나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어느 정부 때나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있었지만, 그 간절함 정도가 지금만큼 절절한 때는 없었다는 뜻이다.

 

호남민심이 노무현 등 영남후보를 택한 것을 놓고 ‘전략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데, 지금 보수 민심의 움직임은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메뉴판의 옵션들 중 선택하는 게 아니라, 식당 자체를 새로 만들자는 수준이다.

 

국민의힘 대표경선에 몰아친 바람을 ‘이준석 열풍’이라 부르는 건 정확하지 않다. 이준석은 바람을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한 바람개비일 뿐이다. 정권교체 열망이 픽업해 등에 태운 객체인 것이다.

집권세력의 행태에 분노한 수많은 모래알들은 정권교체라는 목적지로 달려갈 방법이 없어 절망했다. 그러던 중 윤석열이라는 뜻밖의 엔진이 나타났다. 그러나 엔진을 장착할 열차는 삐걱대고 냄새나는 완행열차고, 기관실과 객석은 기득권 정치인들이 차지한 채 술판과 고스톱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열차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중도층과 젊은이에게 함께 타고 가자고 권유할 수 없다”며 모래알들이 이심전심 의기투합했고,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세대교체라는 판단 아래 청년후보를 택했다.그중 가장 지명도가 높은 게 이준석이었다. 초선 김웅이 첫 테이프를 끊으며 선수(選數)의 터부를 깨뜨렸고, 실력파 윤희숙 등이 ‘초짜’에 대한 신뢰를 보강해줬다.세대교체 역시 중요한 목표며 성취지만, 많은 이들에게 세대교체는 변화를 확실히 보여줄 수단의 의미가 컸다.

 

이런 거대한 민심의 태풍 앞에서 노회한 정치공학자들, 중진 정치인들의 셈법과 전술은 추풍낙엽이 됐다. 중진들은 영남차별론, 계파론, 음모론 등을 잇달아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의 뇌구조가 얼마나 낡은 시대에 갇혀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며, 스스로 퇴장의 문을 열었다.이른바 제3지대론도 힘이 빠지게 됐다. 이는 국민의힘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표현대로 “아사리판” 구태에서 못 벗어나는 걸 전제로 유효한 것이었다. 그런데 민심의 태풍이 시간표상 국민의힘 대표경선에 가장 먼저 닥쳤고, 그 강도가 정치공학자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버렸다.윤석열 현상에 대해 여당은 “언론이 만든 허상”이라 비난하고, 야권 내에서도 정권 실정(失政)의 반사광(光)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윤석열은 아직 검증된 게 없지만, 정권의 총공격에 굽히지 않고 180 대 1의 싸움을 버텨내, 결과적으로 ‘조국 승계’라는 친문진영의 환상적 구도를 좌절시키고 집권세력의 허울을 벗겨냈다는 사실만을 놓고 봐도 윤석열 현상을 단순 반사광이나 허상으로 치부하는 건 비논리적 자기 위안에 그칠 수 있다.양심과 법리를 지킨 일선 판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창출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런 민심의 태풍이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한 답은 지난주 검찰 인사에서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후안무치·안면몰수라는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권은 대놓고 검찰 장악 의도를 드러냈다. 말 안 듣는 시장통 점포들을 부수고 돌아온 조폭들이 중인환시리에 논공행상을 벌이고 알짜 업소와 길목에 심복들을 심어놓는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보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집권세력이 검찰 문제 등 자신들의 안위가 걸린 사안에 대해 논의할 때 5공 시절 관계기관대책회의처럼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몇몇 정권 실세 실무진이 고집을 피우면 다른 관련 기관들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력 있는 브레인들이 모여 진보진영과 집권당의 장기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다면 이런 악수(惡手)를 거듭할 리가 없다.

 

34년 전 6월항쟁 당시 많은 국민은 간절한 마음으로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갈망했다.

 

어렵게 민주화를 이룬 지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상당수 국민이 민주주의와 법치의 훼손을 걱정하며 정권교체를 갈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권을 내놓은 후의 배고픔에 대한 ‘기억’은 문재인 정권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있고, 그만큼 더 악착같게 만들 것이다.

 

야당의 기관사가 바뀌고 엔진을 새로 달아도 선로는 결코 평탄치 않을 것이다. 새 기관사는 민심이 변화의 도구로써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그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내비게이션은 환골탈태하라는 민심의 명령이다.

 

06-25 더 간교해질 대선판… 소통 리더십 없인 못 헤쳐간다

더 저열해질 네거티브전 예고한 尹파일 소동

서툰 행보로 빈틈 보이자 바로 찌르고 들어온 것

檢총장 시절과 대통령 후보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달라

공감·소통 능력 배가하고, 주변 인재층 두텁게 못하면

순식간에 추풍낙엽될 수 있는게 대선판

 ‘윤석열 파일 소동’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우선 이슈화 과정 자체가 기존 방식과 다르다.

 

정치평론가라는 인사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일은 무척 힘들겠다” “방어는 어렵겠다” 등의 표현을 써서 파일에 담긴 비리 의혹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처럼 암시했다.

 

“저는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양심상” 같은 조미료를 통해 자신의 결론이 내부 양심고발자의 간증처럼 순수하고 객관적인 것인 양 포장했다.

 그러면서 판단 근거는 밝히지 않고,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표현을 넣어서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까지 궁리했다.

 

우선 주목할 점은 이런 식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폭로가 가능한 미디어 환경이다. 누구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SNS에 띄우면 포털뉴스 상위를 차지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네거티브 행태가 얼마나 경박하고 돌출적이며 비열한 수준으로 횡행할지를 예고해준다.

 

문제의 파일 출처로 홍준표 의원을 지목한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발언은 그간 여의도에 떠돌던 소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같으면 음습한 소문의 저수지에 잠겨 있을 내용을 서슴없이 집권당 대표가 공론화시키는 ‘데스킹 부재’의 시대다.

 

정치평론가가 어떤 의도, 배경에서 글을 올렸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①개인의 ‘충정+정치 성향’ ②야권 내부 윤석열 경쟁자들의 이심전심 ③윤석열을 때려서 밀당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당 내부 교감 ④여권의 기획 등 네 가지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아마도 ①+②+③이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정답이 어느 것이든 근본적인 원인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스텝이 꼬이면서 허점을 보였다는 점이다.

 

총장 사임 후 많은 국민은 공부해서 집권 구상을 가다듬고 나서겠다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공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행보가 서툴다.

 

특히 열흘 만의 대변인 경질은 사람 쓰는 능력에 대한 우려를 자초했다. 방향성에 대한 혼선은 정치를 잘 모르는 아마추어들에게 둘러싸여 팔랑귀 증상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날파리처럼 모여드는 인사들의 옥석을 제대로 가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주 전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직후 열흘간은 황금의 시간이었다. 만약 바로 이준석을 만나 “국민의 변화·개혁 열망을 이 대표 당선에서 실감한다. 30대 당 대표는 보수의 큰 자산이다. 정치를 하게 된다면 많은 걸 배우고 많은 걸 함께하고 싶다”는 식으로 끌어안았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하지만 윤석열은 여태 총장 스타일로 소통한다. 조직의 리더는 원칙을 지키며 옳은 메시지를 내리면 됐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되는 커뮤니케이션 코드는 완전히 다르다. 얼굴 비치기 식 만남이 아니라 진지하게 경청하고 토론하고 비전과 대안을 소상히 밝히는 일을 매일매일 해나가며, 그 과정에서 공감·소통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윤석열은 외연 확장 후 입당이나 막판 단일화를 구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명심해야 할 것은 이제는 후보를 결정해가는 과정 자체가 더 중시되는 시대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는 정권교체라는 목표 달성 못잖게 공정하고 공개적인 민주적 참여의 과정이 준수되기를 원한다. 선거에 임박해 밀실 협상으로 단일화하는 방식으론 감동을 못 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에 비해 외연확장력이 뒤질 것으로 여겨졌던 자당 후보(오세훈)의 압승, 이준석 돌풍, 당 지지율 상승 등을 보면서, “윤석열이 아니어도 우리끼리도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자만심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스멀스멀 생겨나고 있다. 이번 파일 소동은 그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툭 찔러보기식 행동이 나온 것이다.

 

정권교체를 간절히 열망하는 국민들로선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후보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당과 시너지를 내면서 미래 구상을 다듬어가기에도 시간이 촉박하다.

 

정권의 네거티브 공세는 갈수록 저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수십만 좌파이권 네트워크 수혜자들이 목숨 걸린 듯 달려들 것이다. 윤 전총장은 당당히 검증에 임해야한다. 파일의 출처가 당 밖이든 당내이든 검증을 피해갈 왕도는 없다. 공작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해서 내용 자체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일을 거부해선 안된다.

 

최근 김종인 등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거론하며 차기 대통령 2년 임기 후 내각제 개헌을 얘기하는데, 이런 풍선 띄우기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집권세력 내 ‘정치9단’들도 대선 판세가 불리해지자 비슷한 시나리오를 설계한 바 있다. 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내각제 선호가 많고, 친문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심판(보복)받을 우려가 훨씬 적다는 점에서 환영할 것이다.

 

윤석열의 진짜 위기는 파일 검증이 아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간교한 움직임들이 물밑에서 일 것이다. 소통과 공감 능력을 배가하고, 사심 없고 내공 있는 인재들을 널리 구해 주변을 두텁게 채우는 노력을 소홀히 하면 아무리 지지율이 높은 후보라도 순식간에 추풍낙엽의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게 대선판이다.

