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소식13/ 2020.07.04 北 코로나 어느 정도기에… - 12.18 "누군가는 北이곳 봐야한다"
동토의 소식13
2020.07.04 北 코로나 어느 정도기에… 김정은 "치명적 위기, 비상방역 강화"
대외적으로 확진자 0명 주장에도 김정은, 3개월 만에 또 대책 회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코로나 대책 회의를 3개월 만에 다시 열어 "비상 방역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북한은 그동안 대외적으로 확진자가 '0명'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실제론 김정은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코로나 확산 피해가 심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된 것은 지난달 7일 정치국 회의 이후 25일 만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날 회의에서 코로나 방역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고 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된 것은 지난달 7일 정치국 회의 이후 25일 만이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은 2일 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치명적인 위기" "최대로 각성경계" 같은 표현을 쓰며 코로나 방역 강화를 수차례 강조했다. 조중통은 "(김정은이) 방역 전초선이 조금도 자만하거나 해이해짐이 없이 최대로 각성경계하며 방역 사업을 재점검하고 더 엄격히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또 "섣부른 방역 조치의 완화는 상상할 수도, 만회할 수도 없는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면서 "비상방역 사업을 더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평양종합병원 건설과 의료봉사 보장 대책 문제도 논의했지만 남북 관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문정인 대통령 안보특보는 3일 "정치국 회의에서 방역 대책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면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 아닌가"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남북한 당국자 사이에 통신선이 차단된 만큼 (한국의) 지자체 나 시민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서울시 등 지자체는 외교적 능력과 재정 능력이 있어 방역 협력에서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대북 소식통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코로나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사태 초기 국경을 전면 차단했지만, 방역 장비와 의료시설이 워낙 부족해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노석조 기자
07-09 김정은은 누구의 사위일까
▲북한 ‘노동신문’은 2016년 8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과 리병철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맞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주성하 기자
지난달 21일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선 리병철 군수공업부장이 실권자로 급부상했다. 그는 북한 군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최고 군사정책 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돼 김정은에 이어 군부 2인자가 됐다.
그동안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북한군의 3대 핵심 실세로 꼽히는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 중 한 명이 뽑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수공업부장인 리병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리병철은 김정은과 맞담배를 피운 최초의 인물이다. 2016년 8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시험발사에 성공했을 때 노동신문은 둘이 맞담배를 피우는 사진뿐만 아니라 얼싸안고 환호하는 사진까지 실었다.
리병철은 어떻게 이런 신임을 받게 됐을까.
지난해 리병철과 그의 집안에 대한 흥미롭고 자세한 여러 정보를 입수했다. 그가 바로 리설주의 부친, 즉 김정은의 장인이라는 것이다. 정보원의 위치와 신뢰 관계 등을 감안했을 때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정보에 대한 복수 확인이 되지 않는 사이 리병철은 승승장구했다.
리설주의 집안은 외부에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북한에선 리설주가 비행사의 딸이라는 소문만 퍼져 있을 뿐 더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리병철은 혁명가 유자녀를 위해 세운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비행사가 됐으며 고위 당 간부의 딸과 결혼했다. 리설주가 어렸을 때부터 각종 대남행사에 동원된 것으로 미루어 ‘좋은 집안 출신’으로 추정했는데, 부친이 리병철이라면 진짜로 집안이 좋았던 셈이다.
국내 북한 인물자료엔 리병철의 경력이 1990년 북한군 2비행사단장일 때부터 기록돼 있다.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감안하면, 리병철이 비행연대장을 할 때 태어난 늦둥이 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예술 분야에 정통한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은하수관현악단 가수인 리설주와 비밀동거를 했으며 2009년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리설주는 그 당시 약 1년 동안 사라졌다가 이듬해 다시 악단에 복귀해 가수로 활동했다.
북한에선 1960년대부터 인기 연예인이 사라졌다 복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개 김씨 가문과 관련 있기 때문에 동료들은 짐작만 할 뿐 그 사연을 캐묻지 않는다. 김정일 사망 8개월 뒤인 2012년 7월 김정은이 리설주를 현지 시찰에 데리고 나올 때까지 둘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공교롭게 이즈음부터 리병철도 승승장구했다. 그는 1992년에 중장이 됐지만 무려 16년 뒤인 2008년에야 상장 진급과 함께 공군사령관이 됐다. 상장이 되는 데 16년이 걸렸는데 대장은 2년 만인 2010년에 달았다. 2014년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2019년 군수공업부 부장이 된 뒤 올해 군부에서 김정은 다음의 실세가 됐다.
군수공업부를 미사일이나 방사포를 생산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군수공업부는 수출입의 최우선권을 갖고 있다. 고양이뿔 빼고는 다 취급할 정도다. 리병철이 북한의 최고 돈줄을 꽉 잡고 있는 셈이다.
리병철에게 고난의 시기도 있었다. 지난해 10, 11월경 그는 중앙당 집중 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제거할 고위 인물은 집중 검열부터 받는 게 관례다. 다행히 리병철은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가 복귀한 뒤 김정은은 리설주와 함께 백두산에 올라 리명수 냇가에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2017년 1월 국가보위성에서 조사받던 중 사망한 강기섭 고려항공 총국장은 리설주의 외삼촌이라고 한다. 즉 리병철과 강기섭은 매부 처남 사이인 셈이다. 이 사건은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의 몰락을 불러왔다. 강기섭에게도 리설주와 친자매처럼 똑 닮은 딸이 있는데, 강기섭의 딸이 리설주보다 키가 좀 더 크다고 한다.
리병철이 김정은의 해외자금 은닉까지 관리한다는 정보도 있다. 지난해 집중 검열을 받았던 것 역시 김정은이 자기 돈을 리병철이 빼돌린다고 의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난달의 파격적인 승진으로 미루어 리병철은 확실한 재신임을 받은 듯하다. 최근 김여정과 리병철의 급부상을 보면, 김정은의 패밀리(가족) 의존도가 더욱 심해지는 분위기다. 김정은 집권 10년이 돼 가는데, 정작 믿을 사람은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07.10 "北 코로나 사망 500명, 격리 대상 39만명"
정부 당국이 동향 파악
북한에서 지난 5~6월 코로나 사태가 악화하며 사망자가 500명을 넘어선 것으로 9일 알려졌다. 대외적으로는 '코로나 청정국'임을 주장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코로나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아 방역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치명적인 위기" "최대로 각성·경계" 등의 표현을 쓰며 '코로나 방역 강화'를 수차례 강조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날 "지난달 말 현재 북한의 코로나 사망자가 500명을 돌파했다"며 "확진자가 40여 명, 감염의심자가 100여 명, 격리 대상자가 39만명에 달해 사망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5~6월 모내기 동원으로 학생·주민·군인들이 한데 모여 일하고, 6월 초 전국 학교들까지 개학하면서 코로나가 급속 확산됐다"고 전했다.
우리 군·정보 당국도 이 같은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첩보를 추가 수집·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달 4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담화를 시작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3주 동안 파상적인 대남 공세를 퍼부은 것도 대북 제재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경제난에 내부 불만·동요가 심각해진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식량난 가중으로 집에서 돼지를 기르는 가정이 급증하면서 돼지열병도 함께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당초 북한은 전국 초·중·고교 개학일을 지난달 1일로 잡았다가 사전 방역 검열에서 불합격 판정이 속출해 개학을 이틀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일부터 각급 학교에서 등교 수업이 시작됐으나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8월 방학을 7월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시 개방했던 북·중 국경을 다시 봉쇄하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월 말 코로나 유행 초기에 선제적으로 북·중 국경 봉쇄 조치를 취했다가 최근 들어 생필품 반입 등을 위해 봉쇄 조치를 일부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부분 개방했던 신의주 세관을 지난 6일 다시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재유행하고 북한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자 봉쇄 조치를 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소식통은 "김정은이 지난 2일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비상방역 강화를 지시한 영향"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지난 7일 "(코로나중앙비상방역) 지휘부에서는 국경과 영공, 영해를 완전히 봉쇄하고 국경과 해안 연선에 대한 봉쇄와 집중 감시를 더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대책을 세워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양에 체류하던 외국 외교관들이 최근 출국을 위해 전세기 이용을 요청했으나 코로나 유입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불허해 육로로 북한을 빠져나갔다는 소식 을 들었다"고 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코로나 확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코로나 사망자를 일반 급성폐렴 사망자로 분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도 양이 충분친 않지만 중국·러시아에서 진단키트를 들여오기 때문에 코로나 진단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사망해도 '급성폐렴 사망'으로 발표하고, 시신은 모두 화장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명성 기자
월간조선 08월 호
■美 연방검찰의 3조원 돈세탁한 북한인 28명 기소 공소장 내용
對北제재 피한 北의 돈세탁과 자금 조달 방법 상세히 적시
⊙ 北, 조선무역은행 전 세계 비밀지점 만들어
⊙ 美, FTB의 해외 비밀계좌 동결… 자금만 6351만 달러
⊙ 北, 조선무역은행을 대량살상무기 거래에 이용
⊙ 美, 고철만·김성의 전 조선무역은행 총재 등 28명 기소
⊙ 美, 공소장 중국인 5명도 포함… 中도 압박
▲미국 워싱턴DC 연방검찰이 지난 5월 29일 국제 금융망을 이용해 25억 달러(3조950억원) 규모의 불법 결제와 돈세탁을 벌여온 북한 조선무역은행(Foreign Trade Bank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FTB)의 임직원 28명과 중국인 5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검찰이 조선무역은행의 해외 비밀계좌에서 찾아내 동결한 자금만 6351만 달러(약 786억원)에 이른다. 2013년 3월 미국 재무부 소속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조선무역은행을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자금줄로 보고 제재 및 국제 결제망에서 퇴출시켰다. 하지만 조선무역은행은 비밀리에 거래를 계속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김정은의여동생 김여정이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지난 6월 14일 북한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것이 미국이 북한 자금줄을 끊은 데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조선무역은행, 北 외환은행… 북한 돈세탁 본거지
《월간조선》은 미국 워싱턴DC 연방검찰이 지난 5월 2일에 작성한 50페이지 분량의 공소장을 입수했다. 공소장에는 북한 조선무역은행이 미국의 대북제재를 피해 어떤 방식으로 돈세탁을 했고, 어떻게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자금을 조달했는지가 상세히 적시되어 있다.
조선무역은행은 평양에 본부를 두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선무역은행은 여러 국가의 금융 기관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여러 지역에 비밀지점을 두고 있다. 조선무역은행의 직원은 총 900여 명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해외 비밀지점에 나와 있는 직원은 300여 명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무역은행은 해외에서 신용대출, 투자, 외화사용 규제 회피, 외국 은행들과 협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자의 수출·수입 등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2013년 3월 조선무역은행을 국제 결제망에서 퇴출시켰지만 지금까지도 비밀리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검찰이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고철만·김성의 전 조선무역은행 총재와 한웅·리종남 전 부총재를 포함한 평양 본점 및 해외 지점 직원 28명과 황하이린 등 중국인 직원 5명은 250개 해외 지점과 유령기업 이름으로 비밀리에 영업하며 제재를 회피했다. 중국 베이징·선양·단둥·주하이, 러시아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오스트리아, 태국, 쿠웨이트, 리비아 등 10여 개 지점이 해외영업을 계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무역은행이 주요 거점으로 둔 중국 지점의 총책은 김동철이다. 김동철은 중국 선양에 위치한 조선무역은행의 비밀지점에서 활동했다. 특히 김동철은 조선무역은행의 프론트 조직인 SIG(Sumer International Group)와 무역회사 헤드순(Headsoon)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이뿐만 아니라 김동철은 조선무역은행의 유령회사인 SBC(Shenyang Bright Century)와 국제무역회사 밍정(Mingzheng)을 관리하고 있다. 2017년 9월 미국 해외자산통제국은 밍정을 조선무역은행의 물자 등을 공급해주는 대행업체로 지목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조선무역은행 본사는 각 비밀지점 책임자들과 수시로 비밀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연방검찰은 중국 선양 김동철, 베이징 리춘송, 주하이 리천환·김훈석, 리비아 구자형, 쿠웨이트 류명일, 태국 현용일, 러시아 하바롭스크 리명훈, 오스트리아 리종철, 모스크바 한장수 등을 조선무역은행 해외 비밀지점 책임자로 지목했다.
FTB, 美 ‘국제긴급경제권한법’과 ‘은행비밀법’ 위반
공소장에 따르면 북한 조선무역은행 직원들이 2013년부터 2020년 1월까지 자행한 범죄는 1977년에 미국에서 제정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IEEP)’과 ‘은행비밀법’ 위반이다. IEEP는 미국의 안보, 외교, 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에게 경제제재를 감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IEEP에 입각하여 대통령과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혐의가 의심되는 국가, 개인 등 개체들과 교류를 금지하는 명령을 시행했다. 2016년 3월 15일 대통령은 법에 명시된 국가 비상사태를 해결하고 지속되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응하고자 행정명령 13722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6년 3월 16일 미국 재무부는 북한 제재 규정을 공포했다.
2005년에 제정된 대통령 행정명령 13382호와 13722호는 ‘대량살상무기 확산자 제재 규정’과 ‘북한 제재 규정’을 각각 회피하거나 회피하려는 의도를 가진 금융거래들이 미국 내에서 이행되거나 미국 시민이 이행하는 행위 역시 금한다고 했다.
북한은 이를 위반했다. 조선무역은행 비밀지점과 해외 유령회사를 만들어 대북제재 품목과 사치품을 구입했다. 또 자금 세탁을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자금까지 만들었다.
미국의 ‘은행비밀법’에 따라 미국 금융기관들은 비밀법에 따른 국내의 돈세탁 방지 요구 사항들에 따라야 하며 재무부 해외자산 통제국(OFAC)이 관장하는 제재 프로그램들에도 준수할 의무를 가진다.
북한 조선무역은행은 이 역시 완벽하게 위반했다. 이들은 미국 컬럼비아 지역에 조선무역은행 비밀지점을 만들어놓고 이곳에서 활동하며 돈세탁 및 중간거래책으로 활동했다. 또한 이들은 미국 내 회사와 비밀리에 거래하기도 했다.
美 연방검찰, FTB 2013년부터 7년간 추적
▲미국 윌리엄 바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28일(현지시각) 북한인 28명과 중국인 5명을 기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OFAC는 2013년 3월 대통령 행정명령 13382호에 따라 탄도미사일 및 대량 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조선무역은행을 특별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또한 북한이 조선무역은행을 대량살상무기 거래에 이용한다는 점을 주목하고 수사에 나섰다. 조선무역은행은 세계 각지에 비밀지점뿐만 아니라 250개의 유령회사 등을 가동해 제재를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무역은행의 비밀지점이 있는 나라의 정부가 해당 유령회사들의 북한과의 관계를 감지한 경우 지속적으로 새로운 유령회사를 만들어가며 불법을 자행했다. 특히 수령인을 꾸미고자 거래계약서 같은 문서에서 고객의 정체를 거짓으로 기재하기도 했다. 내부자와 소통할 경우에도 암호로 대화했다.
미국 연방검찰은 2013년 3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 거주하며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FTB 직원 조은희가 중국 선양에서 활동한 김동철, 리비아의 구자형, 태국의 현용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김경남과 리명훈, 오스트리아의 리종철 등과 비밀리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이들은 본사와도 비밀 연락을 주고받으며 돈세탁뿐만 아니라 유령회사를 통해 금지물품을 구매하고 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2018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미국의 모 회사에 33만5000달러를 북한에 있는 본사의 지시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무역은행으로부터 돈을 받은 미국의 회사는 공개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무기거래 가능성으로도 보고 있다.
조선무역은행은 2014년 8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중국 국영 판다 정보통신에 선양 위장회사 수메르 인터내셔널 그룹을 통해 약 61만5000달러를 송금하기도 했다. 이때 외환 송금을 의뢰한 중국은행의 실사에는 합법적인 통신장비 구매라고 허위로 답변했다. 판다 정보통신은 화웨이와 함께 북한 무선통신망 구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다.
또 화웨이와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중싱통신(ZTE)으로부터 대북 금수품목인 통신·전자장비를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무역은행 제재 다음 달인 2013년 4월 20일 공모자인 단둥 개화무역을 통해 ZTE와 연간 계약을 통해 대북 수출통제 품목인 통신장비 두 대를 샀다. 2015년 4월에도 거래를 반복했다. 같은 해 11월엔 화웨이로부터 전자장비를 구매하며 최종 행선지를 북한이 아닌 홍콩으로 바꾼 구매 영수증을 발행하기도 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2월 화웨이의 대북 비밀 거래 관련 내부 자료를 추가해 북한과 이란을 제재 위반으로 함께 기소했다. ZTE에는 앞서 2017년 대북, 대이란 제재 위반으로 11억9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공소장에는 중국 선양 지점의 사례가 자세히 나온다. 책임자가 유령회사임이 탄로 날까 봐 중국은행 실사에 대비해, 중국인 협력자에게 합법적 구매인 것처럼 거짓 진술을 지시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대화하는 내용도 있다.
