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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2021-03/ 03월 02일(화) 세계 청각의 날 - 03월31일(수) 택시 시장 독점

상림은내고향 2021. 4. 1. 17:43

오후여담 2021-03  문화일보

03월 02일(화)  세계 청각의 날

 

박현수 조사팀장


 매년 3월 3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청각의 날’이다. 난청 예방과 청각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관련 통계 등 다양한 자료를 발표하고 알리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WHO 발표에 따르면, 난청인은 세계 인구의 약 5%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이 청각손실 또는 난청과 같은 질환이 있는 청각 장애가 있으며, 청장년층에서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국내 병·의원에서 난청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9년 기준 약 61만 명이다. 10년 전에 비해 50%나 늘었다. 노인성 난청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지만 방치할 경우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다.

 

난청은 한번 걸리면 회복이 어려운 질환으로 평소 바른 생활습관과 주기적인 청력검사를 통해 예방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예방법으로는 이어폰·헤드폰 이용 시 너무 크게 듣지 않기, 술·담배 하지 않기, 스트레스 등을 조심해야 한다. 난청은 치매뿐만 아니라 우울증, 심혈관 질환, 당뇨병 등 여러 건강 문제와 연관돼 있다. 청각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역 등 해조류와 호두 등 견과류는 난청 예방에 좋다. 당근, 브로콜리, 시금치 등 녹황색 채소, 저염식·저칼로리 음식도 귀 건강에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지만, 특히 청각장애인들은 마스크 때문에 의사소통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마스크를 쓰면 입술의 움직임이나 표정을 알 수가 없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청각장애인임을 알았을 때,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몸동작이나 필담을 통해 어느 정도는 소통이 된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에 마스크를 쓰면 대화하기 어려운 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 방역 지침도 필요하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 중에 생물학적 난청이 아닌, 국민의 목소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정치적 난청 환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못 알아듣기보다 알면서도 자신들의 탐욕 때문에 귀를 막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정치적 난청 환자들이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진짜 난청 환자가 늘어날 것 같다.

 

03월 03일  빚쟁이의 빚잔치

 

황성규 논설위원


 기쁜 일이 있을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잔치라고 한다. 혼인이나 회갑, 돌 외에도 승진 등 잔치의 명분은 많다. 그런데 하객을 초대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잔치가 있다. 빚잔치다. 국어사전은 두 갈래로 풀이한다. 먼저, 부도나 파산 따위로 빚 갚을 능력이 없을 때 모자라는 재산이나마 채권자에게 넘기고 빚돈을 청산하는 일이다. 현물까지 동원해서 지고 있는 빚을 떨어내는 ‘빚떨이’ 다. 요샛말로 하면 개인파산 절차쯤 된다. 빚잔치의 두 번째 의미는 파산 직전 단계에 해당한다. 갚을 형편도 못 되는 주제에 분수 넘치게 빚을 끌어다 흥청망청 쓰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파산과 빚 증폭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진 단어가 빚잔치다.


빚이라는 말은 ‘잔치’와 만났을 때만 분화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가리키는 ‘-쟁이’란 말을 달고 나올 때는 양면성을 띤다. 본디는 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낮잡아 빚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빚을 진 사람을 낮잡아 이를 때도 빚쟁이라고 한다. 빚꾸러기와 같은 말이 된 것이다. 채권자도 채무자도 빚쟁이로 만드는 빚은 참으로 무서운 놈이다.


빚이 없으면 위험도 없다(Out of debt, out of danger.)는 서양 격언은, 병 없고 빚 없으면 산다는 우리 속담과 닮았다. 대통령도 ‘마음의 빚’이 있댔으니 발 뻗고는 잠 못 자겠다. 그런데 ‘가붕개’들은 범보다 무섭다는 빚도 잊고 잘 잔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 빚이 988조 원과 976조 원이란 사실을. 게다가 국가채무도 950조 원이 넘는다. 4차 지원금 15조 원 중 국채 발행 근 10조 원과 ‘따지지 마’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 28조 원은 별도다. 집권층이 제 주머닛돈 쓰듯 하지만, 선거철에 나랏빚 내서 매표(買票)하려는 짓이다. 경상도 속언(俗諺)을 빌리면 ‘방천 술로 낯내기’다.


방천 술은, 냇물 범람을 막기 위해 수리(水利) 계원들이 제방 공사를 할 때 마시기 위해 공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그 술을 행인들에게 권하면서 마치 제가 사는 듯이 선심을 쓰는 것이다. 정치꾼들이 내는 ‘술’은 제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공주(空酒)가 아니라 청구서가 나중에 날아오는 혈세주다. 그 공술에 취하면 빚쟁이 돼 빚잔치하는 건 시간문제다.

 

03월 04일  유엔에서의 호소

 

이도운 논설위원


 유엔 총회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종식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던 초 모에 툰 대사에 대한 찬사와 지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초 모에 툰 대사는 지난달 27일 총회에서 “나는 군부 아닌 아웅산 수지의 문민정부 대표”라며 “유엔은 군부에 대항해 조치를 취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민에게 안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초 모에 툰 대사는 연설 말미에 미얀마어로 “우리의 명분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미얀마 시위대가 쿠데타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 총회에 참석한 각국 외교 사절은 큰 박수를 보냈다. 미얀마 군부는 대사직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유엔에서는 내가 합법적 대사”라며 “능력이 닿는 만큼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꼭 10년 전인 2011년 2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긴급 발언 기회를 얻은 압델 라만 샬감 리비아 대사가 “리비아를 살려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민주화 시위가 퍼져 나가던 시기였는데,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원수의 지시로 평화적인 시위대에 무차별적 발포가 자행돼 1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회의를 주재하던 반기문 사무총장이 샬감 대사를 포옹하고 “대사의 뜻을 국제사회가 잘 알고 있고, 리비아 국민을 위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다른 안보리 이사회국 대사들도 모두 샬감 대사에게 다가가 격려했다. 이틀 뒤 유엔 안보리는 카다피와 그 자녀 및 군·정보기관 등 핵심 측근에 대한 여행 금지, 해외자산 동결을 골자로 한 강경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특히 시위대 총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즉각 조사에 착수토록 요구하는 내용을 결의에 포함시켰다.


