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10 / 주한외교사절/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니콜로즈 아프카자와(Nikoloz Apkhazava) 대사 - 주한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대사들이 말하는 대한민
사람들10/ 외교사절
[굿모닝 대사님] 주한외교사절 인터뷰 - 조선일보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니콜로즈 아프카자와(Nikoloz Apkhazava) 대사
2015.06.26
▲ 니콜로즈 아프카자와(Nikoloz Apkhazava) 주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대사가 조지아산 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용성 기자
‘빨리빨리’는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어 표현이었다. ‘빨리빨리 문화’는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낳았지만, 우리나라가 고도의 압축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더딘 의사결정으로 ‘만만디(慢慢的)’라고 불리던 중국의 기업들의 걸음걸이가 빨라진 반면 우리 기업들은 고민만 하다가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들어 국내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 카자흐스탄의 경우 석유를 비롯한 자원 개발사업권의 30% 이상을 이미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니콜로즈 아프카자와(Nikoloz Apkhazava) 주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대사는 “한국 기업들은 생각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조지아 진출을 타진하던 한국 기업이 시간을 끌다가 눈독을 들이고 있던 부지를 다른 나라 기업에 빼았긴 사례가 있었습니다. 고민하며 시간만 끌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옛 소련 국가인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해 있다. 69,700㎢ 면적(우리나라는 99,720㎢)에 인구는 460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글로벌 컨설팅 그룹 A.T. 커니가 최근 선정해 발표한 ‘2015 글로벌 리테일 개발 지수(GRDI)’ 순위에서 6위에 오를 만큼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아프카자와 대사는 2011년말 문을 연 주한 조지아대사관의 초대 대사다. 얼마전 서울 삼성동의 한 관광 관련 행사장에서 만난 그는 중국의 경우 조지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역사가 한국에 비해 훨씬 긴데다(주 조지아 한국대사관은 올해 중으로 문을 열 예정이다) 경제와 산업분야 협력도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아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게 됐다. 아프카자와 대사도 “조지아가 AIIB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일본도 2008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일본대사관을 여는 등 외교관계에서 우리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다.
반면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에 대해서는 조지아 정부가 “EEU보다는 유럽연합(EU) 경제권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기업이 참여를 결정한 조지아의 개발사업 중 가장 큰 것은 코카서스 산맥의 고산지대에 지어질 100억달러(약 11조원) 규모의 수력발전소 건립 프로젝트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주 투자자로 참가를 결정한 가운데, 5~6개의 건설사가 추가로 참여해 곧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완공까지 4~5년이 걸릴 대형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입찰이 진행중인데 한국 건설사가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지아는 지난해 세계은행이 발표한 ‘사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8위(유럽에서 덴마크에 이은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조세부담율이 세계에서 4번째로 낮은데다 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시장을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도 강점이다. 아프카자와 대사는 “조지아에서는 기업을 설립해 등록하는데 인터넷으로 15분이면 충분하다”면서 “조지아가 부패도 없고 치안도 좋은 만큼 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조지아 진출에 관심을 갖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지아를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와인이다. 와인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6000년 경 토기로 조지아에서 발굴됐을 만큼 오랜 와인 재배 역사를 자랑한다.
재배방식도 독특하다. 흙으로 만든 항아리를 땅에 묻고 발효시킨다. 김장김치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공교롭게도 조지아 와인과 김치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함께 등재됐다). 현재 국내 와인업체 두 곳이 조지아 와인과 브랜디를 수입하고 있다.
조지아의 기후는 연중 온난하다 여름은 덥지만 습도가 낮아 쾌적한 편이다.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산간 리조트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아프카자와 대사는 “지난해 조지아를 다녀간 한국인이 4000명을 넘었다”면서 올해 조지아에 한국 대사관이 문을 열면 조지아를 찾는 한국인의 수가 빠르게 늘 것으로 내다봤다.
이용성 기자
■터키 아르슬란 하칸 옥찰(Arslan Hakan Okcal) 대사
2015.07.08
▲ 아르슬란 하칸 옥찰(Arslan Hakan Okcal) 주한터키대사(사진)는 “터키는 유럽연합(EU)의 회원국으로 가입하길 원한다”면서도 “유로화를 채택할지에 대해서는 투표를 통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김정윤 기자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와 마주한 터키는 산업구조도 그리스와 비슷하다. 수입 의존도가 높고 농수산물과 원자재가 주된 수출품이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터키의 가장 중요한 외화 수입원은 관광 산업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와 달리 터키는 EU와 관세동맹만 맺고 있다. 유럽과의 무역에서 관세혜택은 누리면서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리라화를 바탕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최근에는 경제성장률이 다소 둔화됐지만 지난 10년 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가 넘는다.
터키는 1923년 터키 공화국의 수립 이후로 유럽으로의 편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유럽과 중동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더해 유럽과의 높은 무역 의존도 등이 이유였다. 1960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준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1987년 유럽공동체(EC) 정회원국으로 가입을 신청했다. 1996년에는 유럽연합(EU)과 관세동맹을 맺고 본격적으로 EU 가입을 시도했다. 2013년까지 EU에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슬람 문화권의 유입과 터키 내 인권 문제 등을 문제 삼은 일부 EU 회원국들의 반대로 가입이 무산됐다.
아르슬란 하칸 옥찰(Arslan Hakan Okcal) 주한 터키 대사는 그러나 “최근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및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 위기를 보면, 산업 구조가 그리스와 비슷한 터키가 유로존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오히려 득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터키가 유로존의 일원이었다면 그리스와같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확대는 물론 수출과 관광산업에서도 불이익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옥찰 대사는 터키 앙카라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1978년부터 외교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지난해 1월 주한 터키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나이지리아와 마케도니아 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여전히 EU 가입을 원하고 있다”면서도 “영국처럼 독립적인 화폐를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투표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리스의 상황을 보면 터키가 EU에 가입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스처럼 유로화에 묶여있지 않았던 것이 터키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터키는 여전히 EU 가입을 원하고 있다. 이미 관세 혜택을 받으면서도 굳이 EU 가입을 원하는 이유는 터키가 서방국가로 인식되기 원하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유럽의 일원으로 북미 국가들과의 교역도 늘려가길 원하고 있다.”
- 최근 디폴트 위기를 맞은 그리스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터키의 농수산물과 원자재 수출 비중과,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점은 그리스와 유사하다. 하지만 터키는 제조업 기반도 다양하다. 외국 투자도 많이 받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유럽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인도 생산공장을 터키로 옮겼다. 이 밖에도 터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00개가 넘는다. 그 밖에도 다양한 외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또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금융 부분의 개혁을 통해 금융 시스템을 강화했다.”
- 터키의 실업률은 3년만에 10%를 웃돌고 있다. 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뭔가?
“터키의 현재 실업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인구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터키의 현재 연간 GDP 성장률은 3% 정도다. 터키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실업률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이 5%에 달해야 한다. 터키의 노동인구는 유럽 전체에서 네 번째로 많다. 그만큼 평균 연령(28.8세)도 낮다. 이 또한 실업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 터키가 환율 변화에 취약한 나라라는 지적도 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비싸진다. 특히 석유와 가스를 중동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 변화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또한 해외에서 자금을 많이 조달하는데 환율이 오르면 화폐가치 하락으로 조달금리가 올라간다. 환율이 오르면 금리도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투자도 줄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환율이 낮게 유지되는 것이 터키 경제에 좋다.
- 최근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의 영향은 어떤가?
“터키는 석유와 천연가스 순 수입국이다. 따라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터키에게는 좋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 그림의 한 부분이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수출국들의 구매력이 낮아지면 이 국가들은 터키로부터의 수입을 줄일 것이다. 또한 국제원자재 중에서도 광산업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광산업제품 수출국인 터키 경제가 영향을 받는다.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원자재 가격이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가장 좋다.”
- 2013년 한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터키의 가장 가까운 전략적 파트너다. 한국과의 FTA 규모는 터키가 다른 어느 국가와 맺은 FTA보다 크다. 한국과의 FTA는 크게 무역, 서비스, 투자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무역 부분은 2013년부터 발효됐다. 서비스와 투자 개방 부분은 올해 2월 협정을 맺어 아직 의회의 승인이 남아있다.
한국과의 FTA로 인해서 터키와 한국과의 무역 규모가 상당히 증가했다. 아직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터키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도 늘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심각한 무역 불균형 등 문제도 있다. 터키는 한국으로의 수출을 더 늘리고 한국도 터키에서 신기술 분야에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한 터키가 유라시아 경제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터키는 유럽에서는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서쪽에 위치해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대륙이 만나는 요충지인 셈이다. 이스탄불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 어느 지역의 주요 도시로도 비행기로 1~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항공 교통의 허브다.
주변국과의 관계도 매우 좋은 편이다. 터키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이런 지리적 이점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동 시장에 관심이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이상적인 생산 및 물류 기지로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터키는 1996년부터 EU와 관세동맹을 맺고 있어 터키에서 생산되고 유럽으로 수출되는 모든 제품에 대한 관세는 철폐됐다. 터키의 숙련된 노동력과 안정적인 법제도도 매력이다. 이 모든 조건들을 바탕으로 터키는 유라시아 시장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 세계 최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은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 밀집지역인 터키-시리아 국경의 코바니를 겨냥한 ‘이슬람국가(IS)’의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과 IS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터키는 Daesh(무장반군인 이슬람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 테러에 반대한다. 사실 터키는 IS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나라다. 가장 최근 터키 코바니와 시리아 텔아비야드에 있었던 IS의 공격으로 인해 대규모 난민이 터키에 유입됐다. 시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터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터키-시리아 국경지역에서 IS의 인종청소 시도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시리아의 영토도 지켜져야 한다. 언젠가는 중동에서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김정윤 기자
■공용어만 11개인 남아공 노주코 글로리아 밤 대사
2015.07.17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는 11개나 됩니다. 영어, 아프리칸스어, 줄루어, 소토어, 코사어…. 여러 토착 부족들은 각기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고요. 소수 부족이 언어 때문에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와 의회 등 공적 영역에서는 영어를 사용합니다.”
▲ 노주코 글로리아 밤 주한남아공대사는 “오는 18일 ‘넬슨 만델라의 날’을 맞아 대사관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엔(UN)은 인종차별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남아공에 민주정부를 수립한 만델라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인 7월 18일을 지난 2009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로 정했다. /이덕한 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은 아프리카대륙 최남단에 자리를 잡은 나라다. 1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961년 독립과 함께 공화국이 수립됐다.
복잡한 역사만큼이나 사회 구성원도 다양하다. 이주민인 백인은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하고, 원주민과 혼혈, 인도·파키스탄계 아시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흑인은 국적을 박탈당할 정도로 가혹한 인종차별이 자행된 곳이기도 하다.
남아공의 정치와 사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고(故) 넬슨 만델라(Mandela) 대통령이다.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와 맞서 싸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1994년 흑인이 참여한 사상 첫 민주선거를 이끌어냈다.
영국연방에서 벗어난지 50년만에 남아공은 2010년 아프리카대륙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할 정도로 국제적인 입지를 키웠다. 한국에서도 월드컵을 계기로 인지도가 부쩍 높아졌다. 한국과 남아공을 오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지만, 최근에는 영어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남아공을 찾는 한국인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남아공 시장을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도 뜨겁다. 최근 스타벅스는 남아공 테이스트홀딩스과 제휴를 맺고 2016년 남아공 최대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 첫 매장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에 2만2000개가 넘는 매장을 둔 스타벅스지만, 아프리카에선 이집트와 모로코에만 진출한 상태다.
스페인 의류업체인 자라는 최근 남아공에 첫 매장을 냈고, 스웨덴 의류업체 H&M은 올 하반기부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식품업계에서는 도미노피자가 남아공에 진출한데 이어, 경쟁업체인 피자헛도 6년 만에 남아공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크리스피크림도넛은 남아공 진출 계획을 발표하며 앞으로 5년 안에 31개 매장을 열겠다고 밝혔다.
노주코 글로리아 밤(Bam) 주한남아공대사를 15일 서울 한남동 남아공대사관에서 만났다. 그는 언어·문화적인 다양성이 큰 남아공 국민들이 단결할 수 있는 요인으로 만델라 대통령의 정신적인 유산을 꼽았다.
“마디바(만델라 대통령의 애칭)는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남아공 사회가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유엔(UN)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오는 7월 18일, 마디바의 생일을 ‘넬슨 만델라의 날’로 정했습니다. 만델라의 날을 기념해 어떤 일을 하느냐고요? 자유, 평화, 박애 등 만델라 대통령이 강조했던 가치를 전파하는 활동을 합니다. 병원이나 학교를 청소하거나 양로원을 방문하는 등 봉사활동을 하거나, 다양한 문화 관련 활동을 하지요.”
밤 대사는 남아공 사회의 핵심 가치로 ‘우분투(Ubuntu)’를 들었다. 그는 “우분투는 수투어(語)로 ‘나는 너로 인해 존재하고, 너는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공존의 개념”이라며 “외교정책을 포함한 정부 정책도 우분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남아공의 중요한 외교 현안은 무엇인가.
“아프리카어젠다(Africa Agenda)’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이 속한 남아프리카개발협력회의(SADCC), 아프리카 동쪽 연안의 동아프리카공동체(EAC),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 등 3개의 경제권이 존재한다. 아프리카어젠다는 여러 경제협력체를 하나로 만들고 아프리카 국가들간의 상호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다. 아프리카연합(AU)을 유럽연합(EU) 같은 단일 공동체로 전환하고, 경제적으로는 관세와 규제를 없애 아프리카 전체를 아우르는 자유무역지대를 도입하는 게 목표다. ”
-소말리아, 콩고, 에티오피아 등에서 난민이 많이 유입되는데, 남아공 경제나 사회에 불안요인이 되지는 않나.
“남아공에는 상당히 많은 난민들이 있다. 비단 남아공만 겪는 상황은 아니다. 지중해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던 난민들이 사망하는 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국제사회의 문제다. 남아공은 제네바협정에 가입한 나라이기 때문에,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올해 경제 전망은 어떤가. 금이나 백금 등 귀금속이 남아공의 주요 수출품인데, 최근 몇년 동안 원자재시장은 약세를 보였다.
“남아공 경제도 전 세계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전반적으로 저성장 국면인데, 올해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은 2~2.5%로 전망한다.상품 가격은 수요가 감소한 탓에 하락세를 탔다. 남아공 정부는 원자재 이외에도 자동차 부품 등으로 수출품을 다양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제이컵 주마 대통령은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는데, 어떤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나.
“남아공은 개발도상국이다. 정부가 처리해야 할 과제가 많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재인 불평등과 빈곤 문제 완화가 시급하다. 건강과 복지, 교육 문제도 중요하다. 국민이 건강해야 노동력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지방 발전과 토지 개혁, 산업 육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발전계획인 ‘비전 2030’을 토대로 경제와 산업구조를 개선하려 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을 육성하려고 하는데, 자동차와 화학 산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같은 정책과 개혁을 통해 2019년에는 5%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다. 해외직접투자를 더 많이 유치하는 것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해외 기업들이 남아공에 투자할만한 유인은 무엇인가.
“남아공 국내시장도 매력적이지만, 우리(남아공)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연합이 구상한 범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가 출범하면 남아공에서 생산한 제품을 다른 아프리카 국가로 수출하기 좋다. 유럽으로 진출하기도 좋은 위치다. 남아공에서 유럽까지 선박으로 5일이면 충분하다. 남아공 정부는 세제 혜택을 포함해 외국기업에게 산업별로 각기 다른 지원책을 마련했다.”
-실업률이 높은 것으로 아는데, 고용문제에 대한 정책은 어떤 것이 있나.
“정부의 공식 통계로 실업률은 현재 25% 수준이다. 고용문제는 물론 정부의 중요한 당면 과제 중 하나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정부는 산업을 육성과 창업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
올해 초 부임한 밤 대사는 직접 차를 몰고 서울 곳곳을 다니며 장을 볼 정도로 한국 생활에 적응했다. 남아공 국가안보부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그는, 대사로서는 한국이 첫 임지다. 세 자녀를 둔 밤 대사는 “8살인 막내 아들은 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며 “김치 같은 매운 한국 음식을 잘 먹고, 물건을 살 때는 꼭 한국 제품을 고른다”고 말했다.
유한빛 기자
■중남미 콜롬비아 띠또 사울 피니야(Pinilla) 대사
2015.07.22 13:00
“한국과 콜롬비아는 현재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ship)’ 관계지만, 앞으로 경제와 문화, 기술 분야에서 한국과 더 협력하길 바랍니다. 마지막 절차만 남겨둔 한·콜롬비아 자유무역협정(FTA)은 늦어도 올해 안에 발효될 것으로 봅니다.”
▲ 띠또 사울 피니야(Pinilla) 주한콜롬비아대사는 “한국과 콜롬비아의 수교관계는 53년 동안 이어졌고,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유엔(UN)군을 파병한 유일한 남미 국가”라며 “당시 500명이 넘는 콜롬비아군이 한국 땅에서 부상 당하고 숨지면서 한국과 콜롬비아는 혈맹국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박상훈 기자
대다수 남미 국가들이 유가 하락과 공공부채 문제에 발목 잡힌 지난해에도, 콜롬비아 경제는 5% 가까이 성장했다. 최근 4년 동안 콜롬비아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4%를 웃돈다. 전체 수출의 50%를 차지하던 원유의 비중은 절반으로 낮아지고, 수출 품목은 다양해졌다.
대외 신용도도 개선됐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콜롬비아 경제는 대외 경제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전망이 밝고, 재정건전성 관리도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해 콜롬비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3’로 한 단계 높였다. 콜롬비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은 2013년, 2014년 잇달아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화려한 경제 성적표와는 대조적으로, 콜롬비아 사회는 50년 가까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좌익 반군단체와 우익 민병대의 테러,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공산주의 정권을 지향하는 반군 게릴라단체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은 1964년 창설된 이래 끊임 없이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고, 테러와 정치권 인사 납치를 자행했다. 1990년대에는 마약과 관련된 테러로 대통령 후보 3명이 피살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다.
콜롬비아 정부는 반군과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하며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현재 반미 성향의 좌익무장단체인 민족해방군(ELA), FARC과 협상 중이다.
한국과 콜롬비아는 2013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지난해 국회 비준 절차를 마쳤다. 콜롬비아는 제일 처음 FTA를 추진할 상대로 한국을 택했다. 띠또 사울 피니야(Pinilla) 주한콜롬비아대사를 서울 종로 대사관에서 만나, 콜롬비아의 경제 상황과 정책 현안에 대해 물었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자원의존도가 높은 남미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안다. 콜롬비아의 외환보유고나 금융시장 상황은 어떤가.
“콜롬비아 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연 평균 5% 안팎 성장해왔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4.2%다. 금융위기와 국제 유가의 하락은 남미 국가 전반의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줬지만, 콜롬비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수출품을 다양화하고,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결과다.
물론 콜롬비아 경제는 아직까지 원자재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페로니켈(니켈과 철의 합금)과 커피 원두가 각각 연간 수출액의 22%, 20%를 차지한다. 원유와 석탄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 12%씩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자재 개발 분야 외에도 다양한 영역으로 해외투자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콜롬비아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액은 지난해 96억달러(약 11조원)를 웃돌았다. 2013년보다 10.4% 증가했다.”
-마뉴엘 산토스 대통령은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는데, 어떤 정책이 콜롬비아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나. “산토스 대통령은 첫 임기 때 빈부 격차를 완화하는 정책에 무게를 뒀다. 소득 재분배를 통해 빈곤층을 줄이고, 거시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토스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2010~2014년) 동안 절대빈곤층에 해당했던 200만명과 빈곤층 360만명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2010년 13.5%였던 절대빈곤선 이하 국민 비율은 4년 만에 8.4%로 하락했다. 앞으로 10년 안에 절대빈곤층을 완전히 없애고, 장기적으로는 빈곤층 비율을 5%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 현 정부의 목표다.”
-앞으로 콜롬비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정책은 무엇인가.
“산토스 대통령은 ‘평화·교육·평등’이라는 3대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첫째로 ‘평화’는 콜롬비아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콜롬비아는 지난 40년 동안 반정부 게릴라, 범죄집단과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현재 산토스 대통령 정부는 반정부 게릴라 단체들과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평화협상이 체결되면, 내 평생 처음으로 ‘하나가 된 콜롬비아’를 보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교육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시행해 저소득층 자녀도 기본교육을 받게 하고, 저소득층 대학생은 해외로 국비유학을 보낼 예정이다. 콜롬비아 정부가 항공료와 체류비를 지원하고, 협약을 맺은 외국대학교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형식이다. 한국 대학과도 협약을 체결했다. 2016년에는 학생 50명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유학할 예정이다. 2020~2022년이 되면 콜롬비아인은 남미에서 가장 교육을 잘 받은 국민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목표인 ‘평등’은 빈곤층을 줄이고 중산층을 육성해, 전 국민이 고루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2020년까지 콜롬비아의 중산층 비율을 남미 최고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무상교육을 강화하고, 국비 유학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산은 어디서 나오나.
“교육예산을 확보하려면 첫 번째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평화협상이 체결되면 정부가 그동안 안보 부문에 책정했던 예산을 교육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동안 치안행정과 군 무장에 투입했던 돈을 교육과 복지에 투입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영국, 중국 등 많은 나라들이 콜롬비아에 투자하고 있다. 콜롬비아 사회가 안정되면 외국인투자도 늘어나는 효과를 볼 전망이다.”
-한국과 콜롬비아의 경제 협력 관계는 어떤가.
“그동안 한국과 콜롬비아의 협력 관계는 국방 부문에 집중됐지만, 이제 경제 협력도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콜롬비아)가 2000년대 들어서 시장을 개방하면서 아시아에서 경제 협력 파트너를 찾아보니, 한국이 첫 손에 꼽혔다. 두 나라는 혈맹국 관계일 정도로 끈끈하고, 한국의 경제 여건도 콜롬비아가 아시아로 진출할 허브(중심지)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봤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이 사흘 일정으로 콜롬비아를 방문했고, 5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 정상이 참석한 비즈니스포럼은 콜롬비아와 한국 기업인이 400명 가까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올 상반기엔 콜롬비아 장관 6명이 한국을 찾았고, MOU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계속 한국 정부와 논의할 예정이다.”
-한·콜롬비아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는 왜 늦어지고 있나.
“양국간 FTA 논의는 6년 전에 시작했고, 의회에선 비준한 상태다. 하지만 콜롬비아에는 국제적인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가 한 단계 더 있다. 헌법재판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늦어도 올해 안에 헌재가 한·콜롬비아 FTA를 승인할 것이라고 본다. 콜롬비아가 수출하는 카카오, 커피 원두, 과일, 육류 등 교역품 99%의 관세가 철폐되거나 세율이 낮아진다.”
-아시아나 태평양 지역에선 지역 경제 협력체의 관계가 끈끈해지고 있다. 콜롬비아는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의 회원국인데, 어떤 이점이 있나.
“태평양동맹(PA) 4개국(콜롬비아·멕시코·페루·칠레)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17억달러로, 남미 전체 GDP의 35%를 차지한다. 인구는 2억명이 넘는다. 회원국간 무역 규모는 180억달러다. PA의 특징은 남미 국가간 협력을 중시하면서도, 개방경제와 자유무역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경제 연합체를 구성하는 게 목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과도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올해 PA 회원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3.5%다. 유럽이나 미국보다 높다. 경제적인 통합 수준을 높여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공동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은 신규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역내 사업을 지원한다면 콜롬비아 중소기업이 페루나 멕시코, 칠레 등 PA 회원국으로 진출하고 영업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PA와 곧잘 비교되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남미 GDP의 52%를 차지하고, 인구는 2억4000만명 정도로 더 크다. 하지만 역내 무역액은 태평양동맹의 60%에 못 미친다. 자유무역보다 정치적인 문제에 중점을 둔다.”
