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 2021-04/ 04월 01일 ‘레전드’ 트윈폴리오 - 04월 30일(금) 김종인의 네 마리 토끼새창으로 읽기
오후여담 2021-04/ 문화일보
04월 01일 ‘레전드’ 트윈폴리오
김종호 논설고문
최근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부쩍 자주 듣게 된 영어 중의 하나가 ‘legend’다. 당사자가 민망해할 법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더러는 그런 호칭이 걸맞다. 1947년생 동갑인 싱어송라이터로, ‘창공의 맑은 공기처럼 투명하고 섬세한 고음의 미성(美聲)’ 윤형주와 ‘흙과 바람으로 빚은 목소리의 타고난 음악 천재’ 송창식이 결성했던 남성 포크 듀엣 트윈폴리오(Twin Folio)가 대표적이다. 서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 무대에 서면서 처음 만난 이들은 저음이 돋보인 이익균과 함께 1967년 9월에 만든 ‘쎄시봉 트리오’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이익균이 군(軍) 입대로 빠져, 1968년 2월 트윈폴리오로 다시 출발했다.
이들은 미국 가수 코니 프랜시스 노래를 개사(改詞)한 ‘웨딩케익’을 비롯해, ‘사랑의 기쁨’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더욱더 사랑해’ ‘바람 속에’ ‘행복한 아침’ 등 번안곡들을 통기타를 치며 불러, 원곡보다 더 가슴을 울렸다. ‘천상(天上)의 화음’으로 “20세기 최고 포크 듀오인 미국의 사이먼 앤드 가펑클에 필적한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의과대학 재학 중이던 윤형주는 의사 아닌 길은 한사코 반대하는 부친을 거역할 수 없었다. 1969년 12월 21∼22일 서울 남산 기슭 드라마센터 공연이 고별 무대였다. 윤형주는 ‘해체’를 선언했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펑펑 울었다. 객석도 눈물바다였다. 12곡이 담긴 첫 독집 음반 ‘트윈폴리오 리사이틀’이 그룹 해체 후인 1970년에 나오고, 10년 넘게 거듭 재발매된 배경이다.
독자 활동에 나선 송창식도, 결국 되돌아온 윤형주도 수많은 자작(自作) 명곡을 발표하며, 1981년엔 함께 노래한 앨범 ‘트윈폴리오’도 내놨으나 재결합을 지속하진 않았다. 그 앨범엔 이런 글도 남겼다. ‘종일 먼지 쌓인 음악감상실의 피아노 커버가 우리의 유일한 이불이던 14년 전 어느 겨울의 만남에는 우리가 가히 짐작 못 할 의미가 있었음을 소중히 여겨 오늘 둘이 다시 노래한다.’ 윤형주는 이런 취지로 말한 적도 있다. “많은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트윈폴리오 재결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목소리와 화음이 우리도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송창식, 윤형주, 트윈폴리오야말로 ‘진짜 레전드’다.
04월 02일 스핀 룸과 국민의 분노
이도운 논설위원
미국 선거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스핀(spin)’이다. 특정 현안·상황을 자기 후보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견강부회(牽强附會)·침소봉대(針小棒大)의 결합이다. 예를 들어, 미 유권자 가운데 여성 표가 늘었다고 하면, 힐러리 클린턴 쪽에서는 여성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말하고, 도널드 트럼프 쪽에서는 “힐러리는 여성에게 인기가 없어 오히려 우리 쪽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미국에서 각종 선거 후보들의 TV 토론회가 열리면, 토론회장 옆에 커다란 ‘스핀 룸’이 설치된다. 토론회가 끝나면 후보들과 참모들이 스핀 룸으로 건너와 기자들을 상대로 자기가 더 잘했다고 스핀을 거는 것이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인 지난 2007년 6월 뉴햄프셔주 맨체스터대에서 열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취재했다. 그때도 체육관에 스핀 룸을 설치했는데, 미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민주당 토론회가 끝난 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해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데니스 쿠치니치 오하이오주 하원의원·마이크 그라벨 전 알래스카 상원의원 등 예비후보들에게 직접 한반도 정책을 물었다. 당시 선두를 다투던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바쁜 일정 때문에 스핀 룸에 오지 않았지만, 각각 마크 펜·데이비드 액설로드(훗날 백악관 고문) 등 캠프 최고의 전략가들이 스핀 룸에 와서 한국 등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했다. 미국 방송사들은 토론회가 끝난 뒤 정치 전문 패널들을 등장시켜 누가 승자인지를 따져보고, 긴급 여론조사도 한다. 전문가들은 경선 과정에서는 토론회 영향이 크고, 당 후보가 결정된 다음에는 지지를 잘 바꾸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의 치열한 TV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스핀 룸은 없고, 토론을 중계한 방송사들도 누가 승자인지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중립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사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 등으로 선거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TV토론 승부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아무리 스핀을 걸어도 국민의 분노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04월 05일(월) 최악稅 유감
문희수 논설위원
설탕세가 논란이다. 여당 의원이 당류가 들어간 음료수를 제조·가공·수입하는 회사에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을 부과하는 법안(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제출한 게 발단이다. 설탕세는 비만세(fat tax)의 하나다. 비만세란 비만을 유발하는 고지방 음식품에 부과되는 소비세다.
비만세는 미국·유럽에선 오래전부터 논란이었다. 특히 덴마크의 실패 사례가 유명하다. 덴마크는 2011년 10월 세계 최초로 비만세를 도입했다가 1년 만에 폐지했다. 육류·버터·치즈 등 포화지방 함유량이 일정 비율 이상인 식품에 정액세를 부과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해당 식품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세금이 없어 가격이 싼 인접 국가로 가 원정 쇼핑을 했다. 이런 비용만 한화로 조 단위나 됐다고 한다. 여기에 가격이 비싸진 해당 식품을 생산하는 덴마크 내 식품산업이 위축돼 고용 감소까지 촉발했다.
비만세 같은 세금을 ‘죄악세’라고 부른다. 주로 술·담배·마약 등이 대상이다. 육류세, 국내의 담뱃세도 이에 속한다. 죄악세는 명분이야 분명하고 착하지만, 정작 실효성은 의문인 사례가 많다. 또 죄악세는 간접세여서 저소득층일수록 오히려 세금 부담이 커 처분가능소득이 더 많이 줄어들어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패스트푸드는 늘 비만세의 유력한 대상이지만, 저소득층일수록 많이 먹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결과가 된다. 세금을 회피하는 각종 수법이 생기고, 거래가 음성화돼 지하경제가 커질 우려도 있다.
