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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40/ 국방19/ [국가정보원 50년] - 對共 요원이 밝힌 ‘간첩의 세계’

상림은내고향 2021. 8. 24. 21:46

대한민국40/ 국방19/ 

■[국가정보원 50년]  동아일보 2017

[인원-업무-예산 비공개]

“無名의 헌신”… 조직-편제 베일속에

 

국가정보원의 구체적인 조직과 편제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다.

정부조직법 15조에도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대한 사무를 담당한다’고만 돼 있을 뿐 자세한 조직과 직제는 명시돼 있지 않다. 실제로 외부에 공개된 국정원 조직과 신원은 원장(장관급) 13차장, 기획조정실장이 전부다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현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초까지 국정원의 조직과 임무는 주로 지역으로 구분해 이뤄졌다. 1차장은 해외, 2차장은 국내, 3차장은 북한 분야를 맡아 산하 30여 개의 실무부서와 수천 명의 요원들을 데리고 국내외와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 판단하는 한편 각종 정보공작 활동을 벌여 왔다

그러나 원세훈 현 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은 2009년 하반기 기존의 지역별 담당 체제의 틀을 깨는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모든 정보가 통합돼야 살아 있는 정보가 된다”(2009 2월 국회 인사청문회)는 원 원장의 소신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1장은 해외는 물론이고 대북정보 수집 및 분석, 산업스파이 관련 국제범죄 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차장은 국내 정보 수집 및 분석에다 방첩과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적발 등 대공수사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3차장인데 주된 업무가 북한 분야에서 산업 및 과학정보 수집과 사이버 보안, 특수업무로 확대됐다고 한다. 갈수록 국가 간 첨단산업 기술을 둘러싼 정보전이 치열해지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북공작은 군과 협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종명 3차장은 합참 민군심리전부장 출신이다.

 

원 원장은 또 국정원 내부 조직 간 경쟁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공서열을 파괴한 팀제를 도입했다. 4급 팀장 밑에서 3급 팀원이 일하게 하는 등의 인사실험도 했다고 한다. 팀제는 원 원장 취임 이전부터 추진돼온 사안이지만 성과 위주의 국정원 운용이 내부 불만과 갈등을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원의 예산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부 자료에 나타난 특수활동비 명목의 올해 국정원 예산은 지난해보다 127억 원이 늘어난 4963억 원(예비비 3000억 원가량은 별도)이며 알려지지 않은 예산까지 포함하면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요원 양성 어떻게]

정예 ‘블랙&화이트 요원’으로 
지옥훈련은 기본… 술 잘마시는 법서 화투-마작까지 익혀야

▲사격 훈련 중인 국가정보원 요원들(위쪽 사진)과 대부분의 사람이 고소 공포증을 느낀다는 11m 높이 탑에서의 점프 훈련 모습. 동아일보DB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양성 과정은 ‘보안사항’이나 지옥훈련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류심사와 필기시험, 체력검정, 면접 등 5, 6개월간의 전형을 거쳐 100 1을 훌쩍 넘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신임요원들은 1년 동안 강인한 체력과 담력을 기르고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고강도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전반기 훈련은 상당 시간 체력 증강에 집중된다. 2 3일간 지리산 종주등반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고 해군 특수전부대에 입소해 강도 높은 해양훈련을 받는다. 특히 마지막 날 훈련이 지독해 이날은 ‘지옥의 날(헬 데이·Hell Day)’로 불리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담력을 키우기 위한 공수훈련도 거쳐야 한다. 신임요원들은 육군 특전교육단에서 11m 높이 탑에서 점프술을 익힌 뒤 기구를 타고 300m 상공으로 올라가 실제로 강하하는 훈련을 받는다. 이어 C-130 수송기나 CH-47 헬기를 타고 더 높은 상공에서 특수전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던진다

빠른 시간 안에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파악해야 하는 정보요원들에겐 남다른 친화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술 잘 마시는 법은 물론이고 화투나 카드, 마작과 같은 잡기를 배우며 여성요원들은 화장술과 코디법도 익힌다고 한다.

 

신임요원의 신상정보는 비밀이다. 이들 중 일부는 상대국에 전혀 알리지 않고 직업과 신분을 위장해 침투하는 진짜 공작요원인 ‘흑색요원(블랙요원)’이 되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는 정보요원은 흑색요원과 상대국에 신원을 밝히고 합법적인 신분으로 들어가 상대국 정보기관을 상대하는 ‘백색요원(화이트요원), 그리고 그 중간인 ‘회색요원’이 있다. 회색요원은 언론사 특파원처럼 상대국에 신상정보를 통보하고 들어간 뒤 자유로운 신분을 이용해 비밀공작도 하는 ‘합법적 흑색요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의식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국가정보원의 직원으로서 보안이 나와 우리 원의 생명임을 명심하고 업무상 취득한 내용은 어떤 경우에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국정원 요원의 보안선서)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가다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첫 언론 공개… 
오후 3, 14만건의 정부 공격이 시작됐다

 

총성없는 戰場 동아일보는 지난달 31일 언론사 최초로 국가정보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상황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24시간 가동되는 상황실의 보안관제시스템 화면에선 한국 정부에 대한 사이버 공격 현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작은 사진은 센터 입구. 국정원 측은 사진 촬영은 허용하지 않았으며 국정원 요원들이 드러나지 않게 사진을 찍어 본보에 제공했다. 국가정보원 제공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지난달 31일 오후. 뉴스는 북한 해커가 유포한 것으로 보이는 악성프로그램이 일선 장교에게 e메일을 통해 확산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국가정보원 요원이 국가사이버안전센터(NCSC)로 기자를 안내했다. 국정원 직원들도 허가 없이는 출입이 금지된 보안구역이었다.

정면의 가로 약 10m, 세로 3m의 반투명 벽에서 형광불빛만 새어 나왔다. 한 요원이 10여 분간 센터 현황을 설명했다. 현황 브리핑만으로 끝내려는 것이었다 

취재 전 센터 상황실을 취재하고 싶다고 수차례 요청한 터였다. 긴장감이 흘렀다. 보안 문제로 이견이 있는 듯 요원들이 귓속말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책임자가 지시했다. “관제시스템을 열어. 

한 요원이 버튼을 눌렀다. 갑자기 반투명 벽의 하얀 불빛이 사라졌다. 유리벽 너머로 상황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상황실이 최초로 언론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상황실 정면에 한국 정부기관을 위협하는 국내외 사이버공격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초대형 화면이 있었다. 요원들은 자리를 지키며 컴퓨터 모니터와 초대형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요원들은 화면을 보안관제시스템이라고 불렀다.

보안관제시스템은 전 세계 사이버공격 진원지의 인터넷주소(IP), 유형, , 경유지, 공격 대상 한국 정부기관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했다. 정보 탈취를 위한 최신 기법의 해킹부터 단순 해킹인 웜바이러스(컴퓨터 시스템을 파괴, 방해하는 악성프로그램)까지 한국 정부를 공격하는 모든 유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3차원(3D) 화면으로 나타났다. 

화면 속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예상보다 공격 횟수가 훨씬 많았다. 오후 3. 그 시간대에만 국내에서 122853건의 사이버 공격이 정부의 컴퓨터를 노렸다. 같은 시간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13619, 1706건의 공격이 한국 정부 시스템망에 침투했다. 인근 국가, 유럽, 동남아, 중동 국가들의 공격을 모두 포함해 약 14만 건이 한국 정부를 공격했다. 한국 지도에는 서울, 대구, 대전을 비롯해 정부기관이 있는 지역 18곳에서 공격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깜박였다 

세계 지도에는 미국과 중국이 붉은색으로 표시됐다. 공격의 위험 수준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발생한 공격은 위험 정도는 덜하지만 양이 워낙 많았다. 중국에서 발생한 공격은 미국보다는 적지만 정부 PC의 자료 탈취를 노리는 해킹 공격이 대부분이다 

 

▼ “1초도 놓치지 마라”… 24시간 잠들지 않는 ‘사이버 전쟁터’ ▼

▲센터는 위험도에 따라 정상(녹색)-관심(파란색)-주의(노란색)-경계(주황색)-심각(적색)으로 공격을 분류했다.


공격 진원지에 북한은 표시돼 있지 않았다. 북한 해커는 대부분 중국의 IP를 이용하기 때문에 중국이 진원지로 표시된 IP 중 상당수가 북한의 공격 진원지로 파악된다. 그 시간에도 1000건이 넘는 북한 해커들의 공격이 침투를 시도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요원들은 얼핏 평범한 젊은이들처럼 보였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24시간 돌아가는 관제시스템 화면의 작은 정보 하나도, 1 1초도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그 작은 하나가 국가 인터넷 통신망을 마비시킨 2009 7·7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같은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119전화처럼 사건 발생 사실을 신고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공격이 일어난 그 시간에 공격정보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경우 치명적이라고 한 요원이 말했다 

날로 첨단화되는 사이버 공격의 패턴을 따라잡기 위해 요원들은 다른 요원과 교대한 시간에도 최신 공격 기법을 연구하고 실제로 유통되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위험한 공격이 발견되는 즉시 해당 정부기관에 알려 자료가 유출되기 전에 감염 컴퓨터를 차단하는 게 임무 성공의 관건이다. 감염 현장에 출동해 시스템을 복구하는 한편 해킹 근원지를 추적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일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해킹 공격의 경유지로 사용되는 ‘좀비 PC’는 대부분 보안에 취약한 일반 컴퓨터다. 요원들은 국가안보를 위협한 공격일 때는 좀비 PC 사용자를 찾아 조사 협조를 요청한다. 국가안보와 관련됐더라도 민간 컴퓨터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어 “당신이 국정원 요원인지 어떻게 믿느냐”며 문전박대를 당할 때도 많다.

7·7디도스 공격은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게 약이 됐다. 올해 3·4디도스 공격은 하루 전인 3 3일에 감지했다. 공격 정도는 7·7공격 때와 비슷했지만 정부 시스템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몇 차례 부탁한 끝에 9년차 중견 요원 이모 씨(35)가 긴박했던 당시 센터 상황을 전했다. 

3일 새벽, 청와대와 국방부 시스템에 원인 모르게 트래픽(정보전송량)이 과도하게 유입되는 상황이 관제시스템 화면에 포착됐다. 그날 오전, 공격에 사용된 악성코드를 당장 확보하라는 지시가 현장 조사반에 내려졌다. 그날 오후, 공격 진원지에서 악성코드를 확보했다. 몇 시간 뒤 7·7공격 때처럼 개인 간 파일공유(P2P) 사이트를 통해 악성코드가 유포된 사실이 확인됐다. 요원들은 공격 목표가 된 정부기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날 저녁, 관제시스템 화면에 또 다른 대규모 공격 징후가 나타났다. 디도스 공격용 악성코드가 다른 P2P 사이트에서 다시 유포되고 있었다. 이번엔 육군본부와 공군본부도 공격 목표가 됐다 

그날 밤, 공격 지령을 받은 국내 좀비 PC들이 청와대와 행정안전부를 공격했다. 요원들은 긴급 문자를 기관에 보내 공격자 IP 차단을 지시했다. 센터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안철수연구소를 비롯한 백신업체에서 백신 개발을 완료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4일 새벽, 분석팀이 변종 악성코드를 분석한 결과를 브리핑했다. 본격적인 디도스 공격이 4 2차례로 예정돼 있음이 확인됐다. 공격 대상은 청와대와 국민은행 등이었다. 감염 이후 7일이 지나면 해당 PC의 하드디스크가 자동 파괴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요원들은 그날 아침 국내외 언론을 검토했다. 한 관계자는 “백신이 완성된 뒤 보도돼야 혼란이 덜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별다른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다. 요원들은 변종 악성코드의 분석 정보를 백신업체로 보냈다. 그날 오전 정부기관 회의가 소집돼 3·4 디도스 대란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사이버위기경보단계가 ‘정상’에서 ‘주의’로 격상됐다. 그날 오후, 요원들의 분석대로 관제시스템에 대규모 공격이 시작됐다는 경고가 울렸지만 유비무환(有備無患)이었다. 

요원들은 테러리스트들이 국가 기반 통신망을 장악하는 내용의 할리우드 영화 ‘다이하드 4.0(2007)이 영화 속 일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 요원은 “국가사이버안전센터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전직 국정원 요원들의 증언

“국가위해 일했는데 고문만 떠올려… 죽어서도 음지 못벗어나”

▲국정원 보국탑 참배 국가정보원 청사 앞의 보국탑. 안보전선에서 일하다 숨진 요원 48명을 기리는 곳이다. 평생 대공수사를 담당하다 퇴직한 6명이 지난달 26일 본보 취재진을 만나기 전에 참배하는 모습.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 주차장을 지나 국가정보원 청사를 오른쪽으로 하고 200m가량 올라가면 보국탑(保國塔)이 보인다. 순직한 국정원 요원들의 위패가 있는 곳. 정남향 건물인 국정원 청사를 정면으로 향하는 지점이라 늘 그늘이 진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 모토대로, 이들은 죽어서도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달 26일 오전 10 10분경. 승용차 3대에 나눠 탄 노신사 6명이 이곳을 찾았다. 헌화 분향 묵념이 이어졌다. 대형 화환에는 ‘전직 대공수사요원 일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행은 탑 뒤의 위패봉안실에 들렀다. 북한공작원의 독침에 피살된 해외 지부장, 아프리카에서 풍토병에 걸려 쓰러진 서기관…. 명단의 마지막인 48번째 이름(정○○)을 보고 누군가 입을 열었다.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떴지. 서른두 살. 우리 사무실 직원이었는데….” 》 


전직 대공수사요원 6명이 국정원 창설 50주년(10)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4명은 대공수사국장, 2명은 대공수사단장을 지냈다. 면회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눌 때 이들은 서로를 ‘고문’ ‘회장’ ‘부회장’으로 불렀다. 물론 가명이다. 이들은 어떻게 대공수사의 길을 걷게 됐을까. 

“국가재건최고회의 간부요원 선발 공고를 봤다. 1961 8 5일인가. 국회사무처 직원인 줄 알았지. 와보니까 중앙정보부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공채 1기로 지원한 거지.(김영훈 고문) 

“대학생 시절, 중정을 해체하라는 시위에 참여했다. 1969년 특별직 공고가 났는데 우리가 알던 정보부와 실제는 다르다며 선배가 권유했다. 은행에도 동시에 합격했지만 중정 인사계장이 못 가게 했다.(박인호 회장) 

“당시 유행하던 007영화처럼 가방을 들어보고 총도 쏴보자는 생각에 들어왔다. 1974년이다. 장가갈 때 외무부 다닌다고 거짓말했다. 신혼여행 뒤 20일간 집에 못 들어가니까, 처가에서 나를 내사했다.(장유진 부회장) 

김 고문은 대공수사가 예나 지금이나 3D업무라고 표현했다. 중정 창설 직후에는 남파간첩을 가둘 시설이 없어 수사관이 함께 먹고 자야 했다. ‘정보 파트는 양반, 수사 파트는 노가다’라는 말이 나왔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대공수사국에는 고사를 지내는 전통이 내려왔다. 1년에 한 번, 모든 요원이 연병장에 모여 잘 익은 수박과 돼지 머리 앞에서 외쳤다. 김일성 타도! 간첩 필포(必捕)!  


심일청 고문은 “국장 시절, 고사를 지낸 지 20일 만에 김일성이 죽었다. 만세를 불렀지만 한 달 뒤에 직위해제됐다”고 밝혔다. 무슨 사연이었을까.

강성산 북한 총리의 사위인 강명도 씨가 귀순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1994 7 27일이었다. 북한이 핵탄두 5개를 갖고 있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던 미국이 불만을 나타냈다. 

“기자회견의 모든 내용은 내부조율과 보고를 거쳤다. 처음에는 청와대도 잘했다고 격려금을 줬다. 그런데 다음 날인가, 누가 지시했냐고 감찰실이 조사에 들어갔다. 미국을 달래기 위해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정리됐다. 죽은 김일성이 핵으로 나를 죽인 셈이지. 

대공수사는 장기전이다. 첩보를 입수하면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1년이 2년이 된다. (대공수사의) 사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용무 고문은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예로 들었다. 

14대 총선(1992)에서 민중당이 1석도 못 건졌다. 나는 창당 자금에 의문을 가졌다. 민중당 간부 한명 한명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며 첩보를 모았다. 황인오라는 인물이 500만 원을 지원했다는 말을 어느 출마자에게서 들었다. 황의 집에 북한 원전(原典)과 컴퓨터가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6개월을 추적해서 잡았다.

안기부는 1992 10월 민중당 공동대표인 김낙중 씨, 중부지역당 총책인 황인오 씨 등 6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북한에서 밀파된 거물간첩 이선실의 지휘를 받아 남한에 노동당지부를 결성하고 지하활동을 벌인 혐의였다.

이영민 부회장은 일심회 수사에 대해 언급했다. 재미교포인 장 마이클이 중국에서 북한공작원과 접선한 사실을 국정원이 확인한 뒤 2006 10월∼2007 2월 관련자 6명을 잇따라 구속했다. 

장 마이클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일심회를 결성했는데 386운동권 출신이 대거 연루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수사를 확대하려 하자 여권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격려와 칭찬은커녕 외부개입이 많았다. 당시 일을 다 얘기하기 어렵다. 업무상 지득한 일은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직파간첩인 정경학의 체포 사실도 발표하지 못하게 했다. 

일심회 얘기가 나오자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받을 때 참담함을 느꼈다. 멸사봉공했는데 과거 상황은 생각 않고 지금 잣대로 독재정권에 일조했다니….(이 부회장)

“요원 중에 잘사는 사람이 없다. 옛날 일을 갖고 구상권을 행사한다고? 이건 나라가 우리를 버리는 거야.(심 고문) 

“가슴에 응어리가 진다. 아버지가 고문이나 하는 사람으로 애들에게 비치지 않겠나. DJ 이후 공안부서는 좌천 또는 기피부서가 됐다.(박 회장)

박 회장의 말처럼 정보기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문이나 납치 같은 가혹행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대공수사요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간첩은 잡히면 입을 열지 않으려 한다. 결국 ‘쫄’ 수밖에 없다. 한참 조사하다가 내일 오전 8시에 다시 보자? 이런 식으로 수사가 되겠나. 우리를 죽이러 온 놈들을 상대하면서 48시간 내에 영장을 받는 게 가능한가.(김 고문)

“유능한 수사관은 체벌하지 않는다. 주먹이 올라가는 일은 가끔 있었다.(심 고문)

절차 위반과 가혹행위가 불가피했다는 식의 설명에 박 회장은 조금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후배들은 선배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이제는 규정을 지켜야 한다. 요즘은 중요한 용의자를 잡으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이런 과정을 비디오 촬영팀이 기록한다. 

한 고문은 인권의식이 강화되고 대북 경계심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후배 요원들이 어렵게 일한다며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애국심이다. 조국과 민족과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둘째, 인내와 지구력이다. 대공사건은 집요함과 집념이 요구된다. 셋째, 직무지식 함양이다. 출근하면서 버스 안에서 북한 서열을 외우고 다니는 열정이 필요하다.

장 부회장은 북한의 대남 공작이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상황에서 대공수사요원이 국가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언제나 자긍심을 갖고,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고독한 업무를 해야 한다. 언젠가는 우리를 인정해줄 것이다. 공과를 인정할 것이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

 

  

<>첩보전 어떻게 진화해왔나

CIA ‘비밀주의’ 벗고 재기… 러FSB ‘이데올로기’ 벗고 변신

 

국가정보원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국정원의 향후 진로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상존하는 위협에 대응함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정보환경 변화 및 시대적 요청, 국제 추세 변화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세계 각국 첩보 활동의 중심축도 첨단장비를 활용한 전장(戰場)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경제 산업 분야에서도 총성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북한의 위협에다 컴퓨터와 통신 네트워크의 발전에 따른 사이버테러, 국제 테러리스트가 주도하는 초국가적 안보 위협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국정원의 능동적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실패와 교훈 

미 정보당국이 5 1일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한 것은 과학정보의 개가임과 동시에 정보기관들의 정보 공유 문제가 해결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CIA는 빈라덴의 연락책 아부 아흐메드의 부주의한 통화를 포착해 빈라덴의 거주지 정보를 얻어냈다. 현지에서 작전을 담당한 것은 ‘네이비실(Navy SEAL)’이었지만 모든 작전을 기획하고 주도한 것은 CIA였다. 

미 정보기관의 대표주자인 CIA는 이번 사건으로 명성을 회복했다. 이는 실패로부터의 교훈이기도 하다. CIA 2001 9·11테러 사건, 2002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왜곡 판단 등으로 쓴맛을 봤다 

 

미 정보기관의 개혁은 2005 CIA 16개 정보기구의 협력을 이끌고 통제하는 국가정보국장(DNI)직을 창설해 정보 교류를 체계화하고 중복된 정보 활동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외부 전문가의 효과적 활용도 미 정보기관의 특징 중 하나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은 “정보 분석관들은 좁은 분야의 소관 업무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며 “CIA와 미 국방부 등은 외부 전문가들의 지혜를 얻기 위해 연구과제 용역을 주거나 포럼을 자주 연다”고 말했다. 


○ 미래전략 준비하는 이스라엘 

수많은 가상적국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은 정보 역량을 국가 생존에 직결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다가올 30년을 상정한 안보환경 변화에 맞춰 미래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중동 국가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정세가 급변하고 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대화를 강조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도 최근 발표한 ‘이스라엘과 국가안보’ 논문에서 이스라엘이 1948 5월 건국 이후 국가안보전략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정해 왔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상황 변화 인식과 이에 맞는 적극적인 대처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역량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 러시아와 중국의 능동적 변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소련이 붕괴하면서 1992 1 27일 공식 해체됐다. 현재는 경제, 과학기술 첩보에 주력하는 대외정보국(SVR)과 방첩 및 국내 통합을 담당하는 연방보안국(FSB)이 과거 KGB의 명성을 잇고 있다.

