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水地理5/ 안영배의 풍수와 삶1/ 2001-12-31 변화의 힘 강해 사고 우려 - 2015-12-23 명당 독점을 위해 근친결혼까지?
안영배의 풍수와 풍수와 삶1/ 신동아 기자 동아일보
2001-12-31 변화의 힘 강해 사고 우려
말띠 해를 맞아 한국인들의 삶은 어떤 운로(運路)를 타게 될 것인가. 사주·기문둔갑·무속 등 분야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역술인들의 ‘2002년 국운 한마당’ 풀이는 다음과 같다.
▽변화의 해〓고대의 병법서로 전쟁터의 군사(軍師)나 나라의 국사(國師)들이 국운을 살펴보는 데 이용했던 ‘기문둔갑(奇門遁甲)’에서는 임오년을 한마디로 ‘변화의 해’로 해석한다.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기문둔갑을 강의하고 있는 손혜림씨(민강기문명리원장)는 특히 남한의 경우 올해 운세는 ‘신하가 역모(逆謀)를 꾀하고 백성이 반란을 도모하는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러한 흉괘(凶卦)에 대해 손씨는 다소 ‘묘한’ 해석을 한다.
“올해에 선거가 없다면 한국은 크나큰 혼란에 빠질 터인데, 다행스럽게도 ‘합법적인 쿠데타 의식’인 선거를 두 차례나 치르면서 액땜하게 되므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월드컵 대회 중 예상치 못한 돌발사고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 행사 기간을 포함한 전후 달(4∼6월)에는 북쪽에 전쟁과 변란을 의미하는 살성(殺星)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므로 북한의 동태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육·해·공 사고 주의〓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단골로 찾는 인물로 알려진 무속인 방창환씨(한국전통제석굿보존회장)는 “올해 각별히 신경 쓸 점은 각종 사고로 특히 하늘에서 내뿜는 살기(殺氣)가 왕성한 해이므로 육·해·공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형 사고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체류자인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큰 사고가 일어나 폭동 같은 조짐도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아무튼 변화와 변혁의 기운이 강한 말띠 해에는 너무 빨리 달리면 그만큼 실수도 하기 쉬운 한 해라는 게 역술인들의 지적이다.
▽5∼7월 주식시장 뜬다〓인터넷 역술사이트에서 사주명리학자로 활동하는 김영학씨는 현대건설 유동성위기 사태와 금강산개발사업 난항 예언 등 경제 분야에서의 뛰어난 예측력으로 주목받는 인물.
김씨는 “2002년에는 전반적으로 경기가 호전되는 상황이어서 주식시장도 매우 활발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구체적으로 5월에서 7월까지 석달간을 주식시장 활성기로 꼽았다. 김씨는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 주변에도 이변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2001 12-31 "한반도에 하늘기운 몰려 16강 무난"
축구전문가들은 FIFA 랭킹 42위인 한국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지만 역술계에서 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
역학자 김영학씨는 “하늘의 기운이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모이는 좋은 시기에, 그것도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게 되므로 한국팀이 모처럼 좋은 경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씨는 폴란드와의 시합에서는 무승부, 미국과의 시합에서는 전반전을 유리하게 이끌어 1 대 0으로 승리, 포르투갈과의 시합에서는 1 대 2로 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기문둔갑의 고수’인 손혜림씨는 기문둔갑에서는 아군을 ‘손(孫)’으로 보고 적군을 ‘관(官)’으로 설정해 전투의 우열을 점쳐보는데, 이를 월드컵에 적용해보면 한국과 폴란드전에서는 한국팀이 유리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시합에서는 전반전에 한국팀이 공격 위주의 전술을 펼쳐 득점을 하고 후반전에는 수비 위주로 가야 승산이 있는 게임이 될 것이며 포르투갈전에서는 매우 힘겨운 경기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16강 진출은 물론 8강 진출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명상단체인 ‘해피타오 인터내셔널’의 수련지도자 한바다(법명·본명 박광수)가 그 주인공.
“월드컵대회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사라지고 평화의 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징표다. 지구적 규모로 벌어지는 이 평화 축제에서 한국은 하늘의 에너지가 집중돼 어렵사리 16강 진출을 하게 된다. 8강 진출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70%정도 된다. 한국이 8강에 들어가면 국내의 정치적 변혁도 뒤따를 것이다. 반면 공동개최국인 일본은 오히려 우리보다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한바다는 또 이 대회를 계기로 한국인은 감동과 자신감을 얻어 자문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세계 문화를 이해하고 세계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4-09-21 “서울은 맨해튼급 재물 명당…향후 100년 수도 지위 굳건”
[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약(藥)의 효험을 의미하는 ‘약발’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약을 먹어 병세가 호전될 때 흔히 ‘약발이 들었다’고 하고, 계속 먹어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면 ‘약발이 다했다’고들 한다. 이러한 논리는 비단 사람뿐 아니라 자연에도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조상은 땅에도 약발의 유효기간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다. 특히 고려의 집권 지배층은 유별날 정도로 지기쇠왕설에 집착했다. 사람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터는 땅심[地氣]이 왕성할 때는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 땅심이 쇠퇴해지면 약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는 터를 이전하는 등의 비상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수도 개경(개성)의 땅 기운이 쇠했으므로 서경(평양)으로 도읍을 이전하자는 묘청의 ‘서경천도설’이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한양(서울)을 도읍지로 선택한 것 역시 지기쇠왕설의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지기쇠왕설은 현대에 와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밑바닥 정서에 깊숙이 깔려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집안에 우환이 발생했을 때 ‘터의 기운’으로 돌려 말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터의 기운이 좋지 않거나, 이미 그 기운이 다해 재수가 없다는 식이다. 반대로 살고 있는 터의 기운이 좋아 일이 잘 풀린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2014년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땅심은 유효할까. 더 노골적으로 말해 서울이라는 터의 약발은 여전히 진행형인가, 아니면 이미 약발이 다했을까. 혹자는 서울에서 집행되던 정부의 행정기능 일부가 세종시로 넘어가고 유력한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에서 보듯이 서울의 지기가 쇠했다고 말하고, 혹자는 명당인 서울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중심 수도로서 굳건한 지위를 잃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더욱 과격하게는 남북통일 시대에 대비해 서울 자체를 교하 지역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삼아 자리 잡은 조선의 궁궐터.
풍수도참에 등장하는 한양 터
현재 서울의 지기쇠왕설을 논하자면, 고려 말 조선 초 지식인 사이에 논의가 분분했던 풍수도참 사상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시기에 정도전 같은 골수 유교 사대주의자들은 주자의 논리를 빌려 풍수도참 사상을 허황된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지만, 다수 지식인은 유교 사상을 내세우면서도 풍수도참 사상을 굳이 배격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고려 출신의 무장 이성계 역시 조선을 건국할 때 지기쇠왕설을 한양(서울) 도읍지의 주요 근거로 활용했다. 고려 수도 개경(개성)의 지기가 이미 쇠했으니 땅심이 왕성한 새 터에서 새로운 국가를 열자는 논리였다. 개경 고수론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정서가 더 큰 호응을 얻어 한양이 최종적으로 낙점됐다.
그렇게 해서 한양은 1394년 정도(定都) 이래 조선왕조와 운명을 같이했을 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수도로서 굳건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왕조국가에서 그 최초 도읍지는 집권층, 특히 절대 권력자와 천생연분을 지녔음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만 쿠데타나 무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고, 민심을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한국 풍수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선국사를 끌어들여 개경 도읍의 정당성을 부여했듯, 고려를 멸한 이성계 역시 풍수에 밝았던 무학대사와 도참설 등을 끌어들여 한양 도읍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는 조선의 건국주 태조 이성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무덤 앞에 세운 ‘건원릉신도비명(建元陵神道碑銘)’에도 나타난다.
“어떤 이인(異人)이 글을 바치며 이르기를, ‘지리산(智異山) 암석(巖石) 가운데서 얻은 것이다’고 하였는데, 거기에는 ‘목자(木子)가 다시 삼한(三韓)을 바로잡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시켜 이인을 맞이하게 하였더니,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고려 서운관(書雲觀)의 옛 장서(藏書)인 비기(秘記)에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란 것이 있는데, ‘건목득자(建木得子)’라는 말이 있다. 조선(朝鮮)이 곧 진단(震檀)이라고 한 설(說)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지금에 와서야 증험되었으니, 하늘이 유덕(有德)한 이를 돌보아 돕는다는 것은 진실로 징험이 있는 것이다.”
‘나무를 세워 아들을 얻는다’
여기서 이인이 바쳤다는 글에 등장하는 한자어 木과 子는 도참류 서적에서 자주 등장하는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로 이(李)씨 성을 가리킨다. 즉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삼한을 바로잡아 통일한다는 뜻이다. 또 고려왕실의 중요 서고인 서운관에서 보관하던 비결서에 등장하는 ‘건목득자’라는 말 역시 ‘나무를 세워 아들(열매)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씨를 의미한다. 즉, 이씨의 조선 건국은 오래전부터 예정된 것이기 때문에 이씨왕조의 등장은 운명적인 것이고 역사적 정통성을 지녔음을 역설한 것이다.
이씨 왕조가 한양에 들어선다는 것 역시 도참설에 바탕을 뒀다. 이와 관련해 서거정이 1487년에 지은 ‘필원잡기’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양이 이씨의 도읍이 된다는 것은 도선(道詵)의 도참에 있다. 이 때문에 고려에서는 한양에 남경(南京)을 건설하고 오얏나무를 심고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을 택해 부윤(府尹)으로 보냈으며 왕도 해마다 한 번씩 순행하고 용봉장(龍鳳帳)을 묻어 압승(壓勝)하였다.”
사실 고려왕조에서도 일찌감치 남경, 즉 한양의 지기를 눈여겨보던 터였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 때 김위제는 도선의 풍수설을 내세워 남경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했고, 실제로 숙종은 남경에 별궁(別宮)까지 지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 이씨 성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터다. 고려 왕은 왕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이씨를 의미하는 오얏나무를 심어두고 이씨 신하를 파견하는 등 한양 땅에 이씨의 기운을 심은 뒤 애초에 그 기운의 싹을 잘라내 버리려는 도참 행위를 벌였다. 이중환의 ‘택리지’엔 고려왕실이 윤관(尹瓘·?~1111)을 시켜 백악산 남쪽에 오얏나무를 심어 무성하게 자라면 이를 베어버리게 했다고까지 전한다.
고려 ‘水의 나라’, 조선 ‘木의 나라’
물론 고려왕실의 눈물겨운 풍수도참 행위에도 이씨 성의 왕조가 한양에 들어선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양의 땅 기운이 나무 목(木)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목의 나라’라는 상징성을 강력히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왕건이 세운 고려가 그 건국 배경에서부터 수(水)의 기운을 강조하는 ‘수의 나라’라는 점과 묘한 대비가 된다. 실제로 고려왕실은 해양왕국답게 물을 상징하는 숫자인 1과 6이 조합되는 숫자를 무척 중요시했다. ‘고려사’에 의하면 왕건의 선대 집터를 논하는 부분에서 “그대(왕건의 선조) 또한 수(水)의 명(命)을 가졌으니 마땅히 수(水)의 대수(大數)를 좇아서 육육삼십육(6×6=36) 구(區)의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에 부합하여 다음 해에는 반드시 슬기로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왕건이라고 하라”는 대목이나, 왕건이 남긴 훈요십조에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의 근본’이라는 내용은 모두 고려가 물과 그 물에 부여된 숫자를 의미 있게 보았다는 증거다.
물의 상징 수인 1과 6은 그 배열에서 36(6×6), 100(1×100), 120(60×2), 160(100+60) 등의 숫자로 표현된다. 고려가 송악(개경)을 중심으로 남경(한양)과 서경(평양)을 활용하면 36개국이 조공해올 것이라는 도참, 100년 후 개경 쇠퇴설, 도읍 120년 후 국운 연장을 위한 백마산 장원정 건설, 36구의 가옥 배치 등이 그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목의 나라인 조선의 경우 그 상징 수는 무엇일까. 오행론에 의하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각각에는 고유의 색깔과 코드 숫자가 부여돼 있다. 목은 앞에서 살펴봤듯이 청색으로 3과 8의 숫자가 부여돼 있고, 화는 붉은색으로 2와 7이, 토는 황색으로 5와 10이, 금은 흰색으로 4와 9가, 수는 검은색으로 1과 6이 부여돼 있다. 당연히 조선은 청색과 3과 8의 숫자가 상징 코드이자, 국운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게 된다.
/18세기에 그려진 한양도성도. 사진 맨 위 동그라미가 서울의 조산(祖山)인 삼각산이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북악산(주산), 인왕산(백호), 남산(안산), 낙타산(청룡)이 있다.
/서울의 4대문 안은 명당 기운과 함께 권력의 기운도 강하다. 그림은 ‘한양도’.
