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다큐17/ 정치9/ 안치용의 Secret of Korea3/ 2014.08.20 송혜교, 맨해튼 아파트관리비 안내 질권 설정 당해 - 12.23 황장엽 암살조 지도한 미군 '잭슨 동무'는 짝퉁 장교 출신
비하인드 다큐17/ 정치9/ 안치용의 Secret of Korea3
2014.08.20 송혜교, 맨해튼 아파트 8개월 관리비 745만원 안내 질권 설정 당해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 대기업 오너 3명과 '이웃 사촌'
/송혜교
‘정상급 여배우’로 잘 알려진 송혜교씨가 자신이 지난 2008년 매입한 뉴욕 호화 콘도(아파트)의 관리비를 내지 않아 강제로 질권이 설정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 콘도는 국내 정상급 재벌 3명이 매입한 콘도로 송혜교씨와 재벌들이 뉴욕에서 이웃사촌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던 바로 그 콘도입니다
/인기탤런트 송혜교씨가 지난 2008년 매입한 뉴욕맨해튼 세필드 콘도 전경.
센트럴 파크와 마주보고 있는 뉴욕 맨해튼 57가 세필드(THE SHEFFIELD) 콘도미니엄 관리위원회는 ‘이 콘도 ‘33P2’호 소유주인 송혜교씨가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았으므로 이 콘도에 채무담보(LIEN)을 설정했다’며 관련서류를 3월 18일 뉴욕시 등기소에 등기했습니다
/인기탤런트 송혜교씨가 지난 2008년 매입한 뉴욕 맨해튼 콘도의 관리비를 내지 않자 세필드 콘도 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 18일자로 송씨의 부동산에 담보를 설정하고 뉴욕시 등기소에 등기를 마쳤다
/인기 탤런트 송혜교씨가 지난 2008년 매입한 뉴욕 맨해튼 콘도의 관리비를 내지 않자 세필드 콘도 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 18일자로 송씨의 부동산에 담보를 설정하고 뉴욕시 등기소에 등기를 마쳤다.
채무담보(LIEN)란 채권자가 채무를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 재산에 설정하는 질권으로 채무자는 이 채무를 갚지 않고는 해당부동산 등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전세세입자나 채권자가 집주인이나 채무자의 부동산등기부 등본에 담보를 설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필드 콘도미니엄 관리위원회는 송씨가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3월 1일까지 8개월간 7318.74달러(745만원)의 콘도관리비(COMMON CHARGE)를 납부하지 않았다며 미납관리비와 채무담보설정에 소요된 법률비용 617달러 등 7935.74달러의 질권을 선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송씨는 콘도관리위원회의 채무를 변제하지 않으면 이 콘도에 대한 일체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인기탤런트 송혜교씨가 지난 2008년 2월 27일 뉴욕맨해튼 세필드 콘도 33P2호를 184만6천여달러에 매입했음을 입증하는 계약서 일부.
송씨는 지난 2008년 2월 27일 174만6천여달러(17억7830만원)에 이 콘도를 매입했으며, 매입 당시 단 한푼의 은행융자없이 매입금 전액을 자체적으로 조달했고 현재까지 이 콘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송씨가 이 콘도를 매입하던 시점인 2008년 2월은 3백만달러 한도내에서 해외부동산투자가 자유화됐던 시기지만 반드시 매입전후 외국환은행에 매입사실을 신고하는 것은 물론 임대수입여부를 해마다 신고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이 콘도는 ‘도심속의 오아시스’로 유명한 맨해튼 센트럴파크 입구와 맞닿은 콘도로 송씨외에도 현재 국내 정상급 재벌 3명이 이 콘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송씨가 2008년 2월 이 콘도를 매입한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2008년 5월 19일 39층의 한 유닛을, 2009년 1월 9일 박용만 두산중공업 회장이 43층의 한 유닛을, 2010년 12월 20일 신동원 농심부회장이 46층의 한 유닛을 사들임으로써, 재벌 3명과 유명탤런트 등이 사실상 이웃사촌이 됐습니다. 이들중 박용만 회장만 전체 매입가의 80% 상당을 은행융자로 조달했을뿐 나머지 3명은 은행융자를 받지 않고 매입가 전액을 자체조달했습니다.
특히 장영신 회장은 사전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뒤 자신의 명의로 콘도를 매입해 같은날 이 페이퍼 컴퍼니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했으며, 약 1년뒤 다시 이 콘도의 소유권을 조세피난처인 ‘맨섬’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 넘긴 상황입니다. 장회장 회사 관계자는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장님이 미국에 집 한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밝혀 논란을 낳기도 했었습니다.
/감사원이 지난 4월 1일 발표한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 중 송씨 부분.
한편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012년 송씨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20억여원을 탈루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세무조사기간을 5년으로 확대하지 않고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개년에 한해서만 조사했습니다. 감사원은 지난 4월 감사에서 이 사실을 적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과 전모사무관, 강남세무서 6급 박모씨등 세무공무원 2명을을 징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송씨에게 2009년부터 3개년에 한해서만 세무조사를 실시함으로써 바로 직전해인 2008년 뉴욕 맨해튼 콘도매입의 적법성여부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송씨는 2009년부터 3년간 137억 8200여만원을 벌여 경비로 67억3300여만원을 썼으며, 경비중 여비교통비로 59억5300여만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으나, 이 비용의 92.3%인 54억9600만원에 대해 증빙자료를 첨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원이 지난 4월 1일 발표한 서울지방국세청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중 송씨 부분.
특히 감사원은 국세청 세무조사기간에는 포함되지 않은 2007년과 2008년의 세금신고내역을 국세통합정보시스템으로 확인한 결과 송씨는 이 기간에도 21억여원을 여비교통비로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송씨가 2007년 세금신고중 경비의 79%에 달하는 9억6200여만원, 2008년 경비의 81%에 달하는 11억9800여만원을 여비교통비로 신고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 자금과 맨해튼 콘도매입자금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이 보고서에서 “2013년 10월 23일 감사일 현재 송씨의 2007년 종합소득세에 대해서는 국세부과 제척기간 5년이 지나 더 이상 세무조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히며, 2007년과 2008년 소득신고에도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시점에서 볼 때 2007년은 물론 2008년도 만약 탈루가 있다고 하더라도 세금추징이 힘든 실정입니다.
그러나 국세기본법 제26조 2항의 국세부과제척기간은 일반적으로 5년이지만 사기 등으로 인한 국세포탈, 부당한 환급이나 공제 등에는 10년이 적용되는 등 사안별로 제척기간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5년이라는 지적은 엄밀히 따지면 무리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국세기본법 제26조 2항중 일부, 국가법령정보센터 국세기본법 캡쳐
08.28 창립 32년만에 연매출 1조원으로 성장한 뉴욕의 한인기업
H마트, 미국내 고속성장 소매체인 13위 랭크
32년전 10평에서 출발... 미국 전역으로 매장 확대
권일연 대표의 장모는 가게 지키다가 총맞아 사망하기도
32년전 뉴욕의 10평짜리 가게에서 출발한 미국내 아시안 최대 수퍼마켓 H 마트가 지난해 매출 10억달러(1조150억원)를 돌파, 뉴욕은 물론 미주한인사회가 최대 경사를 맞았습니다.
미국소매점연합(NRF)은 최근 발표한 ‘2014년 고속성장 100대 소매체인’ 보고서를 통해 H마트가 지난해 매출이 10억5천만달러로 2012년보다 23% 성장하며 고속성장 13위에 랭크됐다고 밝혔습니다. NRF는 H 마트가 미국 전역에 45개 매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외 캐나다 등을 포함한 전세계 매출은 11억 4천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소매점연합(NRF)이 최근 발표한 '2014 고속성장 100대 소매체인',
H마트는 지난 2012년 미국내 매출 8억5400만달러에서 1년만에 약 2억달러의 매출신장을 이루며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함으로써 마침내 뉴욕한인사회에도 연매출 10억달러의 한인운영기업이 탄생했습니다.
NRF는 H마트가 32년전인 1982년 뉴욕 퀸즈에서 한인이민자들을 위한 식료품을 공급하기 시작해 현재는 뉴욕은 물론 조지아, 텍사스,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등 미 전역에 45개 매장을 두고 있는 범아시안 마켓으로 자리잡았다고 평가했습니다. NRF는 또 H마트가 한국과 아시안 음식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H마트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연혁.
H마트가 고속성장 13위를 기록한 것은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수퍼마켓업종에서 중국계 수퍼마켓은 물론 미국내 주류 수퍼마켓을 모두 제치고 최고의 매출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NRF의 분석대로 실제 H마트는 권일연 대표가 1982년 뉴욕 퀸즈 우드사이드의 10여평 남짓한 매장에서 ‘한아름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설립 직후 권 대표의 장모가 24시간 운영되던 이 가게에서 야간에 근무하다 강도의 총에 맞아 숨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연매출 3억달러 이상의 소매체인업체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지난해 세이프웨이를 인수하면서 매장수를 4.3배나 늘린 알버트슨의 매출이 전년보다 432% 증가, 고속성장 1위를 기록했으며 가정용 인테리어용품 판매업체 웨이페어가 52%로 2위, 여성용 캐주얼 의류업체 아세나리테일이 49.1%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매출액 순위로는 코스코가 747억달러로 1위를 기록했고 홈디포가 699억달러로 그뒤를 이었지만 전년대비 매출신장률은 5.2%와 6.6%에 머물렀습니다.
/'LA 비지니스저널' 의 집계에서 상위 랭크된 의류업체 '포에버21'.
한편 현재 미주한인경제의 주축은 LA와 뉴욕으로, LA지역에서는 의류업체 포에버 21이 ‘LA 비지니스저널’ 집계 결과 지난 2012년 39억달러의 매출을 기록, 한인은 물론 이지역 소수계 업체중 매출 1위에 랭크됐습니다. LA 2위 한인기업은 매출 2억4천백만달러인 수산물공급업체 퍼시픽 아메리칸 피시로 조사됐습니다. 또 뉴욕 한인기업 중에는 H마트가 매출 1위인 것으로 추정되고, 미 대형유통체인에 네일상품을 생산, 공급하는 세계최대 네일재료업체 ‘키스프로덕트’가 5억달러 내외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가발 등 미용재료 생산업체인 ‘세이크 앤 고’도 만만찮은 매출규모를 자랑하며 한인경제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소매점연합은 1911년 설립된 미국 최대의 소매점 연합체로 해마다 ‘소매매출 100대 소매체인’, ‘고속성장 100대 소매체인’등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09.05 미국내 전두환 비자금 전모 드러난다
전재용-박상아 미국집 몰수소송, 내년 4월 28일부터 배심원 재판
내년 2월 6일까지 디스커버리 진행
미국 법정서 전두환 비자금 낱낱이 까발려질 듯
전재용-박상아씨 부부의 미국집 몰수소송과 관련, 내년 4월 28일부터 배심원 재판을 진행하기로 확정됐습니다. 특히 재판과정에서 미국 검찰이 전재용-박상아씨 부부를 상대로 적극적인 신문에 나설 경우 미국내 전두환 비자금의 전모가 드러날 가능성이 큽니다.
캘리포니아주 중부 연방법원은 지난달 25일 원고측인 미 법무부와 피고 측인 전재용-박상아 측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재판일정 조정회의를 열고, 내년 4월 28일 오전9시부터 배심원 재판을 시작하며 약 4주간 진행될 것이라고 향후일정을 확정해 공고했습니다.
/연방법원은 다음달 1일까지 소송장 수정을 마감하며 내년 2월 6일까지 디스커버리(증거조사)를 실시하고, 내년 4월 13일 오전 9시 재판전 조정회의를 연 뒤 본격적인 배심원 재판에 돌입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또 재판일정이 합의됨에 따라 26일 배심원재판 개최 명령도 내렸습니다.
당초 원피고 양측은 지난달 13일 재판부에 제출한 공동보고서를 통해 내년 6월 1일까지 디스커버리를 실시하고, 그뒤 양측이 합의하고 재판부가 허용하면 전문가 디스커버리를 추가로 7월 20일까지 실시할 것이며, 내년 12월 7일부터 배심원재판을 시작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습니다
/그러나 8월 25일 연방법원이 주재한 재판일정조정회의에서 당초 10개월정도 진행될 예정이던 디스커버리 기간을 절반 줄인 5개월 정도로 합의함에 따라 재판 일정도 앞당겨지게 됐습니다.
이에 앞서 미 법무부는 지난 4월 24일 한국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전두환 전대통령의 불법부패자금이 돈세탁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왔다며 전재용-박상아 부부가 미국 뉴포트비치 주택을 매도한 돈 72만여 달러를 압류함과 동시에 몰수소송을 제기했었습니다.
또 전재용 박상아 부부 등은 자신들의 돈으로 미국주택을 매입했으므로 매도로 발생한 돈도 자신들의 돈이라며 지난 6월 13일 연방법원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결사항전을 선언함으로써 정식재판이 진행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정식재판으로 앞으로 약 5개월간 디스커버리가 진행됨에 따라 미 법무부가 과연 전재용 박상아 부부의 미국주택 외 비자금도 찾아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는 민사소송법에 규정된 절차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소송당사자들이 재판과 관련된 증거를 직접 조사하고 상대방을 직접 심문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디스커버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게 되면 전혀 생각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내 전두환 비자금의 전모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배심원 재판을 하기로 함에 따라 미국 배심원 앞에서 한국 전직 대통령의 비리가 낱낱이 언급되게 돼 한국이 국가적으로 큰 망신을 당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09.15 전재용-박상아 부부, 2009년쯤 임시 미국 영주권 취득
PIDC, ‘투자이민신청서는 100% 승인, 정식영주권은 94% 승인’ 밝혀
2008년 9월 투자이민청원 뒤 2009년 중 임시영주권 받은 듯
정식영주권 신청여부 및 승인여부는 미지수
임시영주권 받았어도 투자자금 불법성 드러나면 취소 불가피
/전두환 전대통령의 차남 전재용-박상아씨 부부가 지난 2008년 미국에 이민신청을 해 2009년쯤에 임시영주권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정식영주권 취득 여부는 가능성이 높지만 최종 확인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가 펜실베이니아주 동부 연방법원에 제출한 압류영장에 따르면 전씨의 부인 박상아씨는 지난 2008년 8월 19일 필라델피아산업개발공사의 ‘펜실베이니아 컨벤션센터’ 투자펀드에 5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계약을 맺고 같은해 9월 11일 미국 이민서비스국에 투자이민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박씨가 미 이민서비스국에 신청한 이민비자는 이른바 취업이민 5순위(EB-5)에 해당하는 투자이민으로, 50만달러를 투자하면 투자자와 직계가족, 즉 배우자 및 21세 미만 자녀가 동시에 임시영주권을 받게 됩니다. 또 임시영주권을 받은뒤 1년9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임시영주권의 조건을 삭제해 달라는 신청을 하면 정식영주권을 발급받게 됩니다.
필라델피아 산업개발공사 홈페이지 확인결과 박씨가 투자한 펀드인 ‘펜실베니아 컨벤션 투자펀드’에는 모두 244명이 투자했고, 투자자 모두가 이민서비스국으로부터 100% 투자이민청원서(I-526)를 승인받았다고 돼 있습니다. 이는 투자자가 100% 임시영주권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2008년 9월 투자이민신청서를 제출한 전씨 부부는 늦어도 2009년중 임시영주권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공사는 임시영주권의 제한사항, 즉 투자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는 경우에 한해 영주권을 인정한다는 제한사항을 삭제시켜 달라는 신청서인 정식영주권신청(조건삭제신청 I-829)이 승인된 경우는 94%라고 밝혔습니다. 즉 244명중 229명은 정식영주권을 이미 취득했고, 15명은 아직 정식영주권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 산업개발공사는 자신들의 투자펀드별로 투자이민신청자들의 영주권신청 승인현황을 공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밝힌 사항이 맞다고 가정할 경우 전씨 부부는 임시영주권을 받았고 정식영주권은 94%만 승인됐으므로 이들 부부가 정식영주권을 받았는지 여부는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만약 이들 부부가 정식영주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투자이민은 투자금의 합법성을 완벽히 입증해야 하므로, 현재 투자금이 불법세탁한 비자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연방법원이 압류를 허용한 상황을 감안하면 영주권은 취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 향후 미국 입국도 엄격히 규제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무부가 법원에 압류 영장과 함께 제출한 부속문서에는 전씨의 투자이민추진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으며, 이에 따르면 박씨의 투자이민은 2008년 8월 19일 투자계약, 2008년 9월 11일 투자이민신청서 제출 및 에스크로 입금, 2009년 4월 9일 53만달러 완전송금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법무부는 이 펀드에 50만달러씩을 투자해 펀드의 파트너로서 EB5 영주권 자격을 얻은 사람이 모두 201명이며, 박씨는 ‘파트너 넘버 116번’이라고 밝혔습니다. 박씨가 50만달러가 아닌 53만달러를 송금한 것은 투자금액은 50만달러이지만 제반 수수료가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무부가 밝힌 투자자 숫자는 필라델피아 산업개발공사가 밝힌 투자자 244명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법무부는 박상아를 포함한 초기 201명 가입 때의 서류를 입수했지만 실제 ‘펜실베이니아 컨벤션 센터’ 펀드는 인기가 좋아 약 40여명이 더 가입했던 것로 보입니다.
법무부는 이 돈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자금중 일부로 추정된다며 지난달 22일 오전 9시 25분에 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비공개를 조건으로 펜실베이니아 동부 연방법원으로부터 압류영장을 발부받았으며, 지난 2일 오후 집행을 완료한뒤 3일 이 사실을 공개했었습니다. 영장집행 시한이 9월 5일까지로 명시된 이 영장은 박씨가 투자금 50만달러 회수가 가능한 시점인 지난 3일보다 하루 빠른 2일에 아슬아슬하게 집행됐습니다.
영장에는 이 펀드투자자들이 9월 1일께부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으나, 필라델피아산업개발공사에 따르면 투자금은 9월 3일 이후 인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만약 영장집행이 하루만 늦었다면 박씨가 50만달러를 찾아가는 상황이 벌어질 뻔 했지만, 미 사법당국은 사전에 이같은 상황을 모두 감안해 치밀하게 영장집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09.17 한은, 2008년 리먼 파산 당일에 수조원 날릴 뻔 했다
‘파산당일에야 리먼에 한국은행 리포잔액 청산’ 통사정
당일 결제마감시간 1시간 5분 넘겨서야 완전 회수
한국은행 리포잔액은 5월 215억 달러, 9월엔 67억 달러
JP모건은 파산 10일전 산업은행 인수협상결렬 정보입수해 채권회수 돌입
그러나 한국은행은 한국발 이 정보도 입수 못해 수조 원 날릴뻔
/한국은행이 6년 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일 정부 예산 수조 원을 날릴 뻔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은행이 2008년 11월 작성한 ‘미 연준과의 통화스왑 추진경과’라는 내부문서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일인 2008년 9월 15일에도 이 회사의 환매조건부채권(REPO)을 상당액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리먼브라더스가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당일 아침에야 이 회사로 달려가 한국은행의 리포투자액 청산을 요구했습니다. 이때까지 청산되지 않았던 잔액은 적어도 수조 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이날 아침 10시 25분에야 리먼브라더스를 방문, 중앙은행담당책임자인 톰 루그리오, 리포담당책임자인 데이브 루이스를 만나 9월 15일 현재 리먼 브라더스에 남아있는 한국은행의 리포잔액 청산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리포담당책임자인 데이브 루이스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결정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동성이 상당히 남아있다. 오늘 중으로 한국은행의 리포잔액을 모두 정리해주겠다”고 약속, 다행히 한국은행이 운용하던 국민의 혈세 수조 원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날 한국은행의 리만 브라더스 투자자금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방이체마감시한(금융거래 결제시한)을 1시간 이상 연장해 가며 가까스로 회수에 성공했습니다. 이 문서에는 “제한된 시간과 거액결제에 따라 뉴욕연준의 시장국 중앙은행담당자에게 연방이체마감시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해 오후 2시30분인 마감시한을 1시간 5분이나 넘긴 오후 3시 35분에야 모든 자금을 회수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날 리먼브라더스 본사를 방문, 리포잔액청산을 요구한 한국은행 직원은 2명이었으며, 그중 뉴욕책임자인 A씨는 지난해 5월 뉴욕 맨해튼에서 기자와 만나 피를 말리는 듯 했던 이날의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습니다.
