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凍土의 기막힌 이야기3/ 북한 ‘똑바로’ 알기3/ 2016.01.13 "고된 일상에 지쳤다" - 12-26 카타르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상림은내고향 2021. 9. 26. 14:29

凍土의 기막힌 이야기3/ 북한 ‘똑바로’ 알기3/ 2016

◆ 2016

◇ 2016.01.13 "고된 일상에 지쳤다"… 러시아서 분신자살한 北노동자

['외화벌이' 5만명 현실 어떻길래…] 

하루 16시간 노동, 휴일 거의 없어… 봉급도 충성자금·상납으로 떼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가 새해 첫날 아침에 분신자살한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블라디보스토크뉴스와 프리마미디어 등이 말한 바로는 지난 1일 이른 아침 블라디보스토크 체르냐콥스키 거리의 아파트 앞마당에서 이 지역에 거주하며 인근 주택 공사장에서 일하던 40대 북한 남성이 온몸이 불길에 심하게 그을린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꼼짝 않고 엎드려 있는 남성 몸에 소화 물질을 분사하지만 미동도 않고 있다. 경찰은 부검을 하고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성은 전날 밤 "고된 일상에 지쳤다. 내가 죽는 것과 관련돼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한글 유서를 미리 썼으며, 몸에 인화성 물질을 끼얹고 불을 붙인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외화 벌이를 위해 현재 17국에 5만여 노동자를 보냈다. 이 중 가장 많은 2만명이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다. 그중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건설 노동자 20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노동자들은 구소련권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보다 질서 정연하고 범죄율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북한 해외 노동자들은 보위부의 감시를 받으며 하루 12~16시간씩 일하고 쉬는 날도 월 1~2일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봉급 대부분을 충성 자금(북한 정권으로 보내는 돈)과 중간 관리자 상납금 등으로 떼이고 기껏 10~20%만 손에 쥐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외화 벌이 현장은 외부와 접촉을 차단당한 채 인권탄압 수준의 노동을 하고 있는 북한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인권 문제로 인식해 국제사회가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섭 기자

 

◇ 01-15 “해외의 北 노예노동자들이 핵개발 돈을 대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던 40대 북한 노동자가 새해 첫날 아침 분신자살했다. 유튜브 동영상에는 소방관들이 소화 물질을 분사해도 심하게 그을린 남자가 엎드린 채 꼼짝 않는 모습이 나온다

 

그가 남긴 한글 유서에는 “고된 일상에 지쳤다.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라고 씌어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간명한 언어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으면 ‘지쳤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을까. ‘남 탓하지 않겠다’는 말에선 혹여 자신 때문에 북에 있는 가족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북한은 1967년 러시아 벌목공 파견을 시작으로 약 17개국에 5만여 명의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다. 가장 많은 2만여 명이 러시아에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건설 노동자 20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이들은 보위부의 감시하에 집단생활을 한다. 하루 1216시간씩 일하고 고작 한 달에 하루 이틀 쉰다. 봉급 대부분을 충성 자금으로 보내고, 남은 돈도 중간 관리자들에게 상납금으로 떼인다. 월급으로 1000달러를 받으면 달랑 120150달러만 손에 쥘 수 있다. 해외파견 노동자라기보다는 노예 같은 삶이다 

 

이들이 북한 정권의 통치자금 계좌로 송금하는 돈이 매년 5억∼6억 달러에 이른다. 무기수출, 마약밀매, 남북경협 등으로 연간 3억∼4억 달러를 벌었던 김정일 시대에 비해 5·24 조치로 남북경협 수익이 사라지고 불법거래도 힘들게 되자 김정은 집권 이후 송금 할당액과 해외파견 노동자를 더욱 늘렸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4차 핵실험 직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노예노동으로 핵개발 돈을 대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국가가 북한 노동자들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내놓을 대북 제재안에는 북한이 견디기 힘든 조치가 담겨야 한다. 핵개발 돈줄인 해외 노동자 문제는 한국이 노예노동 실태를 유엔·국제노동기구(ILO)·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기하는 식으로 미국이나 중국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지난해 유엔총회는 북한 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2년 연속 채택했다. 김정은은 그동안의 국제 제재 중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제재와 ICC 회부 권고결의안을 가장 아프게 여긴다 

 

한국이 국제사회를 설득해 북한 해외 노동자들을 돌려보내도록 유도한다면 인권 문제 이슈화와 핵개발 돈줄을 막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 03.08 北주민 "제2 고난의 행군 온다" 식량 사재기

북한 주민들의 젖줄 역할을 해온 '장마당(사설 시장) 경제'가 최근 위축된 것으로 7일 전해졌다. 북한 당국이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장마당 활동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2의 고난의 행군'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며 식량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북한 당국은 장마당 운영 시간을 오후로 제한한 데 이어 비공식 시장인 '메뚜기장(골목시장)'까지 통제하고 나섰다. 이는 주민 노력동원 사업인 '70일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가 보도했다. 양강도 소식통은 이 매체에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전체 주민이 70일 전투에 참가해 충정의 구슬땀으로 당을 받들라'는 지시가 내려와 장사를 못 한다"며 "70일 전투가 끝나는 5월 초까지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라고 했다.

 

中北 국경 삭주군서 곡물 말리는 北 여군, 7일 오전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인근 수풍댐에서 바라본 평안북도 삭주군의 모습. 북한 여군들이 포대 자루에서 곡물로 보이는 내용물을 꺼내 바닥에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당대회 앞두고 주민 
'70
일전투' 동원… 장마당 통제
시장에 상품 유통 중단…
 
對北제재까지 겹쳐 식량값 급등

북한 당국은 2009년 11월 실패로 끝난 화폐 개혁 이후로는 장마당 통제를 되도록 자제했다. 배급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장마당 활동까지 막으면 주민들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고위 탈북자 A씨는 "장마당 통제는 2000만 주민의 불만을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정권 유지에 부담이 된다"며 "그만큼 당 대회를 앞둔 김정은이 '눈부신 경제 성과' 등의 치적 쌓기에 애가 탄다는 얘기"라고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도 장마당 경제에 악재(惡材)로 작용하고 있다. RFA는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 "외부 세계의 경제 제재가 구체화되자 상품 유통이 주춤해졌다"며 "(청진의) 수남시장과 포항시장은 상품 유통이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또 "머지않아 '제2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식량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북한 장마당 전경. /조선일보 DB

 

'고난의 행군'이란 가뭄과 국제 제재 등이 겹치며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1990년대 중·후반의 어려운 시절을 가리킨다. 김정은 집권 이후 별다른 풍수해를 겪지 않던 북한은 작년 심한 가뭄으로 식량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의 '식량 사재기'도 물가 급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RFA에 "불안한 주변 정세에 대한 정보가 이미 전체 주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며 "유사시에 대비해 식량을 마구 사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온 대다수 주민의 불만이 표출되는지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이용수 기자

 

◇ 03.21 "北, 평양 정성제약 지하공장에서 마약 생산"

▲ 자료사진

 

평양 정성제약종합공장은 북한에서 의약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제약공장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약품들은 대부분 군부대병원에 우선으로 공급된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제약공장에서 생산되는 페니실린, 마이신을 비롯한 주사약들은 북한 전 지역 병원에 공급되었지만, '고난의 행군'시기 원료 부족으로 생산량이 대폭 줄었다.

 

지난 해 정성제약종합공장을 찾은 김정은은 생산 공정을 현대화하여 생산량을 높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정은은 집권 후 해마다 이 공장을 찾아 공장 정상운영과 의약품을 최고의 수준으로 생산할 것을 주문했다.

 

2015 11월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 전 씨는 "북한에서 유통되는 국산 약의 대부분은 정성제약공장 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국산 약에 대한 주민들의 수요가 떨어지면서 중국 약을 많이 선호한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국산 약품은 효과가 좋지만, 정품 약을 모방한 가짜 약이 시중에 유통되면서 국산 약의 인기는 하락했다."라고 증언했다.

 

"평양정성제약공장에는 지하에서 의약품을 생산하는 5호 직장이 있다. 5호 직장은 다른 직장에 비해 출입자단속이 엄격하다. 제약공장 4~5층은 주사약과 링거를 생산하는 직장이며, 1~2층은 공장운영사무실들과 약재와 포장용지를 보관한 약품 창고들이 있다. 의약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보니 생산품 유출을 막기 위한 경비초소도 곳곳에 배치되어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어느 직장에서 어떤 의약품이 생산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지하에 있는 5호 직장에서 무엇을 생산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일단 5호 직장은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가끔 씩 까만 외제 차를 타고 온 중앙당 간부들이 공장당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직장으로 들어간다.

 

정 씨는 "정성제약공장 5호 직장은 국내산 아편과 대마초를 원료로 다량의 마약을 생산하는 곳이다. 5호 직장 종업원들은 다른 직장 직원들과 어울릴 수 없으며 사택도 한곳에 집결되어있다 식량 배급도 정상적으로 보장되며, 친척 중 누가 죄를 지어도 정치범이 아니면 100% 용서 해준다. 북한 정권이 5호 직장 종업원들에게 높은 대우를 해주는 데는 마약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5호 직장에서 생산되는 마약 종류는 9가지나 된다. 생산된 마약은 무역일꾼들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불법 판매된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많은 돈을 탕진했다. 북한 내부에서 핵 개발 자금을 마련하려면 광석수출이나 해외노동자 수입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다량의 마약을 생산하여 외국에 팔아야 핵 개발에 필요한 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북한은 1980년대 합법적인 아편 농장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농작물을 심게 했다. 대신 수성 16호 관리소를 비롯한 3곳의 수용소에 아편을 심었다. 겉에는 옥수수를 심고 안쪽에는 아편을 심어 재배했다. 아편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정치범들이다. 이곳에서 비밀엄수는 목숨과 같이 지켜진다.

 

또 다른 탈북민 보천 출신 한 씨는 "양강도 보천군 신흥리에는 해마다 아편만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작업반이 있다. 농장 간부들은 아편을 심을 때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깊은 골짜기에 심는다. 겉에는 옥수수나 수수 같은 키 높은 작물을 심고 안쪽에는 아편을 심는다. 수확한 아편은 관리위원장과 농장 초급당비서의 권한으로 농장금고에 보관한다. 중앙당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리 담당 보위원과 보안원의 동행하에 금고에 보관되었던 아편은 군당으로 옮겨진다."고 증언했다.

 

"개인들이 제조한 마약은 평성과 함흥에서 생산되어 국경으로 흘러든다. 북한 주민들에게 마약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성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마약을 복용하면 범죄자가 된다는 의식이 전혀 없다. 제대로 되려면 아편을 대대적으로 생산하여 불법적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북한 정권부터 심판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출처뉴포커스  박주희 뉴포커스 기자

 

◇ 03-24 김정은 고향집은 상륙작전 최적지

3월 중순 한반도에서 상륙훈련 바람이 불었다. 한미 연합군이 12일 포항에서 17000여 명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의 상륙훈련을 진행하고 일주일 후 이번엔 김정은이 북한군의 상륙 및 상륙 저지훈련을 직접 지휘했다. 고작 경탱크 6대를 해안에 상륙시킨 별 볼 일 없는 상륙훈련을 벌여놓고 북한은 어이없게도 서울해방작전을 운운했다. 그걸 보면서 황소와 싸우겠다고 몸에 바람을 채우다 뻥 터져버렸다는 이솝 우화의 개구리가 생각났다.

 

그런데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남쪽의 상륙훈련과 참수작전은 특히 기분 나쁠 것 같다. 김정은이 태어난 강원도 원산, 그곳에서도 그의 고향집이 있는 해변이 하필이면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상륙작전의 최적지이다. 전쟁이 벌어지고 상륙작전이 진행되면 김정은은 고향집부터 뺏길 판이다.

 

김정은이 원산 출신임은 이젠 북한 사람들도 다 안다. 원산과 북쪽 문천 사이에 상륙하기 딱 맞춤인 긴 해변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김정은이 태어난 ‘602초대소(특각)’가 있다. 이곳에 상륙하면 잘 닦인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타고 내륙으로 신속하게 진격해 강원도 주둔 몇 개 군단을 일거에 포위할 수 있다. 그래서 6·25전쟁 때에도 원산상륙작전이 단행됐다.

 

김정은은 해마다 꽤 많은 시간을 고향집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 해군 전대(戰隊·함대의 북한식 표현)장들에게 팬티만 입혀 10km 수영을 시킨 곳도 원산 특각 앞바다이고, 군단장들을 불러다 사격경기를 시키며 군기를 잡은 곳도 특각 앞 백사장이다.

 

참수작전이란 단어가 한국 언론에 오르내린 뒤로 김정은은 원산 특각에 가기가 조금은 불안해질 법도 하다. 특수부대에 해변에 있는 별장은 치고 빠지기 딱 좋은 목표다. 게다가 호화생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과 쿠데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변에 군부대도 거의 없다. 참수작전이 실행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할지라도 김정은은 이왕이면 특각에 최대한 몰래 왔다 가는 데 신경을 쓸 것이다. 

 

현재 특각 지상 경계는 602연락소가, 해상 경계는 1022연락소가 담당한다. 대남 및 대일 공작 담당 기관인 연락소는 최정예 전투요원들을 갖고 있지만, 정규군 상륙 저지 능력은 거의 없다. 최정예 전투요원들이라고 해봐야 요즘은 김정은의 800만 달러( 93억 원)짜리 영국산 ‘프린세스95MY’ 요트를 관리하거나 특각 내부를 훔쳐보는 사람을 잡는 등의 가병 노릇만 할 뿐이다. 

 

야산으로 절묘하게 둘러막힌 특각 내부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위치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송도원야영소 숙소 제1동과 식당뿐이다. 하지만 건너다 볼 수 있을 만한 창문은 판자로 죄다 막아놓았다. 판자 틈으로 보려 하면 어느새 호각을 빽빽 불어대며 경비병이 나타난다. 맞은편에 쌍안경으로 쉬지 않고 감시하는 감시병들이 있는 것이다.

 

바다에 나가면 특각이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대략 4km 이내 거리로 배가 접근할 수도 없고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몇 년 전 한 군부대 소속 어선 선장이 바다에서 특각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가 갑자기 나타난 쾌속정에 연행됐다. 찍은 목적을 대라며 사흘 동안 초주검이 될 정도로 매를 맞았는데, 다행히 군 소속인 데다 ‘빽’이 좋아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민간인 같으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이러니한 일은 김정은 집권 이후 특각이 상륙에 더 매력적인 장소로 변했다는 것이다. 특각과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8km의 직선도로가 새로 닦였고 특각 바로 뒤에는 비행장까지 건설됐다. 김정은이 평양과 고향집을 차와 비행기로 더 편하게 오가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상륙군에게 장악되면 진격로와 공군기지로 정말 요긴하게 활용 가능하다. 인근 원산항과 갈마비행장은 덤이다. 

 

원산 민심도 김정은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평양 다음으로 관심을 쏟는 도시가 원산이다. 그 과도한 관심이 역으로 독이 되고 있다. 주민들을 잘살게 하는 데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뭘 건설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한다고 주민을 내몰더니 요즘엔 도시 건물과 외향을 현대적으로 하라고 들볶는다.

 

덕분에 원산 야경은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다. 빌딩마다 빨갛고 파란 조명 장치를 잘 해놓아서 전기 공급이 잘되는 명절 때 바다에서 보면 남쪽 동해안 어느 항구보다 야경이 멋있다. 오죽했으면 오랜만에 원산항에 들어오던 북한 어선이 “남조선에 잘못 왔다”고 정신없이 도망간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황홀한 불빛 아래서 원산 사람들은 “김정은이 하필이면 왜 여기서 태어났냐”고 푸념한다. 한미 연합군이 정말 상륙한다면 누구보다 이를 반길 사람이 바로 원산 주민이 아닐까 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03.24 北주민 제보, "식량과 휘발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 화목을 실은 북한 화물차 / 자료사진 (구글 이미지)

 

최근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내부에는 쌀 가격을 비롯한 생활필수품 가격이 날마다 상승한다고 한다. 뉴포커스 북한 통신원은 23일 저녁 전화통화에서 "3월 초만 해도 안정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던 입쌀과 강냉이, 두부콩은 시간이 감에 따라 점차 상승세를 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휘발유와 공업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고 전해왔다.

 

통신원의 제보에 따르면 23일 현재 북한 돈과 중국 돈 환율은 1270 : 1로 종전보다 내린 상태며, 중국 돈 1원은 북한 돈 1270으로 유통되고 있다. 3월 초 북한시장 쌀 가격은 kg당 중국 돈 3 20전으로(북한 돈 5050) 거래됐다. 지금은 쌀 1kg에 중국 돈 4원으로(북한 돈 5,200)으로 상승했으며, 대북제재 이후 밀가루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
콩 가격이 상승하면서 두부 가격도 중국 돈 1 20전으로 거래된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두부 한 모당 중국 돈 1원으로 거래되었는데, 한 달도 안 돼 중국 돈 20전이나 상승했다. 3월 말이면 가정마다 겨울김장 김치가 바닥이 나면서 두부를 사 먹는 세대들이 늘어난다. 그런데 두붓값이 지금처럼 계속 오르면 조만간 두부 맛도 보기 힘들어진다. 주민들은 '이제는 두부 먹는 이도 뽑아야겠다.'고 말할 정도다."고 전했다.


이어 "또한 3월 초 북한에서 거래되던 휘발유 가격은 중국 돈 6원이다. 23일 현재 휘발유 가격은 중국 돈 8원으로, 전과 비교하면 2원이나 오른 상황이다. 휘발유 전문 거래구역인 연풍 동과 송봉동 개인장사꾼의 말에 의하면, 현재 무역이나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휘발유는 전혀 없으며, 지금까지 판매된 휘발유는 2월 초 밀수를 통해 들어 온 휘발유를 재고로 깔아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외국을 통한 휘발유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으며, 검산리에 있는 연유 창(휘발유를 보관하고 있는 탱크들이 있는 곳)주변 기름데꼬(휘발유를 넘겨받아 판매하는 사람)들 조차도 휘발유확보가 어려울 정도다."고 밝혔다.


통신원은 "북한에서 휘발유 가격이 급속도로 상승한 원인은 휘발유는 쌀이나 화목처럼 북한에서 나올 수 없는 특수 품종이기 때문이다. 밀수나 무역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는 휘발유는 대북제재가 풀리기 전에는 지속해서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3월은 아직 겨울과 같다. 때문에 화물차들이 휘발유가 없어 화목을 나르지 못하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화목 가격이 비싸진다. 주민들은 현 상황을 지켜보며 긴 한숨만 쉰다."고 설명했다.


현재 혜산시장에서 거래되는 돼지고기 가격은 kg에 중국 돈 10, 개고기(단고기)는 중국 돈 15, 소고기는 중국 돈 20원에 거래되며, 사탕(설탕)가루는 kg에 중국 돈 5원으로 거래된다는 통신원은 전언이다.


통신원은 "주민들은 보름 동안 쌀 가격이 중국 돈 60전이나 상승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다가올 보릿고개 시기에는 지금보다 더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 다행히 맵짠 날씨는 지난 시기라 봄추위는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픔을 참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요즘 들어 주민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고난의 행군’ 때처럼 굶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이렇게 앉아 죽을 바엔 중국이나 남조선으로 탈북하여 살길을 찾는 편이 낮지 않냐. 강을 넘다 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별 차이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고 덧붙였다.

