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021-11/ 11.01(월) ‘어른들의 수능’ 공인중개사 - 11.30(화) 기사 없는 택시 등장
만물상 2021-11 조선일보
11.01(월) ‘어른들의 수능’ 공인중개사
“아침 9시부터 밤 10시, 늦으면 새벽 2시까지 공부했어요. 전국 모의고사 4회부터는 학원에 신청해서 직접 모의고사 봤고요. 4회 모의고사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와 그때부터 나사가 하나 빠졌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8시까지만 공부했어요.” 수능 준비하는 대입 수험생 얘기가 아니다. 29세의 공인중개사 수험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월북 소설가 이태준의 1937년작 단편 ‘복덕방’에는 ‘세 늙은이가 모였다’는 묘사가 나온다. ‘언제, 누가 와서, 집 보러 가 잴지 몰라, 늘 갓을 쓰고 앉아서 행길을 잘 내다보는, 얼굴 붉고 눈방울 큰 노인은 주인 서 참의다. 처음에는 겨우 굶지 않을 만한 수입이었으나 대정 팔구년 이후로는 시골 부자들이 세금에 몰려,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만 몰려들고, 그런 데다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 다옥정 같은 중앙 지대에는 그리 고옥만 아니면 만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오랫동안 이렇게 각인된 부동산중개사 이미지는 확 바뀌었다.
▶올해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가 역대 최다인 40만명에 이른다. 1·2차 시험을 한날 보기 때문에 중복을 감안해도 응시생이 20만명을 훌쩍 넘는다. 시험에 학력, 나이 제한이 없어 작년엔 10대가 300여 명, 90대도 1명 응시했다. 성별도 남녀 거의 반반이다.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자격증 하나라도 따두자’는 생각에 ‘제2의 수능’ ‘어른들 수능’이 됐다.
▶첫 시험이 치러진 1985년에 합격률이 38%였다. 응시자가 많아지니 난도도 점점 높아져 작년 합격률은 21~22%였다. 일정 점수만 넘으면 무조건 합격하는 절대 평가 방식을 상대 평가로 바꾸겠다고 하니 제도 바뀌기 전에 시험 치자고 응시생이 더 몰렸다. 네이버의 공인중개사 수험생 카페 ‘공인모’ 열기는 고3생이나 고시생 못지않다. “2년 만에 합격했어요. 첫 번째 떨어지고 두 번째 울면서 재수하고 미친 듯이 공부했지요.” 2년 반 동안 퇴근 후와 주말에 독서실에서 꼬박 공부했는데도 불합격했다는 50대 남성은 “난이도 보니 2~3년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 중도 포기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정부가 ‘반값 복비’를 시행했음에도 집값과 전셋값이 워낙 올라 어지간한 서울의 아파트 한 건 거래에 복비가 1000만원도 넘는다. 1년에 몇 건만 중개하면 월급쟁이 안 부럽다 생각되니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생 10명 중 4명꼴로 2030세대다. 미친 집값에, 취업 한파가 겹친 씁쓸한 ‘공인중개사 열풍’이다.
11.02 손에 손 잡고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들 가슴 고동치게 하네.’ 전쟁의 폐허와 가난을 떨쳐내고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기상을 찬미하는 듯한 노랫말에 우리 모두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후렴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지금도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는 이 상당수가 ‘손에 손 잡고’를 역대 올림픽 주제곡 중 최고로 꼽는다.

▶당시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손에 손 잡고’였다. 밖으로는 북방 외교로 그때까지 적이었던 나라들과 손잡았다. 1988년 2월 미수교국으론 처음으로 헝가리 무용단이 방한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고, 양국에 상주 대표부가 설치됐다. 이후 5년간 45국과 손을 잡아 친구가 됐다. 유엔 남북 동시 가입까지 이뤄졌다. 서울 올림픽은 두 번의 반쪽 올림픽 이후 첫 전 지구촌 올림픽이었다.
▶안으로는 국민 화합 정책이 펼쳐졌다. 그해 3월 정부는 ‘광주 사태’로 불리던 5·18을 ‘광주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정지용 등 월북 문인 100여 명 작품도 해금했다. “전환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민주화와 과거 청산, 밖으로는 탈냉전 질서에 대응”(’노태우 시대의 재인식’·강원택 등 지음)했다는 평가 그대로였다.