조선 상징 코드 숫자, 3과 8
조선이 목의 나라였음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숙종 때 태조대왕(이성계)의 영정을 맞이하면서 숙종이 “영정에 첨배(瞻拜)한 즉 태조대왕께서 입은 곤의(袞衣) 빛깔이 푸르니 예복(禮服)이 아닌 듯하다. 혹시 국초(國初)에 복색을 푸른빛을 숭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신하에게 물었다. 그러자 영부사(領府事) 김수흥(金壽興)이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려(高麗)에서는 푸른빛을 숭상하였다’고 하니, 태조조(太祖朝)는 고려와 시대가 멀지 않기 때문에 더러는 푸른빛으로 곤의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고 대강 넘어갔다. 진위야 어떻든 조선의 건국주가 목을 상징하는 청색 곤룡포를 입었다는 건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우리나라 역학자나 술사들은 한국을 ‘목(木)의 나라’로 규정하고, 국운(國運)을 논한다는 점이다. 목은 10천간(天干) 12지지(地支)로 환언하면 ‘갑(甲)’이자 ‘호랑이(寅)’에 해당한다. 한국을 ‘갑의 나라’라고 하거나 한반도 지형을 호랑이에 비유하는 것 역시 모두 목 기운을 배경에 깔고 있는 표현이다. 외국인인 타고르도 조선이 목의 나라라는 점을 기운으로 느낀 듯 우리나라를 목의 시간대인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자 목의 방위에 해당하는 ‘동방의 등불’에 비유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험난한 사건이 발생한 때도 목의 기운이 꺾이는 때였다. 금극목(金克木)의 이치에 의해 목은 금(金, 천간으로는 庚)의 기운이 닥치는 시기에 해로움을 입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장동순 충남대 교수는 경금(庚金)의 해에는 우리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많이 발생했다고 풀이한 바 있다. 최근부터 풀이해보면 2010년 경인년(庚寅年)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고, 1980년 경신년(庚申年)엔 5·18민주화운동이, 1950년(庚寅年)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생했다. 또 1910년(庚戌年)은 우리 민족에게 치욕적인 경술국치의 해였다. 이처럼 ‘경(庚)’자가 들어간 해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렇다면 목의 상징 숫자인 3과 8은 조선의 국운에 어떻게 드러날까. 1394년 조선이 한양에 정도한 이후 약 300년 후(정확히는 242년 후)인 1636년 조선은 건국 후 최대의 굴욕적 사건인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조선이 인조 임금 때에 이르러 청나라의 공격을 받아 임금이 청 태종에게 직접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물론 300(3×100)년이라는 수치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지만, 궁궐지로서의 한양의 지기가 발동한 시기까지를 고려해볼 때 300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원래 한양 땅은 고려 충선왕 때 남경에서 한양부로 격하된 이후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에 이르러 본격적인 수도 터로 주목받아 천도 시도가 이뤄졌고, 우왕과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까지도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천도를 도모했던 곳이다. 특히 우왕은 실제로 한양으로 천도를 감행했다가 6개월 만에 다시 개경으로 환도하기도 했다. 즉, 한양 땅은 이성계가 도읍지로 최종 낙점하기 이전인 공민왕 때부터 궁궐을 조성하는 등 수도로서의 기운이 꿈틀거렸던 셈이다. 이를 기점으로 치면 한양 기운 300년이라는 하나의 국운 분기점이 설정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한양) 이전론 등장
3이라는 숫자를 더 큰 범주로 묶어 살펴보자. 100년을 한 세기로 볼 때 14세기에 조선이 건국된 후 그 3세기 후인 17세기에 이르러 한양의 터 기운에 대한 본격적인 회의론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선조(재위 1567~1608) 임금이었다. 자신의 치세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선조는 한양 명당론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임진왜란 당시 한양 도성이 왜군에 함락되고 피란을 해야 했던 선조는 한양 터를 잡은 조선의 풍수가들을 매우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왕으로서의 무능함을 자책하기에 앞서 조선 풍수가들의 실력을 의심했다. 그들에 의해 풍수적으로 대명당지라고 하는 한양 도성이 들어섰고 왕족들의 음택지가 모두 명당 길지에 모셔졌다고 하는데, 발복은커녕 흉한 꼴만 당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선조는 조선 풍수가들을 불신하는 대신 명나라에서 온 중국 풍수가들을 믿고 그들에게 의지하려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재위 1608∼1623) 때에는 조선 최초로 수도 이전론이 불거져 나왔다. 풍수지리가인 이의신(李懿信)이 교하(파주)로 옮길 것을 제기해 광해군의 깊은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이의신은 서울의 땅심이 이제 다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임진왜란, 여러 차례의 모반 사건, 심화된 신하들 간 당쟁, 그리고 서울 근처 산림의 황폐 등을 들었다. 그 대신 교하를 새 도읍지로 건의했다. 광해군은 이에 솔깃해 교하 지역을 답사케 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취했으나 신하들의 극렬한 반대로 교하 천도론은 무산되고 말았다.
교하 천도론 이후 한양 지기 쇠퇴설과 도읍지 이전설은 꾸준히 제기됐고, 18세기에 들어서는 아예 조선왕조의 멸망과 새로운 나라의 출현을 예언하는 도참서가 유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조와 정조 시기 서북지방에서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 ‘정감록’이다. 영조와 정조 시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역모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고, 그 배후엔 새로운 왕조의 등장을 예언하는 ‘정감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조와 정조 시기를 거친 이후 조선은 계속되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다가 결국 1910년 ‘조선’이라는 간판을 내리게 된다. 500여 년의 조선 역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여기에도 3이라는 숫자 코드가 개입된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 이후 순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27(3×9)명의 왕을 배출했다. 3이 아홉 번 반복된 결과인 것이다.
어떻든 한양으로 일컬어졌던 서울은 조선이 망한 후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수도 기능을 한다. 한 도시가 600년 넘게 수도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은 세계 역사상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3이라는 고비 숫자를 넘어, 목의 또 다른 고비 숫자인 ‘8’이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조선이 전국을 8도로 나눠 통치한 것도 8의 목 기능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조선 건국 후 8세기가 지난 22세기에 이르러 서울의 수도 기능은 완전히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 21세기에 남북통일이 될 경우 서울은 예전과 같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수도 기능 대신 경제 수도 같은 특정 분야의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특정한 수도 기능도 100년쯤 후 되면 완전히 약발이 끝날 것이란 게 필자의 추정이다.
이처럼 숫자의 도참적 예언에 입각해 앞으로도 100년간 서울이 어떤 식으로든 수도 기능을 잃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은 풍수론에 의해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서울의 터는 풍수적으로 어떠할까. 이 부분은 ‘서울 명당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서울 터, 좁게 말하면 조선의 궁궐터가 과연 명당인지를 두고 풍수학인들 사이에 적잖은 논쟁이 벌어졌다.
/표주박 모양의 원 안이 서울을 대표하는 명당지다.
서울은 명당지인가
형세파 풍수 이론으로 볼 때 서울이 명당으로서의 훌륭한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의 경복궁을 중심으로 궁 뒤쪽의 북악산이 주산(主山)이 되고,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남산은 안산(案山)이 된다. 그리고 인왕산은 백호(白虎), 낙타산(낙산)은 청룡(靑龍)에 해당돼 전후좌우가 잘 짜인 모양새다. 게다가 청계천은 명당수(明堂水)에 해당되며, 그 바깥으로 객수(客水)인 한강이 크게 환포하며 서울 도성을 보호한다. 물론 군데군데 허점이 보이긴 하지만 본래 어떠한 터도 완벽한 풍수적 조건을 갖추긴 어렵다는 점에서 서울은 모양상 대단한 국세(局勢)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수도와 비교하더라도 별로 꿀릴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조선이 서울에 도읍을 정한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겪었고, 또한 일본의 침략을 받아 36년간 국권을 뺏겼다. 또 광복 후엔 남북으로 분단돼 오늘에 이르렀다. 과연 이 같은 시련을 겪은 수도 서울을 두고서 지금도 명당일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감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서울 명당론에 대한 의구심은 조선의 역대 군주 중 최고의 풍수지리적 안목과 실력을 갖춘 정조도 일찌감치 제기한 바 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 자리를 직접 고르고, 자신의 풍수적 식견을 저서(‘홍재전서’)로도 남긴 정조는 조선의 도읍지 한양에서 인재가 나지 않는 점을 의아해했다. 다음은 정조의 말이다.
“요즈음 인재가 점점 옛날만 못해지고 있다. 명나라 초기에 도사(道士) 서사호(徐師昊)가 우리나라에 와서 유람하면서 산천을 두루 구경하였는데, 단천(端川)의 현덕산(懸德山)에 이르러 천자(天子)의 기운이 있다고 여겨 다섯 개의 쇠말뚝을 박고 떠났으니 북관(北關·함경도)에 인재가 없는 것은 실로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서울에 내려온 맥(脈)은 삼각산(三角山)이 주장이 되는데, 들으니 수십 년 전에 북한산성(北漢山城) 아래에다 소금을 쌓고 그 위를 덮어서 태워 마침내 염산(鹽山)이 되어 내려온 맥을 진주(鎭住)시켰으니 현재 서울에 인재가 없는 것은 반드시 여기에서 연유하지 않았다고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정조는 한양이 명당이긴 한데 누군가에 의해 한양 도성으로 내려오는 기운이 차단됐기 때문에 인재가 배출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나 염산, 즉 소금산을 찾지 못해 이 일은 역사에서 묻히고 만다.
그 외에 한양의 여러 풍수적 결점을 들어 흉한 원인을 찾고자 하는 풍수적 논의도 적잖게 진행됐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엔 ‘고려 수도였던 개성은 산과 계곡이 둘러싸 포장하는 형세이므로 권신(權臣)의 발호가 많았으며, 조선 수도 한양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아 장자(長子)가 가볍게 되고 지자(支子·장남이 아닌 자식)가 중하게 된다’는 항간의 속설이 실려 있다. 즉 왕권이 장자에게 잘 계승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또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이 중심을 차지하지 못한 채 북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주산을 바로잡아 궁궐 배치를 달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됐다.
재물·명당 기운과 살기 공존
이러한 서울의 풍수적 결점은 중국의 이론풍수적 시각에 입각해 제기되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을 우리 풍수적 시각에서 비춰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늘의 기운인 천기(天氣)와 땅의 기운인 지기(地氣), 그리고 물의 기운인 수정기(水精氣)가 교합함으로써 특정한 지역에서 권력 기운이나 재물 기운 같은 특정한 기운이 생성된다는 우리 풍수 논리는 땅의 지맥과 지기만을 다루는 중국 풍수와는 처음부터 접근 방법이 다르다. 이에 입각해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서울은 표주박 모양으로 엄청난 재물 기운이 운집한 명당지이며, 특히 서울 4대문 안은 재물 기운과 함께 권력 기운도 강한 곳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의 재물 기운은 서울 서북쪽, 즉 교하 천도론으로 유명해진 경기 파주시 방향에서 직선으로 뻗어오는 재물 기운이 구파발 방면에서부터 사방팔방 넓게 원형으로 퍼진 형국이다. 북으로는 북한산국립공원에 자리 잡은 노적봉과 의상봉이 경계가 되고, 남으로는 용산구 효창공원, 동으로는 안암동 고려대학교, 서로는 증산동 연서중학교 일대가 각각 원형의 끝점 경계선을 이룬다. 재물 기운으로만 치자면 일본의 수도 도쿄를 능가하고, 미국의 재물 명당지인 맨해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다만 문제는 재물 기운 못지않게 서울의 땅 밑에서 올라오는 살기(殺氣)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살기가 조선 건국 이래 우리나라의 국운을 끌어올리는 데 끊임없이 방해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살기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한국이 선진국으로 성장하는 데 담금질을 하는 자극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겪은 세월호 참사는 한국이 과연 제대로 성장해왔는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감과 함께 반성을 하는 교훈을 안겨줬다. 한국의 국운이 서울의 살기를 극복하고 재물 명당을 완전히 향유하기엔 좀 더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는 게 풍수론으로 보는 필자의 소견이기도 하다.
부기(附記) : 서울 풍수론은 한국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 호엔 현재의 행정구역인 서울을 대상으로 최고의 권력, 재물, 학문, 건강 명당지 등을 집중 분석할 예정이다.
2014-11-09 여의도의 천기(天氣)와 지기(地氣) - 국회를 옮겨야 통일을 앞당긴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권력의 중심축 중 하나인 국회가 들어선 곳이자 한국의 대표적 금융기관이 즐비한 여의도는 흔히 권력과 돈의 핵심 지역이라고 한다.
여의도가 사방을 물로 감싼 행주형(行舟形) 명당이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여의도는 풍수적으로 길한 곳일까.》
/여의도 서쪽 끝자락에 있는 국회의사당 전경.
#사례 하나
2011년 말, 이듬해 19대 총선과 연말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의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의 상징색도 10년 이상 유지했던 파란색에서 과감하게 흰색 바탕의 빨간색으로 바꿔버렸다. 새누리당의 이미지 변신 작업을 주도했던 당시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태극기를 모티프로 삼아 흰색과 빨간색을 도입했다고 밝혔지만, 전통적으로 진보 이미지인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도입한 이후 당 내외 인사들의 정서적 반발과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의 홍보 작업에 깊숙이 간여한 중진급 K의원은 기문둔갑으로 국운을 진단하는 여성 역학자의 자문을 통해 남방(南方)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2012년 총선에서 여당의 승리는 물론 여성 대통령의 당선을 보장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은 물론 역학자의 표현처럼 ‘요염하게 핀 한 떨기 붉은 꽃송이’ 같은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
#사례 둘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의 대하(大河)빌딩. 왕기(王氣)가 서려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 선거철만 되면 인기가 높은 10층짜리 빌딩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대선 캠프 역시 이곳 2층과 7층에 둥지를 틀었다.
