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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2021-10/ 10-01 ‘언론징벌법’ 국내외 규탄에 물러선 민주당, ‘민주’ 이름을 생각하길 - 10월 28일 누가 공복이고 누가 도둑인가

상림은내고향 2021. 10. 31. 21:14

바른소리 2021-10

10-01 ‘언론징벌법’ 국내외 규탄에 물러선 민주당, ‘민주’ 이름을 생각하길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려 했던 ‘언론징벌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국내 언론계, 시민단체, 법조계, 학계 등은 물론 해외 인권 언론단체들까지 대거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언론과 표현의 자유 파괴’라며 규탄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낀 여권이 사실상 물러선 것이다. 여당은 연말까지 추가 논의를 하겠다고 하지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언론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언론법’은 시작부터 정권에 대한 언론의 비판 보도를 막겠다는 의도로 시작됐다. 이 법을 최초로 제기한 사람은 이스타항공 5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상직 의원이다. 그는 자신의 비리 의혹에 대한 취재가 계속되자 “가짜 뉴스와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며 언론만을 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주장했다. 그러자 이른바 조국 수호대들이 앞장섰다.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를 이끌었던 김용민·김남국 의원이 각각 당 미디어혁신특위 위원장·위원으로 법안을 만들었다. 언론의 재개발 지역 부동산 투기 문제 보도로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난 기자 출신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한술 더 떠 독소 조항 추가에 나섰다. 언론 보도로 자신들의 불법, 파렴치, 내로남불이 드러난 사람들이 언론에 보복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을 비롯해 각계 여권 성향 인사들까지 나서 “만약 국회에서 일방 처리된다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정부·여당에 서한을 보내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니 법을 수정하라”고 했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어렵게 만들고 국제 인권 원칙에 위배되니 통과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이 결국 물러서긴 했지만 불씨가 재연될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상식 합리와는 담을 쌓은 극렬 친문 세력에 늘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지풍파를 통해 민주당은 ‘민주당엔 민주가 없다’는 세간의 평이 왜 나왔는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

 

10.01 세종대왕은 언론중재법을 어떻게 보았을까

말의 자유(freedom of speech) 없이는 정치도, 문명도 없다.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다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에게만 말이 있다. 말이 없다면, 인간도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동양이 문장 중심이라면, 서양은 말이 우선이다. 정치도, 재판도 말이 중심이다. 시저는 심지어 전투에 앞서 병사들에게 연설을 했다. 그런 전통은 그리스에서 왔다. 그리스인의 생활은 소박했지만 대화는 풍부했다. 대화는 그들에게 생명의 호흡이었다. 아고라에서의 대화가 삶의 중심이었다. 그 속에서 철학과 민주주의가 활짝 개화했다.

 

동양은 조금 다르다.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이다. ‘한비자’의 첫 시작이 난언(難言), 즉 ‘말하기의 어려움’이다. 왜 어려운가? 역사를 보면, 곧은 말, 바른말을 하는 사람 중 죽거나 가시밭길을 걷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상의 환경에서도 그렇다.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성군이고, 그의 재상 이윤은 명재상이다. 하지만 이윤은 처음에 요리사였다. 이윤이 발탁된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가 쌓인 뒤였다. “지극한 지혜로 지극히 착한 임금을 설득해도, 지극하다고 해서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한비의 결론이다. 하물며 지극히 정성된 충언은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좋은 정치가 그토록 드문 이유이다.

 

그런데 한국 역사에서 말의 자유가 찬란히 꽃핀 때가 있었다. 바로 세종의 치세이다. 1418년 22세의 나이로 즉위한 세종은 첫 조정회의에서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우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사권은 가장 나누기 어려운 권력이다. 세종은 재위 32년간 이 ‘의논’을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고수했다. “더불어 의논한다”(與議)는 표현은 ‘세종실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말이다.”(김홍우 교수)

 

세금에 관한 공법 개혁이 대표적 실례이다. 조선 초기의 조세제도는 인정과세인 답험손실법이다. 당연히 징수 부정이 많았다. 그래서 정액과세인 연분9등, 전분6등제로 바꾸려고 했다. 의견 수렴을 위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인원이 무려 17만 명에 달했다. 수령부터 평민까지 모두 참여했다. 세계 최초의 일반 여론조사였다. 그런데 명재상 황희가 공법에 반대했다. 오히려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 그리고 지방간 토지 비옥도를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종이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집현전 학자들도 반대했다.

 

그들조차 “내 뜻을 알지 못하니, 하물며 기타 사람들이겠는가.” 절망한 세종은 그들을 불러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으며, 세종은 “하는 말이 참으로 옳다” “나는 능하지 못하다”고 자책했다. 해질 무렵 시작한 모임은 밤 10시에 끝났다. 17년에 걸친 논의 끝에 세종은 마침내 공법 개혁에 성공했다.

 

풍수지리 논쟁도 놀랍다. 성리학은 풍수지리를 사술로 본다. 그러나 세종은 지관 최양선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옹호하고, 직접 풍수지리설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특정 이념으로 타인의 입을 막으면 안 되고, 국정에 필요하면 이념을 넘어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비록 꼴 베는 사람의 말이라도 옳으면 채택하고, 비록 틀려도 죄주지 않는 것이 왕의 자세라고 역설했다. 언로가 막힐 것을 염려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한 것은 비록 중도(中道)를 잃었더라도 또한 죄를 가하지 않았다.” 한글 창제를 비롯해 거침없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던 좌의정 허조는 “간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유한이 없다”고 말하며, 웃으면서 임종했다. 세종의 치세에 수많은 인재들이 나타나 활약하고, 문화적 성숙을 이룬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언론중재법 처리가 일단 연기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말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고, 말의 의미는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국정 전반이 난조에 빠지고, 상식이 무너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세종의 정치와는 정반대이다. 위정자뿐만 아니라 세종 같은 시민이 많아야 한다. 말의 자유는 단순한 언론 문제가 아니다. 말이 막히면 생각도 죽는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관리하는 정부에는 얼마나 행운인가?” 히틀러의 말이다. 전체주의는 그런 사회의 코앞에 와 있다. 언론중재법은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

조선일보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10-01 국격만 훼손하고 일단 멈춰선 언론악법 폭주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 방침을 철회했다. 국내 언론·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유엔, 국제언론인협회 등 국제사회까지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 법안’이라며 철회를 촉구하면서 입법 독주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그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여야 동수 특별위원회를 국회 내에 만들고 언론중재법 외에 신문법, 방송법 등 관련 법안까지 대상에 포함시켜 연말까지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법안처리 시한을 못 박지 않은 만큼 연내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여전히 강행처리를 주장하지만 여당이 여기에 편승해 다시 입법 공세에 나선다면 더 큰 비판에 맞닥뜨릴 것이다.


만약 여당이 단독으로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였다면 극렬 지지층 표심 잡기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한국 언론사에 큰 오점을 남겼을 것이다. 핵심 독소조항인 ‘언론보도 피해액의 최대 3∼5배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과잉 언론규제다.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을 규정한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 조항이 불명확하다는 비판에 부딪치자 ‘진실하지 않은 보도’란 더욱 애매하고 확장된 표현으로 바꿔 법안을 더욱 개악하려고까지 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론자유에 족쇄를 채우는 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의 국격을 훼손하는 일이다. 여권은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언론중재법 통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법안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 문제는 언론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

동아일보 사설

 

10.01 ‘언론징벌법’ 연기 아니라 폐기가 답이다

연말까지 특위서 논의키로 했으나 명분 없어  

여당 강경파, 국회의장에 “특단 조치” 협박도

 

숱한 논란을 낳았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그제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 방침을 접고 국회에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꾸려 연말까지 논의하기로 국민의힘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여러 독소조항 때문에 ‘언론재갈법’ ‘언론징벌법’으로 불린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연기된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 여야는 동수로 참여하는 특위에서 언론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의 독소조항은 여야 합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는 시각이 많다.

 

당초 민주당이 추진한 법안 자체에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등 문제 조항에 대해 국내 모든 언론 단체는 물론이고 세계신문협회(WAN)와 국제언론인협회(IPI), 국경없는기자회 등 해외 언론 단체까지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정부에 우려 서한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정부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도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민주당이 뒤늦게 야당과 협상 과정에서 개정안을 내밀었지만 오히려 개악을 했다는 비판만 더해졌을 뿐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강행 처리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가 반발하며 보인 태도는 볼썽사납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 상정을 미루면서 여야 합의를 주문하자 정청래 의원 등 30여 명은 “의원들의 뜻을 모아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회법상 의장의 고유 권한임에도 ‘특단의 조치’ 운운하자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 “귀를 의심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어제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여당이 언론과 야당의 협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주장을 올렸다. 당원 게시판 등에는 박 의장 등을 비난하는 글이 게재됐다.

