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다큐16/ 정치8/ 안치용의 Secret of Korea2/ 2014.04.01 대주건설 337억원 뉴질랜드서 증발 - 07.28 한국인 미국 방문객 8월이 최다, 2·3월이 최소
비하인드 다큐16/ 정치8/ 안치용의 Secret of Korea2
2014.04.01 대주건설 337억원 뉴질랜드서 증발
대주건설 뉴질랜드 투자는 사실상 허 전회장의 계획된 해외재산도피 ‘의혹’
당초 대주건설과 허 전회장이 50%씩 지분 소유, 설립 10개월만에 허 전회장 지분 76%로 증가
유일한 이사였던 허 전회장이 신주발행 승인, 자신에게 무더기로 배정해 회사 삼켜
이 회사는 2550만달러 짜리 땅 매입 후 중간 세탁 과정 거쳐 5300만달러에 매각
한국의 대주건설은 부지매입비 등으로 부지 가격보다 50%나 많은 4100만달러를 송금
이후 “사업전망 나쁘다”며 송금액을 장부상 0원으로 처리, 자금 전액이 허 전회장 수중으로
허재호 전 대주회장이 지난 2002년 뉴질랜드 법인을 설립할 당시 국내 대주건설이 50%의 지분을 소유했으나, 설립 10개월만에 유일한 이사였던 허 전회장이 스스로 신주발행을 결의, 자신의 지분을 76%로 늘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허 전회장은 뉴질랜드 법인 설립 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엘리엇센터 부지를 매입하면서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부지 매입가보다 50% 이상 많은 4100만 뉴질랜드 달러(378억원·이하 달러 표기는 모두 뉴질랜드 달러)를 국내 대주건설이 뉴질랜드 대주법인으로 송금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대주건설은 이 뉴질랜드 법인이 적자상태인데다 사업전망이 좋지 않다며 2006년부터는 뉴질랜드 법인의 장부가를 0원으로 처리, 부지매입으로 송금한 자금을 대주건설의 장부상에서 증발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2012년 7월에는 뉴질랜드의 이 부지를 중국계 투자회사에 5300만달러에 팔았습니다. 2009년에 국내 대주건설이 3200억원 상당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퇴출당한 뒤 3년여가 지난 시점입니다. 이러한 해외송금 및 부지매각 과정은 대주그룹의 뉴질랜드 투자가 사실상 허 전회장의 계획된 해외재산 도피였다는 의혹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허 전회장은 지난 2002년 3월 ‘가나다하우징’이라는 이름으로 뉴질랜드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설립된 법인은 2003년 중반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엘리엇센터’를 짓는다며 알버트 스트릿 일대의 부지를 2550만 뉴질랜드 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오클랜드 도심 한복판에 67층 높이의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짓는다는 허 전회장의 야심찬 계획은 뉴질랜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부지매입, 부지매각, 사업진행상황 등이 상세히 보도됐습니다. 2012년 7월 엘리엇센터 부지매각에 대해 허 전회장의 고문변호사는 2년6개월의 협상끝에 5300만달러에 팔았다는 인터뷰를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나다하우징에서 대주하우징으로, 또 현재는 빅토리아타워개발로 이름이 바뀐 이 법인은 76% 지분을 소유한 허 전회장이 매각을 주도, 허 전회장이 매각대금 5300만달러중 거의 대부분을 챙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24%의 지분을 가진 국내 대주건설은 부도가 나서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법인이 2002년부터 현재까지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한 43건의 서류 전체를 조사한 결과 허 전회장은 법인설립 직후부터 이 회사를 사실상 사유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2년 3월 12일 국내 대주건설이 뉴질랜드 가나하우징 주식 50주(50%)를 보유했음을 입증하는 서류. 허재호 전대주그룹회장이 직접 제출.
허 전회장과 대주건설은 2002년 3월 12일 뉴질랜드 정부에 ‘가나당하우징’ 설립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전체 주식은 100주이며, 허 전회장이 50주, 대주건설이 50주로 각각 50%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습니다. 특히 이사는 허재호 전회장 단 1명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회사는 설립 약 8개월여만인 2003년 1월 20일 99만9900주를 추가발행했다고 1월 30일 신고했습니다. 2004년 3월 4일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한 2003년분 연례보고서에는 회사 지분이 허 전회장 76%, 대주건설 24%로 변경돼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가나다하우징의 유일한 이사인 허재호 전회장이 2003년 1월 30일자로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한 신주발행신고서.
/2004년 3월 4일 대주하우징이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한 2003년치 연례보고서.
설립 당시 이 회사 이사는 허 전회장 단 한명 뿐이었기 때문에 주식발행신고서에는 허 전회장 혼자서 신주발행을 승인했음이 허 전회장 서명과 함께 잘 드러나 있습니다. 허 전회장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신주발행을 결정, 자신의 지분을 크게 늘린 것입니다. 이처럼 법인 이사는 허 전회장 1명뿐인데다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허 전회장이 신주발행을 결의하고 더구나 자신에게 신주를 몰아줌으로써 허 전회장의 지분은 76%로 급증하고 대주건설의 지분은 50%에서 24%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이 것은 처음부터 허회장이 회사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추론을 가능케 합니다.
/2003년 4월 12일 금감원에 제출된 대주건설 2002년치 감사보고서.
또 대주건설이 금감원에 보고한 감사보고서의 지분 현황은 실제 지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대주건설이 실제 가나다하우징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던 시점인 2002년말 감사보고서에 대주의 지분은 24%로 축소신고돼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된 서류에 따르면 대주건설의 가나다하우징 지분은 2002년 3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줄곧 50%를 유지했으나 대주건설은 이를 24%로 줄여서 허위보고한 것입니다
/2006년 4월 11일 금감원에 제출된 대주건설 2005년치 감사보고서.
허 전회장은 이렇게 가나다하우징을 자기 것으로 만든 뒤 대주건설이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가나다하우징에 4100만 뉴질랜드 달러(한화 320억원·환율상승에 따라 2008년말 사업보고서에는 외화자산의 한화가치가 431억원에 달함)를 빌려주도록 했습니다. 대주건설은 이를 장기대여금으로 처리했는데, 2006년부터는 사업부진을 명목으로 장부가를 0원으로 계상했습니다. 대주건설이 2005년까지 부지매입액 2550만달러보다 50% 이상 많은 4100만달러를 투자하고도 바로 그 다음해에 뉴질랜드 법인의 가치를 0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피투자회사, 즉 뉴질랜드법인의 재무상태가 항상 적자상태로 보고돼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2004년 11월 29일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된 대주하우징의 주식변동보고서.
뉴질랜드 정부에 따르면 뉴질랜드 법인의 지분은 2004년 11월29일부터 약 1년 4개월 동안 100% 뉴메겐트러스트라는 법인의 소유로 넘어갔으며, 2006년 3월 24일 다시 대주건설 지분 24%, 뉴메겐트러스트 지분 76%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허 전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뉴메겐트러스트에 신탁했고 한때 대주건설 지분이 모두 증발됐었음을 의미합니다.
/2008년 3월 7일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된 대주하우징의 주식변동보고서
/뉴질랜드 정부가 발행한 유토피아타워의 법인증명서.
그 뒤 허 전회장은 2008년 2월 13일 자신과 부인이 각각 50% 지분을 보유한 유토피아타워라는 법인을 설립했고 약 한달 뒤인 3월 7일 뉴메겐 트러스트의 지분 76%를 이 유토피아타워 명의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허 전회장이 2004년 11월부터 뉴메겐트러스트라는 신탁회사를 이용, 자신의 지분소유 사실을 숨겼으며, 2008년에 다시 자신이 주인인 법인 명의로 넘기는 등 2-3차례 지분을 세탁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허 전회장은 2010년 1월 광주고등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을 받은 2개월 뒤인 2010년 3월 30일 회사 이름까지 대주하우징에서 빅토리아타워개발로 변경했으며, 2012년 7월 마침내 엘리엇센터 부지를 5300만달러에 매각한 것입니다.
/2008년 2월 8일 허 전회장의 부인 황길순이 대주하우징 이사로 선임됐음을 보여주는 이사동의서.
이 뉴질랜드법인의 이사 내역을 살펴보면 2002년 회사설립 당시 허 전회장 단 1명의 이사뿐이었으며, 11년간 이사로 재직하다 6개월전인 지난해 10월 사임했습니다. 또 허 전회장의 부인 황길순씨(이후 황세원으로 개명)가 지난 2008년 2월 8일부터 이사에 선임돼 현재는 허 전회장 부인만이 유일한 이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회사에는 강모씨, 노모씨가 이사로 재직했으나 재직기간은 4개월에서 8개월 정도에 불과했고, 손모 이사가 2005년 9월 취임했으나 엘리엇센터 부지 매각이 끝난 2012년 12월 20일 퇴임했습니다. 이로 미뤄 허 전회장이 부지매각을 계기로 사실상 이 회사를 정리하는 수순에 돌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뉴질랜드 정부가 발행한 KNC건설의 법인증명서.
2012년 엘리엣센터 부지를 매각한 허 전회장은 뉴질랜드 재산을 완벽하게 은닉하기 위해 지난해 표면상 자신이 주주나 이사로 참여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회사를 출범시켰습니다. 대주엔터테인먼트, 대주글로벌매니지먼트 등 2개사의 허 전회장 지분을 넘겨받은 것으로 밝혀진 스캇 허씨는 지난해 1월 21일 자신이 100% 지분을 보유한 ‘KNC 건설’을 설립했고, 지난해 7월 5일에는 ‘KNC건설’이 지분을 100% 보유한 피오레프라퍼티매니지먼트, 피오레바디 등 2개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이 KNC건설은 오클랜드 ‘마운틴에덴’ 지역에 피오레 아파트를 착공했으며, 지난 13일 모델하우스를 오픈하는 등 대대적인 분양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이사는 지난해 1월 설립 때부터 허숙씨와 이병인씨 등 2명이며, 허숙씨는 이 회사의 100% 지분을 보유한 스캇 허씨와 함께 허 전회장 일가로 추정됩니다.
또 현재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병인씨는 지난해 7월 헌법상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 뉴질랜드협의회 회장에 임명됐으며, 이 회사 외에도 허숙씨와 함께 스캇 허씨가 허 전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은 대주엔터태인먼트와 대주글로벌매니지먼트등 2개 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병인씨가 KNC 건설 대표이사를 맡은지 약 5개월여가 지난 시점에 이씨를 평통 뉴질랜드 협의회 회장에 임명한 것입니다.
한편 허 전회장이 뉴질랜드에 호화 요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을 입증하듯 지난해 설립된 KNC 건설이 ‘95피트짜리 수퍼요트의 선장을 모집한다’는 인터넷 구인광고를 내는 등 ‘회사는 망해도 사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허 전회장일가는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04.03 허재호 전회장 부인도 회사 재산 72억원 횡령 의혹
국내 HH개발, 뉴질랜드 현지법인에 850만달러(72억원) 투자
황씨, 금감원에는 국내 HH개발 소유로 신고하고 실제로는 개인명의로 100% 보유
허재호 전회장 조세포탈-횡령 기소뒤 2009년에 황씨가 자신에게 양도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 허재호 전 대주회장의 벌금 대납의사를 밝힌 허 전회장의 부인 황세원씨도 최소한 72억원 이상의 회삿돈을 사실상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2005년 9월 20일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된 주주동의서로 국내 HH개발이 뉴질랜드 HH개발의 주식 10만주, 즉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된 허씨 일가 관련법인 서류를 조사한 결과 허 전회장은 지난 2005년 9월 20일 뉴질랜드에 HH개발을 설립하고 당일 이사로 취임했습니다. 특히 이날 뉴질랜드 정부에 제출된 법인신고서에는 이 회사 전체주식이 10만주이며, 지분 100% 전체가 광주시 금남로 2가에 주소지를 둔 HH개발 소유로 돼 있습니다.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08년 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09년 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10년 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11년 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12년 감사보고서.
또 국내 HH개발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감사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HH개발은 2008년에야 뉴질랜드 HH법인을 신고했으며, 2012년말까지 뉴질랜드 HH개발의 지분 100%를 소유한 것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2009년 9월 30일 뉴질랜드 HH개발의 주식 10만주, 즉 지분 100%가 국내 HH개발 소유에서 황길순 소유로 변경됐음을 입증하는 뉴질랜드 정부 웹사이트.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에 따르면 뉴질랜드 HH개발은 2009년 9월 30일자로 국내 HH개발 소유의 주식 10만주, 즉 100% 지분 전체가 허 전회장의 부인 황씨 소유로 변경됐다고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황씨가 뉴질랜드 HH개발법인의 지분 100%를 2009년 자신 명의로 돌려놓고도 국내 금융당국에는 지금 현재까지 국내 HH개발이 100% 소유하고 있다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09년 연결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10년 연결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11년 연결감사보고서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09년 연결감사보고서.
특히 국내 HH개발이 금융당국에 제출한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HH개발은 2009년 뉴질랜드 HH개발에 850만 뉴질랜드 달러, 한화로 77억2000만원을 대여해 준 것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2010년 연결감사보고서에도 뉴질랜드 HH개발에 850만 뉴질랜드 달러를 대여해 준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2011년과 2012년에는 관련재무제표를 아예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금융당국에 제출된 국내 HH개발의 2012년 감사보고서.
또 지난해 4월 금융당국에 보고된 국내 HH개발의 감사보고서 재무제표에도 이 돈 77억원이 뉴질랜드 HH개발에 대한 장기대여금으로 계상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황씨가 국내 HH개발이 850만 뉴질랜드 달러를 투자한 뉴질랜드 HH개발의 지분 100%를 사실상 가로챘으며, 황씨가 국내 HH개발 대표이사 겸 주주였으며 현재도 이사인 점을 감안하면 회사돈을 최소한 77억원 이상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14년 3월 31일자 국내 HH개발의 법인등기부 등본.
국내 HH개발의 법인등기를 확인한 결과 법인 주소는 뉴질랜드 정부에 100% 지분 소유자로 등재됐던 HH개발의 주소지와 일치했습니다. 또 황씨는 2003년 11월 21일부터 지금까지 이사로 재직중이며, 특히 2007년 11월 6일까지는 대표이사를 역임했습니다.
광주지검이 허 전회장을 횡령 및 조세포탈로 불구속기소한 것은 2007년 11월, 국내 HH개발이 뉴질랜드 HH개발에 850만 뉴질랜드 달러를 투자한 것은 2009년이기 때문에 허 전회장이 횡령 혐의로 기소된 뒤에도 허 전회장 일가가 뉴질랜드로 돈을 빼돌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 HH개발은 지난 2005년 9월 20일 허재호, 손정무, 노병우 등 3인의 이사로 설립됐습니다. 허 전회장 기소 직후인 지난 2008년 2월 8일 황씨도 이사로 취임, 현재는 허 전회장과 황씨 두사람이 이 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또 황씨는 지난해 10월 17일 자신의 이름이 황길순에서 황세원으로 바뀌었다고 신고했습니다.
국내 HH개발은 2001년 4월 23일 부동산 임대업을 위해 설립한 법인으로 2004년, 2005년, 2006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허 전회장과 황씨가 각각 20%씩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허 전회장의 일가로 추정되는 허호진, 허혜진, 허정우, 허승우씨 등이 각각 15%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또 현재 이 회사는 황씨(본명 황길순)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황재순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황씨와 허호진씨가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황씨가 사실상 회삿돈 77억원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남에 따라 황씨가 뉴질랜드로 돌아가기 전에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고 횡령 혐의에 대해 수사할 지 주목됩니다.
04.07 "이건희 회장을 인터폴에 적색수배하라" 인도 법원의 황당한 요구
2002년 형사소송 이후 법정출석 안하자 2005년 체포영장 발부
인터폴 적색수배 등 황당 조치도 관련부처에 요청
인도 내무부의 절차문제 지적과 이 회장의 이의 제기로 아직 인터폴 통보 안돼
인도 대법원 “6주내 출석않으면 체포영장집행”…인터폴 수배 배제 안해
삼성 “삼성이 인도인들에게 사기를 당한 것… 이건희 회장은 전혀 무관”
삼성전자의 납품대금 미지급 사건과 관련, 인도 법원이 지난 2005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지금까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인터폴 적색지명수배자로 등록, 강제송환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돼 인도 법원의 조치가 가혹하고 황당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도 법원은 내무부와 외무부 등 관계부처에 이 회장을 즉시 체포돼야 할 적색수배자로 인터폴 본부에 통보토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로 난항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아직 정식통보는 되지 않았습니다. 인터폴 웹사이트 확인 결과 이 회장은 적색수배자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이번 사건은 삼성전자 두바이 법인이 한 인도 회사에게 환어음 사기를 당했는데, 뜻밖에 이 인도 회사의 환어음을 인수했다고 주장하는 다른 인도 회사가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환어음 사건의 가해 인도인들은 몇 년전에 이미 두바이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삼성이 피해자임이 입증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건희 회장은 두바이 법인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고소인이 주장했다고 해서 관련도 없는 세계적 기업의 총수를 법정에 부르는 것이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말이 되느냐”고 지적합니다.
/인도 알라바드 고등법원 2013년 5월 30일자 판결문.
지난해 인도고등법원 판결문을 보면 인도 법원은 9년전인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그 집행을 위해 이 회장을 인터폴 적색지명수배자로 등록하려 했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나는 소송과 무관하니 소송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인도 대법원이 이 회장의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인도법원의 체포영장 발부가 유효하게 됐으며, 이 영장을 집행하는 절차로 적색지명수배 조치도 유효하게 됐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해석입니다. 특히 인도 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회장이 2005년 이후 체포영장 집행을 계속 저지하고 도주하면서 인도 법원의 명령에 불복하고 있다”고 판결문에 명시, 이 회장이 인터폴의 적색수배자 명단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인도 알라바드 고등법원 2013년 5월 30일자 판결문.
인도 대법원이 지난달 31일 “이 회장이 6주내 인도 법원에 출두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고 내린 명령은 지난 2002년초 발생한 삼성전자 두바이법인의 납품대금 미지급에 따른 형사고소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도 소재 부품회사 JCE는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물품대금 142만여달러(14억9800만원)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2005년 1월 이건희 삼성 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과 삼성전자 두바이법인, 삼성전자의 에이전트격인 스카이 임펙스사를 환어음 사기혐의로 형사고소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가지아바드 법원은 그해 1월 12일 이 회장 등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장 등이 이에 응하지 않자 20일 뒤인 2월 3일 보석가능 체포영장(BAILABLE WARRANT)을 발부한데 이어, 3월 16일 보석불가 체포영장(NBW: NON-BAILABLE WARRANT)을 발부했습니다. 인도 형법에 따르면 보석불가 체포영장은 2년형 이상이 선고될 만한 범죄용의자에 대해 발부되는 영장입니다.
인도 법원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을 강제소환해 법정에 세우기 위해 인터폴 적색지명수배자 등록을 추진했습니다. 지난해 5월 30일자 인도고등법원 판결문을 보면 인도법원은 2005년 3월 21일 형사사건 기소를 담당하고 인터폴과의 협조를 전담하는 인도검찰격인 중앙조사국(CBI)를 통해 보석불가 체포영장을 집행토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또 2006년에는 인터폴 적색지명수배통보(RED CORNER NOTICE)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보석불가 체포영장을 다시 발부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적색지명수배는 레드 노티스 또는 레드 코너 노티스로 불리는 것으로, 이 명단에 오르면 186개 인터폴 회원국이 지명수배자를 발견하는 즉시 체포해 해당 국가로 강제 소환토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정되는 체포영장인 것입니다.
/인도 알라바드 고등법원 2013년 5월 30일자 판결문.
이처럼 인도 법원이 인터폴 지명수배를 추진하자 이 회장은 “나는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삼성전자 두바이법인의 일을 한 적이 없다”며 부당성을 지적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습니다. 2006년 또 다시 이의를 제기했으나 인도 법원은 2009년 11월 13일 이마저 기각하면서 30일내에 법원에 출석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측은 소송에서 자신을 배제시켜달라는 ‘당사자배제 청원’을 제기했으나 2012년 2월 1일 기각됐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이의를 제기했으나 2012년 4월 19일과 2012년 10월 30일 연달아 기각됐습니다.
그 뒤 인도 법원은 2012년 11월 24일 이 회장에게 발부된 보석불가 체포영장을 관련법 절차에 따라 인터폴에 통보, 적색지명수배자로 등재되도록 해달라고 인도 내무부와 외무부에 정식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내무부는 2013년 1월 2일, 외무부는 2013년 1월 7일에 송환절차 추진에 앞서 가이드라인 등을 정확히 지켜달라며 두 기관 모두 이 공문을 인도 법원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인도 알라바드 고등법원 2013년 5월 30일자 판결문.
인도 법원이 이처럼 집요하게 이 회장의 법정출석을 요구하는 것은 이 회장이 인도 법원의 권위를 무시하고 정면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인도고등법원은 이 판결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 회장이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인도의 사법절차를 지연시키고 있으며 지난 2005년 3월 16일 발부된 보석불가 체포영장의 집행을 막기 위해 계속 세로운 장애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판사는 ‘나의 견해’라며 “이회장은 고소를 당했음에도 도주해 법원의 재판관할권에 복종하지 않았고 법원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항변권(right to be heard)을 부여할 수 없다”고 밝히고 “(당사자배제 청원은) 이유가 없으므로 기각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항변권(right to be heard)은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으로, 인신이나 재산에 제한을 가할 때는 반드시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하며 이 법적 절차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피고에게 항변 등 대응할 기회가 부여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도 법원이 이 회장에게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항변권 조차 현단계에서 부여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이 회장이 9년째 법원 출석에 응하지 않는데 대한 강경조치로 해석됩니다. 특히 이 회장이 삼성전자 납품대금 지급의 실무자 또는 해당법인의 대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보면 가혹하고 감정적인 조치입니다. 그러나 인도고등법원의 강경대응 속에서 대법원이 “6주내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한다”는 명령을 내린 만큼 이 회장과 삼성으로서는 간단히 넘겨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04.08 이건희 회장을 적색수배자 위기로 몰아넣은 버진아일랜드 법인의 정체
버진아일랜드 법인, 삼성전자 부품주문 중개하며 대금 4.5%를 커미션으로 받아
납품업자는 버진아일랜드 법인이 대금 안주자 이건희 회장 등을 인도 검찰에 형사고소
이 회장은 “나는 무관하다”며 소송배제신청 냈으나 인도 대법원은 “6주내 출석않으면 체포영장집행”
삼성측 “삼성두바이 법인이 인도인들에게 사기 당한 사건”…버진아일랜드 법인이 인도 회사 가능성 시사
인도 법원이 이건희 회장의 법정 출두를 요구하면서 응하지 않을 경우 인터폴에 적색수배자로 지명수배하는 황당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의 한 해외법인 일 때문에 한동안 인도에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을 적색수배자 위기로 몰아넣은 삼성전자의 에이전트, 즉 조세피난처인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BVI) 법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인도 대법원의 3월 31일자 이건희 형사사건 특별배제신청 명령문.