A씨는 “당일 오전 본부지시를 받아 리먼브라더스로 달려갔고 1층 안내데스크에는 파산소식을 듣고 각 금융기관에서 달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며 “안내데스크에서 중앙은행 담당자에게 연락했더니 다행히 즉각 내려왔고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한국은행 리포잔액을 지금 청산해 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파산신청을 했지만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자산이 상당부분 있다. 그것으로 결제를 해주겠다고 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리먼브라더스가 잔액을 즉각 돌려주겠다고 했으나 또 하나의 문제는 결제시한이었다”며 “결제마감시간인 오후 2시30분 이전에 모든 자금을 이체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뉴욕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상황을 설명, 다행히 결제시한을 연장함으로써 완전히 회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는 “당시 리먼브라더스에 남아 있는 자금을 다른 금융기관에서 먼저 빼내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함께 간 직원이 리먼 직원과 함께 정말 죽자사자 키보드를 쳐가며 자금을 이체했다”며 “은행원 생활 30여 년 중 그토록 긴장되는 순간은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A씨는 파산당일 회수한 자금이 얼마였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며 ‘상당액’이었다고 밝혔으나, 이 보고서에는 ‘거액결제’라고 명시돼 있고 최소 수조 원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기록돼 있습니다. 뉴욕FRB에서 하루에 결제되는 금액이 무려 1조2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거액이라서 연장이 허용될 정도라면 최소한 그 금액은 수십억 달러 내지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는 한국은행 미국채권 리포 잔액이 2008년 5월 215억6천만 달러, 9월에 67억 달러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를 환화로 환산하면 7조 원 상당에 달합니다. 이 내용은 2008년 10월 7일 오전 10시 뉴욕연준시장국이 한국은행의 미국채 리포잔액의 대규모축소에 따른 협조를 요청하는 회의를 가졌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정부재산을 운용하는 한국은행이 리먼브라더스에 묶여 있던 거액의 혈세를 가까스로 회수하기는 했지만, 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일까지 그 같은 거액을 미리 회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MB 정부 당시 금융당국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의 인수협상 결렬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금융당국은 이같은 위기에 어느 나라보다도 잘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국내 금융당국간, 특히 국책은행 간에도 전혀 정보교류가 없어 사실상 위기를 자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2009년 1월 19일 파산관재위원회가 안톤 발투카스 변호사를 조사관으로 임명, 연방법원의 승인 아래 파산원인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고 발투카스 조사관은 변호사 80여 명과 회계사 등 2백여 명의 조사인력을 투입, 2010년 3월 11일 모두 8권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대처가 얼마나 미흡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산업은행은 리먼브라더스 실사능력이 없어 JP모건에 실사를 대신해 달라고 요청해 여러 문서가 오고 갔고, 결정적으로 9월 5일 임석정 JP모건 한국대표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에게 당시 상황을 종합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2008년 9월 5일 오전 5시 17분에 발송된 이 이메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민유성 산업은행장과 리먼 브라더스 인수 관련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리먼 브라더스가 제시한 마감시한인 9월 10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대목입니다. 즉 9월 10일까지 인수협상이 타결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며, 이는 리먼 브라더스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톤 발투카스 변호사가 연방법원에 제출한 8권의 보고서 중 2권 668페이지부터 687페이지까지 리먼 브라더스와 산업은행과의 인수협상을 요약한 내용이 나오며, 이중 685 페이지에 바로 9월 5일 임석정 대표가 보낸 이메일과 이 이메일에 따른 JP모건의 결정사항이 언급됐습니다.
조사보고서는 “9월 5일 임석정 대표가 다이먼 회장 등 경영진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산업은행이 리먼의 데드라인인 9월 10일 이전에 딜이 성사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밝혔고, 당일 경영진은 회의를 소집, 산업은행과의 협상이 결렬돼 리먼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리먼에 추가 담보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의 최대 채권자중 하나인 JP모건은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정보를 얻어서 파산 10일 전 이미 리먼의 파산을 예견하고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등 채권 확보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산업은행을 감독하는 입장에 있는 한국은행은 이같은 사실조차 모르고 파산 당일까지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아 거액을 떼이려는 찰나에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9월10일에는 산업은행과 리먼의 인수협상이 최종결렬됐다고 정식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후 5일간 한국은행은 채권을 회수하지 않았고 결국 거액이 물린 상태에서 파산 당일 아침을 맞았던 것입니다.
한국은행 내부보고서에는 한국은행 뉴욕운용팀이 9월 12일 금요일 낮 12시 30분 모건스탠리사로부터 리먼 파산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존 맥 모건스탠리 회장이 주요 고객들의 리먼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객들에게 파산 가능성을 알려주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이같은 정보가 한국은행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뒤 한국은행은 9월 14일 일요일 오전 8시 40분 바클레이즈캐피탈의 존 로버트 등으로부터 리먼 파산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서야 한국은행 본점 투자운용실장에게 보고했고, 같은날 오후 5시께 리먼사 관계자로부터 사실상 파산이 결정됐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 뒤 오후 9시 30분 리먼의 파산결정을 확인 후 특별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고, 당시 한국은 추석연휴라서 정식출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라인에 직접 보고했다고 전했습니다.
산업은행이 2008년 민영화됐지만 산업은행이 투자를 했다 손실을 입거나 파산할 경우 한국정부, 즉 국민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돼있으므로 사실상 한국은행은 산업은행의 투자 등을 세밀히 살펴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리먼브라더스의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던 한국은행이었지만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 인수 추진이 MB정권 금융계 실력자 몇몇에 의해서 밀실 추진되면서 정보가 통제됐고, 한국은행도 이를 꼼꼼히 챙기지 않음으로써 국민 세금 수조원이 새어나갈 뻔 했던 것입니다.
09.18 박원순 서울시장의 방미 행사..."대선주자 이미지 만들기 위해 급조" 논란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총회연설에 맞춰 박원순 서울시장도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방미 닷새를 남기고도 박 시장의 뉴욕일정이 제대로 확정되지 않는 등 급조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박원순 서울시장이 21일부터 30일까지 7박10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며 21일부터 24일까지 뉴욕 방문기간 중 22일 뉴욕시장과 만나 MOU를 체결하고 23일 UN기후정상회의 ‘도시’ 세션에 참석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 서울시는 박 시장의 방미 일정을 시간이나 장소 등의 기본적인 언급도 없이 아주 간단하게만 기자들에게 전달하고 22일 조간용으로 보도자료를 다시 보낼 것이라고만 밝혀 미국에서의 일정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음을 시사했습니다.
/2014 파이낸셜허브서울컨퍼런스 일정.
또 서울시는 오는 22일 월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뉴욕 맨해튼 메리엇 마르퀴스호텔에서 박원순 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2014 파이낸셜허브서울 컨퍼런스’를 추진중인 확인됐습니다. 이같은 일정은 당초 서울시 기자들에게 통보된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서울시는 ‘2014 파이낸셜허브서울 컨퍼런스’를 불과 1주일 앞둔 지난 15일 이 컨퍼런스의 사회자 조차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백방으로 사회자를 수소문하고 있는 것으로서 확인됐습니다. 국제회의 등 이벤트 대행회사인 비엠디는 최근 뉴욕 등 미국 각계 한인인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서울시가 9월 22일 뉴욕 메리엇 마르퀴스 호텔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에서 2-3시간 가량 국제회의 진행을 맡아줄 사회자를 섭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컨퍼런스 사회자 섭외요청’ 이라는 제목의 이 이메일은 컨퍼런스를 불과 1주일 앞둔 미국 동부시간 지난 15일 오후(한국시간 16일 새벽) 발송됐고, 사회자는 컨퍼런스 식순에 따라 전체 진행을 하고 식순, 발표자 소개 등 일체를 담당해야 한다며 인건비와 세부사항은 유선상 협의하자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 이메일을 발송한 비엠디의 담당자 이름과 자신의 비엠디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고, 비엠디의 다른 직원에게도 참조로 이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 이메일에 첨부된 ‘2014파이낸셜허브 서울컨퍼런스 오버뷰 앤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의 PDF 파일에 따르면 오후4시부터 30분간 ‘새로운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하는 서울’,’서울에 투자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등을 설명하고, 오후 4시 30분부터 박원순 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축사와 환영사가 20분간 이어지게 됩니다. 또 오후 4시 50분부터 30분간은 ‘서울국제금융센터소개’, ‘국민연금공단의 투자전략’, ‘한국투자공사의 글로벌펀딩전략’ 등에 대한 발표가 진행되고, 오후 5시20분부터 10분간은 질의응답, 오후 5시30분부터 30분간은 네트워킹 리셉션으로 진행됩니다
/2014 파이낸셜허브 서울컨퍼런스가 열리는 메리엇 마르퀴스 호텔의 컨퍼런스룸.
이 PDF 파일에서 컨퍼런스 개최지로 소개된 메리엇 마르퀴스 호텔 마르퀴스 B&C는 메리엇호텔 확인결과 9층의 컨퍼런스룸으로 260명 정도가 동시에 만찬을 할 수 있는 규모지만 비엠디는 이메일에서 컨퍼런스 참석인원은 백여명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상참석인원보다 두배정도 큰 규모의 컨퍼런스룸을 빌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울시는 서울을 국제적 금융허브로 성장시킨다는 야심찬 전략 아래 지난 2009년 11월 6일 신라호텔에서 국내외 금융전문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9 서울국제금융컨퍼런스’를 추진했었습니다. 이때는 준비기간만 1년 가량이 소요되고 발표자, 토론자는 물론 행사의 사소한 진행을 맡을 사람까지 전문요원으로 사전에 모집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세계금융중심지 뉴욕에서 서울시가 진행하는 ‘파이낸셜허브 서울컨퍼런스’가 개최 1주일을 앞두고도 영어로 컨퍼런스를 진행할 사회자조차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준비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블라지오 뉴욕시장의 22일 일정.
특히 박 시장은 같은 날인 22일 뉴욕시장을 만나 MOU를 체결한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지만 MOU 내용도 없었을 뿐더러, 아직까지 뉴욕시장은 MOU는 커녕 박 시장 면담 일정도 없습니다. 뉴욕 시장의 일정을 알려주는 뉴욕시장실 홈페이지에는 블라지오 뉴욕시장이 22일 월요일 맨해튼 2곳, 브롱스 1곳 등 모두 3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잡혀 있습니다.
또 뉴욕시장실 관계자도 16일 블라지오 시장과 박 시장과의 면담일정을 묻는 질문에 “금시초문이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면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으며, “앞으로 급하게 추진될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시간과 장소도 없이 “22일 박 시장이 뉴욕시장을 만나 내용 미상의 MOU를 체결한다”는 서울시의 홍보내용은 현재까지는 확정조차 되지 않은 사항입니다.
서울시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짧은 내용의 박 시장 미국 방문일정에는 뉴욕에서는 뉴욕시와MOU를, 24일 워싱턴에서는 워싱턴시와 MOU를, 25일부터 이틀간 샌프란시스코에서도 MOU를, 27일부터 이틀간 로스앤젤레스에서도 MOU를 체결한다고만 돼 있습니다. 서울시는 박 시장 방문지 4곳 모두에서 MOU를 체결한다고 밝혔지만,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내용의 MOU를 체결하는지 등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교포 사회 일부에서는 세계 각국 정상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유엔회의이므로 박 시장이 참석할 경우 박 대통령과 동급 내지 정상급에 걸맞는 이미지로 부상할 수 있으며, 잠재적 경쟁자인 야권의 대선예비후보들을 단번에 제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행사규모를 키우다가 뒷감당을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측은 “박원순 시장의 뉴욕 방문은 대선주자 이미지 만들기 용이 아니라 연초에 2014년 서울시장 연간 외국출장계획을 수립하였을 때부터 준비하여 온 것이며, 다만 뉴욕 시장 방문은 뉴욕시를 방문하는 외빈이 많아 추후에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뉴욕을 제외한 미국내 3개 도시에서는 예정대로 MOU를 체결할 예정이며, 체결 내용은 국제관례에 따라 체결 이후에 발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09.25 박 대통령이 뉴욕에서 전용기와 생이별한 사연
박 대통령 전용기, 지난해 이어 올해도 케네디 공항 도착 뒤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이동
‘뉴욕지역 공항 외국정부 비행기 등 도착 2시간 내 타공항으로 이동’ 공항규정 때문
유엔총회 참석 각국 수반, 전용기와 ‘생이별’··· 줄줄이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이동 포착
청와대 경호처, ‘공항 운영규정 외 전용기 안전확보 위한 통상적인 임무수행’
케네디-앤드류스 240여마일, 비행시간 30분 정도로 위기상황 대처 문제없어
유엔총회 개막을 맞아 세계 각국 정부 수반들이 전용기를 타고 뉴욕을 찾지만 정작 전용기는 곧바로 뉴욕을 떠나 워싱턴DC 인근 공군기지 등으로 떠나는 ‘생이별’을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2일 오후 4시반께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지만 전용기는 대통령 일행을 내려준 뒤 곧바로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프린스조지카운티의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향했습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지역의 MODE-S 수신기에 포착된 대통령 전용기 신호를 확인한 결과 대통령 전용기는 미 동부시간 22일 오후 8시 8분께 15650피트 상공에서 포착되기 시작해 오후 8시 29분58초에 4750피트 상공에서 신호가 잡혀 8시30분께를 조금 넘겨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이는 대통령 전용기가 케네디 공항에 대통령을 내려준 뒤 약 2시간 여가 지난 오후 7시를 조금 넘겨 케네디 공항에서 곧바로 이륙했음을 의미합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지역의 MODE-S 수신기에 포착된 대통령 전용기 신호를 확인한 결과 대통령 전용기는 미 동부시간 22일 오후 8시 8분께 15650피트 상공에서 포착되기 시작해 오후 8시 29분58초에 4750피트 상공에서 신호가 잡혀 8시30분께를 조금 넘겨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착륙했습니다. 이는 대통령 전용기가 케네디 공항에 대통령을 내려준 뒤 약 2시간 여가 지난 오후 7시를 조금 넘겨 케네디 공항에서 곧바로 이륙했음을 의미합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대통령 전용기는 5월 5일 첫 방문지인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 착륙했으나 같은 날 오후 5시 42분 워싱턴DC 인근 11775피트 상공에서 MODE-S 신호가 잡혔고, 오후 5시56분 1150피트 상공에서 다시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이는 대통령 전용기가 오후 5시56분 직후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착륙했음을 뜻합니다. 이때도 대통령 전용기는 대통령 일행만 뉴욕에 내려준 뒤 곧바로 케네디 공항을 떠난 것입니다.
이처럼 대통령 전용기가 대통령 체류도시인 뉴욕에 머물지 않고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향한 것은 케네디 공항을 포함한 뉴욕지역 공항의 운영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뉴욕 인근지역의 다리와 터널, 공항 등을 관리하는 뉴욕뉴저지관문공사(THE PORT AUTHORITY OF NEW YORK AND NEW JERSEY)는 케네디 공항 등에 착륙한 외국정부 비행기와 외국 군용기는 반드시 도착 2시간 내에 공항을 떠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항운영규정, 제8장 공항운영의 V조 ‘외국 군용기와 외국정부 비행기’에 규정된 것으로 첫째 도착 2시간 이내 이륙, 둘째 하룻밤 이상 체류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뉴욕 지역의 항공 교통량이 많으므로 그 비행기가 세계 각국 정부 수반을 태운 전용기라 할지라도 뉴욕뉴저지관문공사가 관리하는 5개 공항, 즉 뉴욕시 관내의 케네디공항과 라과디아공항, 뉴욕 오렌지카운티의 스튜어트인터내셔널공항, 뉴저지의 뉴왁공항과 테테보로공항에는 절대로 주기(PARKING)할 수 없습니다. 이같은 규정에 따라 대통령 전용기는 박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하더라도 반드시 케네디 공항을 떠나서 워싱턴 인근의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향하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대통령의 전용기뿐만 아니라 유엔총회를 위해 뉴욕을 찾은 모든 나라의 전용기가 도착 직후 몇시간 내에 뉴욕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번 유엔총회기간 중 세계 142개국 정부에서 뉴욕 유엔본부로 대표단을 파견했으며 이중 약 백개국 정도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 정부수반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유엔 창설 이래 가장 많은 정상 등이 참석하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그들이 타고온 전용기는 줄줄이 뉴욕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지역의 MODE-S 수신기에 포착된 비행기 신호를 확인한 결과 지난 9월 19일에는 요르단, 카타르, 캐나다 전용기가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착륙한 것으로 나타났고, 20일에는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알제리 전용기가, 21일에는 멕시코, 이집트, 독일, 이탈리아 전용기가 워싱턴DC 인근지역에 착륙했으며, 거의 대부분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주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요르단 전용기는 21일 다시 뉴욕 케네디 공항으로 왔다가 이번에는 앤드류스공 군기지가 아닌 뉴욕 롱아일랜드 맥아더 공항에 착륙, 주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항상 2대의 보잉 747 전용기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일본도 전용기가 케네디 공항에 20분 간격으로 도착, 아베 총리 일행을 내려준 뒤 케네디 공항을 이륙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 경호처는 대통령 전용기가 대통령 체류지역을 이탈하는 이유에 대해 뉴욕뉴저지관문공사의 운영규정 외에도 항공기 안전확보 차원에서 취하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경호처는 케네디 공항은 민항기 등의 이착륙이 많기 때문에 사고 우려가 크고 경호인력을 대거 투입해 전용기를 경비하더라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협조를 받아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경호처는 대통령 전용기가 케네디 공항에서 앤드류스 공군기지로 이동하는 것은 통상적인 임무수행절차이며 위기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문제없이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워싱턴DC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까지의 거리는 243마일이므로 대통령 전용기가 시속 5백 마일로 나는 것을 감안하면 30분 정도가 소요돼 전용기가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주기하더라도 위기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경호처 설명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유엔본부와 숙소가 있는 뉴욕 맨해튼에서 퀸즈의 케네디 공항으로 향할 때 아무리 빨라도 30분이 걸리므로 맨해튼에서 출발한 대통령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떠난 전용기가 거의 같은 시간에 케네디공항에 도착한다는 산술적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09.29 "원전 시공 설계대로 하라"는 미국인 엔지니어 얼굴 가격한 한전 간부
고리 원전 2호기 침수 원인이 설계도를 무시한 시공으로 확인된 가운데 20년전 한국전력 간부가 원전건설 자문을 맡은 미국인 엔지니어에게 설계도 서명을 강요하며 폭행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캐나다 벤쿠버에 거주하는 C씨는 지난 25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침수로 가동중단됐던 고리원전 2호기, 설계도 무시 시공이 원인, 30년간 몰라’ 제목의 기사를 읽은 뒤 프리미엄 조선에 이메일을 보내 20년전인 지난 1995년 자신이 벡텔사 간부에게 들은 사연을 전했습니다. 벡텔은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건설업체입니다.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3호(오른쪽 앞)와 4호(왼쪽 뒤)./조선일보 DB
C씨는 이메일에서 약 20년전 한국전력 간부가 원전 건설과 자문을 맡은 벡텔사 간부에게 재검토가 필요한 도면에 무조건 서명해달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외국엔지니어가 서명을 거부하자 주먹까지 휘둘렀다며 이같은 ‘빨리 빨리’, ‘얼렁뚱땅’ 문화가 오늘날과 같은 고리원전 사고를 야기시킨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C씨는 지난 1995년 한국전력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과 관련한 자문을 위해 파견됐던 미국 벡텔사와 캐나타, 프랑스 등의 기술진 47명을 대상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한국문화에 대해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강연은 최근 현대자동차에 낙찰된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조금 떨어진 원자력연구소 관련 빌딩에서 진행됐으며, 외국 기술진은 물론 부인 등 가족들까지 참석, 매회 70명에서 10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C씨는 이때 미국 벡텔사 엔지니어로 고리원전 및 영광 원전의 자문과 감리를 담당했던 스탠 콜씨와 가족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스탠씨가 찾아와 황당하기도 하고 한국인으로서 창피스럽기도 한 이야기를 전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시 스탠씨는 얼굴 한쪽에 시퍼런 멍이 들고 흥분한 상태였으며,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C씨를 만나 황당한 사연을 털어놨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스탠씨의 카운터 파트인 한전 M부장이 스탠의 사무실로 찾아와 “내일까지 끝내야 하니 이 원전의 일부 설계도에 서명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M부장이 건넨 도면을 보니, 이미 스탠씨가 “설계도에 문제가 많아 다시 수정한 뒤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차례 밝힌 것이었습니다. 스탠씨는 문제가 많아 수정을 요청한 설계도에 대해 다짜고짜 M부장이 서명을 해달라는 요구에 황당함을 금치 못하면서 “설계도를 수정한 뒤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서류에 적었습니다.
스탠씨가 도면의 문제를 지적하며 끝까지 서명을 거부하자 M부장은 흥분하면서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도면인데 무조건 서명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면서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끝내 스탠씨가 서명을 거부하자 M부장이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고 스탠씨의 얼굴은 시퍼렇게 멍들었습니다. 당시 M부장은 “모든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들은 5년 주기로 자리를 옮기고 나도 얼마 후 다른 자리로 옮길 예정이니 서류를 파기하고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니 서명을 해달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스탠은 C씨에게 이같은 사연을 설명한 뒤 “영광과 고리원전 정말 큰일났다. 담당자들이 자리를 떠날때 중요문서를 모두 파기하더라”라는 우려도 전했습니다. C씨의 말대로 고리원전 3·4호기와 영광원전 1·2호기는 미국 벡텔사가 설계하고 기술자문 감리를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M부장은 고리 및 영광 원전의 외국엔지니어들과 연결을 담당하는 한국측 책임자였다고 합니다.
C씨는 고리 원전 2호기가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원전 운영사와 정부가 30년이 넘도록 알아채지 못했다는 지난 25일 기사를 읽고, “20년전 일을 보면 이번 사고는 충분히 발생하고도 남을 불상사였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스탠씨는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으로 미국 국적자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원자력을 전공, 석사 학위를 받은뒤 벡텔사에 근무했습니다. C씨는 지금은 소식이 끊긴 스탠씨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10.07 정부, 유병언 일가 미국재산 추징 시작
예금보험공사, 뉴욕연방법원에 유혁기 부부-아해프레스 상대로 1650만 달러 지불 소송
천해지가 아해프레스에 사진값으로 밀반출한 169억원 환수하기 위한 조치인듯
유혁기-엘리자베스 유 등 유사이름까지 모두 피고 명단에 포함시켜
유혁기 부부, 맨해튼에 콘도, 웨체스터에는 대저택, 갤리포니아에도 주택소유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한 유씨 부인, 변호사 면허 정지상태
/KRNC가 유혁기 부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일람표.