대하빌딩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곳에 선거 캠프를 차리고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뤄내면서 명당으로 소문났다. 조순 전 부총리와 고건 전 총리도 이곳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바 있고, 2007년 대선 당시엔 이명박 후보의 외곽조직도 여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도 이곳에 캠프를 차린 이후 권력을 쥐었으므로 그 터 기운을 본 셈이다.
이 두 사례는 동양 역학의 시각에서 보자면 철저히 개운법(開運法)의 논리가 개입된 사안이다. 그것도 박 대통령 개인의 운명 흐름에 철저히 맞춰졌다. 1952년생인 박 대통령은 운명 구조상 남방의 빨간색과 빨간색의 상징 수인 2와 7이 행운을 주는 코드다.
우연의 일치인지, 역술적 자문에 의한 의도적 행위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내세우고 대하빌딩 2층과 7층을 캠프로 사용하면서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의 당선 이후 대하빌딩은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선거용 캠프 명당으로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권력 기운 잠시 빌려 쓰는 곳
한 개인의 호운(好運)을 주관하는 상징 코드는 사실 풍수의 개운법에 적극적으로 채택돼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주로 산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이나 건물 터를 대상으로 삼아 방위를 중시하는 이기파 풍수에서 사용된다. 예컨대 자신의 나이 숫자나 태어난 띠를 기준으로 삼아 행운의 기(氣)가 모이는 건물 방향이나 건물 층에 부여돼 있으며 적절한 시점에 그곳을 찾아가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잘 누릴 수 있는 경우와 잘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나란히 출마한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의원이 각각 이곳에 캠프를 차려두고 당 대표 경선을 치렀는데, 결국 김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입주한 캠프만 놓고 두 사람 운의 득실(得失)을 따진다는 건 상당한 무리가 따르긴 하지만, 이 터의 기운과 궁합이 상대적으로 나았던 김 의원이 혜택을 누린 셈이다.
명당이라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기운을 받고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논리는 풍수학에선 상당히 폭발력 있는 논란거리다. 게다가 명당의 시효성까지 덧붙히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명당 무용론 혹은 명당 허구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논란거리를 앞서 예로 든 대하건물 터를 중심으로 되짚어보자. 여의도는 국회라는 권력기관과 증권거래소 등 한국의 대표적 금융기관이 집중돼 있어 흔히 돈과 권력의 중심지라고들 한다. 언뜻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실상을 따지자면 돈과 권력의 진정한 핵심이 아닌, 그림자에 불과한 지역이다. 여의도에서 권력 기운이 있는 곳은 국회의사당도 아니고 의원회관도 아니다. 그나마 권력 기운이 뭉친 곳이 대하빌딩을 비롯해 새누리당 당사가 있는 한양빌딩, 새정치민주연합 당사가 있는 대산빌딩, 극동빌딩, 용산빌딩, 금강빌딩 일부 지역이다.
이 일대는 얕으나마 공중에서 내려오는 천기(天氣)의 권력 기운과 땅의 지기(地氣)에 의한 권력 기운이 융합돼 있다<그림 참조>. 어느 역술인의 표현처럼 제왕지기(帝王地氣)의 상스러운 터라고 표현하기엔 다소 부담이 따르긴 하지만, 여의도에선 권력 기운이 가장 강한 곳임은 분명하다. 즉 선거용으로 강한 권력 기운을 끌어당기는 데는 장점을 갖춘 곳이므로 선거에 나선 후보의 상징 코드를 적절하게 건물 풍수에 대입할 경우 일시적 폭발력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이런 기운을 읽지 못한 채 무턱대고 이 건물에 입주했다고 해서 명당 기운을 누린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이곳의 권력 기운이 항구적이거나 굳세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그 혜택을 골고루 받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는 문제도 있다. 한시적인 권력 기운을 얻기 위해 잠시 빌려 쓸 수 있는 곳이긴 하나 지속적으로 터로 잡고 살기엔 부담스러운 곳이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이곳의 권력 기운은 북쪽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언젠가는 대하빌딩 일대가 왕기가 서린 곳이라고 평가한 사람이 사기꾼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지기의 쇠왕(衰旺) 논리에 따라 비켜갈 수 없는 명당의 시효성 문제다.
여의도는 ‘권력의 그림자’
/여의도에서 권력 기운이 가장 강한 곳. 바깥의 원은 천기(天氣)의 권력 기운이 미치는 곳이고 안쪽의 원은 지기(地氣)의 권력 기운이 작동하는 곳이다.
내친김에 여의도를 풍수적으로 조망해보자. 여의도는 한강에 떠 있는 섬으로 한국의 맨해튼이나 월스트리트로도 불린다. 혹자는 물이 사방을 감싸고 흘러 배가 항해하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대표적인 행주형(行舟形) 명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의도는 처음부터 주목받던 지역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동지지’나 ‘동국여지비고’를 보면 여의도는 사주(沙洲)라고 하여 모래땅에 불과한 곳이었다. 게다가 홍수만 지면 가라앉는 쓸모없는 땅이라고 해서 여의도(汝矣島)라는 말이 ‘너나 가져라’는 뜻으로 비하될 정도였다. 물론 사람이 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조선시대에 천대받던 특수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살았다. 국회의사당 터는 조선시대에 양과 염소 등을 키워 ‘양말산’이라 불렸고, 궁녀들의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그런 여의도가 1967년 박정희 정권의 여의도 개발사업 이후 새로 85만 평의 대지가 조성됨으로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즉 여의도는 땅 자체가 사토(沙土)인 데다 강 가운데 흙을 퍼다 메운 사토(死土) 지역이다. 박 정권은 바로 이곳에다 국회를 지었던 것이다.
사실 현재의 국회의사당은 풍수적으로 논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밋밋한 곳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나마 있는 생기(生氣)도 착근되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어서 민의(民意)가 모이고 국론이 형성되는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곳이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지라고 명함을 내놓기가 어렵다는 점은 여러 풍수학자도 밝힌 바 있다.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우석대)는 여의도와 국회의 입지에 대해 “다양한 민원을 입법화하는 것이 핵심 기능이라고 한다면 국회는 물, 모래, 바람 등의 지기를 갖는 여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분산시키는 기운으로 인해 그 땅은 국회를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창조 전 교수(서울대)는 “여의도가 행주(行舟)섬이라고 해서 배 모양의 섬인데, 국회의사당 자리가 서쪽으로 항해하는 뱃머리에 해당되니 사공이 뱃머리에 몰려들어 떠들어대는 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국회의사당 터는 서울시내에서 그만한 규모의 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장점을 빼고는 국가 중추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국회 이전론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김두규 교수는 세종시의 공무원들을 국회로 부르는 대신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세종시는 국회와 궁합이 나쁘지 않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필자 역시 국회가 진정한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옮겨야 한다고 본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여의도가 아닌 강북의 권력 기운에 의해 움직이는 형세다. 여의도의 국회는 단순히 거수기에 불과할 정도로 초라한 형편이다. 필자가 여의도를 ‘권력의 그림자’로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선 권력 기운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단, 권력 기운이 밴 서울 일대에선 현재의 국회 규모를 감당할 만한 넓은 지역이 남아 있지 않다. 필자는 서울을 중심으로 남쪽 지역보다는 북쪽 지역을 오랫동안 풍수적으로 관찰한 결과, 통일한국과 같은 한반도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곳이자 권력 기운이 강성한 곳으로 미군기지가 있던 동두천 지역이 국회 후보지로 적당하다고 제안한다. 동두천 지역으로 국회 등 권력기관이 이전할 경우 그 왕성한 권력의 통합 기운으로 인해 남북통일이 훨씬 앞당겨질 것이라는 게 필자의 풍수적 진단이다.
돈도 주인도 돌고 돈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남방(南方)의 빨간색 이미지.
여의도가 국회라는 권력기관과 궁합이 맞지 않다면 돈과는 어떠할까.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집중된 이곳은 명실 공히 대한민국 금융 1번지로 꼽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여의도 모래땅은 분산되고 흩어지는 성격이 있고, 금융 역시 돈의 성격상 돌고 돌아야 하기 때문에 여의도는 금융 업종과 궁합이 좋다는 풍수적 해석도 내놓는다. 또 바람과 물의 기운이 센 여의도는 풍문과 소식이 바람처럼 잘 흩어지는 방송과 엔터테인먼트 업종에 잘 맞다고도 한다.
사실 여의도 같은 섬은 한강이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구실을 해주기 때문에 하늘의 재물 기운만 제대로 땅에 내려 꽂히면 더할 수 없는 재물 명당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여의도는 풍수의 국(局)을 논할 만한 정도의 하늘 기운은 잘 형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모래땅이어서 그럴까, 기운이 떠 있는 상태에서 유동(流動)의 성질이 강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이 금융이라는 유통 기운과 맞아떨어지는 풍수 명당인가 하는 문제는 해석하는 이의 시각에 따라 엇갈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여의도 버스환승센터를 따라 조성된 증권가는 우리나라 금융업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선 증권사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주인의 손바뀜도 자주 있었다. HMC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은 원래의 주인은 사라지고 새로운 주인을 맞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유동의 기운이 돈만 돌고 돌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주인마저 돌고 돌게 하는 꼴이다.
또한 국회가 강북의 권력 기운에 의해 그림자 역할을 하듯이, 여의도의 금융권은 강남의 재물 기운에 의해 그 그림자 역할을 하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기운은 현재 강남의 경제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여의도는 이를 겉으로만 대변하는 역할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나마 여의도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재물 기운을 갖춘 곳은 여의도 북단에서 서강대교와 마포대교에 이르는 일부 지역 정도다. 현재의 금융기관들이 밀집한 곳과는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의 재물 기운은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종교적 기운의 힘으로 일정 부분 누렸다는 점이다.
여의도 풍수와 관련해 한국 재벌기업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건물이 화젯거리로 떠오른 적도 있다. 전경련은 최근 신사옥을 마련했는데, 역대 전경련 회장들이 잘 안 풀렸던 게 회장실 위치 때문이라는 어느 역술인의 말로 인해 회장실 위치를 바꾸는 문제로 신사옥 입주를 늦췄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새로 마련된 전경련 회관은 예전과 달리 정문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여의도공원을 마주 봤던 예전의 건물과 달리 새로 리모델링한 건물은 동쪽인 광장아파트 쪽을 향하고 있다.
이를 풍수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떤 건물이든 일단 천기와 지기가 조화롭게 서린 곳에 자리 잡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평범한 지역에 건물이 들어설 경우 2차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가 건물의 좌향(坐向), 즉 방향이다. 일반적으로 서향이나 북향으로 건물의 현관을 배치하는 것보다는 남향이나 동남향, 혹은 동향으로 문을 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는 방위를 하나의 기운, 즉 에너지로 보는 이기풍수적 이론에 의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전경련의 예전 현관 방향인 서향이나 북향은 다 그렇지는 않지만 거주자들이 살기(殺氣)에 노출되기가 쉽다.
얼마 전 세종시로 내려간 기획재정부 역시 북쪽으로 나 있는 새 청사 출입문을 다른 방향으로 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민원인들이 입구를 잘 찾지 못하는 애로를 해소하는 차원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북향 현관을 한 기재부 건물의 흉한 기운으로 인해 기재부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적잖게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탈신공(脫神功) 개천명(開天命)
사실 풍수는 동양의 천명(天命) 사상에 반항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탈신공(脫神功) 개천명(開天命)’이다. 애초 신이 의도한 바로부터 벗어나고 하늘에서 쥐여준 명마저 뜯어고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인간의 의지가 깊숙이 밴 혁명사상이다. 한국과 중국 할 것 없이 역성혁명의 뒤에는 반드시 풍수사상이 개입된 것도 풍수의 이 같은 논리 때문이다.
이는 현대인의 양택 방위 풍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명당이 아니라면 인위적으로라도 명당으로 고쳐 쓸 수 있다는 논리는 특히 방위 풍수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앞에서 살펴봤듯, 박근혜 대통령의 태어난 해에 따른 빨간색 상징과 2와 7의 남방 숫자 사용이 바로 그런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태어난 띠로 방위 풍수에 적용할 수 있는 팁을 하나 드리고자 한다. 자식이 공부에 집중하게 하려면 어떤 방위를 채택하면 좋을까.
일단 집의 중앙을 기준으로 잡아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사용해 대략 8방위를 체크해본다. 그런 다음 아이가 공부할 때 앉는 책상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는지를 살펴본다. 음력으로 돼지띠, 토끼띠, 양띠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책상이 서북방을 향하고 있어야 머리가 맑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반대로 동남방에 있는 경우는 거의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방위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호랑이띠, 말띠, 개띠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동북방이 공부가 잘되고 서남방은 그 반대다. 마찬가지로 뱀띠, 닭띠, 소띠는 동남방이 길한 대신 서북방은 흉하고 원숭이띠, 쥐띠, 용띠는 서남방이 길한 대신 동북방이 흉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실제로 집안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사는 것일 게다. 그러나 무형의 에너지인 기를 감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방위라는 2차적 기 에너지를 도입해 실생활에 도움을 얻어볼 수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기 에너지는 공기처럼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러니 그것을 사용하고 안 하고는 오로지 당사자에게 달린 일이다.
2014-12-21 청와대는 천기 명당, 백악관은 지기 명당…日총리 관저는?
