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安保17/ 2021.01.02 북한의 변화 막는 ‘대북전단금지법’ - 02.27 부하 46명 잃고 음모론과 전쟁…비운의 천안함 함장 최원일, 軍 떠난다
무너진 安保17/ 2021.
01.02 북한의 변화 막는 ‘대북전단금지법’
당장의 남북관계 경색 회피용 법안… 민주주의 위배에 국제사회 비난 직면
北 변화 이끌려면 외부 실상 알려야… 진정한 평화공존은 개혁개방에서 온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한국 정부와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제정한 대북전단금지법은 국제사회의 심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민주국가의 국회의원, 인권 운동가, 언론 등은 전단금지법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1980년대 말 권위주의 시대의 종식 이후, 한국의 국내 정책 중 국제사회에서 이만큼 큰 반발을 불러온 정책은 없었다.
이 법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이 법에 대한 비판을 내정간섭이라 주장하는 집권당의 태도는 이중잣대의 대표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해외의 비판에 한국의 ‘특별한 상황’을 소개한 다음 이러한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을 민주화운동 계승자로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같은 선전을 하는 것은, 교과서에서도 찾기 어려운 ‘더블 스탠더드’가 아닐까?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시각에서도 전단금지법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첫째로 이 법을 제정함으로써 한국은 파렴치한 협박에 굴복한 셈이 되었다. 둘째, 이 법이 조문 그대로 실시된다면, 바람직한 북한의 변화는 가로막힐 것이다.
전단금지법 제정 배경을 보면, 이 법을 ‘김여정 하명법’으로 부를 이유가 확실히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체로 전단을 무시해 왔던 북한 지도부는 지난해 6월 갑자기 대대적인 대남 공세를 전개했다.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극에 달한 이 공세는 6월 24일을 기해 돌연 중단됐다. 이를 감안하면 당시에 한국 측이 북한 지도부에 전단 살포를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비공개 약속을 했다는 가설은 근거가 있다. 청와대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일 이유가 있었다. 청와대는 국가적 입장에서도, 지지율의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새로운 협박을 초래할 뿐이다. 대북전단금지법 같은 큰 양보를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북한 지도부는 시끄러운 대남 공세를 한다면 남쪽의 양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이다.
또 이 법의 제정은 북한의 변화를 어렵게 함으로써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다. 현 정부는 남북 평화공존을 원한다고 수십 차례 밝혔다. 그런데 평화공존은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경제성장을 이룰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북한의 변화를 불러올까? 옛 공산권의 경험을 보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산권 국가들이 1980년대 말 시대착오적인 계획경제를 포기한 기본 이유는 이 체제의 낮은 효율이다. 그러나 공산권 인민들은 이미 체제에 대한 실망감이 아주 심각했다. 이유는 그들이 외부생활을 어느 정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어려운 일상생활을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장경제 민주국가 국민의 생활과 비교하고 있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이유 중 하나도 외부 지식이다. 1970년대 말 중국 간부들은 대만과 한국의 빛나는 성공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고도성장의 유일한 길이 개혁개방임을 인식했다.
동유럽 인민들이나 중국 간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외부 생활을 배울 수 있었다. 해외 출장, 서방 영화와 소설 보기, 외국인 방문객 접촉 등을 통해서다.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는 외국 방송 듣기, 밀수입된 금서나 외국 도서를 읽는 것이었다.
북한은 옛 공산권 국가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주민을 심하게 감시, 통제하고 있으며 외국인 방문객, 외국 영화, 외국 출판물도 거의 없는 ‘쇄국 사회’다. 주민뿐 아니라 간부 대다수도 외부를 거의 모른다. 그래서 대북방송·전단 같은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전단금지법에 따라 대북전단 풍선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도서, USB, 간행물 등 정보를 전달하는 것까지 모두 처벌 대상이 됐다.
북한 주민들과 중하급 엘리트들은 외부 생활을 알게 될 때에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상부 엘리트가 무시하기 어려운 압박으로 작용하고, 북한을 변화의 길로 끌고 갈 잠재력이 될 것이다. 이 변화가 북한의 붕괴를 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북한이 개혁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때에만 장기적인 남북 평화공존이 올 수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단기적으로 긴장 고조를 회피하는 방법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북한 민중의 생활 개선도, 평화 공존도 어렵게 만드는 법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01.04 옛 공산권도 비판한 전단금지법, 악법 실체 가린다고 가려지겠나
통일부가 유럽의 안보 전문가들에게 대북전단금지법을 옹호하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금지법이 북 인권을 무시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메일을 받은 유럽 전문가는 본지에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법”이라며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 비판을 피하려고 매우 빨리 (유럽) 전문가들에게 연락한 방식이 재미있다”고 했다. 북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면 감옥에 보낸다는 악법의 실체를 감추려는 문 정권의 변명에 속아 넘어갈 민주 국가나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옛 공산권이던 체코 정부는 “전단금지법의 동기에 대해 (‘한국 정부에) 질문했다”고 했다. 전단금지법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이 미·영 등 자유민주 진영뿐 아니라 옛 공산권에서까지 나온 것이다. ‘일부 인권 단체의 의례적 비판’이라는 정부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특히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이달 중 전단 관련 청문회 개최를 예고한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위원회의 최근 청문 대상국은 중국, 아이티, 나이지리아 등이다. ‘한국 청문회’가 열리는 것 자체로 ‘인권, 표현의 자유 침해국’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우리 외교 당국은 미 의회와 바이든 당선인 측에 ‘접경지 주민의 안전’ 등 논리를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15년간 대북 전단으로 다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미국도 모를 리 없다.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 대학생 웜비어의 부친이 최근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탈북민들을 희생양 삼아 김정은 남매에게 굽실거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 김여정이 탈북민을 “쓰레기”라 부르며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한 지 4시간여 만에 통일부는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장관의 CNN 인터뷰 중 북한 태도를 비판한 앵커 발언을 금지법에 동조한 것처럼 오역했다. 통일부는 전단 규제를 비판한 미 전문가 발언 취지를 왜곡했다가 당사자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러니 웜비어 부친이 한국 정권은 “김정은 꼭두각시”라는 말까지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05 독재자와 협상, 정의가 최고 카드다
독재 정권 비위 맞춰 관계 개선한다는 정책, 국제 정치서 성공한 적 없다
범죄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보편 가치 내세워야 유리한 협상 가능하다
1970년대 서울 북서부에서 살던 어린 시절, 북풍이 불 때마다 하늘에서 낙엽처럼 삐라(북한의 대남 전단)가 떨어졌다. 야산에 떨어진 삐라를 주워서 파출소에 가져가면, 경찰 아저씨는 상으로 연필을 하사했다. 삐라를 손에 쥘 때 종이의 질감, 조악한 활자, 투박한 문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북녘 땅에서 펼쳐지는 비참한 삶을.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와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2018년 5월 5일 오후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경찰과 시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저지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통제로 전단살포를 포기한 뒤, 이미 전날 다른 접경지역에서 전단을 살포했다고 사진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1980년대 말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을 외치던 주사파의 입문서 ‘주체사상에 대하여’(김정일 저)를 읽고 확인했다. “현명한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만 인민 대중이 자기 운명을 성과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김정일의 수령론은 삐라 속 선전 문구 그대로임을. 그 당시 대학가에 널리 퍼진 ‘봄우뢰’ ‘피바다’ 등 북한 소설을 읽고 또 깨달았다. 전단이 예시했듯 김씨 왕조는 전체주의 인격 숭배의 디스토피아임을.
과거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은 북한 삐라에 과민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삐라를 교보재로 사용해 반공 교육을 강화했다. 반면 남녘에서 날아오는 풍선에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은 경악하며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왜 그럴까? 현장의 물증에 범죄의 맥락이 각인되듯, 삐라엔 외부 세계의 실상이 응축되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의 삐라는 이념의 백신이었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의 삐라는 자유의 바이러스다.
최근 ‘남측 정부’가 휴전선 풍선 날리기를 불법화했다. 그 의도를 짚어보면, 북한 ‘최고 영도자’의 비위를 맞춰 남북 관계를 개선한다는 순진한 계산속이 읽힌다. ‘햇볕 정책’ ‘전략적 인내’ 등 외교 수사를 동원하지만, 결국 독재 정권을 강화해주는 미봉책일 뿐이다. ‘사악한 독재자’(malevolent dictator)와 협상할 때 국제사회가 흔히 써온 ‘정의와 평화를 맞바꾸는’(trade justice for peace) 전술이다.
국제 정치사에서 이 전술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30만명을 학살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Idi Amin·1925~2003)은 1979년 사우디로 망명한 후 2003년까지 호텔의 두 층을 독점하고 고액 연금을 받으며 호화롭게 살았다. 아민의 선례로 세계의 다른 독재자들까지 유인하려 했던 국제사회의 트릭이었지만, 그의 뒤를 이은 밀턴 오보테(Milton Obote·1925~2005)는 더 큰 학살을 저질렀다. 정의를 버리고 평화도 잃는 전술적 패착이었다.
반면 2003년 나이지리아 정부는 반군과 대치 중인 라이베리아의 학살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1948~)를 구슬려 망명을 유도한 후 잡아서 특별법정에 세웠다. 그 결과 내전을 막아 수십만 생명을 구했고, 독재자의 반인류 범죄를 단죄할 수 있었다. 이후 라이베리아의 기대 수명과 교육 수준 등 인간 발달 지수(HDI)는 지속적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독재자를 궁지로 모는 영리한 협상으로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되찾은 윈윈 전략이었다.
과거 ‘주사파’ 선봉장 노릇을 하던 오늘날 ‘남측 정부’의 주요 위정자들은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 고작 전체주의 정권의 협박에 밀려 ‘표현의 자유’를 내팽개치나. “최고 영도자를 모독하는데 장사정포를 안 쏘겠냐?”는 내재적 접근법은 흘러간 자주파의 레퍼토리다. 매번 정의를 팔아 평화를 사려 했지만, 북한은 이미 핵 무장에 성공했다. 결국 핵 가진 전체주의 정권의 비대칭 군사 협박에 밀려 인류의 근본 가치를 내준 꼴이다.
현 상황에서 아민에게 호화 생활을 보장했던 그 어리석은 전술이 북한의 ‘최고 존엄’에게 먹힐 리 없다. 차라리 독재자에겐 테러·살인·강간 등 11가지 중죄로 50년형을 받은 테일러의 운명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악마와 대화”할 때는 보편 가치를 최후의 보루로 삼아야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남측 정부’는 현재 궁지에 몰려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한목소리로 한국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특히 미국 의회에선 곧 ‘대북 전단 금지법’ 관련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빅터 차 교수의 지적대로 ‘남측 정부’는 북한 인권 운동을 탄압하는 어리석은 ‘자멸 정책’을 쓰고 있다.
막아도 소용없다. 개방의 마파람을 타고 삐라는 오늘도 북으로 간다. 삐라에 담긴 자유의 바이러스는 무섭게 번져간다. 압록강 국경 너머 장마당 DVD에 실려, 꽃제비 누더기에 묻어 인민의 실핏줄에 퍼지고 있다. 정의를 세워야 평화가 온다. 정의를 포기하면 평화도 잃고 만다. 감옥 속의 테일러가 증언한다. 독재자를 상대할 땐, 보편 가치가 최고의 협상 카드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01월 05일 인권도 평화도 훼손할 韓 전단금지법
칼 거슈먼 美민주주의기금(NED) 회장
한국 정부에 의해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최근 공포됐다. 이 법은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으로 전단을 보내는 행위 등을 범죄로 규정한다. 그런데 서호 통일부 차관은 언론 기고문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해 ‘오해’라고 했다. 지난 6월 대북전단금지법이라도 만들라는 북한 김여정의 위협적 주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도 했다. 오직 접경지역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탈북자 등은 오래전부터 전단에 정보를 담아 북한으로 보내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김여정이 한국을 적(敵)으로 규정하며 대남 협박을 한 지 사흘 만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한국은 왜 성급히 전단 금지 입법에 착수했는가? 그리고 애매한 법 조항이, USB나 SD카드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북한에 정보를 들여보내는 행위에 대해 정부 당국이 더 분명한 방식으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북한이 이러한 행위를 내정간섭이라고 강변하며 재차 군사행동을 위협할 경우 그런 우려는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응엔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북한의 협박에 유화책으로 대응함에 따라 향후 북한의 입지는 더 강화될 것이고 더 큰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 옛 소련의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1975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협력은 평화의 필수요소”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협력은 열린 사회 간의 상호 신뢰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가 이웃의 전체주의 국가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 기반이 돼선 안 된다. 그 경우 협력은 공포스러운 이웃에 굴종하는 행위밖에 안 된다. 이런 행태는 그 악행을 유예시킬 뿐, 결국은 더 큰 협박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하로프는 평화와 인권이 “분리 불가능한 것”이라고도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이는 문 정부의 두 번째 문제와 직결된다.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은 규제하면서 북한 인권을 증진시키겠다는 게 문 정부의 새 정책인데, 이는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을 훼손한다. 북한이 더 열린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게 평화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문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든 그것은 접경지 및 제3국 등에서 북한으로 정보를 보내려는 이들뿐 아니라, 지난 2년 이상 정부의 주시와 압박을 견디고 있는 대북 인권 단체들까지 위협한다.
끝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은 2013년 유엔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조직적이고 광범한 인권 유린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며 “국가정책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정한 데 대해 문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북한은 폐쇄된 사회로, 주민들은 역내에 감금된 상태다.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자료를 통해 입증됐다. 북한은 또한 느리지만 개방으로 향하고 있는 사회다. 정보 차단이 무너지면서 장마당이 생겨나고, 체제의 전체주의적 압박도 점차 약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평화로 가는, 더 현실적인 길이다. 공갈을 일삼는 체제를 달래는 게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다. 한국은 평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동원해야 한다.
문화일보
01.05 대북전단금지법이란 자살골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흑인 최초의 웨스트포인트 수석 졸업생답게 지적이며 애국가를 우리말로 부르는, 알아주는 지한파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29일 최종현학술원 세미나에서 눈길을 끄는 의견을 냈다. 그는 “제재와 함께 대북 관여 정책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보텀업(Bottom-up·상향식) 아닌 톱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의 접근법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주변 사람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북한 눈치 보다 인권탄압 비판 자초
정상회의 전 한·미 관계 나빠질 듯
소탐대실의 악수, 당장 철회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겪은 다수의 한반도 전문가에겐 톱다운 방식은 몹시 부정적으로 들린다. 이들에겐 김정은-트럼프 간 담판으로 북한 비핵화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악몽이었다. 쇼비니스트(chauvinist·맹목적 애국주의자)에다 즉흥적인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두려웠던 탓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차기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진 위주의 보텀업 방식을 쓸 공산이 크다. 이런 판에 남북문제에 해박한 브룩스 전 사령관이 하향식 접근법, 즉 김정은과 미국의 정상급 인사 간 담판을 제안하니 신선하게 들릴 수밖에.
트럼프 탓에 이미지가 구겨져서 그렇지 하향식 의사결정엔 죄가 없다. 총을 악당이 쓰면 흉기지만 경찰 손에 가면 평화의 도구다. 김정은의 상대로 합리적 다자주의자인 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혹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가 나선다 치자. 그들이 온 겨레가 기뻐할 해결책을 끌어내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해법이 적용되려면 중요한 전제가 만족돼야 한다. 신뢰에 바탕을 둔 한·미 간의 원활한 공조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정권은 북한 눈치만 보다 대북전단금지법이란 어처구니없는 자살골을 내질렀다. 오만 반대에도 이 법을 밀어붙인 속내는 분명해 보인다. 북한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남북대화 무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현 정권의 치적으로 삼겠다는 걸 거다.
하지만 이런 꿈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례적으로 거친 국제사회의 반발이다. 모든 인간에겐 진실을 알, 그리고 진실을 전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대북전단을 뿌렸다고 최고 3년간 투옥하겠다니 국제적 여론이 들끓는 게 당연하다. 옛 민주화 세력을 주축으로 한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선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정권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인권문제뿐이 아니다. 미국은 북한을 변화시킬 최선책이 외부 정보 유입이라고 보고 이 전략을 나날이 강화해 왔다. 이 덕에 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대북 민간 프로그램 지원금은 2016년 206만 달러에서 지난해 482만 달러로 2.5배나 늘었다. 이런 판에 대북전단 살포를 처벌하겠다 하니 미국이 가만있을 리 없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미국 내 반대의 진앙이 의회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라는 사실이다. 50여 명의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미 대외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해외의 인권 보호가 미 대외정책의 핵심 목표 중 하나인 까닭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이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대북전단금지법을 따지는 청문회를 다음 달 내로 열겠다고 벼른다. 그러면서 그는 “민주적 가치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하도록 국무부에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청문회는 공교롭게도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 중인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몇 주 전으로 예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정상회의를 한·미 간 대북정책을 조율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한 회의를 코앞에 두고 한국이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비민주 국가로 낙인찍혀서야 무슨 성과를 내겠는가.
이제라도 당국은 남북대화에 집착한 나머지 대북전단금지법을 밀어붙여 대북관계 전체를 망치는 어리석음을 중단해야 한다. 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이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01-06 “휴전선 전광판 없애라는 北요구에…DJ정부는”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본 전단금지법과 새해 남북관계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북한 소설 ‘아, 조국’(2004년)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넣기 좋아하는 나라”로 남한을 묘사하는 구절이 나온다며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고 법정이나 현실 정치 영역에선 놔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공저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을 출간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미국 의회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이달 중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개최를 예고했다. 박정희 독재 정권의 치부를 드러낸 1976년 미 국제기구소위원회(위원장 도널드 프레이저) 청문회 이후 45년 만에 한국의 ‘내정’이 미 의회 청문 대상이 됐다. 북한에 전단뿐만 아니라 DVD나 USB메모리 등 외부 정보를 담은 물품을 보내면 처벌하는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국제 사회가 ‘국제 인권 표준을 어겼다’며 일제히 성토하고 나섰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 고위직을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80)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나쁜 수를 뒀다”며 글로벌 역풍을 우려했다. 정초에 그를 만나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비롯해 남북 관계 새해 전망을 물었다. 라 교수는 해외에서도 명망이 높다. 2013년 장성택의 숙청을 2년 전에 정확히 예견했던 그가 쓴 ‘장성택의 길’ 번역본이 2019년 뉴욕주립대 출판부에서 나왔고,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5월 일본에서 출간된다.
―올 3월 30일 발효되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미국 영국 일본을 포함한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반대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나라 밖 정보를 얻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도 즐겨야 하는데 이런 지적 정서적 박탈도 인권 유린이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크게 놀라는 순간이 6·25전쟁을 김일성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다. 8·15 광복도 김일성이 일본을 물리친 덕분인 줄 안다. 이런 사람들 입장은 생각 않고 전단금지법을 만드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북한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았나.
“그땐 휴전선 전광판을 없애달라고 했다. 김 정부에서 ‘남북이 화해하려면 북한 요구를 들어 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인권 문제여서 안 된다고 했다. 노 정부 때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내가 ‘북한을 비방하는 정치 선전은 금지하되 북한 주민들도 알고 즐겨야 하는 정보는 흘러 들어가야 한다’며 반대했다. 내가 주일 대사로 간 뒤 결국 전광판을 없앴다.”
“휴전선 전광판 없애라는 北요구 DJ정부때 인권문제 앞세워 거부”
―국제 사회의 비판에 여권이 ‘내정 간섭’이라고 반박했다.
“1970년대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한국 민주화 문제를 다룰 땐 진보진영에서 환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단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더라면 국제적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을 것이다.”
―미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리면 어떻게 되나.
“미 정부의 직접적인 조치가 따르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자유민주 국가들과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이다. 불똥이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로 튈 수 있다. ‘북한 인권 유린은 괜찮고 일본의 인권 유린 문제에 대해선 국제 사회에 지원을 바라나’라는 냉소가 나올까 걱정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삐라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새해부터 북한이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입법했으니 교류하자고? 얼마나 구차한가. 북한 요구 들어준다고 관계가 잘 풀리나. 오히려 북한은 ‘이렇게 다루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정상회담 해주고 백두산 같이 올라가 주고, 아니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하고, 이렇게 하면 쉽게 움직이는구나 싶을 것이다. 친구든 부부든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남북 관계도 상대방 말만 들어준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할 말은 해야 한다.”
“경찰로 넘어간 대공수사, 약화 우려 南도 블레이크 같은 이중간첩 가능”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유예 기간 3년이 지나면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된다.
“북한이 국정원 폐지해 달라고 줄곧 요구해 왔는데 결국 국정원도 무력화돼 버렸다. 북한이 군사력 다음으로 중시하는 것이 간첩을 양성해 보내는 것이다. 간첩을 색출해야 남한 사회를 허물겠다는 북의 의도를 막을 수 있는데 걱정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신건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간첩을 열심히 잡아야 햇볕정책도 성공한다’고 했다.”
―요즘도 간첩이 많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건수는 2013년 197건에서 2019년엔 15건으로 크게 줄었다.
“요즘은 활동하기가 훨씬 편해져서 많이 보낼 것 같다. 비용도 남한에서 충당한다고 들었다. 옛날처럼 강압 수사하는 관행이 사라진 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있어서 물증 없이 기소하기 어렵고 (교도소) 들어가 봤자 몇 년 안 살고 나온다. 간첩들도 다 알기 때문에 잡히는 것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에 돌아가 어떤 대접을 받을지를 겁낸다.”
―최근 영국과 소련의 이중간첩이었던 조지 블레이크가 사망했다. 영국 MI6 요원이던 그가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에 분노해 전향했다’는 자서전 내용이 새삼 화제가 됐다.
“MI6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미군 폭격에 충격을 받았다고? 엉터리 얘기다. 미군의 농촌 폭격은 공산주의 국가가 흔하게 써먹는 선전용 일화다. 영국 정부 인사에게 들은 바로는 블레이크가 10대 후반에 식구들과 영국으로 이민했다고 한다. 집안이 반파시스트 운동을 해서 가능했다. 소련 KGB에서 MI6에 들어가는 훈련을 받고 이민 간 것이다.”
