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 2021- 12/ 12.01 北·中이 없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 아십니까 - 12월 29일 2022년 ‘민주주의 동맹’ 더 중요해진다
危機의 韓半島 2021- 12/
12.01 北·中이 없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 아십니까
韓 ‘통일’ ‘재건’ 돕던 조직, 북·중·러 반대로 1973년 해체
이제 남은 건 유엔군사령부… 정권 끝까지 北 소원 들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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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정전(停戰) 이후 유엔 총회만 열리면 한반도 관련 2개 안건이 단골로 올라왔다.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언커크) 해체와 유엔군사령부 해체 건이었다.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던 북한을 대신해 소련 등이 나서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다.
‘언커크’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직후인 1950년 10월 유엔 총회 결의로 만들어졌다. 당시 미국 주도의 유엔군은 승리를 자신했다. 그래서 전후(戰後) 한국 ‘통일’과 ‘부흥’을 지원할 유엔 조직이 필요하다고 봤다. 38선 이북의 민주 선거와 경제 재건을 돕겠다는 것이다. 언커크는 유엔이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와 함께 유엔군 주둔의 명분도 됐다. 북한과 중국·소련에는 눈엣가시였다.
탈북 외교관은 “정전 후 북한은 언커크와 유엔사를 없애는 데 모든 외교력을 집중했다”고 했다. 한국과 유엔의 고리를 끊고, 유엔군으로 들어온 미군을 쫓아내는 게 북한의 절대 목표였기 때문이다. 미군 철수는 중국과 소련 이익에도 들어맞았다. 1970년대 초 미·중이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언커크는 해체, 유엔사는 존치 쪽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미국은 중무장한 북한군 앞에서 유엔사를 해체할 수 없었고, 중국도 갑작스러운 한반도 군사 공백이 불러올 일본 재무장 등을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권의 외교전과 냉전 이완이 맞물리면서 결국 언커크는 1973년 12월 유엔 결의로 해체됐다. 북 유엔 외교의 최대 성과였다.
3년 전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의 남북 철도 점검을 불허하자 북 외무상이 “미국 지휘에만 복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유엔사는 냉전 시대 산물”이라고 했고, 러시아 대사는 “북이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유엔사 역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엔사에 대해 “족보가 없다”고 한 우리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북·중·러가 유엔사를 문제 삼는 건 유엔사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을 포함한 6·25 참전국 군대를 다시 부를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보리 결의가 없어도 파병이 가능하다.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 기지를 이용할 권한도 있다. 48년 전 언커크처럼 북한은 유엔사를 꼭 없애고 싶을 것이다.
김일성은 정전 직후부터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한국을 빼고 미국과 만나야 주한미군 철수 같은 안보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미국은 1990년대 초까지 ‘한국 동의’ 없이는 북한을 만나지도 않았다. 미·북 정상회담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 꿈을 이뤄준 것이 문재인 정부였다. 평소 ‘자주’를 강조해놓고 북핵을 없애는 문제에선 이상하게 ‘중재자’ 운운하며 미·북 둘이 만나라고 했다. 2018년 트럼프·김정은의 첫 정상회담 결과 없어진 건 북핵이 아니라 한·미 연합 훈련이었다.
북 외교의 70년 소원 중 이제 남은 건 유엔사 해체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 선언’이 이뤄지면 북은 유엔사를 없애라고 요구할 명분을 쥐게 된다. 이미 김여정은 종전 선언이 “좋은 생각”이라며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적대시 철회의 핵심이 유엔사와 미군을 한국에서 내쫓는 것이다. 언커크가 없어질 때는 데탕트(긴장 완화)라는 국제 환경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뭐가 있나. 문 정부가 주선한 미·북 정상 쇼는 빛바랜 사진만 남겼고 미·중 충돌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북은 지금 순간에도 핵·미사일 전력을 증강하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종전 선언’ 추진을 위해 서훈 안보실장을 곧 중국에 보낼 것이라고 한다. 정권 문 닫는 날까지 북한 소원 들어주는 데 여념이 없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12월 02일 종전선언, 비핵화 진전돼야 의미 있다

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北 핵무기 폐기하면 평화협정”
2007년 부시 ‘종전’논의 촉발
盧·김정은 “3~4자 종전선언”
文은 대화 불쏘시개 활용 의도
평화협정과 종전 분리 어려워
대북 정책 실패 만회용 더 위험
지지부진해 보이던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이 급물살을 타는 듯한 분위기다.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한 외교부 1차관은 종전선언 추진에 있어 한·미 간 이견이 없고 언제·어떻게 하는지 방법론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앞서 외교부 장관도 “한·미 간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했고, 주미대사는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 인사들이 낙관론을 남발하는 데 비해 미국 측에서 나오는 얘기는 별로 없다. 지난 10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 말에 “각각의 조치를 위한 정확한 순서·시기·조건에 관해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부정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도대체 문 정부는 왜 이렇게 종전선언에 집착할까?
종전선언의 기원은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 후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를 폐기하면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다.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이를 검증하는 조건으로 정전 상태에 있는 6·25전쟁을 최종적으로 끝내는 평화협정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 구상이 앞뒤 거두절미하고 ‘종전선언’으로 명명돼 그해 10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들어가고, 10여 년이 지난 2018년 판문점 선언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모호하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두 약속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맞는다면 북한은 종전선언에 관심을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오직 제재 해제에 매달렸고, 다른 제안들은 안중에 없었다. 지난 9월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3번째로 종전선언을 제안한 데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였다. 적극적인 호응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말이다.
현 정부는 종전선언이 정치적·상징적 조치로 정전체제를 포함한 법적·제도적 체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하고, 이것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전선언을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불쏘시개 정도로 쓰자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란 기대는 희망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외려 북한은 이미 얻은 것은 주머니에 넣고 다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외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미국이 염려하는 부분이고 ‘조건의 차이’일 것이다.
원래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교전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을 맺으면 제1조에 들어간다. 굳이 분리해서 하게 되면 평화협정이 언제 될지 기약도 없이 정치적인 종전 상태와 법적인 정전 체제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상황이 된다.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종식된 마당에 한·미 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며, 유엔사는 또 왜 존속해야 하는지 등 문제 제기가 북한·중국과 심지어 국내에서 끊임없이 이어질 게 분명하다. 우리끼리 의견이 갈리고 대립하고 적전 분열이 일어나면서 미국과의 동맹도 약화할 것이다.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한 비핵화에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고,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미·일 등 관련국들과 북한 간 관계 정상화가 논의되는 시점 즉, 비핵화의 입구가 아닌 출구에서 다뤄져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 5년 내내 남북문제에 매달렸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문 정부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만회해 보려고 종전선언 추진에 집착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 정부의 열정에 등을 돌리지 못해 어느 정도 맞춰 줄지, 북한이 내년도 한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이벤트에 호응해줄지 미지수지만, 지금은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차기 정부에 차분히 공을 넘겨줄 때다.
