凍土의 獨裁者 이야기 2/ 김정은은 누구? 1- 진쌍판의 두 얼굴 - 악마와 싸우는 투사 - 진쌍판 獨裁王朝를 解剖하다 - 대를 잇는 잔인성
凍土의 獨裁者 이야기 2/ 김정은은 누구? 1
■ 김정은은 누구?
● 2017.02.23 김정은은 김옥의 아들일까
▲2012년 7월 26일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가한 김정은 리설주 부부의 뒤를 김옥
(동그라미 안)이 멀찌감치 따르고 있다. 이 준공식은 김옥이 등장한 마지막 행사다.
동아일보DB
김정남이냐, 김정은이냐.
김정일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정은을 선택한 것이 합리적인 듯 보인다
정남은 장자이고 김일성도 인정한 손자이나 약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열 살 때 스위스로 유학을 보냈더니 자유분방한 청년이 돼 돌아왔다. 20대엔 여자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평양시내를 질주했다. 그것까진 부전자전이라 친다 해도 북한에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북한에선 용납되기 힘든 생각이다. 정남이 집권하면 기득권층인 간부들이 단합해 제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걸 이겨낼 권력 의지가 정남에겐 없어 보였다.
유약한 성격 때문에 애초에 지도자감이 아닌 차남 정철은 제쳐놓고, 3남 정은은 어떤가. 나이가 어린 게 최대 약점이지만 권력 의지가 강하다. 그러면 제거되기 전에 먼저 남을 제거할 수 있고,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상관없이 제도도 필요한 대로 고쳐서 활용할 수 있다.
정남은 혈통을 따져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가 김정일이 딸까지 있는 유부녀를 가로채 낳은 자식이란 소문이 퍼지면 김정일은 죽어서까지 파렴치한 불륜범으로 매도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성혜림은 유명 배우였던지라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북한에 너무 많다. 김정일은 그에 비하면 정은의 혈통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사람들은 김정은이 집권 5년이 넘도록 가계 우상화를 못하는 이유를 두고 어머니가 재일교포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살아본 나는 그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재일교포 출신이 간부 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긴 하지만 무조건 숨겨야 할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 재일교포가 그렇게 천대를 받는다면 고용희가 누구나 선망하는 만수대예술단 메인 무용수가 될 수 있었을까. 일본 출생이란 점은 북한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노동당 선전부가 2000년대 초반과 2012년 초반 두 차례나 고용희를 우상화하려 했던 것도 그들 딴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상화는 그때마다 중단됐다. 왜일까. 그동안 난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김정남 살해를 보면서 갑자기 ‘정은은 고용희의 아들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2010년 6월 정남은 국내 모 언론 기자와 마카오에서 만났다. 이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이 “아우님(정은)이 김옥 여사의 아드님이라는 말씀을 하고 다니신다는 얘기를 마카오에서 들었습니다”였다.
기자가 그렇게 물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두 달 동안 정남을 추적한 이 기자는 그의 마카오 지인들로부터 “정은은 김옥의 아들로 1984년생”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정남은 또 “정은을 고용희가 데려다 키웠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장성택 김경희 등 몇 명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엔 정은의 생일이 1982년으로 알려졌을 때였는데 정남은 정확한 나이를 알고 있었다.
정남이 생전에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한 일은 없다. 그러나 김옥이 정은의 생모라고 가정하면 갑자기 많은 것이 이해된다.
첫째, 정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다 죽었다. 장성택과 정남은 죽었고 김경희는 매장된 상황인 만큼 곧 김정은 가계 우상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둘째, 김정일도 정은도 왜 고용희 우상화를 꺼렸는지 이해가 될 수 있다.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가짜 생모를 만들긴 멋쩍었을 것 같다.
셋째, 김정일이 한 여자를 오래 옆에 두는 성격이 아닌데도 왜 김옥만이 그가 사망할 때까지 30년 넘게 그의 곁에 있었는지 이해된다. 고용희조차 30년을 같이 살지 못했다.
넷째, 정은이 제일 먼저 없앨 거라 생각했던 모친의 연적 김옥이 2012년 2월 최고 훈장인 김일성훈장을 받고 그해 7월까지 공식 석상에 나타난 연유도 알 것 같다. 김옥은 정은을 후계자로 준비하는 기간 내내 김정일 옆을 지켰다.
다섯째, 정철과 정은이 성격과 체형이 왜 그리 다른지도 이해될 것 같다. 정철은 감수성도 예민하고 잔인할 것 같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먹어도 살찔 체질 같진 않다.
끝으로 정남이 왜 굳이 죽었어야 했는지도 알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출생의 비밀은 메가톤급 폭탄이다. 그의 입에서 황당한 족보 이야기가 나오면 북한에 소문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정은은 얼굴 들고 다니기 어려울 것이다. 정은은 돈 떨어진 정남이 망명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은 아닐까.
가설의 정답을 알고 있는 정남은 죽었다. 그러나 어쩐지 비망록을 남겼을 것 같다. 그의 아들 김한솔도 이런 비밀을 전해 들었을지 모른다. 한솔이 말하면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그래서 한솔의 목숨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비망록이 공개되든가, 또는 한솔이 망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http://voda.donga.com/3/all/39/849080/1
● 김정은의 관상
‘김일성 사망’ 적중 역술·무속인들의 예언…“김정은, 내년 결정적 위기”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의 빅게임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24년 전 기자는 김일성 사주를 놓고 역술인과 무속인을 취재해 김일성의 사망 시기를 정확히 맞힌 ‘신이 내린 특종’을 한 바 있다. 그때의 주역을 다시 찾아 김정은과 대한민국의 운세를 물어봤다.
먼저 작명과 관상을 주로 하는 원로 역술인 조성우 씨의 말이다.
“미래를 보는 책에는 정감록과 송하비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기경(靈棋經)이 있는데 나는 그것으로 본다.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는데, 영기경을 보면 미래가 잘 보이기 때문이다. 1592년 조선은 7년 전란을 겪었다. 임진년에 일어난 전쟁이 휴전했다가 정유년에 재발해 기해년에 끝났다. 지난해가 정유년이고 내년이 기해년이다. 이는 임진~기해 연간은 운세가 좋지 않으니, 잘못 대처하면 큰 곤란을 겪는다는 뜻이다.
오지랖을 넓히지 말라
영기경으로 보면 올해는 ‘산 너머 산이고, 물 건너 물’이라는 간위산괘(艮爲山卦)로 나온다. 자기주장만 하는 어른만 가득하면, 남의 일에 간섭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대세인지라 분란이 일어난다. 그러할 때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있으면 수모와 박대만 당하기에, 감정이 폭발해 일순간에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지랖 넓게 봉사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자기 것에만 열중해야 한다. 세상의 운세는 자기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어피망(游魚避網)이라 했다. 물고기는 그물을 피해가야 산다. 저수지의 주인이 자기라고 그냥 돌아다니면 그물에 걸려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자기 분야를 훤하게 볼 수 있어야 남의 일도 볼 수 있으니 그런 경지를 만들어놓고, 그물이 걷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비바람이 친 다음에는 반드시 맑은 날이 오기 때문이다.
영기경은 ‘그날이 오면 임자 없는 나루터에 임자 없는 배가 즐비하니 먼저 타는 이가 임자’라고 해놓았다. 분란으로 다투던 사람들이 사라졌으니 진득하게 살아남은 이들은 주인이 없어진 것들을 차지할 수가 있다. 이는 북한 문제 같은 남의 일에는 참견하지 말고 우리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바닥 경제가 매우 어려우니 나라님은 국민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주는 데 주력해야 한다.
김정은의 얼굴은 원자지상(圓子之相)이고 백구지상(白龜之相)이다. 둥글둥글한 얼굴이지만 귀한 흰 거북상이다. 주목할 것은 느리지만 성정은 대단히 강해서 제가 바라는 곳으로 끝내 가버리는 거북의 성격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 일부러 만든 변성(變聲)을 쓰고 있다. 연설할 때 그는 탁한 음을 내는데, 그 음색(音色)에 화(火)가 담겨 있다. 강한 고집이 있는데 화기까지 강하니, 일이 제 맘대로 되지 않으면 큰 행악을 부리게 된다. 어른만 있는 간위산괘의 형국과 통하는 성정인데, 이런 기운을 쓰는 이들은 임진~기해 연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모든 일은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행했기에 그런 결과를 맞는 것이다. 김정은도 남 탓할 것은 없다.
이설주는 미인이지만 눈을 보면 독(毒)이 뚝뚝 떨어지는 상이다. 김정은과는 사이가 괜찮지만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이가 있으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 이러한 상도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자업자득, 베풀어야 돌아오는데 그 반대로 가니 무엇이 오겠는가. 자리 덕에 부부는 권세를 누리고 충성을 뽑아내는 듯하지만 갈수록 외로워진다.
김여정은 뼈대가 약해서 자기주장이 없는 상이다. 인물감이 못 된다. 든든하지 못한 여동생을 가까이 두는 것은 김정은의 속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우리 국민은 판문점회담만 보고 김정은이 대단하다고 하겠지만,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북한의 고관들은 그를 고모부(장성택)와 이복형(김정남)을 죽인 위험한 인물로 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해년 북한에서는 큰 사달이 일어날 수 있다.”
역술인 최봉수 씨는 연로해, 아들인 최용권 씨가 가업을 이었다. 중령(육사 41기)으로 예편한 그는 김정은의 운세를 봐달라고 하자 “김정은의 정확한 사주를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신분을 밝히지 않은 네 사람이 찾아와 김정은이라는 이름과 시(時)가 빠진 삼주(三柱, 양력 1984년 1월 8일)를 내놓고 운수를 본 적이 있다. 김원홍과 김영철 황병서 최룡해의 운수도 함께 보았으니 기관에서 나온 이들로 짐작했다. 정보기관이라고 해서 김정은의 사주를 정확히 알고 있진 못한 것 같다”라고 한 후 그것으로 본 김정은 운세를 이렇게 풀어주었다.
▲역술인 조성우 씨는 “기해년(2019년) 북한에서는 큰 사달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왼쪽) 역술인 최용권 씨는 “김정은은 내년에 믿었던 이에게 당할 수 있는 삼형살이 들었다”고 말했다.
삼형살과 효신살
“이 생시대로라면 가히 일국을 이끌 수는 있다. 그러나 매해 달라지는 것이 운수다. 그의 운세는 올해와 내년이 좋지 않은데, 특히 내년이 그렇다. 무술(戊戌)년인 올해는 그래도 윗사람이 도움을 주는 정인(正印)이 들어오기에 겉으로는 만사형통이다. 하지만 생일이 신축(辛丑)일이기에, 축술미삼형살(丑戌未三刑煞)이 함께 들어왔다. 갑술·병술 등 여러 술(戌)의 해 가운데 가장 센 것이 무술인데, 그러한 술이 축과 함께 삼형살을 만들었다.
삼형살이 있으면 믿었던 이에게 당할 수 있다. 정인 덕분에 운세가 좋은 것 같아도 김정은은 자중지란을 겪는 것이다. 판문점회담 등으로 화려하게 얼굴을 내밀었지만, 내년에는 그 영광이 까마득한 일이 될 것이다. 그는 핵 포기와 전쟁 결심을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모순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사주에는 두 개의 효신살(梟神煞)이 박혀 있어 꿈을 많이 꾼다. 꿈이 많은 이들은 왔다 갔다 마음이 자주 바뀐다. 오늘 밤에는 ‘그래 이것을 하자’ 했다가, 다음 날 밤에는 또 곰곰이 생각하다 ‘아니야 저것을 해야겠어’ 하는 식이다. 이런 이가 리더나 CEO가 되면 그 조직은 최악의 상태로 떨어진다. 부하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김정은은 ‘그래 해보자’ 하는 생각에 북한 경제를 살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에도 미국의 네오콘 같은 강경파가 있다. 그가 그러한 결심을 하면 평생을 핵 개발과 공산주의에 바쳐온 이들이 조용하지만 강력한 반대 여론을 형성한다. ‘김정은이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기울었다’는 말을 흘리는 것인데, 이것이 치명적인 자중지란의 시작이 된다.
올해는 국제사회로부터 ‘잘한다’ 소리를 들어서 어찌됐든 밀어붙일 수 있지만 내년에는 내부 반대 세력이 커져 곤란해질 것이다. 올해까진 미국과 전선을 만들었다면 내년에는 북핵판 네오콘과도 각을 세우게 돼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반대의 정도가 강하면 김정은도 돌아설 수밖에 없는데, 그때 북한 실력자들은 김정은을 더 의심하고 충성의 마음을 거두게 된다.
그들은 김정은이 고모부와 이복형을 죽였고 대장을 강등시키고 포복사격을 하게 하는 등 잔인하고 무례하게 행동한 것을 기억하기에 배신을 준비할 수 있다. 우리는 신점(神占)을 말하는 무속인이 아니기에 김정은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내년에 일어날 갈등의 정도에 따라 김정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은 할 수 있다.
김여정의 생일은 그때 양력으로 1988년 9월 26일을 받았는데, 이것이 맞다면 그는 결코 나라를 운영할 인물이 되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여동생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주로 본 김여정은 국량(局量)이 작아 이어받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편재운(偏財運)이 있으니 재물 운은 있다. 4~5년 전부터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운수인 상관용재운(傷官用財運)까지 들어왔으니 재운을 누릴 수 있다.
이 사주를 가진 이가 나라 일에 참여하면 ‘잘사는 것이 좋다. 경제를 발전시키자’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작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김정은 처지에서 큰 문제점은 그릇이 작고 약한 여동생을 심복으로 쓴다는 점이다. 판문점선언에 서명할 때도 김여정이 김정은을 보좌하던데, 이는 김정은 곁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을 쳤으니 곁에 있는 이들도 다른 마음을 먹고 있어, 그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평창올림픽과 판문점회담에 최룡해는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을 대신해 평양을 지키고 있다는 뜻인데, 최룡해의 사주를 풀어보면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발등은 믿는 도끼에 찍히는 법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중앙정보부장이 저격하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는가. 최룡해도 김정은에게 숙청됐다가 다시 기용된 바 있다. 김정은의 운세는 갈수록 캄캄한데 최룡해는 좋은 편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자못 궁금하다.”
후계자가 없어 고민하는 김정은
심진송 씨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월(月)까지 맞혀 크게 이목을 끈 무속인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초 십수 년 만에 이뤄진 통화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차기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예견을 내놓았었다. 그러한 그가 이러한 신점을 밝혔다.
“김정은은 몸이 극도로 상해 있다. 할아버지인 김일성처럼 당뇨와 심근경색 등에 걸려 있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기에 어쩌면 몸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김일성은 82세에 죽었는데 자기도 조부만큼 살 줄 알고 함부로 몸을 쓴 탓이다.
올해 김정은의 운은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좋지 않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음력으로 내년 2~3월, 늦으면 5~6월에 그의 생명은 경각에 이를 수 있다. 김정은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후계자를 세워 자신도 보호를 받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없어 문제다.
그는 여동생 김여정을 믿고 있는데, 김여정은 너무 약하다. 할아버지(심씨가 모시는 신)는 ‘김정은은 자리(후계자)를 줘도 김여정이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하신다. 그 때문에 김정은은 속으로 많이 불안해한다. 그가 고모부와 이복형을 죽인 것은 배신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측근을 숙청했다가 다시 불러 쓰는 것도 측근의 충성도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했음에도 누구도 믿지 못해 큰 외로움에 싸여 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정치인은 물론이고 정보기관 사람들도 찾아와 만나게 된다. 정보기관 사람들은 북한 돌아가는 사정을 보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기에,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것을 물어온다. 그들도 김정은이 오래 살지 못한다고 보기에 ‘김정은 다음’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죽은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을 북한에 집어넣어 세우면 어떨까’를 물어오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하셨다. 김한솔은 아버지의 죽음을 본 탓인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외국 생활도 오래 해왔기에 답답하기 그지없는 북한에는 들어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 우리 정부가 김한솔을 민다면 100% 실패작으로 끝날 것이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었을 때 그의 친형인 김정철은 김정남처럼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고 정치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김정은의 경계를 사지 않아, 외국을 오가며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정치를 알게 되면서 아이들을 외국에 숨겨놓는 재주를 부렸다. 김정은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공개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보고 외국에 꽁꽁 숨겨놓았다. 할아버지는 ‘생전의 김정일은 막내(김정은)가 아버지(김일성)를 가장 닮았다고 보고, 김정은이 13살이 되었을 때부터 후계자로 생각했다’고 하신다. 김정철은 아이를 일찍 낳았기에 셋째 아들이 이미 13살이 넘었다. 할아버지는 김정철의 3남이 똑똑하기에 김정은 이후 그가 북한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하신다. 관건은 김정철 부자가 김정은이 쓰러질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는 북한이 갖고 있는 핵은 우리가 아는 것의 두 배라고 하셨다. 우리 정보기관에서는 북한이 25~27개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고 보는데, 실제 50개가 넘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김정은은 제 몸이 좋지 않기에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살려볼 생각은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술수와 수완이 좋다는 게 문제다.
나는 이북 출신인데 ‘장님 춤 발라 먹이기’란 이북 속담이 있다. 장님이 동냥을 오면 침을 바른 주먹밥을 줘 놀려먹는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그런 마음으로 핵을 공개할 것이다. 화통하게 모든 것을 내놓는 척하지만 필요한 것은 숨겨놓는다. 할아버지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맞지 않는다고 하신다. 우리는 판문점 합의문을 내듯이 북핵 사찰을 한 번에 타결 짓지 말고, 시간을 갖고 깐깐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빨게벗고도(빨가벗고도) 30리를 뛰는 것이 개성 깍쟁이’라는 이북 속담이 있다. 경제가 허약하다고 북한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경고다. 정말 큰코다친다. 나는 문 대통령이 잘되기를 소망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철도를 이어주겠다,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겠다, 평화수역을 만들어주겠다는 말부터 하지 말고, 김정은이 하는 것을 봐가며 천천히 하시라’고 하시는데, 정말 우리 정부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국민들은 통일이 다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꿈이 무산되면 우리는 열심히 했는데 트럼프가 너무 강한 조건을 내걸어 무산됐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북한 사람을 쉽게 보지 말라는 말을 거듭 하신다.”
