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타락/ 2017.02.11 법조계가 꼭꼭 숨겨 왔던 법원행정처 문건을 보니 - 2018-01-31 불꽃 튀기다 덴 대법원장
■사법부의 타락
■2017.02.11 법조계가 꼭꼭 숨겨 왔던 법원행정처 문건을 보니
“통진당 비례대표 도의원 퇴직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에 손 들어준 법원행정처
⊙ 법원행정처, 판사 인사권 휘두르는 대법원장 별동대
⊙ “승진하고 싶은 판사들, 잘못됐다는 것 알면서도 통진당 비례대표 도의원 의원직 유지하는
판결 내릴 것”(익명을 요구한 법조인)
⊙ 재판부로부터 지방의원 지위를 인정받은 6명 중 5명 통진당 후신 격인 민중연합당에 입당
⊙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차이를 집중 부각, 국회의원 직위 상실에 관한 부분은 보도를 차단하라”
(문건 내용 중)
⊙ “공식 문서 아니다”(대법원·법원행정처)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에도 촛불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초기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외치는 구호는 ‘대통령 퇴진’ 하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순수한 뜻에 편승해 사익(私益)을 챙기려는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한 이유로 2014년 말 헌법재판소(헌재)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통진당) 출신 인사들이 대표적이다.
구 통진당 세력이 결성한 원외 정당 ‘민중연합당’은 촛불집회 내내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을 ‘박근혜 정부의 희생양’으로 규정하며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내란(內亂)선동 혐의로 수감 중인 중대 범법자다. ‘통진당 해산 무효’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월간조선》은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퇴직처분은 부당하다’는 내용이 담긴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문건을 입수했다. A4용지 4쪽 분량으로 2015년 11월 25일 만들어졌다. 제목은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다.
헌재는 2014년 12월 통진당 해산 결정을 하면서 소속 국회의원 5명에게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으나 지방의회 의원은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후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이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한 때에는 퇴직된다’는 공직선거법(192조 4항)을 근거로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6명(광역의원 비례대표 3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3명)의 의원직을 박탈했다. 이 조항에서의 해산은 자진해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강제해산은 퇴직 사유라고 본 것이다.
결정에 반발한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6명은 2015년 초 서울행정법원(6명 전원)과 광주지방법원(이미옥 광주시의원, 오미화 전남도의원, 김재영 여수시의원, 김재임 순천시의원, 김미희 해남군의원 등 5명), 전주지방법원(이현숙 전북도의원)에 지방의회 의원 퇴직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은 엇갈렸다.
서울행정법원은 “헌재가 이미 선고했으므로 법원이 재판할 거리가 아니다”고 각하(2015년 11월 12일)한 반면 전주지방법원(전주지법)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비례대표의 정당 해산에 따른 의원직의 상실 여부는 법원이 판단한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선거법이 예정한 경우가 아니므로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역의원 이현숙 전북도의원의) 비례대표는 의원직이 유지된다”고 선고(2015년 11월 25일)했다.
전주지법 판결날 법원행정처에서 내려보낸 문건
▲2016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가결 이후 처음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대로변에 지난 2013년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종이가 바닥에 놓여 있다.
전주지법의 판결에 대해 통진당을 위헌 정당으로 판단해 해산한 헌재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행정처는 판결 당일인 2015년 11월 25일 전주지법에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 문건’을 내려보냈다. 문건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직선거법 192조 제4항의 해석론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뉠 수 있지만, 정당해산 결정에 따른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선언한 부분은 권력분립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헌재의 월권을 지적하였다는 점에서 적절함.〉
헌재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하면서 의원직 상실을 선고한 것은 위헌 정당의 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한다면 실질적으로는 그 정당이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진당 소속은 국회의원이든 지방의회 의원이든 자격을 상실하는 게 맞다. 간판만 내리게 하고 활동은 그대로 하게 두면 정당 해산은 하나마나다. 1952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나치 성향의 사회주의제국당(SRP)을 해산할 때 명문 규정이 없음에도 소속 정당의 연방의회 및 주의회 의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선고를 했다.
심지어 문건에는 ‘법관 대상 헌법 교육 시 활용 여부를 검토 예정’이란 문구도 있었다. 통진당 지방의원의 손을 들어 준 전주지법의 판결을 법관 대상 교육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에 설치된 사무총국을 본떠서 만든 조직으로 사법권력의 핵심부다. 기획조정실, 사법지원실, 사법정책실, 행정관리실, 사법등기국, 전산정보관리국, 재판사무국 등 4실 3국과 윤리감사관, 인사총괄심의관, 인사운영심의관, 공보관 및 안전관리관으로 구성됐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형식적으로는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을 보좌하는 자리지만, 법원장급으로 행정판사들의 우두머리 격이다. 대법관으로 가는 요직이기도 하다. 전체 판사 2500여 명 가운데 법원행정처 소속은 30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야말로 판사들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대법원장의 별동대다. 이들이 손을 들어 준 판결로 법관 교육을 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의 이야기다.