지난달 31일 “이건희 회장이 6주내 인도 법원에 출두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는 인도 대법원의 명령은 단순한 대금지급을 요구하는 민사사건이 아니라 인도사법당국과 이건희 회장과의 형사사건입니다. 이날 명령은 이 회장의 ‘형사사건 특별배제청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인도 대법원의 '이건희 형사사건 특별배제신청’ 사건 요약.
인도 사법당국은 지난 2005년 1월 12일 이미 이건희 회장 등에게 소환장을 발부했고 이회장은 이에 불복해 자신을 피고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2012년 2월에 인도 형사항소법원이, 2013년 5월에 인도 고등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이 회장이 다시 인도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대법원은 이 회장을 소송 당사자에서 배제시킬 수 없다며 지난달 31일자로 신청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이 사건은 삼성전자가 부품을 조달하면서 납품업자에게 직접 주문하지 않고 조세피난처인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법인을 거쳐 주문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전체대금의 4.5%를 커미션으로 받는 이 법인이 납품업자에게 대금을 지불하지 않자 납품업체가 소송을 낸 것입니다.
사건의 직접 당사자는 아랍에미레이트연합에 설립된 삼성전자법인 ‘삼성 걸프 일렉트로닉스 두바이’(이하 삼성두바이), 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스카이 임펙스 리미티드’(이하 스카이),인도에 설립된 ‘JCE 컨설턴시’(이하 JCE) 등 3개 법인입니다.
/인도 형사항소법원의 2012년 2월 1일 이건희 형사사건 특별배제신청 판결문내 계약서.
인도 법원에 따르면 전자부품 납품업체인 JCE는 지난 2001년 12월 1일 스카이와 전자부품인COKE CALCINATION(흑연하소)를 삼성전자에 납품한다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2년 이 회장에 대한 인도 형사항소법원 판결문에 포함된 계약서에 따르면 브리티시 버진아일랜드 법인인 스카이는 2001년 11월 25일 JCE에 주문장을 제출했고, 두 회사간의 정식계약은 주문 일주일뒤인 2001년 12월 1일 체결됐습니다. JCE는 2002년 1월 30일까지 137만달러어치의 흑연하소를 공급하며, 구매자인 스카이가 이 물품을 삼성두바이에 공급한다는 조건으로 대금은 삼성두바이가 143만2천달러를 2002년 6월까지 지급하도록 계약됐습니다.
/인도 형사항소법원의 2012년 2월 1일 이건희 형사사건 특별배제신청 판결문내 계약서.
대금지금에는 두가지 옵션이 있어서 JCE가 삼성두바이로부터 143만2천달러를 직접 지급받으면 72시간내에 스카이가 지정하는 은행계좌로 커미션 6만2천달러를 송금하거나, 또는 스카이가 삼성두바이로부터 대금을 받을 경우 137만달러만 JCE가 지정하는 은행계좌에 송금하는 방법 중 하나를 택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어느 경우든 스카이가 커미션 6만2천달러를 챙기도록 돼 있습니다. 스카이가 받는 커미션 6만2천달러는 삼성전자의 실제 부품구매액 137만달러의 4.5%에 해당하는 금액으로서 스카이로서는 삼성 대신 주문을 해주고 4.5%를 받는 계약입니다. 그 커미션은 셀러가 아닌 바이어가 주는 것으로 미뤄 바이어의 에이전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뒤 JCE는 주문물량을 계약기간내인 2002년 1월 28일 납품하고 확인서를 받았으며, 삼성두바이는 2002년 6월 22일 143만2745달러를 스카이에 지급했고 스카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확인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JCE는 스카이로부터 대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JCE는 삼성두바이에 대금지급을 요청했고 삼성두바이가 거절하자 2004년 12월 20일 삼성두바이에 “48시간내에 143만2천달러를 JCE에 지급하라. 지급하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통보문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삼성두바이의 변호사가 JCE측에 통보문을 받았다며 연락을 취해왔다고 합니다. JCE는 삼성두바이가 통보문을 받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자 마침내 2005년 삼성측과 스카이를 형사고소하게 되며, 가지아바드 법원은 1월 12일 이건희 회장 등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인도 형사항소법원의 2012년 2월 1일 이건희 형사사건 특별배제신청 판결문.
피고소인은 삼성두바이법인, 이병우 삼성두바이 매니징디렉터, 이건희 삼성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변동권 전 삼성두바이 매니징디렉터, SC 백 전 삼성두바이 재무고문(경리책임자), 브리티시 버진아일랜드의 법인인 스카이 임펙스 리미티드, 스카이 임펙스 리미티드의 사장 등 개인 6명과 2개의 법인입니다. 특이하게도 피고소인 중 삼성의 에이전트격으로 삼성으로 부터 물품대금의 4.5%를 커미션으로 받기로 계약된 스카이 사장의 실명은 기재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 등이 형사고소되자 1번부터 5번까지의 피고인, 즉 삼성두바이, 이병우, 이건희, 윤종용, 변동권은 법원에 자신들이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소송에서 배제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특히 이 회장은 “나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삼성두바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소송에서 배제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삼성두바이 법인도 인도와 관련없는 외국법인임을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회장 등 삼성 관계자나 법인 등이 모두 당사자가 아니라며 소송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단 한사람, 삼성두바이의 경리책임자 백모씨는 소송당사자에서 배제시켜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회장 등의 이같은 청원에 대해 인도 형사항소법원은 2012년 2월 1일, 인도 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30일 각각 이건희 회장 등의 배제요청을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 회장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지난달 31일 역시 기각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인도 대법원은 이날 “이 회장의 배제요청을 기각한다”며 “단 이 회장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은 6주간 집행하지 않는다”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이 회장이 6주내에 인도 법원에 출두하지 않으면 기존에 발부된 체포영장을 집행한다는 뜻입니다. 인도 법원은 이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2005년부터 이 회장을 인터폴 적색지명수배대상자에 올리려는 황당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이처럼 인도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에서 커미션을 받는 조세피난처 법인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JCE조차 그 법인의 사장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을 정도로 그 에이전트의 정체는 오리무중입니다. 삼성측은 “삼성두바이 법인이 인도인 회사에 사기를 당했고, 가해 인도인들은 두바이 법원에서 실형 판결을 받고 도피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에이전트는 인도인이 만든 법인이고 인도인들이 중간에서 물건 대금을 떼먹어 삼성과 JCE에 피해를 준 게 됩니다.
한편 삼성두바이 경리책임자인 백모씨는 삼성두바이 법인 소재 국가인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사법당국의 요청으로 현재 인터폴의 적색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폴에 따르면 오늘 현재 적색지명수배자 명단에 오른 한국 국적자는 모두 30명인데, 백씨는 1959년 7월생으로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하며 사기혐의 용의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04.18 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이 미국한테서 수당 적게 받았다는 의혹은 거짓이었다
미 국방부 보고서 수록한 의회 청문회 회의록 전 12권 모두 입수
미상원 사이밍턴 위원회, 한국뿐 아니라 월남참전 13개국 현황 상세 조사
‘소위(少尉) 3분의 1 값에 팔렸다’는 주장은 사실무근…미, 3개국 동일액수 지원 확인
한국군 해외근무수당, 필리핀보다 많고 태국보다 적어…3개국 큰 차이는 없어
정부가 진작 사이밍턴 회의록 입수했다면 헐값파병 의혹은 조기에 해소할 수 있었다
오는 29일은 미국이 월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한 지 49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도 이날 대사관과 교민들이 철수했습니다. 월남 철수 49년과 오바마대통령 방한 등을 맞아 미 국방부 보고서를 수록한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을 입수, 그동안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던 월남전 해외근무수당의 실체를 짚어봅니다
이 회의록은 미국이 지급한 월남전 참전 한국 군인의 해외근무수당이 다른 참전국보다 턱없이 적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원본이 아니라 국회 사무국에서 번역한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중 한국관련 1권과 국방부 문서 등을 통해 해외근무수당 관련 의혹을 부인해왔으나 이번에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12권 전권을 입수·확인한 결과 한국 참전군인들은 필리핀과 태국 참전군인과 대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확인 결과 미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산하 ‘안보협정 및 해외공약 소위원회’는 1969년 9월 30일부터 1970년 11월 24일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월남전에 참전한 미 동맹군 13개국 지원현황 등을 샅샅이 조사하고 2400여페이지 분량의 회의록 12권을 남겼으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한국군 관련 회의록 1권, 그나마 원본이 아닌 번역본 1권만 확보,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지원상황을 명쾌히 밝히지 못함으로써 헐값파병 의혹을 키운 셈입니다.
월남전에 대한 조사를 했던 이 위원회의 청문회는 위원장이 스튜어트 사이밍턴 의원이었기 때문에 ‘사이밍턴청문회’로 불리고 있으며, 그 회의록은 월남 참전국 13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 등에 대한 증언과 함께 미 국방부가 제출한 지원보고서 등 상세한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중 필리핀·태국·한국 회의록 각 표지.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중 미국정부가 월남전 참전국에 지원한 해외근무수당을 상세하게 언급한 대상국가는 한국과 필리핀, 태국등 3개국이며 미국방부가 계급별로 일목요연하게 그 액수를 명시한 내용은 한국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6권] 1572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필리핀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1권]265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태국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3권] 842페이지에 수록돼 있었습니다.
/한국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6권) 1572페이지.
회의록에 첨부된 미 국방부 보고자료에 따르면, 월남전 참전 한국군은 필리핀군보다 많은 해외근무수당을 받았고 태국보다는 약간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참전국 군인들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을 참전국 자국에서 지급하는 월급수준에 준해서 책정했습니다. 당시 한국 사병들은 필리핀·태국보다 월급수준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근무수당은 상대적으로 많이 지급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동안 한국 일각에선 ‘정부가 필리핀이나 태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돈을 받고 젊은이들을 베트남으로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돼왔습니다. 한국군 소위(少尉)의 해외근무수당은 151.55달러, 필리핀군 소위는 441.92달러, 태국군 소위는 389.33달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의 회의록은 이 의혹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사이밍턴청문회에서 미국이 소위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군과 필리핀군 및 태국군 모두 매월 120달러로, 3개국 소위에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했다며 관련 근거 등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급하던 소위 월급은 1967년 34달러, 1969년 47달러였으며 필리핀 정부가 지급한 소위 월급은 90달러, 태국 정부가 지급한 소위 월급은 50달러로 기록돼 있습니다. 즉 필리핀 소위의 월급은 한국의 2.6배였지만 미국이 한국군 소위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월 120달러로 필리핀 등 다른 나라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필리핀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1권) 265페이지.
또 중위에 대한 해외근무수당도 매월 한국과 필리핀이 135달러로 동일했고 대위는 150달러로 한국, 필리핀, 태국이 모두 같았습니다. 소령 이상은 한국과 필리핀은 동일했고 태국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최소 10%, 장군급에서는 30%정도 많았으나 그 대상 인원은 1~2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소수였습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태국군 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3권) 842페이지.
특히 사병들의 경우는 한국군 병사의 자체 월급이 필리핀이나 태국의 수십분의 1에 불과했지만 미국이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이 필리핀보다 많았고 태국보다는 약간 적었습니다. 이병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군이 월 37.5달러인 반면 필리핀군은 33달러, 태국군은 39달러였고 일병은 한국군 40.5달러, 태국군 45달러, 상병은 한국군이 45달러, 필리핀군이 36달러, 태국군이 50달러로 밝혀졌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급했던 이병 월급은 1967년 1달러, 1969년 1.6달러인 반면 필리핀은 30배에서 40배에 달하는 43달러였고 태국군은 20배가 넘는 26달러로 나타났습니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미국은 각국 정부와 월남전 참전관련 협정을 맺으면서 ‘해외근무수당과 전사자 및 전상자에 대한 보상은 미국이 부담하되 기타 수당이나 부상 등은 모두 자국 정부가 부담하고 미국이 이에 대한 보전을 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명기했습니다. 즉 미국이 참전국에 지원한 비용은 해외근무수당과 전사상자보상금이며 나머지는 참전국의 자체 부담이었습니다.
또 1964년 처음 월남에 파병된 소수의 한국군에 대해서는 미국의 비용부담이 없었다고 명시돼 있어, ‘한국 정부가 1964년 수당을 지급했다’는 한국 국방부 주장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참전국 자국의 봉급 수준에 준해서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한다는 미 국방부의 원칙을 감안하면 미국은 한국군에 대해 다른 참전국과 동일한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한국군을 오히려 우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끊임없는 논란이 됐던 월남전 헐값파병 의혹은 이렇게 명확히 입증될 수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초기에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킨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2004년 11월 30일 한국 국방부는 고엽제전우회의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 공문에서 ‘기타 연합군에게 지급된 관련자료’ 즉 미국이 한국 외에 다른 월남전 참전동맹국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과 관련한 자료는 ‘보유한 것 없음’이라고 답했습니다. 즉 미국이 다른 참전국에 지원한 현황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답함으로써 헐값수당 의혹을 부풀리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또 이 공문에서 언급한 객관적 자료는 ‘사이밍턴청문회의 청문록’이 유일했으며 그나마 그 원문보고서를 입수하지 못하고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이 1971년 10월 25일 간행한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즉 사이밍턴회의록의 번역본만을 제시했습니다. 이 문서의 정식 명칭은 입법참고자료 제140호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부제 사이밍턴위원회 청문록)으로 419페이지 분량입니다. 사이밍턴위원회가 13개 참전국가를 대상으로 무려 1년 이상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미 국방부 보고서까지 첨부, 2400여 페이지 분량의 12권 보고서를 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전체 원문보고서는 물론이고 한국 원문보고서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 국방부는 2005년 8월 월남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은 다른 참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정상적으로 지급됐고 매달 주한미군사고문단이 이를 결산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전용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같은해 12월에도 수천페이지의 한국군 내부문서를 추가 공개하며 태국군과 필리핀군에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이 한국군과 동일하게 지급됐다고 밝혔지만 태국군과 필리핀군 해외근무수당의 객관적 관련 근거, 예턴대 미국 측 지급내역 등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국방부가 제시한 미국 측 문건은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1971년 간행물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즉 사이밍턴청문회 한국회의록 번역본과 ‘베트남전에의 동맹국 참전’이 유일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베트남전에의 동맹국 참전’ 문건을 미 육군성이 1985년 발행한 책자라고 밝혔습니다만 사실은 미 육군성이 1975년 첫 출간한 뒤 1985년 동일한 내용으로 재출간한 200페이지 분량의 책자입니다. 이 책자에는 각 참전국 별 해외근무수당은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 57페이지에 계급별 해외근무수당만이 개략적으로 언급돼 있을 뿐입니다.
04.24 유병언, 다단계업체 설립해 대장세척기 최고 1000만원에 판매 중
'구원파'라는 종교단체에 다단계조직을 접목하는 방법으로 富 축적한 듯
2007년 대장세척기 ‘내클리어’개발, 고급형은 1000만원에 판매 중
역삼동 빌딩에 다단계 전시장및 특강센터 개소, 연 1회 합숙교육도
매부는 지난해까지 유럽지역 모국가 대사…관계 인맥 두터워
세월호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 회장 일가가 다단계업체를 설립, 유회장의 발명품인 대장세척시스템 ‘내클리어’를 최고 1000만원에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돼 이른바 ‘구원파’라는 종교단체에 다단계조직을 접목하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유병언회장의 장남 유대균씨가 32%, 전 부인으로 알려진 김모씨가 24.4%의 지분을 보유한 주식회사 다판다는 다단계업체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직접판매협회의 정식 등록업체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직접판매협회 웹사이트에 게재된 회원사 현황에는 다판다가 정식회원사로 등록돼 있었으며 대표이사는 현재 금융당국에 대표이사로 신고된 송모씨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지난해 매출액 430억원인 이 업체는 2000년 9월 21일 설립된 업체로 화장품과 건강식품, 전자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2007년 유병언회장이 개발한 대장세척시스템인 ‘내클리어’를 최고 1000만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판다 회원 인터넷 홈페이지
내클리어는 개인용 대장세척시스템으로 그동안 병원에서만 가능했던 장세척을 가정에서도 손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든 기계로, 국내에서 특허를 받은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10여개국에 특허와 디자인을 출원한 것으로 일부 언론에 보도됐었습니다. 유 전 회장은 이 제품을 지난 2007년 4월 제35회 제네바국제발명전시회에 출품, 금상을 받았으며 2006년 서울국제발명전시회에서도 금상을 받은 제품으로 선전하고 있고 적지 않은 매니아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재 이 제품은 다단계업체인 다판다를 통해 판매되고 있으며 스테인레스를 사용한 일반형은 150만원, 고급형 또는 골드형으로 불리는 제품은 580만원에서 최고 1000만원에 판매하는 것으로 다판다 회원들이 개설한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http://mall.edapanda.com/shop/list.php?ca_id=8010&NVKWD=%EB%82%B4%ED%81%B4%EB%A6%AC%EC%96%B4&NVADKWD=%EB%82%B4%ED%81%B4%EB%A6%AC%EC%96%B4&NVAR=PL&NVADID=1187769775+0GO0001eezvh17W-00kw]
현재 온라인에는 내클리어를 판매한다는 다판다 회원들의 웹사이트가 수십개나 개설돼 있는 상태입니다. 통상 다단계제품은 가격을 높이기 위해 유통라인을 다단계회사 하나로 통일, 자신들만 취급하는 물건을 비싸게 팔고 다단계 회원들에게 수당을 나눠주는 구조로 운영됩니다.
/’내클리어’ 홈페이지
‘내클러어’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현재 미국, 멕시코, 캐나다, 유럽에 해외지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지사는 차남 혁기씨의 저택이 있는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가 주소지로 명시돼 있었으나 캘리포니아에도 지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뉴욕주 국무부 법인조회결과 뉴욕주에는 지난 2009년 10월 28일 ‘내클리어 컨설팅 인크’[NAECLEAR CONSULTING INC]라는 법인이 설립됐으며 주소지는 웨체스터카운티인 베드포드힐스의 56래빗 로드였습니다 . 그러나 이 법인은 지난 2012년 9월 26일 이미 폐쇄됐습니다
/캘리포니아주 국무부 법인조회 결과
또 캘리포니아주 국무부 법인조회 결과 지난 2006년 5월 8일 ‘내클리어 인터내셔널 인크’[NAECLEAR INTERNATIONAL INC]라는 법인이 설립돼 현재도 운영되고 있으며 주소지는 유회장 일가의 차명소유 의혹이 제기되는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리조트와 동일했습니다. 약 300만평 규모의 이 리조트는 1990년 주식회사 세모 명의로 675만달러에 매입됐으나 2000년과 2004년 다른 법인 명의로 소유권이 이전됐고 이 새 소유법인의 이사 등이 세모관련 인물이어서 유회장 일가 차명소유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 조회 결과 다판다의 미국지사 주소지인 웨체스터 카운티 건물은 ‘베드포드 모임 프라퍼티 유한회사’가 지난 2009년 9월 28일 매입했으며 ‘베드포드 모임 프라퍼티 유한회사’는 건물매입 직전인 2009년 8월 17일 뉴욕주에 설립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판다는 2009년말 감사보고서에서 ‘베드포드 모임 프라퍼티 유한회사’ 지분 4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취득가는 6억원 상당이라고 명시했고 2010년말 보고서에도 동일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다판다는 지난 2011년말 감사보고서에서 ‘베드포드 모임 프라퍼티 유한회사’지분을 처분했다고 신고했습니다만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 조회 결과 ‘베드포드’가 2009년 매입한 건물은 오늘 현재까지 베드포드소유로 소유권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과연 다판다가 자신들의 지분 47%를 누구에게 넘겼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국직접판매협회 회원사 현황 홈페이지
이 베드포드 부동산은 유회장의 차남 유혁기씨가 관여하고 있는 종교단체로, 미 국세청으로 부터 비영리단체 인증을 받은 ‘에반젤리칼 미디어 그룹’의 주소지이기도 했으며 유씨가 345만달러에 매입한 저택도 같은 지역에 위치해 있어 유씨가 이 건물의 실질적 소유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 다판다는 본사 소재지인 서울 강남 역삼동 한신인터밸리 빌딩 내에 ‘내클리어’ 전시장과 특강센터를 개설하고 다단계 회원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1년에 한번씩 경기도 안성 ‘금수원’에서 회원과 신도등을 상대로 1인당 25만원을 받고 1주일 정도의 세미나와 워크샵등 합숙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 전 회장의 매부(여동생의 남편)는 지난해까지 유럽지역 모 국가의 한국 대사를 지낸 오모씨로 확인됐으며 한국출신 유명 외교관과도 친분이 두터워 2012년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에서 열린 사진전시회 개막식에 이 인사가 참석하는 등 정관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04.25 미국 법무부, 전재용씨 캘리포니아 주택 매도 자금에 대해 압류소송 제기
미국, 전두환 비자금 미 유입 공식 인정
미 법무부가 전두환 전대통령 차남 전재용씨의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주택을 전두환 비자금으로 판단, 이에 대한 압류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 법무부는 24일(미국 현지시간) 전두환 전대통령 차남 전재용씨 소유였다가 지난 2월 매도한 뉴포트비치 주택의 판매대금 72만달러(약 7억5천만원)를 몰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중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공식발표했습니다. 전재용씨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뉴포트비치의 이 주택을 박상아씨 명의로 지난 2005년 224만달러에 매입했으며, 실소유주를 숨기기 위해 장모인 윤양자씨의 법인에 무상양도했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와 탤런트 박상아씨.
미국 법무부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지난 1997년 3월 2억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가족들이 부패자금의 일부를 한국과 미국에서 돈세탁했다고 명시했습니다. 미국 법무부가 이같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부정축재를 했으며, 그 비자금을 미국으로 빼돌렸음을 공식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미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법무부와 지속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며 부패한 외국관리들이 미국에 돈을 숨기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상아-전재용 소유의 뉴포트비치 저택
04.25 전재용, "벌금낼 돈 없다" 주장한뒤 나흘만에 212만달러에 미국 주택 매도
미국 주택 매도계약서 단독입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이 법원에서 남은 재산이 없어 벌금 낼 돈이 없다고 밝힌 뒤 곧바로 미국내 부동산을 매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전재용은 자신의 장모 윤양자씨를 통해 차명소유했던 뉴포트 비치 주택을 지난 1월 28일 212만달러에 매도했습니다.
▲전재용씨 주택매도계약서.
