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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2021-09/ 09월 01일(수) OSINT(개방형 정보) - 09월 30일(목) 美 입양 한인의 눈물 ‘푸른 호수’

상림은내고향 2021. 9. 30. 19:50

오후여담 2021-09/ 문화일보 2021

09월 01일(수) OSINT(개방형 정보)

 

이신우 논설고문


 지난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민주화운동 지도부가 중국을 탈출하는 과정에 이들을 비밀리에 도와준 것이 밀입국 알선 범죄조직인 ‘스네이크헤드’였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도 밀입국 조직들이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들을 국외로 탈출시키기 위해 구조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과거의 스네이크헤드와 다른 것은 순수 민간인들로 ‘디지털 수단’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 각종 SNS를 활용해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한편 안전한 탈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위성사진을 적극 활용한다. 위성사진을 분석해 탈레반의 검문소나 집결 장소 등을 파악한 다음, 이를 토대로 현지 협력자와 가족에게 국외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는 통로를 가르쳐주는 식이다.


세상에 널려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진실을 규명하고 어려움에 처한 민간인을 돕기도 하는 ‘오픈 소스 인텔리전스(OSINT)’가 빠른 속도로 활동 영역을 넓혀간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얼마 전 아마추어 분석가와 언론인들이 위성 화상을 분석해 중국 신장(新疆)성에 있는 위구르족 강제수용소의 전모를 파헤쳤다. 중국이 사막 지역에서 핵미사일 시설을 건설하는 것도 밝혀냈다. 위성 영상만이 아니다. 자동차 블랙박스, CCTV 등 온갖 형태의 센서들이 협동 작업에 동원된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추락했을 당시 영국의 탐사보도 그룹인 ‘벨링캣’은 여러 장의 사진과 위성 화상, 초등 기하학을 동원해 러시아의 관여를 입증해냈다. 심지어 헤지펀드 사이에서는 사설 비행기를 사용하는 사업가들의 동선을 추적,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예측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의 애정 행각도 점차 숨기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시긴트(SIGINT·신호 정보)에 비견되는 ‘오신트(OSINT)’라고 할 만하다. OSINT 활동은 유럽이나 중국, 러시아의 위성회사들이 경쟁적으로 화상을 판매하는 바람에 갈수록 시장이 커지고 영역도 급속히 확대되는 추세다. OSINT는 분산형이다. 정부나 스파이, 군대 등의 정보 독점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상호감시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09월 02일 첼리스트 홍진호

 

김종호 논설고문


“짐승의 울음처럼 가슴 깊이 파고드는 울림이 강렬했다. 몸에 전율이 인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음색이 어찌나 멋있던지 그 소리를 평생 갖고 싶었다. 부모님께 무슨 악기인지를 물었다. 첼로라고 했다. 한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사달라고 떼를 썼다.” 첼리스트 홍진호(36)가 강원도 춘천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는 우연히 음반을 통해, ‘현대 첼로의 화신(化身)’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등으로 불린 러시아 출신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연주를 들었다.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3악장이었다. 그 감동이 35만 원짜리 첼로를 처음 손에 쥔 배경이다.


첼로에 대한 남다른 그의 애정과 집념이 하루에 잠을 서너 시간만 자면서 엉덩이가 짓무를 만큼 연습한 그를 서울예술고와 서울대 음대 졸업으로 이어지게 했다.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이 스카우트 제의도 했지만, 독일 소도시의 뷔르츠부르크 음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방한 연주를 듣고 반했던, 그 대학의 니클라스 에핑어 교수를 사사(師事)하고 싶었다. 독일·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등지의 국제콩쿠르에서 1∼2위를 하고, 유럽에서 정통 클래식 연주자로 활동하던 그는 2016년 귀국 독주회를 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첼로의 매력을 알리고 싶어서, 2019년 오디션 프로그램인 JTBC ‘슈퍼밴드’에 나갔다. 방송 과정에 아일(보컬·건반), 하현상(보컬·기타), 김영소(기타) 등과 함께, 드럼은 없고 첼로가 두드러지는 4인조 밴드 호피폴라(Hoppipolla)를 결성해 우승했다. 그가 밴드 활동과 독자 활동을 병행하며, 클래식과 팝을 융합한 네오클래식 장르를 통해 첼로 연주를 더 대중 친화적인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계기다.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비롯한 네오클래식과 재즈·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연주한 그의 지난해 8월 단독 공연 ‘Summer Breeze : Purify’의 실황, 재즈로 편곡한 요하네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등을 담은 첼로 음반이 지난 7월 13일 나왔다. 그의 이런 말도 생각나게 하는 연주가 신선하다. “첼로로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어떤 도전도 마다하지 않겠다. 첼로 본연의 음색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09월 03일 SoB와 GSGG

 

이도운 논설위원


1986년 2월 28일 오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블루리본(원자력미래위원회) 관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포토 세션 도중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국방비 지출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독재자였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을 돕는 이유가 무엇인가?”


