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 2021-10/ 10월 01일(금) 낮은 호감도, 높은 비호감도 - 10월 29일(금) 김수영 시 ‘풀’
오후여담 2021-10/ 문화일보
10월 01일(금) 낮은 호감도, 높은 비호감도
박민 논설위원
정치인의 호감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맥주 테스트가 있다. 유권자는 ‘내가 맥주 한잔 하고 싶은 정치인’이 아니라 ‘나와 맥주 한잔 하고 싶어 할 것 같은 정치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것 같은 정치인’이 내 이해관계도 대변할 것으로 생각한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정치 평론가들은 당황했다. 빈부 격차가 확대됐고 테러와의 전쟁은 수렁에 빠졌는데 말솜씨도 서툰 조지 W 부시를 유권자들이 다시 선택했기 때문이다. 결론은, 문제가 있지만 당장 내 앞에 나타나도 불편하지 않을 사람으로 부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비슷한 이유로 선두권을 지켰다. 유세 현장에 오래 머무르며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참석자 모두를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대했다.
20대 대선 주자들의 호감도가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난 14∼16일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선두권 4명의 호감도-비호감도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34%-58%,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0%-60%,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66%,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28%-64%다. 선거 5개월여를 앞두고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2배 안팎이라는 것은 이례적이다. 19대 대선을 3개월 앞둔 2017년 2월 문재인 후보가 47%-46%, 안희정 후보가 54%-37%였던 것과 대비된다. 낮은 호감도-높은 비호감도의 원인은 정치의 양극화다. 유권자들이 자기 진영 후보가 아니면 싫어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호감과 비호감의 비율이 2 대 1이면 안정성이 높고, 1.5 대 1이면 괜찮은 수준이다. 그 이하면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탁월한 비전을 내놓아도 호감도가 낮으면 신뢰도도 낮아 파급력이 떨어진다. 호감도를 확장력 지표라 부르는 이유다. 호감도를 높이려면 대중의 마음을 공략하고 대중의 감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네거티브는 역효과를 낸다. 경쟁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모두를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호감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 후보가 많은 다자 대결에서는 불리하다. 그런데 양자 대결 경향이 강해질수록 그런 불리한 효과는 약화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 역시 극심한 이전투구를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0월 05일(화 연휴) 측근의 정치학
이현종 논설위원
3김 시대에는 ‘가신(家臣) 정치’가 주류였다. 동교동계, 상도동계로 상징되는 가신 정치는 전근대적인 정치풍토에다 독재 정치가 낳은 산물이다. 정당보다는 정치 보스의 집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지다 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거주하는 동교동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거주하는 상도동이 아예 계파 이름이 돼 버렸다. 동교동계는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남궁진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인데 마지막 세대인 설훈 의원이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 중이다. 상도동계는 고 김동영·서석재 전 장관, 최형우·김덕룡 전 의원이 있고, 막내인 김무성 전 의원이 이젠 정치 일선을 떠나는 바람에 현역 국회의원의 맥이 끊겼다. 가신 정치에서는 보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운명공동체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후부터는 가신보다는 ‘측근(側近) 정치’가 대세가 됐다. 가신보다는 주종(主從) 관계가 약하고, 끈끈함도 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은 자타가 공인하듯 ‘좌 희정, 우 광재’.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광재 의원인데 노 전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했던 인연으로 측근이 됐다. 측근들은 보스가 직접 하지 못하는 정치자금 마련, 사적인 문제 해결 등을 대신했고 이 때문에 사법 처리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은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이재오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차관 등이다. 이들 중 이 전 의원을 빼놓고는 모두 구속됐고, 지금은 이 전 대통령 본인이 영어의 몸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겐 정호성·안봉근·이재만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이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성남시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사로 3일 배임·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자신의 측근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극구 부인했다. 이 지사는 3일 “사전에 나온 개념도 아니고, 측근 그룹은 아니다. 거기에 못 낀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 지사 변호사 시절 사무장을 한 정진상 대선캠프 비서실 부실장과 함께 유 씨는 ‘좌진상 우동규’라고 할 정도로 측근으로 분류된다. 유 씨를 ‘이 지사의 복심이자 최측근’이라고 쓴 기사를 이 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기도 했다. 유 씨를 ‘손절’하겠다는 것인데, 측근이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아닌 것으로 되돌리긴 어렵다.
10월 06일 ‘화천대유’ 속뜻
이신우 논설고문
최근 한 지방자치단체와 그 주변에 파리떼처럼 들러붙은 다양한 직종 사람들이 한통속으로 부동산 개발을 한답시고 8000억 원 가까이 해먹은 간 큰 이야기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이 패거리들 이름이 화천대유(火天大有), 천화동인(天火同人)이다. 둘 다 주역에 나오는 용어다. 천화동인은 주역 64괘 중 천지비(天地否) 바로 다음에 나오는 괘다. 천지비 괘는 위로 올라가려는 하늘과 밑으로 내려가려는 땅이 서로 만나지 못해 통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동인’ 괘로 이어받는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동인은 다른 사람과의 대동과 조화, 단결을 의미한다. 그다음 괘인 화천대유는 함께 동인하고 화동(和同)을 통해 대유를 이룬다. 풍년을 대유년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천대유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대유 괘 다음을 지산겸(地山謙) 괘가 이어받는 이유다. 지산겸 괘는 산이 땅 아래에 있는 형국이다. 크게 가지면 넘치는 잘못을 범하기 십상이다. 그럴수록 겸손의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관점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도리에 근거한 것이다. 가득 차면 변화가 생기하고, 반대 방향으로 변화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대유가 부유함을 말한다면 겸은 공평한 분배, 혹은 분배적 정의를 의미한다. 화천대유 측이 법원과 검찰, 국회 등 온갖 곳에 “돈을 처바르는” 것도 나름의 유사 모방행위라 할 수 있다.
