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機의 韓半島 2021-02/ 05.01 중국, ‘할 일 하고 할 말 하는 베트남’ 함부로 못 대한다 - 05-31 미국 없는 한국엔 북한도 중국도 관심 없다
危機의 韓半島2021- 02/
05.01 중국, ‘할 일 하고 할 말 하는 베트남’ 함부로 못 대한다
자신이 못 가진 카드 꿈꾸다 나라 그르치는 ‘夢想 외교’
북한·중국 앞에 서면 입 닫고 작아지는 한국 評判 걱정해야
코로나는 세계를 세 계급으로 나눴다. 최상위 계급은 백신을 여유 있게 확보해 집단면역의 길로 나가고 있다. 다음은 백신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동맹과 우방의 도움으로 희망이 비치기 시작한 나라들이다. 최하위 국가들은 백신 제조 회사 앞에 목을 빼고 기다린다. 한국은 세계 최빈국(最貧國)들과 이 마지막 줄에 서 있다.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지도부의 판단력 문제다. ‘강대국이 국제 공조를 외면하고 국경 봉쇄·백신 수출 통제·사재기 등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만 꾀하고 있다’고 미국을 향해 핏대를 세워봐야 나라 꼴만 처량해진다. 이 판에 중국 치켜올리기를 끼워 넣은 것은 더 악수(惡手)다.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우선순위를 뒤집으면 나라의 기본 틀이 흔들린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국회를 다수당 독재의 입법 기계로 타락시키고 선거의 감시자인 중앙선관위를 불공정한 심판으로 만들어버렸다. ‘하고 싶은 것’ 앞에선 자제력(自制力)을 상실하는 정권이다. 검찰·공수처·국가수사본부는 권력의 사병(私兵)이 되고 ‘하나회 출신’이 장악한 법원은 정권의 방탄(防彈)조끼가 돼 버렸다. 비정상화된 국가 기간 조직을 정상화하려면 훗날 비정상적 조치가 불가피해진다. ‘비정상의 악순환’이다.
국가 지도자의 핵심 요건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선견력(先見力)을 꼽는다. 그러나 그건 1920년대 독일의 정치 혼란과 경제 파탄의 소용돌이를 보고 히틀러의 등장을 예측했던 처칠처럼 출중(出衆)한 리더에게나 바랄 수 있는 자질이다. 보통 지도자는 지나간 과거와 눈앞의 현재만 정확히 읽어도 합격이다. 그러려면 더 중요한 일을 위해서 덜 중요한 일을 뒤로 돌리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얻어 쓴 빚과 오늘 잔칫상을 받으려고 끌어다 쓴 빚의 결과가 같을 순 없다. 코로나가 녹을 무렵엔 빚을 얻어 미래를 대비했던 경제와 빚으로 잔치를 벌였던 경제가 확연히 갈릴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해선 안 될 것’을 가려야 나라 진로가 안전해진다. 현실을 현실대로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국제 관계에서 현실주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능숙하게 운용함으로써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지혜다. 그런 뜻에서 현실주의 외교의 반대말은 이상주의 외교가 아니라 자신이 갖지 못한 카드를 꿈꾸다가 나라를 그르치는 ‘몽상(夢想) 외교’ ‘집착(執着) 외교’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계승하라고 주문(注文)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오른쪽)이 4월2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웨이펑 허 중국 국방장관과 만나고 있다/연합뉴스
상대의 가면(假面)에 홀리면 나라가 위험해진다. 김일성은 공식적 또는 비밀리에 40여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그 가운데 두 번의 방문이 특별했다. 한 번은 6·25 남침을 코앞에 둔 1950년 5월 방문이다. 남침을 협의했다. 사이공 함락 후 1975년 4월 방문도 수상했다. 김일성은 마오쩌둥(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덩샤오핑(鄧小平)과 차례로 만나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면 “잃어버릴 것은 군사분계선이고, 얻는 것은 통일”이라며 사실상 무력 통일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6·25로 동포 수백만 명을 살상(殺傷)하고도 김일성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이 미·중 관계 개선에 골몰했던 때라 대답을 받아내지 못했다. 손자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상대의 가면(假面)에 홀리면 나라가 위험해진다. 김일성은 공식적 또는 비밀리에 40여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그 가운데 두 번의 방문이 특별했다. 한 번은 6·25 남침을 코앞에 둔 1950년 5월 방문이다. 남침을 협의했다. 사이공 함락 후 1975년 4월 방문도 수상했다. 김일성은 마오쩌둥(毛澤東)·저우언라이(周恩來)·덩샤오핑(鄧小平)과 차례로 만나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면 “잃어버릴 것은 군사분계선이고, 얻는 것은 통일”이라며 사실상 무력 통일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6·25로 동포 수백만 명을 살상(殺傷)하고도 김일성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이 미·중 관계 개선에 골몰했던 때라 대답을 받아내지 못했다. 손자는 얼마나 다르겠는가.