 

민주당발 언론중재법은 정기국회와 특위가 끝난 후인 내년에도 재추진돼선 안 된다. 국제사회와 국제기구까지 반대하는 위헌적 조항이 담긴 만큼 처리 연기가 아니라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야당에선 여당 대선후보가 선출된 이후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문재인 대통령도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야당과 합의 없는 강행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다. 주무 장관인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정부가 할 일은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무리수를 다시 두는 일은 없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10.02 ‘대통령 닮지 않은 분을 찾습니다’

16년 정권 내주고도 꿈자리 뒤숭숭하지 않을 독일 메르켈
나라 돌아가는 꼴에 화나고 아파야 희망 생겨

전임자(前任者)를 닮은 후임자를 찾는 선거도 있다. 지난 26일 치른 독일 총선이 그랬다. ‘어디 메르켈만 한 사람 없나’ 하는 게 독일 국민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웃한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대서양 건너 미국도 ‘메르켈 없는 유럽연합(EU)’ ‘메르켈 없는 미국-유럽 관계’를 걱정하는 눈길로 독일 총선을 지켜봤다. 총선에서 안정 의석(議席)을 확보한 다수당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 정당을 묶는 연립정부 구성으로 가닥이 잡혔는데, 현재로선 그래도 메르켈과 닮은 구석이 있는 사회민주당(SPD) 대표가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고 한다. 이만하면 메르켈에게 훌륭한 마무리다.

 

▲지난 2015년 4월30일 앙켈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 모렌스타라세역 근처 단골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다/한경진 기자

 

내년 3월 9일 새 대통령을 뽑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닮은 사람을 찾는 선거가 될까. 아니면 문재인 닮은 사람은 ‘다시는 안 된다(never again)’는 선거가 될까. 어느 여당 후보자도 ‘문 대통령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당선돼도 정권 연장(延長)이 아니라 ‘정권 내 정권 교체’라고 은근슬쩍 내세운다. 후계자 운운(云云) 해선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야당 후보들 이야기는 들으나 마나다. 후임자(後任者)의 자격 요건이 ‘절대로 전임자와 닮아서는 안 된다’는 나라의 국민들은 어떤 세월을 살았을까. 이러고도 퇴임 후 꿈자리가 뒤숭숭하지 않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메르켈 리더십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라도 문제가 폭발하거나 악화되지 않게 하는 관리의 묘(妙)를 터득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멋진 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멋진 행동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다른 무엇보다 메르켈의 노후(老後)가 편안하도록 보장한 것은 ‘메르켈 시대에 정치는 사납지 않았고 생활은 편안하고 넉넉해졌다’는 독일 국민의 공통(共通)된 기억이다. 권력자의 퇴임 후 신변 보장책으로 이만큼 든든한 것은 없다. 내 손안에 든 경찰로 담을 두르고 공수처로 대문 빗장을 지르고 법원과 검찰로 안방 자물쇠를 채웠다고 퇴임 대통령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메르켈이 총리에 취임한 2005년 독일 경제는 동맥경화증을 심하게 앓는 유럽의 환자(患者)였다. 메르켈은 집권 16년 동안 독일 경제를 되살려 유럽의 기관차로 다시 달리게 하고 베를린을 유럽 정치의 심장으로 뛰도록 바꿔놓았다. 메르켈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 공(功)을 경쟁 정당 소속 전임자 슈뢰더 전(前) 총리에게 돌렸다. 슈뢰더는 노조(勞組)의 기득권을 줄여 독일 경제 혈관에 쌓여가던 노폐물을 제거해 노동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줄줄 새던 사회보장제도 파이프의 구멍도 틀어막았다. 슈뢰더 개혁의 꽃이 메르켈 시대에 핀 것이 사실이다. 전임자에게 공을 돌린다고 자신의 공적이 줄어들지 않는 게 고급(高級) 정치 수학이다. 전임자들을 감옥에 쟁여 놓아야 자기 시대가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구(舊) 동독 목사님 딸인 자그마한 체구의 메르켈은 겁이 없었다고 한다. 1995년 개에게 한번 물린 다음 개는 무서워했다. 메르켈의 퇴임 소식을 전한 미국과 유럽 신문들은 다 같이 사진 한 장을 실었다. G7 정상회담 사진이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트럼프가 팔짱을 낀 채 앉아 거드름을 피우고 건너편에 메르켈이 서서 트럼프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다른 국가 정상들은 메르켈 옆과 등 뒤에서 겁에 질린 듯 이 대좌(對坐)를 지켜보고 있다. 독일 국민들은 이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메르켈은 생각이 다른 여러 유럽 국가들의 뜻을 한데 모아 자주 미국을 뒷받침했지만 ‘높은 산’이라며 미국에 굽신거리지 않았다.

 

강원랜드는 코로나로 관광업이 얼어붙기 전인 2019년 매출 1조5200억원 순익 5110억원을 기록한 공기업이다. 정부는 며칠 전 이 회사 사장으로 민주당 지역위원장, 부사장에 민주당 의원 보좌관, 상임 감사는 총리 공보실장, 비상임 이사에 민주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출신을 임명했다. 권력을 잡으면 이래도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가 자신이 설계했다고 자랑한 판돈 1조원 규모 ‘화천대유 도박장’에 수많은 얼굴이 올라왔다. 대법관, 검찰총장, 검사장, 특검(特檢), 야당 의원(여당 의원도 곧 나올 듯하다)…. 당첨자가 누가 될지 미리 알고 하는 도박이니 일종의 사기 도박이다. 진짜 주연(主演)은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국민 여러분, 분노(忿怒)와 통증(痛症)을 느끼십니까, 뭐라고요, 크게 말씀해 주세요.’ 화나고 아파야 희망이 있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10.02 로마 멸망시킨 ‘빵과 서커스’…포퓰리즘에 포위된 대선판

대중조작과 전체주의 

▲토마 쿠튀르(1815~1879)가 캔버스에 그린 ‘타락한 로마인들(1847)’. ‘빵과 서커스’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쇠락해 가는 로마를 화폭에 담았다. [사진 오르세미술관·위키피디아]

 

여야 대선 후보들의 포퓰리즘 공약이 도를 넘고 있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내세운 기본 소득·주택·대출 등을 실현하려면 1000조원대의 돈이 든다. 올해 정부 예산안(558조원)의 2배가량이다. 이낙연 후보는 서울공항 이전 후 신도시 건설을, 추미애 후보는 생애 세 번의 안식년 동안 매월 10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

 

현실성이 부족한 공약을 내세우긴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청년·신혼부부에 원가·반값 주택 50만호를 공약했다. 홍준표 후보는 쿼터 아파트까지 내걸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4분의 1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여야 모두 내부에서 “나랏돈 물 쓰듯 쓰기 대회에 나왔다”(박용진)거나 “허황된 포퓰리즘”(유승민)이란 비판이 나온다.

청년·아이 미래 훔치는 선심공약
“무상공약은 진보의 탈 쓴 게으름”
“정치쇼가 국민 어리석게 만들어”
포퓰리즘 다음 단계는 전체주의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선후보마저 일침을 놨다. “(나를) 사기꾼 코미디언이라 조롱하더니 이젠 여야 모든 정치인이 따라한다”고 말이다. 허 후보의 공약만큼 여야 유력 주자들의 공약도 허황돼 보인다. 갈수록 심화되는 포퓰리즘의 유혹, 이래도 괜찮은 걸까.

원조 퍼주기 ‘빵과 서커스’

 

▲고대 폼페이의 유적지 펠릭스 영지에서 발견된 프레스코 벽화.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와 함께 화산재로 뒤덮인 펠릭스 영지는 1755년 발굴됐다. [사진 나폴리박물관·위키피디아]

 

포에니 전쟁에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로마는 거대 제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로마군의 주력은 자작농이었는데, 전쟁 기간 농사를 짓지 못해 놀리는 토지가 많았다. 남성들이 파병 간 사이 여성·아이들은 땅을 담보로 곡식을 구했고, 심지어 헐값에 넘겼다.

 

이때 땅을 사들여 거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세넥스(senex)다. 세넥스는 노인을 뜻하는 단어지만, 돈 많은 귀족을 일컫는 표현이 됐다. 원로원(senatus)의 어원이다. BC 123년 토지 독점과 양극화가 심해지자 집정관 그라쿠스 형제는 개혁안을 내놨다. 땅 소유를 제한하고 국가가 곡물값을 조절하기 시작했다(『빵과 서커스』).