인터뷰를 마칠 때가 되자 피니야 대사는 “앞으로 두 나라의 협력 관계가 문화, 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피니야 대사의 아들은 현재 한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는 중이고, 대학생인 딸도 한국으로 유학을 올 예정이다.
유한빛 기자
■프랑스 제롬 파스키에 대사
2015.07.29 11:00
“프랑스 정부의 목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 입니다. 기업 활동이 활발해지면 일자리는 자연히 생기니까요.”
▲ 제롬 파스키에 주한프랑스대사 /박상훈 기자
지난해 세계 경제학계에서 프랑스의 활약은 대단했다.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1대학 교수가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거머쥐었다. ‘21세기 자본’으로 돌풍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도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 실물 경제는 숙제가 쌓여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0.4%로 유로존 평균(0.9%)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가장 큰 문제는 실업률이다. 5월 프랑스의 실업률은 10.3%. 유로존 평균치인 11.1%와 비교하면 낮지만, 독일(4.7%)이나 오스트리아(6.0%)와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한다.
프랑스 정부의 경제 대책은 간단명료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은 지난해 일련의 규제 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 상점의 일요일 영업을 확대하고, 도시간 버스 운영 사업 규제를 완화했다. 주류 광고와 운전면허 허가 기준도 낮췄다. 노동법 개혁에 착수했고, 산업별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중소기업과 소기업 대책은 고용 육성 차원에서 접근했다. 프랑스 정부는 1년 이상 근무할 직원을 신규 고용하는 기업에 4000유로(약 52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소기업법(small business act)’을 추진 중이다. 무려 2억유로(약 2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오는 2016년 6월 8일까지 고용 계약을 체결한 기업이 지원을 받는데, 약 14만개 중소기업과 210만개 소기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정부가 저성장과 고용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제롬 파스키에(Pasquier) 주한프랑스대사를 서울 서대문구 대사관에서 만났다.
ㅡ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법인세 경감 등 친기업 정책을 펴겠다고 거듭 밝혔다.
“프랑스에서 지난해 창업한 기업은 42만여개다. 유럽 전역을 통틀어 1위를 기록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유럽에서 산업 분야의 외국자본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하기도 했다. 우선 기업의 투자활동에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기업들이 프랑스에서 직원들을 고용해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 해당 금액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낮춰 준다. 해외 기업들도 똑같은 혜택을 준다. 신생기업에 대한 세금을 감면해주고,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소득에 부과하는 세율도 낮췄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프랑스 기업은 약 400억유로(약 51조6400억원)의 세제 혜택을 누릴 것이다.”
ㅡ프랑스의 실업률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건강한 산업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더 많은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기업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개인이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지원해주면 된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고용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 프랑스에선 연봉 외에 사회보장과 보험, 복지비 등을 기업이 추가로 부담한다. 정부는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액공제(CICE)도 신설했다. 직무 교육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일손은 부족한데 필요한 인재를 찾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기업이 많다. 산업 환경과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기술 직업 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강화할 것이다.
고용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기업의 평균 인건비 지출액은 독일, 일본보다 적다.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 4월 올랑드 대통령은 기업을 새로운 분야에 맞게 현대화하고 디지털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래산업’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사업이다.“
ㅡ‘재정 적자 줄이기’는 잘 되고 있나. 유럽연합(EU) 집행위가 목표치 달성 기한을 연장해 주긴 했다.
“프랑스 정부의 부채 규모는 5년 연속으로 줄었다. 공공지출 감축이 효과가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부채 규모를 2015년과 2016년 각각 40억, 50억유로씩 감축할 목표를 세웠다. EU 집행위에게 약속했듯이 프랑스는 오는 2017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낮출 것이다.
국내 경기도 회복세다. 내년에 기업 투자가 약 5% 증가할 것으로 본다. 설문에 따르면 프랑스인 4명 중 1명은 창업을 하거나 사업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답했다. 프랑스에 잠재적인 기업가가 1300만명이나 있단 뜻이다.”
ㅡ얼마 전 그리스 유로존 탈퇴설이 불거졌다. 프랑스 국민들 사이엔 유로존에 대한 회의감은 없나
“그리스 문제는 당사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전 세계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 EU의 역사는 크고 작은 위기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EU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형태의 공동체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적절한 해법을 찾았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ㅡEU 안에서 독일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우려나 견제는 없나.
“독일은 유럽이라는 사슬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리다. 물론 모든 고리(회원국)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15년 동안 독일은 유럽의 경제대국이 됐다. 프랑스는 독일에게, 독일은 프랑스에게 최대 교역국일 정도로 중요한 협력 대상이다. 게다가 ‘하나의 유럽’은 한 나라의 힘으로 건설할 수 없다. 독일도 프랑스처럼 유럽 단일화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함께 대화해야만 한다. 실제로 두 나라는 모든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협의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내부적으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대비책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채권단과 그리스 정부가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며 유로존 정상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13일 오전, 유로존 회원국들은 17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그리스에게 3차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ㅡ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는 어떤 경제협력 효과를 봤나.
“한·EU FTA는 한국과 프랑스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됐다고 본다. 현재 한국과 프랑스의 무역 규모는 80억유로다. FTA 발효 이후, EU 전체와 프랑스는 한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봤다. 현재 한국의 금융, 화학, 정보통신, 에너지 관리, 위성, 항공, 전자 등 여러 업종에 프랑스 기업이 진출해 있다.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 기업은 200곳이 넘고, 관련 일자리만 2만5000개에 이른다. 반면 프랑스에 진출한 한국 기업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프랑스에서 영업하는 한국 기업은 40곳에 불과하고, 고용 인력도 3000명에 그친다. 한국 기업이 프랑스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하길 기대한다.”
ㅡ극우성향 정당인 국민전선(FN)이 인기를 얻는 등 최근 프랑스에서 국수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프랑스는 열린 나라다. 프랑스 뿐 아니라 모든 나라 정부가 직업과 비자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이민을 승인한다. 물론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일자리 때문에 이민에 반대하는 의견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하고, 인종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프랑스의 상황을 과장하지 않으면 좋겠다.”
ㅡ대사로서 바꾸고 싶은 프랑스에 대한 고정관념은 있나.
“영어를 못하고 보수적인, 바게트를 들고 베레모를 쓴 프랑스인의 이미지는 정말 낡은 것이다.(웃음) 프랑스는 항공우주, 조선, 전기전자 등 산업 기술의 수준이 높다. 1964년부터 위성을 만들었고, 정기적으로 상업용 로켓을 발사한다. 지금은 디지털 산업의 창업을 지원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유한빛 기자
■해안선 7500km 인도 비크람 도래스와미 대사
2015.08.03
“인도는 한국에게 ‘제2의 중국(next China)’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지난 20년 동안 중국시장 덕분에 성장했다면, 앞으로 20년은 인도시장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겁니다.”
세계 경제에서 인도의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며 기업과 돈을 끌어들이던 중국도 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상승세를 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3%로 낮춰 잡았지만, 인도 경제에 대해선 올해 7.5%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유지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인도의 2015년 성장률을 7.8%, 2016년 성장률을 8.2%로 전망했다. 인도 정부의 기업 친화적인 전략이 효과를 내 투자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비크람 도래스와미 주한인도대사는 “앞으로 성장잠재력이 큰 인도시장을 놓치지 않으려면 한국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15년 7월 기준 인도의 인구는 약 12억5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주민등록 같은 공식 집계에서 누락된 인구를 더하면, 최소 13억명 이상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인도가 중국 못지 않게 매력적인 소비시장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는 각국 정상들의 ‘구애’공세가 이어졌다. 지난해 9월 일본, 중국, 미국 정상을 연달아 만난 모디 총리는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각각 350억달러(약 40조7800억원), 2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담’에서 모디 총리와 처음 만났고, 올해 5월에는 모디 총리가 방한했다.
모디 총리는 빈곤 척결과 투자 활성화 등 인도의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대외적으로는 주요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평화로운 이웃(Peaceful Neighbor)’이란 전략을 세웠다.
비크람 도래스와미(Doraiswami) 주한인도대사를 서울 한남동 주한인도 대사관에서 만나 인도의 경제 정책과 개혁 추진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부임한지 석 달된 도래스와미 대사는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포함해, 한국 기업의 상황을 꿰고 있었다.
“인도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입니다. 인도와 중국의 무역규모는 700억달러 이상이지만, 한국과의 교역액은 170억달러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시장에서 중국 기업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더 적극적으로 인도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는 인도 정부가 크게 5개 부문에서 한국 기업과 협력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조선, 전자, 자동차, 방산, 사회기반시설(인프라스트럭처) 등이다.
―인도는 해안선 길이가 길어 선박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 조선업체와 협력할 여지가 있을까?
“인도의 해안선은 7500km에 달하고, 전 세계의 중요한 해상 무역로가 인도양을 지난다. 소말리아 해적 등 해상 안전 문제 때문에 인도는 해군의 규모가 크다. 선박의 95%가 상업용인 한국과 달리 인도 선박의 85~90%는 군용이다. 선박 수요가 큰 인도는 조선업 규모도 400억~500억달러에 달하지만, 인도 기업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선박의 비중은 전체의 1%에도 못 미친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업체의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선박 수요를 충당하고 조선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 조선업체들과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과 인도 조선사가 합작기업을 세우거나 공동으로 선박을 건조하고, 장기적으로는 인도에서 선박 부품과 배를 생산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 ‘빅3’는 2분기에만 4조7천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조선업계는 올해 하반기 임원 감축과 부서 통폐합,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할 전망이다.
―전자, 자동차 등 분야에선 한국 기업과 어떤 식으로 협력할 수 있나.
“인도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다. 아직 인구의 대부분이 피처폰(스마트폰보다 성능이 낮은 기본 휴대전화)을 사용한다. 중국 기업들은 인도에 공장을 짓고 투자하는데 적극적이다. 폭스콘도 새로운 부품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잠재력이 큰 인도 스마트폰시장을 제대로 공략하려면 인도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인도는 현대자동차 판매량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다. 인도시장은 그동안 경차 중심이었지만, 최근 BMW와 메르세데스 같은 고급 브랜드 판매량이 늘고 차종도 세단 같은 대형차로 바뀌고 있다. 인도 국민의 30%는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인프라 분야에선 발전소 건설에 관심이 많다. 태양광 발전의 전력생산량을 연간 1.5기가와트로 확대할 계획이고, 이미 발전시설의 절반은 지어진 상태다. 한화큐셀이 인도업체와 제휴해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전력의 50%는 화력발전으로 생산하고, 원자력발전의 비중은 3% 내외다. 원전 생산 비중을 앞으로 10년 안에 10%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한국의 건설 업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사안이다. 자동차용 배터리 같은 전력저장시스템도 중요하다. 인도에선 도시마다 수천 대의 툭툭(릭샤·소형 엔진을 장착한 3륜차)이 달리는데, 그로 인한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버스 등 대중교통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선 자동차용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해야 한다. LG화학과 삼성SDI가 주요 협력 대상이다.”
―인도 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는 무엇인가.
“자동차부품과 정보기술(IT), 방산산업 등이다. 자동차부품은 인도에서 생산해 독일 등 유럽권에 수출하고 있다. 인도는 IT 인재가 많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같은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다. 방산산업에선 인도기업들이 광학기술, 다이렉트휠시스템, 항공 분야에 강하다.”
―인도 정부는 한국 기업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
“인도 정부는 한국 기업에게 융통적이고 협상 가능한 조건을 제공하려고 한다. 기업마다 업종마다 원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토지 제공은 주(州)정부 소관이지만, 모든 주가 한국 기업을 유치하고 싶어한다. 법인세 경감을 포함해 세제 혜택도 기업들과 논의해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줄 것이다. 한국 기업의 투자와 관련된 협의 내용은 총리에게 직접 보고서가 올라간다.”
―포스코가 지난달 오리사주(州) 철강공장 건설 사업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토지 문제가 주된 원인이라고 알려졌는데.
“토지 문제보다는 철강산업 동향이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안다. 공장 부지용 토지를 매입하는 문제는 합의가 거의 끝났다. 포스코그룹도 오리사 철강공장 건설 사업에 많이 신경을 쓴다. 전 세계 철강산업이 침체된 상황이기 때문에 포스코그룹도 투자 시기를 조정한다고 (포스코그룹 쪽에서) 얘기했다.”
―모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현재 인도 정부는 세계 최대 규모로 ‘신분증 발급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지방에선 출생신고를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신분증이 없으면 은행 계좌도 만들 수 없고, 여권도 발급받지 못한다. 농민들은 휴농기가 되면 도시에서 배달 같은 저가 서비스 노동으로 흘러든다.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고 은행 계좌가 없기 때문에 고급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정부의 복지 지원금은 은행 계좌가 없으면 받을 수 없고, 미수령 지원금을 빼돌리는 부패 문제가 뒤따랐다. 5년 전 인도 정부는 신분증이 없는 인도 국민의 지문과 홍채 등 신체 정보를 이용한 신분 확인 수단을 도입했다. 그동안 650만명이 신체 정보를 등록했다. 올해 추가로 시작한 계좌 개설 캠페인을 통해 6개월 만에 계좌 5000만개가 새로 만들어졌다. 복지 지출의 질도 높일 예정이다. 많은 아시아권 나라들이 그렇듯, 인도에서도 남아 선호 사상이 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딸을 가진 가족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려고 한다.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는 ‘깨끗한 인도(clean India) 운동’도 진행한다.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비슷하다. 우선 곳곳에 화장실을 지어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 계획이다.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가 협력해 복잡한 하수처리시설 없이 환경친화적인 화장실을 도시와 지방 곳곳에 보급하는 게 목표다.”
유한빛 기자
■ 내륙국 볼리비아 과달루페 팔로메케 테 타보아다 다민족국가 대사
2015.08.04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자원의존도가 높은 남미 국가 대부분은 경제 사정이 나빠졌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남미 경제 규모 1위인 브라질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올해도 4%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대하는 남미 국가가 있다. 볼리비아다. 지난달 국제 신평사 피치는 볼리비아의 재정정책과 경제정책이 적절하다고 평하고, 국가 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한 단계 올렸다. 볼리비아 원자재 생산업체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자 수출계약을 장기로 체결하고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자원 개발 산업을 총괄하는 볼리비아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 과달루페 팔로메케 테 타보아다 주한볼리비아 다민족국가 대사 /이덕훈 기자
과달루페 팔로메케(Palomeque) 데 타보아다 주한볼리비아대사를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만났다. 그는 “볼리비아는 최근 5년 동안 연 4.5~5.5%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며 올해도 경제 전망이 밝다고 설명했다.
“2006년 40억달러(약 4조6700억원)였던 볼리비아의 수출 규모는 2014년 120억달러로 늘었습니다. 현재 볼리비아의 국내총생산(GDP)의 60%에 해당하는 140억달러가 각종 투자사업에 쓰입니다. 천연가스를 국가의 전략자원으로 지정해 관련 사업체를 국유화하고,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해 빈곤층을 줄인 정책이 주효한 것이죠.”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정책의 목표도 ‘평등’이다. 볼리비아는 지난 2009년 개헌을 통해 ‘공화국(Republic)’에서 ‘다민족국가(plurinational state)’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볼리비아 내 문화, 언어적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인구의 80%가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소수민족의 언어까지 공용어로 지정했다. 케추아어, 아이마라어, 과라니어 등 37개 언어가 공용어다.
양성평등도 볼리비아 정부의 중점 과제다. 내각의 50%는 의무적으로 여성에게 할당하고, 정당들은 비례대표제 명단에 여성 후보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 2013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볼리비아의 양성평등 순위는 27번째로 높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지난해 3선에 성공했다. 경제 분야에서 현 정부의 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경제 영역의 중점 과제는 빈곤 퇴치다. 볼리비아는 천연자원이 풍부한데, 자원개발로 얻은 수입 대부분을 정부 예산으로 쓴다. 사회복지제도는 청소년, 여성, 노인 등 사회취약층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저소득층 가계에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고, 모든 산모에게 출산 후 최장 1년까지 식료품을 지급한다. 60세 이상 노년층에게는 매달 현금으로 200볼리비아노(약 3만5000원·미화 약 29달러)를 지급한다. 볼리비아의 최저임금이 월 360달러(약 42만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아시아나 태평양, 아프리카 등에선 역내 경제 협력이 강해지는 상황이다. 볼리비아는 이웃 남미 국가들과 어떻게 협력하나. 최근에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 가입 승인도 받았는데.
“볼리비아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이웃나라들과 수출 협정을 체결했다. 남미 대륙의 중앙인 볼리비아의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에너지 산업의 허브(중심지)가 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17일 우리(볼리비아) 대통령이 브라질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남미공동시장 가입 협정에 서명했다. 아직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남았다. 회원국 중 하나인 파라과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파라과이 쪽에서 제기한 불만과 요구 사항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볼리비아는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이 되기 전에도 자유무역협정(FTA)과 비슷한 관세 협정을 맺은 상태였다. 교역품의 95%는 관세를 면제받거나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가입 자체만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남미공동시장의 다음 과제는 유럽연합(EU)처럼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적용하는 관세 규정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볼리비아는 그 과정에 참여하고, 지역 통합에 기여할 계획이다.”
―볼리비아와 한국의 경제적인 관계는 어떤가. 한국 기업들과 어떤 분야에서 협력하고 싶은가.
“올해는 볼리비아와 한국이 수교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볼리비아의 8위 수출시장이고, 볼리비아와 상호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시장 규모나 높은 소득 수준이 매력적이다. 볼리비아는 은, 아연, 납, 주석, 리튬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남미 자원개발 사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창업 초기 단계인 소규모 볼리비아 기업들은 배우려는 열망이 크다. 볼리비아에선 철도, 공항 건설 같은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중이고, 이를 위해 (한국 기업으로부터) 기술이나 자본조달 노하우 등을 얻고 싶다. 볼리비아는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나 의료 분야의 디지털 기술 등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볼리비아의 가장 중요한 외교 현안은 무엇인가.
“해상 영토를 되찾는 문제다. 1825년 볼리비아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엔 400킬로미터(km)의 해안선이 있었지만, 1879년 태평양전쟁 당시 칠레에게 바다와 접한 영토 일부를 빼앗겼다. 은과 초석(硝石) 등 천연자원을 노린 영국계 다국적기업의 입김이 작용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문제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영토 문제를 국제적인 안건으로 만드는 이유는 뭔가. 한국도 일본과 독도 문제로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의 개입을 요청하는데 신중한 입장이다.0
“볼리비아 정부는 2013년 4월 ICJ에 제소했다. 태평양 연안 영토의 소유권이 어느 나라에게 있는지, 국제 사법기구가 판단해달라는 뜻이다. 칠레 정부는 국제사법기구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정부와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태평양 연안을 접한 볼리비아의 영토가 표기된 옛 지도 등 증거자료도 충분하다.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칠레 정부는 볼리비아가 태평양으로 접근할 권한에 대해 볼리비아 정부와 협상할 의무가 있다. 둘째로 칠레 정부는 이 같은 의무를 위반했다. 마지막으로 칠레 정부는 신의를 지켜 신속하고 공식적으로, 합리적인 시한 안에 볼리비아 정부에게 태평양 영토에 대한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해안 영토를 잃은 볼리비아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등에게 둘러싸인 내륙국가가 됐다. 직접적인 해상무역이 불가능해진 탓에 볼리비아의 수출 여건도 나빠졌다. 볼리비아 정부가 영토 탈환에 총력을 다하는 배경에는 해상무역로 확보 문제가 있다.
―볼리비아 정부는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외 정책을 쓰고 있나.
“국제기구와 단체에 스페인어와 영어로 홍보물을 보내고, 해외 저명인사들에게 볼리비아 정부의 영토 반환 요구가 정당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호세 사파테로 전 스페인 총리도 볼리비아 정부의 협상 요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주변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볼리비아) 정부는 영토 분쟁을 해결하지 않는 칠레가 남미 국가들의 통합을 저해한다고 본다. 우루과이, 페루, 멕시코,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의 전현직 대통령들도 우리 정부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유한빛 기자
■이스라엘 우리 구트만 대사
2015.08.10
“이스라엘은 소프트웨어, 한국은 하드웨어가 강한 나라지요. 두 나라의 산업구조는 상호보완적입니다. 이스라엘 기업과 한국 기업이 합작해 세우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함께 개발한다면, 글로벌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겁니다.”
▲ 우리 구트만 주한이스라엘대사. /오종찬 기자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830만명. 면적은 약 2만770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남한 기준)의 5분의 1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식회원국이 된 것도 불과 5년 전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긴장감이 높은 이스라엘에서 군 복무는 남녀 모두에게 의무다.
하지만 경제지표로 본 이스라엘은 결코 작지 않다. 세계은행(WB)이 집계한 이스라엘의 2014년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PPP)’은 약 3만3070달러로 한국(3만4360달러)과 큰 차이가 없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7%로 추락한 2009년에도 이스라엘 경제는 2% 가까이 성장했다. 한국 정부의 창업, 벤처기업 지원 정책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 중 하나는 요즈마펀드(yozma fund)다. 요즈마펀드는 유망한 신생 기술기업을 지원하는 이스라엘의 민관 합작 벤처캐피털이다.
우리 구트만(Gutman) 주한이스라엘대사를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만나 강소국 이스라엘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경제·산업경쟁력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구트만 대사는 “2008년 금융위기로 여러 나라가 충격을 받았을 때도 이스라엘 경제는 성장을 이어갔다”며 “올해 경제성장률은 3%, 2016년은 3.7%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실업률이 5% 안팎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총실업률은 낮지만, 15~29세 인구의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하지 않나.
“상황적인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모든 이스라엘 국민은 18세가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 여자는 2년, 남자는 3년 동안 복무한다. 또 이스라엘 청년들은 제대 후 1~2년 동안 외국에서 배낭여행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내 딸은 7개월 전에 제대했는데 아직 여행 중이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군대와 해외여행을 통해 국제화를 경험하고 한층 더 성숙해진다. 이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창업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창조경제’다. 이스라엘이 창조와 혁신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인재가 군에서 자라고, 요즈마펀드 등을 통해 정부가 기업생태계를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요즈마펀드는 이스라엘의 저명한 과학자가 1993년에 만든 개념으로,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일정 비율로 자금을 조성해,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한국 정부도 2014년 요즈마펀드를 출범시켰다. ”
―한국도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지만, 사회와 단절된 단체생활을 하면서 각종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스라엘에선 군 복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없나.
“이스라엘에서는 군 경험을 아주 중요한 성장과정이라고 본다. 압박감 속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훈련을 받는데 이 같은 경험은 청년들을 성숙하게 만든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국가 인재양성소(national incubator)’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엘리트 장교 육성하는 ‘탈피오트(Talpio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재능이 성적이 뛰어난 학생을 7~10년 동안 장교로 복무시키면서 과학, 수학, 공학, 의학 교육을 시킨다. 제대하면 공학자, 기술자, 의사 등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탈피오트 출신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아주 많다.”