대유 괘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제후를 뜻하는 세 번째 양효(陽爻)와 천자를 지칭하는 다섯 번째 음효(陰爻)다. 효사(爻辭)는 제후가 가진 것을 떼 내 천자에게 조공으로 바치는 행위를 묘사한다. 그렇다면 시행사인 화천대유 입장에서 천자는 누구일까. 인허가권자인 지자체장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토지개발 세력 4인방이 모두 그 지자체장의 측근이라지 않는가. 이런 판국에 정작 지자체장은 “단 1원도 받지 않았다”고 공언하고 있다. 화천대유 참가자들로서는 대유 괘의 효사는 물론, 지산겸 괘조차 무시하는 겁 상실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잖아도 지자체장은 “나는 권력을 잔인하게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물론 화천대유 측이 돈에 버금가는 ‘다른 조공’을 바치거나 ‘특수 용역’을 수행했다면 별개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10월 07일 영사운드 ‘등불’
김종호 논설고문
‘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 고요히 타오르는 장미의 눈물/ 하얀 외로움에 그대 불을 밝히고/ 회상의 먼바다에 그대 배를 띄워요/ 창가에 홀로 앉아 등불을 켜면/ 살며시 피어나는 무지개 추억.’ 록 발라드 창작곡들로 197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전설적인 그룹 영사운드(Young Sound)가 1972년 데뷔 앨범에 담은 뒤로 요즘도 음원을 찾아 듣는 사람이 많은 강동길 작사, 안치행 작곡의 ‘등불’ 시작 부분이다. 그 앨범의 10곡 중에는 또 다른 불멸의 명곡인 김주명 작사, 안치행 작곡의 ‘달무리’도 있다. ‘적막한 밤하늘에 빛나던 달이/ 둥그런 달무리로 우산을 쓰네/ 널 위해 피고 지던 달맞이꽃도/ 서러운 달 모습에 눈물 짓는다/ 달무리야 달무리야 어서 지고/ 외로운 달맞이꽃 반기려무나’ 하는 노래다.
그런 명곡들의 탄생을 이끈 두 핵심 인물이 영사운드의 리더로 기타 연주를 맡았던 걸출한 작곡가 안치행(79)과, 감성적이면서 힘 있고 상큼한 음색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사운드 리드보컬 유영춘(75)이었다. 안치행이 결성해 1967년부터 미(美) 8군 무대에 서던 5인조 록 그룹 실버코인스(Silver Coins)는 1970년 조선호텔 나이트클럽에 고정 출연하면서 ‘젊은 소리’라는 뜻의 영사운드로 개명했다. 멤버는 키보드 장현종, 오르간 장성현, 베이스 오덕기, 드럼 박동수 등이었다. 1974년 베이스가 김희조로 바뀌면서 플루트 연주자 왕준기도 가세해 6인조로 확대됐다. 안치행은 자신의 프로덕션에서 가왕(歌王)이 되기 전의 조용필이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담긴 독집 앨범을 내게도 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의 이회택이 조용필 매니저이던 때다. 안치행이 작곡한 명곡은 영사운드 노래로 발표한 것 외에도 많다. 최헌이 부른 ‘오동잎’, 서유석의 ‘구름 나그네’, 김트리오의 ‘연안 부두’,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 등.
그에 이어 영사운드를 이끈 유영춘은 1968년 결성된 전설적인 록 그룹 ‘히 파이브(He 5) 출신이다. 이 밖에 그가 부른 안치행 작곡인 노래만 해도,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렵다. ‘사랑하던 마음 하나’ ‘너와 나는’ ‘아름다운 밤’ ‘긴 머리 소녀’ ‘옛 추억’ 등. 드물게나마 아직도 방송에 출연하는 유영춘의 노래를 육성으로 들을 수 있어서 더 즐겁다.
10월 08일 교외선 재개통
문희수 논설위원
경기 북부 지역을 동서로 잇는 교외선이 운행을 중단한 지 20년 만인 오는 2024년부터 재개통된다고 한다. 지난 8월 말 경기도와 고양시·양주시·의정부시가 국가철도공단 등과 운행 재개 업무협약을 맺은 데 따른 것이다. 운행 노선은 의정부역∼양주시 송추∼장흥∼일영∼고양시 월릉∼대곡 등 6개 역을 오가는 총연장 32.1㎞ 구간으로 계획돼 있다. 3량 1편성으로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시간에 한 번씩 운행할 예정이다.