“서울과 전주의 판결이 정반대로 나왔다. 앞으로 대법원으로 올라갈 사안인데 법원행정처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지침 문건을 만들어 법관 대상 교육에 활용하겠다고 한다면 판사들이 어떤 선택을 하겠나. 승진하고 싶은 사람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진당 비례대표 도의원 퇴직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지 않겠나. 판사는 각자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헌법기관이다. 무슨 생각으로 법원행정처에서 말도 안 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지 모르겠다.”
문건에 ‘공보스탠스’라는 항목에는 언론 보도를 차단하라는 지침도 있다.
〈판결 전문 공개 시 보수 언론은 위헌정당 해산에도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전주지법 판결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됨. 법무부 스스로 지방의원에 대해서 직위 상실 청구하지 않은 점,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사이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부각. 국회의원 직위 상실에 관한 부분은 보도를 차단해야 함.〉
전주지법의 판결 결과가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직위 상실 결정과 배치돼 언론의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일부 판결 내용은 보도를 막으라는 것이다. 이 문건은 당시 일부 지역 기자들에게 소량 배포됐으나,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문건을 본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전주지법에서 내용 보도는 물론, 본사에 정보보고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다”며 “그래서 지금껏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월간조선》은 독자들의 객관적 판단을 돕기 위해 문건 전체를 공개한다.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 보고(전주지법 11.25 선고)=사법정책실
1. 개요
가. 사건개요(2015구합407)
1) 당사자 및 재판부
■ 원고 : 이현숙
■ 피고 : 1. 전라북도의회의장 2. 전라북도
■ 재판부 : 서울행정법원 제2행정부(재판장 : 방○○ 부장판사, 주심: 임○○ 판사)
2) 사실 관계
■ 원고는 통진당 추천받아 비례대표 전라북도의회의원으로 당선
■ 헌재는 2014년 12월 19일 통진당 해산결정 및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 결정
■ 중앙선관위 2014. 12. 22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 소속 비례대표 지방의원은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결정이 선고된 때부터 공직 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 따라 퇴직된다고 전라북도의회 등에 통보
■ 피고 전라북도의회의장은 2014. 12. 22 원고에게 ‘공선법 제192조 제4항 규정에 의거 의원직에서 퇴직처리되었음을 알려 드린다’는 취지로 통보
*공직선거법 제194조(피선거권상실로 인한 당선 무효 등)
4항-비례대표 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국회법 제135조(퇴직) 또는 지방자치법 제78조(의원의 퇴직)의 규정에 불구하고 퇴직된다.
나. 청구취지
- 피고 전라북도 도의회의장이 2014. 12. 22. 원고에 대하여 한 비례대표 퇴직 처분을 취소한다.
- 피고 전라북도는 원고가 비례대표 전라북도의회의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
2. 판결 선고 결과
가. 주문
- 원고의 피고 전라북도의회의장에 대한 소를 각하한다
- 피고 전라북도는 원고가 비례대표 전라북도의회의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
나. 이유의 요지
1) 취소청구(청구취지 1항)
■ 2014. 12. 22자 퇴직 통보는 피고 전라북도의회의장이 원고에게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 의하여 퇴직되었음을 알려주는 내용으로서 원고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 →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부적절함
2) 지위확인 청구(청구취지 2항)
■ 핵심쟁점 : ‘위헌정당 해산결정에 따른 해산’이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서 말하는 ‘해산’ 포함되는지 여부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 의원직 유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경우 → 의원직 상실
■ 침익적 행정행위의 근거 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함. 解散은 사전적으로 ①자진 해체의 의미 ②본인 의사와 무관한 해산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 → 의원직 상실된다는 해석론은 엄격해석과 배치됨
■ 공선법 제192조 제4항이 당연 퇴직 제외사유로 예시한 ‘합당·해산 또는 제명’은 모두 본인 의사와 무관 → 법률조항의 취지는 자의로 당적 벗어나는 경우 당연 퇴직 처리하겠다는 것임
■ 헌법재판소 역시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하여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음
■ 위헌정당 해산에 따른 국회의원 퇴직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음
■ 이 법원은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 해산결정에도 불구하고 공선법 제192조 제4항에 따라 곧바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연 퇴직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함. 이와 같은 해석은 비례대표 지방의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됨
■ 피고 전라북도가 원고의 지위를 부정하면서 다루고 있으므로 확인의 이익도 인정됨
3. 향후 대응
가. 對 언론 대응
■ 판결 전문 공개 시 보수 언론은 위헌정당 해산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가 상실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전주지법 판결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됨
문화일보 2015. 11. 25자 석간 → 전주지법 판결이 헌재 결정과 배치된다는 취지로 비판
