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이야기6/ 2020.01.21 코미디계, 원맨쇼 넘버원 남보원 폐렴으로 별세 - 월간조선 12월 호 〈스타다큐 마이웨이〉
딴따라 이야기6
2020.01.21 코미디계, 원맨쇼 넘버원 남보원 폐렴으로 별세…향년 84세
2020.01.21 별세
2020. 02.11 "기생충이 세계를 장악했다, 이건 미친 일"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 기생충에 쏟아진 세계의 찬사
르몽드 "K팝·K뷰티·K푸드 이어 영화도 한반도 경계 넘어섰다"
구글CEO는 한글로 '축하합니다'
"작품상은 '기생충'!"
9일 밤 8시 30분(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 배우 제인 폰다가 '패러사이트(기생충)'를 외치자 객석은 충격과 경탄의 도가니가 됐다. 유력한 후보작이었던 '1917'의 샘 멘데스,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활짝 웃었다. 프레스룸도 환호로 뒤덮였다. 한 중국 기자는 "계급 문제를 이렇듯 세련되게 영화로 만들다니 부럽다"고 했다.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던 루스벨트 호텔 식당에선 100여 명의 영화계 관계자가 TV로 시상식 장면을 지켜봤다. 이들은 기생충팀이 무대로 올라가자 "봉(Bong)! 봉! 봉! 봉!"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 호텔 직원은 기자에게 "당신은 아카데미 역사가 시작된 곳에서, 92년 아카데미 역사가 새로 쓰이는 걸 보고 있다"고 했다.
◇후보 지명 때부터 "봉(Bong!)"
분위기는 시상식 초반부터 심상치 않았다. '기생충'이 각본상을 받자 영화감독 겸 제작자 프라우드 레이널드는 "기다려라. 국제극영화상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봉준호가 감독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에어릭 루이스 너바나 스튜디오 할리우드 대표는 "난 쿠엔틴 타란티노와도 친하고 마틴 스코세이지도 잘 알지만 오늘 상은 봉준호가 받아야 했다"고 했다. "왜?"라는 물음엔 "걸작이니깐(masterpiece)!"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상식 동안 극장과 호텔 일대는 텅 비었다. 아홉 블록을 모두 폐쇄했고,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테러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폐쇄된 공간에 철조망을 치고 등록된 리무진과 출입증이 있는 사람만 통과시켰다. 미처 등록하지 못한 참석자들은 차에서 내려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으로 시상식장까지 뛰었다. '폐쇄(closed)'라고 적힌 표지판 앞에선 일부 시위대가 '반전(反戰)' '반(反)트럼프'나 '친(親)트럼프'를 외쳤다. 오후 1시(현지 시각)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턱시도와 드레스 위에 외투를 걸쳐 입은 사람이 많았다.
◇"'기생충' 수상은 '세계의 승리'"
세계 주요 언론은 '기생충' 4관왕 소식에 찬사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히트작 '기생충'이 비(非)영어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92년 오스카 역사가 산산조각났다"고 보도했다. NYT 소속 영화 평론가들은 시상식을 보도하며 "이건 미친 일이다, 물론 좋은 의미로"라고 소감을 말했다. AP통신은 '기생충'의 수상을 "세계의 승리(a win for the world)"라고 평가했고, 영국 BBC는 "'기생충'이 세계를 장악했다"고 했다. 르몽드는 "한국 문화가 K팝, K뷰티, K푸드와 함께 영화도 한반도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썼다.
유명 인사들도 가세했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구글 최고 경영자는 트위터에 한글로 "축하합니다"라고 쓴 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출연진의 역사적이고 당연한 승리를"이라고 적었다. 배우 샌드라 오는 트위터에 "한국인이라 매우 매우 자랑스럽다"고 했다.
조선일보 로스앤젤레스=이혜운 기자 뉴욕=오윤희 특파원 파리=손진석 특파원
"미국 영화 따라잡은 게 눈물나게 고맙다"
[영화계, 봉준호 쾌거에 환호]
안성기 "TV중계 보다가 소리질러"
이장호 "봉준호 따봉! 하하하"
윤제균 "美 심장부 한 방 먹였다"
강우석 "제2·3의 봉준호 나올 것"
김혜자 "눈물 나게 좋은 소식"
"미국 할리우드 영화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나라의, 따라잡을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그 큰 성벽 안으로 들어가서 중요한 상을 다 휩쓸었다는 게 눈물겹게 고맙지요."
해외 영화제의 벽을 넘은 첫 한국 영화인인 임권택(84) 감독은 "1955년에 영화에 입문해서 평생 영화를 하면서 살았지만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감격했다. 그는 베네치아·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씨받이'(1986), '아다다'(1988) 등을 연출했다.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 시각)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번쩍 들었다. 한국 영화계는 "제2, 제3의 봉준호를 꿈꾸는 미래의 영화인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임 감독은 "오래전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봉 감독이 언젠가 크게 영화로 이름을 남길 사람이다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란 게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어느 한쪽이 비거나 거슬리게 마련인데 '기생충'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 걸 보고 일부러 전화를 걸어 축하를 했었다."
이날 집에서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시청한 '국민 배우' 안성기(68)는 "TV로 시상식을 보다 '이게 뭐야!' 하며 소리를 질렀다"며 웃었다. "한국 영화가 살아남기 막막하던 시절, 할리우드를 괴물이자 적으로 여기던 때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유럽 여러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의 장벽까지 사라졌네요. 이제 한국 영화인들은 더 치열하게 스스로 쌓은 벽을 넘어서는 일만 남은 겁니다."
영화 '마더'에 출연했던 배우 김혜자씨는 "눈물 나게 좋은 소식"이라면서 "너무나 기쁘다. 축하문자라도 얼른 넣어줘야겠다"고 했다.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수상 소식에 한국 영화인들은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일이 일어났다"며 놀라워했다. 봉준호 감독을 데뷔 때부터 각별히 아꼈던 이장호(75) 감독의 감격도 컸다. 그는 "우리가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한국 영화의 값어치를 세계가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과 전개의 힘, 거대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봉준호 속에 살아 있는 독립영화의 정신이 이번 영화에서 완벽하게 꽃을 피운 거예요. 앞에 있으면 말해 주고 싶네요. '봉준호 따봉!' 하하하."
기존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아시아 영화들은 아시아적인 지역성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해운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영화 '기생충'의 보편성에 주목했다. 그는 "빈부격차 같은 자본주의 폐해에 대한 봉 감독의 고찰이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통렬한 비판으로 임팩트 있게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동서양으로 나뉘지 않는 보편적 소재와 서사를 갖고 오직 이야기의 힘만으로 미국의 심장부에 정확히 한 방 먹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영화인도 관객도 한 단계 레벨 업(level up)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의 제작자였던 차승재 대표는 영화계에서 봉준호를 발탁한 은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봉준호라는 감독을 내 영화 인생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가 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 영화 자본력은 할리우드의 100분의 1도 안 되겠지만, 92년 역사의 아카데미에서 본상을 휩쓸었다는 것이 한국 영화의 저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강우석(60) 감독은 "한국 영화는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북미라는 더 큰 시장에 도전할 큰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고도 기대했다. "감독에게 가장 행복한 얘기가 '감독님 영화를 보고 영화인이 되기로 결심했어요'라는 말입니다. 많은 영화감독 지망생에겐 '제2, 제3의 봉준호'가 되고 싶은 꿈이 생길 거예요. 봉준호와 '기생충'의 경사를 넘어 한국 영화 전체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점점 진화하는 감독 봉준호, 다음 영화가 더 기대되지 않습니까?"
조선일보 이태훈 기자
“지금 나가서 봐라”… 美 WP, 아카데미 석권한 ‘기생충’ 극찬
"기생충 이후 미국서 한국 문화에 대한 언급 확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영화 시상식을 사실상 석권한 가운데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당장 나가서 관람하라"는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WP는 10일(현지시각) "기생충의 미국 박스오피스 실적은 단지 3500만달러(약 415억원)"라며 "국제영화로서 인상적이지만, 많은 미국인이 아직 보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 '기생충' 수상 소식을 접하고도 그 영화를 잘 알지 못한다고 해서 언짢아하지는 않아도 된다"면서 "바로 나가서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고 덧붙였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하루 앞둔 8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TCL 차이니즈 극장 앞에 기생충 포스터가 대형 스크린에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WP는 역사를 만들어낸 '기생충'에 대해 알아야 할 사항들이 있다면서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를 비롯해 봉준호 감독의 과거 작품, 미국 평단의 호평, 작품상 수상의 의미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일종의 '기생충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WP는 "영화를 관람하는 미국인들이 늘어날수록, 미국인 관객들을 위해 온라인에선 한국 문화에 대한 언급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번역된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끓인 라면 )가 중요 장면에 등장했고, 온라인에는 한국 음식 조리법이 갑작스럽게 쏟아졌다"고 전했다.
WP는 "최근 아카데미는 백인 일색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성을 갖추려고 해왔다"면서 "올해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 감독이 없다는 점만 보더라도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우리는 (미국 밖) 누구든 어디에서든 작품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 황민규 기자
03월 12일 恨과 興 뒤섞인 유일한 장르… ‘꺾기’ 기술 · 편곡 진화하며 재평가
▲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시작된 트로트 신드롬이 ‘내일은 미스터트롯’과 ‘트롯신이 떴다’로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트로트의 음악성과 표현력에 새삼 놀라고, 트로트가 주는 따뜻한 위로에 감동하며 트로트 가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트롯신이 떴다’의 설운도, 김연자, 남진, 주현미, 장윤정, 진성. ‘내일은 미스터트롯’ 결승전에 진출한 김호중, 임영웅, 장민호. SBS·TV조선 제공
■ ‘트로트 열풍’ 왜 지금일까
일제강점기 ‘엔카’에 영향받아 ‘왜색가요’ 논란… 창법·리듬·화성 변화주며 최근 고난도 댄스 등 ‘품격’ 높여
수십년 아이돌 K-팝 쏠림현상에 피로감… 솔직한 가사에 갈증 풀며 ‘힐링’
트로트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불안과 우려 속에서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시청률이 매회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마지막 결승전 방송(12일)을 앞둔 지난 회 시청률은 무려 33.8%. 지난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이다. 트로트가 되니 다른 방송국에서도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MBN ‘트로트 퀸’, MBC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SBS ‘트롯신이 떴다’ 등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 매력을 거부할 수 없는 걸까. ‘트롯신이 떴다’의 시청률은 첫 회 14.9%에서 11일에도 비슷하게 14.7%를 유지했다. 남진, 김연자, 주현미, 설운도, 진성, 장윤정 등 내로라하는 트로트 가수들이 신인처럼 긴장한 표정으로 베트남 길거리 무대에서 즉석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왜 지금 트로트에 이처럼 열광하는 걸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트로트
사실 트로트 열풍의 뿌리는 매우 깊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로트는 일본에서 건너온 ‘신유행가’였다. 서양음악이 밀려들면서 일본의 전통적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라시도미파)에 2박자 리듬을 더한 대중가요 ‘엔카(演歌)’가 만들어졌고, 엔카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전파돼 트로트로 재탄생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1950년대의 트로트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의 의미였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1947),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1953),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1955)는 전쟁의 상처와 서민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다.
1960년대는 ‘정통파’의 시기였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1964)·‘섬마을 선생님’(1967),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1964) 등이 큰 인기를 누렸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는 정통과 크로스오버가 공존했다. 남진이 록이나 스탠더드 팝이 가미된 ‘임과 함께’(1972)로 변화를 꾀했다면, 나훈아는 기존의 정통 리듬을 심화시킨 ‘고향역’(1972)으로 맞불을 놓았다.
1980년대는 트로트의 변화가 더욱 거세졌다. 1984년 일본문화 개방 논쟁과 그에 따른 트로트 왜색(倭色) 논쟁이 배경이 됐다. 그 영향으로 창법과 리듬, 화성(和聲)에서 변화를 준 노래들이 등장했다.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1988)·‘짝사랑’(1989), 현철의 ‘봉선화 연정’(1988)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노랫말의 변화가 컸다. 음악적 혼종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영향이었다.
민주화와 개방이 본격화하던 1990년대부터는 침체기를 맞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 전후로 대중가요 전반은 엄청난 황금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지만 트로트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서태지의 힙합,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와 아이돌, 발라드와 댄스음악의 활황 속에 10∼20대 신세대들에게 트로트는 한물간 ‘옛노래’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아이돌처럼 예쁘고 젊은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등장한 게 장윤정이다. 그는 ‘어머나’(2003)·‘짠짜라’(2005) 같은 곡을 히트시키며 아이돌 일변도의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리고 홍진영이 ‘사랑의 배터리’(2009)·‘엄지척’(2016)으로 장윤정의 뒤를 이었고, 송가인이 ‘내일은 미스트롯’(2019)을 통해 21세기 트로트의 여신으로 우뚝 섰다.