앞으로 10년 뒤, 2031년 2월 유엔 총회·안보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독재자에게 탄압받는 나라의 대사가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 구원을 호소할 수 있다. 중동,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까지 어느 대륙의 나라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 최악의 경제 파탄, 인권 탄압에 시달리는 2500만 주민을 구원해 달라며 북한 대사가 손을 드는 것은 아닐까.

 

03월 05일  ‘뗏목’ 버린 바이든

 

이미숙 논설위원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 공약은 집권 후 청사진을 담은 것이지만 당선 후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약속이라고 보긴 힘들다. 눈앞의 승리를 위해 부풀려진 게 많아 당선 후에는 현실 정치에 맞춰 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가에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이른바 뗏목론이나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두고 가야 한다’는 나룻배론이 회자된다. 뗏목이나 나룻배는 선거 공약을 의미한다. 공약과 현실 정치 사이엔 괴리가 크기 때문에 공약에 집착하면 국익이 훼손 되고 정치가 망가지니 버릴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 1호 공약인 최저임금 2배 인상안을 포기했다. 상원이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안 심의 때 최저임금 인상안을 삭제하자 “실망스럽지만 의회와 최선의 방안을 앞으로 협의해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선에서 수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현재 7.25달러인 시간당 연방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5년에 걸쳐 15달러(약 1만7000원)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진보 진영의 요구를 민주당 당론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취임 후 의회예산국이 “최저임금 2배 인상 시 9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반대하자 실용적 선택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레반보다 더한 원리주의적 자세로 최저임금 인상과 탈원전 등 대선 공약을 밀어붙이고 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충고가 이어졌지만 무시했다.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강행하면서 원전의 경제성을 조작하는 등 불법·탈법도 자행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약을 강행하겠다는 태도다. 청와대의 호위무사 격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월성 1호기 폐쇄는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이라고 강변했다.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해서 탈원전 등 공약까지 지지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문 대통령 대선 득표율은 41.1%였다. 윤의원 논리를 따르더라도 공약 지지율은 50%도 안 된다. 잘못된 공약은 폐기해야 한다. 단칼에 ‘뗏목’을 버린 바이든 대통령의 실용정치를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국익에 앞세우는 행위는 멈춰야 한다.

 

03월 08일(월) 묘수 세 번이면 진다

 

문희수 논설위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일(4월 7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사전선거(4월 2∼3일)는 더 가깝다. 각 정당의 후보들이 속속 확정되면서 선거전도 본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정책 선거와는 멀다. 대부분 인기에 영합한 공약들이어서 꼼수 등의 비판이 나온다. 정치에서 유독 바둑 용어가 많이 쓰인다. 득표(집수)를 다투는 공통점 때문인 것 같다. 꼼수도 바둑 용어다. 상대를 속인다는 뜻이 있다. 함정수도 비슷하다. 상대 실수를 노리기 때문에 정수로 대응하면 무너진다.


악수도 있다. 꼼수·함정수가 의도적인 데 비해 악수는 의도보다는 실력 부족으로 두는 손해수를 뜻한다. 그래서 하수일수록 악수가 많다. 자충수는 자기 공배를 메워 불리함을 자초하는 악수를 말한다. 무리수는 과수라고도 하는데, 욕심을 내는 탓에 대부분 손해로 귀결된다. 반대로 묘수도 있다. 상대가 생각하지 못한 좋은 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묘수를 세 번 두면 진다’는 격언도 있다. 얼마나 불리하면 머리를 쥐어짜서 한 판에 묘수를 세 번이나 두겠느냐는 의미에서다. 신수도 있다. 유능한 정치 신인이 귀한 것처럼 꼼수 아닌 정수로 인정받는 신수 역시 드물다. 승부수도 정치에서 자주 쓰인다. 형세가 박빙이거나 불리할 때 역전을 위한 돌파구를 모색하는 수인데, 대개는 무리수다. 형세를 망치는 실착도 있다. 후보자의 실언, 구설수 등으로 지지도가 떨어지는 경우에 통할 수 있겠다. 약간 무리하지만 기합, 용기를 발휘한다는 뜻으로 ‘기세의 한 수’라는 말도 있다.


바둑은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 입으로 하는 말 없이, 서로 두는 한 수 한 수로 대화한다는 뜻이다. 정석은 흑과 백의 정수들을 일련의 수순으로 연결한 것이다. 한쪽이 유리하지 않아야 정석이다. 좋은 바둑은 좋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바둑은 초반 포석, 중반 전투, 후반 끝내기로 이어지는데 순리를 따라야 이길 수 있다. 정수만 둬서 이긴 바둑을 명국이라고 한다. 바둑 전문기사는 명국 한 판 남기는 것을 일생의 꿈으로 여긴다. 승부를 떠나 예(藝)나 도(道)를 추구하는 멋이 있다. 그렇지만 최근엔 높은 승률만 따라가는 인공지능(AI) 바둑이 확산 추세다. 바둑 최고수는 9단인데, 한국 정치엔 정치 9단이란 말은 있어도 명국은 없다. 바둑도, 정치도 승리로만 향해 간다.

