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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2/ 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1>헌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 - <25·끝>기본권 지키려면 납세와 국방의무 이행해야

상림은내고향 2021. 11. 26. 17:58

● 헌법2/ [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2014-07-03  동아일보

<1>헌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대한민국 정체성 담은 헌법, 유치원때부터 가르쳐야

 

머지않아 66번째 제헌절이다. 헌정 66년은 격동과 변화의 연속이었다. 한때 헌법은 장식에 불과했고 법이 아닌 대통령의 권위와 정치권력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고, 헌법에 따라 국가권력이 행사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시대이다. 아직 헌정의 수준이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긴 해도 우리나라는 입헌민주국가에 진입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헌법재판소 판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수도 이전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같은 국가적 중대 사안에서부터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한 민법 규정이나 동성동본금혼규정, 군 가산점제, 인터넷 실명제, 과외 금지, 최저생계보호기준 등과 같은 국민 개개인의 일상생활에 관한 문제에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헌법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헌법이 국민 생활 속에 살아있는 법이 되었다.

외견상으로는 입헌주의가 정착되고 있지만 헌법 정신이나 가치가 무시되거나 침해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민 대표 기관으로서 공개 토론을 통해 최선의 정책을 찾아야 하는 국회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국민의사를 수렴해야 할 정당정치는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고 있다. 법률을 만들면서 헌법에 어긋남이 없는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검토도 아직 미흡하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여야 할 공무원이 관피아니 전관예우니 하여 공직을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이용하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는 일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하고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터넷공간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명예나 인격을 훼손하는 일이 흔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법질서를 무시하고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일들이 빈번하다.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교육의 장에까지 가르치는 사람의 정치성향이 그대로 전달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가 타인의 주장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전제로 함에도 상대를 부정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모두 헌법이 기초하고 있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의식이 부족해서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직자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의 헌법의식과 헌법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 생각된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법이며 국가의 기본규칙을 정한 법이다. 헌법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질서와 제도, 국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가 담겨 있다. 거기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은, 정치는, 공직자들은 또 지도자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합의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헌법에 모두 나타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헌법의식과 헌법교육이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공무원들에게 헌법 충성선서를 요구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도 헌법에 충성할 것을 서약해야 한다. 또 헌법교육을 시민교육의 기본 내용으로 실시하고 있다. 초중등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 강의도 인간의 존엄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적 가치나 질서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대통령이 취임할 때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하지만 이런 의무는 대통령에게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무원, 그리고 국민 모두의 기본의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산하 헌법재판연구원은 오랜 전통을 지닌 동아일보와 공동으로 우리 헌법의 내용을 처음부터 차곡차곡 새겨보고 함께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작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에서 출발하여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와 제도를 정한 헌법 제1장과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정한 헌법 제2장을 포함하여 우리 헌법의 130개 조문을 대강이라도 훑어보는 짧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다 보니 충분히 예상되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문제가 노정되겠지만 관심과 아울러 따뜻한 비판을 해주시기를 바란다.
김문현 헌법재판연구원장

 

07.10 

<2>1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일상의 대화에서, 거리에서 벌어지는 각종 집회·시위 현장에서 우리는 자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영화 ‘변호인’에서도 주인공은 법정에서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변론하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이를 분명히 확인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헌법이 한낱 미사여구에 그치지 않고 국민 개개인에게 실제로 국가의 주인임을 의식하게 하는 표현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기에 우리 헌법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일까 

각 나라 헌법의 첫머리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반영한다. 이를테면 영국 왕의 폭정을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절대 권력의 탄생을 막기 위해 헌법의 첫머리에서 권력 분립을 이야기했다. 유대인 학살로 상징되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자신들의 씻지 못할 과오를 반성하면서 인간 존엄 불가침의 원칙을 헌법 첫머리에 시작한다 

그렇다면 헌법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을 넣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 답에 대한 첫 번째 실마리는 우리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명인 대한민국은 1919 3·1운동 직후 상하이에 들어선 임시정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는 ‘대한’과 ‘민국’을 합친 말이다. 대한은 조선 말기에 사용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에서 따왔다. 민족적 동일성과 정통성이 계속됨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민국은 군주가 통치하는 ‘제국(帝國)’의 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통치하는 시대가 됐음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공화국은 ‘세습 군주의 통치체제를 끝내고 임기를 가진 공직자가 한시적으로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국가 형태’를 말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은 “우리는 이제 제국의 신민이 아니고 공화국의 자유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제왕이 아니고 당당히 우리 국민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말에는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갖고 있는 공화국의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다. 헌법에 따르면 영국이나 일본처럼 권력은 없지만 상징적으로만 존재하는 형태의 군주제(여왕이나 천황)라도 우리나라에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이란 국명에 이미 공화국의 뜻이 담겨 있는데도 헌법 제1조는 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제헌헌법의 초안을 마련한 유진오 선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왕이 존재하는 군주제를 부정하는 공화국이라 해도 모든 권력이 하나로 통합된 독재국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독재가 아닌 권력 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국가라는 정치제도를 채택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헌법은 제1 2항에서 다시 이렇게 선언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문장에는 대한민국이 추구하여야 할 민주주의의 내용이 한마디로 잘 축약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이 국민 다수의 뜻과 대중의 선호를 따르는 방향으로 운영되기만 하면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

오늘날 민주주의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들이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를 의논해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대표자에게 신임을 주어 국정을 맡기는 선거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선거 후에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조그마한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정치인은 진정한 국민의 뜻을 찾기 위해 늘 국민과 대화하고 무엇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정책 결정은, 당장은 국민 전부의 지지와 동의를 받지 못해도 장기적인 관점과 안목에서는 대다수 국민이 수긍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을 지지하고 뽑아준 유권자만의 대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 모두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을 포용하고 진지하게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정치는 결코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이게 바로 공화의 진정한 의미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는 의미는 단순히 세습군주를 부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며, 이를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실현할 것을 우리에게 요청한다
헌법재판연구원 제도연구팀

07-17  

<3>2 1항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올해 초,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러시아 국가대표로 출전한 ‘빅토르 안’이 쇼트트랙 경기에서 3관왕에 올랐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였던 ‘안현수’ 선수가 국적을 바꿔 출전해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겨준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금메달을, 그것도 세 개씩이나 다른 나라에 넘겨준 빅토르 안을 비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사람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로 받아들였고, 자랑스럽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참으로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중국 출신의 귀화 선수 당예서가 탁구팀 국가대표로 출전해 대한민국에 동메달을 안겨준 일도 있었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강조해왔던 우리의 폐쇄적인 국적 관념이 세계화의 진전과 다문화사회를 맞으면서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헌법에 정한 국민의 자격 요건은 무엇일까. 2조 제1항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적의 취득과 상실, 회복 등 국적에 관한 사항들을 법률에서 정하도록 했는데, 이게 바로 국적법이다

‘국적’은 국가와 국민을 법적으로 연결하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국적을 가진 국민이 대한민국이란 정치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유지하는 권한과 책임을 나눠 가지는 것이다. 국민만이 선거권, 피선거권, 국민투표권, 공무담임권 등 국정에 참여하는 권리를 가진다. 또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전과 존속을 유지하는 숭고한 국방의 의무를 부담한다. 외국인이 아무리 오랫동안 국내에 거주하고 우리 삶 속에 편입되어 살았다 하더라도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국가 차원의 선거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국적은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 헌법은 이와 관련해 개인의 의사를 존중한다. 누구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국적을 선택 또는 포기하고, 잃었던 국적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다만 한 사람이 둘 이상의 국적을 갖는 ‘이중국적’과 어느 국적에도 속하지 않는 ‘무국적’에 대해서는 고려할 게 많다. 이중국적의 경우에는 국적을 가진 모든 국가로부터 권리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두 나라 모두에서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를 기피하는 등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발생한다. 국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중국적자의 경우 국가 간에 자국민 보호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무국적자의 경우에는 어느 국가로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통은 국제사회의 법적 관행을 따른다.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어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국적법 역시 그러하다. 이중국적의 경우 성년이 되면 2년 내에 어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국적과 관련하여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이 병역 기피 목적의 국적 이탈이다. 이중국적 상태를 이용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각종 권리와 혜택을 누리고, 돈까지 많이 벌었으면서도 병역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례가 과거에는 종종 있었다. 또한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원정출산을 하는 사람도 늘어나 한국과 해당 국가 모두에서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바로 이 때문에 국적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병역의무를 이행할 나이가 되면 그 의무를 이행하거나 면제받을 때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또 부모가 외국에 영주할 목적 없이 단기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하였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라도 국적 선택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극단적으로는 군복무 중에도 한국 국적을 이탈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면하는 등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과 성실한 이행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므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국적이라는 국가와 국민 간의 고리는 국민이 외국에 영주하거나 체류하는 경우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헌법 제2 2항에서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며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대한민국의 국민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국적만을 가진 해외동포 역시 국가가 보호하여야 할까? 외국 국적의 해외동포는 재외국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통해 부동산거래, 금융거래, 외국환거래, 건강보험 등 여러 영역에서 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하고 있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07-24
<4>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우리 헌법에서는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한다. 여기에는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대한제국 당시 영토까지 포함된다. 백두산의 모습동아일보DB