美, 조선무역은행 송금 차단… 중국인 내세워 미국 재무부에 승인신청
중국은행 간 이체가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문의하라는 내용, 중국은행에 전화해 계좌 개설과 수수료에 관해 문의한 장면도 적시돼 있다. 특히 돈을 송금하려다 미국의 대리은행에서 차단돼 애를 먹는 사례도 있다. 선양 책임자가 2015년 11월 5일 유령회사인 밍정국제무역을 내세워 전자제품 구매 대금으로 30만 달러를 중국은행에 보내려 했지만, 미국 대리은행이 이를 차단한 것이다. 일주일 후 이 제품을 판 중국 회사는 목적지를 북한에서 홍콩으로 바꾼 허위 계약서를 밍정국제무역에 보냈다.
북측 책임자는 미 재무부 규제로 인해 차단됐음을 중국은행을 통해 알게 됐고, 같은 달 20일 함께 일하던 중국인을 통해 재무부에 거래 승인을 요청하는 허위 신청서를 제출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또 2015년 11월 스위스 사업가로의 송금이 차단됐을 때는 이 사업가가 허위 서류를 만들라고 조언하고 실제로 이런 서류를 꾸며 보냈다는 내용도 있다.
공소장에는 북한이 금지물품 구매, 외화벌이 수단으로 거론되는 석탄 무역, 미사일 개발에 연결될 수 있는 물품 거래 등을 진행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일례로 선양의 비밀지점과 관련해서는 밍정국제무역이 중국 회사인 단둥커화를 통해 미국법상 금지된 통신장비를 구매하는 거래에 관여한 내용이 있다. 이와 관련, 미국 검찰이 밍정국제무역 계좌의 190만 달러를 압류했다는 보도가 지난해 나오기도 했다.
베이징 지점 관련 혐의 중에는 관련자끼리 지난해 3월 선박과 항공, 로켓 기기에 사용될 수 있는 부품에서 하드웨어 결함을 언급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또 오스트리아 지점과 관련한 부분에선 책임자가 2018년 11월 북한 관련 회사의 대표에게 석탄 선적에 관해 알려줬다고 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 밖에 태국 지점에선 2015년 9월 조선무역은행 본부와 32만 달러어치의 알루미늄 구매와 관련해 지급을 보증하는 이메일을 주고받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美, 북한뿐 아니라 중국에도 ‘경고장’ 날려
▲미국 법무부가 지난 5월 28일(현지시각)에 공개한 공소장에 이름 올린 북한인 28명 이름과 활동지다.
미국의 이번 기소는 조선무역은행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에 대해선 북한의 달러화 거래를 미국이 추적하고 있음을 재확인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대 압박을 통한 대화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번 기소는 해외 기업이 북한과의 거래를 더욱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클 셔윈 워싱턴DC 연방검사장 대행이 지난 5월 28일 공소장을 공개하면서 “미국 금융시스템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려는 북한의 활동을 방해하고, 불법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증강을 위해 불법적 행위로 얻은 수익을 이용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미국이 전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달러 거래의 주요 창구로 중국을 이용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5월 28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기소는 중국이 불법 네트워크를 얼마나 용이하게 했는지를 드러낸다”며 “유엔 회원국이 2016년 초 북한 은행의 지점을 쫓아냈다고 추정됐지만, 중국의 베이징과 선양 등에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이 대북제재 이행에 적극적이지 않고 북한의 제재 위반을 방조한다는 불만을 표시해왔다는 점에서 중국의 태도 변화를 간접 촉구하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책임론, 중국의 홍콩 국가안전법 제정 등을 놓고 ‘치킨게임’ 양상의 충돌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번 기소는 북핵 해법을 놓고도 이견을 드러내는 양국의 현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北, 美 연방검찰 기소로 압박하자 ‘狂氣’ 일으켜
미국의 이번 기소는 대북 압박용 카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북한은 미국이 기소 사실을 공개하자 즉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이 아닌 남한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북한은 6월 14일 북한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북한은 왜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향해 강경 발언을 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은 아직 미국과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남한과는 대화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맹비난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갑자기 발작 증세를 보인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크다”며 “미국이 북한 돈줄을 막으니 이에 대해 화풀이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이 국경까지 봉쇄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돈줄을 쥐고 압박하자 북한 입장에선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화풀이 상대가 남한이 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대응 한번 하지 않고,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현재 평양에도 달러가 바닥이 난 상태다. 지난 4월경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현금을 원조받았다”며 “당시 북한은 중국에 달러로 줄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달러가 아닌 위안으로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2009년 화폐개혁 실패 후 시장에서는 북한 화폐가 아니라 달러와 위안화로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는 평양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북한 정권은 이를 묵인했다. 이유는 자신들이 달러가 필요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美, FTB 자금 6351만 달러 몰수… 비밀계좌 동결
공소장에 따르면 금융범죄로 기소된 33명과 알려지지 않은 공모자들은 미국 연방 법전 18편 1956(a)(2)(A)조를 의도적으로 위반했다. 특히 이들은 금융기관 사기와 관련해 IEEP의 처벌조항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들은 2015년 3월 20일 중국 주하이의 FTB 유령회사인 ‘차이나 유니크’에서 밍정무역으로 10만 달러를 송금했다. 2016년 11월 9일 리비아의 한 유령회사에서 FTB 유령회사인 ‘리아닝 유정(Lianing Yuzheng)’으로 송금됐다. 조선무역은행은 이 같은 방법으로 돈을 세탁해 제재 품목을 구입하거나 북한 본사로 송금했다.
연방검찰은 중국 밍정무역, 러시아 벨머매니지먼트 등 해외 위장업체 계좌에서 동결한 6351만1387달러에 대해선 연방법원에 별도로 몰수를 청구했다. 2015년 10월~2020년 1월까지 조선무역은행 해외 비밀계좌나 거래업체 계좌를 통해 동결하거나 압류했다고 한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8월 호
■북한 노동당 핵심 부서가 김정은에게 보고한 北의 ‘절대비밀’ 문건
원자력공업성 관계자 3880여명, 방사선 피폭으로 치과치료 받아
○○○기업소 노동자 길성배(57)도 “방사선 피해로 앞이발(앞이빨) 3대가 빠져 남 보기가 부끄러웠으며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겉늙어 보이기까지 하였다”며 “게다가 어금이(어금니)까지 다 빠져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얼마나 고생하였는지 모른다”고 문건에 적혀 있다. 자신의 치아가 손상된 원인이 방사선 피폭에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 ‘김정은의 결재’를 확인하는 핵심 증거인 ‘비준방침’ 용어, 각 문서마다 선명
⊙ 불구자 된 남편 구박하고, 근친상간 횡행하는 北 사회
⊙ 남북 화해 무드 한창일 때 北 “북남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든 남조선은 主敵”
⊙ 남한에서 유입된 노래 가사, 말투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건도
⊙ 사실혼과 早婚 급증… 친척끼리 결혼하고, 형수와 처제 데리고 사는 타락상
⊙ 자녀를 市場에 나가 장사시키고, 무분별한 盜伐 횡행… 경제난 방증
1_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료 일군들이 원자력공업성 종업원들을 성심성의로 치료해주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 문건(1).
2_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료 일군들이 원자력공업성 종업원들을 성심성의로 치료해주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 문건(2).
3_ 〈사람들 속에서 비규범적인 입말을 쓰고 있는 문제와 대책보고〉 문건.
4_ 〈사회적으로 혼인관계에서 문란한 현상들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 문건.
《월간조선》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당)의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등 핵심 부서가 김정은에게 보고하고 비준(결재)을 받은 후 다시 이 부서들을 거쳐 북한 전역에 있는 각급 당 조직의 책임자들(위원장, 부위원장 등)에게 하달한 문건들을 입수했다.
대상별 강연 제강(提綱)이나 특정 부문에 대해 서술한 자료집 등의 “대내에 한함” 문건이 아닌, 당 책임자들에게만 하달되는 ‘절대비밀’ 등급의 ‘비준방침’ 문건들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준방침’이 갖는 의미
이번에 입수한 문건들은 평양 바깥에 거주하는 일반 주민들의 동향(動向)은 물론,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최고권력층의 의중(意中)을 ‘있는 그대로’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문건들이 ‘김정은의 결재’를 얻었음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는 ‘비준방침’이란 용어다. 이 용어는 각 문서마다 비준 날짜와 함께 선명히 적혀 있다. 다수의 북한전문가는 “비준방침은 북한 최고권력자(김정은)의 법률적·행정적인 측면에서 구속력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비중이 크다”며 문건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 문건들은 북한 관련 고급 정보만을 취급하는 비영리단체 ‘카스컨설턴시’(Korea Analysis & Strategy Consultancy, 이하 카스·KAS)를 통해 입수한 것이다. 2017년 11월 8일 설립한 카스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통일 실현을 전제로 북한 관련 연구와 정보들을 분석하고 정책 컨설팅 등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카스 관계자는 “최고지도자의 ‘비준방침’은 북한의 전(全) 당 조직이 ‘유일적 영도 체계’ 원칙에 따라 북한의 전 당 조직이 해당 방침들을 접수·집행하고 후속 조치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면서 “‘유일적 영도 체계’라는 의미를 이 문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카스 관계자의 말이다.
“김정은은 생전 ‘심심산골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나는 알아야겠다’고 교시(敎示)했듯이 최고지도자에게 보고되는 문건들에는 당·정·군의 정책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사소한 동향까지도 보고됩니다. 이 자료들은 북한 당국이 의도적으로 공개해온 노작, 성명, 담화 등을 비롯한 각종 문헌들과 다르게 문맥의 함의(含意)를 찾아야 하거나 다각도의 해석과 분석 자체가 불필요한 문건입니다. 동시에 북한의 내부 사정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문건이기도 합니다.”
열악한 환경에도 핵개발에 박차 가하는 듯
▲북한의 동창리(왼쪽)와 풍계리(가운데), 영변(오른쪽) 핵 관련 시설. 이번에 본지가 입수한 ‘북한 원자력공업성’ 연구원들 치과 치료 문건을 통해서도 그간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을 개발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조선DB
가장 눈길을 끄는 건, 2017년 11월 16일 배포된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료 일군들이 원자력공업성 종업원들을 성심성의로 치료해주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조직지도부)〉이란 문건이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2017년 10월 26일 비준방침’이라고 적혀 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가 김정은에게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사들이 원자력공업성 간부들의 치과 치료를 성심껏 해주고 있으니 이들을 격려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을 보고해 김정은의 결재를 받아 조직지도부를 통해 각급 당 조직에 하달된 문건이다.
문건은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료일군들은 당중앙위원회 2013년 3월 전원회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지난 5년 동안 나라의 핵물질 생산을 다그쳐나가고 있는 원자력공업성안의 공장 기업소, 연구소들에 나가 로동자들과 연구사들의 이발을 성의껏 치료해주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일군’은 ‘일꾼’, ‘이발’은 ‘이빨’을 뜻한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자.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책임 일군들은 2013년 5월, 원자력 부문 종업원들의 건강을 돌봐주는 것은 당의 핵력 건설 로선(노선)을 관철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현장 치료대를 조직하여 ○○○기업소를 비롯한 중요 단위들에 파견하였으며 치료용 자재(資材)들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었습니다. ○○○기업소에 나간 현장치료대 성원(成員)들은 도착한 첫날부터 종업원들에 대한 검진을 진행하여 1주일 동안에 치료 대상들을 모두 장악하고 매일 새벽 1시까지 전투를 벌려(검진을 실시), 1개월 동안 230여명의 종업원들에 대한 치과치료를 성의껏 해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문건은 “원자력공업성 당위원회에서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료일군들이 원자력공업성 종업원들에 대한 이발치료를 성심성의로 해주고 있으므로 높이 평가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 문건은 북한이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사선에 피폭(被曝)됐는지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원자력공업성 관계자 중 치과치료(일반치료·틀니·보철)를 받은 이들의 수만 해도 3880여 명에 달한다. 문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私費 털어 의료자재 구매한 ‘의사 리용우’
〈■ 2014년 8월 ○○지구에 나가 1개월동안 전쟁 로병(노병·老兵)과 영예 군인을 비롯한 480여명의 종업원들과 주민들의 이발을 치료해주었으며,
■ 2015년에는 5월부터 9월까지 ○○○광산과 ○○○기업소, ○○○연구소에 나가 당에서 그토록 아끼는 원자력전사들의 건강을 돌봐주는 것은 자기들의 응당한 본분이라고 하면서 하루의 휴식도 없이 온갖 정성을 다 바쳐 1500여명의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들을 치료해주었습니다.
■ 지난해(2016년) 200일 전투기간 ○○○연구소를 비롯한 5개 과학 연구단위의 종업원들을 치료해주는 것을 전투 목표로 제기하고 현지에 나가 긴장한 의료봉사 사업을 벌려 1560여명의 과학자, 기술자, 로동자들을 치료해주었으며,
■ 올해(2017년) 9월에는 대륙간 탄도 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특대사변(特大事變)을 안아오는데 기여한 핵전투원들을 우선적으로 치료해주자고 하면서 ○○○기업소에 나가 낮에는 치료사업을 하고 밤에는 틀이(틀니) 제작과 다음날 치료 준비를 한 것을 비롯하여 30여일 동안 주야(晝夜) 전투를 벌려 140여명에게 틀이를, 200여명에게 보철을 성의껏 해주어 그들이 핵무력 강화를 위한 투쟁에 적극 떨쳐나가도록 하였습니다.〉
문건에는 치과치료를 위해 헌신한 사람의 기록도 있다. 의사 리용우(48)의 사례다. 문건에 따르면, 리용우는 2016년 8월 장인이 사망하고 9월에는 아내가 급환(急患)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러나 리용우는 집안에 닥친 화(禍)를 뒤로하고 “마음 속 고충을 이겨내면서 치과치료에 전심전력하였다”고 한다. 리용우는 환자들이 늘어나 치료용 자재가 부족해지자 가정에서 마련한 700여 US달러($)로 자재들을 해결하여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의료자재 보충을 위해 리용우가 자신의 사비(私費)를 털었다는 얘기다. 이는 북한의 경제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리용우는 또 “지난 5년간 한 번도 교대하지 않고 현장 치료 성원으로 나가 원자력공업성 종업원들에 대한 치료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한다.
“방사선 피해로 앞이발 3대가 빠져…”
문건은 ○○○연구소 연구사 김일림(70)의 치료를 받은 소감도 소개했다. 김일림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 의사들이 집에까지 찾아와 새 틀이를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10여 년 전에 끼운 부분 틀이가 건들거리는데다가 어금이(어금니)까지 다 빠져 고통이 말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마음 놓고 음식물을 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김일림은 “이런 훌륭한 치료를 받도록 해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 드리고 싶다”며 “숨이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의 핵 억제력 강화를 위한 과학 연구 사업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기업소 노동자 길성배(57)의 “방사선 피해로 앞이발(앞이빨) 3대가 빠져 남 보기가 부끄러웠으며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겉늙어 보이기까지 하였다”며 “게다가 어금이까지 다 빠져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얼마나 고생하였는지 모른다”는 말도 문건에 적혀 있다. 자신의 치아가 손상된 원인이 방사선 피폭에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길성배는 이어 “치과종합병원 의사들이 치료를 잘 해주어 이 모든 고통이 완전히 없어지고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광석(鑛石)을 생산하여 나라의 핵병기창을 억척같이 다져 나가는데 적극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김금산 원자력공업성 당위원장은 “보건성 치과종합병원 의료일군들이 지난 5년 동안 핵물질 생산현장들과 연구소들에 내려와 3600여명의 종업원들을 성심성의로 치료해주었는데 정말 고맙고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김금산은 “누가 알아주건 말건 당이 핵무력 건설 로선을 높이 받들고 우리 종업원들을 위해 지극한 정성과 깨끗한 량심(양심)을 다 바쳐가고 있는 이들의 소행을 널리 소개 선전하고 정치적으로 평가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카스 관계자는 “김정은에게 보고하는 문건이라고 하더라도 핵 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치과치료와 방사능 피폭 사이의 인과(因果)관계를 사실 그대로 적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우리 사회에서 익히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가 저술한 《김정일의 요리사》(《월간조선》 발간)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1995년 12월 30일 노동당 선전부장 김기남이 김정일에게 핵 시설 종사자들이 치아와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피폭자가 속출해 매우 비참한 상황이라고 보고를 했고 김정일은 김기남의 보고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후지모토의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최고지도자가 피폭 피해를 인정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언급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정일의 요리사》의 저자 후지모토 겐지. 후지모토 겐지는 북한 김정일이 죽기 약 16년 전인 1995년 무렵, 핵개발에 따른 방사선 피폭의 심각함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사진=조선DB
남북 화해 무드 한창일 때 北은 우리와 ‘정반대’ 입장 견지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내세운 데 대해 “북남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든 남조선은 主敵”이라며 내부 단속을 더욱 강화했다. 사진은 2018년 2월 9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앞줄), 북한 김영남, 김여정(뒷줄). 사진=조선DB
문건 중엔 남한에 대해 경계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있다. 〈정세의 요구에 맞게 반괴뢰교양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대책과 관련한 제의서(선전선동부)〉라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2018년 2월 9일 비준방침’ 문건이 그것이다.
이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의 올림픽 공동개최를 운운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를 낙관 일변도로 전망했다.
하지만 그 시기 북한은 우리와는 180도 다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문건은 “괴뢰(대한민국)들이 이번엔 북남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와 교류의 마당에 끌려나온 것은 어떻게 하나 저들이 잔명(殘命)을 유지해보려는 궁여지책에 불과”라고 판단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자.