 

03월 09일  ‘부패완판’ 족집게 예측

 

이현종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기 전 대구지검 방문 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하는 것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예정지역 투기 의혹 사건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1989년 1기 신도시(분당·일산) 조성을 전후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자 노태우 정부는 1990년 2월 검찰을 중심으로 합동수사본부를 설치,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 명을 적발해 987명을 구속했다. 공직자 131명이 금품수수와 허위문서 작성, 10명이 아파트 부정 당첨 혐의로 구속됐다. 이어 2003년 2기 신도시(김포·검단) 당시 노무현 정부는 역시 검찰을 축으로 합수부를 꾸려 공무원 27명 등 투기 사범을 처벌했다. 2005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검사로 있었던 윤 전 총장은 파주 운정지구 투기 의혹을 직접 수사해 업체 대표 등 5명을 구속한 바 있다. 윤 전 총장은 “조사로 시간을 끌면 증거가 인멸될 우려가 크다”며 “토지 등기부 등본에 나와 있는 사람을 불러 조사할 게 아니라 투자 가치가 큰 땅과 관련해선 돈의 흐름을 추적해 실소유주를 밝혀내야 한다”고 수사의 노하우를 밝혔다. 직원과 가족 등의 소유 여부를 전수조사하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는 실명이 아닌 차명으로, 보상가만 받을 수 있는 개발 지역이 아닌 땅값 상승 여력이 큰 주변 지역에 투기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LH 사건에 정작 노하우가 많은 검찰과 감사원을 배제한 것은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6대 범죄에 한정했는데 이번 수사를 검찰에 맡기면 기를 살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 중 정권 실세라도 등장하면 걷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수사 경험이 없는 경찰에 전적으로 맡겼다가 ‘잔챙이’ 몇몇 잡고 만다면 ‘봐주기 의혹’으로 내년 대선까지 악재가 될 수 있다. 김경율 회계사는 “변죽만 울리다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전 총장이 ‘부패완판’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상황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은 투기 이득을 고스란히 지키며 발 뻗고 자고, 국민은 분노하는 세상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03월 10일  천성산과 가덕도, 지율과 文

 

이신우 논설고문


 지난 2003년 지율 스님은 고속철도 공사로 천성산의 도롱뇽이 죽게 됐다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도롱뇽을 위한 단식투쟁을 벌였다. 한 번에 평균 40여 일씩이었다. 그해 10월에는 환경단체들과 힘을 모아 울산지법에 고속철도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래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식 농성장을 아예 청와대 앞으로 옮겼다. 법원의 가처분소송 패소 결정이야 있건 말건 공사를 중단하라는 협박이었다. 정부가 정녕 고속철 공사를 강행하려거든 천성산을 우회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성산을 우회할 경우 더 큰 자연 파괴를 각오해야 했다. 천성산 주변 지역에 사는 맹꽁이·금개구리·남생이·까치살무사 등 다른 생명들이 대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도롱뇽과 달리 모두 자연환경보전법상의 보호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는 오로지 도롱뇽만 살려야 한다며 정부와 민간 건설사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이들 ‘선택적 자연보호론자’로 인해 경부고속철 공사는 장기간 중단됐고 그에 따른 건설사 피해액은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했다.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은 단식 현장을 찾아가 지율 앞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눈치를 살펴야 했다.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하지만 공항 예정 부지는 현행 환경법상 개발이 불가능한 곳이다. 생태 자연도 1등급만 6곳이나 자리 잡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179호인 철새도래지는 물론 곰솔군락·동백군락 등 자연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 대부분이다. 가덕도 일대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자주 눈에 띄는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경부고속철 공사 때 그토록 시끄럽던 환경단체들 누구 하나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반대 시위가 없으니 무릎 자세로 눈치를 살펴야 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얼굴을 내비칠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덕도 현장을 찾아가 생태계 보호에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공항 건설에 의지를 가지라”고 다그친다. 호기롭다. 눈치 보지 말고 밀어붙이라는 뜻이다. 옛날 도롱뇽 단식투쟁 때 지율 스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치 보기에 바빴던 그 수석비서관이 바로 지금의 문 대통령 아니던가.

 

03월 11일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김종호 논설고문


‘수줍은 별들이/ 눈 부신 태양이/ 끝없이 빛나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였을까/ 몰아치는 태풍이/ 분노하는 화산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야 함은/ 그들의 선택이었을까/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넘쳐나’. 평론가들이 “기존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만의 소리와 영혼으로 노래하며, 듣는 사람의 가슴을 때리고 적시는 가수”라고 하지만, “나는 ‘틀에 갇히지 않는 가수’ 틀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고 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승윤(32)의 ‘지식보다 거대한 우주에는’ 일부다. 2013년 첫 싱글 앨범 ‘오늘도’를 발표한 그가 2015년에 내놓은 세 번째 싱글 앨범 타이틀 곡이다. 2016년 정규 제1집 ‘무얼 훔치지’에도 담았다.


‘방구석 음악인’을 자처하며 시적(詩的)·철학적 노래를 작사·작곡해 부르는 그는 배재대 공연영상학부에 재학 중이던 2011년 MBC 대학가요제에 자작곡 ‘없을 걸’로 출전했고, 그 이듬해에 밴드 따밴을 결성해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현재는 독자 활동과 스페인어로 ‘날개 모양 노래’라는 뜻의 밴드 알라리깡숑 활동을 병행하는 그는 록·발라드·포크 등의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울 노래를 만든다. ‘무명성(無名星) 지구인’의 한 대목은 이렇다.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또 다른 명곡 ‘달이 참 예쁘다고’는 ‘밤하늘 빛나는 수만 가지 것들이/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잔해라면/ 고개를 들어 경의를 표하기보단/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웅큼 집어 들래’ 하고 시작한다. 마지막엔 ‘영원히 노를 저을 순 없지만/ 몇 분짜리 노랠 지을 수 있어서/ 수만 광년의 일렁임을 거두어/ 지금을 네게 들려줄 거야/ 달이 참 예쁘다고’ 한다.


무명가수 대상의 JTBC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에서 지난 2월 9일 최종 우승한 그가 다른 입상자들과 함께 갖는 전국 순회 첫 공연이 오는 19∼21일 서울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다. ‘새벽이 빌려준 마음’ ‘허튼소리’ ‘영웅 수집가’ ‘날아가자’ 등 ‘이승윤 장르’의 명곡을 육성으로 들으며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경험하는 현장일 게 분명하다.