러시아 FSB와 대테러기구들은 러시아 통합이란 명목 아래 이슬람 극단주의자나 민족주의 성향의 단체를 겨냥한 정치사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민주주의 국가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세계 2위 규모의 정보기관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정치 이데올로기 중심에서 벗어나 경제·과학기술로 방향을 바꾸고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도 개혁개방 이후 변화된 정보 환경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기에는 평화적 부상이라는 화평굴기(和平굴起)에 초점을 둔 다자외교에 맞춰 국가안전부의 해외정보활동 부서를 확대하는 등 조직과 기능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편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정원이 나아가야 할 길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효율적인 대북전략 수립 및 분단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정보영역은 최우선 과제”라며 “국정원이 새로운 정보 환경 변화에 맞게 효과적인 안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완비를 통해 국정원의 활동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테러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통신감청 활용 등이 필요하며, 다만 국정원이 과거처럼 이를 남용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정원이 모든 것에 다 관여하겠다는 인식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많다. 국정원 3차장을 지낸 한기범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북한 정보에서도 사회 부문은 민간에 과감하게 넘기고 경제도 민관 협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정책 형성에 관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외교안보 부처의 한 당국자는 “미국 정보기관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정책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며 “국정원은 정보와 정책을 함께 다루는 것이 장점이라고 얘기하곤 하지만 때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06-07[“김정은 방중” 헛짚은 정보력… 무너진 對北휴민트 회복 먼길]

DJ-盧정부때 정보라인 축소 

지난해 3 31일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그해 5 3일에야 중국을 방문했다. 올해 5 20일 김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도 그날 오전 정부 고위 관계자는 “3남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이 ‘김정은 방중’이라고 보고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북 정보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교류 확대에 따라 대인 정보수집 라인을 축소하고 대북 협상 인력을 늘리면서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의 약자로 인적 정보를 뜻함) 능력이 크게 약화됐다. ‘공개적으로 남북 교류를 하는 상황에서 스파이를 가동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가 지배했다. 

현 정부 들어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면서 국정원은 휴민트 능력 강화에 비중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2008 8월엔 김 위원장이 쓰러지고 한 달 뒤인 9월 정부 고위 관계자가 “김 위원장이 양치질을 할 정도의 건강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정보 당국에서는 휴민트를 죽이는 일이라는 강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정보소식통은 “휴민트망의 구축은 짧게는 2, 3, 길게는 510년이 걸리는 일”이며 “현 정부에서도 북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휴민트 회복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보소식통은 “북한이 3대 권력세습을 앞두고 북한 내부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는 권력투쟁의 움직임을 국정원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면 붕괴할 것이라는 정부 일각의 관측도 사회주의 특유의 내구성을 과소평가한 결과이며 이 역시 정보력 부족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정보 당국자는 “북한 고위층 인사를 포섭해 신뢰할 만한 스파이, 정보원을 길러내야 고급정보 입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과학정보의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휴민트가 가장 결정적인 정보라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06-08 
[“국회 계류 사이버위기관리법-통신비밀보호법 처리 시급”]

국가정보원이 최근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법안은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안’이다. 2009년의 ‘7·7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올해 ‘3·4디도스’ 사건에 이어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까지 잇따라 발생하는 등 사이버테러가 실질적인 국가안보의 위협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이 법안이 절실하다는 논리다

이 법안은 국가와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시설의 전산망 안전에 대한 컨트롤 타워 기능을 국정원이 맡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국가 사이버안전 업무는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에 의해 국정원이 총괄하고 있지만 이 규정들은 대통령훈령에 불과하다. 이 법안은 2009 4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상정됐지만 “국정원이 모든 정보를 관리 통제해 ‘빅 브러더’가 될 우려가 있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논의가 공전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원과 검찰 등이 함께 추진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도 쟁점 법안이다. 이 법안은 국정원을 포함한 수사기관이 통신업체의 장비를 통해 휴대전화 e메일 인터넷 메신저 등 다양한 수단의 통신 내용을 감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대부분의 범죄에 휴대전화가 사용되는 상황에서 휴대전화에 대한 감청은 수사의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정원이 국민 사생활을 무제한적으로 들여다보려 한다”며 맞서고 있어 3년째 국회 법제사법위에 계류돼 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06-08 [미행-감시는 옛말… 첨단장비로 영화같은 첩보전]

기술발전 따라 요원들도 진화… 외국어-IT-최신무기 무장

▲미국 영화배우 맷 데이먼(제이슨 본)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첩보영화인 ‘본 얼티메이텀’ 에서 상대방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다. 데이먼은 이 영화에서 미 정보기관의 암살요원 역을 맡았다. 동아일보DB

 

#1. 1980년대 중반 국가안전기획부 A 요원이 동남아시아로 급파됐다. 국제산업스파이 감시가 임무였다. 24시간 감청을 실시하고 이상한 낌새가 발견되면 즉각 대처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상대방 경호팀이 숙소에 두께 1cm가 넘는 방음유리창을 설치하는 등 대비를 철저히 해 동태 파악이 어려웠다. A 요원은 경호팀과의 격투 끝에 숙소 안으로 들어가 국내 주요 방위산업체의 기밀정보가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

#2. 
2000년대 중반 국가정보원은 버뮤다와 케이맨 제도 등 조세 피난처(Tax haven)에서 활동해온 국제무기상이 유럽의 한 휴양지로 이동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B 요원을 현지로 보냈다. 한국 내 러시아계 폭력조직과도 거래한다는 의혹을 받아 온 거물 무기상이었다. B 요원은 영국의 대외첩보기관인 MI6 요원들과 공조해 이 무기상을 추적 감시했다. 특히 이 무기상이 한국에서 사용하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전화를 변조해 사용하고 있음을 알아내고 첨단장비로 감청에도 성공해 이 무기상이 다른 무기상과 접촉하는 등의 행적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었다

첩보전의 국경이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는 만큼 정보요원들의 역량도 그에 걸맞게 진화하고 있다. 영화 ‘007 시리즈’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첨단무기까지는 아니지만 시대 변화와 기술 진보에 맞게 정보전 능력을 높여 왔다.

1970, 80년만 하더라도 ‘노동집약형’ 첩보활동이 대세를 이뤘다. 며칠간 계속되는 미행과 감시, 신분을 수시로 바꾸며 집요하게 추적하는 노력으로 대공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정보전의 시간적 공간적 경계가 무너지면서 요원들의 역량도 이에 맞춰 진일보했고 최근에는 다뤄야 할 무기체계, 격투술, 외국어 역량 등의 기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권총과 M-16 소총, 수류탄 등 기초개인화기만 다뤄도 됐지만 최근엔 대테러, 시가전 등의 상황에 대비해 훨씬 다양한 화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일부 현장요원은 청해부대 요원들이 올해 1월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에 사용했던 독일제 MP-5를 비롯해 벨기에산 P-90 등 근거리 총격전에 대비한 자동화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를 요구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투술도 태권도 합기도 같은 기초무술 외에 단검으로 순식간에 적을 제압하는 동남아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Kali Arnis)’처럼 수행 임무와 활동지역에 맞는 다양한 무술을 연마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2017.11.07 대한민국 역사는 이 '비밀 조직'과 함께 쓰였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수갑을 차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는 전 국가정보기관의 수장. /조선DB

 

지난 8월,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이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조직적인 여론 조작을 주도했다는 혐의다. 원 전 원장은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3년 첫 의혹이 불거진 이 사건, 일명 '국정원 댓글 사건'은 4년째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고 있다. 국가기관, 그것도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국정원'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력과 가까이 있으면서 '정보'를 손에 쥔 국정원은, 어쩌면 태생부터 논란거리가 잠재된 기관일지 모른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 국정원. 그들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으며 또 어떤 역사를 밟아왔을까. 그 비밀스러운 베일을 완전히 벗길 순 없지만, 지금의 국정원이 왜 논란이 되고 있는지 알기 위해 국정원에 한 걸음 다가가보기로 한다.

 

가볍게 보는 국정원 Q&A

▲2013년 국회 청문회장에 나온 국정원 직원들이 가림막 뒤에서 답변하고 있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이름도 성(姓)만 공개되었다. /조선DB

 

Q. 국정원에 흑색 요원·백색 요원이 있다?

해외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파견하는 국정원 직원들 중 일부는 '흑색(Black) 요원', 일부는 '백색(White) 요원'이라고 부른다. 흑색 요원은 자신의 신분과 직업을 완전히 숨기고 첩보 수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백색 요원은 파견되는 국가의 정보기관에 신분을 알리고 외교관 자격으로 파견되는 이들이다.

 

참고로 국정원 요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하면 국정원에 있는 비석에 '별'로 새겨진다. 비석의 이름은 '보국(保國)탑', 현재(2017년)까지 이곳에 새겨진 별은 모두 50여 개다. 사망한 요원일지라도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

 

Q. 국정원은 주소가 없다?

▲남산에 있던 옛 중정 건물. /조선DB

 

국정원 청사가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다는 건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한 지번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국정원법 제6조에 따르면, 국정원의 조직·소재지 및 정원은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는 남산에 위치했다. 혹독한 고문 수사로 악명 높았던 중정 6국이었다. 서울시는 최근 남산의 중정 6국 터에 어두운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실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남산을 떠나 현재의 내곡동 자리로 이전한 건 1996년이다.

 

Q. 국정원 직원은 '나 국정원 다녀요' 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은 신분을 공개해선 안 된다. 언론에 노출되는 국정원 직원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특별한 사유 없이 외부에 본인의 신분을 노출하고 다닐 경우 해임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공식적으로 신분이 노출되는 국정원 직원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정원장, 제 1·2·3 차장, 기획조정실장 정도다.

 

Q. 국정원 직원은 어떻게 채용될까?

▲2013년 '댓글 사건'으로 수사 받았던 국정원 여직원. /조선DB

 

국정원도 국가 기관인 만큼 7급·9급 공무원 공채를 모집하며, 여타의 공공기관처럼 서류·필기·면접 등의 전형을 거친다.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지원자 및 가까운 친척들에 대한 신원조회가 추가된다는 점이다. 국정원 직원의 신원조사에 대한 근거는 국정원직원법 제8조에 명시되어 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사돈에 팔촌까지 샅샅이 뒤진다', '연좌제가 적용된다' 등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너무 예쁘거나 잘생긴 등 외모가 눈에 띄는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다는 설도 있으나 역시 설에 불과하다.

 

일단 채용되고 나면 일정 기간 동안 강도 높은 신입 연수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연수를 마친 직원들은 취임에 앞서 국정원장 앞에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해야 한다. "본인은 국가 안전보장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하여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한다"

 

Q. 다른 나라에도 국정원이 있다?

주요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국정원에 준하는 정보기관을 갖추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국의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중앙정보국)와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연방수사국)이다. 이 두 기관을 포함해 미국은 세부적으로 15개나 되는 정보기관을 운영한다. 영국의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비밀정보부),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 러시아의 FSB(Federal Security Bureau·러시아연방보안국) 등이 잘 알려진 세계의 정보기관들이다.

 

●국정원의 역사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

1961년 창설된 우리나라의 첫 정보기관이다. 같은 해 5·16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혁명 과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념을 가지고, 미국의 CIA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군사정부의 최고 의결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관련 안을 통과시켰고, 5월 20일 자로 창설됐다.

 

▲(좌) 김종필 초대 중정부장이 기자회견 하는 모습. (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중정 시찰. /국가기록원

 

초대 중앙정보부장에는 5·16군사정변의 주역인 김종필이 올랐으며, 육사 동기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꾸렸다. 김종필의 회고에 따르면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사무실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의 여관을 전전하며 일을 했다고 한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府訓)도 김종필이 만든 것이다. 김형욱·이후락·김재규·전두환 등이 역대 중정부장을 역임한 주요 인물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중정은 중앙정보부법에 따라 범죄수사는 물론, 군과 정부 각 부서의 정보·수사활동 감독, 타기관 소속 직원을 지휘·감독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검찰에 우선하는 수사권을 법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김종필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중정 창설 초기에만 '수사권'을 주려고 했다고 하나, 조직이 커지며 그 권한은 더욱 막강해졌다. 중정에 의한 반정부세력의 제거, 대공업무는 이 시기 싹을 틔우기 시작해, 후신(後身)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때부터 국민들에게 '남산'(중정의 위치를 빗대 우회적으로 이르는 용어)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1979년) 이후 중정의 권력은 크게 약화됐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건을 일으킨 주범인 김재규가 당시 중정부장이었고, 사건 이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으로 있던 육군 보안사령부(現 국군 기무사령부)로부터 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전두환이 중정을 통제함과 동시에 최고의 권력자로 등극했다. 전두환은 정권을 잡은 뒤 1980년 12월 31일 자로 중앙정보부의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로 바꾸고 재편했다.

 

▲(좌)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안기부 임원들과 다과회를 하는 모습. (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안기부의 보고를 받는 모습. /국가기록원·조선DB

 

하지만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전두환 정부의 안기부는 중정이 하던 반(反)민주적인 업무를 그대로 답습했다. 오히려 공안(국가보안법 관련 업무를 일컬음) 업무는 더욱 강화되어, 각종 정치공작 및 간첩조작 사건을 주도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이때 안기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의문사 사건 중 아직 뚜렷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남아있다.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 정부에서도 안기부의 인권 탄압은 계속됐다.

 

군사정부 시대를 마감하고 '문민(文民)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안기부 개혁에 나선다. '안기부'라는 명칭과 부훈은 손보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중정 시절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이 거의 40년간 쓰였다. 안기부 개혁의 주요 내용은 1993년 국가보안법 일부(찬양·고무·불고지죄 등)에 대한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고  '정치관여 금지'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하지만 폐지됐던 안기부의 대공 수사권은 '간첩 잡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꼭 3년 뒤인 1996년 되살아난다. 해체됐다던 안기부의 도청팀 '미림'도 1994년 재결성되었음이 훗날 밝혀지면서,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부의 안기부 개혁은 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한편, 안기부에서 조사하거나 밝힌 주요 사건으로는 북한의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파사건(1983),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 검거(1987), 남한조선노동당 간첩사건(1992) 등이 있다.

 

"정보는 국력이다"
"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
소리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안기부는 1999년 김대중 정부에 의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으로 개칭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정원 명칭 변경과 동시에 원훈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꿨다. 대공 업무에만 치우쳐 있던 기관의 업무를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국정원 출범 이후 원훈은 두 번 더 바뀌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2008~2016.06)과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2016.06~)가 각각 그것이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새 원훈석 제막식을 갖고 있다. /조선DB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정원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많이 희석됐다. 그러나 여전히 권력과 밀접한 비밀스러운 조직이란 이미지는 벗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이 관여한 주요 사건은 일심회 간첩사건 관련자 검거(2006), 황장엽 암살기도 간첩 검거(2010), 'RO' 사건 관련자 검거(2013) 등이 있다. 하지만 민간인 불법 사찰, 선거개입 및 여론조작 등 불미스러운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적지 않다.

 

현재는 문재인 정부에 의해 출범한 국정원 개혁발전위(국정원 개혁위)가 지난 정부의 국정원에 얽힌 사건들의 의혹을 밝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 역시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국정원,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국번없이 111_ 당신이 한번쯤 접했을 광고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합니다. 국가정보원은~"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위 문장을 읽는 순간 왠지 익숙한 한 여성의 목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바로 국정원에서 2009년부터 운영하는 '111 콜센터' 안내방송이다. 111 콜센터에서는 365일 24시간, 전화와 문자(#0111) 등을 통해 제보를 받고 있다. 이 111 콜센터의 홍보영상과 방송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국정원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대강 알 수 있다.

 

공식적인 국정원의 업무

▷대공(對共) 수사

공산주의에 맞서는 업무다. 한마디로 간첩·이적사범을 잡는 일. '국정원' 하면 떠오르는 핵심 업무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논란이 되는 권한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이 가진 대공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대북정보 수집 북한의 도발징후를 포착하고 북한 대내외 정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 가령,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셋째 아이를 출산했다거나 김정은의 대외활동이 대폭 줄었다는 등의 정보가 국정원을 통해 전해진다.

 

▷산업스파이 색출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국내 기술을 해외로 불법 유출하려는 행위를 막고, 이를 행하는 사람을 적발하는 업무.

 

▷대테러 국내외 테러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예방하기 위한 업무. 국내에서 주요 국제행사가 열릴 때도 테러 예방 활동을 지원한다.

 

▷사이버 안보 해킹 등 국가·공공기관의 사이버 공간에 행해지는 공격을 예방·탐지하는 업무.

 

▷국제범죄 마약, 위조지폐, 여권 위·변조, 밀입국 등 국가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를 적발하는 업무.

 

▷국가보안 국가기밀, 국가보안시설, 선박·항공기 등 중요장비에 대한 보호활동.

 

▷북한이탈주민 보호 해외와 국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신원조회 업무. 북한이탈주민은 국내 입국 후 약 3개월간 국정원으로부터 보호와 정착을 위한 교육을 받는다.

 

영화·드라마의 단골 소재

국정원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인 만큼 영화나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한다. 국정원 직원들의 모습이나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참고삼아 봐도 좋다. 단, '영화는 영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명제는 잊지 말도록 하자.

 

▲영화 스틸컷·방송 캡처.

 

-영화 '쉬리' (1999, 감독 강제규) 국정원이 안기부던 시절에 나온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다. 국가의 일급 비밀정보기관인 OP라는 곳이 영화의 배경이며 한석규가 OP의 비밀요원이다. 액체폭탄 CTX를 갈취하려 북한에서 침투한 요원들과의 대결을 다루는 영화로,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했다.

 

-영화 '태풍' (2005, 감독 곽경택) 사상 최초로 실제 국정원의 외부 전경과 내부의 모습이 일부 등장하는 영화다. 당시 국정원은 이미지 제고 의도로 영화 촬영을 허용했다. 한반도를 날려버리겠다는 의도를 가진 북한 출신의 해적(장동건)과 비밀리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이정재)이 대립각을 이룬다.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2007) 국정원에서 제작을 일부 후원한 국정원 소재의 드라마다. 주인공 이준기는 타고난 직감과 운동능력으로 국정원 비밀요원이 되지만 암살 임무에 실패하고 보직 해임되는 인물이다. 이준기 부모님의 죽음과 해외 범죄조직 간에 얽힌 이야기가 중심이다.

 

-드라마 '아이리스' (2009) 국정원을 연상시키는 국가안전국(NSS)이 배경이다. 김태희·이병헌·정준호 등 거물급 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들이 NSS의 첩보 요원으로 나오는데, 북한과의 제2차 한국전쟁을 막는 것이 임무다.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후속편인 '아이리스2'가 제작되었다.

 

-영화 '7급 공무원' (2009, 감독 신태라) 국정원 직원은 부모·배우자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속인다고 했던가. 국정원 비밀요원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두 남녀(김하늘·강지환)가 연인이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베를린' (2013, 감독 류승완)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국정원 요원 한석규와 북한의 공작원 하정우 간에 펼쳐지는 추격전을 다룬 영화다. 무기 밀매가 주요한 소재다.

 

국정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모습이 달라졌다. 하지만 늘 불미스러운 사건과 얽힌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군사정권 시대에 온갖 악명을 얻었던 국정원은 이제 '댓글이나 쓰는 부대'라는 오명까지 얻게 됐다.

국정원이 정말 그들이 홍보하는 것처럼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하고, 또 그런 사명감을 가진 청년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또 한번 '국정원 개혁'이라는 과업을 실현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막중해 보인다.

조선일보

 

11월 호 신동아

■국책연구기관인 듯, 아닌 듯…

국정원 국가안보전략硏 난맥상

● 국정원 자금으로 운영… ‘알음알음’ 취업 일쑤
● ‘2+1’ ‘진짜 박사’ ‘NK’ 일해… 법적 지위는 사단법인
● 계급 정년 걸린 국정원 직원 ‘일자리 통로’ 비판 들어
● “제대로 된 ‘정보기관 싱크탱크’로 개혁해야”

▲여기, 국책연구기관인 듯도, 아닌 듯도 한 연구기관이 있다. 이 기관에선 조직을 ‘전략연’으로 약칭하는데, 국가정보원에서는 ‘안전연’이라고 약칭하곤 한다. 국민에겐 전략연도 안전연도 귀에 익숙하지 않다. 다른 국책연구기관과 달리 연구위원 규모와 명단도 공개하지 않는다. 언론이 ‘국정원 산하기관’이라고 적곤 하나 그것 또한 적확하지 않은 표현이다. 법적 지위는 민법상 ‘사단법인’.  

 

태영호 前공사도 전략硏 소속

‘투 플러스 원(2+1)’ ‘진짜 박사’ ‘NK’가 일한다, 아니 내부에서 연구위원을 그렇게 칭하곤 한다. 공채로 뽑은 연구위원은 지금껏 단 3명에 그친다. 정치권에서 힘을 써주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연구위원으로 취업한 사례가 많다. NK, 진짜 박사, 투 플러스 원 불문 계약직 신분.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NK들’은 북한 출신 연구위원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도 이곳에 적을 뒀다. 투 플러스 원은 국정원 퇴직자로 ‘낙하산’이란 비판도 듣는다. ‘진짜 박사’는 국정원에서 내려온 연구위원 중에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있기에 구분하기 편하라고 쓰는 말이다. 진짜 박사는 ‘전문 박사’로 불리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곳이 국책연구기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국정원이 운영 자금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얘기다. 사단법인이기에 외부 감시도 미흡하다. 중앙부처 산하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도 싱크탱크를 운영할 필요가 있죠. 제대로 운영해 국가에 기여하면 좋은 일이고요. 그런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는 ‘후루꾸(fluke의 일본식 발음) 연구위원’이 많아요. 북한 출신 연구위원은 성격이 독특하니 논외로 합시다. 힘 있는 사람이 꽂아준 이들 중 실력이 모자란 분들과 국정원 출신 그러니까 ‘투 플러스 원’이 문제예요. 국정원에서 보직을 못 받거나 계급 정년으로 퇴직한 이들을 배려 차원에서 그곳에서 일하게 합니다. 연차가 높다 보니 연봉도 높고, 방도 좋은 곳을 배정받죠. 연구요? 그 사람들이 제대로 하겠어요.”

 

“정권 바뀔 때마다 外風”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하 전략연)은 1977년 9월 창설된 국제문제조사연구소가 모태다. 2007년 1월 국가안보정책연구소와 통일정책연구소 등 3개 연구소를 통합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9월 1일 취임한 조동호 신임 원장 명의로 전략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동안 저희 연구원은 외교·안보, 경제정책, 대북전략·통일정책 등 제반 분야에 걸쳐 심도 있는 연구 결과와 정책 대안을 제시해왔습니다. 나아가 21세기 안보환경 변화에 부응해 테러·국제범죄, 산업·사이버 보안 등 신(新)안보 분야로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선진국 진입을 선도하기 위한 미래전략을 개발해오고 있습니다.” 