 

큐라 아노나(Cura Annona)라고 불린 이 제도 덕분에 빈곤층은 매달 약 30㎏ 이하의 곡물을 절반 가격에 샀다. 그러나 식량 대부분을 식민지에서 조달했던 로마는 해적의 침입과 기상 악화 등으로 공급이 불안정했다. 인구 급증으로 가격도 폭등했다. 그러자 BC 58년 클로디우스 호민관은 10% 안팎의 하위층에게 무상 배급(클로디우스 곡물법·Lex Clodia Frumentaria)을 시작했다(「로마의 곡물 문제와 정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상 배급 대상은 로마 시민의 절반가량으로 늘었다.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권력자들의 매표 행위 탓이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제정(帝政) 로마도 정통성 없는 황제들이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다. 곡물 대신 직접 빵을 주더니, 나중엔 와인·돼지고기까지 얹어줬다. 당대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정치·군사 모든 영역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빵과 서커스만 기다린다”고 꼬집었다(『풍자』).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 정책은 시민들을 우민화시켜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다. 오락거리를 제공해 국민을 무지하게 만드는 영화 ‘헝거게임’도 로마를 모티브로 했다. 가상국가 ‘판엠(Panem)’에서 매년 13개 지역의 대표 1명씩 모여 마지막 생존자가 나올 때까지 싸움을 벌인다. 승리한 지역엔 더 많은 식량이 배급되기 때문에 국민들은 ‘살인게임’에 열광한다.

 

로마도 빵과 함께 검투사 경기와 전차경주 등 각종 볼거리를 제공하며 시민들의 환심을 샀다. 먹고 즐기는데 필요한 물자와 노예는 식민지에서 들여왔다. 전쟁은 로마의 경제 시스템을 유지하는 비즈니스였다. 그러나 3세기 이후 제국의 팽창이 멈추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훈·고트·반달 등 이민족의 부흥으로 식민지 지배력을 잃으면서 476년 멸망했다.

 

에드워드 기번은 “제국의 확대는 파멸의 원인이 됐다. 억지로 세운 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로마라는) 거대한 건축물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졌다”고 평가했다(『로마제국 쇠망사』). 로마 멸망의 근본 원인은 탐욕스런 권력자와 이성적 판단력을 잃어버린 시민들 탓이라는 이야기다.

 

국가 지도자로서 갈라치기는 부적절

포퓰리즘으로 망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물가 상승률이 연간 2500%인 베네수엘라, 국가부도만 9번 낸 아르헨티나는 무분별한 퍼주기로 국가 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치가들이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포퓰리즘의 효과가 즉각적인 반면, 비용 청구서는 늦게 날아오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청년들과 아이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는 것과 같다.

▲박용진

 

여당의 박용진 후보는 지난달 25일 광주·전남 경선 연설에서 “관성처럼 정책에 ‘무상’ 시리즈를 붙이는 건 진보의 탈을 쓴 게으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번영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고 박 의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포퓰리즘을 비판하나.

“오늘 당장 박수받을 이야기만 하면 얼마나 편하겠나.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미래의 30~40년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인기를 얻기 위해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포퓰리즘은 청년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울 뿐이다.”

 

진보는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여권은 10년 전 무상급식 논쟁에서의 짜릿한 승리를 잊어야 한다. 퍼주는 것만이 진보가 아니다. 복지와 포퓰리즘의 경계는 국가재정이 지속 가능한가이다. 제도를 만들 때 재정적 뒷받침이 있는지, 그 제도가 계속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상과 보편 시리즈만 내세우면 무책임하다.”

 

상위 10%의 세금으로 90%가 혜택을 받게 된다는 국토보유세(이재명)는 어떤가.

“부자와 아닌 자 등으로 갈라치기 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부적절하다. 어느 한 집단을 적대시하는 정책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집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은 욕구를 죄악시해선 안 된다. 시장과 대결하려는 생각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불렀다.”

 

포퓰리즘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건드려 이성적 사고를 가로막는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다수의 생각이라며 밀어붙인다. 이때 극좌는 부자의 것을 빼앗아 빈자에게 나눠준다 하고, 극우는 민족주의(또는 인종주의)를 내세워 이민자·외국인 등을 차별하고 제노포비아를 부추긴다. 앞선 대표적인 예가 후안 페론(아르헨티나)과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이며, 후자는 도널드 트럼프(미국)와 마린 르 펜(프랑스)이다.

 

극좌·극우 포퓰리즘 모두 가진 현 정권

▲윤희숙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극좌·극우 성향을 모두 보인다. 선거 때 돈을 풀며 각종 퍼주기를 일삼고 틈만 나면 부자와 빈자를 나눠 갈라치기 한다. 갈등 사안이 생기면 토착왜구 프레임을 씌워 반일 민족주의를 자극한다. 우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며 북한 바라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분석이다.

 

현 정권은 왜 민족주의를 내세울까.

“집권세력은 1980년대 반미(NL)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동자 기반의 진보 의제를 실천해온 서구 좌파들과 동떨어져 있다. 서구의 이민자 이슈 대신 친북·반일의 형태로 민족주의를 활용한다.”

 

보수 정당도 각종 퍼주기 공약에 동참한다.

“포퓰리즘은 재정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으로 나뉜다. 재정적인 게 퍼주기이고, 정치적인 건 진영 논리다. 국민 전체(population)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지층만 바라본다. 자신의 지지기반에 퍼주기를 하는 건 좌우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타깃이 누구냐에 따라 남미는 저소득층을, 서구는 전통적인 백인 유권자를 노린다.”

 

포퓰리즘은 왜 민주주의를 위협하나.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키우는 게 자유민주주의다. 포퓰리즘은 정반대다. 포퓰리스트는 개인의 지성을 북돋우는 대신 욕망과 분노의 감정을 건드려 대중을 움직인다. 탁현민 류의 정치 쇼가 대표적이다. 개인을 어리석게 만드는 일은 자연스럽게 대중조작과 전체주의로 이어진다.”

 

최초의 근대적 독재자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국민이 선거를 통해 뽑은 첫 대통령이었다. 비현실적 공약을 남발하고 실체 없는 기대를 부추겨 권력을 장악했다. ‘인간 아편’이란 별명처럼 뛰어난 대중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적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며 독재의 길로 갔다. 끝내 국민투표로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히틀러의 나치즘도, 무솔리니의 파시즘도 시작은 모두 포퓰리즘이었다.

중앙일보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10월 06일 국제 망신 언론악법, 폐기外 대안 없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주장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말은 18세기 계몽 사상가 볼테르의 명언으로 회자된다. 그런데 사실 볼테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후대에 볼테르의 전기 작가가 볼테르의 사상을 요약해 쓴 표현이 볼테르 본인의 말처럼 알려진 ‘가짜 뉴스’인 것이다. 불행히 현대사회에서도 볼테르가 주창했던 표현의 자유는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늘 위협을 받는다.


지난 9월 29일 여당은 유엔과 시민사회의 비판과 우려를 수용해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 방침을 철회했다.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던 이 개정안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최대 5배의 손해배상,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경우 등에 대한 고의·중과실 추정을 규정했다.


‘가짜 뉴스 규제’라는 솔깃한 프레임으로 포장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민주사회의 근간인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특히 미얀마와 중국 등 독재국가들이 이를 모방해 유사한 언론족쇄법을 만들 우려가 컸다. 이에 국경없는기자회, 국제기자연맹, 휴먼라이츠워치, 오픈넷 등 국내외 언론 및 인권 단체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아이린 칸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국제 인권 기준에 맞게 고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우리 정부에 보냈다. 서한은 이례적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표결할 의원들과의 서한 내용 공유를 요청했다.


이러한 국제 여론의 비판에 여당은 ‘허위·조작 보도’를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로 바꾸고,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에 언론이 고의·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추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칸 특별보고관은 다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의 대안이 여전히 적법성·필요성·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언론 보도에 대해서만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하는 입법례는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허용하는 나라에서도 일반적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명예훼손에 대한 법률을 두며,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법 규정이나 판례로 다른 사안들에 비해 배상을 어렵게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른 피해 구제도 징벌적 배상 외에 언론의 자유를 덜 침해하면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제를 촉진할 대안들이 있다. 또, 더 심각한 폐해가 지적되는 소셜 미디어 등을 빼고 언론 보도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징벌적 배상으로 언론의 자유가 위축돼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가 약해지면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지게 된다. 일례로 2019년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는 등 형사사건 정보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이후 공인 범죄 보도가 60% 줄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지적받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악법이 많다.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유엔에서 계속 예의주시하겠지만, 다시 추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위한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일보

 

10월 07일 물가-세금-빚-집값 모조리 폭등, 민생 재앙 책임 물어야

최근 들어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6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5% 상승했고, 3분기(7∼9월) 기준으로는 2.6%를 기록했다. 2012년 1분기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체감물가는 3.1%나 올라 5개월 연속 3%대를 지속하고 있다.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나가보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돼지고기 16.4%, 수입 쇠고기 10.1%, 쌀 10.2%, 마늘은 16.4%%나 급등했다.