 

03월 12일  광화문 광장 수난

 

박현수 조사팀장


 광화문은 경복궁 정문보다는 세종대로 일대를 통칭하는 지역명으로 익숙하다. 조선 건국 이래 지금까지 ‘정치 1번지’로 통하는 대한민국 심장부다. 조선 시대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와 삼군부, 육조거리였다. 지금도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미국대사관, 주요 언론사가 있다. 정부역사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 교보문고가 있는 ‘문화 1번지’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광화문 광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했으나 노무현 정부가 반대했다. 그러다 2009년 오세훈 시장 때 만들어졌다. 이후 2016년 고 박원순 시장이 재구조화에 나섰다가 반대 여론에 밀려 중단됐다. 시민의 휴식 공간이라는 취지와 달리 주말마다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 1번지’로 이용됐다.


서울시가 지난 6일 광장 서쪽 도로를 폐쇄하고 재조성 사업을 강행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불과 한 달 남겨 놓고 곧 그만둘 시장 권한대행이 공사를 강행함에 따라 비판이 거세다. 중대한 사업 결정을 새 시장에게 넘기지 않고 임시직 관리자가 집행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9개 시민단체도 791억 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공사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말 서울행정법원에 사업 무효 소송을 내놓은 상태다.


차기 서울시장에 유력한 박영선·오세훈·안철수 후보도 공사 강행에 부정적이다. 새 시장이 선출되면 공사를 중단할 가능성이 커 혈세 낭비에 교통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또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를 광장으로 바꾸면 광장 중앙에 놓여 있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광장 오른쪽 길옆으로 밀려나게 된다. 왕복 10차로가 7차로로 줄면서 광화문 일대 교통체증이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단체 등과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며 강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극심한 교통난으로 많은 시민이 불편을 호소하는 데도 무리수를 두는 배경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오죽하면 4·7 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 시위가 잇따르자 이를 막기 위해서라는 얘기까지 들릴까. 새 시장이 시민 의견을 듣고 백년대계 차원에서 결정하도록 당장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03월 15일(월) 대통령 분노의 정치학

 

이도운 논설위원


 중국 3국 시대. 형주를 지키던 촉(蜀)나라 관우가 오(吳)나라 여몽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절명하고 전략적 요충지도 잃자, 촉 황제 유비는 대로(大怒)해 오나라를 공격했다. 승상 제갈량이 거듭 말렸지만, 의형제와 영토를 잃은 유비는 듣지 않는다. 결국 유비는 오나라 육손의 화공에 대패하고 피신한 백제성에서 목숨까지 잃었다.


1971년, 베트남전 발발과 전개 과정의 추악한 이면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잇달아 보도하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반역 행위로 고발했다. 비판적 언론은 적으로 몰아갔다. 닉슨은 결국 이듬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사퇴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의 분노는 국정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해왔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을 통해 비판하자 크게 화를 내며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듬해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유 원내대표 낙천, ‘진박’ 공천 욕심을 부리다, 선거에서도 지고 결국 탄핵까지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분노 표출이 많았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격려금 회식에,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보고에,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의 정규직 전환 대책 비판에 격노했다. 정부가 172억 원을 들여 문 대통령 기록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보도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거론했다는 이유로도, 세월호 수색 중 손목뼈를 수습하고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을 때도 진노했다. 공식 발표된 분노만 10차례가 넘는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미 알고 있었거나, 법원 등을 통해 문제가 없다고 드러난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는 사저 형질 변경 논란을 놓고 화를 내고 있다고 한다. 퇴임 대통령 사저를 짓기 위해 농지를 대지로 변경한다면 어느 국민이 문제를 삼겠는가. 그걸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문 대통령이 11년간 영농인이었다고 우기면서 농지를 취득한 청와대 대응이 화를 자초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의 잦은 분노에 국민이 화가 날 지경이다.

 

03월 16일  디지털 화폐 對 가상화폐

 

문희수 논설위원


 코로나 여파로 돈의 수명이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5만 원권 수명은 174개월로 전년보다 12개월 길어졌다. 비대면 거래 증가 속에서 모바일 결제 이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지폐를 대체할 디지털 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도입을 추진 중이다. 디지털 화폐는 수명이 사실상 무제한이고, 편리한 거래와 함께 비자금 등 불법 사용을 막는 이점이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 주요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이 잇따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상화폐)를 경고해 주목된다. 화폐가 아니라 투자 대상이라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위험한 투기자산’이라고 지적했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내재가치가 없다’며 가세했다.


화폐는 거래·결제 수단이자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다. 그런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그 자체의 가치가 급변동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평가한 사물의 가치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가치 척도 수단이 못 되니, 화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액면가에서 화폐 제조비용과 유통비용을 제외한 가치’ 즉 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 문제가 있다. 당연히 공인 화폐, 즉 법화(法貨)는 제조비용보다 액면가가 훨씬 높다. 5만 원권이 제조비용보다 높은 5만 원의 가치를 갖는 것은 중앙은행(국가)이 공인했고, 국민이 그 공인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시뇨리지는 중앙은행만이 가질 수 있다. 반면 암호화폐는 누가 얼마나 발행하는지조차 모른다. 중앙은행이 공인하지도 않았다. 테슬라 같은 민간 업체가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그들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암호화폐가 법화의 대안처럼 등장한 것은 세계 경제위기를 거치며 미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기축통화들이 남발돼 권위가 실추된 탓도 있다. 중앙은행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모바일 결제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에 적극적인 것은 미국, 유럽 등을 제치고 세계통화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은은 디지털 화폐 준비가 늦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빠른 게 전부가 아니다. 새 돈이 나와도 쓸 줄 모르고, 이체·보관·저장이 어려운 사람이 많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03월 17일  투키디데스 함정의 ‘함정’

 

