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단3/ 김동연 편/ 북한과 합작한 해외기업 100개 최초공개 /남성욱의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 /백승구의 공포政治 독재자 김정은의 정권 장악력
[북한 진단] 3
★김동연 편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 2016.03.28 북한과 합작한 해외기업 100개 최초공개
▲북한 김정은이 북한이 개발했다는 핵탄두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한국시각), 미국과 중국이 유엔안보리 대북(對北)제재 결의 초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이 실제로 장기간에 걸쳐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실천할지는 불투명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북제재 시늉만 한다고 보고 있다. 국내외 정세에 정통한 중국전문가는 중국의 대북제재안 합의는, 한반도 사드 배치를 끝까지 막기 위한 일종의 후퇴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한발을 빼는 대신 사드 배치는 용납할 수 없다는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의 방송매체 PBS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동북아에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대북제재 등에 중국은 미온적(微溫的) 제스처만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새로운 복병으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중국과 함께 암암리에 북한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일단 유럽과 미국은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특히 미·일은 강도 높은 독자적 제재까지 나설 계획이다. 한국도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를 던져 미·일에 강력한 독자적 제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로 입항하려던 북한 선박들을 추적해 우리 정부가 해당 선박들의 입항 금지를 중국과 러시아에 요청한 것도 받아들여졌다. 북한 선박들은 회항해야만 했다. 필리핀에 입항했던 북한 선박은 필리핀 당국에 몰수당했다.
김정은의 지갑, 39호실
대북제재안의 핵심은 단연 경제적 압박이다. 북한이 해외기업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기자는 해외 취재원 등을 통해 북한과 사업을 하고 있는 합영기업 명단을 입수했다. 이 명단에는 약 2000년대 초반부터 2013년까지 북한과 사업을 추진해 온 기업들이 총망라돼 있다. 이번에 입수한 자료는 국내외 정부기관의 대북제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의 평화를 깨고, 북한 내 인권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정한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이기도 하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기업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배경이다. 이 명단에 포함된 일부 기업은 북한의 핵개발 등을 이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공단 폐쇄 직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의 수익금 중 약 70%가량이 핵개발 등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발언에 일부 야당의원 등이 자료를 요청했으나 보안을 근거로 거절한 바 있다. 국내 여러 매체가 취재해 본 결과 개성공단의 자금은 ‘김정은의 지갑’이라고 불리는 북한의 39호실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렇게 북한의 국제사업과 연관된 자금은 모두 북한의 지휘부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명단은 입수한 비밀자료 여러 개를 종합 및 분석해 작성한 것이다. 명단 정리에 약 한 달이 소요됐다. 입수한 자료에서 파악이 불가능한 부분은 공백으로 두었다. 입수자료는 출처에 따라 차이를 보여 각 자료마다 사용된 언어가 중국어, 영어 등 다양했다. 국내외 관계당국의 추적을 돕고자 회사명은 되도록 원어(原語)를 유지해 작성했다. 이 자료에 나온 기업을 국내 검색포털 등을 통해 확인해 보면 북한 서버로 접속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국내에서 접속이 불가능했다.
명단에 나온 북한의 기업들을 분석해 보니 북한 측 본사는 북한의 평양이나 함경북도와 양강도에 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지역에 본사를 설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 측 본사도 대부분이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린성과 랴오닝성에 대부분 위치해 있다.
입수한 자료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은 북중(北中) 합영기업이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모든 외화(外貨)를 중국이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중국이 이번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돈줄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 구조다.
北 연간 해외 합영기업 통해 올린 수익 약 4000억원
▲뉴욕의 유엔(UN) 본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입수한 비밀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북한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총 액수는 약 24억 달러(USD)에 달한다. 이것을 한화로 환산하면 2조9000억원이다. 이 수익을 해당 연수로 나누면 연간 3억 달러(한화 3800억원)를 벌어들인 셈이다.
명단에 포함된 회사들의 설립구조를 보면, 반수가 넘는 회사들이 합영기업(合營企業·Joint venture) 형태를 띠고 있다. 북한에서 통신업을 진행했던 이집트의 ‘오라스콤’도 합영기업의 형태였다. 오라스콤은 북한에서는 고려링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오라스콤은 북한에서 수익을 내고도 북한당국에 송금을 허가받지 못해 사실상 모든 수익금을 북한에 강제몰수당했다.
합영기업들 대부분은 기업의 운영권한을 북한이 아닌 해외 측이 가지고 있다. 즉 합영기업의 지분을 나눈 비율이 북한보다는 해외기업이 더 크다는 말이다. 해외기업과 북한이 50대 50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지분 보유율은 북한이 적더라도 실제 수익금은 북한이 더 많이 수령해 간다고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오라스콤의 경우 북한은 고작 25%의 지분(오라스콤 75%)만 가지고 있었지만 송금을 제한해 수익금 전액을 빼앗아갔다. 결국 기업 지분율이 더 많다는 건 그만큼 투자비용을 해외 측 회사에서 대부분 부담했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이득인 셈이다.
합영기업에 이어 다음으로 많은 사업 형태는 계약 합영기업이다. 이들은 일정한 계약 조건을 걸고 일시적으로 북한과 합작한다. 마지막으로 100% 순수외국기업(Foreign subsidary)이 북한에 진출한 경우다.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 철수 이후 차량들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이태경 기자
다음은 입수한 정보 자료들을 토대로 국가별로 분류한 기업 명단이다.
이들 기업을 업종별로 분류한 결과, 대부분의 합영기업은 광물자원과 연계된 광산업체이다. 북한에서 채굴한 자원을 중국에 수출해 상당수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중에는 희토류도 포함하고 있다.
광산업 다음으로 많은 것은 소비재, 중공업 및 건설업, 식품 및 농업, 운송업, 화학, 관광, IT전자, 무역, 금융 순이다. 즉 북한은 남한과 달리 주요 사업 분야가 국가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부가(高附加)의 첨단 분야에 대한 사업은 극소수였다.
러시아는 북한과 같은 공산권 국가임에도 입수된 자료들 중에서 파악된 합영기업의 수가 많지 않았다. 중국과 비교했을 때, 이는 매우 상반된 것이다. 러시아는 합영기업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북한을 도와주고 있는지 관계당국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독자적인 대북제재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북한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한 유럽의 국가들이 다수 있다. 특히 중립국 지위를 가진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 정부 관계자는 “현재 북한에 지원되는 물품은 그 종류와 수량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의약품에 대한 지원은 지속할 예정이지만, 규모를 늘리거나 식량을 대량으로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 70~80년대 스위스는 북한에 상당량의 식량을 지원했지만 이와 같은 지원이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대북제재안의 중요성을 중립국들도 인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나열한 대부분의 합영기업은 사업을 위해 양국 간 본사(Head Quarter)를 필요로 한다. 북한 측 본사는 수도인 평양을 선호하고 있다. 전력 공급이 타지역에 비해 안정적이고 정부 주요 기관 및 관련 간부들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北 2006년 1차 핵실험했는데… 대북해외투자는 급증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안 표결 1일 전 북한의 화물트럭들이 중국 단둥의 한 화물창고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평양 중에서도 평양의 중심부에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그다음으로는 평양 내 소규모 자치구(군, 읍)인 낙랑, 만경대, 모란봉, 대동강 순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평양 시내 곳곳에 합영회사의 사무실들을 배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보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평양에만 약 120여 개 합작기업의 북한 측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북한이 해외 국가와 합작회사를 가장 많이 차린 시점은 2006년이다. 북한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다른 기간 대비 합작회사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초 성장세는 2003년부터 목격됐다. 이렇게 해외 투자가 늘어난 원인은 북한의 대외 정책의 변화로 파악됐다. 북한은 2002년에 대외 정책을 개선해 해외 교역량을 늘려나갔다. 전체 합작회사 중 약 80%가량이 2003년 이후 생겨난 회사들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북한은 이 시기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돼 있었고 2006년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도발행위에도 해외투자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동안 시행된 대북제재가 큰 실효성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오히려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된 2008년 대북 해외투자는 2007년 대비 급감했다. 어떻게 북한이 가장 어려운 시기 최대 해외투자량을 달성했는지 관계당국의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이 원인을 분석해야 향후 가해질 대북제재에서는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 2016.03.30 北 김정은의 對南도발 시나리오...美CIA, 군사전문가들 분석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시·도지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내 전후방 어디에서나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라”는 북한 김정은의 지시가 정찰총국 내부에 전파됐다는 내용을 우리 국정원이 입수,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미 우리는 과거 북한의 성동격서(聲東擊西)식 도발과 테러를 경험한 바 있다.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에 능한 북한은 대화의 자세를 취하면서도 돌연 공격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여 예측이 어렵다는 게 대북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북한의 대남도발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유사시 북한의 도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세 가지 방향으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미국 정보당국이 분석한 자료들을 토대로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을 살펴봤다. 두 번째는 실전과 같은 전쟁 시뮬레이션에 참가한 전직 군 관계자들을 통해 문제점을 확인했다. 세 번째는 국내외 군사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북한의 입장에서 도발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짚어봤다.
美 정보당국의 분석
김정은 정권, ‘특별행동’이란 말 많이 사용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이후 대남도발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강조했다. 2012년은 김정은이 김정일로부터 정권을 승계받아 김정은의 통치스타일이 정착되어 가던 초기이다. 이 자료는 2012년 이후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다각도로 분석했는데, 북한의 도발 양상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특히 대남비방 시 북한은 ‘특별행동(Special action)’에 돌입하겠다는 엄포를 쏟아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비방 성향은 김정일 사망 이후 두드러졌으며, 실제 대남도발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것을 CIA의 내부 자료는 ‘비정상적 협박 신호(Unusual Threat Signal)’라고 칭했다.
김정일 정권에서는 공격선포가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신랄한 대남비방 중 추상적으로 도발을 묘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방 내용 중 자주 사용하는 ‘특별행동’이라는 단어 선택도 이런 비정상적 협박 신호의 하나라는 것. 이것이 군사적 공격인지, 테러 성격의 소규모 도발인지 분간할 수 없게 하는 단어 선택이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경고성 비방을 하고 나면 곧장 실제 도발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런 예측하기 어려운 대남비방 내용과 도발은 2012년 이후 이명박 정권을 향해 여러 차례 이어졌다. 당시 북한은 대남비방 시 ‘행동’에 돌입한다는 식의 추상적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CIA는 김정일 정권이던 2010년에는 구체적인 발언을 쏟아냈다며 실제 사례를 들어 김정은 정권과 비교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직전인 2010년 10월 29일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에 대항해 강력한 군사적 행동에 돌입할 것(Powerful military action)”이라고 발표했다. 또 “자비 없는 물리적 복수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공격의 범주가 군사적 범위라는 점을 명확히 발표한 것이었고, 실제 공격도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감행됐다. 당시 ‘물리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직접 공격을 시사했다.
