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2021-07/ 07.01(목) 역사를 새로 쓴 뜻밖의 발견 - 07.31 한국의 이른바 ‘여성계’
만물상 2021-07/ 조선일보
07.01(목) 역사를 새로 쓴 뜻밖의 발견
/ 29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 인사동 한복판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랜 세월 유럽인들은 이집트 피라미드와 벽화, 석상, 비석 등에 남아 있는 상형문자를 해독하고 싶어 안달했다. 1799년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가 항구도시 로제타에서 글이 깨알같이 새겨진 돌덩이 하나를 발견했는데, 고대 그리스어와 이집트 민중문자, 상형문자로 같은 내용을 적은 것이었다. 이 기막힌 행운이 고대 이집트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프랑스 언어학자 샹폴리옹이 고대 그리스어를 발판 삼아 상형문자 해독의 비밀을 찾아냈다. 람세스 등 파라오 27명의 이름도 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역사를 다시 쓰게 한 고고학 업적 상당수가 뜻밖의 발견 덕분이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그렇다. 1900년 둔황 막고굴에서 살던 도사 왕위안루와 그의 조수들이 굴을 청소하다가 한 동굴 벽 뒤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벽을 부쉈다. 또 다른 방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옛 문서와 그림 수만점이 쏟아져나왔다. 그중 하나였던 왕오천축국전은 처음엔 중국 승려의 글인 줄 알았는데, 일본인 승려 학자 오타니 고즈이의 연구로 혜초의 신분이 밝혀졌다. 당(唐)에 유학 가 인도까지 다녀온 신라 승려가 1200년 시공을 넘어 우리와 만났다.
▶세계 해저 고고학의 일대 사건으로 꼽히는 신안 유물 발굴도 1975년 여름, 어부의 그물에 걸려 나온 도자기 6점에서 시작됐다. 이듬해 1월 어부의 동생이 형 집에 도자기가 있는 것을 보고 당국에 알린 게 2만4000여점 유물 발굴로 이어졌다. 목간 364개도 함께 나왔다. 그 덕에 종이에 썼다면 흔적 없이 사라졌을 소중한 기록들도 세상에 드러났다. 1323년 중국 닝보를 떠나 일본 하카타로 가던 배였다는 사실, 물품 내역과 수량·상인과 구매자 이름까지 알 수 있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금속활자가 엊그제 공개됐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였던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가 포함돼 있어 15~16세기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명으로 1434년 만들어진 갑인자일 가능성이 있는 한자 활자도 나왔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바닥을 파고 발굴하던 중에 뜻밖의 노다지가 쏟아졌다. 수백년 전 민가 창고였을 수 있다니 무슨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갑인자는 조선 시대 인쇄술의 꽃으로 불리지만 인쇄본만 전할 뿐 활자는 남아 있지 않다. 구텐베르크 성경도 인쇄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한자 활자가 갑인자라면 조선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이자 세계 인쇄사를 다시 써야 할 대단한 발견이다. 후속 연구를 통해 밝힌다니 가슴 졸이며 기다리게 된다.
07.02 확진자 수 집계 안 하는 싱가포르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머라이언상 앞을 마스크를 쓴 남녀가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독감의 치사율은 0.1% 정도다. 1만명 걸리면 10명 정도 사망에 이르는 수치다. 독감이 유행하더라도 나라를 봉쇄하거나 거리 두기를 하지는 않는다. 독감과 공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박멸하지 못하더라도 독감처럼 위중증 환자 비율과 사망률이 낮다면 굳이 지금과 같은 거리 두기를 유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전 세계가 델타 변이 확산으로 방역 고삐를 죄고 있는 가운데 싱가포르가 봉쇄 등 방역 조치를 포기하고 일상으로 복귀를 추진하는 로드맵을 내놓았다. 싱가포르는 얼마 전 보건부·통상부·재무부 등 3개 부서 장관 명의로 발표한 기고문에서 봉쇄와 감염자 추적, 확진자 수 집계를 중단하고 여행과 모임 제한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독감처럼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만 관리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공존을 모색해보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한때 모임 인원을 2명으로 제한하는 등 강도 높은 방역 조치를 시행했던 나라다
▶싱가포르가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싱가포르는 전체 국민의 56%가 1차 접종을, 36%는 2차 접종까지 마쳤다. 건국기념일인 8월 9일까지 국민의 3분의 2에게 2차 접종까지 마친다는 것이 목표다. 인구 570만 명가량인 싱가포르의 지난달 하루 평균 코로나 확진 건수는 18건, 지금까지 누적 사망자는 36명에 불과하다.
▶영국도 하루 확진자가 2만명 안팎 나오고 있지만 예정대로 이달 19일 봉쇄를 해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델타 변이가 확산하며 확진자 수가 늘었지만 높은 백신 접종률로 사망률이 낮기 때문에 일상 회복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일주일 영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하루 평균 17명 정도다. 확진자와 사망자 발생 사이에 3~4주 간격이 있긴 하지만 현재 사망률은 독감 수준인 0.1% 아래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리는 7월 19일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코로나 사망률은 지난해 2% 안팎을 보이다 현재 0.4% 수준까지 낮아졌다. 백신 접종이 늘면서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올가을쯤 0.1%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가 독감처럼 되는 것이다. 어제부터 백신 1차 접종자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아침에 일부러 공원에 들러 마스크를 벗고 숨을 들이켜 보았다. 우리도 매일 확진자 숫자 보는 스트레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
07.03 젓가락으로 과자 집어먹는 세상
제과업체에서 최근 신제품 ‘고추칩’을 내놨다. 과자 봉지에는 손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과자를 집는 사진을 썼다. 업체 관계자는 “고추튀김 맛을 본뜬 과자라 젓가락 사진을 썼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동안의 손가락 논란을 의식 안 한 건 아니다.”
▶무심코 손가락을 놀리면 밥줄이 위험해지는 세상이다. 지난 5월, 편의점 체인 GS25 홍보 포스터에 손가락으로 소시지를 잡는 모습의 삽화가 들어갔다. “한국 남성의 생식기 크기를 조롱하는 메갈(극단적 페미니스트)의 심볼”이라며 일부 남성들이 불매 운동을 선언했다. 편의점주들까지 난리가 났다. 디자이너가 “저는 결혼해 아들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그를 포함 여럿이 징계, 보직 해임됐다. 경찰청이 내놓은 ‘PM(개인형 이동 장치) 개정법령’ 안내 포스터에도 그 ‘엄지검지’ 손동작이 들어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찰청은 “의도는 없었지만 불편 드려 죄송하다”며 포스터를 수정했다. ‘엄지검지 손동작’은 한국에서만 ‘남혐 인증’ 수신호가 됐다.
▶손가락 논란은 ‘일베 인증 논란’이 원조다. 사이트 초기에 열혈 이용자들이 손가락으로 ㅇ(일) ㅂ(베) 모양을 만든 후 사진을 찍는 ‘회원 인증’ 놀이가 유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런 일베 회원 인증 사진을 역으로 이용해 ‘일베 회원 색출’에 활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연기력으로 칭찬받는 배우도 몇 년 전 이런 사진이 나와 배우 인생이 끝날 뻔했다. “좋아하는 미국 힙합 가수를 따라 했다”고 했지만, 공격하는 이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판을 잘못 두드려도 두들겨 맞는다. 의성어를 연상시키는 ‘쿵쾅이’는 ‘뚱뚱하고 못생긴 페미니스트’, ‘오또케' ‘아몰랑’은 ‘의존적’ ‘비논리적' 여성을 칭하는 여성 비하 용어다. 남성이 생각 없이 먹는다는 뜻의 ‘허버허버’, 쓸데없이 정자 수만 많다는 뜻의 ‘오조오억개’라는 표현은 남성들을 분노케 하는 단어다. 문자에 답 없는 딸에게 “우리 딸래미 아몰랑?”, 밥 먹는 아들에게 “우리 아들 허버허버 잘 먹네” 하면 화낸다.
▶”그런 뜻인지 몰랐다” “그런 의미 아니었다”고 해명하면 “무의식이라 더 문제”라고 역공당하는 세상이다. 일베로 오인받기 싫으면 ‘일베 박사’가 돼야 한다. ‘남혐, 여혐 단어를 썼다’는 애먼 누명을 피하려면 남혐, 여혐 단어를 통째로 외워야 할 지경이다. 역설이고 패러독스다. 좌우, 젠더 갈등이 격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 의심증 환자가 된 것 같다. 의심과 불안의 구름이 사이버 세상을 넘어 실제 사회로까지 번지고 있다.