문화일보
12월 02일 文정부의 ‘北 대변인’ 노릇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왜 임기 말에 법적 효력도 없는, 허울뿐인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걸까?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악화일로다. 북한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미국을 주적으로 명시하고 강력한 국방력으로 조국통일을 앞당긴다’며 핵전쟁 전략인 ‘통일대전’ 완성을 위해 핵잠수함, 전술핵, 극초음속무기 등 개발을 공언한 마당이다. 중국의 강군몽(强軍夢) 위협은 최고조다. 미·중 간 극한 패권경쟁으로 ‘전쟁 없이 상대방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킨다’는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이 진행 중이다.
임기 말 이런 급박한 현안에 몰두해도 모자랄 판에 이 정부는 종전선언에 몰두하고 있다. 이 와중에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중국 외교수장들과 종전선언 협력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2일부터 중국을 방문 중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국립외교원장, 통일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등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국책연구기관 수장들이 총출동해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 주최 미·북 관계 전망 포럼에 참석해 종전선언 홍보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을 놓고 관련 당사국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까지 주위 환경이 부정적이다.
그런데 홍현익 외교원장 발언을 통해 이 정부의 종전선언 인식과 추진 방식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홍 원장은 북핵 협상 교착과 관련해 노골적으로 북한을 변호하고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 그는 “종전선언이 안 되면 내년 4∼10월 북한 도발 등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며 ‘한미연합훈련 중지’ 또는 ‘2부 반격훈련 생략’을 주장했는데, 이는 북한의 종전선언 선결 조건과 일치한다. 문 정부는 북한의 남침전략을 도외시한 대북·대외정책을 강행한 결과 안보 무능으로 정부 수립 이래 최악의 국제적 고립에 직면하고 있다. 한반도 불안과 갈등의 근본 원인은, 북한이 6·25전쟁 이후 협상 중에도 끊임없이 핵을 개발하고, 남침전쟁 준비를 중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위기의식 없이 김정은의 선의에 기댄 문 정부의 평화 구상에는 안보의 생명인 대적관(對敵觀)이 실종됐다. 그 바람에 적과 아군이 뒤바뀌어 버렸고, 급기야 홍 원장처럼 북핵 협상 교착 책임을 두고 미국에 삿대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종전선언에 대해 국제사회는 냉담하다. 이 정부는 북한의 제재 해제 수용으로 미국 등 국제사회와 마찰을 빚고 있다.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은 도박”이라고 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북핵 인정과 제재 완화의 대변인쯤으로 삼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역이용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큰 틀에서 북핵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문 정부 평화 구상은 과거 군사정권이 북한의 위협을 국내정치적으로 악용한 것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 원칙을 거스르고 광야에서 홀로 종전선언을 외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종전선언인가?
문화일보
12월 03일 ‘종전’ 망상 접고 동맹훈련 강화할 때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학
제53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미국이 한국의 여론에 많은 신경을 쓴 회의였다는 게 특징이다. 미국은 2일 서울에서 열린 회의 직전에 발표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에서 주한미군을 2만8500명 그대로 유지하고, 공격용 헬기 부대와 포병대 본부도 순환 배치에서 상시 배치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을 세우기로 한 것도 한국 내의 ‘독자 핵무장론’을 의식한 조치다. 미국은 핵과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 능력을 총동원해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도 이례적으로 재확인했다. 탈미친중적 노선을 걷는 문재인 정부를 다잡고, 독자 핵무장으로 기우는 한국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북한 핵·미사일 능력과 위협의 고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작전계획은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해서 봐야 한다. 미국은 기존 작계 5027이나 5015로는 북핵 위협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한국이 선제적으로 작계 업그레이드를 요구해야 하지만 문 정부에서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물샐틈없는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미일동맹과 엇나가는 한미동맹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번 공동성명은 유엔사의 정전협정 준수와 이행에 관한 역할을 특별히 강조해 자칫 종전선언이 불러올 수 있는 북한의 유엔사 해체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북한이 무력화(無力化)하려고 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호 의지도 이번 성명에서 재확인됐다.
문 정부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국가안보 문제를 임기 말에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미 국방장관회의가 열리던 날 문 정부는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중국에 보내 양제츠 위원과 종전선언과 관련해 중국과 협의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한·미 양국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는 중국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것이자, 미국의 대중 봉쇄 전략에 구멍을 내기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를 강력하게 희망해 왔다. 문 정부는 미국의 이 요청도 종전선언 카드를 내세워 거부했다. 그 결과 영관급 장교들이 한·미 연합훈련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장군으로 진급해 지휘관이 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 문 정부의 한미동맹 약화와 국가안보 파괴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더 심각하다.
동맹은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국가 간의 안보 협력이다. 위협 인식이 엇나가면 동맹은 약화하거나 결국 깨지고 만다. 미국의 GPR는 중국의 군사적 침공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과 중국 끌어들이기는 미국의 전략과 정면 배치된다. 영국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히틀러와 뮌헨조약을 체결하고 그 종잇조각을 흔들면서 평화가 왔다고 했지만, 다음 해 제2차 대전이 터졌다. 북한과 종전선언이라는 ‘종잇조각’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국가안보는 스스로 군사력을 키우고 동맹을 강화할 때 지켜진다.
문화일보
12.03 미·중 고래 싸움에 등 터지지 않으려면
“G7 반열 올라” 자찬하면서 신장 인권탄압 규탄은 외면
원칙·가치 일관성 지켜야 외교 공간 찾고 존중받아
얼마 전 만난 외교관은 베이징 올림픽을 화제로 얘기하다 “손기정이 겹쳐 보인다”고 했다. 최근 미국 등 서구권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을 명분으로 ‘외교적 보이콧’을 거론하고 있다. 이 외교관은 “지금 위구르족 상황은 손기정이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식민 치하 우리와 다를 바 없지 않냐”고 했다. 억압받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이 종전 선언 같은 쇼를 위해 이를 모르는 척하고 최고위급 축하 사절을 보내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물론 보이콧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도 아니고 방역 등 다른 고려 사항도 있기 때문에 당장 뭘 결정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 다만 미·중 대결의 파도가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이 시점에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기본 원칙과 지향점을 근본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AFP 연합뉴스
지금 이슈가 되는 인권은 정치나 양자 관계의 하부 개념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마땅히 앞장서서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인권위 행사에서 “항상 인권을 위해 눈 뜨고 있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전 세계 43국이 유엔에서 중국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을 비난하는데 한국은 불참했다. 성명에 적시된 ‘잔혹하고 비인간적 고문, 강제 불임, 성적 및 젠더 기반 폭력, 아동 강제 분리’에 눈을 감은 것과 다름없다.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은 별개다. 청와대는 우리가 G7에 버금가는 위상에 올라섰다고 자찬하지만, 정작 G7이 한목소리로 인권 수호를 외칠 때 우리는 높아진 국격을 보여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이 부끄러운 모습은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
우리는 대외 관계에서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대의 원칙과 가치를 쉽게 허무는 모습을 너무 자주 되풀이해왔다. 이는 ‘유연함’이나 ‘실용’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고 최강대국들과 핵무장한 적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 탓만 하기도 어렵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 같은 위협으로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억누르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가 좋으면 변명이라도 되겠지만, 지난 정부가 천안문 망루에 오르고 현 정부가 북한·중국의 눈치를 보며 굴종한 결과는 뭔가. 핵 시계는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고, 북·중은 우리를 존중하기는커녕 만만한 호구 취급 하고 있다.