《양택 풍수에서 가장이 어떤 곳에 사는지에 따라 집안의 명운(命運)이 좌우되듯 국가 경영에서도 통치자가 어떤 곳에 머무는지에 따라 국운(國運)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과연 청와대는 다른 나라 최고 권력자들의 거주 공간과 비교할 때 얼마나 풍수 경쟁력을 갖췄을까.》
풍수에서는 죽은 자의 집[음택(陰宅)] 못지않게 산 자의 집[양택(陽宅)]도 중요시한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 양택지리서 ‘황제택경’은 음택과 양택을 비교하면서 양택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정도다.
‘묘지가 흉하지만 집터가 길하면 자손이 관록(官祿)을 얻으며, 묘지가 길하지만 집터가 흉하면 자손의 식록(食祿)이 부족하게 된다. 묘지와 집터가 모두 길하면 자손이 영화로워지고, 묘지와 집터가 모두 흉하면 자손이 고향을 떠나거나 대가 끊기게 된다.’
음택과 양택이 모두 길하면 으뜸이겠으나, 비록 조상의 음택이 흉지라 하더라도 그 자손이 좋은 양택에서 살면 관에서 주는 밥은 먹고살 정도는 된다는 게 ‘황제택경’의 논리다. 조상과 자손이 유전자적 인연에 의해 서로 묶여 음택을 통해 기운을 주고받는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영향력보다, 자손이 현재 사는 집에서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터의 기운이 현실적으로 더 크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터의 기운을 살피고 이를 중요시한 전통은 매우 오래됐다. 신라 건국 초기에 석탈해(昔脫解·재위 57~80)가 토함산 위에서 땅을 살피다가 호공(弧公)이 사는 집터가 초승달 형국의 명당임을 알고 그곳을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이 옛 신라의 궁궐인 월성(月城)이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석탈해와 가야의 왕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수로왕 역시 도읍 터를 정할 때 신답평(新畓坪)이라는 지역에서 이곳저곳을 살펴본 후 “이 땅이 여뀌잎처럼 협소하기는 하나 산천이 기이하게 빼어나니 16나한이 살 만한 곳이다. 하물며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매 칠성(七聖)이 살 곳으로도 적합하다”고 하면서 이곳을 도읍지로 개척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처럼 삼국시대 초창기부터 전승돼온 ‘터 잡기’는 고려와 조선 왕조의 개국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졌고,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한국인의 심층의식에 굳건히 자리 잡았다.
왕조의 종묘사직(宗廟社稷)이 터를 잘 잡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국도(國都) 풍수론은 현대에 들어서서 한 국가의 운명은 그 최고 통치자가 정치를 펼치는 공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국운(國運) 풍수론으로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한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는 국운 풍수상 어떠할까. 또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과 일본, 중국의 최고 통치자들이 머무는 공간과 비교할 때 얼마나 풍수 경쟁력을 지녔을까.
/청와대는 북악산을 뒤로하고 본관(가운데)을 중심으로 좌우에 별관이 배치돼 있다.
청와대 터 둘러싼 풍수 논쟁
우리나라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곳의 주인이 되길 꿈꾸는 청와대부터 살펴보자. 청와대 터에 대해 풍수적 시각으로 문제점을 공식 제기한 이는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처음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신동아’(2000년 3월호)에 풍수학자인 최창조·김두규 교수를 초청해 풍수 대담을 진행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최 전 교수는 “경복궁 북쪽 문인 신무문과 청와대 정문 사이에 난 도로를 경계로 하여 그 아래는 사람들의 거주처가 되고 그 위쪽은 신령(神靈)의 강림지가 된다”면서 신적 권위가 부여되는 청와대 터는 산 사람이 사는 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역시 일제강점기 청와대의 전신인 조선총독부 관저(舊 본관)에 살던 일본인 총독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고, 광복 이후 그곳에 살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 또한 퇴임 후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 등을 들며 청와대 터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 풍수 논쟁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대통령 측근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곤 했다. 모든 것이 청와대 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청와대 이전론까지 제기됐다. 최근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 청와대 이전을 아예 공약으로 내세운 대선 후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풍수를 업으로 삼은 지관들도 대체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산줄기가 골이 많이 져서 골육상잔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고, 산에 박혀 있는 바윗돌들이 살기(殺氣)가 강해 흉하다 △서북쪽 자하문 고갯길의 요처(凹處)에서 불어오는 골바람(북서풍)은 남향인 청와대 건물 처지에서 볼 때 황천살에 해당하므로 매우 불안한 형상이다 △주산인 북악산의 원줄기가 가회동 쪽으로 뻗어나가는 바람에 청와대는 배신당한 꼴이라는 점 등을 들어 청와대 흉지론 쪽에 무게를 둔다.
그런데 청와대 터가 명당임을 주장하는 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청와대가 운영하는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www.presiden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현재의 청와대 신축 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 중 관저 뒤의 암벽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새겨진 글자가 발견됐다는 것. 가로 2m, 세로 1.3m 크기의 바위에 새겨진 이 글자는 조선 중기인 300~4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찌감치 이곳이 으뜸가는 명당 길지로 꼽혔음을 말해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홈페이지는 또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정기를 끊어버리려는 속셈으로 경복궁 바로 앞에다 총독부 청사를 건설하고, 일본인 총독 관저는 경복궁 뒤쪽 경무대에 세웠다는 역사도 싣고 있다. 경복궁보다 지대가 높은 경무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지으면 남쪽의 총독부 건물과 함께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완벽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풍수적 계산에서 나온 건축이었다는 것이다. 즉 청와대가 속한 옛 조선의 궁궐 자리가 명당이기에 일본이 조선의 기운을 꺾으려고 풍수적 침략까지 자행했다는 뜻이다.
필자는 서울의 터가 고려왕조 때부터 왕이 임시로 머무는 이궁(離宮)을 세울 정도로 중요시한 곳이었고, 특히 조선의 한양도성(서울)은 재물 기운과 함께 권력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신동아’ 10월호 참조). 청와대 터는 크게 보았을 때 이 기운의 테두리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입지적으로 청와대 터자체는 사람이 못 살 정도의 흉지로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풍수지리학자 이몽일 박사는 청와대 일대에 있던 고려 궁궐은 고려왕조 시절 계획적으로 세워진 곳이라고 말한다. 풍수사상이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고려 숙종 9년(1104) 왕업(王業) 연장을 위한 길지로 이곳을 지목했고, 주변의 인왕산과 남산의 높이를 고려한 풍수적 설계에 의해 ‘연흥전’이라는 소궁궐을 건설했다는 것. 조선왕조 개국 때도 원래는 연흥전 터에 본궁을 건설하려 했지만 장소가 협소해 그 아래쪽으로 내려와 경복궁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즉 청와대 터는 고려와 조선왕조가 각별히 공을 들인 명당자리라는 얘기다.
국운과 ‘주인’들의 운명
이 박사는 특히 청와대 흉당론과 관련해 “새 대통령이 나오면 얼풍수들이 으레 그 사람의 조상 묘 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가 터를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대명당으로 미화하다가 퇴임 시 정쟁이나 비리로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하면 그것을 오로지 ‘청와대 터’ 탓으로 돌린다. 사람의 일을 탓하지 않고 땅을 탓할 때 풍수는 미신이 되고 만다”며 맹목적인 지리발복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 터와 대통령들의 풍수적 상관관계는 사실 우리나라 국운의 흐름에서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개인의 운 흐름은 대개 60년을 주기로 호운(好運)과 불운(不運)의 순환을 밟지만, 국가나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보다 더 큰 흐름인 360년(60년이 6회를 반복하는 주기)을 기준으로 상승운과 하강운의 순환 과정을 겪게 된다. 크게는 전반 180년은 양(陽)의 시대로, 후반 180년은 음(陰)의 시대로 분류할 수 있다.
실제 360년 대순환 주기는 어떤 나라의 운세를 살필 때 키워드 노릇을 한다. 우리나라 전쟁사를 예로 들어보자. 1231년 제1차 여몽전쟁을 시작으로 고려는 몽골과의 지루한 전쟁을 겪었고, 그 후인 1592년엔 일본의 침략으로 조일전쟁(朝日戰爭·임진왜란)을 겪었으며, 1950년엔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이 3개 연도 사이엔 모두 36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60갑자 이론으로 세계 각국의 국운 흐름을 연구하는 명리학자 김태규 씨는 음양오행상 갑목(甲木)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6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갑진(甲辰)의 해가 국운 분기점이 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360년 단위의 국운은 모두 6단계의 마디(60년)로 진행되는데, 1904년(甲辰) 시작된 제1단계 순환 마디는 1963년에 마쳤고, 지금은 1964년(甲辰)부터 시작된 제2단계 순환 마디에 해당한다는 것.
이를 청와대 터와 연관지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제1단계(1904~1963) 시기는 계절로 치면 춥고 배고픈 이른 봄철에 해당하며 어느 나라든 고난과 시련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1905년 일제에 의해 외교권을 뺏기고 1910년 국권까지 뺏기는 수모를 겪었다. 일제가 경복궁에 조선총독부를 건설하고 청와대 터에 총독관저를 지은 것(1939년)도 이 시기다.
새로 지은 관저에서는 모두 3명의 일본인 조선총독이 거쳐 갔다. 1945년 광복 이후엔 미군정의 하지 장관과 우리나라의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무실 겸 주거지로 사용하면서 6·25전쟁과 남북분단, 5·16군사정변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겪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역대 조선총독과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비참한 말로를 오로지 청와대 터와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국운의 흐름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해당하므로 나라를 빼앗기고 최고 통치자의 운명 또한 정쟁 등으로 비극적이고 험난한 길을 겪어야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운이 밑바닥에 있을 땐 그 터의 기운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다. 고려시대에 등장한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도 국운의 부침에 따라 터가 힘을 받쳐주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는 이론적 배경을 깔고 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관저 내부가 최창조·김두규 두 교수의 지적처럼 양택풍수상 잘못된 구조나 살기를 받아 그 해로움을 겪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운의 밑바닥 시기에 대통령의 관저가 마냥 좋을 리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건물 자체가 사라져 이를 확인할 길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일제 잔재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이 건물을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옛 건물 터는 현재 청와대 경내에 위치 표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백악관 전체는 권력형 지기가 감싸고 있다.
자손이 설치면 망하는 자리
1964년(甲辰)부터 시작된 제2단계(1964~2023) 시기는 어떠할까. 박정희 정권의 제3공화국 출범과 맞물려 시작된 제2단계는 국가 발전을 위한 역동성이 발휘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김태규 씨는 “이 시기에 해당하는 국가의 경우 대부분 위대한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으며, 더불어 국가 발전을 위한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심한 갈등과 분열 양상이 드러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러시아제국의 표트르 대제,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미국의 링컨 대통령,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모두 해당 국가의 국운 제2단계 시기에 등장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초석을 다진 지도자급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국운 제2단계 시기에 청와대 구본관의 주인들은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우리나라의 절대 빈곤을 해결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엔 경제성장과 올림픽 등을 통해 국력과 국격(國格)을 드높였다. 이 시기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탄을 받을 만큼 급성장했다. 터와 국운을 논하는 국운 풍수적 시각으로 볼 때도 청와대 자리를 흉당이라고 폄훼할 근거가 박약한 것이다. 다만 퇴임 후 겪은 대통령 개개인의 불행은 터로 인한 국가수반의 불행이라기보다는 각자가 스스로 초래한 ‘예정된 사건’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제2단계 시기의 정점이라 할 만한 19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신축을 결정해 오늘의 청와대 모습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수행단을 거느리고 방한했을 당시 청와대 구본관이 너무 협소해 나라의 체면을 구긴 사달이 났는데 이 일이 신축 공사의 배경이라고 한다.
청와대 신축 배경이야 어떻든 구본관은 사실 북악산 기슭의 후미진 곳에 자리 잡아 시민들이 쉽게 바라다볼 수 없는 구중궁궐과 같았으나, 새로 자리 잡은 본관은 서울시내에서 곧잘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주변 산과 조화를 이뤄 안정감을 주는 명소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청와대 신축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천하제일복지’라는 암각 글자는 청와대가 비로소 대한민국 국운을 상징하는 대표성을 갖게 됐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원래의 청와대 구본관이나 현재의 본관 자리는 터의 국세(局勢)로 살펴볼 때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건물이 입지한 모양새로 볼 때는 차이가 있다. 새 청와대 본관은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별채를 각기 배치한 ㄷ자 구조인데, 최고의 권력 터답게 땅에서 분출하는 지기(地氣)형 권력 에너지가 건물 전체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중의 천기(天氣)가 청와대 본채를 중심으로 빛살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국운 상승을 북돋우는 기상을 하고 있다. 이는 구본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운이다.(앞 사진 참조)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본채를 정면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방향의 대통령 집무실과 오른쪽 별채 일부분의 경우 강한 살기(殺氣)에 노출됐다. 이러한 살기는 대통령의 직계 자손에게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살기는 권력과 맞물린 기운이기도 하므로 대통령 자손이 권력과 연계된 행동을 할 경우 바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예컨대 청와대 신축 관저의 주인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그 아들들이 권력에 개입했다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커다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다만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은 독신이라서 자손 문제에서는 자유롭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청와대 관저는 국운을 북돋우는 하늘의 기운이 땅의 권력 기운과 너무 강하게 맞물려 있어서 자칫하면 대통령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대통령이 강한 권력 기운을 감당할 만큼 기운을 중화할 수 있는 풍수적 비보(裨補) 장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총리 관저. 앞쪽 건물이 숙소용이고 뒤쪽이 집무용이다. 둥그런 모양이 영기(신기)가 집중되는 곳이다.