대책적 의견
1. 당 교양망(敎養網)들에서 반(反)괴뢰 교양을 다음과 같은 내용들에 중심을 두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중략)
■ 괴뢰들이 지금 겉으로는 우리에게 굽어드는(우호적으로 나오는) 것처럼 놀아대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고 우리 군대와 인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사회주의 제도를 어째보려고 음흉하게 책동하고 있다는 내용.
■ 괴뢰들의 흉심(兇心)을 가려보지 못하고 계급적 각성이 없이 대화와 교류에 기대를 거는 것은 자멸행위와 같다는 내용.
■ 북남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든 미제(美帝)와 일본 반동(反動)들과 함께 남조선 괴뢰들도 우리의 주적(主敵)이라는 확고한 관점을 가지고 계급의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벼릴데 대한 내용.〉
카스 관계자는 이 ‘대책적 의견’이 갖는 의미에 대해 “보고 부서인 중앙당 선전선동부가 김정은에게 정책 집행 계획, 방향, 관련 의견 등을 보고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책적 의견’에 적힌 내용을 보면, 북한의 대남(對南) 적화야욕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한 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문건은 “선전·선동 수단을 통하여 반괴뢰 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집중적으로 벌리려고 한다”며 이에 따른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 내용이다.
‘검은 속심’ ‘교활한 속심'
〈■ 외세(外勢)를 등에 업고 동족(同族)을 말살하려는 괴뢰들의 ‘검은 속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언제든지 한번은 결산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교양자료를 만들어 당 조직들에 내려 보내여 일군들과 학습강사들이 실정에 맞게 교양사업을 진행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 괴뢰들이 대화의 마당에 나오는 것은 본심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할 수 없이 끌려나오는 것이며 적들이 굽어든다고(우호적으로 나온다고) 하여 좋게만 볼 것이 아니라 놈들의 ‘교활한 속심’을 예리하게 꿰뚫어보고 계급적 각성을 더욱 높일 데 대한 내용을 전당적인 강연선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 괴뢰들은 ‘흡수통일’ 야망은 변함없으며 놈들과는 반드시 총대로 결산을 해야 한다는 사상적 각오를 가지고 우리의 사회주의 계급 진지를 더욱 굳건히 다지며 경제 강국 건설의 전투장들마다에서 새로운 기적과 위훈(偉勳)을 창조해 나갈 데 대한 내용의 해설 담화자료를 내려 보내 주어 선동원, 5호 담당 선전원들이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선전·선동 활동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려고 합니다.〉
‘검은 속심’ ‘교활한 속심’이란 말에서 북한이 문재인 정권의 대북(對北) 유화정책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문건에는 남북 화해 무드로 인해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동요를 막는 데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 북과 남 사이에 접촉과 래왕(왕래)이 진행될 때마다 괴뢰들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가지는 사상동향들을 제때에 장악하고 그에 따르는 강연 및 정치사업 자료들을 기동적으로 만들어 당 조직들에 내려 보내여 교양사업을 진행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 당 조직들에서 개별교양, 집체교양을 강화하여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정세가 어떻게 달라지든 괴뢰들은 오늘도 래일(내일)도 영원히 우리의 주적이라는 것을 뼈에 새기도록 하려고 합니다.
■ 당 조직들에서 반괴뢰 교양을 만성적으로 대하면서 소홀히 하거나 형식적으로 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철저히 장악 지도 하려고 합니다.〉
南에서 유입된 노래 가사, 말투 경계해야 한다는 문건도
가수 싸이가 불러 유명해진 ‘강남스타일’이 북한 내부로 유입되자 이를 차단하려는 속셈이 담긴 문건도 있다. 〈괴뢰 노래 가사가 나오는 놀이감 손전화기, 손목시계와 성조기를 형상한 연이어 밀매되고 있는 자료와 대책보고(중앙 109련합지휘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2018년 1월 26일 비준방침’이란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놀이감 손전화기(휴대전화)와 손목시계에는 각각 8개의 그림 표식 단추가 있는데 단추들을 누르면 괴뢰 노래 가사인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말과 남녀간의 사랑을 반영한 중국 노래를 포함하여 17곡의 외국음악이 나오며….〉
이와 관련해 문건은 ‘대책적 의견’에서 “당 및 근로 단체 조직들에서 이색적인 놀이감들을 밀수 밀매하는 자들에 대하여서는 우리 내부에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끌어들이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색출하여 엄하게 처벌하도록 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남한에서 유입된 말투에 대한 단속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건도 있다. 2018년 1월 26일 김정은의 ‘비준방침’을 받은 〈사람들 속에서 비규범적인 입말을 쓰고 있는 문제와 대책보고(선전선동부)〉란 문건에는 “지금 인민 군대와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돌아가도 되겠지 말입니다’ ‘제대군인이지 말입니다’와 같은 ‘~지 말입니다’ 형의 비규범적인 입말들이 성행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는 우리 군대에서 군인들이 흔히 쓰는 상투어이자 비규범적인 말투다.
문건은 “이와 같은 현상들은 우리말의 우수성을 빛내이고 언어생활을 고상하고 문명하게 발전시켜나가는데 심각한 부정적 후과를 미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대책적 의견’에서 “당 조직들과 근로 단체조직들에서 사람들이 ‘~지 말입니다’ ‘~마요’와 같은 비규범적인 입말들을 쓰는 현상을 없애고 언어생활을 고상하고 문명하게 할 데 대한 내용의 해설 담화를 진행하여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교양과 통제를 끈기 있게 벌려나가도록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하고 ▲방송과 출판물에서 여러 가지 형식의 편집물들을 작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친상간 횡행… 여성들이 불구자 남편 구박하는 풍조
북한 주민들의 내부 사정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건도 있다. 〈사회적으로 혼인관계에서 문란한 현상들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조직지도부)〉이란 2018년 2월 6일 김정은의 비준방침을 받은 문건이다.
이 문건은 “최근 혼인관계에서 문란한 현상들이 적지 않게 제기되여 우리 인민의 고상한 미풍량속을 흐리게 하고 사회적으로 도덕기강을 세우는 저해를 주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대상들은 여러 번 바꾸어가면서 사실혼 생활을 하고 있다”며 중혼(重婚)이 늘어나고 있음을 밝혔다. 심지어 “10대의 어린 처녀들이 조혼(早婚)하고 있다”며 “친척끼리 결혼을 하는 현상들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 배다른 형제는 물론 형수나 처제와 사는 현상도 있다는 게 문건의 내용이다. 한마디로 근친상간(近親相姦)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주민뿐 아니라 당 간부, 예컨대 보안원들 중에도 있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이에 대한 ‘대책적 의견’은 문건에 별도로 적혀 있지 않다.
‘불구자들과 함께하는 일부 여성들이 남편을 구박하고 있다’는 문건도 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2018년 1월 27일 비준방침 제기된 자료와 대책안(조직지도부)〉 문건에는 “불구자들과 함께 사는 여성들 속에서 남편을 구박하는 현상이 우심하게(극심하게) 나타나 사회의 고상한 도덕기풍을 흐려놓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적 의견’이 흥미롭다.
〈당 조직들과 근로단체조직들에서 불구자들의 가정을 장악하고 불구자들을 구박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가족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짜고 들며 여러 차례 교양을 받고도 개조하지 못하는 대상들에 대하여서는 종업원, 주민총회에서 투쟁을 벌리고 톡톡히 망신을 주어 머리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 보여주는 두 개의 문건
▲본지가 입수한 북한 비밀 문건 중에는, 주민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나무를 도벌(盜伐)하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북한의 경제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엿볼 수 있다. 사진은 2008년 《조선일보》가 촬영한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비밀숙소에 모인 탈출 벌목공 세 명의 모습이다. 사진=조선DB
북한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방증하는 문건도 있다. 2018년 1월 27일 비준방침에 따라 작성된 〈일부 주민들이 자식들을 학교에 제대로 보내지 않고 장사를 시키고 있는 자료와 대책안(조직지도부)〉이란 문건에는 “최근 일부 주민들 속에서 자식들을 학교에 제대로 보내지 않고 집일과 부대기농사[화전(火田)을 일구어 짓는 농사]를 시키다 못해 시장(市場)에까지 데리고 나가 장사를 하게 하는 현상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고 적시돼 있다.
문건은 “세계관 형성에서 중요한 시기에 있는 학생 때부터 돈벌이에 재미를 붙이게 하면 그들이 앞으로 사회와 집단을 위해 제구실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후대(後代)들에 대한 교육사업이 조국의 장래와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명심하고… 교육 부문에서도 각성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같은 날 발효된 비준방침에 따라 작성된 〈제기된 자료와 대책안(조직지도부)〉이란 문건에 따르면, 주민들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나무를 도벌(盜伐)하는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주로 도벌하는 것 중 하나는 ‘겨우살이’라는 풀이었다. 문건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겨우살이는 사철 푸른 기생풀이다. 겨우살이 나무에서는 대당 15~30kg까지 겨우살이를 채취할 수 있는데, 이는 여러 약재(藥材)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문건은 ‘대책적 의견’에서 “산림 감독 기관들에서 주민들이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겨우살이 채취를 비롯한 여러 가지 명목으로 나무를 망탕(마구) 찍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교양과 법적통제를 강화하도록 하려고 한다”고 제시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장사에 내보내고, 나무를 마구 벌목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카스 관계자는 이 ‘비준방침’들을 제공하게 된 이유에 대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보고받는 문건을 통해 북한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북한이 외부에 표출하고 있는 행동과 말을 우리 정치권과 일부 북한연구가들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격 분석’이나 ‘선택적 정의와 해석’을 하고 있어 이를 경계할 필요도 있어 문건을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김정은을 포함한 소수 지배 엘리트들은 항구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최종 목적인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에 대해 아직까지 수정할 의사가 없음을 이 문건들을 통해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월간조선 조성호 기자
월간조선 08월 호
■n번방 조주빈이 사용한 모네로는 김정은의 핵 개발 자금 마련 통로
對北제재, 코로나19로 돈줄 마른 김정은 ‘모네로’ 해킹으로 비자금 조성
⊙ 2019년 美北 정상회담 결렬 직후 北의 모네로 채굴량 10배 이상 증가
⊙ 모네로 등 다크코인 해킹으로 비자금 모으는 김정은
⊙ 해킹으로 얻은 비트코인 수익→비트코인 믹서로 세탁→모네로로 환전→현금 세탁→核, 미사일 개발
⊙ 中 국경지대 北 유령회사이자 군사 해킹 작전 기지인 ‘조선 엑스포’ 박진혁 팀, 다수 국가 은행 자금 털어
⊙ “북한군 내 전문부대가 암호화폐 채굴에 관여”(유엔 보고서)… 北 정찰총국 산하 미림대학에서 천재 해커 키워
⊙ 전 세계 암흑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를 악용, 사이버 공격 감행 중인 北
북한 김정은이 비자금 조성을 위해 암호화폐 ‘모네로’ 해킹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보고서, 미국의 사이버 보안업체 ‘레코디드 퓨처(Recorded Future)’ 보고서 등을 통해 확인됐다. 모네로는 성(性) 착취물 유포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회원들에게 입장권 명목으로 현금 대신 받은 암호화폐다.
김정은과 조주빈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텔레그램을 활용한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 해커팀은 텔레그램에 개설한 가짜 계정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위장한 신분으로 싱가포르 암호화폐 거래소 ‘드래곤엑스(DragonEx)’ 고위 경영진에게 접근했다. 이후 경영진에게 악성 프로그램 설치를 유도해 드래곤엑스 계정 정보와 개인 비밀번호를 빼돌리는 수법으로 암호화폐를 갈취했다. 조주빈은 텔레그램 내에서 성 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박사방’을 운영했다.
김정은, 조주빈 같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류’들이 ‘모네로’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크코인이기 때문이다. 모네로는 익명성과 보안등급이 높아 거래 추적이 어렵다. 전 세계의 마약류 거래나 사이버 범죄자들 사이에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이유다.
모네로는 에스페란토어(국제 공용 가상어)로 ‘동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2014년 4월에 개발됐다. 모네로의 핵심 개발자는 리카르도 스파그니(Riccardo Spagni)다. 그는 2012년부터 암호해독에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스파그니는 ‘fluffypony(털이 보송보송한 조랑말)’라는 아이디로 널리 알려졌다.
모네로가 익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기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링 서명’이다. 링 서명은 블록체인에서 가져온 공개 열쇠와 사용자 개인 열쇠를 결합한 서명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일회용 키가 생성, 추적이 불가능한 익명 거래가 가능하다.
둘째, 수신자에게 일회용으로 제공하는 지갑인 ‘스텔스 주소’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거래 발신자는 수신자를 대신해 임의로 일회성 주소를 생성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모네로상에서 이체한 거래는 수신자의 공개 주소가 아닌 스텔스 주소로 전송, 익명을 보장받는다.
셋째, 2017년 9월 하드포크(업데이트)로 추가된 기술로 ‘링 기밀 거래’다. 이중·삼중의 보안기술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텔레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북한 해커들이 암호화폐를 갈취하고 조주빈이 ‘n번방’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사용한 텔레그램은 러시아판 페이스북이라고 불리는 소셜미디어 ‘브콘탁테(VK)’를 개발한 니콜라이-파벨 두로프 형제가 만들었다. 텔레그램은 사용자끼리 주고받은 모든 대화를 암호화해서 전송해 제3자가 감청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안 기능 덕분에 전 세계에서 3억명 이상이 텔레그램을 사용한다.
하지만 강한 보안성은 양날의 검이다. 외부에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은밀하게 음란물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중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에서 아동 포르노그래피·도촬(당사자 동의 없이 몰래 사진을 찍는 행위) 파일 유통, 매춘 연결 등의 도구로 활용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1월 “중국의 매춘 소굴이 텔레그램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서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성(性)을 팔고 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의 성 평등 옹호 기관인 AWARE(Association of Women for Action and Research)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로 인한 성폭력은 지난 2016년 46건에서 2018년 124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나 소셜미디어(SNS), 데이팅 앱 등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 영상을 유통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모네로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비트코인·라이트코인(Litecoin)도 채굴, 절도 또는 생성했다. 비트코인은 2008년 10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온라인에 공개한 〈비트코인: 피투피(P2P·Peer-To-Peer)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에서 태동했다. P2P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피어(참여자)끼리, 곧 개인과 개인 사이에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뜻한다. P2P 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전자화폐가 비트코인이다. 2009년 1월 나카모토가 처음 만들어낸 비트코인은 누구나 발행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된 화폐다. 정부가 발권하고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화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비트코인은 역사상 최초로 분산화(decentralized)된 돈인 셈이다. 나카모토는 이런 분산화폐를 만든 이유로 공공기관의 정보 독점 체제를 꼽았다.
라이트코인은 구글 엔지니어와 코인베이스 근무 경력을 가진 찰리 리(Charlie Lee)가 2011년 개발한 은색의 암호화폐다. 라이트코인은 비트코인의 파생 화폐로 볼 수 있다. 블록체인에 기반해 채굴되고, 매장량이 한정돼 있다는 점도 같다.
비트코인이 데이터를 분산해 ‘저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라이트코인은 ‘결제 기능’에 특화돼 있다. 또 비트코인보다 갱신 속도가 빠르고 총매장량이 4배(8400만 개) 많다는 차이도 있다.
북한 공작원들은 최소 2017년 8월부터 모네로를 사용해왔다. 당시 북한은 ‘워너크라이(WannaCry)’ 공격을 통해 얻은 비트코인 수익을 비트코인 믹서(Bitcoin Mixer)로 세탁한 후 모네로로 최종 환전했다.
워너크라이는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 기법의 하나다. 랜섬웨어는, ‘몸값’을 뜻하는 랜섬(ransom)과 ‘제품’을 뜻하는 웨어(ware)의 합성어다. 인터넷 사용자의 컴퓨터에 잠입해 내부 문서나 사진 파일 등을 제멋대로 암호화해 열지 못하도록 한 뒤, 금품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뜻한다. 워너크라이는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만 되어 있어도 감염되는 신종 기법이었다. 비트코인 믹서는 거래 명세를 숨기는 것을 뜻한다.
북한은 2017년 5월 위너크라이 공격으로 150개국에 걸쳐 컴퓨터 30만 대 이상을 감염시켰다. 악성코드 설치 프로그램 파일 이름이 ‘intelservice.exe’로 설정돼 컴퓨터 사용자가 인텔 소프트웨어로 착각하도록 만들어져 피해가 더욱 컸다. 당시 랜섬웨어 ‘워너크라이’ 공격이 중국어를 사용하는 해커들의 소행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유엔 자료 등에 따르면 배후는 북한이다.
北, 2019 美北 정상회담 결렬 직후 모네로 채굴량 10배 이상 늘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해킹 등을 이용한 모네로 채굴량을 10배 이상 늘렸다. 김정은은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실상 대외 전시용 시설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부분적 핵 능력 감축의 대가로 대북제재 대부분을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들의 폐기를 주장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이 결렬되자, 암호화폐 해킹을 통해 비자금 마련에 나선 것이다.