■ 공보스탠스 → ①법무부 스스로 지방의원에 대해서 직위 상실 청구하지 않은 점 ②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사이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부각(국회의원 직위 상실에 관한 판단 부분은 보도를 차단해야 함)
- 법무부 역시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의원직 상실시킬 근거가 박약하다는 판단하에 의원직 상실 청구하지 않음(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의원직 상실 청구함)
- 지방의원은 행정적 성격이 강하므로 정당 기속성이 상대적으로 약함
■ 법원행정처 공보관실↔전주지법 간 공보스탠스 공유 완료
나. 법관 대상 헌법교육 시 활용
■ 공선법 제192조 제4항의 해석론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뉠 수 있음
■ 다만, 정당해산결정에 따른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선언한 부분은 권력분립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헌재의 월권을 지적하였다는 점에서 적절함. 선결문제로 위헌정당 해산결정으로 인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직위상실 여부, 국회의원 퇴직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고 판단. 서울행정법원의 판결과 정반대 취지임
■ 법관 대상 헌법교육 시 활용 여부를 검토 예정[끝]
문건이 전주지법에 내려간 이후
▲2016년 12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가결 이후 처음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대로변에 헌재에 의해 지난 2013년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이석기 의원이 독립운동가들로 묘사된 합성사진 위에 ‘그들이 돌아와야 민주주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문건이 만들어진 이후인 2016년 5월 19일 광주지방법원(광주지법)은 통진당 지방의회 5명의 의원 지위를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광주지법은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 의하면 비례대표 지방의원 퇴직사유로 당적이탈 등을 규정하되, 그 당적의 이탈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으로 인한 경우 등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예외 사유를 인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퇴직사유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규정한 소속정당의 해산이 자진 해산만을 의미하는지 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위헌정당의 해산(강제 해산)도 이에 포함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인데, 이 사건 조항 중 소속 정당의 해산은 자진·강제 해산을 모두 포함한다고 해석되므로 헌재 결정에 따른 강제 해산으로 인한 퇴직 사유를 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헌재의 이번 정당해산 결정에서 옛 통진당 국회의원 전원에 대해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바 있으나 지방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원고들에게 이 사건에서 지방의원직의 당연 퇴직 사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문건에 적시된 내용과 일치한다.
재판부로부터 지방의원 지위를 인정받은 6명 중 5명(◆이현숙 전북도의원·2016년 7월 5일 입당 ◆김재임 순천시의원·2016년 10월 17일 입당 ◆김미희 해남군의원·2016년 10월 20일 입당 ◆이미옥 광주시의원·12월 20일 입당 ◆오미화 전남도의원·2016년 12월 27일 입당)은 순차적으로 통진당의 후신 격인 민중연합당에 입당,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무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당시 정부 측 참고인으로 활동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이 말한 바로는 민중연합당의 중앙당, 지역당직자와 총선출마자 등 300여 명 중 78%가 구 통진당 세력이고 RO(지하혁명조직) 출신도 48명에 이르렀다. 민중연합당이 ‘도로 통진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분명한 셈이다.
유 원장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대 총선거에 민중연합당 소속으로 출마한 60명의 후보 중 55명이 통진당 활동 경력자였다. 이 중에는 RO사건 시 비밀회합에 참석한 실질적인 RO 성원도 포함돼 있었다.
유 원장의 이야기다.
“현재 민중연합당은 경기·강원·충북·충남·경북·전북 등 전국 11개 광역시·도에 당 조직을 결성했다. 당원이 2만2000여 명에 육박한다. 지금까지 파악하기론 민중연합당 중앙당 및 지역당 당직자는 총 129명인데 이 중 105명(81%)이 범(汎)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이다. 특히 민중연합당 신임 상임대표 김창한은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출신이고, 구 통진당 최고위원이자 이석기를 추종하는 유선희(여)의 남편인 것으로 알려졌다.(※유선희는 민족민주혁명당 시절 이상규의 하부조직원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헌법재판소 위헌정당 해산 결정문에도 언급되어 있음) 이외에도 이석기의 혁명조직 ‘RO’ 조직원으로 2013년 5월 내란선동 마리스타 회합에 참석했던 인물도 민중연합당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헌재는 통진당을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 체제에 실질적인 위험을 끼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통진당 핵심이었던 이석기 전 의원은 RO를 통해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하기도 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2015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문건은 이런 위험한 정당의 지방의원에게 숨통을 틔워준 것이 됐다”고 했다.
법원행정처가 밝힌 문건 작성 과정
▲2016년 12월 17일 제8차 촛불집회가 열린 광주 동구 금남로에 민중연합당 회원들이 이석기와 한상균을 석방하고 통진당을 해산한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재판부로부터 지방의원 지위를 인정받은 옛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 중 5명이 순차적으로 통진당의 후신 격인 민중연합당에 입당했다.