1980년 당선 뒤 소련 등 공산권에 대한 강경책으로 1984년 미 대선 역사상 가장 압도적 승리로 재선에 성공한 레이건은 임기 말까지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아픈 곳을 계속 찔렀다. 레이건이 웃으며 “손님들 기다리니 이만 하자”며 돌아서려는데, 기자가 “마르코스 일당이 돈을 빼돌리는 데 미 정부가 관여한 것 아닌가”라고 또 다그쳤다. 레이건은 데이비드 패커드 블루리본 위원장 쪽으로 몸을 돌리며 뭔가 중얼거렸다. 그때까지 켜져 있던 백악관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작지만 “개자식들(Son of Bitches)”로 들리는 말이 흘러나왔다.


기자들은 래리 스피크스 대변인에게 대통령이 ‘SoB’ 욕설을 했는지 따졌다. 스피크스는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다만, 무슨 말을 했다면 ‘날씨는 좋고, 우리는 부유하다(It’s sunny, and we’re rich)’라고 했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발음이 비슷한 말재간(pun)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 것.


이번 주 초 언론재갈법으로 불리는 언론중재법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자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SNS에 “박병석… 정말 감사합니다. GSGG”라는 글을 올렸다. GSGG가 Son of bitch와 같은 뜻이란 지적이 나오자 김 의원은 ‘정치권력은 국민 일반 의지에 충실히 봉사해야 한다(Government serves general G)’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G가 설명이 안 되자 다시 Good이라고 하는 등 7차례나 수정했다.


백악관 출입 기자들이 스피크스의 변명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간 것은 레이건의 국정 방향이 옳았고, 대통령 스스로 기자들과 거의 매일 소통했으며, 그나마 pun이라는 유머 코드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욕설’과 해명에는 그런 요인들 대신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한 억지스러움만 보였다. 입법 방향도, 발언도 잘못됐으며, 그나마 변명조차 일말의 솔직함이 없었다.

 

09월 06일(월) 한국 종자의 부활

 

문희수 논설위원


 엄연히 국내산인 채소·식품 중에서도 외국에 로열티를 내는 사례가 많다. 외국 종자 회사에 돈을 내고 씨앗을 수입하는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 때 국내 주요 종자 회사들이 외국에 매각되면서 토종 종자가 대거 넘어갔던 여파다.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청양고추도 종자의 소유권이 독일 바이엘에 있다. 중앙종묘가 1997년 외환위기 탓에 토종인 이 종자의 소유권을 미국 세미니스에 팔았고, 그 후 소유권이 미국 몬산토 등을 거쳐 바이엘로 넘어갔다. 지난해 기준 국산 종자 자급률은 채소 89.9%, 화훼 45%, 과수 17.5% 수준이다. 사과와 배도 20%가 안 된다. 양파와 양배추는 일본 종자 비중이 80%대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한국산 종자가 하나둘 부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와 종자·유통업체가 2012년부터 국산 종자 개발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골든 시드 프로젝트’가 하나둘씩 결실을 보면서 성공 사례가 나오는 것이다. 국내 종자 회사가 자금을 지원받아 국산 종자를 개발하면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상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농우바이오가 개발한 K-스타 양파, 조은종묘가 개발한 ‘홈런’ 양배추 등이 대표적이다. 국산 라온 파프리카 매출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대형 마트들의 해당 품목 매입량 확대가 큰 힘이 되고 있다. 바람직한 상생이다.


종자 주권에 대한 인식은 일본도 늦었다. 껍질째 먹는 씨 없는 청포도인 샤인머스캣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조인 일본이 품종을 개발하고도 2006년 자국에만 등록하는 바람에 한국 농가가 로열티를 내지 않고도 기를 수 있게 돼 지금은 한국이 수출 규모·재배 면적에서 일본을 크게 앞선다. 이런 일에 자극받아 일본은 지난 4월 종묘법을 개정해 일본산 과일 품종의 해외 유출을 금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사 먹는 채소·식품을 보면 이젠 태반이 외국산이다. 단지 신토불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하다간 일반 가정의 식탁조차 차리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토종이던 종자가 외국으로 넘어가 돈을 주고 씨앗을 사오면서도 변변한 국산 종자가 없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종자 산업은 세계적으로 연 5%씩 성장하는 유망산업이다. 한국 종자의 부활은 그래서 반갑다.

 

09월 07일 ‘의혹’의 정치학

 

박민 논설위원


‘이회창 장남 병역비리 의혹 사건’ 같은 정치적 의혹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의혹 당사자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봤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의혹 제기 당사자는 처벌을 받았지만 의혹을 증폭시킨 사람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이런 사건은 정치적 의도로 기획되기 때문에 사실관계나 논리 구성에 일관성이 있다. 대중의 감성을 자극할 줄 아는 정치권이 가세하면 의혹은 눈덩이처럼 부풀려진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측의 ‘범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 사건’도 유사한 경로를 거치고 있다.


사실관계와 논리가 그럴듯해도 사건 관련자에게 주목하거나 의도를 따져보면 허점이 드러날 때가 있다.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의 핵심 측근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개인 손준성 정책관은 기획통으로 특수수사통이 주축인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핵심 측근이 아니다. 더구나 손 정책관은 지난해 2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중간간부 인사를 통해 대검에 진입했다. 추 장관이 검사장급 인사를 통해 대검에서 윤 총장의 수족을 잘라낸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뤄진 인사였다.


