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 2021-05/ 05월 03일(월) 불황과 로또 열풍 - 05월 31일(월) 한·미 軍 급식의 격차
오후여담 2021-05/ 문화일보
05월 03일(월) 불황과 로또 열풍
문희수 논설위원
길을 걷다 보면 로또 판매점에 줄을 선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띈다. 1등이나 2등 당첨자가 나온 이른바 ‘로또 명당’ 풍경이다. 로또 같은 복권은 불황일수록 잘 팔린다고 한다. 실제 통계로 확인된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지난해 로또 판매액은 4조7090억 원으로 2019년보다 9.3% 증가했다. 복권 통합 발행이 시작된 2004년 이후 최대치다. 2008년 이후 13년째 신기록 행진 중이다. 로또는 한 달에 한 번 사는 게 가장 많고, 구매 경험은 30대와 40대가 많다고 한다. 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이 산다.
다들 대박을 꿈꾸지만, 로또 당첨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1등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에 불과하다. 번호 6개 중 3개를 맞히는 최하위 5등 확률도 2.24%로, 50명 중 1명꼴이다. 흔히 로또 1등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한다. 벼락 맞을 확률은 낙뢰 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한국은 연간 30만 번의 낙뢰가 발생해 과거 사상자 수를 감안하면 약 600만 분의 1 정도다. 속설이 틀리지 않는 셈이다.
희귀한 일을 말할 때 인용되는 골프 홀인원 확률도 이보다는 다소 높다. 홀인원 확률은 미국의 경우 투어 프로는 3000분의 1, 아마추어 주말 골퍼는 1만2000분의 1이라고 한다. 파 4홀의 홀인원(앨버트로스) 확률은 약 600만 분의 1이다. 그러나 계산이 그런 것이고, 드라이브 거리가 길지 않은 아마추어는 평생을 쳐도 파 4홀 홀인원은 불가능하다. 또 강원랜드에서 릴 3줄짜리인 슬롯머신(슈퍼 메가) 잭팟의 확률은 37만3248분의 1이다. 로또 1등 당첨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러면 ‘로또 명당’이라는 점포는 과연 당첨 확률이 높을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로또 당첨 확률 자체는 통계적으로 독립이므로, 누가 어디서 사든 확률은 똑같다. 그러나 특정 점포의 당첨 확률은 로또를 많이 팔수록 높아진다. 결국 복권을 많이 파는 점포일수록 1등 복권이 나올 확률은 높지만, 개개인의 당첨 확률은 달라지지 않는다. 확률 1%라는 것은 100번 시도하면 한 번은 나온다는 뜻이 아니다. 확률을 제대로 알아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그래도 1주일 동안 희망을 주는 복권을 사려고 기왕이면 1등 당첨자가 나온 점포를 찾는 것을 어쩌겠는가.
05월 04일 ‘탈북 복서’ 최현미의 도전
이미숙 논설위원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는 미국의 전설적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제작·주연을 맡은 영화로, 32살의 나이에 여성 복서가 돼 챔피언 쟁탈전에 오르는 매기의 집념과 열정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힐러리 스왱크는 지독한 훈련을 이겨내며 챔피언에 도전하는 매기 역을 생생하게 그려 2005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스트우드는 매기를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키워내는 트레이너 역을 노련하게 소화해 감동을 줬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놓쳤지만, 감독·작품상을 받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질 때도 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야 진정한 챔피언이 된다”는 메시지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미 권투·레슬링 잡지 ‘더 링’ 선정 세계 여성 복서 랭킹 3위인 탈북민 출신 최현미(31) 선수가 오는 15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여자 슈퍼페더급 WBA·WBC·IBO 통합 챔피언전에 출전, 영국의 테러 하퍼와 승부를 겨룬다. 하퍼(24)는 2017년 데뷔 이래 슈퍼페더급 IBO(2019)·WBC(2020) 챔피언이라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경기가 될 듯하다. 최 선수는 1990년 평양에서 태어나 11살 때 권투와 인연을 맺었는데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개봉되던 2004년 가족과 함께 탈북했다. 이후 한국에서 복싱 영웅 장정구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 2008년 WBA 여성 페더급 챔피언에 이어 2013년 체급을 바꿔 슈퍼페더급 챔피언이 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스트우드와 스왱크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최 선수는 한국판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 할 만하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목숨 걸고 선택한 태극기를 날리고 싶어 하는 최현미 선수를 응원해달라”는 호소 글을 지난달 28일 SNS에 올렸다. “인공기를 날리는 체육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최 선수가 대한민국 복싱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데 온 나라는 ‘미나리’의 성공에 젖어 있을 뿐 그의 타이틀 매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태 의원의 글에는 4일 현재 ‘좋아요’가 4300개, ‘응원 댓글’도 800개가 넘는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직간접적인 차별에 시달리며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할 정도로 어려운 조건에서 복서의 길을 걸으며 정상에 도전하는 최 선수에게 전국민적 응원이 필요한 시간이다.