이 문건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설명을 들었다. 문건이 만들어지고, 법원행정처에서 대법원을 거쳐 전주지법까지 전달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5년 11월 25일 전주지법에서 통진당 지방의회 의원 유지 판결 선고 → 같은 날 석간의 비판보도 → 보도 접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주무 심의관은 서울행정법원 판결과의 차이점 등에 관한 해당 문건 작성 → 판결 선고 후 전주지법 공보관에게 취재 문의 쇄도 → 당일 본인 재판부 판결선고 때문에 위 사건의 쟁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전주지법 공보관은 대법원 공보관실에 도움 요청 → 대법원 공보관실은 주무 심의관에게 도움 요청 → 주무 심의관은 대법원 공보관실에 자신이 만든 문건을 참고용으로 송부 →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 문건을 전주지법에 전달 → 전주지법은 이 문건을 소수의 기자에 공개〉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이 문건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자체를 부정하는 취지로 만든 게 아니다. 하급심 판결에 개입하기 위해 작성한 것은 더욱더 아니다”며 “통진당 해산 결정 시,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헌재에 있는지 법원에 있는지 견해가 나뉘는 상황에서 전주지법 판결이 마치 헌재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취지인 것처럼 비판 보도가 나오자 주무 심의관은 그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견해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이 문건은 공식 문서도 아니다”면서 “주무 심의관은 석간 보도를 접하고 스스로 판단하에 문건 작성을 시작하였고, 전주지법 공보관이 몇몇 기자에게 해당 문건을 보낸 시점은 오후 3시 무렵이다. 당시 대법원 주요 간부는 외부 행사로 청사 밖에 있었다. 내부 결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문건에 나오는 법관 교육도 토론을 말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의문점
하지만 몇 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첫째,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하급심 판결에 개입하기 위해 만든 문건이 아니라고 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이 문건이 전주지법으로 내려온 이후(2016년 5월 19일) 광주지법은 옛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원의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둘째, 공식 문서가 아니라고 했는데 과연 주요 간부의 용인 없이 주무 심의관 개인이 작성한 문서에 ‘법관 대상 헌법교육 시(전주지방법원의 판결 여부 등을) 활용 여부를 검토 예정’이라는 문구를 넣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방법원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심의관이 돌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침이 있으니까 생산되는 거 아니겠나. 결국 처장에게 보고했거나 보고할 문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셋째, 결재받지 않은 문서를 대법원 공보실로 유출한 주무 심의관, 이 문서를 전주지법에 전달한 대법원 공보실, 이 문서를 공개한 전주지법 모두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전주지법의 경우 2016년 12월 29일 우수 법원 10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평가는 법원행정처가 했다.
법조인 출신 재선의원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서로 영역 다툼,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통합진보당 잔존세력은 자유롭게 활동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런 상황을 야기한 관련자들에 대한 어떠한 징계도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월간조선 2017년 2월호 /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2018.01.09 동료 판사 욕하는 판사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뒤 익명게시판에 욕설·막말 도배
"행정처 개XX, 은따 시키자" 익명에 숨은 판사들 민낯
판사 게시판에 "청산의 대상" 등 PC 개봉 동의안한 법관들 맹공격
자제하자는 의견에도 집단린치
법조 원로들 "품격도 버리고… 자질 의심케하는 사법초유 사태"
'양승태(전 대법원장) 적폐 종자 따까리들아' '니들의 쓰레기 같은 억지, 트집 잡기는 공해 짓거리야'…. 최근 판사들만 이용하는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지시로 작년 11월 법원행정처에 판사 뒷조사 문건이 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된 이후 판사들이 주로 행정처 출신 동료 판사를 향해 반말과 욕설을 담은 비난 글을 다수 올리고 있다. 아무리 익명 게시판이라 해도 판사들이 편을 나눠 동료 판사에게 이런 막말과 악담을 퍼붓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믿기 어려운 상황"이란 말이 나온다.
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행정처에서 근무했던 판사들을 공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재조사하라고 만든 법원 추가조사위원회는 지난달 판사 뒷조사 문건이 들어 있다는 의혹을 받은 행정처 컴퓨터 4대를 당사자 동의 없이 가져갔다. 이후 이 컴퓨터를 쓴 전·현직 행정처 판사 4명에게 삭제된 컴퓨터 파일까지 복원해 조사할 수 있게 동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판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추가조사위는 최근 강제로 컴퓨터를 개봉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판사가 행정처 판사 등을 향해 '적폐 새X들' '행정처 개XX' 같은 비난 글을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
법조계에선 "법복(法服)에 덮인 판사들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판사들이 패를 갈라 동료 판사를 적대시하며 갈등을 키우는 '밑바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법원에 큰일이 났다. 판사들이 스스로 품격과 자존심을 버린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중순 판사 익명 게시판엔 '동료들이라 어지간하면 품위를 지키려 했건만 참 더럽게도 물고 늘어진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삭제된 행정처 컴퓨터 파일까지 모두 복원해 강제 조사하려는 법원 추가조사위의 방침에 동의하지 않은 행정처 판사들을 비난하는 글이었다.
이 같은 영장 없는 강제 조사에 대해서는 법원 내에서도 헌법상 프라이버시권 침해, 형법상 비밀 침해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 글은 '(컴퓨터 속) 사적 정보를 핑계로 영장주의, 비밀 침해 어쩌고 찌질거리는 꼴이라니. 니들 판사 맞니? 니들이랑 엮이는 게 진심 부끄럽다 새X들아'라고 했다. 이어 '개억지 부리니까, 양승태, 임종헌(전 행정처 차장), 박병대(전 대법관) 뭐 이런 인간들한테 충성한 거 뿌듯하고 잠 잘 오니? 사법부에 똥 뿌리는 인간들아'라고 적었다. 이 글 밑에는 'ㅋㅋㅋ 내 말이' '사이다!'(속 시원하다는 인터넷 은어) 같은 댓글이 달렸다.