국제 관계에선 평판(評判)이 때론 국가의 실제 모습 이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세계의 화약고(火藥庫) 가운데 하나가 남중국해(South China Sea) 섬 영유권과 항해 자유 보장 문제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아세안 6국이 부딪치고 있다. 베트남은 지도에 남중국해가 아니라 자기 나라 기준으로 동해(East Sea)로 표기(表記)한다.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 유일하게 중국의 윽박지르기 영토 주장을 또박또박 거르지 않고 논리적으로 반박해왔다. 중국이 거대(巨大) 군함을 출동시키면 베트남은 작은 군함으로라도 맞섰다.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거명(擧名·naming) 하거나 공개적 망신(shaming)은 주진 않는다는 스스로 정한 선(線)을 지켰다. 이런 베트남을 중국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한 국가가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리한 요구에 맞서기를 두려워하면 그게 굴레가 돼 종당엔 발가벗김을 당하고 만다. 유화주의(宥和主義) 외교의 말로(末路)다. 베트남은 지혜와 담력으로 중국을 상대했고 한국은 그 반대로 북한과 중국을 대해왔다. 국제사회에서 어느 쪽 평판이 높겠는가. 대답은 들어보나 마나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05월 06일 ‘美 중심 中 견제’ 선언한 G7…文정부도 친중사대(親中事大) 접어야
세계 자유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주요 7개국(G7)이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에 동참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는데, 이는 21세기 국제질서의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등 7개국 외교장관이 5일 발표한 공동성명을 보면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특히 중국 패권주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HO) 포럼 등 국제기구 참여를 지지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1971년 유엔에서 대만을 축출하고 중국을 받아 들인 이후 50년 동안 유지된 금기를 깬 것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G7의 일치된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G7 성명은 중국 인권 탄압과 사이버 범죄, 홍콩 민주주의 퇴보 등을 열거한 뒤 “중국은 건설적으로 국제 질서에 참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G7이 미국 편에 서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중심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도 무조건 존중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핵심이익이라고 주장하지만 G7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외교장관 성명은 내달 11일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추인될 것이 확실하다.
G7은 지난 4년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일방주의로 유명무실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사회 복귀’를 선언하며 리더십을 보이자 G7은 다시 미국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말 타결한 중국과의 무역협정 비준도 보류키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 G7 정상회의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중국은 큰 봉우리 우리는 작은 나라’‘중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친중사대(親中事大) 행태로 일관했고, 홍콩 보안법 사태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대만 접경지 샤먼으로 부르자 전세기까지 사용해 방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배제 자유주의 공급망까지 구축할 움직임이다. 세계 정세에 눈감은 채 친중을 고수하다간 동맹도 경제도 모두 잃을 판이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10일 미국, 대만 지키려 한국 버릴 수 있다
이미숙 논설위원
미·중 경쟁 전방위 확산 맞춰
‘그림자 국가’ 대만 위상 급변
첨단기술 시대의 사우디 역할
G7 뭉쳐 ‘하나의 중국’에 도전
文정부 들어 ‘자유 전초國’ 흔들
韓·臺 동시 위기 때 美 선택 의문
미·중 전면 충돌이 가시화하면서 대만(공식 국호는 중화민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의 위세에 눌려 대만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국가’ 취급을 받았지만, 코로나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대중(對中) 뚝심을 보여주면서 국가로서 존재 가치를 재확인받게 된 것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전방위로 확산된 후 미국에서는 대만이 ‘첨단 테크놀로지 시대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과거 석유에너지 확보 차원에서 사우디를 전략적 협력국으로 봤다면, 이제는 반도체 공급원인 대만이 그런 가치를 갖는 나라라는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식 때 대만 대표부 인사를 공식 초청했고 지난 4월 아시아 주재 미 대사가 비공식 특사로 대만을 방문했다. 대만에 대한 워싱턴 외교가의 금기를 깬 놀라운 행보였다. 런던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공동성명에는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 지지’가 명시됐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독일 등 G7이 대만의 국제적 지위 인정에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 때 회원국 지위를 잃은 데 이어 1979년 미·중 수교 때 미국에 단교까지 당했던 대만이 미·중 신냉전 시대 국가 지위 회복의 계기를 맞는 기류다. 미국 등 G7의 이 같은 입장은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를 자유 진영 공급망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중 관계의 ‘부담’이었던 대만이 냉전시대 베를린처럼 자유 진영의 전초기지가 된 것이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던 2006년 무렵 미 국무부의 아시아통 인사와 북한·대만 문제 관련 미·중 거래 가능성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중국이 핵 개발에 나서는 북한의 뒷배 역할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대만의 중국 귀속을 묵인하는 식의 외교적 주고받기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탐색적 대화였다. 당시 그 인사는 “헨리 키신저급 인사가 나서서 중국 측과 전략적 거래를 한다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미 의회는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하는 대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황준국 전 주영대사가 최근 문화일보 기고문에서 중국 당국이 대만·북한을 대미 거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대만 땅 진먼다오(金門島)가 보이는 샤먼(廈門)으로 초청한 것에 대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중국은 대만을 공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대중 담판 카드로 대만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 한·미 간에는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중국은 이미 대만·북한을 대미 협상 카드로 묶어서 본다는 관측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사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전술핵 개발 작업도 시작해 대미·대남 핵 공격 능력을 조만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확보 등으로 미국에 대한 2차 보복 능력까지 갖게 된다면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을 결정하기 어렵다. 