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安保 23-2021-08/ 08.02 일상이 된 ‘국방의 정치화’ 北 손짓 한 번에 한미 훈련 축소 - 08월 31일 영변核 재가동 알고도 ‘北과 짬짜미’ 文…이적(利敵) 아닌가
무너진 安保 23-2021-08
08.02 일상이 된 ‘국방의 정치화’ 北 손짓 한 번에 한미 훈련 축소
정부가 이달 중 예정된 한미 연합 훈련을 또 축소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남북 통신선이 재개된 지 닷새 만이다. 미군은 예정대로 실시하자는 입장이었지만 통일부가 “훈련 연기”를 주장하자 군이 물러선 것이다. 그나마 지휘소 중심 훈련이라고 한다. 9·19 남북 군사 합의 이후 3대 연합 훈련이 사실상 없어지더니 3년 넘게 컴퓨터 게임 훈련만 하고 있다. 김여정이 이날 한미 훈련 취소를 요구한만큼 이 마저도 연기할 수 있다.
브룩스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한미 동맹 약화는 인기 영합적 민족주의를 만족시키려는 ‘국방의 정치화’ 때문”이라고 했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워싱턴은 한국이 안보를 희생하면서 북한을 선거에 활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한다. 여권은 연일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 때 남북 정상회담 개최설을 띄우고 있다. 대선 직전에 정상회담 이벤트를 또 벌이겠다는 것이다.
에이브럼스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컴퓨터 훈련만 하면 실전에서 혼비백산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훈련을 위해 한국군 55만명분 백신까지 줬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한미는 연대급 이상에서 총 한 발 같이 쏴본 적이 없다. 북한 눈치 보느라 이름도 못 붙이는 ‘홍길동 훈련’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이 한미 훈련을 중단하라고 하자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범여권 의원 35명은 김정은이 반발한다며 훈련을 연기하자고 했다. 군은 그래도 대응 태세에 문제없다 하고, 북의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엔 “직접적 위협이 아니다”라고 했다. 적이 싫어한다고 훈련을 하지 말자는 나라는 우리뿐일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훈련을 위해 부대를 일본, 알래스카로 재배치하는 걸 검토한다”는 말이 나오겠나. 그래도 이 정권은 ‘남북 쇼’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다 하려 할 것이다. 선거만 이길 수 있다면 나라 안보가 망가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조선일보 사설
08.02 美 전술핵, 한반도 배치 필요하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지 6달이 지났지만, 북핵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 발표된 것이 없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아니고 트럼프 정부의 “빅딜”도 아닌 외교에 무게를 둔 “조율되고 실용적인 접근”이라는 정도만 밝혀져 있다. 한반도 특별대표로 임명된 성 김 대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바이든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중국, 러시아, 중동, 대내적으로는 코로나대응과 경제회복 등으로 인해 북핵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시작된 북핵위기가 계속된 지난 30년간 미국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북한의 핵능력은 더욱 고도화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고, 미국도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국의 목표가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을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결국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어떻게 북핵문제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그동안 어떤 방안들이 강구되었는지 살펴보자.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이 군사적 대응인데, 클린턴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작전을 검토했었으나 한 번도 실행된 적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클린턴 정부의 외과식 정밀타격을 반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작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으나 별 다른 대책도 없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우리 정부에 대해 미국은 난감함을 느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와 함께 주요 국가들의 독자제재를 추진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것인데, 대북제재가 북한에게 고통을 주기는 하지만, 북한이 생각을 바꿀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평가한다.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북한의 핵무장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를 막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로버트 매닝 연구원은 외교전문저널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북핵문제는 해결책(solution)은 없으나 관리는 할 수 있다”고 했고, 미국의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비핵화보다는 핵물질의 추가 생산과 무기의 첨단화를 방지하는 수준에서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고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군축회담을 참모들과 논의했다”고 했는데,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핵동결 수준에서 북한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핵 동결 선에서 타협하자고 하면 북한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텐데, 우리는 북한의 핵인질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이다. 군축회담의 핵심은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의 신고와 사찰인데, 북한이 제대로 된 신고도 하지 않으며 사찰도 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군축회담은 실무협상 단계에서 결렬될 가능성이 있다.
군사작전도, 경제제재도, 군축회담도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첨단 군사력으로 대북억제를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정밀타격이 가능한 스텔스 전투기, 미사일 방어체계 강화, 사이버 무기 등을 확보하여 북한의 도발을 막는 방안인데,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게 재래식 군사력만으로는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의 방안들이 다 문제가 있다면 어떤 방안을 강구해야 할까? 1991년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쵸프 정상간 합의로 한국에 있던 약 600개의 전술핵을 포함해 서태평양에 있는 6천여개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는데 이제는 수십개의 전술핵을 재반입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핵무기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정치적 무기이기 때문에, 핵무기는 핵무기로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에서의 정설이다. 동서 냉전시기 미국은 3만개, 소련은 4만개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해서 핵전쟁을 예방했다. 근래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68%는 전술핵 재배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한이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동맹복구를 우선적 과제로 내건 바이든 행정부에게 한국은 미국과 같이 갈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관련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고, 한미 연합훈련을 정상화하고 미사일 방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에서 2천7백조원을 썼으나,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미군이 철수하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이를 매우 반기면서 우리에게 백기투항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1인 숭배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조선일보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08.02 남북대화와 한·미 연합훈련은 별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어제 담화에서 “반전의 시기에 군사연습은 남북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한다”며 “남측이 8월 한·미 훈련에 큰 용단을 내릴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간담회에서 연기론을 제기한 지 사흘 만이고, 남북 정상 간 서신 교환을 통해 연락채널이 복원된 지 엿새 만이다. 남북 교감하에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남측이 제기하자 김여정은 이를 굳히려는 듯 압박하는 모양새다.
통일부 연기론 이어 김여정 재차 압박
대화와 안보 맞바꾸는 발상은 위험
통일부의 의도는 책임있는 고위 당국자가 “(연합훈련을) 연기해 놓고 대북 관여를 본격화해 보고 싶다”고 한 데서 분명히 드러난다.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남북대화 재개, 나아가 북·미 대화 중재의 모멘텀으로 삼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대북 협상의 카드나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안보를 팔아 대화를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여야 5당 대표 초청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월에는 연합훈련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정상 간 서신에서 연합훈련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꽉 막힌 남북 경색 국면과 비핵화 협상의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대화 재개를 추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안보태세 유지에 필수 요소인 연합훈련을 놓고 협상해서는 안 된다. 연합훈련의 한 축인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연합훈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훈련 없는 군대는 무용지물”이라는 전통적 미국의 입장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5월 미 국방부는 “연합훈련은 동맹의 연합 준비태세를 보장하는 주요한 방법”이라며 “한반도만큼 군사훈련이 중요한 곳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5월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한 한·미 동맹의 신뢰에도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기고문에서 “트럼프-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한·미 동맹이 약화됐는데, 국방의 정치화가 주 원인이었다”고 한 지적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연기론의 중요한 근거로 엄중한 코로나 상황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은 연대급 이상의 실기동 훈련을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실시하지 않고 있다. 규모를 대폭 축소한 지휘소 훈련조차 연기하자는 것은 북한의 요구에 끊임없이 끌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는 사이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잠수함 발사 능력과 전술핵 개발 등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훈련 연기를 내세울 게 아니라 북한의 핵 고도화 행위들을 먼저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월 02일 김여정 “한미훈련 예의주시” 文정부 또 下命 받들 건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을 “적대적 전쟁연습”이라고 비난하면서 “남측이 큰 용단을 내리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은 이날 발표한 담화를 통해 “며칠간 나는 남조선군과 미군의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면서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곧 시작될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겁박한다. 심지어 “(한미훈련은) 북남관계를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나아가 김여정은 “우리는 합동군사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규모 축소와 시기 연기 등이 아니라 아예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지난달 27일 남북통신선 복원에 대해 “물리적 연결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라”고도 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하면서 “양 정상은 뜻을 같이했다”고 했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임기 내 대면 정상회담”도 언급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천금과도 같다”고 했다. 김여정은 한미훈련을 중단하지 않으면 어림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여정의 이런 오만한 행태는 그의 주문을 문재인 정부가 대부분 이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시로 김여정 하명(下命)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응분의 조치라도 하라”고 요구하자 문 정권은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의 신임 덕분에 ‘오경화’로 불리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김여정의 비판 이후 돌연 경질됐다. 지난 6월 한·미 워킹그룹 해체도 김여정이 “친미 사대 올가미”라고 한 뒤 이뤄졌다.
문 정부는 네 번째 하명을 또 받들 것인가. 이미 실기동 훈련 없는 지휘소 훈련으로 쪼그라든 것마저 북의 요구대로 취소한다면 남북 정권이 합작해 안보를 저버리는 일이다. 한미훈련은 동맹 차원의 방어 훈련이다. 김여정이 저렇게 나오면 더 강한 훈련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상이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02일 아파치 헬기 철수 얘기 나온 동맹 균열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북한과의 일괄타결’ 칼럼이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브룩스 장군의 이력 때문이다. 2017년 ‘화염과 분노’로 대변되던 위기 상황 때 북한과의 전쟁을 준비했던 당사자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이어서 경험하며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두루 경험했다. 주한 미국대사 후보군에도 오르는 그는 ‘웨스트이그젝 어드바이저스’의 이사로 재직했는데,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애브릴 헤인스 DNI 국장 등 조 바이든 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이곳 출신이다. 따라서 현 미국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인사라 할 수 있다.
그는 북한을 궁극적으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전제는 ‘강력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다. 현 정부 들어 무너지는 한·미 동맹의 사례를 조목조목 제시한 칼럼을 보면 현재 미 정부 핵심층이 문 정부의 대미정책에 얼마나 불신감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한·미 연합훈련 단절을 예로 들었다. 관련 내용 중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충격적인 사실이 있는데, 바로 주한미군 아파치 공격헬기의 일본 또는 알래스카 이동 배치 검토다. 북한 기갑전력에 대한 강력한 타격력을 가지는 주한미군 아파치 공격헬기는 총 48대가 배치돼 주한 미 육군 전력 중 최고·최강의 자산인데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훈련을 하지 못하니, 전력 유지를 위해 아예 철수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매년 8월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을 코로나19 확산을 핑계로 또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군내 소식통들도 좁은 군함 내부에서 집단 감염이 된 청해부대 사례를 언급하며 벙커에서 두 나라 장교들이 워게임을 하는 것은 방역에 취약하니 정부에서 하도록 하겠느냐는 반응도 보인다. 그러나 백신을 전혀 맞지 않은 청해부대와 전원 백신 접종자들로만 구성될 연합훈련의 벙커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오류다.
미국의 동의 없는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다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강력한 한·미 동맹 구축이야말로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으로 가는 가장 정확한 길이다. 그러므로 2018년 이후 취소·축소한 연합훈련을 더 이상 훼손하려 해서는 안 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지난 7월 1일 취임인사 방문을 한 신임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성과를 내줄 것을 당부한 일이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한국군의 작전지휘능력에 대한 평가가 선행조건이다.
미국과 훈련은 하기 싫고, 전작권 전환이라는 실익 없는 자존심은 세우고 싶은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칼럼은 ‘포퓰리즘적 민족주의’라는 표현으로 ‘우리 민족끼리’ 식의 위험한 행태를 지적하며 차기 대선에서 여당 후보 당선이 한·미 동맹 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국가번영과 민족통일의 기반인 한·미 동맹이 더 이상 훼손되면 안 된다. 북한 권력층 생명을 연장해 줄 통신선 연결과 식량 지원 쇼보다 궁극적으로 2500만 북한 동포를 배부르게 할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은 정부의 그 의지를 이번 8월 훈련으로 평가해야 한다.
문화일보
08.03 [단독] 법원 “경문협 8억 北수령인 밝혀라”… 통일부 “국익 해친다” 답변 거부
2005~2008년 보낸 北저작권료
국군포로 배상금 소송에 협조안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국내 방송사 등에서 북한 조선중앙TV 영상 등의 저작권료를 걷어 북한에 송금한 것과 관련해 최근 법원이 통일부에 ‘송금 경로와 북측 수령인을 밝히라’고 했으나 거부당한 것으로 2일 전해졌다.
경문협은 지난 2005~2008년 북한 측에 저작권료 7억9000만원을 송금했다. 이에 대해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4월 7억9000만원이 어떤 송금 경로를 통해 북측 누구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사실 조회를 통일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지난달 “정보공개법상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로 비공개 대상”이라는 답변을 보냈다고 한다.
법원이 통일부에 경문협의 대북 송금 경로를 물었던 이유는 6·25 국군 포로가 제기한 소송 때문이다. 작년 7월 서울중앙지법은 6·25 전쟁 당시 북한의 포로가 돼 강제노역을 했던 국군 포로 2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북한 정부와 김정은은 총 4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국군 포로 측은 경문협이 현재 보관 중인 북한 저작권료 23억원에서 4200만원을 배상하라는 별도의 소송을 서울동부지법에 냈다.
경문협은 지난 2005년부터 국내 방송사가 사용하는 북한 조선중앙TV 영상이나 국내 출판사가 펴낸 북한 작가 작품 등에 대한 저작권료를 대신 걷어 2008년까지 북한에 송금했다. 2009년 이후 대북 제재로 송금이 막힌 상태에서 경문협은 매년 쌓인 북한 저작권료 약 23억원을 법원에 공탁하는 방식으로 보관해 왔다.
서울동부지법 재판의 쟁점은 북한 저작권료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경문협 측이 ‘저작권료는 북한 정부의 돈이 아니고 북한 방송사·소설 작가 등 저작권자의 돈이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며 지급을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기 위해 국군 포로 측은 지난 4월 통일부에 사실 조회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통일부는 ‘국익’을 들어 거절한 것이다. 통일부는 또 다른 비공개 사유로 “법인(경문협)의 경영상 비밀에 관한 정보”라는 점도 들었다고 한다.
경문협 대표는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맡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통일부가 경문협과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법원의 사실 조회 요청도 거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선일보 권순완 기자
08.04 김여정 ‘한미 훈련 중단’ 요구에 국정원 맞장구, 무슨 정치 이벤트 있나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 보고에서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 한미 연합 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한미가 연합 훈련을 중단하면 ‘북이 남북 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2일엔 통일부도 “한미 훈련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북 김여정이 1일 ‘훈련을 없애라’고 하자마자 국정원과 통일부가 앞다퉈 ‘그러겠다’고 하는 모습이다. 또 무슨 남북 이벤트를 준비하는 듯하다.
이미 한미 훈련은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했다. 훈련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연대급 이상 병력이 참가하는 한미 기동 훈련은 3년 넘게 실종된 상태다.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이 ‘키보드 훈련’만 하면 “실전에서 혼비백산한다”고 했다. 혼비백산이 아니라 붕괴할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훈련 없이 실전에 투입할 수 없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미 국방부는 “연합 훈련은 동맹의 준비 태세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달 예정된 훈련이 취소되면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북의 노림수 중 하나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것은 이미 허위로 판명 났다. 진짜 핵 시설과 핵폭탄은 지키면서 필요 없게 된 일부 핵 시설을 내주는 대가로 대북 제재를 해제시키려 한 것이다. 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핵과 탄도미사일을 증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훈련을 북과 협상하는 카드로 쓴다면 북의 근본적 전략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핵 시설과 핵폭탄 전체를 신고하고 폐기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정치 이벤트를 위해 한미 훈련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를 위해 국방을 희생하는 것이다.
한미 훈련의 정치 카드화는 트럼프가 느닷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북한 비핵화 사기극이 드러난 뒤에도 그것이 정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화되고 있다. 김정은은 앉아서 한미 훈련을 없애고 한미 동맹의 억지력을 껍데기로 만드는 소득을 얻었다. 다음 정부는 누가 되든 국방과 한미 훈련을 정치에서 분리해 정상화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8.04 통일부, 폐지론 왜 나오는지 돌아보라
北 옹호하고 퍼 줄 궁리 하다 13년 전에도 없어질 뻔
4년간 같은 헛발질 반복… 그러니 존재 이유 의심받아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가 나선 남북 회담에선 기이한 장면이 많았다. 우리가 쌀과 비료를 주는 회담인데도 큰소리는 북한이 쳤다. 2006년 장관급 회담에서 북은 “(김정일의) 선군 정치가 남측 안전을 도모해주고 있다”며 쌀 50만t을 달라고 했다. 2007년 회담 때는 통일부 장관이 북 대표에게 ‘미안’을 연발했다. “이번엔 (만찬을) 간소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시내 참관) 시간이 없어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당시 회담장 주변에선 ‘쌀을 못 줘 미안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북이 빈손으로 돌아간 건 북핵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북은 우리 국민 세금인 남북협력기금 1조여 원을 맡겨둔 제 돈인 양 내놓으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빚이라도 진 듯 쩔쩔매거나 퍼 줄 궁리만 했다.
그때 통일부 장관은 “북한 인권 탄압, 불법행위의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지역 환경과 특성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도 했다. 인권의 보편성을 무시한 궤변이었다. 북 기습으로 국군 6명이 전사한 제2 연평해전에 대해선 “방법론에서 우리가 반성해 볼 과제”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북 대변인 노릇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헛발질이 쌓이면서 통일부 폐지론이 불거졌다.
지금은 어떤가. 문재인 정부 첫 통일부 장관은 북 리선권과 회담하면서 “말씀 주신 대로 역지사지하면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했다. 리선권이 “역지사지 같은 말 하지 말라”고 쏘아붙이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후임은 천안함 폭침에 따른 대북 제재를 “바보 같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는 북이 금강산의 우리 국민 재산을 철거하겠다고 하자, 북의 다른 개발 사업에 돈을 대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전대협 의장을 지낸 지금 장관은 한미 동맹이 ‘냉전 동맹’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한미 동맹을 “냉전 유물”이라고 비난하는 건 주한 미군 철수를 원하는 북·중 세력이다. 그는 김정은이 ‘핵보유국’을 다시 강조하자 “폭탄이 떨어져도 평화 외치자”고 했다. 국민 생명 보호가 최우선이어야 할 장관 입에서 꿈같은 소리가 나왔다. 우리 국민이 맞을 백신도 없는데 “부족할 때 나누는 것이 진짜 나누는 것”이라며 북에 백신을 주자고도 했다. 노 정부 장관들보다 더하다.
지금 통일부는 김여정이 대북 전단을 금지하는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4시간여 만에 “준비 중”이라고 했다. 통일 교육 교재를 발간하면서 북한 도발과 인권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했다. ‘공개 처형’ ‘정치범 수용소’ ‘독재’ 등 북이 싫어하는 말은 대부분 알아서 뺐다. 북한인권재단 사무실 문도 닫았다. 그래 놓고 북 인권 부서를 두고 세금을 쓰고 있다. 2018년 ‘남북 정상에게 전달할 희망 사항’을 받으면서 예시문에 “군대 가기 싫어요”를 넣기도 했다. 김정은에게 ‘군대 가기 싫다’는 말을 전해 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국세청이 ‘세금 내기 싫다’는 글을 올린 셈이다. 김여정 등이 ‘한미 훈련 하지 말라’고 협박하면 “군사적 긴장 조성 안 된다”며 맞장구를 쳤다. 2일에도 그랬다. 북한 대변하고 퍼 줄 궁리나 하는 통일부를 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13년 전처럼 통일부 폐지론이 다시 불거지는 것이다.
통일부가 없어질 뻔했을 때 한 보수 인사는 “남북 문제 특성상 외국에 이 말 하고, 북한에 저 말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국정원이나 외교부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지금도 이 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 역할이라면 통일부 조직과 예산을 현재의 3분의 1로 줄여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08.04 어쩌다 ‘당나라 군대’라 불리게 됐나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군대
/한반도평화워치
서기 755년 당나라는 ‘안사의 난’으로 근 10년간 초토화되었다. 이후 주변국의 침략·반란이 이어졌다. 심지어 소금장수였던 황소가 난을 일으켜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지방 절도사 주전충의 난으로 290년 만에 멸망했다. 이 과정에서 당나라 군대는 무능하고, 기강도 없고, 지휘 체계가 무너진 ‘오합지졸 군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 군은 어떤가?
적이 없는 군대 되면서 정신무장과 기강 무너지고
정치권의 인사 개입, 줄세우기로 군 지휘체계 와해돼
주적 명시, 정치의 군 개입 막아 국민 안전 지켜야
최근 90%가 넘는 청해부대원이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함정마저 버리고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피가래를 뱉으면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승조원이 속출했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국가가 우릴 버렸다.” 어느 부대원의 절규다. 청해부대는 건군 이래 최초로 해외에 파견된 전투 함정이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이역만리 아프리카 해역에서 해적으로부터 우리 상선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왔다. 이들을 국가가 버린 것이다. 얼마 전에는 나라를 지키다 적의 기습 공격에 46명의 전우를 잃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패잔병’ 운운하면서 그들 또한 버렸다.
장병 급식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황금기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을 거지 취급했다. 코로나 초기 정부가 중국 유학생에게 보낸 고급 도시락과 비교되면서 자괴감마저 든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군대·군인들에게 국민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군대 하극상 4배나 증가
경계 실패도 이어졌다. 2019년 6월 15일 북한 어선이 아무런 제재 없이 삼척항에 들어와 우리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군과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해상판 ‘노크 귀순’이 있었다. 진해·제주 해군기지, 수방사 방공부대의 경계가 뚫렸고, 태안 지역에 중국인 밀입국 사건이 세 번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최전방 월책 귀순, 올해 2월 동해안 헤엄 귀순에 이르기까지 20개월 동안 10번의 경계 실패가 이어졌다. 두 달에 한 번꼴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경계 실패 모두가 적 특수부대원이 아니라, 순수 민간인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군 여중사가 성추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사시 목숨 걸고 함께 싸워야 할 전우로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했다. 기강 해이의 전형이다.
하극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병사가 중대장(여군)을 야전삽으로 폭행하는 막장 하극상이 있었다. 그 직전에는 육군 부사관 4명이 술을 마시고 장교 숙소를 찾아가 상관을 집단 강제 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병대에서는 상병이 상관인 하사를 폭행해 실형이 선고됐다. 군내 하극상은 2015년 63건에서 2020년 242건으로 5년 사이 4배나 증가했다. 이러니 만나는 국민마다 “어쩌다 당나라 군대가 되었냐”고 묻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랑스러운 강군이었는데 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는가?
