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단9/ 이영종 편5/ 평양 오디세이3/ 고독한 군주의 모노드라마 …- 05.30 숙청 무풍지대 북 외교라인 … 생존 비결은 ‘관용 문화’
북한 진단9/ 이영종 편5/ 평양 오디세이3/ 2018 중앙일보
2018.01.03
고독한 군주의 모노드라마 … 김정은의 TV연설 정치
북한의 컬러TV 방송은 한국보다 6년 이른 1974년 시작됐다. 주민 통제와 김일성 일가 우상화, 선전·선동에 텔레비전이 유용하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 결과다. 국제사회가 인터넷과 유튜브 영상, 모바일 등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의 중심 미디어는 TV다. 매년 1월 1일 2500만 북한 주민을 TV 앞에 모여앉게 하는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이 있다. 김정은 신년사 방송이다. 노동당 70년 통치를 거치며 축적된 선전·선동 노하우의 결정체인 김정은 TV 연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30분 신년사에 선전·선동술 압축
핵과 평창 카드로 펼친 ‘일인극’
TV 카메라와 눈 맞춤 피한 채
미리 녹음한 박수 35차례 끼워
김정은 내민 ‘올리브 가지’ 불구
“네가 저지른 일 모두 기억” 여론
모노드라마였다. TV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등장한 그는 홀로 대 여섯 걸음 옮겨 연단에 섰다. 가지런히 놓인 7개의 마이크가 사열하듯 주인공을 맞이했다. 붉은색 노동당 깃발이 서 있고, 연단과 뒷배경엔 노동당 상징 마크인 ‘붓과 마치·낫’ 3종 세트가 새겨졌다. 화면에 잠깐 비친 눈 덮인 건물 사진은 이곳이 평양 중구역 창광동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임을 드러낸다.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집무실이다. 그의 2018년 신년사 TV 연설 방송은 이렇게 시작됐다.
관영 조선중앙TV로 중계된 김정은 신년사 방송은 평양 시간으로 1일 오전 9시(북한은 서울보다 30분 늦은 ‘평양시’를 채택)부터 30분간 이뤄졌다. 모두 1만3000자 분량으로 A4 용지 10쪽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국가 핵무력 완성’이란 김정은의 주장과 미국 본토를 타격할 핵 버튼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다는 겁박,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으니 ‘북남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대남 유화 공세가 담겼다. 대북제재로 ‘유례없는 엄혹한 도전’이 닥쳤다는 절박감과 ‘불순 적대분자’를 색출하라는 주문도 포함됐다. 일종의 시정연설인 셈이다.
연설 내내 김정은 외에 화면에 등장한 인물은 없었다. 노동당과 내각·군부의 핵심은 물론 오빠를 곁에서 챙기던 여동생 김여정도 마찬가지다. 연단 아래쪽에 상당수의 청중이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연출돼 있지만 허구였다. TV 연설 녹화를 담당한 선전선동부의 카메라와 극소수 기획·연출자만이 자리한 듯했다.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 연설은
그 공백을 메운 건 뜻밖에도 엄청난 박수갈채였다. 연설 마디마디 35차례나 박수가 쏟아졌다. 1분에 한 번꼴이 넘는다. 방청객이 없는데 박수는 우렁찬 까닭은 편집의 기술이다. 북한은 김정은의 연설 곳곳에 미리 녹음한 박수소리를 끼워 넣었다. 우리 TV 예능프로가 걸음마 시절에 써먹은 방식이다.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저급한 기술을 최고지도자의 신년 연설 방송에 써먹는 배경이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시청자와의 아이컨텍(eye contact)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방송 카메라는 김정은의 정면이 아닌 약간 측면 쪽에 자리했다. 그러다 보니 연단이 기울어진 모습으로 보였다. 한국이나 서방국가의 대통령 연설 방송에선 피하는 앵글이다. 김정은의 시선은 연설문구가 적혀있는 2~3개의 전면 프롬프터를 부지런히 오갔다. 카메라와의 눈맞춤은 애써 피하는 듯했다. 경제문제를 얘기할 때 특히 그랬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10년) 수행에서 커다란 전진을 이룩했다”고 언급했으나 현실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지난해 ‘만리마운동 선구자 대회’를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1950년대 후반 시작된 천리마운동을 더 강화한 노동력 동원 캠페인이다. 하지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하며 대회는 무산됐다.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먹히지 않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난국 속에서도 김정은은 올 신년 연설을 통해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연설문 어디에도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은회색 양복 깃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북한은 ‘초상 휘장’이라고 표현)가 사라진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의도적 흔적 지우기를 통해 독자 통치시대의 개막을 알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북제재가 절정을 치달은 지난해 김정은은 극도의 고립과 자폐를 겪었다. 집권 초 고모부 장성택을 필두로 측근 그룹은 숙청 피바람 속에 몰락해 갔다. ‘믿을 건 핏줄뿐’이란 생각에 최근엔 29세 여동생 김여정을 권력의 핵심에 앉혔다. 3대 세습에 이어 ‘남매 정치’란 신조어까지 낳았다. 지난달 김정일 사망 6주기 때는 혼자 참배하는 김정은 사진이 노동신문에 실렸다. 고독한 군주의 일인극 모양새다.
모노드라마는 말 그대로 주인공 혼자서 극의 전반을 이끌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그의 연기력이 빛을 발해야 성공할 수 있다. ‘빨간 피터의 고백’(1977년 작)의 추송웅처럼 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모노드라마는 아직 어설프다. 신년 연설은 청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집무실 책상에 ‘핵 단추’가 있다는 식의 주장은 치졸한 느낌마저 준다. 역사상 어느 최고지도자도 핵무기를 드러내 과시하며 ‘핵 불바다’ 위협을 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나 지역도 핵으로 위협 않을 것”이란 연설은 그동안의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언동과 충돌한다. 불과 몇 달 전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며 극언을 퍼붓던 김정은이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는 종식돼야 한다”며 아닌보살 하는 건 볼썽사납다. 진정성 있는 반성과 재발방지 조치가 앞서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평화공세’다. 한·미 공조 이간이고 남·남갈등 유발이란 지적에 김정은은 설득력 있는 반론을 내놓았으면 한다.
올림픽은 평화다. 그런데 북한은 늘 그 대척점에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훼방 놓으려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테러를 저질렀다. 2007년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10.4선언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북 응원단 참가’를 약속하고도 깨버렸다. 북한은 올림픽에 대해 “지난 100여년 기간 진보와 반동, 정의와 부정의와의 첨예한 대립과정을 거치며 심각한 정치투쟁으로 일관된 노정을 걸어왔다”(『조선대백과사전』 2001년판)고 깎아내린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동족의 경사”라며 반색하고 나선 김정은의 속내가 미덥지 않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긴장이 높아진 한반도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에 국제사회는 주목한다. 미 유력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31일(현지시간) “김정은이 ‘올리브 가지’를 한국에 내밀었다”고 전했다. 정부가 평창 올림픽 기간 중 한·미 합동 군사연습의 잠정적 연기까지 검토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북한 제안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밝혔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9일 고위급 회담을 열자”며 반색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정은의 도발과 대남 극언 때문에 등 돌린 국민감정은 온도 차가 크다. “우리는 네가 지난 시기 저지른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01.10 판문점의 ‘기억상실’ 유령 … 북한 민낯은 변치않는다
새해 벽두 남북관계가 과열이다.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 한 마디에 우리 정부는 북새통이 됐고, 어제는 판문점에 회담 테이블이 차려졌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문제와 함께 여러 남북 현안이 봇물을 이루며 장밋빛 전망이 번진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 찜찜한 느낌이 남는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정말 개과천선한 것일까. 회담장 웃음 속에 가려진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총탄 쏟아진 북 병사 탈북·망명길
58일 만에 회담 대표단이 넘어와
북, 평창 올림픽 후 청구서 내밀듯
9·9절 축하단 방북 요구 가능성도
김정은 도발·위협 망각해선 안돼
회담에 밀린 피해자 ‘눈물’ 챙겨야
북한 대표단은 9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걸어 넘어왔다.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당국 대화를 위해서다. 북측 단장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비롯한 일행이 건너온 곳 몇 걸음 옆엔 AK-74 총탄 자국이 선명한 소나무가 서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가 탈북·망명 때 추격조가 남측 지역까지 침범해 총격을 가한 흔적이다. 죽음을 무릅쓴 탈출극 현장은 불과 58일 만에 남북 화해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듯 아무도 지난 일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판문점에서 잊혀진 건 오씨 만이 아니다. 4년 넘게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이 북한에 잡혀있다. 이들 가운데 선교사 3명에게 북한은 무기노동교화형을 내렸다. 미국 등 제3국 국적인 경우 협상을 통해 돌려보낸 것과 차이가 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며 민족 화해와 단합을 강조했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우리 회담 대표단은 말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혹한의 고통과 공포·질병에 시달릴 억류 인사들은 북한 당국보다도 대한민국 정부를 더 원망할지 모른다.
연일 ‘서울 핵 불바다’를 위협하던 김정은의 성난 얼굴도 지워졌다. 핵 탄두 모형과 탄도미사일을 자랑하며 대남타격 엄포를 놓던 그의 언동에 우리 국민은 전쟁공포까지 겪었다. 청와대 모형 건물을 지어 대남 특수부대의 기습침투와 대통령 납치 훈련을 벌이면서 김정은은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며 채근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한 우리 군 당국을 책망하던 일부 친북·좌파 성향 인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다. 그가 대한민국을 ‘적(敵)’이라고 지칭하며 호전적 극언을 퍼붓자 주적 반대 주장은 설 땅을 잃었다.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해 8월엔 한국 언론이 김정은 체제 비판 도서를 소개했다며 신문기자 2명과 해당 언론 사주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북한 중앙재판소가 판사 등을 동원해 궐석재판을 벌이고 관영매체로 결과를 알리기까지 했다. 책을 쓴 영국 시사주간지 기자 등에 대해선 아무 언급 없이 서평을 쓴 한국 기자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다. 북한은 “임의의 시각·장소에서 즉시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백한 언론인 살해 위협이다.
이처럼 산 같이 쌓인 북한의 적폐를 두고 진정한 남북화해와 관계 진전을 이루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바닥을 들여다본 우리 국민들의 대북감정은 싸늘하다. 새해가 되자마자 아닌보살하며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건 볼썽사납다. “상대방을 자극하면서 동족 간의 불화와 반목을 격화시키는 행위들은 종식돼야 한다”는 북한 신년사도 생뚱맞다. 그런데도 반색하며 버선발로 달려나가는 듯한 정부의 태도에 쏟아지는 국민 우려를 대통령과 정부는 제대로 읽어야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 북한 참가에 거부감을 갖거나 딴지 걸 이유는 없다. 김정은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 건 나름 평가해줄 대목이다. 국제스포츠 행사 주최국으로서 북녘 동포 선수와 방문단을 따뜻하게 맞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타고 올 크루즈 선박을 보내주겠다’거나 ‘가능한 많이 와달라’며 야단법석을 하는 건 피했으면 한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다.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한창이고, 문재인 정부도 그 필요성에 공감해 독자제재에 피치를 올려왔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채 올림픽 축제분위기에만 도취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제재국면을 절감한 북한 대표단이 김정은에게 ‘평창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건 올림픽이 이후다. 38일간의 ‘올림픽 휴전’이 3월18일 끝나면 북한은 대남 청구서를 내밀 공산이 크다. 올림픽 때문에 연기된 한·미 합동 군사연습을 아예 축소·중단하거나, ‘민족 내부 문제’ 운운하며 한·미 공조의 간극을 벌이려 들 것이다. 평창 참가에 대한 호응조치로 9월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에 ‘남조선 축하단’을 보내달라는 선동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신년사가 평창 올림픽과 함께 북한 9·9절을 올해 ‘민족적 대사’로 규정한 건 이런 포석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북한 신년사를 꼼꼼히 다시 읽었으면 한다. 행간의 의미를 간파하면 더 좋다. 거기엔 ‘평창’보다 앞서 ‘핵 버튼’이 있고, 핵탄두와 탄도미사일 대량생산과 실전배치 지시가 담겨 있다.
모처럼 물꼬를 튼 남북 당국대화도 냉철함을 잃으면 ‘대화를 위한 대화’에 그쳐버린다. 합의와 보상요구→지원→파기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 실패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당국회담이 향후 남북관계의 시금석인 이유다. 치밀한 논리로 상대 허점을 파고들고 기지와 순발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북한의 이선권 단장은 벽두부터 회담장을 선전장으로 삼을 작정을 하고 온 듯하다. 회담을 공개하자면서 “실황을 온 민족에게 전달하자”는 돌발 제안을 한 데서 그런 의도가 읽힌다. 조명균 수석대표가 “관례대로 비공개로 하자”고 밀리는 듯한 대응을 한 유감이다. 오히려 “오! 좋은 제안이다. 우린 이미 5000만 국민이 TV로 거의 실시간 회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귀측(북한)도 2500만 주민에게 생중계되도록 조치할 수 있는가. 나도 그들에게 직접 우리 남측 입장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싶다”라고 되받아쳤으면 어땠을까.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상대의 노림수를 꺾고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 그게 ‘핵 무력 완성’ 운운하는 북한을 앞으로 제대로 다뤄나갈 수 있는 기본 자세다.
우리 회담 대표단의 보따리엔 적지 않은 것들이 빠져버렸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의 희생자 유족분들, 그리고 억류 중인 우리 국민과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언론인과 그 가족의 눈물이다.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아픔만큼이나 국가가 챙겨야 할 가치다. 대통령의 눈물이 반쪽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판문점을 휘감아 도는 레테(Lethe,망각의 강)의 물줄기는 적절한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01.17 김정은의 ‘노래폭탄’ … 올림픽 잔칫상 뒤흔든다
예술단 파견을 앞세운 북한의 대남 공세가 거칠어질 기세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내겠다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선수 구성보다 관현악단 파견에 더 관심을 쏟는 모양새다. 남북한이 그제 당국 접촉에서 맨 먼저 합의한 게 140명의 북측 가수·연주자 등이 서울·강릉에서 공연을 갖는 방안이다. 올림픽이 국제스포츠 행사란 점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본말전도다. 김정은이 이처럼 각별히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북한의 속사정과 김정은 ‘음악정치’의 내막을 들여다본다.
“혁명적 노래는 적의 심장 꿰뚫어”
올림픽에 선수보다 예술단 더 챙겨
‘자극 말자’ 김정은 신년사 뒤엎고
북, “잔칫상이 제삿상 될 것” 막말
공연 레퍼터리 둘러싼 갈등 우려
분란 초래할 ‘트로이 목마’ 막아야
북한 김정일은 생전에 전자음악단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985년 보천보전자악단을 만들었고, 당시 금기시되던 일본과 서방 악기까지 듬뿍 선물했다. 6년 뒤에는 아예 일본 순회공연까지 보냈다. 사실상의 부인인 고용희(김정은의 생모)가 배우로 있던 만수대예술단 악단을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 악단의 가수 전혜영은 남한에서도 한때 유행한 가요 ‘휘파람’ 을 히트치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우상화와 체제 찬양, 세뇌에 음악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걸 간파한 김정일이 전폭적 지원을 한 때문이다. 김정일은 “음악이 때로는 수 천, 수 만의 총포를 대신했고 수 백, 수 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고 말하곤 했다.
/북한의 역대 악단들
이런 인식의 뿌리는 북한이 선전하는 이른바 ‘김일성 항일 빨치산’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깊은 산 속 밀영(密營, 비밀캠프)에 머물던 이들은 작식대원(식사와 바느질을 도운 부녀자)과 아동들이 꾸민 노래와 연극으로 시름을 달랬다는 게 북한 측 주장이다. 혁명가극 ‘피바다’ 와 가요 ‘적기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은 항일혁명 시기의 문학예술 활동을 통하여 우리가 도달한 진리”라고 밝히고 있다.
3대 세습을 통해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도 김일성·김정일의 노선과 궤를 같이한다.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그의 지시로 모란봉악단이 만들어졌다. 베일에 싸여있던 자신의 부인 이설주를 창단공연 관람석에 동반해 처음 외부에 알렸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로 평범한 공군 조종사 집안의 딸인 이설주가 ‘평양 신데렐라’로 등극한 자리였다. 이후 모란봉악단은 승승장구했다. 관영 매체에는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의 음악정치를 앞장서 받들어 나가는 제일 근위병”이란 찬사와 함께 “모란봉악단은 ‘노래폭탄’을 싣고 달린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김정은의 통치코드가 가장 잘 반영된 친솔(親率, 김정은이 직접 챙긴다는 의미)악단으로 우뚝 선 것이다.
▲삼지연악단이 지난해 3월 동평양대극장에서 세계 여성의날(국제부녀절) 107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창단 초기 모란봉악단은 김정은식 개혁·개방의 애드벌룬으로 해석됐다. 미니스커트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서구적 스타일의 가수들은 파격이었다. 무대에는 백설공주와 곰돌이푸 같은 미국 자본주의 상징 캐릭터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몇달 뒤 군복차림으로 복귀한 악단 가수들의 어깨엔 소위 계급장이 달렸다. 노래를 마치면 거수경례를 잊지 않았다. 단장인 현송월은 대좌(대령) 군사칭호가 부여됐다. 병영국가 체제 문선대(文煽隊)로서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런멤버를주축으로한북한예술단이곧우리땅을밟는다. 판문점에서연일실무회담이열리고북측손님맞이에부산하다. 지난해핵과미사일도발, 대남위협을일삼던김정은이마치평화의전도사로행세하는데대해마뜩지않아하는시각도있다. 하지만올림픽정신과남북관계진전이란대승적견지에서단일팀구성이나공동입장등에머릴맞대고있다.
