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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14/ 세계저명인사4/ 보츠와나 이안 카마 대통령 - 프랑스 파스칼 보니파스 佛 국제관계전략연구소 소장

상림은내고향 2021. 12. 26. 09:21

사람들14/ 세계저명인사4/

■ 보츠와나

[北과 단교한 '아프리카 法治 1위국' 보츠와나… 이안 카마 대통령

입력 : 2014.03.14 03:03

"굶어죽는 아이들·수용소…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안돼 惡은 善이 가만히 있을때 승리… 유엔·국제형사재판소 통해 北인권 알리고 바로 잡을 것"

"주민을 학대하고 국제 행동 규범을 묵살하는 북한과는 외교 관계를 원치 않는다." 지난달 19일 북한과의 단교(斷交)를 전격 선언한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이안 카마(61) 대통령은 13일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 탄압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372쪽 분량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 지 이틀 만이었다. 인구 200만명의 소국(小國)인 보츠와나는 1966년 영국에서 독립했다. 아프리카 국가 중 민주주의와 법치(法治)가 잘 이뤄지는 나라로 손꼽힌다. 다음은 카마 대통령과의 일문일답.

 

▲이안 카마(오른쪽) 보츠와나 대통령은 13일“북한의 인권 탄압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인구 200만명인 보츠와나는 지난달 북한의 인권 실태를 규탄하며 단교(斷交)를 선언했다. 사진은 카마 대통령이 2011년 지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모습. /이안 카마 페이스북

 

―인권을 문제로 북한과 단교를 선언한 국가는 보츠와나가 처음이다. 단교 선언은 어떤 의미가 있나.

"최근 몇 년간 보츠와나 정부는 북한이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우려해왔다. 유엔이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는 단교의 결정적 계기가 됐을 뿐이다. 김정은 정권이 자행하는 조직적인 주민 학대는 반(反)인권적 범죄의 수준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절대로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이번 단교 선언은 보츠와나가 추구하는 인권 존중과 국제 규범 준수의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국교를 유지하면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보츠와나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다른 나라였다면 달리 행동했을 것이다. 보츠와나는 유엔 인권위원회나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인권 환경을 알리고 바로잡는 데 지속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다."

 

―단교에 대해 반대 여론은 없었나.

"특별한 반대 여론은 없었다. 인권이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유엔이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 중 어떤 내용이 가장 충격적이었나.

"1997년 대기근 당시 수만 명의 북한 어린이가 굶어 죽은 것이다. 당시 북한은 고아들을 강제로 피난소에 보냈는데, 피난소마저도 아이들에게 줄 식량이 없었다. 이 때문에 '피난소에 가느니 거리를 떠도는 게 굶어 죽지 않는 길'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아프리카 난민보다 북한 주민의 상황이 더 열악하다고 느꼈다. 북한이 8만~12만명에 이르는 정치범을 '죽음의 캠프(감옥)'에 가둔 점과 주민을 상대로 주입식 사상 교육을 하는 점도 충격적이었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들이다."

 

 

―한국에는 일부 정치인을 비롯해 북한 인권 문제에 눈감은 세력이 존재한다.

"악은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승리하는 법이다. 침묵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란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북한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내가 주제넘게 한국 정부에 뭐라고 당부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약속은 하나 할 수 있다. 보츠와나는 북한과의 어려운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한국 정부에 끊임없이 지지를 보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향후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父子 대통령' 이안 카마]

보츠와나의 독립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세레체 카마(1921~1980)의 아들로 보츠와나 최초의 '부자(父子) 대통령'이다.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츠와나족(族)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고국에서 인권운동을 벌이다 영국으로 쫓겨난 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카마를 낳았다. 서양식 교육을 받으며 자란 카마는 영국 왕립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츠와나로 돌아와 공군으로 복무했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해 같은 해 부통령에 임명됐고, 2008년 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준우 기자  이순흥 기자

 

□보츠와나

수도가보로네

면적600,370 km²

독립년월일1966.09.30

공식언어영어

화폐단위풀라(pula/P)

 

■ 영국

2015.06.19 다니엘 튜더와 함께

 

한국인보다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에 더 관심과 애정을 갖는 영국 청년 다니엘 튜더. 그의 글을 접할 때마다 냉철하고 분석적인 접근과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펼치면서도 “내 이야기를 다 들을 필요는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청년. 누군가 “당신이 뭘 아느냐? 당신이 한국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한국에 애착을 느끼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가니 신경 쓰게 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솔직한 청년. 그와의 두 시간은 인터뷰라기보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된 즐겁고도 유익한 만남이었다.

 

혜민 :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한국을 찾았다가 사랑에 빠져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비롯해 여러 일을 하면서 한국에서 총 7년간 머물렀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어떤 점이 좋아 쉽게 떠나지 못했나요?  

튜더 : 개인주의가 강한 영국과는 달리 한국은 ‘우리’라는 따뜻한 문화가 있어요. 그래서 친구를 한번 사귀면 정말로 끈끈한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외국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한국은 주로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 혹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 낸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의 나라, 아니면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한국의 극단적인 모습들만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서 가장 매력을 느낀 사람들 간의 ‘정’이나 ‘흥’을 아는 한국인의 정서는 이곳에서 살아 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혜민 : 한반도를 주제로 한 책을 이미 영미권에서 세 권이나 출간했습니다. 그중 이번에 번역돼 나온 최신작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을 보면 영국이나 미국처럼 서비스업만을 중시하고 제조업 분야를 무시하면 울산과 창원의 미래가 미국의 디트로이트처럼 어두울 수 있다고 했어요.  

튜더 : 1960년대 디트로이트는 지금 한국의 울산처럼 미국에서 가장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했습니다. 영국의 뉴캐슬과 글래스고도 선박을 건조하면서 부자 도시가 됐고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공업 도시들이 부상하면서 이 도시들은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에 시달리는 문제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중국이 빠르게 따라오면서 한국 제조업의 경쟁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많은 경제전문가가 주로 영미권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제조업의 중요성을 잊지 않는 독일이나 스위스 모델이 아닌 서비스업 중심의 영미권 모델을 생각하며 정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중국 같은 나라가 부상할수록 한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와 같은 첨단 부품을 만드는 하이테크 중소기업의 육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혜민 : 일본에서 유학할 때 유명하지는 않지만 첨단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고부가가치 부품들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수입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유독 대일 무역수지만큼은 항상 적자인 것 같아요.  

튜더 : 맞습니다. 미래 성장이 기대되는 특정 산업에만 정부 지원금이 지원되는 게 아니라 첨단 기술을 개발하려는 다양한 중소기업에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일본의 경우처럼 한국에서도 보다 다양한 하이테크 중소기업이 활발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소기업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합니다. 더불어 뛰어난 공학박사들이 국내로 들어와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외국으로의 두뇌 유출을 막아야 합니다.  

 

혜민 : 한국이 좀 더 행복한 나라로 발전하려면 복지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복지 증진의 열쇠는 어떤 ‘프레임’을 통해 보느냐에 달렸다고 했는데요.  

튜더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복지 지출이 10% 미만인 두 나라 중 하나입니다. 상당히 적은 수준이지요. 15%로 늘린다고 해도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기존에는 복지를 좌파와 우파 모두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짜로 주는 시혜’라는 관점으로 봤습니다. 그러니 잘못하면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사회적 지위 상승의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분배 중심의 담론은 통하기 어렵습니다.  

 

혜민 : 그렇다면 어떤 새로운 관점의 접근을 해야 할까요?  

튜더 : 제가 볼 때 복지는 정부가 국민에게 하는 ‘투자’입니다. 국민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먼저 투자를 하고 나중에 성공해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지요. 실제로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의 경우 90년대 초반 싱글맘으로서 정부 수당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영국 복지제도에 ‘빚을 졌다’는 생각에 다른 나라로 이주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며 영국에 살고 있습니다. 시혜적인 느낌을 주는 ‘무상급식’이나 ‘반값 등록금’ 같은 접근이 아니고 투자 중심의 프레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혜민 : 경제 민주화라는 프레임도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왜 그렇지요?  

튜더 : 저는 경제 민주화보다는 ‘경제 정상화’라는 용어를 더 선호합니다. ‘민주화’라고 하면 왠지 좌파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 대부분의 문제는 정치보다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기인합니다. 한국인이 경제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미국만 봐도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엄격합니다. 미국 7대 기업이었던 엔론사에서 2001년 벌어진 회계 부정사건의 장본인들은 아직도 감옥에 수감돼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세금 포탈, 뇌물 수수, 사기, 폭행죄로 기소돼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요. 가격을 담합해도 벌금이 그리 높지 않고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시장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의 원인이 되며 결국 기업들의 주식 평가에 악영향을 줍니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해져 한국 주식시장이 10%만 절상돼도 120조원이 증가합니다. 국민 1인당 250만원씩 돌아가는 큰 액수입니다.  

 

혜민 : 얼마 전에 보니까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4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튜더 : 허리가 굽은 노인들이 한밤중에 박스나 캔을 주우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2014년 통계청에 따르면 49.5%의 한국인만이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뒤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라면 부모님을 부양하는 가정에 세금을 경감해 주거나 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노인들이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장려하는 인센티브를 만들겠습니다. 현재는 자식에게 부양을 받으면 오히려 정부로부터의 혜택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또한 은퇴 이후 몇십 년은 더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연륜 있는 50~60대가 세운 협동조합이나 기업에도 정부가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노인에게도 합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국내 관광·보건·레저 등의 산업도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혜민 : 집필한 책에서 현재로서는 집권당인 새누리당만이 체계적인 조직력을 갖추고 전략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치며 어떻게 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지 간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다 잘못하면 일본처럼 일당체제가 지속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퇴색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지금 현재 야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튜더 : 새정치민주연합은 일자리·생활비·교육이나 보건 등 주요 이슈를 주도하기보다는 따라잡기식 반응만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합리적이고 진보적 의제를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이명박(MB)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식의 네거티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어요. 하지만 결과는 여당의 승리로 끝이 났지요. 여당과의 진흙탕 같은 싸움으로 유권자들의 등을 돌리게 하는 일은 멈추고, 긍정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으로 이슈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혜민 : 현재 야당은 20~30대 젊은 세대와의 교감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일수록 진보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짙을 텐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튜더 : 제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 당사를 방문했을 때 당 대변인에게 전통적으로 진보의 이슈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어떤 정책이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예를 들어 가수 이효리씨와 같은 젊은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만한 동물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숨어서 힘들어하는 많은 성소수자의 권리, 전 세계를 위협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정책들이 있는지를요. 그런데 한 가지 이슈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뚜렷한 정책이 없거나 그 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와 반대로 여당은 이자스민씨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세우며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 출생의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이 부분 역시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전통적으로 진보당이 나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민주당은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혜민 : 결국 야당은 젊은 세대나 다른 여러 사회적 약자의 이슈에도 관심을 갖고 그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말이군요.  

튜더 : 그렇습니다. 2014년 12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에서 동성결혼을 가장 많이 지지한 지역은 바로 39%의 지지율을 보여 준 경상남도라고 합니다. 그 다음이 38%의 지지율을 보인 경상북도이고요. 즉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라고 여기는 지역에서 가장 큰 지지를 보여 준 것입니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한국 최초 성소수자 국회의원도 경상도에 지지 기반을 둔 새누리당에서 먼저 나오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즉 진보 쪽에서 해야 할 일을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으니 여당이 리드하는 상황이 계속해 연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혜민 :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으십니까?  

튜더 : 저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앞으로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책을 한국 정치나 경제 문제에 대해 최종 진단이나 해법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닌 관련 논의를 촉발시켰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제 의견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으며 독자 스스로의 의견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튜더는

1982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경제학·철학을 공부했다. 2004년 이후 한국에 머물며 미국계 증권회사와 한국 증권회사에서 일했으며 2009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헤지펀드 회사에서 근무하다 2010~2013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한국에서는 “한국 맥주 맛없다”는 기사를 쓴 기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2015년 친구들과 독립매체 바이라인(www.byline.com)을 설립해 새로운 언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중앙일보 사진=오종택 기자

 

■이란

2016-04-27 에브테카르 이란 부통령 현지 인터뷰

"핵폭탄은 한 지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의 환경이 오랜 기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피해를 낳는 파괴적 무기이지요."

마수메 에브테카르(65) 이란 부통령(환경 담당)은 "진정한 평화는 군축(軍縮)과 대화를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말했다. 1997년 이란의 첫 번째 여성 부통령에 임명된 데 이어 2013년 또다시 부통령에 오른 그는 이란 개혁과 여권(女權)의 상징이다. 이란 정보안보부 출신 사업가의 아내이자 아이 둘을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오는 5월 17~18일 열리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을 앞둔 그를 23일 테헤란 부통령 사무실에서 미리 만났다.

 

▲지난 23일 테헤란 부통령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마수메 에브테카르(56) 이란 부통령. 면역학 교수 출신이며, 여권(女權) 및 환경 운동가이기도 하다. 사업가 남편과 두 자녀가 있다. /테헤란=노석조 특파원

美 경제제재 풀린 이란
경제와 국제적 관계 관심

親한국 영향으로
한국제품 인기

―이란의 개혁과 개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오늘을 이해하려면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1979년 혁명 당시 이란 학생들은 미국이 개입해 혁명을 저지할지 모른다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찍이 1953년 이란의 민족주의 지도자 모사데크가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축출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학생들이 미 대사관을 점거했고, 이후 양국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미국은 몇 년 전부터 이란을 존중하는 태도로 나오는 등 정책의 변화를 보였고, 이에 우리도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란 쉽지 않겠지만, 지난 1월 이행된 경제제재 해제는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해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란을 찾고 있다. 이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경제적 이익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란이 국제사회로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여러 나라와 정치·외교 관계를 넓히고 싶고, 경제적 교류도 다양한 분야로 늘어났으면 한다. 한국과도 자동차 산업·백색가전·휴대폰 등 전통적 교역 부문에 그치지 않고 친환경 에너지 개발 협력, IT 기술 등 새로운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

 

 

―이란은 1980~1988년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군사적 도움을 줬던 북한과 오랜 우방이다. 한국과 교류하는 데 문제없나.

"두 코리아 모두 우리의 우방이다. 특히 한국과는 경제적으로 튼튼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아 한국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성능은 좋으면서도 유럽 제품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외교 관계를 넓혀 나가야 하는 상황에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동 정세가 매우 불안해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시리아에 근거지를 둔 'IS(이슬람 국가)'가 테러 행위를 일삼고 있다. 이란은 중동의 중심인데, IS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이란은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을 조장하는 행위에 맞서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을 돕고 있으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국제사회가 '다에시(IS를 비하해 부르는 별칭)' 같은 테러단체에 자금지원을 하는 일부 국가들의 행태를 막는데 동참하길 바란다. 또 오해와 증오는 또 다른 테러단체를 양산하는 법이다. '다에시'는 이슬람을 범죄의 구실로 삼고 있을 뿐이다. 이들 때문에 반(反) 이슬람 정서가 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1배럴당 100달러였던 국제 유가가 30~40달러 선까지 떨어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최근 산유국들 사이에서 감산 합의가 추진됐다. 하지만 이란이 이를 거부하며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

"석유장관이 답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간 우리는 경제 제재로 인해 오랜 기간 국제 석유 시장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제재로 인한 손해를 만회할 기회를 거머쥐었다.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히잡은 단정함의 메세지,
현대화의 걸림돌이 아냐

―이란은 외출 시 여성에게 '히잡(머리카락을 가리는 천)' 착용을 강제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여성 인권의 침해라는 평가를 하는데. 여성 부통령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하와 모욕으로부터 남자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슬람에선 몇 가지 규율을 정해놓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히잡이다. 이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이슬람이란 종교를 사회 발전과 현대화의 걸림돌이라 여겨선 곤란하다.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 여성은 남자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고, 사회 진출도 다양하다. 대학교수·의사·고위 공무원·정치인 등 다양한 직종에서 여성은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히잡은 하나의 의복 양식 문화로서 이슬람 사회에서 단정함의 메시지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자연이다. 몇 년 전 국제회의 참석차 가서 봤던 제주의 아름다움이 아직 눈에 선하다."

조선일보 노석조 특파원

 

■이스라엘

2015-05-30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이프타 샤피르 탄도미사일 전문가 인터뷰

▲러시아의 매체와 인터뷰 중인 이프타 샤피르(Yiftah Shapir) 교수, 동영상 캡처

 

이스라엘이 한국이었다면, 사드(THAAD) 배치는 당연한 것”

국방부는 최근 미국 측이 사드(THAAD) 배치 논의를 하자고 하면, 응할 것이라면서도 아직까지 사드에 관한 보고서 등을 검토한 적은 없다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사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때문에 배치는 필수적이라는 진영과 중국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진영으로 입장이 나뉘고 있다.

 

만약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했을 때 얻을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미사일 방어체계의 실질적인 측면을 알 수 없을까. 이스라엘은 이미 자체적으로 개발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아이언 돔(Iron Dome)을 실전배치하여 운영 중이다.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을 실전 배치하고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런 이유에서 이스라엘의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탄도미사일 전문가이자 중동문제 전문가인 샤피르 교수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이스라엘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메인 홈페이지 캡처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 돔이 어떤 체계인지 간략한 설명 부탁한다.

“아이언 돔은 이스라엘이 독자 개발한 미사일 방어체계다. 이 체계의 요체(要諦)는 요격(邀擊)을 담당하는 요격미사일 타미르(Tamir)가 핵심적이다. 아이언 돔은 단거리 미사일 방어체계로 주로 7~8km 거리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요격한다. (아이언 돔의 제원에 따르면 최소 4km 안에서 발사된 미사일도 요격이 가능하다.) 방어 가능한 최대사거리는 70km 정도이다. 이 시스템과 더불어 이스라엘은 에로우(Arrow) 체계를 더해서 고고도 원거리 미사일 방어망도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에로우2와 3까지 더해지면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방어가 가능해진다. 이런 다층방어망(multi-layer defense)을 구축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럼 아이언 돔의 배치이후 어떤 효과가 있었나.

“이스라엘도 사실 처음 아이언 돔을 배치할 때만해도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정말 미사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막아줄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 말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개발한 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배치를 해보니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주변 적국(敵國)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의 대부분을  격추시킨 것이다. 처음 아이언 돔이 적의 미사일을 격추했을 때 국민들은 놀랐다. 실제로 텔아비브(Tel Aviv, 도시명) 상공에서 요격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이 장면을 본 뒤로 국민들은 아이언 돔을 지지했고, 국방부를 신뢰했다. 실제로 눈앞에서 아이언 돔의 성능을 보는 것과 미사일 방어망이 무엇인지 정부와 언론의 설명을 듣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안전하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현재 국방부의 분석에 따르면, 아이언돔의 격추 성공률은 약 90%에 달한다. 이스라엘을 향해 날아온 미사일을 거의 다 막은 셈이다. 내가 객관적으로 분석해보았을 때 실제 격추율은 약 70%를 상회한다. 70%라는 수치도 상당한 성공인 셈이다. 그리고 아이언 돔은 적의 포탄(artillery shells)까지도 막을 수 있는 매우 독창적인 체계이다.”

 

-샤피르 교수 당신도 실제 이 아이언 돔이 미사일을 막아내는 것을 보거나 체험한 기회가 있었나. 실제 체감했을 때의 느낌이 궁금하다.

"우선 이 아이언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의 인명을 구해낼 수 있는 가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작년 여름 우리는 50일동안 팔레스타인과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미사일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향해 날아왔다.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중에서 아이언 돔이 날아오는 미사일들을 막아내는 장면(요격장면)을 목격했다. 당시 나는 방공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 장면을 지켜보았는데 육안으로 보기에 꽤 높은 상공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공중에서 요격미사일이 날아가면서 그린 궤적과 격추 후에 발생한 폭발장면 그리고 공중에서 분산되는 잔해들을 분명히 보았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진정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이 보호 덕분에 이스라엘 안에서 누군가는 장사를 이어나갈 수 있고 누군가는 극장에 가서 여가를 즐길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분명 아이언 돔은 국가 방위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언 돔은 저고도 방어망인 셈인데, 그럼 공중에서 요격된 미사일의 파편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나. 그런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나.