세금은 통상 역효과를 부른다. 설탕세 취지가 국민 건강이라면, 세금을 신설해 특정 품목 소비를 줄이려는 것보다 소비를 건강에 좋은 품목으로 유도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법인 이익의 1%를 거둬 청년 고용을 늘리자는 청년세 논란도 비슷하다. 진정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라면 세금 일자리보다 기업 일자리를 늘리게 하는 게 훨씬 낫다. 명분이 좋다고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도 덴마크는 비만세가 실효성이 없다는 게 확인돼 1년 만에 폐지했지만, 한국에선 효과가 없다는 게 입증돼도 버젓이 존속하는 법률이 한두 개가 아니다. 특히 문제가 있는 세금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옳다. 지상 천국을 만들자며 천국세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04월 06일 노벨평화상의 저주
이미숙 논설위원
노벨평화상은 국제 평화에 공헌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어지는 최고 권위의 상이지만 근래 들어 선정 잡음으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상 후 평화가 깨지거나 상황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아 ‘노벨평화상의 저주’란 말까지 생겨났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1973년 수상자다. 베트남 평화협정을 체결한 공로로 선정됐는데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하면서 그의 수상은 치욕의 상징이 됐다. 평화 협상의 북베트남 대표였던 레둑토가 공동 수상자였는데, 그는 수상을 거부했다.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에 성공해 1978년 수상했지만 독재 정치를 일삼은 끝에 암살됐다.
최근 에티오피아와 미얀마를 보면 노벨평화상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속설을 재확인시켜준다.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2019년 수상자다. 2018년 집권 후 정치범 석방, 언론 자유화 등 민주개혁에 나서면서 인접 에리트레아와 국경분쟁을 해결했다는 게 선정 이유다. 그러나 최근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의 내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집단학살과 성폭력을 방치해 인도주의적 위기를 촉발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 여사는 1991년 수상자인데 국가고문으로 국정을 이끌며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토벌을 두둔해 국제적 비난을 샀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후 저항 시위를 유혈 진압해 내전 상태로 접어들었다. 미얀마 평화는 머나먼 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여세를 몰아 수상했는데 5억 달러 대북 불법송금 사실이 드러나며 북한에 핵 개발비를 대준 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8년 판문점 회담 후 문재인 정부에서 노벨평화상 프로젝트가 추진됐다는 얘기가 있다. 당시 노르웨이로부터 아그레망까지 받은 인사가 부임 전 돌연 사퇴하자 평화상 추진에 대한 압박 때문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돌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싱가포르 회담 후 군침을 흘렸는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트럼프 측 요청으로 그를 노벨위원회에 추천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상했다면, 노벨평화상은 간판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쇼는 세계평화를 파괴할 ‘핵’ 과시용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04월 07일 총리와 대권 징크스
이현종 논설위원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청와대는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깝다. 공간적인 거리는 아주 가깝지만, 정치적으로는 무척 멀다. 역대 대통령에 도전했던 여러 총리 중에 아직 성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정세균 총리는 문 대통령의 두 번째 총리다. 정 총리는 7일 재·보궐선거 직후 사퇴하고 대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같은 호남 출신이자 직전 총리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대통령만 빼고 국회의원, 장관, 당 대표, 국회의장까지 거쳤다. 지난해 1월 임명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져 노란 점퍼를 벗어본 적이 없는 정 총리는 자신의 이름을 빗대 ‘세균 잡는 총리’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지만, 자칫 ‘세균도 못 잡은 세균’ 얘기를 듣게 생겼다.
민주화 이후 청와대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은 이회창 전 총리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대쪽 총리’ 이미지를 쌓았고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정치인으로 입성했다. 당도 ‘이회창 대세론’에 힘입어 순탄하게 장악했지만, 1997년 출마한 15대 대선에서 아들 병역 문제가 터지고 DJP 연합을 이끌어낸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39만 표 차로 무릎을 꿇었다. 16, 17대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더 멀어졌다.
‘행정의 달인’ 별명의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 됐을 때 공백을 잘 메꾸면서 일약 대선 후보로 떠올랐지만 노 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라는 한마디 평에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도전을 포기했다. 이해찬 전 총리도 당내 경선에 나섰으나 노 전 대통령 인기가 급락하면서 동반 하락해 정동영, 손학규에 이어 3위를 기록, 본선에 나서지도 못했다. 황교안 전 총리도 ‘박근혜 탄핵’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데 다 지난해 4·15 총선 참패 책임으로 정계 복귀조차 어렵게 됐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인 이낙연 전 대표는 문 대통령 인기에 편승, 대권 후보 1위를 달리다 당으로 오면서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밀리더니 이젠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도 밀려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총리 출신의 대권 도전이 어려운 것은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인데다 주군(主君)의 후광 이미지가 강해 인기가 떨어지면 동반 하락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낙연·정세균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04월 08일 권력자의 ‘마음’
이신우 논설고문
불교 교리 해석은 중관학(中觀學)과 유식학(唯識學)이 양대 산맥을 이룬다. 일체 사물은 연기(緣起)로 이뤄진 만큼 공(空) 즉, 실체가 없다는 중관학과 달리 유식학은 식(識)의 실재를 인정한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마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마음에 의해 현상계가 창조되며, 실현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작가 김규항 씨가 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제목을 ‘정치가 저 꼴인 이유’라고 달았다. ‘저 꼴’의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를 유식학 차원에서 해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 정권에서 벌어지는 목불인견의 정신적 타락과 부패 현상은 최고 권력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세계관과 인생관, 즉 ‘마음’이 세상에 펼쳐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생기면 여러 법(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여러 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법’은 사물이나 의식세계 모든 것을 지칭한다.
