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단8/ 이영종 편4/ 평양 오디세이2/ 2015.01.06 북한 장마당에 LED TV·노트텔까지 … "생수 없어서 못 팔아" - 12.06 “김정은, 통전부 30년간못한일최순실이해냈다생각할것”
북한 진단8/ 이영종 편4/ 평양 오디세이2/ 2015 -2016 중앙일보
2015.01.06 북한 장마당에 LED TV·노트텔까지 … "생수 없어서 못 팔아"
▲2013년 9월 평양 중심가인 영광거리 뒤편의 메뚜기시장에서 상인들이 치약·샴푸 같은 생필품과
돼지고기로 보이는 육류를 판매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핵·미사일 과학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찬사나 훈장·표창 뿐 아니라 주택과 가전제품 같은 물량공세도 이어집니다. 이들을 위한 과학자거리를 조성하도록하고 넓은 평수의 고층 아파트도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아파트 공터에 텃밭을 만들어주라는 특이한 주문을 합니다. 석달 전 위성과학자지구를 방문했을 때도 “주택지구에 과학자들을 위한 텃밭도 조성해 놓고 배추·무우를 비롯한 남새(야채)를 재배하고 있는 걸 보고 기뻐했다”는 게 노동신문(10월14일자) 보도입니다.
"미국 할아버지가 수령님보다 세"
달러화 인기 치솟고 북 화폐 찬밥
핵·미사일 과학자 아끼는 김정은
채소 내다팔게 텃밭 딸린 집 선물
보통 30~50평 정도 규모인 텃밭은 협동농장과 별개로 개인이 가꾸고 수확할 수 있는 밭인데요. 텃밭에서 나온 작물을 내다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죠. 공들여 가꾸다보니 단위 면적당 수확이 공동경작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최고지도자가 첨단 과학자들에게 텃밭을 가꾸도록하는 상황은 북한 경제의 현실을 엿보게합니다. 텃밭작물을 팔수 있는 곳이 ‘장마당’입니다. 북한식 시장을 통치하는 말이죠.
정권수립 초기 북한엔 3일장, 5일장 같은 재래식 장마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58년 8월 개인상업을 폐지시키고 국영유통이나 협동상업으로 만든 뒤 모두 폐쇄됐습니다. 주민들이 필요로하는 상품이 충족되지 못해 1964년 농민시장 형태로 장마당이 운영됐죠. 소련과 동구권 붕괴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1990년대들어 장마당에 대한 의존은 커졌습니다.
농민시장으로 불린 초기 장마당엔 채소와 과일·명태 같은 농수산물이 주를 이뤘는데요. 최근들어선 거래 품목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이젠 “고양이 뿔 말고는 없는게 없다”고 할 정도라는군요. 과자와 비누·치약 같은 생필품이 인기라고합니다. 개성공단에서 흘러나온 의류와 초코파이, 간식용 소시지, 막대커피로 불리는 커피믹스도 은밀히 거래된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평양과 지방 도시엔 중심가 뒷골목에 ‘메뚜기 시장’도 성행중입니다. 보자기를 펼쳐놓고 샴푸나 의약품 등을 팔다가 단속반이 나오면 곧바로 짐을 싸 이리저리 이동하며 팔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군요.
장마당에선 생필품과 함께 남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아이템이 인기라고 합니다. 국내 탈북단체들에 따르면 지난 한해 북한 장마당에선 평판TV로 불리는 LCD나 LED텔레비전과 도난경보기, 짧은 여성치마 등이 베스트셀러였다는군요. 평양판 한류(韓流)로 불리는 한국 영화·드라마를 손쉽게 볼수 있는 장비인 일명 ‘노트텔’(EVD플레이어)도 중국에서 은밀히 반입돼 거래된답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생수를 먹는 경우도 늘고 있어, 한 병에 1300원하는 높은 가격에도 물건이 없어 못팔 정도라고 하는군요. 중국산 생수병을 들고 거리를 다니는 걸 부의 상징이나 최신 유행으로 여기는 풍조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북한 시장에서 가장 대접받는 화폐는 미국 달러입니다. 이른바 ‘달러화(dollarization)’로 불리는 북한 경제의 달러중심 거래는 점차 심화되는 추세입니다. 한때 북한 당국이 시장에서 달러를 퇴출시키려 평양 등의 외화상점이나 외국인 상대 매장에서 유로화만을 결제토록했지만 달러쏠림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겁니다. 중국 위안화도 맥을 못추게 됐답니다. 대신 북한 화폐는 거의 퇴출위기에 처했다고합니다. 장마당에서 김일성 초상이 새겨진 북한돈은 속칭 ‘북데기’라고 불린답니다. TV 한대에 인민폐 1000위안 정도 하는데 이걸 북한돈으로 바꾸면 한 보따리가 되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군요.
주민들 사이에는 “미국 할아버지(100달러에 새겨진 벤자민 플랭클린을 지칭)가 제일 힘있고, 중국 할아버지(100위안에 그려진 모택동)가 그 다음, 수령님(북한화폐의 김일성을 지칭)이 제일 마지막”이란 말이 돌고있다고 합니다.
북한 장마당에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돈주’라고 불리는데요. 정작 돈과 상품유통을 쥐락펴락하는 큰손은 화교상인이라고 합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북한 경제의 실상을 김정은 보다 잘 알고 있는게 화상(華商)”이라고 전합니다. 화교 상인들은 중국으로부터 원료를 들여와 북한의 공장에서 자기들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합니다. 대북 소식통은 “중국은 화교 상인들을 통해 북한 경제의 실상을 비교적 소상한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장마당의 확산은 공식적인 경제부문이 축소되고, 대신 사적 경제영역이 늘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상품공급 부족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국가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식은 더 확산됐다는데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오늘도 장마당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가 봅니다.
01.13 김정은 지시로 기내식·유니폼 바꿨지만 … 고려항공 또 꼴찌
http://news.joins.com/article/16916669
[영상 JTBC 2012년 6월 영상]
600개 항공사 중 만족도 최하위
기종 노후화 심하고 영어 뒤처져
외화난으로 시설 개선 힘들어
구명재킷 없고 좌석벨트도 고장
북한 고려항공이 또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전세계 600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4년 연속 꼴찌를 차지한 겁니다. 공항 및 항공사 시설·서비스 평가기관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영국 스카이트랙스(Skytrax)는 지난주 고려항공 탑승객을 대상으로 56개 항목의 서비스 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기종 노후화 정도,기내식, 승무원의 영어실력 등 대부분 항목에서 만점(별 5개)에 못 미치는 별 1개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소식에 누구보다 발끈할 사람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일겁니다. 집권 몇 달 후인 2012년5월 평양 순안비행장을 찾아 기내식의 품질을 끌어올리고 승무원의 의상도 세련된 스타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결과는 참담하기 때문입니다.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조기유학하며 서방국가의 수준급 항공서비스를 체험한 김정은에게 고려항공의 낙후된 시설과 서비스가 성에 찰리 없겠죠.
방북 취재차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과 지방도시를 여러차례 오간 저로서는 북한 유일의 민용항공에 대한 낮은 서비스 평점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무엇보다 1960년대 옛 소련에서 도입한 낡은 항공기가 국제노선에 투입되다 보니 안전에 문제가 있어보이는데요. 지난해 11월 최용해 노동당 비서를 태운 고려항공 특별기가 러시아로 출발했다가 기체이상으로 곧바로 회항한 게 대표적입니다. 김정은 특사가 탄 비행기조차 이런 일을 겪은 겁니다.외화난으로 새 비행기 도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고려항공 자산(주기종 29대와 보조기종 35대 등 총 64대 민항기 보유)은 20년 넘게 거의 변함없는 실정입니다.
제가 고려항공기에 올라 가장 놀란 건 좌석 밑 구명재킷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점이었는데요. ‘걸상띠(좌석 벨트)를 매시오’라고 붉은 글씨가 적혀있었지만 고장난 경우도 목격했습니다. 스튜어디스와 당 간부로 보이는 인민복 차림의 몇몇 남성들은 이륙 때도 자리에 버티고 서서 잡담하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기내식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당연합니다. 평양 고려호텔과 마찬가지로 빵·커피·고기의 질이 낮고 다양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흠입니다. 수입 식음료를 제공하면되겠지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이는데요.고려항공 이용 경험이 있는 중국과 서방의 북한 방문객들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볼품 없는 북한식 햄버거 기내식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기내 면세품은 북한 술·담배와 수예품이 전부입니다. 신문·잡지도 선전용 화보인 ‘조선’과 노동신문, 영자지인 평양타임스만 있을 뿐 서방 발간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영상 유투브 이용자 Y Yamauchi가 지난해 7월 공개한 영상]
http://news.joins.com/article/16916669
사실 고려항공에는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의 열악한 현실이 응축돼있죠. 과거 프로펠러 소형 전세기를 이용할 때 이를 절감할 수 있었는데요. 평양을 출발해 원산 갈마비행장에 착륙하자마자 활주로 한가운데서 갑자기 조종사가 시동을 꺼버려 의아하게 생각했죠. 잠시 후 군용 지프 한대가 달려오더니 랜딩기어에 밧줄을 묶어 격납고까지 끌고갔습니다. 항공유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는 거라고 설명하더군요. 조종사와 스튜어디스가 별도의 교통편 없이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숙소까지 오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또 한번 놀랐죠.
고려항공은 대외적으로 민간항공을 표방하지만 북한 군부 관할입니다. 이 항공사를 관장하는 민용항공총국 책임자(총국장 강기섭)는 북한군 상장(별 셋으로 우리의 중장에 해당)급입니다. 공군사령관을 지낸 북한 군부의 원로 오극렬 대장이 여전히 민용항공총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분석입니다.
지금 평양 순안비행장은 한겨울 공사로 부산합니다. 공군(북한은 ‘항공 및 반항공군’으로 부름)과 항공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김정은의 공항 현대화 지시에 따라 신축과 리모델링이 한창인데요. 지난해 11월 마무리 단계에서 현장을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중국 공항을 지목한 듯 “어느나라의 것을 본뜬 것 같다. 주체적으로 다시 하라”며 재시공을 주문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북한 고려항공이 오명을 벗으려면 공항설비 뿐 아니라 서비스가 뒷받침돼야합니다. 관건은 국제화의 흐름에 맞춘 개혁·개방입니다.
01.20 김정은 사진 도배 '1호 기사' … 테 둘러 모신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새해맞이 단장을 했습니다. 10일부터 HD(고화질)방송을 시작한 겁니다. 중국으로부터 디지털TV 수신기의 수입이 급증한다니 평양에도 이젠 고화질 TV시대가 열릴 듯합니다.
김정은, 노동신문 인쇄 전 직접 점검
수령 이름 틀리면 죽음 … 오자 없어
조선중앙TV, 올해부터 HD 방송
젊은 아나운서로 세대교체 준비
선전·선동을 중시하는 북한은 TV방송에 각별한 공을 기울입니다. 우리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선 1974년 컬러TV 방송을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통치이데올로기 전파나 우상화에 TV가 유용하다는 걸 간파한 때문이겠죠. 미국의 언론학자 윌버 슈람은 사회주의 체제의 미디어를 “지도자를 위해 허풍을 떠는 ‘나팔(speaking trumpet)’”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북한은 제법 탄탄한 언론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북한TV를 시청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북한이 99년 10월 태국 타이콤 위성을 통해 조선중앙TV를 전 세계에 송출하자 김대중 정부는 수신을 허용했습니다.