“물론 파편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라. 폭탄이 탑재된 미사일을 그냥 통째로 맞을 텐가? 아니면 파편쪼가리를 맞을 텐가? 선택을 하라면 모두가 후자를 택할 거이다. 적의 미사일을 그대로 맞는 것에 비하면 파편으로 인한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공격을 받아왔기에 1991년 이후 건설된 모든 건물 내부에는 대피소가 있다. 일종의 방공호(防空壕)이다. 적의 미사일이 발사되면 이스라엘 전체에 공습사이렌이 울린다. 이 사이렌이 울리면 국민들은 재빨리 이 방공호 안으로 대피한다. 따라서 미사일의 파편을 맞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현재 아이언 돔은 대륙간 탄도탄(ICBM이나 SLBM)을 막을 수 있나.

"현재 적용된 아이언 돔은 막을 수 없다. 저고도 방어망으로 최대 방어 사거리가 70km이다. 따라서 수백에서 수천 킬로에 달하는 사정거리를 가지는 ICBM이나 SLBM과 같은 탄도미사일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아이언 돔과 함께 에로우(Arrow)체계를 더해서 궁극적으로는 다층 방어체계를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 사거리가 100km이내인 단거리 미사일의 경우 그 속도가 초속 1000km/s에 달한다. 그런데 대륙간 탄도미사일처럼 사거리가 약 2000km에 달하는 경우는그 속도가 초속 3~4000km/s 에 이른다. 이처럼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아이언 돔의 요격체계로는 격추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에로우와 같은 체계가 이를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에로우2 같은 경우는 사거리 200km 내외를 커버하고 그 이상은 에로우3가 커버한다. 내년이나 내후년쯤이면 이 에로우3 까지 모든 실전배치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방어체계를 실제로 체험해본 전문가로서 미국이 운영하려고 하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어떻게 보고 있나. 특히 이 MD의 일환으로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하고자 하는 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지역방어체계)를 어떻게 보나.

"먼저 본질적으로 이 문제는 복잡한 사안이다. 이 미사일 방어체계의 문제는 바로 위협(threat)을 가려내는 것이다. 누가 잠재적인 위협(국가)인가. 누구를 적(敵)으로 보고 위협으로 구분지어야 하는 문제말이다. 특히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들여서 만든 이 미사일 방어체계에서 정확히 누구를 위협으로 삼느냐는 중요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위협 존재가 누구인지가 분명하게 가려진 상황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다. 한반도의 상황만 보자. 이미 북한은 UN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적(敵)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최근 그들이 동해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과 SLBM 개발 정황 등으로볼 때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호전적인(好戰的, bellicose) 성향으로 볼 때, 남한에 사드(THAAD)를 배치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나.

"우선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사실 전세계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유사한 점이 많은 나라다. 한반도 역시 이스라엘처럼 직접적인 위협을 가진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 때문에 남한도 이스라엘처럼 아이언 돔과 같은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해야할 필요가 있으며, 득이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런 지리적 환경이 남한을 유력한 아이언 돔의 잠재적인 구매자로 보는 관점도 있다. 여기까지는 북한의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견해이다.

 

그럼 이것을 장거리 탄도미사일, 잠재적으로는 핵탄두를 탑재한 경우로 생각해보자. 과연 남한은 핵 미사일에 대한 억제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격추성공률이라는 수치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아이언 돔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이스라엘 정부는 약 90%의 성공률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내가 계산하기론 약 70%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 수치가 어찌되었든 상당히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공률의 문제를 핵미사일 억제력의 입장에서 보자. 핵미사일을 막기 위해선 격추율 100%가 보장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핵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과 달리 한 번에 막지 못하면 두 번의 기회가 있을수 없다.

 

단거리 미사일은 설령 한두 개를 막지 못했다고 치자. 약간의 사상자와 부서진 건물이 생길 것이다. 그게 전부다. 다시 복구하고 다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핵미사일은 한 번에 막지 못하면 전부 박살이 나기 때문에 두 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문제는 더 고차원적이며 복잡해지는 사안이다."

 

-당신 말대로 핵미사일을 막지 못하면 '다시'라는 기회는 없다. 확대 해석하자면, 막느냐, 막지못하느냐의 50대 50의 선택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한채 있는거보다는 최소한 남은 50%의 확률을 믿고 마지막으로 막아볼 수 있는 노력을 쏟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최후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게 나은 거 아닌가.

"그렇다. 아무래도 막을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미사일 방어체계가 더 나은 선택이다. 다만, 그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면서 들어가는 예산의 문제가 있다. 내가 만약 미사일을 배치 하지 않았다면, 그 예산을 가지고 교육이나 경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미사일 배치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는 것이다. 아니면 군사적으로 이 비용을 방어체계에 투자하는 것이 나은 것인가 아니면 군의 다른 부분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나은가 등의 고민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방금 미사일 방어체계 대신 군의 다른 분야에 투자를 한다고 했는데, 미사일 방어체계 대신 어떤 차선책이 있겠나.

"공격능력 향상(offensive capability)이다. 적을 선제공격해서 적의 공격의지를 박살내는 것이다. 즉 공격을 통한 억제력, 혹은 공격을 통한 방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방어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100%의 확실성을 담보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기자는 샤피르 교수의 답변을 듣고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물어보았다.

 

1. 남한은 북한처럼 선제공격을 할 수 없는 국가이며, UN과 국제사회의 규정을 따르는 민주주의 국가다. 이런 이유에서 군사전문가들은 남한의 국방체계는 방어적이라 한다. 이 때문에 북한의 선제 도발에 후발 대응해왔다. 이런 가운데 공격능력을 향상시킬 투자가 미사일 방어체계를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인가.

 

2. 당신은 방금 미사일 방어체계에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경제살리기나 교육 등에 투자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그렇게 투자해서 살려둔 경제와 교육이 북한의 미사일 한방에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지 않나. 어떻게 생각하나.

 

"방금 당신이 매우 중요한 점을 짚었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제공격이라는 부분은 어렵다. 또 미사일 배치의 궁극적인 이유는 본래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한반도의 정치상황이 이 미사일의 배치 당락을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군사 전문가로서 군사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미사일 방어체계는 배치하는 것이 좋다."

 

-샤피르 교수 당신이 만약 한국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현재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 이스라엘이 있고,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민들이라면 사드(THAAD) 배치에 어떤 입장일까.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배치에 찬성할 것이다. 중동에서도 비슷한 예로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는 이란의 위협에 대비해 이런 사드 배치를 미국에 요청하고 있다. 이 사드를 배치하려는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는 이란의 핵미사일 방어와 더불어 재래식 미사일 방어를 위해서라도 이 사드 배치를 적극수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북한의 경우도 단순히 핵미사일 방어만을 보고 사드를 배치한다면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나, 과거 중동에서 발생했던 이라크의 주변국 공격행위 그리고 현재 시리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서도 보았듯이, 재래식 미사일 공격은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재래식 미사일의 공격을 염두에 두고 사드 배치를 한다면 좋은 투자(good investment)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은 남한의 사드배치에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사실 사드 자체는 방어적 무기체계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할 뿐이지 공격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중국과 북한은 반대하고 있는데 사드에 우리가 모르는 공격기능이 포함되어 있나.

"그렇다. 당신 말대로 사드는 방어무기체계이다. 공격기능이 없다. 그런데 반대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미 유럽의 전례에서 보았다시피 유럽에 미국이 사드를 배치하려고하자 유럽은 반겼지만,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다. 사드는 자체적으로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줄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의 경우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미국의 무기체계가 그 범위를 넓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보는 것이다."

 

-한국은 자체적인 미사일 방어체계인 KAMD를 구상 및 구축 중이다. 이 시스템은 마치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개념이다. 다만 요격을 담당하는 미사일이 타미르(Tamir)가 아니라 패트리어트 미사일(PAC-2, PAC-3)이다. 전문가로서 아이언 돔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KAMD를 어떻게 보고 있나.

"먼저 나는 이스라엘 전문가로서 아이언 돔을 한국에 추천하고 싶다.(웃음) 일단 한국의 KAMD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기반으로 하며 아이언 돔처럼 단거리 로켓과 미사일을 방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PAC-2형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1991년즈음 개발된 것으로 좀 오래되었다. 본래는 전투기와 같은 공중전력을 잡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탄도미사일을 막기 위해 개량 및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나, 격추율 떨어질 수 있으며 작전 활용도가 제한적이다. 다층 방어체계를 구상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우리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이 한국이 구상 중인 다층 방어망의 일부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우리의 아이언 돔은 실전에서 입증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추구하는 KAMD의 방향이 이스라엘이 구축하고 있는 다층 방어체계인 에로우 시리즈와도 유사한 맥락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의 KAMD와 미국의 사드가 합쳐졌을 때, 북한의 위협을 막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나.

"아무래도 다층 방어망을 구축하는 데에는 유리할 것이다. 다만 충분하냐(enough)는 질문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국방과 같은 분야는 아무리 투자하고 준비해도 충분할 수 없다.(never enough) 충분하냐의 문제와 결정은 정치권에 달렸다. 정치권의 판단에 따라서 우리의 방어망이 충분한지 안한지를 판가름 하는 것이다. 100%의 완벽한 준비와 군사적 대비는 있을 수 없다."

 

-당신은 앞서 핵미사일 방어체계는 100% 막아내지 못한다면 두 번은 없다고 했다. 그럼 100% 격추율을 보장하는 미사일 방어체계는 구축이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지 않음에도 배치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미사일 방어체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모든 무기체계는 100%를 보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적의 공격을 약화시킬수만 있다면, 100%가 아니라도 도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사드 미사일을 배치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득과 실은 무엇인가.

"사드와 함께 들어오는 전력 중에 레이더가 있다. 우리 이스라엘도 미국과 레이더 부분에 있어서 오랫동안 공조를 해왔다. 따라서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이득을 잘 알고 있다. 사드를 보유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정보 분야의 공유는 (남한에게)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장기간 미군과의 연합 훈련을 했고, 장비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공유를 해본 결과 정보적인 측면에서 얻은 정보력은 엄청나다. 사드를 배치하게되면 양국의 협조는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며 중요한 것이다."

 

-지난 3월초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총리는 북한은 이미 핵탄두 100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에서 제시한 이 수치를 이스라엘 총리가 그냥 던졌을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다. 이 부분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맞다 틀리다 라고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아마도 독립적인 정보기관의 자료를 보고 말했을 수도 있으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럼 북한이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고 보나.

“역시나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예측을 하고 싶지 않다."

 

-북한이 이란의 핵개발을 돕는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는데, 이란은 핵폭탄 개발이 가능한가.

"이란의 핵개발능력으로 볼 때 충분히 이란은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이란은 그들만의 설계방법으로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다만 그들이 핵폭탄을 가지는 순간, 지금까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협정을 모두 백지로 만들게 된다. 그래서 이란이 당장은 핵폭탄을 만들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만들겠다고만 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보유했다."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는 미국과 이란의 핵협정을 반기지 않는 거 같다. 샤피르 교수 당신의 입장도 네타냐후 총리와 입장이 같은가.

"나는 사실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선 네타냐후 총리처럼 반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이란과 미국의 핵협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나.

"협정을 체결한 것까지는 좋은 것 같은데, 구속력이 너무 약하다. 더 강력한 구속력으로 이란을 압박했어야 한다. 이란이 지속적으로 핵시설을 운영하게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이란을 꽁꽁 묶을 100% 완벽한 협정은 만들 수 없지만, 더 강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미 브라질과 남아공의 전례에서 보았듯이 핵개발을 아예 포기하게 했어야 한다. 이런 조치는 군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설득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조치가 이란에도 가해졌어야 한다고 본다."

 

-이스라엘은 국민 모두가 국방에 참여하며, 강한 애국심을 가진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국민의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우리의 모든 근원은 우리가 사는 땅에 있다고 믿는다. 이곳이 우리의 땅이고 이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우리가 지켜야할 근원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리더십이 나오고 이스라엘의 교육과 생각이 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녀 모두가 다 군대에 가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에 대한 존경이다. 이 존경과 국가의 의무 앞에 남녀노소는 다를 것이 없다. 모두 이스라엘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졌기때문이다. 어찌 남과 여가 다를수 있겠나."

 

-세계 유일 미사일 방어체계 실전배치국가, 이스라엘의 전문가가 진단해본 한반도 사드 배치!

이프타 샤피르(Yiftah Shapir) 교수

약력

現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중동군사균형의 선임연구원

군사무기기술, 탄도미사일, 탄도미사일 방어망 전문가

前 Middle East Military Balance 의 편집장

前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자피전략연구센터(JCSS)의 안보 및 군축협정 부교수

前 이스라엘 공군 중령

 

텔아비브 대학의 리카나티(Ricanati) 경영대학원 석사(MBA)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화학, 물리학 학사

 

주요연구

핵무기확산방지 연구

중동: 군사와 방산업계 연구

중동: 국방예산 연구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탈리아

□엔리코 레타 前이탈리아 총리 

2016년 06월 10일  문화일보

“유럽을 지배하는 포퓰리즘, 결국 EU의 틀 무너뜨릴 것”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는 대학 교수로 지내다 정계에 입문, 16년간 몸담으면서 하원의원, 장관, 총리직을 역임한 뒤 다시 학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난 5 26일 제주에서 가진 인터뷰에서총리로서 활동한 기간은 2년 남짓이지만, 이탈리아 전후체제의 한계로 지적됐던 상하 양원 동등 권한 시스템 개혁작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엔리코 레타 前이탈리아 총리

전 세계가 정치문제로 아우성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의 각국이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들끓고 있다. 일찌감치 경제적 부를 쌓은 선진국도, 여전히 경제 개발에 매진해야 할 개발도상국들도 예외 없이 정치 갈등에 빠져 있다. 정치인들은 유형무형의 기득권을 움켜쥔 이기적 존재로 인식되고, 기득권 세력을 신랄하게 꼬집고 비판하는 도전자들이 박수를 받는 세상이다. 정치인들이 공익을 우선시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스스로 줄일 수는 없는 것일까.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파격적인 정치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5 10월 이탈리아 상원이 상원 규모를 3분의 1로 축소하고 권한도 대폭 줄이는 개혁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올해 4월 이탈리아 하원은 상원의 권한 축소를 위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10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2차 세계대전 이래 근 60년간 유지되던 이탈리아 상원이 3분의 1로 축소되고 의회의 권한이 하원으로 집중되는 쪽으로 의회개혁이 완성된다.

이렇게 되면 그간 상·하원의 힘 대결로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도 어려웠던 무력한 이탈리아 의회가 좀 더 생산적인 의정 현장으로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상원 개혁은 마테오 렌치 총리가 밀어붙이고 있지만, 상원 개혁을 꿈꾸며 밑그림을 그린 인물은 그 전임자인 엔리코 레타(50) 전 총리다. 제주평화포럼 참석차 방한한 레타 전 총리를 지난 5 26일 제주에서 만나 이탈리아 정치개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탈리아에서 상원 축소라는 의미 있는 정치개혁이 진행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이탈리아 국내 정치는 아주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더 그렇다. 외국의 관찰자들이 하나하나 사건에 집중하다 보면 길을 잃을 수 있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이탈리아 문제에 접근할 때 유럽 통합, 경제 회복,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 난민문제 등 4개 축이 핵심이다. 이런 문제들이 상호 중첩되면서 정치 상황을 복잡하게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상원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진 나라 중 유일하게 상원과 하원이 똑같은 파워를 갖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상·하원이 동일한 파워를 갖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시스템이 형성됐는가.
“이탈리아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체제에서 전쟁을 겪은 나라다. 2차 대전 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고 나서 정치권의 핵심 이슈는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느 한 기관이 국가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약한 상원, 약한 하원, 약한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이탈리아 상원과 하원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선출되는데 파워는 동등하다.

―무솔리니 유산으로 형성된 상·하원 제도를 전후 60여 년이 지난 뒤 개혁에 나선 배경은.
2013 4월 상원과 하원 선거 결과 양원에서 서로 다른 당이 다수당이 됐다. 2개의 다수당이 정상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게 불가능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총리가 되면서 상·하원의 다수당을 중심으로 대연정을 형성하며 국정을 이끌게 됐다. 총리가 된 후부터 그런 상하 양원 동등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2013
4월 총선 후,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의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대표가 사임하자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은 민주당 부대표였던 레타를 새 총리로 지명했다. 레타는 민주당과 자유국민당, 중도연합이 뭉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4 28일 이탈리아의 총리직에 취임했다. 그가 47세 때의 일이다.

―정치 기득권을 깨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총리 취임 후 상원 개혁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상·하원 동등 권력 하에서 정치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흘러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상·하원 2개 체임버(의회) 중 하나에 의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져 있었다. 내가 총리가 된 후 그런 여론을 종합해 개혁을 제안한 것이고 그것을 2년간 검토한 끝에 결론을 내서 상원, 하원 그리고 국민투표를 거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개혁을 추진해 왔고 이제 국민투표를 남겨두고 있다. 10월 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원 개혁 작업은 언제 시작했나.
“총리 취임 후 일단 위원회를 조직하는 일부터 했다. 이탈리아의 헌법 전문가들로 구성해 협의를 진행했고 이 위원회가 개혁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그 안을 채택해 상원에 부쳤다. 상원 개혁의 기본정신은 하원이 의회의 중심이 돼야 하고 여기에서 정부 신임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상원은 축소돼 이탈리아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역할, 유럽연합(EU) 관련 업무 등을 하도록 했다.

―이탈리아에서 헌법 개정 움직임은 얼마나 있었나.
“여러 차례 헌법 개정이 있었다. 그런데 헌법을 바꾸기 위해선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헌법 개정에는 의회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데 개정을 추진하다가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엔 개정에 근접해 있다. 내 후임자인 렌치 총리가 일관되게 개헌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어 기쁘다.

―이탈리아 정계에는 좌파 정당에서 우파 정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당이 존재하고 각 당은 제각각의 이해관계가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었는가.
“하루하루 다양한 정치인들을 만나면서 대화하고 조율하고 협의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탈리아가 왜 상원 개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했다.