 

헌법재판소는 “북한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며 이중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안보의 측면에서는 제3조를,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측면에서는 제4조를 적용한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긴다. 중국과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두고, 러시아와는 쿠릴 열도를 두고 갈등을 일으킨다. 중국도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이어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동북공정을 통해 간도 지배를 확고히 다지려고 한다. 최근 민항기 격추 사건이나 전면전으로 치닫는 가자지구 사태 또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뿌리 깊은 영토분쟁에 원인이 있다. 근대 민족국가 성립 과정에서 발생한 영토분쟁은 이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한다.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의 모든 섬들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영토는 국민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으로 주권이 미치는 공간적인 범위를 말한다. 따라서 헌법도 영토 내에서만 효력이 있다. 영토는 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땅에 맞닿은 일정 범위의 바다를 영해, 땅과 바다의 수직 상공을 영공이라 하는데, 이 모두를 합쳐 영토 또는 영역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단지 지도상에 있는 특정 지역을 넘어 대한제국 당시의 영토까지를 의미한다. 가령 역사적 고증과 외교적 문제가 남아있는 간도 지역의 경우 대한제국이 우리 영토라고 규정했다면 오늘날에도 우리 영토로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고토(古土)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헌법 제3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영토의 범위를 대외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다른 나라 영토에 욕심이 없고, 동시에 우리 영토도 포기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둘째, 비록 분단 상황일지라도 대한민국의 주권이 한반도 전역에 미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한민족의 정통성을 계승한 유일한 국가라는 점, 북한 정권은 국가가 아니라 우리 영토인 이북 지역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 지역을 온전히 회복해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도록 해야 한다는 통일의 당위성까지 담겨 있다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보는 근거 또한 여기에 있다. 비록 정권은 불법단체라 하더라도 주민은 대한민국 영토에 사는 ‘우리 국민’이다. 다만, 우리의 통치권이 아직 현실적으로 미치지 않아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데 제약이 있을 뿐이다.  영토를 정의한 헌법 3조에 이어 헌법 제4조에서 통일을 국가의 목표와 과제로 제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우회적으로 통일의 당위성을 밝히는 3조에서 더 나아가 직접 국가에 통일의 목표와 과제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국회,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은 서로 협력하여 통일의 방향과 내용을 정하고, 구체적으로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아갈 책임을 진다.  

 

헌법 제4조에서 중요한 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는 대목이다.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방식으로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통일은 또 무력이나 강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쟁을 통한 통일이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강요한 통일도 안 된다. 통일은 분단을 전제로, 이를 하나의 국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분리된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한민국의 고유한 영토에서, 남한과 북한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국민이, 하나의 헌법을 만들어 이를 통일한국의 새로운 규범질서로 삼을 때에 비로소 통일은 헌법적으로 완성된다.


끝으로, 헌법 제3조와 제4조는 북한의 지위와 관련하여 다소 모순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3조에 따르면 북한은 이북 지역을 불법 점거한 불법단체이지만, 4조에 따르면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적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북한은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며 이중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안보의 측면에서는 제3조를,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측면에서는 제4조를 적용한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08-21  

<5>‘대한민국은 국제평화 유지에 노력,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5 1)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도록 헌법 해석까지 변경해 국제평화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15일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몰자 추도


인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연속이었다. 과거 전쟁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행위이자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전쟁 후의 새로운 질서가 국제사회에 세력 균형을 가져올 때 비로소 잠시 평화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은 도덕이나 법이 아니라 국방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현실적인 힘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겪은 두 번의 전쟁은 과거와 전혀 달랐다.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가 참전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왔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대규모 학살은 인간의 존엄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했다. 그 결과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만들어 전쟁을 포함한 무력의 사용을 금지하고, 평화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회원국이 개별적 집단적으로 대응하여 평화를 정착, 유지하는 새로운 국제법 질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은 국제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에 명시했다. 그럼으로써 국제평화의 이념에 반하는 국가의 행위를 감시하고, 평화를 위한 국제적 연대에 세계 모든 국가가 동참하도록 했다. 특히 일제의 극악한 식민통치를 경험하고, 동서 냉전시대의 희생양으로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 국제평화의 이념은 단지 선언적인 차원을 넘어 생존과 실천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헌법은 전문에서 국제평화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그리고 제5조 제1항에서는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구체적 실천방법을 밝히고 있다.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유엔헌장의 이념을 충실히 수용하면서도 우리가 경험한 제국주의나 공산주의로부터의 침략전쟁에는 단호히 대처하여 국제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의 헌법 개정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전국인 일본의 헌법은 국제평화의 이념을 선언하는 것에 더해 일체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交戰權)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일본 헌법 제9). 하지만 실제로는 자위대라는 사실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자기 방위를 위한 자위권은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서 동맹국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집단적 자위권’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뿐 아니라 헌법도 그에 맞춰 개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국제평화의 이념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에 역행할 뿐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로 비난과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한 국제평화의 정착과 인류공영을 위해서는 국제질서의 기본규범인 국제법이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함으로써 이를 표현한다(6조 제2).  

조약의 체결·비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안전보장이나 주권의 제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요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등의 중요한 조약에 대해서는 미리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다. 국제법인 조약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입법기관인 국회의 관여를 보장하는 취지이다. 조약도 법률처럼 헌법에 합치하는 범위에서만 효력이 있다. 조약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될 염려가 있으면 헌법재판소가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헌법재판소가 조약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면 조약이 국내에서는 효력을 상실하지만, 국가 간의 합의로서 효력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은 조약이 체결, 비준되어 효력을 발생하기 전에 미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도록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평화 유지에 노력한다는 헌법조항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인권과도 연결된다. 이들의 법적 지위에 대한 보장은 원만한 국제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지위는 외국이 우리 국민에게 제공하는 보장 수준에 상응하여 해당국 국민의 지위를 보장하는 ‘상호주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상대 국가에서 우리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우리도 그 나라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은 국제평화 이념을 비롯한 인권 존중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08-29

<6>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7 1)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는 공무원들. 동아일보DB

 

공무원은 비리로 처벌을 받거나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된다. 이 점 때문에 ‘철밥통’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을 두고 보신주의나 복지부동이란 말을 넘어 마피아 집단으로 비유한 ‘관피아’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세월호 참사로 공무원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지고 있다.

우선 공무원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공무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실제 사람처럼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이 기구를 대신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거나 임용되어 국민을 위해 국가의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인적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언뜻 단순해 보여도 공무원의 정의는 사실 너무 넓어 구체적인 사안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말할 때에는 가장 넓은 뜻으로 대통령, 국회의원, 법관 등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공무원을 지칭하지만 신분 보장과 정치적 중립성을 이야기할 때에는 공직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 직업공무원만을 의미한다 

직업공무원은 그 신분이 보장되며 평생 공무원으로 근무할 것이 예정되는 공무원을 말한다. 특히 법관은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더 강한 신분보장을 받는다. 이에 반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선출직 공무원은 임기 동안 어떻게 활동했는가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정치적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선출직인 대통령직의 경우 단 한 번만 수행할 수 있으며 국회의원은 국민의 선택을 받는 한 횟수의 제한 없이 그 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장차관 같은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 공무원은 임기조차 없으며 정치적 판단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또 대형 사고가 발생하거나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할 정도로 정책이 실패했을 경우 문책이 거론된다는 점에서 정무직이라 할 수 있다. 헌법상 공무원의 신분이 보장되는 것은 경력직 공무원에 한한다. 해고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공무원의 신분을 헌법으로까지 보장해주는 이유는 공무원 개인의 권리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책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지 않게 함으로써 공무 수행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공무원이 자신의 신분적 불안에 동요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관성 있고 안정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본래 취지라는 뜻이다.  

 

공무원에 대한 신분 보장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세력의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 보호받는 한편으로 공직과 병행할 수 없는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모든 공직을 소속 당원에게 선거의 전리품으로 분배하는 ‘엽관제(spoils system)’는 인정될 수 없고, 동시에 공무원이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도 제한된다. 어떻든 헌법이 정한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 조문에 따른 것이다. 공무원의 자리는 그만큼 막중한 자리이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09-11

<7>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8 1)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동아일보DB

 

오늘날 우리 사회 중요한 현안들은 정당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정당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이를 국민 다수가 지지하면 국가의 정책으로 발전시킨다

선거도 정당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이끌어갈 공직자를 뽑는 선거가 후보자 개인의 인물 평가가 아니라 후보자를 공천한 정당의 정책 평가로 그 성격이 바뀐 것이다

최근의 정당해산심판청구는 정당에 관한 논의의 정점에 서있다. 통합진보당 소속의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에서 비롯된 이번 사건은 의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정당 자체를 해산시켜야 한다는 여론으로 발전했다. 정부는 신중한 검토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정당의 헌법상 지위와 역할, 헌법의 핵심가치로서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의미 있는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당은 국민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과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다. 정당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점에서 오로지 특정집단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이익단체 또는 압력단체와 구별된다. 선거에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궁극적으로는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도 구별된다. 정당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므로 집권 세력이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만드는 관제정당이나 어용정당 역시 정당으로 볼 수 없다

정당은 국민과 국가를 연결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국가의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매개하고,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 적합한 사람을 추천함으로써 국가기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헌법은 이와 같은 정당의 역할과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정당의 자유로운 설립과 활동을 보장하고,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예산으로 보조하고 있다 

 

정당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일당 독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치적 다원성을 본질로 하는 복수정당제 또한 당연히 보장된다. 정당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조직·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정당은 그 자체로 독재정당이 되기 쉽고, 정당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정당에 대한 특별한 보호는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국고 보조 외에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만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킬 수 있는 위헌정당해산제도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헌법적 의미가 있다.  