05월 06일 공인 의식 파탄자들
이현종 논설위원
지난 4일 진행된 장관 후보자 5명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문재인 정권의 요직에 오르는 인물들의 특성을 알 수 있다. 마치 ‘범죄 청문회’라고 할 정도다. 앞으로 장관을 하려면 전문성·도덕성·지도력 등을 갖추라고 할 것이 아니라 밀수, 탈세, 자동차 범칙금 미납, 위장전입, 관사 재테크, 절도, 논문 표절, 외유성 출장 중 2∼3개 정도는 해야 문 정부 장관 자격 요건을 충족할 것 같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비리의 결정판이다. 이화여대 교수 출신인 임 후보자는 국가 예산으로 지원받은 해외 학회 참석에 가족들을 동반해 출장을 가 놓고도 ‘관행’이라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가 표창장 위조를 하자 여당 의원들이 강남에서 다 하는 관행인데 뭐가 문제냐고 했던 것과 닮았다. 장관 지명 전후 밀린 1∼5년 치 종합소득세를 한꺼번에 내고, 이중 국적인 두 딸의 의료비 혜택, 제자 논문 표절, 다운계약서 작성, 13차례 위장전입 등 열거하기도 숨이 찰 지경이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은 “글로벌 트렌드” “퀴리 부부”라며 장관 적격자라고 한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영국 대사관 근무 시절 부인이 수천만 원대의 고급 도자기, 샹들리에를 외교관 이삿짐으로 면세를 받아 들여와 놓고선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판매했다. 부인은 대사관 근무 시절에도 도자기를 많이 사 모으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수시로 해외토픽에 오르는 북한 외교관들 행태를 닮았다. 조 전 장관 부부의 각종 의혹이나 추미애 전 장관의 아들 탈영 의혹, 의원 시절 병가를 내고 가족과 유럽여행을 다녀온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마찬가지다. 김부겸 총리 후보는 자동차세·과태료를 내지 않아 차가 32번이나 압류됐다.
더 황당한 것은 문 대통령이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고생한 사람이 일 잘한다고 했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여러 곳에 기웃거리다가 퇴짜 맞은 것을 청와대는 ‘여러 부문 아카데미상 후보’에 비유했을 정도다. 이러니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이미 29명에 달한다. 곧 30명이 될 텐데 김대중 정부부터 역대 정부 전체와 맞먹는다. 온전한 공인 의식을 가진 사람은 문 정부에선 고위직을 감히 꿈꾸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05월 07일 은행 수난시대
이신우 논설고문
“은행들이 거의 모든 사업 부문에서 ‘어마어마한 위협’에 직면했다.” 얼마 전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 내용이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 같은 빅테크나 심지어 월마트까지도 은행의 경쟁 상대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핀테크들의 은행 업무 찬탈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한국에서도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현재 1000만 고객을 자랑한다. 시가총액이 32조 원으로 대표 은행인 KB금융지주의 22조 원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고 해야 하나. 그런 판에 은행을 향한 정치권의 시선까지 차갑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익을 보는 가장 큰 업종은 꼬박꼬박 이자를 받아가는 금융업”(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4월 여당이 국회에 상정한 ‘은행 빚 탕감법’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르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의 소득이 급감하면 대출금 상환의 연장·감면을 신청할 수 있다. 거절하면 과태료 2000만 원이 부과된다.
같은 달 여당이 발의한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금융사가 토지담보대출을 할 때 투기 의심 사례가 있을 경우 부동산거래분석원에 통보하도록 했다. 은행에 부동산 투기 감시까지 하라는 이야기다. 의심 거래 밀고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 논란 중인 가상화폐 거래소는 오는 9월까지 금융 당국에 신고를 마쳐야 한다. 그런데 은행이 거래소의 시스템과 업무지침을 확인하고 자금세탁 위험을 식별·분석·평가한 뒤 실명계좌를 발급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책임 떠넘기기다.
가장 압권은 여당이 내놓은 ‘이익 공유제’다. 명분은 간단하다. 금융업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수혜를 본 업종이니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해 번 돈 좀 나눠 쓰자는 취지다. ‘서민의 금융생활지원에 관한 법률(서민금융법)’을 개정하고 현재 3550억 원인 서민금융 재원을 5000억 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여당 방안대로라면 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1100억 원을 추가로 갹출해야 한다. 이런 판에 어느 은행도 불평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는 중이다. 정부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규제법들을 쏟아내는데, 은행들도 용기를 내서 ‘전통 은행’ 살려내라고 시위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05월 10일(월) 김광균과 최재덕
김종호 논설고문
‘최재덕의 그림은 행복한 색채로 덮인 나이브한 풍경이 많다. 가을 추수 때 시골로 내려가 그린 들판의 ‘원두막’ ‘포도’ 등과 ‘한강의 포플러나무’ ‘금붕어’ 등 대단히 독창적이고 부드러운 형상에 서려 있는 서정(抒情)을 나는 이중섭과 맞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 다 천사가 이 세상을 잠깐 다녀간 것이다.’ 걸출한 모더니즘 시인으로, ‘설야(雪夜)’ ‘황혼가’ ‘외인촌’ ‘오후의 구도’ ‘해바라기의 감상’ ‘와사등(瓦斯燈)’ 등의 시를 남긴 김광균(1914∼1993)이 1982년 잡지 ‘계간 미술’에 쓴 ‘30년대 화가와 시인들’ 일부다. 이렇게 덧붙였다. ‘1930년대의 시는 음악보다 회화이고자 했다. 새로운 어법을 다듬고, 상징주의의 황혼을 벗어난 문명의 리듬을 타려고 애썼고, 기차 소리와 공장의 소음, 도시의 애수와 울부짖음 속에서 회화를 찾으려 했다.’