그럼 작금의 청와대와 집권당에서 그 법이 어떻게 생기고 펼쳐지는지를 들여다보자. 평소라면 국민이 법무부 장관의 이름을 쉽게 접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 문 정권에서는 조국-추미애-박범계로 이어지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국민의 기억지수가 갑자기 높아진 건지 아니면 경악지수가 높아진 것인지 수수께끼다. 남들에게는 ‘가붕개’로 살라면서 자기 자식은 의사로 만들기 위해 불법 문서 위조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전·월세 상한선을 5%로 제한한다는 임대차법으로 국민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장본인도 이 정권 실세들이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대차법 시행 직전 자기 집 세입자의 임대료를 무려 14∼20%대로 올려 받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놓고 갈취한 윤미향, 부동산 둔갑술의 달인 김의겸은 권력자의 은총에 힘입어 국회로 진입했다.
이뿐일까. 문 정부 권력 주변에는 김정은·시진핑 숭배자, 기회주의 페미니스트, 선택적 환경론자, 사이비 시민단체로 가득 차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이 벅찰 정도다. 문 대통령 집권 이후 유독 심하게 나타나는 이런 특이성 신드롬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유식학을 통해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헤아릴 뿐이다.
04월 09일 장덕 노래비
김종호 논설고문
‘속절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야/ 세월 가도 모르는 게 사랑이야/ 안개처럼 가리워진 마음이야/ 샛별처럼 빛나는 게 사랑이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듣고 싶은 말 말 말’. 요절한 천재 싱어송라이터 장덕(1961∼1990)이 오빠 장현(1956∼1990)과 결성해 ‘한국의 카펜터즈’로도 불린 듀엣 현이와덕이의 1985년 앨범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 타이틀 곡 첫 부분이다. 장덕이 이혼한 부모는 물론 오빠와도 떨어져 살던 중학교 2학년 때 작사·작곡했으나, 안양예고 재학 중이던 1977년 송창식 권유대로 제1회 서울가요제에 나가는 진미령에게 부르게 하고 자신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소녀와 가로등’의 시작은 이렇다. ‘조용한 밤이었어요/ 너무나 조용했어요/ 창가에 소녀 혼자서/ 외로이 서 있었지요/ 밤하늘 바라보았죠/ 별 하나 없는 하늘을/ 그리곤 울어 버렸죠/ 아무도 모르게요’.
삶의 파란곡절이 많았던 그의 1987년 노래 ‘이별인 줄 알았어요’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순간이/ 다시 못 올 줄 알았어요/ 눈물 흘리면서 돌아서는/ 연인들처럼/ 이별인 줄 알았어요/ 거리엔 벌써 찬바람이 불어와/ 내 작은 마음 설레게 해/ 누군가 내게 가만히 속삭여 주네/ 나는 너를 사랑해’. 그가 만들어 혼자 또는 오빠와 함께 부른 명곡은 이 밖에도 많다. ‘님 떠난 후’ ‘예정된 시간을 위해’ ‘뒤늦은 후회’ ‘날 찾지 말아요’ ‘작은 소녀의 사랑 이야기’ 등.
영화와 TV 드라마 주연 배우 등으로도 활동하던 그는 오빠의 설암 투병을 헌신적으로 도우다, 감기·기관지확장증·불면증 약의 과다 복용으로 오빠보다 6개월 앞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그가 출연한 마지막 TV 드라마 ‘구리반지’ 촬영지인 경기 가평군 남이섬 주변 북한강에 뿌려졌다. 그의 노래비가 지난해 12월 남이섬 노래박물관 앞에 건립되고도 코로나19 사태로 그의 31주기(周忌)인 지난 2월 4일로 미뤄졌다 또 연기된 현지 추모 행사가 오는 21일인 생일을 앞두고 17일 ‘소녀와 가로등’ 제목의 작은 콘서트 형식으로 열린다. 그의 명곡을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부르는 ‘장덕 트리뷰트 프로젝트’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의 팬클럽 ‘장덕-우리와함께’ 외에도 많은 사람이 반가워한다.
04월 12일(월) ‘내로남불(naeronambul)’ 유감
황성규 논설위원
4·7 선거 결과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 자 기사에서 내로남불(naeronambul)이란 한국의 유행어까지 소개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풀이도 있다. 이 표현은, 작가 이문열이 1987년 소설 ‘구로아리랑’에서 “남한테 안 들키믄 로맨스고, 들키믄 스캔들”이라고 하기 전부터 대학가에서 쓰이고 있었다. 이후 여의도 정가에 틈입해서는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는 말과 함께 예술-외설과 오락-도박 등의 파생어를 낳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투영된 채 오늘날에는 아전인수·이중잣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어원을 모르는 이들은, 즉석에서 지은 두운(頭韻) 4행시 같은 내로남불이란 말을 대하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원어로 표기하면 ‘내ro(mance)남不’이어서 혼란스러운 탓이다. 굳이 로맨스를 고집한다면 불륜을 스캔들로 치환해 ‘내로남스’라고 했어야 옳다. 또, 불륜을 강조하려면 로맨스를 연애로 바꿔 ‘내연남불’이라 해야 더 잘 어울린다. 연애(戀愛)란 메이지(明治)시대에 영어 러브(love)를 대체해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번역어연구가 야나부 아키라(柳父章)는 ‘일본의 전통에 없던 낯선 관념’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로맨스 대체어로도 억지스럽진 않다.
‘근본’ 없는 속어 내로남불을 대체하기 위해 급조된 말이 아시타비(我是他非)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2020년의 사자성어다. 이 표현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1980년대 운동권 조어 아방타방(我方他方)에 대입해 ‘타’를 살리려면 ‘아’ 대신 ‘자(自)’를 써서 자시타비라고 해야 한다. 결국, 다른 사람 인(人) 또는 너 여(汝) 자를 쓴 아시인비 또는 아시여비가 더 자연스럽다.
웹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내로남불이라는 표제어가 없으나 우리말샘에는 이미 올라 있다. 표준어가 되기 직전인 이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기엔 늦었다는 뜻이다. 나와 남으로 갈라치기 해 놓고 시비를 가르는 위선적인 정치인과 그 주변 세력들로 인해 만들어진 내로남불은 조어법상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말, 시쳇말로 귀태어(鬼胎語)다. 자랑스럽지 못한 코드 문화가 담긴 유행어가 한국발 외래어로 국외 언론에 소개되는 현실을 지켜보는 ‘교양 있는’ 국민은 지금 마음이 편치 않다.
