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安保 2021-11/ 11월 04일 ‘어게인 평창2018’ 헛꿈 버릴 때다 - 11.30 “중국의 공격 대비”...美, 한국에 공격헬기·포병본부 상시 주둔
무너진 安保 2021-11/
11월 04일 ‘어게인 평창2018’ 헛꿈 버릴 때다

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문-김정은-트럼프 리얼리티쇼
3년 뒤 현주소는 北核 더 증강
억지로 北 긍정하기 神功 수준
무리한 남북 이벤트 폐해 심각
천안함·연평도 공격과도 연관
다음 정부에 부담 떠넘길 위험
북한이 한 해에 두 번씩이나 핵실험을 하고 수십 발의 미사일을 쏘아대다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내세워 갑자기 평화 공세로 돌아선 이후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3번이나 만났다. 문재인 정부는 김 위원장의 이른바 ‘비핵화 결단’을 금과옥조로 삼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리얼리티쇼 정상회담과 자신의 천부적인 딜메이커 능력으로 금방이라도 북한 비핵화를 이룰 것처럼 자신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와 함께 모든 쇼가 끝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
북한의 비핵화는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오히려 증강됐다. 북한은 우리 미사일 방어망을 회피해서 공격할 수 있는 KN-23을 포함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3종 세트를 완성했고,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개발했으며, 열차에서 발사하는 단거리 미사일을 보여주는 한편, 성공하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극초음속 미사일과 미니 SLBM의 시험발사까지 마쳤다. 북한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중에도 숨겨 놓은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영변 핵시설도 재가동함으로써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북한의 핵 활동이 ‘전속력으로 진행(full-steam ahead)’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북한판 무기박람회 격인 국방발전전람회 기념 연설에서 ‘조선반도에 조성된 불안정한 정세 아래서 군사력을 부단히 키우는 것은 혁명의 시대적 요구이자 지상책무’라며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적(主敵)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등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궤변도 했다. 그가 ‘최대의 주적은 미국’이라고 말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문 정부는 북한이 아무리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신공을 보인다. 북한이 우리나 미국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대화를 시작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한다. 북한이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자 애매한 ‘깊은 유감’만 표시했다. 우리 외교장관은 미국더러 북한에 제공할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라고 하고, 중국이 공세적이라는 표현에 발끈했다. 통일장관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정지시키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등으로 동계올림픽 참가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남북이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에 가자고 제안했다. 이 눈물 나는 노력의 목표는 하나, 베이징올림픽 계기 남북 정상회담 이벤트의 실현인 것으로 보인다.
정권 임기 말 무리한 남북 정상회담이 가져오는 폐단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이던 2007년 10·4 정상회담이 잘 보여준다. 당시 임기가 몇 달도 남지 않았던 노 정부는 북한과 엄청난 규모의 경제협력사업에 합의했다.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개성공단 2단계 개발 건설 착수,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추진,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 관광 위한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등 공수표를 마구 남발한 것이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만 잔뜩 떠안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빚 독촉이 결국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전대미문의 도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노이 대첩’에서 쓴맛을 본 후 핵·미사일 능력 확장에 매진하는 북한은 제재 해제 확답을 듣기 전에는 협상에 나올 의사가 없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는 열려 있지만 북한을 협상장에 모셔오기 위해 먼저 제재를 풀 생각은 없다. 미국과 매사 부딪치는 중국이 중재에 적극 나설 리도 없다. 모든 여건이 남북관계 진전에 불리한 상황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국방을 굳건히 하고 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면서 차기 정부에 순조롭게 공을 넘기는 것이다. 섣불리 ‘어게인 평창2018’을 추진했다간 다음 정부와 국민에게 무거운 짐만 지울 게 뻔하다.
문화일보
11월 05일 ‘종전 쇼’ 안보 자살의 입구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북한 김정은은 올 1월 8차 당대회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략핵뿐 아니라 전술핵 능력을 획기적으로 확장해 핵무력 건설을 최종 상태로 완성하겠다고 공표했다. 전략핵은 사용하기 힘든 무기인 데 비해, 전술핵은 유사시 실제 사용 가능한 무기로 평가받는다. 북한이 전술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기간 집중 개발한 신형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에 전술핵을 탑재하기 위해서다.
북핵 전문가인 함형필 외교부 국방협력관은 최근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게재한 ‘북한의 핵전략 변화 고찰 : 전술핵 개발의 전략적 함의’ 논문에서 ‘북한과 같이 보복 역량과 선제공격 역량을 동시에 추구하는 지역 핵국은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분석했다.
북한 핵전략은, 미국에 대한 확증보복 역량과 한미연합군에 대한 비대칭 확전 역량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군사 전략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중·러 등 핵 강대국과 유사하게 전략과 작전·전술 목적을 위한 광범위한 핵전력 구축을 시도하는 등 다른 지역 핵국에 비해 훨씬 야심 찬 핵전력 구축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핵 선제 불사용’ 카드를 꺼내 들고 있는데, 이게 현실화하면 미국 핵우산의 대북 억지력은 크게 약화되는 대신 북한의 핵전략에는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5년 후 북한의 전술핵이 완성되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 인질로 전락해 국가 존폐마저 위협받는 처지가 된다.
김정은은 지난 10월 당 창건 76주년 기념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라 경제가 거덜 난 판에 여전히 상시병력 118만 대군을 유지하고, 북한군 70% 이상을 휴전선 수㎞ 이내에 전진 배치한 채 전술핵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의 위장·기만전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군사전문가들은 전술핵 개발이 완성되면 북한의 핵 억제 태세와 핵전쟁 수행전략 측면의 혁명적 변화가 초래될 것에 대비해 작전계획 변화 등 실효성 있는 군사 대비책 마련을 주문한다. 북한의 전술핵 인질로 전락하는 마당에 임기 말 문재인 정부는 허구한 날 평화 타령, 종전선언 쇼에 목매고 있다. 대북 제재를 풀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완성하겠다는 김정은의 목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는 마당에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지위 변경과 유엔군 해체 빌미로 작용, 전술핵 완성 시간만 벌어줄 판도라 상자가 될 수 있다. 미국이 부정적인 이유다. 종전선언 쇼는 비핵화 입구가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살 프로세스’ 블랙홀 입구다. 국민을 가짜평화에 감염시켜, 북한 전술핵 위협을 망각하게 하는 주술에 불과하다. 코로나19, 대북 제재, 자연재해 3중고의 벽에 부닥친 김정은 체제가 ‘핵’과 ‘경제’를 동시에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차기 정부 과제다.
북한이 전술핵 개발을 완료하면, 체제위기 돌파용으로 수시로 협박하는 등 핵 사용 유혹을 느낄 확률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문 정부는 종전 쇼라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멈춰야 한다.