당초 교외선은 1959년 미국의 원조로 착공돼 1961년 능의선이란 이름으로 고양군 능곡∼양주군 가릉(현 의정부시 가능동) 구간이 개통됐고, 이어 1963년에 서울역∼신촌∼수색∼능곡∼일영∼송추∼의정부∼서울 성북∼청량리∼왕십리∼서빙고∼용산∼서울역을 순환하는 총연장 82.6㎞의 노선으로 완성됐다. 여객·화물을 수송했지만 1986년 성북∼의정부 구간의 복선 전철화로 서울역∼의정부역으로 단축됐고, 이용객 감소로 적자가 누적돼 결국 2004년 4월 운행을 멈췄다.
교외선은 중장년층에겐 아련한 추억이 깃든 열차다. 통기타 시절인 1970년대·80년대 발랄하고 미래의 꿈에 부풀던 대학생과 청년들은 서울역과 신촌역에서 이 기차를 타고 MT와 연애 장소로 송추·장흥 등을 많이 찾았다. 인근 백마역 또한 젊은이들이 즐겨 찾던 곳인데 경의선(지금은 경의·중앙선)을 타고 갔다. 당시 백마역 주변에 있던 인기 주점 화사랑은 지금 일산 애니골의 호젓한 카페로 변신했다.
기차역은 여행의 출발·도착지이자, 만남과 이별의 장소다. 달리는 기차를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이유로 영화와 음악의 소재로 자주 쓰인다. 특히 노랫말에 많이 등장한다. 최근 트로트 붐을 타고 역주행했던 ‘안동역에서’도 그런 사례다. 재개통될 교외선은 화물 운송 없는 관광 열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재원 대부분은 국비지만 과연 계획대로 운행할지, 운행해도 적절할 만큼 승객이 있을지, 그래서 과연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경기지사와 여당 전·현 소속인 3개 시장이 추진하는 것도 찜찜하다.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논란을 보면 더욱 그렇다. 또 부질없는 희망 고문이 아닐지.
10월 12일(화 연휴) 원희룡의 ‘머리와 가슴’
이도운 논설위원
정치 지도자 가운데는 수재가 많다. 복잡한 국정의 방향을 세우고, 세부 정책을 조정하고, 야당과 시민 사회의 반대 및 다른 의견을 조율하려면 보통 머리로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능지수(IQ)가 높은 미국 역대 대통령은 존 퀸시 애덤스(6대)·토머스 제퍼슨(3대)·존 F 케네디(35대)·빌 클린턴(42대) 순서라는 논문이 2006년 UC데이비드대에서 발표됐는데, 애덤스의 IQ는 167∼175로 추정됐다. 지난 30년 동안 미 대통령은 빌 클린턴(예일), 조지 W 부시(하버드), 버락 오바마(하버드), 도널드 트럼프(펜실베이니아) 등 대부분 명문대 출신이다.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 현 총리를 비롯한 역대 총리의 다수가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출신이고, 프랑스에서는 영재들이 진학하는 국립행정학교(ENA) 출신들이 정부 주요 각료를 차지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ENA 출신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수재나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인물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꼽힌다. 유일한 서울대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도 ‘똑똑하다’는 평가를 듣지는 못했다.
물론 수재 정치인은 많았다. 1972년 서울대 인문대 전체 수석을 차지했던 천정배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은 조훈현 국수·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목포 3대 천재’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이번에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2차 컷오프를 통과해 최종 4인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공부 천재’로서의 과거가 부각되고 있다. 원 후보는 제주제일고 재학시절 단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1982년 학력고사 수석과 당연히 서울법대 수석 입학을 차지했으며, 이후 학생·노동운동을 하다가 딱 1년 집중해서 공부하고 1992년 사법시험에서도 수석을 차지했다고 한다.
약 3년간의 짧은 검사생활을 마치고 1999년 한나라당에 영입돼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만 해도 원 후보는 차세대 보수 정치 지도자로서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이후 서울시장 도전에 실패하는 등 정치에선 수재급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14년 제주지사에 당선돼 재선하면서 그는 엘리트 정치인을 탈피해 대중 정치인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고 있다. 정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는 걸 현장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10월 13일 대장동의 정치적 위력
박민 논설위원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대장동 사건은 치명적이다. 배임·수뢰 혐의로 사법 처리될 리스크나 정치적 약점이 추가됐기 때문은 아니다. 대장동 사건은 대선 후보 이재명의 정치적 강점을 정면 부정한다. 총선이 중간평가라면 대선은 후보의 역량과 비전을 평가하는 미래지향적 선택이다.
이재명 지지율의 토대는 흙수저 출신이 약속하는 공정, 기존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사이다 발언, 성남시정과 경기도정에서 보여준 실천력이다. 그러나 대장동 사건은 불공정의 결정판이다. 원주민은 공권력에 헐값으로 땅을 넘겼고 입주자들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분양가에 입주했다. 시민 몫 8000억 원이 8개의 민간업체로 넘어갔다. 공익 환수했다는 5503억 원 중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넘어간 1830억 원은 무주택자 임대용 부지를 분양용으로 변경해 팔아 챙긴 돈이다.