많은 국민의 기대와 달리 김일성 사망을 맞힌 이들은 남북관계가 난관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관을 피하는 ‘비법’도 제시했다. 김정은과 화끈하게 타협하지 말고 시간을 끌며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하라는 것이다. 협상의 귀재라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있다. 통 큰 모습을 보이려는 김정은의 심리를 이용해 억류된 미국인부터 받아내고 북한이 기대한 것과 다른 행동을 했다. 주인 없는 나루와 나룻배
북한이 원하는 판문점을 회담 장소로 지정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핵화를 할 경우 북한에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주겠다는 말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16개 우방국의 군사력까지 동원해 북한 출입 선박을 추적하는 등의 해상봉쇄를 하고 있다. 노련한 협상가라면 담판에 주력할 것 같은데, 트럼프는 담판의 비중은 줄이고 사전 정지작업에 총력을 기울인다. 기해년에 ‘주인 없는 나루와 나룻배’ 정국이 실제 현실화된다면, 이 정국을 수습하고 북한의 새 주인이 될 이는 과연 누구일까.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 잔혹한 진쌍판의 두 얼굴
2018.04.24 중앙일보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yjlee@joongang.co.kr
① 핵 야망과 체제 생존 사이 고민
잔혹한 지도자, 유연한 승부사 … 김정은의 두 얼굴
두 얼굴의 사나이가 온다. 사흘 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마주한다. 북한 핵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비롯한 민족의 명운이 걸린 현안을 숙의할 담판이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한반도의 절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절대 권력을 세습받아 벌써 집권 7년차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서울 핵 불바다와 워싱턴 타격으로 겁박하던 그의 얼굴이 생생한데, 올리브 가지를 흔들며 평화와 비핵화를 설파하는 최근 유연한 승부사의 모습은 어색하다. 엇갈리는 정보와 판단은 오히려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야누스(Janus)의 지도자’ 김정은을 해부해 본다.
김정은을 말하다
2010년 9월 28일 평양 대성구역 금수산태양궁전 광장. 국가주석 김일성(1994년 심근경색으로 사망)의 시신이 안치된 대리석 건물 앞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수백 명 규모의 노동당과 군부 간부진이 도열했다. 노동당 전원회의 참가자를 위한 기념촬영 자리다. 김정일의 오른편으로 이영호 총참모장이 자리했고, 왼쪽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앉았다. 눈길을 끈 것은 이영호 바로 옆에 두 손을 가지런히 한 채 자리 잡은 인민복 차림의 청년이었다. 당시 나이 26세. 베일에 싸였던 후계자 김정은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순간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은의 전격적인 권력 무대 등장은 충격을 던졌다.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3대 세습을 강행할 것인가는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김정일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남측 인사들에게 “내 대(代)에서까지 그게 가능하겠냐”며 연막을 피웠다.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2009년 10월 외신 인터뷰에서 “현 시점에서 후계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북한은 김일성 일가를 의미하는 소위 ‘백두혈통’ 논리를 띄우며 ‘혁명 계승’의 비밀작업을 착착 진행시켰다. 김정은 찬양 가요인 ‘발걸음’이 보급됐고 ‘청년대장 김정은’을 찬양하는 선전포스터와 벽화가 등장했다.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김정일은 막내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최종 낙점했고 자신만의 통치 노하우를 현장학습을 통해 물려줬다. “믿을 건 핏줄뿐”이란 생각이 작용한 듯하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숨지자 김정은은 절대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었다
김정은 시대의 전략노선으로 2013년 3월 야심차게 제기한 ‘경제·핵 병진’ 정책은 불과 5년여 만인 지난 20일 운명을 다했다. 김정은이 이날 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언했다”는 게 노동신문의 보도지만 실상은 다르다. 당초 핵보유로 여력이 생긴 국방비를 민생에 돌리겠다는 병진노선의 구상은 헝클어졌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자초했고 북한 경제는 ‘중국’이란 산소호흡기마저 떼인 채 질식상태에 빠졌다.
간부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강등·해임은 ‘독재권력의 잔혹한 지도자’란 인식을 안팎에 심어줬다. 전현준 동북아평화연구원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존경받지 못한 바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돼라’는 마키아벨리식 통치술을 그대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 이뤄진 고모부 장성택에 대한 ‘반국가 혐의’ 처형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친인척도 무참히 살해하는 인물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이복형 김정남이 독극물 테러로 살해당했던 게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지목된 것도 마찬가지다.
극도의 호전성을 보여준 김정은의 대남 위협·도발은 우리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부채질했다. 그는 핵을 내세워 공공연히 ‘서울 불바다’를 위협했다. 대남 특수부대의 청와대 타격훈련까지 벌여놓고 “남조선의 사등뼈(척추)를 부러뜨리고 타고 앉으라”고 독려했다. 후계자 시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주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이 과거 후계 시기 아웅산 테러나 대한항공기 폭파를 자행한 것과 유사한 행보다.
지난 1월 신년사를 계기로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까지 치닫고 있는데도 김정은의 유화 제스처에 대해 찜찜하다거나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과거 행태 때문이다. 염돈재 전 국가정보원 차장은 “남한에서 보수정권이 무너지는 등 북측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는 판단에 따라 위장 평화공세에 나선 것”이라며 “지난해 말까지 드러내 온 도발적이고 잔혹한 이미지가 김정은의 본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은의 과거 행태에 집착하기보다 변화된 태도와 정책노선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긴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호랑이 등에 탄 모양새”라며 “그 조류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언적이나마 경제·핵 병진노선에 대해 사실상 포기를 선언하는 등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 대목도 분명하다는 얘기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개인의 성향보다는 정치인으로서 김정은이 누구인지에 방점을 두는 게 그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더십을 발휘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정은 역시 조성된 정세에 맞춰 변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② 후계 권력 장악한 로열패밀리 막내
‘원산댁’ 아들 정은, 형들 제친 건 남다른 승부욕
김정은의 출생 스토리는 비밀에 싸여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생모 고용희 사이에서 1984년 태어났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고용희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다. 제주 출신인 그녀는 아버지 고경택을 따라 일제시대 오사카로 건너갔고, 1960년대 북송선을 탔다.
김정은을 말하다
영화배우 출신 성혜림과 동거하던 김정일이 어떻게 고용희와 인연을 맺었는지도 베일 속에 있다. 북송선이 도착한 곳이 강원도 원산이라 고용희가 평양 권력 내에서 한때 ‘원산댁’으로 불렸다는 전언도 있다. 김정은이 원산 인근에 마식령스키장을 짓는 등 관광지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친형 정철, 여동생 여정(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원산의 전용 별장에 자주 들르는 게 원산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김정은의 출생이나 성장 과정에 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집권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제대로 된 사진이나 기록 영상은 없다.
고용희, 북송선 도착한 곳이 원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10대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우상화를 위한 공백기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 북한에서 대규모 집단 아사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의 서방 유학을 내세우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생모 고용희를 ‘존경하는 어머니’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2002년께 감지됐지만 곧 중단됐다. 고용희의 부친이 일본 군수공장에서 간부로 일한 경력 등이 조총련 등의 입을 통해 북한 내부로 알려질 경우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상황은 백두산 출생설을 만들어 이른바 ‘백두혈통’ 신화를 조작한 김정일 때와 다르다. 1941년 브야츠크 병영에서 소련군 장교 김일성의 아들로 태어난 김정일을 북한은 ‘1942년 백두산 탄생’으로 선전했다. 유년기 사진과 김일성대학 시기의 군사훈련 영상, 1964년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김일성을 따라다니던 모습 등이 북한 관영TV를 통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김정일 “형 정철이는 착해서 안돼”
김정은의 성장 과정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건 1998년 여름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졸중으로 몇 달간 공개활동을 중단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이목이 집중됐고, 3대 세습을 강행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정철·여정과 함께 한 스위스 유학생활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졌다. 유학생활 중 김정은은 두각을 나타내거나 우수한 자질을 보이지는 못했다는 게 교사·학생의 전언이다.
급우인 미카엘로는 “김정은은 컴퓨터 게임과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 액션영화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경쟁에서 지는 걸 무척 싫어했다”고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직후 CNN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미 당국이 스위스 유학 당시 김정은의 친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했으며 김정은을 ‘매우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과대망상증을 보이는 인물’로 결론내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일이 막내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 건 뜻밖이었다. 부자세습 강행 시 무엇보다 봉건왕조 시기의 장자 계승 원칙을 따를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성혜림과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김정남은 일찌감치 눈 밖에 났다.
김정남은 한 언론인과의 메일에서 "서방 유학을 통해 자본주의에 물든 나를 보며 아버지는 못마땅해하셨다”고 밝혔다. 차남 김정철의 경우 호르몬계 질환으로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나타나고 가슴이 불거지는 등 문제가 생겨 낙마했다. 결국 김정일은 사망 1년여 전인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를 통해 26세의 막내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유학 때 동창 “김정은, 지기 싫어해”
김정은이 후계권력을 따낸 게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선대 수령인 김일성·김정일의 기질과 외모를 닮은 점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는 "내가 본 ‘정은 왕자’(김정은을 지칭)는 지도자가 될 성품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편을 나눠 농구경기를 할 경우 정철은 종료 후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반면, 김정은은 반드시 ‘총화’(결산 모임)를 했다는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고 다음부터 어떻게 하라는 독촉이 쏟아졌다. 이 모습에 김정일 위원장은 "정철이는 너무 착해서 못쓴다. 나를 가장 빼닮은 건 정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계 지위를 차지한 김정은은 권력 유지에 누구보다 냉혹함을 보였다. 한때 후계경쟁 관계였던 김정남을 독살한 건 후환을 없애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 유고 시 중국 지도부가 ‘백두혈통’의 장남인 김정남을 옹립할 것이란 서방 언론의 관측이 김정은을 자극했을 수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원장은 "아버지가 후견인으로 낙점해 준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히 살해한 것도 결국 권력 장악을 위한 본보기식 숙청”이라고 말했다.
권력 위해 맏형 정남·고모부 제거
집권 초기 체제 붕괴론이 들끓었지만 한·미 당국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핵과 미사일 도발 카드에 이어 체제 생존 차원의 전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과거 미국을 골탕먹인 얕은 수로는 노회한 비즈니스맨 트럼프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게 김정은의 고민거리다.
대남 위협에 싸늘해진 국민 여론을 정상회담 이벤트나 ‘비핵화’ 제스처만으로 돌려세우는 것도 쉽지 않다.
이틀 뒤 판문점 정상회담은 김정은에게 허용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핵을 머리에 이고서는 권력 유지와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 김정은이 5년 전 야심차게 내걸었던 경제·핵 병진노선의 간판을 지난주 떼낸 건 그 증표다. 정상회담 테이블이 개과천선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언약의 무대’가 돼야 하는 이유다.
③ 문제는 민생, 개혁·개방 할 수 있나
인민경제에 실패한 김정은 “자책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월 평양 뉴타운인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2016년 4월 착공돼 1년 만에 완공한 이곳엔 70층짜리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44개 동, 4804가구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연합뉴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거머쥔 북한 김정은(34) 국무위원장이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만성적인 경제난이다. 2012년 집권 이후 한때 경제 지표가 호전되고, 미약하게나마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돌파구를 마련하진 못했다. 이런 점을 간파한 때문인지 김정은은 유독 경제문제만큼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수입병(외제 선호)에 걸렸다”거나 “관료주의·형식주의와 타성에 젖었다”고 경제 관료를 공개 질타하는 모습 등이 드러난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진단만 내릴 뿐 처방은 없었다.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을 말하다
경제 분야에 대한 김정은의 트라우마는 화폐개혁에서 촉발됐다. 후계자 시절이던 2009년 11월 말 북한은 17년 만의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가치를 100대 1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 절하)이 핵심이다.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해 장롱 속 화폐를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1990년대 말 대량 아사 사태인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붕괴된 공식 배급망을 복원하고, 시장 역할을 축소하려는 뜻도 담겼다. 노동자의 월급을 현실화(북한 화폐로 평균 3000원 선)하는 조치도 취했다.
그렇지만 물가가 폭등하고 식량과 생필품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마당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일명 ‘돈주(錢主)’ 세력의 반발도 거셌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화폐개혁이 성공했다면 노동당 선전담당 부서는 후계자 시절 김정은의 경제 리더십을 부각할 호재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심 찬 개혁 추진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민심을 누그러뜨릴 희생양이 필요했다.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책임을 덮어쓰고 이듬해 봄 처형됐다.
김정은 경제관련 언급
집권 직후 김정은은 ‘인민경제’를 챙기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그는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해 6월엔 6·28조치로 불리는 경제관리 개선 방안도 내놓았다. 실적이나 초과생산에 따라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에서 시범실시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경제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제한적인 개혁 조치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김정은 정권 들어 처음으로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대북제재의 그늘이 본격화한 것도 발을 묶었다.
그해 3월 김정은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제 건설과 핵 개발을 함께 추진한다는 ‘경제·핵 병진노선’을 공식화했다. 핵무기 보유로 인해 재래식무기 구입 같은 군사비 투입이 줄게 됐으니 이를 민생에 돌리겠다는 논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에 문책성 해임을 당한 경제통 박봉주 총리를 6년 만인 2013년 4월 복귀시킨 것도 파국에 이른 경제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직접 챙기기보다는 ‘경제는 박봉주에게’란 의미의 포석을 보여줬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없는 북한 경제는 여태껏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이 자초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며 주민에게 머리를 숙여야 했다.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말이 공수표가 된 데 따른 민심 수습책이었다.
김정은의 경제 해법이 먹혀들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듯하다고 지적한다. 스위스 유학 등 10대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데다 절대권력의 잠재적 후계자군에 포함돼 일반 주민과 차단된 생활을 했기 때문이란 얘기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연구서 『김정은 리더십 연구』(2017, 세종연구소)에서 “김정은은 15세였을 때 후지모토 겐지(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일본인)에게 ‘외국의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보니 어디를 가나 식품들로 넘쳐나서 놀랐어. 우리나라 상점은 어떨까’라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스위스 유학에서 귀국한 후인 2001년 3월(당시 17세)에는 후지모토에게 “우리는 매일 말도 타고 롤러블레이드도 타며 농구도 하고, 또 여름에는 제트스키를 하고 수영장에서 놀기도 하는데 일반 인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며 궁금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북한 경제의 실상을 무시한 과시성 건축·건설로 이어졌다. 평양에 70층 주상복합빌딩을 비롯한 고층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고, 뉴타운 형태의 개발이 벌어졌다. 승마구락부와 골프장, 문수 물놀이장이 만들어졌고, 강원도 문천에는 12개 슬로프를 갖춘 마식령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수억 달러를 들여 평양에서 20㎞ 정도 떨어진 순안공항의 리모델링을 마친 김정은은 “평양까지 고속철을 놓으면 좋겠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대부분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당시 경험한 세계적 워터파크인 알파마레(Alpamare)와 고속철 테제베(TGV)를 본뜬 것이란 평가다.
집권 첫해 김정은은 국제사회를 향해 개혁·개방의 시그널을 띄웠다. 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가 등장하는 공연을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평양 중심가에 서구형 카페를 만들어 부인 이설주와 팝콘을 먹는 장면을 관영매체로 내보냈다. 서방 외교가에선 해외유학파인 김정은의 경우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를 것이라면서 기대를 보였다. 하지만 식량·에너지·달러 부족이란 삼각파도에 김정은의 경제구상은 휩쓸리고 말았다.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경제·핵 병진노선 종식을 선언하고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에서 경제사업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힌 건 노선 수정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경제 문제는 일단 후순위로 밀렸다. 북핵이란 긴급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김정은이 확답하지 않고서는 북한 경제 회생을 기대할 수 없다. 비핵화 솔루션에선 ‘선핵후경(先核後經)’이 답이란 얘기다.
04-30 김정은 ‘매력 공세’의 덫
北지도자 65년 만의 서방 데뷔전… 김정은 표현대로 ‘잘 연출’됐으나 연평도 포격도 서슴없이 말해
독재자, 괴물 아니라고 느낄 때 친밀감 느끼고 심지어 감동
6년 집권 ‘내공’ 어두운 면 봐야
문재인 대통령(65)과 북한 지도자 김정은(34)의 나이 차는 31세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에선 아버지와 아들뻘인 두 사람의 나이 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젊어 보여서라기보다는 김정은이 노숙해 보여서다. 목소리나 몸짓, 심지어 몸집까지도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으려는 각고의 노력(?) 때문일 게다.
김정은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월경(越境)은 3대를 통틀어 65년 만의 서방세계 데뷔전이었다. 자칫 한 나라의 지도자로선 어리다는 소리를 들을 나이에 그 정도면 자신의 표현대로 ‘잘 연출됐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특히 문 대통령이 “나는 언제쯤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자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하며 즉석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 경계선을 넘어서는 대목에선 뼛속까지 제왕(帝王) 교육을 받고 자란 권력자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사실 그 군사분계선이란 게 너비 50cm의 콘크리트 턱에 불과하지만 막상 그걸 넘으려면 심사가 복잡해진다. 1992년 봄에 내가 그랬다. 당시 판문점에선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에 따른 후속조치로 숱한 회담이 열렸다. 취재기자였던 나는 이번 정상회담이 열린 평화의집에서 풀 기사를 썼다. 다른 남측 기자들은 회의가 열리는 북측 통일각으로 넘어간 뒤였다. 송고를 마친 뒤 혼자 통일각으로 걷다가 문제의 턱을 만난 것이다.
째려보는 북측 경비병의 살벌한 눈매를 의식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그 턱을 넘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했지만 그 선을 넘어 발을 북측 땅에 딛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그만큼 내 의식 밑바닥에 쳐진 이념의 레드라인은 깊고 강렬했다. 그날도 판문점엔 정상회담이 열린 27일처럼 눈부신 봄볕이 쏟아졌다.
그 군사분계선을 김정은은 대수롭지 않게 넘나들었다. 민감한 언행도 서슴지 않으며 그걸로 되레 ‘매력 공세’를 펼쳤다. “문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는데… 이제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대해 한국민과 문 대통령에게 사과를 해도 모자란 터에 말 한마디로 넘겼다.
더구나 그가 “실향민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다”고 말하는 데선 황당함마저 느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반쯤 북한군은 예고도 없이 연평도를 포격해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 대한민국의 영토를 공격해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사건이다. 북한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퉁치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북측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오만한 화법의 연원(淵源)이 어딘지 짐작하게 했다.