그의 시집 ‘기항지(寄港地)’ 표지 장정(裝幀)을 그리기도 한 최재덕은 1914년생으로, 크게 촉망받았으나 6·25전쟁 중에 월북했다. 김광균이 가장 아끼며, 지원해준 천재 화가가 이중섭·김환기·최재덕이었다. 그가 쓴 글엔 이런 대목도 있다. ‘천사같이 순수하고 최고 기량을 가진 화가 두 명이 이중섭과 최재덕인데, 이북 출신 이중섭이 남으로 내려왔고, 이남 출신 최재덕이 북으로 올라갔으니, 결국 쌤쌤이다.’ ‘경주박물관 추녀 밑 제일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지나는 바람 같은 미소를 띤 부처님이 최재덕인 거 같다.’ 최재덕이 월북 전에 남긴 그림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화가·시인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지난 2월 4일 시작해, 오는 30일 끝난다. 최 화백의 ‘농가(農家)’ ‘포도’ ‘한강의 포플러나무’ 등이 특히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그중에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본명 김남준)도 관람하며 감동했다는 ‘한강의 포플러나무’는 푸른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듯한 그림으로,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느낌을 받는다. 버드나무의 일종으로, 미루나무로도 불리는 포플러는 정겨운 시골 풍경이기도 하고, 교정에 숲을 이룬 학교가 학생 축제의 이름으로 삼기도 했다. 어릴 때나 청춘이던 시기의 그런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는 사람은 더 그럴 것이다.
05월 11일 6·25 참전용사 사진첩
이도운 논설위원
가로 34㎝, 세로 27㎝, 두께 3㎝. 최근 사무실 책상 위에 커다랗고, 한 손으로 들기에는 무거운 책자가 배달됐다. ‘Project Soldier(프로젝트 솔저): Searching for Korean War Veterans(6·25 참전용사를 찾아서)’. 세계 22개국의 6·25 참전용사를 찾아 촬영 중인 작품을 모은 사진작가 한효제의 사진집이다. 이제는 나이 90 전후가 된 각국의 참전 용사들이 홀로, 가족과 또는 참전 동지들과 군복·정복·사복을 입고 한 작가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한 작가의 프로젝트는 언론에서도 다뤘고,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지만, 신문 기사나 방송이 아닌 실제 사진을 보는 감동은 또 달랐다. 참전 용사들의 가슴에 단 훈장보다 더 당당한 표정, 살아 있는 눈빛에 시선이 간다. 한 작가도 2016년 서울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육군 군복’ 전시회에서 우연히 미군 참전 용사를 만난 뒤 ‘자기 나라도 아니고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나라를 위해 싸웠던 군인의 자부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 작가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진정한 사진은 현시대의 것을 기록해서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배웠다고 한다. 프로젝트 솔저는 그 배움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진집은 지난 3월 발간됐는데, 필자가 받은 것은 초판 500권 가운데 136번이라고 찍혀 있다. 발간 두 달이 지났지만, 200권도 팔리지 않았거나 돌리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품질 좋은 사진집을 만드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사진 액자나 책자를 받은 참전 용사들은 “얼마를 드려야 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한 작가의 답변은 늘 똑같다. “70년 전에 사진값을 치르셨습니다.” 프로젝트 솔저에 한 작가 스스로 많은 투자를 했고, 숭고한 뜻이 알려지면서 한미동맹재단 등의 도움도 시작됐다.
참전 용사에 대한 관심은 고마운 일이지만, 한 작가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측면도 있다. 몇 년 전 대한민국 군인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필요한 비용을 모금했는데, 네티즌의 반응이 싸늘했던 것이다. 참전용사들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우리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05월 12일 태종의 노비개혁
문희수 논설위원
조선 3대 왕 태종은 폭군으로 인식된다. 고려말 충신 정몽주를 척살했고,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렇지만 태종은 조선 초기 불안했던 왕조를 굳건히 했던 개혁 군주였다. 노비 개혁이 대표적이다. 당시 노비 신분을 정하던 종모법은 부모 한쪽이 천인이면 그 자녀는 무조건 천인으로 규정했다. 더구나 노비 신분은 세습됐다. 태종은 종모법을 종부법으로 고쳐, 아버지가 양반이면 어머니가 노예여도 면천(免賤)을 허용해 양인으로 신분을 높였다.
태종 14년(1414년) 예조판서 황희가 “아버지가 양인이면 자식도 양인이 돼야 하니 종부법이 옳다”고 보고하자, 태종은 그해 6월 종부법으로 개정했다. 이 조치는 양반의 사적 재산인 노비를 줄여 양반층을 견제하는 동시에 노비와 달리 납세·군역 의무가 있는 양인을 늘림으로써 국고·병력 확충을 꾀한 것이다. 인권 향상까지 1석 4조였다. 태종의 노비 개혁은 태조의 토지 개혁(정전제)과 함께 조선 초기 양대 개혁이란 평가도 있다.
그런데 ‘성군’ 세종은 다시 종모법으로 환원했다. 양반들은 호랑이 같던 태종이 사망하자(세종 4년), 종부법은 신분제 기반을 허문다며 끈질기게 폐지를 요구했다. 세종은 처음엔 거부했지만 결국 재위 14년(1432년) 3월 종모법으로 돌아갔다. 세종 역시 양반이 중심인 성리학적 사고와 시대적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노비는 급증했고 양인은 줄어 사대부의 재산은 늘었지만, 세금·병력 자원은 줄어 선조 임진왜란 땐 정규 군대가 거의 없어지기에 이르렀다. 종부법을 지켰다면 홍길동전에서 얼자(孼子) 신분인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고 했던 그 유명한 한탄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조선의 노비제도는 순조 1년(1801년) 공노비 해방 공표에 이어 고종 31년(1894년) 갑오개혁 때 가서야 완전히 폐지된다. 태종의 혜안이 놀랍다. 사실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아들 중 유일하게 과거(문과)에 급제한 인재였다. 역사 속 인물은 제대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왜곡이 심한 탓이다. 태종은 재평가받을 만하다. 그가 처가 쪽 일족과 세종의 장인 등 외척을 척결한 것은 폭군의 만행이 아니라, 세종의 평탄한 치세를 준비해 준 것이란 평가도 있다. 편견이 없어야 실상이 보인다. 역사는 더욱 그렇다.