김정은 정권에서는 추상적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특별행동’과 “곧 시작할 것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공격의 방법과 시점을 모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CIA는 북한이 본래 ‘곧(Soon)’이라는 표현을 과거에는 자주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에서는 자주 쓰고 있다. 북한이 이 표현을 사용하면 유리한 점이 두 가지 생긴다. 첫째는 북한이 도발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 수 있고, 둘째는 도발을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도발 시점을 전혀 알 수 없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이 목격됐다. 김정은은 아무런 경고 없이 핵실험을 감행했고, 미사일 발사도 국제사회에 발사예정일을 다시 통보해 예측을 어렵게 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은 돌발적인 행동을 즐기고 국제사회의 예상을 깨고 싶어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美 국방정보국, “전방 지역 수시로 공격할 수 있어”
▲지난 2015년 북한의 포격도발 직후 제3군 사령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청와대 제공)
미 국방정보국(이하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의 2011년 정보자료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다음은 해당 문건에서 북한을 묘사한 문단이다.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 정권을 유지함과 동시에 경제적 빈곤을 극복하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능력을 유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대한 전략적 억제력을 행사함은 물론 정치적·경제적 지위도 인정받는 것이다.”(North Korea’s primary goal is to preserve its current system of government while improving its dismal economy.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pursue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 for strategic deterrence and international prestige, as well as for economic and political concessions.)
DIA는 북한이 소량의 플루토늄 핵탄두 개발을 완료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항공기를 통해 투하하는 공격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예상대로 북한은 이번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국제사회에 부각시켰다.
해당 문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이다. 전방(DMZ 주변)에 밀집된 북한군이 불시에 대남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명시한 부분이다(“North Korea’s large, forward-positioned military can attack South Korea with little or no strategic warning”).
북한은 이런 국지적 대남도발을 통해 자체 군사력을 점검함과 동시에 전투 경험을 쌓는다고 했다. 이런 도발은 언제 어디서나 불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방 지역 지뢰폭발사건과 확성기 조준타격은 DIA의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이런 도발을 진행함과 동시에 북한은 미사일의 사정거리 확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은 자신들의 미사일이 미국 본토와 해외주둔기지를 사정권 안에 두어야만 한미동맹에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DIA의 내용을 요약하면 북한은 호시탐탐 전방 지역에서 도발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CSIS, “사이버 도발 전략은 북한에 유리”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북한의 사이버 능력을 다각도로 분석한 보고서의 최종판을 2015년 말 발표했다. 이 분석보고서엔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도 참여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대남 사이버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도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것일까. 다음은 CSIS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분석한 부분이다.
첫 번째 가치: 북한의 전략적 배경
북한은 한미 군사력을 능가할 만한 비대칭·비정규 전력을 육성하고 싶어한다.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북한은 군사전략상 남북대치 상황을 군사적으로 고립된 상태(Deadlock)로 가정하고 모든 전략을 개발한다. 즉 현재 한반도 상황은 군사적으로 빈틈없이 막혀 있으니 이런 상황을 모면할 전략을 고안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 강도가 강하지 않으면서도 전·평시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필요로 하고, 평시 남한을 공격하고도 그 이후 북한이 피해를 덜 보는 전략을 택하려고 한다. 평시 대남공격을 감행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시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불안정한 국면으로 몰아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을 준비함과 동시에 전시에는 비대칭 작전을 십분 활용해 최대한 한미 군사력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두 번째 가치: 사이버 능력 및 비대칭 전략
북한은 사이버 작전을 저비용 저위험(Low cost-low risk) 전술로 보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위험이 적지만 미국과 한국에는 위험이 큰 것이 바로 사이버전(戰)이다. 사이버 공격은 그 파괴력이 강하고 원거리의 목표물을 물리적 침입이나 공격 없이도 파괴가 가능하다. 사이버 공격을 통해서 전산적으로(Electronically) 체계화된 군 조직의 네트워크를 무력화할 수 있다. 공격을 받는 입장에선 방어가 어렵다.
세 번째 가치: 북한의 사이버 전략
북한의 사이버 작전은 국가전략에서 확장한 개념이다. 전시에 북한은 사이버 작전을 펼침으로써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C4ISR(통제, 지휘, 컴퓨터, 통신, 정보, 감시, 정찰)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C4ISR을 붕괴시키면 단시간에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다(Quick War, Quick End). 북한이 판단하기론 더 네트워크화(化)된 군대일수록 사이버 약점이 더 커진다. 결국 북한은 잃을 게 없고, 한미는 잃을 게 많다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현대전에서 C4ISR이 붕괴되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능상태에 빠진다. 한마디로 C4ISR의 붕괴는 곧 패배이다. 한국군은 미군과 같은 독자적 C4I 사업을 추진해 왔다. 현재 육군 ATCIS, 해군 KNCCS, 공군 AFCCS를 운용 중이다. 이 C4I 시스템은 독자적인 전산망으로 운용하며, 유사시 이 시스템을 통해 전체적인 전쟁 상황을 모니터하고, 임무를 부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총괄적인 디지털 시스템이다. 평시에는 한미 연합훈련을 모니터하고 작전계획 시나리오 등을 가상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
북한 해외 테러 단체 통해 남한 공격할 수 있어
▲경기도 소재의 한 수자원 시설의 경비실은 야간에 불이 꺼져 있다. 사진=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보고서의 말미에 CSIS는 북한의 사이버 도발 양상을 두 가지로 예측했다. 하나는 공격성이 약한(Low-intensity) 잦은 공격, 다른 하나는 공격성이 강한(High-intensity) 사이버 도발이다. 민간기업을 상대로 강도가 약한 사이버 공격을 여러 차례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피해가 약하지만 공격 빈도를 늘려 한국 내부적으로 전산·통신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이로써 국내 여론을 조장해 정부 불신을 키우는 심리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한 사이버 공격은 물리적인 도발을 수반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에 대해 한미는 다양한 공격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Dept of State)의 2015년도 의회 제출용 대테러 보고서를 보면, 북한은 돈세탁과 테러 자금을 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무부는 1987년 북한의 KAL기 폭파사건 이후 북한을 테러잠재국으로 분류한 바 있으며 테러집단인 일본 적군파(Red Army) 중 일부가 북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과거 일본의 항공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한 바 있다. ‘요도호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보고서는 북한의 불투명한 자금관리를 지적했다. 북한은 테러에 대한 자금지원을 막는 행위를 도울 국제사회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북한은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의 비회원국 신분을 유지하면서 국제사회의 돈세탁과 테러지원의 감시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점(利點)을 이용해 북한 스스로 돈세탁과 테러 지원금을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국무부 분석을 종합해 보면 북한의 전례로 볼 때, 다른 테러집단을 지원해 국내외에서 테러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런 해외 테러의 경우 북한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흔적을 없애려고 다른 테러집단을 활용해 한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
1986년 김포공항 테러가 이런 유형의 대표적 사례다. 북한은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우두머리인 아부 니달(ANO)을 지원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한국을 공격했다. 북한은 아부 니달뿐 아니라 이와 유사한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인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그리고 하마스(Hamas)와도 친분을 유지 중이다. 이 내용은 이미 외교 전문매체인 《더 디플로매트(The Diplomat)》의 ‘북한의 중동 구심점’이라는 기사에도 보도된 바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2년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이런 북한의 테러 전례는 신경이 쓰인다.
전직 군 간부들의 분석
“우리 군 탄약, 전쟁 나면 일주일 버티기 어려워"
이번에는 전직 군 간부들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우리 군의 약점을 파악해 봤다. 이들은 실제로 우리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 5027과 5015 등을 토대로 전쟁시뮬레이션(가상전쟁)에 참가한 전력(前歷)이 있는 인물들이다. 전역한 지 1년이 안 되는 간부도 포함됐다. 국방부 소속 국내 모처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전쟁 시나리오를 토대로 가상전쟁을 진행하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한미의 전쟁계획에서 미흡한 부분 등을 파악해 보완하는 조치를 하고 있다.
해당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슈퍼컴퓨터를 토대로 운영하는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99% 이상 신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시뮬레이션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Asset)과 우리 군이 보유한 자산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 가령 우리 군의 잠수함 대수는 물론 잠수함 기종별 어뢰의 수, 북한 전투기의 수, 육군 K-9 자주포의 포탄의 수까지 정밀하게 입력이 되어 있다는 것. 또 이 시뮬레이션을 한번 구동할 때는 슈퍼컴퓨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전투처럼 가상훈련과 실제훈련 내용을 실시간으로 입력한다. 그만큼 실제 같은 전투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전투 중 수시로 발생하는 부상병의 수, 특정 장비의 파괴, 미사일에 폭파된 지역 등 다양한 내용이 수시로 컴퓨터에 입력되고 이런 수치를 기반으로 슈퍼컴퓨터는 모든 상황을 실전처럼 분석한다.
이 간부들은 국가기밀에 저촉되는 부분이라 세부적인 수치와 데이터에 대한 언급은 피했지만 전반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간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바로 탄약(彈藥)이다. 이는 단순히 보병이 사용하는 소총의 탄약뿐 아니라 탱크의 포탄, 전투기의 미사일 등 모든 것을 아우른다. 한국군이 현대화하면서 각종 첨단 무기를 계속 도입하고 있지만, 이 장비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한 탄약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간부는 “원거리에서 적을 무력화시키고, 초정밀 공격으로 오차범위가 불과 몇 센티미터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발사할 미사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면서 “일단 정밀 무기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재래식 무기라도 탄약 수량이 충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공군 간부는 F-15K와 같은 최신예 전투기도 북한의 수뇌부를 공격할 공대지(空對地) 미사일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장사정포와 같은 북한의 위협무기 등을 적시(適時)에 타격해야 하는데 미사일의 수가 부족해 실전에서 제대로 막아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JDAM(합동직격탄)이나 SLAM-ER(Standoff 방식의 첨단 원거리 미사일)은 고사하고 재래식 포탄이라도 많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육군 간부는 “포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미 북한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사정포, 곡사포 등 포대의 수가 너무 많다. 그런데 이 포(砲)에 대항할 충분한 포탄이 우리에게는 없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말미에 “아마도 5일 정도 버티면 잘 버텼다고 생각한다”고 힘없이 말했다.
美軍 지원 없으면 전쟁 질 수도
▲원거리에서 바라본 발전소 전경.
다른 간부는 “북한이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시뮬레이션(가상전쟁)은 항상 한미연합군의 승리로 나온다. 이는 어떤 작전계획을 가상으로 구현해 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이 보유한 게 재래식 무기라도 그 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줬다. “첨단무기로 무장한 아이언맨(영화에서 만능로봇 갑옷을 입은 영웅)이 있다. 근데 더 발사할 총알이 없다. 그런데 그를 둘러싼 10명의 청년은 칼을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겠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인터뷰에 응한 간부들에게 “그럼 우리 군의 무장량(武裝量)으로 얼마쯤 버틸 수 있느냐?”고 묻자, 대부분이 “일주일을 버티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마당에 미군은 탄약 부족을 메워줄 중요한 지원군이라고도 했다.