청와대 행정관이 참모총장 불러내
첫째, 적이 없는 군대가 되면서 정신 무장과 기강이 무너졌다. 현 정부 들어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군인에게 적은 사격할 때 표적과 같다. 사격할 때 표적이 없으면 어떨까? 사격을 못 하든지, 허공에 대충 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적이 없는 군대는 표적·목표가 없으니 집중할 수 없고, 정신 무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훈련과 대비태세가 소홀해지면서 기강도 무너진다. 연속된 경계 실패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둘째, 정치권의 인사 개입, 자기편 줄 세우기로 군의 지휘체계가 와해하고 무능한 군대로 전락했다. 공정성·균형인사라는 미명 아래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한 기존 인사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특정 군, 특정 출신을 배제하고 진영 논리에 매몰된 편 가르기로 군대를 분열시켰다.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을 불러내 장군 인사를 논의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알려지면서 진급하려면 직속 상관에게 충성하느니 청와대 행정관 뒷다리라도 잡는 게 더 낫다는 말이 나돌았다. 오죽하면 적만 바라봐야 할 최전방 사단장이 철거한 GP 철조망으로 선물을 만들어 여당 국회의원에게 주었겠는가? 지휘체계가 무너진 무능한 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국가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한민국 외교장관이 중국에 가서 ‘3불 선언’을 했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과 한·미 동맹 전력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적 조치다. 현재 1개 포대가 배치되어 있지만, 남한 전역을 방어하려면 최소 3개 포대가 있어야 한다. 이를 안 하겠다면 우리 국민의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또 9·19 군사합의는 허망한 평화를 내세워 대한민국을 무장 해제시킨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신뢰와 검증이 보장되지 않은 군사 합의가 성공한 예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불러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일 지소미아 파기는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로 인해 한·일 관계는 물론, 한·미·일 군사협력 체계가 와해됐다. 한반도 전쟁 억지력에 치명적 우려가 제기됐다. 이렇듯 국가 안보를 진영·정치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국민의 군대가 아닌 정권의 군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지난 5년간 우리 군대는 ‘당나라 군대’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하루빨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현장 지휘관의 권한·책임 보장해야
먼저, 우리 군에 ‘적’을 되돌려 줘야 한다. 그래야 적이 있는 실전적 훈련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집중력 발휘와 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군대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MZ 세대와 선진국 위상에 맞는 급식·피복·장비 등 병영 복지의 획기적 개선으로 사기를 뒷받침해야 한다.
둘째, 정치권의 군 인사 개입과 자기편 줄 세우기가 차단되어야 한다. 지휘 계통에 의한 인사 추천권과 장관·참모총장의 인사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지휘체계를 재확립하는 게 시급하다. 현장 지휘관의 선 조치·후 보고 등 권한과 책임을 보장함으로써 부대 지휘권도 확립해야 한다.
셋째, 정권 유지에 매몰된 정권 안보를 중단해야 한다. 매년 금은보화 조공을 갖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백성의 어린 딸들을 공녀로 갖다 바치면서 왕권을 유지해 왔던 고려·조선 시대가 아니다.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안전을 방치·희생시키는 정권 안보가 더는 지속하여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안보의 주인은 국민이다. 오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국가 안보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6·25전쟁 이후 우리는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강군 육성을 위해 절치부심해 왔다. 그 결과 70년 동안 북한의 무력 적화 통일을 억제·차단하고 평화를 지켜냄으로써, 세계 10대 경제 대국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군이 감히 도발하지 못하도록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도발 시에는 단호한 응징으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믿음직한 군대였다. 하루빨리 존중받는 군대, 군대다운 군대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강군에서 오합지졸로 전락한 당나라 군대
/측천무후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강군이었던 당나라 군대가 몰락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핵심은 3가지다.
첫째, 당 태종·고종에 이어 측천무후(사진)가 등장하면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엘리트 군부를 와해시켰다. 당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무천진 군벌, 일명 관롱집단 내에서 군의 인재를 충당해 왔다. 관롱집단은 문무를 겸비한 당나라 군대의 핵심축이었다. 측천무후는 관롱집단을 왕권 위협의 적폐 세력으로 몰아 와해시켰다. 군의 엘리트 집단이 약화되면서 당나라 군대는 삽시간에 무너졌다.
둘째, 정치 세력에 의한 군대의 정치화다. 측천무후가 등용한 문벌 귀족들의 무인 천대와 자기편 줄 세우기가 이어졌다. 능력·전문성이 아니라 권력과의 연줄과 뇌물 액수가 군대의 진급과 보직을 결정했다. 재상이었던 희대의 간신 이임보는 자신과 경쟁이 될 만한 군의 인재는 모두 좌천시키고, 자기 ‘애완견들’을 중용했다.
무능한 간부들이 속출했고 직속 상관보다 권력에 줄을 대면서 지휘 체계도 무너졌다. 심지어 변방을 지키는 절도사(사령관)에 이민족 출신 무관을 등용함으로써 자기 권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의 싹을 잘랐다.
셋째,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군대가 되었다. 귀족들의 병역 기피가 늘어나고 부병제(징병제)가 무너지면서 모병제 전환으로 군대의 질이 급락했다. 이민족 용병과 강도·폭행 등 전과자가 군대에 몰려들면서 충성심은 없고, 주민 약탈에 앞장섰다. 무인들이 천시되고 왕실 조정은 군대를 방치하면서 버려진 군대가 되고 말았다. 나라를 지키는데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았다. 결국 군대는 오합지졸로 변했고, 당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가가 군대를 버린 결과다.
중앙일보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숭실대 일반대학원 초빙교수
08.05 [단독]"스텔스기 반대 文특보단, 北 2만달러 받고 與중진 만나"
▲2일 오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영장심사를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미국의 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 운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한 피의자들에 대해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하조직 결성’ 지령과 함께 공작금 2만 달러를 수령한 혐의를 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일 청주지법에서 열린 영장 실질 심사에서 이들 중 두 명이 중국 현지 스타벅스 야외 테라스 등에서 북한 공작원 3명을 만나는 사진까지 제시했다고 한다.
이들이 북측 지령에 포함된 대북 ‘통일밤묘목 백만 그루 보내기 운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여권 중진 의원들과 만나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스텔스기 반대한 文 대선특보 출신…“선양서 2만달러 공작금 수령”
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F-35A 반대 운동 단체 활동가 4명(3명 구속)이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3명과 접촉한 사진, 주고받은 e메일과 문건 등 자료들을 토대로 북한의 지령과 이들의 활동 내역, 동선 사이의 연관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국정원 등 수사기관은 영장 실질 심사에서 이들이 2017년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과 택시에서 만난 뒤 “한국으로 돌아가 북한 노선에 동조하는 지하조직을 결성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수차례 중국 현지 식당이나 스타벅스 2층 야외 테라스 등에서 북한 공작원 3명을 접촉했으며 구속된 3명 중 두 명이 북한 공작원을 스타벅스 등에서 만나는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중국 선양의 대형 마트 사물함에서 미화 2만달러(한화 약2270만원)의 공작금을 찾아 인천공항으로 들여왔다고 수사기관은 주장한다.
피의자 측 “중국 유학 중인 자녀 문제로 관련 인사와 만나 문의한 것”
이에 대해 피의자 측 변호인은 “택시나 식당 등 공개된 장소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났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유학 간 자녀 문제로 중국에서 문의할 사람을 만난 것이라고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현찰 2만달러를 어떻게 들여올 수 있느냐. 가져왔다면 입금하거나 사용한 기록도 제시하시 않는다”라며 “4명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라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이들이 이후 국내에서 중점적으로 벌인 F-35A 도입 반대 운동뿐 아니라 통일밤묘목 100만 그루 보내기 운동,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추진 활동, DMZ 인간띠잇기 운동, 21대 총선 참여 등이 모두 북한의 구체적 지령과 연관된 활동으로 보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인터넷 언론사 대표가 운영하던 매체 홈페이지 메인 화면. [홈페이지 캡처]
특히 통일밤묘목 운동을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외교통’으로 다선 의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고위 관계자를 만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의원들은 본지와 통화에서 “묘목 관련해서 활동가들을 만난 건 맞다”며 ”그러나 이후엔 어떤 접촉이나 연락을 한 적이 없다.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해명했다.
피의자 A씨는 중앙일보에 “영장심사장에 기재된 내용을 보면 우리가 했던 거의 모든 활동을 북한 지령에 따른 것으로 확대했다”며 “우리가 접촉한 여권 인사가 훨씬 많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확대할 의도”라고 반박했다.
현재 사건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4명 중 최소 3명은 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노동특보단으로 임명돼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 또 일부는 지역 언론사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A씨는 “불법 사찰을 통한 사건 조작”이라며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의자와 가족들은 현재 국정원과 청주지검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에 고소했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하면서 남북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오후 우리 공군에 실전 배치된 세계 최강 최신예 F-35A 스텔스 전투기가 청주 공군기지를 힘차게 이륙하고 있다. 이날 폭염의 날씨 속에 훈련에 참가한 총 7대의 F-35A 스텔스 전투기는 순서대로 각각 청주 공군기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法 ‘임의 수사가 원칙’ 체포영장 기각…‘공안수사 특수성 고려 않나’
법원은 앞서 지난달 수사과정에서 이들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청구된 체포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기각 사유는 “임의 소환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공안 수사 전문가들은 “국가보안법, 특히 간첩 사건 수사 기법 상 이례적인 기각 사유”라고 비판한다. 공안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간부는 “정보가 북한에 노출될 위험이 많은 특수한 수사”라며 “수사의 밀행성이 중시된다”고 평가했다.
지난 2일 이들 중 3명은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뒤 그들의 지령에 따라 우리 군의 F-35A 도입을 반대하는 활동을 벌인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거리 서명운동과 1인 릴레이 시위 등 미국산 전투기인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국정원 등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고 수사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평이 나온다. 박지원 국정원장도 “법과 원칙에 따른 철저히 수사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중 한 명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 문제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윤 전 총장은 “간첩 혐의를 받는 4명은 2017년 5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특보단 일원들”이라며 “대한민국에 아직 조직적 간첩 활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문 정부 재난지원금 자원 마련위해 F-35A 도입 예산을 감액하는 등 국방비 예산을 5600억 원 가량 줄였다”며 “이 간첩사건에 대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김수민·정유진·김민중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08.05 남북 평화 쇼 기간 北은 F-35 반대 지령, 드러난 건 ‘빙산 일각’일 것
북한 지령으로 스텔스 전투기인 F-35A 도입 반대 시위를 벌인 이들이 북에서 활동비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지시를 받고 2019년부터 F-35A 반대 서명운동과 1인 릴레이 시위, 규탄 회견 등을 열었다. 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과 DMZ 평화인간띠 활동, 통일 묘묙 100만 그루 보내기 운동도 벌였다. 이들은 문재인 대선 후보 선대위의 특보단에 참여하고 여당 중진 의원을 만나면서 지방선거에도 출마했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으로 평화 쇼가 벌어지는 기간을 전후해 벌어진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겉으로는 진보를 내세우면서 북한 지령에 따라 간첩·이적 활동을 하는 인사와 단체가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과 RO 조직은 북 지령에 따라 종북 세력을 규합해 통진당을 접수했다.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등 내란 음모를 위한 무장 조직까지 꾸렸다. 이들은 이미지 파일을 암호화한 ‘스테가노그래피’로 지령을 받았다. 2011년 ‘왕재산 간첩단’도 마찬가지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과 국민주권연대 등은 2018년 ‘백두칭송위원회’를 만들어 서울 도심에서 김정은 환영식을 열었다. 꽃을 흔들고 ‘김정은’을 연호하며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 침입했고,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찢었다. 미 대통령과 주한 미국 대사를 대상으로 참수 경연 대회도 열었다.
‘사드 (반대) 대책회의’에는 이적 판결을 받았지만 간판만 바꿔 단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부 단체의 주장은 북한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2008년 광우병 시위, 2011년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시위, 2015년 세월호 집회 등에도 이름을 바꿔가며 참여했다.
그래도 아무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경찰은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많고, 문정인 전 대통령 안보특보는 “미 대사관 앞에서 데모해야 (미국이) 바뀐다”고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북 찬양 행사에 시(市) 청사를 내주고 축사까지 보냈다. 노무현 청와대 참모들이 2006년 국정원의 ‘일심회 간첩단’ 수사에 중단 압력을 넣었다는 당시 국정원장의 폭로도 있었다. 윤미향 의원이 주도한 정의기억연대는 사드 반대 단체와 탈북 여종업원 북송 추진 단체에 고(故) 김복동 할머니 조의금을 나눠 줬다. 겉으로는 ‘남북 평화’를 내걸고 속으로는 종북 활동을 하는 이들이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05일 文은 훈련 신중, 與는 연판장…김여정이 통수권자인가
올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 시작을 불과 며칠 앞두고 여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진 세력인지 북한 지시를 추종하는 세력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다. 이미 훈련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컴퓨터 게임’ ‘키보드·마우스 훈련’으로 쪼그라들었는데, 지난 1일 북한 김여정의 ‘예의 주시’ ‘남측 용단’ 담화 이후엔 연기로 포장된 취소 주장이 쏟아진다. 국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마저 가세한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4일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본부 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및 해병대 사령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연합훈련 세부 계획과 관련된 세미나가 열리는 등 이미 훈련 일정이 시작됐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앞에 두고 한·미 훈련에 대해선 별도 보고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서욱 장관이 “코로나 등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방역 당국 및 미국 측과 협의 중”이라고 보고하자 문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했다고 청와대 측이 밝혔다. 지도자의 언어는 명료해야 한다. 특히 통수권자 지시는 사실상 ‘명령’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 언급은 통수권자로서 책임감은 물론 기본 자질도 의심케 한다. 더 황당한 것은, 대통령은 두루뭉술하게 말할 테니 합참의장 등이 알아서 연합훈련을 최소화하거나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하라는 취지로 비친다는 점이다. 훈련이 실시되더라도 대통령 직접 지시는 아니란 메시지를 북측에 보내려 했을 수도 있다. 군 내부에서는 전체 장병 55만 명 중 93%가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는 점에서 정상적 훈련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고 한다.
게다가 범여권 의원들은 한·미 훈련 연기 촉구 연판장을 돌렸는데, 이미 60명 이상 서명했다고 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의 핵실험 중단 보상 차원에서 개성공단 재개와 미국의 투자, 심지어 맥도날드 지점 개소까지 거론했다. 통일부는 남북협력기금 100억 원을 곧 민간단체의 대북협력사업에 지원하겠다고 한다. 경기도는 유엔 대북제재 회피용 매뉴얼까지 제작해 뿌렸다고 한다. 집권 세력이 이 지경이니 최대의 안보 단체인 재향군인회가 발표한 ‘김여정이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인가-한미 연합훈련 계획대로 실시하라’는 성명서가 더욱 와 닿는다.
문화일보 사설
08.06 여권의 한·미 연합훈련 연기 주장, 김여정 하명 받드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이 어제 연명으로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요구했다. 집권당의 유력 대선주자들도 연기론에 합류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군사연습은 남북 관계의 앞날을 흐리게 한다”며 “남측의 용단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데 대한 호응이다. 대북 전단법 금지에 이어 안보태세 확립의 기초인 군사훈련까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것이다. 다음 번에는 김여정이 무엇을 ‘하명’하고 나설지 알 수가 없다.
대화 재개 위해 방어훈련조차 미루면
북한의 요구 수위 끝없이 높아질 것
반면에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한·미 간에 합의된 훈련은 불가피하다. 통신선을 막 회복한 거 가지고는 (연기가) 어렵다고 본다”고 거듭 밝혔다. 진영 간 대립뿐 아니라 여권 내부의 균열까지 일어나는 모양새다. 김여정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한·미 동맹까지 흔드는 이간책의 효과가 톡톡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의원들뿐이 아니다. 정부는 한술 더 떴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익명 보도를 전제로 “연합훈련 연기가 바람직하다”고 먼저 애드벌룬을 띄웠다. 이틀 뒤 김여정이 담화를 내놓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훈련을 하면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할 것”이라며 연기론을 두둔했다.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정보기관 수장이 특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첩보 수집과 정보 분석을 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정보의 왜곡과 편향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혼란을 정리하는 건 대통령의 몫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협의하라”고만 했다. 중대 안보 현안에서 국론을 한데 모으고 한목소리를 내는 구심점이 돼야 할 대통령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로 보기 어렵다. 더구나 연합훈련은 날짜가 코앞에 닥쳐 있고, 실무 준비가 다 이뤄진 상태다.
안보태세를 다지는 훈련이 남북 대화의 협상 대상이 될 순 없다. 연합훈련이 아니고 단독훈련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 내부에서 나오는 훈련 연기 내지 축소론은 연합훈련이 방어용이 아니라 북한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설령 대화와 훈련을 연계하는 현실론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여권이 주장하는 ‘대화 모멘텀 유지’는 훈련 연기의 등가물이 될 수 없다. 박지원 원장은 “훈련 중단을 하면 상응하는 남북관계 조치를 취하겠다는 북한의 의향이 있다”고 했다. 결국 대화 재개에 응해 경제 지원, 방역 지원도 받고 훈련도 중단시키겠다는 얘기다. 그것이 어떻게 서로의 요구사항이 균형을 이루는 상응 조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비핵화를 위해 유연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박 원장의 말은 앞뒤가 뒤바뀐 발상이다. 북한이야말로 먼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우리는 부단히 이를 요구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06 대선까지 파고든 간첩 활동, 철저히 단죄해야
충북 청주 지역의 노동단체 활동가 4명(3명 구속)이 연루된 간첩단 사건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친북 간첩 활동이 우리 사회 저변에 도사리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들은 미국의 첨단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를 위한 거리 서명운동, 1인 릴레이 시위 등을 공개적으로 벌였다. 마치 정당한 시민운동인 것처럼 위장했지만 중국 현지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친북 지하조직 결성’ 지령과 함께 공작금 2만 달러를 수령한 뒤의 활동이라고 수사 당국이 파악했다. 피의자들은 “국가정보원이 불법 사찰을 통한 조작 수사로 다 엮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국정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이 간첩 사건을 일부러 만들어 처벌할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정부가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것임에도 얼마나 사안이 심각하면 법적 단죄에 나섰는지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박지원 국정원장도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라”고 주문했고, 피의자들이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한 사진, 북한 지령문, 보고문, 김일성 주석에 대한 충성서약문 등 물증도 확보했다고 한다.
북한 지령·공작금 받은 청주 간첩단
정치권 침투 배후 규명, 안보 지켜야
간첩 사건의 실체 못지않게 충격적인 것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오던 이들 4명이 지난 대선 당시인 2017년 4월 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대책위 노동특보단으로 활동하고 문 후보 지지 기자회견도 했다는 점이다. 야당이 이번 사건을 ‘문재인 간첩특보단 게이트’라고 규정한 배경이다. 이들 중 한 명은 2014년 지방선거에 예비 후보로 등록했고, 당시 안철수 의원 싱크탱크에 이름이 올랐다. 지역 언론사를 운영하는 또 다른 한 명은 자신들의 활동을 기사화했고, 2016년 총선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지난 1월 ‘윤석열 및 검찰 탄핵’ 광고 제안서를 배포하며 신문 광고비 400만원 모금을 제안, 주도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공개적인 대북 지지·지원 활동을 넘어 직접 정치권에 침투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미다. 지역 운동가로 분식한 간첩 세력이 지방 언론, 지방 의회, 노동계 등을 넘어 중앙 정치 무대로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통일밤묘목 100만 그루 보내기 운동’을 위해 여당의 다선 의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고위 관계자를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활동이 어느 선까지 연결되는지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수사 당국은 정치권 연루 간첩단의 전모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간첩이나 북한에 포섭된 사람이 정치권과 정부기관에 침투하면 대북 정책이 왜곡되고,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진다. 여야를 떠나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청와대도 예외일 수 없다. 이들 4명이 특보단에 발탁된 경위를 소상히 밝히는 것은 최소한의 책무다.
중앙일보 사설
08월 06일 청주 간첩단은 北 공작 ‘빙산의 일각’
염돈재 前 국정원 1차장, 前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문재인 정부와 여권이 남북대화 재개와 국가보안법 폐지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청주지역 노동단체 활동가 4명의 간첩 연루 사건이 터져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들은 2017년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지령과 함께 공작금 2만 달러를 받고 국군의 핵심 전력인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대북 밤나무 묘목 100만 그루 지원, 김정은 답방 추진 등 친북 활동을 해 왔고, 특히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특보로 적극적인 지지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100여 명의 수사 요원을 현장에 파견한 데다 아직도 추가 조사 대상이 수십 명이나 된다는 사실로 미뤄 대규모 사건으로 비화(飛火)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에 발각된 조직은 ‘빙산의 일각’이란 게 대공(對共)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 정부가 남북대화와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에 몰두하는 동안 1만5000명에 이르는 북한 대남공작 요원들이 손 놓고 있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간첩 검거 실적만 봐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 19명, 이명박 정부 23명, 박근혜 정부 9명인데 문 정부는 이번 사건을 포함해 총 4건에 불과하며, 그것도 모두 박 정부 때 적발됐거나 내사가 시작된 사건들이다.
북한의 대남공작 대비를 위해서는 정교하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문 정부는 남북대화 복원과 대공수사 약화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대화 재개에 목을 매는 박지원 원장이 간첩 사건을 발표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러나 대공 전문가들의 해석은 간단하다. 문 정부 출범 전에 내사가 시작됐고, 수사 요원들의 집념으로 명확한 증거가 확보돼 박 원장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 정부가 대공수사를 강화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국민은 ‘설마 우리가 김정은에게 먹히겠어’ 하고 천하태평이다. 대다수 지식인은 관심이 없거나 행동을 꺼린다. 따라서 애국 지식인과 ‘깨어 있는 국민’, 그리고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이 힘을 합쳐 정부를 감시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끝으로, 다음 5가지를 강조해 둔다.
첫째, 국정원과 경찰이 이번 간첩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도록 촉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2006년 일심회 사건 수사 때 청와대 주사파들이 김승규 국정원장을 쫓아낸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F-35A 스텔스 전투기 예산이 2020년 2864억 원과 2021년 921억 원, 모두 3785억 원이 삭감된 과정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번 피의자들을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로 기소하지 않고 형량이 낮은 제6조(잠입·탈출)와 제8조(회합통신)를 적용한 이유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보강 수사를 통해 ‘목적수행죄’로 기소토록 할 수 있다. 넷째, 대공수사 요원들은 상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을 경우 추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낱낱이 기록해 둬야 한다. 부당지시 거부권 행사가 어려우므로 이 방법이 상급자의 부당간섭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문 대통령은 이번 사건 피의자들을 선거특보로 위촉한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08.06 文 캠프에도 연결됐던 F-35 반대 일당, 꼬리 자르기 수사 우려된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2017년 5월 충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지령을 받고 F-35A 스텔스기 도입 반대 시위를 했던 이들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탄핵 광고 모금 운동을 벌이고 이적 표현물인 김일성 회고록 읽기 운동도 벌였다고 한다. 이들은 북에서 활동비 2만달러를 받고 충성 서약까지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심지어 문재인 대선 후보 선대위 특보단에 참여하고 여당 유력 중진 의원을 만나 통일 사업도 제안했다. 이들은 작년 총선에 출마하고 지방선거에도 후보 등록했다. 간첩·이적 행위뿐 아니라 범여권으로 정치 활동까지 한 것이다.