 

07-09 ‘점령군’ 논란, 비겁한 변명 말고 역사관 당당히 밝히라

이재명, “美 포고문에 있으니 점령군”식 해명 말고

실질적으로 점령세력이었다 생각하는지 밝혀야

대선 후보 역사관은 정책방향 가늠할 핵심 지표

주요 후보 되면 누구나 한미동맹 호국보훈 강조

돌출 발언과 과거기록 통해 본심 철저히 검증해야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언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자 좌파진영이 들고나온 반격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점령군 표현은 미군 포고령에도 나오는 ‘팩트’인데 뭐가 문제냐는 주장이다.

 

둘째는 이런 걸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철 지난 색깔론’이라는 주장이다.

 

첫 주장부터 따져보자.

 

이 지사는 “미군 스스로 포고령에서 ‘점령군’이라고 표현했다”며 “역사지식 부재”라고 역공한다. 즉 점령군이라는 표현은 기술적이고 학술적인 차원에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인데, 당당하지 못한 대응이다.

 그의 발언은 미 군정기 미군의 법적·제도적 지위에 대한 학술회의에서 나온 게 아니다. 이 지사도 그런 기준으로 표현을 고른 게 아닐 것이다.

 

만약 실질적 내용 평가를 배제한 채 공식적·형식적 지위만을 기준 삼는다면 구한말 일본공관 경비, 갑오농민전쟁 진압 지원 등의 구실로 한반도에 들어와 침탈한 일본군을 침략군, 제국주의 점령군이 아니라 경비군, 지원군으로 불러줄 것인가.

 

우리 사회의 상식과 중심적 표현으로는 1945~1948년을 미 군정기라 표현한다.

 

이 지사가 ‘자주독립 민족국가 수립의 염원을 짓밟은 외세(미군)의 점령’을 비판하려는 취지에서 점령군 표현을 했다면 그런 생각을 명확히 밝히는 게 당당한 자세다.

 

그런데 이 지사는 미 군정기의 미군을 실질적으로도 점령세력으로 보는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주장을 밀고 나가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더 일관성 있다.

다만 그 일관성이 무지와 편견, 균형감각 상실의 산물이라는 점이 문제다.

 

저명 사학자인 노먼 네이마크 미 스탠퍼드대 교수의 저서 ‘The Russians In Germany’(하버드대 출판부·1995년)에는 소련군이 1945~1949년 동독 등 점령지에서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당시 스탈린은 소련 군인들의 동구권 점령지에서의 만행에 대해 “장기간 전쟁을 치르며 죽을 고비를 넘긴 우리 군인들이 좀 그런다해서 뭐 그리 대수냐”는 식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1945년 8월부터 5개월간 황해도 평안남북도에서 소련군의 행태를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도 우드로윌슨센터가 발굴해 공개했다. 보고서는 “우리 부대가 배치된 어디서나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가 만연해 있다”고 적고 있다.

 

필자가 최근 읽은 함경남도 북청 소작농 출신 월남민의 자서전 대목이다.

 

“우리 고장에는 그해 9월 초에 처음으로 소련군이 들어왔다. 미국산 G.M.C. 군용트럭을 타고 다니는 소련군을 보니 난생 처음 보는 서양사람인데다 최전방 선발대여서인지는 몰라도 무척 지저분하고 무서워 보였다. 소련 군인들은 ‘흘래발’이란 커다란 식빵 같은 것을 갖고 다니면서, 잘 때는 그것을 베개 삼아 베고 자고 식사 때는 뜯어 먹었으며, 항상 해바라기씨를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니면서 까먹는데, 그들이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솜씨는 참새가 곡식을 까먹는 기술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들은 미개하고 아주 난폭했다. 부녀자들을 보면 무조건 끌고 가서 욕을 보이기가 일쑤여서 그들이 나타나면 부녀자들을 숨기느라 야단들이였으며, 행인들의 손목시계도 다짜고짜 뺏어 팔목과 팔뚝에 주렁주렁 차고 다녔다…” (이학섭 저 ‘발자취’)

 

점령군 발언이 논쟁거리가 되자 좌파진영은 “색깔론”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후보의 현대사 인식 검증은 색깔론이나 퇴행적인 논쟁이 아니다.

 

대선 후보가 현대사를 어떻게 보는지는 집권 시 어떤 정책을 펼칠지의 가늠자다. 특히 한국에서의 반미 문제는 종교나 수탈관계 논쟁에서 빚어지는 중동이나 중남미의 반미와 달리 이념적 성향과 밀접히 연관된 문제다.

 

집권자의 이념 성향에 따라 외교·경제·사회정책은 물론 교과서 내용과 학교 시스템까지 바뀌는 게 우리 사회다. 이념적 스탠스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지표가 현대사와 미국·북한에 대한 인식이다.

 

그런데 어느 후보든 당선권을 넘보는 위치에 오르면 자신의 생각은 숨긴 채 공약집과 TV토론, 연설 등에선 한미동맹과 호국보훈을 강조한다. 다들 현충원도 참배한다. 평소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해온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이들이 6·25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대해, 3만6000여 젊은이의 목숨을 바친 미국의 참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면 6·25 내전설·남침유도설·통일전쟁 등의 주장이 횡행하며 중고교생들에게 전파되고, 중국이 노골적으로 항미원조를 찬양하고 전쟁진실을 왜곡하는데도 왜 침묵만 하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때로 본심은 준비 없이 툭 던져지는 말이나 당선권 후보가 되기 이전의 기록들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국민은 후보의 역사관을 끊임없이 묻고 검증해야 하며, 후보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한다. 투표일까지 가면 뒤에 숨으려하는 건 당당하지 못하다.

 

대선은 정부라는 거대한 논에 어느 저수지의 물을 댈지를 정하는 일이다. 선거 때는 중도 온건을 강조하지만 막상 집권하면 수문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극단으로까지 활짝 열리고, 진영 내에서도 가장 과격한 인사들이 수많은 자리를 점령해 역사를 재단하고 사회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을 우리는 과거에는 물론 지금도 혹독하게 겪고 있지 않은가.

 

07-23 임기말 40%대 지지율, 자랑거리 아니라 부끄러운 거다

文 높은 지지율, 지지세력 영합 진영정치와 민노총 등 좌파 네트워크 팽창의 결과물
국가 미래 위해 지지층 반발 무릅쓴 DJ, 노무현의 임기말 바닥 지지율이 더 돋보여

 문재인 정권 들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최근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 최근 보름간 사례 몇 개만 추려봤다.

 

#사례 ① KDI(한국개발연구원)가 6, 7일 대규모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주제는 ‘문재인 정부 4년의 여정’인데 세션 제목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세션 1-한국판 뉴딜과 ‘미래를 여는 정부’ △2-포용사회와 ‘복지를 확장한 정부’ △3-공정사회와 ‘권력을 개혁한 정부’ △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평화를 유지한 정부’.


복지 개혁 평화 등의 과제들이 다 이뤄졌다고 결론을 지어버린 셈인데, 낯 뜨겁지 않았을까? 설령 문 정부가 그런 업적을 이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를 제목으로 붙인다는 것은 정상적인 염치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국가 최고 싱크탱크 두뇌들의 판단력이 흐려진 걸까?

 

#사례 ② 문 대통령은 20일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군 당국만 질책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유체이탈 화법에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는 판단을 못할 정도로 청와대가 정무 감각을 잃은 걸까?

 #사례 ③ 정부와 경찰은 역시나 민노총 집회에 이중잣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보수단체나 자영업자 집회 봉쇄와 극명히 대비될 걸 모를 정도로 경찰 수뇌부가 우둔할 걸까?

 

 서로 무관해 보이는 세 사례를 들여다보면 관통하는 키워드가 보인다.


즉 ‘오로지 지지 세력에만 집중하는 진영정치’의 파생물이라는 점이다. 지지 세력만을 염두에 둔 채, 그들의 머릿속에 ‘성공한 정부’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니 안면몰수하고 용비어천가를 불러댈 수 있다. ‘성공 정권’ 스토리라인의 핵심 소재가 방역이므로 사과는 안 한다. 민노총 같은 핵심 고객을 화나게 할 행동도 결코 안 된다.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는 임기 말 40%대 지지율의 비밀도 풀린다. 이는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 가능하다. 첫째는 지지 세력에 영합해온 진영정치의 효과이고, 둘째는 한국 사회 구성의 변화 덕분이다.


진보좌파 네트워크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다. 민노총은 2016년 65만9000명에서 2019년 105만 명을 넘어섰다. 전교조를 비롯해 거대 노조들의 조직력은 2000년대 초반을 가내수공업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강화됐다. 

 
시민·민주 등의 수식어를 붙인 단체도 급팽창했다. 서울의 경우 2016~2020년 3339곳의 단체가 공모사업 수주, 위탁운영 등 다양한 외피로 7111억 원의 예산을 박원순 서울시로부터 지원받았다(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실 자료). 가족까지 합치면 ‘대깨좌’(머리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좌파정권 지지) 고정표가 수백만은 될 것이다.


집권세력은 이들만을 대상으로 ‘허구의 성(城)’ 쌓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가공의 시나리오 속에서는 소주성도, 경제도, 외교도 모두 성공작이며, 조국도 한명숙도 김경수도 모두 결백한 희생자다. 지지자들만 그렇게 믿으면 된다.