대장동 의혹 해명에 사이다는 없었다. 궤변과 거짓이 난무했다. ‘민간 특혜를 저지해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더니 경기도가 배당 중단과 이익 환수 공문을 성남시에 보냈다. 뇌물 700억 원을 약속받은 유동규 전 성남도공 기획본부장을 ‘측근 축에도 못 낀다’고 손절했다. 사건 초기 “전문성이 부족하고 측근 관리를 잘못해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 점 깊이 사죄한다”고 사이다 사과를 했더라면 이미 대장동의 수렁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다.
대장동 사건은 실천력을 불신하게 만든다. 이재명은 대장동 사업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홍보했다. 기초단체의 개발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의 비리 사업으로 만든 실천력이라면 국가사업에서 어떤 사고를 칠지 우려된다. 국정의 핵심인 인사도 문제다. 리모델링 조합장 출신 유동규를 성남도공 기획본부장에 발탁했고 차관급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대장동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검·경 수사팀과 지휘부는 낯 뜨거운 수준의 친여 성향 인사들이다. 이재명이 낙마하고 정권이 교체되면 적폐청산 1순위다. 그러나 수사 진행과 무관하게 이재명 지지율은 하향 추세에 접어들 수 있다. 정권 재창출 지지계층이 결집할 수 있지만 스윙보터의 지지 명분은 궁색해졌다. 일반 국민과 당원이 참여하는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재명과 이낙연 지지율이 28 대 62로 집계된 이유다.
10월 14일 ‘진심의 정치’ 메르켈의 재킷
이미숙 논설위원
9·26 총선 후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는 2005년 권좌에 오른 뒤 16년간 부패나 뇌물, 측근 스캔들 없이 늘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국정을 이끌어 독일 국민은 물론 유럽인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진심의 정치인’으로 대중의 신뢰를 받게 된 데는 그녀의 소탈한 스타일도 한몫했다. 메르켈 총리는 남성 정치인들이 대부분의 공식 활동 때 짙은 색 수트를 입는 것처럼 그녀만의 정장 공식을 만들었다. 검은색 등 짙은 색 바지를 기본으로 다양한 색깔의 재킷을 행사 성격에 따라 바꿔 입는 식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7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예방 때 아이보리색 노칼라 재킷을 입었고, 프란치스코 교황 예방 때는 검은색 노칼라 재킷을 입었다. 10일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는 검은색 바지 정장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커트 머리와 굽이 없는 검은색 구두는 기본 요소인데 유일한 변화는 재킷에 따라 목걸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목걸이를 남성의 넥타이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데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브로치나 스카프를 애용하지도 않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메르켈 총리가 초(超) 실용적 스타일을 구축했다”면서 재킷의 전체적인 변화상을 보여줬다. 다양한 색깔의 재킷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로 독일의 번영 시대를 이끈 메르켈 리더십의 상징으로 통한다는 뉘앙스다.
메르켈 총리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과 체형이 유사해 뒷모습으론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품이 넉넉한 콤비 정장을 즐긴다면 클린턴 전 장관은 바지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정치적으로는 메르켈 총리가 보수적이지만 의상 면에서는 클린턴 전 장관이 좀 더 엄격한 보수인 셈이다. 영국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귀족적인 투피스 정장을 즐겼고, 테리사 메이 전 총리는 화려한 문양의 원피스와 구두를 선호한 패셔니스타였다. 클린턴 스타일이 미국 파워 우먼의 기본으로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으로 이어지듯, 메르켈 스타일이 독일 파워 우먼의 기본 차림이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녀의 스타일은 포용적인 무티(엄마) 리더십의 트레이드마크로 오래 기억될 듯하다.
10월 15일 ‘쇼통령’과 탁현민
이현종 논설위원
퇴임 후 문재인 대통령을 평가할 때 ‘쇼통’이라는 단어가 꼭 등장할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전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이미지를 벗기 위해 소통을 매우 강조했다. 청와대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퇴근길에 시민들과 맥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근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 이전은 무산됐지만 실제 광화문 근처 호프집에서 청년들과 맥주잔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미리 섭외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진정성이 반감됐다. 이후 이런 이벤트가 잦다 보니 소통이 아니라 쇼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런 쇼통 기획자는 탁현민 의전비서관이다. 늘 돋보이는 행사 중심에 문 대통령을 위치토록 하고, BTS 등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조연을 맡았다. 남북정상회담 때는 절정에 달했다. 현 정부 출범 때는 행사기획 행정관으로 있다가 지난 2019년 1월 자신의 책에 담긴 여성 비하 등 논란으로 청와대를 떠났다가 지난해 1년 4개월 만에 의전비서관으로 승진해 들어왔다. 역대 정부에서는 외교관 출신이 의전비서관을 맡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4명 중 3명이 정치권 등에서 온 바람에 의전 실수가 잦았다.