문화일보
11.06 북한의 평화협정 타령, 한국의 종전선언 타령
임기 종료를 앞둔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남북 관계 진전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기려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국 중 아무도 진정한 관심이 없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종전선언의 실현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끈질긴 집념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향한 북한의 반세기에 걸친 집념을 연상시킨다.
종전선언 문제를 이해하려면 그 원천 개념인 평화협정 문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북한이 김일성 시대 이래로 줄곧 주장해 온 평화협정의 논리적 구조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종의 선물 거래와도 같은 파생 상품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법적으로 종식할 평화협정 문구에 응당 포함되어야 할 영토 경계 문제, 전쟁 책임 문제, 포로 문제, 전후 체제 문제 등 오랜 시간이 소요될 세부 사항 논의를 모두 뒤로 미룬 채 ‘전쟁이 끝났다”는 서론과 결론만 우선 앞당겨 발표하자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2007년 종전선언 제안 배경이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1974년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이래 토씨 하나 변하지 않은 평화협정 타령을 무려 48년째 계속 중이다. 이는 주한미군 철수, 주한 유엔사 해체, NLL(서해북방한계선) 폐지 등을 통해 한국의 방어 체제를 해체하려는 계책이다. 그러한 북한의 숨겨진 의도는 1997년 시작된 ‘한반도 평화 체제에 관한 남·북·미·중 4자 회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년간 계속된 회담에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핵심 의제로 정할 것을 고집하면서, 그것이 먼저 합의되기 전에는 실질 문제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고 우겼다. 이 때문에 회담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종결되었다.
북한의 소원대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6·25전쟁의 국제법적 종식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이를 명분으로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 NLL 폐지 등을 강력히 압박해 올 전망이다. 그중 가장 급박한 위기는 NLL 문제로부터 초래될 것이다. ‘휴전 체제’의 산물인 NLL은 ‘종전’이 법적으로 발효되면 즉각 자동 폐기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의 등거리 원칙에 따라 새로운 평시 해상 경계가 설정될 경우, 그간 우리 군이 피 흘려 지켜온 서해 5도는 북한 영해 깊숙이 위치한 고립된 섬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뜻을 이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대해 국내외에서 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종전선언이 평화협정과 마찬가지로 주한미군, 유엔사, 서해 5도의 운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처음 제의했을 당시에도 NLL 문제가 초미의 국내 정치적 쟁점이었다. 당시의 NLL 관련 정상 협의 내용을 2012년 정치권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이 삭제된 것이 발견되자 은폐 의혹이 제기되었고, 삭제에 관여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들이 지난해 말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판결을 받았다.
한국 정부의 종전선언과 북한의 평화협정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간 종전선언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다. 이는 아마도 북한이 평화협정을 통해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들을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통해 달성하기가 어려우리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이며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밝힌 이래 북한의 불신감은 더 커졌다. 종전선언에 앞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김여정 부부장의 최근 발언도 그러한 불신감의 표출이다. 북한이 종종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는 주로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북한식 은어다.
북한의 평화협정 타령에 못지않게 집요한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캠페인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미국과 북한의 동의를 얻어 회담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만일 종전선언이 법적 효력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것이라면 북한은 이를 거부할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평화협정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 선언이라면, 북한은 수락할지 모르나 미국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 국민도 반대할 것이다. 국가 안보를 볼모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이 위험한 도박은 결국 실패로 끝나겠지만, 대체 무슨 의도로 그토록 집요하게 종전선언을 추진한 것인지 훗날 반드시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이용준 前 외교부 북핵대사
11.10 천안함 용사들이 천안함 부활 행사에 갈 수 없었던 이유

▲해군이 9일 신형 호위함을 '천안함'으로 명명하고 진수식을 했다. /연합뉴스
해군이 9일 신형 호위함에 ‘천안함’이란 이름을 붙이고 진수식을 했다.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된 천안함이 11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옛 천안함에 없던 잠수함 공격 어뢰와 최신 음파탐지기 등을 탑재했다. ‘서해 수호’라는 임무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부활을 가장 고대했던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아무도 진수식에 가지 않았다. 기차표까지 끊어 놓고 불참했다고 한다. 최근 방송심의위원회가 ‘잠수함 충돌설’ 같은 천안함 음모론을 퍼뜨린 유튜브 콘텐츠에 대해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삭제 또는 접속 차단을 요청했지만 방심위의 여권 추천 위원들이 “미완의 사건” “표현의 자유” “비판적 주장”이라며 면죄부를 줬다고 한다. 만약 5·18이나 4·3 사건 음모론이라면 어떻게 했겠나. 최원일 전 함장은 “정부 기관이 음모론을 방조하는데 쇼(진수식)에 이용당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희생 장병들의 명예가 회복은커녕 계속 실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무조정실장은 ‘천안함 생존 장병이 패잔병이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몰라서”라고 했다. 그 무렵 경찰도 “천안함에 대해 여러 가설과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민주당 전 부대변인은 “천안함 함장이 자기 부하들을 다 수장(水葬)시켰다”고 막말을 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천안함 좌초설 등을 유포하던 사람의 요구에 따라 천안함 폭침을 재조사하려고도 했다. 2018년 남북 이벤트를 앞두고 문 대통령은 폭침 주범인 북 김영철을 불러 국빈급 대우를 했다. KBS는 ‘천안함 괴담’을 재탕해 방송하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천안함 용사들 가슴엔 대못이 박혔다.
문 대통령은 천안함 전사자 등을 기리는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 계속 불참하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처음 참석했다. 서울·부산시장 선거가 눈앞이던 올해 행사엔 고공 낙하 등 탁현민식 쇼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심위가 천안함 음모론에 면죄부를 주니 천안함 용사들이 어떻게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겠나. 천안함 전우회장이 “천안함 갖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다.
조선일보 사설
11-10 천안함 부활 진수식에 ‘천안함 장병’은 없었다

▲바다 위로 다시 떠오른 천안함 해군과 방위사업청은 9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대구급 호위함(FFG-Ⅱ·2800t급) 7번함인 천안함 진수식을 열었다. 2010년 북한군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이후 11년 만에 부활한 천안함은 연안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초계함에서 호위함으로 격상됐다. 울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어제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신형 호위함 7번함인 ‘천안함’ 진수식이 열렸다.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된 초계함 천안함이 2800t급 최신예 호위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진수식에는 국방부 장관 등 군 주요 관계자를 비롯해 천안함 전사자 유족도 참석해 천안함의 부활을 축하했다. 하지만 당초 참석 예정이었던 최원일 전 함장(예비역 해군 대령) 등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최 전 함장 등 생존 장병들은 당초 천안함 진수식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잠수함 충돌설’ 같은 근거 없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유튜브 방송을 삭제하거나 차단해 달라는 국방부의 요청에 대해 ‘해당 없음’ 결정을 내린 것에 반발해 전원 불참하기로 했다. 최 전 함장은 “이렇게 음모론이 방조되는 상황에서 쇼에 이용당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 이유를 밝혔다.