매도계약서의 서류번호는 2014-55574로 매도계약 뒤 지난 2월 11일 오후 3시 20분 등기소에 접수됐으며, 재용씨의 장모 윤씨가 관리인으로 지정된 ‘THE PORT MANIEIGH TRUST’ 가 미국인 부부에게 매도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 매도계약서에 양도세가 2332달러로 기록돼 있으므로 천달러에 1.1달러씩 양도세가 부과됨을 감안하면 212만달러에 매도한 것입니다.
전재용씨의 장모 윤씨는 한국에 체류중이어서 미국에서 작성한 계약서를 한국에서 받아서 1월 28일 주한미국대사관을 방문, 영사가 보는 앞에서 매도서명을 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다시 계약서가 미국 매입인에게 보내져 2월 11일 등기가 된 것입니다. 전재용씨가 지난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조세포탈혐의 재판에서 “아버지의 추징금을 내느라 남은 재산이 한푼도 없어 벌금 낼 돈이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감안하면 그 직후 나흘만에 자신의 차명재산을 처분한 셈입니다.
박상아-전재용 커플은 지난 2003년 조지아주 아틀랜타 주택을 구입했다 매도한데 이어, 2005년 9월 27일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오렌지카운티의 부촌 뉴포트비치의 저택을 224만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이 주택의 주소는 1825 PORT MANLEIGH PL, NEWPORT BEACH CA 92660로, 이들 커플은 이 주택을 매입할 때 전재용씨 이름은 쏙 빼고 박상아씨 명의로 매입했습니다.
/전재용씨 주택매도계약서.
이들 커플은 또 이 집을 박상아씨 명의로 매입한 1주일뒤인 2005년 10월 4일 다시 소유권을 이전함으로써 재산추적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박상아씨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은 주체는 '더 포트 만레이 트러스트'이며, 이 트러스트의 재산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트러스티는 전재용씨의 장모 윤양자씨였습니다.
전재용씨의 매입가는 224만달러, 매도가는 212만달러로 12만달러를 손해봤으며, 융자금 133만4천달러에 수수료 등 모두 139만8천달러를 은행에 갚고 약 72만2천달러를 손에 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재용씨가 법원에서 “벌금낼 돈이 없다”고 주장하고는 미국 주택을 나흘만에 재빨리 매도, 돈을 챙기려 함으로써 전두환 일가의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05.13 유병언, 한국 세모 돈 빼돌려 미국 부동산 투자
1990년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지역 골프장옆 2에이커대지 저택 매입
1997년 세모 부도 2개월뒤 급매도, 채권자 몰래 돈 챙기려 한듯
세모 USA명의 190만달러 투자 신고뒤 2008년 한푼도 못건지고 청산
저택은 다른 법인명의 구입, 뉴욕주에 ‘법인 최고경영자는 유병언’ 신고
유병언 동생 유병호씨 부부도 유병언과 한 동네인 포트워싱턴에 주택소유
유병호씨, 포트워싱턴 외에 한때 맨해튼과 포트리에 고급콘도 보유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최고경영자로 등기된 세모아메리카가 1990년 매입한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의 저택 전면사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25년전 뉴욕에 세모명의의 법인을 설립, 저택을 매입했다가 세모부도 직후에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세모는 이 법인과 유사한 명의의 뉴욕법인에 해외투자명목으로 190만달러를 송금했고, 지난 2008년 단 한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청산했다고 한국금융당국에 신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자금으로 저택을 매입했다 부도 직후 매도해 현금을 챙겼다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이 사안은 유 회장이 직접 관련된 것으로, 이같은 횡령 및 해외재산도피의혹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유회장의 사법처리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유병언회장의 동생이며 인기가수 박진영씨의 장인인 유병호씨 부부도 유병언 회장의 자택 인근과 뉴욕 맨해튼, 뉴저지 포트리 등에 3채 이상의 호화주택을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0년 1월 세모아메리카 명의의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의 저택 매입계약서.
뉴욕주 롱아일랜드 지역을 관할하는 낫소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세모아메리카(SEMO AMERICA INC)는 약 25년전인 지난 1990년 1월 10일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에 대지 2400평, 건평 95평 규모의 저택을 매입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집의 주소는 79 하버로드, 샌즈포인트이며, 계약서에 이 집의 매입가격은 정확히 명시돼 있지 않았으나 양도세 등으로 역추산한 결과 최소 120만달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최고경영자로 등기된 세모아메리카가 1990년 매입한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의 저택 위성사진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최고경영자로 등기된 세모아메리카가 1990년 매입한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의 저택 상세내역/사진=낫소카운티 세무국 웹사이트.
롱아일랜드의 해변지역인 포트 워싱턴은 뉴욕 맨해튼과 약 40분거리로, 포트라는 지명답게 해안경치가 뛰어난 부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이 집은 골프장인 ‘빌리지클럽 오브 샌즈포인트’와 맞닿아 있고, 해변과도 멀리 떨어지지 않으며, 약 2에이커에 달하는 거대한 잔디밭 한편에 호수모양의 대형 옥외수영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7년 10월 세모아메리카 명의의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의 저택 매도계약서.
세모아메리카는 이 집을 지난 1997년 10월 9일(10월22일 등기) 95만달러에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 시기는 세모가 부도난 1997년 8월 12일로부터 두달이 채 안된 시점입니다. 따라서 세모가 부도 직후 채권자 몰래 돈을 챙기기 위해 급하게 매도하는 바람에 매입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팔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집은 그뒤 2003년 140만달러에 팔렸으며, 올해 낫소카운티가 세금부과를 위해 평가한 가격은 168만달러, 부동산업체들의 평가가격은 194만달러에서 240만달러 사이입니다.
/세모아메리카 뉴욕주 법인등기내역/자료=뉴욕주 국무부.
/세모유에스에이 뉴욕주 법인등기내역/자료=뉴욕주 국무부.
이 집의 소유주였던 세모아메리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뉴욕주 국무부 웹사이트를 통해 법인내역을 조회한 결과 1989년 6월 14일 설립됐다 1997년 1월 9일 폐쇄됐습니다. 이 법인의 CEO, 즉 최고 경영자는 유병언(YOO BYUNG EUN)으로 등록돼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집은 사실상 유병언 회장의 소유로 추정되며 복수의 정통한 소식통은 유회장의 자녀들이 포트워싱턴 집에 거주하며 학교를 다녔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비슷한 이름인 세모 유에스에이(SEMO USA INC)도 지난 1985년 10월 8일 뉴욕주 국무부에 설립신고를 했으나 1990년 12월 6일 일찌감치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병언 회장 관련기업 해외직접투자현황중 일부.
1997년 부도난 주식회사 세모가 세모 유에스에이(SEMO USA INC)에 해외직접투자명목으로 190만달러를 송금했고, 지난 2008년 6월 30일 단 한푼도 회수하지 못하고 청산한 것으로 한국금융당국에 신고돼 유회장 일가가 이 돈을 횡령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었습니다. 바로 이 포트워싱턴 저택의 매매과정을 통해 그 같은 의혹이 사실상 입증되는 것입니다.
즉 유회장은 세모유에스에이 명의로 190만달러를 투자한뒤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세모아메리카로 투자금을 빼돌려 세모아메리카 명의로 저택을 매입했다가 세모가 부도나자 재빨리 팔아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회사재산을 횡령, 해외에 은닉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세모유에스에이는 1990년 이미 폐업했지만 한국금융당국에는 2008년에야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폐쇄했다고 신고해 약 19년동안 폐업사실도 숨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동생이자 가수 박진영씨의 장인 유병호씨 부부가 2002년 매입한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워싱턴의 주택 전면사진.
유병언 회장의 동생이자 인기가수 박진영씨의 장인인 유병호씨와 그 부인 백옥심(미국명 유옥심)씨도 유병언 회장의 저택과 같은 동네인 포트워싱턴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 포트리에 고급콘도를 소유했음이 밝혀졌습니다. 낫소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유병호씨 부부는 지난 2002년 9월 30일 포트워싱턴의 164 카우넥로드 주택을 65만달러에 매입, 현재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병호씨 부부의 맨해튼 콘도 매입계약서 표지 및 콘도 사진.
유씨 부부는 또 지난 2009년 4월 23일 뉴욕 맨해튼 트라이베카 워렌스트릿의 콘도를 273만달러에 매입했다가 3년뒤인 2012년 1월 12일 257만달러에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뉴저지 포트리의 유명콘도 펜트하우스를 지난 2006년 5월 13일 124만달러에 사들였다가 2011년 5월 19일 84만달러에 팔았습니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 콘도는 허드슨강 건너편으로 맨해튼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리버릿지콘도로 유씨 부부는 이 콘도의 펜트하우스 3호를 소유했었습니다. 즉 유씨는 2009년부터 약 2년간 적어도 3채 이상의 주택을 동시에 소유할 정도의 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병호씨의 사위 박진영씨의 맨해튼 콘도 매도 위임장 표지.
한편 유씨의 사위인 가수 박진영씨는 지난 2007년 7월 27일 148만달러에 매입했던 맨해튼 42스트릿의 콘도를 한 외국인에게 137만5천달러에 매도하기로 하고, 지난해 7월 2일 문모씨에게 매도를 위임한 상태로 확인됐습니다.
05.15 삼성 새 전용기 현재보다 3인 적은 15인승으로 개조
지난 2일 국내 도입
/HL8270이라는 정식편명이 도색된 삼성 보잉 737 새 전용기.
삼성이 새로 구입한 보잉 737 전용기가 뉴질랜드에서 15인승으로 개조돼 지난 2일자로 국내에 정식 등록을 마치고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삼성 새 전용기는 삼성테크윈 소유로 지난 2일 국토해양부에 정식 등록됐으며, 기종은 B737-700, 제작번호는 40586, 제작일자는 2012년 8월 2일로 15명이 탑승할 수 있고 화물톤수는 3324톤, 정치장은 김포국제공항입니다.
/국토해양부 항공기 등록현황. 한국시간 13일 오후에 업데이트됐다.
삼성 새 전용기의 편명은 프리미엄조선이 단독보도한 대로 HL8270임이 확인됐으며, 기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용하는 같은 기종의 보잉기 보다 3명이 적은 15명이 탑승할 수 있는 반면, 화물은 두배 정도 많이 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탑승자들은 기존 보잉기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아늑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됐고 보조연료탱크를 7개나 더 장착함으로써 한국에서 미국 동부까지 논스톱으로 비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항공청 확인결과 N705JM 비행기는 한국수출을 이유로 2일 편명이 취소됐다고 기록돼 있다.
미 연방항공청 확인결과 이 비행기의 예전편명인 N705JM은 지난 2일 한국 수출을 이유로 취소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같은 2일자로 한국정부에 등록됐고 한국시간 13일 오후 항공정보포탈시스템에 등록사항이 올라왔습니다.
/삼성 새 전용기 뉴질랜드 현지 시험비행 현황.
이 전용기는 한국에 들여오기에 앞서 지난 3월 7일 뉴저지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서 기존 N705JM 이라는 편명에서 HL8270이라는 한국편명이 도색됐음이 목격된데 이어 3월말부터 4차례 이상 시험비행에 나섰습니다. 4차례의 시험비행 모두 크라이스트처치공항을 이륙, 같은 장소로 돌아오는 비행이었으며, 짧게는 1시간 여에서, 길게는 9시간 이상 시험비행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3월 25일에는 오전 10시 15분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을 이륙, 2시간 5분간 비행한뒤 돌아왔으며 다음날인 3월 26일에는 오전 10시 36분 이륙, 1시간 20분간 비행한뒤 11시 56분 착륙했습니다. 또 3월 28일에는 장거리비행에 나서 오전 8시 34분 같은 공항을 출발, 오후 6시 23분 착륙함으로써 무려 9시간 49분간 비행했습니다. 사흘뒤인 4월 1일에도 낮 12시 30분 이륙, 5시간 2분간 비행한뒤 오후 5시 32분 크라이스트처치공항에 안착했습니다.
삼성 새 전용기는 지난 2012년 9월 17일 인테리어와 도색을 위해 뉴질랜드에 도착한 뒤 1년만인 지난해 9월 17일 삼성 기존 전용기와 똑같은 S자 모양의 도색을 완료한 모습이 포착됐었습니다. 삼성 새 전용기가 3월 25일 시험비행을 한 것은 뉴질랜드 도착 이래 1년 6개월만에 처음으로 연거푸 시험비행을 함으로써 곧 한국에 인도될 것이라는 예측을 낳아왔었습니다.
삼성이 새 전용기를 도입함에 따라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현재 이용하는 HL7759 보잉 737 전용기와 HL8238 봄바르디어사 글로벌 익스프레스(BD-700-1A1D) 등 자가용 비행기 3대와 삼성병원의 앰블런스 헬리콥터 1대, 삼성테크윈의 헬리콥터 4대 등 회전익항공기(헬리콥터) 5대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삼성은 통상 6년마다 한번씩 전용기를 교체해 왔기 때문에 새 전용기는 이건희 회장이 이용할 것으로 추정되며, 기존 전용기는 예전처럼 해외에 판매할 지 주목됩니다. 그러나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전용기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기존 전용기도 계속 보유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한편 올해 국내에 새로 들여온 항공기는 20대이며, 11대 항공기의 등록이 말소돼 국내 전체 항공기는 632대로 집계됐습니다.
/국토해양부 올해 도입항공기 등록현황.
05.16 49년전 오늘 박정희 대통령,
존슨, 대통령 전용기는 물론 의전-공보-경호요원까지 보내 박대통령 안내
[미 국무부 비밀전문 및 존슨 대통령 일정표 단독 입수(상)]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조선일보DB
49년전인 오늘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길에 오를 때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는 물론 의전, 경호, 공보담당자까지 한국으로 보냈던 것으로 미 국무부 비밀전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또 존슨 대통령 일정표를 확인한 결과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카퍼레이드를 하며 숙소인 영빈관까지 직접 바래다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년전인 1961년 11월 박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민항기와 미 공군 수송기 등을 몇번이나 갈아타고 약 4일만에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한층 더 격상된 대우를 받으며, 한미 관계가 더욱 굳건해졌던 것입니다.
/1965년 5월 12일 미 국무부에서 주한미국대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박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출발한 날은 5·16 혁명 4주년인 1965년 5월 16일로, 바로 49년전 오늘이었습니다. 1965년 5월 12일 사무엘 킹 미 국무부 의전부국장은 브라운 당시 주한미국대사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존슨 대통령 전용기의 한국도착 일정과, 전용기편으로 한국에 가서 박 대통령을 미국까지 수행할 요원 명단을 통보했습니다. 3페이지 짜리의 이 비밀전문에 따르면 존슨 대통령 전용기는 워싱턴 DC 현지시간 5월 13일 오후 3시 앤드류스 공군기지를 출발, 5월 14일 밤 11시 30분 서울에 도착하며 5월 16일 오후 2시 55분 서울을 출발,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같은 날인 5월 16일 오후 5시에 도착할 에정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과 미 동부지역의 시차가 13시간임을 감안하면 워싱턴의 5월 16일 오후 5시는 한국의 5월 17일 오전 6시여서 비행시간은 약 15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전문에는 이 전용기에 탑승, 직접 한국까지 가서 박 대통령을 미국까지 수행할 미국요원들의 명단을 통보하며 숙소 등을 차질없이 준비해달라고 브라운 대사에게 요청했습니다. 이 수행원 명단에는 줄리안 니콜라스 국무부 의전관과 이반 싱클레어 공보관, 프랜시스 툴리와 루이스 디너 등 경호원 2명, 그리고 국빈방문을 취재한 기자와 사진기자, 촬영기자 등 미 공보원 직원 4명과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 기자 2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국빈을 모시기 위해 자신의 전용기는 물론 의전, 경호, 보도까지 빈틈없는 준비를 한 것입니다.
특히 존슨 대통령 전용기 운항을 책임지는 대통령 공군보좌관 쿠크 중령도 동행했으며, 조종사 2명, 항법사 2명, 무전사 2명, 엔지니어 3명, 스튜어드 4명, 비행기 경비요원 3명 등 모두 19명의 전용기 운용요원 명단도 통보됐습니다. 사무엘 킹 의전부국장은 이같은 비행일정과 수행원 명단을 통보했으며, 5월 14일 한국에 도착한뒤 5월 15일 토요일 저녁에는 대사관저에서 간단히 한잔하고 미스터 윤과 함께 저녁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전문을 확인한 결과 미스터 윤은 우리 외교부의 의전장이었습니다.
/1965년 5월 13일 미 국무부에서 주한미국대사에게 보낸 비밀전문.
또 5월 13일에는더욱 상세한 비행일정이 주한미국대사에게 통보됐습니다. 박 대통령을 태우고 갈 전용기는 5월 13일 오후 1시 30분 앤드류스 공항을 출발, 앵커리지의 앨멘도르프 공군기지에 같은 날 오후 2시에 도착하며, 같은 날 오후 4시 10분에 이륙, 5월 14일 오후 6시 30분 일본 요코타 공항에 도착한 뒤 같은 날 오후 8시 이륙해 오후 10시에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변경된 일정을 통보했습니다(모든 시간은 해당지역 현지시간). 즉 워싱턴을 출발해 한국까지 오기 위해 공군기지 2곳을 경유, 모두 17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1965년 5월 11일 주한미국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또 박 대통령을 태우고 갈 전용기의 서울출발시간을 두고 혼선이 생겨 브라운 대사가 이를 다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브라운 대사는 국무부가 통보한 서울출발시간은 오후 2시 55분이지만 주미한국대사관이 제시한 스케줄은 이날 오후 1시 환송식을 갖고 오후 1시 55분 출발하는 것으로 돼 있으니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브라운 대사가 이같은 전문을 보내자 13일 국무부가 상세한 일정을 다시 한번 통보한 것입니다. 당시 보도 등을 확인한 결과 박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이륙한 시간은 오후 2시 55분으로 미 국무부가 브라운 대사에게 통보한 시각 그대로였습니다.(하편에 계속)
05.20 정부에 엉뚱한 항공기 팔려다 소송까지 벌이고 있는 회사가 국방부에 버젓이 무기납품
디엠항공교역, 조달청과 2005년 비행점검기 계약뒤 엉터리 항공기 납품시도
구매계약서와 달라서 납품거부하자 2008년 10월 일방적으로 항공기 몰고와
계약해제하자 한국정부상대 소송…1심,2심,3심 재판서 한국 모두 승소
디엠교역 미국파트너사 NXT, ‘한국정부가 사기쳤다’ 미국서 적반하장 소송
연방법원, 한국정부 승소판결 내리자 지난달 연방항소법원에 또 항소
2008년 도입하려던 비행점검기 2호, 결국 5년 늦게 타업체서 세로 도입
디엠항공교역은 소송중이던 2011년 방사청 전술항법장비 납품업체 선정
디엠 회장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돈인 이모씨의 손윗 동서
/디엠항공교역이 조달청에 납품하려던 항로점검기. 조종석 아래부분에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라고 새겨져 있으며, 2008년 10월 9일 디엠은 구매규격서와 맞지 않는 이 항공기를 일방적으로 한국으로 몰고와 납품을 시도했다.
엉뚱한 항공기를 조달청에 납품하려다 좌절되자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한 항공관련 무역회사가 방위사업청에 전술항법장비를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이 회사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모두 패소했음에도 이 회사의 미국파트너는 한국정부가 사기를 쳤다며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하자 최근 항소를 제기하는 등 집요하게 한국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회사의 회장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돈인 이희상씨의 손윗 동서인 김득만 전 공군대학 총장입니다.
문제가 된 항공기는 공항상태 등을 점검하는 비행점검기(항로점검기)로 이 회사가 계약과 다른 항공기를 납품하려는 바람에 우리 정부의 비행점검기 2호기 도입이 5년이나 늦어지는 등 큰 차질을 빚었습니다. 디엠항공교역은 지난 2005년 12월 29일 조달청과 1120만달러에 비행점검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조달청이 정한 사양의 항공기를 2008년 7월 5일까지 인도하기로 했습니다. 조달청 구매규격서에는 해피박스(HAPPY BOX) 방식의 항공기를 납품하라고 명시돼 있었고, 대금은 계약체결 30일 이내에 3%, 2006년 5월 31일 17%, 2007년 5월 31일 38%, 최종인수완료 뒤 42%를 지급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디엠항공교역은 미국 오클라호마 NTX사와 계약을 맺고 조달청 구매규격서와 전혀 다른 RNAV 방식의 기기가 장착된 항공기를 납품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말하자면 납품조건과 다른 엉뚱한 항공기를 팔아먹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RNAV 방식이 조달청이 원하는 해피박스 방식과는 다르지만, 비행방식의 차이에 불과해 AFIS(AIRBORNE FLIGHT INSPECTION SYSTEM) 기능에는 차이가 없고 국제민간항공기구 및 미국 연방항공청으로부터 항로시설검사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은 뒤 이를 근거로 한국도 국제민간항공기구 회원사인 만큼 엉뚱한 항공기를 납품받으라고 계속 요구했습니다.
그나마 미국 연방항공청 등의 항로시설검사에도 뒤늦게 합격하자 디엠항공교역은 2008년 7월 5일인 인도기일을 지키지 못했고 지체상금을 물겠다며 2008년 8월 30일로 인도기일연장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뒤 디엠항공교역은 조달청 구매계약서와 전혀 다른 이 엉뚱한 항공기를 2008년 10월 9일 무조건 한국으로 몰고 들어와 조달청에 납품하려다 한국정부가 비행허가를 내주지 않자 일본까지 왔다가 돌아가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이들은 비행점검기를 운행할 한국의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 라고 버젓이 도색해 이 항공기를 한국으로 몰고 왔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조달청은 구매계약서대로 납품하라고 재차 요구했으나 이행이 이뤄지지 않자 2009년 2월 25일 더이상 기한을 연장할 수 없다는 통지를 하고 같은해 3월31일자로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디엠항공교역과 NXT는 조달청에 계약과 다른 항공기를 납품하려다 계약취소되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모두 기각됐다.
조달청의 지극히 당연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디엠항공교역주식회사 대표이사 김태진과 미국 NXT사는 계약해제통보전인 2009년 3월 23일 서울지방법원에 김경한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계약서 잔금 470만달러중 10억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손님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는데 주인이 우동을 가져와서 “짜장이나 우동이나 똑같은 중국음식인데 그냥 먹으라”고 강요하고 안먹었는데도 돈을 내라고 떼는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디엠항공교역과 NXT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1심 재판부 기각사유.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작한 항공기는 구매규격서에서 요구한 ILS OFFSET 비행기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피고의 계약해지는 적법하다”며 2010년 12월 17일 원고인 디엠항공교역과 NXT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고패소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디엠항공교역과 NXT는 2011년 2월 11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 같은해 9월 29일 항소는 기각됐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연달아 패하자 그제서야 디엠항공교역은 슬그머니 원고에서 빠진 반면, NXT는 2011년 11월 8일 대법원에 상고했고 2012년 1월 27일 역시 상고는 기각됐습니다.