▶'손에 손 잡고’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3저(저유가·저물가·저환율) 호황과 겹쳤다. 1986~1989년 한국 경제는 연평균 12.1%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2.5%까지 떨어지며 기업들은 항상 구인난이었다.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기업을 골라 취직했다. 그때쯤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해 1990년 1월 서울의 자동차 등록 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 주말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손에 손 잡고’가 울려 퍼졌다. 그 노래가 처음 울렸던 1988년 1인당 국민소득은 4400달러였다. 국민 80%가 “나는 중산층”이라고 자부했다. 30년 만에 이 수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반목을 부추겨 이득을 취하는 정치 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몇 해 전 방영된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회 제목이 ‘손에 손 잡고’였다. 올림픽 개막식 피켓걸 경험을 자랑으로 여기던 주인공 덕선은 30년 뒤 이렇게 회고했다. “가슴 뜨거웠고,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처럼 신나고 싶고, 비상하고 싶다.
11.03 억만장자 위 조만장자
코로나발 경제 위기가 세계의 억만장자 수를 크게 늘렸다. 위기 진화 과정에서 10조달러 이상 새 돈이 풀리면서 글로벌 증시 초활황을 낳았다. 비대면 메타버스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가상 화폐 투자 붐이 이어지면서 신흥 억만장자도 대거 탄생시킨 것이다. 지난 4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자산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 부자가 2755명으로 1년 새 660명이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며칠 전엔 포브스가 ‘미국 400대 부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전반적인 자산 증가 탓에 400대 부자 커트라인이 21억달러에서 29억달러(약 3조5000억원)로 올랐다. 올해 처음 진입한 44명의 신입 억만장자 중엔 가상 화폐 사업가 7명이 포함됐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동산 가치가 하락한 탓에 25년 만에 처음으로 400대 부자 명단에서 밀려났다.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세계 500대 부자 중 1위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다. 1년 새 테슬라 주가가 200% 급등한 덕에 머스크의 재산 총액이 3350억달러(11월 2일 기준)로 치솟았다. 나이키·도요타의 시가총액을 웃돌고, 핀란드·베트남 GDP(국내총생산)보다 더 크다. 2위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의 격차도 1000억달러 이상 벌어졌다. 머스크의 현재 재산엔 우주개발회사 스페이스X의 지분은 반영돼 있지 않다. 모건스탠리는 비상장기업 스페이스X 지분까지 감안하면 머스크가 인류 최초로 1조달러 재산을 가진 ‘조만장자(trillionaire)’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머스크가 아닐 수 있다. 미국 시사잡지 타임지는 19세기 미국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존 록펠러의 재산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각각 3700억달러, 3400억달러가 넘는다는 계산을 내놓은 바 있다. 19세기 세계 금융을 좌지우지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은 최대 1조달러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세계 500대 부자 중 70%는 새 제품(테슬라), 새 비즈니스 모델(에어비앤비)을 만들어 낸 혁신 기업가들이다. 세계 10대 부자 중 프랑스 LVMH 베르나르 아르노(3위), 워런 버핏(10위) 빼고는 모두 IT(정보통신) 기업 창업주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제치고 1위 부자로 등극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25살 때 1억달러 이상 자산을 모았지만 나는 돈 때문에 일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대 변화를 먼저 읽고 ‘창조적 파괴’를 실행하는 사람이 큰 부자가 되는 세상이다.
11.04 서울대의 추락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2018년 총장 선거 기간에 “국회에 있는 동안 서울대의 위상과 권위 추락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오 총장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다가 총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국민은 서울대를 ‘민족의 대학’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으로 바라봤고 ‘서울대가 한 게 없는데 왜 자꾸 예산만 늘려 달라느냐’는 동료 의원들 비판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 총장이 취임한 이후 3년이 지났는데 서울대의 위치는 개선은커녕 더 추락했다. 조선일보와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가 공동 실시한 ‘2021 아시아대학평가’에서 서울대는 지난해 14위에서 올해 18위로 네 계단 떨어졌다. 2014년엔 이 평가에서 4위였다. 한국 대표 대학들의 순위가 전반적으로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서울대는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서울대의 순위 하락은 대학 교육의 핵심인 연구의 양과 질이 악화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교수들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연구를 했는지 나타내는 ‘논문 피인용 수’ 지표에서 지난해 48위에서 올해 63위로 15계단 하락했다. 이 지표는 국내 대학과 비교해도 카이스트·포스텍은 물론 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이화여대에도 뒤지고 있다. 이 뉴스가 나온 3일 아침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말하는 서울대 구성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립대학들은 대학등록금이 사실상 13년째 동결 중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올해 받은 정부출연금은 5123억원으로 국립대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대보다 재학생이 많은 경북대(1975억원)의 2.6배다. 대학가에서 서울대에 대한 성토가 잇따르는 이유다. 규제 측면에서도 서울대는 자율성 확대를 위해 2011년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했다. 재정과 자율성 두 측면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초일류 대학의 존재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다.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 규모인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서울대가 아시아권에서조차 18위를 기록하고, 국내에서도 5위에 그쳤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대학순위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제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대가 이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대학 경영진이나 웰빙 교수들이라고 해도 문제가 무엇이고 답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리 없다. 정희성 시인은 1971년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공식 축시에서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했다. 빛을 잃은 시구가 돼버렸다.
11.05 따뜻한 나라?
‘아르헨티나 남부에서 일명 남극 추위라고 하는 강추위가 일주일째 맹위를 떨쳐 수은주가 영하 16도까지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길에 세워둔 자동차가 눈에 덮여 꽁꽁 얼어붙었다. 북부도 온도가 0도 가까이 내려갔다.’ 한국은 여름이지만 남반구는 겨울에 접어든 작년 7월, 국내에서 보도한 아르헨티나 뉴스다. 아르헨티나 남부는 지구에서 남극과 가장 가깝다.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과 관련해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따뜻한 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고 말해 국제 망신을 샀다. 이 발언을 두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아르헨티나에 스키장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했다. 한국과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는 사계절이 있는 나라다. 세계 8위 면적으로 남북 최장 거리가 3700㎞쯤 되니 아열대, 온대, 건조, 한대 기후대에 다 걸쳐 있기도 하다. 그런 나라를 남반구에 있다고 ‘따뜻한 나라’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파타고니아 지역에 가 본 사람이 ‘따뜻한 나라’ 얘기를 들었다면 실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위에 유독 약한 사람도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추기경 재임 당시 직원들이 출근해야 건물 난방을 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전기 난로 하나로 추위를 버텼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영하까지 내려가지는 않지만 겨울에 난방 시설이 없으면 지내기 힘든 곳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상식 부족 실수가 유독 잦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독일 국기를 게재해 망신을 샀다. 두 나라 국기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G7 정상회의 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사진을 잘라내고 문 대통령이 가운데 선 것 같은 사진을 띄웠다. 외교부는 대통령 순방국 체코를 분리 독립하기 전 나라 이름인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했다.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라고 했다가 해당국 대사관의 항의를 받았다. 발틱과 발칸은 비슷하지도 않은 지역이다.
▶지금 북한이 교황을 초청할 뜻이 없다는 것은 문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코로나로 거의 편집증 수준의 봉쇄를 하고 있는데 외부 방문단의 대거 입국을 받을 수 있겠나. 종교 자유가 말살된 곳에 교황이 가서 무얼 하겠나. 성사 불가능을 잘 알면서 자꾸 교황 방북을 요청하고, 교황청과 다른 발표까지 하는 쇼를 왜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면서 그걸 감추려다 ‘아르헨티나=따뜻한 나라’까지 나왔다.
11.06 부스터 샷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추가접종(부스터샷)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며칠 전 코로나 전담 클리닉을 운영하는 병원에서 ‘코로나 이후’를 주제로 의사 대상 심포지엄이 열렸다. 교수 강의가 끝나자 ‘부스터 샷’(3차 접종)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시일을 당겨서 맞아도 되나?” “이상 반응 심했던 사람에게 또 놔도 되나?” “항체 검사 보고 결정해도 되나?” 등등. 주최 측은 “의사끼리 세미나 하면서 이렇게 많은 질문이 쏟아진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세미나에서는 부스터 샷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공감대가 도출됐다. 고령자나 기저 질환자는 2차 맞은 지 5개월 지나면 부스터 샷을 맞아야 한다. 1·2차 같은 백신 맞았으면 부스터 샷도 그걸로 맞는 게 좋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AZ) 2회 또는 얀센 1회 맞았으면, 화이자나 모더나로 맞으라. 교차 접종의 효과가 좋다. AZ-화이자 순으로 맞았다면 화이자를 맞아라. 부스터 샷은 2차 때보다 이상 반응이 더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혈당 검사처럼 피 한 방울로 코로나 항체 여부를 보는 신속 검사 키트가 많이 돌아다닌다. 여기서 음성으로 나오면 그때 부스터 샷을 맞으면 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감염내과 교수들은 신속 항체 검사를 믿기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중화 항체 양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도 아니다.
▶싱가포르는 백신 2차 접종 완료율이 80%로 우리보다 높다. 그럼에도 위드(with) 코로나 했더니 하루 확진자가 4000명 넘게 나온다. 인구 비례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매일 4만명 나오는 셈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항체 지속 기간이 짧은 고령자와 백신 안 맞은 10~20대를 파고든 탓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바이러스는 항체 있는 곳에서 없는 쪽으로 찾아간다. 바이러스도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다.
▶백신 1차 접종은 적(敵)을 인지하도록 하고, 2차는 적과 싸울 군인(항체) 수를 늘린다. 부스터 샷은 군인 수도 더 키우고 활동 기간도 늘린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초로 부스터 샷을 놓기 시작해서 현재 인구 절반 가까이 맞았다. 그러자 9월 중순 1만명 넘게 치솟던 하루 확진자가 600명대로 줄었다. 부스터 샷 감염 예방 효과가 9배 높은 덕이다. 중증 예방 효능은 92%에 달한다. 코로나19는 희한하게도 걸렸다가 나으면서 얻어지는 면역보다 백신 면역 효과가 5배 더 높다. 앓고 지나가자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위드 코로나의 성패는 앞으로 얼마나 많이, 적절한 시기에 부스터 샷을 맞느냐에 달렸다.
김철중 논설위원, 의학전문기자
11.08(월) 청년 간병 살인
몇 해 전 스물일곱 살 청년이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해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극악한 패륜 범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안타까운 정황이 드러났다. 아버지가 불치병을 오래 앓았고 집안은 가난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지만 청년은 며칠 뒤 “너무 괴로워서 살 수가 없다”며 집을 나갔다. 가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근처 저수지에서 서성이던 청년을 찾아내 또 다른 비극을 막았다.

▶오랜 간병에 지쳐 부모나 형제 목숨을 빼앗는 것을 ‘간병 살해’라 한다. 노령 인구가 많은 일본에선 해마다 40~50건씩 발생한다. 안타까운 비극이다. 인면수심의 흉악범이긴커녕 지극한 효자나 효부, 금슬 좋은 부부 사이인데 오랜 간병에 지쳐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환자가 제발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저수지에 뛰어들려 했던 청년처럼 상당수가 범행 후 따라 죽는 ‘간병 자살’을 기도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어 죽게 한 혐의로 재판받은 22세 대학 휴학생 사연이 엊그제 보도됐다. 이 사건도 처음엔 병든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패륜 범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청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가 병마에 쓰러지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극 정성으로 돌봤으며, 병원비 내고 나면 난방은 고사하고 쌀 살 돈도 없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을 놓아주겠다면서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자식 가진 어느 부모 심정이 다르겠는가. 청년은 울면서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간병 살해 사건 재판정은 대개 눈물바다다. 안타까운 사연에 범인·방청객·판사가 함께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서인지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동정심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간병 살해는 사회·구조적 비극이다. 범행을 저지른 이 상당수가 병간호에 매달리느라 변변한 수입이 없고, 공공간병 지원을 못 받아 정신이 피폐해진다. 개인 범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민기본생활 보장’을 내걸고 출범한 이 정부도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지 못한다. 22세 청년 사례가 알려지자 총리가 “국가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을 뿐이다. 청년세대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하는 차기 대선 후보들은 다를까.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은 용돈 수준에 불과한 돈을 온 국민에게 뿌리면서 복지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극단적 절망에 빠진 청년들부터 구하는 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11.09 삼성전자보다 스타트업
1960년대 섬유 기술자, 1970년대 종합상사맨, 1980년대 증권맨, 1990년대 은행원, 2000년대 컨설턴트. 각광 받는 직업에는 시대상과 산업 구조의 변화가 반영돼 있다. 한때 벤처기업이 상한가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시기였다. 수많은 벤처기업이 나타나 코스닥 투자 광풍으로 이어졌지만 버블은 곧 터졌고, 벤처기업의 위상도 추락했다.