천안함 폭침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떠도는 음모론은 생존 장병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비단 음모론만이 아니다.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은 이들을 더욱 절망케 했다. 방심위 결정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 상반되는 음모론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부일 수밖에 없다. 앞서 4월에는 대통령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사건 재조사를 결정했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에 재조사 결정을 번복하고 위원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일각의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명백한 진실이 가려지거나 흐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부침 속에 천안함 폭침이 외면 받거나 그 장병들이 냉대 받는 게 작금의 분위기다. 참혹한 폭침에서 살아남은 이들 상당수는 전우를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마땅히 국가가 버팀목이 되어 이들을 보듬어주고 허튼 음모론에도 적극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다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호 임무에 나설 천안함의 진정한 부활일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
11월 10일 천안함 진수식에 생존 장병 불참하게 만든 음모론 비호
천안함 폭침 생존 장병들의 상처가 문재인 정권의 ‘음모론 비호’ 탓에 더 커지고 있다. 폭침 11년 만에 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강화한 2800t급 최신예 호위함으로 재탄생한 새 천안함의 9일 진수식에 생존 장병 58명 전원이 불참했다. 최원일 전 함장은 “당연히 정부 차원에서 음모론 제재를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이들의 명예를 생각해주지 못하면, 앞으로 어느 군인이 나라를 지키려 할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유튜브가 유포하는 “천안함은 좌초 후 잠수함 충돌로 반파” 등 괴담에 대한 국방부의 삭제 또는 검색 차단 요청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문제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회의록이 지난 4일 공개된 데에 따른 불참이다. 문 정권이 그러도록 만든 것과 다름없다. 방심위의 여당 추천 위원들이 그런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2010년 민군합동조사단의 객관적 조사와 과학적 증거로 확인된 북한군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괴담 유포를 선동한 셈이다.
문 대통령도 천안함 폭침을 “북한 소행이 정부 공식 입장”이라고는 했지만, 문 정권 일각의 음모론 비호는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는 음모론 유포자의 요구에 따라 천안함 재조사를 시도했고, 민주당 상근 부대변인 출신은 “천안함 함장이 부하들을 수장(水葬)시켰다”며 엉뚱하게 최 전 함장을 매도하기도 했다. 이런 식은 천안함 호국 영령까지 욕보이는 반(反)안보·반국가 행태라는 사실이나마 이제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11-11 지긋지긋한 짝사랑, 그만두면 안 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 사진)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9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한 지 벌써 한 달 반이 넘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선 차기 대통령 후보가 정해져 정치권은 대선 정국에 들어갔다.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매듭지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어떻게 한국 정부와 상대할지 주판알을 튀기고 있을 것이다.
일단 두 후보의 대북 공약을 보면 파격적이라고 볼 것이 거의 없다. 이 후보는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고, 윤 후보는 비핵화 진전에 따른 단계별 남북 화해 정책을 펼치겠다고 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김정은 처지에서 볼 때 전혀 구미가 당길 만한 매력 포인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어떠한 파격적인 대북정책 공약을 내놓아도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일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김정은이 잘 알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상대했던 남쪽의 3개 정부만 봐도 공약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 3000’은 구호부터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핵을 폐기하면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 준다는 것인데, 북한이 임기 5년짜리 이명박 정부를 믿고 핵을 폐기하겠다고 할 리가 없는 것이다. 서로 불신하는 적대관계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버리면 얼마를 준다”는 제안은 초등학교에서도 통하지 않을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구호를 내놓았지만 신뢰는 고사하고 개성공단까지 폐쇄했고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불신이 가득 쌓였다. 이렇게 과거 두 보수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하면 “우린 잘하려 했는데 김정은이 호의를 악으로 갚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올 수 있겠지만 대북정책은 원래 그럴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처지에선 보수 정부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떠올리면 제일 분통이 터지지 않을까 싶다. 보수 정부에는 기대감조차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에는 큰 희망을 걸고 판문점에 나타났고 멀리 싱가포르, 베트남까지 행차하며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전혀 없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열지도 못한 데다 대북제재는 더 강화됐고 대북 지원을 받은 것도 없다. 대박을 기대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열정적으로 쇼를 펼쳤지만 아무런 페이도 받지 못한 배우 신세가 된 것이다. 지금쯤 김정은은 “다시는 남조선 놈들의 번지르르한 말에 속아 농락당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지도 모르겠다.
대선 무대에 등장한 두 후보의 캐릭터를 놓고 봐도 김정은이 혹할 만한 포인트가 보이진 않는다. 이재명 후보를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신뢰할 수 있을까. 윤석열 후보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보다 더 화끈하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김정은의 머릿속도 복잡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한국 국민들도 대북관계에 큰 기대가 없긴 마찬가지다. 누가 되더라도 대북 공약만 놓고 보면 데자뷔 ‘시즌2’인 셈이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남북 모두 이렇게 바닥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럴 때엔 관점을 바꿔 보는 것이 어떨까. 이번 정당 경선 중에 ‘남북 불간섭과 체제 경쟁주의’로 전환하겠다는 홍준표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이 눈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너흰 위대한 김정은주의를 내걸고 공산주의를 만들어서 잘살아라. 우린 상관하지 않고 우리 길을 가겠다”로 요약된다. 호전적인 정책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일상에선 가장 흔한 관계 정리다.
왜 우리만 수십 년 넘게 북한을 짝사랑하며 먼저 구애를 해야 하는가. 남녀의 사랑에서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늘 양보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짝사랑하며 뺨을 맞아도 참고 웃어주면 버릇이 잘못 들고, 주종관계가 굳어진다. 짝사랑하다 먹히지 않으면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한다.
“너는 너대로 잘살고, 나는 나대로 잘살게. 이젠 너 없이도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남남이 됐으니 과거 버릇 고치지 못하고 괴롭히면 가만있진 않겠지만 도와달라고 하면 옛정을 봐서 도와줄게.” 이런 것은 연인 관계에서 매우 흔한 관계 정리다.