2014년 국회 국정감사도 예비탄약 비축량의 문제점을 제기했었다. 국회 국방위 소속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은 육·해·공의 비축 탄약 수를 확인해 보고 “우리 군의 첨단 무기도 탄약이 부족해 6일이면 모두 소진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방부는 추가 예산으로 탄약을 더 비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적이 있지만, 실제 군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비축량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전언이다
익명의 육군 간부는 군수사령관이 힘이 없는 탓이라고 했다. 다른 병과에 비해 군수는 군내에서 홀대받는다는 것. 더군다나 군수사령관은 그 출신이 대부분 군수보다는 보병이 많아 탄약의 문제점을 실감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군은 내부적으로 신무기 도입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탄약을 더 사자는 주장은 묵살되는 관행이 있다고 했다. 해당 간부에 따르면 “탄약은 최초에 저장시설만 잘 지어두면, 구매 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면서 “그 어떤 무기사업보다도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투자”라고 설명했다.
위 내용을 모두 종합해 보면 현재 미군의 도움 없이는 우리 군은 탄약 부족으로 전쟁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전시를 대비해 탄약 보충을 위한 예산 투입이 시급해 보인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
北 생화학무기 水路로 방출할 수도
익명을 요청한 미국의 특수전(SOF) 전문가 S씨는 북한이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해 수로(水路) 공격을 할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다량 보유한 생화학무기를 이 수로에 흘려보내면 남한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리적인 구조상 남한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북한의 수로는 남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한이 입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북한은 댐을 일제히 개방해 남한 북부 지역인 임진강 일대가 인공 홍수에 당한 전례가 있다.
한반도에는 수로가 미세혈관처럼 퍼져 있어 특수전의 관점으로 보기에 공격 방식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며, 세부적인 작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자신이 구상한 방법이 북한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한 탓이다.
지난 2014년 말,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해킹 공격을 받았다. 당시 해킹으로 원자력발전소의 도면 등을 유출시키기도 했다. 해커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협박으로 원전가동 중단과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이 해킹 공격의 근원지를 조사한 정부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잠정결론 내렸다.
합수단에 따르면, 북한은 피싱 이메일을 한수원 관계자들에게 보내 내부 컴퓨터를 악성코드와 바이러스 등으로 감염시켜 정보를 빼내갔다. 이후 한수원은 여러 차례의 해킹 시도와 협박을 받았지만, 인터넷과 망이 분리돼 보안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내외 해킹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수원과 같은 국가 기간시설(基幹施設)의 사이버 보안이 아직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의 원전 운영체계는 인터넷과 망(網)이 분리된 인트라넷(Intranet·내부망)을 사용 중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등은 이런 인트라넷도 충분히 침투가 가능한 해킹 기술들을 고안해 사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국(NSA)은 이미 인터넷 접속 없이 해킹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자파 혹은 라디오 주파수 등을 활용해 컴퓨터를 해킹하는 기술이다.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The Times of India)》는 이런 주파수보다 한발 더 나아가 전기를 필요로 하는 모든 기기가 해킹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서 미국 조지아공대(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연구진은 전자기기가 방출하는 다양한 파(波, wave)가 이런 해킹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가령 스마트기기가 사용 중 방출하는 전자기장파(電磁氣場波), 음파(音波), 그리고 전기 콘센트를 통해서도 해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이버와 물리적 테러 동시에 일어날 수 있어
▲지난해 가뭄 이후 추가로 보완한 보령댐의 도수로. 사진=조선일보 신현종 기자
박준석 한국국가안보·국민안전학회 회장(용인대 교수)은 “국내 수력발전 시설은 원전 시설보다도 더 취약한 구조”라고 말했다. 원전은 폭발 등을 염려해 그 중요성이 대두된 반면, 수력 관련 설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발전소와 정화시설 등에는 북한의 생화학 물질을 모니터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수질이 오염될 경우 삽시간에 오염물질이 수로를 따라 각 지역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강원도와 인천 지역의 을지훈련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들어, 향후 훈련은 민·관·군이 합동으로 동시다발적인 다수의 테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테러는 과거와 달리 연쇄적 테러가 다양한 방법(사이버, 폭발, 인질극 등)으로 동시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 파리테러가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도 미국의 국토안전부(DHS)처럼 국민안전처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정보는 국정원(NIS)이 제공하는 미국과 유사한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수사국(이하 FBI)의 ‘수자원 저장 및 통제(Water retention and control)’라는 내부 자료에 따르면 수자원에 대한 공격 유형을 크게 3가지로 분류했다. 1. 수질의 오염 2. 폭발물 등을 설치하는 물리적 공격 3. 사이버 공격. 따라서 이 3가지를 항시 감시하고 유사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FBI는 2011년 이후 수자원 관련 테러 시도가 급증했다면서, 다음과 같은 경우를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가. 비인가자의 수자원 시설 진입 시도, 울타리 등을 넘는 월담(越-) 시도
나. 소방차가 아닌 차량의 소화전(消火栓) 호스 연결 시도
다. 갑작스런 수돗물의 변색(變色)과 냄새(香臭) 등
라. 물 사용 이후 발생한 각종 호흡기, 신경・피부 질환
FBI는 위 4가지 사안이 의심되면 즉각 사법당국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다수의 채널을 통해 한수원의 각종 보안상황을 확인해 보니, 지난 사이버 공격 이후 CSP(사이버보안계획) 등을 강화해 이전보다 사이버 취약점이 개선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질에 대한 직접적인 보안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가령 독극물을 활용한 침투 시 예방대책, 폭발물 공격 등에 대한 부분이다. 이런 부분은 현재 테러방지법 안에서도 다루지 않아 보강이 필요하다. 현재 한수원은 본사를 경상도로 이전 중이다.
수도시설 가보니, 경비실 불 꺼져 있고 CCTV 없었다
▲경기도 소재의 한 수자원 시설의 울타리는 기자가 팔을 뻗으면 닿는 높이였다.
기자는 직접 경기도 소재의 수자원 시설 두 군데와 화력발전소 한 군데를 불시에 방문했다. 경기도 일산 전체를 관할하는 한 수도시설의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정문 옆에는 경비실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지만, 불이 꺼져 있었다. 담장 주변에는 감시카메라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담장은 기자가 팔을 뻗으면 닿을 높이로 마음만 먹으면 월담이 수월해 보이는 구조다. 담장 위에는 가시철조망도 없었다. 울타리 대부분은 조명이 아예 없어 야음(夜陰)을 틈타 내부로 넘어들어갈 수 있었다.
경기도의 다른 화력발전소는 기자가 차량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정문에서 저지당했으나, 당시 정황과 주변을 검토해 본 결과 기자가 육안으로 확인한 발전소 전체 경비인원은 3명이었다. 규모가 작은 수도시설(배수지·配水池)은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기자를 멈춰 세우지 않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안효원 의원은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된 4대 항만공사의 총기 지급 비율이 18%에 그친다”며 “유사시 5명 중 4명은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고 정부에 보완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북한의 대남테러 가능성을 점검해 본 결과,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지만, 사이버테러예방법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보안 전문가들은 “법적 제도가 생겼어도 실질적인 대비는 국민 모두의 안보의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20년 이상 노후한 민방위 훈련 매뉴얼과 각 지자체의 관련 매뉴얼 등을 재정비하고 훈련을 자주 해야 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의 국가중요시설도 보안유지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 김동연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남성욱 편 중앙일보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 미국의 수준 이하 ‘북한연구(Northkoreanology)’ 실태
북한 내부 소프트웨어 분석 없어 권력의 속성 정확하게 투시 못해…미국서 북한판 [국화와 칼] 나와야 북핵 문제 해법도 나오지 않을까
150년간 북한 깔보다 판판이 당했다!
▲지난 6월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한 관광객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 사태는 미국에서 중국 연구(China Studies)를 촉발했다. 중국은 1956년부터 인민공사라는 집단농장 시스템으로서 농사를 지은 결과 10년간 3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경우는 없었다. 정치적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마오쩌둥(毛澤東)은 홍위병이라는 정체불명의 청소년 완장단체를 조직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이 초대 중앙인민정부 주석인 마오를 공격하는 지식인과 비판적 반대세력을 인민재판식으로 압박했다. 장유유서의 유교사회에서 십대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파괴 없이는 건설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기득권의 장년층을 혼내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정확히 설명해 줄 전문가가 미국에는 없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횡행하는 광기의 역사를 해설해줄 만한 전문가를 구하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뒤에서 조종하는 혹세무민의 사건이란 정도의 추측만 난무할 뿐 언제, 어디까지 문제가 확산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자유, 진보 등 서구가치를 신봉하는 미국 정치학자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조반유리(造反有理)의 전통문화 파괴 운동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미국 학계에는 마오의 부인인 장칭(江靑) 등 극좌 4인방이 주도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라는 당대의 중국 현대사를 해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학문적 논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중국 연구는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여전히 국공내전의 혼란 속에서 소련과 유사한 사회주의 공산당 체제가 수립된다는 초보적인 인식에 머물렀다. 중국에서 기자로서 13년간 거주하며 최초로 마오쩌뚱을 인터뷰한 에드거 스노가 저술한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China)](1968년 초판) 정도가 대표적인 중국 연구서였다.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의 공산혁명을 기록한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등 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어린 홍군 병사(小鬼)에 이르기까지 중국 혁명에 참가한 인물들의 면면과 현대 중국 탄생의 과정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만으로 중국을 모두 설명할 순 없었다. 중국이라는 고대와 근대 및 현대국가에 대한 하드파워는 물론 역사, 문화 및 행동양식 등 소프트파워 측면에서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와 질서와 권위에 순응하는 공맹(孔孟)의 유교문화가 기형적으로 결합됐다. 게다가 “변방이 시끄러우면 황제가 베개를 똑바로 베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1개 왕조의 평균 수명이 200년 안팎에 그칠 만큼 권력의 부침이 극심하고 이민족의 발흥과 몰락 등으로 순식간에 왕조가 교체되는 중국사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내공의 시간이 필요하다.
평양에서 최고지도자 암살 시도가 없는 이유
▲지난해 4월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에서 북한군 경비병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일행의 사진을 찍고 있다.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미국 정부와 학계는 체계적인 중국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미국 국무부, 교육부를 비롯한 당국은 각 대학에 설치된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중국학연구소를 별도로 분리, 확대하고 관련 강좌를 개설하는 등 중국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학자들에게 거액의 연구 펀드를 제공했고, 유능한 신진학자를 발굴해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발주했다. 중국의 문화와 역사, 인민들의 습성 및 마오쩌둥 후계 권력층의 리더십 등 다양한 연구는 성과를 나타내 1972년 당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죽(竹)의 장막’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키신저 국무장관의 방중으로 이어지고 핑퐁외교를 가능하게 했다.