이미숙 논설위원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미국 하버드대 벨퍼 국제문제연구소장을 지낸 원로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2017년 펴낸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원인을 신흥 세력 아테네와 기존 지배 세력 스파르타의 갈등에서 찾은 것처럼, 앨리슨도 신흥 강국 중국과 기존 패권국 미국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엔 미국이 떠오르는 중국과 갈등하지 말고 협력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앨리슨 저서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후 미국 패권 쇠퇴론이 확산되는 와중에 출간됐다. 지난 1월 파이낸셜타임스 독자편지란에는 ‘트럼프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일관성 없게 대응한 결과 미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한 유럽연합 집행위 간부 출신 인사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예정된 전쟁’에 자신감을 얻은 듯 중국은 공세적이 됐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주석 3연임 금지 규정을 없앨 때 내건 명분도 위대한 중국몽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약속이었다. 중국 군부도 투키디데스 함정을 애용한다. 쉬치량(許其亮)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지난 5일 전인대에서 국방비 증액을 강조하면서 “투키디데스 함정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미·중이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앨리슨의 학자적 선의가 시 주석에겐 권력 연장 논리로, 중국 군부엔 군사력 강화 논리로 악용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는 지난 2일 상원 청문회에서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이 대중(對中) 순응론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중국과 충돌하는 것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논리가 미국의 대중 대응을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정된 전쟁’ 출간 후 하버드대 안팎에선 “앨리슨이 위안화 단맛에 빠져 친중적 책을 썼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워싱턴에선 이제야 그 실체를 파악한 셈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문재인 정권 인사들이 주장하는 ‘뜨는 중국, 지는 미국’론의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깔린 함정을 간파하고 정면 승부에 나서는데 문 정권은 끝까지 친중 미몽에서 헤맬 모양이다.

 

03월 18일  親정권 공직자 ‘보호처’

 

이현종 논설위원


 지난 1995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당시 서초동 대검 청사에는 삼성, 현대, LG, 동아그룹 등 국내 그룹 순위 1, 2, 3위와 15위 기업의 총수가 한꺼번에 소환 조사를 받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취재진은 물론 대기업 총수들 수행원 등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앞서 노 전 대통령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어떤 권력자도 포토라인을 비켜 갈 수 없었다. 전직 대통령이 소환돼 조사를 받더라도 중수부 과장이 조사 전 차 한잔 대접하는 것 이상 특혜는 없었다.


어느 유명 인사는 중수부 조사를 받다가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식사한 식판을 직접 치우라는 말을 듣고 ‘멘붕’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생전 직접 식판을 치워본 적이 없는데 검찰의 의도된 ‘심리전’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 재벌 총수는 갖은 이유를 들어 외부에서 조사받겠다고 검찰에 집중 로비를 했지만 “조사는 검찰청사에서 하는 것”이라는 검찰의 방침에 어쩔 수 없이 출석한 전례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시절 포토라인이 폐지돼 이젠 기업 총수나 고위층의 검찰 출두를 국민이 볼 수 없게 됐다. 포토라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상징하는 것인데 인권 보호라는 이유로 없어졌고, 1호 혜택을 조 전 장관 일가(一家)가 누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발족하면서 검·판사와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이 잔뜩 긴장했지만, 초대 김진욱 처장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공수처가 출발부터 피의자들의 ‘보호처’가 될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 처장은 16일 국회에서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의 피의자인 이 지검장을 일요일인 지난 7일 이미 조사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거듭된 출석 요구를 거부하던 이 지검장은 사건을 공수처로 넘겨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를 넘겨받은 김 처장이 이 지검장의 면담 요청을 받고 만났다고 한다. 물론 포토라인도 없었다. 야당 의원의 질의가 없었더라면 묻혔을 것이다. 김 처장은 70분 동안 기초 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면담록도 없다. 검찰로 치면 피의자가 일요일 날 검찰총장을 만나 차 한잔하면서 환담했다는 얘기다. ‘황제 조사’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한 이 지검장이 받은 셈이다. 공수처 앞날이 뻔하다.

 

03월 19일 코로나 진단 비용

 

이신우 논설고문


 지인에게서 들은 내용이다. 교육 입소 며칠 전, 담당 기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필히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병원이나 보건소 진단서를 지참하라는 내용이었다. 지인이 김포시 소재 2차 종합병원에 전화 문의를 하자 병원 측에서 진단 사유부터 물었다. 지인은 교육 과정 입교 전에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기관이나 시설에 검사 결과를 제출할 목적이라면 16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해 “그냥 불안해서 받는 거라면 얼마냐”고 묻자 “병원 진찰료만 내면 된다”고 했다. 지인이 “그럼 통상적인 검사를 받는 것으로 하고, 검진 확인서를 떼 주면 안 되냐”고 되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병원 관계자는 “진찰료만 내면 그렇게 해드릴게요”라고 답했다. 진단확인서는 플러스 1000원.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요즘에도 확진자 수는 여전히 하루 평균 400∼500명에 달한다. 확진자가 이 정도면 밀접 접촉자나 확진자가 다녀갔던 건물·음식점 등 같은 장소를 방문했던 감염 의심자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결국, 이들 모두 검사를 받아야 하니 진단 수요는 폭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병·의원이나 보건소 등에 따라 진단 비용이 천차만별이라 혼란을 키운다. 심지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지경이다. 필자가 경험한 서울 강북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입원예정 환자가 1만2000원이고, 확진자 또는 감염 의심자와의 접촉자는 3만6000원, 순전히 개인 차원의 경우 16만 원을 받는다.


물론 보건소와 선별진료소는 무료라지만, 증상이 없으면서 개인적인 불안을 이유로 댈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보건소에서 SNS를 통해 검사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건강보험이 적용돼 무료다. 덕분에 최근 9만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꺼번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서울, 경기 지역 선별진료소들이 터져나갈 지경이라고 한다. 심지어 22일까지 검사를 받지 않을 경우, 최대 300만 원의 벌금을 내라는 바람에 혼잡에 의한 감염 가능성마저 키우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쯤 종식될지 전망조차 서지 않는 시점이다. 진단 비용 같은 가장 기본적인 방역 항목이라도 제대로 정비하면 어떨까.