 

외부의 시각은 이 같은 설명과 달리 운영 과정의 투명성과 연구 성과 등에서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투 플러스 원은 국정원 출신 연구위원의 경우 2년 계약 후 1년을 연장하는 계약을 맺고 취업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정원에서 퇴직한 후 10년 안팎 이곳에서 활동하다 은퇴한 이도 있다. 진짜 박사와 NK는 계약 기간을 1~5년으로 차등 적용한다. 고과가 턱없이 나쁘지 않으면 60세까지 근무한다.  

 

북한 외교관 출신만 4명이 이곳에 적을 둔 것으로 알려진다. 고영환(부원장) 태영호(자문연구위원) 씨, 비공개 인사로 K, H 씨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잠비아 주재 북한 외교관 출신인 현성일(전 수석연구위원) 씨도 오랫동안 일했다. 이 밖에도 설정식(양강도 청년동맹 제1비서), 김광진(해외주재 북한 무역 관료) 씨 등 10명 넘는 북한 관료 출신 탈북민이 이곳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국정원이 전략연을 탈북 인사들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전략연에서 일하면 한국 사회에서 생계가 보장되는 터라 이곳에 들어가지 못한 망명 인사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연구위원들이 외부 기고나 인터뷰 등을 할 때는 허가를 득해야 한다. 언로가 자유롭기만 한 게 아니라 막힌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일부 연구위원이 익명으로 인터뷰하거나 가명으로 외부 기고문을 쓰는 편법으로 소신을 외부에 밝힌 일도 있다. 계약직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도 겪는다.  

 

올해 8월 국정원은 1급 국·실장 30여 명 전원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정보 분석을 총괄하는 요직에 김○○ 씨, 북한정보 분석을 총괄하는 요직에 장○○ 씨가 임명됐다. 외부 인사가 핵심 보직 책임자를 맡은 것은 국정원 역사상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인 위해 휴직 규정 바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홈페이지. 

 

김○○ 국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장○○ 국장도 노무현 정부에서 NSC 행정관으로 일했다. 북한, 해외 정보를 총괄하는 두 사람은 ‘이종석 사람’으로 통한다. 서훈 국정원장이 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일하던 때 함께 근무한 인연도 있다.  

 

김 국장의 직전 근무처가 전략연이다. 그는 이종석 전 장관 도움으로 전략연에 자리를 얻었다. 전략연 연구위원이 국정원 보직 국장으로 이동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김 국장은 휴직을 하고 국정원으로 옮겼다. 김 국장 임명에 맞춰 전략연은 휴직 관련 내부 규정을 고쳤다. 특정인을 위해 제도를 바꿨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원 핵심에서 일한 인사는 이렇게 촌평했다. 

 

“사단법인 계약직 직원이 휴직하고 국정원에 근무하는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중 취업으로 볼 여지도 있어요. 사표 내고 가는 게 맞습니다. 민간기업에서 공무원으로 갈 때는 사표를 내잖아요.”  

 

휴직 규정 개정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는 게 전략연 설명이다. 

 

“파견 형태가 아니라 무급 휴직이다. 전략연에서 보수를 지급하는 게 아니기에 이중 취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정인과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기존 휴직 관련 규정이 여타 연구기관과 비교할 때 불비된 것이 많아 타 연구기관 규정을 참고해 기존 휴직 조건을 확대·개선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휴직 관련 규정 개정으로 혜택을 입은 김 국장이 박근혜 정부에선 수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시곗바늘을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로 되돌려보자.

 

“우리와 안 맞는 사람 내보내라”

2013년 5월 남재준 국정원장이 전략연 구조조정을 지시했다. 연구위원 일부가 “박근혜 정부와 철학이 다르면 나가라는 거냐”고 맞섰으며, 국정원은 “안보 연구 특화를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권 교체 때마다 국정원은 몸살을 앓는다. 인적 쇄신을 명분 삼은 물갈이가 거칠게 이뤄진다. 인사에서 소외된 이들이 야권에 줄을 대는가 하면 정권의 시녀를 자임해 잘나가는 이도 나온다. 

 

‘우리와 맞지 않는 사람’은 당시 야권 성향 인사인 것으로 해석됐고 그중에는 김 국장도 포함됐다. 당시 국정원은 ‘성향이 다르다고 쫓아내는 게 온당한가’라는 ‘신동아’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와 맞지 않는 사람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이들을 말한 것이다. 실무 부서(국정원)에서 ‘연구소는 도대체 뭐 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과거에 ‘아는 사람’, 이런 식으로 채용되다 보니 연구소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이다.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여선 안 된다.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사람은 재계약하지 않는 방향으로 구조조정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김 국장도 구조조정 대상자로 거론됐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 추진한 ‘한반도 평화체제’ 전문가인 A 박사와 언론에 보안 사항을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위반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B 박사도 구조조정 대상자로 입길에 올랐다. 세 사람은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들이다. 

 

연구위원들이 반발하자 “법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마라. 법적 요건에 맞으면 내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김 국장과 A 박사, B 박사는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당시 국정원 관계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잘못을 저지른 적 있는 일부 박사들이 자신들을 내보내려는 줄 알고 사실과 다른 얘기(박근혜 정부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내보내려 한다)를 퍼뜨린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정치권과 연결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야당하고는 더욱 그렇다. 그 사람들의 근무 자세와 관련한 문제인데,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는 없다. 소송하면 우리가 진다.” 

 

“전략硏 적폐도 개선해야”

국정원 자금 지원으로 운영되는 법적 지위가 불투명한 연구소라고 해서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특정인에게 해직을 강권하는 것은 불법이다. 국정원은 당시 신동아에 “실력에 문제가 있다든지, 문제를 일으킨 게 누적됐다든지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도 “구조조정에는 정치적 고려가 일절 포함돼 있지 않다. 이종석 전 장관과 가까운 연구위원과는 최근 재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공채 출신 연구위원이 3명밖에 없는 데다 연구위원들이 계약직 신분이다 보니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나 전략연 관계자는 “계약직이어서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연구 실적에 따라 1~5년 계약을 연장한다. 형편없는 등급을 연속으로 받지 않는 한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된다”고 다르게 설명했다.   국정원 핵심에서 일한 전직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자금 지원을 받는 대신 연구 결과를 제공하는 형태로 전략연이 운영됩니다. 공채로 연구위원을 선발해 제대로 된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합니다. 계급 정년에 걸려 퇴직한 이들을 더는 받아선 안 돼요.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 사람들은 연장해주지 말아야죠. 국립외교원 교수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 사람들은 외교부에 소속된 공무원이거든요. 그게 정상이죠. 국정원에 소속시키기는 어려우니 외곽 조직으로 두는 게 필요하더라도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면 안 되죠. 태영호 전 공사도 적만 두고 출근은 안 해요.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도 별다른 징계 없이 묻혀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정원 개혁이 한창인데 이번 기회에 전략연도 올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그간의 적폐를 개선해야죠.” 

 

연구원 운영과 관련한 신동아의 질의에 전략연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략연은 국정원 산하 기관인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우리는 산하 기관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정책 제언, 자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산하가 아닌데도 국정원 자금을 지원받는 근거는 뭔가. 

“국정원의 실질적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므로 운영 자금 일부를 지원받는다. 북한·통일· 안보 관련 정책 제안 및 전략 보고서를 수시로 생산해 국정원을 지원함으로써 국가 안보정책 수립에 직접 기여할 뿐 아니라 엘리트 탈북 연구원을 중심으로 정부 유관 부처에 자문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정보 분석 및 판단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다. 전문 박사, 엘리트 탈북 연구원, 공직(국정원) 출신의 3박자가 어우러져 연구 활동을 수행함으로써 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전략硏 “3박자 아우러진 기관”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하는 까닭은 뭔가.  “국정원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해 객관적 시각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다. 

▼연구원 명단과 규모 등을 공개하지 않는 까닭은. 

“다수 엘리트 탈북 연구원이 근무하기에 신변보호 차원에서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일반 박사 연구원과 이름을 공개해도 무방한 탈북 연구원은 대외활동 시 전략연 소속임을 밝힌다.  

▼국정원 퇴직자에게 낙하산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지적이 있다.
“낙하산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데 활용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 퇴직자들은 능력 및 전공 분야별로 엄선된 전문가로서 현장 경험과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연구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국정원 퇴직자들이 나이가 많은데다 고참이다 보니 연봉도 상대적으로 많고 연구실도 좋은 곳을 배정받는다고 한다. 

“국정원 퇴직자들도 기존 연구원들과 동일한 조건하에 관련 규정에 따라 근무하고 있다.

▼국정원 국장으로 이동한 김○○ 전 연구위원을 위해 휴직 관련 내부 규정을 고쳤다고 한다
“특정인과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불비된 기존 휴직 조건을 확대, 개선한 것이다. 그동안 휴직 관련 규정이 미흡했다. 국내외 국가안보 및 통일분야 국기기관 및 유관기관 채용, 8세 이하 자녀의 양육 및 임신 출산 관련 휴직, 사고 질병으로 장기간 요양이 필요한 조부모 및 부모 간호 등을 추가했으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해외 유학, 형사 사건 기소로 인한 휴직 조건을 삭제하는 등 관련 규정을 보완, 내실화한 것이다.

김 국장의 휴직은 ‘국내외 국가안보 및 통일분야 국기기관 및 유관기관 채용’에 해당한다.

 

“다각적 변화·발전 모색 중”

▼북한 출신 인사를 연구위원으로 선발할 때 기준은 뭔가.  
“구체적 기준을 밝히긴 곤란하나 북한 거주 시 근무 분야와 전문성 등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으로 적용한다.”   ▼태영호 전 공사는 전략연에 출근하나.   “태 전 공사는 자문연구위원이다. 출근은 거의 안 하지만 연구에 실질적 도움을 많이 준다.
이화여대 교수인 조 신임 원장 취임 후 전략연은 다각적 변화와 발전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조동호 원장은 특정 정파 견해를 대변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진보·보수)에 편향되지 않은 균형감 있고, 객관적인 학술연구 활동을 통해 명실 공히 국가를 위한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해나가고 있다”

전략연이 ‘명실 공히 국가를 위한 싱크탱크’로 거듭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송홍근 기자

 

11-14 무지한 경찰의 국정원 정보기능 흡수

경찰청이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파트 흡수를 위해 조직개편 및 전문인력 양성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이 “대북 정보 활동과 방첩 분야 활동을 강화하고, 테러위협 대응 등 국민 안전과 국익 보호에 만전을 기하되 국내 정보는 수집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정보의 기본적인 개념과 현행법 체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는 정보의 활용 목적 또는 사용자가 개인·집단·정부의 일부 부처 또는 국가인지가 분명하지 않고, 이를 모두 포괄하는 일반적인 정보와 달리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되며 그 사용자가 주로 국가의 최고정책결정권자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국가정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잠재적 적국의 전략적 기습을 피할 수 있도록 조기 경보하는 데 있다. 국가정보를 다루는 기관을 국가정보기관이라고 하며, 국내에서는 국정원이 해당한다. 나머지 국방부 정보본부, 국군기무사령부, 국군정보사령부, 경찰청 정보국 및 외사·보안국 등은 통상 부문정보기관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정보·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고, 여타 부문정보기관의 정보 관련 예산에 대한 편성 및 감사 권한을 수행하기도 한다.

국정원법에는 국정원의 업무 범위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라고 규정돼 있다. 여기서 국정원이 “국내정보를 수집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그동안 보안정보의 범위를 확대 해석해 국내 정치 및 주요 인사 신원 관련 사항 등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던 관행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경찰법에는 국가경찰의 임무로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경찰이 공공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정보 활동에 치중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이다

경찰청이 국정원 개혁에 따른 정보공백 방지를 명분으로 국내정보 업무를 흡수하겠다는 것은 ‘정치정보 수집’과 일제강점기 당시 경찰 고등계에서 하던 ‘요인 사찰’을 부활하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활동의 권한과 영역까지 확대하겠다는 조직이기주의적 발상으로 비칠 수 있다.
채성준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겸임교수 

 

11.30 황교안, "국정원, 일심회 간첩-왕재산-이석기 내란 사건 등 많은 성과... 대공수사기능 폐지는 불가능"

"나라지키는 일에 경솔한 판단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대공수사권 등 모든 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이전 또는 폐지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국정원이 앞으로 간첩사건 등 대공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국정원이 수집·작성·배포하는 정보의 범위에서 국내보안, 대공, 대정부(對政府) 전복 관련 정보를 제외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공수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지, 한다면 누가 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이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은 1961년 중앙정보부로 출발하여 1981년에는 국가안전 기획부, 1999년에는 현재의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조직이나 임무도 바뀐 바가 있지만, 대공수사를 포기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1999년 “국민의 정부” 하에서 마련된 현행 국가정보원법에도 대공수사 기능을 존치시키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행 국가정보원 하에서도 “민족민주혁명당 간첩사건”, “일심회 간첩사건”, “왕재산 사건”, “황장엽 암살기도 간첩사건”, “이석기 내란사건” 등 많은 대공수사 성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대공수사가 무엇입니까? 나라를 지키는 수사 아닙니까? 대안도 없이 대공수사를 포기하면 누가 간첩을 잡습니까? 그런데 별다른 대안도 없이 갑자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 하겠다고 하는 개정안이 제출되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정보기관들에는 그 직무특성상 공()과 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보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에 대하여는 나라를 더 튼튼히 지키도록 격려하고, ()는 철저히 가려내어 환부를 도려내면 될 일입니다. 결국 대공수사기능 자체를 없애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하기도 어렵겠지만, 나라를 지키는 일에 경솔한 판단을 해서는 안됩니다.

 

대공 안보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실재 하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국민 모두의 힘을 모아 지켜나가야 할 가치입니다. 페친 여러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날씨가 몹시 추워졌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2.05 전 세계와 거꾸로 가는 정보기관 개편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는 北 위협에 무장해제하는 것

외국은 정보기관 통합·확대…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어

 

1980년대 말부터 일본 외무성에 북한의 일본인 납치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보다 10년 전, 일본 경찰청엔 전국에서 의문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찰은 흔한 실종 사건으로 보았고 외무성은 한국 정보 당국이 일·북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흘리는 거짓 정보라고 여겼다. 치안과 대공 정보를 통합할 당국자가 있었다면 일본은 10년 이상 일찍 북한에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해 더 많은 생존자를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반성에서 일본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정보기관의 통합·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시청 공안부, 외무성 국제정보국, 방위성 정보본부, 법무성 공안조사청으로 흩어진 조직을 통솔하는 정보기관을 만들어 국가 안보 총괄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직결시키자는 것이다. 2013년 NSC를 신설했고 지금은 각 조직을 연결하는 기존 내각조사실의 규모를 확대하고 권한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납치, 핵무기, 미사일 등 북한의 위협이 일본을 이렇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9일 대공 수사권 폐지를 공식화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건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 공약, 2013년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혁추진위원회가 대공 수사권을 포함한 수사 기능을 경찰·검찰 등 다른 수사기관으로 전면 이관하고 '통일해외정보원'으로 이름을 변경하자고 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 정보기관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최근의 각국 정보기관들은 정보의 수집·분석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곳곳에 산재한 정보 수사 기능을 통합하는 추세다. 프랑스는 2008년 국내 정보기관(DST)과 경찰정보국(RC)을 프랑스 정보부(DCRI)로 통합했다. 또한 이스라엘 신베스(GSS), 러시아 정보부(FSB), 중국 안전부(MSS) 등 정보기관들은 모두 방첩(防諜) 수사권을 갖고 있다. 하물며 북한의 체제 파괴 위협에 맞서 싸우는 우리 처지에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이석기류(類)의 국가 전복 공작을 간과하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정원이 이런 추세에 역행해 수사권을 폐지하고 분리할 경우 총리실, 법무부, 검찰·경찰 등으로 이관하든가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역량과 시간이 소모된다. 간첩망 검거는 수사기관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필자는 카이로 공관 근무 때 무하마드 깐수 간첩 행적 채증에 동원돼 그가 유학생으로 신분 세탁했던 카이로대학의 1950년대 말 학적부를 이집트 보안총국(SS) 협조로 찾아낸 적이 있다. 또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가 검거될 당시 중동에 주재하는 국정원 주재관들은 항공기 탑승자 명단 확보, 경유국 기관 협조, 독극물 확보 등을 위해 바레인에 총동원됐다.

 

갈수록 지능화, 과학화, 첨단화하는 북한의 대남사업부에 대응하려면 국내외 수집망과 각종 통신망, 인터넷, 과학 장비, 대북 공작 휴민트망의 종합적 협조 지원이 절대적이다. 이를 갖춘 기관은 국정원뿐이다. 수사 기능만 있는 새로운 대공 수사기관이 특정 간첩의 해외 물증을 찾는다고 가정할 경우 해외 공관이나 국정원의 협조를 구해야 하겠지만 이 경우 기관 간 협조나 보안이 유지될지도 우려된다.

 

최근 북한의 대남 간첩망은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원격 조종되고 있다. 사이버, 인터넷망을 통해 첨단 침투 활동을 한다. 북한이 이를 통해 보안 시설 해킹, 금융 전산망 교란, 정치권 침투, 국방 전산망 침투, 사이버 테러 등 다양한 형태의 도발을 수시로 하는 상황에서 대공 수사 활동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 보호를 위한 필수 사안이다. 통치자가 정권 안보에 국정원을 이용했다가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국정원은 이런 과오를 인정하고 혁신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국정원의 일부 일탈을 물어 성급하게 대공 수사권을 폐지·이관한다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송봉선 양지회장

 

■국정원 슈퍼컴퓨터 메인서버에 있던 비밀문건 입수

- 박근혜 전 대통령이 2년 내 흡수통일을 자신한 이유

- 2016 4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후 10월까지 6개월간 태영호 포함 11명의 핵심 계층 도미노 망

 

중국 浙江성 寧波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지배인 허강일씨와 여종업원 12명이 2016년 4월 7일 한국에 들어온 직후 6개월간 한 달에 한 명꼴로 북한 엘리트층의 脫北 행렬이 도미노처럼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국정원 슈퍼컴퓨터의 ‘메인 서버’에서 잠자는 ‘고위층 탈북현황’ 비밀 문건을 입수, 분석한 결과다. 출신 성분 좋은 이들이 ‘류경식당 집단 탈북’ 후 탈북 러시에 가세했다는 소문이 실제 사실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출 직후 ‘평양 옥류관’ 설립자 손녀 탈북
⊙ 김책공대 출신의 북한 컴퓨터 천재, “노예처럼 살았다”며 귀순… 北의 IT 기술 파악하는 데 도움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김철성 3등 서기관 가족이 ‘금수저 출신’ 부인의 반대에도 망명한 이유
⊙ 김정은 비자금 담당하는 당 39호실 산하 경흥무역의 2등 서기관 “북한 엘리트 사이에는 김정은을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 실패하면 독약 앰풀 먹겠다고 다짐한 뒤 탈출한 駐中 북한 보건대표 일가족
⊙ “따뜻하게 맞아주겠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한마디에 흔들린 다수의 북한 엘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북한 류경식당에서 일하던 지배인 허강일씨와 여종업원 12명이 2016 4 7일 한국에 들어온 직후 6개월간 한 달에 한 명꼴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脫北) 행렬이 도미노처럼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국정원 슈퍼컴퓨터의 ‘메인 서버’에서 잠자는 ‘고위층 탈북현황’ 비밀 문건을 입수, 분석한 결과다. 출신 성분 좋은 이들이 ‘류경식당 집단 탈북’ 후 탈북 러시에 가세했다는 소문이 실제 사실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건을 보면 류경식당 근무자들의 집단 탈북 직후인 5월에는 캄보디아·중국 북한식당 종업원(3), 6월에는 중국 파견 북한 IT 요원과 동유럽 국가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3등 서기관 일가족, 7월에는 캄보디아 내 북한식당 여종업원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3등 서기관 일가족, 수학 영재가 탈북했다.

 

▲2016년 4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후 10월까지 6개월간 태영호 포함 11명의 핵심 계층이 도미노 망명한 것으로 《월간조선》이 입수한 국정원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사진=통일부 제공

 

8월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이후 최고위급 망명 인사로 꼽히는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쿠웨이트 건설근로자, 9월에는 인민대학습당(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와 노동당 과학교육부 소속 간부, 10월에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경흥지도국 공관원(2등 서기관) 가족이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북한 붕괴’ 가능성을 크게 봤다. 2~3년 내 ‘흡수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2016 8월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최근 북한 주요 인사의 탈북과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북한 내 엘리트층의 탈북 러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통과(2016 12 9) 직전 끊겼다

 
  2016 5, ‘평양 옥류관’ 설립자 손녀 탈북

▲2016년 5월 탈북한 캄보디아 북한식당 여종업원 A씨는 본인이 ‘평양 옥류관’ 설립자 손녀라고 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을 먹는 모습이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캄보디아 북한식당 여종업원 A씨는 2016 5 6일 식당을 이탈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우리의 국정원) A씨를 추적했다. 자력 탈출이 어려워진 김씨는 국정원에 귀순 지원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안전하게 김씨를 탈출시켰다. A씨는 자신을 평양 옥류관 설립자의 손녀라고 주장했다. 옥류관은 북한 주민과 외국 관광객 등이 주로 찾는 음식점으로 1960년 평양 중구역 승리거리에 2층 규모로 설립됐다.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갔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이용했었다. 2018 4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옥류관 냉면이 만찬 테이블에 올랐다.
 
  북한은 옥류관 전용 제면기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 가져다 놓고 회담 당일 옥류관의 수석요리사가 통일각에서 면()을 뽑았다. 옥류관 냉면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만찬장인 평화의 집 3층으로 배달됐다. A씨는 국정원 ‘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일반 탈북민과 분리되어 조사를 받았다.
 