최근 북·미 간의 핵 협상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대(對) 북한 무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비통념적인(unconventional leader) 지도자야 ‘돈이 제일 중요하다(Money does matter)’는 인생관이 모토인 만큼 예외로 치더라도 미국 조야의 수많은 대북 협상 경험조차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 과거의 협상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유사한 협상의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대통령 역시 과거 협상 결과와 경험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참고할 만한 자료도 별로 없다는 인식을 갖는다. 연구와 분석이 미진하니 대책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과거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를 비롯해 지금도 미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필자에게 단골로 제기하는 질문의 하나는 “언제쯤 북한이 붕괴(collapse) 되고, 쿠데타의 주역은 어느 세력이 될 것인가”이다. 하지만 미국 전문가들은 쿠데타군이 평양의 주석궁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대동강과 보통강에 있는 11개의 다리를 통과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묵묵부답이다. 평양의 지도를 펼쳐 놓고 평양방어사령부의 병력과 반란군 병력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호위총국의 부대 위치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정도의 상상만이 난무할 뿐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인 1979년 10·26 사태와 같이 최측근이 최고지도자를 암살하는 기묘한 사건이 왜 평양에서는 발생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과거 필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재직 시절 김정일 위원장 경호실에 해당하는 호위총국의 최말단 부서에 잠깐 근무하였다는 탈북자와 제3국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왜 김 위원장에 대한 살해 시도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우선 물리적으로 저격이나 살해 시도는 불가능하다. 경호체계는 철벽이다. 심지어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신에 사로 잡혀 있다. 특히 저격이나 살해를 시도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 집안에 누구 하나라도 호위총국 근처에만 근무해도 사돈에 팔촌까지 호위호식하며 사는데 최고지도자를 위해할 필요가 있는가?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반대로 삼족이 몰살당하는데 위험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빈곤도 권력도 모두 상대적이다. 북한에서 우리 부처의 과장급 정도의 관직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한지 3년 정도 지나면 남한 사회가 참 무료(?)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북한에서 과장급 정도의 직책이 민간에 대해 누리는 권력의 맛에 비하면 남한 사회는 장·차관은 물론 대통령도 별것이 없다는 인식을 한다. 고위급 탈북자들은 철저한 계급·권력 사회의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쥐꼬리만 한 권력도 그것을 행사함으로써 느끼는 쾌감이 상당했다고 고백한다.
북한 붕괴나 최고지도자에 대한 암살 기도 등은 북한 권력의 속성을 정확히 투시하지 못한 결과에 따른 궁금증이다.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등 동유럽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독재자의 말로가 김씨 혈통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추론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특히 70년간 지속돼 온 독재 정권의 붕괴 시점을 예측하라는 것은 토정비결을 믿거나 말거나 신수 보기와 다를 바 없다. 미국 정보당국은 해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를 불러들여 식량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연명하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요구한다. 미 국민의 입장에서 햄버거를 두 개 먹다가 한 개 먹으면 죽고 살 일이지만, 빨치산 전통을 이어받은 북한 인민에게 한 끼 굶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젖먹이 시절부터 주체사상을 학습해 온 인민들이 수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미 서부개척시대에 막강한 보안관에게 저항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으로 재직했던 황장엽 전 주체사상 비서는 ‘서울에 와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매주 토요일 아침에 소속기관 전체 직원 앞에서 일주일간의 잘못된 일을 자아 반성하는 ‘사상 총화’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주체사상 비서와 김일성 대학총장인 선생도 총화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매주 30분가량 지난 한 주 무조건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계속 지적하면 인간이 더 이상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미국의 북한 연구자들은 이 같은 북한 내부의 소프트웨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동양문화를 넘어 권위주의 가부장제와 유일수령 사상체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감시와 통제로 인민은 물론 간부조차 촘촘한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같은 한민족으로 대학에서 북한학과(Northkorealogy)를 설치하며 전문적인 연구와 분석을 시도하는 남한의 전문가조차 북한의 행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분명하다. 하물며 미국의 전문가들의 분석 수준은 매우 제한적인 수밖에 없다.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문은 미국 북한 연구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북한의 대미 협상 전략에 대해 사전 학습이 부실함은 미국 행정부가 과거 북한의 협상 행태와 전략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 싱가포르 회담 모두발언에서 김정은은 매우 전략적이고 계산된 발언을 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랬던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박사 수준의 김정은 발언, 고등학생 수준의 트럼프 발언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첫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본인 결단으로 회담을 제의했고, 실행했다는 의도를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길지 않은 두 문장이지만 북·미 관계의 과거, 현재 및 미래를 압축해서 본인들의 의지를 과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박사과정 수준이었다면 그에 반해 트럼프의 발언은 고등학생 수준이었다.
“기분이 정말 좋다. 아주 좋은 대화가 될 것이고, 엄청난 성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의 영광이다. 우리는 아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도, 의지도 결여된 청소년들의 인사말에 불과했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 전의 모두발언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기습적인 한 방을 먹은 것이다. 권투선수가 링에 올라가서 워밍업도 하기 전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부실한 합의문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준비 없는 정상회담이 가져올 외교 참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연구대상이다.
미국 전문가와 국무부는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임하는 북한 외교의 전략과 합의문 도출 전후의 협상 행태를 포함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까지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다. 이후 핵실험이 6차례가 지속되도록 ‘북핵 매뉴얼’을 만드는 등 북핵 대응에 손을 놓았다. 오바마 정부(2009~2016)는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 수수방관 정책으로 북핵 처리에 실패했다. 체계적으로 준비된 북한 상대 외교 매뉴얼을 협상의 바이블로 삼았다면 사상 최초의 세기적인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의 수준과 내용이 총론적인 모호성과 애매함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
9·19 공동성명의 1항은 “6자는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6자회담의 목표라는 것을 일치하게 재확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을 포기하며 멀지 않은 시기에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의 담보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였다”이다. 외교적 방법으로 비핵화를 실현하며 북한의 이행을 명기함으로써 합의문의 외형 구조상 특별한 문제는 없다. 문제는 2항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쌍무적 정책들에 따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3항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건설 및 200만kW 전력 공급 약속, 에너지 지원 등으로 비핵화에 따른 경제적 보상에 관한 것이다. 지뢰밭은 마지막 항에 있다. “6자는 이상의 일치 합의사항들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별로 리행하기 위한 조화로운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미국은 성명에 서명할 때 1항이 먼저 진행되고 2, 3항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북한은 2항이 우선이거나 최소한 1, 2항이 동급이며 1, 2, 3 항의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나 중요도가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비핵화에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먼저 언급됐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마지막 항목에서 단계별 원칙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행동이 일차적으로 선행돼야 한다는 묵시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는 미국의 대(對)북한 오류
▲사령부 예하 포병중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 사진:노동신문
결국 미국과 북한은 선(先) 행동조치를 요구하며 샅바싸움을 전개했고, 북한은 다시 무력시위를 감행함으로써 양측의 협상은 휴지조각이 됐다. 북한은 협상 체결 10개월이 안 돼 미국 독립기념일인 2006년 7월 4일 대포동 2호를 발사, 협약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에서 대포동 2호 1발과 깃대령 851 부대에서 노동 1호와 스커드 미사일 5발을 각각 발사했다. 이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단행해, 9·19 공동성명을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행동의 선후 기싸움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향후 6∼8개월 내에 현재 보유한 핵탄두의 60~70%를 미국 또는 제3국에 넘기라는 요구를 했으나 ‘강도 같은 요구’라며 거절당한 것은 여전히 과거부터 지속된 선후 행동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상에 올인했던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는 왜 추후 이견으로 사문화될 가능성이 높은 합의문에 서명했을까? 협상문을 도출하는 자체만으로 외교관의 능력이 올라간다는 인식을 보유했는가? 아니면 미국의 한 개 주도 안 되는 북한 정도는 얼마든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걸까? 협상에서 시간과 순서를 명확히 기입해 향후 계약서의 해석을 둘러싼 이견을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힐 전 차관보는 2014년에 발간된 자신의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에서 “외교는 결코 전쟁의 연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파들 속에서 외교로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집념의 협상가였다. 하지만 1995년 1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협상 당시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상시적으로 접촉하며 협상을 풀어 갔던 힐에게 북한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폐쇄된 체제였다. 그는 북한과 세르비아와는 비교불가라는 사실을 수 년간의 협상 끝에 겨우 파악했다.
최근 콜로라도 덴버 대학 국제관계대학원장으로 있는 힐 전 차관보는 “완전한 비핵화 합의 가능성에 맥주 한 잔 값도 걸지 않겠다”며 트럼프의 미북 협상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과거의 협상 경험 때문일 것이다. 왜 힐 전 차관보와 같은 노련한 외교관이자 협상가조차도 사전에 북한 협상의 문제점을 파악하지 않고 수많은 협상을 경험하고 나서야 북한이 지구상의 어떤 체제와도 같지 않다고 인식할까?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힐 전 차관보가 수년 간 경험한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대(對)북한 오류(fallacy of North Korea)는 사실상 1866년 7월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에 진입한 제너럴셔먼호가 조선군의 격렬한 저항에 의해 불에 탄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이후 15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시행착오의 역설은 1953년 한국전쟁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준비 부족의 스미스 대대가 북한군에 의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미국은 북한군이 미군의 존재만 봐도 진격을 멈출 것이라는 순진한 판단 아래 스미스 부대를 투입했다. 훗날 유엔군을 지휘하게 되는 리지웨이 장군은 그의 회고록 [한국전쟁]에서 “맥아더는 침공군의 세력을 잘못 판단했으며 인민군 10개 정예사단 앞에 1개 대대를 투입한 것은 맥아더의 지나친 오판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미군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군이 미군 참전을 목격하고 소련의 명령에 따라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전체적으로 10일을 벌었다고 평가했다. 엄청난 피해를 입고서도 북한에 대한 인식과 탐구는 혼선과 혼동이었다.
이러한 오류와 비체계적인 미국의 대응은 2018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이패드로 멋진 동영상을 보여주며 비핵화를 설득했다, 비핵화를 하자마자 북한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방 자본, 새로운 철도, 공장과 리조트 등 장밋빛 비전이 포함된 3차원 영상이었다. “그들은 멋진 해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다 쪽으로 포를 발사할 때마다 볼 수 있죠. 그렇죠? 저는 전경을 한번 보라고 말했습니다. 멋진 콘도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나요?” 트럼프는 첨단 그래픽에 의한 동영상이 김정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개방하면 김정은이 망하고 개방 안 하면 북한이 망한다”
▲2005년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합의한 9·19 공동성명도 결국 휴지조각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평양의 협상 상대를 뉴욕의 부동산 개발 전문가로 오판했다. 김정은은 북한에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원하지만 서구 투자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 독이 든 사과를 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확실하다. 그가 스위스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 만으로 개혁·개방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인식은 무지몽매한 것이다. 약 5년간의 베른 체류 기간 동안에 김정은은 1년에 최소 3개월 정도는 각종 행사 참석을 이유로 평양에 체류했다. 특별히 베른 학교 시절에 서구 문화에 충격을 받은 경험도 별무하다. 숙소 이외의 외출은 당시 스위스 북한대사관의 통제를 받았다. 딱히 서방문화를 경험하려는 노력이나 일탈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십대 시절의 보통 청소년들처럼 농구나 게임 정도에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는 “개방을 하면 김정은이 망하고 개방을 안 하면 북한이 망한다”는 평양의 딜레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 연구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몇 주 후 김정은 위원장의 행동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북한 전문가는 물론이고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North Korean Watchers)에게도 공히 해당된다.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경수로 2기를 2003년까지 건설해 주기로 약속한 것은 북한이 그 전에 붕괴될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었다는 갈루치 수석대표 등 외교관들의 과거 발언은 미 외교 당국자들의 솔직하고도 무지한 고백이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온 북한에 대한 오판의 재연이었다.