04월 13일 오적(五賊)
이도운 논설위원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할 때 찬성 또는 묵인한 대한제국 대신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내부대신 이지용·군부대신 이근택·외부대신 박제순·학부대신 이완용·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다. 나라를 팔아먹었기에 도둑이라는 뜻의 적(賊)자를 붙였다. 을사오적은 나라와 동족을 판 대가로 일본 귀족 칭호를 받으면서 권력과 부를 누렸다. 을사조약은 1907년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는 정미조약,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는 경술국치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추가로 가담한 정미 7적, 경술 9적 명단도 있다. 세 명단에 빠지지 않은 인물이 이완용으로, 그가 이 나라의 대표 매국노로 기록된 배경이다.
오적은 1970년 김지하의 시로 다시 소환된다. 저항 시인 김지하가 사상계에 판소리를 계승한 담시(譚詩)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를 발표했는데, 그 제목이 오적이었다. 김지하는 민족 반역자 대신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도둑으로 지칭했다. 1960년대 후반 국민 다수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 개발 독재 과정에서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한 대표적 인물과 직업군을 비판한 것이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로 시작하는 오적을 게재한 사상계 5월 호는 발간한 5000부가 모두 팔렸다. 그러나 곧 사상계는 폐간됐고, 김지하와 편집인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을사오적과 김지하 오적의 영향을 받은 듯, 이후 사회 곳곳에서 3적, 5적 등이 일반적 용어가 됐다. 2011년 미디어법 통과 후 야당에서 언론 5적이란 명단이 나돌았고,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탄핵 7적이 지목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국가 대표 축구팀이 졸전 끝에 패할 때마다 ‘대 일본 전 3적’ 등 각종 명단이 인터넷 댓글창을 달구기도 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를 한 뒤 사과문을 발표한 2030 초선의원 5명을 친문 지지자들이 ‘초선 5적’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친문 지지자들은 이들의 전화 번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문자 폭탄, 댓글 등 ‘양념’을 유도한 것이다. 결국 초선의원들은 사과문을 물타기 하고, 당연히 해야 했던 쇄신 노력도 거두려 하고 있다. 오적 역할도 제대로 못 하는 듯하다.
04월 14일 진달래와 북한중독증
이미숙 논설위원
진달래는 4·19혁명의 상징 꽃처럼 인식된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그날 쓰러져간 젊음 같은 꽃 사태가’로 시작되는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의 동명 시 덕분이다. ‘진달래-다시 4·19날에’는 시조집 ‘석류’(1968)에 수록됐는데 작곡가 한태근이 곡을 붙이면서 대학가 저항가요로도 사랑받았다. 여기서 진달래는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시민을 상징한다. 북한에서 진달래는 조국의 꽃으로 추앙된다. 일제강점기 김일성 빨치산 부대가 만주에서 함경도로 진격할 때 산야에 핀 진달래를 보면서 “진달래 내 조국아”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퍼지면서 진달래는 김일성 상징화가 됐다.
1970년대 초연된 북한 무용극 ‘조국의 진달래’에는 항일 유격대 시절 김일성이 진달래를 보고 감격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해방 후 좌익 운동가들에게 진달래는 ‘붉은 조국’ 북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최근 출간된 원로 작가 유익서의 장편소설 ‘진달래꽃’은 지주 출신 남로당원 김병산 부부가 겪은 해방 후 투쟁과 북한 체제를 부인 최은희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남편이 남로당 투쟁 중 체포돼 6·25 직후 광주교도소에서 처형되자 최은희는 월북하는데, 그곳은 공산주의 이상과 거리가 먼 김일성 일파의 지배 세상이었다. 혁명에 회의를 느끼게 된 그는 남편을 생각하며 이렇게 독백한다. “혁명운동에 헌신하다 죽은 당신은 진달래꽃 같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당신은 숭배를 강요하는 독재자를 위해 희생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저세상으로 간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
4·19와 5·16 이후 간첩으로 남파된 최은희는 혼란스럽지만 자유로운 한국을 보며 실존적 갈등에 빠진 채 이렇게 말한다. “북으로 가려니 저주스러운 기억이 벌떼처럼 덤벼들고, 그렇다고 땅을 파고 묻힐 수도, 제3국으로 도피할 수도 없어 울었다.” 그리고 그는 ‘태백산맥’의 염상진, ‘광장’의 이명준과 달리 자수의 길을 택한다. 북한은 더 이상 남편이 사랑했던 진달래의 조국이 아니었기에 그는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최은희는 60년 전 이미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본질을 간파했는데, 한국엔 여전히 북한을 이념의 조국으로 여기는 ‘북한 중독’ 몽상가가 너무 많은 것 같다.
04월 15일 전기차와 탈원전의 충돌
문희수 논설위원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각국의 환경규제 강화에 대응한 친환경차로 각광받으며 가솔린·경유 등 전통 깊은 내연기관차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세계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 코로나 와중에도 44.6% 증가했다. 전체 판매의 거의 70%가 배터리 전기차였다.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2.2%에서 3.6%로 확대됐다. 블룸버그는 신차시장에서 전기차 비중이 2025년 10%, 2030년 28%, 2040년 58%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년 뒤엔 전기차가 대세가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의 전기차 전환은 더 빠르다. 세계 1위인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전체 신차의 절반인 500만 대를 전기차로 만들어 전기차 선두인 테슬라를 따라잡으려 한다. 미국 GM·포드, 독일 BMW 등도 2030년까지 전기차 생산 비중을 50%에서 100%까지로 늘릴 계획이다.
전기차는 핵심인 배터리 등의 기술 발전으로 완전 충전 시 주행거리,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제로백) 등을 빠르게 해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에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지원으로 가격이 3000만 원대 후반으로 낮춰진 것도 매력적이다. 연료비가 내연기관차보다 40%에서 최대 70%나 싸고, 차 부품도 40% 가까이 적어 유지·관리비가 덜 드는 등 장점이 많다. 그러나 충전소 부족 등 취약한 인프라가 가장 큰 문제다. 긴 충전시간도 여전히 과제다. 보조금이 없어지면 가격도 문제가 될 것이다.