◇푸대접… 그러나 한과 흥의 노래
우리 생활에 트로트가 없던 때는 없었다. 다만 다른 장르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록이나 헤비메탈은 음악적 도전정신으로, 발라드는 로맨틱함으로, 힙합은 반항적 메시지로 음악 팬의 감성에 호소했지만 트로트는 천대받기 일쑤였다. 이유는 트로트가 왜색이라는 편견, 그리고 ‘쉬운’ 음악이라는 평가절하 때문이었다.
통상 트로트라고 하면 대중가요 중에서도 가장 하위 장르로 인식됐다. 서구 클래식 음악은 고급예술이고 트로트는 ‘싸구려’라는 의식이 지배했다. ‘트로트와 한국음악을 위한 변명’(북코리아)을 펴낸 전지영 평론가는 “1960∼1970년대 국내 가요는 일본은 물론, 미국 팝의 영향도 받았는데 당시 미국 번안곡은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일본 영향의 트로트는 업신여김을 받은 것은 미국과 일본을 바라보는 국민 정서의 차이 탓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왜색 논란이나 쉬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걷어내면 트로트는 오히려 어느 장르보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정서에 스며든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로트에는 한국인 특유의 한(恨)과 흥(興)이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게 감상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얼핏 보면 한과 흥은 서로 섞이기 힘든 감정이다. 한이 맺히는데 어찌 흥겨울 수 있으며, 흥이 넘치는데 어찌 애절할 수 있겠는가. 록은 강렬하고 짜릿하지만 한스럽지는 않다. 힙합은 리듬에 흥이 있지만 가사는 냉소적이다. 발라드는 애잔하고 신날 수 있으나 두 가지를 한데 섞기엔 그릇이 좁다. 반면 트로트는 다 된다.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1984), 김수희의 ‘남행열차’(1986)는 어깨가 들썩여지는 리듬에 이별의 슬픔을 담았고, 장윤정의 ‘초혼’(2010)은 발라드에 깊은 한을, 홍진영의 ‘산다는 건’(2014)은 트로트가 가진 힐링의 힘을 보여줬다.
◇피로감에 대한 반발, 그리고 위로
그러나 지금처럼 트로트가 주목받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최근의 열풍은 세대를 초월한다. 50∼70대가 즐기는 변방의 장르로 여겨지던 것에서 10∼30대가 따라 하는 주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니뮤직의 조사에 따르면 트로트 인기는 지난 1년 새 5.8배로 상승했다. 트로트 열풍이 본격화한 2019년 2월부터 2020년 1월까지의 지니 인기순위 200위권과 전년(2018년 2월∼2019년 1월) 대비 순위를 비교한 결과다.
유튜브를 통해 어린이들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애니메이션 콘텐츠 및 완구 전문업체인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지난해 말 김연자가 부른 ‘쑥덕쿵’ 노래에 애니메이션 헬로카봇에 등장하는 토끼 캐릭터를 더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김연자 채널에서 조회 수 202만 회, 카카오M의 원더케이 채널에서 45만 회를 기록했다. 가히 폭발적이다.
우선 트로트의 약점으로 취급받던 음악성이 인정받고 있다. 트로트 공연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품격’도 향상됐다. 클래식을 하던 김호중, 록밴드를 하던 플라워의 고유진이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며 오디션에 뛰어든 것만 봐도 그렇다. 소위 ‘꺾기’로 불리는 보컬 기술은 진화하고, 트로트를 하면서 동시에 고난도 아이돌 댄스를 하는 등 ‘기술’과 ‘표현력’도 크게 성장했다. 주현미의 소속사 CC엔터테인먼트의 임준혁 대표는 “과거 ‘싸구려’나 ‘뽕짝’으로 천대받던 트로트가 가창력과 편곡 등 예술적 측면에서 인정받고 있고, 힙합처럼 가식 없는 솔직한 가사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허물없이 다가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수십 년째 아이돌 음악 중심으로 돌아가던 피로감으로 인한 반전이기도 하다. 1996∼1998년 보이그룹 H.O.T와 젝스키스, 걸그룹 S.E.S와 핑클로 대변되는 K-팝 아이돌 1세대 이후 2000년대 중반의 동방신기와 빅뱅,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2세대, 그리고 2012년 이후 엑소와 방탄소년단까지 지난 20여 년간은 국내 가요의 쏠림 현상은 유난히 심했다. 아이돌이 K-팝의 발전을 견인했지만 대신 다른 장르, 특히 트로트가 설 자리를 빼앗았다. 게다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잇따라 물의를 일으키면서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이때 등장한 게 트로트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아이돌 음악만 듣고 자랐던 20대 이하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사회적 분위기도 무관하지 않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불신과 혐오가 커지고 코로나19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수시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희망이 좌절로 바뀌면서 가슴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어렵게 됐다. 그런 우울과 좌절감을 치유해준 게 트로트다.
가수 설하윤의 소속사 TSM의 강인석 대표는 “반짝이 옷으로 상징되던 과거 트로트 가수들이 훨씬 젊어지고,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더욱 진솔하게 팬에게 다가가면서 젊은 층에게도 통한 것 같다”며 “그러나 방송 프로그램 몇 편의 인기와 흥행이 트로트계 전반에 골고루 전달된다고 보긴 어렵다. 몇몇을 빼곤 아직도 어려움을 겪는 가수와 제작자가 많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트로트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한과 흥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고, 사회와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겐 여전히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04월 29일 혜은이-김동현, 30년만에 결혼생활 종지부
가수 혜은이(64)와 배우 김동현(70)이 이혼했다.
29일 가요계와 방송가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상호 협의로 부부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두 사람은 1990년 결혼했다. 김동현이 사업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혜은이가 오랜 세월 거액의 빚을 갚아나가는 등 어려움을 함께한 사연은 방송매체를 통해서도 잘 알려졌다.
혜은이는 1975년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데뷔해 최고 전성기를 누렸지만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했고 결혼 후에도 이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등의 곡을 발표하며 인기를 유지했고 환갑이 훌쩍 넘은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무대에 서고 있다.
김동현은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로 데뷔했으며 드라마 ‘아내의 유혹’, ‘대조영’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한편, 혜은이는 이날 오후 10시 방송할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가수 인생 45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는 황혼 이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무대에서의 기억과 힘들 때 그의 옆을 항상 지켜준 전영록, 남궁옥분, 민해경, 그리고 그의 팬클럽들과의 이야기가 주로 전파를 탈 것으로 예고됐다.
< 연합뉴스
05.15 빚 135억·집 팔고 '두리랜드' 숙식 "세상에 지기 싫습니다"
[변희원 기자의 한 點] 두리랜드 재개장 배우 임채무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 4일 경기도 양주 두리랜드에서 만난 임채무. "왜 두리랜드를 운영하느냐"고 여러 번 캐물으니 마지막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요즘 TV를 켜면 옛날 드라마가 나오는 것처럼, 나도 나중에 누군가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연예인 임채무 말고 놀이공원 주인 임채무로."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오후 4시의 두리랜드 매표소. 경기도 양주시의 이 어린이 놀이공원 앞에서 어느 부부가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여기 이제 돈 내야 한대. 지금 들어가면 두 시간밖에 못 놀아.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놀자"고 말하면서 부모는 칭얼대는 아이를 끌다시피 주차장으로 데려갔다. 남편이 아내를 질책하듯 물었다. "당신, 두리랜드는 입장료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
배우 임채무(71)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두리랜드가 지난달 30일 재개장했다. 실내 테마파크동과 교육 연수동 등 실내 시설 두 동을 짓고, 실외 놀이 기구도 교체했다. 서울 교외에 있는, 규모가 작은 놀이공원이지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개장 당일, 매표소에 '성인 2만원, 어린이 2만5000원'이라고 적은 가격표를 보고서 실망하거나 화를 내며 발을 돌린 사람들이 있었다. 인터넷에선 맘카페를 중심으로 '에버랜드도 아니면서 왜 이 돈을 받느냐' '이제 두리랜드로 돈 벌겠다는 거냐'는 부정적 반응이 나왔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놀이공원 점검을 하러 두리랜드를 돌아다니던 임채무를 만났다.
―입장료가 생겼습니다.
"정식 개장 첫날에 온 사람이 입구에서 '임채무가 돈독이 올랐다. 예전에 입장료가 없어서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쁜 놈이다'라고 욕하는 걸 아내가 들었어요. 원래는 이것보다 더 심하게 얘기했는데, 제가 좀 순화해서 전한 겁니다. 아내가 '그런 거 아니에요. 빚 많이 져가면서 만든 것이고, 이걸로 돈 못 벌어요'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이러더래요. '누가 하래요? 그럼 이런 거 하지 말고 편히 살든가.'"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두리랜드 아니었으면 편하게 살았을 겁니다. 왜 다시 하는 겁니까?
"두리랜드는 예전부터 적자였어요. 재개장을 하지 않고 다 접어버리자는 생각도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세상에 지는 거잖아요. 이대로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만 다시 해보려고요."
―얼마나 투자했습니까.
"이번에 증·개축하면서 190억원 정도 들었습니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게 135억원, 나머지는 갖고 있던 집 두 채 다 팔고, 자식들 마이너스 통장까지 다 끌어모으고, 사채도 조금 써서 마련했어요. 집이 없어서 지난 1년 반 동안 두리랜드 근처 일곱 평짜리 원룸에서 살았어요. 두리랜드 재개장하면서 지금은 두리랜드 안에서 살고 있어요. (두리랜드에서요?) 네, 먹고 잘 데는 있어요. 이거 알려져서 지인들이 찾아오면 안 되는데…. 여긴 제 일터이기도 한데 찾아오는 손님들 접대하다 보면 일을 못 하거든요."
▲경기도 양주에 재개장한 놀이공원두리랜드 앞에 선 임채무.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세상에 지기 싫어서 하는 일치고는 대가가 너무 큽니다."안 그래도 한 달에 내야 할 이자가 수천만원에다가 놀이동산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인건비, 전기료 등이 예전보다 몇 배가 더 들어요. 그렇게 큰돈을 빌렸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직원 월급 안 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월급 줄 돈이 없다 싶으면 지방 여기저기에 전화합니다. 전국 나이트클럽 돌면서 공연해서 그 돈을 마련하는 거죠. 고비만 계속됐다면 주저앉았을 수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그걸 극복할 방법이 하나씩 생겨났어요. 그래서 이렇게 빚이 많은 상황인데도 잘될 수 있단 희망을 갖고 있어요."
―2만~2만5000원이란 금액을 납득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임채무 나와'라며 쌍욕을 하기도 하고, 어린 직원의 머리에 손세정제 병을 던진 사람도 있어요. 그 직원은 충격이 컸는지 그 뒤로 안 나와요. 인터넷 비난 댓글도 많고요. 일반 키즈 카페에서 노는 금액을 기준으로 책정한 가격이에요. 1990년에 열었을 때 110억원이 들었고, 이번에 19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놀라고 몇 백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왜 공짜가 아니냐고 욕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요. 돈독이 올랐다면 190억원 갖고 두리랜드를 하겠습니까? 돈을 처음 벌었을 때도 놀이공원을 만들려고 여기 땅을 샀어요. 그 뒤로도 땅을 산 건 강화도의 작은 농지와 두리랜드의 부지밖에 없을 정도로 투자를 안 하고 살았어요. 제가 싫어하는 게 내기나 도박입니다. 골프장 가면 다들 내기 골프를 하니까 언젠가부터는 골프도 치러 다니지 않아요."
―가족은 두리랜드 재개장에 동의했나요.
"서울 여의도의 68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던 아내가 경기도의 7평짜리 원룸에서 살게 됐습니다. 걱정이 많아서 잠을 못 자면서도 저한테 불평불만 하지 않고 두리랜드를 열심히 챙겨주고 있어요. 어제도 자다 깬 아내가 한숨을 쉬면서 잠에 못 들기에 '굶기진 않겠다'고 했어요. 자식들은 당연히 이런 거 하지 말고, 편히 살라고 난리죠."