김정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모두 그랬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인 은둔을 농담 소재로 삼아 순간적으로 본말(本末)을 전도케 하는 말솜씨였다. 자신감 충만한 오너나 권력자가 아니라면 입 밖에도 내기 어려운 말투를 김정은은 선대(先代)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독재자가 괴물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만으로 친밀감을 느끼고, 심지어 감동하기도 한다. 비단 김정은을 만나 악수한 뒤 “너무너무 영광”이라고 말한 걸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얻은 남측 인사들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얘기했다. 그 특별한 기회가 주는 희소성이야말로 매력의 주(主)요소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중계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제 30대 중반인 김정은의 말솜씨와 노련함에 놀랐다. 하지만 그가 절대권력의 자리에 오른 지 6년 4개월이나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아무리 세습권력이라고 해도 한국의 대통령 임기보다 긴 기간 권좌를 유지하면서 엄청난 내공을 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공을 다져온 데는 이복형과 고모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북한 주민을 굶기고 인권을 탄압한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05. 22 조선중앙통신 "南정부, 전단 살포 대응 어정쩡. 비싼 대가 치를 것"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12일 경기 파주 일대에서 북한으로 보낸 대북전단./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북한이 22일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 공식 논평을 통해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 “남조선 당국이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도발은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12일 대북전단을 살포한데 대해 “문제는 남조선 당국이 ‘심각한 우려’니 뭐니 하면서 어정쩡하게 놀아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신은 “삐라(전단) 살포와 관련하여 남조선 당국이 한 것이란 고작해야 ‘민간단체들이 대북삐라 살포 중단에 적극 협력’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을 뿐”이라며 “온 민족 앞에 확약한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놓고 ‘요청’이니 뭐니 구걸질인가”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민간단체들에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 12일 경기 파주 등에서 대북 전단 15만장과 1달러 지폐 1000장, 소책자 250권, USB(이동저장장치) 1000개 등을 5개 대형 풍선에 담아 북한에 보냈다.
통신은 “인간쓰레기들의 도발적 망동으로 북남관계가 다시금 엄중한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에 돌아가게 되어 있다”며 “남조선 당국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판문점 선언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후 조치와 움직임을 우리는 지켜볼 것”이라며 “후회란 때늦은 법”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당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중앙통신이 논평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일보 송기영 기자
● 07월 20일 “쓸데없는 훈시질”…北, 文대통령 ‘엄중심판’ 발언 원색비난
▲ 문재인 대통령, 북미정상 약속 주시 (PG)[제작 최자윤] 사진합성, 일러스트
“南 당국, 美 눈치만 살펴…남북간 중대문제 표류” 불만 표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일 남측 당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어 남북 간의 ‘중대문제’들이 무기한 표류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신문은 이날 ‘주제넘는 허욕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논평에서 “남조선 당국은 우리와의 대화탁에 마주앉아 말로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떠들고 있지만,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인 조치들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하여 북남 사이에 해결하여야 할 중대문제들이 말꼭지만 떼놓은 채 무기한 표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문은 남한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반박하면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싱가포르 렉처’ 발언을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신문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재판관이나 된 듯이 조미(북미) 공동성명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누구가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입을 놀려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조미 쌍방이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에 눈을 감고 주제넘는 예상까지 해가며 늘어놓는 무례무도한 궤설에 누가 귓등이라도 돌려대겠는가”라며 “쓸데없는 훈시질”이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남한 당국이 ‘대결시대의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남조선 당국의 말과 행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 요즘 통일부 당국자들이 때 없이 늘어놓는 대결 언동도 스쳐 지나지 않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서 “충고하건대 남조선 당국은 이제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민심의 요구대로 외세 추종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주통일의 길, 우리 민족끼리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이 4·27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부터 조성된 남북간 대화·화해 국면에서 남한 당국에 이처럼 고강도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드물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겨냥해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다만 노동신문은 ‘그 누구’라고만 지칭했을 뿐 문 대통령을 실명 거론하지는 않았다.
북한의 이날 주장은 남측이 북미관계와 비핵화 진전, 대북제재 등 주변 상황을 고려해 남북관계를 추진하면서 자신들의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열리는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도 경제협력 등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남북관계가 빠르게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 선전 매체 ‘메아리’도 이날 ‘싱가포르를 행각한(방문을 폄하한 표현) 남조선 당국자’를 거론하며 문 대통령의 싱가포르 렉처 발언을 인용한 뒤 “남조선 당국은 앉을 자리, 설자리도 모르고 주제넘게 그 무슨 ‘엄중한 심판’을 운운하기 전에 판문점 선언 이행에서 제 할 바를 똑똑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07.30 계몽군주? 애민 지도자? 김정은은 여전히 ‘진싼팡’
▲ 함경북도 어랑천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당 간부들에게 지시하고 있는 김정은. 노동신문이 지난 7월 17일 김정은이 현지 지도했다면서 보도한 사진이다.
진싼팡(金三胖)’은 중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지칭하는 단어다. ‘김씨 집안 3대 뚱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를 비판할 의도로 중국인들이 사용해왔다. 북한이 지난해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실시하자 중국에선 ‘진싼팡’이라는 이름의 아동용 장난감 로켓들이 팔리기도 했었다. 중국 네티즌들이 웨이보(微搏) 등에 김 위원장을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로 묘사한 그림을 올리는 사례도 있었다. 또 중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타오바오는 김 위원장의 얼굴과 ‘나는 최고 존엄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와 스마트폰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정부는 김 위원장에 대한 이런 ‘불경한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중국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중국 정부는 올 들어 시진핑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 간의 3차례 정상회담 이후 인터넷과 SNS, 검색사이트 등에 대해 김 위원장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모든 댓글이나 단어를 전면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에선 ‘진싼팡’이라는 단어가 금지어로 선정돼 검색이 중지된 상태다. 웨이보에서도 김 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과 그림, 동영상 등이 모두 삭제됐다.
▲ 2016년 1월 8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핵실험 성공 축하 집회. photo KCNA
3차례 북·중 회담 후 진싼팡 금지어로
특히 시 주석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과 3차례 만날 때마다 “전통적인 중·조 친선은 피로써 맺어진 친선으로서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이라며 북·중 ‘혈맹’의 역사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또 “나의 아버지 시중쉰 부총리도 생전에 김일성 주석, 김정일 총비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1983년 6월 김정일 총비서가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아버지가 역전에서 맞이하고 모진 더위를 무릅쓰고 고궁 참관에 동행했다”고 밝혔다. 시중쉰 전 부총리는 중국의 혁명원로로 북한 지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생전에 40여차례 중국을 방문했던 일도 언급했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를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시 주석이 공개적으로 김 위원장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인정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나라이지만 마오쩌둥 이후 최고지도자가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으로 4번이나 바뀌었다.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을 인정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원칙과 이념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도 없는 전제왕조인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를 인정한 것은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문제는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온 미국의 최고지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세습 독재를 미화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재능 있는 지도자”라면서 “26세에 권력을 승계해 국가를 터프하게 통치해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김정은은 자신의 나라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유능한 사람”이라면서 “좋은 성격을 갖고 있고 매우 똑똑하며 영리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독재자인 김 위원장의 폭정을 국제사회에 대놓고 용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 나이에 권력을 세습받아 고모부를 총살하고 이복형을 독살하고 수많은 주민들을 공개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해온 김정은의 폭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호평했다는 것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체제에 대한 협상의 전술이라기보다는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의 실상을 잘 알고 있는 한국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상당수 국민들까지 김 위원장에 대해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과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젊은 나이와 달리 상당히 솔직담백하고 침착한 면모를 보였다”면서 “연장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주 예의 바른 모습도 보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이 전 세계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인 김 위원장과 함께 어떻게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 술 더 떠 김 위원장을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의 2·3세 경영자 가운데 김정은만 한 사람이 있느냐”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절대권력을 다르게 써서 바꾸려고 하는데 그게 혁신”이라고 칭찬했다. 유 전 장관은 과거에도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김정은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호감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보다 높게 나왔다.
2018년 세계노예지수 보고서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은 물론 한국까지 인정한 3대 세습 독재자인 김정은이 과연 북한 주민들을 잘살게 만들 수 있을까. 김씨 세습 왕조가 북한 주민을 인간 이하의 노예로 짓밟고 있다는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호주 인권단체 워크프리재단(WFF)은 최근 발표한 ‘2018년 세계노예지수(Global Slavery Index)’라는 보고서에서 “260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국내외에서 강제노동을 하면서 ‘현대판 노예’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북한 주민 10명 가운데 1명은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WFF는 “조사 대상 167개 국가와 지역 가운데 북한의 현대판 노예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면서 북한을 세계 최악의 ‘현대판 노예 국가’라고 지적했다. WFF의 피오나 데이비드 국제조사국장은 “현대판 노예란 위협과 폭력, 강요, 물리적 힘에 의해 자유를 착취당하는 사람을 말한다”면서 “피해자들은 그런 상황을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다”며 북한의 잔악한 강제노동을 비판했다. 데이비드 국장은 “북한 주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임금도 지불받지 못하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위험한 공사현장, 농장 등 노동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강제로 일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 정권은 ‘천리마운동’이라는 선전용어를 통해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강제노동을 강요해왔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만리마운동’으로 탈바꿈해 부당한 노동력 착취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주요 치적은 경제적으로도 미림 승마장, 마식령 스키장, 평양 여명거리 건설 등 전체 북한 주민은 누릴 수 없는 1%만을 위한 대규모 위락시설을 건설한 것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를 보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5%로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예상)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548만t으로 2016~2017년 같은 기간 대비 5% 감소했다. 품목별로는 쌀이 240만t으로 전년보다 6% 감소했고, 감자와 콩의 생산량도 각각 33%, 20% 줄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객원교수는 “김정은이 관리들을 질타하며 집중적인 경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해 새로운 게 거의 없어 보인다”면서 “김정은이 기업의 자립적 현대화와 기술 개선을 강조하는 것은 옛 공산권 국가들이 공산주의 조직 체계를 고수하기 위한 핑계로 자주 강조했던 선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의 사유재산을 일부 인정하거나 국영기업소에 정상적인 자율권을 부여하지 않는 한 북한의 경제가 개선될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최근 들어 북한 주민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애민(愛民) 지도자’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고도의 선전·선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주민들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강조했고 주민 생업과 직접 관련된 시설들을 시찰하면서 애민 지도자상을 과시했다. 심지어 김정은은 ‘악어의 눈물’로 북한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악어의 눈물’은 거짓 눈물 또는 위정자의 거짓말 등 위선적인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5월 30일 노동당 간부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김 위원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지난 4월 노동당 지방조직과 국영기업 말단조직의 간부들에게 상영했다”고 보도했다. 이 영상에는 김정은이 눈물을 흘리며 해변에서 수평선을 멀리 바라보고 서 있는 장면과 함께 “강성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개혁이 잘 되지 않은 것에 눈물을 흘리고 계시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 신문은 “3대 세습 독재체제인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라면서 “경제 개혁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당 간부들에게 김 위원장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민학교 교과서에 묘사된 김정은
김정은은 최근에는 평안북도 신도군과 신의주 일대 공장을 시찰하면서 낡은 승용차를 타고 양복 앞단추를 풀어헤치는 등 소탈한 모습을 강조했다. 김정은이 이런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3대 세습에 의한 취약한 정통성 및 권력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애민정치를 앞세우는 것은 북한 주민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가 붕괴되고 자신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 김정은이 청진의 가방공장에서 학생용 가방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7월 17일 노동신문 보도사진.
김정은은 다른 한편으론 자신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북한 학생들이 배우는 인민학교 교과서를 보면 김정은에 대해 이런 내용이 있다. “3세 때 총을 쐈고, 3초 내에 10발을 다 목표에 명중시켰다. 3세 때 자동차 운전을 시작했으며 8세 이전에 도로를 질주했다. 6세 때 사나운 말을 길들여 타고 기마수보다 더 잘 달렸다. 10대에 정치·경제·철학·역사·수학·물리·군사·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각종 행사를 통해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까지 대를 이은 충성이 강요된다. 심지어 북한 헌법상 최고지도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정은을 ‘조선의 위대한 태양’이라며 떠받들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회의에서 졸았다는 등의 이유로 당·정·군 간부 200여명이 처형되거나 숙청되는 등 공포정치가 판을 치고 있으니 살아남으려면 충성을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공포정치 때문에 당·정·군 간부들조차 김정은의 눈치만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반 주민들은 파리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은 절대로 애민 지도자가 아니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고단한 생활을 경험한 적도 없다. 북한 주민의 주식인 강냉이밥조차 먹어본 적이 없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박정현 한국석좌는 “김정은은 아주 어릴 적부터 김정일에게 후계자로 선택된 이후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면서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며 떠받드는 환경 등은 김정은에게 어릴 적부터 자신이 ‘왕’이라는 무의식을 심어주었다”고 밝혔다. CIA 북한 분석관 출신인 박정현 석좌는 “김정은이 조부와 부친이 수십 년 넘게 사용해왔던 주민들에 대한 억압, 공포정치 수단을 사용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런 성장과정과 환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조부와 부친과 달리 부인 리설주를 공개석상에 데리고 나오는 것이나 북한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 화장품산업이나 관광레저산업의 육성을 강조하는 것 등은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보이게 하려는 전술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벌써 스톡홀름증후군인가?
남·북, 북·중, 미·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김정은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스톡홀름증후군은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말한다.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한국 국민들은 평화를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애호한다. 특히 지난 25년간 북한 핵무기의 인질로 살아온 한국 국민들은 전쟁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전쟁을 벌일 것처럼 ‘말 폭탄’을 쏟아내자 한국 국민들 중 상당수는 ‘제2의 6·25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위기를 느꼈다. 이를 간파한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제스처를 보내자 한국 국민들 중 일부는 이를 진정으로 믿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3대 세습 독재자로서 자신의 권력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핵 개발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들 중 일부는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지나친 기대까지 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지난 5월 27일 통일각에서 정상회담 후 서로 껴안고 있다. photo 청와대
아무튼 옛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도 감히 생각하지 않았던 권력세습을 3대에 걸쳐 구축해온 북한은 절대 정상국가가 될 수 없다. 지구촌의 어떤 독재자도 ‘선의(善意)’를 갖고 국가를 통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10.05 '北 해커, 1조원 탈취 시도' 변함없는 북의 진짜 얼굴
북한이 금융 전문 해커 조직을 운영하며 지난 4년간 주요 금융기관 등을 해킹해 11억달러(약 1조2300억원)어치 외화 탈취를 시도했고 실제 수억 달러를 북으로 빼돌렸다고 세계적 보안회사가 3일 밝혔다. 'ATP 38'로 명명된 북 해커 조직이 베트남·대만 등 최소 11국 은행의 해외 송금망을 해킹했다고 한다. 국제 NGO가 한국으로 송금하려던 돈도 털렸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2일 '히든 코브라'라는 북 해커 조직이 악성 코드를 이용해 전 세계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훔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사이버 공격 경보를 발령했다. 작년에는 30여 개국, 올해는 23개국 ATM이 이 수법에 당했다고 한다.
북은 1990년대부터 핵·생화학 무기와 함께 사이버 무기(해킹)를 '3대 비대칭 전력'으로 발전시켰다. 처음에는 전산망 마비나 단순 정보 탈취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미 태평양사령부 지휘통제소를 공격하고 세계 금융망을 전문적으로 해킹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 두 곳을 해킹해 76억원어치를 훔치기도 했다. '북 해커 집단의 제1 타깃이 한국'이라는 미 국가정보국(DNI) 전 국장의 최근 경고처럼 북 해킹은 이미 북핵만큼 우리 안보의 치명적 위협이 됐다.
그런데도 지난달 평양 정상 선언 부속합의 성격인 남북 군사 합의서에는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 금지'라면서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위협을 제한하는 내용은 전연 없다. 우리 군이 절대 우위에 있는 대북 정찰 자산에 대해선 기종(機種)별로 세세하게 비행금지구역을 정해놓고 북이 빠르게 발전시킨 '사이버 전력'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북의 위협은 그대로 놔둔 채 한국의 전력 우위만 제거시킨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10.22 김정은 집권 6년간 사치품 사는데 40억달러 썼다
제재중인 작년에도 6억달러어치
식량 부족분 2배 살 수 있는 돈
북한이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작년까지 자동차·시계·귀금속 등 호화 사치품 구입에 쓴 돈이 40억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사치품은 김정은 일가가 직접 소비하거나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는 권력 엘리트들에게 하사품으로 뿌려진다. 특히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전방위 대북 제재가 집중된 작년에도 사치품 구입액이 6억4078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 북한의 대중국 수입액(36억803만달러)의 17.8%에 해당한다.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실에 따르면, 북한이 2012~2017년 사치품 구입에 쓴 돈은 40억429만달러다. 안보리 결의 1718호에 따라 통일부가 고시한 대북 반출 제한 사치품 목록을 기준으로 중국 해관(세관)의 무역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품목별로 ▲전자기기 20억1198만달러 ▲자동차 13억9025만달러 ▲주류 1억6545만달러 ▲광학기기 1억4703만달러 ▲화장품·향수 5248만달러 ▲시계 4913만달러 ▲가죽제품 4791만달러 ▲모피 4727만달러 ▲양탄자 3757만달러 ▲선박 3571만달러 ▲악기 1235만달러 ▲귀금속 711만달러였다.
자동차 수입액엔 '수퍼카 수집광'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의전 차량인 '방탄 벤츠'와 얼마 전 존재가 확인된 롤스로이스 등 외제차 구입비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는 시계와 함께 김정은의 선물 통치에 가장 자주 활용되는 품목이다. 수입 악기들은 모란봉악단과 삼지연관현악단 등 김정은의 체제 선전용 악단에 지급됐을 가능성이 크다.
윤 의원은 "북한이 작년 사치품 수입에 쓴 외화로 국제시장에서 쌀을 구입했다면 식량 부족량(80만2000t)의 2배인 165만여t의 쌀을 살 수 있었다"며 "북한의 식량 부족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김정은에게 주민을 먹여 살리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이 매년 6억달러가 넘는 사치품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대외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정부가 제재 이행에 소극적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 의원은 "중국의 제재 이행을 요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제재 해제'를 위한 선전전을 펴고 있다"고 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선 대북 제재의 이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징후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유엔 제재 명단에 오른 북한 선박 '동산 2호 '가 지난 15일 북한 서해에서 약 900km 떨어진 중국 저우산(舟山) 인근 바다에서 포착됐다. 또 데일리NK 보도(19일)에 따르면, 중국산 차량들이 당국의 묵인하에 북한에 밀무역 형식으로 들어가고 있다. 싱가포르인 1명과 기업 3곳은 북한에 보석과 시계 등 고가의 사치품을 43차례(50만달러 상당)에 걸쳐 납품한 혐의로 싱가포르 당국에 의해 기소됐다.