―라 교수가 “우리 국정원에도 ‘북한판 블레이크’가 있다”고 말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단정적으로 말한 것으로 잘못 보도돼 해당 신문사가 인터넷에서 내용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 동독 슈타지 간첩이었던 귄터 기욤이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비서까지 했다. 우리도 내부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국정원의 권한 축소는 국정원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정치에 개입하고 대공 수사와 관련해 증거를 조작한 일도 있었다.
“국정원이 잘못한 일도 많지만 국정원을 나쁘게 만든 건 ‘정권정보원’으로 악용한 정치인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도 우리 쪽에 와서 정보를 주는 안기부 직원들이 있었다. 우리 쪽도 그걸 이용하고 집권한 후로는 그를 중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정원 직원 인사가 능력이 아니라 정권과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이뤄지기 쉽다. 국정원 개혁이 아니라 정치권의 개혁이 필요하다.”
―북한의 제8차 당 대회를 맞아 군중집회가 예고돼 있다. 얼마 전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수만 명이 모여 새해맞이 행사를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할 텐데 주민 안전은 뒷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 통제를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참석하는 군중집회는 주민들로선 큰 부담이다. 오전 10시에 행사를 시작하려면 집회 참가자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한다. 행사장에 한번 들어가면 김정은 신변 안전 문제로 화장실도 못 가기 때문에 밥도 조금만 먹고 비닐봉지를 둘씩 들고 간다. 보안 체크는 3번 한다. 보안성 경찰, 보위부, 마지막으로 경호대가 샅샅이 뒤진다.”
―코로나와 대북제재 장기화로 경제 사정이 어려울 텐데 북한이 유화적으로 나올까.
“경제가 어려워 외부에 손 벌려야 하는 형편인데 코로나 때문에 받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타협적으로 나올까. 북한은 어려워지면 오히려 큰소리치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성향이 있다.”
“도움 받아야 하는 쪽 자존심 생각해 쌀이나 백신 지원 땐 조용히 줘야”
―정부가 식량과 백신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 반기지 않는다.
“북한이 동독 정도의 자신이 있으면 교류가 쉬울 텐데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쌀이나 백신을 주면 고마워할까. 미운 사람에게 도움 받아야 하는 그들의 자존심은 생각 안 하나. 떠들고 생색내지 말고 조용히 줘야 한다. 얻어먹으면서도 원한이 쌓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정부가 북한과의 화해 무드를 조성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남북한 갈등은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인 갈등이다. 우리는 북한과 한민족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자기네가 단군민족, 김일성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국제결혼을 큰 죄로 여기는 것도 순수한 혈통을 타락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처녀지’라는 소설에 ‘처녀지를 개간하려면 호미가 아니라 쟁기로 깊이 갈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남북 관계도 정상들이 악수한다고 쉽게 풀리는 게 아니다. 서독도 동독 인프라 개선 도와주고, 양심수를 돈 주고 데려오는 일 등을 소리 없이 하다 정상회담이 이뤄진 건 통일 되기 직전이었다. 정치인들이 자꾸 앞에 나설 게 아니라 작은 교류와 협력 관계부터 쌓아 나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구상할 때부터 깊게 관여하지 않았나. 역사상 최초의 남북한 정상회담을 이뤄냈는데….
“첫 정상회담 이듬해인 2001년 북한에서 소설 ‘만남’이 나왔는데 그 내용을 보면 우리가 아는 성공적인 회담과는 딴판이다. 김대중이 불순한 동기로 북한에 왔으나 김정일의 당당한 대응에 기가 질려 굴복하고 돌아간 것으로 묘사돼 있다. 한국 운동권 출신 기자가 소련이 망하는 것 보고 전향했는데 김정일 만난 다음 다시 운동권이 됐다는 내용도 있다. 이희호 여사의 조카인 이영작 박사는 햇볕정책에 대해 ‘김정일에게 속은 것’이라고 했다. 외투 속에 칼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외투를 벗기냐면서. 남북 관계는 정치 9단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남북 화해를 정말 원한다면 정상회담 하고 기념품 주고받는 것보다 북한 주민들이 바깥소식을 알고 한국 드라마도 즐길 수 있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01.08 인권의식은 얄팍하고, 수습능력은 참담하다
‘전단法 청문회' 저지 총력전
日 위안부 결의 반대 로비 연상
국제사회 반발 전혀 예상 못 해
인권전문 외교장관은 뭘했나
▲2007년 톰 랜토스 당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위안부결의안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
톰 랜토스는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다. 2007년 미 의회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 사과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처음으로 통과시킬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당시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이었다.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특수한 과거사’라며 결의안을 무산시키려는 일본의 집요한 로비에 그는 ‘인류 보편적 여성 인권 문제’라는 원칙으로 맞섰다. 로비에 흔들리는 의원들에게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묻겠다’고 압박해 이탈을 막았다. 그의 부인 아네트 여사도 피해 할머니들 편지를 받아 의회에 전달하며 여론 조성에 힘을 보탰다.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경험이 랜토스를 인권 투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헌신과 업적을 기려 미 의회는 랜토스 의원이 타계한 2008년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를 발족했다.
랜토스 이름이 다시 소환됐다. 랜토스 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살포 금지법’이 인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청문회를 예고하면서다. 이 위원회는 지난 12년간 북한 4차례 포함, 주로 중남미·동남아·아프리카 국가의 인권 침해를 추궁하는 청문회를 144차례 열었다. OECD 국가 중 대상이 된 것은 멕시코 정도다. 그런데 미국의 핵심 민주주의 동맹이자, 세계 13위 경제 대국,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인 한국 정부가 반(反)인권 행태로 이 위원회의 심문대에 오르게 됐다. 지금 한국은 과거 일본처럼 ‘(남북) 관계의 특수성’ 논리로 청문회 저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기막힌 역사의 반전이다.
인권, 표현의 자유가 ‘인류 보편의 가치’임은 국제사회의 대원칙이다. ‘민주화’ ‘진보’를 표방하는 현 집권 세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들에게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 표현 자유 억압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 분명 이 교과서적 답변으로 비판할 것이다. ‘내정간섭’ ‘나라별 특수성’ 등이 인권 후진국의 옹색한 변명이라는 것도 이들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이 정권 사람들은 ‘북한’ 앞에만 서면 완전히 다른 사고 회로를 돌린다. 모든 문제를 북한 입장에서 살피고 이해하려 한다. 인권 탄압, 3대 세습, 핵 개발도 두둔하다 보니 전단 막는 것쯤은 대수도 아닐 것이다. ‘평화를 위한다’는 자기 확신, 또는 최면 때문에 망설임도 없다. “일부 단체의 전시형 살포는 규제할 수 있지만 전단 발송 자체를 불법화하면 안 된다”는 합리적 지적에도 ‘가짜 뉴스’ ‘반평화’ 딱지를 붙인다. 북과 다시 평화 쇼만 할 수 있다면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표도 얻을 수 있다는 계산도 섰을 것이다. “삐라 해결했으니 북이 보답할 차례”라는 대통령 외교안보 멘토의 말에 그 속내가 드러나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CNN 인터뷰 모습. 강 장관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우려에 대해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지향점의 영역이다. 그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건 능력의 문제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전단금지법이 미국은 물론 전세계 자유민주 진영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는 아예 예측하지 못한 듯싶다. 그러니 국제사회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사전 노력도 전무했다. 뒤늦게 난리를 치니 해결은 못 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운다.
‘동맹국에 대한 예의 아니다’ ‘미국이 인권 훈계할 상황이냐’며 짜증을 부리고, 해외 인사들의 우호적 발언이라는 것을 억지로 끌어모으려다 당사자에게 오역(誤譯) 항의를 받았다. 국제 인권 무대에서 경력을 쌓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 과정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략을 세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덜컥 저질러 놓고 수습에 나서는 것은 아마추어의 모습이다. 수습도 제대로 못 하면 3류다. 대북전단법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정부의 인권에 대한 박약한 인식과 외교 무능의 민낯을 동시에 만천하에 드러냈다. 최악의 외교 참사로 기록될 만하다.
조선일보 임민혁 기자 편집국 정치부 차장
01.08 이란 나포 첩보 한 달 전 입수해놓고 또 ‘설마’했나
청와대가 지난달 ‘이란의 한국 선박 억류 가능성’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외교부는 관련 정보를 중동 5국 공관에 전문으로 알렸다. 내용도 “이란 정부나 준정부 기관, 정부 지원 단체가 호르무즈 해협을 출입하는 우리 유조선을 나포할 계획”으로 구체적이다. 이렇게 이란의 수상한 움직임을 한 달 전에 파악하고도 국민 억류를 막지 못한 것이다.
이번 나포 책임은 당연히 이란에 있다. 한국이 이란 원유 대금을 못 주는 건 이란 핵 개발에 따른 미국 제재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아니라 만만한 한국 배를 나포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나포 조짐을 알고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는 “중동의 나포 첩보는 1년에도 몇 차례씩 들어온다”고 했다. 이란의 나포 첩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이란의 한국 비난은 통상적 수준이 아니었다. 2019년 이란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국 은행에 묶인 원유 대금(70억달러) 해제를 요구한 데 이어 작년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도 보냈다. 주한 이란 대사는 우리 군함의 호르무즈 파병을 비판하며 “단교”까지 거론했다. 이란 외교부는 미국의 제재를 이행한 한국 정부를 “미국의 하인”이라고도 했다. 이란이 이렇게 막말을 쏟아낸다면 안보 당국은 마땅히 긴장하고 평소보다 대응 수위를 올려야 했다. 그런데 뭘 했나.
지난 4년 가까이 우리 안보를 지배한 큰 흐름은 ‘설마’였다. ‘설마 무슨 일 있겠나' ‘설마 북한이 도발하겠나' 하는 ‘설마'병이 도져 주요 군 기지가 마구 뚫리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정부가 이란의 우리 선박 나포 첩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보도를 보며,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태우는데도 지켜만 본 정부가 “설마 죽일 줄은 몰랐다”고 한 일이 떠오른다.
조선일보 사설
01.08 한 달 전 선박 나포 정보 입수하고도 손 놓은 정부
이란이 우리 국적 유조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하기 한 달 전 우리 정보 당국이 나포 움직임을 감지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때 정부가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도 있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보 당국 경고에도 ‘모니터링하라’가 전부
한·미 공조와 고위급 채널 외교로 돌파해야
정보 당국은 지난해 말 ‘이란 정부나 준정부기관이 호르무즈해협을 출입하는 한국 유조선을 나포할 계획’이란 골자의 첩보를 입수해 관련 부처에 전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교부가 취한 조치는 지난달 11일 이란과 인접국 공관에 모니터링을 지시하는 전문을 보낸 게 사실상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 한국 선박을 지키기 위해 파병된 청해부대가 왜 한국케미호 보호에 나서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다. 청해부대가 움직였다면 이란 해군이 섣불리 나포를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자 수송 중인 외국 선박을 아무 이유 없이 나포한 이란의 행위는 ‘국가 테러’급이다. 미국이 이란에 초강경 제재를 가하고 있어 정부의 운신 폭이 좁은 현실도 이해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이 탄 배가 나포돼 장기간 억류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서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즉각 국가안보회의(NSC)를 열고 유관 부처가 총출동해 대책 마련에 나섰을 것이다. 이란 관련 정보와 채널이 풍부한 미 행정부와 긴밀히 공조하는 한편 워싱턴이 테헤란에 “허튼짓 할 생각 말라”고 압박하게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여야 했다. 또 이란에 최고위급 관리를 보내 소원했던 인적 관계를 복원하는 등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에 힘썼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미국의 제재 강화로 이란과 사이가 벌어질 우려가 커진 바 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직접 이란을 찾아 ‘포괄적 파트너십’을 맺어 위기를 돌파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적극 협력하는 일본도 지난해 아베 신조 총리가 이란을 찾는 등 예방 외교에 힘을 기울여 왔다. 선박 나포 같은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이렇게 능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이란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란이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것은 정부가 이란산 석유 대금 70억 달러를 국내에 동결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금 동결은 미국이 2018년 대이란 제재를 강화한 결과일 뿐 한국의 책임은 아니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이란 측에 투명하게 밝히고, 미국의 제재가 풀리는 대로 대금을 상환하겠다고 설득해야 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도 이란과의 핵 협상 복귀와 제재 완화를 공약한 만큼 여건은 나쁘지 않다. 정부는 바이든 신임 행정부와 긴밀한 공조 아래 한국케미호의 조기 귀환에 전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1.09 北의 ‘인권법 폐지’ 요구를 ‘유엔 권고’로 둔갑시킨 인권위
▲지난달 31일 시민단체 대표가 대북 전단 금지법이 북 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에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전략 보고서에서 유엔 권고라며 “북한 인권법 폐지”를 “향후 과제”로 명시했다. “국제 인권 규범의 국내 이행을 위한 인권위 역할이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유엔 인권 기구가 2017년 한국에 북 인권법 폐지를 요구한 만큼 앞으로 이행하겠다는 뜻이다. 유엔이 북한 인권법을 폐지하라고 했다는 이상한 이 일은 알고 보니 인권위의 황당한 왜곡이었다. 당시 한국 인권 상황을 검토한 유엔 회원국 90여 국 중 오로지 북한 한 곳만 북한 인권법을 없애라고 요구했다. 다른 국가들은 200여 가지 권고를 하면서도 북 인권법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권위는 마치 유엔 차원에서 북한 인권법 폐지를 권고한 양 둔갑시킨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로 볼 수 없다. 민주당은 북 인권법을 11년간 표류시켰다. 2016년에야 마지못해 국회 통과에 합의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법이 정한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재정적 손실’을 이유로 폐쇄했다. 북한 인권 대사도 임명하지 않고 북 정권의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유엔 결의에는 2년 연속 불참했다. 북 주민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대북 전단이 “적절치 않다”는 사람을 인권위원장에 앉히기도 했다. 그러니 인권위가 ‘북 인권법 폐지는 유엔 권고’라는 황당한 왜곡을 ‘실수'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인권위 보고서는 ‘북 인권 개선 활동이 북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활용될 우려도 제기된다’고 했다. 북 주민을 노예처럼 짓밟고 있는 주체가 북한 정권이다. 당연히 북한 정권을 비판하고 규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인권위는 그것이 잘못인 양 한다.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을 비판하지 않고 어떻게 북한 인권을 개선하나. 작년 국감에서 인권위원장은 북이 우리 공무원을 사살, 소각까지 했는데도 ‘피살’인지 ‘사망’인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인권유린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챙기는 이들이 ‘인권’ 간판을 걸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
01월 11일 대북 정책 파탄 보여준 김정은 核 위협…文 계속 방조(幇助)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를 통해 회복·도약·포용이라는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과거 노력에 따른 성취에 기댄 생색내기, 공허한 기존 정책의 고수 등을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만 했다는 점에서 크게 아쉽다. 국민을 더 어렵게 하는 잘못된 경제정책, 국민 편 가르기와 심각한 ‘내로남불’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과 기조 전환 없이는 도약도 포용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북 환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일 시작된 노동당 대회에서 대놓고 핵(核) 위협을 했는데도 문 대통령은 무조건 대화를 구걸하는 저자세를 계속 보였다. 김정은 발언은 문 정권 4년의 대북 정책이 파탄났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 대사변(ICBM급 화성-15호 발사) 이후에도 핵무력 고도화를 위한 투쟁을 멈춤 없이 줄기차게 영도해 새로운 승리를 쟁취했다”고 했다. 비핵화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8년 3월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전한 ‘김정은 비핵화 의지’가 거짓말이었거나, 김정은 말장난에 놀아났음을 확인해 준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벌이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했지만, 결국 김정은에게 놀아난 것이다. 문 정부가 중재자 운운하며 핵무기 개발 시간과 돈을 벌어주는 등 김정은을 거든 셈이다.
특히 김정은은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보다 발전시키라”고 지시했다. 한국이 주 타깃인 전술핵 개발을 공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게다가 핵무기를 ‘자위적 전쟁 억제력’으로 기술했던 노동당 규약을 ‘조국통일 과업을 이룰 공화국 무력’으로 바꿨다. 미국을 향해서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내세우고, 문 정부를 향해 첨단군사장비 반입 및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한·미 동맹 폐기를 관철하고, 핵 무력을 앞세워 통일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이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하면서 평화와 상생을 강조하고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고 비대면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핵 개발도 방조(幇助)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는 결코 안보를 지킬 수 없다.
문화발보 사설
01.11 김정은 36번 核 언급 ‘핵증강’ 선언, 얼빠진 文 정부 반응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36차례나 핵(核)을 언급하면서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완전무결한 핵 방패를 구축했다”고 했다. 그동안 명분으로나마 내세웠던 ‘비핵화(非核化)’라는 단어는 아예 사라졌다. 2018년 김정은 신년사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평화 카드로 시동이 걸린 뒤 3년간 이어온 비핵화 협상은 예상대로 북의 전략에 놀아난 쇼에 불과했음이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김정은은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또 남측을 향해선 “강력한 국방력에 의거해 조국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결국 우리를 겨냥한 노골적인 위협이다. 김정은이 열거한 핵추진 잠수함과 극초음속 미사일,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은 겉으로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굴복시키려는 최종 목표는 우리다. 김정은은 전술 핵무기와 군사정찰위성, 첨단 무인기 개발까지 선언했다. 이런 게 현실화되는 날 한반도 상황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김정은의 비핵화와 평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수없이 강조해 왔다. 김정은을 판문점에 불러 레이저쇼도 벌였다. 대통령은 평양에서 김정은과 북한 체제를 극찬하는 연설을 하고 김과 백두산 정상에서 손을 맞잡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허영심을 이용해 김정은과 세 차례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도록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정은 입에서 나온 얘기는 핵보유국으로서 동결·군축을 논의하자는 ‘가짜 비핵화’였다.
그러는 사이 김정은은 세계 최대급 ‘괴물 ICBM’을 선보였고, SLBM도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 한미의 방어망을 무력화할 핵추진 잠수함과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개발 중이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 (화성15형 ICBM 발사) 이후에도 핵 고도화 투쟁을 멈춤 없이 줄기차게 영도했다”고 했다. 비핵화 협상 기간 내내 핵·미사일을 개발했다고 스스로 털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날 “우리의 남북 합의 이행 의지는 확고하다”고 얼빠진 소리를 또 되풀이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할 리도 없다. 상식에 가까운 문제다. 문 정권도 이를 모를 리 없다고 본다. 북핵 폐기를 안갯속에 집어넣고 ‘비핵화가 되고 있다'고 국민을 속이며 남북 쇼를 계속하려 한 것 아닌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우리 국민을 쏴죽이고 불살라도 오로지 남북 대화와 대북 지원에 목을 맸다. 북이 대북 전단을 중단하라고 하자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금지법을 만들었다. 이제는 북한인권법 폐지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 결과로 돌아온 것은 북의 핵 잠수함, 극초음속 핵미사일이다.
조선일보 사설
01.12 北 핵잠, 전술핵, 극초음속체 예고에도 文 침묵, 안보를 포기했다
▲김정은이 당 대회에서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무인 정찰기 등 신무기 개발을 공언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회에서 북 헌법보다 상위인 당 규약을 바꿔 ‘강력한 국방력으로 조국 통일을 앞당긴다’는 내용을 넣었다. 무력에 기반한 통일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실제 김정은은 핵 추진 잠수함, 전술핵, 극초음속 무기, 정찰 위성, 무인 정찰기 개발을 공언했다. “설계가 끝났다” “시험 제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어느 것 하나만 성공해도 한반도 안보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 것이다.
북이 핵 추진 잠수함을 보유하면 재래식 잠수함밖에 없는 한국의 감시 능력은 완전히 무력해진다. 미국도 탐지가 극히 어려워진다. 북이 핵잠에 장거리 핵미사일을 탑재하면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가 된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지금과 같을 수 없다. 그것이 어떤 충격을 몰고 올지 알 수 없다. 북은 실험용 경수로가 있고 우라늄 농축 기술도 있다. 최근엔 3000t급 잠수함까지 제작했다. 북 선언을 무시할 수 없다. 전술핵은 전략핵과 달리 실제 쓸 수 있는 핵무기로 부른다. 폭발력이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위협적일 수 있다. 북이 전술핵을 개발하면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은 차원이 달라지고 주일 미군과 괌 미군 기지까지 실질적으로 위협받는다.
극초음속 무기는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비행한다. 현존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추적과 요격이 불가능하다. 북이 개발할 경우 한미 공군, 해군기지와 주요 국가 시설이 전부 무방비로 노출된다. 부산·제주 등 후방도 불과 수분 내 공격받게 된다. 북의 극초음속 무기는 활공체로 보인다. 중국이 2019년 공개한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이 활공 방식이다. 내열(耐熱)과 탄두 조종 능력이 관건인데, 북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획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역시 엄포로만 볼 수 없다.
한미 연합군이 북보다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이 정찰 능력이다. 우리는 위성과 무인 정찰기 등으로 북한군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북은 남북 군사 합의에서 우리 군의 전방 정찰 능력을 제한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북은 “500㎞ 종심까지 정밀 정찰할 수 있는 수단 개발”을 강조했다. 무인 정찰기를 말하는 것이다. 북은 군사 정찰 위성 개발도 공언했다.
북이 2017년 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 전문가들이 경악했다. 북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봤던 일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북의 수소폭탄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도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안 되거나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짧은 기간에 해냈다.
작년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방사포와 전차 등 재래식 전력도 ‘환골탈태’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빈국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해킹 등으로 기술을 훔쳤을 수도 있고 중·러의 비밀 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북 집단이 만들겠다고 공언한 무기들이 정말 눈앞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핵잠수함, 전술핵, 극초음속 무기 등도 그럴 수 있다.
정상적 정부라면 ‘게임 체인저’가 될 북 신무기 개발에 마땅히 긴장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본 책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북의 실존적 군사 위협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방부조차 일언반구가 없다. 여당 일각에선 “김정은 답방”을 거론하기도 했다. 국민을 지킬 의무를 포기한 정권이다.
조선일보 사설
01월 13일 비대면 회의실 긴급 발주와 北의 ‘특등 머저리’ 조롱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북한에 “비대면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고 한 다음 날인 12일 통일부가 남북회담용 영상회의실을 만들겠다고 긴급 공고를 냈다. 남북회담본부 대회의실에 카메라 6대, 98인치 모니터 4대, 동시통역 시스템 등을 갖추며 예산은 4억 원이다. 통일부 설명처럼 올해 예산에 반영돼 있을 정도로 예정된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문 정부의 전반적 대북 인식을 보면, 또 하나의 대북 저자세 및 대화 구걸로 비친다는 게 문제다.
