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소리 2021-04/ 04.01 원순구두 상조가방 ‘문재인 극장국가' 막 내릴 조짐 - 04.30 반도체 인력난은 “4대강 탓”,
바른소리 2021-04/
04.01 원순구두 상조가방 ‘문재인 극장국가' 막 내릴 조짐
박원순 낡은 구두
김상조 낡은 가방
지하철 탄 김명수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인 사람들
관객들 웅성거리기 시작
양상훈 주필
1년여 전에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인 권력자들’이란 글을 썼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단 살해 혐의를 받는 탈북 어민 2명을 즉각 북으로 송환해버렸을 때였다. 이들은 재판도 없이 처형됐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변호사 시절 원양어선에서 11명을 살해한 조선족 범인들 변호를 맡아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다. 어느 쪽이 진짜 문재인인지, “따뜻하게 품자”는 것은 연극일 뿐이었느냐는 물음이었다.
이 일을 다시 떠올린 것은 부동산 문제로 사퇴한 청와대 김상조 정책실장이 과거 국회 청문회 때 들고 와 화제가 됐던 낡은 가죽 가방 때문이었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낡은 가방이다. 당시 필자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의 부동산 내로남불을 보니 이 역시 한 편의 연극이었느냐는 의문이 든다. 그의 재산을 보니 돈이 없어 낡은 가방을 들어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김 전 실장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일 때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다. 박 전 시장이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의 뒤축이 해진 낡은 구두가 화제가 됐다. 당연히 그의 인기 상승에 도움이 됐다. ‘시민운동을 하며 살아온 삶의 자세와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응원 댓글들이 달렸다. 그 역시 구두 살 돈이 없어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닌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 역시 한 편의 연극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 전 시장이 우리나라 성희롱 사건 첫 변호인이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은 2017년 대법원장 지명을 받은 다음 날 서울 대법원을 방문하면서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왔다. 춘천지법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관용차를 탈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때도 사람들은 높은 평가를 했다. ‘한 푼의 국고도 허투루 쓰지 않을 분’이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공관을 고급스럽게 꾸미는 데 직접 나섰고 아들 가족까지 공짜로 살게 해 아들의 강남 아파트 분양 대금 마련을 도왔다. 이른바 관사 재테크다. 김 대법원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제 충분히 드러났다. 그의 지하철 탑승도 한편의 연극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위선(僞善)은 착한 척 가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위선적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도를 크게 넘는 사람들이 있다. 조국 전 장관이 대표적인 사람일 것이다. 이들은 위선을 넘어 위덕(僞德)까지 간다.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청렴결백한 척, 서민인 척, 금욕적인 척하기 위해선 의도적 연출이 필요하다. 낡은 가방, 낡은 구두, 버스, 지하철 등은 거기에 동원된 소품이었다. 아내가 구속 심사를 받는 중에 휴대전화 프로필 사진을 바꾼 조국씨, 울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는 사진을 SNS에 올린 고민정 의원, 사찰에서 고뇌하는 듯한 뒷모습 사진을 찍어 올린 추미애 전 장관, ‘부동산 부패 청산’이라고 쓴 문재인 대통령 마스크, 사무실마다 춘풍추상(남에겐 봄바람처럼, 나에겐 추상같이) 액자를 건 청와대 등 소품을 활용한 연극은 끝이 없다.
문 정권에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은 ‘우리는 착하고 도덕적인 세력’이라고 내세워서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주변에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도덕적인 척할 배우와 낡은 구두 같은 소품이 다 준비됐으니 남은 것은 실력 있는 무대 연출가다. 무대 연출가인 탁현민씨가 문재인 청와대의 실세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뛰어난 배우는 의외로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이 2016년 총선에서 ‘호남서 지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 출마도 않겠다’고 했던 충격적 선언도 연극이었다.
‘민주당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생기면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한 중대한 당헌도 연극이었다. 문 대통령은 5·18, 제주 4·3 등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자신이 대신 사과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 부담 없는 사과, 자신의 ‘선함’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사과다. 정작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한 사과는 인색하다. 탁현민에게는 남북정상회담마저도 좋은 무대였다. 도보다리는 한반도기 색깔로 칠해졌고, 판문점은 레이저빔으로 수놓아졌다. 나중에는 국군 전사자의 유해까지 소품이 됐다.
문 정권과 시민단체는 한 몸과 같다. 그런데 시민단체들엔 ‘시민’이 없고, 민주당과 민주노총엔 ‘민주’가 없고, 정의당과 윤미향의 정의연엔 ‘정의’가 없고, 여성 단체와 환경 단체, 인권 단체엔 ‘여성’ ‘환경’ ‘인권’이 없다.
이들이 표방한 고상한 이념은 연극에 필요한 각본과 소품들일 뿐이다. 세상이 무대고 인생이 연극인 이들에게 국민은 표를 사는 관객일 뿐이다. 극장 국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관객들은 한때 열광했으나 배우들의 본 모습을 보고 실망하기 시작했다. 무대 커튼이 걷히면 뒤에서 진짜로 벌어졌던 일들이 드러나게 된다.
[2019.11.14]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인 권력자들
똑같은 사건, 과거엔 “품자” 이번엔 즉각 死地로 북송… ‘인권’ ‘동포’ 찾던 文 맞나
인권 드라마 주인공 하다 자기 이해 걸리자 돌변… 조국도 멋진 연극의 주인공
북한 선원 2명의 북송을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중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생각한다기보다는 놀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중성을 갖고 있다. 특히 남 일과 자기 일에 대해선 다른 잣대를 갖게 되곤 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다. 더구나 대통령직과 같이 수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정 결정을 계속 내려야 하는 자리라면 이중성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필자는 북송에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러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이 오징어잡이 배에서 많은 사람을 살해한 범죄에 가담한 것은 사실 같다. 이들은 한국 법정에서 재판받아야 했지만 북한이 재판에 협조할 리 없어서 공소 유지가 힘들었을 수 있다. 추방을 해도 그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찬반 논란을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고민 없이 쫓기듯 급히 북송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 대통령만은 그래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과 아주 판박이인 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의 범인들을 변호했다. 한국 선적 원양어선에 탄 조선족 범인 6명이 한국인 7명을 포함한 다른 선원 11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들의 범행을 보면 '살인마'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1심에서 전원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이 살인마들을 변호하면서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했다. 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동포라고 대량 살인의 악마성이 달라지지 않는다. 일반의 정서와 동떨어진 말을 하는 것은 남다른 소신이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온 사람이다. 그런 만큼 '살인마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고 재판받고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말은 오랜 성찰과 많은 경험의 산물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페스카마호 사건과 똑같은 북한 오징어잡이 배 사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의 그 성찰은 투영돼야 했다. 때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본질적 문제다. 조선족과 달리 북한 선원 2명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정부 관련 부처 회의 때 '이들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고 재판받고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비공개로라도 그런 인식을 토로한 흔적이 없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 선원들을 고문과 처형이 기다리고 있는 북으로 내쫓듯이 보내버렸다. 페스카마호 사건 변호인 문재인과 전격 북송을 결정한 대통령 문재인은 다른 사람 같다. 한 사람 안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존재하는 듯한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유체 이탈 화법도 이 특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조국을 임명한 사람과 조국 사태로 공정과 정의가 훼손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몸에 존재한다.
페스카마호 사건은 어떻게 되든 결국 변호사 문재인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선 인권 수호와 법치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북한 선원 사건은 대통령 문재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심초사 공들이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의 문 대통령에겐 인권 수호와 법치의 원칙은 없다.
2년 반 전 대통령 취임식 때 국민 통합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공정 평등 정의를 외치던 대통령이 있고, 사화(士禍)와 다를 바 없는 적폐 몰이를 하고 조국과 같은 파렴치 위선자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는 대통령이 있다. 자기 편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가혹한 대통령이 있고, 청와대에 '춘풍추상(내겐 가혹하고 남에게 관대하라)' 액자를 거는 대통령이 있다. "우리 정부 비리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대통령이 있고, 검찰이 그 지시를 이행하자 '검찰을 개혁하라'고 하는 대통령이 있다. 두 사람이 한 몸에 들어 있다.
멋지고 좋은 말을 하는 문 대통령은 연기를 하는 배우 같다. 페스카마호 변호인 문재인은 인권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무대 뒤의 대통령은 방금 전 연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북한 선원들은 운 나쁘게도 무대 뒤의 대통령을 만났다. 조국이 이와 유사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좋은 말, 정의로운 말을 빼놓지도 않고 다 하던 조국이 있고, 파렴치 위선을 저지르는 조국이 있다. 조씨의 진면목을 안 뒤에 그가 과거에 했던 언행을 보니 이것은 완전히 '연기'다. 세상이 무대이고, 인생이 연극이고, 자신은 잘생긴 주인공이다.
우리 사회의 시민 단체엔 ‘시민’이 없고, 민주노총엔 ‘민주’가 없고, 인권 단체엔 ‘인권’이 없고, 여성 단체엔 ‘여성’이 없고, 환경 단체엔 ‘환경’이 없다고 한다. 내세우는 멋진 이념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끌기 위한 연극이고 연기일 뿐이다. 무대 뒤의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르다. 참여연대는 관변 단체이고, 인권 단체는 북한 인권 무시 단체다. 세상과 인생이 연극인 사람들이 강남 좌파로 만족하지 않고 권력을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지금 모두가 보고 있다.
04.01 선거공작 주역은 땅 투기, 임대차법 주역은 내로남불, 끝없는 악취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 부부가 사서 3억6000만원 이익을 본 땅.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핵심 피고인인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맹지를 사들여 수억 원의 차익을 얻은 사실이 드러났다. 송씨는 2014년 12월 울산시 교통건설국장 재직 시절 아내와 함께 울산 배밭을 4억3000만원에 사들였다. 4개월 뒤 울산시가 여기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주택 건설 사업 계획을 승인했다. 당시 송씨는 주택 건설 인허가 상황을 모를 수 없는 위치였다.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샀을 것이다.
2019년 6월에는 울산시가 그 땅 바로 옆에 도로를 내는 사업비로 북구청에 20억원을 내려보냈다. 울산시는 북구청이 신청한 8개 사업 중 이 도로 등 2개에만 교부금을 줬는데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는 꼬리표까지 붙였다고 한다. 당시 도로·건설 업무 총괄은 경제부시장으로 영전한 송씨였다. 땅값은 5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다. 송씨는 2019년 12월 차익 3억6000만원을 얻고 땅을 팔았다. 총선 출마를 위한 재산 신고를 5일 앞둔 시점이었다. 송씨는 “지인이 사자고 해서 산 것” “교부금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누가 믿겠나.
울산 선거 공작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친구 당선을 위해 청와대가 나서 선거 공작을 벌인 사건이다. 청와대는 야당 후보 관련 첩보를 경찰에 넘겨 수사를 지시하고 경찰은 야당 후보가 공천장을 받는 날 사무실을 덮쳐 압수수색을 했다. 하명 수사가 이뤄지도록 야당 후보 관련 첩보를 청와대에 넘겨준 사람이 송씨다. 송씨는 첩보를 청와대에 넘기고 경찰에 나가 가명(假名)으로 참고인 진술까지 했다. 송씨는 청와대 행정관 등과 선거 공약을 협의하기도 했다. 선거 공작의 핵심 인물인 것이다. 대통령 측근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져 있다. 송씨는 선거 공작의 대가로 경제부시장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자기 땅 옆에 도로가 생기고 땅값이 치솟았다. 선거 공작 혐의로 함께 기소된 송철호 울산시장도 2009년 배우자가 경기도 용인 임야를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투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선거 공작 범죄 뒤로 부동산 투기의 악취도 함께 풍겨 나온다.
전·월세 인상률 상한선을 5%로 제한하는 임대차법을 대표 발의했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 통과 한 달 전 자기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9%가량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기 아파트 임대료를 올려놓고 법을 통과시킨 박 의원은 방송에 나와 “걱정하는 분들이 많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임대차법을 주도한 김상조 전 정책실장도 법 통과 하루 전 자기 집 전세를 14%(1억2000만원)나 올렸다. 국민은 임대료 못 올리게 막아 전·월세 구하기도 어렵게 만들면서 자신들은 미리 챙길 것을 다 챙긴 것이다.
이해찬 대표 소유 농지는 여당 대표가 된 이후 계획에도 없던 나들목이 주변에 생겨 땅값이 올랐다. ‘지분 쪼개기’ 땅 구입 등으로 투기 의혹을 받는 여권의 국회의원·자치단체장만 10명이 넘는다. 악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조선일보 사설
04.01 부동산 망가뜨린 진보 진영의 3가지 도그마
가라앉지 않는 민심 역풍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연일 부동산 정책 실패에 사과하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다.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 현장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단순히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의 투기를 때려잡는다고 덮일 일이 아니다. 이번 부동산 재앙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이념이 낳은 좌파들의 총체적 파산이나 다름없다.
부동산·LH 사태로 복합 위기
건성으로 하는 사과는 안 통해
부동산 도그마 솔직히 반성하고
광화문서 “우리가 틀렸다” 해야
주요 신문들은 2017년 이후 집값이 불안해지자 다음과 같은 제안을 쏟아냈다. “도심 재개발이든 대체지역 개발이든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정공법 외에는 집값을 안정시킬 해법이 없다.” “가용부지가 태부족한 서울의 주택공급은 80%가 재건축·재개발에 의존한다. 이것이 투기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주택 공급 원천이라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인식은 2018년 한 좌파 신문에 잘 표현돼 있다. “일부에서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투기 세력에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꼴이 된다. 국토연구원 통계를 보면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2006년 94.1%에서 2016년 96.1%로 높아졌다. 100%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자가보유율은 같은 기간 51.4%에서 45.7%로 되레 떨어졌다. 늘어난 주택이 무주택 서민이 아닌 다주택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좌파는 공급 확대 요구를 보수진영과 토건족의 ‘공급 만능주의’라고 매도했다.
문 대통령을 둘러싼 김수현 전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은 부동산에 관한 3가지의 교조적 교리를 설파하고 다녔다. 이른바 부동산 3대 도그마다. ①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집값 안정보다 주거 안정이다. ②이미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 ③민간 주도는 악(惡)이고, 공공 주도 개발이 선(善)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좌파는 부동산을 경제 문제로 보기보다 정치·이념적으로 접근했다. 이런 신기루 같은 신념에 사로잡혀 결국 부동산을 망가뜨렸다.
‘집값 안정보다 주거 안정’ 허황한 구호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좌파들은 주택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생활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집값 안정보다 주거 안정이 중요하다”는 맹신이 탄생했다. 집값 안정과 주거 안정은 서로 보완하는 개념인데, 이들은 상호 대립하는 개념으로 몰고 갔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시차를 두고 전·월세가 오른다는 과거 경험이나 전문가들의 지적에는 귀를 닫았다. 대신 공공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싸게 공급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었다. 좌파 언론들도 “정부의 주택 공급은 철저하게 공공임대 또는 토지임대부분양(건물만 소유)에 국한될 필요가 있다. 주택 소유의 필요성을 낮추는 게 집값을 잡는 가장 확실한 처방이다”고 지원 사격을 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2017년 임대사업 활성화 법안을 만들었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면 파격적으로 세금을 깎아주었다. 하지만 ‘임대사업자=다주택자’라는 현실을 간과했다. 임대 사업을 격려하고 응원할수록 다주택자들의 주택 쇼핑이 기승을 부렸다. 2017년 211만명이던 다주택자는 2019년 228만명으로 급증했다. 덩달아 집값은 치솟고 전·월세까지 폭등하는 악몽이 닥쳐왔다. 허황되고 독선적인 이념에 따른 중대한 패착이었다. 불로소득의 과실은 고스란히 다주택자들에게 돌아가고 무주택 서민들은 벼락 거지 신세가 돼 버렸다.
주택공급은 충분하다는 잘못된 신화
김현미 전 장관은 2020년 11월까지 3년 반 동안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장담했다. “서울에 연간 4만 가구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는데 2020년에는 5만3000호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고 큰소리쳤다. 공급 부족을 우려하는 지적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다 작동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3대 도그마
김 전 장관이 딴소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 30일 국회에 출석해서다. 그 직전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가 공개 토론회에서 “부동산 정책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게 크나큰 패착이며 송구스럽다”며 사과한 게 변곡점이었다. 김 전 장관은 집값 폭등을 추궁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뜬금없이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며 입장을 뒤집었다. 공급 부족을 인정한 것이다. 온 사방에서 “공급이 충분하다며 악을 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빵에 비유하냐. (마리) 빵뜨와네뜨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2002년에도 주택 보급률 100%라는 낙관적 통계만 믿었다가 부메랑을 맞은 적이 있다. 1인 가구와 주택 멸실·교체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반쪽 통계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5년 내내 집값과 전셋값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홍역을 치렀다. 똑같은 실패가 문재인 정권에서도 되풀이됐다. 아집과 착각에 빠져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잘못된 신화에 사로잡힌 것이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는 뒤늦게 1인 가구 급증 등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수요 억제의 외눈박이 대책과 공공 주도
부동산 대책은 공급과 수요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공급이 충분하다고 우긴 만큼 남은 것은 수요 대책뿐이었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20여 차례 대출 규제, 세금 강화, 투기지구 지정, 분양권 전매 제한 등 똑같은 내용을 쏟아냈다.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드는 외눈박이 수요 대책뿐이었다. 집을 살 때의 취득세, 보유 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팔 때의 양도소득세를 일제히 올렸으며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까지 옥죄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원죄도 적지 않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수요가 집중되는 곳에 양질의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공공개발을 강조하면서 최선호 지역인 서울의 주택 공급을 가로막았다. 민간 주도의 재건축·재개발이 대표적이다. 재건축 조합원 주택 공급 수 제한(2017년 6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2017년 8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2018년 1월)→ 안전진단 강화(2018년 2월)로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아파트 35층 이상을 강력히 규제했고 152개 뉴타운 현장 중 112개(75%) 사업장을 종료시켰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2012년~2018년에 재개발·재건축 취소로 아파트 24만8889가구가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박 전 시장의 고집으로 위례신도시(4만4877가구) 5개에 버금가는 새 집 공급이 증발한 것이다.
이번 변창흠 표 2·4대책도 마찬가지다. 공공주도의 역세권 개발로 헛다리를 짚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장 시급한 게 자녀를 가진 3~4인용 아파트 부족인데 역세권 개발로 웬 원룸, 빌라 타령이냐”며 싸늘한 반응이다.