북한은 암호화폐 해킹을 위해 ‘크립토재킹(Cryptojacking)’ 기법을 사용한다. 크립토재킹은 암호화폐 시세가 오를 때 사용자 PC에 몰래 설치한 채굴 프로그램을 이용, 이득을 편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식이다. 워너크라이 같은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속여 암호화폐 관련 악성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게 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무도 모르게 사용자의 컴퓨터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채굴한다.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에일리언볼트(AlienVault)’ 관계자의 이야기다.
“북한이 개발한 악성코드에 감염된 컴퓨터는 모네로를 채굴하게 되고, 자동으로 채굴된 모네로를 북한 김일성대학 서버 도메인으로 보낸다. 북한 해커는 채굴된 모네로를 사용하기 위해 ‘KJU’라는 암호를 사용했다. 이는 북한 김정은의 이니셜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북한은 암호화폐 해킹을 시도하면서 특히 한국의 사용자를 표적으로 삼았다. 유엔 대북제재위가 전문가 보고서에서 밝힌 바로는 북한은 2015년 말부터 2019년 5월까지 국제 해킹으로 20억 달러(2조4400억원)를 탈취했으며, 그중 한국이 10건의 피해를 봤다. 한국의 전체 피해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해킹을 당한 17개국 중 한국이 최다 피해국이라고 한다. 피해액만 수억 달러일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보고서 등에 따르면 북한이 암호화폐 해킹을 통해 그동안 벌어들인 외화수입은 1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로 12조원이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 해커들의 암호화폐 탈취 관련 정보와 돈의 흐름을 추적해 최근 이 같은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불법 암호화폐 자금을 무역을 통한 자금세탁 등에 사용하고 있다. 실제 미국 법무부는 최근 북한 국경을 넘다 적발된 중국인 두 명을 총 1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프리실라 모리우치 하버드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은 “여러 정황으로 비추어볼 때 북한은 각종 무역 거래에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게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AP통신은 북한의 암호화폐 해킹에 주목하며 열악한 IT(정보통신) 환경에서 이런 일을 벌인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전문가의 입을 빌려 “북한 해커들의 실력을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건 오판”이라면서 “북한의 해킹 행위를 추적하는 사람들은 그 실력에 경외감을 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2019년 8월 유엔 전문가 패널의 중간보고서를 보면 한 회원국은 “북한군 내 전문부대가 암호화폐 채굴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정찰총국 통제 아래 ‘라자루스’ ‘블루노로프’ ‘안다리엘’의 3개 해킹조직을 운영한다. 라자루스는 2014년 소니픽처스 해킹,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2019년 3월 싱가포르 암호화폐거래소 해킹 등에 연루됐으며, 하부 그룹으로 ‘블루노로프’와 ‘안다리엘’을 두고 있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1990년대 후반 사이버 전사단인 121부대를 창설했다. 1996년 최전방 병력 시찰 자리에서 “미래 전쟁은 컴퓨터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한 직후였다. 최후진국 중 하나지만 컴퓨터의 중요성은 일찌감치 인지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학 도사’들을 정선해 몰아넣었다. 컴퓨터 사용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일련의 특수학교들로 진학해 올라가게 했다. 뛰어난 학생들은 김일성대학·김책공과대학으로 보내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그러나 가장 명석한 해커들을 철저한 교육으로 육성하는 곳은 따로 있다. 해킹 특수 업무를 배우는 곳은 정찰총국 산하 모란봉대학과 인민군 소속 미림대학(현 김일군사대학)이다. 두 곳 모두 사이버전 지휘관·전사 양성에만 몰두하는 특수 기관들이다. 북한이 운용하는 전문 해커는 1700여 명, 지원 인력은 5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 제거를 위한 참수(斬首) 공격을 감행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가장 엄중한 해킹 과업으로 삼고 있다 한다.
김정은이 암호화폐 해킹, 채굴을 통한 비자금 마련에 목을 매는 이유는 뻔하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돈줄이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김정일로부터 통치 자금 40억~50억 달러(약 3조8000억~5조6300억원)를 물려받았다. 그는 이 돈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고급 승용차, 요트, 주류, 명품 의류·장신구, 고가 식자재 등을 사들여 부하들의 충성도에 따라 살포했다. 또 평양 여명 거리와 마식령 스키장 등 각종 건설사업과 현지 지도에서 비자금을 통 크게 사용했다. 김정일의 연간 외화 지출 규모가 3억 달러였던 데 반해 김정은은 두 배가량인 6억 달러 정도를 썼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돈줄이 끊길 위기에 직면했으니 사이버 금전 탈취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실제 북한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장기화로 평양 시민에게 3개월간 배급을 주지 못하고 일부 대도시에서도 아사자가 나오는 등 최악의 경제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에서는 ‘제2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꼭 핵을 만들어 제재를 받아야 하나”라는 불만까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 소식통은 “황해도에서 공급되던 수도미(평양시에 공급하는 식량) 재고가 떨어지고 올해 초 북중(北中) 무역이 중단되면서 지난 4월부터 평양 시민에게 3개월간 배급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또 평양에서는 6월 초부터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시장이 폐쇄되고 주민들의 이동이 통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소 폭파 등 대남(對南) 도발에 나선 배경에는 ‘평양 엘리트 민심’까지 흔들릴 정도의 경제난으로 내부 동요가 커지자 상황 악화의 책임을 한국에 돌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의 해커 조직은 ‘코로나19’가 자신들은 물론 전 세계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은 현 상황을 악용, 사이버 공격을 감행 중이다. 세계 곳곳의 정부가 최근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국면에서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상황을 노린 것이다.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민간 사이버 보안업체 ‘사이퍼마(Cyfirma)’의 〈북한 라자루스(Lazarus) 조직의 전 세계 코로나19 피싱 캠페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조직인 라자루스는 최근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 “코로나 정부 지원금을 주겠다”며 악성코드를 심은 이메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돈이나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
북한 해커들은 정부 기관을 사칭해 코로나 지원금 관련 내용을 미끼로 넣은 뒤 피싱 사이트 링크를 이메일로 보냈다. 피해자가 마치 정부 기관이 보낸 메일로 착각해 피싱 사이트에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도록 했다.
보고서는 “라자루스가 지난 6월 1~16일 미국과 한국, 일본, 영국, 인도, 싱가포르 등 6개국에서 개인, 기업 등 약 500만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지원금을 주겠다’는 메일을 보낸 뒤 악성코드와 피싱 사이트 링크를 심었다”며 “이는 조직적인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해커들이 한국과 미국의 정부 기관으로 속여 만든 가짜 계정으로 보낸 이메일 내용도 공개했다. 한국 이메일 계정 약 70만 개에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미국 이메일 계정 약 140만 개에 1000달러를 주겠다는 ‘미끼’ 정보가 들어 있었다.
미국의 사이버 보안기업 ‘리버싱랩스(ReversingLabs)’는 북한의 또 다른 해커 조직인 ‘히든 코브라(Hidden Cobra)’를 분석한 〈탈피에서 독사 둥지까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히든 코브라가 정부 기관을 사칭하면서 실제와 유사한 가짜 웹사이트로 위장해 한국과 미국 등의 공공기관을 노린 사이버 공격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의 제재를 피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모델은 암호화폐·블록체인 기술의 이용 및 악용 외에도 ‘인터넷을 이용한 은행 절도(bank theft)’ ‘해외파견 공작원을 통한 작전’이 더 있다.
우선 금융기관 공격이라 불리는 ‘인터넷을 이용한 은행 절도’부터 살펴보자. 북한 공작원들은 먼저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국제은행 간 금융통신협회) 단말에 접속한 후 일련의 부정 거래를 수행했다.
SWIFT는 금융거래 관련 메시지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주고받기 위해 유럽 지역 은행들이 1973년 5월 브뤼셀에 설립한 금융통신망이다. 이런 거래를 통해 피해자 은행에서 가짜 계좌로 자금을 송금하고 북한 공작원들이 이를 바로 현금으로 인출했다. 북한 공작원들의 SWIFT 관련 부정 거래 작전은 표적 국가의 공휴일이나 긴 주말 사이에 이뤄졌다.
북한 공작원 박진혁에 대한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의 2018년 9월 기소장 내용을 보면, 북한 공작원들은 흔히 북한 IP 공간을 이용해 공격 대상 웹사이트 방문, 피싱(phishing) 이메일 전송, 네트워크 정찰을 수행했다. 박진혁은 중국 국경 지대에 위치한 북한의 유령회사이자 군사 해킹 작전을 수행하는 곳으로 알려진 조선 엑스포(Chosun Expo) 소속이었다. 박진혁을 비롯한 북한 해커들은 2016년 SWIFT 지불 네트워크를 공격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 은행들의 돈을 훔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동남아시아 은행들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가을부터였다.
박진혁 등 북한 해커팀은 폴란드 은행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 공격에 사용된 이메일 주소, 페이스북 계정 및 북한 IP 주소는 공교롭게도 록히드 마틴과 같은 미국 기업 및 한국의 일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워터링 홀’ 작전
또 북한 공작원들이 전략적 웹 침해(SWC·Strategic Web Compromise)를 통해 중앙은행이나 금융 규제 당국 웹사이트를 표적으로 삼았음을 시사하는 새로운 데이터도 존재했다. 전략적 웹 침해인 SWC는 ‘워터링 홀’이라고도 하는데, 사자가 물웅덩이에 매복해 먹잇감을 기다리듯 공격 대상이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에 미리 악성코드를 심어두고 접속을 기다리는 수법을 뜻한다. 이러한 웹 침해는 이후 은행 자체에 대한 침입 시도와 은행 간 부정 거래 시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꼭 SWC 방식으로만 공격하지 않았다. 2018년 터키 은행을 대상으로 한 최소 1건의 공격에 북한 공작원들은 ‘스피어피싱(spearphishing)’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스피어피싱은 특정 기업·기관·인물을 목표로 정보를 훔치는 공격으로 일명 ‘작살형 공격’으로 통한다.
멀웨어(malware·악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공격을 하기도 한다. 2019년 11월 1일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의 사이버 보안업체인 파이어아이(FireEye) 발표를 인용, 중국 정부와 연계된 북한 해킹 집단이 멀웨어를 이용해 외국의 고위급 군사 및 정부 관계자들의 문자메시지를 훔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파견 공작원을 통한 작전’은 해외 시설에 거주하는 공작원과 프로그래머가 시행한다. 비디오 게임을 위조하는 게 주 업무다. 북한 해커 10여 명과 함께 중국에서 작업을 수행했던 한 탈북자는 “이런 해커 집단이 평균적으로 연간 약 10만 달러를 벌었다”며 “이 중 80%는 북한에 송금했다”고 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북한 공작원과 해커들은 가짜 비디오 게임과 봇을 개발하는데, 정상적인 게이머들의 귀중한 아이템을 빼앗아 되팔아 수익을 얻는다. 또 게임 내 버그를 찾아내 게임 개발사에 팔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용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용자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이들의 해외 기지는 인도, 러시아, 중국, 네팔, 케냐, 모잠비크, 인도네시아, 태국, 방글라데시에 있다.
북한은 이런 제3국에서 사이버 공작원을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유엔 제재에 따라 금지된 핵 관련 지식을 교육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7년 9월 조사에서 북한 주민들이 해외, 특히 중국에서 “고급 물리학, 고급 컴퓨터 시뮬레이션 및 관련 컴퓨터과학, 원자력공학, 항공우주공학 및 관련 학문 교육 또는 훈련 등 북한의 민감한 핵 활동 확산 또는 핵무기 운반체계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과목을 공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北의 사이버 금전 탈취는 계속
블록체인 기술 등을 활용한 북한의 사이버 금전 탈취는 계속될 전망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북한의 사이버공작요원들은 평양과 해외거점 데스크에 앉아 우리의 국가기관망, 금융망, 방송통신망, 교통망, 에너지망, 교육망, 사회안전망 및 민간 상용망 등을 대상으로 초(秒) 단위의 사이버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 북한 및 해외로부터 한국의 국가기관망과 공공망을 대상으로 해킹을 시도하는 건수가 하루 평균 150만 건에 달한다. 1초에 18회 이상 사이버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의 이야기다.
“북한의 사이버 금전 탈취 등 경제안보와 사이버 테러 등 안보위협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우린 이에 대응할 법적 장치인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가칭)조차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이른바 남북 화해 국면에서조차 우리를 대상으로 사이버 금전 탈취 등 해킹 공격을 일상화하고 있는데도 경고도 못 하고 침묵하는 정부를 보면 사이버 국부(國富) 유출과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이 보장될지 의문이다.”⊙
최유석 월간조선 기자
월간조선 08월 호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평양 풍경
“식량이 없어서 나라가 무너질 일은 없을 것”
⊙ “1989년부터 평양은 구역별 배급… 힘이 있는 구역은 계속 배급을 주고 그렇지 못한 구역은 못 준다”
⊙ 식량부족설에 대해 “그것도 외국 기준… 북한 사람들은 적게 먹고도 버틸 수 있다”
⊙ “방역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건, 인민들이 고생하는 건 김정은 책임 아니라는 뜻”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역임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북한 《로동신문》은 지난 7월 3일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해, 코로나19 방역 강화조치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16일, 김여정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팩트다. 6월 초부터 대북전단규탄대회 같은 관제 데모와 막말 담화가 이어진 뒤 벌어진 일이다. 6월 1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평양시의 당과 행정기관 간부들에게 3개월째 식량 배급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6월 30일, 《조선일보》에는 김정은의 ‘와병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소문”이라는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의 발언이 실렸다. 7월 3일에는 김정은이 석 달 만에 다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강화를 지시했다는 기사가 《로동신문》에 나왔다.
대남도발, 식량난, 전염병 등 북한 내부의 최근 상황은 어떨까? 평양에 거주하는 여러 인사와 통화한 이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종합한다. 본인들의 요청에 의해 어떤 이들이 어디서 북한 내의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다만, 북한 내에도 북한 상황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객관적이며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말씀드릴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 지난 3월부터 평양시에 배급이 끊겼는가.
“끊긴 구역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구역도 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 ‘새로운 상황이 아니’라니?
“외국 기준이나 관점으로 문제를 보면 진실이 안 보인다. 평양의 경우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이후부터 배급 방식이 바뀌었다. 지금은 보통강구역, 동대원구역, 대동강구역 등 구역별로 알아서 배급을 준다. 힘이 있는 구역은 계속 배급을 주고 그렇지 못한 구역은 못 준다. 3월 이전에 배급이 끊어진 구역이 있다는 뜻이다. 배급이 끊어진 구역은 각자가 알아서 먹고살았다. 물론 넉넉하게는 못 산다.”
― 정말 괜찮은가? RFA는 평양 소식통의 말을 인용, “평양 시당과 시정부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식량 공급이 3개월 전부터 끊겨 간부 가족들이 생활고를 호소한다”며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식량 공급 중단 사태는 지난 6월 7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7기 13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경제난을 알게 된 평양시 간부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평양이라고 핵심 간부만 사는 것이 아니다. 간부들도 직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간부 아닌 사람들도 많다. 방금 말한 것처럼 같은 평양이라고 다 같은 평양이 아니지. 평양 시민 중에도 노동자가 있고, 남쪽 식으로 말하면 하층민도 있다. 물론 평양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지방 사람들보다는 사는 형편이 더 낫겠지만. 정말 어려워도 배급이 절대로 끊기지 않는 구역이 있다. 핵심 간부들이 사는 중구역이다. 중구역에 배급이 끊어진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일이겠지. 우리가 망한다면 모를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중구역 배급이라 해도, 배급량을 압쌀이 아니라 감자나 옥수수로 준다거나, 술·기름 등 공급량이 줄어들어 자식·손주들한테 들려 보낼 물품이 없다거나 하는 건 있다.
간부들이 동요한다는 건 경제제재 때문이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아예 잘 살기를 포기하고, ‘고난의 행군’이 또 왔다 생각하고 버티기로 마음먹으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식량이 없어서 나라가 무너질 일은 없을 것”
―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는 북한에 100만~150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것도 외국 기준이다. 북한 사람들은 기대수준이 높지 않다. 적게 먹고도 버틸 수 있다. ‘고난의 행군’ 때는 밥이 아니라 죽만 먹어도 감지덕지였다. 밥이 아니라 죽을 먹는다 생각하면 식량은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 통계도 그렇다. 외부 식량 원조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농지도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곳만 보여주고, 인구도 실제보다 좀 불려서 보고하고…. 유엔이든, 민간이든, 국제기구 사람들이 오면 간부들이 그렇게 사업한다는 걸 우리는 다 안다. 100만톤 이상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적게 받아도 견딜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감자도 나오고, 금년 농사도 흉작은 아니고…. 배불리 먹지야 못하겠지만, 식량이 없어서 나라가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단, 모든 지역으로 분배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 절량(絶糧) 가족, 아사자(餓死者)가 나온다는 보도도 있다. 사실인가?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뜻 아닌가.
“맞다. 나온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그것이 ‘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길’에서 아사(餓死), 동사(凍死), 타사(打死)는 피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죽는 것(타사)’이 ‘사고로 죽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사자가 나온다는 건 가슴 아프지. 하지만 그것이 인민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남쪽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절량 농가도 나오고 식량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나? 그래도 나라가 무너진 것은 아니잖나. 아, ‘고난의 행군’ 때처럼 아사자가 대량으로, 도농(都農)에서 다 나온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인민들도 똑똑해져서 어떻게든 자기 살길은 알아서 다 마련할 거다.”