한국 금융당국이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차남 유혁기 부부와 아해프레스를 상대로 1650만달러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인 KRNC[옛 정리금융공사]는 지난 2일 뉴욕남부연방법원에 아해프레스와 유혁기씨, 그리고 유씨의 부인 엘리자베스 유씨를 상대로 1650만달러의 지급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뉴욕남부연방법원은 사건을 로니 아브람스 판사에게 배당하고 3일 아해프레스와 유씨 부부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뉴욕남부연방법원은 아직 법원웹사이트에 소송장을 공개하지 않아 소송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관련법규는 ‘갈취 및 부패 조직 방지법(Racketeer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s Act)’ 위반이라고 기재돼 있습니다. RICO라고 불리는 이 법은 주로 기업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당히 무거운 중죄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할때 KRNC가 소송을 낸 것은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회장이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주식회사 천해지를 통해 미국법인 아해프레스로 169억원의 외화를 밀반출한 사실이 밝혀진데 따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검찰은 천해지가 지난해 아해프레스에 사진 수입대금 명목으로 5억원, 선급급 형식으로 164억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169억원 상당을 미국으로 빼돌린 것으로 파악하고 FBI등과 공조해 차남 유혁기씨에 대한 소재파악과 함께 소환방안을 강구해 왔습니다.
/KRNC가 파악한 유혁기씨(왼쪽)와 남경현씨가 사용한 이름들.
KRNC측은 이번 소송에서 유병언 전회장의 차남 유혁기씨의 이름이 영문으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는 점을 감안, YOO HYUK KEE를 비롯해 KEITH YOO등 무려 8개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며 그 이름들을 모두 피고에 넣었습니다. 또 유씨의 부인 남경현씨에 대해서도 ELIZABETH K YOO외에 엘리자베스 남경현 등 9개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며 이름 전부를 피고에 넣었습니다.
뉴욕시 등기소와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유씨 부부는 뉴욕 맨해튼 고급 콘도와 웨체스터 대저택 등을 구입할때 자신들의 이름으로 YOO HYUK KEE와 ELIZABETH KYUNGHYUN YOO라는 이름을 공식영문명으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KRNC측은 혹시 이들이 다른 이름으로 된 재산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 다른 영문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이름들을 모두 적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현재 유혁기씨는 부인 엘리자베스 경현 유[한국명 남경현]씨와 공동으로 지난 2003년 10월 24일 뉴욕 맨해튼 10 웨스트 스트릿의 콘도 31C호를 172만달러에 구입해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 부부는 2007년 8월 6일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의 파운드 릿지, 하이릿지로드에 대지 1만3천평에 달하는 대저택을 345만달러에 매입, 소유하고 있으며 현시가는 6백만달러를 넘는다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이외에도 유씨는 부인과 공동명의로 지난 2005년 12월 7일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 유카이파의 한 주택을 92만5천달러에 매입, 현재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주택은 유병언 전회장 등이 1990년 5월 11일 세모아메리카 명의로 675만 달러에 매입한 이른바 하이랜드스프링스 호텔리조트 인근에 위치해 있습니다. 유 전회장 등은 이 부동산을 세모 명의로 매입한 뒤 지난 2009년 9월 26일 베어패밀리 호텔리조트로 이름만 바꾼 채 소유하고 있습니다.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에 위치한 아해프레스의 상세 정보.
아해프레스는 지난 2011년 2월 7일 뉴욕주 국무부에 설립신청을 했으며 유혁기씨의 저택 인근인 웨체스터 카운티 마운트키스코에 법인주소지를 두고 있습니다. 뉴욕주 국무부 확인 결과 이 회사 대표[CEO]는 유혁기씨로 확인됐으며 이 법인주소지의 부동산 또한 베드포드 모임이라는 유병언 일가 관련회사가 구입한 것입니다.
/뉴욕주 법원시스템에 등록된 유혁기씨의 변호사 정보.
한편 유혁기씨의 부인 엘리자베스 경현 유씨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난 2001년 뉴욕주 변호사가 됐으며 뉴욕주 법원시스템 확인결과 미동부시간 10월 6일 현재 변호사 면허가 정지된 [SUSPENDED] 상태로 드러났습니다. 2년만에 한번씩 변호사 면허를 갱신하지 않을 경우 변호사 면허가 정지됐다고 표시됩니다. 하지만 유씨는 갱신시기가 내년 3월이기 때문에 면허갱신이 아닌 특별한 사유로 면허가 정지된 것으로 보이며, 그 사유는 남편 유씨와 함께 외화밀반출 등의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10.24 키신저, 한국 국보급 유물 143점 밀반출이 미국법 위반인 줄 알고도 "한국 정부가 모르게 하라"
키신저, '5천달러 이상 밀반입-밀반출은 장물운반처벌가능' 외교 전문에 명시
'주한미국대사관은 한국정부나 민간단체가 장물운반처벌법 모르게 하라' 당부
핸더슨, “주한미국대사관이 합법적 반출 입증해 달라” 요구
그러나 하비브 미국 대사는 “반출은 핸더슨 개인 책임”이라며 거부
삼국시대~조선시대의 국보급 도자기 143점 밀반출 확실··· 당장 반환받아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196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고미술품 수집가 그레고리 핸더슨이 한국의 도자기 등 국보급 한국문화재 143점을 미국으로 대량밀반출한 사건과 관련,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장물운반처벌을 규정한 미국법 조항을 한국측이 모르게 하라는 지침을 주한미국대사관에 하달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지난해 9월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반환한 호조태환권도 당초 이를 경매장에서 구입했던 재미동포에게도 미국 정부가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호조태환권을 압수, 반환한 것이어서 이 전문이 현재 핸더슨이 하버드대에 기증한 한국유물 143점을 찾아올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은 1974년 6월 21일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전문을 통해 한국문화재보호협회가 그레고리 핸더슨이 밀반출한 유물을 돌려달라는 요청과 관련된 법적 문제 등 대사관의 대응지침을 하달했습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은 ‘서울 3915’ 전문을 통해 그레고리 핸더슨 문제에 대한 법적인 쟁점을 검토해 달라고 국무부에 요구했고 국무부는 이에 따라 문화재 문제에 대한 법률적 측면을 정리한다고 밝혔습니다.
키신저 장관은 최근의 (한국문화재보호협회의) 반환요청의 배후에는 정치적인 동기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이 정보가 한국정부나 한국민간단체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법적인 측면을 요약했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주한미국대사관에 유물 대량밀반출과 관련해 보낸 법적대응지침 전문.
이 전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바로 4항입니다. 이 4항의 첫말과 끝말만 봐도 내용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4항의 첫말과 끝말은 바로 FYI[FOR YOUR INFORMATION], 당신이 주목해야 하는 정보 등으로 해석되는 말로 보통 보안을 요하는 중요한 정보를 특정인에게만 전달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키신저는 이 4항에서 미국법 제 2314조 [E.G., 18 U.S.C. SECTION 2314]를 언급했습니다. 특정케이스 즉 금액적으로나 고고학적 가치가 중요한 문화재는 미국법에 의해 법적인 집행이나 행정적 제재 등 미국 정부의 조치를 거쳐 [해당국가가] 간접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이 직접 핸더슨의 유물을 회수할 수는 없지만 미국법에 의거, 미국 정부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회수가 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특히 키신저는 E.G., 18 U.S.C. SECTION 2314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5천달러 이상의 훔친 물건을 미국 내 한주에서 다른 주로[즉 각 주간의 이동] 또는 외국으로부터 옮겨 올 경우 중범죄에 해당되며, 관세법은 미국으로 들어올 때 정식 신고절차를 밟지 않으면 해당 물건을 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다음 대목은 더욱 가관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법조항이 한국정부나 민간단체[핸더슨 유물반환을 요구한 한국문화재보호협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당부하고 다시 FYI 라고 명시했습니다.
정리하자면 키신저는 한국 정부가 장물운반처벌 조항에 의거, 핸더슨 유물 반환을 요청할 경우 이를 돌려줘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며, 주한미국대사관에는 한국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단속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한국이 직접 핸더슨 유물을 회수할 수 없는 이유는 2항에 설명돼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유출돼 미국 내에 있는 물건을 한국으로 돌려줄 수 있는 국제법에 따른 법적 장치는 없다, 문화재의 소유권을 불법으로 밀반입, 밀반출, 양도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금지하기로 한 1970년 11월 14일 유네스코 조약을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 모두 아직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1970년 7월 17일 멕시코와 콜럼부스 시대 이전의 특정 물건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약을 체결했지만 이는 라틴아메리카산 문화재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이 멕시코와 문화재보호조약을 맺었지만 이는 라틴아메리카 유물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한국과는 무관하다, 즉 한국은 미국으로 밀반출된 유물을 회수할 수 있는 국제법적 장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인해 한국이 밀반출문화재를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미국법의 장물운반처벌조항을 적용하는 것이며, 그 회수를 피하기 위해 한국이 이 조항을 알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 키신저의 유물대응 지침인 것입니다.
/각종 유물들로 가득찬 그레고리 핸더슨의 거실. 핸더슨 사망 이후 미 언론사들에 의해 사진이 공개됐다.
그렇다면 키신저는 왜 핸더슨 유물에 장물운반처벌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이는 바로 앞 전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키신저의 이 전문보다 이틀 앞선 1974년 6월 19일,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을 보면 그 이유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이 전문을 보면 핸더슨은 유물을 포함한 모든 짐이 적법절차를 통해 한국에서 반출돼 미국에 반입됐음을 주한미국대사관이 입증해 달라고 요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핸더슨 자신이 이삿짐 등 한국내 짐을 미국으로 가져가고는 어이없게도 합법적 반출입증책임을 주한미국대사관에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입니다.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이 전문에서 하비브 대사는 당시 핸더슨의 짐은 핸더슨의 부인 감독 하에 반출된 것이지 주한미국대사관이 반출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즉 주한미국대사관에서 합법적 반출임을 입증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비브 대사가 이처럼 자신있게 핸더슨의 짐반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비브도 1960년대초, 즉 1963년초 핸더슨이 5·16혁명 이후 출범한 군사정부와의 갈등으로 한국에서 사실상 추방될 때 주미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터라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핸더슨은 주한미국대사관에 반출책임을 물었고, 주한미국대사관이 핸더슨 책임이라고 주장한 것은 핸더슨이 소장한 무려 143점의 한국국보급 문화재, 특히 도자기가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반출되고 미국에 정식통관절차를 통해서 반입됐음을 입증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키신저는 핸더슨이 주한미국대사관에 적법절차를 거친 반출임을 증명해달라는 요구를 했음을 보고받고 핸더슨이 정식 반출, 정식 반입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핸더슨이 미국으로 가져온 한국 유물은 훔친 물건이 되고 훔친 물건은 바로 장물운반처벌 조항에 의거, 한국이 회수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전문은 미국의 국무장관인 키신저가 핸더슨이 소장한 유물이 한국에서 밀반출한 유물임을 사실상 인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장물운반처벌 조항으로 핸더슨을 미국 사법당국에 제소, 이를 회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연방검찰이 제출한 윤원영씨 기소장.
특히 키신저가 스스로 언급한 이 장물운반처벌 조항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최근 호조태환권을 경매장에서 매입해 소지한 혐의로 체포된 윤원영씨에게 적용된 조항이 바로 이 조항이며, 이를 근거로 압수, 한국정부에 돌려줬기 때문입니다.
당시 연방검찰이 미시건주 연방법원에 제출한 윤씨에 대한 기소장에는 윤씨에게 적용된 조항이 18 U.S.C. SECTION 2314 장물운반처벌 조항과 18 U.S.C. SECTION 2315 장물소지처벌 조항이라고 뚜렷이 명시돼 있습니다. 이중 키신저가 핸더슨에게 적용한 조항 18 U.S.C. SECTION 2314이 바로 윤씨에게 적용된 동일조항이며 압수, 반환된 근거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바로 이 조항을 적용, 핸더슨의 유물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핸더슨은 지난 1988년 사망했고 그의 부인 마이아는 핸더슨의 유물을 하버드대 박물관에 기증해 버렸습니다. 한국에서 유출된 국보급 유물 143점, 즉 핸더슨이 미국으로 밀반출한 장물을 현재 하버드대가 소유하고 있으므로 한국정부는 하버드대를 대상으로 미국 관련법에 의거, 소송을 제기해서라도 이 유물을 회수해야 합니다. 핸더슨 컬렉션으로 불리는 도자기 컬렉션이 143점이며 이외에도 핸더슨은 무수한 문화재를 밀반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미 키신저가 핸더슨이 소장한 한국문화재에 장물운반처벌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이 비밀전문을 미국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다면 한국정부의 유물 환수는 더욱 순조로울 것입니다. 바로 이 키신저의 전문이 국보급 한국유물 143점을 되찾을 수 있는 보증수표인 것입니다.
10.27 1960년대 미국 대사관 직원의 국보급 도자기 143점 불법 유출, 미 대사 조차 막으려 했다
196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 그레고리 핸더슨, 국보급 포함 도자기 143점 미국 반출
1970년대 하비브 대사, 외교 전문에서 “버거 당시 대사가 핸더슨 유물수집 막으려 했다” 언급
핸더슨, 군사정부와 갈등으로 떠났지만 유물반출은 합리화할 수 없어
/그레고리 핸더슨이 한국에서 밀반출한 국보급 도자기.
미국 등 해외로 반출된 한국문화재 회수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1960년대의 주미한국대사관 문정관 그레고리 핸더슨의 한국유물 대량 밀반출과 관련, 당시 사무엘 버거 미국대사도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핸더슨의 유물 수집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레고리 핸더슨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그리고 1958년부터 1963년 초까지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문화아타세[CULTURAL ATTACHE]와 정치담당[POLITAL OFFICIAL] 등을 지낸 인물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 국보급 고려청자를 포함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도자기를 최소한 143점 이상 미국으로 밀반출했습니다.
그는 도자기 외에도 고서화 등을 다수 밀반출해 자신의 집을 한국박물관처럼 꾸몄고 1969년 오하이오대학에서 '그레고리 핸더슨 콜렉션: 한국의 도자기'라는 전시회를 열고 143점의 도자기를 선보였으며, 1988년 그가 사망한 뒤 그의 부인이 143점의 도자기를 하버드대 박물관에 기증, 현재 하버드대가 이 유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1974년 6월 18일자 경향신문 7면에 보도된 그레고리 핸더슨 밀반출 문화재 회수운동.
이선근 전 영남대 총장이 회장을 맡은 한국문화재보호협회는 지난 1974년 6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레고리 핸더슨이 미국으로 밀반출한 한국유물이 최소 143점에 이른다며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이를 회수하겠다고 밝혔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은 국무부와 비밀전문을 주고 받으며 이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며,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초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가 함께 근무하던 그레고리 핸더슨의 한국유물 수집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1974년 6월 19일 오전 10시 22분 미국 국무부로 보낸 '그레고리 핸더슨 컬렉션의 반환'이라는 제목의 비밀전문에 따르면 한국언론들이 핸더슨 케이스를 계속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보도내용과 이선근 회장과의 면담내용 등을 보고했습니다.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하비브 대사는 전 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인 김재원씨가 TBC동양방송과 인터뷰를 했으며 이 인터뷰에서 김씨는 그레고리 핸더슨이 수집한 도자기 몇점을 비공식적으로 본 적은 있지만 이를 감정했다는 데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당시 버거 대사가 자신에게 그레고리 핸더슨이 문화적 가치가 있는 도자기를 모으는 것을 중단시켜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으나 자신이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버거 대사는 김씨에게 “핸더슨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보라, 즉 공론화시키지 말고 살짝 이야기해서 막아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버거 대사가 핸더슨의 한국유물수집을 저지하려 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버거 대사조차도 핸더슨이 수집하는 유물이 한국의 문화재임을 인식한 것은 물론 이로 인해 한미간에 심각한 문제가 일으킬 수 있는 범법행위였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핸더슨과 친밀한 김씨에게 그같은 행위를 중단시키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김씨는 또 핸더슨이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축출된 것은 대사관 내부 문제 때문이라고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비브 대사는 이 말은 헨더슨의 출발, 즉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수출절차[통관절차]를 밟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풀이했습니다.
사실 그레고리 핸더슨은 1963년 3월 27일 돌연 한국을 떠났으며 그는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간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 1963년 4월 3일 경향신문의 보도였습니다. 그레고리 핸더슨은 주한미국대사관 내 대표적인 반(反)박정희 인사였으며 핸더슨이 떠나기 전 박정희가 군정연장을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등 한미 간에 긴장이 고조됐었습니다. 또 미국이 군정에 반대해 배에 실린 원조물자를 하역하지 않고 있다는 이영희 합동통신기자의 기사도 이즈음 보도됐고 그 소스로 핸더슨이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설사 한미간 갈등으로 핸더슨이 추방형식으로 미국으로 쫓겨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한국유물 밀반출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핸더슨은 자신의 모든 짐의 통관이 한국의 법과 규정에 의해 진행됐음을 확인시켜줄 책임이 대사관에 있다고 요구했다고 하비브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하비브는 핸더슨의 이같은 요구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핸더슨이 한국을 떠났지만 그의 부인이 한국에 남아 짐을 싸는 것을 감독했으며 무엇보다도 핸더슨 자신이 어떤 물건을 미국으로 가져가는지 정확히 알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비브는 또 왜 대사관이 이런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하비브가 이처럼 자신있게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하비브가 핸더슨과 함께 1960년대 초반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에 근무했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전문을 살펴보면 주한미국대사관의 정치과의 책임자는 하비브였고 핸더슨은 그의 부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비브는 그 이후 승진을 거듭, 71년께 주한미국대사에 임명됐으며 한국국민들의 핸더슨 밀반출 유물반환 요청이 있을 때인 1974년 6월 귀임발령을 받고 8월말 귀국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핸더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하비브가 대사로 재임 중일때 반환요청이 제기돼 하비브가 핸더슨이 한국을 떠날 때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비브가 핸더슨의 부인이 짐을 싸는 것 등을 감독했다고 밝혔지만 핸더슨의 부인 마이아 핸더슨은 서울대 미대와 홍익대 등에 출강한 조각가로 미술에 조예가 깊어 사실상 한국문화재 수입을 진두지휘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핸더슨은 한국근무를 끝으로 사실상 불명예스럽게 국무부를 떠나 터프츠대 연구원으로서 학자의 길을 걷게 되며 해방 직후, 그리고 5·16혁명 등 한국근무시 경험을 토대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박사논문을 써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가 밀반출한 한국유물을 보면 과연 그의 진짜 직업이 무엇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필립 하비브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하비브는 또 이 전문에서 이선근 한국문화재보호협회 회장이 6월 19일 주한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에 핸더슨 케이스 관련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주한미국부대사[DCM]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때 이 회장은 문화재보호협회가 이미 2년전 설립된 민간단체로 2주전 해외밀반출 문화재 회수 운동을 펼치기로 결정했으며, 핸더슨의 유물반환을 요청한 것은 핸더슨이 스스로 자신이 143점의 한국도자기를 가지고 있다며 팜플렛을 통해 모든 증거를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장은 핸더슨이 팜플렛을 통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다고 밝힌 143점의 도자기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법에 따른 문화재에 해당하는 것이며, 일부는 도저히 해외반출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핸더슨이 국보급 한국문화재를 밀반출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핸더슨은 1963년 3월 28일 한국을 떠났고, 그가 수집한 한국 문화유물 등 짐은 그 이후 한국에서 반출됐으며, 이는 문화재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에 해당하므로 밀반출이 명백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부대사는 주한미국대사관과 미 국무부에 보내는 서한은 접수하겠지만 국무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책임은 없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실 이 당시 핸더슨이 워싱턴포스트 등에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반대한다는 투고를 하는가 하면 하원 외교위원회의 프레이저 위원이 개최하려던 한국-필리핀 인권청문회에 출석하려 했기 때문에 한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핸더슨의 유물 밀반출 문제를 거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핸더슨 자신이 1969년 2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그레고리 핸더슨 컬렉션: 한국의 도자기'라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면서 팜플렛에서 밝힌 대로, 기원 후 1세기부터 19세기까지 다시 말하면 백제·고구려·신라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한국의 도자기 143점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밀반출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5천달러 이상의 해외유물을 미국으로 반입할 때 미국 관세청으로부터 정상적으로 통관했다는 확인서를 받지 못하면 모두 밀반입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핸더슨은 자신이 소장한 유물을 미국으로 정상적으로 반입했다는 미국정부 확인서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는 모두 불법입니다. 또 현재 핸더슨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는 하버드대학 또한 이 정상반입 확인서가 없으면 장물을 불법 소지하고 있는 것이므로 세계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하버드 대학의 책임있는 조치를 기대합니다.