첫째로는 정당해산이 정부나 여당에 의하여 야당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둘째로는 정당의 활동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헌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 내용이다. 그것은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 원리와 국민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민주주의 원리로 이루어진다. , 법치주의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당에는 더이상 헌법적 보호가 필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해산시켜야 하는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이 증가함에 따라 오늘날 민주주의는 정당제 민주주의로 불린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해야 할 국회의원은 소속 정당 당론에만 충실하게 따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는 오히려 행정부와 결합되어 가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당의 공천을 받은 자도 먼저 국민 전체 이익을 희생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속 정당의 정책과 결정에 따라야 한다. 당선자가 당원이라고 해서 국민 전체 이익보다 소속 정당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는 없다.
손상식 책임연구원 

 

09-18

<8>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10)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할 것을 강조했다.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생산과 경쟁의 수단으로 몰아넣는 작금의 물질주의 풍조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최근에는 태국의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장애아가 호주인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절대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여성의 소중한 몸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 제2장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는 의미이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신장하고 최소한의 물질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의 이념적 출발점이자 핵심적 가치이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 보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가 있거나 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는 도구의 기능을 가질 뿐이다.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가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에 기초하여 인식하고 행동하며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은 개개인이 하나의 자율적인 인격체이므로 모두 동등하게 존중을 받아야 하는 목적적인 존재이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도소나 정신병원에서는 수형자의 교화와 사회 복귀,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만 강제수용이 허용된다. 범죄자를 엄히 처벌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인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환자를 둔 가족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강제수용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하거나 밤샘수사를 하는 것도, 제품을 더 생산하기 위해 종업원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도 모두 사람을 수사나 돈벌이의 수단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보장은 물질적인 최저생계의 보장에서 출발한다. 개인이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인간의 존엄은 구두선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국민에게 물질적 급부를 통해 최저생계를 보장하여야 하며 세금을 부과할 때도 늘 국민의 생계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아니지만 독일의 경우 망명 신청을 한 외국인에게 독일 국민에게 지급하는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액수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차별대우라고 판단한 것은 인간 존엄성의 헌법적 의미와 관련해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존엄사의 문제도 인간의 존엄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거나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존엄하게 죽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존엄사’라고 한다.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식물인간이 된 어느 할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자녀들이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판단을 하였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에 미리 생명 연장을 위한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도록 당부하였고 의학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객관적 진단이 내려져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조치를 중단하였다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죽음의 과정에서 본인의 확고한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다른 사람의 치료를 위한 장기적출 역시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헌법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가장 낯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가 세우는 모든 정책과 활동은 그 주파수를 “인간의 존엄성”에 민감하게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선언이 헌법의 최고 이념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09-25

<9>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11 1)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평등법에 위배되지 않는다사진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동아일보D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사유로 지역, 종교, 학력 등과 함께 남녀의 문제가 주로 거론된다. 남녀차별은 직장에서 임신이나 출산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우려한 채용 기피와 부당 해고 등의 형태로 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애당초 법적 제도적인 남녀차별이 문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자만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병역법을 들 수 있다. 헌법 제39조에서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는 병역법에서는 여성을 제외한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평등이라는 관념은 헌법이 존재하기 전인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동물과 달리 이성과 도덕에 기초하여 인식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인격체로서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관계없이 어떤 사람은 귀족으로, 어떤 사람은 노예로 태어나서 그러한 차별적인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것이 중세에 이르러 기독교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이 등장했다. 헌법의 ‘법 앞에 평등’도 사상적으로는 여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신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모든 사람이 같다는 의미로, 법 앞에 평등도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같은 대우를 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에는 같게,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에는 다르게 평가하고 대우할 것을 요청한다 

행정기관이나 법원이 법률을 해석 및 적용할 때에는 대상자의 지위나 신분, 권위 등에 관계없이 법률이 정한 요건에 해당하면 같은 해석과 적용을 하여야 한다. 국회도 법률을 만들 때에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이나 계층에 대해서만 혜택을 줄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평등은 일체의 차별적 대우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법을 제정하고 적용함에 있어 정당한 근거가 없는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적 평등을 의미한다. 

병역법은 남녀라는 성별을 기준으로 차별적인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대우가 있다고 해서 바로 평등권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평등권이 침해되는 경우는 그러한 차별에 정당성을 찾을 수 없을 때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전투에 더욱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여성은 임신 출산 등 생리적 특성과 출산 후 일정 기간의 수유 및 양육의 부담으로 인해 전투의 수행이나 군사훈련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성의 차이에 기초하여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차별의 문제는 그 나라의 역사와 사회구조를 반영한다. 미국에서는 특히 인종에 근거한 차별이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 왔다. 한때 백인용과 흑인용의 열차객실을 따로 만들도록 하는 조치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1896년 플레시 판결에서 ‘분리하되 평등(separate but equal) 원칙’을 통해 시설이나 서비스가 같기 때문에 평등권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원칙은 1954년 브라운 판결에 의해 폐기되었다. 연방대법원은 아무리 같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인종을 차별한다고 보았다. 이를 계기로 극장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한 독일의 경우에는 여성의 건강보호와 양육부담을 고려한, 여성 근로자의 야간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이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근로시간 제한의 목적이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 정형적인 성적 역할 분담에 근거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평등의 문제는 이처럼 사회의 갈등이나 분열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평등의 관념은 언제나 절대적이지 않고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상대적 평등은 불합리한 현실을 고착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10-02  

<10>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12 1)

▲법적 근거 없이 시민을 감금하고 체포하는 것은 인권 탄압에 해당한다1980년대 강제로 연행되는 대학생의 모습. 동아일보DB


1215년 영국의 왕은 ‘합법적인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서로 약속하였다. 당시 왕의 폭정에 저항하는 시민을 제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감옥에 가두어 처벌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신체의 안전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 문서가 바로 영국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인데, 그 정신은 미국의 연방헌법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독재 정부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시민을 법적 근거 없이 감금하고, 강압적인 수사와 형식뿐인 재판을 거쳐 처벌함으로써 탄압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를 거쳐 탄생한 현행 헌법 제12조는 무려 7개의 조항을 두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필요한 내용적·절차적 요건을 상세하게 규정했다. 13조와 제27조에서도 국가의 형벌권을 정당화하는 헌법상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은 개인의 신체적 안전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하므로 신체의 자유는 기본권 보장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국가의 형벌권 발동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서 출발한다. 무엇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인지, 위반한 경우에 가해지는 형벌의 종류와 정도가 어떠한지가 법률에 명확하게 정해져 있을 때 비로소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죄 행위와 형벌이 법률에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거나 범행 후에 만들어진 법률을 소급해서 과거의 범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 제12조와 제13조의 죄형법정주의원칙에 위반된다 

나아가 범죄와 형벌을 정한 법률이 있더라도 법원의 재판과정을 통해 확인된 사실과 그에 따른 형의 선고가 있기 전에는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의 진술 등 증거자료에 비추어 범죄 사실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독립적이고 신분이 보장된 법관의 판단으로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 헌법이 ‘적법한 절차’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검찰의 수사 결과나 기소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벌인 수사의 결론일 뿐임을 유의하여야 한다. 이를 두고 마치 법원의 재판을 통해 확정된 사실로 오해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재판 절차의 한쪽 당사자인 검사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체포·구속하거나 범죄에 사용된 물건 등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는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물론 범죄 행위 중이거나 범행 직후 등 영장을 미리 발부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후의 영장 발부를 조건으로 누구든지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는 예외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사전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수사기관에 의해 체포·구속될 때에는 그 이유를 들어야 하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강요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미리 고지받아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체포·구금된 사람의 진술이나 압수·수색된 물건은 원칙적으로 재판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수사 과정에서 영장에 의해 적법하게 체포된 경우라도 계속해서 신체를 구금할 필요가 있다면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이때 법관은 검사가 제출한 서류나 자료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에 직면한 피의자를 직접 심문하여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등 구속의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구속영장을 발부하여야 한다.  