부동산 역풍에 제대로 된 고해성사를
지난주 한 좌파 신문은 현 상황을 “문재인 정부가 처음 맞는 복합 위기”라고 진단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직면한 도덕성 위기, 검찰과의 갈등으로 인한 피로감, 부동산 정책실패에 대한 깊은 불신, LH 사태가 불 지핀 공정성의 위기가 겹치면서 통치 능력 전반에 대한 신뢰가 급락했다.”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러면서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해도 부동산 민심이 악화되면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며 극도의 위기의식을 전했다.
문 대통령도 부동산 민심의 역풍에 놀라 전세 스캔들이 보도된 김상조 전 정책실장을 하루 만에 경질했다. 그제는 1시간 48분간 반부패 회의를 주재하면서 “부동산 부패가 부끄럽다, 야단맞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여전히 무엇이 근본 문제인지, 그리고 이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공무원들과 산하 공기업의 투기만 나무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하고 있다. 만약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고 미리 주택 공급을 넉넉히 했더라면 LH 투기는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설사 투기가 적발되었어도 지금처럼 엄청난 사태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실패를 솔직하게 반성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할 때가 됐다. “집값을 잡으려던 정책들이 현실에선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주거 안정이 불안해져 송구하다”는 식의 건성으로 하는 사과는 서민들의 분노와 고통에 와 닿지 않는다. “국민들의 화가 풀릴 때까지 반성하고 혁신하겠다”는 다짐도 공허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3대 도그마부터 반성하는 게 우선이다. 진정한 고해성사라면 “우리가 틀렸다. 잘못된 도그마에 빠져 너무 큰 고통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며 A4 용지를 읽는 방식은 곤란하다.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부동산 책임자였던 김수현 전 실장·김현미 전 장관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석고대죄하는 모습 정도는 연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4년간 부동산 실패로 쌓인 국민적 분노와 고통이 너무 크고 심대하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4.01 조국·윤미향 콕 집은 美인권보고서 "부패도 인권침해"
/스캇 버스비 국무부 민주주의,인권, 노동국 수석부차관보 대행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슬
미국 국무부가 30일(현지시간) ‘2020년 국가별 인권 관행 보고서’를 펴냈다. 한국ㆍ북한을 포함한 전세계 약 200개국의 인권 상황을 종합한 연례 보고서다.
미 국무부, 韓·北 포함 200국 인권 보고서
작성 맡은 버스비 수석 부차관보 대행 인터뷰
韓은 조국·박원순·윤미향 등 혐의도 거론
"부패는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 남용"
"대북전단 금지 우려…자유로운 정보 중요"
올해 ‘한국 인권 보고서’에서는 미국은 대북전단금지법 시행 등 한국 정부의 대북 활동 제한에 우려를 드러냈다.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와 성추행 사건도 거론했다. ‘북한 인권 보고서’에서는 북한 당국에 의한 살해, 강제 실종이 벌어지고 있다고 실태를 전했다.
방대한 인권 보고서 발간을 지휘한 국무부 민주주의ㆍ인권ㆍ노동국의 스콧 버스비 수석 부차관보 대행은 이날 청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북한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 정책의 중요한 요소”라며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번 전했다. 또 조 전 장관 등의 부패 혐의를 상세히 기술한 데 대해선 "부패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남용하는 것으로 인권과 관련된 문제" 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위 공직자 부패 혐의를 실명으로 거론했는데, 공교롭게 모두 여당 소속 정치인이다.
“여느 나라처럼 한국에 부패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몇몇 사례를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특정 그룹의 부패 사건만 골라서 보고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부패 문제에 있어서 전형적인(emblematic) 사례를 택했을 뿐이다. 각 인권 침해 사례에서 유형에 따라 몇 가지 구체적인(illustrative) 사례를 적시했다.”
부패 문제를 왜 인권 보고서에 다뤘나.
”부패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남용하는 것이다. 공직자가 부당하게 일을 처리하고, 관료가 부패했을 때 국민의 이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패는 인권과 관련 있다. 국민은 정부가 온전하게, 정직하게 대표해주기를 원한다.“
인권 보고서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뭔가.
“인권보고서는 개별 국가에 권고나 제안을 하지 않는다. 다만, 보고서에 담은 아이템이 우리 관심사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 해당 국가가 그 문제를 다뤄야(address) 한다고 제안하는 것인가 묻는다면 대답은 ‘예스’다.”
버스비 수석 부차관보 대행은 국무부는 개별 국가의 인권 상황을 직접 비판하거나 권고하지 않지만, 많은 사건 중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는 국무부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에 제기된 문제에 대응하라는 제안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 보고서는 조 전 장관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수사를 ‘부패 및 정부의 투명성 결여’ 항목에서 상세하게 다뤘다. 지난해 10월 현재 조 전 장관과 부인 정경심 씨, 그 가족과 연관된 이들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앞서 2019년 12월 검찰은 조 전 장관에 대해 뇌물수수와 부당이득, 직권남용, 공직자윤리법 위반 및 기타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고 적었다.
윤 의원에 대해서는 “일본군 위안부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인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재직 기간에 사기, 업무상 횡령, 직무유기 및 자금유용과 기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9월 검찰에 기소됐다”고 적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차별, 사회적 학대, 인신매매’ 항목에 들어있다. 국무부는 한국에서 성추행은 중요한 사회 문제이고,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사건을 포함해 수많은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 전 시장은 전 비서가 경찰에 고소한 다음 날 목숨을 끊었고, 동의 없이 반복적으로 신체를 접촉하고 부적절한 메시지와 속옷만 입고 있는 사진 등을 보내고 집무실에 연결된 침실로 불러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고 상세히 적었다. 오 전 시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4월 여성 부하 직원에 대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시인한 뒤 사임했다“고 전했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어느 정도인가.
“최근 한국 정부가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을 상당히 우려스러운 문제로 인식한다. 북한으로 자유로운 정보 유입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와 협력할 것이다. 이 법이 외부 정보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지원하려는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겠다.”
북한 인권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북한은 계속해서 세계 최악의 인권 기록을 갖고 있다"면서 "인권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정책 검토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 침해에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대북 정책 검토가 진행 중이라 너무 앞서가지는 않겠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가 북한 정책 검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점은 말할 수 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북한으로 유입시키고, 북한에서 나오는 정보를 원활하게 공유하는 범위 안에서 인권 침해를 기록하고, 북한에서 나오는 정보를 활용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세계인을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정책이다. 인권 보고서는 인권 침해에 책임 있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의 시작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리사 피터슨 미국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차관보 대행도 "우리는 전세계 최악 중 하나인 북한의 지독한 인권(침해) 기록에 대해 계속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북한 정부가 지독한 인권침해에 대해 계속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핵 협상에 속도를 내기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경시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다를 것이라는 게 국무부의 거듭된 공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2일 워싱턴 DC 인근에서 한·미·일 안보실장 3자 전략 대화를 열어 대북 정책을 최종 조율할 예정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04.02 도둑정치 혁파가 오늘의 시대정신이다
도둑정치 심판해야 공정과 규범 살아난다
공공성을 살려야 정의와 상식 부활한다
국민주권 현장인 선거는 준엄한 역사의 법정이다
정권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입법·사법·행정 권력과 언론·시민단체까지 장악해 폭주하던 기세는 간곳없다. 20년 장기 집권의 꿈은 미몽(迷夢)으로 끝나가고 있다. 오만의 늪에 빠진 문재인 정권이 주권자인 국민까지 능멸하자 민심이 폭발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거대한 민심 이반의 시작에 불과하다. 차기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광화문 광장에선 촛불을 넘어 횃불이 타올랐을 것이다. 국민의 분노와 고통이 그만큼 절절하다.
문 정권을 옹위해 온 어용 지식인들조차 총체적 실정(失政)을 부인하지 못한다. 변명을 늘어놓기엔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폐정(弊政)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정권 추종자들은 정권의 무능과 위선이 민심 이반을 초래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지지를 거두지 않는다. ‘문 정권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수구 적폐 세력인 국민의힘보다는 낫다’는 궤변이다. 그러나 정권의 무능과 위선에 대한 피상적 비판은 문재인 정권의 본질인 도둑정치(kleptocracy)를 은폐한다. 도둑정치는 정치 후진국에서 집권 세력이 권력을 이용해 부정 축재하는 관행을 가리킨다. 문재인 도둑정치의 심각성은 정권 핵심 집단이 권력 비리를 저지르는 차원을 넘어 국가기구와 공권력을 통째로 사사화(私事化)한 데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며 일체의 사회적 특권 계급을 부인하는 공화정이다. 그런데 문 정권 4년 폭주로 법의 보편타당성이 초토화되었다.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이 법 위의 성역으로 군림하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인 공공성을 자기 진영의 사익에 종속시켰다. 그 결과는 참혹하기 짝이 없다. 정의와 공정이 무너지고 상식과 윤리가 해체되었다. 정권 최상층부가 자기들 당파의 사익을 국익보다 앞세울 때 공직 윤리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LH 사태야말로 생생한 증거다.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이 흐린 게 아니라 썩어버린 윗물이 아랫물까지 부패시켰다.
문 정권은 국가기구와 법을 포획해 자기 진영 사익 추구의 도구로 삼았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전체를 자기들이 분탕질하는 소유물로 만들고 있다. 4·7 보선 때문에 철회했지만 특권 세습을 규정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도둑정치의 전형이다. 도둑정치 최악의 적폐는 정의와 공정까지 자기 당파의 사유물로 훔치려고 했다는 데 있다.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사익을 챙긴 철면피 행위를 정의와 공정의 실천으로 포장해 온 게 그 증거다. 도둑정치는 조국·윤미향 사태부터 검찰 장악과 LH 사태까지 관통한다. 도둑정치로 국가 공공성을 유린한 문 정권의 적반하장이 권불오년(權不五年)의 몰락을 불렀다.
도둑정치가 자초한 권불오년의 살풍경은 다음과 같이 진행될 것이다. 난파선으로 침몰하는 문 정권에서 탈출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속출한다.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으로 정권의 영이 서지 않게 된다. 대깨문은 머리 깨지는 극단적 언행을 남발해 극렬 소수로 고립된다. 정권과 문빠들의 목소리만 앵무새처럼 재생하는 어용 언론과 친정부 시민단체들이 정권의 붕괴를 앞당긴다. 영악한 어용 지식인들은 자신이 권력 내부의 양심적 비판자였다는 변명으로 제 살길 찾기 바쁘다. 우리가 박근혜 정권 몰락기에 지겹도록 본 권력정치의 추태가 재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에게 차기 대선 패배 시나리오는 최악의 악몽이다. 적폐 청산의 미명 아래 휘둘러왔던 정치 보복의 칼날이 자신들을 겨눌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의 복수(復讐)다. 권력 투쟁의 달인이자 선거 기술자들인 문 정권 핵심 그룹은 상상 가능한 모든 정치공학적 수단을 총동원해 지금의 흐름을 뒤집으려 한다. 이들에게 차기 대선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4·7 보선을 얼룩지게 한 흑색선전과 조직 총동원령, 코로나 사태를 빙자한 돈 뿌리기와 관권 선거가 대선에서 무한 증폭될 게 너무나 명백하다.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시대정신의 철학은 도둑정치를 온몸으로 거부한다. 공동체의 근본 규범을 무너트린 도둑정치는 한국인의 존엄과 나라의 미래를 파괴한다. 도둑정치를 혁파해야만 공정과 규범이 살아난다. 공공성을 살려야 정의와 상식이 부활한다. 그런 나라만이 국제정치적 도전과 사회경제적 위기에 응전할 수 있다. 국민주권의 현장인 선거는 준엄한 역사의 법정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도둑정치를 심판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04.02 “정부의 가혹한 과세에 저항하는 건 시민의 기본권”
임대차 3법 위헌소송 주도 이석연 변호사
전년 대비 전국 평균 19% 넘게 인상된 공동주택 공시가격 발표(15일)의 후폭풍이 거세다. 세금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을 우려한 주택 소유자들의 이의 신청이 급증하며 조세 저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경기·대전·부산은 평균 이상 상승했고, 세종시는 무려 70% 이상이 올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시장에선 “정부가 25번째 대책까지 내놨음에도 ‘부정완패(부동산 정책 완전 실패)’로 집값이 치솟자 이번엔 오른 집값을 공시가격 인상 카드를 빼들어 징세에 나섰다. 국가 폭력에 다름 아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렴주구는 국력 쇠퇴의 지름길로 통했다.
25번 부동산정책 실패 ‘부정완패’
이득 환수 위해 공시가격 인상
유신 때도 이렇게 처리 안 해
정의 독점 영웅주의서 벗어나야
시민들의 조세 반발을 법적 항거의 범주로 견인한 이석연 전 법제처장(66·변호사)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현 정부가 추진해온 부동산 정책의 위헌성과 시민의 조세 저항권의 의미를 짚어봤다. 헌법 전문가인 그는 “정부가 편법으로 강행한 과도한 세금 부과는 사실상의 증세 조치로 헌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하루 전 전격 경질된 청와대 정책실장 사태부터 물었다.
▲이석연 변호사는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부동산 대책들에 대해 “위헌적 요소가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죽하면 청와대 정책실장마저 임대차 3법 시행전에 전셋값을 올려받았겠느냐”고 되물었다. 임현동 기자
김상조 전 실장이 전·월세 인상폭을 5%로 제한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틀 전 전셋값을 14% 올린 것으로 드러나 경질됐다. 이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동안 진보·개혁 세력을 자처해온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뿐만 아니라 그 계열의 시민단체 출신들도 자신들만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천박하고 편협한 ‘정의 독점 영웅주의’에 빠져있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자기들이 가는 길이 옳다며 헌법이 정한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논란이 많은 여러 정책들을 마구 밀어붙이지 않았나. 잘못되면 가진 자들, 보수 언론 탓하고. 문재인 대통령부터 천박한 영웅주의, 무오류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 전 실장의 행위는 특히 모순적이다. 법 시행 전에 꼼수를 쓴 것 자체가 그 법이 현실 생활을 규제하는 데 맞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그도 끝이 안 좋다. 위선의 상징으로 추락했다. 방식은 달랐지만 같은 시기 시민운동을 이끌었던 동료 입장에서 가슴 아프다.” (※이 변호사는 경실련 사무총장 때 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 등과 시민운동 방법론을 두고 대척점에 섰다.)
이런 일이 발생한 근원적 배경은.
“내가 2000년대 초 시민운동의 권력화, 초법화, 관료화, 포퓰리즘(센세이셔널리즘), 무오류의 환상 등 5가지 폐해를 지적했다. 나부터 잘못을 사과했다. 그들은 생각이 달랐다. 예를 들어 공직선거법에서 총선 낙선 운동 금지한 건 악법이라서 안 지켜도 된다고 했다. 시민운동이 초법화해 판관 역할까지 하겠다고 나선 격이다. 그때 내 지적이 맞았다. 한국 시민운동의 뿌리라고 했던 분들이 자기 스스로 권력화돼서 더 부패하고 더 이기적이 됐다. 성범죄도 부패 범죄의 일종 아닌가. 부동산 꼼수는 이기적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인터뷰에서 "시민운동의 권력화, 초법화의 폐해가 크다"며 "집권 세력도 '정의 독점 영웅주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강수 기자
일련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는.
“문 대통령이 반부패 정책회의(29일)에서 ‘부동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부동산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책이 실패하면 원인을 찾아서 고쳐야 하는데 실패는 인정 않고 더 센 극약처방을 해 온 게 패착이다. 그렇게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가 주택 가격이 오르니 세금으로 환수한다는 게 말이 되나. 집권 세력의 뇌 속에 ‘돈은 찍어내면 되고 세금은 거두면 된다’는 인식이 꽉 차 있다.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에 따른 나눠주기에만 골몰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세금 부과의 원칙은.
“세금의 본질은 뭘 잘못해서 내는 벌금과 달리 징벌적 성격이 아니고 국민의 의무라는 점이다. 헌법상 조세의 종목·세율은 국회에서 법률로 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응능부담(應能負擔·ability to pay)의 원칙이다. 행정서비스를 받는 이익의 양과는 무관하게 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맞게 공평한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이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가혹하면 누구나 저항하게 돼 있다. 그 다음이 국가의 재정권 행사와 국민의 재산권 보장이 적절히 조화돼야 한다는 조세 공평주의다. 그러나 오는 6월 1일 정해질
재산세는 과세표준을 자의적으로 인상하는 편법으로 매겨진다. 세율을 인상한 것이나 똑같은 효과가 난다. 종부세는 미실현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것인데다 누진 과세라서 공평과세의 원칙에 위배된다.”
가장 큰 문제는 뭔가.
“부동산 과표는 법제처 심의를 받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보다 더 하위의 행정규칙(훈령·예규)이라서 법제처 심의도 받지 않고 국토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진다. 이번 공시가격 발표에도 어디는 70%(세종시)고 어디는 1.7%(제주도)였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다르게 나온다. 도떼기 시장도 이렇게 안 한다. 재산세 고지서 받아보면 ‘억’ 소리가 절로 날 것이다.”
정부가 위헌적 부동산 대책을 계속 내놓는 이유는.
“국민 편가르기를 통한 지지층 확보라고 본다. 우리 사회의 있는 자와 없는 자, 비싼 집 가진 자와 싼 집 가진 자, 서울에 집 가진 자와 지방에 집 가진 자를 갈라쳐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의도다. 이런 경제의 정치화는 위험하다. 기준도 없고 예측 가능성도 없는 공시가격 산정은 ‘내 멋대로 증세’와 다르지 않다.”
정부는 국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른바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주택임대사업자 혜택을 없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민특법)은 토론없이 군사작전하듯 통과시켰다. 적법절차를 무시했다. 내용도 소급 적용에 의한 재산권 침해다. 유신 시절에도 민생 법안에 대해선 이렇게 처리 안 했다. 임대차 3법 통과 후 박수치는 정치인들 모습을 보며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도박장에서 브리지게임 이겼다고 환호하는 장면이 연상됐다.”