중국이 대만 공격에 앞서 북한의 대남 기습을 방조해 미군의 대응 혼선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장기 집권 명분을 만들기 위해 대만 공격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지난 3월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6∼10년 내 대만을 합병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우리에겐 김정은의 부화뇌동 남침 대비 경고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과 대만이 동시적 위기에 빠질 때 미국은 어느 나라를 지원할까. 대만은 동맹이 아니지만 TSMC가 있고, 한국은 삼성전자를 보유한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자유 진영 대신 중국 편을 든다면 미국의 선택은 자명하다. TSMC를 위해서라도 대만에 집중할 것이다. TSMC는 대만을 수호하는 전략자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또 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한·미동맹의 이류화는 더 뚜렷해질 것이다. 미·중이 탐내는 삼성전자를 홀대하며 친중·친북에 정신을 팔다간 대만보다 전략적 가치가 밀려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에 설 수 있다.
문화일보
05.22 한미 공동성명에 중국,북한 아킬레스건, 대만, 北 인권 모두 포함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 명시는 사실상 처음.
[워싱턴=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22. scchoo@newsis.com
21일(현지 시각) 채택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엔 중국이 반발하는 ‘대만해협'과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한인권' 문제가 모두 포함됐다.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보는 대만 문제와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인권 문제를 공동성명에 명시한 데는 미 측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청에도 대만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를 사실상 외면해왔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이를 강력히 요청하면서 대만과 북한 인권 문제가 모두 포함됐다. 정상회담이 예상보다 길어진 데는 두 문제에 대한 양국간 격론 때문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 직후 발표한 공동성명에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명시했다.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이 명시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공동성명에 표현된 대만문제의 언급은 지난달 미일 공동성명 내용과 차이가 없다. 미일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가 포함된 것은 52년 만이었다.
양국은 성명서에서 “한국과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며,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며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 합법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상업 및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법 존중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역시 중국이 거론 자체를 꺼리는 문제들이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려 각종 회담에서 대만해협 문제를 언급했지만, 우리 측은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피하는 분위기가 컸다. 이날 한미정상회담 성명서에 중국은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지만,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등 포괄적인 문제가 간접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가진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만해협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압박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며
“다만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 했다.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양국이 그 부분에 대해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북한이 반발하는 ‘북한인권’ 문제도 성명서에 담겼다. 양국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데 동의하고,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촉진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북한 문제와 안보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한미일(韓美日) 3국 협력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주희연 기자
05.22 文 “미사일 지침 종료”...중국 겨냥 중·장거리 개발 가능해져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오후(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말했다.
1979년 이후 42년 동안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미사일의 사거리·탄두중량을 제한해 왔던 미사일 지침이 완전히 종료되었다는 뜻이다. 이로써 일본·중국을 사거리 내에 두는 준중거리·중거리·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제한이 사라지게 됐다.
미국이 미사일 지침 종료에 동의한 것은 중국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우리 정부가 원하는 전시작전권 전환에 필요한 한국의 독자 방위 역량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1979년 사거리 180㎞, 탄두중량 500㎏ 제한 조건으로 시작된 한·미 미사일 지침은 중국이 부상한 2000년 이후에 4차례 개정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사거리 제한을 180㎞에서 300㎞로 늘렸고,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다시 800㎞로 늘렸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탄두중량 제한이 풀렸고, 작년엔 고체연료 사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05.24 ‘미사일·쿼드·기술’ 합의, 한미 동맹 정상화의 출발 되길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미북 대화가 ‘판문점과 싱가포르 선언 등을 기초로 한다’는 원칙적 동의를 얻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쿼드, 남중국해, 첨단 기술 등 중국 견제에 필요한 한국 참여를 확보했다. 특히 “대만 해협 평화” 언급은 한·중 수교 이후 한미 성명에서 처음 명시됐다. 양측 모두 가장 원했던 것을 절충해 얻은 것이다. 서로 양보해 이견을 줄일수록 동맹은 강화된다.