오랜 기간 짝사랑했는데 먹히지 않았다면 관계의 주도권을 한 번쯤 상대에게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점점 가난해져 파산 상태에 몰린 상대에게 나를 잡을지, 뺨을 칠지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내가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은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1.12 “빨치산에 의한 학살이 국군 만행으로 둔갑... 참담하다”
김광동 진실화해위 상임위원, 황당한 피해보상 사례들 밝혀
“군경이 가해자로… 누가 나라위해 싸우겠나”

▲김광동 상임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진실화해위) 김광동 상임위원은 10일 “6·25를 전후해 인민군·빨치산에게 가족이 희생됐던 유족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국군·경찰에 의해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국가 보상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우리 군경을 가해자로 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추천으로 올해 2월부터 진실화해위에서 근무하는 김 상임위원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 군경에 의한 피해자에겐 수억 원대 보상을 하고,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자에 대해선 전혀 보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의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부에서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위원회는 문제를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실상 직무유기”라고 했다. 오히려 진실화해위가 피해자 유족들에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울 경우 국군·경찰로 기입하라’는 취지의 안내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본지 5일 A1면 참조>.
진실화해위법은 ‘군경과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 모두 진상 규명과 피해 구제를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확정되면 국가 대상 민사소송을 통해 1억5000만원 안팎 보상금을 받는다. 김 상임위원은 “하지만 인민군과 빨치산 등에게 희생된 경우는 국가 책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제1기 진실화해위(2005~2010년)에서 5624명이 우리 국군과 경찰에 의한 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을 받았지만, 인민군·빨치산에 의한 희생에 대해서는 단 한 건도 보상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는 군경에 당했다고 주장해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영향으로 지난해 말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에서 올해 10월까지 접수된 1만852건의 피해 사례 가운데 가해자를 ‘군경’으로 적시한 것이 6930건(63.9%)으로,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 신청’ 1505건(13.9%)보다 5배 가까이 됐다. 1기 때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으로 판정된 피해자 유족들이 ‘과거 신청과 조사 결과는 잘못된 것’이라며 재신청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 상임위원은 “1950년 7~9월 북한군 점령하에서 북한군이나 빨치산 등 좌익에 의해 학살당한 것도 우리 국군과 경찰에 의한 피해로 둔갑시키는 사례가 여러 건 발견됐다”고 했다. 또 상황을 알 수 없는 총상 피해 등도 국군과 경찰에 의한 희생으로 처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상임위원에 따르면 의용군으로 끌려가 인민군 신분으로 국군과 교전 중에 죽거나, 양민 학살에 가담하는 등 부역 행위를 하다 죽은 경우도 군경에 의한 희생자로 신청해 보상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북한 침략군을 도와 대한민국 군경에 대한 적대 행위, 양민 학살에 가담했던 부역 활동은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상임위원은 “실제 지금까지 군경에 의한 희생자 가운데 부역 활동까지 함께 밝혀 국가 보상이 거부된 예를 찾지 못했다”며 “침략자인 인민군과 협력하다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국가가 세금으로 보상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10개월간 근무하면서 들여다 본 진실화해위 상황은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보다 군경에 의한 희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다. “6·25 때 희생된 군경이 22만명이나 되는데, 이들 상당수는 의무가 없음에도 군경에 지원해 공산 침략에 맞서 싸웠던 분들”이라며 “이런 유공자들을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가면 누가 전쟁이 났을 때 나라를 위해 싸우겠냐”고도 했다.
진실화해위가 지난 4월 홈페이지에 올린 ‘진실 규명 신청에서 결정까지 단계별로 살펴보는 Q&A(문답)’라는 제목의 안내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건 관련자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 성명란에 국군, 경찰 등으로 기입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네 맞습니다. 가해자를 특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국군, 경찰 등으로 기입하여도 무방합니다”라고 돼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말 국회 국감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안내문을 삭제하고 “담당 공무원의 실수였다”고 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허물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김 상임위원은 “현재 진실화해위의 진상 규명과 국가 보상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 정의에도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실화해위 측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다양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위원회에 배상·보상 관련 권한이 없기 때문에 제도적 개선을 위한 여론 형성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월간조선 11월 호
11.13 중국 영화 〈장진호〉를 계기로 본 ‘장진호 전투’
장진호 전투는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
⊙ 美 해병1사단, 중공군 9병단 12만 명 궤멸시켜 중공군의 중·동부전선 南下 저지
⊙ 중국, 2300억원 들여 만든 영화 〈장진호〉 열풍
⊙ “영화 〈장진호〉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당에 바치는 선물”(베이징시 공산당 선전부)
⊙ “우리는 머나먼 異域 땅까지 와서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참전용사 이종연 변호사)

▲중국 영화 〈장진호〉 홍보 포스터.
중국에서 영화 〈장진호(長津湖)〉 열풍이 불고 있다. 〈장진호〉는 6·25 당시 미(美) 해병1사단 및 미 육군7사단과 중공군 9병단이 벌인 혈전(血戰)인 ‘장진호 전투’를 다룬 영화다.
중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2300억원)와 최대 인원(1만2000명)이 투입된 이 영화는 감독들의 이름만으로도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패왕별희〉의 천카이거(陳凱歌), 〈황비홍〉 시리즈의 쉬커(徐克), 액션 영화 전문인 린차오셴(林超賢) 등 유명 감독 3명이 함께 메가폰을 잡은 것이다.
〈장진호〉는 개봉 전부터 공산당과 정부, 학교 등에서 관람을 독려한 덕분인지 지난 9월 30일 개봉 후 10월 8일까지 누적 입장 수입 34억5900만 위안(약 64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국경절(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일) 연휴(10월 1~7일)를 맞아 극장들은 〈장진호〉를 전면에 배치, 10월 5일 중국 전체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 중 47%(4281회)가 〈장진호〉였다고 한다. 때문에 개봉한 지 엿새 만에 한국 인구와 맞먹는 5000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왜 이 시점에서 ‘장진호 전투’를 소환한 것일까? 지난 10월 3일 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영화 〈장진호〉는 중국군의 치열한 애국정신, 당과 인민에 대한 더없는 충성을 그려냈고,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는 뜻. 중국에서는 6·25전쟁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함) 정신을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고 한 데서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인민일보》는 10월 5일에는 〈장진호〉 제작에 참여한 천카이거 감독의 제작기를 실었다. 천 감독은 여기서 “정의를 위해,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항미원조 전쟁 승리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대외강경노선을 대변하는 《환구시보》도 10월 7일 “영화 〈장진호〉는 중·미 경쟁 속에서 중국인의 애국심을 고조시켰다”고 했다.
이 영화의 제작 의도는 영화 마지막에 “(장진호 전투는) 전쟁 최종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며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더욱 새로워진다”는 자막이 등장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장진호〉 시나리오를 쓴 황젠신은 시사회에서 “이제 그 누구도 중국을 괴롭힐 수 없다는 게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시 공산당 선전부는 “영화 〈장진호〉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당에 바치는 선물이며, 당 중앙선전부의 지도 아래 시나리오를 다듬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어용(御用)영화임을 실토한 것이다.