10.31 핸더슨, 한국 유물들을 보스톤 경매장에 내다팔아 돈 챙겨
국보급 한국유물을 대량 밀반출한 그레고리 핸더슨 전 주한미대사관 공보관은 한국 국민들의 반환요구가 거세자 자진 기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결국 이 유물의 일부를 하버드대학에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터프츠대는 핸더슨의 집을 기부받았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이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돼 핸더슨이 밀반출한 한국 유물 등이 장물로 문제될 것을 우려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핸더슨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 있다면 자진 기증 하겠다"고 밝힌 서울신문 1974년 6월 20일자 보도.
그레고리 핸더슨은 1974년 6월 한국문화재보호협회 등이 한국에서 밀반출한 도자기 143점 등의 반환을 요구하자 같은달 19일 UPI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근무를 마친 지 1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느닷없이 문화재를 돌려달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뒤 자진기증의사를 밝혔습니다.
1974년 6월 20일자 서울신문 등에 따르면 핸더슨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지적해서 반환요청을 한다면 한국의 국립박물관에 자진 기증하겠으나 어느 것이 이에 해당하는 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역사적 유물이 있으면 자진 기증하겠는데 나는 어떤 유물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언듯 보기에는 합리적인 항변으로 보이지만 그의 주장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핸더슨의 주장대로 그는1963년초 당시 군사정부와의 마찰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반환요구가 제기된 1974년이 11년째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그는 11년동안 입도 뻥긋 않던 사람들이 왜 지금 돌려달라고 하느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말하면 일종의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핸더슨이 국보급 유물을 포함해 수많은 유물을 차곡 차곡 상자에 담은 뒤 합법적인 반출절차를 거치지 않고 미국으로 실어날랐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가 유물을 가져갔다는 짐작은 했어도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밀반출했는 지는 상세히 알 수 없었기에 반환요구를 할래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핸더슨의 한국유물 전시회 관련 도록(圖錄).
핸더슨의 유물 중 일부라도 그 규모와 구체적 내용이 드러난 것은 스스로 자신이 수집한 한국유물을 자랑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핸더슨은 1969년 2월 9일부터 한달 간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열린 자신의 한국유물 전시회를 앞두고 도록을 출판하게 됩니다. 60페이지에 달하는 이 도록의 제목은 ‘코리안 세라믹스, 언 아츠 버라이어티’로 우리말로 하자면 ‘한국의 도자기, 그 다양성’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도록에 그가 수집한 한국유물의 일부인 최상급 한국 도자기 143점이 수록돼 있었습니다.
이 도록의 발간과 함께 미국 주요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연거푸 열리고 도록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한국정부와 우리 국민들도 마침내 그가 밀반출한 우리 문화재의 규모와 그 가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고 도록 등에 대한 기초조사를 한뒤 1974년 반환요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UPI인터뷰 중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자진 기증하고 싶지만 나는 뭐가 뭔지 몰라서 못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또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1969년 오하이오주립대 전시를 시작으로 핸더슨이 수집한 한국유물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이 유물들은 ‘핸더슨 컬렉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가치를 모르겠다”는 핸더슨의 주장은 사실과 크게 다른 것입니다.
1969년 발간된 도록에도 그가 수집한 한국유물 중 일부인 도자기 143점에 대한 가치가 너무나도 잘 언급돼 있습니다. 이 도록에는 각 도자기의 출토연대, 크기는 물론 출토장소 등이 언급돼 있습니다. 가장 먼저 수록된 유물인 ‘곳간 모형’은 낙랑 1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제조된 것으로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돼 있고 143번쩨 유물인 갈색저장단지는 조선시대인 19세기 작품으로 전라북도 남원군 가마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또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문외한이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국보급 유물도 많이 수록돼 있어 한국자기에 관한 한 전문가로 꼽히는 핸더슨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인지 모르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박상식 당시 보스톤총영사가 보낸 한 외교전문.
특히 핸더슨이 숨진 뒤 밀반출한 유물 중 도자기 143점을 하버드대에 기증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는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핸더슨은 1988년 10월 66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메사추세츠주 메드포드의 자신의 집 지붕을 수리하러 올라갔다 떨어져 결국 사망했다는 것이 당시 언론의 보도였습니다. 핸더슨이 사망한 뒤 핸더슨의 유물 중 일부인 도자기 143점은 우여곡절 끝에 하버드대 박물관이 차지하게 됩니다.
한통의 외교전문이 그 과정을 잘 설명합니다. 1992년 1월 22일 박상식 당시 보스톤총영사는 외무부로 한 통의 외교전문을 보냈습니다. 외무부가 이 전문을 접수한 날이 1월 30일인 점으로 미뤄 아마도 파우치편으로 전달된 듯 합니다. 전문번호가 보스톤(공) 2052-0034인 이 전문은 수신인이 외무부장관, 참조는 문화협력국장, 미주국장이며 전문제목은 ‘한국문화재 기증’ 이었습니다. 전문내용은 하버드대 박물관에 대한 핸더슨 전 주한미공보관의 유품(도자기)기증관련자료, 즉 하버드대 박물관 보도자료를 보낸다고 돼 있습니다.
두번째 문장은 특히 중요합니다. ‘핸더슨은 생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유품을 판매하려 했으나 협상이 실패된 바 있다. 그의 사망 뒤 미망인도 ‘뮤지엄 오브 파인아트 보스톤’, ‘피바디뮤지엄’, ‘살렘 및 하버드뮤지엄 중 한 박물관과 교섭했으나 여러 고려 끝에 하버드대 박물관에 일부를 기증키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핸더슨이 생전에 한국문화재를 팔아넘기려 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번째 문장은 박상식 당시 총영사의 견해입니다. “본직은 동 유물이 하버드박물관에 영구전시된 것은 한국예술품의 국제적 홍보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라 사료합니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하버드대가 핸더슨컬렉션과 관련해 작성한 보도자료.
이 전문에 첨부된 4장짜리의 보도자료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버드대가 작성한 이 보도자료는 전문발송 약 보름 전인 1992년 1월 8일 작성, 배포된 것으로 ‘하버드대가 그레고리 앤 마리아 핸더슨 컬렉션의 50%는 마리아 핸더슨으로부터 기증받고 50%는 하버드대 동양예술품펀드의 자금을 활용, 수년에 걸쳐 사들일 것이다’라고 밝혀 핸더슨 일가가 일부만 기증하고 일부는 돈을 받고 팔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증이 아니라 일부기증, 일부 판매라는 사실이 첨부문서에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상식 당시 총영사는 전문제목을 ‘한국문화재 기증’이라고 기록, 정확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 하버드박물관에 영구전시됨으로써 한국예술품 홍보면에서 바람직하다고 결론냈지만 현재 하버드대 박물관에서 143점 전체를 본 사람은 박물관 직원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안타깝게도 핸더슨컬렉션의 10%정도인 10여점 정도만 전시돼 있고 나머지 백여점은 수장고에서 햇볕조차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당시 총영사가 추후 하버드대가 이를 어떻게 전시할지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절반은 판매됐다’는 정확한 사실을 외무부에 보고하고 밀반출 논란이 계속됐던 만큼 이에 대해 조사하고 견해를 밝혔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랬다면 한국정부가 정확한 판단을 하고 하버드대 매도 직후 곧바로 문제를 제기, 반환요청을 해서 좋은 결실을 맺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당시 외무부의 무사안일한 대응, 서울올림픽과 관련해 신군부와 핸더슨간의 유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점 등이 핸더슨컬렉션의 조기 반환을 가로막은 셈입니다.
/하버드대가 핸더슨컬렉션과 관련해 작성한 보도자료.
특히 하버드대는 이 유물을 아셔 샤클러 박물관에 전시함으로써 박물관이 미국내 한국자기전시관이 됐으며 약 150점에 가까운 도자기 컬렉션은 한국 도자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하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자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보도자료에는 하버드대박물관의 아시안예술담당 큐레이터인 로버트 마우리의 평가도 담겨있습니다.
그는 ‘서구박물관의 한국도자기컬렉션 중 최고’라며 ‘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를 포함하며 고려청자는 지구상에서 최고’라고 밝혔습니다. 또 ‘고대시대부터 9세기,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도자기가 모두 수집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핸더슨컬렉션에 AD 1세기, 즉 기원후 1세기부터 1910년까지의 한국도자기가 모두 포함돼 있다는 평가와 일치합니다. 핸더슨이 수집한 도자기는 한국도자기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소중한 유물인 것입니다.
/핸더슨컬렉션 관련한 뉴욕타임즈 기사.
핸더슨의 도자기 컬렉션 143점이 핸더슨 밀반출 유물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이같은 도자기 외에도 많은 유물을 유출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핸더슨 일가가 수시로 보스턴의 미술품 경매장에서 한국유물을 내다 팔아 돈을 챙겼다는 것이 미술품경매업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소문입니다. 실제 미국 한 신문에 보도된 그의 집 거실사진은 거대한 탱화 등 한국유물이 가득했습니다. 또 한국학생들의 도미유학을 주선하고 일부 학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숙식토록 하면서 학생들이 학위를 마치고 귀국할 때나 결혼식을 할때 등에는 선물로 고가의 한국문화재를 서스럼없이 건넸고 이 때문에 한국에 ‘핸더슨키즈’가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한국유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핸더슨의 미망인인 마리아 핸더슨이 숨진 뒤 또 하나 중요한 일이 발생합니다. 마리아 핸더슨은 한국에서 서울대, 홍익대 등에 출강하고 서울 혜화동 등에 작품을 남긴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1936년 나치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즉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바로 그 올림픽의 개막식 때 여중생으로서 혼자서 스타디움에서 올림픽개막 축하무용을 선보였던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핸더슨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독일 베를린에 근무하다 마리아를 만난뒤 일본 교토에서 결혼식을 올린뒤 평생 반려가 됐고 1958년부터 1963년까지 핸더슨의 두번째 한국근무 때 마리아도 한국유물 수집에 조언을 했고 유물의 체계적 수집, 즉 고대시대부터 근대까지 빠짐없이 수집하도록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터프츠대가 제출한 '주택기부 거절' 문서.
마리아 핸더슨 사후 발생한 중요하고도 특이한 일은 마리아가 핸더슨과 살던 집을 터프츠대학에 기증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터프츠대학이 이를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메사추세츠주 미들섹스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터프츠대학은 2009년 2월 11일 한 건의 문서를 접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토마스 맥거티 터프츠대 재정담당 부총장이 같은 해 1월 30일 작성, 봉인한채 등기소에 제출한 이 문서의 제목은 ‘거절’로 첫페이지는 본문, 두번째 페이지는 공증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슨 ‘마리아 핸더슨의 주택 기부를 거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터프츠대학이 제출한 이 문서에 따르면 마리아 핸더슨이 2001년 7월 25일 작성한 유언장 2조에 ‘메사추세츠주 미들섹스카운티 메드포드의 락힐스트릿 12번지 부동산의 대지와 건물 등을 모두 터포츠대학에 기증한다고 기재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뒤 2007년 12월 14일 마리아 핸더슨이 사망했고 이 유언장은 2008년 3월 17일 미들섹스카운티 가정법원에서 집행승인을 받음으로써 주택은 터프츠대 소유가 되도록 돼 있었지만 터프츠대가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 문서에 터프츠대가 왜 마리아 핸더슨의 주택기증을 거부했는 지에 대한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집을 받았을 경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터프츠대가 제출한 '주택기부 거절' 문서.
0.64에이커에 침실이 5개, 욕실이 3개인 2층주택이며 3층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는 이 집은1970년 8월 19일 핸더슨 부부가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69년 오하이오주립대 전시회를 시작으로 핸더슨컬렉션이 각광받기 시작한 뒤 이 집을 매입한 것입니다. 백방으로 기부금을 구하는 미동부의 유명사랍대학이 주택기증을 마다한 것은 정말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정황상으로는 아마도 테프츠대학은 이 집의 구매자금이 밀반출된 한국유물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주택기증을 거절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핸더슨의 밀반출사실이 확인된다면 주택을 기부받은 터프츠대학도 골치아픈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예 문제소지를 차단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렇다면 터프츠대의 핸더슨 주택기부 거부사실도 핸더슨의 한국유물 밀반출을 시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핸더슨은 1968년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실제1963년 군정연장에 반대하다 사실상 추방당하는 등 한국 정치제도 발전을 일정부분 노력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국정치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한국문화재 밀반출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1074년 문화재반환을 요구하자 핸더슨은 정치적 탄압, 희생양 운운했지만 밀반출한 국보급 문화재부터 한국국민들에게 돌려주고 그같은 주장을 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정부는 미국정부, 그리고 하버드대 등에 핸더슨컬렉션의 반환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11.04 태극기 휘날리는 고종 생일 축하 병풍의 짝퉁 미스터리
연세대 소장 작품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도 동시에 등장
'고종황제 50회 생신 축하잔치병풍'(진연도) 뉴욕서 경매에 나와
현재 연세대 소장 중인 ‘진연도’와 동일 작품 추정
둘 중 하나는 위작일 가능성
/소더비가 1997년 경매를 위해 발행한 쉐바커소장품 도록. 진언도가 표지그림에 사용됐다. 태극기가 인상적인 이 그림을 8폭 병풍 사진과 대조한 결과 7번째 화폭의 하단부임이 확인됐다. 1901년 대한제국에서 태극기가 널리 사용됐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그림이기도 하다.
그레고리 헨더슨 전 주한미대사관 공보관이 한국문화재를 대거 밀반출해 판매한데 이어 그의 전임자인 마커스 쉐버커도 한국유물을 대거 수집, 미국에서 경매에 내다판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쉐버커가 수집한 유물 1점은 2010년에 국내 한 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뉴욕 크리스티경매에도 동일한 작품이 출품, 낙찰돼 둘중 하나는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무부 발간 1951년(위), 1957년 해외파견직원 명단
마커스 쉐버커는 미공보원 소속으로 지난 1945년 해방뒤 미군정 시절부터 1958년까지 약 13년간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한 외교관으로 1958년 6월 10일 서울시 사상 처음으로 공로시민증을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서울시의 공로시민증은 1972년 명예시민증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외국인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명예시민의 영광을 안은 사람입니다.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증 수여자 명단.
그레고리 헨더슨이 1948년부터 약 2년간 한국, 일본 등에 근무하다 1958년 쉐버커의 후임으로 한국에 부임하며 1960년께 문화아타세에서 주한미대사관 정치과로 옮겨서 근무하게 됨으로써 후일 언론에서는 헨더슨을 문정관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헨더슨이 국보급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재를 밀반출했지만 그의 전임자인 쉐버커 역시 적지 않은 유물을 수집, 미국으로 가져갔음이 그의 사후에 드러났습니다. 1913년 3월 7일생인 쉐버커는 1997년 2월 18일 83세로 사망했고 그가 숨진 지 약 7개월 뒤에 그가 수집한 한국유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1997년 9월 26일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는 ‘마커스 쉐바커의 유품인 한국예술품’[KOREAN ART FROM THE ESTATE OF MARCUS W. SCHERBACHER] 이란 타이틀 아래 쉐버커가 한국에서 수집한 유물에 대한 경매를 실시했습니다. 당시 소더비가 발행한 도록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쉐버커를 ‘1945년부터 1958년까지 한국에서 문화아타세로 근무한 미국 외교관’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60페이지에 걸쳐 모두 64점의 한국유물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더비가 1997년 경매를 위해 발행한 쉐바커 소장품 도록 중 청자상감음각모란문대접.
신라시대의 토기부터 청동병, 고려청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 20여점, 김홍도의 그림, 병풍 등과 함께 이상범, 이응로, 김기창, 남농, 김응현 등의 그림도 눈에 띄었습니다. 고려청자는 각종 청자병과 청자음각상감연화문잔, 청자음각탁잔, 청자음각연화문대접, 청자음각포도문표형주자, 청자상감음각모란문대접, 청자음각 연화문배병 등 다양한 유물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쉐바커의 소장품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더비도록의 표지작품으로 사용된 고종황제의 50회 생일잔치 전경을 담은 8폭 진연도 병풍입니다.
/소더비가 1997년 경매를 위해 발행한 쉐바커 소장품 도록에 수록된 진연도. 전체 60페이지의 도록에서 진연도를 설명한 부분이 무려 9페이지에 이른다.
소더비는 “1901년 7월 고종황제의50회 생일을 맞아 궁중에서 펼쳐진 잔치를 담은 이 병풍은 역사적 가치가 큰 작품으로 쉐바커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매내정가격이 75만 달러에서 85만달러였지만 응찰가격이 67만5천달러에 그치자 소유자인 쉐바커측이 판매를 포기했습니다. 이처럼 쉐바커는 규모에 있어서는 후임자인 헨더슨의 엄청난 한국유물 밀반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유물을 수집, 결국 미국경매시장에 내다 파는 등 주한미대사관 초대와 2대 공보관 모두 한국유물을 해외로 반출하는데 열을 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쉐바커의 유물 중 진연도 병풍과 고려청자 등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헨더슨처럼 정식통관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됩니다.
특히 쉐바커측이 경매에 내다팔려다 유찰된 고종생일잔치병풍인 진연도를 추적해 본 결과 현재 연세대가 소장하고 있는 진연도와 동일한 작품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둘다 진품이거나 아니면 하나가 위작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쉐바커 측은 1997년 고종생일잔치병풍인 진연도를 경매에 내놨다가 예상가에 미치지 못하자 판매를 철회했습니다. 아마도 쉐바커 측이 계속 소유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경매유찰 직후 약 10여년간 누가 이 병풍을 소유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메뉴를 통해 찾아본 '신축진연도병'.
그러던 중 유찰된 지 13년이 지난 2010년 2월 국내언론은 연세대가 소장하고 있는 고종황제 50회 생일축하잔치 8폭 병풍이 곧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것이라고 앞다퉈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 문화재청도 홈페이지를 통해 연세대가 소장한 진연도 8폭 병풍이 2010년 6월 17일 서울시 유형문화재 306호 지정됐다며 진연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이 병풍이므로 정식명칭을 ‘신축진연도병’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축년에 펼쳐진 잔치를 그린 그림으로 만든 병풍이란 뜻입니다. 1901년 7월 거행된 고종황제 50회 생신 축하잔치를 그린 것을 의미하므로 쉐바커 등이 소장한 진연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크리스티가 2010년 9월 15일 진연도 경매 결과를 설명한 웹사이트 화면. 이 페이지에는 진연도에 대한 상세한 영어설명도 기록돼 있다.
이상한 일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지정 3개월 뒤인 2010년 9월 15일 발생합니다. 연세대가 소장하고 있는 진연도와 동일한 작품이 미국 경매에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소더비 경매가 아닌 뉴욕 크리스티 경매입니다. 크리스티 도록을 살펴보면 쉐바커가 소유했던 진연도와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매에서 이 작품은 경매예상가가 30만에서 35만 달러였으나 약 3배에 가까운 84만2500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진연도가 연세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 크리스티경매에 동일작품이 출품돼 누군가에게 낙찰된 것입니다. 연세대가 진연도를 내다팔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현재 연세대에 소장된 진연도와 크리스티경매에서 누군가에게 낙찰된 진연도가 각각 존재하는 것입니다.
/맨위부터 소더비 도록, 크리스틱 웹사이트, 문화재청 웹사이트에 게재된 진연도.
그래서 관심은 연세대와 크리스티경매 출품 작품이 둘다 진품인지, 아니면 하나는 위작인지에 모아집니다. 소더비가 발행한 쉐바커 도록에 수록된 진연도 사진, 크리스티가 웹사이트를 통해 진연도 경매결과를 설명하면서 게재한 진연도 사진, 문화재청이 진연도를 설명하면서 웹사이트에 게재한 사진 등을 비교해 보면 육안으로는 거의 동일하게 보입니다. 또 소더비와 크리스티, 그리고 문화재청이 쓴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이 한글과 영문이라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 각 화폭에 대한 세세한 설명까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은 동일한 작품임을 입증합니다.
크리스티 경매 작품과 연세대 소장 작품이 동일한 고종황제 50회 생신축하잔치 병풍을 의미함이 분명하므로 두 작품에 대해 정밀 감정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티경매 낙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연세대에 보관된 진연도의 진위를 살피는 한편, 미국정부의 협조를 얻어 경매낙찰자를 찾고 그 작품도 조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진연도를 소장한 연세대 측은 “서울시 유형 문화재에 등록할 때 다수의 전문가들이 진품이란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위작일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죠. 그러나 경매에 나온 물품 역시 진품일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한창균 연세대 박물관장은 “병풍의 경우 한번 제작할 때 같은 것을 여러 개 만드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소장한 진연도와 경매에 나온 진연도 두개 모두가 진품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화재청 역시 연세대 측과 비슷한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문화재청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황정연 연구사는 “당시(조선)에는 관에서 병풍을 제작하게 하면, 개인이 원작자에 돈을 주고 같은 병풍을 몇 점 더 만들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며 “실제 진본이 여러 개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후손들이 개보수를 통해 모본을 만드는 경우도 있어, 연세대 측이 갖고 있는 것과 경매에서 나온 것을 비교해 감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연세대의 병풍과 뉴욕의 병풍, 과연 둘다 진본일까요? 아니면 하나는 위작일까요?