―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떤가. 《로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이 7월 2일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섣부른 방역조치의 완화는 상상할 수도, 만회할 수도 없는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고 거듭 경고했다” “전염병 유입 위험성이 완전히 소실될 때까지 비상방역 사업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는데…. 김정은은 지난 4월 11일 정치국 회의 때도 코로나19 대응을 지시한 적이 있지 않은가.
首領경제, 軍需경제, 內閣경제
“비루스뿐 아니고, 여기서는 매년 장티푸스며 파라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돈다.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비루스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남쪽 기준으로 보자면 위생상태가 엉망이다. 상수도·하수도부터가 형편없는 수준이니 마시는 물, 씻는 물이 다 문제겠지. 그래서 여기서는 전염병이 연례행사다. 막으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끼리 장티푸스나 파라티푸스는 걸릴 사람은 다 걸렸고 죽을 사람은 다 죽었을 것이라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다. 나만 해도 장티푸스, 파라티푸스가 모르는 사이에 걸렸다 다 나았다.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항체(抗體)가 생겼을 것이다. 비루스야 신종 전염병이라니 유행이 되면 좀 문제가 커지겠지. 방역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인민들이 고생하는 건 김정은 책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 무슨 뜻인가.
“북한 경제는 수령(首領)경제, 군수(軍需)경제, 내각(內閣)경제가 다 따로 돌아간다. 인민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내각경제인데, 이를 수령경제와 군수경제가 뜯어먹고 사는 구조다. 수령경제와 군수경제는 돈을 쓰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민들 노동력을 착취해서 수령경제, 군수경제 종사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북한 경제는 자본주의와 운영원리가 다르지만 그런 면에서 다른 공산국가의 경제구조와도 다르다.
김정은이 요즘 내각경제 이야기를 안 하는 건 문제가 생겼을 때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책임질 일을 안 했으니 잘못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요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구나, 국제적으로 어디서 도움받기도 쉽지 않은가 보다, 그러니 잘 살 수 있다는 기대는 당분간 할 수 없겠구나, 라고 짐작한다. 이것이 남쪽에서 말하는 ‘평양시 간부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말이라면 그건 맞다.”
― 방역은 잘 하고 있는가.
“여기서는 방역이고 뭐이고 일단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막는다. 중국과의 국경도 차단했다. 균을 옮기지 말라는 거지. 약도 없고 약 사올 돈도 없으니 그것 말고 달리 방법이 있겠나. 그런데 위에서 하는 지시가 100% 먹히지 않는다. 먹고살아야 하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 어떻게든 단속망을 뚫고 돌아다니는 거다. 병에 걸려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데 막을 재간이 어디 있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연히 고이는 돈만 올랐다는 말이 돈다. 더 고위급을 더 비싼 값에 매수해야 하니까.”
― 확진자나 사망자는 얼마나 되는가.
“알려주지 않으니 모른다. 우리끼리는 사망자가 적어도 수백 명은 되지 않겠나 짐작한다. 그런데 비루스가 아니더라도 여기서는 병에 걸리면 온전히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면역력이 떨어지고, 합병증(合倂症)이 많이 온다. 지병 있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비루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안해하는 사람 거의 없다”
―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
“TV에서 폭파 장면을 자세하게 보여줬다. 우리끼리는 ‘남쪽에서 단단히 약속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안 줘서 본때를 보인 것’이라고 한다. ‘오죽 약속을 안 지켰으면 우리가 이랬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면 그래도 도와줄 데라고는 남쪽밖에 없는데, 이젠 남쪽 비위를 긁어놓았으니 도움받기는 다 틀렸다’며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는가.
“거의 없다. 나는 걱정이 된다. 한국에서 쌀이며 비료며 장기간 동안 상당한 지원을 해줬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일반 주민은 다르다. 남쪽이 잘산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우리에게 쌀과 비료를 보내줬다는 건 아는 사람이 없다. 일반인에게 차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데 불안해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혹시 한국에서 국제제재를 뚫고 쌀을 보낸다 해도, 나 같은 사람조차 기대가 크지 않다. ‘그저 비상용 쌀이 들어왔으니 군량미나 비축미가 풀리겠구나, 그렇다면 쌀값이 한꺼번에 오르는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는 정도다.”
― 여기서는 대북전단규탄대회 뉴스가 크게 나왔다. 이후에 달라진 상황이 있는가.
“있다. 탈북민을 인간쓰레기라고 욕하며 대대적으로 닦아 세웠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않나. 탈북민에 대한 일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현재 탈북민들이 북에 남은 가족들에게 보내는 돈을 집중 단속 중이다. 탈북한 사람이 누군가, 돈은 언제부터 얼마나 누구를 통해 받았나, 어디에 썼나, 전화 통화한 사실은 없나를 일일이 조사한다. 사실상 돈 보내는 길이 막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특히 국경 연선에서는 돈 쓰는 사람이 확 줄었다.”
문제는 시기와 질투
위 상황에 대해 탈북민들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인다. 최근 몇 년간은 중국을 통한 대북 민간 송금을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송금받는 집을 보호해주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는 간부들도 많았다. 그런데 북한 당국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는 ‘시기와 질투’라는 것이 탈북민들의 설명이다. 탈북한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상대적으로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받은 집에서는 전기도 창문을 가리고 몰래 쓰고, 음식 냄새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한다. 그래도 누가 갑자기 잘살게 되었는지는 동네 사람들이 다 아니, 당국에서 탈북민들을 대대적으로 규탄한 김에 그 가족들을 밀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다. 최고위층에서 탈북민들을 격렬하게 비난했으니, 탈북민 가족에게서 뇌물을 받아먹던 간부들이 봐주거나 늦춰주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돈을 받던 사람들이다. 간접적으로 ‘자본주의’의 맛을 본 사람들이기에 송금이 끊어지면 더 이상 북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탈북을 실행할 것이다 라는 것이 상당수 탈북민들의 공통적인 예측이었다.
김정은의 신상과 관련, 주목할 만한 발언도 있었다. 6월 25일 일본에 체류 중인 외신 기자들의 모임인 외국특파원협회(FCCJ) 초청 기자회견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방위상이 김정은 건강과 관련해 “의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는 “정보 사안을 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뉘앙스는 ‘무언가를 알고 있지만 밝힐 수 없다’는 쪽에 가까웠다. 지난 4월의 ‘사망설’ 및 국제적 오보(誤報) 확산 소동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책임 있는 인사가 작심하고 한 발언이라 심상치 않다.
최근 김정은의 동선(動線)도 국제사회의 의혹을 사고 있다. 《로동신문》·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는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5월 24일 보도) → 정치국 회의(6월 7일) → 중앙군사위 예비회의(6월 23일) → 정치국 확대회의(7월 2일) → 김일성 사망 26주 참배 행사(7월 8일) 등 김정은 관련, 최소한의 일정만을 보도했다. 일부는 관련 영상도 공개하지 않고 사진과 기사만 내보냈다. 건강이상설이 자꾸 불거지는 이유다.
“러시아에서 나오는 얘기가 다 맞았다”
― 다들 북한이 어렵다고 하는데, 주(駐)평양 러시아대사만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는 지난 6월 29일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지도자(김정은)가 대중 앞에 덜 나타나고는 있지만 그는 결정을 내리고 그의 지시는 보도되고 있다”는 근거를 들며 “북한은 이전처럼 정상적인 업무 체제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맞을 거다. 러시아대사관 위치가 중앙당 바로 옆이다. 중국대사관은 중구역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러시아대사관에 안테나가 수없이 솟아 있으니 당 간부들의 중요 대화를 다 도청하지 않겠나. 나중에 보면, 러시아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다 맞았다. 도청을 막겠다고 그 주변을 원형으로 감싸는 고층건물을 지었는데 소용없었다. 그래서 중앙당 간부들 사이에는 ‘1급 기밀 사안은 수첩에 적어서 회의하라’는 수칙이 있다.”
말이 난 김에, 마체고라 대사의 인터뷰를 좀 더 살펴보자. 그는 김정은 건강이상설에 대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소문”이라는 말에 덧붙여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후계자 준비를 하고 있다는 ‘김여정 후계설’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했다. “김여정이 정치적·대외정책 경험을 쌓으면서 높은 수준의 국가 활동가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전부”라고 했다. ‘러시아 쪽 분석이 가장 믿을 수 있다’는 ‘평양 시민’의 평가를 기준으로 하자면, 북한의 현 상황은 ‘일상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해도 위기라고는 볼 수 없는’ 정도인 듯하다. 다만, 마체고라 대사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당국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드러났다는 대목은 또 다른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북한이 對北전단에 격분한 이유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대사는 같은 날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부는 물론 주민들이 (탈북민 단체들이 살포한 대북 전단에) 강력한 분노를 한 것은 (대북전단이) 포토숍까지 이용한 저열한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지난 5월 31일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지도자의 부인을 향한 추잡하고 모욕적인 선전전의 성격을 띠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손덕호 기자는 이 발언을 ‘북한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까지 했던 것은 전단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내 리설주를 겨냥한 외설적인 합성사진이 실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라고 분석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북한 당국은 평양 시민들에게 전단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알려주지 않은 듯하다. 신성모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반역자이며 인간쓰레기인 탈북자들을 찢어죽이라”는 구호, “치가 떨려 참을 수 없으며 심장의 피를 끓이고 있다”는 재중조선경제인련합회 담화문을 소개하며 ‘간접적으로 소개’했을 뿐이다. 심리전은 대한민국이 비대칭적(非對稱的)으로 우세한 분야인데, 북한을 가장 심하게 흔들 수 있는 지점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를 북한 스스로가 노출한 셈이다.⊙
08.21 "김여정이 일부 위임 통치" 北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국가정보원이 20일 국회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정은이 여전히 절대 권력이지만 과거에 비해 권한을 이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위임 통치는 김여정만 하는 게 아니라 경제는 김덕훈 총리, 군사는 최부일, 전략무기는 이병철 등"이라고 했다. "김여정이 후계자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수수께끼 같은 얘기다.
국정원은 '위임 통치'의 이유로 "김정은의 통치 스트레스 경감"이라고 했다. 지난 9년간 독재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는 것이다. 정책 실패 시 김정은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이유도 있다고 했다. 지금 북한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엉망이 된 경제에 수해까지 덮쳤다. 최고지도자의 망신으로 끝난 미·북 정상회담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에게 주민 불만이 쏠리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위임 통치'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일성은 1인 통치 체제를 확립한 이후 누구에게도 권한을 나눠주지 않았다. 김정일은 이복형제를 숙청했고 2인자 소리를 듣는 부하는 바로 제거했다. 김정은도 고모부와 이복형을 처단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주요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대남·대미·군사 문제는 최고권력자만 다룰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김여정이 전면에 나서 대남·대미 강경 메시지를 쏟아냈다. 김정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퍼지기도 했다. 김정일이 한 번도 열지 않았던 노동당 대회를 내년 1월 또 개최한다고 한다. 여태 본 적이 없던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조선일보 사설
08.21 장성민 "김정은 위독하거나 쿠데타일때만 北위임통치 가능"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중앙포토
김대중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지낸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에 통치 권한을 위임했다는 국정원 보고를 두고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을 재차 제기했다.
장 이사장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과 같은 신정(神政) 체제에서 1인 영도자의 지도력을 대신해 위임 통치한다는 말은 모순이고 있을 수 없는 말”이라며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는 딱 두 가지 사태가 발생했을 때만이다. 첫째, 김정은이 병상에 누워서 더 이상 통치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이고, 둘째 쿠데타에 의해 실권을 했을 경우”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일전에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해 정통한 중국 라인에 따르면 사실상 김정은이 코마상태고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를 대신할 완벽한 후계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상황이며,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국정 공백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리더십 공백을 김여정을 내세워 조금씩 보강해 나가려는 상태에 빠져 있다고 본다”고 적었다.
장 이사장은 “(김 위원장의 부인인) 이설주가 120일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은 건 김정은의 건강이 그만큼 위독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역시 막후에서 북한의 국정 전반을 다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북측이 공개한 김 위원장에 관한 사진 등이 ‘페이크(조작)’라며, 통치 스트레스를 경감하기 위해 권한을 위임한 것이라는 국정원의 설명에 대해 “김정은의 나이가 지금 37세에 불과하다. 이제 9년밖에 통치하지 않은 젊은 지도자에게 무슨 통치 스트레스가 쌓였겠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장 이사장은 지난 4월에도 중국 고위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신변 위독설을 제기했다.
중앙일보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08.27 그 해 여름처럼…벼랑 끝에 선 북한의 ‘주체 경제’
김정은의 ‘정면돌파’ 전략은 왜 좌초했나
예정된 파국이었지만 너무 일찍 와버렸다.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를 내건 구호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붉은 깃발은 내려졌다. 진격의 나팔 소리 대신 정책 노선과 궤도 수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정은식 경제전략의 실패를 자인하는 현장이 돼버린 노동당 7기 6차 전원회의 얘기다. 지난 19일 평양의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회의 결정서는 참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계획되었던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졌다”는 게 핵심이다.
“경제 안풀려 답답” 토로한 김일성
손자인 김정은도 “경제전략 실패”
민생 우선 챙기겠다 약속 했지만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파산 위기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만들자며 선전 선동에 박차를 가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인데 급작스레 분위기가 바뀌었다. 북한으로선 무엇보다 ‘수령 무오류’의 원칙에 치명타를 입은 게 뼈아플 수밖에 없다. 당 간부와 경제관료들이 너도나도 나서 ‘내 탓이오’를 연발하고 있지만, 김정은의 리더십에 금이 갔다. 내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를 기약하자며 다시 고삐를 죌 기세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0년 8월 노동당 전원회의는 1994년 여름의 데자뷔다. 26년 전인 그해 7월 국가주석 김일성은 경제일꾼 회의를 소집했다. 도무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는 북한 경제 전반의 문제점을 짚고 간부들에게 직접 자극을 가하려는 자리였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에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까지 겹쳐, 그렇지 않아도 빈사상태였던 경제가 파산지경이었다. 개혁·개방을 택한 중국은 아직 북한에게 효율적인 원조나 구호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1993년 12월 열린 당 6기 21차 전원회의에서는 제3차 7개년 계획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열악했던 당시 상황은 김일성 사망 이틀 전인 1994년 7월 6일 소집된 경제부문책임일꾼협의회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북한에서 ‘일꾼’은 해당 분야 간부를 의미한다. 경제 분야를 책임진 노동당과 내각의 고위 관료들이 참여한 일종의 대책회의라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이 자리에서 “가슴이 왜 이리 답답한가. 경제가 안 풀려 요즘은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게 됐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제 각 부문이 제대로 되는 게 없다”고 말한 뒤 부총리와 장관급 간부들을 하나씩 일으켜 세워 질책했다. 그는 “동무들!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는 당의 결정사항 아닌가. 화학비료는 남흥화학·흥남화학을 생산 정상화하도록 만들라우”라며 다그쳤다. 또 참석 간부들에게 “경제가 엉망인데 동무들은 회의에서 아무런 문제 제시나 답변을 못 하고 있다”라고 호통을 쳤다. 김일성은 끝부분에서 “이틀 뒤 다시 회의를 소집하겠으니 부문별로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 지시했지만, 심근경색으로 숨지면서 회의는 다시 열리지 못했다.
경제 발목잡는 화학공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을 마친 뒤 장길룡 화학공업상으로부터 생산 공정을 브리핑 받고 있다. 장길룡은 8월 21일자 노동신문에 ’화학공업 부문이 제구실을 못한 건 화학 공업성 일꾼들이 전략적 안목과 사업성이 없이 일했기 때문“이란 반성문을 실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일성은 당시 화학공업부장 김환을 집중적으로 다그쳤다. 비료 생산의 정상화가 다급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화학공업 부문이 화근이었다. 경고음은 일찌감치 울렸다. 지난 6월 초 김정은이 주재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의 주요 의제 중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게 화학공업의 발전 문제였다. 이후 잇달아 열린 노동당과 정무국의 주요 회의에는 화학공업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코로나19 대책이나 홍수 피해 복구 등도 주목받는 이슈였지만 김정은의 신경은 화학공업에 곤두서 있었다. 지난 4월 하순 건강 이상설로 장기 공백 상태에 빠졌다가 복귀한 그가 첫 공개활동을 시작한 자리가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이었다는 점만 봐도 화학공업에 김정은이 얼마나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난파 위기에 처한 북한 경제의 심각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 상태에 빠지거나 차질을 빚고 있다. 강원도 원산의 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맞춰 완공될 예정이었지만 지난 4월 김일성 생일로 늦춰졌다. 하지만 이마저 맞추지 못했고 더는 북한 매체에서 언급이 없다. 대북제재 상황에서 원산에 수십 개 동에 이르는 대규모 해양리조트와 관련 시설을 짓는다는 게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직접 기공식에 참석해 첫 삽을 뜨기도 한 평양 종합병원 건설도 김정은이 당초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까지 끝내라는 지시를 내린 건설사업이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슬그머니 내년 1월 8차 당 대회에 맞추려는 분위기다.