*이스라엘 고교생들은 징병연령(18세)이 되기 1년 전부터 신체조건과 학습능력, 적성에 대한 평가와 면접을 거치고, 선발과정을 통과한 학생들만 이스라엘군(IDF)의 엘리트 부대에서 복무할 기회를 얻는다. 어떤 군대에서 복무했는지는 취업에도 영향을 준다. 그중 최고 엘리트 프로그램인 탈피오트의 생도는 복무 기간 수학, 물리학 대학 학위과정을 이수하면서 군사 훈련을 받는다.
―군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창업을 하는 사례도 있나.
“이스라엘에서는 수준 높은 과학기술 교육을 받고 창업과 혁신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청년들이 해마다 수천명씩 사회로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로 필캠(PillCam)이라는 의료기기가 있다. 알약처럼 생긴 장치 안에 초소형 카메라가 들어있다. 약을 먹듯이 필캠을 삼키면 장기 내부를 촬영할 수 있다. 군대 동기인 의사와 미사일 전문가의 합작품이다. 카메라는 원래 미사일 탄두에 장착하기 위해 개발한 것을 소형화했고, 의료용으로 개발해 상업화했다.
한국 정부도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과학기술전문사관제를 도입했다. 카이스트(KAIST), 포스텍 등 5개 특성화 대학에서 해마다 후보를 20명씩 선발하고, 학부를 졸업하면 전기·전자·기계·컴퓨터·물리 등의 연구개발 전문 장교로 임관해 국방과학연구원(ADD)에서 근무하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어떻게 창업과 산업간 협업을 지원하나.
“인적 네트워크 부분에서 군대가 큰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 사회의 어떤 분야에든 군 출신이 있고, 군에서 알게된 각 분야 전문가들끼리 협력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 같은 협업 시스템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에서 창조경제(creative economy)의 컨트롤타워는 정부가 아니다. 정부는 의학이나 정보통신기술(ICT) 등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첨단산업의 정책을 일일이 통제하려 들 것이 아니라, 산학 연계와 협업을 지원하고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한국과의 경제적인 관계는 어떤가. 이스라엘 기업과 한국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방산, 의료기기, 의학, 농업, 수자원 관리, 사이버보안 분야에 강하다. 이스라엘과 한국 정부, 기업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한국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다면, 값싼 중국산 농축산물에 한국 농가가 밀리지 않도록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답은 농업기술이다. 이스라엘은 기후, 자연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곡물은 동일한 면적에서 수확할 수 있는 양을 두 배, 세 배로 늘렸다. 축산기술의 경우, 평균적으로 젖소 한 마리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8000리터지만, 이스라엘 젖소의 연간 생산량은 1만3000리터 이상이다.
농업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은 물 공급이다. 이스라엘은 한번도 물이 충분한 적이 없는 나라다. 강수량은 평균적으로 100~200 밀리미터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물 수출국이다.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 주변국으로 수출한다. 이스라엘의 폐수 재활용률은 86%로 세계 1위다. 2위인 스페인의 재활용률은 22%다. 마셔도 될만큼 깨끗하지만, 국민들의 정서나 인식을 고려해 주로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바닷물을 정수하는 시설인 해수담수화플랜트도 세계 최대 규모 2기가 이스라엘에 있다. 이스라엘 전체 물 사용량의 약 60%를 해수담수화로 충당한다. 비용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해수담수화 비용이 1큐빅미터당 평균 1달러 정도인데, 이스라엘에선 55센트면 충분하다.”
―한국 기업이 진출할 만한 분야는 무엇인가.
“포스코는 지난해 400메가와트 규모의 발전소를 완공했고, 현대차와 기아차는 이스라엘에서 판매량 1위의 자동차업체가 됐다다. 이스라엘은 발전소 설비와 선박 등 수요가 많다. 이스라엘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나 신기술을 개발하는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도 좋다.”
*구트만 대사에게 이란 핵협상 최종 타결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그는 “아직은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유한빛 기자
■ 스웨덴 라르스 다니엘손 대사
2015.08.11
우리나라도 무상급식제도와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제도를 최근 몇 년 새 도입했지만, 예산 문제부터 지원 범위, 방식을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성공적인 복지국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북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선 복지 증대와 경제 성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았을까.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라르스 다니엘손(Danielsson) 주한스웨덴대사를 만나 물었다.
▲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스웨덴대사 /이태경 기자
다니엘손 대사는 “스웨덴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라며 복지 강화와 경제 성장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육과 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스웨덴 여성의 높은 노동시장 참여율로 이어진 것은 물론, 사회안전망 강화로도 이어지면서 창업을 투자를 비롯한 경제활동도 활발해졌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식 복지제도의 특징은 ‘보편적 복지(welfare for all)’다. 특정 계층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똑같이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뜻이다.
고소득자도 보육비와 자녀 교육비, 실업수당 등 지원금을 받는다. 스웨덴 정부는 18개월부터 7세 아동을 둔 가정에게 보육비를 지원하고, 초중등학교 뿐 아니라 대학 등록금도 대준다. 유급 육아휴직은 부부가 합해 18개월을 사용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최소 월 15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한국 부부들은 생활비 때문에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정부가 자녀 양육에 필요한 돈을 대부분 지원하는 스웨덴에선 외벌이가 대세일까. 다니엘손 대사는 “스웨덴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남, 녀 모두 80%”라며 “여성이 일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은 없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한데도 출산율은 높다.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당 1.88명(2015년 추정치).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1.21명(2014년 기준)을 웃돈다. 경제 역시 탄탄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1%로 유럽연합(EU) 평균(1.4%)보다 높다. 스웨덴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5%로, 역시 EU 평균치 이상이다.
―한국에선 무상급식, 기초노령연금 도입, 세금 인상 등 복지 문제와 관련된 논란이 많은 상태다. 복지제도에 대해 논할 때면 스웨덴의 사례가 빠짐 없이 거론된다. 스웨덴 정부는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얻고 복지제도에 대한 합의를 이뤘나.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근간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를 알아야 한다. ‘신뢰(trust)’와 ‘보편적 복지’다. 우선 스웨덴식 복지제도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 국민들이 기꺼이 세금을 내게 만들려면, 세금이 제대로 쓰일 것이란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민들은 대부분 정부가 세금으로 걷은 돈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스웨덴과 한국 사이엔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스웨덴은 빈부격차가 한국보다 작고, 빈곤층 비율도 낮기 때문에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할 수 있다. 스웨덴에선 세 부담도 크다. 한국은 부가가치세율이 10%지만, 스웨덴은 25%에 달한다. 식료품에는 예외적으로 부가세율을 6%로 적용한다.
모든 스웨덴 국민이 똑같이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점 때문에 조세저항은 작다. 게다가 스웨덴은 간접세율은 높지만, 부유세나 상속세는 없다. 복지 혜택을 모든 국민이 받게 하되, 특정 계층에게만 세금을 더 부담시키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복지제도를 강화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면 좋을까.
“더 넓은 범위에서 ‘복지’를 생각해야 한다. 복지는 결국 경제 성장과 연결된다. 스웨덴에는 중소기업이 많고 청년층은 창업에 관심이 많다. 일자리 문제를 생각하면, 중소기업과 창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대기업은 효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 고용이 늘어나기보다, 사업비가 적게 드는 나라로 옮겨갈 것이다.
스웨덴 최고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에게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대답을 한다. 사업에 실패해도 정부 제도가 지원해주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 10곳이 생기면 그중 3곳은 망하게 돼 있다. 그게 시장 경제다. 하지만 스웨덴에는 개인이 사업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사회가 도와줄 것이란 합의가 있다. 중소기업과 창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현 한국 정부의 방향은 적절하다고 본다.”
―최근 그리스의 국가 부도 위기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복지제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경제구조가 부실해질 수 있지 않나.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의 복지제도는 (북유럽과는) 수준이 다르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남유럽 국가들은 은퇴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50대에 경제활동을 중단하고 연금을 받는다면, 아무리 경제가 탄탄한 국가도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고령화 시대다. 낮은 은퇴연령과 이른 연금 지급은 이 같은 경제적인 현실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는 나라다.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출산률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데, 이 역시 복지 정책의 효과인가.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최장 18개월이고, 게다가 유급이다. 그 중 3개월은 ‘아빠 전용’이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하면 15개월 까지만 쓸 수 있다. 18개월 유급 육아휴직 혜택을 누리려면, 최소 3개월은 아빠가 써야 한다. 그래서 스웨덴에선 엄마가 출산 후 첫 9개월, 아빠가 남은 9개월을 휴직하는 식으로 활용한다. 이 같은 복지제도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고, 양성평등을 촉진한다.
양성평등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밝을 수 없다. 젊은층은 다르지만,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안다. 단적인 예를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롯데 계열사의 사장단이 신동빈 회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을 때 찍은 사진을 봤다. 최고경영자(CEO) 전원이 남성이다. 한국 국회나 기업 경영진 중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보육제도와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1차적으로 남성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본다. 육아와 가사활동에도 남성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육아휴직이나 보육비 지원은 보조적인 수단이다.”
―스웨덴도 교육열이 높은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스웨덴은 대학 입학 경쟁이 한국처럼 치열하지 않다. 고교 졸업생의 45%만 대학에 진학한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손재주가 좋은 학생도 있다. 모두가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웨덴 학부모와 한국 학부모는 성공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한국에선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입사자를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스웨덴에선 의사도 뛰어난 자동차 정비공도 똑같이 ‘성공한 사람’이다.
스웨덴 부모들은 자녀의 인생에 심하게 간섭하지도 않는다. 내 딸은 의대를 다녔다. 그런데 딸이 의예과에 진학한 지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외식업체를 차리겠다’고 ‘통보’해왔다.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내 딸은 자기 사업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직원을 100명 이상 둔 외식업체의 대표가 됐다.
이 이야기를 스웨덴에서 하면 다들 ‘잘됐다’며 축하해준다. 반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딸이 의대를 중퇴하도록 놔두었냐’며 놀란다. 결국 ‘성공’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스웨덴 부모들은 자녀에게 학업 문제로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제도에는 문제가 많다는 건가.
“장단점이 있다. 한국에선 스웨덴의 교육제도를 배우려고 하는데, 스웨덴에선 한국의 교육제도에 관심이 많다. 한국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PISA·수학, 과학, 읽기 능력 등에 대한 평가) 점수가 훨씬 높다. 스웨덴 학생들은 창의력 평가 부문의 점수가 높다. 두 나라의 교육제도에서 장점만 뽑아내면, 최고의 교육제도가 탄생할 것 같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한국도 창의력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음악산업은 미국 팝스타 중심이다. 그런데 미국 팝스타의 노래나 뮤직비디오의 작곡가, 연출가는 스웨덴인인 경우가 많다. 창의적인 분야의 인재를 키우려면 한국인도 여유도 즐기고 창의적인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스웨덴과 한국간 무역과 경제협력 관계는 어떤가.
“아직까지 스웨덴의 대(對)한국 수출보다 한국의 대스웨덴 수출이 더 많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난 2011년 이후로, 스웨덴과 한국간 교역도 더 활발해졌다.
스웨덴 소비자들은 가격보다 품질을 중시한다. 최근 스웨덴을 다녀왔는데, 스웨덴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점을 깨달았다. 10년 전에는 도요타나 닛산 자동차가 더 흔했지만, 지금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현대차는 가격을 낮추기보다 품질을 개선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 주효했다.
스웨덴 기업들도 가격경쟁력보다 품질경쟁력을 중시한다. 사실 이케아나 H&M은 전형적인 스웨덴 기업이라기보다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에 진출한 스웨덴 기업은 85~88개 사이다. 에릭슨은 LG전자와 공동 사업을 진행하고(에릭슨엘지), 자동차 업체 볼보도 영업 중이다.
한국에서 토요휴무제가 확대되면서, 스웨덴 기업이 만든 캠핑용품과 스포츠웨어가 잘 팔린다. 한국인들이 주말에 야외활동을 즐기면서 아웃도어(야외활동) 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한국 소비자들이 가격보다 품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 스웨덴 제품의 경쟁력이 더 좋아질 것이다.”
▲ 스웨덴의 전통 공예품인 달라호스(Dala horse) 옆에 선 다니엘손 대사. 주한스웨덴대사관 곳곳에는 현대 회화 작품이 걸려 있고,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가 놓여 있었다. 다니엘손 대사는 “현대 스웨덴 디자인은 단순하고 자연친화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한국에선 이케아와 H&M 같은 스웨덴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북유럽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많다. 스웨덴 기업이 한국에서 성공한 요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에 진출한 스웨덴 기업 중 50곳 이상이 한국인 경영진을 뒀다. 언어 문제 뿐만 아니라 한국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한국 소비자의 시각에 밝기 때문이다. 스웨덴 경영진이 한국의 기업문화를 배우는 것보다 한국 경영진이 스웨덴 기업문화를 배우는 게 더 빠르기도 하다.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을 느낀다. 한국인들은 스웨덴의 복지나 교육 등 사회제도에 관심이 많다. 스웨덴 영화에 대한 수요가 가장 많은 해외시장도 한국이다. 대부분 자국 영화나 헐리우드(미국) 영화가 중심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해외영화에 대한 시야가 넓고 취향도 다양한 것 같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스웨덴은 고유 통화인 크로나(krona)화를 유지하고 있다. 수출경쟁력이나 거래 비용 등 면에서 손해를 보지는 않나.
“EU 회원국은 준비기간을 거쳐 유로화를 도입해야 하는데, 스웨덴과 영국, 덴마크는 예외다. 스웨덴은 지난 2004년 국민투표에서 유로화 도입을 반대하는 표가 더 많았다.
스웨덴은 경제 구조가 안정적인 나라다. 공공부채 규모가 작고 실업률은 낮다. 지난 10년 동안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보다 높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유럽 다른 나라보다 영향을 덜 받았고,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은 덕에 최근 그리스 문제로 인한 충격도 작은 편이다.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아서 불리한 점도 있다. 스웨덴 크로나화는 (거래)규모가 작아, 대외환경에 따라 통화 가치가 큰 폭으로 오르내린다. 수출기업들은 거래비용이 추가로 든다. 이 때문에 볼보, 이케아, H&M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미 달러화로 거래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스웨덴도 유로화를 도입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스웨덴 국민 대부분이 ‘유로화 도입 반대’ 입장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국민투표를 시행할 지 장담할 수 없다.”
―인구의 20% 가까이가 이민자, 외국 출신인 스웨덴에서도 이민정책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지난 20년 동안 정치적인 불안 때문에 난민들이 많이 유입됐다. 80년대에는 발칸반도 전쟁, 2000년대엔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난민이 많았다. 최근에는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출신이 많다. 유럽에서 받아들인 난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이고, 그 다음이 스웨덴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인구가 1000만명도 안되는 나라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난민 수용률이 가장 높다. 스웨덴 정부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난민 문제에 대응한다.
스웨덴은 국토 크기는 남한의 5배지만, 인구는 5분의 1에 불과한 나라다. 대규모 이민자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면 사회 통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이민 정서나 극단주의 정당의 등장은 유럽 전역에서 나타난 문제다. 스웨덴의 반이민 정당의 득표율은 12%다. 바꿔 말하면 88%의 유권자가 반이민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스웨덴 국민의 대다수는 가능한 많은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난민들이 탄 선박이 침몰한 비극적인 사고나 영국으로 향하기 위해 난민들이 프랑스 항구로 몰려드는 상황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단순히 인도적인 시각에서 난민을 수용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있지 않나.
“관대한 이민 정책의 비용과 이익을 따져보면, 이민자들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스웨덴 경제에게 엄청난 이익이다. 난민들은 대부분 젊고 교육을 잘 받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자리를 잡고 일을 하면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물론 난민들은 대부분 스웨덴어와 영어를 못한다. 정부가 나서서 언어교육을 강화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스웨덴의 출산율은 유럽에서는 높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인구 수는 적은 편이다. 물론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이민자들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을 돌아보면, 스웨덴으로 이주한 외국인들은 스웨덴을 떠나지 않고 사회에 잘 통합됐다.”
지난 2011년 부임한 다니엘손 대사는 “한국에 정이 많이 들었다”며 “한국을 떠나면 한국 음식이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매운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는 다니엘손 대사는 가장 좋아하는 한식으로 수제비를 꼽았다.
유한빛 기자
■베트남 팜후찌 대사
2015.08.12
최근 중국 은행들이 잇따라 베트남에 진출해 베트남의 인프라 투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팜후찌(Pham Huu Chi) 주한 베트남대사는 “인프라 건설이나 하이테크, 기술 투자 관련 협력에서 베트남의 한국 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베트남은 4년 연속 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취약한 국가 인프라 수준을 개선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 팜후찌 주한베트남 대사/박상훈 기자
세계경제포럼의 2014-2015 글로벌 경쟁력지수에 따르면 베트남의 국가기간산업 관련 경쟁력은 144개국 중 81위였다. 항목별로 도로가 104위, 항만이 88위, 항공이 87위, 전기공급은 88위에 머물렀다.
팜후찌 대사는 “중국 은행과 기업들도 베트남에서의 투자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인프라 건설 등 높은 수준의 전문 기술이 필요한 산업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월등히 높다”면서 우리 기업들의 베트남 사업 전망을 밝게 봤다.
베트남은 지리적인 이유로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건비도 중국 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생산 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팜 대사는 “베트남에는 전자상거래가 발달돼있지 않아 한국의 G마켓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이 없다”면서. “한국과 베트남이 합작해서 베트남의 G마켓을 만들 수도 있고, 해외 직접구매(직구) 사이트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 간의 교역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베트남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외에도 베트남이 가입한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유라시아경제연합(EEU)등을 통한 협력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ㅡ 지난 12월 한국과 베트남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양국간의 교역은 어떻게 되고 있나?
“2014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응웬 떤 중(Nguyen Tan Dung) 베트남 총리가 한-베트남 FTA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몇 가지 지엽적인 문제가 남아있었지만 양측은 올해 5월 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최종 합의안에 서명했다.
한-베트남 FTA는 넓은 범위의 혜택을 양국가에 제공하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다. 한국 경제와 베트남 경제는 서로를 보완해준다. 예를 들면 베트남 정부는 하이테크나 인프라 산업에서 한국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한국 기업들은 이런 곳에 투자 할 수 있다. 따라서 양국의 무역과 투자에 불필요한 장애물들만 없애면 무역규모가 2020년에는 700억달러(82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본다.”
ㅡ 양국간의 FTA 효과를 극대화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나?
“양국 간의 FTA는 한국 제품들이 베트남 시장으로 들어가고 베트남 제품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돕는데 분명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가치 사슬(value chain)에서 한국과 베트남 기업들이 더 긴밀히 협력해 글로벌 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ㅡ 한국은 급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에 관심이 많다. 어떤 투자나 사업 기회들이 있을까?
“한국의 무역 규모가 올 상반기에 11.2% 감소했지만 베트남과의 교역은 24.8% 증가했다. 베트남은 중국, 미국, 홍콩 다음으로 한국의 4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투자에서는 한국이 베트남의 가장 큰 투자자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에 의한 투자 프로젝트가 365개나 있었다. 총 15억달러의 규모다.
이런 수치들만 봐도 베트남 투자에 관심이 많은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은 베트남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고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FTA 체결로 인해 한국 기업들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제공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 연합(ASEAN) 국가들과의 협력 증진에도 (베트남과의 협력이)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미국을 비롯한 11개 국가들과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을 마무리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으로 구성된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EEU)과도 FTA를 맺었고, 몇 일 전에는 유럽연합(EU)과도 FTA를 맺었다.
베트남에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이제는 더 넓은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많은 산업들이 이런 발전의 혜택을 받겠지만 특히 섬유, 의류, 식품 가공, 전자, 통신, 제조, 에너지, 화학 및 부품 제조가 유리하다.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확장해서 이런 기회들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ㅡ 한-베트남 FTA 조항을 보면 전자상거래 부문이 있다. 한국은 해외 직구 및 해외 직판이 늘고 있는데 양국간의 전자상거래를 촉진시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베트남의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률이 매우 높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G마켓이나 옥션과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베트남에는 없다. 베트남 사람들도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 팔지만 전자상거래 시스템은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의 관련 기업이 진출해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베트남 기업들과 합작해 베트남의 G마켓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양자 FTA 최초로 전자상거래를 독립 챕터로 도입하는데 합의했다. 양국간 전자상거래 촉진을 위한 규정들도 다수 포함됐다.
ㅡ 최근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내놓고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추진하는 등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유라시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다. 베트남은 어떤가?
“베트남은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 협력에 매우 적극적이다. 우리는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과 FTA를 맺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했고 유라시아경제연합(EEU)과 FTA를 체결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역 통합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유라시아로 진출하는데 유리한 지리적 입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지역 통합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ㅡ 한국에서는 고학력의 졸업자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베트남도 같은 상황이라고 들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도 명문 대학을 졸업하거나 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젊은 사람들의 실업률이 높은 편이다. 몇가지 해결책을 제안하자면 우선 지식이나 기술 집약 산업의 발전을 장려하고 이를 통해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더 만들도록 노력해야한다. 둘째로는, 대학들과 기업들을 연계해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이 실용적으로 사회나 현실에 적용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채용박람회 등을 통해 고용주들이 미래의 직원들을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창업을 원하는 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ㅡ 한국 기업이 유라시아로 진출하는 데 있어 북한과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남북한과 모두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의 입장이 궁금하다.
“한국이 유라시아로 뻗어나가겠다는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물론 북한과의 문제가 걸려있지만 남한과 북한 국민들은 한 민족이다. 대치 상태에 있지만 동시에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두 국가가 해결점을 찾고 양국이 가까운 이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부분부터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김정윤 기자
■자원빈국 네덜란드 로디 엠브레흐츠(Lody Embrechts) 대사
2015.08.18
▲ 로디 엠브레흐츠(Lody Embrechts) 주한 네덜란드 대사./이태경 기자
“독일인이나 프랑스인,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어를 하지 않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를 구사해야만 합니다. 이들은 네덜란드의 주요 수출 상대국이기 때문이죠. 한국의 상황도 네덜란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네덜란드의 면적은 남한의 40%, 인구는 3분의 1 에 불과하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 6위의 경제대국이다. 네덜란드는 여러 면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척박한 천연자원과 협소한 국토, 적은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위치가 그렇다.
그럼에도 무역 규모 1조달러(약 1118조원)가 넘는 무역 대국인 것도 한국과 닮았다. 네덜란드 경제 역시 수출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0~60%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의 비중이 높다.
로디 엠브레흐츠(Lody Embrechts) 주한네덜란드 대사는 네덜란드와 한국이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 둘러싸여 있는 강소국 네덜란드가 이들과의 무역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국 국민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서 외국어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 제도가 시장과 기업이 기대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국민의 90%가 한 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하고 44%가 영어와 독어를, 12%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엠브레흐츠 대사는 이 같은 성취는 환경적 요인보다 정부의 교육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현재 네덜란드의 청년실업률은 한국과 비슷한 10% 수준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 글로벌마인드로 무장한 까닭에 네덜란드인들은 17세기 대항해시대를 주름잡던 그들의 선조들처럼 글로벌 비즈니스의 총성없는 전장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강소국의 위치를 유지해오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이 있는지 엠브레흐츠 대사에게 물었다.
ㅡ 네덜란드와 한국은 작은 면적과 적은 인구, 수출 주도형 경제 등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네덜란드의 국토 면적은 남한의 40%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도 1600만명 정도로 한국보다 훨씬 적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공통점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작은 국가라는 점이다.