이런 고립무원 상황에서 윤 총장이, 공개될 경우 총장 사퇴는 물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핵심 측근도 아닌 손 정책관에게 지시할 수 있을까. 손 정책관이 혼자 벌인 일이란 가설도 같은 이유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의도에도 빈틈이 보인다. 고발장 등이 국민의힘에 건네진 것은 지난해 4월 3일과 8일이고 고발장 수신처는 대검 공공수사부다. 고발 취지는 ‘범여권·범진보 세력이 총선 승리를 목적으로 윤 총장 가족과 측근들을 비난하는 계획적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으니 신속하고 엄하게 처벌해달라’는 것이다. 총선(4월 15일)을 불과 일주일 남겨두고 추 장관 사람들로 채워진 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제기한 쪽은 이미 기대효과를 누리고 있다. 윤 후보는 방어에 급급하고 야권 분열은 본격화됐다. 친정부 색채가 확실해진 검찰이 감찰과 수사를 질질 끌거나 무리한 기소를 하면 윤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낙마할 수도 있다. 후보가 되더라도 판결은 대선 이후에나 나온다. 어차피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다.

 

 

09월 08일 ‘부지런한 무능’ 스가의 퇴장

 

이미숙 논설위원


 스가 요시히데(72) 일본 총리가 오는 30일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힘에 따라 스가 정권이 1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아베 신조 총리의 2006년 1차 정권 때 총무상으로 발탁된 데 이어 2012년 2차 정권 때 관방장관으로 부임해 7년 8개월간 이어진 아베 장기집권 시대를 연 1등 공신이지만 결국 아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무능 총리로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15일 자민당 총재에 선출된 후 내각을 출범했을 때만 해도 스가 총리에 대한 기대는 컸었다. 독단적이고 우익 성향이 강한 귀공자 스타일의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자수성가형 비세습·무파벌 정치인으로서 실용적이며, 관료사회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스가 정부 출범 후 여론은 긍정적이었다. 가장 부지런한 총리로 꼽히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이 취임 후 1개월 총리 동정을 비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가는 659회로 1위였다. 이어 모리 요시로(521회), 고이즈미 준이치로(489회), 아베(438회) 순이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며 24시간 풀가동 하는 일벌레 총리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도쿄올림픽을 강행해 여론은 악화됐고, 올림픽 폐막 후 지지율이 26%로까지 떨어지자 스가 총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일본에서는 올림픽 후 총리가 사퇴하는 징크스가 있다. 1964년 첫 도쿄올림픽 후 이케다 하야토, 19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 후 사토 에이사쿠,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사퇴했다. 스가 총리는 올림픽 열기를 자민당 총재 선거로 연결시켜 이런 징크스를 깨겠다는 구상이었지만, 그 역시‘올림픽의 저주’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스가 총리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불이행 및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인데 한국에 대한 ‘점잖은 무시(benign neglect)’전략은 집권 내내 이어졌다. 대한민국을 투명국가 취급하며 영국 콘월 G7 정상회의에서도 문 대통령과의 회담을 피했다. 그가 ‘재임 중 한국 정상과 회담을 하지 않은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고 물러나는 것은 한·일 양국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09월 09일 ‘기본 人性’ 파탄자들

 

이현종 논설위원


 이재명 경기지사가 쏘아 올린 ‘기본’ 시리즈가 무한 확장되고 있다. 출발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 소득에서 출발하더니 기본 대출, 기본 주택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부 부처에서는 이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에 대비해 ‘기본 R&D’ 등의 아이디어도 낸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기본 인성(人性)’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국회는 2014년 12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한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교육기본법에 따른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해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70개의 인성 문항을 활용해 인성 수치를 계량화하는 것으로 대학 입시에도 적용한다. 인성을 점수로 환산한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우선 사회적 모범이 돼야 할 공직자들에게 적용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 가장 큰 어른인 국회의장을 향해 본회의를 열지 않았다고 여당 초선 김승원 의원이 ‘개××’를 상징하는 ‘GSGG’라는 욕설을 했다. 문제는 버젓이 욕설해 놓고 ‘Government serves general good’을 의미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다.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심한 욕이 ‘너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이고, 실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거짓말 때문에 사임했다. 이번에 같은 당 민형배 의원이 이 욕설을 변용, ‘고발 사주’ 논란의 당사자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빗대 ‘GSGGD’라는 욕설을 했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 추문 문제를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하고, 대통령 최측근인 윤건영 의원은 명예의 상징인 예비역 장성이 특정 야당 후보 캠프에 갔다고 “○별”이라고 폄하했다. 하기야 여당 대선후보 1위 주자가 형수에게 했다는 욕설을 들어보면 다른 욕은 비교가 안 된다.


최근 고등학생들이 길거리에서 할머니에게 담배를 사 오라고 시키면서 꽃으로 때린 사건과 민주노총 택배노조원들이 비노조원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회 전체가 반(反)인성이 돼 가고 있다. 기본 인성부터 회복해야 할 때다.

 

09월 10일 취업자 통계 ‘숨은 진실’

 

이신우 논설고문


“전년 동월 대비 50만 명 이상의 취업자 증가세가 4개월 연속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직전(작년 2월) 취업자 수 대비 99.4% 수준까지 회복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7월 고용동향’과 관련해서 내놓은 자부심 가득 찬 평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고용동향’에 대해서는 “고용의 양적 측면뿐 아니라 세부 내용 측면에서도 개선세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며 팡파르를 울렸다. 하지만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지난 1월 통계를 살펴봐야 한다.