이를 위해 통계를 화장(化粧)하고, 별자리 잇듯이 유리한 팩트만 갖다 쓴다. 미온적인 통계청장을 바꿔버리고, 정권비리를 파헤치려 한 검사들은 죄다 좌천시킨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 영역의 자율성이 존중돼 왔던 보루 기관들마저 다 망가뜨린다.


‘성공한 정권’ 시나리오의 당초 핵심 소재는 남북 관계였으나 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엉켜버려 이제 남은 유일한 소재는 K방역이다. 청와대가 4차 대감염을 불러온 판단 미스. 백신 부족, 청해부대 집단감염 등 그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오류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의 성공과 안녕이 지지세력 결집에 달려 있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립무원의 상태에 처했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대중은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으로 IMF 이후 기업 경쟁력 회복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를 밀어붙였다.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통령이기에 국가와 미래를 택했다.

 

문 정권 앞에도 국민연금, 노동시장, 면세 축소, 호봉제 개혁 등 비(非)인기 개혁 과제들이 수두룩했지만 다 팽개쳤다. 남은 임기에도 돈 풀기와 선거 승리용 인프라 구축에만 전념할 태세다. 정연주 씨를 방심위원장으로 밀어붙이고,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을 조기 교체하려는 것도 그런 일환으로 읽힌다.


통합 대신 지지세력만 바라보고, 나라 곳간과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들을 망가뜨린다면 이는 통치도 정치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 한들 역사에선 패자가 될 뿐이다.

 

08-06 진보 모독하는 저질 좌파… 어떻게 생겨나 어디로 가나

‘쥴리 벽화’까지 치달은 저질 행태 비롯해
이념과 정치에 마취돼 저지르는 폭력들
진정한 자기희생 없이 민중·진보 내세워온
文정권 구성원들 속성과 국정 독주가 잉태

 지난주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를 봤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된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필사의 탈출을 하는 스토리다. 영화에는 무장세력들이 총기를 난사하며 힘자랑을 해대는 장면이 숱하게 등장했다.

 

광기와 폭력성의 극치를 보다 보니 크메르루주, 중국 홍위병, 6·25전쟁 당시 완장들의 행태가 연상됐다. 이념의 이름으로 야만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현대사에서 낯선 장면이 아니다.

 

극장을 나와 뉴스를 검색하니 ‘쥴리 벽화’ 소식이 줄을 이었다. 쥴리 벽화도 적(敵)을 망가뜨리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 야만성의 산물이다.

 

과거엔 좌든 우든 금도는 있었다. 과거 선거 때도 후보 배우자를 놓고 누구와 동거했다느니 하는 등의 소문이 돌았지만, 그건 하수도에 해당되는 ‘찌라시’의 세계에 국한됐다.

 

 그러나 요즘 일부 세력에겐 금도가 없다. 그 결과 하수도가 상수도로 역류해 범람한다. 가짜뉴스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부터 천착해야 하는데,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여당은 유튜브와 1인 미디어는 적용 대상에서 슬그머니 빼버렸다.

 

 한국의 권력 주변 좌파집단은 어쩌다 이렇게 저질로 전락한 것일까.

 

첫째, 친문세력 내 운동권 출신들은 진정한 진보 가치의 맥을 이어온 주역이라 보기 어렵다. 80년대 당시 학생운동에 참여한 이들은 독재정권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따듯한 마음의 청년들이었다. 그중에는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들어가 무명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 학생운동의 실질적 지휘부는 구국학생연맹 같은 지하조직이었다. 구학련 총책이었던 서울대생 김영환은 수년 후인 90년대 초 북한 잠수정을 타고 평양에 가 김일성을 만난 뒤 주체사상의 몽상에서 깨어나며 북한인권 운동가로 거듭 태어났다.


반면 현재 학생운동권 출신의 대표처럼 인식된 정치인 중 상당수는 총학생회 같은 공개조직에서 활동하다 투옥 생활을 겪은 뒤 상당수는 군 면제를 받고 현실 정치인의 휘하로 들어갔다.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이는 송영길 대표 등 소수에 불과하다. 조국 교수에 대해선 김영환은 “운동권 축에도 못 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아랫세대인 40대 좌파 인사들은 반독재투쟁이나 노동현장은 거치지 않은 세대다. 그들에게 진보 활동은 자기희생이나 헌신과 직결된 게 아니다. 기득권을 내놓는 손해를 볼 필요도 없이, 일상에선 기득권층으로서의 특혜는 다 누리면서 공개적으로는 약자의 대변자 행세를 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기다.


이런 이들의 상당수는 신독(愼獨), 가난한 이웃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오는 검소함과 절제 등 과거 진정한 진보인사들이 실천했던 생활 특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암울했던 시절 기득권을 버린 채 헌신했고, 그 대가로 어떤 권력이나 명예, 보상도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의 열정과 겸손을 알기나 할까.


저들이 저열해진 두 번째 원인은 문 정권의 행태다.


반대론을 설득하고 내용을 보완하는 과정 없이 독주하다 보니 반대론자들이 승복하지 못하는 대립 구조가 고착됐다. ‘의로운 목적’을 위해선 절차와 수단의 정당성은 양보할 수 있다‘는 운동권적 사고(思考)의 발현이다.


그 결과 정권을 증오하며 정권교체가 필생의 소원인 국민이 늘어나고, 여기에 맞서 정권 지지자들은 부족전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원시인들처럼 그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는 악순환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을 진보는커녕 좌파라 부르는 것도 적절치 않다. 좌든 우든 가치관을 지향한다면 제도와 질서의 불합리한 것들을 유불리와 상관없이 고쳐야 하는데 정반대다.


단적인 예로 나팔수 방송, 검찰권 남용, 코드 낙하산 인사 같은 구시대의 폐습들은 이 정부 들어 더 적극 활용됐다. 그러다 나중에 그 칼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으면 뒤늦게 개혁을 부르짖는데 대표적인 예가 검찰개혁이다.


이들의 머릿속엔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돈과 선전선동술을 잘만 활용하면 권력을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각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그 환각이 온갖 무리수로 발현되고 있으며 강도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민도가 낮은 제3세계와 달리 시민층이 두텁게 발달한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궤도를 이탈한 권력은 결코 영속할 수 없다. ’차벨스(괴벨스+차베스)‘의 할아버지가 나선다 해도 성숙한 민의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평화적·단계적 진화‘가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단절 없이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진화론의 새로운 이론인 단속평형이론(斷續平衡理論·Punctuated Equilibrium)처럼 각 단계마다 마침표를 찍듯이, 정권마다 격렬한 단절과 부정(否定)이 이뤄지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 결과 광신적 지지·반대 집단이 더 양산되고, 심리적 내전이 지속될 것 같아 안타깝다.

 

08-20 대통령 되겠다면서 사법부 부정하는 희대의 자가당착 

與 대선주자들의 김경수·정경심 판결 비난은
민주공화국 핵심 가치와 법치 부정에 해당
잘못인정·사과 모르는 文정권 DNA 계승할 건가

 이달 11일 정경심 항소심 유죄 판결은 어쩌면 여권 대선주자들에겐 호재가 될 수도 있었다.

 

1, 2심 일관된 법원 판결을 핑계 겸 무기 삼아 마침내 조국과 손절하고, 2년 가까이 허우적대 온 억지와 궤변의 내로남불 늪에서 빠져나오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나 여권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방향이 틀린 정도가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친(親)조국 의원들의 사법부 비난이야 예상했지만, 이재명 이낙연 등 주요 대선후보들이 나서서 판결을 사실상 부정한 건 놀라운 일이었다.

 

민주공화국의 리더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 공화제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막나갔던 독재 정권 때에도 “노코멘트”라며 불편한 심사를 표출하는 정도였지, 대놓고 판결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설령 본심이 아니라 강경 친문세력을 의식해 마음에 없는 발언을 했다 해도 심각한 문제다. 정략적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와 공동체의 핵심 가치와 객관적 사실마저 무시하고 억지를 강변할 수 있는 인성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국 가족의 비리라는 엄연한 사실에 저항하는 논리는 의외로 단순하고 조악하다. 요약하면 ①조국 가족은 전무후무한 방대한 수사에 탈탈 털렸다 ②수사의 핵심은 사모펀드였는데 무죄가 되고 별건만 유죄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①을 강변하기 위해 수많은 논리가 동원돼 왔다. 가장 최신판은 이재명 캠프 대변인이 항소심 판결 직후 “12·12 군사반란 사건에 투입된 검사보다 훨씬 많은 검사를 (조국 수사에) 투입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 논평을 듣고 필자도 ‘엄청난 규모의 검사가 투입됐었구나’라고 생각했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논설실장으로 매일 조국 뉴스를 다뤘지만 검사 숫자 같은 디테일은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기록을 찾아봤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가 YTN 연합뉴스 등의 확인 보도를 종합한 바에 따르면 조국 수사 투입 검사는 최소 15명으로 추산된다(15~19명).


1995년 12·12 수사 때는 14명, 2005년 안기부 도청 사건에는 14명, 2019년 김학의 전 차관 수사에는 13명의 검사가 투입됐다. 1995년 말 12·12 수사는 반란의 실체를 규명하는 첫 수사가 아니라 1994년 기소유예 처분된 사건을 다시 수사한 보강수사였다.