조세 반발을 넘어 조세 저항 움직임도 있다.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은 아버지 원수보다도 재산상의 손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썼다. ‘과도한 조세 부담은 공화국을 망하게 할 수 있다’고도 적었다. 부의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지금 국민들은 부동산 불공정 문제로 분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당장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헌법적 상식에 맞게 부동산 공시가격도 재조정해야 한다. 법치주의의 핵심인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조세 저항 움직임의 함의는 뭘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시민의 저항권이 확립됐다. 대통령, 대법원, 국회, 헌재 어디든 국가기관이 헌법적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국민이 헌법 테두리 내에서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판례로 확립돼 있다. 독일은 저항권이 헌법에 명시돼 있다. 정부가 세금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니 헌법적 상식을 지키기 위해 주권자인 국민이 나설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라고 촛불을 들었는데 4년동안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니 기가 막힌다.”
진보 색깔이 더 짙어진 헌재가 부동산 관련법 위헌 소송을 인용하겠나.
“헌법적 양식이란 게 있다. 법을 안다는 분들이 그걸 저버리고 정부 손을 들어주겠나. 그렇게 하면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개 성실하게 정책에 순응했던 사람들이다. 헌법정신, 법치주의와 국민의 건전한 법 감정인 상식은 같은 말이다. 진보·보수 진영을 떠나 재판관들의 헌법적 양식을 믿는다.”
정부 정책의 위헌 사례가 차고 넘친다는데 동의하나.
“문 대통령 취임 후부터 최근까지 헌법 위반 사례를 정리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결정문 내용과 현 정부의 실정을 비교하면 위헌적 행태가 더 많다. 부동산 정책은 약과다. 대북 안보는 다 무너졌다. 십수 년 전 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소송 때도 살해 협박 많이 받았다. 굴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 국민에 공개할 것이다.”
◆이석연 변호사
행시 23회·사시 27회 합격. 1호 헌법연구관이며 시민운동 1세대다.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 법제처장 등을 지냈고 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 변호사다. 2004년 행정수도이전 특별법을 비롯해 총 30여건의 위헌 결정을 받아내는 데 앞장섰다. 임대차 3법 위헌 소송, 종부세 조세심판 등을 이끌고 있다. 최근 『헌법은 상식이다』(와이즈베리 출판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중앙일보 조강수 논설위원
04.02 “임대차법 만든 분들 오래 기억될 것” 윤희숙 예언, 현실됐다
/국민의힘 윤희숙(왼쪽)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오른쪽) 의원. 중앙포토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이런 것을 점검하지 않고 이거를 법으로 달랑 만듭니까? 이 법을 만드신 분들, 그리고 민주당, 축조 심의 없이 프로세스를 가져간 민주당은 오래도록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세 역사와 부동산 정책의 역사와 민생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지난해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법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5분 자유발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개정안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해 임대차 보장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계약 갱신 때 5% 이상 증액을 막는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였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며 내놓은 이른바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의 핵심이었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라고 시작한 당시 윤 의원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졸속 심사로 통과된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을 뿐 아니라 4·15 총선 뒤 침체기에 빠져 있던 국민의힘 입장에선 오랜만에 맞이하는 단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당 의원뿐 아니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속시원하다”거나 “전율을 느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8개월 흐른 현재 ‘임대차 3법’ 주역 여론 뭇매
그런데 “오래도록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는 윤 의원의 말이 그로부터 8개월이 흐른 현재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 ‘임대차 3법’의 주역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어서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 홍보디지털본부장직에서 물러났다. 같은 날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에게는 “자성을 촉구한다”는 공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대표발의자였던 박 의원이 ‘임대차 3법’ 통과 한 달여 전인 지난해 7월 임대계약을 새로 체결한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보증금 3억원, 월세 100만원’이던 계약 내용을 ‘보증금 1억원, 월세 185만원’으로 바꿨는데 결과적으로 인상률이 26.6%에 달했다. 박 의원을 향해선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앞서 지난달 29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경질됐다. 김 전 실장 역시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인 지난해 7월 29일 본인 소유의 서울 청담동 아파트 전세 계약을 갱신하면서 전세보증금을 14.1% 올렸다는 게 알려져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점에서 여론은 싸늘했다.
당시 민주당 ‘투톱’ 이낙연·김태년도 연쇄 사과
두 사람뿐 아니라 ‘임대차 3법’ 처리 당시 민주당의 투톱이었던 이낙연 전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도 곤경에 빠진 상황이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7월 30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자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른손을 들어올리기까지 했지만 당내에선 “그때 왜 그렇게 법을 통과시켰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윗줄 오른쪽)가 손을 들어 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전 대표와 대표 직무대행인 김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각각 부동산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윤희숙 의원이 8개월 전에 발언했던 것처럼 ‘임대차 3법’의 주역들이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윤희숙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 “김상조 전 실장이나 박주민 의원을 향한 질타는 단지 그 사람됨에 대한 실망이 아니다”며 “법과 정책으로 국민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힘을 가진 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휘둘렀느냐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썼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04.05 공무원이 “한국은 속국”, 정권의 對中 저자세가 번진 것
▲중국산 김치 포비아 온라인에서 확산한 중국 김치 공장 영상 캡처 사진. 배추는 구정물에 절여지고 있고, 녹슨 포클레인과 알몸의 인부가 배추를 휘젓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구덩이에서 무를 절이는 모습. /뉴시스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실 공무원이 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한국은 속국, 중국은 대국”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국산 ‘알몸 김치’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식품 안전 인증을 요구할 수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옛날로 치면 한국은 속국, 중국은 대국인데, 속국이 식품 안전 인증을 받으라고 하면 대국이 기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기자에게 본인 말을 보도하지 말아달라며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 공무원은 기자에게 중국을 ‘선진국’ ‘거대한 나라’ ‘힘 있는 국가’로 불렀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 한국은 중국에 비해 ‘후진국’ ‘왜소한 나라’ ‘힘없는 국가’로 인식돼 있다는 얘기다. 공무원의 국가관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분개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대국 중국의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도 했다. 식약처 공무원은 대통령의 말씀을 머리에 새겨뒀다가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다.
대통령은 당시 방중을 앞두고 ‘사드 3불(不)’ 약속으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했다. 그래서 돌아온 것은 말로 못 할 푸대접이었다. 방중 기간 식사 10끼 중 2끼만 중국 측으로부터 대접받은 것을 두고 ‘대통령 혼밥’ 논란이 벌어졌다. 중국 외교부장은 문 대통령과 인사하며 팔을 툭툭 치기도 했다. 대통령을 취재하는 한국 기자는 중국 측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했다.
중국은 한국을 의도적으로 하대(下待)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역사관을 공공연하게 내비치고 있다. 중국은 한국 대통령 특사를 두 차례나 테이블 하석(下席)에 앉혔다. 홍콩 행정장관이나 지방관이 주석에게 보고하는 자리 배치다. 비슷한 시기에 방중한 일본·베트남·라오스 특사는 시 주석과 대등하게 나란히 앉았다. 우리 정부는 항의조차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이제 일선 공무원들까지 내 나라에 앞서 중국을 먼저 떠받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선 공무원들까지 ‘대중(對中) 저자세’를 갖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대통령이다.
조선일보 사설
04.05 누가 어른스러운가
日, 열차 팸플릿에 ‘동해’ 표기… 한국학교 ‘동해’ 교가 방송도
반대라면 우리는 용납하겠나… 정부는 엄격하게 민간은 관용을
서랍 속에 넣어뒀던 팸플릿을 꺼내 봤다. 일본 혼슈 북서부 아오모리~아키타 해안을 따라 달리는 열차 고노센(五能線)을 홍보하는 전단이다. 몇 해 전 취재하러 갔다가 열차에 놓인 한국어판 팸플릿을 가져왔다. 단지 수집 취미 때문이 아니다. 팸플릿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동해와 세계자연유산 시라카미 산지를 바라보면서 달리는 고노선 철도 여행’. 여덟 쪽 팸플릿은 표지에 한글로 ‘동해’라고 적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2쪽에는 ‘고노선의 매력은 시라카미 산지와 동해의 대 파노라마입니다’라고 썼다. 바닷가 철로를 달리는 열차 사진을 함께 실었다. 한국인을 위해 한글로 적은 팸플릿이라지만 일본철도(JR)가 발행한 홍보지에 자국 서쪽 바다를 ‘동해’라고 표기한 점에 놀랐다. 한국인 여행객을 유치하려는 노력인 동시에 깊은 배려라고 느꼈다.
▲일본 혼슈 북서부 해안 열차 '고노선'의 한글 팸플릿. 영문으로는 'the Sea of Japan'이라고 썼지만 한글로는 '동해'라고 표기했다. 2015년 발행.
만일 우리가 정동진 해안 열차에 비치한 일본어 팸플릿에 ‘일본해와 설악산 산지를 바라보면서 달리는 철도 여행’이라고 썼다면 어떤 결과를 빚었을까. 관련 책임자는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인터넷에는 온갖 비난과 욕설이 난무했을 것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이며 일본인 여행객을 배려한 것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묵은 기억을 다시 떠올린 까닭은 최근 일본 고교 야구 고시엔에 처음 진출한 한국계 학교 교토국제고 소식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 전통에 따라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일본)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이어지는 우리말 교가를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부르는 모습이 NHK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아사히신문은 이튿날 기사에 ‘고시엔에 울려 퍼진 한국어 교가’라는 제목을 달고 “한국이냐 일본이냐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 야구의 감동을 전하기 바란다”는 졸업생 이야기를 전했다.
▲24일 일본 효고(兵庫)현 한신(阪神) 고시엔(甲子園) 구장에서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 첫 시합 32강전에서 교토국제고가 10회전 연장 승부 끝에 시바타고를 5-4로 이긴 뒤 한국어 교가를 듣고 있다. 이 학교 교가는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라는 내용이다. 2021.3.24 마이니치 신문 제공
반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일본해 건너서 한반도 땅은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운운하는 일본계 학교 교가가 잠실 야구장에 울려 퍼진다면 우리 사회는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 ‘잠실에 울려 퍼진 일본어 교가’라는 제목으로 “국경을 넘어 야구의 감동” 같은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도 성숙해지고 있다. 상대를 보고 자신을 돌아본다. 교토국제고 관련 기사엔 ‘한국에서 저런 일본 교가를 부른다면 난리 날 듯’ ‘만약 반대였으면 우리는 그런 관용이 있을까?’ 같은 댓글이 여럿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용인은 거기까지다. 정부 차원에선 ‘동해’라는 표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성명에서 발사 방향을 ‘동해’라고 밝히자 일본 정부는 즉각 정정을 요청했다. 미국 측은 곧바로 요구를 받아들였다. 일본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민간 영역에선 상대를 배려해 ‘동해’라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정부와 국제사회라는 공적 영역에선 ‘동해’ 표현을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반대다. 폭 넓은 관용이 있어야 할 민간 영역에서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그들의 용어를 사용한다면 나라를 팔아먹은 것처럼 달려들어 뭇매를 때린다. 반면 원칙과 규율을 확고히 지켜야 할 정부와 국제사회라는 공적 영역에선 대충 넘어간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강력히 요청해 바다 이름을 다시 ‘동해’로 바로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국력 차이가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절실하지 않고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동해’는 그저 분노를 자극하는 국내용 소재이기 때문이다. 정치에는 ‘귀신’이고 외교에는 ‘등신’이기 때문이다.
조선알보 이한수 여론독자부장
04.05 與 소속 세종시장도 가세한 공시가 저항과 가렴주구(苛斂誅求)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반발이 확산 일로다. 공시가 의견 조회 1차 마감일인 5일을 계기로 집단적 저항 조짐까지 보인다. 서울 강남·강북 지역은 물론, 여당 소속 단체장을 둔 세종·인천·김포시 등도 가세했다. 서울 강남구와 세종자치시에 이어 인천 청라신도시 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도 국토교통부에 하향 조정 의견서를 제출했고, 다른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도 주민 서명을 받는 등 여러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공시가 발표 직후 제기된 ‘깜깜이·고무줄·묻지 마’식 산정이라는 이유 있는 불만과 산정 근거 즉각 공개 요구 등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5일 공동으로 구성한 검증단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 구청장은 “서초구 전수조사 결과 100% 오른 공동주택도 있다”고 했다. 서초구 공동주택은 12만5294가구인데 1만 건 이상의 오류가 있었다고도 한다. 제주도 검증센터장인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은 “제주도 공동주택 중 약 15%에서 문제가 나왔다”면서 “조세 저항이 적을 서민 주택 공시가가 대폭 올랐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당 소속이면서 국토부 차관 출신인 이춘희 세종시장의 반발은 상징적이다. 이 시장은 지난 1일 국토부에 공시가 하향 의견서를 제출했다면서 “집값 상승률은 37.5%인데 공시가 인상률은 70.68%로 전국 최고였다”고 밝혔다. “집값은 국회 세종의사당 추진 등 일시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시민들이 집단으로 보유세 급증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국토부가 공시가 산정 기준을 밝히지 않는 것부터 국민 불신을 키운다. 올해 공시가 이의신청 건수는 지난해(3만7410 건)의 몇 배로 급증할 게 분명하다. 정부가 임의로 공시가를 올려 증세하는 것은 명백한 조세법률주의 위배다. ‘편 가르기’식의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부터 근원적으로 잘못됐다. 권력이 무리하게 세금을 걷는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사악하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06일 국가부채 1985兆… 사상 첫 GDP 추월
■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 의결
나라살림 112兆 적자 사상 최대
2020년 국가부채와 국가채무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수치) 적자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재정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부채(재무제표상 부채)는 1985조3000억 원으로 전년대비 241조6000억 원(13.9%) 급증했다. 국가부채 규모와 증가액 모두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1회계연도 이후 가장 크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지난해 1924조 원)을 웃돈 것도 사상 처음이다.
정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을 심의·의결했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4차례에 걸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위한 국채 발행 증가 등으로 확정 부채가 111조6000억 원 늘었고,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100조5000억 원 늘어 비확정 부채가 130조 원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자산은 2490조2000억 원이었다. 현금주의 방식으로 계산한 국가채무(중앙+지방채무)는 846조9000억 원으로 전년대비 123조7000억 원 늘었다. 국가채무 규모·증가액 모두 통계를 찾을 수 있는 1997년 이후 최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만 해도 660조2000억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불과 3년 만에 846조9000억 원으로 186조7000억 원 늘었다. 올해는 1000조 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난해 통계청 추계인구(5178만579명)로 나눠 계산한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1635만6000원이다. 국가채무 급증은 급속한 재정수지 악화 탓이다. 지난해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전년 대비 59조2000억 원 늘어난 71조2000억 원이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7조5000억 원 증가한 112조 원에 달했다.
문화일보 조해동·이정우 기자
04.07 재난지원금 가구당 100만원 주고 그 10배 나랏빚 떠안긴 정권
작년 말 국가 채무가 847조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124조원 급증했다. 국가 채무를 국민 수로 나눈 1인당 채무는 1634만원으로, 1년 새 239만원 불었다. 공무원 연금 등 공적 연금 충당 채무를 합친 광의의 국가 부채는 198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1924조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정부가 지난해 558조원 규모의 초팽창 수퍼 예산을 편성하고 코로나를 이유로 추경 예산을 4차례나 편성하면서 엄청난 빚을 냈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지출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나랏빚을 124조원이나 늘린 것에 비해 재정 팽창의 결과물은 초라하기만 하다.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백신 접종률은 1%대로 세계 꼴찌권이다. 상황을 오판해 백신 확보를 소홀히 하면서 선거용 선심성 사업이나 일회성 사업에 자원을 낭비했다. 경기 부양 명목으로 지난해 4월 총선 전후에 4인 가구당 100만원씩 총 14조원을 썼지만 실제 소비로 이어진 돈은 30%에 불과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헛돈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공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지만 눈가림에 지나지 않았다. 쓰레기 줍기, 새똥 치우기 같은 세금 알바 일자리를 100만개 이상 만들었을 뿐이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한파와 코로나 거리 두기로 세금 알바가 잠시 주춤하자 지난 1월 취업자 수가 98만명 급감해 고용 참사의 민낯을 드러냈다. 생산적 용도 아닌 일회성 지출은 세금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됐는데도 정부의 돈 뿌리기는 변할 줄 모른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여당 후보들은 당선되면 시민 1인당 1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백신 확보 실패로 경제 회복도 발목이 잡혔다. 고용 부진과 내수 침체가 여전히 심각하다. 1월 고용쇼크에 이어 2월 취업자도 47만명 넘게 줄어 12개월째 감소세가 이어졌고, 소비와 설비 투자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코로나 집단면역에 근접한 미국은 경제 회복세가 본격화하며 올해 6.4% 성장이 예상되지만 한국의 성장률은 그 절반인 3.6%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나랏빚은 빚대로 늘려놓고 코로나 이후의 글로벌 경제 회복 국면에서 뒤처질지 모를 상황이다.