/디엠항공교역 홈페이지 회사연혁 소개부분.
엉뚱한 항공기를 한국까지 몰고와 납품을 시도하고 계약이 해제되자 한국정부를 상대로 잔금 일부를 달라고 떼를 쓰며 소송까지 제기한 디엠항공교역은 2004년 국방부 조달본부지정 최우수 외자조달업체였으며 한창 소송이 진행중이던 2011년에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전술항법장비 공급계약을 따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디엠항공교역의 파트너인 NXT는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기 10일전인 2009년 3월 13일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카운티 지방법원에 한국정부와 조달청, 관련은행 등을 상대로 스탠바이신용장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소송을 통해 적반하장격으로 한국정부가 자신들의 계약이행을 막는 등 계약을 위반하고 한국정부의 사기로 650만달러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정부는 이에 대응을 하지 않아 2010년 5월 27일 NXT 주장대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NXT는 또 같은 날 오클라호마주 연방법원에 한국정부와 조달청, 관련은행 등을 상대로 본안소송을 제기했습니다.
/NXT가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카운티 법원에 제기한 소송장(왼쪽)과 오클라호마 연방법원의 한국정부 승소 판결문.
그러나 3년만인 지난해 4월 24일 미 연방법원조차 한국정부에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연방법원은 한국정부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판결하고 오클라호마 지방법원의 스탠바이신용장 집행정지 가처분 명령 등도 잘못된 것이라며 모두 취소시켰습니다. 또 변호사비를 NXT측에 청구하라는 법원명령에 따라 한국정부는 11월 18일 23만3천6백달러의 변호사비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연방법원은 지난 2월 18일 NXT에 한국이 청구한 변호사비 중 절반 정도인 12만7천달러만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변호사비로 투입된 혈세를 모두 돌려받지 못할 형편이 되자 한국정부는 연방고등법원인 제10항소법원에 지난달 17일 또 다시 항소를 했고 또 다시 지루한 재판을 계속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처럼 디엠항공교역이 엉터리 항공기를 납품하려 하고 한국에서의 소송은 물론 파트너가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한국정부는 이에 대응하느라 5년 이상 엄청난 행정력을 투입했습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2008년 7월 5일 납품받아 업무에 투입돼야 할 비행점검기 2호기의 도입이 무려 5년간 지연됐다는 것입니다. 결국 2호기는 지난 2013년 3월에야 새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정부는 비행점검기가 1996년 8월 도입한 첼린저601 제트 항공기 1대뿐이어서 고장이 날 경우 비행점검이 마비될 것을 우려해 1대를 추가로 확보하려 했지만 납품업자의 농간으로 큰 차질이 빚어졌고 연거푸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그 고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엠항공교역 홈페이지 경영진 소개 부분.
한편 디엠항공교역은 공사 5기생으로 공군대학 총장을 지낸 김득만 전 공군준장이 1996년 설립한 업체로 김태진 현대표가 2001년 이사로 취임한 뒤에도 김 준장은 계속 회장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한국경제신문 2005년 6월 12일자 ‘군장성들, 스타 CEO로 거듭나다’)
특히 김 준장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돈인 이희상 동아원 회장의 손윗 동서입니다. 이희상 회장은 미국으로 전두환 비자금을 도피시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검찰의 전두환 비자금 추징과 관련해 지난해 2백억원이상을 납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디엠항공교역이 엉터리 항공기 납품을 시도하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해 송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전술항법장비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전관예우’가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05.21 린든 존슨 대통령, 박 대통령에게 건넨 자신의 사진에 이렇게 적었다
[미 국무부 비밀전문 및 존슨대통령 일정표 단독 입수(하)]
존슨, 카퍼레이드 함께 하며 영빈관 블레어하우스까지 직접 안내
백악관 직원, 워싱턴DC시민 등 태극기-성조기 흔들며 환영
워싱턴DC 커미셔너는 블레어하우스에서 행운의 열쇠 증정
존슨, 정상회담-만찬에 만족, 박 대통령 돌아간뒤 춤 즐기기도
☜ 상편에서 계속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1965년 5월 17일 일정표.
존슨 대통령의 일정표를 통해서도 박 대통령이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견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큰 환대를 받은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정표에 따르면 존슨 대통령은 5월 17일 백악관에서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국빈만찬을 통해 우의를 다졌으며, 특히 박대통령과 카퍼레이드를 함께 하며 숙소인 블레어하우스까지 직접 안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존슨 대통령 내외는 백악관 및 행정부 참모들과 함께 1965년 5월 17일 오전 11시 40분 백악관 사우스 그라운드로 나가서 박 대통령 일행을 환영했습니다. 존슨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환영사 등을 교환했고, 미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일렬로 도열해 태극기와 성조기로 열렬히 환영하는 가운데 사우스그라운드에서 디플로매틱리셉션룸으로 함께 걸어서 이동했으며 이곳에서 잠시 환담을 나눈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로부터 약 40분뒤인 낮 12시 18분 존슨 대통령과 박대통령, 그리고 양국 영부인이 2대의 링컨컨티넨탈 무개차에 나눠타고 백악관을 출발, 숙소인 영빈관 블레어하우스까지 약 20분간 카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연도의 위싱턴 DC시민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존슨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12시 40분 블레어하우스에 도착했으며, 입구에서 대기중이던 워싱턴DC의 시장격인 커미셔너 월터 토브리너가 박 대통령에게 행운의 열쇠를 증정하고 블레어하우스 내부로 안내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들어갈 때까지 떠나지 않고 이를 지켜본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뒤 존슨 대통령은 긴급한 법안에 서명하기도 하고 에드가 후버 FBI국장을 세차례 만나고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의 보고를 받았고 잠시 수영장에 들르고 신문을 읽기도 했다고 일정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1965년 5월 17일 일정표.
존슨 대통령과 박 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오후 5시 15분부터 약 35분간 대통령집무실에서 열렸으며, 이때는 공식수행원 등을 물리치고 양측에서 통역관 1명만 배석했습니다. 존슨 대통령 일정표에는 전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조상호 당시 대통령 의전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했다고 돼 있습니다.
정상회담이 끝난뒤 오후 5시 51분 양국정상은 백악관 내 사우스론으로 옮겨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설명했으며, 그뒤 박 대통령은 다시 블레어하우스로 돌아갔다 오후 8시쯤 국빈만찬을 위해 다시 백악관을 방문합니다. 오후 8시 5분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그 일행을 맞이했고, 정식 만찬에 앞서 2층 라운지에서 칵테일 타임을 가지면서 양국정상간에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당시 국내신문 등에는 백악관 국빈만찬이 끝난 다음 선물을 교환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존슨 대통령 일정표에는 백악관 국빈만찬전 칵테일 타임에 박 대통령 내외에게 선물을 증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증정한 선물은 대통령 문장이 새겨진 티파니 은제 탁자, 나무상자로 포장된 낚시대,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자신의 사진, 역시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자신의 저서 ‘미국을 위한 나의 소망’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사진에 ‘용감한 동맹, 믿을 수 있는 친구, 박정희 대통령에게’라고 서명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는 양국정상을 비롯해 모두 137명이 참석했고, 칵테일 타임을 포함해 3시간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이날 만찬에는 새끼 랍스터, 비프 필렛 스테이크 등이 제공됐고, 만찬뒤에는 밤 10시 20분부터 커피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줄리아드 음대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국빈만찬은 밤 11시에 끝났고 박 대통령 일행은 11시 10분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또 박 대통령을 배웅한 존슨 대통령은 혈맹과의 정상회담에 만족했던지 밤 11시 15분부터 백악관 로비에서 영부인과 20여분간 춤을 즐긴 뒤 11시 40분 2층 숙소로 올라간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처럼 49년전 미국은 대통령 전용기 제공, 카퍼레이드 등 혈맹인 한국의 대통령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며 양국의 우의를 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05.26 유병언 계열사 아해, UAE 원전에 납품
신울진원전 1-2호기 건설에도 참여업체로 등록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계열사로 알려진 주식회사 아해가 한국이 수주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건설의 남품업체로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신울진 원전 1·2호기 사업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식회사 아해의 홈페이지 연혁에는 이 회사가 지난 2012년 2월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UAE 원전의 폴리머 고화(固化)설비를 수주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폴리머 고화설비는 원전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해 냉각수 등 액체에서 수분을 증발시킨 뒤 남은 알갱이에 응집제인 폴리머를 섞어 고체화시키는 설비입니다.
이에 따라 아해는 최근 착공식을 한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의 기초공사가 끝나고 원전설비 공사가 시작되면 관련 장비를 납품하게 됩니다. 아해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방사성 폐기물 고화용 폴리머 조성물’ 특허(제10-0979451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폴리머 조성물은 방사성 원전 폐기물을 폴리머와 함께 섞어 만든 폐기물 드럼입니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에 앞서 2012년 11월 16일 개발선정품 지정 예정공고를 통해 아해를 ‘방사성 농축폐액 처리설비’ 개발회사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 전자상거래 시스템에는 이 날짜 공고를 통해 전북 완주군 소재 주식회사 아해가 중소기업청 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에 의거, ‘방사성 농축폐액 처리설비’ 개발회사로 선정됐으며, 이 회사 사장은 지난 8일 구속된 이재영씨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신제품 개발사업자로 선정된 아해의 주소지는 유병언 일가와 관련 있는 아해의 주소지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아해 측과는 4건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농축폐액 처리설비 등 납품은 중소기업협력재단의 업체 선정에 따라 수의계약 방식으로, 나머지 3건은 경쟁입찰계약 방식으로 체결했으며 모두 정상적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장기술인협회 웹사이트에도 아해는 한수원 등록 원전도장재 생산업체로 명시돼 있습니다. 도장기술인협회 웹사이트에는 지난 2009년 2월 24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연수원의 국제연수관 대회의실에서 신울진원전건설과 관련, 유관업체 설명회를 연다며 참여업체로 KCC(금강고려화학), SKS 페인트, 카보라인코리아 등과 함께 아해가 한수원 등록업체로 초대됐다고 돼 있습니다.
이날 설명회는 ‘신울진 1·2호기 원전방호도장재 시스템개선 인증시험사업’을 위한 설명회였습니다. 페인트 생산회사인 주식회사 아해는 유병언 일가에게 허위 컨설팅 비용을 지급하고 유 전 회장이 찍은 사진을 과도한 가격에 사들인 혐의가 드러나 이 회사 이재영 사장이 지난 8일 인천지방법원에 의해 구속됐었습니다. 아해는 또 유 전 회장이 사진작가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한 해외법인에 직접 투자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한편 아해는 지난 14일 웹사이트에 게재한 아해 임직원 일동 명의의 ‘아해의 입장’이라는 글에서 “유병언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가 최대지분을 소유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고가의 사진을 구매한 것 등은 전임 대표이사 개인의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또 “정상적인 사업 전반에 대해서까지 문제가 있다는 식의 추측성 보도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오보에 대해서는 법적 소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06.04 황금알 낳던 KBS 미주 비디오 수입,
인터넷 쓰나미로 7년만에 6분의1로 격감
인터넷을 통한 한국TV 시청이 급증하면서 KBS의 미주지역 비디오판매 수입이 7년만에 6분의 1로 급감했으며, LA 등 서부지역보다 뉴욕 등 동부지역의 비디오판매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또 비디오판매수입통계로 미뤄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한국TV시청이 본격화된 것은 2008년초부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KBS 아메리카가 외국인에이전트등록법에 따라 6개월에 한번씩 미 법무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하반기 6개월간의 비디오판매수입은 368만8천달러에 달했으나 지난해 하반기는 62만2천달러에 그쳤습니다. 2006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비디오판매가 7년만에 6분의 1로 급감한 것입니다.
KBS의 비디오판매는 지난 2006년 하반기 368만8천달러, 2007년 상반기 349만4천달러, 2007년 하반기 342만8천달러로 큰 변동이 없었으나 2008년 상반기 322만9천달러로 하락한뒤 6개월마다 20만-30만달러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2006년 하반기로부터 4년뒤인 2010년 하반기에는 185만달러로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그로부터 2년뒤인 2012년 하반기에는 다시 반토막이 나며 92만5천달러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수입반감기가 처음에는 4년에서 2010년이후에는 2년으로 2배나 빨라진 것으로, 인터넷을 통한 한국TV시청이 그만큼 급속한 속도로 증가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KBS아메리카는 2006년 하반기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는 전체 비디오판매 수입만 보고했으나 2008년 하반기부터는 미국을 서부, 중부, 동부 등 3개지역으로 나눠서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를 보면 뉴욕 등 동부지역의 비디오판매가 더 많이 감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내 지역별로 LA등 서부지역이 가장 많은 비디오가 판매됐으며 시카고 등 중부, 뉴욕 등 동부순이었습니다. 뉴욕 등 동부지역은 지난 2008년 하반기 82만9천달러에서 지난해 하반기 16만달러에 그쳐 5년만에 매출이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LA 등 서부지역은 2008년 하반기 119만5천달러에서 지난해 하반기 25만9천달러로 2008년 하반기 대비 21.7%에 그쳤고, 시카고 등 중부지역은 같은 기간 91만4천달러에서 20만8천달러로 22.8%를 기록했습니다. 즉 동부-서부-중부순으로 비디오판매가 감소한 것으로 동부와 서부는 한국어 TV방송이 많은 반면, 중부지역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비디오판매 감소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지만 인터넷쓰나미에 예외일수는 없었습니다.
비디오판매액 감소속도도 동부-서부-중부순입니다. 2008년 하반기 대비 2010년 하반기 판매액은 동부는 58% 수준으로 급감한 반면, 서부는 65%, 중부는 68% 수준을 기록, 한인가구의 인터넷이용도 뉴욕 등 동부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하반기부터는 동부-서부-중부 모두 2008년 하반기 대비 약 32% 수준을 기록,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 인터넷을 통한 한국TV시청이용이 광범위하게 보편화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드라마 비디오대여는 미주지역 최대 이권사업의 하나로 꼽힐 만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으나 최근 인터넷발달로 뉴욕지역의 경우 한때 백개를 넘어섰던 비디오가게가 10개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업소매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MBC와 SBS는 외국인에이전트로 등록되지 않아 비디오판매내역을 알 수 없으나 판매추세는 KBS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06.12 "다리 꼬지 말라" "짝다리 짚지 말라"…
북한, 세계 최대 위조지폐제조국이면서도 미국의 위조지폐 사용 우려
위조지폐 여부 확인할 수 있는 플라스틱띠가 들어간 100달러 지폐만 받아
/미 국무부가 1995년 만든 북한 생활 지침서.
약 20년 전인 1995년 미국이 북한과의 제네바합의에 따라 폐연료봉처리 등에 나설 때 북한에서의 생활방식 등을 상세히 담은 이른바 ‘북한생활지침서’를 작성해 활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지침서는 20년 전 북한의 생활방식과 영변핵시설의 책임자 및 연구진이름등을 담고 있고 평양과 영변의 숙박시설, 식당, 물가 등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최근 공개된 이 지침서는 ‘비공식 영변생활가이드’라는 제목의 44페이지 분량의 문서입니다. 1994년부터 제네바협의에 참여하며 1995년 한번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출범 이후 한때 북한에 상주했던 미 국무부 외교관 케네스 퀴노네스가 처음 만들었고, 1996년 크리스 밀러 등이 보충한 것을 켄 에임스가 편집해 1996년 미 국무부가 발행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미 국무부는 이 문서의 첫 페이지에 미국의 폐연료처리반(폐연료봉처리반 SPENT FUEL TEAM)과 영변핵시설에 근무하는 북한 직원 간의 잠재적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작성했으며, 이 문서의 내용은 비밀이 해제될 때까지는 허가된 사람 외에는 유출돼서는 안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미국에서 출발, 북경을 거쳐 평양, 그리고 영변으로 갈 때까지 필요한 비자취득, 항공편 예약, 숙박, 출입국절차 등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고, 평양과 영변 현지에서의 숙식 등 생활요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부록으로 북한 핵시설관련 주요인물명단, 북한에서 사용할 중요한 한국어, 한국예절 등도 담고 있습니다.
하루 숙식 비용 100달러, 자동차 하루 빌리는데 80달러
가장 흥미로운 것은 북한의 물가로 하루 숙식 비용은 100달러정도이며 자동차를 하루 빌리는 데는 80달러, 발전기를 일주일간 사용할 때 드는 비용은 1000달러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 미국으로의 국제전화비용은 1분당 7달러 50센트, 북한에서 미국으로의 팩스비용은 첫번째 한장은 22달러이며, 두번째 장부터는 한 장당 15달러가 추가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또 중국 북경에서 평양까지의 고려항공 일반석 왕복요금은 295달러, 일등석 왕복요금은 383달러로 비행시간은 1시간 45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평양에 가기전 중국 북경에 체류할 때는 미국무부 관리들에게 특별할인요금이 적용되는 그레이트월세라톤호텔을 이용하며 하루 숙박요금은 165달러였습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북한이 세계 최대의 달러화 위조지폐제조국가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들이 위조지폐를 쓸지를 매우 염려했다는 점입니다. 적반하장인 셈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지만 일반적으로 신용카드나 여행자수표는 받지 않고 오로지 달러화 현찰만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위조지폐를 사용할 것을 우려해 1989년 이전 미국에서 제작된 100달러지폐는 은행이나 가이드 등이 모두 거부했다고 합니다. 100달러 구권화폐에는 이른바 위조지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플라스틱띠가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위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 위조지폐제조국답게 달러화의 약점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이드북은 1989년 이후에 제작된 100달러 신권을 준비하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북한은 1993년초 IAEA 핵사찰 요원을 위해 영변에 이른바 ‘구룡초대소’라는 숙박시설을 완공했으며, 미 폐연료처리반은 이 구룡초대소의 방 8개를 배정받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구룡초대소는 IAEA 사찰팀에게 방 4개를 제공했고, IAEA사찰팀이 방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북한 기술진에게 방 2개가 배정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국무부는 이 구룡초대소의 숙식은 하루 100달러정도로 방1개가 80달러, 하루 식대가 20달러 미만이며 2인1실을 사용하면 숙식료는 50달러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또 방마다 냉장고와 TV가 있으며 냉장고의 미니바에는 병물과 코카콜라, 일본제인 기린맥주와 삿포로맥주가 들어있다고 설명했습니다. TV도 있지만 채널은 2개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에서 미국으로 거는 국제전화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
평양에 기독교 교회 2개, 볼링장·크레이사격장 이용 가능
또 북한에서 미국으로의 국제전화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월·수·금요일은 오후 1시부터 오후 9시까지, 화·목·토요일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영변핵시설에 종사하는 북한인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또 오후 2시부터 오후 8시까지 2교대로 일했고, 미국 페연리처리반은 평일에 보통 7시 45분에 구룡초대소를 떠나 오후 8시 15분에 숙소로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주말에는 구룡초대소에서 약 20분거리인 영변의 실크공장에 견학을 가거나 영변의 유명한 산인 약산, 또 멀리는 묘향산으로 관광을 가는 것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평양에는 기독교 교회가 2개 있고 볼링장, 크레이사격장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사진 등이 실린 신문 위에 음료수 놓아선 안 된다”
부록으로 첨부된 한국 예절부분에는 모두 8개항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 인사해라. 일본식으로 허리까지 숙일 필요는 없다’,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며 손바닥을 펴서 방향등을 가리키는 것이 공손한 것이다’, ‘북한인들은 지도자나 상급자들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에 미우 민감하며 초상화나 사진, 동상 등에도 경의를 표해야 하며 사진 등이 게재된 신문 위에 음료수를 놓아서는 안 된다’, ‘상대가 공손하지 않더라도 조용하고 공손하게 말하라’, ‘무엇인가 전달할 때는 두손이나 오른 손으로 전달하라’, ‘앉을 때 다리를 꼬지 말고 서 있을 때는 짝다리를 짚지 마라’, ‘사진 찍을 때는 허가를 받고 영변핵시설내에서는 작업공간 외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 ‘검문소에서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라’ 등입니다.
또 유용한 한국어로는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안녕히 계세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오염됐습니다, 숫자를 기록해 주세요, 위험합니다, 좋습니다, 00선생 등의 단어가 영문해석과 함께 음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북한 주요인물에는 김용환 중국주재 북한대사관 관광대표, 이영선 고려항공공사 북경 주재원 등의 명함 2장과 함께 북한 원자력 담당자 리스트가 부록으로 첨부됐습니다. 이 명단에 따르면 평양의 핵담당 부서에는 현용만 외교부 국장, 한완종 안전담당관, 최인철·김종철·염영·윤광철 등이 있으며, 황용민, 안송진 등이 페연료처리반이 공항에 도착하면 안내를 담당했다고 돼 있습니다. 또 영변핵시설에는 리상건이 최고 책임자로 돼 있습니다.
이외에도 1996년 8월 27일 당시의 구룡초대소 식당의 메뉴표도 눈길을 끕니다. 샐러드와 수프, 밥, 요리, 야채, 기타 등 6부문으로 나눠진 메뉴표에는 오이나 양배추, 수박 샐러드, 치킨수프, 비프밋볼수프, 덤블링수프 등이 적혀 있습니다. 밥은 흰쌀밥과 볶음밥을 주문할 수 있는데, 볶음밥이 쌀밥보다 8배 비쌌습니다.
“콜레라 창궐하므로 수돗물은 절대로 먹지 말라”
또 닭다리요리·닭가슴살 요리 등 다양한 치킨요리, 송어튀김·광어튀김 등 생선요리, 햄버그스테이크·불고기·랍스터·덤블링 등 20여가지 요리가 가능했고, 튀긴 감자·김밥·고추장·아이스크림 등도 메뉴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콜레라가 창궐하므로 수돗물은 절대로 먹지 말라는 당부도 있습니다.
마지막 부록인 주요전화번호에는 국무부 내 주요담당자 연락처, 북한의 고려호텔과 스웨덴 대사관, 독일대표부 등의 전화번호, 중국의 미국대사관 등이 기록돼 있습니다. 일부 인사의 집전화번호도 있는데, 삭제된 채 공개됐습니다.
06.13 미국이 비자 내준 북한인 수,
지난해 북한인들에게 발급된 미국비자는 모두 56건으로 1992년 이래 최저수준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2013 회계연도 비이민비자발급통계에 따르면, 북한국적자에게 발급된 미국 입국비자는 모두 56건으로 이중 관광 및 상업용 비자인 B1,B2비자가 모두 33건, 경유비자인 C비자가 2건, 국제기구 근무자등에게 발급되는 G비자가 21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 국적자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 현황.