며칠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무력 강화 방침을 밝히면서 남북 방역, 인도적 협력 등 문 정부 요청에 대해 ‘비본질적 문제’로 비하했다.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증강 방침도 공개적으로 밝혔다. 첨단군사장비 반입 및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라면서 “우리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상대하겠다”는 등 으르고 뺨치는 행태를 보였다.
정상적 정부라면, 핵무기 증강을 공개 선언한 북한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대북 제재 강화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음성 통화도 제대로 못하면서 비대면 회의실을 긴급히 만든다고 한다. 통일부가 입찰 공고를 낸 날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남한 당국자들을 “그 동네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기괴한 족속들” “특등 머저리들”이라고 조롱했다.
문화일보 사설
01월 15일 김정은 답방과 평화의 봄 夢想
방승배 정치부 차장
북한이 최근 끝난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헌법보다 상위인 당 규약을 바꿔 ‘강력한 국방력으로 조국 통일을 앞당긴다’는 내용을 넣었다. 무력통일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김정은은 한반도 안보지형의 판을 뒤엎는 ‘게임체인저’에 해당하는 핵 추진 잠수함, 전술핵, 극초음속 무기 등의 개발을 언급했다.
그동안 북한의 핵 개발과 무기들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해왔는데, 이번에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개발을 처음으로 실토한 것이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북한이 한국을 향해서도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공식화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김정은은 자기들의 무기개발은 ‘자주권’이라고 하면서,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은 ‘조선반도 정세를 격화시키는 군사적 적대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아시타비’(我是他非)’가 또 어디 있나.
이런 심각한 위협에도 우리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한마디 항의가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신년사에서 “비대면 방식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며 남북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바로 다음 날 통일부는 4억 원짜리 영상회의실 건설 입찰에 들어갔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도 입을 꽉 닫았다. 대통령과 우리 군의 침묵은 북한이 남쪽을 향해 “화답하는 만큼 상대해 주겠다”는 이른바 ‘강(强) 대 강, 선(善) 대 선’ 원칙에 대한 즉각적인 화답처럼 보였다. 여권에서도 기다렸다는 듯 남북정상회담 군불 때기가 시작됐다. “3월 한미연합훈련 이전에 평화의 봄(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이라거나 “대담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가능성 높다(설훈 의원)” 등의 얘기가 나왔다. 여권은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북한 이벤트’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남측이 계속 ‘선’하게 나가니 이번에 강등된 김여정도 우리 합참의 북한 열병식 동향 정찰에 대해 ‘특등머저리’라고 비난하는 개인 성명을 냈다. 지난해 대북전단살포금지법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더니 이참에 ‘김여정 하명법 2’로 불릴지도 모를 ‘대북정찰금지법’을 기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등머저리’라는 말을 듣고도, 우리 군은 또 침묵했다. 하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선’하니 군도 ‘선’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대통령은 민족 지도자가 아닌데,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요즘 이 말에 퍽 공감이 간다. 최 교수의 지적처럼 올해도 국가가 아니라 진영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찾는 사람들의 집단의식이나 ‘논리파괴’가 이어질 것 같다. 신년사에서 영화 ‘토르(Thor)’를 언급하며 “우주의 대기운이 한반도로 집중하고 있다”고 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현 정부 임기 내내 북한의 ‘비핵화 쇼’를 지켜보는 동안 북핵은 고도화됐고, 이제는 아예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를 꺼내지도 않는다. 대북 제재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의 키를 잡고 있는 미국 정부가 곧 새롭게 출발하지만, 우리 정부가 지난 4년의 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화일보
01.16 北 핵잠 위협에도 코로나 핑계로 잠수함 훈련 불참한다니
▲14일 북한 열병식에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이 등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14일 야간 열병식에서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5’를 공개했다. 작년 10월 보여준 ‘북극성-4’보다 더 길어졌고 탄두부 직경도 커졌다. 다탄두와 사거리 증대를 위한 것이다. 김정은은 노동당 대회에서 SLBM과 핵 추진 잠수함 건조를 강조했다. 북은 2015년 첫 SLBM 발사에 성공했다. “핵잠 설계가 끝났다”고도 했다. 북이 만들겠다고 공언한 핵 전력은 시간이 걸려도 결국 눈앞에 등장했다. 핵잠과 SLBM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북이 핵잠에 SLBM을 탑재하면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가 된다. 미국이 북핵을 사전에 저지할 수 없게 되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큰 충격이 밀려올 수 있다. 김정은이 노리는 것도 이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한미 연합군의 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우리 군은 13일 미군 주도로 괌 인근에서 시작된 다국적 대잠 훈련에 불참했다. 2019년까지 참관만 하다가 작년에 처음 해상초계기를 보냈는데 또 빠진 것이다. 미·일·호주 등 우방국과 함께 적 잠수함을 추적하며 대잠 작전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국방부는 “코로나가 심각해 불참한다”고 했다. 잠수함 승조원과 대잠초계기 조종사가 단체로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했나. 코로나는 훈련에 참가한 미국과 일본이 더 심각하다. 코로나는 잠수함에서만 걸리나. 코로나 무서워서 해군은 배에 안 타고, 공군은 비행기도 한 탈 건가. 문재인 정부는 작년 8월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 불참할 때도 코로나 탓을 했다. 잠수함 훈련 불참의 진짜 이유는 북이 화 낼까 봐 눈치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월 18일 사악한 적 직시하고 동맹 강화할 때다
이미숙 논설위원
트럼프 4년 한국 안보에 재앙
정상회담 쇼에도 北核 더 증강
한미 FTA 파기도 간신히 면해
바이든 외교라인 어벤저스팀
김정은 善意 기댄 정책 버려야
전단法 폐기와 제재 강화 시급
광기와 독설로 점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이제 이틀 남았다. 지난 4년간 트럼프는 법 위에 선 황제처럼 행동해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를 초래했고, 동맹 무시 행태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균열시켰다. 트럼프는 대한민국 안보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도발 후엔 북폭 엄포를 놓다가 이내 김정은과의 ‘쇼 외교’로 돌아섰다.
‘화염과 분노’ ‘그 일이 일어난 방’ ‘경고(A Warning)’ 등 백악관 난맥상이 담긴 책을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게리 콘, 국방부 장관 제임스 매티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폐기되고, 주한미군 철수에 이어 한·미 동맹 해체도 가시화했을 것이다. 그런 일 없이 트럼프가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게 돼 안도감이 느껴진다. 한·미 동맹이 트럼프 시대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이겨낸 것은 앞으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은 그 자체로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큰 기회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취임에 앞서 발표한 인사를 보면 ‘외교 어벤저스 팀’이라 할 만하다. 국무부 장관 지명자 토니 블링컨,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제이크 설리번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핵심인사고,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 윌리엄 번스는 30년 경력의 외교 베테랑이다. 국가안보회의(NSC)엔 노장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기후변화 특사,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인도·태평양 조정관으로 합류하고,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내정책 조정관으로 입성한다.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바이든 행정부를 성공시켜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 역대 대통령 가운데 외교적 경륜이 가장 많은 지도자다.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할 경우 대한민국은 글로벌 도약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때 훼손된 동맹 외교를 복원하고 강화해 민주주의 가치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동맹국들과 연대 전선을 구축해 전체주의적인 중국의 관행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로 화웨이의 5세대(G) 진격을 주저앉힌 데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 10개국(D10) 중심으로 첨단 테크놀로지 등의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면 미·중 신냉전은 전면화할 것이다. 대중 의존도 때문에 한국에 충격이 크겠지만, 장기적으로 삼성전자 등이 ‘D10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이든 시대를 국운 융성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선 문재인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우선, 외교안보팀을 혁신해야 한다. 트럼프식 톱다운 외교 시대는 끝났다. 앞으론 외교 고수들과의 심층 협상이 중시된다. 동맹에 무지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북한 문제에만 집중해온 서훈 국가안보실장,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로 집중한다’고 요설을 펴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으로는 바이든 팀 인사들과 한반도 전략을 논의하기 어렵다. 바이든 당선인처럼 문 대통령도 동맹 외교전문가들로 한국판 어벤저스 팀을 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이든 행정부와의 공조가 겉돌면서 한국이 변방으로 밀릴 수 있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 선의에 기반한 대북 정책을 바꿔야 한다. 북한은 8차 당 대회 때 핵 무력 강화 방침을 천명하며 대남용 전술핵과 대미용 다탄두 ICBM 개발 계획을 밝혔다. 트럼프 시대 미·북 회담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전제로 성사됐는데, 이제 그 전제가 없어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양산을 선언한 만큼 한·미도 핵 억지력 및 제재 강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 가치에 입각한 외교를 해야 한다. 홍콩국가보안법 사태에 침묵한 문 정부가 김여정 주문에 따라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비판이 거세다. 문 대통령이 바로 잡아야 한다. 탈레반식 외골수 친중·친북 정책으로 버티면 정권도 실패하고, 대한민국도 국제 외톨이가 된다. 매티스는 2018년 12월 사임 서신에서 “동맹을 존중하고 사악한 적들을 직시해야 한다”고 트럼프에게 충고했다. 동맹중시론자 바이든 당선인 취임에 앞서 문 대통령이 새겨야 할 경구다.
문화일보
01.19 한국판 ‘스톡홀름 증후군’을 우려한다
北 “南에는 核 안 쓴다”… 그대로 믿고 안심한다면 인질범 동조 심리에 빠진 것
핵 인질 상태임을 인식하고 北核에 맞설 수 있도록 힘의 균형 찾아야 평화 이룬다
▲지난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극성-5ㅅ' 문구가 적힌 신형 추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등장하고 있다./조선중앙TV 뉴시스
최근 북한 노동당 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전술 핵무기 등 각종 신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이란 핵, 사이버 공격과 더불어 북핵을 ‘1등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핵실험을 여섯 번 한 북한은 우리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핵 위협을 가해 왔고, 우리는 북한의 핵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핵 인질’이 되어버렸다.
북한의 핵무장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한국판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 한 은행에서 무장 강도가 은행원 4명을 인질로 잡고 6일 동안 대치한 사건에서 비롯된다. 벌벌 떨고 있던 인질들은 인질범이 웃옷을 입혀주는 등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자 인질범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나중에는 옹호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한 여자 인질은 “나는 경찰이나 국가의 품보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더 안정적이고 평화롭다”고까지 말했다.
2018년 우리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은 특사단에게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우리가 안심한다면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든 것이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우리가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억압되고 폐쇄된 체제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 세계의 소식을 보내는 일을 자제하라고 권고할 수는 있으나 범죄시하겠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입장에서 보면 선을 넘은 것이다. 우리 수도권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추가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배치하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3불(不) 합의’는 또 하나의 스톡홀름 증후군 사례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어 범인을 변호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이다. 대북 유화 정책을 하면 언젠가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한국판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인질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북한이라는 인질범의 선의에 기대하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면서 인질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나라 전체가 인질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먼저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오래전에 폐기됐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선언은 1991년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각각 TV 연설을 통해 전술핵 철수를 발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소련 연방의 해체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소련 변방에 배치되어 있던 2만여 핵무기가 테러리스트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핵무기 철수를 발표했다. 같은 시기 부시 대통령은 한국에 있던 약 600개 전술핵을 포함해 서태평양에 있는 6000여 전술 핵무기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 세계 평화를 위해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한 결단인데,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를 자신의 정치적 업적인 것처럼 선전하면서 국민을 오도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한반도에 비핵 시대가 온 것으로 착각하게 했고, 북한에 핵무기를 만들 시간을 벌어 주었다. 30년이 지난 오늘 공동선언이 북한의 위반으로 인해 휴지 조각이 되었다고 하면, 북한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가져야 한다면서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인질이 인질범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아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달성하려 한다. 북한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코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폐쇄된 북한 체제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한국을 없애려는 것이다.
얼마 전 방한해 아산정책연구원을 방문했던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비핵화를 안 하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5000만 국민과 한국에 체류하는 230만 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술 핵무기를 재반입할 명분도 충분하다. 냉전 시기 미국은 3만 개, 소련은 4만 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힘의 균형을 가져와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끝나게 되었다. 우리도 북핵 인질 상태에서 해방되면서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월 19일 文 “북한과 한미훈련 협의” 동맹 저버린 利敵 발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신년 회견에서 밝힌 대북 정책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안보 전략으로 믿기지 않는다. 우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관련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 김정은은 최근 노동당 대회에서 “미국과의 합동 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된 경고”를 거론하며 대놓고 훈련 폐기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 언급은 이에 대한 반응인 셈이다. 군사훈련은 동맹의 핵심이다. 미국은 6·25전쟁 이후 상호방위조약으로 맺어진 유일한 공식 동맹국이고, 북한은 이번 노동당 대회에서도 무력 적화통일 노선을 분명히 한 주적(主敵)이다. 북한이 연합훈련 중단을 통해 동맹 해체를 노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협의하겠다는 것은 적에는 훈련 ‘허용’을 구걸하고, 동맹은 배신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둘째,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의 대북 인식도 비현실적이어서 국가 안보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린다. 한·미는 3월 연합훈련을 계획 중이다. 이미 준비 작업에 착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미 연합훈련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틀 안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원론적으로 그럴 수 있지만, 현실은 이미 정반대로 움직였다. 김정은은 불과 며칠 전에 “핵무력 건설의 중단없는 강행”을 선언하고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온갖 신형 무기들을 과시했다. 전술핵 개발도 공개 천명했다. 하나같이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동시다발 공격 땐 현재 시스템으론 방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셋째,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이 핵을 증강한다든지 무기체계를 더 하겠다는 부분도 비핵화와 평화군축 회담이 타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현실에 눈 감은 환상도 넘어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비본질적 문제”라며 거부한 대북 지원과 남북 회담도 거듭 거론했다. 안보는 최악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개 위협조차 없는 것처럼 말한다. 대한민국 안보를 스스로 허무는 이적(利敵) 행태다.
문화일보 사설
01월 19일 文정부 늦었지만 ‘탈북’ 할 때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승전北’ 오래 전 좌초 불구
자주파 외교안보 진용 재구축
習 방한 불발에 김정은 日 초청
文 순애보에 金은 核위협 강화
대북 저자세와 조급증 버리고
자유민주 네트워크 동참해야
정권 재창출이 지상 과제인 현 집권층에 ‘정책 실패는 곧 정권 실패’라서일까? 국가적 명운이 달린 정책들은 대통령의 바람이나 고집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건데, 분명한 정책 실패라도 인정하고 책임지는 일이 없다. 필요한 건 정책 전환인데, 정책의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단다.
문재인 정부의 ‘기승전북(北)’ 식 외교·안보 정책은 오래전에 좌초됐지만, ‘북바라기’는 꺾일 기미가 없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오명(汚名)을 감수하며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설파하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그러나 배은망덕하게도 북한은 미국과 협상 교착의 화풀이를 한국에다 해댔다. 어떻게든 대북 물꼬를 터 보려는 문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국제적 공동 목표를 뒤로한 채 ‘할 수 있는 걸 하자’며 지난해 8월 자주파 외교·안보 진용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국제사회와 엇박자를 내면서 방역 협력과 경협 등 비현실적인 대북 제안을 했다.
임기 내내 친일 프레임과 토착왜구 몰이로 국가 이익보다 당파적 이익을 앞세웠던 집권층이 지난해 11월 갑자기 한·일 관계의 회복에 전력을 기울였다. 김정은이나 시진핑(習近平)의 한국 방문이 힘들어지자 오는 7월 도쿄(東京)올림픽에 김정은을 불러서 남·북·미·일 4자 정상회의를 하려는 구상을 한 것이다. 북한을 너무 잘 안다는 청와대가 미·북 협상 성사 전에 이러한 구상이 실현돼 비핵화 물꼬가 트일 거라고 진짜 믿는 걸까? 바람이었든 착각이었든, 남북 정상 회동 직후 80%를 웃돌던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향수가 컸던 것 같다.
지난주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무려 36차례나 ‘핵’ 발언을 하며 선군정치 강화를 천명했다. 그리고 오는 20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에 앞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온갖 무기들을 열거하며 미국에 맞서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사실인지에 대한 위협 평가가 필요할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경제 파탄과 주민 불만을 국방력으로 덮기 위한 허세다. 김정은은 문 정부의 대북 순애보에도 답변했다. 인도적 지원이나 경협과 같은 비본질적 문제에는 관심 없으니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무기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정정당당한 자주권이라면서, 한국은 한·미 동맹을 파기하라는 적반하장이다.
중요한 것은 문 정부의 판단력과 대응력이다. 문 대통령은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전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굳건하다고 평가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선 김 위원장의 어떤 평화에 대한 의지, 대화에 대한 의지,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앞서 11일에는 핵무기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막연한 말로 신년사를 갈음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12일 끝난 당대회 때 “강력한 국방력으로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 인사들은 북한의 잇단 강경 행동과 원색적 비난의 속뜻이 과감한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우긴다.
현 정부는 최대의 외교 치적으로 ‘전쟁 없는 한반도’를 이뤘다고 내세웠으나, 남북관계가 교착되면서 대북 화해라는 정치적 성과에 집착하는 조급증에 걸린 듯하다. 북한의 통미봉남과 대남 적화통일 전략목표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저자세 대북정책으로는 결코 남북관계를 풀 수 없고, 김정은이 남쪽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할 운신 폭만 넓혀줄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건설 강행 추진 과정에서 한국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미국의 반응을 엿보기 위한 ‘간 보기 도발’의 대상일 뿐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외교·안보적 도전은 국가 존망지사다.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에 놓인 한국엔 더더욱 그렇다. 문 정부는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대북 몰입 외교를 버려야 한다. 국가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동맹 강화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외교·안보 전략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젠 ‘탈북’할 시간이다.
문화일보
01.20 文 “한미 훈련도 北과 협의” 敵에게 양해 구하고 훈련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필요하면 남북 군사공동위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노동당 대회에서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압박한 데 대한 답변이다. 군 통수권자가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
북이 핵 무기, 시설 전부를 신고하는 등 진정한 비핵화 조치를 취해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자리 잡아 간다면 한미 연합 훈련도 당연히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36차례나 핵을 언급했다. 순전히 우리를 겨냥한 전술핵 개발까지 천명했다. 핵 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하며 무력에 기반한 통일을 선언했다. 현재 우리 독자적으로는 북의 핵 미사일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 김정은의 말이 허세로 들리지 않는다. 미군과의 연합 훈련 강화만이 북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미국 아닌 북한과 ‘훈련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남북 군사 합의에는 “군사 훈련 및 무력 증강 문제는 ‘남북 군사공동위’를 가동해 협의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적대 행위 전면 중단”을 약속한 군사 합의 자체가 북 도발로 의미가 없어졌다. 김정은은 “남한에 경고”라며 신형 미사일을 무더기로 쐈고 군사 합의에서 금지한 전방 해안포 훈련도 했다. 그때마다 문 정권은 군사공동위를 통해 항의하기는커녕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며 북을 두둔했다. 그래놓고 김정은이 ‘한미 훈련 중단’을 요구하자 ‘군사공동위 협의'를 꺼내들었다. 김여정 한마디에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든 것 그대로다.
한미 동맹의 버팀목이던 3대 연합 훈련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 쇼’로 전부 폐지됐다. 비핵화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북핵은 오히려 증강됐다. 트럼프는 바이든 승리를 끝까지 인정 않고 폭동 선동 혐의로 탄핵 과정에 있다. 그런 트럼프 정책을 이어가자고 하는 한국 정부를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눈으로 보겠나.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주도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기권’으로 결정된 뒤에 북한 입장을 묻는 전통문을 보냈다고 부인했다. 먼저 물어본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한미 훈련마저 북과 사전 협의할 수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정하는 건 별일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일보 사설
01.21 김여정 비난 한 달만에 실제로 경질된 강경화
▲북한 김여정과 강경화 외교부장관.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강경화 외교장관을 경질했다. 강 장관은 정권 출범 때부터 함께했던 장관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역할과 존재감이 없는 외교장관을 바꾸라는 지적에 귀를 닫아왔다. 대통령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장관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강 장관은 5년 임기를 함께할 것으로 봤다. 외교부에선 ‘오(5)경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번에도 개각 대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 강 장관이 돌연 경질된 것이다. 청와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맞춰 교체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외교장관을 바꾸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한 달 전 강경화 장관은 국제회의에서 “코로나로 인한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며 북이 더 폐쇄적으로 됐다고 했다. 김정은의 코로나 확진자 ‘0’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러자 김여정이 바로 담화를 내고 “앞뒤 계산 없는 망언”이라고 맹비난했다. “얼어붙은 북남 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여정이 강 장관을 찍어 비난하자 ‘강 장관도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 장관을 찍어 비난하면 그 사람을 경질해왔기 때문이다.
작년 6월 김여정의 지휘를 받는 김영철이 국방장관을 “경박하고 우매하다”고 비난했다. 두 달 뒤 문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교체했다. 북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엔 통일장관이 물러났다. 그러니 강경화 장관의 경질도 김여정 비난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장관도 아닌 외교·안보 장관을 적(敵)의 뜻에 따라 바꾼다면 나라라고 할 수 있나. 문 대통령은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우리 정부에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금지법을 만들었다. 김정은 남매가 요구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날 발표된 문화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친문 핵심 인사들이다. 이런 내 사람 챙기기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내각 장관 중 40% 이상이 민주당 의원이다.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일보 사설
01월 21일 北 데스노트 뒤 장관 줄줄이 바뀐 나라
이용준 前 북핵대사 외교부 차관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제정 로마 전성기의 황제들은 자신의 대를 이어 로마를 가장 잘 이끌어갈 만한 인재를 찾아 양자로 영입한 후 친자식 대신 후계자로 임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황제들이 권력을 집안의 배타적 기득권으로 여기고 황위를 자식에게 유산으로 넘기면서부터 로마의 몰락이 시작됐다.