지금 모든 국제 정치는 미·중의 대결 구도로 수렴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오커스(AUKUS), 쿼드, 민주주의 정상 회의에 맞서 중국은 러시아·파키스탄 등이 포함된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이란까지 끌어들이며 반미(反美) 대오를 다지고 있다. 미·중이 벌이는 전쟁은 미래 국제 정치 질서와 첨단 과학기술 패권을 놓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대결이다. 단기간에 멈추지 않을 소용돌이 속에서 전세계는 끊임없이 쉽지 않은 선택 순간을 맞닥뜨릴 것이다.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고민은 그중 극히 일부다. 요소수 사태 같은 나비 효과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이처럼 풍랑이 거센 때일수록 확고한 원칙과 지향점을 내세워 일관성 있게 운신해야 우리의 공간을 찾을 수 있다. 원칙과 대의를 무시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하고 불신만 초래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모 대선 후보의 특보는 “한국은 미·중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새우일 때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가벼운 처신이 돌고래 때는 눈에 확 띈다. 또한 돌고래도 대왕고래 사이에 끼어 있으면 목숨이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
12월 03일 북핵·대만 포괄할 新작계와 한미동맹 업그레이드 당위
서울에서 2일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임에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 반발 등을 이유로 미적대던 한·미 연합 작전계획 ‘업그레이드’에 착수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양국 국방부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변화된 안보 환경 등)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기획지침(SPG)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SPG는 새로운 작계 수립이나 기존 작계의 대폭 수정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이다. 따라서 양국은 앞으로 1∼2년 동안 안보 위협을 새롭게 규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첨단무기 동원 등도 포함된 새 작계를 마련한다.
기존의 작계 5027(전면전 및 반격작전 대비) 및 작계 5015(국지전 등 대비)로는 북한 핵무기 및 다른 신무기 등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양국은 이번에 북핵을 작계 수립에 포함시키는 것은 물론, 한반도를 넘어 대만해협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방 협력도 포괄하는 안보 전략에 합의했다. SCM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처음 명시된 것은, 동맹이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회의에서 직접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미측의 요청으로 포함됐다고 한다. 대만 문제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군사 합의에 적시된 것은 외교 회담에서 언급된 것과 무게가 다르다. 대만 유사시 동맹 차원의 작전에 들어갈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역내 안정에 핵심적”이라며 3국 국방장관 회담 등 작년에 없던 내용을 넣은 것도 의미가 크다. 한미동맹은 1953년 상호방위조약에서 출발한다. 주한미군과 연합사령부는 이를 실현하는 장치이며, 작계는 행동 지침이다. 새 작계를 통해 한미동맹을 21세기 안보 환경에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문 정부는 대북 환상에서 탈피, 새 작계의 초석을 올바로 놓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12월 03일 동맹 갈라 치는 文 사람들

김석 정치부 차장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외교력을 종전선언에 올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유럽순방 당시 종전선언 지지 확보에 주력했고 동행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정부 인사들도 종전선언 지지를 요청했다. 심지어 지난달 한국을 국빈방문한 카를로스 알바라도 코스타리카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선언 26항에도 종전선언 내용이 들어가 있다. 중미 국가인 코스타리카가 한국의 종전선언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하니 이는 우리 측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문 정부의 종전선언 올인 외교를 일견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수차례 남북 정상의 만남과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 개최 등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기 마무리에 들어갔음에도 정부·가계 부채 폭탄에 부동산·일자리 등 민생과 관련해 제대로 된 업적이 하나도 없는 문 정부로서는 남북 관계 개선만이라도 업적으로 남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문 정부의 종전선언 올인 외교는 북핵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핵 고도화와 미사일 개발에 몰두 중인 북한 감싸기에 주력한다는 의구심을 국내외에 심어주고 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지난달 30일 워싱턴DC에서 “종전선언은 미국이 북한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 “북한 체제는 정상 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은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와 했던 비핵화 약속을 수차례 깨뜨리고 핵을 개발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행보는 감싸면서 북한이 만병통치약으로 쓰는 ‘미국 탓’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9월 23일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현 상태가 계속되면 북한의 미사일 능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미국 정부에 구체적 대북 인센티브를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 정부 인사들의 이런 행보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매개로 노리는 한·미 동맹 갈라치기에 일조하고 있다.
당장 미국 전문가들은 홍 원장 발언에 “걱정되는 부분은 한반도 안보 문제가 미국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것” “제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국제법 이행을 위한 것” 등으로 반박하며 외부에 갈등으로 비치는 일이 벌어졌다. 국무부도 한국 정부의 제재 완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제재 원칙과 이행 강조를 통해 반박한다. 한·미 동맹에 파열음을 내는 문 정부와 달리 한·미 양국 국민은 북한을 주적으로 느끼고 한·미 동맹을 통해 북한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펜앤드마이크 여론조사 응답자 중 가장 많은 43.1%가 북한을 주적으로 꼽았다. 반면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미국(77.2%)을 꼽았다. 미국민들도 북한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로널드레이건재단 여론조사에서 미국민 응답자 중 가장 많은 78%가 북한을 적국으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에서 북한의 한국 공격 시 미군이 방어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는 미국민 응답자는 63%였다. 문 정부는 양국 국민이 굳건하길 바라는 한·미 동맹을 흔들어대는 행보를 멈춰야 한다.
문화일보
12월 07일 美 ‘中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발표…文도 보조 맞춰야
미국이 내년 2월 4일부터 20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동계올림픽을 50여 일 앞두고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 선언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6일 “신장에서의 반인도적 범죄와 기타 인권 유린을 감안해 선수단 이외에 어떤 외교적 공식적 대표단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미 의회에서는 전면 보이콧론까지 제기됐는데,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 대표단 불참이라는 부분 보이콧을 선택한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110개국 정상을 초청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사흘 앞두고 이런 입장을 공식화한 것은, 자유 진영 국가들의 결속을 다지려는 행보로 비친다. 실제 영국, 프랑스, 호주 등의 동조 움직임도 뚜렷하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엔 미국과 한국, 일본 등 40여 개국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규탄하며 불참한 바 있는데, 미·중 신냉전 시대에 자유 진영이 중국의 반인권에 맞서 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권은 인류 보편 가치인 만큼 한국도 외면해선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앞세워 ‘제2의 평창 쇼’를 추진해 왔지만, 미국은 여전히 냉담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북한 제재로 인해 김정은의 베이징행도 어려워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답방은 화상 정상회의로 대체됐다. 이제 문 대통령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확인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라는 공유된 가치’에 기반해 동맹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자유 진영 정상으론 홀로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그런 외교를 반복해선 안 된다. 더욱이 문 대통령은 지난 여름 도쿄올림픽 때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다.
문화일보
12.08 러시아군 정예 10만 병력 국경에 집결한 푸틴, 도대체 뭘 노리기에?