1992년 이후22년치의 비이민비자발급 통계연감을 확인한 결과 2013 회계연도 비자발급건수는 2010회계연도 53건에 이어 두번째로 적은 것입니다. 1996 회계연도에 1856건의 비자가 발급된 것과 비교하면 30분의 1에도 못미칩니다.
지난해 북한인 미국비자발급 56건, 1996년(1856건)의 30분의 1
미국이 1992년 이후 2013 회계연도까지 북한국적자에게 발급한 미국비자는 총 1만5235건입니다. 연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남북관계와 미북관계, 북한의 핵무기개발 등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국적자 발급비자는 1992년과 1993년엔 244건에 불과했으나 제네바핵합의를 도출한 1994년 거의 1000건에 육박하며 4배나 늘어납니다. 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가 발족한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1500건에서 180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케도합의 이후 미북화해무드를 반영하듯 북한 예술단의 미국공연을 비롯해 북한인들의 미국방문이 급증했고 미국도 북한인들의 방문을 반기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2002년 북한이 합의와 달리 플루토늄추출을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국이 제네바핵합의를 사실상 무효화시키는 등 강경입장을 취하면서 비자발급은 761건으로 급감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제네바핵합의 이전인 200건대로 비자발급이 줄었습니다.
또 북한이 1차핵실험을 강행한 2006년에는 비자발급이 148건으로 200건 아래로 급락했으며, 2차 핵실험이 실시된 2009년 100건에도 못미치는 76건으로 감소한 뒤 2010회계연도에는 가장 적은 53건을 기록했습니다.
북한인에게 발급된 미국 비자는 2011년 111건으로 늘기도 했으나 3차 핵실험이 실시된 지난 회계연도에는 다시 56건으로 줄었습니다. 이는 제네바핵합의 이전인 1992년의 5분의 1에 불과한 것입니다. 미국의 비자발급이 한반도 정세와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북한 국적자의 미국 시민권 및 영주권 취득 현황.
반면 지난 5년간 미국으로 들어와 영주권을 취득한 탈북자 등 북한 국적자는 252명, 시민권을 취득한 북한국적자는 1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연방국토안보부가 발표한 2013년 이민통계에 따르면 2012년 10월 1일부터 2013년 9월 30일까지 2013회계연도에 미국시민권을 취득한 탈북자 등 북한국적자는 모두 27명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5년간 미국에서 영주권 취득한 북한 국적자는 252명, 시민권 취득한 북한국적자 100명
북한국적자들의 회계연도별 미국 시민권 취득추이를 보면 2009 회계연도에 28명으로 가장 많았고, 2010·2011회계연도에는 각각 13명, 2012 회계연도에는 19명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시민권을 취득한 북한국적자들이 정착한 곳은 재미동포들이 많이 사는 뉴욕 뉴저지 지역이 8명으로 가장 많았고 워싱턴주의 시애틀인근이 5명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또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시카고, 미네아폴리스, 덴버, 텍사스주 오스틴 등에 정착했으나 이들 6개도시에는 몇명이 정착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 미국 영주권을 받은 탈북자 등 북한국적자는 2009년 회계연도 이후 5년간 총 252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영주권을 받은 사람 65명 중 취업이민을 통해 영주권을 받은 사람이 54명으로 전체의 80%를 넘었고, 가족초청 등으로 영주권을 받은 사람이 11명이었습니다. 이처럼 미국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들은 미국에 난민자격으로 입국하거나 한국을 거쳐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이기 때문에 한반도 긴장관계나 미북관계와는 무관하게 별무리없이 미국 체류자격을 얻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국무부와 국토안보부는 시민권 및 영주권을 받은 탈북자등은 2008년까지는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국국적자에 포함돼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2008년 이전의 연도별 취득자수는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한편 난민자격을 획득해 미국에 입국한 북한인에 대한 통계는 국토안보부와 국무부의 집계가 조금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6회계연도부터 2012회계연도까지 6년간 미국에 입국한 북한국적 난민을 국토안보부는 139명으로, 국무부 난민처리센터는 146명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 도착한 난민숫자가 가장 많았던 해는 2008년으로 30명을 넘었습니다
/북한 국적 난민의 미국 도착 현황.
06.14 KBS 아메리카 수입 대비 법률비용 비중, 본사의 최고 267배 달해
주인없는 회사...책임 안지기 위해 소송 방치 의혹
시청료가 전체 수입의 40% 차지..."국민 돈 낭비" 지적
KBS아메리카 수입은 본사보다 83배에서 125배 적지만 법률비용지출액은 1.8배 많아
KBS아메리카 한때 전체 수입의 8% 이상 법률비용으로 지출-본사는 0.03% 수준
KBS 아메리카 승소여부 떠나 법적 분쟁 유발가능한 위험한 경영 반증일 수도
주인없는 회사, 뒷사람에게 책임 떠넘기는 ‘폭탄돌리기식’ 경영이 문제 초래했을 수도
1페이지 요약 보고하다 2006년 하반기에는 회계장부 90페이지 전체 보고
사장등 임원이름, 크레딧카드번호, 핸드폰번호, 거래처내역 등 모조리 노출
KBS의 자회사인 KBS 아메리카의 수입 대비 법률비용 지출비중이 KBS본사의 최고 267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KBS 아메리카는 지난 2006년 미 법무부에 외국에이전트등록법에 따른 보고를 하면서 기존 보고때와는 달리 90페이지에 달하는 회계장부 전체를 제출, 신용카드 번호까지 공기업의 모든 경영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BS아메리카가 지난 2005년 6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매 6개월마다 미 법무부에 보고한 17차례의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지난 8년반동안 515만달러의 회계 및 법률서비스 비용을 지출했으며, 이는 전체 수입의 5%를 훌쩍 넘어서는 것입니다. 특히 이중 97%인 499만달러가 변호사비용으로 추정돼 법률비용이 엄청나게 많다는 지적을 낳고 있습니다.
KBS는 이 기간 중 모두 17차례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2005년 6월 1일부터 2006년 5월 31일까지 2차례의 보고서는 수입을 제외한 지출만 보고, 전문서비스비용(회계 및 법률)만 기재됨으로써 수입 대비 전문서비스비용의 비중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을 제외한 7년 6개월 동안을 살펴보면 전체수입이 7953만달러에 전문서비스비용이 433만달러로 수입의 5.4%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0년 상반기는 8%, 같은해 하반기는 8.7%, 2011년 상반기는 7.6%를 기록했으며 지난해 하반기에도 전체수입의 7.8%를 전문서비스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06년 하반기 보고서를 보면 전문서비스비용은 회계사와 변호사에게 지급되는 비용으로 그 상세내역이 기록돼 있으며 이때 지급된 회계사비용은 8500달러였음을 감안하면 회계비용은 6개월에 최대 만달러정도로 추산됩니다. 따라서 6개월 회계비용을 만달러로 추산하면 나머지는 법률비용으로 볼 수 있으며 전체수입대비 법률비용의 비중만 따져도 같은 기간 7.8%, 8.5%, 7.4%, 7.6%에 달합니다.
/특히 KBS본사와 비교하면 KBS아메리카의 법률비용지출비중은 최대 267배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KBS 경영공시자료를 살펴보면 가장 최근인 지난 2012년의 수입대비 등기소송비지출 비중은 0.017%이며 2011년은 0.024%, 2010년은 0.044%, 2009년은 0.017%, 2008년은 0.041%로 5년 평균 0.028%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KBS 아메리카의 법률비용[회계사비용제외] 추정치와 비교하면 2012년에는 수입대비 법률비용지출비중이 KBS본사보다 무려 267배나 높았고 2011년에는 263배, 2010년에는 185배, 2009년에는 239배, 2008년에는 107배를 기록했습니다. KBS아메리카의 법률비용지출이 믿어지지 않은 정도로 많은 것입니다.
5년간 법률비용 전체지출액만 비교해도 KBS본사는 19억5천만원인 반면 KBS 아메리카는 36억원으로 1.8배나 많았고 특히 2009년에는 2.8배나 많았습니다. KBS아메리카의 수입은 KBS본사보다 최소 83배에서 최대 125배나 적었지만 어이없게도 법률비용 지출액은 KBS 아메리카가 더 많았던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집계해 국회에 보고한 지난해 한국 상장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4.6%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KBS아메리카의 법률비용지출은 한국상장기업 영업이익률보다 높은 것으로 그야말로 살인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6년 6월 1일부터 2006년 11월 30일까지 KBS 아메리카 전문서비스비용지출 세부내역. 전문서비스는 회계비용과 법률비용 항목으로 나눠지며 8500달러 상당의 회계비용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변호사비용으로 지출됐음을 알 수 있다.
KBS 아메리카의 법률비용은 회사간의 계약등에 대한 법률적 검토와 소송등에 투입된 비용을 의미하며 KBS아메리카의 수입등을 감안하면 계약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계약서검토비용은 그야말로 미미하고 법률비용의 대부분은 소송등 법정분쟁에 따른 변호사비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KBS아메리카는 소송의 승소여부를 떠나 미국에서 영업하면서 법정 분쟁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한 경영을 해왔음을 의미합니다. 즉 수신료 수입이 매년 약 6천억원으로 전체 수입의 40%에 가까운 KBS가 미국에서 위험한 경영을 함으로써 국민의 혈세와 같은 수입을 까먹은 셈입니다.
KBS 아메리카 설립이후 지난 6일까지 미연방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연방지방법원 18건, 연방항소법원 1건등 모두 19건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맞소송사건을 1건으로 계산하면 전체소송은 16건입니다. 이 16건의 소송중 지난 2일 방송3사가 공동으로 제기한 저작권소송을 포함, 현재도 재판에 계류중인 소송은 4건이며 종결된 소송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9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 소송당 법률비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같은 시기 법률비용이 515만달러에 달하므로 1건당 평균소송비용이 32만2천여달러에 달하는 셈입니다.
/감사원의 KBS 및 자회사 운영실태 감사결과 보고서 47페이지.
감사원이 지난 3월 29일 발표한 KBS및 자회사 감사실태에 따르면 2008년4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5년간의 승소확정된 사건 27건에 투입된 소송비용은 1억9908만원으로 1건당 평균소송비용은 약 737만원이었습니다. 즉 KBS 아메리카의 1건당 소송비용이 KBS 본사의 1건당 평균소송비용보다 약 50배정도나 많은 것입니다.
특히 소송이 제기되면 소송을 계속할 때 드는 비용과 화해등을 통해 조기종결할때 지출될 비용을 따져서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하지만 KBS 아메리카는 주인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사장 재임시 회사이익을 따져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나의 재직기간만큼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소송을 계속 유지하며 다음 사장에게 넘기는 ‘폭탄돌리기씩 경영’을 하는 바람에 법률비용이 눈덩이처럼 늘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006년 6월 1일부터 2006년 11월 30일까지 KBS 아메리카의 보고서 중 회계장부 일부.
2005년 12월 1일부터 2006년 5월 30일까지(왼쪽), 2006년 12월 1일부터 2007년 5월 30일까지 KBS 아메리카의 보고서 중 지출내역 보고. 두 보고서 모두 지출내역을 항목별로 한 페이지에 요약 보고했다. KBS 아메리카가 법무부에 보고한 17차례의 보고서 중 16차례는 다른 회사들처럼 수입과 지출내역을 각각 한 페이지에 요약보고한 반면, 2006년 하반기만 90 페이지에 달하는 회계장부를 제출, 모든 경영정보를 노출시켰다.
한편 KBS아메리카는 지난 2006년 6월 1일부터 11월30일까지의 경영내역을 미 법무부에 보고하면서 다른 시기 보고서에서는 수입과 지출을 1페이지에 요약보고한 것과는 달리 90페이지에 달하는 회계장부 전체를 제출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 미법무부가 공개된 KBS 아메리카의 보고서는 모두 17건이었으나 2006년 하반기 1건을 제외한 16건은 수입과 지출을 1페이지에 걸쳐 요약보고했으며 외국에이전트등록법에 따라 보고하는 다른 기업들도 수입지출을 각각 1페이지에 간단하게 요약해서 보고하는 것으로 확인돼 KBS 아메리카가 왜 회계장부 전체를 제출했는지 의문이 일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KBS 아메리카는 컴퓨터 회계프로그램을 사용, 장부를 정리하고 있으며 출력시간이 표시돼 있어 수입지출을 요약 정리하지 않고 회계장부 원본을 그대로 프린터로 출력해 법무부에 보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 직전과 직후의 보고서 모두 수입, 지출은 1페이지에 요약 보고했기 때문에 2006년 하반기의 회계장부 전체 제출은 담당자의 실수와 책임자의 감독 부실등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때 KBS아메리카가 제출한 회계장부는 항목별, 날짜별 지출내역 등은 물론 지사장과 사원들의 이름과 일자별 크레딧카드사용액은 물론 크레딧카드번호, KBS 아메리카가 직원들 대신 지급한 핸드폰비용은 물론 핸드폰번호 등 ‘회계장부를 보면 그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 수 있다’는 속설답게 공기업의 모든 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됐습니다.
특히 외국에이전트등록법에 따라 보고된 모든 문서는 즉각 미 법무부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는 점에서 자칫 공기업의 경영비밀이 외국정부나 다른 기업들에게 악용됐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KBS는 국민들이 부담하는 수신료가 전체 수입의 약 40%를 차지하기에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한 KBS 아메리카 업무 전반에 대한 점검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06.16 천경자 화백의 뉴욕 맨해튼 임대아파트 이웃 주민
딸 이혜선씨 “내소망은 어머니 하루라도 더 사시는 것, 언론보도 개의치 않고 어머니만 잘 모시겠다”
이웃 주민 “3-4년전만해도 모녀가 맞은편 노천카페서 햇볕 즐겨”
“어머니 병수발하는 딸 이씨는 지칠 줄 모르는 여성, 눈물겹다”
천 화백 거주지는 타임스스퀘어와 허드슨 강변의 중간, 여유와 낭만 넘쳐
꽃과 영혼의 화가, 강렬한 색상으로 유명한 원로화가 천경자씨가 뉴욕 맨해튼의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딸과 함께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고 천 화백의 딸과 이웃 주민들이 밝혔습니다.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내 소망은 어머니가 하루라도 더 사시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천 화백이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천씨가 생존해 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볕이 좋은 날이면 딸의 부축을 받아 아파트 맞은편 노천카페에 앉아 햇볕을 즐기곤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딸 이혜선씨와 함께 거주하는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아파트./안치용
지난 12일 뉴욕에 거주하는 천 화백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언론보도 뒤 기자는 딸 이혜선씨의 나이를 근거로 뉴욕시 관내 이씨의 거처를 확인한 결과 이씨의 나이와 동일한 1943년 00월 00일 출생으로 기록된 이혜선씨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주지는 맨해튼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딸 이혜선씨와 함께 거주하는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아파트의 입주자 리스트. 숫자 옆의 벨을 누르면 인터폰이 연결된다./안치용
이에 따라 뉴욕시간 14일 오전 해당 주소지를 찾아가본 결과 아파트 입구에 비치된 입주자 리스트에서 기존 검색을 통해 찾아낸 아파트 호수에서 이씨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씨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언론보도에 예민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바로 이씨를 접촉하지 않고 아파트에서 나오는 주민들을 만나서 천 화백이 이곳에 사는지를 물었고 10여명을 만난 끝에 천 화백과 이씨를 잘 아는 주민으로부터 근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샐리 데이빗슨이라는 중년여성은 “이 아파트에 사는 나이든 한국여성을 아느냐”고 묻자, 곧바로 “혜선 앤 맘” 이라며 “천화백과 이씨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파트에서 19년을 살았고 한국도 몇차례 방문했다는 샐리씨는 “천 화백이 현재 매우 많이 아픈 상태(very very ill)로 거동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생활하고 있으며 딸이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고 천 화백의 생존을 전했습니다.
샐리씨는 “한국에서의 천 화백의 위상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고, “불과 3~4년 전만 해도 혜선씨가 천 화백을 모시고 아파트 바로 맞은편 노천 카페에서 햇볕을 즐기곤 했었다”며 “당시에도 천 화백이 몸이 불편했지만 카페에 앉아 있는 모녀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샐리씨는 이씨에 대해 “지칠줄 모르는(tireless) 여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샐리씨는 “혼자서 어머니 병수발을 하면서 때로는 시장으로, 때로는 빨래방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놀라우면서도 눈물겹다”며 “지금도 며칠에 한번씩 마주치면 천 화백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딸 이혜선씨와 함께 거주하는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아파트의 바로 맞은 편 상가. 여름이면 이곳이 노천카페로 변한다./안치용
샐리씨로부터 근황을 들은뒤 아파트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해당 호수를 누르자 한 여성이 나왔고 “혹시 이혜선 선생님 되십니까”라고 묻자 이씨가 “네, 전데요”라고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이씨는 잠시 만나자는 제의에 대해 단호히 거절하고, “어머니는 건강이 안좋지만 생존해 계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가 단 하루라도 더 오래 사시는 것”이라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재차 천 화백의 건강상태를 묻자 이씨는 “어머니 나이가 90세이며, 내 나이가 70”이라고 밝히고, “생사불명이라는 등 갖가지 언론보도가 많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며, 어머니 모시는 데만 열중할 것”이라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천 화백이 살고 있는 동네는 뉴욕 맨해튼 43가의 서쪽끝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뉴욕답지 않게 차량통행이 적고 주민들만 토요일의 한가로움을 즐기듯 느릿하게 오가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여유와 낭만이 가득했습니다. 또 아파트 맞은편에는 중남미풍으로 지어진 아담한 상가가 있고 여름이면 노천카페가 자리잡는 멋스러운 동네였습니다.
특히 이 아파트에서 동쪽으로 두블록만 가면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타임스퀘어가 있고 반대편인 서쪽으로 두블록만 가면 뉴저지가 한눈에 보이는 허드슨강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천 화백이 건강했을 때는 타임스퀘어에서 뉴요커의 일상도 즐기고 허드슨강가를 산책하며 여유를 만끽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천 화백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1910년에 지어진 6층짜리 아파트의 2층으로, 이 아파트는 방 1개짜리에서 방3개짜리까지 36채가 있으며 36채 모두 임대를 주는 아파트였습니다. 붉은색 벽돌에 1층 창문은 하얀 대리석으로 장식된 이 아파트의 임대가격은 방2개짜리의 월 임대료가 약 3000달러(300만원) 정도라는 것이 부동산업체의 추정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맨해튼 아파트치고는 굉장히 싼 편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아파트 20여채의 최근 임대내역을 검색했으나 천 화백이 살고 있는 호수의 내역은 없었습니다. 이로 미뤄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 아파트에 거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천 화백이 살고 있는 곳은 방2개짜리로 알려졌습니다.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이 아파트 관리자인 호세 카스트로씨와 통화했지만 호세씨는 입주자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며 알더라도 말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파트 소유업체는 이 길을 따라서 23개동의 부동산을 소유, 세입자가 수백명에 달했습니다.
한편 천씨의 둘째딸 김정희(미국명 수미타 김)씨는 메릴랜드주 락빌의 몽고메리칼리지 락빌캠퍼스에서 미대교수로, 둘째 사위 문범강씨는 조지타운대 미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또 천 화백의 친척으로 알려진 뉴저지 거주 화가 천세련씨는 현재 일본을 여행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06.18 전재용-박상아 "미국 돈은 우리 돈"...
전재용·박상아씨 부부가 미국 법무부에 대한 결사항전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제 전두환 비자금 사건이 미국 법정에서 뜨거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두환 비자금 해외도피 혐의를 받고 있는 전재용·박상아씨 등은 지난 13일 캘리포니아주 중부연방법원에 미 법무부가 제기한 미국주택 매도비용 몰수소송에 대해 정식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재용, 박상아 부부와 전씨의 장모 윤양자씨, 그리고 전씨의 미국주택 소유법인 ‘포트만레이트러스’ 등은 이날 미국주택은 전씨와 박씨의 재산이며 매도비용은 자신의 재산을 매도한 데서 비롯된 자금이므로 몰수가 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전씨 등은 2페이지 분량의 서류에서 미 법무부가 압류한 미국주택 매도비용 72만7천달러가 자신들의 재산인 이유를 매입시점에서 매도시점까지 날짜별로 짧게 설명했습니다.
/미 법무부의 미주택 매도비용 몰수소송 제기에 대한 전재용-박상아 부부의 이의 서류.
이들은 2005년 9월 21일 전재용씨의 아내이자 윤양자의 딸인 박상아씨가 윤양자씨를 신탁관리인(트러스티)으로 한 신탁회사(트러스트)를 설립했으며, 2005년 9월 27일 박상아씨가 224만달러에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소재 부동산을 매입했고, 매입비용은 전씨와 박씨의 재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 법무부의 미주택 매도비용 몰수소송 제기에 대한 전재용-박상아 부부의 이의 서류.
또 2005년 10월 4일 박씨는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겼으며, 박씨는 지난 2월 11일 트러스트를 대신해서 부동산을 212만달러에 매도했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미 법무부가 몰수를 청구한 유니티뱅크의 72만7천달러는 순전히 부동산을 매도한 돈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청구인 즉, 자신들의 소유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자신들의 재산으로 미국 부동산을 매입했고 법무부가 압수한 자금은 자신의 재산을 매도한 데서 나온 돈이므로 자신들의 소유라는 것으로 한마디로 법무부가 주장하는 비자금 유입설을 전면 부정한 것입니다.
미 로펌 코빙턴 앤드 벌링의 변호사 벤자민 라지.
/미 로펌 코빙턴 앤드 벌링의 변호사 사이몬 프랭클.
전씨 측은 특히 미국내 최대 로펌 중 하나로 꼽히는 코빙턴 앤드 벌링을 변호인으로 선임함으로써 어떻게든 몰수소송에서 이겨서 재산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전씨측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는 코빙턴 앤드 벌링 로펌의 파트너인 사이먼 프랭클과 벤자민 라지가 변호인이라고 기록돼 있었으며 프랭클은 샌프란시스코, 즉 캘리포니아 현지에서 소송을 전담하고 라지는 워싱턴DC에서 지원사격을 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코빙턴 앤드 벌링은 한·미 FTA 협정체결로 인해 2012년 국내에도 사무실을 연 로펌입니다
/전씨 측과 미 법무부측의 변호인에게 재판일정조정회의에 참석하라고 하는 캘리포니아주 중부연방법원의 명령장.