 

03월 22일(월) 김민정 화백 ‘타임리스’

 

김종호 논설고문


 수명이 1000년을 넘는 한지(韓紙)에 ‘천 년 묵향(墨香)’의 먹을 찍어, 가운데를 촛불이나 향불로 태운다. 또는 본래의 색이거나 채색한 한지를 길게 잘라 가장자리를 태우다가 불을 끈다. 그렇게 반복해서 불의 흔적인 선(線)이 다양하게 변주된 한지 조각들을 넓은 한지 위에 조화롭게 배치해, 풀로 붙이거나 겹치게 한다. 프랑스 생폴드방스에 화실을 두고 미국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화가로, ‘동아시아 지역의 예술적 유산인 지필묵(紙筆墨) 문화’를 서양의 추상미술 조형어법과 접목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김민정(59)의 작업 방식이다. “한지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라는 그는 한국화의 기초인 선을 탐구하는 과정에 수묵(水墨)으로 음악의 리듬감을 표현하다, 한지를 태우면서 “붓으로 그려서는 다 표현할 수 없던 선을 만났다”고 한다.


음과 양, 윤회 등 동양철학의 사유(思惟)를 조형화하는 그는 한지를 태울 때면 미세한 움직임도 절제하며 숨을 고르게 쉬고 몸의 리듬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지나치게 타 버리지 않도록 불을 끄는 시점도 중요하다. 그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집중하는 것은 ‘나’를, 에고(ego)를 지우는 일이다. 극단의 집중력·인내력·정성으로 1㎜쯤씩 한지를 태우며 나는 시간의 흐름도, 마음속의 번뇌도 잊는다. 굴곡진 삶도 비로소 평화를 찾는다.”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며 영원성에 이르는 수단인 한지를 태우는 파괴적 행위와 중단을 반복하는 창작 활동이 ‘참선이나 명상을 하는 수행의 길’이라는 취지다.


홍익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미술학교에 입학한 뒤 현지에 정착해, 프랑스 파리로 옮길 때까지 20년 넘게 살았다. 세계적 작가로 명성을 떨치는 그의 작품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내 작업은 선(禪)과 도(道)의 시각화”라고도 하는 그의 대표작 30여 점을 선보이며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2월 19일 시작한 전시회 ‘타임리스(Timeless)’가 오는 28일 끝난다. 연작 ‘비움과 채움’ ‘산(Mountain)’ ‘거리(Street)’ ‘물’ ‘커플’ ‘타임리스’ 등을 통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당장 봐야 할 심오하게 아름다운 작품들’이라고 평가한 이유도 느끼게 하는 자리다.

 

03월 23일 로봇 탄생 100년

 

박현수 조사팀장


 로봇이 인간 세상에 등장한 지 100년을 맞았다. 1921년 체코 프라하의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연극 ‘로섬의 만능 로봇’을 통해 로봇이란 단어가 탄생했다. 노예, 고된 일이라는 뜻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온 말이다. 초연 2년 만에 영어를 비롯해 30개 언어로 번역되는 대성공을 거뒀다. 우리나라에도 1925년 소설가 박영희가 ‘인조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개벽’지에 소개했다. 연극 속에 등장한 로봇은 노동 능력은 인간보다 뛰어나지만, 감정과 지능은 갖지 못한 인조인간이다. 그러나 학습을 통해 지능이 발달하면서 결국 인간과 맞선다는 줄거리가 오늘날 상황과 흡사해 흥미롭다.


1961년 제너럴모터스(GM) 자동차 조립공장에서 처음 로봇팔이 등장한 이래 로봇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하면서 눈부신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1’에서 삼성전자 로봇청소기 ‘제트봇 AI’는 최고의 제품으로 꼽혔다. 또 현대자동차는 지난 2월 로봇공학 기술을 이용한 걸어 다니는 무인 모빌리티 ‘타이거’를 선보였다. 특히 이동형 화성 탐사 로봇 ‘퍼시비어런스’ 등은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어 맹활약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AI 로봇 활용은 전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지나온 100년의 발전 속도를 능가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일자리의 미래 2020’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행정·사무 분야를 중심으로 약 8500만 개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학자들은 AI와 로봇에 의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에서도 2027년 인공지능 등 로봇에 의해 대체 가능한 국내 직업군은 전체의 52%나 된다고 예측했다.


그런데 대체 분야로 정치인과 공직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과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탐욕에 따른 부동산 투기를 포함한 최근의 파렴치한 행태를 보면 공감이 간다. 악취가 진동해 구역질이 날 정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과 지역 공무원까지 가담한 총체적 부패인데도 ‘윗물은 맑다’는 어느 정치인의 인식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정치 혐오를 느낀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03월 24일  눌인과 ‘떼떼’

 

황성규 논설위원


 지금도 막걸리를 보면 그 아이 ‘걸구’가 생각난다. 40년 전, 속리산 문장대로 가는 초입의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주막집의 잔심부름꾼…. 열대여섯 살쯤 됐을까. 해맑은 미소에서 어리숙한 순진함이 묻어나는 깡마른 소년이었다. 손님이 주문하면 재바르게 집 뒤를 흐르는 계곡으로 달려가 물속에 담가둔 술병을 들고 와서는 술상 앞으로 내민다. 그러면서 “마마마ㅁ마막 막걸리요” 한다. ‘막’이란 첫음절이 완성되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말을 더듬는 구어(口語)장애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여름 걸구의 막걸리는 참으로 시원했다.


