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의 귀거래사
■2016-03-11 JP의 귀거래사
머지않아 내 육신마저 버리고 떠나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악연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용서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부덕의 소치로 본의 아니게 고통을 국민 여러분께 드린 것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해 주실 것을 빕니다.”
▲『김종필 증언록』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10일 시루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와타나베 히데오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 김종필 전 총리, 정의화 국회의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 신경식 헌정회장. [사진 전민규 기자]
90세 노(老)정객의 연설에 청중들은 숙연해졌다. 여성 지지자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쳤다. 김종필(JP) 전 총리는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종필 증언록』 출판기념회에서 그렇게 ‘거인’의 퇴장을 스스로 선언했다.
JP, 증언록 출판회서 소회 토로
“머지않아 육신 떠날 시점 다가와
왜곡된 일부 역사 바로잡아 의미
정치, 국가적 어려움 소홀히 다뤄”
김 전 총리는 이날 그간의 소회를 원고에 적어 25분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증언록에 대해 “그간 잘못 알려졌거나 왜곡된 일부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았다는 데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반세기 전 혁명으로 세상을 뒤엎었던 역사적 빚을 갚았다는 홀가분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이 나라 정치는 한 시대가 저문 것 같다. 제 주변 전우들은 거의 다 세상을 하직하고 개발시대 정치인 중 나 한 사람 남아 있다”며 “아마 정치에 대해 한 말씀 하라고 아직 남겨준 것 같다”고 퇴장사를 시작했다.
그가 현실정치에 던진 마지막 조언은 공자가 남긴 ‘사무사(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나 못된 마음이 없어야 한다)’였다. 김 전 총리는 “우리 정치가 목전에 닥친 선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갖가지 산재한 국가적 어려움을 소홀히 다루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가 국민의 안녕을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들이 정치를 더 걱정하고 있다”며 “민의(民意)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해 ‘정치 똑바로 하라’는 (국민들의) 소리가 제 귀에도 들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관 없이는 올바른 정치관이 나올 수 없다. 국가관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거나 대통령 되는 꿈만 꿔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국민과 국가의 영생을 바란다면 작은 당리당략은 뒷전에 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뵙고 인사를 나누는 기회는 앞으론 없지 않나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도 금할 길 없다”며 “지난 세월 동안 고난을 감내하며 조국 발전에 땀 흘리며 함께해 주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엎드려 감사드린다”고 맺었다.
마지막 대중 연설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김 전 총리에게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곤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출판기념회에는 김 전 총리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듣기 위해 정계·재계·문화예술계 등 10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김 전 총리와 친교를 맺어온 나카소네 야스히로(98·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와타나베 히데오(渡邊秀央)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을 보내 축사를 전했다.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은 축사에서 “많은 회고록이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를 피해 가느라 평범하고 한가했지만 JP는 우회하지 않았다. 격동의 순간을 솔직하고 실감나게 증언해 과거 어떤 회고담보다 현장성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김 전 총리의 발언을 인용해 “권력의 정점부터 역경의 세월을 겪은 후 세상만사 이치를 터득해 이른 심오한 결론”이라고 했다.
글=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2015.04.22 "황태성은 큰 간첩 … 밀사 아니다" 50년 논쟁 결말
밀사(密使)냐, 간첩이냐’-. 황태성 사건의 50여 년 논쟁의 결말을 짓는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증언이 나왔다. JP는 21일 “북한 김일성은 5·16 혁명지도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과거 좌익 전력(前歷)에 주목했을 것”이라며 “황태성은 남북협상 밀사로 자처했지만, 김일성은 황태성에게 박정희와 나를 만나서 북한에 합류하도록 설득 공작을 해보라는 밀명을 내렸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황태성은 박정희 의장의 친형(박상희) 친구다. 황은 1946년 월북한 뒤 북한 무역성 부상(副相, 차관)을 지냈다. 황태성은 5·16 체제 출범 석 달 뒤인 61년 8월 말 휴전선을 넘는다. 당시 JP 부장의 중앙정보부는 황태성을 남파 50여 일 후 체포한다.
JP는 “김일성은 황태성의 공작이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거기(서울) 가서 죽으라는 뜻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며 “더구나 황이 밀사였다면 사전에 우리 쪽과 어느 정도 물밑 호응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일이 없었다. 그의 남파를 나는 체포 전에 몰랐다”고 증언했다.
김 전 총리는 “나는 황태성을 큰 간첩으로 취급했고 혁명 과업에 장애 요인이 된다고 판단, 그 문제를 빨리 없애버리려 했다”면서 “박정희 의장의 정체가 의심받을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JP는 “황태성이 남쪽에서 알아보려 했다는 영관급 군인의 남북회담 문제는 육군첩보부대(HID) 차원의 대북 제안일 뿐”이라며 “HID의 대북 제의·접촉은 중앙정보부나 혁명정부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나는 나중에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박보균 대기자, 한애란 기자 bgpark@joongang.co.kr
2015.04.27 한·일 협정 주역 JP, 아베에게 충고하다
올해는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된 지 50주년 되는 해다. 한·일 협상의 돌파구를 열었던 김종필(JP·얼굴) 전 국무총리는 26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의 할아버지·아버지 같은 전중(戰中)세대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아베 총리는 역사를 똑바로 보고 참된 마음으로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중앙일보에 한·일 협상 타결에 대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면서 일본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 문제를 격정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아베가 일본의 침략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미국 의회에 가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모양인데 역사는 아무리 덮어놔도 없어지지 않는다. 일본 국민들은 영지(靈智)가 많은 사람들이다. 아베 총리는 냉정하게 반성하면서 양국 발전을 위한 정당한 인식을 우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리는 “80년 전인 1930년대 일본 군부가 만주사변(31~32년)에 이어 중일전쟁(37~45년)을 일으키고 태평양전쟁(41~45년)을 벌일 때까지 국민들은 군국주의자의 전쟁론에 끌려다녔다.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행위에 이의 없이 끌려다니는 일본 사회의 기질(氣質)이 지금 다시 엿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전 총리는 10년 전 한·일 관계 40주년 기념 때 도쿄에서 1000여 명의 정·재계,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한 강연을 회상하면서 “강연 내용이 그때보다 지금 상황에 더 잘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JP가 회상한 강연 요지.