한국에게는 중국과 일본이 있다면 네덜란드는 한 쪽에 독일, 다른 한 쪽에는 프랑스, 그리고 남쪽으로는 영국에 둘러싸여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또한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두 나라는 내수 시장 만으로 자급자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출이 필수적이다. 지하자원이나 천연자원도 풍부하지 않다. 땅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거시적으로 경제 흐름을 봐도 한국과 네덜란드는 고령화와 저출산, 그에 따른 연금 부담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ㅡ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큰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
“네덜란드는 언제나 시장과 사회에 대한 개방 정책을 유지해 왔다. 17세기의 네덜란드에는 이주민과 난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의 서로 다른 문화와 지식이 뒤섞이면서 네덜란드는 거대한 용광로(melting pot)가 됐다. 그리고 그 때가 우리의 황금기(Golden Age)였다.
지금의 상황도 17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작은 나라다. 개방 없이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에 진출해서 그 곳에서 성장하고 또 우수한 현지 인재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과거 폐쇄된 사회와 경제 시스템으로 알려졌던 한국도 점점 더 개방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90년대에도 한국에 있었는데, 그 때와 비교하면 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많이 늘었다.”
ㅡ 상당수의 네덜란드인들은 3~4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글로벌 기업의 각국 지사장 중에도 네덜란드 출신이 많다. 이것 또한 유럽의 작은 국가로서의 생존 전략의 결과인가?
“네덜란드는 다른 국가들과의 교류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전 세계 어디에도 네덜란드어를 하는 국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외국어 교육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의 주요 무역 상대국을 살펴보면, 우선 네덜란드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독일이 있다. 우리의 제품을 구매하고 우리와 무역을 하는 독일의 언어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독일 사람들은 네덜란드어를 못 해도 되지만, 우리는 독일어를 해야 한다.
벨기에와 프랑스도 주요 교역 파트너기 때문에 프랑스어도 중요하다. 다음은 영국이다. 우리는 영어를 모국어와 다름 없이 사용하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도시도 있다. 정부도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관련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對) 중국 수출이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중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한국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라는 점이 교육에도 반영돼야 한다. 한국의 외국어 교육을 보면 시장에서 원하는 교육과는 차이가 크다. 물론 90년대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한국인들은 외국어를 구사할 때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네덜란드어를 곧잘 하는 한국인도 실제 네덜란드인을 만나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문화적인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ㅡ 한국과 네덜란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양국 간 경제적 협력은 어떤가?
“네덜란드에게 한국은 중국 다음으로 큰 아시아 시장이다. 관련 무역 규모는 매년 8% 씩 성장해왔다. 현재 네덜란드와 한국의 연간 무역 규모는 100억유로(약 13조1570억원)정도다. 물론 중국과 비교할 순 없지만 굉장히 큰 액수다. 네덜란드는 EU 안에서도 한국과 경제 교류가 가장 빈번한 국가 중 하나다. 네덜란드에는 130개의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한국에는 78개의 네덜란드 기업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덜란드에게 한국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한국에게 네덜란드는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길목으로 큰 의미가 있다.”
ㅡ 어떤 분야에서 가장 많은 투자와 교역이 일어나고 있나?
“네덜란드의 입장에서는 정보기술(IT) 분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과 같은 기업들과의 협력에 관심 많다. 농업과 서비스업에서도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네덜란드를 유럽 물류의 중심지(허브)로 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네덜란드로 상품을 가져와 유럽의 여러 국가들로 유통한다. 네덜란드는 수준 높은 물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ㅡ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맺을 때도 항상 농업 부문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한국의 농업이 어떻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농업 부문을 개방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손해일 수도 있다. 만약 네덜란드가 농업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농업 수출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농업을 발전시키기에 좋은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첫째로 한국은 IT, 하이테크 기반의 경제다. 네덜란드에서는 농업이 하이테크 산업이다. 농부가 실제로 밭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네덜란드에서 농부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떤 때에, 어떤 곳에 얼마 만큼의 농약이나 물이 필요한 지를 계산하는 것부터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 연구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한국은 또한 김포공항이나 인천국제공항처럼 물류 허브도 갖추고 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지만 농업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은 문제다. 국가가 젊은 청년들에게 농업이 한국의 중요한 미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현재 일본에서 수입하는 70%이상의 고추는 한국산이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인들은 한국의 농산물을 고급 상품으로 친다. 식품 가공 분야에서도 많은 기회들이 있다. 주변국들과의 FTA를 통해 한국 농산물의 수출을 늘릴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한국에서 농업은 구식이라는 고정관념을 없애야 한다.”
ㅡ 네덜란드와 한국이 서로 보완하거나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농업 부분에서 협력이 기대된다. 네덜란드 전체 노동력의 2%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다. 네덜란드의 농산물 수출 규모는 800억유로(약 105조 1544억원)에 달한다.
한국 경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앞서가는 분야가 있으면 뒤처지는 분야도 있기 마련이다. 한국은 자동차, 조선, IT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웠지만 농업 분야의 발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두번째로,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스타트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전세계 청년들에게 창업을 위한 IT 인프라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새로운 기술이 결과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암스테르담의 창업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한국과 네덜란드가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청년들과 네덜란드 청년들이 함께 혁신을 이룰 수 있다.”
ㅡ 한국 정부도 창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창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이 혁신과 창조경제, 중소기업 기반으로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스타트업은 당연히 중요한 일부다. 네덜란드에서는 대학은 물론 필립스와 같은 대기업들도 젊은 청년들의 창업을 돕고 있다. 정부도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물론 창업이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창업 지원은 결국 성공의 기회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실패가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은 평생 간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도 한국과 비슷해 실패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점차 변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와 민간 기업도 창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인들은 매우 창의적이다. 카카오톡이나 온라인 게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10개 기업을 창업하면 그 중 한 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창업이지만,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활짝 꽃 피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ㅡ 네덜란드의 청년 실업률은 10%로 높은 편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데.
“2008년~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네덜란드의 청년 실업률은 12%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가 고용 창출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하면서 최근에는 경기 회복 분위기 속에 고용도 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청년 실업 문제 해소를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놨다. 그 중 하나가 청년 실업 담당관을 민간 기업에 파견해 기업들을 설득하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감세 등의 혜택을 제공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지방 정부에도 금전적인 지원과 함께 청년 고용을 늘리도록 장려했다.
기업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지도록 교육 제도도 정비했다. 자기소개서 작성 등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될만한 과정을 도입한 것도 도움이 됐다.”
김정윤 기자
■하니 셀림 이집트 대사
2015.08.25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회를 뒤흔들었다. 장기 독재 정권들이 잇달아 무너졌고, 민주화를 재촉하는 선거가 열렸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정쟁과 혼란이 뒤따랐다.
‘북아프리카의 맹주’로 불리던 이집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36년 동안 권력을 잡았던 호스니 무라바크 대통령이 민주혁명으로 실각했다. 이집트 사상 첫 민주 선거로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밀려났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탈옥, 간첩 혐의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반정부 시위와 정권 교체 과정에서 폭력 사태도 벌어졌다. 이집트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중 약 3%를 차지하는 관광 산업이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아랍의 봄 직전인 2010년, 이집트를 찾은 관광객은 147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홍해 연안과 수도 카이로, 고대 이집트 유적지인 룩소르와 아스완은 유럽인 사이에서 인기 관광지로 꼽혔다.
하지만 시위가 유혈 사태로 확대되자 유럽 정부들은 이집트에 대한 여행 자제령을 내렸고, 크루즈 선사들은 이집트의 항구를 노선에서 제외했다. 이집트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2010년 2억5000만파운드 수준이던 관광 수입이 2014년 1050만파운드로 95% 감소했다.
아랍의 봄 이후 4년. 이집트는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 운하를 확장한 ‘제2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고, 운하 인근에는 경제·산업·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집트의 경제 현황과 사회 상황에 대해 묻기 위해 하니 셀림(Selim) 주한이집트대사를 서울 용산구 대사관에서 만났다.
―2011년 민주화 혁명으로 무라바크 정권의 장기 독재가 끝났지만, 민주선거로 뽑힌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도 1년 만에 군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이 좌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2012년 첫 민주 선거를 치렀다. 당시 이집트 유권자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집권할 때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 등 단 둘 뿐이었다. 친(親)혁명 성향의 후보들은 단일화에 실패해 힘을 잃었다. 첫 민선은 결국 구(舊)정권의 후보와 이슬람교 근본주의 후보간 대결로 좁혀졌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근소한 표차로 당선됐다. 문제는 무르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다음,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을 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인을 차별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했다. 이집트 국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수도 카이로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자 무르시 전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테러 집단을 불러들였다.
이집트 군부는 정권을 잡기 위해서가 아닌, 테러 세력으로부터 이집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무르시 정부의 퇴진 이후 군부 주도로 대선이 실시됐고,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집트 정부는 올해 안에 총선을 시행해, 국회를 구성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선거법 개정 등 작업이 끝나면 오는 10월 또는 11월 중에 총선을 시행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새 의회를 출범시켜 정치권을 안정시키는 게 이집트 정부의 구상이다.”
*국방장관 출신인 엘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은 2013년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이다. 지난해 6월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96.6%로 당선됐다.
―현재 이집트 정부의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아직 정치·사회적으로 완전히 안정된 상태는 아니지 않나.
“국내적으로는 사회와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제적으로 이집트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대규모 혁명이 벌어진 다음에는 어떤 나라든 5~10년 동안 정치, 사회적인 전환기를 겪는다. 이집트는 지난 3년 동안 두 번의 혁명을 겪었다. 첫 번째는 2011년 1월 독재 정치를 한 무바라크 대통령, 두 번째는 무함마드 무르시 당시 대통령 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
국내에선 사회 안정이 최우선 목표다. 국내 정치, 사회가 불안하면 국제 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 2013년 7월 이집트 정부는 경제 로드맵을 만들었다. 헌법도 개정됐다. 이집트를 민주적이고, 인권을 존중하고, 정치적인 안정성과 자유를 지향하는 나라로 정의한 개정 헌법은 국민투표에서 90%의 찬성표를 받았다. 남은 건 새 국회 구성이다.
국제적으로는 이집트의 지위를 회복하는 게 주요 과제다. 이집트는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민주화 혁명과 그로 인한 후폭풍을 겪으면서 국제 무대에서 이집트의 위상이 위축됐다.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영향도 컸다.”
―최근 중국과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미국보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본 건가.
“이집트는 ‘균형 외교’를 표방한다. 이집트는 미국과 전통적인 동맹국이다. 미국 대신 중국을 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과도 외교관계를 그만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이집트의 시장과 경제를 개방하고, 한 나라에만 치우치지 않는 외교 관계를 맺는 게 목표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선 아랍 국가들과도 협력한다. 시나이반도에서는 이슬람국가(IS) 등 테러 세력이, 이집트 본토에선 이슬람형제단 등 극단주의 세력이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이집트군이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테러 집단을 이집트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고 본다.”
―경제 분야의 주요 정책은 무엇인가. 올해 경제 전망은 어떤가.
“경제 분야의 과제는 건설 개발과 투자 유치, 두 가지다. 두 번의 혁명을 거치면서 이집트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외국인 투자가 줄면서 자본도 많이 빠져나갔다.
건설 개발 사업으로 이집트 정부는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전력발전시설과 물류, 운송 등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수에즈 운하 지역은 국제적인 경제, 관광, 산업, 물류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한국의 세종시 같은 행정수도를 포함해, 신도시를 6곳 세울 예정이다.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신도시를 육성해 외국인이 이집트에 투자할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중국 기업도 이집트 정부의 건설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제2수에즈 운하가 지난 6일 개통했다. 경제적인 기대효과는 얼마나 되나.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2%가 수에즈 운하를 지난다. 전 세계의 경기가 침체한 상황 등을 반영해도, 2023년에는 전체 해상 물동량의 20%가 수에즈 운하를 통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존의 수에즈 운하는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었다. 제2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면서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는 선박이 늘어날 것이다.
제2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면서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이 늘어나면,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하루 평균 선박 49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데, 2023년에는 평균 97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통행료가 비싸질 것이란 관측이 많은데, 요금은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해상운송 업황과 물동량, 국제 경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반영된다.”
*수에즈 운하청은 운하 통과 시간은 18시간에서 11시간으로, 8~11시간이던 대기 시간은 3시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연 50억달러 수준인 통행세 수입은 오는 2023년 150억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집트 정부의 재정은 적자 상태이고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운하 건설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중국 정부가 차관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제2 운하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만에 완공했다. 건설 비용은 순수하게 국내 자본이다. 이집트 국민을 대상으로 150억달러 규모로 국채를 발행했는데, 6일 만에 다 팔렸다. 이집트 경제를 살리겠다며 국민들이 나섰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진행한 것과 비슷하다. 자금 조달부터 건설, 완공까지 모든 과정이 기적 같다.”
―관광 산업은 얼마나 회복됐나.
“민주화 혁명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유럽 관광객은 독일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혁명 이전에 근접하게 늘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시장은 아직 회복 단계다. 그동안 해마다 3만6000명의 한국인이 이집트를 찾았었는데, 현재 1년에 2만명 미만으로 줄었다.
이집트 정부는 한국 관광객을 연간 5만~6만명 유치하는 게 목표다. 한국은 기독교 인구가 많은 만큼, 성가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길과 시나이 반도 등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기독교 교회가 첫 번째로 생긴 곳도 이집트다. 역사 유적지 투어도 추천한다. 룩소르박물관에는 이집트 고대 유물 중 3분의 1이 소장돼 있다. 피라미드를 포함해, 옛 이집트 건축물과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
―이집트와 한국의 경제적인 협력 관계는 어떤가. 어떤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하고 싶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이 이집트에 기여한 바가 크다. 2011년과 2013년 반정부 시위와 혁명이 이어지자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집트를 떠났다. 유일하게 한국과 중국 기업들만 계속 이집트에 투자했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가 2억달러를 투자해 텔레비전 조립 공장을 세웠는데, 이 공장은 현재 이집트의 주요 수출창구가 됐다.
정부간 협력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2년 12월과 2013년 1월에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이집트를 방문해 이집트의 기업과 산업구조에 대해 분석하고, 소프트론(금·미 달러화 등 국제통화로 빌려준 자금을 현지통화로 상환하도록 허용하는 차관)과 개발사업에 대해 조언했다.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다양한 경제개발사업을 30~40가지 제안했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경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고, 이집트의 항구 개발 사업을 위해선 부산항만공사와 협력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이집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할 후보로 이집트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우선 검토 중이다. FTA 체결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이집트는 국내투자와 개발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제조업 등 산업 기반을 다지고 수출 상품군을 갖추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과 이집트간 무역 규모는 2011년 30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집트의 수출액은 10억달러, 한국 수출액은 20억달러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중국 정부 차원의 투자와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기술과 혁신이다. 이집트뿐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를 공략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본, 중국 기업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술과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자금 조달 방식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셀림 대사는 “이집트를 수출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문화 교류의 대상으로도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집트는 오랜 문명과 역사를 가진 나라인만큼, 고대 유물부터 현대 미술, 춤과 노래 같은 공연 등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며 “대사로서, 한국과 이집트의 문화를 잇는 다리를 놓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한빛 기자
■꾼꾸르 씽하라 나 아유타 태국 대사
2015.08.27
에메랄드 사원으로 유명한 왓프라깨우(Wat Phra Kaew), 팟타이(태국식 볶음면)와 과일주스를 파는 노점들이 들어산 카오산로드…. 태국의 수도이자 대표적인 관광지인 방콕은, 최근 2년 동안 바람 잘 날이 드물었다.
반 년 동안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잉락 친나왓 총리가 실각했고, 그 과정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지지자들간 충돌은 유혈 사태로 번졌다. 지난해 5월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임시 정부를 꾸렸다. 안정되는 듯 싶었지만, 지난 17일 오후 방콕 도심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져 백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테러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태국의 상황과 경제 전망은 어떤지 묻기 위해 꾼꾸뭇 씽하라 나 아유타야(Singhara Na Ayudhaya) 주한태국대사를 서울 용산구 대사관에서 만났다.
―태국은 최근 2년 동안 정치 상황이 불안정했다. 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엔 정치적인 긴장이 고조됐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닌, 법에 따른 통치라는 점이다.
반정부 시위로 실각한 잉락 친나왓 전 총리와 그의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경우 부정부패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폐해가 심각했다. 태국 북동부 지역은 농업 중심이고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돈으로 표를 매수해 선거를 치렀다. 잉락 친나왓 전 총리는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워 당선돼, 정부 재정을 악화시켰다. 시중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쌀을 매수하는 등 정책을 남발하면서 정부 빚이 급증했다.
미국 정치권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군부가 물러나고 제대로된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태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친나왓 총리를 반대하는 옐로셔츠와 지지세력인 레드셔츠가 충돌했지만,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언론의 자유도 보장된다. 미국 한 민간 단체가 세계 각국의 인권 수준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태국을 북한과 같은 급으로 분류했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현재 임시총리 프라윳 찬 오차 장군은 지난해 5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9월 새 정부를 조직했다. 태국의 정치와 사회 구조상 군부의 개입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는 뜻인가.
“정부에 대한 찬반 시위가 격해지고 유혈사태가 생기자 군이 개입했다. 민간의 충돌과 피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현 임시정부는 부패를 방지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과 규정을 바꾸는 중이고, 내년에는 선거도 시행할 예정이다. 정치인의 특권은 줄어든다. 이전에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은 부패를 저질러도 체포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법을 어기면 면책특권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최소한 양심은 있는 것 같다. 부패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한 것으로 안다. 본인이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뜻 아닌가. 실각한 후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사법당국의 처벌을 피해 해외로 도망쳤다.”
―지난 17일 발생한 테러로 태국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는 않았나. 범인 추적 작업에는 진전이 있나.
“이번 테러는 끔찍한 비극이다. 태국에서 폭탄 테러로 사망자가 발생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20명이 사망했고, 125명이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는 중이다.
현재 태국 정부는 테러범을 외국인으로 추정하지만,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태국 정부는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용의자를 추적 중이고, 얼굴 인식 작업을 통해 범인의 신원을 파악할 계획이다. 태국의 경제와 사회에 악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사법부는 테러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배상 범위와 수준을 검토하고 있다.
테러가 발생한 지역은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고, 에라완 사원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배낭 등 소지품에 대한 검사가 느슨한 편이다.
이번 테러에 사용된 폭탄은 인명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폭탄이다. 이번 테러로 태국 경제, 특히 관광업이 충격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단결의 계기가 되고 있다. 태국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테러 피해자의 사진을 함부로 올리지 말자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고, 시민들은 ‘함께 일어나서 테러에 맞서자’며 단합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조조정을 받은 나라들 중, 태국은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IMF 프로그램을 졸업했다. 태국도 한국처럼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번 위기도 태국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지난해 태국의 경제성장률은 1%를 밑돌았다. 올해 경제 전망은 어떤가.
“태국 국가경제사회발전위원회(NESDB)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7~3.2%로 전망한다. 태국 정부는 공공 부문의 투자를 확대하는 중이다. 태국 바트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경쟁력이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국제 유가와 물가 상승률이 낮은 점도 태국 경제에는 호재다.
최근 1년 새 관광업도 많이 회복됐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은 2500만명을 기록했다. 연초에는 반정부 시위 등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지만, 군부 쿠데타 과정에선 인명 피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태국을 찾은 외국인은 1400만명이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29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것이다. 다만 이번 테러로 관광업이 다소 위축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의 고용시장은 안정적이다. 2014년 실업률은 0.8%로, 제로에 가깝다. 어떻게 이 같은 완전고용이 가능한가.
“최근 5년 동안 태국의 실업률은 1% 이하였다. 올해 전망치는 0.9%다. 농업 중심이던 태국은 현재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다. 나머지 91%는 제조업과 서비스 업종에서 나온다. 하지만 근로자의 40%는 농업에 종사한다. 농기계 보급률이 낮은 이유도 있지만, 일단 농사를 지을 땅 자체가 넓다. 국토의 약 70%가 산지인 한국과 달리 태국은 대부분이 평야다.
태국 노동시장의 특징은 계절에 따라 노동력이 이동한다는 점이다. 북쪽 지역 주민들은 농번기에는 농사를 짓다가, 추수를 끝내면 남부 산업지대로 이동해 공장에서 일한다. 파종할 때가 되면 다시 농지로 돌아간다. 제조업 공장들은 일손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농사꾼 출신 노동자들이 본업으로 돌아가면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할 정도다.
한국에서 일하는 태국인 노동자는 약 7만명 정도인데, 태국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급여 수준이 더 높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한다.”
―오는 28일부터 ‘태국다움을 발견하라(discover Thainess)’라는 주제로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타이 페스티벌’을 진행하는데, 태국다움이란 무엇인가.
“‘태국다움’이란 태국인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총칭한다. 태국은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면 3000년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고, 운 좋게도 단 한번도 식민 지배를 경험한 적이 없다. 태국인과 태국어, 태국의 음식, 공연, 공예품, 건축물 등 모든 문화 분야에서 태국의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다. 불교도 태국 전통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이번 행사는 전통 공연과 음식, 공예품 등 태국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잇는 자리다. 한국인 뿐 아니라,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즐거운 행사가 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최근 메르스 사태로 타격을 입었는데, 이번 행사로 한국이 메르스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점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 현재 태국과 한국간 경제 관계는 어떤가.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한국과 더 협력하길 원하나.
“지난 57년 동안 태국과 한국은 좋은 관계를 이어왔고, 지난 2012년 ‘전략적 동반자’로 외교관계가 격상됐다. 경제 분야의 협력도 지금보다 강해질 예정이다. 양국 정부는 현재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을 맺기 위한 타당성 조사를 마친 상태다.
지난해 태국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액은 5억6600만달러를 기록했고, 태국과 한국간 교역액은 130억달러로 집계됐다. 올해 1~7월 누적교역액은 68억달러다. 올 상반기에 태국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60만명이 넘는다.
일본은 태국에서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할 수 있는 분야가 더 넓다. 정보통신과 운송, 물류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사업 기회가 많다. 태국은 아시아 내륙 지역의 중심지다. 말레이시아, 라오스, 미얀마, 중국, 인도 등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태국 정부는 국경 지대에 경제특별지역을 조성해, 물류 중심지를 육성할 계획이다. 정보통신 분야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는 세금 감면 등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에 부임한지 2년째인 씽하라 나 아유타야 대사에게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한국 문화가 무엇인지 묻자, “생각보다 한국 사회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약한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인들은 명절이 되면 조상들의 무덤에 찾아가 절을 하면서도, 정작 살아 있는 사회의 웃어른들에게는 큰 존경을 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태국 문화는 국가 발전에 기여한 ‘사회의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고 지역사회의 어른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명절이 있어요. 교수, 과학자, 정치인 등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된 어르신들이 특히 국민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유한빛 기자
■페타르 안도노브 불가리아 대사
2015.09.07
노동자 보호와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유럽은 중동·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의 1순위 목적지다. 이른바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유로스타트 집계를 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28개 유럽연합(EU) 회원국에 접수 된 신규 망명 신청 건수는 8만3350건이었다. 망명 신청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로, 신청자의 40%가 몰렸다. 헝가리와 스웨덴이 그 뒤를 이었다.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계 ‘보트 피플(배를 타고 망명길에 오른 난민)’이 바다 건너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첫 목적지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중동 출신 난민들은 동유럽 국가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문제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와 잠비아, 나이지리아 등의 상황이 동시다발로 불안정해지면서 불거졌다. 난민과 불법 이민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수용능력에 한계를 느낀 유럽 국가들은 통제를 강화했다.