게다가 수입 원자재 값까지 폭등하고 있어 인플레 현상은 갈수록 현저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석유류가 22.0%나 급등했다. 석유류 가격이 오르면서 각종 공업제품 가격도 상승세다. 통계로는 2012년 5월 이후 9년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에 대한 사회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전기료 인상을 억제해 왔으나 이마저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4분기부터 kwh당 3원씩 올리겠다고 했지만, 연료비 연동제가 본격화할 경우 급격한 인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도 물가를 압박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서울에서는 이제 6억 원 이하 아파트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1억9978만 원을 기록했다. 집값이 뛰면서 전세와 월세도 급격히 오르는 중이다. 지난달 재산세를 납부한 서울시민들은 고지서를 보고 경악해야 했다. 집값 폭등에 공시가격까지 마구잡이로 올린 결과다. 가만히 앉아서 세금 폭탄을 맞은 셈이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


주택자금과 생활자금 수요가 커지면서 부채도 늘고 있다. 지난 8월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46조3000억 원으로 올 들어 57조5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월급 빼고 오르지 않는 게 없다”는 비명이 쏟아진다. 문 정부 4년 반 만에 이런 민생 고통이 전방위로 재앙 수준에 이르렀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08일 임기 내내 民生 고통지수 키운 文정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문재인 정부 5년 차에 국민의 삶은 극한의 고통으로 내몰리고 있다. 좌파 이념에 이끌린 경제정책의 실패가 빚은 귀결이 아닐 수 없다. 경제학에 ‘고통지수(misery index)’가 있다. 고통지수는 1970년대에 아서 오쿤 예일대 교수가 제안한 지표다. 고통지수는 실업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해 얻어진다. 고통지수는 1999년에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에 의해 정치화(精緻化)된다. 고통지수에 핵심 변수가 추가되면서 그 나라의 경제적 강건성을 비교하는 지표로 미국 외의 나라에도 적용된다. 배로 교수가 제안한 고통지수는 ‘실업률+물가상승률+대출이자률-경제성장률’로 정의된다.


고통지수는 한국에도 적용된다. 한국적 상황에서 국민이 실제로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는 건 높은 세(稅) 부담이다. 올해 서울시 전체 398만 가구의 22%인 87만 가구의 재산세가 30% 올랐다. 법정 최대 인상 폭이다. 집값이 고공 행진했으니 재산세가 느는 건 어쩔 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왜 집값이 고공행진을 했는가? 정부가 실효성 있는 주택 공급책을 도외시한 채 거래세와 보유세를 올리는 수요 억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거래세(취득·양도세)와 보유세(재산·종부세)가 동시에 올랐으니 집을 보유해도 처분을 해도 세금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주택공시가격 현실화’를 내걸고 정부가 집값보다 더 빠르게 공시가격을 올리다 보니 재산세 부담이 폭등한 것이다.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주택 보유에 재산세를 30%나 올린다는 건 세정(稅政)의 폭거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재산 형성을 도와야 할 정부가 되레 약탈적 세금으로 국민 재산권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일 수밖에 없다. 집을 가지지 않은 시민에게 ‘집세 인상’은 큰 고통을 안긴다. 전세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2.4% 올라 2017년 11월(2.6%) 이래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전·월세가 상승은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 청구권제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임대차 3법 시행과 무관치 않다.


정책 효과는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는다.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상승 폭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기존 2년인 임대차 계약을 한 번 더 연장해 4년으로 늘릴 수 있도록 한 계약갱신 청구권제로 임대차 매물이 줄었다. 임대차 3법이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집주인들이 전·월세 신규 계약을 할 때 4년 후까지 내다보고 보증금을 크게 올리면서 신규 계약과 계약 갱신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이중가격’ 현상이 목도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통계청이 내놓은 ‘2021년 9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 상승했다. 소비자물가가 9년여 만에 처음으로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원자재 가격 인상 등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1.481%까지 올랐고, 코스피시장은 최근 3000선이 무너졌다. 원·달러 환율도 한때 달러당 1188원을 돌파했다. 원화 가치 하락이다. 대출금리 인상으로 서민 가계의 이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어디를 봐도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변화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내년 3월에는 현명한 선택을 통해 역사가 옳은 방향으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

문화일보

 

10월 12일 약탈적 기업상속세 혁파 시급한 이유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상속·증여세율이 높은 한국에선 창업 3대를 넘기는 100년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상속·증여세율은 김대중 정부 때이던 1999년 최고세율 상향(45→50%), 최고세율 적용 구간 확대(50억 원 초과→30억 원 초과) 이후 20여 년 동안 같은 기준을 유지해 오고 있다. 상장회사 경영권 승계 시 최대주주의 주식에 대해서는 경영권 인수를 근거로 20% 할증평가가 적용돼, 실질 최고세율은 50%가 아닌 60%가 된다. 미국 40%, 일본 55%보다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주식이라는 추상적 지분과 공장 등을 받았을 뿐인데,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에 대해 세금부터 내는 셈이다.


자산총액 5000억 원 미만의 중소기업, 연매출 3000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을 위한 가업상속 공제제도 같은 것이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 같다. 상장기업 발행주식 총수의 30%(비상장사는 50%) 이상을 계속 보유하면서 10∼30년 이상 운영한 오너 경영인(피상속인)의 경우 200억∼500억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최대 500억 원까지 세금을 빼 준다는 게 아니다. 상속재산가액에서 500억 원만 공제해 준다. 7년간 업종 변경 금지, 자산·지분 유지, 평균 100% 고용 유지 등 까다로운 사후관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공제분에 대해서도 상속세가 부과된다. 이러니 2016년∼2018년 가업상속 공제제도 연평균이용률은 독일이 9556건·178억 유로(23조4000억 원)일 때 한국은 겨우 90건·2585억 원으로, 독일의 90분의 1에 해당하는 처참한 수준이다.


OECD 37개국 중 스웨덴·노르웨이 등 15개국은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으며, 4개국은 직계비속에 대해서만 면제한다. 37개국 평균 세율은 13.2%다. 싱가포르와 덴마크 등은 최고 세율이 20% 미만이고,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30% 안팎이다. 기본공제액은 미국은 현재 135억 원 안팎인데 한국은 고작 5억 원이다.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는 미국·영국·프랑스는 완전 면제고, 일본도 법정 상속 범위 내에서는 면제인데, 한국은 30억 원까지만 면제된다.


상속세 비중은 세수 총액의 1.8%로 미미한 반면, 거액의 상속세로 기업 승계가 어려워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며 기업을 키울 이유가 없어 투자도 위축된다. 높은 상속세율은 국가가 기업을 약탈해 파괴하는 효과가 있다. 최고세율 70%였던 스웨덴은 2004년 상속세를 전면 폐지했다. 아스트라, 테라팩, 이케아, 에이치앤엠, 룬드버그 등 굴지의 기업들이 스웨덴을 떠났고, 많은 기업이 상속세를 못 이겨 파산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상속세 징수로 인한 세수 증대 효과보다 폐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 2018년부터 기업상속 공제한도를 한시 폐지한 덕에 공제신청 건수가 2017년 369건에서 2019년 3815건으로 대폭 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모처럼 좋은 소식을 듣고 당부한다. 당장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내리고 20년 넘은 낡은 과세구간을 재조정해야 한다. 적어도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는 폐지해야 한다. 그러면 혼인과 출산율도 늘어날 것이다. 가업상속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폐지해 독일처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기를 권고한다.

문화일보

 

10.13 ‘전세대란’ 만들고 ‘전세대출’ 막아, 거리로 내쫓기는 서민들

/연합뉴스 정부의 갑작스러운 대출 제한 탓에 전세자금 실수요자, 분양아파트 입주자 등이 돈을 구하지 못해 금융기관을 전전하거나 사채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포털의 부동산 관련 카페 등에는 "대출 규제를 재고해 달라"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정부발(發) 대출 대란 때문에 분양 아파트 계약을 못하거나 중도금을 마련 못 해 새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고, 전세 계약이 어그러져 월세 방을 전전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8월부터 ‘가계 부채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은행 등에 압력을 가한 데 따른 것이다. 집값 급등 탓에 주택 관련 대출이 크게 늘어 대출액이 이미 억제 선 턱밑까지 차오른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돈줄이 막힌 주택 자금 실수요자들은 보험·저축은행·카드사·대부업체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정부는 이마저도 차단하고 있다. 대출을 받아 중도금 등을 치르려 했던 예비 입주자, 아파트 청약 당첨자, 신규 전세 계약자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피해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집값 폭등 탓에 벼락거지가 됐는데 전세 대출 길까지 막혀 월세로 나앉게 생겼다”, “전세 대출 규제 제발 생각해 주세요”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가계 부채 관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군사 작전하듯 밀어붙이면 그 부작용은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애초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정부다. 엉터리 정책과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로 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86%, 전셋값은 40%나 올랐다. 치솟는 집값, 전셋값을 감당 못 한 서민들은 빚을 내 버티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전세 대출은 문 정부 출범 이후 96조원이나 늘었다. 이 중 59조원은 2030세대가 늘린 전세 대출이다. 작년 7월 임대차법 이후 2030 전세 대출은 1년 새 21%나 급증했다.