▶하지만 그때 뿌려진 씨앗이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넥슨 등 1세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탄생시킨 바탕이 됐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시가총액 3, 4위 대기업으로 성장, 대학생들의 최선호 직장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스타트업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메타버스 같은 4차 산업혁명이 꽃을 피우면서 ‘제2의 벤처붐’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엔 코로나 와중에도 12만개의 새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2000년 제1 벤처 붐 당시의 2배 수준이다. MZ세대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미래의 네이버, 카카오가 될 만한 ‘넥스트 유니콘’을 찾는 열기가 뜨겁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 중인 스타트업을 취재하러 갔다가 여러 번 놀랐다. 임차료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에 사무실이 있고, 책상 대부분이 비어 있고, 직원 3~4명만 일을 하고 있었다. 사장이 “젊은 직원들이 핫(hot)한 위치의 사무실을 선호하고, 평소엔 대부분 재택근무를 한다”고 했다. 엔지니어들의 스펙을 듣곤 또 놀랐다. 미국 MIT,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에다 아마존,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최고 수준 인재들이었다. 이런 인재들을 어떻게 유치했느냐는 물음에 사장은 “엔지니어로서의 성장 기회 때문”이라고 답했다. 첨단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면서 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으니 인재들이 제 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MZ세대를 ‘미미미 제너레이션’(Me Me Me Generation)이라고 정의했다. 개인의 이익과 성장을 최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취업플랫폼 잡코리아가 취준생에게 ‘직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묻자 ‘역량 향상(56%)’과 ‘돈(54%)’을 꼽았다. 청년 직장인의 70%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스타트업 이직을 꿈꾼다고 했다. 당근마켓(중고거래 앱), 두나무(가상화폐 거래소) 같은 스타트업이 삼성전자, SK텔레콤 같은 대기업을 제치고 취준생 지원율 상위 20위까지 싹쓸이하는 시대다.
11.10 괴담 이긴 성주 참외
참외는 박과(科)의 덩굴 식물이다. ‘참오이’ 즉 최고의 오이라는 뜻으로 삼국시대부터 재배됐다. 경북 성주는 참외 산지로 유명하다. 낙동강을 낀 습기 많은 토양과 따뜻한 기후, 태풍과 바람을 막아주는 금오산과 가야산 덕분에 국내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비닐하우스 재배로 아삭한 식감과 당도도 최고 수준이다.

▲성주 참외.
▶2016년 가을 성주에 갈 일이 있었다. 읍내는 ‘사드 배치 결사 반대’ ‘참외 농가 다 죽는다’고 적힌 붉은 플래카드로 도배돼 있었다. 문중 어른들은 “사드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당시 사드 반대 단체 등은 “사드 전자파가 사람은 물론 참외까지 오염시킨다”는 황당한 괴담을 퍼뜨렸다. 성주 참외를 ‘전자레인지 참외’ ‘사드 참외’라고 불렀다. 민주당 의원들은 성주군민 촛불집회에서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라는 개사곡을 부르면서 탬버린을 치고 춤을 췄다. 이 어이없는 괴담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갔다.
▶각종 괴담과 선동에 참외 농가의 타격은 컸다. 참외 가격이 30% 폭락하고 참외밭을 갈아엎는 농민도 나왔다. 4000억원이 넘던 성주 참외 매출액은 3000억원대로 떨어졌다. 국방 장관은 “전자파 위험을 직접 몸으로 시험하겠다”고 했고, 한 국회의원은 사드 기지 앞에 집을 사서 가족과 살았다. 괌 미군 기지의 사드 전자파가 유해성 기준치의 0.007%에 불과하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해발 400m에 있는 사드 레이더가 하늘을 향하기 때문에 땅에 전자파 영향이 없다”고 했다. 전파는 직진하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좌파 단체와 민주당은 막무가내였다.

▶'전자파 참외’라는 오명을 썼던 성주 참외가 올해 5500억원대의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작년보다 택배 물량은 2배 늘고 가격도 15% 올랐다. 괴담을 뚫고 부활한 것이다. 성주 기지의 전자파가 기준치의 600분의 1로 무해하다는 게 실험으로 입증됐고 탁월한 맛까지 더해진 덕분이다. 과거 ‘사드 참외’라고 했던 선동가들은 뭐라고 할까.
▶황당 괴담으로 피해를 본 건 성주 참외만이 아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뇌송송 구멍탁’이라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했다. 지금 광우병 때문에 미국 쇠고기 안 먹는 사람이 누가 있나. 환경단체들이 천성산 도롱뇽이 죽는다며 터널 공사에 반대해 천문학적 비용을 치렀다. 하지만 공사 후 도롱뇽은 물론 생물종이 더 증가했다. 괴담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절대 사과하지 않고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
11.11 ‘내부 고발’ 횡재
2009년 스위스 금융그룹 UBS 직원이 비밀 계좌를 가진 미국인 고객들의 탈세를 미국 국세청에 제보했다. 미 국세청은 UBS 미국인 고객 4500명으로부터 세금 4억달러(약 4800억원)를 추징하고, UBS에도 7억8000만달러(96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국세청이 “다 알고 있으니 자진 신고하라”고 압박하자, 제 발 저린 미국 부자 1만4000명이 세금 50억달러(6조원)를 자진 납세했다. 뜻밖의 횡재에 만족한 미 국세청이 UBS 직원에게 1억400만달러(12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지난 10월 이 기록이 깨졌다. 미국 금융 당국이 투자은행들의 리보(LIBOR) 금리 조작을 고발한 도이체방크 직원에게 2억달러(2400억원)의 보상금을 주었다. 투자은행들이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행 간 초단기 거래 금리인 리보를 수십 년간 조작해 온 사실을 고발한 대가였다. 해당 은행들이 미국 정부에 30억달러(3조6000억원)가 넘는 벌금을 냈으니, 2억달러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부 고발자 최대 보상금 기록은 11억원이다. 2015년 한국전력 납품 업체가 한전에 수입 기계를 납품하면서 263억원이나 바가지를 씌운 사실을 납품 업체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 11억6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이 기록이 6년 만에 깨지게 됐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현대차의 엔진 결함 은폐를 고발한 현대차 전 직원에게 2400만달러(28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내부 고발자 보상금의 상한이 정해져 있다. 공익 침해(권익위 소관)는 30억원, 세금 탈루(국세청)는 40억원이다. 하지만 상한선까지 받은 고발자는 아직 없다. 세금 탈루 고발자의 평균 보상금은 3200만원, 공익 침해 보상금은 2200만원에 그친다. 최근 5년간 국세청이 탈세 고발 덕에 6조8000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는데, 보상금은 0.9%인 608억원에 그쳤다. 미국은 이 비율이 18%에 이른다.
▶미국은 내부 고발의 천국이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근로자들이 비밀 유지 족쇄에서 벗어나 기업 비리를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게 하는 ‘침묵중지법(Silenced No More Act)’을 제정,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알고리즘 조작 등 페이스북의 치부를 고발하는 내부 직원의 폭로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현대차 직원의 보상금 대박으로 우리 기업에서도 내부 고발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도 호미로 막을 건 가래가 아니라 호미로 막아야 한다.
11.12 이재명식 ‘他山之石’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정리한 토론술에 ‘딴소리 전술’이 있다. 질문이 불리하다 싶으면 살짝 옆길로 빠져 그럴듯하지만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다가 원하는 말을 하고 끝내는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해선 잘 통한다. 그제 관훈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한 패널이 대장동 사건으로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채용 경위를 물었다. 꺼리던 질문이었는데 길게 답해 모두 주목했다.