―총리 재임 시절 대연정 정부에 정당이 많다고 했는데, 그 정당 인사들을 모두 만나서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대연정에 참여한 정당도 많았지만, 그 정당 내에는 다양한 파벌이 존재한다. 그런 파벌까지 모두 만나서 대화하고 조정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거듭되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해냈고, 이제 헌법을 바꾸는 국면까지 와 있다.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이탈리아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도 조금 더 알기 쉽게 이탈리아 정치시스템을 연구할 수 있게 된다. 이 일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룰을 더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탈리아에 수많은 정당이 있고 그 정당 내에 다양한 파벌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유럽 정치의 보편적 현상인가.
“이탈리아 상황이나 유럽 각국의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 요즘 유럽을 지배하는 현상은 포퓰리즘이다. 좌파 포퓰리즘도 있고 우파 포퓰리즘도 있는데 본질은 같다. 내 생각으론 그 원인을 3개로 나눠볼 수 있는데 우선 경제적 위기다. 유럽 전반에 걸쳐 경제적 위기가 심화하면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난민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너무 많은 난민들이 밀려들자 이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유럽인들이 ‘이제 충분하다’며 난민 유입에 거부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각국에 국수주의 운동이 확산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이 전면화되는 양상이다.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5 26일 제주평화포럼이 열린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전시된 제주 하르방 유화 앞에서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은 과거에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 전면화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일차적 원인은 인터넷 사용 인구 확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정보가 세상에 공개되고 있고, 권력도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거엔 보통사람들과 기득권층 간에는 일정한 간극이 있었는데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중개물이 필요 없게 됐다. 모든 사람이 정보에 직접적으로 접하면서 정보 유통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기득권층에 대한 장벽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유럽의 포퓰리즘 현상에 어떤 전형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의 불만 폭발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나라마다 나타나는 양상은 다르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25%의 지지를 얻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이 25%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국민전선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약진해 주류 정치권에 충격을 줬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극우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까지 진출해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극우 대통령이 출현할 뻔한 것이다. 독일에도 국가주의적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1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럽 각국의 극우 정당들은 각국의 기존 전통적 정당에 도전하면서 유럽 통합의 틀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들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유럽 각국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EU 지도자들은 굳건하게 통합정신을 견지하는데 아시아의 경우 각국 지도자들이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어 최소한의 연대와 협력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곳 제주평화포럼에 와서 보니 유럽이 통합의 모델이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더라. 그런데 유럽은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경우 통합은 무역 중심으로 이뤄질 뿐 정치 통합은 거의 없고 국가 간 관계도 긴장 상태에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유럽의 경우, 경제·사회적 통합은 많이 진전돼 왔지만 만약 포퓰리스트들이 주창하는 대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EU 탈퇴) 등이 현실화할 경우 각지에서 국가주의적 접근이 본격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거대 위험(빅 리스크)에 처하게 된다.”

 

―결국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이 통합 유럽의 틀을 허물어뜨릴 것이라는 얘기인데.

“유럽 각국의 포퓰리스트들은 자국 문제를 풀기 위해 일국 수준의 해법을 추구하는데 이런 국가주의적 움직임은 유럽 전체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유럽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이 EU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각국이 국내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EU 자체가 위협 받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힘들게 만들어온 EU의 틀이 포퓰리스트들에 의해 허물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미래에 큰 도전이 되는 것이다.”

 

―포퓰리즘 당이 각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포퓰리스트들의 파워가 커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각국의 전통적인 정당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정당들의 정치 접근법이 낡아 변화된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해법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국의 전통적인 정당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기존 정당들이 좀 더 혁신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요구와 열망을 수용해 그 바탕에서 EU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이 ‘정당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세계화 과정에서 뒤처진 낙오자들, 말하자면 ‘루저’들을 위한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각국의 포퓰리즘 정당들은 좌파가 됐든 우파가 됐든 각국의 세계화 루저들로부터 표를 얻고 있다. 국민들은 화가 난 상태인데 그 배경엔 세계화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세계화가 모든 이들의 경제상황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극소수의 초부유층과 대다수의 빈곤을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세계화 과정의 루저들을 위한 정책은 어떻게 마련돼야 하나.

“세계화 과정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 특히 경제침체기에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해 각국 정부가 좀 더 나서야 한다. 최우선적으로 루저들에 대한 배려정책을 펴지 않으면 앞으로 반발이 더 커질 수 있다. 스페인은 총선 후 6개월 만에 재선거를 하게 됐다. 유권자들이 기존의 전통적 정당에 실망해 어느 쪽에도 힘을 몰아주지 않으니 정부를 구성할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세계화 과정의 루저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화가 난 유권자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응답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더구나 유럽에는 매년 난민들이 밀려들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앞으로 18개월 정도가 유럽에 운명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왜 그런 진단을 하는가.

“오는 23일 브렉시트, 26일 스페인 재선거가 있고, 내년 5월엔 프랑스 대선, 그리고 내년 9월엔 독일 총선이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오는 10월 국민투표에 이어 2018년 2월 총선을 한다. 이런 일련의 총선과 대선을 통해 유럽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더 강해진 유럽이 될 것이냐, 더 약해진 유럽이 될 것이냐가 판가름날 것이다.”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내 여론은 최근 들어 EU 탈퇴 지지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 파장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브렉시트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것인데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EU는 힘을 11% 정도 잃을 것이다. 브렉시트는 법적인 논란이 오래 이어지는 상황을 만들 것이다. 누구도 영국이 떨어져 나간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워 문제를 다루기 힘들어진다. 그 결과 유럽에 대한 해외 투자가 얼어붙을 것이고 런던이 누려왔던 국제금융 수도의 이미지도 퇴색할 것이다. 런던은 통합유럽의 금융 중심으로서 파워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대학교수 출신 정치인답게 논리정연하고 열정적으로 브렉시트의 위험성을 강조하다가 돌발적으로 “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 브렉시트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답변하려고 운을 떼려는 순간 그가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답변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유럽에 대한 매력을 잃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브렉시트가 유럽 쇠퇴의 첫 징후, 나아가 신호탄이라고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론 낙관주의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상황은 아주 어렵게 흘러가고 있다. 런던 사람들은 브렉시트에 회의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런던은 영국이 아니다. 영국의 일반 유권자들이 바닥에서 느끼는 정서와 런던의 정서는 다를 수 있다.”

 

―제주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책임감을 갖고 비용 분담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총리일 때 이탈리아 납세자들에게 그런 주장을 많이 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선제적으로 글로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아시아가 그런 글로벌 리더십을 갖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의 2대 자이언트인 중국과 인도가 글로벌 역할에 대한 자각(awareness)을 해야 한다. 특히 올가을 중국이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데 G20을 개최하는 것은 호화로운 과시성 국제행사를 하는 데 중점을 둘 게 아니라 글로벌 현안에 대해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고 재원 부담을 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는 회의가 되도록 해야 한다.”

 

―좋은 포인트다. 유럽 국가들은 국제적 책임감을 갖고 EU 차원에서도 협력하며 재원 부담을 하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여전히 과거사와 영토문제로 싸우며 협력의 틀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25일 제주평화포럼 세션에서 아시아 각국 지도자들이 협력의 틀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에는 많은 나라가 있고, 각국은 각국대로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이슈들 때문에 그렇게 대립하며 싸우는 것이다. 좀 더 멀리 보면서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제주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교육을 유난히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세계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뒤처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화 과정에서 낙오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가기 위해선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세계화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디지털 이노베이션, 소셜 미디어 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 삶에 닥치는 위기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해나가기 위해선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총리직을 끝낸 뒤 요즘엔 다시 정치학자로 복귀했는데, 정계 복귀는 다시 안 할 생각인가.

“요즘 유럽의 전반적 정서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깊다는 것이다. 과거 정치활동을 되돌아보니 정치인들이 너무 많은 기득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치인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분노를 이해한다. 나는 1998년부터 2014년까지 16년간 정치에 몸담아왔는데 이제는 휴지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정치학자인데 정치를 위해 일시적으로 학자 생활을 중단했고 이제 다시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 있다. 파리와 로마를 왕래하며 생활하는데 시민으로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치적 관여는 계속할 예정이다. 또한 정당원으로서, 그리고 정부의 전직 고위 인사로서 책임과 역할도 계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가르치는 문제에 집중하고 싶다.”

 

―정당원으로서 여전히 소속을 갖고 있는가.

“물론이다. 나는 여전히 민주당원이다.”

 

―정치적으로는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 소속에서 시작해 이제는 중도좌파인 민주당 소속인데.

“정당은 바뀌었지만 나는 늘 중도좌파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나는 시장경제와 사회적 연대, 유럽 통합을 지지하고 사회적 복지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한국엔 여러 번 왔었는데 제주는 처음이다.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섬이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나 코르시카, 사르데냐를 연상시킨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친절한 사람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제주의 장점을 유럽에 잘 알리기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인터뷰 = 이미숙 국제부장 musel@

 

□2017년 03월 03일 이탈리아의 의료구호기구 이머전시의 지노 스트라다 대표

“안보리 5개 상임국, 평화 아닌 전쟁 조장하는 무기商 전락”

▲  이탈리아의 의료구호기구 이머전시의 지노 스트라다 대표는 외과의사이기에 앞서 지뢰퇴치운동가이자 반전운동가다. 그는 이라크 쿠르디스탄에서 의사로 활동할 때 이탈리아제 지뢰 발마라69를 밟아 팔다리를 잃은 어린이를 수없이 수술하면서 “어린이들을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고가 버리는 지뢰는 없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의 반(反)지뢰 캠페인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지뢰 제조를 중단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21세기 슈바이처’ 지노 스트라다 이머전시 대표의사 

1990년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최악의 종족분쟁이 벌어졌을 때, 그 살육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치료한 푸른 눈의 40대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 그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때 의료팀을 꾸려 카불로 들어갔고 2003년 이라크전쟁 때도 그랬다. 지뢰 폭발로 팔다리를 잃은 아이들과 온몸에 폭탄 파편이 박힌 여성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고 피를 흘리는 적진의 병사들에게도 그는 의술을 베풀었다. 그렇게 내전현장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그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엔 전장에서 살아온 흔적이 훈장처럼 드러나 있고 은회색 머리칼도 성글어졌지만 여전히 민간의료구호단체 이머전시(Emergency)의 대표의사로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미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 보스턴대 명예교수를 만났을 때였다. 진 교수는 “정말 존경할 만한 인도주의자”라며 그를 만나보라고 권했다. 진 교수가 준 이메일로 연락했더니 그는 아프간에 있다며 답신을 보내줬다. 몇 차례의 이메일 끝에 “미국이나 한국을 방문할 때 만나자”고 했는데, 그 약속이 12년 만에 서울에서 이뤄졌다.그사이에 진 교수는 세상을 떠났다. 선학평화상 수상차 방한한 그를 지난 2월 1일과 3일 두 차례 만나 지난 20여 년에 걸친 내전 피해자 치료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얘기는 진 교수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했다.  

 

―오래전 진 교수가 “꼭 만나봐야 할 인물”이라며 소개를 해줬는데, 이제야 성사돼 기쁘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지성이었다. 그와 교유해온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스턴을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당시 진 교수가 ‘초록 앵무새’(국내에서는 ‘나비지뢰’로 번역됨)를 극찬하며 “양심적 지성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말했던 게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 책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발간된 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번역됐다.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그 책을 읽고 있다. 나는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내가 내전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어서 요즘에도 공감을 받고 있는 듯하다.” 

 

―‘초록 앵무새’ 이후 책을 더 쓰지는 않았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그리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초록 앵무새란 러시아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뿌려놓은 러시아제 대인지뢰 PFM-1형을 말한다.

 

그는 책에서 “아프간에서는 이것을 초록 앵무새로 부른다”고 기술했다. 소련은 아프간 침공 후 헬리콥터를 이용해 아프간 각지에 수천 개씩 살포했다. 이 지뢰는 10㎝ 남짓한 크기에 한가운데 실린더가 있고 양옆에 날개가 있어 나비처럼 흩날리면서 지상에 떨어진다. 이 지뢰는 밟아도 즉각적으로 폭발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아프간 아이들은 이것을 장난감이라고 생각해 주워 갖고 노는데 날개 부분을 누르면 폭발한다. 이 때문에 초록 앵무새의 희생자는 대부분 어린이다. 그는 지난 2월 3일 서울 잠실롯데월드 호텔에서 열린 선학평화상 수상 연설에서도 지뢰 얘기를 하며, 아프간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털어놨다. 

 

“아프간에는 지뢰가 조약돌처럼 널려 있고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 어린이들이 무심코 주워 갖고 놀다가 팔다리를 잃고 시력을 잃는다. 내전현장에서 외과의사로 활동해 보니 지뢰는 사람을 겁주고 특히 아동의 미래를 빼앗는 악마 같은 존재다. 지뢰 희생자는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이다. 카불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내전 희생자 중 34%는 어린이다. 26%는 노인, 17%는 비전투 남성, 16%는 여성이다. 전투원은 7%밖에 되지 않는다. 전쟁에 투입되는 총알 10개 중 9개는 민간인에게 향하고 전쟁에서 희생되는 사람의 90%는 민간인이다. 그 희생자 3명 중 1명은 어린이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면 더 안전하다는 역설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희생자의 15%는 민간인, 35%는 군인이었는데 현대는 희생자의 90%가 민간인이다.” 

 

▲  삶과 죽음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내전현장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온 지노 스트라다는 “1960년대 운동권 세대로서 갖고 있는 동시대인에 대한 부채의식과 연대감이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라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내전 지역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활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내가 처음부터 내전현장의 외과의사가 되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내게 특별한 동기가 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전쟁에서 피해를 당한 시민을 돌보고 싶었을 뿐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소속 외과의사로 1989년 파키스탄, 1990년 아프간, 지부티 등에서 활동했고 1994년 의료구호단체 이머전시를 설립했는데 

“내가 이머전시를 만든 것은 당시 내전이 빈발하면서 희생자들도 늘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ICRC가 그들에 대한 지원과 치료를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워 이머전시를 만들었다. 큰 강물에 물 한 방울 보탠다는 심정으로 1994년 르완다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듬해 이라크 지역 내 쿠르드족 거주지인 쿠르디스탄에서 병원 문을 열었다. 당시 르완다에서는 대량살상이 벌어졌다. 누구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100만 명은 되는 것 같다. 아주 슬픈 이야기다. 당시 국제사회는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유엔조차도? 

“물론이다. 너무 늦게, 너무 약하게 개입해 인명피해가 컸다.

 

그는 전쟁이나 내전의 피해자가 민간인이고 그중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폈다. 그리고 전쟁을 중지시키고 평화를 진작시켜야 할 유엔,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이율배반적으로 전쟁의 상인이 돼 무기를 팔아먹는 일을 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조직된 유엔은 세계의 희망이었다. 유엔 헌장에는 ‘세계인들을 전쟁으로부터 구하고 인권을 존중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약소국과 강대국 구분 없이 평등하게 인간을 대한다’는 대목이 있다. 아주 듣기 좋은 얘기인데 이것이 현실에서 실천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분쟁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개입하며 국제평화를 유지해야 하는데 정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유엔이 결성된 후 전 세계는 역설적으로 무기 경쟁에 돌입했고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했다. 1946년 이후 16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전쟁이 발생했는데 이 전쟁에 투입된 무기의 74%는 미·영·프·러·중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만든 것이다. 이게 유엔 안보리의 역설이다.

 

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대한 비판은 혹독했다. 5개 상임이사국이 벌이는 이율배반적인 전쟁 비즈니스를 고발할 때 그는 반전운동가와 같았다.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아 팔다리가 잘려나간 여성들, 그리고 지뢰를 밟아 다리가 뭉그러진 어린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엔 분노와 좌절감이 배어 있었다. 

 

―내전현장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반전캠페인을 펴는 이유는.

“전쟁은 해결책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인도주의 전쟁을 얘기하는데 그런 개념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모든 전쟁은 다른 전쟁을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전쟁과 테러는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전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을 유혹해 전쟁에 나가도록 하고 있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의사로서 나는 인간의 생명에 관심이 많다. 이머전시는 시민을 치료하는 일과 함께 전쟁하지 말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전쟁은 철폐돼야 하고 유엔은 전쟁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반전운동을 어떻게 펴고 있나 

“전쟁은 반정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자동차 폭발범이나 전쟁 범죄자는 동일하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에게 투표하지 말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 할 때 속지 말아야 한다고 시민에게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민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정치인들에게 전달하고,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한 토론을 시작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최근 콜롬비아에서 40년간 지속된 내전이 종식됐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전쟁에 에너지를 쏟았고 또 희생됐는데 협상으로 내전이 종식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과거 가디언 등과 인터뷰한 것을 보니 이탈리아 국내 정치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던데,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인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간 여러 차례 정계 입문 제안을 받았지만, 한 번도 정치 쪽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 정치에 그리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정치인은 말만 할 뿐 실천을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정치인은 전쟁을 결정하고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싫어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데 

“오성운동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오성운동도 다른 정당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정치인들은 뭘 생산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어떤 당에도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지 않다.

 

―유럽 등 전 세계가 난민 문제로 아우성이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난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이민으로 형성된 나라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저렇게 이민자 문제에 부정적으로 나와 큰 문제다. 

 

―유럽에서 극우파 운동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데 유럽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유럽의 유로 실험은 실패했다. 유럽연합 형성이라는 이념은 의미가 있지만, 유럽이 연합으로 하나가 되는 실험은 실패했다. 정치적으로도 실패했다. 여전히 유럽연합(EU) 헌법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영국에서 발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럽 사람들은 EU의 구상에 실망하고 있다. 올해 유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도 어디서든 계속 수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EU에서 탈퇴하는 이탈렉시트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가능성이 있다. 내가 얘기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 비극은 아니다. EU가 출범한 뒤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EU 헌법도 만들지 못하고 있고 엄청난 예산만 브뤼셀에서 낭비하고 있다. 그러니 일반인의 지지도 줄어들고 있다. 이탈렉시트가 발생한다고 해서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이머전시를 만들어 활동해온 게 올해로 23년째인데 이머전시의 목표를 설명한다면

“이머전시를 만든 목표는 전쟁 및 내전 피해자들에게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평화와 안전 인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다. 1만 명의 스태프와 1만 명의 의료자원봉사자들이 내전이 진행 중인 이라크와 리비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응급의료센터(First Aid Post)를 지어 전쟁 피해자들의 재활치료를 전담하고 있다. 내전 지역에는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시설도 충분하지 않아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다. 시에라리온과 아프간 등지에 산모를 위한 의료시설을 만든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탈리아에도 이머전시 의료센터를 세웠는데, 난민들이 이탈리아 곳곳에 많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와 마케라 등 11곳에 난민과 가난한 이탈리아인을 위한 의료센터를 만들었다.

 

6년여째 시리아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데 시리아에서도 활동하는가

“시리아 내부로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 시리아 난민캠프는 이라크 쪽에 만들어져 있다. 인도주의적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시리아뿐 아니라 이라크와 리비아 등도 인도적 재난상태로 치닫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지역 상태가 전반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이머전시에 요청할 텐데, 그런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나

“의료활동을 확대하고 싶지만 우리의 재원이나 인력에 한계가 있어 모두 대응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도 미래에는 그곳에 대응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렵다. 

 

2014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볼라 위기는 어떻게 넘겼나.

“당시 아주 어렵고 심각한 위기였다. 의료진은 물론 에볼라 전문가들이 합심해서 환자를 돌보고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내가 평생 겪은 최악의 사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고 도전적인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볼라는 라이베리아에서 주로 발생했는데 

“우리는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퇴치작업을 했는데 라이베리아에서 처음 발병했지만 난민들이 인접국인 시에라리온 쪽으로 넘어와서 그쪽에서 우리가 대응했다. 당시 주요 국가별로 대응지역을 나눠서 했다. 미국은 대개 라이베리아, 영국은 시에라리온, 프랑스는 기니에 집중했다. 한국 정부도 당시 의사와 간호사를 시에라리온에 파견해줘 큰 기여를 했다. 이머전시와도 긴밀하게 협력했다.

 

―이머전시 전체 운영비는 어떻게 마련하나. 

“이탈리아에서 기부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지뢰 피해자를 위한 기금이 많이 모였다. 왜냐하면 이탈리아는 주요 지뢰 생산국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지뢰 생산을 하기 때문에 지뢰 피해자를 지원하자는 캠페인도 많았고 그래서 활동비가 지원됐다. 특별하게 펀드레이징 캠페인을 한 것은 아니다. 우리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이들이 많다.

 

―개인이 만든 의료구호단체가 일시적인 동정심으로는 움직일 수 있겠지만 지속성을 갖고 활동하기 위해선 특별한 철학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는 긴급의료구호를 하면서 인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늘 생각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냐, 아니면 부유층의 특권이냐는 물음이다. 우리가 수단 카르툼에 병원을 건립할 때 “무료로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6개국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우리는 “의료는 곧 인권”이라는 신념으로 활동한다. 우리의 노력 덕분에 아프리카 국가들도 호응을 해서 ANM이라는 아프리카 의료협력기구가 생겨났을 정도다. 우리는 우간다에도 병원을 건립 중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원칙에 따라 우리는 모든 이가 똑같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한다.