그간 말도 많고 구설도 많았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내정됐다. 우리 외교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기보다는 더욱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외교장관 인사는 지난 수년간 많은 국내외 외교안보 현안 앞에서 존재가 사라져 유명무실해진 외교부의 재건과 한국 외교의 정상화를 기대해 오던 많은 사람에게 두 가지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첫째는, 외교부 장관 교체의 배경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 방조를 비난하면서 “사죄와 반성, 재발 방지”를 요구한 지 2주 만에 통일부 장관이 사퇴했다. 또, 같은 달 김 부부장 휘하의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이 비난 담화를 내놓은 지 2개월 만에 국방부 장관도 경질됐다.
그 후 지난달 김 부부장이 강 장관의 북한 코로나 방역 관련 발언을 한 걸 두고 “주제넘은 망언”이라며 “정확히 계산해야 할 것(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한 이래 ‘김여정의 데스노트’에 오른 강 장관의 교체 여부는 외교가의 큰 관심사였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최대의 가상적국인 북한이 우리 외교안보 장관들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 후임 장관들은 대체 어디를 향해 충성을 바치게 될지 우려스럽다.
둘째는, 외교장관 후임 인선이 의미하는 정책적 지향성에 관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인사가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등 변화에 맞춰 외교 라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재정비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대외 정책의 일대 변화가 예고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춰 과거의 전략적 오류들을 수정하고 새로운 정책 대안을 모색하려는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주선한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의 기본 전제가 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지금도 연일 ‘핵무력 강화’와 대남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이미 실패가 입증되고 북한마저 외면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허상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모양새다. 그 집요함은 경제 분야의 소주성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과 닮은꼴이다.
20일 취임한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방식 협상을 비판하고 실무적 비핵화 협상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명백히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매개로 동맹국들과 협력해 대중(對中)·대북(對北) 압박 외교를 추진할 방침임을 예고해 왔다. 이처럼 급변하는 외교 환경 속에, 동맹국과의 협력을 기피하면서 한·미 공동의 가상적국인 북한과 중국의 환심을 사는 데 매진해 온 문 정부의 기형적 외교정책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문화일보
01.22 “한·일 관계 안정적” “새 남북 연락 기구” 황당한 외교·안보 보고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부처 업무 보고를 받고 있다./뉴시스
통일부가 21일 신년 업무 보고에서 “남북 공동 연락 기능을 재개할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북이 우리 자산인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에 대해선 단 한마디 비판도 없이 새 연락 기구를 만들겠다고 한다. 우리 공무원을 총살한 것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김정은이 “비본질적 문제”라고 걷어찬 방역·환경 협력까지 추진을 검토한다고 했다. 외교부는 “북·미 대화 조기 재개를 통해 실질적 비핵화 과정에 돌입하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문 정부가 주선한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핵이 한 발이라도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대폭 증강됐다. 새로 들어선 바이든 정부는 그래서 기존 협상 구조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데 우리 정부만 고집을 부린다.
국방부는 한·미 연합 훈련도 “남북 군사공동위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훈련을 바로 그 적과 협의한다는 건 한국군이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외교부는 작년 성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했다. 지금 한·일 관계는 위안부·징용 배상 판결 등이 겹치면서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당은 ‘죽창가’를 부르며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도 ‘안정적’이라고 한다.
대통령 대북 멘토라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이날 “미국이 북한이 핵무기 몇 개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확산되지 않는 쪽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미국이 한국에 무기를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핵보유를 인정해야 미국도 이익이라는 것이다. 4년간 변함없는 문 정권 외교·안보 라인의 황당한 인식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조선일보 사설
01월 26일 “文정부가 김정은 달래려 對北 인권 활동 탄압한다”
북한 인권 운동을 전방위로 억압해온 문재인 정부에 대해 급기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북한 전문가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정 박(한국명 박정현) 한국석좌는 연구소가 22일 발표한 ‘아시아 민주주의 보고서’의 글 ‘한국 민주주의에 드리운 북한의 긴 그림자’에서 “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 집중해온 탈북단체들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달래려 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특별한 관심을 끈 것은 대북 관여 정책에 반대하는 탈북단체와 함께 다른 사람들도 탄압한 것이었다”고 밝힌 그는 구체적 사례도 들었다. ‘김여정 하명법(下命法)’으로도 일컬어지는 ‘대북전단금지법’ 입법 강행, 2018년 북한 인권단체 지원예산 93% 삭감, 탈북자 출신 기자의 북한 취재 차단 등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 유화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반북 발언이나 활동을 약화시키는 데 권력을 사용했다”고까지 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목소리, 특히 인권 이슈와 관련한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문 대통령 시도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대신 자신의 요구에 응하도록 서울을 강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강화시킬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힘과 복원력을 보여주는 것보다 북한에 민주주의를 보여줄 좋은 방법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도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에 반영될 것이 분명한 그의 틀리지 않은 비판을 문 정부가 흘려들어선 안 된다. 문 대통령부터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며 김정은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하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이제라도 중단하고, 대북정보 유입활동을 촉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깨닫기 바란다.
문화일보 사설
01.30 이번엔 ‘北에 원전’ 文 탈원전 끝 모를 탈선과 혼란, 손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이 다수 확인됐다. 이 문건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직전 불법 삭제한 파일 530개 가운데에 들어 있었다. 이 파일은 모두 ’60 pohjois’라는 폴더에 담겼다. ‘pohjois’는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이다. ‘북원추’(북한 원전건설 추진방안)라는 하위 폴더도 있었다. 생소한 핀란드어와 약어 등을 사용해 외부에서 알지 못하도록 비밀 파일을 만든 것이다. 이 문건들은 4·27 정상회담이 끝나고 5월 26일 2차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5월 2~15일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문건을 보면 정부가 대북 원전 건설과 각종 전력 사업, 과거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모델까지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KEDO는 1995년 북핵 동결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해 주는 사업을 담당한 기구다. 북한의 북핵 관련 약속 파기와 핵개발 재개로 사업은 중단됐다. 그런데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다시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부터 검토한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4·27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담은 책자 등을 건넸다. 김정은과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때는 “발전소 문제…”라고 말하는 음성도 포착됐다. 정상회담에서 북한 전력 문제가 거론됐고, 이후 실제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계획을 검토했을 개연성이 크다. 당시 정부는 탈원전을 거세게 밀어붙이며 멀쩡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로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원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한다고 했다. 그런데 체코에 가선 한국 원전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식으로 자랑했다. 위험해서 월성 1호기를 폐쇄한다더니 아무리 해도 위험을 조작할 수 없자 나중엔 경제성을 조작해 폐쇄했다. 월성 1호 문제를 논의하고 의결할 한수원 이사회가 열리기 거의 한 달 전에 이미 정부는 청와대에 ‘폐쇄한다'고 보고했다. 이렇게 국민 세금 7000억원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월성 1호기가 생산할 전기까지 합치면 손실이 1조원이 넘는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원전 산업도 붕괴되고 있다. 이 손실은 측량할 수도 없다. 그래 놓고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준다니 이 정신 분열적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 원전 지원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청와대는 “사실과 다른 혹세무민”이라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 설명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산업부는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남북 협력을 실무 차원서 검토하고 정리한 것뿐”이라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렇게 필사적이고 조직적으로 숨겼을 이유가 없다. 왜 일요일 야밤에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서 관련 파일을 모조리 삭제한 것인가. 이 문제를 파헤치면 충격적 사실들이 드러날 것이다.
문 정권이 감사원 감사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총장까지 찍어내려 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자신들은 ‘사찰 DNA’가 없다더니 탈원전 반대 단체의 동향 보고서도 만들었다. 북한의 ‘사기 비핵화’에 우리가 원전부터 지어준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정상회담 쇼를 위해 적을 도운 것 아닌가. 검찰은 명운을 걸고 이 국가 자해 행위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01.30 ‘컴퓨터 게임’ 된 한미 훈련, 미군 “실전서 혼비백산할 것”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뉴시스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한미) 연합 훈련이 컴퓨터 게임처럼 돼가는 건 곤란하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야외 기동훈련 없는 컴퓨터 훈련으로는 연합 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2018년 트럼프·김정은의 ‘비핵화 쇼’ 이후 병력과 장비가 투입되는 기동훈련은 대부분 없어졌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대체됐다. 그나마도 코로나를 이유로 규모를 절반으로 줄여 낮에만 훈련했다고 한다. 지난 3년간 연대급 이상에서 총 한 발 같이 쏴 본 적이 없다. ‘게임 동맹’이 될 판이다.
지난해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한 강연에서 “(6·25 때 맨 처음 투입된) 스미스 대대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스미스 대대는 제대로 된 훈련 없이 참전했다가 큰 희생을 치렀다. “실탄(實彈) 훈련을 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부하들의 피를 부른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라고 한다. 컴퓨터 훈련만 하면 “실전에서 혼비백산한다”는 것이다.
서욱 국방장관은 3월 한미 연합 훈련도 “컴퓨터 연습”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핵무장은 사실상 완성됐다. 미사일도 다양화됐다. 핵이 없는 한국엔 미증유의 안보 위기다.
그런데도 미군과 컴퓨터로만 훈련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방부 대변인은 29일 “한반도만큼 군사 훈련이 중요한 곳은 없다”고 했다. 황당한 트럼프 시대는 끝났고 이제 정상적 미국이다. 미국은 ‘훈련 없는 군대'를 상상도 못하는 나라다. 훈련 중단이 계속되면 미국 내에서 주한 미군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1.30 ‘神이여, 우리 군대를 지켜주소서’
믿음으로 軍 길러야… 侮辱당한 군대는 祖國 못 지켜
확신 없는 최고 사령관 지시·명령은 부하도 믿고 따르지 않아
‘神이여, 우리 군대를 지켜주소서’
믿음으로 軍 길러야··· 侮辱 당한 군대는 祖國 못 지켜
확신 없는 최고 사령관 지시·명령은 부하도 믿고 따르지 않아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딱 한 대목이 마음에 남았다. 바이든은 2625개 단어로 된 연설문을 21분 동안 읽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존 F. 케네디 연설처럼 두고두고 인용될 명구(名句)는 없었다. 연설문은 우리 고등학생이 사전의 도움 없이도 이해할 만큼 쉬웠다. 그 평이(平易)한 연설의 마지막 한 문장이 가슴에 닿았다. ‘신(神)이여, 우리 군대를 지켜 주소서(may God protect our troops)’.
▲지난 20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미의사당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취임연설을 하고있다./AP 연합뉴스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 외교·동맹·경제력 등이 다양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최종적 수단은 군사력이다. 군대에도 상중하(上中下)가 있다. 최고의 군대는 적(敵)이 감히 싸움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군대다. 다음은 평화적으로 적의 위협(威脅)을 제거할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결사적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군대다. 하지하(下之下) 군대는 총·칼을 녹여 농기구로 만들면 적도 호응해 평화가 올 것이라는 정치가의 허언(虛言)에 휘둘리다 막다른 순간 원치 않은 전쟁에 휘말려드는 군대다. 이런 군대의 승패는 물을 것도 없다.
최고의 군대는 국가의 신뢰와 국민의 사랑이 길러낸다. 신뢰와 사랑이 무너지면 군의 전력(戰力)과 사명감도 함께 무너진다. 최강의 군대 미군도 신뢰와 사랑을 잃자 월남전에서 허무하게 패퇴(敗退) 했다. 미군은 그 패배를 ‘국민이 지켜보는 안방 TV 앞에서의 패전’이라고 부른다. 자기네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이 취임사의 마지막을 ‘신이여 우리 군대를 지켜 주소서’라는 기도로 맺는 것을 보고 전 세계에 전개(展開) 된 미군 장병들 가슴에 뭔가 묵직한 느낌이 와닿았을 것이다.
지금의 미국은 전성기가 아니다. 모서리가 닳고 금이 가고 깨진 곳도 많다. 그러나 미군은 망가지지 않았다. 10여 년 전 화제를 모았던 ‘미국 쇠망론(衰亡論·That Used To Be Us)’ 저자들은 미국 국민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성공 모델로 미군 내의 교육 시스템을 들기도 했다.
문재인 시대 군은 어떻게 변모했을까. 존경과 사랑·신뢰와 기대를 듬뿍 받으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백(氣魄)의 군대가 됐을까. 군은 국민의 갑옷이고 방패다. 국민은 자신들의 방패와 갑옷을 점검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국가와 군의 수뇌(首腦)는 군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김정은은 국지전(局地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핵폭탄을 소형화하겠다고 했다. 중거리·단거리 미사일을 탑재할 핵잠수함 건조 계획도 비쳤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중부권까지 타격할 대형 방사포를 무수히 배치했다. 군은 북한의 공격 무기가 누구를 겨냥하고 있다고 장사병(將士兵)에게 교육하고 있는가. 북한이 전술핵을 동원해 선제(先制) 공격할 경우 우리 군이 어떤 무기로 퇴치(退治)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가. 장병들은 그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가. 재래식 무기로 핵무장한 적을 억지(抑止)·제압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어떤 나라를 들고 있는가. 장병들에게 ‘설마 같은 동포인 우리를 핵 공격하겠는가’라는 말 같지 않은 말로 질문을 막는 건 아닌가.
한·미 동맹 체제에서 미군 전력(戰力)은 적의 움직임을 사전(事前) 포착·대응하는 ‘눈’과 ‘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작전권 반환으로 눈과 귀가 함께 빠지면 무엇으로 대체하겠다고 설명하는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면서 ‘훈련의 땀이 전투의 피를 아낀다’는 말이 떠오르진 않던가.
한반도 주변은 북한·중국·미국·일본 군사력이 밀집돼 있다. 중국은 자기네 경제 수역이라고 서해에 멋대로 금을 긋고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한 해 수백 차례 침범한다. 일본과는 독도 문제가 있다. 협상으로 매듭짓지 못하면 다음은 무력 대치(對峙)다. 중국·일본의 해·공군 전력은 한국을 월등히 앞선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면 누구의 손을 잡을 수 있는가. 국가와 군의 최고 사령관은 둘러대면 안 된다. 사령관이 확신을 갖지 못한 명령·지시·설명은 부하들도 따르지 않는다. 적을 물리칠 자신감을 잃은 군대는 무장해제(武裝解除)된 군대와 같다.
50만 국군 장병은 문재인 정권에서 많은 장군이 수갑을 차고 법정을 오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군의 적폐(積弊)가 청산되고 ‘국민의 군대’가 탄생하고 있다며 뿌듯하다는 장병이 있던가. 모욕(侮辱)당한 군대는 조국을 지키지 못한다. 바이든은 ‘신이여, 우리 군대를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했다. 한국 대통령 가슴엔 어떤 기도문이 들어 있는가.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고문
02.01 ‘北 원전’ 이렇게 내놓고 거짓말해야 할 까닭 있을 것
▲산업부의 북한 원전 추진 관련 문건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주려고 한 정황이 담긴 문건에 대해 청와대는 “해당 공무원 개인의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했다. 산업부는 “정상회담에서 나올 수 있는 남북 협력을 실무차원에서 검토하고 정리한 것뿐”이라고 했다.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이 산업부 공무원 몇 명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원전이 동네 변전소라도 되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민주당 의원은 작년 11월 조선일보가 ‘산업부가 삭제한 문건에 북 원전 건설 파일이 있다’고 처음 보도했을 때 “소설 같은 얘기”라고 했다. 하지만 문건이 있었다는 것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밝혀졌다. 소설은 누가 쓰고 있나.
‘북한 원전 추진’ 문건을 둘러싼 의문의 핵심은 왜 산업부 공무원이 필사적이고 조직적으로 문건을 삭제했느냐이다. ‘공무원의 검토 아이디어’라면 감사원 조사 직전 일요일 밤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자료를 지울 필요가 뭐가 있나.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pohjois’ ‘북원추’라는 약어를 사용해 왜 처음부터 감췄나. 이런 의문에 청와대는 구체적 해명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의원은 “북한 원전 자료는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 공무원들이 박근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문건을 지운 것인가. 삭제된 북한 원전관련 파일 제목은 ’180514_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다. 2018년 5월 14일 작성됐다는 것이다. 산업부도 “박 정부 때 자료가 아니다”고 하자 이 의원은 추론일뿐이었다고 했다. 국민을 바보로 안다.
전 청와대 부속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발전소 USB를 건넸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USB를 건넨 것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미 밝힌 내용이다. 이런 기본적 사실도 알아보지 않은 채 무턱대고 거짓말부터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감사원 감사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월성 1호기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총장을 찍어내려 했다. 검찰 공소장을 통해 북한 원전 추진 문건이 드러나자 내놓고 거짓말까지 한다. 야당 대표를 겨냥해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한다. 무언가 크게 제 발이 저린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02 대북 강경일색 바이든 행정부…북, 옥쇄전략으로 버티나
협상을 명분으로 한 북한의 기만전략
▲김민석의 밀리터리 기만전략 그래픽=신용호
북한이 전례 없이 조용하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대북 강경 일색으로 짜이고 있는데 북한에선 일언반구도 없다. 특수·참수작전이 전문인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커트 켐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 김정은 분석가 정박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등이 포진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에게 점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구축되고 있다. 북한은 새로운 전략에 절치부심하는 것 같다.
북, 협상으로 핵개발 시간 벌어
불리하면 판 깨고, 핵능력 강화
핵잠수함 건조에 5년 이상 소요
보복 핵전력 보유땐 핵우산 무용
북한의 핵개발 전략은 시간이 필요할 땐 협상 테이블로, 속셈이 드러나면 판을 깼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1994년), 6자 회담(2007년 ‘2·13합의’), 트럼프 행정부까지 3번의 비핵화 협상을 했지만, 막판엔 모두 포기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 핵능력은 ‘핵물질 확보→핵실험·핵무기 생산→핵무장 강화’로 향상됐다. 선의로 핵협상을 시작한 마음씨 좋은(?) 한·미는 번번이 낭패를 봤다. 이런 과정은 30년 가까이 반복됐다. 지난 3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도 마찬가지다. 북·미 핵협상 실패 원인이 김정은 총비서의 약한 비핵화 의지였는지, 아니면 기만전략인지 확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처럼 협상기간을 활용해 추가 제재를 피하면서 핵무장 완성단계에 온 것은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협상을 명분으로 기만전략에 성공한 셈이다.
미 합참 교범에 딱 맞는 북한 기만술
북한 기만전략의 방법과 절차는 어쩌면 전형적인 수법이다. 미 합참이 2012년 발행한 기만술 교범(JP 3-13.4 『Military Deception(군사 기만)』)에 정의한 그대로다. 기만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속여 넘기는 짓이다.(위키백과) 허위 또는 왜곡된 내용을 상대방이 수용하도록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조종한다.
/북한의 핵협상 기만전략
미 합참 기만술 교범이 정의한 기만 방법은 4단계다. 기만함으로써 얻는 목표(Goals and Objectives), 기만할 표적(Targets), 기만을 위한 정보유통 통로(Conduits to Targets), 상대방을 속일 그럴싸한 스토리(Deception Story)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박휘락 교수(‘북한 비핵화 협상에서의 전략적 기만 분석’ 『국제정치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기만 목표’는 핵무기 증강을 위한 시간 확보다. 미국이 북한에 군사옵션을 사용하기 어렵게 북한이 핵능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30∼60개(미 CIA 추정)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100개 수준까지 갖는 것이다. 한국을 언제라도 타격할 전술핵무기, 미국 본토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2격 핵전력인 잠수함용 미사일(SLBM) 등을 확보하는 게 북한의 최종 목표다. 북한이 2격 핵전력을 가지면 한·미군의 응징을 받고도 다시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 자체가 어려워진다.
북한의 ‘기만 표적’은 한·미 대통령이다. 미 합참 교범도 기만 표적은 상대방의 최고 의사결정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김 총비서는 핵협상을 실무회담에서 합의할 여지를 주지 않고, 정상회담을 통해 일괄타결을 고집했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특히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Your Exellency’라는 극존칭을 쓴 친서를 27번이나 보냈다. 그 영향으로 트럼프는 북한에 강경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쏴도 내버려 뒀다. 북한은 기만전략의 ‘통로’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택했다. 그런데 정의용 실장과 달리 폼페이오 장관의 통로 역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폼페이오는 2018년 3∼10월 사이에 4차례나 방북했지만, 북한의 문제를 계속 제기했다. 그래서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의 교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기만 스토리’는 “핵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 전달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1991년부터 써온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줄인 말이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 용어를 “남한과 주변지역에서 북한에 가해지는 핵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북한을 비핵화하는 대신 미국의 핵우산은 물론 핵무기를 운영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심지어 주한미군까지 제거한다는 내용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의 사실상 와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겠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다.
확증편향적 집단사고가 낳은 낭패
정부는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미를 북한에 명확하게 묻지 않았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애매한 용어를 썼다. 반대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라고 썼다. 비핵화 대상이 북한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기만을 의심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비핵화를 위해선 북한의 핵무기 반출이 선행돼야 하고, 생화학무기와 장거리 미사일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내용은 2018년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전달했다.(존 볼턴 『The Room Where It Happened』)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만 북한의 기만 스토리에 끝까지 속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기만적 용어를 수용한 것은 잘못된 인식과 확증편향적인 집단사고 때문으로 보인다. 미 버클리대 어빙 제니스 교수에 따르면 확증편향적 집단사고는 힘과 도덕성이 우월한 응집력이 높은 집단에서 발생한다. 촛불정권으로 초기 높은 지지율로 도덕성을 내세운 현 정부는 외부의 비판을 듣지 않는다. 비판적인 전문가는 아예 배제했고, 언론과 야당의 지적엔 귀를 닫았다. ‘악마의 변호인’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야당과 언론이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인 맥 매스트와 존 볼턴은 직을 걸고 바른말을 했다. 그래서 2018년 하노이 회담을 중단했다.