아무리 구속의 사유가 있더라도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는 사람을 장기간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수사를 위해 구속영장으로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경찰에서 10, 검찰에서 1회의 연장을 포함하여 20, 최대 30일을 넘을 수 없다. 과거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피의자에 대해서는 20일을 연장하여 최대 50일까지도 구속할 수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신체의 자유와 무죄추정원칙을 위반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인권 발전의 역사는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의 신체의 자유가 어떻게 확보되고 보장되어 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2012년 한국법률가대회에서 발표된 한 통계지표에 따르면 영국에서 대헌장이 탄생되어 8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임의연행으로부터의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10-26

<11>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허용, 왜 합헌결정 내렸을까15조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은 직업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부 제한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의 안마 독점을 요구하는 2006년 시위 장면이다동아일보 DB

 

2006년 국회는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했다. 그러자 비장애인 스포츠 마사지사가 “헌법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내렸다. 왜 합헌이라고 판단했을까. 헌재는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 자유가 제한될 수는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안마사 외에 생계 보장을 위한 대안이 별로 없다. 사회적 약자 우대라는 불가피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등 원칙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2008).

헌재는 또 2010년에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이 영리 목적으로 안마 시술을 할 경우 형사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조항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3년 뒤 서울중앙지법과 광주지법이 같은 내용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을 때에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위헌소송은 우리에게 헌법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헌법 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때 말하는 ‘직업’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직업이란 한마디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하는 일이다. 여가활동이나 취미활동은 직업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수가 부업으로 식당 운영을 한다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생활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소득활동으로 볼 수 있으므로 직업에 해당한다. ‘직업’ 활동에 따른 소득은 영구적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교수의 일회적인 강사활동은 직업으로 보기 어렵지만, 방학이나 휴학기간 동안 강사 활동은 직업으로 봐야 한다. 

우선 ‘직업’을 이렇게 정의해놓고 볼 때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것은 단순히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즉 직업을 영위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삶의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 질서하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창의까지 보장하는 넓은 의미를 가진다. 

 

중세 유럽은 엄격한 신분 제도와 그에 따른 직업 세습을 특징으로 한다. 시민 혁명을 통해 이 패러다임이 무너졌다. 근대 사회를 건설한 세력은 시민 계급이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만약 그들이 자유로이 직업을 선택하지 못했더라면 근대는 없었다. 따라서 현대사회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즉 공익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범위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저소득계층은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는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헌법은 이런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헌법이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그 자유는 제한된다. 무제한의 자유는 무질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얼핏 보기엔 공익에 해가 간다 하더라도 ‘제한적 조치’를 통해서 공공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 직업이라면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폭발물 제조는 그 자체로 공공에게 위협이나 해를 줄 수 있지만 제조자가 안전성을 입증한다면 그것을 제조하는 직업을 막을 수는 없는 식이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10-30 

<12>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현대사회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2014 3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KT 개인정보 유출 공익소송 제기 기자회견. 최근 금융회사와 통신사들의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로 정보의 수집 보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아일보DB

A 씨는 학창 시절에 당한 사고로 한쪽 눈이 파열돼 실명했다. 결국 의안을 넣었고, 그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 후 공무원이 됐고,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4급으로 승진한 며칠 후 병역 사항을 신고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4급 이상 공무원은 본인과 직계비속의 병역사항을 신고해야 하며 이를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하는 법률이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비록 부끄러운 사실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한쪽 눈이 의안임을 동료들에게 밝히지 않았는데, 이를 공개해야만 하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2005 A 씨는 이 법이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007년 이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공직자의 공직 활동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공직자 개인의 인격과 밀접하게 결부된 질병이나 심신장애 사유를 일률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법은 개정돼 지금은 4급 이상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당사자가 비공개를 요청하면 질병을 공개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우리말보다는 ‘프라이버시(Privacy)’란 영어 단어가 더 익숙한 사생활의 자유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사회변동과 함께 등장한 현대적 기본권이다. 농촌을 중심으로 서로 숟가락 수까지 알고 지내던 시절과는 달리,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혼자만의 사적 공간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속옷만 입고 뒹구는 일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관찰되거나, 가족들만 알고 있어야 할 비밀스러운 대화가 낯선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끔찍한 일이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은 선정적인 언론보도로 사생활을 폭로당한 사람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부각됐다.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가족사에 대한 폭로성 기사를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기사는 동화 속 주인공과도 같은 연예인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망가뜨릴 수 있다. 이런 일은 연예인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사생활의 폭로는 존경과 신뢰를 받는 상사나 동료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사회생활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국가에 의해서도 침해된다. 얼마 전 국무총리실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사찰 사건도 있지만, 과거 국군보안부대에서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종교인, 교수, 재야 인사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인적사항, 가족사항, 학력과 경력, 자격, 해외여행 정보, 대인관계, 시위 참가 전력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감시를 받았던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고, 대법원은 국가가 함부로 개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정보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이름, 나이, 주소, 키와 몸무게, 사진 등 신상정보와 범죄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람은 성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며, 개인정보가 공중에게 알려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성범죄자 개인의 사생활 보호보다는 성범죄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라는 공익이 더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빈곤과 장애 등으로 복지혜택을 받으려면 의료기록이나 재산, 소득 등 민감하고 세세한 개인정보를 국가에 제공해야 한다. 관련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런 개인정보가 직간접으로 활용된다. 


이와 같은 국가의 개인정보 수집 및 보관 자체가 직접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정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누군가에게 공개되거나 수집 목적과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면 자유로운 사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이런 개인정보의 공개 및 사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이 정보 주체인 개인에게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이라고 한다. 

최근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 통신회사 등에서 수백만∼수천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었다. 국가뿐 아니라 회사나 병원, 학교 등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들 정보는 모두 개인의 인격과 밀접하게 관련된 매우 민감한 내용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보장에 있어서 국가의 행위와 더불어 기업 등 민간의 행위에 대한 감시 및 통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13>통신비밀, 자유와 함께 제한도 받아야 하는 이유는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지난달 13일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사이버 사찰’ 논란과 관련해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법질서를 혼란시켰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DB


A 씨는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검사가 증거 자료로 제출한 것들을 살펴보니 수사기관이 자신을 수년 동안 감청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기관이 A 씨를 감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었다. 이 법은 감청 기간을 2개월로 제한하고, 필요한 경우 감청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은 단지 2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고만 명시해 놓았다. 기간 상한이나 연장 횟수 제한 같은 것은 없었다

A 씨는 이 같은 감청이 헌법에 위반된다면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헌법재판소는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감청은 몰래 행해지는 것이다. 당사자는 자신이 감청당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장의 필요성 여부도 따질 수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한번 감청이 허가되면 수사기관은 계속 감청 기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었다. 감청 기간 동안 뚜렷한 범죄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더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아무리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루어지는 감청이라 하더라도 기간 상한이나 연장 횟수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은 개인의 통신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아무 근거 없이 감청을 연장할 수 있는 근거 법률은 이제 효력이 없어졌다 

우리 삶의 일부가 된 통신수단에 대해 상시적인 감시와 검열이 이뤄진다면 이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다. 

 

통신수단인 우편이나 전신, 전화망 등은 국가의 중요한 시설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보급과 관리가 필요한 분야이다 보니 통신의 비밀은 국가에 의해 침해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경찰이 편지와 통신을 검열하고 집을 도청함으로써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이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일어나지 않았나.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사상의 자유까지 위협하는 이런 일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반대로 국민의 삶을 짓밟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기틀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헌법은 처음 제정될 때부터 지금까지 통신의 비밀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 일상에서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나누는 사적인 대화를 몰래 엿듣는 것을 금지한다.

 

통신수단을 이용해 나눈 대화가 개인적인 대화인지, 직장생활에 관한 것인지, 정치적인 대화인지 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 어떤 통신수단으로, 누구와 얼마 동안 통신을 하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사소통이 위축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의 비밀을 보장할 자유 역시 제한 없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안전 보장을 위하여, 혹은 중대 범죄에 대처하기 위하여 통신 내용을 ‘감청’할 수 있다. 감청은 국가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합법적으로 당사자 동의 없이 통신의 내용을 알아내는 것으로 불법적인 ‘도청’과는 구별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살인 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혐의가 있는 등 매우 예외적인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감청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본 A 씨 사례와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감청이 남용되어 상시적인 감시가 된다면, 국민의 통신 비밀에 관한 자유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최근 검찰이 대통령과 관련된 풍문을 수사하기 위해 국내의 대표적인 메신저 서비스 회사의 협조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요동쳤다. 사람들이 국내 메신저 서비스에서 외국의 메신저 서비스로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떠났기 때문이다. 통신의 비밀 보호가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헌법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큰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14>양심의 자유, 허용돼야 하지만 제한도 받아야 하는 이유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2011 8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조항에 대한 위헌제청 선고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동아일보DB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A 씨는 지방병무청장의 현역입영 통지를 받고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였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는 현역입영 통지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A 씨는 기소되어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았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위 병역법 조항이 A 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의 의심이 있다고 하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생각할 것은 바로 ‘양심’의 의미이다.