정부는 공동성명에서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언급한 것을 두고 “최대 성과”라고 했다. 그런데 북이 가장 원하는 제재 해제에 대해 공동성명은 “유엔 안보리 결의 완전 이행”이라고 못 박았다. 북이 비핵화 조치를 안 하면 제재 해제도 없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바라는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김정은의 핵무기고에 대한 논의 약속이 없으면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같은 ‘TV 쇼’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북 비핵화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북이 싫어하는 “북 인권 개선”까지 공동성명에 명시했다. 두 달 전 한미 외교·국방 회담 때만 해도 없던 내용이다. 비핵화 대화를 위한 공은 북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한국군 55만명에게 접종할 백신 공급을 확약했다. 그동안 문 정부는 한미 연합 훈련을 안 하는 핵심 이유로 ‘코로나 감염’을 거론해왔다. 백신 제공은 ‘코로나 핑계 그만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은 42년 만에 ‘미사일 사거리 족쇄’도 완전히 풀어줬다. 동맹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조치다. 바이든은 문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공군과 혈투를 벌였던 6·25 영웅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한미 동맹의 ‘뿌리’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껏 문 정부는 중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줬다. ‘쿼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했고 미국 중심의 경제 공급망 구축에도 부정적이었다. 미사일 방어망 불참 등 ‘사드 3불(不)’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팽창과 홍콩·위구르족 인권 탄압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이번엔 미국에 “쿼드 중요성 인식” “남중국해 항행 자유 존중” “해외 인권·민주화 증진”을 약속했다. 반도체·배터리·5G 등에서도 “미국과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호주에 보복한 원인이던 ‘코로나 기원 연구’까지 공동성명에 담았다. 중국에 기울었던 지난 4년간의 태도를 바꿔 이번엔 미국이 원하는 것을 대폭 들어줬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문 대통령 귀국 길에 중국 측에 한미 회담 내용을 설명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썼다. 주권국가의 여당 의원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나. 식약처 공무원이 “한국은 속국, 중국은 대국”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문 정권의 대중 저자세가 일선 공무원과 여당 의원까지 번진 것이다.
외교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이 말 하고, 중국에 저 말 하는 식으로 오락가락해선 국가 신뢰도가 무너진다. 상대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을 ‘균형 외교’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난 70년간 북의 위협을 막아내며 기적 같은 경제 번영을 이뤄낸 바탕은 한미 동맹이다. 동맹의 가치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한미 공동성명은 “한미 동맹 새로운 장을 연다”고 명시했다. 그러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24일 韓美훈련 재개와 전단법 폐기가 동맹 정상화 시금석
문재인-조 바이든 첫 정상회담의 돋보이는 성과 중 하나가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 공유다. 공동성명은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협력한다”고 명시했다. “민주적 규범·인권·법치 원칙이 지배하는 지역에 대한 비전 공유”도 적시함으로써 내용과 방향을 밝혔고, 홍콩·위구르 등 중국 인권 문제까지 포괄한다. 문 대통령은 북한 인권에 입장을 표명한 적이 거의 없다. 대신 문 정권 인사들은 ‘인도적 지원이 인권 개선에 기여’ 등의 억지 주장을 펼친다. 문 대통령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국제사회로부터 반(反) 인권 비난을 받는 대북전단금지법부터 폐기해야 한다.
이번에도 북핵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고, 미국은 제재를 해제할 뜻이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문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이 포함된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최고의 회담”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두 선언은 앞선 남북 간 7·4 공동성명, 비핵화 공동선언, 미·북 간 제네바합의, 9·19 공동성명, 2·29 합의처럼 실효성을 잃었다. 오히려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완전한 이행’이 포함된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그 사람(김정은) 말만 갖고 판단하지 않겠다” “환상도 없다”고 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성 김 전 주한 대사를 대북특사로 임명했지만, 협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성의 표시에 불과하다. 현직 인도네시아 대사인 김 특사는 미·북 협상이 시작돼야 본격 활동할 수 있다. 오히려 미 정부가 국군 55만 명에게 투여할 백신 제공이 상징적이다. 한·미는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이후 연합 훈련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왔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도 훈련 회피의 핑계가 됐다. 미국의 의도는 하루빨리 ‘컴퓨터 게임’ 아닌 대규모 연합 실기동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이임·부임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결같이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동맹 정상화의 시금석이다.