그런데 북측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이 심상치 않다. 이런저런 터무니 없는 트집을 잡아 분위기를 깨트리려 들더니 결국 위험선을 넘어버렸다. 올림픽 잔칫상에 뒤늦게 뛰어들어 아예 상을 엎을 기세다. 지난 14일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얼빠진 궤변’, ‘가련한 처지’ 같은 표현을 써가며 비방을 퍼부었다. A4 용지 3쪽짜리 비난 보도에 비하와 조롱, 인신공격이 모두 25차례나 등장한다. 한·미 동맹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언급엔 “(트럼프에) 주제넘게 발라 맞추는 비굴한 처사는 눈뜨고 못 볼 지경”이라고 비난했다.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상대방을 자극하면서 동족간 불화와 반목을 격화시키는 행위는 종식하자”고 제안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했다. 통상 ‘최고위 당국자’나 ‘수뇌부’로 표현되는 관례를 깬 의도적 비하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은 못 들은 척 행동했다. 북한의 비난 이튿날 열린 판문점 남북 실무협의에서 우리 대표단은 이를 거론조차 못 했다. 주무부처인 통일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에서 “북측도 나름대로 갖고 있는 사정과 입장이 있다고 본다. 그런 것들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지난 3일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이선권이 대남 입장을 내놓자 “우리 국가 원수를 2차례나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공식 호칭했다”며 반색할 때와는 달라진 분위기다. 남북대화에 관여했던 원로인사는 “북한이 ‘김정은 동지께서’라며 깍듯한 표현을 한 것과 달리 문 대통령에게는 존칭 없이 ‘문재인 대통령’으로 지칭한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지지 환영”한 대목을 부각시키고, 김정은이 이를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셨다”고 주장함으로써 문 대통령을 깎아내린 것이란 얘기다.
▲모란봉악단이 2014년 3월 4.25문화회관에서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의 안하무인식 행태는 절정을 치닫고 있다. 15일엔 북한 기자동맹 간부를 동원해 “남조선 당국이 여론관리를 바로 못 하고 입 건사를 잘못하다가는 잔칫상이 제사상으로 될 수 있다”고 겁박했다. “평화올림픽이 대결올림픽으로 변질 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담았다.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공화국의 공식입장’으로 간주한다. 김정은 지시나 재가 없이는 이뤄지기 힘든 비난이란 얘기다.
북한에 얕잡힌 정부가 까탈스런 손님을 제대로 맞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회담 테이블 곳곳에 지뢰 투성이다. 15일 북측 통일각 실무접촉 때는 미리 통보했던 회담 대표를 바꾸더니, 회담장에는 아예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은 인물을 더 데려와 남측 4명, 북측 5명이 회담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의 공연 레퍼토리를 놓고도 우려가 제기된다. 북측은 “통일 분위기에 맞고 남북이 잘 아는 민요와 세계명곡으로 구성하겠다”고 알려왔다는 게 우리 측 설명이다. 하지만 찜찜한 대목이 적지 않다. 모란봉악단 공연을 살펴보면 김정은 찬양과 체제 우상화·선전이 압도적이다. 공연이 절정에 이를 때 뒤편 대형 스크린에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이때 모든 관객이 일어나 박수를 친다. 북한이 공연장에서 이런 상황을 돌발 연출하거나 찬양·선전 공연을 고집할 경우 우리 측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질 수 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북한이 실무 대표에 무대설치 전문가를 보강하고, 사전 점검단의 조속한 파견을 요구한 대목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남 유화공세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역량도 미덥지 못하다. 언론은 북한의 숨은 의도나 남북관계에서의 함의보다는 지엽적인 사안에 매달린다. 예술단 실무협의 북측 대표인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을 둘러싼 보도가 대표적이다. 회담장에 들고 온 그녀의 핸드백이 2500만원 짜리 H브랜드 명품이란 추측성 기사는 해당 업체가 “우리 제품이 아니다”고 밝히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현송월이 김정은 위원장의 숨겨진 애인이고 출산까지 했다는 얘기도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녀가 2012년 3월 북한TV에 등장한 영상만 살펴봐도 ‘애인설’은 난센스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객석에 앉아있던 현송월은 사회자 권유로 무대에 오른다. 만삭에 한복 차림인 그녀는 “아들을 원하는 데 산원에 가보니 딸이더라”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최고지도자의 여인은 철저하게 은둔을 강요받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루머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한때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다 해도 그녀가 회담 대표로 나오고 평창행 인솔 멤버로 거론된다면 다시 한번 검증해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종편 등 TV방송에서는 단골 출연 변호사가 북한 모란봉악단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고, 범죄 전문가가 현송월의 패션스타일을 분석하는 등 마치 ‘아무말 막하기 대회’가 열린 듯한 분위기다.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대표단 파견 제의로 북새통을 이룬지 이제 보름 남짓 지났다. 개막까지는 앞으로 23일, 패럴림픽(북한은 ‘장애자올림픽’으로 표현)을 포함한 경기 기간도 38일에 달한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결정은 환영할 일이다. 꽉 막혔던 남북관계 물꼬를 트고 한반도 평화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김정은의 ‘노래폭탄’이 가져올 파급력 때문이다. ‘서울 핵 불바다’를 위협하고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말폭탄’보다 면밀한 대처가 필요하다. 굳이 서울까지 북한 예술단을 불러들여 우상화와 찬양·선전 막장극을 볼 이유는 없다. 북한에선 수령 한 사람만을 ‘최고존엄’으로 떠받들지만, 우리는 5000만 국민이 모두 절대적 존재라는 당당함과 결연한 의지가 정부 당국과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다. 김정은이 파견할 예술단이 우리를 곤경에 빠트리고 사회를 이간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는 건 막아야 한다.
01.24 "현송월 가까이서 모셔라" 눈발 날리자 우산 받쳐든 국정원
초강력 태풍 ‘현송월’호가 한반도 남녘을 휩쓸고 갔다. 북한 대남 전략가들이 씌워 준 ‘삼지연관현악단장’이란 모자에 걸맞지 않는 위세를 과시했다. 우리 당국자가 줄줄이 달려나가 병풍을 섰고, 시민 동선마저 끊어버리는 삼엄한 경호를 받았다. 전용 고속열차(KTX) 편성에 특급 호텔 최고급 룸, 코스 요리가 마련됐다. 과도한 예우는 논란을 불렀다. 그 중심엔 뜻밖에도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숨어있다. 현송월의 남한 체류 37시간 동안 막후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해봤다.
북 점검단 극진히 챙긴 정보 당국
7명 위해 전용 KTX 등 과잉 의전
‘처형설’ 방관하다 ‘모시기’ 나서
국정원 안팎서 “과했다” 볼멘소리
“북 억류 6명 소재는 파악했는가”
국민 비판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5가지 덕목’으로 공손(恭)과 관대함(寬), 믿음(信), 영민함(敏), 나눔(惠)을 설파했다. 그중 으뜸으로 공손함을 꼽았다.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바로 ‘지나친 공손은 예의와 어긋난다’는 점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가 외교나 체제 간 접촉 공간에서 불거지면 참사가 된다. 21일 시작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의 남한 방문 1박2일은 그 전형이다. 시쳇말로 “이게 실화냐”라는 걱정이 국민 사이에 나올 정도로 지나쳤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본래 20일 방문한다던 북측은 합의를 뒤엎고 하루 뒤로 늦췄다. 상황 설명도 않는 오만함을 보였다. 그런데도 관계 당국은 북한 처분만 기다렸다. 저자세란 비판이 쏟아졌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현송월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자 점입가경이 됐다. 출입경사무소 소파에 꼿꼿하게 앉은 현송월에게 국가정보원 간부는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 없도록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깍듯하게 말했다. 이런 다짐은 우리 취재진을 거칠게 밀치며 “현 단장께서 불편해하신다”며 역정을 낸 국정원발 촌극의 서곡에 불과했다. 당국이 제공한 현송월 관련 영상엔 목소리가 없다. 북측의 요구에 따라 무리수를 둬가며 편집해버린 것이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의 이탈리아제 조명을 바꿔 달라는 현 단장의 과잉 요구에 당국은 “시설 교체를 검토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국가정보원은 남북 대화나 교류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 북측 대표단이 탄 차량은 물론 근접 경호·의전 인력도 모두 국정원 소속이다. 이동수단이나 통신은 물론 호텔 숙소와 방문지 선정도 주도한다. 현송월 일행을 밀착 경호하는 건 검은색 국정원 안전통제단 차량이다. 경찰차나 사이드카는 외곽만 맡는다.
현송월 과잉 접대의 정점은 KTX 특별열차 편성이다. 7명의 북측 점검단을 위해 서울~강릉 간 왕복편을 운행했다. 서울~강릉 편도 요금은 2만7600원을 책정돼 있다. 통상 900명 탑승 기준으로 볼 때 왕복 운행에 500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일반 시민과 함께 현 단장을 태워 우리 사회의 자유와 풍요를 확인케 하는 게 바람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도한 인력 투입과 ‘현송월 모시기’를 두고 국정원 내부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현장에 나간 모 간부가 현송월을 따르던 여성 요원의 몸을 손으로 밀어붙이면서까지 ‘가까이서 챙기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걸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방문 때 눈발이 날리자 국정원 관계자들이 대형 우산을 펼쳐 현송월과 북측 실무진을 챙기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연출됐다. 남북 대화에 오래 종사한 당국자는 “국민의 불편한 시선을 고려해 북측 관계자가 현송월을 보좌토록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8월 이산가족 상봉단장으로 서울에 온 유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은 귀빈 대접을 받았다. 한국 외무장관을 지낸 최덕신의 부인인 유미영은 1986년 4월 남편과 월북한 뒤 반한(反韓)활동을 주도했다. 그런데 국정원이 그의 전담 수행원으로 투입한 게 다름 아닌 대공 수사요원이었다. 이 직원은 “빨갱이 잡는다는 일념 하나로 일해온 내가 월북인사의 경호를 맡다니...”라며 통음했다.
따지고 보면 이런 국가 정보기관의 몰락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벌어졌다. 4억5000만 달러 대북 비밀 송금을 위해 국정원이 불법 환전소 역할을 맡고, 일부 직원 계좌까지 동원했다. 그러고도 “전혀 근거 없고 말이 안 된다”며 발뺌했다. “군사비 전용 우려를 알고 있었다”는 당시 고위간부의 특검 진술은 충격이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조직적인 대국민 기만행위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없다. 정상회담 만찬에서 김정일에게 와인을 따르던 국정원장의 모습은 대북 정보기관의 진혼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참가 결정이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할 것”(21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란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람 앞의 촛불 지키듯 남북대화를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것은 대화만이 아니다. 남북관계의 원칙과 대한민국의 국격 또한 더없이 소중한 가치다.
보수정권 아래선 ‘국정원 발’ 현송월 처형설이 나오자 확산을 수수방관하던 국정원이다. 정권이 바뀌자 현송월 모시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안쓰럽다. 미덥지 않은 대북정보에 이젠 대공수사까지 포기하겠다고 나선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다. 이런 국정원을 북한은 맘껏 조롱하고 있다. 어제자 노동신문은 국정원의 극진한 예우를 받은 현송월의 서울 방문 사진을 실었다. 북한 김정은의 표현대로라면 ‘노래폭탄’을 싣고 올 선봉장을 환대한 꼴이다. 한때 대남비난 단골 메뉴이던 ‘국정원 철폐’ 요구는 북한 선전매체에서 사라졌다. ‘남조선 특무’로 불리며 북측에 공포의 존재이던 국정원은 이제 녹록한 상대로 전락한 것이다.
국민들도 국정원의 현송월 칙사(勅使) 대접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언제 대한민국과 국민을 그토록 지극 정성으로 섬겨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국정원이 5년째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 등 우리 국민 6명의 소재는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민들은 왜 정보기관이 존재하는지, 국민 세금으로 왜 천문학적인 정보비와 퇴직 후 연금까지 챙겨주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현송월 모시기’ 작전에 동원됐다 구설에 오른 국정원 직원들은 한번쯤 내곡동 청사 옆 충혼탑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거기엔 대공전선에서 숨져간 52분의 선배 요원들의 넋이 숨 쉬고 있다. 19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고(故) 최덕근 영사도 그중 한 분이다.
세계 정보기관이 전범(典範)으로 삼는 이스라엘 정보조직 모사드의 캐치프레이즈는 강한 울림을 준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는 경구다. 우리 국가 정보기관의 지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01.31 북한의 ‘노쇼’ 퍼레이드 … 조연 맡은 굴욕의 통일부
온다던 손님은 소식이 없다. 그러다가 불쑥 나타나 주인행세를 하려 든다. ‘이게 누구 덕인 줄 아냐’며 호통까지 친다. 아예 잔칫상을 뒤엎을 기세로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평창 겨울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북한의 요즘 행태다. 이달 초 신년사에서 “남조선 겨울 올림픽은 동족의 경사”라고 치켜세운 건 김정은의 허언이 아닐까 미심쩍을 정도다. 누가 북한을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갑(甲)질’과 몽니의 왕국으로 만들었을까.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로 들어가 본다.
“평창올림픽 성공에 북 기여”
심기 건드릴까 정부 저자세
주객전도식 북 행태 지나쳐
“올림픽 구원해줬다” 주장도
청와대 눈치보기 이젠 그만
줏대 있는 ‘꼿꼿장관’ 나와야
통일부에서 가장 ‘통일’이 어려운 숙제는 뭘까. 부처 직원들 사이에 회자하는 이 질문의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통일부 장관’이다.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매년 3월 1일 창설 기념일 행사나 역대 통일장관 초청 간담회는 늘 반쪽이다. 보수와 진보 성향 전직 장관들은 집권 정부 성향에 맞춰 편 가르기를 한다. 보혁을 떠나 경험을 전수하고 전임자를 예우하는 풍토는 옛말이 됐다. ‘누구누구와는 상종 않겠다’는 식으로까지 치닫다 보니 “정권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펼치겠다”는 건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뿌리는 1998년 김대중(DJ) 정부 출범부터라 할 수 있다. 대북 햇볕정책의 추진은 이전 정부까지의 중도·보수 성향 노선과 결을 달리했다. 그해 11월 금강산 관광선 처녀 출항과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판을 바꿨다. 김대중 정부 초대 강인덕 장관부터 현 조명균 장관까지 모두 14명이 16차례(임동원·정세현 장관은 각각 2번 역임) 거쳐 가며 그 골은 깊어졌다. DJ·노무현 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고지전을 방불케 하는 대립각이었다. 지난달에는 특정 성향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정책혁신위원회란 조직을 만든 뒤 ‘개성공단 가동 중단’ (2016년 2월) 조치 등을 적폐로 싸잡아 비난하는 일까지 벌였다. 부처 이름을 걸고 장관이 국민에게 보고한 내용이 2년도 지나지 않아 ‘반(反)통일’로 낙인찍힌 것이다.
/통일부의 대북 편향 및 저자세 사례
새해 들어 통일부는 모처럼 물 만난 고기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를 공언하고, 대남 대화 공세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선수단은 물론 응원과 예술공연 등을 맡을 북측 인원이 속속 평창을 향하고 있다. 예술단 선발대 단장으로 북측이 파견한 실세 여성은 ‘현송월 신드롬’이라 불릴만한 바람을 일으키고 돌아갔다. 과잉의전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얻은 게 더 많다는 분위기다. 이에 힘입은 듯 청와대까지 나서 “북한 참가는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기여할 것”(1월 21일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란 입장을 냈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위기가 있다’는 남북관계 격언은 빗나가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북한은 평창 행 걸음걸음마다 멈칫하거나 발을 뺄 듯 위협한다. 마치 납폐(納幣) 물목을 들고 신붓집을 어슬렁거리는 함지기 모양새다. 급기야 그제는 남북이 내달 4일 열자고 합의했던 금강산 합동문화행사를 걷어찼다. 지난 20일로 잡혔던 현송월 남한 방문을 전날 밤 “중지하겠다”고 통보해온 데 이은 또 한 번의 돌발 노쇼(no-show)다. 나머지 남북관계 일정도 순항을 담보하기 쉽지 않아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통일부의 대처는 미덥지 못하다. 북한 심기를 건드릴까 딱 부러진 문제 제기조차 못 한다. “겨울 올림픽과 관련한 북한의 진정한 조치를 남측 언론이 모독했다”는 북한의 선전공세를 남쪽으로 퍼 나르는 형국이다. 북한의 약속 위반보다 우리 언론보도를 탓하는 뉘앙스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얼빠진 궤변’이나 ‘가련한 처지’ 등 비방을 펼친 북한 관영통신의 보도에도 눈감는다. 통일부 대변인은 뜬금없이 “북한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 브리핑을 했다. 문 대통령 비판 여론에 맞댓글로 방어막을 쳐온 일부 지지세력도 함구한다.
북한이 준비 중인 군사퍼레이드는 부비트랩(booby trap)이다. 올림픽 개막 전야인 내달 8일 평양 김일성광장을 붉게 물들일 비장의 카드다. 김정은이 신년사 원고를 짜면서 정교하게 매설해둔 카드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매년 4월 25일 기념하던 북한군 창건일을 올해부터 2월 8일로 급작스레 당긴 점은 이런 심증을 굳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은 물러터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우연히 겹친 것이라 올림픽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청와대도 “몇 해 전부터 2·8절을 (건군 절로) 기념해왔다”고 강변한다. 모두 틀렸다. 통일부가 연초 펴낸 ‘2018 북한 주요행사 예정표’에 북한군 창건일은 4월 25일로 박혀있다. 붉은색 휴일 표시는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은 듯 선명하다. 대규모 열병식은 신호탄에 불과하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평창을 겨냥한 김정은의 결정타는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군사퍼레이드에 선보일 핵과 미사일 등 무기체계는 올림픽 폐막 이후 차례로 위력과시에 나설 공산이 크다.