● 북괴의 오만방자
10.31 "천안함 폭침은 모략극" 北 리선권의 역대 '대한민국 능멸'
"냉면이 목구멍에..." '옥류관 모욕' 사건 계기로 돌아본 리선권의 오만무도함
▲북한 리선권(위)이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아래는 지난달 평양회담 당시 냉면을 먹고 있는 리선권과 우리 기업 총수들. 사진=뉴시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대남(對南) 비난이 공분을 부르고 있다. 리선권은 지난달 3차 남북회담 수행단 자격으로 방북한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면박을 줬다. 10.4 선언 행사 당시 조금 늦게 도착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는 "(시간이 맞지 않는 조 장관 손목시계를 지목하며) 관념이 없으면 시계가 주인 닮아서 저렇게 떨어진단 말이야"라고 핀잔을 줬다.
리선권의 소위 '대한민국 능멸'은 수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태에 대해 "(우리 측이 물증으로 제시한, 북한 어뢰에 적힌 매직 글씨와 관련) 우리는 무장장비에 번호를 매길 때 기계로 새긴다"며 "우리는 광명성 1호 등 '호'라는 표현을 쓰지 '번'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번이라는 표현은 축구선수나 농구선수 같은 체육선수에게만 쓴다"고 발뺌했다. 우리 측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식으로 '적반하장' 태도를 보인 것이다.
리선권은 이듬해 2월 우리 정부가 천안함, 연평도 사태 같은 대남 도발을 멈추라고 지적하자 "천안함 사건은 철저하게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다. 미국의 조종하에 남측의 대북대결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남측이 연평도를 도발의 근원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비난했다. 이로 인해 당시 남북 실무자끼리 10분간 설전을 했고, 회담은 중도에 결렬됐다.
리선권은 2012년 미국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정말로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는지 세계에 공표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우리 정부에 '공개질문장'을 전송, 김정일 사망에 따른 조문 태도 사죄, 한미 '합동군사연습' 및 천안함 거론 중단 등 9개항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리선권의 말은 곧 '대화를 원하면 굴복부터 하라'는 식의 오만함이었다.
리선권은 "남측이 공개적으로는 대화를 떠벌리면서, 막후에서는 북남관계를 완전한 교착 상태로 빠트린 원칙들을 저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화 재개와 관계 개선은 전적으로 남측 정부에 달렸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리선권은 '대북 유화 국면'이 열리기 시작한 올해 초에도 우리 매체를 비난하는 등 대남 능멸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측 언론에서 지금 북남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가지고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는 기필코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앞으로 북남(관계) 개선되어서 할 일이 많은데 시작부터 오도되는 소리가 나오면, 오늘 좋은 성과를 마련했는데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좋지 않은 모양새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측 언론사들의 보도를 '오도'라고 칭하며 멸시한 것이다.
리선권은 또 "핵문제가 나와서 말이지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탄도로켓을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남북의 당면 사안인 비핵화 의제를 교묘히 피해가려는 궤변이었다.
리선권의 대남 비난 수위는 지난 5월 급상승했다. 그는 당시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한미 군사훈련을 문제삼으며 "남조선 당국이 우리를 언제 쏟아질지 모를 불소나기 밑에 태평스레 앉아 말 잡담이나 나누고, 자기 신변을 직접 위협하는 상대도 분간하지 못한 채 무작정 반기는 그런 비정상적인 실체로 여겼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오판과 몽상은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리선권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의 어느 조항, 어느 문구에 상대방을 노린 침략전쟁 연습을 최대 규모로 벌려 놓으며, 인간쓰레기들을 내세워 비방 중상의 도수를 더 높이기로 한 것이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그의 비난이다.
"회담 무산의 원인인 침략전쟁 연습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기 위해서라도 회담을 열어야 한다는 남조선 당국의 괴이쩍은 논리는,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의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북침전쟁 연습을 합리화하고 역겨운 비방 중상을 지속시켜 보려는 철면피와 파렴치의 극치다. 적대와 분열을 본업으로 삼던 보수 정권의 속성과 일맥상통한다."
리선권은 최근 10.4 선언 기념 행사에서 방북한 우리 측에 "6.15 (남북선언) 시대를 차단하는 '반통일세력'들에 의해, 10.4 선언을 비롯한 모든 북남 선언이 한동안 전면 부정당하고 북남 관계는 최악의 파국으로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우리 보수 진영을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 비난한 것이다. 그는 방북단에 속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최순실 캐느라고 참 수고 많았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리선권은 방북단 환영 만찬에서 "만약 6.15 공동선언의 실천강령인 10.4 선언이 정상적인 궤도에서 추진되었더라면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 시간표는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남 비난에 열중하던 그가 말하는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11월 01일 김정은 “적대세력들,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광분”
평양선언前 “강도적 제재” 이어
또 거친 표현으로 제재 맹비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직접 대북제재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현장을 돌아보고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 보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련 속에서 자기의 힘을 백배로 비축한 우리 국가가 어떻게 우리의 힘과 기술, 우리의 손으로 강대한 나라를 꾸려나가는가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뚜렷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모든 것이 어렵고 긴장한 오늘과 같은 시기에 연속적인 성과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적대세력들에게 들씌우는 명중포화로 되며 당의 권위를 옹위하기 위한 결사전이고 인민의 행복을 창조하고 꽃피우기 위한 보람찬 투쟁으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일간의 장고 끝에 30일 현지시찰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이 이처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은 비핵화를 지렛대로 대북제재를 조기 해제하려는 전략이 잘 먹혀들지 않자 버티기 전략에 들어가겠다고 공개 협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경제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 따른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내부결속을 다지기 위한 의도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도 현지지도 강행군을 펼치며 “강도적인 제재 봉쇄”라는 거친 표현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비난한 바 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이날 ‘외세의 천만부당한 간섭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미국이 반공화국 제재 압박 분위기를 고취하며 우리 민족 내부 문제에 보다 노골적으로 간섭해 나서고 있다”고 미국 비판에 가세했다. 매체는 “이는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유린이고 모독”이라며 “온 겨레는 우리민족끼리의 기치 아래 외세의 천만부당한 간섭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11.05 리선권의 끝없는 안하무인
평양 만찬서 與정책위의장에 "배나온 사람, 예산 맡겨선 안돼"
전해철 의원 만나선 "이제 3철이 전면에 나설 때 안됐습네까"
우리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했다는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에게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겨선 안 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나온 '냉면' 발언에 이어 리선권의 오만한 언행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야권(野圈)에선 "당정(黨政), 재계 인사들에 대해 리선권이 잇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발언하는 건 남한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리선권은 지난달 5일 10·4 선언 11주년 기념 공동 행사 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이해찬 대표 등 민주당 인사들과 만찬을 같이했다. 당시 배석자들에 따르면 민주당의 한 원내부대표가 김 의장을 "이분이 우리 당에서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리선권은 대뜸 "배 나온 사람한테는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 '냉면 발언'에 대해 진위를 문제 삼던 여권(與圈)은 '배 나온 사람' 발언에 대해서도 술자리 농담으로 넘기고 있다. 당시 김 의장 등 민주당 측 참석자들은 리선권 발언에 문제 제기 없이 웃어넘겼다고 한다. 김태년 의장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자꾸 가십을 만들어 내지 말라"며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리선권은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에게는 "이제 '3철'이 전면에 나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등 우리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3철'은 전 의원과 이호철 전 수석, 양정철 전 비서관 등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 3인방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신이 남한 정치에 밝다는 것을 대놓고 과시한 것이다.
리선권이 이처럼 안하무인에 가깝게 행동할 수 있는 건 남측에서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왔다. 리선권을 상대하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저자세'는 계속해서 논란이 돼 왔다. 리선권은 회담에 2~3분 늦은 조 장관이 "고장 난 시계 때문"이라고 하자 리선권은 "시계도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했다. 대북 소식통은 "경협 등 남북 간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용인 없이는 리선권이 그런 '센' 발언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리선권이 '유력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리선권은 북한에서 상당히 좋은 집안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며 "북한 내부에서도 일찌감치 힘이 세다는 소문이 났다"고 전했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인사들에 따르면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있던 리선권이 휴대폰 벨이 울리자 뒤에 서 있던 자신의 직속상관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에게 가방을 넘겨주고 전화를 받는 장면이 당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목격됐다고 한다. 김영철은 고아 출신에 자수성가한 인물로 알려졌다.
또한 "리선권의 모든 행동은 김정은에게 충성심을 보이면서 결국 김정은의 '속내'를 반영한 계산된 행동"이란 분석도 나온다. 고위급 탈북민 A씨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대남 및 외교 사업을 담당한 간부들은 목숨을 내놓고 싶지 않으면 우파(유화파)가 아니라 좌 파(강경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다른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과 김여정이 리선권과 김영철에게 악역을 맡기고 자기들은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만 보여주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리선권이 대남 사업을 전담해 온 관료가 아니라 군인 출신이기 때문에 거칠고 무례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철과 리선권은 군부에서도 강경파로 통하는 정찰총국 출신들이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11.12 北, 인권결의안 채택 참여 맹비난…“南, 파국적 후과 심고하라”
▲2017년 11월 14일(현지시각) 유엔 제3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 채택 모습. /연합뉴스(유엔 웹TV 캡처)
북한은 11일 한국 정부가 유엔에 상정된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파국적 후과에 대해 심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파국적 후과에 대해 심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최근 ‘북 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하거나 ‘기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어 댔다"라며 "이는 공화국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악랄한 모독이고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불과 얼마 전에 역사적인 평양 수뇌상봉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것을 약속하고 돌아앉아 대화 상대방의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중상 모독하는 범죄 문서 채택에 가담하려 하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남조선 당국의 온당치 못한 행동은 그들이야말로 미국의 눈치만 보며 그에 추종하는 것으로 연명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득환 외교부 부대변인은 앞서 지난 1일 "인권은 보편적 가치의 문제로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 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한다는 기본 입장에서 정부는 결의 채택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인권결의안 채택 참여 방침을 밝혔다.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규탄을 불러일으키는 실무팀(워킹그룹) 조작 놀음’이라는 제목의 별도 논평에서는 "남조선 당국은 미국의 전횡에 맹종 맹동 하고 코 꿰인 송아지처럼 끌려다니며 수치스럽게 처신하고 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조선일보 이창환 기자
●11.29 이병호 前 국정원장이 본 김정은
“제가 직접 고모부를 죽이려고 준비한 말뚝을 위성사진을 통해 보기도 했어요. 사람을 말뚝에 매어놓고 십이 미터 앞에서 고사포로 산산조각을 내 버렸어요
서초동 네거리에 북의 김정은 환영단을 모집한다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출근하는 대법원장 승용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진 기사가 나오고 창원에서는 민주노총에게 엊어 맞아 떡이 된 기업체 임원 사진이 사회면 구석에 크게 부각되고 있다. 기업체의 사장은 맞아도 되나 보다. 신고받은 경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현직 국정원장이 남북한 사이를 열심히 왕래하면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이따금씩 보도를 통해 보기도 한다. 국정원장이면 북한과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문득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정권의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2018년 8월 2일 오후 4시. 거친 뙤약볕 아래 서울구치소 사동(舍棟)들은 녹아내릴 것 같았다. 폭염 경고가 발령되었다. 구속된 이명박 대통령이 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기사를 봤다. 서울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의 구석 유리박스 안에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만났다. 나의 앞에는 눈동자가 탁하고 허공에 널린 빨래처럼 힘이 빠져나간 노인이 앉아 있었다. 눈에 눈꼽이 가득 끼어 있고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다. 이병호 씨였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았다.
“몸이 어떠세요?”
나는 건강부터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주위가 빙빙 돌아요. 한참 있어야 좀 괜찮아져요. 의무실에 갔었어요. 온통 몸에 문신한 건달 애들 사이에 줄을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려요. 한나절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는데 그 태도가 너무 냉랭해요. ‘전에 당뇨약이나 고혈압 약을 먹었으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죠’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내쫓아요. 여기 들어온 지 한 달 반 정도 됐는데 몸무게가 5킬로나 줄었어요.”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골짜기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국고 손실죄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청와대에 예산지원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외부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시죠?”
내가 권했다.
“수갑을 차고 나가 세상에서 창피를 당하기 싫어요.”
“사동의 몇 층에 계셔요?”
직사열을 받는 구치소 사동의 꼭대기는 폭염 속에 난로같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사동의 3층 꼭대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워낙 폭염이 계속되니까 구치소 측에서 2층으로 옮겨줬어요. 일층이 더 나은데 거기는 일반죄수들이 많아서 방이 없다고 그러네요.”
이미 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 같은 약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죽지 마세요. 예전에 변호를 하면서 감옥 안에서 죽는 사람도 봤어요.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친 혐의로 구속된 은행장을 변호했었는데 징역을 살던 중에 죽었어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형사소송법은 70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는 건강을 체크하고 위험할 때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었다. 팔십 노인인 이병호는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러나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그는 법의 보호에서 예외일 게 틀림없었다. 권력측에서는 어쩌면 그가 죽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정원장으로 김정은 제거를 시도했던 사람이다.
“칠십대 중반에 왜 국정원장이 되셨습니까? 어떤 철학을 가지고 뭘 하시려고 했습니까?”
그는 단지 관직이 좋아서 갈 사람은 아니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그는 월남전에서 소대장을 마친 후 정보기관에 들어갔다. 그 후 해외 정보요원으로 30년을 보낸 정보전문가였다.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지키려고 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죠. 자유민주주의죠.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남한의 좌익들에 대해 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체 국정원 요원에게 우리 앞에는 북한과의 ‘마지막 전투’라는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과제가 놓여있다고 선언했어요. 자유민주주의의 최후 승리를 가져오는 체제경쟁의 마지막 과정이었죠. 한반도에서 지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루고 불쌍한 북한 주민을 생지옥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것이 저와 국정원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이라고 인식했어요.”
“지금 정권은 북한과 평화공존으로 가자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틀린 생각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내가 반론을 제기했다.
“북한의 존재 목적은 김일성 때부터 혁명이었습니다.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듯이 모든 것의 끝은 남조선 혁명입니다. 그게 북한의 정체성입니다. 김정일 때도 그렇고 김정은도 그렇습니다. 남조선 혁명이 빠지면 북한은 빈껍데기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도 혁명을 버릴 수가 없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혁명이 성공하면 그 순간부터 고생이 끝난다고 세뇌해 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평화공존이라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의 사고로는 용납될 수 없는 관념이죠.”
“북한의 김정은은 어떤 인물입니까?”
“제가 직접 고모부를 죽이려고 준비한 말뚝을 위성사진을 통해 보기도 했어요. 사람을 말뚝에 매어놓고 십이 미터 앞에서 고사포로 산산조각을 내 버렸어요. 그 형도 공항에서 독극물로 죽였죠. 테러분자를 도주시켜 완전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을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죠. 지금 북한은 화재시 집에 있는 김일성 사진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죽이고 땅에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었다고 때려죽이고 김일성의 어록을 외우지 못했다고 총으로 머리통을 쏘는 지옥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김일성 때부터 김씨가는 단순한 제사장 정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죠.
북한 전체가 광신도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그들의 구원이 되는 길은 남조선 혁명이구요. 이런 구조 속에서 협상하고 평화공존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절대 안 됩니다. 저는 국정원장을 하면서 일단 김정은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다음 김씨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북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북한경제의 숨통을 트게 하면서 남북의 평화공존 협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던 거죠. 그게 거의 다 이루어질 수 있는데 박근혜 정권의 운명이 먼저 끝이 난 거죠. 지금 대한민국의 좌파 정치인들은 북한의 인권은 이웃 국가의 내정 문제니까 간섭하지 말자고 하죠. 그건 껍데기만 본 거예요.”
같은 대한민국에서 전 정권 국정원장의 시각과 현 정권 국정원장의 시각이 백팔십도 다르다. 정보기관은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전 정권의 국정원장과 현 정권의 국정원장이 북한과 김정은을 보는 눈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생각이 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달라지는 것일까.
조선일보 글 | 엄상익 변호사
●12월 21일 “北보다 사악한 존재 없어… 악마와 싸우는 투사될 것”
▲오토 웜비어 부모, 북한 상대 소송후 증인 출석
“北이 아들 풀어주지 않을까봐
외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북한보다 사악한 존재는 없으며 나는 악마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될 것입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귀환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어머니 신디 웜비어(사진 왼쪽)는 19일 워싱턴DC 연방법원에서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진술했다.
미국의소리(VOA)방송 등에 따르면 웜비어의 부모는 아들이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제재 등으로 미·북 간 대치가 첨예하던 시기에 볼모로 잡혀 정치적으로 희생됐다고 주장하며 북한 정권의 책임을 물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이날 웜비어의 부모는 진술하는 중간중간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참지 못했고 방청석에서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신디 웜비어는 의식불명 상태로 자신의 품에 돌아온 아들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며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사진이 연상됐다”며 “한때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죽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오른쪽)도 “우리는 더는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 그들(북한)은 겁쟁이며, 최악의 일을 했다”며 “나는 오토를 위한 정의를 구현해달라고 미국과 이 법정에 요청하기 위해 여기 섰다”고 말했다.
프레드는 북한 정권이 아들을 풀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외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면서 자신의 가족이 ‘북한에 의한 인질’ 상태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자백한 기자회견이 북한 당국의 강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웜비어의 가족은 올해 4월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내용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한 배상금은 1조2400억 원(약 11억 달러)이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 진쌍판 獨裁王朝를 解剖하다 - 대를 잇는 잔인성
● 장성택을 이렇게 죽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XqjlloEbhfM&feature=player_embedded 장성택 거세
1 조선중앙통신 보도문 전문
다음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3일 장성택 전국방위 부위원장을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사형에 처했다며 ‘천만군민의 치솟는 분노의 폭발.만고역적 단호히 처단’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보도문 전문입니다. 중간 제목은 독자의 이해 편의를 위해 편집자가 작성한 것 입니다.
○천만군민의 치솟는 분노의 폭발.만고역적 단호히 처단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진행>(평양 12월13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이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밑에 반당반혁명적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믿음을 받았다.장성택이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것이였다.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야심을 가지고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
장성택은 전당,전군,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것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군령도지반과 령군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조성될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너무도 일찌기,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정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 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 타격을 받고 철직,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장성택은 청년사업부문에 배겨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 나라 청년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뿐아니라 그자들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놓았다.장성택은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고 전과자,경력에 문제가 있는자,불평불만을 가진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당의 지시도 거역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작품과 현지지도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청사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행위를 감행한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당의 방침도 뒤집을 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짓을 하였다.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회,성,중앙기관과 도,시,군급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생활비적용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하던 일체 기구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게 하였다.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
놈은 국가건설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고 망발하였다.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몇년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기능공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건설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장성택은 정치적야망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 유로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변질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망상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장성택놈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장성택의 반당적,반국가적,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심리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다.우리 당과 국가,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김정일,김정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끝)
2 김경희와의 ‘사랑과 전쟁’
김정은 체제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으로 꼽혔던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은 처참한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김경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백두혈통’ 가문의 공주와 ‘곁가지’ 장성택은 50년을 불같은 사랑과 증오로 보냈다.