▶“공직자의 권한은 권한을 위임한 주권자 이익이 부합해야 한다”는 공직 철학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부 때 광화문 단식 농성, 성남시 화장실에 ‘부패 즉사, 청렴 영생’이란 글을 붙여놓고 직원들에게 청념 교육을 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완벽하지 못해서 부패에 오염된 휘하 임직원들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제 부족함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걸 경험으로 삼아서 앞으로 엄정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타산지석으로 삼겠다”며 답을 끝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남의 잘못을 나의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뜻이다. 대장동 사건은 이 후보 자신의 문제다. 그래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됐다’고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타산지석이라고 한다. 타산지석은 초등학생 한자 교재에 나온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자성어다. 이 후보가 몰랐을 리 없다. 즉답을 피하고 말을 돌리더니 결국 대장동 비리를 ‘남의 잘못’이라고 한 것이다. 그는 이날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도 했다.
▶이 후보는 국정감사에서 민간 개발업자에 대한 불신을 여러 번 얘기했다. “공중분해되고 패가망신하기 바랐다”고 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사업을 직접 챙기고 민간에 절대 맡기지 말라고 지시했었다”고도 했다. 공익 환수 대목에선 자신이 다 챙긴 듯 말한다. 그런데 민간 업자들이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간 문제만 나오면 달라진다. “내가 관여할 수 없고 그들이 알려줄 리 없고 실제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수천억원을 나눠 먹은 생각을 하면 정말로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자신이 다 했는데,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정감사가 끝나자 여당은 “이재명의 압승”이라고 했다. 실제로 생방송 당시 인터넷 실시간 게시판에는 이 후보를 응원하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그 후 여론조사를 보면 대장동 사건 책임자는 이 후보라고 지목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핵심을 피하고, 말을 돌리고, 모순되는 말을 공격적으로 하고, 장광설로 대중을 현혹해도 본질은 어디 가지 않는다.
11.13 백신 부작용 인정 0.13%
‘8월 9일 화이자 1차 백신 접종 후 몇 시간 뒤 남편을 떠나보냈습니다.’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 제목이다. 이 글은 “남편은 평소 건강했는데 백신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부검 결과를 받았다”며 “접종 당일 사망했는데 어떻게 접종과 연관이 없다는 것이냐”고 했다. 청와대 청원에는 이와 비슷하게 백신 부작용이 심각한데 접종과 무관하다는 통지를 받아 억울하다는 글이 이달 들어서만 18건 올라와 있다.

▶지난 10일 국회에는 백신 접종 뒤 숨지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겪은 피해자 가족들이 모였다. 이들은 보건 당국이 우리보다 먼저 접종한 국가에서 밝혀진 이상 반응만을 근거로 인과성을 소극적으로 판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상 이전에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좀 알자”는 호소도 많았다. 질병관리청 담당 국장이 가족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주저앉기도 했다.
▶12일 현재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율은 전체 인구 대비 77.6%, 18세 이상 인구로는 90%다. “접종 부작용이 나면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말을 믿고 국민들이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한 결과다. 보건 당국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 의심 신고는 사망 신고 1233건을 포함해 모두 36만5878건이다. 이 중 인과성을 인정받은 경우는 사망 2건, 중증 5건, 아나필락시스 470건 등 477건(0.13%)에 불과하다. 백신은 치료제와 달리 멀쩡한 사람이 예방 차원에서 맞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는데 보상도 안 해준다니 당사자들은 열불이 나는 심정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은 개발 기간과 임상 시험 기간이 짧아 알려지지 않은 이상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10~20년 맞아온 백신과는 보상 체계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한 예방의학 전문가는 “코로나 백신은 누구도 전문가라고 말할 수 없다”며 백신 접종과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그레이 존(회색 지대)’에 대한 보상도 전향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백신 접종과 무관한 것이 밝혀지지 않는 한 보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2일 코로나 백신 접종과 이상 반응의 인과성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코로나 백신 안전성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에서 백신 접종 피해자 가족들의 억울한 심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인과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준을 마련하기 바란다. 정부는 그동안 몇 번이나 재난지원금으로 수십조를 썼다. 그런 정부가 유독 접종 부작용 보상에는 소극적인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11.15(월)‘백신 접종 제로’ 세계 唯二 북한

▲평양역 앞에서 북한 방역 요원이 주민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코로나 봉쇄와 국제 제재, 수해 등이 겹치면서 북한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프리카 수단과 에티오피아 사이 홍해 연안에 에리트레아라는 나라가 있다.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했지만 여전히 분쟁 중인 나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자 독재국가다. 테워드로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분쟁 소식이나 ‘인권 상황 최악’ 같은 뉴스에서나 이름을 볼 수 있는 나라인데 이번엔 백신 접종 기사에 등장했다.
▶WHO 사무총장은 12일(현지 시각) 전 세계에서 북한과 에리트레아만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코로나 백신 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를 통해 지금까지 144국에 5억회분의 백신을 전달했는데, 두 나라만 받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백스는 지난 3월 등 북한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10만회분을 배정했지만 준비 절차 미비 등으로 북한에 전달하지 못했다. 북한은 지난 9월 코백스에서 배정한 중국산 시노백 백신 297만여 회분도 다른 나라에 주라고 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코로나 확진자 0명, 사망자도 당연히 0명이다. 지난 10월 말에는 4만2000여 명에 대해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확진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WHO에 보고했다. 세계적인 감염병이 돌면 국경을 봉쇄하는 것이 북한식 방역법이다. 2003년 사스와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할 때도 그랬다. 북한 리룡남 주중 대사가 지난 3월 베이징에 새로 부임했지만 전임자인 지재룡 전 대사는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열달째 대사관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중국도 지난 1월 주북 대사에 왕야쥔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을 지명했지만 아직까지 부임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엔 사람만 아니라 외부 물자까지 통제하고 있다. 외부 물자에 대해 1개월이 넘는 장기간 ‘야적’을 통해 제염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바닷물이 코로나에 오염됐을까 봐 어업과 소금 생산을 금지했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지난 4일 기사에서 “겨울철에 내리는 눈을 통해서도 악성 비루스가 유입될 수 있다”고 썼다. 엉터리 미신 수준의 주장을 국가 단위로 집행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문제는 전 세계가 코로나 근절이 아닌 ‘위드 코로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으면 예전의 삶을 되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이 무슨 생각으로 공짜로 주는 백신조차 거부하고 있는지 북한 전문가들도 설득력 있는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죄밖에 없는 북한 주민들 삶만 날로 피폐해지고 있다.
11.16 음유시인 이동원
1984년 봄 서른세 살 무명 가수 이동원이 시인 정호승을 찾아가 정 시인 작품 ‘이별 노래’에 곡을 붙여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정 시인은 “좋은 곡을 만들어보라”며 허락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해 가을 이동원이 ‘워크맨’에 노래를 담아 정 시인을 다시 찾았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정 시인은 감탄했다. 애절한 곡조 위로 흐르는 이동원의 사색적인 음색에 매료됐다. 이동원은 이 노래로 오랜 무명에서 벗어났다. 연말엔 난생처음 방송사 10대 가수로도 선정됐다. 노래는 이듬해까지 100만 장 넘게 팔렸다.