모든 것을 빚내 돈 뿌려 해결하려는 정책은 지난해 국민 1인당 239만원의 나랏빚 추가 부담으로 돌아왔다. 4인 가구당 956만원 꼴이다.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4인 가구당 100만원을 주고는 그 10배의 청구서를 떠안긴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4.07 조세저항 불러온 부동산 공시가, 재조정하라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정부의 불공정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전수조사한 공동주택 공시가격 검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이 그제(5일) 마감됐다. 정확한 수치는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해 3만7000여 건을 훌쩍 넘어 사상 최대였던 2007년(5만6000여 건)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강남의 고가 주택단지뿐 아니라 여당 소속 지자체장이 있는 세종시가 시 차원에서 공시가 하향 조정을 요청한 것만 봐도 올해 공시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팽배한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서초구 전수조사, 엉터리 산정 드러나
졸속 검증 말고 다시 제대로 조사해야
특히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가 공동으로 발표한 공동주택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공시가격이 얼마나 주먹구구식 엉터리 산정이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서초구 공시가는 평균 13.53% 올랐지만 지난해보다 100% 이상 오른 공동주택도 많았다. 제대로 된 산정 기준 없이 단순히 거래가 많으면 더 오르고 거래가 없으면 덜 오르는 식이어서 같은 단지의 층과 면적이 같은 두 아파트 공시가가 30% 이상 벌어진 경우도 나왔다. 심지어 실거래가보다 공시가가 2억원 이상 더 높은 곳도 있었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조차 없는 깜깜이 산정인 셈이다. 이러니 어느 국민이 이를 근거로 한 급격한 세금 인상이나 복지 자격 박탈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전국 곳곳에서 불만이 쌓이는데도 정부 대응은 안이하기만 하다. 일단 이의신청이 마감된 만큼 혹시라도 부당하게 산정된 지역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마땅하지만 국토부는 여전히 정확한 산정 방식은 공개하지 않은 채 “적정하다”는 해명만 반복하고 있다. 가령 서초구는 실제 거래가 이뤄진 가격을 근거로 여러 문제를 제기했으나, 국토부는 “특정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는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놨다. 이래서는 이의신청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납득할 만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
투명하지 않은 산정 방식만큼이나 전문성 부족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자 국토부는 사상 처음으로 부동산원 이외에 외부 점검단의 검증 절차를 거치겠다고 예고했다. 경력 3년 이상의 감정평가사 30명이 이의신청 건에 대해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공시가를 확정 발표하는 오는 29일까지 이 적은 인력이 수만, 혹은 수십만 건의 이의신청을 전부 들여다봐야 하는 만큼 검증작업 역시 졸속이 될 우려가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 20년간의 실거래가 데이터를 외부 점검단에 제공한다는데, 현장 실사도 없이 애초에 부실한 공시가를 산정하는 데 썼던 부정확한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봐야 오류를 바로잡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이의신청 중 인정된 것은 2019년(21.5%)에 비해 현격히 적은 2.4%에 불과했다. 조세 불복 사태를 빚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공시가격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재조정하길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4월 07일 공무원 마구 늘려 손주 세대까지 빚 떠넘긴 ‘재정 패륜(悖倫)’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한 국채 남발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6일 국무회의에서 심의된 ‘2020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는 그 심각성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지난해 국가부채는 13.9% 급증한 1985조3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1924조 원)을 넘었다. 국가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직접 갚아야 할 국가채무와, 군인·공무원 연금 지급을 위한 연금충당부채를 합친 것인데, 모두 늘었다. 특히, 연금충당부채가 100조 원 넘게 늘어난 1044조 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돌파했다. 코로나보다 더 영향이 컸다.
1인당 국가채무도 1635만 원으로, 1년 새 226만 원이나 늘었다. 재난지원금의 10배 수준이다. 국가채무는 이미 1차 추경이 편성된 데 이어 2차가 예고돼 있어 올해 말에는 1000조 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나라 곳간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문 정부가 야당 때는 나랏빚이 GDP의 40%를 넘으면 큰일 난다고 야단법석이더니, 44%에 이른 지금은 괜찮다고 말을 바꿨다. 재정 지출을 억제할 재정준칙도 2025년에나 만들겠다고 미뤘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공무원 17만4000명 증원을 내건 문 정부가 이미 지난 3년 동안에만 9만8000명이나 늘렸고, 그래서 연금충당부채를 악화시킨다는 사실이다. 벌써 이명박 정부(1만134명)의 거의 10배, 박근혜 정부(3만9918 명)의 2.5배 규모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은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 수십 년 근무하고, 퇴직 이후엔 또 수십 년 연금을 지급 받는다. 기재부조차 “연금으로 인한 재정적 위험이 어느 정도로 커지는지 보여주는 수치”라고 했을 정도다. 이런데도 연금 개혁 시늉도 하지 않는다. 인구는 주는데 공무원을 급증시킴으로써 자식 세대는 물론 손주 세대까지 부담을 떠넘긴 ‘재정 패륜(悖倫)’이 심각하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07일 정부 존재 이유 저버린 文정권 4년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한민국헌법의 가치·이상·목표를 썩 잘 표현했다. 그 훌륭함은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에 비견된다.
두 연설문은 대통령(정부)의 존재 이유를 살피게 한다. 대통령직 4년간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가 폐지된 남북통일 국가를 이룩했다. 그러면 문 대통령은 노예 상태의 북한 주민을 위한 인권 개선을 위해, 그리고 헌법상 요구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남북통일을 위해 어떤 노력과 업적을 이뤘는가?
문 대통령은 핵·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북한과의 대결과 초대강국 미·중 대결 한가운데 끼인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위(survival)와 번영(betterment)을 위해 어떤 노력과 업적을 이뤘는가? 민주적으로 집권한 문 정부는 전대미문의 다수독재체제를 구축해 자유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점 외에 무슨 업적을 이뤘는지 물어보자.
당내 민주주의를 파괴해 그 자체 독재정당이 된 여당은 절대다수 의석 획득과 함께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고 야당과의 협치 없이, 또는 소수당을 들러리 세워 위헌적인 특별법(5·18민주화운동법, 대북 전단 금지법 등)들을 마구 통과시키는 등 국회를 독주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는 대정부 견제 기능을 잃은 청와대 하청 입법기관의 역할을 한다. 대법원장 등의 코드 인사는 삼권분립을 무력화하고 있다. ‘인재 영입’이란 덕목과 거리가 먼 코드 인사는 행정부 장관들을 청와대의 시녀로 만들었다.
그동안 구축된 독재체제는 자유민주체제의 뼈대인 법 지배 원칙(the Rule of Law)의 훼손으로 표출돼 왔다. 민주화 관련 특별법들은 민주화에 기여했으나 특별법 제정을 끌어낼 정치력이 없는 수많은 민주시민에 대한 관계에서 평등원칙에 반하며, 집행이나 판단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삼권분립에 어긋난다. 그동안 봐 온 민주당 지지층 강남좌파의 ‘내로남불’(위선·연출 등)은 입법·행정·사법과 전 사회 과정에 걸친 반(反)평등·공정·정의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든 독재든 근대국가는 법치주의를 필수로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살아 있는 권력)에 평등·공정하게 미치지 못하는 법치주의는 결코 법 지배의 원칙에 맞는 법치주의일 수 없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통치수단인 법치주의(the Rule by Law)일 수밖에 없다. 울산시장 부정선거 사건 등에서 보듯이 검찰개혁을 빙자해 검찰 수사가 청와대나 정치권에 못 미치게 하려고 만든 공수처법, 검찰 대학살 인사,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징계절차 개시, ‘검수완박’을 통한 윤석열 총장직 사퇴 성취는 결코 검찰개혁도, 법 지배 원칙의 실현도 아니다.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장차 자기들도 적폐청산의 대상이 될 업적 외에 경제, 4차산업혁명 진작, 양극화 등에서 도대체 무슨 업적이 있는가? 집권에서의 민주주의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업적(산업화)에 한참 못 미치는 무능·무책임·후안무치도 정당화하는가? 폄훼해 오던 권위주의 정부의 훌륭한 업적들은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가? 정당화는 깨어 있는 시민의 몫이다
문화일보
04.09 與 대참패 근본 원인은 ‘文 정권 4년’ 그 자체, 그래도 안 보이는 文
문재인 대통령은 4·7 재·보선 결과에 대해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더욱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극복,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 청산에 매진하겠다”고도 했다. 두 줄짜리 짧은 메시지다. 청와대 인적 쇄신 등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청와대 참모 누구도 선거 대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과감한 정책 전환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도 없었다.
서울 선거에서 민주당은 25개 구 전체에서 패했고, 여야 후보 득표율 차이도 18%포인트가 넘었다. 부산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모든 구에서 졌고, 여야 후보 차이는 무려 28%포인트가 넘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를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다. 문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이 대참패가 아파트값 폭등과 LH 땅투기 의혹 때문에 벌어진 일시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큰 착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문 정권 4년 동안 쌓여온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마침내 터지는 불씨가 됐을 뿐이다. 민주당에서도 선거 패인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참패의 진짜 원인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 선거 참패의 근본 원인은 후보나 전략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 문 정권의 지난 4년간 국정 그 자체에 있다.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며 취임한 문 대통령은 앞장서 불공정과 불의를 보여줬다. 불공정과 파렴치의 표상 같은 조국·추미애·박범계 장관을 잇달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선거 공작을 벌인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고 지시해놓고 검찰이 막상 정권 불법을 수사하자 검찰총장을 내쫓았다. 오로지 정권 호위를 위한 공수처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소주성·탈원전·부동산 등 엉터리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백신 도입 시기를 놓쳐 백신 접종 꼴찌 국가로 만들어놓고 눈가림 쇼만 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은 못 하게 하면서 그 뒤에서 자기는 하는 위선과 내로남불이 며칠이 멀다 하고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선거에서 계속 승리한 것은 너무나 못난 야당 덕을 본 것뿐이었다. 이 무능·오만·위선·내로남불의 중심에 누가 있나. 문 대통령 아닌가.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심판한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을 심판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후보를 내고, 어떤 전략을 구사했더라도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참패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민심의 준엄한 경고를 받고서도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 본인은 뒤에 숨고 비서를 내보내 하나 마나 한 말 몇 마디를 내놓았다. 이 정도로 국민이 심판하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와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전환 방향을 밝히는 게 도리 아닌가.
조선일보 사설
04월 09일 文정권 상징 ‘내로남불(naeronambul)’이 글로벌 용어 된 기막힌 현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공식 시인했을 정도로 문재인 정권의 위선을 상징하는 ‘내로남불’이 급기야 글로벌 사회에서 공식 용어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문 정권이 대한민국 국격을 추락시킨 또 하나의 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4·7선거 분석 기사에서 “여당 참패는 문 정권 진보 인사들의 위선 때문”이라며 “한국에선 내로남불(naeronambul)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상세한 의미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문 정권 인사들은 공정과 평등, 정의를 내세우면서도 조국 전 법무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예외’라는 위선적 행태로 일관해 ‘내로남불’은 정권의 상징이 됐다. 최근 발표된 미국 국무부의 인권보고서에도 나왔다. 30여 년 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사용한 비속어 형태의 두문자어(acronym)여서, 공식 용어로는 잘 쓰이지 않았으나, 문 정권 행태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나타나 삼척동자도 아는 말이 됐다. 그런데 급기야 세계 용어까지 된 셈이다. 앞서 ‘빨리빨리’ ‘재벌’ ‘강남스타일’ 등도 이런 식으로 국제어가 됐다. 그런데 내로남불은 한국을 마치 부패 국가로 그린다는 점에서 기가 막힌 일이다.
각국의 외신들이 이번 선거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수세력이 힘을 얻게 됐다”고 했고,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문 대통령이 국정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했다. 바깥에서도 이렇게 보는데 임기 13개월 남겨둔 문 대통령이 내로남불을 고수한다면 국내외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경청하고 국정을 쇄신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4-10 말만 앞선 성찰, 반성은 필요 없다
與, 보선 참패에 연일 사과와 반성 외쳐
근본적 정책·인적 쇄신 없으면 ‘쇼’일 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일찌감치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인정했다. 2015년 3월 야당 대표 시절 군부대를 방문해 “북한 잠수정이 감쪽같이 들어와서 천안함을 타격한 후에 북한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때 ‘천안함 폭침’이란 용어를 사용하긴 했어도, 북한을 명확히 지목한 것은 처음이었다. 천안함 폭침을 ‘침몰’이라고 했던 참여연대 등 진보좌파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그만큼 당시 문 대통령의 ‘북한 소행’ 발언은 진영 내부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문재인 캠프는 진영의 울타리를 넘어 중원 표심을 잡기 위해선 중도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정적인 종북(從北)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것도 절실했다. 그래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이라는 메시지도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천안함 사건은 홀대를 받았다. 오죽하면 천안함 유가족이 대통령 면전에서 “북한 소행이라고 말해 달라”고 따지는 일까지 벌어졌을까. 대통령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하려던 일이 뒤늦게 들통나자 없던 일이 됐다. 대통령직속 기구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청와대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을 뺐다. 아직도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폭침 발표에 부정적인 친문 지지층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여당 소속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대응도 비슷했다. 여당이 사과하기는 했으나 마지못해 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버젓이 5일간 서울특별시장(葬)을 강행했고, 여당 대표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렀던 여성 의원 3인방은 자숙하기는커녕 박영선 캠프의 전면에 나섰다. 도대체 보궐선거를 왜 하게 됐는지 개의치 않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지지층의 박원순 향수에만 기대 보려는 몰염치였다.
재·보선 참패 후 여당을 추스를 비상대책위원장에 도종환 의원이 지명됐다. 도 의원은 친문 사조직으로 불린 부엉이 모임의 시즌2 ‘민주주의4.0 연구원’의 이사장을 맡은 친문 핵심이다. 당 일각에서 “국민을 졸(卒)로 보나” “이게 쇄신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 결이 다른 목소리는 용납하지 않았던 친문 일색 정당에선 애초에 신선한 비대위원장 인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정부 여당은 1년 전 총선 압승 직후 오만을 경계하자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오만의 극치를 달렸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껍데기만 남았고, 입법 폭주는 일상사가 됐으니 야당과의 협치는 죽어버린 사어(死語) 수준으로 전락했다. 공정과 정의 구호는 조국, 윤미향 사태를 거치면서 ‘내로남불’의 상징이 됐다. 선관위가 ‘내로남불’ ‘위선’ 표현은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한다고 사용 중지할 정도 아닌가.
이제 대통령선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정권심판론이 크게 작동하는 대선 직전 선거 판세는 대개 집권 세력에 불리했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는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2011년 서울시장 보선 패배를 국정기조 전환에 나선 박근혜 비대위로 돌파했다. 반면 2016년 총선 패배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박근혜 정부는 탄핵을 맞았다. 말로만 하는 사과나 성찰은 필요 없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근본적 쇄신을 못 하면 또 하나의 정치 쇼로 비칠 뿐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04.12 '문재인 프로덕션'의 마지막 시나리오
4ㆍ7 재ㆍ보선에 참패한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세 문장이었다.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
청와대는 국정 컨트롤타워 아닌
인기에 급급한 프로덕션 전락
'착한 대통령 이미지' 전략 유지할 듯
상투적인 말 속에 한 가지 눈에 띄는 단어는 부동산 ‘부패’ 청산이었다. 지난달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청산 운운하며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엮으려 했다. 현 정부 초기였으면 먹혔겠지만, 4년 내내 반복되자 적폐 타령도 시들해졌고 “이젠 너희가 적폐야”라는 부메랑도 제법 있다. 이날 등장한 부동산 부패청산은 현장에서 갑자기 바뀐 ‘쪽대본’ 같았다.
선거 이후 문 대통령의 첫 외부 행사는 9일 경남 사천에서 열린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기 출고식이었다. 선거 후유증으로 여당은 몸살을 앓고, 코로나 4차 유행이 시작됐지만 그런 흉흉함에 대통령은 초연한 듯 보였다. 백번 양보해 한국형 전투기가 의미 있어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라 해도, 군사무기를 알리는 자리에 대중가수가 축하공연을 하고, KBS가 생중계를 하며, 미디어 파사드까지 가미된 휘황찬란한 쇼를 국민 세금 써가며 굳이 해야 하는지는 갸웃했다.
당초 KF-X 사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안했지만, 10여년간 지지부진하다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체계 개발 계약을 맺으며 본격화됐다. 오히려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은 국회 국방위에서 “KF-X 사업 계획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냐. (미국이 핵심 기술을 넘겨준다는) 기본 전제가 무너졌는데 이제 와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할 수 있습니다’라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야 가능하겠냐”라며 반대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이날 기념식에선 “오늘 우리가 이뤄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문득 “문 대통령은 생색을 낼 때나 쇼가 필요할 때 교통사고 시 귀신같이 달려오는 레커 같은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있다”(박성중 국민의힘 의원)는 말이 떠올랐다.
현 정부가 쇼만 한다는 비판은 줄곧 있었다. 문 대통령이 현안에 침묵하거나 논점을 흐린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무능하다고들 했다. 본질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애당초 문재인 청와대는 국정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프로덕션(제작사)이다. 주연은 문 대통령이요, 여태 백팩 메고 텀블러 든 조국(전 법무장관)이나 낡은 가죽 가방의 김상조(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비중 있는 배역이었다. 최근엔 형법각론을 든 김진욱(공수처장)도 신인급으로 주목받고 있다. 갈등 해소에 관심 없고 흥행에만 목숨을 거니 전직 대통령 사면을 툭 던지고 반응이 싸하자 바로 덮을 수 있는 거다
주연 배우 분칠하는 것에만 신경 쓰니 집값이 폭등하는데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하고 있다”(2019년 12월)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백신 접종률 1%대로 세계 꼴찌권인데 “치료제가 상용화된다면 대한민국은 방역ㆍ백신ㆍ치료제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코로나 극복 모범국가가 될 수 있다“(2021년 1월)고 호언장담하는 것이다. “당근 마켓에 팔아먹었냐”(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비아냥을 듣는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이나 '소득주도성장'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건 시청률 떨어지면 곧바로 폐지되는 TV 프로그램과 같은 원리다.
내년 봄 끝나는 문재인 청와대의 지상과제는 ‘시즌 2’ 제작이다. 하지만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치명상을 입은 데다 마땅한 친문 주자가 없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캐릭터 유지다. 앞으로도 쭉 착한 척, 공정한 척, 열심인 척하는 거다.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에는 입을 꾹 다물고, 아동 학대 같은 선명한 선악 구도가 보일 때만 피해자 입장에서 언급하는 식으로다.
행여 여권에서 레임덕이 본격화돼 “대통령 책임”이라며 내쫓으려는 움직임이 나와도 노여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 없다. 비운의 주인공이야말로 흔들리는 팬심을 붙잡는 강력한 무기다. 무참히 공격당해도 묵묵히 참을 수 있다면 퇴임 후에도 일정정도 정치적 영향력은 보장받을 수 있다.
문제는 돌발 악재다.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건 구조적 모순”과 같은 엉뚱한 애드립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좀스럽고 민망하다”와 같이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가까스로 구축한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인기만 지켜내면 청와대를 나와도 ‘문재인 프로덕션’은 망하지 않을지 모른다.