2001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이란, 이라크와 북한은 ‘악의 축’ 이라는 발언으로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는 북한과의 협상 진행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북핵 위기를 해결하려는 협상과 압박 사이에서 수사적(修辭的) 혼돈을 거듭했다. ‘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 힘에 의한 압박도 한계를 보였다. 결국 창의적인 대안도 없이 제네바 합의를 덜컹 포기했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얻을 국익이 있는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의 집권기간이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북핵 문제의 정확한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란 구(舊)소련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너지리라는 순박한 기대만을 가지고 은둔의 왕국을 관망한다면 역사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결국 1994년 1차 핵 위기가 발생한 지 23년 만에 재발된 2차 핵 위기는 근본적으로 ‘수준 미달’인 미국의 북한 연구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이제 미국의 북한 정보의 생산 경위와 학문적인 연구 수준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자. 미국의 북한 정보의 산실은 중앙정보국(CIA)이다. CIA의 북한 정보 수집 및 분석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보고서는 필자가 지난 2001년 번역한 [CIA 북한보고서: Kim Il-song‘s North Korea]다. 1970년부터 20년간 CIA에서 극동문제전문가로 일한 헬렌-루이즈 헌터(Helen-Louise Hunter)가 집필했다. 정보기관에서 축척된 자료를 기본으로 작성된 비밀문서였으나 1980년 초 이래 스티븐 솔라즈(Stephen J. Solarz) 연방하원 의원의 강한 요청에 따라 비밀 해제된 책이다. 솔라즈 의원은 뉴욕 브루클린이 지역구로서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가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간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높은 평가한 바 있다.
21개 분야 북한의 사회학적 분석 시도한 CIA 보고서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지난 8월 3일 촬영한 는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 사진:연합뉴스
솔라즈 의원은 1980년대 초부터 1993년 의회를 떠날 때까지 윌리엄 케이시 국장 이후 모든 CIA 국장에게 헌터의 기념비적인 연구의 결과를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CIA는 업무를 위해서 작성된 보고서들이 비밀로 유지되기를 원했기에 CIA가 이 책의 출간을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CIA가 납득하는 데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솔라즈 의원은 책의 추천사에서 “이제 당분간은 누구도 다시는 북한에 관해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자. 은둔의 왕국의 불가사의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이제 출간됐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계급과 성분을 시작으로 김일성 숭배, 결혼과 가족생활, 교육, 주택 및 보건 의료체계 등 21개 분야에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했다. 이 책은 주로 북한을 방문했던 외교관, 기업인, 운동선수 등과 북한에 있는 친척을 방문한 재미교포들을 대상으로 보고 들었던 사실들을 브리핑 받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특히 북한 인민들의 실제 감정이나 마인드 등을 분석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저자인 헌터가 실제로는 한 번도 평양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취약점이다.
미국 학계에서 북한 연구의 독특한 결과물 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논쟁적인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가 2004년 집필한 [North Korea Another Country]다. 필자가 당시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를 모방해 [김정일 코드]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 책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장남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결과는 김정남의 이복동생 김정은이 평양 권력을 승계받았다.
이러한 저자의 일부 빗나간 예상을 제외하면 이 책은 북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북·미 양자 간 갈등의 근원을 구조적,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한 이 책은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던 브루스 커밍스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가 집필했다. 북·미 간 갈등의 근원은 한국전쟁이라는 것이 책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북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선 깊은 탐구가 전제돼야 하고, 그렇기 위해선 대결이 아니라 존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외에 외교관들의 대북 경험을 정리한 책들이 있지만 일회성 접촉 경험 회고에 그치고 있어 체계적인 지식 축적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한계다.
북한과 인도에 기만당한 미국의 기술정보력
미국의 인공위성이 획득한 정보를 수신하는 이글비전 시스템 안테나. 북한은 미국의 위성 정찰을 기만하는 작전도 세웠다.
한편, 미국이 생산하는 경쟁력 있는 북한 정보는 기술정보(Technical Intelligence)를 통해 수집된다. 기술정보(TECHINT)는 영상정보(IMINT), 신호정보(Signal intelligence SIGINT), 징후계층정보(MASINT) 등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최첨단 전략자산 등을 동원하여 한반도에서 전개되는 각종 통신활동을 감시한다. 주로 북한군의 통신과 평양의 국제전화 통화 등이 대상이 된다. 항공정찰과 위성정찰을 통해 북한군의 이동 등을 체크한다. 미국이 동맹국에도 제공하지 않는 영상정보는 해상도 1m급 영상은 군사목표물의 90%까지 판독 가능하고 50㎝와 30㎝는 각각 93%, 96%까지 판독이 가능하다. 사실상 북한군의 지상목표물은 감시가 가능한 수준이다. 북한이 괌에서 날아오는 각종 전략자산에 극도로 민감한 이유다.
정부가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관련 전문매체 [38노스]를 운영하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한미 연구소(USKI)에 대해 예산지원을 6월부터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가장 큰 이유는 [38노스(38 North)] 때문이다. 사실 [38노스]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끈질긴 스토커’라 할 수 있다. [38노스]는 미국 스페이스 이메이징사(Space Imaging Company)가 판매하는 50㎝ 내외의 민간 위성사진 등을 분석해 지금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사전에 수차례 발견해 냈다. 2016년 1월에는 신포항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SLBM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처음 판단했다. [38노스]의 예견대로 그해 3, 4, 7, 8월에 북한은 SLBM을 발사했다. 미국은 NSA 주도 아래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에셜론(ECHELON)’이라는 비밀 감청 조직을 결성하여 감청에 나서고 있다. 한반도에는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 미군 비행장으로 알려진 험프레이 캠프에 에셜론과 관련된 기지가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키나와 미국 공군기지에서 한반도에 대한 감청 시설이 확충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정보 수집은 다른 대응기술로 차단 내지 방어가 가능하다. 미국은 1974년 최첨단 첩보 위성을 보유하고서도 사전에 인도의 핵실험 진행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인도는 미국 정찰위성이 인도 지역을 통과하면서 감시하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 시간을 피해서 핵실험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전웅, [현대 국가정보학]).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미국의 첩보위성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실시하려는 다양한 징후를 포착했다. 하지만 그러한 징후들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기만행위였다. 1998년 북한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도 첩보위성이 촬영한 영상자료에 근거해 제기됐으나 이후 미국 조사팀이 방문해 본 결과 핵시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북한은 금창리 지하시설 방문을 허용해 준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60만t의 식량을 챙겼다. 결국 아무리 최첨단의 첩보 위성이라 할지라도 관찰 및 감시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상대국은 위성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기만책을 구사할 수 있다. 휴민트(Humint) 즉 인간정보에 의해 상호 보완되지 않는 기술정보는 제대로 효능을 발휘할 수 없다. 기술정보의 하드웨어와 인간정보의 소프트웨어간의 균형적인 결합만이 정보의 효능을 배가시킬 수 있다.
휴민트 수집과 함께 미국의 북한 연구에 가장 큰 약점은 현장 접근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특히 폐쇄된 유색 인종 국가에는 과거 모스크바에 파견했던 백인의 외모를 갖는 신문기자, 연구자, 여행객, 상사원 등의 파견이나 체류가 원천 봉쇄돼 있다. 방문자를 통한 디브리핑(debriefing) 방식의 첩보 수집만으로 체계적인 분석은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CIA에 북한 데스크를 설치해 한국계 미국인을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다만 정보기관의 분석은 매일 일보(日報) 체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은 매우 부족하다. 연구소와 대학이 긴밀하게 상호 보완해야 한다.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남북한 연구를 혼동
▲6·25 전쟁 발발 뒤 처음으로 한반도에 파견한 대대급 미 지상군 부대인 스미스 부대.
이제 한반도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미국은 ‘북한 스터디(North Korean Studies)’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북한 연구를 과거 소련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던 ‘소련학(Sovietology)’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소련학 연구는 소련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크레믈린 연구(Kremlinology)’로 불리기도 했다. 우드로윌슨센터는 1974년 산하에 캐넌연구소(Kennan Institute)를 설립하고 체계적인 소련 연구를 전담했다. 미국의 러시아 탐험가인 조지 캐넌(George Kennan)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러시아 연구기관으로 도약하며 다양한 저술 및 현장 접근 사업 등을 수행했다.
현재 미국의 북한 연구는 사회주의 독제체재라는 상식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연구소나 기관에서 1~2년 근무한 후 갑자기 언론에 나타나 북한 문제 전문가로 활약하는 수준은 이제 지양하자. 워낙 전문가 층이 두텁지 않고 틀려도 아니면 말고 식이기 때문에 경제학 등 여타 분야에서는 도저히 활약할 수 없는 수준의 신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난다. 그들의 분석 수준은 역사성이나 논리성 등이 턱없이 부족하며 근거도 별로 없다. 서울에서 생산된 정보가 영어로 전환되며 새로운 정보로 변질되는 패턴은 미국의 북한 협상 실패의 중요한 근거다. 워싱턴 북한 연구자들의 강점은 유창한 미국식 영어 이외에는 특별히 찾아보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북한 연구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무부와 교육부 등 행정부는 대학과 민간의 북한학 연구를 중국,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연구에서 독립시켜 특화된 전문연구소를 설립하고 관련 강좌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와 남한과 북한 연구를 분리해야 한다. 남북한은 동일 민족이지만 언어를 제외하고는 분단 70년 동안 북한은 사회주의와 유일 수령사상 체계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체계와 동일 선상에서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한반도 연구자들은 남북한 연구를 혼동하고 있다. 한반도 연구와 북한연구를 구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의 연구기관과 공조해 공동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남한의 북한 연구자를 미국에 초청해 연구시키고 미 전문가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기초적인 연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 의회는 ‘Northkoreanology 연구 장려 법안’을 발의하고 예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 중국과 일본 연구 수준으로 지원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일본 연구서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북한 연구에서도 나오는 순간, 핵문제의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한반도 사태 진전을 분석하고 향후 효율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데 정확한 로드맵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 남성욱 -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한국북방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북한의 IT산업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출처: 중앙일보]
★백승구의 집중점검 월간조선 기자
■ 2015.07.02 공포政治 독재자 김정은의 정권 장악력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미국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문제연구대학원 객원연구원은 최근 《문예춘추》 7월호 기고문에서 “김정은의 체중이 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 정보분석 담당자가 ‘조울증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면서 “미국 정부도 김정은이 병적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마키노 연구원은 2013년 《북한 錄 군·경제·세습권력의 내막》을 출간한 북한 전문가이다. 그는 《문예춘추》 기고문에서 “김정은의 처형과 추방으로 ‘평양 인구가 10만명 줄어든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2014년 11월호에서 김정은의 건강 문제를 다루면서 “신체적·정신적 질환으로 김정은이 3년을 못 버틴다는 게 미(美) 정보 당국의 판단”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한미(韓美) 정보협력 사정에 밝은 당국자는 “북한 최고 권력자를 포함해 최측근 인사들의 움직임을 꾸준히 관찰해 왔다.(중략) 의학적으로 김정은은 복합적인 질환을 앓고 있으며, 신체적·정신적으로 3년을 버틸 수 없다고 미국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공식 집권(2012년 1월) 이후 측근들에 대한 처형 양태가 김일성·김정일 정권과 비교해 훨씬 포악해졌고 처형 대상자도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게 정보 당국과 북한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정은의 공포정치, 폭압통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까.