▶그 후 이동원은 시에 곡을 붙여 꾸준히 발표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라는 고은의 ‘가을 편지’도 이동원 입을 통해 국민 애창곡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동원 최고의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정지용 시에 곡을 붙인 ‘향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당시 서울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와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는 200만 장 넘게 팔렸다. 이동원은 명실상부한 ‘음유시인’이었다. 조선일보가 10여 년 전 ‘현대시 100년 애송시 100편’을 연재했을 때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시가 ‘향수’였다. 그때 “냉장고 벽에 시를 오려 붙이고 노래했다”는 독자 반응이 많았다. 노래가 명시(名詩)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뜻일 것이다.
▶K팝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작곡과 편곡이 단연 세계 최정상급이다. 다만 아름다운 우리 시를 가사로 붙여온 전통의 맥이 끊긴 것 같아 아쉽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송창식의 ‘푸르른 날’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도 모두 원작은 시(詩)였다. 서양 팝 음악사의 명곡들도 멜로디 못지않게 아름다운 가사로 사랑받는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 노래가 대표적이다.
▶'나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이별 노래’)라고 했던 가수 이동원이 지난 주말 별이 되어 하늘에 올랐다. 고인은 1년 전 이맘때 병마에 수척해진 얼굴로 정호승 시인을 다시 찾아가 “내 노래는 100년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인의 소망대로 ‘음유시인 이동원’이 우리 곁에, 노래하는 별로 영원히 남았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11.17 일본의 쇄국

‘나라 빗장을 걸어 잠근다’는 쇄국(鎖國)은 일본에서 온 한자어다. 일본의 통상거부 정책을 다룬 독일인의 논문에 일본 학자가 1801년 ‘쇄국론’이란 제목을 붙여 번역했다. 일본의 쇄국은 포르투갈 선박의 입국을 금지한 1639년부터 200년 넘게 이어졌다. ‘아시아 동쪽 끝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도 있어 오래 버텼다. ‘갈라파고스’에 비유되는 일본의 폐쇄성도 그때 밴 습성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일본의 쇄국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인구의 1% 미만인 기독교인 비율이다. 16세기 일본은 아시아의 기독교 대국이었다. 신자가 15만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7세기 들어 이 기독교인들이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난을 일으켰다. 막부의 살벌한 진압으로 가담자 4만여 명이 거의 목숨을 잃었다. 일본 기독교는 이때 결정타를 맞았다. 쇄국도 이때 시작됐다. 일본은 북한과 함께 기독교 탄압에 성공한 몇 안 되는 나라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라는 작은 인공섬은 쇄국 당시 서양인이 발을 댈 수 있는 유일한 일본 땅이었다. 그것도 반란 때 진압을 도운 네덜란드인만 허락했다. 신앙은 완전 봉쇄됐다. 그래도 네덜란드는 막부에 서구 지식을 열심히 전달했다. 일본이 풍부하게 보유했던 금은(金銀)을 교역으로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0년을 쇄국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일본이 옛날로 돌아간 듯하다고 한다. 코로나를 막겠다며 ‘모든 외국인 신규 입국 금지’라는 극단적 봉쇄 정책을 올 초부터 이어오고 있다. 교환학생이 일본을 가지 못해 한국에서 화상 수업을 듣고 주일 특파원이 한국에서 일본 관련 기사를 쓰는 일이 벌어졌다. 입국 자격을 얻고도 일본에 못 가는 외국인이 37만명이다. 문을 연다고 하고서도 찔끔 한다. 그런데 일본 안에선 별 반발이 없다고 한다. 일본이 북한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요즘 일본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하루 평균 200명 안팎. 15일은 79명이었다. 2만5000명을 넘나들던 석 달 전을 생각하면 같은 나라인가 싶다. 집단 면역, 유동인구 격감이 국경 봉쇄와 함께 이유로 꼽힌다. 바이러스 자연 소멸설까지 나왔다. 기적이라고도 하고, 미스터리라고도 한다. 잘한다고 해야 할 일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쇄국의 한계는 분명하다. 사흘 전 도쿄에서 열린 한국 기내식 체험 이벤트에 참가하려는 일본인이 몰려 경쟁률이 20대1이었다고 한다. 많은 한국인도 일본행 비행기가 타고 싶을 것이다. 사람은 역시 왕래해야 한다.
11.18 카게무샤
일본 전국시대의 대표적 무장이자 영주인 다케다 신겐은 정벌 전쟁 중 급사했다. 그는 3년간 죽음을 숨기라면서 자신과 닮은 대역인 ‘카게무샤’(그림자 무사)를 쓰라고 했다. 좀도둑 출신 카게무샤는 신겐 못지않은 용병술로 적을 막아낸다. 하지만 1년 후 그의 정체가 들통나 쫓겨나자 다케다의 무적 기마군단은 전멸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의 줄거리다.

▶실제로 신겐은 자신과 닮은 동생 2명을 카게무샤로 뒀다. 카게무샤가 얼마나 연기를 잘했던지 그의 죽음을 확인하러 온 다른 영주의 사절이 깜짝 속아 넘어갔다. 당시 영주들은 카게무샤를 전쟁 등에 대신 내보내는 위장 전술을 썼다. 중국에선 제갈량이 자신과 닮은 대역 장수를 내보내 적을 교란했다.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군에 붙잡혔을 때 수행원인 은군해가 대역으로 나서 그의 목숨을 살렸다. 고려 왕건이 공산성 전투에서 포위됐을 땐 장수 신숭겸이 그의 옷을 입고 싸우다 죽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는 10명의 대역을 써서 왜병을 격파했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최소 3명의 ‘가짜 후세인’을 뒀다. 성형수술까지 한 가짜들이 공식 석상에서 대역을 했다고 한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도 미군 폭격과 암살을 피하려 가짜를 내세웠다. 한때 북한 김정일이 자신과 닮은 2명의 대역을 뒀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김정은도 신변 이상설이 돌 때마다 어김없이 카게무샤 설이 나온다.
▶사람만 카게무샤가 있는 게 아니다. 무기도 ‘디코이’(decoy·미끼)라는 대역이 있다. 상대 공격이나 탐지, 요격을 피하기 위해 잠수함이나 항공기, 미사일 등은 가짜 표적인 ‘더미’를 내보낸다. 1999년 코소보 분쟁 때 나토군은 78일간 세르비아군을 맹폭했는데 나중에 보니 가짜 탱크와 항공기였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연합군은 대규모 공수부대 인형을 타 지역에 투하했다. 북한은 폭격에 대비해 가짜 무기 모형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우리 군도 비닐로 만든 탱크를 선보였다.
▶낙상 사고를 당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를 두고 갑작스러운 ‘카게무샤’ 논란이 일고 있다. 검은 망토와 모자 마스크 선글라스 차림으로 이 후보 집에서 나온 여성을 김씨로 오인한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연상시킨 이 여성은 당에서 보낸 수행원이었다. 그가 먼저 나와 차를 타자 취재진은 그를 뒤쫓았다. 하지만 김씨는 그 직후 나왔다. 야당에선 언론을 따돌리기 위한 ‘여사님 카게무샤’냐고 했다.
11.19 한국·UAE의 ‘라피크’

중동 국가 예멘의 ‘후티’ 반군이 2017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을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짓고 있던 바카라 원전이었다. UAE는 ‘원전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UAE의 주요 시설은 후티 반군의 공격 표적이 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인 UAE와 사우디가 예멘 내전에서 ‘시아파’인 후티 반군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후티 뒤에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있다. 그런데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북한식 스커드 미사일을 본떠 만들어졌다. 북은 이란에 특수전·탱크 교관도 보냈다. 북·이란 군사 커넥션이 UAE의 안보 위협이다.
▶2009년 UAE 원전 건설은 사실상 프랑스가 따낸 상황이었다. 계약 날짜까지 정해졌다. 그런데 프랑스는 UAE 가상의 적국인 이란과도 관계가 깊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판에 이 점을 파고들었다. ‘원전+안보 협력’을 UAE 실권자인 왕세제에게 직접 제안했다.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이란 군사 체계와 유사한 북한을 한국이 잘 안다고 설득했을 것이다. 파리 코앞에 갔던 UAE 원전이 서울로 고개를 돌렸다.