1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무려 100만 명 가까이 줄어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정부는 그동안 60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휴지 줍기, 새똥 닦기, 교통안전 지킴이 등 온갖 명목의 세금 알바를 매년 60만에서 70만 개씩 만들어냈다. 그런데 예년에는 노인 일자리 계약이 연말에 종료된 뒤 이듬해 초 곧바로 신규 계약으로 이어졌는데, 지난 1월에는 혹한과 폭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신규 계약이 지연되는 등 예상외의 차질이 빚어졌다. 그 바람에 이들 알바 일자리가 취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게 됐다. 갑자기 속살을 드러내면서 취업자 98만 명 감소라는 충격적 수치가 나온 배경이다.


‘취업자’의 정의에는 주당(週當)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 다 포함된다. 그러니 마구잡이로 노인 알바를 늘린 다음, 이들을 전체 취업자 수에 포함시켜 온 것이다. 빈 강의실 전등 끄기, 태양광 패널 닦기 등에 종사하는 청년 알바 일자리도 속을 들여다보면 공식 취업자 숫자 늘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국민을 속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주당 1시간 일한 노동자가 10명 늘어나면, 번듯한 직장에서 주 36시간 이상 일하던 노동자가 5명 줄어들어도 전체 취업자는 5명 증가하는 셈이다. 정부는 2020년에 25조5000억 원을, 2021년엔 30조6000억 원을 이런 세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쏟아부었다. 앞으로는 고용동향 발표 시 실제 근로시간 통계를 같이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런 통계 수치(‘전일제 환산 취업자’ 등)를 보조지표로 활용하면 노동시장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확한 통계야말로 제대로 된 정책의 출발점이다.

 

09월 13일(월) ‘파리의 별’ 박세은

 

김종호 논설고문


 세계 최고(最古)의 역사와 최정상급 기량을 지닌 프랑스 국립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의 수석무용수는 ‘별’을 뜻하는 프랑스어 ‘에투알(etoile)’로 호칭된다. 지난 6월 10일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할을 맡아 파리 바스티유극장에서 공연한 직후, 아시아인 최초로 그 ‘별’로 지명된 발레리나 박세은(32)은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에 파리의 공연장 객석에서 바라본 프랑스 무용수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게 가장 큰 꿈은 무대에서 숨만 쉬어도 아름다워 보이는 무용수가 되는 것이었다. 에투알 승급 발표 후 발레단 감독이 ‘네 무대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가만히 앉아 무릎을 꿇고, 잠드는 약을 받아드는 장면이었다’고 했다. 난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재학 때부터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여서 ‘빡세은’ 별명도 얻었다. 세계 4대 무용 콩쿠르 중 미국 잭슨, 스위스 로잔, 불가리아 바르나 등 3개를 석권한 밑거름이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수상을 한국인으로는, 강수진(1999년)·김주원(2006년)·김기민(2016년)에 이어 4번째로 2018년에 하며 그는 이런 말도 했다. “파리에 8년째 살고 있지만, 발레만 하고 에펠탑에도 못 올라가 봤다”. 그 이듬해는 “그 상의 트로피는 집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다. 내게 큰 힘을 줬지만, 시간이 지나면 경력 한 줄일 뿐이다. 그것만 바라볼 수는 없다”고도 했다.


고난도 테크닉이 더 중시되는 러시아의 바가노바 기법을 기본으로 한국에서 발레를 공부했던 그는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준단원으로 입단한 뒤로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 동시에 흠이 될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제 테크닉 못잖게 감정 표현도 뛰어난 ‘파리의 별’이 된 그가 공식 왕관을 쓰는 행사가 파리 현지에서 오는 24일 열린다. 프랑스어로 ‘행진’을 뜻하는, POB 단원들과 발레학교 학생 등 250여 명이 서열에 따라 줄지어 퍼레이드를 펼치며 ‘새 에투알 박세은’을 소개하는 ‘데필레(defile)’다. 그가 주역을 맡은 새 시즌의 개막 공연도 이어진다. 그의 바람대로 그가 앞으로 ‘별 중에서도 큰 별’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 공연 일정도 머잖아 잡히고.

 

09월 14일 두테르테 따라하기

 

이미숙 논설위원


 포퓰리스트인 로드리고 두테르테(76) 필리핀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 부통령으로 출마한다고 한다. 필리핀 대통령은 6년 단임제로 연임이 금지되는데, 특이한 점은 부통령도 대통령처럼 선거로 선출한다. 두테르테는 연임이 어려워지자 권력 연장을 위해 한 체급 낮춰 부통령 출마를 선택한 것이다. 2016년 대선에서 부패·범죄·마약과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두테르테는 마약 혐의자 4000여 명을 무차별 살해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상태다. 그의 부통령 출마는 편법으로라도 권력을 연장해 ICC 기소에 대한 면책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대통령 후보로 유력 거론되는 인물이 현재 다바오 시장인 그의 큰딸 사라(43)라는 점이다. 그녀는 대선 출마 여부를 공식 표명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두테르테 부녀는 다바오에서 시장-부시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1988년 다바오 시장에 출마해 당선된 두테르테는 3선 연임 제한 규정 때문에 출마가 어려워지자 딸 사라를 시장 후보로 내세우고 자신은 부시장으로 출마해 동반 당선됐다. 이후 부시장 임기를 마친 뒤 두테르테는 다시 다바오 시장에 출마했다. 3선 연임 제한을 부시장에 출마하는 편법으로 돌파한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두테르테가 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6년 후 대선 도전도 배제할 수 없다.