박주희 뉴포커스 기자

 

◇ 04-21 평양서 건물 철거작업 인부 수백명 매몰돼 사망…北, 열흘 넘게 은폐

▲평양에서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나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열흘이 지나서야 외부에 알려졌다. 

 

채널A 21일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태양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북한에서 수백 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으나 당국이 이를 철저히 은폐해 왔다고 단독 보도했다.

 

사고는 김정은의 특명으로 조성중인 평양의 ‘여명 거리’에서 일어났다.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 사이에 있던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허술한 장비와 기술 탓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북한 소식통은 “장비나 기술이 부족해 인력을 무작정 많이 투입하다보니 사실상 맨손으로 철거를 진행 중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건물 골격이 무너져 내리면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수백 명이 그 자리에서 매몰됐는데,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구조가 이루어 지지 않아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당국은 구조 작업보다 사고 사실이 새나가는 걸 막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고 매체는 전했다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 04.25 카타르 北노동자 "평양 착취 못참겠다" 경찰서로 도망

'김정은 마지막 돈줄' 外貨벌이 일꾼들, 中東서 집단 반발

쿠웨이트선 100여명이 "월급 제때 달라" 보위부원에 대들어

 

- 평양의 극심한 쥐어짜기

16시간 노동·조기상납 강요… 중동에 대규모 검열단 파견, 휴대폰 통화내역까지 관리

 

- 국제사회 제재 움직임

美, 노동자 송출 금지 행정명령… EU, 해외노동자 인권 보호 논의

 

지난달 15일 중동 카타르 도하에서 북한 건설 노동자 2명이 보위부원의 감시를 뚫고 현지 경찰서로 탈주(脫走)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카타르 경찰서에서 "(평양의) 착취가 심해 견딜 수 없다"고 진술했다.

 

24일 중동 소식통과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탈주한 북한 노동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2년이 넘도록 폭염(暴炎) 속에서 일했는데, 벌어놓은 돈이 한 푼도 없다"며 평양의 가혹한 상납 지시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최근 카타르의 한 건설회사는 북한 노동자 20여명을 무더기로 해고했는데, 이번에 탈주한 노동자 2명도 당시 해고 명단에 포함됐던 인물이라고 한다. 탈주 북한 노동자들의 신병은 현재 카타르 당국이 확보하고 있지만, 해고자 신분이라 본국에 송환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쿠웨이트의 北노동자들 - 2014년 12월 쿠웨이트 자흐라시(市) 외곽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로 이동하고 있다. 쿠웨이트에는 5000여명의 북한 건설 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하루 10~16시간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한 달 임금은 100달러(약 11만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급의 90% 정도를 상납금으로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박국희 특파원

 

나흘 뒤인 지난달 19일 쿠웨이트 수도 쿠웨이트시티에서는 북한 건설 노동자 100여명이 보위부 직원 면전에서 집단 소요 사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지도부가 이날 밤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올해 상반기 외화벌이 계획 목표를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보다 더 빨리 납부하면 성과로 보고하겠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말에 격분한 노동자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 "월급이나 제때 달라"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일부 노동자는 '조기 상납' 발언을 꺼낸 현지 지도원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보위부 직원의 제지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서창식 주(駐) 쿠웨이트 북한 대사는 "근로자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며 해당 북한 건설사 사장을 크게 질책했다고 중동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보위부 직원이 배석한 자리에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중동 북한 건설 노동자들의 이 같은 반발은 평양에서 검열단이 다녀간 직후에 벌어졌다. 북한 국가보위부는 지난 2월 20일부터 지난달 8일까지 북한 노동자들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대규모 검열단을 파견했다. 12명에 이르는 검열단은 노동자들의 일정을 단속하고,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점검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검열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일탈 행동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라며 "외화벌이 일꾼들이 자제력을 잃을 정도로 최근 평양의 쥐어짜기가 극심해졌다"고 했다.

 

 

지난 2월 말부터 북한 대외건설지도국은 지도층 상납금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을 종전보다 3시간 연장하도록 지시했다고 중동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전했다. 중동의 북한 건설 노동자들은 냉방 시설도 없는 환경에서 10~16시간 중노동을 하고 있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북한 노동자의 안전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카타르 도하에서는 노동자 전모씨가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했다. 그러나 북한의 현지 간부들은 김정은에게 안전사고 소식이 전해질까 두려워 평양에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이 세계 50여 국가에 파견한 근로자는 최대 6만명이다. 이들은 연간 2억~3억달러(2287억~3430억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은 김정은 등 핵심 계층이 사치품을 사거나 핵·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에서는 김정은 정권의 '마지막 돈줄'인 노동자 해외 송출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발동한 대북 제재 행정명령 13722호에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북한 해외 근로자들의 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20일 EU-아시아센터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렘코 브뢰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동아시아연구소장은 "국제법과 EU 규정에 따라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해외 북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북한 정권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길"이라며 "각국에서 자행되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을 조사하고, 착취당한 임금이 평양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김형원 기자

 

◇ 04.28 北 노동자 탈주한 카타르에서 10년 전 만났던 北 노동자 윤광호씨

▲카타르 도하에서 남쪽으로 40㎞떨어진 메사이드 연립주택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채승우기자


중동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지난달 15일 북한 건설 노동자 2명이 보위부원의 감시를 뚫고 현지 경찰서로 탈주(脫走)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찰서에서 "착취가 너무 심해 견딜 수 없었다. 2년이 넘도록 폭염(暴炎) 속에서 일했는데, 벌어놓은 돈이 한 푼도 없다"며 평양의 가혹한 상납 지시에 대해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문득 지난 2006 12월 도하 아시안게임 취재를 갔다가 만났던 한 북한 노동자 생각이 났다. 당시 아시안게임 북한팀 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엔 하나같이 검은색 양복을 갖춰 입은 북한인 수백~수천명이 관중석에 몰려왔다. 카타르와 쿠웨이트 등에 송출돼 외화벌이를 하고 있던 북한 노동자들을 실어날라 응원전을 펼치게 했던 것.

 

당시 카타르에만 1000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들이 나와 있었다. 대부분 목수, 철근공 등 건물 골조를 세우는 건설 노동자였다. 쿠웨이트 인력송출업체를 통해 카타르에 건축•도로•조경사업 현장 노동자들을 파견하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는 북한의 조경회사 지사가 있었다. 오전 7시부터 최소 12시간 일하고 한달 250~300달러( 23~28만원)를 받는다고 했었다.

 

카타르 도하에 파견나온 북한 노동자 윤광호씨를 만난 것은 1212일이었다. 카타르 주재 한국대사관 측에 북한 노동자 관련 취재를 하면서 휴대폰 번호를 남겨놓았는데,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하 시내 한 병원 응급실에 북한인 한 명이 실려왔다는 긴급 연락이 왔다고 했다. 병원 측에서 북한대사관에 연락해야 할 것을 남•북한 구분을 하지 못해 한국대사관으로 연락을 취했던 것이었다. 도하 시내 하마드병원 응급실이라고 했다.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 타고 하마드 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1시쯤 됐을까. 응급실에 들어서니 검은 머리 한 사내가 머리 부분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었다. 전날 밤 앰뷸런스에 실려왔고, 머리에 중상을 입어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있으니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돌아왔다.

 

서울 말로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북한말을 흉내내 말을 해봤다.

 

“동무, 어떠케 된 겁네까. 여기 살고 있는 공화국 사람입네다.

“나무 심으러 왔시요.

 

서른살이라고 했다. 네 형제 중 셋째이고, 중국을 거쳐 카타르에 왔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다. “조국에서 지성금성합영회사의 노동일을 했다”는 그는 1개월 예정으로 카타르의 조경사업 일을 하러 왔다고 했다. 도착한 지 사흘 됐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한테 떠밀려서…”라고 할 뿐 자신이 어떻게 어디에 떨어져 머리를 다치게 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응급실 간호사들에 따르면 경찰과 함께 윤씨를 병원 응급실로 옮긴 북한인들은 잠시 후 그의 여권 등 소지품들을 모두 챙겨 몰래 사라졌다.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다. 응급실 환자 차트에는 박장철이라는 엉뚱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특수 임무 수행 중이던 공작원도 아닌 일반 노동자여서 굳이 신분을 숨길 필요가 없었는데도, 왜 그랬을까 지금도 모르겠다. 얼마가 나올 지 모를 병원비가 겁나서, 죽어버리면 그 시신 뒤치다꺼리 하기가 귀찮아서였을까. 하지만 원유 생산 부국 중 부국인 카타르는 일단 입국하는 순간부터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모든 의료비가 공짜인데 그걸 모르고 지레 겁을 먹었던걸까.

 

북한 말투를 흉내내며 이것 저것 계속 물어보는데, 신음을 해가며 하나 둘 대답하던 윤광호씨가 버럭 성질을 냈다. 소변이 마려워 죽겠다는 것이었다. 응급실 간호사에게 어쩌면 좋겠느냐 물었더니 생식기에 배뇨 장치를 이미 끼워놓았으니 그냥 배설하면 된다고 했다. 윤씨에게 그렇게 전해줬다.

 

그러면서 생리현상을 호소할 정도이니 치료를 받으면 곧 괜찮아지겠구나, 완쾌되면 북한대사관이든 카타르 북한 노동자들에게든 연락이 돼 어쨌든 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병원 응급실을 나서면서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 한 켠으로 쓴웃음이 났다. 소변을 참기 힘들다면서 내뱉은 그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생식기에 배뇨 장치를 끼워놓았으니 병상에 누운 상태 그대로 소변을 봐도 괜찮다고 했더니 하는 말,

 

X대가리를 묶어놔서리 어디 오줌을 쌀 수가 있어야디.

 

남북 분단 70년이 돼가면서 남북한 언어에도 많은 괴리가 생겨나고 있다고 하던데, 그래도 아직은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북한에서도 남한에서처럼 ‘X대가리’라는 말을 쓰는구나.” 그 속어 한 마디가 아련한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그 때 그 윤광호씨는 지금 북한 어디에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올해로 40세가 됐겠다.

윤희영 조선Pub 부장대우

 

◇ 04.29 초조한 北… 어제 하루 '무수단' 두차례나 발사, 모두 실패

黨대회 앞두고… 전례 없는 일… '체면 만회' 5차 핵실험 가능성 커

북한이 28일 하루 만에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무수단'을 두 차례 발사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우리 군이 밝혔다. 북한이 하루에 두 차례나 시도한 탄도미사일 도발이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은 전례가 없다. 이는 다음 달 6일 36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이 김정은의 군사적 업적을 쌓기 위해 매우 초조하게 움직인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군 소식통은 이날 "북한이 28일 오전 6시 40분쯤 원산 일대에서 무수단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쐈지만 수 초 만에 추락한 데 이어, 28일 오후 7시 26분쯤 원산 지역에서 무수단 1발을 또 발사했으나 수 ㎞를 올라가다가 공중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일성 생일인 지난 15일 처음으로 무수단을 발사했지만, 공중 폭발해 실패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 15일 발사의 실패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달 노동당 대회의 '축포용'으로 무리하게 재발사를 했다가 연달아 실패한 것으로 분석한다. 군 일각에선 북한 군부가 무수단 발사 연속 실패로 구긴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중순 "이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 시험과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하라"고 공개 지시했다. 이날 북한 군부가 무수단 연속 발사라는 무리수를 둔 데는 김정은의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무수단 미사일의 사거리는 3000~4000㎞로 일본 전역은 물론 서태평양 괌의 미군 기지까지 타격할 수 있다. 구소련의 SS-N-6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개량한 것으로, 길이 12m, 지름 1.5m 규모에 650㎏의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지난 2007년부터 무수단 40여기를 실전 배치하고 있지만, 시험 발사는 최근에야 이뤄졌다.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 04.30 북한, 처음으로 조선중앙은행 털렸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은행이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30일 이같이 보도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RFA에 “지난 4일 청진시 신암구역에 위치한 조선중앙은행 지점이 털렸다”며 “공화국이 생긴 후 처음 있는 일로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지점에는 밤새 경비원이 배치된 상태였다. 하지만 사건 당시에는 무슨 이유인지 자리를 비웠으며 은행털이범들은 출입문을 부수고 은행에 보관 중인 현금을 가져갔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당시 금고에는 북한돈 7000만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더 큰 금액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암지점은 주로 무역을 중개하는 은행이어서 이용하는 주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외화벌이 일꾼들만 대상으로 운영했지만 최근에는 일반 주민들을 위한 지점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 내부가담자가 없이는 은행이 털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 04-30 “北 함경북도서 은행털이 사건 발생…처음 있는 일”  외

“北 함경북도서 은행털이 사건 발생…처음 있는 일”

북한 은행이 현금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고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 30일 보도했다. 

 

북한에서 '은행털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도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지난 4일 청진시 신암구역의 조선중앙은행 신암지점이 털렸다" "공화국(북한)이 생긴 뒤 처음 있는 일로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함경북도 도립극장 인근에 위한 신암은행에는 밤새 경비원이 배치돼 있었지만 사건 당시에는 자리를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털이범들은 출입문을 부수고 은행에 보관중인 현금을 가져갔다"고 전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당시 은행 금고에 북한돈 7000만원 또는 그 이상의 돈이 있었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당대회를 앞두고 각 구역의 은행지점들은 평소보다 많은 현금을 취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신암지점은 주로 무역을 중개하는 은행이어서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원래 무역관련 외화벌이 일꾼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했으나, 최근에 일반 주민들을 위한 구역 지점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다른 지점보다 활발하게 현금거래를 하던 신암지점이 털린 것은 내부 가담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개XX” 北 기차역에 낙서, 3개월간 범인 못잡아 끙끙

북한 양강도의 한 기차역에서 ‘김정은 개새끼’라는 낙서가 발견돼 당국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 방송은 23일 현지 주민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설날인 지난 1 1일 양강도 삼수군 포성역에서 김정은을 욕하는 낙서가 발견돼 지금까지도 필체 조사가 계속 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포성역은 평양을 오가는 급행 열차가 지나는 곳인데 이 역에 붙어있는 김일성 초상화 아래 먹물 글씨로 ‘김정은 개새끼’라고 쓰여져 있었다

특히 당시 신년 행사로 많은 주민이 이 역을 이용했기 때문에 낙서 사건은 전국으로 퍼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설 명절을 쇠려고 모인 친척들을 통해 낙서 내용은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다”며 “낙서 내용에다 온갖 해괴한 소문까지 덧붙여지는 바람에 김정은의 우상화 작업은 진창에 떨어져 버린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포성역은 1991년 금광개발을 위해 개통했으며, 이 지역에는 학교, 문화회관, 병원, 상점 등 문화보건시설과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북한 수사당국은 포성 농장과 광산노동자구에 거주하고 있는 2만여 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사건 직후부터 3개월 동안 필체조사를 진행했지만 범인의 윤곽도 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탓에 각종 악성루머만 키우게 됐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평양, 사리원, 평성, 함흥, 청진 일대에서도 사법당국의 철저한 필체조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낙서 사건은 포성역에서만 발생한 게 아니라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추정했다.

소식통은 “다른 사건이라면 몰라도 김정은 비난 낙서사건은 조심스러워 이제야 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北주민 41.6%가 영양실조, 10년 새 6%p 증가”

최근 3년간 북한 주민의 영양실조 비율이 41.6% 10년 전인 2000년대 중반에 비해 6%p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은 20일 발표한 '대북 인도주의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에서 20142016년 북한 주민의 영양실조 비율은 41.6% 20052007 35.5%에 비해 6.1%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세계식량계획(WFP)도 앞서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주민의 81%가 여전히 영양부족 (inadequate food consumption)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 주민의 영양 상태가 최근 몇년새 악화한 배경으로는 2년째 계속되고 있는 가뭄으로 곡물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전년보다 11% 줄어든 506t(도정 전 기준)에 그쳤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생산량이 많게는 51%p까지 감소했다


곡물생산량이 감하면서 북한 당국의 식량배급량도 크게 줄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전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13월 주민 1명당 식량을 하루 370g 배급했다. 이는 북한 당국의 목표치인 573g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유엔의 최소 권장량인 600g의 61%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유엔은 올해 대북사업 예산으로 12100만 달러( 1400억원)를 책정하고 이 가운데 가장 많은 5470만달러를 영양사업에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 250만명을 치료하고 임산부 50만명과 수유모에 영양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보건 사업에 2980만 달러(340억원), 식량과 비료 종자 등을 지원하는 사업에 2320만 달러(260억원), 식수 위생 사업에 1390만 달러(160억원)을 각각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엔은 북한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대북지원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기부자들의 지원도 많이 줄고 있다며 국제사회에 관심을 촉구했다

VOA
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004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3억 달러(3400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4000만 달러(453억원) 87%가량 감소했다.

유엔은 "인도주의 지원은 정치 상황과 무관해야 한다"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북한 내 취약계층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北주민은 김정은의 노예… 영화보며 가슴 먹먹”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를 만든 비탈리 만스키 감독(가운데) 27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주한 외국인 유학생연합과의 간담회에서 학생들과 포즈를 취했다. 만스키 감독은 1년 동안 평양소녀 진미와 생활하며 그녀의 가족, 친구, 이웃을 포함한 평양 주민의 삶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국내에서 공부 중인 외국인 유학생들이 27일 영화 ‘태양 아래’를 연출한 비탈리 만스키 감독(53)을 만났다. ‘태양 아래’는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주한외국인유학생연합 소속 70여 명의 학생은 이날 오후 1시 반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만스키 감독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이 자리에는 유학생연합 초청으로 탈북 청년 정광성 씨(28)도 함께했다. 


영화는 북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하지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덟 살 소녀 진미의 일상을 통해 철저하게 조작된 북한 사회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 관람이 끝난 뒤 이어진 간담회에서 만스키 감독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이고 자유를 잃은 삶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씨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북한 정권의 노예로 살아가는 소년단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며 “어린 나이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 체제를 찬양하는 노래와 무용을 밤낮없이 익혀야 하는 건 일종의 학대”라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안상근 유학생연합 대표는 “대부분의 외국인 유학생은 통제된 북한의 모습만 알고 있다”며 “이 영화를 통해 북한의 실체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

 

◇ 05.04 36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대회 앞둔 평양의 풍경

36년 만에 열리는 북한의 7차 노동당 대회가 6일 시작된다. 1984년생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자신 역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북한 최대의 정치행사를 성대히 치러내야 하는 큰 과업을 맞이했다.


평양 전체는 지금 당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업과 관광 등 여러가지 이유로 북한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의 눈을 통해 당 대회를 앞둔 평양의 풍경을 살펴봤다. 소개될 모든 사진들은 SNS인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것으로 인스타그램 사용자라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북한의 관영매체가 보도한 당 대회 준비 사진들은 제외했다.