조국 사건은 안기부 도청 사건보다는 최소 1명, 김학의 재수사보다는 2명 이상 많은 검사가 투입된 것인데, 조국 의혹은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된 사건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숫자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당시 논문 공동저자, 표창장 조작, 장학금 수령,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 숱한 의혹들이 쏟아졌다. 일선 기자들의 검증 취재와 관련자들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고 고소 고발된 숱한 의혹들 가운데 검찰이 한두 개만 추려 부분 수사만 벌였다면 봐주기, 덮어버리기 작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더구나 조국은 당시 정권 내 비중이 단순 장관 후보자를 넘어서는 위치였다. 만약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조국 같은 위치를 점하는 이가 있어 장관에 임명됐는데 언론검증이 시작되자마자 평소 언행과 정반대의 다종다기한 비리 의혹이 쏟아졌다고 가정하자. 검찰이 침묵하거나 의혹 한두 개만 소극적으로 손댄다면 당시 야당(민주당)은 가만히 있었을까.


②번 주장, 즉 수사의 본건은 사모펀드였고 다른 비리는 별건이었다는 주장도 해괴한 논리다. 조국 사태 당시 언론이나 검찰, 국민 누구도 입시비리 의혹을 곁가지라고 여긴 적이 없다. 게다가 사모펀드 관련 혐의 11건 중 무려 6건에 대해 유죄가 나왔는데 수사가 부당하고 무의미했다는 건가.


대선주자들의 태도는 ‘잘못 인정, 사과, 반성이 존재하지 않는 문재인 정권 DNA’의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한번 밀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지지층을 묶어온 허구의 교리 기둥이 무너진다고 여긴다.


아무리 불리한 사건이 닥쳐도 맹신적 지지자들의 신념을 다져줄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주입시키면 결집력이 깨지지 않고 ‘성공한 정권’ 신화가 지속 가능하리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신화는 유지될 수 없다. 야당일 땐 억지스러운 주장이어도 서사구조만 완벽히 만들어내면 지속 가능했지만 집권세력이 되면 다르다. 결과가 뒤따르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자신들이 내세운 것의 결과에 책임지는 경험이나 훈련 없이 권력을 잡은 이들이다. 인사권을 휘둘러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내는 전술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정치인의 기본 덕목인 객관성과 책임성은 결여된 집단인 것이다. 그런 이들의 마음속에 권력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뒤섞이니, 객관적 사실에 눈감은 채 범죄를 비호하고 심판을 향한 삿대질을 계속 해대는 것이다.

 

09-03 퇴임 후 안전판 집착증과 좌파 알박기

서울시장 바뀌었지만 TBS 김어준 못 바꿔
박원순 시절 구축한 좌파권력 빗장 탓
KBS MBC 연합 YTN의 새 경영진 인선도
임기 끝나가는 文정권 수중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한 지 5개월이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김어준은 서울시민 세금 375억 원(2021년 기준·전체 예산의 72%)을 지원받는 교통방송에서 황금시간대 마이크를 쥐고 있다.

 

“김어준이 무슨 궤변을 늘어놓든 그건 자유다. 다만 민영방송에 가서 해라. 당신들 주장대로 그렇게 경쟁력이 있다면 민영방송들이 앞다퉈 모셔갈 것 아닌가. 왜 내 세금이 특정 진영의 프로파간다 자금으로 쓰여야 하느냐”는 게 오세훈을 지지한 시민들(최종 득표율 57.5%)의 생각일 것이다.


물론 그런 비판적인 생각과 동시에 김어준류의 방송이 결국은 종기가 썩어가는 걸 잊게 해주는 마취제 역할을 해 좌파진영의 자정 능력을 상실시키는 술잔 속의 달콤한 독약이 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어차피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세뇌와 자기기만의 상호작용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이 들며 눈을 돌려버리고 마는 시민도 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유불리를 떠나 공영방송이 특정 이념진영 프로파간다 도구로 공개적으로 이용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그런 불공정에 분노한 시민들의 투표로 시(市)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정의와 상식에 부합하는 일은 아니다.

 

 아무리 김어준 애청자라 할지라도, 박원순 이름에 이명박 오세훈을, 김어준 이름에 민경욱 강용석 전광훈 등을 넣어서 역지사지해보면, 지금 상황의 불합리성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의 지속은 오세훈의 무능과 상상력 부족의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좌파권력의 알박기 구조 때문에 새 시장이 움치고 뛸 여지가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교통방송 재단이사회는 박원순 시장 시절 구성됐다. 박 시장이 2020년 2월 임명한 교통방송 대표는 임기가 2023년 2월까지 남아 있다.


게다가 올 1월 초 당시 시장 권한대행이 임기 3년의 재단 새 이사장을 임명해 버렸다. 새 시장 선출이 3개월밖에 안 남았으므로 기다리는 게 상식인데 이를 깼다. 시장대행이 좌파진영에 충성하기 위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이사회가 지난해부터 채근한 결과로 해석된다.


시장에게 대표나 이사장 해임권한이 있지만 임원추천위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추천위 7석 중 시의회와 재단이사회가 5명을 임명하므로 현 인적 구성상 불가능하다. 권력 교체에 대비해 미리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다.


물론 그들은 교통방송은 산하기관이 아니라며 방송독립성을 주장하지만, 한쪽 이념 진영의 인사들이 정치권력의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공영 전파를 이념의 도구로 전락시켜 놓았으면서 방송독립을 내세우는 건 염치가 없다.


상식과 순리를 짓밟는 행태지만 좌파진영에겐 전범(典範) 같은 방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주 3년 임기의 KBS 이사 11명을 추천했다. 새 이사회가 뽑을 새 사장은 12월부터 3년 임기가 시작된다.


MBC도 임기 3년의 방문진 이사진이 새로 선임됐는데 친여 성향이 오히려 더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제 사장의 임기가 2023년 2월까지인데 후임 사장도 이번에 선임된 이사들이 뽑게 된다.


연합뉴스는 1일 임기 3년의 새 사장이 선임됐다. YTN도 이명박 정부 때 해직됐다 복직한 기자 출신이 임기 3년의 사장에 선임돼 이달 중순 취임한다.


이런 선출과정이 형식상은 재단, 이사회 등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청와대나 여권실세들의 의중이 관철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대선까지 반년밖에 안 남았는데, 거의 모든 공영방송·통신사 경영진을 문재인 정권이 최소 3년 찜해 놓는 셈이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문 대통령이 야당이던 시절 제출해 놓고도 막상 정권을 잡자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면해 버렸다.


정권의 재임 중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단죄는 ‘언론의 추적 취재를 통한 의혹제기→검찰수사’ 순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문 정권이 애완견 검사들을 요직에 박아넣는 데 성공함으로써 검찰에서 권력비리 수사 소식은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이제 공영방송 경영진을 확실한 자기편으로 포진시키고, 언론징벌법의 힘으로 민영 언론들의 권력비리 추적·의혹 제기 기능까지 위축시켜 버리면, 퇴임 후를 안전가옥에서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친문들의 계산일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실력자들은 물론이고, 눈먼 돈과 사업권을 따내온 자칭 진보인사들, 노조간부들, 영세한 택배 대리점주를 자살로 몰아넣을 만큼 떼법 권력을 휘둘러온 이들이 모두 정권 종료를 걱정하고 있다. 이들 모두의 집단적 안전을 위해 검찰 언론 등 핵심 포스트들에 알박기를 가속화할 것이다.


국회의장에게 GSGG를 날린 초선의원의 행동은 마지막 안전판 참호를 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강박감을, “GSGG는 Governer…” 운운하는 변명은 지난해 봄 코로나와 황교안 등의 뻘짓 덕택에 어떤 수준의 인사들이 금배지를 달게 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단선적 사고방식은 언론중재법에 언론계가 반대하자 “파리 모기약 팔지 말라고 파리 모기들이 약국 앞에서 집단 항의 시위한다면 파리 모기를 편들어 줘야 하나”는 논리를 들이댄 정청래 의원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자신들이 만든 모기약이 정작 모기 잡는데 필요한 성분은 다 빠지고, 아내와 아이들의 호흡기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이 든 불량품이라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수준을 보면 기대난망이긴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임기제 자리를 놓고 온갖 비정상적 수단이 동원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문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이념적 스펙트럼이나 조직 내 스탠스에서 한쪽 극단에 서 있는 인사들 등용을 이젠 멈추고 중도적·중립적 인사를 선임해 누가 새 정권을 잡아도 계속 함께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대선과 퇴임 후를 겨냥해 자기편들을 알박는 인사를 계속한다면, 정치보복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퇴임 후는 더 위태로워질 것이다

 

09-17 野 대선주자들, 만고의 역적이 안 되려면

보수층 정권교체 열망 간절한데
尹은 스스로 점수 깎아먹고
洪은 본인 경쟁력 提高 대신 尹공격 몰두

 이번 대선만큼 국민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맞는 선거가 있었을까.

 

어느 대선이든 정권유지를 바라는 국민과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있지만, 이번엔 그 갈구의 심도가 과거 어느 선거와도 비교가 안될 만큼 절실한 것 같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국민들에게 이번 대선의 의미는 각별하다. 식민 치하의 연장이냐 독립이냐를 선거로 결정하는 나라가 있다고 상상해 볼 때, 혹독한 식민 통치에 치를 떨어온 피지배국 백성들이 선거에 임하는 절실함이 이 정도 되지 않을까(마찬가지로 문 정권 지지자들은 독립유지냐 식민치하 회귀냐를 선택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렇게 절실하기에 야권에 이렇다할 대선 후보감이 보이지 않던 지난해까지는 절망감이 그토록 컸고, 올 상반기엔 희망도 그만큼 부풀어 올랐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데는 윤석열의 공이 컸다. 올 초 모든 여론조사에서 여당 주자들을 압도하는 윤석열의 등장은 보수층이 무기력을 떨치는 동력이 되었고, 정권교체행 열차(黨)를 업그레이드하라는 국민명령, 즉 ‘이준석 현상’을 창출할만큼 열정적인 참여로 이어졌다.