07.05(월) 섹스리스 청년들의 슬픔
미국의 한 콘돔 회사가 세계 26국 성인 남녀의 성관계 횟수를 조사했다. 1위는 연평균 164회인 그리스였다. 2~3일에 한 번꼴이다. 최저는 연 48회인 일본이었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가 2018년 18세 이상 프랑스 성인 남녀에게 ‘섹스리스(sexless)’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격앙된 반응이 돌아왔다. 응답자 거의 전부가 “불륜보다 더 나쁘다”고 대답했다. 일본은 아주 나쁜 나라인 셈이다.
▶일본에서 여성에게 관심이 없거나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은 남자를 ‘초식남’이라 한다. 남자에게 무관심한 여자까지 아울러 초식계(系)라 하는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일본의 초식 남녀 확산 배경엔 1990년대 이후 20년간 이 나라를 집어삼킨 장기 불황이 있다. 많은 젊은이가 취업난에 짓눌려 사랑을 포기했다. 태어나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생애 미혼율이 25%까지 치솟았다. 편의점 간편식 덕분에 독신으로 살아도 아쉬울 것 없고, ‘야동'과 자위 기구 도움 받는 게 주머니 사정에 어울린다는 판단도 ‘섹스리스 청년’ 현상을 부추겼다.
▶한국 성인 3명 중 1명꼴로 지난 1년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특히 20대 남성 42%와 여성 43%가 섹스리스라는 통계는 장기 불황 시기 일본 청년들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불투명한 미래가 주된 이유로 꼽히는 것도 비슷하다. 20대 대부분이 취업난에 허덕이다 보니 서로 사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출산·가사, 시댁과 맺은 관계 등 남자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는 여성이 전보다 자유롭게 비혼을 택할 수 있게 된 세태 변화도 한몫했다.
▶젊은 남녀가 사랑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현실은 2000년대 문학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다. 원종국 단편 ‘용꿈’ 속의 청년은 집 없이 PC방을 전전한다. 간신히 여자를 사귀어 동거하지만 무일푼 청년을 탐탁잖게 여긴 여자의 엄마가 둘 사이를 갈라놓으며 남자는 원래의 고독한 삶으로 돌아간다. 이 청년에게는 사랑도 내 집 마련도 이룰 수 없는 용꿈이다.
▶육체 관계 없이 정신적 교감만 나누는 것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한다. 17세기 영국 작가 윌리엄 대버넌드가 ‘플라토닉 러버스’를 내면서 널리 퍼졌다. 정작 플라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육체·영혼·학문을 사랑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이 모든 것을 포함해 아름다움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최고의 사랑으로 꼽았다. 플라톤이 환생한다면, 젊은이들이 사랑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를 몹시도 질책할 것 같다.
07.06 ‘싸이월드’의 귀환
/'싸이월드'의 귀환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2000년대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가 과거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 180억장과 동영상 1억5000만개를 복구해 5일 서비스를 재개하려다 8월로 잠정 연기했다. 싸이월드는 한때 이용자가 3200만명에 육박했고 ‘싸이질’ ‘싸이폐인’ ‘싸이중독’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았던 한국형 SNS다. 페이스북보다도 앞선 1세대 토종 SNS였지만 페이스북 등에 밀려 쪼그라들다 급기야 서비스까지 중단됐었다. 서비스 재개 소식에 10~20대 시절 싸이월드에 사진이며 동영상을 업로드해놓은 30~40대들이 반색하고 있다.
▶1999년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이 만든 싸이월드는 ‘미니홈피’ 서비스로 주목받았다. 이용자들이 가상 화폐였던 도토리로 자신만의 가상 공간을 꾸미고, 가까운 친구와 ‘일촌’ 맺기를 하며, 일촌의 일촌과 파도타기를 하면서 다른 미니홈피도 방문하는 인맥 기반 서비스였다. 하지만 운영난에 시달리다 창업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했다. 한때 하루 도토리 매출이 1억5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유료화에도 성공했지만 세계 시장 개척에는 실패했다.
▶싸이월드는 모바일로 바뀐 시대 변화에 굼뜨게 대응하면서 인기를 잃어갔고 적자가 누적됐다. 2016년 프리챌 창업자가 인수해 부활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경영난으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못 주고 세금도 밀리자 급기야 지난해 국세청에서 싸이월드를 폐업 처리했다.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에 초기 투자한 피터 틸처럼 안목있는 벤처투자가를 일찌감치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전 세계인이 페이스북 대신 싸이월드를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5년경 백인 모델이 사과를 와작 베어 문 ‘사과 씹어 먹기' 광고가 뉴욕 등지에 등장했다. 애플에 맞짱 뜨겠다는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의 해외 광고였다. 삼성반도체 임원 출신의 양덕준씨가 1999년 창업한 아이리버는 창업 5년 만에 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의 79%, 해외 시장의 25%를 석권할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글로벌 음반사들을 규합해 아이튠스라는 네트워크를 만들며 거대한 음원(音源)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의 큰 전략에 밀려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 IT 산업사의 아쉬운 실패 사례다.
▶싸이월드와 아이리버처럼 세계 시장에서 앞서가던 디지털 기업들이 우리에게 있었다. 이들의 성공에 자극받아 많은 젊은이가 IT 분야에 뛰어들었다. 돌아온 싸이월드가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과거의 뼈아픈 실패도 한국 디지털 산업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07.07 日 야구의 精進
/<YONHAP PHOTO-1105> MLB 한 시즌 일본인 최다 홈런 타이기록 세운 오타니 (애너하임 로이터/USA 투데이 스포츠=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경기 3회에서 에인절스의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가 홈런을 치고 있다. 그는 이날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시즌 31호 홈런을 기록, 지난 2004년 마쓰이 히데키가 기록한 일본 선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knhknh@yna.co.kr/2021-07-05 08:20:13/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일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전설의 칼잡이이지만 말년에 쓴 책 두 권으로 일본 무사도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경지에 이르면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겨 불가사의한 힘을 쏟아낸다고 한다. 미야모토가 이런 정진을 통해 완성하려 한 것이 양손에 칼을 잡고 싸우는 이천일류(二天一流) 검법이었다.
▶독행도(獨行道)는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세상의 도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편안함을 꾀하지 않는다, 나를 가볍게 여기고 세상을 중히 여긴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수신서로선 조악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 책 때문에 일본의 검도는 싸움의 기술을 넘어 무사도로 진화했다.
/일러스트=김도원
▶일본에선 일명 ‘슈교(修業)’를 중시한다. 기술이나 학업을 익히고 닦는 정진을 말한다. 요리, 청소, 막노동까지 이 단계를 거치도록 요구받는다. “스시를 만들기까지 3년 동안 설거지만 했다”는 일본 장인의 흔한 이야기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일본도 가치관이 변하면서 혹독한 수업 과정을 점차 생략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던 ‘세계 일등’ 가게들도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전통이 살아있는 분야가 일본 야구다. 고교야구대회 ‘고시엔(甲子園)’ 목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고시엔은 예의와 절도를 강조한다. 승리해도 오래 기뻐하면 안 되고, 인사할 때 패자가 고개를 들 때까지 승자는 허리를 굽혀야 한다. 선수는 삭발해야 하며 원색 유니폼은 금기이고 등번호도 새기지 못한다. 주최자가 준 번호표를 박음질한다. 고시엔 주전이 됐다는 영광의 상징이다. 근면과 규율을 강조하고 태만과 방종을 경계하는 일본 학생야구헌장은 미야모토의 독행도에 뒤지지 않는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야구에 스캔들이 적고 세계 무대에서 성공 사례가 많은 것도 어린 시절 고시엔을 위해 쌓은 정진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일본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미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투수이자 타자로 참여한다. 미국 야구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며 전인미답의 투타 겸업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한 손엔 공, 한 손엔 방망이를 든 미야모토식 이천일류라고 할까. 곡절도 많았지만 4년 정진 끝에 대기록을 세웠다. 투수로서 홈런 1위를 달린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적이다. 그도 초등학교 3학년 때 고시엔을 목표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000안타 기록을 세운 스즈키 이치로도 천재가 아니라 하루하루 정진하는 스타일이었다. 눈여겨볼 정신이다.
07.08 문제는 환기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개편안 시행을 이틀 앞둔 6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일 전북 남원시청 직원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역학조사 결과 이 직원은 지난달 30일 확진자와 같은 음식점에서 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이 일행은 아니었고 5m가량 떨어진 자리에서 식사했다. 그런데 어떻게 전파가 일어났을까. 방역 당국은 마스크를 벗고 식사하는 사이 에어컨 바람에 의해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신종 코로나 하루 확진자가 6개월 만에 다시 1200명대로 치솟은 것은 에어컨을 가동하는데 환기는 제대로 안 하는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온다습한 여름철은 바이러스 생존에 불리하다. 그러나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환기는 제대로 안 할 경우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이 만들어져 상황이 달라진다. 지난해 8월 발생한 파주 스타벅스 집단감염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천장형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창문을 통한 환기를 하지 않은 것이 70명 집단감염의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러스트=김도원
▶서울시는 지난 5월부터 서울시 코로나 확진자 중 30% 정도가 환기 불충분으로 발생했다며 ‘서울의 창을 열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창문과 출입문을 상시 개방하고 상시 개방이 어려울 경우 1시간에 10분 이상 환기해달라는 것이다. 미국 MIT 마틴 Z. 바잔트 교수 등은 지난 4월 식당에 감염자 1명이 들어와도 자주 환기하고 손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면 57시간 동안 공기 전파가 발생할 확률은 10% 미만이라는 계산을 내놓았다.