오랫동안 잊히다시피 했던 ‘수퍼파워’ 러시아가 돌아오고 있다. 사실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에서 아무래도 소외되고 관심권 밖으로 멀어진 게 사실이다. 1991년 12월 25일 미하엘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에서 물러나면서 해체된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지난 30년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옛소련 수퍼 파워 지위 복귀 노려
미‧중 경쟁 틈새 파고들기 총력전
에너지난 속 석유‧천연가스 풍부
세계 2위 군사력 존재감 여전해
가짜뉴스‧선전 등 모든 수단 동원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서방에 충격
러시아 국제사회 발언권 확대 요구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무산 목표

▲러시아군의 밀 Mi-24 공격 헬기가 11월 12일 러시아 중서부 카잔 고등 전차 지휘관 학교에서 열린 '부서뜨릴 수 없는 형재애'라는 이름의 군사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TASS=연합뉴스
고난의 3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자국의 인권‧민주주의와 우크라이나 등에 대한 개입을 문제삼는 미국‧유럽에 최근 들어 맹렬히 대항하고 있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그동안 개발‧축적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앞세워서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압축돼 온 글로벌 패권경쟁 구도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해 세력균형의 추를 이동하려고 시도한다.
고난의 3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자국의 인권‧민주주의와 우크라이나 등에 대한 개입을 문제삼는 미국‧유럽에 최근 들어 맹렬히 대항하고 있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그동안 개발‧축적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앞세워서다. 푸틴 대통령은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압축돼 온 글로벌 패권경쟁 구도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해 세력균형의 추를 이동하려고 시도한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 대면 정상회닼에 이어 12월 7일 화상 정상회담을 연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AFP=연합뉴스
미‧중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전열 정비가 시급한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푸틴을 만났을 때 “핵무기 가진 어퍼볼타(1인당 GDP 792달러로 가난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옛이름)가 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우주로켓까지 갖췄지만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러시아를 행해 중국편을 들지 말고 실리를 찾으라고 충고한 것이다. 하지만 푸틴은 이 발언을 듣고 행동을 바꾸기는커녕 미국과 서유럽을 상대로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러시아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글로벌 유가 인상이다. 올해 들어 서유럽에선 바람과 일조량 부족으로 신재생 에너지 생산이 급감하고, 네덜란드 가스전이 지진 유발 문제로 가동을 줄이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원유는 두바이산을 기준으로 배럴당 가격이 지난 1월 초 49.81달러였던 것이 8월 초 8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23일 전략 비축유 5000만 배럴의 방출을 명령하고, 주요 소비국인 한국‧중국‧일본‧인도‧영국 등도 뒤따르면서 유가는 일시 안정을 되찾아 7일 68.91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 최대인 47조8050억㎥의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을 자랑한다. 2020년 미 중앙정보국(CIA)의 팩트북 기준 1999억㎥의 천연가스를 수출해 세계 1위다. 미국이 1495억㎥, 카타르가 1437㎥, 노르웨이가 1129억㎥, 호주가 1022억㎥로 그 다음을 잇는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러시아에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천연가스의 국제가격도 마찬가지로 폭등했다. 미국산을 기준으로 1월 4일 MMBtu(열량 단위)당 2.581달러에서 8월 초 6달러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10월 이후 6달러를 넘나들다 진정돼 7일 3.758달러를 기록했다. 천연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수출량에서 세계 1위인 러시아로선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지난 9월 자국에서 나토와 연합군사훈련을 벌였다. 러시아는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항의했고,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레드라인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11월 들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10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배치했고 내년 초에는 그 규모가 17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련에서 분리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같은 뿌리지만 경쟁 관계다. 20세기 공산 혁명 이후 숱한 피해를 보면서 감정이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로 민주화에 성공한 우크라이나 국민이 EU와 나토 가입을 요구하면서 국경을 맞댄 러시아가 불만을 나타냈다. 러시아는 2014년 오랫동안 우크라이나가 영유해온 크림반도를 병합했으며, 이로 인해 서방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아왔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일으킨 반란인 '돈바스 전쟁'이 계속되다 민스크 협정으로 현재는 휴전 중이다.

▲러시아군과 발라루스군이 지난 9월 11일 러시아의 니즈니 노브고로드 지역에서 양국 연합군사훈련인 자파드 2021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렇게 간신히 평화를 지켜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에 러시아 대군이 집결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러시아가 40개의 '전장 전술단(BTG)'을 국경에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미 육군의 군사 교리‧훈련을 맡은 육군제병연합센터(USACAC) 산하 해외군사연구실(FMSO)에 따르면 BTG는 자동차화 보병대대나 기갑대대에전투공병·방공·정찰·통신·정보·의무·보급 부대 등을 결합해 육군 작전의 대부분을 독자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편성한 부대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오랫동안 혁신을 해왔으며, 새로운 무기체계의 도입과 기존 장비의 현대화‧개량에 주력해왔다. 장비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부대 편성도 현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재편한 러시아군이 국경에 대거 배치된 것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 진영 전체에 불안과 긴장을 높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사실 오랫동안 군사비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지난 4월 발표에 따르면 러시아의 2020년 군사비 지출이 617억 달러로 세계 4위다. 국내총생산(GDP)의 4%를 넘는다. 미국의 7780억 달러, 중국의 2520억 달러, 인도의 729억 달러보다는 작지만, 영국의 592억 달러, 독일의 528억 달러, 일본의 491억 달러, 한국의 457억 달러보다는 많다.
IISS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육군·해군·항공군과 함께 전략미사일군·공수군까지 5군 체제에 90만 병력을 유지한다. 군사 매체인 글로벌 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군은 미군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의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오랫동안 칼을 벼렸으면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러시아가 그런 단계일 수 있다.
여기에 2000년부터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유지하는 벨라루스가 국경에서 중동 이주민 밀어내기를 시도했다. 벨라루스에서 국경을 맞댄 EU 국가인 폴란드 등으로 가는 게 합법이라는 가짜 뉴스가 중동에 돌았고, 이어 벨라루스가 대량의 ‘사냥비자’를 발급했으며, 이 나라 국영항공사인 벨에어는 중동 직항편을 늘려 승객을 실어 날랐다. 벨라루스에 도착한 중동 이주민들이 폴란드 국경으로 몰려가 통과를 요구하면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주민‧난민 수용은 서유럽에서 내부 분열을 유발하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파동은 벨라루스가 서유럽을 압박하기 위해 벌인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평가됐다. 그 배후에 오랫동안 하이브리드 전술을 연구하고 은밀하게 실천해온 러시아가 있다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비정규전‧사이버전에 더해 가짜뉴스‧선전전‧외교전‧소송전에 외국 선거개입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도구를 동원해 상대에게 타격을 안기고 난처하게 만들어 필요한 것을 얻는 전쟁의 형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이런 압박을 통해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국제사회에서 발언권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결국 총 한 방 쏘지 않으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요구를 관철하고 의지를 실현하는 정치 전쟁인 셈이다.
그간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국에만 쏠린 것에 불만이 많았던 푸틴으로선 이를 통해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려는 계산도 있어 보인다. ‘국제 질서’ 측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과 인정받으려는 의도다.