임채무는 1989년에 두리랜드를 짓기 시작해 1990년에 문을 열었다. 그는 "30년 가까이 담도 없고 입장료도 없었다. 시작하면서부터 적자였지만 한동안 버틸 수 있다. 90년대는 CF, 드라마, 야간 업소 출연해서 돈을 벌었을 때다. 내가 방송에 나가 번 돈이 놀이동산 매출의 두 배였다. 내 돈으로 운영하고, 직원 월급을 줬다"고 했다. IMF를 겪으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놀이동산을 찾아오지 않았고, 임채무를 불러주는 데도 줄었다. 2000년대 초에 닫았다가 2009년 재개장했다.
▲임채무와 함께 두리랜드 실내에 들어서자 부모들이 아이 손을 잡고 와서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임채무는 "친구보다 두리랜드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더 반갑다"고 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왜 놀이공원이었나요?
"산세가 좋고 계곡도 있는 이 동네는 80년대 사극의 단골 촬영지였어요. 제가 단역 배우 생활을 길게 하는 바람에 여기 자주 와야 했죠. 당시 이 계곡으로 놀러 나온 가족을 자주 봤어요. 삼겹살 구워 먹다가 술 마시며 화투 치거나 노래 틀어놓고 춤춰요.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시비가 붙어서 싸우고 깨진 술병에 아이들이 발이라도 다쳐서 울면 그때쯤 다들 주섬주섬 짐을 싸서 가죠. 그게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나중에 돈 벌면 이 자리에 꼭 아이들이 가족과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어릴 때 맨날 어머니 손 잡고 이사 다닌 기억, 좀 커서는 학교 공과금 못 냈다고 선생님한테 혼난 기억이 있어요. 지금에 와서는 추억이라고 회상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게 나름대로 고통이었죠. 애들이 그런 고통 느끼지 않고 즐기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노는 모습만 봐도 제가 다 즐거웠거든요. 몇 년 지난 뒤 주연 배우 해서 돈 벌자마자 이곳 땅 한 뙈기를 샀어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사 모았어요. 놀이공원 지을 만큼 모았다 싶었을 때 시작했죠."
―당시엔 입장료가 공짜였습니다.
"처음에는 2000원을 받았는데, 이게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두리랜드 문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감을 하고 퇴근하려는데 아들을 데려온 부모가 문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는 들어가겠다고 울고, 모자를 푹 눌러쓴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동전 소리만 들리는 거예요. 아버지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서 일부러 저녁에 온 것 같았는데, 입장료 때문에 난처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 날 직원 불러서 입장료 없애자고 했죠. "
―그것 때문에 지금의 입장료가 더 많아 보이는 것 아닐까요.
"네, 그때 잘못했어요. 5000원, 1만원씩이라도 받았으면 지금처럼 어려워지진 않았을 거예요."
―2009년에 재개장했다가 또 닫았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인기 있었던 회전목마, 바이킹, 박치기차(범퍼카) 같은 아날로그 놀이 기구는 사양길인 거예요. VR 같은 게 들어왔죠. 게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미세 먼지와 황사 때문에 엄마들이 바깥에서 오래 노는 걸 꺼렸어요. 실외 놀이공원은 날씨 때문에 1년 중 5개월 정도 손님이 오는데, 그마저도 이제 없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롯데월드처럼 실내 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2017년 말에 닫고 2018년부터 신축에 들어갔어요."
―맘카페의 후기에선 실내 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원래 실내 시설은 다 무료로 하려고 했어요. 지금 오락기만 1000원 정도 받고 있고, 어린이용 암벽 등반이나 성인용 안마 의자는 다 공짜입니다. 안마 의자는 곧 돈을 받을 겁니다. 이 돈을 받아봤자 돈벌이에는 도움이 안 돼요. 무료로 했더니 한 사람이 독점하는 일이 생기고 심지어 부모끼리 많이 싸워요. 안마 의자를 한번 차지하고 아예 거기서 자는 사람도 있고요. 코인 노래방도 공짜로 들여놓고 싶은데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돈을 받을 것 같아요."
▲2002년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주심을 맡았던 모레노 심판을 임채무가 패러디한 '돼지바' 광고.
임채무는 197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뽑혔다. 해병대 말년 휴가 때 공채 시험을 봤다. 단역·조연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가 1984년 '사랑과 진실'의 주연을 맡았다. 시청률 60%가 넘은 작품이다. 30대 후반 이후 멜로드라마 주연은 맡지 않았지만 단 한 해도 TV에 출연을 안 한 적이 없다. 2006년 '돼지바' 광고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주심을 맡았던 모레노 심판을 패러디한 연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임채무와 두리랜드 실내에 들어서자 네댓 살짜리 딸을 데려온 부모가 "와, 임채무다"라고 소곤거리더니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딸과 임채무를 함께 세우고 사진을 찍고서, 딸에게 "저 할아버지는 연예인이다"라고 설명해줬다. 아이와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모 때문에 임채무와 두리랜드를 다니면 세 걸음 걷다 한 번씩 멈춰야 한다. 부모는 임채무를 보면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고, 아이는 임채무를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노주현, 한진희 배우와 멜로드라마 트리오로 유명했습니다.
"두 분 다 나보다 주연을 먼저 맡았어요. 부러울 정도로 잘생기고 인기도 많았죠. 저는 한창때도 출근할 때 거울 보면서 '이런 얼굴로 주연 하다니' 하고 놀라곤 했어요."
―조·단역 출신이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서 첫 주연을 맡았죠?
"촬영 도중에 김수현 선생님이 '임채무씨, 연기하기 쉽죠? 이 배역은 처음부터 임채무씨 생각하며 썼어요'라고 했어요.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로는 단역 시절에 성실해서 눈여겨봤다고 했대요."
―성실한 편인가요?
"일단 지각하거나 약속 안 지키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주 올드한 스타일이죠,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자식들이 유학을 갔는데,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 세 가지를 지키게 했어요. 첫째, 압구정동에 가지 말 것, 둘째,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면 영어를 쓰지 말 것, 셋째, 통금은 10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애들이 외국 물 좀 먹었다고 강남에서 거들먹거리며 영어 쓰는 게 참 보기 싫었어요. 제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인데 자식이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구설에 오를 수도 있고요. 아버지가 배우라는 이유로 애들을 희생한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합니다."
―트로트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로 한창 인기가 많았을 때 저보고 이 드라마 주제가를 불러보라기에 녹음했는데, 500만원을 받았어요. 그 뒤로 쭉 노래를 하면서 작사도 하고, 공연도 합니다."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지난해 나온 신곡 '9988 내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곡 모두 그가 작사했다. '9988 내 인생'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구구팔팔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구팔팔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은 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은 옵니다'.
―이렇게 평생 꾸준히 일해서 번 돈, 두리랜드에 다 투자했습니다. 아쉬움이 없을 수가 있나요.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소주 마시고 취하나 양주 마시고 취하나 똑같습니다. 라면 먹으나 짜장면 먹으나 스테이크 먹으나 배부른 것도 똑같고요. 무명 시절, 한 달에 3만원씩만 갖고도 잘 지냈습니다. 돈을 계속 벌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제게 건강한 몸과 좋은 목소리를 물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대접받으면서 돈을 벌어왔고요. 제가 가진 건 무엇하나 다른 사람한테 안 받은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진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요."
―이번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진짜 그만할 겁니다. 여기를 팔아서 빚을 갚아야죠, 받아야 할 돈 못 받는 사람이 없도록. 제가 책임질 건 다 질 겁니다."
오후 5시가 넘자 임채무는 "두리랜드 마감을 하러 가야 한다"며 일어났다. "왜 두리랜드를 하느냐"고 또 묻자 그는 "두리랜드 만들 때부터 나보고 미쳤거나 바보라고 했던 친구들은 요새 크루즈 여행을 하거나 골프를 치러 다닌다"고 했다.
"여행 가자, 술 마시자, 골프 치자는 사 람들의 제안 다 거절해서 이제 주변에 남은 지인이나 친구가 몇 명 없어요. 저는 그 시간에 두리랜드에서 일하는 게 훨씬 더 좋아요. 왜 두리랜드를 하냐고요?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여기서 아이들과 사진 찍는 게 즐겁고, 기계 점검하고 작동하는 일도 즐겁고, 손님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워요. 제가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남을 즐겁게 만들어 주겠어요!"
조선일보 변희원 기자
06.25 일본 국민배우로 거듭난 한국배우의 근황
놀라운 아역배우의 등장
[황진이], [태왕사신기]
[단팥빵]의 헥토파스칼킥으로 많이 알려졌으나 배우 ‘심은경’의 다름아닌 드라마 [황진이]였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 춤추는 손사위 하나까지도 섬세함을 드러내며 짧은 등장이었음에도 대중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어 [태왕사신기]의 수지니 아역으로 [황진이]와는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여기에 [태양의 여자]의 신도영 아역으로 부모에게 버려질까 항상 불안에 떠는 모습을 굉장히 설득력있게 보여주며 두 드라마 모두 4~5부에 짧은 등장임에도 불구하고 배우 심은경의 존재감을 알렸다.
심은경 배우의 존재감을 드러내다
<헨젤과 그레텔>, <로맨틱 헤븐>
영화가 주는 배우의 역할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배우가 좋아도 스토리가 따라가지 못하면 말짱꽝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든다. 하지만 심은경은 뭔가 달랐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영화의 평가가 좋지 않더라도 심은경만은 남는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헨젤과 그레텔>의 정말 순수한 영희의 눈빛. 영화<로맨틱 헤븐>에서 소녀 김분역의 오열연기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심은경은 스크린을 통해 아역이 아닌 성인연기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심은경의 첫 주연작 <써니>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심은경은 <써니>를 통해 다시 한 번 성장했다. 빙의를 더한 코미디 연기는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으며 그 시절 느꼈을 법한 ‘나미’의 순수한 감정들을 때묻지 않게 표현하여 평단과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740만이 넘는 흥행을 기록하였다.천만 배우반열에 오르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 건 ‘광해’의 이병헌이 아닌 ‘사월’역의 심은경이었다. 자신이 궁으로 들어오게 된 사연과 백성들의 처참한 생활을 알게해준것도 다른 아닌 ‘사월’이었기 때문이다. 그당시 비중이 높지는 않았으나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감정의 동요가 가장큰 캐릭으로 그 존재감은 그 어떤 캐릭보다도 높았다.
매력 포텐이 터지다 <수상한 그녀>
단독주연이라고 할 정도로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났다. 관객들 또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았던 것이 사실. 지금까지 해온 심은경 배역은 단독적이기보다는 다른 캐릭터와 조화로웠을 때 상당한 시너지가 있는 배우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관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동시기에 개봉한 <겨울왕국> 여파 속에서도 866만이라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다. 관객들은 심은경의 매력을 가득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 자자했으며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 심은경은 <서울역>, <조작된 도시>, <염력>, <궁합>등 연기변신을 통한 꾸준한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났지만 평단은 물론 흥행 또한 전작만 큼에 기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배우 심은경의 터닝포인트 <신문기자>
이후 심은경은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아베 신조의 사학비리 스캔들을 정조준한 <신문기자>에 캐스팅되며 우리가 알던 심은경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국 배우 최초로 제 43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심은경은 수상 당시 펑펑 눈물을 흘리며 그간 가지고 있던 배우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은듯한 느낌이었다. 심리적인 감성이나 유창한 일본어는 관객들을 다시 한 번 심은경이라는 세 글자를 각인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심은경의 민낯을 보다 <블루 아워>
한국 배우 최초로 일본 메이저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2관왕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배우 심은경이 <블루 아워>의 기요우라 역으로 컴백, 특유의 밝고 유쾌한 매력을 선보인다. 예고편을 통해 알 수 있듯 훨씬 더 성숙하고, 연기에서부터 여유가 느껴진다. 심은경은 <블루 아워>를 통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한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무엇보다 기대를 모으는 포인트는 심은경의 전매특허 매력이 가득 담긴 유쾌하고 밝은 캐릭터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심은경은 아역 배우로 데뷔 후, 매 작품마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쌓아왔다. 특히, 특유의 밝고 유쾌한 매력이 발휘되었을 때 그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심은경은 유독 밝은 캐릭터와 만났을 때 연기력은 물론, 흥행력까지 증명했다. <블루 아워>에서의 심은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색다른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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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월 01일 이순재 측 "매니저 계약, 배우와는 무관…직접 사과하고 싶다" [전문]
/배우 이순재. 중앙포토
‘갑질’ 논란에 휩싸인 배우 이순재(85)의 소속사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는 배우 부부의 뜻을 전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순재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1일 ‘배우 이순재에 대한 최근 보도에 관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전 매니저에 대한 갑질 및 부당해고 의혹과 관련해 구체적인 상황 설명을 전했다.