유럽의 동쪽 경계선을 이루는 불가리아와 헝가리, 세르비아, 터키 등이 국경 통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불가리아는 국경 지대에 군을 배치했고 세르비아, 불가리아와 공동 순찰에 나섰다. 헝가리는 국경에 가시 철책을 보강해 국제 인권단체의 비난을 받았다.
▲ 페타르 안도노브 주한불가리아 대사. /김지호 기자
서울 용산구 대사관에서 만난 페타르 안도노브(Andonov) 주한불가리아대사는 “불가리아는 EU의 국경이나 마찬가지”라며 “전쟁 난민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유럽을 택한 이민자와 테러리스트 등 범죄자를 가려내야 하기 때문에 국경을 엄격하게 감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가리아 국민들은 난민에 대해 포용적인 입장이고, 인권적인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급속하게 유입되는 난민을 모두 막을 순 없을텐데, 어떤 대책을 세웠나. 국가별 망명자 쿼터제(할당제) 등도 거론되는데.
“불가리아는 EU 국가로 들어가는 관문이나 마찬가지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이민자들 때문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금 유럽은 ‘이민 위기(immigration crisis)’ 상태다. 불가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개별 국가보다 EU 차원의 공통 정책과 난민 수용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통일된 이민 정책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EU 회원국들이 함께 논의하고 있다.
전쟁 난민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더 나은 복지제도나 임금 때문에 유럽으로 오는 이민자들도 있고, 테러범 같은 범죄자들도 걸러내야 하기 때문에 국경 감시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EU와의 협력을 중시하는데, 유로존 가입 준비는 어떻게 돼 가나. 그리스 위기 문제로 유로화 도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진 않았나.
“유로화는 ‘유럽 통합’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EU에 가입한 28개국 중에서 19개국만 유로화를 도입한 상태지만, 남은 나라들도 대부분 유로화를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불가리아도 유로화 도입을 위해 계속 협상할 때라고 본다. 불가리아는 EU 가입 당시부터 절차에 따라 유로화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논의가 지연됐다. 첫 단계로 불가리아 레프(lev)화가 유럽환율제도(ERM) II에 편입돼야 한다. 올해 초부터 ERM II에 가입할 준비를 다시 시작했고, EU측과 논의 중이다. 오는 2018년까지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유로화를 도입하기 위한 요건을 모두 갖추기 위한 정책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그리스 위기는 유럽의 단결을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공개전시회)나 마찬가지다. 구제금융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모든 EU 회원국들이 합의를 통해 공동으로 대처했다. 그 결과 그리스는 유로존을 떠나지 않았다.”
*불가리아는 2007년 EU에 가입했지만, 일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문제 등으로 유로화는 도입하지 못했다. ERM II는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은 회원국과 유로화 환율을 안정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현재 ERM II에는 덴마크 크로나화만 포함돼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유로화 대비 크로나화 환율의 변동폭을 ±2.25% 이내로 관리한다. 불가리아는 유로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도를 운용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고 있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대부분 지역이 경제 공동체나 공동시장을 설립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협력하고 있나.
“불가리아가 EU에 가인한 이후로 체코, 루마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다른 중앙·동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EU 회원국이 됐다. 이미 EU 공동 규정에 맞춰 교역이 이뤄진다.
다만 발칸반도 서쪽 국가들은 아직 EU에 가입하지 않았다. 불가리아 정부는 세르비아, 코소보,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등이 EU라는 틀 안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공동시장과 공통의 규제를 통해 경제 협력이 강화되면, 지역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U 내 문화 다양성도 높아질 것이다. EU와의 협상 과정이나 개혁 조치 등에 있어 과거 불가리아의 경험을 미가입 국가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7%이고, 올해 전망치는 1.0%(EU 추정치)다. 신흥국치고는 성장 속도가 더딘 편인데, 불가리아 정부는 어떻게 경제를 키울 계획인가.
“불가리아는 신흥국이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게 목표다. 수출을 늘리고 해외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불가리아의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은 10%다. 누진세 없이 일률적으로 부과하는데, 전 세계에서 세금부담이 가장 작은 나라 6위 안에 든다. 외국 기업이 불가리아에 공장을 짓는 등 투자를 하면 정부가 혜택을 준다. 투자촉진법에 따라 금융지원, 행정절차 간소화 서비스, 근로자 교육 지원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고용보험 등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도 정부가 보조한다. 수출의 경우엔 EU 이외 국가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려고 한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시장의 전망을 좋게 본다.”
―한국과의 교역 수준이나 경제 협력 관계는 어떤가.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이전과 비교하면 교역량이 두 배가 됐다. 하지만 양국 교역액은 2억5000만달러로, 여전히 큰 금액은 아니다. 무역 전시회를 하고 불가리아와 한국의 수출협회, 산업단체간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오는 10월 불가리아와 한국 정부간 합동경제협력회의가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의 무역사절단이 불가리아를 방문할 예정이고 두 나라의 산업협력위원회, 과학기술협력위원회, 정보통신기술(IT)협력위원회 등이 만난다. 올해는 불가리아와 한국이 수교한지 25년이 된 해다. 지난 5월 불가리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양국 관계를 ‘포괄적·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로 정립했다. 정치와 경제, 산업뿐만 아니라 과학, 스포츠,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하고 협력하겠다는 뜻이다. 불가리아에는 재능 있는 컴퓨터, 통신 분야의 전문인력이 풍부하고, 사회기반시설(인프라스트럭처)과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등 사업 기회가 많다.”
―불가리아가 강점을 가진 분야는 무엇인가.
“불가리아는 유럽에서 와인 생산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 중 하나다. 불가리아 장미와 장미 오일, 장미 오일을 원료로 한 화장품도 유명하다. 자연 환경이 깨끗해 유기농 과일과 채소, 요거트, 육류, 치즈 등 식품 생산과 가공업에도 강점이 있다. 유럽시장으로 수출하거나 한국으로 수입하기 위한 생산 거점이 될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안도노브 대사는 “불가리아는 계획경제와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사회로 전환한 나라”라며 “통일 후 한국 정부가 북한 지역에 대한 정책을 세울 때 불가리아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유한빛
■"싱가포르' 입 웨이 키엣 대사
2015.09.14
조기 총선’이란 카드를 꺼내든 리셴룽 총리의 판단이 주효한 것일까. 지난 11일 치러진 싱가포르의 총선은 야당이 선전할 것이란 관측을 완전히 빗겨갔다. 리셴룽 총리가 이끄는 정부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은 70%에 가까운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지난 2011년 PAP의 득표율은 사상 최저치인 60%를 기록했다. 비싼 생활비와 소득불균형, 이민정책으로 인한 부작용 등이 정부의 실책으로 거론됐다.
정치 전문가들은 여당이 정권을 유지하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들이 정부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50년 가까이 인민행동당의 독주 체제였던 싱가포르 정치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노동당 등 야권은 사상 처음으로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낼만큼 공세가 매서웠다.
▲ 입 웨이 키엣 주한싱가포르대사 /이덕훈 기자
조선비즈가 입(Yip) 웨이 키엣 주한싱가포르 대사를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만나, 싱가포르의 경제·사회 현안에 대해 물었다.
―11일 조기총선의 주요 쟁점은 비싼 생활비와 소득불균형, 이민정책 등과 관련한 정부의 실책이었다. 비판의 주된 근거는 무엇이고, 싱가포르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물가상승률 자체는 연 2% 이내로 높지 않지만, 생활비가 비싸다고 느끼는 원인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우선 주택 부족 문제다. 싱가포르 주민의 80%가 공공주택에 거주하는데, 국영 건설업체가 지은 집을 정부로부터 직접 구입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조건의 민간주택과 비교하면 가격이 40% 정도 저렴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주택 공급량이 충분치 않았고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빠르게 올랐다.
두 번째는 교통 문제다. 싱가포르 정부는 연간 신규 자동차 등록 건수를 엄격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자동차 등록증은 경매를 통해 비싸게 거래된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산타페를 한국에서 구입할 때 4만달러가 든다고 하면, 싱가포르는 자동차 등록 비용까지 합해 12만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항상 만원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이민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현재 싱가포르의 인구는 550만명 정도인데, 이중 320만명이 싱가포르 국민이다. 미국의 드림카드 같은 영주권을 보유한 인구까지 합하면 380만명 정도다. 외국 인구가 170만명으로, 전체 주민의 30%를 차지한다.
싱가포르의 출산률은 1인당 1.2명에 불과하다. 노동력 부족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선 능력 있는 외국인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011년(정부 여당인 국민행동당의 득표율이 급락하기 전)까지 정부가 유화적인 이민정책을 시행하면서 외국인 인구가 빠르게 늘었다. 그 결과로 대중교통, 병원, 학교 등 공공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졌다. 원주민과 이민자간 사회적인 통합 문제도 있다. 언어나 문화가 다른 이민자들과 융합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2011년 선거를 기점으로 정부는 이민자에게 영주권을 부과하는 건수를 조절하기 사작했다. 주택 공급량을 늘렸고, 대중교통을 확충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올해 경제 성장 전망이 밝지 않은 것도 한몫하지 않았나. 지난달 싱가포르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5%로 하향조정했다.
“한국처럼 싱가포르 경제도 대외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14년 싱가포르의 교역액은 9827억싱가포르달러(약 824조원)로, 같은 해 국내총생산(GDP·3900억싱가포르달러)의 2.5배다.
싱가포르의 주요 수출시장 중 하나인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등, 전 세계의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한 영향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의 주요 수출시장은 중국(12.4%), 말레이시아(11.3%), 유럽연합(9.8%), 미국(7.4%), 인도네시아(7.5%)순이다. 한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수출시장 다변화는 (경제적인)위험을 줄여줄 뿐 전 세계 경제가 침체한 데서 오는 위험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한국과 싱가포르간 관계는 어떤가. 두 나라의 공통적인 현안은 무엇인가.
“한국과 싱가포르는 올해로 수교 40주년을 맞았다. 가장 중요한 협력 분야는 경제다. 지난 2006년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로 양국간 교역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한국은 싱가포르에게 8번째로 큰 수출시장이고, 싱가포르는 한국의 5위 수출시장이다. 2014년 말 기준 양국간 교역액은 380억달러(약 45조원)다.
한·싱가포르 FTA가 발효된 이후 한국은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했다. 중간점검이 필요한 때다. 기본적으로 싱가포르는 개방경제이고 관세도 거의 없기 때문에 상품 교역보다 서비스 분야와 투자 활성화에 관심이 많다. 한국과 싱가포르간 투자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싱가포르가 투자처로서 어떤 매력을 갖고 있나.
“싱가포르는 시장이 작기 때문에 상품 수출시장으로서 경쟁하기보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아시아 지역의 거점이 되려고 한다. 싱가포르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계절적 특성이나 인구 구성은 비슷하지만, 금융이나 법률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는 나라다. 생산비용이 저렴한 인도네시아 등에 시설을 짓되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사를 두거나, 동남아시아에 판매할 신제품을 개발하고 미리 선보일 테스트베드로 싱가포르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1400곳이 넘는 한국 기업이 싱가포르의 영업허가를 받았다. 싱가포르는 한국 건설업체들에겐 중동 다음으로 큰 시장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무역, 금융 중심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선 홍콩과 경쟁관계인 것 아닌가.
“홍콩과는 역할이 조금 다르다. 홍콩은 중국 본토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홍콩 경제는 중국 경제와 밀접하게 움직인다. 싱가포르도 중국 경제와 가깝게 연결돼 있지만, 중국보다는 동남아시아로 가는 길목 역할을 한다.
홍콩은 서비스 산업 중심이기 때문에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다. 반면 싱가포르는 GDP의 20%가 제조업에서 창출되고, 싱가포르 정부는 이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쓰고 있다. 전자부품과 제약, 바이오 등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이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주요 원유 거래 중심지이고, 규모 면에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정유시설을 갖추고 있다. 싱가포르는 산유국은 아니지만, 정유·화학제품을 수출한다.”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과 투자회사인 테마섹은 활발한 투자활동과 높은 수익률로 유명하다. GIC는 정부의 외환보유액과 잉여자금, 국채 매각대금 등을 활용해 20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굴린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한 국영 투자기관이다.
입 대사는 “정부는 GIC나 테마섹의 투자 결정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투자전문가들에게 완전히 일임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예로 최근 홈플러스 인수를 인수한 MBK파트너스의 컨소시엄에 테마섹도 참여했는데, 정부 쪽에선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며 투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한빛
■바상자브 간볼드(Baasanjav Ganbold) 주한 몽골대사
2015.09.21
“몽골이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지만 다음 FTA 상대국은 한국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바상자브 간볼드(Baasanjav Ganbold) 주한 몽골대사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몽골 경제는 상호보완적”이라며 “몽골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 수요를 한국의 선진 기술과 고급 인력과 합치면 무궁무진한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의 ‘초원의 길’프로젝트와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비슷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두 프로젝트의 연계 필요성을 시사한 것이다.
몽골과 한국과의 교역은 매년 8~10%씩 증가하고 있다는 게 간볼드 대사의 설명이다. 반면 오랫동안 정치적 동맹을 맺어온 북한과의 무역은 현재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4년 간 주북한대사관에서 서기관을 지낸 간볼드 대사는 지난 5월에도 북한을 방문했다.
한국의 14배 큰 영토와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몽골은 북한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개방 정책을 도입했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과의 무역을 늘려가고 있는 몽골은 최근에는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도 했다.
▲ 바상자브 간볼드 주한몽골대사. /이진한 기자
ㅡ국토가 넓고 인구가 적은 반면 천연 자원이 풍부한 몽골과 인구와 기술은 있지만 국토가 좁고 천연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어떤 분야에서 협력을 하고 있나?
“한국과 몽골의 경제 구조는 매우 상호 보완적이다. 양국은 산업, 도로교통, 건설, 도시개발, 해상운송, 수입대체 상품, 농축산업, 식품가공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하다. 양국 간의 통상도 매년 8~10% 증가하고 있다. 몽골은 2014년 총 140개국과 무역을 했는데 이 중 한국과의 교역이 전체 교역의 6.7%를 차지했다. 몽골이 한국에 수출하는 품목은 주로 광물과 축산 및 원자재다. 한국의 대몽골 투자는 광업, 건설, 도로, 에너지, 가공 산업, 농업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 포스코 엔지니어링, 할라 그룹,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몽골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몽골은 이를 통해 한국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전문가를 육성하는 등 몽골의 발전에 힘쓰고 있다. 한국은 기초 산업과 가공 산업이 매우 발전한 나라다. 이런 기회를 양측에서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적 자원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500명의 몽골 기술 전문가들을 한국에서 교육 시킬 수 있도록 요청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ㅡ몽골의 최대 교역상대인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있다. 두번째 무역국가인 러시아 경제도 좋지 않은 상황인데 몽골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가?
“물론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로 몽골 경제도 영향을 받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 역시 무역규모가 줄면서 경제가 어렵다. 특히 중국은 미네랄을 몽골에서 100% 수입하는데 중국의 경제가 둔화되면 몽골의 대중국 수출이 감소할 수 밖에 없다.”
ㅡ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몽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유라시아의 중심에 위치한 몽골은 역내 교통과 물류 협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몽골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 발전하기 위해 ‘초원의 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11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와 전선, 천연가스관 그리고 석유관을 포함한 총 72억 달러 규모의 사업이다. 이 사업을 위해 몽골은 러시아 중국 등과 먼저 세관 통관, 물류 측면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해소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서도 몽골과 한국이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특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몽골의 철도정책과도 맞아 떨어진다.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중국의 ‘신실크로드,’ 몽골의 ‘초원의 길’ 등은 유라시아의 교통과 물류의 환경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ㅡ한국과 유라시아를 잇는 철도를 건설하는데 북한이 중간에 걸려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유라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가스관이나 철도 등을 건설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북한을 거치지 않고 해저터널을 통해 러시아와 몽골, 중국을 통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남한과 북한이 이 부분에 대한 협의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ㅡ투자 유치를 위해 몽골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몽골은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큰 시장의 가운데 위치한 잇점을 살려 외국인 투자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3년 외국인투자법을, 지난해에는 광물자원법을 각각 개정했다. 국내외 투자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동등한 투자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개정의 목적이었다.
또한 투자 규모와 지역, 산업분야 별로 세율도 정비했다. 이런 조치는 향후 몽골 발전에 중요한 에너지와 인프라 건설, 농업 등 분야에서 투자를 투자를 늘리기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ㅡ북한통으로 알고 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오셨는데.
“북한에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에 방문했었는데 북한의 경제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은 수준이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 생활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옷차림도 훨씬 나아졌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 같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몽골과 비교 했을 때 몽골은 지난 30년 간 꽤 많은 경제적 발전을 이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
ㅡ 몽골과 북한의 경제 협력은 어떤가?
“북한과의 투자 및 무역도 있지만 굉장히 적은 수준이다. 한-몽골의 무역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몽골에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작은 한의원들이 있긴 하지만 몽골에서는 북한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몽골과 북한의 무역도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몽골에는 한국인 투자자들이 굉장히 많다. 올해로 25주년 수교를 맺은 한국과 몽골은 경제 협력을 도모해왔고 한국은 중국, 러시아, 일본 다음으로 몽골의 네 번째 무역 상대국이 됐다.”
ㅡ몽골은 한국과 북한과 모두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몽골이 한국과 북한의 중재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나?
“물론 한국이나 북한에서 요청을 한다면 몽골이 중재 역할을 하거나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몽골은 북한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남한과도 마찬가지다. 또 몽골은 과거에 북한이 겪었던 문제 상당 부분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북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적절한 조언을 제시할 수 있다.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두 국가가 경제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쌓아나가야 할 것 같다.”
김정윤 기자
■2015-06-25 [6.25특집 인터뷰] 엔드류 클리프 주한영국대사관의 무관
약력 엔드류 클리프 (Andrew Cliffe) 육군준장
영국군사과학대학 토목공학과 학사
영국참모대학 국방기술 및 지휘관 참모과정 석사
영국국방과학평가연구소(DERA) 급조폭발물 대응기술분야 연구 주도
제25 영국왕실공병연대 지휘관
제8 영국왕실공병여단 지휘관
해외근무경력(분쟁국)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모
잠비크
시에라리온 등 다수
"한국전쟁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자 힘”
▲인터뷰가 진행된 찰스 헤이 (Charles Hay) 영국대사의 공관, 건물은 1890년에 지어졌다. /사진 김동연
지난 4월 말, 윌리엄 스피크맨(William Speakman) 영국인 참전용사가 자신의 한국전 무공훈장(武功勳章), 빅토리아 크로스(Victoria Cross, 가장 높은 등급의 무공훈장)를 한국정부에 기증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88세의 노병은 “빅토리아 크로스를 비롯한 10개의 훈장을 한국에 기증함으로써 자신이 싸운 한국전쟁의 의미를 한국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되새겨주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클리프 장군과 한국전쟁 기념비의 축소모형, 이 모형은 영국에서 주한영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정부에 기증할 예정이다./사진 김동연
한국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영국대사관에서 대사관의 무관(武官, Defense Attache’)인 엔드류 클리프(Andrew Cliffe) 장군(육군 준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장군 중에서도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 전공자로서 군사기술분야의 식견이 남다르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1990년 독일 베를린에 파견되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독일의 실상을 직접 목격했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발생 직후에는 영국 국방부의 군사작전부에서 국방위기관리센터를 지휘했으며,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모잠비크 등 다양한 분쟁지역에서 전장(戰場)경험을 쌓았다. 특히 영국국방평가연구소(DERA) 산하 대테러 급조폭발물 대응(Counter IED)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클리프 장군과 함께 영국이 바라보는 한국전쟁의 의미 그리고 대테러의 의미 등 다양한 국방분야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인터뷰는 약 125년의 역사를 간직한 영국대사관의 공관(公館) 1층에서 진행되었다. 다음은 클리프 장군과의 일문일답이다.
영국도 미국처럼 북한의 도발 억제가 주안점
-영국 대사관의 무관(武官, Defense Attache’)이자 육군장군으로서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조선pub>의 독자들에게 설명해달라.
“일단 무관(武官),이라는 직책은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전문성을 발휘하는 직책이다. 그렇다보니 영국의 군사적 분야를 한국의 국방부 관계자들과 협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영국대사관의 무관은 1명 배정되어 있으며, 나를 보좌하는 팀(보좌관과 연구원, 프로그래머 등)이 국방분야 업무를 추진 중이다.
나의 소속은 육군이지만 한국의 육군은 물론이고 해군 그리고 공군 지휘관들과 군사적인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에서 한국으로 파견 온 국방부 참모들을 들 수 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국방부의 참모들이 영국을 방문하여 상호간의 정보공유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과 영국간의 합동훈련(joint training)에서부터 이론교육까지 다양한 국방지식과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우리는 “주제전문가(主題專門家)의 교환교육(Subject Matter Expert Exchange)”이라고 칭하며 양국의 전문가들이 이러한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미연합사(CFC)와도 업무를 공조하고 있나.
“그렇다. 연합사의 미군과도 업무를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주한미군이 있는 국가이며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국가이다. 이 때문에 영국도 유엔(UN)의 일부이자 미국과의 동맹국으로서 주둔중인 미군과도 협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과의 공조체제가 전시에는 어떻게 바뀌나.
“미군과 마찬가지로 우리 영국의 목적도 기본적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deters the agression from the North Korea)'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평시와 전시에 대한 위기를 관리하는 구조(crisis management mechanism)로 운영되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북한은 여러 형태의 도발을 저질렀다. 모든 도발상황이 같을 수는 없지만 영국정부의 판단 아래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지원을 한미연합사에 제공하게 된다. 이런 지원의 종류를 사전에 정할 수는 없다. 도발 및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적 지원, 유엔(UN)을 통한 간접지원, 혹은 직접 지원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 일례로 천안함 폭침때 영국은 어뢰(torpedo, 魚雷)분석 전문가를 한국에 파견한 바 있다. 당시 한국 그리고 미국의 국방전문가들과 함께 이 폭침을 분석했다.”
-당시 이런 영국의 전문가 파견이 언론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한 것 같다.
“영국의 이러한 지원은 언론에 노출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경우는 너무 명백한 적국(敵國)인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의 지원에는 진정성(genuine)이 있는 행동이었다. 한국은 우리의 우방국(友邦國, ally)이 아니던가. 또 경제적으로 한국과 영국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었던 때, 한국정부는 영국에 에볼라해외긴급구호대를 파견한 바 있다. 이에 영국정부와 주한영국대사관은 한국의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 이렇듯 한국과 영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 후회없는 선택
-내일이면 한국전쟁 65주년이다. 한국전쟁이 영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우리가 있는 이 공관은 189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한국과 영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약 130년이 넘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당시 남한을 침략한 북한을 보고 가장 처음 파견된 해외병력중 하나가 바로 영국의 군대였다. 일본과 홍콩에 있던 영국군대들이 곧장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우방국인 한국을 위해서 참전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함께 참여한 다른 연합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함께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전장에 뛰어들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영국정부에게 한국전쟁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다 한국전 발생 초기에 곧장 병력을 파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국은 역사적으로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계를 통해 배운 것은 상호의존성(inerdependent)이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영국이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자유무역과 자유가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또 영국은 UN의 상임이사국으로서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었으며,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의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 영국의 한국전 참전을 두고 영국사회에서 후회 한다거나 참전을 반대하지는 않았나.