전씨 측이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캘리포니아주 중부연방법원은 지난 16일 월요일, 오는 8월 18일 재판일정 조정회의를 열 것이라며 양측 변호인이 반드시 참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은 연방민사소송절차법 16조B항에 따른 것으로 양측 변호인은 서로 협의해서 재판일정 조정회의가 열리기 21일전까지 디스커버리(증거조사) 일정을 제출하고 14일전까지 양측의 입장 등 사실관계를 요약한 공동진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이 절차는 민사소송의 통상적 절차로 원고가 소를 제기하고 피고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재판에 앞서 법원이 양측 변호인들과 재판일정을 논의하는 것으로 통상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지지만 이번에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반드시 양측 변호인에게 직접 출석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또 재판 전 조정절차로 양측 변호인이 중재자를 만나본 뒤 중재에 따를 것인지, 정식 재판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제 3의 중재방안을 따를 것인지 3가지 중 하나를 선택, 재판일정 조정회의 5일 전까지 법원에 제출토록 했지만 양측의 주장이 정면배치됨에 따라 정식재판을 선택할 것이 확실시됩니다.
/미 법무부가 전재용-박상아 부부를 상대로 낸 소장.
이에 앞서 미 법무부는 지난 4월 24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2억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았고 전씨 가족들이 그 자금을 돈세탁해서 미국으로 들여왔다”며 “미국 정부는 부패한 외국관리들이 미국을 불법부패자금의 도피처로 이용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같은 날 전씨집 매도자금에 대한 몰수소송을 제기했었습니다.
특히 이 케이스는 미 법무부가 부패한 한국 정치지도자 등의 비자금이 미국에 유입됐음을 인정하고 이를 되찾아서 한국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다짐한 사상 최초의 사례입니다. 따라서 전씨의 이의제기에 대해 미 법무부도 단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미국에서 한국 정부를 대신한 미 법무부와 전두환 일가간의 법정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 법무부는 지난 4월 24일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제기한 몰수소송에서 윤양자, 박상아, 전재용, 전두환 등 4명의 이해관계자에 대해 미 형법 제 1956조 외국공직자 뇌물수수자금의 미국내 돈세탁, 미 형법 1344조 은행사기, 미 형법 1014조 금융기관에 대한 허위정보제공, 미 형법 1957조 불법행위에서 파생된 자산의 금융거래 등의 4가지 혐의로 전재용의 뉴포트비치 주택 매입자금 72만7천달러 몰수를 주장했었습니다.
/미 법무부가 전재용-박상아 부부를 상대로 낸 소장.
특히 법무부가 적용한 혐의중 은행사기와 금융기관에 대한 허위정보제공 등 2가지 혐의는 전재용씨의 부인 박상아씨에게 적용된 것이어서 박상아씨가 형사사건 피고인으로 기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박씨는 뉴포트비치 주택을 구입할 때 미국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서 직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봉 48만달러를 받는 무역회사 사장이라고 속인 것은 물론 이 회사의 설립시기도 속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법무부는 소송장에서 전두환 전대통령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했다며 8년간의 뇌물수수내역을 도표까지 제시하며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또 FBI는 표면상 이 주택을 박상아씨가 매입하고 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지만 실제 수혜자는 전재용이라고 명시된 서류도 찾아냈다고 밝혔었습니다.
FBI가 전재용이 실제 주인임을 밝히는 서류를 입수하고 장모 윤씨도 한국 검찰에서 미국 주택은 잘 알지도 못한다고 진술함에 따라 그동안 자신과 관계없는 장모의 재산이므로 절대로 추징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전씨는 이의제기를 하면서 자신의 재산이라고 시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지난 4월말 미 법무부 발표 당시 주미한국대사관측이 미국 정부가 추적중인 미국내 전두환 비자금이 더 존재한다고 밝힌 점, 전씨가 몰수소송에 이의를 제기해 정식재판이 진행되는 점 등으로 미뤄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그동안 전씨 비자금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던 미국내 재산들이 새롭게 입증될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특히 디스커버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그 파장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조사)
디스커버리는 민사소송법에 규정된 절차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소송당사자인 원고와 피고가 직접 재판과 관련된 제반 증거를 조사, 입수하고 상대방을 직접 심문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민사소송에서 사실심리 등 모든 것을 법관이 주재하지만 미국은 소송당사자들이 직접 상대방을 조사하도록 하기 때문에 미국소송에서 가장 무서운 절차가 바로 이 디스커버리입니다.
민사소송의 성패는 곧 돈과 직결되므로 소송당사자들은 디스커버리를 통해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게 되고 상대방 주장의 허구를 파헤치게 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검찰 수사보다도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분석입니다.
디스커버리는 이른바 FRCP[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즉 민사소송절차를 담은 연방규정에 따른 것으로 구체적으로 4가지 방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비심문으로 불리는 데포지션(DEPOSITION)으로 원고가 피고를, 피고가 원고를 직접 심문하는 것입니다. 양측 합의 하에 적당한 장소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심문하기도 하고 타주, 또는 외국에 있을 경우에도 비디오 컨퍼런스, 즉 화상전화를 통해 심문할 수 있습니다. 양측 변호사 등이 주도하지만 법관이 없는 상태에서 직접 맞붙게 되므로 그야말로 불꽃이 튈 정도의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됩니다.
두번째는 서면심문, 인터로거토리로 서면을 통해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면 상대방은 이에 대해 빠짐없이 답변해야 합니다. 데포지션만한 긴장은 아니지만 수백개 문항의 질문서, 심지어 수천개 문항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디스커버리에도 원고와 피고, 양측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므로 이 데포지션과 인터로거토리 중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만약 인터로거토리를 먼저 하게 된다면 질문내용을 사전에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어 데포지션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서면질문없이 데포지션을 먼저 하면 구체적인 논점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세번째 방법은 문서제출요청(REQUEST FOR PRODUCTION)으로 상대방에게 문서제출을 명령하는 것은 물론, 재판논점과 관련된 모든 기관에 문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민사소송은 돈문제와 직결되므로 대부분의 경우 은행이 관련되게 됩니다. 즉 상대방의 은행계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은행에 제출토록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안과 관련된 회사나 개인의 문서, 이메일 등 모든 관련서류를 입수할 수 있습니다.
네번째 방법은 인정요청(REQUEST FOR ADMISSION OF FACTS)으로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은 인정하라는 요청입니다. 불필요한 논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 사실은 인정하고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물리적 검사(PHYSICAL EXAMINATION)가 있어 신체나 정신적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만 주로 4가지 방법, 데포지션, 인터로거토리, 문서제출요청, 인정요청이 사용되며 법원이 양측에 디스커버리 명령을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낱낱이 까발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같은 데포지션이나 문서제출요청 등에 불응하게 되면 이른바 ‘룰 45 서피나’, 즉 소환장이 발부돼서 데포지션을 받도록 하고 문서제출을 강제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06.20 대통령 전용기 콜사인(호출부호), '에어포스원' 대신 ‘ROK1’사용
공군기 오인 막기 위한 조치인 듯
박근혜 대통령이 5박6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선 가운데 박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기가 ‘에어포스원’이라는 콜사인 대신 ‘ROK1’이라는 콜사인을 사용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달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방문때 박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기가 이란 상공을 통과할때 이란측이 콜사인을 에어포스로 잘못 알아들어 40여분간 이란 상공을 통과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박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기는 지난 16일 오전 성남공항을 이륙, 첫 순방국인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으며 ACARS 통신체계를 사용하는 전세계 항공기들의 통신을 공개하는 리보머레이더는 UTC기준 16일 오전 2시 16분, 한국시간 16일 오전 11시16분에 포착된 대통령 전용기의 콜사인이 ‘ROK001’이라고 밝혔습니다. 리보머레이더는 이 비행기가 보잉 747 400기종이며, 보잉사 제조번호가 26412, 국제민간항공기구가 부여한 고유번호가 71BC65라고 밝혀 대통령전용기인 HL7465의 정보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대통령전용기가 대통령이 탑승했음에도 ‘KAF001’(KAF1)이라는 콜사인 대신 ‘ROK001’이라는 콜사인을 사용한 것으로, ‘ROK001’은 REPUBLIC OF KOREA 001, 즉 대한민국1호기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상 대통령전용기는 대통령이 탑승한 경우에는 ‘KAF001’ 이라는 콜사인을 사용하며 대통령이 탑승하지 않은채 시험비행 등에 나설 경우에는 ‘KAF001’ 대신 원래 등록부호 또는 위장편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명박 전대통령 등 예전 대통령은 물론 박대통령 취임뒤에도 대통령 전용기는 대통령의 해외순방때 ‘KAF001’이라는 편명을 사용해 왔으나 이번 중앙아시아순방처럼 대통령이 탑승했음에도 ‘KAF001’이라는 편명 대신 다른 편명을 사용한 것은 거의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대통령 전용기가 ROK001이라는 편명을 사용한 것은 지난달 19일 박대통령의 UAE 순방때 이란 공군이 한국 대통령 전용기가 이란영공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허가를 내주지 않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지난 16일 중앙아시아 순방을 위해 출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청와대 제공
지난 3일 조선일보는 정부 핵심관계자의 말을 인용, “박 대통령 전용기가 이란 상공을 통과하지 못해 40여분간 주변을 맴돌았으며, 우리측이 에어포스원이라고 밝혔지만 이란측 실무진이 에어포스로 잘못 알아들어 생긴 일 같다”고 보도했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UAE 방문시 대통령 전용기가 사용한 콜사인은 관례대로 KAF001, 에어포스 원인것으로 리보머레이더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당시 이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우리 정부와 이란정부 사이에 사전조율은 돼 있었는데 이란 정부와 군내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생겼던 일”이라고 설명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박 대통령이 방문하는 나라는 한때는 한국의 적성국가였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3개국이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혹시라도 에어포스원을 공군기로 오인하는 상황을 사전에 예방, 대통령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우즈베키스탄은 이명박 정부 당시 나보이공항을 한국이 개발, 아프카니스탄전에 참전한 미군들에게 전쟁물자를 보급하는 미군기지로 썼기 때문에 혹시 모를 아프카니스탄 반군 등의 공격 등에 대비한 예방조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ACARS는 항공기운항정보교신시스템으로 민간인을 태운 항공기는 ACARS 장비를 장착하고 엔진 및 연료상태, 이동거리, 현재좌표, 목적지 등을 지상상황센터와 자동교신하도록 돼 있습니다.
06.26 미국 내 북한 국적 유학생, 한때 200명 넘어
미국과 북한이 적대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북한 국적 유학생이 한때는 2백명을 넘었으며 지난해에는 17명이 미국에 유학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 국무부 산하 국제교육연구소(IIE)가 매년 발표하는 해외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7학년도 미국 내 북한 국적 유학생이 266명으로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내 외국국적 유학생과 미국 학생들의 해외유학 현황을 집계하는 국무부 산하 국제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북한 국적 유학생이 지난 2000년부터2007년까지는 백명에서 2백명대에 달했고 2008년부터는 백명 이하로 줄어들기 시작한 뒤 2011년부터는 10여명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연도별 상세현황을 보면 2000년 201명을 기록한 뒤 2001년 127명, 2002년 113명으로 줄었다가 2003년에는 213명으로 두배 가량 늘어난 뒤 2004년을 제외하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백명대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에는 65명으로 4분의 1로 급감한 뒤 50명대를 유지하다 최근 3년간은 15명순으로 줄었으며 가장 최근 통계인 2013 년에는 17명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 국적 유학생은 1975년 이전에는 전무했으나 1975년에 5명, 1980년에 11명이었습니다. 1985년 71명으로 크게 늘어난 뒤 1990년 31명, 1995년 114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북한 국적 유학생은 지난 2012년에는 대학학부과정 재학생이 12명, 대학원과정이 2명, 학위후 직무실습과정(OPT)에 있는 학생이 1명이었으며, 2013년에는 학부학생 12명, 대학원생 2명, 비학위과정 1명, 학위후 직무실습과정이 2명이어서 학부 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한편 한국 국적 미국 유학생은 지난해 현재 7만627명으로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내 한국 유학생은 지난 2009년 7만5065명으로 최대를 기록한 뒤 지난 2010년 7만2153명으로 3천명 가까이 줄어든 뒤 2011년 약 천명이 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후 2년간 계속 줄어드는 등 사실상 2009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258명에 불과했던 한국 유학생은 1955년 1197명을 기록한 뒤 약 25년간 수천명 수준에 머물다 1981년 해외유학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1980년대 중반 만명을 넘어서면서 1985년 만6430명으로 집계됐고 1990년 2만명을 넘었습니다.
한국 유학생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는 전년보다 8.6% 줄어들기는 했지만 2010년까지는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2001년, 2006년, 2008년에는 11%씩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유학생은 4만명을 넘어선 2000년 미국내 국가별 유학생 순위에서 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했으나 2002년부터 일본을 제치며 중국과 인도에 이어 줄곧 3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 유학생수가 2000년 이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2006년에는 4만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2009년에는 3만명 이하로 줄면서 국가별 순위에서 5위로 내려간 뒤 2013년에는 유학생이 2만명에도 못 미치는 만9568명을 기록하며 7위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미국 유학생수를 비교하면 2002년부터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뒤 2008년에 두배를 넘어섰으며 2010년에는 3배, 2013년에는 한국 유학생이 감소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보다 3.5배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국무부의 통계는 학생비자를 받은 학생들만 집계한 것이며 직업학교 등에 다니는 학생들을 감안하면 한국유학생은 더 늘어납니다.
국토안보부가 학생 및 교환방문자 정보시스템(SEVIS)을 통해 F비자 뿐 아니라 M 비자 소유자까지 집계한 결과 2013년도 한국유학생은 국무부 통계보다 2만명 정도 많은 9만158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M 비자는 학위를 부여하는 정식학교가 아니라 직업학교나 기술학교 학생에게 발급하는 비자로서 2만명 정도의 한국인이 정식학교가 아닌 직업학교 등에 재학 중임을 의미합니다.
국토안보부 집계 결과 한국 유학생중 과학-기술-공학-수학 등 이른바 STEM 분야, 즉 이공계 전공학생들은 전체의 17%에 불과, 인도 78%, 중국 37%, 사우디 아라비아 32%, 대만 31% 등에 크게 못미쳤습니다. 특히 미국내 직업학교 중 요리학교는 한국과 멕시코 국적 재학생이 전체의 28%를 차지, 이들 2개 국가 학생들이 미국요리학교를 사실상 먹여 살리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3년 현재 국무부가 집계한 미국 내 외국 유학생은 82만명 정도이며, 국토안보부가 M 비자까지 포함해 집계한 외국유학생은 101만명 정도였습니다.
07.01 이건희 회장측, 한 때 이 회장 검찰 고발했던 참여연대 변호사에 하와이별장 매입 공증업무 맡겨
이건희 회장 하와이 별장 공증인, 알고 보니 ‘삼성저격수’
‘삼성X파일’때 이건희 회장 고발, 현재는 ‘회장님 극비서류’ 공증 맡아
삼성서 ‘우리 사람’ 신뢰얻어 초특급비밀 맡겼다는 평가도
미국서 작성한 위임장, 같은 날 한국서 공증해 시차상 사실상 불가능
지난해말부터 삼성언론재단 감사, 현재도 참여연대 20년사 등 기고
이건희 삼성회장측이 하와이 별장매입과 관련, 한 때 이 회장을 직접 검찰에 고발하기도 한 차병직 전 참여연대집행위원장(변호사)에게 별장매입 위임장의 공증을 맡겼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위임장 작성과 공증이 같은 날짜에 이뤄졌으나, 위임장 작성 때 이 회장은 미국 체류 중이었고 위임장 공증은 서울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돼 시차를 고려하면 같은 날 공증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불가능한 임무’를 차병직 변호사가 집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민권변호사로 알려져 있는 차 변호사는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05년 7월 삼성X파일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삼성회장, 이학수 당시 삼성부회장,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재벌의 전횡과 부조리를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벌개혁을 위해 궂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차 변호사는 이회장을 고발하며 “삼성그룹이 여야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비자금의 규모와 관련자, 로비의 실체 등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 주장은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격려의 박수가 이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차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22일 삼성언론재단의 감사로 선임돼 주위를 놀라게 한데 이어, 보름뒤인 12월 6일 이 회장이 하와이별장 매입때 작성했던 위임장을 공증했던 것으로 확인돼 삼성과 각을 세우며 재벌개혁을 외치던 때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해 12월 23일 하와이 호눌룰루 다이아몬드헤드 인근 나대지 2필지, 0.9에이커(1075평)을 1326만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이 부동산 거래와 관련, 이 회장측이 하와이 등기소에 제출해 등기한 서류는 나대지 2건의 매입증서 2건과 이 회장의 위임장 등 모두 3건입니다. 위임장 관련 서류는 이 회장이 자필 서명한 위임장 및 공증문서 등 모두 7페이지인데, 이 서류를 훑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23일 나대지 매입에 앞서 지난해 12월 6일 위임장을 작성했습니다.
이 위임장은 “이건희는 홍라희의 남편으로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135-50번지가 주소이며, 서울시 강남구 일원본동 샘터마을아파트 110동 0000호에 주소지를 둔 박00의 남편 김병욱과 서울시 서초구 서초4동 아크로비스타아파트 C동 0000호에 주소지를 둔 한00의 남편 김태진을 하와이 호놀룰루 부동산 2건의 매입대행자로 지명한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이 회장이 12월 6일 서명했다고 기록한뒤 영문으로 서명했습니다.
이 회장이 이들 두 김씨에게 위임한 업무는 부동산 2건의 매입과 등기 등의 업무이며, 위임장 효력기한은 서명일로부터 12월 31일까지지만 기한전이라도 등기가 끝나면 위임장 효력은 종결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위임 당사자인 자신이 위임장 공증을 직접 받지 않고 제3자인 김태진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차병직 변호사로부터 공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증서류에 이건희의 대리인으로 기재된 김태진은 이 회장이 하와이별장 매입과 등기 등을 위임한 두명 중 한명과 이름이 같지만 동일인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공증증서에는 법무법인 한결의 차병직 변호사가 12월 6일 서울 종로의 법무법인 한결 사무실에서 ‘특별위임장과 관련, 이건희의 대리인 김태진이 자신의 면전에서 위 본인이 서명한 것임을 확인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법은 위임장의 공증을 받을 때는 위임인이 반드시 공증인 앞에 출석,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를 제출한 뒤 직접 공증을 받도록 돼 있습니다.
국내도 대법원 판례는 미국법과 유사한 취지입니다, 대법원 판례는 “대리인이 등기업무를 할 경우 등기공무원은 위임장 공증서가 등기의무자 본인이 출석해 공증을 받은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는 등기공무원의 의무를 밝힌 것이지만 등기업무를 위임할 때는 등기의무자 본인, 즉 위임인이 직접 공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리인이 위임인의 인감증명서 등을 제시하고 공증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번역문서 등의 단순서류의 공증이 아닌 재산권과 직접 관련된 문서, 즉 부동산의 등기 등에 관한 위임장의 공증에는 사기 등을 막기 위해 위임인이 직접 출석, 공증을 받아야 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 회장도 위임장에서 피위임인에게 별장매입은 물론 등기업무까지 맡겼으므로 엄격히 따지면 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 회장이 직접 공증을 받았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차변호사는 대리공증을 허용한 공증인법에 따라 이 회장을 출석토록 하지 않고 공증을 집행했습니다. 차변호사의 공증이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회장 위임장에 등기업무까지 명시돼 있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또 하나 공증과 관련된 의문은 위임장 작성과 공증이 같은 날짜에 이루어지는게 가능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회장은 이 위임장 작성 당시인 지난해 12월 6일에는 해외에 체류중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3일 미국으로 출국, 54일뒤인 지난해 12월 27일 귀국했다는 것이 당시 언론보도입니다. 그러나 차 변호사가 이 회장의 대리인 김태진씨를 만나 공증한 날짜도 12월 6일, 공증장소는 서울 종로의 법무법인 한결 사무실이라고 공증증서에 기재돼 있어 위임장 작성일자와 동일합니다. 이 회장이 미국에서 위임장을 작성한 날, 차변호사가 서울에서 그 위임장을 가지고 온 김태진씨를 만나 공증한 것이지만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고려하면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시간이 빠릅니다. 한국은 하와이보다는 19시간, LA보다는 11시간, 뉴욕보다 14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이회장이 12월 6일 새벽 0시에 위임장에 서명을 해도 체류지역에 따라 한국시간은 6일 오후 2시에서 더 빨리는 오후 7시가 됩니다. 이 시간에 곧바로 위임장이 비행기로 전달되어도 아무리 빨라도 차변호사가 이 위임장을 12월 6일에 공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회장이 당시 일본에 체류중이었다면 위임장 작성과 동시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당일 공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 회장은 12월 27일 귀국 직전에야 일본에 들렀다는 것이 언론보도입니다.
따라서 혹시 대리인이 사본을 제출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만 이 또한 사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사본으로는 공증을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미국 등기소에 제출된 위임장을 보면 차변호사의 직인이 간인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공증인법은 첨부서면에 공증인의 직인을 간인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공증서대로라면 차변호사가 12월 6일 이 서류에 직인을 찍은 것입니다.
차변호사가 반드시 문서내용을 확인할 의무는 없지만 위임장 작성일자는 확인했을 것이고 대리인에 의해 촉탁될 경우, 즉 대리인에 의해 공증요청을 받으면 그 대리 사유와 대리권 증명서류를 받도록 공증인법에 규정돼 있으므로 왜 이 회장을 대신해서 왔는지를 알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 위임장 작성일자에 의문을 품었을 법도 한데 공증은 집행됐습니다.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여건임에도 차변호사가 같은 날 위임장을 받아 간인까지 찍으면서 공증했음은 부실공증 등 여러가지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
특히 이 회장 위임장과 공증 등이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증을 한 사람이 바로 차변호사이기 때문입니다.
이회장의 하와이 별장 매입은 그 성격상 삼성그룹 내에서도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재경팀 상무 등에게 극비리에 위임된 일이기 때문에 한때 ‘삼성저격수’로 불렸던 차변호사에게 별장예정지 지번과 주소까지 상세히 적힌 이 회장의 위임장 공증이 맡겨진 것은 의외의 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즉 삼성이라는 기업의 운영에서 발생하는 공증업무가 아니라 로열패밀리의 내밀한 비밀과 관련된 업무가 이 회장을 고발했던 사람에게 맡겨졌다는 점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입니다.