  참고로 캄보디아는 북한의 우방국이다. 캄보디아는 1950년대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져 있던 북한이 제3세계 국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겠다는 캄보디아의 원칙이 북한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캄보디아 시아누크 국왕과 북한 김일성 사이는 아주 특별한 형님·동생으로 발전했다. 시아누크 국왕은 1965년부터 해마다 북한을 방문했고 그가 쿠데타로 자리에서 물러나 있을 때나 권좌에 있을 때나 상관없이 김일성은 그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쿠데타로 실각했던 시아누크가 다시 왕권을 잡자 김일성은 평양시민 군중대회를 열어 경축했고, 경호원까지 보내 그의 신변을 보호했다. 시아누크 역시 보답하기 위해 직접 만든 노래를 김일성 생일 축하곡으로 바칠 정도로 양국 관계는 우호를 넘어 애틋하기까지 했다.
 
  두 나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북한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앙코르 유적지 옆에 문을 연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이다. 북한 당국이 공사비 1000만 달러 전액을 출자하고 북한의 만수대 창작사가 건립했다.
 
  단순히 건물만 올린 것이 아니라 기획과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북한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었다. 박물관에 대한 10년 운영권을 가지는 북한은 이곳을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사용한다. 만수대 창작사는 북한 미술 분야 최고의 집단창작 단체로 해외에서 동상이나 기념비, 건축물을 지어주면서 북한 당국에 외화를 벌어다 주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북한식당이 9개가 있었는데 2016 2월 이후 한·미의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2016 6월 중국 주재 북한 IT 요원의 귀순

▲김책공대 출신의 북한 컴퓨터 천재는 “노예처럼 살았다”며 귀순 이유를 밝혔다. 사진=조선DB

 

북한은 중학생 때부터 IT 요원(사이버 테러) 양성을 시작한다. 그 중심은 북한 전역에 있는 영재 교육기관인 ‘제1중학교’다. 김정일은 1985년 각 시·군 구역 단위마다 제1중학교를 신설했다. 이 중 최고는 ‘평양 제1중학교(우리의 중·고교 통합 과정)’라고 한다. 1중학교는 소학교(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데 평양 제1중학교의 경우 항일 투사나 6·25 참전 군 장성 자손, 중앙당과 중앙 부처 고위직 자녀, 평양시 갑부 자녀가 주로 다녀 ‘귀족 학교’로 꼽힌다. 하지만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전국에서 실력으로만 뽑히는 이들이 있는데, 주로 수학·과학 성적 우수자다.
 
  B씨는 후자였다. ‘금수저’는 아니지만, 성적 우수로 김책공대에 진학한 B씨는 졸업 후인 2015년 중국 베이징 소재 ‘조선○○○ 기술회사’에 파견됐다. 그의 임무는 애플의 아이폰용 앱 개발이었다. 그는 노예처럼 일했다. 예닐곱 명의 동료와 함께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하고 18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한 것이다. 하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 250달러(한화 약 28만원)가 고작이었다. B씨는 “장시간 노동으로 월 2000~5000달러를 벌었지만, 생활비 10% 정도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모두 상납했다”고 했다.
 
  B씨 같은 인력을 관리하는 조장은 현지 아파트와 컴퓨터 장비를 사비로 마련하고 조원들을 선발해 통제하는 전권을 갖고 있다. 조원들의 신분을 미국인이나 유럽인 등으로 위장해 온라인으로 하청 중개 사이트에 접속해 일감을 수주하도록 했다.
 
  실적 우수자에겐 현금을 지급하고 부진자는 북한으로 소환시키는 방식으로 경쟁을 유도했다. 당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조장은 조원이 벌어들인 돈에서 운영비 등을 뺀 뒤 평양에 현금으로 상납했다”며 “금융 제재 때문에 상납에는 외교행낭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당의 상납금 독촉이 심해지자 B씨는 귀순을 결심했다. 4 22일 사무실을 탈출해 4 28일 국정원에 귀순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해외 안가에서 그를 보호하다 6 10일 국내에 입국 조치했다. B씨는 “중국 단둥과 선양, 옌지 일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무대로 1500여 명의 자신과 같은 북한 정보기술(IT) 전문가가 활동하면서 외화벌이를 한다”고 증언했다. 이런 식의 외화벌이는 2010년경 인도에 체류하던 북한 연수생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고수익을 낸 것을 계기로 “IT 분야가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정부 당국은 이 해외 파견 IT 전문가들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다양한 해킹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국정원은 B씨를 통해 북한의 IT 기술 수준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 6월 말 캄보디아 북한식당 여종업원 비공개 국내 입국

▲캄보디아에는 북한식당이 9개가 있었는데 2016년 2월 이후 한·미의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캄보디아에 있던 북한식당의 간판 모습. 사진=조선DB

 

캄보디아 소재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D씨는 당시 임신 5개월이었지만 탈출을 결심한다. 식당 접대원으로 근무 시 지배인의 임금갈취, 인신모독에 불만을 품던 중 주방청소원으로 보직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D씨는 결핵 증세까지 있었지만 “한국에 온 것이 매우 기쁘다”며 시종 밝은 표정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D씨도 류경식당 여종업원, 옥류관 창업자의 손녀라고 주장한 A씨와 마찬가지로 평양시 거주 중상류층의 자녀였다.
 
  2016 6 30일 국내에 입국한 그녀는 북한 해외식당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이 성매매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 등의 폭로를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외식당의 영업난 시 중국 측 동업자의 투자금 회수 압박을 무마하기 위해 여종업원을 중국인 동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 대여하는 사례가 많음. (이 경우 중국인 사장의 요구로 성매매에 강제 동원되기도 함.)
 
  ○체육성 산하인 캄보디아 식당은 수익금 일부를 북한 축구대표팀 운영경비와 훈련경비로 사용하고 있음.
 
  D씨는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D씨는 “임수경 의원이 2014 12월경 캄보디아에 있는 우리 식당에 방문했을 때 종업원들이 ‘평양에서 유명하시며 존경한다’고 환영했으나 차갑게 행동했다”며 “종업원 사이에서 ‘변질됐다’는 평이 나왔다”고 전했다.
 
  임 전 의원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비밀리에 방북한 인물. 임 전 의원은 2012 6월 탈북 대학생에게 “근본도, 개념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들어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개겨?”라고 폭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당시 폭언으로 종북이란 융단 폭격을 맞은 것이 2014년 캄보디아 북한식당 방문 시 차갑게 행동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김철성 3등 서기관

2016 7 2일 김철성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3등 서기관이 우리 쪽에 가족 동반 귀순 의사를 표명했다. 상납금 납부 등 평양 지시를 성실히 이행했음에도 파견 4년 만에 1주 내 무조건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고, 신변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부인은 귀순에 반대했다.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장인을 비롯하여 동서, 처남이 고위층이었다.
 
  김철성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부인을 설득했다. 김 서기관의 아들은 희귀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 서기관 일가족은 7 5일 국내로 입국했다.  
 

북한 수학 영재 탈출

 2016 7 28일 홍콩 《명보(明報)》는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홍콩 과학기술대학에서 열린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했던 18세 북한 남학생이 일주일 전 북한 대표단을 이탈해 한국총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는 수학올림피아드 참가자”라며 “이 학생은 15일 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뒤 16일 밤과 17일 아침 사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인솔 교사 2명과 나머지 학생 5명 등 북한 대표단은 19일 홍콩을 떠났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내 언론의 이 남학생 관련 보도는 홍콩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그대로 전한 것뿐이다. 그의 탈북 과정과 본인의 심정까지 자세히 밝혀진 것은 이번 《월간조선》 보도가 처음이다.
 
  망명 신청을 한 남학생은 리정열 군이다. 영재 교육기관인 평양 제1중학교 출신인 리군은 2016 7 17일 올림피아드가 열렸던 홍콩 과학 기술 대학교(Hong Kong University of Technology and Technology) 기숙사에서 공항까지 무작정 택시를 타고 빠져나갔다. 북한 당국의 감시 때문에 스마트폰과 여권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공항에 가면 일단 한국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항에서 한국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발견한 리군은 그들에게 접근해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리군의 말을 들은 한국 항공사 직원은 한국영사관에 연락했고, 영사관 측은 리군에게 혼자 택시를 타고 홍콩 한국총영사관으로 올 것을 권했다. 외교관은 탈북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오래전부터 탈북을 준비한 덕분에 리군은 홍콩섬 애드미럴티의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을 찾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한다. 리군은 영사관에서 2개월을 보냈다. 9 24일 한국에 들어온 리군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안위를 우려 “기자회견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리군의 부친은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들을 위해 교사인 자신의 신분상의 불이익을 각오한 채 리군의 탈북을 독려했다. 리군이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가를 위한 출북(出北) 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자, 본인 뜻대로 하라며 미화 200달러를 손에 쥐여준 것이다.
 
  그는 귀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평소 KBS 방송 청취, 한국 소설 탐독을 통해 한국을 동경해 왔으며 김정은 등 북한 지도층이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 같아 반감을 갖고 있었다. 2013년부터 매년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으나 4회 연속 은메달만 획득, 해외유학(금메달 획득 시 가능)이 불가해 귀순을 결심했다. 부모님과 대한민국에 보답하고 싶다.
 
  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하는 북한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수학 영재가 탈북에 나선 것은 여느 탈북 사례와는 다르다는 게 당시 북한 전문가들의 시각이었다. 북한은 표면적으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면에서는 중국을 통해 리군의 북한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북한은 리군의 한국 망명으로 2017년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2016 8월 쿠웨이트 北 근로자 국내 입국 

 2016 8월 북한은 쿠웨이트 건설 현장으로 파견 보낸 노동자 수십 명이 급여 지급 문제로 집단 파업하자 이들을 강제 소환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월급 대신에 귀국하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돈표를 주겠다는 자국 건설사의 제안에 반발, 2015 12월 집단 파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쿠웨이트에 파견 나온 북한 근로자 E씨는 우리 공관에 귀순을 요청했다. 군의관(우리의 중위~대위) 출신이었던 E씨는 쿠웨이트 외곽 지역에 소재한 농장에서 주택보수 및 조경공사에 종사했다. 북한은 E씨가 우리 공관과 접촉하자, 쿠웨이트 경찰에 절도죄로 신고했다. 국내 송환이 지연된 이유였다. 8 31일 입국한 그의 귀순 동기는 과도한 상납금 등 임금 착취였다.
 
  “쿠웨이트 파견(2010 10) 이후 5년 넘게 해외 생활을 했는데 번 돈이 2000달러(한화 약 223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에 1800달러 정도를 버는데 식비, 김일성 기금 등 각종 명목으로 떼이고 실제로 받는 돈은 100달러에 불과했다.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꼈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는 일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동경해 오다 탈북을 결정했다.
 
  당시 E씨는 북한 인권 참상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 북한 체제의 모순과 잔학성, 해외 노동자 및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널리 알려 해방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수십 년을 북한 체제에 속아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2016 9월 인민대학습당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 일가족 귀순

인민대학습당은 북한 최대의 도서관이다.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을 떠올리면 된다. 인민대학습당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 F씨는 2016 8월 중앙당 검열 시 소환대상으로 지목됐다. 딸의 SNS 사용이 발각된 것이다. 딸은 F씨의 해외근무 기간 중 한국 관련 인터넷 기사를 가족들에게 전파했다. 9 8일 국내에 입국한 그는 해외 주재원들이 김정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폭로했다.
 
  “해외 주재원들은 ‘김정은 체제가 창피하다’고 생각해 중국인으로 행세할 정도다.
 
  E씨는 “해외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핵실험에 사용하는 데 정말 증오스럽다. 북한 노동자들의 대 러시아 송출 알선 업무도 담당했었는데, 자괴감이 상당했다”고 덧붙였다. 


2016 9월 駐中 북한 보건대표 일가족 탈북 

2016 9 28일 북한 당 과학교육부 주중 보건대표 H씨가 무사히 탈출, 국내로 들어왔다. H씨는 재일(在日) 북송(北送)교포 출신으로 평양의학대학 졸업 후 의학과학병원, 병원협회 베이징 지사 등에서 근무한 의료 전문가다. 그가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200일 전투’ 때문. 북한 김정은은 2016 5 28일 당, 국가, 경제, 무력기관 일꾼 연석회의에서 200일 전투(노동력 동원 운동)를 선포했다. 200일 전투 선포로 인해 상납금이 2배로 올랐다. 고민하던 H씨는 국정원 직원에게 귀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고는 독약 앰풀을 챙겼다.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조부 고향이 경북 예천이라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 귀순 실패 시 독약 앰풀을 삼키려고 했는데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감사하다. 향후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다.
 

2016 10 17일 망명한 주말레이시아 북한 공관원

▲김정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당 39호실 산하 경흥무역의 2등 서기관은 “북한 엘리트 사이에는 김정은을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TV조선 화면 캡처

 

주말레이시아 북한 공관원 I(2등 서기관)는 조선노동당 39호실 산하 경흥무역 지사원으로 2012 10월 현지에 부임했다. 39호실은 소속 기관을 통해 직접 비자금을 조성하고, 인민군 정찰총국과 무역성 등 당·정·군에서 보내오는 ‘상납금’과 ‘충성자금’을 관리하는 김정은의 개인 금고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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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이 만들어진 것은 1974.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후계자로 정해진 직후로, 그 이듬해인 1975년 조선노동당 창건 30년 기념행사를 치르기 위해 39호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는 행사에 참석한 당 간부와 각계 주민 대표 등 1만명에게 시계와 컬러TV를 선물했으며, 그 행사 자금 마련과 집행에 39호실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39호실 자금은 북한 공식 예산과는 별도 운영되며 오로지 최고 권력자의 통치자금으로만 사용됐고, 현재는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이 직접 자금 용도와 규모를 지정하고 승인하는 등 39호실 운영은 극비리에 이뤄지고 있다”면서 “서기실과 39호실의 소수 측근이 자금을 관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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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 산하엔 I씨가 몸담았던 경흥무역과 대성그룹, 대성경제연합체 등 100여 개의 무역회사, 은행, 금광 등이 있다. 39호실은 소속 기관을 손발 삼아 북한의 알짜배기 수출 상품인 금·은과 송이버섯 등 특산물을 판매한다. 달러 현찰을 직접 만지는 북한 내 호텔과 외화 상점들도 39호실 소속으로 알려졌다. 세계에 퍼져 있는 북한식당들이 벌어들이는 달러도 39호실로 흘러들어 간다.
 
 
그런 39호실은 김정일 통치 시절엔 해마다 5억 달러( 6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직접 조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등으로 대북 경제 제재가 심해지면서 현재 39호실 소속 기관들이 직접 벌어들이는 수입은 예전의 절반인 2~3억 달러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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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국정원에 밝힌 귀순 동기는 이렇다.
 
 
2016 9 3일 평양으로부터 일방적 철수 명령을 받고 고민하던 중 5차 핵실험 도발(9 9)을 보고 ‘더는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 탈북을 준비해 왔다. 김정은은 무모하고 사리 분별력이 없으며, 안하무인이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이는 모든 북한 엘리트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현지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는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더 강하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탈북 권유도 영향  

2016 4월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후 6개월간 당·정·군 핵심 계층 11명이 줄줄이 탈북했다. 이들의 탈북 이유는 ‘외화 상납금’ 압박 등도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탈북 권유도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주민들을 향해 탈북을 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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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5일 광복절 71주년 경축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북한 당국은 더는 주민들의 기본적 인권과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할 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 당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 속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모든 북한 주민 여러분’이라는 호칭을 쓰며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 경축사에 대해 그 한 달 전(2016 7)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이 없이 북한 간부, 주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란 메시지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개인적으로 본인의 탈북을 염두에 두신 환영사로 느껴져 경축사를 듣던 중 온 가족이 일어나 손뼉을 쳤다”고 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엘리트층은 ‘우리 대는 어쩔 수 없이 김가 통치하에서 살지만 자식들까지 이렇게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 10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탈북을 권유했다.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도발과 반인륜적 통치가 종식될 수 있도록 북한 주민 여러분에게 진실을 알리고, 여러분 모두 인간의 존엄을 존중받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북한 주민 여러분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을 테니,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은 10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과의 ‘통일 대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북한 정권은 가혹한 공포정치로 북한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놓고 맞이할 것이다. 굶주림과 폭압을 견디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이 급증하고 있고 북한 체제를 뒷받침하던 엘리트층과 군대마저 암울한 북한 현실에 절망해 이탈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길에는 북한 지역의 간부와 군인, 주민들도 예외일 수 없다. 탈북 주민들은 통일 과정과 통일 후의 남북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데,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정부는 탈북민 3만명 시대를 맞아 북한 이탈 주민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하고 적응해서 꿈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울 뿐”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라”는 권유는 북한 엘리트층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6 9월 탈북한 인민대학습당 산하 주러시아 무역지사 부대표 F씨는 “한국 정부의 류경식당 탈북 종업원들의 보호 조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을 보고 (탈북을) 최종 결심했다”고 했다. 주말레이시아 북한 공관원 I(2등 서기관)는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국군의 날 대북 메시지를 듣고, 북한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귀순 시 따뜻이 맞이하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귀순을 결정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권유에 북한 엘리트층이 흔들릴 것이라는 점을 북한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 10 4일 북한이 박 전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을 향해 탈북을 권유한 발언에 대해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감히 모독하면서 ‘탈북’을 선동하는 미친 나발질도 서슴지 않았다”고 펄쩍 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이날 ‘극악한 대결 망발을 늘어놓은 박근혜 역도의 교활한 속내를 까밝힌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당당한 핵보유국, 인민의 지상낙원으로 강성번영하는 우리 공화국의 위력에 전률한 산송장의 비명소리”라며 이같이 비난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대통령의 발언 뒤 곧바로 노동당 기관지를 통해 논평을 낸 것은 북한 주민의 동요를 고려한 내부용 조치로 보인다”며 “계속해서 다른 기관들이 비난 성명을 낼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 다음날인 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주제넘은 입방아질, 정신병자의 잠꼬대에 불과하다”고 했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김정은을 북한 정권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제까지의 대북 발언 중 가장 강력한 수위였다”며 “북한 입장에선 김정은 정권 붕괴에 대한 선전포고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안보팀 핵심 관계자는 “북한 내 엘리트층의 탈북 러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됨과 동시에 완전히 끊겼다”며 “이런 분위기가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북한은 붕괴했을 것이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월간조선 2018년 10월 호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2018.09.21 월간조선 09월 호 

■이병호를 체포해 “공화국으로 넘겨라”고 한 北, 이유는?

이병호의 증언 통해 재확인한 《월간조선》의 ‘김정은 암살 시도’ 특종 보도!

⊙ 北이 가장 경계한 국정원장 “이병호를 지체 없이 체포하여 공화국으로 넘겨야”
‌⊙ “기조실장이 靑과 유일한 소통 채널… 거기(특활비)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 “(특활비에 관한) 보고 당시 낌새 알아차렸다면 1원도 지원하지 않았을 것”
⊙ 국정원의 ‘정치 간여’ 여부에 대해 “나는 절대 그런 짓 안 해”
‌⊙ “역대 정보기관장은 대통령의 측근… 이병호는 유일하게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 없어”
‌⊙ 재임 중 北의 電子 전문가 탈북시켜… “北 떠나면서 모든 정보 가져와”
⊙ 옥중서 쇠약해진 심신, 부인은 가족력 때문에 ‘치매’ 걸릴까 걱정
‌⊙ 南과 北 ‘라스트 배틀’의 대한민국 지휘탑 이병호, 대한민국은 그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 중인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이 재임 시절 북한 내부의 김정은 저항집단을 지원하고,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전자(電子) 전문가를 탈북시켰다고 증언했다.
  
 
《월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항소이유서’ ‘항소이유보충서’ ‘보석청구의 이유보충서’엔 이병호 전 원장 재임 시절, 국정원이 수행했던 대북(對北) 공작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에서 이병호 전 원장은 “김정은 독재에 반발하는 기류가 생겼다. 국정원이 그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자생적인 저항집단에 돈을 주고 여건도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월간조선》 2018 6월호가 보도한 ‘박근혜 국정원, 김정은 암살하려는 북한 내 혁명조직 존재 파악하고 지원했다’는 제하의 기사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다. 당시 기사를 쓴 최우석 기자는 국가정보원이 “북한 내부에 혁명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들이 구체적인 김정은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특종 보도했었다. 이병호 전 원장은 또 “북한의 전자 전문가를 탈북시켰다. 북한을 떠나면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왔다”고도 했다. 이는 국내 언론엔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다.
  
 
문제가 된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의혹에 대해선 무죄를 주장했다. 이병호 전 원장은 “원래 기밀이 유지되는 정보 예산은 개인 적인 횡령이 아닌 한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보 예산을 법의 잣대로 재려고 하니까 국정원장인 내가 회계 관계 직원이라야 성립하는 국고 손실죄의 범인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특활비에 관한) 보고 당시 낌새를 알아차렸다면 1원도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원장은 특활비 상납의 중심엔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 이모씨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밖에 국정원의 ‘정치 간여’ 여부에 대해선 “나는 절대 그런 짓 안 한다”며 자신의 결백을 재차 강조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항소이유서’ ‘항소이유보충서’ ‘보석청구 이유보충
서’.

 

  “짐승 우리 같은 좁은 감방 안에서 울분이 가득 찬 채 있는 거죠. 이 안에 있으니까 시간이 영원(永遠)인 것 같아. 하루가 얼마나 긴지 모르겠어.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가정보원장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이병호(78)씨가 자신의 변호인에게 한 말이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지난 6 15 1심에서 국고(國庫) 손실 등의 혐의로 징역 3 6개월,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이병호 전 원장 측은 즉각 항소했고, 지난 8 3일 서울고법 형사3(부장판사 조영철)에 보석을 청구한 상태다.
  
 
최근 《월간조선》은 이병호 전 국정원장 변호인 측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보충서’ ‘보석청구의 이유보충서’를 입수했다. 이 전 원장의 분노가 서려 있는 듯한 이 말은 이병호 전 원장 변호인이 작성한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항소이유서’란 피고인 측이 확정되지 않은 법원의 판결에 대해 불복 신청하는 ‘항소’를 제기할 때, 양형부당(量刑不當) 등의 사유를 기재한 문서를 말한다. ‘항소이유보충서’는 항소이유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후 추가적으로 보충할 사안을 명기한 문서이다. ‘보석청구의 이유보충서’ 역시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한 뒤 보석 사유에 관한 추가적인 입장을 담은 것이다. 이 세 종류의 문건을 통해 사건을 대하는 피고인(이병호 전 국정원장)과 변호인의 인식과 시각, 그리고 재판에 임하는 피고 측의 논리를 엿볼 수 있다.
  