양심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윤리적 결정을 말한다. 옳고 그름에 관한 내면의 확신이라는 점에서 종교나 일반적 신조와는 구별된다. 양심은 우리 사회 다수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개인의 고유한 것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이 양심상 결정도 제각기 다를 수 있다 

미성년 자녀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수혈을 거부해 자녀를 사망에 이르게 한 부모의 사례를 보자. 친권자인 부모는 미성년 자녀를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다. 따라서 수혈만이 자녀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수혈을 거부한 행위는 형법상 살인죄나 과실치사죄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수혈 거부 결정이 종교적 교리에 기초한 옳고 그름에 대한 진지한 내면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양심의 자유가 보호하는 양심에 해당한다. 재판 과정에서도 그 헌법적 의미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양심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상황에 즈음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다. 그 결정이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기독교나 불교처럼 종교를 근거로 양심이 형성될 수도 있고, 자유주의나 공동체주의와 같이 사상이나 철학을 근거로 양심이 형성될 수도 있다. 어떤 종교관, 세계관이나 가치세계에 기초하는지와 상관없이 양심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는 양심이 만들어진 동기나 원인에 따라 보호의 여부나 정도를 달리할 수 없다.

양심의 자유는 먼저 어떠한 외부 간섭이나 압력, 강제 없이 스스로 양심을 형성하는 것을 보호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가 특정 사상이나 세계관만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거나 그에 관한 부정적 비판을 반복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취지에 어긋난다 


하지만 헌법이 이렇게 양심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해서 표현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언제나 양심의 자유로 보호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서 음주 측정을 요구받은 상황에서 측정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고민이 선과 악에 관한 진지한 윤리적 판단을 위한 고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음주 측정에 응할 것을 요구하는 법에 따라 측정에 응했다고 해서 내면적으로 만들어진 양심상 결정이 왜곡·굴절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내면의 결정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양심의 자유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만 하고,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양심은 다른 사람의 권리나 공익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표현할 때 다른 사람의 권리나 공익과 충돌할 수 있다면 국회는 법률로써 양심의 표현이나 실현을 필요한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행위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바로 그렇다. 전쟁을 위한 목적의 군사훈련을 반대하는 진지한 양심에서 비롯돼 병역을 거부했다면, 양심의 자유가 보장하는 ‘진지한 내면의 결정’으로서의 양심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행위도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헌법적 법익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개인의 양심도 국가의 존립에 우선하여 무제한으로 보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행위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까닭이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15>종교재단 학교라도 종교교육을 강제할 수 있을까? - 19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가 예배 등을 강요하는 게 부당하다며 2004 1인 시위를 벌이는 고교생. 이 사건은 재판으로 이어졌다2010년 대법원은 학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동아일보DB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A 군은 일반계 고등학교 전형 절차에 따라 B재단이 설립한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B재단은 건학이념인 기독교정신에 따라 담임교사 입회 아래 아침마다 찬송과 기도를 하고, 정규 과목으로 따로 예배시간을 두었다. 예배시간에 참석하지 않으면 결석으로 처리하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

A 군은 B재단이 학생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종교교육을 명목으로 특정 종교를 강제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B재단의 강제적인 종교교육으로 말미암아 A 군의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종교란 무한의 절대적·초월적 존재에 대한 내적 확신과 관련된 영역이다. 헌법은 인간의 내면적인 정신영역에서 개성신장을 돕는 수단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본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종교 문제를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에 맡기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중세유럽 국가들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 다른 종교를 허용하지 않았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이단자로 가혹하게 처벌하였다. 왕과 같은 세속의 권력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종교의 권위를 등에 업었다. 종교는 세속의 권력을 이용해 교세를 확장했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종교의 타락과 부패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결국 종교개혁으로 이어졌고, 오랜 종교전쟁을 거친 끝에 마침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다 

헌법 제20조 제2항이 국교를 부인하고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선언한 것도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한다. 국가는 특정 종교를 탄압해서도, 우대해서도 안 된다. 종교적 의식에 따라 국가의 행사를 진행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정치에 반영할 목적으로 종교정당을 설립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와 조화될 수 없는 이유이다.

 

종교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와 신앙을 실현하는 자유로 나눌 수 있다. 신앙의 자유는 개인이 신앙을 선택·변경하거나 포기하는 자유를 말한다.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도 신앙의 자유를 통해 보호된다. 신앙 실현의 자유는 종교적 교리와 확신에 따라 삶을 형성하고 신앙을 실천하는 자유다. 종교적 의식이나 종교선전, 종교교육, 종교적 집회와 결사 등을 보호하고, 자신의 종교적 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1970년대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라며 거부한 여고생을 학교장이 학칙 위반으로 제적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제적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판결 내용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많은 법학자들이 “판결이 지나쳤다. 학칙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징계 중 가장 무거운 제적 처분을 내린 학교장의 행위가 과도하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재단인 B재단은 종교의 자유 일환으로 종교행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B재단이 실시하는 종교행사는 보편적인 교양을 내용으로 하는 종교교육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기도, 설교 그리고 찬송 등의 방법으로 전파하는 종교행사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B재단이 행사에 참석하지 아니하는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사실상 참석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A 군과 같이 기독교 신앙이 없는 학생들이 자기 선택에 따라서 종교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자유와 신앙을 가지지 않을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는 마음의 영역에 머물면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마음의 영역을 벗어나 밖으로 표출되어 다른 기본권이나 법익, 가치와 충돌하면 제한될 수 있다. 특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려면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으며,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의식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지는 폭행이나 학대, 비과학적 치료행위, 인간 제물 등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는 보호되지 않는다. 인근 주민을 소음공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야간의 교회 종소리도 제한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관점에서 “전쟁이나 테러 위험이 있는 지역에 선교 목적의 방문이나 체류를 금지한 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사법시험이나 각종 국가시험의 시행일을 왜 일요일로만 정하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요일로 정한 것도 시험 장소의 확보나 시험 관리에 필요한 인원의 소집을 위해 불가피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A 군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B재단이 설립한 고등학교에 강제 배정되었다. 이러한 학교배정제도에서는 아무리 종교이념에 입각하여 설립된 사립학교라고 하더라도 공교육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그래서 국가는 사립학교에도 보조금을 준다. 따라서 B재단은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고려해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학생들을 위한 대안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16>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른다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악성 댓글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중고등학생들이 진행했던 형사모의재판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PC통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애용되던 시절, 대학생 A 씨는 언론 기사를 보고 PC통신 동호회 게시판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글은 채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삭제되었고, A 씨는 PC통신을 한 달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전기통신사업법은 공공의 안녕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소위 ‘불온통신’을 금지했었다. 정부는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게시 글을 삭제하고 게시자의 통신 이용을 금지할 권한이 있었다

A 씨는 이처럼 개인의 통신 이용을 제한하는 근거 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불온통신’이라는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한 규정으로 국민들의 통신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며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표현되는 사람들 제각각의 생각들이 모이면 ‘여론’이 형성된다. 여론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책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의 뜻은 선거가 없을 때에는 여론을 통해 대변되고 국가 정책에 반영된다. 정부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소통 분위기를 위축시키는 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21조 제1항에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말이나 글, 출판 등의 형태로 스스로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를 가진다. 자유로운 의견의 형성은 다른 사람의 말과 글, 의견이나 정보 등을 접할 때 걸림돌이 없어야 가능하다. 국가는 국민이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그에 적합한 소통의 구조와 환경을 마련할 헌법적인 의무가 있다. 

 

더 나아가, 국가는 국민들이 보다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신문, 방송, 통신 등의 매체를 이용한 소통공간을 마련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 이와 같은 소통공간은 국민들이 자유롭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자유, 즉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일 국가가 정보를 모두 독점하고 국민에게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조용히 있어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의사 형성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언론·출판의 자유는 언론매체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식, 특히 국가의 공적 업무에 관하여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도 보호한다.