딸을 활용한 두테르테의 집권 연장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영감을 줬다. 2000∼2008년까지 대통령을 연임한 푸틴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2008년 대선 후보로 내세움으로써 3선 연임 제한을 돌파했다. 자신은 총리로 일하며 6년 중임제 개헌을 강행, 2012년 대통령으로 복귀했다. 1960년대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불렸던 필리핀은 이어지는 포퓰리즘 정치 탓에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대선이 주기적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형식상 민주주의국가지만, 집권층의 갖은 편법이 고착된 신형 권위주의 국가다. 정치인들은 국가를 퇴행시키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가 됐다.


야당 대선 예비후보들 간에 두테르테식 정치 논란이 불거졌다. 여당은 대선용 현금살포 정책까지 펴는데 야당은 정쟁으로 지새니 한국 정치도 필리핀을 따라가는 듯하다. 걱정스럽다.

 

09월 15일 ‘추석 민심’의 굴욕

 

이도운 논설위원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추석에는 민심도 대이동 한다는 ‘신화’가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유난히 추석 민심을 중요시해왔다. 2012년 제18대 대선까지는 12월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1997년 15대 대선에선 ‘이회창 대세론’이 추석 전후로 꺾이며, 김대중 후보가 앞서나가는 계기가 됐다. 18대 대선 당시에도 추석 직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박빙이긴 하지만 문재인 후보 등과의 다자대결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반대로,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때는 추석 연휴까지도 노무현 후보 지지율은 높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후보 단일화를 통해 막판에 승리했다.


추석 민심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SNS 시대가 오면서 이전보다 훨씬 친·인척들과의 소통이 활발하고, 서울에 살든 지방에 살든 TV 시사 프로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24시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기준 연 4000만 명이 육·해상 및 항공기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이동했다는 통계는 추석 연휴가 민심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올 추석은 백신 접종률이 높아 작년 추석, 지난 설 연휴에 비해 국민 이동이 늘어난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서고속철도(SRT)에 따르면 추석 연휴인 18∼22일 예매율은 72.9%로 지난 설 연휴 기간의 53.2%보다 19.7%포인트, 지난해 추석 예매율 66.7%보다도 6.2%포인트 늘어났다.


이번 추석 밥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코로나19와 재난지원금, 백신 접종이 우선 소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한 품평도 나오긴 할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정치적 견해’ 차이가 정반대다시피 해 그리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지역별 이슈가 많다. 호남에서는 대세론의 이재명 후보와 전남의 아들 이낙연 후보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보수의 핵심 지역인 대구·경북은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치열하게 대결한 1차 경선 결과를 놓고 해설과 전망이 오갈 것이다.


2017년 19대 대선 때 선거일이 12월에서 5월로 당겨졌고, 내년 20대 대선은 3월로 조정됐다. 앞으로 당내 경선은 추석 민심, 본선은 설 민심이 중요하게 됐다. 이래저래 추석 민심의 영향력이 예전 같진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09월 16일 허경영의 아류들

 

박민 논설위원


 정치권에서 공약은 나룻배에 비유된다. 선거라는 강을 건널 때 타지만 강을 건넌 뒤에는 두고 가야 한다. 무리한 공약에 얽매이면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거나 국정 전반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은 에너지 수급 불안과 전기료 인상 압력, 탄소중립화 부담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환경오염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는 공기업 경영 악화와 노노 갈등, 양질의 청년 일자리 감소 등의 혼선을 초래한다. 대표적 공약이었던 ‘소득주도성장’은 단어 자체가 문 대통령의 발언이나 연설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20대 대선 예비후보들의 공약은 도를 넘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여당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장기 기준 300조 원)·기본주택(300조 원)·기본대출(500조 원) 공약에는 어림잡아 1100조 원대의 예산이 소요된다. 내년도 정부 편성 예산안 604조 원의 2배에 가까운 규모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만15∼64세 국민에게 생애 세 번의 안식년 기회를 주고 안식년 1년 동안 매월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야당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원가·반값 주택 30만 호 공급 공약을 제시했다. “30년 전부터 결혼수당 1억 원, 주택자금 2억 원 등을 주자고 해 사기꾼 코미디언이라고 조롱받았는데, 이제 여야 모든 정치인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국가채무 1000조 원 돌파를 앞두고 잠재성장률까지 2%대로 하락하면서 경제전문가들과 민간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선거 공약 비용 추계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재정 규모가 일정 금액 이상으로 예상되는 공약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에 설치된 기관에서 비용을 추계토록 하고 공약 발표 시 의무적으로 추계 내역을 공개토록 하는 제도다. 호주,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에서 시행 중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 2016년 도입을 주장했지만 진척이 없다. 포퓰리즘 공약에 따른 재정 부담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국민이 짊어져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무책임한 공약을 앞세운 후보가 선택되면 파산에 준하는 재정위기, 경제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09월 17일 플랫폼기업 규제의 명암

 

문희수 논설위원


 카카오·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우호적이던 정부와 여당이 돌연 전방위로 규제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청회 개최를 기점으로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부처가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규제 강화를 외치는 게 예사롭지 않다. 국세청 세무조사도 진행 중이다.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로 여론을 모은 뒤 규제 법안을 속전속결로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이다. 급기야 카카오는 비판이 집중됐던 택시 호출·헤어숍·꽃 배달 등 골목상권 사업 일부 철수, 기금 3000억 원 조성 등 상생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날지 미지수다.