전기차의 동력인 전력은 역설이 있다. 전기차가 늘수록 전력 공급도 늘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화석 연료를 이용한 발전 비중이 높기 때문에 친환경차를 많이 쓸수록 환경 저해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탈원전을 추종하는 현 정부엔 더욱 모순이다. 이런 까닭에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쓰는 수소차가 진정한 친환경차라는 주장은 일리 있다. 물(H2O) 외엔 배출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수소차도 충전소 등 인프라가 걸림돌이다. 여기엔 폭발 위험성이 크다는 공포감이 작용한다. 수소 저장용기가 강철보다 10배 강한 탄소복합섬유로 만들어지고, 충전소는 3중 안전장치까지 갖춰 가장 안전하다는 과학적 설명은 먹히지 않는다.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인간의 과학 지력은 따라가지 못한다.
04월 16일 新40대 기수론
이현종 논설위원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를 넘어 여러 측면의 정치사적 의미도 갖는다. 첫째 ‘스윙보터’의 변화다. 미국은 공화·민주 양당이 45% 정도씩 지지를 받고, 그래서 10%의 스윙보터가 승패를 좌우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30∼40%를 스윙보터로 보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50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 20∼40대는 진보 우위, 60대 이상은 보수 우위였는데, 그 중간인 50대의 표심이 결과를 좌우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2030이 60대 이상과 야당 지지 동조 현상을 보이면서 확실한 스윙보터로 자리 잡았다.
둘째, 세대교체의 바람이다. 2030의 정치적 발언권이 강해지면서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 리더가 뜨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여야 모두 젊은 초선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30대 초선 5인방이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당 안팎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더 적극적이다. ‘초선 당 대표론’이 부상하면서 1970년생인 검사 출신의 김웅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보수 정당에서 초선이 당 대표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5선의 서병수 의원은 당 대표 불출마를 밝히며 “젊은 미래 세대가 새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1970년대 김대중·김영삼·이철승이 40대 기수론으로 파란을 일으켰던 것에 비춰 ‘신(新) 40대 기수론’이라 부를 만하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43세에 총리가 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0세에 등장했던 것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 유세 연단에 자발적으로 나섰던 20대 청년들은 정연한 논리와 힘 있는 연설로 SNS 등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셋째, 보수·진보 이념 및 지역 대결이 약해지면서 ‘실용’이 부상했다. 진영 논리가 지배했던 선거 판도가 이젠 현안 해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좌우된다. 부동산, 방역, 세금 등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이 핵심으로 등장했다. 진영 논리보다는 어느 정당이든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스윙보터의 지지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런 의미 있는 변화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도 지속될지 미지수지만 어쨌든 정치권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04월 19일 가짜뉴스의 진짜 주범
이신우 논설고문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보궐 선거의 패배 원인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편향되고 왜곡된 언론 때문이라는 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낙연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언론들의 보도 태도가 한번은 검증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열린민주당의 최강욱 의원은 더 호기롭다. “언론개혁은 분리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다음 세대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끝장을 보겠다.” 이 대표는 얼마 전에도 “악의적 보도와 가짜 뉴스는 사회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라면서 “언론개혁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언론 보도와 가짜 뉴스는 현 정권의 적폐 1호쯤 된다.
가짜 뉴스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많은 나라의 정당이나 정부가 가짜 뉴스 매입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옥스퍼드 인터넷 인스티튜트(OII)’에 따르면 수많은 광고·마케팅·홍보회사들이 온라인 여론 조작을 위한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이를 각국 정치권에 내다 팔고 있다. 일례로 페이스북은 엘살바도르·아르헨티나·우루과이·베네수엘라·에콰도르·칠레 등의 선거 캠페인에 동원됐던 캐나다 가짜 뉴스 용역회사의 페이스북 사용을 차단했다고 밝혔다.(파이낸셜 타임스 1월 14일 자)
하지만 가짜 뉴스 원조를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코 대한민국을 꼽겠다.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뒷받침한 드루킹은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쏟아진 가짜 뉴스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최순실 일가 재산 10조 원’을 주장한 정치인은 과연 어느 당 소속이었을까. 주진우의 ‘박 대통령 섹스 관련 테이프’ 이야기는 한때 민주당 지지 남성들을 설레게(?) 했다. 김어준의 ‘세월호 고의 침몰설’도 빼놓기 어렵다. 경북 성주에 사드 기지가 배치되자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성주로 몰려가 ‘전자파 튀김 참외’를 규탄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총 1368명이 사망했다”며 구체적 숫자까지 밝혔다. 물론 당시에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가짜 뉴스에 관한 민주당 쪽의 과민 반응을 이해할 만하다. 자기네가 집권 세력을 공격할 때 벌인 ‘가짜 뉴스 파티’가 얼마나 파괴적인 효과를 발휘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04월 20일 김기완·김기민 발레
김종호 논설고문
‘그의 춤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보고 있으면 누구나 넋을 잃고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인간은 역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존재라고도 생각하게 된다. 공연의 막이 내리고 커튼콜이 시작돼서야 비로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어느 외교관이 발표한 글 ‘아름다운 댄서 김기민, 러시아와 세계를 홀리다’의 한 대목이다. 김기민(29)은 세계 5대 발레단 중의 하나로, 볼쇼이발레단과 함께 ‘러시아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마린스키발레단에 동양인 남자 최초로 2011년 입단했고, 2015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을 추며 뛰어올라 체공하는 시간이 남달리 길어서, 별명이 ‘우주’라는 뜻의 ‘코스모스(cosmos)’다.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한국 남성 최초로 2016년에 수상한 바도 있다. 그 상을 받은 그의 춤은 2015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선보인 ‘인도의 무희’라는 의미의 클래식 발레 ‘라 바야데르’ 주역인 용맹한 전사(戰士) 솔로르 역할이었다.
그 뒤로 그의 춤에 매료된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나탈리야 마카로바는 이런 극찬도 했다. “천재 무용수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힘과 놀라운 테크닉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그의 모든 움직임에는 감동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 김기민이 “가장 존경하는 무용수”가 친형인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32)이다. 발레를 함께 시작했다. 역시 세계 정상급인 형을 두고,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탱해주고, 내가 늘 기댈 수 있는 정신적 지주”라고 한다. 김기완은 동생에 대해 “내게 영감을 주고, 자극이 되기도 한다. 내 모습이 비쳐 보이는 거울 같은 존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같은 느낌을 공유하려고 한다”고 한다.