아쉽게도 〈장진호〉 열풍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들을 보면, 이 영화 자체의 스케일이나 이 영화 제작·개봉의 의미, 그리고 ‘장진호 전투’에 대한 중국 측 해석을 소개하고 있을 뿐, ‘장진호 전투’의 의미를 짚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장진호 전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후방으로 공격한다!”

▲올리버 스미스 美 해병1사단장(왼쪽)과 쑹스룬 중공군 9병단 사령관.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개마고원으로 진격했던 미 해병1사단과 미 육군7사단 병력이 그달 말부터 12월 초까지 중공군 9병단 병력 12만 명과 벌인 전투를 말한다. 미 육군7사단이 무참하게 패퇴(敗退)하고, 미국 본토에서는 언론들이 “해병1사단이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전멸했다”는 절망적인 뉴스를 토해내고 있는 동안, 미 해병1사단은 사투(死鬪)를 벌였다.
이들의 적은 중공군뿐이 아니었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는 중공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미국의 전사가(戰史家) 에드윈 P.호이트는 미국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를 두고 “군사상(軍史上) 가장 위대한 후퇴작전 가운데 하나”라고 평했다. 하지만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 해병대원들은 ‘후퇴작전’이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그건 공격작전이었지 후퇴작전이 아니었습니다. 장진호 전투 전체가 공격작전이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북쪽으로 유담리까지 쳐올라갔고, 다음으로는 유담리에서 서쪽으로 1500m 지점까지 공격해갔으며, 그러고는 남쪽으로 유담리에서 황초령까지 공격했습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그러는 중에 후퇴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우드로 윌슨 테일러)
“우리는 수동에서 중공군과 처음 조우했을 때부터 그들을 무찔렀고, 나중에 답교를 건너면서도 그들을 무찔렀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항복했지, 그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후퇴라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조지프 오웬)
당시 미 해병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이 상부로부터 철수 명령을 받은 후 “우리는 후방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후방으로 공격한다!”고 명령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구한 전투

▲美 해병대원들은 1/10의 열세 속에서도 勇戰을 벌여 중공군의 중·동부전선 南下를 저지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 해병1사단은 700여 명의 전사자와 200여 명의 실종자, 35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 밖에 6200여 명의 비전투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들은 대부분 동상(凍傷) 환자였다. 미 해병1사단의 감투(敢鬪) 덕분에 동부전선으로 진격했던 다른 미군과 국군 부대, 그리고 10여만 명의 피란민들이 철수(흥남철수)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는 흥남에서 철수한 피란민들만을 살린 게 아니었다. 장진호 전투는 대한민국을 살렸다. 미 해병1사단과 싸우면서 중공군 9병단은 2만5000명의 전사자와 1만2000명의 부상자를 냈다. 병단의 전투력이 사실상 소진된 것이다. 원래 9병단은 개마고원에 매복하고 있다가 미 해병1사단을 격파한 후 중·동부전선에서 밀고 내려올 계획이었다. 9병단 사령관 쑹스룬(宋時輪)은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용명을 떨쳤던 군인으로 특히 기습전의 달인이었다. 마오쩌둥은 “솜씨를 발휘해보라”며 그를 개마고원으로 보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서부전선의 유엔군은 중공군 13병단에 밀려 이듬해 1월 다시 서울을 중공군에 내주고 오산-제천-원주로 이어지는 북위37도선까지 밀려났다. 만일 중공군의 계획대로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9병단 12만 명이 미군을 격파하고 중·동부전선에서 쳐내려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서부전선에서의 패배만으로도 한반도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유엔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김씨왕조의 노예로 살고 있을 것이다.
장진호 전투는 전술적 차원에서 보면 미 해병1사단이 자신들보다 월등한 병력으로 매복해 있던 중공군 9병단을 궤멸시켰다는 점에서 미 해병1사단이 승리한 전투이다. 또 전략적 차원에서 봐도 서부전선은 물론 중·동부전선에서도 유엔군을 격파하고 단숨에 한반도를 석권하려던 중공군의 대전략을 좌절시켰다는 점에서 미 해병1사단, 아니 유엔군이 승리한 전투이다.
장진호의 영웅들
마틴 러스의 《브레이크 아웃 - 1950 겨울, 장진호 전투》라는 책을 보면 장진호 전투의 처절한 실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자다가 지퍼가 얼어붙어 나오지 못하는 사이에 중공군의 총검에 찔려 죽은 해병대원들이 있는가 하면, 추위를 피해 참호 속으로 들어갔다가 얼음덩이가 되어 미군에게 발견된 중공군도 여럿 있었다. 영화 〈장진호〉를 본 중국 관객 중 일부는 “의용군(중공군) 병사가 눈을 뜨고 총을 똑바로 든 채 얼어 죽은 장면은 과장이 심해 보였다”고 말했다는데, 그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5연대 의무대장 체스터 레슨덴 해군 소령의 증언에 의하면, 군의관들은 부상자들의 붕대를 갈지도 못했다. 붕대를 갈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 바로 동상에 걸려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혹독한 상황 아래서 미 육군7사단이나 그곳에 배속된 카투사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붕괴했다. 하지만 미 해병1사단 장병들은 달랐다. 그들은 ‘프로페셔널’이었다.
윌리엄 G.윈드리치 하사는 수류탄 파편에 머리를 다치고도 후송을 거부한 채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다시 부상을 입었다. 그는 위생병이 다가오자 손을 저으며 “아직 아냐”라고 말했다. 몇 분 후 그는 숨을 거두었다. 구호소 텐트 안에 있던 부상병들은 “나가서 싸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에 비틀거리면서도 총을 들고 나가 싸웠다. 그들 대부분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 혹독한 전장에서 꽃핀 해병들의 전우애에 대해 역사가 린 몬트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전투력이 기강이나 무기의 성능보다 다른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때가 있는데, 그걸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전투원이 자기 옆의 동료를 끝까지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될 때 갖게 되는 감정입니다. 전쟁은 잔혹한 것이지만 사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이타심만큼 멋진 것은 이 세상에 없지요. 사소한 것들이 그 순간에는 사라져버립니다.”
1950년 12월 11일 고토리를 출발한 마지막 미 해병부대가 중공군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제1해병사단의 생존자들은 12월 15일 10만 명의 피란민과 함께 흥남부두를 떠났다. 50여 일간의 사투가 끝난 것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군의관 리트빈 중위는 “우리가 얼어붙은 장진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젊은이가 싸울 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중공군, 피란민을 방패막이로 이용
물론 모든 병사가 영웅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키가 180cm나 되는 텍사스 출신의 한 병사는 이동명령이 떨어졌는데도 드러누워 버렸다. “난 할 만큼 했어요. 더 이상 안 가요”라면서…. 동료들이 그를 끌다시피 하면서 2km를 이동했다. 구호텐트에 도착한 후 위생병이 그를 점검했다. 그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는 단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3시간 후에 죽었다.