문 대통령도 정치에서 성과가 없다 보니 탁 비서관이 기획한 행사에 의존했다. 그러나 ‘6·25전쟁 참전용사 유해 송환 행사’에선 문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유해를 비행기 안에서 하루 동안 모시는 결례를 범했다. 대장동 사태로 시끄러운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는 이색적인 모습이 벌어졌다. ‘가을 한복문화주간’을 맞아 문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위원들이 한복 차림으로 회의에 참석했는데, 대통령이나 장관보다 탁 비서관이 단연 관심을 끌었다. 일상복을 입은 다른 비서관들과는 달리 일명 포도대장 의상이라는 오색찬란한 구군복(조선시대 무신이 입는 군복)을 입었고 카메라가 집중됐다. “의전을 담당하니 의장대장 복장을 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날 행사가 마치 탁 비서관 자신을 위해 기획된 것처럼 튀는 복장이었다.
통상 의전비서관은 드러나지 않게 대통령을 보좌하는데 탁 비서관은 자주 방송에 출연, 기밀인 대통령 일정을 공개하는 등 물의를 빚었다. 퇴임을 몇 개월 앞두고 있다 보니 대통령이 아닌 자신이 돋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10월 18일(월) 헝다 CEO의 생존술
이신우 논설고문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 그룹의 계열사 핀테크 업체 앤트 그룹에서 핵심 사업인 소액 대출업을 분리해 국유화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바람에 앤트 그룹의 지분 33%를 갖고 있는 모기업인 알리바바의 주가는 추락 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알리바바 자체도 국유화만 되지 않았을 뿐 이미 경영권의 상당 부분을 빼앗긴 상태다.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도 국유기업들이 의결권을 얻고자 지분 확보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온 지 오래다. 중국에서 잘나간다는 테크 기업 대부분이 이런 지경이다. 중국에서 아무리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서 기업을 일으키면 뭐하는가 하는 한숨이 나오는 것도 당연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살아남는 기업인이 있다. 한때 부도설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헝다(恒大) 그룹의 최고경영자 쉬자인(許家印)이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처세훈이 있다. “정부에 정책이 있으면 인민에게는 대책이 있게 마련이다.” 쉬자인이야말로 이런 격언을 살려 기업가가 어떻게 중국이라는 특수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영을 해나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헝다 그룹은 무려 3000억 달러(약 358조 원)의 유동성 위기로 파산이 거론되지만 정작 쉬자인 개인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있다. 알리바바나 텐센트, 디디추싱 등 빅테크 기업과 전혀 다른 경영기법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그 비결은 바로 ‘배당 전략’이다. 쉬자인은 평소 이윤 배당에 정성을 쏟아왔다. 1996년 헝다 설립 때부터 배당률을 수익금의 43%가 넘도록 재무구조를 짜왔다고 한다. 지금껏 11번이나 배당을 실시했고, 그 배당금 총액의 3분의 2를 쉬자인이 차지했다. 결국 헝다 그룹의 현 자산은 국유은행으로부터 조달한 대출만으로 구성돼 있을 뿐이다. 회사가 망한들 쉬자인으로서는 조금도 아쉬울 게 없는 상태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8일 자 파이낸셜 타임스는 쉬자인의 개인 재산을 특집으로 보도하면서 호주 골드코스트의 부동산을 비롯해 소형 제트기(4300만 달러·약 513억 원), 상업용 대형 항공기(9000만 달러·약 1075억 원) 그리고 60m짜리 초호화 요트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숨겨진 해외 투자가 호주뿐일까?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10월 19일 전위예술가 이건용
김종호 논설고문
맨발의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분필을 쥐고 계속 흰 선(線)을 가로로 그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발바닥이 지나간 자리는 선이 지워지고, 흔적만 남는다. 한국 전위예술 1세대를 대표하는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79) 화백이 1979년 제15회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에서 처음 발표해, 세계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호평받았던 퍼포먼스 작품 ‘달팽이 걸음’이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문명의 속도를 가로질러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내 작품은 고정관념을 벗어나, 그리거나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서 출발한 사유(思惟)”라는 그의 ‘신체 드로잉’은 그해에 포르투갈 리스본 국제공모전에서 대상도 받았다.
1967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끊임없는 실험과 파격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 확보에 큰 발자취를 남겨왔다. 1975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명의로 ‘귀하가 하는 이벤트는 사이비 전위미술이다. 앞으로 당 관에서는 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초대해 6개월간이나 전시한 것은 그의 작품이 최초였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장소의 논리’는 이런 퍼포먼스다. 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그 중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기” 하고 외친다. 이어서 원 안으로 들어가 발밑을 가리키며 “여기” 하고 외친다. 그러고는 원 바깥으로 나가서 원을 등지고 가리키며 “저기” 한다. 마지막엔 그 원을 밟으며 “어디, 어디” 하다가 사라진다. ‘어떤 주체가 장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여기, 저기, 거기, 어디 등으로 변환되는 것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 그의 2010년 ‘신체 드로잉’ 한 점이 서울 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1억4000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가 캔버스 앞이 아닌 뒤·옆 등에서 팔을 뻗어 가닿는 대로 그린 색채 유화 ‘보디스케이프(Bodyscape)’ 연작 34점을 모은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9월 8일 개막했다. 오는 31일 끝난다. “회화를 회화 밖에서 본 것”이라는 작품들이다. 연작이지만 더 구체화한 시적·철학적 제목 ‘현신(現身)’ ‘신체의 사유’ ‘신체의 풍경’ 등도 달았다. 이 화백이 표현한 ‘단절과 소통’의 미학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리다.