문화일보 사설
05월 25일 ‘韓기업과의 동맹’ 나선 美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의자에 앉은 6·25 참전 노병을 사이에 두고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채 기념 촬영한 사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청천강 전투에서 중공군과 맞서 싸운 랠프 퍼켓 주니어 예비역 대령 가족을 초청해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원래 문 대통령은 명단에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촬영을 권유해 중공군과 맞서 싸운 이 참전영웅 좌우에서 무릎을 굽힌 자세로 환히 웃는 모습은, 다름 아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사드(THAAD) 경제보복 등 중국의 압력과 간섭으로 틈이 벌어진 한·미 동맹의 건재를 과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 주석의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라는 도발적 발언에 대한 응징 메시지로 읽혔다. 지난해 10월 시 주석은 “한국 내전에 미국이 무력으로 간섭했고, 중국은 항미원조를 결심했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예비역 장성은 “6·25전쟁은 북한 남침과 중국 개입에 맞서 한·미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전쟁으로, 글로벌 한·미 동맹으로 중국에 대항할 것임을 시 주석에게 경고한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분석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2번째 인상적인 장면의 주인공은 한국 기업가들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예고 없이 기자회견장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과 4대 그룹 대표단을 일으켜 세운 뒤 “고맙습니다. 우리는 함께 대단한 일을 할 것”이란 말과 함께 일일이 박수를 보낸 돌출행동 역시 ‘외교의 대가’이자 ‘책략가’다운 면모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대기업들이 44조 원의 대미 투자 보따리를 안긴 데 대한 감사 표시이긴 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미 동맹을 경제까지 아우르는 글로벌동맹으로 진화시키려는 배경은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기업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향방을 좌우할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첨단을 달리는 한국 대기업이란 우군이 절실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업들도 중국보다 앞선 미국의 6세대(G) 이동통신망과 인공지능(AI), 우주과학기술 협력이 절실하다. 한국이 미국이 요구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네트워크와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미국의 핵심기술 주도 능력은 중국과 비교를 불허한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의 현지 투자는, 우리 미래산업의 키를 쥔 4차 산업기술혁명과 관련해 미국과 협력해 함께 돌파구를 찾겠다는 글로벌 한·미 동맹 선언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에도 문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착오적 패러다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제 이분법적 ‘안미경중’ 논리는 설 땅을 잃었다. 문 정부 4년간 중국의 경제보복에 주눅 들어 허송세월한 외교 공백기를 메우려면 ‘안미경중’ 망상(妄想)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길이 열린다.
문화일보
05.26 우리 국익에 중요한 韓美 합의, 중국에 왜 변명하나
중국 외교부가 ‘대만 해협’을 처음 언급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불장난하지 말라”고 했다. 공동성명 내용을 비난하며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하라”고도 했다. 그러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매우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이라고 했다. 공동성명에 명시한 ‘남중국해 항행 자유’에 대해 중국이 “아무 문제 없다”고 반발하자 외교부 차관은 “일반적인 문장”이라고 했다. 한미가 반도체·배터리·5G 등에서 협력을 약속한 것에 대해선 산자부 장관이 나서 “특정국 배제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미 동맹을 복원하자는 약속을 해놓고 중국이 화를 내자 당당하지 못하게 둘러대는 모습이다.
이번에 ‘미사일 사거리 족쇄’가 완전히 풀렸다. 우리도 북·중이 수백, 수천기를 보유 중인 중장거리 미사일을 자체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친정권 방송은 ‘중국이 불편해할 수 있다’고 묻고 외교부 차관은 “중국을 고려해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답했다. 중국 미사일이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데 무슨 소린가. 첨단 기술, 차세대 에너지, 통신 보안 협력도 우리 경제에 절실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애써 중국과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해명하고 있다. 공동성명에 ‘중국’을 적시하지 않았으니 “중국이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주한 중국 대사는 “중국을 겨냥한 것을 안다”고 했다. 어설픈 변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체 왜 중국에 변명을 하나. 무슨 죄라도 지었나. 부끄러운 일이다.
이 정권은 4년 내내 중국 앞에만 서면 꼬리를 내렸다. ‘사드 3불(不)’로 군사 주권을 양보하는 전대미문의 행위를 했다. 얼마 전까지 ‘쿼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고 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팽창과 홍콩·위구르족 인권 탄압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과 통화해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이번 한미 회담에서야 “쿼드 중요성” “인권과 민주화 증진” 등을 처음 언급했다. 한미 동맹을 바로잡는 계기를 뒤늦게라도 마련한 것이다.