 

▲당 대회 때 진행될 경축 퍼레이드를 위해 김일성 광장에 집결해 연습 중인 북한 주민들. [simokoryo 인스타그램]

 

평양에서 큰 정치행사가 열릴 때 늘상 그렇듯, 이번에도 주민들을 동원하는 대규모 경축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보통 정치행사가 열리기 석 달 전부터 김일성 광장을 비롯해 평양 곳곳에서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당 대회 기간 동안 열릴 '횃불 퍼레이드' 연습을 위해 모인 주민들. [drewkelly 인스타그램]

 

▲평양 주민들이 당 대회를 앞두고 경축 퍼레이드 준비를 하고 있다. 확성기를 든 관리자의 구령과 지시에 따라 진행된다. [uykwxvkn 인스타그램]

 

시내 곳곳에는 7차 당 대회를 맞이하는 정치선전으로 도배됐다. '70일 전투'·'만리마 운동' 등에 따라 각급의 당국자와 군·주민들은 각종 동원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불가능한 사업을 '단숨에' 해냈다는 선전이 뒤따르지만 많은 사업들은 애초에 '가능한 목표'를 달성한 뒤 이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당 대회를 앞두고 진행된 '70일 전투'의 종료 D-day를 표시하는 게시판. [youngpioneer 인스타그램]

 

▲평양 시내에 설치된 당 대회 관련 정치 포스터.[effyxxue 인스타그램]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70일 전투'를 독려하는 정치선전 문구. [paektuculturalexchange 인스타그램]

 

이번 당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외국 취재진들도 속속 평양에 도착했다. 자유로운 취재가 불가능한 만큼 북한 당국이 '선택한' 언론사만이 방북이 가능했다. CNN,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이 방북한 것이 눈에 띈다. 남한의 취재진들은 물론 단 한 명도 방북하지 못했다.

 

▲7차 당 대회 취재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취재진. [washingtonpost 인스타그램]

 

▲CNN도 당 대회 취재를 위한 팀을 꾸려 평양으로 들어갔다. [willripley 인스타그램]

 

김정은 시대의 특징인 대규모 불꽃놀이도 어김없이 진행될 예정이다.  대동강변에서 진행될 불꽃놀이를 위한 만반의 준비도 마무리됐다.

 

▲대동강변 주체사상탑에 설치된 폭죽 발사대의 모습. 당 대회를 마무리하는 행사로 대규모 불꽃놀이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koryotours 인스타그램]

 

북한은 이번 당 대회를 계기로 김정은 시대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과시하고 싶어할 것이다. 큰 정치행사를 위해 동원되는 수많은 '인민'들의 땀과 노력이 김정은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그는 지난해 1010일 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에서 90여 차례나 인민을 외쳤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 인민들이 흘린 땀의 대가로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일지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서재준 기자

 

◇ 05.04 김정은의 '輝煌한 설계도'

2400만 북한 주민들이 요즘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모레(6)부터 열리는 북한 노동당 7차 대회 때문이다. 이 행사를 앞두고 주민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70일 전투'라는 이름 아래 주민들을 공사장으로, 탄광으로, 농장으로 몰아넣고 강제 노역(勞役)을 시키고 있다. 북한 권력이 주민들을 닦달할 때 꺼내 드는 게 '천리마 운동'이다. 하루에 천리(千里)를 달리는 말과 같은 속도로 일하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천리마보다 강도가 10배나 센 만리마 운동을 내걸었다. '건성건성' 시간을 때우기 쉽지 않게 됐다.

 

북한이 노동당 대회를 마지막으로 연 것은 36년 전인 1980년이다. 북의 현 권력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이때 열린 6차 당 대회의 주인공은 김정은의 조부(祖父) 김일성이었다. 북은 이 당 대회에서 '김일성→김정일 권력 세습(世襲)'을 공식화했다. 김일성은 여섯 번이나 당 대회를 개최했다. 반면 김정일은 재임(1994~2011) 중 이 행사를 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민의 의식주(衣食住) 개선 없이는 7차 당 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김일성의 유훈(遺訓)을 의식해서다.

 

올해는 김정은의 집권 5년차다. 그는 아버지 김정일이 감히 생각도 못했던 당 대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그는 올해 1 1일 신년사에서 "(이번)당 대회는 휘황(輝煌)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밝고 빛나는 북한의 미래에 관한 구상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당 대회는 김정은의 예고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정은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었다.

 

김정은이 이번에 당 대회를 여는 이유를 굳이 하나만 꼽자면 '셀프 대관식'을 갖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정상적 사고(思考)를 하는 집권자라면 이런 행사를 앞두고서는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살 만한 일은 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휘황한 설계도'라는 말을 내놓은 지 닷새 만인 1 6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한 달 뒤에는 북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중국이 반대하는데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밀어붙였다. 그 후로도 위험천만한 북의 도발은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유엔 안보리가 지난 3월 초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對北) 제재 결의를 채택했다.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은 유엔 제재와는 별개로 독자적 대북 제재까지 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단행했다. 김이 약속했던 휘황찬란한 미래는 간데없고 오히려 북() 주민의 삶만 더 어려워졌다. 36년 전 6차 당 대회 때는 소련과 중국의 최고위급 사절을 비롯해 118개국 대표단이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외빈(外賓) 없는 나 홀로 행사'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김정은과 그의 수하(手下)들이 제 발등 찍는 일만 골라서 해온 결과다.

 

김정은 정권은 최근 그렇지 않아도 힘든 주민들에게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다그치고 있다. 얼마 전 북한 노동신문은 "혁명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풀뿌리를 씹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을 또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온갖 사고에 따른 부담을 주민들에게 떠넘긴 꼴이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지금 '당 대회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한다. 강제 노역에 동원되느라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장마당 활동 같은 것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대()홍수와 뒤이은 기근 사태로 수백만 북 주민이 북한을 등졌다. 이때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대기근 이후 북 주민들 사이에서 자구책으로 등장한 게 장마당을 비롯한 사()경제다. 북한 권력은 주민을 먹여 살릴 능력도, 의지도 없었기에 이 흐름을 방관했다. 2009년 화폐 개혁을 통해 장마당 경제에 제동을 걸려다가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민란(民亂)이라도 날 듯 분노가 들끓었다고 한다. 결국 북한 정권은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에게 실정(失政)의 모든 책임을 떠넘겨 그를 총살하는 것으로 주민들을 달랬다.

 

올해 당 대회와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 제재로 북한 경제를 지탱해온 '장마당 경제'라는 버팀목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다른 건 몰라도 먹고사는 문제가 위협받는 것에 대해선 참지 못한다"고 했다먹고사는 문제에 분노한 민심을 이겨낼 수 있는 권력은 없다. 핵·미사일 도발밖에 알지 못하는 30대 초반 독재자의 위험한 폭주(暴走)가 언제 어디서든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기적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임기 말로 접어들고, 미국은 정권 교체기다. 지금 한반도는 또 한 번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조선일보 박두식 부국장

 

◇ 05.07 外信 120명 불러놓곤 200m 접근 금지령… 기자들 "농락당했다"

[北 7차 당대회 개막]

北, 부슬비·황사 속 당대회

 

- 길거리로 내몰린 외신

대회장 못 가고 엉뚱한 공장 견학 "화장실까지 감시원들 따라붙어"

 

- 참가자에 '42인치 평면TV 선물說'

36년前 6차대회땐 일본산 TV에 '진달래' 이름 붙여 선물하기도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는 '나 홀로 잔치'로 진행됐다.

 

이날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당 대회장에는 외국 사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36년 전 제6차 당 대회에 외국 지도자급만 8명이 참석했고 118개국이 축하 사절을 보낸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1980년 당 대회 때는 김일성이 앉은 주석단 맨 앞줄에 리셴녠(李先念) 중국 공산당 부주석과 세쿠 투레 기니 대통령, 무가베 짐바브웨 총리, 그리쉰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등 8명의 정상급 외빈들이 앉았고, 주석단 전체에는 외빈 140여명이 자리했었다.

 

◇외신기자들은 대회장 접근도 못 해

이날 당 대회 취재를 위해 외신기자 120여명이 평양에 모였지만 북한은 이들의 대회장 입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외신기자들도 오후 10시 30분쯤 조선중앙TV가 당 대회 소식을 보도하기 전까지 관련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럴거면 왜 불렀지? -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포하기 위한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가 6일 평양에서 개막했다. 사진은 방북한 외신 기자들이 부슬비를 맞으며 대회장인 4·25 문화회관 부근에서 취재하는 모습. 북한은 외신 기자 120여 명을 초청했지만, 대회장 안은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대회장 200m 밖에서 사진 촬영과 인터뷰만 허용했다. /AP 연합뉴스

 

외신기자들은 이날 아침 일찍 대회장인 4·25 문화회관으로 출발했으나 대회장 200m 밖에서 진을 쳐야 했다. 한 외신기자는 "대회장 내부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회장 주변에는 무장 경호원뿐 아니라 사복 경호원이 곳곳에 깔렸다고 일본 지지통신은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북한 당국이 당 대회장에 기자들을 입장시키지도 않았을 뿐더러 취재 목적과 무관한 공장 견학 등을 시키자 "120여명의 보도진이 농락당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외신 카메라들은 당 대회장 장면은 전혀 담지 못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린 4·25 문화회관 외부 전경만 되풀이해 내보냈다. 기자들은 인도에 몰려 서서 "당 역사에서 획기적인 계기"라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시민 반응과 도심 풍경만 전했다. 미국 CBS는 "개막식 날 정장을 입으라고 요구하던 북한 가이드들은 정작 취재가 금지된 이유를 묻자 침묵했다"고 전했다.

 

홍콩 봉황위성TV는 이날 정시 뉴스마다 평양 특파원의 육성을 전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전날 평양 만수대 소년궁에서 있었던 초등학생들과의 인터뷰였다. 한 여학생은 "당 대회를 맞아 선물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고급 과자와 사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 NHK는 "이날 오전 4·25 문화회관 앞에 당 대회 참석자들을 태우고 온 것으로 보이는 수십 대의 대형 버스와 승용차가 정차돼 있었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평양 거리에는 '당 대회를 빛나는 노동의 성과로 환영하자'라는 등의 선전문들이 곳곳에 설치돼 '혁명적 대경사'(노동신문)로 규정된 행사를 맞은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 "4·25 문화회관은 낫과 붓, 망치가 그려진 붉은 조선노동당기(旗)와 금빛 기념물로 장식됐다"며 "이 건물은 1980년 제6차 대회가 열렸던 곳"이라고 전했다. 북한 요구대로 평양 '3·26전선(電線) 공장'을 견학한 프랑스 AFP통신 기자는 "김일성이 1968년 3월 26일 시찰했다는 이 공장에서 관계자들은 '우리는 제재에도 끄떡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국 BBC는 "외국 기자들에겐 감시원이 따라붙어 동선을 제한했고 일반 북한 주민에게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며 "감시원들이 화장실까지 기자들을 따라붙었다"고 전했다. CNN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 실패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들어왔지만 관련 내용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며 "감시원들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편집증적 관심을 가진다"고 전했다.

 

◇"참가자에게 평면 TV 선물" 소문도

북한이 36년 만에 열린 당 대회를 맞아 참가자에게 '통 큰 선물'을 안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날 평안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당 대회에서 전체 참가자들에게 최소 42인치 이상 평면 TV가 선물로 공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서 '아리랑' 평면 TV는 부(富)의 징표로 통한다.

 

북한은 1980년 당 대회 때는 일본산 TV에 '진달래'라는 이름을 달아 참가자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는 북한이 참가자에게 강정, 단졸임소빵(과일잼빵), 단설기(카스텔라) 등 30여가지 식품을 지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평양 금컵체육인 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된 것들로 북한은 당 대회 선물 지급을 위해 최근 대대적인 생산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당 대회는 비가 내리고 황사까지 겹친 궂은 날씨 속에 치러졌다. BBC 등의 화면을 보면 이날 평양의 하늘은 잔뜩 흐렸고, 행사장 부근 경호원들과 지나는 시민들 모두 우산을 쓴 모습이었다.

조선일보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김명성 기자

 

◇ 05.10 北, BBC 취재진 사흘 억류했다가 추방

[北 7차 黨대회]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나라… 뚱뚱, 예측할 수 없는 김정은…"

북한 실상 보도한 걸 문제삼아

 

북한이 7차 노동당 대회 기간에 평양을 방문한 영국 BBC방송 루퍼트 윙필드-헤이스(49) 기자 등 취재진 3명을 지난 6일부터 사흘 동안 억류하고 있다가 추방했다고 BBC·CNN 등 외신들이 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윙필드-헤이스 기자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해 불경스러운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8시간 동안 구금 조사도 받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윙필드-헤이스 기자를 포함한 BBC 취재진 3명은 지난달 30일 김일성대 특별 강연을 위해 방북한 노벨상 수상자 3명과 함께 평양에 들어갔다. BBC는 "윙필드-헤이스 기자가 지난 6일 북한 출국 직전 공항에서 북한 당국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며 "그는 북한 측 요구에 따라 진술서를 쓰고 서명한 뒤 풀려났다"고 했다. 9일 오후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기자들에게 "(북한을) 빠져나와서 기쁘다.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북한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윙필드-헤이스 기자는 우리 공화국 법질서를 위반하고 문화 풍습을 비난하는 등 우리 현실을 왜곡·날조하여 모략으로 일관된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윙필드-헤이스 기자가 평양 곳곳에서 북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 것이 북측 비위를 상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되고, 가난하고, 억압적인 나라 중 하나"라고 보도했고,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해 "김정일 사후에 '뚱뚱하고 예측할 수 없는(corpulent and unpredictable)' 김정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했다. 트위터로 이 사건을 처음 알린 CNN 윌 리플리 기자는 "북한이 김정은과 관련한 불경스러운(disrespectful)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윙필드-헤이스 기자를 구금·추방했다"고 했다.

런던=장일현 특파원

 

◇ 05.26 김정은의 꼭두각시 노릇하는 두 백인 남성, 이들의 기구한 사연

 

1962년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 중이던 주한미군 제임스 드레스녹 시니어 일병이 월북했다. 미국 버지니아주(州) 리치먼드 출신인 그는 부대 근처 사창가에 가기 위해 부사관 서명을 위조한 외출허가증을 들고 나갔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이 두려워 탈영·월북했다. 8월15일 정오쯤 동료 병사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비무장지대 철책 지뢰밭을 가로질러 북으로 넘어갔다.

 

이후 그는 북한 정권에 철저히 이용당했다. 영어를 가르치고 북한 영화·TV에서 '사악한 미국인' 역을 맡는 등 대외선전 수단으로 끌려다니며 생존을 이어왔다. 올해 75세인 그는 심장 질환과 간 질환으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두 백인 아들이 대를 이어 북한체제 선전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엔 재미 친북매체 민족통신이 평양에서 촬영한 인터뷰에 출연, “아버지의 월북은 옳은 선택이었다”며 “북한은 ‘사회주의 천국’”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북한 체제 선전용 말들을 쏟아냈다.

 

홍순철이라는 이름을 가진 형 테드 드네스녹(37)은 양복 차림, 홍철이라는 이름의 북한군 대위로 근무 중인 동생 제임스 드레스녹(36)은 군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전공한 형 테드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미국은 나쁜 짓들을 충분히 저질렀다. 이제 환상에서 깨어날 시기가 됐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나의 소중한 꿈은 노동당 당원이 돼 (김정은) 장군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통일된 조국에서 장군님 곁에 서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북한 주민들처럼 옷깃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나온 두 백인 형제는 완벽한 북한말로 “김정일 동지의 자애로운 보살핌 아래 학교를 마쳤다. 김정은 장군님의 자애로움 덕분에 국경일마다 선물을 받고 있다. 사회주의 시스템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동생 제임스는 “내 일생의 꿈은 형의 그 것과 똑같다”면서 “평생을 조국에 바쳐 통일을 이루고, 김정은 장군님이 이끄시는 공화국의 우월성과 위대함을 전세계가 알게 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어처구니없이 부풀리고 있다. 우리는 대단히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조국을 지키는 것이 우리 형제의 꿈”이라고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미국을 봐라. 백인 경찰이 백주대낮에 흑인을 쏴죽이는 나라다. 흑인들의 생명을 파리 목숨보다도 우습게 아는 나라”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동생 제임스는 앞서 미국 CBS방송 시사프로 ’60 Minutes’의 ‘An American in Korea’라는 프로에서 북한의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테드와 제임스는 아버지인 제임스 드레스녹 시니어와 루마니아 여성인 어머니 도이나 붐베아 사이에 태어났다. 붐베아는 북한 주재 루마니아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었으나, 2004년 미국으로 귀환한 또다른 월북 미군 찰스 젠킨스는 "사실은 붐베아가 북한으로 납치됐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송은 2007년 그녀의 부모 말을 인용, “일본으로 보내주겠다는 한 남자의 말을 듣고 따라갔다가 북한으로 유인됐다”고 보도했었다. 붐베아는 지난 1997년 암으로 사망했다.

글 | 윤희영 조선Pub 부장대우 

 

◇ 06.17 北김정은이 로드먼(전 NBA 농구선수)에게 선물로 준 책 내용엔...

⊙ 김일성·김정일보다 핵 보유 의지 강한 김정은
⊙ “김정은이 방북한 외국인에게 선물로 주는 책 맞다” (베이징선영과무유한회사)
⊙ 김정은, 허리 아프면 승마하라 명령…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
⊙ 김정은이 VIP석 없앴다고 선전… 특별석에서 담배 피우며 공연 즐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 고사총으로 처형된 현영철 사진 존재… 현 2인자인 황병서 사진은 없어

북한은 5월 6일 7차 북한 노동당 대회를 열었다. 36년 만이었다. 김정은의 조부(祖父)인 김일성은 생전 6번의 당 대회를 개최했다. 1946년 8월 치른 제1차 당 대회 땐 강령과 규약을 채택했고, 48년 3월 제2차 당 대회 때는 당 규약 일부를 수정했다. 한국전쟁 이후 치른 56년 4월 제3차 당 대회에선 항일투쟁 전통의 계승을 강조하며 ‘김일성 단일지도체계’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61년 9월 제4차 당 대회에서는 ‘김일성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했다.
  

  70년 11월 2~13일 12일간 열린 제5차 당 대회 때는 ‘주체사상’을 당 규약에 추가하면서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했다. 80년 10월 열린 제6차 당 대회에서는 김정일을 공식 후계자로 확정했다.  


  김정일은 재임(1994~2011년) 중 당 대회를 열지 않았다. “주민의 의식주(衣食住) 개선 없이는 7차 당 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김일성의 유훈(遺訓) 때문이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이 생각도 못 했던 당 대회를 개최했다. 본인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셀프 대관식 성격이 강했다. 본인에 의한, 본인을 위한 당 대회였다.    


  김정은이 로드먼에게 선물한 책 

  김정은에게는 두 명의 외국인 ‘절친’이 있다. 한 명은 김정일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藤本建二)고, 다른 한 명은 ‘벌레(The worm)’라는 별명이 붙은 미국의 악동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Dennis Rodman)이다. 김정은은 틈날 때마다 이들을 평양으로 불러 극진히 대접했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외국 정상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 김정은이지만 자신의 유년시절 추억을 간직한 두 사람에게는 관대하다. 그의 초대로 후지모토는 두 차례(2012년 7월 22일, 2016년 4월 12일), 로드먼은 네 차례(2013년 2월 28일, 2013년 9월 3일, 2013년 12월 19일, 2014년 1월 6일)나 북한을 다녀왔다.  


  전 세계와 척을 진 김정은이 기댈 수 있는 외국 친구는 이들뿐이다. 로드먼은 김정은과 리설주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외국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알았다. 그래서일까. 로드먼은 자신의 어린 친구가 당 대회에서 정식으로 왕관을 쓴 모습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로드먼의 측근은 김정은이 노동당 제7차 대회 개최를 발표(2015년 10월 30일)한 직후인 2015년 11월 해외 유명 중고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로드먼과 함께 방북했을 당시 김정은에게 받은 선물을 판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사람은 자신을 ‘마이클’이라고 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 팔 물건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물었다. “2012년 김정은의 활동 내용을 담은 책으로 제목은 ‘SUPREME LEADER KIM JONG UN IN THE YEAR 2012(2012년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라고 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그에게 로드먼과 함께 방북한 증거를 요구했다.  