神氣 강한 일본 총리 관저
현재 대한민국은 국운 제2단계의 끝자락 부분에 와 있고, 10년 후인 2024년(甲辰)엔 제3단계로 접어든다. 국운 제3단계는 내부에서 통합돼 뭉쳐진 강력한 힘이 외부 세계로 뻗어나가고 발산하는 시기다. 김태규 씨는 제3단계 시기에 가장 위험한 점은 과도한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이어졌다가 후에 외부로부터 역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3단계 시기에 있었던 독일(1890~1949)과 일본(1885~1944)의 경우 팽창주의에 의해 침략전쟁을 벌였다가 철저한 응징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국운 제2단계가 끝나는 2024년을 전후해 실질적인 남북통일 상태를 맞이할 것이며, 본격적인 국운 제3단계 시기에는 화려한 비상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어쩌면 현재의 청와대 상공에서 내려오는 천기는 사실상 국운 제3단계를 위해 예비해온 기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의 천기는 사람마다 독특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북악산 자락 높은 곳에 위치한 청와대 경관이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처럼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신들의 세상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물론 이러한 느낌을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운을 주도하는 천기 에너지가 가진 속성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다.
사실 신들이 노니는 느낌을 주는 최고 권력자의 공간은 청와대가 아닌 일본 총리 관저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취임 뒤 총리 관저 입주를 거부했는데, 총리 관저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에 대해 “모시 요시로 전 총리가 귀신의 일부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입주 거부의 이유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현재도 관저에서 생활하지 않는 아베 총리는 자택에서 출퇴근한다.
일본 총리 관저는 집무실 공간과 숙소용 공간으로 나뉜 구조다. 그런데 숙소용 공간엔 하늘로부터 영기(靈氣)가 내려온다. 이러한 영기는 천기와 지기가 쇠해 기운이 공중으로 떠버린 공간에서 가끔씩 출현하기도 한다. 일본 전직 총리가 숙소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얘기도 영기의 기운이 강하게 침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도 일본 총리 관저와 똑같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기운이 공중으로 떠 있는 상태다. 한때 국회 의원회관에서 귀신 출몰설로 국회 직원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났는데, 기운이 뜬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地氣 강한 백악관과 중난하이
어찌 보면 일본 최고 권력자인 총리가 머무는 공간의 기운이 쇠했다는 건 일본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의 기운은 총리 관저가 아니라 일왕이 머무는 곳에서 다시 찾아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늘 아래 천손(天孫)민족으로 자부하는 우리나라는 사실 땅 기운보다 하늘 기운에 더 민감했던 듯하다. 삼국시대 이래 남겨진 문화유적들을 보면 대개 천기가 강하게 내려오는 곳이거나, 천기와 지기 혹은 천기와 수정기(水精氣)가 배합된 곳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역시 지기보다는 천기의 영향력 아래 강하게 노출돼 있음은 물론이다.
이와 달리 미국 대통령이 머무는 백악관과 중국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중난하이(中南海)는 천기 대신 지기가 강력한 곳이다. 백악관 주변 일대는 원형의 지기가 세계를 경영할 수 있도록 대국(大國)의 기운을 뿜어낸다. 백악관은 조성 당시 최고의 풍수적 감각을 갖춘 설계자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보인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도시계획자인 피에르 랑팡과 함께 새 수도인 워싱턴에서 백악관과 의사당 건설 등 도시계획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랑팡은 최고의 풍수가라고 칭송받을 만큼 뛰어난 안목을 갖췄던 인물인 듯하다. 건물 배치에서 탁월한 입지를 구축한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풍수 대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백악관의 기운은 향후 수십 년 후쯤엔 휴지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기쇠왕의 논리는 외국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백악관에 잠복해 있던 살기가 터져 나와 국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중국의 최고 권력층이 거주하는 중난하이의 경우 베일에 싸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궁궐인 자금성 서쪽 지역에 자리한 중난하이는 중하이(中海)와 난하이(南海)라고 하는 2개의 호수를 합친 명칭인데, 마오쩌둥,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등 중요 인물이 관저로 사용한 건물들이 있으며, 시진핑 현 주석 역시 중난하이의 근정전(勤政殿)에서 집무한다. 이곳 역시 베이징 도심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향산(香山)에서 오는 지기가 강하게 맺혀 있으며, 세계 경영의 꿈을 키우는 곳이다. 단 이곳의 기운은 분열의 기상도 없지 않으므로 향후 중국 정치의 미래는 계속 지켜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웃 나라들의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공간과 청와대를 비교하더라도 청와대 터가 결코 다른 곳에 ‘꿀리지’않는다. 백악관이나 중국 근정전에 흐르는 지기 못지않은 천기를 청와대가 품고 있으며, 특히 이러한 천기는 시들어가거나 휴지기에 들어가는 기운이 아닌, 젊은이의 기운처럼 앞으로 뻗어나갈 기운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터에서 대통령들이 정치를 펼친 지 한 갑자가 넘었다. 그 60년의 짧은 시기에 대한민국은 단군 이후 가장 부강한 나라로 성장했다. 이 기운이 지속되려면 청와대에 살던 역대 대통령의 말로가 좋지 않았다는 흉당설은 이제 자제해야 할 때도 된 듯하다. 새 청와대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부 좋지 않은 살기는 비보풍수로 제살(制煞)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몽일 박사의 “청와대 풍수의 문제점은 터를 잘못 잡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운용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는 데 있다”는 말이 더욱 피부에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공간 운용의 묘미야말로 현대 풍수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2015-02-20 수맥 피하고 귀문(北東) 방위 경계하라
우리 집 명당으로 바꾸기
풍수는 생기(生氣)를 찾아내 양택이나 음택의 명당지로 이용하는 것을 지상 명제로 삼는다. 그러나 먹고살기도 바쁜 현대인이 조상을 모실 명당자리를 잡거나, 단독주택 위주인 풍수 명당을 고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집 안에 흐르는 수맥을 피하고, 흉하게 여기는 동북쪽 귀문 방위만 잘 다뤄도 평범한 우리 집이 명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풍수지리에서 물(水)은 흥미롭게도 길(吉)과 흉(凶)이라는 양면성을 띤다. 명당의 필수 조건인 땅의 생기(生氣)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좋은 물’이 있는가 하면, 인체 건강에 해로움을 끼치는 ‘나쁜 물’도 있다. 이는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도 있지만, 오염되거나 산성수처럼 특정 성분을 지나치게 많이 함유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물도 있는 것과 같다.
풍수에서 ‘좋은 물’의 사례로 조선시대 호남을 대표하는 부잣집인 구례 운조루(‘신동아’ 2015년 1월호 506쪽 참조)를 들 수 있다. 운조루 대문 앞으로는 동에서 서쪽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도랑을 인공적으로 조성했고, 또 그 도랑 앞으로는 상당한 규모의 연못까지 만들었다. 이 인공 도랑과 연못은 운조루에 부를 가져다주는 생기(재물 기운)가 내부에서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비보(裨補) 장치이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살기(殺氣)를 차단토록 하는 이중 기능을 한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의 경우 자연적으로 형성된 한강과 청계천이 바로 ‘좋은 물’에 해당한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양(옛 서울)의 생기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에 의해 새나가지 못하고, 내부적으로는 궁궐 북쪽에서 발원한 청계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 중랑천과 합류함으로써 이중의 잠금장치 구실을 한다. 서울이 대명당의 격을 갖췄다는 것은 한강과 청계천이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에서도 증명된다.
이렇게 물이 생기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풍수 용어로는 ‘계수즉지(界水則止)’라고 표현한다. 생기는 물을 만나면 머물게 된다는 뜻이다. 부자가 되려면 물을 얻어야 한다는 ‘득수(得水)’의 의미도 여기에 함께 담겼다.
그런데 물은 생기에 대해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생기를 가두거나 멈추게 하는 것이 물이라는 말은, 달리 생각해보면 생기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물이라는 뜻도 된다. 즉, 물은 어떤 변수가 생길 경우 생기를 없애거나 졸아들도록 만드는 무서운 살기 노릇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요즘 풍수계에서 유행하는 수맥(水脈)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중엽에 그려진 ‘한양도성도’(작자 미상). 한강과 청계천이 이중 잠금장치
기능을 해 한양(옛 서울)의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신동아
건강의 적, 수맥파
사실 수맥 혹은 수맥파라는 용어는 전통 풍수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유럽 출신 천주교 신부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수맥 찾기는 원래 추(펜듈럼), 혹은 ‘엘-로드(L-rod)’ 같은 일종의 탐사 장비로 땅속 깊숙이 존재하는 지하수를 발견하는 방법이었다. 우리 조상이 버드나무 가지 등을 이용해 우물물을 찾아내던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데 서양의 일부 과학자들이 수맥파를 ‘해로운 지구 방사선(Harmful Earth Radiation)’의 일종으로 설명하면서 수맥과 건강의 관련성이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다. 지구 자기장이 형성한 전기적 파장은 땅 표면으로 방사(放射)되기 마련이다. 이때 지하 암반층 등에 형성된 강력한 수맥대를 통과하는 전자기파의 경우 생명체에 해로움을 주는 에너지파로 변형, 왜곡된다는 게 수맥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어찌 보면 수맥파는 사실 물과는 관계가 없는, 일종의 교란된 에너지파다. 다만 지하 수맥대가 형성된 곳에서 수맥파가 방사된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물의 대명사로 ‘수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면도 있다.
아무튼 수맥파는 마치 각종 전기적 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처럼 인체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스트레스성 에너지다. 실제로 수맥과 인체 건강의 상호 관계에 대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이뤄진다. 독일인 의사인 하거 박사는 22년간(1910~1932) 암환자 5348명의 주거지를 조사한 결과, 99%의 가옥이 수맥파 위에 있었다고 보고한 바 있고, 이후에도 유럽 각국에서 암환자와 수맥파의 연관성에 관한 다양한 실험이 시도됐다.
국내의 경우 영남대 연구진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수맥이 인체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로 지자기(地磁氣) 교란 현상을 꼽으면서, 지자기 교란 수치가 평균보다 150% 정도 높은 경우 두통, 편두통, 집중력 저하, 목의 뻐근함 같은 증세를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또 사람이 수맥에 노출될 경우 뇌의 지각기능과 시각의 신경생리적 기능이 저하된다는 국내 의학자의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하세계의 보이지 않는 기운을 그럴듯한 과학 이론을 도입해 설명하는 수맥파 이론은 땅속 세계를 논하는 우리나라 풍수계에서도 일정 지분을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예 수맥만이 유일무이한 풍수 이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날 정도다.
물론 수맥만으로 풍수를 논하는 ‘수맥풍수’는 단편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생기가 모인 곳에는 대체로 그 인근에 생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수맥 역시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풍수와 아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금붕어도 수맥은 피해 간다
일반적으로 수맥파와 생기가 만나면 수맥파가 지나가는 곳을 생기가 통과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히면서 명당이라고 표현되는 혈장(穴場)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 역시 수맥파에 의해 에너지가 약화되는 등 어느 정도 손실을 겪게 되지만, 수맥이 있는 곳 주위에는 수맥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좋은 생기가 있을 확률 역시 높다.
대표적인 예로 경상도 부자를 상징하는 경주 최 부잣집을 꼽을 수 있다. 최 부잣집에 형성된 집터의 생기는 앞뒤의 담장 밖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수맥파에 의해 가둬진 모양새다. 즉 지하에서 올라오는 수맥 에너지파가 지상의 생기를 가두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곳이 수맥이 흐르는 장소이고, 어떤 곳에 생기가 흐르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다. 수맥 전문가들은 추나 엘로드 등으로 수맥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일반인이 배우기에는 낯선 영역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해본다. 집 안에서 수맥이 흐르는 지점과 그렇지 않은 지점을 구분해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은 물고기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대체로 수맥파는 일정한 폭을 갖고 직선 혹은 곡선의 형태로 흘러가는 모양새인데, 그 좌우 양옆은 수맥파가 없는 평범한 곳이거나 생기가 흐르는 곳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직육면체로 생긴 어항의 절반은 수맥파가 흐르는 곳에, 나머지 절반은 수맥파가 감지되지 않는 곳에 놓을 경우 물고기들은 어떤 반응을 취할까.
놀랍게도 물고기들은 잠시 물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수맥파가 흐르지 않는 지점으로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어항을 수맥파 측정 매개체로 삼아 임의로 위치를 이동해가면서 물고기들의 반응을 확인해보면 수맥파가 집 안에서 어떻게 흐르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집 안 전체가 수맥파에 노출돼 있거나, 수맥파가 일정한 방향성을 띠지 않은 채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어항 속 물고기로 수맥파를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맥파가 사람은 물론 동식물에도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용해 수맥 지점을 찾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거실 발코니 등에 똑같은 조건으로 놓인 화분들에서 화초가 자라나는 상태에 차이가 있는지 여부다. 일반적으로 수맥파가 있는 곳에서는 나무의 성장 상태가 좋지 않거나 심한 경우 거의 말라 죽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른 곳에서는 멀쩡히 성장하던 나무가 어느 특정 지점에서 비정상적인 상태를 보이면 바로 그곳이 수맥파의 영향을 받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수맥파의 위험은 산업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호우주센터에서는 여러 차례 실패 끝에 겨우 나로호 발사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발사 과정에서 부품 결함과 기기 고장이 여러 차례 발견됐는데, 일부 수맥 전문가들은 나로호우주센터의 조립동과 발사대에서 엄청난 수맥파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수맥파의 영향을 받아 과학자들의 집중력 방해는 물론 정밀기기가 고장을 자주 일으킨다는 것.