미국은 문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지키는지 볼 것이다. 신뢰가 없으면 동맹은 설 수가 없다. 미국에 이 말 하고, 중국에 저 말 하면 두 나라 모두 한국을 우습게 볼 뿐이다. 이번 한미 성명에는 우리 국익에 중요한 약속과 합의가 많다. 중국에 변명할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 사설
05월 26일 기업 부담만 키운 對美 정상외교 재앙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이 문재인 대통령의 자평대로 과연 최고의 성과를 올린 비즈니스 회담이었는가. 그 성과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외교는 아태지역의 높은 수준의 표준·경제·기술·가치동맹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느슨한 형태의 경제 협의체에 중국과 함께 참여한 것을 유일한 성과로 내세우는 상황이다. 문 정부의 친중 또는 중립화 외교 노선은 점점 국제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됐고, 국내적으로도 백신 부족 현상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정권 재창출이 절대적 과제인 정권으로서는 미국 주도 가치동맹에 합류하는 시그널이라도 보내는 방법밖엔 대안이 없게 됐다.
시그널을 받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을 가치동맹에 편입시키기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한꺼번에 쏟아내 이를 한국이 수용하게 하는 패키지딜을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외교 방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리세팅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서둘러 미측의 패키지딜을 수용한 데 따른 부작용은 고스란히 비즈니스에 떠넘겨지게 됐다. 기후변화 문제에서 국내 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탄소중립 목표치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떠안겨졌다. 탈원전 기조에 대한 비난을 줄이기 위해 한·미 간 해외 원전 수출 협력이 전격 합의되긴 했으나, 국내 탈원전 정책의 기조 아래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한다는 건 산업계에 지나친 부담만 준다.
백신 관련 합의 내용은 협상의 레버리지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관료주의가 낳은 참사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제조업의 사활과 국가안보 문제가 걸린 반도체 자급률을 대폭 올리기 위한 노력을 정권 차원에서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업체 모시기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번 회담 때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 기업이 44조 원이나 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어마어마한 대미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자산이었다. 공격용 아파치 헬기 구입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분 등을 모두 합치면 50조 원 규모의 예산 및 민간 투자액을 미국 달래기에 쏟아부은 셈이다.
그러고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얻어낸 코로나19 백신은 국군용 55만 회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모더나가 한국을 백신 위탁생산국으로 정한 것을 두고 글로벌 백신 허브로 한국을 도약시킨 쾌거라 선전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스푸트니크-V 백신 등이 이미 위탁생산 중인 한국에 모더나가 뒤늦게 조인한 게 진실이다. 이런 비즈니스적 필연을 단지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표해 놓고, 그것이 마치 정상회담의 성과이고 한국을 백신 제조의 글로벌 허브로 탄생시킨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앞으로 44조 원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투자 인센티브에 대한 후속 협상이 필요하다. 각종 세금 혜택과 연구·개발(R&D) 지원 규모가 관건이다. 그런데 정상회담 차원에서 44조 원 규모로 투자를 못 박아 버렸으니, 후속 인센티브 관련 협상에서 우리 기업들에 불리하게 돼 버렸다. 기업들의 노력에 숟가락을 얹었으면, 그냥 삼성바이오 등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의 발전상을 축하하며 격려해 주는 게 국가 지도자의 도리 아닌가.
문화일보
05.27 혈맹, 전맹, 물맹
코로나19 위기가 터지자 모두가 죽음을 걱정했다. 그러나 곧 사는 문제, 즉 경제로 관심을 돌렸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직후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명운을 걱정했다. 하지만 1·4 후퇴가 시작되자 같은 신문은 “한국전쟁이 초래한 증세와 적자”를 톱기사로 다뤘다.
정작 한국은 재정 적자 걱정을 덜했다. 미국의 원조로 연명하고 있으니 혼자 고민해봤자 답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회계연도를 미국과 일치시키고 원조금만 기다렸다. 당시 미국의 회계연도는 독립기념일에 맞춰 7월에 시작했다. 한국 정부의 회계연도를 1월에 시작하도록 바꾼 것은 원조가 줄어든 1957년이다.
당시 우리의 경제 현안은 재정 사정이 아니라 ‘돈’ 그 자체였다. 6월 27일 서울을 버리고 급하게 남하하면서 한국은행 지하 금고의 화폐를 포기했다. 그 돈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가자 새 돈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화폐 제작은 일본 대장성 인쇄국이 맡았다. 화폐 도안에서 제작, 수송까지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일본 인쇄국 직원들을 감금하고 밀어붙인 결과다. 인쇄비는 미국이 부담했다. 그러나 1953년 2월 한국 정부는 또다시 새 돈을 뿌렸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개혁이었다. 그 돈은 미국 정부가 인쇄했고, 이번에도 인쇄비는 미국 몫이었다.