 
지난 7월과 8월 변호인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병호 전 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청취한 뒤 이 문건을 작성했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로 건너간 배경 ▲논란이 된 국정원 정치 개입설에 대한 반박 ▲북한 체제의 잔인성과 재임 중 벌인 대북(對北) 공작 등을 비교적 소상히 털어놨다. 때로는 감정에 북받치는 듯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월간조선》은 이를 정리해 독자들에게 최초로 공개한다.  
  
 

 “남과 북 양쪽에서 죄인인 존재”

2015년 3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
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항소이유보충서’는 이병호 전 원장을 “지금 북과 남 양쪽에서 죄인이 되어 극단적으로 쫓기는 노인이 있습니다”라며 “나이 팔십이 얼마 남지 않은 이병호라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지는 내용이다.
  
 
“얼마 전 북한의 김정은은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 관영매체를 총동원하여 성명을 냈습니다. 김정은은 ‘남()의 국가정보원장 이병호가 북에 침투시킨 수뇌부를 노린 테러범 일당을 체포해 진면목을 낱낱이 파헤쳤다’면서 ‘남측은 국정원장 이병호를 지체 없이 체포하여 우리 공화국으로 넘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은 “이병호라는 인물은 북한의 테러 납치의 대상이 됐다”며 “동시에 남쪽에서 이병호는 구속이 됐다. 그는 남과 북 양쪽에서 죄인인 존재가 됐다”고 기술했다. 이병호 전 원장을 ‘북으로 넘기라’는 이 비난 성명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해 5 12일 나온 것이다.
  
 
이처럼 이병호 전 원장은 북한 정권이 가장 경계하는 국정원장이었다. 2015 3 21, 그가 국정원장에 임명되자마자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명의로 ‘시작부터 독기를 뿜어대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조평통은 “괴뢰정보원 원장 이병호가 ‘일부 북 추종 세력이 우리 사회를 폭력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느니 ‘눈을 부릅뜨고 정세를 살피고 대책을 강구하겠다’느니 뭐니 하며 독기를 뿜어댔다”며 “이것은 남조선을 파쇼독재의 난무장으로 만들려는 노골적인 속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 닷새 전인 3 16일 이병호 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일부 북한 추종 세력의 행태가 우리 사회를 폭력적으로 위협하는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다”면서 “눈을 부릅뜨고 정세를 살피고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국정원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고 말했었다.    


  
대통령과 국정원은 ‘안보 공동체’… “(특활비 지원이) 불법인지 의문”

  이병호 전 원장은 1963년 육군사관학교(18)를 졸업, 7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한 후 1970년 중앙정보부에 입부(入部)했다. 그는 정보부에서 해외공작 분야의 계장, 과장, 부국장, 국장을 지냈고, 주미 한국 대사관에 파견돼 정보관 임무를 수행했다. 1993년 중앙정보부의 후신(後身)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해외담당 차장에 임명됐다가 1996년 안기부를 퇴직했고 주()말레이시아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대한 논픽션을 번역해 《기드온의 스파이》란 책을 발간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 업무에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국고 손실’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원장의 특활비 관련 진술을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옮겨본다.
  
 
“검찰은 대통령의 국정원 자금 지원 요청을 위법이라고 보면서 그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자금 지원을 한 국정원장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봤어요. 저는 여기서 대통령과 국정원 간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통령과 국정원이 독립된 정부부처 간의 관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호 긴밀하게 작동되는 특별한 안보 공동체 관계로 볼 것인가죠.
  
 
이병호 전 원장은 ▲‘국정원법’을 근거로 국정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돼 있고 ▲‘정부조직법’상 대통령의 국가보위의 헌법적 의무를 보좌하기 위해 국정원을 두도록 돼 있다고 전제했다. 그는 대통령이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 등 국정원 인사에 간여하고, 국정원 회계감사 결과를 보고받는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과 국정원의 관계는 일반 정부부처 간의 관계라고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보다도 더 긴밀한 안보 공동체인데 그 수장(首長·대통령-기자 주)이 자금을 요청하는 게 불법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의 말이다.
  
 
1심 판결을 보면 대통령의 지시를 불법으로 전제하고, 국정원장인 제가 그걸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통령이 독대(獨對)를 할 때 직접 자금 지원을 요청하셨어요. 그리고 전화로도 얘기한 적이 있고. 그런 지시를 받았을 때 저는 그 지시를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불법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었고요.  
  

특활비가 청와대로 건너간 배경 

이 전 원장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전달된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다. ‘항소이유서’에 따르면, 2016 5월경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국정원에서 지원한 자금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 계속 지원해 주세요”라고 이병호 원장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이때 국정원 기조실장 이○○은() 이미 특별사업비(특수활동비 중 국정원장이 쓸 수 있는 돈-기자 주)의 청와대 지원이 전임 국정원장 시절부터 관례상 있어 왔던 것이라고 이병호 원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이병호 원장은 기조실장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 전 원장이 기조실장에게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 돈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용도는 알 수 없었고,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항소이유보충서’에 적힌 이 전 원장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2015 3월 국정원장으로 부임했는데 청와대 자금 지원은 이미 계속되어 왔고 행정적으로 정례화되어 있는 상황이더군요. 갓 부임한 제 입장에서는 기존의 지원 구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었죠. 그걸 변경시켜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해오던 대로 기조실장 이○○()가 알아서 지원하는 시스템이었어요.
  
 
그는 특활비 등과 관련해 “기조실장 이○○()가 책임자로 청와대와 유일한 소통 채널이었다”면서 “나는 거기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고 이따금씩 기조실장 이○○한테서 간단히 전화보고를 받는 수동적인 자세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문제(특별사업비 지원-기자 주)는 루틴(routine·정기적)하게 이루어지는 행정적 사안이고 주변적인 일 정도로만 치부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청와대로 전달한 돈은 정무수석실이 실시한 여당(당시 새누리당)의 여론조사 비용으로 쓰인 것으로 검찰수사 결과 드러났다. ‘항소이유보충서’를 인용하면,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은 이병호 원장에게 ‘국정 운영에 관련된 여론조사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다고 한다. 즉 ‘정무수석실에서 의뢰한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채무변제’를 위해 돈을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했을 뿐, 특정 정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것이다.  
  

 “기조실장이 특정 정당의 여론조사 비용이라고 보고한 적 없다”  

이 전 원장은 “기조실장이 특정 정당의 여론조사 비용이라고 내게 보고한 적이 없다”면서 “그런데 내가 여당의 여론조사 비용을 지원한 것처럼 검찰조사에서 진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순수 정보기관을 만들자는 게 나의 의지였는데, 만약에 보고 당시 그런 낌새를 알아차렸다면 단돈 1원도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 속마음을 누가 알아주겠나”라고 분개했다. 그의 진술로 미뤄보아 이 전 원장은 기조실장의 보고를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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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재판부는 국정원장을 실질적으로 회계 관계 업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 ‘회계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봤다. 이를 근거로 ‘정보기관의 책임자인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요구·지시를 받았다는 사유로 그러한 자금 지급이 과연 적법한지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원 예산을 함부로 대통령에게 전달하여 지속적으로 국고를 손실했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원장 변호인은 “국정원의 경우는 차관급인 기조실장이 예산 회계의 책임자로 되어 있고 국정원장은 보고받는 결재권자”라며 “국가정보원장을 회계 관계원으로 보는 것은 결론을 정해놓고 무리하게 꿰어맞춘 법률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병호 원장의 정치 불개입 원칙을 잘 아는 기조실장이 “허위보고를 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병호 전 원장도 “원래 기밀이 유지되는 정보 예산은 개인적인 횡령이 아닌 한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정보 예산을 법의 잣대로 재려고 하니까 국정원장인 내가 회계 관계 직원이라야 성립하는 국고손실죄의 범인이 되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8 21일 서울고등법원 312호 법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 전 원장은 자신의 무죄를 거듭 강조하며 “제도화된 특활비의 지원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그걸 죄라고 하는데 그건 현실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그의 지적이다.
  
 
“제가 아니라 누가 국정원장이 돼도 범죄자가 되는 상황이었다면 이건 근본적인 제도의 문제입니다. 역대 국정원의 특활비 지원을 적폐라고 한다면 그걸 세 명(이병호·이병기·남재준-기자 주)의 국정원장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게 법에 맞는지 의문입니다. 대체 법적 정의가 뭡니까? 법리에 의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석 신청과 관련해서 구차스럽게 나이가 많은 걸 가지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법에도 사람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 간여 여부’ 묻자 “나는 절대 그런 짓 안 해요”

이병호 원장(맨 오른쪽)을 비롯한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세 명은 현재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
다. 왼쪽부터 남재준, 이병기 전 국정원장. 사진=조선DB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정치에 간여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변호인이 ‘국정원의 정치 간여 여부’에 대해 묻자 이 전 원장은 “나는 절대 그런 짓 안 해요”라고 단언했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장 재임 시절의 일화 한 토막을 얘기했다. 국회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이 수시로 국회의장이나 의원들의 동향을 보고한 사실을 알고, “당장 그 직원을 잘라버렸다”는 것이다. ‘항소이유보충서’에 기재된 이병호 전 원장의 말이다.
  
 
70이 넘은 나이라는 건 국정원장직을 끝낸 후에 다른 야망이 있을 나이가 아니죠. 저는 정보조직에서 뼈가 자란 사람이에요. 국정원 안에서 수없는 연설을 통해 우리가 순수 정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국민 사이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국정원 직원들도 겉으로는 명령에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정치공작이나 그런 걸 싫어해요.
  
 
실제로 이 전 원장은 ‘정치 불개입’ 원칙을 지속적으로 피력해 왔었다. 그는 2015년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정치 개입은 국정원을 망치는 길”이라며 “국정원이 망가지면 국가 안보가 흔들린다. 저는 결코 역사적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난 직후인 2016 1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그의 이러한 원칙은 재확인된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을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작년 1월 신년사에서도 “앞으로 있을 대선 정국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국정원을 뒤흔드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면서 “우리를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유혹에 절대 빠지지 않겠다는 윤리의식과 프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그가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었던 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없는 상태에서 국정원장에 발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전 원장의 ‘항소이유보충서’에 따르면, 그가 퇴직을 한 후 15년간 쉬고 있던 어느 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장을 하지 않겠느냐’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전임(前任) 국정원장 이병기씨와 전전임(前前任) 국정원장 남재준씨와 달리 이 전 원장은 박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다. 변호인도 “역대 정보기관장은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 그 자리를 맡았다”며 “이병호는 유일하게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발족한 국정원 적폐청산위원회가 국정원 메인 서버를 비롯한 기밀문건, 수백여 명에 달하는 원() 간부들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이 전 원장의 정치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병호 원장의 증언 통해 확인한 《월간조선》 특종: (북한의) 저항집단에 돈 주고 여건도 만들어 주었는데…”

▲《월간조선》 2018년 6월호는 이병호 원장 체제 국정원이 “북한 내부에 혁명조직이 존재한다는 사
실뿐만 아니라, 이들이 구체적인 김정은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특종
보도(사진)한 바 있다. 이번 이병호 전 원장의 증언을 통해 이 보도는 사실임이 입증됐다.

 

  이병호 원장 관련 문건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과 관련된 것이었다. 변호인이 ‘김정은이 이병호라는 이름을 대면서 북으로 꼭 넘겨달라고 했는데 왜 김정은의 공격 대상이 됐냐’고 묻자 이 전 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건 비밀이기 때문에 제가 전모(全貌)를 말할 수는 없어요. 정보기관은 수동적으로 방어를 하는 군대와는 달라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남북의 정보전에서 북한을 뒤흔들고 압박해야 하는 겁니다…. 북한 내부에서도 자유사회의 문화나 정보가 들어가면서 주민들이 달라졌어요. 김정은 독재에 반발하는 기류가 생긴 거죠. 국정원이 그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건 당연합니다. 자생적인 그런 저항집단에 돈을 주고 여건도 만들어 주었는데 그런 시도가 중간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제가 북의 최고 존엄의 생명을 해치려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김정은이 저를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죽이겠다고 한 거죠.
  
 
《월간조선》은 2018 6월호 ‘박근혜 국정원, 김정은 암살하려는 북한 내 혁명조직 존재 파악하고 지원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 내부에 혁명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들이 구체적인 김정은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를 쓴 최우석 기자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정도의 내용은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며 “다만 당시 상황을 봤을 때 국정원이 북한 내 혁명 세력의 존재를 파악하고 지원해 줬을 것이다. 이럴 때 쓰라고 국정원 특별활동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 핵심 인사도 “국정원이 혁명조직을 지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시 국정원장은 무조건 2년 안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정보 당국 수장이 ‘예상’이 아닌 ‘확신’을 가졌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류경호텔 여종업원뿐 아니라, 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이은 ‘최고위급’ 탈북자인 태영호 전 주
영 북한공사도 이 전 원장 재임 시절 탈북했다. 사진=조선DB

 

  이 기사의 ‘당시 국정원장’은 바로 이병호 원장을 말한다. ‘김정은 독재에 반발하는 저항집단을 지원했다’는 이병호 원장의 말을 통해 《월간조선》 보도가 사실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이 전 원장은 변호인에게 자신이 국정원장으로 있으면서 “북의 전자(電子) 전문가를 탈북시켰다. 그 친구가 북을 떠나면서 모든 정보를 가져왔다”고도 증언했다.
  
 
최고위급 탈북자 중 한 명인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공사도 이병호 원장 재임 시절 탈북했다. 중국 옌지(延吉) 소재 류경호텔 내 류경식당 여종업원 탈출도 그의 재임 중에 이뤄진 일이다. 이 전 원장은 “국정원은 북한 내부의 상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듯이 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북한의 권력층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태영호 같은 고위층 출신 인물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보석청구 이유보충서’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의 지휘 방침에 따라 많은 작전이 전개됐다. 북의 태영호 공사 등 엘리트들이 갑자기 남쪽으로 오는 현상이 벌어졌다”면서 “비밀 대북 공작 업무에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은 역대 국정원장 중 이병호가 아마 유일한 인물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지난해 5월 미국 CIA 폼페이오 국장(현 미 국무장관)은 이 전 원장에게 ‘조지 태닛’ 메달을 수여했다. 조지 태닛(George Tanet) 1997년부터 7년간 CIA 국장을 지낸 인물로, 특유의 친화력과 조직 장악력을 바탕으로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김정은은 정말 나쁜 놈… 국내엔 간첩 득시글”

▲지난 5월 좌파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2016년 중국 소재 류경식당 여종업원
탈출과 관련해 ‘국정원이 기획탈북을 한 것’이라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
=KBS 캡처

 

  이병호 전 원장은 “김정은은 정말 나쁜 놈 같아요”라며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 국민을 굶어 죽게 하면서 호의호식하고 정적(政敵)을 잔인하게 죽이는 전제군주”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전 원장은 김정은의 잔인성을 원장 재임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변호인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제가 직접 사람을 죽이려고 준비한 말뚝을 위성사진을 통해 보기도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을 말뚝에 매어놓고 12미터 앞에서 고사포로 산산조각을 내버린 인물입니다. 그 형도 독극물로 죽였습니다…. 김정은이나 남한의 좌파 인사들이 말하는 사람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북한에서 잔인하게 공개처형하듯 그렇게 숙청하고 싶은 대상일 것입니다.
  
 
이 전 원장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정보조직이 북의 상황을 샅샅이 파악하고 흔들고 견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에는 간첩이 득시글하다”면서도 “변호사들 때문에 간첩 수사를 못하겠다. 간첩의 모든 증거가 사실 북한에 있는데 변호사들이 하나하나 증거를 트집 잡으니 어떻게 잡나”고 변호인에게 반문하기도 했다.
   

 “제가 정말 사법처리의 대상이란 말입니까? 

이 전 원장은 일련의 대북(對北) 공작을 언급하며 “저보고 국고를 손실했다고 하는데 판사들이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나는) 대한민국에 엄청난 예산상의 이익을 준 사람”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인공위성을 예로 들었다. 우리나라 인공위성 ‘아리랑’이 촬영한 정보 사진 한 장 가격이 200만원인 데 반해, 미국 위성이 촬영한 사진은 해상도가 높아 7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자신의 대북 공작으로 이러한 불필요한 금전적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전 원장은 문제가 된 국정원 특수사업비를 ‘정보 예산’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이다.
  
 
“예를 들어 정보조직에서 비밀리에 포섭하고 싶은 인물을 매수하기도 해요. 또 범죄조직이나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고 은밀히 어떤 일을 시키기도 하죠. 그래서 모든 정보 예산은 철저히 기밀로 되어 있어요…. 그 돈은 국정원 내부에서도 어디에 쓰는지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기밀사항입니다…. 원래 기밀이 유지되는 정보 예산은 개인적인 횡령이 아닌 한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 사법처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죠. 정보기관의 업무란 법으로 재지 못할 음지(陰地)에서의 그런 특성들이 있는 겁니다.
  
 
그는 “기밀이 유지되어야 하는 정보 예산의 사용을 이렇게 공개적인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은 겁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지는 말이다.
  
 
“북한에 심은 어떤 정보원에게 얼마를 주고 북한의 누구를 얼마에 매수해 포섭하고 이런 것들이 다 공개되어도 되는 겁니까? 이런 선례(先例)가 주는 앞으로의 파장은 어떨 것 같아요? 국정원장의 재량으로 사용하라고 준 특별 정보 예산을 제가 착복한 것도 아니고 직속상관인 대통령에게 지원하도록 승낙한 제가 정말 사법처리의 대상이란 말입니까?
  
 
항소심 첫 공판에서도 이병호 전 원장의 항변은 이어졌다. 검찰 측은 보석이 되어 이 전 원장이 불구속 재판을 받을 경우,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전 원장은 “그건 제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국정원장을 했던 사람이 왜 도망을 하겠냐”며 “그건 저 자신에 대해 가족에 대해 또 국정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심신 쇠약해진 이병호… 부인은 ‘치매’ 걸릴까 봐 남편 걱정  

‘항소이유보충서’ 등 변호인이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현재 이병호 전 원장은 심신이 매우 쇠약한 상태라고 한다. 문건을 보면, 고령인 이 전 원장의 건강을 걱정하는 변호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전 원장은 “늙어서 그런지 자리에서 일어나면 주위가 빙빙 돌아요. 한참 있으면 괜찮아지고”라며 다소 체념한 듯 말했다. 또 “맨바닥에 누웠다가 일어날 때면 온몸의 뼈가 마디마디 덜거덕거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외부 진료를 청구하겠다’는 변호인의 제안에 이 전 원장은 “수갑을 차고 감시를 받으면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는 싫다”고 거절했다.
  
 
항소심 첫 공판에서 재판부 측이 그에게 주소를 물었는데, 이 전 원장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것은 재판부를 겨냥한 저항이 아니었다는 게 변호인의 의견이다. 변호인은 그때 이 전 원장의 표정에 대해 “힘이 다 빠진 하얗게 바랜 노인의 얼굴이었다”고 ‘항소이유보충서’에 썼다. 심지어 그의 부인은 변호인에게 치매가 ‘가족력’이라며 “그이(이병호)의 형제들이 지금 모두 치매 상태다. 그이가 치매에 걸릴까 봐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고도 한다.  
  

대한민국은 이병호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  

변호인은 “그가 감옥 안에서 겪는 고통은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겠다”며 “동정을 구걸하기 싫다는 게 이병호 피고인의 법정진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전 원장의 결백을 재차 강조하며 “중죄(重罪)를 졌어도 인생 70의 노인은 석방할 수 있다고 형사소송법은 규정하고 있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형사소송법 471조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해도 70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는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변호인은 이 전 원장의 청렴함도 강조했다. 현재 그의 재산은 서울 가락동 소재의 작고 오래된 연립주택 한 채와 통장에 들어 있는 약간의 생활비가 전부라고 한다. 그나마 변호사 비용으로 거의 다 나갔다고 한다. 2010년엔 은행 직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퇴직금을 날린 적도 있다고 한다. 펀드와 예금의 차이를 모를 정도로 평생을 정보 전문가로 헌신한 ‘순진한’ 사람이라는 게 변호인의 말이다. 변호인은 비장한 투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재판부에 건넸다.
  
 
2018 8월 변호인은 구치소의 어둠침침한 복도에서 기운을 잃은 그(이병호-기자 주)의 모습을 보고 있다. “모든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인 것 같습니다” 그가 현실에 대해 하는 입장 표명이다…. 이병호는 (남과 북이 벌인) ‘라스트 배틀’의 대한민국 지휘탑이었다. 그런 이병호를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 대한민국을 위해 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영웅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2018년 12월 호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박근혜 국정원 ‘장마당 프로젝트’의 內幕

USB와 SD카드에 朴 전 대통령의 메시지 담아 뿌려 ‘북한의 핵·미사일 경력자를 파격 대우로 모십니다’

⊙ 朴 “핵·미사일 관련 정보 소지자 우리 품에 안길 경우 보로금 22만불(한화 약 2억4000만원), 특별보상금 100만불(한화 약 11억3000만원) 지원”

⊙ “북한 인민의 인권과 삶의 質 높이기 위해 통일 절실, 김정은 체제 붕괴 앞당길 방법 없을까요?”(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원 고위 관계자에게)

⊙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실체 정보 담은 USB·SD카드 ‘장마당’에 살포

⊙ 우리가 포섭한 북한 고위급 인사, 비 오는 날 장마당에 직접 USB·SD카드 뿌리는 비밀작전 수행

⊙ 핵·미사일 관련 핵심정보 갖고 오시는 분께 특별보상금(100만 달러 이상) 추가지급 및 최상위 직책 보장 내용 동영상도 담겨

⊙ 김정은 체제가 붕괴한다고 엘리트층도 함께 몰락하는 것 아니다… 통일 이후 정부 기관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

⊙ 대북 TV, 라디오 활용한 심리전도 적극 전개

 

▲박근혜 전 대통령은‘북한의 핵·미사일 경력자를 파격 대우로 모십니다’라는 동영상을 USB에 담아 북한에 뿌렸다. 이 동영상에는 “북한 핵·미사일 분야 경력자 여러분을 대한민국 고위직으로 모시겠다”며 “핵, 미사일 관련정보 소지자 보로금 22만불, 특별보상금 100만불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이 담겼다. 해당 동영상 캡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진보 좌파 정부 10년 동안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북(對北) 정보 수집 능력은 크게 약화했다. 국정원 대북 파트가 소외되면서 휴민트(HUMINT·인간정보) 라인이 붕괴한 탓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국정원은 탈북자 등을 활용해 휴민트 복원에 나섰다. 2008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이 ‘양치질을 할 만큼 회복됐다’는 정보를 파악하고,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등 대북 정보 수집 능력이 향상됐다. 박근혜 정권은 대북 정보 라인 재건을 최고의 목표로 했다.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은 과거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과거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력은 상당했다.
 