진상 고객의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혹여 매상에 도움을 주거나 바람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란 헛된 기대는 버리는 게 맞다. 자칫 판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막판 평창 올림픽에 뛰어든 북한의 주객전도는 상상초월이다. “역대 최악의 인기 없는 경기대회로 기록될 겨울 올림픽을 우리가 구원 손길을 보내주자 남조선이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21일 자 노동신문)는 허황한 주장이 대표적이다. 자신들의 ‘성의’를 무시하면 “잔칫상이 제사상 될 수 있다”(15일 노동신문)고 겁박하더니, 며칠 뒤엔 아예 “남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지 말라”(25일 노동신문)며 주인 자리를 차지할 기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세상이 끔찍해지는 건 악을 행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악행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는 사람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국제스포츠 행사인 겨울 올림픽을 위해 평창을 찾는 손님맞이는 정중하고 따뜻해야 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규범과 상식이 필요하다. 말로는 ‘성과적 개최’ 운운하면서 뒤로는 온갖 지청구와 패악을 쏟아내는 건 곤란하다. 따끔한 경고와 제제조치가 긴요하단 얘기다.
이런 현실에 눈감고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건 대북 주무부처의 정도가 아니다. 북한 김정일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아 60만 대한민국 국군의 자존감을 각인한 어느 국방부 장관은 ‘꼿꼿한 장수’로 불렸다. 이전 정부 때 대통령 뜻을 거역한 문광부의 한 국장급 인사는 ‘참 나쁜 사람’으로 낙인됐지만, 결국 소신 관료로 사필귀정했다. 내년 3월 통일부는 50살을 맞는다. 이제 줏대 있는 꼿꼿장관, ‘정말 나쁜’ 고위 당국자 한 명쯤은 나올 때도 되지 않았는가.
02.07 평창 온 북녘 손님 … 눈이 두 개 뿐인 걸 후회토록 해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 세계 92개 국가에서 2925명이 출전하는 국제 스포츠 축제다. 그런데 ‘평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선수단보다 예술단·응원단 등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북한의 평창행에 우리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남북 단일팀과 공동 입장, 한반도기 사용 등을 둘러싼 논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불편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평양올림픽이냐’는 물음을 멈추지 않는다. 속속 평창 땅을 밟고 있는 북한 손님들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아야 할까.
DJ 때 서울 온 북 경제 시찰단 …
낙점한 김치냉장고 평양 보내줘
평창올림픽엔 젊은 여성층 주축
한류 등 외부문물에 눈 뜬 세대
남한 발전상 있는그대로 보여줘
북 변화 이끌 홀씨 되도록 해야
김대중(DJ) 정부 때인 2002년 10월 서울에 온 북한 고위급 경제시찰단은 화려한 야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 마천루(摩天樓)와 불야성을 마주하면서다. 숙소로 돌아가던 일행은 동대문 쇼핑몰의 흥성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북측은 차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곤 ‘남조선 경제 배우기’를 위한 즉석 현장수업을 했다. 한 북측 인사는 “눈이 두 개밖에 없어 더 많이 볼 수 없는 게 안타깝구만…”이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북한 경제의 사령탑 격인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을 비롯한 18명의 시찰단은 충격의 7박 8일을 보냈다. KTX 경부선 구간을 시승한 이들은 시속 300km를 돌파하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남한 사정을 좀 안다고 자신하던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도 기흥의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돌아보다 무너졌다. 김치냉장고에 사로잡혀 눈길을 떼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떠난 후 정보 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김치냉장고를 몰래 보내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당시 시찰단을 동행했던 정부 당국자는 “서울을 떠나기 전날 밤 짐을 꾸리며 ‘평양에 가서 시계방을 차려도 되겠다’고 하던 한 북측 인사의 말이 인상 깊었다”고 회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번 겨울올림픽 개막 당일인 9일 평창에 올 북한 고위대표단의 비중은 예상보다 중량급이다. ‘명목상 국가 수반’이란 기이한 수식어가 붙지만 김영남(90)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북한 체제의 정상급 외교를 담당해왔다. 북한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합의한 ‘김정일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김영남을 대신 보내는 카드를 한 때 타진해 온 적도 있다. 집권 7년 차에 이르도록 제대로 된 정상회담이나 해외방문 한 차례 못한 김정은(34) 노동당 위원장으로선 차선책일 수 있다.
가수 출신 현송월이 단장을 맡은 140명 규모의 예술단에도 관심이 쏠린다. 점검단으로 이미 서울과 강릉을 다녀가면서 ‘현송월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스폿라이트를 받았다는 점에서다. 북한도 이들 일행의 5일 평양역 출발 소식을 관영매체로 전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평양역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환송 나왔다는 건 북한이 강릉(8일)과 서울(11일)에서 펼칠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정은이 ‘노래폭탄’이라고 규정한 악단의 대남선동 출정식을 여동생을 통해 직접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겨울올림픽 참가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다.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평창에 오겠다는 김정은의 결정으로 참가 국가나 선수·관광객 등의 불안감이 누그러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한 방문 일정 등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하고, 잔칫상에 주인행세를 하려들면서 상황은 꼬였다. 북한 관영매체는 대통령과 정부 인사, 언론 등을 겁박하는 대남비방을 쏟아냈다. 타오르는 국민의 대북감정에 기름을 부은 건 우리 정부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등 무리수를 뒀다. 북한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북한 감싸기까지 벌여 눈총을 받았다.
평창올림픽은 북한에게 뜨거운 감자다. 애초 일반 주민에게 ‘남조선 올림픽’ 개최는 알리지 말았어야 할 금기어다. 하지만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천기누설을 하면서 산통이 깨졌다. 북한 당국의 당혹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노동신문에서는 ‘평창’이란 단어가 사라진 채 “제23차 겨울올림픽에 가는 우리 대표단”등으로 자그맣게 소개된다. 현송월의 서울 방문 사진을 실으면서 주변 고층 빌딩 등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쓴 흔적도 드러난다. 지난달 판문점 고위급 회담 때 북측이 요구해 합의문에 담은 ‘북 참관단 남한 방문’은 슬그머니 빠졌다. ‘참관’이란 용어 자체가 ‘더 나은 곳에 가서 배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뒤늦게 파악하고 당혹했을 수 있다.
500명 안팎의 북측 인원을 서울과 강릉·평창 등 남한 곳곳에 장기 체류토록 하는 것도 북한으로선 큰 부담이다. 6일 남한에 온 북한 예술단의 이동수단이 당초 판문점 경유에서 경의선 육로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 만경봉호를 이용한 원산~묵호 항로가 된 것도 북한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엿보게 한다. 만경봉호를 앞세워 대북제재의 틈을 벌리려는 의도도 깔렸겠지만, 선박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장점에 더 끌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부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통제를 손쉽게 하자는 뜻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북한은 이미 그 효과를 검증한 바 있다.
2002년 경제시찰단 단장으로 왔던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은 김정은이 주도한 화폐개혁 실패의 희생양으로 처형됐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제1부부장도 반체제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 밀사로 서울에 왔다 돌아간 유경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부부장도 간첩죄로 처형당했다. 북한 고위 인사들에게 ‘남조선행’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적진에 들어가 장군님의 전사로…” 운운하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란 얘기다. 김영남도 현송월도 이런 스트레스의 예외일 수 없다.
평창올림픽에 오는 북한 손님은 대부분 20~30대 젊은 선수와 예술인, 여성 응원단이다.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데다 북한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해온 계층이다. 이미 북한에 상륙한 한류와 외래 문물에 눈뜬 세대일 공산이 크다. 눈을 아무리 질끈 감고 시선을 돌려봐도 동공을 파고드는 그 자극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에 오른 대한민국과 피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상이 교차 상영된다면 심적 동요는 클 수밖에 없다. 서울~강릉 간 KTX의 쾌속 질주와 서울의 강남대로·코엑스, 강릉·평창의 곳곳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커튼이 내려진 창틈으로 북녘의 젊은 체육인과 예술인들은 목도할 것이다. ‘헐벗고 굶주린’ 체제로 교육받아온 남한의 실화(實畵)를. 그들은 북한에 그 충격파를 고스란히 전하는 민들레 홀씨가 될 수 있다. 이들 모두 눈이 두 개뿐인 걸 후회할 수 있도록 손님맞이 채비를 꼼꼼히 해야 한다.
02.14 김정은의 ‘남매 정치’ … 붉은 올리브 가지로 평창을 흔들다
김여정의 2박3일 체류에 대한민국이 휘청였다. 청와대의 육중한 문이 활짝 열렸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차관과 핵심 인사가 장사진을 이뤘다. 그녀가 들고 온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 한장에 ‘평양 정상회담’의 꿈이 영글 기세다. 남북관계의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절대 권력자인 오빠의 후광을 업은 김여정의 대남 깜짝 이벤트는 속편을 예고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평양에서 빨리 뵀으면 한다”며 재회를 예견한 때문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붉은 올리브 가지를 던진 김정은의 ‘남매 정치’ 노림수와 한계는 무엇일까.
김정일 장례 때 눈물짓던 김여정
방남에서 ‘권력 최고실세’ 드러내
공항 도착 때 호기심 가득한 눈길
평창 개막식과 평양 열병식의 대조
듣고 본 모든 것 오빠에게 전달해야
과거 대남 도발·위협 망각해선 안돼
7년 전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장에서 눈물짓던 그녀가 아니었다. 세습 권력의 후계자로 등극한 오빠를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던 모습도 찾기 어렵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중앙당 제1부부장으로 우뚝 선 김여정. 그녀는 북한 정권의 핵심이자 김정은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자리했음을 ‘남조선 행차’로 과시했다. ‘믿을 건 핏줄뿐’이란 남매의 의기투합 결과물이다.
예고편은 몇 차례 있었다. 김정일 사망 이듬해인 2012년 11월 북한 관영 조선중앙TV엔 말을 탄 모습의 김정은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고모 김경희와 함께 김여정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무 설명이 없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김정일 시기 여동생 김경희가 국제부와 경공업부 등을 거치며 오빠의 당 사업을 보좌했듯이, 김정은 시대엔 김여정 차례라는 시사였다. 그녀가 탄 백마(白馬)는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선전되는 김씨 일가 세습통치의 직계를 상징했다. 대북첩보망에도 징후가 감지됐다. 김정은이 여정과 친형 정철(건강 문제로 후계에서 밀려남)이 참석하는 정기적 모임을 통해 통치 노선과 노동당과 군부 핵심 인선 등을 숙의한다는 휴민트(humint, 인적 채널을 통해 수집한 정보)였다.
권력의 풍향계를 읽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닌 고위 권력층 사이엔 금세 입소문이 번졌다.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는 건 그녀를 거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는 얘기였다. 적어도 평양에선 김여정이 ‘로마로 통하는 길’보다 더 확실한 줄이 됐다. 지난해 10월 김정은이 당 전원회의를 열어 김여정을 정치국에 진입시키자 판세는 굳어졌다. 70여년 노동당 역사에 최연소(당시 28세) 정치국 후보위원의 탄생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평창 올림픽이 개막한 지난 9일 대한민국에 온 김여정은 도도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몸을 꼿꼿이 세운 채, 턱선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고개를 든 모습이었다. 이튿날 청와대 방문 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김정은의 ‘국가’ 직책)의 특명을 받고 왔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려 했다. 현장 연출자는 김창선 전 국방위 서기실장이다. 김씨 정권의 노회한 집사인 그는 누구보다 의전에 통달한 인물이다. 북한이 ‘적구(敵區)’라고 부르는 서울에서 김여정이 어떤 처신을 해야 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사안을 감별해주는 수행원으로 온 것이다.
이런 김여정의 모습에서도 이상징후는 감지됐다. 인천국제공항을 들어서며 그녀는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밀착 카메라의 앵글에는 공항시설과 인파를 힐끗거리는 20대 방문객의 호기심이 고스란히 포착됐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장의 화려한 축제는 그녀의 마음을 더 흔들었을 수 있다. 하루 전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와의 극명한 대조다. 서울의 야경과 KTX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 등도 마찬가지다. “서울은 처음이지만 낯설지가 않다”는 그녀의 말은 ‘솔직히 많이 낯설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김여정은 북한 정권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도 절감했을 것이다. 유엔은 물론 한·미 등의 독자 제재까지 겹겹이 둘러쳐진 대북 압박망이 숨통을 죄고 있다. 그녀가 타고 온 낡은 구 소련제 일류신 여객기(IL-62M)는 제재문제를 두고 막판까지 설왕설래했다. 일행인 최휘 국가체육위원장은 물론 김여정 자신이 제재 리스트에 오른 상태다. 곳곳이 지뢰밭이고, 무엇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형국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2018 평창 겨울올림픽까지 치른 대한민국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북한을 떠올렸을 것이다. 88올림픽을 훼방 놓으려 대한항공기 폭파 테러를 벌이고, 월드컵 땐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을 자행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오버랩 됐을 공산도 크다. 집권 7년째 되도록 해외방문이나 정상외교 한 번 못한 오빠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여정 남매는 해외유학파란 점에서 한 때 기대를 모았다.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체류한 이들이 김일성·김정일과 다른 전향적 통치를 할 것이란 측면에서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모란봉악단(단장 현송월) 창단 공연에는 미 자본주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와 백설공주 캐릭터가 선보였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라 선전되던 문구는 ‘이렇게 좁은 세상’으로 바뀌었다. 청년 지도자 김정은이 뭔가 선대(先代) 지도자와 다른 개혁·개방의 길을 갈 것이란 관측이 쏟아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달랐다. 더 격렬해진 핵과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와 국제사회를 겁박했다. 폭압적 공포정치를 펼쳐 고모부 장성택 마저 무참히 처형했다.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민생은 파탄 났다. 고위 탈북인사는 “북한 장마당에서 올겨울 비명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대북제재로 물자공급이 어려워지자 물가가 폭등했고, 민심이반을 우려해 당국이 겨우 쌀값만 억지로 잡아놓고 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귀띔이다.
‘남매 정치’를 본격화한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에게 당부할 말은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말라는 점이다. 순혈주의 세습정권 덕분에 절대권력으로 2500만 주민을 지배하지만 한 걸음만 밖으로 나와도 현실은 척박하다. 국제스포츠 무대인 ‘평창’은 그 압축판을 보여줬다. 김여정이 오빠에게 내놓을 ‘남조선 리포트’에는 그 실상이 가감 없이 담겨야 한다. 입에 담기 거북한 말까지 진솔하게 전할 유일한 인물이란 점에서다.
불과 몇 달 전 ‘핵 불바다’를 위협하며 “서울을 타고 앉으라”고 다그치던 김정은의 모습을 대한민국 국민과 국제사회는 기억한다. 청와대를 본뜬 시설을 평양 외곽에 지어놓고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며 타격훈련을 벌이던 장면도 그렇다. 거기에 이번엔 여동생을 보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꼭 일 년 전 오늘 이들 남매의 이복형제인 김정남씨는 북한 공작원에 의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했다. 김정은의 지시 없이 불가능한 일인 데다, 김여정 또한 진상을 모를 리 없는 자리다. 이런 모든 걸 망각한 채 불쑥 ‘붉은 올리브 가지’를 던진다고 평화가 오는 건 아니다.
02.22 북녘 번져 갈 올림픽 열기 … 대동강 얼음 녹일까
축제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92개국 2900여명 선수가 ‘하나 된 열정’으로 어우러진 국제 스포츠 잔치였다. 17일간 일정으로 짜인 평창 겨울올림픽은 이번 주말 피날레를 장식한다.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핵과 미사일로 한반도에 전운을 드리우게 만든 북한 김정은 체제를 한국과 국제사회는 올림픽 무대에 세워줬다. 한 때 “(올림픽) 잔칫상이 제사상이 될 수 있다”고 겁박하던 북한이 올리브 가지(branch)를 부여잡고 등장한 것이다.
‘미녀 응원단’ 내세운 북 평창 전술
16년 전 부산 때와 달리 효과 없어
김정은에 싸늘한 국민 대북 여론
핵·미사일 포기 없인 악화 불가피
‘미 위협’ 과장해 세습통치 정당화
김정은 책상서 핵 버튼 치워져야
평창올림픽 무대에 뛰어든 북한에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마감을 한참 넘겼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막판까지 뒷문을 열어뒀다. 흥행요소를 하나라도 더 챙기려 애쓴 데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의 차기 입지를 다지려는 계산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개최국인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북한 참가를 간절히 원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1일 신년사에서 평창 참가를 공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청와대는 김정은 신년사 몇 시간 만에 반색하며 환영 입장을 냈다. 9일 만에 열린 판문점 고위급 회담에선 북한 선수단의 평창행이 타결됐다. 예술단·응원단 파견은 물론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같은 까다로울 듯한 사안도 남측이 모두 받아들였다. 대북제재 대상인 만경봉 92호에 응원단을 태워 묵호항에 보내고, 기피 인물인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방남 리스트에 올려도 무사통과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수 출신 현송월을 선발대에 포함시킨 북측의 포석은 제대로 먹혔다. ‘서울 핵 불바다’ 운운하던 김정은의 호전적 이미지는 희석됐다. 김정은과 노동당 대남 전략가들의 승부수는 김여정 투입이었다. 여동생까지 내세워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고,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총출동해 특사 맞이에 나섰다. 김정은이 지난 12일 김여정으로부터 2박3일 간의 남한 체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남측이) 우리 측 성원들의 방문을 각별히 중시하고 편의와 활동을 잘 보장하기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한 건 만족감의 표시다.
북한은 올림픽 개막 이후 바람몰이에도 공을 들였다. 참가 선수와 임원진을 합쳐 20명에 불과한데도 500명 안팎의 예술단·응원단 등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표단을 보낸 건 이 때문이다. 현송월을 단장으로 새로 구성한 삼지연관현악단을 투입하고, 철저한 선발 과정을 거쳐 뽑았을 법한 응원단 229명도 파견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만경봉호에 태워 보낸 이른바 ‘미녀 응원단’ 열풍을 재연하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북한의 계산은 빗나갔다. 16년 전과 같은 선풍적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경기 흐름이나 승부와 무관하게 기계적 응원을 펼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철저한 통제 속에 숙소와 경기장을 오가야 하는 북한 응원단에 동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 응원단의 경우 밤늦게 경기를 마치고 숙소인 인제 스피디움(호텔)으로 돌아간 뒤에도 생활 반성모임인 ‘총화’와 사상교양을 철저하게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설 명절인 지난 16일에도 김정일(2011년 사망) 생일 축하 행사와 교양사업에 동원되는 바람에 파김치가 됐다는 얘기다.