05월 13일 코로나 넘은 ‘오페라 아이다’
이미숙 논설위원
주세페 베르디의 ‘아이다’는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최고의 걸작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매우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 중 하나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딸 암네리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노예로 끌려와 시녀가 된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의 삼각관계를 그린 비극이다. 이 오페라에는 테너 라다메스의 ‘청아한 아이다’, 소프라노 아이다의 ‘이기고 돌아오라’ 등 뛰어난 아리아가 많지만, 가장 유명한 곡은 ‘개선행진곡’이다. 2막 에티오피아 원정에서 승리한 라다메스가 등장할 때 “승리의 나팔 소리에 우리 용사들이 돌아오네. 영웅의 행진에 꽃을 뿌리자”는 합창이 나온다. 앞부분의 트럼펫 팡파르는 각종 시상식 배경 음악으로 쓰일 만큼 유명하다. 개선 군의 화려한 행진에 이어 다양한 전리품과 함께 코끼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던 세계 각국 오페라극장이 조심스럽게 공연을 재개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국립오페라는 지난 2월 독일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과 미국의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가 주역을 맡은 ‘아이다’를 무대에 올렸다. 국내에서도 지난 7∼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아이다’가 공연됐다. 창단 30주년을 맞은 글로리아오페라단(단장 양수화)이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올린 것이다. 9일 공연에선 소프라노 조선형이 아이다, 테너 김재형이 라다메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이 암네리스 공주역을 맡아 성악의 진검승부를 보여줬다.
파리 국립오페라는 주연 성악가 외 모든 출연진에게 마스크를 씌웠고, 무관객 공연 후 스트리밍 서비스로 공개했다. 반면 글로리아오페라단은 연습 중엔 전원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무대에선 벗었다. 철저한 방역 속에서 정상적인 공연을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어수선한 무대에 꼭두각시 인형까지 등장시켜 최고 성악가의 기량을 가린 파리 국립오페라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 와중에 프랑스와 한국에서 ‘아이다’가 잇따라 공연된 것은 무엇보다도 이 오페라가 가진 애국주의 메시지 덕분일 것이다. ‘이기고 돌아오라’에 이어 개선행진곡을 들으면 우리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곧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이다.
05월 14일 권력자의 아스퍼거 증후군
이현종 논설위원
세계 최고 부자 1, 2위를 다투는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최근 NBC 코미디쇼 진행자로 나와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털어놨다. 오스트리아 의사 이름을 딴 이 질환은 대인 관계에 미숙하고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발달장애의 한 종류다. 자기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상대방 배려에 소홀하다. 특정 분야에 대해선 집요하게 몰두해 천재 중 이런 증상을 보이는 이가 많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정치인이면서도 대인 관계를 무척 힘들어하는 이가 많다. 동료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대화하기를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데 유독 특정 분야에는 집요한 집착이나 권력욕을 갖고 있기에 정치판에서 나름 생존한다. ‘정치인 판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고위인사는 “당시 문 비서실장은 회의할 때 거의 자기 의견을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남북문제가 나오면 자신이 직접 관장하는 일이 아닌데도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놀란 적이 많았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는 기자들도 자주 만나고 썰렁한 농담도 준비해오고 했지만, 청와대 입성 후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공식행사가 없을 땐 거의 ‘혼밥’을 하고 공감 능력도 떨어졌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 때 야당이 3명의 장관후보자에 대해 지명철회를 요구하자 “인사청문회는 능력을 제쳐 두고 오로지 흠결만 따지는 그런 청문회가 되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런데 2015년 야당 대표 시절 국무총리 후보자들의 흠결이 드러나자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후보자를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서는 안 된다. 부적격 총리 후보자를 지켜보는 국민의 상처 난 마음들을 헤아리기 바란다”고 했다. 과거는 까맣게 잊었는지 과거 발언과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차기 지도자의 덕목으로 균형 감각과 공감능력을 꼽았는데 내로남불이다. 북한 김여정이 ‘삶은 소 대가리’ ‘특등 머저리’라고 하는데도 이번 연설문에서 여전히 북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바꾸려 하지 않는데 남은 1년의 국정이 걱정된다.
05월 17일(월) 휘질기의(諱疾忌醫)
황성규 논설위원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에서만 누적 13만20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현재 8200여 명이 치료 중이며 19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백신을 맞은 뒤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123명이나 된다.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는 편작이 나타난다 해도 고인들을 되살리진 못할 것이다.