이들은 2017년 이후 중국과 캄보디아 등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만나 이동하고 대화하는 장면 등이 사진에 잡혔다. 또 자택에서 압수한 USB와 이메일 등에는 대북 보고문과 한국 내 지하 조직을 만들라는 지령문, 북 체제에 대한 충성 서약문, 공작 활동비 2만달러를 수령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왜 해외에서 북 공작원들을 만났는지 제대로 소명하지 않은 채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는 이들을 모른다고 하고 해당 의원 측은 민원인으로 만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대선 캠프에 들어가고 중진 의원과 만났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작년과 올해 코로나 추경 때 F-35A 도입 예산 3785억원을 대폭 삭감한 것은 완전히 우연인가. 이들이 윤 전 총장 탄핵 광고를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인 때는 북한이 윤 전 총장을 맹비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더 이상한 것은 국정원과 검찰의 태도다. 이들에게 간첩 혐의가 아닌 ‘회합·통신’ 혐의만 적용해 구속한 것이다. 간첩 혐의가 명백한데 굳이 간첩 혐의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문 정권 들어 대공(對共) 수사는 거의 유명무실해졌는데 ‘북(北) 바라기’라고 할 정도로 북한 눈치를 보는 문 정권이 이들을 수사하는 이유도 의문이다. 문제가 여권으로 번져 커지기 전에 간첩 아닌 사건으로 끝내려는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8.06 김여정 “훈련 말라”에 與 맞장구, 대선용 文·金 쇼 정지작업인가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0여명이 5일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북 김여정이 ‘훈련 없애라’고 하자마자 통일부·국정원에 이어 여권 의원들까지 집단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들은 훈련 중단이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 조건”이라고 했다. 한미 훈련은 미북, 남북 쇼가 벌어진 2018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연대급 이상 실전 훈련이 단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북은 비핵화가 아니라 신형 탄도미사일 3종 세트를 완성했다. 핵 물질·무기를 계속 늘렸고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까지 했다.
여권은 코로나도 훈련 연기 이유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1월 미군 주도의 대잠수함 훈련에 불참하면서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 8월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도 코로나 탓을 하며 빠졌다. 그런데 코로나는 훈련과 회담에 참가한 미·일이 더 심각했다.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군 접종용 백신을 제공한 것은 코로나 핑계 대며 훈련을 연기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현재 장병 55만명 중 93%가 1차 접종을 완료한 상태다.
이번 한미 훈련은 사실상 개시됐다. 3일 양국 주요 지휘관들이 참석한 세미나가 열렸다. 군 관계자는 “전시증원연습(RSOI)에 참가할 미군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10일 참모 훈련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 훈련을 연기하는 건 ‘중도 포기’나 다름없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평시에 땀 흘려야 전시에 피 흘리지 않는다”며 3년간 연합훈련이 실종된 상황을 우려했다. 미국은 ‘훈련 없는 군대’를 상상도 못하는 나라다. 시작된 훈련마저 중도 포기하는 동맹을 어떻게 신뢰하겠나. 그러니 여당 내에서도 ‘지금 연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늘 그랬듯 문 대통령은 뒤에 숨어 애매한 말만 하고 있다. 국방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했다. 군(軍)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이러는 것은 단순히 책임 회피 때문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 정상회담 이벤트를 벌여야 하니 여기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탁현민 비서관이 최근 유엔이 있는 뉴욕을 방문했다. 남북 협상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들이 판문점에 자주 나타난다는 소문도 있다. 교황 방북설도 제기됐다. 가장 유력한 것은 대선 한 달 전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벌여 표심을 크게 흔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 훈련 연기 정도가 아니라 은밀한 남북 거래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일보 사설
08.07 스텔스기 반대 일당도, ‘목사 간첩’도 北 225국이 포섭
225국, 南 지하조직 결성이 목표… 문화교류국으로 이름 바꿔
수사당국 “225국 공작원 리광진, 이번엔 프놈펜서 北지령 전달”
청주 노동계 인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북한 노동당 산하 통일전선부 225국이 주도했으며, 6년 전 ‘김 목사 국보법 위반 사건’도 225국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6일 전해졌다. 두 사건에는 공통적으로 리광진이라는 225국 소속 북한 공작원이 등장하기도 한다.
북한 전문가와 탈북민 등에 따르면, 225국은 한국 시민·노동 단체 인사들을 포섭해 남한 내 지하당을 만들고 이를 통한 국가 기밀 수집 및 북한 체제 선전 활동을 목표로 한 조직이다. 이 조직은 2015년 문화교류국으로 명칭을 바꿨다. 특히, 북한 지령으로 청주에서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했던 4명의 경우, ‘자주통일충북동지회’라는 지하조직을 결성해 간첩 활동을 한 것으로 국정원 등은 판단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일당 중 일부가 소속됐던 모 정당의 내부 정보가 북에 전달됐다고 보고 국가기밀 탐지 및 수집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12월 기소된 김모 목사 사건의 판결문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북한의 공작금을 받고 친북 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고 있다. 김 목사는 2011년 4월 중국 다롄에서, 2012년 5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북한 225국 소속 윤 등을 만났다. 당시 ‘스테가노그라피’라고 불리는 암호화 기법과 프로그램 등을 전달받은 김 목사는 ‘혁명적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작성했다.
또한 김 목사는 2015년 북한 체제 학습 활동을 함께하던 동료 A씨에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 공작금을 수령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A씨가 2015년 4월 쿠알라룸푸르에서 225국 소속 북한 공작원들을 접선했는데 그중 하나가 리광진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리광진은 A씨에게 공작금 1만8900달러를 준 ‘전달책’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리광진은 청주 노동계 인사 4명이 연루된 최근 사건에서는 일당 4명 중 B(구속)씨를 2018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접선해 ‘사상 교육’을 하고 지령도 전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프놈펜 접선’에는 북한 공작원 조도 참여했는데 그 역시 225국 소속이라고 한다. 이들 역시 김 목사와 마찬가지로 ‘스테가노그라피’를 통해 메시지를 암호화해 북한 측과 연락한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에 법원이 일당 4명 중 유일하게 구속 영장을 기각했던 손모씨는 “자주통일충북동지회는 국정원과 검찰이 조작한 유령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또 리광진에 대해 “2016년 김 목사 1심 판결에서 리광진에 대한 증거가 채택되지 않는 등 리광진은 국정원이 조작해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김 목사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2014년 7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에 나타났던 리광진 등의 여권 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했다가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김 목사 사건 수사팀 관계자는 “국정원은 해외 협조망을 통해 확보한 리광진 등의 여권 사진을 제출했는데 ‘정책적 이유’로 입수 경위를 밝히지 않아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며 “그러나 리광진 등과 접촉하는 모습이 담긴 촬영물 등 다른 증거가 많아 여권 사진은 핵심 증거가 아니었다”고 했다. 김 목사는 2017년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문화교류국(225국)은 끊임없이 남한 내 동조세력을 포섭하는 공작을 시도해 왔고, 이번 ‘청주 사건’을 통해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은 “225국은 한국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활동을 지시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연결고리만 숨기면 적발하기 어렵다”고 했다.
☞2015년 김모 목사 국보법 위반 사건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는 김모 목사가 2011~2015년 북한 대남공작조직 225국 소속 공작원들로부터 지령과 공작금 1만8900달러를 받고 국내 정세 보고서 등을 작성한 혐의로 2015년 기소돼 징역 3년형이 확정된 사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금품수수 혐의 등이 인정된 이 사건은 세간에는 ‘목사 간첩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 표태준 기자
08.07 [단독] 충북동지회, 김정은에 혈서 썼다…"원수님의 전사"
북한의 지령에 따라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충북 활동가 손모(47)씨 등 4명이 ‘원수님의 전사로 살자’는 등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피로 써 충성을 맹세한 혈서(血書) 내용이 확인됐다.
‘충북동지회’ USB 혈서·지령·보고 84건 내용은
이들의 구속영장 신청서에는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 적대행위 중단을 선언한 이튿날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조와 접선해 “군부대 정보 수집”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가정보원과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5월 27일 압수한 휴대용 저장장치(USB) 안에서 이들이 북한 공작원과 주고받은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혈서 등 84건을 찾아내면서다.
“적대중단” 판문점선언 이튿날 北공작원 “군부대 정보수집” 지령
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 등은 손씨 등 4명에 대한 영장 신청서에 김 위원장(조선노동당 총비서)을 향해 “영명한 우리 원수님! 만수무강하시라!”(A씨), “위대한 원수님의 영도, 충북 결사옹위 결사관철”(B씨),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수님과 함께”(C씨),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손씨)라며 혈서로 맹세한 내용을 포함했다.
혈서는 구속된 A씨가 지난 2017년 5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 조모씨를 만나 “충북지역에 북한의 전위 지하 조직을 결성하라”는 지령을 받고 돌아온 약 석 달 뒤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충북동지회)’를 결성한 직후 썼다고 한다. 이들은 같은 해 8월 13일 청주 모처에서 조직을 결성하고 8월 15일 ‘충북동지회 결성대회 정형’(상황)이란 제목의 대북 보고문에 혈서 사진을 함께 보고했다.
수사기관은 영장 신청서에 북한의 ‘지하당 공작’의 일환으로 합법정당 민중당 내부 동향(국가기밀)을 수집해 보고한 간첩 혐의를 포함해 ‘충북동지회’관련 혐의를 낱낱히 기술했다. 이에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4조), 금품수수(5조), 잠입탈출(6조), 찬양고무(7조), 회합통신(8조) 혐의 등을 모두 적용했다.
A씨가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난 건 앞서 이들 4명이 2017년 대선 직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노동특보단 명의로 문 후보 공개 지지 선언(5월 4일)한 17일 뒤, 문재인 대통령 당선(5월 9일)으로부터는 12일 후였다.
문 정부 출범 한 달 뒤(2017년 6월 24일)에는 북한으로부터 “진보운동 세력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좌왕우왕(우왕좌왕)하고 있다”며 “추진 중인 사업들을 구체적으로 보고해달라”는 지령문을 받았다.
이듬해 4월 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적대행위 전면 중지’ 등 판문점선언을 채택한 다음 날인 4월 28일 B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북한 공작원 리모씨와 조씨 등을 만나 ‘충북위수사령부 37사단 정보수집’ ‘모 대기업 사업장 현장 재침투’ ‘내국인 신원정보 수집’ 등 지령을 받고 5월 1일 국내에 다시 잠입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4명 중 최소 3명은 2017 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노동특보단으로 임명돼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또 일부는 지역 언론사를 운영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北지령문 “민중당 강화·발전” 60명 포섭대상 언급…‘간첩죄’ 적용
이들은 충북동지회 결성 직후 조직 체계와 세부 임무 분담 내용도 북한에 보고했다. ▶A씨는 ‘고문’으로 사상교양 사업과 조직 생활지도 ▶손씨가 ‘위원장’으로 모 대기업의 지역 노동 현장에서 조직 건설 ▶‘부위원장’ B씨는 민중당(현 진보당) 내부에 산하당 구축 ▶C씨는 ‘연락담당’으로 본사(북한)와 연락 및 조직의 중국 재정거점 마련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충북동지회는 ‘수령방침의 혁명적 관철’ 등 이른바 북한의 3대 혁명규율을 준수하는 등 북한 문화교류국의 지하당 조직 운영체계와도 유사하다는 것이 국정원 등의 수사 결과다.
특히 이들 전원에 ‘간첩죄’로 불리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혐의(4조)도 적용했다. 합법정당인 민중당의 의사결정 과정 등 내부 동향을 탐지‧수집하고 민중당 및 시민단체 간부 등 ‘포섭대상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을 파악해 북한에 보고했기 때문이다.
실제 민중당 충북도당 간부 2명의 구체적인 신원 및 사상 동향을 보고하는 등 지령문·보고문에 포섭대상 또는 통일전선 대상으로 언급된 내국인만 약 60명에 이르고, 이중 북한이 직접 포섭을 시도한 인물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런 민중당 내부 동향 및 간부 동향 보고는 “대한민국의 안전에 직·간접적인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게 국정원 등의 판단이다. 지극히 한정된 사람만 알고 있는 정당 내부 정보나 인사들의 개인정보를 북한이 인지할 경우 대남공작의 전략‧전술을 수립하는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이같은 대북 보고문이 북한 문화교류국이 지난 2018년 충북동지회에 “민중당을 강화 발전시켜야 한다”, “민중당 안에 산하당 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을 면밀히 하라”는 취지의 지령을 이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영장 신청서에는 2020년 4월 5일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총선의 기본 목표를 친미우익 보수세력을 확고히 제압하고, 진보민주 개혁세력이 압도적 승리를 이룩하는 것과 함께 합법적 진보 정당인 민중당의 조직 사상적‧대중적 지반을 더욱 공고히 다지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 확대해나가는 것”이라고 적힌 암호화 파일을 받은 내용도 나온다.
“휴대폰 바꾸고, 은어로 메모해라” 北 보안수칙 하달
이번에 혈서를 포함해 북한 지령문·보고문을 무더기로 확보한 건 5월 27일 압수수색에서 B씨의 자택 이불 사이에서 봉투‧은박지 등 4중으로 밀봉한 USB(64GB)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USB에는 2017년 6월~2021년 5월 3년간 북한 공작조와 주고받은 지령문과 보고문 84건이 암호화 파일 형태로 저장돼 있었다.
국정원 등은 이를 “그동안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분량”이라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은 이들의 범행이 ‘은밀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중요 내용은 은어로 메모하고 철저히 삭제 ▶교체주기는 컴퓨터 3년, 메일‧모뎀‧심카드 6개월 등으로 보안 수칙까지 북한에서 하달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신사장’(손모씨), ‘A사장’ ‘B사장’ ‘C부장’ 등으로 부르면서 대북 통신용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프로그램을 이용해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령문·보고문 파일(docx)들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C씨가 2019년 11월 중국 선양에서 공작금 2만달러(한화 약 2270만원)를 받을 때도 무인함을 이용하고 동선에 아들 학업 관련 상담 절차를 추가하는 등 감시망을 피하려 애썼다는게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B씨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고 돌아온 뒤인 2018년 6월과 8월 C씨가 서울 명동 사설 환전소에서 별도로 2만 달러를 환전한 사실을 확인해 추가 공작금을 수령한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 등은 4명 중 A씨 등 일부는 10~15년 전부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공작원과 접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이 2000년대 초부터 각각 중국만 10~35회 오가는 등 중국을 집중 방문한 사실 역시 문화교류국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이들과 접촉한 공작조 선임인 리모(61)씨는 1990년대 수차례 국내에 침투한 공로로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충북지부가 지난 1월 13일 배포한 제안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탄핵을 촉구하기 위한 광고비 모금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충북지부]
손씨 “충북동지회, 유령 조직…北공작원도 가공 인물”
하지만 손씨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 및 의견서를 통해 “동지회는 출처가 불분명하며 공안기관이 조작한 유령조직”이라며 “우리가 접촉했다는 북한 공작원 3명 역시 실제하지 않는 가공된 인물”이라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국정원과 국수본에서 가공한 조작의 전형이자 짜맞추기식 수사와 불법 사찰을 통한 불법 취득물의 결과”라며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적수행 혐의를 받는 민중당 내부 동향 보고에 대해서도 “민중당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 활동이기 때문에 국가기밀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08.07 월간조선 09월 호
공안 당국이 ‘이적표현물’로 지목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독재세습·선군정치·북핵·연방제 통일의 정당성 강변
⊙ ‘주체사상’은 소련·중공의 ‘괴뢰’ 김일성이 만든 ‘사이비 교리’
⊙ ‘주체’ 운운하면서도 “혁명은 수령의 지도 받을 때만 성공”이라고 ‘궤변’
⊙ “한국 자본주의는 ‘기형적 식민지 자본주의’… 북한은 ‘정치적 자주성’ 갖고 ‘자립 경제’ 추구”
⊙ “북한이 2010년대 들어 경제개발로 남한과의 격차 줄이고 있다”는 사실 왜곡
⊙ “한반도 전쟁 원인 제거할 대담한 자주국방 체계”라고 북한의 핵 보유 정당화
⊙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관련 활동을 “지식경제에 기반을 둔 국방산업” 이라고 옹호
⊙ “체제경쟁 승리했다면서 왜 북한 두려워하나?”라며 ‘위헌’인 ‘연방제 통일’ 주장
⊙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혁명적 수령관’ 내세워 북한의 ‘3대 세습’ 당위성 강조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월 24일,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만나고 수차례 통신한 혐의를 받는 소위 ‘4·27시대연구원’의 연구위원 이정훈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이씨는 2017년 4월,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하고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을 4회에 걸쳐 만나서 국내 좌파 진영 동향 등을 보고했다. 그는 암호화된 지령문과 보고문을 송수신하는 방법도 배웠다.
이씨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 대남공작기구가 해외 웹하드에 올려놓은 암호화된 지령문을 내려받고 나서, 보고문 14개를 5회에 걸쳐 발송했다. 이씨는 또 이적성이 있는 책 2권을 출판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판매)도 받고 있다. 당국은 지난 5월 14일 그를 체포해 구속 수사한 뒤 기소했다. 4·27시대연구원 측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문제가 된 이적표현물은 이씨의 저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9년)와 《北 바로 알기 100문 100답》(2019년)이다.
이씨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北 바로 알기 100문 100답》은 이씨를 포함해 공동저자가 13명인데, 어떻게 ‘이적표현물’이 될 수 있느냐는 식으로 반문한다. 그 논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이씨 혼자 저술한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이하 《주체사상 에세이》)는 ‘이적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이 책엔 우리의 ‘상식’과 거리가 먼 ▲주체사상 ▲독재 세습 ▲선군정치 ▲북한의 핵무기 개발·보유의 정당성 등을 강변하는 대목이 다수 있다. 지금도 이런 책이 ‘학문의 자유’란 보호막 아래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는 현실에 많은 이가 황당해했다.
美문화원 점거·일심회 사건 등 ‘화려한’ 이력
▲《주체사상 에세이》의 저자 이정훈씨는 2006년 ‘일심회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다. 민주노동당 내 소위 PD 계열은 일심회 관련자들을 제명하려고 했으나 부결됐다. 사진=뉴시스
《주체사상 에세이》에 기술된 저자 이력에 따르면 ‘서울 출생’인 이정훈씨는 1985년 고려대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삼민투위) 위원장 노릇을 하면서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했다. 이후 정치권에 들어와 민주노동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일심회 사건’(2006년)으로 인해 구속됐다. 일심회 사건은 이씨 등 당시 민주노동당 인사 5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한 내부 동향을 보고한 사실이 국정원에 적발된 사건이다. 이씨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국가보안법’ 제8조 1항을 위반한 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의 ‘머리글’에서 자신을 “전형적인 민주화 세대의 일원”이라고 자처하면서 “이 책은 일심회에 연루돼 옥중에서 썼던 노트(2008년)를 최근 다시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또 “맑스(기자 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다룬 상당수 서적은 합법 출판되고 있는데 유독 주체사상에 대한 족쇄는 여전히 풀리지 않아 외려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며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차이에 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줘야 할 의무감 같은 걸 갖게 됐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이씨가 쓴 《주체사상 에세이》의 내용에 앞서 ‘주체사상’에 대해 먼저 짚어봐야 한다. 주체사상의 연원은 과거 김일성이 연안파(친중), 소련파(친소) 등 정적을 숙청하고, 북한 통치 체제를 ‘일당 독재’에서 ‘수령 독재’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놓은 ‘궤변’에서 비롯된다.
중국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도망간 뒤에는 소련공산당 명령을 수행했고, 해방 후 소련 점령군과 함께 평양에 들어와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김일성과 ‘주체’란 표현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1958년, 소련과 중국이 서로 ‘교조주의’ ‘수정주의’란 식으로 비난하며 공산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는 틈을 타서 ‘수령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년)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1894~1971년)가 집권한 후 소련에서는 수령의 독점적 역할을 강조했던 스탈린에 대한 격하 운동이 진행됐다. 이런 기류가 북한에 유입돼 통치 기반이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한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 외세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어디까지나 우리의 관점으로 주체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며 느닷없이 ‘주체’를 내세웠다. 1997년 귀순해 2010년 사망한 황장엽씨는 1960년대에 김일성대 총장 시절 이를 체계화해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김정일의 ‘주체사상 개인 강사’ 역할도 했다. 북한은 1972년, 이른바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명기했다. 이후 북한은 신격화된 김일성이 통치하는 사실상의 ‘신정(神政) 체제’가 됐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근본 원리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서도 “인민대중에 의한 혁명은 그 자체가 고도의 의식적·조직적 운동이며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고영도자인 ‘수령’의 지도를 받을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은 이를 바탕으로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함으로써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며 소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내놨다. 즉 ‘주체’ 또는 ‘자주’ 운운하지만, 결론적으로 ‘주체사상’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란 식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 독재’와 북한 주민 착취를 정당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남조선은 미제 식민지”란 식으로 주장하면서 대남 적화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이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주체사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한 사회의 남남갈등과 반(反)체제 전복 활동을 부추기고, 최종적으로는 한반도에 대한 김일성 일가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독재 정권의 ‘기만·선동 수단’에 불과하다.
“주체사상 최고 가치는 믿음·사랑 구현 사회”
▲이른바 ‘주체사상’은 한반도에 대한 김일성 일가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독재정권의 ‘기만·선동 수단’에 불과하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주체사상’에 대해 이정훈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에서 “맑스주의가 가진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시킨 독창적 현대 유물론 사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책에서 이미 70년 동안의 지구적 실험 결과 폐기처분된 ‘시대착오적’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과거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들마저 비난했던 ‘주체사상’을 가리켜 ‘진리’라고 평가했다.
〈근로대중이 단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상처럼 그 사회 지배세력에게 두려운 진실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배세력은 근로민중이 새 사상을 갖고 단결해 투쟁하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탄압합니다. 역사적으로 맑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 같은 사상이 탄압받았던 근본 이유입니다. 하지만 근로대중의 사상을 아무리 탄압해도 세상의 진리 자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중략) 인류가 만든 자주적 사상은 많지만 대표적인 자주사상은 근대 맑스주의와 현대 주체사상입니다. 자주적 사상의식이 무엇인지 이처럼 정의하는 것도 놀라운 발견이고 쉽지 않았지만,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과정도 실은 말처럼 쉽지 않았죠. 근로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를 제외하더라도 무려 반만년 이상이 걸렸으니까요.〉
이씨는 책에서 “주체사상의 최고의 가치는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 실상과 거리가 먼 얘기다. 단적인 예로 그토록 사랑을 중시하는 지도 이념을 강조하는 북한 독재정권은 ‘정권 안보’를 위해 1990년대 중반,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대외에 문을 닫아걸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고 하면서 최소 100만명에서 최다 300만명에 이르는 북한 주민을 굶겨 죽였다. 이게 바로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려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북한의 실상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주체사상 에세이》의 대목이다.
〈기독교 사상이나 맑스주의, 주체사상에서 얘기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실 모두 비슷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입니다. 다만 그를 구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날 뿐입니다. 기독교는 선행과 기도가, 맑스주의는 계급투쟁이, 그리고 주체사상은 자주성 실현을 위한 노력과 투쟁이 사회를 구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 말합니다. (중략) 사람을 이윤과 생산의 도구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 마음처럼 그의 삶 자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이런 모두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인간관계와 사랑의 내용일 겁니다. 이렇게 세상의 가장 큰 행복과 힘이 바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창조하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게 주체사상이 정말 하고픈 얘기였다면 지금껏 여러분이 알고 있던 주체사상과 너무 다른가요?〉
이씨는 해당 책 중반부에서 북한 체제의 우수성과 함께 남한의 ‘대미(對美) 예속성’을 주장했다. 먼저 이씨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우리의 시장경제와 관련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기형적인 식민지 자본주의’, 우리 체제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선진국에 예속된 ‘신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라고 규정했다.