북측은 응원단 분위기 띄우기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예정에 없던 야외 깜짝공연도 5차례 펼쳤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우리 언론과 국민 여론의 관심을 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은 북한 태권도 시범단도 마찬가지다. 사범과 선수 등 28명으로 구성된 시범단은 9일 올림픽 개회식 식전공연에 이어 속초 강원진로교육원(10일)과 서울시청 다목적홀(12일), 서울 MBC상암홀(14일) 등 4차례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섬뜩한 구호와 격파 시범이 주류인 레퍼토리에 객석의 초청인사와 관객은 호응하지 못했다.
북한은 그들이 ‘장애자 올림픽’이라 부르는 패럴림픽(3월9~18일)에도 참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이미 평창올림픽 대차대조표 작성에 들어간 분위기다. 개막 전부터 평창에 머물던 장웅 북한 IOC 위원이 18일 평양으로 돌아간 건 ‘볼 장은 다 봤다’는 메시지다.
노동당 고위 간부들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장외 경기에서 나름 선전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정상회담 카드로 청와대 문을 열어젖혔고, 예술단과 응원단 파견으로 민심을 홀렸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김여정의 평창 보고서는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예전 같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북여론 실상과 진단, 타개 방안이 솔직하게 담겨야 한다. 첫 핵 실험(2006년 10월)은 대북여론 악화의 분기점이 됐다. 여기에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과 추가 핵 실험이 이어지면서 불신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김정은 체제의 핵 무장 노선 포기가 없다면 대남 평화공세는 설 땅이 없다. 3차 정상회담은 요원하다. 김여정의 평양 초청 메시지에 반색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며 호흡조절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둘째로는 핵을 거머쥔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절함이 포함돼야 한다. 누구보다 김여정 스스로 절감했을 사안이다. 평창올림픽 무대에 데뷔했지만 ’핵 도발자‘ 김정은의 여동생에겐 싸늘한 눈길 뿐이었다. ’안보 올림픽‘으로 불리는 뮌헨안보회의(MSC, 2월16~18일)에 참석한 제임스 리시 미 상원의원은 북한에게 시간이 얼마 없음을 경고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미 본토로 실어 나를 운반시스템(ICBM)을 완성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대통령은 곧바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한다.
과장된 ’미국 위협론‘으로 군사도발 노선과 3대 세습의 폭압통치를 정당화하려던 시대는 끝내야 한다. 피해망상 수준으로 번진 병영국가 스파르타의 불안감은 아테네 제국의 몰락을 초래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불씨가 됐다. 2500년 전 역사의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가끔 운(韻, rhyme)을 맞추는 경우가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혜안에 주목해야 한다. 이젠 김여정이 나서 오빠의 집무실 책상에서 핵 버튼이 치워져야 한다는 조언을 해야 할 때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절기인 우수(雨水)가 그제였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간 화해협력 분위기가 반짝 이벤트로 끝나선 안 된다. 그 열기와 감동의 울림이 합쳐져 북녘의 두터운 얼음장이 녹아내려야 한다.
02.28 누가 김영철의 서울 나들이에 꽃길을 깔아주었나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의 서울 체류는 논란 그 자체였다. 대남도발의 상징인 그를 김정은 당 위원장은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의 북측 대표단장으로 내세웠다. 46송이 꽃다운 장병들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역이란 국민 비판이 쏟아지자 우리 정부는 “주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방탄막을 쳤다. 입 한 번 떼는 모습조차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미 대화 용의를 밝혔다”는 청와대 전언도 나왔다. 하루아침에 ‘평화의 메신저’로 변신한 김영철. 그의 남한 방문 2박3일 여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논란의 불씨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청와대 습격은 “맹동분자 소행”
박정희 대통령에 사과한 김일성
김영철 환대한 정부 안보부처엔
“천안함 폭침 면죄부 줬다” 비판
한 달 뒤 8주기 맞는 46위 영령
무슨 면목으로 대할지 고뇌해야
“나도 모르게 좌경 맹동분자들에 의해 야기된 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김일성 북한 내각 수상(당시 직책)은 1972년 5월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청와대 습격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특수부대원 31명을 내려보내 박 대통령을 시해하려다 실패하고, 경찰과 시민을 살상한 1.21 도발에 대한 유감 표시였다. 치열한 남북 대결을 펼치던 남북한 두 지도자의 경쟁 전선에서 김일성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김일성의 사과는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한 우리 국민의 공분과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목전에 둔 남북 화해 분기기 속에 지난달 1·21사태 50주기 행사는 묻혀버렸다. 청와대 인근까지 진출한 공비들에 맞서다 순직한 고(故) 최규식 경무관 등의 추모행사가 서울 청운동 자하문고개에서 열렸을 뿐이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의 ‘노래폭탄’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특사’ 방문은 올림픽 무대의 한켠을 채웠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폐막행사엔 김영철이 자리 잡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영철의 올림픽 무대 등장은 예상된 카드였다. 예술단을 대북제재 대상 선박인 만경봉92호에 태워 보내는 등 북한은 항공과 바닷길, 육로를 모두 열며 제재 무력화를 시도했다. 개막식 참가 고위급 대표단에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 제재대상 인물을 포함시킨 것도 이런 포석이다. 김영철은 북한이 대북제재를 둘러싼 한·미 공조 무력화와 한국 내 갈등 조성을 위해 써먹을 마지막 카드로 여겨졌다.
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폐막 사흘 전 명단을 통보받자 ‘시간이 빠듯하다’고 둘러댔다. 충분히 예견된 상황인데도 북측 제안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통일부는 설명자료까지 내며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를 협의할 책임있는 인물”이란 평가까지 내렸다. 2010년 3월 북한에 의해 자행된 천안함 폭침 도발의 주범으로 지목된 걸 애써 외면한 채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었지만, 구체적 관련자를 특정해내는 건 한계가 있다”고 감쌌다. 미국의 김영철 제재도 금융거래와 미국 입국 문제일 뿐 천안함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도 여기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했다. “정부도 고민했다.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는 당국자의 읍소는 먹히지 않았다. 무리수에 가까운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10월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이 나온 적이 있다는 점을 들며 “당시 김영철의 천안함 폭침 주범 논란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초점을 잘못 맞춘 주장은 역풍을 맞았다. 남북 간 중립지대로 여겨지는 판문점에서 해상 충돌 문제를 논의한 군사회담에 나오는 것과 ‘평화 올림픽’ 축하사절은 분명히 다르다는 지적이다.
안타까운 건 천안함 유족이나 부상 장병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찬바람 부는 통일대교에서 눈물로 호소하는 유족들을 피해 김영철 일행을 우회도로로 따돌리기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에게 기울인 정성의 10분의 1이라도 베풀었다면 서운함은 덜했을 수 있다. 통일부는 설명자료에서 “과거 행적이 어떤가에 집중하기보다 실질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세월호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태도와 차이가 난다. 세월호 선주·선장 등 가해 세력을 유족들 앞에 보란 듯이 등장시켜 새로운 여객선 출항 축하행사를 떠들썩하게 벌이는 셈이란 비판이 나온 것도 이런 측면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 뼈아픈 경험을 했다. 정부 결정에 박수갈채를 기대했지만 거꾸로였다. 한겨레21과 글로벌리서치가 지난 23~25일 실시한 여론조사는 비판여론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단일팀 구성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의견은 74.4%에 달해, ‘비동의’ 25.7%를 크게 앞섰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특히 젊은 층인 2030세대의 반감이 컸다.
문제는 이들 세대의 다소 까칠한 대북인식 출발점이 된 게 천안함 폭침도발이란 점이다.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과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목함지뢰 사건에 걸쳐 또래 장병들이 무참히 희생되는 걸 지켜본 결과다. 김정은의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 ‘서울 핵 불바다’ 위협을 체험한 세대들은 북한을 ‘세습독재 국가’로 여기며 등을 돌린 지 오래다. 그런데 정부는 도발 총책 김영철에게 면죄부를 줬다. 감수성이 예민한 2030세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김영철은 서울 방문 내내 칙사 대접을 받았다. 국빈 수준의 경호·의전에 특급호텔인 워커힐 스위트룸을 포함해 17층 전체를 썼다.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서울 사무실을 차린듯한 김영철을 우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가정보원장, 통일부 장관 등이 줄줄이 찾았다. 한때 천안함 폭침 도발을 규탄하고 이에 대응한 5·24 대북제재에 공을 들이던 안보 당국자들도 김영철 모시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카멜레온이 울다 갈 변신 내공이다.
혹시 김영철 직함이 통일전선부장이란 점 때문에 그가 ‘통일(unification)’과 남북관계 발전을 담당한다 생각하면 착각이다. 북한 ‘통일전선(united front)’은 노동당의 대남 적화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일시적 연합전선 구축을 의미할 뿐이다. 국면 주도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판을 깨버리거나 한·미 대립,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게 북한 통전의 속성이다.
이제 한 달 뒤면 천안함 폭침 8주기를 맞는다. 누가 뭐래도 도발 주역일 수밖에 없는 김영철에게 꽃길을 깔아준 안보 당국자들은 무슨 면목으로 젊은 영령들을 대할지 고뇌했으면 한다. 올림픽을 계기로 찾아온 ‘반짝 평화’에는 북한의 진정성이 담기지 못했다. “남조선을 쓸어버려라. 발편잠을 못 자게 하라”는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거친 목소리가 아직 우리 국민 귓전에 쟁쟁한 때문이다.
03.07 눈살 찌푸리게 한 특사 5인방의 김정은 앞 깨알 메모
개인은 물론 국가 간의 관계에서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의범절이나 외교·의전은 그 반영물이다. 남북 당국 간 접촉에서는 특히 격(格)과 절차를 깐깐히 따진다. 이를 간과하다 회담 테이블이 깨져 버리거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도 결국 낭패를 보기도 한다. 분단과 체제 대결의 산물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여전히 남북관계가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1박 2일의 평양 방문을 마친 대통령 특사단은 이런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과 숙제를 남겼다.
김정은 발언 ‘받아쓰기’ 모양새에
노동신문, 특사 사진 대대적 선전
뒷짐 진 채 기념 촬영한 김정은
배경엔 ‘김일성 민족’ 상징 벽화
언론 취재 배제한 ‘깜깜이’ 방북
“김일성에 고개 숙여” 가짜뉴스도
지난 5일 오후 6시 평양 중구역의 노동당 중앙위 청사. 접견실에 들어선 김정은 당 위원장은 웃음을 드러내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 특사단과 인사했다. 대통령 문장(紋章)인 봉황 금박 봉투에 담긴 문재인 대통령 친서가 전달됐다. 자리에 앉은 김 위원장은 미리 준비한 메모를 펼쳐놓고 평창올림픽과 한반도 정세, 남북 정상회담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은이 입을 떼자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특사단 5명은 일제히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김정은의 언급 내용을 깨알같이 적어 내려갔다. 북측 배석자인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접견장은 김정은의 발언을 받아쓰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북한의 관영 선전·선동 매체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튿날 노동신문 1면에는 김정은의 특사단 접견 소식이 전체 지면에 걸쳐 크게 실렸다. 여기에는 김정은 앞에서 메모에 열중하는 정의용 실장을 비롯한 특사 5인방의 모습을 다양한 앵글에서 담은 사진 여러 장이 실렸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영철과 김여정이 펜을 놓고 있는 순간에도 남측 특사단이 메모에 몰입한 사진을 전송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 차장을 지낸 염돈재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수석을 맡은 정의용 실장까지 펜을 들고 메모하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며 “배석자 중에서 한두 명 메모하면 충분할 텐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사단이 사전에 치밀한 협의를 통해 역할분담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가볍게 여긴 여파일 것이란 얘기다. 본의는 아니더라도 북한에 ‘김정은 동지 말씀을 꼼꼼히 받아 적는 남조선 대통령의 특사단’이란 선전 빌미를 제공했다는 때늦은 비판이 대북부처 안팎에서 나온다.
김정은이 특사단과 찍은 기념사진도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이 뒷짐을 진 채 다리를 벌리고 촬영에 나선 걸 두고 결례란 지적이 쏟아진 것이다. 붉은 태양을 부각시킨 대형 벽화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국가주석 김일성(1994년 사망)을 ‘태양’으로 치켜세우고, 우리 민족을 ‘태양 민족’ 운운하는 찬양·선전 논리를 펼치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남북대화에 오래 종사한 통일부 전직 간부는 “사전 실무협의를 통해 꼼꼼히 모든 걸 다짐 받아 돌출변수를 제거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나름 구태에서 벗어나려 애쓴 흔적도 보인다. 특사단 도착 당일 최고지도자 면담 일정을 잡은 건 눈길을 끈다. 뜸을 들이거나 몽니를 부린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과는 달랐다.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3박 4일 특사 방북 때는 마지막 날 김정일 면담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앞서 2000년 9월 평양을 방문한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은 동해안 지역 함흥 특각으로 달려가야 했다. 2003년 1월엔 임동원 특사를 아예 만나주지 않았다. 대북 제재와 압박에 따른 다급함이 작용했겠지만 “아버지가 통치하던 시기의 구태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태도 변화는 평가해줄만 하다. 만찬 행사에 부인 이설주를 동반한 점도 그렇다.
그렇다고 너무 오버하거나 성과에 집착하는 태도는 피했으면 한다. 남측 숙소가 고방산초대소로 드러나자마자 청와대 대변인이 “고급 휴양 시설이다. 북측이 남측 환대에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게 특사단 판단”이라고 자화자찬형 브리핑을 한 건 지나치다. 대통령 방북 때나 역대 대북특사 파견 시 주로 투숙한 국빈급 시설은 백화원초대소란 점에 비춰봐도 그렇다. 김여정의 청와대 방문에 이어 김정은 면담 때도 우리 국민은 이들 남매의 육성 하나 접하지 못했다. 북한의 신비주의 전략을 우리 정부가 거드는 모양새란 비판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김정은이 자신의 집무실인 노동당 청사에서 남측 인사를 만난 걸 두고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잿빛 당사(黨舍)를 조선노동당 70년 폭압정치와 세습권력의 상징으로 여기며 치를 떠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 국제사회의 지식인·단체가 적지 않다는 측면에서다. 김여정 특사의 서울 방문 시 청와대를 개방했으니,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는 수준의 절제된 대처가 아쉽다.
이번 대북특사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물꼬를 튼 남북관계 모멘텀을 지속시켜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여건을 만들어 남북 정상회담도 추진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구상도 추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여론의 공감과 지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특사단이 언론사 취재진을 배제한 채 방북길에 나선 건 아쉬움이 남는다. 대북정책 추진의 투명성을 공언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북한은 김여정 특사 파견 시 밀착 취재로 꼼꼼히 관련 영상 등을 챙겨갔다.
청와대와 정부의 부실한 대처는 우리 언론이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에 의존토록 만들어버렸다. 김정은 면담과 만찬 내용은 당일 오후 11시 20분 서울로 보고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튿날 새벽 북한이 보도할 때까지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이런 ‘깜깜이 보도’는 엉뚱한 사태를 불렀다. 순안공항 도착 영상이 확보되지 않자 우리 방송사들은 서울공항 출발 영상을 되풀이해 내보냈다. 그러자 인터넷 공간에선 “특사단이 활주로에 내려 평양 공항청사에 걸린 김일성 대형 초상화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서울공항 출발 인사를 하는 영상을 오인한 가짜뉴스다. 김일성 초상화는 2015년 공항 리모델링 때 철거됐다. 실시간 영상제공이 이뤄졌거나, 취재진이 동행했다면 피할 수 있는 소모적 논란이다.
특사단 입장에선 비핵화 논의 같은 까다로운 이슈를 다루는 게 버거웠을 공산이 크다. 김정은과 북측의 비위를 맞추는 모양새도 필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품격은 지켜야 하고, 절제된 언행도 필요하다. 그게 대한민국과 5000만 국민만 바라보고 섬기는 국가대표급 공무원의 올바른 처신이다.
03.14 ‘반미 코드’ 속에 숨겨진 북한의 워싱턴 짝사랑
워싱턴을 향한 북한 김정은의 질주가 시작됐다. ‘비핵화(denuclearization)’ 깃발을 흔들며 미소 짓는 그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에 만나자”며 의기투합했다. 내달 판문점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상봉 루트를 거쳐 가는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 여정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미 본토 핵 불바다’를 겁박하던 북한 최고 지도자의 변신이다. 무엇이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대미 노선에 급변침을 가했을까. 70년 조선노동당 통치의 이데올로기 주축을 이룬 북한의 반미(反美) 코드를 해부해 본다.
김정은 관람 공연에 ‘미키마우스’
한 때 “개혁·개방 나설 것” 관측
이모 고용숙 부부는 미국으로 망명
링컨리무진이 김일성·김정일 운구
미국 위협 부풀려 세습통치 정당화
반미 외치면서도 관계 정상화 갈망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캐릭터의 무대 등장에 이어 배경 화면엔 만화영화 백설공주와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영화 ‘록키’의 주제가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도 울려 퍼졌다. ‘이렇게 좋은 세상, 우리에겐 부러움 없다’며 지상낙원을 외치던 구절은 ‘이렇게 좁은 세상’으로 바뀌어 불렸다. 서방 국가의 콘서트 무대를 방불케 하는 전자음악과 현란한 레이저 조명에 청중은 놀라워했다.