○ 불같은 사랑
1967년 어느 날, 강원도 원산의 원산경제대 정문에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들이닥쳤다. 정문 경비원은 한눈에 차를 알아봤다.
“수상(김일성) 동지가 왔다.”
대학에 비상이 걸려 간부들이 뛰어나왔지만 이 차에서 내린 사람은 수상이 아닌 새파란 젊은 여성이었다. 김경희였다. 그는 남성 기숙사에 주저 없이 들어갔다. 김일성대 경제학부에서 사귄 연인 장성택이 이 대학에 강제로 전학 오자 아버지의 차를 몰고 찾아온 것이다. 당시는 평양∼원산 고속도로도 없을 때였다. 말(馬)도 쉬고 간다는 마식령의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가 장성택의 빨래까지 해주고 가던 ‘공주’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북한 대학에서 회자된다.
장성택과 김경희의 인연은 1964년 김일성대 경제학부에서 입학해 둘이 같은 반이 되면서 시작됐다. 장성택은 김경희의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19세 김경희는 손풍금을 잘 치고, 말솜씨가 좋은 호방하고 훤칠한 미남에게 끌렸다. 앞에 앉은 장성택의 귀를 풀대로 간질이던 김경희의 장난은 점점 불같은 사랑으로 변했다.
둘이 사귄다는 얘기가 어느덧 김일성의 귀에 들어갔다. 김일성은 아들 김정일에겐 당을 맡기고, 사위에겐 군을 맡길 생각이었다. 장성택의 집안은 너무나 미천했다. 김일성은 화를 냈다. 장성택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함북 길주 명천 농민쟁의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광복 후 제일 먼저 함경도 토착 공산주의자들부터 숙청했을 정도로 함경도 출신을 싫어한 김일성에게 장성택의 집안 배경은 마이너스였다. 형의 뜻을 안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장성택을 대학 3학년 때 원산으로 보냈다.
하지만 김경희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외모나 성격이 어머니 김정숙을 쏙 빼닮은 김경희는 독한 면이 있었다. 오빠인 김정일도 김경희를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김정일이 동생을 편들고 나섰다. “신분이 안 좋으면 좋은 신분으로 만들어주면 되는데 저러다 차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며 김정일이 간청하자 김일성도 결국 물러섰다.
1969년 김경희는 장성택의 누이 장계순과 함께 러시아 유학을 떠났다. 장계순은 올해 장성택의 숙청을 계기로 소환된 쿠바대사 전영진의 부인이다. 유학에서 돌아온 김경희는 1972년 장성택과 결혼한다. 둘 사이엔 딸 장금송도 태어났다.
○ 냉전과 외도
그렇지만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자기를 편들어준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장성택은 조직지도부 외교부담당 과장으로 있던 1970년대 중반 ‘피로회복관’이란 관저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충성의 자금 마련이란 명목으로 북한 외교관들이 마약 밀매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김정일이 장남 김정남을 외부에 공개하기 꺼리자 그를 스위스로 보내고, 이철(이수용)을 발탁해 김정남을 돌보게 한 인물도 장성택이다. 이철은 2010년까지 30년 넘게 스위스에서 대사를 지내며 김정남은 물론이고 김정은과 그의 형제들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돈과 배경을 업은 장성택의 배포는 점점 커졌다. 급기야 측근들과 여인들을 불러 호화 파티를 벌이다가 1978년 김정일에게 적발됐다. 매제가 자신을 흉내 낸 파티를 연 사실을 안 김정일은 격노해 그를 강선제강소 작업반장으로 보냈다.
남편에게 실망한 김경희가 술에 의지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2년 뒤 1980년 복권한 장성택은 노동당 청년사업부 1부부장(1985년), 부장(1989년)으로 승진했지만 김경희와의 관계는 회복하지 못했다.
고독하고 쓸쓸한 김경희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음악이었다. 김경희는 1980년대 북한에서 유명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성호의 애절한 연주에 빠져들었다. 둘은 점차 연인으로 발전했고, 김경희가 그를 음악가정교사로 임명해 옆에 두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 증오로 변한 사랑
장성택이 김경희의 외도를 모를 리가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유명한 ‘심화조’ 숙청사건을 지휘했던 장성택은 제일 먼저 김성호부터 제거했다. 유학 중에 반체제 조직에 가담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워 처형했다. 김성호가 사라지자 김경희는 이 짓을 할 사람은 장성택밖에 없다며 오빠에게 달려가 애원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 사건 이후 김경희와 장성택은 별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일성의 사망 직후 김경희와 김정일의 사이도 급속히 악화됐다고 북한 권력 핵심층 출신 탈북자들이 말하고 있다. 김일성 사망 추모 기간에 김경희가 김정일을 향해 마구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기자가 이를 친구에게 말했다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일도 있다. 당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회의가 열릴 때 모든 참석자가 김정일을 향해 만세를 부를 때 김경희는 혼자 앉아 있다가 자신을 둘러싼 김정일 경호원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 지르고 퇴장하는 장면도 노동당 지도부에 목격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 조직지도부가 그녀를 가택연금하자 자살을 시도해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성호는 처형되기 전 친구들과 만나 “김경희가 술만 먹으면 ‘장성택이나 오빠는 똑같은 놈들이야,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들이야’라고 몰아붙였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김경희는 술을 마시고 사람들 앞에서 장성택에게 “야, 너도 마셔”라고 하는 등 대놓고 망신을 주는 일이 잦아졌다는 증언도 나온다. 사랑을 잃은 장성택의 여성 편력도 더 심해졌다. 한 북한 고위급 탈북자는 “장성택이 머무르던 초대소엔 포르노 영상물과 잡지가 가득했다”고 전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장금송은 사귀던 남성과의 결혼을 부모가 반대하자 2006년 프랑스에서 자살했다. 딸까지 죽은 뒤 김경희와 장성택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번 장성택 제거는 김경희의 ‘복수극’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올 정도다.
○ 불우한 부마의 가족
김일성의 사위, 김정일의 매제, 김정은의 고모부였던 장성택의 행로에 따라 그의 형제도 줄을 탔다. 장성택 처형에 따라 앞으로 그의 집안 식구들도 모두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성택에겐 두 형과 두 누나가 있었다. 큰형 장성우는 동생 덕에 군단장과 당 민방위부장을 거쳐 군 차수까지 올랐다가 2009년 사망했다. 그의 둘째 아들이 최근 소환된 말레이시아대사 장용철이다. 둘째 형인 장성길도 인민무력부 사적관장(중장)을 지내다가 2006년 사망했다. 장성길에겐 아들이 둘이 있었지만 모두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의 형제 중 가장 불우한 인물은 최근 쿠바에서 소환된 누나 장계순이다. 김경희와 함께 모스크바 유학을 한 경험 때문인지 김경희와 장계순은 시누이와 올케 관계였음에도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는 밤에 장계순의 집을 자주 찾아 자녀 결혼은 자기가 맡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계순의 딸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외아들 황경모와 결혼했다가 시아버지의 망명으로 남편이 수용소에 끌려가는 바람에 강제 이혼을 당하고 졸지에 청상과부가 됐다. 전영진 쿠바대사는 장계순의 둘째 남편이다. 가수 출신인 장계순은 인민예술가인 지휘자 신경학과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동생이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수령의 집안에 적대 계급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지주 집안 출신인 남편과 강제 이혼을 당했다. 장계순은 결국 남편과 사위, 동생까지 잃고 자신의 운명도 백두혈통의 처분에 맡기는 신세가 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3 “장성택 측근, 軍과 총격전 張 실각사태로 이어졌다”
최근 평양 다녀온 복수의 中기업인 주장
북한 평양에서 지난달 말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실각의 도화선이 된 총격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7일 전해졌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복수의 중국 기업인에 따르면 11월 25일 평양에 있는 장 부위원장의 최측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관리하는 한 회사에서 장 부부장 측과 북한 인민군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군인들은 갑자기 회사에 들이닥쳐 “김정은 원수님의 지시를 받고 회사를 인수하러 왔다”고 말했고 장 부부장 측 인사들은 “여기가 어디인 줄 아느냐. 장성택 부위원장의 회사”라고 저항했다. 양측의 대치는 결국 총격전으로 이어져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전 직후 장 부위원장이 장악하고 있던 제3경제위원회는 이틀 동안 회의를 연 뒤 “인수인계 지시를 받지 못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해명했다. 제3경제위원회는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38호실’의 후신으로 각종 이권 사업체를 운영하며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만드는 기관이다.
결국 제3경제위원회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장 부부장은 장 부위원장의 또 다른 최측근 이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과 함께 11월 27일 또는 28일 공개 처형당했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을 전한 중국 기업인들은 “장 부위원장이 김정은 집권 이후 제3경제위원회를 통해 돈 되는 알짜배기 회사를 싹쓸이해서 군의 불만이 높았다”고 말했다.
장 부부장은 타일 생산 기업, 화학업체 등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회사를 관리하며 막대한 경제적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장 부위원장과 측근들이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군부와 이권을 놓고 다투다 실각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는 경제적 이득을 많이 올리는 회사를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가 권력의 척도가 됐다”며 “경제적 이권을 장악했던 장 부위원장과 군부 간의 갈등이 치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성 채널A기자 sulsul@donga.com
4 장성택 사형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숙청이 결정된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2일 열린 특별군사재판 후 즉각 사형을 당했다고 13일 밝혔다. 통신이 밝힌 장성택의 혐의는 공화국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근거했다. 사진은 포승줄에 양 손이 묶인 장성택이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붙들린 채 법정에 선 모습. (YTN 화면캡쳐) 뉴스1
북한은 12일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숙청된 장성택 국방위원회 전 부위원장에 사형을 판결한 뒤 즉시 집행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 것을 확증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다"라며 "판결은 즉시에 집행됐다"고 전했다.
통신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 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12일에 진행됐다"고 밝혔다.
또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해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장성택은) 혁명의 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영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 할 대역죄를 지었다"고 소개했다.
통신은 장성택을 처형한 이유에 대해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장성택은 정치적 야망 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고 비판했다.
통신은 또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계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장성택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했다'"라며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영도자동지이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고 비난했다.
장성택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했는가'라는 질문에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며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했다"고 시인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어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했다"고 토설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통신은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이용해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해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고 꼬집었다.
통신은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지 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며 유일적영도체계를 강조했다.
통신은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영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뉴시스】
5 장성택과 함께 사라진 북한 주요인사는 누구?
북한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2013년 12월 12일) 이후 지금까지 숙청작업이 계속 이어져 오는 탓이다. 숙청의 이유는 ‘장성택 여독청산’부터 ‘유일 영도체계 위반’ ‘한국드라마 시청’ ‘술풍금지 지시 위반’ ‘김정은 찬양 노래 개사’ 등 다양하다. 다수의 북한 고위층 인사가 숙청당했지만, 정확히 누가 희생당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과연 김정은 눈 밖에 나 해임·강등당하거나 아예 숙청당한 인사는 누구일까.
《월간조선》은 미국 CIA(중앙정보국) 자료와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을 분석, 숙청당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 고위층 인사를 조사했다. 조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했다.
우선 CIA로부터 받은 2013년과 2014년의 북한정부주요인사명단(Chief of the state and core cabinet members of the government)을 비교, 2013년도에 직책을 맡았지만 2014년도에는 아무 자리도 맡지 못한 인사를 추렸다. 장성택 사형 이후 ‘팽’ 당한 인물이라면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인사들에 대해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 기록이 남아 있는지 전수(全數)조사했다. 북한은 숙청한 인물의 기록을 모두 삭제한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은 “《로동신문》에 실렸던 기사나 ‘조선중앙통신’의 영상 기록이 전부 삭제됐다면 숙청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CIA의 2013년 자료는 장성택 처형 직전(2013년 11월)에, 2014년 자료는 2014년 10월에 만들어졌다.
19명의 온·오프라인 기록 삭제
CIA 자료에 나온 북한의 주요 핵심인사 87명 중, 장성택 사형 집행 이후 1년 동안 실각, 경질, 해임당한 인사는 사형당한 장성택을 포함해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리성호 상업상 ▲홍인범 당 중앙위 위원 ▲로성실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심상진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위원장 ▲조병주 부총리 겸 기계공업상 ▲전승훈 부총리 겸 금속공업상 ▲김인식 부총리 겸 수도건설위원장 ▲한효연 금속공업상 ▲강민철 채취공업상 ▲리영용 석탄공업상 ▲홍광순 국가영화위원장 ▲김광영 임업상 ▲백세봉 인민군 상장(우리의 중장) ▲김창수 당 중앙검사위 위원장 ▲백룡천 북한 중앙은행 총재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 ▲강석주 당 중앙위 비서 ▲현상주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 위원장 등 20명이었다.
20명 중 김영춘을 제외한 나머지 19명의 기록은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에서도 모두 삭제된 상태였다.
김영춘의 경우 기록이 삭제되진 않았지만 실각한 상태다.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영춘과 관련, “은퇴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영춘이 밀려난 이유는 사위인 리성호 때문이라고 한다. 상업상이었던 리성호가 사적인 자리에서 김정은의 지시를 비판했다가 숙청당했고, 불똥이 장인인 김영춘에게까지 튀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4년 4월 17일 이같이 보도했다.
〈김정은이 서해 장재도와 무도 방어대를 방문했을 때 군병실과 군관들의 살림집이 허름해 다시 지어주라고 한 것에 대해 리성호는 비공식 자리에서 불만을 표출했고, 그는 결국 숙청됐다. 김영춘의 체면을 봐서 총살형은 면한 것 같지만 리성호 사건 때문에 김영춘도 권력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영춘은 1996년 반(反)김정일 쿠데타인 ‘6군단 사건’을 진압했던 인물이다. 북한은 2014년 4월 리성호의 자리에 김경남을 임명했다.
홍인범 평안남도 책임비서는 2014년 6월 경질됐다. 우리의 경기도지사 격인 평안남도 책임비서 자리에는 김정은 체제 들어 ‘신(新)실세’로 부상한 박태성 노동당 부부장이 올랐다. 홍인범은 2014년 3월 9일 시행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선거에서 선출돼 요직으로 자리를 옮겼을 것으로 보였으나 《로동신문》에서 정보가 없어진 점으로 미루어 숙청 가능성이 높다. 홍인범이 숙청당했다면 그 시기는 2014년 7월 이후일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2014년 7월 9일 북한이 발표한 전병호 전 군수담당 당비서의 국가장례위원회 명단에 홍인범이 포함된 까닭이다.
로성실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장은 2014년 2월 4일 해임됐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은 로성실이 사업상 관계를 이유로 해임됐다고 밝혔다. 로성실은 오랫동안 청년동맹에서 활동하면서 장성택 그룹과 인연을 맺어 승승장구했던 인물이다. 온·오프라인에서 그에 대한 정보가 삭제된 만큼 ‘장성택 물빼기’ 목적으로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좌파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만이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로성실이 현재 출판 계통으로 자리를 옮겨 여성 관련 글을 집필 중이라고 보도했다.
심상진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위원장은 2012년 11월 신병관계를 이유로 위원장직에서 내려오고 나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장성택 사형 직후인 2013년 12월 28일 일신상의 이유로 부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현재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 위원장은 강수린이 맡고 있다. 강수린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2006년 6월 6·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참석한 바 있다.
봉화조 멤버도 숙청?
▲김정은은 당 조직지도부에 “장성택 계파를 청산하기 위한 2단계 작업에 돌입하라. 장성택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없애버리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이 현지지도에 나선 모습.
조병주 부총리 겸 기계공업상, 전승훈 부총리 겸 금속공업상, 김인식 내각 부총리 겸 수도건설위원장은 2014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1차 회의를 통해 해임됐다.
이들 셋 중 전승훈은 장성택 처형 하루 전인 2013년 12월 11일 《로동신문》에 〈장성택 일당은 나라의 귀중한 자원인 석탄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 행위를 감행하면서 주체비료생산기지에 우선적으로 보장하게 되어 있는 석탄도 제때에 넣어주지 않았다. 흥남과 남흥의 주체비료 생산공정만 보아도 석탄만 보장해 주면 정말로 큰 은(성과란 뜻)을 내어 알곡 증산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었다〉며 사실상 장성택 사형을 암시하는 글을 썼지만 실각했다.
북한의 ‘경제사령탑’이었던 이들의 해임이 장성택 잔당 제거인지, 은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들의 자료가 온·오프라인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앞서 소개한 전승훈이 《로동신문》에 썼다는 장성택 비판글도 자취를 감췄다.
같은 시기 김광영 임업상과 백룡천 북한 중앙은행(대한민국의 한국은행에 해당) 총재도 각각 한용국, 김천균으로 교체됐다. 여기서 백룡천의 해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룡천은 1999년부터 2007년 사망할 때까지 8년간 북한 외교의 ‘얼굴마담’이었던 백남순 전 외무상의 셋째 아들로 내각 사무국 부장에서 중앙은행 총재로 초고속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해 온 인물이다. 하지만 해임된 직후 그의 자료는 모두 삭제됐다. 백룡천은 봉화조 일원이다. 봉화조는 북한 당·군·정 고위층 2세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백룡천을 비롯해 2012년 7월 해임 이후 거취가 알려지지 않은 리영호 군총참모총장의 아들 리선림, 김일성의 혁명 1세대 동지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 최현의 아들 최룡해, 오백룡의 두 아들 오금철과 오철산, 김원홍 북한인민군 총정치국 부국장의 아들 김철, 강석주 내각 부총리의 아들 강태성, 김충일 김정일서기실 전(前) 부부장의 아들 김철훈, 김창섭 국가안전보위부 정치국장의 아들 김창혁 등이 봉화조 멤버들이다.