편작(扁鵲)은 기원전 401년 무렵에 태어나 90세까지 장수한 중국 전국시대의 명의(名醫)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다. 자는 월인(越人), 성명이 진완(秦緩)이어서 진월인으로 불렸다. 의술이 원체 뛰어나, 전설상 제왕인 황제(黃帝) 때의 명의 ‘편작’이란 별호로 더 유명하다. 그를 명의라고 하는 것은, 괵나라의 태자를 살렸기 때문이다. 편작이 마침 괵나라에 있을 때 태자가 급서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원해서 황급히 달려가 진단해 보니, 태자는 죽은 게 아니라 시궐(尸厥·일시적 혼절) 상태였다. 편작이 침과 뜸 그리고 탕약으로 태자를 완치했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고 그를 떠받들었다. 하지만 그는 태자가 스스로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왔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사실을 안 이웃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그를 초빙했다. 편작은 환공을 진찰한 뒤 피부병이 심하니 지금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환공은 편작이 잘난 척하느라 그런다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열흘 뒤 다시 불려가서는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진언했다. 그래도 환공은 못 들은 체하면서 역정만 냈다. 또, 열흘이 지난 뒤 왕진했을 때는 병이 장기에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끝내 고쳐 달라는 말이 없자 편작은 열흘 뒤 멀리 피신해 버렸다. 그로부터 닷새 뒤 환공은 황천길에 올랐다.
북송 때의 유학자 주돈이(1017∼1073)는 ‘주자통서’에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어도 남이 바로잡아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휘질기의(諱疾忌醫)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휘질기의란, 앓고 있는 병을 숨긴 채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를 만나는 것조차도 꺼린다는 뜻이다. 나라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몰고 가는 우리나라 집권층이 새겨들었으면 딱 좋을 말이다. 휘질 수준을 넘어 의사 기피 수준이니, 편작도 이미 삼천리 밖으로 달아났을 테지만.
05월 18일 통기타 가수 양하영
김종호 논설고문
‘아침에 눈 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바람에 꽃 피어 바람에 낙엽 질 때까지/ 마지막 눈발 흩날릴 때까지/ 마지막 숨결 멈출 때까지/ 살아있어, 살아있을 때/ 살아있다면 가슴 뭉클하게/가슴 더욱 더욱 뭉클하게/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살아있다면 뭉클하게 / 가슴 터지게 살아야 한다’. ‘포크 여신(女神)’ 등으로 불려온 통기타 가수 양하영(58)이 양광모의 시를 가사로 삼아, 작곡해 불러 2018년 발표한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일부다. 본명이 신언옥인 그가 강영철과 1983년 결성한 혼성 듀엣 한마음 해체 후, 1987년 솔로 가수로 나서며 작사해 부른 이현우 작곡의 ‘촛불 켜는 밤’ 시작은 이렇다. ‘나/ 이 밤 그댈 잊지 못해 촛불을 켭니다/ 내 창가에 예쁜 촛불을 그대 보시나요/ 안개 낀 밤 나는 그대 그리워 촛불을 켭니다’.
‘샘물처럼 티 없이 맑아서 더 슬픈 음색’ ‘어떤 노래든지 그가 부르면 금방 눈물이 난다’ 등의 평가를 받는 그는 네 살 때, 어느 악극단이 주최한 마을 노래자랑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상품인 빨랫비누를 받았다. 가수의 길을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부르지 못하더라도 꼭 가수가 되고 싶다”고 졸라서, “그 정도 각오라면 성공하겠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서 그는 1980년대에 포크 가수 등용문이던 서울 명동의 음악감상실 쉘부르 무대에 서기 시작한 뒤, 강영철 작사·작곡인 한마음 노래 ‘가슴앓이’로 공식 데뷔했다. ‘밤별들이 내려와 창문 틈에 머물고/ 너의 맘이 다가와 따뜻하게 나를 안으며/ 예전부터 내 곁에 있는 듯한 네 모습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었는데’ 하는 노래다. 이 밖에도 그의 히트곡은 많다.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어느 고운 바람 불던 날 잔잔히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감싸고’ 하는 ‘갯바위’를 비롯해 ‘말하고 싶어요’ ‘친구라 하네’ ‘꿈이여 사랑이여’ 등이다.
잠을 잘 때는 통기타를 안은 채거나, 머리맡 또는 발치에 둬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는 “포크 음악이 내겐 밥과 같다”고도 한다. 짜증 나고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그의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를 찾아 들을 만한 때다.
05월 20일 ‘덤앤더머’의 나라
이신우 논설고문
지난주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종종 니미츠, 로널드 레이건,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3척의 항공모함을 중국 인근 태평양에 배치해왔다. 그런데 2018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이 ‘항공모함 킬러’로 알려진 ‘둥펑(東風)-26’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자 어쩔 수 없이 중국 해안으로부터 1600㎞ 밖으로 물러났다. 최대 70∼80대의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는 이들 항모가 둥펑-26의 손쉬운 목표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1600㎞는 함재기들이 공중 급유 없이는 작전도 할 수 없는 먼 거리다.