 
대북 공작 활동에 직접 가담했던 전직 요원은 “김대중 정부 이전 국정원의 대북 수집력은 미국 CIA가 감탄할 정도였다”면서 “우리가 관리하는 사람들이 평양 깊숙이 들어가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최상의 정보를 가져왔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정원으로부터 꾸준히 양질의 대북 정보를 보고 받았다.
 
 
▲독자 대북 제재인 5·24 조치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김정은은 1~2년 안에 숨통이 막힐 것 ▲김정은 집권 이후 집권 세력의 응집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 노동당과 군·내각 주요 간부들 사이의 운명공동체 의식이 김일성 시대의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김정일 시대는 50~70, 김정은 시대는 10 정도인 것으로 평가 ▲북 체제를 지탱하는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본격적인 탈북 등이 대표적이었다. 


 
“김정은 체제 붕괴를 앞당길 방법이 없을까요?

▲취임 직후부터 국정원으로부터 꾸준히 양질의 대북 정보를 보고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정은 체제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고 확신하고, 통일을 생각했다. 사진=TV 조선 캡처

 

  박 전 대통령은 김정은 체제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고 확신했다. 통일을 생각했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면 새로운 세력과 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외교 안보 분야 고위급 관계자의 이야기다.
 
 
“합의 통일은 모두 희망하는 길이지만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북한 급변 사태로 인한 통일의 가능성이 컸다. 박 전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이 붕괴할 경우 새로운 세력과 1국가 2체제 형태의 통합 시기를 보내면 10~15년 안에 통일을 이룰 것으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4 1월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며 한반도 통일 시대를 준비하자고 천명했다. 이후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脫北)을 권유하는 발언을 포함해 “체제 붕괴” “자멸” “김정은 광기” 등 전례 없는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 냈다. 측근들에 따르면 이는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와 통일 상황까지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무력 공격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하루라도 빨리 북한 정권을 ‘정상적인 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통일 시기를 늦출수록 북한 핵무기도 늘어나는 만큼 ‘레짐 체인지’를 통한 통일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여겼다.
 
 
핵심 측근들이 말한 바로는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고위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통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습니다.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북한 인민의 인권과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일만큼 같은 민족으로서 보람찬 의무도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김정은 체제 붕괴를 앞당길 방법이 없을까요?
 
  2016
10 7일 국정원은 ‘대통령님의 메시지 북한 내 전파’라는 제목의 문건을 만들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박 전 대통령 육성과 정착지원 내용을 USB·SD카드에 수록, 장마당(시장)에 투입’이 주 내용이었다. 이른바 ‘장마당 프로젝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장마당 프로젝트’와 관련, 전직 국정원 간부는 “북한의 경우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보는 장마당을 통해 전역으로 확산된다”며 “USB·SD카드에 담긴 박근혜 전 대통령 메시지 등 정보는 북한 지도부는 물론, 일반 주민들을 흔들 수 있다. 체제의 위아래가 모두 동요하면 김정은 체제도 타격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전했다.
 
 
실제 장마당은 단순히 물건만 오고 가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이 사람들을 통해서 정보가 유통된다. 다른 지역에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는 북한 전역으로 퍼지는 것이다. 장마당은 북한 당국이 식량 배급을 중단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이제 북한의 어느 곳이든 장마당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장마당은 현재 480여 곳으로 알려졌지만 750곳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위성지도로 파악하면 장마당을 모두 합한 면적이 일산 신도시보다 넓다. 예전에 북한 전역에 소식이 알려지는 데 한 달 정도 걸리던 게 요즘은 2, 3일이면 퍼지는 이유다. 


 
USB·SD카드에 정보를 담아 뿌려야 하는 이유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7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집중토론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USB·SD카드에 정보를 담아 투입하자는 아이디어는 국정원이 포섭한 북한 고위급 인사가 냈다.
 
 
북한 고위급 인사는 국정원 고위 간부에게 이같이 제안했다.
 
 
“북한은 대북 전단지를 신고하지 않고 봤을 경우 가족들까지 처벌하기 때문에 대부분 당국에 신고합니다. 하지만 USB SD카드는 다르죠. 둘 다 하나에 5달러(장마당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5달러는 큰돈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절대 신고하지 않죠.
 
 
계속 북한 고위급 인사의 말이다.
 
 
USB SD카드를 다시 팔기 위해서는 안에 파일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면 삭제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 등이 담긴 파일을 읽게 되죠.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다량으로 제공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USB SD카드는 어떻게 장마당에 투입할까. 대형 풍선, 드론(무인 비행기) 등을 이용한 방법은 북한의 사격에 취약하다. 북한 고위급 인사는 “북한 내부 협조자가 직접 장마당에 뿌리는 게 최고”라며 “적발되지 않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북한 내부 협조자 대부분은 고위급입니다. 가끔 출장을 갈 일이 생기는데, 출장 날 비가 오면 미리 주머니에 구멍을 뚫은 바지를 입고 USB SD카드를 챙깁니다. 구멍 뚫린 주머니에 USB SD카드를 넣고, 출장지 근처 장마당을 몇 바퀴 돕니다. 그러면 카드가 자연스레 땅에 떨어지겠죠? 비가 오는 날은 바닥이 진흙이라 USB SD카드가 파묻히게 되죠. 그럼 뭐가 떨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비가 멈추고 땅이 마르면 파묻혀 있던 USB SD카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발견만 하면 너도나도 다 주워 간답니다. 돈이 되니까요.
 
 
그렇다면 USB SD카드에는 어떤 내용이 실렸을까.
 
 
북한 고위급 인사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북한 고위급 인사가 북한에는 김일성 왕조에 대한 거짓 선전을 반박하는 자료를 찾을 수 없다면서 항일투사 이력까지 날조하는 김씨 일가의 우상화를 뒤집는 객관적 자료를 파일로 만들어 담으라 했다”며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 (USB SD카드에)넣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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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결과 이런 내용이 담겼다. -

 KGB 1급 비밀문서

  ①북한 역사책을 보면 김일성이 일본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조선이 해방된 것처럼 대서특필하고 있다.
 

○거짓을 증명할 객관적 근거: 1994 6 7일 구소련의 비밀첩보 조직이었던 KGB 1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해방 당시 항일투쟁을 하지 않았다. KGB의 국제첩보활동 1975-1985년분이란 제목의 문건에는 김일성이 과감한 빨치산 투쟁을 한 후 1945 8월 일제로부터 조국을 해방한 영웅임을 자처해 왔으나 KGB는 김일성이 당시 북한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군이 한반도 이북을 해방시킬 당시 김일성이 붉은 군대의 중위로 복무해 오면서 동시에 NKVD(KGB 전신) 요원이었다.
 
 
○거짓을 증명할 객관적 근거: 1949 9 CIA가 작성하고, 12월 국무부와 군부에 보고된 기밀해제(2011) 문서에 따르면 1919년 실제 항일운동을 펼쳤던 김일성 장군이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다. 중국 공산당 초기 지도자인 리리싼(李立三) 1931 10월 김성주의 이름을 김일성으로 바꿨고, 이후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백두산 일대의 게릴라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소련군 대위 김성주가 김일성이란 유명한 항일 독립투사 이름을 도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일성(김성주)은 공산주의를 전파하면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했는데, 이러한 모습이 리리싼을 만족시켰다. 이후 김일성(김성주)은 군 고위직으로 진급하게 되고, 결국 소련 스탈린의 귀에도 김일성(김성주)에 대한 소문이 들어가게 됐다. 김일성(김성주)은 영특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스탈린에게 높은 신임을 얻었다. 김일성(김성주) 1930년대 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에서 약간의 항일 게릴라전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정권은 그것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마치 그가 대단한 영웅이나 되는 것처럼 미화하고 있다. 


 
김정일은 구소련 하바롭스크 태생 

②북한은 김일성과 그가 이끄는 빨치산 대원들이 1936년 가을부터 백두산 일대에 비밀 유격 근거지인 밀영(密營)을 조성하기 시작했으며,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밀영’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또한 1941년 6월에는 이곳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유숙할 귀틀집(통나무집)이 지어졌으며, 이듬해 2월 이 귀틀집에서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거짓을 증명할 객관적 근거: 김일성은 1930년대 만주 일대에서 일제에 항거해 빨치산 활동을 벌였고, 3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일제의 대토벌에 쫓겨 40 10월 하순 아무르강()을 건너 소련으로 피신했다. 김일성이 소련으로 들어갈 때 김정숙도 동행했으며, 두 사람은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소련으로 들어간 김일성 일행은 한동안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의 남야영 또는 B야영이라 부르는 곳에 머물다 42 7월 하바롭스크에서 동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북야영, 일명 A야영으로 옮겼다. 이들이 북야영으로 떠나기 5개월 전인 42 2월 남야영에서 김정숙은 김정일을 낳았다. 김일성과 김정숙은 소련으로 들어간 이후 45 8월 광복 때까지 줄곧 두 야영에 머물렀으며 항일대전에는 끝내 참전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남야영에 있을 때인 41 4월과 42 5월 두 차례 정찰임무를 부여받고 소수 대원과 함께 만주로 출격했다. 그러나 김정숙은 한 번도 야영을 떠난 적이 없다. 때문에 김정숙이 41 6월부터 백두산에 머물렀다든가, 42 2월 그곳에서 김정일을 낳았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어린 시절 소련식 이름인 ‘유라’로 불렸고, 이 이름은 입북 이후 그가 60 7월 남산고급중학교(현재 평양 제1고등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대로 쓰였다. 김정일이라는 이름은 그가 공민증을 발급 받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한에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도 저서에서 “1930년대 말에 김일성이 소련으로 넘어가 ‘99특별교도여단’에서 생활할 때 김정일이 출생해 그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유라’라고 불렀으며, 둘째 아들도 ‘슈라’라고 불렀던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軍, 장군님(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분노

 ③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


○거짓을 증명할 객관적 근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1984 4월 작성한 ‘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라는 대외비 문건을 보면 김정일은 어린 학생 시절부터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한 번도 경어를 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 격인 망나니 행동을 해 왔다. 김일성 대학 시절 미모의 여학생을 보기만 하면 마구 농락, 임신시키는 등 호색 문제아의 면모를 보였다. 중학생 때도 주위의 여학생 중 마음에 드는 여자는 경호원을 시켜 닥치는 대로 납치, 농락했다. 김정일은 측근이라도 비밀 누설 시나 진정(陳情) 때는 처단하고, 총살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등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례-1.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최준덕(50)이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 하여 재떨이를 머리에 던져 심한 상처를 입혔다. 최준덕은 김정일의 첫사랑이자 두 번째 부인인 성혜림의 묘지기였다. 김정일의 최측근이며 김정일 서기실(비서실) 2인자였던 그는 김정일과 함께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다니다가 모스크바로 유학, 러시아통이 됐으며 러시아어에도 능통했다. 그는 본처 자리를 빼앗기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린 성혜림이 치료를 위해 1974년 모스크바에 머물자 성씨를 돌보는 역할을 했다.
 
 
■사례-2. 77년 첩 관계 등 사생활을 누설한 공관관리 책임자 이수헌(39)을 처형.
 
 
■사례-3. 77년 자신의 난잡한 여자관계 등 사생활을 누설한 연락군관 추태식(52, 대좌)을 처형.
 
 
■사례-4. 78년 난잡한 여자관계를 만류한다고 노동당 선전선동부부장 박성수(52)를 처형.
 
 
■사례-5. 80년 김일성에게 김정일의 사생활이 너무 방탕하고 퇴폐하다고 진정하는 익명의 투서사건이 발생하자 2개월의 수사 끝에 선전선동부 부부장 이명재(55)의 처를 범인으로 색출, 남편이 직접 총살토록 조치. 이 사건에 대해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씨는 생전 “김정일 비밀파티에 이명재 당시 당 부부장이 참석했는데 이명재 부인이 비밀파티 사실을 알고 김일성에게 바로잡아 주라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편지가 중간에 김정일에게 들통이 나서 김정일이 이명재를 불러다 부인 단속을 하라고 말했다. 이에 이명재가 ‘제가 부인을 죽일까요’라고 물었고,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 허락해 이명재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부인을 쏴 죽였다”고 했다.
 
 
■사례-6. 81년 자기와 정을 통한 간호원 이영미(27)가 부모에게 “나는 김정일을 모시고 있다”는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고 임신 중임에도 처형.
 
 
■사례-7. 81년 자신의 허가 없이 첩에게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사준 공관관리과장 노종일(55)을 첩이 보는 앞에서 마구 구타.
 
 
■사례-8. 81년 김정일이 여동생 김경희(36)와 같이 지방여행 시 동행한 예술단원 한 사람이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자 김정일이 이를 보고 권총을 꺼내 총살하려는 것을 김경희가 만류하여 중지.
 
 
■사례-9. 김정일이 탑승한 차량이 주행 시, 마주치는 모든 차량은 사전 정지토록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여 머뭇거리거나 늦게 정차하는 차량이 있으면 동승한 비서로 하여금 탑승자를 확인해 반드시 처벌. 


 
김일성과 사진 찍은 적 없는 김정은

▲장마당은 단순히 물건만 오고 가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이 사람들을 통해서 정보가 유통된다.

 ④김정은의 실체

  ○거짓을 증명할 객관적 근거: 2010 11 24일 영국 일간지 《더 선(The Sun)》은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시절 공부를 잘 못해 같은 반 학생들이 ‘김(Kim)’ 대신 ‘띨띨하다’ ‘둔하다’는 뜻의 ‘딤(dim)’을 붙여 ‘딤정은’으로 부를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신문을 보면 스위스 최고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김정은은 교실의 낙제생이었다. 중등교육 검정시험 자격증에 해당하는 것조차 따지 못했다. 결국 15세 때 베른국제학교에서 공립인 리베팰트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금세 열등한 학생층으로 떨어졌다. 옆자리에 앉았던 포르투갈 외교관의 아들 조앙 미카엘루는 “김정은과 내가 반에서 가장 둔한 학생(the dimmest student)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2군에 속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다. 또 문제를 내고 대답을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곤 했다”고 말했다.
 
  2
년 뒤 2012 4 1일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Le Matin)》도 김정은이 1990년대 스위스에서 2년간 다닌 국제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국제학교 시절 첫해에 75, 두 번째 해엔 105일을 결석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당시 김정은과 같은 반 학생이었다는 사람은 그가 오후에 학교에 나온 적이 많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이 말한 바로는 당시 ‘박운’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의 자연과학 성적은 6등급 가운데 3.5등급이었다. 또 수학·문화·사회·독일어 등에서 과락을 겨우 넘는 성적이었고, 영어는 처음 고급반에 들어갔다가 보통 반으로 재배치됐고 과락을 겨우 넘겼다. 반면 음악과 기술은 최고 등급인 6등급 바로 밑의 5등급이었다.
 
 
→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흉내를 많이 낸다. 김일성처럼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뒷짐을 지고 걷는다. 정작 김정은은 할아버지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김정은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한 장도 공개하지 않았다. 김정은이 1983(혹은 1984) 태어났고, 김일성이 1994년 사망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10년 넘게 사진 한 장 안 찍은 것이 된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조사 결과 북한 군인들은 ‘굶으면서도 총과 폭탄으로 옹위해야 할’ 장군님(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많이 분노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경력자 파격 대우로 모십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경력자를 파격 대우로 모십니다’라는 동영상에는 최상위 직책 보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밖에 두 편의 동영상과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도 담겼다. ‘북한의 핵·미사일 경력자를 파격 대우로 모십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2 43초 분량으로 ‘대한민국은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인기 드라마 미생의 OST인 이승렬의 ‘날아’가 배경으로 흐른다.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것은 가사 때문이다.
 
 
〈거기서 멈춰 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동영상은 “북한 핵·미사일 분야 경력자 여러분을 대한민국 고위직으로 모시겠다”며 “핵, 미사일 관련 정보 소지자 보로금 22만불, 특별보상금 100만불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세부적인 혜택 내용도 자막으로 보여준다. 


 
〈◆각종 지원혜택

정착비: 18,000달러 이상(1인 가족 기준)
주거비: 임대아파트 알선 및 기숙사 제공
자녀교육비: 학비 전액 지원(유치원~대학교) *일류대학 특례입학 혜택
의료비: 본인 및 가족 의료비 혜택

 

 ◆특별 혜택 

대한민국 귀순 시 제공한 정보가치에 따라 보로금 최고 22만불 지급
핵·미사일 관련 핵심정보를 갖고 오시는 분께 특별보상금(100만불 이상) 추가지급 및 최상위 직책 보장
북한의 핵·미사일 분야 경력자들은 세계 각국의 대한민국 공관을 방문하여 귀순 의사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독일 분단 시절 서독에 정착한 동독 엘리트들은 정착 지원금은 물론이고 서독의 사회연금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장 혜택까지 누릴 수 있었다”며 “서독의 이런 정책은 동독 엘리트의 동독 이탈이 갖는 정치적·현실적·상징적 의미를 그만큼 크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런 동영상을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동영상 1 26초 부분부터 끝까지는 김정은의 핵·미사일 개발은 본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것인 만큼 북한에서 말고, 남한에서 우리 민족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연구에 동참해 달라고 말한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북한에서 누리고 있는 혜택도 핵무기가 완성되는 순간 없어질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였던 장성택이 처형되고 김영철이 혁명화 조치를 당한 것처럼….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처참하게 버려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은 소중합니다. 핵과 전쟁을 이야기하는 연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연구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북한 엘리트들에게 고한다

 ‘북한 엘리트들에게 고한다’라는 동영상은 8 39초 분량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경력자를 파격 대우로 모십니다’보다 길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사진에 “독일 통일은 행운이었습니다. 동독 출신인 제가 총리가 된 것은 통일 독일의 결과물입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현실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잔인한 숙청을 피하기 위해, 독재자 김정은과 부당거래를 하고 있는 북한의 엘리트들, 그들은 김정은 정권이 유지돼야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정말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라는 성우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동영상은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거나 바뀌어도 북한 엘리트들과 함께 통일을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거나 혹은 바뀐다면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정은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소련 동독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간부들이 자신의 자리를 유지한 비율이 높다. 해임된 간부의 경우에도 지지세력을 규합해 정치활동을 벌이는 정치인으로 혹은 기업의 간부나 개인사업가, 재산가로 성장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체코 등 개혁 주체가, 인민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 간부들이 국가운영의 실무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적극 등용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통된 점은 경제 분야에서 간부들의 약진이 특히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동유럽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었을 때 경제 부문 지도층의 상당수는 과거 국영 기업의 지도 일꾼, 중간 이상 간부층 출신이었다.
 
 
북한 엘리트층은 체제가 붕괴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 유지를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동독에서 일어난 평화로운 혁명이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다

출신성분과 신분, 성별에 따라 차별받는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도 있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세습된 북한 사회에서는 출신성분이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하지만 체제가 바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출신성분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신분 상승이 가능해진다. 북한에는 출신성분에 가로막힌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성별로 차별받는 유능한 여성들이 있다. 사회주의 헌법에 남녀평등이 명시돼 있지만, 이것은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다. 북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들. 체제전환 이후에는 북한의 우수한 여성 엘리트들이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며 사회적 성장을 꿈꿀 수가 있을 것이다.
 
 
동영상은 “끝으로 동독에서 일어난 평화로운 혁명이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메르켈의 말로 마무리된다.
 
 
북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 권력 엘리트들은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면 모든 걸 잃는다고 생각한다”며 “북한 엘리트 그룹을 보호하고 보상하고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이 혐오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유인책이 없다면 평화통일의 길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박근혜 정권이 제작하여 배포한 동영상은 북한 엘리트층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통일 과정에서) 북한 엘리트들의 협력을 확보하려면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상상력 풍부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과거의 행적에 대한 처벌을 면제해 주거나 통일 이후 정부 기관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도록 해 주는 방안이 있다. 또 이들이 한국에 머무르든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망명하든 이들의 재산을 보장해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6
년 북한을 떠난 고위급 탈북자도 “통일한국에서 남한의 엘리트들이 북한의 엘리트들을 전부 대체할 수는 없다”며 “많은 북한 사람을 재교육시켜 종전의 직위를 계속 수행하도록 하는 등 이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분단 기간에 저질러진 정치적 범죄에 대해 적어도 중견 관리들까지는 사면을 보장하는 것이 평화통일에 대한 유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북한의 독재자들이 저지른 범죄는 분명히 동독 지도자들이 저지른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것인 만큼 처벌 면제, 재산권 보장 등 무조건적인 용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박근혜의 메시지

USB SD카드에 담긴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핵개발은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할 것”(2016 2 16일 국회 국정연설)
 
 
“북한이 무리한 도발을 계속하면 자멸의 길을 걸을 것”(2016 3 15일 국무회의)
 
 
“북한 당국 간부들과 주민 여러분, 한반도 통일 시대를 여는 데 동참해 주십시오”(2016 8 15일 광복절 경축사)
 
 
“북한 내부가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2016 8 22일 국가안전 보장회의)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봐야 할 것”(2016 9 9 5차 핵실험 직후 안보상황 점검회의)
 
 
“김정은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2016 9 22일 수석비서관회의)
 
 
“북한 주민 여러분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2016 10 1일 국군의 날 기념사) 


 
대북 TV, 라디오도 적극 활용 

 박 전 대통령은 이런 내용이 담긴 USB SD카드를 장마당에 투입하는 동시에 대북 TV, 라디오를 활용해 심리전을 전개했다.
 