▶밀폐 환경에서 에어컨을 트는 것이 바이러스 전파에 좋은 조건이라면 항공기 기내는 최악이 아닐까. 그러나 항공기에선 공기를 여과하며 가열해 소독한다. 또 여과한 공기가 기내 위쪽에서 내려와 기내 아래로 나가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일종의 공기 커튼 역할을 해 누가 기침을 해도 옆으로 전파되기 어렵다. 그래서 항공사들은 “기내 공기를 통한 코로나 전파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메르스 때도 기내에서 전파 사례가 없었다”고 한다. 이 역시 환기의 효과다.
▶환기를 하려면 얼마나 자주 해야 할까. 질병관리청은 지난 5일 여름철 올바른 환기 지침에서 하루 최소 3회, 한번에 10분 이상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가능하면 마주 보는 창문을 동시에 열어 맞통풍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에어컨을 켰을 때는 최소 2시간마다 한번 10분 이상 환기해달라는 것이 방역 당국의 당부다. 에어컨 풍향을 사람이 없는 천장이나 벽으로 하는 것도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환기는 마스크 쓰기, 손 씻기와 함께 코로나 시대 생존법이다.
07.09 이건희 미술관도 건축 자체가 세계적 명품 되길
UAE 아부다비에 2017년 ‘루브르 아부다비’가 개관했다. 프랑스와 루브르 분원을 짓기로 2007년 합의하면서 ‘미술관도 작품으로 만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빛의 건축가’로 유명한 장 누벨이 완성한 루브르 아부다비는 그 자체로 예술품이다. 커다란 방패 형태의 원형 돔에 뚫은 저마다 모양이 다른 구멍 7850개를 통해 들어온 빛이 시시각각 변화한다. 덕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비드, 반고흐 등 대여 작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루브르 아부다비'/AP 연합뉴스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스페인 빌바오에 지은 빌바오 구겐하임도 예술성을 인정받는 미술관이다. 1980년대만 해도 쇠락하던 공업도시 빌바오가 해마다 100만명이 찾는 예술 도시로 거듭났다. 처음 설계를 공개했을 때는 비난이 폭주했다. ‘티타늄 소재를 활용한 갑옷 입은 건축’이란 이미지를 두고 “금박지를 구겨 놓은 것 같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유서 깊은 역사 도시 빌바오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비난도 더해졌다. 이런 여론에 굴복했다면 오늘날 빌바오는 없었을 것이다.
/스페인의 빌바오가 쇠퇴한 공업도시에서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하는데 큰 기여를 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경./빌리오 구게하임 미술관
▶파리에 에펠탑이 들어섰을 때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장소는 여기뿐이다”라고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냈다. 영국 출신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건축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비슷한 시련을 겪었다. 2015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명소 52곳에 포함됐지만 처음엔 “주변과 조화가 안 되는 흉물” 취급을 당했다. 지금은 “초기 이미지대로 만들었다면 더 아름다웠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이건희미술관 후보지가 엊그제 서울 용산과 송현동으로 압축됐다. 유치 경쟁을 벌여온 지자체들이 반발하자 문화부 장관은 “지역 거점 미술관·박물관 순회 전시를 통해 지방의 문화 향유권을 챙기겠다”고 했다. 전시품을 온 국민이 향유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전시품을 담게 될 미술관을 어떻게 짓겠다는 말이 없어 아쉽다.
▶후보지로 거론되는 용산과 송현동 인근에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다. 두 곳 모두 예술적 독창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변과의 조화’라는 요구에 눌려 외국 일류 미술관 같은 상상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DDP를 설계한 하디드는 “건축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이건희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의 특징을 살리면서 건축물 그 자체도 세계인을 경탄케 하는 예술 명품으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07.10 경복궁 수세식 화장실
하이힐은 원래 패션 용품이 아니었다. ‘풍속의 역사’를 쓴 독일 사학자 에두아르트 푸크스는 하이힐이 분뇨를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하수 처리 시설이 없는 각 가정에서 창밖으로 버린 분뇨를 밟지 않으려고 만든 신발이었다. 그러다가 16세기 영국에서 수조에 저장한 물을 내려보내는 방식의 수세식 변기가 등장하면서 거리 모습이 달라졌고 하이힐도 지금 같은 용도로 쓰이게 됐다.
▶수세식 화장실 역사는 1만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유적이 발견될 만큼 오래됐다. 우리도 8세기 통일신라의 안압지 인근에서 물로 분뇨를 흘려보내는 수세식 화장실이 출토됐다. 로마 제국 시절 프랑스 남부 도시 비엔에는 겨울철 엉덩이가 시리지 않도록 난방 장치까지 갖춘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 하지만 수세식이 수인성 질병 창궐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악화시켰다. 1850년대 영국에서 콜레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 결과 분뇨를 정화 과정 없이 템스강에 흘려보낸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공중 위생은 화장실 위생 개선의 역사다.
▶경복궁에서 150년 전 만들어졌다가 땅에 묻혔던 공중(公衆)화장실 유적이 엊그제 공개됐다. 수세식에다 정화 시설까지 갖췄다. 물 들어오는 곳보다 나가는 곳을 높여 잠시 머물게 하는 방식으로 분변의 자연 발효를 촉진하는 과학적 구조다. 그러나 궁궐 안에서만 누리는 호사였다. 1894년 조선 땅을 밟은 영국인 이저벨라 버드 비숍은 “한양은 세계에서 베이징 다음으로 더러운 도시”라고 했다. 사람들은 거리에 인분을 그냥 버렸다.
▶‘화장실이 불결한 나라’였던 한국은 1988 서울 올림픽과 월드컵을 계기 삼아 화장실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대거 교체했다. 하드웨어 개선에 이어 2002년 월드컵 때는 ‘화장실 청결하게 사용하기'라는 소프트웨어 도약도 이뤘다. 1999년부터 해마다 ‘아름다운 화장실’ 공모전 등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며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은 이제 한국 화장실을 보고 감탄한다. 휴대폰을 꺼내 내부를 찍어 갈 정도다.
▶지난해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을 받은 수원 화성행궁 인근 ‘미술관 옆 화장실’은 소지품 선반, 방수 콘센트, 동작 감시 센서와 LED 조명, 여성을 위한 수유실과 영유아 침대까지 갖췄다. 시민들 이용 행태도 선진국 수준이다. 지금도 세계 인구 10명 중 4명이 제대로 된 화장실 없이 질병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지난 세기 중반까지 우리도 그런 나라였다. ‘한강의 기적’이 화장실에서도 이뤄진 셈이다.
07.12 ‘고점(高點) 호소인’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은 2017년 8월 투기지역 지정,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을 담은 문재인 정부 첫 부동산 종합대책(8·2대책)을 발표하면서 큰소리를 쳤다.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리겠다. 사는 집이 아닌 건 파시라.” 그 말 듣고 집을 판 사람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다주택자, 법인이 매물로 내놓은 물건을 30대가 영끌로 받아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집값이 곧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 발언 이후 서울 집값은 20% 이상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값 상승을 ‘서민생활의 가장 큰 적’이라고 규정했다. 실거래가 신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등 부동산 대책을 30여 차례나 쏟아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57%나 치솟았다. 결국 임기 마지막 해 신년 연설에서 “부동산,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올라서 미안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한 번에 잡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 흑역사 속편을 쓰고 있다. 그러고도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말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서울 집값이 86%나 올랐기 때문에 재·보선 참패를 당하고서야 “4년간 가장 아쉬웠던 점은 부동산 문제”이라고 실토했다.
▶그렇다고 ‘부동산 정치’를 포기한 건 아니다. 국민 편가르기식 징벌적 과세를 계속 밀어붙인다. 정책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국무총리가 “방법이 있다면 정책을 어디서 훔쳐오고 싶다”고 토로할 정도다. 경제 관료들이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정책 수단은 ‘국민 겁주기’다. 경제부총리는 연일 “서울 집값이 고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부르짖는다. 국토부 장관도 “2~3년 뒤 집값이 내려갈 수도 있다” “주택 살 때 영끌을 하면 나중에 굉장히 힘든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협박한다.