〈한국 사회를 얘기할 때 멀리 근대사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뿌리와 원형이 기형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때부터 조선은 유럽이나 일본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유형인 식민지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됩니다. (중략) 식민지 자본주의는 대부분 식민지 나라의 정치적 독립에도 불구하고,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형태의 정치, 경제, 문화적 예속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회과학 용어로 ‘구(舊)식민지’와 다른 ‘신(新)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라 부릅니다. (중략) 한국 자본주의 역시 겉으로는 유럽처럼 고도화된 양상을 띠어도 한국 사회의 예속성과 기형성은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는 종속형 자본주의입니다.〉
이씨는 대한민국의 역대 정권의 성격에 대해서도 ‘친미 예속 자본주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친미(親美)는 예속이고, 반미(反美)는 ‘자주’라는 식의 황당한 이분법이다. 참고로 이씨는 책 전체에 걸쳐 중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북한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종속’ ‘예속’ ‘식민지’와 같은 표현을 쓴 일이 없다.
〈한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규정하는 정권의 성격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미 예속 자본주의 정권입니다. (중략) 미군이 주둔하고,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치권을 주되 철저히 친미 예속 정권으로 만듭니다. (중략) 정권이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조차 부정하고 예속적 자본주의를 유지하면 신식민지 예속자본주의가 지속되는 거지요. 미국과 한국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란 동일한 사회구성체이지만 정권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하나는 지배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종속된 자본주의입니다. 경제가 아무리 고도화되고 규모가 성장해도 자주적 정권이 되지 못하면 성장의 열매는 근로대중의 몫이 아니며 차별은 지속됩니다. 이런 종속관계를 단절하는 게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수술이 되겠지요.〉
〈한국 경제정책의 기본 성격이 궁극적으로 미·일 외래자본과 재벌 대기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는 역대 정권의 성격과도 그대로 일치합니다. (중략) 수출 총액과 GDP(기자 주: 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권이라 해도 경제정책의 성격이 자국 근로대중과 자립적 민족경제를 위한 게 아니라면 그 혜택은 대자본과 외래자본에 주로 돌아가게 되지요. (중략)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공무원들의 국적은 모두 한국이지만, 머릿속의 소프트웨어는 미국산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략) 근로대중이 일만 열심히 하고 경제정책에 대해 무지하다면 영원히 자본이라는 주인에 묶여 ‘재주 부리는 곰’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미국에서 이탈해 북·중·러와 공조해야”
▲이정훈씨는 2000년대 이후 북한의 본격적인 핵ㆍ미사일 개발에 대해 “한반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자주국방 체계를 구상했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이정훈씨는 우리 경제가 대미(對美) 종속성을 끊고, 북한과 경제공동체를 구성하는 이른바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을 축약하면 미국의 수탈에 시달리는 한국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정권이 등장해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서 이탈한 뒤 북한과는 ‘민족공조’를 하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동북아 공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교롭게도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집권 이래 줄곧 주장해온 이른바 ‘한반도 신(新)경제공동체(남·북·중·러)’와 유사하다.
〈남북 경제가 함께 가야 할 미래 방향은 여전히 자립적 민족경제입니다. (중략) 미국식 세계화를 정면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화를 주장하는 입장이 바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에 기반한 세계화입니다. 물론 정치적 자주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노선이죠. (중략) 성공 사례도 드물어요. (중략) 사회주의를 선택한 몇몇 나라만이 자립적 경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 북한, 쿠바 등이 그렇습니다.〉
〈남북 분리대결에 기초한 반쪽짜리 경제발전 노선은 현실적이지 않고 미래지향적일 수도 없어요. 제도를 초월한 통일적인 자립적 민족경제 관점에서 공존하는 전망을 가져야 남북이 상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남한 진보개혁 정권에 대한 제국주의 경제봉쇄와 제재에 공동 대응하고 남북 경제공동체를 중심으로 중국과 러시아, 아세안 등을 아우르는 새 경제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중략) 역사와 다른 나라 사례가 보여주는 건, 정치적 민주주의 없이 미국의 품 안에서만 진행하는 경제발전 전략은 경제자립이나 진정한 복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수탈경제의 연장일 뿐이란 겁니다. (중략) 복지와 자립적 민족경제로 나가면서도 제국주의 경제제재를 이겨내는 가장 빠른 길은, 정치 변화로 전면적 민족공조와 동북아 공조를 이뤄 새길을 만드는 겁니다.〉
이씨는 북한 경제체제를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이라고 주장하면서 긍정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북한 경제와 관련해서 6·25 전후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1990년대 들어 공산권 붕괴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잠시 쇠퇴했지만 이내 회복해 우리와의 경제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와 달리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의 경제 규모를 앞질렀지만, 1990년대에 외환위기를 맞아 추락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저성장 시대’가 됐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북한의 경제개발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주의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입니다. (중략) 전후 폐허 속에서 1980년대 초반까진 북이 빠른 속도로 남한 경제를 앞섰습니다. (중략) 1980년대 후반 이후 남한 경제 규모가 급속히 팽창하는 데 반해 북의 경제는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급격히 추락해 위기를 맞습니다. 1990년대는 격차가 더 확대되다가 남한도 IMF 구제금융을 거치고 2000년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듭니다. 반면 2000년 이후 북 경제는 체제위기를 극복하고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으며 2010년대 들어선 본격적인 경제개발로 남한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북은 지난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통일 민족경제와 제2의 천리마(만리마) 기적을 만들자고 독려하며 새로운 경제도약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전형적인 발전모델에 충실했습니다. 자본주의 진영뿐 아니라 동유럽 사회주의와 비교해도 경이적인 경제발전 속도를 기록했지요. 특히 1960년대 말까지 전후 불과 15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사회주의 공업화를 완료하고 70년대 전력, 석탄, 강철, 비료, 시멘트 등 주요 공업생산물 1인당 생산량이 발전한 공업국 수준에 이릅니다. 물론 당시 남한의 박정희 정권에겐 엄청난 충격과 압력이었지요.〉
이와 같은 이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통계를 종합해 2010년대의 남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면 그렇다. 2010년 당시 북한의 GDP는 30조원에 불과했다. 우리는 북한의 44.2배에 달하는 1322조6112억원이다. 이후에 그 격차는 ▲2011년 43배 ▲2012년 42.8배 ▲2013년 44.6배 ▲2014년 46배 ▲2015년 48.6배 ▲2016년 50.9배 ▲2017년 50.4배 ▲2018년 53.2배 ▲2019년 54.5배 등으로 계속 벌어졌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 감소’는 없었다.
경제성장률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통계를 보면, 2010년 당시 남한은 6.8%, 북한은 -0.5%다. 이후에는 ▲2011년 남한 3.7% / 북한 0.8% ▲2012년 남한 2.4% / 북한 1.3% ▲2013년 남한 3.2% / 북한 1.1% ▲2014년 남한 3.2% / 북한 1% ▲2015년 남한 2.8% / 북한 -1.1% ▲2016년 남한 2.9% / 북한 3.9% ▲2017년 남한 3.2% /북한 -3.5% ▲2018년 남한 2.9% / 북한 -4.1% ▲2019년 남한 2% / 북한 0.4% 등의 추이를 보였다. 결국 북한이 우리와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일은 없다는 얘기다. 애초에 경제 규모 자체가 서울시 종로구(2019년 지역내총생산 기준)와 비슷한 북한과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박정희의 목표는 재벌 중심 반공 자본주의 경제”
▲1976년 5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포항제철 제2고로에 점화하고 있다. 《주체사상 에세이》의 저자는 박정희 정부 이후 한국 경제를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라는 식으로 규정했다. 사진=조선DB
이정훈씨는 책에서 북한 경제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기술한 반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집권 때 이뤄진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박정희 정부 당시 경제개발과 수출산업 육성 전략은 ‘자립 경제 노선’이 아닌 ‘종속적 자본주의’라고 깎아내렸다. 또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만연한 ‘비정규직’의 나라가 됐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은 기업 규모를 키우고 성장속도를 낼 수 있는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을 택했습니다. (중략) 값싼 노동력의 대량 공급이 가능하도록 1970년대 저곡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수출주도형 대기업, 재벌을 육성했습니다. 조세와 수출금융에 특혜를 줘가면서 1960년대에 재벌경제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중략) 미국·일본 차관 도입→군사정권 경제 주도권 장악→재벌 대기업 육성, 이런 삼박자에 따라 한국 경제의 기본 틀이 1960~80년대를 거치며 완성됩니다. 물론 개발정책은 처음부터 근로대중의 노동권과 국민복지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목표는 재벌 중심의 반공 자본주의 경제의 완성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전쟁하듯 경제를 밀어붙인 건 실제 끝나지 않은 전쟁이 체제경쟁으로 비화된 때문이죠. 한국 근로대중은 어느 나라 노동자보다 근면하고 성실했으나 민주노조를 불법시하는 정치적 억압 아래 경제 운영 방식 역시 비민주적일 뿐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계기로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의 경제정책 및 운영방식이 크게 바뀝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이른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이 역시도 미국의 요구로 시작됩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 형성된 한국 경제구조가 일거에 새로운 구조로 변모됩니다. (중략) 미국은 서서히 한국 정부를 작은 정부, 시장 규제 없는 정부로 만들면서 미국 금융자본이 한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갑니다. IMF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국 경제 기조를 충격요법식으로 해체하는 데도 성공합니다. (중략) 그러나 근로대중이 만든 이익과 국부는 대기업의 주주 구성이 외국인으로 바뀌면서 외국으로 줄줄이 대량 유출되기 시작합니다. 기업투자도 부진하고 경제성장률 역시 구조적으로 저하되기에 이릅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신화는 여기서 멈춥니다. (중략) 기업도 금융자본이 언제든 사고팔기 좋게 이른바 노동시장을 유연화합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 유지되던 일본식 평생직장 개념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구조화됩니다. (중략)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만연한 비정규직의 나라가 됐습니다.〉
‘자립 경제’ 이뤘는데 왜 ‘북한 경제난’은 지속될까?
이정훈씨는 책에서 북한의 경제 쇠퇴는 독재정권의 무능과 ‘체제의 모순’이 아니라 ▲소련 등 공산권 붕괴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와 같은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주장도 했다.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연이은 사회주의 경제권 해체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북한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대규모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는 북에겐 전후 최대의 위기이자 시련이었지요. (중략) 당시 북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은 사회주의의 후퇴 아니면 미국과 전쟁을 불사한 맞대결뿐이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북이 선택한 길은 외부의 일반적 예측과 달리 초강경 응수였습니다. 미국의 대북침략전쟁엔 전쟁으로, 경제난국엔 경제도약을 위한 새로운 경제전략으로 맞대응하며 1996년 ‘고난의 행군’을 선포합니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피로써 지킨’ 자주권과 사회주의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지요.〉
이씨 주장에 따르면 이미 ‘주체사상’에 의해 오래전부터 ‘자립 경제’를 이룬 북한이 공산권 붕괴 등 외부 충격에 따라 경제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연재해를 언급하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당시 남한 지역도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지만,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당시 북한의 경제위기가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었다면, 이는 북한 독재정권이 조림, 치수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 ‘주체’ ‘자주’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그 대외 의존성과 종속성이 심각해 ‘자립’이 어려운 체제라는 점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씨는 북한의 핵 개발·보유를 정당화하는 주장도 했다. 그는 “북은 대담하게도 한반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자주국방 체계를 구상하는 동시에 사회주의 원칙에 기초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더 강력히 추구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미국에 대한 수동적인 방어전이 아니라 앞으로 더는 전쟁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요. 본격적인 핵 개발이 그겁니다. (중략)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처럼 원칙적이고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중략) 북이 전쟁 재발을 막으려면 미국의 핵 선제공격 전략과 해·공군 중심의 기동전을 무력화해야 합니다. 북은 그 방법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 보유, 그리고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을 택합니다. (중략) 이런 계획도 놀랍지만, 더 중요한 건 군사전략을 경제발전전략과 연동해 추진한 겁니다. 일반적으로 국방비가 늘면 민간경제 부문이 줄고, 그게 또 장기화되면 전반적인 경제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북은 이런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기발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애초 일반 중공업이 맡던 국가 경제의 선도 부문을 국방공업이 담당케 합니다. 그리고 국방공업의 중심고리를 첨단 로켓공업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핵 프로그램 개발에 맞춥니다. (중략) 북한은 산업 전반을 지식경제에 기반한 국방산업으로 재건한 겁니다. 이런 기술 수준에 오른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일본 정도입니다. 더욱이 이를 독자 역량으로 구축한 나라는 없습니다. 항공우주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가 다가올 새 세기 산업혁명을 이끌 미래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ICBM의 성공은 현대 과학기술의 종합적 성공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외부 도움 없이 자력으로만 성공을 이룬 건 북의 과학 기술 수준과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중략) 북한이 주장하는 ‘단번 도약’ 경제발전전략은 기존 선진국을 따라가는 전략이 아니라, 단번에 선진국을 능가하는 최첨단 지식산업 기반의 과학기술로 자본주의 경쟁력을 뛰어넘는 야심 찬 전략입니다. (중략) 2000년대 후반 들어 북 경제가 재건의 토대와 여러 산업 부문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새 성장동력을 확보한 걸로 보입니다.〉
대한민국 주권 포기하는 ‘위헌적’ 연방제 통일 주장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의 소위 ‘6ㆍ15선언’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지만, 이는 어느 모로 보나 ‘위헌’이다. 사진=조선DB
이정훈씨는 또 책에서 ‘연방제 통일’을 옹호했다. 그는 “보수학자들은 남북의 국력 차이가 10배가 넘고 국방비, 경제력 모든 분야에서 남한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외세 간섭 없이 미군을 철수하고 남북이 1대1로 연방제로 통일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건 왜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서 “사실상 남한의 수구보수 세력은 미국의 힘과 머리 없이는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만약 남한 수구보수 세력의 주장이 맞는다면 연방제는 거꾸로 북한이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의 소위 ‘6·15 선언’ 이후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들도 같은 강변을 하지만, 이는 논리 전개 자체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연방제 통일을 용인할 수 없는 까닭은 대한민국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배치될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없는 북한의 기만술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소유에 기초하는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단일국가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제1조 1항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 2항)는 우리 ‘헌법’과 달리 북한은 ▲노동자 ▲농민 ▲군인을 비롯한 소위 근로인민대중을 주권자로 간주한다. 서로 다른 주권자 개념을 절충하거나 북한 측 주장을 인정해 하나의 연방헌법에 담는다면, 이 역시 ‘위헌’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에 따라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우리 영토를 불법 점유하고,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가 된다.
이런 집단과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연방제 통일’을 추진하는 것 역시 대한민국의 정통성, 유일 합법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헌법’과 배치된다. 대한민국을 초월하는 상위의 ‘단일주권’을 만드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대한민국 주권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는 우리 ‘헌법’ 제8조 1항의 ‘복수정당제’와 달리 북한은 형식상 ‘일당 독재’, 실제로는 ‘수령 독재’ 체제다. 이 사이에서 북한과 타협하는 행위 역시 ‘위헌’이다. 결국 지금의 북한 체제와 연방제 통일을 하는 것은 헌법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그 어떤 대통령이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추진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언급한 조항은 물론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제66조 2항의 의무에 반할 수밖에 없다. 또 이는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형법 제91조 1호)”이므로 ‘국헌 문란’에 해당한다.
또 신뢰 구축과 민족 동질성 회복 없이 ‘정치적 결정’에 따라 ‘통합’할 경우 내전 발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법리 검토를 떠나 실익 자체가 없다. 지금껏 전 세계에서 연방제를 실시해 성공한 나라들의 경우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州) 정부는 모두 같은 정치 이념을 공유하고 단일 경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금의 북한과 ‘연방’을 구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주장한 ‘연방제 통일’은 남북한이 각기 다른 헌법 체제를 인정하고, 두 개의 정부를 두자는 것이다. 즉 ‘1민족·1국가·2체제·2정부’ 형태로 ‘통일’하자는 얘기인데, 이는 ‘공통된 정치 이념하에 통합되어 공통된 대외정책을 갖고 종합적인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란 의미의 ‘연방’의 개념과 괴리가 큰 주장이다.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옹호
이정훈씨는 김정일이 주장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언급하면서 ‘3대 세습 독재’를 옹호했다. 이 대목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주체사상’이 무슨 대단한 철학이 아니라 북한 김씨 일가의 독재와 권력 세습, 대남 적화를 정당화하는 ‘궤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에서 민중에 대한 지도 문제는 민중에게 사상적 자각을 주고, 올바른 투쟁목표와 방도를 제시하는 겁니다. 민중의 정당이나 지도부가 직접 이끌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를 정치적 지도자의 사상적 지도, 조직적 지도, 정책적 지도라고 해요. 즉 지도의 문제는 민중 속에서 나온 지도자와 함께 혁명을 이끌어가는 혁명적 당과 단체의 영도 문제입니다. 주체사상에서 지도자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수년 단위 투표로 교체하는 대통령이나 총리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혁명이 한두 세대에 끝나는 게 아닌 만큼 지도자에게 임기를 몇 년 보장하는 차원이 아니라 혁명 계승이란 장기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봐요.
(중략) 주체사상은 지도자-당-대중을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민중의 실체로 파악합니다(기자 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지도자-당-대중의 관계를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 공동운명체라고 해요. 또 지도자는 민중의 수뇌부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봅니다(기자 주: 혁명적 수령관). 주체사상은 개별국가나 민족을 단위로 진행되는 혁명운동에서 정치 지도자가 어떤 사상으로 민중을 지도하는가를 혁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 문제로 파악합니다. 왜냐면 역사를 보건대, 한 사회의 지도사상과 조직의 수준은 그 사회의 걸출한 정치적 지도자와 지도그룹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지도자는 한 개인이라기보다 민중 내부의 중요한 핵심 구성 부분입니다. 정치운동에서 지도란 결국 지도자-당-대중의 관계가 낮고 부분적인 단계에서 높고 전면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실현됩니다.〉
한편, 이씨는 《주체사상 에세이》의 ‘머리글’에서 “주체사상은 일반 국민이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접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여전히 ‘금지된 사상 1호’”라며 “음식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아 선택하듯 사상과 견해 역시 각자 경험과 판단에 맞으면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찾는 일은 없다. 음식을 먹고 맛을 평가해야지 음식 자체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맛도 없고,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고 겁주는 방식으로 사상 문제를 대하는 건 상식 이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핀 내용을 고려하면, ‘주체사상’은 ‘음식’이 아니라 ‘독극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뤌간조선 08월 호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아버지
▲야권(野圈)의 대선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최재형(崔在亨) 전 감사원장의 부친인 최영섭(崔英燮) 예비역 해군 대령이 지난 7월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고인은 1928년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최병규·1909~2008)는 1926년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현 춘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이 공로로 2002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고인은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越南)한 후 해군사관학교(3기)에 입학, 1950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6·25동란 발발 다음 날인 6월 26일에는 백두산함(PC-701함)의 갑판사관으로, 부산에 상륙하려던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선박을 격침시킨 대한해협 해전(海戰)에 참전했다. 백두산함은 해군 장병들이 월급의 10%를 갹출하고, 해군 장병 부인들이 삯바느질을 해서 마련한 돈으로 구입한 군함으로, 당시 우리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항도(港都) 부산,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한해협 해전에서의 승리 덕분이었다. 고인은 이후에도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전쟁 중 한국 해군이 수행한 주요 작전에 모두 참가했다.
고인은 5·16군사혁명 이후인 1962년부터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비서실 총무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그해 10월 박정희(朴正熙) 의장의 울릉도 방문 시에는 바다에 빠진 박 의장을 구해내기도 했다. 1963년 민정(民政) 이양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각하, 저는 한강을 건너온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거절하고 해군으로 복귀했다.
구축함 충무함(DD-91함) 함장으로 있던 1965년 3월에는 동해안으로 침투하는 북한 간첩선을 나포, 간첩 8명을 사로잡았다. 군에서의 마지막 보직은 해군사관학교 부교장 겸 생도대장이었다. 당시 그의 훈육을 받은 해군 장교들은 아직까지도 그를 ‘참군인’으로 존경하고 있다. 1967년 장성 진급에 탈락하자 해군참모총장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인은 대령까지만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전역(轉役)했다.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 보국훈장(광복장·천수장)을 각각 두 차례 받았다.
이후 국영기업인 한국냉장주식회사 영업이사를 비롯해 공·사기업의 임원을 지냈고, 한때 개인사업을 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한국해양소년단 고문으로 학생과 교사들에게 해양사상을 고취하는 데 앞장섰다. 말년에는 대한해협 전투 등 6·25 당시 해군이 수행한 작전들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특히 대한해협 전투에서 전사한 김창학·전병익 중사의 유가족들을 찾아 그들의 장렬한 최후를 전하고, 두 사람의 모교 등지에 흉상을 건립하도록 했다. 《6·25 바다의 전우들》 《민족성지 고하도》 등의 책도 냈다. 군 복무 시에는 해군 장병들의 애창군가 ‘구축함의 세일러’의 노랫말을 짓기도 했다.
《월간조선》은 2000년대 초부터 백두산함이나 고인의 활동에 대한 기사를 여러 번 실었다. 기자도 백두산함에 대한 짧은 기사를 쓴 것이 인연이 되어 고인을 알게 되었다. 종종 안부 전화를 드리면 고인은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90년을 써먹은 몸이라 여기저기 다 고장 났어. 이제 죽을 때가 된 거지”라고 하다가 이내 “그런데 배 기자,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요?”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통화를 마칠 때면 “배 기자, 이 나라를 꼭 지켜줘!”라고 당부했다. 연말이면 지인(知人)들에게 나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연하장을 보냈다.
고인은 정옥경씨와의 사이에 아들 넷을 두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둘째 아들이다. 최 전 원장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고인을 꼽았다. 2017년 최 전 원장이 문재인 정부로부터 감사원장직을 제안받고 고민 끝에 수락하자 고인은 ‘단기출진 불면고전 천우신조 탕정구국(單騎出陣 不免苦戰 天佑神助 蕩定救國)’이라는 글을 써주며 아들을 격려했다. ‘홀로 진지를 박차고 나가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근래 최재형 전 원장이 정치 참여 결심을 굳히면서 다시 회자(膾炙)되고 있다.