국립발레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의 주역으로 두 차례 출연이 예고됐던 김기민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2주 자가격리’ 규정을 지키기 어려운 일정이어서 방한이 결국 무산됐다. 크게 아쉽다. 하지만 김기완은 예정대로 첫날과 5월 1일 무대에 나선다. 국립발레단의 다른 수석무용수 허서명·박종석 등의 솔로르 역도 기대할 만하다.
04월 21일 ‘월광’ 대변인
이현종 논설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을 한 지난 1월 20일 젠 사키(43) 신임 백악관 대변인은 첫 브리핑에 나섰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터라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30분 만에 31개의 질문을 받은 사키 대변인은 질문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했다. 한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의 순방 일정이 정해졌느냐”고 질문하자 사키 대변인은 “취임 7시간밖에 안 됐는데 해외 출장 준비요? 적어도 나는 준비됐어요”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키 대변인은 질문하는 기자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브리핑을 진행해 합격점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세 번째 대변인이었던 스테퍼니 그리셤은 9개월여 동안 한 번도 브리핑을 하지 않았고, 마지막 대변인인 케일리 매커내니는 질문하는 CNN 기자의 반 트럼프 성향을 문제 삼아 “답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브리핑장을 나가버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기자들은 “이제 백악관이 정상을 되찾았다”고 칭찬했다.
2002 월드컵 대표 출신인 이영표 강원 FC 대표는 “월드컵은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16일 언론인 출신인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후임으로 임명된 신임 박경미 대변인의 첫 소개 행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사키 대변인과 크게 달랐다.
박 대변인의 상관인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에게 “신임 박 대변인이 한쪽 분야(교육비서관)만 맡다가 전 분야를 취급하게 돼 당분간 현안 질의는 제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복잡한 사안을 대변인에게 질의하면 당황할 수 있으니 밀월 기간을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질문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만큼 여유 있는 자리가 아니다. 훈련소가 아니라 전장(戰場)이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 주말에 기모란 방역기획관의 임명을 놓고 언론의 비판이 집중됐다. 또, 박 대변인은 청와대 들어오기 전 유튜브에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성정과 닮았다는 ‘아부성’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소통을 밥 먹듯 얘기하지만 이런 준비성으로 기자들과 소통하겠다고 나서니 ‘불통’ 정권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청와대 대변인은 연습이 아닌 국민에게 증명해 보이는 자리다.
04월 22일 전동킥보드法 조령모개
문희수 논설위원
전동 킥보드 이용자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고 한다. 국회가 불과 5개월 사이에 정반대로 법 개정과 재개정을 한 탓에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규제가 풀렸다가 다시 강화되기 때문이다.
처음 법 개정이 잘못이었다. 국회가 지난해 5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소형 오토바이처럼 취급하던 전동 킥보드를 자전거 수준 비슷하게 규제를 풀어 그해 12월 10일부터 만 13세 이상이면 운전면허 없이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중고생 등 10대와 20대 중심으로 사고가 급증했다. 사실 킥보드가 시속 25㎞면 자전거보다 훨씬 빠른데, 아이들이 면허 없이 헬멧도 안 쓰고 타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연히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개정법은 제20대 국회 마지막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던 2020년 5월 19일 전혜숙 당시 위원장의 대안 입법으로 이뤄졌다. 21대 국회 들어 행안위 위원장 역시 같은 당 의원이었다. 행안위는 시행 한 달만인 올 1월 12일 법을 재개정해 운전면허를 가진 만 16세 이상만 탈 수 있게 원위치시켜 내달 13일부터 시행토록 했다.
엉터리 입법으로 국민은 큰 비용을 치르게 됐다. 전동 킥보드는 중고품도 몇십만 원이다. 공유 킥보드도 많지만, 중고생 자녀의 성화에 자비로 구입했던 가정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5개월 만에 규제가 원위치됐으니 애써 산 킥보드를 몇 년간 구석에 처박아 두게 생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면허 운전·헬멧 미착용·2인 이상 탑승 등엔 지금은 없는 범칙금이 부과된다. 특히 13세 이상∼15세 이하가 타는 것은 현재는 허용되지만, 앞으로는 부모가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내달부터 규정이 다시 바뀌어 규제가 강화되는 것을 잘 모른다고 한다. 헷갈리기도 한다. 내달부터 규정 위반이 속출하며 과태료를 줄줄이 낼 판이다.
문제의 킥보드 규정 개정은 대단한 전문성이 요구되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법안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국회의 입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엉터리 법이 만들어지는 이면엔 대개 석연치 않은 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거대 여당의 입법 폭주 속에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졸속 입법이 어디 한두 개뿐이겠는가. 무능 국회에 국민만 고생한다.
04월 24일 김일성 회고록과 히틀러 자서전
이미숙 논설위원
금단의 주제인 김일성을 학술 연구 대상으로 삼은 첫 학자는 서대숙(90) 하와이대 명예교수다. 컬럼비아대에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1988)’을 펴냈다. 서 교수의 책은 1989년 국내에서 출간됐는데 번역자는 서주석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다. 김일성의 항일운동 관여와 북한에서의 권력 장악 과정을 객관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을 지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전문가로 꼽힌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연구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는 김일성 가짜설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해 선보인 ‘김일성 1912∼1945’는 조선족 관점에서 쓰인 연구서다. 조선족인 유순호(62) 씨는 만주 일대를 20년 가까이 답사한 끝에 전 3권의 김일성 연구서를 펴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전 8권)가 최근 국내에서 출간됐다. 김일성이 80세 생일을 맞은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북한이 발간한 것을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이 그대로 펴냈다. 북한판 회고록을 국내 출판사가 리프린트를 한 셈이다.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의 출생부터 1945년까지의 활동을 담은 것으로 유 씨의 연구서와 다룬 시기가 겹친다. 그러나 북한이 대외선전용으로 발간한 책인 데다 만주 항일투쟁도 김일성 중심으로 미화했다는 비판이 많다. 유 씨는 연구서에서 “김일성이 항일투쟁을 한 것은 사실이나, 북한은 이를 뻥튀기했다”고 주장한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15년 아돌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재출간 결정 때 비판적 시각을 담은 학술적 주해(註解)를 곁들이도록 하면서 일반의 접근도 제한했다. ‘나의 투쟁’이 신나치 선전용 책자로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나의 투쟁’ 저작권 70년 시한이 다가오자 독일 법무 당국이 반선동법을 적용, 무비판적인 출간을 차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8월 ‘세기와 더불어’를 이적 표현물로 판결한 바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에서는 버젓이 출간됐다. 유 씨에 따르면 ‘세기와 더불어’의 왜곡·과장 부분은 100곳이 넘는다. 이제 북한 체제 선전물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교과서에까지 실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04월 26일(월) 공수처장의 곡학(曲學)
이신우 논설고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사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데다, 특수통 검사 출신조차 끌어들이지 못하면서 세간에서는 수사 기능이나 제대로 발휘하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거론하며 자신 있게 반박했다. “그림을 보면 13명의 사람이 있다. 그 13명이 세상을 바꿨다. 저는 13명이면 충분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뭐 그럴 수도…, 하지만 필자의 시선을 더 끈 것은 김 처장의 다음 발언이었다. “(검사 13명이) 무학(無學)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들보다는 훨씬 양호하지 않겠느냐”는 대목이었다.