소속사는 “올해 3월 온라인 채용사이트를 통하여 배우 이순재의 로드매니저를 구인했다”며 “별도 운영하던 연기학원의 수업이 코로나19로 중단되며 임대료라도 줄이고자 급하게 사무실 이전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계약서 작성을 누락했고, 로드매니저의 업무기간이 배우의 스케줄에 따라 매우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라고 생각해 4대 보험에 가입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두 소속사의 미숙함 때문에 발생한 일이고 로드매니저의 진정으로 노동청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로 인한 모든 법률상 책임 내지 도의적 비난은 달게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로드매니저와의 계약을 해지한 사실은 없다”고 못박았다. “로드매니저의 계약 상대방은 소속사로 4대 보험 가입 여부 문제는 소속사와 논의해야 할 부분이었다”면서 “로드매니저는 소속사가 아닌 배우 개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매우 강하게 요구했고, 계약 당사자도 아닌 배우와 그 가족까지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계약 해지 이유를 밝혔다. “로드매니저는 배우와 모든 일정을 동행하며 배우의 컨디션을 살피는 역할을 한다. 소속사로서는 배우를 배려하지 않고 지속적인 신뢰를 쌓을 수도 없는 사람과는 계약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이 부분도 로드매니저의 신청으로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절차가 진행 중으로, 소속사는 법적 절차에 성실하게 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 매니저가 배우의 사적인 일까지 한 부분은 인정했다. “그 동안의 로드매니저들에게 분리수거 쓰레기를 내놓아 달라거나 수선을 맡겨달라고 부탁하거나, 집에 들어오는 길에 생수통을 들어달라거나, 배우를 촬영 장소에 데려다 주는 길에 부인을 병원 등에 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면서 “부인도 도움을 받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머슴살이’나 ‘갑질’이라는 표현은 실제에 비하여 많이 과장돼 있다”고 주장했다. “로드매니저에게 일반적으로 가사 업무라고 불리는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을 시킨 사실은 전혀 없으며 ‘허드렛일’이라고 표현된 대부분의 심부름 등은 당연히 가족들이 하고 있다”며 “오해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배우 이순재와 배우 부부의 입장도 전했다. “배우 부부는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해당 로드매니저를 만나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또 “그동안 이순재 본인을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은 살아온 인생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배우 이순재의 입장도 밝혔다.
배우 이순재의 갑질 논란은 지난 29일 SBS 뉴스에서 올 4월부터 두 달 동안 매니저로 일한 김모씨가 “머슴 수준”의 착취를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소속사는 30일 “SBS 보도내용은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른 왜곡, 편파보도”라며 기자회견 등을 열어 공식입장을 밝힌다고 했지만, 1일 입장문을 통해 “기자회견을 열어 배우의 입장만 밝히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라 판단하여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배우 이순재에 대한 최근 보도에 관한 입장문
배우 이순재의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이하 ‘소속사’)는 배우 이순재의 전 로드매니저가 주장하는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상황 설명을 드립니다.
소속사는 올해 3월 온라인 채용사이트를 통하여 배우 이순재의 로드매니저를 구인하였습니다. 10년 전 잠깐의 경험을 빼면 매니저 경력이 없었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일을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소속사는 1인 기획사로, 별도 운영하던 연기학원의 수업이 코로나19로 중단되며 임대료라도 줄이고자 급하게 사무실 이전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소속사는 이 과정에서 계약서 작성을 누락하였고, 로드매니저의 업무시간이 배우의 스케줄에 따라 매우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라고 생각하여 4대 보험을 가입하지는 않았습니다. 로드매니저의 급여는 매니지먼트 업계 평균 수준으로 책정하였고, 배우 촬영 중 대기시간 등이 길어서 하루 평균 9-10시간 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모두 소속사의 미숙함 때문에 발생한 일이고 로드매니저의 진정으로 노동청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청에서 결정을 할 것이고 이로 인한 모든 법률상 책임 내지 도의적 비난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소속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로드매니저와의 계약을 해지한 사실은 없습니다. 로드매니저의 계약상대방은 소속사로 4대 보험 가입 여부 문제는 소속사와 논의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로드매니저는 소속사가 아닌 배우 개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매우 강하게 요구하였고, 계약 당사자도 아닌 배우와 그 가족까지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로드매니저는 배우와 모든 일정을 동행하며 배우의 컨디션을 살피는 역할을 합니다. 소속사로서는 배우를 배려하지 않고 지속적인 신뢰를 쌓을 수도 없는 사람과는 계약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부분도 로드매니저의 신청으로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절차가 진행 중으로, 소속사는 법적 절차에 성실하게 임할 예정입니다.
위와 같은 소속사와 로드매니저 간 계약 관련 문제는 배우와 무관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로드매니저는 배우의 부인이 허드렛일을 시켰고 머슴살이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압니다. 배우 이순재와 부인 모두 80대의 고령으로 특히 부인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항상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로드매니저는 배우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기 위하여 늘 집을 드나드는 사이이고, 그 동안의 로드매니저들은 50-60살 정도 차이 나는 손자 뻘의 나이였습니다. 집에서 나가는 길에 분리수거 쓰레기를 내놓아 달라거나 수선을 맡겨달라고 부탁하거나, 집에 들어오는 길에 생수통을 들어달라거나, 배우를 촬영 장소에 데려다 주는 길에 부인을 병원 등에 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간의 로드매니저들은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은 부인을 배려하여 오히려 먼저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부인도 도움을 받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머슴살이’나 ‘갑질’이라는 표현은 실제에 비하여 많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배우의 가족들은 일상적으로 나이가 많은 부부의 건강과 생활을 보살피고 있고 로드매니저에게 일반적으로 가사 업무라고 불리는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을 시킨 사실은 전혀 없으며 ‘허드렛일’이라고 표현된 대부분의 심부름 등은 당연히 가족들이 하고 있습니다. 로드매니저는 자신이 드나들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배우 부부는 로드매니저들이 사적인 공간에 드나든다고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하여야 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편하고 가깝게 느껴진다고 해서 상대방도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상처 입은 해당 로드매니저에게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기회를 준다면 빠른 시일 내에 만나서 직접 사과하고 싶습니다. 기자회견을 열어 배우의 입장만 밝히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라 판단하여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배우 이순재는 그동안 이순재 본인을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은 살아온 인생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 드림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07.06 이순재, 직접 사과문 썼다 "전 매니저 향한 비난 멈춰달라"[종합]
▲배우 이순재가 전 매니저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밝히며, 그에 대한 비난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순재는 5일 오전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사과문을 내고 “전 매니저의 처우에 대한 불미스러운 논란이 발생한 데 대해 그동안 저를 믿고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순재는 "동료 연기자들과 배우를 꿈꾸며 연기를 배우고 있는 배우 지망생, 학생 여러분들께 모범을 보이지 못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라며 “소속사에서 이미 공식 입장문을 냈지만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온 배우로서 제 사과 말씀을 정확히 밝히는 게 도리라고 생각되어 글을 쓰게 됐다”고 입장문을 낸 이유를 밝혔다.
앞서 지난달 30일 이순재의 전 매니저 김씨는 SBS를 통해 자신이 소속사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취업사이트에 난 공고를 통해 이순재의 소속사에 올 3월 들어갔으며 약 두 달간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주말을 포함해 평균 주 55시간 넘게 일했으며 휴일·추가근무 수당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받은 기본급 월 180만 원.
김씨는 두 달 만에 해고됐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 회사에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매니저 업무 이외에 이순재의 아내가 지시한 잡다한 집안 심부름까지 도맡았다고 했다.
이에 이순재는 “일련의 사태는 자신에게 철저하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오랜 제 원칙을 망각한 부덕의 소치였음을 겸허히 인정한다”며 “이 점에 대해 저는 지난 금요일(3일)에 전 매니저와 통화하며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했으며 사과를 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순재는 “전 매니저(김씨)가 언론에 제기한 내용이 맞고 그 분께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고 본인과 더불어 팬들에게도 다시 한 번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아내의 잘못에 대해 이순재는 “가족의 일과 업무가 구분되지 않은 것은 잘못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들어올 매니저에게는 수습기간이든 아니든, 어떤 업무형태이든 불문하고 무조건 4대 보험을 처리해달라고 소속사 대표에게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순재 아내,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와의 일을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폭로한 김씨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이 지속되고 있다. 한 평생 연기의 길만 걸으며 ‘국민 배우’로 자리잡은 이순재의 명예에 먹칠했다는 것.
이에 이순재는 “현재 댓글을 통해 전 매니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전 매니저가 이 일로 힘들어하며 그의 가족들까지 심리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 매니저가 입은 실망과 상처를 치유하고 격려하는 것이지 이 사태에 대해 전 매니저를 비난할 일은 결코 아니다. 전적으로 저로 인해 발생한 일이고 이에 대해 전 매니저를 비난하는 것은 멈춰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SBS 측은 이순재의 매니저 김씨가 일상적인 심부름을 했던 증거를 더 갖고 있지만 보도하지 않겠다고 지난달 30일 ‘8뉴스’를 통해 밝혔다. 연예계 관행으로 굳어진 매니저들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한 것이지 구체적인 사례 나열은 의미 없다는 의미다.
이순재는 또한 “이번 일을 통해 저도 함께 일 하는 매니저들, 업계 관계자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잘 알게 됐다”며 “팔십 평생을 연기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고충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점을 고통 속에 반성하고 있습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남은 삶 동안 제가 몸담고 있는 업계 종사자들의 권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 더 나아가 비슷한 어려움에 당면한 분들께 도움이 되고 용기를 드릴 수 있는 배우가 되겠다.”
07월 07일 “자뻑의 잔치뿐…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안치환, 진보권력 위선 비판
/대표 민중가수 ‘아이러니’공개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중략)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대표적 민중가수로 꼽히는 가수 안치환(사진)이 진보 권력을 향해 날카로운 일침을 날렸다. 안치환은 자신이 직접 작곡·작사해 7일 정오에 공개한 신곡 ‘아이러니’를 통해 한때 자유와 해방을 외치던 이들이 권력을 탐하는 낯 두꺼운 기회주의자가 된 것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우리가 어느 별에서’ 같은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포크가수이지만 386 민주화 운동권에 뿌리를 둔 대표적 민중가수인 안치환은 이 같은 현 상황을 제목처럼 ‘아이러니’라고 했다.
안치환은 밴드와 일렉트로닉 신스를 가미한 강렬한 사운드에 포효하는 창법으로 “끼리끼리 모여 환장해 춤추네/싸구려 천지 자뻑의 잔치뿐 (중략) 쩔어 사시네 서글픈 관종이여”라며 “아이러니 왜 이러니 죽쒀서 개줬니?/아이러니 다 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꺼져라! 기회주의자여”라고 울분을 토해내듯 노래한다.
안치환은 신곡을 발표하며 밝힌 ‘기획의도’에서 “세월은 흘렀고 우리들의 낯은 두꺼워졌다. 권력은 탐하는 자의 것이지만 너무 뻔뻔하다. 기회주의자들의 생명력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며 “시민의 힘, 진보의 힘은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안치환은 7일 전화통화에서 “내가 쓴 기획의도에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담았다. 누군가 서운하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바로 부끄러운 자다”라며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시점과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08.05 "불륜은 맞지만 폭행은 안했다" 박상철, 결국 '트롯 전국체전' 하차
/연합뉴스
가정폭력 및 이혼 소송 논란에 휩싸인 가수 박상철(51)이 출연 예정이었던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트롯 전국체전'에서 하차했다.
'트롯 전국체전' 측은 4일 공식 입장을 내고 "박상철씨의 소속사와 협의 끝에 프로그램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하차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날 오전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의 보도를 통해 박상철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디스패치는 박상철이 혼인 중이던 지난 2007년부터 13세 연하의 여성 A씨와 외도하면서 혼외자까지 두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박상철은 2014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2016년 A씨와 정식 결혼했는데, 혼인신고 4개월 만에 이혼 소장을 접수해 취하와 소송을 반복했다고 한다. A씨는 박상철을 상대로 폭행치상, 특수폭행 및 폭행, 협박 등 혐의로 4차 례 이상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철은 이날 YTN Star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불륜설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고 내 잘못이 맞다"면서도 "A씨를 폭행한 적은 없다"며 최초 보도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무명 시절을 보내던 박상철은 2002년 '자옥아'를 시작으로 '무조건' '황진이' 등 히트곡을 내며 인기 가수가 됐다.