구음장애라고도 하는 구어장애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신경 손상, 마비 또는 근육의 경직 따위로 인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언어장애를 딛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도 있다. 조선 시대 서예가 조광진(1772∼1840)이 대표적이다. 추사 김정희는 ‘일찍이 압록강 이동에는 없었다’고 그의 글씨를 극찬했다. 그는 말더듬이 심했다. 그래서 스스로 호를 ‘눌인(訥人)’이라고 했다. 말 더듬는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 더듬을 눌(訥) 자는 ‘말(言)이 안(內)에 있어 나오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회의문자다. 말이 어눌한 사람을 우리말로는 말더듬이 또는 더더리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더듬바리니 떼떼바리라고 하기도 한다. 일본어로는 도모리(どもり)라 하고, 중국어로는 커우츠(口吃) 또는 제바(結巴)라고 한다. 어눌하다나 말더듬이 같은 말은 자신에게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남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자 인격을 훼손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북한 김여정이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면서 ‘판별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떼떼’라느니 철면피, 미친개 등의 상말로 우리 정부 당국자를 비난하는 담화를 내놨다. 1월 13일 특등머저리란 비속어에 이어 나온 떼떼는 ‘말 더듬는 바보’라는 뜻을 가진 방언이다. 특히, 북한이 1980년대에 제작·방영한 TV 극에서 말을 많이 더듬는 국군 병사를 떼떼라고 놀려댄 이후 주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인격 비하 용어까지 동원해 대남 적개심을 부추기는 선동술이다. 그래도 ‘특등머저리’들은 대꾸 한마디 않는다.

 

03월 25일  볼더의 총성

 

이도운 논설위원


 미국 동부에서 서쪽으로 펼쳐지는 대평원은 중부를 거쳐 로키산맥까지 이어진다. 대평원과 로키산맥이 만나는 지역이 콜로라도주이고, 로키산맥의 첫 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볼더(Boulder)라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볼더는 미국인들이 한 번씩은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오즈가 이 세상에 있다면 그곳은 볼더”라는 말도 있다. 해발 1633m의 ‘마일 하이’에 1년 중 300일 이상 맑아 쾌적하다. 루슨트 테크놀로지·선마이크로시스템 등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탄생했고, 최근에는 바이오 벤처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큰돈을 번 젊은 억만장자들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옮겨오기도 한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이후에는 교포들이 볼더 인근 오로라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기도 했다.


볼더는 기본적으로 대학 도시다. 로키산맥 첫 산의 이름이 플랫 아이언인데, 그 산 아래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콜로라도주립대의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콜로라도는 인디언 말로 붉은 땅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산맥이지만, 오래전에 바다였기 때문에 땅과 돌이 산화돼 붉은색을 띠고 있다. 그 붉은 돌로 캠퍼스를 지었다. 이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하는 등 학문적 평판도 높지만 주말이나 방학, 휴가철에는 학생들이 미친 듯이 노는 ‘파티 스쿨’로도 유명하다. 도시의 중심인 학교의 영향을 받아 볼더 전체가 아름답고, 평화롭고, 똑똑하고, 안전한 곳으로 미국인들에게 인식돼 왔다.


그런 볼더에서 피를 부르는 총성이 울리고 말았다. 콜로라도주립대 캠퍼스 동남쪽에 위치한 식료품점 ‘킹 수퍼스’에서 소총 수십 발이 난사돼 10명이 사망한 사건이 22일 발생한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 월마트·타깃 등 대형 유통 체인이 상권을 독점하지만, 볼더에서는 킹 수퍼스가 주민과 학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날마다 학생들이 생활용품과 학용품, 먹거리, 연인에게 줄 꽃을 사기 위해 몰렸다.


볼더시 당국은 안전을 위해 학교 주변에서 총기를 규제해왔고, 2018년에는 소총 소유를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했지만, 콜로라도주 법원은 해당 규정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낙원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 같다.

 

03월 26일  ‘덕업일치’ 동반자

 

이미숙 논설위원


 덕업일치란 말이 있다. 좋아하는 일에 심취해 있다는 뜻의 은어 ‘덕질’에 직업의 ‘업’이 합쳐진 사자성어형 신조어인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하나가 된 상태’라는 뜻이다.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요한 페터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언급한 “당위와 의욕이 일치하는 삶” 정도의 뜻이 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덕업일치를 이뤘다면 행복을 손에 쥔 사람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인생 동반자와 덕업일치의 삶을 산다면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프랑스 건축가 앤 라카통(66)과 장 필리페 바살(67)이 지난 16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프랑스 태생인 라카통과 모로코 태생인 바살은 20대 중반 보르도 건축학교에서 만난 후 줄곧 함께 건축 인생을 걸어왔다. 건물 해체보다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는 건축가로 명성이 높은데, 두 사람의 프로필 어디에도 부부라는 표현은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언론 인터뷰에서 “나”아닌 “우리” 표현을 줄곧 쓴 것이나, 언론들이 ‘파트너’ ‘듀오’로 표현한 것을 볼 때 이형동체 삶을 즐기는 전형적인 프랑스 부부라는 게 느껴진다. 파이낸셜타임스의 2020 ‘올해의 인물’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터키계 독일인 부부 우우르 샤힌과 외즐렘 튀레치가 선정됐다. 의대 졸업 후 연구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실험실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곧바로 연구를 했다고 한다. 부부의 덕업일치 열정이 백신을 탄생시킨 힘이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에스테르 뒤플로·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는 경제학이란 공동의 ‘업’을 매개로 부부가 됐는데, 특히 빈곤 문제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두 사람을 연결해준 끈이다.


덕업일치를 꿈꾼 부부의 삶이 늘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수학 천재 밀레바 마리치는 대학 시절 물리학의 맞수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결혼했으나 파국으로 끝났고 재능도 잃었다. 미국 액션 페인팅의 거장 잭슨 폴록의 부인 리 크래스너는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결혼 후 생활고에 꿈을 접었다. 남편 사망 후 붓을 든 크래스너는 추상표현주의의 대모가 됐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는 폴록 부부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생전에 엇갈렸던 덕업일치 꿈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표다.