“신체적·정신적 질환으로 3년 못 버텨”
▲김정은의 통치방식이 지극히 非정상적이며 권력층 내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늘고 있다. 최근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現地지도한 김정은.
작년까지만 해도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고 해를 넘겨 ‘장성택 잔당’을 뿌리뽑는다며 숙청을 계속해 왔지만 북한체제 유지 측면에서 김정은 정권은 대체적으로 안정화됐다”고 평가했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박사는 ‘정치엘리트 응집력과 김정은 정권 안정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북한체제는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모순에 의한 엘리트 분열이 촉발됨으로써 정권의 불안정이 야기될 가능이 높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북한체제는 단기적으로 엘리트 응집력을 통해 정권을 안정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분석했다.
〈김정은 정권에서 제도적 후원과 반대자 억압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반면 엘리트 응집력의 비물질적 요인은 김정일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당파적 동질성과 동지적 연대 의식은 혁명 1세대의 퇴장과 함께 엘리트 응집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주체사상과 수령절대주의 등 이데올로기의 정당성도 약화되었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주체사상과 수령절대주의를 수령유일체제로 제도화했고, 보상과 억압 시스템을 통해 엘리트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 또 김일성 가계와 친인척 출신, 혁명 2세대와 고위층 자녀, 항일혁명 유자녀 등 정치엘리트들은 김정은과 연대의식을 공유한 운명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도 김정은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시각이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김정은의 통치방식이 지극히 비(非)정상적이며 권력층 내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늘고 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핵심 간부들에 대한 김정은의 불신감이 심화하면서 절차를 무시한 숙청을 자행하는 등 공포정치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말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함에 앞서 최근 6개월간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마원춘, 총참모부 작전국장 변인선,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한광상 등 지근(至近)거리에서 보좌했던 핵심 간부들을 줄줄이 숙청했다. 2012년 공식 권좌(權座)에 오른 직후 리영호 군 총참모장 등 최측근 3명을 처형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30여명, 2014년에는 31명을 숙청했다. 올해는 최근까지 총 8명을 없애 버렸다. 장성택, 리영호와 같은 최고위급 간부는 물론이고 중앙당 과장이나 지방당 비서 등 중간간부들까지 처형했다. 1994년 김정일(金正日)이 집권한 이후 4년간 처형한 인원이 10여명에 불과한 것에 비교하면 너무 많은 측근이 사라진 것이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의 지도력에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
김정은 지도력에 懷疑的”
숙청 이유도 다양해지고 있다. 반당(反黨)·반혁명 종파행위, 간첩죄 등 전통적 이유에서부터 김정은에 대한 불만토로(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조영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개인적 비리(한광상 黨재정경리부장), 여자문제, 행동 불량(훈련일꾼대회에서 졸았다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산림복구 불이행(임업省 총책임자), 김정은 별장 건설 부진(노경준 최고사령부 1여단장) 등 사유도 여러 가지다. 김정은의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처형 대상자가 결정된 셈이다.
처형 방식 또한 포악해지고 있다. 처형 대상자 가족까지 참관시킨 가운데 소총 대신 총신이 네 개인 14.5mm인 고사총을 사용했고,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이 없다”며 화염방사기를 동원해 시신(屍身)까지 태워 없앴다. 2014년 북한 당국이 작성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종파놈들은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고 적시돼 있어 잔혹한 처형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보 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처형 전 참관인들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집행 후에는 처형된 자를 비난하면서 각오를 다지는 소감문을 작성토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처형 후에는 출판·영상물에서 이름과 사진을 삭제하는 소위 ‘흔적지우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처형자 가족에게는 연좌제를 적용해 정치범수용소에 보내거나 지방으로 추방하는 혁명화 교육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당국자에 따르면, 처형을 참관한 사람들은 “화염방사기로 날려 보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 처형 때는 미사일이 나오지 않겠냐”는 반응을 보였으며, 권력층 사이에는 “똑똑히 하라우, 고사총 앞에 서 보겠는가”라고 서로 협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당·군 간부들은 김정은의 빈번한 처형에 공포감을 갖고 있으며 눈치보기, 몸사리기로 ‘제 살 궁리’에 몰두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고, 김정은에게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려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분위기까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자동소총 武裝하고 김정은 근접경호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공격적 성격이 무한(無限) 권력을 휘두르면서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평양에서 어린 김정은을 봤던 《김정일의 요리사》의 저자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어릴 때부터 공격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마키노 요시히로 존스홉킨스대 객원연구원이 언급한 대로 김정은의 포악한 성격, 정신적 질환은 통치기반을 잃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빅터 차 교수는 지난해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고작 29세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애연가이자 애주가입니다. (현재)북한의 상황을 보면 경제상황은 좋지 못하고, 북한의 리더십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의 건강 문제 등으로 볼 때, (통치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대외 매체인 《환구시보》는 2014년 4월 “지난 3월 북한에서 김정은 암살 시도에 대비한 대규모 훈련을 실시했다”며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군 중앙기관과 각 부분 책임자가 참가했고 김정은이 피습을 당한 상황을 가정한, 사전 훈련으로 적대세력과 불순분자들에 의한 최고 지도자 테러를 방지하고 백두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장성택 처형 이후 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일대 숙청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기상황을 대비한 훈련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 관영매체가 김정은 암살 대비 훈련을 기사화한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북한 당국의 훈련은 과연 단순한 암살 대비 차원의 훈련이었을까.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는 “2013년 6월 북한 《노동신문》에 권총과 무전기까지 찬 장성급 호위군관이 김정은 옆에서 근접경호를 하는 사진이 공개됐다”며 “이는 김정은 정권 들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고 했다.
“2012년 김정은이 공식 집권할 때는 영관급 군관이 경호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2013년 6월경 중장급(우리의 소장 계급) 군관이 직접 김정은을 경호했습니다. 이는 내부적으로 뭔가 큰일이 있었거나 그런 위기감이 조성됐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보입니다. 경호원이 기관총과 다연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사진도 공개됐습니다. 김정은이 2013년 3월 백령도 앞 4군단 산하 섬 초소를 시찰할 때였는데 경호원은 긴 원통형 탄창을 장전한 자동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과거에는 전혀 없었던 일입니다.”
김 대표는 “2013년을 전후로 김정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며 짧은 시기에 많은 측근이 처형된 것으로 보아 현재 김정은 정권은 준급변상황, 준급변사태에 처한 것 같다”며 “독살설(說)이 있는 소련 스탈린이나 사실상 민중봉기에 의해 처형된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처럼 김정은도 이같이 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가능한 모든 대응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서재평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국장은 공포정치를 일삼는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김정은의 극단적 통치술과 公安라인의 결합
▲김정은에게 있어 군부란 核과 미사일이 전부라 할 수 있다. 지난 6월 4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잠수함 승조원들을 격려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김정은은 합리적인 판단력이 결여된, 즉흥적인 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권력이란 피를 통해서 유지되지 않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김정은은 자신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고 있습니다. 아버지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에게 정권을 물려주면서 군(軍)에서는 충성심이 강한 리영호(야전세력), 당과 행정부에는 장성택으로 하여금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통치의 두 축을 자기 손으로 없앴습니다. 김정은의 권력 시스템은 현재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위험한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쿠데타나 암살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서재평 사무국장은 “김정은의 처형통치를 뒷받침하고 있는 국가안전보위부와 당 조직지도부가 북한체제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김정은 정권의 유지 차원에서만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김정은에게는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국정운영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짧은 기간에 그렇게 많은 측근을 없애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김정은 등장 이후 인민무력부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6개월에 불과합니다. 김정일 때는 평균 5~6년이나 됐지요. 김정은의 통치술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우리의 국정원장)과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그들이라 봅니다. 두 사람은 김정은 등장 이후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어요. 장성택 체포와 처형에 이들이 김정은 수족(手足)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권체제 유지에만 혈안이 돼 있는 이른바 공안세력입니다. 모든 걸 정권안보 차원에서 판단하지요. 북한 정권을 길게 보는 시각이 부족합니다. 김정은의 극단적인 통치술과 그 뒤에 있는 공안라인이 결합돼 지금과 같은 공포정치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서재평 사무국장은 “김정은 정권은 3년을 버티기 힘들 것이며 재정적 취약성도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현재 북한정권은 조총련 인사나 재중(在中) 조선족 사업가, 충성심 강한 북한 출신 사업가 등을 대상으로 ‘금수산기념궁전에 기부하라’며 독촉하고 있습니다. 노동당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 기부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김정은에게 직접 돈을 바치라는 얘기입니다. 김정은이 돈에 쪼들리는 게 분명합니다. 통치자금 부족은 권력층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한계를 보일 것입니다. 이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김정은은 더욱 무자비한 형태로 처형을 계속할 것입니다.”
“非정상적이며 위험한 상황”
▲김정은 정권 들어 숙청된 주요 인사들. 왼쪽부터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2012년 7월 숙청),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2013년 12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2015년 4월),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2015년 1월),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2014년 11월), 한광상 노당당 재정경리부장(2015년 3월).
조한범 통일연구원 박사는 대북(對北)정책에 대해 비교적 중도·진보적 입장을 보여 왔다. 최근의 북한 상황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현재 북한 권력층은 대단히 비정상적이면서 위험한 상황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 3년간 김정은이 지도자 자리에서 잘 버텨 왔고, 리영호와 장성택까지 제거했으며, 시장(장마당)도 어느 정도 활성화됐으니 김정은 정권이 안정적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로 평가해 왔습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수많은 처형이 자행되는 것은 그만큼 체제가 불안하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독재(獨裁)체제 말기에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합니다. 사담 후세인의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정권 말기에 한 장관이 후세인에게 ‘상황이 안 좋으니 잠시 뒤로 물러나 있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는데 후세인이 장관을 옆방으로 부르더니 그 자리에서 직접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얼마 가지 않아 후세인은 몰락합니다. 김정일은 1974년에 등장해서 1994년 김일성이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자기 사람을 조직 곳곳에 심어 왔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3년 만에 권력 고위층 수십 명을 처형하면서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심었습니다. 나름 심복을 심었겠지만 그들의 충성심을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조한범 박사는 지난 4월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놓고 국내 정치권이 설왕설래할 때 초기부터 “김정은은 러시아에 가지 않을 것”이라 못 박았다.
“처음부터 못 간다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러시아를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간 것입니다. 체제가 불안한데 어떻게 외국에 나갈 수 있겠습니까. 평양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모스크바를 못 간다고 했던 겁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박사.
그는 북한 경제가 다소 호전됐다는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다른 견해를 보여 왔다.
“북·중(北中) 무역 물품의 80%가 중국 단둥(丹東)을 통해 들어갑니다. 그런데 김정은 등장 이후 무역량이 20%가량 줄었습니다.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조치로 남북관계가 중단된 상황에서 북·중 관계가 좋지 않고, 북·러 관계도 좋을 게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외부 자원이 북한으로 들어갈 것이 없었으니 북한경제가 안 좋아지는 게 당연합니다.”
조한범 박사는 “2009년 화폐개혁을 실시한 김정일이 아들에게 치명적 유산을 남겼다”고 했다.