▶이듬해 방한한 왕세제가 우리 특전사의 대테러 훈련을 참관한 뒤 한국 국방장관에게 “이런 부대가 UAE군을 훈련시켜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특전사 150명으로 구성된 ‘아크 부대’가 UAE 특수전 학교로 파병됐다. 아크는 아랍어로 ‘형제’란 뜻이다. 그 무렵 UAE 왕실 경호원들도 청와대 경호실로 파견돼 훈련을 받았다. 파병 전 한국의 UAE 무기 수출은 5년간 393억원이었다. 파병 후엔 1조2000억원으로 30배 뛰었다.
▶UAE 국방부가 최근 “한국형 방공 체계인 ‘천궁2′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계약 규모는 129억디르함(약 4조1500억원)”이라고 했다. 우리 방위 산업 수출 역사상 최대 규모다. UAE는 이란이 이라크 미군 기지를 탄도미사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탄도미사일 방어에 부심해왔다. 그 적임으로 ‘천궁2′가 선택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UAE와 맺은 비공개 군사 협약을 ‘적폐 청산’한다면서 잘못 건드려 평지풍파를 만들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급히 날아가고 문 대통령이 왕세제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무마됐다. 자칫했으면 ‘천궁’ 수출도 없을 뻔했다. ‘라피크’라는 아랍어가 있다. 사막 건너는 먼 길을 함께할 동반자라는 뜻이다. UAE는 중동에서 유일한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된 우물 안 개구리들이 어렵게 키워 온 ‘라피크’를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1.20 세운상가
일제 말, 총독부는 서울이 공습당했을 때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로3가~퇴계로를 남북으로 잇는 폭 50m 소개(疏開) 도로를 만들었다. 해방 후 이곳에 전쟁 이재민과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정착해 거대한 빈민촌을 이뤘다. ‘종삼’이라 부르는 사창가도 생겨났다.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수도 한복판이 이래선 안 된다”며 대대적 도심 정비에 나섰다.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67년부터 5년간 세운상가~진양상가로 이어지는 주상 복합 건물 6동(棟)이 차례로 들어섰다. 세운상가의 시작이었다.

▶서울 시민 반응은 좋았다. 연이어 늘어선 콘크리트 구조물은 서울 근대화의 상징물이 됐다. 부자들은 상가 아파트에 앞다퉈 입주했고, 서민들은 그때만 해도 낯설던 엘리베이터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갔다. 첫 국회의원 회관도 1968년 이곳에 입주했다. 1970~80년대엔 전자제품 상가로 번성했다. 시인 유하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서 젊은 외국 여배우 사진과 도색 잡지까지 은밀히 거래되던 이곳을 ‘욕망의 이름으로 나를 찍어낸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이 끝날 때쯤 한국인은 굶주림에서 벗어나면서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간하는 눈을 떴다고 썼다. 세운상가는 ‘번영의 상징’에서 ‘북한산~남산~한강을 잇는 서울의 녹지 축을 망친 흉물’로 전락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더 쾌적한 삶을 찾아 강남으로 떠났고, 의원회관도 이전했다. 가게들까지 용산 전자상가로 이사 가면서 공실률이 70%까지 치솟았다.
▶세운상가의 미래에 대한 오세훈·박원순 두 서울시장의 해법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오 시장은 2009년 노후한 세운상가를 철거한 뒤 공원과 어우러진 고층 빌딩가를 짓겠다고 했다. 박 시장은 반대로 갔다. 세운상가 건물을 보전하고 보행로를 만들었다.
▶오 시장이 엊그제 서울시의회에 출석해 “세운상가에 올라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며 “반드시 계획을 새로 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낡고 더럽던 동대문 일대를 외국 관광객들도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개발은 도시를 새롭게 탄생시킨다. 하지만 보존의 가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유럽 도시엔 수백 년 된 아름다운 고(古)건축물이 즐비하다. 세운상가가 유럽 건축과 같은 보존 가치를 가진 건물이냐는 것이 쟁점일 것이다. 개발이든 보존이든 쾌적하고 멋진 변모로 시민을 행복하게 했으면 한다.
11.22(월) 실종되는 중국인들

1995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6세 소년을 티베트 불교 2인자인 ‘판첸 라마’로 점찍었다. 티베트 전통에 따라 환생한 판첸 라마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이 소년은 곧바로 실종됐다. 달라이 라마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당국이 어디론가 데려간 것이었다. 국제 인권 단체가 ‘최연소 정치범’으로 부르며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다 2015년 티베트 자치구 설립 50주년을 맞아 관영 매체는 느닷없이 ‘소년이 잘 지내고 있다’면서 “달라이 라마 때문에 보통 사람으로 살지 못했다”고 했다. 실종 20년 만에 내놓은 것이 ‘남 탓’이었다.
▶2015년 중국 인권변호사 등 250여 명이 무더기로 사라졌다. 당시 왕취안장 변호사는 1000일 넘게 행방불명 됐다가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작년에야 출옥했다. 공산당 부패와 암투를 고발하던 홍콩 출판인 5명은 실종 100여 일 만에 홍콩 아닌 중국에서 소재가 확인됐다. 안팡보험·푸싱그룹·밍톈그룹 등 대기업 총수들도 수시로 실종되고 있다. 알리바바 마윈 회장은 100여 일간 행방이 묘연한 적이 있다. 여배우 판빙빙 등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반성문을 쓰거나 TV에 나와 ‘자기 죄’를 자백해야 풀려나는 경우도 있다. ‘실종’을 경험한 인권활동가는 “검은 커튼이 드리운 방에서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채 용변 보는 것조차 감시당했다”고 증언했다.

▶2019년 권력에서 멀어진 리위안차오 전 국가부주석의 자살설이 퍼졌다. 그러자 중국은 리 전 부주석이 발행 날짜가 보이도록 인민일보를 펼쳐 든 사진을 공개해 소문을 잠재웠다. 그런데 보시라이 전 정치국원의 내연녀 설이 돌았던 TV 아나운서가 ‘인체 표본’이 됐다는 괴담에 대해선 지금껏 생존을 증명할 어떤 사진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미투’ 폭로 후 실종설에 휩싸인 테니스 선수 펑솨이(彭帥)의 최근 사진과 동영상을 잇달아 공개했다. “내일이 11월 20일 아니냐”는 대화까지 노출했다. 그런데도 세계여자테니스 협회장은 “그녀 안전을 우려한다”고 했다. 테니스 스타들뿐 아니라 백악관과 유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까지 그녀의 자유와 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아는 것이다.
▶코로나 발원지 우한 실태를 전했던 시민 기자가 얼마 전 600여 일 만에 야윈 모습을 드러냈다. 공산당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다가 실종 상태인 중국인은 셀 수도 없다. 누구든 찍히면 사라진다. 미국인이 시진핑 집권기 실종된 중국인 피해를 모아 책을 썼다. 제목이 ‘실종 인민공화국’이다.
11.23 ‘물질적 행복이 최고’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시인 공광규는 ‘얼굴 반찬’에서 각자 성공을 위해 달려가느라 저녁 한 끼조차 함께 먹지 않는 한국 가정의 살풍경한 모습을 그렸다. 아빠는 승진과 더 높은 연봉을 위해 밥 먹듯 야근하고, 명문대 입학해 좁은 취업문 뚫어야 하는 자녀는 학원 전전하느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한 해외 언론은 이렇게 된 이유로 ‘한국인의 지나친 세속적 물욕’을 꼽은 적도 있다.
▶이런 지적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엊그제 발표됐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올해 전 세계 17개 선진국 1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 각국 응답을 평균 내보니 ‘가족’ ‘직업’ ‘물질적 행복’ 순이었다. 한국도 전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2019년도 한국인 행복 조건 조사에선 ‘좋은 배우자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1위였고, ‘돈과 명성’은 3위였다. 10년 전 한 언론사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돈벌이도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니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 가족과 돈에 대한 가치가 전복된 것이다.
▶영어의 ‘행복하다(happy)’는 ‘발생하다(happen)’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행복하려면 좋은 일을 경험해야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 나라 국민이 경험한 사건들은 한국인의 행복 가치 체계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특히 돈으로 인한 낭패감이 컸다. 무엇보다 치솟는 집값에 수많은 국민이 좌절했다. 영끌을 해도 집 장만이 어려운데 누구는 아파트로 10억, 주식으로 몇 배, 코인으로 수십 배 이익을 챙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행해진다.
▶심리학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하려면 로또 한 방 노리기보다 가족·친구와 산책 나가고 TV 앞에서 수다 떠는 경험을 매일 하라”고 권한다. 로또는 매주 쓴맛을 남기지만 산책과 수다는 매일 기쁨을 준다. 지극히 당연한 조언인데도 이제는 많은 한국인이 고개를 젓는다. 성실하게 회사 다니며 조금씩 저축하고 가족과 둘러앉아 평범한 행복을 누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벼락 거지’가 됐다고 한탄한다. 우리 국민들이 ‘물질=행복’이라고 대답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가. 정책 당국자들 아닌가.
11.24 육사 11기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왼쪽), 노태우 전 대통령. /조선일보 DB
1946년 개교한 육사 1~9기는 40여 일에서 6개월 교육만 받고 임관했다. 광복군·일본군·만주군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1949년 2년제로 입학한 10기(생도 1기)는 6·25가 터지자마자 전장에 투입됐다. 1950년 생도 2기는 입교 한 달 만에 참전해 동기생의 43%가 전사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1기 200명이 경남 진해에서 입학했다. 미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4년제 첫 정규 육사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제야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선배들과 달리 참전하지 않고 1955년 소위가 됐다.
▶육사 11기부터 미국으로 군사 유학을 갔다. 초급 장교 시절엔 군 부패 척결에도 앞장섰다. 집단적 엘리트 의식과 자부심이 강했다. 그런데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육사 생도의 지지 시위를 놓고 첫 분열이 생겼다. 전두환 대위 그룹은 시위 찬성, 육사 교수부의 동기들은 반대가 많았다. 5·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11기인 전두환·김복동·손영길·최성택 소령, 노태우·권익현 대위 등을 군 요직에 기용했다. 11기가 주도한 군 내 사조직 ‘하나회’가 세력을 불려 나갔다.