연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기세등등했다. 미국이 비핵화만 요구하며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김정은 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곧이어 밀어닥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의 충격파는 컸다. 체제의 명운이 걸린 방역을 위해 외부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면서 경제는 엉망이 됐다.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장마당 경제도 북·중 접경의 밀무역까지 사실상 전면중단되는 상황에 빠졌다. 중국 해관통계에 잡힌 북·중 간 공식 교역은 대북제재와 코로나 여파로 95% 감소했다고 한다. 그나마 사정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평양 거주 주민들의 생활 문제가 열악해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정은이 직접 노동당 회의 의제로 챙기는 일도 나타났다.
통일부와 국정원 엇박자
이런 심상치 않은 북한 내부의 상황 변화에 우리 정부 당국이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이며 방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촉수 역할을 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은 엉뚱하게 ‘위임통치’ 카드는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치 9단으로 불린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 보고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게 권한 일부를 위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한 관영 매체가 김여정의 최근 담화나 입장 발표 등에 ‘위임에 의하여’라는 표현을 쓴 대목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니 ‘위임통치’라는 말이 불러올 파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정보위원들의 입을 통해 김정은 권력의 이상 징후나 건강·후계 문제로까지 번지자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의 권력 구도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언급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점은 불쾌할 수 있다. 북한이 당장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향후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정작 국민이 궁금해하는 북한 내 코로나 창궐 상황이나 김정은의 건강 문제 등에 대해서는 국정원은 입을 다물고 있다.
대북 주무부처를 자임해온 통일부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청와대의 주문 사이에서 설 곳을 아직 찾지 못한 분위기다. 지난달 말 새로 부임한 이인영 장관이 물물교환 형태의 교역으로 남북 간 물꼬를 트겠다고 밝히자 통일부는 곧바로 남한의 설탕과 북한의 술을 맞바꾸는 사업이 성사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민간단체인 남북경총통일농사협동조합이 북한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와 1억5000만원 상당의 북한 주류 35종을 설탕 167t과 물물교환하는 프로젝트다. 언론에도 이런 사실이 공개되면서 기대치를 높였다.
사달은 엉뚱한 곳에서 났다. 북측 사업자가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인 노동당 39호실 산하 기관이란 점이 국정원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업 승인부처가 제재 저촉 여부를 제대로 확인조차 않은 데다, 국정원과의 엇박자까지 나면서 이 장관은 출발부터 미덥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일부 관변 성향 전문가 그룹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들은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된 북한 경제에 대해 “내구력이 만만치 않다”는 식의 장밋빛 분석만 내놓곤 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평양에 건설된 고층 주상복합 시설이나 뉴타운 형태의 거리, 화려한 네온으로 장식된 평양의 야경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제사회가 내놓은 대북제재에 대해선 ‘무용론’을 주장한다. 중국이란 뒷문이 있어 제재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얘기다. 북한의 장마당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제재에도 끄떡없다는 논리까지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의 박사는 “북한이 경제실패를 자인하기 며칠 전에도 북한식 자력갱생 경제를 두둔하는 듯한 자료집을 내돌린 중견 연구자 그룹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집권 10년 맞는 내년 1월 당대회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점철된 그의 집권 초반 호전적 행보는 대북제재를 자초했다. 그러면서도 2016년 5월 개최한 노동당 7차 대회에선 ‘경제’라는 단어만 142차례 쓸 정도로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부각하려 했다. 그렇지만 결국 4년 3개월 만에 “인민생활을 뚜렷하게 향상시키지 못했다”고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북한이 노동당 8차 대회 개최 시점으로 제시한 2021년 1월은 김정은 집권 10주년에 돌입하는 때다. 엘리트 간부와 주민들에게 뭔가 새로운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는 10월 당 창건 75주년에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기보다는 시간을 벌어 내년을 기약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11월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뒤 북한이 처한 환경이 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제재와 코로나19의 후폭풍은 더욱 거세게 북한 경제를 뒤흔들 공산이 크다. 그때가 되면 김정은과 북한의 지도부는 대남·대미 문제나 경제 분야에서 좋은 기회와 호시절이 지나갔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중앙일보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09-03 북한 북부 국경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극
한반도 최북단이자 두만강 옆에 위치한 함경북도 온성에서 지난달 중순 끔찍한 학살극이 벌어졌다. 그런데 북한이 국경을 어찌나 꽁꽁 틀어막았는지 예전이라면 탈북민들의 전화 통화를 통해 바로 다음 날 전해질 이 소식이 지금까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과 연계된 정보 라인들이 거의 다 차단됐다는 의미다.
온성 사건은 지난달 중국에서 누군가가 몰래 두만강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일이 발단이 됐다. 밀수꾼이나 탈북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온성 맞은편 투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귀국하지 못해 1월부터 발이 묶인 북한 근로자가 수백 명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 중 한 명이 몰래 집에 가려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사람은 곧 체포됐다. 그런데 김정은이 북부 국경이 뚫린 것에 크게 화를 내며 무자비한 처벌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7월 탈북 청년이 임진강을 헤엄쳐 북으로 돌아간 뒤 김정은은 개성을 폐쇄하고 경비 담당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한 바 있다. 그러곤 국가초특급비상방역위원회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로 기능을 강화하고 방역규정을 어기면 총살, 무기징역을 선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온성에서 밀입국이 발각된 것이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밀입국 구간 경비를 담당했던 국경경비대 중대장, 정치지도원, 책임보위지도원, 군 보위부 봉쇄부부장, 군 보안서 기동순찰대장, 밀입국자가 소속된 직장의 당 위원장 및 지배인이 처형됐다. 처형장에는 관계자들을 동원해 참관시켰는데, 얼마나 잔인하게 집행했는지 실신하는 사람, 바지에 오줌을 싸는 사람 등이 속출했다고 한다. 수백 발의 총탄을 퍼부어 사람을 완전 형체도 없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온성군 당위원장, 군 보위부장, 보위부 정치부장, 군 보안서장, 군 보안서 정치부장, 평양에 있는 국경경비총국장, 정치부국장은 연대 책임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고 한다. 무기징역이면 한국 같으면 흉악한 살인범이나 부여받는 처벌이다. 온성에 밀입국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감방에서 죽게 됐다.
이뿐 아니라 온성군 보위부, 보안서, 해당 지역 국경경비대를 해산 및 전원 제대시켜 농민으로 보냈다. 처형자와 무기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의 가족도 전부 심심산골로 추방했다.
온성군 보위부나 보안서, 국경경비대는 탈북자들을 워낙 악독하게 다루는 인간들이 가득해서 굳이 동정하고 싶진 않다.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하루아침에 토사구팽 신세가 됐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해산된 보위부, 보안서, 국경경비대 대신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파견돼 국경 경비 공백을 막고 있다고 한다.
요즘 북한 주민들은 ‘개성 사건’에 이은 ‘온성 사건’ 때문에 숨도 못 쉴 상황이다. 이 사건 이후 온성 회령 무산 등 북부 국경 지역들이 봉쇄돼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됐다. 국경 지역 사람들은 산에 있는 개인 밭, 즉 소토지를 경작하기 위해 이동하려 해도 모두 대장에 기록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도처에 전파탐지기가 있어 국경 사람들은 깊은 산에 가서 한국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꼼꼼한 기록과 수색으로 한국과 연락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북한을 취재해 온 기자도 요즘 ‘이 정도로 철저한 폐쇄가 가능하구나’라고 혀를 찰 정도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북한에서 자행되는 잔혹한 처벌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2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700명 이상이 방역규정 위반으로 처벌된 사실은 몇 달 전 필자 칼럼에 소개한 바 있다. 온성 사건과 별개로 8월 20일에도 북한의 최대 국경 관문인 신의주 세관에서 80여 명 검사 전원이 방역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수감됐고 가족은 농촌으로 추방됐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엔 인민적 풍모를 가진 지도자인 것처럼 포장했다. ‘인민들이 허리띠를 더는 조이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선언한 뒤, 허물없이 가정집에 들어가고 허름한 목선을 타고 외진 섬에 가서 군인을 업어주는 등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잔인한 처벌의 강도만 높아지고 있다. 하는 일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화풀이를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하면서 풀고 있어 끔찍하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잔인함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 언제까지 피바람이 계속 불지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09.08 북한, 하이선에 초토화… 원산·신포 또 물에 잠겼다
조선중앙TV는 7일 새벽부터 재난방송 체제에 돌입해 30분~1시간 단위로 태풍 상황을 전달했다. 원산시 상황을 전달하면서는 “태풍 10호의 영향으로 송도원 도로 입구가 완전히 차단되고 송도권 구역의 소나무들이 뿌리째 넘어갔다”고 했다.
▲7일 오후 제10호 태풍 하이선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침수된 강원도 원산시에서 차량이 통행할 수 없도록 도로를 차단하는 모습. /조선중앙TV·연합뉴스
▲7일 오후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폭우가 내려 침수된 강원도 원산시의 한 육교가 불어난 물에 잠긴 모습. /조선중앙TV·연합뉴스
원산시 뿐만 아니라 함경남도 신포시에서도 도로와 다리가 완전히 물에 잠긴 모습이 포착됐다. 중앙TV는 “태풍 9호(마이삭) 때 불어난 강물들이 아직 체지지(흘러가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태풍 10호(하이선)가 들이닥쳐 여러 강하천들과 저수지에 큰물경보가 내려졌다”고 했다.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북상한 7일 오후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조선중앙TV 기자가 현장 상황을 중계하고 있다. 기자는 "연이어 계속 내리고 있는 비로 많은 도로들이 물에 잠겨서 막혔다"고 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함경북도 김책시에도 폭우가 내리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해안가 주변 농장들이 침수됐고, 도로는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물에 잠겼다. 김책시 태풍 피해상황을 전하던 취재기자는 강풍에 우산이 뒤집힌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7일 오후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침수된 함경북도 청진시의 모습. /조선중앙TV·연합뉴스
하이선은 이날 저녁 북한 함흥 부근 육상에서 소멸했다. 하지만 당분간 비가 이어질 것으로 북한 매체는 내다봤다. 중앙TV는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미 내려졌던 (태풍 관련) 경보들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오경묵 기자
09-17 유명 여배우의 몰락 부른 ‘문수원 사건’
▲최근 평양에서 발생한 ‘문수원 사건’에 휘말려 평안남도 오지의 농장에 추방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여배우 리설희. 동아일보DB
평양에서 몇 달 전 이른바 ‘문수원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6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달 20일 관련자 가족을 평안남도 양덕과 맹산에 추방했다. 이들 중에는 유명 여배우까지 포함돼 있어 더욱 화제가 됐다.
문수원은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욕탕, 사우나, 미용실 등이 구비된 유명 종합편의시설이다. 평양의 대표적 대중목욕탕인 창광원과 비슷한 시기인 1982년에 건설됐다. 보통강 구역에 창광원이 있고, 대동강 건너편 주민을 위해 동대원 구역에 문수원을 건설했다. 평양산원 정문에서 약 200m 거리이고, 현재 평양종합병원을 짓는 곳에선 도보로 약 15분 거리다.
북한의 대형 대중목욕탕들에는 보통 사우나 시설이 설치된 ‘비밀의 방’들이 존재한다. 이곳에서는 권력자와 부자들이 단골로 찾아와 마약과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창광원 다음으로 크다는 문수원도 다를 바 없었다. 문수원은 2008년 새 단장을 하면서 VIP 전용 비밀공간을 고급스럽게 꾸몄다. 시내 중심부에서 좀 떨어져 있으니 단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했다. 서비스가 좋다는 소문이 난 덕분에 단골들도 많았다. 최근까지 별 탈 없이 영업했지만 올해 엉뚱한 곳에서 사건이 터지면서 날벼락을 맞았다.
엉뚱한 사건은 평북 철산에서 벌어졌다. 이곳에 있는 한 외화벌이 조개양식기지의 젊은 책임자가 연쇄 살인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말이 기지이지 사실상 개인 회사처럼 운영됐는데, 책임자는 일찍이 아버지에게서 기지를 물려받아 흥청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북한판 재벌 2세에 비유할 수 있다.
북한에서 돈 좀 있는 사람이라면 마약을 대부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책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기지 안 여성들은 물론 외부 여성들까지 데려와 마약과 성매매를 했다. 이 정도 일은 북한에서 비일비재한 것이라 뇌물을 정기적으로 상납하면 걸릴 일도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그가 뱃놀이를 한다면서 자주 여성들과 배를 타고 나가 놀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여성은 죽여서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북한에선 그가 이런 식으로 죽인 여성이 30명이 넘는다는 소문이 났다. 폐쇄회로(CC)TV가 없고, 젊은 여성이 사라지면 탈북했다고 믿는 북한 실정에서 능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흔적을 없애느라 수장한 여성의 시신이 떠올라 발견됐다. 그 바람에 책임자의 경악할 만한 범죄가 드러나게 됐다. 취조 과정에서 그가 평양에도 수시로 가서 문수원에서 즐겼다는 진술이 나왔다.
워낙 엽기적인 사건이라 김정은에게 보고가 들어갔다. 김정은이 철저히 조사하라고 한 이상 아무리 높은 권력자들이 문수원의 뒤를 봐준다 해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조사 결과 문수원을 즐겨 찾은 간부들 명단까지 줄줄이 나왔다. 문수원에서 직원으로 채용한 젊은 여성 접대원은 물론 인근 대학 여대생들까지 성매매에 가담한 사실마저 드러났다.
문수원 인근에는 평양음악무용대학과 평양연극영화대학이 있는데, 이곳엔 전국에서 뽑아온 미모의 여대생들이 많다. 지방에서 올라온 여학생들 중 일부는 돈이 없어 성매매를 하거나 부유층의 숨겨진 애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의 지시로 책임자와 성매매업자 등 주범 6명이 처형됐다고 한다. 이 중에는 문수원에서 마담 역할을 했던 여성도 있는데, 그는 유명 여배우인 리설희 남편의 숨겨진 애인이었다. 리설희는 북한이 자랑하는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긴 했지만 북한 영화에서 보기 드문 목욕신과 베드신까지 찍어 화제가 됐던 배우다.
문수원 사건으로 리설희도 남편과 함께 추방됐다. 추방된 사람들은 높고 가파른 산에 앞뒤로 막혀 해가 오후 4시에 진다고 알려진 양덕과 맹산의 오지에 끌려가 농사를 짓게 했다. 떵떵거리며 살던 수많은 권력자와 부유층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이다.
알고 보면 이번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김정은이다. 대북제재와 국경 폐쇄로 외화가 급격히 고갈되는 와중에 때맞춰 돈 많은 자들이 ‘알아서’ 걸려들었으니 민심도 얻고 추방된 부유층의 재산도 몰수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어떤 명목의 범죄와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이 진행되든 결국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땔’ 사람은 김정은이다. 그러나 길게 보면 지나친 식탐과 폭식은 결국 자기 몸에 해가 돼서 돌아오는 법이다. 김정은도 예외는 아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0.09 북한 정권에 코로나 확산은 치명적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 몇 달간 북한 정치국회의는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논의로 점철되었고, 일찍이 2월 28일 회의에서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북한에 바이러스가 확산할 경우에 맞이할 심각한 결과에 대해 경고했다. 이런 걱정은 매우 합당하다.
검사·추적 못하고 약품도 없어
감염 번지면 사회 붕괴할 수도
국가적 차원의 코로나19 방역에는 보통 다음의 네 가지 방법이 있다. ①바이러스가 나라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대만·뉴질랜드 등이 이 방법을 썼다. ②바이러스 확산을 야기하는 사회적 접촉을 제한한다. 전면적인 봉쇄령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같은 형태가 이에 해당한다. ③검사 및 추적 시스템을 가동해 감염 경로를 추적한다. ④의료진이 의약품과 산소호흡기 등을 사용해 확진자들을 치료한다.
불행히도 북한은 앞의 두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북한은 국경을 전면적으로 폐쇄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북한에 침투했고, ‘바이러스 청정지대’를 자부했던 북한의 선전은 수그러들었다. 둘째 방법인 사회적 접촉 제한은 이행하기가 어렵다. 북한은 강력한 주민 통제력을 갖고 있지만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도시 및 군대의 높은 인구 밀도다. 북한 주민들은 작은 아파트에 많은 인원이 밀집해 거주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바이러스가 확산하기가 쉽다. 다른 나라에서는 고연령층 인구 중 상당수가 요양원 등의 시설에 거주해 격리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북한에서는 각 가정에서 노인 가족을 보살핀다. 북한군은 최소한의 위생 시설밖에 갖추지 못한 부대에서 많은 인원이 함께 생활한다.
둘째는 정치다. 북한 정권은 주민 통제를 위해 정기적인 인민반 회의와 생활총화 같은 정치적 모임들을 갖게 한다. 북한 정권이 이런 대면 모임을 중단시키면 핵심적인 사상 통제 수단을 잃게 된다.
그렇지만 국경 폐쇄와 접촉 제한 외의 방법은 북한의 선택지에 없다. 북한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드물어 추적 시스템을 가동하기 어렵고 진단 시약도 귀하다(9월 17일까지 북한의 코로나19 검사는 3374명에 그쳤다). 북한 정권은 7월 말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탈북자가 개성으로 월북하자 초기에는 해당 탈북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는 개성 주민을 일일이 추적했다. 그러나 곧 포기하고 개성 전체를 봉쇄하는 극단적 조처를 취했다.
북한 정권은 전염병이 퍼지면 그들의 의료 체계가 곧바로 붕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도인 평양조차도 병원에 침대가 충분하지 않고, 계획대로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까지 평양종합병원을 완공한다 해도 새 병원에 필요한 설비가 부족하다. 북한 의료 체계는 바이러스 확산을 감당할 수 없다.