▲러시아군 차량이 지난 4월 크린반도에서 군사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했으며 이 때문에 서유럽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는 7일(현지시간) 푸틴과 바이든이 미·러 화상 정상회담을 연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지도자가 어떤 대화와 합의를 하더라도 국제사회는 당분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원과 전력과 경험의 러시아를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다. 미국은 물론 유럽도 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12월 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연례 양국 정상회담을 위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고 있다.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과 노회한 외교술을 앞세워 미국과 서방을 압박하고 있다. 하루 일정의 인도 방문을 마친 푸틴은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이자 겨울 올림픽 개최지인 소치로 이동해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했다. AP=연합뉴스
자원·군사력·패권경험을 두루 갖춘 러시아가 이제 새로운 주연배우의 하나로서 국제사회라는 무대에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미·중 경쟁에 이어 러시아의 굴기라는 만만찮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
중앙일보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12.08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종전선언 집착 말고 대세 읽어야
미·중 사이에서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
판단 그르치면 국익·국가 이미지 손상
미국 정부가 내년 2월로 예정된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을 50여 일 앞두고 외교적 보이콧 방침을 공식 결정했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올림픽 선수단은 파견하되 개·폐막식 등 관련 행사에 국가 지도자 등 외교 사절을 일절 참석시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보이콧의 이유로 “신장에서 (일어나는) 중국의 지속적인 종족 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기타 인권 유린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인권 외교를 표방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올림픽 보이콧 방침은 오래전부터 예견돼 오던 것이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인 선수단 불참 등 전면적 보이콧보다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택한 것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남은 수순은 동맹국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당장 민주주의 화상 정상회의나 다음 주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심도 있게 거론될 것이다.
한국도 예외없이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됐다. 결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현명하고 실용적인 대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시대의 흐름인지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우선 보이콧 명분으로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영국·캐나다·호주 등이 보이콧 동참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유럽의회는 외교적 보이콧 촉구 결의안을 이미 채택한 상태다. 선진국 진입을 공인받은 한국의 국격과 위상을 감안해야 한다. 설령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그 결정을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인권을 능가하는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자칫 판단을 그르치면 국익 손상과 국가 이미지 실추 등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전례가 있다. 2015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열병식에 자유민주국가의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손을 흔드는 장면이 전 세계로 송출됐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무릅쓴 참석 결정이었지만 이듬해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사드 보복’이란 유례없는 경제제재였다.
정부 입장에서 외교적 보이콧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불러내 남북 정상회담, 나아가 종전선언으로까지 이어간다는 구상은 암초에 부닥치게 됐다. 정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종전선언 구상에 모든 외교력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억지하기 위한 외교·경제·안보 구도의 재편이 대세인 국제사회의 기류와는 동떨어진 행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검토를 계기로 한반도 문제를 한두 번의 정상회담이나 외교 이벤트로 단박에 풀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위시풀 싱킹)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12.09 유엔사 해체와 주한 미군 철수, 北은 말할 자격 없다
유엔사 임무는 北격퇴, 평화 회복… 미군 주둔은 한미방위조약 결실
해체·철수와 종전선언 연계라니 주제넘은 내정간섭 “그 입 다물라”
최근 북한은 종전 선언과 관련하여 “유엔사는 해체해야 하고, 주한 미군도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나왔다. 대한민국을 협박하면서 지시하듯 하는 모양새다. 수년간 한미연합사와 유엔사에서 근무했던 예비역 군인으로서 필자는 북한의 이러한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북한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군사 당국이 지난 8월 10일 하반기 연합훈련 사전연습에 돌입했다. 복수의 군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미는 이날부터 오는 13일까지 한반도의 전시상황을 가정한 본훈련의 사전연습 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CMST)을 진행한다. 사진은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2021.8.10 /연합뉴스
유엔군사령부는 1950년 6·25전쟁 때문에 창설된 것이다. 유엔이 북한의 남침(南侵)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무력 공격 격퇴와 그 지역의 국제 평화 및 안전 회복을 위해서” 창설된 게 유엔사다. 6·25 당시 북의 무력 공격은 격퇴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국제 평화와 안전이 회복되었는가는 관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지금 북한은 1953년 정전 당시보다 군 병력이 110만명으로 오히려 강화되었다. 한국이 갖지 못한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등 미사일도 다양한 종류를 1000여 기 보유하고 있다. 그런 북한은 수시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2010년 연평도에 북한이 포격 도발을 감행한 모습을 우리 국민은 TV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이래도 한반도 지역에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있는가.
더욱이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었는지를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북한인가? 엄밀히 말해 북의 남침으로 평화와 안전이 훼손되고 지금도 위협을 느끼는 대한민국과 유엔사만이 판단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주둔하는 주한 미군 철수 문제는 더더욱 북한이 이야기할 자격도 명분도 없다. 1945년 일본 패망으로 잔존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1949년 모두 철수하였다. 전쟁 억지력을 지닌 미군이 철수하자 북한은 6·25 남침을 감행했다. 미군은 당시 북한과 중공군의 불법적 침략을 격퇴하고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 다시 한반도에 들어왔다. 참혹한 3년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다시 대한민국에서 철수할 것을 우려한 이승만 대통령이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1953년 10월 1일 체결한 한미방위조약을 근거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게 된 것이다. 전적으로 북한의 불법적 무력 침공에 의해 지금의 한미 동맹이 시작됐고 그 증표 중 하나가 주한 미군이다.
그 후 1979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방한하여 주한 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한 적이 있다. 주한 미군 철수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강한 반대와 미국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실패로 끝났다. 주한 미군 주둔·철수 문제는 북한 의사와 관계없는, 방위조약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미국이 논의해 결정할 문제다.
종전 선언을 하려면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북한 주장은 주제넘은 짓이다. 우리의 주권에 도전하는 내정간섭이다. 오히려 북한은 유엔사 창설과 주한 미군 주둔의 원인 제공자다. 정말 북한이 한반도 평화와 안전 회복에 뜻이 있다면 유엔사 해체와 미군 철수가 아니라 비핵화 의지부터 증명해 보여야 한다.
우리는 더는 유엔사 해체나 주한 미군 철수를 종전 선언과 연계하려는 북한 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 발을 딛고 살면서 조국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한 북한 간섭을 묵인하거나, 나아가 당연시하는 국내 일부 인사의 주장도 묵인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안전은 정파(政派)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국민의 안전 문제를 책임지려는 공당과 정치인이라면 북한에 당당히 이야기해야 한다. “그 입 다물라”고 말이다.