▶1년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당시, 여성·인권운동가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지칭해 국민 분노를 산 바 있다. 이후 ‘평화 호소인’(북한에 유화적인 대통령), ‘피로 호소인’(선거 운동 중 지쳐 책상에 엎드려 잔 민주당 의원) 등 ‘ 호소인’ 계열의 풍자가 잇따랐다. 요즘 부동산 시장에선 주택 버블을 강변하는 부동산 정책 수장들을 ‘고점(高點) 호소인’이라고 부른다. 계속 고점을 갈아 치우는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호소를 비웃는 것이다. 민초들의 촌철살인이 놀랍다.
07.13 ‘야놀자’와 ‘이순신클럽’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비전펀드가 국내 최대 숙박 레저 플랫폼 기업 ‘야놀자’에 1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손정의 회장이 3조원 넘게 투자한 쿠팡에 이어 국내에 ‘제2의 쿠팡’ 신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비전펀드의 투자로 ‘야놀자’는 기업가치가 10조원 이상인 ‘데카콘’ 기업으로 인정받는 셈이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공유경제의 대표 기업인 미국의 ‘에어비앤비’는 가난한 청년 셋이 월세를 충당할 겸 자신의 아파트 공간 일부를 돈 받고 빌려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한국의 ‘야놀자’는 그보다 더 극적인 창업자의 ‘흙수저 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업자 이수진 총괄대표는 “침대 시트 까는 건 도사”라고 사석에서 자신을 소개한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재혼해 할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할머니마저 중1 때 돌아가시고 친척 집에서 컸다. 지방 전문대를 졸업하고 어렵게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날리고는 숙식 해결되는 일거리를 찾던 끝에 모텔 청소부로 일했다. 그 인연으로 모텔 관련 인터넷 카페를 인수한 것이 ‘야놀자’의 출발이 됐다.
▶“사당동에 있는 ‘야놀자 코텔’에 ‘호캉스’ 다녀왔어요.” 인터넷에는 젊은이들이 올린 모텔 이용 후기가 종종 등장한다. ‘코텔’은 부정적 어감을 가진 모텔 대신 한국형 호텔을 뜻하는 신조어다. 음지에 있던 모텔을 양지로 끌어낸 ‘발상의 전환’이 야놀자의 성공 비결이다. 이수진 대표는 “전국의 모텔 3만개를 설렘과 행복 주는 숙박 공간으로 재창조하겠다”며 호텔과 모텔만 있던 국내 숙박 업계에 ‘코텔’을 선보였다. 성인 방송 같은 것을 없애고 ‘플레이존’과 ‘스터디룸’ 등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시설을 도입한 신개념 모텔로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모텔에서 출발했지만 호텔, 펜션, 글램핑 등으로 서비스를 늘리고 국내외 숙박 관련 스타트업들을 인수해 1500만명이 이용하는 ‘국민 레저 앱’이 됐다.
▶이수진 대표를 비롯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창업자들끼리 만나는 사적 모임이 있는데 처음에는 ‘개고생클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이순신클럽’으로 모임 애칭을 바꿨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한 이순신 장군의 말에 감명받아 이수진 대표가 제안한 이름이라고 한다. 창업자들의 절박함과 결기를 보여준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배달의 민족’의 김봉진 창업자, 야놀자 이수진 총괄대표 등은 가진 것 없이 남다른 아이디어와 의지로 성공한 21세기의 흙수저 갑부들이다. 이런 신흥 부자가 얼마나 쏟아지느냐에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달려 있다.
07.14 ‘징역 2년’으로 “오빠”가 없어질까
/북한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북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조선일보 DB
북한에 처음 상륙한 한류(韓流)는 1990년대 영화 ‘장군의 아들’ 같은 액션물이었다. 보면 바로 이해가 됐다. 고난의 행군 때는 한국 노래 ‘돈 때문에’가 유행했다.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울리나”는 가사가 북 주민을 울렸다. 단속에 나선 북 당국이 비디오·DVD 플레이어는 놔 두고 DVD(알판)만 압수했다. 맞불을 놓는다며 북 체제 선전용 DVD를 만들어 대량 유포했다. 그런데 두 DVD가 뒤섞이면서 한류 적발이 어려워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김정일에게 ‘대장금’ 등 드라마 DVD를 선물했다. ‘장군님도 보는 것'이라며 북 간부를 중심으로 한국 사극이 확 퍼졌다. 김정일이 만든 영상물 ‘민족과 운명’에는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심수봉씨가 기타 치며 ‘그때 그 사람’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북 젊은이들이 그걸 따라했다. ‘겨울연가’ 같은 연애물을 보고 남한 말투와 옷차림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김정일 애창곡이 ‘사랑의 미로’다. 그런데 2009년 3대 세습을 앞두고 한류를 퍼뜨렸다며 간부를 총살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둑은 터진 뒤였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씨 얼굴이 찍힌 중국 감자칩은 북 시장에서 웃돈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북 여학생들이 ‘우상’ 사진을 앞다퉈 모았기 때문이다. 이씨와 열애설이 불거진 여자 연예인을 때려주려 ‘탈북하자’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 걸그룹 춤을 가르쳐주는 ‘사설 학원’도 등장했다. 작년 백두산 답사에 나섰던 20대 북한 군인들이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BTS) 춤을 췄다가 문제가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군이 ‘BTS 아미(팬 클럽)’가 된 셈이었다.
▶김정은이 작년 12월 ‘반동 사상 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한국 식으로 남편을 ‘오빠’라 부르면 징역 2년, 영상물을 유포하면 사형이다. 한류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 검사가 압수한 남한 드라마를 밤새 보다가 걸려 탈북하는 지경이다. 북 배경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본 주민들은 진짜 같은 평양역과 유경호텔 등을 보고 한국 기술에 탄복한다고 한다.
▶북한 ‘MZ 세대’는 대량 아사 시기에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냈다. 배급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맹목적 충성심도 약하다. 자기를 키운 건 시장(市場)이라 여긴다. 김정은은 이들의 한국 동경이 반체제로 이어질까 두려워한다. 북은 한류를 “모기장을 2중, 3중으로 쳐서 막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류는 모기가 아니라 바람이다. 자유와 민주의 바람이 태풍처럼 북을 휩쓸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반드시 올 것이다.
07.15 백신 효과 ‘사망 예방 99~100%’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지난 12일 예약을 하지 못한 55∼59세 연령층에 대해 이날 오후 8시부터 오는 24일 오후 6시까지 사전예약을 받는다고 밝혔다. 19일부터 사전 예약이 시작되는 50∼54세 대상자는 사전 예약이 일시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약 가능 시간을 연령별로 세분화했다. 2021.7.14
백신 접종의 1차적인 목적은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 만에 하나 감염이 되더라도 위중증으로 악화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백신 접종이 이 같은 목표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NBC방송 인터뷰에서 “(6월의 코로나) 사망자를 보면 99.2%가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달 미국에서 코로나로 숨진 사람의 거의 대부분이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파우치 소장은 “사망의 대부분은 피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슬프고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지난 5월 확진자 중 60세 이상 3906명을 분석한 결과, 94.7%(3702명)은 백신 미접종자거나 1회 접종 후 14일이 지나기 전에 걸린 사례였다. 확진 후 28일 임상 경과를 추적 관찰한 결과, 미접종 확진자의 위중증률은 7.2%, 사망률은 1.8%였다. 반면 1회 접종 완료 후 확진자의 위중증률은 5.5%, 사망률은 0.5%, 2회 접종 완료 후 확진된 사람 중엔 위중증과 사망 사례가 없었다. 감염과 위중증에 취약한 고령층에서 나온 결과다.
▶우리나라 백신 접종 완료자 417만명 중 지금까지 감염된 사례는 252건이다. 13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 사람들 중 위중증으로 간 사례는 2명(0.8%)에 불과하고 현재까지 사망자는 없다. 요즘 급증하는 델타 변이에는 어떨까. 지난달 영국 공중보건국 연구 결과를 보면 화이자 백신은 델타 변이 감염에 88%,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60%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AZ 백신도 2차 접종까지 마치면 델타 변이에 대한 중증 예방 효과가 92%에 달했다. WHO는 최근 “백신 접종 완료자라면 델타 변이에 걸리더라도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증상만 나타났다”고 했다.