  그는 “왜 그러느냐. 혹시 남측 관계자인가. 그렇다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며 연락을 끊었다. 


  취재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접했다. 로드먼과 함께 방북한 일행 중 마이클 스패버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시사주간지 《매클린(Maclean)》은 2013년 12월 마이클 스패버라는 인물이 로드먼의 방북을 주선하고 직접 동행했다고 보도했다.

 

스패버는 당시 《매클린》과의 인터뷰에서 “로드먼의 방북은 내가 주선했다. 이 방북은 한마디로 대박(Blast)이었다”고 했다. 매클린은 로드먼의 방북을 ‘형제들의 휴가(Bro vacation)’라고 표현했다. 


  책을 중고 사이트에 내놓은 ‘마이클’이 ‘스패버’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이 실제로 스패버인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가 연락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2012년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에 있는 지인을 통해 북한 조선출판물수출입사의 베이징사무소인 ‘베이징선영과무유한회사’에 문의했다. 


  2001년 5월에 설립된 베이징선영과무유한회사는 북한의 출판물을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업무를 맡아 하는 회사다. 조선출판물수출입사는 북한 내각 소속의 출판지도국(일명 출판총국, 출판지도국장은 부장급) 산하의 출판물 무역회사다. 일반 대한민국 국민은 접촉이 어렵다.


  ‘베이징선영과무유한회사’는 기자의 지인에게 다음과 같은 답을 전해 왔다.


  “《SUPREME LEADER KIM JONG UN IN THE YEAR 2012》는 김정은이 방북한 외국 인사에게 선물로 주는 책이다. 영어와 일본어로만 제작되며 원한다면 우리를 통해서 구입할 수 있다.”   


  첫 페이지 아버지 김정일 유훈으로 장식

▲김정은은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 상황임에도 장난감 판매대 수를 늘리라고 지시했다.

 

  기자는 지인을 통해 《2012년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입수했다. 총 189페이지로 이뤄진 이 책은 올 컬러로 2013년 후반기에 제작됐다. 영문으로 돼 있으며 출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국어 출판사(일명 외국문 출판사)에서 맡았다. 외국문 출판사는 1949년 12월 4일 ‘새조선사’로 창립됐으며 1956년 5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주로 대외선전을 위한 책자를 번역·출간한다.  


  책은 제목(2012년 최고 지도자 김정은)처럼 김정은의 집권 첫해인 2012년의 활동 내용을 담았다. ▲선군정치의 깃발을 높이 들다(에피소드 25개) ▲지도자, 당 및 대중의 혼연일체(16개) ▲김정일의 애국심(32개) ▲인민을 향한 애정을 그린 서사시(31개) ▲김정은 신드롬(5개) 등 5개 단락에 109개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예상대로 김정은을 미화(美化),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의 주인공은 김정은이었지만 첫 페이지는 김정일의 유훈(遺訓)이 장식했다.


  “백두산에서 창시된 주체 혁명의 대의가 백두 혈통인 김정은 동지에 의해 충실히 계승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언명한다(The revolutionary cause of Juche pioneered on Mt Paektu will be carried forward reliably by Comrade Kim Jong Un as the lineage of Mt, Paektu. I say this with confidence).”  


  김정일 유훈으로 책을 시작한 것은 당시 김정은의 집권 명분이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정은의 집권 명분은 ‘백두혈통’이다. 왕조 체제는 왕조의 원로와 가문의 후광이 있어야 한다. 죽은 아버지의 유훈을 첫 장에 넣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정은의 호전적 언사

▲책은 김정은이 VIP석을 없앴다고 썼다. 사진은 김정은이 VIP석에서 공연을 보는 모습이다. 탁자에 재떨이와 담배가 놓여 있다.

 

  김정은은 집권하자마자 전국의 군부대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군부 장악을 위해서였다. 2012년 당시 김정은은 장병 껴안기, 중대장 가정 방문 등 김정일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과감한 스킨십을 선보이며 적극적인 ‘군부 끌어안기’에 나섰다. ▲선군정치의 깃발을 높이 들다 단락에는 이 같은 내용이 자세히 담겼다. 


  이 부분을 보면 김정은은 주요 군부대를 방문할 때마다 호전적(好戰的) 언사와 도발 위협을 남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칭 생략)  


  〈“2012년 2월 25일 김정은은 인민군 4군단 산하 제403부대를 시찰했다. 그는 이곳에서 2010년 11월, 연평도에 무자비한 화염 세례를 쏟아부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소대를 칭찬하며 ‘적들이 우리의 자주권이 행사되는 조국의 바다에 0.001mm라도 침범한다면 원수의 머리 위에 강력한 보복타격을 안기라’고 했다. 김정은은 현재 ‘부대의 포대 배치가 이상적이지 않으니, 더 과감하게 재배치하라’고 했다.”(최전방 부대 시찰 내용 중)  


  “2012년 3월 3일 김정은은 판문점을 시찰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조선 인민군과 인민들은 적을 무릎 꿇게 하고 휴전이 아닌 항복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게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판문점 내용 중)  


  “김정은은 2012년 3월 14일 인민군 지상군, 공군 및 해군 합동 타격훈련을 직접 지도하며 ‘전쟁이 어느 때 일어나건 적은 놀라운 공격을 목격할 것이다. 우린 적군이 조국의 영공, 영토 및 영해를 1인치라도 침범한다면 전멸의 타격을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합동 타격 훈련 내용 중)  


  “김정은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공격 및 방어 수단으로 무장했다. 따라서 어떤 유형의 근대적 전투에도 대항할 수 있다. 군사 기술의 우위는 더는 제국주의자들의 독점이 아니며 적이 핵폭탄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시대는 영원히 사라졌다’고 자신감을 보였다.”(선군정치의 날 기념 군사 퍼레이드 내용 중) 


  “2012년 8월 17일 김정은은 전방 최남단 분쟁지역에 있는 도서방위부대를 시찰했다. 만일 적에 의해 포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내로 발사된다면 즉각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여 민족통일을 위한 위대한 군사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라고 명령했다.”(민족통일을 위한 성전 내용 중)


  “2012년 8월 17일 김정은은 무도 방위부대로 향했다. 그는 감시초소에서 연평도를 바라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통치권이 미치는 바다나 지역에 하나의 포탄이라도 떨어진다면 전방 남서쪽에서의 국지전으로 국한해서는 안 되며 민족통일을 위한 성전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는 만일 침략자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병사들은 서해가 적의 무덤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명령했다.”(무도 방위 부대 방문 내용 중)〉

    
  핵은 국력이라고 생각

▲2012년 능라 인민 유원지를 방문한 김정은이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김정은의 호전적 언사는 핵탄두를 실은 강력한 발사용 로켓 개발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은 2012년 본격 집권한 이후 자기 입으로 “비핵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핵 보유’를 헌법과 당 노선에 명시했고, 두 차례나 핵실험(2013·2016년)을 강행했다. 최근에는 ‘5차 핵실험’까지 지시했다. 핵 보유 의지에 관한 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훌쩍 넘어섰다. 김정은은 7차 당 대회에서도 “공화국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며 ‘비핵화’를 거부했다.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집권 초부터 김정은의 핵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광명성 3-2호 발사 성공 이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마련한 연회 연설에서 이같이 이야기했다. “주체사상의 휘날리는 깃발 아래 혁명의 최후 승리를 성취하고 삼천리 국토에 가장 강력한 국가, 세계가 우러르는 인민의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의이며 의지이다. 현재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 지식 기반 경제의 시대이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 수준이 국력을 결정하고 국가와 국민의 위치와 미래를 결정한다.

 

광명성 3-2호 발사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였다. 여러분은 광명성 3-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시킨 정신과 패기를 갖고 여러 대의 통신위성과 더 강력한 발사용 로켓을 포함한 다양한 실용위성을 개발하고 발사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세계를 이기고 조국의 명예와 지혜를 전 세계에 보여주리라고 굳게 믿는다.”(우주 강국의 위상을 향해 내용 중)〉   

 

  발사용 로켓의 보유 여부가 국력인 만큼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 성공을 계기로, 세계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발사용 로켓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하 9호를 개발, 완성하는 대로 발사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김정은은 2012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금수산 태양궁전을 방문했다. 이후 모란봉회관에서 연회를 열었다. 김정은은 참석자들에게 모형 발사용 로켓 중 하나를 가리키며 그것을 자세히 봤느냐고 물어봤다. 참석자들은 모형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들은 ‘은하 3’과 ‘은하 9’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은하 9’ 모형을 보면서 참석자들은 김정은의 원대한 우주 계획을 깨달았다. 그 순간 김정은은 푸른 하늘 높이 은하 9호가 날아가는 것을 상상했다.(우주정복자들을 위한 축복 내용 중)〉   

 

  북한은 1998년 8월 광명성 1호(은하 1호)를 발사하면서 인공위성 실험을 시작했다. 이후 약 10년이 지난 2009년 4월 광명성 2호를 은하 2호(운반 로켓)에 실어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12년 4월 광명성 3호 1호기를 은하 3호에 실어 발사했지만 실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북한은 같은 해 12월 광명성 3호 2호기를 은하 3호 개량형에 실어 발사해 성공했다.   

 

  김정은이 완성하면 쏘겠다고 공헌한 은하 9호는 최대 1만3000km로 사거리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만3000km면 워싱턴 등 미국 동부지역까지 사정권에 들어간다. 은하 3호의 최대 사거리는 1만km 정도다. 북한은 ‘은하 9호’를 쏘기 위해 50m 높이의 발사대를 10여m 증축하고 미사일 조립공장을 짓는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민망함이 느껴지는 선전   

▲김정은 책자에는 그가 식목일에 점심때가 훨씬 지나도록 혼자 성실히 나무를 심은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곁들인 사진은 책의 설명과는 다른 것 같다.

 

  김정은을 미화 선전하는 책이다 보니, 민망하고 유치한 내용도 많았다. 관련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2012년 5월 23일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6556부대 장병과 사진을 찍기 위해 금수산 태양궁전으로 갔다. 그가 궁전 광장에 도착했을 때 장병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망한 김정일 대신 사진을 찍으러 온 김정은을 바라본 장교와 병사들은 최고사령관의 자애로운 관심에 감사하며 압도당했다.”(김정일의 약속을 기리며 내용 중)  


  ◆“2012년 3월 2일 식목일에 김정은은 인민군 전략 로켓부대 사령부를 시찰했다. 그리고 사령부 내 김일성·김정일의 흔적이 있는 곳에 가문비나무와 목련을 심으려 했다. 부대에서는 김정은이 나무를 쉽게 심을 수 있게 미리 구멍을 파놓았다. 이를 본 김정은은 이것은 형식주의라며, 점심때가 훨씬 지나도록 혼자 성실히 나무를 심었다.(식목일에 내용 중)  


  ◆“2012년 4월 30일 김정은은 릉라 인민 유원지의 개발에 대한 현장 지도를 했다. 그는 물 슬라이드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단번에 두세 걸음을 걸어 물 슬라이드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슬라이드를 즐기는 어린이들과 인민들을 상상해 보았다.”(릉라 인민 유원지 내용 중)  


  ◆“2012년 11월 22일 로켓 발사 현장(은하 3호)을 방문한 김정은은 로켓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에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격려하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했다. 그는 발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얼음처럼 차가운 발사용 로켓을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쓰다듬었다. 이를 바라보던 관료,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진정한 애국심을 바쳐 번영된 조국을 건설하려는 그의 고귀한 목표에 눈물을 흘렸다.”(발사용 로켓 몸체를 쓰다듬다 내용 중)  


  ◆“2012년 5월 8일 김정은은 만경대 놀이공원을 현장 지도했다. 그는 길가에 포장된 돌 사이에 자라는 풀을 봤을 때 상을 찡그리며 뽑아냈다. 김정은은 ‘어떻게 관료들이 이런 것을 볼 수 없을까? 놀이공원의 관료들이 주인 같은 태도, 일터에 대한 애정 및 인민을 보살피고자 하는 성실함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없다. 비록 시설을 개선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풀을 뽑아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라고 생각했다.”(인민을 향한 애정을 그린 서사시 내용 중)  


  ◆“미국과 남한의 호전적인 군의 필사적인 군사도발 때문에 전운은 아직도 최전방 지역에 감돌고 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었다. 위대한 수호자의 확신 찬 미소였다.”(제안 거절 내용 중)

  
  ◆“김정은은 판문점 발코니에 서서 스스로 적의 움직임에 대해 숙지하고자 했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적의 구역이나 다름없는 비무장 지대까지 갔으며, 대낮에 만반의 전투준비로 긴장한 장교와 군인들의 가슴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판문점 내용 중)

    
  김정은이 내린 지시의 수준

▲김정은은 2012년 미림 승마 클럽을 방문,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직업병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승마를 권장하라고 지시했다. 승마는 귀족 스포츠라 선진국에서도 즐기는 사람이 제한적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고집함에 따라, 외화 수입 감소→원료·자재난→산업 가동률 저하로 이어지는 경제난을 겪고 있다. 북한의 경제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타개(打開)는 어렵다.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이 떠안는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북한 주민을 위한다면서 내린 지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주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여승무원의 유니폼을 맞춰라”고 명령한다. 책은 김정은의 지시를 누구보다 인민을 아끼는 최고 지도자의 아량으로 포장하고 있다. 초등학생도 콧방귀 칠 수 있는 김정은의 지시내용이다. 모두 2012년에 지시했다.   

 

  “릉라 인민 유원지에 전시할 박제 동물을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라.”(릉라 인민 유원지 내용 중)   

 

  “류강 헬스 복합단지 카펫을 더욱 고품질로 교체하라.”(류강 헬스 복합단지와 인민 야외 스케이트장 내용 중)   

 

  “기린과 얼룩말을 포함, 외국 동물과 세계의 희귀동물을 들여오라.”(중앙 동물원 내용 중)   

 

  “양말을 세계의 유행에 맞춰 제작하라.”(평양 양말 공장 내용 중)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여승무원의 유니폼을 맞춰라.”(평양 공항 내용 중)

  

  “컴퓨터 사용의 확대로 인해 정신노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 특화된 질병이 나타나고 있다. 승마를 권장하라.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미림 승마 클럽 내용 중)

  

  “모란 청소년 놀이공원 방문객이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알아보라.”(인민들은 어느 것을 선호할까 내용 중)  

 

  “평양 어린이 백화점 내 장난감 판매대의 수를 늘려라.”(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해 내용 중에서)   

 

  “유방암 연구소 내부를 궁전처럼 만들어라.”(여성들을 위해 내용 중)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 주민의 절대다수는 하루하루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허덕이는데, 김정은은 집권 이후 줄곧 이런 지시만 내리고 있다”며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누가 봐도 뻔한 거짓   

  책은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도 뻔뻔스럽게 나열했다. 책은 김정은이 부대 방문 시, 병사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경우 해결책을 마련했다고 썼다. 또 김정은이 부대시설에 각별히 신경을 써, 병사들은 최상의 환경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식량난과 보급품 공급 부족으로 군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것은 조금만 북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서 국장은 2000여 명이 넘는 북한군 출신 탈북민을 인터뷰했다.   

 

  “북한군은 군수·보급품 목록에 등재된 품목이 실제로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원인은 처음부터 보급하지 않고 보급한 것처럼 품목을 등재하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군인 출신 탈북민은 만약 북한이 무력 도발을 감행했을 때 상대방이 반격하면 부족한 군수·보급 상황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   

 

  김정은이 VIP석을 없앴다는 내용도 있다.  

 

  〈2012년 4월 10일 김정은은 곧 일반에게 공개하게 될 인민극장을 방문했다. 극장의 훌륭한 내부를 보고 만족해했다. 관람석 VIP석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자리에 멈춰 서더니 깊은 생각에 빠졌다. 관료들을 바라보면서 김정일은 살아생전에 그를 위한 특별대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본인은 시민과 함께 앉겠다고 덧붙였다. 후에 그는 주요 국경일과 기타 행사 때 노동자, 과학자, 연구원들과 기타 인민들과 함께 일반석에서 공연을 즐겼다.〉   

 

  김정은은 재떨이와 담배, 라이터가 놓인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흡연하면서 공연을 지켜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모습이 담긴 사진도 다수 공개됐다.

    

  책에 게재(揭載)된 김정은의 대표적 거짓말들이다.   

 

  “우리 인민들은 다시는 허리를 졸라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확고부동한 의지 내용 중)   

 

  “김일성의 현명한 지도력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과 인민이 미국이 이끄는 16개국 무장 침략국과 남한 꼭두각시 군대를 물리쳤다.”(영원한 전승을 축하하며 내용 중)   

 

  “눈을 맞으며 김정일 장군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서 있는 모든 인민군과 인민들은 나의 동지들이다.”(전우가 많은 지도자)  

 

  “김정은은 김정일 장군의 동상을 세우라고 노동자들이 기부한 쌀 100톤을 받지 않았다.”(제안 거절 내용 중)   

 

  책에는 이런 대꾸할 가치도 없는 거짓말이 수도 없이 담겼다. 그래도 조목조목 반박해 보자면, 먼저 북한 주민은 배고파서 남한으로 도망치고 있다. 6·25전쟁은 미국 북침에 맞선 전쟁이 아니다. 북한의 남침이라는 증거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정은은 동지라고 표현한 김정일 운구차를 호위한 운구 7인 중 5명을 숙청하거나 처형했다.

 

 쌀 100톤을 받지 않았다지만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세우기 위해 천리마보다 강도가 10배나 센 만리마 운동을 내걸었다. 인민만 생각한다는 위대한 지도자는 주민이 굶어 죽을 때 애완견 관리에 연간 20만 달러 이상을 쓰는 인물이다.

 

     한 탈북자는 “북한의 초등학생조차 현실적이지 않은 지도자의 위대성 선전과 이야기에 혹하지 않는다”며 “황당한 선전에 콧방귀 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我田引水식 해석

▲김정은 옆에 앉아 지시를 받아적고 있는 이가 ‘북한의 괴벨스(독일 나치 선전장관으로 선동정치 주도)’로 불리는 김기남 선전선동부장이다. 그는 현재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상태다.
  

  책은 제목이 ‘2012년 최고 지도자 김정은’인 이유에 대해 그해 미국 《타임》지가 김정은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임지는 2012년 2월 판에 김정은으로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2012년의 인물로 그를 추천했다. 1927년 이후 그해의 인물을 추천해 왔던 그 잡지는 정치인, 기업인, 예술가, 스포츠인, 뉴스캐스터 및 기타 구독자들 가운데 2012년의 인물을 선출하라고 온라인 투표를 했다. 560만명이 김정은에게 투표를 해 그가 순위 최고에 올랐다.〉  


  김정은이 당시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것은 맞다. 《타임》지는 2012년 2월 27일자에 ‘핵 국가인 북한의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 그 기괴한 세계’란 제목으로 그의 반신 초상을 실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든 것도 사실이다. 《타임》지는 김정은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 지도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 등과 함께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악당’으로 분류했다.  


  《타임》지가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김정은이 563만594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 김정일을 능가하는 독재 후계자에 관심이 쏠렸을 뿐이다. 《타임》지는 “온라인 투표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2010년 9월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3차 회의에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의장으로 선출됐을 때 세계 언론은 때를 놓치지 않고 뉴스를 전달했다. 세계 언론은 김정은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지 관심을 집중했다. ‘김정은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라는 대목도 있었다. 사실이 아니다. 조사해 보니 당시 해외 언론 기사는 김정은에 비판적인 시각만 가득했다. 