 

규제와 징벌적 과세 중심 부동산 정책, 반시장적 임대차법이 재앙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가 숱하게 나왔지만 정부는 귀를 닫고 강행했다. 그렇게 잘못된 정책으로 가계를 빚더미에 몰아넣은 정부가 이젠 갑작스럽게 대출을 틀어막고 있다. 피해자는 주거 취약 층이다.

조선일보 사설

 

10월 13일 대학생 65% 취포족, 정부는 끝내 세금 일자리로 눈속임

요즘 발표되는 통계청 ‘고용동향’에는 “작년 동기 대비 취업자 증가”라는 표현이 단골로 등장한다. 그런데 취업자 범위에는 주당(週當)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 다 포함된다.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시장에서 일자리가 사라진다 한들 세금을 쏟아부어 알바성 일자리만 만들어내면 취업자 증가로 발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악용하는 것이다. 13일 나온 ‘9월 고용동향’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2768만3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무려 67만1000명이나 늘었다. 취업자 수는 7개월 연속 증가세이고 증가 폭도 7년6개월 만에 가장 크다.


하지만 착시 효과를 걷어내면 곧바로 정부의 눈속임이 드러난다. 세대별로 보면 60세 이상이 무려 32만3000명을 차지해 취업 증가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전형적인 세금 일자리다. 정작 질 좋은 일자리의 주역인 30대는 1만2000명이 감소했다. 산업별로도 알바성 일자리가 대부분인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이 28만 명을 점유하고 있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4만8000명 줄어든 것도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무엇보다 확실한 지표는,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이 처한 현실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2713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무려 65.3%가 구직 단념 상태로 나타났다. 이들 중 가장 많은 33.7%는 구직활동을 거의 안 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23.2%는 의례적인 구직 활동만 한다고 답했다. 그냥 쉬고 있다가 8.4%에 이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강제, 최저임금 과속 인상, 무차별 주 52시간 등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실패하면서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도 근로 의욕도 없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16 대통령 한마디에 대출 금지 번복, 국민이 ‘실험실 쥐’인가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침으로 인해 대출 중단 우려가 나오자 금융위원장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실수요자 피해가 없도록 할 것을 거듭 강조한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은행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이 일선 은행지점 등에서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당부했다. 앞서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이날 "실수요자들이 이용하는 전세대출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1.10.14. yesphoto@newsis.com

 

지난 8월부터 전방위 대출 조이기에 나섰던 금융 당국이 전세 대출과 아파트 잔금 대출은 대출 규제에서 제외해 다음 주부터 재개하겠다고 갑자기 방침을 바꿨다. 전세 자금을 못 구한 무주택 서민들의 아우성에도 ‘규제 강행’을 고집하더니 대통령 한마디에 정책을 뒤집었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민 실수요자 대상 대출이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하라”고 지시하자 며칠 만에 금융위가 전세 대출·잔금 대출은 풀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워낙 부동산 민심이 들끓자 청와대가 개입하고 나선 모양새다.

 

이로써 대출 실수요자들이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하지만 정부의 막무가내 실험에 애꿎은 국민만 몇 달 동안 피해 보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올 들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절반이 전세 대출이고, 전세대출 잔액의 60%를 2030 세대가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대출을 조이자 치솟는 전세금을 마련 못 한 무주택 서민과 청년층이 전셋집을 못 구해 거리로 나앉을 지경이 됐다. 집값을 잡긴커녕 주거 취약계층을 불안과 고통에 빠뜨렸다.

 

이런 사태는 애초부터 예상됐지만 정부는 아랑곳 않고 초강력 대출 규제를 밀어붙였다. 가계대출 관리라는 명분만 내세워 무주택 서민을 상대로 정책 실험을 한 것이다. 부작용을 뻔히 알고 있을 금융위 관료들이 서민 민생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조직 차원의 목표에만 매달린 나머지 이런 사달을 냈다. 그래놓고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꾼다. 공직자로서의 책임감도, 소명 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여 취약층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소득 주도 성장’ 가설을 들고 나와 자영업·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을 못살게 굴었다.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이 쏟아지는데도 묵살하고 법 처리를 강행해 유례 없는 전세 대란을 자초했다. 민생 경제를 설익은 정책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언제나 피해는 국민 몫이다.

조선일보 사설

 

10월 18일 전방위 통계 왜곡과 ‘거짓말 정부’

문희수 논설위원

 세금 일자리 만들어 고용 분식
주택 통계 왜곡하며 자화자찬
원전·수질 엉터리 수치 수두룩
前 통계청장 “좋은 통계로 보답”
분배 악화하자 통계 방식 바꿔
국가통계 조작은 중대한 범죄

 

끝이 없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부족을 덮으려고 임기 말까지 고용 분식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월 고용동향 통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 정부는 1년 전보다 취업자가 67만1000명이나 늘어 2014년 3월 이후 최대 증가라며 ‘고용 서프라이즈’인 양 호도하지만 세금 일자리에 의한 분식일 뿐이었다. 늘어난 취업자의 48%가 60세 이상이고, 특히 주당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65만3000명이나 늘었다는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도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에도 “취업자 수가 코로나 충격 발생 이전 고점(지난해 2월) 대비 99.8%”라며 자화자찬했다. 30대 취업자가 1만2000명, 젊은층이 원하는 제조업 취업자는 3만7000명이나 감소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65%가 구직 실패에 지쳐 취업을 포기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조사 결과까지 나오지만 달라지는 게 전혀 없다. 끝까지 대놓고 통계를 분식·곡해하는 행태가 가증스러운 정도다.


부동산 대란 속에서 벌어지는 주택 통계 왜곡도 심각하다. 정부는 집값 폭등 원인인 공급 실패를 덮을 요량에 지난 7월 대국민 담화문에선 올 서울 주택 입주 물량이 과거 10년의 평균 수준이라는 통계치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다름 아닌 통계청의 통계를 통해 허구인 게 들통났다. 핵심인 아파트 외에 단독·다세대 등까지 포함시킨 ‘주택’으로 넓혀 공급 수치를 부풀린 것이다. ‘벼락 거지’로 만들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집값 통계로 쓰는 한국부동산원의 통계 오류는 더 심각하다. 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고작 17% 올랐다던 부동산원은 지난 7월 표본을 두 배로 늘렸더니 서울 평균 아파트값이 11억930만 원으로 한 달 만에 1억8000만 원, 19.5%나 급등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엉터리 통계임을 스스로 실토했다.


이들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전·탄소 등 에너지 통계, 국토교통부·환경부의 4대강 수질과 녹조 등의 통계 등은 수치 왜곡의 일단이 드러났다. 범부처가 올 상반기 코로나 백신 부족을 숨기려고 수급 통계를 쉬쉬하다가 들통나 국민의 분노를 샀던 것은 또 어떤가. 그러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심지어 통계청은 국가 통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강신욱 전 통계청장은 취임 직후 “좋은 통계로 보답하겠다”며 해괴한 발언을 하더니 문 정부에 불리한 소득분배 악화 수치가 나오자 소득 5분위 통계 방식을 아예 두 번이나 바꿨다. 그 결과 소득 5분위는 비교 대상인 과거 수치가 개편 이전 기준과 2019년·2020년 개편 기준 등 3개나 돼 마음에 드는 수치를 골라 쓰면 되는 꼴로 만들었다. 이러니 전문가들도 비교 분석을 못 해 불평등이 확대됐는지 개선됐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가 통계청이 발표하기 전에 자료를 미리 보는 사례가 급증한 것도 묘하다. 2017년 66건이던 것이 지난해 204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9월까지도 149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틀에 1건 넘는 꼴로 청와대가 발표 자료를 먼저 보니 통계청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미리 ‘마사지’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정부는 전 분야에서 정보가 가장 많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어떤 정부가 마음먹고 국가통계를 조작하려 들면 일반 국민은 속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하물며 문 정부는 이런 국가 통계를 멋대로 주물러 원하는 대로 분식·왜곡하고 은폐하는 게 무슨 관행처럼 돼 버렸다. 이젠 거의 모든 부처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봐도 틀림없을 것이다. 특히 실무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왜곡은 전문가가 아니면 낌새를 알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임기 말인 문 정권 평가를 의식한 듯 더욱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게 분명하다. 상습적인 국가통계 왜곡은 정책 효과 분식 수준을 넘어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국정 왜곡·국정 조작과도 다름없다. 공직자가 이런 일에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 중립 위반이자 중대한 범죄다. 게다가 대선을 앞둔 엄중한 시점이다. 지시를 받고 했더라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다음 정부는 국정 정상화를 위해 이런 행태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문화일보

 

10.20 ‘문재인 케어’ 건보 파탄 몰고 대책 없이 정권 끝, 이 정권의 공식

MRI 촬영비, 대형병원 2~3인실 입원비 등 건강보험 적용을 대폭 확대한 ‘문재인 케어’가 이대로 지속되면 건강보험 지출이 오는 2030년에 올해의 2배인 16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국회 예산정책처가 전망했다. 가입자의 보험료를 대폭 올리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7년 연속 흑자를 이어올 만큼 건전하던 건보 재정은 2018년 ‘문재인 케어’가 시작되면서 만성 적자 구조에 빠져들었다. 진료비가 고액인 뇌 질환 MRI 촬영이 3년 새 10배 이상 폭증하는 등 건보 지출이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다. 건보 재정은 3년 연속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가입자들이 병원 이용을 줄였음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건보 재정 파탄에 대비해 쌓아놓은 적립금까지 헐어 쓰고 있다. 2017년 20조원을 넘던 적립금이 작년 말 17조원으로 3조원 이상 줄었다. 남은 적립금도 3년 뒤인 2024년에 바닥난다고 한다. 세금으로 건보 재정을 지원하는 금액도 2017년 7조원에서 작년엔 9조7000여억원으로 불어가고 있다. 내년엔 10조4000억원이 책정돼 있다. ‘문재인 케어’가 건보 재정을 망치고 있다.