▶1973년 4월 군 실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박정희 후계’ 등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박 대통령과 함께 11기를 총애하던 윤필용의 몰락으로 11기는 위기를 맞았다. 선두였던 손영길 준장과 권익현 대령 등이 ‘윤필용 사건’에 휘말려 군복을 벗어야 했다. 당시 보안사가 하나회를 이끌던 전두환 준장 등도 조사하려 했지만 권력 내부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 파동에서 살아남은 11기가 신군부를 이끌며 1979년 12·12 쿠데타 주역이 된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후 노태우 등이 군복을 벗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11기가 정치와 군으로 나눠졌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 11기는 12년 넘게 군대는 물론 정치 권력의 핵심이었다. 11기인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국방장관을 거쳐 6공 때는 재선 의원을 했다. 중장으로 예편한 김복동도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하나회 라이벌 ‘청죽회’ 출신인 이상훈도 국방장관을 했다.
▶노태우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별세했다. 11기는 두 대통령을 포함해 대장을 5명 배출했다. 중장·소장만 20명에 달한다. 장관급과 국회의원도 수두룩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육사 11기만큼 권력의 영욕(榮辱)을 오래 겪은 집단도 없을 것이다. 70년 전 전쟁 중인 나라의 사관생도로 입교할 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역사의 페이지도 넘어가고 있다.
11.25 문어와 게도 아프다
‘번성’ 관점에서만 보면 가축은 성공한 동물이다. 오늘날 호랑이 늑대는 멸종 위기에 몰려 있지만 인간과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는 온 세상에 널렸다. 대형 동물 90%가 가축이란 통계도 있다. 다만 공짜가 아니다. 많은 가축이 번성하는 대가로 인간 식탁에 오른다. 저술가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사육에 의한 번성이 인권 아닌 동물권을 극도로 억압한다고 한다. 암퇘지는 가로 2m, 세로 60㎝ 좁은 우리에 평생 갇혀 10번 정도 새끼를 낳고 도축장에 끌려간다. 하필 지능이 높고 감성도 풍부해 갇혀 사는 내내 좌절과 분노를 수시로 드러낸다. 하라리는 “그렇게 사느니 지구 상 마지막 개체로 태어나 마음껏 뛰어놀다가 멸종하는 편이 짐승 입장에선 더 낫다”고 말한다.

▶허영만 만화 ‘식객’의 ‘쇠고기 전쟁’ 편엔 가축의 감정이 육질에 영향을 주는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쇠고기 요리 대회에 가지고 나갈 소를 고르러 온 요리사에게 소 주인은 “우리 안에 있는 나머지 소도 다 사라”고 요구한다. 한 마리만 사면 죽으러 가는 걸 눈치 챈 나머지 소들이 충격에 빠져 육질이 나빠진다는 게 그 이유다.
▶영국 정부가 문어 같은 두족류와 바닷가재·게 등 수산 갑각류에도 동물복지법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엊그제 보도했다. 소·돼지 등 척추동물뿐 아니라 수산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런던정경대 연구에서 밝혀진 데 따른 조치다. 런던정경대는 해산물을 산 채로 삶지 말라고 했다.
▶이런 연구가 아니어도 수산 시장 상인들은 경험으로 생선과 문어·오징어 등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잔인한 방식으로 죽은 수산물은 맛이 나쁘다고 한다. 갓 잡은 생선을 공기 중에 방치해 질식시키거나 냉각 수조에 담그면 고통받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권하는 방법이 뇌를 한 번에 찌르는 피싱(pithing)이나 전기 충격을 줘서 통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생선회의 나라 일본에선 ‘이케지메’라는 방법을 쓴다. 생선의 눈과 눈 사이를 겨냥해 뇌를 단숨에 찌른 뒤 척수와 분리해야 하는데,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다.
▶동물의 감정을 살피고 고통을 줄여 주는 게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몽골 유목민들은 도축할 양의 목에 작은 상처를 낸 뒤 손을 천천히 집어넣어 심장을 쥔다. TV로 그 장면을 본 적 있는데 양이 마치 잠자듯 눈을 감았다. 인간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짐승을 죽여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연민과 감사의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인간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1.26 BTS 같다는 ‘K-세금’
지난해 6월 기획재정부가 동학개미 눈치도 안 보고 ‘금융세제 선진화 정책’을 발표했다. 2022년부터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 투자로 버는 모든 소득을 합쳐서 금융투자소득세를 과세하고, 2023년부터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20%의 세금을 물린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즉각 제동을 걸었다. “개인 투자자의 의욕을 꺾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표 많은 쪽에 인기 없는 일을 절대 안 하는 사람다운 조치였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고 있다./뉴시스
▶반면 부동산 분야에선 부자 징벌 세정(稅政)으로 치달았다. 표가 적으니 마구 때리는 것이다. 투기를 잡겠다며 양도소득세법을 다섯 차례나 수정해 최고 세율을 75%까지 끌어올렸다. 내용도 너무 복잡해 난수표가 됐다. 1주택자 경우 거주·보유 기간에 따라 8가지였던 양도세율 경우의 수가 189가지로 늘어났다. 다주택자는 보유 주택 수·지역·처분 시기 등의 변수가 추가돼 경우의 수가 몇 가지나 되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미친 집값’은 더 악화됐다.
▶양도세는 세금을 제대로 계산해 신고하지 않으면 미납 세금은 물론 가산세까지 물어야 한다. 그런데 세무사의 98%가 “세법이 너무 자주 바뀌어 업무를 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국세청에 문의해도 뚜렷한 답을 못 주는 경우가 많다. 양포세(양도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 신조어가 괜히 등장한 게 아니다. 국민은 어쩌란 말인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바람직한 세제가 갖춰야 할 특성으로 ‘단순성’ ‘공평성’ ‘경제성’을 꼽았다. 세제가 복잡하면 납세자의 세금 납부 비용이 커지고 국가 경쟁력을 해친다. 대부분 선진국의 보유세는 단일 세율이다. 반면 우리나라 재산세는 4단계, 종합부동산세는 12단계의 기형적 누진 세율 구조를 갖고 있다. 종부세 최고 세율 6%는 유럽의 부유세보다 높다. 세금이 아니라 징벌이다.
▶한국의 조세 경쟁력 순위가 2017년 17위에서 올해 26위로 9계단이나 떨어졌다. ‘세금 정치’ 탓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세금의 기본 원칙이 깨진다. 미국에선 납세자의 삶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주택보유세를 연간 2% 이상 올리지 못하게 법으로 제한한다. 한국에선 상위 2%에 국한된 세금이라고 한 해에 2~3배씩 마구 올린다. 이런 세금 폭탄을 안겨놓고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BTS처럼 세계가 부러워할 K-세금”이라고 자랑한다. 난수표 같고, 불공평하고, 비경제적인 ‘잘못된 세금’ 올림픽이 있다면 K-세금이 단연 금메달이다.
11.27 한국의 스시