  
  CNN은 퍼레이드 중계방송을 하는 동안 시사잡지 《포브스》의 북한 전문가인 고든 장씨를 내세워 “사실상 북한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지만 피폐한 경제를 경험해야 하는 주민들은 유쾌해할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BBC의 크리스 호그(Hogg) 기자는 평양 생중계를 통해 “이번처럼 외국 방송사들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평양 한복판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외국 기자들을 불러들인 것은)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 도를 넘은 셈이다.   


  사진 속 주요 인물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 사진(김정은을 중심으로 가장 왼쪽). 현영철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고사총으로 총살됐다. 김정은 책자에 현영철 사진이 실린 것은 그가 죽기 전에 발간됐기 때문이다.
  

  책자는 화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많은 사진이 게재돼 있었다. 총 132장의 사진 중에는 잔인하게 처형당한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우리의 국방장관)도 있었다. 현영철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는 이유 등으로 2015년 4월 30일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수백 명의 군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대공기관총)으로 총살됐다. 북한은 숙청된 인물의 기록은 삭제한다. 책에 현영철의 웃는 사진이 있는 것은 죽기 전 발간됐기 때문이다. 

  

  2012년 때만 해도 김정은의 최측근이었던 최룡해 당 비서의 사진도 보였다. 최룡해는 2015년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잠깐 비쳤다가 부인과 함께 지방 농장으로 쫓겨갔다고 한다. 2016년 최룡해가 김정은과 그의 여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과 함께 저녁을 먹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예전 위상을 되찾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천안함 폭침 배후로 지목된 김영철 대남비서의 사진도 있었다. 김영철은 북한 군부의 대표적인 대남 강경파다. 1946년 양강도 출신으로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거쳐 2009년 2월 정찰총국장에 오른 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농협 전산망 공격, 미국 소니사 해킹 사건,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등 크고 작은 대남 도발과 위협을 사실상 기획하고 집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남북 고위 당국자회담,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등의 북측 대표를 맡는 등 남북 회담에도 오랫동안 관여해 온 대남 통이기도 하다. 김영철은 현재 2015년 말 사망한 김양건의 뒤를 이어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대남담당비서와 통일전선부장을 겸하고 있다.   

 

  이 밖에 사진 속 주요인물로는 마원춘, 김기남, 김경옥, 박도춘이 있었다.   

 

  마원춘은 북한 최고의 건축설계 기관인 백두산건축연구원 출신이다. 2012년만 해도 실세였다. 마식령 스키장, 아동병원, 평양 애육원 등 김 제1위원장이 관심을 쏟는 건설 사업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까닭이다. 2014년 11월 평양 순안국제공항 신청사를 ‘주체성과 민족성이 살아나게 건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이후에는 대좌 계급장을 달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본래 경질 전 계급은 두 단계 위인 중장이었다. 김기남은 ‘북한의 괴벨스(독일 나치 선전장관으로 선동정치 주도)’로 불린다. 김일성 때부터 지금까지 선전선동부장직을 맡고 있다. 현재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상태다. 김경옥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1부부장으로 김정은의 경호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김정은 경호에 소홀했다는 의심을 받고 좌천됐다. 박도춘은 북한 핵개발 실무를 주도한 인물이다.

 

       김정은 시대의 신 실세

▲김정은 시대의 신 실세인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이병철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함께 나온 사진이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오른쪽 두 번째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이 김원홍, 김정은 뒤로 무표정으로 김정은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있는 이가 이병철이다.
  

김정은 시대의 신 실세 두 명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사진 속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이병철 노동당 제1부부장은 김정은의 지시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김원홍은 우리의 국정원장에 해당하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수장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정은의 신임을 받고 있다. 2012년 4월, 25년간 공석으로 있던 보위부장에 임명돼 장성택 및 측근들에 대한 조사와 숙청을 주도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원홍 보위부장은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북한 고위층의 휴대전화까지 도·감청해 물의를 빚고 있다”며 “우리의 기무사에 해당하는 군보위국 업무까지 관장하려는 바람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도 사이가 안 좋다”고 전했다. 


  이병철은 북한 공군사령관 출신으로 2015년 1월 노동당 제1부부장에 임명됐다. 그동안 당 군사 부에 1부부장 직책은 없었다. 이것만 봐도 김정은이 이병철을 신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병철은 김정은이 공군 관련 행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점수를 땄다. 현재 북한의 2인자 격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사진은 없었다.⊙

글 | 최우석 기자

 

◇ 06.21 “식량자급이 수소탄” 잇단 캠페인…‘대기근’ 빨간불 켜졌나

▲지난달 중순 평양 청산협동농장의 모내기 장면. 지난해 10월 이후 배급량이 이전 같은 기간보다 떨어졌다. [노동신문]

 

북한의 식량 사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 등이 잇달아 경고를 울린데 이어 우리 대북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겁니다.

“원수들의 고사작전 물거품 만들자”
식량부족, 대북제재 탓으로 돌려

크리스티나 코슬렛 FAO 동아시아 담당관은 지난 주말 언론 인터뷰에서 “쌀의 경우 전년도에 비해 수확량이 26% 줄어들었고, 옥수수도 3% 감소했다”고 밝혔는데요. 대체로 5월부터 8월까지 춘궁기를 겪는 북한이 식량을 수입하거나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요. 올 2분기(4~6월)들어서는 북한의 1인당 배급량이 360g으로 줄어 지난해 같은 기간 410g에 비해 12% 줄었다는 통계치도 나왔습니다.

 

▲곡물 생산 목표달성 촉구 포스터.

 

북한 당국도 바짝 긴장하는 표정인데요. 식량 문제를 자체 힘으로 풀자는 캠페인이 봇물을 이루고, 태풍·홍수 대비책을 강조하는 TV프로그램이 등장했죠. 노동신문도 17일자에서 “식량 자급자족이야말로 원수들이 무서워 벌벌떠는 또 하나의 수소탄과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자체 힘으로 먹는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원수들의 그 무슨 고사(枯死)작전이라는 걸 물거품으로 만들자”는 얘기도 꺼냈는데요. 주민들에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에 식량난을 겪는 것이란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겁니다.


물론 북한의 식량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94년7월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잇단 수해 등으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는데요. 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2010년 사망) 노동당 비서가 “200~300만명이 죽었다”고 말한 대기근 사태입니다.

 

 

북한 인구가 2400여만명임을 감안할 때 얼마나 큰 참상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 즈음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회담 북측 대표는 쌀과 옥수수 지원을 요청하며 “내가 이걸 가져가지 못하면 인민들에게 면목이 없어 평양공항에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통사정을 한적도 있죠.


불을 꺼준 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입니다. 쌀 240만톤 등 모두 7억2000만 달러(8370억원)어치의 식량차관이 제공됐죠. 40kg 포장으로 6000만 포대에 이르는 막대한 물량입니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북한 사회가 무뎌지는 모습도 드러냈는데요. 지난해 11월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방문한 한 식료공장 생산라인에 WFP의 대북 식량지원 포대가 놓여있는게 북한TV에 생생히 드러나기도 했죠.


최근 터져나온 평양발 식량위기 경고는 김정은 체제 들어 식량사정이 다소 호전됐다는 분석을 뒤집는 것이라 주목됩니다. 농업전문가들은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집단영농제와 비료·농약 등 농자재 부족을 요인으로 꼽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첫해인 2012년 6.28방침으로 불리는 새 경제관리체계를 선보이며 포전제의 시범실시 등을 내놓았는데요. 식량난을 타개할 수준의 개혁에는 크게 못미친다는 평가입니다.


잇단 김정은의 대남 도발행보도 식량난을 부채질했습니다.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질좋은 한국산 비료나 농기자재의 대북제공을 어렵게했죠. 대북 식량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관 상환 기일이 닥쳤는데도 나몰라라하며 ‘서울 불바다’ 운운하는 김정은 정권의 태도에 국민여론은 싸늘해졌습니다.


3월 유엔의 대북결의 2270호가 나오면서 찬성표를 던진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손길도 차가워졌는데요. WFP는 이달말까지 북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1억9500만 달러의 모금목표를 세웠지만 절반 수준이 9900만 달러에 그쳤다고 합니다.


식량사정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북한 당국은 뾰족한 대책이 없는 듯합니다. 지난달 노동당 7차대회에서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는데요. 3시간 동안의 연설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식량문제 해결책은 피해갔죠.


다만 “경제전반을 놓고 볼때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있다”는 말에서 불만이 드러납니다. 1980년 6차 당대회 때 김일성 주석이 “곡물 1500만톤 생산”을 제시한 것과 차이가 납니다.


핵 보유국을 주장하면서도 식량난에 골머리를 앓아야하는 김정은 체제의 모순은 언제 끝날까요. ‘이밥에 고깃국’이란 소박한 꿈은 북한 주민들에게 너무 멀어보입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yjlee@joongang.co.kr

 

◇ 06.23 “단둥 북한 공작원 체포는 다량의 위조 달러 때문"

중국 공안 당국이 이달 초 단둥(丹東)에서 구속한 북한 공작원 간부는 다량의 위조 달러 때문에 체포됐다고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대북 소식통이 22일 말했다. 미국 정부가 가장 민감해하는 북한의 위조 달러 유통 사건이 다시 발생함에 따라 대북제재와 맞물려 파장이 일고 있다.

당대회 배급품 대금으로
은행 예치한 500만 달러 중
100달러짜리 위폐 발견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12일자에서 중국 치안 당국이 단둥에 주재하는 북한 공작원 간부를 심야에 체포했으며 3000만 위안(약 53억원)과 골드바 등을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구체적인 혐의는 공개되지 않았다.

북·중 관계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22일 “붙잡힌 북한 공작원은 4·15 태양절(김일성 주석의 생일)과 5월 노동당 7차 대회를 치르면서 북한 주민에게 배급한 가전제품·생활용품 등 물품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북한에서 현금 500만 달러(약 57억원)를 들고 중국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대북 금융제재로 현재 북한의 달러 기반 금융 거래는 막힌 상태다.


이 소식통은 “500만 달러를 중국 공상은행과 농업은행에서 중국 돈 약 3000만 위안으로 바꿔 예치했는데 지폐 계수기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100달러짜리 위폐들이 은행 직원의 수작업에서 발견돼 중국이 해당 계좌를 동결 조치한 뒤 북한 공작원을 구속했다”고 말했다.

중국 공안이 현장에서 압수한 것으로 보도됐던 3000만 위안은 이 돈이 입금된 계좌를 ‘동결시킨’ 조치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소식통은 “북한에 물품을 공급한 뒤 20억원대 대금을 받지 못한 대북 사업가가 북한 측 사업 파트너에게 따지자 ‘중국이 위폐 문제로 계좌를 묶어버렸다’는 답이 돌아와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도 “단둥의 현지 대북 사업가들 사이에서 위폐 사건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며 “위조 달러 유통은 금융결제 시스템을 훼손시키는 중대 범죄인 만큼 중국이 국제사회의 파장을 고려해 쉬쉬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달러 부족으로 북한 경제가 질식 상태로 빠져들다 보니 조직적으로 위조 화폐를 만들어 유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동북아연구실장은 “지난 3월부터 북·중 접경 지역과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서 다량의 수퍼노트(초정밀 위조 달러)가 발견되면서 제조·유통의 진원지로 북한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중국 공안도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미국은 위폐 문제를 중대 범죄로 취급하는 만큼 대북 압력의 차원이 달라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 06.26 "어떤 병이든 고친다"며 다리 아파도 심장병에도 같은 약

[외화 벌이 혈안이 된 北… 탄자니아 북한 병원 가보니 이런일까지] 

'돌팔이 병원' 최소 13곳 운영 

年매출액 100만~130만달러… 그 중 90%를 북한으로 송금

현지인들 "조금만 통증 있어도 위험한 병이라 진단하고 겁 줘

진료비도 2~5배… 돈 귀신들"

 

지난 10일 오후 3시(현지 시각) 아프리카 탄자니아 최대 도시인 다르에스살람. 국제공항에서 1시간을 차로 달려 도착한 동쪽 해변 외진 골목길에 'Korean dispensary(한국 진료소)'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 있었다.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다른 병원이 못 고치는 만성 질환을 치료해 준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이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엔 2층짜리 병원이 있었지만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노란색 담에는 '5월 20일부로 폐쇄'라는 글씨가 붉은 페인트로 적혀 있었다.

 

이 병원은 북한이 외화 벌이 수단으로 지난 2월 세웠다.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을 동시에 다루지 못하도록 하는 탄자니아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로 적발돼 폐쇄 조치됐다. 병원 근처에 사는 한 주민은 "마사지 기계나 침을 쓰기도 하고, 서양식 알약을 처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폐쇄된 북한 병원… 약통엔 영어로 된 성분·효능 표기도 없어 - 지난 10일 오후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동쪽 마을에 있는 북한 병원의 철문이 닫혀 있다(왼쪽). 왼쪽 벽에 현지어로 ‘5월 20일부로 폐쇄’, 맞은편엔 ‘곧 돌아오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병원은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을 동시에 다루지 못하도록 하는 탄자니아 의료법을 위반한 혐의로 적발돼 폐쇄 조치됐다. 오른쪽은 현지인이 북한 병원으로부터 처방받은 심장약. 환각 성분이 있는 두꺼비 진액으로 만들었지만, 성분·효능·부작용 등에 대해 현지어나 영어로 어떤 설명도 기재하지 않았다. /윤형준 기자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991년 탄자니아에 병원을 세우기 시작했다. 탄자니아 전역에 북한 병원이 최소 13곳 들어섰다. 초기에 북한에서 온 의료진은 20여 명에 불과했지만, 대북 제재가 강화된 2000년대 후반부터 숫자가 늘어 현재는 100여 명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탄자니아에서 벌어들이는 연간 매출액(100만~130만달러) 가운데 90%를 북한으로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르에스살람의 서쪽 마을에도 'Sun dispensary(태양 진료소)'라는 북한 병원이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지칭하는 태양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일대는 2층짜리 건물이 이 병원을 포함해 두 곳뿐일 정도로 낙후한 지역이다. 기자와 동행한 현지인은 "북한은 경쟁할 만한 다른 의료 시설이 없는 변두리에 병원을 세우고 의료 지식이 부족한 주민들을 상대로 '어떤 병이든 고쳐준다'고 선전한다"며 "국적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North Korea' 같은 이름은 절대 쓰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 병원들은 한국 의료 기관이라고 내세워 현지 의료비의 2~5배를 받는다고 한다.

 

현지인들은 "북한 병원은 '엉터리 진료'로 악명이 높다"고 말했다. 다리 통증으로 북한 병원을 찾았다는 로버트(53)씨는 "담배를 입에 대본 적도 없는데 북한 의사가 '몸에 니코틴이 많아 아픈 것이니 전신(全身)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며 "조금만 통증이 있어도 '위험한 병'이라고 진단해 겁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리가 아프거나 심장이 아프거나 관계없이 똑같은 약을 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돈 귀신들"이라고 했다. 아픈 부위에 무조건 전기 쇼크 요법을 실시하거나 "180시간 이상 효과가 지속된다"며 중국산 비아그라를 처방하기도 했다고 한다. 탄자니아 언론은 최근 북한 병원의 잘못된 진료로 생명을 잃을 뻔한 소년의 사연을 보도했다. 300여 명에 이르는 우리 교민도 처음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북한 병원을 찾았지만, 형편없는 의료 수준에 실망해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북한 병원은 모든 의약품에 스와힐리어나 영어로 성분·효능 등을 기재하게 한 현행법도 지키지 않고 있었다. 기자가 현지인을 통해 입수한 북한 병원의 의약품은 대부분 아무 설명 없는 흰 종이에 알약 몇 개가 포장된 상태였다. 북한 병원을 찾은 엘리아스(여·47)씨는 "의사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진찰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약에도 아무 표기가 없어 황당했다"면서 "'한국 병원'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실망했다"고 했다.

 

탄자니아 정부는 올해 보건부 차관이 직접 기자 40여 명과 함께 북한 병원을 불시 점검해 3곳을 폐쇄시켰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단속 의지에도 현지에선 북한 병원의 뿌리를 뽑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급 관리들과 북한 병원이 유착돼 있기 때문이다. 교통·통신 인프라가 열악한 탄자니아에선 중앙정부가 지침을 내려도 일선 기관이 '우기(雨期)라 이동하기 어렵다' '단속 지시를 받지 못했다' 같은 핑계를 대며 따르지 않는 일이 많다.

조선일보 다르에스살람(탄자니아)=윤형준 기자

 

◇ 07.05 北, 여행증명서 제도도 억울한데 돈까지 내라하니...

/평양거리,/ 조선DB


북한에 여행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타 도와 시로의 이동을 위해서는 ‘정당한 사유에 근거한 여행증명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때, 주민들이 무리로 굶어 죽어가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엔 이러한 여행증명서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주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식량구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열차지붕에까지 기어오르는 굶주린 주민들을 어떤 공권력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당장 굶어죽게 된 가족을 살리기 위해 ‘식량구입’에 나선 가장들과 어머니들을 여행증이 없다는 이유로 모조리 잡아가둘 그런 감옥이 북한엔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민들에 대한 당국의 여행통제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행증명서 없이 타 도에 진입하는 대상들을 집결소에 가두고, 과거 3~6개월간의 노동단련과정을 1년으로 늘였다는 소식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식량구입이나 장사목적으로 열차를 타야하고 거주지 밖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들은 여행증명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인민보안서2부(여행증명서를 발급하는 보안서의 부서)로 주민들의 발길이 집중된다고...

  

5일, 이같은 소식을 전한 신의주소식통은 “결국 보안원들은 여행증 발급을 기화로 개인 잇속을 챙기고, 녹아나는 건 주민들뿐이다”면서 “6월 들어 여행증명서 한 장당 가격이 5만원에서 6만 원정도로 뛰어 올랐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3~5천원인데 반해 5만원이라면 1년 치 월급을 ‘뇌물’로 섬겨야 하는 판이다. 현재 시장에서 1㎏에 5천 원정도하는, 그 목숨보다 귀하다는 살로 치면 10㎏을 줘야 여행증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국경지역이나 평양시 같은 도시 출입을 위한 승인번호가 필요한 지역으로 가기 위해선 10만~12만 원정도의 돈을 내야 한다고 하니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 꼭 여행증을 발급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주민들의 원성이 치솟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해왔다.

  

“원래 여행증명서는 ‘정당한 사유’에 따라 발급을 신청하면 무료로 발급하게 규정되어 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하지만 여행증 발급규정에 ‘정당한 사유’라는 전제를 달아둠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고 있고 주민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당한 사유’란 여행일정과 휴가기간의 매칭, 휴가기간이 아닌 경우엔 가족 친척의 관혼상제와 같은 부수적 주변 환경, 병 치료나 이사, 근무지 변경과 자재(물자)구입 등 누가 보기에도 합당한 이동(여행)의 이유를 뜻한다.

  

하지만 작금의 대다수 북한주민들은 정상적인 직장생활에서 유리된 관계로 ‘정당한 사유’의 제출 자체가 곤란하다. 또 ‘장사’와 ‘식량구입’이란 목적은 여행증 발급을 위한 ‘정당한 사유’와도 한참이나 괴리되어 있다.