헌법 21 2항에서는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하기 전에 미리 막는 국가의 ‘검열’도 금지하고 있다. 어떤 생각이나 의견의 옳고 그름은 사람들 속에서 논의되고 토론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지, 그것이 옳지 않거나 위험한 생각이라는 선입견으로 국가가 사전에 개입하여 그 표현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한 사전 검열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검열로 볼 수 있다면 금지된다고 판단했다. 즉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민간 자율 단체의 방송 광고에 대한 사전심의도 검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언론·출판의 자유는 무한정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품을 치유 효능이 있는 의약품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부작용을 알리지 않고 광고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이런 표현들까지 헌법상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음란한 표현은 어떨까? 그것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되는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표현이 음란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헌법적으로 보호를 못 받는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하였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전파되는 음란물은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전한 성 관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법률로써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 댓글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표현들에 대해 피해자가 피해구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표현의 자유에 따르는 책임, 즉 남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정신에 따른 것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17>폭력 집회는 집회의 자유로 보장하지 않는다헌법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집회 시위의 자유 적극 보호해야 하지만 폭력 시위는 예외다사진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대의 폭력적인 모습동아일보DB


몇 년 전 직장인 A 씨는 퇴근 후 서울 세종대로 일대 촛불집회에 참가하였다가 오후 10시경 체포되었다.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0조 등은 야간의 옥외집회를 금지했고, 이를 위반한 사람을 처벌했다. 담당 재판부는 집시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해가 진 후부터 뜨기 전’까지의 야간이라는 광범위한 시간대에 옥외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직장인 학생 등의 집회 참여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심야 시간에는 시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며 자정 이후 시위는 금지하도록 했다

집회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하기 위한 일시적인 모임이다. 도로를 행진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시위도 집회의 한 유형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타인과 접촉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공동체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수자에게는 집회나 시위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세계사에 유례없이 짧은 시간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중요한 시점마다 학생 시민들이 뜻을 같이하여 집단으로 항의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소수의 발언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요체인 다수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우리 사회를 다양한 생각이나 의견이 공존하는 열린 사회로 만든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목적이나 시간, 장소, 방법 등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집회에 참가하는 행위뿐 아니라 집회 장소로 이동하거나 종료 후 귀가하는 등 집회와 관련한 모든 행위를 보호한다. 그래서 국가가 특정한 목적의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막거나, 반대로 참가를 강요하거나,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검문을 강화해 집회 장소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어긋난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집회는 그 자체로 개인이나 공공에 해를 줄 수 있다. 집회 소음에 교통 방해, 때로는 인근 상인들의 영업에 지장까지 초래한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의 일상적인 모습이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비용이다

 

국가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부당한 방해를 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 적극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집시법 제1조는 집회와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게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임무는 집회가 안전하고 원만하게 끝날 수 있도록 집회를 보호하고 필요한 경우 질서를 유지하는 게 된다. 집회나 시위에 적극 개입하기보다는 질서 유지를 위해 교통 통제를 하거나 다른 집회와의 충돌을 예방하고 막는 것에 머물러야 한다.  

경찰이 이 역할을 넘어 오히려 집회를 위축시키고 방해한다면 위법한 공무집행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집회에 참석할 것이 예상되거나 집회 장소가 교통이 혼잡한 도심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일반인의 통행을 불편하게 하는 차단 벽을 설치하거나 과잉 검문을 한다면 그것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적 취지에 반할 수 있다

다만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 유지 등을 위해 필요하다면 집회의 자유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심야 시간대 옥외 집회나 시위, 국가 기능의 원활한 수행이나 외교 관계를 고려하여 국가기관이나 대사관 주변에서의 시위 등이다.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동반하는 집회나 시위 역시 제한될 수 있다 


폭력적인 집회와 시위는 애당초 집회의 자유로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정상적인 의사표현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집단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시법 제5조는 이를 분명히 하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나 시위, 폭행·협박·손괴·방화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률이 제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옥외 집회는 관할 경찰서에 48시간 이내에 신고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찰은 집회의 목적이나 성격을 고려해 허가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집회 신고의 진위나 선후 등을 따지지도 않고 집회 신고가 동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신고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2015-01-01

<18>학교 주변 극장 운영은 위법인가헌법 제2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은 연주 공연 상영 등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기타를 든 한 연주자가 서울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학교보건법은 유치원, 초중고교와 대학 등 모든 학교의 주변에서 무대 공연 및 영화 상영을 포함한 일체의 극장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물론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는다.

A 씨는 초등학교 주변에서 극장을 인수해 운영했다. 법률 조항을 위반하며 극장 영업을 하게 된 셈인데, 결국 재판을 받게 됐다. 담당 법원은 재판 중에 이 법률 조항이 위헌이라면서 위헌 제청 신청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 조항의 목적이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극장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과잉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예로부터 미를 추구하거나 진리를 탐구하는 행위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많은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당시의 지배 세력이 공유하던 정치·사회·문화·종교적 관념에서 벗어난 예술이나 학문 활동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지배 세력은 체제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이를 금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예술 작품이나 서적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사라졌고 그것을 창작하고 궁리한 예술가와 학자들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인류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으로 국가를 비롯한 지배 세력의 방해와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로운 지적·미적 활동을 추구하기 위해 헌법 제22조 제1항에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감정, 경험, 인식 등을 일정한 매체를 통해 나타내는 자유로운 창조의 결과물이 모두 예술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 예술가들은 매우 개성적이며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고, 기존의 미적 기준이나 가치를 넘어서려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예술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술가의 관점으로 이를 정의하면 예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이비 예술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국가가 이를 독점하면 독일의 나치스 시대나 과거 소련에서와 같이 국가체제에 봉사하는 예술만이 보호되고 허용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법 이전의 현상이지만,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가, 궁극적으로는 헌법재판소에 의한 개념 정의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는 예술가의 주관적인 관점을 모두 포괄하는 개방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예술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데 획일적인 사고가 아니라 다원주의에 기초한 중립과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 예술은 미적 표현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상품 판매를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 활동이 행해지는 상품광고가 예술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예술의 자유는 크게 예술 창작의 자유, 예술 표현의 자유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예술 활동을 통한 자유로운 인격의 발현을 보장하는 것에 있다. 예술 창작의 자유는 예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로서 창작에 필요한 소재나 형태, 창작에 이르는 구체적인 과정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공연·영상을 위한 수단으로 창작 활동을 하더라도 그 결과인 공연물·영상물은 당연히 예술 창작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위해 입산이 금지된 산림보호구역에 들어가 수령 200년이 넘은 금강송을 무단으로 벌목하는 것까지 예술 창작의 자유로 보호될 수는 없다. 


예술 표현의 자유는 예술 작품의 자유로운 연주·공연·상영 등을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연극을 공연하거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예술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극장의 설치와 운영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 따라서 극장의 장소적 의미와 기능에 비추어 그 운영자 역시 예술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헌법재판소도 예술품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할 수 있는 자유가 예술 표현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함으로써 음반제작자나 예술출판자가 예술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예술 표현의 자유도 무제한적인 기본권이 아니다. 예술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명예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없다. 국가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 , 이때라도 공익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01-15

<19>토지 소유권자도 마음대로 땅을 사용할 수는 없다

23 1항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토지재산권은 다른 재산권에 비해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개발제한구역 옆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동아일보DB


A 씨는 개발제한구역 안에 있는 자기 땅에 허가를 받지 않고 별장을 지었다. 그러자 관할 구청장은 허가를 받지 않은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별장을 철거하라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구청장을 상대로 철거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A 씨는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해 그 안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등 개발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도시계획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담당법원에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위 도시계획법 조항에 위헌성을 발견할 수 없다면서 제청신청을 기각했다. A 씨는 헌법재판소에 직접 위 조항의 위헌 판단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다. 또 사람에게는 그것을 가지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를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 재산권이다.

재산권이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각종 권리를 말한다. 재산권은 사람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한 물질적 기초이다. 그래서 시민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입헌주의헌법에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로 재산권이 규정됐다. 우리 헌법 역시 제23조에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 재산권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권리를 개인의 뜻대로 사용하고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개인은 재산권을 보유하고 마음대로 사용하며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팔 수도 있다. 

국민이 누리는 재산권의 내용과 종류는 시대에 따라 다르고 나라마다 다르다. 그래서 헌법이 재산권을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재산권으로 보장되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세세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재산권이 제대로 보장되려면 국회가 법률을 통해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확정해야 한다.

국민이 재산권을 가진다고 해서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재산권은 다른 기본권과 달리 그 권리자에게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할 의무를 지운다 

 

재산권은 나 혼자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산권도 다른 자유권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만 보장된다.

근대 초기에는 재산권이 신성불가침한 자연권으로서 절대적 권리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시장경제 원리, 사적 자치의 원칙 등과 더불어 자본주의 발달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재산권의 배타성·절대성은 오늘날에 이르러 힘을 잃고 소유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 봉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인 권리로 바뀌었다. 

나아가 도로를 만들거나 공공기관의 건물을 짓는 등 공공의 필요에 의해서 재산권을 강제로 뺏길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때에는 반드시 법률을 통해서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정당한 보상은 수용되는 재산의 객관적인 가치를 그대로 보상하는 완전보상을 말한다. 물론 재산권을 제한하더라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생산수단을 모두 국유화하는 등 사유재산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보상도 없이 재산권을 몰수하는 것, 사후에 법률을 제정해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은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 

토지는 수요가 늘어난다고 공급을 늘릴 수 없다. 따라서 토지에 대해서는 시장경제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 그리고 토지는 옮길 수 없고 인간이 디디고 살아가는 삶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으로서 자손대대로 누리고 그 위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따라서 토지재산권은 다른 재산권과 비교해 공공적인 성격이 강하고 인근 토지와의 관계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때가 많다. 이러한 토지의 특수성은 그 이용이나 수익, 처분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도록 하고 토지재산권에 더 많은 제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A 씨가 땅을 사서 소유하고 그 위에 별장을 건축하는 것은 재산권의 내용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산권이 제한 없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개발제한구역의 설정을 토지재산권에 내재하는 본래적인 내용으로서 토지 소유자가 마땅히 참아야 하는 일종의 의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으로 별장을 지을 수 없는 불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따로 보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개발제한구역 지정으로 인해 지정 전의 용도와 방법으로 토지를 사용하거나 활용할 방법이 전혀 없어졌다면 예외적으로 그와 같은 불이익이 상쇄될 수 있도록 하는 보상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20>선거연령을 19세로 정한 이유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한 유권자가 지난해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투표하고 있다동아일보DB