이 책에는 중공군들이 피란민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바람에 미군들이 애를 먹는 얘기가 여러 군데서 나온다. 피란민 대열에서 중국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중공군 병사들이 지금 항복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미군이 접근하자 갑자기 피란민들 사이에서 중공군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왔다는 증언도 있다. 그게 “정의를 위해, 평화를 위해” 중공군이 벌인 짓이었다. 당시 미군들의 참전기록에는 6·25 개전 초부터 북한군도 유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증언이 많이 나온다. 소위 노근리사건 같은 것이 어떤 배경에서 발생했는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그때의 희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존 리’ 이종연 변호사.
기자는 2012년에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이종연(李鍾淵) 변호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6·25 발발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 변호사는 전쟁이 난 후 우연한 기회에 통역장교가 되어 미 해병대에 배속되었다. 그는 장진호 전투의 와중에 카투사 50명을 지휘하면서 전투를 치렀다. 그는 존 리(John Lee)라는 이름으로 미 해병대 전사(戰史)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피융, 피융 하면서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릴 때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입니다. 바로 앞에 팍, 팍, 팍 하면서 총알이 박힐 때는 정말이지 고개도 들 수 없어요. 도랑 속에서 나는 ‘하나님, 꼭 살아 돌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게 해주세요. 살아 돌아가면 반드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군과 싸울 때에는 솔직히 이념 같은 것은 잘 몰랐어요. 다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그때의 희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머나먼 이역(異域) 땅까지 와서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종연 변호사의 이 말이야말로 영화 〈장진호〉를 통해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을 주장하는 중국식 역사 왜곡에 대한 가장 정확한 반박이 될 것이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11-16 주객이 전도된 대북정책 이젠 멈춰라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천안함 폭침도발의 국민적 공분이 채 가시지 않은 2010년 11월 23일, 백주대낮의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든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무고한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선전포고도 없는 적의 기습 도발에 맞서 해병대 장병들은 불붙은 철모를 쓰고 사력을 다해 응전했다. 휴전협정문을 불태워버린 것과 같은 야만적 도발을 감행한 지 11년이 됐지만 북한은 한마디 사과는 고사하고 대남비방과 핵무력 증강에 골몰하고 있다.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떠들썩하게 열렸던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쏟아낸 갖은 선언과 합의는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를 저지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올해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술핵 개발 지시 이후 극초음속미사일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북한의 대남 핵타격용 ‘비수’는 더 날카로워졌다.
올해 초 발간된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휴전 이후 지난해까지 북한의 대남침투 및 국지도발 건수는 3120건에 이른다. 2018년 남북 정상의 면전에서 양측 국방수장이 서명한 9·19 남북 군사합의도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사문화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과의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김정은 지배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대북관계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는 ‘종전선언 카드’를 흔들면서 임기 말까지 대북 구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종전선언을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삼아서 남북 및 북-미 비핵화 대화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이겠지만 4개월 뒤 치러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해하는 기류가 역력하게 감지된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낮고, 성과도 미미할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비핵화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평화 지상주의’로 점철된 ‘왜그더도그(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 방식의 대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민족과 평화 운운하면서 약속한 비핵화가 ‘공수표’로 판명 난 것이 그 증거다.
뿐만 아니라 ‘묻지마식 종전선언’은 북한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9월 담화에서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주한미군과 한반도에 전개된 미 전략자산의 철수를 콕 찍어 요구한 것에서 그 속내가 훤히 보인다. 종전선언을 주한미군의 철수 명분으로 삼아서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 요구대로라면 유사시 한반도 작전지원과 전력제공을 하는 유엔군사령부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종전선언과 유엔사는 별개라는 정부의 입장과 달리 북한은 최근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를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종전선언과 관련) 단계별로 정확한 순서(sequencing)나 시기, 조건에 관해 (한국과)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섣부른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의 빌미를 주고, 역내 위협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대처 능력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옵션임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합의하면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발상이다. 친정부 성향의 전문가들은 ‘평화 만들기(peace making)’의 과정으로 종전선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북한의 핵포기가 빠진 어떤 선언이나 합의도 ‘모래성’으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종전선언을 하든 안 하든 (북한의) 위협은 그대로”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의 대북정책을 멈춰야 한다. 한미 양국이 일치된 목소리로 핵포기 결단만이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고, 어떤 도발도 단호히 대처할 것임을 북한에 명확히 주지시키는 것이 순리다. 주객이 전도된 대북정책을 고수해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평화가 연출되고, 핵무력 고도화의 시간만 벌어주는 사태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11월 19일 바이든 ‘北京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文도 쇼 단념해야
2022년 베이징(北京)동계올림픽은 한국 대선 직전인 2월 4∼20일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어게인 2018 평창’ 이벤트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등을 상대로 한반도 종전선언을 종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물론 북한조차 무의미하다며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출전 금지 처분도 받았다. 안보 측면에서 종전선언은 북한에 한미훈련 전면 중단과 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빌미만 키워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한 지 3일 만이고,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자리에서 그랬다. 그만큼 의지가 강력하다는 의미다. 이미 지난 7월 유럽연합(EU) 의회와 영국 하원은 각각 홍콩·티베트·신장 지역의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정부 대표단의 올림픽 참석을 거부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으로 민주주의 국가 진영의 ‘외교적 보이콧’ 기류는 확산되고, 미·중 신냉전도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방한중인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중국에 맞선 경제동맹을 언급했다.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의 장비 도입이 미국의 첨단 기술 반입 금지 조치로 인해 어려워졌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이 베이징올림픽을 활용한 종전선언 ‘쇼’에 집착한다면 안보도 동맹도 경제도 저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당장 단념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11.23 '종전 선언'이란 대못박기 그만둬야
생존 본능에 지배받는 인간은 영생을 꿈꾼다. 하나 죽음을 피할 순 없는 터라 다른 전략을 택한다. 바로 자식을 통해 자신의 DNA를 후대에 남기는 방법이다. 임기 말에 몰린 정권도 비슷한 영생의 충동에 휩싸인다.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이 이어지길 바란다. 여기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다음 정권이 뭘 원하든 절대 못 바꾸도록 대못을 박아놓고 떠나려 한다. 이번 문재인 정권에서 도모 중인 종전선언 역시 전형적인 대못박기다
대선을 불과 석 달여 남기고 현 정권은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 추진을 선언하고 난 뒤 현 정권은 모든 외교력을 여기에 쏟아붓는 느낌이다. 현 정부는 종전선언과 관련된 미국과의 협의가 무르익어 "문안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이수혁 주미대사)고 밝히고 있다. 이런 낙관론대로라면 연내 또는 내년 초 베이징 올림픽 때 종전선언이 선포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틈틈이 새 나오는 미국 측 반응은 영 딴판이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7일 한·미·일 외교차관협의를 끝낸 뒤 "미국은 한·일과의 협의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종전을 선언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또 지난달 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우리(한·미)는 정확한 순서·시기·조건에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양국 간에 이견이 있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미가 산통 끝에 종전선언의 조건과 내용 등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북한이 받아들일지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지난달 2일 국민혁명당 지도부는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뉴시스]
두루 살펴볼 때 종전선언은 현 정권의 희망 사항으로 끝날 공산이 적잖다. 바이든 행정부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정치적 보이콧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하니 더 위태로워졌다. 바이든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에서 한반도 종전을 만천하에 공포한다는 꿈이 무산될 지경인 까닭이다.