그렇다면 수맥파는 어떻게 차단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동판이나 알루미늄 등을 바닥에 깔아놓으면 수맥파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맥파의 강도가 약할 경우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강력한 수맥파가 흐르는 곳이거나 집 안 전체에 수맥파가 형성돼 있는 경우라면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인 듯하다.
대부분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 다가구를 이뤄 살아가는 현대인의 경우 생기가 충만한 명당 지역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생기는 차치하고 가족이 주로 머무는 공간만이라도 수맥파가 있는 곳을 피하게 하면 훌륭한 명당이 될 수 있다.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방
지하의 수맥파만큼 흉하게 보는 공간의 방위도 있다. 방위를 중심으로 사람의 길흉을 따지는 이기파(理氣派) 풍수에서 가장 꺼리는 방위는 어디일까. 바로 귀신이 들락거리는 방위라 하여 일명 귀문방(鬼門方)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귀신이 출입하는 곳이다보니 산 사람들이 자칫 귀신으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있어 흉한 방위가 된다는 것이다. ‘주역’의 후천팔괘 이론에 따르면 동북쪽 방위인 간방(艮方)과 그 대칭점인 서남쪽 방위 곤방(坤方)을 가리킨다.
간방을 흔히 표귀문방(表鬼門方, 바깥 귀문방)이라 하고 곤방을 이귀문방(裏鬼門方, 안 귀문방)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두 방위는 모두 기운이 교차된다는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북동쪽인 간방은 시간으로 치환하면 겨울이 지나 봄이 시작되는 환절기, 서남쪽인 곤방은 여름이 지나 가을이 시작되는 환절기에 비유된다. 인생의 계절로 치면 간방은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시기이고 곤방은 청년기에서 중년기로 접어드는 중차대한 시기다.
이러한 환절기는 양의 에너지가 음의 에너지로(서남방), 음의 에너지가 양의 에너지로(동북방) 그 기운이 급격히 바뀌는 때이므로 여러모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동남방(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환절기)과 서북방(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환절기)도 있지만 이들 방위는 같은 기운인 양에서 양, 음에서 음으로 에너지가 바뀌므로 그 기운 교차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문왕팔괘(후천팔괘) 방위. 신동아
풍수에서는 양기와 음기가 서로 부딪치고 기의 교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흉하게 보기 때문에 당연히 귀문방을 꺼린다. 특히 동북쪽 방위인 간방을 대표적인 귀문방으로 설정해 경계한다. ‘주역’에서도 간방은 만물이 끝을 맺는 곳이자 다시 시작하는 곳이라 하여 요주의 지점으로 본다. 양택 풍수의 대표적 고전서 ‘황제택경’에서는 귀문방에 대해 무시무시하게 설명한다.
“귀문 방위는 집 안의 기운을 막는 곳이다. 이곳을 편고(偏枯)하게 범하면 반신불구가 되거나 종기가 나는 등의 재앙이 있다.”
실제로 우리 조상은 귀문 방위에 대해서는 불결한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경계하고 항상 청결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동북쪽 방위의 건물 구조가 방정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하거나, 화장실·하수구·창고·쓰레기통 등 불결한 의미를 지닌 시설이 놓일 경우 집안에 액운이 미치기 쉽다고 보았다.
일본은 귀문방에 대해 우리보다 더 경계심을 가졌다. 11세기 헤이안 시대에 나온 일본 최고(最古)의 정원서 ‘작정기’는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의 금기사항 등을 자세히 기록했는데, 여기서도 귀문에 대해 언급한다.
“오척(五尺) 이상의 돌을 북동쪽에 세우지 말라. 귀문에서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높이가 4~5척 되는 돌도 귀문에 세우지 말라. 이는 유령돌(靈石)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악귀들이 들어오는 것을 재촉해 사람들이 오래 거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담이 퍼진 일본 총리 주거동 공저(앞 건물)와 업무 공관인 관저(뒤 건물). 신동아
일본인들이 귀문방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사실은 통계조사에서도 드러난다. 1947년 일본 문부성 조사(文部省迷信調査協議會)에 의하면 귀문방을 회피하려는 ‘귀문 회피율’이 조사 대상자 중 66%에 달했는데, 도시와 농촌 같은 지역이나 중졸과 대졸 같은 학력 수준에 관계없이 평균 6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현대에 와서도 일본인은 귀문방에서 귀신이 출몰한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듯하다. 이는 2013년 일본 총리 관저의 귀신 소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퇴근 후 거주하는 공저(公邸)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얘기를 “전직 총리(모리 요시로)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밝히면서 일본 사회에 귀신 괴담이 눈덩이처럼 확산된 것. 이를 귀문 논리로 해석하자면, 일왕이 머무는 고쿄(皇居)를 기준으로 총리 공저가 남서쪽의 귀문방에 자리하기 때문에 귀신이 자주 출몰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귀문 회피 성향은 한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귀문 방위 등 상당한 양의 풍수 이론을 담은 책이 ‘작정기’이고, 이러한 일본 풍수는 백제 승려 관륵(觀勒)에 의해 전해졌다는 것이 한일 역사학계의 통설이기 때문이다.
귀문방에 대한 비책
실제로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 안치된 칠성각을 보면 귀문 방향을 고려한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두칠성의 신을 모시는 칠성각의 경우 밤하늘에 북두칠성이 나타나는 간방을 뒤로하고(坐) 새벽녘 북두칠성이 사라지는 곤방을 바라보도록(向) 배치됐다. 즉 귀문방에 북두칠성의 신들을 모셔 그 신령한 기운을 중생에게 베풀도록 한 구조인 것이다.
귀신의 출입구인 귀문방에 대처할 수 있는 비법은 없을까. ‘작정기’에 의하면 남서쪽 귀문방에 삼존불상을 세우면 재앙이 없고 귀신들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즉 불상의 힘을 빌려 귀신의 해를 막겠다는 다소 주술적인 방책이다.
대체로 귀문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귀문 방위에다 신들과 관련되는 종교적 시설물을 세우거나, 동북방의 건물 모서리를 인위적으로 함몰시켜 귀문을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본다. 일본 교토에 있는 교토황궁의 경우 건물 북동쪽을 의도적으로 함몰해 귀문 방위를 회피하는데, 이는 교토황궁의 안내판을 보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를 현대인이 사는 주택에 적용해보자. 귀문, 특히 동북쪽 방위에는 반듯하지 못하거나 불결한 의미가 깃든 물건들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기운이 교차하는 북동쪽은 공기 가 잘 순환되지 못해 상대적으로 다른 방 위에 비해 기운이 탁하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대부분 창과 문을 닫고 생활하므로 동북방의 불결한 시설물 등에서 악취와 부패 같은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또 다른 귀문 방위인 남서쪽은 햇빛이 잘 들어 온도는 높을 수 있지만 역시 공기가 다른 방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탁하므로 이곳에 음식을 놓아둘 경우 쉽게 부패한다.
필자가 잘 아는 지인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아파트 생활을 하는데, 그의 집은 남서 방향에 현관이 있고, 바로 마주 보이는 방향인 북동 방위에 화장실이 배치된 구조다. 필자가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역한 악취가 풍겨 왔다. 지인은 화장실을 늘 깨끗이 하려 노력하지만 냄새가 유난히 심하고 환기도 잘 안돼 고충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세면대에 설치된 배수구 등도 툭하면 막힌다고 했다. 이 집에 이사한 후 꾸준하던 사업도 예전에 비해 못하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귀문방의 해로움을 겪는 듯했다.
출입구는 귀문방 피해야
그의 집은 풍수 가상학(家相學)으로 볼 때 적극적으로 피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집에서 이사 가지 않는 한 귀문 방위의 해로움을 벗어날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귀문방이 화장실로 설계된 이상 최대한 위생적으로, 그리고 정결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라고 조언했고, 날카로운 물건이나 단정치 못한 생활필수품도 똑바르게 배치하도록 충고했다. 귀문방에 있어도 입지가 평탄하고 대지 모양이 원만하거나 그 위에 놓이는 물건 모양 등이 단정하고 정결하면 해로움에서 어느 정도 비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문방을 피하려는 것은 외식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에게는 경험적으로 느껴지는 심리이기도 하다. 귀문방으로 사람을 들이면 마사(魔事), 즉 삿되고 좋지 않은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신바람을 탄다’는 얘기다. 그래서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귀문방을 피해 출입구를 내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기의 세계를 논하는 풍수학은 땅속에 흐르는 기를 찾아내고, 공간에서도 보이지 않는 기를 읽어내는 형이상학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땅에서 나쁜 물의 기운이 전달되는 수맥파나 좋은 기운인 생기를 찾아내고, 공간을 구별하는 방위는 저마다 특징적인 기운을 갖기 때문에 취사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고는 풍수적 논리에서 당연하다고 하겠다.
사실 현대인이 풍수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수맥을 피하고 귀문 방위에 현명하게 대처하면 굳이 명당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신체가 건강하고 마음도 안정적이어서 하는 일도 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풍수 연재를 끝내면서 독자를 위해 적극적인 양택 풍수 개운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앞에서 예로 든 수맥과 귀문방 피하기가 소극적인 풍수 행위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운을 개척하는 개운 풍수도 있다.
이는 자신이 태어난 해의 띠를 바탕으로 특정한 방위에 기운을 보강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모두 12동물의 띠를 가졌는데, 각각의 띠에 해로운 방위와 이로운 방위를 부여할 수 있다. 이 중 특히 자신이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해지는 방위를 ‘반안살(攀鞍煞)’이라고 한다. 이는 명예와 지위를 안겨주는 방위이기도 하다.
반안살로 머리를 두고 자라
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사는 집의 중심점(중앙)을 기준으로 잡는다. 일반적으로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구조의 집일 경우 모서리의 대각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집의 중심점이 된다. 그리고 집의 중심점에서 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사용해 대략 방위를 체크해본다. 여기서 방위는 보통 8개로 나뉘나, 더욱 정밀하게는 12방위로 나누어보는 게 좋다.
/신동아
12방위는 풍수에서 사용하는 패철이 있으면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시침과 분침 등 바늘이 있는 손목시계를 이용해서도 구별할 수 있다. 즉, 정북 방향에다 시계의 12시가 가리키는 방위를 놓으면 1시 방향이 축(丑)방위, 2시 방향이 인(寅)방위, 3시 방향이 묘(卯)방위(正東), 4시 방향이 진(辰)방위, 5시 방향이 사(巳)방위, 6시 방향이 오(午)방위(正南), 7시 방향이 미(未)방위, 8시 방향이 신(申)방위, 9시 방향이 유(酉)방위(正西), 10시 방향이 술(戌)방위, 11시 방향이 해(亥)방위가 된다.
그런 다음 음력으로 자신이 해당하는 띠를 찾아낸다. 음력으로 돼지띠· 토끼띠·양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동남방이 반안살에 해당한다. 호랑이띠·말띠·개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서남방이고, 뱀띠·닭띠·소띠는 서북방이다. 그밖에 원숭이띠·쥐띠·용띠는 동북방이 그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원숭이띠·쥐띠·용띠 사람들은 귀문 방위인 동북방이 좋은 방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 띠의 사람들은 다른 띠 사람들에 비해 귀문 방위의 길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
반안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평상시 두침(頭枕) 방향을 반안살로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는 그때의 건강 상태에 맞추어 저절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자도록 설계돼 있다.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자는 어린이들의 경우 수시로 잠자는 방향이 바뀌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사실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그러나 어른이 돼 침대 생활을 하다보면 습관적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누워 자게 되고 자연스러운 두침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반안살 방향으로 누워 자보면 아침에 일어나 몸이 훨씬 개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안살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사할 시기가 됐을 경우 가장의 띠를 기준으로 반안살 방향으로 새집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무튼 반안살은 필요에 의해 자신이 의도적으로 시행하는 풍수 개운법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소원 성취를 기대할 경우 돈 안 들이고 해볼 수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기 에너지는 공기처럼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제공되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2015년 한 해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이때, 풍수적 환경 설계로 새롭게 삶을 설계해보면 어떨까.
2015-08-19 부자는 물을 좋아한다?
해변 개가 산골 부자보다 낫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산간벽지는 길이 막히거나 좁아서 교통과 교역이 불편하다. 반면 강이나 바닷가는 물길을 따라 도로가 열리고 각종 물산과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레 시장과 도시가 발달한다. 그러니 해변 개가 산골 부자보다 먹을 게 많다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돈 되는 곳’임은 동서와 고금이 똑같다.
물가 혹은 물길은 예전부터 부를 축적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었다. 풍수에서도 그렇게 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물은 재록(財祿)을 맡은 것이므로 큰 물가에는 부유한 집과 유명한 마을이 많다. 비록 산중이라도 시내와 계곡물이 모이는 곳이라야 여러 대를 이어가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 터가 된다”고 말했다. 물을 만나야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택리지’의 논리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집터를 고를 때도 금과옥조였다.