 

그나마 세금 지원도 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까지만 가능하다. 현행 건강보험법이 건보 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을 2022년까지만 한시적으로 할 수 있도록 못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세금 지원이 중단되면 건보 적자는 연간 10조원을 넘어서 바로 파탄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건강보험법을 고쳐 재정 지원 방식을 바꾸든지, 8%로 제한된 법정 보험료율 상한선을 올려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 그러나 문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자기는 생색만 내고 뒷감당은 다음 정부에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이대로면 국민연금의 적립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데도 연금 개혁은 손조차 대려 하지 않는다. 공상소설이라는 탄소중립안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자신은 선심 쓰고 멋진 쇼를 한 뒤에 인기 없지만 해야 하는 뒷감당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후안무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10.20 위정자의 그릇된 역사관, 나라를 멍들게 한다

선진국 진입을 앞둔 우리에게 아직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역사의식이 아닌가 싶다. 고금을 통해 위대한 국가들은 모두 역사를 중시했다. 당나라 태종은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고, 처칠은 “더 길게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했다. 미국에서는 역사는 되풀이되는 만큼 백악관에 역사자문회의를 두자는 발상도 나왔다.

 

이에 반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역사에 관심이 적다. 유성룡은 임진왜란과 같은 비극이 다신 일어나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 징비록을 썼지만 이 책은 정작 조선보다 일본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역사를 소홀히 하고, 무관심했기에 300년 후 다시 당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구한말 조선이 왜 망했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저 ‘나쁜 일본’이라는 감정적인 프레임만 강조한다. 죽창가를 부르고, 토착 왜구를 물리치자는 등 허황된 소리만 하지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생각은 없다.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저자세이다. 정치인들은 시진핑이 주창한 중국몽을 칭송하기 바쁘다. 중국몽에는 우리를 과거처럼 속국으로 삼겠다는 의미가 있는데도 말이다. 더 나아가 ‘한·중이 운명 공동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무엇을 도모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은 자기중심의 매우 무서운 나라이다. 우리가 굽실거린다고 우리 편 되지 않는다. 그동안 사드 보복, 한한령, 북핵 위협을 보더라도 나아진 것이 없다. 경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일본의 경우 대중 수출 비율이 20%(한국은 25%)에 달해도 나름 원칙을 가지고 중국을 대한다. 미국의 대중 압박에 가담해도 중국은 일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대중 수출 비율이 35%나 되는 호주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으로부터 무역 보복을 당했지만 모리슨 총리는 “중국의 압박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을 팔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나서자 중국이 도리어 난처해졌다. 우리의 경우에도 중국에 당당히 대했던 MB 정부가 가장 대접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미 관계도 주의를 요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정학적 이유로 주한미군은 한국을 떠날 수 없다고 낙관한다. 과연 그럴까? 역사를 보면 미국은 세 차례 우리를 버렸다. 첫째는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미국이 필리핀을 갖는 대신 일본의 한국 지배를 용인했다. 둘째는 1945년 얄타회담이다. 소련의 요구를 받아들여 38도선이 결정되었다. 셋째는 1950년 에치슨 라인이다. 한반도를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했고, 곧이어 6·25전쟁이 발발했다. 세 번 다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트럼프 이후 미국은 확 바뀌고 있다. 세계 경찰 역할을 버리고 자국 이익 중심의 대전환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도 철수했다. 동맹국인 한국은 예외라고 다짐하지만 절대적일 수 없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외교 수장이 미국에 가서 중국,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은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종전 선언에 매달리는 모습도 그렇다. 종전 선언한다고 실제 전쟁이 없어지나? 미국이 떠날 수 있는 명분만 주는 것 아닌가? 미국과 찰떡 관계인 일본은 미국이 언젠가는 떠날 수 있다고 걱정한다는데 우리는 참 가볍다.

 

빈약한 역사의식은 국내 정치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 해방 이후 현대사는 우리가 사상 처음 중국보다 잘사는 시기이지만, 우리끼리 분열하면서 망가뜨리고 있다. 성공 역사를 계승 발전시킬 생각은 안 하고 ‘친일 대 반일’ ‘친미 대 반미’ ‘재벌 대 노동자’ 같은 대립각 세우는 데만 열중이다. 어떤 대선 후보는 대한민국을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이라고 인식한다니 할 말이 없다.

 

지금 진보 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친일’ 프레임을 보면 과거 군사정부가 사용한 ‘빨갱이’ 프레임과 닮았다. 방향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 모두 자기 진영 정권 연장이다. 이런 잘못된 프레임으로 대한민국이 멍들고 있다. 과거 ‘빨갱이’ 프레임이 한반도 분단 고착화에 기여했다면, 지금의 ‘친일’ 프레임은 한·미·일 동맹 관계를 훼손시키며 미래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 수 천년간 인류 사회는 송두리째 변했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이용하려 한다면 고통의 역사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이런 정치인들을 솎아내는 것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조선일보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10.21 6개월 연속 ‘방어선’ 깨져, 서민 생활 위협하는 물가 공포

▲연합뉴스 지난 18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3분기 중 생활필수품 38개 품목 중 29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평균 6.3% 올랐다. 달걀값은 무려 70%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한 대형 마트의 계란 판매대.

 

9월 소비자 물가가 1년 전보다 2.5% 올라 6개월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정부가 설정한 ‘1.8% 이내 방어’ 목표가 6개월 연속 깨진 것이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훨씬 높다. 상추(58%), 고등어(21%), 국수 소면(15%), 삼겹살(13%), 한우 등심(11%), 달걀(12%) 등 두 자릿수 상승 품목이 수두룩하다. 국제 유가 급등 탓에 휘발유값은 1년 새 30%나 올라 L당 1700원 선을 넘어섰다. 7년 만의 최고치다.

 

코로나 불황으로 2분기 가구당 소득은 1년 전보다 0.7% 줄었다. 반면 물가 상승 탓에 가구당 지출은 4% 늘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물가 상상은 특히 저소득 서민과 자영업자에게 더 치명적이다. 서민층은 먹고 사는 필수 생활비 부담이 커지고, 자영업자는 재료비가 오른 만큼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물가 상승은 계속될 전망이다. 코로나 여파로 국제 원자재 공급이 원활치 않은 반면 경기 회복에 따른 소비 증가가 시작돼 공급과 수요 양쪽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물가 관계 장관회의를 수시로 열고, 10대 생활 물가 품목을 지정해 각 부처 1급 간부를 ‘품목별 책임관’으로 지정까지 하면서 물가를 최우선 민생 문제로 다뤘다. 반면 문 정부는 6개월 연속 물가 방어선이 깨졌는데도 “2% 수준이면 경제에 큰 부담이 안 된다”면서 사실상 방치해왔다. 그러다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르고 10월 소비자 물가가 3%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자 이제서야 유류세 인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돈 뿌리고 자화자찬 쇼하는 덴 전광석화인데, 민생 문제 해결엔 늘 굼뜨고 무능하기만 하다.

조선일보 사설

 

10.21 집값 치솟는데 물가는 안 올랐다고?