최민우 정치에디터 choi.minwoo@joongang.co.kr
04.12 반도체로 먹고사는 나라가 반도체 무전략, 정부 존재 이유 뭔가
/격화되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
미국 백악관이 오늘(12일) 인텔·구글과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의 CEO들을 화상으로 연결해 반도체 전략 회의를 연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반도체칩 부족 대책과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회의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한다. 반도체 문제를 경제 차원을 넘어선 국가안보 이슈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등에 넘어간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봉쇄하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다. 삼성전자·TSMC가 보유한 생산 능력의 상당 부분을 미국 영토 안으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도체 설비 투자 때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고 보조금을 주는 등 강력한 지원 법안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호응해 인텔도 20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외국 업체에 생산을 위탁해왔던 인텔이 직접 제조까지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뿐 아니라 EU·중국·일본 등 모든 강대국들이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설정하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는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우리의 핵심 산업이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매출액 대비 정부 지원금이 인텔·퀄컴 등 미국 업체가 2~4% 수준에 달하지만 삼성·SK하이닉스는 0.6~0.8%에 그친다. 삼성전자가 평택 공장을 지어놓고도 주민 반대와 지자체 방임으로 4년간 송전선을 연결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영진을 형사 처벌하는 규정이 수백 가지에 이르는 환경·산업안전 규제는 세계 최악이다. CEO가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공장 가동이 불가능할 정도다.
손놓고 있던 정부도 지난주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반도체 기업 CEO들을 긴급 소집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회의에서 CEO들은 각종 규제 완화, 용수·전력 등의 인프라 지원과 함께 미국처럼 반도체 지원 대책을 법으로 명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산업부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반도체로 먹고산다는 나라에 ‘반도체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부가 왜 필요한가.
조선일보 사설
04월 12일 배터리·반도체 챙기는 美 ‘전방위 동맹’과 文의 무전략
미국 백악관이 한국 기업인 LG와 SK의 배터리 분쟁을 중재하고, 삼성전자까지 초청한 반도체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대통령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도 우선 미국 국익을 위해 그러는 것인 데다, 정부의 그런 개입이 바람직한가 등의 논란도 있다. 그러나 국정 난제 해결에 앞장서고 국익 극대화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대통령의 책무를 새삼 일깨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반도체·배터리·희토류 등 전략물자의 공급망을 재검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한 발언은 한 시대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국익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에 (전략물자를) 의존할 수는 없다”면서 안보·경제·기술·가치를 포괄하는 ‘전방위 동맹’ 구축에 나섰다. 배터리 분쟁 중재는 중장기적 안보에서 눈앞의 전략물자에 이르기까지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백악관 압박으로 영업비밀과 특허 침해를 둘러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분쟁이 700여 일 만에 소(訴) 취하 등의 합의에 도달한 데는, 미국 입장에선 중국 견제와 자국 전기차 육성 정책이 크게 작용했지만, 한국 입장에서도 늦었으나 다행한 일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12일(현지 시간) 세계 주요 19개 반도체 기업과 화상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삼성전자도 포함돼 있다. 최근 인텔의 파운드리 진출 발표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패권 전쟁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더 이상 안보와 경제가 따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중국은 물론 심지어 문 정부에 대해서도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글로벌 자유민주 동맹을 서두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산업 전략을 새로 짜고 국가 차원의 인프라 지원 대책을 꺼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고작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에서 반도체 기업 CEO들과의 보여주기식 간담회로 끝내려 한다. 이마저 지원대책 요구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전략도 넘어 방기(放棄)와 역주행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배터리·반도체·원자력 등에 대한 이런 행태는 21세기형 매국(賣國)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일보 사설
04.13 5년간 시민단체에 7천억원 준 박원순 서울시, 흑막 모두 밝혀야
▲12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바른인권여성연합 등의 회원들이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에 침묵한 여성 시민단체를 규탄하면서 "서울시가 지난 10년간 시민단체에 지급한 세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 장련성 기자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5년간 서울시가 시민단체 공모 사업에 총 7111억원을 줬다고 한다. 2016년엔 641억원이었는데 2020년 2353억원까지 늘어났다. 지원 단체 수도 1433곳에서 3339곳으로 늘었다. 서울시의회 야당 의원이 밝힌 바로는 서울시가 시민단체 지원 전담기구인 ‘중간지원조직’까지 만들었고 그 운영도 시민단체에 맡겼다고 한다.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는 2014~20년 332억원을, ‘NPO(비영리조직) 지원센터’는 134억원을 썼다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일이다.
박 전 시장은 시민단체 활동 경력을 발판으로 서울시장에 3연임 했다. 서울시 지원을 받은 단체 상당수가 박 전 시장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거나 박 전 시장의 시민단체 활동 시절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관여한 단체들이다. 박 전 시장 선거 캠프 출신 인사가 2015년 세운 단체는 여의도공원 스케이트장 운영권, 잠수교 모래 해변 조성 사업 등 수십억원씩 들어가는 서울시 사업을 9개나 따냈다. 박 전 시장이 감사를 지내기도 했던 환경단체는 2017년 운영비 85억원에 서울숲 공원 운영을 위탁받았다. 서울시가 2017년부터 1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목표로 추진한 태양광 사업은 운동권 먹이사슬의 하나였다. 구속된 허인회씨의 녹색드림협동조합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미니 발전소 사업 25건을 따냈는데, 당시 SH 사장이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었다.
박 전 시장의 서울시가 시민 세금을 갖고 시민단체의 화수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정도였는지는 몰랐다. 서울시와 시민단체는 재정 지원과 정치적 지지를 주고받는 공생(共生) 관계였던 것이다. 시민단체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권력에 기생(寄生)하면서 시민 세금을 빨아먹고 있었다. 2017년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마을공동체 사업의 경우 모든 자치구에서 공통적으로 지도 점검을 하지 않아 보조금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흑막을 모두 밝혀야 한다.
국민의힘 성중기 서울시의원은 박 전 시장 재임기인 2014년 이후 서울시 5급 이상 개방형 직위, 별정직 보좌진, 서울시 산하기관 임원 666명 가운데 시민단체와 여당 출신이 25%인 168명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특히 비서실 등에 근무한 이른바 ‘6층 사람들’은 동료 직원이 박 전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하는데도 못 본 척했다.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이 보낸) 속옷 사진과 문자도 보여주는 등 4년 넘게 20여명에게 고충을 호소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이 농락하고 농단한 서울시에서 피해자의 호소는 봉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 출신이라는 말은 남에게 꺼내기 힘든 부끄러운 말이 돼가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4.13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 이 성취를 뺏을 권리는 없다
남북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1865년 1월, 연방군의 윌리엄 T 셔먼 소장은 휘하에 해방 노예로 이루어진 부대를 통솔하고 있었다. 그는 특별 야전명령 15호를 발령했다. 해방 노예에게 1인당 40에이커의 땅을 준다는 것이었다. 노새는 공식 명령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연하다는 듯 포상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미국은 약속을 어겼다. 셔먼이 나누어준 40에이커뿐 아니라, 전쟁 과정에서 압류된 땅 모두가 백인 농장주에게 되돌아갔다. 남부에 살던 흑인들은 ‘해방’된 신분으로 소작농이 되어 노예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의롭지 못한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됐다. 1930년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연방주택국(FHA)은 집값의 10%만 있으면 나머지 90%를 빌려주는 정책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장기주택담보대출이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을 지원하는 제대군인지원법(GI Bill)과 맞물려 미국은 순식간에 중산층의 나라로 탈바꿈했다.
단, 흑인들만 빼고. 연방주택국은 흑인들이 사는 구역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융자를 막았다. 일명 ‘레드라이닝’이라는 농간이었다. 좋은 교외 주택가에 집을 사려고 해도 흑인이면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100만여 흑인 참전 군인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도 못했다.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인 가구의 자산 중위값은 흑인 가구에 비해 9~12배 크다. 소득이 동일할 때에도 백인 가구의 자산이 흑인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가 본인의 영화 제작사에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땅의 역사는 어땠을까. 갑오개혁으로 노비라는 신분이 폐지됐지만 차별은 엄존했다. 가진 게 없으니 처지가 달라질 수 없었다. 근본적인 변화는 해방과 함께 찾아왔다. 이승만 정권의 토지 개혁으로 인해 소작농이 자영농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자칭 ‘진보’ 세력 중 일부는 한국전쟁을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조국 해방 전쟁’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노예 해방 전쟁’에 더욱 가깝다. 남북전쟁의 흑인들과 달리 대한민국의 소작농들은 토지 개혁으로 땅을 받았다. 그들이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켜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가난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남북전쟁 당시의 구호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를 약속한 것이다. 물론 모든 이가 경제 개발의 과실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 시대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그 약속은 성공적으로 지켜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탄탄한 중산층을 형성한 국가가 되었다. 중산층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게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루어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이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심지어 4·7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압도적인 패배로 끝났음에도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선거 다음 날인 8일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부패 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8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신념, 차라리 집념이라고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노예제는 폐지했지만 너희가 감히 좋은 집을 사면 안 된다. 자산을 가진 중산층이 아닌 우리가 시혜적으로 내려다보며 동정할 수 있는 빈곤층이 되어라. 이런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혈기 넘치는 20대 남성들이 분노의 투표를 한 것은 그런 면에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노예 해방 전쟁으로 세워진 자유민들의 나라다.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의 약속을 믿고 달려온 국민들이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이 빛나는 성취를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청년에게 내 집 마련을 허하라. 삐뚤어진 차별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04월 13일 부동산·일자리·백신 줄줄이 현실 왜곡하는 文대통령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거 민의를 반영한 정책·인물 쇄신과는 거리가 먼 ‘돌아가며 자리 나눠 먹기’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확한 진단에서 올바른 대책이 나오는데, 문 대통령의 현실 인식부터 황당하다고 할 만큼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2일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다방면의 노력과 대비책으로 백신 수급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대다수의 나라가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두 발언 모두 혹세무민이라고 할 정도로 진실을 호도한다. 지난해 K방역 자화자찬과 치료제 개발 과신 등 판단 착오로 인해 백신 확보가 늦어지고, 이로 인한 문제가 곳곳에서 터지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현재 백신 접종률(2.3%)이 전 세계에서 100위권 밖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영국·미국은 이미 집단 면역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미국은 곧 백신 공급 과잉이 시작된다는데, 다른 나라도 다 그런 것처럼 얘기한다. ‘대다수의 나라’가 아프리카 후진국을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여당의 선거 패배 다음날 문 대통령은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최대 관심사였던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부동산 부패 청산’을 강조했다. 문제의 본질은 25차례나 발표된 정책인데도 무주택자는 집값 폭등으로, 주택 보유자는 세금 폭탄으로, 세입자와 임대인은 전셋값 폭등과 온갖 규제로 고통 받고, 나아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와 현 정권 인사들의 ‘주택 내로남불’을 심판한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부동산 부패 청산을 들고 나왔다. 이미 과거 정권의 적폐인 양 보는 인식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경기 반등 시간이 다가왔다”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고도 했다. 유리한 지엽말단만 본다. 2월 취업자는 47만 명 줄어 12개월째 감소했다. 현실 불감증도 넘어 참모에게 속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온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13일 사라지는 청년 정규직…2030 절망 넘어 국가未來 망친다
일본은 지난해 ‘AI인재 100만 명 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화웨이라는 한 기업이 AI인력을 100만 명 채용하겠다고 했다. 주변국이 이처럼 첨단산업 일자리 창출에 박차를 가하는 판에 한국 정부는 세금으로 만드는 알바 100만 개를 고용 개선이라며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러는 와중에 국내의 2030 정규직 일자리는 늘기는커녕 갈수록 자취를 감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3일 발표한 ‘산업별 청년층 취업자 추이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8월 18.4%였던 청년층 정규직 취업자 비중은 2020년 8월 기준 16.4%로 2%포인트나 감소했다. 2030 세대 전체의 비중이 이러니, 지난해나 올해 신규 취업자만 대상으로 하면 ‘사라졌다’고 할 정도일 것이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2030으로부터 되레 공정한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이 현장 방문 이벤트까지 벌인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전형적 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해고 비용이 터키를 제외하고 가장 높다. 이런 고용 병목현상으로 비정규직 양산을 자초해 놓고 비정규직 해소를 외치는 건 위선의 극치다. 청년들이 취업군에서 밀려나면서 실업군으로 유입되는 것도 경제 위기의 징조다. 12일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지난달 구직급여(실업급여) 수급자는 75만9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한경연은 정년이 늘거나 임금이 상승하면 청년 취업자의 취업 비중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정년 연장과 임금 인상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시적 세금 일자리는 청년도 기업도 원치 않는다. 강성 노조의 기득권 보호와 고용 유연성 실종은 청년 일자리를 죽이는 주범이다. 친(親)노조, 반(反)기업 정책으로부터의 근본적 전환이 절실하다. 청년 일자리 정책 실패는 2030의 절망에 그치지 않는다. 지식과 경험의 단절로 인해 국가 미래(未來)까지 망치는 죄악이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13일 비극 예고하는 ‘문재인 폭정’
허민 전임기자
문재인 정부의 집권 4년은 광기와 폭정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촛불 정권이라는 판타지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4년 내내 계속된 적폐청산과 정신분열적 국정 운영으로 통합은 두 쪽 났다. 대북 저자세와 중국 눈치 보기로 안보는 무장해제됐고, 북이 우리 공무원을 총살하고 불살라도 대응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해 경제가 추락했고 빈부 격차는 커졌다.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7개 기관이 경찰과 함께 울산시장 선거 공작을 벌였다. 조국 사태, 윤석열 몰아내기, 탈원전 수사 과정에서 법치는 너덜너덜해졌고 민주주의는 유린당했다.
일사불란한 규율 속에서 반대자들을 배제하고 탄압한 것은 조선조의 폭군 광해를 닮았다. 광해가 즉위 원년 과거시험에서 책문(策問)을 내렸다. “나라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구제해야 할까.” 문과에 응시한 조위한이 답했다. “도끼에 맞아 죽을 각오로 말씀드리니, 위기는 궁궐의 담장 안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위기도 청와대 담장 안에서 비롯됐다. 고도로 기획된 ‘다수의 폭정’이 거듭됐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은 해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넘어선 ‘비범한 악’을 과시했다.
지난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한 것은 ‘문재인 폭정’에 대한 분노가 투표로 분출된 사건이었다. 선거 이후 유권자가 기대했던 문 대통령의 모습은 “내 탓이요”라는 반성과 전적 쇄신을 위한 회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광인(狂人)의 집합체와도 같은 조직에서 정상성을 기대하기는 애당초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4·7 민심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자는 성명을 냈던 민주당 초선 의원 5인은 대깨문의 ‘초선 5적’ 문자 폭탄에 휘청거렸다.
집권당은 보선 참패를 ‘언론 탓’ ‘검찰 탓’, 심지어는 ‘청년 탓’으로 돌렸다. ‘남 탓’ 타령은 남을 때려잡기 위해 서구 좌파 지식인들이 동원하는 단골 수사(修辭)다. 전체주의의 모국 소련을 찬양했던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이 바로 “타자는 지옥이다”였다. 지독한 우적(友敵)관이자 정치투쟁 논리다.
아랫물이 흐린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윗물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선거 다음 날인 지난 8일 대변인을 통해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면서도 국정 운영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는 선거 5일 만인 12일 청와대에서 첫 공식 회의를 주재했지만, 4·7 민심에 대한 그 어떠한 반성도 내놓지 않았고 정책 기조 전환과 관련한 언급도 전혀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선거 참패를 부동산 폭등과 LH 사태에만 돌린다면 착각이다. 코로나 사태로 유예됐던 정권 심판의 봉인이 해제된 것이다(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정치권 일각에서 4·7 민심을 반영한 국정 전면 쇄신책으로 중립내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문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런 집권세력의 환골탈태는 불가능하다. 유권자는 나라의 모든 병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촛불 정권의 환상은 환멸이 됐다. 이제 폭정의 끝이 보인다.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도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문화일보
04.14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 챙기는 미국, 우리는 무슨 전략 있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기업과 삼성전자, 대만 TSMC 등의 CEO들을 화상으로 초청해 개최한 ‘반도체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20세기 세계를 주도했다.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며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까지 들고 나와 흔들면서 “우리의 경쟁력은 (회의 참석한) 당신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등에 미국 내 투자를 늘리라고 압박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 산업 전략까지 챙긴다는 것이 놀랍다.
해외에 의존하던 반도체 생산을 미국 영토 안으로 가져와 자기 완결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다. 미국은 반도체 개발과 설계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생산은 세계 생산량의 12%에 불과하다. 자체 생산 대신 대만(22%)·한국(21%)·중국(15%)·일본(15%)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앞으론 반도체 생산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호응해 인텔이 오래전에 철수한 제조·생산 분야에 다시 뛰어들기로 했다. ‘설계는 미국, 생산은 아시아'라는 국제 분업이 깨질 상황이다.
그로 인한 충격은 전체 수출의 20%를 반도체 한 품목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강하게 닥쳐올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세계 1·2위 메모리 반도체 메이커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도 미국 내 공장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에 170억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고 SK하이닉스도 공장 증설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내 투자가 늘어날수록 한국 내의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첨단 공법의 최신 반도체 생산라인이 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견제’도 언급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對)중국 수출 봉쇄 대상을 차세대 반도체 장비뿐 아니라 현재 사용되는 주력 장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럴 경우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가동하는 메모리 공장의 첨단화도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중국의 기술 패권 싸움이 눈앞의 리스크로 닥쳐오고 있다.
이 격변기에 삼성전자는 총수가 투옥돼 있다. 정부 차원의 전략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1위지만 차량용 반도체 자급률은 2%에 불과하다. 세계적 공급 부족 사태로 1달러짜리 반도체 칩이 동나자 현대차가 생산라인 일부를 멈출 정도로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중국, EU 등 강대국들은 반도체 주도권을 놓고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뛰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제1 관심사는 언제나 선거 정치다.
조선일보 사설
04.14 별은 어두우니 보이는 것이다
처칠과 마오를 ‘별’ 만든 건
혼란과 분열의 ‘다키스트 아워'
실정으로 ‘어둠’ 만든 文 정권
‘ 野 후보는 별 아니다' 손가락질만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는 영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1940년 5월이 배경이다. 독일군에게 패배한 영국군 30만은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돼 있었다. 영국이 짓밟히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때 총리가 된 처칠은 ‘평화협정’이란 이름으로 히틀러에게 굴복할 것인가, 결사 항전할 것인가 결정해야 했다. 전임인 체임벌린처럼 ‘히틀러가 평화를 원한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았다. “소리 없이 항복한 나라는 그것으로 끝장”이라며 국민 의지를 한곳으로 모았다. 패전과 국론 분열이란 어둠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뭉치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었다. 처칠을 2차 대전 ‘별’로 만든 건 ‘다키스트 아워’였다.