풍수에서는 돈을 부르는 물이 있는 곳을 귀한 터, 곧 명당이라 한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잘 맡는다는 부자들이 그런 터를 애써 구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자들만큼 풍수를 좋아하는 집단도 찾아보기 어렵다. 부의 원천이 터에 있다는 풍수적 믿음은 우리나라 부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재벌그룹이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의 SK그룹 사옥은 부자들의 풍수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와 물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 중 하나다. 1999년에 완공한 SK그룹 서린동 사옥은 재물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명당으로 손색이 없다.
일부 풍수가들은 이 터가 북한산에서 기원한 용맥(龍脈·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이 삼청공원을 거쳐 남쪽으로 흐르다가 청계천을 만남으로써 지기(地氣)가 응집돼 명당이 됐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식 풍수이론으로 이 터가 용맥에서 기원한 유동형지기(流動形地氣)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엔 지세(地勢)가 너무 약하다. 오히려 통일신라시대까지 전승돼온 우리식 풍수 읽기로 설명하는 게 맞을 듯싶다. 우리의 전통 풍수로 보면 이 터는 땅속에서부터 곧장 솟아오르는 상승형지기(上昇形地氣)가 지상 36층 규모의 사옥 전체를 덮을 정도로 매우 세다.
아쉬운 점은 이런 지기가 작동을 잘하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줄 ‘물 기운’이 부족하다는 것.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비보(裨補)풍수’다. 약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보강해주는 풍수적 장치를 가리킨다. 서린동 사옥 완공 당시 손길승 SK그룹 회장(현 SK텔레콤 명예회장)은 빌딩에 물의 상징인 거북 모양을 새기도록 풍수비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옥이 있는 서린동은 화기(火氣)가 승한 자리라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는 수(水)의 기운인 거북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현재 서린동 사옥은 거북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물(거북)을 상징하는 어두운 장방형 건물의 남쪽 정문 앞에는 점 8개로 상징한 거북의 머리를, 북쪽 후문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거북의 꼬리를 새겨 놓았다. 또 건물의 네 귀퉁이 기둥 아래에는 5개의 발가락을 가진 거북의 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언제부턴가 사옥 정문 앞쪽에는 장방형의 돌 수조도 만들어 놓았다. 거북이 사시사철 물을 축이도록 한 풍수적 조치다. 이로써 서린동 사옥은 신령스러운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 명당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인작(人作)은 자연의 선물인 천작(天作)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영구음수형 사옥에 입주하고 나서 SK그룹 총수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는 터의 주인이 직접 비보를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사옥은 수덕(水德)을 가진 경영자가 이끌어야 물을 갖춘 재물 명당으로서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물은 순리를 따라 아래로 흐르되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적셔드니 마치 지혜를 갖춘 자와 같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고난을 딛고 수덕의 경영 능력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2015-09-09 天氣 명당 청와대와 주석궁의 氣 겨루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독교 주기도문의 한 구절처럼 풍수의 본질을 쉽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고대 중근동을 무대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던 시절,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하늘의 뜻이 지상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곳을 찾아내고자 하는 감여학파(堪輿學派)가 등장했다. 하늘의 이치를 나침반 삼아 명당 길지를 추구하는 풍수가들이었다. 풍수학의 비조로 받들어지는 곽박(郭璞·276∼324)을 비롯해 원천강(袁天綱), 이순풍(李淳風) 같은 초기 풍수가가 모두 역법에 밝은 천문학자였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풍수의 고전 ‘영성정의(靈城精義)’에는 하늘의 뜻이 더욱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땅은 본래 정기(精氣)가 없으나 별빛이 내리쬐는 것으로 정기를 삼고, 땅은 원래 길흉(吉凶)이 없으나 별의 기운(星氣)으로 길흉을 삼는다.” 하늘의 뜻이 별을 매개체로 삼아 땅으로 전달돼 기운이 감돌고 나아가 인간사 길흉까지 좌우한다는 의미다.
천광조림(天光照臨), 즉 하늘의 기(빛)가 땅에 직접적으로 임하는 곳을 가리켜 이른바 ‘천기형(天氣形) 명당’이라고 한다. 신명(神明)이 밝았던 고대 한국인들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황남대총과 천마총 등 경주 고분군, 태왕릉과 장군총 등 중국 지안(集安) 현 퉁거우(通溝) 무덤군, 그리고 서울 석촌동 고분군 등 삼국시대 고분이 대표적인 천기형 명당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천기형 명당은 권력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기형 기운은 명예와 권위, 지배라는 속성을 인체의 유전코드처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등장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선대(先代)의 천기형 명당 기운에 힘입어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는 게 풍수적 시각이다. 그런데 천기형 기운은 양면의 모습을 띤다. 이 기운이 적절히 작동할 때는 출세와 권력 쟁취라는 길한 작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왜곡될 때는 아집과 소통 부재, 불명예라는 흉한 작용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천기형 명당인 청와대를 보자. 이 건물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새로 조성됐는데 대통령 집무실인 본관과 거주 공간인 관저가 분리된 구조다. 권력의 핵심 터답게 두 곳 모두 하늘 기운이 직접 내려오는 곳임이 분명하다. 300∼400년 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암벽 글자가 관저 신축 공사 중에 발견됨으로써 이곳이 길지(吉地)라는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다만 청와대 터는 천기가 너무 강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자칫 기운이 지나치면 땅속에 잠복돼 있던 살기(煞氣)가 발동할 수도 있다. 천기형 명당 기운을 강하게 지닌 권력자일수록 이런 역기능도 비례해서 받는다. 과연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에 입성한 역대 권력자가 독선과 아집의 정치,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소통 부재의 정치라는 꼬리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국의 백악관처럼 천기의 강기(剛氣)를 부드럽게 해줄 수 있는 지기(地氣)의 보충이 못내 아쉽다.
터는 그 기운에 맞지 않는 사람이 주인이 될 경우 쇠락하기도 한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이 머무는 주석궁이 이에 해당한다. 원래 평양의 주석궁은 청와대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강한 천기가 내려오던 곳이다. 그런데 최측근을 가차 없이 제거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김정은의 행보는 주석궁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비무장지대의 지뢰 도발 사건으로 야기된 청와대(박근혜)와 주석궁(김정은)의 힘겨루기는 주목할 만하다. 판문점 남북회담은 청와대의 강기가 긍정적인 작용을 한 반면 주석궁의 천기는 왜곡되고 쇠락하기 시작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갓 태어난 진돗개 새끼 다섯 마리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올린 내용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 의지가 담긴 대통령의 메시지로 보인다. 무엇보다 천기나 지기 같은 기(氣)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진돗개 식구들이 건강하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청와대의 천기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싶다.
2015-09-30 “수맥 없는 집 없나요?”
/집 벽에 지은 말벌집 바로 아래 땅 밑으로는 수맥이 흐르고 있다. 환경부 제공
그야말로 전세 전쟁이다. 서울 강남권은 6년째 계속되는 전세난에다 재건축 이주 시기까지 겹쳐 최악의 전세 대란을 치르고 있다. 강남에 사는 기자도 이 전쟁에 홍역을 치렀는데,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 고객이 전세금은 얼마든지 내겠다며 풍수사를 동원해 좋은 터를 찾는다고 해서 무려 50여 군데나 소개해 준 적이 있다.”(강남구 역삼동 K부동산)
“직접 L로드(수맥탐사 장비)를 들고 남의 집에 들어가 이리저리 수맥을 검사하고 나서 전세 계약을 한 대학 교수도 있었다.”(서초구 우면동 L부동산)
전세금이 집값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수맥 같은 해로운 기운이 없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고객이 수맥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아∼, 그러세요” 하며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서초구 양재동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아예 수맥 찾는 법을 배워 원하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수맥과 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풍수지리에서 물은 길(吉)과 흉(凶)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명당의 필수 조건으로 생기(生氣)를 활성화시키는 물은 ‘양수(陽水)’라고 해서 좋은 물이다. 터를 활처럼 휘어지듯 감싸고 도는 강이나 하천, 저수지 등 지상에 노출된 물이 그렇다. 부자가 되려면 물을 얻어야 한다는 ‘득수(得水)’의 논리도 양수에 관한 것이다.
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속에 존재하는 지하수 같은 물은 음수(陰水)라고 한다. 사람의 피는 보이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듯, 땅속으로 흐르는 음수가 모두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음수가 거대한 암반에 갇혀 오랜 세월 고여 있거나 우라늄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에 오염된 경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물에서 나오는 기운은 파동(波動)의 형태로 지상으로 뚫고 나와 사람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 이를 수맥(혹은 수맥파)이라고 해서 ‘나쁜 물’로 분류하는 것이다. 풍수의 논리로는 땅속의 살기(煞氣)라고나 할까. 따라서 수맥은 모든 음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 왜곡되거나 교란된 음수 중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파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반적으로 수맥이 지나가는 터에 살면 건강이나 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들 한다. 물론 증거와 객관성을 중시하는 과학계에서 받아들이는 이론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수맥으로 인한 피해가 엄연히 존재하고, 또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남대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수맥을 지자기(地磁氣) 교란 현상으로 규정하고, 지자기 교란 수치가 평균보다 150% 정도 높을 때 인체에 이상 증상을 일으킨다고 보고한 바 있다. 사람이 수맥에 노출되면 뇌의 지각기능과 시각의 신경생리적 기능이 떨어진다는 국내 의학자의 논문도 있다.
기자는 수맥파 영향을 받는 잠자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머리가 계속 아프거나 무기력, 불면증, 불안 초조, 집중력 저하 등을 호소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 또 공부방이 수맥에 노출된 학생들의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도 보였다.
수맥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이 인체에 유해한 수맥파를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지하 암반에 갇힌 썩은 물에서 나오는 ‘암반 수맥파’는 사방팔방 불규칙적으로 방사되기 때문에 한 방향만의 수맥을 측정하는 L로드로도 확인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구조물 상태나 자연현상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를 테면 건물 벽이 세로로 금이 가고, 바닥이 꺼지듯 내려앉거나 금이 간 경우, 까닭 없이 전자제품의 고장이 잦다면 수맥파의 영향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수맥파가 사람에게는 이롭지 않지만 다른 종(種)에게는 필요한 기운이라는 주장도 있다. 벌이나 개미들은 한결같이 수맥 지대에 집을 짓는다. 고양이도 수맥 지대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통해서도 수맥파를 확인할 수 있다.
한쪽에 해로운 것이 다른 쪽에서는 유용하니, 자연은 참으로 공평한 듯싶다. 수맥에 대처하는 법은 다음 칼럼에서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
2015-10-21 대박집과 쪽박집, 수맥 때문이라고?
/손님이 많이 모여 대박이 터진 식당들의 터는 대부분 수맥 지대를 피해 있다. 스트릿츄러스 제공
대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반경 50m 거리로 10여 층의 빌딩 세 개가 키 재기를 하듯 서 있다. 지하철 출입구도 제각각 건물 지하로 연결돼 대표적인 역세 상권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세 빌딩은 입지 여건상 똑같이 종합쇼핑몰로 출범했다. 그러나 승패는 이미 난 듯했다.
“A몰은 시행업체 부도로 완공도 못 하고 방치돼 있다. 분양받은 투자자만 수백 명인데 돈만 묶인 채 발만 동동거린다. B몰은 분양을 끝내고 개장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특급층인 1층마저도 미분양분이 있고 분양가보다 싸게 나온 급매물도 상당수다. 하지만 C쇼핑몰은 다르다. 유독 이곳만 요즘 같은 불황에도 그런대로 장사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50년을 산 토박이 부동산중개업자 김모 씨의 말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세 쇼핑몰의 운명이 이렇듯 극명하게 차이 나는 이유? 전통풍수론으로도 겉만 봐선 잘 모른다. 우선 이 터에 영향을 줄 만한 산의 용맥(龍脈)이나 하천 같은 물길이 드러나 있지 않다. 돈을 불러들이는 물길이 보이지 않을 땐 도로가 그걸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점에서도 세 빌딩은 차이가 없다. 도로 이용 면에서 동등한 조건을 갖춰서다.
하지만 변수는 존재했다. 드러나지 않는 땅속의 수맥이다. A와 B몰은 지하에 거대한 암반 수맥이 형성돼 있다. 반면 C몰은 그걸 피했다. 게다가 그 땅 밑에선 풍요로운 기운의 지기(地氣)가 건물 전체로 전달된다. 기자는 두 쇼핑몰의 분위기를 찬찬히 살폈다. C몰의 상인은 대체로 잘 웃고 표정도 밝았다. 반면 B몰 상인은 표정이 굳어 있었고 안색도 어두운 편이었다. 장사가 잘되지 않아선지 목소리엔 짜증도 적잖이 실렸다. 두 몰을 자주 찾는다는 한 여성은 “C몰은 찾을 때마다 상쾌한 느낌이 드는데 B몰은 무언가 어수선하고 분위기마저 어둠침침하게 느껴지곤 한다”고 말했다. 땅속의 살기(殺氣)인 수맥은 이렇듯 그 위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수맥의 영향은 비단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도로나 지반이 꺼지는 싱크홀도 대부분 수맥지대에서 발생한다는 게 풍수적 판단이다. 요즘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싱크홀의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다. 다시 강조하지만 수맥이 없는 곳에선 싱크홀도 발생하지 않는다. 건설 관계자들은 유의해 볼 일이다.