/이철원 기자
비슷한 시기 이 게시판에는 '법비(法匪·법을 악용하는 도적 무리) 청산!'이라는 제목의 글도 실렸다. 한 판사는 이 글에서 '법원 바깥의 법비 김기춘, 우병우는 이제 구치소에 있습니다만, 법원 내부의 법비들은 저항을 계속하고 있네요'라며 '그렇게들 영장주의 강조하시니, 진짜 검찰에 수사 의뢰해야 될 거 같네요'라고 썼다. 동료 판사를 도적에 비유한 것이다.
이후에도 일부 판사의 막말 비난은 계속됐다. 한 판사는 '행정처로 불러주신 분들의 하해와 같은 은덕에 감읍해서는 충성을 맹세하고 빛나는 미래로 깔린 탄탄대로를 즐기며 엘리트로서 자부심에 넘치다가, 하던 구린 짓들이 통째로 발각돼 욕먹는데 입 닫고 억지 부리는 게 지금 니들 꼴'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조폭으로 변해버린 판사 나부랭이들아. 면전에서 침 맞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라'고 썼다.
일부 판사는 '동료 판사에 대한 막말은 자제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집단 린치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너 혹시 처음부터 양씨(양승태 전 대법원장) 행정처 쉴드 치던(방어하던) 걔니? 니 패거리들은 사법부 안에서 영원히 은따(은근한 왕따)당하며 기피될 어둠의 집단으로 전락할 거란 거나 똑똑히 알아두렴' '너가 쓴 글이 쓰레기 냄새 난다' '당신이 (행정처 출신이 아니고) 냉정한 중립자라면 행정처 개XX라고 해보시지?'라는 글이 뒤따랐다.
이런 판사들의 행태에 대해 법조계 원로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대법관 출신의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재판을 하는 판사들은 자기 생각이 있더라도 표현을 절제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으면 법원 내 갈등을 조장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해한다"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법관들이 동료 법관에게 악플을 단다는 건 법관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하는 사법 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국민이 이런 판사들에게 재판받고 싶어 하겠나. 판사들 스스로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판사들이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초 행정처 간부가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추진하던 '대법원장 권한 분산' 관련 세미나를 축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이 연구회 소속 이탄희 판사가 당시 이 문제를 조사한 법원 진상조사위에서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을 뒷조사한, 비밀번호 걸린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하면서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4월 이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렸다. 일단 사법부에서 일단락 지은 것이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재조사를 강하게 요구했고, 김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법원 추가조사위원 6명 중 4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꾸려져 편향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김 대법원장도 이 연구회 1·2대 회장을 지냈다. 추가조사위는 전·현직 행정처 판사 동의 없이 판사들 컴퓨터를 강제 개봉해 논란을 키웠다. 영장 없는 압수수색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의혹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김 대법원장은 재조사 과정의 위법 시비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전·현직 대법원장이 한꺼번에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법원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검찰을 끌어들인 꼴이다. 법원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부 판사들이 자중하기는커녕 완장 찬 듯 동료 판사들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법원으로선 참담한 상황"이라며 "결국 재조사를 결정한 김 대법원장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 - 조선일보
■ 2018.02.03 블랙리스트 파문에 입 연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
블랙리스트 파문에 입 연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
“비대화된 법원행정처가 적폐 사람보다는 구조 바꿔야”
▲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월 30일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대륙아주 사무실에서 이시윤(83) 전 헌법재판관을 만났다. 이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있는 이시윤 전 재판관은 1962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해 춘천지방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거쳐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4년간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법조계의 대표적 원로로 평가받는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최근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법부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된 대법원과 비대해진 법원행정처가 근본적인 문제이므로 사람보다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충고했다.
- 최근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을 어떻게 보나.
1차 진상조사위, 2차 추가조사위의 조사가 끝났는데도 다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너무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삼심(三審) 재판도 아닌데. 무엇보다 블랙리스트 조사 절차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 어떤 문제인가.
“법관은 징계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게끔 헌법에 규정돼 있다. 블랙리스트 조사를 한다면서 뒤진 법관들의 컴퓨터가 비록 법원이라는 공기관 소속이기는 하지만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있다. 컴퓨터에 담긴 내용이 사적인 영역의 것들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공(公)과 사(私)가 혼동될 수 있는 것이다. 좀더 신중한 조사가 아쉬웠다.”