▶이 같은 ‘백신의 힘’에도 미국은 백신 접종자가 늘지 않아 걱정이다. 최근 1주일간 하루 백신 접종자는 약 24만6000명으로 거의 200만명에 달했던 4월 정점 때에 비해 88% 줄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남아도는 백신이 우리는 없어서 못 맞는다. 55~59세를 대상으로 접종 예약을 받다가 물량 부족으로 반나절 만에 중단했다. 50~54세 접종도 1주일 연기하는 등 그나마 발표한 백신 수급도 불안불안하다. “백신 구입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한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07.16 ‘신영복체’라는 부조리극
마오쩌둥(毛澤東)은 서예가로도 유명했다. 글자를 약간 기울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그의 서체를 마오티(毛體)라 하는데, 최고 권력자의 글을 받으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학들은 교명을 받아 정문에 내걸었다. 거절당하면 마오의 글자를 채집해서라도 현판에 썼다. 칭화대(淸華大), 우한대(武漢大) 등 100여 곳에 이른다. 문화대혁명 재앙 후 한동안 외면당했는데, 마오처럼 절대 권력자가 되고 싶은 시진핑 주석이 이를 모방하면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포털에는 어떤 글씨든 마오티로 바꿔주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일러스트=김도원
▶서체가 권력이 되는 또 다른 나라가 북한이다. 김씨 왕조의 태양서체(김일성), 백두산서체(김정일), 해발서체(김정일 어머니 김정숙)를 ‘백두산 3대장군 명필체’라 한다. 2018년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이 방명록에 남긴 글은 첫 자음을 비정상적으로 크게 쓰고, 글씨의 가로선을 오른쪽 45도 방향으로 기울였다. 필적 감정가들은 “타인 위에 군림하는 이의 내면을 드러내는 글씨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서 권력이 된 서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신영복체일 것이다. 조정래 장편 ‘한강’의 표지, 손혜원 전 의원이 디자인한 소주 ‘처음처럼’,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 그가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돌린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 글씨가 모두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서체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창설 60주년을 맞아 새로 공개한 원훈(院訓)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도 신영복체라고 한다. 신영복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1968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복역한 뒤 출소한 사람이다. 간첩 혐의를 받았다. 이런 사람의 글씨체를 간첩 잡는 국정원의 원훈으로 썼다니 이것도 ‘남북 이벤트'인가. 아예 국정원 간판을 내리는 것은 어떤가. 이번에는 경찰이 ‘가장 안전한 수도 치안, 존경과 사랑받는 서울 경찰’ 글씨체를 신영복체로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경찰은 국정원으로부터 간첩 수사권을 넘겨받았다. 세상에 하고많은 글씨체를 놔두고 간첩 경력자의 글씨체를 다른 기관도 아닌 국정원과 경찰이 상징으로 삼나.
▶통혁당은 민주화와 상관없이 북한을 위해 암약했던 집단이다. 문 대통령은 통혁당 관련자들과 가깝거나 유독 챙긴다. 그러자 국정원과 경찰까지 신영복체를 쓴다. 여기에 국민 세금이 들어갔을 것이다. 부조리극(劇)은 자기모순적 속성과 그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꼬집는 연극 장르다. 무대에서나 벌어질 일인데, 우리나라 정부에선 현실이 됐다.
07.17 파병 국군보다 北 백신 생각 먼저?
/아프리카 아덴만에 파병된 문무대왕함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조선일보 DB
1347년 이탈리아 제노바 선원들이 흑해 무역항 카파에 들렀다가 주민들이 흑빛으로 변한 채 죽어가는 걸 봤다. 기겁하고 배를 돌려 달아났다. 그런데 항해 중 선원들이 하나둘 고열을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귀항할 무렵엔 성한 선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흑사병이 순식간에 좁은 배를 점령하고 이탈리아에 상륙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창궐할 때 일본 순양함 ‘야하기’가 싱가포르에 입항했다. 처음엔 외부인 승선과 선원 하선을 모두 막았지만 독감이 끝난 줄 알고 선원 상륙을 몇 시간만 허락했다. 그런데 출항 이틀 만에 환자 4명이 나오더니 군의관 포함, 선원의 90%가 감염됐다. 다음 기착지인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는 선원의 10%인 48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해군 제독은 “선박 중에서도 군함은 튼튼한 깡통 안에서 수백 명이 같이 생활하는 구조”라고 했다. 내부가 선실 등 칸막이로 나눠져 있지만 통풍 시설은 하나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옛날 군함은 창문이라도 열렸으나 지금은 대부분 밀폐형이라고 한다. 좁은 공간에서 같이 숨 쉬는 셈이다. 먼바다에 있다면,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다고 바로 내릴 수도 없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지난해 미국 항모 루스벨트함에선 코로나 확진자만 1100여 명이 나왔다. 일부 승조원이 베트남에 잠시 내렸다가 미 해군력의 상징을 유령선으로 만들 뻔했다. 프랑스 항모 드골함은 승조원 1700여 명 중 700여 명이 감염됐고 러시아 핵 잠수함도 ‘코로나 어뢰’를 맞고 물 밖으로 나와야 했다. 중국 위협을 받는 대만 순양함에서 확진자가 속출하자 대만 국방장관은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전 세계 해군 함대가 코로나 집단감염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 아덴만에 파병된 해군 청해부대(문무대왕함)에서 장병 6명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고 80여 명이 의심 증세로 격리됐다. 탑승한 해군 장병 300여 명 전원이 위험한 상황이다. 지난 2월 아무도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은 채 무방비로 출항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해군 상륙함에서 38명이 코로나에 걸리자 국방장관은 “방역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4월에 군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선 55만명분의 국군용 백신도 확보했다. 6월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에서 “북한에 백신 공급”까지 언급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 누구도 청해부대에 백신을 보낼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이다. 태극기 달고 이역만리 파병 간 장병들이 북한보다 후순위인가.
07.19(월) 원자력 공포의 허구성
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 인식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인지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통계 수치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논리적 사고를 하기엔 너무 게으르다는 것이다. 당뇨병으로 죽을 확률이 사고로 죽을 확률의 4배쯤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고사(死) 확률을 당뇨병의 300배쯤 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카너먼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오류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영국의 환경 저널리스트 조지 몬비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열흘밖에 안 된 시점에 ‘후쿠시마가 나를 원자력 옹호자로 만들었다’는 칼럼을 썼다. 그는 글 첫 대목에서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원자력에 중립적이었던 내 생각이 지지로 바뀌었다. 이유를 들으면 놀랄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큰 사고가 터졌는데 방사선 희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이유였다. 전 세계가 공포에 빠진 상황에서 상황을 이렇게 꿰뚫어본 것이 놀라웠다.
▶유엔 산하 방사능영향과학위원회(UNSCEAR)는 2년여 조사 끝에 2013년 후쿠시마 사고 보고서를 냈다. 결론은 ‘심각한 방사선 건강 피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CT 사진 한 장 찍으면 평균 7mSV 방사선에 폭로되는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평생 살아봐야 10mSV 약간 넘게 추가 피폭(被爆)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사고 수습 인부 2만5000명의 피폭량 역시 평균 12mSV였다. 의외의 조사 결과였으나 언론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EU 자문기구인 합동연구센터(JRC)라는 기구에서 각종 발전(發電) 방식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지난 3월 냈다. 3세대 원전의 경우 사망 발생 위험이 태양광의 2.7%, 육상 풍력의 0.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태양광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사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유엔 산하 기후과학기구(IPCC)는 이미 2013년 보고서에서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은 태양광의 26%밖에 안 된다고 계산했다.
▶사람들의 리스크 인식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광우병 사태 때 겪을 만큼 겪었다. 과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숫자인데 일반 대중은 숫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언론 책임도 작지 않다. 언론은 어떤 리스크에 대해 별것 아니라고 보도했다가 나중에 심각한 위험으로 드러날 경우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가능성에 굉장히 예민하다. 그래서 애초부터 위험을 아주 과장하는 쪽으로 보도하기 십상이다. 원자력 보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07.20 민주당과 박정희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을 이끈 건국의 아버지다. 미국 어디를 가도 동상이 서 있다. 하지만 그는 3000명 넘는 흑인 노예를 거느린 대농장주였다. 윈스턴 처칠은 나치의 침략 때 영국을 지키고 2차 세계 대전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인종차별과 노예제를 지지했다. 샤를 드골은 나치의 압제에서 프랑스를 해방시키고 국가 재건을 주도했다. 프랑스 항공모함과 파리 공항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권위주의적 독재를 했고 식민지에선 ‘히틀러’ 소리를 들었다. 호찌민은 베트남 독립과 통일을 이뤄 국부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토지 정책에 저항하는 국민 1만여 명을 살해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중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 ‘공칠과삼(功七過三)’ 문화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뚱에 대해 “공이 일곱이고 과는 셋인데 공이 과보다 크니 최고 지도자로 받들어야 한다”고 했다. ‘선공후과(先功後過)’라는 말도 있다. 공을 먼저 보고 잘못은 나중에 본다는 뜻이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거의 모두가 이런 문화를 갖고 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을 꼽으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비전과 의지가 없었으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세계 최첨단 산업국가로 탈바꿈하는 기적은 있을 수 없었다. 1960년 한국은 1인당 GDP 82달러로 미국 원조에 의존해 보릿고개를 넘기던 나라였다. 그는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새마을운동과 외자 도입, 고속도로 건설, 전자·중화학 공업 육성, 수출 입국 전략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물론 독재를 하고 인권유린도 있었다. ‘공칠과삼'이다.