 

03월 29일(월) 낙랑국과 낙랑군

 

문희수 논설위원


 최근 지상파 TV 사극의 역사 왜곡이 논란이다. 조선 시대가 배경인 SBS 드라마는 중국식 의복과 소품을 썼다가 결국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다른 방송사 드라마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의 러브스토리를 다루는데, 초반부에 기억을 잃은 평강 공주가 뜬금없이 부왕을 살해하려는 자객으로 나왔다. 설화로 치부되는 얘기라지만 너무 자의적이다. 사실 온달은 중국 사료로도 확인되는 서기 577년 중국 북주의 고구려 침략 때 선봉장이었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삼국사기 고구려전에는 이보다 훨씬 이전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가 있다. 동화로도 친숙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다. 삼국사기는 “대무신왕 15년(서기 32년) 4월 왕자 호동이 옥저에서 놀다가 낙랑왕 최리와 만났는데, 최리왕이 그를 알아보고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고 기록했다. 그해 고구려가 쳐들어왔는데, 최리왕이 국보인 자명고와 고각을 찢은 공주를 죽이고 항복했다고 돼 있다. 낙랑국은 5년 뒤 멸망했다. 같은 해 신라가 투항해온 낙랑국 사람 5000여 명을 6부에 나눠 살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서 최리왕의 낙랑국은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아니다. 낙랑군은 대방군과 함께 서기 313∼315년 고구려 미천왕에게 축출됐다. 윤내현 동국대 교수 등은 낙랑군이 지금의 중국 베이징(北京) 동북쪽인 난하 서부로 쫓겨났다고 본다. 호동왕자 때 옥저의 영역은 지금의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여서, 그와 만난 최리왕의 낙랑국은 그 서쪽인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낙랑국은 서기 37년 고구려에 멸망된 이후 기록에 없다가 300년에야 삼국사기(신라전)에 “그 지배세력이 신라에 투항했다”고 등장한다. 학계 통설대로 한사군인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면, 낙랑국은 한반도에 있을 곳이 없다.


국내 사학계는 대체로 낙랑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낙랑군의 위치가 잘못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아예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기류도 강하다. 물론 고대사는 사료와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유독 한국 고대사 연구에는 이해 못 할 수수께끼와 역설이 많다. 중국의 동북공정·일제 식민사학 극복이 긴요한 과제다. 새 학기도 맞았으니 쟁점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기를 기대한다.

 

03월 30일  고립된 親與 40대

 

이현종 논설위원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발표했을 때 파격적인 음악과 춤은 당시 20대를 열광시켰다. 이때 대학에 다니거나 졸업한 이들을 가리켜 ‘X세대’(91∼00학번. 1970년대생)라는 별칭이 붙었다. 캐나다 작가의 소설 제목에서 차용한 X세대는 ‘정의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제일기획은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세대”라고 정의했다.


X세대의 성장기에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했고 3S(스크린·스포츠·섹스) 정책이 시행되면서 즐길 거리가 많았다. 여권 발급 제한 폐지로 해외 배낭 여행이 자유로워졌고, 세계화·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밀려 들어왔다. X세대는 소비를 통해 문화를 누리는 첫 세대가 됐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절망을 맛봐야 했다. 한국은 곧바로 저성장 사회로 진입했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이때 X세대에 형성된 보수 정당에 대한 거부감은 지금도 뿌리가 깊다. 노무현에게 열광했고, 그를 탄핵 소추한 보수정당엔 또 한 번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노무현의 죽음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강한 개혁 성향을 공유했으며, 박근혜 탄핵 때 촛불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40대만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준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도 그렇다. X세대의 기본적 성향에다 문 정부 들어서 실시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 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가장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가 보유로 집값 상승 이익을 보는 데다, 임대차 3법으로 전세권 보호의 혜택도 누리고 있다. 반면 집값 상승과 정규직화에 따른 일자리 축소에 직격탄을 맞은 20∼30대는 강한 반여(反與)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40대조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는 조짐이 일고 있다. 문 정부의 실정(失政)이 전 세대로 확산되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가 치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다간 ‘젊은 꼰대’ 소리를 들을 지경이다.

 

03월31일(수) 택시 시장 독점

 

이신우 논설고문


 글로벌 경제계에서 요즘 최대 화두는 ESG다. 기업 경영에서 친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지향하자는 의미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도 일맥상통하는 ESG는 주주자본주의를 정면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선지 ESG 주창자들은 ‘기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비판하는 게 단골 메뉴다.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의 최대화”라고 했다. 이는 오랜 세월 주주자본주의의 철학적 논거로 인용돼 왔다. 현대 경영이론가들은 이를 오류라고 공격하면서 ESG를 대체 이념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익의 최대화에 앞서 프리드먼이 제시한 “기업이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경쟁 환경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애써 외면하려 든다.


과연 최근의 기업경영 활동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글로벌 기업 환경은 점점 더 경쟁 환경에서 멀어지고 있다. 소비자 선택은 이따금 사치에 불과하다. 미국의 데이트앱을 예로 들어보자. 소비자들은 OK큐피드·틴더(Tinder)·힌지(Hinge) 등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 이 세 곳은 모두 한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구글·페이스북·네이버의 광고 독점 등 경쟁제한의 흐름은 갈수록 심해질 뿐이다. 아마존은 또 어떤가. 모데카이 쿠츠 미 스탠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주식시장 가치의 85%가 기술 분야의 독점적 부에서 창출되고 있을 정도다. 지금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심지어 이들 기업은 프리드먼이 말한 룰(Rule)의 수용자가 아니라 규정 당사자가 되고자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정부 잘못도 크다. 전형적 예로 한국의 택시 시장을 들 수 있다.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요즘 국내 택시 호출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일종의 플랫폼 독점이다. 정부가 승차 공유 서비스를 불법으로 만들고, 비슷한 형태인 ‘차차’ 역시 올 초 영업을 중단하면서 빚어진 시장 왜곡 현상이다. 카카오는 이를 기화로 택시 기사들의 수수료를 올리는 한편, 택시 등급화를 통해 요금 인상의 기회를 엿본다. 정부가 기존 택시 사업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에 집착, 정작 보호해야 할 ‘경쟁 환경’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여전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