작년 2월 ‘판사 뒷조사 파일 얘기를 들었다’는 내부 폭로에 의해 시작된 블랙리스트 파문은 사안이 불거진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실체가 없다’는 1차 조사 결과에 대해 일부 판사들이 반발하면서 작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의 뒤를 이은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추가조사를 지시했지만 2차 추가조사에서도 블랙리스트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추가조사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부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해 문서로 남겼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을 놓고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2012년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판결이 1심 무죄, 2심 유죄로 나온 상황에서 당시 박근혜 청와대 측이 상고심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기기를 희망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원칙적으로 대법원에 넘어온 사건들은 대법관 4인으로 이뤄진 소부가 판결하지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등 특별한 경우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들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로 넘겨진다. 당시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상고심은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이뤄졌는데 항소심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위가 발견한 이 같은 문건들이 파문을 일으키자 지난 1월 24일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재판이 재판 외의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추가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대한 추가조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 상고심에 참가했던 13명의 대법관들은 당시 청와대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반박 성명을 냈다.
- 원세훈 전 원장 상고심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소위 군사정권 시절 판사를 했는데 그때도 행정권이 재판에 깊이 관여했는지 잘 모르겠다. 더욱이 지금은 투명한 사회다. 대법원장까지 합하면 대법관이 13명인데 압력을 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판사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는 판사들이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거 사례를 들어 강조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해(公害) 관련 사건이 대법원까지 넘어온 적이 있었다. 당시 2심 재판부가 공해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판사들의 의식구조가 너무 한가하다’며 우려했었다. ‘보릿고개를 이제 간신히 넘고 있는데 연기 좀 마신다고 문제 삼으면 조국 근대화 과제는 어디로 가느냐’는 비판이었다. 대통령의 이런 입장이 대법원까지 전달됐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대법원은 공해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공해 사건에 대해서는 엄격한 증명 없이 개연성만 입증해도 공해 관련 손해 발생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선진적이고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내가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고 있었는데 판결의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이번 원세훈 전 원장 사건이 구(舊)정권에 대한 억압용인지 적폐청산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사건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그런 과거 사례를 보면 우리 판사들은 정권이 누른다고 하더라도 소신대로 판결하는 전통이 있다. 원세훈 전 원장 재판에 권력의 압력이 있었을 것 같지 않지만 설령 압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판사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을 것이다.”
그는 “판사들은 최악의 경우 자리를 내놓더라도 변호사 개업을 하면 사정이 나아질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유약하지 않다”고도 했다.
- 법원행정처가 판사들 동향 파악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사법부의 민주화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 대법원장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빚어진다. 우리 대법원장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자리다. 대법원장이 모든 것을 다 살핀다. 이런 대법원장은 세계에 없다.”
-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한이 판사들 뒷조사의 배경이라는 말인가.
“내가 감사원장을 해봐서 아는데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은 당연히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이 세다 보니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 비서실의 뜻을 받들어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나도 감사원장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 많이 시달렸는데 속이 터지는 노릇이었다. 마찬가지로 대법원장의 권한이 막강하니까 대법원장 산하의 법원행정처도 막강해진다.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모든 법원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내가 춘천지방법원장, 수원지방법원장을 할 때도 행정처 처장, 차장과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통화했다. 그만큼 전국 법원을 철저히 컨트롤하려고 한다. 그게 문제의 씨앗이다. 양질의 재판을 하는 것이 판사의 본질적 사명인데 행정기구가 커지다 보니 쓸데없이 판사들 동향이나 파악하고 보수니 진보니 나누는 것이다.”
- 외국은 법원 행정조직이 우리처럼 크지 않나.
“내가 1980년대에 아시아재단의 원조를 받아 미국 연방대법원에 견학을 갔었는데 그때 우리처럼 법원행정처가 있는 줄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에는 법원행정처 같은 조직이 아예 없었다. 우리처럼 대법원이 하급법원을 장악하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은 대법원에 필요한 사무조직만 갖고 있었다. 직원 몇 명이 전부인 규모다. 당시 연방순회항소법원장을 예방했었는데 그 양반이 미국에서는 고등법원이고 지방법원이고 각자 자율적인 행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무척 강조했다. 법원들이 중앙의 행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수평적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판사들의 승진이라는 개념도 없다. 한 법원에서 다른 법원으로 옮겨가려면 사표를 내고 새로 임명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판사들의 관료화 우려도 없고 판사들의 동향 파악 같은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 법원 행정권이 분산돼 있는 게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 아닌가.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연방대법원의 행정권은 연방법무성에,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행정권은 주법무성이 갖고 있다. 법원에 인사권, 행정권이 일절 없다. 법원은 재판만 잘하라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예외적으로 자체 행정조직을 갖고 있지만 헌법재판소 판사가 16명에 불과하고 자체 행정권만 있지 다른 법원을 컨트롤하는 조직도 아니다. 우리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 혼자서 인사권을 행사하는데 이 부분은 일본과도 다르다. 우리는 대법원장 개인의 이름으로 인사 제청을 하지만 일본은 최고재판소 이름으로 인사 제청을 한다. 인사권, 행정권을 최고재판소 재판관들이 합의제로 행사하고 있다. 우리가 대법원장 독재 시스템이라면 일본은 집단지도 체제인 셈이다. 우리는 대법원이 호적이나 가족관계, 등기관계, 공탁관계 같은 업무들도 다 껴안고 있지만 일본은 이런 업무들은 행정부 소관이다. 우리처럼 업무와 권한이 비대한 대법원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 우리의 법원행정처가 비대해진 이유가 뭔가.