 

 그러나 어느새 기대는 불안으로 바뀌고 있고, 윤석열을 지팡이 삼아 기운 냈던 이들이 윤석열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6월 29일 이후 윤석열의 지지율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정권의 네거티브가 큰 원인이지만, 그건 윤도 진작 예상했던 상수(常數)다.

 

지지자들의 더 큰 걱정은 윤석열이 밖에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스스로 점수를 깎아먹고, 본인만의 ‘장점’들에서 멀어져간다는 점이다.


그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 중 상당수는 좌파 특유의 꼬투리 잡아 비틀기의 탓도 있지만, 그렇게 쉽게 먹잇감을 제공하는 건 대중정치인에겐 부끄러운 일이다.


윤석열은 고시 준비 시절, 책 한 권을 읽으면 후배들을 앉혀놓고 몇 시간씩 ‘썰’을 풀 만큼 ‘지식 소화력’이 좋은 다변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선후보의 청중은 소줏집에서 다소 과한 비유나 부적확한 표현이 튀어나와도 다 감안하고 들으며 핵심을 소화해주고 감탄해주는 호의적인 후배들이 아니다.


다변가들은 세상사를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한다. 설령 사안의 핵심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주제를 놓고 대중에게 재미있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이를 간과한다.

 

후보 본인이 해야 할 말과 캠프 관계자의 몫을 구분 못 하다 보니, 검수완박에 맞선 ‘부패완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같은 특유의 간결했던 메시지는 사라졌다.


이런 마이너스 행보들은 캠프 내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소통 분위기가 사라진 탓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겸손 이미지를 강화하지 못하면 검사라는 직업적 배경이 겹쳐지면서 ‘평생 죄인만 다뤄온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라는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에 갇혀버릴 것이다.


이런 실점들에 추가해 ‘손준성 보냄 고발장’ 사건이 터졌다.


핵심은 윤석열의 개입 여부다. 집권세력은 “검찰 조직이 개입한 건 맞는데 윤석열의 지시 여부는 아직 물증을 찾고 있다”는 식으로 질질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손준성이 자발적으로 혼자서 그런 일을 벌였겠느냐’는 논리를 확산시킬 것이다. 공수처, 검찰은 계속 요란한 수사로 최대한 법석을 떨며 피의자, 범죄자 이미지를 확산시킬 것이다. 충성 지지층은 별 영향이 없을지라도, 온건 중도층에겐 두고두고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과 몇 퍼센트로 승부가 갈리는 선거다.


조작이든 윤의 지시든 신속하게 명명백백한 결론이 나와야 한다. 윤석열은 이 사건을 피해가려 해선 안 된다. 결백하다면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적극적 대응을 해야 한다.


홍준표는 중도 확장력을 넓히고 집권세력과 맞섬으로써 안정감과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윤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강경 친문세력 표에 매달려야 하는 여당 예선과 달리 야당 예선은 정권교체 경쟁력이 주요 판단 잣대임을 간과한 행태다.


누가 본선에 올라가든 야당 후보 앞에는 악재들이 예고돼 있다.


첫째, 집권세력의 시리즈식 네거티브 공세다. 예선 단계에선 다 쏟아내지 않고 본선에 올라오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총공세를 펼 것이다.


둘째는 정권의 막대한 돈 풀기다. 셋째는 정책과 비전을 내놓을 준비도 여건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넷째는 예선만 끝나면 여당 후보가 문재인 정권과의 교묘한 차별화로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강화해 정권교체 민심을 잠식할 것이다.


다섯째는 야당 후보가 약세를 보일수록 권력기관 공무원들이 180석을 가진 집권세력의 요구에 순응해 사냥개처럼 달려들 것이다.


물론 정권의 계산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야당 후보들의 전투력도 남다르다. 윤석열은 반기문 고건 등과 다르다. 윤석열이 2년간 혈혈단신으로 정권에 맞선 것은, 앞서의 식민 치하 선거 비유를 들자면, 혁혁한 독립투쟁 경력이나 마찬가지다. 홍준표도 사막에서 혼자 생존하며 물을 만들어 먹는 방법을 익힌 정치인이다.

 

백신만 제때 확보했으면 이미 상반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접종완료율을 기록했을 국민들에게 사죄는커녕, 세계에서 가장 공동체 참여의식이 높은 국민 덕분에 가능했던 1차 접종 속도를 마치 자신의 치적인 양 세계 1위라고 자랑하는 몰염치, 김만복의 선글라스 파동보다 더 고개를 젓게 만드는 국정원장… 불과 한 주 동안에만도 국민을 분노케 하는 일들이 이처럼 쏟아진다. 이런 한 주가 4년간 계속됐다.


지치고 절망한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야당 후보들은 모든 걸 던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피 흘리다 쓰러져 자양분이 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이전투구, 객관적 상황을 외면한 주관적 자기평가에 함몰돼 대사를 그르친다면, 개인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그토록 절실한 정권교체 열망을 짓밟은 만고의 역적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10-01 대선판 뒤흔들 사건, 애완견 檢·警에 맡겨둘 수 없는 이유

2002년 兵風 수사팀 김대업 조작 밝혀냈지만
친정권 檢간부들 방해로 발표 한 달 늦춰져
野, 곽상도 문제 빨리 결단 내리고
대장동 특검 도입에 명운 걸어야

 2002년 대선의 병풍(兵風)은 거짓 폭로가 나라의 진로를 바꿔놓은 사건이다. 희대의 사기꾼을 앞세운 공작이 관영방송, 좌파언론들의 광적인 보도를 등에 업고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 민주주의의 흑역사다.


며칠 전 필자는 당시 병풍 조작의 진상을 밝혀냈던 수사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증언을 들었다.

 

김대업의 폭로로 대선판이 출렁이던 2002년 여름 검찰은 8월 초 서울지검 특수1부에 병역비리수사팀을 구성했다. 수사팀은 한 달 반 만에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놀랍게도 김대업의 조작극이 드러났다.

 

그가 제시한 핵심 물증, 즉 이회창의 부인으로부터 아들 병역 면제 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받았다는 병무청 직원의 진술이 녹음된 테이프의 공장 출시 시기가 녹취가 이뤄졌다는 시점보다 훨씬 뒤였다.

 이를 포함해 김대업의 주장들은 대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팀장인 김경수 부부장검사는 수사 결과 발표를 건의했다. 그런데 박영관 특수1부장은 “미진하다. 아직 더 할 게 많다”며 거부했다. 김학재 대검 차장도 반대했다.

 

 대선(12월 19일)은 다가오는데 수사를 사실상 끝내고도 한 달가량을 더 끌다가 결국 ‘10월 25일 발표하되, 브리핑룸은 사용할 수 없고, 카메라 동원도 안 된다’는 조건이 붙은 타협안이 만들어졌다. 나라를 뒤흔든 사건의 수사 결과를 지검 3차장 사무실에서 티타임 형식으로 발표한 것이다. 김학재 차장, 박영관 부장은 목포고 출신으로 당시 김대중 정권의 검찰 파워맨으로 불렸다.


김대업의 조작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대선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고 병풍은 이미 이회창을 만신창이로 만든 뒤였다. 법원은 2004년 판결문에서 이회창의 지지율이 (김대업의 폭로로) 11% 빠졌다고 적시했다.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여당과 좌파진영은 보수정당의 압력에 굴복한 정치검찰, 기득권 수구 세력의 야합 프레임으로 몰고 가 진을 빼버렸다.


병풍이 조작이라는 사실이 국민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것은 2005년 대법원판결까지 나온 뒤였는데 이미 그를 의인(義人)으로 칭송했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나 된 시점이었다. 누가 김대업을 사주해 공작을 벌였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병풍 수사는 검찰이 여야 유불리와 관계없이 진실을 밝혀낸 수사로 평가받는데, 실제론 내부에서는 발표를 최대한 늦추려는 친정권 간부들의 마사지 압력이 횡행했던 것이다.


그래도 요즘 친정권 검사들의 진용·행태와 비교해 보면 애교로 여겨진다. 과거엔 검찰 내부 견제와 반발을 의식해 핵심 요직에 최소한의 안전판만 심어두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거의 모든 길목에 친정권 인사들을 포진시켰다.


정권교체를 악몽으로 여길 이런 간부들이 직업윤리에 투철한 일선 검사와 수사관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사안의 핵심을 흩뜨리는 등 장난을 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손준성 보냄 고발장’ 사건의 핵심은 윤석열 관련 여부를 신속히 밝혀내 국민이 명확히 판단하게 해주는 것인데, 시간만 질질 끌면서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려 할 수 있다.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은 희대의 특혜 구조가 설계된 과정의 전모다. 곽상도 아들 50억 원을 비롯해 부패 실상도 반드시 밝혀야 하지만, 본질은 고수익이 뻔히 예상되는 리스크가 거의 없는 사업에서 소수 지분의 민간업자들이 이익을 대부분 가져갈 수 있게 구조를 짠 사람, 묵인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이다.


도시개발법 제22조에 따라 개발공사가 100분의 50을 초과해 출자하면 사업에 필요한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 성남개발공사는 50%+1주를 출자했다. 토지 강제수용부터 인허가까지 다 해결해주는 원스톱 서비스 구조를 갖춘 것인데 성남개발공사는 확정 이익만 보장받고 나머지 이익은 화천대유(지분 0.9999%), 천화동인(6%)이 가져갈 수 있게 설계됐다.