플랫폼 기업들이 혁신을 잃고 영역만 확대하면서 각종 폐해와 충돌을 빚는 게 사실이다. 무료 서비스로 시장을 장악한 후 수수료·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스타트업의 혁신까지 막는 독점적 행태가 문제다. 이들에게 혜택을 준 것은 혁신으로, 신시장 개척과 시장 파이 확대로 경제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혁신 없이 영역만 넓힌다면 차별적으로 우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에게 온갖 혜택을 주던 당정이 사전 준비나 예고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규제 강화로 돌변하는 것은 횡포나 다름없다. 대한변협과 충돌하는 로펌, 공인중개사와 갈등을 빚는 직방 등 플랫폼 스타트업까지 규제하려 드는 것을 보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게 된다. 대선을 앞둔 기득권 매표·포털 길들이기라는 말도 들린다.


혁신은 기득권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순기능·역기능이 모두 있다. 소비자 편익·파급 효과도 업종별로 다르다. 특히 금융부문에선 소액 송금 무료, 26주 적금 등 새 서비스가 기존 금융계에 자극을 주고 있다. 획일적인 규제는 혁신을 더 망치게 된다. 카카오 택시 호출서비스의 횡포 논란은 앞서 기존 택시업계를 의식해 타다 등을 금지한 정부 탓도 크다. 미국이 아마존 등 빅테크에 대해 반독점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사전에 수년간 실태조사 등을 거쳤다. 당정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밀어붙인다면, 또 다른 재앙만 부를 것이다. 이유 없는 특혜로 규제 차익을 주는 것도 문제지만, 무차별 규제로 혁신의 뿌리까지 뽑으려는 건 그야말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일 뿐이다.

 

09월 23일(목 추석 연휴) 사이다 발언의 표리

 

이현종 논설위원


 이재명 경기지사는 여의도 국회 경험이 없지만 위기 탈출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소년 공’ 생활을 하다 줄곧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의 삶의 이력을 보면 생존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성남시장 경험밖에 없었지만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켰던 것은 강한 ‘사이다 메시지’ 덕분이다.


형과 형수에 대한 폭언, 영화배우 김부선 씨와의 불륜 논란 등 악재가 산적했지만 늘 피하지 않고 정면 대응했다. 이 지사는 “제가 우리 가족에게 폭언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안 그러려고 노력하겠지만, 어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백번 사죄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이 지사는 달랐다. 김부선 씨 문제도 직접 병원에 가서 신체 감정을 받았고, TV토론에서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맞받았다. 많은 비판이 제기됐지만 지지율에는 별 변동이 없었다. 지지층 입장에서 오히려 솔직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또 민생 법안에 대해 “이런 건 과감하게 날치기해줘야 된다”며 비판을 의도한 ‘사이다 발언’을 했다.


성남 판교 대장지구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이 지사는 돌연 5·18 민주화운동을 끌어들였다. 언론의 의혹 제기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5·18 당시 일부 언론이 ‘폭동’으로 보도한 상황에 빗댄 것이다. “언론인들이 모두 광주를 폭동으로 보도했지만, 5월 광주의 진실은 민주항쟁이었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과 5·18을 무리하게 연결, 특유의 위기 탈출법을 선보였다.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 직원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게이트’로 명명,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특정 언론을 향해서는 “대선에서 손을 떼라”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7명이 3억 원을 투자, 4000억 원이 넘는 이득을 가져간 것에 대한 해명은 없이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예 법과 제도를 바꿔 택지개발의 공영개발을 제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일 잘하는 이재명’의 상징인 대장동 개발의 의혹이 더해가자 제도화 카드를 들고 나왔다. 사이다 발언이 상궤를 벗어나면 취중(醉中) 억지가 된다. ‘대장동 늪’도 표리부동 식으로 대응하면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 빠져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09월 24일 “부정선거” 황교안의 외침

 