11.10 53년전 고단하고 고단했던 박정희의 케네디 방문 길
11일 출발, 일본 도쿄-앵커리지-시애틀-시카고 거쳐 14일 아침에야 도착
KNA-노스웨스트 민항기-미군 수송기 등 갈아타고 중간기착지선 1시간반씩 대기
주미대사관 쉬쉬했지만 미 국무부 보도자료, 박 의장 ‘고난의 방미길’ 기록
53년 뒤 오늘, 태극 마크단 전용기로 전세계 누비며 국제사회 주도 ‘격세지감’
/1961년 11월 백악관을 방문해 케네디 대통령 부부를 만난 박정희 의장./케네디 대통령 기념도서관
53년전 11월 11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방미길에 올랐으나 전용기가 없어 외국 민항기와 미군 수송기를 빌려타고 4번이나 중간기착을 한 뒤 사흘만에 워싱턴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나 격세지감이란 말을 실감케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 국가원수가 태극마크를 단 전용기편으로 전세계를 누비며 국제사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61년 11월 9일 미 국무부는 박정희 의장의 방미 일정을 정리한 8페이지짜리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이날 오후 6시 30분까지 엠바고를 걸었습니다. 이 자료는 11월 12일부터 23일까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공식방미하는 박정희 의장과 공식수행원 명단, 그리고 세부일정을 시간대별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까지 오는 여정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3년전 11일 한국 국가원수의 미국 가는 길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는' 고행을 떠올리게 하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박 의장이 미국방문을 위해 출국한 것은 1961년 11월 11일 정오. 당시 국내언론은 1961년 11월 12일자 신문을 통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수원 13명[수원: 공식수행원을 의미한듯]과 15명의 동행 신문통신기자들과 함께 11월 11일 정오 KNA 사발전세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때 박의장은 회색 싱글에 검은 모자, 그리고 옅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박 의장 일행은 국적항공사인 KNA 사발전세기[록히드사의 컨스털레이션으로 추정]를 타고 김포를 출발, 일본으로 갔습니다. 일본에서는 미국 민항사인 노스웨스트오리엔트항공으로 갈아타고 미국으로 출발, 알래스카시간 11월 12일 일요일 오전 9시 34분에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 국가원수는 1시간 40분을 기다린뒤 오전 11시 15분 다시 앵커리지를 출발, 태평양시간[미서부시간] 오후 4시 15분 미서부의 관문 시애틀의 타코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도 한국국가원수는 미국 민항기를 이용하는 탓에 또 다시 1시간 15분을 기다린뒤 오후 5시 30분이 돼서야 시애틀을 출발, 시카고 오헤어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노스웨스트오리엔트항공 10편이 시카고 오헤어공항에 도착한 것은 미중부시간 그날밤 10시49분, 그야말로 모두가 곤히 잠든 한밤중에야 도착했고 숙소인 시카고 드레이크호텔에 다다른 것은 자정이 가까운 11시 45분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민항기는 무려 2번이나 중간기착을 했고 한국국가원수는 비행기가 설때마다 1시간반 남짓씩 비행기안이나 공항에서 멍하니 기다려야 했으니 그 심정이 어땠을 지 짐작이 갑니다.
거의 새벽무렵에야 잠자리에 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박 의장은 이튿날인 11월 13일 월요일 오전, 새벽같이 일어나 시카고 동포를 만나는 등 간단한 일정을 소화한 뒤 이번에는 미국정부가 제공한 미공군 수송기 신세를 지게 됩니다. 박 의장은 이날 정오 미공군 수송기편으로 시카고 미드웨이공항을 출발, 수송기에서 주는 기내식으로 점심 끼니를 떼우면서 3시간 비행 끝에 마침내 미동부시간 11월 13일 오후 4시 워싱턴DC에 입성했습니다. 미동부시간 11월 13일 오후 4시이니 한국시간으로는 11월 14일 새벽 6시였습니다
11월 11일 정오, 사발전세기로 김포를 떠나 11월 14일 오전 6시에야 미국수도 워싱턴DC에 도착했으니, 무려 사흘, 시카고 체류 12시간을 제외해도 꼬박 이틀 이상이 걸린 것입니다. 동경, 앵커리지, 시애틀, 시카고 등 4개 도시를 경유한 다음에야 비로소 워싱턴 DC에 도착할 수 있었고 국적기인 KNA, 노스웨스트 오리엔트항공, 미군군용기 등 외국민항기와 미군 군용기를 빌려타야 했었습니다.
박 의장 일행은 케네디 대통령 면담 등 워싱턴 DC일정이 끝난 뒤 11월 17일 뉴욕으로 이동, 11월 19일 샌프란시스코 이동에는 미국 측이 제공한 미공군수송기를 이용했고 11월21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하와이 호놀룰루로 떠날때는 다시 미국민항기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이때 이용한 민항기는 팬암 843편이었습니다.
박의장 일행은 11월 23일 하와이 일정을 끝내고 일본 동경으로 갈때도 팬암기를 타야 했고 11월 25일 동경에서 서울로 올때는 다시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을 이용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11월 11일 서울을 떠나고 11월 25일 서울로 돌아왔으니 방미기간은 무려 15일, 대통령 전용기는 물론 변변한 국적기 1대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15일 중 오고 가는데 걸린 시간만 엿새가 넘었습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주미한국대사관의 방미 발표입니다. 미국무부 발표와 같은 날인 1961년 11월 9일 주미한국대사관도 박 의장 일행의 방미일정을 소개하는 보도자료[NO.94105]를 발표했습니다만 동경-앵커리지-시애틀 등을 경유하는 일정 등은 모두 생략했고 귀국길에 일본에서 노스웨스트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내용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미국무부 발표 방미 일정은 8페이지, 주미한국대사관 발표 방미 일정은 4페이지로 주미대사관은 국가위신을 위해 워싱턴DC까지 오는데 사흘이 걸린 사실 등은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정확히 53년전 오늘 국가원수의 미국 방문길은 당시의 국력을 보여주듯 외국민항기와 군용기를 번갈아 빌려타고 며칠씩 가야하는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세계정상을 만난 뒤 미얀마, 호주 등을 잇따라 순방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중국은 물론 동남아국가인 미얀마, 대양주 국가인 호주까지 3개국을 순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8일 남짓입니다. 비롯 대한항공에서 임대한 비행기이기는 하지만 번듯한 전용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53년전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간난신고’의 방미길을 기록한 국무부 문서는 지난 53년간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발전시켰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11.11 이건희-홍라희 부부, 지난 4월 하와이 쿠키오골프클럽 멤버십 매입
빅아일랜드의 유일한 프라이빗 골프장, 골프장 내 부동산 사야 회원자격
홍 여사, 지난 4월 16일 귀국 전날 쿠키오클럽 나대지 90만달러에 매입
참여연대 출신 ‘삼성저격수’ 차병직 변호사, 이건희 이어 홍라희 부동산 매입도 공증맡아
미국서 작성한 위임장, 같은 날 한국서 공증…사실상 불가능
‘이 회장, 아리조나주 피닉스 메이요 클리닉 후송설’ 나돌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6개월째 투병중인 가운데 이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가 절경을 자랑하는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프라이빗 골프클럽 회원권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와이 호놀룰루 등기소에 따르면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쿠키오 골프 앤 비치 클럽’은 지난 9월 4일 이건희 삼성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를 상대로 ‘동산담보’[UCC]를 설정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서류에 따르면 UCC의 채무자는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5-50번지의 이건희씨와 같은 주소의 홍라희씨, 채권자는 쿠키오 골프 앤 비치 클럽이었습니다. 또 담보물은 쿠키오측과 이 회장 부부간의 쿠키오 골프 앤 비치 클럽 회원권 매입계약서에 따른 채무자의 모든 권리로 명시돼 있습니다.
이는 이 회장 부부가 쿠키오 골프 앤 비치 클럽의 회원권을 매입했으며, 쿠기오 측이 회원들의 골프피나 클럽이용료 등의 미납에 대비해 매입계약상 회원권 등 회원들의 모든 권리를 담보로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매매계약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매매계약에 회원권 등 모든 권리를 담보로 제공한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02년 개장한 쿠키오 골프 앤 비치 클럽은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유일한 프라이빗 골프장입니다. 골프코스 설계로 유명한 탐 파지오가 설계한 골프 코스로 미국PGA 대회가 열렸던 18홀 골프 코스와 10홀짜리 숏 코스가 있습니다. 특히 이 쿠키오 골프클럽은 골프 코스 전체가 하와이 앞바다와 접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골프클럽뿐 아니라 최고급 수준의 스파와 헬스 클럽, 세계적인 요리사가 준비하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테니스코트, 수영장 등이 완비된 비치클럽도 있습니다.
이 골프클럽의 회원권은 27만5천달러이며 연회비가 5만7천달러입니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누구나 당장 이 골프클럽의 회원권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골프클럽의 회원권을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골프클럽 내의 부동산을 매입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골프클럽 회원권 매입에 앞서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도 하와이에서 귀국하기 하루 전인 지난 4월 16일 쿠키오 클럽 내 부동산을 매입, 4월 24일 등기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홍 여사는 이 클럽 내 ‘주거용지’인 나대지 0.5에이커, 약 6백평을 로널드 마이어스라는 전주인으로 부터 89만5천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로널드 마이어스씨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전인 2006년 5월 1일 175만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홍 여사는 당시보다 절반가격에 땅을 사들인 셈입니다
홍 여사는 또 3월 24일 자신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35-50번지에 사는 이건희씨의 부인’이라며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김병욱씨와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김태진씨에게 이 땅 매입에 관련한 모든 권리를 위임하는 위임장을 작성했습니다. 홍 여사는 이 위임장에서 자신의 서명란에 RA HEE HONG 이라는 영문은 물론 한자로 서명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홍 여사는 위임당사자인 자신이 직접 위임장 공증을 받지 않고 피위임인인 김태진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법무법인 한결의 차병직 변호사로 부터 공증을 받았습니다. 차 변호사는 삼성X파일사건과 관련, 2005년 7월 이건희 회장 등을 고발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출신입니다. 이 공증증서에는 법무법인 한결의 차병직 변호사가 3월 24일 서울 종로의 법무법인 한결 사무실에서 ‘위 특별위임장에 기재된 홍라희의 대변인 김태진은 본 공증인의 면전에서 위 본인이 서명한 것임을 확인하였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홍 여사가 김태진씨 등에게 위임장을 써 준 날짜가 3월 24일, 차병직 변호사가 김태진 씨를 만나 위임장 공증을 해준 날짜가 3월 24일로 동일합니다. 그러나 당시 홍 여사는 국내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회장 부부는 지난 1월 10일께 해외로 출국, 세월호 침몰 다음날인 4월 17일, 97일만에 귀국했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입니다. 해외에서 서명한 위임장 원본이 같은 날 서울로 공수돼 차 변호사가 공증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석입니다.
당시 이회장 부부 체류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하와이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하와이에서 당일 한국까지 서류공수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와이가 한국보다 시차가 무려 19시간 빠르기 때문입니다. 홍 여사가 3월 24일 새벽 0시에 위임장에 서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시간은 벌써 3월 24일 오후 7시가 됩니다. 이 시간에 서명된 서류가 같은 날 한국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차변호사가 과연 3월 24일 위임장을 정말 봤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앞서 이건희 회장 역시 지난해 12월 23일 하와이 호놀룰루 다이아몬드헤드 인근 카하라비치의 별장용지 약 천평을 매입할때 관련업무를 김병욱, 김태진씨에게 맡긴다는 위임장을 12월 6일 작성했고 위임장은 같은 날 서울에서 차병직 변호사가 공증한 것으로 드러났었습니다.
당시 이 회장은 해외체류 중이었기 때문에 12월 6일 해외에서 작성한 위임장이 같은 날 서울에 도착해 차병직 변호사의 면전에 제시됐음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만 차 변호사는 같은 날 자신이 그 서류를 봤다고 서명날인하고 위임장에 간인까지 찍었습니다.
한편 입원 6개월을 맞은 이건희 회장은 호흡기가 약하기 때문에 겨울철을 맞아 비교적 기후가 좋은 미국으로 후송,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회장 측은 일년 내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며 습기가 적어 ‘노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아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을 후보병원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메이요 클리닉은 요양시설이 잘 갖춰진데다 세계적인 의술을 자랑하는 병원입니다. 플로리다주 잭슨빌, 미네소타주 로체스터 등에도 분원이 있지만 잭슨빌은 높은 기온으로 습도가 많기 때문에 검토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후문입니다. 만약 이 회장이 미국행을 결정한다면 그 시기는 이달내가 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11.17 방위사업청, KF-16 성능개량사업 관련해 476억원 날릴판
방사청, 미 업체 BAE시스템스에게 계약위반으로 입찰보증금 4325만달러 몰수 통보
그러나 미 업체는 이 통보 거부하며 미 연방법원에 소송제기
방사청, 입찰보증금 대신 지급각서만 받아 몰수할 돈도 없어
공화당 거물 처토프 전 국토안보부장관이 BAE 시스템 이사회 의장
‘입찰보조금 몰수’ 서한받은 처토프 전장관, 한국에 압력행사 의혹
방사청 주무 항공기사업부장도 정광선서 백윤형으로 전격교체
국회, 입찰보증금 전액 환수 의결…그러나 BAE 반발로 난항예상
입찰 보증금도 상이…국회는 6114만달러, 방사청은 4325만달러
KF-16전투기 성능개량사업과 관련, 방위사업청이 비용을 부당증액한 미국 방위산업체 BAE시스템스의 입찰보증금4325만달러(476억원)를 몰수하려하자 BAE 시스템스가 지난 12일 방사청을 상대로 몰수조치가 무효라는 소송을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BAE시스템스의 입찰보증금은 4325만달러지만 이를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로 제출, 방사청은 몰수를 할래야 몰수할 입찰보증금이 없고 입찰보증금 납부만 거듭 독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방사청의 입찰보증금 압류통보 서한을 받은 BAE시스템사의 이사회 의장인 마이클 처토프 전 미 국토안보부 장관이 지난달 중순 한국을 방문,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것으로 드러나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하려 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방사청의 KF-16 전투기 성능개량사업 주무담당자인 항공기사업부장(공군 준장)이 전격 경질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BAE시스템스는 방사청이 사업비용에 대한 최종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마감시한인 지난 12일 미 연방법원 메릴랜드법원에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몰수조치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BAE시스템스는 소송장에서 입찰보증금 지급각서와 2012년 8월 1일 방사청과 체결한 합의각서는 무효이며 FMS[대외군사판매]나 미 연방법상 합의보증금 몰수는 부당하며 자신들은 계약을 위반한 적이 없다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복잡한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깐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방사청 공고와 BAE시스템스사의 소송장을 살펴보면, KF-16 전투기 성능개량사업은 지난 2011년 10월 31일 방위사업청의 입찰공고로 시작됐습니다. F16전투기 레이더를 만들거나 개선할 수 있는 회사는 록히드 마틴과 BAE시스템스, 2개 회사뿐이었기 때문에 이들 회사와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방위사업청은 두 회사와의 협상을 통해 낮은 가격을 제시한 BAE시스템스사와 2012년 8월 1일 합의각서를 체결했습니다. 그 뒤 2013년 8월 이 사업의 전체 계약금액은 17억5백만달러, 그중 BAE시스템스사가 13억1400만달러, 나머지는 미국정부의 몫으로 합의했습니다. 방사청은 BAE시스템스와 2013년 12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수락서에 최종 서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공군은 지난 5월 8일 BAE시스템스사를 이 사업 수행업체로 선정했습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8월입니다. 8월 9일 미국정부가 방사청에 서한을 보내 총비용이 20억6천만달러 이상이라고 통보했고, 9월 한미정부간 실무회의에서는 최종금액이 24억~25억달러라는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지난 12월 계약때보다 무려 8억달러, 약8천억원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지난 9월 29일 BAE시스템스사에 공문을 보내 9월 30일자로 만기가 되는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즉각 연장하고 10월 20일까지 사업비용을 2013년 9월 합의대로 조정하지 않으면 합의각서 8조에 의거, 입찰보증금을 몰수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문제는 몰수할래야 몰수할 보증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당초 이 사업입찰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7조 4항에 의거, 입찰자는 입찰보증금을 면제받고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받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방사청은 BAE시스템스에서 받은 입찰보증금은 단 한푼도 없고 지급각서 한장만 있는 상태이며 이 마저도 내년 1월15일 만료됩니다. 그래서 방사청은 9월 29일자 공문과 별도로 그 다음날인 30일 다시 BAE시스템스에 ‘입찰보증금 몰수통보’라는 공문을 보내 입찰보증금 4325만달러를 우리은행 후암동 지점 방위사업청 계좌로 10월 30일까지 납입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자 BAE시스템스는 9월 30일자로 제6차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보내면서 별도의 공문을 통해 입찰보증금몰수 취소를 전제로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제출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방위사업청이 내년 1월 15일까지 연장된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수용한다면 입찰보증금 몰수는 취소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일방적 통보였습니다. BAE시스템스는 또 방위사업청에 재직중인 강병호 공군대령으로부터 제6차 입찰보증금 지급각서에 동의하고 받아들였다는 확인서명을 받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지난달 6일 ‘입찰보증금 몰수 유효통보’라는 공문을 통해 제6차 지급각서와는 별개로 입찰보증금을 몰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래도 BAE시스템스는 입찰보증금을 납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BAE시스템스는 사업수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뒤늦게 입찰보증금을 납입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애가 타는 쪽은 방사청이었습니다.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다시 BAE시스템스에 공문을 보내 11월 28일까지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라고 요청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방사청은 제리 드모로 BAE시스템스 사장과 이 회사 이사회 의장인 마이클 처토프 전 미 국토안보부장관에게 4차례 서한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서한을 보면 드모로 사장이 수신인, 처토프 이사회 의장이 참조인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정광선 방위사업청 항공기사업부장[공군 준장]은 지난 9월 30일 서한에서 ‘2013년 12월에 17억5백만달러로 합의, 서명하고 지난 8월에는 20억6천만달러, 9월에는 24억~25억달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초 수준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2012년 8월 1일 합의각서에 근거, 입찰보증금 몰수 및 향후 입찰참여를 제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10월 5일까지 총액조정을 위해 가시적 성과를 제시하고 10월20일까지 모든 조치를 완료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3일에도 정광선 항공기사업부장이 다시 드모로 사장과 처토프 이사장에게 서한을 보내 ‘지난 8일 고정확정가 제안을 유지한다고 했는데 고정확정가가 얼마인가, 13억4천만달러 초과비용상승분은 BAE시스템스가 부담한다고 답변했는데 구체적 방법이 무엇인가. 미국정부가 BAE시스템스의 고정확정가가 당초 합의된 13억1400만달러가 아니라 15억8500만달러라고 밝혔는데 미국정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등을 10월 20일까지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던중 이 사업의 주무담당자인 항공기사업부장이 전격 경질된 것으로 미국법원에 제출된 증거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정광선 공군준장의 경질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KF-16 성능개량사업도 관련이 없지 않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11월 3일 드모로 사장과 처토프 이사장에게 서한을 보낸 사람은 방사청 대변인이었던 백윤형 공군대령이었습니다. 내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는 공사 34기 출신의 백윤형 대변인이 항공기사업부장에 임명된 것입니다. 10월 29일 국회 국방위 회의록에도 정광선 준장이 항공기사업부장으로 기록된 점으로 미뤄 정준장은 10월 30일부터 11월 3일 이 서한이 보내지기 전까지의 기간에 경질된 것으로 보입니다.
백 부장은 ‘BAE시스템스가 방사청과 협의나 동의없이 2억7100만달러를 증액, 15억8500만달러로 미국 정부에 체줄한 것은 2012년 8월 1일 합의각서 위반이며 방사청의 몰수통보에도 불구하고 7천8백만달러 감액만 가능하다, 즉 2억달러를 증액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백 부장은 ‘BAE시스템스가 방사청이 제6차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를 받아들임으로써 합의각서가 무효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입찰보증금이 납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몰수통보는 유효하며 11월 28일까지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백 부장은 이틀뒤인 11월 6일에도 다시 이들 두사람에게 서한을 보냈습니다. 백부장은 ‘2013년 9월 BAE시스템스의 수행금액은 13억1400만달러이며 전체 금액 17억5백만달러에 합의하고 12월에 최종서명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BAE시스템스가 10월 16일 13억달러에서 1억9300만달러 증액된 15억7백만달러라고 한 것은 합의 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백 부장은 이 서한에서 지난 12일까지 명백한 최종입장을 밝히라고 최종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한인 12일 BAE시스템스는 방사청의 입찰보증금 몰수가 부당하다는 소송으로 맞대응, 이제는 지리한 소송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특히 지난 12일 국회 국방위는 2015년 방위사업청 예산안 의결과정에서 KF-16 전투기 성능개량사업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했습니다. 입찰보증금 6114만9천달러를 전액 국고에 환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입니다. 그러나 BAE시스템스가 바로 이날인 12일, 입찰보증금 몰수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제기함으서 입찰보증금을 납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방위사업청이 BAE시스템으로부터 입찰보증금을 받아 이를 몰수해 국고에 환수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가지 의아한 것은 국회 국방위가 알고 있는 이 사업관련 입찰보증금은 6114만여달러인 반면, 방위사업청이 BAE시스템스에 청구한 입찰보증금은 4325만달러로 30%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37조에는 국가는 입찰금액의 5% 이상을 입찰보증금으로 제출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BAE시스템스의 수주액이 13억1400만달러였으므로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입찰보증금은 6500만달러 내외여야 합니다. 국회 국방위가 제시한 입찰보증금 환수요청액은 거의 국가계약법 시행령과 비슷합니다만, 방사청이 BAE시스템스에 요구하는 금액과는 약 1800만달러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특히 BAE시스템의 부당증액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마이클 처토프 BAE시스템 이사회 의장의 행적입니다. 방사청이 드모로 사장을 수신인으로, 처토프 의장을 참고인으로 기재, 서한을 보낸 것은 지난 9월 30일, 10월 13일, 11월 4일, 11월 6일입니다. 첫 서한을 보낸 9월 30일에서 약 보름뒤, 두번째 서한은 미처 전달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월 14일 처토프 의장이 한국을 방문, 한 언론사가 주최한 포럼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 포럼의 개막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 처토프 의장과 악수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처토프 의장이 박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는지, 별도로 면담을 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인사를 나눈 것은 사진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개막식에는 박대통령 외에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조윤선 정무수석,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윤두현 홍보수석 등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대부분 참석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박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더라도 핵심참모들과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처토프 의장의 이 포럼 참석이 확정된 것은 지난 8월12일께라는 것이 언론보도입니다. 방사청이 미국 정부로부터 사업비용을 올리겠다는 서한을 받은 것이 8월 9일이어서 우연의 일치치고는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BAE시스템스 이사회 의장이 비용증액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 방문을 밝혔고 한국 정부와 BAE시스템스의 갈등이 피크로 치달을 때 한국 대통령과 수인사를 나눴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무언의 압력을 가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이는 것입니다.