 

―인간으로서 어려운 조건에서 일하는 것은 하루나 한 달, 아니 일 년 정도는 견딜 수 있겠지만 그렇게 30년 가까이 한결같이 내전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힘든 일일 텐데.

“의사이기 때문에 환자가 있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현장을 지키며 생명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세월이 흐른 것이다. 

 

―자선 정신으로 무장한 종교인도 아닌데 의사로서 그 어려운 순간들을 어떻게 견뎠나.

“현장에는 정말 많은 환자가 있다. 그러니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수술을 하고 치료한다. 힘든 일이지만 의미가 있고 보람도 있다. 

 

―어떤 보람인가 

“매 순간 그들을 수술하고, 그들이 회복돼 가는 과정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이머전시와 프랑스의 국경없는의사회와 비교한다면 

“우리는 내전현장에 병원과 의료센터를 만들어 현지에 기반을 두고 치료하는데 국경없는의사들은 긴급상황 시 투입돼 현장형 치료를 중시한다는 게 차이다. 

 

―한국에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유명한데 이머전시는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도 이머전시에 관심 있는 이들이 지부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상 연설을 들으면서 내전현장을 지키는 의사라기보다 전쟁터의 철학자, 반전운동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저 외과의사일 뿐이다. 그렇지만, 의사로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을 뿐이다. 의사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모두 자기 일에 골몰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생각해 보기 힘든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많은 영감을 준 연설이었다. 

“고맙다. 

 

69세인데 여전히 외과의사로서 수술을 하고 있나. 

“물론이다. 서울로 오기 전날 밤 수단의 살람 심장외과센터에서 심장수술을 한 뒤 출발했다. 우리는 그 병원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수술을 진행한다.

 

―수단에서 살고 있나. 

“한 해 몇 개월은 수단에서 살고, 내 고향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몇 개월 지낸다. 수단을 꼭 방문해 달라. 아주 놀랍고 흥미로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은퇴는 언제쯤 할 계획인지. 

“글쎄, 언젠가는 해야겠지만, 내가 수술할 힘과 에너지가 있는 한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나는 일하는 것을 즐긴다. 

 

―과거 인터뷰를 보면 내전현장에서 심장병이 발병했던데 

“이라크에서 발병했다. 발병한 지 10일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와 수술을 했고 성공했다. 완전히 회복했다. 

 

―골초라고 들었는데 흡연 외에 취미는 무엇인가 

“브리지 게임을 하기 좋아하는데 수단에서는 함께 할 친구들이 없어 못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낚시를 좋아했다. 요즘에는 쉬는 것이 취미다. 평온하게 쉬는 순간을 즐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테레사에 대해 얘기한다면. 

“정말 놀라운 여성이었다. 이머전시를 만들 때부터 함께 일했는데, 이렇게 키울 수 있었던 것은 테레사가 위대한 비전을 갖고 운영하면서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이머전시를 관리하고 키웠다. 이제는 딸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서울에 와서 느낀 것은 

“한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루 종일 호텔에 있어서 한국에 대해 별 느낌을 못 받았는데 한국인들은 아주 친절해 좋아한다. 

 

―한국에 처음 왔다고 했는데 북한에 가본 적이 있나 

“없다. 언젠가 북한에도 가보고 싶다. 

 

―한국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일을 위해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앞으로도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학평화상 수상기념 연설에서 난민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특별히 강조했는데

“누구도 난민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유럽 등지로 오는 난민들에 대해 우리가 인간적으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백 만 명이 아프간, 파키스탄, 르완다 등지에서 불안정하게 살고 있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세계가 평화로워진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새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난민기구 수장 출신인데,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가

“그는 난민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고 전임자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인 것 같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인터뷰=이미숙 국제부장 musel@munhwa.com

 

■인도

2016.01.15  [韓·인도 비즈니스 서밋] 모디 총리와 인터뷰…

[韓·인도 비즈니스 서밋] 모디 총리와 인터뷰… 本紙 김창균 편집국장

한국에 깊은 애정 - 韓, 수준 높은 기반시설 만들고

가장 위생적인 국가로 거듭나… 스마트시티 건설 추진의 교본

현재 가장 공들이는 개혁은 - 인프라 더 많이 필요한 인도

10~15년 걸쳐 개발 계획… 한국에도 좋은 기회될 것

양국 경제협력 확대 원해 - 韓기업, 수백만 인도가정과 호흡

인도인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 제조업·IT·車 등서 시너지 기대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가 14일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조선일보가 주최한 '한·인도 비즈니스 서밋'을 기념해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총리 관저에서 본지 김창균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 경제 개발에 한국 기업들이 적극 참여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인도는 곧 세계의 확실한 성장 동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선도자의 지위를 누리려면 '지금 당장 인도로 달려가자'는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도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은 모디 총리는 한국 기업 총수들이 대거 참여한 서밋 개최에 깊은 감사를 표했고, 한국의 성장 모델을 높게 평가했다. 특유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답변한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인도는 '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총리께서는 작년 5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은 영감을 불어넣는 나라"라고 했다.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조선일보가 서밋 개최란 창조적인 시도를 해서 성공한 것을 무척 축하한다. 조선일보는 인도에서 양자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한 첫 번째 언론사다. 조선일보가 양국 협력 관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상호 이익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준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개발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한국이 성공적으로 국가를 건설한 경험을 보면 우리가 배울 것이 무척 많다. 한국은 대학의 질 높은 교육과 기업 연구소의 연구·개발 성과를 통해 고도 기술 및 IT 분야의 제조업을 발전시켰다. 이런 성취는 나의 '메이크 인 인디아(인도의 제조업 발전)' 정책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또 한국은 전후(戰後) 수준 높은 인프라 시설을 갖추는 데 성공했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가장 위생적인 국가 중 하나로 거듭났다. 이는 우리가 스마트시티 건설 정책을 추진하는 데 매우 가치 있는 교본이 되고 있다."

 

▲한·인도 비즈니스 서밋이 개막한 14일 뉴델리 총리 관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오른쪽)가 본지 김창균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인도에서 한국을 더 많이 보고 싶다”면서 양국 기업들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뉴델리=조인원 기자

 

―인도는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나.

"한국의 산업과 기술 역량 그리고 인도의 개발 수요 사이의 협력은 무척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은 인도의 경제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도는 현재 아시아의 성장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고, 곧 세계의 확실한 성장 동력으로도 부상할 것이다. 한국은 이런 우리에게 기술과 재정적인 연료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다.

 

그리고 인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경제 협력 파트너 국가다. 인도 경제는 앞으로 최소 수십년간 협력 관계에 있는 한국의 번영과 성장을 약속하는 대단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런 사실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취임 후 업적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인도의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는 각계의 요구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즉각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팀 인디아'로 함께 일하고 있다. 조세 제도와 규제 체계를 단순화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인도에서의 사업을 쉽고 예측 가능하면서 저렴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지방정부 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효율성을 높여줄 것이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염려하는 규제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노력은 이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내가 취임한 후 17개월간 인도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이전 17개월보다 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직접투자 총액이 16%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라고 자부한다. 지난 1년간 사실상 인도에서만 대규모 투자가 진행됐다. 이를 통해 인도의 제조업은 강해질 것이고 글로벌 수요를 충족할 능력도 강화될 것이다. 이게 '메이크 인 인디아'다."

 

―취임 후 여러 개혁 조치를 했지만 아직 미진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인도는 각종 인프라를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지어야 한다. 이는 인도에 매우 도전적인 일이지만, 한국 같은 인도의 파트너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나는 인도가 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선 10년에서 15년에 걸친 개발 계획이 필요하다. 나는 인도의 사업 환경에 대한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인도는 개방적이면서 규율이 잘 갖춰져 있고 민주적인 지배 구조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 기업 환경 순위에서 높은 순위를 얻지 못하는 데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재 인도의 기업 환경은 무척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이를 더욱 촉진하면서 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지난 11일 인도 뉴델리 최대 박람회장인 프라가티마이단을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주제의 박람회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중앙로를 따라 전시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인도 경제는 지난해 중국(6.8%)을 제치고 7.3%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뉴델리=오종찬 기자

 

―총리께서 추진하는 정부 개혁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힌두어로 깨끗함을 의미하는 'swach (스와처)'란 단어가 있다. 이는 단순히 '위생적'이란 뜻뿐 아니라 '공정함'의 뜻도 담고 있다. 모든 인도 국민이 건강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게 나의 꿈이다. 또 모든 인도 국민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정부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정부 개혁은 관료들이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확실한 신뢰를 심어주면서 그들의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우리 관료들이 열심히 일하면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또 모든 인도 국민이 잘살고 싶고 더 좋은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한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인도에서 한국을 더 많이 보고 싶다. 한국 기업들은 수백만 인도 가정과 함께 호흡해 왔다. 이로 인해 많은 인도인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한국과 인도는 제조업, 핵심적인 지식 경제 분야 특히 IT 산업, 차세대 에너지, 자동차, 조선 분야에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한국 기업들은 인도의 개발과 변혁에 필요한 파트너가 될 훌륭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인도에서는 한국 기업의 새로운 활약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이번 서밋이 한국 기업인들에게 인도에서의 기회를 환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모디, 그는 누구인가]

모디 총리는 세계 7대 경제 대국의 지도자이자 작년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 9위에 올랐다.

 

모디 총리는 2014년 5월 인도 국민당(BJP)이 하원에서 단독 과반수 의석 승리를 거두면서 15대 총리로 선출됐다. 개혁을 열망하던 빈곤층과 젊은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취임 후 모디 총리는 ‘재외동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일즈 외교에 주력하는 동시에 ‘메이크 인 인디아’(제조업 인도)를 외치며 성장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결과 인도는 작년에 중국(6.8%)을 제치고 7.3%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했다.

조선일보 정리=박유연 기자

 

■일본

□2015.06.03 "日서 아베 반대 목소리 커지게 韓·中이 도와야"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大 총장

日 유권자 절대다수는 일본의 군사적 팽창 반대

중국의 위협은 크게 느껴…

한국과 달리 美와 동맹 만족 한국, 통일을 하겠다는 건지 하면 좋다는 정도인지 모호

효과적으로 권력 유지한 北, 미친 정권 아닌 영리한 집단

北붕괴 바라는 주변국 없어… 한국, 통일 위해 친구 늘려야

韓·日 관계 좋아지면 日보다 한국이 더 이익

 

정치학자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71) 니가타현립대 총장은 영어와 일어로 논문을 쓰고, 독어·불어·한국어·중국어·러시아어로 구두(口頭) 발표를 한다. 한때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도 배웠다. 일본인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 중 하나이자, 복잡한 현실을 숫자와 모형으로 간명하게 풀어내는 계량정치학의 대가다. "한·일을 둘러싼 세계가 도대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다"고 묻자, 그는 듣기 좋은 말 따위 하지 않고 핵심으로 직진했다.

 

"중국은 30년 고도성장이 끝나고 한 자릿수 성장 중이다. 그게 중국의 뉴노멀이다. 제조업 설비 과잉 때문에 수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민족 간, 도농 간 격차가 커지는 중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강자들이 충돌하는 위치에 있는데, 한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은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 아직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세계 어디서나 미국이 우위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최소한 태평양 절반과 아시아는 중국 세력권에 넣어야겠다고 맞서고 있다. 일본은 긴 평화를 누렸지만, 이젠 세계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일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국민 과반수가 미국과의 동맹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국민 대다수가 미국과의 동맹에 만족한다. 이 점이 한·일이 완전히 다른 점이다. 일본은 강력한 과학기술과 제조 능력을 매개로 미국과 뭉치는 중이다."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대 총장은“전후 일본 국민 대다수는 전쟁을 반복하거나 군국주의 노선에 들어서는 데 줄곧 반대해왔으나 그런 목소리는 이상하게 한국 국민 귀에 안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DB

 

이노구치 총장은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이념적으로 '중도 리버럴'이다. 이상을 내세우는 것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읽는 걸 중요시한다. 그는 여러 번 허를 찌르는 예측을 했다. 2003년 미국이 막 후세인을 몰아냈을 때 "지금 당장은 미국 일극 체제가 강고할 것 같지만, 머지않아 문득 돌아보면 '아시아·유럽·미국 3극 체제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놓치고 있는 대목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도 그의 장기다. 한국은 "일본이 군사대국화한다"고 경계해왔다. 그는 "일본이 중국에 대해 느끼는 군사적 위협은 과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 중국 공군이 굉음을 울리며 남중국해와 태평양 상공을 수시로, 위협적으로 비행한다.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면 중국과 한국이 즉각 반발한다. 일본이 한 발짝 떼면 그게 곧 아흔아홉 발짝의 시작이라는 논리를 댄다. 그런데 사실 일본 유권자 절대다수는 (한·중이 우려하는 군사적 팽창에) 반대다. 중국과 북한은 한국을 공격한 전력이 있고, 그럴 수 있는 현실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과 북한보다 일본에 위협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그는 "한국인 과반수가 통일을 원하는데, 과연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물었다. 한국과 북한을 둘러싼 외부 세력 중 북한의 붕괴를 진심으로 바라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중국과 미국에 북한은 서로의 중간에 가로놓인 '완충장치'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무너지고 한국이 흡수하면 '미국 세력이 턱밑에 왔다'고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이 잔존하고 한국도 미국과 멀어지면 중국 입장에선 미국과의 완충장치가 두 개가 된다."

 

요컨대 정말로 통일에 관심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는 의미일까. 이노구치 총장은 "한국도 통일을 정말로 하겠다는 건지, 그냥 했으면 좋겠다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욕망만큼 준비도 치열한가' 하는 반문이 숨어 있었다. 그는 "북한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미친 정권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면서 "그들은 누구도 그들이 존속하길 바라지 않는 적대적인 세계 속에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매우 영리한 판단을 거듭하면서 효과적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집단"이라고 했다.

 

앞으로 10년 뒤 동북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이노구치 총장은 "중국이 아닌 미국이 세계 최고 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국내적으로 자치(自治)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커져 있을 테지만 아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과 큰 변화 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일본 자위대가 세계 곳곳에서 미군을 후방 지원하겠다고 했으니, 그때쯤 되면 '전후 첫 전사자'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일본이 직접적으로 군사 개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긴 안목으로 보면 동북아 국가들이 무력충돌할 가능성은 낮다. 한·중·일이 노력하면, 그리고 '천천히' 가면, 유럽연합 같은 3자 FTA를 이룰 수 있다. 큰 흐름은 이쪽이다. 다만 2025년에 한·중·일 FTA가 이뤄져 있을 가능성은 아직 25~30% 정도다."

 

그는 "착각이 참화를 부른다"면서 "중국은 영국을 얕보다 아편전쟁에 졌고, 일본은 중국을 깔보고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다. 지금 한국은 어떤 착각을 하고 있을까. 이노구치 총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익 성향 망언들과 관련해 "일본 사회에는 아베 총리가 그런 발언을 해주길 바라는 소수가 있고, 아베는 때로 그걸 만족시켜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노래로 치면 '사이드 멜로디'다. 한·중이 침묵하면 오히려 일본 국내에서 아베의 그런 언동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한·중이 목소리 높이기 전까지는, 일본 사회에서 그런 사이드 멜로디가 지금처럼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 그는 달콤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한·일 관계가 좋으면 일본도 이익이지만 한국이 더 이익"이라고 했다. "일본에 한국은 중요하지만 불가결하지는 않다. 기술적으로 일본이 한국에서 배울 게 많지 않다. 반면 한국은 통일이라는 난제를 짊어지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친구를 늘려야 한다."

 

[이노구치 총장은…]

한국어 등 7개 국어에 능통… '천재'로 불리는 정치학자 1944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도쿄대 교수를 거쳐 니가타현립대 총장에 취임했다. 소장 교수 시절 냉전 이후 국제 관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치학, 국제관계론, 일본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일본 정치학자 중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조선일보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 2015.06.10  [무라야마 前총리·고노 前관방장관 처음으로 한 자리서 대담… 아베에 쓴소리]

무라야마, 벼르고 나온 듯… - "담화 반드시 계승해야"

방명록에 '진실'이라 쓴 고노 - "담화는 개인 의견 아니다"

 

벼르고 나온 것 같았다. 9일 오후 2시 도쿄 도심 일본기자클럽에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1) 전 일본 총리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78) 전 관방장관이 들어섰다. 일본군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고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이다. 이념도, 정당도 다른 두 사람이 이 문제로 한자리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시간 전부터 200석 회의실을 꽉 채우고 기다린 기자들 앞에서 두 원로가 아베 정권을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 구라시게 아쓰로(倉重篤郞)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이 사회자 겸 질문자로 나섰다.

 

한·일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온 두 담화의 주인공 무라야마 도미이치(오른쪽) 전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9일 일본 기자클럽 회의실을 가득 메운 취재진 앞에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은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을 당부했다. /김수혜 특파원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평가한다면.

▲고노=무라야마 담화는 전후 50년을 맞아 나왔다. 그때 일본은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자민당·사민당·사키가케 3당 연립정권이 성립됐다. 과거 50년간 일본이 어떤 길을 걸어왔나 돌아보고, 앞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했다. 자민당 의원들도 다수가 공감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무라야마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생각이 표출된 것이다. 전후 50주년에 이 담화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무라야마=(위안부 이슈가 처음 불거졌을 때) 한국은 '반드시 일본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는 입장이었다. 이래선 서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 고노 담화가 나왔다. 일본 정부의 노력을 보여줬다. 유익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국민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요즘 '침략'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는데.

▲무라야마=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했던 것,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만주에 가서 만주국을 세운 것에 대해 침략 말고 다른 표현을 쓸 수 없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의견은.

▲고노=미야자와 정권(1991~93년) 때 한국의 요청으로 위안부 문제를 조사한 뒤 고노 담화를 냈다. 위안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되고 관리됐다. 거짓말로 속여서 끌고 간 경우도 있고, 최근 아베 총리가 말한 것처럼 인신매매 당한 경우도 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모집된 뒤에는 분명히 강제로 끌려갔다. 군이 준비한 운송수단을 타고 이동한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이 끌려간 사건을 봐도, '강제동원 사실이 없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무라야마=작년에 한국 갔을 때,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이렇게 관심이 큰 줄 몰랐다. 중국에서도 모두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일본만 잘 모른다. 모두가, 특히 한국이, 일본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런 걱정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책도 역시 일본이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관계에 진전이 없다. 한국도 일본이 전후 평화국가를 위해 노력한 점, 일본 경제가 발전해 한국과 중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베 담화, 어떤 내용이 돼야 할까.

▲무라야마=나는 과거에 대해 좋은 것은 좋았다고 인정하고, 나쁜 것은 나빴다고 사죄해야 한다는 결의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냈다. (아베 총리는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일본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반복할 수 있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반드시 계승해야 한다.

 

이날 고노는 일본기자클럽 방명록에 '진실(眞實)'이라고 썼다. 그는 "우선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척하면 안 된다"고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사무사(思無邪)'라고 썼다. 논어의 한 귀절로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고노 장관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과 표현은 달라도 같은 의미"라고 했다. 일본 기자 한 명이 마이크를 잡더니 "실례지만, 두 분 같은 분이 다시 한 번 현역으로 돌아와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박수와 웃음이 터졌다.   