지난 2012년 7월 6일 평양의 모란봉악단 창단 공연장.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당시 직책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2시간 가까운 공연을 지켜본 뒤 엄지를 치켜세웠다. 미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 총출동한 무대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라이선스를 맺지 않은 해적 공연이긴 했지만 폐쇄적 독재 체제에다 반미 기치를 내걸어 온 북한으로선 파격이었다.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은 대담하게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이 관영 선전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집권 6개월을 갓 넘긴 청년 지도자(당시 28세)가 개혁·개방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이 쏟아졌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에는 훈풍이 불어 닥쳤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다 “남조선 등뼈를 부러트리라”는 호전적 언사까지 퍼부으며 전쟁위기를 부채질하던 김정은이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올리브 가지를 던진 때문이다. 대북특사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으로 가져간 메시지는 매력적이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김정은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정 실장의 전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김정은이 북한을 ‘가난한 나라(poor country)’로 칭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적들이 100년을 제재한다고 해도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던 호기는 온데간데 없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집권 7년 차에 접어든 김정은 당 위원장은 반미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워왔다. 지난 한 해는 최악이었다.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마감단계를 언급한 김정은은 미국령 괌 타격 위협에 이어 본토를 타격할 ‘화성-15형’을 쏘아 올렸다. 9월엔 6차 핵 실험까지 감행했고, 결국 11월 말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올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밝히면서도 미국과는 거리를 뒀다. 자신의 평양 집무실 책상 위에 ‘핵 단추’가 놓여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했다. 김정은의 전향적 대미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관영 매체들이 함구하고, 재일 조총련 기관지까지 ‘조·미 정상회담은 미 전쟁소동에 종지부 찍는 담판’이란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것도 이런 관성 때문이다.
사실 반미는 북한 체제의 생존 이데올로기 그 자체였다. 일본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김일성 무장투쟁 성과로 치환시키는 데 성공한 북한은 6·25 남침 전쟁에도 손을 댔다. ‘민족해방 전쟁’으로 묘사해 승전을 주장한 뒤 “한 세기에 두 제국주의(미·일)를 타승(打勝)한 위인”으로 우상화한 것이다. 북한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장난감 총으로 미국 대통령과 성조기를 쏘는 유희를 강요받고, 미국을 승냥이로 묘사한 TV 만화영화에 익숙해진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 2400만 북한 주민들은 연일 반미 군중대회에 동원돼 언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북한군의 전차와 방사포 등에 각인된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수인 미제국주의를 소멸하자’는 구호는 그 결정판이다.
반미 이데올로기는 3대세습의 취약점을 감추고, 폭압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도 유용했다. 미제의 침략에 맞서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미명 아래 ‘수령 독재와 유일 영도’가 작동했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집착은 미국에 대한 과장된 ‘피포위 의식 (siege mentality)’의 발현이다. 모든 것에 군(軍)을 앞세우는 이른바 선군정치도 마찬가지다. 궁핍한 삶은 미국의 대북제재와 봉쇄정책 때문인 것처럼 학습됐다. 이런 반미 캠페인을 통치에 써먹은 건 김정은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황해남도 신천박물관을 찾은 김정은은 ‘미제 살인귀’라 운운하며 “적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이라고 말했다. 신천 참극은 6.25 전쟁 중 좌우대립이 원인이 됐다는 걸 우리 진보 학자·매체도 검증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를 ‘미제에 의한 3만5000여 주민 학살 현장’으로 날조·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반미 코스프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한다. 그의 집무실엔 애플 컴퓨터가 놓여있고, 즐겨 타는 차량 목록엔 미국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포함됐다. 김정은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로 묘사한 유일한 외국인은 전미프로농구협회(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다. 그토록 반미를 외치던 김일성과 김정일이 장례식 운구차로 왜 미국 포드사의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을 사용했는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집권 후 탈북자 단속에 심혈을 기울여온 김정은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은 이모 고용숙(2004년 사망한 생모 고용희의 동생)이다. 어린 시절 김정은을 직접 챙겨주기도 했던 고용숙이 남편과 함께 망명한 안식처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북한 제2자연과학원 소속 기자로 활동하다 탈북한 김길선 씨는 “북한 핵심 고위층 사이에서는 최후의 순간 미국으로 망명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있다”며 “이는 김정은과 그 일가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불구대천으로 증오하면서도 워싱턴을 갈망한다는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청년 시절 해외유학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최고다. 수령님의 존함이 새겨진 김일성종합대에 다니겠다”고 거절했다는 게 북한 전언이다. 그런 김정일도 김정은을 포함한 3남1녀를 스위스에서 조기유학 시켰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라는 취지였을 게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을 유학지로 택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권력 승계자로 삼은 막내 아들에게 귀띔해 준 후계수업 최고의 비책은 ‘미국과 친구하기’였을지 모른다.
03.21 남북 정상회담과 거짓말 … 후유증은 국민 부담으로 남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회담 열풍이 거세다. 내달 말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일정이 잡혀있고, 5월 중·하순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일본과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도 북한 문제를 둘러싼 양자 또는 다자간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분위기다. 북한과의 당국대화 복원으로 운전대를 거머쥐었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쾌도난마식 해법을 의미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을 말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 격변의 첫 단추가 될 남북 정상회담에서 꼭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비밀송금 논란과 거짓 해명은
대북정책 국민 신뢰 깨트려
정상회담 매력 치명적이지만
과욕과 ‘거짓말’ 유혹 경계해야
특사교환 불구 베일 싸인 회담
‘최고의 정책은 정직’ 기억하길
“김대중(DJ)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께서 따로 떨어져 앉게 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저를 불러 ‘두 분이 이산가족이 됐다’고 조크를 한 겁니다.”
첫 남북 정상회담 만찬이 한창이던 2000년 6월14일 평양 목란각. 김정일이 회담 남측 수행원인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에게 귀엣말을 하는 장면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히자 우리 언론과 국민 사이엔 궁금증이 일었다. “간첩을 잡아야 할 정보기관장이 북한 수괴와 밀담을 나눴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서울 귀환 후 임 원장은 김정일이 농담을 던진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막은 달랐다. 북한은 DJ 방북 준비 때부터 김일성 국가주석(1994년 7월 사망) 시신이 보관된 금수산기념궁전(현재는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칭)을 참배할 것을 요구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난감해했지만 북한 입장은 완강했다. 서로 말끔히 매듭짓지 못한 채 DJ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결국 김정일이 자신의 차량에 함께 탄 DJ에게 ‘금수산에 안 가셔도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해결됐다. 만찬장에서 김정일은 이런 소식을 임 원장에게 귀엣말로 알린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임 원장 측은 이런 사실을 감춘 채 국민에게 거짓 해명을 했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시 김정일은 DJ에게 “통일이 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밝힌 것으로 청와대는 설명했다. DJ가 주한미군 주둔 용인 언급을 듣고 김정일을 항해 “정말 깜짝 놀랐다. 민족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신 줄 몰랐다”고 했다는 게 임동원 원장의 설명(회고록 『피스 메이커』93쪽)이다. 하지만 북한은 회담 직후 주춤하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아직까지도 계속 펼치고 있다. 김정일의 “철수 주장은 우리 인민 감정을 달래려는 것”이란 말과 달리 북한 관영매체의 주한미군 관련 선전·선동은 갈수록 과격한 양상을 보여 왔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상회담은 메가톤급 파괴력이 있다. 분단 70년 동안의 긴장과 대결을 종식하고, 화해와 협력으로 나가려는 국민 갈망이 엄청난 에너지로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다소 무시되거나 찜찜한 대목이 있어도 의미있는 결과만 도출되기를 응원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어떤 정권이든 북한과의 정상회담 추진에 골몰한다. 하지만 그 매혹에 지나치게 빠져들다간 순리를 이탈하게 되고 결국 국민을 속이고 싶은 유혹에 함몰된다.
첫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적잖이 퇴색시킨 대북 비밀송금은 대표적 사례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회담 테이블에 앉게 하려고 김대중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건넸다. 미 의회와 우리 언론의 의혹제기가 잇따랐지만 “한·미 보수세력과 언론의 정상회담 재 뿌리기”라고 반박했다. 환전과 송금에 관여한 국가정보원은 “전혀 근거 없다. 국정원이 북측에 돈을 전달할 방법이 없다”고 발뺌했다. 북한도 여기에 발을 맞췄다. 하지만 대북송금 특검은 정상회담과의 관련성과 위법성을 규명했고, 관련자들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대북송금 특검은 큰 후유증을 남겼다. 첫 정상회담에 대가성 자금이 개입되면서 도덕성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북한과의 교류·협력과 대북지원에 무게를 실어온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전향적 대북노선은 보수세력의 ‘퍼주기’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남남갈등은 증폭됐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 정부의 대북정책이 신뢰를 잃은 것도 큰 손실이다.
DJ 정부의 비밀송금에 특검이란 칼날을 들이댄 노무현 정부는 차별화된 대북접근을 염두에 뒀다. 2차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대가 논란에서 비껴가려 했다. 하지만 차기 대선 2개월을 앞둔 시점에 회담을 연 게 화근이 됐다. 2007년 10월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북한 철도와 고속도로 개보수, 조선복합단지 제공 등을 약속했다. 통일부가 “14조 3000억원의 국민부담이 따른다”고 추산한 매머드급 대북 인프라 제공 프로젝트다. 정권 말 무리하게 사인한 합의서는 차기 정부에서 공수표가 되다시피 했다. 공동어로를 비롯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을 평화협력지대로 만드는 구상은 ‘NLL 포기’ 논란까지 촉발시켰다. 결국 6년이 흐른 뒤 관련 의혹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폭발하면서 초유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동이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날 3차 정상회담은 앞서 두 번의 회담과는 결이 달라야 한다. 현금이나 대북 인프라 제공을 내건 정상회담을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성패를 좌우할 의제로 꼽힌다. 섣불리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꺼내다가는 거센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려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도 촘촘하다. 첫 회담은 만남 자체에 의미 부여가 가능했다. 두 번째 정상회담은 ‘과욕은 금물’이란 교훈을 남겼다.
이번 정상회담은 취임 1년을 앞둔 초반이라 대북 합의와 그 이행에 힘이 실릴 수 있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북한의 정상회담 호응이 정부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압박공세 결과란 점도 협상 운신 폭을 넓혀준다. 단박에 거대담론부터 각론까지 다 해치우고 싶은 의욕이 넘쳐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서울과 워싱턴을 겨냥한 도발공세에서 유화 제스처 쪽으로 급변침한 김정은의 의도 분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무대가 됐다. 이젠 그런 낭만적 남북관계를 냉철한 북한 다루기로 옮겨갈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의 첫 단추는 남북 간 특사교환을 통해 꿰어졌다. 앞서 2차례와 달리 언론을 통해 그 장면이 공개됐다. 하지만 구체적 논의 내용이나 물밑 조율작업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다. 민감한 이슈가 테이블에 오를 예정인데다, 북·미 정상회담까지 어우러진 복합 방정식 양상이라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북접근에서 원칙을 지키고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긴요하다. ‘최고의 정책은 정직’이란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다. 대북정책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03.28 “남조선으로 유학 왔습네다” … 진화하는 탈북
탈북은 목숨을 건 결단이다. 폭압적 세습통치의 사슬을 끊어내려는 몸짓이지만 실패할 경우 가혹한 징벌이 가해진다. 중국 등지를 떠돌다 강제 북송당할 경우 고초는 더하다. ‘조국’을 배신했다는 꼬리표가 붙고,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정치적 생명’은 끝나 버린다. 가족과 친지에게도 화가 미친다. 그런데도 탈북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만 3만 1000명을 넘어섰다. 북한 인구(2490만명)를 감안하면 800명 가운데 한 명꼴이다. 최근 들어서는 탈북 패턴에 흥미로운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브로커 주선으로 곧장 한국행
북한 부모가 달러 송금하기도
‘내 자식만은 서울에서 교육’
지방 당 간부와 ‘돈주’가 주도
엘리트 한국행도 자녀들 때문
탈북자 감소 속 의미있는 변화
서울 소재 한 대학에 다니는 A씨(23·여)는 특이한 ‘탈북자’다. 2년 전 홀로 고향인 양강도의 한 도시를 떠나 곧바로 한국행에 성공했다. 중국과 동남아를 수년 동안 전전하다 가까스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대부분의 경우와 다르다. 적지 않은 브로커 비용이 들었다. 정착금 700만원과 주거 지원금 1300만원(이상 1인 기준)을 받았는데, 그 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해왔다. A씨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서울의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말투가 거의 한국 표준말에 가까워 학교 친구들조차 탈북자인 걸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또래 남학생과 깊이 사귀고 있다.
놀라운 건 A씨가 고향 부모로부터 주기적으로 달러를 송금받아 생활비와 용돈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에 쫓기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비결이다. 부모와 가끔 전화통화도 한다. 주로 돈을 전달해주는 브로커가 중국 핸드폰을 몰래 반입해 북·중 접경지역에서 통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A씨는 “지난해 여름엔 중국 동북 지방으로 나가 어머니와 몰래 상봉하고 왔다”고 털어놨다. 탈북자 출신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단신 입국하는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유학형 탈북’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북한에 있는 부모가 생활비를 대주기 위해 역송금하는 현상도 빈번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학형 탈북은 대체로 북한 지방 도시에서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노동당이나 권력기관 간부 사이에 은밀하게 번지고 있다. 장마당에서 상품유통과 거래로 막대한 돈을 챙긴 이른바 ‘돈주’ 세력도 가세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들이 20살 안팎의 자녀를 한국에 보내는 건 ‘미래를 향한 교육 투자’라는 생각에서다. 폐쇄적 북한 체제에서 체제 우상화나 주체사상 교육만 받고 자라서는 앞날이 없다는 판단이다. 탈북자 정책을 담당했던 통일부 당국자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는 바깥 물정에 눈뜬 주민들이 적지 않고, 통일이 대비해 내 아들·딸 만큼은 인재로 준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 듯하다”고 말했다. 장사나 뇌물 등으로 달러를 넉넉하게 챙길 수 있게 된 경우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nugu@joongang.co.kr]
탈북형유학의뿌리에는부모의교육열이자리하고있다. ‘내아이만큼은제대로공부시켜야겠다’는열망은북한에서도어머니들의치맛바람으로나타난다고한다. 탈북자정착을돕는부산하나센터강동완(동아대교수) 센터장은 “한탈북여성의경우부산지역초등학교에다니는아이가반에서 1등을하는걸자랑하며 ‘한국에오길정말잘했다’고몇번을말하곤한다”고귀띔했다. 강센터장은 “그어머니는북한에있을때토끼가죽모아오는방학과제가떨어지면장마당에서돈을주고사서라도할당량의몇배를제출해점수를땄다고한다”고전했다.
해외에근무하는북한엘리트외교관이나상사주재원들도자녀의교육과미래를위한탈북·망명에나서고있다. 런던주재북한대사관에서근무하다 2016년 7월한국행을택한태영호공사가대표적이다. 국제학교를거쳐현지명문대에진학을하게된아들에겐서방세계의자유를만끽하며글로벌인재로성장할길이열려있었다. 다시평양으로돌아간다는건이런기회와의완전한단절이다.
비슷한시기한국에도착한북한수학천재이정열군의경우는홀로망명길에나섰다. 당시 18살인이군은홍콩에서열린제57회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참가했다가한국총영사관에뛰어들었다. 이군은홍콩에오기전강원도에있는고향에들러아버지에게탈북하겠다는뜻을밝혔다. 중학교수학교사인부친은 “우리걱정은말라”며 200달러를손에쥐여주었다고한다. 남은가족에게닥칠고초보다는아들의미래를위해만류하지않았다는것이다. 대북정보관계자는 “비공개로망명해서울에온북한고위외교관·주재원등이수십명규모”라며 “이들중상당수는 ‘북에서도사는데문제가없지만, 아이들의교육때문에왔다’고말한다”고전했다.
한국에온엘리트탈북인사들의경우일정기간경과후자녀를미국등으로유학보내는경우가적지않다. 일반탈북자의경우아예아이들교육을위해영국이나캐나다같은곳으로재차망명하기도한다. 한국국적을취득하고주택·지원금을받았던사실을숨긴채 ‘탈북자’ 신분으로망명을신청한다. 통일부당국자는 “한국정착후재망명하는사례를막기위해해당국과의정보공조를강화했다”면서 “망명신청이받아들여지지않아불법체류자가되거나한국으로돌아오는경우도있다”고말했다.
6·25전쟁종전이후 1980년대까지탈북은주로휴전선을통해군인과접경지역주민이넘어오는방식이었다. 숫자도적어 1989년까지누계가 607명에불과했다. ‘월남귀순용사’로불리며예우를받은것도이런배경에서다.하지만 1990년대들어소련및동구권붕괴등으로해외유학생과엘리트계층의탈북이이어졌다. 김일성사망(1994년) 이후이른바 ‘고난의행군’으로불린경제난을겪으며탈북자는급증세를보였다. 정치적이유보다는식량난해결이주된이유였다. 2009년한해국내정착탈북자는 2914명을기록해정점을찍었다. 이후김정은체제들어경제난이다소풀리고, 탈북단속도강화되면서감소세를보여매년 1100~1500명수준을보인다. ‘유학형탈북’은이런추세속에서새로운변화를예고하고있다.
◆알려왔습니다=3월21일자 24면 ‘남북정상회담과거짓말…’ 제하의기사와관련, 임동원전국정원장은 “(김일성시신참배를요구하던) 김정일위원장이김대중대통령에게 ‘안가셔도된다’고말한건 2000년 6월 13일평양도착직후가아니라이튿날만찬장으로가는차안에서였다”고이메일로알려왔습니다. 임전원장은또 “만찬장에서김위원장이나를불러이런사실을알려줬으며, (김정일과의귀엣말은국정원장으로서부적절한처신이란논란과관련) 서울귀환후거짓해명을한바없다”고덧붙였습니다.
04.04 대북정책 비판 목소리 막나 …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내로남불’의 시대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의미의 이 속된 표현에 우리 사회는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만큼 역지사지의 배려가 결핍됐다는 의미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이전 권력의 행태를 ‘적폐 척결’이란 이름으로 단죄하겠다면서도 전철(前轍)을 밟고 있다. 옛 어른들이 깨우쳐 준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정책 노선에 비판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연구기관과 박사·교수에게 재갈을 물리고, 은밀하게 압박하는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의 요지경을 들여다본다.