김정은 체제 등장 후엔 북한당국이 노동신문을 각별히 챙깁니다. 김정은 참여행사를 다루는 이른 바 ‘1호 기사’는 무조건 1면 톱이고, 2~3개면에 걸쳐 무더기 사진과 함께 실립니다. 사진 한장한장마다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담긴 게 느껴집니다. 인쇄 전 김정은에게 보고돼 비준을 받는다고하는군요.
김정은 관련 기사엔 격자무늬 테두리가 둘러지고, 대부분의 문장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로 시작합니다. 개인 필명이 아닌 ‘본사 정치보도반’이란 바이라인이 붙는 것도 특징인데요. 방북 취재 때 만난 노동신문 기자는 “너무 위대한 분을 모신 기사라 어느 개인이 작성할 수 없어 집체작으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그러니 신문을 함부로 접거나 깔고앉는 건 상상할 수 없죠. 97년 9월 금호지구(함남 신포)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대북지원 경수로 발전소 공사가 한동안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노동신문엔 오탈자가 없기로 유명합니다. 수령이나 지도자의 이름이 잘못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니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95년 7월 김일성 사망 1주기 추모보도 때 조선중앙방송 여자 아나운서는 ‘김정일 서거’로 잘못 읽는 실수를 저질렀고,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죠. 평양의 컴퓨터 한글입력 프로그램이 ‘김정일’이란 단어를 연자로 등록해 단축키(ctrl+J) 한번에 입력되도록 한 것도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게 아닌가 합니다.
몇 해 전까지 노동신문은 발간 보름정도 지나야 서울에서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국 승인을 받은 국내 전문업체가 홍콩 등에서 구매해 국내 북한 연구기관이나 언론사에 공급해왔는데요. 김정은 등장과 함께 노동신문은 중국에 서버를 둔 홈페이지를 통해 PDF 형태의 지면보기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연중무휴로 발간되는 노동신문 파일을 오전 9시를 전후해 서울에서도 당일에 읽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최근엔 노동신문에 스포츠·국제소식이 늘고 TV엔 신세대 아나운서들이 세대교체를 준비중입니다.
그렇지만 평양의 매체를 인용한 보도에 대해 “북한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꼴”이라고 못마땅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독자분은 “국가 지도자인 김정은에게 직함을 왜 안붙이냐”고 따지고, 다른 쪽에선 “독재자에게 왜 꼬박꼬박 ‘제1위원장’이란 호칭을 쓰느냐”고 항의하죠. 북한을 보는 갈라진 시선을 느끼며 취재일선을 뛰다보면 “통일이 많은 걸 치유해 줄 것”이란 믿음이 굳어집니다.
20년 넘게 북한 기사를 다뤄온 저는 ‘평양 특파원’이란 닉네임을 쓰고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취재원 접근이 안되는, 북한보도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꿈을 담았습니다. 올해도 벽두부터 ‘통일대박’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는데요. 언제쯤 고려호텔 로비나 대동강변 옥류관에서 평양발 기사를 쓸 수 있을까요.
2016.02.02 아버지도 못 열어본 당대회, 36년 만에 여는 김정은
김정일 “경제문제 풀리면 열 것”
고난의 행군 등 겪으며 넘어가
핵실험 후 대북제재로 경제 더 심각
5월 ‘집권?인사 플랜’ 나올지 관심
▲5월 열릴 노동당 대회를 알리는 선전화. [노동신문]
요즘 북한에선 집권당인 조선노동당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당이 나타났습니다. 주민이 필요로하는 걸 알아서 해결해주는 민생(民生)형이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데요. 주인공은 바로 장마당입니다.
우리의 시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북한 경제의 비공식 유통망 역할을 하죠. 쌀과 식료품은 물론 화장품에서 옷·신발·전자제품까지 없는게 없다는데요. 북한 전역에 380여개가 성업이라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엔 종종 단속령이 내렸는데요. 김정은 체제 들어서는 이런 말이 쑥 들어간걸 보면 북한 당국도 장마당 경제의 위력을 무시하기 힘들었나봅니다.
이에 반해 노동당의 인기는 점점 시들해집니다. 무엇보다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못한 게 패착입니다. 인구 200만~300만명(전체인구 2400만명)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주민들은 “노동당만 바라보다간 낭패를 당한다”는 교훈을 얻은겁니다.
당시 사망자 상당수가 극빈층이 아닌 하급 정무원(공무원)이란 통계가 나오자 북한 당국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경제난이 풀릴 기미는 없습니다.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죠. 하지만 제대로된 처방은 없었는데요. 일부에선 식량 등 북한 경제상황이 나아졌다고 분석하지만 탈북자나 현지 전언과 거리가 있습니다. 4차 핵실험 감행으로 대북제재의 고삐는 더욱 죄어질게 분명합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 노동당 띄우기에 골몰합니다. 최근들어 관영 선전매체들은 붉은 당기(黨旗) 앞에서 업무를 보거나 연설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자주 내보내는 상징조작을 시도합니다.
지난달 1일 김정은 신년사에선 경제문제를 언급할때마다 조선중앙TV가 노동당 청사 사진을 비쳐주고 미리 녹음한 박수소리까지 끼워넣었죠. 지지받고 있다는 걸 부각 선전하려는 고육책입니다.
오는 5월 초 평양에서는 노동당 7차 대회가 열립니다. 당 대회는 1980년 10월 6차대회 이후 개최되지 못했는데요. 당 규약에 5년마다 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사문화된겁니다.
이런 부담때문인지 2010년 당대표자회에서 5년 규정을 없앴죠. 당 대회는 조직·인사 문제도 다루지만 중장기 경제발전계획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경제문제가 풀리면 당 대회도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겁니다.
36년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는 김정은의 승부수입니다. 아버지 김정일도 집권 17년 동안 한번도 열지 못한 걸 강행하는 겁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결산하고 자신의 집권 청사진을 선보이는 자리로 만들려할텐데요. 최근 수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겨우 면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집권 플랜과 인선을 내놓을지가 관건입니다.
당 대회를 앞둔 평양 권력 핵심부에는 심상치않은 움직임도 감지됩니다. 지난해 12월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의 급작스런 교통사고 사망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립니다.
때맞춰 최용해 당비서가 숙청 몇달만에 권력 전면에 돌아왔고, 김양건 후임에는 강경파로 간주되는 김영철 군 정찰총국장이 임명됐죠. 김갑식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지난 주 정책보고서에서 “당 대회를 계기로 인적 쇄신 및 김정은 정권 권력 2기 진영 구축을 둘러싸고 충성 경쟁이 과열돼 권력 암투가 표면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죠.
일각에서는 북핵 실험으로 긴장상황이 팽팽해지면 5월 당대회가 불발되거나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02.23 개성공단에 두고 온 설비, 북한이 자체 운영할 수도
가동중단 열흘을 넘긴 개성공단에는 요즘 적막함이 감돕니다. 이따금 순찰을 도는 북한 특구개발총국과 군부 소속 지프차량 외에는 인적이 끊겼습니다. 관할 6사단 병력이 개성시에서 공단을 연결하는 통문과 주변을 삼엄하게 지킨다고 하는군요.
“최단 시일내 관리” 군 문건 나와
투자유치 → 도발 → 몰수·전용 되풀이
2006년 경수로 때 두고온 중장비
최근 쏜 광명성 로켓 기지 건설에 써
금강산 관광버스 수백 대도 반출
평양서 운행하는 모습 드러나기도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10일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밝히자 북한은 하루만에 남측 인원의 추방과 자산 동결을 발표했습니다.
반출 못하고 묶인 재봉틀과 정밀 공작기계 등 생산설비는 1조190억원에 이르는데요. 한국전력의 발전(480억원)과 KT의 통신(94억원) 설비도 포함됩니다. 의류와 신발·시계·냄비 등 완제품도 남겨둘 수밖에 없었죠. 현지 우리은행의 금고에 있던 달러 등 일부 현금도 챙겨나오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북한 경수로 발전소의 콘크리트 타설작업. [중앙포토]
북한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동결자산은 일단 개성시 인민위원회 관할로 넘겨졌습니다. 북한은 얼마뒤 자산 몰수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생산설비나 원자재를 몰래 반출하거나 공단을 독자 가동할 가능성도 있죠.
최근 공개된 북한군 6사단의 2006년 내부 문건은 “맡겨진 설비와 기재들을 능숙하게 다뤄 최단 시일내 공장을 자체적으로 관리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며 자체운영에 대비해왔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신의주로 공단을 옮긴다는 소문에 개성 지역은 술렁인다고 합니다.
개성공단 설비와 원자재·제품을 빼돌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건 북한의 과거 행태 때문입니다. 우리 기업을 상대로 투자유치→도발→가동 중단→동결·몰수→전용(轉用)이란 패턴을 되풀이한 건데요. 2006년 1월 정부는 대북 경수로 건설에 참여했던 우리 인원을 금호지구(함남 신포시)에서 긴급 철수시켰죠.
핵 개발 중단 대가로 진행 중이던 경수로 사업이 북한의 합의 위반으로 파국을 맞았기 때문인데요. 당시 북한은 우리 업체의 중장비 93대와 덤프트럭 등 차량 190여 대, 6500t의 철근과 시멘트 32t의 반출을 막았습니다.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봉인을 뜯어버리고 포크레인과 승용차, 건설자재를 전용한 사실을 파악했는데요. 일부 중장비와 크레인 등이 이번에 광명성 로켓을 쏘아올린 동창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2009년 완공)하는데 쓰인 정황을 포착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몰수한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중앙포토]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 때도 우리 정부 소유의 이산가족 면회소(600억원)와 현대아산의 호텔, 에머슨퍼시픽사의 골프장 등 모두 3593억원의 자산을 몰수 조치했죠. 북한은 현대와의 독점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중국 관광객을 맞는데 남측 숙박시설 등을 써먹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골프 카트 등 장비를 대부분 빼내갔고 현대아산의 관광버스 수백 대도 몰래 반출해 평양에서 사용하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출퇴근용 버스. [중앙포토]
북한은 1996년 가동에 들어갔다 3년 만에 쫓겨나듯이 철수한 대우 남포공단에서 기계설비를 모두 뜯어가기도 했는데요. 당시 군부가 이를 주도했다고 하는군요. 대북 경수로 사업 때도 절도사태가 잇달아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공사에 관여했던 정부 고위 당국자는 “결국 남측의 경비용역 업체를 주둔시켰는데 철근·전선·시멘트 등을 털어가던 도둑을 잡고보니 북한군 장교와 부하들이었다”고 전합니다.
북한은 우리 정부에 갚아야할 빚이 산더미인데요. 차관 형태로 2000년부터 7년 간 쌀 240만t과 옥수수 20만t을 빌려간 게 7억2000만 달러(8884억원)에 이릅니다. 또 신발 제조 등에 쓰겠다며 경공업 원자재 8800만 달러 어치도 꿔갔죠.
남북 철도·도로 연결에 쓴 레일과 아스팔트 등에도 1억4000만 달러의 빚을 졌습니다. 정부는 수차례 채무를 갚으라고 밝혔지만 북한은 통지서조차 수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은 우리 측의 투자나 차관공여를 ‘푼돈’ 운운하며 공단 가동중단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한 모습인데요. 조만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밀린 북한 근로자 임금을 내놓으라며 우리 기업에게 독촉하고 나서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03.22 김정은 상륙함·핵탄두 기밀 노출…우리 군 ‘뜻밖의 소득’
▲북한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외활동을 통해 군사정보를 노출하고 있다. 사진은 조립 중인 대륙간탄도미사일(KN-08). [사진 노동신문]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입이 거칠어졌습니다. 남한을 ‘적(敵)’ 이라고 공공연히 지칭하는 건 물론이고, “생존이 불가능한 섬멸적 불세례를 들씌우라”(3월10일 탄도로켓 발사훈련 참관)는 주장까지 쏟아내는데요.