하남, 안산, 의왕시의 경우 지분에 비례해 공공이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로 진행한 것과 대비된다. 사업비 1660억 원 규모였던 하남 풍산지구 아파트형 공장 사업의 경우 ‘사전확정수익 공공 우선 배정 후 초과 수익은 지분 비례보장’으로 설계됐다.


더구나 대장동은 노른자위라고 누구나 인정하던 요지다. 산간오지에 아파트를 짓는 도박성 높은 투자사업이 아니었다.


이 지사는 “민간업체가 다 가져갈 수익을 공영개발로 돌려 절반을 환수했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현관 비밀번호를 1234로 설정해 장롱 속 거액을 도둑맞은 가장이 “내가 사다놓은 금고 덕분에 금고 속 돈은 안 털렸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집권세력은 특혜 구조의 설계와 실행에 대해선 절차적으로 뚜렷한 위법은 찾아내지 못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거물급 인사들이 뇌물 혐의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요란하지만 단순한 뇌물사건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맞서 특검을 관철시켜야 할 야당은 지리멸렬하다. 장제원 곽상도 문제에 대한 구태의연한 대응은 특권·부패 세력 정당의 이미지를 다시 강화시키고 있다.

 

이준석 돌풍을 만들어준 국민이 염원했던 건 이런 모습이 아니다. 즉각 곽상도 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연루된 인사들이 더 나오면 나오는 즉시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당내의 부패·특권층 요소를 정리하는 인적 쇄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여야 유력 후보의 도덕성·윤리성이 걸린 핵심 사건들의 진실을 모른 채 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막으려면 특검 도입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10-15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고, 함께 단죄될 것

檢, 대장동 어떤 결론 내도 국민 수용 힘들어
유일한 해법 특검 외면하면
중대진실 모른 채 대통령 선택하게 만드는
국민주권 오염 정권으로 기록될 것

 대장동 게이트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려면 현 상황을 청와대와 친문 핵심 그룹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문재인 정권 핵심 그룹은 올봄 거액을 들여 심층면접 여론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결과는 여당의 누가 나가도 윤석열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로 나왔다. 유시민까지 대안으로 넣어봤지만 큰 차이의 패배였다. 대선은 어차피 어려우니 여당 후보가 누가 되든 큰 상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당권이라도 확실히 쥐자는 생각에서 4월 원내대표 선거 때 외연 확장 대신 친문 후보에게 표를 몰아 줬다.


그런데 윤석열이 정치 입문 후 실점만 거듭하는 걸 보며 이러면 대선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재명 대세론을 뒤집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화천대유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8월 31일 경기지역 인터넷 신문이었고 열흘 뒤 시사주간지가 크게 보도했다. 당시 필자가 만난 여론분석 전문가는 “너무 늦게 터졌다. 일주일만 일찍 터뜨렸어도…”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게 진행됐다. 이재명 후보가 15라운드에 휘청이다 종이 울려 공식 후보가 됐지만 퇴임 후 안전 보장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친문 핵심에게는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다.

 

청와대는 많은 대장동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수상한 돈 흐름을 포착해 경찰에 알린 게 4월 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3철’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측근이며, 2018년 이재명과 경기지사 공천을 놓고 맞붙었다.

 청와대는 대장동을 봉합한 채 대선에 임하면 너무 타격이 클 테고, 그렇다고 끝까지 파헤치다 여당 후보 낙마 위기가 오면 대혼돈이 벌어질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 딜레마에서 어정쩡한 메시지가 나왔는데, 일단은 빨리 매듭짓고 여기서 벗어나자는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 현 정권에 불리한 사안들을 파헤친 검사들을 무더기로 좌천시킨데서도 볼 수 있듯,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인사권 칼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게 좌파권력의 속성임을 일선 검사들도 알고 있다.


일정한 수준에서 대장동을 매듭지으면서 하루빨리 제3의 거대한 모멘텀을 찾는 게 청와대가 모색하는 해법일 것이다. 남북 관계 등의 카드를 동원하려 할 것이다. 이재명도 그런 해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 대통령 도움 없이는 대장동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당내 지지를 유지해 가기 어려운 처지다. 임기 말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역학 관계가 과거와 달라지고 퇴임 후 안전 보장 약속도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문-이 면담이 이뤄진다면 그런 수준에서 딜이 이뤄질 수 있다.


이는 문 대통령도 자칫 공멸하는 길이다. 대장동 게이트로 이재명 본인은 무능과 부패의 양쪽 덫 사이에 걸렸고, 주변에 포진했던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들의 수준도 드러났다. 정권이 대충 덮고 가려면 삼척동자의 눈에도 보이는 사건 본질을 호도해야 하는데, 이는 외연 확장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친문그룹이 후보 교체라는 극단적 상황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걸 알기에 이재명은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감으로 임하고 있다. 만약 후보 교체 상황까지 수사가 진행될 경우 정권은 윤석열 낙마도 함께 밀어붙일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고발 사주 의혹’도 결코 진상이 덮여서는 안 될 사안이다. 그런데 야권은 사즉생의 자세로 선거전에 임하고 있는지 지지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해법은 특검밖에 없다. 현 검찰을 통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놓는다 해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이 정말 결백하다면 특검이라는 도장을 통해 로켓을 얻게 될 것이다. 2014년 제정된 상설특검법을 적용하면 후보 추천 5일, 임명 3일, 준비 기간 20일 등 법이 허용한 최장 기한을 다 채울 만큼 느릿느릿 움직여도 28일 내에 본격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번 달 내에 본격 수사 착수가 가능하고 연내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명료한 정도(正道)를 외면한 채, 대충 봉합해서 진실이 미궁인 채로 대선을 치르게 만든다면, 문 대통령은 국민 선택권을 오염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실을 모른 채 치러진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반대편은 ‘가상 범죄자’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라는 임기 내내 갈가리 찢길 것이다.

 

11-12 동창과 배우자가 실세 되면 대선 필패한다

尹 캠프, 텃세로 전문가 놓치고
‘개 사과’ 사진 파동엔 배우자 관련설
실세들도 한결같이 구시대 강성이미지
자만과 親疎주의는 국민 열망 배신행위

 요즘 지지율만 보면 이재명 후보는 큰 위기고 윤석열 후보가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한 형국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론 반대다.

 

 이 후보는 내부적으로 불안했던 후보 지위를 공고히 하며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친문그룹은 후보교체 미련을 다 버린 듯하다.

 

그제 관훈토론에서 이 후보가 조건부 특검 수용을 들고나온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그동안 특검은 시간만 길게 끈다는 이유를 들며 반대하더니, 이젠 시간이 더 길게 소요될 ‘검찰 수사 완료 후 특검’ 카드를 꺼낸 것은 자기모순이고 뻔한 꼼수지만, 그 속에 담긴 계산은 의미심장하다.

 

검찰 수사로 일단 면죄부를 받고 특검 논의가 선거일까지 계속 진행되면 중도층의 일부 포션은 설득 가능하므로 문 정권은 더 이상 고민 말고 ‘협조’하라는 것이다.

대장동 핸디캡을 안고 임하는 여당 전략은 세 가지 정도가 될 것이다.

 

첫째, 막대한 돈 뿌리기다. 일단은 총리가 반대하지만 금방 오케이 할 경우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밀당 쇼 차원에 그치고, 수십만 원의 현금 선물을 오롯이 이재명의 추진력 설득력의 결과물로 포장할 것이다.

 

둘째, 윤 후보에 대한 집요한 추가 네거티브전이다. 병역·김만배 누나 집 등 온갖 소재를 놓고 희한한 주장들을 들고나올 수 있다.

 

셋째, 거물급 중도 인사를 영입하고, 대형 공약을 들고나올 것이다.

 

이에 맞설 윤 후보 쪽은 항공모함처럼 커져 가는데 전단(戰團) 내 군기는 허접하다. 특히 많은 이들은 ‘불알친구’들과 배우자 등이 조성하는 병풍효과를 우려한다.

 

상징적인 사례가 최근 외교안보계를 놀라게 한 A 씨의 이재명 캠프 합류다.

 

A 씨는 북핵, 한미동맹 등 정통 외교 분야에서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국익의 관점에서 객관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좌파들로부터 친미파라고 공격받았고, 문 정권의 외교노선을 엄정히 비판해왔던 그가 이종석 문정인 등이 선점한 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막후 사정을 알아보니, 정치 참여 자체 보다는 차기 정권이 누가 되든 외교안보만은 냉엄한 현실과 국익을 기준에 놓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A 씨에 대해 윤 캠프 내에서도 추천이 있었지만 후보 옆을 선점한 인사들에게 막혔다고 한다. 캠프 내 외교안보 그룹의 실세는 윤 후보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외교분과 간사인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 쪽은 달랐다. 이 후보는 그제 비공식 석상에서 “(A 씨) 영입에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고 했다. 과격·좌파 이미지를 탈색하고 실용 외교 노선을 추구한다는 방향지시등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윤 캠프의 위기를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가 ‘민지(MZ)야 부탁해’다.