집값 빼고 전월세만 반영하니
현실과 따로 노는 물가 통계
미국·일본 이어 유럽연합도
自家주거비 물가에 넣기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가계 살림에서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지출은 죄다 주거비 관련이다. 내 돈을 벌기 시작해 부모로부터 독립한 청년은 혼자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는 신혼집 마련을 위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보증금을 내고 전세나 월세를 구해야 한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저축이 쌓이면 이번엔 생애 최초로 내 집 마련에 나선다. 모두 큰돈이 들어가는데, 이제껏 모아놓은 돈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세든 내 집 마련이든 은행 등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금을 다 갚을 때까지는 씀씀이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내 집 마련을 한 뒤 대출금을 다 갚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매년 7월과 9월 두 차례 재산세도 내야 한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연말에 종합부동산세도 내야 한다. 또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다시 저축하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 평생 빚 갚는 시대,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가불(假拂) 인생’ 시대가 한국에도 찾아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하면서 자가건 전월세건 관계없이 모든 가구의 주거비 부담이 급증했다. 시민단체 경실련에 따르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을 경우 서울 아파트를 사는 데 36년이 걸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엔 21년이었는데 15년이 늘어난 것이다. 만일 월급의 30%를 저축하면 118년을 모아야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거비가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주요 국에 비해 낮다. 집값을 소비자물가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등 주요 국은 자가주거비라는 이름으로 집값을 물가에 포함시킨다.

 

그런데 이렇게 가계 지출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주거비가 소비자물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달 소비자물가를 조사해 발표하는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주거비의 비율은 9.7%로 10%가 채 안 된다. 다른 품목들의 물가가 똑같다고 가정할 경우 주거비가 10% 올라도 물가상승률이 0.97%로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물가에서 주거비의 비율은 주요 국들에 비해 훨씬 낮다. 미국은 이 비율이 32%이고, 영국은 26%, 일본은 18%다.

 

주거비 비율이 낮은 것은 통계청이 주거비를 계산할 때 집값은 빼놓고 전월세값 변동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주택을 사는 데 들어간 지출은 소비가 아니라 재산 증식을 위한 투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에 반영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맞지 않는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은 자가주거비라는 이름으로 집값을 물가에 반영한다. 자가 거주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빌려줄 경우 얼마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 상승률을 계산하는 식이다.

 

주요 국 가운데 우리보다 주거비 비율이 낮은 곳은 EU(유럽연합, 6.5%) 정도다. 하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지난해 “가족과 친구 등 누구든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6.5%는 너무 낮다”고 한 이후 EU도 자가 주거비 반영을 준비하고 있다.

 

집값을 물가에 반영할 경우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2%대가 아니라 4~5%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만약 진작 도입됐다면 물가 안정을 최고 목표로 하는 한국은행이 역사상 유례 없는 초저금리를 이렇게 오래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고, 부동산 시장 급등세도 누그러졌을 수 있다.

 

한은은 이제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한 것 같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주 국정감사에서 “자가 주거비를 빼놓고 소비자 물가지수를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물가 조사 기관인 통계청이다. 이제 통계청이 답할 차례다.

조선일보  나지홍 기자

 

10.21 진보·보수보다 진실이 중요…국민 위한 정치하라

101세 김형석 교수가 보는 ‘2021 한국’ 

 지난 14일 인천 을왕리 낙조대에서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올해 101세인 그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몸소 지나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북한 공산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쳐 군사정권과 민주화운동 등 그야말로 ‘산 역사’이다. 그가 보는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인천 을왕리 낙조대 집필실에서 만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정권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진실과 정직을 잃어버린다. 대신 수단과 방법을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뭐겠나. 국민이 정부를 못 믿게 된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김 교수는 1920년생이다. 3·1운동 이듬해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내내 3·1운동이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면서 컸다. 김 교수는 “우리 민족의 삶은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과 후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3·1운동 계기로 민족의식 생겨
해방 직후 김일성 직접 만나기도

북한, 권력국가·독재국가로 존속
남한은 점차 법치국가로 발전해

문 정부는 자유보다 평등에 집중
대장동 검찰수사, 신뢰감 떨어져


무엇이 달라졌나.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우리 민족이 3·1운동만큼 큰 역사적 강을 건넌 적이 없다. 당시 사람들의 삶 속에 3·1운동의 여파가 안 들어간 곳이 없었다.”

 

예를 들면 어떤 식이었나.

“나는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어린 나를 업고 교회에 갔더니, 3·1운동 때 남편이 희생당한 아낙네가 넷 있었다고 했다. 구역 예배를 드리는데 젊은 아낙들이 울지도 않았다. 내 남편이 나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교육을 못 받은 아낙네지만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다고 했다.”

3·1운동에서 발아한 대한민국

 

김 교수는 “3·1운동 이전에는 사람들이 내 가정, 내 집안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3·1운동을 겪고 나니까 ‘가정보다 국가’ ‘가정보다 민족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민족의식이 생겨났다”며 “정신적으로 보면 3·1운동 때부터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게 해방될 때까지 자라다가 나중에 대한민국이 됐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은 여기서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김 교수는 “1945년 김일성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1945년은 해방되던 해다. 어떻게 만났나.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다닌 창덕소학교 선배더라. 평양과 만경대의 중간인 칠골 마을이다. 김성주 어머니의 고향이다. 김성주는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에 중국에서 돌아왔다. 나는 9월 초순에 평양 만경대에서 만났다. 조반을 함께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일성 할아버지가 주선해 고향 어른들과 마련한 자리였다. 당시 마을에서 대학 다닌 사람은 나뿐이라 초청됐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 서먹했다. 당시 나는 25살, 김성주는 여덟 살 위인 33살이었다. 김성주의 할아버지가 소개하면서 ‘김형석 선생이 너보다 나이는 적지만, 일본 가서 대학도 다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고 했다. 김성주는 어릴 때 힘도 세고, 축구도 잘하고, 골목대장이었다고 들었다. 나는 해방 후에 독립되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면 좋겠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뭐라고 답했나.

“첫째가 친일파 숙청, 둘째가 토지 국유화, 셋째가 지주와 사장들 다 내쫓고 노동자와 농민에게 돌려주는 거라고 했다. 그걸 말하는데 설명은 따로 없고, 초등학생 암기하듯이 ‘첫째!’ ‘둘째!’ 하며 읊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이 공부는 제대로 못 했고, 공산주의에서 말하는 걸 외운 대로 하는구나 싶었다.”

 

공산주의 비판하면 협박 편지

  남쪽으로 내려온 김형석 교수는 1947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당시에는 학교마다 남로당 조직원이 있었다. “그때 우리 학교에는 김홍기라는 선생이 남로당원 책임자였다. 나는 북에서 내려왔고, 공산주의에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내게 ‘전쟁이 나면 세상이 바뀌는데, 선생처럼 공산당 비판하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사무실 책상 서랍을 열면 ‘공산당 반대하는 놈들 다 없애버린다’는 협박 편지가 들어 있기도 했다. 그때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김 교수는 “이승만 박사가 정부 수립을 하고, 6·25전쟁을 거쳐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이 오랜 기간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권력 국가였다. 권력 국가의 특징은 독재 국가와 군사 국가”라며 “북한의 김정일은 대한민국 대표를 만나 ‘나는 당과 군대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 동안 북한 정권은 끄떡없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그게 독재 국가이자 군사 국가란 말이다. 권력 국가임을 스스로 시인한 거다”고 지적했다.

 

나라가 발전하면 권력 국가 다음은 무엇인가.

“법치 국가다. 권력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법이 다스리는 나라다. 권력 국가가 끝나는 고비에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도 법치 국가였다. 그때는 국민이 정부를 믿고 상식이 통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부터 운동권 출신이 대거 약진했다. 이승만 정부부터 내려오던 자유민주주의의 길이 이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갈라졌나.

“좌파를 진보라고 부른다. 나보고 명칭을 붙이라면 ‘평등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중국이나 북한을 보면 그렇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 평등사회주의를 지향한다. 박근혜 대통령 때 정부가 약화하면서 국민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촛불을 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걸 ‘촛불 혁명’이라 부른다. 그것은 혁명에 해당하지 않는다.”

 

혁명이 아니다. 그럼 뭔가.

“혁명은 권력 구조의 상하가 바뀌는 것이다.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걸 혁명이라 부른다. 프랑스 혁명도 그랬다. 그런데 이건 국민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촛불을 든 거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방향을 바꾸어달라고 촛불을 든 게 아니다.”

 

정치 방향을 바꾸는 게 뭔가.

“좌파의 이념 국가를 따라가는 거다. 그게 평등사회주의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5·16 군사혁명’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의도 광장도 ‘5·16 광장’이라고 불렀다. 지금 이걸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촛불 혁명도 마찬가지다. 정치 방향을 바꾸라는 걸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거다.”

 

평등사회주의가 왜 문제인가.

“거기로 가면 민주주의가 없어진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은 한마디로 자유와 인간애다. 그런데 북한 사회에는 자유와 인간애가 없지 않나. 인간다운 삶이라는 게 뭔가. 개인에게는 자유이고, 사회에서는 인간애다. 그럼 평등은 자연히 따라온다.”

 

정권을 위한 정치, 이제 그만해야

한국 현대사에서 모든 선거를 지켜보셨다. ‘100년의 안목’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부가 이끌어온 방향을 그대로 연장하느냐, 아니면 자유민주주의로 방향을 바꾸느냐. 이게 첫 번째 포인트다. 두 번째 포인트도 있다. 정권을 위한 정치를 하느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느냐. 이걸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지 않겠나.”