그때 한국은 미국에 ‘돈 먹는 하마’였다. 전쟁이 최고조였던 1952년 미국 정부가 한국에 뿌린 돈은 미국 명목GDP의 4.2%였다. 같은 기준으로 보면, 베트남(2.3%), 이라크(1.0%), 아프가니스탄(0.7%)에서 뿌린 것보다 많았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알링턴 국립묘지부터 들른 이유다. 미국은 전맹(錢盟)이기도 하다. 미 연준은 통화 스와프 계약을 통해 달러를 빌려주고, 한국은행은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 이제 백신과 반도체 같은 중요 물자를 서로 의지하는 물맹(物盟)으로 진화한다. 그 옛날 ‘돈 먹는 하마’가 믿음직한 파트너로 발전한 것은 우리의 긍지요, 미국의 보람이다.
조선일보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05.31 인도·태평양 ‘새판짜기’ 뛰어드는 유럽… 韓, ‘아웃사이더’의 시간 끝나간다
[유로 스코프] 佛·獨 앞장서고 英도… 9월까지 EU 차원 인도·태평양 전략 마련
중국 견제, 무역 교두보 확보 등 다목적 포석… ‘거대한 체스판’으로
한국, 뜻 같이하는 동맹 확보해야… EU·아세안 다자 접점 모색을
유럽이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수년 전부터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아시아·태평양으로 지칭되던 지정학적 초점은 서쪽으로 이동해 왔다. 여기에 유럽이 합류를 시작했다. 프랑스를 필두로 독일, 네덜란드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유럽연합(EU)도 공동의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스판’은 이제 인도·태평양으로 그 무대를 옮겨왔다.
아직 인도·태평양에 대한 지리적 범주나 개념은 명확하지 않다. 미국이 태평양으로부터 일본, 호주, 인도를 잇는 축을 중심으로 한다면 유럽은 아프리카 동부로부터 시작하는 인도양 지역과 남태평양 지역에도 관심을 둔다. 인도·태평양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전략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역내 4자 안보 협의체 ‘쿼드’는 이미 미국의 핵심 안보 체제로 부상했고, 확대된 형태의 쿼드 플러스가 논의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정학에서 유럽의 참여는 이러한 전략적 공간의 개념과 성격을 크게 변화시킨다.
/인도·태평양으로 향하는 유럽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중 유일하게 인도·태평양 지역에 영토와 국민을 보유한 역내국이다. 프랑스가 ‘호주와 이웃한 섬나라’라고 하면 의아할지 몰라도,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는 호주와 인접해 있고, 양국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프랑스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160만명의 국민이 있고, 영토 주권을 바탕으로 배타적경제수역을 설정하고 군사 활동도 지속해 왔다. 2018년 공식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이후 프랑스는 인도, 호주, 그리고 일본을 잇는 연합 구도를 중심으로 조용히 역내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아 왔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중심에 두어 온 독일은 지난해 9월 ‘인도·태평양 정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다자주의, 자유무역, 그리고 인권과 규범을 중심으로 한 참여를 선언했다. 역사적으로 해상 강국이었고,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가졌던 네덜란드도 독일의 뒤를 이으며 이 지역에서의 유럽의 포괄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글로벌 브리튼’을 표명한 영국도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EU 외무장관들은 지난 4월 이사회 결론을 통해 교역, 안보, 인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방향을 정하고, 오는 9월까지 공동의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다목적용이다. 일대일로 전략을 앞세워 공격적인 확장을 취해온 중국의 부상은 유럽의 입장 변화의 일차적인 요인이다. 유럽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레버리지 확보와 미국과의 동맹 공고화라는 장기적 포석을 두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과 대서양 동맹의 복원은 유럽의 입장을 표명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가하고, 홍콩 및 신장 인권 문제로 중국과의 외교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것도 유럽의 정치적 부담을 줄여주었다.
그러나 유럽이 미국 주도의 패권 경쟁에 무조건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도·태평양 지역이 미국과 중국만의 패권 경쟁의 장으로 고착화되어 가는 것을 방지하려는 개입의 성격도 담겨 있다.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이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유럽 자체적인 전략적 필요성이 반영되었고, 글로벌 외교에서의 위상에 대한 고려도 이루어졌다.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전통적 해양 안보뿐만 아니라 국제 무역 질서, 법치와 인권의 규범 외교를 포함한 다자주의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럽은 미국과 중국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견제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동시에 기회가 오면 협력과 진출의 교두보로도 활용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정학의 새로운 판짜기도 가속화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제 단순한 중국 견제의 성격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해양 안보뿐만 아니라 가치와 규범에 기반한 다자주의의 축으로 부상되었다. 인도·태평양의 인사이더가 되는 조건은 ‘뜻을 같이하는’ 국가이다. 인권, 법치,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는 동맹 및 전략적 파트너들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평양과의 대화 복원을 선결 과제로 내세운 한국은 이러한 가치 외교에 선뜻 참여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한반도의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한국이 정책적 모호성과 예외적 특수성을 계속해서 끌고 나가기에는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인도·태평양의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에서 한국이 아웃사이더로 남아 있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뜻을 같이하는’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를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새로운 지정학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 범동맹 외교와 범가치 외교라는 과제를 두고 계속 머뭇거릴 수는 없다. 실제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한국의 교두보가 적지 않다. EU와 체결한 ‘포괄적 위기 관리 협정’은 국내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유럽이 가장 반기는 외교적 성과이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과의 공조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ASEAN 지역과의 교류를 늘려온 ‘신남방 전략’을 다자 차원에서 연계시키면 주요 동맹국들과의 접점을 만들 수 있다. 친미와 친중, 쿼드에의 참여와 불참의 양분법적 시각으로 인도·태평양의 새 판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우물 밖을 보아야 한다.