“사법정책의 입법화에 법원이 관여하면서 커졌다고 본다. 법원행정처에 정책심의실이 생기는 등 정책을 다루는 기구들이 많아졌다. 요즘 보면 대법원이 법무부를 거치지 않고도 의원 입법 형태로 사법 관계 법령을 만든다. 국회의원들이야 정치적 쟁점 법안이나 관심이 있지 골치 아픈 사법 관계 법령은 대법원이 하자는 대로 다 들어준다. 하지만 입법권은 어디까지나 입법부에 있어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법안에 대해 정작 법무부는 반대했는데 이것도 대통령 법률 제안권을 활용해 시스템대로 추진했으면 법무부가 반대했겠는가. 법원의 사정은 법원이 제일 잘 알기는 하지만 간접적으로 제안하는 정도에 그쳐야지 법원 스스로 입법 주체가 돼선 안 된다고 본다. 일본도 법무성이 입법센터 역할을 한다. 우리 대법원도 정책 입법 업무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임명한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을 6개월 만에 해임하고 자기 사람으로 알려진 안철상 판사를 임명해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과거 내가 이영섭 대법원장 밑에서 재판연구관을 지냈는데 그분이 군사정권에 의해 대법원장직에서 밀려나면서 ‘오욕과 회한의 나날을 보내며’라는 고별사를 한 적이 있다. 가장 큰 후회가 법원행정처장을 자기 사람으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장이 자기랑 손발이 맞는 사람을 행정처장으로 쓰는 것은 사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는 지금 더 큰 과제가 있다고 본다.”
- 더 큰 과제라니?
“편가르기를 하고 사람만 바꿀 게 아니라 법원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비대해진 법원행정처를 줄이고 대법원의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 법원 조직을 바꾸는 것은 입법 사안이다. 법원 조직법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런 개혁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법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 판사들 사이에서는 법원행정처 근무가 출세 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문제다. 실제 법원행정처가 막강하다 보니 가장 똑똑한 판사들을 갖다 쓴다. 가장 똑똑한 판사들이 재판을 해야 하는데 행정업무를 보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승진에 우선권을 갖는 것도 문제다. 자리가 한정된 고법 부장판사 자리에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대법원장과 행정처장의 지원하에 1순위로 간다. 고법 부장판사 자리는 과거 차관급과 1급, 두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두 차관급으로 승격됐다. 그러다 보니 일반 판사하고 고법 부장하고는 지위가 하늘과 땅 차이다.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 못 한 판사들은 화가 나고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 우리는 가진 자, 엘리트에 대한 저항심, 반항심이 큰 시대를 살고 있다. 판사들이 인터넷에 육두문자를 올리는 데는 이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영향도 있다고 본다. 또 판사들의 업무 과부하도 내부 갈등을 일으키고 판사들을 신경과민적으로 몰고 간다고 본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 자리를 없애고 일반 판사와 대법관으로 조직을 이원화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잘 한 일이고 고무적인 착상”이라고 평가했다.
- 판사들의 업무 과부하가 그렇게 심한가.
“서울 중앙지법 판사들이 일인당 연간 처리하는 건수가 1000건 정도다. 그런데 독일은 사건 건수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가압류, 가처분 사건이 우리의 15분의 1 내지 2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법관 수는 독일이 2만1000명 정도인데 우리는 3000명에 불과하다. 외국에 비해 상대적인 업무과중은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법원장 빼고 12명의 대법관이 연간 4만3000건을 처리하는데 독일은 연방민형사대법원에서 128명의 판사가 연간 8000건을 처리한다. 양질의 재판이 나오기 힘들고 판사들이 예민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판사들의 업무 과부하를 줄여주는 것이 진짜 시급한 사법 과제다.”
- 배보윤 전 헌재 공보관이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가 너무 부실하다고 지적했는데 동의하나.
“내가 소송법을 전문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관심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 방청을 많이 했다. 배보윤 전 공보관의 지적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일종의 최고위 공무원에 대한 징계 절차다. 그런 중대한 사안에 대한 의결을 하는데 본인에게 당연히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했어야 했다. 국회에 직접 나오든지, 아니면 서면으로 하든지 그런 기회를 주는 게 적법 절차에 부합했다고 본다. 이 중요한 심판을 리드할 사람이 없이 소장 공백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한 것도 절차상 하자라고 본다.”
-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문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180일 이내에 탄핵재판을 끝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찌됐든 소장을 임명했어야 했다. 나중에 국회에서 헌재소장 인사청문, 동의 절차를 거치면서 난투극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긴급한 상황이었으니까 공석이었던 헌재 소장 후임자를 임명했어야 했다.”