 

정권을 위한 정치와 국민을 위한 정치는 뭔가.

“박정희 대통령이 초창기에 국민을 위해서 한 일은 다 남아 있다. 공화당 정권을 만든 다음에 정권을 위해서 일할 때는 남는 것보다 버려야 할 게 더 많았다. 유신헌법을 만든 다음에는 버릴 것만 했다. 그럼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국민을 위해 남겨준 게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을 위해서 시작하고, 정권을 위해서 끝나고 있다. 정권을 위한 정치의 길을 택했다.”

 

‘대장동 의혹’으로 정국이 시끄럽다.

“대장동 수사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건가. 정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을 위해서 하는 거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다수가 특검을 원한다. 왜 그렇겠나. 검찰 수사에 신뢰가 안 가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보수나 진보가 아니라 진실이다. 그러니 대장동 수사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지 않나. 지금 정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중앙일보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10.26 돈 풀고도 성장 0.3% 충격…文 자화자찬 하루 만에 헛말

올 3분기 경제 성장률이 고작 0.3%에 그쳤다. 큰 논란을 빚었던 소득 하위 88% 재난지원금을 포함해 무려 34조9000억 원의 2차 추가경정예산이 투입됐는데도 예상했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충격적이다. 한국은행은 26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0.3%(속보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GDP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3.2%) 이후 5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올들어서는 1분기 1.7%, 2분기 0.8%, 3분기 0.3%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4분기도 글로벌 공급망 대란, 기준금리 인상 및 유동성 축소 등으로 불투명하기만 하다. 정부의 올 성장률 목표치 4.2%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부진한 성장의 내용은 더욱 우려스럽다. 지난 2분기에 감소했던 수출은 다행히 증가세로 회복됐지만, 민간 소비와 설비투자·건설투자가 모두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특히 여당과 정부가 형평성 논란을 초래하면서도 소비 진작을 명분으로 재난지원금을 11조 원이나 쏟아부었지만 민간 소비는 음식·숙박 등 서비스를 중심으로 0.3% 감소해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정부 소비가 1.1% 증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제를 살린다며 돈을 푸는 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 부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네 분기 연속 이어진 높은 성장에 따른 기저 영향이 기술적 조정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마이너스 기저효과’를 또 거론했다. 코로나 핑계도 빠지지 않았다. 성과가 좋으면 정부가 잘해서라고 스스로 치켜세우고, 안 좋으면 어김없이 기저효과 탓을 한다. 내달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 다음 성장률이 저조하게 나오면 무슨 변명을 내놓을지 모를 일이다.


잘 되면 내 공(功)이고, 잘못되면 남 탓이다. 끝까지 내로남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가 성장률·수출·소비·투자·고용 등에서 모두 성공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렇지만 불과 하루 만에 헛말이 되고 말았다. 이 지경이면 민망한 수준도 넘어 국민 우롱이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27일 비정규직 최대, 임금격차 악화…‘비정규직 0’ 파탄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인 2017년 5월 12일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고 “다른 공공기관과 민간으로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0 드라이브는 ‘인국공 사태’ 등 수많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았다. 업종과 고용 특성을 무시한 사실상 무조건적 정규직화 정책도 문제지만, 반드시 병행했어야 할 해고 유연성 등 노동개혁과 같은 힘든 일은 회피했기 때문이다.


임기 말에 접어든 시점에서 비정규직 0 정책은 파탄났음이 드러났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21년 경제활동 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8월 기준 전체 임금 근로자 2099만2000명 중 806만6000명이 비정규직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 해 동안 비정규직이 64만 명 증가했고, 비율도 36.3%에서 38.4%로 커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벌어졌다. 올 6∼8월 격차는 156만7000원으로, 2004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이런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이제 사회로 진출하는 20대다. 무리한 정규직화는 일부 ‘로또 정규직’을 만들어냈을 뿐, 공기업과 민간 대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을 급감시켰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이번 자료를 보면 20대 임금 근로자의 40%가 비정규직이다. 2016년만 해도 32.2%였다. 청년 취업 단절로 인한 국가적 후유증은 수십 년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늘어난 비정규직 일자리도 대부분 ‘세금 비정규직’이어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일자리 숫자만 늘리려는 정책이 60세 이상 비정규직의 팽창을 초래했다. 비정규직 일자리는 양(量)과 질(質) 측면에서 모두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만악의 근본에 문 정부의 강성 노조 편향이 있다. 민노총 조합원 등이 주류인 정규직의 과보호로 인해 기업으로서는 한번 정규직을 뽑으면 파산 위기를 맞아야 해고가 가능한 구조가 형성됐다. 정규직 채용을 회피할 수밖에 없고, 도피처는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것이다. 정부는 통계 방식 변경 운운하지만 궤변일 뿐이다. 하루빨리 시정해야 국가 경제와 미래 세대에 대한 죄책을 줄일 수 있다.

문화일보 사설

 

10월 28일 누가 공복이고 누가 도둑인가

이신우 논설고문

 나라 곳간 지킴이 역할 기재부
특정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전락
홍 장관 재정운용 원칙 외면해
공기업 합해 정부 부채 1600兆
‘닥치고 기본소득’도 판칠 위기
홍남기 對 신재민 차이 더 뚜렷


 조선 왕조의 건국 이념가인 정도전은 “한 국가가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간 버틸 수 있는 3년지축(三年之蓄)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없다면 이미 나라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이 같은 국정 철학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창업의 기운은 사라져 갔다. 비축 곡식에 전혀 여유가 없었던 선조 때 임진왜란이 터지고 패망 직전까지 주저앉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3년지축은 조선의 호조, 즉 지금의 기획재정부에 맡겨진 임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국민이 누구를 믿어야 되느냐. 대통령, 여당 말도 못 믿는다. 그래도 어딘가 믿어야 할 곳이 한 군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기획재정부여야 한다.” 그런데 기재부도 믿을 수 없다면 이제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믿을 수 있나.


그가 봉직하는 문재인 정부는 유독 나라 곳간을 함부로 허문다는 평을 듣는다. 물론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자기네만큼 국민 복지에 정성을 쏟는 정권이 있는지 물을 수도 있다. 문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국민이 장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두 번이나 국가 재정에서 10여조 원씩 털어내 전 국민 위로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일반 국민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방역대책에 따른 집합금지와 영업제한으로 엄청난 피해를 봐야 했다.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빚은 66조 원이나 늘었고 매장 폐업은 45만 개에 이른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들의 피해를 보상하겠다며 내놓은 올 3분기 예산 규모는 1조 원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그 속내를 살펴보기에 충분하다. 자영업자 수는 500만 명을 조금 넘지만 유권자로서의 국민은 4400만 명이라는 점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노골적이고 무차별적인 이런 유의 낚싯밥을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거듭되면서 해마다 100조 원 안팎의 부채가 쌓여가고 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누적 정부 부채는 10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40개 공공기관의 내년 부채가 585조 원이다. 공공기관 부채는 ‘숨겨진 정부 부채’이니 이를 합하면 1600조 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육박할 기세다.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현 정부 4년여 동안 초·중·고생 숫자가 10% 이상 줄었다. 이런데도 교육청에 배당되는 교육 예산은 41%나 폭증했다. 예산이 넘쳐나자 시·도교육감들이 ‘교육재난 지원금’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10만∼30만 원씩 나눠주었다. ‘학생’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학부모들에게 찔러준 것이다. 홍 장관은 국가 재정 운용의 최종 책임자이니 그에게 묻고 싶다. 나라 재정이 이런 식으로 쓰여도 되는 것인가. 재정이 이런 식으로 오·남용되고 있다면 홍 장관은 예산 집행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마땅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라 곳간이 특정 세력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궁금하다.


홍 장관 스스로 길을 터놓았으니 ‘닥치고 기본소득’의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빵과 서커스’가 나라를 집어삼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요즘 일본에서 야노 고지(矢野康治)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이 분게이?주(文藝春秋) 11월호에 기고한 ‘이대로라면 국가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글이 화제다. 이렇게 쓰고 있다. ‘국가 공무원은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는 충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를 주저하는 것은 중국 왕조의 환관, 혹은 무위도식하며 혈세나 도둑질하는 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녹이 공복에게 요구하는 책임의식 아닌가.


홍 장관은 새까만 후배라지만 기재부에 재직했던 신재민 전 사무관을 모른다고 발뺌하지 못할 것이다. 신 사무관은 청와대가 기재부를 상대로 적자 국채를 발행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을 폭로하면서 옷을 벗어야 했다. 그는 나중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의 녹을 받으며 일했다는 부채 의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고 행동 동기를 설명했다. 불행히도 홍 장관에게서 ‘국가의 녹을 받기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사심이 공(公)을 덮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