처토프 의장은 아들 부시 대통령 집권2기때인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국토안보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미국 언론들로부터 퇴임뒤 미 무기업체의 뒤를 봐준다는 의혹이 여러차례 제기됐던 인물이어서 KF-16 관련 로비의혹도 설득력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2012년 5월 BAE시스템스의 이사회 의장에 취임, 내년 4월말까지 3년간 의장으로 재직하는 처토프는 장관까지 지낸 공화당 거물이기 때문에 공화당이 주도하는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입찰보증금 지급각서로 입찰보증금을 대신한다는 법령 때문에 당초 사업비의 50%를 일방적으로 증액한 미국 무기업체로부터 계약위반에 따른 입찰보증금 몰수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방위사업청이 입찰보증금을 받아내는 데 최선을 다하되 향후 입찰에 제한을 가한다는 규정만이라도 제대로 행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11.20 방산 비리로 구속된 재미교포, 미국 재산 은닉 나서
한국 검찰이 군함 통영함 등의 납품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에 구속된 미국 납품업체 간부들이 미국 내 재산은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영함의 경우 1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싸구려 부품을 고가에 사들여 장착하는 등 납품비리 여파로 성능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해군이 인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취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군함 통영함 등에 고성능 음파탐지기 대신 어군탐지기를 납품하고 5억여원의 뇌물을 제공하는 등 혐의로 구속된 미국 납품업체 헤켄코의 강덕원 부사장은 자신의 뉴저지 집을 3개월전에 급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헤켄코는 전자제품 브로커업체로 등록돼 있고, 사무실 주소는 업체 대표의 집이었습니다. 헤켄코(GMB USA의 후신)는 지난 2009년말부터 2012년까지 탐색구조함인 통영함과 기뢰제거함인 소해함의 음파탐지기, 무인탐사정 등 10건, 1억9천여만달러어치의 납품계약을 방위사업청과 맺었습니다.
뉴저지주 국무부 확인 결과 GMB USA는 지난 2003년 5월 28일 설립됐고 뇌물공여혐의로 구속된 강덕원씨[44세, 1970년 11월생]와 김주희씨[37세]등 2명이 이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2008년 3월 5일 김주희씨는 이 회사 사장 자격으로 GMB USA 를 헤켄코라는 이름을 사용,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신고했습니다.
이 서류에서 김씨는 자신의 주소와 회사 주소를 모두 10 OLD CHURCH CT, OLD TAPPAN NJ 로 기재했습니다. 확인결과 이 주소는 부부인 김씨와 강덕원씨가 공동명의로 구입한 자신들의 집이었습니다.
/특히 이 서류에서 GMB USA, 즉 헤켄코의 사업내용을 ‘자신들의 고객회사와 전자제품 제조회사 간의 전자제품 수출입 브로커’라고 기재, 단순 전자제품을 중개하는 업체로 확인됐습니다
헤켄코라는 회사도 2004년 3월 5일 뉴저지주에 설립됐으며 이사는 강주희씨 1명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이 법인설립 서류에 기재된 회사 주소지 150 BROWNSTONE CT, OLD TAPPAN NJ의 부동산 소유관계를 확인한 결과 이 주소 역시 강덕원씨와 부인 김주희씨[결혼뒤 남편 성을 따라 강주희] 공동소유의 가정집이었습니다. 이 회사도 설립 당시 이사는 강주희씨 단 한명이었으며, 강씨의 주소지 역시 사무실 주소와 동일했습니다.
즉 GMB USA와 헤켄코 등 두 회사 모두 자신들의 집을 주소지로 해서 설립했으며, 구속된 강덕원씨의 부인 김주희씨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여 과연 강씨의 장인, 즉 김씨의 부친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방사청계약을 수주한 이후 뉴저지 놀우드로 사무실 주소를 옮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강씨는 지난 2006년 5월 9일 140만달러에 구입했던10 OLD CHURCH CT, OLD TAPPAN NJ 소재 주택을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난 8월 7일 20만달러를 손해본 120만달러에 급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지 5백평에 건평 4천스퀘어피트 규모의 이 주택은 올드타판의 시세를 고려할 때 비교적 고급주택에 해당합니다. 이는 강씨가 한국정부의 손해배상소송 등에 대비해 부동산을 미리 처분, 현금화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반면 강씨는2004년 2월 25일 59만달러에 매입한150 BROWNSTONE CT, OLD TAPPAN NJ소재 주택은 현재도 부부가 공동소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신용정보업체 D&B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헤캔코사의 회장은 브라이언트 강, 사장은 로렌 김, CEO는 강주희씨, 부사장은 강덕원씨로 기록돼 있어 강씨 부부 외에 회장[CHAIRMAN]과 사장[PRESIDENT]으로 명시된 브라이언트 강과 로렌 김도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해켄코의 통영함 음파탐지기 납품을 중개한 업체는 ‘오봉인터내셔널’로 이 회사 대표의 아들 김모씨가 공군 통역장교출신으로 각종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한미군사령관 통역장교로 18년간 복무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1.24 인감도장 찍힌 이병철 회장의 케네디 조문서한
미 국무부, 한국국민들 조문편지 영구보관··· 100% 조문감사편지 보내
서울에서 제주까지 일반 국민들도 조전, 조문편지··· 혈서 보내기도
밀양초등, 제주 신성여중, 제천 남동초등, 의성 위성초등 등 학생들도 조전
견제받던 김종필, 외유서 돌아와 부여에 머물며 대사관에 조전 보내
윤치영, 김병로, 정구영, 변영태, 서민호, 김도연 등 정치인 줄이어
장준하, 김성곤, 조세형, 김동조, 유양수, 이한림, 김성은 등 조문편지
박 대통령에게는 존슨 대통령이, 육여사에게는 대사가 감사편지 보내
/미 국무부가 지난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주한미국대사관에 쇄도한 한국국민들의 조문편지를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국내 주요정치인은 물론 국민학생들로부터도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는 조문편지가 이어졌으며 대사관 측은 조문감사편지를 빠짐없이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국민들이 보낸 조문편지는 조문전보, 공문서 형식의 조문편지 등 다양한 형태로 전달됐고 이병철 삼성회장은 조문편지에 인감도장으로 추정되는 도장을 찍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당시 혁명주체세력내의 갈등을 반영하듯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서울이 아닌 충남 부여에서 조전을 보내는 등 국무부 기록에서 한국정치상황의 일단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미 국무부 문서철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은 23일 주한미국공보원[USIS]명의로 ‘시사통보’라는 제목 하에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를 알렸으며, 제주, 부산, 남원, 제천, 밀양 등에서 학생, 교사들의 조문편지가 잇따랐습니다.
경남 밀양국민학교 4학년 3반 김창열씨는 ‘자유세계의 푸른 하늘을 밝혔던 빛나는 별이 유성처럼 졌다’며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김씨가 학생인지, 교사인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만약 학생이었다면 현재 62세 정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산동삼국민학교 교장은 ‘미국대사, 귀국 대통령 서거에 대하여 삼가조의를 표하나이다’라는 조전을 보냈고, 제주신성여학교[신성여중, 신성여고]는 학생일동 명의로 23일 오전 11시 ‘케네디 대통령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내용의 영어로 된 조전을 보냈습니다. 충청북도 제천시 남동국민학교 정선원씨, 경북 의성군 위성국민학교 전국진도 조문편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나고, 이들 모두는 사무엘 버거 주한미국대사 또는 부대사로부터 조문감사편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전북 남원 동충리 447번지 전성규씨는 ‘케네디 대통령 서거에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는 내용을 혈서로 작성한 조문편지를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냈습니다. 국무부는 ‘이 조문편지가 피로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고 기록, 혈서임을 명시했습니다
또 강진현 충남대 총장, 박동수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 이마동 홍익대 학장, 임영신 중앙대 총장, 조영식 경희대 총장 등도 조문을 보냈습니다. 특히 임영신[루이제 임] 중앙대 총장은 특이하게도 버거 주한대사는 물론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로부터 조문감사편지를 받았습니다.
기업인 중에는 주로 한미합작회사 대표 등이 조문편지를 보냈으며, 국내기업으로는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김노성 전남방직 사장, 신유협 대한항공[KOREAN AIR LINES INC, 전 KNA대한항공공사]사장, 그리고 한국노총,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 등도 조문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케네디 암살이 전해진 11월 23일,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레터헤드지에 ‘삼성그룹 임직원을 대표해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명한다’는 영문 조문편지를 보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병철 회장이 조문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자신을 삼성그룹회장으로 표현한뒤 인감도장으로 추정되는 도장을 찍었다는 점입니다. 이 레터헤드지에 이 회장의 주소는 ‘서울 반도호텔빌딩 524호’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신문사 등 언론기관으로는 이준구 경향신문 사장의 조문편지만이 보관돼 있었습니다.
당시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도 조문을 한뒤 11월 30일 존슨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편지를 받았고, 육영수 여사 또한 11월 27일 버거 대사로부터 감사편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정희 의장은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12월 17일에 취임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박 대통령을 대통령 직무대행, 최고회의 의장으로 기재했습니다.
정치인으로는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윤치영 당시 민주공화당 당의장이 ‘민주공화당을 대표해’ 조의를 표했고, 초대대법원장을 지낸 당시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당시 5대 대통령선거에 정민회 후보로 출마했던 변영태 전외무장관, 정구영 민주공화당 총재 등의 조전도 눈에 띄었습니다
정구영 총재는 ‘삼가 귀국 케네디 대통령을 애도합니다’라는 조전 하단에 ‘상주 출장중’ 이라며 자신이 상주에 출장을 가서 서울에 없다는 사실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 민정이양에 앞서 공화당 사전조직, 증권파동 등 이른바 4대 의혹사건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서울의 한 우체국 사서함 번호를 주소지로 기재했지만 영문으로 된 조문편지 말미에 ‘부여에 있다’고 기재했습니다. 이 조문편지를 통해 김종필 전총재는 군부와 공화당 내의 권력암투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를 떠났다 돌아온 뒤 당시 서울을 피해 부여에 기거했음을 알 수 있는 등 미 국무부가 보관중인 케네디 조문편지는 급변하는 한국 정치사의 생생했던 순간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서민호 당시 민중당 최고위원, 김도연 당시 자민당 최고위원, 후일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서 김종필 등과 갈등을 빚었던 ‘콧수염의 사나이’ 김성곤 당시 동양통신대표, 장준하 사상계 발행인, 장경순, 조세형 의원 등도 조문편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김현철 정부수반, 김성은 당시 국방부장관, 이한림 1군사령관, 후일 외무부 장관이 되는 김동조, 유양수 당시 필리핀대사, 박경원 경북도지사, 후일 문공부장관을 지낸 오재경, 김윤철 김제군수, 안학모 영월문화원장 등도 조문편지를 보냈습니다.
서울 이문동의 손평조씨, 서울 서교동의 함을섭씨 부부, 부산 보수동의 배정자씨, 부산 대청동의 최경락씨, 경남 진주의 강재홍씨, 경북 문경의 임근호씨, 대구의 김동하씨[해병대사령관 동일인 여부 확인 안됨],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김인하씨[중앙대교수 동일인 여부 확인안됨], 충북 논산의 김원태씨, 충북 청주의 김원진씨, 주소를 기입하지 않은 조명재씨 등의 조문편지가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케네디 대통령이 총탄에 숨지자 한국 전역에서 조문편지가 쇄도했습니다. 특히 주한미국대사관 등 미국 정부는 버거 대사 또는 도허티 부대사명의로 주소가 확인된 조문편지에 대해서는 모두 감사편지를 보내고, 그 편지 또한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1.28 '아름다운재단USA'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
박원순 서울시장이 설립,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이사 재직
모금액 중 기부보다 운영비로 더 많이 지출··· 빛좋은 개살구
10을 모금하면 4를 지원하고 6, 심지어 7까지 운영비로 지출
일부 년도는 인건비지출액만도 기부보다 더 많아
8개년 중 4개년이 적자··· 임원 인건비만 안가져가도 적자면해
2008년 지원액 13만달러 오리무중··· 받은 단체 명단이 세금내역엔 없어
아름다운재단 “미국 재단에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 운영에는 관여 안해”
지난 2003년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주도로 설립된 아름다운재단USA가 기부금을 받아 사회사업에 사용하기보다 인건비와 운영비 등으로 더 많이 지출한 것으로 드러나 본말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USA는 지난 2003년 8월 설립된 뒤 미 국세청으로부터 비영리단체인가를 받아 활동을 개시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설립때부터 2010년까지 이 재단의 이사를 맡아왔습니다.
이에 대해 아름다운재단 측은 “미국에서의 기부 문화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아름다운재단USA설립 당시 이름 사용만 허락했을 뿐,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답해왔습니다.
매년 1차례씩 기금모금파티를 열어서 모은 돈으로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한다는 이 재단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언제 얼마만큼의 돈을 모아 언제 어떤 사회복지단체에 기금을 지원했는지 전혀 나와있지 않고 연례보고서 등의 메뉴를 클릭해도 ‘곧 공개(Coming soon)’이라고만 돼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모아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단체는 돈의 흐름을 명백히 알리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입니다만 그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재단의 재정상태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USA가 미 국세청에 신고한 비영리단체 세금보고서를 어렵게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 재단이 왜 재정현황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재단 홈페이지에는 2006년에 설립됐다고 소개돼 있습니다만 실제 이 재단은 2003년 8월 설립된 것이었습니다.
설립된지 180일이 되지 않았을 때는 그 해 세금보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에 따라 이 재단은 2003년치 세금보고는 하지 않았고 2004년치 세금보고는 했습니다만 수입이 2만5천달러이하일 경우 세부내역은 적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에 따라 수입지출내역없이 재단의 주소 등 간단한 내역과 이사진의 명단만 기재돼 있었습니다. 2004년 이사는 주소지가 서울인 박원순씨, 재미동포인 강완모씨, 지창보씨 등 3명이었습니다.
이 재단이 구체적으로 세금보고서에 수입지출내역을 기재해 보고한 2005년치부터 2012년치까지 내역을 살펴본 결과 아름다운재단USA는 그 이름과는 달리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8년치 세금보고서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 기간 기부금 수입은 205만여 달러이며 이중 다른 단체를 지원하는데 사용한 돈은 81만1천여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즉 전체기부금의 39.5%만 이 재단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회복지단체 지원에 사용된 것입니다. 인건비는 40만6천여달러로 전체기부금의 19.8%를 차지했고 운영비는 67만6천여달러로 전체기부금의 32.9%에 달했습니다. 즉 인건비와 운영비가 108만2천여달러로 사회단체지원에 사용된 돈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지출내역을 따지면 사회복지단체 지원 비중이 42.8%인 반면 인건비 및 운영비 비중이 57.2%에 달했습니다.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한다는 본래 목적보다 자신들의 인건비와 운영비에 치중, 설립취지를 무색케 했습니다. 이토록 방만한 운영을 하다보니 홈페이지에는 기부방법만 설명돼 있고 연례보고서는 커녕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지출했는지,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밝혀야 할 지원내역조차 게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도별로 하나 하나 살펴보면 더욱 놀라운 내용이 많습니다. 일단 아름다운재단USA는 홈페이지를 통해 외부에는 2006년 설립됐다고 주장했지만 미 국세청 세금보고에 따르면 2005년에 이미 2만7천여 달러의 기부금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해에는 기부자체가 없었고 대부분의 수입이 다음해로 이월됐습니다.
2006년에는 18만2천달러의 기부금을 모았지만 다른 단체에 지원된 돈은 만4천달러로 모금액의 8%에 불과했고 인건비와 운영비 등으로 지출된 돈이 6만8천여 달러로 전체 모금액의 30%에 달했습니다.
/2007~2008 세금보고서.
2007년에는 모금액이 31만5천 달러로 전년의 거의 2배에 달했습니다. 또 전해에서 이월된 돈도 15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이해의 사회복지단체 지원금도 7만3천여 달러로 전체모금액의 23.3%에 불과했고 인건비와 운영비가 9만천여 달러로 29%를 차지, 지원금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2008년에는 모금액이 32만3천여 달러에 달했고 사회복지단체 지원금이 26만 달러로 모금액의 80%에 달했습니다, 또 인건비도 12만8천여달러로 전체 모금액의 40%에 달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지출총액이 38만8천 달러로 6만5천 달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해에만 유독 지원액이 많았습니다만 여기에 또 기막힌 사정이 있습니다. 그 사정은 잠시 뒤 설명하겠습니다.
/2009~2010 세금보고서.
2009년에는 26만6천 달러를 모금해 12만8천 달러를 다른 단체에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해 역시 인건비와 운영비가 15만 달러를 넘어 사회단체지원금은 일반관리비에도 미치지 못했고 역시 만2천여 달러 적자였습니다.
2010년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박원순 시장은 2010년까지 이사로 재직했습니다. 이때 모금액은 29만여 달러에 사회단체지원금은 10만2천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인건비는 11만9천달러로, 운영비를 제외한 인건비만도 사회단체지원금보다 더 많았습니다. 운영비 또한 11만백 달러였습니다. 이 역시 사회단체 지원금보다 많았습니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합하면 22만9천달러, 아름다운재단USA의 사회단체지원금의 2배를 훌쩍 넘었습니다. 사회단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들의 피같은 돈을 모으고는 자신들의 인건비로 다 써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4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11~2012 세금보고서.
2011년 역시 33만4천8백 달러를 모금했지만 지원금은 11만2천달러에 불과했고 인건비와 운영비가 18만5천4백 달러, 역시 배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2012년 31만5천여 달러 모금에 지원금은 12만2천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인건비가 지원금에 맞먹는 11만4천여달러, 운영비는 지원금을 뛰어넘는 12만6천여달러, 인건비와 운영비를 합하면 24만여달러로 지원금의 두배가 넘었습니다. 적자가 안 난다면 비정상입니다. 역시 4만7천달러 적자.
이쯤되면 아름다운재단USA가 왜 존재하는가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돈은 한푼 없이 다른 사람 돈을 모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고는 다른 사람을 도운 돈보다 인건비와 운영비가 두배나 많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요, 돈을 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차라리 아름다운 재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 할 것입니다
/인건비 지출 내역.
더 놀라운 것은 2009년 적자가 만2천 달러인데 이 단체 대표로 명시된 오모씨가 자신의 인건비라며 만5천여 달러를 가져간 것으로 국세청에 보고돼 있습니다. 직원 인건비 외에 대표가 인건비를 가져감으로써 마이너스가 된 것입니다. 2010년에는 이 오모씨가 6만 달러를 가져갔습니다. 이때 적자가 4만 달러였으니 적자 원인은 이 단체 대표의 인건비였습니다. 직원 인건비에다 대표도 인건비를 받다보니 이때 인건비만 11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2012년에는 총괄이사라고 기재된 박모씨가 또 6만 달러를 챙겨갔습니다. 이때 적자가 4만7천 달러, 총괄이사가 6만 달러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재정은 만3천 달러 흑자가 됐을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때 인건비나 지원금이나 엇비슷했고 그외 운영비가 지원금보다 더 많이 나가버렸습니다. 박씨는 2011년에도 인건비로 2만 달러를 받아갔습니다. 사회복지기금을 모아서 단체들에게 나눠준다는 명분은 온데 간데 없이 빛이 바랜 지 오래인 것입니다.
/프린스턴 한인커뮤니티센터 지원 내역.
2008년 지원금이 기부금의 80%를 차지해 웬일인가 봤더니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이때 지원금은 25만6천 달러, 세금보고서에 지원금 지급내역을 살펴보니 한개 단체에 약 13만 달러가 지원됐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그동안 지원한 돈은 매년 단체당 최고 2만 달러, 보통 만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이 해에 유독 한 단체에만 13만 달러가 지급됐고 그래서 지원금이 26만 달러 가까이 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이 기금을 준 단체는 ‘프린스턴한인커뮤니티센터’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프린스턴 한인커뮤니티센터 세금보고서.