봉화조는 북한에서 돈이 될 만한 모든 것에 손을 대고 있다.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봉화조는 북한에서 금광, 석탄, 철광석, 유색금속, 관광 등에 손을 대는 것도 모자라 무기밀매, 달러위조, 마약 등 불법무역 행위들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금속, 석탄과 관련한 내각 인사 줄줄이 실각
▲강민철, 강석주, 김광영, 김영춘, 김인식, 김창수, 로성실, 리성호, 문경덕, 백룡천, 백세봉, 신선호, 심상진, 전승훈, 조병주, 현상주, 홍광순, 홍인범.(윗줄 왼쪽부터)
한효연 금속공업상은 2014년 1월 김용광에게 자리를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로동신문》은 2014년 1월 3일 금속공업상을 김용광으로 소개했다. 김용광은 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으로, 2008년 6월 금속공업성 부상을 거쳐 2010년 9월부터 무산광산연합기업소 지배인을 지냈고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때 국가장의위원에 포함됐었다. 한효연의 실각에 대해서는 장성택 라인 숙청의 일환이라는 견해가 많다. 한효연이 장성택 숙청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2013년 장성택 숙청 결정 당시 ‘주체철’ 공업 발전을 저해했다는 비난을 언급한 것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규모 철광산인 무산광산 당 위원회 책임비서 출신으로 2005년부터 채취공업상을 역임한 강민철도 2014년 1월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강민철 또한 교체 배경이 명확하진 않다. 하지만 북한이 장성택에게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했다”는 죄목도 단 만큼 최대 철광석 생산지인 무산광산 등 광물 부문을 총괄한 강민철의 해임도 장성택 처형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 강민철은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된다.
강민철의 해임 경위를 잘 아는 탈북자의 이야기다.
“무산광산 지배인 김석주가 간부들과 공모해 농촌 비료 자금과 수출자금을 상당 부분 횡령, 강민철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액수가 15만 달러 이상입니다. (강민철은) 이런 사실이 적발돼 실각한 것입니다.”
강민철의 후임으로는 리학철이 왔다.
2014년 1월 통일부 자료를 보면 리영용 석탄공업상도 문명학으로 교체됐다. 평양시 강동지구탄광연합기업소 지배인 출신인 리영용은 2003년 8월 최고인민회의 11기 대의원에 선출됐고 2010년 12월부터 석탄공업성 부상으로 일해 오다 2013년 4월 석탄공업상으로 임명됐다. 석탄공업상 자리에 오른 지 1년도 안 돼 물러난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장성택 처형 이유에 대해 ‘석탄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리영용의 해임도 장성택 처형과 관련 있어 보인다.
리영용은 2014년 1월까지만 해도 김정은을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음은 리영용의 이야기를 소개한 《로동신문》 내용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력사적인 신년사를 받아 안고 새해의 진군길에 떨쳐나선 석탄공업 부문 일군들과 탄부들의 열의와 투쟁기세는 지금 하늘을 찌를 듯 높다. 성에서는 대중의 앙양된 열의에 맞게 높이 세워진 올해 석탄증산 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기 위한 경제작전과 지휘를 면밀하게 짜고들고 있다. 신년사에 접한 즉시 성의 책임일군들이 순천, 덕천, 북창, 안주지구를 비롯한 인민경제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탄광지구들에 나가 현지에서 협의회를 열고 석탄생산을 늘리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들을 세웠다. 성에서는 올해 탐사와 굴진, 채탄 등 석탄생산의 모든 부문에서 일대 비약을 안아오기 위한 통이 큰 목표를 내세우고 새해의 첫 전투 시작부터 대담하게 작전하고 완강하게 실천해 나가고 있다.〉
북한 영화예술을 총괄하는 홍광순 국가영화위원장은 장성택 사형 바로 직전에 실각됐다. 홍광선 후임으로는 박춘남이 왔는데 그는 2003년부터 평양연극영화대학 부학장, 2009년 말부터 국가영화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 9월 문화성 부상 겸 영화총국 총국장으로 활동했다.
망명설의 주인공 백세봉
백세봉 인민군 상장(우리의 중장)은 장성택의 측근이다. 백세봉은 장성택 처형 전인 9월 말~10월 초 중국으로 도피해 3국에 망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이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대북 소식통의 말을 인용, “망명을 요청한 장성택의 측근은 노동당 행정부 소속으로 외화벌이와 비자금 관리를 했으며 노동당 행정부 소속이면서 인민군 상장이다. 이 인물은 그동안 중국은 물론 홍콩과 마카오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외화벌이 업무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행정부 소속이면서 인민군 상장인 사람은 백세봉밖에 없다. 우리 정보당국은 백세봉이 2012년 해임돼 사실상 은퇴 상태라고 일축했지만 백세봉의 자료가 삭제된 것은 장성택 처형 이후인 2014년 초다. 2012년에 해임됐다는 정보당국의 설명이 틀렸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성택 측근의 망명설이 도는 가운데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장성택의 조카의 아들인 장용철(가명)씨가 장성택의 체포·숙청 과정을 전후해 제3국으로 탈북했다”며 “현재는 대한민국에 입국해 서울에서 안정되게 생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씨를 서울에서 직접 만난 적도 있다는 안 소장은 “장씨가 북한에 가족을 둔 채 혼자 탈북하는 바람에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볼까 두려워 장성택과 인척인 것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장씨가 장성택과 관련된 비사(史) 등을 정리 중”이라고 했다.
이 밖에 김창수 당 중앙검사위 위원장,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각각 리승호, 자성남으로 교체됐다. 신선호의 경우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6년 가까이 대사직을 맡은 만큼 ‘정기인사’ 격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북한으로 돌아간 이후 자료는 삭제됐고, 외무성 부장이 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북한은 주요인사를 교체하면 어떻게 해서든 알린다. 신선호의 후임인 자성남은 대표적인 ‘미국통’ 인사로 2008년 북한 교향악단의 초청연주회를 이끌고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등 다른 북한 외무성 관료들보다 활발한 활동으로 시선을 끌었던 인물이다. 2011년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강석주 당 중앙위 비서와 현상주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 위원장은 최근에 정보가 삭제된 케이스다. 강석주의 경우 2014년 12월 3일 《로동신문》에 근황이 소개됐지만, 그 이후 자료가 몽땅 사라졌다. 당시 《로동신문》 내용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강석주 동지는 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작별 방문하여 온 알렉싼드르 찌모닌 주조 로씨야련방 특명전권대사를 만나 담화를 하였다. 여기에는 김성남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과 로씨야대사관 성원들이 참가하였다.〉
현상주는 2014년 11월 28일 《로동신문》 보도를 끝으로 검색이 중단됐다. 11월 27일 ‘청년전위들과 직맹일군들, 직맹원들의 결의대회’에 참석한 현상주는 이 자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성명을 낭독했다.
2014년 9~10월 黨·政·軍 간부 숙청사례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및 당 선전부 간부 20여 명, ‘반당 종파행위’와 뇌물수수·여자문제·마약복용 등의 혐의로 총살(9월) ○장성택과 연계된 중앙 및 지방당 간부 10여 명, ‘유일영도체계’를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강건군관학교에서 총살(10월) ○해주시당 책임비서 등 황해남도 간부들, 횡령·한국드라마 시청 등의 죄목으로 처형(10월) ○당재정경리부 일부 간부들, 노래방에서 김정은 찬양 노래를 개사하여 부르다 적발되어 총살(10월) ○당·공안기관 간부들, ‘술풍금지’ 지시 위반으로 강등, 처형 |
김정은 사치품 조달 담당했던 인사도 숙청
CIA 북한 주요인사 명단에는 없지만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도 꽤 됐다. 《월간조선》 취재 결과 이들 역시 자료가 삭제된 상태였다. 이들은 대부분 장성택과 관련한 인물이었다.
대표적으로 리용하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있다. 이들은 장성택 처형 이전인 11월 공개 처형됐다. 1947년생인 리용하는 황해북도 당비서 출신이며, 2011년 ‘노력 영웅’ 칭호를 받고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수행했던 북한 권력의 핵심 실세였다. 장수길은 ‘해당화’ 등 해외 식당과 북한 내 백화점 등의 운영을 통해 외화벌이하던 54총국을 맡고 있었다.
▲김영일 당 국제비서 ▲문경덕 당 책임비서 ▲백계룡 당 경공업부장 ▲이병삼 인민내무군 정치국장 ▲이영수 당 근로단체 비서 ▲박명선 인민봉사총국(평양시내 대부분 음식점 관장)장 등도 장성택의 측근으로 분류돼 숙청됐다.
장성택의 조카로 알려진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와 장성택의 매형으로 파악된 전영진 쿠바 대사도 평양으로 불려들어갔다. 박광철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주재 북한 대표부 홍영 부대표도 소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광철은 대사 임명을 비롯한 북한 외무성 인사 과정에서 장성택의 의향을 충실히 반영했던 인물이고, 홍영은 장성택의 측근으로 김정은의 사치품 조달을 담당했던 자이다.
김정은은 2014년 6~7월경 당 조직지도부에 “장성택 계파를 청산하기 위한 2단계 작업에 돌입하라. 장성택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없애버리라”고 지시했다. 당 조직지도부는 지난 8월 “현대판 종파 일당이 집행했던 문제를 전면 재검증하고 간부들의 충실성을 검증해 이색분자를 색출·제거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2014년 9월 한 달간 북한 전역에는 ‘전당 사상투쟁회의’ 바람이 몰아닥쳤다. 노동당과 군부, 공안기관인 보위부를 비롯한 검열기관들이 총동원돼 지방 당 간부는 물론 해외에 주재하는 공관원과 외화벌이 일꾼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과 숙청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북송 중 탈출에 성공한 한씨의 부친은?
▲한씨는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같이 유학길에 오른 친구,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벨빌 건축학교 관계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받은 후 라빌레트 건축학교 관계자들과 연락이 끊겨 누가 한씨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처리한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그럼에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2014년 숙청당했다고 확인한 장성택 측근 중 한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 한효연 금속공업상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다. 통일부가 공개한 북한 고위층 중 한씨는 한효연을 포함 총 6명(한광복, 한광상, 한동근, 한성렬, 한흥표)이다. 이 중 한광복은 여성(전 과학교육부장)이며 한광상은 현 재정경리부장이다. 한흥표 함경북도 인민위원장은 숙청당했지만 그 시기가 2011년 하반기다. 한동근 전 총정치국 선전부장은 2010년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의 선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한성렬 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2013년 6월 교체(후임 장일훈 전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과장)됐으나 숙청의 의미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6명의 한씨 중 자료가 삭제된 인물은 한효연, 한흥표 두 명이다. 이 중 한흥표의 숙청시기가 2011년 하반기인 만큼 장성택 사형 이후 숙청당한 북한 고위인사는 한효연 한 명인 셈이다.
한씨 성에 주목한 이유는 2014년 11월 프랑스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chitecture de Paris-La Villette)에서 공부 중이던 북한 유학생이 북한 호송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던 중 공항에서 탈출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유학생의 성이 한씨인 까닭이다. 여러 루트로 확인한 결과, 한씨의 부친은 장성택 사형 사건 여파에 휩쓸려 숙청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한씨는 한효연의 아들은 아닐까.
《월간조선》은 유학생 한씨와 같이 공부한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학생회 소속 트리스탄 드후글라제(Tristan Drouglazet), 소피아 다우드(Sophia Daoud) 학생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명확한 답은 듣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이야기한 바로는 한씨는 북한 최고의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닌 수재며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고위층이었다. 또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는지, 아니면 숙청당할 것을 미리 감지하고 아들에게 탈출을 귀띔하려 했는지 한씨의 아버지는 같이 유학 온 학생의 부모보다 훨씬 많은 편지를 아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트리스탄 드후글라제와 소피아 다우드 학생은 “한씨는 아버지에게 편지 많이 받기로 유명한 학생”이라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월간조선》은 한씨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같이 유학길에 오른 친구들,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벨빌 건축학교 관계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입수했다.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관계자는 학교신문에 실린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 관계자들은 취재에 호의적이었다. 한씨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하자, 같이 유학 온 북한 학생을 연결해 주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11월에 꾸준히 메일을 주고받던 그들과 12월 이후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북한의 조치가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프랑스 정부는 2011년 북한 유학생 10명을 초청해 프랑스의 대표적 건축학교인 파리 라빌레트 건축학교와 파리 벨빌 건축학교에 5명씩 수학하게 했는데 한씨는 그중 한 명이다. 나머지 9명은 그대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한씨의 부친이 한효연일 가능성에 대해 정보당국과 탈북자들에게 문의했다. 탈북자들은 알 수 없다고 했고, 정보당국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연대 소장은 “한씨의 아버지가 한효연일 수도 있지만, 러시아, 중국이 아닌 프랑스에 유학을 보낸 것으로 봤을 때 훨씬 고위층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현재 탈출에 성공한 한씨의 소재는 불분명하다. “한국 정보당국이 그를 구해서 지금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한국 주재 프랑스대사관에서 근무했던 파스칼 다예즈-뷔르종), “다른 국가 모처에 은신 중”(대북소식통), “프랑스 내에 숨어 있을 것”(프랑스와 국내 언론) 등 예상이 엇갈리고 있다.
유학파 김정은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북한 대학생이 강제 송환 과정에서 탈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이 서방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사상을 흡수하는 통로인 유학생 파견마저 막거나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의 주요 지지층이 해외유학파 출신의 경제 관료였고 현재 해외 유학생도 이들의 자제인 경우가 많아 북한이 이들을 강제 송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김 제1위원장 자신도 스위스 유학파로 서방의 문물을 접한 이들이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조기 유학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당장 엘리트들의 해외 유학을 금지시킬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자체가 유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노작》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른 나라들, 국제기구들과의 과학기술교류사업도 활발히 벌여야 합니다. 국토관리와 환경보호 부문에도 세계적인 발전추세와 다른 나라들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기술들을 받아들일 것이 많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지만 인터네트를 통하여 세계적인 추세자료들, 다른 나라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과학기술자료들을 많이 보게 하고 대표단을 다른 나라에 보내여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자료도 수집해 오게 하여야 합니다. 국토환경보호성과 해당 기관들에서 다른 나라의 과학연구기관들과 공동연구, 학술교류, 정보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며 국제적으로 진행하는 회의, 토론회들에 참가하여 앞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을 적극 진행하여야 합니다.〉
유네스코 등에 따르면 외국에서 유학 중인 북한 학생은 2100여 명(중국 1000여 명, 호주 700여 명, 캐나다 200~300여 명, 프랑스·인도 70여 명, 러시아 100여 명)가량 된다.
다만 통계수치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 학생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순수하게 북한에서 건너온 유학생들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한 결과는 아니다.
북한의 新실세
▲실세 6명, 황병서, 최룡해, 오일정, 오금철, 김원홍, 조연준.(왼쪽부터)
장성택계가 사라진 자리엔 신 실세 그룹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현재 김정은 정권을 떠받드는 권력 엘리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김일성 시대부터 지금까지 3대째 ‘수령을 모셔온’ 원로들을 꼽을 수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영림 명예부위원장, 오극렬·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기남 당 선전선동비서, 최태복 당 교육과학비서 등이 80~90대의 대표적인 원로들이다. 이들은 김일성이 발탁한 사람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어떠한 권력야욕도 드러내지 않고 수령 체제를 받들어온 ‘충성심을 충분히 검증한’ 보수적인 인물들이다. 대부분 공식서열 상석에서 상징적인 원로대접을 받는 데 만족하고 있다.
다음으로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조연준 조직지도부 1부부장, 강석주 당 국제담당 비서, 김평해 당 비서, 박도춘 당 비서,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격식 북한군 4군단장, 박봉주 내각 총리, 곽범기 노동당 비서, 윤정린 호위사령관, 리병철 북한군 공군사령관, 오금철 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오일정 당 군사부장 등 김정일에 의해 충성심과 전문성, 실무능력을 인정받아 등용된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현재 각 분야에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와 대내외 정책의 전반을 이끌어가는 정권의 가장 핵심적인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최룡해는 만주 빨치산 시절부터 김일성의 충신으로 알려진 부친 최현의 후광으로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시대에도 체제 정통성 세우기의 본보기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 항일빨치산 출신 오진우의 셋째 아들인 오일정과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등 이른바 빨치산혈통도 최근 김정은의 측근으로 덩달아 부상한 모습이다. 김정은 정권이 내세우는 백두혈통에 당위성과 명분을 부여하는 역할을 이들 빨치산혈통이 해줄 것을 바라는 김정은의 의도가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변인선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 조경철 보위사령관,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김명식 북한군 해군사령관,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윤동현 인민무력부 부부장, 렴철성 총정치국 부국장,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등 군부엘리트와 리수용 외무상,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 책임비서, 김수길 평양시 당 책임비서, 최휘 노동당 제1부부장, 한광상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리일환 노동당 근로단체부장, 김병호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노동당 기계공업부 부부장,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 맹경일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과 정부 관료들, 김여정(김정은 여동생) 등 혈육을 비롯하여 김정은 정권에서 권력 핵심에 진입했거나 새로 모습을 드러낸 신진엘리트들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인물들은 김정일 시대부터 이미 권력에 등용되었으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급부상한 인물들이다. 특히 군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당 근로단체부장 리일환, 외무상 리수용 등은 김정은의 유년시절부터 맺어진 친분이나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와의 인연이 배경이 되어 권력 핵심에 기용된 대표적인 인사다.
대부분의 신진엘리트는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부터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충성심을 높이 평가받거나 김정은의 후계수업에 관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정은에 의해 직접 발탁되었거나 최룡해 등 측근들의 추천으로 권력에 등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6 북 소식통, “현영철은 ‘최고 존엄 모독죄’로 처형”
▲북한군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지난 13일 국정원이 북한군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 현영철의 처형 첩보를 공개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그의 처형원인이 북, 내부소식통으로부터 전해졌다.
북한군 내부소식통은 14일 탈북군인단체인 ‘북한인민해방전선’에 “인민무력부장이 4월30일 오전, ‘강건 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처형된 게 맞다”며 “하지만 군 안에 있는 현 부장 동료(측근)들의 반감과 군 간부들의 동요를 우려해 아직까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의 설명에 의하면 현 부장에 대한 처형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리영길 총참모장 외 김원, 윤동현, 리재일, 조경철, 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등 60여명의 간부들과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 장성(장군) 1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행되었다.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강건 종합군관학교’ 강당(회의실)에서 ‘인민군 및 인민보안부지휘관회의’가 소집되었으며 여기서 현영철을 ‘최고 존엄을 모독한 죄’를 지은 반당반혁명분자라고 낙인한 뒤 곧바로 처형했다”고 말했다.