조선일보 임호영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12월 13일 바이든式 대북제재 시작…文도 종전선언 미몽 깨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의 강제 노동과 인권유린을 이유로 북한 중앙검찰소와 사회안전상 출신의 리영길 국방상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신장(新疆) 인권유린 등을 지적하며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한 데 이어 민주주의정상회의 폐막일이자 세계인권의 날인 10일 북한 및 중국, 미얀마 등에 인권 관련 제재를 한 것은 바이든 외교의 기조를 보여준다. 더구나 임기 말이던 2016년 김정은 등에 대해 인권 제재를 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첫해에 이 같은 카드를 꺼낸 것은 앞으로 인권을 중심에 놓겠다는 선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4월 대북정책 재검토를 완료했지만, 그간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지속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결의 위반이라는 점을 환기시켰을 뿐 추가 제재를 꺼내진 않았다. 작은 도발을 묵인한 것은 대화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던 이유다. 그러나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골몰하며 대화에 불응하자 인권 관련 제재를 시작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조치는 북한 인권 문제에 눈감은 채 종전선언을 외골수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고로 비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13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구상 등을 설명하며 지지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선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문 정부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3년 연속 빠졌고, 지난해 9월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도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요구한 대북전단금지법은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고, 북한 관련 가짜뉴스를 막는다며 통일부에 2억 원 예산까지 배정했다. 북·중 인권에 눈감은 채 종전선언 미몽에 끝까지 집착하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12월 14일 동맹 균열 초래하는 종전선언 집착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6·25전쟁 종전선언 집착은 그칠 줄을 모른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 제16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한·코스타리카 정상회담 등에서 종전선언 지지를 당부한 데 이어, 지난 13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 구상 등을 설명하며 지원을 촉구했다. 작금 외교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도 종전선언 외교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북한의 강제노동과 인권유린을 이유로 북한 중앙검찰소와 사회안전상 출신의 리영길 국방상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중국의 신장(新疆) 위구르족 인권탄압을 집단살해(genocide)라고 규정하며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단행한 데 이은 인권 제재의 일환이다. 바야흐로 미국의 대중·대북 인권 외교 기조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이처럼 한·미 양국의 서로 다른 대북 행보는 북한 비핵화 이슈에 대한 인식과 해법상의 차이에 기인한다. 미국은 북한 핵무장을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제규범 위반의 중대한 안보 사안으로 간주하고 한미동맹 및 다자외교의 틀을 활용하려 한다. 또, 의미 있는 비핵화 진전이 있기까지는 유엔의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그에 비해 문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견지하며 종전선언을 비핵화 대화의 견인수단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중단’에 대해선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비핵화 입구론’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의 상투적인 ‘먹튀’ 전술에 비춰 종전선언이 이뤄진다고 해서 비핵화의 가시적 진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북한이 비핵화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되돌리기도 어렵다. 종전선언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선언이라지만, 일단 채택되면 ‘전쟁이 끝났다’는 섣부른 평화 무드 확산이 유엔사는 물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반드시 핵 신고, 검증 로드맵 합의, 실천 등 의미 있는 비핵화 과정과 연계돼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대화, 교류협력과 대북 지원을 모두 해 봤다. 하지만 허사였다. 유화적인 방법으론 북한의 핵무장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게 판명 난 셈이다. 그래서 2006년부터 여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제재를 시행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요국이 독자 제재를 발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정 북한 비핵화와 인권이 숨 쉬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원한다면, 지금은 압박·제재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이는 상황 논리는 물론 동맹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사실, 그동안 북한이 대북 제재 완화에 총력을 기울인 것은 역으로 대북 제재의 효과성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 제재와 굳건한 한·미 공조는 북한의 태도 변화나 생산적 대화 재개를 앞당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 종전선언 미망(迷妄)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뿐 아니라, 한미동맹과 대북 제재 공조 전선에 균열을 일으키고, 나아가 비핵화마저 지연시키는 패착일 뿐이다. 차제에 문 정부에는 대북정책에 인류 보편 가치이자 헌법적 명령인 ‘기본적 인권’을 도입할 것, 특히 임기 내에 북한인권재단 출범과 대북전단금지법 폐기를 간곡히 주문한다.
문화일보
12월 14일 文, 美 ‘외교적 보이콧’ 어깃장 놓고 中 대변인 자처하나
호주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베이징올림픽은 내년 2월 4일 개막되는 만큼 앞으로 50여 일간 외교적으로 검토할 시간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미국 주도의 보이콧에 불참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은 미국과 동맹을 외교 안보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나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도 중국의 건설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미국의 동맹이지만, 경제적 측면과 남북관계 측면에서 중국이 중요하기 때문에 동맹이 제기하는 중국 인권 유린 문제 등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변명이다.
호주는 코로나19 중국 기원설 조사를 제기하고 홍콩 보안법 사태 때 중국을 비판해 경제 제재를 당한 반중(反中) 최전선국이다. 그런 호주가 코로나19 이후 첫 국빈으로 문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대중(對中) 공동 대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호주 캔버라 의사당에서 중국 대변인처럼 옹호 발언으로 일관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행위와 다름없다. 오죽하면 스콧 모리슨 총리가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유와 안정을 한반도에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겠는가. 인권을 무시하는 중국의 강압 외교에 굴복하지 말라는 충고다. “역내에서 주권을 훼손당하는 경우 파트너십을 형성해 역내 국가의 주권을 방어해야 한다”고도 했다. 쿼드나 오커스 동맹에 한국 참여를 촉구한 셈이다.
문 대통령이 중국에 절절매며 종전선언에 매달리니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김정은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했는데 미국으로부터 받은 게 없다”며 북한 대변인 같은 행세를 하는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이 ‘검증 가능한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CVIA)’를 말할 때 종전선언 지지를 촉구했다. 임기 말 문 대통령의 호주 방문은 동맹에 어깃장만 놓는 친중 본색 선언장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문이 “K9 자주포 수출 계약 때문”이라고 했다. 반중 전선 동참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중정책 문제로 6·25 참전 혈맹국 호주와 얼굴 붉힐 것을 예상했다면 국방장관을 보냈어야 옳다.
문화일보 사설
12.17 김정은 집권 10주년날... 유엔, 17년 연속 北인권결의안 채택
文 정부 “한반도 정세 고려” 3년 연속 불참
北 “인간 쓰레기 탈북자들의 허위날조로
결의안 짜깁기, 북한에는 인권침해 없어”

유엔이 16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본회의를 열고, 북한 인권 문제를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지난 2005년 이래 17년 연속이다.
결의안이 통과된 시각은 한반도에선 17일 오전으로, 이날은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10주기이자 아들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10주년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영국, 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 58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지난 2019년부터 3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불참했다. 한국은 남북미 정상회담과 종전 선언 등을 추진하면서 “한반도 정세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공동제안국에서 빠지고, 컨센서스(전원 합의)에만 반대를 표명하지 않아 묵시적 동의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날 유엔총회에 결의안이 상정되자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토론에 나서 “북한인권결의안은 유럽연합과 미국 등 적대세력이 추진한 이중 잣대에 따른 적대 정책이다. 미국과 유럽 내 인권 문제나 잘 하라”며 “인간쓰레기 탈북자들이 날조한 거짓된 허구정보를 적국이 짜깁기한 것으로, 북한에는 인권 침해가 없다”고 주장했다.

올해 북한인권결의안은 예년과 같이 북한의 고문과 성폭력과 자의적 구금, 정치범 강제수용소, 조직적 납치, 송환된 탈북자 처우, 종교·표현·집회의 자유 제약 등을 들어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고 적시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가장 책임있는 자들을 겨냥한 추가 제재’를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가장 책임있는 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한 표현으로, 2014년부터 8년 연속 결의안에 포함됐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인도주의적 위기 우려가 추가됐다. 결의안은 “코로나19와 같은 보건 위기와 자연 재해에 대한 제한적 대처 능력 때문에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의 위태로운 인도주의적 상황에 매우 깊은 우려를 표한다”면서, 북한에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 등 관련 기구와 협력해 코로나19 백신을 적시에 공급·배포할 수 있도록 협력하라”고 요구했다.