중국 영화 ’1942′는 허난성 대기근을 다뤘다. 그해 가뭄으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훔쳐 먹고, 반려동물을 잡아먹고, 급기야 인육까지 먹었다. 유리걸식하다 300만이 굶어 죽었다. 그런데 국민당 정부는 일본과 싸운다며 쥐꼬리만 한 구호 식량도 떼먹었다. 일제는 난민 행렬에 총질했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일 것이다. 그때 마오쩌둥은 항일 전쟁을 외치며 농촌으로 파고들었다. 당시 중국 인구의 90%가 농민이었다. 땅 한 뼘, 식량 한 줌을 갈구하던 농민에게 ‘토지 분배’를 약속한 마오는 ‘별’ 같은 존재였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처칠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조선일보 DB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 유세차에 오른 2030세대는 “희망이 모조리 사라졌다”고 했다. 20대 직장인은 “2017년 3억 하던 아파트가 8억이 됐다”며 “월급 200만원을 400개월, 시급 8000원을 10만 시간 모아야 하는 돈”이라고 했다. ‘집값 자신 있다’는 대통령 말 믿었다가 ‘벼락 거지’가 됐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너무 없다”고도 했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 때문에 진짜 일자리는 격감하고 60대 이상 세금 알바 자리만 늘었다는 것이다. 집 마련과 일자리는 민생의 전부나 다름없다. 먹고살기가 캄캄하다는 절규였다.
문재인 정권은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조국 전 장관의 자녀는 허위 증명서로 대학에 가고 의사도 됐다. 그런 조국을 보고 문 대통령은 “마음의 빚”이라고 했다.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를 이용해 돈벌이했는데도 배지를 달았다. 청와대에서 임대차법을 주도한 정책실장은 법 통과 하루 전에 자기 집 전세를 14%나 올렸다. 공공기관 임원 같은 알짜 일자리는 정권 ‘낙하산 부대’가 대거 차지했다. 이러니 국민이 “평등·공정·정의 중 지켜진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안보는 더 암담하다. 정권이 남북 이벤트에 매달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김정은은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하고 있다. 2027년까지 핵을 최다 242기 보유할 것이란 연구도 있다. 북이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을 쏴 죽이고 불태웠는데도 항의 한마디 못 했다. 한·미 연합 훈련은 컴퓨터 게임이 됐다. 미 상원은 군사·경제·기술 등에서 ‘반중(反中) 연합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법안을 만들면서 한국을 제외했다. 정권의 중국 표류가 70년 평화 번영의 기틀이던 한미 동맹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금 한국 현실이 어두운 건 정권의 실정과 무능, 파렴치와 오만 때문이다. ‘내로남불’은 문 정권을 상징하는 세계어가 됐다. 야당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왜 올라갔나. 현실이 희망적이고 밝으면 야당 후보의 ‘별의 순간’은 드러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권은 어둠을 걷어내려 애쓰기보다 ‘저건 별이 아니다’ ‘곧 스러진다’ ‘새로운 어둠’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별은 어두우니 보이는 것이다.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논설실 논설위원
04월 14일 바이든은 반도체 전쟁 진두지휘…文정권은 이재용 수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를 들고 ‘반도체 자립’을 진두지휘하는 장면은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삼성전자 등 19개 글로벌 기업 경영진과의 ‘글로벌 화상 반도체 대책회의’에서 미국 내 투자를 강력히 요구했다. 벌써 대만 TSMC와 인텔 등은 적극 호응 입장을 내놨다. 같은 날 유럽연합(EU)도 반도체 독립을 선언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7개 유럽 기업과 함께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36억 유로(4조8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 양상이 예상보다 빨리 바뀌고 있다. 미·중 대결이 안보를 넘어 경제·기술로 비화하면서 반도체 시장도 민간 주도에서 국가·동맹 대항전으로 변하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세계적 반도체 기업이자 국내 경제 비중도 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뒤늦게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확대경제장관회의에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해 관련 논의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찍기 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오래전부터 반도체에 대한 국가 전략적 지원이 요구됐지만, 문 정부는 반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 인력 양성, 장비 산업 육성 등 정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기업들이 자력갱생에 나서는 형편이다.
특히, 한국 반도체를 대표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국정농단’ 죄목으로 수감 중이다. 고법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까지 유죄로 내몬 문 정권 대법원의 ‘코드 판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인수·합병, 시스템 반도체 육성, 5G, 인공지능(AI) 등의 청사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뿐 아니다. 삼성그룹은 문 정권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보험업법을 비롯해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이 한꺼번에 적용될 경우 삼성그룹은 정상 경영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신규 공장의 송전마저 삼성전자가 나서야 하는 처지다. 이런 근원적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전략회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속임수일 뿐이다.
문화일보 사설
04.15 운동권 예우法? 진짜 민주화 유공자는 6·25때 나라 지킨 분들
공산당 남침 때 나라 못 지켰으면 운동권은커녕 민주의 싹도 없었을 것
민주화는 그 누구의 전유물도 될 수 없다
지난 선거 때 가장 놀란 일은 민주당 의원 73명이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선 사건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내로남불로 여론이 크게 악화된 바로 그 직후에 이 운동권 셀프 특혜법 소식까지 들으니 이들이 마치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운동권 사람들을 유공자로 지정하고 가족에게까지 교육·취업·의료·양육·대부 지원을 하는 내용이다. 이 법의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 바로 이 법을 만드는 민주당 의원들과 그 가족이다. 작년 9월에도 여당 의원 20명이 같은 법안을 냈는데 6개월 만에 더 많은 의원이 뭉쳐 재발의했다. 선거만 아니었으면 다른 무리한 법들처럼 또 밀어붙였을 것이다.
▲1989년 6월 30일 전대협 주체로 한양대에서 열린 ‘모의평양축전’ 행사장에서 참가한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진압경찰에 맞서고 있다. /조선일보 DB
우리 사회에서 운동권은 최강의 권력 엘리트 집단이 된 지 오래다. ‘정치 하나회’ ‘운피아(운동권 마피아)’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운동권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비서관이 몇이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운동권 생태계도 조성돼 있다. 운동권 출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지난 5년간 시민 단체들에 준 돈이 7000억원이 넘는다. 공기업 좋은 자리의 태반도 운동권 차지다. 이것도 모자라 ‘예우법’을 만든다니 거의 선민(選民) 의식이다.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이란 말을 많이 한다. 그 ‘산업화 세력’이라 할 한 분은 “그런 이분법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대, 최고, 절체절명의 민주화 운동은 공산당의 6·25 남침 때 이 나라를 지킨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침략이 성공해 한반도가 공산화됐다면 민주의 싹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6·25 때 나라를 지킨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다. 그 대의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바쳤다. 이분들을 원조 민주화 유공자라고 해야 마땅하다. 이들이 나라의 산업화에도 앞장섰다.
이승만 대통령이 서구 자유민주 체제를 선택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산주의 전제 체제에 맞서 나라를 지키지 않았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강행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 기반에서 민주 교육을 받고 중산층으로 성장한 시민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완성했다. 이 시민적 운동을 주도하고 희생한 분들이 ‘운동권’이다. 이들의 희생은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합의였고, 충분히 보상이 됐다. 그런데 모든 것은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1970년대까지 운동권은 대체로 전통적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김일성 주체사상 추종자들이 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이들이 노조까지 접수하면서 운동권 천하 통일을 이뤘다. 지금 국회와 청와대에 진출한 운동권은 대부분 이들이다.
주사파 운동권은 주체사상이라는 극단적 반민주 이념을 추종하면서도 투쟁 수단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했다. 주사파 집단이나 마찬가지이던 민노당이 필요하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자유민주 이념을 주장하고 민주 제도인 재판을 활용한 것이 그 예다.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 아직도 주사파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수단일 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었다. 불행히도 그 과거는 지금까지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운동권은 세계 최악의 반민주 체제인 북한을 감싼다. 민주화 운동권이라면서 노예 상태와 같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철저히 외면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기본을 짓밟으며 북한 요구에 따라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다. 해방 직후 벌어진 공산당 무장 폭동까지 미화한다. 민주화 운동권이 성범죄 권력자를 미화하고 피해자를 짓밟는다. 홍콩, 티베트, 신장의 인권 문제에도 입을 닫는다.
민주주의 근본인 선거법을 야당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바꿨다. 민주 정당으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폭거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켜져 온 국회의 합의 관례를 깨고 입법 권력을 싹쓸이했다. 국가 형사 사법 체계, 임대차법 등 국민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법조차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심지어 야당에 법안을 보여주지도 않고 통과시키기도 했다.
대통령은 장관급 24명을 국회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대통령 비판했다고 청년들 집을 압수 수색했다. 민주주의의 적(敵)인 포퓰리즘을 노골화하며 선거까지 세금 살포 매표로 타락시키고 있다. 진정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사람들인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은 ‘주사파 생각을 버렸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가 민주화 운동 할 때 너희는 뭐 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 시민 대부분은 민주 요구 시위를 했고, 최루탄을 마셨으며, 선거 때 민주를 표방한 정당에 투표했다. 경제 발전에 매진한 기업인들, 공무원들도 민주화 토대를 만든 혁혁한 유공자다. 민주화 운동은 누구의 전유물도 될 수 없다. 운동권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모두 무시하고 마치 자신들이 이를 홀로 창조한 듯 행동한다. 이 독선과 과욕의 끝도 멀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04월 16일 얼굴만 바뀌는 내각·靑 개편, 임기末 걱정된다
문재인 정권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수렴해 1년 남짓 남은 임기를 마무리하려면 대대적 쇄신은 필수다. 경제와 외교·안보 등 잘못된 정책 방향을 과감히 바꾸고, 청와대와 내각의 친문 일변도 인물도 대폭 물갈이해야 한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 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했던 취임사의 약속을 한 번이나마 지킬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16일 내각·청와대 개편 하마평을 보면 그런 기대는 허망하게 날아간다. 그간의 문 대통령 동향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임기 말 혼란과 국정 표류가 예상된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임으로는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명되고, 국토교통·산업통상자원·고용노동·과학기술정보통신·해양수산부 장관이 바뀐다고 한다. 최재성 정무수석비서관을 이철희 전 민주당 의원으로 바꾸는 등 청와대 일부 개편도 있다. 직전 국회의장을 총리로 삼은 것부터 잘못이었다. 삼권분립을 해치는 것은 물론, 대선용 행보도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부겸 전 장관도 대선후보군이어서 얼마나 총리직에 있을지 의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책은 그대로 둔 채 몇몇 고위 공직자 얼굴만 바꾼다는 사실이다. 경제 정책 실패의 총책임자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유임부터 그렇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부동산 분노가 폭발하자 여당 측 압박에 밀려 마지못해 미리 변창흠 국토부 장관 경질 방침을 밝혔지만 주택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유영민 비서실장의 초등·중학교 후배가 정무수석이 된 것도 정실로 비친다. 여기에다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를 보더라도 국회 운영과 입법 폭주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문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국정은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는데, 이번 인사를 보면 남은 임기도 캠코더(캠프·코드·민주당)에 기대는 국정 운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대한민국 앞날이 걱정이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16일 월세 30만원 이상 모두 신고, 전국민을 감시대상 삼나
오는 6월부터 전국에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된다. 보증금 6000만 원 초과 전세, 월 30만 원을 넘는 월세까지도 집주인 또는 세입자가 계약일 30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위반하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토교통부는 15일 이런 내용의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 청구권제에 이은 임대 3법 강행이다.
정부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 30만∼40만 원짜리 월세도 임대료, 계약기간, 임차인·임대인 인적사항, 방 개수 등까지 신고해야 한다. 정부가 전국민의 시시콜콜한 임대차 내역을 다 들여다보게 된다. 과도한 개인 정보 노출이다. 이웃이 전·월세를 얼마에 사는지 알 수 있다. 더구나 과세 강화도 예상된다. 지금은 집주인 또는 세입자가 알아서 신고토록 해 임대소득 파악에 사각지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신고제가 시행되면 정부가 축적된 임대차 정보를 토대로 세원을 발굴해 과세할 가능성이 짙다. 표준임대료 산정 등 임대료 규제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여기에 여당은 자금 조달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제출해놓고 있다. 부모 도움을 받아 전·월세를 마련하는 신혼부부나 독립 자녀는 증여세를 물어야 할지 모른다. 전세 보증금이 임대료로 간주돼 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
정부는 투기를 방지한다며 부동산거래분석원 신설도 추진 중이다. 전국민을 감시하는 ‘빅 브러더’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임대료 실거래가를 파악하고, 임대소득세 탈루를 막는 등의 장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적 거래에 대한 과도한 규제에 따를 부작용이 훨씬 크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16일 文, 친중 계속해 삼성을 화웨이 만들 건가
이미숙 논설위원
5월 정상회담 韓美동맹 고비
바이든 “中 최강국 못 된다”
트루먼의 자유진영 결속 연상
文 ‘중국몽 환상’ 안 바꾸면
삼성반도체 LG배터리에 영향
전단법 없애고 백신 요청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회담이 오는 5월 하순 워싱턴에서 열린다. 임기 말인 문 대통령의 사실상 마지막 워싱턴 방문 회담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새롭다. 백악관이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16일 회담에 앞서 한·미 정상회담 5월 개최를 발표한 것은 아시아 핵심 동맹국 한·일을 각별히 여긴다는 방증이다. 아울러 취임 100일을 10여 일 앞두고 대북정책 재검토 작업이 마무리됐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신속한 백신 접종과 천문학적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경제를 살리면서 대외적으로는 자유 진영 국가 연대를 강화해 중국 공산당 주도의 전체주의에 맞서겠다는 전략이 분명히 드러난다. 백악관 안팎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의 전직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해리 트루먼의 길을 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루스벨트는 대공황기 인프라 투자로 미국을 회생시켰고, 트루먼은 냉전 전야 공산주의와의 싸움에 앞장선 자유 진영 리더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대선 직후 60%였던 지지율이 70%로 오른 것을 보면, 국정 허니문도 지속될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키워드는 대중 압박 총력전으로 요약된다.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중 경쟁을 예고한 뒤 반도체 등 전략물자 공급망 재검토 행정명령을 내렸고 백악관에서 반도체 회의도 주재했다. 첨단 테크놀로지 투자를 주도해 전체주의 중국 굴기를 저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보 당국 수장들은 14일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을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규정했다. 중국은 군사·안보·경제 전방위 경쟁자라는 인식이다.
미국의 이 같은 흐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친중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몽(中國夢)과 함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2017년 방중 때의 일이니 그렇다 쳐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서울 2 + 2회담 후 ‘미·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1992년 한·중 수교 때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선언인데, 당시는 미국이 대중관여정책을 펴던 탈냉전기였다는 특수성이 있다. 그 후 30년, 미국이 중국을 체제 경쟁자로 규정했는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중국 편에 서겠다는 얘기다. “한국이 동맹 중독에 빠져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한다”는 캠프 출신 국립외교원장은 두둔하면서, 북핵 협상을 주도해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옷을 벗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일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 삼성전자를 초대했다. 자유 진영 공급망의 일원으로 삼겠다는 신호다. LG·SK 배터리 분쟁을 중재한 것도 한국 기업을 첨단 인프라 투자 파트너로 삼겠다는 뜻으로 안보와 경제를 한 덩어리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중국 편에 선다면 삼성전자 등에 대한 입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적과 함께하는 회사라는 이유로 중국 화웨이처럼 대할 수도 있다. 정부가 동맹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기업의 미래, 신냉전 시대 대한민국 운명도 달라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던 1차 냉전기에 대한민국은 동맹을 바탕으로 6·25 참화를 극복하며 경제 개발의 기틀을 닦았다. 미·중이 탈냉전기 우호 시대를 끝내고 전방위 충돌로 간다면 선택은 동맹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서울 2 + 2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냐 북한 비핵화냐를 둘러싼 설전이 있었고, 15일 워싱턴에서는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의회 청문회가 열렸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문 대통령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인데도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북한 변호인 행태를 보인다면 2001년 김대중-조지 W 부시 회담의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 반면 방미에 앞서 대북전단법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회담 때 백신 지원을 호소하면서 반도체 공조에 주력한다면 동맹을 정상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운동권 출신 각료의 주장처럼 한·미 동맹이 냉전 군사동맹이 아니라 안보는 물론 보건·경제까지 아우르는 복합동맹임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동맹 복원이 신냉전기 흥망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문화알보
04-19 또다시 ‘개돼지’ ‘가붕개’ 안 되려면
文정권, 空約·사과·자기부정 남발
선거 끝나자 ‘안면 몰수’ 시침 뚝
대선에선 ‘아름다운 말’ 해대는 자
남의 돈으로 선물 준다는 자들 조심
대개는 들어본 말일 듯.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다.’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의(民意)를 요약하면 국민을 바보 취급하지 말라는 거다. 지난해 총선에서 한 번 속여 놓고 1년 만에 같은 수법으로 두 번 속이려 드니 영화 대사와 교육부 공무원의 리바이벌로 유명해진 ‘민중은 개돼지’란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누굴 정말 개돼지로 아나.
역시 주연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 때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기다리지 말고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자들에게 미리 통보해주고 신청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선거 전날에.
이번에는 가덕도까지 찾아가 “가슴 뛴다”며 여당이 다시 불붙인 가덕도 신공항 공약에 기름을 듬뿍 부어줬다. 그런데 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돌아가자 여권에서 가덕도 얘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러니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도 ‘가덕도가 사골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이나 우려먹느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문 정권은 긴급재난지원금 아동수당 노인일자리사업 구직촉진수당 고용안정지원금 등 이름도 가지가지인 천문학적 현금 살포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4차 재난지원금을 필두로 다양한 현금 지원책은 물론 디지털 화폐라는 ‘신상 아이템’까지 들고나왔다. 하지만 ‘돈발’이 저번처럼 먹히질 않았다. 부동산 실정(失政) 등으로 ‘벼락거지’ 만들어놓고 돈 몇 푼 쥐여준다고 풀릴 민심이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안 먹히니 그렇게 인색하던 사과와 자기부정(自己否定)마저 난무했다. 대통령부터 ‘부동산 적폐’ ‘부동산 정쟁’ 등 남 탓을 한 지 20시간 만에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여당과 여당 후보도 △공시가 인상률 조정 검토 △주택 대출 완화 △공공 재건축 민간 참여 등 기존 부동산정책을 뒤집는 공약을 들고나왔다.