또 “사격장에는 공포심을 자극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위해 중무장한 보위사령부소속 군인들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었고 운집한 장성들 사이사이에도 권총을 찬 보위부 지도원들이 깔려있어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식통은 “지금 남조선에서 말하고 있는 고사기관총에 의한 총살은 아니다”고 단언한 뒤, “교육용 고사기관총이 사격장 내에 있긴 하지만 현영철에 대한 처형은 자동보총(AK소총)을 든 9명사격수들이 의해 이뤄졌다”고 꼭 집어 말했다.
우리 언론에서 현영철 처형에 일조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병서(인민군 총정치국장)에 대해서는 “황 국장과 인민무력부장 관계는 동갑내기일 뿐 아니라 대화도 서로 많이 나누는 사이로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고 했고 처형 원인에 대해서는 ‘최고 존엄 모독죄’외에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부장은 대인 관계가 좋고, 서글서글한 성격을 갖고 있어 누구에게 밉보일 량반이 아닌데 걸려들었다”며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 무력부내 장성(장군)들이 축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할 때에도 남들이 꺼리는 문지기(꼴키퍼)를 자처할 만큼 배려심이 있는 인물이다”고 했다.
하지만 현영철 주변 인물들 속에서는 ‘중뿔나게 나서지 말고 왕자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게 좋다’, ‘괜히 나서서 쫄랑대다가 왕자의 눈에 나 목 떨어지는 사람들을 못 보았냐’는 식으로 그(현영철)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해왔고, “그런 점이 김정은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 것 같다”는 말이 나돌고 있음을 전하기도 했다.
끝으로 소식통은 “지금 인민군 내에서는 ‘장군님을 진심으로 받드는가 받들지 않는가’, ‘신념과 량심으로 장군님만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사상전(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조만간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인민군당 확대전원회의가 열리게 된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글 | 이석영 자유북한방송 기자
6-2 현영철 처형을 주도한 권력의 종심은 과연 어디인가?
현영철이 공개처형됐다. 장성택 처형 이후 두 번째로 큰 대내외적 충격이다. 현영철 외에도 그동안 김정은 측근들이었던 마원춘, 변인선, 한광상도 사라졌다. 국가정보원은 처형 기구가 어디인가?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현영철은 군 간부니까 군 보위국도 하고 당 조직지도부가 다 총괄한다. 여기에서 오케스트라 지휘하고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김정은 지시로 이뤄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내부흐름이 부분적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언론들은 모두 김정은 주도로 이루어진 처형으로, 늙은 간부들에 대한 젊은 독재자의 콤플레스 결과라고도 했다. 기이한 것은 김정은 정권 들어와 고속승진한 군 측근들이 모두 제거됐는데도 말이다. 언론들의 주장처럼 김정은이 권력 과시를 위해 불경죄를 적용한 처형이라면 고모부도 세상에 공개했는데 한갓 인민무력부장 정도의 처형을 지금까지 숨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수령혈통 세습의 나라라도 권력이란 그 속성상 명분만으로 순간에 모아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이 단 3년만에 절대권력을 쥐었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위대한 신이다. 또 그런 철부지에게 목숨을 내맡기는 북한 간부들도 모조리 바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쉬운 세습이라면 굳이 3대멸족 연좌제나 정치범 수용소와 같은 공포정치가 왜 필요하겠는가?
수령주의는 단순히 수령 개인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 잣대로 당원들을 감시하고 충성경쟁을 강요하는 통치시스템 특권그룹의 공동이익이기도 하다. 더구나 김일성, 김정일이 없는 오늘의 30살짜리 김정은 정권에서는 특권그룹의 집단권위가 더 높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장성택 사건 하나만으로 사실 이미 증명된 셈이다. 아무리 멍청한 개인이라도 둘만의 비밀이던 “불륜”을 “불륜이다!”고 세상에 떠들며 상대를 대놓고 저주하진 않는다. 하물며 수령 신격화의 나라에서 수령의 고모부를 느닷없이 수령의 반역자로 대내외에 공개하며 즉결처형까지 할 때에는 분명 비정상적인 권력현상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수령 신격화를 전혀 계산하지 않은 북한 체제답지 않은 조급함이다. 결국 장성택 처형은 그 후유증만으로도 수령 신격화 처형이 됐고,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 인민무력부장 현영철 공개처형 또한 선군정치 처형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어마어마한 권력의 종심은 과연 어디인가?
1 현영철은 군서열2위도, 국방장관급도 아니다.
분석에 앞서 현 북한학계부터 비판하고 싶다. 군담당 당 조직지도부 황병서 부부장이 총정치국장으로 권력정면에 등장하고,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당 조직지도부가 민낯을 드러내기 전까지 북한학계는 북한의 핵심권력을 군부로만 봤다. 아니 솔직히 당 조직지도부의 존재조차 잘 몰랐다.
그동안 북한 외교관 출신 현성일박사를 비롯한 고위 출신 탈북자 엘리트들이 당 조직지도부의 파워를 일관하게 주장했는데도 말이다. 이미 선군통치체제로 굳어진 북한학의 기득권인데다 언론, 정보, 대북분석도 그 뿌리에서 뻗어나간 줄기여서 탈북자의 조언을 존중할 틈이 없었다. 그런 생태계에 적응하자면 탈북자들 스스로도 자기 경험과 논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됐다.
북한학계의 선군착오 여파는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국회정보위나 언론들이 현영철을 군서열2위, 심지어 한국의 국방장관급으로 보고 있는 점이다. 틀린 시각이다. 아니 북한 선군시스템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선군정치 이전 오진우 시절에는 인민무력부 부장 직책이 명실공히 군의 대표자였다. 그 밑으로 정치, 군사기구인 총정치국과 총참모부도 소속돼 있었다. 그러나 1997년 김정일이 선군정치 선언 이후 북한은 단순히 군개념의 인민무력부체계를 국호개념을 추가한 조선인민군체계로 격상시켰다.
당의 영도를 전제로 총정치국장이 군 대표자가 됐고 그 밑으로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가 들어가 버렸다. 총참모부는 군사무력, 인민무력부는 졸지에 병참기지로 추락했다. 총정치국장이 군 대표자로 공식화 될만큼 노동당의 영도체계가 더 강화된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의 주장처럼 선군사상은 군이념이 아니라 주체철학에 뿌리를 둔 체제이념이기 때문이다. 주체철학의 본질은 수령주의이며 그 수령주의는 곧 당의 권력이다. 그래서 선군사상(이념)도 선군정치(권력)도 당의 무기가 되고, 북한 군부는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군은 수령주의 체제를 지키는 정치군대이다. 그 속에서 현영철은 국방장관급도, 군서열2위도 아닌 그냥 북한군의 병참기지 수장으로서 3위로 봐야 정답이다.
2, 황병서 총정치국장도 위험하다?
사실 김정은의 절대권력이 증명되자면 김정일의 당조직지도부 간부들이 모두 교체되거나 김경옥, 조연준, 황병서, 김원홍, 이런 핵심인물들 중 몇이라도 공개처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 당조직지도부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김정은의 새정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장성택도 당조직지도부를 견제하기 위해 행정부를 전국조직으로 만들었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과연 그 당 조직지도부가 수령의 권력을 초월할 수 있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꾸로 묻고싶다. 김정은이 정말로 유일권력을 다 쥐었다면 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이다.
김정일의 아들이기 때문? 주민들의 세뇌 때문? 아니다. 당조직지도부 유일영도 시스템이다. 그래서 김정일도 당총비서가 되고나서도 죽을 때까지 당조직비서 직함을 놓지 못했던 것이다. 김정일과 김정일의 권력차이는 당 조직지도부에 있다.
처음부터 김정일의 동창생들로 구성된 당조직지도부는 단순히 수령영도체제만 구축한 것이 아니다. 김성애, 김평일과 같은 후계방해세력을 척결하고, 그 주요 지지세력이었던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들도 견제했다. 빨치산 자녀들을 중앙당에 받지 말도록 당조직지도부 내규인사원칙에 못받은 결과 현재 북한 정권이 홍보하는 빨치산줄기의 최고위급은 최룡해 정도이다.
당조직지도부는 김정일의 후계권력을 위해 김일성의 내각중심체제를 김정일의 당중심체제로 북한 권력기반을 아예 바꾸어버린 경험과 업적의 동지들이다. 김정일도 그런 동지들이 있어 당총비서 유일지도체제 명분으로 당조직비서 유일지도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김정일은 자수성가형 독재자라면 김정은은 세습형 독재자인 것이다. 그 권력 자신감으로 김정일은 은둔형 정치를 했다. 당대회와 같은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명령체제로 국정운영을 했다. 그러나 혈통세습 뿐인 김정은은 부인까지 공개하는 과시형 수령이 됐는데도 거꾸로 정치국 확대회의 같은 다수합의체제에 구속됐다.
아마 김정일도 궁중생활의 고립과 스위스 유학으로 권력동지가 전혀 없는 김정은의 미래를 많이 걱정했을 것이다. 죽기 전 김경희와 장성택에게 인민군 대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을 준 것도 후계지원의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재 김정은에겐 그 친척마저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3. 불경죄를 과연 누가 만드나?
당유일영도체계20대원칙이나 당강령을 외우면 북한 노동당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 조직지도부가 절대권력을 갖는 이유는 그 수령주의를 행위 시스템으로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북한을 제대로 아는 북한학계가 되자면 김씨 종교 예배날인 북한의 토요일을 주목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토요일을 알아야 북한의 당조직과 당생활 흐름이 보이고, 그 두 속성이 결합된 당조직생활의 주도권력인 당조직지도부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 부문, 초급, 기관, 중앙으로 당조직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 끝에도 간부인사권과 숙청권한을 가진 당 조직지도부가 있고, 생활총화, 당학습, 당강연, 당회의와 같은 온갖 정치세뇌와 감시의 당생활 끝에도 역시 당 조직지도부의 당생활지도권이 있다.
이런 당조직지도부 전국시스템 구축을 위해 북한의 초급당위원회 이상 당조직안에는 반드시 당 조직부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당조직비서들은 소속 당비서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 별도로 상급 당위원회 조직부 지시를 받게 돼 있으며 소속 당위원회 내부 간부동향도 그 비선으로 직보하도록 돼 있다. 일종의 내부감시 권력인 셈이다.
군도 마찬가지다. 총정치국이 파견한 정치위원이라도 항상 그 밑의 조직부장 감시와 견제를 받게 돼 있다. 당조직지도부는 그렇듯 아래 기관 당조직부의 내부동향 자료에 근거하여 전국조직을 파악장악하고, 인사와 숙청의 근거도 갖게 되는 것이다.
김정은의 국방위원장 직함에 대한 외부세계의 이해에도 문제가 있다. 이미 북한은 정권으로서의 모든 기능이 당중앙에 집중돼 있다. 수령주의 체제 특성상 당위원회와 당생활을 조직지도부가 주도하는 한 그 이상의 권력이란 사실상 존재할 수도 없다. 그래서 국방위원회가 별도의 건물이나 조직을 갖지 않고 상징적 권력기구로 남아있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최룡해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위원으로 강등시키고,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누구누구를 임명하는 것, 심지어 수령경호권의 지휘관들도 모두 당조직지도부 소관이다. 김정일 때에는 그 이너서클이 모두 수령주의로 집중됐지만 김정은 정권에서도 과연 그럴까? 그 수령주의 명분으로 장성택이 건성건성 박수치고, 현영철이 졸았다는 죄명의 불경죄도 당조직지도부가 당조직생활 평가로 추궁하는데 말이다.
4, 김정은 신격화는 누가 만드나?
북한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김정은 지시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북한 매체들이 선전하는 공개자료들은 물론 도청, 문서 등 국정원이 비밀리에 입수한 대북정보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돼 있다.
정말로 김정은의 지시대로라면 지금 북한은 상당한 혼란을 가져왔을 것이다. 수령이 자칫 공개 실언만해도 사회기반이 통째로 흔들리는 수령집중 구조 때문이다. 그것을 방지하고 정화하기 위해 당 조직지도부 유일영도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선전이라면 당선전선동부가 모두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점이다. 북한의 선전선동은 정치선동과 문화선동으로 갈라진다. 수령 신격화가 핵심인 정치선동의 주역은 당조직지도부이다. 당학습, 당강연, 등 주민세뇌의 당조직생활 뿌리인 셈이다.
당 조직지도부 소속으로 당역사연구소, 당문헌연구소, 5.19영화문헌사 등의 특수기관들이 존재하는 것은 수령의 주체이론과 업적, 문헌, 지시문들을 당 차원에서 기획, 연출하기 위해서이다. 당 조직지도부의 정치선전선동 결정이 곧 문화선전선동 수단들을 거느린 당 선전선동부에 의해 전체주의 문화, 혁명문화로 사회에 일반화되는 것이다.
그 연결고리를 위해 당연사연구소 소장직은 당 선전비서나 부장이 겸직하도록 돼 있다, 당 조직지도부 내 특수선전 기관장들은 대부분 부부장급으로 등급이 높다. 김정은이 현지시찰 때마다 간부들이 수첩에 메모하는 그 권력 중심에 서있도록 연출한 필름이나 사진자료들도 모두 당 조직지도부 소속 선전담당기관들에서 동행 엄선하여 당선전선동부에 내려보낸다.
김정일의 논문과 문헌들, 저작집들도 모두 당조직지도부 산하 기관들이 편찬기술했다. 주체철학은 물론 주체영화론, 주체미술론, 주체건축론, 주체영화론, 등 사회 각 분야의 지침들이 모두 김정일 명의로 된 논문들이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도 4.15문학창작사 공동집필이다.
북한의 위대한 수령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기획주도부서인 당조직지도부 내막을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오늘날 김정은의 지시나 연설문들이 김일성, 김정일과 매우 유사한 것은 그 기획집단이 수령주의를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저술했다는 수많은 저작집, 논문, 담화문들)
외부세계가 그러한 북한의 대외성만을 근거로 연구하고 판단하면 결국 당조직지도부의 완벽한 수령주의 홍보에 세뇌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김정은이 정말로 절대권력자인가? 아니면 수령 신격화 영화 속 주인공일 뿐인가? 하는 찬반 논쟁이 뜨거워야 할 때이다. 이미 세계는 그 양축으로 갈라섰는데 오직 한국만 북한 정권의 주장만 앵무새처럼 외우고 있다.
- 출처 | 뉴포커스 글 |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6-3. 2015-05-13 “北 국방부 장관 현영철 숙청… 수백 명 보는 앞, 고사포로 처형”
‘현영철 황병서 고사포 불경죄’
북한 군 내 서열 2위 현영철(62세 추정)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됐다. 13일 오전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들에 대한 긴급 브리핑에서 “북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최근 불경죄로 숙청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날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국정원이 이같이 밝혔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지난 4월30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평양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수백 명이 보는 가운데 고사포로 처형됐으며, 재판 없이 체포 3일 만에 전격 숙청된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에 의하면, 현영철은 군 행사서 졸고 김정은에 대꾸하는가 하면 그의 지시를 수차례 불이행 해 김정은의 불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은 남한에서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자리로, 2012년 7월 리영호의 뒤를 이어 북한군 총참모장으로 임명됐으며, 이후 2014년 6월 북한 인민무력부 부장이 됐다.
그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했던 2011년 당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기도 했다. ‘현영철 황병서 고사포 불경죄’ 소식에 네티즌들은 “현영철 황병서 고사포 불경죄, 요즘 북한 이슈가 많이 나오네요”,
“현영철 황병서 고사포 불경죄, 현영철은 무슨 이유로 죽인거지”, “현영철 황병서 고사포 불경죄, 고모 김경희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6-4 “젊은 사람이 정치 잘 못해” 현영철, 김정은 비난 발각돼 처형
대북 소식통이 밝힌 ‘숙청 내막’
4월 러방문 때 무기구입 무산되자 “金의 핵무기 과시 때문” 불만 토로
“젊은 사람(김정은)이 정치를 잘 못한다….”
지난달 말에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사진)은 사석에서 이 같은 말을 했다가 밀고된 것으로 26일 전해졌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처형 직전인 4월 중순경 러시아를 방문했던 현영철은 러시아 무기의 배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고 한다. 러시아 측이 ‘북한이 이미 첨단무기를 다수 갖고 있어 (우리의 지원이)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취지로 현영철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후 현영철은 사석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며 김정은에 대해 “젊은 사람이 정치를 잘 못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관영매체를 통해 북한 핵무기 위력 등을 과시하는 김정은의 방침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니까) 받을 수 있는 것도 러시아로부터 못 받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현영철의 발언이 상부에 보고됐고 즉각 숙청 대상에 올랐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통은 또 “현영철은 이미 요주의 인물로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과거 현영철이 사석에서 김정은을 겨냥해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아니라 (실전 전문성을 갖춘) 군부 인사들에게 좀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불만을 털어놨고 이 또한 상부에 보고가 됐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최근 국회 정보위원회에 현영철이 지난달 말에 불경죄 등을 이유로 전격 처형됐다고 보고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현영철이 ‘군벌’을 조직하려 했다는 취지의 비판적인 내용이 담긴 ‘학습제강(교재)’이 최근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배포됐다고 전했다.
현영철의 모습은 기록영화 등을 통해 북한 매체에 여전히 등장하고 있어 ‘국정원 보고’를 둘러싼 여진은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과거에도 김정일 시대에 숙청된 일부 인사들의 기록이 사라지는 데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6-5. 2015-09-07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 숙청의 진짜 이유
⊙ “지금이 리조시대냐 왜 어린 지도자는 木船 타고 다니는 것을 선전하느냐”
⊙ 러시아 무기도입 실패 후 “(김정은) 다 끓여 놓은 죽도 못 먹는다”고 비판
⊙ 고사포 아닌 AK소총 90발 사형
⊙ 김정은, 현영철 사형 직후 청년일꾼 역할 강조하는 勞作 발간
▲김정은 시대 최고 실세인 현영철은 지난 4월 30일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즉결 처형됐다.
지난 4월 30일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강건종합군관학교 강당에서 ‘인민군 및 인민보안부 지휘관 회의’가 있었다. 리영길 총참모장, 김원·윤동현·리재일·조경철·박영식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등 60여 명의 간부들과 인민무력부·총참모부 장성(장군) 120여 명 등이 모였다. 회의 준비가 끝나자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강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병서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반당종파분자의 반당, 반혁행위를 폭로하고 즉결 처형을 진행하겠다. 끌고 오라.” 황병서의 명령에 국가안전보위부원 2명은 처형할 인물을 끌고 나왔다. 강당 안에 적잖은 긴장감이 나돌았다. 끌려 나온 인물이 현영철이었기 때문이다.