과시성 행보로 신무기 잇단 공개
당국 “입수하기 어려운 군사정보”
북한 군부 원로 일부선 반발 분위기
핵심 숨긴 기만전술 가능성도
이달 초 신형 방사포 시험 사격장에서는 “새로 개발한 타격무기를 하루빨리 실전배치해 적들이 제땅에서 최후의 종말을 맞는 순간까지 단 하루, 단 한 시도 발편잠(발 뻗고 편히 자는 잠)을 자지 못하게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는 건 못봐주겠다는 심술까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지난달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도발 직후 한반도에는 미군의 전략무기가 총출동해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하늘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와 현존 최강 전투기로 알려진 F-22 랩터 스텔스기 등이 평양 상공까지 날아들었죠.
신변 위협 때문인지 김정은은 공개활동을 중단하고 지하벙커에 은신했다고 합니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까지 거론된 상황때문으로 우리 정부 당국은 분석합니다.
이달 들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외부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핵 무기 개발 현장을 찾고, 군 훈련을 참관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인건데요. 한·미 연합전력의 압박에 은둔만하다가는 측근 엘리트와 주민들에게 스타일을 구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입니다. 노동신문 등 관영 선전매체들은 이런 김정은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죠. 전쟁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노린듯합니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 보도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북한군의 새로운 무기체계와 전술을 파악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정보가 적지않게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20일 노동신문이 공개한 북한군 상륙훈련 장면은 대표적인 사례죠.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북한 상륙함이 선수(船首) 부분을 위로 열어 제낀 뒤 전차 등 장비가 쏟아져나오는 영상은 지금까지 공개안된 모습”이라고 진단합니다. 북한은 이 훈련에 제2항공사단과 7군단 포병대대, 제108기계화보병사단이 참가했다면서 구체적 작전 내용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인기와 같은 소재로 추정되는 물미끄럼대공장.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은 2011년12월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이후 새로 개발한 무기체계나 베일에 싸여있던 군사 전력을 종종 노출시켰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운용할 신형 반(半)잠수정으로 추정되는 함정에 오른 모습을 공개해 우리 정보 당국의 주목을 받았죠. 청와대 상공까지 침투했던 무인기를 두고 북한 군부가 “남조선의 자작극”이라고 발뺌하던 상황에서 유사한 소재와 색상의 제품을 생산하는 군부대 산하 공장을 방문하는 바람에 증거를 드러내고 말았죠. 군 정보 관계자는 “북한 매체가 지난 9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KN-08의 소형화에 성공했다며 공개한 핵탄두 영상자료도 대북정보망으로 입수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위험이 따랐을 것”이라고 귀띔합니다.
▲북한 정찰총국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반잠수정의 모습. [사진 노동신문]
북한의 핵 개발 동향이나 새 무기체계는 그 동안 대북 첩보위성의 영상·신호 정보에 크게 의존해왔습니다. 미사일의 경우 발사시 화염이나 궤적 등을 통해 분석을 하는 방식이었죠. 최종 확인은 내부 협조자를 통한 인적 정보인 휴민트(humint)가 필요했는데, 북한의 경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 등장 후 그의 ‘과시성’ 행보 덕분에 정보 당국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의 기만전술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핵심적인 대목은 여전히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정은의 이런 가벼운 행보에 대해 북한 군부 원로그룹과 엘리트 층에서 반발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하는데요. 최고지도자의 ‘군사정보 노출’에 대해 권력 내부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는 얘기입니다.
03.29 20년 전 “어이 준장” 남측 대표 놀린 대남 강경파 김영철
북한 노동당의 통일전선 비서인 김영철(70)은 군부 강경파로 분류됩니다. 현역 군 대장인 그는 총참모부 정찰총국장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실행한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합니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사태도 그의 작품이란 판단입니다. 김영철에 대한 우리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남북 회담장에서까지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고, 합의 도출보다 상대를 골탕먹이는데 골몰한 때문이라는데요.
김정은 최근 도발적 위협 극에 달해
북한 관측통 “김영철 작품 가능성”
1990년대 초 남북 고위급 회담 때 김영철은 북한군 소장 계급을 달고 나왔습니다. 소장-중장-상장(上將)-대장 체제인 북한에서는 ‘별 하나’인 셈이죠. 그의 상대는 박용옥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원스타였죠. 우리 군 계급은 준장(準將)-소장-중장-대장 순서입니다.
김영철은 이점을 물고 늘어졌는데요. 회담 때마다 그는 박 실장을 ‘남쪽 준장’이라 부르며 “어이 준장이 뭐야. 그건 거의 장군이 아니란 말이잖아”라며 몰아세워 우리 대표단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후문입니다. 노태우 정부는 1992년 5월 7차 회담 때부터 박 실장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대표로 내보냈 다고 합니다.
오랜기간 회담 대표를 맡은 경력을 바탕으로 김영철은 노련함을 과시했다는데요. 회담장에 빨간펜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와 남측 대표들에게 “뭔 서류가 그리 많냐. 머리 속에 다 가지고 와야지”라며 기선을 제압하려 들었다는 겁니다.
김영철은 10대 후반 북한군 최전방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68년부터는 소좌 계급으로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를 맡았는데요. 그해 1월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Pueblo)호 피랍사건을 둘러싼 북·미 대치사태를 생생히 목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군부 대남통 정도로 간주되던 김영철이 날개를 단 건 김정은 체제가 등장하면서입니다. 김정은 후계자 시절인 2009년 정찰총국장에 앉았고 이듬해 2월 군 상장으로 진급했죠.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2월에는 군 대장에 올랐고, 김일성 훈장도 탔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양건 후임으로 김영철이 노동당 통일전선 비서에 발탁되면서죠. 강경파의 득세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는데요. 공교롭게도 4차 핵 실험에 이어 장거리 로켓 광명성 발사 등 김정은 체제의 도발적 행보가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3월 들어 서울을 겨냥한 호전적 위협이 극에 달했는데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까지 나서 “적 들이 단 한 시도 발편잠(발뻗고 편하게 자는 잠)을 자지 못하게 하라”(3월4일 신형 방사포 사격훈련 보도)고 언급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북한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남한을 어떻게든 괴롭히려는 심보가 드러나는 김정은의 언급을 두고 “김영철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6일에는 장거리 포병대 이름으로 ‘최후통첩’이란 걸 냈는데요.
수령독재인 북한에서 노동당과 군 간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남 비서의 경우 적절한 조언으로 최고지도자의 생각을 돌리게 하거나 군부 강경파를 견제하기도 합니다. 금강산관광을 앞둔 1998년 북한 군부가 반발하자 김용순 대남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설득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김정은의 신임이 두터웠던 국제통 김양건 비서가 사라진 남북관계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김영철이 그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어보입니다.
05.03 ‘60년 혈맹’ 베트남, 제재리스트 북한 외교관 서둘러 추방
▲호찌민 북베트남 주석(오른쪽)을 접견하는 북한 김일성 수상. 북한과 베트남은 1964년 김일성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혈맹관계를 맺었다. [사진 bacgiang.net, 중앙포토]
한때 혈맹(血盟)을 자부했던 북한과 베트남의 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4차 핵 실험을 비롯한 북한의 잇단 도발 행보로 베트남이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3월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발표된 이후엔 노골적이기까지 합니다.
유엔 제재안 나오자마자 단행
평화포럼 나온 베트남 인사들
“북한 핵개발 안 도왔다” 강조 ‘
사회주의 형제국’의 격세지감
지난달 말 수도 하노이와 최대 경제도시 호찌민을 직접 둘러보면서 냉랭해진 베트남의 대북 시선을 체감할 수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유엔의 대북제제 이행에 베트남이 적극적인 게 눈에 띕니다.
안보리 제재 리스트에는 북한 단천상업은행 베트남 대표부 간부 2명이 올라있는데요. 지난달 23일 최성일 부대표는 자진출국 형태로 평양행 비행기에 올라야했죠. 외교관 신분인 최 부대표를 베트남이 신속하게 출국 조치한 걸 두고 현지에서는 사실상 추방이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총책 역할을 한 김중정 대표의 경우 지난 1월 베트남을 떠난 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왼쪽)이 지난해 11월 베트남을 방문해 쯔엉 떤 상주석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bacgiang.net, 중앙포토]
베트남 공산당 간부들의 입을 통해서도 북한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지도층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지난달 27일 하노이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로 열린 한·베트남 평화통일 포럼에서 또렷이 드러났죠.
베트남 측 토론자로 나선 팜홍타이 사회과학한림원 동북아연구소 부소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 표기)의 도발 행위는 안보리의 규정을 위반한 행위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제시한 경제·핵 병진 노선에 대해서도 “북한이 무기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진행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한국측 발표자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강조했죠.
베트남 측 인사들은 무엇보다 북한의 핵 개발을 베트남이 돕거나 방관한 듯한 비쳐질까봐 우려하는 눈치였습니다. 레반상 아태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북한이 베트남에 군사교관을 파견한 사실과 단천상업은행 베트남 대표부가 언급된걸 두고 “오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해달라”며 불똥이 튀는 걸 막으려 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발전을 절대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죠.
이뿐만 아닙니다. 포럼에서는 베트남에서 인기 절정인 한류(韓流) 문제와 한·베트남 협력방안도 다뤄졌는데요. 북한으로의 한류 유입실태를 연구해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자 베트남 측 인사들 사이에선 뜻밖의 맞장구가 터져나왔습니다.
▲2007년 평양을 방문한 농득마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왼쪽)을 맞이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 bacgiang.net, 중앙포토]
쩐꽝민 사회과학한림원 동북아연구소장은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로부터 일방적인 선전·선동 정보를 받고, 그에 피동적으로 따르고 있다”며 “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발전된 경제·정치와 사회·문화상을 알리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죠. 그는 “한국의 경우 북한과 같은 민족이고 언어와 문화 등이 매우 유사해 한류 확산은 한반도 사회통합에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공감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행사를 두고 각별했던 북·베트남 관계의 변화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란 평가가 나왔는데요. 1960년대 공군 조종사 등을 베트남전에 파병해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불렸던 때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베트남 박장성에 위치한 참전 북한군 묘비. [사진 bacgiang.net, 중앙포토]
베트남 공산당 통치이데올로기의 산실(産室)로 불리는 사회과학한림원 관계자와 당원 등 100명이 객석을 메운 것도 눈길을 끌었죠. 현지 우리 공관 관계자는 “대북 제재를 다룬 포럼에 이처럼 많은 베트남 핵심 인사들이 참여한 건 이례적”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베트남 당국의 이런 분위기는 무엇보다 사회주의 노선에 이탈해 전대미문의 3대세습을 이룬 북한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신 때문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또 1980년대 후반 도이모이(Doimoi) 정책을 채택해 개혁·개방의 길을 걷고 있는 베트남으로선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훨씬 긴요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1992년 수교 때 5억달러였던 한·베트남 교역규모는 지난해 376억달러를 기록했는데요. 서울행 비행기로 향하는 공항로 옆에는 4만여명 베트남 근로자들이 일하는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05.24 측근보다 핏줄…김정은, 여정·정철과 정기 ‘통치 모임’
생모 고영희가 북송선 내린 원산서
측근들과 못하는 이야기 나누는 듯
권력 멀어졌던 정철, 정책 관여 주목
김정은(32)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형 정철(35)·여동생 여정(27)과 주기적인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23일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삼남매가 만나는 장소는 강원도 원산 소재 김정은의 전용 별장인 특각(特閣)이라고 하는데요. 김 위원장의 동해안 지역 군부대·공장 방문이나 휴양에 맞춰 일정이 잡힌다고 합니다. 우리 정보 당국에 따르면 이 자리에선 김정은 통치와 관련한 핵심 현안을 논의하고 정철과 여정이 분담할 업무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소식통은 “아버지 김정일이 2011년 12월 급작스레 사망하면서 권력을 넘겨받았지만 경륜이 부족한 데다 믿을 만한 핵심 간부가 없는 상황이라 남매들 간에 내밀한 소통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제와 행정(공안통치 포함)을 챙기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혁명’ 혐의로 처형한 2013년 12월 이후 고모 김경희마저 등을 돌리면서 위기감이 커졌다고 합니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핵심 측근과 공유하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를 삼남매 모임에서 다룬다는 겁니다.