◆역사인식 공유의 필요성=“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인에겐 메이지(明治)의 원훈(元勳)이지만 한국인에겐 침략의 원흉(元兇)으로 불린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여러분의 영웅이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침략의 발상자다. 일본과 아시아 국가 사이엔 국경을 넘으면 영웅이 역도(逆徒)가 되고 역도가 영웅이 되는 그런 역사가 있다. 일본이 한국의 이해를 얻지 못하면 아시아와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이며 국제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오를 수도 없을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개선안=“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태평양전쟁 전범의 위패(位牌)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을 수 없을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요인들은 전범(戰犯·1978년 합사)들에 대한 참배가 아니고 애국자들에 대한 참배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전범들의 위패를 분리해 다른 곳에 수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전영기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05.04 JP “독도, 폭파하면 했지 당신들한테 줄 수 없어”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1962년 11월 12일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에게 “당신들이 무슨 소리를 떠들고 난리를 쳐도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독도를 폭파하면 했지 당신들한테 넘겨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3일 회고했다.
오히라와 중앙정보부장이었던 JP는 ‘대일 청구권 자금’을 의제로 도쿄에서 회담했다. 김 전 총리는 ‘한·일 회담 5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와 한 특별 증언에서 “오히라와 회담이 진행된 4시간 중 독도 문제로 대화했던 시간은 마지막 10분도 채 안 됐다. 오히라는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자고 주장했으나 나는 ‘독도는 의제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오히라는 국회에 출석해 자기가 독도 문제를 제기했다는 증거로 남기기 위해 내게 그 얘기를 꺼낸 것으로 추측했다”고 말했다.
65년 정일권 총리가 ‘독도는 미해결의 상태로 놔두자’는 내용의 합의문서를 일본 정부와 비밀리에 작성해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고, 그 밀약문서를 JP의 셋째 형인 김종락씨가 지니고 있었다는 이른바 ‘독도 밀약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김 전 총리는 “독도 문제를 ‘미해결의 해결’ 상태로 두자는 얘기는 일본 정치인 고노 이치로 의원이 했다. 정 총리가 이 말을 국내에 돌아와 전하는 과정에서 밀약설이 불거졌다. 종락 형님은 내가 잘 아는데 원래부터 그런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영기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2015-05-15 "팔방미인" 칭찬에 JP, "그냥 '잡놈'이야
피아노, 바이올린, 만돌린, 아코디언, 드럼.
JP가 연주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있는 악기들입니다. 지난달 JP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번 여쭸습니다. “도대체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몇 개나 되세요?” JP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는 악기 이름 다 대봐.”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피아노와 만돌린은 JP가 공주중학교 다닐 때 배웠다고 합니다. 일본인 음악 선생님한테 졸라서 방과 후에 따로 배웠다는 군요. 요즘 초등학교에 있는 방과 후 학습이 일제시절에도 있었던 셈입니다.
인간 JP를 설명하는 말과 글에서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다재다능’입니다. 혹자는 ‘르네상스 인간’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음악 뿐 아니라 서예, 회화, 바둑, 검도, 승마, 골프 등 예체능에 능합니다. 엄청난 양의 책을 읽은 독서가로도 유명하지요. 어느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JP처럼 키우고 싶지 않을까? JP의 교육법에 대해 책을 내면 팔릴 거 같은데?” 최근 만난 현대사를 전공한 교수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JP의 모든 게 궁금하다. JP가 일제시대에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게 다재다능한지도 궁금하다.” JP의 다양한 재능이 학문적 관심까지 불러일으키는 주제일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앞에 언급한 지난달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JP의 예술적 능력에 대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으시냐”고 감탄하듯 말했죠. 그러자 JP는 “그런 사람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미처 누가 대답하기 전에 씩 웃으며 본인 스스로 답을 해버립니다. “잡놈이라고 하는 거야.” 좌중이 모두 웃었습니다.
옆에 있던 보좌관 분이 “총재님, ‘팔방미인’이라고 표현합니다”라고 하자, JP는 “팔방미인은 무슨. 그냥 잡놈이야”라고 굳이 정정합니다. 스스로를 낮춰서 듣는 이를 즐겁게 하는 JP식 유머입니다.
[J플러스]
/1961.5.16 시청 광장 앞 장도영
/ JP와 육사 - 16.5.13 서울 공룡동 육사에서 2016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시상한 뒤 생도들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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