 
주민들에게는 교육·의료 등 지원내용(‘통일이 되면 누릴 일상생활 변화상’ 동영상 송출, ‘이제 결단할 때입니다’ ‘자유로운 터전 대한민국’ 등 라디오 특집프로 6개 편성), 군인들에게는 귀순 시 누리게 될 혜택 및 신변안전 보장(‘오라 대한의 품으로’ ‘위기의 북한군’ 등 탈북 유도 영상물 방영)을 강조했다. 간부·엘리트에게는 신분·기득권 보장 메시지(‘대한민국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등 귀순 권유 라디오 특집프로 9개 편성, 탈북 유도 영상 3 1 3회 반복 송출)를 반복하여 전파했다.

 

■간첩 세계

2015-04-17 전직 對共 요원이 밝힌 ‘간첩의 세계’

 

‘한국 사회에서 암약(暗躍)하는 고정간첩이 3만~5만명에 이른다’는 황장엽·정형근·박홍 등 우익인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럴 것이라고 믿는 사람,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사람이 혼재해 있다. 그렇다고 또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지금도 간첩은 분명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간첩은 북에서 내려온 것일 수도 있고,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인권 시비를 낳은 조작 간첩 사건도 기억에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 깊숙이 침투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수많은 지하당 조직을 만들어왔다. ‘통혁당, 구국전위, 민혁당 등은 지하당 조직의 종북(從北)세력이고,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은 원내로 진입한 종북집단’이라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지난 1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RO(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 및 내란음모 사건의 주된 피의자인 이석기에 대해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2심대로 인정,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했다. 작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석기가 속했던 통진당이 해산된 지 1개월 만이다. 이들 뒤에 암약해 온 간첩의 실체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검찰수사에서 밝혀내지 못했다.    

 

간첩은 왜 존재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란, 선동에 필요한 지하당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정적 시기’에 북한 정규군과 함께 봉기하는 비정규 게릴라 조직이 지하당이다. 종북집단을 의미한다.    

 

기자는 전직 대공(對共) 담당 경찰관 김태욱(金兌昱·78)씨를 만났다. 그는 1963년 10월 경찰에 투신, 34년 8개월간의 복무 기간 동안 32년 8개월을 대공 업무에 매달렸다. 서울 시경 대공분실 부실장(경감)이 마지막 직함이다. 퇴직 후 경찰종합학교와 국가정보원 정보대학원에서 간첩 잡는 노하우를 전수했다. 보국훈장·옥조근정훈장과 내무부장관·안기부장·검찰총장·서울경찰청장 표창과 기장(記章)을 20차례나 받은 베테랑이다. 꿈도 간첩 잡는 꿈만 꾼다는 그다.    

 

그는 “지하당은 당 조직과 달리 합법적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산주의 정수(精髓)분자들을 질적으로 꾸리기 위해 필요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지하당 조직을 단선(單線)으로 연계하고 간결하게 꾸리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죠. 조직의 안전과 탄력성을 보장하고 조직의 비대(肥大)를 막으려 간결하게 단선으로 연계합니다.”    

 

그러나 지하당 조직을 복선(複線)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복선 포식(包植)이란, 특정 지역 내에 서로 밀봉(密封)된 단선 연계조직을 2개 이상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복선 포식의 중요 목적은 어느 한 조직이 깨어져도 다른 조직이 남아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조직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지하당 조직을 자생(自生)조직으로 위장하는 것도 그들의 원칙입니다. 북한과 전혀 연계 없이 현지에서 스스로 조직했다고 위장하는 식이죠.”    

 

김태욱씨에 따르면, 지하당 조직은 보통 3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형태는 ‘점조직’이다. 주로 군대·경찰·검찰·법원 등 권력기관에 포식하거나, 국회(지방의회 포함)를 비롯한 노동단체 등 선거를 통해 조직되는 기관에 뿌리내린다.      

 

지하당 조직을 自生조직으로 위장    

둘째 형태는 일종의 ‘단선 연계조직’이다. 북한은 이런 형태의 지하당 조직을 선호한다.    

 

“두 개의 조직(원)을 상위의 한 명의 조직책이 이끄는 형태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조직(원)이 서로 알지 못해야 한다는 점이죠. 심지어 실체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듭니다. 복선으로 포식된 조직은 정조직과 후보조직으로 나뉘는데 정조직은 현재 활동하는 조직을, 후보조직은 활동시키지 않고 매복시키는 조직을 의미해요.”    

 

셋째 형태는 고구마 줄기처럼 세포조직이 상하 연계된 것인데, 말단조직에서 초급지도부 조직(중소공장, 대학), 지구(地區)지도부 조직(군·읍·면 같은 소지역 중심), 지역지도부 조직, 도지도부 조직 등으로 점점 확장된다.    

 

“대남 공작을 지휘하는 북한 공작지도부는 첫째와 둘째 형태의 조직에 몰두하면서 가능한 한 서로 묶지 않는 원칙을 중시합니다. 결정적 시기가 오면 모두 묶어 강력한 협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계산이죠. 그러나 서로 존재를 모르는 (지하당) 조직이 활동 중에 불가피하게 월선했거나 혼선이 돼 조직(원)이 노출됐을 경우 하나로 묶기도 합니다.”    

 

경기도 성남의 한 상가건물에서 이석기가 만든 이른바 지하 혁명조직인 RO는 단선조직이었을까.    

 

“제 생각에는 RO 외에 다른 지하당 조직, 그러니까 예비조직이 뒤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보통 하나의 조직이 노출되면 그 조직은 버리고, 숨겨두었던 다른 조직을 활용하는 게 지하당 공작의 기본방침입니다. 숨겨두었던 예비조직이 정조직으로 재편, 활동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석기 전 의원의 RO가 노렸다는 주요 시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간첩도 생간(生間)과 사간(死間)이 있습니다. 실컷 이용하고 나서 존재가치가 없어질 경우 한쪽이 다른 한쪽의 지하당 조직을 폭로, 없애버리는 식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신분을 확고히 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석기도 버림받을 수 있고 RO조직도 그런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북은 어떤 자들을 남파하나요.    

“1970년부터 4회에 걸쳐 침투했던 남파간첩의 진술에 따르면, 김일성은 비밀교시를 통해 ‘중등 학력 이상의 월북자 중에서 성분이 우수한 계층을 선발, 단기 밀봉교육을 시키고 전부 남파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남한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는 월북자 출신, 그리고 북한에도 가족을 담보할 수 있는 자가 우선대상입니다.”    

 

이런 공작을 ‘가족토대공작’이라 부른다. 1950년부터 1970년 사이 집중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과장되게 표현해, 6·25 때 월북한 지식인 중에 사상성분만 좋으면 다 한 번씩 남파됐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것을 ‘가족토대공작’이라 부르죠. ‘일단 너희 집에 가라. 가서 빨간 모자를 씌우고 오라’고 지시합니다. 김일성이 주는 선물과 돈으로 경계심을 풀고서 ‘6·25 같은 시기가 올 때 소요를 일으키면 단시일 내 해방이 된다’고 주입시켜요. 그리고 ‘이웃과 계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하는데 바로 지하당을 만들라는 의미죠.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나 농민, 군인 등에 중점을 두고 지하당 조직망을 구축하거나 주요 산업시설, 기간산업의 노동단체나 군사전략적 요충지, 휴전선 인근의 군수산업 시설에 침투하기 위해 남파되고 있어요.”       

고첩과 從北  

▲제421차 군사정전위 본회의에서 유엔 측 수석대표 켈리 소장이 1983년 8월 15일 울릉도 근해에서 격침된 북측 무장간첩선의 수중 추진기를 북측에 보이고 있다.

 

  그의 주장은 과거 공안당국이 우리 사회 내 월북자 집안을 잠재적 북한 동조세력으로 보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1980년대 이후 민족해방, 민족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혁명민주주의 등의 용어를 쓰는 남한 사회 진보·좌파 세력 속에 스며들었다. 민족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이란 말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라 만들어진 용어다. 이런 말을 쓰는 이들이 자발적이든, 포섭이 됐든, 지금의 종북세력의 실체라는 것이 국내 정보기관의 판단이다. 두 차례 남파됐던 대남공작원 출신 김동식씨는 “남한 내 최소 500명에서 1000명 이상의 핵심 종북세력이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북한 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 신분으로 직접 파악한 대남공작조는 10여 개(1980~90년 사이)다. 이들 공작조가 자신의 하부 조직으로 2개 이상의 간첩망을 구축했다고 볼 때 최소 20여 개의 조직에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100명에 달하는 종북세력이 가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대남공작에는 가족토대공작 외에도 조직수습공작, 조직검열 및 연락공작 등이 있다. 조직수습공작은 남파공작원이 북한 공작지도부와 통신수단이 끊어졌을 때 북으로부터 남파된 공작원이 소재를 탐지, 조직을 연결하는 공작을 말한다. 조직검열 및 연락공작은 남파공작원에 대한 활동사항을 검열하고 공작지도부로부터 지시내용을 전달하는 공작을 지칭한다.    

 

—황장엽씨가 ‘남한 내 고첩(고정간첩) 5만명설(說)’을 얘기한 적이 있어요.    

“황장엽의 ‘5만명설’뿐만 아니라 성혜림의 ‘4만명설’도 있어요. 황장엽은 김정일의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에서 5만명이라는 숫자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남한 내 가족토대공작에 근거해 공작지도부가 김정일에게 과장 보고한 문건으로 사료됩니다.”    

 

5만명이란 숫자는 6·25 당시 월북자나 행불자 가운데 지식인층 월북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 토대공작을 통해 포섭한 수를 뜻하는 추정치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추정치가 아닐 수 없다. 확실한 체제 우위에 있는 남한이 토대공작에 넘어갈 리 만무해 보인다. 문제는 대놓고 북한 주장과 사상에 동조하는 남한 내 종북세력과 종북단체다.    

 

“북한 김정은이 최근 ‘7일 전쟁’ 운운한 것은 정권유지를 위한 내부결속용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휴전협정 이후 60여 년간 추진해 온 지하당 조직망과 자생 공산주의 추종세력 등이 규합해 동시다발적으로 봉기할 경우 7일 만에 적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죠. 만약 과잉 충성하려는 대남 공작지도부의 충동으로 김정은이 오판한다면 전면전 또는 국지전 형태의 불장난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 공작지도부의 ‘5만명설’ 과장 보고와 자생 종북세력에 오판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남파간첩이 가져간 놋주발과 붉은팥  

▲남파간첩이 소지한 북한체제 옹호와 김일성과 김정일 찬양 서적들.

 

  김태욱씨는 1980대 초 3년여간의 탐문수사를 거쳐 검거한 인천 강화도 가족토대공작 사건을 떠올렸다. 강화도 ○○면의 경우 북한과 해안에서 2k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이 정도의 거리는 밀물과 썰물의 시차를 이용해 하룻밤 사이 ‘당야(當夜)공작’을 할 수 있다. 이 루트는 여간첩 이선실이 북으로 복귀한 대남 공작선의 거점이다.    

 

검거된 남파공작원 박팔석(가명)은 1972년 4월 초 자정 무렵 강화도 고향집 담을 넘어 안방에 들어갔다. 형수와 조카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김태욱씨의 말이다.    

 

“사실, 안방으로 침투하는 것은 공작원의 원칙입니다. 안방이 아닌 곳에 침투했다가 외부 손님이 있을 경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형수와 조카가 놀라서 쳐다보니 6·25 때 월북한 시동생이었다. 대학생인 조카는 급히 건넌방으로 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깨웠다. 20여 년 만에 재회한 가족에게 박팔석은 “평양에서 왔다. 통일 일꾼으로 남조선을 미국놈으로부터 해방하려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남파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 부부장으로부터 받은 인삼주, 곰쓸개, 현금 10만원을 꺼내며 ‘김일성 수령의 선물’이라고 했다. 당시 10만원은 황소 3마리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형수가 박팔석에게 “형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6·25 당시 박팔석은 자신의 형과 동반 월북한 것이다.    

 

“아! 형님은 지금 평양 김일성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박은 “올해 4월 15일이 수령님 회갑인데, 선물로 우리 집안에 소중한 품목이 있으면 갖고 가서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궁리 끝에 가족은 놋주발과 붉은팥을 다락방에서 꺼내왔다. 붉은팥은 잡귀를 쫓아내는 곡물로 통한다. 김태욱씨의 말이다.    

 

“박팔석이 보자기에 싸서 놋주발과 팥을 북한으로 가져갔습니다. 지금 그 물건들은 당야공작의 성공사례로 평양혁명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 북한의 《로동신문》에 보도되기도 했고요.”    

 

—과거엔 남한 출신 중에 간첩을 발탁했다면 요즘은 어떤가요?    

“남파공작원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자 중에서 뽑힙니다. 그 가족 때문에 변절하기 어렵죠. 검거된 간첩을 회유할 때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북에 두고 온 가족입니다.”    

 

—어떻게 회유하고 교육하나요.    

“시대를 못 만났을 뿐이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분단의 슬픔이죠. 과거엔 남조선이 못산다는 밀봉교육을 받고 남파됐는데, 실제로 1980년대 이전까지 남한이 북한보다 못살았지요. 남한 사회가 경제성장을 거듭하자 남파간첩들이 받는 문화적 충격이 상당했고 지금은 남한 실정을 충분히 교육받고 내려옵니다.    

 

남파 준비는 사상교육(주요 과목으로 김일성 혁명역사, 김일성 주의 원리, 주체철학, 항일빨치산 회상기, 주체사상에 따른 자본주의 철학 비판)과 실무과목(남한정세, 남한실정, 지하당 건설이론)으로 나뉩니다. 군사훈련도 받죠. 사격, 군사지형학, 반합법 및 비합법 훈련, 수영, 통신훈련까지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현지에 남파돼 지하당 조직을 만들 수 있게 사상성분 및 정치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요해(了解)를 실시하죠.”     

 

  간첩은 어떻게 交信할까?  

▲간첩 김동식의 진술에 따라 발견한 메모리식 무전기와 난수표.

 

  —남파공작원들은 북으로부터 어떻게 지시를 주고받나요.    

지하공작에서 통신연락은 매우 중요하다. 연락이 단절된 조직은 죽은 세포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인터넷과 IT 기술로 접근방식이 다양해져 국내 정보기관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A2(모스 부호로 송신) 방식이 있는데, 북한 당중앙 ‘3호 청사’(1989년 사회문화부로 개칭·대남 정보공작기구) 산하 통신소에서 대남연락부로부터 지시 전문을 접수, 타전하는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작성 방법은 원문을 약정(約定) 책에 따라 숫자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간첩에게 ‘대상 공작에 착수할 것’이라는 문장을 전송한다면, 대상은 ‘235’, 공작은 ‘374’, 착수는 ‘257’, 할 것은 ‘363’이라고 바꿀 수 있다. 다만 타전은 숫자로 23537, 42573, 63000의 형식으로 5자(字)씩 만 단위로 배열한다.    

 

“타전하는 숫자가 5자가 안 되면 ‘0’을 첨가 ‘5자 1조(組)’를 만듭니다. 여기다 약정된 책에서 발신 난수(亂數)를 다시 만들고 1차 변신 문에 비산수(非算數)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가산해 2차 변신 문을 만든 뒤 통신소로 보내 타전합니다.”    

 

AM 라디오를 이용한 ‘A3 난수 방송’을 통해 연락하기도 한다. 과거 북한 라디오방송에서 듣던 숫자방송을 뜻한다. 북한의 음성 ‘A3 방송’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중단됐지만 실제로는 계속 관측되고 있다고 한다. 난수 방송의 암호문 작성과 해문(解文) 방식은 A2 방식과 동일하다고 한다.    

 

“편지 방송을 통해 연락하기도 합니다. 주파수는 평양방송 단파 6400KC, 중파 657KC인데, 예를 들어 ‘평양에 사는 강창호로부터 서울에 사는 아버지 ○○○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정으로 보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방송합니다. 이때 발신인 성명과 수신인 성명만 암호인데 암호 약속은 이런 식이죠. 강창호는 ‘접선 나오라’는 의미이고, 강창준은 ‘접선 나오지 마라’, 강창피는 ‘위험하니 피신하라’, 아버지는 ‘제1 장소’, 어머니는 ‘제2 장소’, 형님은 ‘제3 장소’, 동생은 ‘제4 장소’ 등입니다.    

 

예를 들어 ‘위험하니 제1 장소로 피신하라’는 ‘평양에 사는 강창피로부터 서울에 사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정에 의해 보내드리지 못합니다’라고 방송합니다.”  

▲1968년 1월 21일 생포된 무장공비 김신조.

 

  현재는 국내 수사망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이메일을 이용하여 암호화된 대북보고문과 지령문을 송수신하고 있다. 암호화된 변신 프로그램은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기법을 이용해 보관한다. 정보은닉 기법의 하나인 스테가노그래피는 이미지 파일 안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을 집어넣어 웹이나 SNS 등에 올려두면 보이는 것은 이미지지만 다운받아 열어보면 그 안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이 나온다.  

 

  지난 2011년 8월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 검거된 지하당 ‘왕재산’ 간첩 사건 역시 스테가노그래피 방식으로 북측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남파간첩들이 애용하는 교신 방식이 더 있다. 비근한 예로 작년 1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이 서울 홍대입구역 주변에 살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일이 있다. 전단에는 지난 2002년 5월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과 만나는 사진이 실렸다. 사진 위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전단 살포를 통해 연락하기도 하는데 살포자의 명의가 바로 통신내용”이라며 “예를 들어 명의자가 ‘전북 향우회’는 접선바람, ‘안동 향우회’는 안전하다, ‘단양 향우회’는 단독 복귀함 등으로 사전 약속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살포자의 명의 앞에 제1, 2, 3 등을 붙여 장소를 표현할 수도 있는데 ‘제1 전북향우회’라는 명의로 발행됐다면 ‘제1 접선 장소에서 접선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문구 속에 암호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11월 24일 경남 합천 해인사 사찰 주요 전각에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해인사 측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5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과 대비로전, 독성각 등 사찰의 17개 주요 전각 벽에서 검은색 사인펜으로 쓴 낙서가 발견돼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전례로 볼 때 이 역시 북한 공작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찰이 낙서 수사를 한다는 보도를 통해 북에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겁니다. 일선 수사 담당자는 숨은 의도를 모를 수 있어요. 낙서가 X라면 ‘활동 잘 하고 있다’, V라면 ‘(북으로) 복귀하겠다’는 의미를 사전에 약속해 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짓을 아직 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동식을 잡다!  

▲1997년 2월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피살되자 성혜림의 오빠 성일기씨 집 주변을 사복형사들이 지키고 있다.

 

  김태욱씨는 무려 15년을 치밀하게 준비해 무장간첩 김동식을 검거한 주인공이다. 김동식은 어떤 인물인가(《월간조선》 2013년 7월호 참조).    

 

그는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을 통해 국내로 침투해 1980년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이선실(본명 이화선, 권력서열 19위)을 접선해 대동(帶同) 복귀시켰던 무장간첩이다. 1990년 10월 북한으로 돌아간 김동식은 ‘공화국 영웅 호칭’을 받았다.    

 

김동식은 다시 1995년 9월 제주도 온평리 해안을 통해 2차 침투해 공작임무를 수행하다 적발돼 총격전 끝에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체포됐다. 당시 그의 임무는 이선실 복귀 때와 같이 암약 중이던 고첩 ‘봉화 1호’를 북으로 호송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50주년이 되는 1995년 10월 10일을 즈음해 김정일에게 선물할 공작성과로 ‘봉화 1호’의 복귀를 결정했다. 물론 김정일에게 보고해 결재까지 받았다고 한다. 김동식은 ‘봉화 1호’를 복귀시키는 호송원으로 선발된 것이다.    

 

김태욱씨는 “김동식이 복귀 호송하려던 ‘봉화 1호’는 이미 1980년 검거돼 우리 정보기관을 위해 역용(逆用) 공작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역용 공작이란 침투 간첩을 포섭해 역이용하는 공작을 말한다. 무려 15년간 북한 공작지도부에 들키지 않고 고첩으로 활동해 온 것이다.    

 

‘봉화 1호’는 어떤 인물인가. 남자 공작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이선실처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남파 고첩의 거물이다. 1928년생인 그는 지금도 정보기관이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봉화 1호’는 모두 3차례 남한에 침투한 베테랑 간첩입니다. 1차 침투는 1960년 9월 경기도 화성군 노하리 해안으로, 2차 침투는 1978년 10월 경남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 해안으로, 3차 침투 역시 1980년 3월 상주리 해안으로 침투했어요.    

 

그는 승복을 입고 경주 불국사를 중심으로 각 사찰 및 암자에 객승(客僧)으로 다니며 암약했어요. 침투하기 전 북한에서 불공드리기, 목탁 치기, 불경 송독 등의 교육을 받았고 운하(雲夏)라는 법명을 쓰고 다녔죠.”     ‘봉화 1호’가 검거된 것은 1980년 9월이었다.  

다양한 접선 방식
 

호송원이 3번 손뼉 치면, 공작원은 2번 손뼉 쳐

 
 
약속된 장소에서 간첩이 만나는 방법은 먼저 접선 쌍방이 상호 간 접선 상대에게 알리는 인식 신호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상·하부 선이 공히 왼손에 일간지 신문을 들고 출현케 할 수 있다. 이때 상부 선은 북에서 접선하러 내려온 측이고, 하부 선은 현지 남파공작원을 말한다.
 
 
접선 시간이 되면 상대방의 인식 신호를 확인하고 먼저 하부 선(공작원)미안하지만 지금 몇 시입니까라고 하면 상부 선(안내원)! 제 시계는 멎었는데요라고 한다. 모두 사전에 약속된 말이다.
 
 
다시 하부 선은, 그렇습니까. 미안합니다라며 자리를 떠 안전한 장소로 유도한다.
 
 
이때 상부 선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가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하부 선에게공 선생 아니십니까?”라고 하면, 공작원은 상부 선에게안 선생이지요?”라고 답한다. 이런 상호 약속이 정확히 확인되면 접선은 성공한 것이 된다.
 