▶그러나 민주당에 박정희는 ‘공영(零)과십(十)’이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 발행을 돌연 취소했고, 기념관에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게 했다. 여당 의원은 그를 ‘귀태’(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라고 불렀다. 전 대표는 박정희와 관련된 세력은 “궤멸해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 묘소 참배를 “유대인의 히틀러 참배”라고 한 인사도 있었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박정희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박정희를 찬양하던 사람”이라는 공격에 “그런 왜곡은 독극물”이라고 반격했다. “박정희에게 경제 발전의 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주자도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놓으니 욕을 하고 발로 차는 격이다. 이들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박정희와 같은 업적을 남기는 일에 집중했으면 한다. 그 100분의 1이라도 이룬다면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07.21 작전명 ‘오아시스’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동탄의 임대주택을 찾아 “아주 아기자기한 공간이 많다” “누구나 살고 싶은 임대 아파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집값 폭등으로 대통령 지지율 40% 선이 처음 무너진 때였다. 공급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자, 좋은 임대주택이 잘 공급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방문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잠시 둘러본 임대 아파트를 그럴 듯하게 꾸미는 데만 4290만원이 들어갔다. 행사 MC 섭외와 영상 촬영 등에도 4억여원이 사용됐다.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집값은 계속 뛰었고 지금도 오르고 있다.
▶2017년 문 대통령은 방중(訪中) 첫날부터 ‘혼밥’을 했다. 둘째 날 시진핑 주석과 만찬 전까지 중국 인사들과 식사한다는 소식이 없어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자 청와대는 둘째 날 아침을 중국 서민 식당에서 먹는 일정으로 만들었다. 청와대 안보실장은 “대통령은 혼밥이 아니라 13억 중국 국민과 조찬을 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런다고 10끼 중 8끼를 ‘혼밥’한 사실을 감출 순 없었다.
/작전명 '오아시스'
▶무대연출가인 탁현민이 청와대 실세인 것은 이 정부가 보여주기 ‘쇼'를 유달리 좋아하기 때문이다. 군대까지 쇼를 한다. 2018년 국군기무사령관과 부대원 600여 명이 현충원에서 벌인 ‘세심(洗心) 의식’이 시작일 것이다. 개혁을 한다며 영하 15도 날씨에 청계산 물에 손을 씻고 흰 장갑을 꼈다. ‘차라리 다 벗고 얼음물에 뛰어들라’는 댓글이 달렸다. 국군 147구의 유해를 운구했다는 공중급유기에 화려한 레이저를 쏘는 이벤트도 있었다.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던 이들이 ‘서해 수호의 날'에 갑자기 탁현민식 쇼를 하기도 했다. 모두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 국민 눈길을 돌리려는 목적이었다. 언제나 본질은 그대로였다.
▶코로나에 집단감염 된 청해부대 장병 전원이 어제 귀국했다. 군의 방역 실패로 배를 버리고 떠난 건 세계 해군사(史)에 유례가 없다. 백신을 보낼 수 없었다고 든 이유도 다 거짓말이라고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군은 배에서 퇴각하는 것도 ‘작전'이라고 ‘오아시스’라는 작전명을 붙이고 홍보까지 했다. “생명과 휴식의 의미”라고 했다. 쇼로 사람들 눈길을 돌려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다. 정치에서 흔히 써먹는 수법인데 이제 군도 그 물이 든 건가.
▶사막에서 물이 떨어진 사람 눈에 보이는 오아시스는 신기루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힘들게 그쪽으로 걸어가 보지만 오아시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아시스 신기루가 사라지면 고통스러운 현실이 드러날 뿐이다.
07.22 아프간 미군 ‘야반도주’ 이후
‘여자들은 한결같이 핸드백을 들고 나풀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은 자동차 핸들을 잡고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다. 지나가면 향수 냄새가 났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미국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 장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그려진 1970년대 초 아프간 수도 카불 풍경이다. 지금도 인터넷엔 당시 얼굴 가득 미소 띤 카불 여성들 사진이 돌아다닌다. 툭하면 폭탄 테러가 터지고, 여자들은 눈까지 망사로 가린 부르카 차림으로 살아가는 나라에 이런 시절이 있었나 싶다.
/일러스트=김도원
▶아프가니스탄은 실크로드 무역을 중개하며 번영했던 동서 교역로이자 중앙아시아 정치의 중심지였다. 아프간인들은 용맹한 전사의 피를 가진 민족이기도 하다. 티무르의 후예 바부르는 카불을 근거지 삼아 인도를 공략해 무굴제국을 세웠다. 세계 최강 영국과 세 번 싸워 모두 물리쳤다. 1979년 이 나라를 침공한 소련도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의 저항에 굴복해 10년 만에 물러났다.
▶9·11 테러 이후 아프간에 진주해 탈레반을 축출했던 미국이 이 나라를 떠난다. 전쟁에 졌다기보다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에 넌더리를 냈다고 한다. 미국이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쏟아부은 돈이 2조4000억달러(약 2758조원)다. 그중엔 전 세계 아편 공급량의 70~80%를 차지하는 이 나라 농토를 밀 농장으로 바꾸기 위해 농민들에게 지급한 보조금 등 국가 재건 비용 1300억달러도 있다. 모두가 헛수고가 됐다.
▶아프간은 정부 회의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나라다. 테러 희생자 사망 신고를 하는 데도 뇌물을 써야 할 만큼 온 나라가 썩었다. 관리 상당수는 탈레반 반군과도 연결돼 있다. 연간 40억달러에 이르는 마약 판매 수익이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 미군을 죽이는 무기 구매 자금으로 쓰인다. “왜 이런 나라에 돈을 쓰느냐”며 미국 내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 대통령은 여론을 이길 수 없다.
▶미군이 아프간을 떠난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야반도주’ 같다고 했다. 실제 그랬다. 밤에 돌연 사라졌고, 수많은 장비는 방치했다. 제일 먼저 도둑들이 낌새를 채고 텅 빈 기지에 몰려가 물건을 약탈했다. 아프간 정부는 까맣게 몰랐다. 그다음은 예정된 절차로 가고 있다. 탈레반이 카불 남쪽 150㎞까지 진격했다. 미국은 그동안 협력한 현지인 수천 명을 자국으로 도피시키기로 했다. 1975년 베트남 사이공 탈출극의 재연이다. 부패한 정부, 희망도 의지도 없는 국민, 스스로 돕지 않는 나라는 누구도 지킬 수 없다.
07.23 이제는 ‘나라의 자식’
미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라이언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했다. 미군 수뇌부는 절망한 어머니에게 마지막 남은 아들이라도 돌려보내려 한다. 라이언 일병을 찾는 임무에 선발된 병사들은 의아해한다. “왜 1명을 구하러 8명이 갑니까.” 지휘관 대위가 답한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영화에서 라이언 일병을 데려오기 위해 결국 대위를 포함해 6명이 전사한다. 6·25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한 중대가 10배 많은 중공군에게 5일간 포위 공격을 당했다. 미군이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대대 병력을 파견하며 발표했다. “중대를 구하려다 대대가 전멸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의 희생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야구장엔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좌석’이 있다. 아무리 만원이어도 그 자리는 비워 둔다. 한 ROTC 학생이 부동자세로 그 자리 앞을 지키고 있는데 비가 내렸다. 그러자 관중이 다가가 학생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쳐들었다. 미국에서 이런 장면은 흔히 있다.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전사한 군인과 유족을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북한과 싸웠다는 자체가 싫은 사람들, 그래서 지금 정권을 곤란하게 만든 것에 화가 난 사람들이다. 한 전사자 아내는 이민을 떠났다.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돌아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이달 초 제2연평해전 기념일엔 전몰 용사의 이름을 틀리게 적는 일도 있었다. 현충일 추념식 초청 대상에 천안함 유족 등을 뺐다가 뒤늦게 포함한 적도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한 게 신기할 정도다.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정종율 상사의 아내가 암 투병 끝에 21일 별세했다. 전셋집에 살며 남편 없이 키운 외동아들은 이제 고1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 걱정에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못했을 것 같다. 남편을 나라에 바치고 자신마저 어린 자식을 남기고 먼저 가야 하는 그 비통했을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진다.
▶정 상사 부부의 이 아들은 천안함 5주기 때 “반드시 자랑스러운 군인이 되겠다”는 편지를 썼던 그 소년이다.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정 상사 아내 별세 소식을 전하자 소년에게 위로와 응원 글이 쇄도하고 있다.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용기를 잃지 마라” “나라 위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소년이 역경을 딛고 성장해 군인의 꿈을 이루길 바란다. 이제 이 아들은 ‘나라의 자식'이다.