최재형 전 원장이 금년 들어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히자 고인은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그 착한 아이가 어떻게 험한 정치를 하겠느냐?”며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식을 잃기 전 그가 최 전 원장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육필 메시지는 “대한민국을 밝혀라”였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08.09 김여정 하명에 韓美훈련 더 쪼그라들고 無用論까지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내정자가 라디오 방송에서 “본래 한미 연합훈련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고 했다. 외교관 양성을 담당하는 외교부 산하 정책 싱크탱크 수장이 될 사람이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혈맹인 미국과 함께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훈련 무용론(無用論)을 제기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의 53분의 1로 축소됐고, 군사비도 우리가 10배 이상 쓴 지 10년이 지났다”면서 꺼낸 말이다. 경제력과 군사비 규모가 북한을 압도하니 군사적 위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북은 우리에게 없는 핵을 갖고 있다. 수소탄 실험까지 마쳤고 보유 핵탄두가 수십 개에서 100개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 재래식 군비가 앞서니 북의 위협에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식 밖의 말이 국립외교원장 내정자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또 16일부터 예정된 이번 훈련에 대해 “북한 진격 훈련 등은 안 하고 규모도 줄여서 그야말로 방어 훈련만 한다는 걸 북한에 간접적으로라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 내용을 적에게 알려주자는 것이다. 이적 행위나 다름없는 발상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0여 명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요구하는 집단 성명을 냈다. 북한 김여정이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며 취소를 요구하자마자 연판장을 돌려 의견을 모았다. 그 사이 통일부는 “한미 훈련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 국정원은 “한미가 연합훈련을 중단하면 북이 남북 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이 있다”며 가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방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했다.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컴퓨터 키보드 게임’으로 전락한 한미 연합훈련은 이번에 더욱 축소된 형태로 치러진다고 한다. 한미 양측 모두 훈련 참여 병력을 줄이기로 했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미래연합사령부의 완전운용 능력 검증도 못하게 됐다고 한다. 군에서는 “코로나 19 확산 사태로 인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 훈련을 위해 한국군 55만명분 백신까지 제공했고 현재 장병 93% 이상이 1차 접종을 완료했다. 훈련 축소는 김여정의 하명을 받들기 위해 당·정·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다. 이 나라의 국군통수권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조선일보 사설
08월 09일 끝까지 김정은에 매달리는 文의 몽상
박민 논설위원
‘김정은 솔직’ 찬양 타임 인터뷰
국민·타임 독자 위한 것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위한 공개 구애
‘분단시대 영웅’ 착각 휩싸여
역대 진보정권 대북 무한 애정
대한민국 체제 위기 부를 수도
미국 주간지 ‘타임’은 지난 6월 2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김정은(국무위원장)은 매우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결단력이 있고 국제적 감각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우리 아이들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 없다’고 진지하게 말했다”고 강조했다. 타임은 ‘김 위원장은 몰살, 고문, 강간, 기근 장기화 등 ‘반인륜적 범죄’를 주도한 인물’이라는 유엔 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소개한 뒤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김 위원장에 대한 변함없는 옹호가 망상(delusion)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타임 표지 사진을 공개하며 “4년 2개월 만의 타임 인터뷰로 ‘마지막 제안(Final Offer)’이란 제목이 붙었다”고 홍보했다. 즉각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 데도 청와대는 자랑만, 정상적인 나라 어렵나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데 청와대는 왜 이 기사를 홍보했을까? 어차피 인터넷에 공개됐으니 선제 대응하자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 과정을 보면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청와대는 굳이 ‘마지막 제안’이라는 제목을 적시하며 홍보했고, 며칠 뒤인 7월 초부터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 남북정상회담 재개와 관련 친서 교환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27일 청와대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10여 차례 친서가 오갔다고 밝혔다. 결국 타임 인터뷰는 국민이나 타임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친서 협상 과정에 등장한 김 위원장을 향한 공개 구애였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같은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시간이 나에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이미 임기가 채 1년이 남지 않았던 만큼 대북 문제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남북 대화 재개 추진이 내년 대선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조국 사태로 확인된 공정 가치의 훼손, 부동산 대란, 코로나 백신 공급 차질 등으로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대권 후보 지지율까지 야권에 밀리면서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결정적 한 방’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임기 말 레임덕 방지용이란 관측도 있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여당 대선후보는 확장성을 위해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이는 레임덕 가속화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추진되면 국민의 시선이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국정 장악력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의도로 추진되는 대북 정책은 국익을 훼손한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심각한 선거 중립 의무 위반도 된다. 그럼에도 정치적 목적이 배경의 전부라면 차라리 그게 덜 위험할 수 있다. 40년 가까이 한국에 거주하며 미국과 영국 신문의 한국 특파원을 지낸 북한 전문가 마이클 브린(69) 기자는 지난해 서해안 어업 지도원 사살 사건 직후 ‘북한에 대해 환상을 버려라’고 문재인 정부에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현 정부의 주사파 출신 인사들 중 이념적으로 북한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주사파도 바보는 아니다. 이들은 북한 지도자나 체제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북한에 애정을 보임으로써 자신들이 해묵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갖는다. 스스로를 분단 시대 영웅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공상이 지난 15년간 자칭 진보정권이 끊임없이 북한과 대화를 시도해온 원동력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현실에 눈이 먼다. 김 씨 일가가 자유를 부정하고, 한국과 미국의 위협을 빌미로 핵무장을 하는 등 북한을 군사기지화해 집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단순한 사실도 인정하지 못한다. 대선용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한다면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처벌받은 전례 등을 의식해 최소한의 원칙을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대통령은 북한의 참혹한 실상도, 냉정한 국제관계와 법률도 초월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북 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정책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까지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
문화일보
08.10 김여정도 놀랄 하명(下命)의 위력
훈련 없는 동맹을 악기 없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였다. 그는 국내 언론 기고문에 “북한은 항상 그랬듯이 한ㆍ미 연합훈련에 반대할 게 분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이 해빙을 역류시킨다고 비난하며 반대할 것이다”고 썼다. 김여정이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하라고 협박한 데 이어 중국 외교부장이 동조하고 나선 모양새가 딱 그대로다. 실은 힐이 이 기고문을 쓴 것은 2018년 2월이다. 그 후 한·미 동맹 오케스트라는 선율을 이끌어가는 주요 악기가 빠져 반쪽이 됐는데, 이번에 더 쪼그라들게 됐다.
‘항상 그랬듯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북한의 연합훈련 중단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 좀 더 유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이해 못 할 것은 북한의 훈련 중단 압박이 계속될 때마다 나온 우리 내부의 반응이다. 시간 순으로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단금지법 이은 연합 훈련 축소
북한에 잘못된 확신 심어줄 수도
다음번엔 무슨 요구할까 걱정돼
올 1월 8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3년 전 봄날’을 언급하며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첫해여서 3월로 예정된 전반기 연합훈련을 미국의 새 대북 정책의 시금석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연합훈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발언해 “훈련을 적에게 물어보고 하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뒤이어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여당 의원 35명이 훈련 연기 내지 중단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3월 훈련이 실시되자 김여정은 “얼빠진 선택”을 했다며 막말을 퍼부었다.
5월 한ㆍ미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다시 연합훈련을 꺼냈다. “코로나로 대규모 훈련은 어렵지 않겠나”라며 “미국 측도 북ㆍ미 관계를 고려해 판단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사이 남북 정상의 친서가 오가고 연락 채널 복구가 발표되자 김여정은 마치 청구서를 내밀듯 훈련 중단을 압박했다. 이런 홍역을 치른 끝에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8월 훈련이 실시되는 것이다. 지난 몇달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복기해 보면 남과 북의 장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장단을 맞추는 이유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남북 정상회담을 다시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게 퍼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 74명이 군사훈련을 하지 말자고 연판장에 서명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연합훈련이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논리에 손을 들어주는 동시에 한ㆍ미 연합훈련이 방어용이란 정부 공식 입장을 여당 의원들이 연명으로 부인한 격이다.
어찌 이들뿐이랴. 차기 국립외교원장으로 내정된 사람은 훈련 연기나 축소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훈련 무용론을 들고나왔다. 53대 1의 현저한 남북 간 국력 차를 감안하면 아예 훈련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좋은 공연장과 악기만 있으면 리허설 없이 연주회에 나가도 된다는 발상과 다를 게 없다. 더구나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와 달리 군이 출동해야 할 유사상황은 예고 없이 닥치는 법이다.
이런 발상의 소유자를 청와대는 “외교 안보 전반에 폭넓은 이해와 전문성을 갖췄다”며 차관급 직책에 발탁했다. 졸업하면 바로 외교관이 될 사람들을 가르치고, 정부 의사결정과 정책 설계의 밑그림이 될 연구를 수행하는 책임자 자리를 맡긴 것이다. 그러니 김정은ㆍ김여정 남매가 어찌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여정 하명(下命)의 위력에 가장 놀라고 있는 사람은 김여정 본인일지 모른다. 지난해 6월 “법이라도 만들라”며 대북 전단 문제를 처음 꺼내들 때만 해도 그렇게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례가 점점 쌓이면 김여정 스스로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져들게 된다. "내 말은 반드시 이뤄지게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번에 김여정이 또 무슨 청구서를 들이밀며 하명해 올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08월 10일 ‘비핵화 사기극 2.0’ 시작됐다
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개성사무소 폭파까지 하던 北
돌연 통신선 잇고 김여정 하명
여권선 한미 훈련 연기 연판장
김정은 “체제 안전 땐 비핵화”
文정부는 받들고 트럼프 속아
강력 제재가 비핵화 유일 수단
지난 7월 27일, 남북이 끊겨 있던 통신연락선 복원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을 때 참으로 의아했다. 지난해 6월, 관계를 단절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별짓을 다 하다가 갑자기…? 의문은 며칠 뒤 김여정 담화에서 풀렸다. 8월 한·미 연합훈련을 강행해서 일을 망칠지 지켜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국가정보원장이 비핵화 큰 그림 운운하고, 범여권 국회의원 70여 명이 훈련을 연기하자고 연판장을 돌렸다. 차마 연기는 못하고 규모를 더 줄여서 한다는데, 과연 북한이 만족하고 다시 이 정부를 상대해줄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른바 ‘평창의 봄’이라고 불리는 2018년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에서 비롯된 ‘비핵화 사기극’이 재연돼선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핵화 사기극은 2018년 3월 정부 대북특사단의 방북 결과 보고에서 시작된다. 특사단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전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 및 핵 타격 수단의 한반도 전개를 중단하고 한·미 동맹의 토대인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강도 논리다. 북한의 이런 입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김 위원장 말이 무슨 뜻인지 의문을 가져야 당연하다.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결단’이라고 한 걸 보면 모르고 사기당했거나, 알면서도 눈감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눈뜨고 사기당한 경우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리얼리티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두루뭉술한 합의를 했다. 그나마 미·북 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 구축 뒤에 3번째 합의 사항이어서 북한에 비핵화 협상을 미루는 핑곗거리만 만들어줬다. 현직 미국 대통령과의 대등한 정상회담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도 북한으로부터 제대로 된 물건은 받지 못한 사기를 당한 셈이다.
북한의 사기극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일단락된다. 싱가포르 성공의 재연을 꿈꾸며 김 위원장이 회심의 카드로 내놓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해제 맞바꾸기 제안은 어떻게 하든 딜을 하고 싶었을 트럼프 대통령도 받지 않았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간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과 대미투쟁을 다시 꺼내 들었고, 뒤이어 닥친 코로나19로 북한은 빗장을 더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그사이에도 북한은 쉬지 않고 핵과 미사일 능력을 증강시켰다.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는, 북한이 2027년까지 최대 242기의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세계 5위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수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는 북한의 모든 탄도미사일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하노이 패배 이후 북한이 선보인 신형 단거리미사일들은 미사일 방어망을 피할 수 있는 능력까지 보여줬다. 한마디로 우리 국민은 2018년보다 더 큰 위협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한·미가 또다시 북한의 사기 행각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대비가 필요하다. 우선,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후손에게 핵을 물려줘서 되겠냐’는 식의 감언이설에 속아선 안 된다. 이런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비핵화 협상에서 유일하게 효과적인 레버리지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어떤 딜을 하든 비핵화의 명확한 정의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목표에 대한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이것 없이 핵 동결에 합의하고 제재를 해제해 주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완전히 실패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확장 억제에 신뢰성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한·미가 함께 찾아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을 찾았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몇 해 전에 한 얘기가 있다. “북한을 다루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의식(pomp and circumstance)이 아니라 정확성과 집요함이다. 전자(前者)가 희망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오직 후자(後者)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권 말기 남북 정상회담 같은 허상에 현혹돼 ‘비핵화 사기극 2.0’을 맞아선 안 된다는 따끔한 충고다.
문화일보
08.11 주한미군 철수 꺼낸 김여정…더는 끌려다녀선 안 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 연합훈련 실시를 거센 어조로 비난하는 담화를 냈다. 2주 전 복원된 남북 연락 채널도 어제 오후 다시 끊겼다. 한·미 연합 지휘소훈련에 대비한 사전 훈련이 어제 시작된 데 따른 것이다. 방어적 성격의 연례 훈련을 “전쟁 연습”이라 규정하고 “배신적 처사”로 몰아붙인 김여정의 담화는 대화 재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선제타격 능력 강화” 운운과 함께 “반드시 대가를 치를 자멸적 행동”이라며 향후 도발을 예고하고 나선 것은 새롭게 긴장을 조성하는 언동이다.
한·미 훈련 축소하자 북한은 더 큰 요구
정부의 무원칙하고 비굴한 대응이 자초
더구나 김여정은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비난하고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 무력과 전쟁 장비를 철거하라”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대북전단 문제로 재미를 본 김여정이 점점 압박 수위를 높이며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김여정의 압박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대북전단금지법 통과 등 김여정의 ‘하명’대로 우리 정부가 움직인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권 의원 74명이 연판장에 서명하며 연합훈련 연기를 공개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자칫 북한에 오판의 소지를 줄 수 있는 행동들이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명확하게 짓는 원칙의 확립이 필요하다.
이번 8월 한·미 훈련을 둘러싸고 빚은 극심한 혼란도 대화와 훈련을 구분 짓지 않아서 비롯된 일이다. 결과적으로 훈련은 성과가 의심스러운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우리 군과 정부에 돌아온 것은 북한의 비난뿐이다. 이 과정에서 여권 내부의 균열까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북한의 요구에 손을 들어주거나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준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와 여권 정치인의 태도를 미국이 좋게 봤을 리 없다. 한·미 동맹의 신뢰관계에까지 손상을 입힌 것이다. 우리 정부가 거둔 성과는 아무것도 없이 손실만 자초했다는 얘기다.
이런 소동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고 안보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흔들림 없이 실시돼야 할 뿐만 아니라 훈련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정돼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면 언제라도 실기동훈련을 재가동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 표명도 필요하다.
남북 대화는 추진돼야 한다. 대북 제재의 범위에 들지 않는 인도적 지원의 재개도 필요하면 시행돼야 한다. 하지만 대화를 위해 안보 태세를 희생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북한의 부당한 압박에 대해서는 명확한 선 긋기와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북한의 협박성 언사에 굴복하지 않는 정부와 안보 당국의 확고한 자세야말로 오판에 따른 도발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중앙일보 사설
08.11 ‘밀면 밀린다’ 확인한 김여정 “미군 철수”, 이것도 들어줄 건가
북한 김여정이 10일 시작한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가 김여정의 ‘훈련 중단’ 요구에 한국군 참가 병력을 2017년의 12분의 1로 줄였는데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은 이날 오후 남북 통신선 연락을 받지 않았다. 지난달 말 북한이 통신선을 복구하자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했고 여당은 “가뭄 깊은 대지에 소나기처럼 시원한 소식” “한반도 관계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환호했다. 그런데 남쪽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요구 사항을 100% 수용하지 않자 곧장 선물을 거둬들인 셈이다. 북한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남북 통신선을 6차례나 열었다 차단하길 반복해 왔는데 그 버릇이 또 도졌다.
김여정은 “미군 주둔이 한반도 화근” “미국 전쟁 장비 철거하라”고 했다. 훈련 취소를 넘어 주한 미군 철수까지 들고 나왔다. 그는 “위임에 따라 발표”라고 했는데 미군 철수가 김정은의 요구 사항이란 뜻이다. 북은 김여정 한마디에 대북 전단 금지법이 생겨나고 한국 안보 장관들의 목이 날아가는 걸 봤다. 올 1월 김정은이 ‘3년 전 봄날’을 언급하며 한미 훈련 중단을 요구하자 문 대통령은 “북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국군용 백신을 받고도 “코로나로 대규모 훈련은 어렵지 않겠나”라고 했다. 얼마 전 김여정이 ‘훈련 없애라’고 하자 통일부·국정원에 이어 범여권 의원 70여 명이 맞장구치는 것도 목격했다. 한국 안보와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도 밀면 계속 밀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니 한미 훈련을 넘어 주한 미군 철수까지 건드리는 것이다.
중국은 ‘한미 훈련 중단하라’는 내정 간섭을 해놓고 최근 러시아와 병력 1만명을 동원한 연합 훈련에 돌입했다. 북은 지금 순간에도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하고 있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오판과 중국의 패권욕을 막는 유일한 안전판이다. 그 핵심이 연합 훈련과 주한 미군이다. 한국 안보의 양대 축이기 때문에 북은 6·25 이후 줄기차게 없애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지난 3년간 연대급 이상 실전 훈련을 한 번도 하지 않아 연합 훈련을 형해화했다. 대선을 앞두고 남북 정상회담 같은 이벤트를 재개할 수 있으면 북의 어떤 요구라도 들어줄 태세다. 김씨 남매가 외치는 ‘미군 철수’에 이 정부가 어떻게 응답할지 정말 걱정스럽다.
조선일보 사설
08월 11일 北 “배신”이라며 미군 철수 요구, 文 친서로 뭘 약속했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10여 차례의 친서 교환 끝에 이뤄졌다는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이 허망하게도 없던 일이 됐다. 불과 2주일 만이다. 북한 김여정은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된 10일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히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미군이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화근은 제거되지 않는다”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했다.
북한이 당보고서나 대남 선전 매체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론을 편 적은 있지만, 최고 당국자가 남측에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김여정은 “위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혀 이것이 김정은의 발언을 그대로 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 정권 4년 만에 북한은 대놓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상황이 됐다. 문 대통령은 2019년 초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양국의 문제임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것도 뒤집힌 셈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한 측이 ‘배신적 처사’라는 표현을 구사하며 격렬히 반발한다는 사실이다. 11일에는 천안함 폭침 주역인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등장해 “반전 기회를 외면했다”며 “엄청난 안보위기를 느끼게 해주겠다”고 협박했다. 남북 정상이 짧은 기간에 10여 차례의 친서를 교환했다면 많은 얘기가 문서로 오갔을 것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통신선 복원은 김정은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청와대는 ‘상호 협의’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친서에서 뭔가를 약속했기 때문에 북한이 통신선을 복원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친서에 무엇이 담겼는지 문 대통령이 해명해야 할 당위성이 더 커졌다.
그러지 않아도 문 대통령이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모호한 지시를 하고, 여당 의원들은 훈련 연기 연판장까지 돌렸다. 지금 진행되는 연합훈련에는 한국군 참가 병력을 상반기 훈련의 30% 선으로 축소하는 성의까지 보였다. 북한의 ‘배신’ 주장에는 한미훈련을 않겠다는 약속을 깼다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북한의 이런 행태에 문 대통령이 단호한 반박을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12일 안보 붕괴 자초한 구걸외교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백두공주’ 김여정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중단’ 협박에 이어 10일 ‘주한미군 철수’ 압박 담화에서 “배신적 처사”라며 남한 당국자를 맹비난하며 막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남북 통신선을 끊은 직후 김여정은 6·13 담화에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깨깨(몽땅) 받아내야”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6·15 기념사를 일컬어 “파렴치한 배신”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도대체 김정은에게 무슨 언질과 약속을 했길래 김여정이 입만 열면 배신자 소리를 해대는지 궁금하다.
북한이 청와대와 정부에 하는 막말 행진은 우리 국민에 대한 멸시로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김여정이 ‘삶은 소대가리’ ‘인간 추물’ ‘똥개’ 등 온갖 악담과 욕설을 쏟아내는 데도 문 정부는 항의조차 않는 굴종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평화를 구걸하는 ‘구걸외교’, 국격 추락을 감수하는 ‘굴욕외교’, 6·25전쟁 때의 ‘항미원조(抗美援朝)’ 망상을 버리지 않는 중국과, 동맹인 미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해온 정부의 시대착오적 외교정책이 ‘안보 붕괴’를 자초해 우려스럽다.
이 정부가 ‘구걸·굴욕·균형’ 외교에 집착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이다. 평화외교·평화안보는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결과 구걸외교·굴욕외교로 전락하고 있다. 북으로부터 연신 ‘배신자’ 소리를 듣고도 대꾸조차 못 하는 평화외교는 망상에 불과하다. 치밀하게 기획된 북한의 기만적 심리전에 의한 미끼를 덥석 물고 감지덕지한 정부는 지난 4월 이후 10여 차례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으로 이뤄낸 눈부신 성과라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정보 당국과 대북 정책 부서의 무능함에 할 말을 잊게 된다. 급기야 여권 의원 74명이 ‘연합훈련 반대’ 연판장까지 돌리며 김 씨 남매 비위를 맞추는 ‘열성과 성의’를 보였는데도 돌아온 것은 ‘배신자’란 막말이었다. ‘주한미군 철수’ 요구와 ‘선제 핵 타격’을 정당화하며 문 정부를 가지고 논 김여정이 왜 ‘배신자 프레임’을 들이대는지 해명해야 한다.
미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합훈련의 핵심인 야외 실기동훈련(FTX)을 3년째 하지 않는 바람에 한·미 연합작전 태세 유지를 위한 기본 프레임인 작계 5015 시스템은 소리소문없이 붕괴되고 있다. 남북평화쇼란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국가 안보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9·19군사합의는 6·25전쟁 후 정전협정 체제에서 총성과 포성, 즉 부대 훈련과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된 적이 없던 대한민국에 초유의 안보 공백기를 만들었다. 평시에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전시에 영토를 적에게 헌납하는 군대가 될 수밖에 없다. 훈련 없는 군대와 동맹 약화는 국가멸망의 징조다. ‘쌀 대신 핵무기’를 택한 북한 김정은 체제는 지금 사상 초유의 경제 파탄에 처해 내부 폭발 지수가 한계치에 이르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남 위협수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내년 한국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훈련으로 연합대비태세를 철저히 해야 북한의 오판과 폭주를 막을 수 있다.
문화일보
08월 12일 ‘김여정 하명’ 실행은 반역이다
김태규 변호사 前 부산지법 부장판사
北 비위 맞추려 기본권도 훼손
‘김여정 하명 훈련’ 조롱 자초
2주 만에 끝난 통신선 코미디
전향 않은 주사파가 요직 차지
간첩은 활동가로 불리며 침투
대통령도 北바라기 행태 심각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란 게 있다. 대북전단금지법, 즉 신설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를 말한다. 이 조항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시각 매개물 게시, 전단 살포 등을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지난해 6월쯤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에 위 법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통과됐다.
일부 여당 의원이 주장했지만,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본질적 기본권이므로 이런 터무니없는 법률이 만들어질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비웃듯 여당은 압도적 의석수로 처벌 조항까지 넣어 이를 입법했다. 미국 의회는 한국에 대해 인권청문회를 열었고, ‘국경 없는 인권’ 등 다수의 유럽 인권 단체가 그 반인권적 요소를 지적했으며, 캐나다·영국 등 여러 나라가 이를 비판했다.
대한민국 국격은 창피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적(敵)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쉽게 양보할 수 있다는 접근 자체가 헌법상의 기본권을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낮은 각성 수준을 보여준다. 더해 적을 달래 국민의 안전을 유지하겠다는 접근 자체도 지극히 안이하다. 적의 비위를 맞추고 달래서 평화를 지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역사 속 경험은 얼마든지 있다.
중국 송나라가 금나라의 비위를 맞추다가 남송으로 쫓겨났다. 외세에 기대서 하루하루 이어가는 평화를 구하다가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나라를 잃었던 게 100여 년 전 우리 역사다. 이런 탓에 사람들은 윈스턴 처칠을 동경하고 네빌 체임벌린을 욕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이 체임벌린의 길을 쉽게 택한다. 우리 현실이 우려스러운 건 단지 그런 비겁함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대학 시절에 밴 낡은 전체주의 이념을 지순한 가치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온 86세대가 정권을 장악하고, 미라(mirra)가 된 이념을 아직도 실현하지 못해 안달이다. 비겁함에서 나아가 반역적이다. 젊은 시절 주사파를 신봉하고 전향을 선언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국민에게 설파하려 한다. 공산주의자를 자임하던 자가 미국 정부의 요직에 채용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주사파를 자임하던 자가 대한민국 정부의 실세가 되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행태는 사상의 자유로 둔갑해 얼마든지 이뤄진다. 간첩이 대통령 후보 캠프의 노동특보로 참여하고, 스텔스 전투기(F-35A) 도입을 반대하며, 야권 후보의 낙선 운동을 하고,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외쳐도 모두 무덤덤하다. 간첩을 ‘활동가’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부른다. 국가는 안보에서 나아가 정체성까지 훼손되는데도, 정권은 그리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다.