 
복귀 접선은 남파공작원이 공작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 하는 접선이다. 접선 시간은 사전에 무전연락을 통해 중앙(북괴공작 지도부)의 지시를 받는다. 접선 장소 역시 중앙의 지시에 따른다.
 
 
접선 방법은 접선 당일 라디오를 통해 노래신호를 확인하는 식이다. 약속된 노래, 예를 들어아리랑노래가 나오면접선 배가 못 나온다는 것이고, 노래가 안 나오면접선 배가 나온다는 신호다.
 
  “
요즘도 공중파 라디오 중에 새벽 3시쯤 흘러간 트로트 가요를 틀어주는 방송이 있어요. 신청자 사연을 통해대구에 사는 누가 ○○이라는 노래를 신청하는 데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은 ○○이다, 는 식으로 연락할 수도 있어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접선 인식 신호도 사전 약속에 따른다. 흔한 방법으로 접선 인식 신호는 손뼉 치기로 5번 연속 치거나, 하부 선이 먼저 손뼉을 3번 치면, 상부 선(호송원)이 손뼉을 2번 쳐 모두 5번이 되면 접선이 완료된다.
 
 
이때 상부 선의 응답이 없을 시 접선 약정된 시간으로부터 5분 간격으로 30분간 계속 신호를 보내며 30분이 넘어도 응답이 없으면 하부 선은 30분간 더 대기하며 이때부터는 상부 선이 먼저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일단 이상 없이 신호가 교환되면, ‘확인 암호를 교환하는데 이 역시 약속된 부호로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형님하면동생이라 답한다. 인식 신호가 정상으로 교환됐을 경우 접선이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김동식을 불러들인 ‘봉화 1호’의 정체  

 

김태욱씨는 “‘봉화 1호’는 김정일이 신임하는 공작원으로 직접 김정일을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봉화 1호’가 2차 침투 후 복귀해 쓴 〈남한정세 보고서〉가 북한 공작지도부 내에서 논란이 됐었다. ‘남조선 농촌가옥은 빨간색과 파란색 지붕으로 개조되고 있고, 돼지도 기르는 숫자가 너무 많아 가격이 폭락하면 새끼돼지를 살(殺)처분하는 등 북에서 말하는 남조선 생활상과 전혀 다르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를 담당과장과 부부장에게 올렸더니, 부부장이 펄쩍 뛰며 ‘다른 조 공작원 동무들은 지금도 남조선 인민들은 다리 밑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있고, 농촌은 밥도 못 먹는다고 쓰는데 중(僧) 동무는 잘살고 있다고 하니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보고서를 고치라고 명령했다는 겁니다.    

 

할 수 없이 보고서를 약간 고쳐 제출했다고 해요. 그러나 남한의 경제성장은 있는 그대로 담았다고 합니다. 당시 대남 담당 총비서였던 김정일이 직접 ‘봉화 1호’를 부르더라는 겁니다. 김정일이 ‘당신 보고서를 읽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와 사실이라 답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네다. 나가서 열심히 일하시라요’라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봉화 1호’의 실체를 북한이 알기까지 15년간 북한 공작지도부가 그에게 보낸 지령 전문은 다음과 같다.    

 

〈…▶1988년 4월, “불교계 투쟁 패 걷어쥐고 투쟁조직 강화할 것”    

▶1988년 6월, “투쟁 패 ○○을 직접 만나 공작할 것”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대표인물”    

▶1988년 10월, “충북 청주 상당산성 ○○지점 무인함에서 공작금 발굴할 것”    

▶1989년 5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남산) ○○시비(詩碑) 무인함에 공작금을 묻었으니 미화(美貨)는 장악한 대상에게 주고, 한화(韓貨)는 대상이 공작금으로 사용할 것”    

▶1989년 11월, “충북 보은 속리산 입구 ○○지점에 대상 주민등록증과 공작금 묻었으니 발굴할 것”     ▶1992년 2월, “속리산 주민등록증 묻었던 장소에 무전기 및 공작금도 묻었으니 발굴 장악한 대상인물과 협의할 것” “무전 수 1명 선발교육 후 본부(북한의 공작지도부를 의미한다)와 직접 연계시킬 것”     ▶1992년 4월, “동지에게 국민훈장, 장악한 대상에게는 조국 통일장이 배려되었음”…〉    

 

‘봉화 1호’는 1995년 “고령으로 공작활동 불가 지시바람”이란 무전을 쳤고, 그를 호송하기 위해 김동식이 남파된 것이다. 그의 말이다.    

 

“‘봉화 1호’를 호송하러 온 간첩망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했어요. 경주 불국사 주변 말사(末寺)와 암자를 답사했지만 적절한 곳을 못 찾았어요. 김천 직지사도 가보았으나 소백산맥 산자락에 있어 퇴로 차단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충남 부여 정각사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지 스님과 ‘봉화 1호’의 외모가 비슷한 점도 빼놓을 수 없었고요.”      

 

하염없이 6개월간 김동식 기다려  

▲지난 2011년 10월 고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측근 등 보수단체 관계자를 암살하려고 했던 탈북 간첩 안모(54)씨가 보관하고 있던 무기들. 위에서부터 볼펜형 독침, 만년필형 총, 손전등형 총. (사진 = 서울중앙지검 제공)

 

  부여 정각사는 태조산(해발 224m) 7부 능선에 있는 작은 사찰이다. 스님은 주지 스님 한 분뿐이고 신도 출입이 전혀 없는 일견 폐가처럼 보였다. 그는 주지 스님에게 모든 사실을 숨기고 ‘봉화 1호’를 복귀시킬 간첩을 기다렸다.    

 

“인적 끊긴 정각사에서 1995년 4월 1일부터 김동식을 검거한 10월 24일까지 저와 태권도 5단인 전모 요원, 국정원 강모 과장과 이모 직원, ‘봉화 1호’ 등 5명이 그야말로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세월이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 때까지 북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자 배치된 요원 사이에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그도 그럴 것이 무작정 기다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논산 5일장에 가서 예쁜 강아지 3마리를 사다 놓고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매일 법당 청소를 하고 경내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며 하루하루를 보냈죠.”    

 

그는 “김동식이 정각사를 찾은 10월 24일은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고 회고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요사채 마당을 걸으니 간밤 비가 내려 뜰에 낙엽이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더라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1시쯤 낯선 청년이 요사채 사랑방 앞에 나타났다. 김동식이었다.    

 

“주지 스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그는 “주지 스님은 점심을 하고 서울에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나가셨다”고 했다.    

 

김동식이 주지 스님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자… 무슨 스님이라고 하셨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김동식이 다시 “혹시 자운 스님이라고 하지 않던가요?”라고 물었다.    

 

이때 김동식이 남파공작원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자운이라는 법명은 저와 북한 공작지도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어요. ‘봉화 1호’의 법명을 ‘운하’ 대신 ‘자운’으로 바꾸겠다고 북한 지도부에 무전 보고했거든요.”  

 

▲남파간첩들은 장비은닉과 접선지로 ‘드보크’를 활용한다. 사찰의 비석이나 공원의 안내석, 공중화장실, 전화박스 등을 ‘무인(無人) 포스트’로 이용한다.

 

  정각사를 나온 김동식이 사찰 인근에 숨어 있던 간첩 박광남과 함께 걸어가자, 뒤를 밟던 김 요원이 “손들어!”를 외쳤다. 그러자 김동식과 박광남은 안주머니에서 소음기가 부착된 브라우닝 권총을 꺼냈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김동식은 관통상을 입고 붙잡혔지만, 박광남은 인근 석성산 쪽으로 달아났다.    

 

당시 군경 6000여 명이 투입됐고 헬기 4대와 군 수색견 16마리, 심지어 반지름 4km 안의 모든 생물체를 감별할 수 있는 열상탐지기(TOD) 등 첨단 전자장비까지 동원했다. 10월 27일 11시경 부여군 초촌면 신암리 야산에서 총상을 입은 박광남을 검거, 경찰병원으로 후송 중 오후 5시37분쯤 사망했다. 그러나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 순경(당시 30세)과 장진희 순경(당시 31세)도 작전 중 순직했다.    

 

—김동식 검거를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이었나요.    

“1980년대 간첩들은 단파무전기로 송신했고, 1980년 말부터 1990년 초까지 초단파무전기를 썼어요. 김동식을 검거하면서 나온 것이 ‘메모리식 무전기’입니다. 당시로선 최신 기종이었어요. 북한에서 남파한 ‘보급공작원’이 드보크에 묻어둔 것을 김동식이 진술해 발굴한 것이죠. 메모리식 무전기는 분당 750자를 타전할 수 있고 가볍고 송전 시 이전 무전기보다 보안성이 뛰어났습니다.”    

 

남파간첩들은 장비은닉과 접선지로 ‘드보크’(러시아어로 간첩장비 은닉장소를 의미)를 활용한다. 드보크에다 문건이나 물건·공작금·무기 등을 숨겨둔다.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자연 지형지물 또는 주변장소 등이 드보크로 활용된다. 이를 ‘무인(無人) 포스트’라고 부른다.    

 

“그때 김동식을 통해 발견된 메모리 무전기가 16대입니다. 16대라는 것은 북한 공작지도부와 송수신하는 간첩망이 최소 16개라는 의미입니다. 1개 망에 얼마나 많은 고첩과 지하당 공작원이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지난 2013년 《월간조선》 7월호에서 김동식은, 북한 내부에서 ‘봉화 1호’의 전향을 의심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밝혔다. 우리 정보기관이 ‘봉화 1호’를 이용, 역용 공작을 펴고 있음을 북측도 의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향파와 비전향파 간 논쟁은 비전향파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

 

봉화 1호’가 전향했다는 납득할 만한 물증이나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북한 공작지도부는 김동식에게 “‘봉화 1호’가 전향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혹시 전향했을지도 모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딸아이가 나를 배추장수로 알아”    

김태욱씨는 대공 업무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껏 주위에 꼭꼭 숨겼다. 절친한 친구조차 형사라는 정도만 알지 대공 요원인지는 모른다. 자식들에게도 “시장에서 배추장수를 한다”고 속였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빠 직업이 배추장수여서 창피하다’는 말을 할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갈 때 경찰이라고만 얘기해 줬어요.    

 

대공수사를 기획할 때도 왼손 일을 오른손이 몰라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어요. 부하직원을 출장(수사공작) 보낼 때 예고 없이 출근길에, 혹은 퇴근길에 바로 보냈어요. 미리 귀띔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수사공작이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잖아요. 그렇게 3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때 대공 요원 중에는 이혼한다는 말도 많았고 부인이 머리를 깎았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했다. 그야말로 음지에서 일하다 보니, 가정이 풍비박산 난 셈이다.    

 

“가족에게 미안했지만 내 임무니까… 내 운명이니까….”    

 

—요즘 일선 경찰서의 대공 업무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요?    

 

좀 당돌한 질문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후배들이 대공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느슨한 사회분위기에 젖어버린 게 아닐까요? 그야말로 ‘전종(專從)’해야 하는데 자꾸 부서가 바뀌니 사명감을 못 느껴요. 그냥 월급받는 직장인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전문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20~30년간 매달려야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데 2~3년 만에 업무가 순환하니 못 배우는 겁니다. 최소 5년 이상은 대공 업무를 맡겨야 해요.”    

 

—역용 공작을 한, 전향한 남파간첩이 북측에 의해 살해된 경우가 있나요?    

 

1982년 10월 남한으로 망명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과 조카 이한영에 대해 북한은 여러 차례 암살위협을 가했고 결국 이한영은 1997년 2월 남파 무장간첩에 의해 저격당했다. 김태욱씨는 이한영 암살 사건 수사에도 직접 관여했다.    

 

“남파간첩들이 이한영 거처를 알아내려 흥신소에 접근했고 흥신소 직원이 경찰관을 매수, 이한영의 소재지를 알려줬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하지만 우리 정보기관이 보호하는 전향 간첩 중 안가(安家)가 드러나 피살되거나 북송된 이는 없다고 알고 있어요. 철저히 보호하기 때문이죠. 직장도 구하고, 정착금도 받아 일반 국민과 똑같이 보편적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종북세력이 이렇게 판을 치지만 안보를 걱정하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도, 저 같은 대공 요원이 음지에서 일한 덕이 아닐까요?”⊙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17-03-18 남북 스파이공작 전쟁

“간첩을 잡아 그 입에서 북한이 저지른 짓이라는 자백을 받아내라.

1983 10월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에서 살아온 전두환 대통령이 내린 특명이다. 북한의 테러가 분명했지만 버마 당국에 체포된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성북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를 다닌다’는 어설픈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보니 버마 측에선 한국 내 반정부 세력의 소행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국내에서조차 전두환의 자작극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전 대통령으로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명 1983 ‘北 자복하게 하라’ 

가뜩이나 사전에 테러 첩보도 입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서도 다급해진 상황이었다. 안기부는 관리하고 있던 전향간첩을 이용해 북한에 이런 내용을 타전하게 했다. ‘곧 주민등록 교체 예정. 신분증 위조 등 대처 위해 귀환 요망.

 

북한은 이 미끼를 바로 물었다. 접선 일자에 북한 공작선이 부산 다대포 해안에 도착했고, 공작원 2명은 매복해 있던 특수부대 체포조에 생포됐다. 이들은 안기부 심문 뒤 전향했고 아웅산 테러가 북한 소행이라는 기자회견을 했다. 

 

“지도원으로부터 공작원 2명이 잡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도원은 ‘이들의 공작이 서투르고 엉망이었다. 버마군에 생포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특히 ‘이들은 혁명성 없이 자폭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북한 공작원들의 자복(自服)이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을까.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버마 당국에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참극이 있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라종일의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국가정보원 차장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저자가 당시 붙잡힌 북한 공작원들에게 들은 증언이라고 한다. 이미 30년도 지난 시절 얘기지만 당시 우리 정보기관의 공작은 신속하고 효과적이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모든 증거가 북한을 가리키는데도 북한은 여전히 오리발이다. 외려 평양의 말레이시아 외교관들을 볼모로 삼아 버티고 있다.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 숨은 테러범 2명까지 빠져나가면 법의 심판에 넘겨진 것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둘뿐이다. 북한을 단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답답한 상황에서 그나마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무사하다는 소식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며칠 전 살해됐다’라면서도 설핏 웃음기도 보인 40초짜리 동영상이 얼마 전 공개됐다. 북한의 다음 타깃이 될 게 뻔한 김한솔이 어딘가로 피신해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김한솔은 지킬 수 있을까 

이 동영상이 나온 직후 국정원은 “김한솔이 맞다”고 확인했다. 다만 동영상을 올린 주체인 ‘천리마민방위’의 실체가 무엇인지, 현재 체류지가 어딘지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다. 김한솔의 피신에 국정원의 역할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나는 믿고 싶다. 나아가 앞으로 김한솔의 안전도 국정원이 당연히 책임질 것이라고. 또 한 가지. 김한솔은 동영상에서 특별히 이름까지 거론하며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정은을 세워야 한다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것은 우연일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2017.05.02 북한의 대선개입공작 실태- 특정정당 후보와 낙선과 당선 선동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소위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참배하는 북한 독재자 김정은. /조선DB

 

북한 노골적으로 특정후보 낙선운동 선동

 19대 대통령선거(5 9) 9일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은 매시기 대통령선거와 같은 한국의 권력재편기에 편승하여 선거개입 등 정치공작을 정교하게 전개해왔다. 이번에도 북한은 온·오프라인 대남선동매체를 총동원하여 연일 선거관련 대남정치선동과 투쟁지령을 국내 종북세력에게 하달하며, 노골적으로 특정후보들의 낙선을 독려하고 있다

 

탄핵국면에서 북한은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황교안 권한대행을 집중 비방하다가 이들이 출마하지 않자, 화살을 특정정당과 후보을 돌리며 ‘보수패당’을 파멸시키자고 선동해오고 있다

 

최근 논조는 2개 특정 정당(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을 보수패당이라며 낙선을 선동하고 1개 정당(국민의 당)을 중도보수정당이라 비방하고 낙선을 선동하고 있으나, 반면 다른 특정정당(더불어 민주당, 정의당) 후보에 대해서는 전혀 비방하지 않으며 진보민주세력을 당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제19대 대선에 관련한 북한의 대남정치공작 의중을 가늠할 수 있다.   

 

북한 대선개입공작의 당면 목적: 친북정권 창출 

 북한이 한국의 대통령선거때마다 대남정치공작을 전개하는 긍극적인 목적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정권의 목표인 ‘적화(공산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선거공작의 당면목적은 북한에 우호적인 친북정권을 창출시키려는 것이다

 

북한은 선거라는 합법적인 운동공간을 활용하여 이른바 전조선혁명을 위한 3(북한,남한,국제) 혁명역량 강화노선중 ‘남한사회주의혁명 역량’을 강화시켜 적화통일을 위한 주객관적 상황(결정적 시기)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는데, 이는 친북정권의 창출로 집약된다

 

북한 지하당 동원, 비합법 선거공작 사례 

 북한이 1990년대 이래 지하당을 통해 ‘진보정당’ 구축공작과 선거투쟁을 지령했는데, 지령 사례는 △ 1991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서 민중당 창당공작 △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2003년 민노당 고문 강태운 간첩사건 △ 2006년 일심회 간첩단 △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에서 직접 공작금에서 선거자금을 지원한 사례도 확인된다

 

<1> 북한의 비합법 지하당 선거공작 사례  

간첩사건 주요 북한 지령 및 수행 사항
간첩 김낙중사건
1991
남한 내 합법적인 북한 전위정당 건설 지령(1990.2)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여 당권을 장악하라 지령(1990.10)
14대 총선시 민중당 후보 거액선거자금 지원
14대 총선시 민중당 핵심인사가 원내에 진출할수 있도록 당선가능한 인사를 선정, 집중지원할 것, 18명에게 7,900만원 지원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1991
거물급 여간첩 이선실 10년 간(1980-1990) 암약
민중당 창당 개입 및 선거지원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1999
진보적 상층인물 포섭 지령(1993.6)
조직원 및 협조자 제도정치권 진출지령,
1995년 지자체선거, 96년 총선 출마자 6명 총 4,500만원 지원
* 민노당 및 통합진보당에 이석기 등 민혁당 조직원 포치
간첩 강태운사건
(민주노동당 고문)
2003
민노당 준비위 결성 참여 지령(1998.11)
민노당을 남쪽의 진보세력으로 키워 확대시킬 것(200.7)
일심회 사건
2006
민노당 서울시당 장악 지령(2005.8)
민노당 확대 및 대중적 혁명역량 강화사업 지령(2005.11)
* 민노당 및 통합진보당에 일심회 조직원 포치, 선거지원
왕재산 간첩사건
2011
지자체선거 및 총선 대비 민노당 역량강화 지령(2002.3)
지자체 선거에서 민선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당선
진보대통합당(진보정당 통합 의미) 완성 지령(2011.2)
당내 진보적 민주주의 관철 지령(2011.6)
* 2011. 12. 통합진보당 창당 실현
* 왕재산 2인자 이0, 국회의장 정무비서관,집권여당 당직자

  

최근 북한의 대선개입 지령하달 사례

북한은 연일 노동신문(인터넷판), 우리민족끼리(조평통 웹사이트), 구국전선(통일전선부 반제민전 웹사이트), 오늘의 조선, 메아리 등 160여대 북한직영 및 해외종북사이트와 1,000여개의 트위터, 유튜브 등 SNS계정을 동원하여 대선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다.

 

<2> 최근 북한의 대선개입 선동 사례

일자·매체 주요 내용
2017.4.30.
노동신문
력사의 반동들을 단호히 쓸어버려야 한다
《대통령》선거가 박두하고 있는 지금 보수패당의 재집권책동은 발악적 단계에 이르고 있다... 반동보수세력들의 보수정권 연장음모를 철저히 짓부시지 못한다면 남조선인민들은 5또다시 박근혜와 같은 악귀의 발굽 밑에서 피를 흘려야 한다.
2017. 4.28.
노동신문 논평
재집권을 노린 시정배들의 불순한 광대극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즘 남조선에서는 또다시 《안보위기》소동이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 장본인은 두말할 것없이 보수잔당들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패거리들이다. 지금 이자들은 《안보》문제를 가지고 저들에게 불리한 선거판을 뒤집어엎고 재집권야망을 실현하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그런데도 지금 남조선의 일부 야당세력들은 미국과 괴뢰보수패당의 북침전쟁광기로 조선반도정세가 최악의 국면에 처한 현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미국과의 《동맹》과 《안보》를 운운하며 보수의 흉내를 내고있다....권력욕에 사로잡혀 불순하기 그지없는 《안보위기》소동에 매달리며 민심에 역행하고 대결을 고취하는 추악한 정치시정배들을 남조선인민들은
2017.4.18.
우리민족끼리
차악선택에 비낀 보수패당의 비렬한 음모
최근 남조선에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파멸의 위기에 직면한 보수패당들이 무슨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선택>이니 <중도성향의 야당후보 지지>니 뭐니 하면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여론들이 <차악>선택을 줴쳐대는 보수세력의 망동을 두고 진보민주세력에 의한 정권교체를 막아보려는 비렬한 음모 외 다름아니라고 평가하는 것은 우연치 않다....괴뢰보수패당을 단호히 심판하고 이번 대선에서 진보민주세력에 의한 정권교체를 실현하자
2017. 4.11.
반제민전 논평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공개적으로 「과거청산」을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보수세력의 재결집에 대한 민심의 호응을 받아보려고 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등의 보수패당은 재집권기도를 드러낼수록 국민의 더 큰 항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어리석은 잔꾀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잔꾀를 부리지말아야 한다 증)

 

결론: 북한, 특정정당 후보 당선 선동 

 북한의 대선개입 선동의 핵심 내용은 ▲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을 보수패당이라고 칭하고 동 정당 후보의 낙선 선동 ▲ 일부 야당(국민의 당)을 ‘보수패거리들과 대권욕에 환장한 야당, 중도보수의 야당 등으로 칭하며 낙선 선동 ▲ 특정 정당(민주당과 정의당)은 ’진보민주세력‘이라 칭하며 당선 선동 으로 요약된다.  

 

북한이 왜 특정정당 후보에 대해서는 일체 비방을 삼가면서 결국 당선을 선동하는지 국민여러분이 판단하기 바란다. 어느때 보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투표권 행사만이 북한의 대선개입 공작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