민권변호사로 알려져 있는 차 변호사는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05년 7월 삼성X파일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삼성회장, 이학수 당시 삼성부회장,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 등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재벌의 전횡과 부조리를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벌개혁을 위해 궂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차 변호사는 이 회장을 고발하며 “삼성그룹이 여야 정치권에 제공한 불법비자금의 규모와 관련자, 로비의 실체 등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 주장은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격려의 박수가 이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차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22일 삼성언론재단의 감사로 선임돼 주위를 놀라게 한데 이어, 보름뒤인 12월 6일 이 회장이 하와이별장 매입때 작성했던 위임장을 공증했던 것으로 확인돼 삼성과 각을 세우며 재벌개혁을 외치던 때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차변호사는 현재 참여연대 임원은 아니지만 ‘참여연대 20년 20장면’을 2012년 9월부터 2014년 4월까지 20개월간 기고하는 등 외견상으로는 지금도 참여연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없는 이면에서는 차변호사에게 이 회장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알 수 있는 업무가 맡겨졌고, 이는 삼성, 특히 로열패밀리로부터 ‘우리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07.11 아시아나 승무원들, "살려달라" 절규하는 동료보다 승객을 먼저 구조
[샌프란시스코 착륙사고 당시 승무원 진술서 등 단독 입수]
승객 먼저 구한 뒤 맨마지막에 동료 구출해 탈출
또 한명의 영웅은 외국인 남자 승객
도어 직접 열고 기체 뒷편 승객들 탈출시켜
지난해 7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샌프란시스코 착륙사고때 아시아나 승무원들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동료보다 승객부터 먼저 구조한뒤 맨 마지막에 동료들을 구출해 탈출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 NTSB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승무원들로부터 받은 자필진술서, NTSB 조사요원들의 승무원 면담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검토한 결과 아시아나 승무원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절박한 순간에도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혼을 불살랐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특히 추락사고 당시 승무원 2명이 여객기 내에 끼여 있었으며 이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잠시 기다리라고 한뒤 승객들을 모두 구조한뒤 마지막에 동료를 구출, 탈출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기장 등 조종사들은 승객들을 탈출시킨뒤 비행기에서 내렸다가 승객잔류 여부를 확인하고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시 비행기로 올라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13년 7월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활주로에 충돌한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승객들이 탈출하는 모습/트위터 캡처
NTSB는 지난해 7월 6일 오전 11시 27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 착륙 중 충돌사고와 관련, 이윤혜 캐빈매니저 등 모두 5명의 승무원으로부터 한글 자필진술서를 받은데 이어 사고 발생 사흘뒤 승무원 6명을 직접 면담해 조사했습니다. 한글 자필진술서를 제출한 승무원은 이윤혜 캐빈매니저, 유태식 과장, 이진희, 김지연,현숙영 등과 영문으로 질문에 답한 마니나르트 승무원 등 모두 6명입니다. 이들은 고도 1만 피트 사인이 들어온 시점부터 사고 순간, 사고 뒤 승객대피상황 등을 진술했습니다. 또 사고발생 사흘뒤인 7월 9일 승무원들이 머물고 있던 샌프란시스코 할리데이인 호텔에서 NTSB 면담조사를 받은 승무원은 이윤혜, 유태식, 이진희, 김지연씨 등 한글 자필진술서를 제출한 4명과 김윤주, 한우리 승무원 등 모두 6명이었습니다.
/이윤혜 캐빈매니저 자필진술서.
이 한글 자필진술서와 승무원 인터뷰 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사고 당시R1에 앉아있던 현숙영 승무원, R2에 앉아있던 김윤주 승무원 등 2명이 사고충격으로 탈출용 슬라이드가 기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터지면서 몸이 슬라이드와 기체 사이에 끼여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2013년 7월 13일 NTSB에 제출한 현숙영 승무원의 자필진술서.
비즈니스 갤리를 담당하던 현숙영 승무원은 마침 이날 3A좌석에 앉은 남편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탈출용 슬라이드가 기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터지면서 몸이 L사이드로 날라갔고 의자와 슬라이드에 끼이고 말았습니다. 당시 여객기내 비품인수인계문서인 신송레터 작성을 마치면서 볼펜을 들고 있던 현씨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충격으로 숨을 쉴 수 없었고 구토가 나오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볼펜으로 슬라이드를 터뜨리려 했으나 터지지 않았고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내의 사고 순간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남편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당시 승무원들은 기장 등 조종사 생사확인, 조종사에게 탈출여부 문의, 승객들 동요를 막기 위한 안내방송 등 승객들의 안전에 모든 힘을 쏟고 있어 현 승무원을 돌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뒤 기장의 탈출지시가 내리자 마자 이윤혜 캐빈매니저가 L1 도어를, 유태식 과장이 각각 L2도어를 열었고, 나머지 승무원들도 승객들의 탈출을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현 승무원은 대부분의 승객이 탈출한 뒤 기장이 R1슬라이드를 터트린 뒤에야 몸을 뺄 수 있었고 맨마지막에 이진희 승무원이 왼쪽 다리를, 김지연 승무원이 오른쪽 다리를, 현씨의 남편이 아내의 팔을 잡은 채 기절상태의 현씨를 들어올려 L1 슬라이드를 통해 탈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탈출장면은 공항 관제탑에 장착돼 있는 C225번 CCTV에 낱낱이 찍혔고 NTSB는 이들의 탈출시간이 탈출이 거의 마무리된 뒤인 7월 6일 오전 11시 31분 15초였다고 확인했습니다.
/김윤주 승무원의 NTSB 면담조사보고서.
더 절박한 사연은 R2 점프시트에 앉아서 착륙대기를 하던 김윤주 승무원이었습니다. 아시아나 승무원으로 일한지 13개월째인 김 승무원은 하드랜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산소마스크가 떨어졌고 속도를 높이는 소리가 들리며 복항이구나 생각할 때 두번째 충격과 함께R2슬라이드가 기체 안으로 터지면서 두발이 모두 슬라이드에 끼여서 옴짝 달싹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자 트래블 시니어인 유태식 과장이 달려왔으나 유 과장은 기체 외부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즉각 자기자리로 달려가며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한다고 판단, 탈출방송을 시작하며 L2 도어를 열고 승객구출에 나섰다고 합니다.
김윤주 승무원은 NTSB조사요원과의 면담조사에서 이때 유과장이 자신이 슬라이드에 끼여 있는 동안에도 승객탈출에만 집중했었고 자신은 부상을 당해 승객탈출을 돕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뒤 유과장은 승객을 모두 탈출시킨뒤 슬라이드를 터트려 김 승무원을 구하려 했지만 칼이 없어서 불가능하자 기체 외부에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구조방법을 찾았고 탈출했던 봉동원 부기장 등이 이 소리를 듣고 목숨을 걸고 기내로 다시 올라왔다고 합니다. 김 승무원에게서 1.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유 과장은 봉부기장이 올라 오는 모습을 보고 다시 김 승무원쪽으로 가던중 마침 기내에 진입한 구조대원으로부터 당장 탈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비행기에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윤혜 캐빈매니저의 자필진술서.
다행히 봉 부기장은 김 승무원에게 접근했고 이때 이윤혜 캐빈매니저가 갤리에서 칼을 찾아오자 봉 부기장이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면서 칼로 슬라이드를 터트려 김 승무원을 빼낸뒤 봉동원, 이윤혜, 김윤주 3명이 맨 마지막으로 L2슬라이드를 통해 탈출하면서 모든 탑승자의 대피가 마무리됐습니다. 특히 조종사 4명 모두 승객탈출이 마무리된뒤 기체 밖으로 나갔다가 혹시 남은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고 부상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해 기체에 재진입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관제탑에 장착된 C225번 CCTV에는 오전 11시 33분 25초, 오전 11시 33분 55초, 오전 11시 34분01초, 오전 11시 34분5초, 11시 35분 26초 등 모두 5차례 L1과 L2슬라이드를 통해 기체에 다시 들어가는 장면이 촬영됐습니다.
/이진희 승무원의 자필진술서.
또 이진희 승무원은 비지니스클래스 시니어로 사고 직후 이윤혜 캐빈매니저의 지시로 조종실과 컨택해 조종사 생사유무를 확인한데 이어 이 매니저를 도와 비즈니스 클래스와 기체 앞부분 B존 승객을 탈출시켰으며 마지막으로 현숙영 승무원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승무원은 비행기에서 내려온 직후 기내에서 이윤혜 매니저와 유태식과장이 잔류자를 확인하는 것을 지상에서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태식 과장의 자필진술서.
아시아나에서 15년간 승무원으로 일한 유태식 과장도 기체가 활주로에 부딪히기 5-6초전 속도를 올리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하고 창밖을 보자 물위 4-5미터 높이로 너무 낮게 날고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는 L2에 앉은 김지연 승무원에게 꽉 잡으라고 외친뒤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이윤혜 매니저와 번갈아가며 기내방송을 실시하고 승객들을 대피시켰습니다. 특히 승객구조가 최우선이라고 생각,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뒤 다시 김윤주 승무원의 구조에 나서기도 하는 등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김지연 승무원의 자필진술서.
김지연 승무원도 승객들의 탈출을 돕는 도중 한 아이가 다리를 다쳐서 못내려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아이를 업고서 젖먹던 힘까지 내서 달림으로써 전세계를 감동시킨 장본인이지만 진술서에 간단하게만 언급하며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끝까지 비행기를 지키다 봉동원 부기장, 김윤주 승무원과 함께 마지막으로 탈출한 이윤혜 캐빈매니저는 김윤주 승무원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기도 했고, 탈출뒤 비행기 뒤쪽에 중상을 입은 승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R3 승무원 마니나르트의 신원을 확인하고서야 자신도 엉덩이뼈를 다친 사실을 알아챘다고 합니다. 한우리 승무원도 왼쪽 신발을 잃어버린 사실조차 모른채 맨발로 구조에 전념했습니다.
CCTV화면에는 아시아나 여객기가 처음 지상과 충돌한 시간은 11시 27분 48초, 여객기가 완전히 정지한 것은 15초뒤인 11시 28분 3초였으며 11시 29분 39초 L2 도어가, 1초뒤 L1도어가 열렸습니다. 또 구조대가 처음 기내로 진입한 것은 11시 35분36초로 확인됐고, 유태식 과장이 이 구조대원의 제지로 비행기에서 내려온 것은 5초뒤인 11시 35분 41초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약 39초뒤인 11시 36분 20초에 봉동원, 이윤혜, 김윤주 등 3명이 탈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실상 전 승무원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한우리 승무원의 NTSB 면담조사 보고서.
특히 승무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들 외에도 진정한 영웅이 1명 더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30K 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 남자 승객으로, 자필진술서를 쓰고 NTSB조사를 받은 승무원 대부분이 그가 승객탈출에 큰 기여를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L3에 앉아있던 한우리 승무원은 NTSB조사에서 사고뒤 L3 도어를 열려고 했으나 도어핸들이 80도 이상 돌아간 상황에서 더 움직이지 않아 문을 열지 못했고, 바로 그 순간 30K 승객이 반대편의 R3 도어를 열고 승객들을 탈출시킸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R3도어에서는 탈출용 슬라이드가 터지지 않았으나 다행히 충돌로 동체가 거의 지상과 맞붙어 있어 30K승객이 다른 승객들을 밖으로 뛰어내리도록 유도했고 핸드폰등 소지품을 챙기려는 승객들을 향해 ‘빨리 대피하지 않으면 죽는다, 당장 탈출하라’고 소리치며 탈출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R3 도어쪽에도 태국 출신인 마니나르트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으나 사고와 함께 유혈이 낭자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30K 승객이 재빨리 문을 열게 된 것이고, 30K승객이 다른 승객들에게 이 승무원을 부축해 탈출케 했습니다. 또 거구의 노인인 29D 승객도 심한 부상을 입고 복도에 쓰러져 있었으나 한우리 승무원이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쳤고 30K 승객의 도움을 받아 탈출시켰다고 합니다.
모든 승객이 탈출한뒤 한우리 승무원이 비행기에서 내린뒤 기체 밖에서 30K 승객을 만났고 그 또한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으며 자신이 보기에는 30K 승객이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30K 승객은 한우리 승무원에게 가족들에게 연락하라며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조종사 4명을 제외한 승무원 12명중 기체 앞쪽과 중앙의 승무원 8명 가운데 3명이 중상을 입었고, 나머지 승무원들도 경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특히 뒤쪽의 승무원 4명(4L, 4R, M4A, M4B)은 전원 부상당했기 때문에 뒤쪽 승객(C존)들은 사실상 30K 승객과 한우리 승무원이 탈출시켰다고 합니다. 30K 승객은 그의 부인과 함께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서울로 와서 같은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려 했으나 부인은 일정을 바꿔 닷새 먼저 샌프란시스코로 떠나서 다행히 사고를 면했다고 NTSB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NTSB 자필진술서와 면담조사보고서는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승객구조에 최선을 다한 아시아나 승무원들의 헌신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07.16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착륙 사고 당시 승객들 대거 살린 외국인 영웅 찾았다
주인공은 프랑스계 미국인 벤자민 레비씨
실리콘밸리 벤처사업가, 한국인 아내와 10년전 결혼해 6살, 3살 두 아들
난생 처음 열어본 비행기도어, 화살표 따라 돌렸더니 생각보다 쉽게 열려
갈비뼈가 부서진 듯한 충격속에 한우리 승무원과 뒷좌석 승객 탈출 시켜
“사고 당시 어린 학생들-환자들 살려야된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마지막에 여승무원이 “빨리 내려라”…알고보니 그 승무원이 이윤혜 매니저
탈출뒤 한우리 승무원과 서로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감사의 뜻 전해
NTSB 발표 때와 사고 1주기때도 한국에 있었지만 한우리 승무원 이름 몰랐다
병원후송뒤 아내에 전화해 “살았다는 것만 알아라, 말하기 힘들어 끊는다”
아빠 셔츠에 붉은 피 본 두살배기 아들 “아빠 왜 옷에 초콜렛이 묻었어”
“나 아닌 누구라도 그날 그자리에서는 그렇게 했을 것”
“생사 함께하며 승객 탈출시킨 한우리 승무원 만나고 싶다”
아내 이씨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음을 경험했기에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사고 당시 촬영한 사진 30여장, 항공기 탑승권 등 이메일로 보내와
/아사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 충돌사고 여객기 30K 좌석에 탑승, R3 도어를 직접 열고 뒷좌석 승객을 대피시켰던 벤자민 레비씨가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벤자민 레비 제공
지난해 7월 아시아나항공 샌프란시스코공항 착륙 중 충돌사고 당시 뒷좌석 승객 대부분을 탈출시킨 좌석번호 30K의 승객은 한국인 아내를 둔 프랑스계 미국인 벤자민 레비씨로 확인됐습니다. 레비씨의 아내는 시크릿오브코리아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남편이 생사를 함께 하며 뒷좌석승객을 함께 탈출시켰던 한우리 승무원을 만나고 싶어 한다며 연락을 부탁했습니다.
이수미(미국명 수미 레비)씨는 이 이메일에서 지난 13일 아시아나 승무원 진술서와 남편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며 30K승객은 자신의 남편인 벤자민 레비씨라고 확인하고 사고 당시 남편이 촬영한 사진 30여장도 함께 보내왔습니다.
30K승객인 레비씨는 미국 동부시간 14일 오후 2시 전화통화에서 “사고 당시에는 머리로 생각할 틈이 없었고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주위에 10대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어린 아이들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레비씨 좌석 뒷편이 바로 중국인 단체 수학여행 학생들이 앉았던 자리였습니다.
/벤자민 레비씨의 아시아나항공 탑승권. 미국에 이민 온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여권 위에 탑승권이 놓여 있다./벤자민 레비 제공
레비씨는 “주위에 중상자도 많았기 때문에 너무 절박해서 구조 외에는 앞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름을 몰랐지만 한우리 승무원도 정말 사력을 다해서 승객을 탈출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레비씨는 “비행기문을 열어본 것이 난생 처음이었다”며 “무조건 열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문에 적혀진 화살표 등을 보고 핸들을 돌렸더니 비교적 쉽게 문이 열렸으나 슬라이딩 도어가 안 펴져서 조금 당황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레비씨가 연 R3도어에서는 슬라이딩 도어가 펴지지 않았으나 다행히도 기체가 부서지면서 지면과 거의 맞닿아 있었고 어딘가에서 날라온 파편이 디딤돌 역할을 했습니다.
레비씨는 한우리 승무원과 함께 뒷좌석 승객들을 대피시킨뒤 미처 탈출못한 승객이 있는지 둘러볼 때 한 여승무원이 달려와 빨리 탈출하라고 지시해 승객중 맨 마지막으로 탈출했고 뒤에 TV를 통해 그 여승무원이 이윤혜 캐빈 매니저였음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NTSB가 발표한 아시아나 승객 좌석별 부상상황. 30K 승객은 39세 남성이며 왼쪽 후부 두피, 왼쪽 갈비뼈, 오른쪽 목등에 부상을 입었다고 기록돼 있다.
레비씨는 당시 머리에서 피가 나고 갈비뼈를 다쳐 말하는 것은 물론 숨쉬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 승객들을 대피시킨 것입니다. 실제 NTSB(미국교통안전위원회)가 발표한 좌석별 승객 부상현황은 “30K 승객은 39세 남성으로 왼쪽 후부두피, 왼쪽 옆구리, 오른쪽 목 등을 다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비씨는 자신과 함께 뒤좌석 승객을 탈출시킨 승무원이 누군지 알고 싶어했으나 이름조차 알지못해 1년이 지나도록 승무원을 찾지 못했다며 프리미엄조선 기사를 통해 그 승무원이 한우리씨라는 사실을 알게 돼 기쁘다고 밝혔습니다. 레비씨와 한우리 승무원은 병원으로 후송될 때 서로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한우리씨는 NTSB조사에서 “30K승객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또 아내 이씨는 집에서 아이들과 남편을 기다리다 남편의 전화를 받고서야 비행기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고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말했습니다. 남편 레비씨는 이날 병원으로 후송된 직후인 사고 당일 오후 2시쯤 집에 전화를 해서 “비행기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 살아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라”고 짧게 이야기하고 “지금 너무 아파서 말을 하기 힘들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이씨는 지난해 7월 자신도 남편과 함께 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려 했으나 독립기념일(7월 4일)을 샌프란시스코 집에서 아들 2명과 함께 보내고 싶어 일정을 변경, 닷새 빨리 귀국해서 화를 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씨는 가족들이 사고 전과 같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매일 매일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지금도 당시 사고를 연상시키는 대형사고나 화재를 보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오늘이 삶의 마지막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매일 매일 열심히 살려고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남편이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7월 12일 경복궁을 방문한 벤자민 레비씨 가족. 10년전 한국인 이수미씨와 결혼해 올해 6살, 3살된 두 아들을 두고 있다./벤자민 레비 제공
레비씨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부츠스트랩랩을 경영하는 프랑스인 벤처사업가로 종종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방문, 강연회 등을 가진다고 전했습니다.
레비씨는 또 지난 6월 NTSB 조사결과 발표때와 지난 6일 사고발생 1년이 됐을 때도 한국 벤처기업의 스타트업 강연과 미팅을 위해 전 가족이 한국에 있었지만 한씨를 찾을 수 없었고 자신이 강연과 미팅을 하는 동안 아내는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문화 체험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레비씨는 가족들과 함께 지난 13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뒤 아내가 친구로부터 프리미엄 조선 기사를 전달받고 자신이 찾는 승무원이 한우리 승무원임을 알았고 한국방문 때 만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다음에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이 교차했다고 말했습니다.
레비씨와 이씨는 10년전 결혼해 6살, 3살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지난 12일 경복궁에서 찍은 가족 사진과 남편의 사고여객기 탑승권, 그리고 사고 당시 남편이 촬영한 긴박했던 순간의 사진 30여장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 사진들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공항에 충돌한 지난해 7월 6일 오전 11시 27분으로 부터 약 14분뒤인 오전 11시 44분부터 촬영된 것으로 레비씨가 기내에서 탈출한 다음 찍은 것입니다.
/벤자민 레비씨가 지난해 7월 6일 오전 11시 48분 54초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아시아나 사고기가 검은 연기로 뒤덮였으며 왼쪽에 아시아나 여승무원의 모습이 보인다./벤자민 레비 제공
이 사진을 보면 오전 11시 46분께 진화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이며 11시 48분께 연료탱크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기체 전체를 뒤덮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승객들이 부상당한채 활주로 곳곳에 쓰러져 긴급출동한 의료진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는 모습도 눈에 띄고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난 오후 12시 27분께까지 대부분의 승객들이 활주로에서 대기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뒷머리와 왼쪽 갈비뼈를 다친 레비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모습, 그리고 그날밤 10시 6분께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만나 얼싸안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충격을 우려해 사고를 말하지 않았고,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두살배기 꼬맹이 둘째 아들은 레비씨의 셔츠에 피가 묻을 것을 보고 “아빠 옷에 왜 초코렛이 묻었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레비씨는 30K좌석에 앉아있다가 사고 직후 R3도어쪽 태국 출신 마니나르트 승무원이 중상을 입자 자신이 달려가 R3도어를 직접 열고 승객들을 탈출시켰으며, 한우리 승무원도 자신이 L3도어를 열다 작동이 안돼 R3로 갔을때 이미 30K승객이 문을 열고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중이었다고 NTSB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뒷쪽의 승무원 4명이 전원 부상당했기 때문에 뒷쪽 승객들은 거의 대부분 레비씨와 한우리 승무원이 힘을 합쳐 탈출시켰다는 것이 승무원들의 일관된 진술입니다.
부산음식이 자신의 고향 남프랑스 음식과 비슷하다는 남자, 김치와 쭈꾸미볶음, 삼겹살을 좋아한다는 남자, 자신을 던져 수많은 사람을 구해낸 이 남자의 마지막 말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그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07.17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처남, 미국에서 백악관보다 큰 건물 2000만달러에 매물로 내놔
펜실베이니아 소재 대지 4만평-건평 2천평, 백악관보다 더 큰 규모
차 전실장 처남 윤씨, 1996년 매입뒤 종교시설지정 요구하다 좌절되자 매도 추진
비뇨기과 의사인 처남, 신학교 다녀 목사 안수 뒤 가족 등 상대로 예배 집도
뉴욕에도 대형건물과 주택 등 소문난 재력가…라디오 방송국도 2개 소유
차지철 부인, 10·26 이후 1981년께 부모 및 세딸과 뉴욕으로 이민
차지철 부인, 1981년 첫 주택 구입뒤 2년만인 1983년에도 한 채 더 매입
장인장모, 1983년부터 3년간 매년 1채씩 주택 매입
장인장모, 1987년에는 한달간 아들과 주택 8채 한꺼번에 매입
차지철 생모는 양로원서 무연고상태로 삶을 마감해 대조적
“처남 재산 차지철과 관련있을 것” 뉴욕한인사회에 소문 파다
뉴욕에 사는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처남 윤모씨가 자기 소유의 대형부동산을 2000만달러에 매물로 내놨습니다. 뉴욕 거주 재미동포인 윤모씨(74세)는 지난 9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몽고메리카운티 엘킨스팤 소재 대지 33.85에이커(4만1500평), 건평 7만 스퀘어피트(2천평) 규모의 부동산을 2000만달러에 팔겠다며 매물로 내놨다고 이 지역 언론매체와 부동산중개업체 등이 밝혔습니다. 이 매물은 현재 미국내 최대 부동산중개업체 중 하나인 질로우닷컴 등에 소개돼 있으며 매물번호(MLS)는 SMS6419673입니다.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처남 윤모씨가 지난 9일 2천만달러에 매도하겠다며 부동산시장에 매몰로 내놓은 린우드홀 전경. 대지가 4만천여평, 건평이 2천평으로 백악관보다도 규모가 크다./출처=질로우닷컴
이 부동산은 이른바 ‘린우드홀’로 114년전인 1900년 조셉 와이드너 가문이 지은 대저택으로 50여년간 거주하다 1952년 페이스신학교에 팔렸고, 1996년 6월 24일 윤씨가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네오클래식(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이 저택은 방이 110개로 백악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합니다. 실제로는 대지 18에이커, 건평 5만5000스퀘어피트인 백악관보다도 대지는 약 2배 정도 넓고 건평은 20%나 더 큽니다.