▲지금 유행하는 스시의 원형은 19세기 초반 에도(도쿄)에서 시작된 스시다. 패스트푸드식 대중 음식으로 일본식 포장마차인 '야타이'에서 팔았다. 에도시대의 스시 야타이 그림.
회전초밥집의 빙빙 돌아가는 접시엔 스시 두 개가 놓여 있다. 왜 두 개일까? 옛날 스시는 요즘의 2.3배 크기였다고 한다. 한입에 넣을 수 있도록 나눠 내기 시작한 데에서 접시당 두 개가 됐다는 것이다. 스시는 포장마차에서 주먹밥처럼 크게 만들어 팔던 대중 음식이다. 값이 비싸지고 장소가 화려해졌지만 요즘도 포장마차 때처럼 셰프가 손님을 마주하고 스시를 만들어 주는 곳이 많다.
▶옛날 스시는 밥과 생선을 섞어 발효시킨 한국의 식해 같은 음식이었다. 발효는 저장고가 필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19세기 들어 수산물이 풍부한 도쿄를 중심으로 발효 대신 식초로 초밥을 만들고 생선 등을 올려 바로 내기 시작했다. 지금 스시의 원형이다. 일종의 패스트푸드였다. 20세기 들어 냉장 기술 발전 덕분에 값비싼 날생선이 올라가면서 스시는 점차 미식가가 찾는 고급 음식으로 변했다.

▶사시미(일본식 회)가 아니라 스시가 일본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은 밥이 생선맛을 훨씬 좋게 하기 때문이다. “스시 맛은 밥이 60%”란 말이 있다. ‘밥 짓기 3년, 스시 주무르기 8년을 거쳐야 장인이 된다’는 말도 있다. 까다로운 셰프는 원하는 밥맛을 내기 위해 여러 산지의 쌀을 섞어서 사용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스시는 재료 하나하나에 상당한 연구와 내공이 필요한 음식이다.
▶미쉐린 가이드 도쿄가 처음 나온 건 2008년이다. 이때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은 스시 장인 2명이 지금은 모두 탈락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지로의 꿈’ 주인공인 오노 지로는 얼마 전 평가 대상에서 빠졌다. 세계적으로 너무 유명해져 일반인이 사실상 갈 수 없게 된 탓이다. 미쉐린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은 제외한다고 한다. 지로의 제자인 미즈타니 하치로는 암에 걸려 은퇴했다. 10여 년 전 그를 만났을 때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제자들이 가게를 잇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평생 매일 16시간씩 일했다고 했다. 1년 치 예약이 다 차도 하루 10석 손님이 전부라 큰 돈도 못 번다고 했다.
▶최근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점을 받은 식당 33곳 중 일식당이 8곳이었다. 대개 스시집이다. 한식집 숫자와 같다. 한국의 스시는 30~40년 전 호텔에서 시작했다. 유명 셰프의 계보를 따지면 대개 신라와 조선호텔로 올라간다. 이제 맛과 질이 일본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대중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싸지만 질 좋은 스시집은 아직 많지 않다. 음식엔 국경도, 민족도 없다. 세계 최고의 스시도 한국에서 나왔으면 한다.
11.29(월) 홍해처럼 갈라진 이대남 이대녀
얼마 전 20대 남성들이 자주 찾는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대녀(20대 여성)들 코로나 이후 삶의 질이 이대남(20대 남성)보다 낮아진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올 2분기에 20대 여성의 일자리 평가지수가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았고,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소개하며, ‘20대 여성들이 뮤지컬 관람, 인스타 맛집 탐방 등을 남자친구나 부모 돈으로 즐기다 코로나로 못 놀게 돼 삶의 질이 떨어진 것’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의 여혐, 남혐 공격이 일부 네티즌 사이에 벌어진 건 하루 이틀 된 얘기는 아니다. 보편적 사회 현상으로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유독 ‘이대남’ ‘이대녀’ 갈라치기가 두드러진다. 이재명 후보는 “‘여성’ 자가 들어가니까 여성가족부 명칭을 바꾸자”고 했다. 윤석열 후보도 20대 남성들에게 인기 없는 여성가족부를 향해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로 실망을 안겨줬다”고 공격했다.
▶ 최근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두 배 이상 높고(45% 대 18%), 20대 여성은 민주당 지지가 국민의힘보다 두 배 이상 높다(28% 대 11%)는 결과가 나왔다. 야당은 이준석 당 대표 선출, 서울·부산 보궐 선거, 대선 후보 경선의 홍준표 예비 후보 등이 이대남에게 어필해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이 원인일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해 이대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 출범 당시 20대 여성 지지율이 95%나 됐다.
▶그런데도 여야 후보 공히 이대녀는 제쳐두고 이대남에게 더 공을 들이고 있다. 형수 욕설 논란의 이재명 후보, ‘쩍벌’ 자세의 윤석열 후보 둘 다 20대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좀처럼 못 얻고 있다. 20대 여성의 절반(47%) 가까이가 양당 후보 둘 다를 지지하지 않거나 기타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할 정도다. 반면 20대 남성은 지지하는 후보가 없거나 기타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25%에 불과하다. 여야 모두 이대남 표밭이 노동력 대비 수확 효율이 더 높다고 느끼게 되는 구도다.
▶20대의 정치 성향이 늘 이렇게 홍해 가르듯 나눠지는 건 아니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20대 남성도 진보층이 더 많았다. 얼마 안 되는 질 좋은 일자리를 놓고 20대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이대남, 이대녀 갈등이 증폭된 측면이 적지 않다. 정치인들은 그 갈등에 편승해 표 잡는 경쟁만 벌이고 있다.
11.30(화) 기사 없는 택시 등장
영국 런던의 택시는 ‘블랙 캡’, 미국 뉴욕 택시는 ‘옐로 캡’이라 부른다. 원래 캡(cab)은 19세기 영국에서 날렵한 마차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일반 마차보다 덩치가 작아 승차 인원은 적은 대신 마부가 지붕 위 뒤쪽에 자리 잡는 구조여서 무게중심이 안정돼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빠른 속도 덕에 택시처럼 영업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캡이 택시를 의미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마차 이름이 택시 이름이 됐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세기 초 미국 뉴욕 거리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마부들의 돌멩이 세례 탓에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 했다. 이런 마부들의 시위를 보고 오히려 앞으로 자동차가 대세가 될 것을 직감한 사업가가 있었다. 미국 1위 마차 제조 회사의 오너 윌리엄 듀랜트였다. 그는 당시 자동차 스타트업 뷰익(Buick)을 인수해 제너럴 모터스(GM)로 키우는 반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2009년 첫선을 보인 공유 차량 서비스 ‘우버’는 전 세계 택시 기사들에게 공포를 안겨 주었다. 100만달러를 웃돌던 뉴욕 택시 면허 가격이 10분의 1로 폭락하고, 수많은 택시 기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폭탄이 다가오고 있다. 운전기사가 아예 필요 없는 자율주행 택시의 등장이다.
▶중국 바이두가 최근 베이징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선보였다. 구글의 자회사 웨이모가 작년 12월 미국 피닉스에서 무인 자율주행 택시를 시범 운행했지만 승객에게 돈을 받고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바이두가 처음이다. 2025년까지 65도시, 100만대로 늘린다고 한다. 현재 자율주행 택시는 제한된 구역, 구간만 운행하는 수준이다. 기계가 운전하는 4단계나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5단계까지는 갈 길이 멀다. 차량이 다른 차, 도로 시설물, 보행자, 네트워크와 소통하는 V2X(Vehicle to Everything) 기능까지는 엄청난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는 오고 말 것이다. 현재의 자동변속기 개발엔 50년, 내비게이션은 30년, 에어백은 25년 이상 걸렸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모두 실현됐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G 등 자율주행 기반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완전 자율차의 등장 시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다. 마차와 마부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영국의 ‘붉은 깃발법’은 마부도 지키지 못한 채 자동차 선진국 자리만 독일, 미국에 빼앗기게 만들었다. ‘타다 금지법’ 사태가 반복되면 우리도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