그것도 약발이 안 먹혔다. 왜? 유권자들이 두 번 속을 바보는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끝나자 그런 약속들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대통령부터 언제 사과했냐는 듯이 ‘부동산 부패 청산’을 다시 꺼내들었다. 시키지도 않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직계가족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약속하더니,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다.
언제까지 선거 때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나. 다시는 이런 세력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딱 두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첫째는 아름다운 말이다. 아름다운 말은 감동을 주지만, 지키기 어렵다. 고로 아름다운 말을 자주 내뱉는 정치인은 십중팔구 나라 망칠 포퓰리스트다. 본인부터 못 지키는 말을 해대니 내로남불을 달고 산다.
이제는 조롱거리가 돼버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대통령 취임사의 명구(名句). 중국 공산당도 쓰는 말임이 확인되면서 더 없어 보이게 됐다.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도 등장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표현한 대로 ‘높은 산봉우리’ 중국이 ‘작은 나라’ 한국의 정당 후보 연설을 베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공산당산(産)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터. 그런데 우리가 아는 중국이 과연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인가. 공산당 간부들이 다 해먹는 일당 독재체제가 그럴 수는 없다.
조국 씨의 아름다운 말.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드러난 진실은 이랬다. ‘나와 내 가족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이 될 테니, 당신들은 가붕개로 살아라.’
두 번째로 조심해야 할 건 나랏돈으로 선물 준다는 자들이다. 나랏돈이라는 게 결국 세금이고, 따지고 보면 내 돈이다. 내 돈을 제 돈처럼 쓰고 생색내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장래, 청년의 미래에는 관심 없는 선거 한탕주의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남의 돈을 자기편에 쏟아붓게 마련이다. 5년간 3300여 개 시민단체에 7100억여 원을 지원해 좌파 생태계를 구축해준 박원순 전 서울시장. 그 불명예를 남기고도 ‘대부(代父)’ 대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누가 과연 책임 못 질 아름다운 말과 남의 돈으로 선물 준다는 약속을 남발하는지 똑똑히 지켜보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을 새기면서.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04월 21일 與 발의 악법은 언론자유에 선전포고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9일 최강욱 의원 등 열린민주당 의원 3명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9명이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그 내용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여러 가지 법리에 맞지 않고 독소적인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제도의 도입과 언론중재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만든다는 규정은 대놓고 언론을 학살하겠다는 선전포고에 가깝다.
언론중재위는 언론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측과 언론사 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기관으로서, 고도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래서 법관 이외의 공무원이나 정당원은 중재위원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개정안은 중재위를 문체부 소속의 언론위원회로 바꾸고 공무원도 중재위원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선을 통해 선출하던 위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10명 이상으로 신설되는 상임위원도 문체부 장관이 위촉하거나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완전히 버리겠다는 심산이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이기도 한 황희 문체부 장관조차 개정안을 ‘수용 곤란’하다고 했겠는가.
법안을 발의한 범여권 의원들이 주장하는 명분은 ‘가짜 뉴스’를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번만이 아니라 가짜 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다. 현행법으로도 사실이 아닌 허위사실을 보도할 경우 얼마든지 처벌 또는 규제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짜 뉴스를 규제하는 법률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여당의 기본적 시각은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모두 가짜 뉴스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다룬 기사를 모두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미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난 데서 보더라도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알 수 있다.
인류가 사회를 구성한 이래 지금처럼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다만,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표현 중에는 혐오적이고 왜곡된 거짓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것들을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수준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국가나 법률이 그것들을 미리 걸러서 국민에게 내놓겠다는 것은 지나친 후견주의적 태도로, 국민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사상의 자유시장’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올리버 W 홈스 연방대법관이 판결문에 쓴 표현이다. 그는 진실에 대한 최선의 검증은 시장에서 사상의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스스로 수용되는 생각의 힘이라면서, 이러한 소중한 기능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혐오스럽거나 극도로 불편한 것으로 여겨지는 의견조차도 함부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해선 안 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 가치인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가짜 뉴스 규제라는 명분으로 후퇴시키려는 행태는 당장 멈춰야 한다.
문화일보
04월 22일 ‘재건축은 낭비, 기모란은 문제없다’ 文의 뒤틀린 인식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것은 일단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문 대통령과 두 시장은 주요 현안에 대해 진솔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보여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 진영이나 껄끄러울 수 있는 인사들과의 회동을 극도로 꺼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으로도 비친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 인식에는 현실과 동떨어졌거나 뒤틀린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 오 시장이 재건축 문제를 꺼내자 문 대통령은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고, 부동산 이익을 위해서 멀쩡한 아파트 재건축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낭비”라고 했다. 이에 오 시장은 여의도 시범아파트 단지를 예로 들며 “50년 된 아파트인데 생활이나 장사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현장을 한번 방문해 볼 것을 요청했다. 재건축 기준 연한 30년을 넘긴 여의도 시범아파트(50년)와 대치동 은마아파트(40년)는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인 D등급을 받았다. 이런데도 ‘멀쩡한 아파트’ ‘낭비’로 보이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이익을 위해 재건축’ 인식은 사실 왜곡에 본말전도다. 결과적으로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대한 문 대통령 발언은 정상적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백신 불안이 증폭되면서 그에 대한 우려도 커졌고, 두 시장은 이를 전했다. “백신 수급을 서두를 필요 없다”고 했던 비전문성, 그리고 방역기획관 자리가 위인설관이나 옥상옥 아니냐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남편은 야당 의원이고, 김부겸 총리 후보 처남은 이영훈 교수”라며 기 기획관 남편이 여당 출신이라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의도적 왜곡 아니면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동문서답에 가깝다. 기 기획관과 남편은 같은 여권인데, 이를 여야가 갈린 경우와 동일하게 본 것도 황당하다.
문화일보 사설
04.23 가장 큰 죄
“10억 생기면 1년 감옥가도 좋다” 20대 ‘정직 지수’ 51점 최하
사회 부패가 청소년까지 중독… 이 정권의 씻을 수 없는 큰 죄
엊그제 유튜브 생방송을 하다 시청자의 촌철살인 댓글을 봤다. 방송은 ‘여고 교사가 같은 학교 다니는 딸들에게 시험 답안을 미리 알게 했다’는 사건의 재판을 다뤘다. 재판정에 나온 자매 중 하나가 기자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여러 시청자 댓글이 “저런 뻔뻔함을 어디서 배웠을까” “조국의 딸을 보니까 억울하겠지”라고 통탄했다.
정말 그 손가락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딸은 기자에게 ‘질문이 무례하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손가락에서 사회를 향한 야유와 원망을 읽어낸 어른도 있을 법하다.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 있고 딸은 기자에게 화를 냈는지 모르겠으나, 달리 보면 그 손가락은 누가 자신을 포함한 청소년을 도덕 불감증으로 감염시키고, 윤리 부재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는지 그 책임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로남불 정권이 망가뜨린 나라의 성정(性情)을 어찌 해야 할지 큰일이다 싶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은 염치를 아는 국민이요, 아량을 베풀 줄 아는 국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염치 불고(不顧)하고’라는 말은, 낯을 들 수는 없지만 워낙 다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 쓰는 말이었다. ‘사람이 염치를 알아야지!’ 하는 꾸짖음은 점잖은 말투지만 가장 뼈아픈 지적을 할 때 쓰는 말이었다.
아량을 베풀 때, 또 인간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을 때 우리는 ‘차마’라는 말을 썼다. ‘차마 뿌리칠 수가 없더군’ ‘차마 사람이 할 짓은 못되더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서양어로 번역할 때 마땅한 상응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고유 성정을 드러내는 말이다.
2019년 8월 문 대통령이 조국씨를 법무장관에 지명하면서 ‘조국 사태’는 시작됐다. 자녀의 무시험 대학 입학 논란, 석연찮은 장학금 지급, 고2 때 의과 대학 논문 제1 저자 등재, 허위 인턴 증명서, 위조 표창장, 사모펀드 차명 투자 등등 숨이 가쁠 만큼 갖가지 의혹이 터져 나왔다. 이전까지 긍정 평가가 앞서 있던 문 정부는 그해 8월 데드크로스를 지나 부정 평가가 앞지르게 됐다.
그보다 조국 일가족에게는 법정에서 다룰 수 없는 큰 죄가 있다. 2019년 12월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직과 관련된 윤리 의식이 20대에서 최하로 나타난 것이다. 직장(학교), 사회, 가정, 친구, 인터넷 같은 다섯 부문에 5문항씩 안배해서 모두 25문항을 통해 정직성을 조사했다. 예를 들어 ’10억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 ‘시험 성적을 부모님께 속인다’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으로 말한다’ ‘나의 업무상 실수를 덮는다’ ‘이웃의 어려움과 관계없이 내가 잘살면 된다’ 같은 문항이다.
결과가 놀랍다. 정직 지수로 환원했더니 초등학생 87.8점, 중학생 76.9점, 고등학생 72.2점, 20대 51.8점, 30대 55.6점, 40대 58.7점, 50대 이상 66.5점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윤리 수준이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 있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 조사를 진행한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조국 사태와 가짜 뉴스 등 사회의 부정부패와 거짓이 넘쳐나고 정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의 정직과 윤리 의식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어떤 나라는 공직자가 돈을 받았다는 독직(瀆職) 혐의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돈을 안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을 경우 더욱 엄중하게 처벌한다던데, 우리나라는 심지어 대법원 유죄판결까지 난 뒤에도 잘못 없다고 생떼를 쓴다. 말 없는 청소년은 그대로 보고 배우고 중독된다. 염치를 모르는 뻔뻔함 말이다. 이것이 저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다. 징역으로도 씻을 수가 없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04월 23일 백신 스와프 망신, 北 도발·욕설 미화…정의용 경질해야
안보·경제·가치를 축으로 국제질서가 전면 재편되는 엄중한 국면이다. 여기에 백신 공급까지 새로운 중대 변수로 추가됐다. 대한민국 생존과 국익을 위해 정교하고 유능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정의용 외교부 장관 등 외교팀 역량은 그런 과제를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백신 스와프와 관련한 발언은 신뢰를 얻지 못해 거짓말 수준으로 평가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한없이 굴종하는 행태까지 뚜렷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중미 등 다른 나라들을 도울 수 있다”며 백신 외교전 개시를 선언했다. 국무부 대변인은 “캐나다·멕시코를 비롯해 쿼드와 수급 관련 협의를 했다”고 공개했다. 문재인 정부의 백신 지원 요청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이류 동맹’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은 친중·친북 외교의 필연적 귀결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일·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 참여를 권유했지만 문 정부는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정 장관이 2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니 정 장관이 “백신 스와프를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공개한 데 이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해도 미국은 꿈쩍 않는다. 국무부 대변인은 “사적(private) 협의”라고 함으로써 의미 있는 논의가 아니었음을 밝혔다. 외교 망신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북 정책을 계승하라’고 훈수하고, 정 장관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미국을 압박한다. 외교의 ABC도 모르는 행태다.
한편, 정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북한의 GP 총격에 대해 “굉장히 절제된 것”이라며 두둔하고 ‘삶은 소 대가리’‘미국산 앵무새’ 등 욕설에 대해선 “협상을 재개하자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미화했다. 국가안보실장 시절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미혹시켜 싱가포르로 이끈 것도 모자라 이젠 북한 대변인을 자임하며 대한민국의 안보마저 허물려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 장관은 물론 각각 자주파 성향 교수 출신, 다자 외교 전문가 지적을 받는 1·2차관에게도 문제가 많다. 문 대통령이 국민을 코로나 보건 위기에서 구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면 당장 외교팀부터 쇄신해야 한다.
문화일보 사설
04.26 가짜 진보는 위정척사파의 망령인가
1821년 왕조실록 기록 “전염병 구할 방도 없다”, 2021년에도 역병에 무력
’586 DNA’에 남아있는 교조주의 세계관 때문… 내년 대선에서 심판을
1800년대와 2000년대에 조선·한국은 대역병으로 한 번씩 죽을 고비를 겪은 셈이다. 1821년의 왕조실록은 이렇다. “의약 효과가 없고 구할 방도가 없다. 전염하는 게 거센 불길 같아 치료 방도가 없다.” 그러더니 200년 후 지금 와서도 ‘역병 앞 무력화’가 또다시 연출되고 있다. 그때나 이제나 왜 그렇게 무력한가? 여러 원인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를 꼽자면, 통치 세력의 위정척사파적 대외 인식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1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역당국·코로나19 집합금지 및 영업제한 자영업자 민생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조선의 위정척사 사대부들은 중국 명나라와 주자 성리학을 하늘처럼 모셨다. 서양 사람을 남만(南蠻)이라 천시했다. 서구의 발달한 상공업, 과학기술, 시장경제, 국제 교역, 산업 문명, 도시 문명, 부국강병을 기기음교(奇技淫巧)라 욕했다. 이런 것을 통틀어 금수(禽獸)들의 패도 정치라 격하했다. 그 대신 그들은 거창한 우주론적 공리공담, 자족적 농촌 사회, 쇄국주의, 사농공상 질서, 중화사상을 왕도 정치라며 떠받들었다. 결과는 나라와 백성의 쫄딱 망함, 그것이었다.
위정척사파식으로 서구 자본주의 문명을 적대하는 세계관은 그러나, 조선 왕조의 참담한 멸망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다. 그 망령은 1980년대 중반의 발전한 자본주의 한국에서 386 NL(민족 해방) 운동권 형태로 홀연 부활했다. 그들은 산업화·근대화한 한국의 변화를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 반(半)봉건 사회’라 규정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그 식민지를 해방할 민족·민중 메시아로 자처했다. 21세기에 환생한 신판 ‘위정척사+장길산’ 무리였던 셈이다. 이들이 바로 오늘의 ‘깡통 백신 국가’ 한국을 초래한 586 꼴통들이다.
이처럼 한국이 코로나 백신 최하위급으로 전락한 것은, 백신 수급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치열한 물밑 동향과 동떨어진 586 운동권의 ‘우물 안 자족(自足)’ DNA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코로나 발생 후 서양 제약 회사들이 다투어 백신을 사달라고 청해왔다느니, 그런데도 안전성이 불확실한 외국 백신을 서둘러 맞지 않기로 한 자신들의 결정이 썩 잘한 짓이었다느니, 정권의 백신 전략이 실패했다고 하는 건 보수 언론의 가짜 뉴스라느니 하며, K방역 교육을 위한 외교부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으로 1241억원을 책정했다. 이걸 야권처럼 ‘홍보비’로 본다면 배보다 배꼽만 너무 컸다.
K방역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맹점도 분명히 있었다. 코로나가 들어왔을 때, 집권 패거리는 그것이 중국에 갔다 온 한국인들이 퍼뜨린 것이지 중국인들이 들여온 게 아니라며 ‘시진핑 중공’을 한사코 감쌌다. 중국인 입국을 막을 뜻이 추호도 없다는 소리였다. K방역은 또 코로나균이 어찌나 영특한지, 해운대 백사장이나 전철 안 밀집 인파는 묘하게 피해가면서 유독 광화문 반정부 집회 참가자들 콧속으로만 쏙쏙 들어간다는, 일종의 ‘선택적 감염론’이자 ‘정치 방역’이란 말도 들었다.
21세기 위정척사론자들인 586 전체주의 운동권은 결국 조국, 추미애, 윤미향, 박원순, 김상조, 부동산 파탄, 종부세 폭탄, LH 투기에 이어 막판엔 ‘깡통 백신’ 신세로 나라와 국민만 황당하게 만든 게 아니라 자신들 통치의 정당성과 효율성마저 깻박치기에 이르렀다. 망할 짓만 골라 해온 꼴이다. 망할 짓을 했으면 망해야 하고 망해야 하니까 망할 것이고 망할 것이니까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책 변화는 안 하겠고 한다. 586 성골(聖骨)들의 대선 출마설, 꼼수 개헌설도 들먹인다. 정 그럴진대 망하게 해야 한다. 끝장내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저들을 엎어야 한다.
4·7 보궐선거 후 586 패거리를 합헌(合憲)적으로 타도해야 한다는 당위는 국민 보편의 여망으로 성립했다. 다만 그 민심의 61%가 “민주당이 잘못해서”였고 “국민의힘이 잘해서”는 7%에 그쳤다. 그렇다면 이 흐름에 맞춰 정권을 교체하자면 윤석열과 야권과 유권자들, 특히 2030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윤석열은 그를 써서 한탕 치려는 노회한 수(手)에 절대 휘말려선 안 된다. 국민의힘은 소위 ‘좌파 대세론’에 영합하는 패션 기회주의, 그리고 납치범에 대한 스톡홀름 증후군 따
위를 씻어내야 한다. 그래야 우당(友黨) 아닌 반대당(opposition)이 될 수 있다. 2030은 ’586=진보'라는 보이스피싱에 더 속아선 안 된다. 내년 대통령 선거는 정치가 아니다. 문명 한국의 생사가 걸린 내전이다. 3류 가짜 진보 퇴출에 모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조선일보 류근일 언론인
04.27 ‘김정은’만 보이는 문재인 안보·외교
취임 석 달 바이든에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주문 쏟아낸 文
동맹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북한에만 올인
대책 없는 대북 간절함 무슨 일 몰고 올지 두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대한민국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의 안보와 외교는 곧바로 생명줄이다. 먹고사는 경제는 나쁘다가도 좋아지고 좋다가도 나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보·외교는 한번 잘못하면 나라 망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게 중대한 대북·대미·대일·대중의 안보·외교가 문재인 좌파 정권 치하에서 회복할 수 없는 퇴보의 길로 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5월 말 방미를 앞두고 지난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주문(注文)인지 촉구인지를 했다. 정돈(停頓) 상태에 있는 미·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북한과 하루빨리 마주 앉을 것을 권하고 중국과는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그 내용이 적절한 것인지는 차치하고 지금 우리가, 그것도 출범한 지 3개월 남짓한 미국의 새 대통령에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고 주문할 위치에 있는가? 바이든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실제로 그런 것들이 성사될 여지는 있는 것인지를 계산하고 한 소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 취임 후 첫 한·미 정상 회동에 앞선 인터뷰인 만큼 양국 간의 협력, 즉 동맹 문제, 백신 문제, 경제 협력 문제, 주한미군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예의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그런 것은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북한과 김정은에게만 올인하고 있다. 상대국 대통령에게, 그것도 대면(對面) 회담에서라면 몰라도 사전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이것저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거나 주문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다. 외교 문제를 밑에서 협의·토론해서 올리는 보텀스 업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히고 있는 바이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교를 국가 간의 거래로 보는 시각에서 보더라도 미국이 요구하는 인도·태평양 안보 기구인 쿼드 참여는 거절하면서 북한 이익을 대변하는 요구를 나열하는 것은 기브 앤드 테이크에도 어긋난다.