대통령의 발언 태도를 보면 ‘북한바라기’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외교에 별 관심이 없다. 아직 국민 대다수가 미국과의 동맹을 원하고 있어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한·미 동맹을 성가시게 보는 듯하다. 그동안 북한 눈치를 보느라 한·미 연합훈련을 컴퓨터게임 수준으로 만들어 놨는데, 김여정이 그조차도 못마땅하다고 하니, 득달같이 여권 국회의원 70여 명이 훈련 연기를 제안하고 나섰다. 신임 국립외교원장이란 사람은 자신이 어느 나라 공무원이 될지 정체성까지 헷갈린다.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불러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한다.
이러니 훈련 규모가 현저히 축소되고 이를 두고 ‘김여정 하명 훈련’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6조는 조약이 무기한 유효하다고 정하고 있지만, 반면 ‘어느 당사국이든 타 당사국에 통고하고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 언제든 일방적으로 조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권은 그 방법을 쓰지 못하고 은근히 와해시키려 한다. 연합 군사훈련도 할 수 없는 동맹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남북한 통신선이 연결됐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그들의 일방적 결정으로 2주일 만에 다시 단절됐단다.
정권이 국민의 기본권과 외교·안보를 무시하고 북한의 심기 보전에 힘쓰는 사이, 국민은 국가의 정체성과 안전, 나아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자존심까지 상처를 입었다.
문화일보
08월 13일 또 女중사 극단 선택…文 사죄하고 국방장관 경질해야
성추행을 당한 뒤 2차 가해에 시달리던 공군 여(女)중사가 극단선택을 한 사건이 불과 3개월 전 일인데, 이번엔 해군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해군 여중사는 지난 5월 27일 회식 중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부대 주임상사에게 알렸지만, 가해자에겐 주의조치만 내려졌다고 한다. 이에 여중사는 지난 7일 부대장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보고해 이틀 후 타 부대 파견 조치가 내려졌는데, 지난 12일 극단 선택을 했다. 피해자 신고 뭉개기, 2차 가해 발생, 부대 교체 후 피해자의 극단 선택을 한 것이 판박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공군 여중사 사건으로 성추행 엄단 방침이 하달되는 등 전군이 초비상 상황일 때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기강이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주고도 남는다. 지난 5월 21일 공군 여중사의 극단 선택 후 공군참모총장이 사퇴했고, 국방부는 전군에 성폭력 특별신고기간(6월 3∼30일)을 선포하는 등 난리를 쳤다. 그런 와중에 해군에서 유사 사건이 재발했고, 국방부 직할 부대에서 현역 육군 준장이 부하 여군무원을 성추행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이던 지난 6월 6일 공군 여중사 추모소를 찾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군의 사기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병영문화 폐습을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다. 동행한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철저한 조사뿐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병영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도 지시했다. 그러나 헛말이었다. 문 대통령은 국민과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국방장관을 당장 경질해야 한다. 이번에도 온갖 핑계를 둘러대고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면 기강은 더 무너져내릴 것이다.
문화일보 사설
08월 13일 한미훈련 축소에 老兵은 분노한다
최명상 前 공군대학 총장 소르본大 국제정치학 박사
중국과 북한의 반대로 한·미 연합훈련이 대폭 축소됐다. 김여정은 그마저 비난하며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한다. 남북 통신선은 또 끊겼다. 국론 분열과 한·미 이간책에 정부 대처가 불안하다. 목숨 걸고 영공 방위에 헌신한 노병(老兵)으로서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첫째, 국민에게 호소한다. 국제질서 변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조선의 멸망, 한반도 분단, 6·25전쟁 모두 국제질서 변화에 대비하지 못해 생겨난 비극이다. 동맹국이 없어 생긴 불행이다. 영국의 아편전쟁 승리 이후 영국 해양세력과 러시아 대륙세력의 패권경쟁에서 일본은 영일동맹으로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에 대비하지 못한 조선은 멸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의 냉전체제에서 한반도가 분단되고 6·25전쟁을 겪었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노골화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온 국민이 대비해야 한다.
둘째, 중국 시진핑과 북한 김정은에게 경고한다. 대한민국 안보의 근간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한·미 상호방위조약, 즉 한미동맹이다. 양국 장병들의 피땀 어린 연합훈련 덕분이다. 그 훈련을 중단하라는 중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이다. 시진핑에게 경고한다. 지난 100년 중국이 겪은 패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이해하지만, 경제대국답게 국제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 중·러 연합훈련을 과시하면서 한·미 연합훈련 반대는 궤변이다. 김정은에게도 경고한다. 핵보유국으로 제재만 풀어 보려는 사기극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통일전선전략이나 국공합작을 흉내 내어 남한 공산화를 꿈꾸지만, 자유를 누리며 살아온 한국민에겐 어림없는 수작이다. 베트남·쿠바처럼 개혁·개방이 살길임을 충고한다.
셋째,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란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우리가 살길은 한미동맹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모호한 줄타기 외교는 위험하다. 핵 인질로 굴종을 강요하는 북한 음모에 속아선 안 된다.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으로 승리한 적은 없다. 판문점 도끼 만행에 미국의 원산 원폭 위협과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보복 의지가 김일성이 사과하게 했다. 강력한 억제력이 필요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전술핵 재배치를 합의하고 나토 식 핵 공유를 해야 한다. 극비리에 사드를 추가 배치해 완벽한 방공망을 구축해야 한다. 한·미 전작권 전환을 유예하고 연합훈련을 팀스피리트 같은 대규모로 부활해 김정은을 겁박해야 한다. 한·미 핵협정을 개정해 일본 수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끝으로, 후배 장군들에게 충고한다. 잇단 군 기강 문란의 근본 원인은 좌파정권 이래 주적(主敵) 개념이 호도되고 장병들의 안보관이 무력해진 탓이다. 강장(强將) 밑에 약졸은 없다. 평시 땀을 많이 흘려야 전시 피를 덜 흘린다. 훈련 없는 군대는 존재 가치가 없다. 청와대 눈치보지 말고 적이 겁내도록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한미연합 북핵선제타격전략사령부를 창설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정권 아니라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다. 세계 질서 변화에 무지했고 부패하고 무능했던 역사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노병의 우국충정(憂國衷情)으로 대한민국 안보를 기원한다.
문화일보
08월 17일 軍기강 붕괴와 동맹 와해의 末路 보여준 아프간 사태
광복절에 접한 아프가니스탄 함락 비보는 충격이다. 이슬람 반군무장단체 탈레반의 카불 입성을 앞두고 아프간 정부는 항복을 선언했다. 30만 명이라던 정부군은 항전 한번 하지 않았고, 6만여 반군은 무혈 입성해 아프간을 접수했다. 이에 앞서 대통령은 차량에 돈다발을 가득 채운 채 국민을 버리고 국외로 탈출했다. 악명 높은 탈레반이 돌아오자 16일 새벽부터 카불 국제공항은 탈출하려는 내·외국인 수천 명이 몰려들어 아비규환의 지옥이 됐다. 미군 수송기 바퀴에 매달려 탈출하려다 추락사한 사람도 여럿이다. 아프간 정부 붕괴 이후 상황은 1975년 사이공 함락 후 베트남의 말로(末路)보다 더 참혹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 붕괴와 관련한 16일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서 싸우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아프간 전쟁 종식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프간 수호는 더 이상 국익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후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뒤 20년간 1조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아프간 정부 예산을 비롯해 병력훈련 및 첨단장비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아프간 권력층은 군병력 30만 명을 장부상으로만 유지한 채 월급을 빼돌렸고, 미군 지원 무기도 탈레반에 팔아넘겼다. 스스로 국가를 지킬 의지가 없었다. 오죽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이라고 말했겠는가. 권력층의 부패와 군의 기강 붕괴로 아프간 함락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아프간 사태는,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나라는 동맹이 아무리 도와줘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내내 “동맹은 비정상”이라며 한미동맹을 부담스러워하며 친중·친북 정책을 구사했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쿼드’ 참여는 중국 눈치를 보고 북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화 환상에 빠져 종전선언을 추진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사실상 형해화되고, 군 기강도 땅에 떨어져 성추행 논란이 전군에 잇달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북의 장단에 맞춰 연합훈련을 축소하며 대화를 구걸하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이 없으면 북핵에 맞설 수단이 없는 데도 ‘갈 테면 가라’는식으로 동맹을 폄훼하다간 아프간 꼴 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문화일보 사설
08.18 미적미적 간첩 수사, 잡을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기 도입 반대 운동을 벌인 혐의가 드러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는 북한에서 공작금을 받고 충성 서약도 했다. 문재인 대선후보 특보단에 이름을 올리고 버젓이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 촉구 광고비 모금 운동도 벌였다. 지난 5월엔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앞에서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읽기 운동을 벌였다. 경찰청은 2024년부터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전부 넘겨받는다. 현 정부의 대공수사 기능 개편으로 사실상 무력해진 수사 체계를 비웃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검사 1명 파견 요청에 “서울에도 여력 없다”
국정원 대공수사권 이관, 전면 재검토해야
이들의 대범한 간첩 활동도 충격적이지만 간첩 수사 과정에 갖가지 장애 요인이 추가되면서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점이 더 우려스럽다. 가장 큰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통째로 경찰로 넘기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졸속 처리했다는 것이다. 방첩 전문가나 국민 인식 조사는커녕 국정원과 경찰 양 기관의 간첩 수사 시뮬레이션을 통한 실증 분석 등 객관적 평가도 전혀 거치지 않았다. 간첩 수사는 수년에서 수십 년간 축적한 첩보 수집과 공작 역량이 바탕이 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충북동지회 사건에서 보듯 북한은 남북대화에 응하는 척하면서도 4년 내내 중국과 캄보디아 등지에서 대남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간 해외 현장에 잠복하며 핵심 증거를 확보한 기관은 국정원이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상부에서는 간첩 수사를 하지 못하게 억누르고 현장에선 눈치 보며 수사를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됐음은 ‘불편한 진실’에 속한다. 정부가 유화책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고집하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친 탓이 크다. 정부는 북한의 대남 전략에 맞대응해 온 검찰 공안부 등 수사기관들부터 구조조정 대상에 올렸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검찰 공안부 폐지는 북한의 숙원이었다”며 “북한이 공개 반발하며 ‘하명’하자 부랴부랴 대북 전단금지법을 만들고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한 것과 맥락이 닿아있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일 만도 하다.
국정원이 2017~2018년 북한 공작조와 이들 간의 회합 증거를 확보하고도 즉각 수사로 전환하지 않은 것도 정부의 ‘북(北)바라기’와 연결된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충북동지회 사건에 대한 보강 수사를 준비 중인 청주지검이 대검에 공안통 검사 파견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은 귀를 의심케 한다. 대형 간첩사건에 검사 1명을 파견해 줄 수 없는 이유가 “서울에도 여력이 없다”는 것이라니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남북 분단 상황에서 대공 수사의 성패 여부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이번에 북한의 대남 공작 전술의 전모를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대공 수사기구 개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08.18 북한의 속셈, 문 정부의 패착
남북 통신선은 연결된 지 2주 만에 불통 상태에 빠졌다. 김여정이 취소하라고 요구했던 한미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실행한 데 대한 반발일까. 형식적으론 그렇겠지만 북한의 셈법은 훨씬 복잡해 보인다. 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의 훈련에 대해 북한이 보이는 과잉 반응에서 드러난다. 김여정은 주한미군 철수로 해석될 수 있는 주장까지 내놓으며 판을 키웠고, 한 술 더 떤 김영철은 엄청난 안보 위기를 느끼게 해 주겠다며 한국을 위협했다. 규모를 더 줄인 훈련에 대해서 북한이 이전보다 훨씬 거세게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통신선 연결로 그냥 지원받으면
자력갱생 실패 인정하는 모양새
연합훈련 취소로 포장하려 시도
정부, 희망과 실력 괴리 심각해
김정은의 속셈을 아는 단서는 북한 정권이 어떤 내용을 주민에게 알렸고 어떤 내용을 알리지 않았는지다. 김여정과 김영철의 담화는 공개한 반면 통신선 연결은 알리지 않았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통신선 연결은 경제적으로 힘든 북한 주민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긴장과 대결을 함축하는 담화는 낙담되는 뉴스다. 남북 통신선이 연결된다면 남한의 인도적 지원이 뒤따를 수 있고 이는 김정은에 대한 주민의 지지에도 도움이 될 법한데, 왜 북한 정권은 좋은 소식은 감추고 나쁜 소식은 공개했나. 이 기이한 결정을 제대로 알려면 김정은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독재자의 모든 길은 권력으로 통한다. 김정은은 통신선 연결의 성과로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북한이 가장 필요한 식량 등의 지원을 그냥 받으면 김정은이 수없이 외친 자력갱생의 실패를 대내외에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독재 권력의 몰락은 권력자의 하찮은 실력을 주민과 권력층이 알아차릴 때 시작된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로 이미 그의 외교 실력의 밑천이 드러난 상태에서 경제에서도 자충수를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식량난을 완화해 주민의 마음을 일시적으로라도 얻기 위해선 외부 지원을 받아야 하겠지만 김정은은 자력갱생을 주창한 그의 권위가 훼손될 것이 두려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과관계를 뒤바꾸고 분식(粉飾)하는 것이다. 북한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한이 사정해서 통신선이 연결됐다는 논리와 정황을 만들어 사후에 공개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미 연합훈련의 취소는 김정은에게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주민에게 선전할 내러티브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남조선이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면서까지 통신선 연결을 사정했으니 그동안 과오를 용서하고 통신선 연결에 동의했다. 또 남조선이 감사의 뜻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니 필요하진 않으나 민족의 아량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이는 위원장 동지의 정책이 가져온 위대한 승리요, 우리 공화국의 자력갱생 노선을 치켜세우는 역사적 전환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의도를 망쳐 놓았다. 군사훈련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축소해서 실행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프로파간다에 써먹을 수도 없고 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신선 연결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김정은은 경제적 이익도 얻고 권력도 강화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사훈련을 중단했다면 그 관성으로 남북경협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터이고 그 결과 제재의 국제공조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임기가 9개월 남은 문 정부에게 승부수를 던질 것을 요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큰 실망감의 표현이 거친 언사다.
김정은은 딜레마에 빠졌다. 권력은 성과와 권위가 결합할 때 강화되지만 지금은 성과와 권위가 동시에 추락하고 있다. 성과의 핵심인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한국은행은 최근에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을 -4.5%로 추정했다. 그러나 한은의 추정치는 제재와 코로나로 급격히 위축된 시장 활동을 제대로 포함하지 못한다. 지난해 북한의 시장 활동은 적어도 10% 이상 감소했을 것이다. 시장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총국민소득의 25%라는 가정을 하면, 이는 국민소득을 2.5% 떨어뜨린 셈이다. 따라서 작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7% 이하였을 것이다. 또 식량 가격이 폭등하자 군량미까지 방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무역 봉쇄의 원인인 코로나 사태는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이처럼 경제난으로 그의 권력이 위축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북한이 왜 통신선 연결에 동의했겠나.
김정은의 딜레마가 더 깊어져야 비핵화의 문이 열린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이외 다른 출구가 있을 것으로 믿게 만드는 대북정책은 역효과만 낸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도 패착이다. 안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신뢰를 얻지 못했음은 물론 북한까지 반발하고 있다. “통신 연락선이 완전히 복원됐다”던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제 문제와 상관없이 항상 똑같은 답만 쓰는 학생 같다. 이념과 희망 대비 실력의 격차가 역대 정부 중 가장 심하다. 통신선이 다시 연결된다 해도 이 실력으로는 어림없다. 북한을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다운 정책을 펴야 한다. 실력 없는 줄타기는 위험할 뿐이다.
중앙일보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경제학부 교수
08.18 사이공, 카불, 그리고 서울
1975년 사이공
2021년 카불
그렇다면…
2022년 서울은?
# 탈레반이 돌아왔다. 2021년의 카불은 생지옥이 되었고, 탈출 러시는 1975년의 사이공을 재연했다. 지난 4월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내 미군 철수를 공식화하고 그달 말부터 본격적인 철군을 시작한 지 불과 100여 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8일에도 “탈레반은 월맹군이 아니다. 역량이 그에 훨씬 못 미친다”며 사태를 낙관했다. 물론 탈레반은 월맹 정규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카불은 1975년 사이공의 재판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2022년 서울은?
# 미군 철수에 발맞춰 ‘돌아온 탈레반’이 20여 년 만에 아프간 수도 카불을 무혈입성하듯 점령해버린 날이 공교롭게도 우리의 광복절이었다. 하지만 그날 서울 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 주변 도심은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차벽이 둘러쳐 있었다. 해방의 날인 광복절에 서울의 심장 한복판에 차벽을 두른 처사에 대해 누구 하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또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옛 서울역 건물에서는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이 기념식에서 부모의 독립군 활동 자체가 의문투성이로 의심받는 광복회장이란 사람이 미리 촬영된 영상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은 친일 미청산과 분단이라며 1970~80년대 ‘해방 전후사의 인식’ 수준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친일파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고 절규하듯 말했다.
# 그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삶이 입증한다. 창씨개명한 것만 가지고도 친일파로 몰던 그는 정작 모친 고(故) 전월선씨가 에모토 시마지(江本島次)로 창씨개명한 제적등본이 제시되자 그럴 리 없다고 얼버무렸다. 더구나 인우보증(隣友保證) 외에는 그의 부모가 조선의용대 혹은 광복군에 참여하거나 복무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기에 적잖은 다른 광복회원들조차 그의 부모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지 않는가. 심지어 혹자는 원(元), 웅(雄)이란 그의 이름자는 다분히 일본식으로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기피하던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더구나 그는 스스로 친일 정권이라 단정했던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공채 7기 당료 출신이다. 그가 공화당 공채 당료가 된 때는 유신이 선포된 1972년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민정당 창당에 참여해 민정당 헌법특위 행정국장 자리까지 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정당 전국구 58번 티켓을 받아 들었다. 1992년 제14대에는 민주당으로 갈아타서 당선됐고, 다시 2000년 16대에는 한나라당으로, 또다시 2004년 제17대에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 타며 당선됐다. 한마디로 당선만 된다면 어떤 갈지자 행보도 마다하지 않던 그다. 그야말로 철새 정치인의 원조 격 아니겠는가. 그는 이런 자신의 행보를 생계 때문이었다고 변명해왔다. 그렇다면 지금도 생계 때문에 광복회장 자리 차지하고 친일 청산을 떠들며 대한민국은 ‘친일의, 친일에 의한, 친일을 위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친일을 그토록 목메어 비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반미, 종북으로 귀결된다. 그는 미일 동맹에 남한을 종속시킨 것이 한미 동맹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느닷없이 ‘종북’ 이석기를 찬양하는가 하면 심지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집안에서 큰 박근혜보다 일제강점기에 항일 무장투쟁한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김정은이 낫다고까지 말한 그다(2018년 12월 8일 김정은 위인맞이환영단 주최 “왜 위인인가?” 공개 세미나). 그야말로 대한민국 안에서 활개치는 진짜 ‘탈레반’ 아닌가!
# 지난 1일 북의 김여정이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 군사 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고 밝힌 지 나흘 만에 더불어민주당 설훈, 무소속 윤미향 등 범여권 의원 74명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저들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그럴수록 북에 놀아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상식의 눈이다. 결국 엊그제부터 실시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도상 게임 수준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것도 시나리오상 ‘반격’ 부분을 사실상 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김여정은 한미 연합 훈련 사전 연습을 개시한 지난 10일 또다시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담화를 냈다. 배신이란 말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믿고 있는 바가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녹을 먹는 의원 중 4분의 1이 연서명해 훈련 중단 성명을 낸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도대체 북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란 김여정의 말에 담겨 있다.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넘어 주한미군 철수가 핵심인 것이다!
# 얼마 전 이 정부의 국정원이 발표한 대로, 공작금을 받은 것은 물론 혈서로 ‘원수님의 충직한 전사로 살자’는 충성 서약까지 하며 북한 지령을 받아 스텔스기 도입 반대 투쟁을 벌인 이른바 ‘충북동지회’ 간첩 4인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도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가 “언급할 가치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현재 대한민국의 진면목이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다 죽은 줄 알았던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을 집어삼킨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보자면 2022년 대선은 단순히 정권 교체냐, 아니냐를 넘어 대한민국의 존폐가 걸린 한판 대결이다. 그런데 정작 정권 교체하겠다고 나선 국민의힘 대표와 그 대선 주자들을 보노라면 애들 장난 같은 기 싸움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정말이지 대한민국 국민 노릇 계속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조선일보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08-19 아프간 보고도 “北 남침 능력 없다”는 송영길의 안보불감증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SNS에 “북한은 모든 무기 체제가 낡았다”며 “남침할 능력은커녕 자신들의 생존과 체제 유지가 더 절박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한 미국의 칼럼니스트가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한국도 아프가니스탄처럼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한국이 북한보다 군사적 우위에 있다며 이렇게 반박한 것이다.
송 대표가 ‘북한은 남침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 왜곡에 가깝다. 그는 북한군의 무기가 모두 낡았고, 경제 제재로 군사용 연료도 부족하다는 근거를 댔다. 하지만 북한의 가장 큰 위협인 핵무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은 이미 20∼60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한 개만 서울에 떨어져도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맞는다. 북한은 남한을 넘어 이미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능력까지 갖췄다는 게 미국의 평가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데도 지금의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하나.
북한의 핵 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주한미군 규모를 유지하고,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우리 안보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송 대표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던 지난해 7월 “주한미군은 한미(韓美) 동맹 군사력의 오버캐파(overcapacity·과잉)가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감축 필요성을 내비친 셈이다. 한반도 군사력에 있어 주한미군은 과잉이고, 북한군은 과소하다는 게 송 대표의 평소 생각인가. 송 대표는 작년 12월에는 “미국이 핵 선제공격 군사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북이 핵을 개발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겠나”고도 말했다. 자위적인 수단으로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는 북한의 주장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인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단순히 물리적인 군사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보더라도 정부군은 당초 미국의 지원을 받아 탈레반보다 병력과 장비 사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 무엇보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실종되면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설령 객관적인 전력에서 약세를 보이는 적에 대해서도 방심하거나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 안보다. 그런데도 여당 대표가 현존하는 북핵 위협을 외면하면서 북한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으니, 우리 안보가 제대로 지켜질지 걱정이다.
동아일보 사설
08월 19일 핵·미사일 보고도 ‘北은 남침 능력 없다’ 與대표 저의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동맹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교훈을 다시 일깨워준다. 미국과 동맹관계인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대만이 안보 상황을 다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SNS에 “북한은 남침할 능력은커녕 자신들의 생존과 체제유지가 더 절박하다”고 일축했다. 무기체계가 낡은 데다 제재로 인해 연료조차 없다는 게 근거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대한민국도 아프간처럼 될 수 있다’는 한 미국 칼럼니스트에 대한 반박이다.