도전이 있으면 응전이 있게 마련이니 중국으로서도 대륙으로 접근해오는 미국 항모들에 대한 방어 수단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둥펑 미사일 제조에 미국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펜타곤은 오랫동안 미사일 제조 원료 공급 회사인 미국 내 ‘마그네?치’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왔다. 마그네?치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희토류 생산 업체였다. 희토류는 자석 생산의 기초 원료였고, 자석은 각종 무기류 제조에 필수 부품이다. 마그네?치는 에이브러햄 탱크와 스마트 폭탄, 정밀 유도 직격탄 등의 부품도 제조해왔다. 이 마그네?치의 소유주가 제너럴 모터스(GM) 그룹. GM이 중국 상하이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려 하자 중국 측은 마그네?치 매각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거대 중국 시장에 침을 흘리던 GM은 이를 덥석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중국은 마그네?치의 기술을 이용해 둥펑-26을 선보였고 이에 질겁한 미국 항모들은 중국 해안으로부터 저 멀리 물러나야 했다. 마그네?치의 미국 공장이 문을 닫은 후 그곳은 반려견 호텔로 변신했다. 호텔 안에 반려견 용품 매장이 있는데 대부분 중국산 제품이라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나면 어느 누구라도 미국을 비웃으려 할 것이다. 다만 어느 한 나라만은 예외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지난 20여 년간 북한 김 씨 왕국에 핵무기 개발에 쓰라고 5억 달러+α(α가 5억 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를 갖다 바쳤다. 그 핵무기는 언제라도 남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혹시 미국과 한국 때문에 ‘덤앤더머’라는 용어가 생겨난 건가?
05월 21일 한·일 갈등과 言路 차단
이도운 논설위원
얼마 전 일본 당국자와 한·일 관계를 놓고 대화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듣게 됐다. 너무 솔직해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가장 큰 불만은 문 정부가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 남북관계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 반일 감정을 부추기려 ‘죽창가’를 동원하더니, 도쿄 올림픽을 남북 정상회담 기회로 삼아보려는 듯 별안간 화해 제스처를 쓴다는 것이다. 그는 문 정권 임기 내 신뢰 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한·일 관계 정상화를 원하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이 집권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한·일 관계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잘못도 크지만,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갈등은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 악화를 거쳐 언론계에도 그늘을 드리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월 14일 코로나 긴급 사태 확대를 선언하면서 한국 등 11개국에 허용하던 특별입국 제도를 중단시켰다. 한국인의 사업 및 장기 체류 목적 입국을 불허하면서, 한국 언론사 주일 특파원들에 대한 비자 발급도 거절했다. 이 때문에 현재 4개 언론사의 도쿄 특파원이 발령을 받고도 출국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측은 입국 일시 중단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민간 영역에 적용되는 조치이기 때문에 한·일 관계 악화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언론사도 민간 영역이기 때문에 예외를 허용하기 어려울 뿐이라는 것. 그러나 외교의 기본인 상호주의도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 3월 마이니치 서울 특파원이 부임하는 등 일본 언론인의 국내 입국에는 문제가 없다.
과거 한·일 관계가 어려울 때도 양국 언론인 간 교류는 오히려 활발했다. 언론인들은 정부 당국자가 하기 어려운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관계 개선의 민간사절 역할도 했다. 정부, 기업에 이어 언론 간 소통마저 단절되면 양국 관계는 회복하기 더 어려워진다.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고, 한·미·일 3국 정상회담 논의도 진행 중이다. 한·일 관계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국 간 기업·민간 교류도 활발해져야 하지만, 무엇보다 양국 언론이 소통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05월 24일(월) 골프산업 강국
문희수 논설위원
한국은 명실상부한 골프 강국이다. 세계 최대인 미국 여자 프로골프협회(LPGA) 투어는 박세리 이후 우리 선수들이 20여 년 장악하고 있고, 남자프로골프(PGA) 대회에서도 최근 이경훈이 한국 선수로 8번째 우승하는 등 도약하고 있다. 특히 여자 골프는 세계 최강이다. 세계 톱 10에만 1∼3위인 고진영·박인비·김세영에 김효주(7위)까지 4명이나 된다. 유소연·이정은6·박성현 등도 20위 이내다. 이들에 이어 박세리 키즈·박인비 키즈로 불리는 유망주들이 매년 속속 등장한다. 한국은 오는 7월 도쿄올림픽에서도 미국·유럽·태국·일본 등을 앞서는 강력한 2연패 후보다.
세계 3대 골프업체 중 두 곳이 한국 업체 소유라는 사실도 놀랍다. 얼마 전 토종 사모펀드(센트로이드 PE)가 테일러메이드를 사상 최대인 17억 달러(1조9000억 원)에 인수한 것이다. 지난 2011년 미래에셋그룹과 휠라코리아 컨소시엄이 타이틀리스트를 자회사로 둔 세계 1위 아쿠쉬네트를 10억 달러에 사 세계적인 화제가 됐는데, 이를 뛰어넘었다. 수익을 겨냥한 투자라도 의미가 적지 않다. 테일러메이드는 남자 최정상인 더스틴 존슨, 타이거 우즈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의 클럽과 골프공 등을 생산한다. 골프 장비는 세계 1위, 골프공은 세계 3위다.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한국 골프 산업이 호황인 점도 배경이다. 최근 20∼40대 골프 인구가 크게 늘어 관련 매출이 급증세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적으로 평일에 골프장 부킹이 어려울 정도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 골프 수요가 국내로 몰린 덕도 크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골프는 승마·피겨스케이팅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선진국형 스포츠로 꼽혀 왔다. 이런 골프에서 한국이 강하니 세계가 놀란다. 선수들의 피와 땀이 밴 도전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이경훈의 도전 스토리 역시 감동이다. 그는 지난 2016년 미국 진출 전에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2승씩 거뒀던 챔피언이었다. 그런데도 미국 2부 투어 맨바닥부터 시작해 80전 만에 우승했다. 그는 현재 세계 랭킹이 단숨에 60위로 뛰어올랐고, 임성재(23위) 김시우(50위) 등과 올림픽 진출 경쟁도 벌일 예정이다. 스포츠든 비즈니스든 세계 도전은 항상 위대하고 아름답다.