조선일보 김은경 기자
09월 01일 K팝 저력 또 보여준 BTS ‘빌보드 핫 100’ 한국 최초 1위
7인조 보이 그룹인 방탄소년단(BTS)이 K팝의 저력을 또 보여줬다.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 빌보드는 BTS의 영어 노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올랐다고 1일 발표했다. 대중가요의 세계 인기 척도인 해당 차트의 정상을 한국 최초로 차지하며, 한류(韓流)를 주도해온 K팝 역사도 새로 쓴 쾌거다. 그런 성취가 일회성이 아닌 배경도 의미가 크다.
BTS 구성원 모두 노래·춤뿐 아니라 영어도 능숙하다. 이들을 2013년 데뷔시킨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걸출한 창의력에 세계를 겨냥한 기획력도 두드러진다. 그 조합으로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왔다. BTS는 지난 2월 발매한 제4집 앨범 타이틀 곡 ‘온(On)’으로 ‘핫 100’ 차트 4위에 올랐다. 그 전에 ‘페이크 러브(Fake Love)’가 10위, ‘작은 것들을 위한 시(詩)’가 8위 등 정상을 향해 꾸준히 전진해왔다.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도 2015년 처음 든 뒤, 2008년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부터 지난 2월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 7’까지 4개가 정상을 밟았다.
‘아시아의 별’ 보아가 한국 가수 처음으로 2009년 ‘빌보드 200’에 127위로 이름을 올린 이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2012년 ‘핫 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차지하며 세계 전역에 선풍을 일으키는 등 K팝이 걸어온 도전과 진화(進化)의 여정이 더 계속될 것임은 물론이다. BTS가 그 길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도 국민 모두 뿌듯해할 일이다.
문화일보 사설
09.07 '코미디언 출신' 신소걸 목사, 코로나 치료중 사망…향년 79세
/신소걸 목사. 사진 CBS 제공
전광훈 목사와 함께 반정부 집회에 참가해 온 신소걸 목사(순복음우리교회)가 6일 별세했다. 79세
국민일보는 이날 고인의 부고를 전하며 “지난달 1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의료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보수·우파 유튜버들도 이날“애국 목회자인 신소걸 목사님이 순국·순교했다”며 일제히 사망 소식을 전했다.
고인은 연극배우 활동을 거쳐 1968년 TBC 동양방송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이후 서울중앙방송, MBC 등에서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대표 방송으로는 ‘웃으면 복이 와요’, ‘부부만만세’ 등이 있다.
사업 실패와 도박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던 신소걸은 아내의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1973년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하고 최근까지 목회자의 삶을 살아왔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신동아 2020. 10월 호
■가요, 대중의 기억을 기록하다
“뭔가가 내 마음에 들어와 여기서 뭉글뭉글할 때,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최규성(59)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참 열심히 사서 모았다.
‘키다리 미스터 김’을 부른 가수 이금희의 무대의상, 1966년 나온 대중가요잡지 ‘가요생활’ 창간호,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만든 기타 악보집 같은 것들.
아직 누구도 대중문화를 ‘기록해야 할 가치’라고 여기지 않던 시절부터다.
그의 노력 덕에 어쩌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렸을지 모를 한국 가요계의 소중한 순간이 오늘까지 남았다.
“나는 그저 ‘잡놈’인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최 대표의 컬렉션을 공개한다.
가수 김목경 1집 LP를 찍어낸 금속 원판(stamper). 이 원판을 고열로 LP에 찍으면 음반이 만들어진다. 보통 금속 원판(stamper)은 쉽게 마모되어 한 장당 750장 정도를 LP를 프레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집가들은 처음 제작해 골이 깊어 음질이 좋은 초반 LP를 선호한다.
가수 남진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 와 만든 데뷔 앨범.
주현미가 중학생 시절 발매한 데뷔 앨범.
하춘화의 어린 시절 모습이 재킷을 장식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가수’ 독집. 1962년에 1000장이 제작된 이 10인치 LP는 현재 고가의 희귀 앨범이 되었다.
1975년 당시 인기 가수들이 전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가요대행진’ 포스터. 이같은 가수관련 영화와 극장쇼 포스터는 개체 수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한 영국밴드 비틀스의 불법 복제 앨범. 일명 ‘빽판’이라 불렸다.
냇 킹 콜의 생애 마지막 공연 실황이 담긴 ‘빽판’. 콜은 한국에서 열린 이 공연 직후 미국으로 돌아가 사망했다.
추억의 대중가요 8트랙 오디오 테이프들. 일명 8트랙 카트리치 테이프로도 불렸다. 최초의 자동차용 음악 포맷으로 인기가 높아 1970년대 대부분의 앨범이 8트랙 카트리지 테이프로 출시되었다.
1980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조용필 1집 음반(오른쪽) 재킷에서 영감을 받아 김동유 작가가 창작한 조용필 초상화. 픽셀 모자이크 화법을 사용했다.
조현수 작가가 가수 유재하 독집 재킷을 보고 창작한 미술작품. 제목은 ‘Long-playing Record’다.
현인이 부른 대중가요 명곡 ‘비 내리는 고모령’의 배경인 대구 고모령과 가까운 곳에 있던 간이역 ‘고모역’의 마지막 역장이 착용했던 모자. 2006년 고모역이 폐쇄되었을 때 최 대표가 찾아가 구해 소장하고 있다.
‘키다리 미스터 김’의 가수 이금희가 공연 때 썼던 밍크 모자와 케이스(왼쪽). 50-60년대 당시 남대문4가에 소재했던 국내 수제 모자 제작사로 유명했던 ‘경모사’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은 이금희가 1967년 받은 ‘MBC 10대 가수상’ 상패.
밴드 ‘백두산’(좌)과 ‘아시아나(우)’의 멤버였던 김도균이 앨범 재킷 촬영 때 입었던 가죽 점퍼(아래)와 관련 사진. 김도균은 우리나라 ‘3대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가수 이금희가 입었던 무대 의상(왼쪽)과 직접 입고 공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사진.
포크팬 사이에서 전설의 음반으로 통하는 가수 윤연선의 1972년 발매한 첫 독집 ‘평화의 날개’ 재킷(왼쪽). 윤연선은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 ‘얼굴’을 부른 가수다. 오른쪽은 그가 60년대 말에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첫 기타로, 첫 독집 재킷 사진에서 윤연선이 연주하는 바로 그 실물 기타이다.
1 1959년 세광출판사에서 발행한 대중가요 3집 노래책. 2 1966년 발행된 대중가요 잡지 ‘가요생활’ 창간호. 3 60년대에 발간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첫 기타 악보집.
대중가요를 주제로 창작된 만화들.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이 눈에 띈다.
신중현사단의 전설적인 여가수 김정미의 1973년 발매 카세트테이프.
박효신 1집 홍보용 초반(왼쪽)과 재반. 재킷 사진이 서로 다르다. 팬들과 수집가 사이에서는 소량만 제작된 홍보용 초반의 인기가 높다.
그룹 국카스텐이 2009년 발매한 1집 앨범. 딱지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재킷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가수 인순이(왼쪽)와 이은하가 주연을 맡은 영화 포스터.
반세기 동안 대중가요 관련 자료를 수집해 온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1958년 출시된 한국 최초의 LP.
일제강점기이던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직인이 선명한 국내에서 생산된 진공관 라디오(왼쪽). 1972년 열린 제5회 난영가요제 트로피.
국내 걸그룹 최초로 1959년 미국에 진출한 김시스터즈의 미공개 데뷔 유성기 음반. 김시스터즈는 미국 현지에서 데뷔음반을 발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진귀한 음반은 최 대표가 최근 발견해 최초 공개를 했다. 국내에서 1955-56년(추정) 제작한 이 음반은 팀 이름 없이 멤버 이름 애자, 민자, 숙자로 표기했고 ‘블루 카나리아(Blue Canary)’ 등 외국곡을 번안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글 홍중식 기자 free7402@donga.com
월간조선 10월 호
■BTS ‘K팝’이란 신화로 세계 팝 시장을 ‘분쇄’하다!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7인조 슈퍼그룹 BTS(방탄소년단)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인 ‘핫 100’에서 2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3주 차에서는 2위였다. 이들은 차트에 진입하자마자 1등을 했는데, 이는 1958년 빌보드 싱글차트가 시작된 이래 불과 43곡밖에 없다. 엘튼 존,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같은 팝의 레전드나 차트 진입과 동시에 1위를 했는데 한국의 K팝이, 우리의 BTS가 해낸 것이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앞서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7주 연속 차트 2위(2012년 10월 6일~11월 17일)를 차지했다. 팝의 본고장, 미국의 자존심 때문인지 엄청난 인기에도 1위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신화를 쓴 BTS는 지민, 슈가, 진, 뷔, 정국, RM, 제이홉 등 7인조 아이돌 밴드다. 공식 데뷔는 2013년 6월 13일. 싱글 앨범 〈2 COOL 4 SKOOL〉로 데뷔했다.
이들은 이미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았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시킬 만큼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다. 이미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외신에서는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라고 칭송했다.
이번에 ‘핫 100’ 1위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시간과 엄청난 노력, 땀이 있어 가능했다. BTS를 만든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는 지난해 2월 26일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오늘날 자신을 만든 힘은 ‘화’였다고 밝혔다. “분노의 화신(化身) 방시혁처럼 여러분도 분노하고 맞서 싸우기를 당부한다”는 말이 지금도 여운을 준다.
미국의 경제매체 ‘CNBC’는 지난해 11월, BTS가 다음 10년간 한국 경제에 37조원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줄 것으로 추정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BTS가 46억5000만 달러(약 5조5283억원)의 국내총생산(GDP)을 창출한다는 국내 기사가 나왔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8년 한국의 명목 GDP 1조6194억 달러(약 1924조원)의 0.29% 규모다.
‘핫 100’ 1위곡인 ‘다이너마이트’가 한국 경제에 미칠 효과를 따졌더니 1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분석인데, 생산 유발 효과는 1조2324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4801억원, 여기다 7928명의 인력 고용을 창출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미국과 영국 등 팝의 본고장이 놀라고, 세계가 놀라고,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중국도 부러운 시선으로 한국을, 한국의 K팝을, BTS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 아이돌 스타인 저스틴 비버가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공유하고 직접 해설까지 한 동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미국 전역의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왔다”면서 “역사에 남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 K팝 그룹은, 전 세계의 음악업계에서 다양한 기록을 분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분쇄’라는 단어가 강한 어감으로 들렸다.
K팝은 특유의 아이돌 퍼포먼스 음악이 먼저 떠오르지만 향후 K-록, K-힙합, K-동요가 로큰롤・랩・동요 시장을 석권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가능성은 BTS로 이미 검증됐다.
어쩌면 ‘한국의 팝 음악’이라는 지역적·인종적 한계를 넘어 전 세계의 유명한 댄서나 가수가 K팝의 아티스트를 꿈꾸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10.01 나훈아 두시간 열창하며 소신발언 “두고보세요, KBS 거듭날 겁니다”
공연중 KBS 향해 에둘러 쓴소리
“역사책 봐도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위해 목숨 거는 거 못 봤다”고
/KBS2TV
“KBS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무려 15년만에 TV에 출연해 ‘대한민국 어게인!’을 외친 가수 나훈아의 눈매는 여느 때보다 인자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30일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로 2005년 이후 처음 TV에 나온 트로트 가수 나훈아는 말 그대로 “무대를 씹어먹을 듯한” 카리스마와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해 출연료 없이 나왔다는 나훈아는 ‘홍시’ ‘무시로’ ‘잡초’ ‘영영’ ‘사내’ 등 수많은 히트곡을 한치의 흔들림없이 열창한 것은 물론, 중간중간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제2부-사랑’편에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고 등장한 나훈아는 ‘깜짝 MC’로 등장한 김동건 아나운서와 대화 중에 공영방송 KBS를 에둘러 쓴소리했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소신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훈아는 코로나 방역의 영웅인 의사와 간호사들을 칭송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2부, 3부에서 이어진 나훈아의 묵직한 입담에 시청자들은 “역시 나훈아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 되라는 나훈아의 말을 명심해라” “나훈아씨가 오늘 KBS에 거듭나라고 말하던데 사장이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훈아가 진짜 애국자다” 같은 댓글을 쏟아냈다.