이신우 논설고문


 지난 4·15 총선만큼이나 오랫동안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선거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국민이 선거 뒤 2년이 지나도록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이다. 그런데도 선거 절차를 책임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로지 침묵’하며, 재검표를 둘러싼 대법원의 행태조차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이쯤 해서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의 4·15 총선과 관련한 부정선거 의혹 주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황 전 대표는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남 양산을 무효 소송에 따른 재검표 현장에 다녀왔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인천에 이어 양산에서도 부정선거 증거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로서 3대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청와대와 중앙선관위가 증거 인멸과 은폐를 시도하는 중”이라면서 “인천과 경남 등에서 동일한 부정 투표 용지가 대량으로 나왔다”고 했다. 각종 증거도 제시했다. 황 전 대표는 이 나라의 총리와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지낸 분이다. 검찰 생활의 대부분을 공안검사로 활동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선거 사범을 다뤘다고 하니 스스로 대한민국 최고의 선거 전문가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 그가 “4·15 부정선거는 반드시 특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앙선관위도 이 같은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지난 2016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몇 장에 지나지 않는 우편 투표 봉투의 봉인 문제로 인해 재선거가 이뤄졌다. 대법원은 재선거 판결과 함께 “민주주의의 초석인 선거에 국민의 의심이 끼어들 여지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이유를 달았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재검표에 임하는 불성실하고 편파적인 자세와 비교된다. 게다가 대법원은 훼손된 봉인함을 비롯해 2장이 함께 붙어 있거나 좌우 여백이 엉망인 투표지, 오작동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투표지 분류기, 투표 관리관 도장 오류, 사전투표 집계 등 의혹을 살 만한 사례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원고 측이 증거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도록 막았을 정도다. 황 전 대표는 청와대 앞 1인 피켓 시위를 벌이면서 “나도 황교안이다”라고 외쳐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필자도 그의 호소에 동참한다.

 

09월 27일(월) 이혜민의 ‘비’

 

김종호 논설고문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죠/ 그대와 나 또 이렇게 둘이고요/ 비와 찻잔을 사이에 두고/ 할 말을 잃어 묵묵히 앉았네요’. 해마다 가을이 되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비와 찻잔 사이’의 앞부분이다. ‘그대 모습 낙엽 속에 있고/ 내 모습은 찻잔 속에 잠겼네/ 그대 모습 낙엽 속에 낙엽 속에/ 낙엽 속에 잠겼어요’ 하고 끝난다. 서도민요 ‘배따라기’를 가요 활동할 때의 이름으로 삼은 싱어송라이터 이혜민(62)이 1982년 첫 독집 음반에 담았다. ‘은지, 빗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거리에 내리잖니’ 하고 시작하는 또 다른 명곡 ‘은지’ 등 그 앨범에 수록된 14곡 모두 그가 작사·작곡했다.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는 음유시인’으로도 불리는 그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시절을 쓸쓸하고 외롭게 보냈다. 비를 워낙 좋아해서 “비는 내 영원한 주제”라고 밝힌 적도 있다. 강은철이 부른 ‘삼포로 가는 길’을 고교 2학년 때에 작사·작곡했던 그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를 비롯해, 1984년 제2집 13곡 중의 4곡을 함께 부른 양현경을 1987년까지, 뒤이어 박찬우를 배따라기의 객원 보컬로 영입하기도 했었다. 미국에서 교민 방송으로 크게 성공한 가수 이장희를 본받겠다며 그는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가 결국 2003년 돌아오긴 했지만, 그 지역을 선택했던 것도 비가 자주 오기 때문이었다.


아마추어 가수로 서울 무교동의 한 라이브 클럽에 출연하던 19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그는 예정된 가수가 오지 않아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땜질 공연’을 해야 해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즉흥적으로 기타를 치면서 신곡을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비가 내리네 그대 떠난 마음에/ 슬픔만이 남았다네/ 견딜 수 없다네 눈물 흐르네’ 하는 노래 ‘그대 작은 화분에 비가 내리네’다. 1981년 제1회 연포가요제 참가 자격이 듀엣이어서 선배인 노근식과 함께 나가, 자작곡 ‘첫사랑은 다 그래요’로 우수상을 받고 공식 데뷔하기 전이었다. 신곡 ‘잠자리’ 등을 담은 정규 앨범 제9집을 지난 5월 발표하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는 “언제나 청년의 마음으로 꿈을 꾸고, 꿈을 노래하며, 꿈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의 노래를 듣기에 더 어울리는 계절이 깊어지고 있다.

 

09월 28일 세무사도 모르는 양도세

 

문희수 논설위원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세가 너무 올라 세간의 관심이 온통 여기에 쏠려 있지만, 양도소득세 문제 역시 심각하다. 원래부터 복잡한 세금인데, 문재인 정부가 투기를 잡겠다며 수시로 세제를 바꾼 탓에 난수표처럼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양도세는 전문가인 세무사도 몰라 상담을 포기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바람에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앞두고 세법 해석 문의나 구속력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질의 건수가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양도세 질의는 2018년(1779건)부터 크게 늘기 시작해 지난해는 3770건에 달했다. 2019년(1978건)의 두 배에 가까운 것으로, 종부세·부가가치세·법인세 등 다른 세금 질의를 합친 건수(2183건)보다 많다. 2016년(1175건)과 비교하면 3.28배나 된다. 올 6월 말까지 접수 건수가 이미 3397건이라니 지난해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양도세는 다주택자 과세를 강화한 2017년 8·2 대책 이후 수차례나 바뀌었다. 이번 정기국회에도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높이는 소득세법 개정안(여당 안)이 올라가 있다. 그나마 이번에는 세금 완화지만, 기획재정부는 비과세 확대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적절하지 않다며 반대한다. 1주택자 양도세 과세의 근거가 되는 ‘고가주택’ 기준을 9억 원(매매가)으로 고수하는 것이다. 이 기준은 2008년 10월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14년째 묶여 있다.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2008년 12월 4억8084만 원이었지만, 작년 1월 9억 원을 넘었고, 올 8월엔 10억 원을 돌파했다. 서울 주택의 절반 이상이 고가주택인 셈이니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졌다. 종부세 대상을 11억 원(공시가)으로 높인 것과도 안 맞는다. 문 정부 4년간 국세 세수가 박근혜 정부 4년보다 270조 원이나 많았다. 틈만 나면 세법을 고쳐 세수는 늘리면서, 감세는 불합리한 규정조차 수호하며 거부하는 문 정부다.