눈길을 끄는 건 김정철이 동생의 정책 결정에 관여한다는 점입니다. 김정철은 한때 후계 1순위였는데요. 이복형 김정남이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공항 밀입국 사건 등 추문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나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겁니다. 하지만 호르몬계 질환으로 동생 정은에게 후계자 지위를 빼앗기면서 ‘비운의 왕세자’가 됐죠.
이후 김정철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국의 가수 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려 해외 방문길에 나섰다가 서방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멀어졌다거나 동생에게 거리를 두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죠. 그동안 김정철의 평양 내 행적은 베일에 싸여 있었는데요. 소식통은 “여전히 김정은 권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김정철이 손을 놓고 서방 음악에만 심취해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북한의 공안정보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실세라는 말도 나옵니다. 외교 소식통은 “2014년 7월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열린 납치 일본인 관련 북·일 협상을 지휘한 인물이 김정철이란 얘기가 일본 측 대표단 사이에서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오빠의 후광을 업고 최고 실세로 자리했습니다. 이달 초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7차 대회 때는 ‘주석단’(VIP용 자리를 의미하는 북한 용어)에서 스마트폰과 수첩을 들고 행사를 총괄하는 장면이 포착됐죠. 당 간부들 사이에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는 의미의 ‘만사여통’이란 말이 나온다는군요.
삼남매의 원산 회동은 김정은의 원산 챙기기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인근 마식령에 큰 스키장을 짓고, 원산 갈마비행장을 국제공항 규모로 리모델링했죠. 이를 두고 재일 동포 출신인 생모 고영희가 1960년대 북송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기 때문이란 말이 나옵니다. 한때 고영희가 평양 권력 내부에서 ‘원산댁’으로 불린 것도 이런 연유라는데요. 24일은 삼남매의 생모 고영희가 사망한 지 1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28년간 함께한 고영희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선암으로 숨지자 특별기편으로 운구해 평양 대성산 지역에 묘역을 조성해주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말년을 지낸 ‘첫사랑’ 성혜림이 2002년에 죽고 나서도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7차 당대회로 대관식을 치른 김정은이 본격적인 가계 우상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생모 고영희를 어떻게 북한 주민들에게 알릴지는 다소 고민될 듯합니다. 재일동포 출신인 데다 고영희의 아버지가 일본군 군복을 만드는 공장 간부였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 주민들 사이에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은 백두혈통이 아닌 후지산 줄기”란 소문이 돈다는 말도 들립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초 고영희가 등장하는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을 공개하고 노동신문에 ‘평양의 어머니’로 띄우려는 시도를 했다가 중단한 일도 있습니다.
06.07 친중 행보 나선 김정은 ‘장성택 처형’ 앙금 걷어낼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집권 17년 동안 평양 모란봉구역에 있는 중국 대사관을 4차례 방문했습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자국 주재 외국대사관을 찾는다는 건 외교관례상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미국대사관에 들르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아마 ‘부적절한 행보’란 비판과 함께 ‘친미 사대굴종’ 논란이 일겠죠.
북·중 농구 열고 이수용 파견하고
3년 만에 친선활동으로 자세 낮춰
베이징 지도부 여전히 진의 의심
중국 방문 당장은 쉽지 않을 듯
2000년 3월 5일 저녁 7시 처음으로 중국 대사관을 찾은 김정일은 만찬을 하며 자정까지 머물렀습니다. 두 달 뒤엔 베이징을 방문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는데요. 같은 해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사전 설명하는 건 물론 한·중 수교(1992년 8월) 이후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회복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란 평가가 나왔습니다.
▲2007년 3월 평양의 중국대사관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류샤오밍 당시 대사 부부가 맞고 있다. [노동신문]
2007년 3월 초에는 중국의 원소절(元宵節·정월 보름)을 축하한다며 당·정·군 간부까지 이끌고 중국 대사관을 찾았죠. 김 위원장은 “조·중 두나라는 한 집안의 식구처럼 친하고, 중국 대사관에 오는 건 친척집에 다니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또한 2006년 10월 첫 북핵 실험 속에서도 중국이 중재한 2.13합의(북핵 시설 폐기와 대북에너지 지원, 북·미수교 등)에 감사하려는 자리였다는 분석이 제기됐죠.
그런데 후계자이자 아들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발걸음은 달라보입니다. 집권 첫해인 2012년 12월과 이듬해 2월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중국의 체면을 구겨지게했는데요. 유엔 대북결의안에 중국이 찬성표를 던지자 그가 책임자(제1위원장)로 있는 국방위원회는 “세계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데 앞장서야 할 큰 나라들까지 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죠. 평양 고위층의 중국제품 선호현상을 겨냥해 “수입병(病)”이라며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출범에 맞춰 벌어진 이같은 김정은의 노골적 반중(反中) 행보에 베이징 지도부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고합니다.
▲지난달 말 평양에서 열린 북·중 친선 농구대회를 관람하는 김정은(오른쪽 둘째) 노동당 위원장. 중국 관련 행사에 나온 건 3년 만이다. [노동신문]
이번엔 김정은의 대중(對中)셈법이 바뀌어가고 있는걸까요. 그는 최측근인 이수용 당 정무국 부위원장을 베이징에 파견해 지난 1일 시진핑 주석과 면담토록 했습니다. 7차 노동당 대회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지만, 이를 액면그대로 믿는 시각은 드뭅니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 드라이브에 중국은 유엔결의 찬성표를 던졌고, 제재이행에도 예전보다 적극적입니다. 대북결의가 약효를 나타내면서 북한 체제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는 게 우리 당국의 분석인데요. 북한매체들이 시 주석 면담결과를 전하며 ‘핵(核)’이란 단어를 한번도 쓰지 않은 건 자세를 바짝 낮췄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도 제기하는데요. 꼬인 실타래 같은 북·중 관계를 풀지않고는 어려워보입니다. 2013년 12월 벌어진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 대표적입니다. 친중 성향의 장성택을 ‘반(反)국가’ 혐의로 숙청하며 중국에 대한 석탄 헐값수출도 죄목에 올렸습니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중국 지도층의 후견을 받는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려 2009년 6월 암살조를 파견했던 일도 여전히 북·중 간 앙금으로 남아있다”고 귀띔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석에선 중국을 “돼지같은 놈들”이라고 비난했지만 말과 행동은 달랐는데요. 김정은 당 위원장은 중국을 향해 도발적 언행을 그치지 않아왔죠. 그러던 그가 지난달 말 갑자기 북·중 친선농구 경기장에 나타났습니다. 2013년 7월 6.25 참전 중공군 묘지를 참배한 이후 약 3년 만에 중국 관련 친선활동에 나선 겁니다.
이런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베이징 지도부는 여전히 김정은의 진의를 의심하는 듯합니다. 비핵화 등 근본적 태도 변화 없이는 제재의 고삐도 느슨해지지 않을 기세인데요. 여전히 ‘핵보유국’과 ‘경제·핵 병진노선’ 타령을 하는 32살 최고지도자가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06.21 “식량자급이 수소탄” 잇단 캠페인…‘대기근’ 빨간불 켜졌나
▲지난달 중순 평양 청산협동농장의 모내기 장면. 지난해 10월 이후 배급량이 이전 같은 기간보다 떨어졌다. [노동신문]
북한의 식량 사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 등이 잇달아 경고를 울린데 이어 우리 대북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겁니다.
“원수들의 고사작전 물거품 만들자” 식량부족, 대북제재 탓으로 돌려
크리스티나 코슬렛 FAO 동아시아 담당관은 지난 주말 언론 인터뷰에서 “쌀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수확량이 26% 줄어들었고, 옥수수도 3% 감소했다”고 밝혔는데요. 대체로 5월부터 8월까지 춘궁기를 겪는 북한이 식량을 수입하거나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요. 올 2분기(4~6월)들어서는 북한의 1인당 배급량이 360g으로 줄어 지난해 같은 기간 410g에 비해 12% 줄었다는 통계치도 나왔습니다.
▲곡물 생산 목표달성 촉구 포스터.
북한 당국도 바짝 긴장하는 표정인데요. 식량 문제를 자체 힘으로 풀자는 캠페인이 봇물을 이루고, 태풍·홍수 대비책을 강조하는 TV프로그램이 등장했죠. 노동신문도 17일자에서 “식량 자급자족이야말로 원수들이 무서워 벌벌떠는 또 하나의 수소탄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자체 힘으로 먹는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원수들의 그 무슨 고사(枯死)작전이라는 걸 물거품으로 만들자”는 얘기도 꺼냈는데요. 주민들에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에 식량난을 겪는 것이란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겁니다.
물론 북한의 식량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94년7월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잇단 수해 등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는데요. 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2010년 사망) 노동당 비서가 “200~300만명이 죽었다”고 말한 대기근 사태입니다.
북한 인구가 2400여만명임을 감안할 때 얼마나 큰 참상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 즈음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회담 북측 대표는 쌀과 옥수수 지원을 요청하며 “내가 이걸 가져가지 못하면 인민들에게 면목이 없어 평양공항에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통사정을 한적도 있죠.
불을 꺼준 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입니다. 쌀 240만톤 등 모두 7억2000만 달러(8370억원)어치의 식량차관이 제공됐죠. 40kg 포장으로 6000만 포대에 이르는 막대한 물량입니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북한 사회가 무뎌지는 모습도 드러냈는데요. 지난해 11월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방문한 한 식료공장 생산라인에 WFP의 대북 식량지원 포대가 놓여있는게 북한TV에 생생히 드러나기도 했죠.
최근 터져나온 평양발 식량위기 경고는 김정은 체제 들어 식량사정이 다소 호전됐다는 분석을 뒤집는 것이라 주목됩니다. 농업전문가들은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집단영농제와 비료·농약 등 농자재 부족을 요인으로 꼽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6.28방침으로 불리는 새 경제관리체계를 선보이며 포전제의 시범실시 등을 내놓았는데요. 식량난을 타개할 수준의 개혁에는 크게 못미친다는 평가입니다.
잇단 김정은의 대남 도발행보도 식량난을 부채질했습니다.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질좋은 한국산 비료나 농기자재의 대북제공을 어렵게했죠. 대북 식량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관 상환 기일이 닥쳤는데도 나몰라라하며 ‘서울 불바다’ 운운하는 김정은 정권의 태도에 국민여론은 싸늘해졌습니다.