/KBS2TV
“(나라가 주는) 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는 김동건 아나운서 질문에 나훈아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언론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저를 보고 신비주의라고 하는데 가당치 않습니다. 언론에서 만들어낸 것이죠.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꿈이 고갈된 것 같아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저더러 잠적했다고들 하대요. 뇌경색에 걸려 혼자서는 못 걷는다고도 하고요. 이렇게 똑바로 걸어다니는 게 아주 미안해 죽겠습니다. 하하!”
노래는 언제까지 부를 것이냐는 질문에 나훈아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내려올 자리나 시간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이제는 내려올 시간이라 생각하고, 그게 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훈아의 ‘소신’과 ‘자유로운 영혼’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로 열린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나훈아가 참석하지 않으면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었다. 평양을 방문한 도종환 당시 문체부 장관에 따르면, 나훈아가 평양에 오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스케줄이 바빠서 못 왔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국가가 부르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조선일보 최보윤 기자
10.02 ‘트롯 100년’ 대상에 이미자, 특별상 장윤정... 임영웅은 6관왕
/TV조선
트로트 100년사를 결산하고 앞으로 트로트 100년을 모색하는 ’2020 트롯어워즈' 대상의 주인공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였다.
이날 ‘동백꽃아가씨’와 ‘내 삶의 이유있음은’을 열창하며 후배들을 위한 축하 무대를 꾸몄던 이미자는 TV조선 김민배 사장이 시상자로 나선 ‘대상’에 호명되자 우아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미자는 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7홀에서 열린 이번 ’2020트롯어워즈'에서 “본의 아니게 이 자리에 서게 됐다”면서 “후배 가수를 격려하기 위해 축하 무대를 허락했는데 후배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상의 영예를 안은 이미자를 향해 후배들이 기립 박수로 환호를 보내자, “후배들이 지켜줘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할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게 선배로서의 생각”이라면서 “가요 100년이 그간 어렵고 힘들었던 우리를 위로하는 자리였다”고 말을 이었다. “아픔도 많이 겪었습니다. 여러 좋은 여건에서 세계적으로 알릴수 있는 TV조선 관계자에게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의 100년은 후배들이 이끌어갈 겁니다. 100년의 앞날을 꼭 굳건히 지키고 정말 후배들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길 빌 겠습니다."
/TV조선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힘내세요”를 외친 이미자는 후배를 향한 조언을 당부하는 MC 김성주의 말에 “팬들에게 실망끼쳐드리지 않는, 공인이기 때문에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면서 “노래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그를 둘러싼 후배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TV조선
이날 신영균 회장의 시상으로 진행된 ‘심사위원 특별상'은 가수 장윤정이 수상했다.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더니 시상대에서 눈물을 펑펑 울려 다른 동료 후배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하춘화가 함께 장윤정의 팔을 붙잡고 무대에 오르며 ‘선후배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선사하기도 했다. 장윤정은 눈물 섞인 소감을 쏟아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상복이 너무 많아서 상을 너무 많이 받았었는데 선배님들이랑 같이, 이미자 선생님 노래하시는 거 보고 저렇게 계속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선배님들 뵈면서 자신 없어지기도 하고, 선배님들 모습에서 제 나중을 자꾸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선배님들 무대를 봤는데 건강하게 오랫동안 노래해주셨으면 좋겠다. 후배들 손 붙들고 탄탄히 끊어지지 않게 열심히 노래하도록 하겠다."
장윤정의 눈물에 이찬원, 영탁, 임영웅 등도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장윤정은 “너무 못생기게 나오는 것 같아”라면서 객석을 울리다 웃기더니 아이들을 향해 “엄마 노래하는 사람이야. 항상 아낌없이 사랑해주시는 팬분들께 선배님들 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후배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상이 되도록 가운데서 역할 잘할게요”라고 마무리했다.
이날의 스타는 또 있었다. ’2020 트롯어워즈'에서 6관왕을 거머쥔 가수 임영웅이다. 그는 6번째 상인 ‘남자인기상’을 수상하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 때문에 품에 안은 상이었지만 “트롯맨 동료들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면서 한 없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국민투표로 ‘남자 인기상’을 수상한 임영웅은 “많은 분께서 경연때부터 관심을 가져주시고 사랑을 주셨다. 안 좋은 시기에 정말 감사하게도 저희 트롯맨들이 국민 여러분께 위로와 감동을 드릴 수가 있었다.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많이 부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영웅은 앱에서 진행된 국민투표 총 2700만여 표 중 1800만여 표를 차지했다. 그는 ″저를 사랑해주신 팬들이 주신 상으로 생각하고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TV조선
임영웅은 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7홀에서 열린 이번 ’2020트롯어워즈'에서 가장 처음 시상 부문으로 열린 ‘남자 신인상’을 수상한 데 이어 2부에서 열린 ‘K트롯테이너’ 상도 받았다.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수상 부문으로 끼와 재능을 보인 ‘K트롯+엔터테이너’에게 주는 상이다. 임영웅은 3부에서 호명한 ‘디지털스타상’ 트로피까지 안으며 6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디지털 스타상은 온라인 조회수, 검색량 등 디지털에서 인기를 누린 스타에게 주는 상이다. 임영웅은 수상하면서 “이거 꿈은 아니죠?”라면서 계속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또 국민투표 100% 진행되는 ‘글로벌스타상'에선 득표율 54.65%로 수상하면서 K트롯을 전 세계 알릴 스타로 뽑혔다. 또 10대들만 뽑는 ’10대가 뽑은 트롯 가수상’에도 52.33%의 득표율로 계속 왕관의 주인공이 됐다.
임영웅은 ‘미스터트롯’ 진으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트로트 부흥의 주인공이 됐다. 임영웅은 K트롯테이너 상을 받으면서 소감에서 “앞에서 상을 받을 때 말을 제대로 못한 거 같아서 다음 어워즈가 열리면 준비를 해야 겠다 생각했는데 또 상을 받을 지 몰랐다”면서 “제가 이자리에 올라 상을 받고 있지만 노래한지 3~4년 밖에 안됐다. 앞서 선배님들이 우리 국민이 힘들 때 노래로 위로해 주시며 전통 가요가 인기 끌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임영웅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로부터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미자는 시상에 앞서 “한국 전통가요가 어느때보다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K트롯을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이 상을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라고 진한 후배 사랑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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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은 “제가 받을 거라곤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고 수상소감을 열고는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생각 안나는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가수 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고 두 팔 번쩍들어올리며 환호했다. 객석의 영탁은 ‘찐이야’ 포즈로 임영웅의 수상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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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신인상 수상자로 호명된 송가인은 아쉽게 시상식 현장에는 오지 못했다. 송가인은 국민투표로 진행된 ‘여자 신인상' 부문에도 수상자로 선정되며 2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한편 이날 가수 정동원은 ‘트로트 대부’ 남진과 함께 오프닝 무대를 꾸며 환호를 이끌어냈다. 남진의 히트곡 ‘파트너’로 함께 호흡하며 또 다른 완벽한 ‘파트너’를 선보인 정동원은 시원한 발성과 애교 넘치는 몸짓으로 ‘대부’ 남진을 연신 웃음짓게 했다. ‘파트너’는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장민호와 ‘레전드 미션’에서 선보였던 곡. 당시 체크 멜빵 바지에 보타로 맞춘 의상에 다채로운 화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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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와 어린왕자와의 만남에 장민호도 훈훈한 ‘아빠 미소’를 보내며 더욱 크게 박수를 보냈다. MC 김성주는 “트로트 100년 의미를 여실히 살려준 무대”라면서 “1965년에 데뷔한 대부 남진과 2019년 데뷔한 막내 정동원이 꾸민 무대는 세대를 아우른다”고 강조했다.
정동원은 2부에서 한복을 입고 자신의 데뷔곡 ‘효도합시다’를 다시 한번 열창해 객석의 누나 형님 삼촌 이모들을 들썩이게 했다. 카메라는 그의 ‘파트너’인 남진과 장민호를 번갈아 비추며 따스하게 정동원을 응원하는 시선을 포착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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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찬또위키’로 유명한 이찬원은 ‘트롯 100년사’를 조명하는 영상을 선보이며 일목요연하게 역사를 정리해 찬사를 받았다. 임영웅, 영탁, 이찬원, 정동원, 장민호, 김희재 등 트롯맨 톱 6가 꾸민 ‘사랑’에 관한 무대 역시 다채로운 무대와 뮤지컬 배우 못지 않은 호흡이 눈에 띄었다.
/2020트롯 어워즈 시사식에 참석한 미스터 트롯 탑 6 맴버들. 영탁 장민호 정동원 김희재 이찬원/TV조선
이날 ‘트롯 100년 남자 베스트 가수상’엔 진성, 조항조, 박현빈, 신유가 수상했고, 베스트 여자 가수상엔 금잔디, 홍진영, 김용임, 김혜연이 영광을 안았다.
‘트롯 100년 작가상’을 수상한 작사가 정풍송의 묵직한 수상 소감도 화제가 됐다. 정풍송 작곡가는 ‘허공’ ‘미워미워미워’ ‘갈색추억’ ‘웨딩드레스’ 등 2000여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주인공으로 패티김 이미자 최희준 조영남 조용필 인순이 최진희 김연자 설운도 주현미 등 당대 인기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작가상 시상에 나선 ‘전국노래자랑’의 명MC 송해는 "늘, 아플 때나 외로울 때나 어려울 때나 불렀던 우리 트로트가 금년으로 100년을 맞았다고 한다. 내 생년월일이 1927년 4월 27일인데 트로트 역사와 거의 같은 세월을 지내왔구나 싶다”면서 질곡의 세월을 함께 이겨낸 순간들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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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풍송은 “감사하다. 너무나 험난했던 우리나라였다. 일제 탄압의 고통 속에서 6.25 전쟁에서 버틸 수 있던 건 대중가요 역할이 컸던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또 “그만큼 앞으로 역할도 크다. TV조선에서 대중가요를 다시 조명해 주고 앞으로 길 여는데 큰일 해줘서 정말 고맙다”면서 "우리 대중가요 앞으로 더욱 발전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는데 같이 이바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노래하겠다”고 밝혔다.
▶ 이하 ’2020 트롯 어워즈' 수상자 명단
△ 신인상=임영웅 송가인△ 남자 베스트 가수상=진성 조항조 박현빈 신유△ PD가 뽑은 라이징 스타상=영탁△ 트롯 100년 작가상=정풍송△ 여자 베스트 가수상=김용임 김혜연 금잔디 홍진영△ K트롯테이너상=임영웅△ 글로벌 스타상=임영웅△ 10대가 뽑은 트롯 가수상=임영웅△ 트롯 100년 가왕상=송대관 현철 태진아 김연자 김수희 하춘화 남진 나훈아 설운도 주현미 장윤정△ 디지털 스타상=임영웅△ 인기상=임영웅 송가인△ 공로상=남진△ 트롯 100년 심사위원 특별상=장윤정△ 트롯 100년 대상=이미자
10.14 블랙핑크 1위, BTS 2위…빌보드 아티스트 100까지 K팝 세상
/빌보드
걸그룹 블랙핑크가 미국 빌보드 ‘아티스트 100’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2위는 방탄소년단(BTS)이 차지했다. 아티스트 100 차트는 팝스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이 차트에서 K팝 그룹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것이다.
빌보드는 13일(현지 시각) 블랙핑크가 아티스트 100 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블랙핑크는 이전 주에 65위를 기록했지만, 정규 앨범 ‘디 앨범’의 발매에 힘입어 순위가 급상승했다. 지난 2014년 이 차트가 발표되기 시작한 이후 걸그룹이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주 아티스트 100 차트 2위는 BTS다. 빌보드는 “2개의 K팝 그룹이 최상위권을 독차지했다”고 전했다. BTS는 지난주 3위, 2주 전 1위를 차지하는 등 아트스트 100 차트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다.
아티스트 100은 팝스타들의 영향력과 인지도를 한 눈에 보여주는 차트로 꼽힌다. 앨범과 싱글 판매량, 라디오 방송·스트리밍 횟수, 소셜미디어 활동 등을 종합해 집계한다.
11.08 배우 송재호, 7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
/배우 송재호. /연합뉴스
고인은 1939년 평안남도 평양 태생으로 동아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해 1959년 부산 KBS 성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후 ‘용의 눈물’ ‘왕과 비’ 장미와 콩나물' ‘상도’ ‘부모님 전상서’ ‘화려한 휴가’ ‘해운대’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드라마에서 주로 아버지 역할을 맡아 ‘국민 아버지’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자전차왕 엄복동’ ‘질투의 역사’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고인은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사격종목 보조 심판으로 참가했다. 환경과 야생동물 등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까지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자녀로는 4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발인은 10일 화요일이다.