 

8월 말 MZ세대 공략을 위해 내놓은 캠페인 동영상인데 허접한 수준이 글로 옮기기도 민망하다. “야”라고 반말을 서슴지 않는 윤석열 앞에서 얼어붙은 참모들…. 영상을 보며 궁금했던 건 왜 캠프 내 누구도 “이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였다. 캠프 관계자는 “다른 그룹이 만들고 후보가 추인한 것에 문제 제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 소통 수준의 윤 캠프는 마침내 ‘개 사과 사진’으로 실력의 맨 밑바닥을 보여줬다. 평생 우리 사회의 담론, 논쟁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나 나올 법한 허접하고 표피적인 상상력이다.

 

여기에 후보 부인 쪽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심각하다. 선거에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역할은 치밀한 전략과 판단력·정무감각이 요구되는 대국민 메시지 작업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재명 캠프는 머잖아 거물급 중도 실용노선 인물들을 대거 영입해 불안정성·과격성 이미지를 상쇄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윤 후보 주변에 포진한 권성동 장제원 등의 실세들은 참신함이나 새로운 보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이미지다. 캠프에 몰려든 낡은 보수 인사들은 대세를 잡은 듯 착각하며 자리 꿈에 부풀어 있다. 가게 전면부를 개혁적이고 젊고 새로운 인물들로 전면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추락을 피할 수 없다.

 

옛 시대 배경 단막극이 떠오른다. 가족과 온 산골 마을 사람들이 굶고 아껴 마련해준 노잣돈으로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던 장남이 응원하러 따라나선 친구들을 보내기 미안해 주막에서 한잔하고, 고갯길에 쓰러진 처자를 도와주느라 돈과 시간을 다 쓴다. 의리나 의협심의 발로라 해도 가족과 마을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배신이다.

 

여든 야든 대선 후보는 자신의 인생만을 걸고 나선 게 아니다. 각자 진영 수백만 지지자들이 나라를 구해달라며 국가의 운명을 후보의 어깨에 맡겼다. 그 열망을 배신하지 않으려면 주변을 듣기 싫은 말 하는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11-26 李는 필사적 변신쇼, 尹은 ‘새 보수’ 대신 ‘올드맨쇼’

산토끼 노린 코스프레일지언정
이재명 “새 민주당” 외치며 변신 시도
윤석열은 과거 회귀적 3김 논란 자초
선대위에도 비리 의혹 낡은 인물 포진
보수쇄신도, 2030도 뒷전인가

 예상대로 이재명 후보가 변신에 나섰다. 연일 정권의 실정을 사과하고 눈물을 흘린다. 큰절까지 등장했다.

 

선거철 후보의 변화가 진정한 변신인지 산토끼를 노린 코스프레인지 판단하려면 두 가지를 살펴야 한다. 첫째, 그의 본질이다. 표 앞에선 누구나 반짝 변할 수 있지만 수십 년간 쌓여온 가치관과 이념,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둘째, 비근한 사례들이 어땠는지다. 2017년 초 지지율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던 문재인 후보는 통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 덕에 40%를 돌파했지만 통합 약속은 어떻게 됐는가. 문 정권이 대한민국 역사상 통합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족적을 걸어왔음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지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 진영의 숙원 사항들을 대부분 실행에 옮겨 나라의 틀을 바꾸려했고, 비판론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국가 지도자가 아닌 진영의 수장, 부족전쟁 시대 족장처럼 오로지 지지자들만 바라보며 편가르기 통치를 한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21일 국민과의대화에서 고용 등 최악의 성적을 낸 분야마저 스스로를 극찬한 것도 오로지 지지자들에게 ‘우린 성공했다’ ‘회의(懷疑)하지 말라’는 확신을 끊임없이 주입·세뇌시키려는 전략의 산물로 봐야한다.

 김대중 후보는 DJP연합으로 공동정부를 약속했지만, 초창기 반짝하다 곧 DJ본색으로 돌아갔다. 박근혜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지만 집권 후 경제정책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는 모두가 안다.


이재명이 변신 모드로 접어들자 그동안 홍위병 시대가 무색하게 설치던 강경파 초선들도 바짝 엎드리는 모드다. 하지만 상습 과속 운전자가 무인단속기 앞에서 잠깐 속도를 줄인다고 운전습관 자체가 변한 건 아니다.


완장 차고 설치다 국군이 수복하자 바짝 엎드려 살아남은 이들이 그 후 빨치산이 마을을 차지하자 더 극악하게 날뛰던 모습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다. 강경파들은 곧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좌파 운동권에게 전술적 변신·연대는 생존 본능처럼 자연스러운 DNA다.


진정이든 코스프레든, 그래도 이재명은 지지율 한계를 뚫기 위해 동물적 감각으로 변신하며 ‘새민주당’ 1일 차, 2일 차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윤석열 후보는 ‘새누리당’을 연상케 하는 흑백필름을 돌리고 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등장한 ‘3김’ 논란에 정권교체 열망층은 기가 막히고 여당은 미소 짓는다. 1985년의 ‘3김 낚시론’이 바로 지금을 내다보고 나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김종인 김병준 김한길을 간판으로 내세워 누구를 감동시킬 수 있다고 보는 걸까. 그들이 무용하거나 무능하다는 차원이 아니다. 꾀돌이 김한길의 지략과 김병준의 정책이 필요하다면 고문으로 모셔 수시로 상의하면 된다. 김종인에 매달리는 것은 중도파 공략 때문일 텐데, 여기서 착각은 중도파의 실체에 대한 것이다.


정확히는 중도파라기보다는 소극적 보수와 소극적 진보라 보는 게 맞다. 보수지만 후보가 싫은 사람들, 진보지만 대통령이나 후보가 싫어 부동층이 된 사람들이다. 경제민주화 같은 단일 그물망으로 포획할 수 있었던 과거 중도파와 달리 지금의 부동층은 경제 안보 사회문제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이슈마다 이해관계와 이념적 포지션이 각각이다.


윤석열이 지금 집중해야 하는 건 막연한 중도가 아니라 정권교체를 바라지만 윤석열은 싫다는 비호감층이다. 윤석열 지지율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 비율보다 10% 이상 낮다. 정말 매달려야 할 상대는 3김이 아니라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인 것이다. 홍, 유와 원팀을 이뤄 그들에게 쏠렸다가 부동층으로 옮겨간 정권교체 지지층을 잡아야한다.


끝내 거절당해도 손해 볼 게 없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은 광양까지 찾아가 박태준에게 4시간이나 매달렸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망신을 당한 덕택에 지지층을 상당수 흡수했다. 2002년 대선 전날 밤 정몽준 집 앞에서 돌아서는 노무현의 모습은 다음 날 젊은층의 투표소 행렬을 불러왔다.


윤석열이 받는 지지 속에는 보수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 새로운 보수를 만들어달라는 기대도 담겨 있었다. 정치 새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쇄신은커녕 설상가상으로 선대위 직능본부장에 자녀 채용 비리 혐의로 1심 무죄, 2심 유죄를 받은 옛 원내대표가 포진하고, 사무총장은 비록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공기업 채용 비리로 구설에 올랐던 절친이다. 그러니 국민적 신망과 기대가 큰 새 인물, 갑남을녀의 이익을 대변할 인물들을 찾는 발품을 팔지 않고 눈과 귀가 벌써부터 정치권에만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양정철의 말처럼 민주당은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이재명은 카멜레온보다 교묘하고 도마뱀보다 민첩하게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예상대로 검찰은 대장동을 조기 마무리 국면으로 몰고 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위기 앞에서 윤석열은 조용하지만 간절히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가슴속에 담고 있는 질문을 듣지 못하는 걸까.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 비호감층이 누구인지, 그들이 왜 당신을 꺼리는지 파악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2030에 대해 내놓은 정책이 뭐가 있는가, 집권 후 비전을 제시한 건 뭐가 있는가, 뉴보수의 청사진이나 쇄신 의지를 보여준 게 있는가….

 

12-10 정말 낯 두꺼운 與… 정권 안 뺏기려 뭐든 마다 않을 것

구박덩이 기업들 성과에 숟가락 얹는 文
대장동 특검 거부하다 특검 애창하는 李
대선에서도 따가운 耳目 개의치 않고
돈풀기·네거티브·지역구도 총동원할 것

 정말 현 집권세력 사람들은 낯이 두껍다. 조국과 추미애 시절을 겪었기에 후안무치에는 웬만큼 면역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대선이 다가오면서 펼쳐지는 제2막 역시 점입가경이다.


안타까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합류다. 문 대통령이 6일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역의 힘으로 선진국이 됐다”며 “이런 소중한 성과마저도 부정하고 비하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 것은 그나마 집권세력 내에서 상대적으로 온화한 풍모를 지녀온 이미지를 훼손하는 발언이었다.


우리 기업들이 국제경쟁에서 처절히 분투하는 동안 문 정권이 어떤 일을 했는지 국민들은 안다. 4년 반 동안 반기업 정책과 발언들을 쏟아낸 것이 민망해서라도 숟가락을 얹지 못할 것이다.

 

위정자가 자화자찬에 빠져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책임이 크다. 무역의날 다음 날 주요 기업들을 상대하는 로펌 관계자들에게 분위기를 물어봤다.

 

“경제 현장은 불안 그 자체다. 과거 정권 때도 불만이 있었지만 특정 이슈나 정책에 대한 전술적 불만 성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포괄적인 정책 방향 자체가 잘못 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한쪽 눈만 뜨고 정책을 시행한 4년 반의 결과 기업들은 좌절감 속에서 입 다물고 있다. 말 잘못 했다간 시민단체한테 인민재판식 십자포화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자화자찬과 낯 두꺼움에 관한 한 이재명 후보도 뒤지지 않는다. 8월 말 대장동 사건이 터진 이래 여권이 특검을 한사코 거부해 왔음을 국민 대다수가 기억하는데도 6일 “특검 거부자가 범인”이라며 특검 신봉자 행세에 나섰다.