3월 유엔의 대북결의 2270호가 나오면서 찬성표를 던진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손길도 차가워졌는데요. WFP는 이달말까지 북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1억9500만 달러의 모금목표를 세웠지만 절반 수준이 9900만 달러에 그쳤다고 합니다.
식량사정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북한 당국은 뾰족한 대책이 없는 듯합니다. 지난달 노동당 7차대회에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는데요. 3시간 동안의 연설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식량문제 해결책은 피해갔죠.
다만 “경제전반을 놓고 볼때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있다”는 말에서 불만이 드러납니다. 1980년 6차 당대회 때 김일성 주석이 “곡물 1500만톤 생산”을 제시한 것과 차이가 납니다.
핵 보유국을 주장하면서도 식량난에 골머리를 앓아야하는 김정은 체제의 모순은 언제 끝날까요. ‘이밥에 고깃국’이란 소박한 꿈은 북한 주민들에게 너무 멀어보입니다
07.12 국무위 출범 뒤에도 국방위 유지…김정은, 군부 불만 의식한 듯
북한 노동신문 보도에 등장하는 최고지도자 김정은(32)의 공식 직책은 3개입니다.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국무위원회 위원장, 군 최고사령관을 열거한 뒤 그의 이름이 붙는 식인데요. 조선중앙TV 아나운서는 긴 직책을 잘못부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과거 김일성 추모 보도 때 김정일과 이름을 혼돈해 영영 해당 아나운서가 TV화면에서 사라진 ‘사고 사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영종의 바로 보는 북한 ‘국방위를 국무위로’ 개헌 해놓고 오극렬 등 국방위 부위원장 임명 ‘김일성이 만든 기구’ 상징성 커 명칭 아예 없애기엔 부담 느낀 듯
세 직책 중에 당 위원장은 5월 초 노동당 7차 대회를 통해,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각각 앉았는데요. 김정은으로서는 ‘당 제1비서’와 ‘국방위 제1위원장’이란 명칭이 내키지 않았던듯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절대권력자의 자리와 명칭이 필요했던 그가 ‘제1’이란 단서를 뗀 새 직책을 거머쥔 겁니다.
국무위원장이란 직책은 낯설어보입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우리 정부 최고 정책 심의기관인 국무회의가 떠오르기도하는데요. 일각에서는 북한 국무위원장 상대는 우리 국무총리가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옵니다. 명칭에서나마 김정은이 ‘정상 국가화’를 겨냥해 ‘국가’라는 표현을 자주쓰는 것이란 풀이도 있죠.
북한은 이번 개정 헌법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고친다’고 명시한 뒤 국무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두고 국방위가 폐지되고 국무위가 그 권한을 넘겨받은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인데요. 김정은이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노선인 선군(先軍)정치를 탈피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했다는 관측도 대두했습니다.
하지만 국방위원회가 간판을 내리지않았고,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징후가 파악돼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평양 권력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국무위 출범에도 불구하고 국방위 조직·인력이 유지되고 있다. 폐지됐다는 건 잘못된 판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은이 국무위원장에 추대된 직후 국방위 직책 관련 새 임명장을 기존 국방위 부위원장과 위원에게 수여하는 행사를 치렀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김정은의 친필 사인도 포함됐다고 하는데요. 군부 원로인 이용무(91)·오극렬(85)도 임명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들 두 사람이 국무위 체제에 맞춰 박봉주 총리와 최용해 정무국 부위원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퇴진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고보니 북한이 국방위 폐지를 밝힌 적은 없습니다. 헌법 조문을 수정하며 ‘국방위를 국무위로 고친다’고 한 대목을 과잉해석해 국방위가 문을 닫은 걸로 단정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방위는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한 1998년 이후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으로 자리하며 절대권력의 정점에 섰는데요. 2000년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은 노동당 비서로 통칭되던 김정일 직책을 ‘국방위원장’으로 써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할 정도였죠.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승승장구했는데요. 2014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첫 남북 고위급 접촉도 청와대 안보실과 북한 국방위 간의 비공개 채널을 통해 성사됐습니다. 이후 국방위는 정책국 담화 등을 통해 대남 입장표명의 창구가 됐고, 미국에 대한 대응까지 맡아 보폭을 넓혀왔죠.
물론 국방위가 예전처럼 위세를 떨치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무게 중심이 국무위로 옮겨간 게 분명하고, 김정은의 관심도 식었다는 점에서죠. 그렇지만 문패를 아예 떼버리기에는 김정은의 부담이 클겁니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1972년 만들어 44년의 명맥을 이어온 기구란 점에서입니다. 무엇보다 권력 핵심 축의 하나인 군부에게는 국방위가 갖는 상징성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방위 존치는 이런 측면을 고려한 김정은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대북 소식통은 “군부 원로들의 불만을 의식해 국방위를 없애지 못한 것”이라고 평양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는데요. 지난해 5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 때는 군 고위층에서 “무력부장이 어떤 자리인데 저리 함부로 끌어다 죽이는가”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고 합니다.
집권 5년차를 맞은 김정은은 핵·미사일 도발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권력기반 다지기에 골몰하고 있는데요. 술렁이는 군부의 분위기를 그가 어떻게 다잡아 나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07.19 “27호 대원 과제 459페지 35번…” 평양 라디오 돌연 난수방송
북한이 15일 새벽 남파 공작 지령용 난수(亂數) 방송을 돌연 내보냈습니다. 대남매체인 평양방송을 통해 다섯자리 숫자를 잇달아 부르는 방식으로 12분간 방송했다는건데요.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말 중단했던 걸 본격 재개하는 것 아니냐며 관계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합니다.
15일 자정 12분간…16년 만에 재개 장기은둔 공작원 깨우는 지령이나 사드 논란 틈탄 심리전일 수도 최근 대남공작도 디지털로 진화 첨단 ‘스테가노그래피’로 암호화 사진·음악파일에 기밀정보 숨겨
이번 방송은 정규 보도를 마친 0시45분부터 57분까지 이어졌는데요. 여성 아나운서는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 복습과제를 알려드리겠다”고 예고한 뒤 숫자를 읽어내려갔습니다. “459페지(쪽) 35번, 913페지 55번, 135페지 86번...” 식인데요. 미리 약속한 특정 책자의 페이지와 글자 위치를 의미한다는군요. 이를 조합해 지령 내용을 파악한다는겁니다.
‘난수’란라는 낯선 표현은 우리 일상에서 종종 쓰입니다. 뭔가 복잡하게 얽히거나 까다로운 일에 ‘난수표 같다’는 말을 쓰곤하죠. ‘27호 대원’은 무엇을 탐사하러 남한 땅에 온 건지, 27호라면 도대체 몇명이 활동 중이란 애기인지 궁금증이 커지는데요.
난수는 본래 무작위로 뽑아낸 숫자의 조합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첩보전 세계에선 정교하게 짜여진 숫자의 배열로 둔갑하죠. 노출이나 의미 파악이 어렵도록 하기위해 5개 안팎의 숫자로 방송 한 뒤 이를 풀어내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13524’라고 하면 135쪽 24번째 글자(혹은 24번째 행 첫글자)를 의미합니다. 2006년 검거된 한 공안사범은 톨스토이의 고전 ‘부활’을 암호해독용 책자로 사용해 화제가 됐습니다. 어휘가 다양한데다 의심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택했다는 게 당시 수사 관계자들의 귀띔입니다.
숫자를 이용한 암호 방식은 고대 로마에서도 쓰일 정도로 역사가 깊습니다. 난수방송은 국제 첩보전에서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되는데요. 영국 비밀정보 기관이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링컨셔 포처(The Lincolnshire Poacher)는 초강력 단파 난수방송의 대명사입니다. 키프로스 영국 공군기지에서 발신되며 여성 목소리로 숫자 5개를 부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간첩 혐의로 1992년 구속된 김낙중씨는 난수방송 해독에 필요한 난수표를 한약병에 숨겨 보관했다. [중앙포토]
대북정보를 다뤘던 전직 요원은 “난수표는 간첩 또는 첩보원 신분이란걸 노출하는 결정적 증거라 가장 민감한 품목”이라고 말합니다. 1996년 9월 강릉 침투 북한 잠수함 승조원들이 탈출 직전 제일 먼저 불태운 것도 난수표였다는군요. 상대 수중에 흘러들어가면 현재는 물론 과거의 공작활동까지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겠죠.
그 활용 또한 워낙 다양해 첩보전에선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존재”라고 불린다고합니다. 같은 난수표도 홀수 날짜에는 가로에서 세로로 해독하고, 짝수날에는 숫자에서 전부 1을 뺀 뒤 조합하는 등의 규칙이 부여된다는 겁니다. 음악 등을 결합해 중요도를 사전에 알리기도 한다는 데요.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가 나오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내용이거나 알맹이가 없는 기만용 방송이고, 혁명가요가 울리면 실제 지령이 떨어지는 등의 수법이란 설명입니다. 방송을 한두차례 되풀이하는 건 검증을 위한 것이라는군요.
첩보전도 인터넷과 SNS, 첨단 기술 등에 힘입어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북한의 대남 공작도 예외는 아닌데요. 간첩 검거 발표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무전기와 모스부호 송신기, 공작금 달러뭉치, 독침 등은 옛말이 된듯합니다.
최근 관계당국에 적발된 ‘PC방 간첩’은 인터넷 공간을 이용한 비밀통신과 관련이 깊어보이는데요. 요즘엔 최첨단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를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기밀정보를 동영상이나 사진·음악 파일 안에 암호로 숨겨 놓는 방식인데요. 치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아 우리 수사기관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방식으로 돌아간듯한 갑작스런 난수방송이 뭘 겨냥한건지 현재로선 불투명합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배치 논란을 틈탄 테러·선동인지, 단순 심리전인지 말입니다. 정부 당국자는 “5년 혹은 10년 이상 장기 은둔해온 공작원을 일컫는 ‘슬리핑 에이전트(sleeping agent)’를 깨우려는 지령일 수도 있다”고 귀띔합니다.
07.26 “신포항에 덮개 가린 새 기지”…힘 받는 북 핵잠수함 보유설
▲김정은 위원장이 2014년 6월 로미오급 잠수함에서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노동신문]
북한이 극비리에 핵 잠수함 보유를 추진해왔으며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핵심 인사는 25일 “북한이 3500t급 핵 추진 잠수함 2기를 건조 중이며 곧 진수할 수 있는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3500t급 잠수함 2기 곧 진수” 주장에 영국 군사전문지 위성사진도 나와 정부 “리액터 기술 쉽지 않다”신중론 전문가 “SLBM 탑재 위해 개발 가능”
또 “핵 잠수함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직접 참관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도 핵잠(核潛) 보유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2014년6월 동해 해군 부대를 방문해 로미오급 잠수함에 직접 탑승한뒤 훈련을 지휘했고, 잠망경을 보는 사진 등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북한은 구 소련 퇴역 잠수함 2기를 도입해 핵 잠수함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핵 잠수함의 동력원인 리액터(reactor)를 적어도 2m 이하로 소형화해 탑재하는 것이 난관이었지만 지난해 말 기술적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노동당 군수공업부 93과가 이를 맡아 추진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권력층 사이에 ‘3월 회의’(3월초 개최)로 불리는 자리에서 핵 잠수함 보유를 국방과학 분야 핵심 과제로 꼽았다는게 이 인사의 주장이다.