다시 국세청에서 ‘프린스턴한인커뮤니티센터’의 세금보고서를 찾아봤습니다. 혹시나 했었는데 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단체 세금보고서에는 2008년 13만 달러를 받은 내역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단체가 2008년 비영리단체로 등록된 뒤 2008년은 물론 2013년까지 6년치의 세금보고서를 다 훑어도 그 어디에도 13만 달러가 입금된 내역은 없었습니다.
2008년 수입은 4만4천여 달러, 2009년 수입은 4만6천여 달러 등이었습니다. 2008년 아름다운재단USA에서 나갔다면 2008년 프린스턴커뮤니티센터에는 받았다고 보고가 돼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세법상 이 경우 명백한 위법이 되며 만약 국세청이 비영리단체 감사에 나선다면 적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프린스턴대학 소재지인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이 단체는 한해 약 4만여 달러 정도의 기금을 모아 커뮤니티센터를 설립,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름다운 재단보다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재단USA는 3만 달러를 줬다고 국세청에 보고했지만 정작 그 단체는 국세청에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13만 달러가 실종된 것입니다. 아름다운재단USA 설립 이래 가장 큰 지원금이었지만 그 지원금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속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미 국세청에 보고된 두 단체의 세금보고서만 보면, 그 지원금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재단USA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주도로 설립했고 박 시장이 2010년까지 8년간 이사로 일했습니다. 세금보고서에는 박 시장이 이 기간 동안 매주 1시간에서 2시간 동안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박 시장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이야깁니다.
/제2회 아름다운재단 연례기금모금파티에서 연설하는 박원순 시장./홈페이지 캡처
박 시장은 이 재단 설립초기 몇 년 간은 매년 한번씩 이 재단의 연례기금파티에 참석했습니다. 박 시장이 참석하다보니 주로 한국기업들의 미국지상사들도 적지 않게 기부금을 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런데 박 시장이 매년 한번씩 미국에 오는 경비를 아름다운재단USA에서 부담한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아름다운재단USA는 미국여행 경비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만 세금보고서를 살펴보니 박 시장은 이 재단의 손님이 아니라 이사였습니다. 자신의 행사에 자신이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오는데 비용은 재단에 부담시킨 것입니다.
한국 아름다운 재단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모금액 중 다른 단체 지원액이 약 82% 내외, 인건비와 운영비 등은 18% 정도였습니다. 자선단체의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채리티 내비게이터’에 따르면 미국적십자사의 전체 모금액 중 90.4%가 다른 단체 지원에 사용되며 인건비와 운영비는 9.6%에 불과합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월드비전은 모금액의 84.7%를 지원하고 14.3%를 인건비와 운영비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아름다운재단USA의 10년간 다른 단체 지원액은 모금액의 40%, 인건비와 운영비 등이 60%에 달했습니다. 이 40%도 지금은 종적이 묘연한 13만 달러를 한꺼번에 기부함으로써 모금액 대비 지원금 비중이 올라간 것이지 평년의 비중은 35% 내외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대부분의 사회복지단체들은 10을 모으면 9, 조금 적어도 8은 그 취지에 맞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아름다운 재단 USA는 남들이 10개를 주면 6개를 자기들이 써버리고 4개 정도 남에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재단USA는 다음달 5일 또 매년 한번씩 하는 연례기금모금파티를 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에는 이 연례파티비용이 13만2천 달러 들었고 그해 지원금은 이보다 작은 12만2천 달러라는 것이 미 국세청 세금보고서 내용이어서 이번에 또 파티비용으로 얼마가 들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들이 내는 피같은 돈을 받아서 파티비용으로 써버리고 그보다 적은 돈을 다른 단체에 지원한다면 빛좋은 개살구가 아닐 수 없으며, 없으니만 못한 사회복지재단이 되버리고 맙니다.
8년치 세금보고서 중 6년치는 이 재단을 사실상 설립한 박원순 시장이 이사로 활동하던 기간의 것이어서 박 시장도 일정 부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박 시장이 과연 세금보고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이 재단이 과연 존재의 이유를 찾아갈 수 있을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에 위치한 아름다운재단 측은 “지난 2005년 아름다운재단USA가 만들어질 때, 미국에서의 기부문화를 활성화 하기 위해 이름 사용을 허락했을 뿐, 후에 운영 부문은 완전히 나눠져 관리되고 있다”며 “현재로선 어떤 말도 드릴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12.01 박원순 이사 퇴임 후엔 다시 아름다워진 '아름다운 재단 USA'
박원순 서울시장 2003~2010년 이사로 재임
단체별 지원금합계와 전체기부금액 일치 않아
같은 세금보고서에서도 지원금액 차이
박시장 이사 퇴임뒤에는 단체별 지원액 합계와 전체 기부금액 정확히 일치
실제 기금 수혜단체와 수혜금액도 세금보고서와는 큰 차이
당초 ‘모금액 전액 지원-운영비는 이사들 갹출’ 약속
그러나 이사들은 약속 어기고 인건비 챙겨
현재 이사장 “2012년 이전 일은 솔직히 모른다. 현재는 정말 열심히 뛰고 있다” 해명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주도로 설립된 ‘아름다운 재단 USA’가 모금액을 인건비 등으로 더 많이 지출한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같은 년도의 세금보고서에서도 같은 단체에 대한 지원금액이 차이가 나는 등 회계 처리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박시장이 이사로 재임했던 2003~2010년의 세금보고서에 기재된 기부내역은 그동안 재단이 언론에 공개했던 수혜단체 및 지원액수와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박 시장의 이사 퇴임 뒤에는 단체별 지원금 합계와 전체기부금액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단은 운영비도 재단이 모금한 기부금과는 별도로 마련하며, 운영비의 40%는 이사들이 갹출해 부담한다고 발표했지만, 당초 약속과는 달리 대표와 이사 등이 비용을 갹출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인건비를 챙긴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재단이사회의 이사들은 재단 운영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박 시장이 이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이에 따른 잘못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이사로 관여하던 지난 2008년 아름다운 재단 USA의 세금보고서에는 ‘프린스턴한인커뮤니티 센터’[비영리단체 번호 27-1739566]에 약13만달러를 기부했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체가 국세청에 제출한 세금보고서에는 이 돈을 받은 내역이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재단 USA’의 2008년 세금보고서에서는 ‘프린스턴한인커뮤니티 센터’에 대한 기부금이 서로 다르게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름다운 재단 USA의 2008년 세금보고서중 단체별 기부내역에 이 단체에 대한 기부금은 12만9578달러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세금보고서 2페이지에는 이 단체에 대해 기부금이 13만4578달러라고 기재돼 있어 5000달러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2008년 세금보고서중 단체별 기금지원내역을 모두 합치면 23만1578달러였으나, 세금보고서 2페이지 기부금 내역은 25만9578달러로 2만8천달러나 차이가 났습니다.
아름다운 재단 USA는 2008년에는 6월10일 7개 단체 4만5천달러, 11월 18일에는 7개 단체 6만달러 등 실제로는 두차례 기금배분식을 통해 14개 단체 10만5천달러를 전달했고, 이같은 사실이 모두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2008년 세금보고서에는 기금을 지원한 단체가 모두 10개, 전달액은 25만9578달러로 기재돼 있습니다. 이 10개 단체에는 기금배분식에 포함되지 않았던 2개 단체, 즉 프린스턴한인커뮤니티센터가 13만여달러, 케이스웨스턴리저브유니버시티가 2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반면 기금배분식에서 실제 기금을 받았던 6개 단체는 누락됐습니다. 기금액수도 큰 차이가 나고 기금을 받은 단체도 기존 알려진 단체와 세금보고서상 수혜단체가 각각 달랐습니다. 이 해에 기금을 받은 단체중 2만달러 이상 기금을 받은 단체는 프린스턴한인커뮤니티센터와 케이스웨스턴리저브유니버시티 단 2개뿐이었습니다. 즉 세금보고서상 가장 많은 기금을 받은 두 단체 모두 두차례 기금배분식때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도에는 실제로 9개 단체에 9만5천달러를 지원했다는 것이 당시 아름다운 재단 USA측의 발표였으나, 국세청 세금보고서에는 10만2천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보고돼 있어 7천달러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이 재단이 실제 기부금을 전달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세금보고서를 살펴보면 단체별 기금지원내역을 합친 액수와 전체 기금지원총액은 박원순 시장이 이사로 재직했던 2010년까지는 총액이 일치하지 않았고, 박시장의 이사퇴임 이후 2년간은 그 액수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2006년에는 기금지원총액이 단체별기금지원 내역을 합친 금액보다 1295달러가 많았고, 2007년에는 6567달러, 2008년에는 2만8천달러, 2009년에는 2만달러, 2010년에는 만달러가 차이가 났습니다. 5년 모두 단체별 기금지원내역보다 기금지원총액이 더 많았습니다. 단체별 기금지원내역에는 5천달러 이상만 기재토록 돼 있으나 이 5년간 3-4천달러씩을 지원한 곳은 5개단체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소액지원단체를 포함하더라도 기금지원액수는 차이가 컸습니다. 반면 2011년은 단체별 기금지원내역과 전체기금지원총액이 11만2천달러로 일치했고, 2012년도 12만2천달러로 두 항목의 액수가 똑같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이 단체의 이사이며 대표를 맡았던 오모씨가 2010년 6만달러, 집행이사였던 박모씨가 2012년 6만달러를 각각 받은 것으로 세금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는데, 이는 당초 아름다운 재단 USA의 공약을 크게 벗어난 것입니다. 아름다운 재단 USA는 출범 당시부터 기부금은 전액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고 운영비는 별도로 마련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운영비의 40%를 이사들이 부담한며 적극적인 기부를 요청했었습니다. 그러나 실무직원 인건비 외에 운영비를 부담하겠다던 이사진마저 인건비를 챙겼고, 특히 비영리단체 1개에 대한 지원금이 5천달러에서 최대 2만달러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이사 인건비는 그 지원금보다 몇배나 많았습니다.
한편 지난해 3월부터 이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제이슨 전씨는 미국 동부시간 29일에 기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솔직히 2008년 등 2012년까지의 재정상황을 잘 모르며 지금 알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이사들이 정말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사들의 인건비 문제에 대해 “실제로 재단 실무를 보는 사람에게 지급한 ‘모금을 위해 꼭 필요한 기회비용’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실무직원 외에 대표나 이사가 인건비를 가져간 것은 운영비를 이사들이 갹출한다는 당초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하자 “내가 이사장을 맡은 지난해부터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이슨 전 이사장은 또 2008년 아름다운 재단USA세금보고서에 기록된 13만달러 수혜단체가 국세청 보고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8년전의 일(6년전인데 8년전으로 착각한 듯)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단체별 기금지원총액과 전체 기금지원총액이 상이하다는 점, 실제 기금배분식에서 전달된 액수보다 세금보고서에 기록된 기금지원액수가 더 많다는 점, 기금배분식에서 참석은 물론 언급도 되지 않은 단체에 기금이 지원됐다는 점등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당시 상황을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름다운 재단 USA 창립 이후 최소 4차례 이상 뉴욕을 방문했으며 비행기표등 체류경비를 재단이 부담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며 “적어도 최근 몇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음은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지난해 이사장을 맡은 뒤 지난 1년 6개월 동안 모든 이사들이 자신의 시간은 물론 돈까지 투자해 가며 나눔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고 있다”며 “2011년 이후 박원순 시장이 운영에 관여한 일은 일체 없으며, 앞으로도 혼신의 노력을 다할테니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봐 달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박 시장은 자신과 함께 이 단체 설립을 주도한 전 대표 오모씨가 지난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이 단체 이사직을 사임할때 동시에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듬해인 2011년부터는 표면적으로는 이 단체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이사장은 2013년 세금보고는 왜 안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며칠전 국세청에 지난해 세금보고를 마쳤다”고 밝혔으며, 앞으로 재정현황을 낱낱이 공개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자는 2008년 세금보고상 기부금액의 차이 등을 알아보기 위해 세금보고서 작성을 대행한 것으로 기재돼 있는 회계법인[PAID PREPARER]인 ‘김앤리코’에 미국 동부시간 28일 금요일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 회계법인은 박원순 시장의 경기고 2년 후배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세금보고서에 기재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또 2008년 아름다운 재단 USA 세금보고서에는 수혜단체로 기록돼 있으나 해당단체 세금보고서에는 돈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단체의 세금보고서 작성을 대행한 이모 회계사 사무실에도 28일 금요일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2.04 얼빠진 방위사업청...무기중개상에 국민 혈세 줄줄이 새나가
채권회수공고, 방사청 공고일자는 10월 31일, 관보상 공고일자는 11월 12일
방사청장, 11월 12일 공고하면서도 ‘11월 10일까지 납입하라’ 어불성설 공고
‘무기비리’ 채무자가 엉터리공고 이의제기하면 방사청은 난감한 상황될 수도
2012년 감사원이 적발한 ‘멀쩡한 전투기 부품 3만개 교체’, 2년 지나도 한푼 못받아
‘짝퉁 청와대 대공포 납품’ 넥슨은 또 다른 무기비리로 207억원 반환해야
대한민국 가계부에 받을 돈은 늘어도 ‘배째라’에 모두 털어내야 할 판
박근혜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사상 최대규모의 수사단을 구성한 가운데 방위사업청이 무기업체로부터 부당이득금 등을 돌려받기 위해 채권회수 위탁공고를 했으나 같은 내용, 같은 호수의 공고를 각각 다른 날짜로 두번 공고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이 공고를 통해 2년 전 멀쩡한 전투기에 결함이 있는 것처럼 속여서 4백억원 이상의 정비대금을 가로챘다 적발된 업체가 지금까지 단 한푼의 부당이득금도 반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1월 6일 방사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일련번호 956번, 분류 ‘일반공지’라고 기재한 뒤 ‘국가채권 납입고지 및 회수업무 위탁사실 공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을 클릭하면 아래아 한글문서로 된 ‘방위사업청공고문’이라는 파일이 첨부돼 있습니다. 이 첨부파일을 살펴보면 방위사업청 공고 ‘2014년 47호에서 58호’까지 모두 11개 사업자 및 개인에게 11월10일까지 채권을 납입하라고 고지하고 국가채권 회수업무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위임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채권자, 채무자, 채권금액, 채권세부과목, 납입기한 등이 기록돼 있으며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 세입세출외 현금출납공무원’이 예금주인 농협 계좌번호로 입금하도록 돼 있습니다.
‘국고금관리법 시행규칙 제10조 제2항에 의하여 국가채권납입고지와 국가채권관리법 시행령 제14조의 3, 제3항에 따라 채권회수업무의 위탁을 공고한다’는 짧은 설명이라서 명확한 파악은 안 되지만 무기납품과 관련해 하자 등이 발견된 무기중개상들에게 지난달 10일까지 부당이득금 등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돈받는 일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맡겼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고문에 기재된 방위사업청장 명의의 이 공고는 11건 모두 10월 31일자였습니다.
이 공고가 관보에 잘 게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보를 살펴봤습니다. 방사청 공고문에 기재된 공고일자가 10월 31일이어서 10월 31일자 관보를 찾아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공고가 없었습니다. 10월 30일과 11월 1일자 관보도 살펴봤지만 역시 방사청 공고는 없었습니다.
관보를 쭉 훑어보니 방사청의 공고는 엉뚱하게도 11월 12일자 제18386호에 실려있었습니다. 방사청의 2014년 공고 47호부터 58호까지, 모두 11건의 공고가 12일자 관보 75페이지부터 81페이지까지 7페이지에 걸쳐 게재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방위사업청장이 공고한 일자가 10월 31일자가 아니라11월 12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즉 똑같은 내용, 똑같은 공고번호의 방위사업청 공고가 방위사업청 홈페이지와 자신들이 작성한 공고문에는 10월 31일자 공고라고 기재된 반면 관보에는 11월 12일자 공고라고 된 것입니다. 도대체 방사청 공고 47호에서 58호까지는 언제가 진짜 공고일자인지 알 수가 없고 채무자인 무기중개상이 어떤 공고를 따라야 할지 혼돈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관보에 게재된 방사청 공고는 공고일자와 공고내용 중 납입시점이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관보에 게재된 공고에도 채무자가 국가에 반환해야 할 돈의 납입기한은 방사청이 웹사이트에 올린 공고문과 동일하게 11월 10일로 못박혀 있습니다. 즉 11월 12일자로 공고를 하면서 그 이틀 전인 11월 10일까지 돈을 내라고 돼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사청이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공고를 한 셈입니다. 관보는 새로운 법의 공표나 정부의 정책결정을 고시하는 공식문서이며 관보의 발행으로 그 효력이 개시되므로 관보게재 사실이 방사청 자체 공고문에 우선합니다. 비리를 저지른 무기중개상들이 이 관보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전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방사청의 이 엉터리 공고는 지금 이시간에도 방사청 웹사이트에 그대로 게재돼 있습니다. 방사청의 같은 내용, 두 날짜의 공고는 무사안일한 업무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방사청의 공고를 통해 한번 잘못 집행된 예산을 돌려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습니다. 무기중개상이 엉터리무기 등을 납품해 돈을 챙긴뒤 차라리 실형을 살지언정 먹은 돈은 토해낼 수 없다며 버티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공고된 11건의 채권의 총액은 1182억원에 달하며 10억원 이하가 6건, 10억원 이상 20억원 이하가 3건이며, 2백억에서 6백여억원에 달하는 업체나 개인이 3개였습니다. 모두 방사청에 납품 또는 정비용역을 하면서 국가예산을 불법으로 가로챈 업체나 개인이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습니다.
11건 중 621억원의 채무가 있는 주식회사 블루니어, 291억원의 채무가 있는 박기성씨가 눈에 띕니다. 방사청 공고에는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국가예산을 가로챘는지 설명이 없지만 박씨가 바로 주식회사 블루니어의 대표이사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니 이 한 업체가 가로챈 돈이 912억원에 달합니다.
2년 전인 2012년 4월 30일, 감사원이 무기정비실태를 감사한 결과를 발표했었습니다. 주식회사 블루니어가 공군 F16전투기 정비를 맡으면서 핵심전자장비 등 멀쩡한 장비를 결함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정비대금을 가로챘고 이를 감시해야 할 국방부 소속 공군기술검사관이 뇌물을 받고 비리에 가담했다는 것이 감사결과였습니다.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복무했던 박씨가 주식회사 블루니어를 차린 뒤 F16부품 무려 3만여개를 신품으로 교체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고 세금계산서를 제출, 돈을 받아냈습니다. 이들이 결함이 있다고 교체한 3만여개의 부품 모두가 아무 문제가 없는 멀쩡한 부품이었습니다.
당시 감사원은 방사청장에게 이들의 부당이득금 481억여원과 가산금 215억여원 등 696억원을 환수하라고 통보했었습니다. 이번에 방사청이 이들에게 받아야 되는 돈이라고 공고한 액수는 912억원, 이는 2년6개월이 지났음에도 방사청이 블루니어와 박씨에게 단 한푼도 환수하지 못했고 그래서 오히려 가산금이 216억원이 더 불어난 것입니다. 대한민국 가계부에 무기상에서 받아야 될 돈이 216억원이나 더 늘어나서 살림이 살찌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박씨가 구속되고 2년6개월이 지나도 못받았던 돈을 다시 받아낼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은행으로 따지자면 이는 이미 디폴트된 채권입니다. 부실채권 정도가 아니라 ‘에이, 없는 셈 쳐야지’하고 아예 가계부에서 떨어내야 할 돈입니다. 그만큼 무기예산은 마치 주인없는 돈처럼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이며 한번 먹은 돈은 그 당사자에게 온갖 법적조치를 다해 인신을 구속해도 10원짜리 동전 하나 받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들어가서 살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고 버티면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왼쪽은 10월 31일자 방위사업청 공고, 오른쪽은 11월 12일자 관보상 방사청 공고
박씨와 블루니어에 이어 207억원의 채권이 있는 법인이 넥슨주식회사였습니다. 공고문에는 넥슨주식회사 207억원, 이렇게만 되어 있어서 일반 국민들은 무엇을 납품하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면 ‘청와대 상공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됐던 두동강 난 대공포’, 바로 그 대공포를 납품했던 회사가 넥슨주식회사임을 방위사업청이 미국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2011년 2월 11일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던 조선일보 특종보도 ‘두동강 난 청와대 대공포’의 주인공이 바로 이 넥슨주식회사이며 그 대표가 안선태씨입니다.(참조: 청와대 방공용 짝퉁 대공포 400만달러 사기 사건, 3년 지났으나 한푼도 배상 못받았다)
한국정부는 1998년 12월부터 2003년 5월까지 6회에 걸쳐 오리콘 대공포 몸통 납품계약을 체결했고 당사자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소재 트라이던트 오토텍, 이 회사의 연대보증자이자 국내에이전트가 바로 넥슨주식회사입니다. 계약당사자가 미국업체지만 엉터리 짝퉁 오리콘몸통 납품을 주도한 것은 넥슨입니다. 미국 연방법원에 제출된 한국 법원의 안선태 관련 판결문에 따르면 안씨가 오리콘 폐몸통을 구해서 그것을 보고 설계를 한 뒤 국내 철공소에서 대공포 몸통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철공소에서 만들어진 짝퉁 대공포는 팔자에도 없이 미국으로 보내져서 미국 구경까지 한 뒤 다시 한국으로 수출하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이런 철공소 버전의 대공포 몸통이 제 역할을 할 리가 없습니다. 시험발사를 했더니 수박 갈라지듯 단 한방에 몸통이 반으로 쫙 쪼개졌습니다. 이래서 방사청이 약 477만달러, 50여억원을 달라고 미국에 소송을 했던 것입니다.