 

이런 불합리한 환경에 노출된 주민들을 대상으로 권력자들의 횡포는 이어지고 있다. “여행증 발급이라는 특권을 이용해 딸라를 벌어들이는 놈, 여성들로부터 성적욕구를 채우는 놈, 벼라 별 놈들이 다 생겨나고 있고 주민들도 이런 황당한 제도에 반발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글 | 강리혁 자유북한방송 기자

 

◇ 07.06 북한에서 장마를 고대하는 사람들은 누구?

▲북한주민들에게 장마란 삶의 시름을 가져다주는 재앙과도 같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비만 오면 큰물이 지고 산 인근 세대들은 밤새 피난을 가느라 야단법석이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주민들 처지도 마찬가지다. 장마철이면 시장으로 들어오는 골목이 흙탕으로 변해 오고가는 손님도 자연히 줄어든다.

청진 출신 탈북민 김 씨는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면 출입문 곁에서 언제면 비가 멎을까 속 태우며 기다린다. 북한에 살 당시 음식장사를 했는데 음식을 팔지 못하면 보관할 곳이 없어 온 식구가 때를 에운다. 판매음식을 먹어버리면 다음날 굴릴 밑돈이 줄어들면서 한숨만 나왔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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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면 전반적인 장사가 멈춘다. 비오면 물건 사러 오는 주민들도 뜸하고 장마로 인해 압록강이 불어나 중국 산 물건도 한동안 들어오지 않는다. 구매자는 적고 상품가격은 오르고 시장상인들은 장마가 멈추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민 온성출신 장 씨는 "탈북 전 도시변두리에 살았다. 우리 동네 주민들을 텃밭 농사와 축산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보통 한 세대에 돼지 2~4마리 정도 키웠는데 사료를 마련하기 위해 옥수수를 사서 밀주를 담근다. 술을 뽑고 나오는 건덩이는 돼지사료로 이용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이면 돼지 굴에서 나는 악취가 마을을 진동한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옆집은 창고에 땅을 깊이 파고 철판으로 지붕을 얹고 나무판자로 돼지 굴을 크게 지었다. 한해에 돼지 두어 마리정도 넣고 키우는데 가을에는 보통 80kg이상이 된다. 봄이 되면 온 가족이 산으로 돌아다니며 능쟁이, 비듬, 을 비롯한 돼지 풀을 큰 포대에 하나씩 메고 어슬어슬 할 때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
도적이 성하니 돼지 굴(돼지를 키우려고 땅속 깊은 곳에 구멍을 파고 만든 움막) 보안장치는 그야말로 가정집보다 더 꼼꼼하다. 돼지 굴 문짝을 열면 손가락 뚜께의 철근으로 살창을 만들어 놓고 돼지가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자물쇠를 도끼로 까도 끄덕 안하게 주문하여 만들었다. 무더운 여름에 돼지 분비물 냄새와 주변에 모여드는 파리 떼 때문에 동네 원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이어 "북한은 수돗물 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먹을 물 길러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것이 하나의 풍습처럼 굳어졌다. 식용수도 길어 먹기 힘든데 돼지 굴 청소할 물은 생각지도 못한다. 돼지 굴 청소를 하는 날은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 안성맞춤이다."고 말했다.

"비가 억수로 오는 날이면 온 동네가 도랑으로 흐르는 빗물을 푼다. 어르신부터 손자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돼지 굴 청소를 시작한다. 양동이로 퍼 올린 돼지 똥물을 도랑에 부으면 순간에 아래로 떠내려간다. 비에 온몸이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가 멎기 전에 끝내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비가 멎은 뒤 집집마다 큰일을 치른 집처럼 북적 거린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면서도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일단 청소를 말끔히 했으니 몇 달은 끄떡없이 지낼 수 있다는 안도감이다. 예전에는 돼지 오줌 똥물에 바닥이 꺼멓게 보였는데 지금 보니 한결 깨끗 해진게 눈에 뜨였다."고 부연했다.

그는 "할머님이 돼지의 등짝을 막대기로 긁어 주며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이것들이 우리집안이 제일 큰 재산이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명줄이라고 이야기 했다. 이번 장마 비에도 돼지 굴 청소하느라 온가족이 떨쳐나설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짠 한 추억 속에 그려본다."고 말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박주희 뉴포커스 기자

 

◇ 07-08 “北 여대생, 韓영화 메모리칩 가지고 있다 걸려 조사 받던 중 자살”

북한의 한 여대생이 한국영화를 저장한 메모리칩을 가지고 있다가 당국의 단속에 걸려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고 미국의 북한전문 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이 8일 보도했다.

 

RFA는 이날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 청진시 포항구역 남강동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여대생(23)이 북한 당국의 불법영상물 단속에 걸려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으며, 이 같은 사건이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들어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직속인 ‘109연합지휘부’, 일명 ‘109상무’가 당과 군, 사법기관 간부들의 자택과 연고지를 대상으로 무차별 검열을 벌이고 있다. 109상무는 불법영상물 단속을 목적으로 당, 보위부, 검찰, 보안, 인민위원회 성원들로 구성된 검열조직이다.

 

자살한 여대생은 청진예술전문학교 성악과 4학년생으로, 109상무의 예고 없는 가택수색 과정에서 한국영화가 저장된 메모리칩이 발각돼 끌려갔다. 이 여대생은 취조를 받던 중 위생실(화장실)에서 몰래 가지고 들어간 파마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대생이 자살을 택한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109상무에 걸리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뿐더러 최소한 10년 이상의 형을 받게 된다”며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여긴 여학생은 자신과 연루된 친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살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식통에 따르면, 지난 3월에도 109상무에서 조사를 받던 40대 여성이 조사실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식통은 “109상무에 걸리면 오승오(5x5cm) 나무각자와 철선, 가죽 띠를 이용한 모진 고문을 받게 되는데 누구도 불지 않고는 못 견딘다”며 “어차피 불법영상물과 관련된 가족, 친구들의 이름을 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차라리 자살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 07.15 北 경제 주무르는 돈주와 김정은의 불화

[주간조선:북한]  

최근 북한 양강도에서는 ‘양강도 일등 부자’로 알려진 무역업자가 처형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람은 평양에 수십 채의 아파트를 소유한 거부였고 권력층에 착실하게 상납도 해왔지만 평양에서 공부하던 자녀가 한 달에 300~400달러를 쓰는 것이 빌미가 돼 표적 수사 끝에 처벌됐다. 이 무역업자에게는 ‘국정원 돈을 받아 간첩으로 활동하면서 구호나무를 베어 팔아넘긴 악질’이라는 죄목이 붙었다. ‘구호나무’란 일제강점기 항일 빨치산 대원들이 김일성과 그의 아내 김정숙을 찬양하는 글귀를 새겨놓은 나무를 지칭하는데, 특별히 국가에서 보호하는 나무들이다.

 

북한에서는 이 무역업자처럼 현금 자산이 많은 갑부들을 ‘돈주’라고 부른다. 돈주는 ‘돈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보통 1만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돈주로 불린다. 1990년대 등장하기 시작한 돈주들이 북한에 정확히 얼마나 있는지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최소 수만 명은 될 것이라는 추산이다.

 

▲글이 새겨진 北의 구호나무. /노동신문

 

그런데 이들 돈주들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손보기’가 최근 들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본래 돈주들은 국영기업에 투자하는 등 정권과 공생(共生)하는 관계였지만 이러한 공생관계에 금이 가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대북 제재로 돈줄이 마르기 시작한 김정은 정권이 상납금을 올리거나 트집을 잡아 아예 돈주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며 “북한 경제에 입김이 세진 돈주들이 정권에 대해 불만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돈주들이 김정은 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는 사례는 탈북민들 입을 통해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2014년 함경북도 혜산시에서 송금업으로 돈을 모은 돈주 두 명이 ‘국정원 공작금을 받은 간첩’으로 몰려 공개 총살형을 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작년 5월 청진에서는 갑부로 통하던 한 사채업자가 자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현금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이 사채업자는 한국의 탈북민이 송금한 돈을 평양에 있는 탈북민 가족에게 넘기다가 북한 당국에 적발됐고, 결국 당국에 재산을 모두 빼앗긴 후 자살했다.

 

평양의 고급 아파트촌. 돈주들이 집중 투자한 평양 아파트 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

 

청진 사채업자의 자살

보위부의 처벌 위협에 시달리는 돈주들의 사례도 많다. 함경북도 무산에서는 중고차 밀수로 돈을 번 돈주가 보위부 간부의 부탁으로 중국에서 돈을 받아 전달해줬는데, 오히려 간첩으로 몰려 3년간 도망을 다녀야 했다. 이 돈주는 도망을 다니다가 포기하고 결국 2014년 말 당국에 전 재산을 바치고서야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지난해 보위부에 1만달러를 내고 처벌을 면했던 한 돈주가 최근 탈북을 감행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잇따르면서 돈주들의 불안감과 불만이 팽배해져 있다는 것이 탈북민들의 전언이다. 보위부 출신의 한 탈북민은 “돈주들은 지난 5월 노동당 대회도 자신들의 돈으로 치렀다고 여길 정도로 김정은 정권에 충성해왔다고 생각하는데 트집을 잡아 재산을 몰수하는 사례가 늘면서 불안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돈을 중국 등지로 빼돌리거나 아는 사람한테 맡기는 돈주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돈주들은 최근 김정은이 “거액의 외화 소지자를 색출하여 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자신들을 겨냥한 조치라고 여겨 불안해 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당과의 공생관계를 통해 돈을 번 돈주들이 대부분인지라 평소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기는 것은 감내해왔지만 김정은 정권이 결국 자신들을 ‘용도폐기’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평양의 한 아파트를 시찰하고 있는 모습. /노동신문

 

평소 돈주들은 보위부뿐 아니라 보안서, 검찰소, 세관장, 군당위원장 등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는 다양한 권력층에 정기적으로 뇌물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들 권력기관의 간부들도 평소 돈주들과 결탁하여 돈을 잘 당겨와야 능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돈주를 손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해지면서 평소 상납을 잘 하지 않던 돈주들부터 간첩으로 몰아 재산을 몰수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권력층들 사이에서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돈주를 처벌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식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권력층들은 간첩 누명을 씌워 돈주들의 재산을 몰수한 후 이 중 일부를 당에 충성자금으로 바치기 때문에 처벌을 당하는 돈주들로서는 억울함을 하소연할 길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돈주들은 북한에서 일종의 신흥 부유층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의 부유층은 북송(北送) 재일동포와 화교들이었다. 일본으로부터의 송금 덕분에 현금 자산이 두둑했던 재일동포들과 이들로부터 사들인 일제 물건들을 중국에 되판 접경 지역의 화교들이 전통적으로 부를 축적한 계층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시기를 겪은 후 북한에 장마당이 등장하면서부터 장사로 돈을 번 토종 부유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신흥 부유층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원자재와 에너지 부족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국영기업들이 많아지자 국영기업에 돈을 대고 놀고 있는 설비를 활용해 생필품을 만들어 장마당에 팔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도 유휴설비를 활용하고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는 명목으로 상납금을 받는 대신 돈주들의 이런 사업 행태를 묵인했다. 특히 공장과 기업소의 자율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에는 이들 돈주들의 자금이 지방의 공장에도 ‘대부 투자’, 혹은 ‘명의 임대’ 방식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국가 무역기관도 좌지우지

돈주들은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더욱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김정은은 2014년 ‘현실 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공장·기업소의 경영자율권을 더욱 확대했다. 이른바 독립채산제를 도입해 원료 조달과 제조 및 판매, 심지어 대외무역 권한까지 각 공장·기업소에 넘겼다. 경남대 극동연구소 임을출 연구실장은 작년 6월 10일 개최된 ‘북한과의 비즈니스와 금융’ 국제학술회의에서 “북한의 공장·기업소마다 경영자율권이 부여되면서 북한 내부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기업소 곳곳에 편입돼 중책을 맡았다”며 “지금 북한 경제는 자금력을 갖춘 돈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돈주들은 공장에서 생필품을 만들어 파는 것을 넘어 과거에는 국가기관들이 독점하던 무역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이들은 자금력을 앞세워 국영 무역회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하면서 중국 등지로부터 대거 물건들을 수입해 오고 있다. 이들은 국영 무역회사 간판을 활용해 수입품을 정식으로 통관시킨 후 교통망이 잘 발달된 평안남도 평성과 함경남도 청진 등에 마련해 놓은 물류기지에 물건을 쌓아놓고 판매자를 물색하는 식으로 사업을 한다. 약 370만대가 보급된 것으로 알려진 휴대폰과 상대적으로 잘 발달된 시외버스망이 이들이 수입품을 판매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업가들 뺨칠 정도인 돈주들의 활동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북한 사회의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한다. 돈주들이 휴대폰, 장마당과 함께 북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3대 요소로 꼽힐 정도다. 임을출 극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앞서 국제학술회의에서 “돈주들에 의한 가장 큰 사회 변화는 고리대금업의 확산으로 사금융은 개인과 개인 사이뿐 아니라 개인과 무역회사, 협동기관, 국가기관들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돈주들이 은행의 기본 업무인 대출, 송금, 환전 업무를 대행하고 나아가 아파트 건설 등 다양한 이권사업에 투자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평양의 아파트 건설현장.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돈주들이 주도하는 사금융이 북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지난 6 28일 수은 창립 40주년을 맞아 열린 ‘북한의 금융: 실태와 과제’ 세미나에서 김영희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북한의 사금융시장이 점차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며 “과거 무담보였던 대출이 월급이나 주택입사증(집문서 격)을 담보로 잡는 대출로 바뀌고 대출 이자도 2000달러 미만은 월10%, 그 이상은 4~7%로 금액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김 팀장은 “돈주가 다른 돈주에게 시중 이자보다 싼 이자로 급전을 빌리는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은행 간 콜과 유사한 돈주 간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돈주들은 투자 분야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컨대 어선에 투자하면 ‘선주’, 광산에 투자하면 ‘광주’, 운송업에 투자하면 ‘차주’, 땅에 투자하면 ‘지주’ 같은 식이다. 돈주들이 집중적으로 투자해온 분야는 부동산과 운송, 광산업 등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아파트 건설은 돈주들이 가장 선호해온 투자 분야라고 한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평양에서 아파트를 한 채 지으면 최소 30% 이상의 이윤이 남는다고 한다. 평양에는 최근 5년간 약 5만채의 아파트가 건설됐는데 국가가 직접 투자해서 건설한 아파트는 5000채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전부 돈주들의 자금으로 지어진 아파트라는 것이다. 평양에 건설되는 고급 아파트의 건설 주체는 형식상 국영기업들이지만 뒤에는 돈주들이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프리미엄 조선’에 ‘얼굴 없는 탈북자 김철추의 북설(北說)’이라는 글을 써온 탈북민 김철추씨는 2000년대 중반 북한 권력기관에 근무할 때 직접 아파트를 지어본 경험이 있다. 김씨에 따르면, 일종의 아파트 건설 허가증에 해당하는 ‘건설 명시’는 그 자체로도 돈이 된다고 한다. 김씨는 기자에게 “건설 명시 하나에 10만달러를 받고 팔 수 있다”며 “내 경우 권력기관에 근무할 때 아파트 건설을 기획해서 내 몫으로 3채를 할당받아 5만달러를 받고 팔았다”고 말했다.

 

北 평양거리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연합뉴스

 

평양 택시 70%가 돈주 소유

작년 4월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김정일의 경호부대가 사용하던 건물까지 돈주에게 팔려 화제가 되고 있다”는 보도도 했다. 평양 시내 노른자위인 중구역 경흥동에 위치한 건물을 돈주가 60만달러에 사서 살림집으로 개조한 뒤 되팔아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운수업도 돈주들이 선호하는 투자처로, 평양에 굴러다니는 1000대가량의 택시 중 약 60~70%가 돈주들의 소유로 알려져 있다. 또 돈주들이 국가로부터 폐갱을 사들여 일당직 노동자를 고용해 석탄 등을 캐는 ‘돈주 탄광’들도 전국적으로 수천 개에 이른다고 한다. 함경북도 은덕군에만 이런 돈주 탄광들이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서방 기자들이 만들어낸 ‘평해튼’이라는 신조어도 이들 돈주들이 만들어낸 ‘별천지’라 할 수 있다. 평해튼은 평양 신흥 부유층의 호화로운 삶을 뉴욕 맨해튼의 생활에 빗댄 말. 한 번에 100달러가 드는 골프와 승마, 스키 같은 고급 스포츠도 평해튼의 돈주들에게는 일상사라는 게 서방 언론의 목격담이다. 북한에 우리의 이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 건설을 계획해온 통일교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가난한 나라인 건 맞지만 평양만 보면 세계에서 달러가 가장 넘쳐나는 곳”이라며 “북한 돈주들의 자금력은 깜짝 놀랄 정도”라고 했다.

 

김정은 정권이 돈주들에게 칼을 빼든 것은 국제 제재로 인해 자금줄이 마른 탓도 있지만 경제 전반에 영향력을 키워온 돈주들이 권력층과 결탁해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임을출 연구실장은 “시장의 발달이 돈주로 불리는 신흥 부유층과 이를 비호하는 부유한 권력층을 형성했고, 신용을 중시하는 등 시장경제의 논리가 북한에 확산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기존 체제에 대한 충성도와 출신 성분에 기반한 계층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는 돈주들의 자금력이 필요하지만, 이들이 북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도로 세력화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돈주들은 정권의 처벌 위협 말고도 여러 요인으로 고통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북한 정권은 돈주들의 수입 장사를 제한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6월 20일 북한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국가 무역기관들이 돈주들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수입한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개인 장사꾼들의 장사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대규모로 물량을 옮기는 것도 단속하고 있다”며 “때문에 돈주들도 무역기관에 이름 걸어놓고 장사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역기관에 소속된 돈주들은 매달 중국 인민폐 1만위안 정도를 해당 기관에 바쳐야 장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5월 열린 北 노동당 7차 대회 사진. /연합뉴스

 

현재 김정은 정권은 지난 5 7차 당 대회 이전에 벌인 70일 전투가 끝난 지 한 달도 안 돼 200일 전투를 다시 선포한 상태. 주민들이 인력 동원 등에 내몰리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장마당이 잘 돌아가지 않아 돈주들의 불만과 우려가 쌓이고 있다고 한다. 사실 북한에서는 시장경제 논리가 번지면서 과거와 같은 인력동원에도 이상 조짐이 보인다는 게 탈북민들의 말이다. 각종 공사판에 동원된 돌격대원들이 일당 벌이를 위해 공사 현장을 무더기로 이탈하는 일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공급 과잉과 대북 제재의 여파로 돈주들이 집중 투자한 평양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돈주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와 관련 보위부 출신의 한 탈북민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공급 과잉된 평양의 고급 아파트들이 지난해의 절반 가격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는데 대북 제재로 가격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걸핏하면 재산몰수와 처형 위협에 시달리는 돈주들의 손해가 누적되어 갈 것이 뻔하다. 돈주들은 앞으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 될 수 있다. 돈주들이 자신의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응책을 들고나올지 모르겠다.”