조선일보 뉴욕=정시행 특파원
12.21 미국서 '한국 핵무장론' 번지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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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가 꼬이면서 한국의 핵무장을 원하는 국내 여론이 7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해외의 시각은 어떨까. 2016년 가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NFU)' 원칙 선언을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 NFU란 "핵 공격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거나 이에 대해 보복할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원칙이다. 적국이 미국이나 동맹국을 공격하더라도 재래식 무기만 쓸 경우 핵으로 반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러자 외교·안보 참모 대부분이 그를 만류했다. 동맹국이 미국의 핵우산을 믿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애슈턴 카터 국방부 장관은 "한국과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가 거세자 오바마는 결국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접는다.
이런 NFU가 5년 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났다. 오바마 정권 때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올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NFU를 재추진한 것이다. 이로써 다음 달 나올 예정인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에 이 원칙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런 분위기 탓에 한국의 핵무장을 예상하는 미국 내 전문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 외교·안보전문지 포린어페어스가 지난 14일 공개한 전문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0명 중 7명이 10년 내 핵무장 가능성이 큰 나라로 한국을 지목, 이란(20명) ·일본(8명)에 이어 세 번째로 꼽혔다. 이뿐 아니라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독려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온다. 지난 10월 초 미 다트머스대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두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한·미 동맹 약화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카터 전 장관을 비롯, 많은 미 전문가 입에서 한국의 핵무장 이야기가 나오는 건 왜일까. 이는 북한 비핵화가 멀어진 상황에서 미국의 NFU 추진 등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핵무장으로 귀결될 걸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NFU가 원칙으로 굳어지면 동맹국에 대한 핵우산 공약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영국·프랑스·일본·호주 등 미 동맹국들이 NFU를 막기 위해 맹렬히 로비한 것도 이 탓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뛴 흔적은 안 보인다.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 대한 위협이 커질 텐데 말이다. 오죽하면 미 동아시아 전문가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이 "(한국은) 90%의 외교적 에너지를 종전선언에 회의적인 바이든 정부를 설득하는 데 쓴다"며 "한국은 핵 억지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겠는가(중앙일보 12월 17일자).
이렇듯 바다 건너에선 한국의 핵무장론이 고개를 드는데도 국내에선 별다른 움직임도, 목소리도 없다는 사실은 유감이다. 남북 교류에 목을 맨 현 정부가 핵무장 논의를 본격화할 리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대선후보들이라면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검토해 볼 만하지 않은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핵확산금지조약(NPT) 10조에는 “모든 가입국은 이 조약과 관련된 특별한 사태가 자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 탈퇴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은 '특별한 사태'에 해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당랑재후(螳螂在後).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는 자신을 잡으려는 참새가 뒤에 있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정작 자신에게 덮치는 위험은 간과함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한국이 딱 이 모양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핵 선제 불사용을 원칙으로 삼으면 우리에게 닥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망 없는 종전선언에 대한 집착은 하루빨리 거두고 자체 핵무장이든, 핵미사일 배치든 알맹이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중앙일보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2.27 “한국 군사력 많이 뒤처져 있다… 종전선언, 뭘 얻겠다는 건가”
전·현 주한미군사령관, 文정부에 잇단 쓴소리
전시작전권 이양 놓고 우려 - “미사일방어시스템 배치가 우선”
한미연합훈련 축소 비판도 - “美전투기 함께 훈련한게 언제냐”
종전선언 두고 이견 드러내 - “선언해도 북한의 위협 변화 없어”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한미연합사 제공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25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이양받기에 “솔직히 많이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종전선언을 하면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오늘날 북한은 분명히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초 폴 러캐머라 현 사령관도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대부분 계획이 처음 그대로 가진 않는다. 수립된 계획을 조정하며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전작권 전환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해석을 낳은 적 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빈센트 브룩스 등 다른 전직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최근 잇따라 종전선언이나 한·미 훈련과 관련된 ‘작심 발언’을 내놓았다. 북한이 핵보유 의지를 공식화하고 한국과 주한미군을 겨냥한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무기들을 줄줄이 선보이는데도 한국 정부가 ‘희망적 사고’에 빠져 종전선언 등에 집착하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전략타격능력, 미사일 방어체계 미흡”
2018년 11월부터 지난 7월까지 주한미군을 지휘했던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어떤 사람들은 손쉬운 방법을 원하거나 두 나라가 합의한 것의 기준을 낮추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위해 한국군이 충족해야 할 조건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문 대통령 임기 내 전환이란 공약을 추진하면서, 이런 조건의 변경을 시도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전작권 전환의 조건 중 하나로 “한국이 전략 타격능력을 획득하고 한국형 통합 공중미사일방어 체계를 개발해 배치해야 한다”며 “이것은 솔직히 많이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독자적으로 막아낼 능력이 없는 한국군에 전시 지휘를 맡기기 어렵다는 취지로 보인다. 브룩스 전 사령관도 지난 7월 미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통합 항공미사일방어시스템과 지휘통제시스템 현대화 같은 ‘핫 이슈’가 포퓰리즘적 민족주의 정치에 취약할 수 있다”면서 ‘미사일 방어’를 한·미 동맹의 주요 이슈로 거론한 적 있다.
“종전선언 하든 안 하든 북한 위협은 그대로”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서도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이를 성급히 할 경우 “전쟁이 끝났다면 유엔사가 더 이상 필요 없지 않은가?”란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비핵화에는 한 발짝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 북한은 분명히 핵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북핵의 근본적 위협에 전혀 변화가 없는데 유엔사 해체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종전선언을 굳이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주한미군을 지휘한 스캐퍼로티 전 사령관도 지난 10월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종전선언을 하든 안 하든 북한의 위협은 그대로”라고 말한 적 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의 책임은 대한민국을, 국민을 보호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제임스 서먼 전 사령관도 종전선언과 관련, “단지 정치적 승리를 얻고자 서둘러선 안 된다”고 했다. 남북 관계에서 레거시(유산)를 남기려는 문재인 정부의 ‘과속’을 경고한 것이다.
“북핵 위협 증대에 맞춰 연합훈련 더해야”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은 VOA 인터뷰에서 “묻고 싶다. 미국 항공모함 타격단이 한국 영해나 한반도 인근에 온 것을 보거나 들은 게 언제가 마지막인가? 미국의 5세대 전투기들이 한국 영공에서 훈련한 걸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냐”고 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축소했던 한·미 연합훈련 재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현직 시절에도 ‘컴퓨터 게임’화 되는 연합훈련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해왔다. “평시에 계속해서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지난 5월 13일 한미동맹재단 환송행사)는 것이다.