정부가 ‘적폐’로 지목한 블랙리스트
현 외교·안보 분야 “그대로 재연”
“문 정부 북한에 속고 있다” 지적
국내 활동 미 전문가 결국 짐쌌다
지난해 JSA 귀순한 병사 공개 안해
“판문점 정상회담 의식한 것” 분석
‘주의가 요구되는 인물 목록’을 일컫는 블랙리스트(black list)는 본래 미국 등 서방 국가 노동계에서 통용됐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 측이 핵심 노조원 명단을 은밀하게 관리한 데서 나왔다. 이 용어가 한국에 건너오면서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인물이나 범죄자를 지칭하는 쪽으로 의미가 확대돼 왔다.
지난해 5월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기 블랙리스트 문제점을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주로 문화·예술계 인사를 대상에 올려 정부 비판 활동을 막거나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 동원됐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가 줄줄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고 있고, 방송계 등 우리 사회 일각에선 후유증이 크다.
그런데 이전 정부에서나 있었을 법한 일들이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다는 전언이 속속 이어져 눈길을 끈다. 이번엔 대북 문제와 외교·안보 현안을 다루는 연구기관과 전문가·학자 그룹이 주 대상이다. 정부 정책 노선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북 비판 언급을 할 경우 직접적인 압박이나 간섭의 손길이 뻗친다는 얘기다. 특히 정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국책 연구기관이나 부처 산하단체가 타깃이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박사는 “과거 정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립외교원 S교수의 사례는 외교·안보 당국자와 전문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파다하다. 지난 1월 JTBC 토론 프로에 참석한 S교수는 어쩔 수 없이 야당 쪽에 자리했다. 나머지 토론자 3명이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과 청와대 안보실 정책 자문위원인 김연철 인제대 교수, 자유한국당 이재영 최고위원이다 보니 방송사 측이 지정한 대로 이 최고위원 옆에 앉은 것이다. 동료 박사는 “그 날 S교수의 토론은 중립적이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쪽에선 몇몇 발언을 문제 삼았고, 야당 쪽에 자리한 것까지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문재인 캠프 출신으로 청와대 외교·안보 실세를 자처하는 모 인사가 발끈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귀띔했다. 이후에도 계속된 간섭과 제재를 견디다 못한 S교수는 사직을 결정했다.
국무부 한국 과장 출신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박사의 경우는 국내 기관에 적을 둔 외국 연구자에게 압박이 가해진 특이한 경우다.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연구 발표와 강연·인터뷰 등을 해온 스트라우브는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임용 1년여 만에 짐을 싸야 했다. 국책 연구기관장 출신 전문가는 “스트라우브가 한·미 동맹 균열을 의미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용어를 쓰고,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속고 있다’는 경고를 자주 한 게 눈 밖에 난 이유란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스트라우브가 떠난 걸 두고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까지 “트럼프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등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가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스트라우브 해임은 노무현 정부의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난 2월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한 뒤 이뤄졌다. 연구소는 소장도 교체하기 위해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외교·안보 관련 다른 국책 연구기관이나 산하단체도 기관장을 교체했거나 추진 중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임기를 채우거나 연임하려는 기관장이 소속 연구원이나 박사에게 무리한 코드 맞추기를 강요하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외교·안보 분야는 과거 보수정권 시절에도 홍역을 앓았다. 국가정보원은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소속 일부 박사들이 당시 야당을 후원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징계와 해임 조치를 취하려 했다. 야당 측 반발로 무산됐지만 해당 박사들은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들은 이번 정부 들어 국정원 요직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요즘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몇 년 전 사태의 ‘데자뷔(deja vu)’라 불릴 만하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에 비판적 입장의 학자·전문가들에겐 TV방송 출연이나 외부 기고 정지 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부분의 국책 기관들이 외부활동을 사전에 서면 등으로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는 데 근거를 둔 것이다. 이들의 손발이 묶이면서 편중 현상도 나타난다. 종편 등 방송의 통일·안보 관련 코너에는 대선 캠프 출신 등 친정부 성향 인사 몇몇을 중심으로 겹치기 출연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건전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보다는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데 치중한다. 동종교배의 후유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제 ‘월천 선생’(방송출연 등 외부활동으로 월 1000만원 이상을 버는 교수·학자)도 완전 진영교체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그 부작용이 하나 둘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급속히 진행되는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북한에 비판적인 탈북 인사의 등장까지 가로막힌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016년 7월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비롯해 관계기관의 보호를 받는 고위 탈북자들은 공개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탈북·망명한 북한군 병사 오 모씨도 부상에서 완치됐지만 당국은 기자회견 계획을 잡지 않고 있다. 오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같은 지역으로 탈북한 병사가 부각될 경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만나는 정상회담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이벤트다. 북한 핵 폐기를 비롯한 중요한 현안이 다뤄지고, 한반도 정세에도 큰 변동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주도권을 쥔 청와대와 정부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비판을 허용 않고,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고 싶은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자칫 독주로 흐를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국면에서 외교·안보 전문가 그룹에서 불거진 블랙리스트 논란은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민과 여론의 눈엔 훤히 보이는 것들도 권력의 자리에선 놓칠 수 있다.
04.11 "허리띠 조이지 않게" … 공수표 된 6년 전 김일성광장의 약속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건 검박한 생활을 하거나 단단한 각오를 다질 경우를 일컫는다. 배고픔이나 궁핍함을 드러낼 때도 쓰인다. 만성적 경제난에 시달려온 북한 주민에게는 꽤나 친숙해진 표현이다. 북한 당국은 “미 제국주의의 대북제제 소동으로 경제가 난관에 봉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3대 세습 폐해로 초래된 국가 자원의 비효율적 투입과 생산성 부진이 핵심이다. 핵·미사일 개발로 자초한 대북제재는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체질을 빈사 상태로 이끌었다.
첫 공개 연설서 ‘부귀영화’ 약속
김정은 개혁 언급에 한때 기대감
경제·핵 병진 노선 빨간불 켜져
지난 달 기념행사도 치르지 못해
방중으로 외부세계 눈 뜬 김정은
장마당 방문해 인민 생활 챙겨야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지난 2012년 4월15일 평양 김일성광장. 집권 100일을 갓 넘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당시 직책은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처음으로 공개 연설 자리에 섰다. 마침 김일성(1994년 사망) 주석 출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군사퍼레이드 열린 자리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연설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다소 미숙한 면이 드러났지만, 청년 지도자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는 적지 않았다. 해외 유학파에다 개방적인 성향일 것이란 측면에서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적들이 원자탄으로 우리를 위협 공갈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고 강조했다. 체제 안정 속에 경제와 민생 문제를 챙길 수 있을 것이란 다짐이었다. 그러면서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로 말을 맺었다.
김정은의 개혁 드라이브는 야심 찼다. 같은 해 6월에는 노동당이 통제하는 공장·기업소 등 경제 단위에 자율권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6.28 개혁 조치를 내놓았다. 이듬해 5월에는 경제개발구법을 만들어 중앙급 경제특구(5개)와 지방급 경제개발구(22개) 등 모두 27곳을 지정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2013년 3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내놓은 ‘경제·핵 병진노선’이다.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인 전차와 함정·전투기 등을 구입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겼으니, 이를 인민이 먹고사는 문제와 사회보장에 투입하겠다는 논리다. 1960년대 김일성이 주창한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재탕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군수공업과 중공업에 치우친 개발정책으로 북한 경제를 수렁에 빠트린 주범으로 꼽힌 노선을 답습한다는 차원에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런데도 김정은식 병진정책에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북한 당국과 경제학자들은 논리를 튼실하게 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병진노선 발표 석 달 뒤 “경제발전을 저해해 온 근본 원인인 조선반도의 전시체제, 분단상황이 하루빨리 극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노선의 성패가 평화체제 안착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북한 계간 학술지인 사회과학원 학보(2017년 4호)는 “최강의 핵 보유국이 된 오늘 우리에게는 강위력한 전쟁 억제력에 기초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 자금과 노력을 총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해 “조국수호전과 경제강국 건설을 동시에 다 같이 밀고 나갈 수 있게 하는 확고한 담보”란 주장도 제시했다.
하지만 핵 개발을 표방한 병진노선은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다. 촘촘해진 대북제재는 해상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던 환적 행위까지 포착해 추적했다. 산소호흡기까지 떼인 북한 경제에는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 폭주는 지난해 11월 말 ‘국가 핵 무력 완성’ 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즈음 평양에서는 제재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흘러나왔다. 한국국방연구원 조남훈 책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대북 제재로 군사 훈련 횟수와 강도가 줄어드는 등 북한군의 대비태세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특히 북한군에 문제가 되는 건 유류 금수조치”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헬싱키 1.5트랙 회의에 참석한 북측 인사는 대북제재와 관련해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죽고 살 문제는 아니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회의를 열어 대남·대미 정책과 경제 노선 등과 관련한 중요 사안을 논의한 것으로 관영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경제통인 박봉주 총리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참석했다. 수령의 교시나 비준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와 달리 노동당의 의사결정 체계를 십분 활용한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보고를 통해 “자력갱생의 혁명적 기치를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나가자”고 강조했다. 또 “자체의 기술 역량과 경제적 잠재력을 총동원하라”고 요구했다. 외국의 좋은 문물이나 기술을 적극 도입하라고 지시하던 과거 발언과 달라졌다. 여력이나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간판급 정책으로 내세워온 경제·핵 병진 노선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매년 3월 말 치러오던 병진노선 발표 기념행사도 올해엔 건너뛰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태에서 핵 문제가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한 때문이란 관측과 함께, 경제·핵 병진 노선이 파탄에 이른 징후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수 년간 최고인민회의가 발표한 북한 예산 집행 결과에 따르면 16% 수준의 국방비(실제로는 은닉예산을 포함해 30% 정도일 것으로 정부 당국은 추산) 비중은 병진노선 제시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11일 열릴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회의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말 전격적인 중국 방문을 통해 시진핑 국가 주석과 첫 정상외교를 펼쳤다. 서울과 워싱턴을 가면서 베이징을 건너뛴다는 건 아직 상상하기 힘든 일이란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부인 이설주를 동반한 ‘미소 외교’는 북·중 관계의 얼음장을 녹이는 데 일조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찬성표를 던진 중국을 겨냥해 “대국이 줏대 없이 미국의 제재놀음에 동참했다”고 비아냥거리던 김정은 체제에 중국 지도부가 면죄부를 준 듯한 인상이다. 진귀한 술과 비단·보석 등을 선물로 받아안은 김정은은 평양으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이 맛에 핵 개발하는 거야”라며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압록강을 넘으며 그가 목도한 경제 실상은 녹록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개혁·개방으로 번창해가는 중국과의 대비가 극명했을 것이란 얘기다. 김정은은 방중 기간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 소재 중국과학원에 들러 가상현실(VR)을 체험했다. 그가 살펴봐야 할 건 가상이 아닌 북한 경제의 실상과 인민의 삶이다. 김정은이 장마당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04.18 은둔 스타일서 ‘존경하는 여사’까지 … 평양의 퍼스트레이디
‘여사(女史)’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오는 27일 열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에게 청와대와 정부가 ‘여사’란 표현을 쓰겠다고 공식화하면서다. 정상 간 만남에 동반한 북측 최고지도자의 배우자를 부르는 데 ‘여사’ 외에 마땅한 표현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아직 우리 국민의 정서상 무리한 호칭이란 지적이 나온다. 왠지 입에 잘 붙지 않고, 어색하기만 한 ‘이설주 여사’ 표현을 둘러싼 서울과 평양의 분위기를 짚어 본다.
‘여사’ 호칭에 ‘존경’ 표현까지
이설주 퍼스트레이디로 띄우기
28년 김정일과 함께 산 고용희
공개활동 없이 은둔의 삶 강요
“여사로 쓰는 게 자연스럽다”
청와대 입장 불구 논란 번져
“존경하는 이설주 여사께서 당과 정부 간부들과 함께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지젤’을 관람했다.”
지난 15일 북한 조선중앙TV는 평양에서 하루 전 열린 중국 예술단의 방북 공연 소식을 전했다. 눈길을 끈 건 이설주(29)에게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를 처음 사용한 대목이다. 김정은(34) 위원장을 동반 않고, 이설주가 독자 공개 활동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중앙TV 보도를 담당한 아나운서가 이춘희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김정은 관련 행보만 도맡아 온 간판급 방송인이 이설주 동정 보도에 나섰다는 건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핑크빛 정장 차림의 이설주는 최용해 당 부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를 수행하고 행사장에 들어섰다. 중국 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그를 맞았다. 북측 간부 중에는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29) 당 제1부부장도 포함됐다. 올케와 시누이 사이인 이설주와 김여정은 쑹 부장 양옆에 앉았다. 그런데 중앙TV는 이설주만 단독 샷으로 화면에 부각시켰다. 이번만큼은 이설주를 ‘존경하는 여사님’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읽혀진다.
북한의 이설주 띄우기는 2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본격화했다. 북한군 창건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김정은과 함께 등장한 이설주를 북한 매체는 ‘여사’로 처음 호칭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지난 2012년 7월 ‘부인 이설주 동지’로 표현한 데서 한 단계 치켜세운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달 말 김정은의 중국 방문 때 이설주는 퍼스트레이디로 외교무대에 데뷔했다. 김정은·이설주 부부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을 만났다.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출신인 이설주는 중국 음악학원에 유학한 경력이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펑리위안도 같은 가수 출신이란 점에서 이설주와 공감대를 이뤘을 것이란 관측이다. 냉랭했던 북·중 관계를 녹이는 데 이들 두 사람이 윤활유 역할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에서 ‘여사’는 아주 낯선 호칭이다.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2006년, 사회과학출판사)은 ‘사회·정치적 활동에 참가하는 여성 활동가를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저명인사 중 여사로 불린 경우는 없다. 탈북인 출신 박사인 현인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 연구위원은 “김일성 생모인 강반석과 어머니 이보익 등에게 가계 우상화 차원에서 여사란 호칭을 쓰지만, 그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본처 김정숙의 경우는 빨치산 활동을 함께 한 ‘항일 여전사’로 선전되고, 후처인 김성애는 ‘동지’로 불렸다는 것이다. 현 위원은 “동지란 표현은 당 간부를 의미하는데, 김성애는 조선여성동맹위원장이란 직책을 맡았기 때문”이라며 “이설주의 경우 아무 공식 직책이 드러난 게 없다는 점에서 동지로 계속 부르기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집권 초반부터 ‘부인 이설주’를 공식화하며 얼굴을 공개하고, 활발한 공개 활동을 펼치는 건 이전과 확 달라진 모습이다.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는 28년 간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하며 2남 1녀를 뒀다. 하지만 철저하게 은둔을 강요받았고 공개활동에 나설 수 없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함께 방북했지만 김 위원장은 혼자 나왔다. 고용희가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선암 치료 중 숨졌을 때도 비공개리에 시신을 평양으로 운구해 묘지를 조성할 정도였다. 대북 정보당국 관계자는 “2002년 8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고용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찬양 선전하는 책이 나왔다는 첩보는 있었지만 더 이상의 동향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김정은 집권 직후 고용희 우상화를 위한 조심스런 시도가 나타났다. 노동신문은 2012년 2월 13일자에 고용희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양의 어머니’로 소개했다. 또 고위 간부를 대상으로 고용희의 생전 모습을 담은 기록영상을 방영했다. 본지가 입수한 이 영상에는 선글라스에 모피 코트 차림으로 김정일과 군부대 등을 방문한 모습이 드러난다. 김정일 생일 파티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평생 잘 모시고 따를 것을 다짐한다”는 충성맹세문을 낭독하는 이채로운 장면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고용희가 북송교포 출신이란 사실이 드러나는 걸 꺼린 때문이란 분석과 함께 곧 생모 우상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와 정부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이설주가 나올 공산이 크다고 본다. 임종석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청와대 비서실장)은 어제 브리핑에서 “이설주 여사 동반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의겸 대변인은 6일 이설주 호칭과 관련 “여사로 쓰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공식적”이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는 게 당국자들의 말이다. 회담이나 오·만찬에서 공식 호칭을 쓰는 건 불가피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엇박자가 날 수 있다. 김정은 존칭을 두고도 우리 내부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설주 여사’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뜻 받아들이기 꺼림칙한 건 언론도 마찬가지다. 한겨레신문의 경우 1988년 창간 이후 대통령 부인에게 ‘씨’를 붙였으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지지층을 중심으로 ‘대통령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거세자 지난해 8월 ‘여사’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언어의 탈권위화, 성차별 표현의 배격이란 가치를 고수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은연중에 한국과 서방의 시스템과 관련 용어를 차용하는 모양새를 자주 드러낸다. 김정은의 ‘국가 직책’을 국방위에서 우리 국무회의와 유사한 국무위원회로 바꾸고, 당과 내각에 정책국 같은 이전엔 없던 명칭의 기구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설주에게 여사 표현을 쓴 걸 두고도 “남쪽에서 대통령 부인에게 쓰는 호칭인데다 북한 체제를 정상국가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현인애 위원)란 해석이 나온다. 부인을 ‘동지’로 부르는 건 예전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진 우스꽝스런 일이란 판단이 내려졌고, 세계 추세와 발맞추려는 김정은의 생각도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다.
04.25 판문점 원조 협상가의 조언 … “대화하되 압박 늦추지 마라”
고전(古典)에는 울림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상황과 조건이 어느 정도 바뀌어도 변치 않는 클래식의 매력이다. 그 속에는 감동이 있고 교훈이 있다.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후세에 대한 애정 어린 권고도 담긴다. 65년 전 판문점에서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첫 협상대표 터너 조이(Turner Joy) 미 제독은 생생한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그 속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와 경구가 빼곡하다. 반세기 넘은 시대 변화에도 공감할 대목이 적지 않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대통령과 참모·협상가들이 일별해 볼 만한 교범이다.