/2006년 4월의 넥슨주식회사 웹페이지 캡처
그런데 웬걸, 이번 방사청 공고를 보니 넥슨주식회사의 채권은 207억원으로 오리콘 연대보증금 50여억원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넥슨이 오리콘 몸통 사기 뿐만 아니라 더 큰 방산비리에 연루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넥슨주식회사 홈페이지를 살펴보려 했더니 이미 문패를 내린지 오래였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웹사이트를 실시간 저장해두는 ‘인터넷 사이트 저장업체’를 통해 넥슨이 폐쇄시킨 홈페이지의 옛모습을 찾아봤습니다. 용량상 모든 페이지를 저장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1년에 서너 차례, 많게는 10여 차례 웹페이지가 저장돼 설사 웹사이트가 폐쇄돼도 옛날 게재내용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006년 4월의 넥슨주식회사 웹페이지 캡처
놀랍게도 넥슨은 탱크, 중무장 군용차량, 소나장비 등 다양한 군수물품을 납품하던 회사였으며 2009년에도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우수조달업체로 선정되기도 한 것으로 웹사이트에 기재돼 있었습니다. 이번 방사청 채권공고 207억원에 짝퉁방공포 연대보증금이 포함돼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리콘 뿐만 아니라 탱크나 중무장 군용차량, 소나장비 등을 납품하면서도 국가예산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 업체로 추정함이 타당합니다.
방사청에 우수조달업체로 선정한 것이 2009년, 오리콘 납품비리를 수사한 것이 2010년초. 그렇다면 방사청 우수조달업체로 선정된 것이 2009년 1월1일이고 오리콘 수사가 2010년 6월 30일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기간은 최장1년 6개월입니다. 그 짧은 1년 6개월 내에 207억원 이상의 물품을 납품하고 하자를 발생시켰거나, 그렇지 않다면 2009년 이전에 이미 하자물품을 납품했음에도 방사청이 2009년 우수조달업체로 선정하면서 ‘눈뜬 장님’ 행세로 넥슨의 비리를 방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리콘 비리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이 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았다면 그 또한 큰 문제입니다.
방사청은 블루니어는 블루니어 법인과 대표 박기성 등에게 모두 채무의무가 있다고 밝혔지만, 넥슨의 경우 넥슨 법인에만 채무의무를 지우고 이번 공고에서 대표 안선태씨에게는 채무통지를 하지 않은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아마도 법적으로 안씨에게는 돈을 받아낼 근거가 희박했던 모양입니다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사청의 ‘엉터리 공고’ 파문은 국민들이 공개된 자료만 살펴도 방사청이 주먹구구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 낼 정도로 방위사업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사례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국회연설을 통해 방산비리를 이적죄, 즉 적을 이롭게 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사상최대규모의 방산비리 수사단을 출범시켰습니다만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떠야만 그 비리를 뿌리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12.08 "11월 10일까지 돈 갚아라" 11월 12일에 공고한 얼빠진 방위사업청
채권회수공고, 방사청 공고일자는 10월 31일, 관보상 공고일자는 11월 12일
방사청장, 11월 12일 공고하면서도 ‘11월 10일까지 납입하라’ 어불성설 공고
‘무기비리’ 채무자가 엉터리공고 이의제기하면 방사청은 난감한 상황될 수도
박근혜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사상 최대규모의 수사단을 구성한 가운데 방위사업청이 무기업체로부터 부당이득금 등을 돌려받기 위해 채권회수 위탁공고를 했으나 같은 내용, 같은 호수의 공고를 각각 다른 날짜로 두번 공고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이 공고를 통해 2년 전 멀쩡한 전투기에 결함이 있는 것처럼 속여서 4백억원 이상의 정비대금을 가로챘다 적발된 업체가 지금까지 단 한푼의 부당이득금도 반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11월 6일 방사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일련번호 956번, 분류 ‘일반공지’라고 기재한 뒤 ‘국가채권 납입고지 및 회수업무 위탁사실 공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을 클릭하면 아래아 한글문서로 된 ‘방위사업청공고문’이라는 파일이 첨부돼 있습니다. 이 첨부파일을 살펴보면 방위사업청 공고 ‘2014년 47호에서 58호’까지 모두 11개 사업자 및 개인에게 11월10일까지 채권을 납입하라고 고지하고 국가채권 회수업무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위임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채권자, 채무자, 채권금액, 채권세부과목, 납입기한 등이 기록돼 있으며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 세입세출외 현금출납공무원’이 예금주인 농협 계좌번호로 입금하도록 돼 있습니다.
‘국고금관리법 시행규칙 제10조 제2항에 의하여 국가채권납입고지와 국가채권관리법 시행령 제14조의 3, 제3항에 따라 채권회수업무의 위탁을 공고한다’는 짧은 설명이라서 명확한 파악은 안 되지만 무기납품과 관련해 하자 등이 발견된 무기중개상들에게 지난달 10일까지 부당이득금 등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돈받는 일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맡겼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공고문에 기재된 방위사업청장 명의의 이 공고는 11건 모두 10월 31일자였습니다.
이 공고가 관보에 잘 게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보를 살펴봤습니다. 방사청 공고문에 기재된 공고일자가 10월 31일이어서 10월 31일자 관보를 찾아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공고가 없었습니다. 10월 30일과 11월 1일자 관보도 살펴봤지만 역시 방사청 공고는 없었습니다.
관보를 쭉 훑어보니 방사청의 공고는 엉뚱하게도 11월 12일자 제18386호에 실려있었습니다. 방사청의 2014년 공고 47호부터 58호까지, 모두 11건의 공고가 12일자 관보 75페이지부터 81페이지까지 7페이지에 걸쳐 게재돼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방위사업청장이 공고한 일자가 10월 31일자가 아니라11월 12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즉 똑같은 내용, 똑같은 공고번호의 방위사업청 공고가 방위사업청 홈페이지와 자신들이 작성한 공고문에는 10월 31일자 공고라고 기재된 반면 관보에는 11월 12일자 공고라고 된 것입니다. 도대체 방사청 공고 47호에서 58호까지는 언제가 진짜 공고일자인지 알 수가 없고 채무자인 무기중개상이 어떤 공고를 따라야 할지 혼돈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관보에 게재된 방사청 공고는 공고일자와 공고내용 중 납입시점이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관보에 게재된 공고에도 채무자가 국가에 반환해야 할 돈의 납입기한은 방사청이 웹사이트에 올린 공고문과 동일하게 11월 10일로 못박혀 있습니다. 즉 11월 12일자로 공고를 하면서 그 이틀 전인 11월 10일까지 돈을 내라고 돼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사청이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공고를 한 셈입니다. 관보는 새로운 법의 공표나 정부의 정책결정을 고시하는 공식문서이며 관보의 발행으로 그 효력이 개시되므로 관보게재 사실이 방사청 자체 공고문에 우선합니다. 비리를 저지른 무기중개상들이 이 관보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전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방사청의 이 엉터리 공고는 지금 이시간에도 방사청 웹사이트에 그대로 게재돼 있습니다. 방사청의 같은 내용, 두 날짜의 공고는 무사안일한 업무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방사청의 ‘엉터리 공고’ 파문은 국민들이 공개된 자료만 살펴도 방사청이 주먹구구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 낼 정도로 방위사업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사례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국회연설을 통해 방산비리를 이적죄, 즉 적을 이롭게 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사상최대규모의 방산비리 수사단을 출범시켰습니다만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떠야만 그 비리를 뿌리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12.17 문체부 내홍에 한류전파 첨병인 뉴욕문화원장 장기공백
문체부 내홍 속에 한류전파 선봉인 뉴욕문화원장 사상초유 장기공백
임기 3년, 지난해 10월 교체기··· 1년 지나도 후임 못정해
지난 5월 서류합격자 뽑고도 흐지부지··· 자리다툼 영향인 듯
한류 전파 황금기 연말연시 속수무책··· 한국문화만 큰 피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리로 꼽히는 뉴욕한국문화원장직이 사상 초유의 장기공백사태를 빚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부는 뉴욕문화원장이 귀국한 지 보름 뒤 부랴부랴 ‘뉴욕문화원장 공개모집’ 재공고를 내고 문화원장 선발에 나서는 등 뒷북행정으로 일관, 유진룡 전 문화부장관의 발언으로 촉발된 실세차관 갈등설 등 막장드라마와 같은 문화부의 난맥상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우성 뉴욕한국문화원장은 지난 2010년 10월 10일 제13대 뉴욕한국문화원장으로 부임한 뒤 4년 1개월 여를 근무하고 지난달 5일 한국으로 귀국했으나 후임자가 부임하기는 커녕 후임자 선정조차 못함으로써 문화원장 자리는 한달 보름째 공석이고 언제까지 공백이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문화원장 공백상태가 빚어진 것은 후임자가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방형직위 규정상 ‘뉴욕문화원장의 채용기간이 3년이며 업무필요시 1년 범위에서 연장 가능’하기 때문에 외교부는 사실상 1년 6개월 전인 지난해 4~5월께는 후임자 공모절차를 밟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외교부는 사실상 1년이나 늦은 지난 4월 23일에야 외교부공고 제2014-48호로 개방형직위, 뉴욕문화원장 선발공고를 발표한뒤 5월 16일 외교부공고 제2014-59호로 서류심사합격자 및 면접일정을 공고했었습니다. 당시 서류심사 합격자는 응시번호 003, 016, 020 등 3명이었고 이들에 대한 어학면접은 5월 20일 오전 외교부 17층 상황실에서, 일반면접은 같은 날 오후 같은 장소에서 실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최종합격자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그뒤 외교부는 뉴욕문화원장 공모절차를 진행하지 않다가 이 전원장이 귀국한지 보름째인 지난달 19일에야 부랴부랴 외교부 공고 제2014-125호로 개방형직위, 뉴욕문화원장 공개모집 재공고를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외교부는 지난달 28일 외교부공고 제2014-134호를 통해 모두 5명의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했고 지난 1일 어학면접과 일반면접을 실시한다고 공고했습니다.
외교부의 2010년 뉴욕문화원장 선발사례를 보면 최종면접에서 정식 부임까지 약 80일이 걸렸습니다. 이 전 문화원장도 지난 2010년 6월 21일 당시 외교부가 뉴욕문화원장을 모집하는 개방형 직위 공개모집공고에 응시, 같은 해 7월9일 서류전형을 통과한뒤 같은 해 7월 21일 외통부 선발심사위원회 등을 거쳐 2010년 8월 11일 최종합격자로 통보됐습니다. 그로부터 약 50일뒤인 2010년 10월 1일 뉴욕에 도착했고 임기는 최종합격통보 2개월뒤인 10월 10일부터 시작됐습니다. 만약 이번에 외교부가 후임원장을 선발한다면 전례에 비춰 부임일자는 아무리 빨라도 2월 10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뉴욕문화원장이 3개월간 공석이 되는 것입니다.
▲역대 뉴욕문화원장 명단.
지금까지 뉴욕한국문화원장 자리에 13명이 거쳐갔지만 단 한번도 3년 이상을 넘긴 적이 없었고 단 하루도 원장자리가 공석인 날이 없었습니다.
이원장도 전임 문화원장인 송수근 현 문화부 기획조정실장과 열흘간 함께 근무하며 인수인계를 하는 등 업무는 물론 한국문화전파에 꼭 필요한 뉴욕 문화계 인맥도 소개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수인계는 커녕 수장자리마저 비워둔 채 뉴욕에서 한국문화전파의 황금같은 시기로 꼽히는 연말연시를 두손 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화원 웹사이트는 아직 전임 원장이 현원장으로 기재돼 있고 현지 문화계 인사는 업무협조를 위해 공문을 몇차례나 보내도 답장조차 못받고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한국정부가 뉴욕한국문화원이 세계문화중심지 뉴욕에서 한류를 전세계로 전파하는 전진기지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으며 문화부내에서는 국장급이 가장 선호하는 보직중 하나로 뉴욕한국문화원장을 꼽는데 주저치 않습니다.
이같은 중요직책의 후임조차 정하지 못해 사상초유의 문화원장 공백사태를 빚은 것은 이른 바 ‘꽃보직’을 둘러싼 문화부내의 갈등설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설이 많습니다. 외교부가 해외공관에 근무하는 개방형직위에 대한 선발권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업무 담당부서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문화부내의 갈등, 문화부와 청와대의 갈등, 즉 힘센 사람들이 자기 사람을 챙기려는 충돌에서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전원장도 인사철에 제때 들어가지 못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이익은 바로 한국문화, 한류 그 자체 입니다. 만약 외교부가 개방형직위 선발이 업무와 연관된 해당부처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하고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번 사태는 명백히 외교부의 책임이며 외교부장관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12.18 조양호 회장은 문희상 위원장 처남을 어떤 회사에 취직시켰나?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처남에게 소개한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항에 소재한 대한항공 계열사인 ‘한진해운’ 관련 물류회사로 나타났습니다. 정치권과 재벌의 불법유착을 입증하는 사례라는 지적입니다.
문 위원장과 처남 부부간 손해배상 판결문에 등장하는 ‘브릿지 웨어하우스’는 법인내역 조회결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항에 주소를 둔 물류회사로 1988년 11월 21일 설립돼 현재도 활발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정확한 영문 명칭은 ‘BRIDGE WAREHOUSE INC’이며 법인번호는 ‘C1450196’, 법인등록서류상 사업장 소재지는 17315 STUDEBAKER RD #100, CERRITOS CA 90703’ 입니다. 그러나 실제 이 회사의 하역시설 등이 소재한 곳은 301 HANJIN ROAD, LONG BEACH, CA 90802로서 미서부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롱비치항에서 하역되는 컨테니어 등을 보관하는 물류창고입니다.
이 회사 주소지의 도로가 ‘한진로드’라고 명명된 것은 바로 같은 주소지가 한진해운이 운영하는 170에이커, 20여만평 규모의 하역시설이 위치한 한진전용부두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브릿지 웨어하우스는 사실상 한진의 물동량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대한항공이나 한진해운과 출자관계가 있는 계열사는 아니지만 대한항공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조양호 회장이 이 회사에 대해 충분히 우월적 지위에 있으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조 회장이 문 위원장의 처남 김모씨를 이 회사에 소개시키고 김씨는 일도 하지 않고 8년간 74만여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영향력하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등을 통해 유력정치인 자제들을 거둬먹인다”는 정치권의 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최근 또 다른 유력인사의 자제도 국내 5대재벌 중 한개 회사의 미국 뉴욕 페이퍼컴퍼니에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월급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었습니다
/한진해운 웹사이트 내 롱비치항 전용부두 소개.
브릿지 웨어하우스 사장은 피터 YS 김씨로 확인됐으며, 김씨는 이 회사 외에도 ‘3 PLUS LOGISTICS CO’, ‘3 PLUS TRANSPORTATION INC’, ‘HARBOR EXPRESS’, ’TATAL CONTAINER CARE INC’ 등 창고와 화물배달회사[트러킹 컴퍼니], 컨테이너회사 등 물류회사 8개를 운영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마도 김씨는 한진부두 내에 하역창고를 가지고 컨테이너 등 하역물품 보관은 물론 미 전역으로 배송하는 사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회사의 매출내역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미국의 기업분석사이트들은 이 회사의 종업원이 50명에서 99명 내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2일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과 처남간의 소송사건 판결문에서 “문 위원장이 조양호 회장에게 처남의 취업을 부탁, 김씨가 브릿지 웨어하우스에 취업해 실제로 근무하지 않으면서 8년간 약 74만여달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었습니다.
12.23 황장엽 암살조 지도한 미군 '잭슨 동무'는 짝퉁 장교 출신
2010년 황장엽 암살임무를 띠고 남파됐다 체포된 동명관 등 2명이 마동희 군사대학에서 영어교육 등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이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사람이 ‘잭슨 동무’로 알려진 미군포로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미 국방정보국이 작성한 1998년 9월 10일자 '잭슨 동무 관련' 첩보보고서./마크 슈터 입수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1998년 9월 10일 작성한 ‘미군포로가 북한특수부대에 미군전술 교육’이라는 제목의 첩보보고서를 통해 “미 공군장교를 자처하는 잭슨이라는 성을 가진 미군 포로가 평양 소재 마동희 군사대학의 심리전학과 강좌장으로서 1983년 이전부터 북한 해상저격부대에 미군의 특수전 전술과 영어, 심문기술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첩보보고서는 한국전 전문가인 마크 슈터가 정보자유화법에 의거, 미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입수한 보고서입니다. 국방정보국은 이 보고서에서 이 미군포로의 신상에 대해 라스트 네임[성]이 잭슨이며 퍼스트 네임[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한국 이름은 창식이며 1993년 당시 나이가 52세에서 54세 정도라고 전했습니다
/미 국방정보국 1998년 9월 10일자 '잭슨 동무 관련' 첩보보고서./마크 슈터 입수
특히 잭슨은 마동희 군사대학은 물론 64해상저격여단의 52해상저격대대를 훈련시켰으며 52해상저격대대의 소재지는 특정되지 않았으나 ○○○으로부터 입수한 다른 정보에 따르면 64해상저격여단의 본부는 원산시 관풍리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1984년 3월까지 64해상저격여단에 근무한 ○○○도 본부가 관풍리임을 확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잭슨이 마동희 군사대학 심리전학과의 강사 3명과 함께 1983년부터 1993년까지 6월과 9~10월 등 매년 두차례 52해상저격대대를 방문, 1회에 20일씩 미군특수전 전술과 영어, 심문기술을 가르쳤다고 명시했습니다.
/미 국방정보국 1998년 9월 10일자 '잭슨 동무 관련' 첩보 보고서./마크 슈터 입수
교육 첫날 64해상저격여단 정찰책임자가 잭슨을 “미군 포로이며 마동희 군사대학 심리전학과 책임자인 창식 동무”라고 대대원들에게 소개했고, 잭슨은 교육 중 “나는 미 공군 장교”라고 밝히면서도 “잭슨”이라는 자신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나 대대원들은 그를 모두 잭슨으로 알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국방정보국의 휴민트로 추정되는 ○○○은 미군조종사복장을 한 남성이 64해상저격여단의 김일성혁명이데올로기연구소 앞에서 찍은 흑백사진을 정보국에 제시하고 이 남자가 52해상저격대대에서 심리전을 가르치는 미군 포로로 추정된다고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 국방정보국 1998년 9월 10일자 '잭슨 동무 관련' 첩보 보고서./마크 슈터 입수
이 보고서는 창식 동무, 즉 잭슨의 신상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잭슨은 코카서스인종[백인]으로 키는 180센티미터, 몸무게는 75킬로그램이며 눈과 머리색깔은 브라운, 헤어스타일은 숏컷의 군인스타일로서 오른손잡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또 평양 중구역 창광거리 소재 국영백화점인 창광백화점의 부매니저인 북한 여성과 결혼했으며, 인민군 정찰총국 소속 마동희 군사대학에서 심리전학과 강좌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계급은 대령이며 한국어와 영어가 유창하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2010년 4월 황장엽 암살조 검거 당시 국정원 발표 보도.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지난 2010년 4월 황장엽 암살임무를 띠고 남파됐다가 국정원에 검거된 동명관과 김명호가 1992년에서 1996년까지 바로 잭슨이 재직중인 마동희 군사대학에서 영어와 혁명역사,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미 국방정보국 첩보보고서에서 잭슨이 1983년 이전부터 마동희 군사대학에서 영어와 미군특수전전술 등을 교육시켰으며 1993년에 그의 나이가 52세에서 54세라는 점. 적어도 1993년까지 52해상저격대대 교육에 나섰던 점 등으로 미뤄 황장엽 암살조가 마동희 군사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때도 잭슨이 이들의 교육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DMZ WAR
이 첩보보고서에 대해 미군포로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전문가들은 보고서에 잭슨의 신상이 상세히 기록돼 있지만 그는 공군장교가 아니라 1963년 12월 자진월북했던 미군 상병 제리 웨인 패리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잭슨’이 자신의 경력을 위조했다는 ‘짝통장교’ 의혹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DMZ WAR라는 미군포로전문 인터넷매체는 북한이 1963년12월 26일자로 제작한 ‘사진뉴스 51’이라는 삐라를 입수해 공개하고 ‘미군 제 1기갑사단 제8기갑연대 1대대 본부중대 탱크운전수인 제리 웨인 패리시’가 잭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삐라는 “제리 웨인 패리시가 미군에 복무하는 것은 조선인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 모든 사람에게 직업이 있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 북조선을 동경, 월북을 단행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DMZ WAR는 한국전 종전 이후 북한으로 월북한 미군 병사가 모두 5명이며 시기적으로 제리 웨인 패리시가 ‘잭슨’이라는 인물에 가장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마동희 군사대학은 인민국 정찰총국 소속의 군사대학으로 주로 납치와 암살, 폭파훈련 등 대남침투훈련을 담당하는 군사대학이며, 해상저격여단은 우리나라 해군의 UDT와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황해도 비파곶 해군기지, 원산 해군기지 등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