정장열 주간조선 부장대우 편집=최원철

 

◇ 07월 28일 강력범 속출하자 생계형 범죄까지 총살… 살벌·흉흉한 北

▲ 北 전승절 공연 북한 공훈국가합창단이 27일 전승절(정전협정 북한식 명칭) 경축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28일 조선중앙통신은 “조국해방전쟁승리 63돌을 경축하는 공연이 평양 인민극장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대북소식통 밝혀

도끼 살인·10代 집단 강간

女승객 자전거 기사 퍽치기

신종 범죄에 당국 처벌 강화

 

“돈벌이 위해 뭐든 한다는식

윤리의식 급속도로 낮아져”

 

강력한 대북제재로 북한 당국이 70일 전투·200일 전투 등 무리한 노력동원에 나섰고 이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이 강력범죄 폭증과 ‘자전거 택시 여성 강도’ 등 신종범죄 속출로 표출되고 있다고 28일 정통한 대북소식통이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지역별 긴급 신고전화를 운영하고 생계형 범죄까지 엄벌하며 치안 강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 양강도 혜산시에서 강도가 집주인 머리를 도끼로 내리쳐 살해한 후 시체를 베란다에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최근에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14세 중학생이 10세 소녀를 강간·살해하는 사건이 터지는 등 북한에서 각종 강력범죄가 폭증하고 있다. 이어 비슷한 시기에 중학교 졸업반인 17세 남학생 5명이 같은 학급 여학생을 집단 강간한 사건이 벌어지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국에 ‘학생교양을 잘 할 데 대하여’라는 방침까지 내렸다.

 

또 범죄자 연령 하향화뿐 아니라 여성 범죄자 증가세도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한 교포 사업가는 “여성들이 자전거로 물건을 실어 나르거나 사람을 태우는 이른바 ‘자전거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조용한 곳에 이르면 운전자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금품과 자전거를 훔쳐가는 신종 범죄가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북한 당국은 지역별로 긴급 신고전화 ‘110’을 운영하며 단순 생계형 범죄까지 총살로 처형하는 등 ‘극약 처방’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지난 3월 원산화장터에서 범죄자 11명의 공개처형이 이뤄졌는데 이 중에는 마약 판매상 같은 중범죄자뿐 아니라 이웃이 기르는 돼지를 훔쳐서 장마당에 판매한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지난 4월 말에는 중앙당에서 하부기관에 “최근 발생한 강력범죄를 없앨 데 대한 당방침 집행 투쟁을 벌일 것”이라는 지시문을 하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이 같은 상황은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올해 당대회 등을 계기로 주민들에 대한 무리한 노력동원이 이어지자 돈을 벌기 위한 범죄들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간부 출신 탈북민은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전체적인 윤리의식이 급속도로 낮아진 것이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

 

◇ 08.02 北 해외파견 간부들, 한국産 스마트폰 몰래 쓴다

인터넷 통해 北 외부 정보 습득… 서로 암묵적으로 눈감아주기도

북한에서 해외 근로자들을 감시·통제하기 위해 파견된 당·정 간부들과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삼성·LG 스마트폰을 몰래 사서 사용한다고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1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해외 파견된 북한 간부들과 보위부 요원들이 일반 근로자들에게는 스마트폰 사용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정작 본인들은 해외에서 삼성·LG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상부 허가 없이 인터넷망에 접속해 외부 정보를 습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해외에 나온 북한 간부들이 스마트폰을 사는 목적은 인터넷으로 외부 세계가 북한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라며 "북한 관련이면 아무리 작은 뉴스라도 일부러 찾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김정은 신변 등 '김씨 일가' 관련 뉴스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다른 소식통은 "일부 간부는 해외 정보 수집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쓰지만 대부분 중국산을 이용한다"며 "한국산 스마트폰을 쓰면 자기들 정보가 한국에 넘어갈 수 있다고 의심한다"고 말했다. 파견 간부 외 일반 근로자들도 스마트폰으로 대북라디오 방송 등을 듣는 것으로 전해졌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이 단속하지만, 간부들끼리 스마트폰 사용을 서로 눈감아주기 때문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김명성 기자

 

◇ 08-03 北 건설현장 실적 높이려 마약 제공? “마약 관련 낙서 무더기 발견”

북한 평양의 ‘여명거리’ 건설현장 간부들이 공사 실적을 높이기 위해 건설자들에게 공공연하게 마약을 제공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건설현장에서 마약과 관련된 비판성 낙서가 무더기로 발견돼 당국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2일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자강도의 한 소식통은 “평양시 여명거리 건설장에서 정치적 색채가 있는 낙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며 “수사에 착수한 평양시 인민보안부(경찰)가 건설자들에게 모든 낙서행위를 엄벌한다는 경고를 내렸다”고 1일 말했다.

 

건설현장에서 발견된 낙서들은 ‘평양속도’라는 돌격대 구호를 조롱하는 내용으로, 이는 북한 당국이 속도전을 강조하며 무리하게 공사를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소식통은 “문제의 낙서는 여러 가지 지저분한 낙서들 속에 섞여 있었는데 ‘돌격대는 마약대’, ‘평양속도는 마약속도’ 등 마약에 관련된 내용”이라면서 “여명거리 건설장에서 공사실적을 높이기 위해 간부들이 건설자들에게 공공연히 마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평양시 인민보안부는 7월 27일 평양 용남산 지구 입구의 기숙사형 주택(원룸) 건설현장에서 이 같은 낙서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즉각 출동, 현장에서 발견된 술병과 담배꽁초들을 회수했다. 또한 해당건물을 맡은 평안북도 여단 돌격대원에게 문제의 낙서를 한 자들의 자수를 받아내라고 독촉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로 지난 4월 착공한 여명거리 건설 사업과 관련, 속도전을 강조하며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여명거리의 70층짜리 아파트 골조 공사를 74일 만에 완성했다며 “눈부신 기적을 창조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다. 신문은 건설자들이 모의훈련 등을 통해 한 개 층의 골조를 올리는 데 드는 시간을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했으며, 이달 들어서는 다시 16시간으로 줄였다고 주장했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 08.06 北, 돌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금지곡 지정

김일성·김정일 때도 불리던 노래 김정은 "통일아닌 군사강국 돼야"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한에서도 자주 불리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최근 금지곡이 됐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5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지난 2일 RFA에 "얼마 전 중앙에서 주민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금지곡으로 선포했다"며 "지금껏 통일을 강조하며 남북이 함께 부르던 노래를 갑자기 금지한 데 대해 주민들이 의문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선포하면서 김정은이 전달한 지시문에는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군사 강국이 되는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집권 후 주민들에게 "통일은 구걸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핵보유국, 군사 강국이 되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라고 선전해왔다.

 

RFA는 "김일성 시대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는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대중 가요였다"며 "김정은이 체제 불안을 감추기 위해 멀쩡한 통일 노래에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전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시대 북한은 '한반도 통일'을 남한에 의한 흡수 통일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며 "남북의 국력 차가 크게 벌어진 결과"라고 했다.

김명성 기자

 

◇ 08월 11일 김정은, 東海 조업권도 중국에 年820억 받고 팔았다

中에 서해합쳐 年7500만달러

2500여척 中어선 조업 정황

 

무역사 통해 통치자금 유입

“앞으론 北당국 직접 나설듯”

 

북한이 서해에 이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조업권도 중국 불법어선에 판매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의 동·서해 조업권 중국 판매대금은 연간 7500만 달러(약 820억 원)에 이르며, 모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자금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분석됐다.(문화일보 6월 17일자 8면 참조) 11일 정보당국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서해에 이어 동해 NLL 조업권도 중국에 팔아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며 “최근 동해 NLL 북쪽 해상의 조업권을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중계무역회사를 통해 중국 어선이 한반도 동·서해에서 조업할 수 있는 권한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북한 당국이 직접 조업권 판매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은 지난 2004년 동해 공동어로협약을 체결해 중국 어선의 조업을 허락했지만, 이 협약에서 NLL 인근까지는 조업구역이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지금까지 이 협약이 유지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중국이 동해 NLL 근처의 조업권을 사들여 중국 어선 900∼1000척이 조업하고 있는 것이 식별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동·서해 조업권 판매 계약으로 조업에 나서는 중국 어선은 전체 2500여 척에 이른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조업권 판매로 7500만 달러를 벌어들여 김 위원장의 통치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조업권 판매 지역과 금액보다 확대된 규모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30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서해 NLL 조업권을 올해 판매했다”며 “평년의 3배에 달하는 1500여 척에 조업 권리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2013년부터 해마다 연말이면 ‘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회의’를 열어 수산물 증산을 독려해 왔지만 올해 1월 초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달러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동·서해의 황금어장을 중국에 내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올해 4∼6월 국제무역통계 분석결과, 북·중 교역 규모는 크게 감소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미 국가안보국(NSA) 동아시아 국가정보조정관 선임보좌관을 지낸 윌리엄 브라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한미경제연구소에 게재한 논문에서 “올해 4∼6월 모든 유럽 국가의 대북 무역규모는 500만 달러 수준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절반에 머물렀지만 북·중 교역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8% 감소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 08.12 김정은, 西海 이어 東海조업권도 中에 팔아 年 820억원가량 챙겨 통치 자금으로 돌려

유엔제재로 외화벌이 막혀 비상 中어선들 동·서해 넘나들며 한국과 마찰 끊이지 않을 듯

북한이 서해에 이어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조업권도 중국에 팔았던 것으로 11일 드러났다. 이처럼 북한이 동·서해 NLL 조업권을 중국에 판매해 챙긴 수입은 연간 7500만달러(약 820억원)에 달하며, 이 돈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 자금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은 중계무역회사를 통해 중국 측에 조업권을 팔았지만, 앞으로는 북한 당국이 직접 조업권 판매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북·중은 지난 2004년 동해 공동어로협약을 체결해 중국 어선의 조업을 허락했으나, 군사 지역인 NLL 인근은 조업 구역에 넣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소식통은 "지금까지 이 협약이 유지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최근 동해 NLL 인근에서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이 900∼1000척에 이르는 것으로 식별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의 동·서해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2500여 척에 달한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연말이면 '인민군 수산 부문 열성자회의'를 열어 수산물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의 이런 지시를 '애민(愛民)'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동·서 해 조업권을 중국에 판매함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수산물 증산 지시 이행과 중국 어선과 경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에서 조업권을 산 중국 어선들이 NLL을 남북으로 넘나들 경우, 우리 해군·해경 및 어민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최근 중국 어선이 남북 중립수역인 한강 하구까지 불법 침입해 우리 군·경이 퇴치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김명성 기자

 

◇ 08.17 北 해안경비대가 저지른 예성강 장어잡이 어부 학살사건의 진상은

▲ 강화도에서 바라 본 북한 예성강./ 자료사진

 

북- 중 국경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다. 그래서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국경을 통해 중국과 한국으로 탈북한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경을 통한 탈북민이 늘어나자 북한 정권은 국경 현지에서 탈북민을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라는 지시를 국경여단에 하달했다.

 

2014년 8월 북한을 탈출한 평양 출신 김 씨는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탈북민 학살에 대해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김 씨는 북한 정권의 탈북민 학살은 국경뿐 아니라 서해와 연결된 예성강 저수지(댐)에서도 일어난다고 전했다.

 

예성강은 북한 황해북도 지방을 흐르는 강이다. 이곳은 장마철이면 비가 심하게 내리는 지역으로 상류보다 하류에 무더기 비가 집중된다. 예성강에는 장마철을 대비하여 물량을 조절하는 수문과 높은 철 다리가 있다. 또한, 다리에서 20m 떨어진 곳에는 북한군 해안경비대가 있으며 수시로 순찰을 진행한다.

 

수심이 깊은 저수지에는 뱀장어(장어)가 많이 번식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주변 주민들이 작은 어선으로 장어잡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어를 잡아 쌀과 함께 어죽도 해먹고 소금에 절여 부식물로 이용했다.

 

이렇게 시작한 장어가 달러로 팔리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장어 1마리당 1달러를 받고 사들이면서 장어 잡는 사람 수가 급속히 늘어났다.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발동선도 없는 작은 어선으로 장어잡이에 나섰다.

 

장마철이면 저수지에 물이 상당히 불어난다. 이 시기에는 물 밑에 살던 장어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오면서 장어 수확량이 가장 좋다. 북한 정권은 어부들이 장어잡이를 못하게 단속하지만, 야밤을 이용해 장어잡이를 나서는 그들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3년 전 8월 어느 날 예성강 저수지에서 크고 작은 배들이 등불을 켜고 밤늦도록 장어잡이를 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어부들은 비닐하우스를 쓰고 배 위에서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이때 북한 해안경비대가 확성기를 들고 "장맛비로 언제가 위험하다. 이제 곧 두 개의 수문을 열 예정이니 모든 배는 뭍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허둥지둥 뭍으로 뱃머리를 돌렸고, 깊은 잠이 든 배꾼들은 여전히 저수지 물 위에 떠 있었다.

 

해안경비대원들은 “방송을 듣고도 뭍으로 돌아가지 않은 배들은 탈북을 목적한 것으로 취급한다.'고 경고했다. 아무리 방송을 해도 어둠 속에서 깊은 잠이 든 어부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수문이 열렸다. 한 개의 수문이 열리면 거대한 파도가 형성된다. 두 개의 수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어둠 속에 파묻혔던 배에서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렸다.

 

작은 어선들은 파도에 뒤집히고 사람들은 두 손을 허공에 내밀고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해군은 사람부터 구조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북한 해군경비대가 내민 것은 구명조끼가 아닌 총부리였다.

 

군인들은 서해로 떠내려가는 배를 향해 포사격을 가했다. 이어 파도에 밀려가는 어부들에게 자동소총 사격을 가해 물에서 숨지게 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북한군 해병들은 공해상으로 떠내려가는 어부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그대로 집행하였다.

 

북한정권은 공해로 떠내려간 배꾼들이 국군 함정에 발견되면 무조건 구조될 수 있다고 타산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 어부가 남한으로 귀순하게 된다. 탈북민이 늘어난다는 것은 북한 정권의 허점이 그만큼 드러난다는 산 증거다. 이를 막기 위해 북한 정권은 생존을 위해 장어잡이에 나선 어부들을 현지에서 학살하는 만행을 감행했다.

 

숨진 배꾼들이 죄라면 잠이 들어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지 못한 죄다. 그들은 수면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북한군의 사격목표가 되어야 했고, 죽어서도 탈북을 시도했다는 대죄로 낙인되었다.

 

끝으로 김 씨는 예성강 저수지에서 일어난 어부학살사건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1997년 처음으로 일어났고. 현재도 번번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만이 북한정권의 주민 학살을 멈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주희 뉴포커스 기자

 

◇ 08-22 영국 북한 외교관 김정일 사진 찢는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6p99tnV2ZY

 

이 사건은 최근 아래의 기사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사건의 동영상이 마침 있어 올립니다.

 

사진을 아예 가로로 다 찢은 건 아니지만 찢고 나서 손으로 마구 구겨버립니다. 이 사람이 문명신 2등 서기관인가 봅니다.

 

사진을 찢은 뒤에 북한 외교관 두 명이 황급히 그쪽으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들도 속으로 큰일 났다 싶었겠죠.

 

최근 한국에 입국한 북한 최고위급 외교관 출신 태영호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근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찢은 외교관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주영 북한대사관에서 청소와 식사 등을 담당했던 조선족 여성을 통해 “태영호 공사가 김정일의 사진을 찢은 문명신 2등 서기관을 북한정권으로 보호했었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에 따르면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탈북자들이 북한공관으로 몰려와 ‘김정일 사망 축하 만세’를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저지하려던 문명신 2등 서기관은 탈북자들이 붙여 놓았던 김정일의 사진을 찢었다.

 

여성은 “북한대사관 내에서는 김정일의 추모 행사가 끝난 후 연일 이 사건과 관련해 심각한 회의를 열었다”며 “문밖으로 간간히 새어 나오는 ‘살리자,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태 공사의 절절한 목소리를 우연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주영철 1등 서기관과 문명신 2등 서기관 대화 중에 ‘너를 살린 것은 비서 동지(태영호)다. 앞으로 잘해라’라는 얘기를 들었고 “태 공사가 문 서기관을 살렸구나,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RFA는 “북한에서 김씨 부자의 초상화는 신성불가침 존재”라며 “이런 사진을 찢는다는 것은 실수든, 실수가 아니든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주성하 기자

 

◇ 09.08 北주민들에게 한국 돈이 행운(幸運)의 상징물이 된 이유는?

/조선DB.

 

최근 북한에서 남한 돈이 행운을 부르는 기념품으로 유통된다고 한다.

 

2016년 1월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 장 씨는 북한에 살 당시 남한 돈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는 중국 돈이 내화 돈처럼 유통된다. 달러나 엔은 돈을 바꾸어주는 '돈 시장'에서 중국 돈으로 교환해서 쓴다. 반면 북한 돈은 철부지 아이들도 욕심내지 않을 정도로 가치가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시장이나 큰 장사(장거리 장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요즘 들어 남한 돈을 행운의 상징으로 가지고 다닌다.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돈은 물건을 살 수 있는 화폐가 아니라 귀한 보물과도 같다.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들어 온 남조선 옷과 가전제품을 쓰면서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은 점점 높아졌다. 그래서 남한 돈의 가치도 당연히 높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장 씨는 "남한 돈은 중국과 거래하는 밀수꾼들을 통해 북한에 들어온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일하다 들어 온 해외노동자들에 의해 북한에 유통되었다. 주민들은 달러나 엔 중국 돈 시세는 알고 있지만, 남한 돈 시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우선 남한 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에서 불법이며 공식적인 환율이 없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돈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한 돈이 가장 가치 있는 돈으로 취급된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무런 쓰임이 없지만, 남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민 청진 출신 최 씨는 "2007년 중국과 인접한 혜산세관을 통해 한국 중고 옷을 포대 채로 넘겨받았다. 포대를 열어보니 가죽점퍼를 비롯한 청바지 등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옷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집에 와서 옷에 달린 주머니를 보다가 한국 돈을 발견했다. 천원, 만원, 지어 오만 원도 나왔다. 남한 돈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감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찼다."고 증언했다.

 

"장사를 하면서 달러나 중국 돈은 매일 만져보지만, 남한 돈을 가졌다는 것은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다. 하지만 보위원에게 적발되면 괜히 의심을 살 것 같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만 행운의 상징으로 돈지갑에 간수했다. 나머지는 가족들만 알 수 있는 은밀한 곳에 감추어놓았다. 지금도 탈북 전 남한 돈을 보여주면 부러움이 가득 한 눈으로 바라보던 친구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은 남한 돈을 값비싼 기념품으로 생각한다. 비록 오랜 분단으로 갈라져 살고 있지만 발전된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한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남한 돈은 북한 주민들에게 돈이 아닌 행운의 상징으로, 통일되면 꼭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희망과도 같은 존재다."고 강조했다.

글 | 박주희 뉴포커스 기자  

 

◇ 09월 21일 “北주민 바람불면 남쪽하늘 본다… 달러 든 풍선뜨길 바라며”

북한 민주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귀순용사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이 김정일 체제 변화를 위한 신념을 역설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

 고랑포 제1땅굴 관리·경계하다

37년전 서부군사분계선 넘어와

당시만해도 ‘귀순용사’로 환대

北 암살지령 내려…그림자경호

 

소개팅서 만난 서울여자와 결혼

남한‘제2 조국’ 아닌 그냥 조국

목숨 내놔야한다면 안망설일것

 

USB·삐라 보내야 北정권 타격

北당국 ‘심리전’ 두려워하는데

전단 반대하는 정치권 이해안가

 

金, 성과 과시하고픈 조급증탓

金체제 1~2년내 정착 못하면

核통한 ‘통일대전’ 도발할수도

 

인터뷰가 끝나고 배웅을 했다. 그는 헤어지는 순간, 못다 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다시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게 내가 돼도 추호도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눈가에는 북한과 한국, 두 조국에서 살아야 했던 회한이 얼핏 스쳐 갔다. 북녘 수용소에서 차갑게 숨져간 아버지와 동생들의 얼굴도 떠올리는 듯했다. 총총히 떠나는 뒷모습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안찬일(62)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은 탈북자다. 북한 정찰총국이 암살지령을 내린 8인의 주요 탈북자 중 한 명이다. 외출 시에는 한국 정부의 경호원이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1997년 피살당한 ‘제2의 이한영’(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추석 연휴 전인 지난 12일 이뤄진 만남도 안전상 문화일보 5층 편집국 인터뷰실에서 이뤄졌다.