05월 25일 80대 현역의 비결
이미숙 논설위원
미국 뉴욕타임스의 건강 칼럼니스트 제인 브로디가 최근 80번째 생일을 맞아 80대 현역 예찬 칼럼을 썼다. 감염병 전문가 앤서니 파우치와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포크 록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가수 밥 딜런은 모두 80세 동갑이다.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들보다 한 살이 많은 81세다. 올해 ‘더 파더’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2005년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수상자인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은 83세의 현역이다.
브로디는 1976년부터 뉴욕타임스에 건강 칼럼을 집필해온 저널리스트로 요즘에도 매주 한 번 칼럼을 쓰고 강연도 하는 현역이다. 그가 칼럼에서 밝힌 80대 현역의 비결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되, 방해가 되는 장애물은 과감하게 회피한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자전거 타기 등 정기적인 운동을 한다고 썼다. 신체 운동은 두뇌의 활력 유지 및 신체 유연성과 골밀도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일에 대한 동기와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라고 했다.
장수대국인 일본에서는 한때 나이에 0.7을 곱하는 나이 계산법이 유행했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젊게 생활하기 때문에 0.7을 곱해야 실제적인 체감 나이가 된다는 논리다. 박완서 작가도 “살아온 햇수에 0.7을 곱하는 게 제 나이”라고 한 바 있다. 생물학적 나이에 0.7을 곱해야 정신적·사회적 나이가 된다는 얘기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브로디와 샌더스, 펠로시 등은 50대 최전성기의 사회적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90대 현역도 늘고 있다. 금융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조지 소로스는 곧 91세가 되고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92세다. 요즘 로스앤젤레스 시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는 “너무 바빠 은퇴를 꿈꿀 시간이 없다”고 했다. ‘백세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24일 강연에서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 성장을 많이 하는 시기는 60∼75세”라고 했다. 이 황금기에 어떤 성장을 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사회적 삶이 결정된다는 게 오는 7월 101세를 맞는 현역 철학자의 체험적 조언이다.
05월 26일 0選 중진
이현종 논설위원
51세 골프선수 필 미켈슨이 PGA 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50세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사실이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도 화제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지원하는 정진석 의원은 24일 페이스북에 ‘브룩스 켑카보다 19살 더 많은 미켈슨이 드라이버 거리를 더 내면서 메이저 대회 최고령으로 우승했다. 경륜이 패기를 이겼다. 노장들아, 기죽지 마라’고 했다. 타이거 우즈에게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못 면하던 미켈슨이 다이어트와 명상, 체력훈련 덕분에 로프트가 5.5도에 47.9인치 ‘신무기’ 롱드라이버로 366야드나 날리면서 신예들을 꺾고 우승하자 흥분한 것이다.
‘0선(選) 중진’이라는 별명이 붙은 30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상승세가 위협적인 상황이 되자 중진들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나경원 전 최고위원은 “이번 당 대표는 예쁜 스포츠카를 끌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짐을 잔뜩 실은 화물 트럭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가야 한다”고 이 전 최고위원을 겨냥했다. 이에 최근까지 킥보드를 타고 다녔던 이 전 최고는 “올 초에 전기차를 주문했다”면서 “깨끗하고, 경쾌하고, 짐이 아닌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고, 내 권력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발랄하게 맞받았다. 초선의 김은혜 의원도 “노후 경유차는 언덕길에서 힘을 못 쓴다”고 한 방 날렸다. 말로는 중진들이 신예들을 당할 재주가 없다.
이런 논쟁을 지켜보면서 17년 전인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초토화된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연상된다. 탄핵 반대 촛불집회 덕분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했고,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쳤다.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나라당은 치열함도 열정도 없었다. 그때 김문수 의원은 이런 당 분위기를 “날렵한 맹수가 결정적인 순간 목을 꽉 물고 늘어지면 덩치 큰 초식동물은 맥없이 무너진다”고 했다. 상황의 반전은 여당이 총선 승리에 취해 내부 싸움과 분열을 일삼을 때, 정두언·원희룡·남경필·정병국 등 소위 개혁파의 활동과 이명박·박근혜와 같은 유력 대선 후보들이 경쟁을 벌이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세대 혁명이 일어날지는 미지수지만, 보수 정당에서 30대와 초선의 선전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국민이 야당에 주는 또 한 번의 기회다.
05월 27일 文정부 말 믿은 ‘대가’
이신우 논설고문
탤런트 김광규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전형적인 피해자다. 그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뉴스를 보니 집값이 더 내려간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안 사고 기다렸는데, 집값이 2배가 됐다”며 “(가수)육중완은 그때 집을 사서 부자가 됐고, 나는 월세로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광규가 박근혜 정부의 말을 들었다면 그 같은 하소연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요약해 “빚내서 집 사라”였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세제·금융·재건축 등 부동산 시장 전 분야의 규제를 완화해줬다.