/1950년대에 촬영한 린우드홀의 전경. 흑백사진/출처=질로우닷컴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히트 오스틴이 촬영해 공개한 린우드홀의 내부사진./출처 히트 오스틴의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austinxc04
윤씨는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비영리단체 뉴욕한인제일교회(FIRST KOREAN CHURCH OF NEW YORK) 명의로 1996년 이 저택을 사들인 뒤 신학교로 운영하려 했으나 제반여건이 여의치 않아 현재는 사실상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윤씨는 이 건물을 캠퍼스로 사용하던 페이스신학교에 다니며 신학을 공부, 1988년 신학석사, 1991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4년께는 학장을 역임하는 등 이 건물과 인연이 깊었습니다.
윤씨는 이 건물 매입뒤 챌튼햄타운 정부에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종교시설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윤씨는 지난 2005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한 뒤 2심 항소법원에서도 역시 패소했습니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지난해 10월 7일 최종기각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윤씨는 이 건물을 신학교로 사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매도를 결심했다고 지역언론들은 윤씨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1995년 펜실베이니아 주정부에 제출한 뉴욕한인제일교회 법인설립신청서. 차지철 전실장의 처남 윤씨가 법인 대표로 기재돼 있다. 윤씨는 이 서류를 린우드홀 매입계약서에 첨부했으며, 추후 법정소송에서도 이 서류를 증거로 제출했다.
/차지철 전 실장의 처남 윤씨가 플러싱 한복판 노른자위에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출처=구글 스트릿뷰
윤씨는 이 건물 외에도 뉴욕의 한인집단거주지역인 플러싱 노른자리에 역시 자신의 교회명의로 대형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한때 이 곳에 콘도를 건축하려다 포기하기도 했었습니다. 이 부동산은 넓은 나대지에 뉴욕제일교회라는 간판이 걸린 낡은 2층 건물이 하나 있으며, 이 건물에서 윤씨 일가와 주변사람들이 모여 주말마다 예매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씨는 또 지난 2004년 1월에는 기독교복음 전파를한다며 워싱턴DC에서 라디오방송국을 매입하는 등 2개의 AM라디오 방송국을 사들였음이 연방통신위원회(FCC)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매입가격은 1개 방송국당 1천만 달러에 조금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욕한인사회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로 알려진 윤씨는 비뇨기과의사이면서도 펜실베이니아 부동산의 전 소유주인 페이스신학교를 졸업한뒤 목사안수를 받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주중에는 의사로서 진료를 하고 주일에는 자신의 가족 등을 대상으로 목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윤씨는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손아래 처남으로서 차씨의 부인인 윤보영씨, 그리고 부모인 윤원중, 정숙녀씨 등과 함께 공동명의로 뉴욕에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윤보영이란 이름이 뉴욕시 등기소에 나타난 것은 1981년 12월 14일이었던 점으로 미뤄 윤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1981년께 미국에 이민을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 윤씨는 뉴욕 퀸즈의 한 주택을 윤원중, 정숙녀씨와 함께 3명이 각각 3분의 1의 지분으로 남동생 윤씨로부터 매입했으며, 12년뒤인 1993년 6월 29일 다시 남동생에게 소유권을 이전했습니다. 윤씨와 함께 집을 구입한 윤원중, 정숙녀씨는 차 전실장의 장인장모입니다. 이 당시까지 차 전실장의 처남이 소유한 부동산은 이 집이 유일했으나 누나의 이민 이후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차 전실장의 부인 윤씨는 이 집을 매입한지 2년이 지난 1983년 11월 15일 뉴욕 퀸즈의 신축주택을 어머니 정숙녀씨와 공동명의로 매입했고, 14년이 지난 1997년 10월 15일 이 집을 세 딸에게 넘겼습니다. 차 전실장의 세 딸은 크리스틴, 다이애나, 주디였다고 부동산 매매서류에 기록돼 있으며, 세 딸은 2005년 2월 23일 이 집을 매도했습니다.
/차지철 전실장의 부인 윤보영씨가 1981년 12월 뉴욕 퀸즈의 부동산을 매입했음을 입증하는 매입증서(DEED).
차 전실장의 장인장모는 공동명의로 1983년 6월 29일, 1984년 10월 15일, 1985년 1월 28일, 각각 1채씩 3채의 주택을 매입했습니다. 특히 이들 부부는 1987년 11월말부터 채 한달이 안 되는 기간에 아들 윤씨와 함께 3명 공동명의로 무려 8채의 부동산을 매입했습니다. 1987년 11월 23일, 12월 2일, 9일, 11일, 17일, 18일 각각 1채씩의 부동산을 샀고, 11월 25일에는 2채를 한꺼번에 사들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차 전실장의 장모 정숙녀씨가 2004년 7월 6일 사망해 소유권을 가족에게 넘겼다는 사실도 부동산 서류에 기록돼 있었습니다. 차 전실장의 어머니 김대안씨는 차씨 사망뒤 어렵게 삶을 이어가다 1998년 12월 영락교회가 운영하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양로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가쪽은 미국에 적지 않은 부동산이 있었고 특히 처남의 재산은 놀랄 정도였습니다.
뉴욕주정부 전문직 라이센스조회 웹사이트 확인결과 처남 윤씨는 1964년 2월 26일 전남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1976년 3월 5일 미국에서도 의사면허를 받은 것으로 미뤄 1976년 이전에 미국으로 이민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뉴욕에서 30년 이상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했던 한 재미동포는 “한번은 차 전실장 처남이 주택 17채를 한꺼번에 팔아달라고 의뢰한 적이 있었다. 이 재산이 차지철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서울에서 윤씨 일가와 영락교회를 함께 다녔던 한 뉴욕동포도 “차 전실장 장인장모가 뉴욕으로 온 뒤 결혼 50주년을 맞아 금혼식을 할 때 참석했을 정도로 잘 안다”며 “차 전실장 처남이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재산을 가진다는 것은 미국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차 전실장이 돈과 여자 문제에서 만큼은 결백하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뉴욕에서 떠도는 이같은 소문과 의혹은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미망인이 14억원을 사기당했다고 보도한 1987년 8월 6일자 신문기사. 모신용금고가 부도나면서 대주주의 횡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차 전실장 부인 윤씨가 거액을 사기당했음이 드러났다.
1987년 8월 당시 한 신용금고가 부도가 나면서 대주주의 횡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차 전실장의 재산 일부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 당시 한국언론에는 차 전실장 부인 윤씨가 모상호신용금고 대주주인 김모씨 형제에게 14억원을 빌려준 뒤 돈을 떼였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습니다. 이들은 1980년께부터 윤씨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의 검은 돈만 노렸다는 것입니다.
윤씨는 높은 이자를 준다는 말에 꾀여 차츰 돈을 더 빌려주다보니 14억원이 됐고 상환을 요구하자 이들 형제는 “그 돈이 어떤 돈이냐”며 은근히 협박하며 돈을 가로챘다는 것입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이냐”는 말은 ‘부정축재한 돈 아니냐, 폭로하겠다’는 뉘앙스였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윤씨가 김씨 형제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적어도 1981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이같은 협박에 소문이라도 날까봐 말한마디 못하고 1981년 이민을 가버렸다고 합니다.
1980년 전후 14억원은 그야말로 거액으로 경호실장 월급을 받아서 모을 수 있는 돈의 범위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월급이 60만원이었음을 감안해 차 전실장도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가정하면 월급을 몽땅 모아도 1년에 천만원을 모을 수 없습니다. 1억원을 모으는 데도 10년 이상이 걸리고 14억원을 모으려면 150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렇다면 이 돈의 대부분은 적법하게 모은 돈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차 전실장이 청렴결백의 대명사로 불리기는 힘듭니다. 합법적인 재산축적이라고는 보기 힘든 차 전실장의 돈이 사후에 미국으로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07.24 노무현 전 대통령 딸 노정연씨, 미국 콘도 구입에 사용했던 불법자금 140만달러 되찾았나?
경연희씨, 지난해 노정연 환치기 유죄확정 직후 ‘노정연 몫’ 435호 매도
2006년 130만달러 매입했다가 절반인 70만달러에 팔아
노씨에게 받은 매입대금 돌려줬거나 콘도를 자기가 챙겼을 가능성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가 경연희씨에게 사기로 했던 뉴저지주 허드슨카운티의 포트임페리얼콘도 전경 및 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로부터 백만달러를 환치기방식으로 불법송금받았던 경연희씨가 노씨 몫의 콘도를 지난해 봄 팔아치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경씨는 자신명의로 구입했던 2채의 콘도를 매입가의 절반에 매도한 것은 물론, 2채 모두 동일인에게 판 것으로 드러나 차명으로 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연희씨가 노정연씨에게 소유권을 넘기기로 계약했던 포트임페리얼 콘도 435호의 2013년 4월 26일 매도 내역.
경주현 전 삼성종합화학 회장의 딸인 경연희씨는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카운티의 포트임페리얼콘도 435호를 지난해 4월 26일 70만달러에 탄 앨빈씨와 종 리우씨에게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콘도는 경씨가 지난 2006년 7월26일 콘도건설사인 러너리버사이드웨스트홀딩사로부터 130만달러에 사들인 뒤 같은해 11월 16일 자신의 어머니인 한초자씨에게 지분절반을 1달러에 매도, 그동안 등기부상 두 모녀의 소유로 돼 있었습니다.
이 콘도 매도가격 70만달러는 경씨의 매입액 130만달러의 약 절반에 불과하고, 특히 노씨가 경씨에게 매입하기로 한 가격 220만달러의 약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것입니다.
/경연희씨가 사실상 차명소유했던 포트임페리얼콘도 400호의 2012년 8월 9일 매도 내역. 400호는 이 콘도에서 가장 큰 평수의 콘도다.
경씨는 또 435호 매도보다 8개월여 앞선 2012년 8월9일에도 자신이 사실상 차명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던 같은 콘도 400호를 75만달러에 탄 앨빈씨와 종 리우씨에게 매도했습니다. 435호보다 훨씬 큰 평수의 400호는 경씨가 435호를 매입한 날과 같은 날 그녀와 특수관계로 알려진 왕잉와씨와 공동명의로 151만5천달러를 주고 사들였다가 2007년 4월 25일 1달러를 받고 자신의 지분을 왕씨에게 넘김으로서 경씨의 차명소유로 알려진 콘도입니다. 이 400호 역시 매입가의 절반에도 약간 못미치는 가격에 팔렸고 공교롭게도 이 콘도 매입자가 435호도 사게 됩니다.
즉 콘도매입가는 281만5천달러, 매도가는 145만달러로 경씨는 136만달러의 손해를 보면서 동일인에게 콘도2채를 매도한 것이어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이 매입자가 경씨와 특수관계이며 사실상 경씨의 차명소유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경연희씨가 포트임페리얼콘도 435호를 2년 뒤 노정연씨에게 넘긴다는 2007년 10월 8일자 계약서, 계약서에 10월 5일이라고 타이핑돼 있으나 서명일자가 10월 8일이므로 계약일자는 10월 8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계약서는 노정연씨가 뉴저지를 방문, 엘리사 서라는 공증인 앞에서 서명했다.
노씨가 뉴저지주에 콘도를 구입하기로 하고 경씨와 논의를 시작한 것은 2007년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노씨는 지난 2007년 9월 뉴저지 콘도 계약금 명목으로 박연차 태광실업회장의 홍콩계좌로부터 왕씨의 계좌로 송금하는 방법으로 경씨에게 40만달러를 전달한데 이어 같은해 10월 8일 포트임페리얼콘도 435호를 2년 뒤에 경씨로부터 넘겨받는다는 계약을 체결했었습니다.
그뒤 노씨는 2009년 1월 중도금조로 환치기수법을 동원, 현금 13억원 상당, 백만달러를 경씨에게 전달했고 2009년 5월 노무현 비자금수사 때 뉴저지콘도 매입 의혹이 제기됐으나 노 전대통령의 자살로 수사가 중단됐었습니다. 그러나 2010년 10월 환치기 의혹이 구체적 증거와 함께 제기된 뒤 2012년 노씨는 불법송금혐의로 기소돼 12월 26일 징역 6개월형이 구형됐고 지난해 1월 23일 1심에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었습니다.
/노정연씨의 남편 곽상언 변호사가 2012년 3월 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캡처.
이때 노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2012년 3월 1일 노씨의 남편 곽상언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백만달러 환치기 등)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한들, 제 아내는 아비를 잃은 불쌍한 여인입니다. 이미 자신의 행위책임을 넘는 충분한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곽 변호사의 이 글은 ‘자식이 죄를 저질러도 부모가 사망하면 모든 죄가 사면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난과 함께 법조인으로서의 도덕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었습니다
곽 변호사의 이같은 인식은 노씨에 대한 1심판결 불복으로 이어져 1월 30일 항소장을 제출하고 2월 27일 박근혜 정부 초대총리로 지명됐다 낙마한 김용준 전 대법원장이 고문으로 있는 법무법인 넥서스를 고용, 항소이유서를 제출해 전관예우를 노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씨의 페이스북 글과 전관예우 노림수 논란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노씨는 3월 28일 항소를 자진 취하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최종 확정됐었습니다.
이같은 사실로 볼 때 경씨는 노정연 환치기 사건 수사가 진행중일 때 400호를 매도한 데 이어 노정연에 대한 형이 확정된 직후 한달도 안돼 노씨 몫인 435호를 허겁지겁 매도한 것입니다. 경씨가 노씨 몫의 콘도를 매도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노씨에게 받은 돈을 다시 돌려줬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지만 두사람의 돈거래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경씨가 노씨에게 받은 돈은 2007년 9월 최소 40만달러 이상, 2009년 1월 백만달러 등 확인된 것만 140만달러입니다. 경씨가 이 돈 중 일부를 노씨에게 돌려주는 대신 노씨 몫의 콘도를 팔았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만약 노씨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돈은 물론 노씨는 자신의 몫인 콘도까지 경씨에게 빼앗긴 셈이 됩니다.
노씨는 220만달러를 내고 435호를 넘겨받기로 경씨와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당초에는 더 큰 400호를 받기로 했으나 나중에 이보다 작은 435호를 받기로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에 비추어 노씨가 비자금이란 사실 때문에 경씨에게 약점을 잡혀 끌려 다녔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교롭게도 경씨가 두채의 콘도를 동일한 사람에게 매도했다는 점 등은 노씨에게 돈을 주지 않기 위해 콘도를 숨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130만달러에 산 콘도를 220만달러에 팔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경씨에게 유리한 계약이었고 지난해 매도한 금액과 비교하면 무려 3배나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경씨가 노씨의 자금이 불법 비자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씨의 약점을 잡고 바가지를 씌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연희씨가 코네티컷 카지노에서 거액을 잃은 뒤인 2009년 10월 8일 260만달러에 사들인 뉴저지주 허드슨카운티 소재 부동산의 매입 내역.
/검찰의 노정연 백만달러 환치기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2년 10월 8일 경연희씨가 사들인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2층 상가건물의 매입 내역.
한편 경씨는 이 두채의 콘도외에도 2009년 10월 8일 뉴저지주 허드슨카운티의 신축 고급주택을 2백60만달러에 매입했고, 2012년 2월 16일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포트리의 2층 상가건물을 1백51만달러에 사들였으며 현재도 소유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포트임페리얼 콘도 매입계약서에 기록된 경연희씨의 영문명과 서명, 소셜시큐리티번호일부, 이 2채의 계약서 등에는 모두 KYONG YUN HEE로 기록돼 있다
/경연희씨가 뉴저지주 허드슨카운티 부동산 260만달러 매입 관련 서류에 기재된 경연희씨의 영문명과 서명, 소셜시큐리티번호 일부. 경씨의 이름이 KYEOUNG YEON HEE로 기록돼 있다.
또 경씨는 콘도를 매입할 때는 자신의 영문이름을 KYONG YUN HEE로 사용한 반면 자신의 사업체인EVENTURE INVESTMENT CORP 설립 때와 고급주택 및 상가매입 때는 계약서에 KYEOUNG YEON HEE 라고 기록, 최소한 2개 이상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의 주민등록증격인 미국의 소셜시큐리티 번호도 2개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07.28 한국인 미국 방문객 8월이 최다, 2·3월이 최소
18년치 통계…올해는 150만명 돌파 예상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급감, 예년 수준 회복에 9년 걸려
10년간 317억달러 미국서 소비…5년 흑자에서 지난해 적자로
최근 3년간 평균소비액은 3300달러수준으로 2004년보다 적어
미국 방문객 중 한국인 숫자는 9위…소비액은 10위권 벗어나
한국인은 여름철, 특히 7월에 미국을 가장 많이 방문하며 2,3월 방문자가 가장 적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미국 상무부가 미국 출입국신고서(I-94)를 기준으로 발표하는 ‘미국방문 외국인관광객 통계’를 분석해 보니 지난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한국인은 7월에 미국을 가장 많이 방문했으며 예상외로 봄철 방문객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8년간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1415만7천여명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7월 방문객이 163만천여명으로 전체의 11.5%를 차지했습니다. 또 8월에 미국을 찾은 한국인이 155만4여천명으로 전체의 11%를 차지, 7월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습니다. 반면 3월 방문객은 92만8천여명에 불과, 전체의 6.56%에 그쳐 12개월중 최소를 기록했습니다. 4월은 93만8천여명으로 6.63%, 2월은 94만천여명으로 6.65%로 집계돼 사실상 2·3·4월이 큰 차이없이 각각 6.6% 정도로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7월에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많은 것은 휴가철에 자녀들이 방학을 시작하자 마자 미국을 방문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또 2월에서 4월까지 3개월간 가장 적은 것은 미 동부지역의 혹한 등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8년간 7월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해는 13년에 달했고, 8월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해는 1996년과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등 5년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지난해까지 5년 연속 7월 방문객이 8월 방문객을 앞서고 있어서 7월 방문이 대세로 자리잡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7월과 8월에 이어 한국인이 미국을 가장 많이 방문하는 달은 겨울방학인 1월로 지난 18년간 135만9천명, 전체 방문자의 9.6%를 기록, 6월 방문객 9.23% 보다 많았습니다.
또 특이하게도 2008년에는 7월과 8월이 방문객이 가장 많은 것과는 달리 8월에 이어 1월 방문객이 두번째로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2008년 1월 방문객은 약 8만5천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8만3천여명과 거의 비슷했으나 2008년 7월 미 대형투자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하기 시작함으로써 7월 방문객이 줄어든 탓에 8월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연도별 미국방문객은 지난 1996년과 1997년 75만명 수준을 기록하다 외환위기 여파가 본격화된 1998년 36만4천여명으로 무려 51%가 급감했고 2006년에야 75만명을 기록,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9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뒤 미국방문 한국인은 2007년 6.4% 증가하며 사상 처음으로 80만명을 돌파했으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2년간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2008년 11월 17일 미국 무비자 방문시대가 열렸음에도 2009년 입국자는 오히려 2% 줄었습니다.
그러다 2010년이 되면서 1년만에 49%가 급증하면서 110만7천명을 기록, 한국인 미국방문 백만명시대가 열렸고 그뒤 매년 증가하며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8.7% 늘어난 135만9천명을 입국했고 이같은 증가세가 지속되면 올해는 1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상무부 통계를 토대로 지난 10년간 한미간 관광수지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미국에서 소비한 돈은 316억8천6백만달러, 미국인이 한국에서 소비한 돈은 319억6천9백만달러로 한국이 2억8천3백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해마다 1억천만달러에서 3억6천만달러 적자였으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약 1억5천만달러 흑자를 기록한데 이어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화된 2009년에는 흑자가 약6억달러에 이르는 등 지난 2012년까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한국인의 지출액은 46억1천7백만달러인 반면, 미국인 소비액은 45억2천8백만달러로 한국이 8천9백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도별로는 2007년과 2009년 미국방문 한국인의 소비액이 줄었고 2010년 31% 급증한 뒤 지난 3년간 매년 9%에서 11%씩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2년간 미국방문 한국인이 약 9%씩 증가한 것과 정비례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같은 기간 미국방문 한국인의 1인당 소비액은 3420달러로 집계됐으며 최근보다는 2천년대 초반 소비액이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10년간 1인당 소비액이 가장 많았던 해는 2005년으로 3698달러를 기록했고, 2006년 3692달러, 2004년 3641달러에 달했습니다. 반면 지난해 1인당 소비액은 3395달러로 집계됐고, 2010년에는 3천백달러대, 2011년과 2012년에는 평균 3300달러대로 나타나 2천년대 초반보다 소비액이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평균소비액은 3677달러에 달한 반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의 평균소비액은 3336달러로 3백여달러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10년전과 비교하면 미국입국 한국인은 2.17배 증가한 반면, 소비액은 2.02배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1인당 소비가 줄어든 것은 한때는 미국 방문때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을 대거 사들이기도 했지만 한국이 발전함에 따라 미국과 대등하거나 더 나은 물건이 많고 사치품 구매도 줄이는 등 건전한 소비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2000년 소비액은 22억8천만달러, 2001년은 19억7천만달러, 2002년은 21억8천9백만달러, 2003년은 21억9천9백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또 2013년 기준 미국방문 외국인중 한국인은 전세계 9위를 차지했으나, 미국내 소비액은 10위권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6980만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캐나다가 2340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은 370만명으로 4위, 중국은 180만명으로 7위를 기록했습니다. 외국인의 소비액도 1807억달러에 달했습니다. 캐나다가 270억달러로 가장 많은 돈을 썼고, 일본은 방문자는 3위였지만 180억달러를 소비함으로써 소비액은 2위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