이 후보는 처음엔 특검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여론에 밀려 지난달 10일 조건부 특검·쌍특검으로 입장을 변경하면서도 “특검 만능론은 안된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미진하면…”이라고 했었다.


이 후보가 말과 입장을 바꾸는 데 아무리 능하다 해도 이번만큼은 자신의 발언에 속박돼야 한다. 당장 야당의 협상 요구에 응해야 한다. 특별검사 선정을 놓고 시간 끌지 말고 대장동 특검은 야당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여당이 추천하면 된다.


자화자찬은 뒤끝작렬로 이어진다. 문 대통령이 기념식장에서 “부정하고 비하만 하는 사람들”을 비난한 것은 남양주시에 대한 경기도의 보복감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 후보는 계곡 정비를 대표적 치적으로 자랑해 왔지만 사실은 남양주시가 그에 앞서 2018년 시행해 성과를 거둔 사업이다.


그런데도 2020년 6월 경기도가 이재명 지사 취임 2주년 보도자료에서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하천·계곡 정비사업을 시작했다고 발표하자 남양주시 일부 직원들이 “우리 시가 최초”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경기도가 댓글을 단 남양주시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조사 명목하에 보복성 감사를 하고 이를 여론조작으로 몰아갔다”는 게 조광한 남양주시장의 항변이다.


집권세력의 뻔뻔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적으로는 “대의(大義)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투쟁 시절 사고방식, 전술적으로는 자화자찬 선전전이 뉴스를 단편적·부분적으로만 접하는 부동층에겐 먹힌다는 계산의 산물이다. SNS와 유튜브를 통한 확증 편향적 뉴스소비가 만연한 상황에서 부동층을 겨냥해서 “우리가 잘해 왔다”고 반복적으로 세뇌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인 만큼 정권을 뺏기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을 것이다.

우선 막대한 돈 풀기다. 이 후보가 연일 기획재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준비작업이다. 기재부가 안 된다 안 된다 하다 내년 초 이 후보가 “너희들 뭐 하냐” 소리치며 청와대를 찾아가든, 기재부 장관을 부르든 ‘쇼’를 할 것이다. 기득권 관료들을 후보가 굴복시켜 선물을 쟁취하는 스토리라인이다.


동시에 좌파 유튜브·인터넷 언론을 총동원한 네거티브 대공세를 펼칠 것이다.


돈 풀기나 네거티브가 먹혀들던 시대는 지났다고 얘기하지만, 대다수 국민에겐 안 먹혀도 부동층 몇 프로는 끌어당길 군불 효과는 있다. 막대한 현금을 풀면 정권에 대한 반감이 누그러지고 “그래도 없는 사람 생각하는 건 쟤들밖에 없어”라는 정서가 확산된다.


지역 구도도 적극 이용할 것이다. 이재명은 최초의 대구경북(TK) 출신 민주당 후보고, 윤석열은 이회창에 이어 두 번째 비(非)영남 출신 보수진영 후보다.


갤럽 조사에서 TK 지역 이 후보 지지율은 11월 16~18일 9%에서 11월 30일~12월 2일 28%로 세 배나 뛰었다.


윤석열에게 호남 공략과 TK 지지층 결집은 제로섬 성격이 강한 데 비해 이재명은 TK 지지율이 올라가면 호남 지지세의 결집력도 함께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정권 재창출 가능성에 대한 기대 효과 때문이다. 이 지사는 “(TK는) 제 고향이자 태를 묻은 곳이고, 세상을 떠나면 육신을 묻을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남의 이목, 상식의 눈, 역사의 눈을 의식할 만큼 낯가림을 하고 염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 그들이 남은 3개월간 대선판을 어떤 수렁으로 끌고 갈지 걱정이 앞선다

 

12-24 벼랑 끝 尹, 주변 다 안 버리면 국민 버림 받는다

 ‘입의 혀’ 같은 측근과 사적 라인들이 선대위 유명무실화, 리스크 대응 혼선 초래
불알친구 사무총장 포함 측근 다 경질하고 부인 논란도 강도 높게 사과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1일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화상 대담을 했다.


‘샌델 카드’는 사실 윤석열 캠프 내부에서 올 6월 논의됐던 것이다. 독일 노동개혁의 상징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카드도 거론됐다. 우물 안 개구리 586정권과의 대비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윤 캠프에서는 이런 구상이 흐지부지됐고, 아이디어가 새 나간건지 우연의 일치인지, 이재명이 선점했다. 두 캠프의 실행 능력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후보의 민첩함도 차이가 크다. 이재명의 ‘변신 쇼’는 처절할 정도다. 오락가락 행보, 매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도 개의치 않는다.


‘어, 그래도 문재인처럼 꽉 막히지는 않았네’ ‘생각보다 유연하네’ 이미지의 확산을 노리는 것이다. 세금을 줄여주고 현금을 안긴다 해서 문 정권에 대한 분노가 변하지는 않지만 문재인에서 이재명이 차츰 분리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윤석열은 허우적이며 벼랑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 10%포인트 이상 앞서도 여권의 돈 풀기, 네거티브가 계속되면 선거 때는 박빙이 될 텐데 벌써부터 역전당하는 추세다.

 

특히 자영업 계층 지지율이 급속도로 뒤집혔다. 윤은 11월 3주 54%에서 한 달 만에 35%로 떨어지고, 이재명은 30%에서 45%로 치솟았다(한국갤럽). 역대 대선에서 자영업 지지율 1위 후보가 항상 이겼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윤이 급락한 원인은 삼척동자도 안다. 부인 리스크와 내부 갈등으로 헤매느라 정책적 어필을 못 하고 한 달을 보냈다. 대장동 핵심 실무자들의 자살은 ‘그 분’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암시하는, 여당 후보를 그로기로 몰고 갈수 있는 대형 이슈인데도 전투력을 상실한 야당은 다 놓쳐버린다. 자영업 지원 50조는 윤석열이 먼저 꺼냈는데 실제 열매는 이재명이 챙겨가고 있다.

 

윤 후보가 회복 불능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해법은 단순명료하다. 측근 논란의 핵심들을 상징적으로 퇴진시키고 비공식 라인을 없애 모든 힘을 선대위에 몰아줘야 한다. 김종인이 그립을 더 세게 쥐고 가기로 했다는 정도로 이준석 사태가 정리 됐다 여기면 오산이다. 불씨를 그대로 안고 가다가 추태가 재발되면 정당이 스스로 정권탈환을 걷어차고 국민을 배신한 대표적 사례로 훗날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윤 후보 옆에서 힘을 얻은 얼굴들을 나열해 보라. 하나같이 공격형이다. 동시에 날렵하게 윗사람이 원하는 것을 미리 준비해서 논리 정연하게 보고할 것 같은 이미지다. 입의 혀는 주인에겐 싹싹하고 날렵하지만 타인에겐 칼이 되어 결국 주인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특히 대선,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 당 사무총장에게 어떤 힘이 실릴지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암탉이 병아리 모으듯, 남의 집 병아리도 내 새끼 하며 품고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 자리에 검사 출신 불알친구를 앉혔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여도 최전방 돌격수, 저격병, 전략참모, 지휘관 등등 최적의 쓰임새는 다 다르다. 유신말기의 차지철, 이회창의 7인방 등 최측근 논란을 방치하면 결과는 항상 참담했다.

 

윤 후보 주변은 그러지 않아도 초등학교 동창들이 포진해 있다. 게다가 수십 명의 전직 법조인들이 역할 분담까지 해서 움직인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사조직이 움직이면 선대위가 유명무실해진다.

 

‘김건희 리스크’ 대응의 혼선도 다 연결되는 문제다. 당장 부인 장모 문제 대응의 모든 권한을 선대위에 100% 줘야 한다.

 

그리고 부인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세간의 예상을 몇 배 뛰어넘는 진솔한 강도로 사과해야 한다. 남편이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비즈니스는 물론 배우자에게 요구되는 필수적 역할 이외에는 절대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약속해야 한다.

 

조국 정경심과는 질적 양적으로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사안이라고 억울해해선 안 된다. 조국을 비롯한 좌파들과 달리 윤석열에게 있어 공정·정직은 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티끌만 한 흠이라도 감싸는 모습을 보일 때 다른 이의 중범죄보다 더 큰 실망을 안겨줌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이 회초리 5대 때리고 싶을 때 스스로 100대를 때려야 리스크를 탈출할 수 있다. 이번 사태로 이준석은 그릇의 크기를 드러냈다. 전략팀장 깜인지 CEO 깜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준석과 함께 가는 것 외엔 정권교체에 방법이 없다.

 

모든 결정은 선대위에서만 이뤄진다고 선언하고 후보와 김종인이 매일 대면이든 원격이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후보 의견인지, 김종인 의견인지 구분이 안 되는 통일된 전략, 통일된 입장만 세상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어제 이재명과 이낙연이 만났다. 원팀 분위기가 점점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누가 우승 상패 수상자로 나설지 다투면서 자살골만 넣고 있다.


다른 대선 때는 패자에게 동정론이 일었지만, 만약 사적 관계의 수렁에서 허우적이다 패한다면 만고의 역적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한 개인의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 운영의 본질과 무관한 어이없는 덫에 걸려 나라의 미래가 바뀐다면 이렇게 기막힌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