문 대통령은 그런 무례한 언급 속에서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언급하면서 “변죽만 울릴 뿐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폄하한 것이다. 재임 3년 8개월 동안 9차례나 만났고 전화 통화도 25번 이상 한 사이에 이제 트럼프가 권좌에서 물러났다고 ‘변죽’ 운운하는 것은 문 대통령의 인간성을 엿보게 한다. 트럼프는 즉각 반발했다. 문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약했다”며,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다”고 깎아내렸다. 어쩌면 트럼프가 바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모욕을 당하고 있다. ‘삶은 소대가리’라는 표현은 대통령을 넘어 우리 국민 모두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미 접근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조력이 필요했던 김정은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쪽 대통령’의 무력(無力)을 실감하면서 이제는 ‘문재인’을 용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일체의 대남 접촉도 끊고 오로지 미사일 시험 발사로 미국과 간접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용도 폐기 상황을 되돌려 보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과의 관계는 대한민국의 외교가 발돋움한 이래 이렇게 악화일로로 내리막을 걸은 적이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친일 배격을 정권 유지의 한 축으로 삼고 있는 좌파 정권에서 한일 관계의 복원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했다. 지도자라면 국민을 감정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때로는 미래를 보고 국민 감정에 역행할 때도 있는 법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말해 과거 조선 시대의 종속 관계로 회귀하는 느낌이다. 중국은 한국의 외교장관을 오라 가라 하고, 한·미 관계의 단절을 부추기며 경제 교류를 미끼로 한국을 자기들 발밑에 깔고 있는 듯이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중국에 아부해서 북한을 움직여볼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만약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한다면 북한이 그 갈등을 유리하게 활용하거나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며 미·중 갈등도 ‘북한’과 연관 짓고 있다. 그는 각종 행사에서 중국을 치켜세우며 시진핑의 방한을 그렇게도 앙망하고 있지만 시진핑은 변죽만 울리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안보·외교는 최악의 길로 가고 있다.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길로 가고 있음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그렇게 개무시당하면서도 북한만을 읊조리고 있는 문 대통령의 ‘대북(對北) 간절함’이 또 무슨 일을 몰고 올지 두렵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04뤌 28일 1.6% 성장 이면의 진실과 혹세무민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한국은행은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1.6% 성장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에 문재인 대통령은 ‘놀라운 경제 복원’이라면서 자화자찬했다. 정부의 어이없는 현실 인식에 일자리로 고통받는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정부는 집권 초기에 경제학 교과서와 싸우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과 싸웠고, 이젠 국민과 싸우려 한다.
문 정부는 경제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데 반색하지 말고, 그전에도 국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2020년엔 추경까지 하면서 546조9000억 원을 지출했다. 국가채무를 116조2000억 원이나 늘리면서 마음껏 지출했지만, 지난해 GDP는 오히려 줄었다. 더 갖다 쓴 돈만큼이라도 경제가 성장했다면 3.7%는 됐어야 했다. 경제가 침체한 것은 정부가 미래를 위해 돈을 쓰지 않고 선심성 지출만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계·기업·정부 모두를 빚더미에 몰아넣고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정부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집 없는 서민을 ‘벼락거지’로 만들어 놓고, 집 가진 사람들은 빚더미와 세금으로 ‘집거지’로 만들었다. 3월 생활물가는 2019년 12월 말 대비 2.3% 상승했다. 가정마다 파를 심어 ‘파 테크’ 하고, 계란 값 상승에 닭을 기를 판이다.
1분기에 전기 대비 1.6%의 경제성장률을 보인 것은 민간의 설비투자 증가에 기인한다. 다른 지표로 판단하면 전반적인 경기회복으로 보기는 어렵다. 심각한 문제는 고용이다. 고용 개선은 경제 회복 추세를 확인해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지난해 실업률은 4.0%다. 올해 들어 1월 5.7%, 2월 4.9%, 3월 4.3%로 개선되고는 있으나, 지난해 연평균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고용률은 지난해 60.1%로 지난 4년간 계속된 하락 추세를 이어갔다. 올해 들어 1월에는 57.4%, 2월 58.6%, 3월 59.8%로 지난해 연평균보다 밑돌았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고통은 코로나19로 경제가 타격을 받았던 지난해보다도 더 심각해졌다.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문 정부가 만들어 놓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지난 4년간 만든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내년까지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로 자영업을 몰락시키고, 청년실업을 증가시켰다. 단순하게 정부가 빚을 내어 가계소득을 보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용 상황 악화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문 정부의 노동정책은 청년 실업만 늘린 게 아니라 40대도 몰락시켰다. 40대의 고용률은 2018∼2020년 전년 대비 -0.4, -0.6, -1.3%p 떨어졌다. 올해도 1∼3월 -1.9, -1.4, -0.4%p 떨어지면서 고용 악화는 계속됐다. 가구주 연령이 40대일 때 가계 소비도 가장 많다. 지난해 가구주가 40대인 가구는 일자리도 줄었고 물가도 올라서 가장 고통받고 있다. 자녀 교육비 지출도 줄였다.
다른 나라보다 더딘 코로나 백신 공급만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청년세대뿐 아니라 가장 활동적이고 중산층을 형성하는 40대마저 몰락시키고 있다. 빚더미 경제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문 정부가 만든 문제가 많지만, 노동시장 문제만이라도 임기 중에 해결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04.29 ‘반도체 전쟁’ 지휘할 사령관이 감옥서 상속세 대출상담 받는 나라
▲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12조원대 상속세를 납부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천문학적 금액이다. 유족들은 세금 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건희 회장 영결식에 참석하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이 상속 재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여원을 상속세로 납부한다고 발표했다. 한 가족이 내는 상속세 규모로는 세계 사상 최고액 기록일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유족에게 부과된 상속세 28억달러(약 3조원)의 3배를 웃돈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다. 최대 주주 지분 상속엔 20% 할증까지 붙어 세율이 60%까지 올라간다. OECD 회원국 평균 26%의 2배가 넘는다. 상대적으로 상속세가 높다는 미국 40%, 독일 30%보다 훨씬 무겁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주주 가족이 기업을 승계할 경우 세율을 낮춰주거나 세금 공제 혜택을 준다. 독일에선 이런 혜택이 적용될 경우 실제 상속세율은 4.5%까지 낮아진다. 일본도 가업 상속에 대해선 상속세를 유예·면제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만약 삼성이 독일·일본 기업이었다면 사업 확장에 재투자됐을 재원이 세금으로 징수돼 투자효과도 낮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안 되는 선심성 세금 살포에 소모될 판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물려받는 상속 재산의 대부분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이다. 경영권을 지키려면 팔 수도 없는 자산인데, 현행 세법하에선 지분 절반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상속세를 3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럼 그 기업은 어떻게 되는 건가.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조차 “한국의 고율 상속세가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미국·중국이 벌이고 있는 기술 패권 전쟁의 핵심이 반도체다. 한국 경제의 생명줄인 반도체가 격랑에 휘말렸는데, 진두지휘해야 할 반도체 기업의 사령관은 상속 문제 때문에 감옥에 갇혀 상속세 낼 돈 마련을 위해 신용대출 상담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한국 전체 수출의 20%, 법인세 납부액의 18%를 기여하는 기업 대주주가 경영권 방어에 전전긍긍하면서 상속세 납부에 천문학적 빚을 내는 것이 나라 경제와 국민에 무슨 도움이 되나. 그 돈과 시간으로 삼성을 더 키워 고용을 늘리고 법인세를 더 내는 것이 나라에 몇 배, 몇 십배 이익이다.
기업 승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징벌적 상속세 체계를 바꿔야 한다. 사적으로는 정치인 대부분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大衆) 정서를 두려워하며 공론화를 꺼린다. 우리 사회 전체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조선일보 사설
04월 29일 세계 최악 60% ‘징벌적 상속세’ 대폭 개선 급하다
상속세는 상속개시일(피상속인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6개월 이내에 신고·납부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우, 오는 30일이 시한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상속인들이 그 직전인 28일에야 입장을 공개한 것은, 그만큼 상속세에 따른 어려움이 많았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르면, 유족들은 대부분이 주식인 고인의 유산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12조 원을 상속세로 납부하게 된다.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2011년 사망했을 당시 유족에게 매겨진 세금 28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의 3배가 넘는다.
미국 CNBC방송은 이런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 역사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 규모 중 하나”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러잖아도 한국의 상속·증여세율 60%는 세계 최악 수준으로, 지난해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고율 상속세로 한국의 기업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다. 미국을 비롯, 영국·프랑스·독일 등 세계 주요국들의 실질 상속세율은 30∼45%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명목 세율이 50%이지만 회사 경영권이 있는 최대 주주가 지분을 상속할 때는 괘씸죄(?)의 ‘할증률’이 추가되면서 세율이 최고 60%까지 높아진다. 이러니 상속 한 번에 경영권을 위협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재산 상속은 자본 축적의 주요 동인(動因)임에도 국가 스스로 파괴하는 모양새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아예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밀폐용기 업체인 락앤락이나 손톱깎이 세계 1위였던 쓰리쎄븐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회사를 매각하기도 했다. 징벌적 상속세의 가장 큰 폐해는 투자 의지를 꺾는다는 점이다. 상속세 회피를 위한 해외 도피나 조기 증여 등 편법도 부른다. 이와 반대로 세금을 인하하면 적극적 경영으로 연결되고 이것이 일자리와 법인세·소득세 증가로 연결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부(富)의 대물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없지 않지만, 시대 변화와 세무 투명화로 상황이 변했다. 더욱이 한국은 개방경제 체제로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나라다. 상속세율 대폭 인하와 제도 개선이 급하다.
문화일보 사설
04월 29일 막연한 ‘별의 순간’이 부른 국가 위기
김숙 前 駐유엔 대사
1년 남은 文정권 다중 위기 봉착
실력 없이 권력 몰입 사필귀정
백신 낙오국도 오판과 무능 탓
文 외신 회견 시기·내용 부적절
외교장관은 對北 무한대 관용
對日 도덕적 우위 상실도 자초
얼마 전 ‘별의 순간’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슈테른슈툰데(Sternstunde)라는 독일어로서,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 대권 쟁취의 결정적 기회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쓰였다. 그런데 정권 장악이 정당의 최대 목적이긴 하더라도 과도하게 권력 쟁취만 보고 선거 과정에서 국가 수호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임무 수행 능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집권 후 국민에게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능력과 자질보다는 촛불의 힘에 의해 준비 없이 정권을 잡은 결과, 퇴임 1년을 앞둔 시점에 나라가 안으로는 분열되고 밖으로는 다중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코로나19와 관련, 백신 강대국들의 자국 중심주의 속에 미국도 인근국 및 쿼드(Quad) 국가들을 우선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백신 경쟁에 뒤늦게 참여해 차질이 생기자 외교장관은 실체가 없는 백신 스와프를 언급했고, 정부는 부랴부랴 추가로 하반기 4000만 회 분량 도입 계획을 발표했으나, 투명성 결여로 국민의 불안과 불신은 여전하다. 방역 모범국이라는 자평과는 달리 이스라엘이 국민의 62.3%가 접종하는 동안 우리는 4.7% 수준의 접종밖에 못 한 것은 백신 확보에 대한 정부의 오판과 무능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안보 분야는 이 정부의 가장 큰 복합적 취약지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북정책 계승을 거부하고 비핵화 성과가 없는 한 김정은과 마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싱가포르 성과 토대 위에서 양보와 보상의 점진적·단계적 협상으로 비핵화를 추구하라고 주문했다. 미국이 거부하는 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동맹국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미국의 대북정책 발표가 문 대통령의 방미 이전일지 이후일지 미정인 가운데 이뤄진 이 인터뷰는 내용과 시기 면에서 부적절했다. 4·27 판문점 선언 3주년을 맞아 남북 관계 회복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려 한다는 언급도 비현실적 정세 인식이며 미국과의 엇박자 가능성이 있다.
정상회담에 앞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계해야 할 시기에 외교장관이 북한의 무력 도발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한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합의 위반은 사소하다거나 해안포 사격과 비무장 지대 총격이 굉장히 절제된 방법으로 시행됐다고 한 발언은 무관용 원칙이 사실상 무한대 관용 원칙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또한, 인권을 인류 보편 가치로 중시한다고 하면서 북한 인권 개선은 외면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폐기 종용과 우려 표명을 듣는 것도 국제적 망신이다.
중국 눈치 보기로 쿼드 참여를 주저하고 있는 것도 한·미 동맹을 미·일 동맹보다 낮은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요인이다. 역대 최악으로 추락한 한·일 관계는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역사적·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던 위치를 수세적으로 역전되게 만들었다. 대북 굴종과 동맹 약화로 인한 외교 실패는 어떤 변명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국내적으로도 법무장관들의 실망스러운 언행, 갈팡질팡하는 부동산 정책, 집권층의 내로남불, 집권 세력의 친북적 언행 등은 무능한 국정 운영이 어떤 부작용을 낳고 국가와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잘 보여준다. 4년 전 대선에서 거저 줍다시피 권력을 얻은 것까지 별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나, 국민은 이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와 같은 포퓰리즘적 구호나 감언이설에 속지 않을 만큼 충분히 경험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불통과 오만의 완고함으로 나라를 이끌고도 성공한 정부라는 평가를 기대한다면 후안무치한 심리다.
미국 시인 헨리 W 롱펠로는 ‘죽는 자들의 경례(Morituri Salutamus)’라는 시의 마지막에 ‘저녁노을이 사라져 가면서 하늘은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별들로 가득 차게 된다’고 했다. 국민이 생각하는 별은 찰나의 권력 쟁취 대상으로서가 아닌, 시간이 흐르며 얻은 경험과 경륜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균형과 지혜의 별이든지, 낮엔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더라도 별들은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상상력과 통찰력의 별이다.
문화일보
04월 30일 “대통령 욕해 기분 풀리면 좋은 일”이라던 文, 뒤로 국민 고소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던 시민단체 대표가 모욕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처지라고 한다. 김모씨는 2019년 7월 국회에서 ‘북조선의 개 한국 대통령’ 표현과 ‘여권 인사 등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 수백장을 뿌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김씨는 휴대전화를 석 달간 압수당했고 경찰에 10차례 가까이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범죄라고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수사하나.
김씨에게 적용된 ‘모욕죄’는 피해자 본인이나 법정 대리인이 직접 고소해야 기소가 가능한 친고죄다. 따라서 문 대통령 본인 아니면 변호사를 통해 고소장을 냈을 것이다. 김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경찰은 고소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사건 당사자인 김씨가 물어도 “누가 고소했는지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방송에 나와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하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래놓고 뒤로는 모욕죄로 고소했다. 겉과 속,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없다.
대학 캠퍼스 내에 대통령을 풍자하는 대자보를 붙인 청년들은 경찰의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경찰은 청년들을 처벌할 법률이 마땅치 않자 ‘건조물 무단 침입’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대자보가 붙은 대학 측이 “피해를 본 것이 없고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재판에 넘겼다. 판사는 유죄로 판결했다. 지하철역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돌리던 50대 여성을 경찰이 바닥에 쓰러트리고 팔을 등 뒤로 꺾어 수갑을 채운 뒤 질질 끌고 갔다.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부른 변호사는 이 정권 출범 직후 즉각 기소됐다. 사건 발생 4년 만이었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정권 편 판사가 항소심을 맡더니 유죄로 뒤집었다. 대통령에게 대북 정책 항의 표시로 신발을 던진 시민도 집요한 보복을 당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은 허울일 뿐이고 본질은 독재 세력과 다를 것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
04.30 반도체 인력난은 “4대강 탓”, 이재용 사면 건의엔 “토할 것 같다”
민주당이 반도체 지원 대책을 마련한다면서 출범시킨 반도체기술특별위의 양향자 위원장이 “업계에서 가장 강하게 문제 제기하는 부분은 인력 부족”이라며 인력 충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4대강 등에 쏟았던 예산 일부만 반도체 인재 육성에 투입됐다면 지금의 인재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4년 내내 반도체 업계의 인력난 호소를 외면해온 집권 여당이 이제 와서 난데없이 ‘4대강’ 탓을 하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기업들은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절대 부족하고 석·박사 인력은 30% 이상 모자란다고 끊임없이 대책을 호소해 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 뒤 청와대 간담회에서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문 대통령에게 “반도체 산업이 인력 수급 문제에 봉착해 있다”면서 이공계 인력 양성 등의 대책을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올해 고려대·연세대가 신설한 반도체 계약학과에서 정원 외 신입생 80명을 뽑도록 해준 게 전부다. 2030년까지 반도체 전문 인력 1만7000명을 육성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내놓았지만 말뿐이다.
미국·유럽이 반도체 자립에 나서고 한국의 무대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민주당은 부랴부랴 특위를 만들고 “8월까지 초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송전선 연결하는 문제 하나 도와주지 않았다. 기업인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화학물질관리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 등을 밀어붙였다. 반도체특위도 선거용에 불과할 것이다.
전날 열린 학계 주최 반도체 토론회에선 성토가 쏟아졌다. 삼성전자 임원은 “미국 등 반도체 선진국이 인력 수와 질에서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기업인은 기업인을 옥죄는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이중 삼중 규제부터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SK하이닉스가 정부 지정 특화 단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면서도 대기업이란 이유로 전기·용수 등 기본 인프라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정책에서도 정부는 ‘보여주기 쇼’로 일관해 왔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선포식’에 참석해 “삼성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 돕겠다”고 했지만 그 후에 무엇이 있었나. 미·중 충돌로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막이 올랐는데 전쟁을 지휘할 반도체 1위 기업 총수는 감옥에 들어가 있다. 여당 부대변인은 이재용 부회장 사면론에 대해 “토할 것 같다”며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기업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살벌한 규제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반도체 지원 운운한다. 또 하나의 선거용 쇼임을 모를 사람이 없다.◎
조선일보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