북한이 핵 잠수함 보유에 나섰다는 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몇 차례 제기됐다. 핵 개발에 사활을 건 북한의 태도로 볼때 핵잠은 당연한 수순이란 측면에서였다. 대북 군사정보를 다루는 관계자들도 첩보 수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5월 초에는 한 탈북단체가 “2013년 김정은 지시에 따라 핵 잠수함 개발에 나섰지만 9억 달러를 쏟아붓고 결국 포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의 경우 북한 내부로부터 관련 정황이 흘러나왔고, 그 내용이 구체적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우리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북한 핵잠수함 보유설과 관련한 첩보가 있지만 사실로 확인할 정도의 신뢰성있는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또 “핵잠수함에 필수적인 리액터 개발·제작이나 운용에 요구되는 첨단 기술을 북한이 보유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3500t급에 이르는 잠수함 동체를 한·미 정보 당국의 감시망을 벗어나 은밀하게 핵 추진 방식으로 개발한다는 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군 당국이 북한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무시하지말고 추가 첩보수집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핵 보유 선언과 SLBM 발사 단계에 접어든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잠수함 전력을 핵 추진 방식으로 바꾸는 게 가장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핵 탄두를 장착할 수준의 SLBM을 구형 디젤 잠수함에 탑재해 운용한다는 건 말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펴낸 ‘2014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로미오급(길이 76.6m, 배수량 1859t) 잠수함과 잠수정 등 70여 척의 잠수 전력을 보유(한국군은 10여 척)하고 있다. 로미오급은 1950년대 구 소련이 제작한 노후 기종인데다 디젤엔진을 활용한 축전지를 써 최대 잠항시간이 하루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반해 핵 잠수함은 충전을 위해 수면 위로 부상할 필요가 없어 장기간 은밀한 기동이 가능하다. 양욱 위원은 “SLBM도 현재와 같은 디젤 잠수함 탑재시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은밀한 기동이 가능한 핵잠수함 탑재 SLBM이 북한의 분명한 목표며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최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 새로 건설 중인 잠수함 기지가 주목받고 있다. 영국의 군사전문 매체인 ‘IHS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지난 22일 위성사진 판독 결과를 토대로 신포항 남쪽 2.25㎞ 지점에 3000t급 잠수함이 정박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을 짓고 있다고 공개했다. 정보당국은 이 기지에 잠수함 은폐용 대형 덮개 시설이 만들어진 점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대북 감시망을 회피해가며 잠수함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킬 비밀 작업을 벌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08.16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 부인·자녀와 함께 제3국 망명”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탈북자 단속 지시에도 엘리트 층의 탈북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0일 김정은의 1월18일기계종합공장 방문 모습. [사진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영사업무 담당 외교관이 이달 초 부인과 자녀를 동반해 탈북 망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해온 북한 외화벌이 기관 간부도 비슷한 시기 부인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이탈 움직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러시아서 외화벌이 하던 간부 등
해외체류 엘리트들 잇따라 탈북
대북제재 대응책 등 압박에 부담감 “김정은 격노,
해외 근무자 가족 소환”
대북 소식통은 15일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의 경우 치밀한 사전준비 끝에 탈북을 결행해 제3국 망명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북한 대사관 측이 뒤늦게 소재 파악에 나섰지만 추적에는 실패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북한 측 영사업무 외에 런던 근교에 정착한 탈북자의 동태 파악과 같은 업무도 맡고 있던 것으로 소식통은 전했다. 영국 주도로 최근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평양으로부터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압박을 받아왔고, 부담을 느껴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러시아에 외화벌이를 위해 체류해온 간부의 경우 평양에 보내야 하는 달러 ‘계획분’을 조달하기 어렵게 되자 문책을 걱정해온 것으로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가족을 동반했다. 현지에서 함께 근무하는 부인은 물론 평양에 체류하거나 제3국에 유학 중인 자녀까지 합류시켜 탈북길에 올랐다는 얘기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격노해 해외근무 외교관·무역일꾼 가족들에 대한 소환령을 내렸다”며 “탈북 사고가 발생한 공관장이나 외화벌이 책임자의 경우 처벌 수위가 높아질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엘리트 계층의 탈북 사례는 부쩍 늘었다. 홍콩에서 열린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던 18세 북한 수학 영재는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해 망명을 요청했다. 북한군 총정치국에서 김정은의 외화관리를 담당한 장성급 인사가 거액의 달러를 챙겨 잠적했다는 설도 나왔다. 대남공작 업무를 맡았던 정찰총국 영관급 장교가 한국으로 망명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 관계당국은 사실상 시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해외 체류 북한 엘리트 계층의 탈북 사례는 드러난 것 외에 상당수 더 있다는 게 대북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유럽 지역의 외교관이나 동남아 무역기관 간부 등 10명 이상의 비공개 탈북 인사들이 한국에 정착해 관계당국의 보호 아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일반 주민과 달리 해외 생활을 통해 북한 체제의 모순을 알게 되고, 특히 자녀 교육 등을 감안할 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망명을 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아닌 제3국을 최종 망명지로 택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동생 고용숙은 미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살았던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과 딸인 이남옥 부부는 프랑스에 정착했다. 북한 미사일의 중동 판매 관련 극비정보를 갖고 1997년 탈북한 장승길 전 이집트 주재 대사의 경우 미 정보 당국이 눈독을 들이다 받아들인 경우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타깃이 될 엘리트층의 경우 신변보호 프로그램이 철저한 서방국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행 엘리트 탈북자의 유입도 늘고 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소장은 “통일부 의뢰를 받아 입국 직후 탈북자 면접조사를 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북한 내에서 엘리트였다고 답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핵·미사일 도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비판 여론과 대북제재의 여파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점도 엘리트 층의 탈북 망명이 증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올 들어 국내 정착 탈북자 숫자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도 의미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탈북자 단속에 집중해왔다. 가혹한 처벌을 하면서도 한국 국적을 얻은 탈북자를 유인 입북시켜 시혜를 베푸는 듯한 유화책도 병행했다. 북·중 접경지대에는 신형 철조망을 둘러치고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했다. 2011년 2700여 명이던 한국행 탈북자 숫자는 이듬해 1500여 명으로 급감했다. 지속적인 감소로 지난해 1270여 명에 그쳤던 탈북자 숫자는 지난 7월 말 현재 8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늘었다. 통일부는 10월께 국내 정착 탈북자가 3만 명 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08.19 "아이 하나 잃어버려 난리랍니다"…이영종 기자의 '태영호 탈북망명' 특종기
윗동네 분들이 테임즈 강변에서 아이 하나를 잃어버려 난리가 아닙니다."
▲주영국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탈북을 보도한 BBC 화면(사진 오른쪽이 태영호). [중앙포토, BBC 캡처]
시작은 짧고 강렬했다. 보통 일이 벌어진 게 아니구나 하는 '촉'이 왔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 일가족의 탈북 망명을 최초로 보도한 중앙일보의 특종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달 초 동남아 지역에 체류 중인 '대북 소식통'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긴박한 사안이 있을 때만 쓰기로 한 기자의 2G폰을 통해서다. 베테랑 정보맨들 사이에서 '윗동네'는 북한을 의미한다. 2001년 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비 방중 사실을 기자가 특종했을 때 핵심 정보를 제공해 준 인사도 공중전화를 통해 "윗동네 제일 높은 양반이 조금전 기차를 타고 강을 건넜다"고 알려온 적이 있다.
대북 정보 관계자들이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말은 꽤나 중요한 인물이 북한의 통제를 벗어났음을 일컫는다. 소식통의 전언은 런던에서 활동하던 북한 핵심 인사가 며칠 전 탈북했음을 직감케하는 말이었다
▲17일 부인 및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소속 태영호 공사. [중앙포토, 유튜브 캡처]
곧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하지만 대북정보 핵심 관계자나 정부 당국자들은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였다. 오랜 취재 경험상 이들이 실제 관련 정보에 접하지 못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정부 내에서도 핵심 고위인사 몇몇만이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상당히 민감한 인물의 탈북망명 프로세스가 진행중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 속 같던 사태의 윤곽은 일주일 넘는 고위층 대상 취재를 통해 조금씩 잡혀나가기 시작했다.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망명한 인사가 "매우 특이한 성을 가진 인물"이란 점을 파악했다. 한 고위 인사는 "북한의 신경이 날카롭다. 안전하게 벗어날때까지만 참아달라"며 사실상 탈북 사실을 확인해줬다. 망명 사태로 평양의 외교 책임자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궁지에 몰렸다는 내부 동향도 전해졌다
▲김일성이 1947년 6월 오백룡과 함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백룡의 품에 안겨 있다. 17일 한국으로 망명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소속 태영호 공사의 부인 오혜선은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오백룡 노동당 군사부장의 친척이다. [중앙포토, 유튜브 캡처
며칠이 지나면서 망명신청을 한 일가족이 북한의 추적을 벗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바로 기사를 게재하는 쪽으로 결론났다. 최종확인을 거쳐 8월16일자 한개면에 걸쳐 탈북망명 사태 발생과 가족 동반 사실 등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적사항이나 망명 결심 등의 과정은 드러낼 수 없었다. 탈북망명자의 경우 신변보호를 위해 서울 도착 또는 그에 준하는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구체적 신상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중앙일보의 취재원칙 때문이었다
▲북한 외교관의 탈북 사실을 특종 보도한 중앙일보 8월16일자 6면
첫 보도 이후에도 정부 당국은 언론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대해 "확인되지 않는다"거나 "확인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를 토대로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런던에서의 탈북망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여기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했다. 하지만 BBC를 비롯한 외신의 태도는 달랐다. 중앙일보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취재에 들어갔고,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자문하거나 관련 정보를 문의하기도 했다.
BBC의 후속 보도 이후 국내 언론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태영호가 런던에서의 생활을 설명하거나 북한체제에 대한 옹호 연설을 한 유투브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파장은 번져나갔다. 태영호의 부인 오모씨와 깊은 친분이 있다는 고위 탈북인사는 기자와 만나 "오씨가 항일빨치산 오백룡의 일가"라는 점을 귀띔해 후속 보도에 의미를 더해줬다. 결국 중앙일보의 보도 이틀만에 통일부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태영호씨 일가의 탈북망명과 한국 도착 사실을 발표했다.
08.30 졸았다고 장관 처형…공포에 떠는 북한 엘리트층
김정은(32)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다시 공포정치의 칼날을 뽑아들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공개처형을 재개했다.
태영호 공사 망명 뒤 본보기 숙청
김정은, 체제 이탈 용납 않겠다는 뜻
냉·온탕 오가는 즉흥적 통치스타일
“엘리트층 망명 줄이을 가능성도”
이번에는 내각의 핵심 장관인 교육상과 농업상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게 29일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교육상은 김정은 주재 회의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끌려나갔다. 농업상은 농업정책에 대한 부진을 이유로 ‘반혁명’죄를 쓰고 처형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탈북·망명 사태와 맞물린 처형 시점이 주목된다. 태 공사의 한국행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해외 공관원과 주재원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과 함께 동반 가족의 평양 소환을 지시하는 등 직접 대책을 챙겼다. 평양 권력 핵심 엘리트들의 체제이반이나 이탈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뜻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권력 내부의 엘리트 세력에 대해서도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신호탄 성격의 본보기식 처형”이라고 말했다.