집을 갖고 있어도 중과세, 팔아도 중과세다. 방향성 없는 부동산 세제 탓에 출구가 없다. 더구나 종부세와 양도세는 1주택자도 과세 예외나 공제가 너무 복잡하다. 세무사도 모르는 세금을 일반 국민이 어떻게 알고 제대로 내겠나. 가뜩이나 불공정하다는 원성이 자자한데 과세까지 복잡하면 조세 저항을 피할 수 없다.

 

09월 29일 퇴직금의 비밀

 

이도운 논설위원


 퇴직금은 일정 기간 일하고 떠날 때 받는 돈이다. 근로자 퇴직 후 생활 안정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 근로기준법과 2005년 제정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으로 보장된다. 법적 용어는 퇴직급여. 5인 이상 사업장에서 1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지급돼오다 2010년 12월 이후 모든 사업장에서 일주일 15시간, 월 60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로 대상이 확대됐다.


퇴직금은 평균 임금과 근로 기간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평균 임금은 퇴직 전 3개월 동안 받은 임금 총액을 그 기간의 전체 일수로 나눈 것인데, 1년간 상여금과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해 받은 수당도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4월에 퇴직하면 퇴직금이 가장 많다고 조언한다. 열두 달 가운데 일수가 가장 적은 2월이 포함돼 평균 임금이 올라가고, 주로 1·2월에 전년도 성과급이 나오며, 설 상여금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달에 받든 세금을 피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퇴직급여지만, 국세청 입장에선 퇴직 소득이기 때문이다.


퇴직금에 대한 가장 큰 관심은 누가 얼마를 받았느냐다. 근로자마다 임금, 근무 시간 등이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기 어렵지만, 고임금 기업인이 퇴직금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에서 47년 일하고 지난해 10월 은퇴한 정몽구 명예회장은 527억3200만 원을 받았다. 43년 근무한 현대모비스에서도 297억6300만 원을 받아 퇴직금 총액이 825억 원에 이른다. 전문경영인 가운데는 1998년부터 16년간 재보험사 코리안리에서 일한 박종원 사장이 받은 159억 원이다.


경영인 아닌 근로자 가운데는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의 곽병채 전 대리가 6년 일하고 받은 50억 원이 기록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곽상도 의원 아들인 병채 씨에게 거액의 퇴직금이 지급된 배경에 의혹이 쏟아지자 업체 실소유자인 김만배 씨는 27일 경찰에 출두하면서 퇴직금은 5억 원이고 나머지는 산업재해가 있었기 때문에 줬다고 했다.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회장에게 물려받은 국내 선두 자동차 기업을 세계 선두로 도약시켰다. 공적을 감안하면 오히려 거액의 퇴직금이 작아 보일 수도 있다. 곽 씨는 화천대유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퇴직금이든, 산재 보상금이든 실제로 한 일에 비해 지나치게 과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09월 30일(목) 美 입양 한인의 눈물 ‘푸른 호수’

 

이미숙 논설위원


 선진국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가장 많은 아이를 입양 보내는 나라이고, 미국은 가장 많은 입양아를 받는 나라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50년 이후 해외로 입양을 보낸 아동은 16만6000명이고, 이 가운데 미국으로 간 아이들은 11만2000명이다. 아이들 대부분은 양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어엿한 미국인으로 성장했지만, 시민권조차 획득하지 못하고 방치된 채 성인이 된 이들도 1만8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 입양아의 16% 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불안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시민권을 받지 못한 국제 입양아 문제는 미국에서도 오랜 논란거리였는데, 인권 단체들이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인 덕에 2000년 ‘아동시민권법’이 통과되면서 미국에 입양된 제3국 아동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받게 됐다. 2001년 법 발효 당시 18세 미만 입양아들까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1983년 이전 출생해 입양된 이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논란이 됐는데 모든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줘야 한다는 시민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미 의회엔 ‘입양인시민권법’이 상정된 상태다. 미 공영라디오(NPR)에 따르면, 해외에서 입양된 6만4000명이 시민권 없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산다.


저스틴 전(40) 감독이 각본을 쓰고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푸른 호수(원제 Blue Bayou)’가 화제다. 한국에서 입양돼 뉴올리언스에서 타투 아티스트로 일하던 청년 안토니오가 범죄 연루 혐의로 체포된 후에야 시민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국 추방 위기 속에 겪는 갈등을 다룬 영화다. 전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NPR 인터뷰에서 “입양아가 느끼는 고통을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이들이 겪는 실존적 위기를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얻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이 사회적 프로파간다로 쓰이는 것은 원치 않지만, 입양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게 이 시대의 정의라고 느꼈다고도 했다. 이 작품은 다음 달 6일 개막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이는 데 이어 13일 국내 개봉된다. 우리가 미국으로 보낸 아이들의 아픔을 영화로나마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