- 도쿄=김수혜 특파원

goodluck@chosun.com

도쿄=양지혜 특파원

 

□ 나리사와 마사루(66) 전 일본 도호쿠대 교수 인터뷰

2015.06.20  글 | 김정현 주간조선 기자

“위안부 납치 부정은 전후 일본의 존립근거 뒤흔드는 일”

▲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나리사와 마사루(66) 전 일본 도호쿠대 교수는 서툴지만 또렷한 한국어로 말했다. 70살 가까운 노인이 막내아들뻘 되는 내 앞에서 시종일관 무릎을 꿇고 말을 이어갔다.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을 한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아베(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 강제 동원에 대해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것은 너무나도 뻔뻔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리사와 마사루 박사를 만난 건 지난 5월 초였다. 그는 일본 도호쿠대에서 동북아시아 역사를 연구하고 강의해 왔다. 도호쿠대 퇴임 후에는 역사적 사실을 둘러싸고 국가 간 견해 차가 발생하는 메커니즘과 이를 축소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나리사와 박사는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도호쿠대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한국인 제자들의 초청으로 이번에 방한했다. 한국인 기자를 만난 건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아베 정권의 잘못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발언을 자제해 왔다고 한다.
   
   
나리사와 박사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안일함을 질타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일본의 역사왜곡 행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 주장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드러내 공론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대전 전범국인 일본이 국가주권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것들이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유엔헌장 55조와 56조를 지키겠다”는 약속이 들어 있다. 이 조항은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고 평화와 평등,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협력을 다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범국인 일본으로서는 2차 대전 중 저지른 반인권 범죄를 반성하고 국제적인 차원의 인권 정신을 따르겠다는 약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2차 대전 당시 저지른 위안부 납치와 같은 대표적인 반인권 범죄 사실조차 부인한다면 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준수 의무를 어기는 꼴이 된다. 나리사와 박사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강제 납치를 부정하는 건 현대 일본의 존립근거를 뒤흔드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1976년 발효된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b(ICCPR-b)’에 대해서도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국제규약은 북한 인권법 등의 근거가 된 것으로 일본도 이를 적용받으면 자신들이 저지른 반인권 범죄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규약은 국제법보다 국내법이 우선하는 일반 국가라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리사와 박사에 따르면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 그 이유는 ICCPR-b가 성립한 근거가 유엔헌장(특히 55조와 56) 및 세계인권선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본은 이러한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을 준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전범국 책임을 면했다. 그런 일본이 만약 국내법이 국제법보다 우월하다는 이유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면 전범국의 책임을 다시 물어 마땅하다는 것이 나리사와 교수의 주장이다. 일종의 계약 위반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79년 이전의 사항에 대해서는 ICCPR-b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2008 10 16일 우에다 유엔인권대사 발언)는 주장도 펴고 있다. 하지만 나리사와 박사에 따르면, 인권(자유권) 문제는 법 개념상 일반적 사법 절차를 뛰어넘는다. 즉 일본이 준수를 약속한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인 준수’(유엔헌장 55 C)라는 조항으로 미루어 ‘기본적 자유는 보편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법 제정의 시간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1979년 이전에 벌어진 일이므로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고 발뺌할 수 없다는 것이 나리사와 박사의 주장이다.
   
   
나리사와 박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아베 정부를 일부 일본인들이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위안부 문제와 같은 잘못을 인정하는 행위가 국민의 정서와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리사와 박사는 “특히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의 언론과 학회는 한국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왜곡을 조장하고 있다. 진실된 의견을 내면 배신자로 취급받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학계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칭했던 왜()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대표적 진보 성향 학자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학 명예교수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사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바로 등 뒤에서 “명예교수가 아닌 불명예 교수”라는 조롱 섞인 비판을 듣기도 했다는 것이 나리사와 박사의 전언이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 굉장히 무례한 행동으로, 자국을 비판하는 발언이 일본 학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나리사와 박사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 다음날 일본으로 돌아갔다. 지난 5 25일 일본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16개 단체가 ‘군 위안부 왜곡 반대’ 집단 성명을 냈다. 성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제 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그간의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입증됐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일본 스스로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임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성명이 계기가 돼 일본의 나리사와 박사와 다시 연락을 취했다.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듣고 싶었다.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나리사와 박사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 사이 한국의 국회의원, 외교관들과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내게 보내왔다. 그 내용을 보니 나리사와 박사가 ‘한국의 위안부 문제 대응과 관련해 도움을 주고 싶다’며 편지를 보낸 한국의 국회의원과 외교관들은 수차례 만남 약속을 잡고도 약속을 취소하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답신을 피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K 과장은 나리사와 박사에게 ‘일본 측 정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위안부 일을 거론하지 않는 게 좋다’는 답신을 보내기도 했다.
   
   
나리사와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말 나리사와 박사는 일본의 위안부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취지의 연구를 하겠다며 한국의 K대 일본연구소가 운영하는 ‘일본 연구, 지적교류연구조성 프로그램’에 자신의 연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일본교류기금을 받아온 K대 일본연구소는 나리사와 박사의 요청을 거부했다.
   
   
나리사와 박사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동조해온 일본 학자는 물론, 한국 학자들의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그는 “위안부 문제가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감춰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네덜란드의 위안부 문제를 들었다. 나리사와 박사는 “2차 대전 때 음식접대, 사무보조, 성 서비스 등 일본군 시설에서 노동하던 네덜란드 여성이 300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그중 강제 성 서비스를 한 여성이 65명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194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임시 국제군법회의에 소송을 제기한 네덜란드 여성 35명 중 25명은 강제연행을 인정받았다. 강제연행을 주도한 육군소좌 오카다 케이지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 재판은 이미 잘 알려진 고노담화 작성의 근거 자료가 됐다. 이렇게 작성된 고노담화조차 최근 일본에서 부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리사와 박사는 “아베 정부가 한·일 역사를 왜곡하려고 하는 것은 자명하다”며 “한국 정부의 똑똑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출처 | 주간조선 2360호

 

□ 2016-08-27 “사드-美MD 결합때 효과 탁월… 中 트집은 주권 간섭일뿐”

요동치는 한반도 주변 정세… 日-中전문가에게 듣는다 [日 모리모토 사토시 前방위상]

▲일본 최고 안보 전문가로 꼽히는 모리모토 사토시 다쿠쇼쿠대 총장은 “주권 국가는 자위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대는 주권 간섭”이라고 말했다. 모리모토 총장은 민간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방위상을 지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동북아시아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겁니다. 미국과 일본이 가진 미사일방어체계(MD)와 합쳐 생각하면 그 공헌도는 현저한 것이 됩니다.”

 

일본 최고 안보전문가이자 민간인 첫 방위상(한국의 국방부 장관)을 지낸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다쿠쇼쿠(拓殖)대 총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반도 내 사드 배치 결정에 힘을 실었다.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반발하며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동시에 한국에 대해선 보복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근거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세계 속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미중 대결을 중심으로 주변국이 국가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북아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의 반발이 거세다.
“중국이 반대하는 것은 사드보다는 X밴드 레이더다. 중국 국토 남쪽 절반의 전략시스템이 탐지되는 것을 경계한다. 왜 반대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한반도 긴장 고조’ 등을 들먹이지만 거기(중국 남부)에 가상 적국인 미국을 공격할 전략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는 북한에 대한 방어 수단이며 중국은 대상이 아니라고 거듭 설명해도 막무가내이다. 이는 주권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무릇 주권국은 자위(自衛) 수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사드의 실효성이 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일본은 아직 도입하지 않았는데….

“어떤 시스템이건 100% 방위란 불가능하다. 다만 사드가 일본의 지대공 패트리엇 미사일(PAC―3)보다 유효한 방위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훨씬 광역이고 높은 고도를 커버한다. 사드 배치국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일본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이미 이지스함과 PAC―3로 중층 방어망을 짜놓았다. 여기에 사드를 더하면 전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될지 신중하게 분석하고 있다.”

 

―누가 새 대통령이 되든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비용 분담 요구를 늘릴 것 같다.

“주둔 미군에 대한 경비 분담만으로 동맹국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미국의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미국의 불만은 ‘동맹국이 대가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 안정을 위해 미국을 지원하는 여러 가지 노력을 다양한 분야에서 해달라는 것이다.”

 

―일본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2017년도 미국 국방부 예산안에 들어간 ‘제3 오프셋(상쇄) 전략’이란 게 있다.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해 기술 우위로 미국의 리더십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미국과 일본 간에 갖가지 기술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미사일 방위 분야에서 SM―3를 개량한 고고도 요격미사일 방위기술(SM―3-블록2A)을 개발 중인데, 2018년에는 테스트에 들어갈 것이다.”

 

―사드와 유사한 것인가.
“전혀 다르다. 사드는 종말 단계인데 이건 중간 단계에서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북한에서 발사돼 하와이나 괌, 미 본토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도중에 요격한다. 현재 시스템은 사정 1300km ‘노동’급 미사일에 대비하는데 이보다 높은 고도와 높은 속도를 막는다. 이 밖에 일본은 탄소섬유나 부품 기술을 미국에 제공한다.”

 

―최근 일본은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서 여차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공백을 메우려는 각오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여론이 중국에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은 대국(大國)이 분명하지만 공산당 독재 체제하의 중국 경제는 성장에 한계가 명확하다. 남의 것을 흉내 내고 이용할 뿐인 데다 국제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요즘 중국인 관광객이 늘었지만 매너가 없다.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아무 데나 쓰레기를 던지면 일본인 직원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속이 끓는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군사력을 키워 주변국을 위협하는 태도를 보며 싫은 감정이 커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이런 중국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국민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베 정권의 인기는 북한과 중국 덕인지도 모른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결정을 무시할 태세다.
“공산당 일당 독재에 대한 국내 불만을 수습해야 하는 시진핑(習近平) 체제는 국제법과 타협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제법 위반국’이라는 지적은 그들에게도 유쾌하지 않다. 결국 외교적 주장은 계속하되 행동에서는 페이스를 늦추는, 미소(美蘇) 냉전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동중국해에서도 긴장은 고조돼도 충돌은 피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존재감 부재다. 결국 미국 대선이 끝나고 중국에 대한 명확한 정책이 나올 때까지, 불안정한 정체 상태가 이어질 것이다.”

 

―강대국들의 자국 이기주의 강화 속에 세계 질서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리더십 부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9월 시리아 문제에 대해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앞서 2012년 1월 발표한 ‘신국방전략’은 전 세계 미군을 서서히 철수시킨다는 계획을 담았다. 힘의 공백을 틈타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 확장에 나섰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시리아에 개입했다. 중국도 2014년부터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를 진행했다. 이슬람국가(IS)의 테러도 2014년부터 세계로 확산됐다.”

 

―‘핵 없는 세계’를 내세운 오바마 정권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역설인가.

“과거에는 깡패 국가가 나타나면 가치관을 공유한 나라들이 연합군을 만들어 법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현재로서는 국제법에 기초한 질서 유지와 법 집행을 할 방법이 없다.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규탄 성명도 채택 못 하지 않았나. 오바마 정권은 미국이 지난 50년 이상 국제 문제에 군사적으로 관여했지만 재정은 조여들고, 병사들은 상처받았으며, 각국에서 반미 감정만 고조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주장과 유사하지 않은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함부로 ‘세계의 경찰관을 안 하겠다’고 발언하면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그 존재 자체가 억지력으로 작용하는데, 딱 잘라 그렇게 선언하니 러시아나 중국이 안심하고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나라건 자기만 챙기는 ‘내향성(內向性)’이 강화돼 있다. 자국 이익이 최우선으로 아무도 국제사회를 위해 희생할 생각이 없다.”

 

―미국인 상당수는 고립주의에 찬동하는 듯하다.
“국내 여론은 그렇다. 하지만 과거 미국은 국내 반대를 무릅쓰고 타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해왔다. 특히 미국이 주도한 전쟁 상당수는 민주당 행정부가 시작했다. 전쟁이 좋아서가 아니고 그것이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미국의 국익, 경제 이익으로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집권하면 미국의 리더십이 회복된다는 것인가.

“오바마 정권보다는 나을 거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희생은 일절 안 된다’는 교조적 생각을 가졌다. 클린턴은 오바마 정권의 국무장관 시절부터 그런 나이브한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가장 바람직한 모양새는 동맹국들이 좀 더 미국의 역할을 보완하면서 미국이 보다 큰 리더십을 발휘하게 해주고 지역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 일본이 하려는 것 말인가.
“일본은 헌법 문제가 남아 있다. 지난해 안보법제는 통과됐지만 미군에 대한 후방 지원이 겨우 가능한 정도다. 미국의 다음 정권과 미일 동맹을 어떤 방향으로 가져갈지, 일본은 어떤 역할을 추가로 해 나갈지 논의해야 한다.” 안보법제 개정은 아베 정권이 미국의 국방 전략에 보조를 맞추고 미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해 추진했다는 평가도 들린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개헌 로드맵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8일 생전퇴위 의사를 밝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개헌’을 누차 말하고 있다.

“헌법 9조가 아니고 헌법에 손대고 싶다는 것이다. 작은 조항, 가령 재해 시 긴급사태 조항 같은 것이라도 고친 총리로 역사에 남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분을 손댄다면 국회 발의와 국민 과반 찬성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헌법심사회에서 연구안을 내달라는 것이다. 그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2013년 12월 전까지는 원리주의자에 가까웠지만 그 뒤 현실주의자로 변모했다. 이 점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

 

  :: 모리모토 사토시 프로필 ::

○ 1941년 일본 도쿄 생

○ 1965년 방위대 전기공학과 졸업, 항공자위대 자위관

○ 1979년 외무성 주미 일본대사관 1등 서기 관, 정보조사국 안전보장정책실장 등

○ 1992년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 등

○ 2000년 다쿠쇼쿠대 국제학부 교수

○ 2009년 일본 초대 방위상 보좌관

○ 2012년 제11대 방위상(민간인 최초·노다 요시히코 총리 정권) ○ 2016년∼현재 다쿠쇼쿠대 총장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2016년 02월 12일(金) 파워인터뷰-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大 교수

한국 경제에 대한 애정… “‘우리 한국’도 국가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가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연세대 새천년관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아베노믹스 전망과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최근의 한국 경제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의 유동성 위기와는 다른 구조적 위기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충분한 위기’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지난 2일 진행된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早稻田)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의 인터뷰에서 준비된 질문에 대한 문답이 모두 끝나고 한국 경제에 대해 충고나 조언을 부탁했다. 그러자 후카가와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경제에 대한 뼈아픈 지적을 쏟아냈다. 그의 말은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임이 확실했지만,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국인 학자의 애착도 여실하게 느껴졌다. 

 

후카가와 교수는 이날 인터뷰 말미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 한국’도 옛날의 국가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너무 지나치게 (경제에) 개입해서 정경유착이 생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때가 됐다 싶으면 수시로 정치인들이 기업 비리에 연루돼 검찰청에 소환되는 풍경이 연출되는 것을 감안할 때 후카가와 교수의 지적은 적확한 것이었다.

 

후카가와 교수는 “관료나 정치인들, 특히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옛날의 사고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옛날과 똑같은 생각이란 것은, 어떤 기업을 뽑아서 정부가 집중적으로 도와주고 대단한 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의 재벌기업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재벌은 회사가 이만큼 커지고 나서 자기네가 어려워지면 당연히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를 가지게 됐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면 정치 파워가 세지는 것이고 그것이 정경유착의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후카가와 교수는 정부 주도의 국가자본주의 대신 사회보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 원리가 작용하지 못하는 부분은 정부가 도와줘야 하고 그것이 사회보장”이라며 “세이프티 네트워크(사회적 안전망) 없이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이 창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후카가와 교수는 “(사업에 실패해도) 자기의 인생이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으로 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가 재정적으로 약간 여유가 있으니까 지금 (사회적 안전망 확보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30년 넘게 韓경제 연구한 대표적 지한파 학자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早稻田)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는 대표적인 지한파 경제학자다. 30년 넘게 한국 경제를 연구하면서 쌓인 예리한 분석과 정연한 논리로 한국 경제에 대한 칭찬과 비판을 서슴없이 해 한·일 관계 심포지엄이나 각종 학술회의에 항상 초청받는 인사다. 

 

후카가와 교수가 한국 경제를 연구하게 된 요인에서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는 “학자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나는 한국민들이 필사적으로 발전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진 것에 주목했다”며 “이런 욕망을 한국민들이 안고 있는 한 한국이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일대에서 국제 경제학 석사, 와세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0년대에 한국산업연구원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일했다. ‘대전환기의 한국경제’ ‘한국, 선진국 경제론’ 등 각종 한국 경제 관련 책도 썼다. 지금은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 교수로 한국에 머물며 한국 경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정치적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그의 한국 경제에 대한 연구는 중단없이 지속됐다. 후카가와 교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에는 정치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며 “경제학이 근거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학문이다 보니 한국 경제학자들과 이야기하면서 어떠한 불쾌한 경험도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였다. 

 

후카가와 교수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향후 계획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은퇴하기 전에 한국이 진짜 선진국이 될지 결정될 것 같아 이를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통일이라는 특수한 문제가 있다”며 “통일이 된 뒤 한국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지켜보고 싶은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졸업 △예일대 석사 △와세다대 박사 △일본무역진흥회·장기신용은행종합연구소 연구원 △한국산업연구원 방문연구원 △미 컬럼비아대 경제연구센터 객원연구원 △고려대 객원연구원 △와세다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 △아베 정권 경제전략 상담역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정치괴물 된 강성노조… 한국경제 구조개혁 가로막아”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大 교수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早稻田)대 정치경제학술원 교수는 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일본인 여성 경제학자라는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과 여성이라는, 어쩌면 한국 경제를 공부하는 데 있어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는 한국 경제 연구에 30년 넘게 천착해 오면서 손꼽히는 지한파 경제학자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2일 연세대 새천년관 국제대학원 연구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후카가와 교수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은 물론 일본 경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전망을 끊임없이 내놓았다. 한국 경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답게 한국이 추구해온 경제 성장전략과 성과, 또 그 전략이 갖는 한계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내놓았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아베노믹스에 대한 설명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내각 1차 집권(2006∼2007년) 당시 경제전략 상담역으로 일한 경험이 묻어났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과 일본 경제를 넘나든 2시간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을 따라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 달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는데, 이를 아베노믹스 진행에 차질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실물 경제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떨어졌다는 것이지요. 제조업 같은 분야는 경제가 워낙 안 좋아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일단 양적 완화를 하기는 했는데, 충분히 (경기 부양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마이너스 금리 정도의 조치를 더 해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 것 같아요. (1월 29일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대해 찬성·반대) 5대 4로 결정됐기 때문에 반대했던 사람도 상당히 많았지요. 아무 조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부작용까지 합쳐서 계산하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냐고 의심스럽게 생각한 사람이 (금융정책) 심의위원들 중 4명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겠다고 밀어붙인 것이고요. 아마 일본은행이 상당히 정치적으로 독립된 존재이기도 하지만, 선거(7월의 참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단기간에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아베노믹스 진행에 차질이 있어서, 혹은 일본 경제가 주춤할 것이란 걱정이 있어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 결정이 나왔다는 의미인가요.

“아베노믹스는 2015년 중에 2% 물가 상승이란 데드라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거의 무리가 되다 보니까 연기를 시켰던 것이고. (아베노믹스를) 해봤더니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정책이라서 어느 정도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 몰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미국이나 유럽보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20년’의 디플레이션이 생각보다 강력히 침투해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이 ‘쉽게 인플레이션이 될 것이다’는 것보다는 너무 디플레이션 속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쉽게 그런 기대(인플레이션)에 작용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디플레이션 탈출 기미 또는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 비교적 낙관적으로 봅니다. 다행히 (일본 산업계에서) 이노베이션(혁신)이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아요.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같은 뭔가 프런티어(선도적 분야)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당장 성장동력이 되는 건 아니지만, 방향이 보였다는 것 자체가 낙관적입니다. 이제까지 하드웨어 제조업에 치중하면서 ‘어떻게 중국과 싸울 수 있을까’ 했던 것보다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어요. 아베노믹스 ‘세 개의 화살’ 중에 첫 번째 화살, 즉 거시 정책(금융완화)은 사람들이 많이 공부가 됐고 일단 주가도 상당히 괜찮은 정도까지 올라갔어요. 최근에 중국이나 미국 때문에 많이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되기도 했고요. 닛케이평균주가가 1만7000∼1만8000엔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죠. 어쨌든 (일본기업들도) 역대 최고 이익을 내고 있고요. 의심스러운 것은 두 번째 화살(재정 확대), 세 번째 화살(성장전략)인데 두 번째 화살은 재정 건전화를 해야 하고, 그 길을 제시해야 하는데 자꾸 선거가 있다 보니까. 또 내년에 소비세 인상 문제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에 대해 항상 정치적인 발언이 많기 때문에 장기적인 그림이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는 것을 일부에서는 위기로 보고 있어요. 또 아무래도 세 번째 화살, 성장전략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아까 말했듯이 방향은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핀테크(IT금융), IoT 등에 기업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요.”