올해 8월 열린 하반기 연합훈련도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지휘소 연습(CPX)으로 진행됐고, 실제 병력을 운용해야 하는 사단급(해군은 함대급, 공군은 비행단급) 이하 부대 참가는 최소화됐다. 육해공군과 해병대에서 합참에 파견된 인원은 통상 훈련 때의 12분의 1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스캐퍼로티 전 사령관도 지난달 말 열린 ‘한미동맹 미래평화 콘퍼런스’에서 “최근 한·미 연합훈련 위상이 우려된다”며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증대되는 데 맞춰 더 엄격한 기준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버웰 벨 전 사령관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맹의 군사 준비태세를 북한과의 잠재적이고도 단기적인 관계 개선에 사용하는 정치적 도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도 최근 안보포럼에서 “연합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수술하는 법은 알지만 7~8년 동안 수술을 전혀 해보지 못한 외과 의사와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12.28 대통령 임기와 반비례하는 집착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종전선언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시작으로는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한 발언이다. 김정일의 표현법은 14년 뒤인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반복해서 내놓고 있는 발언과 대단히 유사하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주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어느새 정부 입장이 ‘입구론’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가 이해하는 한 종전선언은 협상의 시작 단계에서 할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비핵화가 일정한 수준, 즉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선행조치들이 이뤄졌을 때 상응하는 조치로 할 일이었다. 이와 병행하거나 앞뒤에 배치할 수 있는 일로 북·미 연락사무소 상호 개설, 대북제재 완화 등의 조치들이 있다. 그게 노무현 정부 때 비핵화 로드맵을 그린 전략가들의 구상이었고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도 유지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로드맵의 중간 단계에 있어야 할 종전선언이 대화의 ‘마중물’로 앞당겨져 버린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말한 ‘시기, 조건, 순서’를 둘러싼 한ㆍ미 간 이견도 종전선언을 입구에서 행할 것이냐, 중간 이정표로 세울 것이냐, 아니면 역사상 대부분의 평화협정이 그랬던 것처럼 최종 출구에 배치할 것이냐의 차이일 것이다.
또 하나 의아스러운 점은 과도할 정도의 집착이다. 그 배경엔 2018년의 추억과 미련이 있을 것이다. 그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리던 싱가포르 현지에 날아가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1라운드에서 합의만 하면 종전선언을 위한 남·북·미 3자 회담으로 2라운드를 이어간다는 복안이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정부는 내외신 기자를 위한 프레스센터까지 현지에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북ㆍ미는 회담 전날까지도 공동성명 문안에 합의하지 못해 심야 협상을 벌였다. '오후 6시 버전'의 초안에 퇴짜를 놓고 트럼프가 ‘간단한 버전'의 성명문을 선택하는 과정이 당시 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회고록에 생생하게 나온다. 강경파 볼턴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근본 원인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북한이 완강히 거부한 데 있다. 그래서 모습을 드러낸 게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이 빠진 싱가포르 공동성명이다. 문 대통령이 그리던 싱가포르 종전선언의 꿈은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싱가포르 회담 한 달 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다시 평양을 방문한다. 그런데 이때 종전선언이 먼저라는 북한의 주장에 막혀 비핵화 논의는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폼페이오가 김정은과 만나는 것조차 북한은 거부했다. 미국은 의미 있는 비핵화 진전 없이 종전선언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흔히들 2019년 하노이 노딜로 북ㆍ미 간의 짧은 봄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렬의 싹은 이미 싱가포르에서부터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한국의 집념이다. 그 강도는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날짜 수와 반비례 곡선을 그린다. 로드맵의 중간에 있어야 할 종전선언이 어느 새 입구로 앞당겨진 것도 그 집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문 대통령 임기 내에 레거시(업적)를 남겨야 한다는 집착이다.
문 대통령은 “남ㆍ북ㆍ미ㆍ중 모두가 종전선언을 지지한다”고 반복한다. 그런데도 아직 일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러면서 “구속력 없는 정치적ㆍ상징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종전선언의 의미를 격하하기도 한다. 집착과 격하는 자가당착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구속력 없는’ 일에 외교력을 소진해도 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예영준 중앙일보 논설위원
12월 29일 2022년 ‘민주주의 동맹’ 더 중요해진다

이미숙 논설위원
올해 선진국 진입해 위상 제고
文 탈레반적 反기업 정책 불구
첨단 반도체 바이오 5G 약진
英에선 ‘홀로 빛나는 나라’ 평
美 깐부 쇼어링 추진은 大기회
親中 벗고 민주 진영에 서야
문재인 정부의 ‘위드 코로나’ 정책 오판으로 마스크에 갇힌 채 우울하게 연말을 보내고 있지만, 올해는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저력을 재확인한 해다. 문 정부의 주먹구구식 방역정책으로 코로나 대응에 실패해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지만, 한국에 대한 각국의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내부 갈등에 시달리느라 세계 기류를 제대로 읽지 못했을 뿐이다.
올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공식 확인했다. 이 기구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독일 유력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이 지난 18일 특집 기사에서 “한국은 망치와 같은 위력의 소프트 파워를 지닌 창의력 강국”이라고 평한 것도 같은 기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부인 김소연 씨는 이 기사를 SNS에 소개하면서 “요즘 독일에서 한국 것이라고 하면 통한다”고 했다.
짐 오닐 전 영국 재무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11월 30일 자)에서 “지난 수십 년간 어떤 나라도 한국과 같은 경제적 성취를 이뤄내지 못했다”면서 “한국은 이제 홀로 빛나는 나라가 됐다”고 썼다.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에서 재무장관 퇴직 후 골드만삭스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하는 그는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경제 성장을 통해 국민 삶을 향상시키려면 한국에 비결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야말로 신흥국의 모델이라는 분석이다.
브릭스 전문가로도 유명한 영국의 전직 장관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평가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올해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주최국인 영국에서 G7을 G10으로 확대해 명칭을 민주주의 10개국(D10) 정상회의로 개칭하고 여기에 한국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이 나온 것은 이 같은 내부적 평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지난 6월 콘월 G7회의 옵서버국으로 초대된 것은 이런 기류 덕분인데 문 대통령은 사진 촬영에 열중했을 뿐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개최한 민주주의정상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은 엉뚱하게 가짜 뉴스 문제를 역설했을 뿐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패권국 부상을 저지하기 위한 정책을 자유 진영 국가들과 촘촘히 짜고 있고 11월 중간선거가 있는 내년엔 더 강력해질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동맹 기반의 ‘깐부 쇼어링(Friend Shoring)’을 새로운 무역정책 기반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미국 기업 리쇼어링 정책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고 시간이 들기 때문에 동맹 및 자유 진영의 기업을 깐부 삼아 글로벌 생산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중 신냉전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분리가 우리에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멜빈 레플러 명예교수가 미·중 신냉전 관련 NPR 인터뷰에서 “러시아, 인도, 일본 등에 포위된 중국은 성장에 한계가 있으나 한국은 경쟁력을 갖춘 성공적인 국가”라고 평한 것도 이런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중국에 절절매며 탈레반보다 더 교조적으로 탈원전을 추진하고 반기업 정책에 골몰했지만, 삼성전자·현대차·SK·LG 등 초일류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와 바이오, 5세대(G) 이동통신, 전기차 배터리 등에 과감히 투자하며 세계적 초격차를 이뤄냈다. 오랜 기간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2022년은 깐부 쇼어링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동맹국의 연대가 외교·안보, 무역 전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미·중 신냉전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은 동맹과 자유 진영에 기반한 외교·무역 전략을 펴야 한다. 국제 정세의 흐름과 판세를 잘못 읽고 나라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 국정을 난파 위기로 몰고 간 문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동맹 및 민주주의 연대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차기 대통령은 우선, 쿼드 및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아울러 2010년 아시아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데 이어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한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유치해야 한다. 문 정부 때 느슨해진 동맹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재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