“시장경제가 커지니까 급기야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을 통해 상인들과 주민들의 재산을 사실상 몰수했습니다. 그런데 개혁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이를 주도한 박남기만 공개처형당했습니다. 문제는 주민과 시장상인들이 북한 당국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민들은 북한 화폐가 아닌 달러나 위안화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당국 입장에서는 세금이 줄어들면서 재정상태가 더욱 악화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등장했고 대표적인 전시행정인 마식령스키장 건설과 평양 현대화사업 등을 추진했습니다. 현재 김정은의 재정(財政) 금고는 절박한 상황이거나 거의 비어 있을 겁니다. 김정일에게서 받은 통치자금도 바닥이 났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지방 당 간부들은 배급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입니다. 군에는 지급이 안 된 지 오래고요. 그렇다 보니 폭력의 강도가 더욱 커지고 공포정치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 박사는 “김정은 정권이 몇 년을 버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우발적 상황에 의해 정권이 끝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여정보다 김설송 주목”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구글 위성사진 판독 결과를 근거로 2014년 7월 평양 쑥섬 과학기술전당을 건설하다(아래) 2015년 1월 일부를 허물고 다시 짓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이런 경우가 빈번하고 있다.
대북(對北)공작 및 첩보 전문가로 30여 년간 군에서 근무했던 이시연(李時淵) ROTC 통일정신문화원 정책실장은 최근 북한상황에 대해 “정권이 불안하기 때문에 계속 충격요법을 쓴다”고 했다.
“소말리아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적(敵)이든 아군(我軍)이든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먼저 총을 쏘고 봅니다. 북한이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친개증후군’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미친 개는 아무나 뭅니다. 김정은은 군부에 대한 신뢰가 없어 보입니다. 김정은에게 있어 군부란 핵(核)과 미사일이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김정은의 통치행태와 관련해 “물불을 가릴 나이가 아니다. 혈기 왕성하다는 것과 백두혈통이라는 점을 기본으로 무자비하게 통치하고 있고, 걸리는 것은 모두 제거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스스로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할지 모를 겁니다. 감정의 폭이 심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볼 때 김정은은 아마 밤에 잠을 잘 때 침대 밑에서 자는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지요. 죽음 앞에 닥쳐오는 어마어마한 공포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 제가 중국에서 한창 활동할 때였습니다. 호텔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북한 반탐(反探) 애들이 나를 죽이려고 방문을 열고 쳐들어올 것만 같았어요. 방문 앞에 책상이며 침대, 의자를 모두 끌어다 놓고 방 구석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은은 어떨까요.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과 두려움의 강도가 심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울증이 심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을 즉흥적으로 죽이는 것도 조울증 증세 때문일 수 있습니다. 조만간 측근 중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을 것 같습니다.”
이시연 실장은 “이복(異腹) 누나 김설송이 정신적·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김정은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친동생 김여정보다 올해 마흔하나인 김설송(1974년생)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설송은 김정일의 셋째 부인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생전 김정일은 김설송을 무척 예뻐했고 한때 후계자로 세운다는 얘기까지 있었지요. 김정일은 김설송을 당 조직지도부에 데려다 놓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녀는 백두혈통의 정통 교육을 받은 로열패밀리입니다. 김정은은 배 다른 누나 김설송에게서 로열패밀리 교육을 받은 걸로 압니다. 김설송은 생각이 깊고 처신에서도 문제 없게 알아서 행동한다고 합니다. 현재 김정은의 패션이나 행동 스타일 등을 가르쳐 주는 이가 김설송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은과 노동당의 군부장악력 강화”
▲이시연 ROTC 통일정신문화원 정책실장.
이 실장은 자신의 대북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5월 《김정은 통일전쟁》이라는 책을 냈다. 책에는 김정일이 죽으면서 장성택이 군부에 의해 처형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일이지만 그해 12월 김정일은 죽었고, 2013년 12월에는 장성택이 김정은에 의해 처형당했다.
김정은 정권의 운명에 대해 이시연 실장은 “체제가 불안정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일성은 북한에서는 신(神)과 같은 존재입니다. 김정은이 김일성 흉내를 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죽은 김일성이 지금의 북한을 계속 통치하는 것이지요. 김정은이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사람들은 의리(義理)라는 개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김정은이 통치를 잘 못해도 옛날 주군(김일성)을 봐서 참고 또 참을 것입니다. 현재 북한체제의 통치 구조상 김정은에 대한 암살이나 쿠데타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쿠데타와 같은 반란(叛亂)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어렵게 돼 있습니다. 지휘계통을 철저히 분리해 놓아 군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물론 김정은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측근의 돌발적인 행동에 의해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는 있겠지요.”
이시연 실장은 김정일이 살아 있을 당시 몇몇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얘기입니다. 2000년 무렵 김정일이 군부대를 시찰하다가 피격을 당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김정일을 경호하던 호위사령부 소속 소좌급 군인이 쐈다는 겁니다. 연이어 관련 첩보가 들어왔는데 김정일을 쏘려고 권총을 뽑는 순간, 옆에 있던 경호원이 소좌급 군인을 먼저 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거였습니다. 이후 관련 내용을 확인하려고 정보망을 가동했습니다만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김정은 체제 이후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
이 실장은 “김정은은 내부 불만 등을 잠재우기 위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유사한 도발을 또다시 감행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국지전도 벌일 수 있다”며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측근 처형에 따른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코리아연구원이 발간하는 ‘현안진단’에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을 가져오기보다는 향후 김정은과 노동당의 군부장악력 강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영철 숙청 후 김정은이 박영식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상장(별 3개)에서 대장(별 4개) 계급으로 진급시킨 것은 총정치국을 통해 북한군 지휘관을 보다 확고하게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은 총정치국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다음 가는 제2인자로서 북한군 간부들의 조직생활과 인사를 주로 담당하는 핵심 인물이다. 그가 인민무력부장이나 총참모장보다 낮은 계급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그들과 대등한 대장 계급으로 진급함으로써 향후 전통적인 군사간부들에 대한 총정치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현영철의 숙청은 총정치국과 이 기관을 지도하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영향력 확대로 연결됨으로써 전통적인 군사지휘관들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김창봉 민족보위상 숙청 이후 군대에 대한 노동당과 김정일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던 것처럼 이번 현영철 숙청도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을 가져오기보다는 향후 김정은과 노동당의 군부장악력 강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계속된 숙청은 권력층 응집력 약화시킬 것
김정은이 제거된다고 해도 북한 정권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6월 11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 게오르기 톨로라야 박사는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정은의 건강 문제 등 그의 주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필요하지 않다. 그의 갑작스런 부재에도 북한 정권은 건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이 사라진다면 북한 내부에 일정 부분 충격이 있겠지만 ‘탈출구’가 없는 북한 엘리트층이 새로운 지도자를 곧바로 찾아 세우고 기존 체제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없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장성택에 이어 군부 서열 2인자를 무자비하게 제거한 것처럼 김정은은 공개처형과 같은 공포정치를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리더십은 종국적으로 북한 권력층의 응집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뜻밖에도, 통일이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 2015-09-11 진화(進化)하는 북한 사이버테러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내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종합상황실.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대응을 제대로 했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한 대응방식과 수위에 대한 갈등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대해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안보재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에 의한 사이버안보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고 사이버 도발 시(時)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對南) 사이버공격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2005~07년 사이에는 단순히 자료 절취를 위해 국내 기관의 홈페이지나 관련자 이메일을 해킹했다. 당시의 공격수준은 지극히 낮았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정권 후계자로 등장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북한의 사이버공격 행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양태를 보였다. 국내 이용자가 많은 채팅·백신·자료공유(P2P) 사이트 등을 이용한 대규모 사이버공격으로 발전했고 공격기술도 높아졌다. 차원이 다른 사이버테러가 시작된 대표적 사례로는 2009년 발생한 게임프로그램 접속자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국내 유해화학물질 제조업체 위치정보 해킹 사건을 들 수 있다.
2009년 9월 북한 정찰총국 소속 해커들은 게임업체 직원으로 위장, 중국 선양에서 우리 게임업체 관계자에게 사행성 프로그램(악성코드가 담긴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 곧바로 유통됐고 여기에 접속한 내국인 60만명의 개인정보가 북한 해커들의 손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해 3월에는 육군 ○○사령부 인터넷망에 북한 해킹 세력이 침투해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운영 중인 ‘화학물질 사고대응 정보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인증서를 빼내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해커들은 인증서를 이용, 유해화학물질 제조업체 위치와 화학물질 정보 등 수천여 건의 자료를 유출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정은이 공식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북한의 사이버공격 기술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까지 급성장했다”고 했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사이버테러 공격 횟수가 크게 늘고 있고 공격수법 또한 다양화·고차원화하고 있다.
청와대·국무총리실 홈페이지에 김정은 찬양 글 게재
북한 사이버테러 세력은 2011년 5월 우리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홈페이지에 침투해 동문(同門) 기수별로 이메일을 확보, 다른 장성·장교 등에게 해킹 프로그램이 숨겨져 있는 안부 메일을 발송한 후 동문 컴퓨터에 저장된 각종 군사정보를 빼내 갔다. 그해 11월에는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졸업생들에게 해킹메일을 발송, 컴퓨터 사용자가 이메일로 주고받은 각종 문건과 수많은 이미지 등을 빼냈다. 북한은 이 학교 졸업생 대부분이 국방부 등 국가기관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2차 해킹을 시도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1년부터는 국가기관·언론·금융 등 공격 효과가 큰 사회기반시설을 목표로 장기간의 치밀한 준비를 거쳐 사이버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2011년 4월 북한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국내 금융전산망이 마비되는 일이 발생했다. 북한 해커들은 농협 전산망에 침투해 서버 273대를 파괴했고 20여일간 금융업무를 마비시켰다. 2012년 6월에는 《중앙일보》의 신문제작 서버 74개를 해킹, 기사 자료를 삭제하고 홈페이지까지 조작했다.
2013년 6월에는 청와대·국무총리실 홈페이지를 해킹해 김정은을 찬양하는 글로 ‘도배’했고, 같은 시각 동시다발적으로 17개 방송·신문사의 서버 155대를 파괴했다. 그해 12월에는 동아시아 FTA연구지원단과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 150여 명을 대상으로 외교·국방부 직원을 사칭해 정보절취형 해킹메일을 대량 유포하기도 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최근 북한 해킹 조직이 동부·대신·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10여 개를 대상으로 사이버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첩보도 입수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2014년 들어 남한에 사회적 혼란을 유발하기 위해 전력·가스·철도 등 국가 주요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공격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리·월성 원전(原電) 컴퓨터 파괴 사건이다. 북한 해킹 조직은 원전 컴퓨터에 칩입, 자료파괴형 악성코드를 심은 후 원전 설계도와 직원 연락처 등 자료 84건을 빼내 갔다. 또 이들은 게임 앱으로 위장한 악성 앱을 홈페이지(모바일 웹 포함)에 게시·유포, 우리 국민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2만여 대를 감염시키려 한 적도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북한은 최근 들어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일반 국민의 스마트폰 금융정보를 절취하거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접속자의 자금을 갈취해 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했다.