이제 북한은 핵무장의 마지막 단계인 2격 핵전력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북한이 2격 핵전력을 구축하면 미국은 뉴욕·워싱턴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의 부담은 크고, 핵우산의 신뢰는 떨어진다. 북한의 2격 핵전력의 핵심은 지난달 열병식에서 공개한 ‘SLBM 북극성-5ㅅ’이다. 하지만 북한이 북극성-5ㅅ을 실을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최소한 5년이 필요하다고 방산업계는 본다. 북한은 그때까지 버터야 한다. 그래서 북한이 최종병기를 갖기 위해 선택한 새 전략은 8차 당대회의 핵심내용인 국민 총력전에 의한 옥쇄전략으로 판단된다. 그 방안이 자력갱생이다. 경제가 최악인 상태에서 장기간 버티면서 미국도 어쩌지 못할 핵무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북, 핵·미사일에 의한 무력통일로 바꿔
대남 통일노선도 결전전략으로 바꿨다. 북한 헌법보다 우선하는 노동당 규약 서문에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노선’을 삭제했다. 대신 핵과 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국방력’으로 한반도를 무력통일한다는 문구를 넣었다.(한국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략실장) 삭제된 통일노선은 남한에서 미국을 쫓아내고 남조선혁명을 지원해 혁명에 성공한 남한 정부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방식이다.(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 하지만 이젠 곧바로 대남 무력통일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무력통일을 위해 미국을 견제할 다탄두 SLBM, 남한을 타격할 극초음속 미사일과 전술핵무기를 만들겠다고 한다.
북한의 핵폐기 가능성은 거의 없고, 대남 무력통일노선도 굳어졌다. 정부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아직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언급한 문 대통령의 말은 국민의 안전조차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북핵 위협 실상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지만, 이 지경이 된 책임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중심에 섰던 정의용 전 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 후보에 지명한 것은 심각하다. 북한에 기만을 또 당할 수 있다. 이젠 한·미동맹 차원에서 미 핵우산이 포함된 확장억제력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한·일·동해 등에 미군 전술핵 배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악을 대비해 핵무장 사전준비도 고민할 때다. 준비가 안 된 전시작전통제권 조기전환은 중단해야 하고, 한·미 연합훈련은 복원해야 한다.
키워드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
카톨릭 교회에서 성인을 임명할 때 후보자의 결점을 최대한 폭로하도록 강제로 임무를 부여 받은 사람.
중앙일보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02월 02일 북핵 CVID 다시 확고히 할 때다
김숙 前 駐유엔 대사
바이든 외교안보 진용 마무리
대북 제재 놓고 한·미 입장차
전단금지법도 역풍으로 작용
스몰딜은 비핵화 포기하는 일
北은 핵·미사일 증강 공개 선언
대북 굴종 반성하고 책임져야
국제사회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소용돌이 속에 1월을 보냈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다자주의 복귀, 동맹 강화, 민주주의 가치를 통한 세계 지도력 회복의 원칙 아래 코로나19 대처, 중국과의 관계 설정 등이 당면 중요 의제지만, 한국도 안보 차원에서 새로운 도전적 상황을 맞았다.
미·중 관계와 관련, 미국은 중국을 미국과 국제질서의 적대세력으로 보면서도 일부 의제별로 협력을 유지하는 경쟁과 협력의 이중적 접근을 기본 틀로 삼았다. 그러나 국제 핵비확산 문제에 관해서는 원칙과 명분은 함께하되 구체 사안에서는 이견 노정이 예상되는바 북한 비핵화 의제가 원칙적 협력과 현실적 입장이 부딪치는 대표적 사례가 될 듯하다. 미·중 간 신냉전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강대국 간 협력이 더 어려워지는 분야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중국은 동북아에서 한·미·일 3각 공조 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떼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미국의 우려를 자아낸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비핵화 노력에 있어 도널드 트럼프의 성과를 계승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결과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견지하면서도 트럼프식 톱다운 방식은 거부하되 방법과 전략은 동맹국과의 협의를 통해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이 장관(급)부터 부차관보급까지 거의 갖춰졌으나, 비핵화 전략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기까지는 향후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제재 완화나 김정은과의 만남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문 대통령의 인식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여기에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미국 내 반대 목소리도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미 행정부 출범 초기에 한·미 간 동맹 공조 구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외교적 난항이 예상된다.
미국 내 일부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니 핵 동결의 중간합의(interim agreement)를 목표로 하자는 얘기가 간혹 나오는데, 하노이회담 결렬 후 이른바 굿이너프 딜 아이디어를 내놨던 한국 정부로서는 ‘불감청이나 고소원’ 격으로 이런 분위기를 반기리라 본다. 지난주 미 의회조사국(CRS)이 발표한 북한 보고서는 점진적 비핵화와 빅딜의 문제를 분석하면서 이는 제재 완화와 관련한 여러 법적 요소가 얽힌 복잡한 사안이라고 봤다. 안보리 제재 외에도 양자적 차원의 미국 제재는 무기 개발뿐 아니라 북한의 인권 탄압, 돈세탁, 불법 무기 거래, 테러 지원, 사이버 범죄 등과도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핵 동결과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스몰딜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고 완전한 비핵화는 영원히 좌절됨으로써 국제 핵비확산 체제에 치명타를 안기고 결과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따라서 검증 절차가 보장된 완전한 비핵화(CVID)는 확고부동한 전략 목표여야 하며 핵 동결은 비핵화 로드맵에서 하나의 과정으로 검토될 요소이지 북한의 핵무기 불포기 태도를 상수로 놓은 채 편의적으로 다룰 일이 절대 아니다.
북한은 지난달 노동당대회에서 핵전쟁 억제력과 군사력 강화를 결론으로 내놨다. 실제로 두 차례의 군사열병식에서 신형 무기를 과시하는 등 핵·미사일 및 재래식 무기의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정은은 지금 바이든 행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도발의 선택지를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득보다 실이 많아 도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그동안 김정은의 무모했던 행보에 비춰보면 위험하리만치 순진한 희망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특등 머저리’라고 부르는 걸 대화를 간절히 원하는 신호라고 해석한다면 그런 조롱을 들어 마땅하다. 전쟁은 무기로 싸우지만, 승리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투지가 승리의 원천이라는 조지 패튼 장군의 말을 새기면서 해이해진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정부가 김정은 표현대로 비본질적 문제에 집착하면서, 모욕과 도발에 대한 관용으로 일관해 옴으로써 국민 대다수에게 대북 굴종으로 비치고 남북관계와 비핵화는 정체된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해 응당 반성과 책임을 질 일이다.
문화일보
02월 02일 한미훈련 미적대는 軍수뇌부 죄책
박휘락 국민대 교수·정치학
지난 2006년 12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반대하는 군 수뇌부를 겨냥해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하고 질타했다. 거친 언사로 인해 비판받긴 했으나, 강군 육성의 임무에는 소홀한 채 허세만 부리는 군(軍) 수뇌부의 면모 일신을 촉구하는 마음은 느껴진다.
최근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의 훈련 여부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훈련은 군대의 기본 요건이고, 국방의 핵심이며, 주권 사항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훈련을 문제 삼는 이유는 평화를 협의하고자 함이 아니다. 미국은 훈련되지 않는 군대는 전투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의 전투 투입을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다. 사실, 2018년 정의용 안보실장은 김정은이 한국의 한·미 연합훈련을 양해하기로 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는 것은 군 수뇌부다. 군대의 훈련은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창의적인 강화 방안을 건의하는 게 아니라, 북한과의 협의도 가능하고, 컴퓨터 모의훈련이지만 운용의 묘를 살리겠다는 등 눈치만 보기 때문이다. 현 군 수뇌부에 노 전 대통령의 위 말을 상기시키고 싶다. 훈련도 하지 못하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아가 아무런 북핵 대비책도 없으면서, 국방장관이네 참모총장이네 할 거냐고!
군 수뇌부는 외침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저처럼 험한 말을 하게 된 것은, 전작권을 전환하면 한미연합 대비태세에 문제가 발생하고, 미군에 책임을 주어 활용해 나가는 게 현실적이라면서 군 수뇌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반대에 대한 시비를 떠나, 당시 군 수뇌부는 정부와 다른 군의 입장을 적극 표명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이임을 며칠 앞둔 국방장관은 평양까지 따라가서 일방적 무장해제의 성격이 큰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고, 그 후임은 한·미 연합훈련을 미련 없이 중단했다. 현 군 수뇌부도 엄중해진 북핵 위협은 도외시한 채 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지시 이행에만 매진하고 있다.
안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히 북한은 정확히 알고 있다. 2018년 여름부터 주요 훈련을 폐지함에 따라 한미연합 대비태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오죽하면 이임하는 한미연합사령관이 공개적으로 우려하고, 역대 한미연합사령관들이 이구동성으로 훈련 강화를 요청하겠는가? 미군의 순환 체제를 고려할 경우 3년 정도 실병력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경험 자체가 전수되지 못할 것이다. 군 수뇌부에 묻는다. 정권이 아닌 ‘국민’의 군대를 지휘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데도 군의 전투준비태세에 대한 최종 책임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군의 준비태세 수준을 수시로 점검하고, 미흡할 경우 노 전 대통령처럼 호통쳐야 한다. 군대가 마음껏 훈련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핵무기 폐기 약속부터 지키라고 일갈해야 한다. 율곡 선생의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其國非國)’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은 필자뿐일까?
문화일보
02월 02일 ‘脫원전과 北원전’ 복마전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비핵화 협상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전대미문의 ‘거짓 평화쇼’에 이어 ‘이적성(利敵性)’ 논란으로까지 번진 것은 안타깝다. 협상 과정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불투명하고 극비리에 진행된 데다 협상 결과도 최악의 북핵 고도화로 귀결돼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적성 논란은 시한폭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한국과 협의도 없이 밀실회담에서 김정은과 약속할 정도였다. 국가 존망이 걸린 동맹 현안 내막을 우리 국민은 뒤늦게 협상 실무자 존 볼턴 회고록을 통해 알게 되는 기막힌 상황까지 벌어졌지 않은가.
탈원전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삭제 문서 중 북한 원전 지원 문서 10여 건이 공개되면서 ‘북핵 협상 복마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 이적행위”라고 국정조사를 통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나서자 그동안 국내 정치 주요 현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던 문 대통령이 “구시대 유물정치”라며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서 야당 대표를 압박했다. 당·정·청 등 여권 전체가 “북풍공작”이라며 단일대오로 강경 대응하는 형국이다. 산업부가 전격 공개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문건에는 북한 내 건설 방안 등 3가지 구체적 방안이 담겼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위원장이던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에 산업부가 이 문건을 보고한 정황도 드러났다. 도보 다리 남북정상회담 관련 ‘신경제구상 USB’ 원본 공개를 정부가 거부한 가운데 김정은은 2019년 신년사와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원자력 발전 능력 조성’ 발언을 해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탈원전을 광적으로 추진하던 정부에서 윗선 지시 없이 국가전략사업인 북 원전 건설 제안 아이디어를 산업부 실무자가 습작용으로 작성했다며 “또 신내림 받았다”고 할 것인가. 월성 원전 폐쇄 관련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일요일 심야에 도둑처럼 잠입해 문건을 지웠던 산업부 공무원이 검찰 조사에서 “신내림 받았다”며 황당한 진술을 한 마당이다.
한·미가 합의했던 ‘북핵불용(北核不容)’ 용어가 현 정부 들어서자마자 실종된 데 이어, 북한의 ‘대화 따로 핵 개발 따로’ 이중전략 사기극에 놀아나면서 북핵 협상이 복마전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김정은은 2018∼2019년 평화공세 시기 핵과 미사일 숫자를 늘리고 성능을 개선하는 등 한시도 핵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미 국방부 육군부 ‘북한 전술 보고서’는 북한이 지난 연말까지 핵무기를 최대 100개까지 보유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핵무기 투발 수단도 고도화됐다. 김정은은 올 초 전술핵, 핵잠수함, 다탄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극초음속미사일 등 핵전력 고도화 전략까지 공개했다. 이 2단계 핵 개발 계획이 마무리되면 북한 핵 실력은 이스라엘, 인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도달, 한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고 미국과 맞짱 뜨며 핵 군축 협상에 나설 태세다. 핵 인질 상태를 방치하는 정부의 안보 불감증이야말로 국민 생존과 국가 존망까지 위협하는 최악의 이적행위다. 거짓 평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남는 건 핵 악몽뿐이다.
문화일보
02.03 ‘核 있는 北’과 전면전 때 ‘핵 없는 韓’이 무슨 작전권을 행사하나
국방부가 2일 ’2020년 국방백서'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국방백서의 “전작권 전환을 안정적으로 추진 중”이란 표현보다 ‘속도’를 강조한 것이다. 원인철 합참의장도 이날 미 합참의장과 통화에서 전작권 전환을 “가속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방백서는 북한군이 미사일 여단을 2년 전 9개에서 13개로 확대했다고 했다. 실제 김정은은 2019년 핵 탑재가 가능한 신형 탄도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북의 핵·재래식 전력 증강을 알고도 대응책 마련이 아니라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지금 북은 핵을 갖고 있고 한국은 핵이 없다. 전쟁이 발발하면 북핵은 더 이상 과시용이 아니라 실전용이 된다. 그때 한미 연합군의 최대 과제는 북핵을 어떻게 탐지하고 무력화시키느냐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북핵 억제 견제 타격은 미군만이 할 수 있다. 북핵 탐지의 핵심은 정찰위성과 정찰기 등 각종 미군 정찰 자산이다. 한국군은 2024년까지 위성 5대를 띄운다는 계획이 있거나 고고도 무인정찰기를 도입했지만 미군의 능력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최후의 순간에 맞대응할 핵도 없다. 이 모든 것을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대체 어떻게 전시(戰時) 작전권을 행사한다는 것인가. 미군이 그런 지휘에 응하겠나.
한미가 전작권 전환에 합의한 2014년과 지금은 안보 환경이 천양지차다. 북은 수소탄 실험에도 성공했고 “핵탄두가 100개”라는 평가도 받는다. 요격이 어려운 미사일까지 만들었다. 상대가 핵폭탄을 보유하는 지각변동이 발생했는데 전시 작전권 전환을 대통령 업적이라며 무작정 밀어붙인다는 것은 안보를 도외시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선 한국군의 역량 평가가 필수적이지만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3대 한·미 연합 훈련은 모두 없어졌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 훈련이 컴퓨터 게임처럼 돼 간다”고 우려를 표하는 지경에 왔다. 2014년 전작권 전환의 3대 조건은 한국군 군사 능력, 북 핵·미사일 대응 능력, 한반도 안보 환경이었다. 지금 충족된 것이 하나라도 있나.
전시 전작권은 전면전 발발을 전제로 한 것이다. 전쟁 발발 시 국민 생명, 국가 존립과 직결된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럴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국방부 장관은 “재임 중 전작권 전환에 진전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며 ‘시간표’를 정했고 국방백서는 ‘속도’를 강조했다. 북이 핵을 발사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한국군 사령관이 미군 핵우산과 확장 억지 수단을 마음대로 동원하고 명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도 이런 오산이 없다. 유럽 국가들은 자존심이 없어 나토(NATO) 최고사령관에 미군 대장을 임명하나. 안보 포퓰리즘에 군이 앞장서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03 코로나보다 ‘포흐요이스’가 더 무섭다
文정부의 ‘북쪽’ 지향
과연 어디까지일까?
진영 논란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정신 번쩍 차리고
잠에서 깨야 한다!
# 코로나가 창궐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정작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그 터널의 한복판에서 ‘포흐요이스’(pohjois, 핀란드어로 북쪽이란 뜻)라는 이름의 파일 속 수수께끼를 둘러싼 논란이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이른바 ‘북원추’(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를 둘러싼 공방전 때문이다.
# 주지하다시피 사건의 발단은 월성 원전 관련 감사원 감사 도중 산자부의 이른바 ‘신내림’ 서기관(왜 휴일 자정 무렵에 일부러 나와 컴퓨터 파일을 지웠냐는 검찰 추궁에 그 산자부 공무원이 “신이 내려서”라고 진술해 회자된 말)이 2019년 12월 1일 자정 무렵부터 두 시간 가까이 지운 파일명들이 지난달 28일 한 방송을 통해 알려진 것이었다. 그 방송은 월성 원전 폐쇄 의혹 공소장을 공개하면서 ‘포흐요이스’라는 폴더 아래 ‘북원추’ 버전 1, 2를 포함해 북한 원전 관련 문건 17건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집중 보도했다. 사실 감사원의 감사 타깃은 월성 1호 원전의 조기 폐쇄 결정 및 즉시 가동 중단과 관련된 것이지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은 당시 감사원의 관심 사안 자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신내림’ 서기관은 시간에 쫓기면서도 끝내 감사 대상도 아니었을 ‘포흐요이스’ 폴더를 몽땅 지웠다. 더구나 다른 폴더 이름은 한글이거나 기껏해야 ‘history’ 정도의 영어였지만 유독 북한 원전 관련 파일만 ‘pohjois’라는 생경한 핀란드어로 적어놓은 것 자체가 되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이 방송 보도 직후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 행위”라고 성명을 냈다. 그러자, 청와대는 “북풍 공작과 다름없다”며 법적 조치를 불사하겠다고 심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더해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북한 원전 지원은 이전 정부 때부터 있던 것이고 산자부 문건도 그 당시에 작성된 것들이라고 말하며 문제를 뒤집어 희석하려 했지만 정작 산자부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그 문건들의 작성 시점은 전 정부 때가 아니고 문재인 정부 때라고 정정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제 밤에 산자부는 폐기됐다던 북원추 관련 문건을 전격 공개했다. 삭제되었다는 문건이 같은 방의 동료 컴퓨터에서 튀어나왔다는 것 자체가 문재인 정부와 함께 순장(殉葬)되기보다 다른 살길을 찾겠다는 공직 사회의 몸부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것이 공무원들의 정권 말 생존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그 내용에는 과거 경수로를 짓다가 만 함남 신포(금호지구)에 원전을 건설하는 제1 방안, DMZ에 건설하는 제2 방안, 그리고 신한울 3·4호기를 완성해 북측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제3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산자부 역시 다만 내부 검토 문건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 자체가 심히 의문인 내용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연 이런 문건을 윗선의 지시도 받지 않고 만들 만큼 간 크고 한가한(?) 공무원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 이뿐만 아니라, 이런 내용이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때 건네진 이동식 저장 장치(USB)에 담긴 것 아니냐는 의문이 연일 제기되자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조한기)이 나서 북한에 건넨 USB는 아예 없다고 단언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당시 국민소통수석이자 현 민주당 의원인 윤영찬은 USB는 건넸지만 내용은 원전이 아니라 수력·화력 지원이라고 고쳐 말했다. 그리고 윤건영 의원(당시 국정상황실장)은 북원추 문건이 작성된 것은 5월이고 정상회담은 4월이니 논란의 앞뒤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도 주장했지만 이런 모든 설왕설래를 뒤집고도 남을 보다 결정적인 반증이 북쪽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의 전력 문제를 풀기 위한 사업을 전 국가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어랑천발전소와 단천발전소를 비롯한 수력발전소 건설을 다그치고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해나가며 도·시·군들에서 자기 지방의 다양한 에네르기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 리용하여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특히 ‘원자력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해나가며’라는 구절의 발언은 김정은 집권 이후 2019년에만 딱 한 번 있었다. 북한에서 김정은의 말은 곧 법이고 정책이다. 예년에는 없던 말을 이례적으로 말한 사실을 놓고 보면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처럼 그 시점이 4월의 정상회담이 아닐 수도 있고 제안의 전달 방식이 이동식 저장 장치가 아닌 다른 경로일 수도 있겠지만 그 앞선 해인 2018년에 원자력발전 능력과 관련된 모종의 제안이 우리 정부에서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단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2018년 4월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건넸다는 USB를 공개하면 끝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정부가 대한민국에서는 폐쇄해 나가겠다는 원전을 북측에 어떤 이유로든 건설할 의향이 있었고 이를 북측에 전달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 그렇다면 과연 문재인 정부의 북쪽(포흐요이스) 지향은 어디까지일까?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가 심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 코로나의 종식 뒤에라도 대한민국은 온전할 수 있는 것일까? 진보, 보수의 패 가른 진영 논리가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생존 자체가 문제다. 이럴 때일수록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정신 번쩍 차리고 깨어나야 하지 않겠나!
조선일보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02월 03일 北·中에 더 설설 기고 美·日과 멀어진 ‘국방 포기 백서’
국방부가 2일 내놓은 ‘2020 국방백서’는 대한민국 국방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무력 적화통일 노선을 더 강화한 북한 김정은 체제를 여전히 ‘주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적의 개념을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으로 추상화했다. 마치 국어사전 같다. 더 심각한 것은 안보의 제1 근간인 한·미 동맹을 흔든다. 동맹은 근본적으로 ‘공동의 적’을 상정해야 하는데, 그게 더욱 흐릿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중국을 주적으로 보고, 북한 핵무기를 최대의 안보 위협 요인으로 보는데, 국방백서는 그런 중국과 북한에 더 설설 기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북한 김정은은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라고 밝혔고, 김여정은 지난해 6월 개성연락사무소 폭파 후 대한민국을 적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주적이 아닌 평화·협력의 대상으로 본다.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 세습’ 대신 ‘집권’으로 기술함으로써 민주 국가인 양 포장했다. 공무원 총살 사건에 대해서도 김정은의 유감 표명을 부각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중국 군용기 카디즈 침범, 중국 군함 ‘서해 공정’은 없고 양국 관계의 전략적 소통 강화 등만 기술됐다.
반면 한·일 관계는 동반자에서 이웃으로 격하됐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게 “기본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동반자”라고 한 것과도 배치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해선 “중국 겨냥”으로 규정, 친중 편향도 드러냈다. 북한이 전술핵·전략핵을 증강하는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을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 유사시 한국을 도울 나라는 동맹인 미국이고, 일본은 미군 증파 등을 위해 긴요한데 미국과 일본을 갈수록 멀리한다. ‘국방 포기 백서’로 비치는 이유가 수두룩하다.