이런데도 현 정권이 미련을 못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선을 앞두고 남북한 간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인식을 주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착시에 불과하다. 북한은 그간 핵폭탄 하나, 미사일 하나 없애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올 들어서는 극초음속 미사일,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첨단무기의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북한의 위협이 날로 커지는 판에 무슨 평화가 찾아왔단 말인가.
둘째, 정권이 바뀌어도 현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대못을 박으려는 의지도 작용하는 것 같다. 현 정권 인사들은 이런 의도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실제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5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국 정부는 종전선언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진전을 위한 프로세스를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전선언이란 대못을 박는다고 비핵화가 손톱만큼이라도 이뤄질 리 없다. 종전선언을 남북대화, 나아가 비핵화의 입구로 삼겠다는 게 현 정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그간의 행태로 보아 북한이 맨입에 남북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적다. 경제 지원이든 뭔가 충실한 대가를 바랄 게 뻔하다. 대화 채널이 열려도 비핵화와 관련된 논의는 거부할 공산이 큰 건 물론이다.
이럴 바에야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다음 정권이 종전선언 카드를 제값 받고 쓸 수 있도록 아껴두는 게 옳다. 현 정권도 박근혜 정권 말이던 2017년 3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체계 배치가 강행되자 대못박기라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임기 말에 종전선언에 매달려 외교력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게 낫다. 차라리 다음 정부가 홀가분하게 시작할 수 있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한·일 관계를 화끈하게 해결하고 퇴장하는 건 어떤가. 당장은 욕먹을지라도 길게 보면 칭송받을 일이 틀림없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11.25 항공모함 소동이 마지막 국방 포퓰리즘이길
필요도 없는 경항모 도입
6조원 초대형 삽질할 뻔
포퓰리즘의 국방 오염 사례
그나마 국회가 제동
필수적 F-35A 도입까지
국내 정쟁거리 만들어
국방의 정치화만은 막아야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에서 이른바 ‘경항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일본이 한다고 하자 문재인 정부가 ‘우리도’라면서 본격화한 경항모 도입 사업은 작년에 사업 착수 예산이 101억원에서 1억원으로 거의 전부 삭감됐고 올해도 72억원에서 5억원으로 깎였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의원들조차 “여건이 안 됐다”고 했다. 다음 정부가 누가 되든 경항모 도입은 ‘소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6조원이 낭비될 뻔했던 초대형 삽질이 이 정도에서 끝난다면 다행이다. 국회가 그래도 할 일을 하고 있다.

이 소동을 보면서 우리 정치에 만연하는 포퓰리즘이 국방 분야까지 오염시키고 있다는 걱정을 한다. 국방 포퓰리즘이 위험한 것은 사안이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국민이 잘 알 수 없고 돈을 쓰는 군인들이 포퓰리즘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나라 지키는 것보다 예산 따내는 데 더 치열한 경우가 많다. 몇 조 원짜리 큰 사업을 만들면 그와 관련된 이익공동체가 돌아간다. 이런 군의 실태와 정치권의 이른바 ‘국뽕’(비이성적 수준의 국가 자긍심) 포퓰리즘이 합쳐지면 제어할 곳이 없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항공모함이 필요 없는 나라다. 국뽕에 취해 과시하기 위해 필요할지는 몰라도 군 작전상 필수 사항은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육상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도달해 작전하지 못하는 우리 바다는 한 곳도 없다. 공중급유기 도입으로 전투기 작전 반경은 더 넓어졌다. 해외 영토도 없다. 돈도 너무 든다. 항모는 별도의 전단을 구성해야 한다. 경항모 탑재용 F-35B 전투기는 가성비가 최악이다. 경항모 한 척 비용이면 도산안창호급 잠수함 6척이나 F-35A 전투기 60기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어느 쪽이 국방을 더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일본은 긴 섬나라 특성상 바다가 우리의 8배가 넘는다. 해군은 일본이 크지만 육군은 우리가 훨씬 크다. 탱크는 3배 이상, 자주포는 10배 이상이다. 나라마다 처한 현실과 조건이 다른데 일본이 한다고 우리도 하자는 것은 국뽕 포퓰리즘일 뿐이다.
국방 포퓰리즘은 국방의 정치화와 동전의 양면이다. 문 정권 국방의 정치화는 2015년 공군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 싹이 보였다. 당시 문재인 의원은 정경두 공군참모총장에게 “사드는 효용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정 총장은 “현재까지는 세부적인 검토가 안 이뤄졌다”고 답했다. 문 의원은 정 총장이 자신에게 동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유승민 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정 총장에게 “검증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믿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정 총장이 “제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씀 드린 것이지...”라고 하는 순간 말이 끊기고 말았다. 정 총장은 ‘나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지 성능 얘기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려 했던 것 같다. 그가 바보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때 ‘검토’라는 것은 사드 국내 배치에 대한 종합적 검토를 뜻하는 것이다.
사드는 미국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 미 본토와 세계 기지에 배치하고 있는 미사일 요격 체계다. 무기 체계는 성능이 요구 조건대로 입증되지 않으면 절대 실전 배치될 수 없다. 사드가 효용이 검증되지 않았으면 중국이 무엇 하러 반발하겠나. 문외한이 ‘효용이 검증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묻는 것은 ‘전자파 괴담’처럼 국내 정치용이다. 북핵 미사일 방어는 기본적으로 군사 문제인데 이를 국내 정쟁 소재로 삼은 사드 문답은 엉뚱하게도 한국 국방장관을 탄생시켰다. 문 의원은 대통령이 되자 국회에서 자신의 구미를 맞춘 듯했던 정 총장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정 장관은 보답하듯 군인 본분을 버리고 대통령 구미에만 맞추는 국방을 했다. 국방일보는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했다.