- 헌재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한민국의 변화’라는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촛불집회의 헌법적 완결체’라고 표현해 논란이 빚어졌는데.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지 여론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촛불집회의 헌법적 완결체’라고 표현하면 마치 재판관들이 여론재판을 했다는 듯이 들린다. 그건 본인들도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 우리법학회, 국제인권법학회 등 판사들의 연구모임이 판사들을 편가르기하고 이념화를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우리는 유달리 연(緣)을 좋아하고 끼리끼리 뭉치는 경향이 짙다. 그건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판사 시절 나도 민사판례연구회라는 판사들 연구모임에 속했었는데 그게 특정 학맥 중심이 돼버려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과거 일본에도 ‘청법회’라는 좌경 판사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나는 법관들의 사명이 중립과 독립이라고 본다. 법관들은 이념적으로 중립성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 지금처럼 사법부가 내홍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사법 불신도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걱정이지만 우리 판사들이 그렇게 막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전관예우 등 정실재판에 대한 책임은 국민들도 나눠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민들도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일반인들도 재판을 받을 일이 생기면 모두 전관을 찾아가지 않나. 웬만한 회사들은 다 한두 권씩 갖고 있는 ‘한국법조인대관’이라는 두툼한 책자를 ‘브로커 명단’이라고까지 한다. 그 책을 뒤지면서 검사, 판사들 인맥과 족보를 파악해서 청탁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법관이 정실에 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국민들도 정실재판이 되지 않도록 협력할 의무가 있다.”
정장열 부장대우
■ 2018-01-31 불꽃 튀기다 덴 대법원장
원세훈 상고심 의혹 놓고 대법관 13명 전원으로부터 고립된 김명수 대법원장
대법원 신뢰 걸린 문제… 얼버무리고 갈 일 아냐
의혹을 사실로 증명하든가… 못하면 본인이 책임져야
최근 임명된 민유숙 대법관에 대해 현재 법원장으로 있는 분이 고등법원 부장판사였을 때 한 얘기가 기억난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민 대법관보다 기수가 아래인 김소영 대법관이 임명된 직후였다. 그는 “법관은 판결문 쓰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판결문 쓰는 능력은 민유숙이 위다. 민유숙이 먼저 대법관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이전의 어느 전직 대법원장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더니 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대법관의 능력은 판결문을 쓰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기획·조정력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그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 정책총괄심의관으로 근무했다. 민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적이 없다. 대법원장을 지낸 분과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눈높이가 달랐다고밖에 할 수 없다.
‘재판관은 재판을 잘할 수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재판밖에 할 줄 몰라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모든 법관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인지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대법원장에게라면 타당할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적이 없다. 재판만 주로 한 법관은 순수해서 사법행정도 공정하게 잘할 것인가. 칸트의 말처럼 때로는 순수한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얼마 전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는 판사 블랙리스트와는 전혀 관련 없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관련 각계 동향 보고’라는 문건을 공개해 어느 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결 빌미로 청와대와 뒷거래한 양승태 대법원’이란 의혹을 던졌다.
이것은 의혹으로 남겨놓고 적당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전화를 받을 수 있다. 그 자리는 그런 자리다. 대통령민정수석은 청와대의 변호사 격이다. 그의 조속한 상고심 진행 요구는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2심 판결로부터 3개월 내에 끝내야 한다는 법률에 비춰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다. 다만 전화 때문에 대법원이 합의체로 넘길 이유가 없었는데 합의체로 넘겼거나 대법관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선거법 무죄취지 파기환송에 동의했다면 그런 대법원을 믿고 최종심을 맡길 수 없다.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마땅하다.
추가조사위 발표에 대해 대법관 13명 전원은 즉각 “이 사건은 소부(제3부)의 합의를 거친 결과 증거법칙을 비롯한 법령 위반의 문제가 지적됐고, 사회적·정치적 중요성까지 아울러 고려해 합의체에 회부됐다”며 “관여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합의체 판결은 과반만 찬성해도 되는데 전원 일치 판결이었다. 의혹 제기 자체가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대법관 성명으로 부족하다면 김 대법원장이 직접 당시 재판에 관여한 대법관을 일일이 면담해 진상을 파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제3부에 속한 사건 주심은 퇴임했다. 그를 조사하면 사건이 합의체로 넘어간 과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한 대법관들도 최소한 두 명 있었다고 한다. 진실이 따로 있다면 그들이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잘못이 있다고 한들 대법관들이 순순히 얘기하겠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의 반박을 할 거면 확인도 못할 의혹을 왜 던졌는지 먼저 답해야 한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추가조사의 길을 연 것은 김 대법원장 자신이다. 의혹이 의혹으로 남는 것만으로도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훼손돼 그가 져야 할 책임이 크다. “재판이 재판 외의 일로 영향을 받는다고 오해받을 만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의혹을 증명하든가 증명하지 못하면 대법원장이 물러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판사들에 대한 동향 조사는 사찰과는 거리가 멀지만 과한 측면이 있다. 대부분 공개된 정보를 수집했지만 사적으로 알음알음 수집한 정보도 섞여 있다. 불필요할 정도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 것이 양승태 대법원이 관료화한 증거일 것이다. 법원행정처 축소 등 김 대법원장이 하고 싶어 하는 개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대법원장이 애송이 ‘판사님’들에 휩쓸려 사소한 것에 불꽃을 튀기다 대법원을 다 태워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