10월 20일 스타 없는 맹탕 국감
이도운 논설위원
국정감사는 국회가 증인 출석·자료 제출 요구권을 갖고, 공개회의를 통해 행정 기관에 대한 감시·비판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에서 발전했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2세 당시 스코틀랜드·아일랜드 반란 및 내전이 발생한 원인을 찾기 위한 의회의 조사(audit)단 결성이 국감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당시 발생한 비리와 책임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국정감사를 시작했는데, 독립 직후의 국가 수립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 형식 절차를 최소화한 상시 청문회(hearing) 제도로 변환시켰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 제정 과정에서부터 국정조사·국정감사·감사원의 3감(監) 제도가 정부 견제 방안으로 논의됐다. 제헌헌법 기초자들은 국회의원의 상시 청문회 악용을 우려해 의회 소속 감사원 설치를 제안했는데, 그마저도 정치화될 것을 우려해 대통령 직속으로 변경했다. 그러자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미국식 청문회와 영국식 국정조사 제도를 결합한 국감을 1년에 한 번씩 정기국회에 몰아서 하도록 하는 ‘독특한’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국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 개헌으로 폐지됐다가 1987년 개헌 때 다시 도입됐다.
국감은 새로운 정치 스타 탄생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 야당의 무대였다.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 주목받은 노무현 의원은 이후 국감에서도 이해찬·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 등으로 불리며 활약했다. 언론도 정기국회 때마다 ‘국감 스타’라는 코너를 만들어 신문 지면과 방송 시간을 할애했다. 2020년 국감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공세에 맞서 소신 있게 답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스타를 넘어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올해 국감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의원 아닌 이재명 대선 후보가 스타가 될 것으로 예고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해소한다는 것. 반면, 야당에서는 팩트·논리로 무장해 이 후보를 궁지로 모는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기대했다. 그러나 18일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감에서 이 후보도, 야당 의원도 스타가 되지 못했다. 뻔한 질문에 같은 답변만 이어졌다. 오히려 ‘대장동 국감’을 생중계하며 논평한 원희룡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더 눈길을 끌었다. 올해는 국감 스타를 보기 어려운 것 같다.
10월 21일 디즈니와 메기효과
문희수 논설위원
디즈니는 캐릭터 왕국이다. 간판인 미키마우스는 월트 디즈니(1901∼1966)와 그의 동료인 어브 아이윅스에 의해 1928년 탄생했다. 미국 캐릭터지만 나라별로 별칭까지 있고, 세계 곳곳의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숍은 늘 만원이다. 올해로 93세인 이 글로벌 스타는 여전히 대체 불가다. 월트 디즈니사는 이후 미키마우스와 함께 디즈니 삼총사인 구피(1932년)와 도널드 덕(1934)을 비롯해 백설공주(1934), 피노키오(1940), 신데렐라(1950), 피터 팬(1953) 등 새로운 스타를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디즈니가 주요 고비마다 새로운 도전으로 극복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1970년대 단편 애니메이션과 텔레비전에 의존했던 성장이 한계를 맞자, 디즈니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 등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1990년대 컴퓨터 그래픽 시대가 되자 픽사와 손잡고 3D 장편 ‘토이 스토리’(1995)를 시작으로 ‘몬스터 주식회사’ ‘인크레더블’ 등을 제작하며 변신했다. 2006년 픽사, 2009년엔 아이언맨·헐크 등 어벤저스로 유명한 마블을 인수했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당시 디즈니랜드 등 테마파크 매출이 거의 반 토막 나던 때였다. 디즈니는 2019년 11월 출시했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디즈니 플러스로 위기를 돌파했다. 이 서비스는 막강한 콘텐츠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2024년 가입자 목표치가 7500만 명이었는데 올해 이를 조기 달성해 목표치를 2억4500만 명으로 올렸다고 한다.
이런 디즈니 플러스가 다음 달 12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다. OTT 시장을 석권해왔던 넷플릭스는 이에 자극받아 최근 ‘오징어게임’으로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 제작물이어서 더욱 반갑다. 초비상인 국내 토종 업체들은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HBO와 손을 잡거나,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등 변신을 서둘고 있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이용자들에겐 볼만한 콘텐츠가 풍성해지고 있다. 이렇듯 경쟁은 소비자 편의성을 높인다. 메기가 들어오면 미꾸라지들은 더 크고 활기차게 자라는 법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도전과 변신이 성공의 열쇠다.