 

―일본 기업들의 성장전략은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어도, 물가 상승을 위한 임금인상은 잘 안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지금 일본은 완전고용 상태입니다. 사반세기 만에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어요. 노동력이 부족해서 성장을 못 하는 상황이지요. 그렇다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임금이 오를까요? 아니에요. 왜냐면 항상 기업은 리스크(위험)가 있다고 보는 동안에는 절대 연봉 베이스를 인상하기 어렵습니다. 연봉 베이스가 늘어나면 연금, 퇴직금 모두 연결돼 있는데 그렇게까지 (임금 비용의) 리스크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거지요. 유럽이나 미국처럼 (디플레이션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 20년 동안 있던 것이라서 쉽게 (임금 인상 기조를) 따라갈 수는 없어요. 기업은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돈을 더 주겠다고 하겠지만, 아직은 그렇게까지 할 자신이 없어요.”

 

―그럼 언제쯤 아베노믹스의 성과에 따라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직은 절반 정도 아닐까 싶어요. 2017년에 소비세가 10%로 인상되고 나서, 그럼에도 물가가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생겨야 되지 않을까요. 그게(소비세 인상이) 충격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때까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베노믹스를 시작한 지 이제 5년 정도인데, 미국은 벤 버냉키(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가 양적완화를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됐어요. 그래서 당연히 일본은 시간이 더 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상당히 다른 경제 상황이고, 노동력 부족으로 힘든 상황이에요. 지금도 인구가 고령화 상태인데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완전히 은퇴하는 2017년 정도 이후에는 더 심해질 수가 있어요. 그게 미국하고 큰 차이지요. 어쨌든 2017년이 굉장한 고비가 될 것이라 봅니다.”

 

―아베 정권은 지난해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경제성장의 한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인데, TPP가 실제 발효되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현재부터 TPP가 발효되기까지 일본은 어떤 경제적 모멘텀을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일단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일본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에요. 정부는 각 분야에 목표가 있어요. 관광객 유치도 목표치인 연간 2000만 명에 거의 조기 도달했고, 인바운드(내수) 투자유치도 옛날에는 말만 했지만 이제는 진짜 해야겠다는 곳이 있지요. 그런 게 TPP와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비즈니스 환경이 좋아져야 외국인도 투자해주는 것이고, 그래서 노동시장도 유연하게 해주고 규제도 완화해야 하고요. 상징적인 예로, 미국의 아마존이 드론 배송망을 일본에 만들겠다는 것 등의 케이스가 몇 개나 있어요. 그런 것은 TPP의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모델 환경 속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아마존은 그런 모델을 중국에서 시도할 수도 있는데, 거기서 하기에는 뭔가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해 일본에서 한번 실험을 해보겠다는 것이지요. 이런 부분들에서 성장전략과 TPP는 인터페이스(접점)가 있다고 봐야 되는 것이지요.”

 

―교수님의 과거 기고문 등을 보면 자유무역협정(FTA)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TPP 출범 멤버에서 빠진 한국은 어떤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될까요?

“아직 TPP는 비준 자체도 안 됐으니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생각할 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한국은 거의 모든 나라들과 FTA를 맺고 있어 TPP에서 빠진 것이 큰 문제는 없겠지요. 다만 한국 국내에서는 FTA 정책에 대한 불신이 많아요. 여기저기서 FTA 체결해도 좋아진 게 없다는 인식이 있지요. 시장 개방은 됐는데 거기에 따라갈 수 있는 구조개혁이 안 돼 있어서 그 효과를 못 누리는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여기(한국) 와서 보니까 유통이나 물류체계는 상당히 뒤떨어진 것 같아요. (FTA가 체결되면) 결국 소비자들은 자기가 직접 외국공장에까지 가서 물건 사는 게 아니라 주변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요. 일본에서는 조금씩 개방하자마자 그 효과가 슈퍼마켓이든 어디든 바로 보이는 상황이에요. 과일이라든지 채소라든지 개방되다 보니까 수입된 게 많고, 중남미 지역 같은 반대 계절 지역의 상품도 많으니까 FTA 효과를 직감해요. 그런데 여기는 특별히 (외국)물건을 사려고 해도 외국산이 다양하게 없는 거 같고, 국산 농산물은 계속 비싸고요. 개방을 하면서 선택의 여지가 늘어났다는 느낌이 없어요. 전자상거래도, 국내에서 물건이 비싸니까 인터넷거래(해외직접구매)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배달될 때까지의 기간이 일본보다 훨씬 길어요. 제가 네이버로 해외 건강상품을 샀는데, 일본은 수출하는 나라가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주일이면 오는데 여기서는 한 달이 걸렸어요. FTA는 관세 장벽만 해소되면 즉시 소비자들한테 효과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도어 투 도어’입니다. 공장에서 소비자의 집까지 연결돼야 효과가 느껴지는 건데요.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에서 구조조정이 잘 진행되지 못한 부문이 서비스업이에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지요. 물류도 항상 트럭운전사, 택배기사 같은 약자보호의 명분이 있어서 사람을 자를 수 없고요. 유통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선진국에서 대기업이니까 주말에는 영업 못 한다는 나라는 없을 겁니다.”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국의 조선업·해운업 등을 비롯해 제조업 분야에서 산업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한국은 일본하고 거의 비슷해요. 정규직이 너무 보호되고 있어서 그 아픔은 결국은 비정규직으로 가지요. 일본보다 한국은 더 심각한 것이, 정규직 가운데서도 강성노조가 있다는 겁니다. 토요타자동차 규모의 3분의 1보다 조금 더 큰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토요타 노동자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그런데 한국은 이런 상태가 너무 오래됐어요. 또 노조의 정치 파워가 엄청나지요. 노조에는 경영자들도, 정치도 손을 못 대고요. 그러니까 이 나라는 누가 봐도 ‘노동시장 개혁의 1번지’입니다. 그게 안 되면 (구조개혁은) 거의 어렵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버블 붕괴’ 혹은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요.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두 가지 큰 차이가 있어요. 제가 무척 많이 해온 이야기인데요. 두 나라가 비슷한 면은 많지요. 지금 바로 개혁하려고 해도 반대 때문에 못하는 게 일본의 민주당(현재 일본의 제1야당) 시절과 똑같아요. 방향도 안 보이고요. 그런데 한국의 상황과 일본 상황은 차이가 있는 게, 정규직의 임금이 계속 떨어진 것이 일본의 디플레이션 시대입니다. 언제 일자리가 없어질지 모르니까 소비를 안 하고, 그러면 기업 이익이 안 남고 또 임금은 삭감되고. 일본에서는 경영 혹은 경영자라는 것이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서 사람을 자르지 못했어요. 일본은 이렇게 계속 정규직 임금이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인데 한국은 계속 정규직의 임금이 오르고 있어요. 그 대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들은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고요. 결과적으로 (양국이) 거시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런 점이 하나의 차이고요. 또 하나의 차이점은 부동산이 안 깨진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계속 주택 가격이 떨어져 왔어요. 그래서 임금과 부동산에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엄청났기 때문에 그런 (디플레이션) 사이클이 굴러갔지만, 한국은 아직 임금과 부동산이 살아 있어요. 굉장히 무리한 구조로요.”

 

―한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는 좋은 구조이기는 하지만, 소수의 정규직 위주의 구조라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인지요.

“그게 사회적 기준의 차이가 있는 것인데, 원래 일본이나 독일은 거의 사회주의에 가깝고요.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은 큰 격차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차이가 있어요. 한국은 문화적으로는 일본과 독일의 욕망이 있는데 다른 면에서는 영미계의 욕망도 있어요. ‘나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부터 그런 집단 이기주의가 심해졌어요. 이런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당연히 교육과 사회보장인데, 양측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요. (한국의) 사회보장은 유럽은커녕 일본만큼도 안 돼 있어요. 그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내겠느냐 하면 ‘난 됐다’고 하고요. 교육은 또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갔어요. (학자금 대출 등) 무지하게 대출이 생기는 방향으로요. 어떤 대학을 나와도 대학을 졸업한 만큼의 일자리가 생겨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요.”

 

―노동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느껴지네요.

“제 생각에는, 제가 사회보장에 대해 관심이 있는데요. 결국은 이 상황에서 노조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도 이해는 가더라고요. 한국에선 사회적 안전망이 완전하지는 않아요. 실업보험은 옛날보다는 나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하지 못한 게 있고요. 성장 속에서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다른 데 갈 데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없어요. 사회적 안전망도 없고 방향성도 없는데, 노동시장 개혁하면 갈 데 없으니 당장 이 자리를 지키자는 식으로 되는 것 같아요.”

 

―최근 한국 경제는 수출 감소, 구조조정 부진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경제 위기론’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충분히 위기이지요. IMF 구제금융 사태처럼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니까 조용히 진행되고 있어요.”

 

―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 경제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무래도 경제 문제의 정치화, 그게 옛날부터 이 나라의 단점인 것 같아요. 모든 게 정치적으로 이용돼 버려요. 경제는 시장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항상 명분을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게 많아요. 아까 말한 강성노조만 해도 정치적으로 괴물이 됐어요. 중소기업의 하청 관계도 합리적이지 못해, 특별히 좋아진 것이 없고요. 다 정치랑 연결돼 있어서 개선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대신 장점은 집중적으로 순발력을 발휘해 뭐든지 하는 것, ‘스피드’이지요. 그런데 그 스피드가 엄청난 장점이었는데, 문제는 지금 그 스피드가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것이에요. 그만큼 민주화됐다는 것이기도 한데요. 옛날처럼 대통령이 하자면 다 따라가는 시대가 아니에요. 정치적인 것을 경제하고 분리해서 경제 논리에 맞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일 관계도 사실은 위안부 문제하고 경제 관계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그런데 위안부 문제가 전부다, 원칙이다 했다가 중간에서 갑자기 경제는 분리해서 하겠다고 하니 일본에서 보기에는 대화하기가 어려운 나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한·중·일 3국 FTA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한 바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대북 제재에 대한 입장 차이로 중국과 한·일 간의 입장이 엇갈리고, 한·중, 중·일 간의 각종 외교 현안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아서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는데요. 

“지금 한·중·일 FTA는 당장 획기적으로 진행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러지 않아도 지금 중국 경제가 어려운데요. 또 한·일은 대부분 사람들이 한국이 TPP에 들어올 것으로 보니까 자동적으로 한·일 FTA는 될 거라고 봐요. 그것도 아주 높은 수준으로요. 그래서 일본 쪽에서는 3국 FTA를 무리하게 하자고 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TPP 가입을 할 테니까 한·일 FTA를 먼저 추진한다든지 아니면 한·중·일 FTA 프레임 안에서 TPP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한·일 FTA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서 한·중 FTA를 업그레이드하는 협상을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점은 한국 측에 매력 있는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인터뷰 = 김석 차장(국제부) suk@munhwa.com 정리 =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 2018.03.19 [북한 정보의 핵심에 25년간 다가간 일본인…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

"이해할 수 없었다… '民主化' 위해 싸운 운동권이 北정권 편드는 것을"

"정보의 핵심에 더 가까이 가려는 게 기자의 욕심

목숨 걸고는 못했지만 내 인생을 걸고는 해왔다"

"北 경비병은 내 손에서 빵을 빼앗아 봉지 뜯고

얼굴을 처박고 먹으며 '하나 더 달라' 손 내밀어…"

 

우리 특사단의 김정은 면담 성과 발표가 있고 엿새가 지난 뒤였다. 일본 프리랜서 기자 모임의 인터넷 매체 '아시아프레스'에서 이런 특종(特種) 기사가 떴다.

 

'북한 북부 지역에 사는 취재 협력자 3명과 3월 11일까지 수일간 연락했다. 북한 주민들은 4월 말 진행한다고 발표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기사를 쓴 이시마루 지로(石丸次郞·56)씨는 북한에는 3회, 북·중 국경 지역에는 90여 회 취재한 북한 전문 프리랜서다. 북한 안에 열 명의 유급(有給) 취재원을 갖고 있다. 때마침 서울에 출장 온 그를 만났다.

 

▲이시마루씨는“특사 회담은 경제 봉쇄로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적들의 비열한 책동을 무찌르는 김정은의 위대한 업적으로 선전됐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오늘(15일) 다시 내부 협력자들과 연락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다. 지난 9일 당(黨) 초급 이상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뛰어난 외교적 안목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이라는 강연이 열렸지만, '이번 특사 회담이 경제 봉쇄로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적들의 비열한 책동을 무찌르기 위한 김정은 장군의 위대한 업적'이라고만 했지 남북과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다음 날 주민을 대상으로 한 '생활총화'(자기비판모임)에서도 특사 방문 사실만 알렸고 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특사가 다녀간 뒤로 북한 정권에서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 관해 침묵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이런 급선회를 김정은의 권위 훼손 없이 어떻게 대내외적으로 설명·선전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북한 내부 협력자들에게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전하니, '진짜인가? 핵 강국인데 그걸 포기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우리 특사의 전언(傳言)밖에 없다. 그 뒤로 북한이 공식 확인을 해준 적이 없다. 물론 반박하지도 않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화 국면이 진행되고 있다. 북핵 완성 단계에서 마침 문재인 정부라는 좋은 상대가 나타나 지금 같은 극적인 상황 전환을 만들었다. 북한이 원했던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 생겼으니, 유리그릇처럼 다뤄 안 깨지게 하겠다는 조심성을 보이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워도 핵무기를 가진 군사 강국'이라는 선전으로 지탱해왔다. 핵무기를 빼면 정권의 축(軸)이 무너진다. 그런 북한과의 핵 폐기 협상이 현실적으로 진전될 수 있을까?

"제재 압박이 계속될 경우 북한의 장래가 안 보인다. 말라죽게 될 것이다. 광물·수산물 등을 취급하는 무역 회사들 중에는 문 닫은 데가 많았다. 기름 수입이 막혀 군대 운반 수단으로 목탄차와 소달구지를 쓰는 일이 생겨났다. 군관에 대한 처우가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 제재에 굴복해 비핵화 회담을 한다는 말이 확산되면 김정은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한다고 선전할 것이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그는 도시샤(同志社)대 재학 시절 좌파 운동권이었다.

 

"우리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 대학생들의 용감하고 자기 희생적인 모습에 감동했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연대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북한에는 심정적으로 동조한 반면, 한국에는 어둡고 무서운 군사 독재국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84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은 경제 발전의 과실을 누리고 있었고, 어둡고 무섭기만 한 사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시위만 하는 게 아니라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과 함께 디스코텍에 간 적 있었고 정치 토론도 벌였다. 외모는 닮았으나 생각이 많이 달랐기에 너무 재미있었다."

 

대학 졸업 뒤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2년간 유학했다. 그 시절 동구권이 무너지고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다.

 

"다음은 북한이 붕괴될 차례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북한에 대해 심정적인 연대가 있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북한 정보는 '반공(反共)에 의해 왜곡된 것'으로 봤다. 일본에서도 북한의 실체를 폭로한 책들이 나왔지만 그때는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북한의 정체는 드러났다. 김씨 세습 독재에 의한 인권 탄압 참상이 공개됐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한국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운동권 출신들이 이런 북한을 위해선 싸우지 않는 것이었다. 이중 잣대를 들이댔고 오히려 북한 정권 편에 섰다."

 

그는 1990년 귀국해 광고 회사를 2년 다니다가 마이니치신문에 지원했다.

 

"내가 '서울특파원과 한반도 문제를 전문으로 하고 싶다'고 하니, 신문사에서는 '7년간 지방 근무와 사쓰마와리(경찰서 출입기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7년을 그렇게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일본에는 분쟁 지역 취재에서 활약해온 프리랜서의 전통이 있었다. 그들의 세계가 멋있게 보였다."

 

▲1998년 북한 나진에 지원 식량을 들고 갔을 때.

 

―한국이 아닌 북한을 전문 취재 영역으로 삼게 된 계기는?

"이미 한국은 민주화됐기 때문에 한국이 어떤 사회가 될지는 한국인이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우리 같은 외국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일본 조총련을 통해 북한에 취재 의사를 전했으나 답이 없었다. 북한이 보이는 중국에 가서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1993년 여름 두 달 동안 압록강에서 백두산을 거쳐 두만강까지 북·중 국경을 따라 여행했다. 탈북자와 조선족을 만나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백두산 정상에서 만난 북한 병사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선족인 국경경비대가 운전하는 지프차로 정상에 올라가자 북한 경비병 두 명이 다가왔다. 몰골이 형편없었다. 사과·빵·맥주를 들고 나와 '같이 먹자'고 말하기 전에 이들은 내 손에서 빵을 빼앗아 봉지를 뜯고 얼굴을 처박고 먹었다.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북한 병사가 먹으면서 '하나 더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때까지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생각이 무너져버렸다."

 

한국의 말지(誌)에서 이를 사진 특집으로 실었고, 일본 위성방송에도 보도됐다. 프리랜서로서 데뷔작이었다. 그는 1995년 단체관광 팀에 끼여 평양에 갔다.

 

"일본 니가타에서 전세기를 탔다. '평양 여행에는 자유가 없고 보여주는 곳만 볼 수밖에 없다'고 이미 들어서 분위기만 느끼는 게 목적이었다. 평양 도착 다음 날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호텔에 남았다. 아침 10시쯤 빠져나와 시내를 돌아다녔다. 한 상점에 들어갔지만 '어디서 왔나? 여기 있으면 안 되니 호텔에 같이 가자'는 관리원들에게 이끌려 호텔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나와 전차를 타보고는 내려서 아파트 단지로 갔다. 거기서 다시 잡혔다. 평양에는 신고 체제가 돼있어 외국인이 혼자 돌아다닐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는 1997년 조선족 여행객으로 위장해 함경북도 나진에 들어갔다. 일행인 조선족들이 그의 말투를 듣고는 '너 서울서 왔지?'라고 물었다. 북한 감시원이 들을까봐 조마조마했다. 이틀 뒤 중국으로 다시 나올 때 북한 보위부 직원이 다가와 귓속말로 '반갑수다. 또 만납시다'라고 말할 때는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이렇게까지 북한 취재를 했던 이유는 뭔가, 정의감인가?

"정의감에 앞서 실상을 알고 싶었다. 정보의 핵심에 더 가까이 가려는 게 기자의 욕심이 아닐까. 중국에서 만난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 참상을 들었다. 숱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세계에서 통제가 가장 심한 나라에서 이렇게 대량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데,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무너지고 있는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다음 해 그는 또 나진에 갔다. 이번에는 북한 식량 지원을 위한 일본 민간단체의 모니터링 담당 직원 신분이었다.

 

"중국에서 쌀 230t을 사서 철도로 부친 뒤 일주일쯤 지나 들어갔다. 나진에서는 안내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장마당을 가보니 꽃제비들로 득시글거렸다. 내가 빵을 사서 꽃제비들에게 나눠주려고 하자 서로 많이 갖겠다고 싸움판이 벌어졌다. 출국할 때 작년에 귓속말을 했던 그 보위부 직원과 다시 마주쳤다. 너무 섬뜩했다. 북한에서 3주간 체류하면서 외국인으로서 많은 걸 봤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는 정보의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정도로도 북한의 실상이 어떻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나?