그러나 송 대표는 최대 60개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무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초대형 방사포를 비롯해 이스칸데르 미사일까지 개발해 기존의 사드 체계로는 요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쏙 뺐다. 남북 간 전략적 불균형은 외면한 채 군비·경제력에서 월등하다는 점만 내세운 것이다. “핵무기를 가진 미국이 어떻게 북한에 핵을 갖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나”라며 북핵을 두둔한 데 이어 아예 핵·미사일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얘기다. 대북 경계심을 와해시켜 심리적 방어선을 무너뜨리겠다는 저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대남용 전술핵 및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시했다. 그런데도 여당 대표가 북 핵·미사일을 두둔하니 범 여권 의원 74명이 김여정 하명(下命)대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 연판장에 서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훈련 중단론자가 국립외교원장이 된 것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의중도 같다는 방증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자국 방어를 위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아프간군을 위해 미국인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북한과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고 동맹 차원의 훈련조차 거부한다면 미군은 언제든 떠날 것이다. 송 대표는 지난해 “한미동맹 군사력은 오버 캐퍼(과잉)”라고 했는데 참혹한 아프간 사태를 보고도 똑같이 생각하는가.
문화일보
08.20 김정은의 허망한 칼춤
北 협상술은 ‘거부’와 ‘위협’ 우리는 협상 전부터 양보하고
시한에 쫓겨 타협하기 일쑤, 한미훈련 취소·미군 철수 요구…
북, 문 정부 말기에 수법 되풀이… 유엔 제재 풀기 더 어려워질 뿐
최근 북한의 남북 통신선 복원, 한미 연합 훈련 취소 요구, 불취소 비난, 통신선 재차단으로 이어지는 갑작스러운 대남 소동을 접하면서 북한의 상투적 대외 협상 전략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스탈린 치하 구소련에서 전수받은 북한의 협상술은 완고하고 집요하기로 악명 높다. 과거 북한과 협상에 나섰던 한국과 미국 협상팀 중 북한의 험악한 협상 행태에 굴하지 않고 기본 자세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경우는 별로 없다. 대다수 남북 회담이 그랬고, 1990년대 제네바 미북 핵 협상과 한반도 평화 체제에 관한 4자 회담이 그랬고, 북핵 6자 회담도 예외는 아니었다. 북한 협상술의 비밀이 이젠 대부분 드러나 약효가 떨어졌지만, 지금도 그 술수에 농락당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북한이 가장 애용하는 필승 협상 수법은 ‘거부’와 ‘위협’이다. 북한은 예비 협상 단계부터 온갖 ‘선결 조건’을 내세워 협상 개시를 거부한다. 장기간 신경전에 지친 상대방은 ‘단지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북한이 요구하는 대규모 식량 원조나 한미 연합 훈련 잠정 중단, 일부 핵심 쟁점의 사전 양보 등 큰 대가를 지불하곤 한다. 1990년대 이래 한국의 대북 식량 지원과 한미 연합 훈련 취소 사례 중 상당수가 이에 해당한다. 협상이 어렵사리 시작된 후에도 북한은 거부 일변도의 경직된 협상술을 집요하게 고수한다. 이 때문에 협상 시한에 쫓기는 상대방은 승산 없는 입씨름을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거부의 협상술과 더불어 위협의 협상술을 병행한다. 회담장에서 북한은 시도 때도 없이 남북 관계 단절, 군사적 응징, 전면전 불사 등 고강도 협박을 동원한다. 1993년 판문점 남북 핵 협상 시 북한 대표는 우리 대표에게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위협했다. 격노한 김영삼 대통령이 그 장면을 언론에 공개해 세상에 알려졌으나, 이는 단지 빙산의 작은 일각일 뿐이었다. 이런 부류의 ‘협상용 위협’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남북 관계를 절대 가치로 신봉하고 북한의 비난 한마디에 외교 안보 장관들 목이 줄줄이 날아가는 나라가 그 앞에서 의연할 수는 없다.
북한이 보유한 필승 협상술이 하나 더 있다. 협상 카드가 거의 없는 북한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끊임없이 새로운 협상 카드를 창출해 내는 능력이다. 그 실제 사례는 회담 일자 합의 거부, 전화 수신 거부, 연락 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폐쇄, 영변 핵 시설 보수 작업 등 많고도 많다. 남북 통신선을 열었다 닫기를 6차례나 반복하면서 재탕·삼탕 협상 카드로 이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녹슬어 고철이 된 영변 핵 시설을 이따금 되살려 재가동하는 것도 대미 협상에서 카드로 써먹으려는 꼼수다.
최근 남북 통신선이 뜬금없이 재개통되더니 이를 핑계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 취소를 요구하고, 곧이어 한국 정부의 ‘배신적 처사’를 비난하면서 ‘안보 위기’ 조성을 위협했다. 경제난, 코로나, 자연재해로 삼중 위기에 처한 북한이 문재인 정권 말기에 남북 관계 복원을 미끼로 한밑천 잡고자 벌이는 이 대남 공세에는 북한의 상투적 협상 수법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배신자’로 지목된 문재인 정부가 동요하고 국내 종북 세력의 집단적 동조 움직임까지 가세하자, 이에 고무된 북한은 주한 미군 철수까지 주장하며 판돈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의 협박으로 연합 훈련 폐지와 주한 미군 철수가 실현될 수는 없다는 점을 북한 당국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거듭되는 위협에도, 북한이 내년 한국 대선을 앞두고 한국이나 미국을 겨냥한 고강도 도발을 강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필연적으로 한국 보수 진영의 입지를 강화하고 북한의 유일한 희망인 유엔 제재 해제를 더 요원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를 향한 북한의 허망한 칼춤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는 그간 북한에 온갖 장밋빛 약속을 남발해 온 문 정부가 대북 경제 지원과 제재 해제를 위해 마지막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는 북한의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유엔 제재와 미국 세컨더리 보이콧의 견고한 장벽을 넘어 북한에 통 큰 경제 지원을 제공할 합법적 샛길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흔들어도 미동조차 없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지금 남북한 양측 지도부에 어려운 정치적 선택을 압박하고 있다.
조선일보 이용준·전 외교부 북핵대사
08-21 천안함 용사 딸 김해나, 아버지 이어 해군간부의 길 걷는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도발로 전사한 고 김태석 원사의 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해군 간부의 길을 걷게 됐다. 20일 해군에 따르면 김 원사의 딸인 해나 씨(19)가 최근 ‘해군 군가산복무(군장학생) 장교’ 모집전형에 최종 합격했다.
김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아빠를 따라서 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2010년) 천안함 (폭침도발) 이후로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군인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합격발표를 본 순간 너무 기뻐서 믿기지 않았다”며 “아버지처럼 훌륭한 장교가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겟다”고 소감을 전했다.
군가산복무 장교 전형은 대학 재학 중 군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는 제도다. 김 씨는 올해 초 우석대 군사안보학과에 입학한 뒤 이른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장교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이번에 군 장학생으로 선발됨에 따라 대학 졸업 후 해군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그는 이달 초 공군과 해병대 전형에도 합격했지만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싶어서 해군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고 한다.
3녀 중 장녀인 김 씨는 어머니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군인을 한다고 했을 때 걱정도 하고 응원도 해주셨다“며 "사실 제일 합격 결과를 기다린 게 어머니셨는데 이젠 마음 편히 계셔도 된다, 큰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조만간 국립대전현충원내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아빠가 바라시는대로 해군간부가 됐다’는 합격 소식을 전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김 씨의 합격 소식을 접한 천안함 생존 장병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격려와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피격 당시 천안함 함장을 지낸 최원일 예비역 대령은 자신의 SNS에 김 원사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던 옛 사진과 함께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아빠가 지킨 슬픔의 바다를 딸이 희망의 바다로 다시 지키게 됐다”는 글을 올렸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08.21 아프간의 비극? 대한민국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만들어온 세계사의 기적
영화 ‘300′과 자유를 위한 항전
탈레반의 카불 장악이 준 교훈
흙과 물. 페르시아에서 온 사신의 요구는 명확했다. 크세르크세스 황제에게 복종하는 뜻으로 스파르타의 흙과 물을 바쳐라. 그러면 영원한 번영과 평화를 제공할 것이다. 거절한다면? 황제의 군대는 땅을 뒤덮고 강물을 모두 마셔버릴 정도로 많다. 그에게 저항하는 것은 그저 미친 짓일 뿐이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생각이 달랐다. 페르시아 황제의 사신을 우물로 걷어차며 레오니다스는 외친다. ‘미친 짓? 여긴 스파르타야!’ 그는 결사대 300인을 이끌고 좁은 길목을 막아선 후 처절한 싸움을 시작한다.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300>의 내용이다.
/일러스트=유현호
<300>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 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작품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근육질 전사들의 마초적 함성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원작 그래픽 노블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과잉된 연출 역시 ‘고상한’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평론가와 지식인들은 제대로 비판조차 하지 않고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중 다른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있었다. 오늘날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슬라보예 지젝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2007년 Lacan.com에 기고한 ‘진정한 할리우드 좌파(The True Hollywood Left)’라는 글에서 지젝은 <300>에 대한 독창적 해석을 펼쳤다. <300>은 야만적 약소국이 문명적 강대국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스파르타가 야만인이라고? 우리 편 주인공은 무조건 선하고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스파르타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신체검사를 하여 기형이거나 발육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내다 버려 죽게 한다. 그 유명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아이를 일곱 살 때부터 인간 병기로 길러낸다. 아이들은 남을 때리고, 속이고, 훔치고, 심지어 죽여서라도 자기 목숨을 지켜야 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집단생활을 하고, 검소한 삶을 강요받으며, 음악과 시와 예술을 즐기지 못한다.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병영국가인 것이다.
반면 페르시아는 어떨까? “나는 관대하다.” 크세르크세스가 레오니다스에게 항복을 권유하며 하는 말이다. 온갖 부와 풍요가 넘쳐흐를 뿐 아니라 스파르타와 달리 ‘다양성’을 존중하기까지 한다.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그렇다. “다양한 인종, 레즈비언과 게이, 장애인 등 모두가 뒤엉켜 난교를 벌이는 크세르크세스의 궁전은 일종의 다문화주의 라이프스타일의 낙원처럼 묘사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영화 <300>을 보며 스파르타를 미국에, 페르시아를 이라크에 대입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지젝에 따르면 그렇다. 대신 우리는 <300>을 보며 자유와 규율이 지니는 역설적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규율을 따를 수도 있고, 규율을 내던진 채 자유만 탐닉하다 보면 자유를 잃을 수도 있는 부조리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딸기 맛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두고 고민하는 안락한 선택의 자유가 아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엄격한 규율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사회계약론>을 쓴 장 자크 루소라든가, 프랑스 혁명 당시 가장 격렬한 평등주의를 주장했던 자코뱅 당원들은 아테네가 아닌 스파르타를 그들의 이상향으로 삼고 있었다. 자유를 위한 복종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300>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편안함과 자유를 포기한 전사들이 그리스 전체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영웅담이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광복절을 축하하고 있던 8월 15일, 지구 반대편에서 믿기 힘든 소식이 들려왔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게 순식간에 함락된 것이다. 미군 철수가 시작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일부 용맹한 이가 없지 않았으나 대다수 아프간 정부군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않은 채 물자, 예산, 장비 등에서 뒤떨어진 탈레반에게 백기를 들고 말았다.
탈레반은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들의 야만적 인권유린 행태는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 기준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명 세계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카불 함락을 슬퍼하며 한국 대사관 현지 직원 등 위기에 빠진 이들, 특히 여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300>을 통해 확인한 자유의 역설 때문이다. 탈레반이 마치 스파르타 결사대처럼 싸우는 동안 아프간 정부군은 크세르크세스의 노예 부대처럼 마지못해 싸우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이라는 ‘관대한 제국’의 영향권 안에서 자유와 문명을 누리면서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갈했다시피 그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려 들지 않았다. 미군이 떠난 후 카불이 함락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었을까.
자유는 남이 대신 지켜줄 수 없다. 베트남 전쟁에 이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잔인한 진리다. 반면 우리는 북한의 기습 남침을 당한 후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려났지만 전선을 사수한 후 반격하여 국토를 되찾았다. 김일성과 박헌영의 기대와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그 처참했던 세계 최빈국은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는 스파르타처럼 싸우고 일해서 아테네 같은 풍요와 문화와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일부 좌파는 대한민국을 ‘미제의 식민지’라고 비하해왔지만 그들은 틀렸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우리 손으로 지키고 만들어온 세계사의 기적이다.
<300>의 결말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스파르타군은 무려 사흘이나 버텼지만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동안 전열을 갖춘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싸워 페르시아를 격퇴한다. 진정한 동맹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연이어 전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앞에서 스스로 묻게 되는 질문이다. 우리는 페르시아의 노예인가, 아니면 그리스의 자유인인가?
조선일보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08월 24일 아프간 비극 타산지석과 올바른 통일
김천식 前 통일부 차관
지도자 무능과 부패는 곧 망국
첨단무기도 동맹도 못 지켜줘
대통령은 국민 팽개치고 도망
친일 논쟁과 국민 분열 일삼고
대한민국 폄훼하는 잘못 딛고
더 크고 부강한 나라 지향해야
지난 76주년 광복절 날 서울에서는 친일파 논란이 있었고, 카불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붕괴됐다. 두 사건의 뿌리에는 국민 분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프간은 수많은 부족이 아주 오랫동안 분열하고 갈등해 온 터라 현대국가 건설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는 실패하고 탈레반 반군에 항복했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수도 카불 함락 직전에 국민을 내팽개친 채 외국으로 도망쳤다. 아프간의 많은 국민은 살육의 공포 앞에 방치됐는데, 그는 돈다발을 잔뜩 챙겨 갔다는 소문도 있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현대식 무기나 동맹국이 나라를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국민이 분열하고 지도자가 무능하며 부패하면 나라는 망하게 돼 있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토벌된 뒤에야 남이 그 국가를 토벌한다.’(맹자 이루장구)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 분열은 그 정도가 심하다. 광복절 경축식까지 미래의 희망을 나누는 잔치가 아니라 친일파 논쟁을 일으키고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행사가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지금에 와서도 친일파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 생뚱맞다. 친일파는 일제 식민지배에 협조했던 사람들이다. 일본과 선린 우방으로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잘 지내자는 사람들을 친일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까지 그렇게 몰아붙이면 문재인 정부 포함해서 대한민국 현대사가 모두 친일로 얼룩지게 된다. 생물학적 나이로 보아 친일파는 모두 죽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다 해방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일제에 부역하거나 일제의 식민지배를 찬동하거나 우리의 국익보다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모든 것이 천지개벽했는데도 때때로 식민지배의 악몽을 되풀이하면서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을 폄훼하고 멀쩡한 나라를 지질한 나라로 만들며 스스로 열등감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얼까? 가장 큰 원인은 남북의 분단에 있다. 지금 21세기 역사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지만, 남북한 국토분단의 시계는 1945년 8월 그 시점에 그대로 멈춰 있다. 그 시점에는 일제의 기억이 생생했고 친일 청산과 건국이 한민족의 시대정신이었다. 해방공간에서 모두가 가난했고, 대다수 한민족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 채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지를 두고 좌우가 격돌했다.
남북의 분단은 76년 전 그 후진적이고 음산했던 기억에 우리를 가두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들이 가끔 튀어나와 현재를 휘젓고 미신과 정치적 해석이 덧씌워지면서 국민을 분열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완전히 다른 시대와 문명에 살고 있다. 특히, 청년들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세계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이나 주변국에 대해서도 열등감이 없다. 이들에게 1945년 8월에 멈춰선 퇴행적인 모습은 뭔가 어색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이 됐고 극일에 성공했다. 경제적으로는 공업화에 성공해 일본·독일과 견주는 제조업 강국이 됐으며, 첨단산업에서도 앞서 나가는 세계 7대 부국이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시켰으며, 군사적으로는 세계 6대 강국이며, 문화적으로도 선진국이다. 우리는 제2차 대전 후 신생국 중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지금도 경제적 낙후와 정치적 혼란에 빠져 헤매는 제3 세계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명국가가 됐다. 우리가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에 매여 있을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남북분단이나 미래를 보는 관점을 바꾸자. 분단은 더 이상 어두웠던 과거로 우리 국민을 끌고 가는 코드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분단을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자. 분단이란, 우리가 선진국이 됐지만 아직도 통일이라는 할 일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통일은 우리에게 더 크고 더 부강하고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우리에겐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몇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우리가 통일을 이룩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지역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 다른 민족이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인 과제다.
문화일보
월간조선 09월 호
‘간첩’과 ‘지식인의 아편’
⊙ “진보라는 이름을 내세워 민중을 잘못된 길로 몰아세우는 좌파 지식인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아편’의 중독자”(레이몽 아롱)
⊙ “공산주의 윤리학이 상정하는 최고의 의무는 惡하게 행동할 필요를 수용하는 것이다”(루카치)
⊙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지만, 강남좌파들 보면 의식이 그들의 사회적 존재를 逆규정
⊙ “선동적인 ‘진보팔이’로 젊은이들을 호도하는 것은 문명의 퇴보를 재촉하는 것”(레이몽 아롱)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레닌은 전위정당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했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나?” 당사자는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고 했지만 박제된 관용구가 됐다. ‘안이함과 철없음의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으로서다. 하나 비유적 힐난으로 쓰자면 딱히 틀리지도 않은 얘기다. 간첩을 잘 잡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만에 간첩 검거 뉴스가 나왔다.
지난 8월 2일 충북 청주의 ‘활동가’ 몇몇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무슨 활동을 했을까? 대표적 혐의는 북한 지령을 받아 미국산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한 것이다. 그 외에는 시민·노동단체 인사에 대한 포섭 활동도 했으며,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2만 달러를 수령한 혐의도 있었다. 북한에 대해 충성맹세의 혈서(血書)도 썼다고 한다. 활동가? 간첩이다.
이들 소위 ‘활동가’들은 “수사기관이 제시한 혐의는 모두 조작”이라고 버틴다고 한다. 익히 보던 수작이다. 하나 만만찮은 대목이 있다. 이들은 “스텔스기 도입 반대는 2018년 남북정상 간 9·19남북합의서 내용에 근거한 것일 뿐”이라 했다. ‘간첩짓’이 아니라 그에 부응한 당연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9·19합의의 당사자’가 답을 하긴 해야 한다.
그런데 비슷한 때에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汎)여권 국회의원 74명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북한의 김여정이 한 소리 하자 마치 부랴부랴 하명(下命)을 받들 듯이 그랬다. 따지자면 이것도 ‘9·19합의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겠다.
국회 프락치 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1949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1년 남짓 될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1949년 5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남로당의 프락치 활동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 13명이 검거·기소됐다. 국회 부의장이던 김약수를 비롯하여 노일환, 이문원 등이 체포됐다.
당시 그들은 외국 군의 완전 철수,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남북정치회의 개최를 주요 내용으로 한 ‘평화통일방안 7원칙’을 내세웠다. 감성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상주의적 주장이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독소가 도사리고 있는지는 새삼 논할 것도 없다.
김여정의 下命을 받든 여권 의원들
그렇다면 이번 범여권 74명 의원의 주장과 행태는 어떠한가? 신판 국회 프락치? 그럴 리야 있겠나?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자식은 미국 유학을 보내고 집값을 잡겠다면서도 뒤로는 부동산 부자 추구에 여념 없는 자들이 그럴 리가 있나? 그러나 어떻든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떼거리로 나서서 적국 수뇌의 하명을 받드는 꼴은 아연함을 느끼게 한다. 어지간한 소위 ‘활동’이라는 건 아예 잔챙이로 느껴질 지경이다.
이번에 구속된 충북의 소위 ‘활동가’들의 직업을 보면 언론인, 대기업 직원, 간호사 등이었다. 평범한 이들이다. 이들은 시민단체에서부터 민노총 조직국장, 문재인 대선 캠프 특보 등도 역임하고, 더불어민주당·민중당 등을 종횡으로 누볐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과 대북(對北)사업도 논의했다.
그런데 그들처럼 평범하면서 마찬가지로 그런 유(類)의 ‘활동’을 하는 소위 활동가들이 참 많다. 민노총과 범민련남측본부 등의 구성원들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한 바 있다. 청와대에 그런 청원을 올린 자들도 있다.
지난 8월 7일 광주 5·18광장에서 ‘광주전남 조국통일촉진대회’가 열렸다. 범민련 광주전남 지부가 주최하고 34개 단체가 참가했다. 어떤 통일을 하자는 것일까? 그들의 구호와 주장에 답이 있다. “미군철수, 한미동맹해체, 국가보안법철폐”가 구호였다. 그러면서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외쳤다. 북한의 상투적 주장과 구호의 완전한 반복이다. 북한 주장대로의 통일이다. 즉 다시 말하면 북한을 따르는 적화(赤化)통일이다.
종북(從北) 활동이 완전히 일상의 풍경이 됐다. ‘충북(忠北·북한에 충성함) 활동가’들의 새삼스럽지도 않은 주장대로 모두가 조작이며 간첩 따위는 아무 데도 없다고 해두자. 그런데 아무 데도 없는데 나라 온 천지에서 간첩짓이나 다름없는 짓거리가 난무하고 있다.
안이함의 결과
/루카치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고 하겠지만 오래됐다. 무엇보다도 안이함의 결과다. 어설픈 ‘민주 패거리’들과 어정쩡한 ‘먹물’들은 ‘독재’를 탓할 줄만 알았지 좌익의 위험성을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 반대로 좌익에 동조하거나 적어도 관용적이기는 해야 ‘양식이 있다’고 여기곤 했다. 겉멋이요, 허영이었다. 그 알량함이 이념적 혼돈을 낳고 탈선(脫線)이 방치되게 만들었다.
종북 좌익 무리가 과거 입에 달고 다니던 언사가 “용공(容共)조작”이었다. 〈공산당선언〉에 감동받고 좌익혁명을 꿈꾸던 자들이 그랬다. 단도직입적으로 ‘공산주의자로 규정짓고 대우해주지 않아 자존심 상했다’는 얘기가 아니라면 참으로 기만적인 언사다. 그런데 이게 그들 무리의 본성화된 속성이다. 그들의 윤리학에는 거짓말과 기만에 대한 부담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윤리학이 상정하는 최고의 의무는 악(惡)하게 행동할 필요를 수용하는 것이다.”
반공주의자의 비난이 아니다.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죄르지 루카치(1885~1971)의 신념에 찬 선언이었다.
문예사상가로 알려진 루카치는 1956년 부다페스트 반소(反蘇)운동 결과로 탄생한 정권에 가담했다가 소련에 의해 그 정권이 붕괴되면서 망명한 이력이 있다. 그래서 나름 온건한 이미지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루카치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것은 혁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희생이다.”
자신들이 악행(惡行)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것이다. 바로 부르주아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악행이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 산물이고 자신들이 범할 수밖에 없는 악행도 그 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주아에 속한 것은 모조리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궤변일뿐더러 광기(狂氣)다.
그럴 만했다. 마르크스주의 좌익 패거리는 그냥의 정치적 무리가 아니라 일종의 유사종교 집단이다. 루카치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역사와 계급의식》(1923년)에서 그렇게 단언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견본만 갖고는 실행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로 개종(改宗)되어야 한다.”