10월 22일 정치인의 거짓말 수법
박민 논설위원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것은 숨 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이란 말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 3만573번의 거짓말과 왜곡된 주장을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궤변으로 사실을 호도하거나 프레임 전환을 통해 책임을 전가하면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진영논리가 강화되면서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정치인이 거짓말을 해도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진실로 믿는 경우도 있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데이브 레비턴은 ‘과학을 조작하는 정치인의 수법’을 12가지로 분류했다. 3가지는 정치 일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리한 정보만 골라 취하고 나머지 정보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 모두 저 사람 탓이라고 주장하는 ‘악마 만들기’, 겨우·고작 등의 표현을 동원하는 ‘조롱과 묵살’이 그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8일 대장동 비리 관련 국회 국정감사 답변에서 이 수법들을 구사했다.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의 공익 환수 규모가 5503억 원이라고 주장하면서 8500억 원대의 수익이 소수 민간업체에 돌아간 사실은 외면했다. 전형적인 체리피킹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비리를 일부 직원의 일탈로 의미를 축소한 것도 같은 수법이다. 대장동 공영개발을 막은 것이 국민의힘이고 이익을 취한 것도 국민의힘 측 사람이라는 주장은 ‘악마 만들기’다. 피감기관장이 이례적으로 ‘돈 받은 자 = 범인, 장물 나눈 자 = 도둑’이란 그림판을 들고나온 것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롱과 묵살’ 기교도 화려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성남 지역 조폭 조직원의 진술서와 이 후보에게 전달했다는 현금다발 사진을 공개하자 이 후보는 “어디서 찍은 건지 모르지만 노력 많이 하셨다”고 조롱 섞인 답변을 했다. 질문 도중 수차례 “큭큭큭”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후보는 국감 마무리 발언을 통해 “국감을 통해 실체가 대부분 드러났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사이다처럼 의혹이 해소됐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기교로 진실을 덮을 순 없다. 이 후보는 자신의 언변과 지지자들의 호응에 도취해 국민의 허탈감과 분노를 외면했다. 그 대가는 5개월이 채 남지 않은 대선 과정에서 치르게 될 것이다.
10월 25일(월) ‘소시오패스’
이현종 논설위원
지난 미국 대선 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당혹스럽게 한 것은 조카딸이 펴낸 책 한 권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형의 딸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메리 트럼프는 ‘너무 과한데 결코 만족을 모르는 : 우리 가족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을 만들었나’라는 책에서 가족사와 트럼프의 심리적 약점을 분석하며 그를 ‘소시오패스(Sociopath)’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자서전인 ‘협상의 기술’을 대필했던 작가 토니 슈워츠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책 제목을 ‘소시오패스’로 바꾸고 싶다”고 한 걸 보면 트럼프의 정신 상태는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트럼프가 “내 핵 버튼이 북한 김정은의 버튼보다 크다”고 한 발언이 이런 성향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처럼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하위 범주에 들어간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인 두려움, 죄책감, 슬픔, 기쁨, 분노 등을 깊이 느끼는 능력이 부족한 것을 말한다. 죄책감이나 동정심, 애정 등도 잘 느끼지 못한다. 사이코패스와 다른 점은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보면 멀쩡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소시오패스의 대표적인 사례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는 성공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 모범생이지만, 그의 다른 면인 하이드는 무차별적 공격성만 있을 뿐 조금의 자비심이나 죄책감도 없다. 심리학자들은 소시오패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내가 필요할 때만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 내가 필요 없어지면 굉장히 차가워지는 사람이라고 한다.
원희룡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부인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강윤형 씨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소시오패스”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치열하다. 여당은 의사로서 의료윤리를 위반했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 씨는 “이 후보는 대장동 특혜의혹 국정감사 태도, 형과 형수한테 한 욕설 파동, 김부선 씨와 연애 소동 등을 볼 때 남의 고통이나 피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행태를 보이고있다”며 “본인은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고 평했다. 결국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10월 26일 ‘슈퍼스타 예수’ 50년
이미숙 논설위원
‘난 그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어(I don’t know how to love him)’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73)의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1막에서 거리의 여자 막달라 마리아가 부르는 아리아로, 예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갖게 된 혼란스러운 감정을 노래한 곡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예수와 그의 제자 유다이고, 마리아는 역할이 많지 않은 조연이지만 이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가 됐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주일을 다룬 작품인데, 인간과 신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예수와 그를 따르다 배신하는 유다를 파격적으로 그려 논란이 됐다.
작곡가 로이드 웨버는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지적 때문에 리코딩부터 했는데, 음반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으자 1971년 10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렸다. 당시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작품이 예수와 마리아의 사랑을 그렸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 비판하며 시위를 하는 등 사회적 논란이 컸지만 음악과 가사의 높은 완성도 덕분에 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로이드 웨버는 23세 때 발표한 첫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뒤 ‘에비타’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 히트작을 연속 내놓으면서 뮤지컬의 거장이 됐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1980년 초연됐는데 예수 역은 가수 이종용, 마리아 역은 윤복희가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최근 미국 시애틀에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50주년 기념 공연이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내년에 다시 무대에 올려진다. 이 작품 초연 때 마리아 역을 맡았던 이본 엘리먼(69)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1970년 봄 런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때 로이드 웨버가 다가와 ‘당신이 나의 마리아’라고 하면서 캐스팅했다”고 털어놨다. 하와이 출신으로 당시 18세였던 엘리먼은 성모 마리아 역을 맡는 줄 알았는데 막달라 마리아라고 해서 경악했다고도 말했다. 로이드 웨버는 예수 관련 작품을 쓰면서도 정작 마리아에 집중한 것인데 그의 예술가로서의 직관은 적중했다. 그녀가 부른 마리아의 아리아는 로이드 웨버 뮤지컬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 됐기 때문이다.