정전협상 초대 대표 조이 제독
“공산 측 알아듣는 건 힘 뿐”
“지키지 않을 약속 가급적 작게”
김정일 서울답방 합의 때 현실로
협상 주도하려 돌출사건 모의도
“말이나 약속 아닌 행동 믿어야”
“그들은 나중에 지키지 않으려고 작정한 약속을 가급적 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조이 제독(1895~1956)은 저서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How communists negotiate)에서 공산 측 협상 패턴의 핵심을 이렇게 짚어냈다. 협상이란 게 못마땅한 합의사항 몇 가지는 담길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공산 측은 어쩔 수 없이 합의는 하되, 뒷일을 치밀하게 고려한다는 얘기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합의사항을 위반할 경우 수반될 조사범위를 축소시키려 광분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군축 협상 등에서 효율적인 점검이나 감시체계를 공산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 건 이런 음흉한 생각이 깔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비판 여론이나 제재 압박 때문에 마지못해 협상에 나섰던 북한의 행태를 반추해보면 기시감이 든다. 북·미 제네바 핵 합의(1994년)와 9·19 공동성명(2005년)의 합의 문구를 들춰보면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기구는 사찰과 검증 문제로 북한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핵 동결과 보상이란 주고받기 틀은 번번이 식량과 중유 지원 등의 당근만 따 먹는 북한에 농락당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대목은 대표적이다. 통일 문제와 이산상봉, 경협·교류 등 6·15 공동선언 5개 합의 항목을 만들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대목은 맨 끝부분에 별도 항목 없이 덧붙여졌다. 마지못해 합의문에 담긴 듯한 답방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후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지역에서 회담을 치러 ‘서울 답방’에 갈음하려는 듯하다.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에 임하는 기본 자세에 대해 조이 제독은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협상이 자유를 위해 공헌할 수 있을 때에만 나서라는 얘기다. 그는 또 “공산 측과 협상할 때 군사력의 위협카드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반대라는 주장이다. 조이 제독은 “그들은 엄포에 넘어가지 않는다. 막강한 군사력을 실제 사용하려는 자세를 취할 때 공산 측과의 협상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에서 유엔군 측 초대 수석대표를 맡았다. 북한군 남일 대장과 이상조 소장, 중국 측 덩화(鄧華) 상장과 세팡(解方) 소장 같은 정치군인을 상대했다. 협상과 언술에 능한데다 기상천외의 꼼수까지 동원하는 공산 측과의 만남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조이 제독은 무용담이나 자기 자랑이 아닌 실패의 경험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실제 조이 제독은 ‘전쟁에서 승리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수용한 것과 같은 정전은 없어야 한다”며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산측은 가장 먼저 회담 장소 선정부터 전략적 판단을 한다. 정전 협상의 경우도 그랬다. 1951년 6월 20일 리지웨이 장군이 덴마크 병원선을 원산항에 정박시켜 협상장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답은 “정전을 원한다면 개성으로 오라. 그러면 대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이 제독은 “유엔사가 휴전이 필요한 입장이라 굽신거리며 공산 측 거점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결국 개성에서 열린 회담장에 앉아보니 북한 측 남일 장군의 의자가 조이 제독의 것보다 4인치(10.16cm)나 높게 배치됐다. 유치한 듯한 이런 계략도 수없이 쌓이면 실질적 선전효과를 나타내게 된다는 게 조이 제독의 판단이다.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공산주의자들은 기필코 돌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조이 제독은 간파했다. 그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서 혹은 선전 목적에서 사건을 만든다”며 “결코 단순하게 발생하지 않으며 공산 측 협상팀에 의해 모의되고 촉발된다”고 설명했다. 협상을 지연시키는 게 상대를 궁지에 몰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게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이라고 조이 제독은 말한다. 의견이 충돌하면 양보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구 합리주의 사고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조이 제독은 “공산 측은 ‘2+2=6’이라고 제안하고는 합의를 끝없이 지연시킴으로써 우리가 ‘2+2=5’라는 절충안에 동의하도록 만든다”고 털어놨다.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반복해 상대의 진을 빼는 수법도 단골메뉴다. “물방울을 떨어트려 돌에 구멍을 내려는 그들의 시도가 목전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서방세계의 피곤함은 계속 남아있게 될 것”이란 게 조이 제독의 분석이다. 공산 측은 상대를 피로하게 만드는 전술이 완전한 협상실패보다는 낫다고 평가한다는 얘기다
북한이 이미 합의하거나 문서화된 경우까지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은 문건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울 경우 “당신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펼친다고 지적했다. 또 협정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무효화 하는 전술도 구사한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와의 협정을 신뢰하는 사람은 낡은 동아줄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나 약속이 아니라 행동만을 믿으라는 조언이다.
조이 제독은 정전협상의 교훈을 던졌다. 무엇보다 적이 정전(대화)을 청할 때 압력을 낮추지 말고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산 측 부대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패퇴하던 1951년 6월 유엔 측이 휴전을 타진한 건 실책이었다는 진단이다. 협상이 시작되자 유엔 측은 지상군 공세를 완화했다. 조이 제독은 “공격작전 압력을 최대한 증가시켰어야 한다. 공산 측이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벌여야 할 후세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얻은 경험을 마음속에 잘 기억해 둔다면, 자유세계와 독재세계의 차후 협상 시 미숙한 협상기술 때문에 소리도 없이 초래될 재앙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구원받을 것이다.”
05.02 '라떼 한잔=北노동자 연봉' 김일성대 앞 커피숍만 8개
평양 입맛 사로잡는 ‘1달러 식당’ … 요리사도 스카우트 전쟁
평양에 외식문화가 번창하고 있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걸 당연시하던 데서 벗어나 어지간하면 밖에서 해결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은 도시락을 싸가는 대신 맞춤형 점심 메뉴로 해결한다. 중산층 이상의 경우 주말에 가족과 함께 고급식당을 찾는 일도 잦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도 눈길을 끈다. 평양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 중인 식도락 문화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시장경제 확산 이면을 들여다봤다.
4가지 반찬에 국 포함 점심 메뉴
인기 끌자 기관 나서 경쟁 치열
김일성대 앞 빌딩 커피숍만 8개
부담스런 가격 불구 학생 몰려
장마당엔 중국산 대신 북한 제품
상인들 대북 제재 해제 기대감
평양 시내 중심가엔 요즘 ‘한 딸라’ 식당들이 성업 중이다. ‘1달러’의 북한식 표현인 이 식당은 점심때가 되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한끼 식사를 1달러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찬 4가지와 국이 딸려 나오는 메뉴는 노동당과 내각의 사무원이나 중간급 이하 간부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인근 기관이나 공장·기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자주 이용한다. 밥값은 달러로 받는다. 달러가 없을 경우엔 암달러 시세로 환산한 북한돈 7000원으로 치를 수도 있다.
단돈 1달러에 점심을 해결할 수 있으니 언뜻 보면 값싸게 느껴진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 수준에서 보면 만만치 않은 돈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3000원 정도다. 공식 환율이 1달러당 150원가량이니 20달러 안팎이다. 하지만 암달러로 환산할 경우 월급이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점심 한 번 먹는 데 두 달 치 월급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북한돈으로 받는 월급 외에 달러 수입이나 뇌물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북 정보 당국은 평양의 중산층 이상 4인 가구의 경우 월 200~300달러의 생활비가 드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손님이 몰리자 각급 기관에서 너도나도 식당을 차리고 유사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대북 투자사업을 벌여온 재외동포 인사는 “적지 않은 달러 수입을 챙기다 보니 북한 기관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며 “최근에는 손맛 좋은 인기 주방장을 놓고 스카우트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상업기관 사이의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비 계층의 요구 수준에 맞춰 손님을 끌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초기 평양 시내 일부 식당에서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등 매출 증대에 나섰던 것이 이젠 ‘1달러 식당’ 같은 맞춤형 서비스가 등장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말 외식을 즐기는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사업가는 “평양 보통강호텔에서 1인당 200달러 안팎인 코스요리를 4인 가족이 함께 즐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나 권력·외화벌이 기관 등에서 일하는 특권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내 식당에서 스파게티와 피자·햄버거 등 서구 음식을 즐기는 것도 익숙해졌다. 김정은 집권 초기에만 해도 ‘양풍(洋風)’이라며 꺼렸지만 이젠 스스럼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조성된 뉴타운인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는 각종 식당이 즐비하다. 53층 주상복합 건물을 비롯한 이곳 고층빌딩에는 모두 600여 개의 식당이 들어서 성업 중이라고 한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곳이 적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과 평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엔 어느 집에서 뭘 팔고, 어떤 업소가 맛집인지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어느 ‘닭튀기’(닭튀김의 북한식 표현) 집이 튀김옷이 바삭하고 감칠맛 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얘기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커피를 즐기는 문화도 퍼지고 있다. 과거엔 외교관·주재원 출신이거나 해외 유학경험이 있는 이들이 주로 호텔이나 외화식당에서 제한적으로 커피를 맛봤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생·청년층이 커피 소비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얼마 전 김일성대 앞에 들어선 현대식 건물엔 커피숍만 무려 8개가 오픈했다”며 “평양에 불고 있는 커피 바람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문제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이곳의 경우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5달러다. 일반 노동자의 일 년 치 급여에 해당하는 돈이다. 라떼의 경우 6~7달러에 이른다. 소식통은 “학생들에게 ‘너희 수준에서 지나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커피 한 잔 마신다고 큰일 날 건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일성대 입학으로 ‘가문의 영웅’이 된 자신을 위해 수십 명의 가족과 친지가 달러 용돈을 보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 북한의 커피 소비량은 극히 미약했다. 국제커피기구(ICO)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커피를 연평균 1만9000 포대(60㎏짜리) 수입했다. 1년에 평균 7잔 정도의 마시는 셈으로 한국의 약 40분의 1 수준이다.
그렇지만 최근 커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가격도 껑충 뛰어 과거 금릉커피숍 등 평양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400원, 찬모카(아이스모카) 900원 수준이었지만 요즘엔 시설을 현대적으로 꾸미거나 고급 원두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올려받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막대커피’(커피믹스)와 유사한 제품을 ‘삼복(三福, 김일성 3부자의 은덕을 의미)’이란 브랜드로 출시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미 상업용 위성이 파악한 북한 장마당은 482개에 이른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적어도 26개가 새로 생겼고, 109개가 확장·리모델링했다는 게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의 집계다. 최근엔 중국 제품의 비중이 줄어들고 북한 물품이 늘어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산의 품질이 올라가면서 주민들이 “그동안 중국이 물건도 아닌 걸 팔아먹었다”고 비난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장마당을 거점으로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 한류문화의 유통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한국 유명 가수의 방북 공연 실황을 담은 동영상이 가장 인기다. 김영수 교수는 “북한 당국이 금기시하는 공연 영상을 담은 새끼손톱 크기의 마이크로SD 카드를 콧구멍에 찔러 넣은 뒤 밀거래하는 속칭 ‘콧구멍 카드’ 수법도 등장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20일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 노선의 결속을 선언하고,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한다는 새 전략노선을 내놓았다. 경제난 해결로 민심을 잡으려는 포석이다. 조봉현 부소장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 북한 내부사정을 파악해보니 ‘장마당이 들떠있다’고 하더라”면서 “남북관계 진전과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북한 장사꾼과 ‘돈주’(장마당 유통으로 돈을 번 신흥자본가)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05.09 김정은 정권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렌즈
렌즈는 피사체의 빛을 모으거나 발산시켜 광학적 상(像)을 만들어 낸다. 그 모양새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된 결과물을 보여준다. 전혀 다른 색깔로 둔갑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일그러진 렌즈는 제대로 된 상을 맺지 못한다. 특정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우리 인식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반도를 뒤흔든 남북 정상회담은 ‘우리가 과연 제대로 된 대북인식의 틀을 갖고 있었나’하는 숙제를 던졌다.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고민을 더 깊어지게 하는 ‘북한 돋보기’의 얼개를 들여다봤다.
치밀한 ‘비핵화’ 공세 펼치는 북
우리 정부 대응은 어수룩해 보여
대북전단 단속 엄포 놓으면서도
노동당 선동·해킹 도발엔 침묵
국민 눈높이 맞춰 자존감 지킬 필요
남북관계 속도 낼수록 신중해야
국면 전환이 절실할 때 북한 노동당의 전략가들은 치밀한 준비를 한다. 도발 쪽으로 돌아설 땐 이런저런 억지를 쓰며 빌미를 만든다.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다 유화 전술로 급선회하거나, 대화 테이블로 걸어 나올 때는 더 정교한 변곡점을 그린다. 자기들 나름의 명분과 논리를 중시하는 데다 김씨 세습정권의 명운이 걸려있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흔한 수법은 상대에 대한 극렬한 비방과 중상모략이다.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을 것처럼 앙앙불락한다. 북한 노동신문은 8일 일본 자위대의 해상훈련 등을 비난하며 “일본은 백년숙적”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6일자 논평에선 일본 정부가 대북제재 지속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해 “억년 가도 우리의 신성한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일본과의 대화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이 금명간 가시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핵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에선 이런 분위기가 더 물씬 풍긴다.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을 앞두고 대화국면이 본격화할 상황에서 북한은 “우리 공화국이 핵을 포기할 것을 바라는 것은 바닷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노동신문 2월 23일)이란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열흘 뒤 대북특사로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협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 실장의 방미길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됐다. 지난달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선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으로 담겼다. 김정은 위원장은 회담 석상에서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북)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냐”라고 말했다는 게 청와대의 전언이다. 김정은의 말이 진정성이 있느냐는 머지않아 드러나겠지만, 비핵화 문제를 북·미 협상 카드로 쓸 것임을 내비친 속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은 꽤 오랜 기간 지금의 국면을 준비해 왔다. 적어도 지난해 11월 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의 발사를 계기로 이른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김정은 신년사를 통한 대화공세와 2월 평창올림픽 개·폐막식 참석,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서울에 파견하는 문제까지 촘촘한 시나리오가 짜여졌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온 북한 응원단이 이미 지난해 말부터 조직돼 사상교양과 연습을 진행했다는 첩보는 북한의 정교한 대남전술 단면을 엿보게 한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와 사회의 대응은 어수룩해 보인다. 첫째, 기준점조차 없는 대북 정보판단과 인식의 문제다. 북한 체제나 김정은을 비롯한 핵심 인사에 대한 평가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들쭉날쭉이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미국은 지난해 1월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그가 관장하는 선전선동부가 “억압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주민을 세뇌하고 있다”는 이유다. 이런 정보를 공유하던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이 닥치자 입장을 확 바꿨다. 회담에 관여한 장관급 인사는 “북한 최고지도층에 김여정 부부장 같은 성격의 사람이 있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만찬에 참석했던 한 정계인사는 “북한의 딱딱한 여성이 아니라 서울에서 부잣집 딸로 밝게 자란 ‘나이스 레이디’였다”며 “애교가 펄펄 넘치는 귀염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정은이 정상회담 석상에서 김여정 부서의 작품이라며 자랑하듯 꺼낸 ‘만리마 속도’는 북한 주민을 노동력 착취로 내모는 ‘노력경쟁 운동’의 대명사다.
둘째로 지적되는 건 오락가락하는 대북 정책부처의 입장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서해 평화수역’과 관련한 국방부의 논리는 말 그대로 ‘녹피(鹿皮)에 가로 왈(曰)’ 하는 식이다. 보수 정부 때는 이곳에서의 공동어로가 오히려 남북 간 군사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논리를 내놨던 국방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 10.4 합의와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선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와 어로보장에 효과적이라며 카멜레온식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대북전단 문제도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전단 살포가 “판문점 선언의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5월4일 대변인)이라며 단호한 대처를 밝혔다. 당국 합의를 이유로 탈북단체를 포함한 민간의 표현자유를 억압할 수 있느냐는 논란과 함께 남북 상호주의에 대한 비판을 야기했다. 김영철이 이끄는 당 통일전선부가 해외 서버를 두고 ‘우리 민족끼리’ 등 대남 선전·선동 사이트를 계속 운영 중이고, 북한 소행의 해킹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북측에 운도 떼지 못했다.
셋째로는 통일·안보 분야 일부 전문가 그룹의 문제다. 정상회담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김정은에 대한 리더십 재평가를 주장하던 한 전문가는 “김정은 집권 후 140명이 숙청됐는데, 이는 김정일 집권 때(2000명)의 7%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펼치다 비난을 자초했다. 또 김정은에 의해 처형된 고모부 장성택에 대해 “(기쁨조 여성 등과 낳은) 혼외자가 15명”이라는 등의 미확인설을 내놓으며 망인(亡人)에게 죽음의 책임을 돌리는 듯한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학술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펼친 근거는 ‘정통한 소식통’ 뿐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원로 북한학자는 “TV 등에 출연한 대학교수·전문가들이 청와대 참모나 정부 당국자와 다름없는 찬사 일변도의 처신을 하는 것은 건전한 남북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에 속도가 붙을수록 더욱 신중한 대북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무엇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자신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청원한 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이산가족의 입장을 고려 않고 집권 여당의 대표가 이런 식으로 불쑥 나선 건 문제라는 얘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과거 남북회담차 평양에 간 우리 대표단 가운데 실향민을 북측이 재북가족을 동원해 회유하려 한 사례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05.16 김정은이 공들이는 ‘평양 강남’ … 트럼프 월드 들어서나
북핵 포기를 조건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선물 보따리가 연일 몸집을 불리고 있다. 미국은 “우방인 한국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북한 김정은에게 보내고 있다. 북한판 ‘마셜플랜’ 제공과 함께 평양 트럼프 타워와 맥도널드 매장 개설까지 거론된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철도·항만 등 인프라 재건을 위한 ‘신(新) 북방정책’ 로드맵을 곧 선보인다. 서울과 서방 투자가들은 당장 평양으로 내달릴 기세다. 한반도 화해 급류를 타고 달아오른 대북투자 붐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지난해 12월 ‘경제개발구’ 지정
1970년대 압구정·개포와 유사
북·미 급진전에 개발 기대감
주민 충격 완화할 특구 역할도
“열악한 투자환경 고려할 필요”
완전 비핵화까지 제재 변수도
평양직할시엔 북한 전체 인구(2490만명)의 10% 가량인 250만 명이 산다. 노동당원이나 군부·내각의 간부, 엘리트 계층 등이 주로 거주하는 까닭에 일반 주민들에겐 선망의 도시다. 버드나무가 많아 ‘유경(柳京)’이란 별칭을 가진 평양을 북한 당국은 ‘주체혁명의 수도’로 내세운다. 풍부한 물줄기를 가진 대동강이 동서를 가로지는 건 서울 한강의 모습과 유사하다. 서울에도 있는 꼭같은 지명 몇 곳이 눈길을 끈다. ‘종로’가 있고 ‘강남’이 있다.