고작 어부들이 무슨 배움이 있었겠느냐는 판단이겠으나 크게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예수의 제자 안드레와 빌립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리스인들과 헬라어로 대화(요한 12장)할 정도로 고급문화에 익숙한 편이었다. 어부인 시몬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와 이웃집 형제인 야곱, 요한과 함께 두 척의 배를 굴리며 물고기를 잡던 선주 겸 어부(누가 5장)였다. 예수가 야곱과 요한을 불렀을 때 그들은 집안의 ‘품꾼’들과 함께 그물을 깁고 있었다(마가 1장).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 갈릴리인들의 기본적인 식사가 빵과 생선이었고, 특히 훈제 생선 한 수레의 가격은 ‘양 100마리와 맞먹는다’고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기록했을 정도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최소한 당시의 중산층 가정 출신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세계사에서 혁명 역사를 읽다 보면 주체 세력의 거의 대부분이 중산층 출신들로 묘사된다. 혁명가 예수의 제자들 역시 중산층들이 가질 만한 사회의식에 충만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이들은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물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럼, 공수처의 13명 검사는 타인을 함부로 무학이라고 깔보는 김진욱 처장과의 만남을 통해 어떤 어부로 성장할 수 있을까? 13명 검사 가운데 과연 누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는 어부 베드로의 문장력을 구사할 수 있을까. 집단지성은커녕 곡학(曲學)이나 일삼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닌 듯하다.
04월 27일 면책특권의 타락
이도운 논설위원
면책특권은 의회에서 의원이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하기 위해 생긴 제도다. 1689년 영국이 권리장전 1장 5항 1호를 통해 처음 의원의 언론 자유를 보장했고, 미국은 1771년 연방 헌법 1조 6항 1호를 통해 의원의 특권을 인정했다. 대한민국 헌법도 45조에서 국회의원의 발언에 대한 형사·민사 책임 면제를 규정했다.
의원 면책특권은 외교관 면책특권으로 발전한다. 한 나라를 대표해 다른 나라에 주재하는 외교관에게 신체불가침·형사재판 관할권 및 조세 면제 등 특권을 부여한 것은 그리스 시대 이래 국제 관계의 관습이었으나, 1961년 ‘외교 관계에 대한 빈 협약’을 통해 처음 국제조약으로 완성됐다. 특히 냉전 시대 서방과 공산 진영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면서 외교관들이 테러와 협박·도청·회유에 노출된 상황이 반영되기도 했다. 현재 아프리카의 독재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엔 회원국이 비준해 국제 관계의 초석이 됐다.
그런데 외교관의 면책 특권이 외교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남발돼 각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외교관의 면책 특권은 ‘외교 행낭’에도 해당되는 점을 악용해 마약이나 밀수품, 위조 달러를 본국과 주고받는 나라도 있다. 또, 외교와 직접 관련 없는 배우자·공관 직원 등이 주재국에서 폭행, 음주운전, 성추행 사건을 저지른 뒤 면책특권을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벨기에 대사 부인이 서울 한남동 옷가게 직원의 뺨을 때리는가 하면, 파키스탄 대사관 직원 2명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났지만 처벌받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누구를 위한 면책특권이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면책특권의 역사는 민주주의 역사다. 1624년 영국의 존 엘리엇 의원이 의정 활동 권리와 자유를 요구하는 연설을 하자, 찰스 1세 왕은 그를 런던탑에 투옥했다. 의회는 업무 거부 등 투쟁을 벌였다. 석방된 엘리엇이 왕의 과세권과 시민에 대한 인신 구속을 제한하는 권리청원을 주도하자 찰스 1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엘리엇 등을 다시 런던탑에 가뒀다. 엘리엇은 감옥에서 사망했지만, 투쟁은 계속돼 청교도·명예혁명을 거쳐 권리장전 채택에 이르렀다. 벨기에 대사 부인은 면책의 특권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면책의 역사 공부부터 해야 할 것이다.
04월 28일 박미경 ‘민들레 홀씨’
김종호 논설고문
봄바람 불고 들녘에 아지랑이 아롱거리면, 길가에 무심하게 자라는 풀 한 포기도, 야생화 한 송이도 왠지 모르게 가슴을 흔든다. 상상력을 확장하게 하며, 그림·시·노래 등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민들레는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다. 맑고 힘차면서 애잔한 음색의 박미경(56)이 부른, 김정신 작사·작곡의 발라드곡 ‘민들레 홀씨 되어’는 봄의 정서와 함께 까닭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몰고 오기도 한다. 이렇게 시작한다.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산등성이의 해 질 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 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서울예술대 국악과 재학 중이던 박미경이 1985년 제6회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장려상을 받았던 데뷔곡이기도 하다. 그는 이듬해에 방송 드라마 ‘풀잎마다 이슬’ 주제가도 부르고 더 활동하다가 미국 하와이로 유학해 음악 전문대를 다시 다닌 뒤인 1990년 귀국해 첫 정규 앨범을 내놨다. ‘사랑이 그런 것처럼’ ‘어쩌면’ ‘그대 알고 있는지’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 ‘오늘이 가기 전에’ 등이 담겼다. 발라드·디스코·솔·재즈 등을 넘나드는 시원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여 ‘장르를 초월한 열정의 디바’로도 불리는 그의 명곡 ‘넌 그렇게 살지 마’ ‘집착’ ‘벌’ 등은 후속 앨범들을 통해 잇달아 발표됐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 니가 나를 떠나려 한다면/ 나를 사랑했단 말도/ 모두 연극처럼 느낄 뿐야/ 마음이 변했다면 이유를 대지 마’ 하고 시작하는 노래 ‘이유 같지 않은 이유’도 그중의 하나다. 또 다른 명곡 ‘이브의 경고’는 ‘이제는 알 것 같아 숨겨진 너의 마음을/ 언제나 가볍게 넌 나를 대하고는 했지만/ 니 속에 숨어 있는 너의 그 표독함까지/ 언제나 나를 위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하고 끝난다. 두 곡 모두 김창환 작사, 천성일 작곡이다.