10월 27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께
이신우 논설고문
지난해 4·15총선을 둘러싼 부정선거 의혹이 시중 여론을 완연히 갈라놓는 듯합니다. 한쪽은 의혹 제기 자체를 비웃고 있으며, 다른 쪽은 인천 연수구을 선거구 소송 재검표 이후 반복적으로 드러난 물적 증거들을 들어 부정선거에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민의힘 안에서도 그대로 재연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교안 전 대표가 공안검사로서의 경험에 비춰 명백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이준석 당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같은 당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자신의 SNS를 통해 ‘비정상적 투표용지’를 문제 삼은 바 있으며, 하태경 의원은 이 대표 쪽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 차이에 대해 최근 이 대표가 내놓은 발언이 눈길을 끕니다. 이 대표는 “총선 이후 부정선거를 주장하다 스스로 명예를 갉아먹고 추락하는 정치인이 있다”면서 윤리위를 통한 징계까지 시사했더군요. 심지어 “보수의 악성 종양 같은 문제”라는 식의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진정으로 문제 삼고 싶은 대목은 지난달 대표 취임 100일을 맞은 자리에서 한 발언입니다. “이런 비과학적이고 다소 주술적인 성격까지 있는 언어로 선거를 바라보는 우리 지지층이 늘어날수록 정권 교체와 대선 승리는 요원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한 대목을 기억하실 겁니다.
물론 당대표로서 다음 대선 승리와 정권 교체보다 중대한 과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망에 비교할 수야 없는 법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민주적 선거 절차는 어떤 오류도, 어떤 국민적 의심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에게는 국민의힘이 망하든 말든 진실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설령 국민의힘이 해체되거나 버림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 대표야 지난번처럼 바른미래당을 만들어 우르르 떠나가면 그만이겠죠.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상실한 일반 백성에게는 더 이상의 퇴로가 없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해주시기 바랍니다. 옛말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습니다. 선거 절차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 자체가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같은 우려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악성 종양’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0월 28일 박지만이 보내온 편지
이도운 논설위원
대통령 선거는 5182만 국민, 4399만 유권자(2020년 총선 기준) 모두의 관심사다. 각 당 후보의 인사·정책·과거 행적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면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서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년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어떤 입장을 갖는지에 정치권 전체의 눈길이 쏠린다.
박 전 대통령이 여전히 수감 중이기 때문에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리고, 그 때문에 그의 고민이 크리란 것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박 회장은 최근 대선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나오는 여러 관측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문화일보에 서신으로 알려왔다.
박 회장은 이번 대선 당일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에 대해 “누구를 지지하는 것은 극히 개인적 생각”이라면서 “지금까지 주변에 누구를 지지한다고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 야당 집권을 위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후보가 되면 지지하겠느냐는 주변의 물음에는 “가족을 힘들게 한 사람을 지지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이 편지에서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육사 37기 동기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검찰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도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박 회장은 편지에서 “어떤 선택이든 책임이 생기게 마련이고, 지지 후보의 인격이 본인의 인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선택은 개인의 자유”라고 덧붙여 해석의 여지는 남겼다.
박 회장은 대선 전후 박 전 대통령 사면 가능성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연예기획사가 사들인 내곡동 사저와 관련해서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각을 모른다”면서 “다만, 사저를 구입한 기획사가 밝힌 마음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 31일 구속 수감된 날 잠시 보고, 그 이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면서 “사업도 바쁘지만, 성격상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이 누구인지 모르고, 친박 모임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수준 높은 국민이라면 그만큼 좋은 대통령을 뽑을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10월 29일(금) 김수영 시 ‘풀’
김종호 논설고문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1921∼1968) 시인의 마지막 시로, 그의 사후에 월간 ‘현대문학’ 1968년 8월호에 발표된 ‘풀’ 일부다.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을 통해 시 ‘묘정(廟庭)의 노래’로 등단한 그의 문학은 6·25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징집됐다가 탈출했으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석방되기까지 겪은 참담한 경험, 한국 현대사의 한 변곡점인 4·19혁명 등에 큰 영향을 받았다.
초기엔 모더니스트였다가 대표적인 현실 참여시인이 된 그는 ‘시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을 뿐이고, 순수시와 참여시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동료 시인 신동엽이 조사(弔辭)에서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시인을 잃었다”고도 추모한 그는 시 ‘폭포’의 한 대목에선 ‘금잔화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하고 읊었다.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하고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전문은 이렇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생전에 낸 시집은 1959년 ‘달나라의 장난’ 한 권뿐이고, 1974년 유고 시선집 ‘거대한 뿌리’에 이어 1975년 유고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가 나왔던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가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에서 지난 8일 개막해 오는 11월 4일 끝난다. 9월 3일∼10월 3일 서울 교보아트스페이스 1차 전시에 이은 것으로, 그의 시 34편을 중견 화가 김선두·박영근·서은애·이광호·이인·임춘희 등 6명이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 앞에서 누구나 가슴이 울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