박 정부가 집값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한 핵심 카드로 주택 매입을 권고하던 배경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도 있었지만, 더 큰 원인은 ‘주택공급 급증’이었다. 오죽했으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우리나라 주택공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조차 박 대통령 시절 이례적인 공급 급증으로 국내 건설산업과 주택시장에 부담이 될 정도라고 지적했겠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주택공급 물량은 주택 수요를 35만8000가구나 초과했다. 2016년에는 32만2000가구, 2017년에 29만6000가구를 더 공급했다. 이후 박 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 문 정부다. 공급의 주리를 튼 다음 온갖 세금을 통해 수요 억제에 올인했다. 이를 위해 무려 25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1년 평균 6차례, 두 달에 한 번꼴이다. 덕분에(?)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5억 원이나 올라버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참패하자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부동산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만들지 않은 것만도 못한 형국이다. 약속했던 부동산세 완화를 없던 일로 하는 것은 물론, 양도세 장기보유공제 축소 움직임까지 보인다. 다가구 주택 보유자들이 각종 세금을 견디다 못해 ‘똑똑한 한 채’ 보유로 선회하자 이마저도 적폐 취급하며 양도차익 공제율을 축소하겠다고 한다. 똑똑한 한 채도 못 봐주겠다는 식이다. 박 정부를 적폐 세력으로 취급하다 못해 그들이 성공한 부동산 공급 확대책마저 눈엣가시 취급이다. 아무래도 부동산 해법은 다음 정부까지 기다려야 할 듯하다.
05월 28일 한진섭의 돌 조각
김종호 논설고문
‘그는 조각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음악도, 영화도, 소설도 잘 모른다. 그러니 조각가 외의 사람들과는 대화거리가 거의 없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조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미술사학자인 고종희 한양여대 교수가 자신의 배우자인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돌 조각가’ 한진섭(65)에 대해 쓴 글의 한 대목이다. 이런 표현도 있다. ‘전통적인 석조(石彫)에서 출발해 외길을 걸어온 그가 선택한 작업 방식은 수천 년 전에도 존재했던 망치와 정을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성실함의 DNA를 뼛속까지 타고난 그는 기교가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는 깐깐한 장인(匠人)이다.’
미술평론가 오유근은 한진섭의 예술세계를 이렇게도 묘사했다. ‘사방천지가 돌이다. 오직 돌뿐이다. 대리석·화강암·현무암·사암 등 돌의 밭이다. 그 밭을 가꾸는 작가 또한 돌로 시작해, 돌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는다. 작가와 돌은 응전과 교감으로 서로 닮아 있고, 작가가 침묵하면 돌이 작가를 대변한다. 한진섭의 돌들은 바로 그의 예술·삶·역사를 가리킨다는 생각이다.’ 한진섭을 국내외 평론가들이 일컫는 표현은 이 밖에도 ‘차가운 돌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가’ ‘채움과 비움의 조형 원리’ ‘기하학적이고 간결한 조형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조각’ ‘해학과 유머의 예술’ ‘기뻐하고, 고통받으며, 때로는 생각에 잠긴 풍자적 우리 자신의 모습’ 등이다. 홍익대 조소과 졸업 후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로 훌쩍 유학을 떠난 것이 1981년이었다. 당시를 그는 회고하며 “나는 유학 전에도 줄곧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다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돌이 모두 모이는 데가 이상적인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피사국립대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시야를 더 깊고 넓게 하며, 이런저런 국제적인 상도 받고,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가 서울 강동구청과 협약을 맺고, 작품 50여 점을 일단 10년 동안 무상 임대한 뒤 교체·추가하면서 더 연장할 수도 있게 한 ‘허브조각공원’이 강동구 둔촌동 일자산 근린공원 안에서 오는 6월 중에 문을 연다. 인간애(人間愛)를 품은 돌 조각의 아름다움에 맘껏 젖어들 수 있는 자연 속 공간이 참으로 반갑다.
05월 31일(월) 한·미 軍 급식의 격차
이도운 논설위원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카투사로 군 복무 시절, 사소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있었다. “밥은 잘 먹겠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근접해 끼니 걱정은 없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TGI프라이데이 등 미국식 패밀리 레스토랑이 들어오기 전이어서 ‘양식’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군의 급식과 비교해 말하는 것이었는데, 미군과 부대끼며 살던 카투사에게는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당시 메스홀(mess hall)로 불리던 미군 식당에서 제공하는 아침, 점심, 저녁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송아지고기·돼지고기·양고기·닭고기 요리가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KFC 못지않았고, 햄버거 패티와 치즈도 맥도날드보다 훨씬 크고 두꺼웠다. 생수·우유·주스·커피 등 음료는 무한 리필이었고, 디저트도 케이크부터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신토불이. 미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카투사가 많았다. 그래서 일과가 끝나면 부대 주변 한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기도 했고, 메스홀에서 저녁을 대충 먹은 뒤 고참 방에 모여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신병이 첫 휴가를 갈 때는 김밥을 싸오도록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미군 부대 배치 전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 훈련을 받았다. 훈련이 고됐고, 돌을 씹어도 소화할 나이였기에 급식의 질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밥과 국, 반찬 두 가지였지만 배가 고파 서러웠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군 장병의 부실 급식 논란을 보고 놀랐다. 급식의 양과 질, 시스템 모두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격리사병의 급식은 30년 전 논산보다 부실했다.
미군의 급식은 질과 양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복무 당시 카투사가 외부 한식당에서 자주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파악되자, 메스홀에서 점심과 저녁에 김치와 컵라면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어떻게든 카투사 장병들의 선호도 배려한 것이다. 당시 미군 부대장과 장교들이 이용하는 메스 홀 내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음식은 사병과 똑같다. 다만, 아침을 먹으면서 참모 회의를 겸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 성격이었다. 얼마 전 평택 미군기지를 방문해 8군 사령관 등과 오찬을 함께했다. 사병들과 같은 밥이었다. 그때 일부러 확인했는데, 샐러드 바에는 어김없이 김치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