공격코드 암호화 등 고차원 기술 구현
▲중국 내 북한 해커 근거지. 이중 선양(瀋陽)은 해외 해킹의 전초기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만여 명의 사이버 해커조직을 운영 중이며 이들 대부분이 IT 인력으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다. 특명을 받으면 5~15명 단위의 소규모로 움직인다.
북한은 현재 최고사령부·노동당·국방위원회 산하에 대남(對南) 정보수집·사이버테러 및 심리전을 담당하는 사이버전(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테러 세력은 대규모 좀비PC를 동원한 디도스(DDoS) 공격, 홈페이지·서버 침투, 하드디스크(HDD) 자료 삭제, 공격코드 암호화·자폭(自爆) 기능 추가 등 고차원의 고급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북한의 방어역량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정보통신망을 인터넷과 분리·운영하고 있는 데다 인터넷 감시·통제 등 보안관리를 강화하고 있어 외부에서 침투·공격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는 것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우리의 높은 정보통신(IT) 의존도를 간파해 온 북한은 오래 전부터 비대칭전력으로 ‘사이버전력(戰力)’을 집중 육성해 왔다. 이에 비해 우리의 대응책은 정치, 사회적 제약으로 한계를 안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2010년부터 우리 정부는 북한 사이버공격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국가정보원, 국방부 등을 중심으로 방어역량을 강화해 왔다. 현재 국가·공공기관의 주요 통신망에 대한 방어역량은 4~5년 전에 비해 많이 향상됐다고 한다. 북한의 기밀절취 공격에 대비해 100여개 국가·공공기관의 업무망과 인터넷망도 분리해 놨다. 그러나 민간분야를 경유하거나 민간영역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사이버공격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흡한 상태라고 한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사이버 공격 역량은 조직·규모 등 여러 면에서 미국·중국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방어역량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사이버 대남도발 욕구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사이버공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사회 전 분야가 인터넷, 모바일 등 IT화(化)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할 때 사이버전(戰) 발발 시 우리의 피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재난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판단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향후 예상되는 사이버공격 양상에 대해 정보당국 관계자는 “북한은 우리 국가안보기관과 국책연구소를 대상으로 기밀절취를 계속 시도할 것이다. 또 사회혼란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력·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지능형 공격도 꾸준히 늘릴 것이다. 민원포털, 사물인터넷, 인터넷 결제서비스(핀테크)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 공격을 획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현재 사이버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체계는 국가기관(주요 사회기반시설 포함)에 한정돼 있다. 민간부문에 대한 대응은 ‘개인정보 보호’ 등 현실적 이유로 많은 제약을 안고 있다.
국가 사이버안보 대응체계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다. 실무 총괄은 국정원이 맡고 있고 국방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역할을 분담한다. 대형(大型) 사이버테러가 발생할 때는 범정부 차원의 ‘민관군(民官軍) 사이버위협 합동대응팀’을 가동해 대처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 사이버안보 수행체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최고 통치기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개별 정보·보안기관이 실무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미국(대통령제) ㆍ컨트롤타워: 백악관(사이버안보조정관) ㆍ실무기관: 국토안보부(보안관제 및 기반시설 보호), FBI(사이버범죄 수사), CIA(사이버 위협정보 수집 및 사이버공작), NSA(사이버위협정보 수집 및 국가기밀 보호), 사이버사령부(국방망 보호 및 사이버戰 대응) 등이 역할분담 수행 ▲중국 ㆍ컨트롤타워: 공산당 산하 중앙 인터넷안전 및 정보화 영도소조(조장 시진핑) ㆍ실무기관: 국가보밀국(국가·공공기관 전산망 보호 및 비밀관리), 국가안전부(안보관련 사이버범죄 수사), 공공안전부(일반 사이버범죄 수사), 공업정보화부(공공전산망 보안관리 및 민간기업 보안업무 지원) ▲일본(내각제) ㆍ컨트롤타워: 총리 산하 사이버시큐리티전략본부(의장 내각관방장관) ㆍ실무기관: 국가정보시큐리티센터(내각관방 산하), 경찰청(사이버범죄 수사), 방위성(국방전산망 보호) ▲러시아 (대통령제) ㆍ컨트롤타워: 연방보안부(FSB) ㆍ실무기관: 연방보안부(사이버안보 업무 총괄), 해외정보부(국내 사이버여론 수집·감시) ▲영국(내각제) ㆍ컨트롤타워: 총리실 소속 사이버보안실(OCSIA) ·사이버보안운영센터(CSOC) ㆍ실무기관: 정보통신본부(GCHQ-사이버안보 실무 총괄), 국내보안부(SS-기반시설 보호) ▲이스라엘(내각제) ㆍ컨트롤타워: 총리 산하 국가사이버위원회(NCB) ㆍ실무기관 : 보안정보부(ISA-공공·민간 사이버보안 실무 총괄), 軍정보국(IDI-국방분야 사이버보안 업무) |
법적 근거 미비, 조직·예산 부족, 낮은 정보보호 인식
▲북한은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의 불법 도박사이트에 침투하거나 스마트폰을 해킹해 개인 금융자산을 빼내려 하고 있다.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에 대한 보호체계는 국무총리 산하 ‘정보통신기반보호위원회(위원장 국무조정실장)’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실무적으로는 국정원과 미래창조과학부가 각각 분야별 실무위원회를 통해 처리한다. 국정원·미래부는 공공분야 227개, 민간분야 127개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보호계획 수립지침을 배포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사이버테러에 적극 대응하는 데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다. 우선 국가 사이버안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사이버안보 주관부처인 국정원의 업무수행 근거가 ‘전자정부법’ ‘정보통신기반보호법’ 등 개별 법령에 산재(散在)해 있어 체계적 집행이 곤란하고 혼선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원 소관 근거 법령은 국가·공공기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 훈령’에 불과해 유사시 민간부문까지 포괄하는 신속한 업무수행이 사실상 어렵다.
현행 국정원법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법 제3조에 의하면,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의 수집·분석·배포 및 국가기밀(문서·시설 등)에 대한 보안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조항을 사이버 공간에 확대·적용하는 데 대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일부 전문가들은 반대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국정원법 개정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보활동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국가 차원에서 민·관·군 역량을 결집하고 사이버위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도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제18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률을 제19대 국회에서 서상기, 하태경, 이노근 의원 등이 재(再)발의했고, 이철우 의원도 지난 5월 ‘사이버위협정보공유법’을 대표발의했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민간인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사찰 우려가 있다는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사이버테러 방지법안 중 논란이 있거나 불필요한 조항은 제외하고 사이버테러 대응에 가장 시급한 핵심사항 위주로 법안을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며 법안의 조속한 제정을 당부했다.
북한 사이버테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문제로는 전담조직 미약과 예산부족도 들 수 있다. 현재 중앙행정기관으로는 국방부·외교부 등 2개 기관이, 공공기관으로는 경영평가 대상 62개 기관 중 34개 기관만이 정보보호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도 국정원 정보보안 관리실태 평가자료에 따르면, 국가·공공기관의 정보보호 전담인력은 평균 3.78명에 불과하다. ‘정보화’와 ‘정보보호’는 상호 경쟁·보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정보보호 업무는 해당 조직의 ‘정보화담당관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정보보호 업무를 정보화의 부수적 업무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보보호에 필요한 예산도 정보화 예산에 통합·편성돼 있다. 설령 예산이 늘더라도 정보보호에 소요되는 예산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2015년도 국가정보화 시행계획에 따르면, 2015년도 정보보호사업 예산 총액은 2543억원으로, 정보화사업 예산(5조2049억원)의 4.9%에 불과하다.
이처럼 ‘정보화’와 ‘정보보호’의 개념 혼동이나 인식 저조는 국가·공공기관 공직자의 낮은 보안의식에 기인한다. 국가·공공기관 기관장 및 공직자들의 사이버보안에 대한 의식수준이 낮음으로 인해 사이버보안 조직강화나 예산확보에 애로가 발생하는 것이다.
2014년도 국정원 정보보안 관리실태 평가자료에 따르면, 사이버보안 업무 담당자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전문인력과 예산부족(55%)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직원 및 기관장 인식부족(37.6%)이 차지했다. 국가·공공기관 기관장 스스로가 ‘사이버보안’에 관심이 낮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사이버보안에 대한 국가 차원의 현행 평가제도와 관련해, 개별 국가기관의 경우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별도 평가항목 없이 타 분야 평가항목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이버보안 평가 비율은 1% 내외인 것으로 드러났다.
땜질式 처방
▲북한의 사이버 공격 사례들. 김정은 등장 이후 사이버테러 횟수가 늘고 있고 공격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결국 우리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발생한 북한 사이버테러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사이버안보 정책이나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이버공격이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式) 처방만 해 왔을 뿐 종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2009년 디도스 공격 후 정부는 ‘국가 사이버위기 종합대책’을 내놨다. 2011년 농협전산망 해킹 사고 후에는 ‘국가 사이버안보 마스터플랜’을, 2013년 동시다발적 사이버테러 사건 발생 후에는 ‘국가 사이버안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이버안보전략,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마련 등 체계적인 집행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종합대책은 있었지만 사이버공격이 있을 때마다 사태수습에만 매달렸을 뿐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은 국가·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주요 기반시설에 대해서도 사이버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민간분야에 대한 보안관리나 정보보호는 국가·공공기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주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민간을 대상으로 정책 제안·권유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기술지원·공격 점검 등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해킹 경유지로 악용되는 개인이나 민간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예방활동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는 정보보호 관련 산업이나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데도 미흡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다수 민간업체가 사이버 안보를 ‘곁가지 업무’로 인식, 투자에 인색한 것도 사실이다. 공영방송 KBS는 IT인력 80여 명 중 보안인력이 2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정보보호 전문기업의 규모는 중소업체 수준이며, 대학 차원의 전문인력 배출도 저조한 게 현실이다.
기관별 정보보호 역량 강화해야
법적·제도적 미비 상황에서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정보당국과 국가정보학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금까지 국정원이 국가·공공기관 및 소속·산하기관 등 전(全) 기관을 대상으로 ‘직접’ 보안관리 업무를 수행해 왔는데, 이를 개별 기관에 이양해야 한다. 중앙행정기관(49개)과 광역자치단체(17개) 및 교육청(17개) 등이 자체 보안관리 역량을 확보해 소속·산하기관(2만여 개)에 대한 사이버보안을 총괄·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 중앙행정기관, 광역단체·교육청에 사이버보안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정보보호’ 예산을 ‘정보화’ 예산에서 분리·편성하는 등 정보보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사이버보안 담당조직을 정보화 조직에서 분리, 해당 기관의 기획조정실장이 책임 운영하도록 업무 실행력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국가 사이버안보전략(5년)·기본계획(2~3년)·시행계획(1년) 순으로 사이버안보정책 집행체계를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넷째, 민·관·군 합동 사이버위기 대응 실전훈련을 강화하고, 각 영역 간 사이버위협 정보를 종합 수집·분석·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사이버공격에 대해 국제사회와 공조·대응하기 위해 주요 국가와의 사이버안보 관련 정책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또 국제기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사이버공격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국제규범을 마련하는 데 적극 동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사이버안보 관련 법령을 보완해 업무수행 체계 기반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