"일시적으로 가서 보고 느낀 것은 주관적인 인상에 불과하다. 세상을 납득시키려면 영상·사진·문서 같은 '증거력'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1998년 옌지(延吉)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던 탈북자가 '비디오카메라를 달라. 내가 찍어 올게'라고 했다. 그는 원산에 들어가 장마당 모습을 찍어왔다. KBS를 통해 세계 최초로 꽃제비 동영상이 공개됐고, 다음 날 한국의 모든 신문이 사설로 다뤘다. 일본과 영국, 미국에도 보도됐다. 나는 운동권 출신이지만 운동권적인 해석이 필요 없었다. 팩트(사실)가 모든 걸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기자가 되어 직접 취재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이에 동의한 탈북자들에게 촬영 장비 작동법과 취재 기법, 윤리를 가르쳤다. 2008년 북한 내부 저널리즘의 출현과 성장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격월간지 '림진강'도 창간했다. 이 잡지는 그 뒤 경영상 문제 등으로 중단됐고, 현재는 일본어판만 부정기적으로 발행된다.

 

―당신과 연락하는 북한 내부 협력자는?

"10명쯤이다. 이들이 직업의식을 갖도록 정기적으로 보수를 송금해준다."

 

―당신의 수입원은?

"영상과 사진 사용료, 원고료, 광고료, 출연료, 강연료 등으로 팀을 끌어간다.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조선 반도를 알아가는 그런 인생을 살겠다'는 것은 젊은 시절부터 꿈이었다. 북한 취재에 목숨을 걸고는 못 했지만 내 인생을 걸고는 해왔다."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

 

■중국

□2015-09-03 [韓·中 정상회담] 전문가 인터뷰 - 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스인훙 교수

中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스인훙 교수

"열병식 온 朴대통령에 시진핑, 매우 감동해… 양국 통일협력 늘릴 기회

中, 북한 문제 때문에 韓·中 관계 훼손 원치않아… 올해 김정은 訪中 힘들 듯"

 

중국 스인훙(時殷弘·사진)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2일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중대한 사건"이라며 "한국이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지만 중국과의 정치·경제 관계도 고도로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반도 정책은 이전 최고 지도자들과는 다르다"며 "(현재 북한보다) 한국과의 우호 관계 발전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관계 전문가인 스 교수는 중국 총리가 지명하는 자문 그룹인 국무원 참사(58명)이며, 중국 외교부에도 조언한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의미는.

"박 대통령은 장시간 진지한 고민 끝에 이번 방중, 즉 열병식 참석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놓고 주변국에서 말이 많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한·미 동맹만큼 중국과의 정치·경제 관계도 중시한다는 원칙에 따라 한국이 외교정책에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시 주석은 항일전쟁 승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번 열병식을 매우 중시한다. 중국 정부는 이런 열병식에 와준 박 대통령에게 매우 감동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얻는 게 많을 것이다. 통일 등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과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중국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얻었다."

 

―김정은은 오지 않았다. 시 주석의 대북 전략에 변화가 있을까.

"시 주석의 대북 정책은 이전 최고 지도자들과 다르다. 특히 (친중파인) 장성택 처형 이후 중·북 관계는 계속 나쁜 상태다. 반면 한·중 관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어떻게 할지는 비교적 분명한 것 아닌가? 시 주석은 한국과의 우호 관계를 먼저 발전시킬 것이다. 장성택 처형 등 북한이 중국에 보여준 태도는 북·중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시 주석은 북한 문제 때문에 한·중 관계를 훼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은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일본은 한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나는 (일본의 비판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 입장에선 한·일 관계의 악화가 한·중 관계의 강화를 불러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본은 한·중 밀착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일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이 현명한 결정인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도 박 대통령 방중이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군사 동맹인 한국과의 관계를 흔들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안정과 '아시아 복귀' 전략을 위해 한국과 관계를 중시한다."

 

▲메달 수여받은 中·해외 항일 참전 용사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승절 기념행사를 하루 앞둔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2차대전 당시 일본에 맞서 싸운 중국 및 해외 참전용사 30명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정복을 입은 참전 용사들이 시 주석이 목에 걸어준 메달을 달고 앉아 있다. /신화 뉴시스

 

―북한이 10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
지금 북한 외교정책의 특징은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중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보고 중국과의 해빙을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은 미사일을 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평화 국면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판을 바꾸기 위해 도발을 할 수 있다. 계속 지켜봐야 할 문제다. 최근 남북 간 긴장이 풀리는 것을 보면 북한이 어떤 변화를 시작하는 단계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올해 내 방중할 가능성은.
"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김정은이 중국에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김정은이 방중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줄곧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해왔다. (김정은이 방중하려면) 먼저 비핵화에 대한 진일보한 태도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베이징=안용현 특파원 조선일보

 

□ 2016-01-09 쑤하오 中 외교학원 교수

“中 지지없인 北 생존 못해… 핵실험 왜 위험한지 깨닫게 해야”

▲쑤하오 중국 외교학원 교수가 5일 베이징 시 외교학원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핵실험이 지역 안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왜 극단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북한이 깨닫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뒤편의 동상은 외교학원 설립을 주도한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동상이다. 뒷벽에는 ‘중국 외교관 양성의 요람’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새해 벽두를 때린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소식에 가장 당황한 국가는 중국이다. 북한을 믿었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선 동맹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상황이 됐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남중국해에서의 주변국과의 갈등, 점차 동력이 약해지는 경제엔진으로 고심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됐다. 앞서 중국은 1일 남중국해 인공섬에서 항공기 이착륙 시험 운항을 하고, 2항모 건조 계획을 밝히는가 하면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위한 대대적 인 군 개혁에 나서는 등 군사 외교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중국의 외교 국방 및 동북아 전문가인 쑤하오(蘇浩) 외교학원 교수 겸 ‘전략 및 평화연구중심 주임’ 에게서 북한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응을 비롯해 올해 군사 외교 정책 방향을 들었다. 인터뷰는 5일 베이징(北京) 시청(西城) 구 외교학원에서 가진 뒤 6일 북한 핵실험 이후 전화인터뷰를 해 보충했다.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 억지에 중국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으나 이번 실험 감행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별것 아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으로만 보면 중국은 북한의 생존 여부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다. 북한은 중국의 지지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 이처럼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힘을) 가볍게 쓸 수 없고 신중한 것이다. 

 

이 같은 쑤 교수의 발언에는 중국의 고민이 잘 묻어나지만 중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는 까닭도 드러난다. 중국이 석유 공급 중단 등의 ‘살상력 있는’ 조치를 동원하면 북한의 목줄을 죌 수 있는데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렇게 영향력이 크면 중국이 이번에야말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나설 것이다. 유엔 틀 내에서 새로운 제재 방안을 모색하고 대응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여러 루트를 통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전달할 것이다. 나아가 핵실험과 같은 행동이 지역 안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왜 신중해야 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지 북한이 깨닫도록 할 것이다.

 

쑤 교수의 어투는 단호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제재 이외에 단호한 중국의 단독 조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북한이 중국의 비핵화 원칙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핵실험을 한 이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국내 정치적인 목적도 크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집권 이후 별 성과가 없다. 당과 국가지도자로서 보여줄 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5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여는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뭔가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핵실험이야말로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는 앞으로 중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화제를 돌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듯한 상황에 대해 속내를 물었다. 

 

―한국 정부 당국자나 학자들과 교류가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에 해주고 싶은 충고는…. 

“한국이 중국 미국 중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한국은 자주독립국가다.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주권국가로서 자신의 이익과 주권, 정책결정권이 있다. 중국이나 미국에 의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따르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외교는 비교적 성숙했다. 최근 수년간 중한 관계가 전면적으로 발전한 것은 한국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선택한 결과다. 

 

인터뷰 내내 쑤 교수는 온화한 화법을 썼지만, 이 대목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은 한국이 너무 중국에 가까워졌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에 압력을 가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라고 한다. 미국은 한 지역에서 동맹국에 미국 방식대로 갈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남중국해 문제도 한국에 자국의 이익을 버리고 미국을 추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성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중국으로서도 한국이 양자 간에 선택을 해야 하는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간 협상 타결을 어떻게 보나. 역사 문제에서 한중 간에 대일 공동전선이 약해졌다고 중국 관영 언론이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의 사과를 받아낸 것은 분명 한국 외교의 성과다. 나아가 일본은 한국에만 사과할 것이 아니라 중국 동남아 등 다른 국가에도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사죄가 진정한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일본과 한국에 미국이 영향을 미쳐 두 나라 모두에 양보를 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이후 가장 큰 관심사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주변국이 벌이는 갈등이다. 중국은 1일 인공섬에서 항공기 비행 연습을 하면서 주변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까지는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에 주력했다면 올해는 본격적으로 군사적 이용에 나서려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암초섬(중국은 인공섬이라고 부르지 않고 암초 혹은 암초섬이라고 부른다)에는 군용과 민용 기능이 모두 있다. 주변 국가나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기능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12해리 이내로 군함을 파견하고 폭격기를 중국 영공에 진입시키는 도발을 한다면 중국도 부득불 군사 기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도발이 중국의 안전을 위협하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 초 인공섬 건설 장면이 위성사진을 통해 외부에 공개됐을 때만 해도 중국 정부 당국자나 학자들이 나서 “인공섬은 군사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분위기는 바뀌었다. 쑤 교수의 답변도 이제는 군사적 사용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미국이 지난해 10 27일 처음으로 남중국해에 인공섬 12해리 이내로 군함을 보낸 데 이어 1월에도 보낼 수 있다고 미 해군 관계자가 밝혔다. 지난해 중국은 ‘신속히 영해에서 나가라’고 경고하는 데 그쳤는데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은 없나.

“미국 군함이 지난해처럼 ‘무해통항(無害通航·innocent passage)’한다면 중국의 반응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도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행동 방식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제2항모 건조를 공식 발표했다. 중국에 항모는 무엇이고, 몇 척이나 필요한가. 

“중국은 18000km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 있고, 대만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대양 해군이 필요하다. 중국에 현재 해군 역량은 너무 부족하다. 인도도 3척의 항모를 보유하기를 원하고 있다. 중국도 최소한 3척의 항모는 필요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중에서 이슬람 무장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등에 무력 사용을 하지 않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는데….

“중국은 경제 지원 등 나름의 방식으로 중동 문제에 기여하고 있다. 중국이 국내의 테러 세력에 대응하는 것도 반()테러 전선에 있는 것이다. (중동의 테러 세력에 대한) 무력공격에 나설 경우 중국이 받을 영향이 크다. 중국은 상당 기간 무력을 사용한 반테러 전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외국에서 군사력을 사용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안보법제 통과 이슈나 과거사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올해 중일 관계 현안은 무엇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전략적으로 중국을 주요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일본의 일련의 행동과 외교정책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적지 않다. 일본이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면 양국 간은 물론이고 동북아 전체 안정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올 하반기 중국과 한국 일본 간 3국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는 등 양국 간 협력 기조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사자가 깨어났다는 말이 있다. 주변국은 깨어난 사자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중국에 있어 시 주석이 집권한 2013년 이전 30여 년간이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국가로서 편입 융화되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면 그 이후는 국제사회를 이끄는 국가로 위상을 세운 시기다. 시 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지와 해양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015년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통해 새로운 위상을 실현하는 한 해였지만 2016년은 더욱 그런 해가 될 것이다. 

 

중국이 올해 ‘보다 크고 대담해진다(BIG AND BOLD)’는 화법은 미국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등 중국 주변국 친구들은 미국 화법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은 오히려 국제사회에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 쑤하오 교수는 ::

1958년 중국 윈난(雲南) 성 훙허(紅河)시 출생. 베이징사범대에서 역사학과 국제관계사로 석사를, 외교학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은 뒤 30년째 외교 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외교학원은 195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세운 학교로 중국 ‘외교관 양성의 요람’이라 불린다. 2011년부터 ‘전략 및 평화연구중심 주임’을 맡는 등 외교안보분야 직함만 10여 개. 관영 TV와 라디오에 전문가로 출연하는 등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미국 학자들의 북한 관련 논문에 빈번히 인용되는 한반도 전문가이기도 하다. 한중 양국의 주요 싱크탱크 전문가 모임인 ‘한중 싱크넷’의 중국 측간사를 맡아 한국 학자들과의 교류도 잦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2016-03-05 방한 우다웨이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주간(왼쪽)이 2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고 핵 포기 의사를 보여줘야 미국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제재 국면에서 거론한 ‘평화협정’ 논의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맞물려 있음을 강조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2일 서울에서 진행된 중국 전문가 모임에서 우 대표와 일문일답을 가졌다. 우 대표는 ‘비보도’를 조건으로 말했으나, 그가 몇몇 언론사 대표와의 회동에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말했고, 관련 내용들이 보도됐기 때문에 인터뷰를 게재한다.

―방한 목적은…. 

“북한의 핵실험과 위성(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중한 양국의 정책 조정을 위해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를 늦게 했다는데, 북한이 어떤 종류의 폭탄을 터뜨렸는지 평가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폭탄의 성격에 대해 정확한 결론을 내린 국가는 아직 없다. 

 

―북한에 가서 미사일 발사를 막으려 했을 텐데….

“두 가지 요구를 했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라. 둘째, 새로운 위성을 발사하지 말라고. 북한은 나의 조그마한 체면도 살려주지 않았다. 핵 보유는 확정된 방침이고 위성 발사도 권리라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 의지가 확고하다고 결론 내렸다. 북한 핵무장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은 없나. 

“북한의 최우선적인 관심은 정권 안보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핵 포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내가 분석하기로는 북한은 핵 포기 의사가 있고, 미국은 북핵을 포기시키려는 의지가 있다. 북한이 핵시설을 동결하고 핵 포기 의사를 보여줘야 미국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나온 모든 대북 관련 결의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북한이 핵 보유의 길로 나가지 못하게 이 결의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점에 관해 한중 정부 의견이 일치했다.

 

―북한 핵실험 이후 한중 관계에 대해 속았다는 등의 말이 나오는데….

“과거 한국 대통령은 미국 일본을 방문한 뒤에 중국을 찾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미국을 방문한 뒤 중국을 먼저 방문했다. 시 주석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2014). 관행을 깬 것으로 새 영도그룹(지도부)이 중한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9 3일 전승절 행사에 박 대통령이 내부의 반대와 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중한 관계는 현재 오르막길에 서 있다. 내리막길로 가거나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안보리 결의 이행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데….

“한국 외교부도 우리가 착실히 이행할지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덩샤오핑(鄧小平) 어록을 인용하겠다. ‘실천은 진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實踐是檢驗眞理的唯一標準)’이다. 중한 정부는 대북 제재와 관련해 밀접한 소통을 유지하겠다. 

 

6자회담은 왜 실패했다고 보나. 

“미국과 한국은 중국 책임을 거론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북핵 해결 의사를 의심했다. 미국이 북핵을 이용해 한국 일본과 군사동맹을 강화하려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다. 북한을 제외한 5자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서로 불신하고 있다. 5자가 힘을 모아야 한다. 북핵이 타결되지 않는 근본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홍루몽’이라는 소설에 할머니가 죽고 모두 우는 장면이 나온다. 가슴 아픈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6자회담도 마찬가지다. 공동으로 협력하지 못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3개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개국이 있지만 서로 견제하다 보니 대북 압력이 제로(0)가 됐다. 

 

―안보리 제재 이후 상황을 어떻게 보나. 

“안보리 제재가 북한에 큰 압력이 될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북한이 자초한 것이다. 남을 원망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을 지지할 적도, 친구도 없다.

 

―사드에 대해 한국 정부에 의견을 표시했나. 

“사드는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엄중한 손해를 끼친다. 레이더 시스템이 문제다. 작은 물체는 1300km까지, 큰 물체는 2000km까지 감시가 가능하다. 한미 양국 정부에 모두 사드 문제를 제기했다.

(배석한 중국 외교부 실무자는 미국이 한국에서 사드를 배치한다면 대만, 일본, 필리핀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에 고정 설치되면 중국의 모든 비행물체에 대한 빅데이터를 만들 것이라며 사드는 온갖 귀신이 들어간 ‘판도라의 상자’라고 주장했다.)

 

―사드 배치 파장은….

“한국이 사드를 배치한다면 앞으로 북핵 논의는 사드 논의로 바뀔 것이다. 이에 기분 좋아할 사람은 북한에서 핵무장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정리=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2016.10.14 “북한이 먼저 전쟁 일으킨다면 중국은 한국 편에 설 것”

지난 7월 초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역대 최상으로 평가받던 한·중 관계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국내에선 한동안 방한 중국 관료는 물론 학자 또한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북제재를 놓고 한·중이 엇박자를 내는 것은 물론 중국은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중국은 왜 북핵 불용(不容)을 외치면서도 대북제재엔 미온적이고 또 한국을 중시한다면서도 한국의 사드 도입엔 반대 목청을 높이는 걸까. 또 중국이 생각하는 북핵 해결 방안은 무얼까. 이와 관련, J글로벌·채텀하우스·여시재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 내 최고의 미국통 자칭궈(賈慶國) 중국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을 10일 만났다.

 

▲자칭궈 중국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중국이 갈수록 북핵을 중국의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한국이 중국에 이래라저래라 재촉할 게 아니라 중국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여유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질의 :지난해 가을엔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중국경사론(中國傾斜論)’이 나왔다. 한데 지금은 한·중 관계가 냉랭하기만 하다.

응답 :“대다수 중국인은 중·한 관계가 여전히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나 문화 교류 또한 빈번하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말하면 한국이 중국의 비교적 큰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결정할 때는 미리 중국과 상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질의 :사드 배치 결정이 중국과 상의 없이 이뤄졌다는 것인가.

응답 :“적어도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사드 배치로 한국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북한은 재래식 무기로도 서울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사드 아닌 더 고성능의 무기로도 서울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만일 중·한 관계가 좋다면 중국은 한국에 보다 많은 안전을 제공할 수 있다. 북한을 압박할 수 있고 또 만일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다면 중국은 한국 편에 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드 문제로 중·한 간에 충돌이 생겼고 이는 결코 한국에 이롭지 않다.”

 

질의 :자 원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의 근본 원인이 북한 핵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응답 :“한반도 사정을 자세히 추적해 보면 나와 같은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몇몇 다른 이유로 인해 그렇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의 음모라면서 미국이 사드 배치를 마음먹고 한국에 시키니 한국이 그렇게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한·미 관계를 잘 모르고서 하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의 자주성을 지나치게 낮게 본다.”

 

질의 :북핵 해결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에 거는 한국의 기대는 크다.

응답 :“인내가 필요하다. 중국에 이래라저래라 재촉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현재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변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 속도에 한국이 만족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변하고 있으며 변화의 방향은 옳다. 중국은 갈수록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다른 나라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날이 갈수록 더 큰 위협이 돼 가고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과거보다 한층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커다란 변화의 흐름이다. 과거엔 이 문제가 미국 일이고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봤지만 이제는 중국 일이고 중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본다. 한국이 중국에 좀 더 여유를 줘 중국 스스로 변하게 해야 한다. 아마 최종적으론 중국이 한국보다 더 서두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 당장 중국에 압력을 가해 중국에 이래라저래라한다면 중국은 이는 당신이 신경 쓸 일이고 중국의 일이 아닌 당신의 일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국제 관계란 참 미묘한 것이다.”

 

질의 :한국은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을 우려한다.

응답 :“한국이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어느 방면에서는 불만을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보복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은 사드 배치와 관계없이 그저 때가 돼 터질 일이 터진 것일 수도 있다.”

 

질의 :사드 부지 결정 등 사드 배치의 진전에 따라 중국의 보복 수위도 높아지리라 보나.