건강과 부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수맥은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수맥은 유해 전자파와 성질이 비슷하다. 전자파가 발생되는 전자기기 옆에서 오랫동안 지내면 피로가 가중되듯이, 수맥의 살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인체도 거기에 반응한다. 이것은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주창한 ‘근육역학’ 이론과도 상통한다. 긍정적인 의식이나 물질은 근육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 반해 부정적인 것은 근육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 에너지인 수맥은 사람의 근육까지 무력하게 만든다.
이를 이용해 수맥 유무도 가려낼 수 있다. 피실험자가 한쪽 팔을 어깨 높이의 수평으로 든 상태에서 실험자가 자신의 팔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세게 누르면 피실험자의 팔 근육에서 강도 차이가 난다. 수맥지대에서는 비수맥지대에서 실험할 때보다 팔심이 현저히 떨어진다.
흔히 ‘ㄱ’자처럼 구부러진 모양새의 ‘L로드’로 수맥을 찾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L로드는 이런 신체반응을 보여주는 가늠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L로드가 수맥을 찾아주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 몸 자체가 수맥 감지 센서다.
시중에는 수맥을 차단해 준다는 제품도 나와 있다.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차단 효과는 수맥의 강도에 따른다. 약한 수맥이라면 은, 알루미늄, 동판 등으로 어느 정도 차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강력한 수맥은 그걸로 역부족이다. 이걸 제압하는 제품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강한 자기력이나 양자역학을 응용한 신소재 정도가 수맥을 차단하는 효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된다.
그에 비해 전통풍수는 확실한 답을 준다. 명당의 혈(穴)이 맺혀 있는 곳에서는 수맥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풍수가 실용학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2015-11-11 ‘풍요의 명당’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 동상의 뒷모습.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 착륙하는 한밤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맨해튼은 불야성이었다. 여전히 세계의 자본이 몰려드는 미국 경제의 중심임을 과시라도 하는 듯했다.
맨해튼의 거리는 2001년 9·11테러 악몽과 2008년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듯했다. 사람들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 곳곳에 초대형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새로 짓고 있는 호화로운 빌딩도 많았다. 뉴욕 일대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는 샘리(44) 씨는 “맨해튼의 토지와 건물 가격은 2008년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됐다. 지금은 부동산 투자 열기가 인근의 뉴저지와 필라델피아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맨해튼의 지기(地氣)가 다시 한 번 용틀임을 하는 걸까. 원래 맨해튼은 ‘재물 명당’의 교과서라 할 만큼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다. 땅의 기운을 동물이나 사람의 생김새에 비유해 설명하는 물형론(物形論)으로 보면, 맨해튼은 영락없는 남성 생식기 모양이다. 생식기는 생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쪽 뉴욕 만의 바닷가까지 불끈 뻗어 내린 ‘양물’의 기운을 양옆의 이스트 강과 허드슨 강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호위하고 있다. 두 강은 육지에서 나오는 명당 기운을 가두는 그릇이면서, 그 기운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그래서 공중에서 기운이 뻗어 내리는 천기형(天氣形) 명당이나 땅 밑에서 기운이 용솟음치는 지기형(地氣形) 명당은 물이 둥그렇게 감싸주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부자가 되려면 물(양수·陽水)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즉 득수(得水)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맨해튼은 바로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맨해튼 기운이 응집된 곳은 생식기 끝 부분에 해당하는 월스트리트 일대다. 묘하게도 바다 한가운데 리버티 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과 짝을 이루고 있다. 남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을 만나야 복을 얻는다는 믿음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 놓은 남근석과 여근석 세트에 비유할 만하다.
월스트리트를 직접 걸어 보니 명당 기운이 몰려 있는 혈(穴)들이 곳곳에 포도송이처럼 맺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혈이 있는 곳은 세계 최대의 주식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금괴를 보유하고 있다는 뉴욕연방준비은행. 두 곳은 마치 피를 나눈 형제처럼 동질의 혈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식시장의 활황을 기원하는 월스트리트의 명물 황소 동상(Charging Bull) 역시 명당 혈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 황소를 뜻하는 영어 ‘bull’과 남성의 고환을 가리키는 ‘ball(s)’은 모두 라틴어 ballere(볼록한 물체)에서 유래했다. 비록 후세에 만들어진 우연이긴 하지만 맨해튼이 생식기 명당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황소상의 고환을 만지면 돈이 붙는다는 속설 때문인지 해당 부위는 반질반질할 정도로 사람들의 손을 탔다.
그런데 이런 터에서 왜 9·11테러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까. 월스트리트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참사의 현장은 현재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이름으로 정사각형의 물웅덩이를 만들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방 벽면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그 아래 깊숙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며 주위를 살펴봤다.
짐작한 대로 이 일대는 거대한 암반 수맥(음수·陰水)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큰 명당 터라 하더라도 수맥 같은 ‘암초’는 군데군데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하 깊숙한 곳에서 방사되는 암반 수맥파는 웬만해서는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풍수학에는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이란 말이 있다. 암반 수맥지대에서 퍼져 나오는 살기는 또 다른 살기와 동조한다는 의미다. 이때는 피하는 게 최선이다.
미국인들은 9·11테러로 잃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인지 참사 현장 부근에 또 다른 이름의 세계무역센터를 여러 채 짓고 있었다. 바로 인근에 있는 훌륭한 지기 명당을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금리 인상을 검토할 정도로 회복 단계에 접어든 미국 경제가 앞으로도 계속 순항할지 걱정된다. 터로 세상을 바라보는 풍수학인의 염려가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2015-10-02 ‘뻥’ 풍수는 이제 그만!
1990년대 중반 풍수 소설 ‘터’로 유명했던 손석우 지관(1998년 작고)을 만났다. 소설에서 풍수설로 김일성의 사망 시기를 ‘예언’한 게 들어맞아 당대 최고의 지관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터라 손 씨의 말 한마디가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명당 혈을 한눈에 찾아내고, 배우지 않고도 풍수지리서를 훤히 꿰고 있으며, 패철(나침반) 없이 정확히 방향을 잡아낸다 하여 스스로 삼경도인(三驚道人)이라고 자처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구를 다스릴 세계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자미원(紫微垣) 명당 터를 혼자만 알고 있다”며 대권에 뜻을 둔 정치인들을 은근히 유혹했다. 기자는 “말씀에 ‘뻥’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보시게! 풍수의 바람 풍(風) 자가 바로 ‘뻥 풍’이고 ‘허풍(虛風)’이라는 걸세. 풍수쟁이는 뻥을 먹고 사는 법이야” 하고 응수했다.
‘뻥 풍수’는 특히 땅의 모양새를 보고 사람이나 짐승에 빗대 표현하는 물형론(物形論)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납득할 만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대로 땅의 기운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지형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은 한반도는 백두산이 머리이고 제주도와 대마도가 두 발인 ‘사람형’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동시대 인물인 이중환(1690∼?)은 서쪽으로 얼굴을 내밀어 중국에 절을 하고 있는 ‘노인형’이라고 사대주의적 풍수관을 드러냈다. 또 1900년대 초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는 네 발을 모으고 일어선 토끼가 중국 대륙을 향해 뛰어가는 ‘토끼형’이라고 하자, 최남선이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달려드는 ‘호랑이형’이라고 반발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처럼 물형론에는 정치적, 사상적 이데올로기가 깊숙이 배어 있다.
최근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묘를 두고 봉황이 좌우 날개에 알을 하나씩 품고 있는 ‘쌍알 명당’이라는 물형론도 등장했다. 신화와 상상 속의 신수(神獸)인 봉황이 같은 장소에서 한 개도 아닌 두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을까. 또 양 날개에 두 개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는 주장도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현충원을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공작장익형(孔雀張翼形)이나 봉황이 알을 품은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으로 보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공작형이든 봉황형이든 그 핵심 터는 현충원의 ‘안방주인’인 창빈 안씨(1499∼1549)가 묻혀 있는 동작릉이다. 조선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는 양주 장흥 땅에 묻혔다가 당시는 과천 동작리였던 지금의 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궁의 자손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곳이 천하 대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풍수학자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선조 이후 조선이 망하기까지 역대 임금이 모두 창빈 안씨의 후손인 데다 창빈 사후 130년 만에 그 후손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명당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창빈 안씨 묘역을 중심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묘와 박정희 전 대통령 묘, 장군 제1묘역과 유공자 제1묘역 등이 호위하듯 배치돼 있다.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묘 터는 어떨까. 창빈 안씨와 지척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가 하늘에서 기운이 하강하는 천기형(天氣形)이라고 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는 땅에서 기운이 치솟는 지기형(地氣形)이라고 할 수 있다. 천기형이든 지기형이든 그 기운(에너지)의 질과 강도에 따라서 명당 여부를 따질 수는 있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하다. 어찌 됐건 두 사람의 인연이 참 묘하기는 하다. 같은 지관에게 의뢰해 300m 거리를 두고 좌우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는데도 기운의 성질은 확연히 다르니 말이다. 평생 동지적 관계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숙연은 내세에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면서 이제는 풍수도 ‘뻥’에서 벗어났으면 싶다. 한자 자원(字源)을 찾아보면 풍(風)은 허풍이 아니라 하늘의 기운(天氣), 생기(生氣), 기세(氣勢)라는 고차원적인 의미로 풀이하고 있음도 사족으로 달아둔다.
2015-12-23 명당 독점을 위해 근친결혼까지?
/근친결혼을 강조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
풍수학 중에 음택(묘지)풍수론은 땅에 묻힌 조상의 ‘유전정보’를 읽어내는 술학(術學)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조상 유골의 기운이 땅의 기운과 교합해 살아 있는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이다. 이때 자손은 친가든 외가든 유전적으로 친연성이 강한 쪽 조상의 기운을 받는다.
이건 멘델의 유전법칙과도 얼추 비슷하다. 멘델은 자식 세대가 부모로부터 우성이나 열성 정보가 담긴 유전 형질을 전달받는 비율을 각각 50%로 봤다. 또 조상의 특징적 유전 형질은 당대(자식)에 나타나거나 잠복 후 손주 세대에 발현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자손이 친가와 외가의 기운을 절반씩 확률로 이어받는다는 동기감응론은 ‘위험한’ 사고체계로 변질되기도 했다. 신라의 골품제가 좋은 예다. 골품제는 고구려와 백제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유독 신라에만 고유했는데 그걸 두고 왕권 강화니 계급사회 유지니 하는 학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풍수학의 눈으로 보면 쉽게 설명된다.
신라의 집권층은 이집트의 파라오 왕가와 비슷했다. ‘명당의 뼈대가 검증된’ 성골(聖骨)끼리 혼맥으로 명당 기운을 독점적으로 누리려 한 점에서다. 혼인 상대로부터 올 수도 있는 ‘정체 모를’ 조상의 기운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명당 기운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왕권의 정통성과 영속성까지 꾀하려 한 것이다.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적 결함과 기형아 출산까지 감수하며.
이런 흔적은 현대에도 발견된다. 지난 250년간 세계적 금융 재벌로 군림해온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렇다. ‘사촌 간 결혼 장려’ ‘외척의 경영 참여 배제’를 유지로 삼을 정도로 가족순혈주의를 강조한 집안인데 그건 축적한 부를 외부인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런데 유대계의 이 가문이 구사한 풍수법을 보면 신라의 골품제 못지않게 명당 순혈론을 강조하고 있다. 5개 집안으로 구성된 로스차일드 가문이 구사한 음택과 양택을 살피자 한결같이 재물 명당 혈을 정확히 차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것도 지기형(地氣形)으로 기운은 모두 균일했다. 유대계에도 나름의 명당 논리와 동기감응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확인시키는 대목이었다.
후손이 친가와 외가 조상의 기운을 동등하게 받는다는 동기감응론이 조선왕조에서만은 심하게 변질됐다. 남성 위주의 유교적 세계관 확산이 그 배경이다. 풍수학에까지 부계 위주의 풍수 논리가 횡행해 모계로 유전되는 동기감응론이 무시되는 풍조가 만연한 탓이다. 이는 풍수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선의 역대 군왕이 최고의 지관을 동원해 명당에 음택을 조성했음에도 그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을 들어 제기한 명당 무용론이 그 요체였다. 모계 쪽 조상에서 이어져 내려온 유전정보를 무시하거나 인지하지 못해 그럴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
그렇다면 ‘외손발복(外孫發福)’이란 명당론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부계 쪽의 음택(무덤)이나 양택(거주지)만 기준으로 삼아 백호(무덤 오른쪽 산줄기) 기운이 발달하면 딸(외손) 쪽이 번성하게 된다는 이론인데, 모계로 내려오는 기운의 영향력을 완전 배제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동기감응론은 비단 음택에만 머물지 않는다. 터와 거기 사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기운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엔 서로의 기운이 동조(同調)돼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양택 이론에 따르면 터나 특정 건물에서 어떤 징후나 사달이 발생하면 그 터와 연관되는 이의 앞날에도 변화가 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우리 삶에서도 가끔 목격된다. 사는 집의 상하수도가 말썽을 일으키거나 가구나 전자제품이 자주 오작동을 일으키면 가구주가 이사 갈 상황에 놓이거나 의도치 않은 변고를 맞는 것이 그 예다.
그리고 이건 역으로도 추론된다. 터의 주인이 편안하고 활기차면 그 터 역시 그에 맞는 기운에 동조돼 생기를 띠게 된다는 논리다. 터 주인이 어떠한가에 따라 터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궂은일을 맞더라도 조상 탓, 터 탓만 할 건 아닌 듯하다. 내 터를 좋은 기운으로 스스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