 

1996 19세였던 대학생 A 씨는 다가올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주권자로서 처음 투표를 하려 했지만 선거권이 없어 참여할 수 없었다. 당시 선거법에서 선거연령을 20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A 씨는 선거연령을 20세 이상으로 정한 선거법 조항이 자신의 선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정치문화와 국민의 의식 수준, 당시 민법에서 성년을 20세로 정한 취지 등을 고려할 때 위 공선법 조항이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달리 모든 국민이 주권자로서 직접 국정에 참여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대의제 원리에 따라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해 그에게 국정을 운영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임기 동안의 정치적 성과를 평가함으로써 대의과정을 통제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성패는 국민의 의사를 왜곡 없이 그대로 대의기관의 구성에 반영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제도를 마련하는 것에 달려 있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국민의 선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지만 누구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것인지, 어떤 방법과 절차를 거쳐 대표자를 정할 것인지는 국회가 법률로써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국회가 선거제도를 법률로 구체화할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헌법 제41조와 제67조 제1항에서 정하는 보통·평등·직접·비밀의 선거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선거권이란 헌법이 정하는 선거원칙에 부합하는 선거권이어야지, 선거가 통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과거 3·15 부정선거와 같은 선거가 아니다. 

 

평등선거는 모든 유권자가 동등하게 한 표를 가질 뿐 아니라 한 표가 대표자의 선출에 미치는 영향도 같을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편차가 너무 벌어져 유권자의 투표가치에 차이가 있다면 평등선거에 위반된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상하 33.3%를 넘어서면 평등선거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직접선거는 간접선거에 반대되는 것으로 유권자가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말한다. 유권자의 의사가 직접 대표자를 뽑는 데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취지이다.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원의 의석 배분을 정당의 득표수가 아니라 지역구 선거에서 소속 국회의원이 받은 득표수를 기준으로 한 것을 헌법재판소는 직접선거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비밀선거는 유권자의 의사결정, 즉 투표의 내용이 알려지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할 목적으로 자신이 투표한 투표용지의 사진을 배포한다면 다른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으므로 비밀선거원칙과 관련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통선거의 원칙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지며 재산·인종·성별·종교·교육 수준 등을 이유로 선거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선거권은 귀족 등 특정한 사회적 신분이나 일정 재산을 가진 남자에게만 인정됐다. 그러나 오랫동안의 선거권 확대 운동에 따라 선거권은 신분이나 재산의 정도에 관계없이 성인 남자로 확대됐고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성인 여성까지 선거권이 인정됐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처음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보장하였다. 그러나 누구나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투표를 할 수는 있지만 투표라는 행위가 갖는 법적·정치적 의미와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

 

헌법상 보통선거의 원칙이 인정되지만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교육적 여건, 국민의 의식수준 및 미성년자의 신체적·정신적 자율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의 하한을 정하는 것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하지만 입법자가 선거연령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한다면 보통선거의 원칙에 반하여 국민의 선거권을 침해하게 된다.

 

1997년 당시 헌법재판소는 선거연령을 20세로 규정한 것이 보통선거의 원칙에 비추어 지나치게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후 입법자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국민의 정치적 의식수준 등 우리 사회의 변화를 고려해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췄다. 

한동훈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21>공무원은 경미한 범죄로 신분을 박탈당하지 않는다헌법 25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공무원이 될 권리는 헌법이 정한 기본권이다. 지난해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추석 연휴를 맞아 한 고시 학원이 개설한 특강에 몰린 모습동아일보DB


지방의 한 도시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A 씨는 교통사고를 낸 뒤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A 씨는 법원에서 징역 6개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당시 지방공무원법에서는 공무원이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면 공무원의 당연퇴직 사유로 정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당연퇴직된 A 씨는 이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뇌물죄처럼 직무와 관련된 범죄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해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때에까지 이 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해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건 공무담임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공직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범죄의 종류와 내용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공직에서 추방하는 것은 A 씨의 공무담임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이다”라고 판단했다.

공무담임권은 공직에 취임해 공무를 담당할 수 있는 권리다. 각종 선거에 입후보해 당선될 수 있는 피선거권과 국가 및 지방의 공무원으로 임명될 수 있는 공직취임권 등을 모두 포괄한다. 헌법 제25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고 해 이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오늘날 국민 주권의 원리가 헌법의 기본 원리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공직에 취임하고 공무를 담당할 권리가 자명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공무담임권은 오랜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다. 

 

공무원의 개념은 근대 초기에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권력체제를 만들기 위해 관료제도가 확립되면서 발생했다. 그 후 민주주의가 진행되고 정당정치가 뿌리를 내리자 정권을 획득한 정당이 정권 창출에 공로가 큰 당원들에게 관직을 분배하는 엽관제도(獵官制度)가 시작됐다. 그러나 엽관제도는 행정 능률의 저하, 행정 질서의 교란, 공무원이 단순히 정치 세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을 공직에 임명하고 국가가 공직 수행의 대가로서 생계유지 등 신분을 보장하는 직업공무원제도가 등장했다.

공무담임권은 피선거권 외에 공직을 담당할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받는 공직취임권과 공무담임 중에 부당하게 공직을 박탈당하지 않을 공직유지권을 그 내용으로 한다.

공직취임권은 누구나 능력과 적성에 따라 자격을 갖추면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권리이다. 따라서 공무원의 채용은 시험 성적, 근무 성적, 공직에의 적성 등 공무원으로서의 능력과 적성이 기준이 되는 실적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문제되는 것이 공무원시험 응시 연령의 상한과 하한을 정하는 문제이다. 지적·신체적 능력을 키워 나가는 청소년에게 공직을 맡길 수는 없으므로 입법자는 공직의 취임과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격 요건으로 시험 응시 연령을 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조건은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해야 한다.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능력이나 적성과 무관한 나이를 기준으로 공무원시험의 응시 여부를 획일적으로 결정한다면 이는 공직 취임에 대한 중대한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7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응시 연령을 35세까지로 하면서 그 상급자인 5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응시 연령을 32세까지로 정한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려우므로 공직취임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공무원 신분의 부당한 박탈을 금지하는 공직유지권은 직업공무원제도의 취지에서 유래한다. 즉 공무원이 자신의 신분 불안에 동요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관성 있고 안정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공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다. 따라서 입법자는 법률로써 공무원의 퇴직 사유와 같은 공직제도의 내용을 만드는 데 폭넓은 재량을 가지고 있지만 이때에도 직업공무원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교통사고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경미한 범죄를 이유로 아무런 절차도 없이 공직에서 퇴출시킨다면 공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아지겠지만 공직자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한동훈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02-12

<22>국민참여재판은 중한 범죄일 때에만 가능하다27 1항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법원의 재판에 불복한 모 대학의 A 교수가 자신의 사건을 맡았던 판사에게 석궁을 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일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던 A 교수는 피해자가 판사이기 때문에 법원의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였다. 그러나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은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이 되는 사건을 살인, 강도, 강간 등 중한 범죄로 제한하였다. 이에 A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을 제한한 위의 법률이 자신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직업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하므로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을 받을 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재판청구권이라고 부르는 재판을 받을 권리는 개인의 권리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하여 가장 필수적인 기본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돈을 빌려 주었는데도 정한 날에 채무자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법의 힘으로 빌려준 돈을 받을 권리가 관철되어야 한다. 또 국가의 행위로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은 그 행위의 취소를 구하거나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아야 한다. , 국민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에는 재판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법원의 재판 절차를 통해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재판청구권은 법치국가의 꽃에 비유된다 

재판은 분쟁의 대상이 되는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렇게 확정된 사실관계에 법률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재판청구권은 법관으로부터 사실적 측면과 법률적 측면에서 적어도 한 차례의 판단 기회를 보장받는 것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한다. 만일 그러한 기회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재판청구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법관에 의한 사실적 측면과 법률적 측면에서의 판단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먼저 법관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해 임명되고 신분이 독립된 법관이어야 한다. 만약 법관이 사건의 당사자 중 한쪽과 친분이 있다면, 그는 독립적이며 중립적인 법관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쪽 당사자는 법관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판은 법관의 개인적인 상식이나 감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한 재판이어야 한다. 이때 법률은 헌법에 합치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법률이 위헌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면 법관은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물어 그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 나아가 신속하고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연된 재판은 이기더라도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고, 재판의 공개는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는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하여 유죄 여부를 가리게 되는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를 헌법상 권리로 보장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 헌법에는 그에 관한 규정이 없다. 다만 우리 헌법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신분이 보장되는 직업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로 이해하고,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 제27조 제1항의 재판청구권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의 판단대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직업 법관에 의한 재판’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국민참여재판이나 배심재판의 도입을 금지하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직업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오직’ 직업 법관에 의한 재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업 법관과 함께 일반 국민이 재판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직업 법관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든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의 이념(헌법 제1조 제2)이 사법부의 구성과 그 권한의 행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면, 일반 국민의 사법 참여 역시 헌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손상식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원 

 

<23>정당한 파업은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

헌법 33 1항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근로자들의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한 대기업 노조가 파업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제조업체인 A사의 노동조합은 회사가 평소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 항의해 조합원들에게 시간외근로 및 휴일 근로의 거부를 지시했다. 이로 인해 회사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자 회사의 대표이사는 노동조합 위원장인 B 씨를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검찰은 조합원들의 집단적 노무 제공 거부 행위가 노동조합법상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치지 않은 위법한 쟁의행위임을 전제로 B 씨를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B 씨는 쟁의행위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이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쟁의행위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단체행동권의 내재적 한계를 넘는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만 처벌의 대상이 되므로 업무방해죄를 정한 위 형법 조항은 단체행동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근로3권 혹은 노동3권이라고 부른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가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으면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불평등한 노사 관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율적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근로3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근로조건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자유롭게 자주적인 단체를 결성하고(단결권), 그 단체의 이름으로 사용자와 근로조건에 관하여 자유롭게 교섭하며(단체교섭권), 근로자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단체행동을 할 권리를 가진다(단체행동권). 