국방의 정치화는 F-35A 전투기 도입을 놓고도 벌어졌다. 우리 공군의 F-15K는 4세대 전투기다. F-35A는 스텔스기로 5세대다. 4세대는 5세대의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F-35A는 돈을 준다고 살 수 있는 기체도 아니다. 미국은 동맹국 아니면 팔지 않는다. 그런 F-35A를 한국에 제공하겠다는데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F-35A가 마치 비리에 의해 도입되는 것처럼 주장했다. 세계 공군 전력의 추세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전(前) 정권 결정이라고 ‘비리’와 같은 국내 정쟁적 눈으로 이 중대한 문제를 본 것이다. 지금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스텔스 전투기로 무장한 상황에서 우리가 F-35A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나.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일반 국민이 TV로 다 본 사드 반입을 몰랐다면서 큰 소동을 일으켰고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문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계엄령 문건 소동은 코미디로 끝났다. 군 복무 기간의 대책 없는 단축도 국방의 정치화다. 국방만은 정치와 멀리 떨어져야 한다. 정치 없는 곳에는 포퓰리즘도 없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11.25 마지막 사격자세 그대로였다… 백마고지 정상 ‘국군 이등병’ 유해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간 강원도 철원 인근에서 펼쳐진 남북 간 전투다.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군의 유해 발굴 작업이 최근 일부 마무리됐다. 전투 발발 69년만이다.
24일 국방부는 지난 9월부터 약 110일 동안 비무장 지대에서 유해 발굴을 진행해 총 27점(잠정 22구)의 유해와 총 8262점의 전사자 유품을 발굴했다고 자료를 통해 밝혔다.
국군 전사자 추정 유해 중에선 개인호에서 적 포탄을 피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의 유해도 있었다. 백마고지 395고지 정상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유해 인근에는 계급장, 구멍이 뚫린 방탄모, 탄약류, 만년필, 숟가락 등이 발견됐다.

이 전사자의 계급장은 일등병이었다. 6·25 때 일등병은 현재 군 계급 체계에선 이등병에 해당한다. 전투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초년병의 유해는 지난달 작업에서 발견된 것이다. 군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사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인식표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군은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유해소재 제보, 유가족 시료채취 등 국민적 참여가 필요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를 독려하고 있다.
24일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을 방문한 서욱 국방부장관은 유해발굴 임무를 수행한 지휘관과 관계자에게 “여러분들이 백마고지에서 흘린 땀방울이 지금의 전환기를 평화의 시간으로 만드는 초석”이라며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오는 26일 ‘유해발굴 완전작전 기념식’을 통해 올해 비무장지대 유해 발굴을 마무리한다.
조선일보 송주상 기자
11.30 “중국의 공격 대비”...美, 한국에 공격헬기·포병본부 상시 주둔
세부 사항은 기밀, 추가 재배치 협상 있을 수도
▲\지난 8월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미군 헬기들이 늘어서 있다. 미 국방부는 순환배치돼 있던 공격용 헬기 대대를 한국에 영구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미 국방부가 중국의 군사 공격 가능성과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기 위해 그동안 순환 배치해 온 공격용 헬리콥터 대대와 포병대 본부를 한국에 상시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미 국방부는 29일(현지 시각) ‘2021년도 해외 주둔 재배치 검토(Global Posture Review·이하 GPR)’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또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정책도 변함 없이 유지된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다만 주한미군이 현재의 2만8500명 이상으로 늘어날지에 대해 미 국방부는 언급을 삼갔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 “그곳(한국)에서의 임무와 수요는 계속 다할 것이다. 오늘 발표할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일단 현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미 국방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검토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잠재적 중국의 군사 공격과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고 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이니셔티브를 진전시키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의 추가 협력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6월 미국·영국과의 3국 동맹 ‘오커스’를 창설한 호주와의 협력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호주 및 태평양 제도에 있는 인프라를 강화하고, 호주에 모든 종류의 미 군용기를 순환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9월 호주와 미국은 외교·국방장관 2+2 회의 끝에 최강 전투기 F-22 랩터, F-35 스텔스기, B-2 스텔스 폭격기, B-52 전략폭격기 등 모든 미군 전투기를 호주에 순환배치해 보기로 합의했다.
미 국방부는 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그간 순환 배치돼 있던 공격용 헬리콥터 대대와 포병대 본부를 한국에 상시 주둔시키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 육군은 지난 9월 미 본토 워싱턴주의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에 있던 제2보병사단의 포병대 본부를 경기도 평택시 험프리스 기지로 이미 재배치 완료한 상태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때 활약했던 제2보병사단 포병대 본부는 1965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에 상시 주둔하고 있다가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군 병력이 재편되면서 2006년 일시 해산됐다. 2014년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합동기지에서 재편성됐다가, 2006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배치된 것이다. 포병대 본부 병력 자체는 100명 정도로 소규모지만 중국을 염두에 둔 작전을 한반도에서 직접 통제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실전에서 통할 만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중동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따라 진화하는 대테러 수요와 이란에 대한 접근법을 평가”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그러나 이런 ‘원칙’ 외에 세부적인 재배치 검토 내용은 기밀에 부쳐졌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언론에 “적들이 유리해 질 수 있기 때문에 병력 배치의 즉각적 변화에 대한 세부 사항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동맹 및 파트너들과 병력 배치 변화에 대해 상의할 필요성도 거론했다. 이 당국자는 “필요한 논의를 하기 전에 이런 사안을 공개적으로 다루면 양자 간 논의의 비밀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우리 관계의 신뢰를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또 “(인도·태평양은) 주요 전구(戰區)”라며 “GPR의 지침은 인도·태평양에서의 전투 태세 개선을 가능하게 하고 활동을 증가시키기 위해 다른 전구 병력을 감축함으로써 중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인도·태평양 전력 강화를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것이 주한미군에 어떤 영향을 줄지 큰 그림에는 여전히 불투명한 부분이 남아 있다. 미국 ‘에어포스 타임스’는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최근 몇 년간 많은 병력이 있는 일본과 한국 같은 ‘고정된 장소의 고정된 기지’에 집중하기보다 좀 더 남쪽과 서쪽으로 펼쳐서 병력을 순환 배치하는 방안을 탐색해 보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한국, 일본과의 비공개 협상을 통해 병력 배치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지난 9월 초 하와이에서 미국의 일부 기자들을 만난 인도·태평양 사령부 관계자는 중국을 가까이에서 억지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정된 기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남태평양 전체를 살펴볼 기회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