조선일보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교수
05-31 미국 없는 한국엔 북한도 중국도 관심 없다
모처럼 성과 韓美회담이 깨운 현실
미국 안 통하면 北 다가갈 수 없고
미국 멀어지면 中 일개 변방국 전락
文, 관심 없는 김정은 求愛 그쯤 하길
잘한 건 잘했다고 하자. 한미 정상회담 말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드물게, 아니 거의 유일하게 잘한 일 아닌가 싶다. 공동성명 내용 가운데 중국이 반발하는 ‘대만해협·남중국해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 중요성 인식’ 등은 레토릭(수사·修辭)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미 미사일 지침의 해제로 ‘미사일 주권’을 확보한 건 현찰이다.
이제 우리도 북한처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이 ‘미사일 족쇄’를 완전히 풀어준 건 다분히 패권경쟁 중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성과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외교는 타국의 ‘니즈’를 지렛대 삼아 자국의 국익을 확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거둔 외교 성과를 보면서 2004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자이툰 부대 방문이 떠올랐다. 취임 이후 찬반 여론을 몰고 다닌 노 대통령에게 여와 야,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찬사를 쏟아낸 사실상 첫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그의 편 가르기는 가시지 않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밀어붙이며 진영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달라진 면모를 보인 문 대통령은 어떨까. 남은 11개월여 임기 동안만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별다른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전(前)과 동(同)’이다.
한미 기동 연합훈련에 손사래를 치고, 경제를 망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설계자를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앉혔으며, 정치적 중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회주의자에 전관특혜 얼룩까지 묻은 사람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려 한다. 안보를 경시하고, 내 편은 끝까지 챙기며, 검찰 장악으로 ‘퇴임 후 안전’을 꾀하는 문재인 스타일 그대로다.
변수가 있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 대통령으로선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변신할 자세가 돼 있는 듯하다. 대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스스로 표현한 대로 ‘작은 나라(한국)’가 ‘높은 산봉우리(중국)’를 전에 없이 자극하는 한미 공동성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중국 앞에만 가면 눈부터 내리까는 대통령이 키운 반중(反中) 정서가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청와대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이번 회담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것만은 깨닫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해본다. 미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북한에 다가갈 수 없고, 미국과 멀어지면 중국의 변방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 국민적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직은 그게 국제정치에서 우리의 좌표다. 간단없는 자강 노력을 통해 미국 없이 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지, 서둘러 전시작전통제권만 가져온다고 자주 국방이 가능한 게 아니다.
공산 혁명을 거치고도 뼛속까지 중화(中華)사상에 젖어 있는 중국.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주변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는 나라다. 이런 성향은 최강 패권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장기 집권 이데올로기로 삼은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이후 훨씬 강해졌다.
그런 중국에 맞서 자존(自存)을 유지하려면 일본처럼 무시할 수 없는 국력이 있든지, 베트남처럼 건드리면 무서운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그나마 중국이 이만큼이라도 인정하는 건 경제력 말고도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한에 미국은 국가와 정권의 존망(存亡)이 걸린 나라다. 김일성 3대가 반미(反美)를 독재정권의 생존 이데올로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그런 이데올로기를 물려받은 김정은에게 아무리 문 대통령이 구애(求愛)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김정은은 노무현 정권 말 정상회담을 했다가 부도수표를 맞은 아버지의 아픈 기억까지 물려받았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 임기 말 정상회담에 끌릴 수 없는 이유다.
북한은 오로지 미국이다. 미국 없는 한국은 김정은 정권의 별 관심 대상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현금을 갖다 바치지 않는 한. 하지만 그것도 미국 주도 세계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임기 내내 북한에 올인(다걸기)한 문 대통령의 집착은 안쓰럽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때도 됐다. 그러니 이제 그쯤 했으면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