문화일보 사설
02월 03일 정치 문서로 변질된 文정부 국방백서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 前 국가정보원 1차장
원래 국방백서는 그 성격상 항상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상정한 시나리오 및 우발계획과 함께 국방정책과 전략 방향 그리고 군사력 건설 계획과 운용 지침을 수립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결과 충돌 사태를 우선으로 가정하고 평시 연합 및 합동작전 훈련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미국과 일본의 국방백서가 중국 군사력 확장 위험과 북한의 핵 위협을 최대 변수로 삼고 우리와 달리 동맹적 실전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20 국방백서’는 공허한 희망 사항으로만 가득한 일종의 ‘정치적’ 문서 같다. 북한군은 더 이상 주적(主敵)도 아니고 그냥 포괄적 개념 속의 적에 불과하다니, 9·19 군사합의 이후 한·미 연합훈련 폐지 등 국군의 북한 눈치 보기가 극에 이르렀다. 더욱이 당면 최대 안보 현안인 북의 전술핵 실전배치 위협 문제는 제대로 된 대응책은커녕 구체적인 설명도 없다. 오히려 황당무계하게도 잇단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안보 환경이 조성됐다는 정치적 수사(修辭)만 늘어놨다. 실제로는 이 ‘비핵화 쇼’ 기간에 북핵 능력이 더 증강됐다고 김정은은 연초에 실토했다. 지난달 8차 당대회에서는 핵강국 건설 자신감과 전술핵 조기 실전배치를 호언장담하기까지 했다.
당장 대미 전략핵 3종 세트와 대남 전술핵 3종 세트는 우리에겐 방어가 거의 불가능한 절체절명의 안보 위협이다.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과 핵잠수함 건조 및 고체연료형 신형 대륙간 다탄두 탄도미사일(ICBM) 3종, 그리고 전술적 이스칸데르급 KN23 미사일과 에이태킴스 지대지 미사일 및 초대구경 방사포 3종은 사실상 우리를 ‘핵 인질’로 삼았음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을 ‘주적’으로 삼고 ‘강 대 강’ 대결까지 천명했으니, 북한은 이제 명실공히 ‘게임 체인저’가 된 셈이다. 명색이 국방백서라면 이에 최소한 국민을 안심시킬 대책을 레토릭 차원에서라도 제시했어야 했다.
안보 상황은 이렇듯 최악의 벼랑 끝으로 내닫고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 수뇌부는 한·미 연합훈련 문제도 북한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나아가 여건이 전혀 완비되지 않았는데도 일단 미군으로부터 전작권을 조기에 전환 받아 ‘자주국방’을 서두르겠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 미군 없이는 아무런 실질 대응책도 없는 북핵 인질 상태에서, 주한미군 감축 내지는 철수 명분을 먼저 스스로 제공하겠다는 홀로서기 식 자멸론인가. 게다가 이미 핵무장한 북한에 비핵화를 전제로 원전을 제공하는 문제를 실무 차원에서 검토해 봤다니 참담하다.
한·미 동맹이 상징하는 민주적 안보 연대의 핵심 가치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현 상황을 방관만 하지 않을 태세다. 문 정부의 ‘친중 친북’ 태도에 제동을 거는 강력한 대중 압박과 대북 제재를 조만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봄 한·미 연합훈련 실시가 발등의 불이다. 또한, 한·미·일 안보 동반자의 필수 불가결성을 강조하는 미국과 일본을 그냥 ‘이웃’으로 격하시킨 한국 간에 파고 높은 갈등을 예고한다. 무릇, 안보 비용은 위기가 닥치기 전엔 미리 계산해 주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 감당 못 할 계산서가 날아오고 있다.
문화일보
02월 05일 북한 원전, 헛꿈은 꾸지 말라
이도운 논설위원
산업부 원전 문건 전문가 작성
제재·비용·여론 장벽 모두 파악
북측에서 먼저 운 띄웠을 수도
제네바 합의도 핵 폐기를 전제
대북 굴종과 집착이 의심 키워
USB·도보다리 대화 다 밝혀야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협상 당시, 로버트 갈루치 특사와 핵 포기를 놓고 싸우던 강석주 외무성 부상은 슬쩍 한마디를 던져본다. “혹시 경수로라도 지어주면 모를까.” 협상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미 대표단이 그걸 덥석 물어버렸다. 제네바 합의는 한국 외교의 대표적 실패작이다. 19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당시까지도 우리가 가졌던 북핵 협상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버렸고, 수조 원에 달하는 경수로 건설 비용 대부분도 떠안는 ‘봉’ 신세가 됐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비슷한 실패가 반복되는 것인가. 산업통상자원부 북한 원전 문건이 심각해 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다. 문건은 전문가 작품이다. 제재·비용·여론·탈원전 등 추진이 어려운 이유를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보고서를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시켰을까. 원전·북한 전문가들은 짐작하고 있다. 북한에서 먼저 운을 띄웠을 가능성도 있다. 문건은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 작성됐다. 회담 당시 북측에서 “경수로 건설 약속도 안 지켰는데 어떻게 믿느냐”는 식으로 던져봤을 수 있다. 6쪽짜리 문건 내용은 정확하다. 신포 경수로의 역사도,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민감성도 안다. 거의 유일하게 부정확한 부분은 1·4쪽에 등장하는 ‘북한 내 송전망’이다. 신포에서 외부로의 송전망은 당시 논의됐지만 합의되지 않았고, 건설도 되지 않았다. 송전망 건설비가 경수로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현재의 북한 송전망도 원전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원전 제공이 북핵 폐기·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제재 해제 등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허점은 모든 곳에 있다. 제네바 합의는 동결된 북핵 시설을 폐기하는 시점에 원자로 등 경수로 핵심 장비가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합의 직후 신포에서는 부지정지 등 공사가 시작됐고,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 핵 개발이 발각될 때까지 계속됐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미국 없이 단독으로 공사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산업부 문건이 제작된 2018년 5월은 4·27 회담이 끝나고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다. 문 정권 내에 엔도르핀이 최고조로 솟아나던 때다. ‘쇼’밖에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경수로 사업을 시작하고, 추후 핵 동결이나 폐기·반출 시점에 원자로·터빈 등을 제공한다는 제네바 합의 시즌 2를 충분히 생각했을 수 있다. 일단 공사를 시작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음 정권의 문제일 뿐이다.
앞선 정권에서도 추진·검토했던 원전 제공이 문 정권에서 크게 논란이 되는 이유가 뭘까. 탈원전과 정면 충돌되는 일을 추진한 정권의 이중성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북 굴종과 집착 때문에 북한에 몰래 원전을 지어주려는 검토까지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야당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 정권 핵심인 586은 아직 1980년대 운동권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북한·사회주의·수령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동시에 북한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처럼 효과가 큰 선거 이벤트는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도, 북한에 제재 해제·남북 경협 등을 해줄 수 있는 것처럼 사탕발림해가면서 이벤트를 이어가려는 측면도 보인다. 북한도 이제는 그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같은 욕설이 나오는 것이고, 문 정권은 아무 대응도 못 하는 것 아닐까.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민감하고 중요한 얘기를 했다면, 도보다리 산책 당시일 가능성이 크다. 대화 내용은 두 사람만 안다고 한다. 그럴까? 필자는 회담 한 달 뒤 워싱턴을 방문했다. 미 안보 소식통은 도보다리 대화를 남·북·미 혹은 중국 정보기관에서 감청하지 않았다면 책임자가 해고됐을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진다. 북에 건넨 USB 내용도 마찬가지다. 원전 얘기가 없었기를 바란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통일을 위해 꿈도 못 꾸냐고 할 것이다. 꿈을 꿀 수는 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공직자들은 절대 헛꿈을 꾸지 말아야 한다.
문화일보
02.06 김정은 금고지기 사위 “金은 비핵화 못 한다” 진실이자 상식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왼쪽)과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5일 국회 청문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아직 있다”고 했다. 그 근거로 2018년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자신에게 영변 공개를 약속했고,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점 등을 꼽았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비핵화 언급을 한 것은 10차례도 넘을 것이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핵을 개발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 요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김정은이 약속했기 때문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정말 믿는 것 같다. 바보가 아니라면 속자고 작정한 것이다. 김은 비핵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될 때만 비핵화를 한다. 한국 정권이 속아 넘어가면 김은 계속 오판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내놓겠다는 영변 플루토늄 시설은 고철이나 다름없다. 별도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해 ‘비핵화 쇼' 기간에도 핵탄두를 늘려왔다. 안보 문외한이던 트럼프도 ‘영변과 제재를 바꾸자’는 김정은의 사기극에는 속지 않았다. 김정은은 지난달 노동당 대회에서 ‘핵’을 36차례 강조했다. 전술핵과 핵 추진 잠수함 개발도 공언했다. 어디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건가.
탈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 대리가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 핵 능력은 체제 안정과 직결된다”며 “김정은은 비핵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류 전 대사는 ‘김씨 금고지기’인 전일춘 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다. 어떤 전문가보다 평양 내부 사정에 정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김정은은 비핵화를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 했다. 사실 이는 상식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핵을 만들었고 이제 가진 것은 핵밖에 없는데 핵을 포기하면 몰락 외에 무엇이 있겠나. 중국 외교부 발행 잡지도 지난달 “북한 핵·미사일의 양과 질이 계속 향상되고 있고 핵 보유 의지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세계에서 ‘북 비핵화 의지’를 믿는 것은 문 정권이 유일할 것이다.
정 후보자는 2018년 방북 당시 김정은에게 “한반도 안보 상황이 완전히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북은 김일성 때부터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가 ‘안보 완전 보장’이라고 해왔다. 핵 포기를 안 한다는 뜻이다. 북의 이 기만술을 트럼프에게까지 전달했다. 지금 미 조야에선 한국이 북의 ‘비핵화 의지’를 부풀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TV용 쇼”라고 했다. 정확히 본 것이다. 그런데도 문 정권은 그 ‘TV용 쇼'를 다시 한번 벌여볼 생각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월간조선 02월 호
■문재인 정권의 ‘대북전단 금지법’이 ‘惡法’인 이유
“북한정권 범죄행위 고무해 향후 국민 생명과 안전에 더 큰 위해 초래할 수도”(국가인권위, 2015년)
⊙ 대북전단이 아닌 북한 주민에게 독재정권 실상 알리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 셈
⊙ 송영길이 대표발의… 이낙연·이인영·전해철·윤건영 등 11명이 공동발의
⊙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등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배 가능성
⊙ “정부 할 일은 국민 활동 통제 아닌 국민 생명·자유 보호”
⊙ 북한은 현재 외부 사상·문화 유입에 따른 내부 붕괴 걱정… 작년엔 ‘반동사상문화 배격법’ 채택
⊙ 사실상 유일한 ‘비대칭전력’인 대북 확성기 방송조차 ‘금지’한 문재인 정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무제한 반대 토론(필리버스터)을 강제로 종료한 뒤 ‘찬성 187명’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을 가결했다. 국회 통과 후 개정안은 정부로 이송 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같은 해 12월 29일 공포됐다. 법 시행 시점은 공포 후 3개월이 지나는 오는 3월부터다.
해당 법률의 요지는 “상호 비방 중상하지 않기로 한 남북 합의에도 일부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반복하며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고 있다”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행위,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 행위 및 전단 살포 행위 등 남북합의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금지사항을 위반한 자는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해당 법률에 대해서는 ‘대북 정보 유입을 통한 북한 인권 증진’을 원천봉쇄하고,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발의 직후부터 제기됐지만, 국내 여론의 관심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해당 법률의 국회 통과 이후 미국 의회가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제한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관련 청문회 개최를 시도하고, 유럽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이 반대 입장과 함께 재고 요청을 해오면서 뒤늦게 국내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해당 법률의 개정 내용과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에 《월간조선》은 태영호(太永浩) 국민의힘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낸 〈대북전단살포금지법과 북한 내 표현의 자유 실태〉란 정책보고서, 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를 바탕으로 해당 법률의 ‘악법 요소’를 분석했다.
김여정, “광대놀음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
▲김여정은 2020년 6월 4일, 국내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서 “남조선 당국은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한 뒤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 당국이 혹독하게 치르는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사진=뉴시스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국내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문제 삼으며 억지를 부린 일에서 사실상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김여정은 지난해 6월 4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을 통해 “‘탈북자’라는 것들이 전연 일대에 기어나와 수십만 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망나니짓을 벌려놓은 데 대한 보도를 봤다”면서 “남조선 당국은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에 앞서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말해두지만, 또 무슨 변명이나 늘어놓으며 이대로 그냥 간다면 그 대가를 남조선 당국이 혹독하게 치르는 수밖에 없다”며 “기대가 절망으로, 희망이 물거품으로 바뀌는 세상을 한두 번만 보지 않았을 터이니 최악의 사태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제 할 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후 문재인 정권은 대북전단금지법을 마련하는 데 착수했다.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정부 입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북전단 등’의 금지와 처벌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동 발의자는 김경협, 김영주, 김영호, 김홍걸, 안민석, 윤건영, 이낙연, 이상민, 이인영, 이재정, 전해철 등 11인이다. 해당 내용이 반영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난 연말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간에서는 대북전단금지법을 단순하게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막기 위한 규제라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세부적인 내용에 따르면 사실상 정부의 ‘사전검열’을 통해 허가받지 않은 민간 차원의 북한인권 증진과 정보 유입 활동은 모두 ‘불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오는 3월 30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개정 내용부터 살펴보자.
북한 주민에게 ‘독재정권 실상’ 알리는 ‘메시지’ 차단 목적인가?
해당 법률의 제4조 5호는 “‘전단 등’이라 함은 전단, 물품(광고선전물·인쇄물·보조기억장치 등을 포함), 금전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제4조 6호는 “‘살포’라 함은 선전, 증여 등을 목적으로 전단 등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또는 제20조에 따른 승인을 받지 아니하고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단순히 제3국을 거치는 전단 등의 이동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시키는 행위를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4조와 제25조는 각각 금지 행위를 규정하고, 처벌 내용을 밝혔다. 다음은 해당 조항의 내용이다
〈제24조(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
①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 된다.
1.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2.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
3. 전단 등 살포
② 통일부 장관은 제1항 각 호에서 금지된 행위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협조하여야 한다
제25조(벌칙)
① 제24조 제1항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제23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남북합의서(제24조 제1항 각 호의 금지행위가 규정된 것에 한정한다)의 효력이 정지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제1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해당 개정 내용에 따르면 기존에 논란이 됐던 대북전단뿐 아니라 북한 독재정권의 실상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려는 목적의 정보 전달 매체가 ‘전단 등’에 해당할 수 있다. ‘살포’의 범위 역시 군사분계선 일대가 아니라 국내는 물론 제3국까지 해당된다. 종합하면 해당 법률에 따라 이제 우리 국민은 그 누구든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주민에게 북한 독재정권 비판성 정보를 전달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즉 대북전단금지법은 대북전단이라는 정보 전달 수단 또는 전단 살포 행위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메시지’를 ‘사전검열’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6년 전에 고사총 한 번 쏜 걸로 ‘명백한 위험’이라고 할 수 있나?
앞서 살핀 ‘대북전단금지법’ 내용은 우리 헌법이 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에 들어맞는다고 보기 쉽지 않다. 과잉금지의 원칙의 기준은 크게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으로 네 가지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판시 내용이다.
“과잉 입법 금지의 원칙이라 함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입법의 목적이 헌법 및 법률의 체제상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하고(목적의 정당성),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그 방법이 효과적이고 적절하여야 하며(방법의 적정성), 입법권자가 선택한 기본권 제한의 조치가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하여 설사 적절하다 할지라도 보다 완화된 형태나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기본권의 제한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도록 하여야 하며(피해의 최소성), 그 입법에 의하여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비교 형량할 때 보호되는 공익이 더 커야 한다(법익의 균형성)는 법치국가의 원리에서 당연히 파생되는 헌법상의 기본원리의 하나인 비례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을 통해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라”고 주문한다. 또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산하고,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면서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정책을 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이 대북 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 같이 명시하고 있는데도,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 취득 수단인 ‘대북전단 등’을 금지하는 조치와 처벌 내용을 담은 법률은 ‘위헌’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또 우리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1항)”고 규정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2항)”면서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통제를 금하고 있다. 단, 제37조 2항을 통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그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과잉금지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아닐 경우에는 국민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남북 합의 근거로 국민 기본권 제한할 수 없어”
문재인 정권은 ‘남북 당국 간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 금지 합의 준수’라는 명목으로 대북전단금지법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김여정의 협박 이후 ‘문재인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 합의에 맞지 않으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는 앞으로 대북전단 및 물품 등의 살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위반 시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2020년 6월 12일)”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정부 조치와 관련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15년 2월 17일에 이미 “남북한의 합의 사항은 ‘당국 간 상호 비방 금지’이므로 이를 근거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다음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이다.
“자국민의 적법한 표현 행위에 대한 북한의 부당한 협박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고, 남북 당국 간 상호 비방·중상 중지 합의는 개인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제3국이나 외부 세력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국민의 적법한 활동을 통제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하면 총격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경우 정부가 할 일은 그러한 외부 세력의 행위를 억지하거나 응징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 스스로 시민의 적법한 권리행사를 제지하는 것은 북한의 협박을 수용하는 결과가 되어 주권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북한정권의 범죄행위를 고무하여 향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더 큰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권은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신체 및 주거 안전 도모”를 내세워 ‘대북전단금지법’의 입법·시행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통일부는 “이번 개정안은 북한의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전단 등을 살포하여 우리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는 행위를 규제하려는 것(2020년 12월 15일)”이라면서 국민 생명권을 위협하는 주체를 북한이 아니라 대북전단 관련 단체로 규정하는 듯한 주장을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북 전단 살포 행위 자체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직접적으로 가하는 위험한 행위가 아니다. 우리 국민 생명권을 위협하는 주체는 바로 대북전단에 광적인 반응을 보이며 대남 협박을 자행하는 북한 독재정권이다. 북한의 도발 의지를 분쇄하고, 우리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게 ‘상식’인데 현 정권은 대북전단 살포를 ‘불법적이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규정하며 국민 기본권을 제한할 위험이 있는 법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현 정권의 ‘진의’와 무관하게 대북전단금지법은 결과적으로 북한 독재정권의 ‘입맛’에 따라 우리 국민 기본권이 좌우되는 상황을 초래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힘 등 대북전단금지법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를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부른다.
‘금지법’ 만든 건 ‘과잉금지 원칙’ 위배 소지
문재인 정권은 대북전단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핵심 논거로 법원 판결을 내세운다.
2016년 당시 대법원은 이민복 대북풍선단 대표가 “국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바람에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2015다247394)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하면서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휴전선 부근 주민들의 생명·신체에 급박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북한의 도발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2014년 10월, 경기도 연천군에서 탈북민 단체가 띄운 대북전단 풍선에 북한군이 고사총 사격을 가해 그 낙탄이 우리 쪽으로 넘어와 군이 응사했던 사건을 근거로 한 결정이다. 하지만 북한의 고사포 사격 이전까지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 후에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협박’이 과연 ‘국민 기본권 제한’의 요건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원 판단을 인용하더라도, 대북전단금지법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역대 정부는 ‘민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근거로 대북전단 살포를 탄력적으로 규제했다. 대북전단을 제지할 법적 수단이 있었으므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 문재인 정부가 ‘김여정 협박’ 이후 대북전단 살포 규제 근거로 ▲폐기물관리법 ▲해양환경관리법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 ▲항공안전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을 제시한 사실을 감안하면 대북전단금지법은 ‘과잉금지’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역대 정부가 경찰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은 전례가 있고, 기존 법률을 적용해 충분히 규제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국민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처벌까지 부과하는 내용의 법률을 따로 마련한 것은 ‘침해의 최소성’에 위배된다. 다음은 ‘침해의 최소성’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선고 내용이다.(2002헌바80·87·88, 2008헌가22)
〈그 불이행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하더라도 입법자가 그러한 수단을 선택하지 아니하고도 보다 덜 제한적인 방법을 선택하거나, 아예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지 아니하고도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를 강제하기 위하여 그 불이행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면 이는 과잉금지 원칙의 한 요소인 ‘최소 침해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대북심리전 수단 내팽개치는 ‘자발적 무장해제’
대북전단금지법은 상기한 법적 문제뿐 아니라 전략적 측면에서 우리의 대북 우위를 스스로 내버리는 ‘자해(自害)’와 같다. 현실적으로 핵전력을 나날이 증강해가는 북한 독재정권과 달리 핵무장을 할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 대북 심리전은 사실상 유일한 ‘비대칭전력’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북심리전 차원에서 진행된 휴전선 일대의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군을 무력화하는 수단이다. 2015년 당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대응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당황한 김정은이 황병서·김양건·최룡해를 보내 ‘협상’을 시도하다가 결국 사실상의 ‘사과’를 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까닭에 북한군의 무력 도발을 사전에 억지하고, 북한 지도부를 압박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인 대북확성기 방송 등의 대북심리전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못박은 것은 자발적인 무장해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민간 차원의 대북전단 살포와 각종 정보 유입 역시 북한 독재정권을 위협하는 수단이다. 태영호 의원에 따르면 북한은 2019년 10월19일자 《로동신문》 ‘보이지 않는 대결, 소리 없는 전쟁’이란 글을 통해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사상과 문화’의 위력을 강조하면서 “물리적 힘을 동원한 전쟁보다 더 첨예하고 치열하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소리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서 《로동신문》은 “저속하고 불건전한 사상과 문화, 생활방식이 악성비루스처럼 이 나라, 저 나라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반동적인 사상문화를 퍼뜨리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화와 음악, 출판물, 대중보도 수단들과 함께 간첩과 모략기구까지 동원하고 있다”면서 “진정으로 자주적 발전과 번영을 바라는 나라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지난해 12월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을 채택했다. 법 제정 목적은 ▲반(反)사회주의 문화의 유입·유포 행위 차단 ▲사상·정신·문화 수호 ▲사상·계급·혁명 진지 강화 등이다. 이처럼 북한 독재정권이 외부 정보 유입에 따른 내부 붕괴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현 정권은 민간 차원의 대북 정보 전파 활동을 사실상 ‘금지’하는 법률을 시행하려고 한다.
이는 북한 김정은의 ‘오판’을 조장할 가능성이 큰 조치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김정은은 최근 북한 노동당의 소위 ‘제8차 대회’ 사업 총화 보고에서 “현시점에서 남조선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앞으로 ‘대북전단 금지’보다 더한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밝힌 셈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연 김정은의 부당한 요구에 어떻게 ‘답’할까
[인터뷰]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우리가 누리는 인권과 민주주의, 왜 휴전선 앞에서 멈춰야 하나?”
▲태영호 의원은 2020년 12월 14일,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골자로 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무제한 토론에 나서 갖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 ‘대북전단금지법’의 문제점을 요약·설명해주십시오.