노동당과 군부에 머물던 처형 대상이 내각 전문부서로까지 확대한 대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2012년 7월 이영호 총참모장에 대한 숙청과 이듬해 12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등 김정은 집권 5년간 이뤄진 숙청은 대개 당의 핵심이나 고위 군인에 한정됐다. 이번 처형은 내각의 전문관료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경고란 얘기다. 식량난 악화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질 경우 노동당 정책부서는 물론 내각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7년 서관희 농업담당 당비서와 김원진 농업위원장을 숙청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식량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정부 당국의 평가다. 한동안 호전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다시 악화됐다는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보고서에서 7월 북한 취약계층 45만7000여 명에게 지원한 식량이 379t에 불과(1인당 하루 27g)했다고 밝혔다. 2011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왔다. 한 탈북자는 “북한 가족과 통화했는데 최근 산자락에 조성한 다락밭에 김정은 지시로 묘목을 심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식량 걱정이 더 늘고 체제 반감이 커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즉흥적 통치스타일도 공포정치가 계속되는 한 이유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장에서 그는 책임자인 이병철 군수공업부 부부장과 포옹하고 맞담배를 피우는 신임을 보였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간부는 졸거나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처형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할 때도 이런 이유를 들었다.
공개처형과 엘리트 탈북을 보는 정부의 시각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언급에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의 성격은 예측할 수 없다”는 식의 공개발언을 했고, 체제 균열이나 자멸까지 지적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나 민생이 유린당하는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동요 가능성이다. 평양에선 공개처형을 비롯한 공포정치가 번져가면서 누구도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 체류 엘리트의 경우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권력 핵심축이라던 이른바 ‘빨치산’ 혈통마저 체제를 등지고 한국행을 택하는 현실 때문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해외에 체류하는 북한 공관원이나 무역기관 간부들이 제 발로 한국이나 서방의 외교공관에 걸어들어오는 망명 사태가 더 나타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09.13 노무현 “북핵 일리있는 측면있다”…MB는 6자회담만 믿어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 여성들이 12일 평북 신의주와 국경을 마주한 중국 단둥 세관에서 줄지어 통관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지역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로 추정된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한 대북제재 차원에서 해외 북한 근로자 송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둥=로이터]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려가 한껏 고조된 2004년 11월. 방미(訪美)에 나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LA연설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운을 뗀뒤 “북한의 주장에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처음엔 “북한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했다가 ‘일리있다’는 취지로 바꿨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큰 파장을 던졌다. 북한의 핵 개발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다.
그로부터 1년11개월 뒤 북한이 첫 핵 실험(2006년 10월 함북 풍계리)을 했지만 노 대통령의 북핵 인식은 여전히 논란거리였다. 핵 실험 한 달 뒤 연설에서 그는 북한이 핵 무기로 선제공격할 가능성에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10년이 흐른 지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잇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치며 “핵 선제타격 능력을 갖췄다”고 공언하고 있다.
역대 정부 북핵 대응 어떻게
YS, NPT 탈퇴에도 정상회담 추진
DJ, 김정일 북핵 동결 제스처 과신
“남북관계 성과내기 집착해 패착”
북한이 지난 9일 역대 최대 위력의 5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하지만 북핵 개발 과정을 되짚어보면 역대 정부의 일관성없는 대응과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가 드러난다. 정영태 동양대 군사연구소장은 “북핵 위기를 안이하게 여기고, 북한 감싸기나 남북관계 성과내기에만 집착한 게 패착”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윤곽을 드러낸 1993년 2월 말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김일성 주석을 직접 호명하며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3주도 지나지 않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는 등 1차 북핵위기가 터지자 “핵을 가진자와 악수할 수 없다”며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그런데 이듬해 7월엔 김일성과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같은 달 김일성 사망으로 회담은 무산됐고, 10월 북한과 미국이 핵 동결과 대북 경수로 발전소 및 중유(重油) 지원을 맞바꾸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내놓자 입장이 어정쩡해졌다.
유화적 대북접근을 시도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핵 의혹에 대해 좀체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북핵 동결’ 제스처를 과신했고, 북한의 합의이행을 믿었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이후 남북대화 과정에서 북한 핵은 늘 발목을 잡았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1월엔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이 미국의 대북중유 중단 방침에 반발하자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정 장관 발언은 정부 공식입장이 아니다”며 반박 성명을 내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연출했다.
북핵에 대한 미덥지 못한 대응은 보수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핵·개방 3000’(핵 포기시 북한 주민의 연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폐기 창구로서 6자회담을 대안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터진 직후엔 “협상이나 대화로 핵을 포기시킬 수 없다”며 북한 체제가 붕괴해야 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퇴임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북핵 위협의 현실화를 목도한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며 초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이어 군 당국은 “도발시 평양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북핵 해결을 위한 알맹이 있는 전략이나 해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핵 개발에 필요한 3대 요소로 기술과 자본(돈),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꼽는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박사는 “핵을 대응하는 데에도 대통령의 의지와 통치철학이 절대적 요인이란 의미”라고 말했다.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을 통해 집요하게 핵무기 보유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의 대응은 물러터졌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북한의 핵을 저지할 수 있는 결연한 의지와 대북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 라오스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지금 북한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면 국제사회 전체가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도 이런 절박성이 담겨있다.
09.27 핵실험 해놓고…“해방 후 첫 대재앙” 수해지원 요청한 북한
▲8월 말 강타한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최악의 수해를 입은 함북 온성군 남양노동자구.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사망 138명, 실종 400여 명, 이재민 6만8900여 명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RFA 홈페이지]
평양의 관영매체에는 요즘 “모든 역량을 북부지대 큰물 피해 복구전선으로!”라는 식의 선전·선동이 넘쳐납니다. 26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피해복구 전투는 우리의 귀중한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적대세력들과의 치열한 계급투쟁”이란 섬뜩한 주장까지 실렸습니다.
핵실험 전엔 ‘15명 행방불명’ 보도
열흘 뒤 ‘수백명 인명피해’ 밝혀 ‘
무작정 돕자’는 감상주의 벗고
북 주민 제대로 지원할 방안 짜야
수마(水魔)가 북한 두만강변 북부지역을 할퀴고 지나간 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 사이라고 합니다. 10호 태풍 라이언록은 함북 경흥군과 부령군에 닷새간 각각 320㎜와 290㎜의 비를 뿌렸는데요. 두만강 유역 관측이래 가장 큰 수해로 함북 회령시와 무산군·연사군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3일 첫 보도에서 “회령시에서만 15명이 행방불명됐다”고 전했는데요. 14일에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인명 피해는 수백명에 달한다”고 공개했습니다. “해방후 처음있는 대재앙”이란 설명도 곁들였죠.
북한은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는데요. 유엔대표부를 통해 미국의 구호단체들에게까지 긴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북한 외무성도 지난 14일 몽골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9개국 평양주재 대사를 불러 설명회를 가졌죠. 세계식량계획(WFP) 등 북한에서 활동하는 기구들도 유엔 중앙긴급구호기금(CERF)을 요청하는 등 부산합니다
우리 대북지원 단체들도 팔을 걷고 부쳤습니다. 국내 59개 단체가 참여하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는 북한과의 직접 접촉이 여의치 않자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지원 쪽으로 검토 중인데요.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방한복 지원에 나서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가로막는 복병(伏兵)이 나타났습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인데요. 그의 핵·미사일 도발은 지원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가 됐죠. 5차례 핵실험 중 3번이 그의 집권(2012년12월) 이후 이뤄졌고, 올들어서만 모두 22기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는 등의 집착이 문제인데요. 특히 최악의 수해를 보고받았을 시점인 지난 9일 5차 핵 실험 버튼을 눌렀다는 건 비난받을 대목입니다. 대북지원 단체 관계자는 “수해지원을 한창 논의하던 회의 자리에서 핵실험 소식을 듣고 참석자들이 아연실색했다”고 귀띔합니다.
민생을 강조해온 김정은은 수해현장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핵·미사일 기술자와 기념촬영 행사를 하고, 최고급 SUV차량인 레인지로버를 타고 평양 인근 협동농장에 나타나기도 했죠. 23일에는 수해 현장과 인접한 삼지연 군에서 대형 에드벌룬들을 띄우고 군중을 동원해 김정일 동상 제막식을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통일부는 대북지원 허용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수해 지원을 할 경우 그 공(功)이 다 독재자인 김정은에게 돌아간다”(23일 정준희 대변인 브리핑)는 언급에서 분위기가 드러나는데요. 핵 실험때까지 피해상황을 감추던 북한이 다음날인 10일 노동당 호소문을 내 지원을 요청하는 건 골든타임을 의도적으로 흘려보낸 용납못할 처사란 설명입니다.
북한의 과거 행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실종자가 500명을 넘었던 2012년여름 수해 때 이명박 정부가 지원의사를 밝히자 북한은 “남측의 계획 수량과 품목을 알려달라”고 답했죠. 정부는 밀가루 1만톤(25톤 대형트럭 400대분)과 라면 300만개, 의약품과 구호물품 등 100억원 어치를 준비했는데요. 북측은 내심 원했던 쌀과 시멘트가 빠지자 “보잘것 없는 물자로 우리를 심히 모독했다”며 걷어차버렸죠. 북한은 2011년에도 우리 정부가 영유아 유아식 140만개와 라면 160만개 등을 지원하려하자 “쌀과 시멘트를 통크게 지원해달라”며 불발시켰습니다.
고통받는 북녘 동포를 돕자는 인도적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집권 5년차 동안 드러난 북한 최고지도자의 행태 때문에 국민여론은 싸늘하게 식어버렸습니다. 복지 시설의 원장이 지원금을 빼돌려 자신의 배만 불리고, 인권유린을 일삼는데도 무작정 후원금을 내라는 건 난센스란 인식이 깔린겁니다. 우선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 셈이죠.
어쩌면 김정은의 관심사는 이번 수해로 떠내려가버린 두만강변 탈북자 감시초소와 철조망일지 모릅니다. 살림집이나 공장·농지보다 복구 우선순위에 꼽힐 수 있다는 얘기죠. 대북지원을 주장하는 우리 단체·인사들도 무작정 돕자는 식의 감상(感傷)적 접근에서 벗어나, 북한
주민을 제대로 지원할 방안을 정부 당국과 짜냈으면 합니다.
10.11 노동당 움직이는 정치국 27명…핵심은 상무위원 4인방
북한 노동당 창건 71주년을 맞은 10일 노동신문은 “당(黨)과 인민의 혼연일체”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함북지역에서 최근 발생한 수해 현장의 사연을 소개했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큰물 속에서 가산(家産)보다 ‘태양상 초상화’를 가슴에 품은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다. 집안에 걸려있던 김일성·김정일 사진 액자가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가지 않게하려다 목숨을 버렸다는 의미다.
창건 71주년 새 권력지도 분석
‘김정일 운구차 7인방’ 둘만 남아
2년 전 강등됐던 최용해 복귀 눈길
지난 8월 말~9월 초 북·중 국경 두만강 유역 범람으로 주민 138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북한 당국은 밝힌 바 있다. 노동신문은 “천만 군민(軍民)은 위대한 어머니당에 다함없는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고 있다”며 고 주장했다.
북한은 당 국가로 불린다. 조선노동당의 일당독재로 체제가 굴러간다는 의미다. 지난 5월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노동당 위원장 직책을 거머쥐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갖고 있던 당 총비서(김정은은 제1비서직) 자리를 차지하는데 부담이 따르자 새 의자를 만든 것이다. 당시 북한은 모두 328개 직위를 선출하거나 임명했다.