 

서부 군사분계선(MDL) 철책을 넘은 지도 37년이 흘렀다. 1979년 7월 27일 한창 젊었던 25세 나이였다. 북한 인민군 2군단 소속 부소대장, 계급은 상사였다. 그는 경기 연천군과 파주시 문산을 마주 보는 휴전선 전방부대에서 근무했다. 임무는 고랑포 제1땅굴 관리 및 경계였다.

 

1970년대 말 김일성은 대남기습 공격을 노리고 전방 3개 군단에 각각 4개의 남침용 땅굴을 파라고 지시했다. 안 회장은 “낮에 공병들이 땅굴을 파면 시멘트를 날라다 주고, 밤에는 땅굴 초소경비를 지휘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해서 땅굴 구축작업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수시로 직접 땅굴을 점검했다. 오 부장이 뜨면 별이 3개였던 이두익 2군단장도 부들부들 떨었다. 지적사항이 나오면 목이 한숨에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12개의 땅굴을 팠는데 1994년 고랑포 1땅굴을 포함한 5개가 발견됐으니 7개가 남아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물론 땅굴 공사가 모두 성공했을 경우다. 서울 변두리까지 도달하는 북한의 비밀 땅굴이 있다는 루머가 지금도 돌지만 모두 근거 없는 헛소문이다. 그는 “땅굴은 4∼7㎞ 정도밖에 파지 못한다”며 살짝 웃었다.

 

탈북자 3만 명 시대인 지금은 인민군 출신들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귀순용사’로 커다란 환대를 받았다.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 가격 두 채에 해당하는 정착금을 지원했을 정도였다. 귀순 동기가 궁금했다. 그는 9년 동안 군복무를 했다.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진격한 인민군 참전용사로 출신 성분도 좋았다. 그는 김일성 정치대학에 들어가 정치장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북한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김일성-김정은 세습체제의 비합리성도 지적했다. A5 용지 다섯 장 분량의 편지를 북한 당국 앞으로 보내고 탈북을 결행했다. ‘가족들의 신변 걱정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았다”고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근 읽은 안 회장의 1997년 저작 ‘주체사상의 종언’ 얘기를 꺼냈다. 안 회장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주체사상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남한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존재를 북한은 유교풍토에 기반한 최고정점인 어버이 수령으로 대치시켰다. 그는 서문에서 “북한 전문가들을 북한을 가장 전문적으로 틀리게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혹평이 있지만 북한에 무슨 올바른 통치구조와 통치이데올로기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고 적었다. 또 “북녘땅 어디엔가 나의 혈육이 살아 있다면 오늘 (출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언급했다. 귀순 이후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에는 ‘공화국은 군대가 지키고, 군대는 인민이 지킨다’는 말이 돈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지 않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듯 북한에서는 군대가 마을에 나타나면 집으로 달려가 식량과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인민군이 주둔하면, 백리 반경에는 가축과 처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비아냥도 있다. 과거의 김일성-김정일시대와 달리 김정은 체제는 절대충성심이 떨어진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 회장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도로와 항만, 댐 건설에 노동집약적으로 군인들을 부리고, 핵폭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9월 9일 5차 핵실험으로 화제가 돌아갔다. 안 회장은 한반도 정세가 앞으로 수년 안에 커다란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1∼2년 안에 정착되면 핵미사일 카드를 꺼내지는 않겠지만, 체제 불안이 극대화되면 핵미사일 카드를 써서 통일대전의 도발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북한의 잦은 숙청과 연이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도발은 그만큼 가변성이 높은 작금의 북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무모한 도발로 나올 불안정한 정서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어려서 스위스 유학을 갔는데 사실은 도피성 유학이었다”며 “3형제 중에서 가장 어렸고 처음에 후계구도 반열에 오르지 못한 그가 권력을 장악하리라고 확실하게 예상한 사람은 북한 내부에서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빨치산 1세대와 후대에게 확실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을 갖고 있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안 회장은 “김 위원장이 ‘당신들처럼 북한에 살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았지만, 선대도 못한 조국통일의 대업을 내가 완성한 핵무기로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의 마음속에는 항상 도피의식과 분노의식이 잠재해 있다고 바라봤다. 김정은의 불안한 정서가 서둘러 핵실험을 감행하게 만들고 있고, 제대로 조절되지 못한 충동으로 한반도가 전면전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다.

 

핵탄두 실전배치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핵탄두를 노동당 군수 공업부에서 미사일 전략 사령부로 이관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김 위원장은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 이전에 핵탄두 실전배치를 완료하는 속도전으로 나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5차 핵실험에서 사용된 핵탄두는 소형경량화된 500㎏ 정도이고, 수소폭탄일 가능성도 있다고 파악했다. 북한 4차 핵실험을 핵증폭 분열탄이라고 한다면 다음 단계는 수소폭탄 실험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스커드 B와 C, 노동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려면 500㎏이 최적화된 중량이라고 평가했다.

 

남한 사회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는 “북한보다 남한에서 더 많이 살았으니까 이제는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6·25전쟁을 북한이 일으켰다는 소리를 듣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왔던 학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북한의 세뇌교육 결과였다. 북한은 지금도 ‘미국이 와서 우리를 모두 몰살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살길이 열린다’고 교육한다. 외부와 차단된 폐쇄사회인 북한체제 유지의 비결인 셈이다. 안 회장에게 대한민국은 제2의 조국도 아닌 이제는 그냥 조국이다. 그의 두 아들은 지금 미시간 주립대에 다닌다. 현대건설 해외인력 관리부 근무 중 7번째 소개팅에서 만난 ‘서울 여자’와 결혼했다. 군복무만 해서 연애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는 요즘 신문 기고와 방송 출연을 통해 심리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 회장은 “북한 당국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심리전”이라며 “DVD와 USB, 전단(삐라) 등을 북한 내부사회로 유입시켜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북한에 전단과 1달러와 5달러, 10달러 지폐가 담긴 풍선조차 띄워 보내지 못하게 하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에서 보통 교장선생님 한 달 월급이 500원인데 1달러 한 장만 주워도 한 달 월급이라는 것이다. 20달러를 주우면 1년 연봉을 훨씬 넘게 벌게 된다. 안 회장은 “북한에서는 바람이 불면 주민들이 남쪽 하늘을 쳐다본다”며 “함께 들어있는 전단의 내용도 읽게 돼 북한체제를 흔들 수 있는 커다란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아직도 햇볕정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며 “일각에서는 ‘풍선 보내고 전단 뿌리는 행위를 ‘전쟁을 하자는 거냐’고 바라보고 있는데 현실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의 대북제재는 ‘교장선생님 훈시’일 뿐 김정은 정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고향인 평안북도 신의주 얘기를 꺼내자 그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다시 ‘고향 집 생각’을 묻자 “가족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 회장은 2남 4녀 중 장남이었다.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귀순 바로 이튿날 아버지와 남동생 1명, 여동생 3명이 모두 강제수용소로 끌려갈지는 몰랐다. 출가한 누나만이 화를 면했다.

 

그는 “화교를 통한 브로커들이 연결해 줘서 2000년대 초반 신의주에서 살고 있는 누나와 간신히 통화를 했다”며 “누나에게서 가족들이 요덕수용소에서 맞아서 죽고 얼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뭐 그렇게 거기서 살아 나온다는 게 쉽지가 않다”고 말하는 목소리 끝자락에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이 묻어났다.

인터뷰 = 이제교 차장 (정치부) jklee@munhwa.com

 

◇ 10.10 북핵 10년 북 주민들 "이러다 굶어죽겠다… 그놈의 핵실험 이젠 그만"

▲북한 김정은이 핵 미사일 개발을 대내외에 자랑하고 있지만, 핵실험을 바라보는 북 주민과 인민군 장병들의 불만은 상상을 넘어선다. "이러다 굶어죽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다음은 TV조선 보도 원문.

[앵커]

북한 김정은이 핵 미사일 개발을 대내외에 자랑하고 있지만, 핵실험을 바라보는 북 주민과 군인들은 냉소적이고 불만도 큽니다. "이러다 굶어죽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데, 4차 핵실험 직후 터져 나오는 북한 주민들의 육성을 김미선 기자가 단독 입수해 보도합니다.

 

[리포트]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인민군 장병의 불만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인민군 장병 "이 개**들(간부) 아첨하느라고 그저 그냥 미친 김정은이 이래 황병서 이래, 이거 얘들 본받아서"

 

영하 20도의 날씨에 강행한 자축 군중대회를 얘기할 땐 화를 주체하지 못합니다.

 

무역회사 직원 "3시간 동안 부들부들, 지금 영하 20도인데 손발이 꽁꽁 얼게 만들고 이게 완전히 미쳤던데"

 

밀무역자들은 강화될 대북제재에 먹고살 걱정뿐입니다.

 

밀무역자 "중국에 가서 물건 좀 들여오려고 하는데 이게 큰일이여. 그나마 그거 가지고 먹고 살았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그놈의 핵실험 이제는 그만했음 좋겠수다"

 

인민군 장병 "핵실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그거에 대해 관심이 없고요. 왜 물어보는데요?"

 

무역회사 직원 "밀수도 하고 썩은 강냉이도 들어오니 그나마 거기서 보탬 해서 쓰는데 못하게 하면 여기 사람들 다 굶어 죽지 싶습니다."

 

북한 주민들 목소리엔 핵에 대한 시각 변화가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최정훈 / 북한인민해방전선대표

 

"90년대 이후부터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걸린 지금 시점에서 계속 핵실험을 하는 것에 대한 북한 주민들은 전혀 생각이 다른 거죠."

 

핵실험이 다섯번 진행된 풍계리 주민들은 귀신병이라는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정은의 핵 미사일 폭주에 주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TV조선 김미선입니다.

 

◇ 11.03 북한 일부 지방에서 '1번 동지' 호칭 등장

"출신성분 좋은 간부에 붙여… 김정은 권위 떨어졌단 의미"

  북한 일부 지방에서 '1번 동지'라는 호칭이 특권층을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일 함경북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최근 도당 책임비서(우리의 도지사 격)나 부서 책임자들이 '1번 동지'로 불리고 있다"며 "이런 변화는 아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방 하급 간부들이 자신의 상관이 최고라는 의미로 부르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출신 성분이 좋은 간부들은 지역에서 자신만의 소(小)왕국을 구축하고 '1번 동지'로 행세하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함경북도 부령군 책임비서인 고응선은 이 지역에서 대표적인 '1번 동지'로 꼽힌다고 한다. 고씨는 그의 할아버지인 고재룡이 1927~30년쯤 김일성과 중국 지린성 위원(毓文)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인연을 내세우 며 지방 실세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1번'이나 '1호'가 들어가는 호칭은 주로 최고 지도자에게만 붙이는 것으로 주민들에게 인식된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2013년 12월 처형된 장성택 판결문에 그의 측근들이 장성택을 '1번 동지'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있다"며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김정은의 권위가 떨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했다.

김명성 기자

 

◇ 12.14 "北 항일 유적지에서 '김정은 타도' 전단 살포… 벽에 '김정은 처단' 글귀도"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혁명유적지로 선전하고 있는 보천보에서 '김정은을 타도하자'라는 내용의 전단이 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 14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양강도 혜산시의 한 소식통은 RFA "보천군 보천시장가는 길목에서 '김정은 타도하자'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살포됐다" "중앙에서 급파된 '중앙당 검열그루빠'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당국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전 군민을 대상으로 필체조사를 벌이고 있다" "심문조사를 벌이는 한편 불의의 시각에 가택수색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보천군 주민들의 이동을 전면 금지했다" "주민들은 중앙당 검열그루빠의 조사 때문에 생계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도 RFA "청진시에서 제일 큰 장마당인 수남장 마당의 한 벽에서 '인민의 원쑤 김정은을 처단하라'는 글이 쓰여 큰 소동이 벌어졌다" "오전 5시쯤 야간 순찰대가 문구를 발견, 주민통행을 금지시켰지만 벽보 내용은 삽시간에 알려졌다"고 전했다. RFA "김일성이 '일제를 타도하자'고 외쳤다는 혁명유적지에서 '김정은 타도하자'라는 전단이 살포될 정도로 북한 내부 사정이 흉흉한 것이 현실"이라고 보도했다.

김상윤 기자

 

◇ 12-15 ‘어로전투’ 내몰린 北어민 “동해는 죽음의 바다였다”

北선박 3척 표류하다 발견돼… 10여명 굶어죽고 7, 8명만 구조 
14, 15명 탄 배에 나만 살았다” 

 

무동력 고기잡이 배 등 북한 선박 3척이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우리 군경에 잇달아 발견됐다. 구조된 선원은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가 표류하다 굶어 죽었다”고 진술했다.  

 

14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해경과 해군은 11, 12일 동해상 우리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북한 선박 3척을 구조했다. 2척은 고기잡이 목선(木船)이고 나머지 1척은 예인선에 딸린 보조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박들은 모두 엔진이 고장 났거나 동력장치가 없는 배였다고 한다. 

 

3척의 배에 타고 있던 선원 7, 8명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최소 10여 명이 이미 아사(餓死)한 것으로 보인다. 생존 선원들은 길게는 두 달 이상 표류하면서 물과 이렇다 할 식량 없이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는 이들을 합동신문하면서 표류하게 된 과정을 조사하는 한편 귀순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일부 선원은 북한 송환을 강력히 요구해 조만간 판문점을 통해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송환을 요구한 한 선원은 “(내가 탄) 배에 14, 15명이 타고 있었는데 표류 과정에서 다 굶어 죽었다. 갑판 위에 방치됐던 시신들은 높은 파도에 휩쓸려 모두 바다에 빠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극심한 식량난에 봉착한 북한 정권이 ‘어로(漁撈) 전투’라는 이름으로 수산물 증산정책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주민들이 낡은 배와 열악한 장비에도 무리하게 출어하며 ‘죽음의 바다’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12.23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서쪽으로 272km 떨어진 사르노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서쪽으로 272km 떨어진 사르노프. 

바르샤바에서 구불구불한 국도를 4시간 달려야 나오는 이 시골 마을이 지난해 발칵 뒤집혔다. 동양인을 찾기 힘든 이곳에 북한 여성 60명이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다. 폴란드 인력 송출회사를 통해 들어온 이들은 48 m²( 145400)의 거대한 무라스키 토마토 농장에서 일한다. 기자는 최근 이 농장을 방문해 해외에 파견된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30, 40대인 여성들은 높고 단단한 철창으로 가려진 농장에서 매주 6, 하루 10시간 넘게 토마토나 꽃을 딴다. 숙소도 농장 안에 있어 24시간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폴란드 국가노동감독원은 올해 6월 말 예고 없이 농장을 방문해 고용실태 조사를 벌였는데 북한 여성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독관이 여권을 압수한 것이다. 


 이들이 농장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장을 보러 갈 때다. 이들은 농장에서 500m 떨어진 작은 슈퍼마켓을 이용한다. 5km 떨어진 곳에 값이 싼 대형 마트가 있지만 노출을 꺼려 가지 않는다. 슈퍼마켓 종업원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하루 30, 40명의 여성이 와서 계란이나 채소를 사간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꼭 버스 한 대에 같이 타고 온다”고 했다. 다른 종업원은 “남자들도 한두 명 따라 온다”고 전했다. 여성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감독관이다. 


 올해 7월 몰타가 북한 노동자를 추방하면서 폴란드는 유럽에서 북한 노동자가 일하는 마지막 국가가 됐다. 현재 폴란드에 남아 있는 북한 노동자는 410여 명, 그중 여성은 약 100명이다. 남자는 주로 용접 건설 건축업에, 여자는 농업에 종사한다.

 

http://voda.donga.com/3/all/39/805721/1  - 러시아 벌목공의 임금은?

사르노프=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12-26 카타르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바지 왼쪽 주머니에 영국산 담배 한 갑을 찔러 넣었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이역만리 사막에서 고생하는 북한 노동자에게 작게나마 위안을 주고자 하는 동포애였다. 반대편 주머니에는 녹음기를 켠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혹시나 북한 노동자에게 끌려가 낭패를 당할 때를 대비해 증거라도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였다. 아무리 동포라지만 휴전선을 두고 총을 겨누는 사이이지 않은가.  

 

얼마 전 김정은 북한 정권의 돈줄로 혹사당하는 해외 주재 북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 실태를 취재하러 북한인 2600여 명이 일한다는 카타르에 갔을 때 ‘분단된 한민족의 역설’을 절감했다. 그동안 탈북자는 여럿 만났지만 대한민국에 핵을 겨누고 위협해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을 눈앞에 두고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앞에서 그렇게 서성거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시 쉬려는 듯 공사 현장 밖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기자와 비슷한 30대 초반 남성으로 보이지만 키가 160cm가 채 안 됐다. 깡말랐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북조선에서 오셨습니까. 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얼굴이나 보려고요.”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일부러 북한식 표현을 썼다. 잠시 흠칫하던 그는 “혼자 왔습니까?”라고 되묻더니 공사장 뒤편 어둠 속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두려움이 덧없는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며 그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부모와 처자식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북한 건설사에서 주는 식사가 형편없어 처음 보름 동안은 거의 먹지 못했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고향 생각이 날 때면 국수 한 그릇이 간절한데 50리얄( 17000)이나 되는 가격에 엄두를 못 낸단다.  

 

김정은 정권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큼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건 인민군으로서 남한에 총을 겨눴을 그가 너무나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기자에게 ‘독신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결혼을 일찍 해 아이가 있다면서 독신인 기자가 부럽다고 농담을 건넸다. 한국의 내 또래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동무들이 찾겠다’며 10분 남짓한 대화를 마친 그는 “싫어하지 말라. 남조선 사람 만나는 건 절대 금지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앞으로 내가 정문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종종 보자”며 돌아갔다. 생애 처음 만난 남한 사람이었을 기자에게 그 역시 동포라는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른 북한 노동자들도 동포애로 기자를 대해줬다. 공사 현장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에게 “꼬레아?”라며 먼저 말을 걸더니 “안녕하십니까!”라고 목소리 높여 반겨주는 이도 있었다. 유학생이라고 신분을 감춘 기자에게 “통일 되면 공부한 거 우리 대학생들에게 배워주라(가르쳐 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집단폭행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카타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600여 명은 임기 3년 동안 월급의 80%를 북한 당국에 떼이고 150200달러만 받으며 주 6일 하루 14시간 사막에서 혹사당한다. 처지를 비관해 숟가락을 삼키거나 고층 빌딩에서 투신해 자살할 만큼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런 카타르에서의 삶이 북한에서의 그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사실이다. 집권 5주년을 맞은 김정은이 입에 달고 산다는 ‘인민 사랑’의 참혹한 실체다.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