“헌법상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할 경우에는 그 필요성을 따져야 합니다. 대북전단을 규제하는 데 별도로 법이 있어야 하는가? 보수 정권 때는 경찰력을 동원해서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못 하게 했습니다. 이건 뭘 의미하느냐?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우리 현행법만으로도 너끈히 관리·통제할 수 있는데, 왜 추가 법이 필요한가? ‘과잉입법’이란 게 첫 번째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남과 북이 합의한 걸 우리가 잘 이행해야 북한에 준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법을 들여다보면 남북 합의에서 벗어났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이라고 돼 있는데, 이 법을 보면 ‘제3국을 통한 단순 이동’도 살포에 속한다는 식으로 범위를 대단히 넓혀놨어요. 지역적 개념이 남북 합의를 완전히 벗어난 거예요.
이게 또 사람을 처벌하는 법인데, 형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게 왜 범죄인지 명확해야 합니다. 위법성·구성요건·책임성이 범죄구성의 3대 요소인데, 법 전문가들이 다 따져보니까 ‘판사 결정에 달렸다’고 하는 거예요. 법 만들 때는 명확성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죄형법정주의에 맞는데 모호하게 해놓으니까 다들 ‘이상하다’고 얘기해요. 이게 모호하니까 통일부는 해석지침을 만든다고 하는데, 12월 14일에 법 통과해서 조금 있으면 한 달이 되는데 지금도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만들 수 있을까?”
― 대북전단금지법 문제 때문에 외신과 접촉할 기회가 많을 텐데, 외국에서는 왜 반대하는 겁니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CNN과 인터뷰하면서 주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정부가 유일하게 얘기하는 건 뭐냐? 2014년에 북한이 고사총 쏴서 탄피 몇 개 떨어진 걸 갖고 ‘국민 생명·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에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니까 외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대북전단 살포 때문에 지금껏 사람이 죽거나 다친 일이 1건도 없어요. 그런데도 이걸로 기본권을 제한한다? 외국의 정상적인 전문가 입장에서는 대단히 이상한 법이죠. 김여정이 지난해 6월에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지 않았어요?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에서 이와 관련해서 연구사업을 했다고. ‘기존 법으로 해야지 새로운 법으로 하면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정부에 냈다고. 그런데도 밀어붙인 거예요.”
― 그렇게 ‘민족’ ‘민주’를 외치던 자들이 북한 주민 인권과 우리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을 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을까요.
“대한민국의 민주화된 사회의 지분을 자기들이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의원들인데, 그럼 그분들은 북한 주민에게도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확산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습니까? 인권과 민주주의 개념은 대단히 보편적입니다. 휴전선 앞이라고 해서 멈춰야 한다? 이건 전 세계적인 가치관과 맞지 않습니다. 한 가지 꼭 짚어야 하는 점은 김여정이 ‘법 만들라’고 하니까 통일부가 몇 시간 만에 ‘지금 추진 과정에 있다’고 얘기했는데, 김여정이 그런 요구를 했을 때 ‘너희가 뭔데 법을 만들라 말라고 하느냐? 무례하다’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외국에서도 깜짝 놀란다고. 얼마나 굴종하면 이제는 법까지 만들라고 하느냐.”
― 문재인 정권은 대북전단금지법과 김여정의 협박은 무관하다고 하지만, “법 만들라”고 하니까 공교롭게도 실제 입법화되는 걸 보면서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이 ‘핵무기 발전시키겠다’고 하고 우리 정부 향해서는 ‘합의 이행하는 것만큼 상대해주겠다’며 오만하게 나왔잖아요. 우리가 원칙과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정부는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하고, 그 선을 넘을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해요. 아니, 둘(문재인·김정은)이 판문점 선언의 1안(1조 3항)으로 만들어놓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데도 오히려 당한 쪽에서 ‘우리는 남북합의를 계속 이행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인가…. 그렇게 하고서는 우리 국민 향해서는 대북전단 날리면 처벌하겠다고 하니. 북한 정권이 협박할 때 당당하게 얘기했어야 합니다.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든 건 북한에 도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어요.”
―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되면 북한 내부는 어떤 변화를 겪을 것 같습니까.
“앞으로 남북대화에서 우리가 대단히 위태로워질 수 있어요. 김정은의 오만불손함을 멈춰 세우지 못하고 이걸 받아들였잖아요? ‘어? 이거 안 받을 거 같았는데, 받아들이네?’ 하면서 반(反)민주적인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법에 ‘미수범 처벌’ 조항 때문에 지금까지 성경 보내던 교회나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위축돼서 지금까지 중북 접경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던 정보가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 한마디로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을 하던 단체들은 이제 옴짝달싹 못 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지금까지는 교회에서 ‘북한 선교 위해 얼마가 필요하니까 기부해주세요’ 했는데, ‘미수범 처벌’ 조항 때문에 이제 그 어느 목사도 공개적으로 기부를 독려하는 얘기를 할 수 없어요.”
― 지금 국제사회가 대북전단금지법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고, 특히 미국 의회에서는 청문회를 열려고 하는데요. 그쪽으로부터 증언 또는 자료 요청이 있었습니까.
“아직 공식 요청은 없었습니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미국에 가서 이 모든 문제를 똑바로 얘기할 겁니다. 저는 대북전단금지법이 바이든 정권과 문재인 정권 사이의 갈등요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바이든은 다자주의와 민주주의 확산을 중시하거든요. 바이든 정부는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서 북한에 외부 정보가 들어가는 걸 막으려는 우리 정부를 지지할까?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것 같고, 트럼프 대통령도 반대했어요. 스티브 비건(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우리 외교부에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달했어요.”⊙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02월 09일 원산갈마 ‘발전소 제안’ 확인, 김정은 맞춤용 아닌가
북한 원산갈마지구 개발은 갈마반도에 호텔과 카지노 등 위락시설, 수상공원 등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6년 7월 개발계획을 직접 밝힌 역점 사업이다. 완공은 1차 목표였던 2018년 4월을 넘겨 계속 지연되고 있다. 2018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쇼 때 한국 등 5개국 취재단을 초청했을 당시 갈마지구도 보여 주려 했으나, 당시 김 위원장이 현장에 있다는 이유로 무산된 일이 있다. 지난해 4월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돌 때는 그곳 근로자들을 격려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이런 김 위원장의 최대 관심사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 측이 발전소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스공 간부가 2019년 11월 29일∼12월 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를 지낸 리호남을 만나 그런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 간부는 최근 국민의힘 ‘탈원전·북원전 진상조사특위’소속 이철규 의원실을 방문해 자초지종을 밝혔다. 그는 리호남에게 “원산갈마 관광지구 개발에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느냐” “1년이면 가스 발전소를 지어줄 수 있다”는 등의 얘기를 했다고 한다.
갈마지구 공사는 자금·자재·에너지 부족 때문에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발전소 제안 시기는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로 남·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시기다. 발전소 논의 직후에 통일부는 갈마지구 개발 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산업 설비 제공은 유엔과 미국의 북핵 제재 위반에 해당한다. 따라서 발전소 제안은 김정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맞춤용으로 볼 수 있다. 원전 경제성 조작 수사 대상이기도 한 채희봉 사장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에서 2019년 7월 가스공 사장이 됐고, 발전소 제안도 보고 받았다고 한다. 많은 의혹이 교차하는 만큼, 국회와 감사원, 사법 당국이 나서 철저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 사설
월간조선 02월 호
■전광훈 목사 無罪를 선고한 허선아 재판부의 아름다운 판결문 해설
‘문재인은 간첩이고 공산화를 시도한다’는 발언은 국민의 권리행사이다!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공개 토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2018년 9월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허선아)는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광훈 목사에게 모두 무죄(無罪)를 선고해 석방했다. 허선아 재판장이 낭독한 판결문은 한 편의 잘 쓴 논문이고 수필이었다. 교양이 깔려 있고 폭넓고 균형 잡힌 세계관이 묻어 있어 읽기가 편했다. 법리(法理)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황교안과 자유한국당을 밀어주자는 취지의 이야기일 뿐인데 이를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불법행위라고 우겨서 기소한 것이 워낙 무리여서 무죄선고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피해자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으로 특정한 명예훼손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데는 상당한 결단과 공부가 있었을 것이다.
판결문을 구해서 읽어보니 과연 탄탄한 법리가 느껴졌고, 감동이 왔다. 그래서 해설해보기로 하였다. 재판부는 판단의 기준이 되는 ‘명예훼손의 법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들어간다. 보통 국민도 알아두면 좋을 내용이다.
재판부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은 있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표현들 모두에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대원칙을 천명한다. 일정한 한계를 넘는 표현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지만, 자유민주 체제 유지의 대전제는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담긴 대로 개인의 기본권을 신성시하는 자세이다.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공개토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표현은 멋진 수필감이다. 이 ‘숨 쉴 공간’이 화제가 되었다.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되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이재명(李在明) 경기도 지사를 살린 법리가 ‘숨 쉴 공간’이었다. 대법원 전원 재판부의 무죄선고 때 김명수(金命洙) 대법원장은 판결문을 낭독하며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운 토론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더욱 넓게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전광훈 재판부는 이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한다
‘숨 쉴 공간’이란 표현은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유래한 것이다. 흑인인권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변호사 비용을 모으기 위한 《뉴욕타임스》 지면 광고가 발단이 되었다. ‘경찰이 앨라배마주립대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다뤘다’는 광고 내용에 대해, 시(市) 경찰국장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주(州)대법원은 경찰 손을 들어줬으나, 연방대법원은 “자유로운 토론 과정에서 오류가 있는 발언이 있을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그 생존을 위한 ‘숨 쉴 공간’을 가지려면 이 정도의 발언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
2011년 한국 대법원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의혹을 제기한 MBC TV 〈PD수첩〉 방송에 대해 정정(訂定)보도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며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의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있어야 하므로,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가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고 세부적인 문제에서 객관적 진실과 완전히 일치할 것이 요구돼선 안 된다”고 했다.
‘숨 쉴 공간’이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 적어도 허선아 재판부는 적절하게 이 법리를 적용하였다.
허선아 재판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진보든 보수든 표현을 자유롭게 보장해야만 서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므로, 비록 양쪽이 서로에게 벽을 치고 비방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국민은 그들의 토론과 논쟁을 보면서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적·이념적 논쟁 과정에서 통상 있을 수 있는 수사학적(修辭學的)인 과장이나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비판은 거의 무한대로 허용되어야
▲2019년 10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 천만 국민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전광훈 목사.
그런 다음에 재판부가 따진 점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의 성립조건이다. 기소된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公的)인 존재(註·公人)인지 사적(私的)인 존재(註·보통사람)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 형성이나 공개 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고,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보통사람들의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인용하였다. 허선아 재판부는, 특히 문제 된 표현이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인 때에는 더욱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공적인 존재가 가진 (대통령처럼)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 이 경우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진 정치적 이념은 최대한 철저히 자유롭게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논증(論證)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 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 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다.’(대법원 2002. 4. 22. 선고 2000다37524, 2000다37531 판결 참조)
문재인 대통령의 이념이 대한민국 정체성(正體性)과 헌법정신에 부합하느냐의 여부는 국가의 운명, 국민의 삶과도 직결되므로 이를 주제로 하는 시비(是非)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는 앞으로 문재인 정권의 본질을 논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제한을 없애는 기능을 할 것 같다. 표현의 족쇄를 풀고, 금기(禁忌)를 지움으로써 공포심을 느끼지 않고 마음대로 문재인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는 지켜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고문, 불법연행을 할 수 없는 정권이며 비밀경찰도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과 싸우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부지런함의 문제가 된다.
‘간첩’은 누구인가?
허선아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전광훈 목사의 비판이 사실적시냐 가치판단이냐를 따지는 기준도 제시한다. 가치판단의 의견표명은 명예훼손죄의 대상이 아니다. 판결문은 “명예훼손죄에 있어서의 사실의 적시(摘示)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표현 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였다.
우선 피고인 전광훈의 발언내용에 관해서는 다툼이 없었다.
〈2019. 10. 9.자 집회에서 “왜 제가 문재인을 끌어내려고 하느냐? 문재인은 간첩입니다. 간첩. 문재인 간첩 입증의 영상을 지금부터 틀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간첩의 왕인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간첩의 본체인 것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사상가 신영복은 누구인가? 간첩의 왕 신영복인데, 내가 가장 존경한다는 것은 문재인도 간첩이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6·25 때 3대 전범 김원봉을 국군 창시자의 영웅이라고 말했는데, 이거 간첩 아닙니까? 서독의 간첩 윤이상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보겠습니다. 서독의 간첩 윤이상의 묘지에 부인 김정숙을 보내서 동백나무를 헌화하는 것을 보셨죠? 이거 간첩 아닙니까?”라고 말함으로써 ‘피해자는 간첩’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
재판부는 피고인(전광훈 목사)의 이 발언이 ‘사실의 적시’냐 아니면 의견표명이냐를 따진다. 먼저 ‘간첩’의 의미론이다. 그 사전적 의미는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에 해당하고, 형법도 제98조 제1항에서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므로 간첩의 본래적 의미는 ‘적국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으로 인하여 위 ‘간첩’이라는 용어는 일상(日常)에도 파고들어 수사학적·비유적 표현으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국가·반사회적 세력’과 같은 의미에서부터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등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적·정치적, 나아가 발언하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확장·변용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간첩’도 여러 종류가 있다!
따라서 전광훈 목사가 말한 ‘간첩’의 의미를 문맥이나 발언의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일의적(一義的)으로 단정하거나 객관적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간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곧바로 사실적시라고 볼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취한 정치적 행보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한 수사학적 과장으로서의 단순한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간첩’이란 단어가 가진 복합적인 측면을 예리하게 짚어 정권 측 검찰의 단순논리를 부정한 논리로 절하, 재판부의 성숙한 인격을 느끼게 한다.
전광훈 목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간첩으로 보는 근거로 나열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
〈① 피해자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간첩의 왕인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말하였고, ② 6·25 3대 전범 김원봉을 국군 창시자의 영웅이라고 말하였으며, ③ 서독의 간첩 윤이상의 묘지에 부인을 보내어 헌화하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내용이나 언동으로 미뤄 전광훈이 말한 ‘간첩’은 법률적 의미인 ‘적국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행위’와는 무관하고, ‘과거 간첩으로 평가되었던 사람들을 우호적으로 재평가하는 사람’, 혹은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 정도로 이해되거나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보았다.
한편 일정한 의견을 표명하면서 그 의견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따로 밝히고 있는 표현행위는 적시된 기초사실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때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된다. 그런데 검사는 공소장에서 간첩 발언의 근거로 제시된 기초사실 부분의 허위성 여부를 판단 대상으로 삼지 않았고 그 허위성에 대한 입증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이 점을 중요하게 판단했다. 재판부가 알아본 바로는 ‘피고인이 언급한 피해자의 위 언동은 그 핵심적 사실들이 객관적 자료들로 뒷받침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의견표명의 기초가 된 사실들도 허위가 아니란 이야기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적시된 사실만으로 해서 피해자 문재인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결론은 명쾌하다.
〈따라서 피고인이 한 ‘문재인은 간첩’이란 발언은 공적 인물인 문재인의 정치적 성향 내지 이념을 비판하는 취지의 의견표명 내지 그에 대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보일 뿐,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위 발언을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공산화’는 사실적시가 아니
재판부는 이어서 전광훈 목사가 한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따진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이렇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2019. 12. 28.자 집회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저 문재인 주사파 일당이 지금 와서 김일성을 선택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원래 좌파 종북 빨갱이들은 거짓말의 선수들입니다. 김일성도 거짓말, 박헌영도 거짓말, 문재인도 거짓말쟁이입니다. 서독의 간첩 윤이상에게 부인을 보내서 참배를 하게 하는가 하면, 공산주의자 조국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조국이가 쓴 논문을 보면 대한민국을 반드시 공산화시킨다고 쓰여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피해자가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
쟁점은 ‘피해자(註·문재인)가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발언이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위한 조건인 ‘사실적시’에 해당하는가이다. 이때 ‘사실의 적시’란, 의견표명이나 가치판단 혹은 평가와는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그것이 증거에 의하여 입증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먼저 ‘공산화’라는 의미의 정의(定義)이다. 재판부는 ‘공산화’의 사전적 의미는 ‘공산주의 사회로 변화함 혹은 그렇게 되게 함’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데, ‘공산주의’라는 개념 자체만으로도 과연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일의적이고 확정적인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고 했다. ‘간첩’ ‘공산화’는 너무 다양하게 쓰이고 있어 이를 증명이 가능한 일의적 사실 표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특히 “여기에 덧붙여진 ‘-화(化)’의 개념은 그 의미를 더욱 구체화시킬 수 없게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그날의 집회(2019년 12월 28일자)에서 ‘피해자가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점의 근거를 몇 가지 들었는데, 이것들의 진위(眞僞) 여부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위와 같이 제시된 근거들에 기초하여 곧바로 ‘피해자가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 없는 점은 분명한바, 동일한 기초사실에 근거하면서도 다른 결론의 도출이 가능하다면, 이는 이미 사실적시로서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보았다. 증명이 가능한 사실의 적시가 아니고 의견표명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란 뜻이다. 그래서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피해자의 정치적 행보 혹은 태도에 관한 비판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 이를 두고 어떠한 증거에 의하여 그 입증이 가능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힘들다”고 자신있게 판단하고 있다.
구속기소가 말이 되나
재판부는, 일정한 의견을 표명하면서 적시한 기초사실만으로도 타인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될 수 있는 때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지만, 검사가 이 부분 공소제기에 있어서 위 공산화 시도 발언의 근거로 제시된 사실 부분의 허위성을 판단 대상으로 삼지 않았음도 지적한다. 재판부가 알아보니 피해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이 윤이상의 묘소에 참배한 사실이 있는 점, 조국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법·형법이론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사회주의 관련 주제를 다룬 논문을 작성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의견표명의 근거가 된 사실도 허위가 아니므로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비판의 상대가 가장 막강한 ‘공적 존재’란 점도 놓치지 않았다.
〈피해자는 현직 대통령이자 정치인인 공인(公人)으로서, 공적(公的)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검증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더욱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고, 허위사실에 기초하거나 이를 전제하지 아니한 나름의 검증 결과로 제시된 표현들에 대해서까지 형사처벌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는 법리를 아울러 보태어 보면, 피고인이 한 ‘피해자가 공산화를 시도했다’는 발언 역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사족(蛇足) 같은 논평을 덧붙였다.
〈검사는 전쟁을 경험하고 지금도 분단 중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떤 사람을 간첩 또는 간첩행위를 하고 있다거나, 공산화를 시도하고 있다거나 하는 등의 표현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와 같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간첩’ ‘공산화’ 등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부정적 표현을 했다 해서 이를 부당한 표현이라는 평가를 넘어 바로 형사처벌의 대상인 명예훼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러한 의심을 자초한 대통령에게 부정적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구속기소 한 것이 말이 되느냐는 뉘앙스다. 권력자에 대한 부정적 표현의 자유는 허용되는 것인데, 국민의 법익(法益)수호자여야 할 검사가 국민의 기본적 자유권 행사를 부당하다고 우기는 데 그치지 않고 피고인을 구속기소 한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는 개탄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응용
허선아 재판부의 무죄판결이 2심, 3심에서 뒤집힐 수 있을까? 골수 좌편향 판사를 만나면 모를까 워낙 법리가 단단하여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법원 판례를 많이 인용한 선고라는 점도 유리하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간첩이나 공산화 기도자(企圖者)로 불러도 잡혀가지 않는다면 엄청난 방패와 창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여 국민들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은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권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여기에 선전과 교육의 핵심이 있다. 불이 나면 ‘불이야’라고 신고를 해야지 ‘산소가 열을 받아 에너지를 내뿜고 있습니다’고 하면 소방차가 출동하지 않는다. ‘강도야’라고 해야지 ‘주인의 허가를 득하지 않은 사람이 쇠붙이를 들고 담을 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늦는다. 문재인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부르는데 이건 너무 약하다. ‘진보정권’은 거짓말이다. 정권의 심장과 뇌수를 건드리지 못하는 그런 낱말로는 이념대결에서 이길 수 없다. 아래 글을 읽고 무엇이라 부를 것인지 생각해보자.
연습문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2월 10일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민중미술 판화가 이철수씨의 서화(書畵) 작품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뉴시스
1.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6·25 남침전쟁을 ‘내전이며 국제전’이라고 했다. 소련 등 당시 공산권의 시각과 비슷했다.
2.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전야(前夜) 리셉션에서 김일성주의자인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했다.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3.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연설에서 남쪽 대통령이라 자칭하면서 김정은을 국방위원장으로 호칭하고 그를 민족의 지도자인 양 추켜세웠다. 헌법 제3조 위반이었다. 존경하는 김일성의 손자이기 때문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공산주의자이고 6·25 전범(戰犯) 중 한 명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에 속하는 것처럼 연설했다. 국군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김일성의 남침에 면죄부를 주며 공산주의를 용인하는 생각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5.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4월엔 제주도에서 남로당이 주도한 무장폭동과 제주도민의 피해를 언급하면서 통일을 미리 꿈꾸다가 고초를 당한 것처럼 연설해, 남로당의 목표던 공산통일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불렀다.
6. 위 5개 연설을 종합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일성주의 운동권, 즉 주사파의 영향하에 있든지, 자신이 그런 사상을 가진 것이 아닌지 의심할 권리와 의무가 국민에게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7. 대한민국 헌법은 김정은 정권을 주적(主敵)으로 보도록 명령한다. 문재인 정권은 주적 개념을 없앴다.
국군이 적군(敵軍)을 적대시하는 것을 금지시키면서 국민 다수를 적대시한다. 이런 정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적(利敵)정권? 반헌(反憲)정권? 촛불정권? 좌파정권? 간첩정권? 괴뢰정권? 매국(賣國)정권? 반역정권? 극좌운동권정권? 주사파정권? 종북정권? 미친정권?