07.24 인도 집단면역?
/인도 뉴델리 임시 노천 화장장에서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 사망자들 시신을 화장하고 있다. 이날 인도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5만2991명으로 6일 연속 세계 최고 기록을 넘어선 가운데 노천 화장장은 끝없이 밀려드는 시신을 처리하느라 과부하에 걸린 상태다. /뉴델리=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여름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 당국이 이 도시 빈민가 주민 수천명을 대상으로 혈청검사를 해보니 약 57%가 신종 코로나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었다. 57%가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다는 의미다. 뭄바이 빈민가는 인구밀도가 높고 공중화장실 하나를 80명이 같이 쓸 정도로 위생 시설이 열악해 방역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이 빈민가를 휩쓸어 집단면역에 근접한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당시 인도 전체의 코로나 확산세는 거셌지만 이 지역은 신규 감염 사례가 감소했다.
▶지난 4~5월 인도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40만명을 넘겼다. 환자는 폭증하는데 병상과 의료용 산소가 부족해 하루 3000∼4000명이 사망했다. 화장 시설까지 부족해 노천 임시 화장장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모습은 정말 끔찍했다. 그런데 최근 인도의 확진자 수가 4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두어달 만에 10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인도의 백신 1회 접종률은 23.6%, 접종 완료율은 6.3%에 불과한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수치다.
▶인도 보건부는 지난 6~7월 전국 코로나 항체 조사에서 “6세 이상 인구 67.6%가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통상 인구 70% 이상이 항체를 가졌을 때 ‘집단면역'에 도달한 것으로 보는데 이 기준에 근접한 것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대다수가 백신 접종이 아니라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해 항체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인구는 13억8000만명이다. 인도 보건부 조사 결과가 맞는다면 8억명 이상의 인도인이 코로나에 걸린 적이 있는 셈이다.
▶집단면역에 근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을까. 인도 정부는 현재까지 약 42만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미국(약 61만명)에 이어 세계 둘째로 많은 숫자다. 그러나 실제로는 발표의 10배가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국 연구소 글로벌개발센터는 최근 자체 분석 모델을 토대로 올 6월까지 인도에서 340만∼470만명이 코로나로 숨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거 인류 역사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인도 사람들처럼 집단면역이 생길 때까지 살아남는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스웨덴은 자연 집단면역을 추구하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실패를 자인하기도 했다. 지난달 우리 수도권 주민의 항체 보유율은 0.85%에 불과했다(지난 9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발표). 우리는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도달했다는 발표가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07.26(월) 57년 전과 대비된 도쿄 올림픽 개회식
/23일 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각국 선수단이 모두 입장한 가운데 개막공연 '여기 우리 함께'가 펼쳐 지고 있다.2021.07.23. 도쿄=이태경 기자
올림픽 개회식이 지금 같은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부터다. 그때 처음으로 올림픽 기를 게양하고 올림픽 선서를 했다. 올림픽 개회식은 주최국이 문화·예술, 과학·기술, 산업·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이룬 다양한 성과를 200여 참가국들과 공유하는 축제 무대다. 세계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개회식을 함께 지켜보며 인류는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경이로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개회식은 올림픽이 가장 먼저 주최국에 주는 금메달이라고도 불린다. 성공한 개회식은 개최국이 국제사회에서 나라의 브랜드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우리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 때 ‘굴렁쇠 소년'을 보며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전후 경제 회복을 세계에 공표했다. 일본은 그때를 ‘역사에 길이 남을 개회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 도시에서 처음으로 열린 올림픽이었고, 그 개회식을 2차 대전의 폐허에서 일어난 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는 기점으로 삼았다. 일왕이 개회 선언을 했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태어난 육상 선수가 성화에 불을 붙였다. 지금도 일본은 “그때 개막식은 황홀한 순간으로 가득했다”는 추억을 갖고 있다.
▶일본이 57년 만에 도쿄에서 다시 올림픽을 열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을 장기 불황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을 극복하는 계기로 만들려 했다가 코로나에 발목이 잡혔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 말 개회식이 열렸다. 드론 1824대가 올림픽 주경기장의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드론이 만든 지구 모습은 올림픽으로 하나 되는 세계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도쿄 올림픽 개회식은 대체로 “침울하고 엉성했다”는 평가다. 심지어 ‘역대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무관중으로 치러진 현장을 보고 한 영국 언론인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활기차고 흥미진진한 나라 중 하나인데 이 개회식이 그들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일본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이 문화적으로는 아직도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있다. 그러잖아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침울해진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세계인들에게 오히려 밝은 장면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관중이 없으니 리허설에 불과했던 것이냐는 말이 아프게 들렸을 것이다.
07.27 MBC ‘실수’ 또 ‘실수’
MBC가 도쿄 올림픽 개회식 생중계에서 참가국을 소개한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이 입장하자 아편 원료인 양귀비 사진을 내보내며 이 나라가 세계 최대 마약 생산국임을 상기시켰다. 1인당 GDP 514달러로 최빈국이고, 코로나 백신 접종률도 0.6%에 불과하다고 적시했다. 나라 소개가 아니라 망신 주기다. 체르노빌 원전(우크라이나), 주민 폭동과 대통령 암살(아이티), 드라큘라(루마니아) 사진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 외신들은 정색을 했다. CNN은 ‘공격적인 고정관념’ ‘여러 나라를 묘사하는 데 크게 실패’ 등의 표현으로 MBC를 성토했다. CNN 인터넷판에는 톱기사로까지 올랐다. 뉴욕타임스 도쿄 올림픽 코너에는 두 번째 기사로 MBC 개회식 중계 파동이 다뤄졌다. 한 호주 방송도 MBC가 “한국 시청자들에게서 나라 망신이란 비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 2018년 평창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상화 선수가 은메달을 차지하자 한 MBC 간부가 소셜미디어에 “태극기를 들고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면서 “이상화 선수 고맙다. 덕분에 행복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상화 올림픽 3연패 무산' 따위의 기사 제목에 참 짜증 난다. 언론들이 아직도 국민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 간부가 개회식 방송 보도에 대해 엊그제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고 사과한 MBC 사장이다. 그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겠다”며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공영방송으로 당연한 일 처리였다.
▶MBC는 개회식 당일 부적절한 사진 사용을 한 차례 사과했다. 그런데 겨우 이틀 만에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5일 축구 예선전에서 우리와 맞붙은 루마니아 선수가 자책골을 넣었다. MBC는 중간 광고 때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며 선수 이름까지 자막으로 내보냈다. 중계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한 국민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영방송 자막으로까지 내보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3연패 무산’ 정도의 제목도 수준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감수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 물론 실수였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 공간에서 통하는 경박한 감각으로 시청률을 높여보겠다는 제작진의 판단 착오였을 것이다. 그러나 개회식에 대해 사과하고 이어진 올림픽 보도에서, 다른 국가를 자극하는 비슷한 실수가 벌어진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나온다. 공영방송의 내부 데스크 기능이 망가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07.28 말보로 퇴출 선언
이른바 ‘양담배' 수입이 금지됐던 시절, 미국산 말보로는 흡연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담배였다. 해외의 친지나 유학생들이 한 보루씩 갖고 들어오면 얻어 피우려 법석 떨곤 했다. 영화 ‘타짜’의 조승우, ‘영웅본색’의 주윤발, ‘천장지구'의 유덕화 등이 피우던 담배이기도 했다. 우리뿐 아니었다. 공산주의 붕괴 후 옛 소련에선 ‘빨간 말보로' 한 상자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북한에선 세븐일레븐이나 말보로 같은 외국 담배가 화폐처럼 통용된다고 한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말보로는 거친 남성적 이미지를 주지만 1924년 미국에서 출시됐을 때는 여성용 담배였다. 그러다 1950년대부터 야성적 모습의 카우보이를 등장시킨 ‘말보로맨' 광고 덕에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판매가 급증했다. 전 세계에 흡연 붐을 일으킨 초대 ‘말보로맨’ 로버트 노리스는 정작 비흡연자였다고 한다. 실제 카우보이였던 그는 담배 광고가 자식들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10여 년 만에 모델 활동을 중단하고 평범한 농장주로 살다가 90세까지 장수했다.
▶말보로를 만드는 세계 최대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MI) 최고 경영자가 “10년 안에 영국 담배 진열대에서 말보로가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웰빙 붐으로 담배 시장이 정체되자 고심 끝에 내놓은 전략이다. 그러나 담배 자체를 없애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비전은 ‘담배 연기 없는 미래‘다. 연초를 태우는 궐련형 대신 전자담배를 팔겠다는 것이다. 필립모리스가 개발한 아이코스는 출시 5년 만에 7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는 전자담배가 몸에 덜 해롭다는 논리를 펴지만 금연 운동가들은 유해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이 전략도 맹렬하게 비판한다.