평양 중심부에서 서남쪽 강변에 자리한 강남 지역은 아직 미개발지구다. 논밭과 과수원이 대부분이라 평양 시민들에게 과일·채소를 공급하는 지역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마치 1970년대 서울 압구정이나 개포 지구과 같은 수준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해 12월 말 이 곳을 ‘경제개발구’로 지정했다. 2013년 5월 경제개발구법을 만든 이래 22번째의 구역 지정이지만, 지방이 아닌 평양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북한은 경제개발구를 ‘다른 나라의 투자를 끌어들여 경제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특구’라고 설명한다. 향후 외자유치를 통한 평양판 강남 신도시 개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올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제기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리조트 건설에 북한이 전력투구하는 것도 제재 이후를 대비한 포석이란 말이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경제개발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작품이다.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6·28조치(2012년), 기업 자율권 부여 등을 담은 5·30조치(2014년)를 포함한 시장경제 요소 도입과 함께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정책의 한 축을 이뤘다. 지난해 말까지 경제특구 5개, 지방급 경제개발구 19개 등 모두 27개가 지정됐다. 신의주와 혜산·만포 등 중국과의 변경 지역이나 청진·나선(나진과 선봉)·흥남 같은 규모 있는 항만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많은 곳을 개발구로 지정하고, 제대로 된 개발 청사진이나 투자 유치 전략을 선보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 개발 하자는 건 한 곳도 하지 못한다는 얘기랑 같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졌던 강남경제개발구가 다시 각광을 받게된 건 북·미 관계의 진전이 급물살을 타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6월 12일 상가포르) 물밑 조율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무기 프로그램을 완전 폐기하면 미국 민간기업의 대북투자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세금을 퍼부을 수는 없지만 민간 회사가 들어가 전기를 공급하고 농업투자와 인프라 건설을 추진하는 건 가능할 것이란 게 폼페이오 장관의 설명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평양 대동강변에 트럼프 타워가 건립되고, 맥도널드 매장이 문을 열 것이란 관측까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두했다. 미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한 체제의 개혁·개방 지표로까지 받아들여지는 햄버거 매장이 평양에 상륙하는 상황이 현실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회계·컨설팅 전문기관인 삼정KPMG 대북비지니스지원센터 조진희 수석연구원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트럼프 타워의 건립과 미국 식음료 브랜드의 평양 매장이 진출하게 된다면 대동강변 강남경제개발구에 조성될 뉴타운에 입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평양 중심구역의 대동강변 등에는 이미 김정은 지시에 따라 53층 주상복합 건물과 46층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선 상태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강남경제개발구를 지정한 걸 두고 미국과의 유화모드 선회를 결심하면서 대북투자 유치를 겨냥했기 때문이란 진단도 나온다. 평양 주민들이 받게 될 충격을 완화하고 미국 기업이나 인력의 대북진출 초기 적정수준의 통제를 위해서도 평양 중심가보다는 특구 성격의 강남개발구에 유치하려 할 것이란 해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미 협의 과정에서 미국 측이 ‘평양에 성조기를 단 캐딜락 차량과 미국인이 줄지어 다녀도 문제 없겠냐’라고 북측에 타진했다는 건 그만큼 북한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대규모 주택 건설은 체제 선전용이나 당국 주도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개인자본이 투입된 아파트 건설과 쇼핑센터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삼정KPMG 측의 분석이다. 서구식의 아파트 분양 모습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주택 임대업이 출현하고 소(小) 토지와 시장 매대를 사고파는 현상도 점차 번지고 있다고 한다. 삼정KPMG 측은 최근 펴낸 『북한 비지니스 진출전략』에서 “건설붐이 일고 있는 평양은 뉴욕 맨해튼과의 합성어인 ‘평해튼(Pyonghattan)’이 낯설지 않은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건설투자 비중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약 14% 수준이다. 2020년엔 11%, 2030년엔 9% 정도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업계 쪽에서 북한 인프라 건설 참여를 통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남북 교류시대와 통일에 대비한 인프라 지원이 남북 상생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통일독일도 구 동독 지역의 노후화된 인프라와 산업시설을 재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여전히 열악한 북한의 투자 환경을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북·미 간 논의에도 진전이 있는 듯한 분위기지만 실제 이행단계까지 마무리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와 반출, 미국 내 이전까지 마무리되기 전에는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의 수위를 일정 정도까지 유지할 공산이 크다.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처럼 남북관계 변수나 북한 내부의 사정에 따라 돌출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건설업체의 진출이나 대규모 투자의 경우 자재·장비의 반출이 어려워지거나, 짓고 있던 인프라를 몰수 당하는 일도 닥친다. 조진희 수석연구원은 “대북제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선 중국·러시아 등과의 협력투자를 통해 우회하고, 특구 지역을 중심으로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는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05.23 "北 비운의 왕세자 김정철, '마이웨이' 부르며 눈물"
평양 서기실 뒤흔든 태영호의 ‘런던 61시간 비망록’
북한 김정은 권력의 베일 하나가 벗겨졌다. 동생 때문에 후계 자리에서 밀려난 뒤 은둔해온 김정철 얘기다. 여동생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의 핵심 측근 실세로 활발한 공개 활동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정철은 권력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그런 그를 세상에 끌어낸 건 탈북·망명한 엘리트 외교관이다. 김정은의 비서 조직인 노동당 서기실에까지 파장을 던진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증언을 토대로 ‘비운의 왕세자’ 김정철의 감춰졌던 삶을 들여다본다.
팝 공연 보러 영국 찾은 김정철
동생 김정은 서기실이 일정 챙겨
한 밤 도착해 “음반 가게 가자”
전자기타 구하려 100㎞ 달려가
호르몬계 질환설은 근거 없는 듯
‘마이웨이’ 부르며 눈물 흘리기도
“런던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음반 판매점만 생각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김정철(37)은 대기하던 북한 대사관 차에 오르자마자 “런던 옥스퍼드 거리에 있는 HMV(영국 최대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체인점)로 가자”고 했다.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며 ‘내일 오전에 가보자’는 대사관 측 권유에 김정철은 “문을 두드리던지 전화를 하면 되지 않냐. 외교관이 부탁하면 주인이 나오지 않겠나. 그만한 인맥도 없냐”며 다그쳤다. 공항에서 런던 시내까지 2시간은 걸린다는 말에 김정철은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호텔로 향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철을 첫 대면한 태영호(56)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서방 음악에 매료된 광적인 팬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식으로 나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가 김정철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5월 19일이라고 한다. 이튿날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시작된 세계적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턴의 공연 관람을 위해 김정철은 모스크바를 경유해 영국에 왔다. 태 전 공사는 최근 펴낸 책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담고 있다.
김정은 혈족을 의미하는 소위 ‘백두혈통’인 김정철의 런던행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됐다. 두 달 전인 그해 3월 김정은(34) 국무위원장의 서기실을 통해 비밀 지령이 내려졌다. “수령의 신변 안전과 관련되는 특별사항”이란 암호전문을 통해 공연장의 가장 좋은 좌석을 예매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4월 말엔 차관급 선발대가 현지에 도착해 준비작업을 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이 김정철을 안내하고 통역까지 맡게 된 건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당 국제부 8과(통역 담당) 소속으로 김정은 전담 영어 통역을 맡은 김주성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철의 런던 체류 61시간은 음악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런던의 유명 악기상가인 덴마크 거리에 들어선 김정철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전언이다. 김정철은 상점에 놓인 기타를 골라잡아 즉흥 연주도 했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다고 한다. 상점 주인이 “앨범을 낸 적이 있는가”라고 궁금해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수행원에게 ‘평양에서도 (김정철이) 기타를 치는가’라고 묻자 “밴드를 조직해 내부 공연을 자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릭 클랩턴 열성 팬인 김정철의 면모는 공연장 안팎에서 확인됐다. 김정철은 입구 매대에서 티셔츠와 컵·열쇠고리·앨범 등 기념품을 다량 구입했다. 공연에 도취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고, 너무 흥분해 주먹을 쳐들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온 뒤에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듯 술을 먹었고 수행원들의 미니바까지 비웠다.
서방 언론에 노출된 뒤에도 김정철은 한 차례 더 공연관람을 강행했다. 그는 “여기까지 와서 기자들 무서워 공연을 보지 않고 돌아가겠는가. 무조건 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공연장에 영국 당국이 경호원을 투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져야 했다.
런던 체류 당시 김정철은 특정 브랜드의 미국산 전자기타를 꼭 사고 싶어 했다고 한다. 결국 100㎞ 떨어진 지방 도시의 대형 악기 판매점까지 찾아갔다. 가격은 2400파운드(우리 돈 350만원)였다. 간절히 원하던 걸 손에 넣은 김정철은 기타를 꼭 껴안았고, 그 자리에서 40분 가까이 연주를 했다. 그는 “이 기타를 사려고 여러 대사관에 전문을 보냈는데 왜 찾지 못했을까”하며 한탄하기도 했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전언이다. 김정철은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품에 안고 있을 정도였다.
태 전 공사의 증언은 김정철과 관련한 비교적 소상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건 김정철이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 방문 때 그는 옥스퍼드 거리의 셀프리지백화점에서 아동복을 샀다. “여기까지 와서 아이 옷도 안 사가면 나쁜 아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싶다며 직접 들려 주문을 했고, 맛있게 먹었다. 술을 즐겼고 줄담배도 피웠다. 한때 후계 1순위에 거론됐지만 호르몬계 질환으로 여성처럼 목소리가 바뀌고 가슴이 불거져 탈락했다는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태 전 공사는 2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정철의 목소리에 전혀 이상이 없었고, 외관으로 볼 때도 호르몬제 부작용 등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철에게는 아무런 호칭이 없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을 도와주고 있다면 일정한 직책과 호칭이 있어야 한다”며 “내가 본 김정철은 음악과 기타에만 미쳐있는 사람이며, 김정일의 아들이자 김정은의 형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여동생 김여정(29)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직함으로 서울을 특사 방문하고, 김정은 방중에 수행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태 전 공사의 책 발간에 발끈한 건 김정철의 신상은 물론 김정은 서기실의 내막이 폭로된 데 따른 불만 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은의 친형이 서방 문화에 빠져 있고, 맥도널드 햄버거를 즐긴다는 등의 대목은 북한 정권의 치부란 점에서다. 대북 소식통은 “서기실 책임자인 김창선 실장이 자신에게 질책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선수를 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태영호 전 공사를 비롯한 탈북 인사를 ‘인간 쓰레기’로 폄하하고, 이들의 대북비판을 ‘판문점 선언 위반’ 이란 논리로 꿰맞춰 가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런던을 찾은 김정철은 차량 이동 중 태영호 전 공사가 애창곡인 ‘마이 웨이’를 부르자 흥이 나서 따라 불렀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전언이다. 절대권력을 거머쥔 동생 김정은이 걸림돌로 여긴 이복형 김정남을 어떻게 무참히 살해하는지 김정철은 목도했다. 그의 눈물은 권력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아야 하는 회한일 수 있다. 세계적 팝 아티스트의 공연장을 찾아 숨바꼭질해야 하는 폐쇄국가 북한의 현실을 절감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정철의 마이 웨이는 좀체 끝나기 어려워 보인다.
05.30 숙청 무풍지대 북 외교라인 … 생존 비결은 ‘관용 문화’
무자비한 숙청이 벌어져 온 김정은 정권 내부에 딴 세상인 곳이 있다. 북한 대외·외교 정책의 본산인 외무성이다. 군부와 노동당·내각은 물론 권력 핵심 기구인 국가보위성과 군 총정치국 간부도 김정은 눈 밖에 나면 해임·강등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한다. 유독 외교 관리들만 열외다. 군부 원로나 베테랑 대남라인도 피해가지 못하는 숙청의 칼날에서 무풍지대로 남을 수 있는 그들만의 생존법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최선희 비난 담화에 트럼프 초강수
문책설 불구 실무회담 대표로 건재
대체 인력 없고 회담 임박해 부담
태영호 “외무성 관용적 태도 때문”
처형·몰락한 대남라인과 차이
살아남은 건 군부출신 김영철 뿐
북한 권력 내부에서 실수는 좀체 용납되지 않는다. 이른바 ‘최고존엄’이라고 떠받들어지는 김씨 일가와 관련한 사안은 특히 그렇다. 주민 삶을 옥죄는 ‘유일 영도 10대 원칙’은 김일성·김정일의 ‘권위’를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훼손하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절대 융화묵과하지 말고 비상사건화해 비타협적 투쟁을 전개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야말로 숨 쉴 틈이 없어 보인다. 김일성 초상화 액자의 먼지를 닦지 않았다거나, 사소한 말실수를 했다가 결국 탈북·망명의 길에 나섰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는 건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잘 나가던 유명 인사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8일 오후 8시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중국 방문 소식을 내보냈다. 이틀간의 전격적인 방중 일정을 마치고 이날 평양으로 귀환한 장면을 처음 공개하는 17분 분량의 보도였다. 최고지도자 동정을 일컫는 소위 ‘1호 보도’ 전담인 이춘희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평소와 달리 돋보기 안경까지 쓰고 등장한 이춘희는 초반부터 말을 더듬거나 발음이 꼬이는 실수를 연발했다. 당혹감 때문인지 시선 처리와 호흡이 불안했다. 46년 차 베테랑답지 않게 같은 문장을 두 번이나 읽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비밀에 부쳐졌던 김정은의 중국 방문 소식을 저녁 종합뉴스에 급히 맞추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이춘희는 TV에서 사라졌고, 26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소식은 후배 아나운서가 바통을 이어받아 전했다. 21년 전 김일성 사망 3주기 방송을 하던 여성 아나운서가 “김정일 수령 사망 3년이 됐다”는 대형사고를 치고 ‘실종’된 이후 최악의 방송 참사로 기록될 듯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 외무성의 대미(對美)라인도 지난주 아찔한 경험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장외 기싸움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지나치게 압박하다 자칫 회담판을 깰 뻔한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외무성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16일 담화에서 “조·미 수뇌회담(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미국에서 대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는 건 극히 온당치 못한 처사”라며 포문을 열었다. 24일엔 최선희 부상이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워싱턴 측의 북핵 폐기·이관 요구를 비난하며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해 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과의 신경전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말폭탄이었지만 사태는 꼬였다. 불과 14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서한을 공개하는 초강수를 둔 때문이다. 트럼프는 회담 취소 통보가 북측의 비난담화 때문임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은 즉각 꼬리를 내렸다. 김계관 제1부상은 “언제 어디서든 미국과 만날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을 갈망하고 있음을 알렸다. 최선희 담화에 대해선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이 대목을 두고 김계관이 최선희에게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구태의연한 으름장 공세로 미국과의 정상 회담판을 파국으로 몰고 간 대미라인에 문책이 따를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김정은이 연초부터 공들인 북·미 담판을 헝클어트렸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최선희 부상이 판문점 비공개 북 ·미 실무협의에 북측 대표로 나온 것으로 파악되면서 관측은 빗나갔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 안팎에선 대미사안을 챙길 북한 외교 엘리트 풀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년 전 숨진 강석주 외교담당 부총리에 이어 김계관-이용호(외무상)-최선희로 이어지는 대미 라인은 후보 선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단출한 편이다. 대북 소식통은 “최선희에 대한 김정은의 신임이 두터운 데다, 설사 문책을 검토한다 해도 전투에 임박해 장수를 교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전하는 외무성의 속사정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다른 기관처럼 김정일·김정은 지시라고 무조건 “알겠습니다”하고 집행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있다고 한다. 하달 내용이 비현실적이라고 판단되면 ‘지시대로 하면 이런 점은 좋겠지만 간혹 이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보고한다. 재차 상부 검토가 이뤄지고 외무성의 부담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화폐개혁 지시를 그대로 밀어붙였다가 주민 반발 책임을 뒤집어쓰고 총살당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의 경우와 비교된다는 얘기다.
외무성 구성원들의 관용적 태도도 숙청의 피바람을 비껴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태 전 공사는 지적한다. 그는 최근 펴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2013년 말 장성택 처형 당시 외무성의 대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장성택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대사·참사 등이 평양으로 소환될 때 김계관 제1부상은 “소환 통보 때 상주국 정보요원이 탈북을 권유했지만 평양의 하늘만 바라보고 조국에 들어온 충성심 높은 동무들”이라며 선처를 요청하는 서한을 김정은에게 썼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3~4년 주기로 해외 근무를 하는 외무성 성원들은 북한 체제의 불합리성을 잘 알고 있다”며 “동료의 체제불만 표출을 고발하기보다는 웃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상호비판 모임에서도 신사적 태도를 지키고 홍위병식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반짝 출세길을 걷다 대부분 몰락한 대남라인과 비교된다. 태 전 공사는 “김용순·김양건(전 통일전선부장)은 목격자 한 사람 없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통전부 부부장 최승철과 한시해 등은 총살됐다”고 말했다. 남북 장관급회담 단장이던 김영성을 비롯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대남접촉을 주도한 북측 인사 상당수도 행적이 묘연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극비 방한한 국가안전보위부 류경 부부장은 이듬해 초 간첩혐의로 처형됐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서 한국과 사업한다는 건 한 발을 저승에 걸어놓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남북대화에 관여한 간부 중 남북 기본합의서(1991 체결) 이후 현재까지 건재한 쪽은 군부 출신인 김영철 통전부장 딱 한 라인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