북한 정권은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그들이 가장 늦게 백신을 보급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백신이 개발되면 부유한 나라 국민들이 우선 보급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백신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나라들이 받고, 마지막으로 국제기구들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에 보급될 것이다. 북한은 비정부기구(NGO)와 유엔 기구들의 활동을 저해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해왔기 때문에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 비해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다른 방법은 한국·중국·러시아에서 지원을 받는 것인데, 북한 정권이 열등함을 자인해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북한 정치국 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강철 같은 방역체계”를 강조한 것은 이해가 된다. 북한 정권은 바이러스가 매우 빠르게 확산할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다. 어쩌면 이미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는지도 모른다. 지금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매우 현실적이다.
중앙일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10.12 김정은의 초호화쇼..위기의 극장국가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는 경축대회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 [뉴스1]
당창건 기념 퍼레이드..미국본토 공격 가능한 ICBM 선보여
북한내부 심각한 경제사정 감추고 호도하느라 더 화려해져
1.
김정은이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초호화쇼를 보여주었습니다.
외형적으론 좋은 볼거리였습니다. 세계최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첨단 무력과 평양하늘을 수놓은 비행기 조명과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그런데 그 화려함에 감춰진 내면을 보면, 북한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
김정은이 이번 행사를 통해 북한 인민들에게 보내고 싶었던 메시지는 사과였습니다. 그만큼 북한 사정이 어렵다는 방증입니다.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매우 감성적인 연출을 했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등 12차례 사과발언을 거듭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전례없는 일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8월 당 중앙위원회에서 ‘인민생활이 향상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 자책했습니다. ‘혹독한 대외 정세와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와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와 미국의 제재를 말합니다.
정말로 심각하나 봅니다. 그만큼 내부 통제를 위한 쇼는 더 화려해야겠지요.
3.
김정은이 미국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호소입니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북한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와 운반체를 과시했습니다. 세계최대 ICBM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때릴 수 있는 다탄두 핵폭탄이 됩니다. 미국을 더 자극하려 했다면 이 ICBM을 시험발사했겠죠.
미국의 관심은 끌고 싶지만 자극하기는 무서운 것입니다. 아마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는데도 북한에 관심을 안보이면 시험발사할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무력은 계속 증대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정부는 꿈쩍도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비핵화 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원칙적 반응입니다.
4.
김정은이 미국을 자극하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중국이란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중국과는 형제애를 확인했습니다. 시진핑은 축전을 보내 김정은을 ‘동지와 벗’이라며 전례없는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김정은 집권초기만 해도 중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김정은이 2018년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게되자 곧바로 시진핑을 찾아갑니다. 시진핑 집권 5년만의 첫 회담입니다. 결국 중요한 순간엔 중국의 보증을 받아야 미국과 딜을 할 수 있는 처지임이 다시 확인됐습니다.
5.
김정은이 이런 상황에서 주목한 숨통은 남쪽 정부인 듯합니다.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유화 멘트를 날렸습니다.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내며..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길..기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김정은은 이번 퍼레이드에서 한층 강화된 재래식 무기를 선보였습니다. 남쪽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개발한 대구경 방사포와 미군 신형무기를 닮은 전차와 장갑차까지..이런건 모두 남쪽을 겨냥한 무기입니다. 군사 퍼레이드는 그냥 과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협박이기도 합니다.
6.
사실 김정은의 연설이나 퍼레이드나, 중국이나 미국의 반응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북한 문제가 계속 심각해져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중국과 더 가까워질 겁니다. 중국 역시 최근 미국의 봉쇄전략으로 고립화되면서 북한을 더 강하게 끌어안고자 할 겁니다.
여기에다 미중 갈등마저 심각해지면 남한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키신저가 경고했듯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서 전쟁으로 끌려들어가는 1차대전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게될까 불안합니다.
북한은 극장국가며, 평양은 세트장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안됩니다.
중앙일보 오병상의 코멘터리
월간조선 10월 호
■북한 청소년들의 오늘
친한 친구들끼리는 존칭 없이 ‘김정은’ ‘이설주’라고 불러
⊙ ‘직통생 출신 제대군인’이 돈 백 있는 북한 금수저의 상징
⊙ “이설주도 중국 갈 때 염색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해?” “어떤 놈은 배 안에서부터 왕자로 타고 나는데, 세상 불공평”
⊙ 北 여학생들의 우상 이민호가 여배우와 염문설 나오자, “우리 다 같이 남조선에 가서 그 여배우를 때려주자”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역임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2019년 9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기념 촬영을 한 북한 학생들. 사진=공동취재단
청소년기는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다. 신체와 정신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난다. 사람을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인 시기일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불안정하니 스스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폴 존슨은 전쟁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으로 점철된 고대사(古代史)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고대인의 평균수명을 고려하면, 병사(兵士)들의 대부분은 10대였을 것이다. 지휘관이나 장군들의 연령대도 현대에 비하면 턱없이 어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사의 대부분은 비행청소년(非行靑少年)들이 만들어간 역사일 터이다.”
한때 ‘김일성과 김정일이 남침을 못 하는 이유가 한국의 중2가 무서워서’라는 농담이 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북한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무자비한 통제사회 속에서 그들은 반항심과 왕성한 활동력을 과연 어떻게 발산하고 있을까?
북한 청소년에게는 꿈이 없다. 무엇보다도, 북한에는 다양한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좁고, 매스미디어도 발달하지 못했으니 롤모델도 있을 리 없다.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으니, 꿈꾸는 미래도 없는 것이다.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 말고는 삶의 목표가 없었던 조선시대와 흡사하다. 조선에서 출사(出仕)는 오직 양반들에게만 허여(許與)된 특권(特權)이었다.
북한은 더하다. 봉건적(封建的) 신분제보다 훨씬 더 강고한 출신 성분 검열, 이른바 ‘토대’가 발목을 잡는다. 개인의 능력은 절대로 ‘토대’를 넘어서지 못한다. 월남자(越南者)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이 외국에 있는 사람도 출세는 꿈꿀 수 없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 진학이나 입당(入黨)이 불가능하다. 농장원의 자녀는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대로 농장원을 해야 한다. 광부의 아들과 딸은 어지간해서는 광산을 벗어날 수 없다. 농노(農奴)나 광산노예(鑛山奴隸)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반면에 김씨 일가와 관련 있는 이른바 백두혈통은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 공부를 못해도 좋은 대학에 가고, 권력 기관에서 간부로 일한다. 혈통이 능력에 우선하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전역에서는 이런 농담이 돈다. 친구들과 간식을 나누어 먹는데 어쩌다 누군가를 빠뜨리면 그가 던지는 말이다.
“너, 내 토대가 나빠서 이러는 거냐?"
‘영웅도 돈 밑에서 나온다'
사정이 이러하니, 북한 청소년들의 목표는 ‘돈 벌어 잘살겠다’가 거의 전부다. 출세나 사회적 공헌은 포기다. 해봐야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장사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은 당국을 믿지 않는다. 배급만 믿다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이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인정한 영웅들도 숱하게 굶어 죽었다. 훈장과 영예증은 식량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영웅도 돈 밑에서 나온다”이다. 중·고교생들이 공개석상에서 미래 희망을 말하는 자리가 있다. 누군가가 “나중에 커서 비행사가 되겠다” “장군님이 아는 체육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듣는 학생들은 마음속으로 두 마디 문장을 떠올린다. ‘쇼하는구나’와 ‘현실에 살아라’다.
그래서 돈이다. 돈은 토대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얼굴이 묻힌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빈부(貧富) 격차가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군사복무(병역)다. 2020년 현재 일반병은 11년, 특수병은 13년이 복무기간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군(軍)복무를 마쳐야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인정’의 크기가 너무 작다. 곳간이 비어버린 북한 당국이 그럴듯한 직장 배치나 주택 제공 등 제대 장병을 챙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군사복무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능력자’라는 풍조가 생겼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직통생(直通生)’을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자’라는 묵시적 평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직통생이 능력의 상징이다. 일단 군사복무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학을 4년 다니고 졸업 후에 입대하면 3년 복무 후 만기제대다. ‘부대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겠다’고 하면 그 3년 가운데 많은 시간을 병영이 아니라 집에서 보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코스는 ‘돈주’ 중에서도 특급 돈주나 특급 돈주와 연결된 최고위층 권력자가 아니면 구사할 수 없는 방법이다. 북한에서는 대학 진학부터가 부모의 재력(財力)과 입시생의 학력(學力)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거대한 암시장(暗市場)이기 때문이다.
일단 진학 자체가 성적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위에서는 각 지방 및 학교로 특정 대학, 특정 학과 입학 정원을 내려보낸다. 이 입학추천서, 이른바 ‘폰트’를 받아야만 시험이라도 볼 수 있다. 폰트를 어떻게 획득하느냐, 어느 학교 폰트를 잡느냐가 일차 관문이다. 이 과정에서 온갖 뇌물이 횡행하는 것이다. ‘직통생 출신 제대군인’이라는 신분 자체가 상위 1% 부잣집 아들, 돈 있고 백 있는 북한 금수저의 상징이라는 뜻이다.
절대적 충성·존경 대상 없어
이런 ‘직통생 복무’를 보고 듣고 자란 청소년의 가슴속엔 불만과 분노가 깃든다. 여학생들도 오빠와 남동생의 심정에 감정 이입(移入)을 한다. 무의식적인 억울함이 구체적인 반항 행동으로 바뀌는 지점은 의상과 염색이다. 개성(個性)이 살아나면 의식(意識)도 깨어난다. 북한 당국이 전 지역 모든 학교 교복의 디자인을 통일해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다. 그렇게 감시·감독의 눈길을 부릅떠도, 바짓단을 수선하고 허리를 접어 치마를 무릎 위로 짧게 입는 유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요즘은 북한에서도 교복을 돈 내고 사야 한다. 예전처럼 배급으로 나눠주지 않는다. 그래서 ‘입기 불편하다’ ‘재질이 엉망이다’라는 품질에 대한 불평이 청소년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다. ‘소비자 권리’에 눈을 뜬 것이다.
사복(私服)도 그물 옷, 속이 조금이라도 비치는 옷, 글자 새겨진 셔츠, 가슴이 살짝이라도 파인 옷 등 ‘이상한 옷’은 착용을 금지한다. 목걸이나 귀고리도 눈에 띄는 디자인은 착용 금지다. 규찰대(糾察隊)가 나타나면 귀고리를 귓구멍에 넣어 단속을 피해보지만 매번 그럴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색조화장은 예술인들에게나 허용된 것이며, 머리 염색은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며 절대 금지하는 것도 이해 불가(不可)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한 청소년들의 영원한 로망이 아니던가. 조선중앙TV의 뉴스 화면을 보고 여학생들은 “이설주도 중국 갈 때 염색하는데 우리는 왜 못 해?” “이설주가 입은 블라우스는 규찰대가 왜 단속 안 해. 너무하는 것 아냐?”라며 반발한다. 남학생들은 “어떤 놈은 배 안에서부터 왕자로 타고나는데, 세상 불공평하다”고 욕한다. 친한 친구들끼리는 존칭 없이 “김정은” “이설주”라고 부르는 것이 최근 추세다. 나이 든 사람들의 눈에는 경천동지(驚天動地)요, 천지개벽(天地開闢)이다.
북한 청소년들에게는 절대적인 충성과 존경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뉴스에 나온 기념 식수 비석을 보고는 ‘글자 길게 새기느라 힘들었겠다’며 김정은을 ‘까는’ 정도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에 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글자 수가 두 배 가까이 많았기 때문이다.
북한 여학생들의 우상 이민호
▲북한 여학생들의 우상인 배우 이민호. 사진=조선DB
말이 난 김에 말하자면, 남북 정상회담이나 미북 정상회담 때 북한의 거의 모든 청소년이 열광했다고 한다. ‘곧 통일이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북한 청소년들이 바라는 통일은 남쪽에 흡수되는 통일이었다. 남한의 드라마와 가요가 보여주는 세상은 곧 ‘자유의 낙원’이기 때문이었다. USB, SD카드, 휴대폰에 저장해 콘텐츠를 보고 듣는 ‘한류(韓流)’는 북한 청소년들에게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통일된 조국에서, 그런 것들을 방해나 단속 없이 편한 마음으로 실컷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황홀한 상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 여학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는 압도적으로 이민호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재구성한 고등학생판 신데렐라 스토리인 TV드라마 〈꽃보다 남자〉(2009) 이후 이민호는 북한 여학생들의 우상이 되었다. 일본 여성들이 욘사마에 열광했던 배용준 신드롬 이상이다. 〈신의〉 〈상속자들〉 〈푸른 바다의 전설〉 등 이민호가 출연한 드라마는 아직도 북한 전역에서 널리 소비되는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수많은 여학생이 드라마 속 대사를 외우고, 몇 부에 누가 죽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화제에 올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민호 얼굴이 인쇄된 과자 포장지는 버려서는 안 되며 고이 오려 간직해야 하는 기념품이다. 이민우가 1987년생이라는 신상정보를 공유하며, 2015년 모(某) 여배우와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는 “우리 다 같이 남조선에 가서 그 여배우를 때려주자”는 심각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남조선 뉴스에 나온 결별설을 전해준 친구는 소녀들 사이에서 우상이 되었다.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대 북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탈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감하는 평가가 있다. “북한 청소년, 특히 여학생 사이에서는 김정은보다 이민호가 더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민호가 예술단 일원으로 방북(訪北)해 “서울에서 너희를 기다리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韓流와 자유주의가 결합할 때…
청소년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가던 통일 열기는 ‘통일을 바라지 말라’는 김정은의 방침이 내려오며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어쩌면 한류의 열풍이 통일의 열망과 합쳐지며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거대하게 번져나가는 것을 북한 권력자들이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민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김정은이 북한 청소년 사이에서의 한류 열풍을 보며 위험신호를 느낀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한류 열풍이 반항심, 자유주의와 섞이며 융합하면 얼마만큼의 폭발력으로 불타오를지 예측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충성심 자체가 없고 돈에 민감하며 외부 정보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은 비행 청소년에 다름없을 터이다. 비행청소년들이 만들어간 역사의 묘미는 그들이 항상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일으켰다는 데 있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비행청소년들이 만들었던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은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를 앞당겼다. 소생이 북한의 비행청소년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모든 청소년이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어른의 의무다’라는 빌려온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10.26 매즈 브루거 “北, 유럽·중동 통해 미사일·탱크 밀수출"
제재위반 다큐 만든 브루거 감독
북한의 제재 회피 실상을 폭로한 다큐멘터리 ‘첩자(The Mole)’를 제작한 덴마크 영화 감독 매즈 브루거(Mads Brugger)는 25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의 무기상들은 제발 고객을 찾아달라고 매달릴 만큼 필사적이고 절박했다”며 “강대강 전략만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영화 '첩자(The Mole)'의 포스터. /매즈 브루거 제공
브루거 감독은 3년에 걸친 함정 취재를 통해 북한이 국제법과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현장을 초소형 카메라에 담았다. 출연자들이 신분을 속이고 잠입해 몰래 촬영하는 이른바 ‘언더커버(undercover)’ 방식으로 촬영해 13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개봉 후 주(駐)스웨덴 북한대사관이 “제재 수위를 높이기 위한 날조”라고 반발했다. 영화에선 북한 체제에 매료된 것으로 위장한 전직 요리사 라르센(가명)이 스웨덴 대사관을 방문해 북한 외교관들과 불법 무기 거래에 대해 논의하고, 전직 프랑스 군인 출신 제임스(가명)가 평양 교외에서 북한 무기 공장 대표들과 5000만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브루거 감독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제작한 무기들을 판매하기 위해 노동당 관료와 유럽·중동의 조력자들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범죄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며 “개인에게까지 첨단 무기를 판매하려 손을 뻗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240㎜ 다연장 로켓 발사기부터 사거리 1350㎞짜리 스커드 미사일, 탱크까지 적힌 카탈로그를 들고 다니며 영업을 하고 있다”며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가 막히니 불법적인 무기 거래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제재가 정말로 작동하고 있고, 북한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영화 첩자를 제공한 매즈 브루거 감독. /매즈 브루거 제공
브루거 감독은 그러면서도 “국제 대북 제재에 여전히 구멍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제재 결의·이행을 감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중국의 묵인하에 밀거래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북한은 ‘우린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의 무기 확산과 제재 위반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매우 기쁠 것”이라며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과 만나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브루거 감독은 “북한은 다른 나라, 특히 한국을 공갈하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불법 정권”이라며 “선의(善意)에 기대는 햇볕 정책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말도 안 되는 비이성적 요구에 제대로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은중 기자
월간조선 11월 호
■특수부대 폭풍군단, 왜 朝中 국경에 배치됐나
양강도에서의 상납 줄어들자 국경부대 교체
⊙ 8월에 정예 특수부대 폭풍군단, 朝中 국경 배치… 이상징후설 돌아
⊙ 軍과 지역사회의 유착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軍부대 교대 배치
⊙ “(북한에는) 물리학 제3법칙, 제4법칙이 있다. ‘고이면 움직인다, 움직이는 거리는 고인 양에 비례한다’”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역임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망원경으로 국경 건너를 보고 있는 북한군 특수부대의 모습. 특수부대인 폭풍군단이 압록강변 국경으로 이동한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돌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 내에도 김정은의 몰락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극소수지만, 있다. 갈래는 여럿이다. 정통 공산주의자로부터 민주주의자, 기독교 복음주의자,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자본가 등이 곳곳에서 활동 중이다.