▶10년 뒤 말보로 담배가 지구상에서 완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영국 아닌 미국 시장 판권을 가진 필립모리스 USA는 ‘말보로 퇴출’ 운운하지 않는다. 이 회사의 모기업은 오히려 새로운 성장 사업을 찾겠다며 대표적인 ‘죄악 산업’인 마리화나 회사 지분을 45%나 인수했다. PMI의 ‘담배 연기 퇴출’ 전략 역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영리 목적에 다름 아니다.
▶PMI는 덴마크의 의료용 껌 제조업체, 영국의 의료용품 업체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헬스케어 사업 부문도 확장하고 있다, 담배 회사가 건강 산업을 한다니 아이러니처럼 비치기도 한다. 자동차 회사가 ‘가솔린차 생산 중단’을 추진하고, 중동 산유국이 ‘탈석유 시대’에 대비한다며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는 세상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주력 제품도 버리는 것이 기업 생리다. 말보로 퇴출 선언이 연기 뿜는 담배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07.29 박수 받는 패자들
/이대훈 선수가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 경기장에서 열린 68kg이하급 남자태권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후 상대선수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1.07.25 지바=이태경 기자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1500m 은메달을 딴 한국 선수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뒤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자 눈물을 흘린 선수도 있다. 과거 우리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2등 한 ‘죄'로 사과하고 위로받는 게 당연한 나라였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2004년 아테네 대회에 출전한 유도 선수 84명의 표정을 관찰했다. 은메달을 따고 웃는 표정을 지은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금메달과 비교하는 대조 효과가 은메달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국은 금메달 집착이 유독 강한 나라였다. 결승에서 져 은메달을 목에 거느니 준결승에서 지고 3, 4위전에서 이겨 동메달 따는 게 낫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 금메달 숫자로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 방식을 택한 영향도 컸다. 국가별 순위 집계는 비공식으로 하는 것이지만 한국은 여기에 목을 매고 국가적 시험을 보듯이 해왔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의 이런 관행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우리 태권도 선수단이 노 골드로 이번 대회를 마쳤다.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처음 있는 일이지만 비난은 크지 않다. 많은 국민이 경기를 즐겼다. 석 달 전 수술한 왼발로 은빛 발차기를 한 이다빈과, 8번의 항암 치료와 재수술의 시련을 이겨내고 동메달을 목에 건 인교돈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엄지 척'으로 상대 선수를 축하한 이대훈에게는 “지고도 이겼다”고 격려했다. 은메달을 딴 여자 펜싱팀에도 격려와 응원이 쏟아졌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수영 선수 황선우에게는 찬사가 이어진다.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한 우리 남자 양궁 선수들은 시상식장에서 세리머니로 감동을 선사했다. 은·동을 차지한 대만·일본 선수들을 금메달 시상대에 불러 올려 함께 셀카를 찍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축제로 화합하는 올림픽 정신이 그 사진 한 장에 녹아 있었다. 감동한 일본 사람들이 “시상대 위에서 승자 패자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다”며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돌렸다.
▶한국도 어느덧 메달 색 못지않게 선수들이 땀 흘려 이룬 성취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는 그제부터 국가별 금메달 순위와 함께 메달 합계 순위도 싣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란 어려운 여건을 딛고 감동적 인간 드라마를 쓰는 영웅들에게 메달 색깔이 전부일 수 없다. 스포츠는 그들의 열정과 환호, 역경과 엄숙한 패배를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도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길 때가 됐다.
김태훈 논설위원
07.30 ‘알몸 절임 배추’ 뺨친 ‘발 닦은 수세미 무’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요리사가 용변 후 손도 안 씻고 주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저 손으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유명 곰탕집 단골 한 분이 우연히 주방을 보게 됐다고 한다. 큰 대야에 담긴 구정물에 먹고 나온 그릇을 한 번 담갔다 꺼내는 게 설거지의 전부였다. 종업원은 그 그릇들에 곰탕을 담아 손님 테이블로 내갔다.
/일러스트=김도원
▶인터넷에 ‘식당 불결’이라고 치면 더러운 음식점에 대한 고발이 넘친다. 이쑤시개가 들어 있는 김치는 남이 먹던 것을 다시 내놨다는 뜻이다. 그릇을 닦고 나서 테이블과 의자까지 닦는 건 행주냐 걸레냐는 하소연도 있다. 사람이 말할 때마다 침방울 360개가 쏟아져나오고 재채기 한 번 하면 4만개 침방울이 8m 밖까지 튄다고 한다. 그래도 종업원들이 입가리개를 하는 식당은 희소하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무를 담아 씻는 대야에 자기 발을 담그고 무 씻던 수세미로 발까지 닦은 어느 식당 종업원 영상이 엊그제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함께 있던 여성은 그걸 보고도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 식당에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지난 3월 중국 알몸 절임 배추 영상이 공개된 후 사람들은 식당만 가면 “여기 중국 김치 쓰느냐”며 찜찜해했다. 이젠 “발 닦은 수세미로 씻은 무 쓰느냐”고도 물어야 하는 지경이 됐다.
▶불결한 식당 위생은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다. 어느 햄버거 가게 종업원은 코딱지를 식재료에 던졌다가 몰카에 찍혔다. 뉴욕에서 식당 100곳 위생 상태를 점검했더니 87곳에서 바퀴벌레와 쥐가 나온 적도 있다. 미국 시민사회는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다. 뉴욕주 상원의원이 팔 걷고 나서서 더러운 식당들 이름을 공개했다. 우리도 이래야 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맛집 안내서로 꼽히는 미쉐린 가이드는 맛만 좋다고 실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청결까지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 목록인 미쉐린 빕 구르망 리스트에 오른 서울의 한 해장국집에 가봤더니 테이블에 기름때 하나 없고 그릇과 수저도 깨끗했다. 주방을 개방해 내부가 훤히 보여 마음이 놓였다. 맛만 좋으면 더러운 것을 눈감아주던 시절은 끝나야 한다. 국물 담긴 그릇에 엄지 손가락을 넣어 들고 오는 꼴만은 그만 봤으면 한다. 그것 고치는 게 어려운 일인가. ‘맛은 최고가 아니지만 위생은 자신 있다’는 식당 있다면 당장 단골로 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07.31 한국의 이른바 ‘여성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원순 시장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해 피해자에게 고통을 줬다는 것이다. ‘김영순 여성연합 대표·남인순 국회의원(여성연합 전 대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보 유출 사건’이라고 했다. “사건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했다”는 자평이다. 피소 사실을 알게 된 박 시장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경찰은 이를 이유로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았다. 여성연합이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고 밝혀진 게 작년 12월이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데 7개월이 걸렸다.
/[만물상] 한국의 이른바 '여성계'
▶남인순씨는 여전히 여당 국회의원이다. 피소 사실을 유출한 장본인이면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불러 2차 가해를 했다. 그에 대한 명예훼손 수사는 7개월째 겉돈다. 서울시장 선거 때는 여당 후보 선거 캠프에서 공동선대본부장을 하다가 비판을 받고 중도 하차했다. 대선이 다가오자 이번엔 여당의 유력 후보 선거 캠프에 들어갔다. 지금도 ‘여성계’에서 영향력이 있다고 하니까 그를 불렀을 것이다. 한국의 이른바 ‘여성계’는 여성을 가해한 사람이 건재한 곳이다.
▶그런데 이번엔 박 시장 유족이 기자를 고소한다고 한다. ‘박 시장이 비서실 직원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 ‘가해자가 명백하게 밝혀졌고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 알려진 상황’이라는 글을 문제 삼았다.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라는 것이다. 유족은 사건을 조사해 구체적인 성추행 행위를 밝힌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결정문을 취소하라는 소송도 제기했다. ”부당하게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 가차 없이 법적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국가인권위 직권조사 결정문엔 텔레그램 메시지 등 성추행을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 시장 유족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피해자에게 너무나 심각한 가해가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피해자가 우선이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덮으니 사건 책임자들이 활개를 치고, 끝없이 피해자를 모욕하고, 심지어 가해자의 복권(復權)까지 시도한다. 우리나라 ‘여성계’는 이에 대해서도 별 말이 없다.
▶야당 대선 주자 아내를 모욕하는 벽보에 대해서도 ‘여성계’는 마지못해 낸 것 같은 입장을 냈다. 만약 여당 대선 주자 아내였으면 이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야당 주자 아내를 욕보이려고 어느 변호사의 94세 노모를 찾아가 구미에 맞는 말을 끌어내려 한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여성 인권 문제인데 ‘여성계’는 보고만 있다. ‘여성’을 이용해 정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