현영철이 누구인가. 2006년부터 백두산 서쪽 북·중 국경지대를 담당하는 8군단장으로 복무하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노동당대표자회의에서 대장 칭호와 함께 당 중앙위원에 임명된 실세 중의 실세 아닌가. 현영철은 2013년 5월 전방 부대 병사 3명의 귀순 사건과 경험 부족을 이유로 전방 5군단장(상장 별 3개)으로 좌천됐지만 1년여 만인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대장 별 4개·우리의 국방부장관 격)으로 승진,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그는 김정은의 공개 활동 수행 14회로 전체 순위에서 4위를 차지(2015년 조사)하는 등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아무리 ‘장성택 학습효과(김일성 사위이자 김정은의 고모부로 북한의 이인자였지만 2013년 12월 12일 사형)’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영철 같은 거물의 즉결 처형은 놀라운 일이었다.
황병서는 현영철을 즉결 처형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결론은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이었다. 고위 탈북자의 이야기다.
“북한에서는 죄명이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이면 즉결 처형합니다. 최고 존엄 모독 및 훼손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입니다. 즉결 처단할 인물에게 대부분 이런 죄를 뒤집어씌우지요. 장성택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처형 이유를 설명한 황병서는 회의 참석자들을 사격장으로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현영철의 사형을 집행했다.
“현영철 처형 직접 봤다”
▲김정은이 2013년 3월 11일 서해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뒤 목선을 타고 떠나는 모습.
‘현영철 처형’ 첩보를 지난 5월 초 입수한 국정원은 5월 1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장관회의에 보고했고, 다음 날인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은 현영철 처형 사유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출과 태공(怠工·일을 게을리함) 등을 꼽았다. 국정원 보고가 사실이라면 현영철은 어떤 식으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을까. 또 어떤 까닭으로 김정은의 눈에 임무를 소홀히 한 인물로 보였을까.
현영철 처형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북한의 당과 군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가 남(南)으로 넘어온 탈북자를 만났다. 그는 국정원이 ‘곧바로 알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이른 시간에 ‘현영철 처형’ 첩보를 입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국정원은 사람에게서 직접 수집한 정보인 휴민트(HUMINT·인적정보)와 통신감청 등을 통한 시긴트(SIGINT·통신정보), 인공위성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등 다양한 경로를 활용하여 ‘현영철 처형’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탈북자는 ‘처형 장면을 목격한 인사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현영철 처형 이유를 전했다.
그의 말이다.
“김정은이 목선(木船)을 타고 방어대를 시찰한 적이 있습니다. 현영철이 그 모습을 보고 ‘옛날 리조시대 왕들이 가마 타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군인들이 물에 반쯤 잠길 때까지 목선을 미는 모습이 보기에 안 좋다. 어린 지도자는 왜 이런 것을 선전하느냐’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 발언에 대한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예상대로 대로했죠. 현영철 숙청의 결정적 이유는 리조시대 발언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목선을 2012년, 2013년에 방어대를 시찰하는 데도 이용했습니다. 이 시기에 이조발언을 했다면 현영철은 어떻게 2014년 6월에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한 것입니까.
“예전에 한 발언이 인민무력부장 승진 이후에 김정은 귀에 들어간 것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참고로, 북한은 조선(북한에서는 리조로 명명)의 역사를 좋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북한 교과서를 보면 조선시대를 ‘리조 봉건국가’로 호칭하면서 성립과정을 다루지 않고 있지요.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을 그런 리조시대의 왕에 비유했으니 현영철에 대한 분노가 아주 컸을 것입니다.”
김정은은 2012년 8월 20일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에 가담한 무도(茂島) 방어대를 목선을 타고 이동해 시찰했다. 7개월 뒤인 2013년 3월 12일 월내도(月乃島) 방어대를 시찰할 때도 바다에서 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목선을 이용했다.
당시 중앙통신, 조선중앙TV, 《로동신문》 등 북한 관용매체는 군인들이 김정은의 목선을 허리가 잠길 때까지 미는 영상과 사진을 각각 방영 게재하고 “그이께서 섬 방어대를 향하여 타고 가신 배가 27HP(마력-기자注)의 목선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위대한 인간, 강철의 인간의 가슴속에 끓는 조국에 대한 사랑, 병사에 대한 사랑, 원수격멸의 용맹한 정신세계가 가슴을 쳐서 눈시울이 젖어 든다”며 이른바 김정은의 ‘목선 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김정은이 목선을 이용해 무도, 월내도 방어대를 시찰한 것과 관련, 유성옥(55)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그쪽 수심이 얕아 작은 배로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재에 취약해 소총 공격도 못 견뎌 낼 목선을 군용 선박으로 쓴다는 건 상식 밖이다. 아마도 (목선을 이용한 것은)김정은이 통 크고 대담한 지도자임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도 “(김정은의) 담력을 과시하기 위한 계산된 연출”이라고 분석했다.
강건종합군관학교 우리 육사에 해당하는 초급 보병지휘관 양성소. 6·25 전쟁 때 지뢰를 밟아 전사한 총참모장 강건(姜建·본명 강신태)의 이름을 땄다. 북한은 엘리트 청년장교를 키워 내는 이곳을 처형장으로 이용한다. |
“어린 지도자 모시기가 힘들구나”
리조발언 이후 현영철 숙청을 벼르고 있던 김정은에게 또 다른 보고가 들어간다. 현영철이 다시 ‘최고 존엄’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고위 탈북자의 설명이다.
“현영철은 처형 직전인 2015년 4월 13~20일 러시아를 방문했습니다. 러시아 무기 배치를 추진하기 위해서였지요.(홍콩 봉황위성 TV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 측에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S-300을 물물교환 방식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문건상으로는 합의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러시아 쪽에서 합의를 백지화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은 이미 첨단 무기를 다수 갖고 있어 미국도 제압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데 굳이 우리가 지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현영철은 사석에서 실망감을 표시하며 김정은에 대해 ‘(김정은 때문에)다 끓여 놓은 죽도 못 먹었다. 어린 지도자를 모시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투덜댔다고 합니다. 이 발언 역시 김정은에게 직보됐다더군요.”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현영철이 김정은을 어린 사람으로 자주 표현했다고 한다”며 “북한 사정에 정통한 탈북자들은 현영철이 (러시아 무기 배치 추진 실패 이후)‘어린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하려니 힘들다’는 취지의 말 등을 했으며 이와 같은 발언이 김정은에게 직보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러시아 입장에선 북한과 핵 관련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김정은은 현영철에게 러시아에 핵 관련 지지를 요구하는 동시에 무기 배치도 추진하라고 명령한 것 같다”며 “현영철이 이런 점을 답답해하며 김정은을 비판한 것이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 측의 주장대로 실제 김정은은 무기 자랑에 열을 올려 왔다. 지난 2012년 4월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사거리가 1만km 이상)을 처음 공개했고, 이후 핵무기를 이 미사일의 탄두에 장착할 정도로 소형화했다고 자랑해 왔다. “한미연합방위체계가 완전한 무용지물의 골동품이 됐다(《로동신문》)”고까지 했다.
러시아 관련 업무에 깊게 관여한 현영철의 숙청은 북·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데니스 P 핼핀(Dennis P. Halpin)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5월 14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절을 맞아 모스크바 방문을 약속했지만 어겼고,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군부 실력자를 곧바로 총살했다”며 “러시아의 눈에 김정은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고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처럼 현영철을 숙청함에 따라 북·러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 전문가도 “현영철은 푸틴 대통령을 면담했던 인물인 만큼 러시아 입장에선 처형을 지시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괘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영철은 지난해(2014년) 11월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졸아서?
▲지난 4월 26일자 《로동신문》에 보도된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현영철 모습. 김정은이 발언하는데 현영철은 눈을 감고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현영철이 김정은의 연설 도중 졸아서 처형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주요 언론은 이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보도했다. 실제 지난 4월 24~25일 열린 군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현영철이 김정은의 연설 도중 조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로동신문》은 4월 26일 1면으로 훈련일꾼대회를 보도하면서 현 부장이 눈을 내리깐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보냈다. 조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은 회의석상에서 조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처벌한다”고 했다.
실제 최경성 특수군단장(11군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김정은의 경고를 받고도 졸았다는 이유로 각각 상장에서 소장으로,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다. 김정은의 이런 조치는 아무리 고위층이라 해도 최고 존엄인 자신의 권위를 무시하고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무자비하게 처형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불어넣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왕자로 태어나 권력욕과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하다”며 “누군가 이견을 제기하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면 나이 어린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숙청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영철의 경우 존 것보다는 김정은에 대한 비판 발언이 알려진 게 처형의 직접적인 이유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김정은은 이미 현영철의 리조발언을 보고받는 순간 그의 숙청을 마음먹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제가 추측할 때는 (현영철 숙청을 마음먹은 김정은이) 현영철이 모스크바로 떠난 시기(4월 13~20일)에 (숙청 밑작업이)이뤄졌다고 봅니다. 현영철이 모스크바로 떠나는 날 이미 그의 운명은 정해졌던 셈이죠.”
고위 탈북자는 “현영철이 졸았다는 사실이 보도되기 일주일 전인 4월 18일 김정은이 황병서 등 측근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는데 그때 현영철 처리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김정은은 2013년 말 장성택을 처형하기 보름 전인 2013년 11월 말 황병서·김원홍 등을 데리고 양강도 삼지연(三池淵)에서 대책회의를 가졌었다”고 했다.
“고사포 처형 아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처형 방식은 날로 잔인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2012년 3월 북한 당국은 김정일 상중(喪中)에 술을 마신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박격포 사격으로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반역자는 이 땅에 묻힐 곳이 없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흔적을 없애라’는 김정은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2013년 말에는 장성택과 그의 핵심 측근 인사들이 고사포 등으로 처형된 뒤 화염방사기로 소각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보 당국이 입수한 2014년 북한 내부 문건에도 ‘종파 놈들은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2014년 10월 공개한 북한 평양 인근의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집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살펴보면 종합군관학교의 넓은 공터의 한가운데 10여 개 타깃(target)이 일렬로 서 있고 반대편에는 ZPU-4 고사포 6대가 이를 향해 나란히 배열돼 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랴튜 사무총장은 “상업위성사진 분석업체인 ‘ASA(All Source Analysis)’의 조셉 버뮤데즈 박사가 분석한 결과 이는 고사포로 공개처형을 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ZPU-4 고사포(대공기관포) 14.5mm는 중기관총 4정을 묶어 만든 것이다. 이 고사포는 수직으로 발사했을 때 1.4km 상공에 있는 목표물까지 맞힐 수 있고, 일반적인 대공사격을 할 때도 사정거리가 2km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현영철도 고사포로 처형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원회에 “현영철은 수백 명의 군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양 순안구역에 있는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고사포(대공기관포)로 총살됐다”고 보고했다. 인터넷에는 ‘현영철 처형장면’(나중에 밝혀진 바로, 이 영상의 주인공은 현영철이 아니고, 이슬람 무장세력 IS의 포로였다)이라며 어떤 인물이 고사포에 맞아 산산조각 나는 동영상도 돌았다. 현영철 고사포 처형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달리 현영철은 고사포로 사형당하지 않았다. 고위 탈북자는 “사격장에서 처형을 목격한 관계자의 전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사격장에 현영철을 묶어 놓고 사형을 집행하는 인물이 ‘반당 반혁 분자 현영철을 향해 15발씩 정발 쏴!’라고 명령했고, 이후 6명의 군인이 한 명당 15발씩 90발을 현영철을 향해 쐈다고 합니다. 사격장에는 공포심을 자극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중무장한 보위사령부 소속 군인들이 사방에 배치돼 있었고 운집한 장성들 사이사이에도 권총을 찬 보위부 지도원들이 깔렸었다고 들었습니다.
고사포로 처형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엉터리 이야기입니다. 90발을 맞았으니 걸레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고사포로 죽였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북한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때 죄질에 따라 쏘는 총알 수가 다릅니다. 일반 공개처형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3명의 군인이 각각 3발씩 총9발을 쏩니다. 공개처형이 아닌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6명이 한 사람당 5발씩 총 30발 정도를 쏘는데 현영철과 같이 죄목이 무거우면 사수 한 명당 15발씩 90발을 쏩니다.”
현영철 후임에 박영식
김정은은 숙청한 현영철 후임에 박영식을 임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 1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군사대표단과 라오스 고위 군사대표단의 회담 소식을 전하며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박영식을 인민무력부장으로 소개했다. 북한 매체가 박영식의 인민무력부장 임명을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박영식은 2009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맞으며 중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2014년) 4월 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에 오르며 상장으로 진급한 데 이어 현영철 숙청 이후인 지난달 6월 29일에는 대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집권 이후 군 간부 40%를 교체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가 지난 6월 2일 공동으로 발간한 《전략 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라는 책자를 보면 김정은이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인물로 군 지도부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중국 단둥에서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 관계자와 만난 평양의 한 간부는 “사실 김정은은 김정일 3년 탈상이 끝나고 나서는 바로 당과 군의 많은 고위직을 교체하고 재배치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핵심 요직에 자신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젊은 인사들을 배치했다”고 김정은의 세대교체 움직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간부는 “김일성고급당학교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김정은 서기실에 직접 학습실을 꾸리고, 새로 발탁한 젊은 간부들에게 당 조직 건설과 경제 지휘, 군중 동원 등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뿐만 아니라 내각의 경제관리 요직에도 젊은 사람들을 배치하고 있다”며 “지난해 부총리로 임명된 임철웅(53)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전임 부총리 강능수(85), 강석주(76), 조병주(73), 김인식(67), 전승훈(64) 등에 비하면 파격적 임용이다.
현영철 숙청을 세대교체 일환으로 포장?
NK지식인연대는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후 ‘할배들’에게 둘러싸여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최근 노동당 간부들에게 하달한 친필 지시를 살펴보면 ‘나이 많은 간부들이 김정은의 부름을 받거나 김정은을 영접하게 되면 묻는 말에 짧고 명확하게 답변하며, 제 자랑을 늘어놓는 무모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지시문에는 나이 많은 간부들의 입 냄새가 김정은의 건강과 기분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만나기 전 반드시 양치를 해야 하며 직접 말씀을 드릴 때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라는 등의 요구사항도 들어 있다.
공교롭게도 김정은은 현영철 숙청 직후 〈청년들을 고상한 정신과 미풍을 지닌 시대의 선구자들로 키워 낸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게〉라는 제목의 노작(勞作)을 북한군과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노작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청년들이 들끓어야 온 나라가 들끓고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혁명적 앙양이 일어난다는 당의 뜻을 받들고 중앙과 지방의 각급 당조직들과 청년동맹조직들에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귀중한 유산인 청년동맹을 강화하고 청년들이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처럼 청춘을 빛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중략) 당은 청년사업을 매우 중시하며 청년들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강하면 우리 당과 인민군대가 강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청년들을 선군혁명의 척후대, 익측부대로 키우는 자양분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입니다. 나는 앞으로 청년미풍 선구자들을 배출하는 모범적인 단위들을 찾아가 훌륭한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고무해 주려고 합니다.〉
한 탈북자는 “(청년일꾼 관련 노작 발간은)현영철 사형을 세대교체 일환으로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죽은 현영철(66세 사망)은 젊은 편에 속하는데 이런 허술한 선전에 속는 주민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출처 | 월간조선 9월호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2016년 08월 12일 北, 올해만 60여명 공개처형…김정은식 공포정치 확산
대북소식통 “주민단속기구 ‘3·12 상무’ 재가동”
“탈북민 가족 및 탈북 브로커 수시로 공개처형”
북한 당국이 올해 들어 주민들에 대한 공개처형을 대폭 늘리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로 공안기구 중심의 주민 단속기구인 ‘3·12 상무’를 재가동하는 등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북한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북한 사정에 밝은 대북소식통은 “올해 8월 현재 북한 당국은 약 60여명의 주민들을 공개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는 김정은 집권 이후 연평균 처형자수(30여명) 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처럼 북한이 주민 대상 공개처형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대북제재 여파로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연이은 전투(70일ㆍ200일 전투)와 무리한 상납금 강요로 주민들의 불만이 증대되자, 공개처형을 주민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북한은 탈북민을 체제 위험요소로 인식하고, 탈북민 재북(在北) 가족과 탈북브로커들을 수시로 공개 처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2월 초 보위성은 탈북민 재북 가족과 송금브로커 수십 명을 체포해 ‘간첩’ 혐의로 처형했고, 4월에는 양강도 혜산에서 돈을 받고 주민들의 탈북을 지원해준 브로커 10여 명을 체포해 총살했다.
이 소식통은 “4월 초 양강도 혜산에서 한국영화, 드라마 등을 시청한 주민 수명을 총살했으며, 7월에는 강원 원산, 평북 운산 등에서 마약을 흡입하거나, 유통한 마약사범 10여 명을 처형했다”며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영상물 시청 같은 일반 범죄자까지 처형하는 것은 너무하다’, ‘김정은의 공포정치 때문에 무서워서 못 살겠다’는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올해 3월 보위기관에 “주민들에게 자유시간을 주면 개인 돈벌이 생각과 사회 불평만 늘고 종파음모도 커지기 때문에 통제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은 6월 1일부터 12월 17일까지인 ‘200일 전투’를 강행하면서 주거지 이탈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해 강제노동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은 200일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인 5월 말 보위기관에 지시를 내려 ‘200일 전투는 사상전이므로 사상전에서 누락된 주민들은 이 땅에서 살 자격이 없다. 3·12상무가 전국적 범위에서 활동을 재개해 무직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직장 무단 이탈자들이 당과 군대, 국가의 주요 비밀을 중국과 한국 등에 빼돌리는 주요 범죄자이며 이들을 제압하는 것이 북한을 보위하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3·12 상무는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중심이 돼 ‘거주지를 이탈해 불법 행위를 일삼는 자들을 강력하게 단속할 데 대하여’라는 제안서를 김정은으로부터 비준받아 조직한 주민 단속기구다. 3·12 상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2014년 3월 12일에 결성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 기구는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국가보위성 부부장, 인민보안성 부부장, 중앙검찰소, 중앙재판소 부소장 등이 각 기관 책임자가 참여해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이탈한 주민을 단속하고 있다.
최근 들어 3·12 상무는 200일 전투를 위한 강제노역에 앞장서고 있으며, 이는 북한이 대북제재에 따른 외부지원 급감과 내부재원 고갈로 노동력 외에 가용 수단이 없어지자 직장 및 거주지 이탈자를 잡아다가 강제노동에 투입하는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