조선일보 김승현 기자
■시간여행
/최무룡 김지미 안성기
뤌간조선 12월 호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김성환 작가
“35년간 지켜본 연예인의 삶이란”
⊙ “연예인 자살, 고민 털어놓을 친구 없어… 방송에 소개할 친구 없어 친구 만들어주기도”
⊙ 최진실-조성민과의 인연, 잇따른 비극에 트라우마
⊙ 출연자가 울어야 시청률 잘 나와… “성공담보다 실패담 좋아하는 한국 사회”
⊙ 팬덤의 쏠림 현상, 인기의 유효기간이 짧은 한국
金成煥
1962년생. 1985년 KBS 공채 작가 출신 / 〈젊음의 행진〉 〈백분쇼〉 〈빅쇼〉 등 200여 프로그램 방송작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구성 담당 및 패널 출연 / 現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작가
/사진=조준우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삶일까. 지난 11월 2일 또 한 명의 연예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개그우먼 박지선. 슬픔이라는 단어 외엔 별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 죽음이다. 오랜 기간 병과 싸워왔다는 뒷얘기가 공개됐다.
김성환 작가는 오랜 기간 연예인들의 삶을 지켜봐 왔다. 1985년에 KBS 공채 작가로 입문했으니, 35년째다. 지금은 TV조선에서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를 맡고 있다. 제목 그대로 매주 한 스타의 인생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대중의 기억 속에 별처럼 박혀 있는 연예인들이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난 10월 26일 김 작가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진실과 조성민
/2000년 12월 5일 하얏트호텔에서 결혼한 최진실과 조성민. 사진=조선DB
김 작가는 마주 앉자마자 문득 그 이름을 꺼냈다. 배우 최진실. 많은 한국인에게 슬픔을 넘어 아픔으로 새겨진 이름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을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딱 20년 전인 2000년 12월 최진실은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결혼 뒤에 김 작가가 있었다.
“두 사람은 제 기억 속에 주홍글씨로 박혀 있어요. 제 프로그램 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됐거든요. 1998년 조성민씨가 일본 요미우리에서 뛸 때였어요. 토크쇼 게스트로 힘들게 섭외했어요.”
― 최진실씨와 같이 출연했나요.
“사전 인터뷰라는 걸 하잖아요. 운동만 해서 그런지, 조성민씨를 처음 만났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순박했어요. 방송 내용을 구상해야 하니까 이것저것 묻다, 혹시 소원이 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최진실씨를 한번 만나보는 게 소원이라는 거예요.
― 최진실씨 팬이었나 보죠?
“어느 정도였냐면 최진실씨가 출연한 드라마·영화 대사를 줄줄 욀 정도였어요. 집에 가보니 방에 브로마이드며 최진실씨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때 왠지 연결해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소원은 오직 최진실”
― 왜 그렇게 느꼈을까요.
“최진실씨는 정상의 연예인인 데 반해, 조성민씨는 운동만 한 너무나 순박한 청년이었어요. 그래서 소원을 바꾸라고 얘기했어요. 다른 소원은 없냐고요. 오직 최진실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 번 얘기했어요. 소원을 바꾸라고요.”
― 결국 안 바꿨군요.
“오직 최진실이라는 거예요. 결국 최진실씨한테 연락을 했죠. 조성민씨를 알고 있더라고요. 영화 촬영 중이었는데도 출연하러 온 거예요. 최진실씨의 적극적인 모습이 왠지 불안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잘 나갔고 각종 일간지에 ‘의남매가 됐다’ 기사로 도배가 됐어요. 조성민씨가 고맙다고 제작팀 회식을 여러 번 주선했어요.”
― 두 사람이 또 만났네요.
“최진실씨가 매력이 있잖아요. 운동만 한 운동선수가 자신이 꿈에 그렸던 여인을 만나니 빠져드는 거예요. 몇 번 같이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져 있는 거 보고 불안했어요.”
― 뭐가 불안했나요.
“정상급 스타들은 결혼생활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조성민씨는 운동만 해서 너무 순수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둘은 맞지 않는 거 같았어요. 비밀리에 두 사람 사이는 깊어졌고 둘 다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들러리로 제가 식사 자리에 같이하곤 했어요. 드디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주는데, 불안한 거예요.”
― 그 느낌이 틀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결혼을 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졌잖아요. 제가 소개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마치 저 때문에 일어난 일처럼, 부모님들한테 원망을 듣고…. 그렇게 슬픈 일이 벌어질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제게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게다가 전 한 남자의 몰락을 봤잖아요.”
― 조성민씨 얘기군요.
“전도유망한 야구선수였는데 나중엔 ‘때려죽일 남편’으로 알려졌잖아요. 그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 뒤에도 몇 번 만났어요. 저한테 오히려 묻더라고요. ‘제가 뭘 해야 할까요’라고. 대답을 해줄 수 없었어요.”
― 야구를 계속했으면 됐을 텐데요.
“야구도 과거처럼 잘 되지 않고, 나이는 먹어가고. 사회적인 인식이 너무 안 좋다 보니까 이 나라에서 본인이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줬는데…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마음 통하는 친구 없는 연예인들
최진실·최진영 남매와 조성민씨의 잇따른 죽음은 연예계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상흔(傷痕)을 남겼다. 특히 최진실씨의 자살이 준 충격은 엄청났다. 전 국민이 그녀의 데뷔부터 결혼과 이혼, 슬럼프와 재기까지 지켜봐온 터라 마치 지인의 죽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김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오랜 기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또 나올 수 있을까요. 최진실씨는 정상급 스타이면서도 방송에 자주 출연했어요. 자기를 숨겨 보여주지 않고 하지 않았어요. 팬들과 소위 ‘밀당’을 잘 한 거죠. 지금은 한번 뜨면 무조건 자신을 안 보여주는 식이에요. 그게 무조건 맞는 것도 아니거든요.”
― 애초에 최진실씨는 왜 목숨을 끊었을까요.
“술김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었어도 그런 비극은 안 일어났을지 몰라요. 연예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시련을 감내할 수 있는 참을성이 낮지 않나 싶어요.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본인이 힘든 걸 자존심 때문에라도 주변에 얘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는 것만으로 짐을 덜 수 있기도 하잖아요. 마음을 다 보여줄 만한 단 한 명의 친구가 없었던 거죠.”
이상하게도 200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유니, 이은주,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최진영 남매, 박용하…. 오죽하면 당시 시사 프로그램에서 ‘수면제’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놨을 정도였다. 김 작가의 생각은 이렇다.
“왜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겠냐고요. 그만큼 머리가 항상 무거웠다는 거죠. 그 사람들 옆엔 이용해서 장사하려는 사람만 있었지, 아픔은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은 거예요. 물론 두려움도 있었을 거예요. 괜히 털어놨다 소문나고 기사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연예인들끼리라도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구조상 그게 안 돼요.”
스타가 家長이 되는 이유
― 이제 와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최진실·조성민씨는 각자 평범한 사람을 만났으면 잘 살지 않았을까요.
“지명도가 톱으로 올라선 배우나 가수는 혼자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신(神)이 다 주질 않아요. 그들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사람들이 잘 몰라요.”
― 대중에 노출되는 어려움일까요.
“집안에 유명한 사람이 한 명 나오면 나머지 가족의 이름은 다 없어지잖아요. 누구의 남편, 누구의 동생, 누구의 아들딸로 살아야 하죠. 학교든, 직장이든 어디에서나 주목을 받고요. 다른 가족은 잘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 스타의 기(氣)에 눌린다고 할까요.”
― 반면에 집안의 경제적인 ‘가장(家長)’ 노릇을 하는 연예인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가족 입장에서 보세요. 사실 연예인이라는 건 특수한 직업인데 그 생각을 못 하는 겁니다. ‘나는 기껏 일해도 한 달에 몇백만원 버는데, 가수 동생은 광고 하나 찍으면 몇억을 벌어오네’ 그러다 보니 내가 일해서 버는 몇백만원은 돈도 아니게 느껴지는 거예요.”
―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겠군요.
“‘직장을 다니느니 차라리 얘 뒷수발하면서 용돈이나 받아 쓰는 게 훨씬 낫겠다’ 그러다 보니 결국 온 가족이 연예인한테 기대서 살게 돼요. 형제는 운전하고 누구는 스타일리스트처럼 쫓아다니는 식이에요. 이 사람이 일을 안 하면 온 가족이 굶게 되는 거예요.”
― 돈이 잘 벌릴 때야 좋겠지만요.
“이상한 게 가족이 연예인이 버는 돈은 쉽게 버는 돈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어떤 고생의 대가인데 말이죠. 그리고 언제까지나 돈을 잘 벌 거라 생각해요. 심한 경우는 가족이라는 위치를 이상하게 활용해요. 내가 누구 엄마인데 돈 좀 빌려달라, 누구 형인데 투자를 해달라 하는 식으로요. 사실 그게 뭐가 대단해요. 근데 또 우리 사회가 유명인이라면 대우를 해주니까요.”
― 떠오르는 이름이 여럿 있네요.
“법원에 갔다가 친한 여배우를 마주쳤어요. 선글라스를 끼고 왔더라고요. 어쩐 일이냐고 물었죠. 시간이 있냐고 하더라고요. 근처 카페로 갔는데 막 울어요. ‘엄마가 내 이름으로 수입차를 여러 대 사서 돈을 안 낸다. 독촉장이 오고 난리다’… 그 엄마는 이런 심리인 거예요. ‘갚아주겠지, 알려지면 창피하니까.’
부자 연예인은 1%
― 자칫 가족의 유대도 깨지겠네요.
“연예인이라고 해서 돈을 다 잘 버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잘된 사람들만 보잖아요. 호화롭게 사는 연예인은 전체의 1%가 될까요? 전체 연예인을 보면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아요. 누가 강남에 빌딩을 샀다는 건 기사화되지만, 누가 잔고에 2만원밖에 없다 이런 기사는 안 나오니까요.”
― 고금리 사채업 쪽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연예인들이 급전을 빌리러 꽤 이용한다더군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좋은 면만 있지 않다는걸요. 연예인들이 배려가 뭔지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연세 많은 분들이 더 그래요. 예전엔 매니저 없이 혼자 다 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러다 보니 본인 말이 다 옳은 거예요.”
― 사기당했다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들의 주변인들을 만나보면 ‘예스맨’만 있어요. 경제력은 있고, 연예인을 지인으로 두고 싶어 하는 이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만 주위에 있더라고요. 벌거숭이 임금님인 거예요. 작정하고 사기 치려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입속의 혀처럼 굴어요.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고 정확하고 입바른 소리 해주는 사람은 멀리해요.”
― 친구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평생 줄을 서 있었을 테니까요.
“희한하죠? 연예인들끼리도 안 친해요. 방송 나와서 마치 친한 것처럼 말하는데, 표면적인 친분이고 진짜 친하진 않더라고요. 한번 경쟁자는 평생의 경쟁자더라고요. 친분관계가 오래가려면 서로 주고받고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그 노력을 안 해요. 본인 중심적인 사고가 굳어져 있어요. 매니저나 스태프가 다 해주니까요.”
― 연예인들끼리 별로 안 친한 건 좀 이상하네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칭찬할 때가 있잖아요. ‘그 배우 참 괜찮더라’ 그러면 막 욕을 해요. ‘당신이 그 사람을 몰라서 그렇다. 얼마나 남자관계가 문란한 줄 아느냐’… 없는 얘기도 지어내서 깎아내리는 거예요. 황당하죠.
배우로 전업하는 이
― 요즘 활동하는 어린 연예인들은 좀 낫지 않나요.
“그들도 고충이 있어요. 아이돌이 매년 새로 쏟아지잖아요. 밀려날 수밖에 없죠. 1990년대, 200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정말 많은 댄스그룹이 등장했어요. 솔로들은 자기 히트곡이 있으면 어디 가서 행사라도 할 수 있어요. 그룹의 멤버였던 사람들은 달라요. 그룹 이름은 알아도 개개인은 누군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해요. 나중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 하긴 아이돌 그룹이 너무 많아서 개개인은 잘 알아보지도 못 하겠더군요.
“그래서 결국은 가수로 얼굴을 알려놓고 배우로 전업하잖아요. 배우는 나이 먹어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도 잘해야 오래갈 수 있죠. 배우로 갈아타서 살아남느냐 퇴장하느냐 갈림길이에요.”
― 가수냐 배우냐에 따라 성격적 차이점들이 있나요.