허선아 재판부는 국민에게 반헌법적 정권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의 예리한 칼을 선물한 셈이다. 이를 잘 쓰면 자유·인권·법치를 지킬 수 있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mongol@chosun.com
02.18 또 뚫린 최전방…군 정신 똑바로 차려야
군의 최전방 경계가 또 뚫렸다. 지난해 11월 북한 남성이 최전방 철책을 넘어온 지 석 달 만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그제 새벽 북한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귀순했다. 이 남성은 민간 작업용 잠수복을 입고 동해를 헤엄쳐 강원도 고성군 해안에 도착했다. 군 당국은 그가 최전방 초소(GOP)에서 5㎞나 남쪽에 있는 민간인통제선(민통선) 검문소의 폐쇄회로TV(CCTV)에 포착된 오전 4시20분쯤에서야 비상을 걸었다. 군 당국이 뒤늦게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고, 수색조를 투입해 신병을 확보했다. 문제는 그가 검문소 CCTV에 발견되기 전 동해안 7번 국도 등에서 감시장비에 여러 차례 포착됐지만 군이 무시했다고 한다. 군 경계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북 귀순자, 감시장비에 포착됐는데 놓쳐
국방비 늘려도 기강 해이하면 소용없어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남성은 귀순 과정에서 해안 철책 아래의 폐쇄형 배수로도 무사히 통과했다. 전방 지역 배수로엔 적의 침투나 탈출을 막기 위해 내부에 쇠막대기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다. 그런데 이 차단 장치가 훼손돼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강화도에서 우리 민간인이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다. 그때도 배수로 차단 장치가 훼손돼 있었다. 당시 합참은 전군의 배수로 차단 장치를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귀순으로 빈 약속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그제 귀순 때 군에 특별경계 지시도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맞아 경계강화령이 있었는데, 우리 군은 북한 도발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높였다. 그런 비상경계 상황에서도 군부대는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똑같은 경계 실패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군의 경계가 뚫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동해안 전방 지역을 맡고 있는 부대에선 경계 실패가 더 잦았다. 지난해 11월 북한 남성이 최전방 철책을 넘어온 것을 놓쳤다. 2012년에도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와 우리 군 초소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했다. 이른바 ‘노크 귀순’이다. 그런 민감한 지역인데도 해당 군부대는 긴장하지 않고 느슨한 경계태세로 있었다. 국민의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번 사건은 전방 한 곳이 뚫린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흐트러진 우리 군의 단면을 보여줬다. 그동안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에 매달려 ‘평화’만 외친 결과다. 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고, 능력과 신상필벌에 따른 군 인사를 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올해 국방비 52조8000억원을 투입해 군비를 증강한들 기강이 해이하면 군의 전투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핵무장 한 북한이 무력 통일을 선언한 마당이다. 이제라도 군 당국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02월 19일 文정부 잇단 軍 경계 실패의 진짜 이유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대한민국 성인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 힘든 복무 기간은 평생의 이야깃거리이고, 군(軍)에 대한 애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비록 시각은 달라도 모든 국민은 군이 강군(强軍)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국가재정 상황이 나빠도 52조8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방비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군은 가장 기본적인 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경계망이 또 뚫렸다. 잠수복을 갖춰 입은 민간인이 동해를 헤엄쳐 넘어왔고, 해안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해 자유의 땅으로 귀순했다고 한다. 아직 석연찮은 부분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과정에서 군은 군사분계선 이남 일반전초(GOP)가 뚫렸고, 민간인 통제선까지 8㎞ 가까이 무방비 상태였다. 엄동설한 살을 에는 바다를 가르고 건너온 특수부대급 초인이어서 검거하지 못한 건 아니다. GOP 인근 CCTV 장비에 몇 차례 감지됐고 민통선 검문소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왔다고 한다. 차라리 안 잡았다고 하는 게 나을 정도다.
문제는, 최근 들어 경계 실패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2019년 6월에는 삼척항 ‘정박 귀순’이 있었고, 이듬해 11월에는 군사분계선을 담 넘듯 통과한 ‘철책 귀순’도 있었다. 이번엔 ‘오리발 귀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난해 그 부대에서 또 터졌다니 할 말을 잃게 한다.
군에는 ‘작전(作戰)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警戒)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경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꾸만 반복된다. 관측장비 탓을 해 보려고 들여다보니 장비는 잘 작동했다. CCTV에 나타난 귀순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인재(人災)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지휘관과 장병의 자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양질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정예 장교 지휘관들과 고졸 이상, 심지어 대졸까지도 포함된 고학력 장병들이다. 지휘역량이나 이행역량은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지휘 노력과 경계 의지가 약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장교들의 지휘 노력과 장병들의 경계 의지를 약하게 했는가.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다. 작은 사고에도 지휘관을 과도하게 징계하는 잘못된 관행, 책임을 회피하는 지휘관들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대적관(對敵觀)을 강조하지 않는 최고지도부, 그로 인해 약해진 장병의 복무 태세가 상호작용하며 반복된 경계 실패를 낳고 있다.
현 상황의 심각성은, 군의 경계태세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데 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장병 정훈교육의 내용이 달라졌다고 한다. 연초에 발간된 국방백서는 적(敵) 개념에서 북한이라는 주체를 지웠다. 전 세계의 어떠한 위협에도 대응할 모양새다. 그러니 눈앞의 위협에 대한 경계의 집중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경계 실패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장비가 훌륭해도 사람을 능가하지 못한다. 베트남전의 교훈이다. 최신장비를 갖췄던 남베트남은 소총으로 무장한 북베트남 게릴라를 버텨내지 못했다. 경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제대로 된 경계병만 못하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있는 장비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군 통수계통은 핑계만 대며 상황을 모면하려 해선 안 된다. 한두 번은 실수라 해도, 세 번째는 실력이다.
문화일보
02.20 22사단, 배수로 점검 않고도 “이상없다” 허위보고
▲지난 16일 새벽 북한 남성이 월남 후 강원 고성 제진검문소 인근 CCTV에 포착됐다./TV조선
북한 남성이 지난 16일 강원 고성 22사단 해안 철책 배수로를 통해 귀순한 사건과 관련, 22사단은 지난해 이 배수로를 제대로 차단하지 않고도 “배수로 점검을 완료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는 지난해 7월 인천 강화에서 탈북민 ‘배수로 월북’ 사건 이후 전군(全軍) 부대에 “수문과 배수로 등 경계 취약 시설을 철저히 점검하고 보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22사단은 ‘경계 구역 내 배수로를 점검한 결과 이상 없다'고 상급 부대인 8군단 등에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합참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22사단에 있는 배수로 48곳 중 (북 남성이 통과한) 해당 배수로만 보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허위 보고' 지적이 일자 22사단은 다시 “지뢰 위험 구역이라 공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해당 배수로가 7번 국도 아래쪽에 있는 데다, 수풀 등 장애물 때문에 배수로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22사단이 배수로 존재를 몰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배수로는 민간인이 대규모로 드나드는 통일전망대 인근이다. 이런 지역에서 지뢰 때문에 작업을 하지 못했다는 설명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북한 남성이 군의 공식 발표대로 ‘민간인’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군의 설명대로라면 이 남성은 겨울 바다 10km를 6시간 동안 수영해 월남, 지뢰밭을 뚫고 배수로 48개 중 유일하게 열려 있는 배수로를 선택했다. 이어 곧바로 보이는 군 시설과 민가를 그대로 지나쳐 5km를 도보로 이동, 야산에서 낙엽을 덮고 휴식했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지난해 귀순자는 점프만으로 철책을 뛰어넘더니, 이번 귀순자는 특수부대 뺨치는 체력과 정신력으로 겨울 바다와 지뢰밭을 모두 극복한 셈”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헤엄쳐 귀순했다더니... 軍 무전엔 “수중추진기 타고 왔다”
TV조선, 軍 관계자 증언 보도
북한 남성이 최근 강원 고성 육군 22사단 경계선을 뚫고 월남한 사건과 관련, 이 남성이 ‘수중 추진기’를 타고 온 것으로 추정케 하는 군 내부 교신을 청취했다는 군 관계자 증언이 나왔다고 TV조선이 19일 보도했다.
TV조선에 따르면, 육군 22사단 관계자는 “수색 작전 과정에서 (북한 남성이) ‘추진기를 갖고 왔다’고 얘기하는 군 교신 내용을 들었다”며 “스쿠버 장비, 오리발 하고 앞으로 쭉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군은 북한 남성이 머구리 잠수복, 오리발을 착용하고 바다를 헤엄쳐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바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스크루가 달린 전동 추진기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수중추진체 이미지/TV조선자료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남성이 10㎞ 겨울 바다를 헤엄으로만 건너올 수 있느냐’는 야당 의원 지적에 “6시간 동안 수영해서 온 게 확실하다”고 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장관의 답변이 군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중 추진기’를 이용한 게 사실이라면 장관이 군 당국으로부터 보고를 잘못 받았거나 사실과 다른 답변을 한 셈이 된다. 군 안팎에선 특수 훈련을 받지 않은 민간인이 겨울 바다를 6시간이나 헤엄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월남한 남성이 정말 민간인이 맞느냐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한편 22사단은 북한 남성이 통과했던 배수로를 제대로 차단하지 않고도 “점검을 완료했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작년 7월 인천 강화에서 탈북민 ‘배수로 월북’ 사건 이후 전군(全軍) 부대에 “수문과 배수로 등 경계 취약 시설을 철저히 점검하고 보강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22사단은 ‘이상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02.24 지금 한국군은 속으로 붕괴 상태에 있다
지난 16일 북한 남성의 동해안 귀순은 거의 붕괴 상태에 있는 한국군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3일 합참에 따르면 북 남성이 우리 해안을 걸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CCTV에 10번이나 찍혔지만 군은 8번째까지 까맣게 몰랐다. 전방 감시 장비가 2번이나 경고등과 경고음을 울렸는데도 그냥 무시했다. 감시병은 바람 등으로 인한 오경보로 판단했고 간부는 통화 중이었다. 경계를 아예 안 한 것이다. 임무 수행을 안 하고 있는 부대가 여기뿐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북 남성은 5~6㎞를 3시간 넘게 걸어 민간인 통제선 부근까지 남하했다. 첫 식별부터 사단장 보고까지도 34분이나 걸렸다. 무장한 적군이 침투해왔다면 어쩔 뻔했나. 북 남성은 해안 철책 배수로로 들어왔다. 그런데 해당 부대는 이 배수로의 존재 자체를 그동안 몰랐다고 한다. 지형과 지뢰 위험 등으로 파악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군인이 자기 책임 지역에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 있다고 가보지도 않는다. 작년 7월 탈북민이 서해 철책 배수로를 통해 월북했을 때 합참은 일선 부대 전체에 배수로 확인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 사단은 이 배수로를 확인하지도 않고 문제없다고 보고했다. 합참 명령마저 귓등으로 흘린다. 군대가 아니다.
합참은 “상황을 엄중 인식한다”며 “근원적 대책”을 약속했다. 낡은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것 같다. 작년 탈북민 월북 때도 합참의장이 국회에서 ‘엄중 인식’과 ‘근원적 대책’을 다짐했다. 재작년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정박했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제주 해군기지가 시위대 놀이터가 되고 수도방위사령부가 취객에게, 진해 해군기지가 치매 노인에게 뚫렸을 때마다 군은 ‘엄중 인식’한다고 했다. “엄정 대처” “정밀 진단” “책임 통감”도 사고만 터지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이다.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이젠 그런 말에 국민은 물론 군인들 자신도 속으로 쓴웃음이 날 것이다.
석 달 전 북 민간인이 강원도 철책을 타고 넘었을 때는 나사 풀린 감시 센서가 울리지 않았다. 작년엔 군 감시 장비가 월북자를 7번 포착하고도 북 발표 때까지 몰랐다. 이렇게 초보적 경계도 못 하는 군대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은 서두르고 있다. 핵폭탄을 보유한 북한과 전면전이 벌어졌는데 핵억지력 제로인 한국이 핵억지력을 가진 미군을 지휘하겠다고 한다. 미국이 동의하겠나. 이 난센스에 놀랍게도 군이 앞장서고 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국내 정치 선전에 몰두하는 대통령에게 아첨하고 있다.
군 내부 난센스는 일상이 됐다. 전문가들이 문제를 지적해도 기어이 2033년 전력화를 공식화했다. 일본이 경항모 보유한다고 ‘우리도’라며 따라 하는 것이다. 수조원이 드는데 전시 효과 외에 무슨 전력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전투기가 우리 배타적 경제수역 전체에 도달해 작전할 수 있고 공중급유기도 있는데 무슨 경항모인가. 북한을 타격할 F-35A 전투기 살 돈으로 엄청 비싸기만 하고 무장력은 턱없이 떨어지는 F-35B를 구입해 어쩌자는 건가. 군 문제에 무지한 정권이 이런 일을 벌여도 바른 말 하는 군인 한 명 나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한미 연합훈련은 이미 컴퓨터게임처럼 바뀌었다. 정권의 남북쇼 평화쇼에 한국군은 사실상 정신적 무장해제 상태로 가고 있다.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 ‘북과 한미훈련을 협의하겠다’고 한다. ‘이러다 북한에 복속된다'는 전 주한미군사령관 경고를 누가 흘려들을 수 있겠는가.
조선일보 사설
02.25 탈북민이 국군을 구원자 아닌 북한군처럼 인식한다니
▲2019년 말 귀순 의사를 밝힌 북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한 사실이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의 수신 문자를 통해 확인됐다. /뉴시스
서욱 국방장관이 동해안으로 귀순한 북 남성이 우리 군을 피해 다닌 것과 관련,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 남성이) 군 초소로 들어가면 다시 북으로 돌려보낼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민가로 가려 한 것 같다”고 했다. 국군에 발견되면 강제 북송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탈북민이 남쪽으로 넘어와 국군을 만나면 ‘살았다’고 안도해야 정상이다. 얼마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후 180도 바뀌었다. 탈북민이 국군을 만나면 ‘살았다’가 아니라 ‘죽을 수 있다'가 됐다. 이게 정말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국군인가.
2012년 같은 지역으로 넘어온 북한군 병사는 우리 전방 소초(GOP) 내무반 문을 두드려 귀순했다. 등 뒤에서 북한군 총알이 날아올까 두려워하다 국군 소초를 보고는 ‘이젠 살았다’ 안심한 것이다. 반면 북·중 국경을 넘은 탈북민은 중국군을 보면 무조건 몸을 숨겨야 한다. 붙잡히면 강제 북송돼 혹독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군을 피해 민가에 들어가야 겨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귀순자는 오래 헤엄쳐 지친 상태인데도 국군을 피해 야산으로 갔다. 이제 탈북민이 국군을 북한군이나 중국군과 마찬가지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
이런 상황은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귀순 의사를 밝힌 북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한 사건과 관련 있을 것이다. 당시 정부는 이들이 살인에 연루됐다는 감청 첩보가 있다는 이유로 수갑과 안대를 채워 판문점으로 이송했다. 이들은 북한군 병사를 보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흉악범이라도 헌법상 우리 국민이 분명한데 당시 북송을 주도한 정의용 장관은 “국민으로 안 봤다”고 했다. 그해 6월 57시간 사투 끝에 삼척항에 도착한 북 어민 4명 중 2명도 몇 시간만 조사받고 ‘귀순 의사 없다’며 북송됐다. 북 집단에 이보다 좋은 선전거리는 없을 것이다. ‘이젠 남쪽으로 도망가도 소용없다’고 주민들을 겁박할 것이다.
북 주민은 강제 북송을 죽음이라 생각한다. 탈북에 앞서 행선지인 한국이나 중국 사정을 면밀히 살피기 마련이다. 김여정 하명에 대북 전단 금지법까지 만드는 문 정권의 친북(親北) 행태를 모를 리 없다. 남한 정부가 ‘귀순 아니다’라고 서둘러 판정 짓거나 북이 ‘흉악범’이라고 모함해도 강제 북송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니 국군을 피해 민가를 찾는 것 아닌가. 문 정부는 고위급 탈북민들을 의도적으로 홀대해 탈북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정은 대신 고위급 탈북을 원천 봉쇄해주는 것이다. 언젠가 이 천인공노할 내막이 전부 밝혀질 때가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02.27 敵이 싫어하니 軍 훈련 말자는 나라가 한국 말고 있을까
▲2016년 3월 16일 경기도 이천 도하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소부대 도하훈련에서 한국 7공병여단과 미국 2전투항공여단 공병대대가 함께 훈련하고있다./박상훈 기자
범여권 의원 35명은 북한이 반발하니 내달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라고 했다. 이들은 “김정은 위원장까지 직접 나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며 “한반도 대화 국면 조성과 코로나 방역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의 연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 적(敵)이 싫어한다고 군 훈련을 하지 말자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노동당 대회에서 36차례나 핵을 언급했다. 남한을 공격할 전술핵과 핵 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언했다. 열병식에선 우리를 겨냥한 신무기들을 줄줄이 선보였다. 그런 김정은이 요구한다고 한·미 훈련을 연기하자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이 할 소리를 여당 의원들이 버젓이 성명까지 내서 주장한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북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팀도 훈련하지 않으면 동네 축구팀이 되고 마는 것처럼 군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3대 한·미 연합 훈련은 2018년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 쇼’ 이후 전부 중단됐다. 연대급 이하 소규모 훈련도 실탄 한번 쏘지 않는 컴퓨터 게임으로 진행됐다. 북한 눈치를 보느라 훈련 이름도 붙이지 못해 ‘홍길동 훈련’이란 말까지 나왔다. 해외서 열리는 다국적 대잠수함 훈련에도 불참했다. 그 사이 북핵과 북 군사력은 쉬지 않고 증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합동 군사훈련을 중지하라”고 한 데 대한 응답이었다. 적의 위협에 대한 방어 훈련을 적과 협의하겠다고 한 것이다. 초보적인 경계 임무 하나 수행하지 못하는 군은 북한이 신형 미사일을 쏘자 위협이 아니라고 하더니, 한·미 훈련을 연기해도 대응 태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훈련을 하지 않는 군대는 군대가 아니다. 훈련 없는 동맹은 껍데기다. 미 국방부는 “한반도보다 더 훈련이 중요한 곳은 없다”고 했다. 정부·여당은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더니 이제 ‘김정은이 화내니 군 훈련 하지 말자'는 성명까지 낸다. 김정은을 화나게 하는 근본 문제는 한·미 훈련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와 번영이다. 김정은이 하라고 하면 뭐든지 할 이 정권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조선일보 사설
02.27 부하 46명 잃고 음모론과 전쟁… 비운의 천안함 함장 최원일, 軍 떠난다
30년 군 생활, 대령으로 전역
”피붙이 같은 부하 잃은 죄인”
군 생활 내내 죄책감 시달려
좌초설 등 괴담엔 앞장서 반박
북한의 천안함(PCC-722) 폭침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53·해사 45기) 해군 중령이 28일 30년의 군 생활을 마감한다. 그는 10년을 가짜 뉴스, 음모론과 싸웠고 정부의 외면 속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천안함 폭침 때 받은 징계에 발목이 잡혀 인사 때마다 승진에 탈락하다 끝내 명예 진급 뒤 대령으로 전역하게 됐다.
▲최원일(가운데) 전 천안함 함장(해군 중령)이 2010년 4월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 12일 만에 열린 생존 장병 기자회견에 참석해 마지막 질문에 답변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원일' 이름은 해군 수병(水兵) 출신인 아버지가 아들이 초대 해군참모총장인 고(故) 손원일 제독(1909~1980) 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지은 것이라고 한다. 2008년 천안함 함장으로 부임해 탑승 인원 100명이 넘는 초계함을 지휘하며 서해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하지만 2010년 3월 26일 최 중령은 평시 작전 중 북한 잠수정의 기습 공격으로 부하 46명을 순식간에 잃었다.
패장(敗將) 멍에가 씌워졌다. 폭침이 있은 후 보직 해임됐고, 8개월 뒤 징계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후 ‘만년 중령’으로 교리·교범을 작성하는 비(非)전투 임무 등을 맡아왔고, 현재는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그를 군이 배려한 측면이 있지만, 그는 주위에 “다시 바다로 나가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작전 부대가 아닌 곳에서 근무해 답답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함께 근무했던 이들에 따르면, 최 중령은 군 생활 내내 큰 죄책감에 시달렸다. 2016년 천안함 6주기를 맞아 띄운 편지에서 “저는 제 몸과 같은 배와 제 피붙이 같던 부하들을 잃은 죄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북의 소행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좌초설’ ‘미 군함 충돌설' 등 온갖 괴담을 퍼뜨리는 것은 두고 보지 않고 앞장서 반박했다.
▲지난해 천안함 10주기를 맞아 소셜미디어상에서 진행된 '천안함 챌린지'에 참여한 최원일 해군 중령이 '104인 천안함 전우들이여 영원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 /해군 페이스북
그는 2013년 천안함 좌초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하자 “죽어도 이 영화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좌초됐다면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천안함 장병들을 ‘패잔병’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우리 승조원들은 패잔병이 아니라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과정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남북관계를 앞세우는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천안함'은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는 천안함 폭침 주범 중 한 명인 북한 김영철이 평창올림픽 계기에 방남했을 때 국빈급으로 대우했고, 정부 인사들은 천안함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 ‘우발적 사건'이라고 했다. 북이 어떠한 책임인정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뒤인 지난해에서야 처음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최 중령과 생존 장병들도 당시 행사에 참석했지만 대통령과 함께 추모할 수 없었다. 당시 한 유족은 인터뷰에서 “최 중령이 뒷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최원일 해군 중령이 지난 2017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조선일보DB
그는 생존 장병 58명과 함께 1년에 두 차례 정기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있다고 한다. 퇴역을 앞두고는 천안함 전사자가 안장된 묘역을 함께 찾아 묘비 앞에 경례를 바치며 추모했다. 2016년엔 생존 용사인 전준영(34)씨의 결혼식 주례를 보며 “하늘에서도 신랑, 신부 축하해주고 이 예쁜 가정 잘 지켜다오. 이 기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하늘에 있는 46명의 전우(戰友)를 대신해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당부해 장내가 울음바다가 됐다.
최 중령은 한 인터뷰에서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유가족의 단 하나의 소망은 대한민국이 영원히 기억해 주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서해 수호의 날 하루만이라도 장병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지난 2008년 11월 부임 후 전우들과 함께 천안함 함수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고 이상민 하사, 전준영씨, 함장 최원일 중령, 고 이재민 하사, 고 이용상 하사, 전 주임원사. /조선일보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