이게 좌익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맞닥뜨려 겪고 있는 상황은 그 유사종교적 광기에 눈을 감고 안이하게 대한 결과다. 온 천지가 감염되다시피 해 보이는 해괴한 양상은 그저 벌어진 게 아니다. 대중의 문제점도 있다. 그러나 그저 진행된 탈선(脫線)이 아니다. 각성이든 타락이든 대중의 의식 변화는 결코 그냥 진행되지 않는다. 언제나 작동이 있다.
의식이 존재를 逆규정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1857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테제다. ‘사적 유물론’에서부터 ‘계급론’ ‘혁명론’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사회·정치 이론은 이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레닌은 노동자 계급 대중이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목적의식적인 전위(前衛)에 의해 그렇게 이끌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1901년)에 그렇게 썼고 그렇게 행했다. 전위의 목적의식이 대중의 혁명성을 이끌어낸다는 건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마르크스의 논리가 그 충실한 제자를 자처한 레닌에 의해 부정된 셈이다.
러시아혁명의 주역인 소위 그 혁명적 전위들의 존재 양태 자체도 마르크스의 테제를 부정한다. 그들은 절대다수가 부르주아 출신 지식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계급적 존재 조건과는 어긋나는 길을 갔다.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역(逆)규정’한 것 아닌가?
이 모든 것 이전에 마르크스 자신부터가 하나의 역설(逆說)이다. 스스로가 전형적인 부르주아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낭비벽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화하기는 했어도 단 한 번도 노동자인 적은 없었다. 그에게 생활비를 대주던 동료 엥겔스는 심지어 공장주, 즉 자본가였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마르크스 이전에도 그랬고, 러시아혁명 이후의 모든 좌익혁명운동이 그랬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념이 계급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한국 사회주의의 원조(元祖)는 대부분 《태백산맥》에 나오는 기층(基層) 민중이 아니라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부유한 지주의 자식들이었다.”
“1945~53년 격변의 해방 8년사 (후도 마찬가지다) 좌파운동은 사라졌지만, 민주화운동 그리고 취약하나마 진보운동을 주도한 것은 강남좌파였다. 1970년대 이후를 예로 든다면, DJ(김대중)와 YS(김영삼)부터 재야지식인, 학출(학생운동 출신 위장취업 노동운동가), 1987년 6월항쟁 당시 명동을 메운 사무직 노동자 등 운동을 이끈 것은 대부분 강남좌파였다.”
반(反)마르크스주의자의 지적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정치학자가 그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남좌파’의 존재를 변호하는 얘기였다. “강남좌파를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언제 어디서고 급진적 주장을 들고나온 자들은 대개 강남좌파 같은 부류들이 먼저였다.
지식분자들은 늘 그렇다고 한다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은 그에 한해서만큼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사회적 의식은 물질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분자들 이념의 문제가 된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의 논리든 혹은 저항의 논리든 그것은 언제나 지식분자들이 내놓는 “세계에 대한 이러저러한 해석”에 기대어 있었다. 계급이 이념을 낳은 것이 아니라 이념이 계급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객관적 계급의식이 없는 것이라면 그 법칙적 필연성을 앞세운 혁명론은 근거를 상실한다. 그런데도 혁명을 외칠 수 있나? 상관없다! 레닌 이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이상 그런 딜레마에 신경 쓰지 않는다. 레닌은 “혁명이론 없이 혁명은 없다”고 했고, 루카치는 레닌의 이 테제를 변주하여 아예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적 범주”라고 했다.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을 경우엔 역사 변혁의 담당자를 이념으로서의 계급의식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없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요, 객관 없는 이념만의 혁명이다. 그런데 그런 혁명이란 결국 거기에 집착하는 자들의 관념의 유희일 뿐이다. 일종의 정신적 약물에 의한 취기다. 좌파 지식인은 그 약물을 대중에게 판다. 그게 대중의 각성이요, 의식화다.
성숙한 자본주의 배경으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은 없다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성장이 노동자 계급의 성장을 가져오고, 또 그렇게 하여 결국에는 붕괴되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넘어갈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이래 어떤 공산좌익혁명도 성숙한 자본주의와 노동자 계급의 성장을 배경으로 한 예는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성공한 모든 공산좌익혁명은 자본주의의 발전도 취약하고 그래서 근대적 노동자 계급의 성장도 미약한 곳에서 일어났다.
1917년 10월혁명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르자면 일어날 수 없거나 더 심하게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멘셰비키는 그랬다. 멘셰비키는 러시아에서 산업발전과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장해가는 게 선행(先行)해야 한다고 여겼다.
레닌은 달랐다. 레닌은 그들을 그저 경제주의자일 뿐이며 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라고 여겼다. 레닌은 멘셰비키 등과는 정반대로 사회주의 혁명은 그저 경제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의식적 투쟁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자본주의의 성숙을 기다리는 ‘경제주의’는 그저 기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단언했다.
“혁명이론 없이는 혁명운동도 없다. (…) 오로지 선진적 지도그룹에 의해 지도되는 당만이 선진적 투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혁명이론으로 무장한 혁명적 전위집단이 이끄는 당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각성시키고 이끎으로써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전위정당론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은 더 이상 객관적인 법칙적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이제 혁명은 의식의 문제였다. 레닌주의의 그 같은 의식의 강조는 러시아혁명 이후 도처의 지식분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좌절감을 겪고 있는 후진국(後進國)의 지식분자들은 더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은 더 이상 자본주의의 성장을 충분히 기다리는 것일 필요가 없었다. 얼마나 있든 그저 노동자들-무산자(無産者)들을 각성시키고 의식화해 이끌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부족하면 농민도 그렇게 이끌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럴듯하게 등장한 게 노농(勞農)동맹론이다. 마오쩌둥(毛澤東)주의가 대표적이다. 노동자든 농민이든 아무튼 피억압 인민, 즉 민중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랬다. 더 이상 법칙도 과학도 아니었다. 이제 혁명은 의식의 문제요, 의지의 문제가 됐다. 레닌 이래 좌익사상은 그렇게 됐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레닌주의가 맞기는 하다.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이른바 노동자 계급이 성장한다고 해서 그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가 없다.
계급·계급의식은 객관적 발현이 아니라 조장의 결과다
사실 계급과 계급의식이라는 발상부터가 일종의 주관적 원망(願望)이다. 계급이 있고 계급의식이 있다는 사고방식은 언젠가부터 보편적 상식처럼 군림하고 있다. 좌익이 아닌 이들도 그렇기는 하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일 뿐 객관적 진실이 아니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게 있다. 자신이 다른 취준생과 동지적 관계가 아니라 경쟁관계라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이것은 객관적이다. 그런데 그 취준생은 고용이 되는 순간, 즉 취직이 되는 순간은 무엇보다도 고용주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게 된다. 그리고 이제 직장생활이 시작되면 또 당연한 경쟁이 진행된다. 월급 인상에서 승진에서 동료들과 경쟁이다. 한편 고용된 이들은 아직 미고용 상태에 있는 이들과 이해관계상의 대립상태에 놓인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그저 정서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인식 정도가 전부일 뿐 이른바 하나의 노동자 계급이라는 계급의식은 사실 형성이 안 된다.
그래서 계급의식이 형성되려면 고용주, 즉 자본가가 적대적 대상으로 악마화(惡魔化)돼야 한다. 자본가는 임금을 적게 주고 착취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뭉쳐서 맞서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먼저 나서게 되는 건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어떤 기업의 노조도 아직 고용되지 않은 예비 노동자에게 자신의 이익을 양보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한다. 이렇게 되면 여전히 노동자 계급은 없다. 그러니 이제 노동 계급의 보편적 이익을 내세우는 또 다른 존재가 등장해야 한다. 정치집단, 노동자당이다. 이제 이들이 나서서 자본가-부르주아를 정치적으로 적대적 존재로 몰아간다.
그런데 모든 나라의 모든 경제사가 증명하지만 그 같은 악마적 자본가-고용주에 의한 기업은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이어져간 사례가 없다. 간단히 말해 상식 밖의 착취를 하는 회사-기업은 잠깐은 몰라도 결국은 망했다. 그래서 ‘악질적 자본가’ 대(對) ‘성실한 노동자’라는 대립구조는 애초에 연속적으로 이어져가는 계급적 대립구조일 수 없다. 그저 인간 사회라면 어디서든 있기 마련인 부실함이나 일탈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갈등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의 기업 안에서 자본-노동의 대립보다는 기업과 기업 간의 경쟁이 당연히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경쟁이 당연시되면, 또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일체화는 없다. 그래서 개별 기업을 넘어서서 노조가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산별(産別)노조라는 것, 그리고 노조 총연맹 등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도대체 회사는 누가 키우나? 상관없다. ‘우리 회사’ 따위를 운운하는 건 자본가의 속임수일 뿐이라고 몰면 된다.
자본가-부르주아의 악마화, 그리고 자본-노동의 대립이라는 관념은 객관적이기보다는 조장된 르상티망적 관념일 뿐이다. 더욱이 그 경제 현장, 삶 현장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 그저 관찰하고 더러는 아예 관찰도 없이 상상하는 자들의 관념이다. 요즘 속어로 말하자면 ‘뇌내망상’이요, ‘뇌피셜’이다.
의식화? 가스라이팅이다!
/레이몽 아롱의 《지식인의 아편》.
그런데 이게 바로 레닌주의 이래의 좌익사상의 기본적 핵심 논지다. 계급의식은 자연스럽게 그저 형성되지 않는다. 의식적인, 즉 의지적인 각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각성은 스스로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이념 이론으로 무장한 선진적 지도집단 전위에 의해 그 같은 이념 이론을 전수해야 한다. 교육·선전이다. 그리고 선동도 중요하다. 그래야 그 각성의 과정에 힘을 더한다. 그 모든 과정을 일컬어 ‘의식화’라고 한다.
지속적인 교육·선전·선동에 의한 의식의 변화다. 그런데 이것은 통속적 비유로 달리 말하자면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소위 전위 혹은 혁명적 지식인이라는 자들은 가스라이팅 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것은 약을 파는 것과도 비슷하다. 각성을 위해서라며 각성제를 파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그 약을 자신이 먼저 먹기는 해야 한다.
이른바 혁명적 좌익 패거리에서 지도적 행세를 하는 자들은 대개 두 가지 부류다. 건달 아니면 지식분자들이다. 이 둘은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든 레닌 이래 마르크스주의적 좌익혁명운동에선 지식분자가 행세할 자리가 확실히 마련은 됐다. 이제 뭔가 행세를 하고픈 지식분자들은 그 허세적 갈망의 충족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도취된다. 아편에 중독되듯이!
레이몽 아롱이 일찍이 통렬하게 그 점을 지적하는 책을 썼다. 《지식인의 아편》(1955년 발간, 1962년 개정증보판)이다.
“‘역사적 변증법에 의해 필연적으로 도래하는 무산계급의 시대가 억압된 자들을 해방시킨다’는 공산주의 이론은 사이비 종교와 같다. 절대성을 강조하고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은 민중을 고난으로 이끌 뿐이다. 거대한 수용소 국가로 전락한 소련의 모습은 이를 대변한다. ‘진보’라는 이름을 내세워 민중을 잘못된 길로 몰아세우는 좌파 지식인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아편’의 중독자다. 객관성·보편성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상은 억지요, 고집일 뿐이다.”
좌익 지식분자들이란 ‘마르크스주의라는 아편’에 중독된 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혁명적 이념에 의한 민중의 각성이란, 결국 자신을 중독시킨 약을 민중에게도 팔아서 중독시킨다는 것일 뿐이다.
지금 한국은?
한국은 후진국이라서가 아니라 충분히 성숙한 고도의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와 노동자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다. 연봉 1억원을 넘나드는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의 노동자를 무산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부르주아 뺨치게 부유한 노동자들이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최선두를 이루며 “노동해방”을 외친다.
루카치가 예를 든 경우와는 반대로, 배가 불러 프롤레타리아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계급의식을 앞세우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는커녕 스스로가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자의 입장인 노동귀족들이 그 점은 은폐한 채 위선적으로 계급적 정치구호를 외치고 있다. 종북(從北) 무리도 그 속에 똬리를 틀더니 이제는 아예 주도적 위세를 부리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이제 치외법권의 특권집단이 됐다. 교회 예배도 막고 다른 집회 시위를 다 막아도 이들의 집회는 막지 못한다. ‘기업유죄 노조무죄’요, ‘좌익무죄 우익유죄’가 됐다. ‘종북무죄 애국유죄’요, 급기야 ‘북한은 무죄요, 대한민국은 유죄’인 꼴이 됐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상식이 뒤집혔다. 좌익적 가스라이팅과 약팔이를 제압하지 못한 결과다.
레이몽 아롱의 경고
대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공방도 치열하고 주장도 갖가지다. 그런데 해괴한 공약 하나가 등장했다. 여당의 한 후보자가 정부 보증으로 “전 국민에게 1000만원” 기본대출을 하겠다고 한다. 사실상 돈을 살포하겠다는 매표공약이다. 게다가 극히 위험하다. 500조원이다. 인플레만 문제가 아니다. 그냥 주는 돈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채무 불이행이 줄을 잇게 된다. 그러면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부실 대출이 돼버린다.
그럼에도 이런 엽기적 공약이 내세워지는 건 그럴 만한 탈선과 타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국민 삶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러니 돈 없다고 뻗대면 나라에서 어떻든 생돈이라도 줘야 한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에 대해 레이몽 아롱은 이미 오래전에 경고해두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욕망에 따라 배분받는다’는 선전은 허공의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인간의 열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허구에 몰입할수록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가난한 세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은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롱은 덧붙여 말한다.
“좌파들은 어설픈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역사의 진실을 어지럽혀선 안 된다.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의견을 용인하지 못하는 폐쇄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선동적인 ‘진보팔이’로 젊은이들을 호도하는 것은 문명의 퇴보를 재촉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발성과 창의력을 키우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 진보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아편을 끊으라는 얘기다.⊙
08월 30일 文 ‘軍 노마스크 실험’ 지시도 질병청 패싱도 잘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자리에서 군(軍) ‘집단면역 달성’에 따른 후속 조치를 지시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주문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이 지난 4일 국방부 장관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렀을 당시 한미훈련 반대 ‘김여정 하명’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다. 그때 서욱 장관은 장병 93.6%가 1차 접종을 마쳤고, 8월 6일까지는 2차 접종 완료 등을 보고했다. 당시 군 내부에는 그런 만큼 연합훈련을 제대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한미훈련에 대해선 “(미군 측과)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해 북한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당시 문 대통령이 “요양병원 등을 제외하면 군이 최초의 집단면역 달성 사례”라고 말했다는 사실만 공개됐다. 그런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7일 “(당시 문 대통령이) 집단면역 효과, 변이 대응성, 치명률 등에 대한 관찰과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시범·연구 사례가 될 수 있으니 방역 당국과 협의해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국방부가 질병관리청과 상의도 없이 추진 중인 노마스크 실험의 지시자는 문 대통령”이라며 전모 공개를 요구했다.
국방부가 “사실과 다르다”면서 “군의 정상화 과정에서 필요한 과학적 사항”이라고 했지만, 심각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선, 문 대통령 발언부터 잘못이다. 집단면역 ‘테스트’를 먼저 지시했기 때문이다. 생체실험 주장의 빌미도 됐다. 방역 당국 및 전문가 조언을 먼저 듣고 단계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방역 당국과 협의가 제대로 진행됐는지도 의문이다. 국방부는 지난 18일 질병청에 ‘병영의 방역 완화 방안을 검토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했지만, 질병청은 “병영 내 위드 코로나 추진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질병청 패싱도 심각한 문제다.
문화일보 사설
08.31 싸울 의지 없는 유령 군대의 최후
미국에서 100조원 받은 아프간군
유령 군인 급여 착복… 항복·도주< br> 57만명 월남군도 타락으로 패망
기강 해이 우리 군 싸울 의지 있나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눈길을 잡은 말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아프간 대통령이 해외로 도망친 뒤 한 변명이었다. 그는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군 최고통수권자가 부하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후일 “대통령은 나와의 통화에서 ‘죽기로 싸우겠다’고 하고선 그 다음 날 가버렸다”고 했다.
▲지난18일(현지시간)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에 쫓겨 국민을 버리고 국외로 도망쳐 아랍에미리트(UAE)에 체류 중인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페이스북 영상 캡처
다른 하나는 ‘유령 군인(ghost soldiers)’이다. 아프간 정부군이 급속히 무너진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BBC가 쓴 용어다. 부패한 지휘관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군인을 장부에 올려 급여를 착복했다는 것이다. 아프간군은 문서상으로는 30만명이 넘었다. 하지만 실제 병력은 6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군대가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아프간 패망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여기에 담겨 있다. 탈레반이 공격해오자 정부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거나 도주했다. 탈레반은 “정부군이 생각보다 빨리 카불을 버려서 놀랐다”고 조롱했다. 미국은 20년간 약 97조원을 들여 아프간군에 무기를 지원하고 훈련시켰다. 기강 무너진 군대에 최신 장비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군이 철수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아프간군은 나라를 내줬다. 국민들은 IS의 참혹한 테러로 피를 흘리고, 난민이 돼 떠도는 처지가 됐다.
46년 전 베트남 패망 때도 유령 군인이 있었다. 전쟁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당시 남베트남 군사력은 정규군 57만명, 전차 600대, 화포 1500문, 함정 1500척, 항공기 1270대 등 북베트남을 압도했다. 공군력은 세계 4위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쟁 승패는 군사력의 우열이 가르지 않았다. 월남군 57만 중 10만명 정도가 뇌물을 주고 대학을 다니거나 기업에 취업했다. 수뇌부는 미군이 지원한 전투기, 탱크 등 무기를 월맹군에 팔아먹었다. 미군 철수 2년 뒤 북베트남이 밀고 내려오자 남베트남은 4개월 만에 항복했다.
아프간 뉴스가 쏟아질 때 친분 있는 예비역 대령 한 분이 “미군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군이 핵 가진 북한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국과 아프간은 국력이 다르고 안보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그는 “군의 생명은 군기와 전투 의지라는 근본은 똑같다”고 했다.
우리 군의 기강 해이 조짐은 차고 넘친다. 북한 남성이 바다를 헤엄쳐 넘어와 수㎞를 이동하면서 감시장비에 포착됐지만 아무 조치도 안 했다. 1식4찬 기본 지침도 지키지 않은 부실 급식은 국방예산 52조원 시대에 부끄러운 일이다. 장병들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다.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육·해·공군 모두에서 터져나왔다. 2차 가해와 은폐 의혹까지 있다.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않는다. 한·미 연합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하고 있다. 올 후반기 훈련은 그나마 대폭 축소했다. 방역 핑계를 대지만 북한 눈치를 보는 것이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이후 3대 연합 훈련을 모두 없앴다. 병력과 장비가 동원되는 대규모 야외 실기동훈련은 2018년 독수리 훈련을 마지막으로 3년째 안 하고 있다. 9·19 남북군사합의의 비행금지구역 규정 때문에 군 최대 규모의 대공사격장은 쓰지도 못하고 있다. 육군 자료에 따르면 아파치 헬기 사격 훈련은 2017년 13회였지만 지난해엔 5회로 줄었다. 평화를 얻으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훈련 때 땀방울은 전시의 피를 줄일 수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 미군이 대신 싸울 순 없다”고 했다. 당연해서 무서운 말이다. 군 수뇌부는 우리 군이 당장 오늘 밤 싸울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조선일보 정녹용 기자
08-31 北 ‘고철’ 원자로 재가동, 그런다고 몸값 안 오른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정황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포착됐다. IAEA는 연례이사회 보고서에서 “2018년 말부터 가동 징후가 없던 5MW 원자로가 올해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 등 재가동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방사화학연구소도 5개월간 가동했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이다.
북한이 3년 가까이 중단했던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것은 그간 주력했던 우라늄 외에 플루토늄 프로그램도 재개함으로써 두 가지 핵폭탄(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을 함께 갖추겠다는 의도다. 북한은 원자로 가동을 통해 증폭핵분열탄(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삼중수소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한층 위협적인 핵무기들을 고루 가진 핵보유국 위상을 과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무력화하겠다는 노림수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핵 증강 의도를 보란 듯이 드러냈다. 원자로 가동을 통한 플루토늄 프로그램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보다 핵무기 원료의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위성사진 등을 통해 외부에 쉽게 노출되는데도 거리낌 없이 재가동 움직임을 과시했다. 미국에 위협의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협상을 압박하려는 저강도 도발 시위인 것이다.
영변 원자로는 방사능 유출마저 우려되는 위험한 고철 덩어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간 각종 핵합의에서 경수로 건설이나 경제적 보상을 받는 대가로 내놓은 거래 대상이 됐고, 한때 그에 딸린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까지 벌였다. 북한은 재작년에도 이 원자로를 포함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와 맞바꾸려다가 실패했다. 북한은 이번에 또다시 원자로를 가동함으로써 협상 카드로서 영변 핵시설의 가치를 높여보겠다고 나섰다.
북한은 미국 새 행정부의 거듭된 대화 요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제재 완화 같은 양보부터 얻어내려는 속셈이다. 이번 원자로 재가동 움직임도 국제사회에 대화가 시급하다는 여론을 부추겨 북핵을 정책 우선순위로 삼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투적 수법이 또 통하겠는가. 북한의 공갈에는 이골이 난 미국이다.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대화 자체를 위한 보상도, 말뿐인 합의를 위한 보상도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아일보 사설
08월 31일 영변核 재가동 알고도 ‘北과 짬짜미’ 文…이적(利敵)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집권세력의 ‘대북 굴종’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 2개월 상황은 그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한의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활동을 실시간으로 알았으면서도, 이를 국민에게는 숨기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려 하거나 대북 지원에 나서는 등 사실상 북한 편을 드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을 문 정부 임기가 끝난 뒤에라도 철저히 규명해야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이적(利敵)을 의심해야 할 정황이 수두룩하다. 특히,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올 들어 10여 차례 친서까지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국민에게 밝혀야 할 당위성도 더 커졌다.
북한 핵무기 개발은 대한민국 존립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도 위협한다는 점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총력을 다해 저지에 나서고 있다. 중국·러시아도 동참했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27일 보고서를 통해 북한 영변 핵시설의 5㎿ 원자로와 폐연료봉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연구소 가동 징후가 있다고 발표했다. 원자로 재가동은 지난 7월 초이고, 재처리 시설 가동은 2∼7월까지 5개월이라고 한다. IAEA는 지난 3월엔 평양 인근 강선 지역에서 핵 활동 정황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부는 30일 “한·미 공조 하에 핵·미사일 활동을 지속 감시 중”이라고 하는 등 실시간으로 파악했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문 정부는 그렇게 파악한 북핵 활동을 숨긴 채 대화 재개와 대북 지원에 골몰했다. 북한이 지난 7월 27일 남북통신선을 복원하자 청와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라고 했다. 통일부는 대북 물자 반출을 승인했다. 문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불러 한미훈련 축소 지침을 내렸고, 범여권 의원 74명은 훈련 연기 연판장을 돌렸다. 문 대통령은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추가 비핵화 용의 등 북한 선전을 국내외에 ‘대변’했다.
이런 짬짜미 행태는 북한 핵 활동 은닉에 그치지 않고 거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국가 존망과 직결된 내용을 숨긴다면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화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