정통 공산주의자가 반(反)김정은 세력이라는 것이 의외로 여겨질 수도 있다. 전언에 따르면, 그들은 ‘김씨 일가 세습이 공산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며, 따라서 북한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된 공산주의가 실현된 적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표는 김정은 일가를 타도하고 북한에 정통파 공산주의 사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각자의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호소하는 사안이 있다. ‘서방의 시각으로 북한을 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국제 기준으로 판단하면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인 예측이다. 지금도 절량농가(絶糧農家)와 아사자(餓死者)가 있고, 만성적 수해 피해와 식량 부족에 시달리며, 도로·철도·상하수도 등 사회간접자본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재적 접근법(內在的 接近法)으로 분석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전 주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한다. 고문과 공개처형이 다반사이며 연좌제와 신분제가 공고하다. 식량이나 생필품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수준도 매우 낮다. 굶어 죽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열악함’은 그들에게는 열악함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기차로 3~4시간이면 갈 거리를 북한에서는 일주일을 잡고 간다. 그래도 불편함을 모른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삶의 기준이며 이미 적응 완료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걸어가는 것보다는 빠르고, 무거운 짐도 옮길 수 있지 않은가. 외국 기차를 타본 사람에게는 비교 대상이라도 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평까지는 몰라도 불만이 나오기는 어려운 것이다. 북한 당국은 만성 식량 부족을 ‘주민들의 낮은 기대수준’과 국제기구에 제출하는 ‘보고서 위조’로 헤쳐나간다. 북한이 총인구와 지원이 필요한 사람 수를 부풀린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다.
北, 외부의 ‘북한 붕괴론’ 逆이용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바깥 세계의 목소리는 그래서 김정은의 몰락을 바라는 북한 내부 인사들에게는 엄청난 희망고문이다. 믿고 싶은데, 현실은 보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배경이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내 취재원의 문제다. 폐쇄사회 특성상 국지적(局地的) 사정이라면 몰라도 북한 전체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주민은 없다. 복수(複數)의 취재원에게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증언을 모아야 비로소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취재원의 ‘정보 가공’이 문제다. 외국 매체나 연구 기관에 자료나 증언을 전달하고 통화를 하는 일은 목숨을 건 행동이다. 그래서 외부 기관은 북한 주민 기준으로는 상당한 액수일 사례비를 지급한다. 시장 원리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고급정보일수록 가격이 비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북한 내 취재원들도 어떤 정보가 더 비싸게 팔릴지를 안다. 그래서 정보를 가공한다. 팩트에 약간의 과장과 본인의 해석을 덧붙여 바깥 세계의 독자나 연구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증언을 소개한 ‘보도’와 ‘현실’ 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이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간부와 주민들을 옥죄려면 북한 당국에는 ‘체제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敵)’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붕괴론을 주창하는 외국 언론이나 연구 기관을 그들이 대(對)주민 선전에 적극 활용하는 이유다.
폭풍군단의 朝中 국경 배치
지난 8월 초, 도하 각 언론은 “북한이 대(對)테러 특수부대인 폭풍군단 병력 1500명을 양강도 조중(朝中) 국경 지역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동병력이 1500명이 아니라 3개 군단에서 차출한 1만여 명에 이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폭풍군단이 움직인 것은 팩트다. 폭풍군단, 즉 인민군 11군단은 1969년에 특수8군단을 모체로 창설된 부대다. 특수8군단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을 주도한 124군부대를 확대·개편한 부대다. 이들은 국군 특전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인원도 많고 작전 반경도 전후방을 모두 포괄한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북한 특수부대의 이동을 ‘북한 이상징후의 서막’으로 해석하는 흐름이 있었다.
혜산시에 도착한 폭풍군단 군인들은 당일로 양강도 조중 국경 연선(沿線) 전 지역에 분산 배치됐다. 이번에 양강도에 배치된 폭풍군단 군인들은 상당히 높은 훈련과 정치사상 교육을 받은 군인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강도 현지에 파견된 폭풍군단 군인들은 국경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법행위와 반국가행위에 대하여 단속처리 권한을 가졌다’ ‘양강도의 사법기관 성원들과 국경경비대 군인들도 국경 지역에서만큼은 폭풍군단의 통제를 받게 되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등의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소식통은 ‘양강도 일대 국경 전역에 폭풍군단 같은 특수부대를 배치하면서 국경 연선 지역들에는 더욱 삼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며 주민들을 공포 분위기에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또 ‘양강도는 이미 코로나 사태로 2중, 3중으로 겹겹이 봉쇄되었는데, 폭풍군단까지 투입함으로써 주민 불만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폭풍군단 배치는 정기적인 것”
하지만 자세한 사정은 조금 다를 수 있다. 폭풍군단의 전방 배치를 군사적 이상징후로 보는 것은 무리다. 미사일발사연구원인 제2자연과학원 기자로 17년을 근무했고, 현재는 유튜브 채널 ‘김길선의 평양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길선 기자는 북한 핵심부의 사정에 가장 정통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김 기자는 “이번 교방(교대배치)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것”이라며 10년 단위로 군(軍)부대를 크게 이동하는 관례가 있다고 했다.
주둔기간이 길어지면 군부대 지휘부와 지역사회 사이에 유대가 생긴다. 유대는 밀착을 낳고 밀착은 문제를 낳는다.
김 기자에 따르면, 북한은 3원화한 경제체계를 가동하는 사회다. 제1경제는 김씨 일가에게 가는 궁정경제다. 제2경제는 핵무기와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체계다. 제3경제가 주민을 위한 민수(民需)경제다. 경제활동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1, 2, 3번 순이다.
제1, 제2 경제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외화(外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쓰든 외화를 조달하는 인물이 대접을 받는다. 외화벌이꾼들의 개인적 치부(致富)와 어느 정도의 비리·부패를 위에서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이유다.
군부대는 병력과 차량 등 ‘물품과 사람을 운반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군부대, 그중에서도 국경경비대는 외화벌이 돈주들의 최우선 교섭 대상이다. 북한에서는 권한이 있는 모든 곳에 뇌물이 존재한다. 아무리 사소한 권한이라도 예외가 없다. 각종 증명서, 기차표, 병원 치료 등을 받으려면 뇌물을 고여야 한다. 오죽하면 “(북한에는) 물리학 제3법칙, 제4법칙이 있다. ‘고이면 움직인다, 움직이는 거리는 고인 양에 비례한다’”는 농담이 있겠는가.
돈주들의 탁월한 역량은 군부대를 지역사회의 안전부(경찰), 보위부(정보기관) 등 사법기관과도 끈끈하게 연결한다. 만에 하나 단속이 되더라도 앞뒤로 빠져나갈 길을 미리미리 여러 갈래로 확보하는 차원이다. 실행용 뇌물과 보험용 뇌물을 주고받으며 이들은 거대한 경제공동체가 된다. 간부들 사이에서 부패와 변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北 전체가 김정은의 私有物
세월이 지나면 위로 가야 할 돈이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쓰이기 시작한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용납불가다. 실무자들이 어느 정도 잘사는 것은 봐줄 수 있지만, 수고비 이상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주민을 포함한 북한 전체가 자신의 사유물(私有物)이다. 양강도 전역에서의 상납량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었다’ ‘배은망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누구 덕택에 그만큼 돈을 버는데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돈이 많아지면 엉뚱한 생각 품을 가능성도 늘어나기 마련 아닌가. 더 놓아두면 일 나겠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대 전체를 바꿔버린 것이리라.
이것이 소생이 취재한 ‘지난 8월 특수부대 긴급 이동’의 뒷이야기다. 물론 소생의 글도 100% 정확한 분석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북한은 비밀과 감추고 싶은 사실이 많고, 외부인의 시각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일이 수시로 벌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또 다른 돈주들과 폭풍군단 수뇌부 사이에 벌써 뇌물거래가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10년 후에는 폭풍군단도 다른 군단과 전면 교체되는 일을 당하리라는 사실이다. 북한 체제가 과연 10년 후까지 존속할 수 있을지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11월 13일 북한, 軍생활관서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철거…간부들 어리둥절
軍간부 “이런 지시 받아본 적 없어”
초상화 관리 미흡에 특단 내린 듯
북한이 군대 내 생활관, 전투근무 장소 등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 철거를 지시했다.
비록 일부이긴 하나 병영시설에서 김씨 2대 부자의 초상화를 내리라는 지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12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전했다.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RFA에 “지난 10월 말께 군대 내 병실(병사 생활관)과 전투근무 장소 등 사람이 많이 드나들거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물에서 초상화를 내리라는 중앙 당국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따라 “인민군 총정치국에서는 각 부대 정치부서가 책임을 지고 생활관과 전투근무 장소를 비롯한 일부 시설에 걸린 초상화를 내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이같은 지시에 “모든 간부가 어리둥절했다”며 “특히 초상화는 (김씨) 3부자와 관련된 일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지시를 받아본 적이 없어 긴장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총정치국의 지시를 접한 뒤 (초상화 철거) 사업에 대한 의문이 가셨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앞서 많은 군인들이 집단 생활을 하는 병실과 전투근무 장소에서 시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초상화 역시 관리가 안 돼 초상화가 오염되거나 훼손될 위험이 크다는 문제가 중앙 당국에 제기된 바 있다”며 이번 초상화 철거 사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초상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는 선대 수령과 직결된 정치적 문제”라며 “이런 문제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중앙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그는 “총정치국에서는 초상화 철거 문제와 관련해 간부와 군인 사이에서 불필요한 말들이 나오지 않도록 입단속도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 역시 “초상화를 내리는 사업은 전군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대 내 김일성-김정일주의 연구실, 교양실, 사무실을 비롯해 환경이 좋은 지정된 곳에만 초상화를 걸수 있도록 지침을 변경하고 관리를 소홀히 해 오염, 훼손 현상이 나타날 경우, 수령의 권위를 훼손한 행위로 엄격히 대책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상화 관리를 무책임하게 해 수령의 권위를 훼손한 문제가 불거진다면 관련 간부에 단호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해 간부들도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업은 김씨 부자 초상화를 선별적으로 걸어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 뉴시스>
12.08 ‘악어의 눈물’
北에 대한 ‘내재적 접근’으론 재래식 전력 증강 설명 못 해
김정은 경제보다 군사력 방점 그사이 경제는 계속 추락
제재 장기화하자 통제 狂暴화 제재 틀 유지하면 오래 못 버텨
북한 사정이 심상치 않다. 과연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집권 세력의 주류 담론은 소위 ‘내재적 접근'으로 북한의 입장과 주장에 서서 보자는 것이다. 군사 일변도였던 선대와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핵과 경제를 동시에 챙기는 병진 노선을 추진했고 이제 핵무기는 완성됐기 때문에 경제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김정은은 국민과 경제를 챙기고 심지어 ‘계몽 군주'라는 평판까지 나온다. 과연 그는 계몽 군주인가? 정말 민생을 챙기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가? 북한 선전물과 TV쇼 분석이 아닌 실증적 검증이 필요하다.
김정은의 경제 살리기는 스키장, 카지노 등 초호화 리조트 사업에 집중됐고 대동강변 전시용 마천루 건설이 고작이다. 산업을 일으키고 인민 경제를 향상시키는 조치가 아닌 낭비성 사업에 국가 재원을 쏟아붓는 격이다.
지난 10월 당 창건 기념일의 군사 퍼레이드는 내재적 담론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수년 만에 북한군은 환골탈태했다. 핵 전력이야 알고 있었지만, 놀라운 점은 재래식 전력이다. 북한군의 복장부터 소화기, 기동 차량, 포 전력, 다연장 방사포, 대공미사일, 전차 등 대대적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북한 군사 퍼레이드 단골이었던 스커드, 노동 미사일 등 구형 장비는 사라지고 대구경 방사포와 최신형 이스칸데르와 북극성 등 고체 연료 미사일로 교체되어 남한 공격용 군사력의 혁신이 이루어졌다. 북한은 핵 전력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북한의 최신 전차는 외형상 우리 군의 최신 전차를 방불케 한다. 광학 장비, 반응 장갑(reactive armor), 엔진 등 첨단 전차 장비들은 해외에서 조달했을 것이다. 결국 수십억달러의 천문학적 외화를 들여 북한군의 대대적 현대화를 추진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돈이 많이 드는 재래식 전력 대신 핵을 추진한다는 전제는 틀렸다. 국제 재재로 외환 사정과 경제가 극도로 악화됐지만, 군사력에 대한 투자는 멈추지 않은 셈이다.
김정은의 우선순위는 경제가 아니라 군사력이다. 김정은은 군사 퍼레이드에서 인민들에게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다’며 눈물을 보였지만 악어의 눈물이었던 셈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 경제는 좋아지고 있는가? 세계은행과 유엔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래 북한은 세계 최빈국의 국민소득 평균을 밑돌고 있으며, 그 격차는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결국 북한이 세계 최빈국이라는 얘기다. 북한 경제는 금년 10% 이상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북한 인구의 56%가 제대로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북한 주민 40%가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 수해로 쌀 생산이 20~3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겪는 세계 최빈국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 잠수함, 최신형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군사력에 ‘몰빵'하는 독재자를 계몽 군주라고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인지 의심스럽다.
최근 북한에서 코로나를 핑계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최악의 경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북한 원화가 달러 대비 20% 이상 절상됐다. 경제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화난에 처해 전주와 주민들이 갖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달러 사용을 막고 환율을 절상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이 북·중 교역이 지난 10월, 전월 대비 99%가 줄어 사실상 중단됐다. 명목상 코로나 방지를 위한 국경 봉쇄지만 외화 유출을 피하기 위해 교역을 아예 중단시킨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바다를 통한 코로나 유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어업과 염전까지 통제한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도 스스로 차단한다. 관련자 처벌이 잇따른다.
박지원 국정원장조차 김 위원장이 과잉 분노에 비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자신의 실정을 철저히 국제 제재와 코로나로 돌리기 위한 포석이지만, 인도적 대재앙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과거 고난의 강행군 시절 배급 중단으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시절을 거쳐 장마당 시장까지 경험한 인민들은 수령의 비합리적 행동에 반발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시간은 북한 편이며 “이제 남은 것은 인민이 더는 고생을 모르고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사력에 의존하는 체제의 전환 없이 그 일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대북 국제 제재는 분명한 효과를 내고 있다. 조바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전략적 손실을 지속적으로 부과하는 국제 제재 틀만 건재하다면 분명히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12.18 "누군가는 北이곳 봐야한다" 평양공화국 너머 882.6km의 기록
"모두가 평양을 본다면 누군가는 이곳을 봐야 한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린아이. 사진 강동완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북한은 평양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최근 강동완 동아대학교 부산하나센터 교수가 '평양 882.6km 평양공화국 너머 사람들'을 발간했다. 이번 책은 강 교수의 지난 저서 '평양 밖 북조선'과 '그들만의 평양'에 이어 북·중 국경에서 사진으로 담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알리는 세 번째 시리즈로 북한과 중국 국경에서 촬영한 수천장의 사진을 정리해 펴낸 것이다.
▲뒷마당에 간이 미용실이 열렸다. 사진 강동완
▲평양과 단둥을 오가는 열차. 사진 강동완
▲공놀이를 하는 소년의 모습 뒤로 총구를 겨누는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강동완
▲농촌지원에 나서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강동완
사진들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북·중 국경의 처음과 끝인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에서부터 두만강구를 마주한 훈춘 인근에서 촬영된 모습들이다.
▲선전문구가 적힌 커다란 벽 앞을 지나는 사람들. 사진 강동완
▲카메라를 응시하는 마을주민들. 사진 강동완
▲36층 규모의 고층 살림집이 건축되고 있다. 사진 강동완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됐다. '평양제1백화점 VS. 장마당', '평양국제비행장 VS. 감시초소'등 화려한 평양의 모습 이면에 전개되는 주민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뒷마당에서 머리를 자르고, 개울가에서 물장난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부터 단체로 트럭을 타고 농촌 지역으로 나서는 여학생들, 줄 하나에 의지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평양 밖 세상을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들이 그대로 담겼다.
▲건설현장에 '천년책임, 만년보증'이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강동완
▲일반 살림집 모습. 사진 강동완
▲떼몰이하는 주민들. 사진 강동완
▲냇가에 앉은 모자의 모습. 사진 강동완
강 교수는 책 말머리에서 "북·중 국경에서 바라본 북녘의 모습은 평양과는 사뭇 달랐다. 그곳에도 분명 사람이 살지만, 결코 꿈꿀 수 없는 평양 밖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모진 삶의 무게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 어렴풋이 전해오는 듯했다"고 출간 취지를 밝히며 번듯한 외형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람의 절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움이 오히려 고통이 되는 분단 시대의 모순이 서글플 따름"이라고 밝혔다.
▲전봇대를 세우고 있는 주민들. 사진 강동완
▲국경 인근 지역의 주상복합 건물. 사진 강동완
▲고층살림집의 모습. 사진 강동완
▲한 병사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 강동완
▲단둥철교의 모습. 사진 강동완◎
중앙일보 장진영 기자