“희생이 있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국이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 아닌가. 지금 돌이켜본다면 우리가 싸운 한국전쟁은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영국은 거리상으로는 상당히 멀리 있지만 공통점도 많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 때 나오는 선거기록이나 결과 등에서도 유사점을 보인다. 한마디로 민주국가인 한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민주국가인 영국을 움직이는 원동력과 같다는 뜻이다. 즉, 영국은 우리가 지켜내고자 했던 자유를 생각한다면 분명 한국전은 후회 없는 전쟁이었다.“
-영국 BBC는 한국전쟁을 영국의 잊혀진 전쟁(Britain’s forgotten war)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영국은 당시 한국전에 약 9만 명의 군인을 보냈음에도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 영국 사회에서 한국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한국전에 참전했던 영국 참전용사들의 입을 통해 내용을 전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그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바 있으나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가장 최근 영국사회에서 나온 사건 하나를 예로 들겠다. 영국 국방부 건물 앞이자, 런던의 템즈강이 보이는 곳에 한국전쟁 기념 동상이 제작되었다. 이런 예만 보아도 한국전쟁은 절대로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잊혀진 전쟁’이라는 표현만 보자면 정말 영국사회로부터 잊혀졌는가를 자문해볼 수 있다. 영국이 정말 한국전쟁을 잊혀질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왜 약 9만에 달하는 병력을 한국에 보냈겠는가. 영국이 해군 함정, 항공병력, 해병대 등을 파견하지 않았나.
한국전이 발생하기 이전에 영국이 겪은 두 번의 세계대전은 영국의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이 때문에 영국은 경제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모든 부분이 전쟁으로 인해 지쳐있었다. 사람들은 평화가 오길 바랐고, 다시 발전하길 바랐다.
단지 이런 점이 영국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에 비하면 영국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타격이 없었기에 그 정도가 덜했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잊혀진 전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잊혀진 전쟁이라는 표현안에는 분명 잊혀져서는 안될 모두가 기억해야할 전쟁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에 적용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한국전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시행되었는데 이를 역사적으로 비교하자면 뭐라고 말하고 싶나.
“인천상륙작전은 내가 군 지휘관으로서 보자면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그런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대담함을 요하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 대담함 덕분에 전쟁의 분위기와 상황을 완전히 뒤집을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상륙에 필요한 함정과 해병 병력을 지원했다. 당시 영국군은 서울까지 정찰대를 보내 적진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영국군이 다른 연합군과 함께 세운 중요한 업적으로는 김포공항을 탈환했다.
노르망디의 경우도 전세를 뒤집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천상륙작전과 유사점이 많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적들의 태도였다. 노르망디의 경우 독일군은 어느정도 이 상륙작전을 예상했다는 것이다. 독일이 예상한 도시는 프랑스의 항구도시인 칼레(Calais)였다. 당시 이 위치가 영국군이 이동하기에 좋은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닌 노르망디를 택했다. 그런데 인천의 경우는 북한군이 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전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노르망디의 독일군과 북한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장군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나누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다. 현재 분단된 한반도를 보면 어떤 점을 말해주고 싶은가.
"맞다. 독일과 한반도는 모두 분단되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독일의 상황을 보면 현재 한국이 똑같다고는 볼 수 없다. 아마도 독일이 겪었던 분단의 교훈 중 일부가 한반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하나의 장벽만으로 그 경계를 갈랐기에 현재 한반도의 상황과는 다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전부터 동독과 서독의 교류는 암암리에 진행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교류가 독일이 하나의 통독으로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벽이 붕괴전에는 두 독일안에는 장벽 근처에 오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회랑(回廊)지역이 있었다. 이런 회랑지역은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도 있었는데, 장벽이 붕괴되자 한순간에 이런 제약들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어느 날 갑자기 “독일이 통일을 하다니, 말도 안돼”라는 말들을 하곤 했다. 서독의 사람들이 동독에 처음 들어갔을 때 더 어두운 도로와 광고표지판이 별로 없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게 되었다.
군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동독은 과거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전투를 벌였던 도시들에 가보면 거의 그대로 그 현장이 있다는 것이다. 마을이 있던 곳, 전투를 벌였던 곳 등 말이다. 즉 동독은 도시의 발전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역사학자들에게도 매우 좋은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내가 독일을 가보면 서독과 동독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테러는 ‘일종의 증상’이기에 한번에 제거할 수 없는 문제다
이번에는 주제를 바꿔서 대테러의 의미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북한은 남한을 향한 도발 및 각종 테러(KAL기 폭파사건, 아웅산 테러)를 저지른 바 있다.
-장군의 이력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대테러분야에서 오랜기간 업무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특히 급조폭발물의 대응(Counter IED) 기술개발에도 관여했는데 설명해줄수 있나.
"기술적인 부분은 기밀사항이라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 일단 급조폭발물(IED)은 매우 위협적인 무기이다. 이런 폭발물은 군 병력의 이동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없게 만든다. 즉 병력이동 자체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 이동이 제약적이라는 말은 곧 작전도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급조폭발물은 내가 근무한바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급조폭발물을 거의 최초로 사용한 탈레반(Taliban, 테러집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급조폭발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군은 다각도로 변모해야한다. 군인 개개인의 훈련은 물론이고 정보수집 그리고 나아가 군 지휘관의 지휘능동성(commanding flexibility)까지도 변모해야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과거 경험과 기록을 통해서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위협(threat)이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위협에 맞게 대응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이런 대테러상황뿐아니라 군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것이다. 미래의 위협까지도 예상하고 변해야 한다. 특히 급조폭발물은 비교적 현대전에서 등장한 위협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요한다. 이런 개발과 훈련을 통해서 분명 이런 위협은 무력화될 수 있다."
-대테러(counter-terrorism)를 정의를 한다면?
"일단 테러라고 함은 민간인을 상대로 상당히 과격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여된 목적이 있다. 이 때문에 나는 테러는 어떠한 것에 대한 원인(cause)이 아니라 일종의 증상(symptom)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군대가 이 테러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 단지 이 테러라는 증상에 제동(tackle)을 걸 수있을 뿐이다. 실질적인 테러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부, 연구기관 등이 다각도의 정책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이 테러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전문가가 대테러를 논한다면서 ‘테러는 이렇게 막으면 된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혹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테러는 증상이자 징후이기 때문에 모든 기관이 힘을 합쳐서 그 증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찾는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영국 학교에서 시행하는 군사교육은 학생들의 애국심과 협동심 길러내
-영국의 학교에서는 군사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그 효과가 궁금하다.
“일부 학교에서 군사교육과정이 적용된다. 특히 간부양성학교(cadet)에서 많이 사용된다. 내 아들도 이런 내용을 배웠고 그는 그런 가르침에 만족하고 있다. 내 아들이 12살때부터 약 5년간 이런 군대에 대한 내용을 교육받았다. 이는 훌륭한 훈육법이다. 영국은 비교적 이런 군대식 훈육교육이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각계 정부 기관 등에서 지원을 받아서 진행되며 지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만 시행된다. 이런 교과과정은 학생들에게 ‘내가 만약 육군이라면, 해군이라면, 공군이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해소시켜주는 방안이다.
이런 학생들이 해당 교육을 통해서 군을 더 이해함은 물론 애국심을 길러주고 있다. 또 실질적인 팀워크의 중요성, 리더십, 조직생활 등도 학생 때부터 경험함으로서 사회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여학생들도 지원가능한가.
"물론이다. 남녀 모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만 시행한다. 보통 방과후 과정으로 주중이나 주말에 1~2회정도 교육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군사전문가뿐만아니라 민간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내 아들은 지금 19살인데 어릴적 이 경험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 여름에 다시 가서 배우겠다고 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하겠나.
"사실 이 질문은 좀 어렵다. 이 때문에 나는 먼저 한국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한국은 한국전쟁이후 많이 변했다. 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해외에 파병을 하는 등 평화유지에도 힘쓰고 있다. 이런 점이 무엇을 시사하는가 잘 생각해보라. 한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붕괴(destroy)된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성장(developed)을 이룩해냈다. 즉 한국전쟁은 한국을 변화시킨 기폭제가 되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국전쟁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순간’(defining moment)이며, 앞으로 정의되어야 할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김동연
■2015-09-22 크쉬슈토프 마이카 주한 폴란드 대사가 말하는 '화해의 비법'
약력 크쉬슈토프 마이카 (Krzysztof Ignacy Majka)대사
1949년생
現 주한 폴란드 대사
前 폴란드 외무부 아시아 태평양국 부국장
前 주인도 폴란드 대사 (몰디프, 네팔, 스리랑카 겸임대사)
前 폴란드 대통령 자문위원 前 폴란드 상원의원 (유럽통합 위원장)
前 주인도 폴란드 영사
방갈로르 인도과학대학 과학기술 박사
그단스크 공과대학 기계구조학 석사
코샬린 공과대학 학사
▲서울 성북동 폴란드 관저 앞에 포즈를 취한 크쉬슈토프 마이카 주한 폴란드 대사
주한 폴란드대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6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였다. 세미나 주제는 ‘제2차 세계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화해와 협력’이었다.
당시 세미나에는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대사를 비롯해 독일과 영국 대사 등이 참석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화해를 위해 실천한 노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기자는 크쉬슈토프 마이카 대사를 지난 17일 그의 관저에서 다시 만나 한일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문제, 현재 유럽이 처한 난민 문제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대사에게 그동안의 업적을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사는 지난 4년 동안 폴란드의 전권대사(全權大使)로 한국과 폴란드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2013년 폴란드 대통령이 방한해 한국과 폴란드가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체결한 것을 그는 대사로서의 최고 공적으로 꼽았다.
폴란드도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인만큼 다른 주한 유럽 대사관들과의 업무 연계 추진 여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대사는 “폴란드는 유럽의 회원국이며 모든 유럽연합국은 유기적으로 하나의 팀으로 뭉쳐 업무를 추진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유럽연합의 가이드라인과 EU-한국 간의 협의 내용에 준한다. 일례로 지난 2011년 7월 체결된 EU와 한국간의 FTA를 들 수 있다. 해당 FTA는 EU가 아시아 국가와 최초로 체결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답했다.
정부보다 먼저 사회적 화해 제스처가 나와야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제2차 세계대전으로 흘렀다. 이번 만남의 이유이기도 했다. 과연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 국가로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또 우리가 배울점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 폴란드는 이 전쟁에서 600여 만명의 목숨을 잃었다. 폴란드 인구 5분의 1에 달하는 숫자다. 독일과 옛 소련이 폴란드에 가한 전쟁범죄는 정말 가혹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화해만이 전쟁의 깊은 상처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물론 이 화해의 과정이 항상 조화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화해에는 양국 간의 실익을 위한 실용적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화해를 통해 양국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협조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자 교훈이다.”
현재 독일과의 관계는 어떠냐고 묻자 “오늘날 독일은 폴란드와 가장 친한 경제적 동반자이자, 정치적 동맹국”이라고 답했다. 폴란드의 교훈 중 한국에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물음엔 이렇게 말했다.
"화해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단순히 정부, 고위공직자, 정치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각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화해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예를 들면 양국의 역사학자, 종교인, 기자, 청년단체 등이 나서서 화해 의미를 서로 나눠야 한다. 이 것이 화해의 비법이다. 그런데 동북아에서는 이 화해 과정을 정부와 정치인의 숙제처럼 남겨두는 분위기다.
폴란드와 독일이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화해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사회단체 간의 보상, 교환학생 상호교육, 지자체 간의 협의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참여가 있었다. 화해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다음 세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필요로 한다. 이런 다각적 노력이 있어야만 시대가 지나도 양국 간의 화해가 지속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독일과 폴란드가 화해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가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은 사건을 꼽는다. 이에 기자는 "일반인들이 사회적으로 화해를 하기에 앞서 지도자의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사는 “해당 사건이 분명 독일과 폴란드, 양국이 화해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앞서 독일과 폴란드의 종교계가 먼저 사과를 주고 받은 것이 독일 지도자의 화해 제스처보다 더 큰 의미를 가졌다. 당시 폴란드 가톨릭 주교(bishops)들이 독일 주교들에게 ‘우리는 독일을 용서함과 동시에 용서를 구한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정부의 행동에 앞서 사회적 교류가 먼저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폴란드와 독일의 고위관료들끼리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등 여러 화해 제스처가 봇물 터지듯이 이어졌다” 고 말했다.
대사는 당시 주교간의 편지교환 때 분위기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말했다.
“모든 폴란드인들이 주교들의 태도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주교 간의 편지교환이 있었을 당시 나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폴란드 주교들이 독일에 용서를 구한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이냐'에 대한 학급 투표가 벌어졌다. 과반수의 학생들은 폴란드가 독일에 용서를 구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표를 던졌다. 사회적으로 이런 화해 제스처를 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것이며, 모두 동의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독일에 대한 통념이 서서히 바뀌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 국민 42% 사죄 찬성, 15%만 사죄 반대
대사는 양국이 사회적으로 꾸준한 교류을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 모두 이런 화해를 위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본의 우경화, 전쟁 이후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민감한 부분이다. 아베 총리는 우익의 지지와 좌익의 비판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최근 일본 NHK가 시행한 ‘일본이 사과해야 하나?’라는 대국민 조사에서 42%는 사과해야한다고 답한데 비해 15%만이 사과할 필요 없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현재 일본이 사죄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다.
-북한의 지뢰 및 포격도발 행위 등에 대해선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지난 도발로 피해를 입은 한국 국민들께 유감을 표한다. 언젠가는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현재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경제재제와 압박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고쳐주기를 기대해본다."
폴란드, 난민 2000명 수용할 것
-유럽의 현안인 난민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난민 문제는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논의 중에 있다. 폴란드의 경우 2000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폴란드는 이미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난민시설을 갖춰놓았다.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난민을 수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난민이 늘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난민 정책상에는 일부 문제가 있으며, 이런 문제를 폴란드가 주도해 EU에 제기한 바 있다. 실질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난민과 경제적 이유로 이민을 신청하는 사람, 이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난민사태와 북한의 탈북자를 비교해본다면?
"난민이란 국외지역에서 정치적 박해, 내란, 내전 등 안전상의 위험을 느껴 피난처를 찾아 해당 국가를 탈출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 정의로 볼 때 북한의 탈북자도 분명히 난민에 해당된다. 난민으로 봐도 무방하다. 다만 현재 유럽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탈(脫)국가 상황은 그 규모 면에서 북한의 탈북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태다."
-폴란드의 현재 경제상황은 어떤가. 그리스발(發) 경제위기로 유럽 전체가 동요하고 있지 않은가.
"폴란드는 유럽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 위기를 유일하게 빗겨간 나라 중 하나로. 1인당 소득이 대부분 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4년 폴란드의 경제성장률을 3.3%로 산정했다. 유럽지역 경제성장률은 0.9%였다. 폴란드는 이번 그리스발 경제위기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해당 국가로부터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말미에는 폴란드와 한국의 관계 그리고 개인적인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한국의 가장 좋은 점은 ‘어른 공경’
-에바 코파즈(Ewa Kopacz) 폴란드의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 여성이다. 두 여성 지도자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양성 평등이자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이를 통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두 여성 지도자들은 뛰어난 정치인이자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폴란드에서 여성이 고위관료, 정치인, 장관 등의 직위를 가지는 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1992년 수호츠카(Suchocka) 여성 총리가 폴란드의 국가 수반이 된 바 있다.”
-대사께선 기계구조학을 전공한 공학도이다. 신생 제조업이라 불리는 인큐베이팅과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어떻게 평가하나.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폴란드의 ‘마리아 퀴리 부인(Maria Sklodowska Curie)’도 그녀의 작은 실험실에서 세계적으로 획을 긋는 위대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작은 실험실이나 워크샵에서 창조를 이룬 것은 퀴리부인만이 아니다. 누구든지 아이디어를 갖고 작은 워크샵이나 실험실 등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장점은 무엇인가? 당신이 정의하는 리더십을 한단어로 말하자면?
"한국의 장점 중 하나는 유교사상에 따른 '어른 공경'이다. 특히 선생님과 업계 기능장들에 대한 공경이라는 전통적 가치가 한국을 발전시켰다. 리더십은 곧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한마디로 축약된다."
대사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한국의 추석이 얼마나 큰 명절인지 잘 안다"며 추석을 앞둔 한국 국민들에게 인삿말을 건넸다.
"귀향길에 차가 좀 덜 막혔으면 합니다. 모든 분들이 즐거운 추석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2016.03.03 주한 스위스대사관 클라우디오 마쭈켈리 참사관(參事官) 인터뷰
▲마쭈켈리 참사관을 그의 한남동 자택에서 만났다. 사진=김동연 기자
“스위스에는 노사(勞使)갈등과 노조파업이 없습니다.”
클라우디오 마쭈켈리(Claudio Mazzucchelli) 주한 스위스 대사관 참사관의 말이다.
지난 2월 27일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2016 스위스 교육박람회(Swiss Education Fair)를 강남구 대치동의 메가스터디 학원에서 개최했다. 교육박람회는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다. 이번 행사는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참사관이자 한국무역투자사무소(Swiss Business Hub Korea) 대표인 클라우디오 마쭈켈리 씨가 맡았다. 이번 교육박람회에 앞서 기자는 마쭈켈리 참사관을 만나 한-스위스 관계, 스위스의 경제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전반에는 교육문제를 후반에는 경제에 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교육은 곧 취업이자 사업이다"
[교육]
-주한 스위스 대사관에서 맡고 계신 업무를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저는 한국무역투자사무소(Swiss Business Hub Korea)의 대표로서 한-스위스 사업부분을 중점적으로 맡아서 추진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많은 기업들이 있고, 스위스에도 많은 강소기업들이 있습니다. 양국의 기업끼리 투자와 협력을 함으로써 창출해낼 시너지 효과는 막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양국 모두에게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스위스 교육박람회도 이러한 양국의 사업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는 좋은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학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학교에 한국의 중요한 인재가 될 많은 학생들이 와서 교육을 받는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교육박람회가 일종의 유학의 활로를 열어주는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은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고, 선진 교육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단순히 학생들이 스위스에 유학을 오는 것 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문화를 배우고 스위스의 기업에까지 취업할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인재에 대한 투자는 무역을 넘어선 중요한 사업입니다.”
-스위스는 교육구조가 취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교육 구조가 낮은 청년실업률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볼 수 있나요.
“맞습니다. 스위스의 교육방식은 직능교육(Vocational Education: VET)이 취업에 주요한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전체 재학생의 2/3 정도가 이 과정을 택하고 있으며 취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VET는 250 여개의 과정이 스위스에서 시행중입니다. 이런 스위스의 교육이 한국에도 교육박람회를 통해 알려지고, 실제 유학으로 이어진다면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육은 곧 취업으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는 국가적인 사업인 셈입니다."
-유학을 고려하는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학비가 얼마인지가 제일 큰 고려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학비는 미국 등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비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통 5만불(미화, USD) 이상이 소요됩니다. 이는 학비와 기숙사 비용을 모두 합친 것입니다.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환경적인 측면을 본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숙형 사립학교들은 깨끗한 스위스의 산 속에 자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범죄와 환경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친환경 교육을 받게 됩니다. 많은 중·고등학교들이 스위스의 알프스 산 속에 자리해 있어, 건강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한국의 교육방식은 창의적 사고 할 수 없어
-한국에서는 북유럽의 프로젝트 방식의 교육, PBL(Project Based Learning)이 새로운 교수법(敎授法)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스위스도 이런 교수법을 주로 사용하나요?
“한국처럼 유교적 사상(confucianism)이 짙은 국가에서는 이런 PBL 방식이 생소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암기 같은 전통적인 교수법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연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물론 이런 전통적 교수법이 잘못됐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만, 최근 여러 연구 등을 통해 단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위말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암기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비판입니다. 이런 교육에 익숙해지면, 향후 창의적인 사고력이 결여됩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일시적인 습득일뿐입니다. 그런데 특정한 프로젝트를 던져주거나, 과제를 해결하게 되면, 그 과정을 통해 창의적인 사고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스위스에서는 이런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수법을 주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새로운 교수법을 자주 시도하나요?
“스위스는 비교적 다양한 교수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교수법은 학교의 재량입니다만 VET처럼 직능교육과정은 실제 취업과 연결되기 때문에 교육하는 부분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인지 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즉 새로운 교수법은 학교와 지자체의 협의를 통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비행청소년과 학업 중퇴자들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이는 사회복지분야(Social Service)에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고, 범죄 등으로 빠지지 않도록 관리 감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사교육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과후에는 학원에서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합니다. 스위스에도 학원이 있나요?
“거의 없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교육은 학교에서 하고, 그 이후 수업은 없는 편입니다. 대개는 체력단련을 위한 스포츠나 다른 취미활동을 장려합니다. 학원이나 과외수업 등은 보통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학생에게만 한해 집중적으로 시행됩니다. 학생이 학업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보통은 학교 선생님이 별도로 학생에게 방과 후에 공부를 도와주는 식입니다.”
스위스는 지자체장이 교육감 지명해
-이번에는 교육제도에 대해 묻겠습니다. 스위스는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육감을 어떻게 선출하나요. 한국에서는 시장이나 다른 지자체장과 함께 러닝메이트(running mate)로 선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교육감은 모두 지명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연방정부 아래 26개 주(州, canton)가 있습니다. 이 주지사의 권한이 막강합니다. 주의 권한에 따라 교육감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즉 정부의 개입이 그만큼 줄어들고, 지자체의 권한이 확대되는 구조입니다. 이 교육감 선출에 연방정부는 그 권한의 대부분을 지자체에 주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장기결석 아동이 큰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특히 이런 결석아동이 아동학대를 당해 관계 당국은 관련법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장기결석아동을 어떻게 관리하나요.
“결석은 학교에서 관리하는 사안입니다. 만약 아무런 사유없이 갑자기 학생이 사라진다면, 당연히 관계기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단 하루라도 한 학생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법기관에 신고를 해서 학생의 신변을 확인해야합니다.”
-스위스에서는 아동학대나 미성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어떻게 적용되나요?
“단순범죄 이상의 중죄로 중형을 선고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 자체는 분명 중죄이니까요.”
[경제]
-한국의 대기업인 삼성은 구조적인 개편을 통해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를 차세대 사업분야로 정했습니다. 스위스에는 노바티스(Novartis)와 로슈(Roche)와 같은 대형 제약회사들이 있습니다. 바이오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스위스의 입장에서 삼성의 이런 개편을 어떻게 보시나요?
“환영합니다. 스위스는 이미 제약 및 의학분과에서 오랫동안 몸담으면서 수많은 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삼성이 이 분야에 후발주자로 진입한다는 것은 업계에 좋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성이 진입하더라도 스위스의 제약회사들은 충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금과 다르지 않은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타적 정신이 노사갈등 해결의 비
-지난 19일 한국 대법원은 중소자동차 부품업체인 발레오 전장(電裝)에 산업별 노조인 금속노조 산하 지부에서 상급 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변경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스위스는 어떻게 노조를 형성하고 있나요?
"스위스에는 노조가 거의 없습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개별적 회사 산하의 노조원들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노조들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한-스위스의 사업을 주도하는 사람으로서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노조가 한국 스스로에게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위스뿐 아니라 독일이나, 다른 유럽의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도 이 노조협상 등 때문에 결렬되는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국에 진출해있는 유럽의 회사들도 노조 때문에 사업의 확장이나, 새로운 투자를 어려워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의 노조는 한국 산업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스위스에서는 노사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나요.
"일단 노조 자체가 별로 없지만, 있다고 해도 대부분 원만히 해결하고 있습니다. 서로 토론을 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진행하지만 사실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노조와 회사가 이야기를 나누면 대부분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됩니다."