이제 무대 공연이 잦지 않은 박미경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말을 들을 만큼 격정적 춤도, 감성과 성량 풍부한 노래도 여전하다고 한다. 그의 ‘민들레 홀씨 되어’ 등을 들으며, 깊어진 봄을 가슴으로 느끼기에 좋을 시기다.
04월 29일 ‘백신 굼벵이’
황성규 논설위원
굼벵이는 매미의 유충 곧 애벌레나 무당벌레·장수풍뎅이 같은 딱정벌레목의 애벌레다. 굼벵이를 일본에서는 땅벌레 즉 지무시(地蟲·じむし)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지잠(地蠶·땅누에)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매미원숭이라는 뜻으로 찬허우(蟬후)라고 부른다. 굼벵이가 매미로 변신하기 위해 땅속에서 기어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원숭이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한·일·중 삼국의 굼벵이라는 말과 작명에 얽힌 배경은 다르다.
평생을 어두운 땅속에서 사는 굼벵이는 몸통이 굵고 다리가 짧아 동작이 느리다. 그래서 새로운 뜻을 얻었다. 동작이 굼뜨고 느린 사람을 빗대서 이르는 말이다. 굼벵이의 옛날 표기는 ‘굼벙’인데, 지방에 따라서는 굼버지·굼비·구두리라고도 한다. 재미있기로는, 경북 의성 지방에서는 달팽이를 ‘굼뱅이’라고 한다는 사실이다. 달팽이와 굼벵이 사이에는 느리다 또는 굼뜨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국내 매미의 경우 대개 3년이나 5년 만에 허물을 벗고 어른벌레가 되지만, 미국에는 13년 또는 17년 주기로 성충이 되는 종(種)이 있다. 어른이 돼 고작 한 달 남짓 살다 갈 뿐이니 성장 과정은 느림보·굼뜨기다. 굼벵이는 굼적대거나 굼틀대는 미동(微動)의 대명사다. 느림보·굼벵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의 래거드(laggard)는 중국어로도 비슷한 의미로 통한다. 다만, 일본어로는 ‘라가도’인데, 획기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마지막에 받아들이거나 끝까지 수용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난주 뉴욕타임스(NYT)가 K-방역을 자랑하던 한국을, 일본·호주 등과 함께 백신 ‘굼벵이들’이라고 했다. 초기에는 코로나19 우수 대응 국가로 꼽혔지만, 지금은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다며 한 말이다. ‘라가도’라는 일본어 표현이 떠오른다. 외국인들도 한국인 하면 ‘빨리빨리’를 연상하는데 참으로 수치스럽다. 러시아 백신 도입론마저 나오는 지금 ‘백신 굼벵이’ 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는 엄정히 가려야 한다. 또 한 번의 여름을 앞둔 지금, 국민은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불안하고 답답하다. ‘백신 굼벵이’로 인한 마스크 착용 연장은 국민의 입 틀어막기 연장이나 다름없다.
04월 30일(금) 김종인의 네 마리 토끼
이도운 논설위원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국민의힘을 떠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전히 정치판을 휘젓는다. 그의 행보가 워낙 광폭인 데다, 다양한 말을 쏟아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치 전문가들도 궁금해한다. 김 전 위원장의 말과 행동을 종합하면,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것 같다. 어려워 보이지만, 다 잡을 수도, 반대로 다 놓칠 수도 있다.
첫 번째 토끼는 국민의힘. 어려운 선거를 큰 승리로 이끌었으면, 당연히 대표로 추대하라는 것. 그래서 상임고문도 거절했다. 그런데 아직 연락이 없다. 초선 의원 일부가 김 전 위원장과 날마다 소통하며, 당 분위기도 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내대표 경선에 이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로 가는 분위기여서 김 전 위원장 추대는 일단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야당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윤 전 총장의 대선 가도에 멘토가 되겠다는 것. 다른 정치인을 후하게 평가하는 것이 매우 드문 김 전 위원장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거나 “책도 많이 읽어 다른 검사와는 다르다”고 칭찬했는데도, 아직 연락이 없다. 옆구리 찔러도 절을 받지 못하자 김 전 위원장은 슬슬 윤 전 총장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출마를 못 할 수도 있으니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대안도 검토한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윤 전 총장이 김 전 위원장을 어떻게 보는지가 관건이다. 셋째, 개헌. 최근 인터뷰에서 대통령제의 한계를 부각하며 의원내각제 등 개헌 필요성을 강조한다. 대선 후보를 돕겠다면서 개헌도 추진하는 것은 모순적. 그러나 대통령 될 가능성이 희박한 여야 중진들과 정치적 이해가 일치한다. 문제는 유력 대선 후보들은 물론 가장 중요한 국민이 관심 없다는 것. 넷째, 김종인의 별의 순간. 김 전 위원장 보기에, 현재 거론되는 대선 후보들은 모두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나설 생각도 할 수 있다. 2017년 대선 때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가 일주일 만에 접었다.
최근 휴식차 제주도를 방문한 김 전 위원장을 만난 원희룡 제주지사는 “여당 정치인들도 그에게 전화를 한다”고 전했다. 김 전 위원장이 뜻밖에 여당에서 다섯 번째 토끼를 찾을 수도 있다. 여권 대선 후보가 김 전 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