“영화나 드라마는 협업이잖아요. 배우들은 드라마 촬영하면서도, 다른 사람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되고 배려심도 배우지요. 가수들은 자기 무대만 하면 끝이에요. 대화, 배려 다 없어도 활동할 수 있어요. 개그맨들은 배우와 비슷해요. 같이 아이디어를 짜야 하니까요.”
― 가수들이 자칫 배려심이 부족해질 수 있겠군요.
“흔히 ‘빠’라고 하는 팬덤이 가수들한테 많잖아요. 자기 무대에선 왕인데다, 항상 팬들이 좋다고 함성 질러주지, 만날 뭐 먹어보라고 갖다주지. 지하철역에 보면 누구 생일이라고 팬들이 전광판에 광고를 하잖아요. 부모가 힘들게 번 돈을 왜 그런데 쓰나 싶어요.”
노래 듣다 떠들었다며 뺨 때린 국민가수
― 그래도 정상급 스타들은 인성이 좋지 않나요? 그래야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국민가수로 불리는 분이 있어요. 이분은 지인들과 노래방에 가면 자기 노래만 불러요. 분위기에, 합석한 사람 또한 다른 가수 노래는 일절 못 불러요. 놀러 간 건데 본인 콘서트를 하는 거예요. 떠들면 또 안 돼요. 본인이 노래하는데 누가 얘기를 나눴다고 느닷없이 뺨을 때린 적이 있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 어이가 없네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 생활하다 보면 사회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또 어딜 가나 왕으로 모시잖아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누구나 아는 정상급 가수와 지방 공연을 함께 갔어요. 공연이 끝나고 배가 고픈 거예요. 매니저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겠냐고 물었어요.”
― 뭐라고 했나요.
“휴게소는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불편하다고 부근의 동네로 들어가자고 해요. 허름한 식당이 있더라고요.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분이 숟가락을 던지는 거예요. 사진 찍자는 사람이 왜 아무도 없냐면서요.”
― 당황스럽네요.
“식당 아주머니들이 아는 척을 안 하니까 화가 난 거예요. 왜 이런 데를 왔냐고 매니저한테 화풀이를 하더라고요. 남의 관심을 받는 데 익숙해져서 관심이 없으면 못 견디는 거죠.”
― 일단 인기를 얻으면 늘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평정심을 유지하겠네요.
“〈마이웨이〉 출연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세요. ‘인기 있을 때 좀 잘할걸.’”
― 오히려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이 인기가 떨어지면 더 비참해질 수도 있겠군요.
“연예계 맛은 봤지,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 어디 가서 직장 생활할 수도 없잖아요. 고정된 수입이 나오는 직업도 아니고요. 연예인들은 자신들이 항상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경제 관념이 의외로 없더라고요. 요즘 연예인들은 좀 나아요. 부동산 투자도 하고요.”
장수 프로그램 〈마이웨이〉
김 작가의 ‘톱스타론(論)’을 듣다 보니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화려한 연극무대만 보다 우연히 무대 뒤편 지저분한 대기실을 본 기분이었다. 〈마이웨이〉 얘기를 꺼냈다.
〈마이웨이〉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200명가량의 삶을 시청자들에게 펼쳐놔 줬다. 여전히 시청률도 높다. 지난 8월 3일 방송된 김영옥씨 편은 7.2%를 기록했다. 〈마이웨이〉의 미덕은 뭘까.
“간접 경험이죠. 손쉽게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잖아요. 각기 다 다른 삶을 살았어요. 누가 옳고 그른 건 아닌 것 같아요. 시청자들은 보면서 생각할 거예요. ‘저 사람처럼 살아야겠다’ ‘저렇게 살진 말아야겠다’.
지난 추석 때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출연했다.
― 출연 요청을 하신 건가요
“그동안 연예인만 출연했으니 확장을 하려 했지요. 균형을 맞추려고 각 당에 제안서를 냈어요. 안 대표 쪽과 제일 먼저 성사가 됐어요. 개인적으론 촬영하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됐어요. ‘이 가족은 잘 살아가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 가족들한테 그런 인상을 받았다는 건가요.
“안 대표는 결혼한 후 부인한테 한 번도 밥 차려달라 한 적이 없대요. 본인이 찾아 먹거나 만들어 먹는다고 해요. 집안일을 꼭 여자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촬영할 때도 부인은 연구 작업을 하고 있고, 안 대표가 주방에서 간단히 토스트와 커피를 만들어주는 모습이 자연스럽더라고요. 그런 게 〈마이웨이〉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잘 몰랐던 이면을 볼 수 있잖아요.”
― 진짜 모습인지 어떻게 아시나요.
“방송일을 한 지 오래돼서 그런지, 이제는 보면 알아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촬영을 하는데 느낌이 이상해요. 인테리어도 급조한 티가 나고, 집 소개를 하는데 잘 몰라요.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손님 같은 느낌이에요. 계속 물어보니 실토하더군요. 마땅한 거처가 없어서 빌렸다고요. 씁쓸했죠.”
― 왜 그렇게까지 한 거죠.
“한때 인기 있었으니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죠. 본인이 가장 화려하고 좋았던 때에 생각이 멈춰 있는 경우도 많아요. 안타깝죠. ‘아, 이분은 〈마이웨이〉 출연이 아니라 빨리 병원에 모셔가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어요.”
〈마이웨이〉에 출연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조선DB
편당 평균 촬영 기간은 일주일, 일부러 상황을 연출하진 않는다고 한다.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라고 해요.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있어요. 어떤 연예인들은 친구가 없어서 분량을 못 채워요. 그러면 친구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 친구를 만들어준다고요?
“친구를 해도 될 법한 분들에게 전화해서 부탁을 하죠. 사정을 아니까 들어주기도 하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뭐라 하는 분들도 있어요.”
― 〈마이웨이〉 촬영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출연자는 누군가요.
“조수미씨 참 좋았어요. 조수미씨 어머니가 당시 치매에 걸려 있었어요. 세기의 프리마돈나도 ‘딸’이구나. 해외공연에 동행했는데 참 인간적이더라고요. 어머니 얘기 하면 눈물 흘리고.”
― 조수미씨는 미혼이시지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면 조수미가 될 수 없다’… 디바(Diva)로도, 개인 생활로도 동시에 성공할 순 없다는 거예요. 신은 다 주시지 않는다는 거죠.”
― 둘 다 가진 사람은 못 만나보셨어요.
“김혜자 선생님 촬영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부의 이미지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하실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명언을 남기셨어요. ‘나는 주부 연기를 잘한 거지, 주부를 잘한 건 아니다’… 주부를 잘했다면 배우 김혜자로 성공을 못 했다는 거예요.”
실패담이 시청률 높아
/2019년 4월 세상의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를 담은 앨범 〈마더〉를 발표한 조수미는 “너무나도 외로운 그 길을 꿋꿋이 견디게 해준 어머니. 그분이 가르쳐주신 노래를 마음에 담아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대중은 〈마이웨이〉를 보며 어떤 대목을 좋아할까. ‘시련’이다.
“사람들 마음속에 관음증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시청률이 가장 높을 때가 출연자의 집이나 냉장고가 공개될 때예요. 안타까운 건, 행복한 사람들 얘기는 시청률이 별로 안 나온다는 거예요. 되는 일이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시청률이 잘 나와요. 남의 불행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경우가 많은 걸까요?”
―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을 듣고 싶어 하는 거군요.
“웃을 때보다 울 때 시청률이 높아요. 여전히 의문이에요.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나는 살기 힘든데 저 사람은 돈 벌었다고, 성공했다고 하는 게 싫은 걸까요.”
김 작가는 한국 사회가 스타를 소비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말했다.
“김연자씨가 〈마이웨이〉에 출연했을 때 일본에 같이 갔어요. 지금도 일본 팬들이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모임을 갖고, 식사하면서 김연자씨 얘기도 하고. 일본에선 한번 누구를 좋아하면 평생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대를 이어서 팬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 의리가 있군요.
“좋아하는 연예인이 잘못을 저질러도 등을 돌리지 않더라고요. 박유천이나 김현중씨의 경우도 일본 팬들은 지금도 좋아해주잖아요. 화보도 사주고요. 한국은 순환이 빠르다고 할까요. 달면 삼키고 쓰면 바로 뱉죠.”
인기의 유효기간 짧은 한
― 쏠림 현상이라고 할까요. 누가 인기가 있으면 몰려가는 경향이 있지요.
“연예인들이 인기가 떨어지면 힘들어지는 원인이 그런 것일 수 있어요. 팬들이 더 이상 찾질 않으니까. 누가 와야 콘서트도 열잖아요. 일본은 최소한의 관객이 항상 있다는 거예요. 한국은 A가 인기 있었는데, B의 인기가 올라가면 다 몰려가서 A의 팬들은 더 이상 없어요. 외국에 비해 인기의 유효기간이 짧다고 할까요.”
― 한국 연예인들이 좀 더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겠네요.
“누굴 좋아하면, 설령 그 사람이 추문(醜聞)에 연루되더라도 팬들이라도 보듬어주면 자살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연예계에선 물 들어오면 바로 배 띄워야 한다고 해요. 물이 바로 빠지니까요. 긴 호흡으로 활동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랬다간 다른 연예인이 치고 들어와서 내 자리를 뺏어가니까요. 찾아줄 때 본전을 뽑아야 되는 거죠.”
― 인기라는 게 허망하다는 생각을 하시겠어요.
“요새 누가 인기라고 해도 ‘아 그렇구나’지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그 사람의 미래가 보일 때가 있어요. 저 친구도 결국 소년가장, 소녀가장밖에 더 되겠나 싶은 거예요. 안 그러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원로배우가 연기 계속하는 이유
/“나는 주부 연기를 잘한 거지, 주부를 잘한 게 아니다”는 명언을 남긴 배우 김혜자씨. 사진=조선DB
― 나이 지긋해서도 활동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원로배우 중엔 손자 학비 때문에 일을 못 그만둔다는 경우도 많아요. ‘손자가 유학 마치려면 일 더 해야 된다’, 자식을 넘어서 손자·손녀까지 먹여 살리는 거예요.”
그는 〈마이웨이〉를 통해 연예인이 대중에게 좀 더 솔직한 면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예인은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연예인은 직업이지 어떤 특권이 아니잖아요. 시청자들도 스타의 너무 어두운 면이 아니라 밝은 면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시청자 따라 프로그램도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가게 되거든요. 행복하게 잘사는 분들 얘기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 정치인 걱정이라지만, 가끔은 같이 걱정해줘도 좋지 않을까. 건조한 우리 일상을 종종 웃음으로, 감동으로 적셔주는 이들이니 말이다. 고인이 된 박지선씨가 고난(苦難)을 아주 조금만 더 견뎌줬다면, 언젠가 〈마이웨이〉에 출연해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며 미소짓는 날이 오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봤다.
12.12 김기덕 감독, 라트비아서 오늘 새벽 코로나 사망 확인
한국 외교부 “11일 새벽 라트비아에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피에타' 김기덕 감독과 주연배우 조민수, 이정진이 11일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수상기념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기덕 감독이 황금사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조선일보 DB
김기덕(60) 영화 감독이 11일(현지 시각) 라트비아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소식통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있다”면서 “라트비아 정부 측도 이와 관련한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와 관련한 본지 질의에 “현지 시각으로 11일 새벽 우리 국민(김기덕씨)이 코로나 19로 병원 진료를 받다가 사망했다”면서 “주라트비아대사관은 우리 국민의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관련 경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유족을 접촉해 현지 조치 진행사항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소식통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기덕 감독은 지난달 20일쯤 중순 라트비아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영화계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라트비아에 거처를 마련해 생활했으며 최근 들어 코로나 증상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입원 약 이틀만에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발트 3국 지도. /조선일보 그래픽
발트 지역 언론 델피(Delfi)에 따르면, 김 감독은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말라에 저택을 구입하고, 라트비아 영주권도 획득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김 감독이 지난 5일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자 그의 지인들은 현지 병원을 수소문하며 그를 찾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입원 환자 개인 정보 보호 규정 등으로 인해 지인들은 김 감독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김 감독의 입원 사실과 코로나 감염 소식이 그의 사망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들. 왼쪽부터 나쁜남자,수취인불명,사마리아,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니스, 베를린 본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한국 감독이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받았고, 같은 해 ‘빈집'으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아리랑’으로 2011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 ‘피에타’로 2012년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최고상)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 /조선일보 이덕훈 기자
김기덕 감독은 러시아권에서 특히 인지도가 높아 지난해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