 

단결권은 근로조건의 유지·향상을 위해 근로자 개개인이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이 단체(노동조합)를 조직하거나 여기에 가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한다. 단체교섭권은 근로자가 단결권에 근거해 결성한 단체가 근로자 개개인을 대신해 사용자와 자주적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단체행동권은 단체교섭이 결렬될 때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파업, 태업 등 사용자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쟁의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단체행동권에 근거한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할 수 있다. 이때 ‘위력으로써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와의 관계가 특히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단체행동권에 있어서 쟁의행위는 핵심적인 것인데, 쟁의행위는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고 했다. ‘헌법상 단체행동권의 행사에 본질적으로 수반되는 정당한 파업 행위는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에 해당하는 불법한 행위로 볼 수 없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한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행사로서 파업·태업 등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고 나아가 이로 인해 사용자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적이나 방법, 절차상 한계를 넘어 업무방해의 결과를 야기하는 쟁의행위는 정당한 단체행동권의 행사가 아니므로 이와 같은 쟁의행위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된다. 따라서 쟁의행위가 근로조건의 향상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거나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데서 나아가 생산 시설의 파괴나 폭력 행위에 이른다면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로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을 통해 쟁의행위는 헌법상의 기본권 행사이므로 그에 따른 모든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만 그것이 쟁의행위로서의 한계를 넘는다면 형사상 또는 민사상의 책임을 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모든 쟁의행위는 일단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만 법이 허용하는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예외적으로 위법성이 없어 처벌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시정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결정은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내용을 법률 해석을 통해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정영훈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24>최저생계비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헌법 34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연탄을 든 할머니가 골목길을 오르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장애인홀몸노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되고 있다동아일보DB


1급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K 씨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수급자로 선정돼 매달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1 12, 생계급여액을 정하는 기준인 2002년 최저생계비 중 3인 가구의 급여액을 786827원으로 고시했다. 이에 K 씨는 장애인이 포함된 가구를 특별히 고려하지 않고, 가족의 인원만을 기준으로 책정된 ‘2002년 최저생계비 고시’가 자신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위한 국가의 생계보호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함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조치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생계급여 등의 수급액과 그밖에 국가가 지급하는 급여나 세금감면액 등을 모두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법상 장애인에게 부여되는 각종 급여나 세제 등의 혜택을 고려하면 위 최저생계비 고시가 K 씨를 비롯한 장애인 가구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차이가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만약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기초마저 없어 생존 자체가 어렵다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환경이나 조건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혹은 요즘 논란이 되는 ‘갑을 관계’처럼 경제력의 차이가 강자의 약자에 대한 인격적 지배에까지 이르렀다면, 과연 그 사회를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결국 ‘사회적 정의’라는 헌법 문제로 이어진다. 

요즘과 같이 치열한 경쟁과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누구나 사회·경제적 약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누구나 스스로의 책임과 무관하게 경제적 몰락에 이를 수 있음을 경험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미 바닥난 경제적 여력과 끝없는 좌절감을 맛본 상황에서 스스로 홀로서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국가는 우선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의 생존을 도모하고, 다음으로 생존의 기초가 마련된 사람의 경제적 자립, 즉 홀로서기를 지원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통합을 촉진하고 서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의 역할이다. 이러한 국가를 헌법에서는 ‘사회국가’라 한다. 헌법재판소는 “사회국가란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으로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해 방관하는 국가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기 위해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다. 궁극적으로 국민 개개인이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그 조건을 마련할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라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제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헌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근로의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를 비롯해 다수의 사회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면서, 국가의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 증진 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사회권적 기본권이란 바로 빈곤, 실업, 질병, 재난, 장애, 노령 등의 이유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국가에 사회적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말한다. 이를 통해 헌법의 주인인 국민이 국가를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개인은 사회적 기본권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회권의 실현에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국가에 다른 수입이 없는 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또한 소득에 비례해 고율의 세금을 부담하는 누진세와 같은 사회적 조세제도는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해 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기여한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 부담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권의 구체적 실현은 국가의 재정적 능력과 경제적 여건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보장제도를 어느 정도로 실행할 것인지는 국가예산이나 정책적 우선순위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합의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본 최저생계비 고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내려진 것이다. 

이장희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2015-03-19

<25·끝>기본권 지키려면 납세와 국방의무 이행해야

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납세의무를 진다
39 1항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무를 진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는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기위해 꼭 이행해야 한다. 지난달 육군1기갑여단 투우대대가 강원 철원군에서 전차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나 그 자녀의 병역 또는 납세의 문제가 빠짐없이 검증된다. 그 과정에서 병역기피나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 거센 비판 여론을 피해갈 수 없고 결국 후보자의 지위에서 낙마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는 국방의무, 납세의무와 같은 기본의무의 이행을 공직자의 기본적인 자격요건으로 보는 우리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1999년에 있었던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에 대한 위헌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다음처럼 강조했다. “헌법 제39조 제1항에서 국방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는 이상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이른바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일 뿐이므로 이를 보상이 필요한 특별한 희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병역의무의 이행에 대한 보상책으로 가산점 제도의 부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또 남성만이 부담하는 징병제도가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남녀평등을 근거로 여성에게까지 병역의무를 확대하자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헌법 제2장은 국민의 기본권과 함께 기본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 제목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이다. 이는 1948년 우리 헌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변함없이 유지되어 온 것이다. 헌법에서 기본의무의 내용을 명시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국민에 대한 추가적인 의무부과를 금지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오늘날 국가는 옛날의 군주국가나 종교국가와 달리 국민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고유한 목적을 추구한다든가,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국민이 개개인의 다양한 목적과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을 통해 비로소 국가를 창설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국가는 헌법이 정하는 목적에 구속되고, 그 목적을 수행함으로써 비로소 정당성을 획득한다. 궁극적으로 국민은 자유와 재산, 안전 등 스스로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헌법을 제정하므로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결국 국가를 통해서 보장된다.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가 없다면, 국민의 기본권도 보장될 수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국가가 존속하고 유지되려면 그에 필요한 재정과 국방력을 확보하여야 한다. 국가공동체의 존립과 활동을 위해서 국민이 국가에 대해 대가없이 지는 헌법상의 부담이 바로 국민의 기본의무이다. 기본의무는 기본권에 대응하는 것으로 기본권과 함께 국민의 지위를 형성한다.

기본의무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가를 유지하는 데 직접 기여하는 납세의무(헌법 제38)와 국방의무(헌법 제39조 제1)이다. 납세 의무는 국가가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납부할 의무를 말한다. 국가는 스스로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오로지 국민이 낸 세금을 통해 교육, 복지, 국방 등 국가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 

오늘날 국가의 역할이 치안과 국방에서 국민의 모든 생활영역을 조성·배려하여야 할 복지국가로 확대되면서 그만큼 재정수요가 팽창되었다. 이는 결국 증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세금 문제는 국민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복지와 증세 논쟁, 연말정산 파동은 바로 이를 반영한다

헌법재판소는 조세입법에 대하여 조세의 부과징수가 법률에 근거하고 납세의무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과되는지 여부를 심사하여 종합부동산세법 등 다수의 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였다. 

국방의무는 북한을 포함한 외부 적대세력의 직간접적인 침략행위에서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한 의무를 말한다. 이는 직접적인 병역의무뿐 아니라 향토예비군, 민방위 등 간접적인 병력형성의무, 그리고 군 작전 명령에 복종하고 협력할 의무까지도 포함한다. 헌법 제39조 제2항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병역의무 이행을 직접적 이유로 차별적 불이익을 가하거나, 또는 병역의무를 이행한 것이 결과적, 간접적으로 그렇지 아니한 경우보다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그 의미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과거 전제왕정이나 독재시대에도 납세와 국방의 의무는 존재하였다. 국가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체제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에 기본의무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