응답 :“중국의 불만 표시는 있을 수 있다. 그게 어느 수위까지 올라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한 관계는 한국은 물론 중국에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한국 정부가 사드 문제를 다시 검토해 일부 조정해 주기를, 특히 사드 배치가 중국 안보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대한다.”

 

질의 :사드 배치로 냉각된 한·중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응답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중해야 할 것이다.”

 

질의 :혹시 중국은 내년 한국 대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것 아닌가.

응답 :“그렇지는 않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중국이 제시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게 한 예다. 중국과 한국이 일부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한다면 쌍방 모두 좋은 일이다. 또 한반도 문제에서도 더 많은 상의를 하게 될 것이다. 이해가 일치하는 걸 먼저 추진하면서 이견은 점차 좁혀 나가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이 필요하다.”

 

질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행동은 거칠 게 없어 보인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즉 기댈 게 있어서가 아닌가.

응답 :“그는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인 완충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중국이 결코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 같다. 중국 내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중국이 아직까지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질의 :최근 중국이 북한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방중 가능성은.

응답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사드를 배치한다면 김정은의 중국 방문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질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중국이 동참하고 있지만 ‘구멍’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응답 :“그런 걱정이 있지만 중국의 대북제재는 과거에 비해 더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원유와 식량의 대북 공급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수많은 북한 인민이 굶어 죽는 등 엄청난 후과(後果)가 따를 것이다. 한국이 정말 이런 상황이 생기기를 바라나. 설사 많은 북한 인민이 굶어 죽어도 김정은 정권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질의 :북핵 위협이 커지면서 한국 일부 인사가 ‘핵 무장’이나 ‘전술핵 도입’을 주장한다.

응답 :“중국 정부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다. 몇 년 전 나는 중국이 북핵에 대해 보다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글을 쓰면서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이는 다른 나라들의 핵무기 개발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의 주변 국가들이 핵보유국이 된다면 핵전쟁 위험은 더 높아지고 이는 중국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현재 중국의 점점 더 많은 이가 이 같은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질의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 정부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에 옮기면 중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응답 :“만일 김정은 정권이 현재와 같은 위험한 길을 계속 걷는다면 중국은 어느 날인가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최후까지도 변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까지 가야 하지만 말이다. 이 경우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걸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을 것이다. 현재는 아직 균형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질의 :미국에선 심지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응답 :“그런 가능성은 북한의 핵무기 발전에 따라, 특히 장거리 미사일 발전에 따라 증가할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상황 진전을 중시해야 한다. 만일 미국이 북한에 대해 ‘외과 수술식(surgical strike)’ 타격을 가한다면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주변 지역이 모두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핵 시설 파괴로 인한 오염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핵무기는 어떻게 처리할지, 대량으로 발생할 난민은 어떻게 수용할지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내전의 위험도 있다. 따라서 가장 좋기로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질의 :미국은 다음달 대통령을 새로 뽑고 한국과 중국은 내년에 새 지도부 선출이 있다. 북한이 이런 시기를 이용해 몸값을 높이려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막아야 하나.

응답 :“먼저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통치자에 대한 압박은 계속 하되 북한 주민의 생존 공간은 확보해 줘야 한다. 둘째는 협상과 소통의 강화다. 셋째는 비가 오기 전에 창문을 수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에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와 관련해 1.5트랙, 아니면 적어도 민간 차원에서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엔 북한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질의 :자 원장이 생각하는 북핵 해법은 무엇인가.

응답 :“바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북핵 해법은 없다고 본다. 과거 이런저런 많은 시도를 해 봤다. 내 생각엔 6자회담의 여러 나라들, 그중에서도 중·미가 소통을 강화해 여러 경우의 수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분명하게 나눠야 한다. 특히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이야기를 해 공감대를 형성해 놓는 게 필요하다. 그런 뒤 북한 자신의 변화를 기다려 보자는 것이다. 아마도 북핵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은 북한 내부의 변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대화를 나눌 여건이 성숙돼 있지는 않지만 민간 레벨에서는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자칭궈는…

1956년 중국 허난(河南)성 출생. 베이징 외국어대 졸업 후 미국 코넬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유학파 인물.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외교 책사로 불렸던 왕지쓰(王緝思)와 더불어 중국 내 최고의 미국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파인 중국민주동맹의 일원이며 국정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한국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앙일보 유상철 논설위원 정리 도움=왕철 중국연구소 연구원 사진=김상선 기자

 

■프랑스

□ 2015-07-06   佛 INVS 질병통제본부 호흡기전염병 총괄책임자 레비브륄 박사

 

《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질병통제본부 호흡기 전염병 총괄책임자인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에게 한국이 메르스 사태를 겪게 된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나왔다. “한국이 주변국에 비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고통을 거의 겪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사스를 잘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의료진과 시민들 사이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방심을 낳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부실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실제로 한국은 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3년 사망자가 한 명도 없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모범국’이란 칭호를 얻었다. ‘김치가 사스를 예방해줬다’는 설(說)이 주변국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었다. 》

 

▲프랑스 파리 외곽 생모리츠에 있는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질병통제본부에서 만난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 그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선 투명한 정보 공개와 소통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며 “평소에 준비된 나라만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4시간 바이러스 정보 올라오는 ‘작전상황실’

레비브륄 박사는 “전염병 방역시스템은 결국 경험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며 “프랑스도 사스를 호되게 경험한 후에 전국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선 이번 사태가 질병통제시스템을 거듭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바이러스 방역 시스템 면에서 선진국 중에서도 모범 국가로 꼽힌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이민자와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일찍이 각종 열대성 질병에 쉽게 노출돼 그만큼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국립보건통제센터는 1998년 광우병 위기 직후 창설된 곳으로 에볼라를 비롯해 메르스, 신종플루, 조류인플루엔자, 사스 등 호흡기 전염병에서부터 식품 오염에 이르기까지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경보를 내리고 추적하는 일을 총괄 지휘하는 정부기관이다. 지난주 파리 인근 생모리츠에 있는 본부를 찾았을 때 레비브륄 박사는 기자를 ‘작전상황실’로 안내했다. 1년 365일 24시간 가동된다는 방 안으로 들어서니 대형 스크린이 눈에 띄었다. 전국의 병원, 보건소, 소방서, 응급구조대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감염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상황실에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지구촌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가 매주 열린다. 마침 스크린에는 ‘한국의 메르스 상황에 대한 현황분석’이라는 제목의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레비브륄 박사는 “상황실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2013년 5월 프랑스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였다”고 했다. 당시 북부 릴의 한 병원에서 아랍에미리트를 여행하고 돌아온 65세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자 상황실에 매일 50∼70여 명의 전문가들이 24시간 근무하며 바이러스를 추적했다. 환자와 접촉한 123명을 자가 격리시키고 이들에 대해 매일 2차례씩 체온을 측정하며 관리한 결과 확진 환자는 2명에 그쳤다. 그의 말이다.

 

“우리도 처음부터 그런 시스템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등 각종 경험을 토대로 2012년 11월에 호흡기 전염병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만든 게 처음이었다. 정부는 이 매뉴얼을 지방 개인병원은 물론이고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사들에게 배포했으며 행동요령을 습득하게 했다.”

 

그는 이어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어떻게 매뉴얼이 작동되는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브르타뉴 지방의 한 의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환자를 진료했는데 기침, 발열,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즉시 지역 보건소에 알린다. 그러면 바로 우리 본부나 지부(CIRE)에서 역학조사관이 파견되고 의심 환자의 샘플을 채취해 국립인플루엔자표준연구소로 보내 메르스 유전자 검사(PCR)를 한다. 의심 환자로 분류되면 즉시 전문 병원으로 보내 격리 조치한다. 이와 동시에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 리스트가 작성돼 경로 차단 작업이 펼쳐진다.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평소 모든 의료 종사자들이 사태 발생에 대비해 행동요령을 숙지해 즉각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병원 정보 초기에 공개해야 바이러스 확산 막아

―사태 초기에 병원과 환자에 대한 정보공개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

“환자와 병원 정보를 처리하는 게 각각 다르다. 환자에 대해서는 의심이든 확진이든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병원 정보는 즉각 공개돼야 한다. 확산을 통제하려면 환자든 의료진이든 일반 시민이든 메르스 환자가 지금 어느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의심 환자와 관련된 신상 정보는 법에 따라 강력한 보안이 돼 있는 중앙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자동적으로 우리 본부로 오게 돼 있다. 동시에 메일 리스트를 통해 바이러스 담당 전문가나 국립바이러스센터 소속 세균학자들에게 실시간 전달된다. 국민들은 감염자가 어느 병원에서 나왔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는 이어 “이제 바이러스 대처를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시대가 되다 보니 바이러스 대유행과 같은 보건 위기도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이번에 메르스 경우를 통해서도 다시 깨달은 것이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된 후에야 움직이는 것은 이미 전투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 한 전투에서 졌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프랑스도 사스에 잘못 대처해 비난 여론이 높았었다. 그렇다고 당시 전문가들을 모두 해임했다면 이후 닥쳐올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이기려면 정밀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준비된 나라만이 이길 수 있다.”

 

기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황실’뿐 아니라 ‘협력 조정실(Salle de Coordination)’과 ‘결정실(Salle de decision)’이라고 적혀 있는 방이었다. ‘협력 조정실’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50여 명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즉석 토론을 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곳이라고 한다. 또 ‘결정실’은 격리조치, 접촉자 관리, 병원 폐쇄, 휴교령 등을 신속하게 내리는 장소이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대부분 의사 간호사, 약사들이지만 이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전문가 그룹은 수의사에서부터 사회학자, 기호논리학자, 통계학자, 인류학자, 미디어 전문가까지 포진해 있다. 바이러스 확산은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모든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대응하는 전문가들 간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수의사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동물을 통해 전염되는 여러 병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외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정보를 신속히 얻기 위해 언제든 해외로 파견돼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국제감시정보 전담팀’도 상시 가동하고 있다.”

 

○ “한국, 더이상 퍼질 가능성 낮다고 본다”

호흡기 전염병 예방 전문가인 레비브륄 박사는 1986년부터 WHO와 유니세프(UNICEF)에서 전염병 백신 개발과 예방접종 프로그램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1997년부터 통제본부에 합류해 전염병 예방 및 교육총괄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매우 논리적이고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프랑스가 방역 선진국이라 불리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과 이를 실현할 사회적 합의가 있었으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화제를 ‘메르스’로 돌렸다.

 

―메르스는 병원을 통해서만 감염이 되나. 가정 학교, 지하철 같은 일반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감염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메르스 데이터도 많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병원 감염 확률이 제일 높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메르스가 학교나 지하철 등에서도 확산 능력을 가진 바이러스였다면 벌써 전 세계로 퍼졌을 것이다. 이는 한국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겨울 프랑스에서는 독감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감과 메르스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올해 1∼2월 유행한 겨울독감으로 사상 최대인 1만1000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이 19%에 이르렀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이에 비해 메르스는 전염성 면에서 독감 바이러스보다 현저히 낮다. 우리 팀 연구 결과 메르스의 바이러스 생산력은 0.6으로 나타났다. 1보다 낮으면 대유행 병이 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연구팀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미 다른 병을 앓고 있거나 노약자들이다. 그러나 건강한 젊은 사람도 감염되는 경우도 있고, 감염되고도 아무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과연 메르스 항체를 보유했는지 혈청학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30, 40대 젊은층은 감염 확률이 낮지만 일단 감염되면 ‘슈퍼 전파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 상황은 어떻게 보나.

“WHO와 프랑스 정부는 한국 여행에 대한 어떤 규제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이대로 격리 조치를 잘 취한다면 더이상 퍼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여행객들이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문제는 없다고 본다.”

 

::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 ::

―1986년 세계보건기구 열대성 전염병 통제 프로그램 전문가

―유니세프 국제아동 예방접종 프로그램 진행

―개발도상국 보건부 백신개발 프로그램 참여

―1997년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 전염병 예방 총괄팀장

―프랑스 보건부 사스, 메르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면역기술전문 자문위원

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016.01.04 파스칼 보니파스 佛 국제관계전략연구소 소장   

인터뷰 2016.01.04

▲4일 오전 프랑스 파리 11구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사무실에서 만난 파스칼 보니파스 소장은 “유로화 위기 속에서도 유로화가 죽지 않았듯이 유럽연합(EU)도 난민 사태와 테러의 위기를 뚫고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독일의 과거사 인정과 사죄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도, 유럽연합(EU)도 맞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동아시아의 강대국인 한중일 간에도 실질적인 협력을 위해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필요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소장(60) 4일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최근 한일 간에 이뤄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이 화해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보니파스 소장은 “일본이 과거 한국에 가했던 끔찍한 범죄와 가해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두 나라가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 번 사죄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과거를 모두 덮어 버려서도 안 된다”며 “자라나는 후손들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도록 교과서에 기록하는 등 양국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 등으로 유명한 그는 유럽과 중동의 국제 관계와 핵문제, 군축 등을 다룬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파리 8대학 유럽학연구소 교수로 있으며, 글로벌 정치 전략 연구가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전략연감’과 ‘국제전략학술지’의 발행인 겸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와의 인터뷰 장소인 IRIS는 파리 11구의 대로변에 있었다. 지난해 1월 테러가 발생했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 11월에 파리 최악의 인질극 중심지였던 바타클랑 극장에서 각각 8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는 끔찍한 한 해를 보냈다”며 “유럽인은 이제 테러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졌지만, 아직도 양국 여론은 부정적이다. 합의를 이행하고 발전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민족 간의 화해는 시간이 필요하다. 1950년대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정치권에서 과거 전범(戰犯) 행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화해의 첫 단계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의지가 일반 국민에게도 전해진다. 가령 1950년대에는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결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요즘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되지 않았나. 다만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의 교훈’을 끊임없이 후손에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에는 양국의 역사가들이 공동 집필한 역사 교과서가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이 교과서를 함께 발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일의 전후 사죄와 보상 노력이 전후 유럽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행동은 유럽인들의 마음을 녹였다. 이후로 프랑스와 독일 간에는 더 이상 적개심이 없다. 이것은 역사의 무게를 뛰어넘은 정치적 의지의, 그야말로 역사적인 예시다. 과거 잘못에 대한 인정이 없었다면 독일은 소련이나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개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독일 통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란트 전 총리는 독일의 전범 행위를 모두 인정함으로써 독일 정부의 외교 영역을 크게 넓혔다. 이러한 시각에서 그는 위대한 애국자다. 

 

‘핵의 세계’라는 저서에서 미국과 소련, 중동과 북한 등의 핵무기 전략을 분석했던 보니파스 소장은 유엔 군축자문위원회 위원(20012005)을 지내기도 했다. 그에게 북한 김정은 정권이 이란처럼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는 전략을 쓸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

 

보니파스 소장은 “북한 정권에 핵은 생명보험과도 같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북한은 패배가 확실시되는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기보다는 핵을 보유함으로써 외세의 군사작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이라크가 2003년에 핵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미국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새해 벽두부터 시아파 성직자 처형을 계기로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정면충돌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 국가인 양국이 왜 죽기 살기로 싸우나. 

“사우디와 이란의 라이벌 경쟁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지속돼 왔다. ‘왕국 대 공화국’ ‘수니파 대 시아파’ ‘아랍인 대 페르시아인’ ‘미국의 최우방국 대 주적’….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7 14일 서방과 이란의 핵 협상 타결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즉 이란의 핵 무장에 대한 우려는 사라졌지만 사우디는 이 합의로 이란이 중동에서 세력을 확산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어 걱정스럽다. 두 나라는 시리아, 이라크, 예멘에서 동맹국을 통해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미 유가 하락으로 국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중재자를 찾아야 한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아랍연맹 등 국제 동맹군의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국제사회의 공습이 IS를 궤멸시킬 수 있다고 보나.

IS와의 전쟁에 참여한 국제 동맹은 규모는 크지만 각자 속셈은 다르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독립을 막는 것이 목적이고, 사우디는 이란의 강대국화를 견제하고 싶어 한다. 이란은 시리아에 중요 전략적 거점을 지키면서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목표이고, 러시아는 시리아에 알 아사드 정권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모든 국가가 IS를 제거하기 위해 공습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서방 국가나 러시아 혹은 시아파의 지상군 직접 개입은 피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지상군 투입은 IS가 원하는, 가장 큰 함정이다. 지상군 투입은 수니파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가장 유용한 조치는 IS의 주 수입원인 원유 수출을 막아 경제적 생명선을 끊는 것이다. 

 

―지난해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파리 테러 사건으로 프랑스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다. 프랑스가 집중 타깃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수니파 무장 집단 IS는 프랑스가 말리에 파병해 IS가 그곳을 점령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프랑스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 프랑스는 인구의 10%가 무슬림으로 유럽에서 가장 많다. IS는 프랑스에서 ‘이슬람 혐오’ 감정을 부추기고자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프랑스만 테러의 표적이 된 것은 아니다. 터키, 영국, 스페인, 덴마크, 미국…. 현재 유럽을 비롯한 모든 국가는 일상에서 테러의 위협을 겪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각국에서 이슬람에 대한 증오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미국에서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까지 했는데….

“이슬람 혐오와 테러리즘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다. IS는 서구권 국가를 공격하면서 해당 국가에 사는 무슬림 인구에 대한 혐오 감정을 유발해 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로 넘어가도록 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 이 함정에 빠지는 트럼프와 같은 정치 지도자들은 테러와 맞서 싸운다면서 테러를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무슬림과 IS가 행하는 테러 행위를 동일시하면 안 된다. 11·13 파리 테러’에서 사람들은 인종과 신앙을 불문하고 공격받았다.

 

―지난해 말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유럽 곳곳에서 반()이민, EU를 내건 정당이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높은 실업률이 첫 번째 이유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일부 국민에게는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와 실업 공포에 대한 표적이 필요하다. 좋은 뉴스는 자국(自國) 정권의 치적으로 포장하고, 문제점은 EU 탓으로 돌리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 EU는 세계 인구의 6%, 세계 국내총생산(GDP) 22%를 차지하지만 복지에는 세계의 50% 정도를 지출한다. 이 때문에 EU 밖의 국민은 유럽 모델이 굉장히 성공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여 가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내부의 유럽인들은 EU의 경쟁력 상실에 실망하고 있다.

 

―테러와 난민 위기에 맞서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통제를 강화한다. 유럽 내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지금 상황은 서유럽과 구공산권 바르샤바조약 국가들의 분열이다. 서유럽은 이주민을 받아들인 경험이 많지만 바르샤바조약 국가들은 이런 경험이 전혀 없어 난민 수용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도 매우 크다. 해당 국가에 무슬림 인구가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세계는 새해부터 테러와 분쟁, 실업과 난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유럽에서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EU가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로서 유럽연합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보니파스 소장은 “지난 2년간 ‘유로화의 죽음’이 거론됐지만 유로화는 결국 살아남았다”며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유럽연합은 결코 해체의 길로 나아가고 있지 않으며, 위기를 겪을수록 더욱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고 희망을 피력했다.

※ 파스칼 보니파스는  

1956년 프랑스 파리 출생 

1985년 파리 정치대(시앙스포) 국제정치학 박사 

1991년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창설  

19992003년 프랑스 국제협력최고자문위원회 위원

20012005년 유엔 군축자문위원회 위원 

2013년 프랑스 국가 공로훈장 기사장과 레종 도뇌르 기사장

○ 현재 파리 8대학 유럽학 연구소 교수 

○ ‘전략연감’과 계간 ‘국제전략학술지’ 발행인 겸 편집주간

○ 주요 저서: ‘위기와 분쟁의 아틀라스’ ‘세계의 진실을 가리는 50가지 고정관념’ ‘핵의 세계’ ‘4차 세계대전이라고?’ 등 50여 권◎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