-그럼 만약 노사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정부가 개입하나요? 노사갈등에 정부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스위스의 경우 노사간 협의는 다 잘 해결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회사와 노조간의 문제이니까요. 서로 이야기를 통해 타협을 합니다."
-어떻게 타협점이 도출되나요? 가령 노조는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고, 회사는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임금 인상 불가를 놓고 계속 싸울텐데요.
"그런 경우라도 노조는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고, 회사는 노조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해결됩니다. 충분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럼 노사갈등이 없는 비법이 무엇인가요?
"제 생각에 비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비법이 있어 보입니다. 무엇이 노사갈등 해결의 방법일까요?
“계속 물으시니,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정신적 태도(attitude)라고 생각됩니다. 즉 이타심을 발휘하는 태도, 그것이 비법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을 통과해 기업의 자율성을 높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의 비자금 조성 등 기업부패와 기업의 이익만 증가시킨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이렇게 기업의 자율도를 높이는 법안 등이 있나요?
"스위스에서는 대부분의 권한을 기업에 일임하고 있습니다. 설령 지역사회나 노동자와 연결된 문제라고 할지라도, 주(canton)정부에서 전체적인 가이드라인만 잡아줄 뿐입니다."
-그럼 만약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개편을 한다면, 언제든지 할 수 있나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자율성 보장이 스위스 기업에서는 필수 사항입니다. 기업이 원하는대로 개편이 가능합니다. 이런 개편을 통해서 변화에 대응하고 기업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습니다."
시장에 맞춰 빨리 변화하는 것이 100년 기업의 성공비법
-스위스는 오래된 강소기업이 많은데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스위스에는 오래된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이 강소기업들이 전체 기업 중 9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업들의 평균역사는 125년입니다. 대부분이 100년이상된 기업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왔습니다.
회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고난이 닥쳐도 기업을 쉽게 개편할 수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삼성같이 큰 기업이 하루아침에 다른 방식으로 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작은 기업들은 가능합니다. 소수가 모여서 결정하면 곧바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100년을 이어온 강소기업들의 비법입니다.”
-그런데 기업이 잘되면 이익이 늘어나고, 이익이 늘면 자연스레 기업은 커지는데 왜 계속 중소기업으로 남아있나요.
“그것은 하나에만 집중하는 신념 때문입니다. 기업이 맡아온 하나의 전통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필요이상으로 기업이 커질 이유가 없습니다. 소수정예로 구성된 직원들이 최고의 품질을 만들기 위해 전념할 뿐입니다.”
▲교육박람회에 참가한 리세움 알피넘 쭈오즈 학교장(우측)
2월 27일 열린 스위스교육박람회에는 7개의 스위스 유명 학교들이 참가했다. 참가한 학교 중에는 리세움 알피넘 쭈오즈 (Lyceum Alpinum Zuoz) 사립기숙학교도 있었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의 연령층이 입학한다고 한다.
해당 학교의 발즈 멀러(Balz Muller) 교장에 따르면, 해당 학교에는 학생이 총 200명 정도며 알프스 산 속에 있다. 학비는 연간 7만5천달러(USD)이다. 사립학교는 학교장의 재량으로 모든 학생들의 수와 국적을 통제할 수 있어 특정 국가의 학생들로만 채워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스위스의 학교를 졸업하면, 스위스의 대학은 물론 유럽, 미국 등으로 진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 | 김동연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조선일보
■ 게르하르트 자바틸 주한유럽연합(EU)대사
2016-02-16
주한 EU대사, "사드배치에 제3국은 끼어들 명분 없어"
“北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스스로 무덤 파는 격, 유럽의 경제제재 더 강해질 뿐”
“사드 배치 문제에 제3국이 끼어드는 건 타당치 않아”
자바틸 대사 작년부터 올 초까지 두 차례 예정된 방북(訪北)계획 모두 취소돼
“테러집단 IS에 대한 강력한 대응, 유럽연합뿐 아니라 한국 등과 다각도로 구상해야”
“폭스바겐 연비조작사태로 피해 입은 한국 고객 차별해선 안 돼”
1985년 첫 방한이후,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과 유대감 공유해
실용성과 경제성 때문에 나비넥타이 선호해
▲ 게르하르트 자바틸 유럽연합대사, 사진=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북한은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이에 지난 2월 10일 미국의 상원은 대북제재법안을 통과시켰고 단 이틀만인 12일 하원도 해당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대북제재안 통과는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한편,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은 2월 13일 독일을 방문해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교장관을 만나 유럽연합(EU)차원의 대북제재를 촉구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 서방국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에 힘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4일 게르하르트 자바틸(Gerhard Sabathil) 주한 유럽연합대사를 만났다. 이는 1월 21일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 위원장이 자바틸 유럽연합대사 및 주한 유럽대사들을 만나 대북제재 논의를 한 직후였다. 이번 인터뷰에서 기자는 최근 여러 현안들을 물었다. 대북제재안, 주한미군의 사드(THAAD)배치, 지카 바이러스, 테러집단 IS에 대한 해결책 등이다.
유럽연합대사는 28개의 회원국 중 한국에 대사관을 둔 21개의 유럽회원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자바틸 대사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주한 유럽대사들의 업무와는 중첩되는 부분은 없으며, 유럽 전체가 고려하는 중대사안을 끌고나가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가령 한-EU FTA와 같은 사안이다. 즉 유럽연합대사관은 유럽을 대표하기 때문에 각 유럽대사관들의 문화와 관련된 부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각 유럽 국가별 문화가 다른 탓이다.
<북한의 도발행위, 유럽연합 용납할 수 없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it's unacceptable) 게르하르트 자바틸 대사는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단호했고, 대사의 표정은 무거웠다. 자바틸 대사의 이 단호한 대답은 시간이 지나도 기자의 귓가에 메아리처럼 남았다.
그는 지난 2015년 10월과 올해 초인 2월,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해 동북아 안정 및 인권보장 등 여러 사안을 북한과 논의할 참이었다. 하나 북한의 연이은 도발 징후와 서방국에 대한 적대적 태도 등으로 취소됐다. 비슷한 시기 UN의 반기문 사무총장도 방북 일정이 취소됐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행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북한의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의무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국제 평화를 해치는 심각한 위협 행위입니다. 북한은 핵 확산방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6자회담에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우리 유럽연합은 핵개발을 멈추고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북한은 답이 없어요.
특히 이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행위는 국제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북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동(damage themselves)임을 직시(直視)해야 합니다. 우리 유럽연합은 단합하여 대북제재를 시행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말하는 겁니까.
“이 대북제재안이 포함하고 있는 범주는 매우 넓지만, 주요내용은 북한의 자금줄을 조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불법적인 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는 셈입니다. 특히 무역을 차단해 다양한 물품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북한으로 유입된 무역거래 양은 대략 3천만 유로(한화 약400억원)에 달해요. 즉 이렇게 많은 무역거래량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우리는 이런 무역거래를 막았음에도 항상 북한은 밀거래를 통해 물품을 가져가곤 했습니다. 따라서 이 밀수 행위를 타이트하게 옥죌 것입니다. 이런 경제적 제재는 아마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을 어렵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 동유럽 국가들도 이번 대북제재안에 동의한 것인가요.
“물론입니다. 이 대북제재안은 유럽연합의 28개 회원국 모두가 동의한 사안입니다. 물론 1989년 이전 일부 유럽연합의 회원국 중 일부는 북한과 친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 모두가 한목소리로 강경 대북제재 기조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현재 자바틸 대사께서 주한 유럽연합대사로서 이번 대북제재안을 시행하는데 어떤 부분을 도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대북제재안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겠습니까?
“일단 우리 유럽연합(EU)은 유엔안보리(UNSC)는 아니기에 일부분 제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원국 중 두 나라인 영국과 프랑스는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에요. 또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스페인이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있어요. 이 국가들과 논의해 대북제재안 시행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북한의 경제적 지지를 도와주는 이웃, 중국에게도 북한을 설득할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촉구할 것입니다.”
-지난번 자바틸 대사께서는 나경원 외통위원장을 만나 대북제재를 논의했는데요. 어떤 결과들이 도출됐습니까?
“한-EU는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한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한다는데 동의했습니다. 또 북한뿐 아니라 다른 동북아 지역적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하자는 데도 동의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한-EU 위기관리기본협정(Crisis management cooperation)을 체결하고 상호간 유사시 군사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가령 아프리카 지역을 항해하는 한국과 유럽선박을 해적으로부터 한국 및 유럽의 군함들이 호위해주는 역할이죠. 이미 이 기본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지금까지 국회에서 비준되지 않았습니다. 협정이 곧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것은 단연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에도 순차적으로 적용될 수 있어요. 잦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중동의 시리아 문제 등에도 한-EU가 군사적 임무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유럽이 한국에도 유사한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되는 셈이죠. 또 국제적으로 대두되는 테러문제 해결에도 한-EU가 긴밀한 공조를 통해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화 불응하는 북한에는 전략적 인내뿐>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6자회담에만 목을 메지 말고 5자회담, 4자회담 등 다각도의 논의를 모색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바 있는데요.
“우리가 바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우리 유럽연합은 북한이 더 이상의 도발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과 대화를 시도해왔어요. 북핵문제 외에도 인권의 중요성도 북한에 전달해 남북이산 가족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을 유지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그런 셈이죠.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은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대화에 응하지 않지만, 그래도 대화의 창을 열어두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시나요. 오바마 정권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는데, 다음 미국의 대통령도 지금과 같은 북한을 무시하는 기조를 유지해야한다고 보시나요?
“(다음 대통령이 정해지지 않아서) 지금 섣불리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우리 유럽연합은 미국, 한국, 일본과 함께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 북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취한 스탠스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인데, 지금 현 상황에서는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죠. 왜냐하면 북한이 대화를 거부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인내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경우 한국과 군사적인 부분의 공조는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라 한미의 대북정책에 세부적으로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유럽이 겪었던 전례를 볼 때 군비경쟁(軍備競爭, Arms Race)은 좋은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점을 북한이 인지해 조속히 대화의 장으로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미국이 이란과 체결한 핵협상(Iran Deal)은 평화적인 협의로 도출됐습니다. 북한과 비교했을 때, 이런 방안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좋은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이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을 위해 유럽연합(EU)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둘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는데 성공했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또 이란이 이런 대화에 마음을 열고 협상테이블로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은 분명 북한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이란이 합의에 응하자, 유엔안보리 제재가 서서히 풀리고 있습니다.”
<남한 핵무장은 반대, 사드배치는 찬성>
-이란 핵협상을 북에도 적용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이란과 북한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란은 핵을 완전히 만들지 못했고, 북한은 만들었다고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대화만이 갈등을 푸는 해결책입니다. 무력은 좋지 못한 결과를 초례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여론 중 일부는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해 군사적 균형을 이룬 것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평화를 깨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핵확산을 막아야하는 한국의 의무에도 반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남한의 핵무장을 반대한다는 것이지요?
“네, 제 생각에 이는 좋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북핵의 대안이라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한국의 사드(THAAD)배치가 이슈입니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 사드를 배치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사안에 대해 유럽연합은 그 어떠한 스탠스도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 한미가 도출해야하는 사안입니다. 다만 35년전 서유럽과 동유럽간의 전례로 볼 때, 공격보다는 방어적 스탠스를 취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 보다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사드 배치를 지지하신다는 의미입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사안에 유럽이 어떻다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는 동북아의 지역에도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에 제3국가들이 이래라 저래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드)문제는 분명 북한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드는 방어적 무기체계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사드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배치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국은) 이웃국가입니다. 이웃이다보니 신경은 쓰이겠지만 이것은 한국이 결정해야할 사안입니다. 한국이 미국과 결정해 처리해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고 있어) 다른 국가들이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해 좋은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EU FTA가 체결됐습니다. 양국 간에 가져올 이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성공적인 결과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양상입니다. 무역량의 증가, 외국투자량 증가, 서비스분야 확대 등입니다. FTA를 통해 이런 좋은 결과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유럽연합의 회원국들과 한국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향후 한-EU FTA의 분야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분 더 확대해도 좋을 만한 분야들이 남아 있습니다. 안그래도 이 사안에 대해 현재 한국측과 논의중이며, 올 연말까지 마무리를 지을 예정입니다.”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사태, 한국소비자 보상 차별해선 안 돼>
-프랑스 파리시(市)를 시작으로 유럽의 대도시들이 친환경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디젤차량 금지정책입니다. 2020년까지 시의 모든 디젤차량을 전기차로 대체하자는 게 그 골자입니다. 한데,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대체한 전기차량에 사용되는 전기도 어차피 화석연료를 태운 발전소의 전기로 사용된다는 비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유럽연합은 환경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보고 앞장서서 개선중입니다. 한국이 이런 유럽연합의 환경정책을 뒤따르고 있는 점도 매우 좋은 시너지라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디젤차량금지 정책은 곧장 시행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실제 적용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적용 전까지는 언급하신 전기차의 기술적인 문제를 개선할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추후 우리가 경험한 사례를 한국과 공유함으로써 양국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도 생각합니다.”
-지난번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였습니다. 그런데 폭스바겐이 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차별적 행태가 한국 국민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미국 소비자들과 비교해 한국 소비자들에 대한 배상은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이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유럽연합이 해당 제작사에 조치를 취해 2015년 가을 이후부터 생산된 차량에는 앞서 발견된 문제가 없다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저는 유럽연합이 지속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환경규제를 만드는 것을 지지합니다.
유럽연합은 이 사건에 대해 제작사인 폭스바겐 측을 소환해 최대한 투명하게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보상방안을 모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에서 적용하는 보상정책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상정책에 그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소비자보호정책은 우리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중요한 기둥(pillar)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한국소비자들도 동등하게 폭스바겐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동북아 경제적 협의체 구성부터 고려해야>
-아시다시피 동북아에는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적 협의체가 없습니다. 유럽의 성공적인 사례를 들어 동북아 지역협의체 구성을 위해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
“유럽의 사례로 볼 때, 경제적 협의체 구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동북아의 FTA입니다. 이런 경제적 협력이 먼저 구성되는게 수순이라고 생각됩니다. 경제적 뼈대가 완성되고나면 그 분야를 확대되어 유럽연합과 같은 지역협의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역적 협의체는 동북아뿐 아니라 동남아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협의체가 구성되면 동아시아지역의 자유항해(free navigation)가 보장될 것이며, 더 활발한 무역적 교류가 보장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안보적 균형과 안정까지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최근 테러집단 IS가 국제적인 문제입니다. 이로인한 난민과 망명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해결책이 있나요.
“강력한 국제적 협력만이 IS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이 IS는 특히 유럽과 일부 동아시아에서 테러를 유발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파리테러이후 우리 유럽은 대테러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망명자 보호와 국경관리를 재정비해야 합니다. 누가 진정 내전으로 망명하는 것인지,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로 밀입국을 하는 것인지를 가려내는 기능이 필요합니다.”
-대사님께서 서두에 강력한 협력을 말씀하셨는데, 군사적인 협력을 말씀하신건가요, 아니면 경제적 협력을 말씀하신건가요.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모든 협력을 말합니다. 안보적인 협력은 물론이고, 경제적 협력도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테러집단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해야 합니다.”
-미국의 FBI에서는 테러를 막기 위해 좋은 방법으로 국가별 정보기관간의 정보교류를 강조했습니다. 유럽연합은 미국 등과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국가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정보교류는 분명 중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미국의 사법당국은 테러방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미국과 안보분야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테러 방지에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9/11테러이후 미국과의 공조가 강화되었습니다.”
-지카 바이러스가 최근 위협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유럽도 이에 대비책을 마련 중인가요?
“아직까지 이 바이러스는 남미권에서 발병했습니다만, 유럽도 국제적으로 퍼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럽연합은 최근 지카 바이러스의 백신개발 연구를 위해 1,000만 유로(한화 약 136억원)을 투입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대사님께서는 나비 넥타이를 즐겨 착용하십니다. 일반적인 넥타이보다 나비넥타이를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죠. 일단 실용적이고요. 경제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비넥타이를 즐겨 착용합니다. 보통 유럽연합에서는 주요보직자가 취임하면 관계자들에게 넥타이를 선물로 나눠줍니다. 그런데 제가 유일하게 나비넥타이를 착용하는 사람이다보니 받은 넥타이를 수선합니다. 일반 넥타이 하나를 수선하면 보통 2~3개의 나비넥타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비용대비 실용성이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1985년 한국에 처음 온 뒤로 많은 부분이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독일과 헝가리, 이중 국적소지자입니다. 이 두 나라는 한국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독일은 아시다시피 분단국가였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헝가리어는 그 뿌리가 알타이어(Altai 語)로 한국어와 같습니다. 물론 제가 한국어를 잘하지는 않습니다만, 한국어를 보면 헝가리어를 보는듯한 마음이 들어 유대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유사성을 토대로 앞으로도 한-EU 상호간 교류에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사 약력]
2015 -주한 유럽연합 대사
2012 -유럽대외관계청, 동아시아, 태평양 국장
2011 -유럽대외관계청, 감사/조사/사후적통제(ex-post Control) 국장
2008-2010 -유럽집행위원회, 대외관계총국, 전략, 조정및 분석 국장
2004-2008 -주 독일 유럽집행위 대표부 대표 (베를린 소재)
2000-2004 -주 노르웨이 유럽집행위 대사 (오슬로 소재. 노르웨이 및 아이슬랜드 관할)
2010- 벨기에 브뤼헤 소재 유럽대학(European College) 교수
1996- 체코공화국, 프라하 경제학대학(Economic University) 교환교수
1981 뮌헨 경제학 박사 (PhD),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 블랙스버그 캠퍼스 J.M. Buchanan 교수
공공선택 센터 방문연구학자
1973-1979 독일 뮌헨대학교 경제학/ 역사학
언어
독일어, 영어, 불어, 체코어, 헝가리어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위기의 한반도-주한 유럽연합 게르하르트 자바틸 대사
2017.09.07
⊙ “사드와 관련된 한국의 결정, 유럽연합은 적극 지지해”
⊙ 1등 참사관, “유럽연합의 군대는 한국에 없지만, 대북도발 억지는 줄곧 지지해 왔어”
▲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유럽연합대사. 사진=김동연
1년 전 광화문의 주한 유럽연합(EU)대사관에서 기자는 게르하르트 자바틸 대사를 인터뷰했다. 당시 대사가 남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제3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끼어들 명분이 없다.” 대사의 이 말이 곧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기도 했다. 유럽연합은 한 국가가 아닌 다국적 조직이다. 그런 조직의 수장이 다른 나라의 대소사에 구체적인 스탠스를 취할 수는 없어 이 발언은 이례적인 것이다. 자바틸 대사가 말한 제3국이란 중국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런 그가 1년 반 정도의 임기 후 한국을 떠났고, 신임 미하엘 라이터러(Michael Reiterer) 대사가 주한 유럽연합 대사로 왔다. 《월간조선》은 신임 대사와의 만남에 앞서 과연 신임 대사도 전임자의 스탠스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번 인터뷰 질문의 요지는 현재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북한, 한국, 미국 간의 외교적 신경전 및 물리적 충돌에 관한 것이었다. 일문일답이다.
문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그 취지는 좋다”
유럽연합을 나타내는 마크. 사진=위키미디어
— 먼저 스포츠에 관한 질문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내년이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합니다. 이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참여, 공동개최, 남북한 하나의 팀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함께 올림픽을 열어보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책을 시행하는 마당에 문 대통령의 이러한 유화정책을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유럽연합의 대사이지만, 제 개인적인 국적으로 보면 저는 오스트리아인입니다. 아마 아시겠습니다만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Innsbruck)는 동계올림픽 개최지입니다. 그것도 두 번의 동계올림픽을 개최, 1964년과 1976년입니다. 올림픽의 역사적 중대 가치 중 하나는 평화적으로 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평화적 취지가 사람들을 한데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과거를 기억해 보면 남북은 하나의 단일 팀으로 출전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전례는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것이 발단이 되어 앞으로 더 많은 단일 팀의 기회를 열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한국의 정치상황과 문 대통령의 의지 등에 달린 문제입니다.”
—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은 유치 때부터 북한의 참여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올림픽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참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도 이런 사실을 논의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이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지 그 자세한 내막은 다 알지 못합니다. 단순히 문 대통령의 취지는 좋다(idea is valid)는 말입니다.”
기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두고 과거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지금의 문 대통령과 유사한 북한 동반 개최에 대해 언급했을 때 사회적으로 받았던 비판의 예를 들려던 참이었다.
본 내용에 관해서 본지는 현재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 여러 명을 접촉했다. 그리고 이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에 대한 조직위 내 분위기,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만약 북한의 동참을 원한다면 당초 유치 때부터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인해 국제적으로 북한의 이미지가 매우 위협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어 자칫 올림픽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청와대가 강행 의지를 보여 조직위에 지시를 내리면 아마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을 하기는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상부 지시는 없다고 했다.
한반도의 평화적 해결 위해 유럽연합 모든 지원 아끼지 않을 것
▲유럽연합의 해상훈련인 아탈란타에 참가 중인 영국 해군의 헬기. 사진=위키미디어
이번에는 한반도 전쟁 임박 분위기, 유사시 유럽연합의 전쟁지원 가능성 등에 대해 물었다.
— 최근 미국 국방부의 고위급 장성 및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전쟁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 ‘외교적 방법을 마지막으로 시도해 볼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 북한의 핵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등의 말이 미국에서 나왔습니다. 이를 두고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물리적 공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만약 유사시 미국 주도의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이나 정밀타격(surgical strike)이 시작된다면, 유럽연합은 과거 한국전 때처럼 한미를 도울 의향이 있나요.
“저는 일단 전쟁 가능성에 대한 추측(speculation)은 하고 싶지 않네요. 이 문제는 모두(all-parts)가 관여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런 상황(물리적 충동)은 피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유사시에는 유럽연합 28개국의 고위급들은 이 문제에 대해 바로 (개입 여부, 지원방향 등) 논의를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유럽연합은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것은 한국이며, 한국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유럽연합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대사가 언급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모든 지원이라는 말은 곧 전시에도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답변은 기자의 집요한 전시 가정 시 유럽연합의 지원 가능성 질문 끝에 나온 답이기 때문이다.
— 대사님의 말씀은 1950년 한국전 때와 유사한 범위의 지원을 단행한다는 말씀입니까.(기자가 한국전을 연이어 언급한 이유는 구체적인 지원방향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과거 한국전 당시 전투지원, 의료지원, 물자지원 등 다양한 지원에 유럽연합은 참여했다.)
“당시 전쟁을 주도한 것은 유엔(UN)연합군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이기도 합니다. 즉 유사시 유엔의 결정에 따라 유럽연합은 지원을 진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엔의 상임이사국 중 2개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소속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엔의 비상임이사국 2개국 역시 항상 유럽연합의 소속입니다. 즉 유럽연합은 그 구조상 유엔과 국제법을 따르고 시행해야만 합니다. 항상 이 국제법대로 유럽연합은 움직여 왔습니다.”
유럽연합의 주둔군대 없지만, 대북도발억지는 줄곧 지지하고 있어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순간,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당시 유치과정에서 북한 관련 언급은 없었다. 사진=위키미디어
위 두 답변의 연장선에서 유럽연합의 군사적 스탠스를 마렉 레포프스키(Marek Repovsky) 1등 참사관의 입을 통해 추가한다. 그의 말이다.