통일부는 당 대회 인선과 이후 변동을 반영해 노동당 권력지도를 최근 완성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을 수위(首位)로 하는 노동당의 핵심 조직은 정치국이다. 상무위원 중 김정은을 제외한 4인방이 정점이라 할 수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 총리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다. 2012년4월 당대표자회에서 상무위원 선출됐다 2년여 만에 강등당했던 최용해의 복귀는 눈길을 끌었다. 이를 두고 88세 고령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후임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 때 선두에선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의 몰락도 두드러진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처형됐고, 군부 최측근이던 이영호 총참모장은 숙청당하는 등 힘을 잃었다. 노동당 내에 살아남은건 김기남·최태복 비서 뿐이다. 그만큼 김정은 집권 5년 동안 권력의 부침이 심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체제의 본격 출범을 알린 7차 당대회에서 짜인 14명의 정치국 위원과 9명의 후보위원을 포함한 27명(김정은 제외)의 정치국 멤버가 노동당을 이끌 파워엘리트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 시절 첫 공직으로 부여받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는 그가 위원장으로 올라가며 폐지됐다. 대신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 ▶이명수 총참모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 ▶최부일 인민보안상 등이 위원으로 포진했다. 통일부는 “박봉주 총리와 이만건 국무위원이 당 군사위원에 포함된 건 당의 역할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노동당 통치를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위시한 ‘3개의 축’ 개념으로 설명한다. 핵심 축인 ‘김일성-김정일 주의’는 혁명의 원동력으로 규정된다. 10일자 노동신문 1면 기념사설의 제목도 ‘조선노동당의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 높이 인민의 천하제일강국을 일떠 세울 것이다’였다. 둘째 요소인 일심단결은 백전백승의 보검(寶劍)이라고 주장한다. 셋째로 내세우는 핵 억제력은 강성번영의 담보라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이 3가지 핵심이 어우러져 김정은 시대의 주체조선을 이끌어 가게 된다는 것이다.
10.25 호위사 병력만 12만 명…신변불안 김정은 ‘3중 보디가드’
김정은(32)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3월 서해 최전방 장재도 섬방어대를 방문했습니다. 맞은편 연평도와 불과 9㎞ 떨어진 곳인데요. 북한 관영매체들은 당시 “작은 목선에 몸을 의지해 병사들을 찾았다”며 김정은을 치켜세운 뒤 관련 영상을 공개했죠. 한·미 정보 당국의 추적 결과 김정은 일행은 남포시 서해함대사령부에서 전함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섬 가까이에서 목선으로 옮겨타 깜짝쇼를 벌인 건데요. 핵심 정보 관계자는 “김정은 동선은 대북감시망에 실시간으로 포착되고 있다”며 “그 때 우리 군 당국은 정찰위성이 파악한 김정은의 모습을 공개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귀띔합니다. ‘남조선 벌초’ 등 호전적 언동을 한 김정은의 기세를 꺾으려는 심리전 차원이었다는 겁니다. 미군 측 반대로 무산됐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동정에 한·미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최고존엄 지키기’ 비상 걸린 평양
한·미 ‘참수작전’ 가능성에 공포
김정일묘 참배 등 관례 행사 취소
폭발물·독극물 탐지장비도 수입
일부선 “경호망 안이 더 위험할 수도”
요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맞선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거칠어지자 평양은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핵 공격을 하면 바로 죽는다”는 초강경 발언까지 쏟아냈는데요. 북한은 “워싱턴을 핵으로 타격하겠다”거나 “괌 미군기지를 날려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맞서고 있죠.
그러면서도 이른바 ‘최고존엄’으로 부르는 김정은 신변경호에 걱정이 많은듯 합니다. 노동당 창건 71주년인 지난 10일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참배행사를 생략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분석됩니다. 주요 기념일 새벽 0시에 이 장소에 들린다는게 관례화된만큼 위험하다고 본겁니다. 이 즈음 한반도에는 B1-B 랜서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등 북한이 두려워하는 미 전략자산이 총출동하는 긴장국면이 조성됐죠.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실제 한·미가 김정은 제거작전에 나설 수 있다는 공포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은이 최근 신변불안으로 외부행사 일정과 장소를 갑자기 바꾸는 일이 잦아졌다는 국가정보원의 지난주 국회 정보위 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폭발물이나 독극물 탐지장비를 해외에서 도입하는 등 경호를 대폭 강화하고 있는 동향도 파악됐다는건데요. 김정은 제거를 의미하는 ‘참수 작전’의 구체적 내용이나 미 전략폭격기 파괴력, 특수부대 규모 파악에도 나섰다고 합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월 메르세데스 벤츠의 S600 풀만가드 리무진을 타고 인민무력성에 방문하는 모습.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의 근접 경호는 우리의 대통령 경호실에 해당하는 호위사령부가 담당합니다. 북한군 963부대로 불리는 호위사는 중무장한 병력을 포함해 12만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김정은 집무실과 숙소는 물론 지방의 특각(전용 별장)을 철통같이 지킨다는데요. 여동생 김여정과 이복형 김정철을 비롯한 가족과 친인척 신변도 이들이 책임집니다.
군부대 방문 때는 우리의 기무사령부 격인 군 보위사령부가 무기 회수 등 경호를 맡는데요. 호위사와 주도권 갈등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성(옛 보위부)과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까지 포함해 3선(線)체제의 그물망 경호가 펼쳐집니다. 전용 벤츠 리무진과 똑같은 모양의 차량 몇대를 나란히 이동시키거나, 노동신문에 김정은 방문 날짜를 공개않는 것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방책입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탈북인사들은 입을 모읍니다.
물론 김일성·김정일 시기 위해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에 발각된 소련 푸룬제아카데미 출신 군 간부들의 쿠테타 시도나 95년 함경북도 주둔 6군단의 반란 시도는 대표적 사례인데요. 최근 김정은 체제에도 불안요소가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국정원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엘리트층의 충성심 약화, 주민불만 고조 등으로 인해 체제 불안정성이 높아졌다”는 입장이죠.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의 가장 큰 적(敵)은 철통같은 경호망 안쪽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민생을 외면한 채 핵·마시일 도발에 집착하며 공포정치를 일삼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북한 핵심 엘리트 층의 반감이나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겁니다.
11.22 “백두산 아니라 후지산 줄기냐” 비아냥에…김정은의 생모 고용희 우상화 제동
▲북한 기록영화에 등장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와 어린 김정은의 모습. [중앙포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를 우상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시도가 벽에 부닥쳤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21일 “이달 평양에서 잇달아 열린 여성의 날(16일) 행사와 사회주의여성동맹 6차 대회(17~18일) 동향을 살펴봤지만 고용희(한때 고영희로 알려짐)에 대한 찬양·숭배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권 5년 차를 맞은 김정은이 우상화에 나설 가능성을 주시했지만 특이동향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일본 북송교포 출신 아킬레스건
여성의날·여맹대회 때 언급 없어
북한에서 ‘여성의 날’이 제정된 건 지난 2012년이다. 그해 초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어머니에게 꽃도 드리고 선물도 하라며 공휴일로 정했다. 이를 두고 지난 2004년 유선암으로 생모를 잃은 김정은의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그리움이 반영된 조치란 해석이 나왔다. 올해의 경우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등을 ‘조선의 어머니’로 찬양하는 보도를 내보냈지만 고용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33년 만에 개최된 여맹대회도 관심을 모았다. 30세 이상 북한 전업주부들의 조직체인 여맹은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가 27년간 위원장을 맡는 등 상징적 조직이다. 하지만 이틀 간의 행사에서는 고용희를 암시하는 표현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2012년 1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독서지도를 받는 기록영상을 관영TV로 공개했다. 고위 간부들에게는 고용희의 육성과 영상이 담긴 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을 비공개리에 관람토록했다.
이후 고용희와 관련한 언급이나 자료공개는 중단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고용희가 일본 오사카 출신의 북송교포란 점이 가계 우상화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백두혈통’으로 선전되는 김정은의 생모가 북송교포 출신이란 점을 두고 주민들 사이에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은 후지산 줄기”란 비아냥도 나온다는 것이다.
12.06 “김정은, 통전부 30년간못한일최순실이해냈다생각할것”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는 북한 관영매체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아침 평양에서 발간된 노동신문은 ‘남조선’ 코너 한 개면 전체를 관련 선동 글로 채웠는데요.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린 6차 촛불 집회를 머릿기사에 올린 지면 곳곳에는 ‘박근혜 패당’ ‘박정희 족속’ ‘역적 무리’ 등의 표현은 물론 욕지거리 수준의 막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저열한 단어가 버젓이 노동당 기관지에 실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입에담기 힘든 극렬한 비방을 그대로 쏟아내는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멘트는 귀를 의심케합니다.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인 ‘메아리’는 최순실 사태 초점 페이지를 만들어 ‘박근혜의 교활한 술책은 통하지 않는다’는 등의 글을 무더기로 올려놓기도했죠.
▲11월 29일자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10월29일 1차 촛불집회를 계기로 본격화했는데요. 관영매체를 총동원한 선동보도는 첫째로 박근혜 정부의 퇴진과 남한 정국의 혼란조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둘째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내 혼란과 부패상을 부각시켜 김정은에 대한 충성과 이른바 ‘체제 우월성’을 갖도록 유도하는 문구들이 눈에 띕니다. 셋째는 박근혜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대북정책의 부당성을 주장해 노선변화를 이끌려는 의도가 드러납니다. 넷째는 북한으로서는 껄끄러운 존재인 남한 내 보수세력을 이참에 완전히 몰락·퇴출시켜버리겠다는 뜻도 감지됩니다.
흥미로운 건 북한 스스로 ‘북풍(北風)’ 운운하고 나선다는 겁니다. 북한은 2일 민족화해협의회 명의의 담화에서 “박근혜 패거리들은 날로 고조되는 전민(全民)항쟁이 ‘북의 조종’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여론화해보려고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죠. 최근 활발해진 대남 난수(亂數)방송이나 북핵 위협론까지 거론하며 셀프 북풍 차단에 나선 겁니다. 최순실 사태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뜻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목인듯 합니다.
‘촛불시위 대서특필’ 북한매체 의도
정국 혼란, 보수세력 축출 등 주목
김정은, 수시 보고 받고 실시간 체크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집무실과 관저의 위성TV나 인터넷망으로 실시간 체크하는건 물론이고, 당 통일전선부의 ‘남조선 정세보고’를 통해 수시로 추이를 살펴볼 것이란 게 정보당국의 판단입니다. 대남부문에 관여했던 탈북인사는 “김정은이 ‘통전부가 30년 넘도록 해내지 못한 일을 최순실이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집요한 대남 공작에도 성과가 없던 남한 정국 혼란이나 보수세력 축출 국면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가 스스로 만들어줬다는 건데요. 며칠 전 포병부대 훈련을 참관한 김정은이 “남조선 것들을 쓸어버리라”고 호언한 것도 결국 우리가 북한에게 얕잡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11월 30일자
하지만 북한도 마냥 촛불을 즐길 수 만은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집회와 시위 장면을 전하는 북한 매체의 영상에서는 평양 집권층의 심각한 고민이 엿보이는데요. 남한 TV 화면이나 신문 사진을 무단전재하면서도 유독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찍은 사진만을 선호하는 게 눈길을 끕니다. 화질도 떨어트려 다소 조잡하게 만들죠. 노동당 간부 출신의 탈북인사는 “북한 주민들에게 서울의 고층빌딩 숲이나 차량정체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건 치명적인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합니다. 군중의 모습과 플래카드만 보일 정도만 남기고 주변을 모두 잘라내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자칫 주민들 사이에 “남조선에는 최고지도자도 몰아낼 자유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꿈틀거린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죠.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해 이집트와 알제리 등을 휩쓴 민주화 물결인 ‘재스민 혁명 ’과 달리 서울발 촛불혁명은 코앞에 닥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