“한국과 유럽연합은 국제적인 평화유지의 목적으로 해양훈련을 진행해 왔습니다. 주된 목적은 해적 퇴치이며, 작전명은 아탈란타(Operation Atalanta)입니다. 한국은 그동안 이러한 훈련을 위해 프리깃함(문무대왕함)을 아프리카 해역으로 보내 소말리아 등지에서 호위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 훈련은 8월 16일부터 25일 동안 진행됩니다.”
— 유럽연합과 한국의 군사작전의 성격이 주한미군과 한국의 훈련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이 같고 다른가요. 아시다시피 한국은 미군은 물론 나토(NATO)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 중이며 나토의 궁극적인 목적과도 부합됩니다. 한-EU 간 군사적 협조도 이런 목적에 부합됩니까.
“물론 공유하는 바가 있습니다. 나토와의 작전, 미국과의 작전은 모두 공동의 목적이 있고 규정이 있습니다. 그 공동의 목적이라 함은 대테러, 해적퇴치, 인권 존중 등입니다. 이런 공동의 목적이 있지만, 이 작전은 모두 다른 형태(different manner)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 좋습니다. 그럼 그 유럽연합이 가진 공동의 목적안에 북한 도발 억제(deterrance of N.Korean provocations)도 포함되나요.
“그런 목적을 나토가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그런 목적의 작전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일단 미군의 목적은 이런 목적(대북도발 억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럼 최소한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스탠스는 대북억지력이 포함되었다고 봐도 무방할까요.
“그럼요. 유럽연합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정치적으로는 (대북도발억지를) 지지해 왔습니다. 한국의 주권을 지지하며, 주권이 위협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한반도 사드 배치 지지하냐 묻자, “한국의 결정 존중한다”
대사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서두에 언급했던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관한 것으로 “전임 대사처럼 신임 라이터러 대사도 한반도의 사드 배치를 지지하냐”고 물었다. 대사의 답이다.
“유럽연합은 내부규정상 다른 나라의 내치상황 등에 직접적인 언급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한국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한국이 배치를 하는 데 필요한 과정 등을 한미동맹 간에 논의하여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지 한국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유럽연합의 스탠스입니다.”
라이터러 대사는 이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계속 말을 더듬었다. 질문이 곤란했던 모양이다. 그는 전임자가 말했던 내용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지를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거나가 아닌 중도적인 입장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익명을 요청한 외교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전임 유럽연합 대사가 보통 4년 정도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년여 만에 유럽으로 소환된 것은 타국의 내치 등에 강한 입장 표명 등을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라이터러 대사는 기자의 질문에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월간조선 2017년 9월호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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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비세그라드 그룹 4국 대사 "한반도 통일 위해 사회주의-민주주의 전환 노하우 전수할 것"
⊙ 박근혜 대통령과 시작한 한·비세그라드 그룹 교류, 차기 정권에서도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해
⊙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다르며, 브렉시트 이후 유럽은 더 성장했다
⊙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사회적 스킨십 늘리면, 자연스레 지역적 협의체 구성할 수 있어 …
⊙ 한반도 통일은 전략적 인내 가지고 집중하면, 어느새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다
⊙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가 말하는 사회주의의 교훈
▲좌측부터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밀란 라이치익 슬로바키아 대사. 사진=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의 주한 대사를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추위가 한층 누그러들었던 지난 2월초 폴란드 대사관에서 《월간조선》은 크쉬슈토프 마이카(Krzysztof Majka) 주한 폴란드 대사, 가보르 처버(Gabor Csaba) 헝가리 대사, 토마쉬 후삭(Tomas Husak) 체코 대사, 밀란 라이치악(Milan Lajciak) 슬로바키아 대사, 4명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4명의 대사를 한꺼번에 만나기 위한 사전 인터뷰 조율과정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4개국의 대사는 중앙유럽의 비공식 협의체인 비세그라드 그룹(Visegrad Group)의 회원국이다. 이 국가들은 최근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4명의 대사를 한자리에서 만난 이유다. 폴란드 대사관을 모임의 장소이자 인터뷰의 장소로 정한 이유는 올해 비세그라드 그룹의 의장국(Presidency)을 폴란드가 맡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비세그라드 그룹은 무엇인가. 1991년은 뜻깊은 해였다. 당시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3국은 구소련의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을 마련, 자본주의화하기 시작했다. 이 시작과 함께 앞서 언급한 국가들은 비세그라드 그룹이라는 다국적 협력기구를 형성했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현재는 4개국이 되어 비세그라드 그룹은 비세그라드의 영문 머리글자 ‘V’ 와 회원국의 수인 ‘4’를 붙여 ‘V4’로 불린다.
비세그라드 그룹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들이며, 단기간에 발빠른 경제적 성장을 보이고 있는 국가들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비세그라드 그룹의 협력구상은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로까지 확장되고 있고 그중 한국이 중요하다”는 말을 비세그라드 4국의 주한 대사들을 통해 확인했다. 인터뷰는 기자가 4명의 대사들에게 동시에 질문을 던지면 순서에 관계없이 대사들이 자유롭게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동일한 질문에 각 국가별로 답을 하기도 했고, 앞선 대사의 답에 다른 대사가 첨언을 하기도 했다. V4 대사들과의 일문다답(一問多答)이다.
1335년 비세그라드 지역에서 모여 만든 협력정신 계승한 비세그라드 그룹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가 경청 중이다.사진=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 비세그라드 그룹의 배경과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 “1991년은 국제관계적으로 하나의 획을 긋는 중대한 시점입니다. 이 시기에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가 막을 내렸습니다. 당연히 유럽에도 큰 변화가 생겼고 특히 유럽의 여러 나라가 외교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한마디로 협력 공동체의 탄생을 알린 것이지요. 그중에 하나가 바로 비세그라드 그룹(V4)입니다. 이 협의체 안에는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침 작년(2016)이 우리 비세그라드 그룹의 25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지난 25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비세그라드 그룹은 매우 풍성하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대표적 업적으로는 나토(NATO)와 유럽연합(EU)의 구성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제3국과의 유대관계 형성에도 힘썼습니다. 그 예로 대한민국을 들 수 있습니다. 폴란드가 지금 반 년 정도의 의장국 임기가 남은 시점에서 비세그라드 그룹과 대한민국과의 풍성한 관계 형성을 되돌아보고 더 좋은 관계 구축에 힘쓸 예정입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비세그라드 그룹의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 : “그러시죠. 그럼 이름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왜 비세그라드(Visegrad)인가? 이 비세그라드 이름은 13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 폴란드와 헝가리의 지배를 받던 비세그라드에서 보헤미안 회의가 열렸고 당시 양국은 협력을 하겠다는 협정(agreement)을 체결했죠. 그리고 몇 세기가 지난 1991년 2월 15일,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인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헝가리의 총리인 조세프 안톨(Joszef Antall), 그리고 폴란드의 대통령인 레흐 바웬사(Lech Walesa), 3명의 국가 정상이 헝가리에 있는 비세그라드 성곽마을에 모이게 되었고, 중앙유럽의 비공식 동맹을 결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평화로운 과정을 거쳐 두 개의 국가로 나뉘면서 비세그라드 그룹은 현재의 4개국 협의체로 변모했습니다.”
— 비세그라드 그룹이 협의체라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을 협력하기로 한 것인가요.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 “비세그라드 그룹은 궁극적으로 중앙유럽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있습니다. 중앙유럽의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가 유럽연합과 나토의 회원국으로 활동함과 더불어 4개국이 공유하고 있는 중앙유럽만이 가지고 있는 공유 관심사를 논의하자는 것이죠. 중앙유럽이 뭉침으로써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 : 유엔개발계획·UNDP가 매년 각 국가의 교육수준, 1인당 소득, 평균수명을 토대로 평가하는 국가의 삶 지수)를 끌어올리고 경제적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비세그라드 4국을 하나의 국가로 가정할 경우 비세그라드 그룹은 유럽에서는 다섯 번째이고 세계에서는 열두 번째 경제강국입니다. 그만큼 비세그라드 그룹의 협력은 중요한 것입니다.”
2014년, 한·비세그라드 그룹 협력 체결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중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가 경청 중이다. 사진=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 말씀대로 중앙유럽의 연대가 중요해 보이네요. 그렇다면 비세그라드 그룹이 왜 한국과의 관계 형성을 고려하시는 것인지요. 비세그라드 그룹에 한국이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요.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 : “사실 이 비세그라드 그룹의 확장성은 유럽의 지역적 그룹으로도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가령 노르딕 및 발틱 지역, 서부 발칸 지역 혹은 동부 지역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시아가 포함되는 거죠. 이런 확장적 유대 포맷을 ‘V4 플러스(Plus)’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포맷 중 비세그라드 그룹 플러스 코리아(한국)가 있는 겁니다. 이 비세그라드 그룹 플러스 한국은 그동안 저희 비세그라드 그룹이 추진해 온 ‘비세그라드 플러스’ 포맷 중 가장 다이내믹하고 성공적인 제3국과의 협력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파트너십이 성공적인 이유는 인권, 민주주의, 시장경제, 굿 거버너스(양호통치)와 같은 다양한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세그라드 플러스 한국의 협력은 2014년 7월 17일 비세그라드 4국과 한국의 외교부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의 수도)에서 체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12월에는 한국-비세그라드 정상회담이 프라하에서 있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지속적인 고위급 논의를 추진해 왔고, 2016년에는 이와 관련된 협력 행사도 추진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작년 6월에는 제3차 한-비세그라드 그룹 정무차관보 회의를 진행했고, 9월에는 한-비세그라드 그룹 국방차관 회의도 진행했습니다. 이외에도 작년 11월 서울에서 비세그라드 그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 경험 및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세미나를 10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기도 했습니다.”
— 앞서 언급하신 협력 이외에 문화적 교류 등에 대한 협력은 없었나요.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 : “물론 있었습니다. 한-비세그라드 4개국의 청년 전문가들과의 문화교류 캠프를 한국의 외교부가 맡아 지난 7월에 추진한 바 있습니다. 이 캠프를 통해서 역량 있는 젊은 리더들이 문화와 창조 산업분야에 대한 아이디어와 한국의 현장 경험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 외에도 중요한 협력 사례로는 지식 공유 프로그램(Knowledge Sharing Programme, KSP)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비세그라드 그룹과 한국의 석학들이 모여 시의성이 있는 연구 프로젝트를 정하고 함께 지식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당시 주제로 삼은 대표적 프로젝트로는 ‘이노베이티브 이코노미(Innovative Economy)’ 가 있습니다.
이 지식공유 프로그램은 작년 7월 바르샤바에서 출범식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12월 초 중간진행 과정 발표 세미나(Interim Reporting Seminar)를 서울에서 열었습니다. 이 1년짜리 연구 프로그램이 어느덧 중반부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한 최종보고서는 아마도 올해 3월 무렵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상호간 연구개발(R&D) 분야의 무궁한 잠재력을 확인한 계기였다고 생각하며 향후 더 좋은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25년간 비세그라드 4국은 유럽의 중심에서 탄탄한 인프라를 토대로 산업 발전의 초석을 다져 왔습니다.
특히 우리의 비즈니스는 높은 무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4국 모두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도 이런 경제적 부흥 및 우수한 결실을 맺어 오고 있습니다. 최근 비세그라드 4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수가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사람 대 사람(People to people)의 교류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를 토대로 향후 비세그라드 그룹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교육 분야의 교류까지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바르토크(Bartok), 쇼팽, 드보르자크(Dvorak), 수혼(Suchon, 슬로바키아 작곡가)은 한국의 안익태만큼이나 알려진 음악가들입니다. 이들처럼 한국의 젊은이들이 비세그라드 4국으로 유학을 온다면, 한국으로 지식을 가져갈 뿐만 아니라 중앙유럽의 정신을 배워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유럽연합과 나토의 회원국인 비세그라드 그룹, 유럽 내 공군력 없는 곳 지원해 줘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가 말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기자
— 그런데 비세그라드 그룹이 이런 구상을 이어 나가려면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그룹이 직면한 문제는 없나요.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 : “사실 최근 비세그라드 그룹도 유럽연합처럼 당면한 문제가 몇 개 있습니다. 현재 4국은 유럽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적 안정성과 안보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비세그라드 군대(battle group)는 유럽연합이 내세우고 있는 공동의 안보와 국방정책에 보다 더 확실한 참여를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세그라드의 군대는 3000명 이상의 병력이 투입되었으며, 그들의 배치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결정을 따르게 됩니다.”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 “나토는 비세그라드 4국이 모두 가입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안보적 조직입니다. 현재 잠재적인 위험이 내재된 국제적 안보상황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대서양(trans-atlantic)의 국가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하에 나토가 추진 중인 공중통제임무(Air Policing mission)에 비세그라드 4국은 적극적으로 참여, 전투기 부대를 (공중전력이 없는) 발틱의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 배치한 상태입니다. 더 나아가 발틱 지역에 나토의 지역적 방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비세그라드 4국은 유사시 투입이 가능한 600개의 부대를 발틱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2017년부터 이곳에 배치된 군인들은 3개월 주기로 교체됩니다.”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 “유럽연합에서 동부 지역은 비세그라드 그룹이 눈여겨보는 지역이자 이웃 중 하나입니다. 이 지역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조지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젠은 2009년부터 유럽연합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런 협력관계를 통해서 더 민주적인 사회건설과 더 투명한 정무적 시스템이 안착하도록 하여 유럽연합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그들의 경제적 발전도 도모할 수 있게 됩니다. 비세그라드 그룹은 이러한 발전을 돕고자 기금을 조성하여 이 국가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개혁을 돕고 있습니다.”
매년 98억원 모아 온 비세그라드 그룹 기금(IVF) 만들어 참여국들의 발전에 사용해
— 사실 협의체를 운영하려면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요. 비세그라드 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재정적 기반은 무엇인가요.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 “비세그라드 그룹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도구(tool)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국제비세그라드펀드(International Visegrad Fund, IVF)입니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공동의 프로젝트와 개별적 프로젝트 모두를 추진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비세그라드 그룹 내 4개국 간의 사회적 이해증진 위주의 프로젝트에 우선적으로 사용되며, 나아가 그 외 국가들인 서부 발칸 지역 및 동부 지역 파트너 국가들과의 교류 확산에 사용됩니다.
기금은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 있으며, 연간 800만 유로(EUR, 한화로 98억원)를 모금하고 있습니다. 국제비세그라드기금은 지역적 협력 및 개발에 투자되어 중앙유럽을 안정화하는 데 쓰일 뿐 아니라, 나아가 전(全) 유럽을 위해 사용됩니다. 우리는 이 기금에 한국이 중요한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비세그라드 그룹 간의 관계가 돈독해질 것입니다.
비세그라드 그룹이 원칙으로 여기는 것 중 하나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국가들이 늘어날수록 더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비세그라드 그룹 간의 협력은 향후 긍정적인 결과들을 불러올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비세그라드 그룹은 동질감을 가지고 함께 일하며, 더 강해질 것이고, 이는 곧 유럽과 유럽을 넘어서까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의 협의체는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효율과 효과(Effectiveness and Efficiency)’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현재 한-비세그라드 그룹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 및 추진 중이고,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의 기회를 늘려 나갈 것이며 상호간 좋은 결과들을 불러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작한 협력, 한국의 차기 정권에서는 더 잘될 것”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가 이야기 중이다. 사진= 김동연 기자
— 유럽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정세도 궁금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한 이번 비세그라드 그룹과 한국의 교류가 차기 정권에서도 얼마큼의 추진력을 가지고 확대될 것인지에 대해서 4개국이 고려하고 있는지요. 한국의 차기 정권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하신 부분이 있으신지요.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 “한국과 비세그라드 4국이 결성한 이 협력기조와 포맷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 주는 매우 좋은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단 이 협력에 참여하고 있는 5개국(한국 포함) 모두는 민주국가이며, 그 민주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의 통치제도라는 것은 정기적인 국민의 투표를 통해 정권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런 과정은 당연한 것이자, 우리 모든 참여국이 인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협력적 관계가 달라진다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에는 그 협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체코에서 이 한국과 비세그라드 그룹의 첫 번째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중요한 회의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이후 국제적 협력관계의 판을 바꾸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며 그 외에 여러 국가들과 맺은 FTA(자유무역협정)를 재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국의 기조는 과거 다국가 참여적 통합적 협력방식이라기보다는 단독적이고 개인 위주라고 보입니다. 비세그라드의 4국은 이런 신고립주의적 양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또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탈퇴 파장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이런 마당에 비세그라드 그룹은 더 많은 국가의 참여를 유도하는 비세그라드 플러스 정책(Visegrad Plus Policy)을 흔들림없이 추진할 것입니까.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 : “비세그라드 4국은 유럽연합 내 결성된 비공식 그룹(Informal group)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직접적인 무역적 관계형성은 저희 비세그라드 그룹도 유럽연합의 규정과 방식을 따른다는 겁니다. 무역적 정책의 모든 권한과 결정은 유럽연합에 있는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비세그라드 그룹은 국제적인 경제적 고부가가치 기회를 포착해 관계 형성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비세그라드 4국은 기본적으로 글로벌 교역(trade)의 지지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일부에서 강화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립주의 정책을 펼친다면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 협력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전세계 전략적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렉시트의 경우는 (미국과) 조금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던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영국 사람들의 참여로 내린 결정입니다. (영국) 사람들이 영국과 유럽 모두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대안이자, 영국이 다시 경제, 정치, 사회적 통제를 자립적으로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영국 국민들이 그런 결정에 투표한 것을 조금은 후회스런 결정이라고 보지만, 유럽연합 내부적으로는 유럽연합의 모든 절차가 간소화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전달 및 참여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비세그라드 그룹도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유럽연합의) 개방성과 협력의 방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비세그라드 그룹은 보호주의적이거나 고립주의적 정책은 지향하지 않습니다. 비세그라드는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지향합니다. 이는 특정 국가를 위한 국수주의적 견해 혹은 감정적 결정으로 인해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비세그라드 플러스 정책은 앞으로도 더 많은 파트너 국가들과 논의하여 상호간 이득을 안겨 주는 협력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비세그라드 그룹,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사회적 스킨십 늘리면, 지역 협의체 구상할 수 있다”
— 비세그라드는 사실상 유럽연합 내에 결성된 일종의 지역적 협의체의 개척자(pioneer)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 협의체의 개척자로서 아직까지 변변한 동북아의 지역적 협의체가 없는 한국, 일본, 중국에 어떤 조언을 해 주시겠습니까. 동북아에도 비세그라드 그룹과 같은 협의체가 결성될 수 있을까요.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 “의미있는 협력이 여러 국가 간에 형성이 되려면 역사적으로 갈라 놓고 있는 문제를 재봉합할 수 있는 화해의 과정이 필연적입니다. 특히 동북아에서는 공식적이고 정부 주도하에 정치 지도자모두가 공감할 만한 (화해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런 정부 주도적인 화해보다는 아마도 사회 간의 교류를 통한 화해 유도가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사회적 화해가 먼저 왕성하게 형성된다면 동북아의 정치적 긴장을 지금보다 훨씬 더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곧 공식적인 발의(official initiatives)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조언이라면, 젊은층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접촉과 교류를 늘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교류를 통해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키면 미래에는 더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한국에서는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일종의 당근인 북한과의 대화 및 대북지원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일종의 채찍인 더 강한 압박의 대북제재가 필요하다는 두 개의 주장이 있습니다. 이 당근과 채찍 중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어떤 대북정책을 한국이 고려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 : “우리 비세그라드 그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실제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무너트릴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비세그라드는 북한의 정책을 강력하게 규탄해 왔습니다. 우리 비세그라드 4국은 한국 정부가 여러 동맹국들과 추진 중인 평화적이고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지지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게 할 평화적인 방식의 통일도 지지합니다.
현재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제재는 북한 핵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압박과 유화적인 대화 모두 북한을 다루는 데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합니다만, 때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비세그라드 그룹은 한반도 통일 위해 노하우 전수해 줄 것이다”
— 비세그라드 그룹의 4국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국가들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민주주의), 두 개 모두를 경험해 본 국가들입니다. 그 경험에서 깨달은 부분 중 한국과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어떤 조언을 해 주시겠습니까.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 : 분명 우리 비세그라드가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분석은 한국이 통일을 하면서 향후 맞이할 위기에 도움이 될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비세그라드 그룹은 한국을 위해서 언제든지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의 파트너들과 공유한 우리의 세미나 등을 통해서 더 많은 교류와 방식을 공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 “우리 비세그라드가 드리는 조언이라면 통일을 위해서는 전략적 인내를 가지고 매우 작고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말고 집중해야 합니다. 물론 드러난 도전과제들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명확히 알아두어야 할 점은 (통일은) 소리 없이 아무런 경고 없이 금세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화하려면 복잡한 과정 그리고 혁신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혁신에는 분명 사회적인 고통도 따릅니다. 과거 우리 비세그라드 4국이 자본주의로 변화하기 위해서 내세웠던 3가지 방향성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자본주의 체계 기반 성립을 위한 정치적 변화
둘째, 개인소유를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의 복구와 경제적 개혁
셋째, 국가 행정 개혁을 포함한 정부 기능의 재구성
이 세 가지 개혁은 모두가 동일하게 중요하며, 상호의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입법을 통한 추진근거 마련과 새로운 제도 마련도 수반됩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새로운 개혁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오며, 사회적인 용기도 필요해집니다. 우리 비세그라드 4국은 위 과정을 거치면서 겪었던 독특한 경험을 한국과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밀란 라이치악 슬로바키아 대사 : “한반도의 통일은 비세그라드 그룹이 겪었던 경험과는 그 형태와 단계가 일부분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4국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된 다면적(multifaceted) 사실은 정치적, 경제적 기반은 물론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이 생각보다 상당히 빨랐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문제가 발생된 곳은 사람들의 생각(mindset)을 변화시키는 부분이었습니다. 사회자본의 양상이 달라지고, 경제적 기회를 포착하도록 허용하는 정부의 시행령과 입법부가 제정한 관련 법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가진 행동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한 세대를 지나고 또 다음 세대로 지나야 할 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왼쪽부터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대사들이 모두 손을 모았다. 사진=김동연 기자
— 그럼 비세그라드 4국이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입니까.
토마쉬 후삭 체코 대사 : “체코는 지난 40년 사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다시 자본주의로 뒤바뀌는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첫 번째 변화(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는 놀라움(shocking) 그 자체였죠. 두 번째 변화(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는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각각의 변화는 그마다의 독특함이 있죠. 비세그라드 4국이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운이 좋았던 시기로 당시 국외 여건이 이를 받쳐 주는 구조였습니다. 변화하는 과정은 종합적이고, 비용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추진함과 동시에 국민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유지해 개개인이 원하는 바와 그들의 관점을 알아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은 다소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를 반영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크쉬슈토프 마이카 폴란드 대사 : “제가 보기에 바뀌어 가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고,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보르 처버 헝가리 대사 : “모든 변화에는 변화를 겪고 있는 국가의 국내적 상황과 국제적 상황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거기에 맞는 묘수들이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국민들과 함께 그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세그라드 그룹은 유럽에서 다섯 번째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이자, 독일 다음으로 무역량이 많은 국가들이다. 비세그라드 4국은 국제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비세그라드 그룹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들은 현재 폴란드 159개, 헝가리 207개, 체코 170개, 슬로바키아 375개 등 총 911개가 진출해 있다. 그만큼 한국의 입장에서도 비세그라드 그룹은 유럽의 중요한 경제적 교두보다.⊙
<월간조선 3월호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